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노트북]답답함과 암울함… 그 선을 넘어야

#시선 1. 사람이 하늘인 세상! 녹두꽃이 만개한 세상! 최근 공중파에서 동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 '녹두꽃'을 관심 있게 봤다. 비극적인 역사사건이어선지 드라마 전개상 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답답함과 암울함이 깔렸다. 다행히도 결말은 희망을 남겨두고 드라마답게 끝맺는다. #시선 2. 영화 '기생충'에서도 답답함과 암울함이 밀려왔다. 영화 중간에 몹시 시선을 피하고 귀를 막고 싶었다. "저러다가 주인네 가족이 들이닥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도무지 가라앉힐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선을 넘지 않고 전개되면서 결말에서 선을 넘는다.개인과 사회 속에서 불안과 공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는 역사 속에서 찾는다. 갈등 속에서 혼란을 더 키워 스스로 망하거나, 그 선을 넘어 위기를 극복해 새 역사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프랑스대혁명이 공화정에서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제정시대로 암울한 전개가 그렇고, 반면 고대 그리스 페리클레스의 민주정치가 선을 넘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중, 한·일 무역전쟁 등 개인과 사회가 그 선 앞에 서 있다. 답답함과 암울함의 불안과 공포보다는 선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작고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자.여주시는 전국의 동학교도들을 척왜 농민항쟁으로 이끌었던 해월 최시형 선생을 모신 곳이다. 그리고 13도 창의군 의병 총대장으로 서울 진공에 앞장선 이인영 선생, 민족대표 33인으로 천도교 지도자였던 홍병기 선생,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광복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한 조성환 선생 등 정부로부터 공식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를 38분이나 배출한 충절과 의혈의 고장이다. 현실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역사의식과 독립정신으로 맞서야 한다.여주시청사 건물에는 74주년 광복절 기념 현수막이 내걸렸다.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글귀 하나가 쓰여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약지를 자른 아픈 손으로 쓴 대한국인의 담대한 역사를 보라!"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 coa007@kyeongin.com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

2019-08-13 양동민

[노트북]'경기도민 청원' 불발된 이재명 지사 답변

경기도가 '경기도민 청원'을 개설한 지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지지 5만명을 넘는 청원이 탄생했다. 도의회에서 의결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해달라는 청원이었다. 해당 조례가 법령에 위임되지 않은 의무를 부과하고 '양성평등'을 넘어선 '성평등'을 규정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게 청원의 주장이었다. 도는 20만명 이상이면 정부·청와대 책임자가 직접 답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5만명 이상 지지를 받은 청원에는 도지사 혹은 담당 실·국장이 직접 답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7개월 만에 탄생한 첫 '5만명 청원'인 만큼 이재명 도지사가 직접 답변할지, 어떤 형태일지 눈길이 쏠렸다.'잠룡'으로 분류되는 이 지사의 정치적 위상, 종교단체의 강경함과 '동성애 옹호 시비'라는 이슈의 민감도 등이 맞물려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에서도 도민 청원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 이 지사의 공약 사항이었기에 직접 답변을 점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앞서 비슷한 청원 사이트를 개설한 도내 기초단체에서 글·영상 등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요건을 넘긴 1호 청원에 대해선 단체장이 직접 답변을 내놨던 점도 기대감에 한몫을 했다.그러나 조례 개정안 공포일에 맞춰 6일 이뤄진 답변은 담당 실·국장의 명의로 이뤄졌다. 내용 역시 단순했다. 답변이 이뤄졌던 6일 이 지사는 휴가 중이었다. 답변도 명확했다. 잘못되거나 부족한 점은 하나도 없다. 다만 7개월 만에 어렵사리 탄생한 1호 답변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은 청원은 4천423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7일 종료됐다. 오늘도 많은 도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는 와중에 과연 '경기도민 청원'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 속 두 번째 '5만명 청원'이 아직 멀게 느껴지는 가운데 청원에 직접 답변하는 이 지사의 모습 역시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할 터다. /강기정 정치부 기자 kanggj@kyeongin.com강기정 정치부 기자

2019-08-07 강기정

[노트북]'혜택'과 '권리' 사이 드림파크 골프장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드림파크 골프장 운영 방식을 두고 골프 동호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다. 취재를 하며 만난 사람들은 이 골프장이 과거 매립장을 활용해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주민 혜택이 너무 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는 한 달에 수차례 골프를 치고, 누구는 수개월을 꼬박 추첨에 참여해야 한번 칠 수 있으니 말이다.드림파크 골프장은 일반인 부킹이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크시간대' 경쟁률은 최대 1천대 1이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 골프장인 이 골프장에서 평일 일반인이 예약할 수 있는 몫은 전체의 약 4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이 연 단체와 지역 주민 몫이다. 60여 개의 지역 연 단체는 주민지원협의체가 추천만 하면 연 단체로 등록된다. 하지만 공사와 협의체 어느 곳도 지역 단체에 실제 지역 주민이 몇 명이나 포함돼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매립지 영향 지역 주민들을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지역 단체에 혜택을 주고 있지만, 정작 실제 주민은 '0명'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연 단체의 일반 추첨 경쟁률이 10대1이 넘는 점을 고려하면, 추천에 따른 무조건적인 지역 연 단체 운영은 특혜에 가깝다.매립지 운영으로 피해를 본 지역 주민들이 일정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불만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투명한 운영 방식이다. 드림파크 골프장은 국가 공기업이 운영하는 대중 골프장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스스로가 모든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 골프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더는 특혜 논란이 있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지역 주민에 대한 '혜택'과 일반 국민들의 '권리' 사이 세부적 기준을 정해 투명하게 시행해야 한다. /공승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ksb@kyeongin.com공승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8-06 공승배

[노트북]기획부동산 먹잇감 된 대형 개발사업

"도시개발사업 지구 인근 임야(산)를 샀는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유주만 100여 명이 넘어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있어요."각종 개발 호재 등을 미끼로 야산을 수백 필지로 쪼개거나 지분을 나눠 분양하는 '기획부동산'에 속아 시세보다 10배 넘는 가격에 땅을 매입한 A씨의 하소연이다.도시개발사업 등 대규모 개발 호재와 관련한 취재 전 실거래가 조사에 들어가면 늘 한 개 필지가 '지분거래'된 정황이 포착된다. 지분거래는 개발 호재 등을 앞세워 투자자들을 모집해 야산 등 쓸모없는 땅을 산 뒤 필지를 잘게 쪼개 많게는 수백 명에게 파는 전형적 '기획부동산 사기' 수법으로 악용된다. 이렇게 매입한 땅은 모든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화성 국제테마파크가 들어서는 송산면 고포리에서 올 1월부터 4월까지 총 713건의 토지거래가 이뤄진 가운데 374건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도 중송리에서 거래된 1천8건 중 478건이 하나의 필지가 수십 개의 공유지분으로 거래됐다. 제2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는 성남 수정구 금토동의 한 야산도 지난 7월 현재 지분을 공유한 투자자만 3천9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 10곳 중 절반 이상은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부동산 업계에선 "도시개발사업이나 대기업 투자 소식은 기획부동산의 큰 먹잇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바늘 가는 데 실이 간다'는 속담처럼 개발 호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기획부동산이 성행하고 있지만, 정작 이 같은 행위 자체를 단속할 수 있는 관련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경기도가 오는 30일까지 기획부동산을 대상으로 공인중개사법,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상훈 디지털미디어본부 기자 sh2018@kyeongin.com이상훈 디지털미디어본부 기자

2019-08-04 이상훈

[노트북]죽산 조봉암 60주기 추모식 참석한 청년들

강화에서 나고 자란 죽산 조봉암(1899~1959)은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이후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조봉암은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에 가장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죽산을 생각했다. 조봉암은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한 이후 간첩 누명을 쓰고 1959년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헌정 사상 첫 번째 '사법살인' 희생자인 조봉암은 2011년 대법원 재심을 통해 간첩죄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됐다. 간첩으로 몰린 52년 동안 '금기어'가 된 죽산을 기억하고 명예 회복에 앞장선 이들은 죽산이 태어난 곳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던 인천의 사람들이었다.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역에서 죽산의 60주기 추모식이 엄수됐다. 망우리 공원묘역은 행정구역상 서울 중랑구지만, 경기도 구리시와 맞붙어 있는 서울의 끝자락이다. 이날 인천, 경기, 서울지역에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주요 도로 곳곳에서 차량 정체가 심했다. 행사 취재를 위해 인천 구월동에서 망우리 공원까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다. 인천에서 죽산을 기리기 위해 60주기 추모식을 찾은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어렵게 죽산 묘역에 당도했다.올해 추모식에는 처음으로 '청년 조봉암'이라는 단체의 대학생 14명도 참석했다. 이들은 추모식에서 노래 '상록수'와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평화통일을 지향한 죽산의 뜻을 잇겠다고 했다. 이제는 죽산이 '독재의 희생자'나 '이념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청년들에게 '평화통일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1919년, 21세의 조봉암은 강화도의 대서소(代書所)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해 강화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옥고를 겪으면서 일제강점기 엄혹한 현실에 눈을 떴다. 이번 60주기 추모식에서는 죽산이 자신처럼 "현실에 눈을 뜨라"고 청년들에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pkhh@kyeongin.com박경호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8-01 박경호

[노트북]세대차이

최근 온라인상에 재미난 게시물이 돌아다녔다. 요즘 세대는 전화받는 손 모양이 다르다는 것으로, 사소한 동작 하나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유선전화 송수화기 모양을 흉내 내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는 동작은 청소년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기존에 보유하던 유선전화를 해지한 가구 비율이 지난 2012년 8.53%에서 지난해 26.86%로 급증했으며, 지난해 유선전화 미가입 가구는 전체의 44.24%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영상통화에도 익숙한 세대로서는 과거의 정서를 공감하기 힘들다. 겪어본 이들만이 주황색 공중전화 상단에 남겨진 동전을 추억할 뿐이다. 그만큼 세대가 빨리 변했다.몇 세대 앞서 대한민국은 국권을 강탈당하고 수많은 국민이 일제에 고초를 겪었다. 그중에는 고향산천을 떠나 상하이와 난징, 항저우 등에서 투쟁하던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역사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선진국 반열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세대가 늘어날수록 민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분위기는 점점 희박해질 것이다.얼마 전 김포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김포 학생대표 87명이 중국 항일유적지를 탐방했다. 교과서에서 접한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 선생 집무실을 둘러보고, 홍커우공원에서는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을 체험했다. 습도 때문에 체감온도가 48℃까지 치솟는 폭염 속에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들이 이역만리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몸으로 겪었다.독립유공자 후손 노승연(통진중 3) 학생은 "난징 위안소 유적 진열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는 것을 느꼈고,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에서는 나라를 위해 열정을 불사른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분들께 참배하면서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학생들은 탐방 마지막 날 어떻게 국력을 키워 설움을 당하지 않을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기자 wskim@kyeongin.com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기자

2019-07-30 김우성

[노트북]기초문화재단의 역할

얼마 전 출입하는 문화재단 담당자에게 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재단에서 최근 이렇다 할만한 좋은 콘텐츠를 발견하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이곳 관계자들이 일을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자는 이 문화재단의 상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올해 시가 재정 문제로 행사·축제성 예산을 삭감하면서 그동안 운영하던 문화예술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기존 진행하던 행사와 공연은 유지해야 하고, 예산은 줄었으니 질 좋은 콘텐츠를 기대하는 건 사실 논리적이진 않다.사정을 알고 있지만, 방문할 때마다 기획 공연과 새로운 사업에 대해 묻게 된다. 이곳에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진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들이 많지만, 여건상의 문제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늘 안타깝다. '지방 출자·출연기관'인 문화재단은 문화정책을 전문적·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가 조례 제·개정을 통해 설립한 기관이다. 쉽게 말해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를 고용, 지역 문화예술인에게는 교육과 공연 등의 기회를, 시민에게는 질 좋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기초문화재단은 현재 경기도 내 15개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몇몇 문화재단은 앞서 이야기한 문화재단처럼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력, 예산 등의 문제로 운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있고, 시에서 내려오는 소위 '택배사업'들을 안고 가다 보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곳도 여럿 있다.앞으로 도내 여러 지역에서 문화재단 설립을 계획 중이다. 가장 먼저 평택과 과천이 내년 1월 문화재단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 두 곳이 기존 문화재단이 가진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운영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문화재단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 두 곳 역시 특별하지 않은, 그냥 여느 지역에 있으니까 생겨난, 기능을 잃은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강효선 문체부 기자 khs77@kyeongin.com강효선 문체부 기자

2019-07-24 강효선

[노트북]풍년의 역설은 우리 모두의 숙제

수렵시대를 끝낸 인류가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풍년(豊年)은 모두의 바람이자 그 한해에 가장 큰 염원이었다.홍수가 들이닥치거나 가뭄으로 농작물이 바짝 마르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왕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풍년이 들면 왕에게 감사했다. 즉 풍년은 왕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다.이 때문에 인류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매년 하늘에 올렸다. 또 인류는 풍년 농사를 위해 해와 달, 별자리의 움직임을 연구했고 이는 곧 과학의 기초가 됐다.하지만 최근 들어 풍년이 농민들의 근심거리로 전락해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늘어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져 농민들이 힘들게 땀을 흘려 키운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시대의 시장 논리상 공급과잉을 초래하는 풍년은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셈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양파농사다. 양파는 올해 재배면적이 평년과 비슷했으나 강수량, 일조량 등 생육에 적절한 기상여건이 이어지면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소비처는 한정적인데 생산은 평년에 비해 17만t 정도가 늘다 보니 가격이 전년대비 절반가량 떨어졌다. 생산원가에 미치지 못하자 농민들은 아예 산지폐기를 단행하면서까지 공급량을 줄이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태다.이는 비단 양파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늘은 이미 같은 현상을 겪고 있고 배추, 무, 보리, 대파, 매실 등도 공급량 증가로 비상이다.농업은 우리 사회의 근간인 만큼 흔들릴 경우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농민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은 이미 넘어섰다. 과거 풍년을 위해 과학이 발전한 것처럼 이제는 적정한 수급을 위한 고도의 예측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즉 풍년의 역설을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소비자들도 힘을 보태야 한다. 공급과잉에 대한 당장의 해결 방안은 소비촉진밖에 없다. /황준성 경제부 기자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경제부 기자

2019-07-21 황준성

[노트북]밥 한끼의 진심

파스타를 파는 서울의 작은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름난 맛집도 아닌데, 굳이 시간을 내어 이 식당의 파스타를 먹으려는 이유는 식당 주인이 SNS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면서다.식당 주인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 그냥 안 받을랍니다"라는 글을 통해 결식아동에게 지급하는 꿈나무 카드의 불편함을 지적했다. 아이들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고 싶은데, 가맹점이 되면 정산받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산을 포기하는 대신 굶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밥을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신선한 제안을 했다. '가게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금액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것 이야기 한다', '다 먹고 나갈 때 카드와 미소 한번 보여주고 간다'는 제안이다. '가난은 불편한 것'뿐이라는 그는 아이들에게 '당당하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그의 글이 SNS에 퍼지면서 그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식당의 매출을 올려주겠다며 연일 식당을 찾고 있다. 무상급식의 기원을 되짚어보면, 식당 주인과 식당을 찾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같다. 사업 초기, 삼성 이건희 회장의 손자도 공짜 밥을 먹는 게 이치에 맞냐고 비판하며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반대논리와 강하게 부딪혔지만, 적어도 밥 앞에서 모든 아이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며 논란은 사그라졌다.하반기 시행예정인 경기도 고교무상급식도 오랜 풍파 속에 다져진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꽤 순조롭게 출발한 듯했다. 예산 분담률을 두고 파열음이 나기 전까지는. 예산을 분담하는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어느 곳에서도 무상급식의 당위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세 곳의 단체를 취재하며 공통으로 느낀 것은 사업의 출발선에 섰을 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건네는 편견 없는 밥 한 끼의 진심을 잊지 말자. /공지영 사회부 기자 jyg@kyeongin.com공지영 사회부 기자

2019-07-18 공지영

[노트북]재량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초등학생 아들이 지난달 현충일 즈음 갑자기 장기휴가(?)에 돌입했다. 연휴 사이 끼어있는 평일에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이었다. 왜 안 가냐고 물으니 '학교장 재량'이라고 했다. 징검다리 연휴의 이점을 살린 유연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맞벌이 부부에겐 썩 반갑지 않은 결정일 수 있겠다 싶었다.얼마 전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둘러싸고 교육청 재량 평가가 뜨거운 논쟁이 됐고, 최근 프로야구에서도 경기 막판 심판 재량 비디오 판독을 시행한 부분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 바 있다.재량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원칙이나 규칙, 규정과 달리 주관적이고 예외적인 개념이다. 재량권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융통성으로 이어지지만, 반대의 경우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거나 명분·핑곗거리로 전락한다.최근 한세대학교에서 비정규직 교직원 김모(24)씨의 계약해지 사건이 이슈가 됐다. 계약기간을 채운 시점에서의 계약 종료 통보는 언뜻 보면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평가를 거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당초 채용조건과 달리 평가를 생략한 점, 해당 직원과 동일한 조건으로 입사한 다른 계약직 직원은 앞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점 등의 이유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올해부터 계약직의 경우 계약기간만 근무하는 것으로 방침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학교 재량에 따른 결정이었다. 평가 기회조차 받지 못한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반발했지만, 재량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에 한세대 노조가 나섰고, 여기에 시민단체와 시의회 등 지역사회까지 힘을 보태 김씨 살리기에 나섰다. 결국 학교 측은 계약해지 통보 두 달만에 해당 직원을 정규직으로 임용했다. 올해부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없다던 방침과 달리, 학교 측이 다시 한 번 재량을 발휘한 셈이다.재량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재량은 원칙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원칙의 빈틈을 악용하기 위한 핑계의 수단으로 남용해선 안 된다. /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기자 homerun@kyeongin.com황성규 지역사회부(군포) 기자

2019-07-16 황성규

[노트북]공직자 변화·의식 개선 '디테일의 행정'

"디자인하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 한 말이다. 디자인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잭 웰치 GE 전 회장은 21세기 경영의 승부처로 디자인을 꼽았다. 행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따뜻한 행정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추구하는 것은 시민에게 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디테일한 행동으로 이 가치를 실현할 때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게 따뜻한 행정, 참 가치를 주문하면서 그것을 '디테일한 행동'으로 실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디자인이 색의 빛깔, 선의 유연함, 재질의 질감 등 미세한 디테일에서 격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처럼 조 시장은 공직자 행동의 디테일을 개선하는 데서 행정을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직자 스스로 의식 전환이 안되면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디테일에 강한 문화를 세우기 위해 공직자가 본인의 작은 습관을 바꿔야 한다며, 행동을 바꾸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시는 이러한 '디테일의 행정'을 3기 신도시에도 적용하고 있다. 조 시장은 LH나 국토부 주체가 아니라 "시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우리 시의 미래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왕숙신도시 이매진 콘테스트(imagine contest)를 열고, 월례회의에서 3기 신도시 관련 콩트를 만드는 등 3기 신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덕분에 남양주 3기 신도시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직원들간 토론 문화가 형성되면서 남양주에 의한 남양주 만의 도시를 만드는 첫 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조 시장의 '디테일의 행정'이 성공하려면 그가 주문한 것처럼 공직 사회 스스로가 변화되고 기존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그에 대한 시민 동참이 필요하다. 부디 조 시장의 개혁바람이 제2건국운동으로 확산돼 정약용의 후예답다는 평을 듣길 바란다. /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ljw@kyeongin.com이종우 지역사회부(남양주) 기자

2019-07-14 이종우

[노트북]부동산 신앙

"집은 백일몽을 꾸게 해주는 보금자리고, 몽상가를 보호하며, 평화로운 꿈을 꾸게 한다."20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생각한 '집의 장점'이다. 그는 경제논리가 아닌 자기만의 둥지 개념으로 집을 바라봤다.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집은 곧 재산이다. 부를 쌓는데 욕망을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말은 우리에게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낭만에 불과할지 모른다.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아파트입주예정자협의회(이하 입예협)를 통해 표출되곤 한다. 입예협을 통해 사람들은 아파트의 부동산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린다. 벽을 대리석으로 바꿔달라, 오르막길에 열선을 설치해라, 흙 놀이터를 물놀이터로 바꿔라 등 입주 전후 아파트값을 높일 수 있는 요소를 찾아 건설사에 요구하며, 필요할 땐 단체행동까지 불사하는 용기도 보여준다. 이렇다 보니 유능한(?) 입예협은 입주예정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격화'가 된다. 내 욕망이 투영된 집값을 올려주는 이들에게 맹신에 가까운 믿음을 보낸다.최근 취재한 광교의 한 신규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아파트값이 두 배가량 상승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입예협이 있었다. 이들이 속한 비공개 카페에서 입예협은 절대적인 위치다. 입주민들은 입예협 임원들이 무엇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공무원이 직위를 숨긴 채 회장을 맡고, 자신이 투자한 부동산으로 매물을 유도해도 문제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다며 수천만원을 건넸다. 보다 못한 입예협 임원이 이를 폭로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왜 그러냐"는 비난뿐이었다. 내부의 조롱과 왜곡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입을 닫았다.집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게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과몰입과 맹신은 옳지 않다. 최소한 공(公)과 사(私)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2019-07-07 김동필

[노트북]다양한 청년정책, 다른 연령 배척은 안돼

경제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로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토익 등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제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정부도 이러한 어려움에 도움을 주려고 정책을 쏟아냈다.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이 마련됐다. 구직하는 청년들을 위해서는 '청년수당'이 지급된다. 청년수당은 서울시 등에 이어 인천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청년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많은 지원을 두고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고민해 봐야 한다.최근에 만난 50대 스타트업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창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이 '청년' 대상 지원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청년에 대한 지원도 좋지만 우리 같은 40·50대는 정책에서 소외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분명 40·50대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도 있다. 이 창업가도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청년층에 비해 지원이 너무 적다는 하소연일 것이다. 창업 분야만 보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이 많아 보인다. 대학마다 창업 관련 기관들이 있고 정부도 청년 창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쏠림'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창업 지원을 예로 들면 지원 기준에서 '연령 제한'만 삭제해도 이러한 소외감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각 분야에서 예산 배분이 연령대별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기계적으로 모든 연령층이 같은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너무 크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청년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갈 중요한 세대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령층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정운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jw33@kyeongin.com정운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2019-07-02 정운

[노트북]주 52시간제, 기형적 노동시스템 변화 기대

"근로시간이 줄면 그 자체로도 00.0%의 임금인상 효과가…", "아직 준비가 덜된 상황인 만큼 계획을 연기해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기사가 아니다. 지난 2002년 9월 주 5일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한 매체에 보도된 내용이다. 당시 재계 총수들은 한자리에 모여 정부 정책을 규탄했다.시계를 다시 돌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주52시간제 도입을 확정 지으면서 지난 2002년 기사에 주어만 바꾼듯한 기사들이 쏟아졌다.다시 2019년 6월.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이 같은 반응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경기·인천지역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대란'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면서 '역시 시기상조였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시스템. 초과근무를 해야만 기본적인 생활 수준에 맞출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버스업계', 늘어나는 수요를 근로자 숫자가 따라가지 못해 과로사가 빈번한 '집배원'까지 파업이 예고된 업계는 그 어떤 곳보다 기형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곳이다.최근 OECD가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 1시간 노동생산력은 평균 34.3달러다. 전년보다 다소 높아진 수치지만, OECD 회원국 22곳 가운데 17위로 저조한 성적이다.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많아 시간당 노동 생산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6년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회원국 평균보다 405시간이나 많은 2천69시간으로 매일 최소 1시간 이상씩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근로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떠받혀온 시스템이 문제다. 다음 달로 다가온 주52시간제 도입이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간 기형적이었던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의 성장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다. /김성주 정치부 기자 ksj@kyeongin.com김성주 정치부 기자

2019-06-23 김성주

[노트북]소각장 이전, 의정부시 행정의 아쉬움

의정부시가 소각장 이전을 추진 중이다.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시설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임에 틀림없지만, 아무도 내 집 가까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역시나 주민들은 물론 포천시와 양주시 등 인근 지자체까지 반대하고 나섰고, 반대에 부딪힌 의정부시는 내구연한을 넘긴 현 소각장이 멈추기 전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째깍째깍 '쓰레기 대란' 초시계를 앞에 두고 떠밀리듯 소각장 이전 건립을 추진하는 의정부시의 행정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현 소각장이 노후하기 전 과거 15년 동안 충분히 장기계획을 짤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제 와 시간에 쫓겨 업체의 제안서 외에는 대안이 없는 듯 말하는 시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소각장 이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민이나 시민단체에 의견을 묻는 과정이 없었던 점도 아쉽다. "입지 선정과정에서 가용부지를 모두 검토했지만, 시 경계와 접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자일동이 대규모 취락지구가 없고, 초등학교가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는 담당 공무원의 설명은 의정부시가 얼마나 좁은 곳인지, 기피시설 설치가 어려운 곳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의정부시가 가진 환경조건이 그렇다면 양주시가 동두천시와, 구리시가 남양주시와 각각 협력해 광역 자원회수시설 설치를 논의할 때 왜 뒷짐 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소각장 이전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역의 한 정치인은 "시계를 돌려 2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답을 정해놓고 통보하는 것이 아닌, 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주체와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는데 시간을 썼다면 지금의 갈등과 불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각장 분쟁은 언젠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것이다. 이미 내구연한을 넘긴 현 소각장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 쓰레기는 수십t씩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결정이 앞으로의 20년을 좌우하는 만큼 미래의 우리가 또다시 과거를 후회하지 않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 기자

2019-06-18 김도란

[노트북]지긋지긋한 송전탑 갈등, 10년 뒤에도 계속될까

어린이 문화시설이 들어설 용인시민체육공원 바로 옆 '345㎸ 송전탑', 주거단지가 몰린 일부 인천·부천지역 지하 8m 깊이를 지날 '고압 송전선', 반도체공장 전력 공급을 위해 안성·평택지역 일부 마을 인근에 설치될 '송전탑과 송전선로'. 이에 건강·재산권 등이 침해된다며 반발하는 주민들과 이들 요구를 수용하려면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든다고 맞서는 기업들. 길게는 5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고압 송전설비 관련 갈등 사안들이다. 지난 2년간 이를 취재하며 지켜만 본 기자도 '송전탑·송전선로' 단어가 지긋지긋한데, 직접 머리띠 매고 나선 주민들과 중재·해결 방안 찾느라 골머리 앓는 기업·공무원들은 오죽할까. 다행히 정부가 이 같은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전력을 수요처까지 공급하기 위해선 (갈등을 조장하는)고압 송전설비 건설이 필수인 화력·석탄발전소 등 '집중형'을 줄이고, 태양광·풍력 및 연료전지 등 수요처 인근 소규모 발전이 가능한 '분산형' 발전시설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연료전지'는 송전설비가 필요없는 건 물론 무소음·저공해 등 친환경적이면서 안정적 고효율 발전까지 가능해 차세대 신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다.경기도에선 이미 6년 전부터 국내 최대 연료전지 발전소가 가동되는 등 분산형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발전소가 파산 위기를 맞아 오히려 뒤처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원천기술 보급을 맡은 포스코에너지가 내부 적자 부담을 사실상 발전소에 떠넘기며 터무니없는 재계약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포스코에너지와 계약을 맺은 도내 다른 업체들도 불똥이 튈까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초기 발전소 건립비 470억원까지 투입한 정부는 정작 수수방관이다. 그러면서도 '2030년 연료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가 정부 목표라는데, 그때도 송전탑 갈등 현장에 취재를 가야 할 것만 같다. /김준석 경제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경제부 기자

2019-06-09 김준석

[노트북]중학교 신설에 필요한 숫자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최근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이 영화에는 흥행 성적에 걸맞은 역대급 빌런이 등장한다. 이전의 많은 악당들이 지구나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부린 것과 달리, 어벤져스의 '타노스'는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생명체 절반만 남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고, 이를 실현했다. 생명체가 남은 이유도, 사라진 이유도 '절반'이라는 숫자다. 방금 막 태어났다거나, 오랜 계획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거나 등등 개인의 어떠한 사정도 절반이라는 수를 넘어서지 못했다. 세상사라는 것이 각자의 사정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을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걸 보니, 진짜 나쁜 놈이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각자의 사정이 숫자로 인해 묵살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 의왕시 내손동 주민들은 내손 2동에 중학교를 신설해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10년째 요구하고 있다. 내손2동에 사는 아이들은 청계동에 있는 중학교까지 가려면 12개의 건널목을 건너야 하고, 내손1동 아이들 일부는 등하굣길에 모텔촌을 지나야 한다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은 빈 교실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불가 입장을 유지해왔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3년 동안 마음을 졸이거나,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학부모가 되면 사라지곤 했다.참다못한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무기로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숫자다. 내손동에 있는 3개 초등학교 학생수와 학급수를 파악했다. 1학급당 30명 정원을 기준으로 2개 학교에 모든 초등학생이 수용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1개 초등학교를 중학교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김상돈 의왕시장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어벤져스가 사라진 절반의 생명을 되찾을 가능성은 14000601분의 1이었다. 승리의 확률로서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다. 아마 그 숫자는 절실함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기자

2019-06-04 민정주

[노트북]청소년 흡연 예방, 道·도교육청 적극 나설때

일반 담배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그다음은 액상형 전자담배로 국내 담배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지난 24일 전자담배 업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이 국내에 출시되고, KT&G도 쥴의 대항마로 지난 27일 릴 베이퍼(lil vapor)를 출시했다.서울지역 편의점 GS25와 세븐일레븐에서 단독으로 팔기 시작한 쥴은 주말 사이 대부분 매진됐다. 이번 주 발주물량도 선 예약 고객이 많아 흥행몰이를 이어갈 전망이다.문제는 흡연율 증가다. 특히나 쥴이 미국에서 청소년 흡연자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만큼 국내 청소년 흡연율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쥴은 담배같지 않은 디자인과 담뱃재나 담배냄새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청소년 흡연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잇따랐다.이에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등 담배소매점에서 청소년에게 전자담배와 흡연기구를 판매하는 행위를 6월까지 집중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인터넷 중고거래 등을 통해 쥴과 유사제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이미 청소년들은 흡연의 유혹에 노출돼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사실상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및 가정에서 흡연을 원천 차단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흡연 예방에 소극적인 자세다.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한발 앞서 청소년 흡연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반면 도와 도교육청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도와 도교육청이 청소년 흡연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 쥴 출시 이후 청소년 흡연율이 증가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준석 경제부 기자 ljs@kyeongin.com이준석 경제부 기자

2019-05-29 이준석

[노트북]수원FC의 큰 변화

프로축구 수원FC가 달라지고 있다.김호곤 단장이 자리하면서 팀의 분위기와 위상 자체가 올라갔고, 덕분에 선수들이 믿는(?) 구석이 생겨 힘을 내는 모양새다.수원FC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았고, 단장 자리는 퇴직한 고위 공무원이 버티기만 하면 2년을 보장받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공석이었던 수원FC 단장자리에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지닌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호곤 신임 단장이 취임했다. 예전과 다른 큰 변화였다. 수원FC는 2013년에 2부 리그(당시 챌린지)로 시작했다. 2015년부터 현 부산 아이파크 조덕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막공축구'로 효과를 보면서 2016년에는 1부리그(당시 클래식)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2017년 다시 2부로 떨어졌다. 조덕제 감독이 2017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후 김대의 신임 감독을 선임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문 수원FC는 한동안 그저 그런(?) 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올 시즌 수원FC는 상반기 열린 12경기에서 6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3위로 올라 상위권에 링크되어 있다. 수원FC는 최근 3경기에서 2경기는 선제골을 내주며 어렵게 시작했지만 역전승을 거뒀고, 나머지 한 경기 역시 2-2까지 동점을 내줬지만 안병준이 버저비터골을 성공시키며 3연승을 달리고 있다.지난 시즌에는 선제골을 내주거나 경기에서 패하면 무기력해지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던 것과는 딴판인 모습이다. 이는 2년 차인 김대의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김 단장이 멀리서 지켜보면서 선수 개개인들에게 힘이 되는 말들을 전하면서 파이팅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구단 프런트까지도 김 단장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았고 팀 분위기 또한 상승했다. 올 시즌 수원FC의 1부리그 재승격이 기대된다. /강승호 디지털미디어본부 콘텐츠팀 기자 kangsh@kyeongin.com강승호 디지털미디어본부 콘텐츠팀 기자

2019-05-23 강승호

[노트북]남한강 인도교 설치 무엇이 문제인가

여주시는 남한강에 인도교 설치를 놓고 찬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여주에 강북에 해당하는 오학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교통대란이 우려되는데, '대교를 놓아야지 인도교가 왜 필요하냐'라는 주장이다. 인도교 설치는 이항진 여주시장의 공약사업이다. 시청과 오학동을 잇는 인도교를 통한 강남·강북의 생활권 연결과 남한강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낭만이 넘치는 가족과 연인들의 다리를 놓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여주시가 오학동 둔치 공원화 사업과 연계해 인도교 설치를 위한 타당성 조사용역을 추진하는 가운데, 오학동 발전위원회와 통장협의회에서 인도교 설치를 반대하고 가칭 제2 여주대교 건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연히 인도교보다 차량통행이 가능한 대교가 백번 낫다. 하지만 그동안 왜 여주의 미래발전을 위해 대교 건설을 못 했나 짚어볼 문제다.우선 제2 여주대교는 민선4기 이기수 군수 재임 시절인 2007년에 추진하다가 중단됐다. 2007년 기본설계 시 약 85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12년이 지난 현재 1,300~1,5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인 B/C가 1.0을 넘지 못한 0.34로 나왔다. 순수 시비로도 대교 건설은 못한다. 혹자는 인도교에 쓰이는 예산(200억 상당)을 아껴 대교 건설에 투입하면 될 거 아니냐고 말한다. 인도교 예산은 4대강 사업에서 발생한 준설토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준설토 판매 수익금은 하천과 친수구역 관리 이외에는 쓰지 못한다. 통행이 목적인 대교 건설에는 쓸 수 없다. 게다가 여주대교 건설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시청사 이전이다. 여주초교가 역세권으로 옮겨가고, 시청사를 정비하려면 최소 5~10년의 기간이 소요되고, 대교는 그 이후에나 논의될 사안이다.2025, 2030 여주시 중장기 발전계획에 어디를 찾아봐도 대교 건설에 관한 사항은 없다. 그렇게 중요한 사업이 왜 빠져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대교 건설을 원한다면 인도교와 관계없이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coa007@kyeongin.com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기자

2019-05-16 양동민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