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 I. INCHEON. U

‘너를 빚더미에 앉게 하겠어’ 부채 허덕이는 市 풍자패러디마다 서민들 고된 삶의 현실 떠올리게 해‘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어’ 란 새 브랜드 필요‘아이 인천 유’(I Incheon you)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주어·동사·목적어로 구성된 영어 문법의 3형식 문장인 듯한데 ‘인천’이란 고유명사가 동사로 사용됐다. 직역하면 나는 너를 인천한다?실제 뜻을 알고 나면 더 황당하다. ‘너를 빚더미에 앉게 하겠어’란 의미란다. 인천시가 지방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을 풍자했다고 한다.그런가 하면 ‘잇츠 대구’(It’s Daegu)도 있다. ‘너무 덥다’란 뜻으로 대구의 기후적 특성을 빗댔다.문법 파괴는 기본이고 부연설명 없이 해석이 불가능한 이들 ‘콩글리시’ 문장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하루에도 수십건씩 쏟아지는 패러디물 중 일부다.이들 패러디 물의 진원지는 서울이다. 최근 서울시가 새로운 공식 도시 브랜드로 ‘아이 서울 유’(I.SEOUL.U)를 선보이자 지역 명칭(서울)을 동사로 활용한 것을 비꼬아 이를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 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와 너의 서울’이란 뜻을 담았다는 서울시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회의적 반응은 가시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조롱의 범위가 서울에 머물더니 이제는 ‘아이 인천 유’나 ‘잇츠 대구’에서 보듯이 불똥이 타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어쨌거나 새 브랜드의 ‘의미 전달 부재’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보는 이에게 일순간 웃음을 선사하는 네티즌들의 재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패러디는 패러디다. 속된말로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쓴웃음이 남는다. 패러디 한 토막, 한 토막에 깃들어 있는 현실진단이 서민들의 고된 삶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개그인 듯 하지만 결국 다큐적 사고의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패러디라고 할까? “나는 너의 전셋값을 올리겠어”, “나는 너를 지하철 지옥에 가두겠어”처럼 ‘seoul’이란 ‘단어’를 ‘전셋값을 올리다’, ‘지하철 지옥에 가두다’ 등으로 해석한 문장은 어찌 보면 ‘고된 서울(도시) 생활’에 대한 소시민들의 변형된 고발장이다. 헬(Hell·지옥)과 조선의 합성어인 ‘헬조선’, 흙수저 등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인터넷 신조어가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이니 동사(?)로서의 ‘seoul’은 당분간 온갖 부정적 의미의 ‘의역’을 양산할 게 분명하다.이런 점에서 ‘I.SEOUL.U’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정치인 또는 행정가들이 주목해야 할 시대 현상이 아닐 수 없다.한편으로 인천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 인천 유’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인천’의 이미지가 ‘빚더미 도시’로 고착화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다. 인천이란 도시의 긍정적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진대 말이다.인천의 공식 도시브랜드는 ‘플라이 인천’(Fly Incheon)이다. ‘플라이 인천’ 또한 정작 인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성이나 역동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맞물려 일각에서 도시브랜드 교체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2006년 인천국제공항을 대표 상징으로 삼아 만들어진 지 10여년이 지난 만큼, 이제 인천의 변화상을 반영한 새로운 도시브랜드가 필요할 만도 하다. 그렇다고 ‘I.SEOUL.U’처럼 고개부터 갸우뚱해지는 도시브랜드는 사양하고 싶다. ‘I INCHEON U’ 가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어” “나는 너를 풍요롭게 해주겠어” 등으로 해석되는 시기가 오면 모를까./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5-11-01 임성훈

[데스크 칼럼] 투혼(鬪魂)

부상에도 강한 정신력으로 버틴 ‘전국체전 선수들’경기장에는 관계자·학부모들뿐 ‘늘 소외된 느낌’비인기종목 지도자들 올림픽처럼 ‘국민관심’ 원해투혼은 스포츠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는 굳센 마음을 뜻한다. 스포츠 지도자들은 대부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는 박수를 보내지만, 시작 전부터 포기부터 하고 싸우지 않으려는 선수에게는 혼을 낸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칭찬과 꾸지람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선수들의 정신상태, 즉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느냐, 아니면 일찍 포기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스포츠에서 1등과 2등의 차이는 바로 투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승전에 올라온 선수 또는 팀은 모두 실력이 비슷하다. 대부분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아니면 정신 자세에 따라 순위가 바뀌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투혼은 선수들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지난주 강원도에선 제96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7일 동안 진행됐다. 종목마다 선수들은 저마다 시·도 대표로 출전해 고장의 명예를 걸고 투혼을 발휘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승자는 패자의 손을 잡고 위로했고, 패자는 승자에게 존경의 의미로 박수를 보냈다. 이런 것이 바로 스포츠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번 전국체전에선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이 많았다.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한 인천시체육회 소속 김지연은 경기 도중 양쪽 엄지발가락이 찢어지는 심각한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며 끝까지 결승선을 향해 달렸고, 롤러에 출전한 인천 서구청의 김수진도 레이스 도중 상대 선수와 부딪혀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이런 ‘총성 없는 스포츠’에서 경기도는 전국체전에서만 14년 연속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지난 2월 동계체육대회 14연패에 이어 이번 하계체전까지 잇따라 석권한 것이다. 말이 14년이지,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시·도에게 우승컵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은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육상의 경우 24년 동안 종목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고, 유도 종목도 17년 동안 우승했다는 점이다. 전체 44개 정식 종목 가운데 절반을 넘어선 23개 종목이 3위권에 올랐다는 점만 해도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스포츠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경기도 선수단에 박수를 보낸다.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대한민국 스포츠 제전인 전국체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장에는 해당 선수 학부모와 학교 및 시·도 관계자만 보였을 뿐 국민들에게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많은 관중이 모이는 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 등 4대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아마추어 스포츠는 늘 소외된 느낌이다. 이러다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스포츠의 위상도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를 입증하듯 일부 비인기 종목은 선수들이 없어 아우성이다. 학교 운동부는 선수 수급을 하지 못해 해체까지 이어지는 등 심각한 수준이다.내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느낀 점은 대한민국의 효자 종목이 바로 비인기 종목이었다는 것이다. 유도, 레슬링, 양궁, 핸드볼 등 비인기 종목들이 인기종목보다 메달을 더 따냈다. 비인기 종목 지도자들은 대한민국 스포츠가 관심을 받게 되는 날이 바로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밖에 없다고 한다. 일부 지도자들은 올림픽 때처럼 밤을 새우며 관심을 보여준 국민들이 그립다고 한다.스포츠는 위대하다. 국민들을 하나로 결집 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날이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신창윤 체육팀장신창윤 체육팀장

2015-10-25 신창윤

[데스크 칼럼]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은 틀렸다

행정구역 명칭 바꾼 1413년 10월 15일은 ‘음력’기념일, 음력으로 하든지 양력으로 환산해 정해야시, 가치창출 위해 모두 공감하는 날로 조정 필요요즘은 앉아서도 조선시대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주요 사건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가 여간 잘 구축된 게 아니다. 1413년(태종 13년) 10월 15일 자를 보자. ‘지방 행정 구역의 명칭을 개정하다’란 제목의 기사 1꼭지가 실렸다. 임금이 좌정승 하륜(河崙)에게 완산부(完山府)를 전주(全州)로, 계림부(鷄林府)를 경주(慶州)로 그 명칭을 고치자고 말하니 하륜이 옳다면서 아예 다른 곳까지 개칭하자고 해 전국 각 고을의 이름을 고치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인천(仁川)이란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인천시는 이날을 기려 10월 15일을 ‘인천시민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제51회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문학산 정상 개방행사를 같이 열기도 했다.인천시민의 날이 지정 취지와 부합하려면 위의 기사 내용대로 지명을 바꾼 1413년 10월 15일과 인천시민의 날인 10월 15일이 같은 날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둘은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 같을 뿐 따지고 보면 전혀 다른 날이다. 1413년 10월 15일은 음력이고, 인천시민의 날인 10월 15일은 양력이다. 인천시민들은 마치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을 양력 1월 1일에 쇠는 것과 같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대다수 인천시 공무원조차도 한글날이 당시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한 것처럼 시민의 날인 10월 15일도 당연히 당시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한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인천이라는 지명을 얻은 1413년 음력 10월 15일을 인천시민의 날로 정한 것도 문제가 크다. 인주(仁州)보다는 인천이 축소된 느낌인 데다가 부평이나 계양, 서구, 강화, 옹진 등은 당시 인천이라는 그 지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다. 당시 행정 구역으로는 인천이란 지명이 생길 때 이들 지역은 인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강화군민이나 부평시민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날을 인천시민의 날이라고 기념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기념일은 사전적으로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한 날’이다. 기념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날의 시의성이 맞아야 한다. 음력 날짜가 그날이라면 기념일은 매년 음력으로 하든지 아니면 당시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해야 한다. 기념일은 또 모두가 공감할 때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인천이라는 지명이 생긴 날을 인천시민의 날로 정한 것은 당시 행정구역과 지금의 행정구역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조치다. 지금의 인천시민의 날은 그 시의성에서도 지역적으로도 틀린 것이다.유정복 인천시장은 틈만 나면 ‘인천 가치 재창출’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야기한다. 유 시장의 바람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뒤따른다. 무엇이 인천의 가치이고, 어떤 것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개념부터 정립해야 할 것이다.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출발자세가 어떠하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유정복 시장을 비롯한 인천시 공직자들은 단거리 선수처럼 출발자세부터 바로 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이 인천시민의 날을 올바르게, 모두가 공감하는 날로 다시 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틀린 것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어떠한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5-10-21 정진오

[데스크 칼럼] 역사와 군주

우리 사회 교과서 국정화 둘러싼 역사논쟁 ‘시끌’현대사 관점 차이 새로운 이념논쟁으로 비화 양상中 동북공정 강화… 우리가 싸울 상대는 따로 있어‘겸청즉명(兼聽則明) 편신즉암(偏信則暗)’이란 말이 있다.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 쪽 의견만 들으면 아둔해진다는 군주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경구다. 우리 사회가 때아닌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역사논쟁’으로 시끄럽다. 메르스 사태로 온 국민이 대인 기피증을 앓을 정도로 지쳐있고, 마지막 퇴원환자가 또다시 양성반응이 나타나 이달 28일 예정이던 종식선언마저 물 건너간 상황이다. 내년도 경제성장전망치는 발표하기가 무섭게 슬금슬금 하향 수정을 거듭해 맥도 빠져있다.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필자 또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봤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도덕책에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머리위로 뾰족하게 뿔이 나 있고 목덜미에 붙은 큼직한 혹, 지하동굴에서 두더지처럼 삽과 괭이로 일하고 있는 깡마른 사람 등이 책 곳곳에 삽화로 등장했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아이의 눈에 참으로 역겹고 무서웠다. 당연히 그런 곳이 북한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그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운명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좀 더 고학년이 돼서 ‘난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숨진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를 통해 간첩이란 생소한 단어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란 사실들을 순차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민주화란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빈부의 격차 속에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아픔 등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또다른 이면을 알게 됐다. 사회인이 되어 전 세계 유일무이한 3대 세습통치로 이어진 북한의 은둔, 공포정치를 보면서 내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과 내 아이를 위해 내 조국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강한 국가관도 정립돼 갔다.역사는 흔히 승자의 역사라고 한다. 패자의 역사는 감춰진 진실에 불과하고 세상에 빛을 보고자 할 때 많은 반발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역사논쟁의 쟁점은 해방 이후 고작 70년 밖에 되지 않은 현대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는 2018년 대입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한국사가 고교생들의 필수 수험교재가 되면서 더더욱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간 단순한 역사논쟁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논쟁으로 비화돼 우리 사회 전체가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후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이런 과정이 어떤 역사로 정리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체제는 이미 숱한 논란 속에 국정화의 틀을 깨고 시행 중에 있다. 검정체제라 할지라도 여전히 교육부장관의 승인 없이는 검정교과서로 채택될 수 없는 구조다. 국가가 얼마든지 승인과정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수정요구를 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공개 심포지엄 등을 통해 수정의 당위성을 역설할 수도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선 한국사 교사들이나 역사학자, 대학교수 등이 현행 검정교과서 체제를 문제삼은 것도 아니고, 대학입시 시험문제에서 논란이 된 것도 아닌데 왜 지금 이 시기에 국정교과서 강행을 시도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다. 당장 정부와 여당은 19일부터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에 따른 관련 예산 100억여원을 세울 방침이어서 예산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전 백두산을 다녀왔다. 백두산 앞에서 행사기념 플래카드를 걸고 사진 한 장을 못 찍게 했다. 옛 찬연했던 고구려 역사의 자취를 감추려는 중국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정책 때문이란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상대는 따로 있는 듯하다./김성규 사회부장김성규 사회부장

2015-10-18 김성규

[데스크 칼럼] 호갱 수도권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오게 된 ‘선거구획정안’여야, 슬그머니 영·호남 지역구 살리는 쪽으로매번 장난질 대상되는 수도권 ‘무관심’이 문제사실, 대다수 국민들은 벌써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뻔히 그럴 줄 알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던 것일 뿐, 결국엔 그들의 주판알 튕기기로 결론이 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19대 총선 때 우리 정치권은 선거를 불과 두 달 여 앞두고서야 선거판을 짰다. 옆 동네 윗동네를 이리 떼고 저리 붙여, 어지간한 예술작품 울고 갈 ‘창조적’ 선거구를 만들어 냈다. 해당 지역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정치권의 몰염치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는 했으되, 우매한 민초들의 아우성은 기껏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던 정치권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말 많고 탈 많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획정안 국회 제출 시한을 넘기면서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은 다시 정치권의 손에서 주물러지게 됐다. 경기의 룰을 당사자인 선수들이 직접 짜는 꼴, 선수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건 살리고 불리한 건 죽일 테니 그들 입장에선 이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가 또 없다. 적당한 힘겨루기와 치고받기가 이어진 뒤 이내 ‘기브 앤 테이크’가 성사될 것이고, 국민들에겐 서로 ‘저쪽 탓’에 어쩔 수 없었다며 약간의 유감만 표명하면 될 일이다.문제는 선수들 간 합의에 관중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이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승부가 너무도 뻔한 홈구장에서만 제각기 많은 경기를 치르고 싶어 하니, 변변하게 실력 있는 팀 하나 갖지 못한 수도권 관중들만 시쳇말로 ‘호갱’이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애초 인구 편차 2대1 기준으로 상·하한선을 잡았던 획정위 안대로라면 경기도는 최대 9곳, 인천은 1곳의 선거구가 증설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각각 지역구 수와 비례대표 비율을 내세우며 양보 없이 이어진 여야의 공방은 슬그머니 영·호남 지역구는 살리고 수도권 증설은 줄이는 쪽으로 논의의 방향을 틀고 있다. 의원 정수를 그대로 둔 채로 농어촌을 살리고 지역구 의석도 유지하려면 인구 상·하한선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인구 상·하한선을 올려서 타격을 받는 건 온전히 경기도·인천이다. 행정구역을 통째로 떼어내 다른 지역에 갖다 붙였던 19대 총선 때의 수도권 지역 게리맨더링이 거짓말처럼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수원과 용인이 험한 꼴을 당했다면 이번엔 안산, 부천이 폭탄을 맞을 처지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뿐.냉소적으로만 말한다면 성폭행에, 이권 개입에, 뇌물 수수에, 온갖 갑질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국회의원을 자기 지역에 여럿 모시고 싶은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몇몇 함량 미달의 철부지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법, 국회의원은 엄연히 해당 지역의 현안과 숙원을 해결할 창구이자 민의의 대변자다. 대표가 많아야 권리를 지키기 쉽고, 이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역차별을 받지 않는다.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수도권을 향해 대한민국의 중심이니, 민의의 바로미터니 떠들며 잔뜩 공을 들이는 모양새를 내곤 했다. 여당 대표는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 수도권은 금메달”이라는 말까지 했다.하지만 매번 동네를 갈기갈기 찢어 꿰맞추는 장난질의 대상이 되고 그때마다 번번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가고 마는 게 수도권이라면, 수도권 주민들은 ‘호갱’이 맞다. 잇속을 챙기려고 혈안이 된 장사꾼보다 어쩌면 무관심하고 어리숙한 호갱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배상록 정치부장배상록 정치부장

2015-10-14 배상록

[데스크 칼럼] 프레지던츠컵과 인천의 효과

전 세계에 ‘INCHEON’ 알린 기회 큰 수확입장료·골프용품·호텔업계 등 쏠쏠한 재미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 주길 기대전 세계 골프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한 지구촌 최대 골프 축제인 ‘2015 프레지던츠컵’이 11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렸다. 2년마다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은 라이더컵과 함께 프로골프의 양대 대륙대항전으로 골프팬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경기이기도 하다. 이날 경기는 마지막 매치에서 우승이 결정날 만큼 박빙으로 진행돼 대회의 열기를 더했다. 이 대회는 226개국에 32개 언어로 중계돼 10억명의 골프팬들이 시청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무엇보다 ‘INCHEON’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1994년 처음 창설된 이 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린 건 처음. 세계 랭킹 1·2위인 조던 스피스(미국)와 제이슨 데이(호주)를 포함해 ‘별 중의 별’ 24명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데서 골프팬에겐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였다. 양팀 출전 선수 24명을 돈을 주고 데려온다면 출전료만 해도 2천만 달러(약 200억 원)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하지만 프레지던츠컵엔 초청료가 없다. 상금도 없고 경기복에 후원사 로고를 새겨 넣을 수도 없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상품은 무게 12.7㎏짜리 은으로 된 트로피다. 철저히 상업성을 배제한 대회 운영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이 대회 출전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인다.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의 골퍼라는 명예가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극히 상업적이다. 우선 갤러리 입장료가 꽤 비싸다. 대회 첫날과 둘째 날 1일권 입장료는 최저 10만원, 셋째 날과 넷째 날 입장료는 15만원으로 오른다. 연습경기가 시작된 지난 6일부터 11일 공식 대회 일정을 마칠 때까지 골프장을 찾은 갤러리만 10만명에 달했다. 잭 니클라우스GC 내에 위치한 골프용품 상품 판매코너에는 준비했던 다양한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초 예상했던 수준의 3~4배까지 매출이 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프레지던츠컵 로고가 찍힌 모자는 대회 기간 중 판매용으로 준비한 6만개가 대회 첫날(8일) 완판돼 추가 생산에 들어갈 정도였다니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호텔업계도 쏠쏠한 재미를 본 것 같다. 출전선수와 가족 등 관계자들이 묶는 숙소비용만 해도 할인가로 8억원이 넘는다. 대회기간 동안 해외에서 인천을 찾은 관광객과 국내 갤러리 등 10만여명이 다녀간 것을 감안하면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을 것으로 기대된다.과연 프레지던츠컵 개최로 인천이 어떤 경제적 효과를 얻어냈을 지 궁금하다. 대회를 유치하면서부터 흥행과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이번 대회를 치르고 정확한 수치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흥행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대회 전 인천시는 수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했다. 지난 2006년 아일랜드에서 열린 라이더컵(프레지던츠컵의 원조로 미국·유럽 간 남자골프 대항전)의 경제효과를 한 회계업체가 1억4천300만 유로(약 1천860억원)로 추산한 것을 보면, 9년이 지난 이번 대회의 경제 효과는 훨씬 커진 것으로 보인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대회에 앞선 인터뷰에서 “대회의 직간접 소비지출은 물론 인천의 브랜드 가치 제고, 송도 국제도시의 홍보 효과 등이 기대된다”고 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이은 올해 프레지던츠컵 개최가 인천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지역경제활성화에도 긍정적인 다양한 효과를 가져다 주길 기대한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5-10-11 이영재

[데스크 칼럼] ‘우선 조달제도’ 진정한 취지 농심에서 시작

협동조합, 학교급식 납품 입찰 단계부터 ‘제동’축산농민들 제도 본격 시행 앞두고 ‘불안감’학생들 안전한 먹거리 위협하는 일 없어야소기업·소상공인들의 구매촉진과 판로지원을 위해 도입된 ‘중소업자 우선 조달제도’가 예상치 못한 늪에 빠져 최근 법 개정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당초 이 제도는 소기업 또는 소상공인들에게 조달 구매 시 일정 금액 범위를 이들만의 고유영역으로 인정해 계약 우선권을 주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세부적으로 계약금액 기준 1억 원 미만으로 비교적 영세 영역에서 일반제품을 공공기관과 조달계약 체결 시 이들만의 리그로 만들어주자는 것이 입법 내용의 핵심이다.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들의 무차별 시장 진입을 막고 혹시 있을지 모를 규모 기업의 시장 간섭을 아예 차단하고자 만든 것이다. 대형마트와 쇼핑몰 등 규모 경제가 판치는 최근 시장 흐름속에 기 눌린 소상공인, 소기업 등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법 취지야 말로 정말 환영받아 마땅하다.다만 법 시행 초기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나와 아쉬움을 남긴다. 일정 계약금액 영역에 농민을 대변하는 생산자단체(협동조합)가 납품하는 비교적 큰 덩어리의 축산물 등이 계약금액 초과 구간으로 예외없이 밀려나야 할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농민들의 자조 조직에 따른 특별법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의 학교급식 납품이 입찰 참가 단계부터 제동에 걸리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그 강도가 시행청의 제도 이행 권고 공문 한방에, 한 달 동안 무려 도내 15개 학교의 납품 계약이 취소되고 38개 학교에서 급식 입찰 참가를 제한받고 있다니 놀랍다. 더욱이 도내 축협의 학교 급식납품 사업의 99%가 영향을 받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축산 관련 조합들이 생계(운영)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하다. 사육두수가 아직은 전국 평균을 웃돌 정도로 지역 경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도내 축산농가들 역시 이 제도 본격 시행에 앞서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학교급식 지원을 위한 질 향상 보조금과 장려금까지 지원해가며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공을 들여온 경기도와 생산자 단체들의 그간 노력 역시 허사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법 시행청은 눈앞에 당장 드러난 문제점 뿐 아니라 학생들의 안전 먹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파장까지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엄격한 법 시행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그 피해가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다행히 농업계 불만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철저한 제도 이행 권고에 나섰던 해당 기관은 당장은 한발 물러서 추이를 관망 중이다. 뒤늦게나마 시행령을 통해 ‘특정한 성능, 기술, 품질 등 예외사유의 경우 입찰발주 공공기관이 판단 여지를 갖는다’고 명시해 입장 선회에 나섰기 때문이다. 농업계가 일단은 한숨을 돌린듯 보이지만 언제든 여지의 불씨를 남겨두고 있어 농민들의 불안감은 완전히 잠재우기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어떤 경우든 FTA 등 시장개방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사회는 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시장을 보호하는 일만큼이나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아울러 아이들의 식탁에 안심 먹거리를 올리는 일을 우선으로 본다면 거기에 명쾌한 답이 있을 수 있다./심재호 경제부장심재호 경제부장

2015-10-07 심재호

블랙 프라이데이 에서 폭스바겐을 엿보다

기대 훨씬 못미치는 할인율·제한된 품목 ‘실망’쇼핑객들 “배신감에 시간만 낭비했다” 불만획기적 개선없인 소비자들 신뢰에 큰 타격 입어시쳇말로 요즘 가장 ‘핫’한 뉴스 키워드를 꼽는다면 ‘폭스바겐’ 그리고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가 아닐까 싶다.폭스바겐 사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 그룹이 디젤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사실이 밝혀진 데서 비롯됐다. 전 세계적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파문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형국이다.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세일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의 한국판 할인 이벤트다. 지난 1일 시작돼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정부가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해 기획했다.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되고 처음 맞은 주말, 한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던가. 쇼핑객들은 북적거리는데 정작 살 물건이 눈에 띄지 않는다.자동차 분야의 폭스바겐 사태와 소비문화 분야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어떤 공통적 요소를 찾는 것은 억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폭스바겐 사태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수학에 빗대면, 일종의 교집합의 빗금이다.우선 배신감이다. 폭스바겐 그룹이 어떤 회사인가? 도로에 ‘비틀’ 한 대라도 지나가면 행인들이 선망의 눈으로 그 물방개를 닮은 차를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기술력과 디자인 그리고 독일 특유의 장인정신을 부러워했다. 폭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스코다·람보르기니·벤틀리·포르셰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이 회사는 지금 소비자를 속인 데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쇼핑하라’는 슬로건에 이끌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장을 찾은 한국의 소비자들도 적잖은 배신감을 맛보았을 터다. 알뜰 쇼핑족임을 자처하는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득템’을 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는 불만의 목소리 일색이다.다음으로 ‘신뢰의 상실’이 엿보인다. 배신감에 이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1980년대 발생한 ‘우지(牛脂)파동’에서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라면시장 선점업체인 국내 한 회사가 공업용으로 수입된 우지로 라면을 튀겼다는 식의 ‘우지파동’에 휘말린 적이 있다. 나중에 법정에서 이 회사가 사용한 기름이 고급 식용 우지였다고 결론이 났지만 이 회사는 대중적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고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야 말았다. 사실관계가 부정확한데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차량에 설치된 소프트웨어가 정기검사나 실험실 테스트를 받을 때만 가동되고 도로에서 실제 주행할 때는 작동하지 않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폭스바겐의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할인율, 제한된 할인 품목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또한 남은 기간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표절행사의 극치’라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소비자들의 뇌리에 부정적 인식이 각인된다면 제2, 제3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어설픈 할인행사로 교통체증을 일으킬 바에야 차라리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을 키우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게 낫다. 마케팅계에선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소비자다.” 귀담아들어야 할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5-10-04 임성훈

인천관광공사 출범에 부쳐

인천미래 달렸다고 할만큼 중요한 조직 ‘부활’ 성과 집착하거나 특정인위한 기구 될까봐 ‘걱정’ 도시특성 재검토등 관광자원 꼼꼼히 파악해야 얼마 전 편집국 후배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옛 기찻길과 근대건축물 이야기가 나왔다. 후배는 늦은 여름휴가를 전북 군산으로 다녀왔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군산항은 일제 강점기 호남평야의 쌀을 실어 나르던 수탈 기지였다. 그때의 건물 몇 채가 아직도 남아 당국은 근대박물관을 설립하고 그 주변의 일본식 건물을 관광자원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기찻길도 패키지 여행코스인데 사시사철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했다. 후배는 서서히 목소리를 높였다. 군산의 근대건축물이나 기찻길은 그 규모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인천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 인천은 왜 그런 관광코스를 만들어 내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인천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어느 도시보다 많이 서린 곳이다. 계속된 도시개발에 수많은 이야기의 장소들이 날아가 버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선 철길의 시작점부터가 인천 아닌가. 경기도 여러 곳의 쌀이며 소금이며 각종 자원을 수탈해 인천항을 통해 끌어내려고 만든 수인선의 그 옛날 대합실이 다 사라졌지만 인천에는 유일하게도 아직 남아 있다. 근대건축물은 또 어떤가. 중구 개항장 일대는 여전히 국내 최대의 근대건축물 단지로 꼽을 만하다. 이뿐이 아니다. 인천은 잠시 둘러만 봐도 한반도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긁히고 패인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강화도를 빙 두른 관방유적이 그렇고, 부평의 미군부대 터가 그렇다. 인천대교와 영종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 모든 이야깃거리가 당장에라도 호출하기만 하면 달려나가겠다는 듯이 웅크리고 기다린 지 오래건만 이제껏 누구 하나 그 격에 맞는 부름을 하지 않았다. 엊그제 인천관광공사가 새롭게 출범했다. 4년 전 인천시 산하 기구 통폐합 때 사라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관광전문 여행사 비슷한 느낌이지만 실은 그 두 어깨에 인천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조직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눈앞의 성과에만 매달릴까 봐서다. 시장의 공약사항 이행에 조직의 초점을 맞춘다든지 손익 계산에 빠져 성과에 집착하거나 관광객 모집에만 서두르게 되면 그 결과도 좋지 못할뿐더러 조직을 다시 한 번 망칠 수가 있다. 그리되면 정치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인천관광공사는 특정인의, 특정인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인천의 미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조직이다. 인천관광공사는 우선 인천지역 관광자원의 현주소를 명확히 파악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어떤게 관광자원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또 어떠한 가치를 가졌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천이라는 도시 특성을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시가 어떻게 태동해 지금까지 왔는지를 꼼꼼히 따진 뒤에라야 그 인천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천관광공사가 ‘한류’와 같은 현상 흐름에 빠져 시중의 일반 여행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인천관광공사로 인하여 국내외 여행사들이 인천으로 몰려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인천관광공사는 시작하는 시점인 지금, 기구의 뿌리는 깊게 박고, 줄기는 곧고 굵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흔들림 없이 멀리 내다볼 수가 있다. 새로운 인천관광공사가 인천의 잠자고 있는 미래가치를 찾아내서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5-09-23 정진오

안전불감증에 쓰러진 타워크레인

관계기관 관리·감독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아 공기 단축위해 중량·작동 속도도 안 지켜 하부점검 부실 등 기본 무시한 ‘전형적 인재’ 하루 평균 6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경인선(인천역~구로역) 부평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 신축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전철 선로를 덮쳐 공사현장 작업자 3명이 다친 사고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는 시공사 관계자는 물론 관할 자치단체인 부평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코레일 등 관련 기관의 무관심과 방관 등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다. 각 기관 사이에 팽배한 ‘안전불감증’이 타워크레인을 쓰러뜨렸다는 얘기다. 다행히 사고가 난 시각에 이 곳을 운행하는 열차가 없어 대형 참사는 면했지만, 주택이 밀집한 다른 방향으로 넘어졌다면 애꿎은 시민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어야 할 판이다. 이날 경인선 승객들은 퇴근시간대 교통지옥을 겪어야만 했다. 건축물 높이가 31m 이상인 경우 시공사는 타워크레인 설치 시방서를 포함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제출토록 돼 있다. 그러나 신축 중인 오피스텔은 30m(10층짜리) 건축물로 설계돼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크레인 역시 3t 이상인 경우 국토교통부에 건설기계를 등록해야 하지만, 사고 현장의 크레인은 2t이어서 관리·감독 대상에서도 빠졌다. 사고가 난 현장의 크레인은 ‘철도보호구역’을 이동하며 작업했다. 그런데도 부평구와 코레일·한국철도시설공단 등 관계 기관의 감독은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시설안전법에는 선로 30m 이내(철도보호구역)에서 굴착·건설 등의 작업할 때 시공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신고해야 하고, 공단은 현장에 대한 관리를 하도록 돼 있다. 사고가 나자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은 건설현장과 선로 간의 거리가 30m 이상 떨어져 있다고 밝혔다. 철도시설안전법 상 건설현장이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고와 관련해 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은 게다. 경찰은 공사현장과 선로 간의 거리가 32~33m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고는 건설현장에서 벗어나 철로 방음벽 옆에 있던 이동식크레인이 작업을 하던 중 선로 쪽으로 쓰러지면서 발생했다. 현장을 보면 선로 밖 30m 내에서도 작업이 이뤄진 게 명백하므로 시공사는 신고의무를 다하지 않은 셈이 된다. 이동식크레인 차량 등 장비가 사실상 선로를 침범할 우려가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해 2차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크레인이 전철 선로를 덮치기까지 건설현장은 어떤 관계기관의 관리·감독시스템에서도 모두 벗어나 있었다. 전문가들은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대부분이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인재’라고 분석한다. 공사시간 단축을 위해 최대 허용중량이나 회전 반경에 따른 작동 속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공사시작 전 크레인을 지지하는 하부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이번 사고의 시작점이라고 꼽았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은 크레인이 규정대로 설치됐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크레인 하부 기초공사 부실이나 자체구조 결함 등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해당 크레인 회사 대표는 경찰에서 “크레인 설치와 관련해 작업지시서 성격의 시방서를 규정에 맞게 작성해 건설회사 측에 줬다”며 “그쪽(건설회사)에서 하부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한 것 같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사고현장에서 안전불감증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5-09-20 이영재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큰 관심 ‘자살률 OECD 1위’ 오명 벗기위한 지원책 시급 가정이 ‘생명 소중함’ 깨닫고 자살예방 앞장서야 “어둠속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걷는 우리가 있습니다.” 지난 11일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해질 녘 수원 광교공원에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세계자살예방의 날(10일)을 맞아 본보와 수원생명의 전화가 공동주최한 ‘해질 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에 참가하기 위한 행렬이다. 1천500명의 사람이 삽시간에 공원을 가득 메웠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이 행사는 자살예방 범시민캠페인이다. 자살충동을 느낀 어떤 이에게는 우울증을 더해주기라도 한 듯 음산한 가을비가 내려 참가자들 얼굴에는 이 행사가 왜 필요한지를 스스로 자각할 정도로 의연함이 묻어났다. 80대 한 노인은 “지난 3회 대회까지 모두 참가했다”며 “고독감과 우울증 등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데 아직 피지도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나 같은 노인도 생명의 소중함 때문에 이 행사에 또 참가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 오명국가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다양한 대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는 탓에, 자살 1위 오명국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기도만 해도 지난 2013년 자살 사망자는 총 3천368명. 10만명당 27.9명, 하루에 무려 9.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기도내 31개 시군 중 자살예방센터가 설립된 곳은 10개 자치단체가 고작이다. 도내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연천군·포천시에조차 자살예방센터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 내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임상심리사 등 전문인력이 없어 실질적인 자살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된 자치단체도 예산과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자살 의심자로부터 걸려오는 기본적인 상담전화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도가 설치한 경기도자살예방센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한 해 동안 2만6천537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왔지만, 이중 절반이 넘는 1만3천657건을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수치도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2시간으로, 미국 국립수면재단이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하는 수면시간(8.5∼10시간)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자살생각, 자살시도, 자살계획 등을 최대 2.5배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국내에서 나왔다. 을지대 의료경영학과 유기봉 교수와 연세대 보건대학원 박은철 교수팀은 2011∼2013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 참여한 중·고생 19만1천642명을 대상으로 수면과 자살 행동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를 영국에서 발간되는 국제학술지(BMJ Open)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런 정도면 ‘내 아이는 아니겠지 또는 괜찮겠지’하는 어리석은 속단은 금물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부모들이 인식해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가족 모두가 서로 곱씹고 가정이 자살예방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 /김성규 사회부장▲ 김성규 사회부장

2015-09-13 김성규

사회·국민적 관심만이 쌀 재고문제 해결 가능

빵·육류등 대체 먹거리로 ‘쌀 수급불균형’ 초래 올해 재고량 10~20% ‘출혈 판매’… 문제 심각 쌀 가공산업 육성위한 과감한 지원책 시급 쌀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 마음에 고향 같은 푸근함을 준다. 쌀이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애착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는 보릿고개 시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과의 공감된 정서의 영향도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쌀의 소중함은 그만큼 우리의 정서적 가치와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이 같은 소중한 쌀이 넘치는 재고로 최근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을 이전 원료곡 부족만 걱정했던 경기미 역시 이 분위기에 자유롭지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농협 등 관련 기관들은 지난해 연말 이후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해 왔다. 밥 대신 빵과 육류, 심지어 과일까지 다양한 대체 먹거리가 그만큼 식단에 친숙해 있는 상황에서 매년 늘어난 쌀 수확량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 문제를 만든 것이다. 쌀밥이 식사의 모든 것인 줄 알고 지냈던 시대에서나 가능한 수요도 없을 터이니 답답한 지경이다. 모든 것이 식생활 서구화, 먹거리 다양화 등 국민 식생활 변화가 만들어낸 총체적 결과인 셈이다. 쌀 소비 감소가 업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나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사회적 울림이 적어 걱정이다. 국민 1인당 지난해 연간 쌀 소비 규모는 65.1㎏으로 10여년 전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도 모자라 오는 2025년도에 소비량이 52.5㎏까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은 농업계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경기농협의 쌀 재고량은 8월 말 현재 3만2천t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5천t 재고량에 비해 소폭 늘어난 물량 정도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질(質)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올 재고량은 지자체와 농협 등이 나서 10~20% 정도(수매가 기준)의 출혈 판매를 마친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자연 소비가 컸던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은행의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농림·어업 소득이 전기대비 12.2%나 감소했다. 지난 1990년 1분기 -16.8%를 기록한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수준으로, 왜 우리가 쌀문제에 보다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부는 최근 쌀 소비를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쌀 수급불균형이란 불편한 진실 속에 몇 년째 반복된 들녘의 풍년가가 그저 야속할 뿐이다. 이 처럼 처방이 달리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분명 대량의 쌀을 해외원조 등을 통한 ‘직접 방출’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소비시장에서 만이라도 쌀이 갖는 오해와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알려 소비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손색없는 쌀밥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시키는 방안부터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과감한 쌀 가공식품 활성화정책과 체계적인 쌀 소비 홍보도 중요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쌀 재고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단기성 정책 보다는 쌀 가공산업 육성을 위한 과감한 지원에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국산 쌀을 중심으로 한 고급화·다양화·차별화 전략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쌀 제품을 소비자들이 찾도록 하는 것이 ‘창조 농업’의 핵심이듯,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개발 등을 위한 관련 기관들의 분발을 함께 촉구해 본다. 쌀재고 문제로 촉발된 농업계 고충을 국민적·사회적 관심으로 극복하는 분위기 조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심재호 경제부장▲ 심재호 경제부장

2015-09-09 심재호

영혼을 묻다

기계적 일상에 순치된 자기반성의 의미 두명의 의사통해 ‘직업인의 영혼’ 진지하게 고민 정치·교육·복지… 우리 사회 절실한 수식어구 언젠가부터 ‘영혼 없는’이라는 수식어구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영혼 없는 박수, 영혼 없는 진행 등 다소 부정적인 표현에 자주 쓰인다. 기자 또한 ‘영혼 없이 산다’는 말을 가끔 내뱉곤 한다. 기계적인 일상에 순치돼버린 데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물론 자기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다. 얼마 전 직업인의 영혼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아들의 진료차 들른 병원에서였다. 의사는 거침이 없었다. 중학생 환자를 앞에 두고 그 의사는 친절하게도(?) 끔찍한 수술과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순간 겁에 질려 사색이 된 녀석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녀석이 받을 충격에 걱정이 앞섰다. 아이를 애써 진정시키는 보호자의 모습을 보면서도 의사의 거침없는 소견발표는 그치지 않았다. 그 소견이 100% 정확하다 하더라도 의사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게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문을 나서면서 녀석은 “다리에 나사를 박아야 하느냐”며 결국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 그 의사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 팩트(fact)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미성년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먼저 보호자를 불러들여야 하는 게 옳았다. 우리 사회에서 미성년자는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보호의 대상 아니던가. 온전치 않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대학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고 나서야 일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저 같으면 하나도 걱정 안합니다.” 전날과 확연히 다른 의사의 말은 배려를 넘어 ‘구원’이었다. 다시 전날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진료실을 나올 때 귓전을 스치던 말, “MRI는 꼭 찍어봐야 합니다.” 상업적 수완은 있을지 몰라도 그에게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영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각기 다른 영혼을 경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의사였다. 성장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그는 보호자와 상담을 할 때 당사자인 자녀는 절대 진료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치료비 상담까지 해야 하는데 부모가 금전적인 여력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 경우, 자녀가 “돈 때문에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며 부모를 원망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차가운 금속이 환자에게 닿지 않게 하기 위해 의사시절 청진기를 늘 가슴에 품었다는 한 의사가 떠올랐다. 이어진 말은 더 인상적이다. 그는 성장판이 얼마 남지 않아 큰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데 부모가 치료를 고집할 경우, “키 좀 작으면 어떠냐. 몇cm 더 키우자고 막대한 돈을 들이느냐”며 만류를 한다고 한다. 그럴 때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보호자로부터 항의를 받기 일쑤인데 “선생님이 키가 작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냐”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들었다고 한다. 어느새 그의 작은 키는 풍요로운 영혼에 가려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사실 ‘영혼’을 거론해야 하는 대상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혼 있는 정치, 영혼 있는 교육, 영혼 있는 복지…. 우리 사회에 절실한 수식어구가 아닌가 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5-09-06 임성훈

남북 축구

7년만에 평양서 열린 U-15대회 ‘긴장속 성공’다양한 종목 교류 ‘남북 스포츠강국’ 발돋움해야北, 대화의 장 유도 ‘통일 향한’ 지속적 노력 필요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북한 평양에서는 뜻깊은 스포츠 행사가 열렸다. 지난 21일부터 4일간 북한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마친 제2회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08년 이후 7년 만에 평양에서 개최된 이번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촉즉발의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도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북 유소년들이 대회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특히 국제유소년축구대회 개막 하루 전인 20일에는 북한이 연천군 중면 지역의 야산에 포격을 하는 등 도발을 감행해 자칫 축구대회가 취소되는 상황도 예견됐었다. 그러나 남북 축구관계자들은 민간 교류차원에서 열리는 이 대회를 잘 마무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남북이 군사적 대치 속에서도 이 대회를 훌륭히 치러냈다.그동안 남과 북의 축구교류는 민간차원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물론 그 중심에는 남북체육교류협회가 있었다. 남북 유소년축구팀은 지난 2006년 평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지속해서 교류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2008년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서울과 평양에서 경기를 갖지 못했고, 대신 제 3국인 중국(쿤밍)에서 주로 교류전을 펼쳐왔다.한국과 북한땅이 아닌 제 3국인 중국에서도 남과 북의 축구경기는 험난의 연속이었다. 제 3국 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축구관계자들은 내부 지령을 철저히 따랐고, 남과 북의 유소년축구대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연기 또는 취소돼 선수들의 만남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북체육교류협회는 북한을 설득했고, 대회 마지막 날 남북축구가 성사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경기도와 연천군도 남북 축구교류에 한 몫 거들었다. 지난해 11월 연천군에서 열렸던 제1회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는 북한 4·25체육단의 유소년축구팀이 한국땅을 밟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북한 유소년들은 남북체육교류협회의 후원으로 수원시를 방문해 호텔에 하루를 묵었고, 이후 연천군에서 유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북한 4·25체육단 소속 유소년축구팀은 우리의 청소년 대표팀 실력을 갖출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현재 남북은 민간차원에서 스포츠 교류뿐만 아니라 산림·문화·역사·경제 분야에도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금강산 소나무 병해충실태에 대한 우리 산림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벌이고 지원책을 찾고 있으며, 고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에 대한 남북 역사학자들의 발굴 작업도 진행 중이다.남북 교류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앞으로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스포츠 교류가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양궁·레슬링·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의 교류를 통해 남북이 함께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나아가 올림픽 단일팀으로 출전해 남북스포츠의 위상을 세우는 것은 물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해야 한다.남북 전문가들은 통일의 선결과제로 경제교류협력과 이산가족 왕래, 문화·스포츠·인적 교류 등 민간차원의 교류 협력을 우선시했다. 남북의 상황에 대해 너무 흔들리거나 일희일비하지 말고 안보태세와 대응태세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민간 교류를 통해 평화·화해·협력 등 통일로 가는 그런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5-08-30 신창윤

내가 종군기자라면

인천상륙작전 취재 유명세 탄 美여기자 ‘히긴스’영화처럼 전쟁터 묘사했지만 냉정함 잃지 않아우리도 남북분단 상황 직시하고 차분할 필요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무박 4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전쟁으로 치닫던 남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 무드에 빠져들고 있다. 손뼉을 치며 환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냉정히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생각하자니 마냥 신기해할 일도 아니다. 치열했던 싸움이 그저 한판 끝났을 뿐이다. 남북관계는 그동안 70년 가까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 같은 사이클을 오갔다. 일종의 예측 가능한 패턴까지 생겼다. 대결상태가 극한까지 치달으면 곧 해빙무드로 돌아서고는 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우리측 지역에서 북한군의 목함지뢰가 터지고, 대북 확성기가 11년 만에 가동되고, 다시 우리 땅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지고, 그리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고 하는 요 며칠간은 마치 종군기자라도 된 듯싶었다. 일반 기자들이 가져야 할 주요 덕목 중 하나가 냉정함인데, 수많은 주검의 현장에 선 종군기자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한국전쟁의 가장 유명한 종군기자는 미국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라고 할 수 있다. 히긴스는 특히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현장 취재로 유명세를 탔다. 히긴스가 당시를 묘사한 글이 2001년 9월 15일 상륙작전 기념일에 맞춰 출간된 ‘인천은 불타고 있는가’란 책자에도 실렸다. 승국문화재단이 자료집 형태로 발간한 이 책에는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히긴스의 종군기가 실렸다. 이 글 중에 히긴스의 전장(戰場)에서의 냉정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상륙) 얼마 후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낙조는 처음에 희미했으나 점점 선명해졌다. 녹색의 해병 머리 위를 비췄는데 그 빛은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기술적으로 만들 수 없는 찬란한 빛이었다. 사실 이 낯선 낙조는 부둣가의 화염과 결합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관을 이루었다.’ 히긴스가 전쟁을 마치 영화 관람하듯 취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히긴스는 한국전쟁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다른 종군기자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스스로 자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당시 AFP 등 프랑스 언론의 종군기자들은 유일한 여성 기자이던 히긴스를 맥아더 장군의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 그리면서 ‘히긴스의 기사는 전쟁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기자들의 얘기와 히긴스의 월미도 석양 감상기가 묘하게 겹치면서는 히긴스가 얄밉기까지 하다. 아무튼 히긴스는 전쟁터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국민 모두가 히긴스처럼은 아닐지라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남북의 분단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해방과 분단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멈춰진 전쟁 상황을 종군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지켜본다면 분명 그렇지 않을 때와는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길 것이다.전쟁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싸움의 승패는 당사자의 냉정함 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전쟁 당사자인 우리가 남북의 긴장과 화해 패턴을 제대로 읽으면서 남북 당국자들의 행보를 평가하고 비판한다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매체가 허위보도까지 할 정도였던 사재기 현상이 사라진 점은 우리 국민의 한판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냉정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난 전쟁 장면을 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5-08-26 정진오

우리들의 일그러진 교수

상아탑에서 제자 상습 성추행·폭행 등 몹쓸짓학생들 취업위한 스펙·학점 강박관념에 짓눌려파렴치 교수들 독버섯처럼 번져… 자정운동 절실남북 간 일촉즉발의 대치국면으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시기에 묻히고 갈 뻔한 대학교수의 여제자들 상습 성추행 사건이 폭로됐다. 앞서 전국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가 잇따라 교단에 있는 교사들의 성추행 관련 대책을 발표한 때이기도 하다. 교사들의 성추행 관련 사건들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아래 문제의 교사는 교단에서 영구 제명하는 특단 조치가 내려지는 등 강경책이 쏟아져 나왔다.지성의 꽃 상아탑인 대학이 일부 교수들의 제자 폭행과 성추행 등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학에서 교수와 제자 간 성추행이나 폭행 등은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사회 심각한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나오는 여제자가 교수를 연민해서 벌어지는 감상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여제자를 학생이 아닌 성적 도구로 삼는 파렴치한 자가 대학의 교수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시대상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최근 경인일보가 특종보도한 오산대 여제자들 상습 성추행 기사는 남북대치 국면의 이슈 블랙홀 상황에서도 언론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대학 김모 겸임교수가 자신의 학과 여학생들을 종강파티 등 빌미로 찜질방·노래방에서 신체 부위를 더듬는 등의 행위를 서슴지 않은 사실이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사건은 경찰에서 첩보를 입수하고 한 달여 동안 해당 학과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3명의 여학생으로부터 김 교수의 몹쓸 짓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대학은 김 교수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표를 내서 받아들였고, 뒤에 경찰로 부터 성추행 사실을 통보받아 학교 측은 전혀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했다.대학 측은 특히 김 교수가 정식 교수가 아닌 겸임교수로 징계위원회 등의 대상이 아니어서 사표수리 외에 달리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었다고 강변하고 나섰다. 김 교수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대학에서 겸임교수가 아닌 정식 교수로 임명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성추행 및 성폭행과 관련한 사회의 잣대가 갈수록 엄해지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시간강사나 겸임교수 등 비정규직 대학 교수들의 비위행위에 대한 제도적인 처벌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더욱이 김 교수가 여제자들을 성추행한 시기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창 창궐하던 지난 6월이다. 불필요한 회식과 모임을 자제하고 메르스 종식을 위한 전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하던 때였다. 갑의 입장인 교수가 원할 경우 을의 입장인 학생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교수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앞서 디자인계에서 명망이 있는 강남대 장 모 교수가 자신이 운영하는 협회 사무실에서 제자에게 폭설과 폭행도 모자라 인분까지 강제로 먹이는 사건이 일어나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 ‘우리나라 대학이 정말 이 정도까지 일그러졌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사건들이 다른 곳도 아닌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는데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상아탑·우골탑 등 지성의 요람으로 상징되는 대학이 이토록 무너지는 데는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든 취업이란 현실적인 문제가 배경에 있다. 다양한 스펙은 기본이고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조차 엄청난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이 틈을 교묘히 파고드는 일부 파렴치 교수들의 은밀한 유혹(?)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스승인 교수에게 ‘부당한 거래를 배우고 세상은 다 이런거야’라는 세상학(?)을 가르치는 대한민국 대학 교단이 이쯤 되면 대대적인 자정 운동을 벌여야 한다./ 김성규 사회부장▲ 김성규 사회부장

2015-08-23 김성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지만

‘北 DMZ지뢰 도발’ 도끼만행 사건과 닮은꼴軍 ‘대북 확성기 방송’ 상응 조치인지 의견분분엄중하고 단호하되 극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절단작업 중이던 미군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 만행 사건’은 분단 이후 북한이 자행해온 수많은 도발 중에서도 대표적인 반인륜적 범죄로 꼽힌다. 당시 사건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장 군화와 철모를 가져오라’며 일전불사의 결의를 보였다고 하고, 실제 특전사 대원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하는 즉각적인 보복 응징 작전도 이뤄졌다. 당장에라도 전면전으로 번질 뻔했던 사건은 우리의 단호한 대응과 미국의 대규모 무력시위 계획에 위축된 북한이 뒤로 물러서며 일단락 됐지만, 이후 북한이 한동안 준전시 상태를 풀지 못한 채 남북 긴장이 지속되는 등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분노한 국민들의 감정과 맞물려 오랫동안 유행어처럼 회자되기도 했다.지난 4일의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사건은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지 꼭 39년여 만에 재연된 닮은꼴 도발이다. 희생규모에선 차이가 있지만, 두 사건 모두 그 의도와 수법의 잔혹성에서 체감 충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국민’(국민 중에는 자작극 냄새가 난다거나, 우리 군 대인지뢰에 의한 사고라는 등의 괴담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들이 분노했고, 또 그 중 ‘많은 국민’들이 한쪽만 속절없이 당하는 남북현실에 분개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응징’ ‘보복’ ‘단호한 대응’ 등 말 잔치는 풍성했지만, 정말로 상응하는 대응이 이뤄졌던 기억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이번에도 그랬다. 우리 군은 “북한이 비열한 행위를 한 만큼 우리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국방부장관 역시 장병들에게 “적이 도발하면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힘주어 지시했다. 그 상응의 조치로 이뤄진 것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다. 대북방송이 북한 정권에서 노이로제 반응을 보일 만큼 위력이 대단한 우리 군의 대표적 심리전 수단이라지만, 그것이 이번 도발에 ‘상응하는 조치’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확성기를 크게 틀어 북한군들 고막을 터뜨리자는 전략’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뢰 도발을 규탄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도 힘을 얻어,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도 재등장하고 있다.우연이겠지만, 지뢰 도발 이후 굵직한 북한 관련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남북 경색에 한 몫을 했던 개성공단 임금인상 문제가 타결되더니, ‘한미 군사훈련이 중지되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의 북한 노동신문 논평이 나왔다. 19일엔 북한이 남측 대북 확성기 타격 훈련을 강화했다는 뉴스도 보도됐다. 그 틈바구니에서 또 하나, 평양에서 열리는 U-15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경기도·강원도 대표단이 참가했다는, 다소 ‘뜬금없는’ 소식도 전해졌다.우리가 지뢰폭발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는 데 6일이 걸리고 SNS에 괴담이 난무하는 사이에 북한은 ‘무차별적 타격’이라는 으름장에서 개성공단 임금타결, 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기까지 종잡을 수 없는 카드들을 잇따라 내민 꼴이어서, 매번 당하기만 했던 현실에 속상해 했던 많은 국민들로선 또다시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하지만 미친개한테 몽둥이 찜질을 하는 건 쉬운 일, 정말 어렵기는 미쳐 날뛰는 개를 잘 길들여서 더불어 사는 것이다. 엄중하고 단호하되 극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불쑥불쑥 자존심 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건 어쩌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 그 중 양식 있는 국가의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른다. 극한 대립 속에서 어린 청소년들의 축구대회 소식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5-08-19 배상록

고질민원 강력하게 대처해야

공공기관 업무 상습 방해·행패 ‘행정력 낭비’ 심각경찰, 악성민원인 ‘동네조폭 규정’ 강력 처벌 방침전문가들 “억지성 차단 제도마련 시급” 한목소리고질적 억지 민원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크다. 이런 억지 민원은 공공기관의 행정력 손실은 물론 기업활동의 위축을 불러온다. 경인일보는 최근 ‘억지민원 이제 그만’이라는 기획시리즈를 보도했다. 취재과정에서 억지 민원에 ‘속앓이’ 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민원인의 반복적이고 꼬투리 잡기식 ‘집요한 민원 제기’에 놀랐고, 이에 대응하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무력한 대응’에 놀랐다. 고질민원인을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거나 2~3명의 팀을 꾸린 자치단체도 있다. 민원 담당 공무원은 대부분 욕하면 듣고, 때리면 맞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민원현장에서 정당한 민원인과 담당 공무원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본보 보도내용 중 인천국제골프장 소유 부지를 불법 점유해 식물과 물고기를 키웠다는 한 민원인의 사례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수년간 10여 차례에 걸쳐 각급 기관에 골프장을 고발했다. 불법폐기물 매립과 그린벨트 훼손, 환경오염물질 배출 등이 그 이유다. 고발기관은 검찰과 경찰은 물론 구청, 시민사회단체와 환경단체, 언론사까지 다양하다. 오염물질 배출로 자신이 키운 난과 물고기가 폐사해 1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골프장은 모두 11차례에 걸쳐 민원인의 주장대로 오염된 폐토양·폐수 등에 대해 국가기관에 성분검사를 의뢰했지만 한결 같이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이 민원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이상 없음’ 판정을 내린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며 같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본보가 ‘억지민원 이제 그만’ 시리즈를 보도한 이후 인천경찰청은 ‘공공기관의 민원 행정을 상습적으로 방해하거나 공무원에게 행패를 부리는 악성 민원인을 동네 조폭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악성 민원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지자체 민원 부서 실무자를 통해 억지 민원사례를 수집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매년 고질 민원 대응방안을 내놨다. 고질 민원에 따른 행정력 낭비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2012년 6월 정부기관으론 처음으로 ‘고질민원 대응 매뉴얼’을 보급했다. 전국의 광역·기초단체들은 직원 교육용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만큼 고질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대처법은 형식적이고, 고질 민원의 행태는 점점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지금까지 공공기관은 민원인의 행정서비스 만족도 평가에만 치중해 왔고, 악성 민원에 대한 진단은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억지 민원은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피하지 말고 ‘왜 억지 민원이 발생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억지 민원인을 적절히 차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억지 민원인에겐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모욕, 무고 등 형사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충분하고, 민사적으로도 접근금지 신청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공익을 위해 민원인을 형사 고소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조언한다. 고질 민원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정당한 민원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5-08-16 이영재

전통시장의 앞날은?

온누리 상품권 활용도·편의성 널리 알려져야베이비부머 세대 전통시장 소비행태 변화 기대명절냄새 풍기는 추석장보기로 추억 회상 하길전통시장의 체감경기가 흔히 나라 경제의 척도가 되곤 한다. 서민 경기를 반영한 보편적 정서의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 상인들의 생계문제와 직결된 전통시장의 경기 흥망(興亡)이 항상 사회적 논쟁거리로, 단골메뉴로 부상했던 이유가 아닐까.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의 전통시장은 전국적으로 1천4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점포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잇는 상인 숫자만 34만명이 넘는 규모라고 한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이란 공룡 자본의 출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전통시장에 아직 100만명 이상 서민들의 생계가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전통시장의 체감경기가 민심의 잣대로, 심리적 경기 지표로 충분히 활용될 만한 가치가 되는 까닭이다.지난해 세월호 사건부터 올해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태로 국내 전통시장이 너무나 큰 타격을 입었다.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사람 접촉이 많은 전통시장이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시장 상인 대부분은 인적이 거의 끊긴 최악의 바닥경기에 속절없이 마음만 졸여왔다. 이 같은 바닥경기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까지 소비 진작을 위한 ‘인공적(?) 연휴’를 만들어 내수시장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경기도의회도 최근 ‘시장 마케팅 지원책’을 마련해 지역경기에 힘을 보태는 등 간만에 솔깃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30억원의 예산을 메르스 사태 직후 별도 지원을 받은 평택시를 제외한 30개 시·군에 균등지원한다는 내용. 고유의 예산 편성권을 활용해 자신을 뽑아준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을 배려한 간만의 움직임이 훈훈하다. 중소기업청은 아예 전통시장과 함께 공동 할인행사를 계획해 의욕이 꺾인 전통시장 상인들의 불편한 속내를 달래는 등 시장을 살리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전통시장은 우리 마음의 정서적 고향과 같은 존재다. 기성세대라면 부모 등과 연결된 소소한 추억도 있을 것이다.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면 지자체와 대기업 등이 벌이는 온누리상품권 팔아주기 운동의 뿌리와 취지 역시 그 연장선에서 출발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다만 좋은 취지가 행사의 형식성으로 인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품권 참여 기업의 구매 정도나 밝히는 형식성이 문제다. 풀린 상품권의 활용도, 이용 편의성 등 정작 사용에 따른 주요 내용은 그 형식성에 묻히기 일쑤다. 마침 삼성전자가 이달 한달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전통시장 방문 수기 공모전’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직원이 전통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한 뒤 사내 게시판에 인증 샷을 올리면 일정 상품권을 보상해 주는 형태다. 별도 수기 공모전도 마련하는 등 직원들의 관심을 전통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주최 측의 이 같은 세심한 배려와 구체성이 집결된다면 시장 경기 활성화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경기침체에 각종 악재를 만나 수렁에 빠져든 우리의 현실과 달리 일본의 전통시장은 최근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한 축인 일본 ‘단카이’세대들의 소비형태가 시장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시장 전문가는 분석한다. 인근 시장을 이용해 차량 이동도 없고, 충동구매도 없는 편안하고 알뜰한 복고풍의 쇼핑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실버세대를 겨냥한 소포장, 시설 편의성 제공 등 맞춤형 변화로 호응한 결과다. 일본 전통시장이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서 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은퇴기에 접어든 우리 베이비 부머 세대의 향후 소비 형태의 변화를 통해 우리 전통시장에서 희망가가 절로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온다. 베이버 부머 세대들이 앞장서 가족을 이끌고 명절 냄새가 물씬 풍겨 나는 우리의 전통시장을 방문해 옛 추억을 회상하는 일이 잦았으면 좋겠다./심재호 경제부장▲ 심재호 경제부장

2015-08-12 심재호

현대산업개발 정몽규회장 앞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순수한 기부 아닙니다혈세로 매입 부지에 ‘브랜드 명칭’ 기업이미지 걱정천문학적 세금으로 운영… 시민들 불편할 겁니다먼저 일면식도 없는 회장님께 고언을 드리는 심경, 착잡합니다. 난데없는 공개서한을 접하고 몹시 난처할 회장님 입장을 생각하면 미안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회장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시급한 사정이 있는지라 실례를 감행합니다. 다름 아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문제입니다. 수원시 최초의 시립미술관이 오는 10월 개관 예정입니다. 회장님의 현대산업개발이 수원시에 기부채납한 공공건축물입니다. 경인일보는 지난해 11월부터 이 신생 미술관의 명칭에 현산의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가 포함된 것이 부당하다는 보도를 이어왔습니다. 이후 의식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경인일보 보도에 호응해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파크 명칭 반대활동을 펼치는 중입니다. 우선 이런 사정을 아시는지요. 제 생각엔 아이파크 명칭 반대 이유와 명분이 회장님께 소상히 전달됐다면 지금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믿습니다. 혹시라도 회장님의 위치가 너무 높아 이 문제가 실무진 수준에서 허술하게 다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얘깁니다.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사태는 회장님과 현대산업개발이 결코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재벌과 대기업의 나쁜 기부의 대표 사례로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첫째, 현산이 건축 중인 수원시립미술관은 기부채납시설입니다. 순수한 기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희는 현산이 수원에 총 7천962세대 규모의 아이파크시티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대신 수원시에 미술관을 기부채납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특정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 막대한 수익사업을 벌일 때 그 반대급부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에 환원하는 기부채납은 엄밀한 의미의 순수 기부와는 다를 겁니다. 수원시와 수원시민에게 미술관은 당연히 환급받아야 할 수익이고, 이 수익에 현산의 브랜드인 아이파크 브랜드를 매달 이유가 없습니다.둘째, 기부의 규모로 보면 수원시민이 훨씬 큽니다. 현산이 지금 미술관을 짓고 있는 부지는 수원시가 시민 혈세 511억원을 들여 매입한 시민재산입니다. 현산은 511억원 짜리 수원시민의 공공토지 위에 300억원 짜리 건물을 지어주고는 ‘시립’과 ‘아이파크’ 명칭을 병렬시켜 놓은 것입니다. 주식회사 논리로 보더라도 누가 미술관의 주인인지는 확연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미술관 부지는 수원의 정체성이 깃든 화성행궁 바로 이웃한 핵심 요지로, 그 잠재가치는 511억원을 훨씬 상회합니다. 이런 땅에 기부채납시설을 제공하면서 브랜드 명칭을 매달고, 순수기부를 주장한다면 현산의 기업이미지와 회장님의 가치경영철학이 졸렬해질까 걱정입니다.셋째, 미술관 운영입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신생 미술관입니다. 수장고는 채워나가야 하고 각종 상설, 기획전시를 끊임없이 펼쳐내야 하지요. 그런데 비용이 문젭니다. 경기도미술관은 개관 이후 10년간 연평균 4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답니다. 결국 수원시립미술관을 미술관답게 꾸리면서 항구적으로 운영하려면 향후 천문학적인 시민 혈세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런 시설에 기부채납을 이유로 현산의 아이파크 이름이 붙어야 할까요. 그 미술관 1층 요지에 포니정 갤러리가 당당하게 입주하는 게 온당한가요. 당장은 300억원 들여 실현한 현산의 이익이 흡족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땅도 주고 천문학적인 세금으로 아이파크 미술관을 운영해야 할 수원시민들은 미술관을 출입할 때 마다 아이파크와 포니정갤러리를 불편하게 여길 겁니다. 현산에겐 두고두고 화근이 되기 십상입니다.정몽규 회장님. 최근 대기업들이 벌이는 면세점 경쟁의 한 복판에서 노심초사가 많으실 줄 압니다. 그러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문제, 결코 외면하실 사안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5-08-05 윤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