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송도국제도시의 다리 이름

피츠버그의 다리 명칭들 역사적 인물등 연관 행정편의에 만든 순서로 명명된 ‘송도교’ 한심 지리적 정보등 의미·배경 담은 이름 지어주길 ‘킹캉’ 강정호가 속해 있는 메이저리그 파이어리츠의 홈 피츠버그는 강의 도시이자 다리의 도시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위쪽으로는 앨러게니강이, 아래쪽으로는 머낭가힐러강이 흐르고,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 ‘골든트라이앵글’에서 1천579km 오하이오강이 새로 시작된다. 지난 2001년 폭파 해체될 때까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이름이 그래서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Three Rivers Stadium)’이었다. 카네기의 철강제국으로 이름을 날렸던 도시의 역사에 걸맞게 이 세 개의 강 위에 446개의 철골조 다리가 놓여 있다. 한때 2천 개를 넘었다는 피츠버그의 다리들은 저마다 기록과 일화를 안고 있다. 머낭가힐러강을 가로질러 시내 중심가를 연결하는 길이 361m의 스미스필드가 다리(Smithfield Street Bridge)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골조 트러스교다. 1883년에 건설된 이 다리는 국립역사건축물로 지정돼 있는, 국보급 유산이다. 앨러게니강의 40번가 다리는 ‘워싱턴 크로싱 브리지(Washington crossing Bridge)’로도 불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주에서 청년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중요한 임무를 띠고 이 강을 건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쓰리 시스터즈(The Three Sisters)’는 앨러게니강을 차례로 가로지르는 6번가, 7번가, 9번가 다리를 일컫는다. 모두 100년도 더 됐다. 269m 길이의 6번가 다리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영웅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리는 뜻에서 ‘로베르토 클레멘테 다리(Roberto Clemente Bridge)’로 이름을 바꿨다. 7번가 다리는 피츠버그 태생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기념하기 위해 ‘앤디 워홀 다리(Andy Warhol Bridge)’라는 새 이름표를 달았고, 9번가 다리는 20세기를 움직인 책으로 꼽히는 ‘침묵의 봄’의 저자이자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을 기리고자 ‘레이첼 카슨 다리(Rachel Carson Bridge)’로 명칭을 바꾸었다. 피츠버그의 다리 이름은 이처럼 유서 깊은 지명 또는 도로 명칭이나 지역 태생의 역사적 인물들과 연관이 있다. 이런 피츠버그의 다리들과 견주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송도국제도시의 다리 이름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만들어진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송도1교, 송도2교, 송도3교다. 제3경인고속도로 고잔톨게이트를 지나 인천대교 방면으로 달리면 나타나는 순서이기도 한데 지난달 신항을 연결하는 송도4교가 개통되면서부터는 그마저도 헛갈린다. 송도4교가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리적 특성이나 정보적 의미, 역사성이라곤 털끝만치도 고려치 않고 그저 행정편의에 따라 이름을 붙이다 보니 빚어진 ‘문화적 참사’다. 지금부터라도 시민공모를 통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글로벌캠퍼스교’ ‘컨벤시아교’ ‘아트센터교’ 등과 같이 각각의 다리가 갖고 있는 지리적 정보를 살려도 좋고, ‘신순성교’ ‘장면교’ ‘고유섭교’와 같이 지역이 낳은 인물을 기리는 이름도 좋다.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튼 국제기구나 기업의 명칭을 따서 ‘GCF교’나 ‘삼성바이오교’라고 붙여도 무방하고, 아예 그룹본사를 유치할 수만 있다면 ‘포스코교’ ‘삼성교’ ‘현대교’라고 해도 시비 걸지 않겠다. 다만 이 다리들을 건너는 시민이나 여행객들이 그 의미나 배경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그런 이름을 지어주길 바란다. 그 이름이 1교, 2교, 3교, 4교라면 평생 건너다닌들 무슨 의미로 남겠는가. 오래전 잠시 머물렀던 피츠버그의 기억이 강 위에 빗살처럼 촘촘하게 놓여 있던 옅은 황금빛 ‘아즈텍 골드’ 색상의 다리들로 시작되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이름과 품고 있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재단 센터장▲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 센터장

2015-09-22 이충환

노동개혁 소탐대실 일 수도

정규직 축소, 경제체질 약화·사회적 비용 증가시켜 청년실업해소 도움 안되고 경제권력 대기업 이동만 ‘비정규직 줄여야 잠재성장률 상승’ IMF지적 주목해야 박근혜정부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달 휴전선 지뢰폭발을 계기로 북한의 예봉을 꺾더니 지난 13일 1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까지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최대 쟁점인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일반해고’ 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정부 단독으로라도 노동개혁을 위한 입법절차에 착수한다고 최후통첩을 했던 것이다. 청년 및 비정규직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노동개혁을 지지하는 만큼 승리를 확신하는 인상이다. 노동계가 배수진을 치는 등 일전불퇴의 각오여서 전대미문의 대충돌마저 우려되었는데 다행이다. 수출부진과 가계소득 감소로 전년 동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2분기에는 2.2%로 곤두박질했다. 일본식 장기불황 터널에 진입했다는 평가마저 들린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의 “요즘 너무 사업하기 어렵고 세계경제도 안 좋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3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9일 다보스포럼에서의 경고가 섬뜩하다. 이번 노동개혁의 핵심은 정규직 고임금을 삭감해서 청년고용확대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 양사의 임금 평균이 9천400만∼9천700만원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비교할 때 현대·기아차는 3.3배, 도요타는 1.7배”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대기업들의 사례일 뿐 절대다수 근로자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노동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96년 세모(歲暮)에 김영삼정부가 날치기 통과시킨 노동법 이후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 재생산한 탓에 삶이 팍팍해졌는데 또다시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겠다니 말이다. 부실경영에 제재 대신 혈세로 벌충해주는 정부의 이중 잣대에도 불만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총 168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이 부실대기업에 투입되었는데 회수율은 65%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캠코의 발행채권과 차관이자 55조원, 정부발행 국채이자 24조원 등 80조원을 포함하면 공적자금 회수율은 44%에 불과하다. 오너경영인들이 기업자금을 세탁하면 그만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은 금상첨화여서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내부유보금을 확보했다. 올 1분기 30대그룹의 현금잔고는 710조원이다. 공기업 유보까지 합치면 나라살림 규모 2년치를 훨씬 능가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진 것은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추락한 때문으로 서민들의 지갑두께가 얇아지면서 민간소비도 덩달아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고용불안 → 소비위축 → 투자부진 → 비정규직 확대 → 고용불안 등 악순환이 성장동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소득감소 사례가 상징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2분기 실질국민소득(GNI)은 전(前)분기보다 0.1%포인트 줄었다.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증가율 0.3%에 못미친다. 직전 분기대비 국민소득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10년 4분기의 -1.9% 이후 4년 반 만에 처음이다. 임금유연화가 양질의 청년일자리 증가를 담보할 수 있을까. 결론은 ‘글쎄올시다’이다. 정규직 축소는 경제체질 약화 및 사회적 비용 증가만 촉진할 뿐 청년실업난 해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경제권력이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오히려 고용불안 해소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은 50%를 초과하는 비정규직 수를 줄여야 잠재성장률이 올라간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상 혹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내부유보금을 풀어서라도 청년고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일본경제가 강산이 2번 바뀌도록 버텨온 비결은 특유의 종신고용과 가계의 높은 저축성향이다. 내수시장은 수출과 함께 경제성장의 양대 축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정책은 오매불망 수출일변도의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에만 꽂혀있다. “미국 경제위기는 레이건정부 이후 지속된 반(反)노동적 경제정책이 노동자들의 구매력감소를 초래했기 때문”이란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질책이 돋보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9-15 이한구

국회의원 답게 살고 계십니까

내일부터 19대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돌입 기업인 불러놓고 망신주고 호통치다 끝낼건지 특권의식 모두 내려놓고 국민위한 국감 펼쳐야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에게 의원시절 가장 좋았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열중 일곱은 ‘국정감사’라고 말한다. 돈이 태산같이 많은 재벌총수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는 기관장들도 의원들의 호통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 숙이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의원도 있다. 특히 재벌총수 소환을 놓고 벌이는 대기업의 기막힌 로비는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니들이 국감 맛을 알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오직 국회의원만이 그 맛을 아는 국정감사가 내일부터 두번에 나뉘어 열린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감은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다. 300명의 국회원이 내년 총선에서 모두 당선 될리 없으니 아마도 상당수 의원에게는 이번 국정감사가 의원시절 마지막 국정감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원들은 마지막 국정감사를, 국민들을 위해 ‘국회의원답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증인신청을 두고 벌써 한바탕 난리 굿판을 벌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얼마나 대단한 로비가 벌어졌는지 증인 채택이 예상됐던 총수 상당수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국정감사를 앞둔 여의도는 늘 뜨겁다. 국감이 ‘기업 길들이기’, ‘총수 망신주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총수를 증인에서 빼기 위한 치열하고 뜨거운 로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로비는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봐달라고 손바닥을 비빈다고 해서 들어 줄 의원들도 아니다. 오면 가는 게 있고 가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증인 신청을 무기삼아 기업에 노골적으로 지역구 민원이나 친인척의 취업문제 해결을 압박하고 후원금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제 감춰진 비밀도 아니다. 이번 국감도 예외없이 앞에서는 증인에게 호통을 치고 뒤로는 사리사욕으로 기업인들을 괴롭힐 것이 뻔하다. 어느 의원이 어떤 총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증인실명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폐단 때문이다. 국정에 도움이 된다면 대기업 회장 등 재계인사들을 불러 증언을 들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됐거나 , 예산이 들어간 사업을 맡았거나, 부당노동행위같은 공공성이 강한 사안과 관련돼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기업인을 부르는 게 원칙이다. 롯데사태에서 드러났듯, 대기업의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시 상당수 책임이 회장에게 있다. 해외로 재산 빼돌리기부터 불법 상속, 노사문제, 심지어 총수 자녀들의 갑질논란까지, 이를 따지고 진실을 밝혀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총수 소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기업인을 불러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망신 주고 호통 치다 끝난다. 19대 국정감사도 그렇게 끝나게 될 것이다. ‘국정감사 무용론’을 넘어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이 직업군(群)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다. 국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국회의원을 명예직으로 전환해 세비를 주지 말자는 주장은 생계형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의원들은 입법부를 모독한다며 발끈한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또 반복되는 얘기지만 이제 특권의식을 모두 내려놔야 한다. 이번 국정감사 피감기관은 지난해보다 100개 늘어난 799개다. 기간 동안 이를 다 들여다 본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간을 늘리자고 할 수도 없다. ‘상시 국감’이 좋겠지만 이럴 경우 의원들의 ‘상시 갑질’로 피해가 더 커 나라 경제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5%에 불과한 건 국가적으로 비극이다. 이 보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사실은 국회의원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7대 종단이 캠페인성으로 벌이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 참여했다. 여야 의원들이 모여 “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라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국회의원답게 사는게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특권을 모두 내려 놓겠습니다. 그 증거로 세비를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말로 하면 못 믿을 테니 법으로 만들겠습니다’라면 모를까. 하여튼 내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국회의원답게’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9-08 이영재

개혁, 그 지난(至難)함에 대하여

정부, 4대개혁 추진 공감대 어떻게 끌어낼지 ‘걱정’ 노동계 설득 위해선 기업들 기득권 일부 포기해야 대다수에게 선한 일, 특정 집단에겐 악한 일 될수도 모든 개혁은 선하고 옳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들은 반드시 선한 결과로 귀결되는가.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과 교육, 공공부문과 금융 등 4대 개혁을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그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후세에선 잘한 일이라고 평가받는 일들도 당대에선 혹독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권세가들에게 눌려 억울하게 노비로 전락한 양민들을 구제하고 권력의 힘에 의해 빼앗긴 토지를 원주인들에게 돌려줘 국가 근간이 되는 농민층을 강화하겠다며 고려 공민왕 시절 신돈에 의해 시도된 개혁정책이 있었다. 후세의 사가들이 방향은 맞다고 평가했지만 당대에선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실패로 귀결됐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개혁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숱하게 있다.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은 집요하고 거세다. 이런 저항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능숙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결정되는 예(例)들을 들먹이는 것은 옳은 방향 설정과 강고한 의욕과 넘치는 힘으로 성공하는 개혁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현 상황을 진단하고 내놓은 정부의 개혁 의지와 원론적인 방향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개혁이 후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걱정되는 것은 개혁이 선한 의도로 시작됐으며 좋은 결과로 귀결돼야 한다는 점을 어떻게 설득시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원만하게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 중에서도 노동개혁 문제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이다. 노동계는 개혁의 핵심인 임금피크제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으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역시 양질의 고용창출을 통한 고용시장 확대가 아닌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비극적인 실업상태를 지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인구증가율이 1% 내외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정년연장은 필연적이지만 연장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수가 혜택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0대 중반이면 현장에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60세 정년을 보장한다고 해서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임금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을 쉽게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청년고용 확대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미지근하다. 정부의 개혁에 기대 내 밥그릇 확대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당위로 설명하는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화와 과보호 문제는 우려스럽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규 노동력의 시장 진입을 막아버리려는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 현대판 음서제로 비난받는 일자리의 대물림 현상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기득권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함께 추진하는 방향설정도 필요하다. 롯데 사태와 대한항공의 여객기 회항 사건에서 보듯 일부 재벌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10% 미만의 지분을 갖고 수십, 수백조의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잘못된 지배구조는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개혁의 진정한 과제는 기득권화한 기업과 노동계를 설득하는 일이다. 기득권을 빼앗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개혁은 미래를 향한 것이고 기득권의 강고함은 현실이다. 개혁의 핵심은 철옹성처럼 단단한 기득권의 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가에 있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일부 노조와 일부 기업들의 기득권을 깨트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이 가능하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다수에게 선한 일이라도 특정한 집단에게는 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게 개혁의 함정이기도 하고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9-01 박현수

진부한 선거제도 혁신안들

여야 정치개혁 명분, 실상은 이해득실 ‘수 싸움’근본적 혁신없이 물갈이로 젊은 피 수혈 ‘헛일’유권자 바른선택·정치구조 변경 없다면 ‘백약 무효’정치가 사회적 약자와 소득 하위계층에게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때 진정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은 투표율의 저하로 연결되고 종국적으로 철옹성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없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가고 신분 상승의 기회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 의식은 의미를 상실한다. 정치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지향을 보여주지 못할 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민주화 이후 정치허무주의는 상당 부분 야당의 무기력에 기인한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 임기를 제외하고 줄곧 야당이다. 1990년 1월의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등장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등극은 보수대연합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사실상의 프레임 정치의 서막이다. 3당 합당을 보수대연합으로 보든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한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보든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꿔 놓은 분수령이다. 이후 야당은 각 계파로 공천과 지분권을 둘러싸고 분열했다. 이념과 노선에 따른 진화가 아니었다.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의 패배 이후 이어지고 있는 야당의 무기력은 구조적이다. 야당의 선거지형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정치구조의 변화와 수권정당의 가능성으로 귀결될 때 정치는 다이내믹스를 찾는다. 여권도 지금의 위계적 질서의 당·청 관계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동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 지난 후, 미래권력과 지는 권력 사이의 역학관계 변화에서 차기의 승리를 모색하는 판에 박힌 정치공학에서 벗어날 모멘텀을 찾을 수 있다.변화와 혁신은 개인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정치의 변혁이 정치권에 머무른다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한국정치에서 권력구조의 변경이 주된 논쟁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개헌논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도혁신이 국민과 유리될 수밖에 없음도 같은 논리의 연장이다.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가 현역 의원 20% 공천 배제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전략공천 20%까지 감안하면 물갈이 비율은 40%까지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정치에서 물갈이는 여야 정당 전가의 보도였다.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에서 현역의원 교체율은 40%를 넘나든다. 물론 야당의 교체율이 여당보다 10% 이상 뒤지지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17대 국회때는 초선 의원의 비율이 60%를 넘었다. 그러나 ‘젊은 피’의 수혈은 한국정치를 ‘물갈이’하지 못했다.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여부,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정치개혁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만 실상은 각 정파의 이해득실에 관한 치열한 수 싸움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빠지지 않는 공천 ‘물갈이’ 논란도 예외가 아니다.미국이나 일본 등의 상하원 선거나 중의원 선거 때 정치신인의 비율은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정치가 다양한 이해를 표출하고 관리함으로써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지향해 나가지 못하는 귀책(歸責)을 ‘고인 물’에서 찾아선 안된다.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함에도 진단부터 틀렸으니 처방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정치의 딜레마와 프레임 정치의 악순환은 오픈프라이머리, 비례대표 비율 증가, 물갈이, 당내조직도 변경 등의 하드웨어를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인 물’이 고여있는 어항을 청소하지 않는다면 ‘젊은 피’는 기존의 피와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보다 근본적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의 도입과 비례대표 의석 증가가 영호남에서의 교차투표로 특정지역에서의 일당우위체제를 무너뜨린들 그들이 여전히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심기에 기속(羈束)된다면 이는 개악(改惡)의 전형이다. 유권자의 바른 선택과 더불어 정치구조의 변경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권의 혁신 논의는 너무 도식적이고 진부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8-25 최창렬

미로도시와 정위 감각

도시 확장땐 방위식 지명 정보 기능 잃어 ‘혼란’행정구역 명칭 변경으로 새지명 부여 신중 기해야‘굴포천 복원’ 도심주거환경 회복 큰 역할 기대도시들은 자꾸만 미로를 닮아 가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들은 없애거나 직선화하고, 다양한 모양과 표정의 가옥들을 허물고 비슷비슷한 주택으로 바뀌었다가 점점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홀로 길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도시의 곳곳에 서있는 마천루가 위치를 대략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늘 볼 수 있는 것도 산정에서 내려다 볼 때 외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트릭스같은 도시에서 믿을 것이라곤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다. 위치파악시스템(GPS)없이 생활할 수 없는 도시인들의 황량한 영혼, 손상된 정위(正位) 감각을 회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정위감각이란 생명체들의 생명활동의 필수적인 능력이다. 식물의 뿌리는 아래로 향하고 가지는 태양을 향한다. 철새들은 수백, 수천 킬로의 하늘을 착오없이 오가면서 한해를 보낸다. 연어처럼 강에서 태어난 회귀어종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이런 신비한 능력을 정위 본능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사람들도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도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환경 단서와 지리적·공간적 특징을 활용하여 적절하게 방향정위(orientation)를 하는 능력을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도시화 과정과 별도로 지명부여나 주소체계도 정위감각을 뒤흔든 원인이다. 대도시의 행정구역 명칭도 주요한 환경 단서와 지표 중의 하나이며 방위개념이 포함된 지명은 직관적인 방향 정보이다. 서울의 경우 도시 확장이 이루어졌지만 중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의 행정구역 명칭은 이동자의 정위에 여전히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중심을 정부청사가 있는 광화문 일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가 확장되거나 행정중심지가 이동할 경우 방위식 지명은 방향정보의 기능을 잃어버려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생활공간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하여 사용해왔다. 지명 속에는 해당 지역의 경관이나 자연적 특성이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거주민들의 생활상, 지역에 대한 생각이나 희망과 같은 사회적 특징도 담겨 있어서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변화상이 투영된 문화유산의 성격이 다분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 명명된 땅이름, 특히 행정구역 명칭의 변경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지명을 부여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평소에 지역별로 지명조사를 실시하여 오류나 문제가 있는 명칭을 미리 확인하고 대안명칭 및 개선 기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서깊은 전통지명과 어감이 좋은 순우리말 고유지명을 선별하여 권장지명 목록을 작성해둔다면 지명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도시별로 추진하고 있는 재생사업 과정 속에서, 버려두었던 언덕이나 개천의 기능을 복원시키고 잊혀진 땅이름들을 되찾고,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는다면 시민들의 정위감각을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점에서 본다면 최근 인천시 부평구가 굴포천 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굴포천의 일부는 복원되어 시민휴식과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만약 굴포천 유역 재생이 계획대로 추진되어 상류까지 복원된다면 부평구의 도심주거환경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부평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8-18 김창수

찍으세요, 당신의 삶은 ‘다큐’입니다

매 순간 일상을 찍고 보는 ‘영상의 개인화시대’흩어지고 잘리듯 삶도 제대로 연결 안될때 많아참고 견디며 감동적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자이윽고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릇 위에 놓인 요리는 정갈하다. 음식과 그것을 담아낸 그릇의 색상도 저마다 맞춤이다. 흰색 도기 위에 살짝 놓인 녹색 채소, 검고 붉은 칠그릇 속에 담긴 하얀 생선살, 보라색 햇가지를 감싸고 있는 겨자빛깔 튀김옷과 대나무접시.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씩 하나씩 선을 보이는 요리는 그때마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자, 그렇다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은? 흠흠, TV속 셰프를 흉내내며 음식내음을 맡는다? 꼴깍, 침을 삼키며 한 점 조심스럽게 집어 맛본다? 천만에.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다음 순서는 그게 아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리고 저마다 음식을 찍기 시작한다. 20대 후반의 딸과 아들도, 50대 엄마도 한결같다. 찍은 영상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한 뒤 비로소 흡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식겠다, 빨리 드세요.”우리 가족 얘기다.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 얘기다. 너나 할 것 없이 찍는다. 찍은 다음 그 다음 일을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도, 그럴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도 일단은 다 찍는다. 찍고 본다. 찍은 다음 그 쓰임을 판단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바람직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따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스마트영상시대’니 하는 말은 오히려 진부하고 식상하게 들린다. ‘영상의 개인화(personalization) 시대’다. 개인의 일상이 영상으로 시작되고 영상으로 끝나는 희한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찍은 영상의 대부분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라는 안타까움이 있긴 하지만.나의 일터는 시대를 관통하는 이런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시민들이 영상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이다. 영상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촬영장비와 시설도 ‘공짜로’ 빌려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들이 방송콘텐츠의 형식으로 곳곳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돕는다. 영상과 미디어교육을 통해 헌법정신을 살리고, 우리의 민주주의제도가 지속가능토록 일조하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션은 그래서 ‘시청자의 방송참여와 권익증진을 통해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시청자미디어재단의 광역권 6개 센터 가운데 하나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13일로 첫 돌을 맞는다. 지난 1년 동안 연인원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센터를 찾았다. ‘코딱지’ 유치원생부터 ‘은발’이 눈부신 70대 어르신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센터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였다. 자유학기제나 미디어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겐 진로모색과 창작의 공간이었다. 사·오십대 중년들은 새로운 배움터로 삼았으며, 어떤 이들에겐 재기의 디딤돌이었다. 정년퇴직자나 노령세대들에겐 삶의 질을 유지시키는 복지공간이었다. ‘자뻑’이라고 나무라셔도 할 수 없다. 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제각기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힐링공간’으로 기능했노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영상의 시대’이긴 하나 우리가 매 순간 찍고 있는 영상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듯이 우리의 삶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어려운 순간을 참아내며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찍고, 스토리를 입히고, 자르고 붙이고 편집해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시민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자, 마음껏 찍으세요, 여러분의 삶은 모두 ‘다큐’입니다./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5-08-11 이충환

좀비대학 누구 책임인가

역대정권 ‘자율 명목’ 대학 재량권 확대만 공들여치열한 경쟁속 교수요원들 어떻게 양성할지 고민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에 20년만에 구제불능 직면지난 5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5·31 교육개혁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주목되었다. 임천순 세종대교수는 1995년 ‘5·31교육개혁’의 성과로 학습자 중심교육 실천, 교육선택권 확대, 고등교육 특성화와 다양화, 대학의 자율성 확대 등 대학교육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동안 현장을 지켜온 필자의 소회는 “글쎄?”였다. 지난 세월 대학들은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개혁타령에 대책 없이 휘둘려 온 탓이다.20년 전 김영삼 정부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일정수준의 학생정원과 교사(校舍), 교지 확보비용 등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까진 설혹 자격조건을 갖추어도 정치권과의 유착 없이는 대학설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신생 대학들이 우후죽순 마냥 생겨났다.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으로 바뀐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4년제 대학 수가 종래 100개에서 200여 개로 증가했다. ‘서잡대(=서울의 잡대)’, ‘지잡대(지방의 잡대)’ 등 은어들이 생겨난 배경이다. 2002년을 기점으로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졸업생 수보다 많은 역전현상이 간취되었으나 무시했다.2002년 김대중정부는 수업료와 입학금 책정권한을 대학에 선물로 안겨주었으며 참여정부는 2004년에 국공립대와 수도권 사립대 및 사범계 정원만 정부가 관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2007년 8월 교육인적자원부는 33개 과제의 대학자율화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기본방향을 사전규제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했다.1970·80년대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대항했던 상아탑 전사(戰士)들에 대한 값진 보상은 ‘민주화=자율화’인 때문이다. 대학이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목표에 맞는 학생을 뽑아 가르치는 것이 정석이다.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자율화란 명목으로 대학의 재량권 확대에 공을 들였다.이명박 정부의 대학교육정책은 자율화 완결 편이었다. 2012년 ‘8·27 대학자율화조치’에서는 대학의 수익사업규제 대폭 완화, 자유로운 캠퍼스 신증축, 해외부동산취득 허용, 정부의 재정지원금 집행 자율성 제고, 조세감면 확대, 교육용 기본재산의 수익용으로 용도변경 가능, 사립대 총장의 4년 임기제 폐지 등이다. 사립대학의 공공성보다 설립자의 소유권과 시장원리를 우선한 것이다. 비리재단의 잇따른 복귀와 국공립대학의 법인화도 같은 맥락이었다.2008년부터는 대학입학정원도 급증했다. 문민정부 이래 정부가 재정적 여력도 살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바람에 부실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입학정원 확충과 학비인상에 나선 결과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초래된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천문학적인 적립금 쌓기가 빌미를 제공했다. 학령인구는 주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를 대학이 ‘장사꾼’처럼 부실교육을 한 탓으로 돌렸다.현 정부는 여론몰이 식으로 대학을 반값등록금으로 옥죄었다. 부족한 대학재정을 국민 세금으로 벌충해 준다는 조건으로 강제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정원감축과 학과통폐합, 취업률 제고와 전임교원수 확대, 학점상대평가 등이다. 국공립대학은 민주화운동의 전리품인 총장직선제를 돈과 맞바꿨다. 대학마다 취업률 제고를 위해 각종 꼼수를 동원해서 제자들을 실망시킴은 물론 국제화를 구실로 자격이 의심되는 외국인들을 원어민 교수로 모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업현장에서 퇴직한 내국인 교수들의 한물간(?) 강의내용에 학생들의 한숨도 깊다. 교육부의 전임교원 수 평가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헐값의 ‘무늬만’ 교수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시간강사들만 캠퍼스에서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대학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는데 앞으로 교수 요원들을 어찌 키워낼지 고민이다. 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 20년 만에 대학은 구제불능의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플라톤은 한국의 아카데미아를 어찌 생각할까? 포퓰리즘이 한국의 대학을 좀비로 만든 것 같아 뒷맛이 쓰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8-04 이한구

청년대책, 재벌(財閥) 진정성 갖고 나서라

10대기업 유보금 500조 돌파 불구 일터창출 인색인턴 명목 노동력 착취 ‘열정페이’ 사회초년생 울려‘10만명 채용’ 美 기업 실업해결 프로젝트 배워야며칠전 교수인 친구에게 메일을 받았다. “열정페이에 멍드는 사회 초년생들이 불쌍하다. 허울뿐인 직함에,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다. 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자신과, 투자도 안하면서 사내 유보금만 잔뜩 쌓아 놓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밉다.” 열정페이로 상처받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교수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1년 사이 40조원이 늘어나 500조원을 돌파했다.그제 정부가 앞으로 3년간 20만개 이상 청년 일자리 기회를 재계와 공동으로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정년이 연장되는 공공기관·공기업 종사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이로부터 절감되는 인건비로 청년을 신규 채용하고, 교원 명예퇴직을 확대해 신입 교사를 새로 뽑는 등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대책에 다급성이 느껴지나, 단언컨대 한국의 재벌들이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 한 이번 대책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열정페이’는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을 무급 혹은 저임금 인턴으로 고용하는 관행으로 올해 초 디자이너 이상봉이 저임금에 인턴을 착취하고, 소셜커머스 업체가 수습직원을 2주간 부려먹은 후 전원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열정페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가 됐다. 이 땅에서 젊은이들의 사회생활 첫발은 ‘열정페이’로 시작된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패션, 미용, 호텔, 제과제빵 등 인턴을 다수 고용한 151개 업체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03곳에서 255건의 노동 관련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된 사업장 중에는 재벌 계열의 유명 호텔과 유명 패션, 미용업체 등이 다수 포함됐다. 여름철 성수기에 필요한 인력을 현장실습생으로 충원한 재벌 계열의 한 호텔은 100여명의 인력을 실습생으로 채용한 뒤 일반 노동자와 똑같이 야간·연장근로를 시켰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월급은 고작 30만원에 불과했다. 청년들의 고용의 질이 이 지경이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에 인간관계, 내집 마련 포기를 더한 ‘5포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미국에서는 JP모건, 호텔체인 힐튼, 월마트, MS(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이른바 미국 각 기업의 대표주자들이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오는 2018년까지 청년 10만명을 정규직, 인턴·시간제로 신규 채용키로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것은 굴지의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 때문이다. 1만명 채용을 발표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문화·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우리는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사업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해 청년실업 해소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 상승이 내수 기반 약화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안전과 복지비용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데 2013년 한해 무려 30조원을 투입한 미국정부는 이렇게 기업이 먼저 청년실업 해소에 나서자 크게 반기고 있다. 정부의 힘만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슐츠 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청년실업 프로젝트는 절대 자선사업이 아니다. 지금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슐츠 회장의 이 말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우리 재벌들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란 말은 아주 오래전, 한 권력자가 이 땅에 재벌을 만들어 주었던 그때도 통용됐던 말이다. 이제 진정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7-28 이영재

복합리조트 집적화가 필요한 이유

한곳에 몰려야 시너지효과와 도박 부작용 최소화공항·항만 필수… 20분내외 위치 집객효과 볼수 있어신중하고 과감한 접근 중요… 전국 도박장화는 안돼복합리조트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온 나라를 얼어붙게 만든 메르스 한파나 정치권의 치열한 세력다툼도 리조트 유치를 위한 자치단체들의 강렬한 욕망을 꺾진 못했다. 전국의 10여 자치단체에서 유치를 신청했고 관심을 보인 업체들도 20여개가 넘는다. 리조트 유치가 과열 양상으로 치닫게 된 데는 정부의 리조트 분산방침과 표를 의식한 단체장들의 치적 쌓기 경쟁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유치경쟁에 뛰어든 자치단체 마다 리조트가 들어서야 할 당위성을 지역경제 활성화니 서민경제 살리기니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설명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리조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대형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바탕을 이루고 있다.문제는 복합리조트(Resort complex)란게 카지노 즉 도박장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도박장을 만들겠다고 하면 저항이 심할 듯 하니까 그럴듯하게 포장한 게 복합리조트다. 카지노만 만들자니 낯 간지럽고 하니 대규모 회의시설인 컨벤션도 집어넣고 문화공연장도 끼워 넣는다. 라스베이거스는 그런 식으로 성공했다. 이런 복합리조트를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세워 전국에 골고루 들어서게 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리조트 유치를 원하는 지역에 하나씩 던져주며 인심쓰겠다는 얘기다. 겉보기엔 그럴듯할지 몰라도 전국을 도박장화해서 정서적인 황폐화를 초래하는 ‘인간의 사막화 정책’과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나눠 주다 보면 전국의 도박장화라는 부작용은 필연적이다.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들어 인간의 사막화에 성공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복합리조트의 집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정부의 도박장 분산화 정책이 위험한 이유 중 또 하나는 풍선효과다.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리조트 유치경쟁을 바라만 보던 지자체들이 정부정책을 보고 우리도 하나 하고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복합리조트 성공의 전제조건은 집적화다. 마카오나 모나코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박으로 성공한 도시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라스베이거스에만 360여개 카지노가 성업 중이고 규모가 작은 마카오나 모나코에도 수십여개의 카지노들이 밀집해 있다. 도박꾼들의 특성상 한곳에서 돈을 잃으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한번 테이블에 앉기를 원한다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접근성도 중요하다. 공항과 항만은 필수적이다. 그것도 가까워야 한다. 최소한 공항에서 20분 내외의 거리에 위치해야 집객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랜드마크가 들어설 수 있는 입지도 고려돼야 한다. 카지노가 전국에 분산 배치된다고 모든 지역이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박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효율적이고 통제 가능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집적화가 중요하다. 한곳에 모여있어야 시너지도 얻을 수 있고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복합리조트가 내세우는 문화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집적화는 중요하다.인간이라면 누구나 큰 거 한방에 팔자를 고치는 꿈을 꾸고 산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한탕의 욕망은 강렬해지고 그런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도박이다. BC 3000년 이집트에서는 현재와 같은 모양의 상아 주사위가 만들어져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에 이용됐다니 대략 5천여년전에 이미 도박이 시작된 셈이다. 도박의 역사는 길고 뿌리는 깊다. 강남의 맛있는 감귤이 강북으로 건너가니 탱자가 된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복합리조트 산업이 강남의 귤이 되기 위해서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국의 도박장화는 안된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7-21 박현수

정당체제의 재편은 가능한가

적대적 공존·대립하는 정당구도 ‘시대 착오적’정치가 혐오·불신 대명사 된 근원은 ‘정당체제’여야중도세력, 이념지향 맞춰간다면 ‘변화 가능’한국 양당체제는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공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보수정당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현안이나 쟁점 집단에서 보다 진보적 경향을 띤다. 이념적 구분은 시대의 산물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새롭게 정립된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서구 부르주아의 발달 역사 속에서 형성된 보수와 진보를 닮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구적 기득권의 인식에 동조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하는 집단을 ‘보수’ 또는 ‘보수세력’과 등치하는 왜곡은 시정되어야 한다.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내부의 계파 갈등은 이념과 노선에 따른 균열의 측면보다는 내년 총선의 공천을 둘러싼 권력투쟁 성격이 짙다. 그러나 양당체제의 적대적 공존과 거대 정당의 카르텔 구도의 우산 속에 안주하는 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집단 출현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주 ‘진압’된 유승민 사태는 정책과 이념의 분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반기(反旗)를 든 정치인의 배제를 통해 집권 3년 차의 레임덕을 막아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한 정치공학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랬듯이 다른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왜곡되어 있던 ‘보수’의 개념 부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지난 4월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유승민 의원의 발언은 보수에 대해 새로운 정립의 단초를 제공했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새누리당의 전통적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당내 민주주의에 입각한 건강한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 법인세 인상의 공론화 필요성 제기, 새로운 보수의 지평에 대한 언급 등은 가치지향을 둘러싼 논쟁의 주제를 제시했다. 유승민 사태를 보는 관점이 여권 내의 권력지형의 변화나 청와대 일방 우위의 당청 관계 확인 등 정치공학적 해석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본래 이념적으로 보수와 개혁을 대척점에 놓는 방식은 그릇된 배치다. 체제를 보수하고 기존의 가치를 지키자면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 정신을 외면하고 수구적 패러다임에 안주한다면 지켜야 할 가치를 ‘보수’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건강하지 않다. 현재의 보수세력을 보수라고 지칭하는 것은 네이밍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의 보수는 사실상의 수구다. 점점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계급 블록화의 빠른 진행을 보지 않고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세력을 보수로 칭할 순 없다. 자신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중도개혁 세력의 출현은 그래서 긴요하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과 친노 세력은 그래서 이념적 구분과는 무관한 패권주의 세력 그 자체다. 지나친 이념적 좌파로의 편향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다. 왜곡된 보수와 진보를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면 현재의 정당체제 개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당 내의 원심력 작용이 설령 내년 공천 지분권 확보의 정치적 이익을 채우려는 ‘불순’한 동기라도 좋다.현재의 거대정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 정당체제는 이미 약효를 다했다.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현재의 정당구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불신의 대명사가 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현재의 정당체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패권세력을 뒤로 한 채 두 정당의 중도세력이 이념적 지향을 맞춰간다면 정당체제가 재편될 수 있다.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로 의총을 열어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진 법안에 대해 아무 토론도 없이 ‘폐기’를 결정하는 정당은 더 이상 보수정당이 아니다. 보스가 정치의 중심에 있는 패권정당과 다름 없다. 보수와 진보가 생각의 잣대가 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 버금가는 양극화의 심화, 시대착오적 사회적 계급의 블록화, 내쳐진 사다리, 비정규직의 절망 등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이 전제될 때 보수와 진보의 존재 가치가 있다. 따뜻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사회적 형평의 추구와 경제적 갈등의 해결이다. 야당을 지지하지만 새정치연합의 구태와 맹목적 좌 편향이 내키지 않는 유권자, 여권 지지 성향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리더십과 친박 ‘돌격대’들의 비겁함에 절망하는 시민들을 규합할 수 있는 야당의 출현을 기다린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7-14 최창렬

세계유산이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

지옥섬인 나가사키 하시마섬 혹독한 ‘강제 노역장’일본, 강제노동 대신 ‘일을 시켰다’ 애매한 표현‘전쟁피해 강조의 수단 활용’ 日국익에 부합 안돼결국 하시마를 비롯한 일본 근대산업시설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이 등재 신청한 이른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지역 8개현 11개 시에 소재한 총 23개 시설이다. 이들 시설 중 7개 시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시설로, 약 5만7천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했던 곳이다. 특히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 섬은 ‘지옥섬’으로 불릴 정도로 혹독한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7개 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방법을 놓고 논쟁하였으나 합의를 이뤄 등재안이 통과됐다.등재결정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 자기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한(forced to work)’ 사실이 있었음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를 중심으로 한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계기로 ‘한일양국관계가 선순환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일본 외무상은 해당 문구를 ‘강제 노역’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강제노동(forced labour)’이라는 명백한 개념어 대신 ‘일을 시켰다’(forced to work)라는 애매한 표현을 허용한 것과, 합의내용을 주석(註釋)형식으로 삽입키로 한 것도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은 해당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다.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이라고 자랑하는 근대 산업시설은 러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의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상당수가 조선인을 비롯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가동되었던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물론 아우슈비츠수용소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야수적인 만행을 밝히고, 유태인이 당했던 수난을 기억하기 위한 반성과 교훈으로 삼기 위해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일본이 향후 강제노역의 역사를 충실하게 밝히라는 유네스코의 권장사항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일본의 역사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핵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원폭돔을 통해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입은 전쟁의 피해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심지어는 국가주의와 재무장론을 선전하는 도구로까지 활용한다는 점이다. 보편적 가치를 국가주의적 가치로 변질 왜곡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왜곡이 결코 일본의 진정한 국가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야 한다.‘지옥의 섬’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등재 논란을 계기로 국내의 근대역사유산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남긴 식민 유산과 전쟁 유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주도에 남긴 일본 진지들은 확인된 곳만 450곳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전쟁 유적지는 치욕의 유산이 아니라 침략전쟁 역사에 대한 교육장소로 보존 활용해야 한다. 일본인들의 조선진출 교두보였던 인천의 근대역사유산도 엄정한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인천의 경우 부평미군기지에 남아 있는 인천육군조병창의 지하시설물과 관련 유적에 대한 조사와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각종 개항기 문화유적이 식민지기에 수행한 기능들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개항기 유산의 근대적 성격만 강조하다가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7-07 김창수

인천 8대 전략산업, 어떻게 육성하나

어느 시점까지 추진할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중국시장 의존도 낮추는 대비책 마련 중요정부협력 얻고 성공여부 가늠해 선별투자 필요인천시가 유정복 시장 취임 이후 전략산업 육성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골격이 바로 ‘인천 8대 전략산업’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고 연구진과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그 방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6월 1일 대토론회라는 이름으로 기초 윤곽을 공개했다. 현재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을 반영하고 또 시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쪽과의 교류를 통해 친(親)시민 관점의 조언을 청취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에 인천시가 선정한 8대 전략산업은 항공, 첨단자동차, 로봇, 바이오, 물류, 관광, 녹색금융, 뷰티산업 등이 해당한다. 미래에도 이들 산업이 그대로 중요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인천의 먹거리 산업으로 예측되는 산업을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전략산업의 육성책을 논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육성해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산업들의 선정 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선정된 각 산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몇 가지 중요 이슈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한 도시의 전략산업을 논의하는 데에서 어느 시점까지를 볼 것인지는 중요하다. 말하자면 5년 후와 30년 후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방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천시의 이번 보고서에는 단기적으로는 3년 후에 대한 방책, 장기적으로는 35년 후인 2050년까지를 내다보는 대책이 담겨있다. 카메라 렌즈로 치면 망원렌즈와 접사렌즈가 혼용된 상황이다. 3년 앞의 산업육성도 봐야 하고 2050년이라는 미래 청사진도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다(多)초점 렌즈를 적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실현가능성을 생각하면 초점이 명확해야 한다. 여러 시점을 동시에 놓고 말하기에는 인천의 산업육성 정황이 그리 한가롭지 않다. 더욱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쪽으로의 구조전환도 시급하다. 이런 점에서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둘째, 인천의 8대전략 산업들은 대체로 중국시장과 연관성이 높다. 물론 중국시장이 워낙 큰 시장이고 특히 인천에게는 지리적으로 반드시 공략해야 할 시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시기에 중국에 공장 세우러 많은 기업들이 나갔다가 별로 소득도 없이 도주하듯이 나와야 했던 사례가 그리 먼 과거 일이 아니다. 8대 산업의 육성전략에서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비책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가시장에 대한 검증과 가능성이 더욱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8대 산업 중 일부 산업에서는 중앙정부로부터 협력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항공, 첨단자동차, 로봇 등이 그런 예이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들어가는 점에서 그러하며, 혹은 특정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국가전략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책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중앙정부에 대한 설득력이 핵심이다. 인천이 그 산업을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논리성을 갖추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다른 지자체들과의 경쟁이니 만큼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산업 수가 8개가 될 수 있을지 여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현실적인 해결책은 그 8개 전략산업 중에서 몇 개를 선별하여 차별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방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차별적 정책 추진이 지자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8개를 모두 잘 키워보려다 전부 그저 그런 수준에 귀결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었으면 당초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개념을 꺼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한편 8대 전략산업들의 경제적 가치는 높을 것이지만 이들 산업의 발전이 과연 시민들의 행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선을 넘어 진정으로 행복지수를 높이는 산업육성책이 도출되기 바란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6-30 손동원

일본자본의 서민금융 공략

국내 20여개 日대부업체… ‘빅3’ 고리대 특수저축은행 진출 ‘연평균 2530% 이자율’로 초과이윤외국자본 지나친 유입 서민경제 위기 초래할 수도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3개월 만에 또다시 기준금리를 끌어내린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죽을 맛이다. 사상 최저의 금리시대를 맞아 은행의 주 수입원인 예금과 대출이자간의 폭이 줄어들면서 수익이 갈수록 악화되기 때문이다. 예대 마진 차이가 2010년 2.94%포인트에서 4년만에 30%가량 하락한 터에 내수부진까지 가세한 것이다. 인원 및 점포감축 등 마른 수건 짜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다.그러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은 성업 중이다. 특히 저축은행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 현재 영업 중인 전국 79곳 저축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천443억원으로 1년 전의 적자 4천768억원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를 낸 것이다. 저금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4년 새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낮춰 현재 1.50%까지 내렸으나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여전히 10%대를 상회하고 있다. 대손비용 등 각종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예대마진폭이 810%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금리에 비해 무려 45배나 높다. 대출이자가 30%인 살인적인 고금리도 비일비재하다. 담보로 세울 건 몸뚱이밖에 없는 서민들을 감안하면 ‘빚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사상최대의 대출실적은 설상가상이었다. 2011년 뱅크런 사태로 한바탕 진통을 겪은 이후 저축은행들은 대출선을 종래 기업대상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소규모 가계대출로 전환한 결과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3월말 11조3천억원으로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2014년 1분기에 비해서도 무려 26%나 증가했다. 저축은행들을 누가 애물단지라 했던가.그 중심에 일본자금이 있다. 1999년 A&P파이낸셜의 진출 이후 현재 국내에는 20여개의 일본 대부업체들이 고리대특수를 누리고 있다. 아프로파이낸셜·산와·KJI 등 일본계 ‘빅3 대부업체’는 한국 사채시장의 약 40%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국내 저축은행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2014년말 기준 SBI·OSB·친애·OK·JT 등 5대 일본계 저축은행의 국내 저축은행 총자산 점유비율은 18.9%로 2012년보다 무려 6배나 격증했다. 국내 최대의 SBI저축은행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3조7천729억원으로 저축은행 전체자산의 10%를 기록 중이다. 일본 내에서 헐값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국내에선 연평균 2천530%의 이자율로 돈 장사를 하니 막대한 초과이윤은 당연한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 연 34.9%,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 29.9% 등이다.일본인들이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당시 매물로 나온 국내 금융사들을 적극 매입한 결과다. SBI홀딩스는 2012년에 자산규모 업계 1위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해서 SBI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J트러스트는 2012년 친애저축은행(미래저축은행)을 사들인데 이어 2014년 7월 SC저축은행까지 인수해서 JT저축은행으로 둔갑시켰다. 오릭스그룹은 OSB저축은행과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일본금융자본의 국내 서민금융시장 진출 러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개연성이 크다.국내외를 불문하고 돈이 부가가치가 큰 쪽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하나 고리대 성업을 간과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외국기업의 생리상 ‘먹튀자본’의 양산 우려는 물론 제2, 제3의 한국스탠다드채터드은행이 생겨날 수도 있다. 성장이 멈추고 수익성이 나빠졌음에도 영국 본사가 가져가는 돈이 두둑해 국부유출 시비가 불거진 것이다. SC금융지주의 2010~2013년 고(高) 배당성향(3천80%)이 시사하는 바 크다. 뉴질랜드에서는 토종은행이 사라지면서 외국은행들이 높은 수수료와 대출금리로 서민가계를 압박하기도 했다. 외국자본의 지나친 유입은 서민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도 고민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시장기대에 어긋나는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 확인했으나 달러화 강세는 불문가지인 것이다. 초저금리 예외지대에 대한 능동적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6-23 이한구

삼성병원을 보면 삼성의 미래가 보인다?

메르스 2차진원지로 ‘부분 폐쇄’ 대형사고 터져철저했던 원칙주의 무너진 ‘동네병원’으로 전락불안한 지배구조 전세계 헤지펀드에 그대로 노출이상하다. 어떻게 이지경까지 됐을까.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애플과 한 판 겨룰 수 있는 지구 상 유일한 기업, 삼성 얘기다. 삼성이 이상하다. 지난 5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부친 이건희 회장이 맡았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그룹 경영권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된 상징적인 조치이며, 마침내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개막됐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서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도 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1982년 설립된 이래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을 펼쳐왔던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1994년 건립해 운영 중이던 삼성 서울병원이 메르스 2차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부분 폐쇄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내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한달만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큰 사고 앞에는 늘 전조(前兆)가 있는 법이다. 지난 11일 메르스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삼성병원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가가 뚫렸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삼성병원의 반박에 회의장은 술렁였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속히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약속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을 삼성이었다. 그런데 일개 과장이 사과 대신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그로부터 3일 후에야 삼성병원은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국민이 고통받는 엄중한 시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며 “대규모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으로서 집단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삼성병원의 개원은 종합병원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환자를 잘 수술해 달라거나 봐달라며 환자가족이 고마움의 표시로 의사와 간호사에게 주었던 ‘촌지’라는 관행을 없앤 것도 큰 파격이었다. 촌지를 받은 의사와 간호사를 파면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최고의 의료진 , 최고의 시설로 환자의 수술과 관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다른 대형병원들의 서비스도 크게 향상됐다. 한국 의료수준이 한단계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삼성은 늘 ‘1등주의’를 표방했다.개원초 환자 가족 1인에 한해 병실출입이 가능했고, 시간을 정해 환자면회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던 ‘원칙주의’ 삼성병원은, 그러나 이제 7세 어린이도 부모 손을 잡고 응급실을 무상 출입할 수 있는 ‘동네병원’으로 전락했다.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가 병원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병을 옮겨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병원이 됐다. 메르스 확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삼성병원내에서 감염됐다. 삼성병원 의사인 138번 환자는 발열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격리되지 않고 10여일간 회진을 다녔다. 언론들은 자만심이 부른 치욕이라고 했지만, 이 지경이 된 것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순수한 설립이념을 스스로 망각했기 때문이다.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은 지금 미국 헤지펀드 엘리어트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후계자 승계작업을 끝내려던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방어에 나섰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엘리어트를 몰아낸다 해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립이념이 완전히 무너진 삼성병원에 메르스가 침입해 삼성제일주의를 와르르 무너뜨렸듯, 삼성그룹의 허약하고 불안한 지배구조는 이제 전 세계 헤지펀드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 틈을 노리고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제2 제3의 엘리어트가 공격을 감행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삼성병원을 보면 마치 삼성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하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6-16 이영재

메르스,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정부

허둥대며 제대로 대처도 못하는 정부 ‘한심’국민안전 잘 지키면 국가이미지 상승 당연한데…효율적 대책으로 안심 시키는 모습 보고 싶을뿐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는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총, 균, 쇠 라는 책이 있다. 명저로 꼽혀 퓰리처상을 받았고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이 책에서 제라드 교수는 세균의 진화와 전파경로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세균(바이러스)은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영리한 바이러스는 번식을 위해 숙주로 사용하는 매개체를 죽이기보다는 적당히 아프게 하면서 자가 증식을 통해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응해 가는 방식으로 생존능력을 높인다는 것이다.제라드는 인류가 짐승들을 가축화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가축이 가진 질병들이 인간에게 옮겨지고 세균이 변이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고 확산속도도 빨라진다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역사를 보면 세계화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이 갑자기 퍼지면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을 침략한 몽골군이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인 흑사병을 유럽에 퍼트려 당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 제국이나 남미 잉카제국도 총과 말로 대표되는 군대의 침입에 더해 신대륙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천연두를 스페인 인들이 퍼트려 수백만의 인디언을 숨지게 한 것이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특정 지역에서 발병해 그 지역주민들에게만 감염되는 풍토병이라고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전체가 하나로 묶이면서 풍토병이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번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풍토병 중에서 글로벌화 되면서 악명을 떨친 에볼라와 에이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도 따지고 보면 중동지역의 풍토병이다. 사막도 아니고 낙타도 기르지 않는 우리가 메르스에 떨게 된 건 풍토병에 무지한 데다 대처까지 서투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는 무능하다 못해 한심하다. 허둥대기만 하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첨단의료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SNS를 타고 번지는 소문들을 괴담이라며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여론은 싸늘했다. 괴담을 단속하려 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여론은 백번 옳다. 단속에 쏟는 노력을 메르스 퇴치에 기울여 질병을 퇴치하면 괴담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세간의 반응은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분별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질병이 확산되고 있으니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 추궁에 국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은 일의 선후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중요한 건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고 그게 잘 지켜지면 국가 이미지는 자연스레 좋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메르스에 헤매는 정부를 보면 지난해의 세월호 참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에 유행했던 사스에선 또 무엇을 배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빗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뒤늦은 대처를 비꼬고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를 보면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라고 권하고 싶다. 더 이상 똑같은 실수로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은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국민들을 안심하도록 다독이며 효율적인 대책을 갖고 믿음직하게 끌고 가는 그런 정부를 보고 싶다. 그게 이뤄질지는 의문이지만…./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6-09 박현수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

입법부, 지나친 정부압박 ‘다수 횡포’로 전락할 수도靑, 국회 정면충돌 시사… ‘갈등 최소화’와 어긋나행정마비·권력분립 침해 ‘헌법가치 훼손’ 근거 미약지난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입법부와 청와대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청와대는 개정안이 행정입법을 국회가 과도하게 제한함과 아울러 삼권분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법의 취지나 내용을 위반한 시행령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의 권한은 정당한 입법권의 행사라는 입장이다.이 사안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과 여권내 정치지형의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각론은 더 복잡한 양상이다. 당청간의 갈등을 기본축으로 당내에서 친박과 비박의 대결구도가 노골화될 수 있다. 반면에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하여 새누리당 지도부가 몸을 낮출 수도 있다. 여권내의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고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도 있다. 여권내의 역학관계의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새누리당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설령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청와대를 의식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수정을 가하고자 한다면 여야 관계는 가파른 대치국면을 피할 수 없다.한국은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제의 작동 원리가 입법·행정·사법의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것이지만 우리의 권력구조는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의 융합이란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현역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는 구조,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도 그 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통령 특보와 현역의원의 겸임으로 권력분립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침묵하다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권력분립에 위배 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대통령과 입법부는 모두 국민의 선출에 의한 헌법기관으로서 이원적 정통성을 갖는다. 따라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교착과 대립은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집권당의 의석보다 야당의 의석이 많은 분점정부의 경우에 대통령이 야당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야당을 설득함으로써 소수 정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분점정부가 정국의 교착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으나 여소야대 정국을 의미하는 분점정부 상태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킨다는 논리는 그래서 타당하지 않다. 같은 논리의 연장에서 청와대가 국회의 시행령 수정을 강화한 법안을 권력분립의 위배라고 보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시행령 자체를 일일이 간섭한다는 것이 아닌 바에야 모법의 취지에 합치하지 않는 조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서 시행령에 관한 수정 변경요구가 강제성을 갖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조정이 가능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현상이다. 권력을 획득·쟁취하고자 하는 세력간의 다툼이 정치의 기본 요소다.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떤 제한 조건하에 두느냐 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사활적이다. 다수가 모든 힘을 독점하게 될 때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입법부의 불안정,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이고 빈번한 권력의 행사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선한 정부냐 악한 정부냐에 대한 기준은 정부가 다수의 지배하에 있느냐, 소수의 지배하에 있느냐의 기준에 있지 않고, 그 정부가 얼마나 많이 혹은 조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느냐 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의 확대과정이다. 보통선거권의 확대 과정이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다. 구체적으로는 입법부 권능의 확대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입법부가 과도하게 행정부를 압박한다면 권력분립은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전락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의 침해라는 논리로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해법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국회와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청와대의 태도는 정치를 통한 갈등의 최소화와 거리가 멀다. 국회법 개정으로 행정부가 마비되거나 권력분립이 침해되어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6-02 최창렬

양해각서 공화국

정치인,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 불구 집착준비 부족과 정권 바뀌면 ‘나몰라라’ 더 큰 문제국부 유출·국위 손상 ‘MOU 남발’ 책임 물어야지난주 국민들의 관심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의 방한 관련 선물 보따리였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 중국과 함께 이머징마켓 리더로 부상하는 탓이다. 양국 정상은 한인도 이중과세방지협정, 에너지신산업 협력, 해운물류협력 등 7개 분야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의 ‘메이크 인 인디아’정책과 한국의 창조경제가 접목될 경우 양국 모두의 제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대치를 높였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별로인 듯하다. MB정부에 눈길이 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 운운하며 당선과 동시에 자원외교를 서둘렀다.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총리와 MOU를 맺어 우리나라 2년치 소비량에 해당하는 19억 배럴의 크루드유전 개발권 확보란 대어를 낚았다. 선거 열기가 체 식지도 않은 터여서 국민들은 상당히 고무되었다. 그러나 후일 대부분의 광구에서 기대매장량에 크게 못 미쳐 한국석유공사는 계약체결과 함께 쿠르드정부에 건넨 ‘서명보너스’ 2억1천140만 달러와 탐사비 1억8천868만 달러 등 총 4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MB정부는 2008년 이후 71건의 해외 자원개발MOU를 체결했으나 본 계약이 성립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전 대통령 형제가 직접 체결한 MOU건수는 45건에 총 1조4천461억 원이 투입되었으나 회수액은 ‘0원’이었다. 발등 데고 수모까지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09년 2월 23일에는 방한한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35억 달러 상당의 이라크북부 바스라유전 개발MOU를 맺었다. 당시 정부는 ‘가뭄의 단비’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석유공사는 이라크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한국의 이미지만 흐렸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껏 움츠렸던 국민들은 ‘닭 쫓던 개’꼴이 되고 말았다. 지방자치단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0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와 프랭스 스타넷 USK 사장간에 체결한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 양해각서’가 상징적이다. 경기도와 USK컨소시엄은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에 5년간 2조9천억원을 투자해서 테마파크, 테마호텔, 스파센터 등 세계최대의 관광단지를 조성해 2012년에 오픈 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했다. 5조5천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천900억 원의 조세수입, 15만 명의 신규고용 등을 장담했으나 8년여 동안 경기도와 화성시, 수자원공사와 롯데그룹 등 이해당사자 간에 힘겨루기하는 사이에 유니버설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슬그머니 중국 베이징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경기도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버금가는 국제테마파크 건설을 호언하고 있으나 화성시민들의 상심(傷心)은 쉽게 치유되기 힘들 전망이다.경기도민들의 실망은 이뿐 아니다. 경기도는 김문수 전 도지사 시절 22개국에 33회나 투자유치 해외출장에 나서 총 185억7천만 달러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 합작기업들의 대응투자액(매칭펀드)을 제외할 경우 순투자액은 63억8천만 달러인데 그나마도 실제 집행된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2014년 7월 기준 26억 달러이다. 경기도가 발표한 185억7천만 달러의 14%에 불과한 것이다.양해각서란 내용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음에도 국내 정치인들은 외국과의 MOU에 목을 매고 있다. 오죽하면 해외에서 한국을 ‘MOU공화국’이라 조롱할까. 그렇다고 MOU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먹거리 대부분을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국내 실정을 고려할 때 해외 자원은 물론이고 자본의 국내유입은 다다익선이다.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들이 화근이다. 사전준비 부족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 몰라’라 하는 관행은 더 큰 문제이다. 박근혜정부에서도 부실MOU 소문이 들린다. 인천시민들은 인천시와 두바이투자청간의 36억 달러짜리 검단 퓨처시티사업이 불발될까 노심초사이다. 국부(國富) 유출과 국위(國威) 손상은 물론 민심까지 멍들게 하는 양해각서 남발에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5-26 이한구

인천은 중국관광객 다 놓치고 말 것인가

인상적 공간없어 입국 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명동거리 같은 볼거리·먹거리 타운조성 시급‘중국 효과’ 완전히 흡수할 기회 잡아야최근 인천항에 펼쳐지는 신(新)풍경이 흥미롭다. 그것은 바로 대형 크루즈 여객선에서 800여명의 중국관광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풍경이다. 우리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 관광객의 숫자에는 관심이 크지만, 크루즈를 통해 들어오는 ‘요우커’의 숫자에는 무심했던 편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준이 아니며 향후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올해만 해도 중국 관광객을 위한 크루즈가 150편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며, 그 숫자도 30만명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그들은 도착 후 인천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천은 그저 도착하는 곳일 뿐이다.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바로 서울로 간다. 아마도 쇼핑과 음식이 풍성한 명동 거리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일부는 제주도로 간다. 그곳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중국관광객들이 인천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인사동 혹은 명동거리와 같은 인상적인 공간이 없다. 오래된 고민이지만 인천이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할 것인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 서울에서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평지하상가에 들러 1시간 정도 쇼핑할 기회를 준다는 소식에라도 위로를 얻는 지경에 처한 정도니 말이다.중국 관광객이 마냥 한국으로 몰려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동력이 종료되는 시점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까운 외국이기 때문이다. 보통 해외관광의 시작은 인근 국가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다. 중국 관광객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과 하와이 등으로 관광지를 옮길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한 기업이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에 6천여명의 종업원을 보낸 뉴스가 있었다. 이미 중국기업의 관심이 프랑스의 최고 휴양지로 향했다는 뉴스인 것이다. 인천으로서는 프랑스 칸 지역이 갑자기 256억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소식보다 그들이 그 돈을 써가면서 프랑스를 갔다는 것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아직 중국 관광객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벌써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서울 및 제주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도 무리다.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과 제주도로 가더라도 좋다. 다만 전체 일정 중 이틀 정도만 인천에 머물게 하면 된다. 바로 그 며칠을 머물게 할 유인과 매력만 준비하면 된다. 이런 최소한의 조건조차 여태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 아니던가. 이제부터라도 명동거리와 같은 쇼핑 및 먹거리 타운을 조성해야 한다. 그 거리에서 중국관광객들이 편안히 걷고 떠들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그러면서 특별한 추억을 얻고 가도록 해야 한다. 인천의 특산물 음식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며, 역사적 흔적을 느끼도록 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자면, 인천의 대표 수산물인 꽃게 음식이 될 수도 있겠다. 인천 관광정책이 수산정책을 껴안아야 한다. 한때 꽃게를 명품음식으로 만들자는 작은 시민모임이 있었으나, 인천시 수산정책은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관광자원에 스토리텔링을 넣어야 성공한다는 조언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제라도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은 지리적으로 중국 효과를 얻는 데 최적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변수가 인천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정작 그 효과를 완전히 흡수하는 역량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중국 관광객이 주는 엄청난 기회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다는 비애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더욱 그 회의는 깊어질 것이다. 기회가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기일전, 즉 새로운 마음으로 기회를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먼 훗날 그 엄청난 기회를 왜 놓쳤느냐는 후세대의 질책을 감당하려면, 오늘 뜨거운 열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알리바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5-19 손동원

‘이야기하는 인간’과 이야기의 본질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이야기의 힘’스토리텔링이 왜 대세인지 생각해 봐야양방향 소통 환경속에 ‘본질’을 지녔기 때문인간에 대해 새로운 정의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 그것이다. 이야기 하기와 이야기 듣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이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 정의는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인 존 닐(John Niels)이 처음 제기한 신조어이다.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본 것이다.이야기의 전승을 주목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바로 죽음을 무릅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이다. 아랍의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랍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의 원제목은 ‘샤리아에게 들려주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이다. 샤리아는 왕비에게 배신당한 뒤 그 원한 때문에 매일 한 명의 여자와 동침하고 이튿날에는 교수형에 처하는 잔혹한 군주이다. 셰에라자드는 스스로 이 잔인한 군주와 결혼하여 천 하루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은 교수형을 하루하루 늦추다가 천 하룻밤을 보낸 날 마침내 지혜로운 이야기꾼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동침한 여인들을 죽이는 악습도 폐지한다.보카치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가족을 잃은 7명의 부인과 3명의 청년이 교외의 한 별장에 피신하여 지내는 열흘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슬픔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한 위안물이라 할 수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였고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남녀들에게 이야기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기록 서술자의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경문왕과 복두(幞頭)장이 이야기’는 이와 흡사하다. 이 설화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복두장이는 경문왕의 귀가 나귀처럼 길어졌다는 비밀을 알고 있지만 평생 발설하지 못하고 죽을 무렵에 대나무 밭에 들어가 왕의 귀가 나귀처럼 생겼다고 소리치고 죽는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나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과 이발사’ 이야기도 거의 흡사하며, 유사한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 분포한다. 미다스왕의 이발사나 경문왕의 이발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없어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갈대나 대나무밭에다 말하고 죽는다. 이 유형의 설화는 외견상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의 관점에서 보면 비밀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못하면 고통스럽다는 사실, 역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쾌감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담겨 있다.이야기의 시대로 접어든 징조가 뚜렷해 지면서 이야기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교육과 출판 분야는 스토리텔링이 기본이다. 기업의 홍보 마케팅 분야도 이야기의 기법이 대세이다. 심지어 선거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후보는 당선 확률이 낮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를 스토리텔링 학과로 바꾸고 있다. 국내외 도시들도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마케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소설을 압도하게 된 배경, 왜 TV나 라디오 매체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터넷 매체나 SNS가 ‘대나무밭’이라도 되는 걸까? TV, 라디오, 책이 일 방향성이라면 인터넷과 SNS는 양방향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야기는 양방향 소통 환경에서 서식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이야기의 시대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5-12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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