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담뱃값의 불편한 진실

세월호 참사 특별법을 둘러싼 국회 공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에 또하나의 매머드급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경기부양책으로 민심잡기 선봉장으로 나서 분위기를 타는 기세에 맞춰 "때는 지금이다"며 서민형 증세정책을 은근슬쩍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서민형 간접세인 담뱃값 인상도 모자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까지 내친 김에 정면 돌파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야당이 심각한 내홍까지 겪고 있는 마당에 정부 여당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는 최적의 환경마저 형성되고 있다. 담뱃값 인상은 역대 정권때마다 캐캐묵은 단골 증세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담뱃값 인상 이후 여당이 다음 총선이나 재보선, 심지어 대선까지 좋은 결과를 얻은 경험이 거의 없다. 그만큼 민감하고 서민들의 애환이 담배 한개비의 연기에 담겨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우리나라 담뱃값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싸고, 가장 비싼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6분의 1에 불과한 점을 생각해 볼때 인상안이 현실성이 없지는 않다. 더욱이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서민증세 딜레마에 빠져 애연캠페인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끽연가들의 상당수가 소득수준 대비 저소득층이 많다는 것이다. 일선 자치단체 보건소마다 무료 금연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하루벌이 생계형 서민들이 보건소에 드나들며 금연프로그램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금연에 성공한 애연가들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정부의 담뱃값 인상 발표는 장기간 경기침체로 국가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약한 간접세인 담배에 포인트를 뒀다는데 있다. 담뱃값에는 기초자치단체 지방세수 몫이 크기도 하다. 역대 정부때부터 누적돼온 복지포퓰리즘이 만들어낸 각종 복지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최근 자치단체들이 복지비 지급을 더이상 할 수 없다며 지급불능(디폴트)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정부는 당장 새로운 세원발굴을 할 수도, 모처럼 경기부양 시동을 건 마당에 기업을 옥죄는 조세법 개정 등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판단에 담뱃세와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원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조용한 서민증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담배를 끊으면 세금부담도 없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인류가 담배를 만든 이래 전 지구상에 금연인구가 얼마나 줄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담배는 마약과도 같다는 끽연 혐오론자들이 있는 반면 돈들여 힐링할 수도 없는 대다수 서민들은 담배 한개비에 화를 진정시키며 사는 게 현실이다. 담뱃값 인상분이 한꺼번에 너무 큰 것도 반발을 부추기고 있다. 100% 증액에 가까운 2천원 인상은 해도 너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2천원 인상액중 국세가 지방세보다 더 높게 책정된 것도 시빗거리다.담뱃값 인상을 통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해도 반면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며 오히려 소득 역진성이 나타날 수 있는데다 다른 물가에 직접적이고 가장 빠르게 영향을 준다. 자장면·라면 등 정부가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생필품목들의 도미노 인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결국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체적인 물가상승의 주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밀주를 만들어 먹던 과거 경험이 말해주듯 불법·짝퉁담배가 양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작 담배제조회사인 KT&G는 이번 담뱃값 인상정책에 아무런 대꾸도 없다. 국산 점유율이 외산 담배에 밀려 한때 54%까지 추락했다가 최근에야 60%대를 회복하고 있는 마당에 값싼 외산담배가 밀려올 경우 정부가 의도하는 복지재원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우는 범하지 않길 바란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9-17 김성규

북한이냐 북쪽이냐

호칭은 지칭하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 그 이름의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비하하는 차원에서 쓰는 별명에 불과하다. 그 호칭이 국가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특히 70년 가까이 갈라져 살아온 남북한의 국호에 얽힌 감정의 골은 꽤나 깊다.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1일 선수촌에 입촌한 북한선수단이 12일 첫날 훈련일정부터 거부해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인천시 연수구 축구연습장에서 오후 1시30분부터 훈련예정이던 북한 남자축구팀이 연습장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의 문구를 문제삼아 훈련을 거부했다. 현수막은 '북한 선수단을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북한'이란 표현이 문제가 됐다. '북한'이란 호칭은 잘못된 것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팀은 현수막이 철거되고 나서 한참 뒤인 오후 4시30분부터 훈련에 임했다.'환영'의 마음을 담아 쓴 '북한'이란 말이 정작 북한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거북스러울까. 북한 사람 특유의 자존심이랄 수 있다. 북한이 참여한 행사가 호칭때문에 사달이 난 경우를 몇개월 전 한 대학 교수에게 들은 바 있다. 명칭과 관련한 북한 학자들의 '자존심'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 학자들의 학술회의가 중국에서 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세미나 준비는 남한 대학에서 맡았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황당한 일이 빚어졌다. 북한 학자들이 호텔 세미나장에 들어서자마자 되돌아 나간 것이다. 이유를 물은즉 세미나장에 붙은 플래카드의 '김일성종합대학교' 문구 때문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맞는 것인데, 남한의 '○○대학교'처럼 '교'자를 붙인 게 화근이 된 것이었다.북한 사람들은 명칭과 관련해 유난히 민감하다. 특히 나라 이름이나 '김일성' 등이 포함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북한'이란 말은 휴전선 이북을 이르는 남한 사람들의 용어일 뿐이다. 나라 이름은 아닌 것이다. 북한의 공식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우리의 '대한민국'과 대비할 수 있는 국호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든, '한국'이라고 하든, '남한'이라고 하든 아니면 '남조선'이라고 하든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그 점을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우리가 유념할 필요가 있다.국호와 관련해 남북한이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국호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한이 '대한민국'이란 명칭을 얻은 것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면서부터다. '대한제국'의 '대한'을 계승한다는 차원이었다. 해방 직후 정부수립 시기에 '한' '고려' '조선' '대한' 등을 놓고 논란이 거셌는데 이승만 박사의 밀어붙이기가 통해 '대한민국'으로 굳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권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북한은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북한도 남한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만들었다. 글자가 많아 부르기에 불편한 감이 있지만 김일성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김일성의 권위를 넘어설 것은 없다.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국호를 비틀어 부르는 것은 곧 김일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는 '북쪽'이나 '북측'이면 괜찮다.인천아시안게임과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잇따라 치러지는 9월과 10월에는 통일 한반도의 국호는 어떤게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물론 응원단이 못 오게 된 북한팀도 응원하면서 말이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9-14 정진오

다시 북한 응원단을 기다리며

"아시안게임이 언제 열리는지는 몰라도 북한응원단이 오는 건 알고 있다."북한응원단의 2014 인천아시안게임 파견 소식이 전해진 후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응원단은 아시안게임의 최대 흥행요소로 압축됐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북한응원단은 아시안게임의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였다.아시안게임 개막일까지 보름 남았다. 이쯤되면 분위기가 달아오를 법도 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미치지 못하는 국민적 관심,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 등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개최 도시의 분위기치고는 기대에 한참 떨어진다. 여기에는 북한응원단 파견 무산 소식도 한몫 했을 것이다. 흥행 보증수표가 부도가 났다고나 할까?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아시안게임을 맞이하다 보니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해묵은 지혜가 떠오른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공자의 어록은 '정치'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초(楚)나라의 대부인 섭공(葉公)이 던진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변에서 유래한 말로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다.공자가 살았던 2천500여년 전 '정치란?' 주제로 오간 문답이었겠지만 이 말은 현대사회, 정치 외적인 부분에서도 적용 가능하리라 본다. 가령, 어느 음식점이 맛있으면 입소문을 타고 멀리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머리를 '잘하는' 미용실이나 의료서비스가 뛰어난 병원 등도 마찬가지다. 군주가 가까이 있는 백성들을 즐겁게 하면, 그 소문을 듣고 먼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치와 비슷하다.아시안게임에도 이러한 이치를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최도시를 관할하는 지방정부는 우선 도시의 구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이번 아시안게임을 '나의 즐거운 잔치'로 인식하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심지어는 정반대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매 수준의 입장권 판매가 난무했던 도시축전 등을 통해 '선행학습'을 한 탓인지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기업인들의 얼굴에서는 입장권 구입과 관련해 부담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즐거움은 커녕, 부담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물론 지역에서 벌어지는 메가이벤트에 기업이나 단체 등이 기여하는 것은 일정부분 필요한 일이지만 그 기여가 보이지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여러가지 정황이나 분위기로 볼때 지방정부가 '근자열'( 近者悅)에 그리 성공하지 못했음은 확실한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분위기를 반전시킬, 더 나아가 시민과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카드는 없는 것일까. 북한응원단 파견을 다시 성사시키는 것, 기자는 이를 '근자열'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꼽고 싶다. 북한응원단 파견이 성사된다면, 흥행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북한이 참가하는 경기의 입장권 판매가 탄력받을 수 있다. 아울러 남·북한 응원단이 어우러져 응원전을 펼친다면 인천을 평화와 화합의 도시로 세계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인천의 가치를 알려 세계인들이 인천을 찾는, 즉 '원자래'(遠者來)를 도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는 아시안게임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물론 북한응원단 유치를 위해 저자세로 협상에 나서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무리수를 두지 않더라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북한응원단 파견을 성사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북한응원단은 이번 아시안게임의 '대박'이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대박을 터뜨려주길 기대해 본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9-03 임성훈

북한 응원단과 남북 관계

북한응원단이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흥행의 보증수표임에 틀림없다. 이 북한 응원단이 인천에 오는 줄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측은 응원단 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의 대화채널부터가 좀처럼 서로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응원단 방한이 쉽지 않다. 북한 응원단이 온다고 해도 긍정적 효과만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기자는 북한 응원단이 참여한 한국에서의 스포츠대회를 세차례나 지켜봤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스포츠담당 기자로,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는 인천시청 담당기자로 현장에 있었다. 지나 온 대회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북한 응원단 참여와 그에 따른 남북 화해무드 조성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선다.2002년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북한은 9월 부산아시안게임에 대규모 미녀응원단을 보내 전국민은 물론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응원단 취주악단을 지휘하던 박미선씨와 북한 여자권총 사격팀 남선우 감독을 인터뷰할 때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또 북한선수단이 '영양탕' '뼈다귀 감자탕' 등의 간판을 보면서 '영양탕에는 무슨 재료가 들어가느냐' '감자탕에 웬 뼈다귀냐'면서 궁금해 하던 모습도 선하다. 당시 부산은 북한응원단 얘기로 가득했다. 특히 응원단 숙소로 쓴 만경봉호가 머문 다대포항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화해분위기는 며칠 가지 못했다. 북핵문제가 터진 것이다. 부산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시인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갑자기 얼어붙었다.이듬해 대구서 열렸던 2003하계유니버시아드에는 북한 응원단이 오기는 했는데, 분위기는 부산만 못했다. 대회 직전에 일부 보수단체에서 인공기를 불태운 일이 있었다. 북한측은 이를 문제삼아 대회 보이콧 방침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나서 유감을 표명하면서 북한의 대회참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대회도중 북한선수단의 고위관계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단 철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대구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오기는 했지만 2004년까지는 북핵문제가 세계적인 이슈였고, 이 때문에 북핵관련 6자회담은 늘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인천에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던 2005년에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핵개발 포기선언 등이 왔다갔다하면서 경색과 화해 국면을 오갔다.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던 때는 핵개발 포기선언이 있던 때였다. 인천대회 이듬해인 2006년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시끄러웠지만, 2007년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그리고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 총격 피살되면서 다시 한반도 기류는 냉각됐다. 최악의 국면은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으로 찾아왔다. 남북관계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남북관계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분위기가 냉온탕을 오갈 때는 그 사이클이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포츠와 응원단이 변곡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지금까지는 이렇다할 터닝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강 대 강의 기조를 유지한 채 7년을 흘렀다. 너무 오래가면 그대로 굳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인천아시안게임이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됐는지도 모른다. 냉각기류는 일단 풀고 볼 일이다. 거기에 북한 응원단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8-31 정진오

문화도 결국 돈이다

문화판에서 돈 타령하면 사이비로 몰렸던 시절이 있었다. 예술인들이 가난을 낭만인 양 즐기고 저항의 뿌리인 양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도 다르지 않다. 돈 되는 기획이나, 전주(錢主)의 후원으로 성공하는 공연기획자나 예술가를 백안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자본의 개입 여부를 예술의 순수성과 예술인의 자존심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기는 전통은 면면히 흐른다. 맞다. 한 사회의 문화나 한 시대의 정신을 그려내는 예술인들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거나 예속돼서는 안된다. 사회의 자화상과 시대의 정신이 왜곡되기 때문이다.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투입없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문화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다. 다만 문화분야에 투입되는 자본의 성격은 제한적이다. 독립성과 창의성, 자발성이 생명인 문화분야의 특성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자본, 즉 예산 투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민주화된 시대에, 문화는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다. 문화SOC를 확대하고 두텁게 하려는 정부의 지원은 당연한 일이 된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고 시행한 것도 이 때문 아닌가.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곳간이 비었단다. 많은 예술인과 예술단체, 문화기관들이 정부예산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목을 매며 줄을 선다. 하지만 매번 선착순에 밀려 꼴찌를 독차지하고 받아내는 돈은 푼 돈이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 문화SOC확충을 약속했지만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문화융성은 언어의 성찬으로 끝나고 문화판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니 공공이 아닌 민간 전주를 찾아 손을 벌려야 하고, 자본에 영합하고 소비자의 비위에 맞는 특정분야가 문화판의 주류로 떠올라, 문화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경기도는 지금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거의 매듭지었다. 순수 추가예산만 1조7천847억원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문화의전당 등도 손을 벌렸다. 십수억원에서 수십억원 규모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시설관리예산 몇억원 남기고 사업비는 거의 전액 삭감됐다. 교육청 및 시·군 법정전출금과 국고보조사업비 1조1천억원 가량을 떼어낸 뒤 우선사업을 헤아리다 보니 문화분야 지출은 힘들다는 결론이 난 모양이다.없다는데야 할 말이 없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는건가. 예산을 대신할 자본을 끌어올 행정력을 발휘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많은 대기업 본사들이 있다. 이 대기업들과 지역문화기관을 짝 지워 주는 행정은 어떨까. 기업은 사회공헌으로 빛나고 문화기관들은 안정적인 후원자를 얻을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조항을 활용하면 된다. 후속조치와 비전을 준비중인가?SK는 지난해 대형 문화예술공연센터를 수원시에 기부채납했다. '수원SK아트리움'이다. 같은해에 현대산업개발은 가칭 '수원아이파크미술관' 기공식을 가졌다. 역시 수원시에 기부채납된다. 아파트건설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협약을 이행한 결과다. 모두 300억원 짜리 건물들이다. 둘다 건물로 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들이야 어차피 환원해야 할 이득금 일부로 자기 이름 박힌 건물 건네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건네받은 수원시는 항구적인 문화사업과 관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두 건물을 유지하는 경상비용 만큼 문화사업 예산을 잘라내야 할 판이다. 두개 모두든 한개든 기금으로 받았으면 어땠을까. 현금으로 받을 방법이 없었다는데 묘안이 없었을까.주장의 골자는 이렇다. 정말 예산이 없어 문화판을 매번 뒤에 세울거라면, 민간자본을 공적영역으로 수혈할 행정력이라도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문화판은 매번 손가락만 빨라는 것이니 잔인한 짓 아닌가./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8-27 윤인수

인천 아시안게임을 기회로 삼자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얼마남지 않았다. 앞으로 25일이 지나면 인천에서 아시아 스포츠인들의 대축제가 열린다.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3번째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 45개국이 모두 출전해 진정한 '아시아의 잔치'로 펼쳐진다. 특히 OCA 45개 회원국에서 선수·임원 1만3천여명, 언론 관계자 7천여명 등 2만여명이 참여해 인천은 국제 도시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기회를 맞았다.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성적과 성공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90개 이상을 따내 5회 연속 종합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숙적 일본을 금메달 수에서 65-52로 제친 후 4년 전 광저우 대회까지 중국에 이어 4회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했었다. '거대 공룡' 중국을 뛰어넘지는 못하겠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은 홈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살려 중국과의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각오다.사실 중국을 넘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은 월등한 경기력으로 종합 1위를 유지해 왔다. 지난 3차례의 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 개수는 평균 172개다. 한국은 77개, 일본은 47개로 차이가 난다. 중국은 배드민턴·체조·탁구·역도 등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고, 금메달이 많이 걸린 육상과 수영에서도 강하다. 육상과 수영에 걸린 금메달 수는 각각 47개, 53개로 총 100개다. 육상과 수영에서 약한 한국이 중국을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전통적인 메달밭인 양궁·펜싱·사격·태권도 등에서 최대한 많은 금메달을 따낼 심산이다.이를 위해 국가대표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승리는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다' '월계관에서 흘린 땀, 인천에서의 승리로' 등의 문구 아래 선수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있다. 오는 9월 추석 연휴도 잊은 채 아시안게임만 생각하고 있다.이번 아시안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따라서 성적 못지 않게 아시아 국가들을 끌어안는 것도 중요하다. 올림픽경기나 아시안게임은 참가에 의미를 둔 나라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국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번 대회를 찾은 것이다. 한국과 중국·일본 등 3개 국가들이 치열한 메달경쟁에 돌입하는 것과 달리 메달 하나도 못 건지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을 반겨주고 보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 북한의 대회 참가도 우리가 챙겨야 할 부분이다.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선수 150명을 포함해 선수단 273명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하루가 다르게 남북관계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이번 만큼은 북한이 참가해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됐으면 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때 금메달 9개를 따내 종합 9위에 오른 북한은 12년만에 아시안게임 메달 순위 '톱 10' 재진입을 노린다.아시안게임은 체육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남북관계 분야에도 막대한 파급 효과를 미친다. 인천시는 경제적으로 17개 경기장을 새로 건설하고 도로교통망을 확충해 7조3천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가져왔다. 관광분야에선 숙박업·요식업·운수보관업 등이 호황을 누릴 것이고, 45개국 선수·임원·취재진 2만3천명, 외국인 관람객 20만명을 포함한 관광객 200만명의 소비활동에 따라 전국적으로 3조2천억원 상당의 경제효과도 노릴 수 있다.물론 대회운영·광고 등 다른 분야까지 합치면 인천아시안게임으로 인한 경제효과는 총 13조원에 이르고 고용유발 효과는 27만명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맞는 국민들의 열기다. 우리나라 선수 못지 않게 다른 나라 선수도 응원하고 존중해야 한다. 인기·비인기 종목을 떠나 경기장 곳곳을 찾는다면 그들은 한국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인천을 세계도시로 만들기 위해선 인천 아시안게임을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8-24 신창윤

우리에게 리더는 없는가?

영화 '명량'이 최단기간 관객수 1천5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우리사회 저변에 '이순신 열풍'이 다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사극이나 연극, 오페라, 영화 등이 단골메뉴처럼 등장했지만 영화 '명량'이 대박인기를 끄는데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장군의 충심이 포인트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명량해전은 전세계 해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가장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에서 '울돌목'이란 자연현상을 승자의 것으로 이용할 줄 아는 기민함과 전략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압권중 압권이다.영화평론가는 물론이고 사회평론가들조차 "명량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유쾌·통쾌·상쾌를 선사하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자고 나면 터지는 크고 작은 사고에 국민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가고 실타래처럼 얽힌 침체의 늪에 빠진 경기불황에서 탈출시켜줄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경제계의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 최고책임 CEO들을 비롯한 중견, 중소기업인들까지 너도나도 직원들과 영화 명량을 보며 심기일전해 무엇인가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만큼 장기 불황속에 내수 소비 부진으로 어느 업종 가릴 것 없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경기현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시기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한민국 전체를 울렸다. 아프고 소외된 약자들을 가장 낮은 자세로 보듬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말과 표정, 몸짓 등 여러 형태로 보여준 교황의 행보는 진정한 리더십을 곰곰이 되새기기에 충분한 5일이었다. 당신의 세례명인 프란치스코를 세월호 유가족에게 직접 내려주며 강한 메시지도 던졌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는 말씀이다. 다시말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어찌보면 다소 파격적인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 경제 소외계층들의 심금을 울렸다. 종교지도자의 말씀을 비약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교황의 이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대다수 국민들은 알고 있다.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 한달을 넘기면서 마른장마에 단비가 내린듯 부동산정책을 포함한 각종 경기활성화 대책을 쏟아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상태다. 최 부총리는 내친 김에 기업의 과도한 현금보유를 문제삼으며 투자하지 않으면 과세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내던지는 강수를 보이기도 했다. 정말 그런가 싶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되자 슬그머니 당초의 입장을 유연한 자세로 바꿨다. 한껏 기대에 부풀던 경제시장은 다시 관망세로 가는 분위기다.대한민국 경제성장 동력인 경기도 상황은 어떠한가? 도지사 취임 50일이 지났지만 연정과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 등 실험정치 강수로 조직체계조차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건설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지역 공동의무하도급 확대 등을 외치며 지역경제 질서를 바로잡아달라고 아우성이다. 또 유통 공룡 대기업들의 진입으로 도내 여기저기서 골목상권 붕괴로 지역경제가 다 죽어간다고 극렬 저항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이들을 지켜줄 리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옛말에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 말에 안주할 처지가 못된다. 그래서도 안 된다. 국가와 정부는 단 한 사람의 가난이라도 더 구제해야 한다. 해법은 상생이다.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과 소외계층간 소통의 창구인 리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들이 수백년전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환생을 꿈꾸며, 절대권위자인 교황의 소박한 리더십을 바라보며 울고 광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더는 외롭다. 그러기에 리더가 되는 것 아닌가?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강력한 리더의 탄생을 염원해본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8-21 김성규

이순신 프란치스코 그들의 리더십

임진왜란때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에 맞서 싸운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이 개봉 19일만인 17일 현재 국내 개봉작으론 처음으로 1천4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이순신 신드롬'에 빠졌다. 사회 곳곳에 여실히 투영되고 있는 리더십의 부재, 리더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성웅 이순신'에 한번 더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찬 백성,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불신에 가득찬 부하 장수들. 명량은 그런 백전백패의 환경속에서 바다를 지킨 이순신의 고뇌와 충(忠)을 그리고 있다. "충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는 신념. 이 메시지는 우리 위정자들에게 남기는 유언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첫 도입부엔 조선의 위정자들이 자기가 살기 위해 이순신을 투옥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조선 백성들이 느낀 위정자들에 대한 불신은 현재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위정자에 대한 불신 현상과도 오버랩된다.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사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인천지검은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과 한국선주협회로부터 입법로비를 받은 혐의 등 각종 의혹에 대해 19시간에 걸쳐 강도높은 소환조사를 벌였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서종예) 입법로비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은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김재윤·신학용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한 뒤 법리검토 중에 있다. 이들 의원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김민성 이사장으로부터 '직업학교'에서 '직업'이란 단어를 빼 달라는 입법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다. 철도비리·입법비리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검찰은 조만간 이들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방탄국회'를 열 가능성도 있다. 국회의원 스스로 치부를 감추고 보호해주려는 행태는 국민들에겐 익숙한 모습이다.세월호에 이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각종 군관련 사건·사고의 시발점이 된 '윤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서도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윤일병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육군 관계자는 "윤일병이 사망한 뒤 4일후인 4월 11일부터 28일까지 특별 군기강 확립 및 사고예방 점검을 실시해 육군 전 부대에 가혹행위 여부를 긴급 조사한 결과 3천900건이 적발, 가혹행위 경중에 따라 관련자들을 징계조치했다"고 밝혔다. 가해자 가운데는 일반 병사뿐 아니라 초급 간부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일병은 지난해 12월 입대해 올해 2월18일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를 받았고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3월3일부터 사망한 4월6일까지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윤일병을 상습폭행해 사망케 한 이모(27) 병장과 공범인 하모(24) 병장 등을 상해치사죄로 구속했다. 군검찰 구속대상자에는 이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 간부들은 없다.이런 시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신선함을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온 후 첫 메시지에서 네 가지 가치를 강조했다. 평화, 사람중심경제,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소통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가치들이다. 남북은 더욱 격화된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고, 경제는 이미 사람이 아닌 '최고'를 지향하는 수치 중심으로 변해 있다. 교황은 1등석은 물론 전용 휴식시설도 없는 일반 전세기를 타고 한국 땅에 왔다. 공항에서 대기중인 의전차량인 국산 소형차에 오르는 교황의 모습을 보는 순간 '화려한 차를 타고 싶다면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라'는 그 분의 말씀이 함께 전해졌다. 교황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우선 만나고 있다. 아직도 대통령의 수첩만 올려다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관료와 지도층 인사들. 소통을 위해 낮은 곳을 찾아다니는 교황의 소탈하고 개방적인 행보가 대한민국이 원하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8-17 이영재

교황이 반가운 진짜 이유

세계사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려운 과목이었다. 죽기살기 공부에 매달리지 않은 탓이려니와, 그 중 헷갈리기로는 동유럽과 중세 가톨릭 분야였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동유럽 역사는 수업시간에 대충대충 수박 겉핥기로만 진도가 나갔는데, 아마도 동서 냉전이 한창일 무렵 우리 교육이 공산권 국가들의 역사에 큰 비중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가톨릭 역사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선생님이 시험문제로 꼭 출제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놔가며 다그쳤지만 수업 내용은 도무지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우선, 수도 없이 등장하는 교황의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곤혹이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터에 클레멘스, 요한, 베네딕트, 그레고리오, 루치오 같은 이름들도 어려운데 그 뒤에 하나같이 3세, 5세, 7세, 13세…가 따라 붙었으니, 공부를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얼치기 학생으로선 버거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황제가 센지, 교황이 센지도 늘 헷갈렸다. 황제를 파문시키고 무릎꿇리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볼모, 포로 신세가 되기도 했다. 황제·귀족들과의 전쟁에서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교황은 세계사의 중심이자 핵심에 자리했다. 분명한 건, 권력투쟁 과정에서 성쇠를 거듭했으되 교황은 절대권력자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어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위는 아직도 절대적이다. 세속적으로는 면적 0.44㎢에 불과한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에 불과하지만, 신자 12억명인 최대 종교의 수장으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입법·사법·행정 전 영역을 망라한 통치권을 쥐고, 교회내의 모든 일을 이렇다 할 제재없이 결정한다. 교황이 곧 법이요, 진리인 셈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핫 뉴스다. 언론도 국민들도 환영 일색이다. 오랜 세월 세상을 쥐락펴락했고 지금도 여전히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교황'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가히 열광적 반응이다. 오바마니, 시진핑이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제쳐두고 미국 포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1위로 꼽은 인물, 교황이 된 후 세계적으로 '프란치스코 신드롬'까지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충분치 않다.교황은 지난해 취임 이후 첫 부활절 미사에서 '분쟁을 극복하고 화해의 정신이 커지도록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기도했고, 올해 신년 연설에서는 '한반도에 화해의 선물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한국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수차례 표현했다. 이번 방한 목적에도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순교자 시복식 외에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가 포함돼 있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일정도 잡혀 있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측의 알현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 깊은 교황이라는 점이 한국인들의 반가움에 일조한 듯하다.하지만 환대의 진짜 이유는 아무래도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사치와 교만, 권력에 반대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한 성자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른 교황은 지난해 성베드로 광장에서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한 남자를 안아주며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즉위식 참석을 원하는 이들에겐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라'고 했고, 옷자락을 붙잡고 머리를 만지는 '버르장머리'없는 꼬마에겐 예뻐 못 견디겠다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을 보냈다. 더없이 소탈하고 검소하면서도, 탐욕과 전쟁을 비호하는 세력들을 비판하는 데는 서릿발처럼 단호했다. 교회의 개혁을 교황직의 첫 과제로 삼을 만큼 내부적으로도 엄격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약자의 친구다. 오가다 마주치면 실없는 농담으로 환하게 웃어줄 것 같은 사람, 슬프고 가슴 아플 때 꼭 안아주며 함께 울어줄 것 같은 사람.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면서 스스로에겐 더없이 관대한 지도자들에 이골이 난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를 반기는 진짜 이유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8-13 배상록

군대내 폭력 모두가 책임질 일

남자들에게 군대의 추억은 평생 간다. 술자리나 모임에는 어김없이 군대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군시절 무용담과 고참에게 맞고 죽을 고생했다 등…, 서로 더 힘들게 군생활을 했다고 우겨대다 모두가 힘들게 군생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군을 전역한 기자도 한 편에 끼어들고 싶지만 공군은 군대도 아니라며 말문을 막아 버린다. 그래서인지 기자는 군대 얘기만 나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군대를 전역한 지 30년 가까이 됐다. 당시만 해도 선배들은 군대는 하루 일과를 얼차례로 시작해서 매로 끝난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이 안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부대내 폭력 얘기를 들으며 겁을 먹은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일부는 아프지도 않은 무릎 연골수술을 받거나 친인척 등 가능한 모든 '백'을 동원해 입대를 피했다.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군면제받은 사람을 '신의 아들', 보충역은 '장군의 아들', 현역 입영자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만큼 군생활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구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군문제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최근 들어 군폭력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GOP총기 난사, 선임병들의 폭행 사망 등 크고작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사실 군대내 폭력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군창설 이후 계속된 것이 군 폭력일게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사건들은 폭력을 묵인했던 과거에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과거에는 얼차례나 폭력을 휘두른 선임병들이 잠든 후임병을 깨워 약도 발라주고 PX에 데려가 먹을 것을 사주는 정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군대내 폭력은 조직폭력배보다도 더한 듯하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군대생활을 하고 있지만 동료로서 전우애도, 우정도 없이 말 그대로 묻지마식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처럼 군대내 폭력이 단순히 군생활의 불만때문일까. 지금의 군폭력이 군 생활만의 문제였다면 공공연하게 폭력이 이뤄졌던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심해야 했다.국방부는 지난 1987년부터 군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군생활 과정에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여론수렴함'을 만들고 수시로 면담 등을 통해 후임병들의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이같은 대책이 시행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도 군폭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오히려 더 잔혹해졌다. 왜 그럴까.군폭력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의 잘못된 군생활이 아니다. 각종 폭력성 오락과 개인주의화 된 인성, 학교생활 부적응 등 청소년기부터 시작된다. 결국 10대 청소년들의 학교폭력과 왕따문화가 군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군대는 청소년기를 겪은 이들이 모인데다 폐쇄적이고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후임병들에게 폭력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학창시절 폭력 등 비행을 경험한 사람이 군대내에서도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청소년기 폭력을 방조해 왔던 부모들도 문제다.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폭력에 관대했다. 친구에게 맞는 것보다 때리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경찰서를 출입할 당시 청소년 비행으로 경찰서에 들어온 아이들의 부모 대부분은 "우리 자식은 착한데 친구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말한다. 자식들의 폭력과 각종 비행에도 부모들은 관대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폭력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군폭력에 대한 책임을 놓고 시끄럽다.하지만 이것이 군대만의 책임일까. 청소년기를 잘못 가르친 부모와 학교, 이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 아닌가. 내 자식을 마음놓고 군대에 보내려면…./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8-10 박승용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넘어 '유신가립(有信可立)'으로

몇 해 전 이명박정부 시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리직에서 자진 사퇴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논어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밝힌 사퇴 배경이었다.20여일간의 치열했던 자질 검증이 몇 분간의 발표로 종지부를 찍는 것을 TV를 통해 접하면서 '신뢰의 가치'를 되새겨본 기억이 새롭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도자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불신'을 꼽은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서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되풀이됐던가.얼마 전 휴가차 시골에 내려가 지인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푼 적이 있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유병언 사망의 진실이 뭐냐"고 물었다. DNA 감식결과 등 국과수의 발표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다른 지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직업상 정보접근성이 좀 나을 것이란 생각에서 던진 질문이었을 터인데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별 생각없이 유언비어를 퍼나르는 10대 네티즌도 아니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학부모들이 공신력있는 기관의 발표조차 믿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어찌 보면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조그마한 술자리를 둘러싸고 온갖 설(說)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무신불립이란 말이 떠올랐다. 시대를 초월해 적용가능한 지혜가 네 글자에 함축돼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사실 '신뢰의 붕괴'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은 어마어마하다. 불신의 1차 발원지는 물론 세월호 사고 당시 단 한 명도 구조해 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다. 여기에다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검경의 부실한 대응까지 맞물려, 각종 의혹이 유입된 불신이란 풍선은 날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경찰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악성 게시글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풍선효과를 연상케 하듯 한 쪽을 제어하는 사이, 또 다른 쪽에서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시신 발견 당시 초기대응 부실로 유언비어 양산의 장(?)을 마련한 경찰이 유언비어에 맞불을 놓은 격이니 '자충수'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최근에는 무신불립의 양상이 군으로 옮겨붙은 모양새다."아들 낳은 걸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다" "부대 안에 CCTV를 설치해 매일 보고 싶은 심정이다."'윤일병 사망 사건'의 참상이 알려진 뒤 경기도의 한 보충대서 열린 첫 입소식에서 터져나온 장정 부모들의 푸념이라고 한다. "부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전화할 때 '여기 천국같다'라고 말하기로 하는 등 일종의 암호를 정했다"는 한 부모의 말은 한계에 이른 군에 대한 불신의 종결판이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그래서 더 바로 서야 할 군이 불신의 늪에서 중심을 잃고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국민적 컨센서스(consensus)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결정을 내릴 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신뢰받는 사람'은 지도자는 물론 정부·군·검경 모두에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무신불립 현상을 처절하게 체감해 왔다. 이제 무신불립을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돼야 할 때이다.개인적으로 무신불립이란 말에선 '○○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식의 다소 네거티브적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신뢰가 있으면 바로 설 수 있다' 식의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위안을 받고 싶은 요즘이다. 무신불립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 '유신가립'(有信可立)이라 부르고 싶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8-06 임성훈

영화 '명량'에서 얻은 교훈

영화 '명량'이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일 관객 100만명은 물론 개봉 나흘 만에 350만명을 넘어섰다. 조선 중기의 일대 사건 임진왜란(1592~1598년)을 배경으로 한 '명량'은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00여 척 적선을 궤멸하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대사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영화의 내용 중에서 이순신 장군의 아들 회는 아버지에게 "왕(선조)은 갖은 고문까지 하며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뒤 또 죽이려 할 텐데 아버지는 왜 왕에게 충성을 다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 장군은 "충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스포츠에 있어서도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그 팀이 망가지거나 혹은 발전하기도 한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전남 드래곤즈는 지난 1월 출정식 때 명량대첩의 격전지인 울돌목을 찾았고, 지난 1일 후반기 첫 경기를 앞두고 '명량'을 선수단 전원이 관람했다. 선수단에게 용기와 정신력을 주기 위한 구단의 생각이었다. 지난 6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졸전을 펼친 한국 축구도 새사령탑 영입에 고민 중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새 기술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선임했고, 이 기술위원장은 위원회의에서 ▲대륙별 선수권대회 경험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월드컵 예선 경험자 ▲월드컵 본선 16강 이상 성적 ▲클럽팀 지도 경력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 참여가능자 ▲고령 감독 제외 ▲선수 지휘할 때 영어 사용 가능자 ▲즉시 계약 가능자 등 8가지 조건에 들어맞는 후보를 찾았다. 그 결과 외국인 감독 3명을 최종 후보로 가려냈다. 대한축구협회가 발빠르게 사령탑 물색에 나선 것은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다.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도자의 됨됨이다. 누가되든 사령탑은 대한축구협회장과 기술위원장을 위한 인물이 아닌 진정 한국 국민들을 위한 자가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 선수 선발도 유명 선수와 힘있는 구단이 아닌 모든 선수들을 조사하고 분석해 적재적소에 맞는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 각 구단 및 지도자들도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한국 축구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일군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히딩크 감독의 가장 큰 리더십은 바로 공정성이었다. 기존자료를 타파하고 능력과 실력 위주로 선수를 뽑았다. 한국 축구의 학맥·인맥 파벌을 깨뜨리고 실력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팀을 꾸린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사상 첫 16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 뒤에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는 말로 선수들을 자극했고, 곧바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4강 신화를 이뤘다. 히딩크 감독은 이후에도 끝없는 '한국사랑'을 펼치며 지금까지도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실망적인 경기 모습은 분명 축구팬들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전에서 많은 비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5만113명의 관중이 운집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아직도 팬들이 한국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증거다.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이 26세 3개월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가운데 5번째로 젊은 선수들이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을 더 키워나가고, 새로운 유망주들이 가세한다면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에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 장군처럼 한국 축구도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원해본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8-03 신창윤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의 비전

오늘 아침 미디어 시장은 어제 치러진 재·보선 보도로 넘쳐날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선거결과 분석의 예리함을 다툴 테고,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평론가들의 고담준론이 별처럼 쏟아질게다. 하지만 문화담당 데스크 처지에서 지켜보자면, 선거는 '반문화적 퍼포먼스'일 뿐이다. 이번 재·보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판, 규탄, 야합, 패륜 등 살벌한 단어들이 여야 선거 캠페인의 핵심을 관통했다. 스토리와 감동도, 인격과 상식도 없었다. 정책과 공약이 있다지만 욕설의 강물에 휩쓸렸다. 반문화적 선거의 귀결은 유권자의 무관심과 냉소. 우리는 언제까지 반문화적 정치 퍼포먼스에 국민의 심력을 소모해야 하는가.토니 블레어는 1997년, 보수당의 18년 집권을 종식시키고 영국 총리에 취임했다. 노동당의 젊은 총리는 국가이미지 전략으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내세웠다. 음악·예술·패션분야 육성을 통해 젊은 영국의 이미지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3년 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총리에 취임하자 새로운 국가 이미지 전략을 제시하는데 '올드 브리타니아(Old Britannia)'가 그것이다. 고성, 박물관 등 영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활용해 영국의 관광산업을 중흥시키겠다는 문화전략이었다. 그럼 '쿨'과 '올드'가 부딪혀 '브리타니아'는 엉망이 됐을까? 아니다. '쿨 브리타니아'로 영국의 대중문화와 관련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올드 브리타니아'는 영국의 고성에 개발도상국 여행자들을 가득 채웠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뿐, 영국 정부는 특정 문화분야를 정책에서 소외시키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부러운 건 블레어와 캐머런이다. 문화를 통해 자신의 치세에 어떤 영국을 만들지 선명하게 제시한 문화적 식견과 자질을 가진 정치지도자. 정치인의 문화적 식견과 자질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외치며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드물다. 매달 문화가 있는 수요일 하루로 문화융성이 이루어진다면 기적이다. 법으로 문화진흥을 강제할 수도 없다. 문화가 한 민족이 한 시대를 살아내는 삶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인식으로 전환해야 문화진흥은 가능해진다.경기도 공직자들이 문화인식 패러다임을 이렇게 바꿀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라는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지방문화는 중앙의 문화정책과 예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경기도의 문화행정이 중앙정부의 문화행정을 견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비전이다. 경기도의 문화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조선왕릉,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경기도내 도시와 농촌에는 날마다 새로운 창작집단이 세워지고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안양과 같이 공공예술분야를 선도하는 곳도 있다. DMZ는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회복될 것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자치단체이면서, 문화갈증에 시달리는 신세대 거주자들이 넘쳐난다. 경기도의 문화 잠재력은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에 지도자의 문화적 비전과 이를 실행할 열린 조직이 합쳐지면 엄청난 문화적 에너지 창출이 가능하다.작금의 현실은 이와 달라 마음이 서늘하다. 도지사 취임후 도내 문화기관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남는 자와 오는 자에 대한 선이 불분명해 행정의 공백이 심했다. 그 과정에서 낯 뜨거운 중상과 음해가 돌았다. 또 몇몇 기관의 통폐합 문제는 순전히 행정편의나 재정논리 수준에서 거론되면서 종사자들의 사기를 죽이고 있다. 이같은 진통이 경기도의 문화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방권력 교체기 관행의 답습이니 답답한 일이다.남경필 지사가 강조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상생의 정치는 우리 사회의 문화역량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경필 지사가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에 대한 비전을 세워주기 바란다. 전국에서 인재가 몰릴 것이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7-30 윤인수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유병언의 주검이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발견되고, 그 사체가 유병언이 맞는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까지 나서서 유병언의 죽음을 확인해 주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말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너나없이 지난주 유병언 사망관련 소식을 접하고 황당해 했다. 수사의 지휘부인 인천지검이 있는 곳에서 기자생활을 하니 좀 더 많이 알게 아니냐면서 "진짜 유병언이 죽은 게 맞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 온 국민을 경악에 빠뜨린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받아 온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엉뚱한 방식으로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 4월16일의 세월호침몰 사고 역시 믿기지 않게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유병언의 죽음을 확인해 준 것은 유전자 감별이었다. 그 유전자 감별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한반도 호랑이 역사를 되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멸종된 한반도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은 국내에서는 목포의 유달초등학교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 교토의 도시샤 고등학교에 있는 박제 호랑이가 조선 땅을 주름잡던 것이란 사실이 밝혀져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 있는 이 호랑이 표본은 1917년 11월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라는 일본의 거부가 호랑이 사냥을 했을 때 잡힌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성장과 함께 부를 축적한 야마모토는 조선의 탄광업 등에도 손을 뻗쳤다. 그 야마모토는 거액을 들여 조선의 호랑이 사냥을 기획했다. 호랑이 사냥팀의 이름도 군대의 명칭에나 어울리는 '정호군(征虎軍)'이라 붙였다. 박제가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호랑이는 야마모토의 사냥팀에 배속돼 있던 조선인 포수에 의해 죽은 2마리 중 하나다. 이 표본 호랑이의 DNA는 포획 100여년 만에 한반도에 다시 돌아와 그 계통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일본 도시샤 고등학교에는 이 호랑이박제 말고도 호랑이 골격과 표범박제, 표범골격 등 4점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당시 조선에서 호랑이 2마리와 표범 2마리를 잡아갔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호랑이 2마리를 누가 언제 어떻게 포획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야마모토는 조선 최고의 포수 10여명을 동원했는데, 그들 중 백운학과 최순원만이 1마리씩의 호랑이를 잡는데 성공했다. 야마모토는 사냥의 전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린 '정호기(征虎記)'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세월호사고가 있었던 지난 4월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야마모토는 그리고 거금을 들여 만든 이 박제품을 후세를 위한다면서 학교에 기증했다. 한반도 호랑이 멸종의 가해자이기도 한 야마모토가 남긴 이 호랑이 표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호랑이 연구의 자산으로 남았다. 이렇듯 호랑이마저도 그 죽음을 귀하게 남길 줄 안다. 가죽과 뼈만 남았을 망정, 그리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을지라도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야 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일진대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병언의 주검은 유병언의 것이 맞는다는 것만 증명했을 뿐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여전히 미궁이다.세월호 사고처럼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전쟁 등 극히 비정상의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그 책임을 정확하게 묻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원혼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병언의 생포는 중요했다. 검·경의 이번 사건 수사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유병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인해 세월호 참사의 본질적 책임 추궁도 난감해졌다.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단죄의 대상마저 믿기지 않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한반도에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만 남긴 채 말이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7-27 정진오

최경환식 '경제야 놀자'

유병언이란 보잘것 없는 노인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 지 몇 달째다. 결국 순천 야산 매실밭 기슭에서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초췌한 시체로 신병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갖가지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각 쇄신 차원에서 물갈이한 후임 장관들에 대한 청문회로 또 몸살을 앓고 있고 국가 기강이 안정모드로 정착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더 소비될 전망이다.이런 와중에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은 신임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이 취임일성으로 던진 한마디에 경제계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다름아닌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있는 부동산정책'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최경환노믹스, 최경환효과로까지 확대 해석된 최 부총리의 한마디는 경제계 전 분야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특히 부동산을 포함한 경제정책 운용에 바퀴의 한 축과도 같은 기준금리에 대한 민감한 부분은 한국은행 총재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주열 한은 총재와 조찬회동을 갖는 등 대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금리의 금(金)자도 언급한 적 없는 통상적인 상견례 조찬자리였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경제계는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유로존이나 일본·중국까지 금리인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언제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고금리 동결정책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다. 내수경제는 얼어붙어 소비심리 위축으로 모든 경제지표가 하향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마당에 누구나가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박근혜 내각 2기 경제사령탑에 오른 최경환 부총리는 이런 맥락에서 비판과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관록의 정치인다운 큰 틀의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노무현정부 때 도입된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 또는 철폐를 약속했다. 시장의 반응은 기다린 듯 후끈 달아올랐다. 주가가 2천28로 올들어 최고치를 경신하고 기업들 특히 주택건설업계가 분주히 움직이며 그동안 창고에 처박아 뒀던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들고 투자처를 물색하는 등 마치 개발광풍이 금세 불어닥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내친 김에 최 부총리는 경제5단체장과의 연대회동을 갖는 자리에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과도한 현금에 대해 과세를 하겠다"는 폭탄선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곳간에 쌓아둔 현금이 무려 518조원으로 5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이나 다름없다. 기업을 옥죈다는 볼멘소리를 피하기 위해 최 부총리는 "무조건적인 징벌과세가 아니라 보유현금을 신규투자나 주주배당, 임금 등으로 풀라는 의도였다"고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내려준 모양새가 돼 버렸다. 사실 기업 오너들이 신년 초에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천편일률적인 신년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최근 수년 동안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최 부총리의 의도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나라가 살려면 기업의 과감한 선투자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범한 경제순환 이론을 역설한 것이다.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최 부총리의 일련의 말들은 아직 법과 제도 등 규범의 틀 안에서는 변화된 게 없다. 그동안 먹먹한 가슴을 쥐어잡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침체된 경제계가 특히 부동산 및 건설업계가 '비록 말 한마디라도 숨을 좀 쉴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국내외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강경노선을 고집하자 아베노믹스 경제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24일 예정된 하반기 경제정책에 온 국민이 '이번엔 진짜 뭐가 좀 나오려나' 하고 관심을 쏟고 있다. 너무 침체된 대한민국 특히 경제성장 동력인 수도권 마당에서 크게 한판 놀아보는 큰 장이 펼쳐져야 한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7-23 김성규

리더의 조건

지금은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 홉킨스의 설립자인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1858~1943). 산부인과 의사로 미국에선 처음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성공하면서 유럽에 뒤처져 있던 미국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또 '무료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푼 배려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우유 한 잔에 얽힌 하워드 켈리의 일화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대학시절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그가 방문판매를 하던 어느날 허기진 배를 채우려 한 집에서 물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집에서 나온 여성은 '우유 한 잔'을 내밀었다. 우유를 마시고 어떻게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그에게 여성은 '친절을 베풀 때는 절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훗날 하워드 켈리는 의사가 됐다. 하워드 켈리는 어느날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희귀병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그 환자는 다름아닌 '한 잔의 우유'를 건넸던 여성이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환자는 완치됐고, 병원비 걱정을 하던 여성이 받아본 청구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그날 한 잔의 우유로 모든 비용은 지급되었음'. 한 잔의 우유로 인해 하워드 켈리는 환자를 우선 배려하는 권위있는 의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하워드 켈리와 의사 이길여(李吉女·가천대 길병원 이사장)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의사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다. 그리고 병원을 설립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려운 이들에게 차별없는 의술을 베풀 수 있는 '무료병원' '보증금없는 병원'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한 이들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겐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 1958년 인천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연 이길여 이사장은 보증금 없는 병원을 표방했다. 선금이 없으면 입원도 못 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보증금을 안 받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몰렸다. 치료를 받고도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환자도 많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농사지은 감자·고구마·쌀 등의 수확물이나 인천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망둥어 등 어획물을 들고 찾아와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 앞마당엔 지역특산물이 가득 쌓였다. 이 이사장의 배려의 크기만큼 보답이 이어졌던 것이다.세월호 사고 수습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순직한 고 정성철(52·소방령) 기장 등 소방공무원 5명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광주 도심에 추락하는 순간에도 사고 헬기는 대형 참사를 막으려는 기장과 부기장의 끈질긴 사투로 아파트 단지·상가 등 인구 밀집 지역을 간신히 피해 수직 낙하한 것으로 추정됐다. 마지막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한 이들에게 훈장이 추서됐다. 반면에 아직 대한민국에는 '봉사'를 근본으로 삼아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부적격자'들이 일부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키고 먼저 빠져 나온 선장, 빌린 돈 때문에 채권자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서울시의원, 공천헌금을 비롯한 해운비리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회의원 등등. 이들과 연관돼 매일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은 국민적인 불신을 조장하고 박탈감마저 주고 있다. '봉사'를 저버린 '부적격자들'에게 사법부는 종종 사회봉사활동을 명령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배려와 봉사'를 사회를 이끄는 근간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공자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제자 자장에게 '5가지 미덕(五美)과 4가지 악덕(四惡)'을 일러줬다. 공자는 5가지 미덕 중에 첫째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4가지 악덕 중 마지막을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놓고 온갖 생색을 내며 주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은혜 베풀듯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많아졌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무엇보다 중요한 리더의 조건이라고 오래 전부터 가르친 공자가 헛심만 쓴 것이 아닌지 씁쓰레하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7-20 이영재

여검사

얼마전 검찰에서 조용한 행사가 하나 치러졌다. 검찰 릴레이 포럼. 지난 2월 출범한 대검 여성정책팀이 마련한 이 행사에는 지난 2005년 수원지검에서 조직폭력 범죄를 맡았던 정옥자 검사를 비롯해 여성 최초로 특수, 공안, 강력, 기획 분야를 전담했던 여검사 4명이 나서 후배들에게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난달, 첫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여성검사, 대선배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후배들에게 강연한 데 이어 두번째다.대한민국 검찰에서 여성 검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7%, 검사 열명중 세명은 여성이란 얘기다.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500여명중 여성이 18명에 불과한 상황이니, 실제 수사현장에서의 체감 비율은 더 높아진다. 지난 2009년 사법연수원 수료 신규 검사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이후 검찰의 '여초(女超)'현상은 이제 표현 자체가 진부한 상황이 됐다.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지금에야 도통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내몰리기 십상이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이 별 거부감없이 통용됐던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여자가 무슨' 한마디면 주변사람들 대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당사자인 '여자'들은 이같은 편견에 맞서며 기껏해야 '그 여자 참 지독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정 검사가 회고하듯, 당시 수원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 '여자에게 걸리면 망신이니 싸움을 하지 말자'는 자정 결의까지 나온 것도 맥은 좀 다르되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여성비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성인 검사는 여전히 '여검사'다. 수년전, 내연관계였던 남성 변호사로부터 승용차와 핸드백을 선물로 받아 물의를 일으켰던 여성 검사는 '벤츠 여검사'로 지칭되며 온갖 지탄을 받았다. 사건의 본질은 검사로서 수사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과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였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보단 이 검사의 사생활, 해당 변호사와의 관계에 모였다. 젊은 여검사였기 때문이다. 여성 검사들의 수사상 성과나 실적들도 대개는 섬세함, 온정, 부드러움 같은 수식어와 함께 '여검사'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허다했다.7·30 재보선에서도 여검사가 화제다.수원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미경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백혜련 후보는 같은 대학·사시 1년 선후배 관계로, 둘다 검사 출신이다. 검찰을 떠나는 과정도 엇비슷했다. 정 후보가 노무현 정부시절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비판하는 책을 발간하고 검사직을 그만뒀다면, 백 후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대구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정치 검찰이 부끄럽다"며 사표를 냈다. 각각 여야로 나뉘어 상반된 길을 걷게 됐지만, 둘다 상명하복의 검찰내에서 권력에 맞서 옷을 벗었다는 공통의 개인사(史)를 갖고 있다. 이번 재보선이 거물 대 신인, 토박이 대 낙하산 등등의 구도를 형성하며 나름 열전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선 이 '여검사간 대결'이 자못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여당의 과반의석 회복에도, 야당의 세월호 민심 이어가기에도 그닥 관심없는 유권자들에게, 그것도 삼복지경 휴가절정기에 치러져 투표율을 걱정해야 하는 재보선에서 그나마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매치가 성사된 셈이다.기왕이면 이 재미있는 대결이 가뭄의 단비 같은 흥행성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구태와 이전투구가 판치는 게 작금의 선거판이었다면, 적어도 이 두 후보의 대결만큼은 권력의 부당함에 맞섰던 검사의 기개를 겨루는 장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해 범죄꾼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수십년 검찰의 폭탄주 회식문화까지 바꿔버린 여검사들의 힘이 이번 선거에서 재연된다면, 아직 이 사회 어디엔가 발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자가 무슨…' 따위의 편견은 남자들의 비겁한 자기합리화였을 뿐이란 걸 다시 증명하게 된다. 대한민국 여검사 출신다운 정정당당한 승부라면, 유권자가 누구를 택하든 두사람은 모두 승자가 된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7-16 배상록

'짜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 국민만 멍들어

십여년 전 '세상은 요지경' 노래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국민들의 눈에 정상이 아닌 가짜만 판치는 세상을 풍자한 가사에 소위 막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의 표정은 정말로 요지경 세상을 묘사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등의 가사는 당시 말 못하고 답답해 하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노래로 털어버리게 했다. 이 노래가 유행하던 당시에는 IMF 여파가 지속되면서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회 어느 것에서도 위로받지 못해 마음 둘 곳 없어 힘들어 하던 시절이었다.만나는 사람마다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꾸로 가는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또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이 사회 모든 것이 요지경이다. 지금 이 나라에 국민들은 없는 듯하다. 정치권은 정치권, 사회는 사회 나름대로 지도자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국민은 완전히 배제됐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라는 존엄한 이름이 팔리고 있다.지금 요지경 같은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각종 부패로 시작된 세월호 참사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수백명의 생명을 잃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눈치만 보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정쟁만 벌이고 있다. '세월호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며 국민들은 더 답답할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유가족과 국민들의 아픔은 기억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청문회에도 서지 못한 채 사퇴했다.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7·30 보궐선거 공천은 더 요지경이다.여·야 모두 전략공천 명분으로 자기 사람 심기에만 급급했다. 유권자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논리와 명분을 앞세워 국민들을 농락했다. 그래 놓고 유권자들에게 뽑아 달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움이 요지경이다.더 요지경은 그러고도 자기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이란다. 사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유병언 전 회장을 수사하는 검찰은 어떤가. 대한민국 검찰이 두 달이 넘도록 행방도 모른 채 뒷북만 치고 있는 모습도 요지경이다. 기소 만기일이 채 2주도 안 남았는데 오리무중이다. 검찰은 무작정 잡겠다고 말하지만 계획이나 대책은 없다. 그저 재수에 맡길 뿐이다.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GOP에 근무중인 장병이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초소장이라는 간부는 자기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치는 어처구니없는 일 또한 요지경 아닌가.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끌고 있는 사제는 '꽃동네'가 일종의 큰 강제수용소 모형이라며 교황의 방문을 반대했다. 국민 대다수가 '꽃동네'는 소시민이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사제들은 이곳이 수용소로밖에 비치지 않는 모양이다.요지경은 월드컵 축구 대표팀에서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힘들어하던 많은 국민들이 월드컵 축구를 통해 위로받기 원했다. 사상 최강팀이라는 떠벌림에 국민들은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했고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에 국민들은 실망했지만 4년 후를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그런데 웬 요지경!!! 국민들이 실망하는 동안 브라질 현지에서 선수단은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것도 현지 여성까지 불러놓고…. 국민들은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았다.그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의 모습은 안 보였을까. 사회 전체가 온통 요지경이다. 그저 국민의 이름을 팔아 가짜만 판치고 있다. 이 사회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요지경 세상속에 국민들의 가슴은 점점 멍들고 있다./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7-13 박승용

한국 축구 기적을 바라는가

답이 없다. 뒤로 가는 한국 축구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를 당한 수장은 '자기 책임이다'면서도 끝내 그만두지 않았고, 한국 축구의 총괄적 책임자인 대한축구협회도 이번 월드컵 책임론에 대해 얼버무렸다.한국 축구는 그동안 아시아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실력이 낫거나 전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바로 선수들의 '투혼'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투혼'은 끝까지 싸우려는 굳센 마음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를 기억한다. 당시 선수들의 투혼은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는 난공불락(難攻不落)과도 같았다. 선수들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인 '기적'과도 같은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한국 축구는 월드컵 때마다 전력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줬다. 2002년까지 월드컵 1승과 16강 진출은 국민적 염원이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이 마침내 이뤄졌고, 이후부터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 원정 1승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한 한국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승부사' 허정무 감독을 앞세워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그러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은 이전 한국 축구가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선수들의 투혼은 찾아볼 수 없었고, 경기력과 개인기술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과 남미를 따라잡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밝힌 '모두가 그라운드에선 리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수들은 경기때마다 당황했고, '무색·무취 전술'과 특징없는 세트피스 전술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1무2패) 이후 16년 만에 '조별리그 무승'의 악몽을 재현했다. 게다가 아시아 무대를 호령하던 강한 정신력과 체력도 이번 월드컵에선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됐다. 그 결과 한국은 1무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사상 최악의 졸전을 펼친 대표팀에 일부 팬은 인천국제공항 해단식에서 호박엿을 투척하기도 했다.그럼에도 대한축구협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느낌이다. 최악의 성적을 거뒀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사령탑도 유임시켰다. 협회 부회장은 "모든 질책을 달게 받겠다"면서도 '성적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회피했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는 완벽에 가까운 사조직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 밀실논의·불통행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수차례 나온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가맹경기단체지만, 국고 지원금이 협회 예산의 1%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으로 다른 종목의 경기단체와 달리 강도 높은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협회는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승인없이 보고만으로 협회 헌법에 해당하는 정관을 개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미 상업주의적으로 흐른 FIFA는 국가나 정치권이 회원 협회의 행정에 개입하면 자격을 정지하거나 박탈해 A매치를 치를 수 없도록 제재하고 있다.이런 이유에서 축구협회는 막강한 권한과 예산을 사용한다. 기업체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협회 예산을 늘리고, 지방자치단체에는 국가대표팀 친선경기(A매치) 유치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요구하기도 한다.그러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야 하는 팬들이 등을 돌렸다는 점은 결코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참패의 책임소재와 관련한 답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사실,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비판장인 자유게시판을 최근 폐쇄했다는 사실 등은 한국 축구가 분명 뒤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일본과 이란은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했고, 이탈리아는 축구협회장까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본은 아예 새로운 감독을 확정해 일찌감치 4년 뒤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고도 한국 축구가 기적을 바랄 수 있을 지 의문이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7-06 신창윤

'굿모닝! 경기도' 문화로 열자

경기도정의 수반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1일 취임식을 갖고 직무 수행에 들어갔다. 그는 취임사 머리말에서 "일자리가 넘치는 안전하고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굿모닝 경기도로 경기도민의 아침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광고카피처럼 달콤하다. 백문(百文)이 무슨 소용인가. '아침이 행복한 삶'이면 더 바랄게 없다. 이 시대에 아침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기는 힘들겠으나 짐작은 어렵지 않다. 세대와 계층에 관계없이 미로와 같은 경쟁구조에 갇혀 맹목적인 질주를 강요당하는 현대인에게 '아침이 행복한 삶'은 오매불망 바라는 염원이다.경기도민의 아침이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남 도지사는 일자리와 안전, 그리고 따뜻함을 앞세웠다. 일자리와 안전은 행정적으로 추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이자 그 성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일자리는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던 최고의 정책 목표였다. 호구지책이 있어야 행복한 삶의 조건이 충족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니 중언부언이 필요없다. 안전은 세월호 사고 이후 새롭게 등장한 화두이다. 압축성장과 이를 뒷받침해온 비리구조가 구축한 총체적 부실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에 이르렀으니, 안전은 행복의 새로운 전제가 됐다. 남 도지사 역시 일자리와 안전을 빼놓을 수 없었을 테고, 약속의 실천과 실현은 엄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그런데 '따뜻한 경기도'에 이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따뜻한'이라는 단어는 구체적이지도 않고 계량화도 힘든 형용사이다. 정치인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언어를 가능한한 삼가는 것이 맞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선명하고 선동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지사는 왜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했을까. 짐작컨대 '따뜻한'이라는 형용사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남 도지사는 당리당략과 저주의 언어로 굴러가는 정치판에서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의 주장은 옳았지만 현실 정치는 완고했다. 덕분에 개혁소장파의 리더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얻었지만, 그 탓에 비주류의 한계를 겪어야 했다.남 도지사는 이제 정치의 장에서 행정의 장으로 마당을 옮겨왔다. 정치의 장에서는 소수 개혁파의 리더로서 한계가 있었다면, 행정의 장에서는 자신의 개혁구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최대의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 아닌가. 기회가 온 것이다. 도정에 야당을 참여시키는 여야 연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승자독식의 희열을 반납하고 여야 동거의 고단함을 스스로 짊어졌다. 소모적이며 의미없는 정쟁이야말로 반민생이라는 깨달음의 결과라 믿는다. 남경필 정치의 요체는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케하는 따뜻한 정치이고, 이런 정치철학을 도정철학으로 전이시킨 것이 바로 '따뜻한 경기도'인 셈이다.문제는 '따뜻함'을 실현하는 일이다. 추상적이고 감성적이며 주관적인 '따뜻함'을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어 '느낌' 이상의 '실체'로 보여주어야 한다. 남 도지사는 따뜻하고 복된 마을공동체, 일명 '따복마을'을 6천개 만들겠다는 실천계획을 내놓았다. 사람 사는 정이 넘치는 마을공동체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이에 덧붙여 문화를 따뜻한 경기도 만들기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를 권한다. 문화향수권만큼 행복한 삶을 증거하는 강력한 지표도 없다. 또한 문화는 인간의 체온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분야이다. 도내 곳곳에서 늘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아,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인간적인 여백을 늘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 대규모 문화시설을 건립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인들이 크고 작은 공연을 쉼 없이 펼칠 수 있는 행정적 후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달에 한번 정도는 크고 작은 문화현장에서 넥타이 풀고 도민들을 만난다면 경기도정의 따뜻한 정도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굿모닝 경기도! 문화로 열어주길 희망한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7-03 윤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