경인칼럼

 

[경인칼럼] 공당(空黨)의 공천(空薦)

권력투쟁 수단·정파적 이해 관철 시키는 도구 전락여야 독선적 '공천활극'에 유권자 어떻게 답할지 궁금제도 개선·보완 없이는 정당정치 민주주의 정착 요원20대 총선의 후보 등록이 내일로 다가왔다. 공식선거 기간을 남겨두고 있으나 여야 정당의 정책과 공약이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되기는 애당초 틀렸다. 정책에 대한 쟁점 축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정당들의 공약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19대 총선의 무상복지와 급식 등의 의제가 여야간 선거쟁점으로 떠오른 것과 대조된다. 선거를 앞둔 정당의 이합집산과 탈당 등이 낯선 모습들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처럼 공천 난맥의 극치를 보인 적은 없었다. 현실정치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도덕주의적 관점은 정치현상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게 하기 일쑤다. 정치는 권력 쟁취를 위한 쟁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게임이라면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명분과 이상의 적절한 타협이 정치다. 정당을 통하여 갈등이 관리되지 못한다면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의 고전적 정의도 의미를 상실한다. 공직자 후보를 추천함으로써 정당은 정치적 충원 기능을 갖는다. 공천을 통한 정치적 충원은 유권자와 당원의 의사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혈세로 정당보조금을 받는다. 그것도 선거가 있는 해는 막대한 액수의 선거보조금까지 받는다. 공천이 정당 내부의 일이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면 안 되는 이유다. 공천(公薦)이 정도(正道)가 실종된 공천(空薦)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야 정당들의 공천 드라마에 헌법 1조가 명시하고 있는 주권의 담지자로서의 국민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상향식 공천'은 어설픈 정치이론을 말하는 아마추어들의 논변으로 치부됐다. 국민이라는 추상적 집합체는 권력정치를 신봉하는 세력에게는 단 맛을 안겨주는 수단으로 인식될 뿐이다. 최소한의 명분도 파당을 노골화하는 데 방해가 되면 과감히 폐기된다. 금도(襟度)가 생략된지는 이미 오래다. 명분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기술이 정치고,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천이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정파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철저하게 전락한 정치공간에서 이상과 실리의 접점을 모색하는 정치는 폐기됐다. 여야의 공천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이다.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의 공천활극은 자신들만의 패거리로 국정을 독점하겠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전형적 구시대적 정치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정책과 공약이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이번 총선은 선거구도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야권의 분열은 선거연합을 통한 야권의 연대 자체를 실종시키고 있다. 연합정치가 사라진 공간은 국민의당 수장의 거친 정치적 수사로 메꿔지고 있다. 수도권에서의 연대를 이뤄낼 만한 정치력은 야당 지도자들에게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오로지 공천갈등과 공천탐욕만 난무했다. 공천의 잡음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의 비례대표 공천 탐욕으로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킨다. 이번 총선에서의 관심이 집권당의 과반 획득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압도적 승리를 하느냐에 쏠려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일반화된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는 17·18·19대 때는 집권당의 과반 획득으로 나타났다. 물론 한 두 석의 근소한 여대야소였다. 여당에서 공천 배제된 의원들의 무소속연대의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구심을 형성할 리더십의 부재로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예단하기 어렵다. 집권세력의 노골적이고 퇴행적 진박 마케팅이 수도권에서 민심의 심판에 직면한다면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의 쟁점법안 통과 의석인 180석을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프레임 변수와는 다른 차원에서 여야 정당들의 독선적 공천활극에 유권자가 어떻게 화답할 지 궁금하다. 공천제도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보완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정당정치를 통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하다. 그래서 믿을 건 총알보다 강하다는 유권자의 투표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6-03-22 최창렬

[경인칼럼] 인공지능과의 인간의 공진화

더욱 빠른속도로 진화 '전문분야'부터 대체할 듯인류·국가 미래 운명도 좌우할 '인공지능 혁명''300억 투자하겠다'는 우리정부 태평스럽기만인공지능 열풍이 한국에 불고 있다. 게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벌인 바둑대결이 가져온 효과이다. 세계인의 이목도 이 빅이벤트에 쏠려 있다.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로 동북아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한 달 앞의 총선으로 국내 정치도 연일 대형 뉴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세기의 대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마지막 대국은 국내 방송사들이 모두 생중계에 나섰다. 직관과 창의력을 놓고 기계와 인간이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기계'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는 이 대국은 인류사 혹은 문명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사실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인공지능의 시조인 엘런 튜링이 예고한 바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시제품이 개발되어 이미 활용되고 있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을 꺾은 IBM 인공지능 '딥블루', 2014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의 역대 우승자들을 꺾은 'IBM왓슨' 등이 대표적이다. 알파고는 바둑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경우의 수에 대해 신경망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인공지능이다.갑자기 출현한 인공지능의 위력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졌다. 기상예보용 인공지능의 예측 성능에 대해서는 불평하지만, 유독 인공지능 앞에서는 공포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고유기능이라고 '믿어 온' 능력과 일을 기계가 가로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가 알파고를 대신하여 바둑을 두고 있는 아자황 박사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의문 말이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사회적 변화는 혁명적이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총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30년까지 이 직업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그중 판사의 경우 사라질 확률이 40%에 달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문직종으로 분류됐다. 판결은 법률 조문,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과 증거물 등을 바탕으로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더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 분야는 의료분야이다. 딥 러닝으로 의료데이터를 읽는 방법을 숙지한 인공지능은 의사보다 암진단이 정확하며 빠르다. 딥 러닝을 이용해 방사선 사진, MRI, CT스캔, 현미경 사진 등에서 악성 종양이 있는지를 신속 정밀하게 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완성단계에 있다.인공지능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미래 사회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가장 전문적인 직업 분야부터 대체해 나갈 것이다. 중요도는 높지만 시민들의 불신이 크고, 개발에 따른 수익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학습과 교육 혁명의 대비는 눈앞의 과제이다. 지식과 정보의 축적과 처리 방식은 인공지능의 몫이다. 인간은 알고리즘과 같은 문제해결 방법의 창의적 설계자가 되어야 하고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모두의 승리이다. 구글딥마인드는 인공지능 개발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인간대표 이세돌이 4국에서 보인 묘수는 기계의 신경망을 혼란시켰고, 알파고가 제2국에서 우변 침투 묘수를 보여주었으니 서로 크게 배웠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과 함께 진화해온 것이었다면 미래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진화(co-evolution)하며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 국가 미래의 운명도 좌우할 인공지능 혁명에 대한 한국의 대비는 어떤가? 구글이 인공지능사업에 33조원을 투입해 왔는데, 향후 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는 참으로 태평스럽기만 하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6-03-15 김창수

[경인칼럼] '침묵하는 다수'와 트럼프의 유혹

잘 살지 못하는 중장년층 백인계 '낀세대'들 지지사회적 금기, 제멋대로 허물어뜨리는 것에 '환호' 도처에 깔린 우리 불만세력과 그들은 정녕 다를까?'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는 국가나 집단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기를 꺼려하는 불특정 다수를 일컫는다. 주로 보수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반전시위가 한창이던 1969년 11월 3일 연설에서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거리로 나와 자신의 시각을 나라 전체에 강요하려는 소수에 의해 국가의 정책 방향이 좌지우지된다면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했던 선서를 지키지 못하는 셈"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반전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래서 오늘 밤 저는 여러분, 즉 우리 미국 시민들 중 침묵하시는 다수의 분들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년 전 대선에서 승리하며 30년 넘도록 지속된 민주당 우위를 종식시킨 닉슨의 자신감이다. 닉슨 이후 45년 만에 다시 미국이 '침묵하는 다수'에 주목하고 있다. 공화당의 '문제적'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그의 유세현장에는 "침묵하는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적은 피켓이 진을 친다. 닉슨의 '침묵하는 다수'는 하얀 나무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규칙을 따르고, 세금을 잘 내며, 시위 같은 건 하지 않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는 닉슨의 그들과 다르다.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는 잘 살지 못하는 중장년층 백인계층이다. 경제적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 '낀 세대'다. 어떤 세대보다 미국 사회에 불만이 많이 쌓여 있는 계층이다. 자신의 경제상황, 불법 이민자들, 미국의 추락하는 국제적 위상에 불만을 갖고 있는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트럼프는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공화당의 선두주자로 질주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가 사회적 금기(social taboos)의 해체에 대해서도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종교박해, 여성비하 등 미국사회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런대로 애써 지켜오고 있는 사회적 금기들을 제멋대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히스패닉계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을 강간범과 마약중독자들이라고 비하하고, 무슬림에 대해선 사원들을 모두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여성혐오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8월 폭스(Fox) TV 주최로 열린 공화당 대선주자 합동토론회의 진행자였던 여성앵커 메긴 캘러에 대한 '피' 망언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그녀를 '빔보(Bimbo)'라고 비아냥댔다. 섹시하지만 '골 빈' 여자를 칭하는 비속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침묵하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흑인, 여성, 무슬림 등 특정 집단에 대한 괴롭힘 금지에서 출발한 것이 지금은 너무 과도해져서 자칫 잘못하면 직장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불편한 세상이 됐다고 푸념한다. 트럼프는 그런 자신들을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할 말(?) 하면서 박탈감을 달래주는 존재다. 그래서 지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만세력이 도처에 포진해 있다. 세대, 계층, 진영 간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태다.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긴장감은 폭발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한 달 후면 우리도 선거를 치른다. 지금대로라면 1여다야(一輿多野) 구도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경쟁양상은 복잡하기만 하다. 선거구획정마저 늦어져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난장판 선거에 뛰어든 이들이 '트럼프의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조선족 동포, 탈북자들을 표적으로 삼거나 우파와 좌파, 기독교도와 불교도가 서로 나뉘어져 한 치 양보 없는 대치국면을 펼칠 경우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할까. 우리 사회의 '침묵하는 다수'는 트럼프의 '침묵하는 다수'와 정녕 다를까. 트럼프가 원맨쇼를 펼치고 있는 미국선거판이 단순히 재미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3-08 이충환

[경인칼럼] 전통시장 닮는 오픈마켓

작년 온라인거래 48조… 20년만에 유통산업 지각변동품질과 상관없는 광고비 과다지출 부작용도 증가지속가능성 위해 윤리경영과 시장질서 복원 필요온라인쇼핑의 폭풍 성장이 주목된다. 지난해 온라인매체들을 통한 판매액은 48조원으로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매출액 40조2천734억원을 능가했다. 전자상거래가 오프라인을 제치고 유통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국내에 e커머스 업태가 출현한 지 20년 만에 유통산업의 지각변동이 초래됐다.오픈마켓의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한국의 오픈마켓 시장규모가 2009년 9조7천억원에서 2014년에는 20조원으로 급신장해 전체 온라인 매출액의 40%를 점한 것이다. 오픈마켓이란 수수료만 지불하면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점포를 개설해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장터로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1995년 미국 이베이가 개인과 소규모 판매업체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거래하도록 한 '중개'형 인터넷 플랫폼을 개설한 것이 효시이다. 국내적으론 G마켓, 옥션, 인터파크, 11번가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로 이들은 시스템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품을 런칭한 상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2000년대 이후 종합인터넷 쇼핑몰보다 오픈마켓이 매출과 수익성 면에서 안정적일 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구조를 시현하고 있어 통신판매업태들 중 성장성이 가장 높다. 바쁜 현대생활에다 염가로 구입이 가능해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모바일쇼핑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하고 사용자 연령대 또한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 시장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SNS) 3인방까지 모바일쇼핑의 덩치를 키우는 중이어서 점입가경이다. 세계최대인 중국의 알리바바가 T-mall에 '한국상품 판매전용관'을 설치하고 미국의 아마존도 국내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파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오픈마켓의 부작용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입점업체들에 광고비와 부가서비스 사용명목으로 판매수수료의 9배가 넘는 금액을 징수했다고 발표했다. 품질과 무관하게 광고비를 많이 낼수록 노출순서가 앞서는 구조여서 광고서비스를 사지 않는 상품은 순위가 맨 뒤로 밀려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4년 오픈마켓 입점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다한 판매수수료 및 광고비 요구와 같은 불공정행위를 한 번 이상 겪은 중소상공인이 82.7%이고 불분명한 비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정산한 경우도 40.3%에 이른다. 장터운영자들의 갑(甲)질이 도를 넘은 것이다. 입점업체들은 G마켓과 옥션의 합병 이후 더 심해졌단다.국내 오픈마켓시장은 G마켓, 옥션, 11번가 등 3사 독과점구조이다. 이들 3사의 시장점유율이 97%인 것이다. 마켓쉐어 1, 2위인 G마켓과 옥션은 이베이코리아 소속으로 한 식구이다. G마켓, 옥션, 11번가의 패션잡화 판매수수료가 12%로 똑같은 점도 눈길을 끈다. 오픈마켓의 입점수수료는 8~12%이나 광고비를 감안하면 백화점 수수료(28.32%)보다 높단다. 플랫폼 제공업체들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유이다. 오픈마켓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는 점인데 정도가 심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픈마켓의 경우 관련 법률의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제재가 어렵단다. 소비자 불만 고조도 간과할 수 없다. 구매한 제품들이 광고내용과 다른 허접한 것들이 비일비재하나 구매자와 판매자간에 분쟁이 야기될 때마다 온라인몰 사업자들은 발뺌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티몬사이트에서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이 팔린 데 대해 티몬 편을 들었다. 소셜커머스는 판매자와 고객 간의 단순한 중개자일 뿐 제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우려가 크다.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걸음마 단계에 있는 온라인장터가 벌써 전통시장을 닮아가고 있다. e커머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인데 첩경은 윤리경영이다. 글로벌 공룡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오픈마켓 스스로 생태계 복원을 당부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6-03-01 이한구

[경인칼럼] 희망과 열정의 쌍고동을

유태인들 수천년 떠돌았지만 비관·자포자기 안해불행 닥치면 더 창의적·열정적 노력으로 위기극복우리도 불안한 환경탓만 말고 정면돌파로 우뚝서야우수, 경칩에는 대동강이 풀린다고 하였는데 요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초래된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와 양극화, 청년실업 문제 등 뭐하나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아 답답합니다만, 잠시 고개를 돌려 인천항으로 가보겠습니다.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갈매기도 슬피 우는 이별의 인천항구…". 대한민국 중장년층, 특히 인천시민이면 친숙한 '이별의 인천항'이라는 대중가요 가사입니다. 이 노래가 1954년, 전쟁직후에 발표된 노래라서 그런지 애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사만 보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항구에서 저 항구로 떠나는 선원들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지만, 사실은 전쟁으로 부모 형제,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나라에서 먹고 살려고 새 터전을 찾아 항구를 떠나는 우리 모두의 슬픈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들립니다. 얼마나 사는 것이 힘들고 희망이 보이질 않았으면 작약도의 등대불만 가물거린다고 노래했을까요. 그 후로 우리는 피나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난파된 대한민국호를 다시 출항시키고, 세계1등 공항인 인천공항도 탄생시켰습니다. 이제는 이별만 슬퍼하는 우울한 항구가 아닙니다. 희망과 열정의 항구입니다. 어떻든 항구는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기쁨이 교차하는 인생살이의 축소판 같습니다. 항구에 울려 퍼지는 쌍고동은 어떤 이에게는 아쉬움과 슬픔을 가려주기도 하지만 목표지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열정과 희망의 나팔소리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시간과 장소를 거슬러 올라가 1871년 영국 런던으로 가 보겠습니다. 당시 사무엘이라는 18세의 유태인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가정은 부모와 11명의 형제가 동유럽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흘러들어와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의 아버지는 선물로 일본행 편도 3등선실표를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런던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향하는 배 한 귀퉁이에 몸을 실었습니다. 수십일 간의 항해 끝에 일본에 도착한 사무엘은 주민들이 바닷가 모래와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것을 발견하고,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장식품을 만들어 영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 팔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사무엘은 조개껍질로 나전칠기 상자를 만들어 영국으로 보내 팔았는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사무엘은 그 이후에 석유사업에 눈을 돌려 역시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 회사가 바로 쉘(Shell)입니다. 그런데 쉘의 로고가 조개껍질 모양입니다. 사무엘은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조개껍질 모양을 로고로 삼았고, 회사를 팔 때도 회사가 존속하는 한 조개모양의 상표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태인의 저력을 봅니다. 바로 흩어지고 떠나는 것이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합니다. 유태인은 주변 민족으로부터 끊임없는 핍박을 당하고 수 천 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또 나라가 없었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사무엘처럼 18세의 어린 나이에 런던에서 일본까지 가는 배를 타야만 했고, 일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삶 자체가 위기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체화하게 된 것입니다. '앙스트블뤼테(Angstblute)' 절체절명의 순간에 피는 꽃이라는 말입니다. 유태인들은 수 천 년 동안 나라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해 3등선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극한 불행이 닥쳤을 때 평소보다 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도 청력을 상실한 이후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교향곡3번 '영웅'을 시작으로 불후의 명곡 '합창'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도 불안한 주변 환경을 원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위기요인들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결국 세계인들 앞에 우뚝 서야 할 것입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이즈음 봄눈 녹듯 남북관계가 해결되고, 대한민국 항구마다 열정과 희망의 쌍고동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해 봅니다./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박영렬 법무법인 성의 대표변호사

2016-02-23 박영렬

[경인칼럼] 조선 붕당 VS 한국 정당

개성공단 중단 '결단'·'통치' 국민신뢰 전제돼야野 "총선용 與정치공학적행위" 비난 설득력 없어진영논리 여론몰이 '국회-국민' 대립시키는 언술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이슈가 새해 벽두를 강타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여론은 거의 팽팽하게 갈린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대해서도 찬반 어느 한쪽으로 공론이 모아지지 않는다. 여론조사 업체와 의뢰기관에 따라 찬반 수치도 갈린다. 안보나 경제 영역의 전문가가 아닌 일부 미디어 연사들의 종일 방송이 여론을 정부 쪽으로 기울게 할 개연성은 상존한다. 여야 정치권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드와 개성공단 이슈에 대해 일치된 국론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상황은 낯설지 않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55일 남았다. 그런데 선거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새삼 호들갑 떨면서 정치권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어차피 유권자들은 큰 관심이 없고 역대 거의 모든 선거때도 선거구는 선거를 코 앞에 두고 획정됐으니 하는 말이다. 17대 총선거는 불과 선거일 37일전에 선거구가 확정됐다. 지난 19대 선거 때도 40여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다. 그에 비하면 아직은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19대 국회라고 하면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선거는 치를테고, 선거무효 소송 등은 차후의 문제니까. 쟁점법안이란 현안들도 여야가 크게 합의 못할 쟁점들도 아니다. 소위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되는 상황은 우리의 시민사회의 수준과도 맞물려 있다. 새삼 사회경제적 격차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 및 시민사회를 논한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혼돈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 만큼 현재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갈등과 현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해 가는 방식의 문제의 어설픔은 항상 사회를 갈등으로 내몬다. 옳고 그름과 선악에 집착하는 도덕주의적 관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야의, 보수와 진보의,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각자도생에서 관용과 타협의 민주주의에 관한 토론은 어딘가 격에 맞지 않고 어색해 보인다. 사안마다 철저히 논리 전개의 방식이 다르고 이의 당연한 귀결로서 일말의 유대와 연대를 찾기 어려운 우리네 삶의 모습은 점차 사회 구성원들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으로 입주 기업이 입을 피해보다는 엄중한 안보이익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개성공단의 중단이 법적으로 정당했느냐는 논란은 어차피 정치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다 높은 층위의 정치를 왜 우리의 지도자들은 의식하지 않는가. 정치와 통치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의 위임을 받아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도 어차피 지도자의 '결단'과 '통치 행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 결단이 사후에라도 국민들의 추인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치 일상에서 집권측이 상대를 설득하고 반대자를 납득시키는 지난(至難)한 정치력과 노력에 기반해 왔다는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의 갑작스런 중단이 20대 총선거에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하는 여권의 정치공학적 행위라는 야권 일각의 비판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차치하고서라도 갑작스런 중단이 124개의 입주기업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당혹과 절망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의 중단이 북에 대한 제재의 고삐를 죄고 북의 미사일 도발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예측의 근거도 과학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역풍도 예견하는 심모원려(深謀遠慮)는 찾아볼 수 없다. 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공론화보다는 진영 논리와 선입견에 입각한 여론몰이는 국회를 국민과 은연 중에 대립하게 만드는 언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당의 형해화와 정당정치의 실종이 객관과 이성이 전제된 공론화를 막고 있다. '백성의 하늘은 먹는 것'이라고 했던 맹자와 이에 바탕했던 성리학이 이학(理學)에서 예학(禮學)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은 사라지고 붕당의 권력다툼의 명분으로 전락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정당은 붕당의 긍정적 의미조차도 상실했다. 국가적 이슈를 둘러 싼 갈등을 조정하고 공론을 모아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6-02-16 최창렬

[경인칼럼] 문화지구의 패러독스와 신포동 대책

문화예술이 추방된 곳은 특색없는 상업지구일뿐인천시·중구, 건물 직접 매입하는 정책전환 시급앵커시설 조성 소상공인·문화예술인들에게 임대해야아카시 나무야말로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개항기에 들어온 외래종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산을 망치게 할 목적으로 심었다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실은 황폐한 지력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효자다. 아카시 나무는 박토를 아랑곳하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콩과식물이라 공중 질소를 스스로 고정시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비옥함 때문에 웃자란 아카시 나무는 쓰러지기 시작한다. 아카시 나무가 일군 땅에는 다른 식물종들이 자리 잡아 번성한다. 아카시 숲의 천이(遷移)과정은 문화예술이 애써 일구어 놓은 도시공간이 상업자본으로 대체되는 도시 재생의 과정과 흡사하다. 문화예술로 특정 지역이 활성화가 이뤄지면,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올라가고, 결국 문화예술 활동이 어렵게 되거나 예술가 그룹이 추방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난다. 대학로와 홍대 입구를 문화공간으로 활성화시킨 주역도 이곳에서 입주하여 활동한 문화공간과 예술가들이었다. 홍대 입구와 대학로에 유흥상권이 늘어나면서 창작실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자 새 영토를 물색하던 예술인이 찾은 곳이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였다. 그런데 문래동도 지역상권이 살아나 상업공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어 개척자들은 조만간 또 다른 박토(薄土)를 찾아 떠나가야 할 운명이다.인천 신포동과 개항장 문화지구에 그 같은 역설이 반복될 조짐이 역력하다. 구도심의 낙후한 풍경과 다소 쓸쓸하지만 덜 번잡스러운 거리, '착한 가격'에 손님을 반겨주는 정겨움, 예술인들이 작업하기에 적당한 공간들이 있었다. 예술인 레지던시 공간과 문화기관이 자리 잡고 특색있는 갤러리와 북카페와 공방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일대의 상가가 되살아나고 어두웠던 골목길이 한층 밝아졌다. 또 인천 내항 개방과 인천시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프로젝트가 가시화되면서 지역 명소로 바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상가건물의 매매가와 임대료는 30%가량 올랐으며, 5년 전과 비교하면 50% 이상 치솟았다. 문화공간과 예술인들의 새로운 입주는 물론 유지도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면 빈곤지역 또는 재개발 필요 지역이 자연스럽게 개발의 물살을 타게 만드니 당장은 균형발전의 목적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나 땅 주인들, 부동산업자들은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남은 자'들의 행복은 지속 가능할까? 문화가 없는 도시, 특색 없는 동네가 오래 번성하기는 힘든 법이다. 결국 지역사회의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특성화해야 할 마을을 프랜차이즈의 영토로 훼손시켜버렸기 때문이다.그런데 문화예술이 추방된 자리는 특색 없는 상업지구일 뿐 고유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매력도 퇴색하게 된다. 추방되는 것은 문화예술인뿐 아니다. 비싼 임대료로 인해 전·월세로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도 떠나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큰 손실이다. 프랜차이즈로 대체된 문화지구를 관광객이 찾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정책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보조금이나 임대료 융자와 같은 소극적 지원정책으로는 상업자본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인천시와 중구가 개항장 문화지구의 중요한 건물들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매입한 건물은 지역 특성을 대표할 수 있는 앵커시설로 조성하여 소상공인이나 문화예술인들에게 임대하여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2016-02-02 김창수

[경인칼럼] '나쁜 도시' 인천

11살 소녀 학대·초등생 시신 훼손된채 발견…미디어 '인천 ○○사건'으로 표현 이미지 실추'아이 키우기 무서운 곳' 낙인… 가치재창조 고민 필요1997년 iTV 인천방송 개국과 동시에 선보인 '리얼TV-경찰24시'는 소위 킬러콘텐츠였다. 6mm 카메라앵글이 범죄 현장을 꾸밈없이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구성은 단순했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를 카메라가 좇는 형식이다. 범인 검거과정이 여과 없이 안방으로 전해졌다. 주인공은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강력반 형사들. 화면에서는 언제나 긴박감이 묻어났다.제작진이 안정적인 시청률을 즐기고 있을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의 여론 형성층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경찰24시'가 인천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에 등장하는 범죄현장은 죄다 인천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또한 대부분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뜩이나 삶의 질이 떨어지는 도시로 낙인 찍혀 있는데 지역의 방송이 그런 인천의 이미지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일면 타당했다. 결국 제작진은 서울과 경기도로 소재를 확대했다. '나쁜 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라도 '물타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인천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은 그때 일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2014년 4월, 썩은 기저귀와 이불 등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어린 4남매가 생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아동학대의 또 다른 형태인 아동방임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언론은 '인천 쓰레기집 4남매' 등으로 기사제목을 달았다. 2015년 1월, 한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던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보육교사로부터 가혹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CCTV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은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2015년 12월, 친부와 그 동거녀에 의해 2년 동안 집안에 감금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던 11살 어린 소녀가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몸무게는 겨우 16kg. 다섯 살짜리 아이만 했다. 뼈가 앙상한 소녀가 먹을 것을 허겁지겁 입에 가져가는 모습은 이 땅 모든 부모들을 울렸다. '인천 11살 소녀 학대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 부천에서 학교를 다니다 사라진 한 초등학생이 4년 만에 인천의 한 가정집 냉장고에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이번에도 친부다. 3년 전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아이의 훼손된 시신도 함께 옮겨왔다. 이번 사건에서도 '인천'이 언급되는 까닭이다. 대도시(metropolis)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와 모순의 응집체다. 기회를 찾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억울하게 기회를 박탈당한다. 행복하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늘 동반하는 불행과 맞닥뜨린다. 살고자 모여든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간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인천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똑같은 대도시인데도 서울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OOO사건'이 되는데 인천에서 발생하면 왜 '인천OOO사건'이 되는 것일까. 왜 인천만 유독 '나쁜 도시'의 이미지가 켜켜이 쌓여져가는 것일까. 한번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또 다른 나쁜 이미지가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된다. 미디어는 그것을 부채질하는 대표적인 기제다. 인천이 그 덫에 걸려든 것일까. '인천 가치 재창조' 열기가 뜨겁다. 필요성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업의 철학과 방법론에 대해선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선(善)한 이미지가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겠는가. 축구, 야구, 짜장면, 쫄면의 '최초' 기록만으로 '나쁜 도시' 인천의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가. '아이 키우기 무서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저토록 강한데 말이다. 남편 출퇴근 편리한 부천에서 다섯 살과 두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처제는 송도국제도시로 오고 싶어 했다. 교육환경이 좋다고 했다. 그러다 요즘 말이 없다. 왜 그럴까. 처제는 왜 말이 없어졌을까./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01-26 이충환

[경인칼럼] 경제부진 은행 탓이 크다

금융기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서민상대 돈놀이대출로 집 장만 할부로 차 사고 생활비는 신용카드로…결국 고용불안·민간소비 위축 '빚에 눌린 경제' 만들어경제성장률과 소비지출이 증가한 이유는 노동의 대가로 얻은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라 각종 개인채무가 증가한 때문이다. '마케팅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필립 코틀러 교수의 미국경제에 대한 진단이다.1970년까지 미국인들의 신용대출은 전무했으나 2012년에는 가계부채가 11조1천300달러로 불어났다. 부동산 담보대출이 전체의 70%인 7조8천100달러이고 학자금대출 9천905달러(8.9%), 신용카드 8천498달러(7.6%) 등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980년 68%에서 2014년에는 113%로 증가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중산층 대부분이 카드론으로 가계수지 결손을 충당한 때문이다. 미국인 67%가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며 2014년 미국가정의 평균 신용카드 대출액은 1만5천607달러로 평균임금의 40%에 달한다.톱니효과라는 게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수준도 동반 상승하는 반면에 소득이 줄 때는 소비의 동시축소가 어려워 경기하강 속도를 늦추는 것을 의미한다. 비올 때를 위해 준비한 우산이 빛을 발할 상황이나 미국인들의 저축률은 실망 그 자체이다. 2012년도 국별 가계저축률은 중국 50%, 프랑스 16.1%, 독일 11%이나 미국은 4%에 불과하다. 1인당 GDP가 미국보다 높은 노르웨이도 8.1%이다. 미국인 중 20%는 아예 한 푼도 저축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절대 다수 미국인들이 '꿈질'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금융기관들의 파행적 돈놀이가 화근이다.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한 신용카드가 단연 인기였다. 심지어 대출 무자격자들에게도 모기지론을 권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의 '귀에 걸면 귀고리'식 평가는 주마가편이었다. 자유를 빌미로 브레이크 밟기를 주저한 규제기관의 무책임은 도를 넘었다. '가계부채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의 진원지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향후 10년 동안 미국정부가 갚아야할 이자액만 무려 5조 달러에 이른다. 은행의 개인 상대 이자놀이에 국가경제가 거덜 난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여전히 신용카드를 긁어대고 있다.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은행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한국은 미국보다 더 심하다. 2014년 GDP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보유율은 89%로 세계 1위이다. 월평균 가계소득은 2005년 289만원에서 2014년에는 430만원으로 10년 만에 48.7%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지출은 4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성향은 낮아지고 저축성향은 커지는 법이나 작금의 개인저축률은 5%를 겨우 넘어섰다. 단기간의 가계부채 급증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의 경우 미국은 34년 만에 45% 증가했으나 한국은 불과 10년 만에 34%나 늘었다. 금융비용 누증(累增) 탓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한국 금융기관들이 개인상대 돈놀이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였다. 당시 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0조원의 공적자금 덕분에 기사회생한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보다 리스크가 훨씬 적은 소매금융에 올인 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출받아 집을 사고 할부금융을 이용해 마이카를 장만했으며 일상의 생활비는 신용카드를 긁어 벌충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상징적이다. 이명박정부 이후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모기지론, 카드론, 할부금융 등은 고용불안과 함께 민간소비 위축의 일등공신이다. 한국경제도 미국처럼 빚이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을 위한 신용시스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가 이제는 가계소비를 위한 대출시스템으로 전락했으며 금융자본은 다른 경제분야에서 쥐어짜 낸 돈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산업으로 둔갑했다. 돈 먹는 괴물의 식탐 한계가 가늠되지 않는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미국 MIT대학의 찰스 킨들버거 교수의 "경제적 재앙 전에는 거의 대부분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경고가 귓전을 맴돈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6-01-19 이한구

[경인칼럼] 종편 사용설명서

정치평론가들 뚜렷한 정치색 띠며 '입담 과시'정치발판의 수단 삼으려는 사람들 점점 많아져개국 5년째… 출연진 이력제 못할것도 없지 않은가종합편성채널, 즉 종편이란 뉴스·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하는 채널을 가리킨다. 지금 대한민국은 종편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2011년 12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4개의 종편이 출범할 때만 해도 종편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막강한 자금력과 오랜 연륜의 지상파 방송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종편들이 적자에 시달렸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종편에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돈 적게 들이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시사 뉴스 프로그램은 제격이었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출연진 몇 명이 나와 하루 종일 정치얘기만 하면 되니 제작하기도 편했고 비용도 저렴했다.종편들이 개국할 당시 대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컸던 시기다. 그러다 보니 듣지도, 본적도 없던 사람들이 '정치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종편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국민들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정치평론가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자라는 신분 때문에 처음엔 신뢰가 갔지만 그들이 '정치교수'라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정인과 특정정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4개 종편을 돌아다니며 출연하는 20~30명의 소위 정치 평론가들이 점점 뚜렷한 정치색을 갖고 특정인과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중립적 시각에서 정치판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사주의 입장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진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출연진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이들의 이력을 제대로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야당에 우호적으로 발언하는 평론가의 이력을 보면 한때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거나 야당과 관계가 있는 일을 했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물론 여당 지지 평론가도 마찬가지다. 하도 교묘해서 종편사용설명서가 필요할 정도다. 그런데 학습효과때문인지 시청자들이 출연진의 정치적 성향을 다 꿰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평론가들의 얘기만을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올해는 종편들이 개국 5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질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돈 적게 들이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시사 뉴스 프로가 홍수를 이룬다. 국민의당이 총선 3개월을 남겨 놓고 정당을 급조해 총선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종편 덕분이다. 종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시사뉴스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종편이야말로 홍보 수단으로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권노갑 전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게 종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신속성도 좋지만 정보의 과잉은 문제다. 종편 덕분에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만나 정치 얘기를 하면 서로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지려고 하지 않는다. 뚜렷한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으니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른들, 특히 남자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정치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들어 보면 이 아저씨들, 모르는 게 없다. 알아도 너무 많이 안다. 모두 '정치도사'들이다. 종편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종편을 정치 발판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지난 11일 새누리당은 6명의 인재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김무성 대표가 영입 인사를 직접 소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섯명 모두 그동안 4개 종합편성채널, 즉 종편 시사 프로그램 단골 출연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종편 개국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래서 최근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최소 6개월 전 종편 출연을 금지 시키고, 시사 뉴스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이력을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축산물도 이력제가 있는데 종편 시사 뉴스프로 출연진 이력제를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제 종편은 시청자들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개국 5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논설위원

2016-01-12 이영재

[경인칼럼] 새해만 되면 소망하는 것들…

지난해 풍자로 회자됐던 ‘헬조선인·수저계급론…’청·장년세대들 어둡고 답답한 현실 애처롭게 견뎌올해엔 절망 없는 희망의 사다리 놓여졌으면…잿빛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고 미세먼지가 공간을 가득 메운 회색빛 세상은 답답하고 암울하다.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꿈은 현실과 유리된 환상이 되어 허공을 맴돈다. 한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듯 그런 세상 그런 세월을 견디며 살아 내려면 비상한 각오로는 부족하다. 해학과 풍자로 시름을 달래며 고통을 견뎌내는 것도 절망의 사막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지난 한해 우리 현실이 그랬던 듯싶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단어가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헬조선(Hell朝鮮)이었으니 말이다. 뜻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 이건 아니다 싶기도 했지만 취업에 절절매고 현실에 절망하는 아이들을 돌아보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수저로 구분하는 신계급론도 그렇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로 계급이 나뉘고 부모 자산 20억원 이상, 또는 가구 연수입 2억원 이상이 되어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따라 붙는다. 흙수저는 부모 자산 5천만원 이하, 가구 연수입 2천만원 이하를 의미한단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식들은 어느 계급인지 약삭빠르게 계산하다가 아주 빠른 동작으로 생각을 지웠다. 아무리 살펴도 금수저나 은수저는 절대 아니니 아이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서다. 팍팍하고 답답한 현실에 절망한 이 땅의 청춘들이 지난 한해 이런 풍자와 해학을 통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견뎌내며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려고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죽을힘을 다했다. 애처롭고 애틋하다. 그나마 청춘들이야 이렇게라도 울분을 토하지만 어중간한 처지의 장년 세대도 힘들긴 똑같았다. 60세 정년을 보장한다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40대 늦춰 잡아도 50대 퇴직이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이 미래다’라고 외치던 어느 대기업은 ‘사람이 귀찮다’며 20대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이라는 참으로 고운 언어로 포장해 퇴출해 버렸다. 물론 나중에야 여론의 눈치가 무서워 담쟁이덩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철회하긴 했지만 말이다.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야기라는 것도 한동안 회자 됐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복지 지출은 꼴찌다.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다. 노인 빈곤율 1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OECD 평균보다 쉽다. 그런데도 더 쉬운 해고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 중 몇 가지 사례다. 60개의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합성 사진은 ‘한국이 헬조선인 60가지 이유’와 수저계급론의 근거로 세간에 오르내렸다.바라건대 올해는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을 요구하는 강제퇴직도 없었으면 싶다.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비정규직만 잔뜩 양산해놓고 일자리 늘었다고 흰소리하는 일도 그만두었으면 한다. 맨날 쌈질만 한다고 욕먹는 정치권도 올해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고 그런 정치권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며 책임을 슬그머니 떠넘기는 일도 없었으면 싶다.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으면서 이런 푸념밖에 할 수 없는 기성세대인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는 평범한 진리가 실현되는 그런 새해였으면 좋겠다. 잿빛구름 걷어내고 미세먼지도 날려버리면서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이 피고 쓰레기 더미에서도 생명의 싹이 움트듯 그렇게 절망의 슬픈 곡조를 넘어 희망의 기쁜 노래와 환희의 불빛이 찾아들기를 소망한다. 돌아보면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넘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도 아직은 남아있다고 믿는다.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만의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사다리는 다시 놓여 지고 세상은 조금 더 앞으로 간다. 새해를 맞으며 풀죽은 목소리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그거라도 하고 싶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6-01-05 박현수

[경인칼럼] 안철수의 딜레마

탈당후 여론조사·호남서 기대치 높아 ‘뒷심 발휘’구태정치 조금이라도 퇴행 시킨다면 ‘새정치 성공’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적 각성과 성찰 절실안철수 의원의 탈당이 총선거를 앞둔 정당의 이합집산이라는 낯설지 않은 한국정치의 데자뷰를 보게 될지, 의미 있는 정당체제의 재편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정치에서 탈당과 분당, 창당이 선거를 앞두고 극적인 통합과 연대로 이어지는 분열과 통합의 역사는 고비마다 이어져 왔다. 한국정치사는 통합과 분열의 정치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회주의의 역사적 경험과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서구의 정치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은 정당의 역사가 일천하다. 또한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구도에서 정상적인 정당의 성장을 경험하지 않은 한국에서 선거승리만을 위한 정당의 이합집산은 각종 선거를 전후해 발생하는 일상사가 되었다. 1987년의 통일민주당의 분당으로 평화민주당이 창당되고 그 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첫 대선 때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으로 분열된 민주세력은 정권창출에 실패했다. 이듬 해 치러진 13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당사 최초로 여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는 여소야대의 분점정부 상황을 초래한다. 결국 1990년 3당 합당은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을 탄생시킨다. 결과적으로 여권의 통합으로 1992년의 14대 대선의 승자는 여당의 김영삼으로 귀결된다.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의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이인제 후보의 대선 출마는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의 패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7년 야권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되었으나 이명박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으로 총선을 치렀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리고 4년전 12월에 민주통합당으로 또 한번 야권은 통합되지만 19대 총선도 야권의 패배였다. 같은 해 18대 대선도 승리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의 몫이었다. 통합이 승리를 백 프로 담보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분열하는 세력은 선거에서 고배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한국정치사의 교훈이다.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안 의원은 생각보다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나 호남에서의 안 의원에 대한 기대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아직은 개인 안철수와는 별개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야당의 무능으로 강고해지기만 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오만에 실망하는 양심적 보수와 알량한 패권에 안주하여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와 대안 제시에 실패한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합리적 진보세력은 무당파로 속속 편입되고 있다. 이들이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형성한다. 결국 선거정치에서의 승리는 이들 중도파의 지지에 달려있다. 안철수의 실패한 듯이 보였던 ‘새 정치’, 여전히 실체를 알기 어려운 ‘새로운 정치’는 그래서 여전히 우리 정치의 본질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안철수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세력간의 다툼이다. 단기필마로 적진을 헤집고 초토화시킬 수 없다. 정치의 본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을 묶어내고 그들의 이해와 갈등을 표출·관리함으로써 다양성과 통합이라는 일견 상충하는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다. 극에 치우쳐 있는 보수와 대척의 진보 사이에 존재하는 중도의 무당파들에게 정치적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다면, 지역에 기반하고 낡고 흘러간 정치적 문법에 익숙한 구태의 정치적 퇴행을 조금이라도 역류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새 정치는 성공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기술이 필요하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 실리와 명분의 공생, 사실과 가치의 동거가 황금비율로 분할되어야 한다. 이상과 명분, 가치만이 존재하는 그런 정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실리와 현실, 사실의 벽이 너무도 견고하다는 데에 있다. 세를 확장시켜야 하는 현실정치적 측면과 ‘새 정치’는 양립 가능한가. 안철수 신당의 창당 이후 새 인물의 영입을 상수로 한다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비주류, 호남 인사들의 합류가 없으면 교섭단체의 구성이 벽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이들을 받아 들인다면 안철수 의원이 표방하는 새 정치와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도 문제다. 그래도 중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대표해 낼 수 있다면 한국정치발전의 단초를 볼 수는 있다. 여기에는 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적 각성과 성찰이 절실하다. 안철수 신당의 방정식은 정치적 언사와 수사처럼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 · 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 · 용인대 교수

2015-12-29 최창렬

[경인칼럼] 이케아 스타일과 한국인의 공작본능

60개 쇼룸에 직원없는 ‘무관심 콘셉트’ 성공요인과잉친절은 고객에 방해 ‘자율적 상품선택’ 배려내가 산 물건 직접 만든다는 ‘제작 본능’ 자극이케아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12월 18일 경기도 광명시에 1호점을 연 다국적 가구 기업 이케아 코리아가 최근 밝힌 경영 성과에 의하면, 올 한해 총 3천8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누적방문객은 총 670만명, 회원프로그램인 이케아 패밀리로 등록한 고객도 60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관련업계가 매출 추산액이 2천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또 메르스 여파로 인한 유통업 수요침체까지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경기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수도권 성인남녀 10명중 4명이 이케아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고양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이케아 모시기에 나선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열었을 때, 60개의 쇼룸에 직원을 배치하지 않은 전시장 운영 전략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무관심 콘셉트’야말로 성공 요인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 매장에서 보는 과잉 친절이나 지나친 호객행위는 고객의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가구의 선택은 용도, 가구의 재료와 색깔과 기능과 디자인, 주택의 구조, 가격 등 복합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차분히 생각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상품이다. 이케아는 매장 고객들에게 쇼룸부터 충분히 둘러보고 구매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 ‘의도적 무관심’에 대해 불편하다는 고객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자율적 선택을 위한 ‘배려’로 받아들인다.이케아가 파는 가구는 반제품이다. 차로 싣고 가서 조립해야 하는 ‘불편한’ 상품이다. 부품을 나사나 볼트로 조립하는 수고를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케아는 가구를 판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결핍된 자아 존재감, 예들 들면 대량생산된 완제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한동안 잊어버렸던 공작본능(Homo Faber!)을 자극하면서 내가 ‘선택한’ 물건, 내가 ‘만든’ 물건이라는 감성을 소구(訴求)하는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케아의 성공 요인은 친환경 재료 사용, 구성품을 플랫팩(Flat-Pack)에 포장함으로써 창고공간을 극소화하여 유통과 매장 관리비용을 줄인 원가절감 전략, 1인 가구의 증가, 가구를 내구재가 아니라 소비재로 인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에서 외면받은 이케아가 한국상륙에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 중국 소비자들은 막 완제품과 자본주의 서비스의 단맛(?)을 맛보고 있는 단계라는 점, 반대로 일본인들이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DIY를 실현하고 있었던 사정이 요인일 수 있다. 일본의 DIY 스토어는 4천여개에 달하며 매출액만 32조원에 달할 정도이다. 도시별로 건립된 시민예술촌을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공예품 제작 수준은 거의 장인급이다.한국의 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가운데 다양한 요리방법을 소개하는 이른바 ‘먹방’ 프로그램도 공작본능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인이 즐기는 음식의 상당수는 반제품이다. 비빔밥이나 냉면, 찌개류나 구이류 심지어 짜장면도 먹는 사람의 손길로 완성된다. 한국인의 타고난 공작본능은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생활 스타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유별난 공작본능을 제대로 발휘할 여건이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생활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의 여가문화가 한층 창조적이고 생산적 문화예술활동으로 꽃필 것이라고 ‘예언’해본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김창수 객원논설위원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12-22 김창수

[경인칼럼] 인천의 방송, 그 문제를 푸는 방법

방송콘텐츠, 철저하게 공공재 관점에서 접근시, 인큐베이팅 설립통해 인천관점 적극 반영지상파·유선·위성방송과 특정채널 사용 계약세계 4대 골프 국가대항전으로 꼽히는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지난 10월 인천 송도에서 치러졌다. 대회기간 골프 좀 친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인천 송도로 집중됐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인 이벤트가 내 땅에서 열리는데도 인천은 관련된 방송콘텐츠 하나 제대로 제작하지 못했다. 이것이 인천의 방송현실이다. 그래서일까. 뜻있는 이들은 방송주권을 외치고, 지상파 TV방송국의 설립 또는 유치를 주장한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2015년 11월 4일 경인칼럼 ‘KBS 인천지역국이 필요한가?’)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인천의 방송’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으로서 논의의 초점을 플랫폼(platform)에서 콘텐츠(contents)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지상파방송국을 새로 만들거나 유치하는 데 무리하게 힘을 쏟지 말자는 것이었다. 짚어보았듯이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난관들이 존재한다. 그 장애물들은 인천만의 노력으로 제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방송콘텐츠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상파 TV방송국도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생각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다. 인천시가 방송콘텐츠 인큐베이터(incubator) 역할을 하면 된다.인큐베이터는 온도와 습도 등 생식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환경조건을 최적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에는 주로 창업과 관련해 쓰이는 개념이지만 방송콘텐츠를 제외한 인천의 여타 문화산업부문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 영화 부문에서는 인천영상위원회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과 웹콘텐츠 부문에서는 인천정보산업진흥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콘텐츠는 상업적 지향이 허용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철저하게 공공재(public goods)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방송콘텐츠가 본래 갖게 되는 공익성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천시가 방송콘텐츠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첫 번째 방법은 순수하게 인큐베이터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칭 ‘인천방송콘텐츠진흥원’과 같은 구체적인 인큐베이팅 조직의 설립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인큐베이팅 조직을 통해 지난번 칼럼에서 강조했던 ‘인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품격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세련된 방송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전략수립과 재원의 합리적 투입이 가능해진다.또 하나의 방법은 인큐베이터와 방송사업자의 기능을 함께 하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사업자·종합유선방송사업자·위성방송사업자 등과 특정 채널의 전부 또는 일부 시간을 쓰기로 계약하고 그 채널을 사용하는 방송콘텐츠 공급업자, 즉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Program Provider)가 되면 된다. 현행 방송법은 지방자치단체의 방송사업자 진입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지역의 지상파방송을 통해 인천의 방송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제작비와 운영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들에게는 지원과 상생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돈이 없다고? 지레 겁먹을 일이 아니다. 인천지역에는 훌륭한 방송장비와 설비를 갖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같은 공공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러한 공공 인프라와 전략적으로 연대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정말 없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지식과 방송환경에 대한 이해다. 그게 없어서 여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12-15 이충환

[경인칼럼] 동반성장과 하자아파트

공공기관 건설 하자율 2012년이후 ‘30%이상 급증’최저가 낙찰제·업체 과당경쟁 ‘덤핑수주’ 원인납품업체 ‘저품질 관급자재 조달’ 더 큰 문제최근 모 중년여성은 이웃사촌이 다른 동네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식에 “축하드려요. 주공아파트로 옮기셨다지요?”란 인사를 건넸다 민망한 경험을 했다. 순간 상대방 여성의 안색이 바뀐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작별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되돌아섰다고 한다. 그 아줌마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가 명품(?)이 아니어서 자존심이 상해있던 차에 하자 문제까지 겹쳐 부지불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던 것이다. 10년지기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 찜찜했단다. 아파트 하자분쟁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신청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금년 9월 현재 2천880건이 접수되는 등 최근 6년간 총 7천741건에 이른다. 공공기관이 건설한 아파트일수록, 또한 근래에 지은 공동주택일수록 불량공사 시비건수가 많다. 관련 법률시장규모도 갈수록 커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최근 5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국적으로 총 32만330세대의 공공임대아파트를 분양했는데 이중 하자발생 건수는 6만9천266건에 달했다. 하자율이 2010년까지 10% 내외였으나 2012년 이후로는 30%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골조 균열과 기기작동 불량, 변전실, 소방설비 등 입주자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 하자가 전체의 17%를 점했다. 서울시 산하의 SH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하반기에 입주한 서울 마곡지구 6천730가구에서 130건의 하자 민원이 발생한 것이다. 가구당 하자 민원은 6.7건으로 평균 4.2건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무주택 서민들의 평생소원인 ‘마이 홈’과 취약계층의 주거품질 향상을 주 임무로 서민아파트 공급을 도맡다시피 한 LH공사와 SH공사 아니던가. 입주민들이 깐깐해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최저가 낙찰제가 일차적 원인이다. 공공기관이 건설공사를 발주할 때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에 공사를 주는 제도로, 1962년 도입 이후 수차례 폐지 및 재도입 과정을 반복하다 2001년부터 본격 시행돼 올해로 15년째 유지되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체간 과당경쟁이 초래한 덤핑수주도 한 요인이다. 저(低)품위의 관급(官給) 건설자재 사용은 하자발생에 더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절대다수의 건설전문가들은 최근 하자증가의 직접원인으로 건설자재문제를 들고 있다. 2009년에 중소기업 지원 및 육성목적으로 마련된 ‘공사용 자재 직접구입제도’에 따라 공공기관이 일반건설 20억 원 이상, 전문건설 3억 원 이상의 공사를 집행할 때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시멘트, 가드레일, 철근 등 총 123개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2008년에 폐지되었던 것이 다시 부활했는데 중소기업청의 관급자재 사용규제는 과거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근래의 경제부진과 양극화 확대에 따른 동반성장 붐을 타고 위력을 발하는 것이다.관급자재의 경우 정부가 사전에 일괄구매해서 공사현장에 제공하는 대신 해당 자재비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시공사에 결제해 주어 수주업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LH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공공사 현장에서는 레미콘, 아스콘, 싱크대, 위생도기 등은 더 좋은 품질의 제품구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혹 기준에 못 미치는 공사 자재들이 배달되어도 불만을 제기할 입장이 못 된다. 납품업체에 어필이라도 하면 “당신하고 계약한 것이 아니니 주는 대로 받아라”라며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이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자재 납품시한을 어겨 인건비 상승 및 지체보상금 부담 등 낭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관급자재 조달시장에서는 납품업체가 갑(甲)인 것이다. 정부나 서울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LH나 SH공사 입장에선 부실시공 시비에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이었을 것이다. 날로 치솟는 서민들의 주거부담을 고려할 때 공공주택 건설사업의 당위성이 매우 크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확대는 금상첨화이다. 그렇다고 서민아파트의 하자보수비용 증가, 구조물 수명단축, 주거만족도 저하 등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는가./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12-08 이한구

[경인칼럼] ‘핵노답’ 대한민국 19대 국회

여야, 느닷없이 세비동결 선언 “인상 몰랐다” 딴청각종 비리혐의 의원직 상실 무려 22명 ‘최악 국회’답이 없는 ‘엄청나게 한심한 19대’ 일주일 남아의회주의자였던 김 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던 지난 26일 국회는 모든 것이 잿빛이었다. 국회를 삼킬 듯 쏟아지는 눈발 때문인지 숙연함이 국회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일시에 반전되는 일이 일어났다. 서로 잡아 먹지 못해 늘 으르렁거리던 여·야 예결위 간사의 느닷없는 공동성명 발표 때문이었다. 영결식 후 이들이 함께 발표한 성명서에는 “오늘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이라며 “그분이 남겨주신 유지를 받들어 의회주의 정신에 따라 여야 간 정쟁이 아닌 화합과 상생의 예산국회를 만들도록 여야 간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며 “국회의원 세비 3% 증액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자 세비 인상분을 반납한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들의 봉급에 해당하는 세비를 올리려다 반발 여론이 예상밖으로 빗발치자 하루 만에 세비 동결을 선언하며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여·야 운영위원들은 한결같이 세비 인상을 몰랐다고 딴청을 부렸다. 예산안 심사 자료에 국회의원 세비 항목이 별도로 나와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날 우리를 더 웃기게 만든건 성명서의 결론부분이었다. 야당 간사는 ”김 전 대통령이 내년도 세비 인상을 거부하고 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여야 간사들의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국민의 곁을 떠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당 간사도 ”YS께 드리는 마지막 보답“이라고 말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이날 여야간사의 발표는 19대 국회 앞에는 늘 ‘사상 최악’이라는 관형어가 붙어 다니고 왜 개그 프로였던 ‘봉숭아 학당’이라고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19대 국회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최악의 국회’로 기록될 것이다. 의원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한 의원,대낮에 호텔방에서 그렇고 그런짓을 한 의원 등 그 근거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지만, 우선 철도비리 혐의를 받은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7일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으면서 19대 국회에서는 각종 비리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이 무려 21명에 이르렀다. 성폭행 혐의 등으로 지난 10월 자진 사퇴한 심학봉 전 새누리당 의원까지 포함하면 22명이 공직선거법 위반과 금품수수, 입법 로비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 중에선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이 2심까지 집행유예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박기춘 의원과 입법로비로 기소된 새정치연합의 신계륜·신학용 의원이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역대 이런 국회는 없었다. ‘무능한 국회’라고 평가 받던 18대 국회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출마 등으로 퇴직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은 16명에 불과(?)해 이와 비교할 때 19대 국회는 연이은 정쟁과 파행으로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는 물론 ‘윤리 의식’마저도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여야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세비의 대폭 삭감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일반수당을 30% 삭감하고, 특별활동비를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도 동의했지만 3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최악의 국회를 만든건 물론 정치인들의 잘못이 제일 크지만 이런 국회를 만들어준 유권자의 잘못도 이에 못지 않다. 일하는 국회는 국민이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서 주로 쓰는, 인터넷 은어인 ‘노답’은 영어 ‘NO’ 와 우리말 ‘답’ 이 결합된 것으로 ‘해결방법이 없다’는의미로 사용된다. 즉 하는 짓이 변변치않거나 정말 멍청하게 행동하는 경우일때 주로 쓰인다. 그런데 이 말 앞에 ‘핵(核 )’이라는 글자 한자가 더 붙으면 상황은 더 끔찍해 진다. ‘핵노답’. 엄청나게 답이 안 나온다는 뜻으로 하는짓이 ‘엄청나게’ 한심하다는 뜻이다. 19대 국회는 ‘극혐(극도로 혐오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핵노답’이다. 핵노답 대한민국 19대 정기 국회도 이제 일주일 남았다./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논설위원

2015-12-01 이영재

[경인칼럼] YS에 대한 인천 기억과 인물 재조명

강화·옹진 편입과 송도 갯벌매립 신도시조성 결정하나회 해체 ‘軍정치개입 차단’ 군부통치 종식시켜산업·민주화… 지금의 대한민국 만들어 낸 디딤돌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 놓았던 민주화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6년 전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양김으로 불리며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라는 산업화 세대의 국가우선론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다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던 두 사람을 모두 보내니 새삼 허망하고 안타깝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인천이 지금처럼 넓은 면적을 가진 국제도시로 자리매김 한데는 그의 공이 크다. 강화와 옹진을 경기도에서 떼어내 편입시켰고 김포의 검단면이 인천의 시계로 들어온 것도 김 전 대통령 재직시절이다. 갯벌로 남아있던 송도 앞바다를 매립해 신도시를 만들도록 결정한 것도 그였고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공항으로 키우도록 한 것도 그였다. 지금 인천의 모습은 기실 김 전 대통령에 의해서 자리매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어쩌면 김 전 대통령은 투옥과 연금이 반복되고 국회의원직에서 조차 제명당하던 1970~80년대의 엄혹한 시기를 민주화의 소명의식으로 버텼고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며 수도권의 민주화 전진기지 역할을 해온 인천에 대해 동지의식이나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대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해서처럼 현재 진행형이지만 꼭 첨언 하고 싶은 게 있다.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으로 보고 부분으로 판단하지 말고 전체를 보고 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전격 합당해 여당정치인으로 변신한 김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시비가 분분하지만 9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보여준 행보는 왜 합당을 결심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93년 취임하자마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전격적인 방식으로 하나회를 해체하고 군의 정치개입을 원천 차단해 40여년을 이어온 군부 통치를 종식 시켰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전광석화처럼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95년 민선 단체장을 선출하면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진정한 지방자치로 전환했다. 감(感)의 정치인으로 불린 정치인답게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난제들을 더운 여름날 찬물에 식은 밥 말아먹듯 후루룩 해치웠다. 3당 합당만으로 비난하기엔 공이 더 크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갈등은 숙명적이기도 하다. 하루에 밥 한끼 먹기도 힘들고 미국의 원조에 국가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기대야 했던 시절에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며 생계문제 해결이 민주주의보다 앞선다는 산업화의 논리는 절박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고 진정한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민주화 세대의 주장도 강한 호소력이 있다. 누구의 논리가 옳고 그른지를 여기서 따지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향하는 가치는 서로 달랐지만 둘 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사실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디딤돌이라는 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인물에 대해 좀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곪은 상처에 현미경 들이대듯 미시적인 부분까지 후벼 파지는 말자는 얘기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공은 좀 높이고 과는 좀 낮추면 어떨까. 신이 아닌 인간에게 공과(功過)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평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시선을 여유롭게 하면 어떨까. 가뜩이나 인물이 없는 시대에 그래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한 두 사람 있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현대사의 거목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이제는 좀 후해졌으면 싶다. 그게 갈등과 분열을 줄이고 소통과 화합하는 길이기도 하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11-24 박현수

[경인칼럼] 국면 전환의 정치학

‘국정화 이슈’ 예산심의·민생법안 논의자체 차단여 ‘발빠른 전환’-야 ‘만성 무기력’ 기대 부응못해여권 ‘의제설정’ 야당 압도… 與, 다음카드가 궁금가치판단이 배제되는 정치는 패권정치로 흐르기 십상이다. 가치의 지향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낯설어진지는 오래됐다. 다이내믹스와 불가측의 정치가 일반화되고 있는 정치현실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마냥 합리화될 수는 없다. 여야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와 권력지형의 변화 등 정치적 현상들은 정치 그 자체의 동력으로 추동된다. 이는 권력정치적 관점에서의 정치현상이다. 그러나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한편의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 계층간의 사회경제적 간극을 메꾸고 분출되는 갈등을 관리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다. 여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제기한 이후 정부의 국정화 확정 고시가 있었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반발을 민생발목잡기로 야당을 몰아붙였다. 정기국회 기간의 상당 부분을 뜬금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소진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여권이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국면을 재빨리 전환하여 야당에게 역공을 취하는 형국이다. 야당은 이슈에 끌려다니면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정국은 야당의 지지율 상승과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는 한국정치의 역설을 목도한다. 정국을 주도하려면 의제 설정에 능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 여부와는 별도로 국정화 이슈는 정기국회의 예산심의와 새누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법안의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야당은 전선을 형성하고 공세적으로 나왔으나 교과서 정국에서 이슈를 주도한 측은 여당이었다. 이후 유승민 의원 부친 상가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TK 물갈이 관련 발언이 있은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이른바 총선심판론은 정치권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국회에 대한 압박과 새누리당 비박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야당이 선거개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왔으나 이슈화시키지 못했다. 12일에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를 의미하는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의 조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정치권은 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청와대는 부인했으나 발언자가 친박계 핵심이라는 점에서 여러 정치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청와대와 친박사이에 교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청와대의 암묵적 묵인하에 친박 내부의 총선 이후 개헌에 대비한 공론화 과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권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개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만들어 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권의 국면 전환에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다. 야당이 개헌을 제기했다면 민생을 팽개친 정략적 발상이라고 집중포화를 맞고 지지율은 곤두박질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한 측은 새누리당이었다. 야당 정체성의 핵심을 자신들의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과는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인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함축적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정치는 단기적 국면에서는 불가측성이 지배적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쉐보르스키의 말과는 정반대로 ‘결과의 확실성의 제도화’로 가고 있다. 여권의 발 빠른 국면전환과 야당의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무기력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대안정당으로의 가능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야당에게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2030과 전통적 야당 지지자들이 한국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찾을 공간은 전무해진다. 정치가 현실 속에서 승부를 내야 하는 게임의 성격이라는 권력정치에 무게를 둔다면 국면전환의 정치기술은 필요악이다. 규범적 정치학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는 약자의 푸념이다. 세대효과와 60대 이후 세대의 인구 구성비의 상대적 증가, 그리고 장년 이상 세대의 높은 표의 결집도를 감안한다면 정치지형 자체가 야당이 불리하다. 게다가 의제 설정과 국면 전환의 정치공학은 여권이 야당을 압도한다. 다음 장면에서의 여권의 국면 전환용 카드가 궁금해진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11-17 최창렬

[경인칼럼] 도시 브랜드와 도시 거버넌스

‘I.SEOUL.U’ 독자적 의미 전달능력 못 갖춰 논란브랜드 제정할때 전문가·시민·외국인 참여 필수각 주체 소통하는 실용적 거버넌스체계 고민해야서울시가 2016년부터 사용할 새 도시브랜드로 ‘아이·서울·유(I.SEOUL.U)’를 선정 발표했으나, 곧바로 의미가 모호하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서울시는 9억원을 들여 개발한 새 브랜드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이름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산통치고는 너무 커 보인다.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 이해관계도 암암리에 작동되게 마련이다. 그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새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여러 도시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의 새브랜드는 선정 과정과 조어 방식을 보면 혁신적 요소도 많다. 특히 브랜드 선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새브랜드는 시민 사전투표, 시민심사단 1000명의 현장투표, 전문가 심사단 현장투표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선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10만명 이상의 서울 시민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하니 거버넌스의 모범사례라 할만하다. 또 서울시의 새 브랜드는 도시명에다 ‘Dynamic’, ‘Colorful’ ‘Fly’ 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종래의 브랜딩 방식을 벗어나 시민(‘I’)을 브랜드의 핵심요소로 도입했다. 이런 명명법은 국제적 트렌드를 반영한 국내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시의 새 브랜드가 논란의 대상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브랜드가 독자적 의미 전달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 브랜드는 설명 없이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직접적인 환기 효과를 위해 기업이나 도시들은 브랜드 제작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뉴욕시의 브랜드 ‘I ♥ NY’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하트가 뉴욕의 특산물인 사과를 의미한다는 설명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들의 주관적 스토리텔링으로 일종의 덤일 뿐 몰라도 그만이다.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내가 바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의 ‘Be Berlin’(베를린이기에!)과 같은 슬로건 역시 단순하며 설명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단순성 때문에 의미도 풍부해지고 여운도 남는 것이다. 전달력이 떨어지는 브랜드에 ‘공존’이나 ‘플랫폼’과 같은 추상적 해석을 덧붙이려 하니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 까칠하다. 차라리 설명 없이 브랜드만 내놓은 것만 못하다.서울시의 새 브랜드는 읽는 맛이 없다. 오히려 ‘아이. 서울. 유’는 툭툭 끊어 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를린의 슬로건 ‘Be Berlin’은 ‘Be’를 반복 사용하여 두운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은 ‘I am’과 ‘Amsterdam’을 중복 철자를 축약한 끝말잇기의 즐거움이 들어 있다. 이 같은 음운 효과는 영어 원어민들이 선호하는 표현 관행으로 리듬감과 즐거움을 주며, 기억하기에도 좋다. 코카콜라(Coca-cola)가 탄산음료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상품명의 기여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의 브랜드 제정과정에 시민참여 방식이 이벤트 중심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베를린시나 싱가포르의 브랜드 제정과정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베를린시는 2008년부터 무려 4년 동안 시민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외국인 참여 이미지 조사와 국제적 홍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성공한 사례이다. 싱가포르의 브랜드 ‘유어 싱가포르(Your Singapore)’도 본래는 관광청 슬로건이었는데 시민들과 관광객의 호응을 확인한 다음에 공식 도시 브랜드로 채택했다. 도시 브랜드 제정은 종합예술이자 도시가 가진 거버넌스 능력의 실험이다. 거기에는 디자인과 마케팅 전문가는 물론 언어와 스토리텔링 전문가, 시민과 외국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각 주체가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실용적인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집중적 고민이 필요하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11-10 김창수

[경인칼럼] “KBS 인천지역국이 필요한가?”

‘가치 재창조·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없는 무기방송국·네트워크에만 집착하다보니 답 못찾아‘인천의 관점’ 적극 반영하는 방송콘텐츠가 필요지난해 3월, 존함을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지역원로를 찾아뵙고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 목적과 역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린 뒤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인천에 KBS 지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원로의 하문(下問)은 필시 부산, 대전, 강릉 등 전국 18개 시에서 총국 또는 지국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KBS 지역국을 염두에 두신 게다.“있으면 좋겠으나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공영방송인 KBS의 인천지역국이 있으면 분명 좋을 것이다. 인천시가 부르짖고 있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나 ‘인천의 정체성 회복’에 더할 나위 없는 무기가 될 것이다. 서울의 그늘에 갇혀 ‘지역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인천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인천의 관점’이란 것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KBS 인천지역국 유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간절한 인천의 바람과는 달리 수도권이라는 단일한 문화적 생활환경에서 독자적인 제작시스템을 갖춘 지역국을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더군다나 인천시청에서 여의도 KBS 본사까지는 직선거리로 20km 남짓한 지척이다. 지금 수원에 있는 KBS 경인방송센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지역국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로는 ‘인천 가치의 재창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시간이 흘러 올해 7월, 인천의 한 언론인단체가 주최한 ‘방송주권 찾기’ 토론회에서 ‘인천의 방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그러나 도출된 대안들도 설득력이 약하다. 케이블TV와 IPTV는 유료방송이다. 방송권역도 저마다 다르고, 네트워크도 제각각이다.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이 허용되지 않는 방송시스템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 기반의 인천N방송은 얼핏 맞춤의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천N방송은 태생적으로 ‘소박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contents circulation platform)이다. 인천시와 구청의 공공정보 제공, 동호회나 교회와 같은 폐쇄이용자그룹을 위한 방송서비스, 전통시장과 소상인 홈쇼핑서비스 등을 하도록 설계됐다. 인천이 필요로 하는 ‘무기’나 ‘동력’으로서의 방송과는 거리가 멀다.그렇다면 남은 대안인 지상파방송의 인천 이전은 가능할까? 이 방안은 경기도 부천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민영방송 OBS를 전제한 것이라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가가 따른다. 연주소가 인천에 있어야 한다는 허가조건이 있었긴 하나 현실은 경기도 소재 방송국이다. 상대적으로 큰 시장인 경기도를 떠나 인천으로 오는 대신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특혜 시비와 형평성 논란이 우려된다. OBS 유치 명목으로 버스터미널시설이 일반상업시설로 바뀐 것부터가 이미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인천의 방송’을 두고 이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논의의 초점이 플랫폼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방송국과 네트워크에만 집착한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제아무리 선로를 잘 깔고 승강장을 편리하게 만든 들 기차가 달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 기차는 다름 아닌 콘텐츠다.보편타당한 가치관과 세계관에 바탕을 두되 인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송콘텐츠, 인천의 품격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세련된 방송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인천의 방송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제작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콘텐츠와 우월한 제작 역량만 갖추면 플랫폼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삼시세끼’ ‘신서유기’의 나PD가 어디 플랫폼을 가리던가? ‘인천의 방송’, 그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11-03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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