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좀비대학 누구 책임인가

역대정권 ‘자율 명목’ 대학 재량권 확대만 공들여치열한 경쟁속 교수요원들 어떻게 양성할지 고민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에 20년만에 구제불능 직면지난 5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5·31 교육개혁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주목되었다. 임천순 세종대교수는 1995년 ‘5·31교육개혁’의 성과로 학습자 중심교육 실천, 교육선택권 확대, 고등교육 특성화와 다양화, 대학의 자율성 확대 등 대학교육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동안 현장을 지켜온 필자의 소회는 “글쎄?”였다. 지난 세월 대학들은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개혁타령에 대책 없이 휘둘려 온 탓이다.20년 전 김영삼 정부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일정수준의 학생정원과 교사(校舍), 교지 확보비용 등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까진 설혹 자격조건을 갖추어도 정치권과의 유착 없이는 대학설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신생 대학들이 우후죽순 마냥 생겨났다.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으로 바뀐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4년제 대학 수가 종래 100개에서 200여 개로 증가했다. ‘서잡대(=서울의 잡대)’, ‘지잡대(지방의 잡대)’ 등 은어들이 생겨난 배경이다. 2002년을 기점으로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졸업생 수보다 많은 역전현상이 간취되었으나 무시했다.2002년 김대중정부는 수업료와 입학금 책정권한을 대학에 선물로 안겨주었으며 참여정부는 2004년에 국공립대와 수도권 사립대 및 사범계 정원만 정부가 관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2007년 8월 교육인적자원부는 33개 과제의 대학자율화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기본방향을 사전규제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했다.1970·80년대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대항했던 상아탑 전사(戰士)들에 대한 값진 보상은 ‘민주화=자율화’인 때문이다. 대학이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목표에 맞는 학생을 뽑아 가르치는 것이 정석이다.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자율화란 명목으로 대학의 재량권 확대에 공을 들였다.이명박 정부의 대학교육정책은 자율화 완결 편이었다. 2012년 ‘8·27 대학자율화조치’에서는 대학의 수익사업규제 대폭 완화, 자유로운 캠퍼스 신증축, 해외부동산취득 허용, 정부의 재정지원금 집행 자율성 제고, 조세감면 확대, 교육용 기본재산의 수익용으로 용도변경 가능, 사립대 총장의 4년 임기제 폐지 등이다. 사립대학의 공공성보다 설립자의 소유권과 시장원리를 우선한 것이다. 비리재단의 잇따른 복귀와 국공립대학의 법인화도 같은 맥락이었다.2008년부터는 대학입학정원도 급증했다. 문민정부 이래 정부가 재정적 여력도 살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바람에 부실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입학정원 확충과 학비인상에 나선 결과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초래된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천문학적인 적립금 쌓기가 빌미를 제공했다. 학령인구는 주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를 대학이 ‘장사꾼’처럼 부실교육을 한 탓으로 돌렸다.현 정부는 여론몰이 식으로 대학을 반값등록금으로 옥죄었다. 부족한 대학재정을 국민 세금으로 벌충해 준다는 조건으로 강제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정원감축과 학과통폐합, 취업률 제고와 전임교원수 확대, 학점상대평가 등이다. 국공립대학은 민주화운동의 전리품인 총장직선제를 돈과 맞바꿨다. 대학마다 취업률 제고를 위해 각종 꼼수를 동원해서 제자들을 실망시킴은 물론 국제화를 구실로 자격이 의심되는 외국인들을 원어민 교수로 모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업현장에서 퇴직한 내국인 교수들의 한물간(?) 강의내용에 학생들의 한숨도 깊다. 교육부의 전임교원 수 평가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헐값의 ‘무늬만’ 교수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시간강사들만 캠퍼스에서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대학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는데 앞으로 교수 요원들을 어찌 키워낼지 고민이다. 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 20년 만에 대학은 구제불능의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플라톤은 한국의 아카데미아를 어찌 생각할까? 포퓰리즘이 한국의 대학을 좀비로 만든 것 같아 뒷맛이 쓰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8-04 이한구

청년대책, 재벌(財閥) 진정성 갖고 나서라

10대기업 유보금 500조 돌파 불구 일터창출 인색인턴 명목 노동력 착취 ‘열정페이’ 사회초년생 울려‘10만명 채용’ 美 기업 실업해결 프로젝트 배워야며칠전 교수인 친구에게 메일을 받았다. “열정페이에 멍드는 사회 초년생들이 불쌍하다. 허울뿐인 직함에,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다. 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자신과, 투자도 안하면서 사내 유보금만 잔뜩 쌓아 놓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밉다.” 열정페이로 상처받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교수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1년 사이 40조원이 늘어나 500조원을 돌파했다.그제 정부가 앞으로 3년간 20만개 이상 청년 일자리 기회를 재계와 공동으로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정년이 연장되는 공공기관·공기업 종사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이로부터 절감되는 인건비로 청년을 신규 채용하고, 교원 명예퇴직을 확대해 신입 교사를 새로 뽑는 등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대책에 다급성이 느껴지나, 단언컨대 한국의 재벌들이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 한 이번 대책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열정페이’는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을 무급 혹은 저임금 인턴으로 고용하는 관행으로 올해 초 디자이너 이상봉이 저임금에 인턴을 착취하고, 소셜커머스 업체가 수습직원을 2주간 부려먹은 후 전원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열정페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가 됐다. 이 땅에서 젊은이들의 사회생활 첫발은 ‘열정페이’로 시작된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패션, 미용, 호텔, 제과제빵 등 인턴을 다수 고용한 151개 업체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03곳에서 255건의 노동 관련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된 사업장 중에는 재벌 계열의 유명 호텔과 유명 패션, 미용업체 등이 다수 포함됐다. 여름철 성수기에 필요한 인력을 현장실습생으로 충원한 재벌 계열의 한 호텔은 100여명의 인력을 실습생으로 채용한 뒤 일반 노동자와 똑같이 야간·연장근로를 시켰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월급은 고작 30만원에 불과했다. 청년들의 고용의 질이 이 지경이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에 인간관계, 내집 마련 포기를 더한 ‘5포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미국에서는 JP모건, 호텔체인 힐튼, 월마트, MS(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이른바 미국 각 기업의 대표주자들이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오는 2018년까지 청년 10만명을 정규직, 인턴·시간제로 신규 채용키로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것은 굴지의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 때문이다. 1만명 채용을 발표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문화·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우리는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사업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해 청년실업 해소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 상승이 내수 기반 약화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안전과 복지비용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데 2013년 한해 무려 30조원을 투입한 미국정부는 이렇게 기업이 먼저 청년실업 해소에 나서자 크게 반기고 있다. 정부의 힘만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슐츠 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청년실업 프로젝트는 절대 자선사업이 아니다. 지금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슐츠 회장의 이 말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우리 재벌들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란 말은 아주 오래전, 한 권력자가 이 땅에 재벌을 만들어 주었던 그때도 통용됐던 말이다. 이제 진정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7-28 이영재

복합리조트 집적화가 필요한 이유

한곳에 몰려야 시너지효과와 도박 부작용 최소화공항·항만 필수… 20분내외 위치 집객효과 볼수 있어신중하고 과감한 접근 중요… 전국 도박장화는 안돼복합리조트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온 나라를 얼어붙게 만든 메르스 한파나 정치권의 치열한 세력다툼도 리조트 유치를 위한 자치단체들의 강렬한 욕망을 꺾진 못했다. 전국의 10여 자치단체에서 유치를 신청했고 관심을 보인 업체들도 20여개가 넘는다. 리조트 유치가 과열 양상으로 치닫게 된 데는 정부의 리조트 분산방침과 표를 의식한 단체장들의 치적 쌓기 경쟁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유치경쟁에 뛰어든 자치단체 마다 리조트가 들어서야 할 당위성을 지역경제 활성화니 서민경제 살리기니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설명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리조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대형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바탕을 이루고 있다.문제는 복합리조트(Resort complex)란게 카지노 즉 도박장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도박장을 만들겠다고 하면 저항이 심할 듯 하니까 그럴듯하게 포장한 게 복합리조트다. 카지노만 만들자니 낯 간지럽고 하니 대규모 회의시설인 컨벤션도 집어넣고 문화공연장도 끼워 넣는다. 라스베이거스는 그런 식으로 성공했다. 이런 복합리조트를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세워 전국에 골고루 들어서게 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리조트 유치를 원하는 지역에 하나씩 던져주며 인심쓰겠다는 얘기다. 겉보기엔 그럴듯할지 몰라도 전국을 도박장화해서 정서적인 황폐화를 초래하는 ‘인간의 사막화 정책’과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나눠 주다 보면 전국의 도박장화라는 부작용은 필연적이다.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들어 인간의 사막화에 성공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복합리조트의 집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정부의 도박장 분산화 정책이 위험한 이유 중 또 하나는 풍선효과다.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리조트 유치경쟁을 바라만 보던 지자체들이 정부정책을 보고 우리도 하나 하고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복합리조트 성공의 전제조건은 집적화다. 마카오나 모나코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박으로 성공한 도시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라스베이거스에만 360여개 카지노가 성업 중이고 규모가 작은 마카오나 모나코에도 수십여개의 카지노들이 밀집해 있다. 도박꾼들의 특성상 한곳에서 돈을 잃으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한번 테이블에 앉기를 원한다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접근성도 중요하다. 공항과 항만은 필수적이다. 그것도 가까워야 한다. 최소한 공항에서 20분 내외의 거리에 위치해야 집객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랜드마크가 들어설 수 있는 입지도 고려돼야 한다. 카지노가 전국에 분산 배치된다고 모든 지역이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박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효율적이고 통제 가능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집적화가 중요하다. 한곳에 모여있어야 시너지도 얻을 수 있고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복합리조트가 내세우는 문화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집적화는 중요하다.인간이라면 누구나 큰 거 한방에 팔자를 고치는 꿈을 꾸고 산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한탕의 욕망은 강렬해지고 그런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도박이다. BC 3000년 이집트에서는 현재와 같은 모양의 상아 주사위가 만들어져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에 이용됐다니 대략 5천여년전에 이미 도박이 시작된 셈이다. 도박의 역사는 길고 뿌리는 깊다. 강남의 맛있는 감귤이 강북으로 건너가니 탱자가 된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복합리조트 산업이 강남의 귤이 되기 위해서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국의 도박장화는 안된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7-21 박현수

정당체제의 재편은 가능한가

적대적 공존·대립하는 정당구도 ‘시대 착오적’정치가 혐오·불신 대명사 된 근원은 ‘정당체제’여야중도세력, 이념지향 맞춰간다면 ‘변화 가능’한국 양당체제는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공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보수정당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현안이나 쟁점 집단에서 보다 진보적 경향을 띤다. 이념적 구분은 시대의 산물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새롭게 정립된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서구 부르주아의 발달 역사 속에서 형성된 보수와 진보를 닮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구적 기득권의 인식에 동조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하는 집단을 ‘보수’ 또는 ‘보수세력’과 등치하는 왜곡은 시정되어야 한다.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내부의 계파 갈등은 이념과 노선에 따른 균열의 측면보다는 내년 총선의 공천을 둘러싼 권력투쟁 성격이 짙다. 그러나 양당체제의 적대적 공존과 거대 정당의 카르텔 구도의 우산 속에 안주하는 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집단 출현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주 ‘진압’된 유승민 사태는 정책과 이념의 분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반기(反旗)를 든 정치인의 배제를 통해 집권 3년 차의 레임덕을 막아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한 정치공학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랬듯이 다른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왜곡되어 있던 ‘보수’의 개념 부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지난 4월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유승민 의원의 발언은 보수에 대해 새로운 정립의 단초를 제공했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새누리당의 전통적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당내 민주주의에 입각한 건강한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 법인세 인상의 공론화 필요성 제기, 새로운 보수의 지평에 대한 언급 등은 가치지향을 둘러싼 논쟁의 주제를 제시했다. 유승민 사태를 보는 관점이 여권 내의 권력지형의 변화나 청와대 일방 우위의 당청 관계 확인 등 정치공학적 해석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본래 이념적으로 보수와 개혁을 대척점에 놓는 방식은 그릇된 배치다. 체제를 보수하고 기존의 가치를 지키자면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 정신을 외면하고 수구적 패러다임에 안주한다면 지켜야 할 가치를 ‘보수’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건강하지 않다. 현재의 보수세력을 보수라고 지칭하는 것은 네이밍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의 보수는 사실상의 수구다. 점점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계급 블록화의 빠른 진행을 보지 않고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세력을 보수로 칭할 순 없다. 자신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중도개혁 세력의 출현은 그래서 긴요하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과 친노 세력은 그래서 이념적 구분과는 무관한 패권주의 세력 그 자체다. 지나친 이념적 좌파로의 편향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다. 왜곡된 보수와 진보를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면 현재의 정당체제 개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당 내의 원심력 작용이 설령 내년 공천 지분권 확보의 정치적 이익을 채우려는 ‘불순’한 동기라도 좋다.현재의 거대정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 정당체제는 이미 약효를 다했다.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현재의 정당구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불신의 대명사가 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현재의 정당체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패권세력을 뒤로 한 채 두 정당의 중도세력이 이념적 지향을 맞춰간다면 정당체제가 재편될 수 있다.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로 의총을 열어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진 법안에 대해 아무 토론도 없이 ‘폐기’를 결정하는 정당은 더 이상 보수정당이 아니다. 보스가 정치의 중심에 있는 패권정당과 다름 없다. 보수와 진보가 생각의 잣대가 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 버금가는 양극화의 심화, 시대착오적 사회적 계급의 블록화, 내쳐진 사다리, 비정규직의 절망 등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이 전제될 때 보수와 진보의 존재 가치가 있다. 따뜻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사회적 형평의 추구와 경제적 갈등의 해결이다. 야당을 지지하지만 새정치연합의 구태와 맹목적 좌 편향이 내키지 않는 유권자, 여권 지지 성향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리더십과 친박 ‘돌격대’들의 비겁함에 절망하는 시민들을 규합할 수 있는 야당의 출현을 기다린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7-14 최창렬

세계유산이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

지옥섬인 나가사키 하시마섬 혹독한 ‘강제 노역장’일본, 강제노동 대신 ‘일을 시켰다’ 애매한 표현‘전쟁피해 강조의 수단 활용’ 日국익에 부합 안돼결국 하시마를 비롯한 일본 근대산업시설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이 등재 신청한 이른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지역 8개현 11개 시에 소재한 총 23개 시설이다. 이들 시설 중 7개 시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시설로, 약 5만7천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했던 곳이다. 특히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 섬은 ‘지옥섬’으로 불릴 정도로 혹독한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7개 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방법을 놓고 논쟁하였으나 합의를 이뤄 등재안이 통과됐다.등재결정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 자기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한(forced to work)’ 사실이 있었음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를 중심으로 한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계기로 ‘한일양국관계가 선순환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일본 외무상은 해당 문구를 ‘강제 노역’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강제노동(forced labour)’이라는 명백한 개념어 대신 ‘일을 시켰다’(forced to work)라는 애매한 표현을 허용한 것과, 합의내용을 주석(註釋)형식으로 삽입키로 한 것도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은 해당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다.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이라고 자랑하는 근대 산업시설은 러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의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상당수가 조선인을 비롯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가동되었던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물론 아우슈비츠수용소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야수적인 만행을 밝히고, 유태인이 당했던 수난을 기억하기 위한 반성과 교훈으로 삼기 위해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일본이 향후 강제노역의 역사를 충실하게 밝히라는 유네스코의 권장사항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일본의 역사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핵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원폭돔을 통해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입은 전쟁의 피해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심지어는 국가주의와 재무장론을 선전하는 도구로까지 활용한다는 점이다. 보편적 가치를 국가주의적 가치로 변질 왜곡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왜곡이 결코 일본의 진정한 국가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야 한다.‘지옥의 섬’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등재 논란을 계기로 국내의 근대역사유산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남긴 식민 유산과 전쟁 유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주도에 남긴 일본 진지들은 확인된 곳만 450곳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전쟁 유적지는 치욕의 유산이 아니라 침략전쟁 역사에 대한 교육장소로 보존 활용해야 한다. 일본인들의 조선진출 교두보였던 인천의 근대역사유산도 엄정한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인천의 경우 부평미군기지에 남아 있는 인천육군조병창의 지하시설물과 관련 유적에 대한 조사와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각종 개항기 문화유적이 식민지기에 수행한 기능들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개항기 유산의 근대적 성격만 강조하다가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7-07 김창수

인천 8대 전략산업, 어떻게 육성하나

어느 시점까지 추진할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중국시장 의존도 낮추는 대비책 마련 중요정부협력 얻고 성공여부 가늠해 선별투자 필요인천시가 유정복 시장 취임 이후 전략산업 육성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골격이 바로 ‘인천 8대 전략산업’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고 연구진과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그 방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6월 1일 대토론회라는 이름으로 기초 윤곽을 공개했다. 현재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을 반영하고 또 시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쪽과의 교류를 통해 친(親)시민 관점의 조언을 청취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에 인천시가 선정한 8대 전략산업은 항공, 첨단자동차, 로봇, 바이오, 물류, 관광, 녹색금융, 뷰티산업 등이 해당한다. 미래에도 이들 산업이 그대로 중요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인천의 먹거리 산업으로 예측되는 산업을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전략산업의 육성책을 논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육성해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산업들의 선정 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선정된 각 산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몇 가지 중요 이슈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한 도시의 전략산업을 논의하는 데에서 어느 시점까지를 볼 것인지는 중요하다. 말하자면 5년 후와 30년 후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방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천시의 이번 보고서에는 단기적으로는 3년 후에 대한 방책, 장기적으로는 35년 후인 2050년까지를 내다보는 대책이 담겨있다. 카메라 렌즈로 치면 망원렌즈와 접사렌즈가 혼용된 상황이다. 3년 앞의 산업육성도 봐야 하고 2050년이라는 미래 청사진도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다(多)초점 렌즈를 적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실현가능성을 생각하면 초점이 명확해야 한다. 여러 시점을 동시에 놓고 말하기에는 인천의 산업육성 정황이 그리 한가롭지 않다. 더욱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쪽으로의 구조전환도 시급하다. 이런 점에서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둘째, 인천의 8대전략 산업들은 대체로 중국시장과 연관성이 높다. 물론 중국시장이 워낙 큰 시장이고 특히 인천에게는 지리적으로 반드시 공략해야 할 시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시기에 중국에 공장 세우러 많은 기업들이 나갔다가 별로 소득도 없이 도주하듯이 나와야 했던 사례가 그리 먼 과거 일이 아니다. 8대 산업의 육성전략에서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비책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가시장에 대한 검증과 가능성이 더욱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8대 산업 중 일부 산업에서는 중앙정부로부터 협력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항공, 첨단자동차, 로봇 등이 그런 예이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들어가는 점에서 그러하며, 혹은 특정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국가전략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책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중앙정부에 대한 설득력이 핵심이다. 인천이 그 산업을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논리성을 갖추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다른 지자체들과의 경쟁이니 만큼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산업 수가 8개가 될 수 있을지 여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현실적인 해결책은 그 8개 전략산업 중에서 몇 개를 선별하여 차별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방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차별적 정책 추진이 지자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8개를 모두 잘 키워보려다 전부 그저 그런 수준에 귀결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었으면 당초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개념을 꺼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한편 8대 전략산업들의 경제적 가치는 높을 것이지만 이들 산업의 발전이 과연 시민들의 행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선을 넘어 진정으로 행복지수를 높이는 산업육성책이 도출되기 바란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6-30 손동원

일본자본의 서민금융 공략

국내 20여개 日대부업체… ‘빅3’ 고리대 특수저축은행 진출 ‘연평균 2530% 이자율’로 초과이윤외국자본 지나친 유입 서민경제 위기 초래할 수도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3개월 만에 또다시 기준금리를 끌어내린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죽을 맛이다. 사상 최저의 금리시대를 맞아 은행의 주 수입원인 예금과 대출이자간의 폭이 줄어들면서 수익이 갈수록 악화되기 때문이다. 예대 마진 차이가 2010년 2.94%포인트에서 4년만에 30%가량 하락한 터에 내수부진까지 가세한 것이다. 인원 및 점포감축 등 마른 수건 짜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다.그러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은 성업 중이다. 특히 저축은행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 현재 영업 중인 전국 79곳 저축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천443억원으로 1년 전의 적자 4천768억원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를 낸 것이다. 저금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4년 새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낮춰 현재 1.50%까지 내렸으나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여전히 10%대를 상회하고 있다. 대손비용 등 각종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예대마진폭이 810%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금리에 비해 무려 45배나 높다. 대출이자가 30%인 살인적인 고금리도 비일비재하다. 담보로 세울 건 몸뚱이밖에 없는 서민들을 감안하면 ‘빚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사상최대의 대출실적은 설상가상이었다. 2011년 뱅크런 사태로 한바탕 진통을 겪은 이후 저축은행들은 대출선을 종래 기업대상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소규모 가계대출로 전환한 결과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3월말 11조3천억원으로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2014년 1분기에 비해서도 무려 26%나 증가했다. 저축은행들을 누가 애물단지라 했던가.그 중심에 일본자금이 있다. 1999년 A&P파이낸셜의 진출 이후 현재 국내에는 20여개의 일본 대부업체들이 고리대특수를 누리고 있다. 아프로파이낸셜·산와·KJI 등 일본계 ‘빅3 대부업체’는 한국 사채시장의 약 40%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국내 저축은행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2014년말 기준 SBI·OSB·친애·OK·JT 등 5대 일본계 저축은행의 국내 저축은행 총자산 점유비율은 18.9%로 2012년보다 무려 6배나 격증했다. 국내 최대의 SBI저축은행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3조7천729억원으로 저축은행 전체자산의 10%를 기록 중이다. 일본 내에서 헐값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국내에선 연평균 2천530%의 이자율로 돈 장사를 하니 막대한 초과이윤은 당연한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 연 34.9%,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 29.9% 등이다.일본인들이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당시 매물로 나온 국내 금융사들을 적극 매입한 결과다. SBI홀딩스는 2012년에 자산규모 업계 1위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해서 SBI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J트러스트는 2012년 친애저축은행(미래저축은행)을 사들인데 이어 2014년 7월 SC저축은행까지 인수해서 JT저축은행으로 둔갑시켰다. 오릭스그룹은 OSB저축은행과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일본금융자본의 국내 서민금융시장 진출 러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개연성이 크다.국내외를 불문하고 돈이 부가가치가 큰 쪽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하나 고리대 성업을 간과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외국기업의 생리상 ‘먹튀자본’의 양산 우려는 물론 제2, 제3의 한국스탠다드채터드은행이 생겨날 수도 있다. 성장이 멈추고 수익성이 나빠졌음에도 영국 본사가 가져가는 돈이 두둑해 국부유출 시비가 불거진 것이다. SC금융지주의 2010~2013년 고(高) 배당성향(3천80%)이 시사하는 바 크다. 뉴질랜드에서는 토종은행이 사라지면서 외국은행들이 높은 수수료와 대출금리로 서민가계를 압박하기도 했다. 외국자본의 지나친 유입은 서민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도 고민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시장기대에 어긋나는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 확인했으나 달러화 강세는 불문가지인 것이다. 초저금리 예외지대에 대한 능동적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6-23 이한구

삼성병원을 보면 삼성의 미래가 보인다?

메르스 2차진원지로 ‘부분 폐쇄’ 대형사고 터져철저했던 원칙주의 무너진 ‘동네병원’으로 전락불안한 지배구조 전세계 헤지펀드에 그대로 노출이상하다. 어떻게 이지경까지 됐을까.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애플과 한 판 겨룰 수 있는 지구 상 유일한 기업, 삼성 얘기다. 삼성이 이상하다. 지난 5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부친 이건희 회장이 맡았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그룹 경영권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된 상징적인 조치이며, 마침내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개막됐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서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도 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1982년 설립된 이래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을 펼쳐왔던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1994년 건립해 운영 중이던 삼성 서울병원이 메르스 2차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부분 폐쇄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내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한달만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큰 사고 앞에는 늘 전조(前兆)가 있는 법이다. 지난 11일 메르스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삼성병원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가가 뚫렸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삼성병원의 반박에 회의장은 술렁였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속히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약속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을 삼성이었다. 그런데 일개 과장이 사과 대신 국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그로부터 3일 후에야 삼성병원은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국민이 고통받는 엄중한 시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며 “대규모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으로서 집단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삼성병원의 개원은 종합병원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환자를 잘 수술해 달라거나 봐달라며 환자가족이 고마움의 표시로 의사와 간호사에게 주었던 ‘촌지’라는 관행을 없앤 것도 큰 파격이었다. 촌지를 받은 의사와 간호사를 파면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최고의 의료진 , 최고의 시설로 환자의 수술과 관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다른 대형병원들의 서비스도 크게 향상됐다. 한국 의료수준이 한단계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삼성은 늘 ‘1등주의’를 표방했다.개원초 환자 가족 1인에 한해 병실출입이 가능했고, 시간을 정해 환자면회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던 ‘원칙주의’ 삼성병원은, 그러나 이제 7세 어린이도 부모 손을 잡고 응급실을 무상 출입할 수 있는 ‘동네병원’으로 전락했다.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가 병원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병을 옮겨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병원이 됐다. 메르스 확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삼성병원내에서 감염됐다. 삼성병원 의사인 138번 환자는 발열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격리되지 않고 10여일간 회진을 다녔다. 언론들은 자만심이 부른 치욕이라고 했지만, 이 지경이 된 것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순수한 설립이념을 스스로 망각했기 때문이다.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은 지금 미국 헤지펀드 엘리어트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후계자 승계작업을 끝내려던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방어에 나섰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엘리어트를 몰아낸다 해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립이념이 완전히 무너진 삼성병원에 메르스가 침입해 삼성제일주의를 와르르 무너뜨렸듯, 삼성그룹의 허약하고 불안한 지배구조는 이제 전 세계 헤지펀드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 틈을 노리고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제2 제3의 엘리어트가 공격을 감행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삼성병원을 보면 마치 삼성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하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6-16 이영재

메르스,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정부

허둥대며 제대로 대처도 못하는 정부 ‘한심’국민안전 잘 지키면 국가이미지 상승 당연한데…효율적 대책으로 안심 시키는 모습 보고 싶을뿐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는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총, 균, 쇠 라는 책이 있다. 명저로 꼽혀 퓰리처상을 받았고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이 책에서 제라드 교수는 세균의 진화와 전파경로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세균(바이러스)은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영리한 바이러스는 번식을 위해 숙주로 사용하는 매개체를 죽이기보다는 적당히 아프게 하면서 자가 증식을 통해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응해 가는 방식으로 생존능력을 높인다는 것이다.제라드는 인류가 짐승들을 가축화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가축이 가진 질병들이 인간에게 옮겨지고 세균이 변이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고 확산속도도 빨라진다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역사를 보면 세계화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이 갑자기 퍼지면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을 침략한 몽골군이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인 흑사병을 유럽에 퍼트려 당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 제국이나 남미 잉카제국도 총과 말로 대표되는 군대의 침입에 더해 신대륙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천연두를 스페인 인들이 퍼트려 수백만의 인디언을 숨지게 한 것이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특정 지역에서 발병해 그 지역주민들에게만 감염되는 풍토병이라고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전체가 하나로 묶이면서 풍토병이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번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풍토병 중에서 글로벌화 되면서 악명을 떨친 에볼라와 에이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도 따지고 보면 중동지역의 풍토병이다. 사막도 아니고 낙타도 기르지 않는 우리가 메르스에 떨게 된 건 풍토병에 무지한 데다 대처까지 서투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는 무능하다 못해 한심하다. 허둥대기만 하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첨단의료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SNS를 타고 번지는 소문들을 괴담이라며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여론은 싸늘했다. 괴담을 단속하려 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여론은 백번 옳다. 단속에 쏟는 노력을 메르스 퇴치에 기울여 질병을 퇴치하면 괴담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세간의 반응은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분별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질병이 확산되고 있으니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 추궁에 국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은 일의 선후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중요한 건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고 그게 잘 지켜지면 국가 이미지는 자연스레 좋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메르스에 헤매는 정부를 보면 지난해의 세월호 참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에 유행했던 사스에선 또 무엇을 배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빗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뒤늦은 대처를 비꼬고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를 보면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라고 권하고 싶다. 더 이상 똑같은 실수로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은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국민들을 안심하도록 다독이며 효율적인 대책을 갖고 믿음직하게 끌고 가는 그런 정부를 보고 싶다. 그게 이뤄질지는 의문이지만…./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6-09 박현수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

입법부, 지나친 정부압박 ‘다수 횡포’로 전락할 수도靑, 국회 정면충돌 시사… ‘갈등 최소화’와 어긋나행정마비·권력분립 침해 ‘헌법가치 훼손’ 근거 미약지난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입법부와 청와대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청와대는 개정안이 행정입법을 국회가 과도하게 제한함과 아울러 삼권분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법의 취지나 내용을 위반한 시행령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의 권한은 정당한 입법권의 행사라는 입장이다.이 사안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과 여권내 정치지형의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각론은 더 복잡한 양상이다. 당청간의 갈등을 기본축으로 당내에서 친박과 비박의 대결구도가 노골화될 수 있다. 반면에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하여 새누리당 지도부가 몸을 낮출 수도 있다. 여권내의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고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도 있다. 여권내의 역학관계의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새누리당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설령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청와대를 의식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수정을 가하고자 한다면 여야 관계는 가파른 대치국면을 피할 수 없다.한국은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제의 작동 원리가 입법·행정·사법의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것이지만 우리의 권력구조는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의 융합이란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현역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는 구조,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도 그 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통령 특보와 현역의원의 겸임으로 권력분립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침묵하다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권력분립에 위배 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대통령과 입법부는 모두 국민의 선출에 의한 헌법기관으로서 이원적 정통성을 갖는다. 따라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교착과 대립은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집권당의 의석보다 야당의 의석이 많은 분점정부의 경우에 대통령이 야당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야당을 설득함으로써 소수 정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분점정부가 정국의 교착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으나 여소야대 정국을 의미하는 분점정부 상태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킨다는 논리는 그래서 타당하지 않다. 같은 논리의 연장에서 청와대가 국회의 시행령 수정을 강화한 법안을 권력분립의 위배라고 보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시행령 자체를 일일이 간섭한다는 것이 아닌 바에야 모법의 취지에 합치하지 않는 조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서 시행령에 관한 수정 변경요구가 강제성을 갖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조정이 가능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현상이다. 권력을 획득·쟁취하고자 하는 세력간의 다툼이 정치의 기본 요소다.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떤 제한 조건하에 두느냐 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사활적이다. 다수가 모든 힘을 독점하게 될 때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입법부의 불안정,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이고 빈번한 권력의 행사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선한 정부냐 악한 정부냐에 대한 기준은 정부가 다수의 지배하에 있느냐, 소수의 지배하에 있느냐의 기준에 있지 않고, 그 정부가 얼마나 많이 혹은 조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느냐 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의 확대과정이다. 보통선거권의 확대 과정이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다. 구체적으로는 입법부 권능의 확대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입법부가 과도하게 행정부를 압박한다면 권력분립은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전락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의 침해라는 논리로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해법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국회와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청와대의 태도는 정치를 통한 갈등의 최소화와 거리가 멀다. 국회법 개정으로 행정부가 마비되거나 권력분립이 침해되어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6-02 최창렬

양해각서 공화국

정치인,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 불구 집착준비 부족과 정권 바뀌면 ‘나몰라라’ 더 큰 문제국부 유출·국위 손상 ‘MOU 남발’ 책임 물어야지난주 국민들의 관심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의 방한 관련 선물 보따리였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 중국과 함께 이머징마켓 리더로 부상하는 탓이다. 양국 정상은 한인도 이중과세방지협정, 에너지신산업 협력, 해운물류협력 등 7개 분야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의 ‘메이크 인 인디아’정책과 한국의 창조경제가 접목될 경우 양국 모두의 제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대치를 높였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별로인 듯하다. MB정부에 눈길이 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 운운하며 당선과 동시에 자원외교를 서둘렀다.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총리와 MOU를 맺어 우리나라 2년치 소비량에 해당하는 19억 배럴의 크루드유전 개발권 확보란 대어를 낚았다. 선거 열기가 체 식지도 않은 터여서 국민들은 상당히 고무되었다. 그러나 후일 대부분의 광구에서 기대매장량에 크게 못 미쳐 한국석유공사는 계약체결과 함께 쿠르드정부에 건넨 ‘서명보너스’ 2억1천140만 달러와 탐사비 1억8천868만 달러 등 총 4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MB정부는 2008년 이후 71건의 해외 자원개발MOU를 체결했으나 본 계약이 성립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전 대통령 형제가 직접 체결한 MOU건수는 45건에 총 1조4천461억 원이 투입되었으나 회수액은 ‘0원’이었다. 발등 데고 수모까지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09년 2월 23일에는 방한한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35억 달러 상당의 이라크북부 바스라유전 개발MOU를 맺었다. 당시 정부는 ‘가뭄의 단비’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석유공사는 이라크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한국의 이미지만 흐렸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껏 움츠렸던 국민들은 ‘닭 쫓던 개’꼴이 되고 말았다. 지방자치단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0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와 프랭스 스타넷 USK 사장간에 체결한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 양해각서’가 상징적이다. 경기도와 USK컨소시엄은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에 5년간 2조9천억원을 투자해서 테마파크, 테마호텔, 스파센터 등 세계최대의 관광단지를 조성해 2012년에 오픈 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했다. 5조5천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천900억 원의 조세수입, 15만 명의 신규고용 등을 장담했으나 8년여 동안 경기도와 화성시, 수자원공사와 롯데그룹 등 이해당사자 간에 힘겨루기하는 사이에 유니버설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슬그머니 중국 베이징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경기도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버금가는 국제테마파크 건설을 호언하고 있으나 화성시민들의 상심(傷心)은 쉽게 치유되기 힘들 전망이다.경기도민들의 실망은 이뿐 아니다. 경기도는 김문수 전 도지사 시절 22개국에 33회나 투자유치 해외출장에 나서 총 185억7천만 달러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 합작기업들의 대응투자액(매칭펀드)을 제외할 경우 순투자액은 63억8천만 달러인데 그나마도 실제 집행된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2014년 7월 기준 26억 달러이다. 경기도가 발표한 185억7천만 달러의 14%에 불과한 것이다.양해각서란 내용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음에도 국내 정치인들은 외국과의 MOU에 목을 매고 있다. 오죽하면 해외에서 한국을 ‘MOU공화국’이라 조롱할까. 그렇다고 MOU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먹거리 대부분을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국내 실정을 고려할 때 해외 자원은 물론이고 자본의 국내유입은 다다익선이다. 전시효과만 노린 뻥튀기 실적들이 화근이다. 사전준비 부족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 몰라’라 하는 관행은 더 큰 문제이다. 박근혜정부에서도 부실MOU 소문이 들린다. 인천시민들은 인천시와 두바이투자청간의 36억 달러짜리 검단 퓨처시티사업이 불발될까 노심초사이다. 국부(國富) 유출과 국위(國威) 손상은 물론 민심까지 멍들게 하는 양해각서 남발에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5-26 이한구

인천은 중국관광객 다 놓치고 말 것인가

인상적 공간없어 입국 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명동거리 같은 볼거리·먹거리 타운조성 시급‘중국 효과’ 완전히 흡수할 기회 잡아야최근 인천항에 펼쳐지는 신(新)풍경이 흥미롭다. 그것은 바로 대형 크루즈 여객선에서 800여명의 중국관광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풍경이다. 우리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 관광객의 숫자에는 관심이 크지만, 크루즈를 통해 들어오는 ‘요우커’의 숫자에는 무심했던 편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준이 아니며 향후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올해만 해도 중국 관광객을 위한 크루즈가 150편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며, 그 숫자도 30만명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그들은 도착 후 인천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천은 그저 도착하는 곳일 뿐이다.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바로 서울로 간다. 아마도 쇼핑과 음식이 풍성한 명동 거리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일부는 제주도로 간다. 그곳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중국관광객들이 인천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인사동 혹은 명동거리와 같은 인상적인 공간이 없다. 오래된 고민이지만 인천이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할 것인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 서울에서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평지하상가에 들러 1시간 정도 쇼핑할 기회를 준다는 소식에라도 위로를 얻는 지경에 처한 정도니 말이다.중국 관광객이 마냥 한국으로 몰려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동력이 종료되는 시점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까운 외국이기 때문이다. 보통 해외관광의 시작은 인근 국가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다. 중국 관광객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과 하와이 등으로 관광지를 옮길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한 기업이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에 6천여명의 종업원을 보낸 뉴스가 있었다. 이미 중국기업의 관심이 프랑스의 최고 휴양지로 향했다는 뉴스인 것이다. 인천으로서는 프랑스 칸 지역이 갑자기 256억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소식보다 그들이 그 돈을 써가면서 프랑스를 갔다는 것에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아직 중국 관광객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벌써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서울 및 제주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도 무리다.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과 제주도로 가더라도 좋다. 다만 전체 일정 중 이틀 정도만 인천에 머물게 하면 된다. 바로 그 며칠을 머물게 할 유인과 매력만 준비하면 된다. 이런 최소한의 조건조차 여태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 아니던가. 이제부터라도 명동거리와 같은 쇼핑 및 먹거리 타운을 조성해야 한다. 그 거리에서 중국관광객들이 편안히 걷고 떠들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그러면서 특별한 추억을 얻고 가도록 해야 한다. 인천의 특산물 음식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며, 역사적 흔적을 느끼도록 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자면, 인천의 대표 수산물인 꽃게 음식이 될 수도 있겠다. 인천 관광정책이 수산정책을 껴안아야 한다. 한때 꽃게를 명품음식으로 만들자는 작은 시민모임이 있었으나, 인천시 수산정책은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관광자원에 스토리텔링을 넣어야 성공한다는 조언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제라도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은 지리적으로 중국 효과를 얻는 데 최적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변수가 인천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정작 그 효과를 완전히 흡수하는 역량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중국 관광객이 주는 엄청난 기회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다는 비애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더욱 그 회의는 깊어질 것이다. 기회가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기일전, 즉 새로운 마음으로 기회를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먼 훗날 그 엄청난 기회를 왜 놓쳤느냐는 후세대의 질책을 감당하려면, 오늘 뜨거운 열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알리바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5-19 손동원

‘이야기하는 인간’과 이야기의 본질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이야기의 힘’스토리텔링이 왜 대세인지 생각해 봐야양방향 소통 환경속에 ‘본질’을 지녔기 때문인간에 대해 새로운 정의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 그것이다. 이야기 하기와 이야기 듣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이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 정의는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인 존 닐(John Niels)이 처음 제기한 신조어이다.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본 것이다.이야기의 전승을 주목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바로 죽음을 무릅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이다. 아랍의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랍 민담을 집대성한 ‘천일야화’의 원제목은 ‘샤리아에게 들려주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이다. 샤리아는 왕비에게 배신당한 뒤 그 원한 때문에 매일 한 명의 여자와 동침하고 이튿날에는 교수형에 처하는 잔혹한 군주이다. 셰에라자드는 스스로 이 잔인한 군주와 결혼하여 천 하루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은 교수형을 하루하루 늦추다가 천 하룻밤을 보낸 날 마침내 지혜로운 이야기꾼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동침한 여인들을 죽이는 악습도 폐지한다.보카치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가족을 잃은 7명의 부인과 3명의 청년이 교외의 한 별장에 피신하여 지내는 열흘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슬픔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한 위안물이라 할 수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였고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남녀들에게 이야기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기록 서술자의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경문왕과 복두(幞頭)장이 이야기’는 이와 흡사하다. 이 설화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복두장이는 경문왕의 귀가 나귀처럼 길어졌다는 비밀을 알고 있지만 평생 발설하지 못하고 죽을 무렵에 대나무 밭에 들어가 왕의 귀가 나귀처럼 생겼다고 소리치고 죽는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나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과 이발사’ 이야기도 거의 흡사하며, 유사한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 분포한다. 미다스왕의 이발사나 경문왕의 이발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없어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갈대나 대나무밭에다 말하고 죽는다. 이 유형의 설화는 외견상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의 관점에서 보면 비밀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못하면 고통스럽다는 사실, 역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쾌감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담겨 있다.이야기의 시대로 접어든 징조가 뚜렷해 지면서 이야기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교육과 출판 분야는 스토리텔링이 기본이다. 기업의 홍보 마케팅 분야도 이야기의 기법이 대세이다. 심지어 선거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후보는 당선 확률이 낮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를 스토리텔링 학과로 바꾸고 있다. 국내외 도시들도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마케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소설을 압도하게 된 배경, 왜 TV나 라디오 매체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터넷 매체나 SNS가 ‘대나무밭’이라도 되는 걸까? TV, 라디오, 책이 일 방향성이라면 인터넷과 SNS는 양방향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야기는 양방향 소통 환경에서 서식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이야기의 시대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5-12 김창수

3승 26패, 선수 탓만 하는 kt위즈

1승위한 기존선수 보직파괴 ‘변칙야구’ 안돼‘당장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위해 그들을 지켜야프랜차이저 마저 버린 ‘감독 능력’ 팬들 의심 시작1993년 시즌 후 LA다저스 프레어 클레어 단장, 토미 라소다 감독, 프랭크 조브 주치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78㎝ 78㎏의 체구, 역동적인 투구 폼, 강속구 등 부상을 일으킬 ‘위험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작은 체구의 투수 트레이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17세에 다저스에 입단한 도미니카 출신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다. 이들은 그가 체형과 투구 조건으로는 오래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2루수 델라이노 드실즈와 맞바꿨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가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바보같은 짓’이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4대 슈퍼에이스 중 한명이었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미국 메이저리그 부자구단들은 자체적으로 팜(farm)시스템을 운영해 선수를 키운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은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을 맺어 일정 기간 선수를 위탁 관리하다 실력이 인정되면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다. 다저스의 페드로도 이런 경우다. 이들을 프랜차이저(franchiser)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끔찍하다. 뛰어난 프랜차이저를 보유하기 위해 구단이 지출해야 할 돈도 엄청나다. 유망주를 발굴해 계약하고,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만큼 많은 돈을 선수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프랜차이저만을 보기 위해 구장에는 홈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프랜차이저의 힘이다.지난 토요일 저녁, 연패에 시달리던 kt위즈가 프랜차이즈 선수인 투수 박세웅을 비롯한 이성민, 조현우, 안중열 등 젊은 선수 4명을 롯데로 보내고 대신 5명을 받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다. 3승 26패(승률 0.103)로 사실상 전력분석이 무의미할 정도가 돼버린 kt위즈가 얼마나 1승이 다급했으면 신인 1차지명한 프랜차이저 선발투수 박세웅을 보내야 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패 책임으로 감독이 옷을 벗는 것은 수없이 봤어도, 전도양양한 프랜차이저를 데뷔 첫해 그것도 한달만에 트레이드 하는 것을 그동안 본 적이 없다. 조범현 감독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박세웅을 보낸 것이 득이었는지 실이었는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그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 져야 한다. 확실한 것은 이제 박세웅은 다시는 kt위즈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드로가 다저스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듯이 말이다.kt 위즈가 이 지경까지 된건 야구단 창단을 주도했던 이석채 전 kt 회장이 퇴진하면서 예견됐었다. 지금 모든 매체마다 추가 지원을 통한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모기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화이글스의 돌풍은 모기업의 지원 탓도 있지만, 야신 김성근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야구는 투수놀음이지만 감독놀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kt위즈 팬들은 비록 전패를 한다해도 열심히 뛰는 신생팀의 패기를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1승을 위해 기존 선수의 보직 파괴를 통한 변칙야구를 해서 젊은 선수들을 혹사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kt 위즈의 투수 운용은 이미 변칙적이다. kt위즈의 미래는 팀내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당장 전력감이 필요하다고 그들을 트레이드하기보다 미래를 보고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선수는 오래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kt위즈는 주전으로 뛰고 있는 고참선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kt위즈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어느팀에서도 1군 주전 선수로 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kt위즈는 그들에게 마지막 무대다. 뼈가 부서지도록 뛰어야 하는 이유다. KBO도 놀랐다는 지금의 처참한 기록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감독에게 있다. 26패중 적어도 3~4승은 감독의 능력으로 건질 수도 있었다. 급하다고 해서 프랜차이저 마저 버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제 팬들이 슬슬 감독의 능력에 심각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을 조 감독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5-05 이영재

블랙홀의 정치, 망각의 정치

여야, 재보선 의식 성완종수사 물타기 의도 감지박대통령 입장 정국향배 가늠할 분수령될 것청와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현실의 정치공간에서 국면전환은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쟁점도 태풍처럼 특정 지점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에너지를 규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한 이슈가 정치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모든 사회적 현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다른 이슈로 빠른 속도로 대체된다. 그리고 블랙홀은 이내 소멸하고 만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블랙홀의 정치요, 망각의 정치다. 아무리 메가톤급 이슈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공학이 동원되기도 하고, 권모술수와 책략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다.그레고리 헨더슨은 그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분석하고 한국 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몰려드는 소용돌이로 파악했다. 블랙홀의 정치와 망각의 정치가 다이내믹스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정치는 소용돌이 정치로 귀착된다. 이는 한국 정치를 불가측의 정치로 귀결시킨다. 헨더슨은 해방 공간의 혼란을 분석했지만 지금의 정치공간 역시 당시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점차 성완종 전 회장의 노무현 정부 말 특별사면 국면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여권의 ‘국면전환’이 어느 정도 약발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기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는 기억하는 인물도 없고 아무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이 사안이 지루한 소모적 정치적 쟁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인 이유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지 2주가 넘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들을 구속한 것 이외에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사에 대해서도 수사의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하던 ‘성완종 파동’은 ‘진압’ 국면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블랙홀의 정치가 망각의 정치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다이내믹스 그 자체다.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다른 사안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새누리당이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한 검찰수사 촉구와 국정조사 검토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라면 이러한 추론은 더 구체화한다. 여야가 재보선을 의식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관점에서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본래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국면을 여야,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치개혁과 수사의 단초로 삼겠다고 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과 수사확대의 당위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측과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측을 같은 비중과 무게로 다루고 있는 오류 때문에 당위성은 현저히 권위와 신뢰를 잃는다.새삼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거론하지 않아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시점은 국정 동력 회복이냐 리더십 상실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시기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을 구체적 해법과 입장의 수위가 재보선 결과와 함께 향후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성완종 정국이 ‘블랙홀’에서 ‘망각’으로 매번 진화하는 한국 정치의 패턴을 또 한 번 일반화하는 전철을 밟을지, 사회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진정한 국면전환의 단초가 될지는 이제 청와대에 달려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면돌파가 해법이다. 한국 정치도 망각의 정치 늪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기 때문이다./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15-04-28 최창렬

그 나물에 그 밥

세계 장수기업들 CEO 검증작업 무척 엄격오너들도 회사를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아물려받은 기업 건강하게 키워 후세대로 물려줘야지난달 말에 일본 N경제신문의 K기자가 오랜만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조현아 파문으로 물의를 빚었던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관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K기자의 야릇한 미소까지 감지되었다.조현아부사장 건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심각해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질타가 당연함에도 정작 주총에선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소액주주 한명이 따지고 들다 주최 측의 제지로 흐지부지 된 것이 고작이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50%나 인상되었으며 구설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던 장남 조원태 부사장은 3년 임기의 사내이사에 재선임되었다. 경영진 문책은커녕 오히려 상(?)을 주어 격려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K기자의 질문에 잠시 주저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는 자칫 양국 간의 국익(國益)문제가 대두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표’ 신문에 한국 ‘대표’ 기업의 경영행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낮 뜨거운 질문이란 판단에 K기자가 얄밉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은 땅콩회항사건을 한국재벌 특유의 족벌세습경영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관리자본주의도 정답은 아니다. 193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전문경영인체제는 과거의 오너경영시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아돌프 벌리(Adolf Berle)의 라이프사이클이론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반면에 앤더슨(Ronald Anderson)과 리브(David Reeb)는 가족기업의 성과가 비가족기업보다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족기업이 더 발전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다. 세계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호시료칸(法師旅館)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장수기업의 세습경영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씨왕조의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해서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다. 1천년 역사의 로마제국과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제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다. 조선의 스파르타식 세자교육 프로그램인 서연(書筵)이 주목된다. 세자들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강도 높은 제왕학 교육을 받았다. 아침수업인 조강(朝講)부터 주강(晝講, 오전수업), 석강(夕講, 오후수업)은 물론이고 요즘 고등학교 ‘야자’에 해당하는 야대(夜對)수업까지 받느라 예비권력자들은 늘 잠이 부족했다. 수시로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못미치면 비록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등 총 7명에 불과하다. 군주들은 왕자의 인성교육에 각별히 공을 들인 것이다.세계 장수기업들의 CEO 검증작업은 무척 까다롭다. 경영자로서의 기본소양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행 유무가 주요 체크포인트이다. 금융재벌 로사차일드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또한 장수기업 오너들은 기업을 개인사유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주가치보다 기업의 영속성과 화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건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알파와 오메가’인 것이다. 스튜어드쉽(청지기정신)이 각별히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국내적으로 환갑을 넘긴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경영권이 창업 3, 4세대로 넘어가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속설이 동서고금의 진리인 탓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부(富)가 3대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10%에도 못미친다. 창업 3세(世)까지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14%정도이다. 10대 경제대국 타령이 민망하다. 해외언론들이 조소(嘲笑)하는 해프닝은 더 이상 없어야할 텐데./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2015-04-21 이한구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진정한 차별화는 ‘품(品)과 혼(魂)’을 담아야자신만의 분야에 집념어린 ‘장인 정신’ 필요자부심과 목표 이루려는 ‘강한 의지’도 필수필자는 졸저 ‘기업 생로병사의 비밀’의 출판 이후, 한 기업의 미래 비결이 무엇일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답이 쉽지 않다. 기업 판세가 워낙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밀림에서의 경쟁과 같아서 우발적인 생존비결이 난무하기 때문에 미래의 생존 요인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믿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독보(獨步)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독보적 존재란 많은 사람의 무리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 즉 다른 곳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존재를 말한다. 영어권에서는 ‘온리 원(only one)’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의 의미도 좋다. 결국 ‘너만이 할 수 있어’라는 경지에 올라야 ‘독보’가 된다. 미묘한 흥분을 주는 말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경지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쉼 없는 훈련으로 내공을 쌓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경지라고 해서 이 비결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만 해당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작은 골목 안의 자영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유일한 된장찌개, 최고의 건강을 주는 김밥, 뭐 이런 것들이 미래를 지배하는 비결이 된다는 것이다.미국 페이팔 기업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그의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선풍적인 인기 때문인데, 그 인기는 그가 금융과 IT기술의 융합분야인 ‘핀테크(FinTech)’의 원조기업인 ‘페이팔(PayPal)’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신생 창업자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개척하여 독점적 가치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 to n’의 생각에서 벗어나, ‘제로 투 원’으로 전환하라고 권장한다. 이 권장은 언젠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블루오션’ 개념과도 맥이 통하는 말이다. 독보적인 존재가 성공한다는 메시지는 실제로 많은 석학과 영웅들의 삶에 담겨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윌슨 박사가 젊은 과학자들에 권장하는 글에 의하면, 그는 한마디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도전하라고 말한다.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 군대에서는 총소리에 맞춰서 행진해야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즉, 무리를 따르지 말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로 걷는 과학자의 성공을 권장하는 것이다. 조선의 성군 세종(世宗) 임금도 그의 생각 속에 ‘이(異)’와 ‘별(別)’을 깊이 박아두고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런 철학적 입장이 세종실록에 수도 없이 많이 담겨있으며, 그의 많은 업적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다. 1429년(세종11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서문에서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옛글과 다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농법의 차이를 직시하고 있다.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한글(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에도 역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는 차별성 철학이 깊이 작동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였음을 간파해야 한다.실제로 마케팅 교과서의 제 1계명이 바로 차별화라는 것을 기억해 보자. 그것은 남과 달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차별화한다고 해서 겉모습의 치장만을 떠올린다면 그건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진정한 차별화는 민낯에 분칠하는 선으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 자칫하다간 손님의 관심을 잃는 ‘분칠한 퇴기(退妓)’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품(品)’과 ‘혼(魂)’이 담겨야 한다. 여기서 ‘품’이란 장인으로서의 집념이자 책임감이다. 자신만이 한 분야의 가장 깊은 속살을 보고야말겠다는 집념 어린 장인정신을 말한다. 이는 제조업에도 적용되며 국숫집 같은 작은 식당에도 적용된다. ‘혼’이란 자신만의 정신과 열정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저 높은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등을 이르는 말이다. 독보적 경지에 오르려는 기업들의 묵묵한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15-04-14 손동원

산자와 죽은자,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현정부 실세들 거론된 56자 메모 ‘성완종 리스트’당사자 부인할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밝혀야‘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故事 교훈 새겨야성완종 리스트로 온통 시끄러운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왕조사를 기록한 십팔사략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는 고사(故事) 말이다. 환관의 횡포와 탐욕으로 뇌물이 성행했던 후한 시대에 청신(淸臣)으로 꼽히던 양신이란 관리가 있었다. 그가 제법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군수(郡守)가 됐을 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은 많고 권력에 줄 대기 좋아하는 세태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군의 하급관청인 현의 현령이 승진청탁을 위해 한밤중에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네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받으라는 의미였겠지. 그러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꾸짖으며 금품을 물리쳤고 말문이 막힌 현령은 부끄러워 사죄하고 그대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비밀은 없다는 교훈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벽에도 귀가 있다(Walls have ears)’라는 경구가 있다.자원외교 비리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현 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기록된 56자의 메모와 죽기 직전에 모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세간의 여론은 죽음을 결심하고 남긴 메모와 인터뷰에 설마 거짓이 있을까 라며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한몫 거들고 있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터무니없는 얘기,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단돈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말이다.사실이 어떻든 간에 파문은 커지고 있고 후유증도 깊어질 조짐이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을까. 검찰 역시 특별수사팀을 가동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56자의 메모와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취록뿐이다. 사건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들을 어느 구석에 보관해 놨는지, 있다면 그걸 확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검찰은 칼을 빼 들었다.국민들은 망자가 남긴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검찰이 밝혀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명쾌하진 않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항상 뒷말이 남았다는 점이다. 후유증이 꼭 있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정리되든 미진한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 수사라도 정치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것이다.당사자들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야 한다. 언론 역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협조해야 한다. 국민들도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역사를 되새김질해보면 어떤 나라든지 돈과 관련된 추문들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자정기능 덕분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고 태양을 피한다고 빛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실은 지금은 가려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후세를 경계할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고사의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2015-04-13 박현수

스토리 노믹스 시대와 도시의 준비

장이모우감독 ‘西湖의 전설’ 재구성 뮤지컬 대성공지자체 차원의 스토리콘텐츠 성과 이끌어 내스토리텔링센터 설치·축제프로그램 개발 급선무20년 이후의 세계 산업구조는 1, 2차 산업혁명보다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향후 15~20년 사이에 전개될 3, 4차 산업혁명은 3D 프린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각각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사회가 기술혁신에 의한 신산업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부족 현상의 심화와 바다의 자원가치 증대로 인해 물 산업과 해양산업은 더욱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기초인 스토리산업도 가장 유력한 미래산업의 하나로 거론된다.스토리가 부를 창조하는 스토리 노믹스 시대의 도래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콘텐츠 회사 월트디즈니사의 2011년도 영업 이익은 75억 달러였는데, 도요타 자동차 회사의 영업이익 66억달러보다 많다. 영국의 동화작가 조앤 롤링은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1조원 대의 부호가 되었으며 10년 후 재산 총액은 64조원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포터 시리즈라는 판타지 스토리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출판 등의 문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생 효과가 무려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영국인들이 스토리텔러 조앤 롤링의 몸값은 어느 나라와 비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스토리로 성공한 도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 코벤트리(Coventry)시는 도시의 전설을 이용하여 재생에 성공한 사례이다. 코벤트리시의 상징은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1세기경의 실존인물로 무거운 세금으로 신음하던 농민들을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위를 벌여 결국 영주의 감세를 약속받은 숭고한 여성이었다. 고다이버 이야기는 문학과 미술, 음악, 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중국의 항저우가 관광도시로 성공한 것도 도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문화, 전설과 민담을 흥미롭게 구성한 가무극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은 매일 공연하지만 늘 만석이다. 항저우의 대표적 관광지인 서호(西湖)도 밤이 되면 실경 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의 무대로 바뀐다. 장이모우 감독이 서호의 전설을 재구성한 이 뮤지컬은 2007년 초연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공연 수익금만 연간 120억원이 넘는다니 대단한 성공이다. 우리나라도 이야기 산업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이야기 산업 진흥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 안동시의 경우 역사 인물을 스토리텔링한 창작공연에 집중 투자, 뮤지컬 ‘왕의 나라’와 ‘원이 엄마’, ‘퇴계연가’, ‘부용지애’ 등을 제작 공연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 뮤지컬 ‘왕의 나라’는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2011년 제작되었는데, 2013년부터 유료공연으로 전환된 이래 매회 입장권이 매진되었으며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초청 공연도 매회 매진을 기록하며 지자체 차원의 스토리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성공사례만 보면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지만 시행착오가 더 많다. 우리나라 각 지자체의 스토리텔링은 관광지 안내에 활용하는 초보적 수준이다. 스토리텔링이 콘텐츠 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원천소재(One Source)를 발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성공적인 이야기는 감동과 흥미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넘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들이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지역 문화자산 중 감동적 서사의 ‘씨앗’을 발굴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는(Multi Use) 스토리텔링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중 스토리텔링센터와 같은 기구의 설치와 스토리텔링 축제와 같은 프로그램의 개발이 급선무로 보인다./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15-04-07 김창수

연정이 준 선물 경기도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 정부 최저임금 보다 1천230원 많아남지사,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최초 도입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이 시작됐다. 지난 25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도 생활임금위원회가 제시한 생활임금 시급 6천810원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광역단체로는 서울에 이어 두번째다. 위원회가 제시한 액수가 서울시 생활시급 6천687원보다 많아 어느정도 감액을 예상했지만 남 지사가 선뜻 사인을 해 오히려 담당자들이 적지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생활임금 지급 대상은 경기도 소속 직접 고용근로자 401명이다. 이들은 기존 임금보다 월 최대 24만5천원에서 최소 11만1천원의 임금상승 효과를 얻게 된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최대 293만9천원, 최소 133만2천원이 상승하는 효과다.생활임금은 ‘근로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주거비와 식비 등 최소 생계비용 외에 의료비와 문화비 등도 포함한 임금이란 뜻이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거나 위탁·용역을 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니 많을수록 좋다. 재정이 든든하다면 1만원을 넘겨 준들 아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무상시리즈로 지자체들은 돈이 없다고 난리다. 곳간이 비었다고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생활임금도 모두 도민,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도가 올해 생활임금 지급에 필요한 예산은 총 12억 원이다.경기도 생활임금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시급(5천580원)보다 1천230원이 많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월 142만3천원(6천810×월 근로시간 209시간)으로 최저 임금제로 받는 월급보다 25만6천780원 많다. 생활임금은 수원시(6천600원), 부천시(6천50원)도 이미 시행 중이다. 모두 새정치민주엽합 소속 단체장들이다. 경기도는 생활임금이 민간사업장으로도 자연스레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민간기업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제’를 적용하면, 사실상 이들의 급여를 올려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지 못할 경우 여전히 최저임금제를 적용받은 대부분의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소외감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기도는 알아야 한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자칫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게 그런 이유다. 연정이 없었다면 경기도 생활임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활임금은 8대 도의회때 새정치민주연합 주도로 전국 광역단체 중 최초로 조례가 제정됐지만, 도가 재의를 요구하며 파행을 겪었었다. 당시 도는 “생활임금은 최저임금 등을 고려해 산정되는 것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국가사무이고, 도 소속 근로자의 임금·인사와 관련된 결정은 도지사의 고유한 권한인데 조례는 이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지사 역시 “최저임금도 못받는 근로자가 169만명이고 도내 임금체불액이 3천600억원이다. 현실을 안 보고 이상만 보고 조례를 만들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남 지사가 취임해 연정을 추진하면서 정책과제로 합의됐고 마침내 시행에 이르게 됐다. 경기도의 생활임금제가 연정이 준 선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새정치연합은 생활임금을 법제화 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김경협 (새정치) 의원은 지자체 조례로 생활임금을 결정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이 ‘적정임금’ 개념에 생활임금이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그만큼 생활임금은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적정임금 개념을 법으로 구체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가 생활임금을 전격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남 지사는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한 지자체장이 됐다. 지난 10일 경기도를 방문해 남 지사를 만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기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바로 생활임금 조례”라며 남 지사를 치켜 올리고 “공공부문의 생활임금이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까지 전면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밝혔다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도 생활임금이 앞으로 정치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 볼 일이다./이영재 논설위원▲ 이영재 논설위원

2015-03-31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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