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정복,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으면

엊그제 언론계 한 선배와 저녁을 함께했다. 얘기가 자연스럽게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에게로 넘어갔다. 유정복 당선자가 어떻게 시정을 펼쳐야 할 것인지가 대화의 핵심이었다. 몇 년 전 방송사 기자로 정년 퇴직한 그 선배는 인천과 서울의 지난 일과 오늘의 사정에 두루 밝은 편이다. 그 선배가 말한 '좋은 시장상'이 참 맘에 와닿았다. 그것은 '좋은 이웃'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다. 의외로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시장론이지만 생각해보면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 되기란 정말 어려울 듯하다.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인천시정을 이끌었던 안상수 전 시장은 누구보다 많은 일을 벌였다. '국제도시 건설'이 콘셉트였는데, 그 정책 결정 스타일은 독선적인 데가 있었다. 원로 그룹의 지적도 무시할 때가 있었다. 원로들의 비판적 시선을 전해줄 때마다 그는 토론을 거쳐 여러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하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우선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안상수 전 시장은 결국 3선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송영길 시장도 지난 4년 동안 '인천을 대한민국의 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캐치프레이즈가 시민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2명의 전임 시장에게서 살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좋은 인천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 속에는 '나만이 좋은 인천을 만들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스며있다.인천시장이 시정의 최종 결정권자라고 해서 '나는 시민들을 끌고 나가는 존재'라고 여기거나, '시민에게 좋은 인천을 만들어 주겠다'는 식의 발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민을 어깨를 두른 동반자로 여기는 게 아니라 시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장은 자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치중하고, 자신의 입지를 키워 정치적으로 더 큰 꿈을 이룩하기 위한 행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물론 안상수 전 시장이나 송영길 시장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그러면 역대 시장 중 최고의 시장은 누구일까. 그 선배는 박배근 전 시장을 최고로 꼽았다. 인천시장에 이어 대구시장으로 발령받아 갔는데, 인천지역 유지들이 감사패와 함께 전별금까지 챙겨 준 첫 시장일 것이라고 했다. 박배근 시장이 인천에 재임한 것은 1986년 1월부터 1987년 5월까지 고작 1년4개월에 불과하다. 선배는 박배근 시장이 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지 두가지 예를 들었다. 하나는 가난한 동네의 후미진 뒷골목까지 포장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다고 했다. 주안역 앞의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박배근 시장의 단골 술집이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손님 박배근이 주인장에게 "내일은 댁에서 쉬세요. 나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하고는 했는데, 그날이 불법 포장마차 단속하는 날이었다. 이걸 갖고 '단속 정보 누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걸 갖고 시장이 불법 포장마차를 조장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내일이면 인천시장에 취임하는 유정복 당선자도 선거 과정에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내가 만들어서 시민에게 준다'는 것인데, 본인이 부인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나'가 '시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란 누구 하나가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섞여 있어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웃이다. 유정복 당선자는 시민을 자신과 구분하지 말고 시민 속으로 들어가 시민과 섞이기를 바란다. 물론 27년 전과 지금의 인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당시 인구가 144만 명에 불과했으니 꼭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민이 원하는 '좋은 시장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뜻한 이웃 같은 유정복 시장'을 기대한다. 너무 소박한 바람일까./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6-29 정진오

도민은행 설립추진에 부쳐

'사회통합·야당과 연정·안전 경기도…'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경기(京畿)라는 명칭이 사용된 1018년 고려 현종 이후 천 년의 경기도정 역사 이래 처음 시도하는 임팩트(IMPACT)가 강한 제안들을 연이어 내놓아 화제다. 5선의 국회 정치경험을 토대로 차분히 준비해 온 자신의 구상을 과감하게 쏟아내고 있다. 민선 6기까지 6번의 도백을 뽑아 온 도민들은 이런 남 당선자의 행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남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그의 통 큰 결단과 직설화법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의 경제원동력이자 성장의 핵심 축인 경기도는 40대 젊은 도백의 출현으로 여야가 상생하고 민의가 직접 상달되는 새로 짜는 백년대계 지방자치의 모범적 모델을 꿈꾸고 있다. 특히 남 당선자가 이런 모델의 첫 실행작으로 정·관·재계 및 사회 저변에까지 깊숙이 만연된 '관피아' 척결을 제일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추진 과정에서 당선자 개인의 의욕과 주관만이 지나치게 강해 자칫 옥석 구분없는 획일적 강공 드라이브가 오히려 관피아 척결의 순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 틀을 마련하는 데 저항세력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여하튼 남 당선자의 새로운 행보가 신선함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남 당선자의 직설 화두 중 경제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제안이 있다. 1998년 문을 닫은 당시 '경기은행'인 지방은행 부활이다. 가칭 '경기도민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당선자의 깜짝 일성은 일약 금융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출사표를 던지면서 선거 공약리스트에 올라 있었지만 도정 혁신위원회에서조차 장기 추진 과제로 미룬 뜨거운 감자였다.지역 금융계의 상황은 대체로 이렇다. 경기도청을 비롯해 도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수원시(기업은행)를 제외한 나머지 30개 시군의 금고가 모두 농협은행이다. 과거 경기은행 존립 당시 경기도와 일부 시군의 금고가 있었지만 경기은행 퇴출 이후 모두 농협은행으로 넘어간 것이다. 점포 수와 인력 운영능력 등에서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조직을 거머쥐고 있는 농협을 상대로 남 당선자가 경쟁구도를 펴겠다는 사실상 전쟁선포로도 여길 수 있다.설립안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취임 첫 해에는 가칭 도민은행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년 임기차에 2천억원 목표의 재원조달 및 기금 조성, 3년차에 정식 출범시키겠다는 일련의 추진절차까지 소개했다. 자기자본 설립방식으로 경기도 및 31개 시군, 지역 상공회의소와 경제단체, 기업, 금융기관 등이 함께 자본금을 조달해 독자적인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335만여개의 중소기업이 밀집한 경기도가 우량 지역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어려움이 있어도 지방은행 설립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다.설립 타당성 주장에는 실제로 2012년 기준 금융 및 보험업이 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기도는 3.8%로 전국 5.9%를 훨씬 밑돌고 있는 반면, 지방은행이 있는 부산 6.2%, 대구 6.4%, 광주 5.7% 등을 내세웠다. 그는 또 지방은행 설립의 무리한 초기 투자에 대해서도 이미 경기도가 100% 출자한 공공특별법인인 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신보)이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한다. 경기신보는 이미 지난 17년 동안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신용보증업무를 해온 데다 올해부터는 1조원의 경기도중소기업육성자금의 보증업무와 대출심사에 준하는 자금배정평가업무를 맡았다. 도내 31개 시군에 19개 지점도 운영하고 있다. 점포를 새로 개설해야 하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논리만으로 따진다면 남 당선자에게 들이댈 도민은행 설립 반대 명분이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퇴출된 경기은행이 처음부터 부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지역기업과 끈끈한 정이 형성되면서 부실 담보나 채권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무뎌졌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지역 연고주의와 관피아란 독버섯이 언제 다시 자라날지 모르는 일이다. 취임 이후 관피아 척결 실행 여부가 도민은행 설립추진 성패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6-26 김성규

박상은 의원 그리고 추문들

박상은 의원이 지난 11일 돈가방을 도난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불거진 '금품 절도'사건이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차량 뒷자리에 있던 2천만원을 넣어둔 가방이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자신의 운전기사 A씨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A씨는 다음날 검찰을 찾아 현금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을 제출하며 (박상은 의원의) 불법정치자금이라고 신고했다. A씨가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의 한 검사실로 현금이 들어 있는 가방과 함께 서류 등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박 의원은 인천 중구 사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열린 당직자 회의에서 "2천만원은 집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의 일부로 변호사 선임료로 사용하려던 것이었다"며 "돈에 대해선 결백하다.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돈의 액수가 박 의원 측이 최초 경찰에 신고한 2천만원이 아닌 3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박 의원이 얼마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돈을 보관하고 있었던 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검찰은 "돈의 액수가 정확히 알려지면 박 의원에게 해명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박 의원을 압박했다.세월호 참사 사건이후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은 A씨의 신고가 있기 전부터 박 의원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검찰이 박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벌인 압수수색 현황을 보면 다각적이고도 강도가 높다. 지난 10일엔 가장 먼저 항만비리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키 위해 인천의 한 건설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이 업체의 공사수주를 도와주고 어떤 금전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박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학술연구원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여 연구원에 있는 박 의원 집무실에서 각종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박 의원과 한국학술연구원 사이 금전거래 내역 등을 확인한다고 한다. 또 박 의원 사무실 직원의 급여를 한국학술연구원이 대신 지급했다는 의혹도 조사중이다. 검찰은 나아가 박 의원의 아들 집도 전격 압수수색 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가 섞인 수억원 대의 현금뭉치를 발견했다. 지역해운 업체 여러 곳과 한 저축은행도 박 의원 후원금과 관련해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또 전직 비서 B씨가 지난달 "국회 비서에게 지급되는 급여 중 일부를 후원금 명목으로 가로챘다"며 박 의원을 갈취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인천시선관위는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을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박 의원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로부터 받은 공천헌금이 있는지 등도 검찰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사안이다. 아들 집에서 나온 거액의 현금도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검찰은 보고 있다. 오는 7월 1일 개원하는 제 7대 인천시의회 의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박 의원의 개입설과 함께 거액의 금품 제공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중·동·옹진 세 지역을 하나로 묶은 지역구를 갖고 있는 박 의원이 시·구·군의원 후보 지역 및 비례 공천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선거때만 되면 박 의원 주변에서 이 같은 의혹들이 불거지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박 의원이 은행 대출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미션을 받은 혐의도 수사대상이다. 검찰은 박 의원의 도움으로 한 업체의 대출 한도를 높여주고 그 대가로 박 의원에게 수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지역 모 장례식장 대표 C(64)씨를 알선수재혐의로 구속했다. 박 의원을 둘러싼 각종 비리는 이제 의혹 수준을 넘어 추문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박 의원의 각종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출당 등의 강력한 조치도 논의한다고 한다. 검찰은 박 의원 측근들의 폭로와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규명뿐 아니라 지금까지 주력해 온 해운비리 등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검찰은 한결같이 '성역없는 수사'를 천명해 왔다. 국민들은 이번 현역 의원을 상대로 한 수사가 성역없이 이뤄지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6-22 이영재

연정(聯政)? 연정(戀情)!

지방선거 이후 경기도 정가의 화두는 단연 '연정(聯政)'이다. 선거과정에서 남경필 후보가 야당과 연정을 하겠다고 밝힐 때만 해도, 이를 진정성 있는 약속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야권은 단순한 선거용 쇼맨십으로 평가절하했고, 여권 역시 괜한 관심끌기로 '집토끼'들을 분열시킨다며 곱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봉선화 연정은 알겠는데 지방정부 연정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캠프내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많다보니, 그 치열했던 선거전에서도 연정은 그닥 쟁점이랄 것도 없는,숱한 공약중 하나 정도로 치부됐다.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남경필은 당선자 신분이 되자마자 사회통합부지사 자리를 내주겠다며 야당에 공식적으로 연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정책 합의가 먼저'라는 야당의 역제안도 주저없이 받아들였고, 한발 더 나아가 상대후보가 내세웠던 공약을 상당부분 수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간간이 야당의 견제구가 날아들긴 했지만, 연정 논의기구 구성 등 현재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은 가히 속전속결, 일사천리 수준이다.남경필은 '독일식 연정'을 주창하고 있지만, 독일의 연정과 남경필의 연정은 서로 닮은듯 다르다. 독일에서 연정은 건국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을만큼 일반화되며 연정의 수범사례로 꼽히고 있으나, 온전치 못한 승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次善)의 측면도 적지 않다. 메르켈 총리처럼 군소정당과의 연합 대신 경쟁상대인 사회민주당과 손을 잡는 '대연정'을 이루기도 하지만, 내각제의 다수당 체제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집권당이 소수당과 연합,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정부를 꾸리는 것이 일반적인 독일식 연정이다.남경필의 연정은 양당 체제에서 승자의 자발적 의지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독일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불과 0.87%포인트 차이지만 그는 양자간 맞대결의 온전한 승자다. 도의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됐다지만, 도지사의 역할이 심각한 제한을 받을만큼 우리 지방의회의 권한이 크지는 않다. 지방의원들의 수준도 이젠 무조건 집행부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낮지는 않다. 지금까지는 사회통합부지사 자리 하나만 구체화된 작은연정이지만, 양당체제 상대방인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합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대연정의 성격이 짙다. 남경필은 일단 연정 카드를 통해 당선이후, 그리고 취임초기 도정 운영의 주도권을 쥔 것으로 보인다. 근소한 차이의 신승이라는 선거결과는 이미 화젯거리 밖으로 밀려났고, 야당 다수인 도의회의 견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정책 연합을 수용하고 야당이 추천하는 부지사는 '종북 좌파만 아니라면'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힌 마당이니, 설령 연정논의가 불발되더라도 현재로선 그 책임의 추가 야당쪽에 쏠릴 개연성이 더 크다. 정치인 남경필이 챙긴 전리품도 적지 않다. 몇몇 여론조사를 통해 그가 일약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경기지사 당선이라는 단순한 팩트 외에 연정에서 파생된 인지도·지지도 상승, 이미지 메이커로서의 반대급부도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시킨 것도 큰 소득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경필 연정의 성패는 여전히 예단하기 어렵다. 우선 초보 당선자의 의지에만 기대 연정의 순항을 점치기에는 우리 정치판 생리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통합과 혁신이라는 대전제에 밀려 숨죽이고 있으되, 연정에 대한 냉소는 여권내에 아직 분명히 존재한다. 대승적 견지를 내세우며 연정에 보조를 맞춰온 야당 역시 남경필 장단에 춤만 추는 모양새라 판단되면 언제든 판을 깰 수 있다. 노랫말처럼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게 지금 남경필의 연정이 처한 현실이다.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남경필의 연정이 독일식이든 경기도식이든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작은 연정, 대연정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국민들은 알듯 모를 듯 어려운 연정보다는 우리 정치권이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풍토, 비록 삼류 신파에 가까울지언정 그들의 '연정(戀情)'에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6-19 배상록

'대체빵'과 '교환빵' 그리고 '정치'

같은 직장에 다니는 청춘 남녀가 눈이 맞아 사귀다 결혼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사귀는 남녀를 '캠퍼스 커플'(Campus Couple), 줄여서 'CC'라고 하니 사내 커플도 'CC'(Company Couple)라고 해야 할 듯싶다.그런데 금융권, 특히 은행에서는 이들 사내 커플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가 있다고 한다. 가령 한 은행의 예금부서에 근무하는 A군과 대출부서의 B양이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했다. 이들 커플은 이른바 '대체빵'이다. 한 고객이 월급 통장에 있는 돈을 빼내 정기적금 통장에 넣으려고 한다. 월급통장, 적금통장 모두 같은 은행 계좌라면 굳이 월급통장에서 현금이나 수표를 인출해 적금통장에 다시 입금할 필요가 없다. 이렇듯 거래는 이루어지는데, 실제 현금거래 없이 같은 은행 내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대체거래'라고 하는 데서 연유한 듯싶다. 그럼 서로 다른 은행에 근무하다 눈이 맞아 결혼하는 커플을 표현하는 용어는 무엇일까? 바로 '교환빵'이다. '남녀상열지사'를 '은행간 거래'에 비유한 듯하다. 이쯤되면 은행원과 비은행원간의 결혼이나 사귐을 칭하는 용어도 있을 듯하다. 정답은 '출납빵'이다. 설명이 필요없을 듯싶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정치권에서 '교환빵', 더 나아가 '출납빵'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새누리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소통과 통합을 위해 정무부지사 자리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이름을 바꾸고 야당에서 추천받은 인사를 임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협력과 협치를 통해 지방에서부터 여야간 대립을 청산하고 사회적 통합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남 당선자는 사회통합부지사에 야당 인사를 임명하는 자신의 연립정부 제안과 관련해 오늘(12일) 여야 정책협의회 첫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같은 당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원 당선자는 제주지사 선거의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사직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물론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상존한다. 남 당선자와 원 당선자의 제안이 나왔을 때 야권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정치쇼'가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통합을 앞세운 '이미지 정치'로 책임정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자의 잔치'식으로 요직에 같은 당 인사를 끌어다쓰는, 달리 표현하자면 '대체빵'외에는 없을 듯했던 정치권에서 이같은 제안은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진 여야의 현실의 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인정해야 할 듯싶다. 특히 남 당선자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여·야간 '연정(聯政)'이 펼쳐지게 된다. 사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주요 정당 간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는 퇴색된지 오래다. 극단적 여야 대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진정 상생과 통합의 정치가 실현될지, 기대감과 함께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새 총리 후보에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지명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언론인 출신이 지명된 만큼 이번 총리 인선은 '출납빵' 정도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남 당선자 등이 추구하는 시스템은 한국 정치사에서 획기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의 교환빵이라 할 수 있는 이같은 새로운 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조합의 주체들이 정쟁(政爭)을 접고, 위민(爲民)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서로에 대한 신뢰는 기본이다. 이같은 실험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공사례로 기록되기를 꿈꿔 본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6-11 임성훈

월드컵 '대~한 민국'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이 오는 13일 오전 5시(한국시간)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1개월간 펼쳐진다. 이제 지구촌 사람들의 눈과 귀가 브라질로 모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지난 6·4 지방선거의 열기를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태극전사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16강을 넘어 목표인 원정 사상 첫 8강 진출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팬들은 벌써부터 한국이 같은 조의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를 넘어 상위 2팀 만이 주어지는 16강에 오를지 산술적 방식을 따져가며 화젯거리를 만든다.그렇다면 과연 한국 대표팀이 1차 목표인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 대다수 축구 전문가들은 '축구는 상대성이 있는 스포츠고,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강자와 약자도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축구라는 종목은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팀이 강하다고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심과 조직력, 단결력, 희생정신 등을 필요로 하는 단체 종목이어서 늘 이변이 존재한다.물론 축구에도 국가별 순위가 있다. FIFA는 매월 팀 성적에 따라 세계 랭킹을 매긴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FIFA는 6월 랭킹을 발표했는데, 한국은 57위를 기록해 벨기에(11위), 러시아(19위), 알제리(22위)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 본선 32개 국가 중에는 한국이 '꼴찌' 호주(62위) 보다 높은 31위다. 스페인과 독일이 전체 랭킹에서 1, 2위를, 브라질은 3위에 이름을 올렸다.랭킹 얘기를 더해보자. 그동안 기록에 의하면 하위국이 상위국을 이길 확률은 24%에 불과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열린 총 128차례의 경기 결과, FIFA 랭킹이 낮은 나라가 승리한 경기는 모두 31차례로, 이를 확률로 계산하면 24.2%가 나온다. 뒤집어 말하면 FIFA 랭킹이 높은 나라는 낮은 나라를 상대로 이기거나 비길 확률이 75.8%나 된다는 얘기다. 그럼 출전국 가운데 31위인 한국은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를 상대로 이길 확률이 24% 밖에 안된다는 것인데, 우리에겐 결코 달가운 얘기는 아닌 것 같다.그럼 한국이 내세울 만한 것은 있을까. 이에 대해 홍명보 감독은 '선수 모두가 리더'라고 답했다. '그라운드에서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선수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태극전사 23명의 평균 나이는 26.1세로 역대 대표팀 중 가장 낮다. 이번 대표팀에는 곽태휘가 유일한 30대 선수다. 대표팀의 주축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보니 24∼26세 사이의 선수가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다. '젊은 팀'이어서 기동력과 체력이 뛰어나지만 반대로 상황에 따라 급속하게 경기력이 요동친다는 단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풀어줄 '그라운드의 지휘관'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홍 감독은 특정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동료를 독려하기보다는 개개인이 리더가 돼 스스로 좋은 판단을 내려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어찌됐든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승점 4점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첫 경기인 러시아를 비롯해 알제리, 벨기에를 상대로 1승1무 이상의 성적을 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 태극전사들의 사기를 도와줄 12번째 태극전사 서포터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과 브라질의 시차가 12시간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가 한국 시간으로 오전에 잡혀있다. 온 국민이 밤잠을 설쳐가며 선수들을 응원한 뒤 회사에 출근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각 지역마다 치밀한 응원전이 준비됐고, 일부에선 '응원하고 출근하자'라는 구호를 만들기도 했다. 6월 한달 간 태극전사들이 이국 땅에서 화끈한 축구와 원정 사상 첫 8강 진출에 오를 수 있도록 모두가 외쳐보자. '대~한 민국'./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6-08 신창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이제 이틀 남았다. 2014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앞으로 4년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교육청을 이끌 대표자를 뽑는 날이 눈앞에 닥치고야 말았다.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원 등을 한꺼번에 뽑는 동시선거 체제로 전환한 지 여섯 번째를 맞는다. 내년이면 지금과 같은 지방자치의 틀이 갖춰진 지 꼭 20년이 된다.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성숙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다. 성숙한 지방자치는 나이만 먹었다고 되는 건 아니다. 뽑힌 사람이 그럴 만한 자질을 갖췄을 때에만 가능하다.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광역단체장 선거 현장. 현직 광역의원이 현직 광역시장이면서 다시 광역단체장 선거전에 뛰어든 후보자의 수행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 4년 전 유권자가 부여한 지방의원의 역할을 이처럼 내팽개쳐도 된다는 말인가. 단체장을 감시하라고 뽑아줬더니, 자신의 본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릴 수가 있는가. 어떤 기초 단위 선거 현장에서는 더욱 가관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현직인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가 소속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즉각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단체장 후보자와 같은 당 소속으로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선 해당 기초의원 몇 명이 덩달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같은 선거 단위의 현역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와 현직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소위 '무소속 연대'를 꾸린 이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들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을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겠다.우리의 지방선거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전쟁 통인 1952년 4월과 5월에 첫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4년 뒤인 1956년 8월에는 두 번째 지방의원 선거와 첫 번째 단체장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를 넘지 못했다. 1960년 12월에 예정돼 있던 4개의 지방선거가 사라진 것이다. 5·16 쿠데타 세력은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선거를 차단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대표자를 뽑는 지방선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쿠데타로 막힌 지 30여 년이나 지난 1991년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었다. 이는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끈질기게 이어 온 투쟁의 산물이기도 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피를 먹고 커 왔다.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지방자치이건만 여전히 그 내용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그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여전히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기능은 더욱 한심하다. 입법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은 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강제할 수 있는 법규 하나 만들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선출된 단체장과 의원들에게 있다. 그들을 뽑은 유권자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지방자치 20년이 된 지금 꼭 생각해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수준 높은 지방자치는 그냥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출된 단체장과 의원들의 수준이 높을 때 수준 높은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그것은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내가 수준 낮은 후보자를 택하면, 내 수준 또한 덩달아 낮아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는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대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내가 행사하는 이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다행히 지방선거 사상 처음 실시한 사전투표에 기대 이상의 관심이 쏠렸다. 전체적으로 투표율도 높았지만, 투표를 안 한다고 내놨던 20대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가 눈에 띈다. 어떤 후보자가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나의 기대에 부응할지 눈을 부라리고 살펴보자. 그리고 비판하기 전에 투표부터 하자./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6-01 정진오

선택… 고민 깊어지는 유권자

6·4 지방선거가 1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을 선거판은 세월호 여파로 아직 냉랭하다. 정당 공천 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았고, 전반적인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후보를 들여다 볼만한 시간도 그 만큼 줄었다. 선거운동 방식도 '조용하게' 바뀌면서 우리 지역의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유권자들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증할 수단도, 후보들을 별도로 판단할 근거도 여느 선거때보다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각종 협회나 모임 등 이익단체와 기관들이 나서 후보 토론회를 열고 있지만 해당 기관의 이익과 관련한 질의 응답만 오고 갈 뿐 일반 유권자들이 판단할 내용들은 별반 없어 보인다. 선관위가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역대 선거때보다 저조할 것이란 우려 속에 캠페인 등을 통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유권자들에게 '깜깜이 선거'로 인식되는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도 깜깜하긴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을 펴고 있는 후보들은 저마다 겉으론 승리를 장담하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유권자들의 반응을 도저히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악수할 때 '꽉 잡아주는 손', 인사를 할 때 '파이팅을 외쳐주는 입', 지나갈 때 '박수를 쳐주는 마음' 등 그 동안 '내 표'라고 인식됐던 유권자들의 동향 파악이 이번에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당선 가능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각 후보들이 관심있게 보는 것은 언론사들이 공표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 결과마저도 각 매체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와 실제 후보자의 지지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인해 후보자들도 '깜깜이 선거'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공식 선거운동이 22일 시작됐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요란한 선거운동에 피로감을 느낄 유권자들을 배려해 조용한 얼굴알리기에 나서는 후보들이 늘고 있다. 지역 곳곳을 청소하며 표심잡기에 나선 후보들도 눈에 띄고,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제약을 만회하기 위해 모바일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후보들도 많아지고 있다. 선거구를 걸어다니며 다양한 유권자를 만나겠다는 '뚜벅이 유세'도 유행이다. 그러다 보니 '목좋은 곳'에 선거현수막을 설치하려는 후보 진영간 신경전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 만큼 '조용한 선거'에는 동의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단이 적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조용한 선거도 좋지만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에게 '깜깜이 선거'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이러다간 우리 지역을 이끌어갈 지도자와 일꾼들을 공보에 나온 이력만 가지고 뽑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반 회사처럼 2차 면접 과정도 배제한 채 말이다.이번 선거부터는 사전투표제도가 전국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선거 당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유권자들은 5월 30일이나 31일 신분증만 있으면 전국 사전투표장소 어디에서나 미리 투표를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보다 더 쉽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는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의 후보자 공천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유권자들이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공천을 받은 정당 후보는 이미 어느 정도의 도덕성과 업무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로 여겨져 당선 후보군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 가능성만을 고려한 공천으로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유권자들의 눈총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한 시간이 많이 늘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후보는 얼마나 될까. 유권자가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는 만큼 정당들도 고민이 필요한 때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5-25 이영재

세월호,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의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늘은 어린 생명을 빌려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이지 않는 손, 섭리를 목격했다. 패륜적인 선원들, 천박한 자본,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치, 영혼 없는 언론…. 하나만으로도 재앙의 씨앗이기에 충분한데 이 모든 것들이 교묘하게 조합돼 세월호를 가라앉혔고, 어린 생명들이 수 없이 저물었다. 이리 많은 어린 생명을 희생시켜야 했던 특별한 섭리가 있다면, 우리는 그 희생에 담긴 섭리의 맥락을 직시하고 해석하고 실천해야 한다. 희생의 무게가 무한한 만큼 그 희생을 바탕으로 갱생해야 하는 우리의 노력은 처절해야 마땅하다.그런데 우리의 반성은 데면데면하고 대책은 건성건성이다. 대통령은 최종책임을 자임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호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책임의 자임과 반성의 눈물은 국가지도자의 품격으로 합당했다. 하지만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행정부 축소, 국가안전처 신설과 같은 대책은 성급했다. 애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참사에 대한 역대정부의 대응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나, 국민적 합의가 생략된 결단이라 정치적 시비의 발단이 되기 십상이라서다. 세월호에 남겨진 실종자와 그들을 기다리는 혈육들을 생각하면 대책을 거론하기 민망한 것도 사실이고, 더구나 참사의 진실을 감춘 채 도주중인 유병언은 오리무중이고, 참사의 진상조사를 위한 조직도 꾸리지 못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를 대한민국 갱생의 계기로 삼자는 국민적 각성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 찜찜하다. 지방선거에 돌입한 정치권은 겉으로는 제 탓을 강조하면서도 상대에게 참사의 책임을 미루는 영리한 레토릭을 구사중이고, 사회 일반은 참사에서 벗어나 일상을 복원하자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이래서는 세월호 참사도 죄책감과 탄식만으로 흘려보냈던 역대 대형 참사와 같은 수준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하지만 '하늘이 어린 생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유할 시간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한민국 전체의 집단사유의 결과를 가지고 이 시대와 결별하고 새 시대를 맞아야 한다. 미시적 응징과 대책에 연연해 거시적 사색과 각성을 포기하면 안된다. 사색의 주제는 다름아닌 '우리의 변화'이다. 공직자는 진정한 공복으로, 자본가는 양심적인 기업가로, 정치인은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은 각자의 영역에서 소통하는 상식인으로 변해야 한다. 제 아무리 시스템을 바꾸고 정밀한 매뉴얼을 만들어 본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국민적 각성을 한데 모으는 국민적 조직이 필요하다. 국회가 정파와 종교와 이념과 계층과 세대를 초월한 '국민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위원회의 의무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우리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져야 할 대한민국의 변화를 집대성한 '세월호 백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세월호 백서에는 참사 주체들의 잘못이 낱낱이 담겨야 하고, 이를 위해 진상조사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여야는 만장일치로 백서를 국가기록물로 지정해야 한다. 국민위원회의 백서에 따라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국가개조, 국민의식 전환 실천 항목들이 자발적으로 드러나고 정부 조직의 변화도 이를 따라야 한다. 몇년의 세월이 걸린들 무슨 상관인가.뜬 구름 잡는 소리라는 비판이 있다면 감수하겠다. 하지만 시대의 전환을 위한 윤리적·도덕적 각고면려를 회피한다면, 세월호 참사로 비롯된 이 시대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단원고 어린 학생들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은 위선이다. 유병언 일족을 단죄하고 세월호 선장을 엄벌하는 것으로 우리의 공분과 죄책감을 덜어내려 한다면 우리 시대의 부조리는 계속 살아남아 또 다른 청해진을 키울 것이다. 어린 생명들의 희생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깊이 사색할 시간이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5-21 윤인수

너무 빨리 잊혀지고 있다, 사고 공화국 오명을…

2014년 4월16일 오후 6시30분 탑승자 459명, 사망자 4명, 구조자 164명, 실종자 291명. 그리고 한달여가 지난 2014년 5월18일 탑승자 476명, 사망자 286명, 실종자 18명, 구조자 172명. 참담했던 한달이 흘렀다. 국민 모두가 억울해서 울었고 불쌍해서 울었다. 고통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수십만명이 합동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 가족들과 아픔을 같이 했다. 그 뿐인가. 수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사고현장인 진도와 안산을 찾아 유가족들을 달래며 같이 아파했다.직장인들은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을 이용해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동을 사죄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국민들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수없이 반복되는 대형 참사때마다 다시는 이같은 사고를 되풀이 하지 말자며 난리를 치던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은…. 물론 언젠가는 그날의 아픔을 달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전반적으로 안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잊혀지고 있다. 누구는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시간으로 아픔을 잊을 수는 있어도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다. 수십명, 수백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는 특별대책 운운하며 후진국형 참사를 예방하겠다고 떠들었지만 매번 공염불이었다. 그렇게 '사고 공화국'의 오명은 이어지고 있다.그동안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나.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등교하던 학생 등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로 무려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화재로 192명의 시민이 희생됐다.그 뿐인가. 1993년 10월10일 서해 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1999년 6월30일 화성 씨랜드 화재로 23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숨졌다. 또 1999년 10월30일 인천 라이브호프집 화재로 56명의 청소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안전 불감증에서 시작된 인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부는 위령탑과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 외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날의 아픔보다 안전 불감증의 경각심을 일깨울 표지조차도 없다. 그렇게 국민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갔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 아니 평생 아물 수 없는 상처로 여전히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다른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사고를 기억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처구니 없이 발생한 사고 자체도 기억하지 않는다. 쉽게 잊혀지는 아픈 기억은 매번 대형사고를 되풀이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 아직도 18명의 실종자가 수습되지 못해 가족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잊어가고 있다. 안산 합동 분향소에는 몇시간씩 기다리던 조문객의 발길이 점차 줄고 있다.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슬픔과 분노로 들끓었던 국민들이 평상심(?)을 찾고 있는걸까. 유가족들은 조문객이, 자원봉사자가 줄어드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다. 유가족이 지금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아픔도 이젠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변한 것 없이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 등 기억속에 묻혀버린 대형 사고처럼 세월호 참사 역시 그냥 잊혀질까봐 두렵다. 유가족들은 몸부림친다. 너무 빨리 잊지 말아 달라고,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5-19 박승용

대한민국호의 만재흘수선

처음 항만분야 취재를 담당했을 때 접한 해양용어 중 하나가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었다. 당시 생소하기만 했던 이 단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만재흘수선을 해양용어로 표현하면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적하한도(積荷限度)의 흘수선'이다. 즉, 선박이 충분한 부력을 갖고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물에 잠겨야 할 적정 수위를 선박 측면에 표시한 선이다. 하기 만재흘수선과 동기 만재흘수선, 동기북대서양 만재흘수선, 열대 만재흘수선, 하기담수 만재흘수선, 열대담수 만재흘수선 등으로 만재흘수선이 지역이나 수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설정돼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만재흘수선이 해양과학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어쨌든 이 선을 넘어 화물을 싣게 되면 중력이 부력보다 크게 된다. 선박이 침몰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초과하여 화물을 적재해서는 안 된다.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셈이다.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우선적으로 '과연 만재흘수선이 제대로 지켜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재흘수선이 지켜졌다면 선박이 기울어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원성을 갖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순진함'과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사악한'(?) 의도에 의해 만재흘수선이 얼마든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세월호 참사 한 달을 맞는 동안 드러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세월호 참사는 과적과 무리한 구조변경, 결박 부실, 평형수 부족 등이 맞물려 빚어낸 합작품이다.특히 선사측은 '돈이 되는' 화물을 더 싣기 위해 선박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평형수는 4분의 1만 채우는 꼼수를 부렸다. 이러다 보니 외견상으로 만재흘수선은 지켜진 듯 보였지만 무게 중심이 위로 올라가 선박은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과적과 평형수 부족은 구조변경, 결박부실 등과 함께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세월호는 우리 사회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우선 세월호의 과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불법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과적은 연안여객선 업계의 고질적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선사측이 세월호의 승객 수와 화물선적량을 늘리려고 구조변경을 단행한 것은 이윤추구에 매몰돼 있는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부족한 평형수는 기반이 허약한 우리사회의 안전 시스템과 닮은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먼저 살겠다고 승객들을 나몰라라 한 선장 등 선원을 비롯한 청해진해운 관계자들과 대형사고 우려가 있는데도 방치한 해양수산부나 허술한 초기 대응에다가 무능함마저 드러낸 해경, 그리고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 등은 '대한민국호'의 '해피아' 집단을 연상시킨다. 정부가 지난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행정안전부의 간판을 안전행정부로 바꿔 달 때 상당수 국민은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간판은 결과적으로 세월호의 만재흘수선과 다름없었다. 청해진해운이 고철 수준의 선박을 일본에서 들여와 도색을 하고 만재흘수선을 새로 그려 세월호로 둔갑시켰듯이 곪을 대로 곪은 부조리는 그대로 둔 채 간판만 바꿔 달았다고 국민의 안전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이번 세월호 참사는 보여주고 있다.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전, 국민들은 일상의 온전함을 이미 무용지물이 돼 버린 정부의 만재흘수선 덕분이라 착각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짝퉁'으로 전락한 대한민국호의 만재흘수선을 믿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호에 승선하면서 낸 뱃삯(세금)마저 아깝게 생각하고 있다. 만재흘수선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대한민국호의 과제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5-14 임성훈

스포츠 오심과 양심의 차이

프로야구가 '오심 논란'과 '폭력 사태'에 휘말렸다.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심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다. 행위야 어떻든 술에 취한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했다는 것만으로도 경기장 안전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해마다 프로야구는 '오심 논란'으로 흥행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이 야구장에서도 오심이 이어졌다. 아웃이 세이프가 됐고 이는 상대팀에 대량 득점의 빌미가 됐다. 결국 이 심판은 경기 중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대기심과 교체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후 관중석에선 수 차례 야유가 터져나올 정도로 심판에 대한 불신이 이어졌다.한국야구위원회(KBO)는 판정 문제를 최소화하고자 2015년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 확대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급한 대로 심판진을 물갈이하고 오심 최소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지만, 9개 구단과 관중들의 의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심판의 오심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심판들이 볼 판정을 할 때 14%가량 오류가 나오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원들은 2008시즌과 200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던진 70만 개 이상의 공을 분석했는데, 약 14%가 잘못된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예컨대 심판들은 승부가 걸린 중요한 상황에서도 심심치 않게 오심을 저질렀다. 1회초와 동점 상황인 9회말 초구 판정을 비교했을 때, 실제로 모두 스트라이크였지만 심판들은 9회말에 13%나 더 많은 오심을 남발했다. 심판들은 또 타석을 바로 끝낼 수 있는 볼 카운트 상황에서 더 많은 오심을 냈다. 그러나 3볼 노 스트라이크에선 실제 볼인 공을 18.6% 정도가 스트라이크로 잘못 불렀다. 노볼 2스트라이크에서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7.3%가량 줄어 볼넷이나 삼진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심판의 오심이 문제가 되자 MLB 사무국은 올해부터 홈런 판정에 국한된 비디오 판독을 페어 또는 파울, 세이프 또는 아웃 판정 등 13개 분야로 확대 시행했다. MLB 사무국은 새 비디오 판독을 위해 30개 구장에 자체 마련한 카메라를 12대씩 설치해 자세하게 판정을 분석한다. 특히 MLB 네트워크를 설립해 자체 채널을 통해 전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그렇다면 국내 프로야구는 어떨까. 자체 방송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한 KBO는 현실적으로 메이저리그처럼 정확한 판독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비디오 판독을 하려면 중계방송사 TV 카메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스포츠에서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오심에서 자유로운 종목은 없다. 특히 야구가 오심에 취약한 것은 순간적으로 흐름을 좌우할 판단을 내릴 상황이 많은 데다, 규정상 번복이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현실을 놓고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식으로 비교적 잘 넘겼지만, 갈수록 구단이나 팬들은 심판의 정확한 판단을 주문한다.프로스포츠가 이 정도라면 유망주들이 많은 아마추어 스포츠도 과연 오심이 많을까. 이런 질문을 지도자들에게 던지자 결론은 "더 심각하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야구의 경우 아웃과 세이프 판정보다 투수들의 볼 판정에 따라 상대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줬고, 농구는 주축 선수들에게 잇따라 파울을 선언해 5반칙 퇴장을 유도, 상대팀에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부여해 준다. 또 축구는 페널티킥 파울과 경고 등으로 상대팀의 승리를 돕는 등 지도자와 심판간의 불신이 가장 심각하다. 체급종목인 복싱과 태권도 경기에서도 지도자들이 일부 심판을 매수해 판정을 유리하게 이끈다는 소문도 나돈다.스포츠에서 오심은 이제 경기의 일부가 아니라 한 국가의 스포츠를 짓밟는 원인임에 틀림없다. 미래 촉망받는 어린 선수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가 바로 심판들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심판들이 오심을 범하기보다 양심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우수한 선수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험무대에서 정확한 판정을 내려야 할 심판이 문제라면 그 나라의 스포츠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5-08 신창윤

대통령의 사과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대통령의 사과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일국의 국가원수가 국민을 상대로 또한번 고개를 숙인 것이지만, 그 시기와 형식, 진정성을 걸고 넘어지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껏 감성에 치우친 일부 누리꾼의 선정적 표현은 접어두고라도 진보정당쪽에선 '엎드려 절받기', '왕이라도 그렇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아무래도 사고발생 13일만에 이뤄진 '지각 사과', 국무회의 자리를 빌린 '간접 사과'에 방점이 놓인 모양새다.일일이 문헌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적으로 국가의 대재난 앞에 최고통치자가 사죄하고 근신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지금이야 천재지변이랄 것도 없지만, 식생활을 농경에만 의존하던 옛날에는 가뭄만 들어도 왕과 수령들이 '부덕의 소치'를 자처하며 기우제를 올리고 음식 가짓수를 줄여 몸을 낮췄다. 특히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권의 근원을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린다'고 여겨, 천재지변은 통치권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자연현상의 원인을 왕의 부덕으로 돌리는 비상식은 당시에도 분명 자각이 있었을 터다. 실제로 조선 성종때 흙비가 내리고 화재사고가 잇따르자 신하들은 앞다퉈 왕이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한다는 상소를 올렸지만, 임사홍은 왜 자연현상을 왕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파직된다. 절대권력인 왕으로서도 천재지변을 자기가 책임져야하는 게 억울할 법도 했겠지만, 이를 회피하면 천명을 부정당하는 꼴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국가의 대재변을 책임지려 하고 반성하려 하는 진정성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겠으나, 과거 왕의 사과와 근신에는 고도의 정치논리가 깔려있던 셈이다.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이 마당에,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왜 대통령에게만 돌리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임사홍처럼 간신배로 몰리기도 십상이려니와, 세월호 참변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인재에서 비롯된 참사라면 그 책임의 꼭짓점엔 의당 대통령이 서야 한다. 취임 초부터 유달리 안전을 강조해 온 대통령으로서도 세월호 사고 발생과 구조, 수습 과정에서 만천하에 드러난 무원칙·비정상에 땅을 쳤겠지만, 고작 부처 이름 바꾸고 의례적 지시 몇번 해서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면 직접적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비통과 분노에 젖은 국민 정서에 기대어, 대통령의 사과를 무조건 조롱하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아무래도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사고현장에 달려간 대통령을 '선거용 쇼맨십'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렇다. 대통령의 행보를 비난하는 쪽은 그동안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다고,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고 공격했던 사람들이었다. 사과가 늦은감이 있다면, 형식상 문제점이 있다면 그 자체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사과 직후 예고한 대대적 공직개혁 드라이브는 이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사고 발생과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과오들은 그것이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개인적 잘못이든 끝까지 책임을 가려 단죄해야 한다. 그것은 비탄에 빠진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을 위해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말대로 국가 개조의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는 일이다.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평가는 시기와 형식보다는 국민 앞에 내놓은 약속들의 이행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사고 이후 단 사람만이라도 살아돌아오길 간절히 원했던 국민들은 이제 체념을 강요받고 있다. 비보에 흔들리다 절망과 싸워야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논란보다 더 시급한 건 무너져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재건이다. 그건 정부와 공무원·대통령의 몫만은 아니다. 대통령의 사과는 어쩌면 나라가 이 꼴이 되도록 N분의1씩 일조한 대한민국 어른 모두를 대신한 사과였을 수도 있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4-30 배상록

구호정치의 실체적 진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대학시절 한 친구가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서산 대사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도 유명한 서산 대사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그 뒷면에 적었다는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말이었다. 불교와 노장철학에 유난히 밝았던 그 친구는 이 말을 진실 추구의 화두처럼 여겼다. 원인과 결과, 처음과 끝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말을 설명할 때 제격이 아닌가 싶지만 언뜻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서산 대사의 이 마지막 글귀가 말하는 바를 사바세계의 용어로 푼다면 '실체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조계에서 사건의 핵심을 이야기할 때 꼭 쓰는 말이 '실체적 진실'이다. 특히 검찰은 피해자의 주장이나 겉으로 드러난 증거 이외에 사건의 배경이자 근본 원인을 밝히겠다는 수사 의지를 피력할 때 어김없이 '실체적 진실을 가리겠다'고 이야기한다. 사건 내막의 알짜이자 고갱이를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때면 어김없이 이 말이 등장한다. 법률가들이 쓰는 말에는 생각하면 할수록 묘한 맛이 난다. 그냥 '진실'이라고 해도 될 텐데 거기에 한 번 더 '실체'란 말을 덧붙였다. 검찰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세월호 참사 수사에 총력을 쏟고 있다. 결과에는 꼭 원인이 있는 법, 이번 세월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이번 사건 수사가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와 그 주변, 해운·항만 업계의 고질적 비리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환부마저도 말끔하게 도려낼 수 있기를 많은 국민은 바란다. 검찰의 수사 의지로 볼 때 몇몇 기업인과 관료들의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그것으로 다 드러났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대형 사건일수록 그 저변에는 늘 정치권이 있었다.국무총리는 사고 수습 도중에 돌연 사퇴하겠다고 하고, 야권은 그 사퇴 선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모두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권의 속셈으로 보일 뿐이다. 정치권은 서로 이번 사고가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여권은 여권대로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에 벌어질 일을 계산하고, 야권은 역풍을 맞지 않기 위해 언행을 조심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성난 민심이 현 정부의 무능을 표로 심판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인들 스스로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진심어린 책임 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정치권의 민낯이다.지금까지 정치권은 너나없이 구호(口號)만 외쳐댔다. 정치 구호란 게 원래 정치 이념을 짧은 한마디에 담아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 정치판에는 알맹이 없는 구호가 난무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현 정부는 시작부터 유난히 '안전'을 강조해 왔다. 정부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의 핵심 부서에 '안전'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 '안전'에 구멍이 뚫렸음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감으로써 여실히 증명됐다. 또한 정치인 누구나 '복지'를 말하는 사회인데 그 복지 구호 아래에서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나 버겁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회에 헛구호가 난무한다. 입으로 내뱉는 구호와 실제가 맞질 않는다. 이게 어디 현 정부의 잘못뿐이겠는가.정치인들은 선거는 구도의 싸움이라면서 그 구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섹시한 구호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어떤 때는 '복지'가, 어떤 때는 '소통'이 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그 문제를 짧으면서도 핵심적으로 파고든 구호를 내건 쪽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안전 정부' 아래서 떼죽음 사건이 빚어진 것처럼 그럴듯한 구호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진실한 것은 아닌 법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그 점을 잘 웅변한다. 검찰이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수사 핵심으로 삼듯이,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구호 정치의 허점과 그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기를 바란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4-27 정진오

누가 자유로울 수 있나?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로도 진도 참사(慘死)를 대변할 수가 없다. 그저 먹먹하고 답답하고 토할 것 같고 숨이 막힐 뿐이다. 매일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물샘도 바닥을 드러내며 국상(國喪)이나 다름없는 지경이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청해진해운 선사와 파렴치한 선장과 선원 등 직접적인 가해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그러기엔 우리 모두가 '나 하나쯤 괜찮겠지?'하는 대충주의와 안전불감증이 쌓이고 쌓여 이 비극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보다 좀 더 배우고 잘 나간다는 소위 '출세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우리 사회 리더그룹들은 더더욱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잠을 깬 대한민국이 '빨리 빨리' 성미 하나로 전쟁의 폐허속에 급격한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최단기간내 IT최강국, 수출대국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을 자랑삼아왔다. 그런 이면에는 "이쯤이야 대의(大義)를 위해 괜찮지. 그렇게 원칙만 고집해서 어느 세월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나?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조직을 해치는 자" 등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건성주의, 실적주의로 내몰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과 변화를 외치며 재임정권내 가시적 실적을 내기위한 경쟁은 대한민국의 외형을 키우는데 기여한 역할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도 잃었다. 국책사업에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도저식 명분과 논리가 말없는 다수의 생각을 무시했다. 소수의 권력이 공권력을 내세워 건전한 비판마저 옥죄었다. 이래저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만 죄인취급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결국 비원칙이 지배하는 특히 갑(甲)의 위치에 있는 우리 사회 지배층들이 이 처참한 사태의 주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참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태파악조차 못한 정치꾼들이 사고 현장을 찾아 위로한답시고 '기념촬영', '장관님 오십니다' '팔걸이 의자 컵라면 끼니' 등 기가 찰 정도의 촌극을 연신 일삼으며 숨조차 제대로 못쉬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 않았는가? 유력 정치인이자 재벌가 아들은 전국민을 미개인으로 치부하면서 삼류연극의 하이라이트 정점을 찍었다.우왕좌왕하는 재난구조 컨트롤타워는 과연 정부가 존재하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국제사회에 망신을 드러냈다. 민간잠수부의 활약상에 자존심이 상한 해양경찰의 간부라는 사람은 "80명의 실종자를 수습했으면 잘한거 아닌가?"라며 훈장이라도 받겠다는 듯 의기양양 언론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게 작금의 정부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 국민 모두에게도 책임은 있다. 진도 참사가 터지자마자 "대한민국을 떠나야지 두려워 살겠나? 이 나라는 더이상 안돼" 등 나라 자체를 부정하는 국가 모독이 판을 쳤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국민들도 이러는지 자문해본다. 극단적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이런 불안한 나라에서 살 수 없어 이민을 떠날테니 대한민국은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얘기다. 얼마든지 정부와 정치권, 공권력을 향해 욕을 할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자체를 부정하기 이전에 이 지경의 나라가 되기까지 과연 나는 도리를 다했는지 나의 잘못은 없었는지 진지한 성찰이 먼저다. 욱하는 감정으로 단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야할 선진국에 진입하는 첫 단추가 바로 국민들의 올바른 국가관임은 자명한 진리다.이번 참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살아있는 국민들이 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소중한 어린 생명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나부터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버스를 타는 순간 안전벨트를 매는 작은 안전습관부터 어떤 경우에도 반칙과 변칙을 통한 뒷거래로 나의 뜻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진도 참사에서 "만약 이것만 안했더라면 또는 그거라도 했으면…"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많은 이유를 모두가 곱씹어야 한다. 어떤 애도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너무나 죄스럽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4-23 김성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재난안전망

안산단원고 수학여행단 학생·교사를 포함한 476명(4월 18일 현재 정부 공식발표)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국내 최대 연안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난 16일 아침. 속보 방송을 통해 전해진, 선체가 기울어져 점차 가라 앉는 장면은 지켜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이 300명 넘게 타고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을 취재하던 언론이 사고난 지 몇 시간도 안돼 '전원 구출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끔찍한 사건은 안도와 환호속에 종료되는 듯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선객들이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구조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현장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안타까움은 더 커졌고 정부가 나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하지만 사고 첫날부터 우왕좌왕하더니 17일과 18일 잇따라 승선인원을 변경 발표하는 등 기본적인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 태도뿐 아니라 정부가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기보단 선사가 얘기하는 '숫자'를 확인도 않고 발표하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해양경찰청은 여객선 침몰과 같은 재난상황에서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승선객 파악조차 제대로 못했다. 선사측은 사고 직후 브리핑을 통해 승선권과 탑승객 명부를 대조해 477명이 탑승했다고 했다가 같은 날 오후엔 모두 462명이 탑승했다고 정정했다. 다음날인 17일 오전엔 475명이 최종 승선했다고 또 말을 바꿨다. 선사의 발표가 오락가락하자 해양경찰청은 인천항여객터미널 CCTV로 탑승객을 일일이 '카운팅'한 결과 475명이 맞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이 숫자 마저도 다음날 선사측이 476명이 최종 승선 인원이라고 수정하자 '해경의 CCTV를 통한 전원 확인' 작업도 해프닝이 된 셈이다. 경인일보는 여객선 사고 당일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 8명이 세월호에 승선했다고 보도했고 선사는 19일 "승선 명단에 없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침몰한 세월호는 해운조합에 화물 선적량도 축소 보고했다. 화물차량 150대와 657t의 잡화를 실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는 화물차 180대와 잡화 1천157t이 실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도 확인할 게 많다. 검찰이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별개로 사고를 낸 해운선사와 선주에 대해 20일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당연한 조치다.사고 닷새째를 맞는 20일 현재까지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되고 있다. 대신 정부의 부실한 재난대응체계만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사고에 대한 초동대처를 부실하게 한 것도 모자라, 구조상황 파악도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만큼 오락가락하고 있다. 21년전 292명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사고와 불과 4년전 46명의 장병이 순직한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월호는 침몰 직후 승객들의 생사를 가르는 30분 동안의 '골든타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참사를 자초한 인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탓만 하고 있으면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허술한 국가재난안전망 뿐 아니라 한 가지 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SNS를 통한 악성루머의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누나,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해. 사랑해" 등 실제 배에 탄 학생들이 보낸 문자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지만 생존자가 작성한 것 처럼 보이는 조작된 문자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실종자들의 전원 무사 귀환을 소망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안겨줬다. 검찰은 '사실인 양'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악성루머의 근원지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했다. 악성루머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부정적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IT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너없는 SNS 사용,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사고, 우리가 풀어야 할 새로운 숙제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4-20 이영재

인간 상실의 문명, 문화로 살려내야

칠곡·울산 계모는 인간이 맨정신으로 저지르기 힘든 학대로 어린 꽃봉오리를 꺾었다. 게임에 중독된 젊은 아빠는 두살배기 아들의 입과 코를 막아 살해했다. 아들의 주검을 담은 가방을 든채 엘리베이터 안에서 머리를 매만지던 태연자약이라니, 소름이 돋는다. 4남매를 쓰레기 지옥에서 키웠던 인천 엄마를 면담한 애들 담임은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의심을 접었다. 사람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엽기적인 세상이다. 자고 나면 마주하는 패륜 범죄에 사람들의 반응이 무덤덤하니 큰일이다. 21세기 경제대국 한국에서 19세기 프랑스의 '레 미제라블'이 만연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노출되지 않은 한국판 코제트들이 수 없이 많을 테지만, 그들을 구원할 장발장들은 종적이 묘연하다. 모두 자베르 경감에게 붙들린건가.이쯤이면 우리 시대의 문명에 회의를 품어야 자연스럽다. 토목과 디지털로 이루어낸 문명이 우리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준 건 사실이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70, 80대는 밥 굶는 고통을 면한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행복하다 찬양한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의문을 키우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경인일보 기자들이 최근 만난 대학가의 아웃사이더들이 대표적이다. 주변이 소외시킨 왕따가 아니라 스스로 주변과 담을 쌓은 자발적 독거 군상들이다. 그들은 오롯이 제 한 몸만 건사한다. 취업을 위해 친구를 끊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벗어나 도서관에 처박힌다. 학벌과 스펙사회에서 이런 친구들이 취업하기 유리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 절망한다. 그들을 고용한 기업들도 난감해진다.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그들의 사회성 결핍이 기업의 소셜네트워크를 해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엮여 드라마를 만드는 무대가 세상이라는 진리를 세상에 나가서 마주치니 불행한 일이다.우리 시대의 눈부신 물질 문명이 패륜의 에필로그로 훼손되는 이유는 문화결핍 때문이다. 물질과 기술과 제도가 정신문화를 압도하며 질주하는 세월동안 인간적 품위는 퇴적을 거듭해 화석으로 굳어버린 결과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 시대를 암울하게 만드는 온갖 패륜을 목격할 때마다 수 많은 대책을 마련하고 돈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발본에 이르지 못한다. 애초에 인성의 문제를 제도와 예산으로 교정하려는 발상 자체가 글러먹은 탓이다. 복지 담당 공무원과 경찰을 지금의 몇 배로 늘려도 칠곡과 울산의 계모를, 게임중독 아빠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막을 수 없다.문화가 유일무이한 해법이다. 세계적 성공사례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시스템을 뜻한 건조한 스페인 단어가 지금은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음악 교육'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문예부흥운동이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1975년 시작한 엘시스테마는 마약과 범죄의 수렁에 빠져 인성을 잃어가던 베네수엘라 빈민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쥐어주고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젝트였다. 35만명의 불우 청소년들이 흉기 대신 악기를 잡았고 마약 대신 음률에 취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30대 초반에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로 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이 엘시스테마의 성취를 상징한다. 독재자 우고 차베스는 엘시스테마의 열렬한 후원자. 정부사업으로 만들어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일부에서는 독재자와 엘시스테마의 동거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엘시스테마의 성취가 보여주는 문화의 위력 만큼을 부정하지 못한다.한국도 엘시스테마를 도입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보다는 빈곤층이 얇아서인지 관련 예산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문화의전당이 2011년부터 도내 저소득층 아동 600명으로 구성한 '경기-삼성 드림어린이합창단'. 명칭에서 보듯 삼성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이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수렁에 빠진 우리 문명을 문화의 지렛대로 견인해내야 한다. 우리 대통령이, 도지사, 시장, 군수가 차베스보다는 난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겠나./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4-16 윤인수

이상과 현실속에 갇혀버린 안철수

전국시대 말 초나라 왕족인 굴원은 정치적 갈등과 모함을 받아 강남으로 추방됐다. 뛰어난 학식으로 26세에 벼슬에 올랐던 굴원은 부패한 정치판을 개혁해 보겠다고 나서다 추방된 것이다. 깊은 좌절감에 초췌한 모습으로 호수가를 헤매던 굴원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이렇게 물었다.'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었나.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냐'고, 굴원은 대답했다. '세상 사람이 다 혼탁한데 나홀로 맑고, 대중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 홀로 취하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 추방당했다'고…. 어부가 다시 물었다. '성인은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능란하게 세상의 추이에 응할수 있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그 흙탕물에 같이 혼탁하게 물결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대중이 모두 취했으면 같이 술을 먹고 취하지 않고 어찌하여 혼자 깊이 생각하고 고고한 행동을 하다가 추방을 자초했냐고….' 굴원이 다시 대답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 것인데 어찌하여 몸이 깨끗한 자가 부정하고 얼룩진 자와 같이 하리. 오히려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흰 몸으로 세속의 때 묻음에 해를 입을쏘냐'고. 굴원이 밝힌 추방의 이유가 다소 엉뚱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패했는데 자기 혼자 깨끗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어서 추방당했다고 주장했다.굴원은 자신의 정치적 개혁과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성들을 술취함과 혼탁한 세상을 풍자적으로 지적했다. 이상과 현실속에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 정치에서도 굴원처럼 이상과 현실속에 갇혀 갈등하는 한 사람, 안철수다.2011년 한국 정치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새로운 정치를 부르짖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는 듯 했다. 그는 의사에서 유망한 사업가로, 대학교수로, 정치인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또한 현실 정치에 신물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다. 2011년 중순 '청춘콘서트'로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그에게 구태하고 신물난 정치를 바꿔줄 것을 요구했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박원순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했다. 그런 그에게 국민들은 기존 정치인들에게서 볼수 없었던 용기있는 양보라며 더 큰 꿈을 키우기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그는 대선에 도전할 뜻을 비쳤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며 흥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재인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줬고 결과는 패배로 끝났다. 그래도 국민들은 안철수에게 희망을 걸었다. 다시 그는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며 기존 정당과 차별화 된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뭔가 되겠구나하고 기대했지만 기존 정당과 통합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합의 조건으로 6·4지방선거에 기초단체 공천을 폐지, 새로운 정당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구태한 정당 정치를 개혁하겠다며 시도했던 공천 폐지는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현실 정치의 틀속에 갇히고 말았다.그는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할 때마다 국민의 뜻으로 돌리며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현실속에 주저 앉았다. 그가 앉아 있는 현실이 마치 국민들의 뜻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말이다. 과연 안철수가 추구했던 개혁 정치는 어떤 것일까.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 새로운 정당 창당, 무공천 계획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양보와 국민의 뜻으로 포장해 포기했던 그가 진정 꿈꾸는 정치 개혁은 무엇인가. 세상이 혼탁하고 대중이 술에 취해 자기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세상 사람들 처럼 술에 취하든 흙탕물 속에서 혼탁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들도 흙탕물 속에 그럭저럭 술에 취해 살 수 있으니까.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4-13 박승용

인천과 컨테이너

우리나라와 호주가 FTA(자유무역협정)를 공식 체결했다는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온다. 우리나라의 11번째 FTA로, 우리의 FTA 경제영토가 전 세계 GDP의 57.3%로 확대됐다는 앵커의 설명이 이어진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이 바다를 가르는 모습의 뉴스 배경화면을 보면서 '엉뚱한' 추론을 해본다. '만약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국가간 FTA가 이렇게 활발해질 수 있었을까?'컨테이너.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운송도구다. 항구에서, 공항에서, 도로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직육면체의 철제 박스다. 그런데 이 볼품없는 철제 박스의 쓰임새가 꽤나 다양하다. 교각 밑에 자리를 잡고 전우회 사무실로 사용되는 등 운송도구로서는 물론이고, 이동용 건축물로서 다양한 용도를 뽐낸다. 그 응용 범위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어떤 때는 '산성'(山城)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끔 '태생적 목적'에서 일탈하기도 하지만 이 철제상자가 참으로 획기적인 발명품인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이란 부제가 붙은 'THE BOX'의 저자로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마크 레빈슨은 컨테이너가 세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정확히는 물류에 컨테이너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세계 무역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컨테이너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화물수송은 주로 단순한 인부의 노동에 의존해야 했다. 각종 화물들이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가운데 인부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화물들을 배에서 창고로, 또다시 창고에서 트럭으로 옮기는 게 옛날 부두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컨테이너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고 세계 곳곳으로 쉽고 간단하게 화물을 운송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굳이 항구도시에 공장을 세울 필요가 없어지면서 도시와 항구도 재편됐다. 소비자들이 수많은 상품을 값싸게 구입해 쓸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컨테이너 덕분으로 이 철제상자가 세계 경제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는 경제성, 신속성, 안전성을 최대한으로 충족시키고 화물운송 도중 화물의 이적(移積)없이 일관수송을 실현시킨 혁신적인 수송도구로 일컬어진다. 이쯤 되면 컨테이너와 FTA를 접목시킨 앞서의 추론이 그리 빗나가지는 않은 듯 싶다.이 컨테이너가 최근 인천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인연을 맺었다. 인천항이 '대한민국 최초 컨테이너 부두'라는 타이틀을 되찾은 것이다.인천항은 1974년 갑문 준공과 함께 내항 4부두에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운영했다. 이같은 사실은 인천항만공사가 지난 2008년 펴낸 '인천항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그런데도 포털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부산 자성대 부두를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로 표기해 왔다. 이같은 사실이 경인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백과사전 편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확인작업을 거쳐 최근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로써 인천항 내항 4부두는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로서 우리나라의 대표 백과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백과사전의 내용 수정은 인천이란 도시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보탠 것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 인천항은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200만TEU'를 달성했다.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시점에서 인천항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유의미한 상징 하나가 더해진 것이다.컨테이너가 엄청난 교역의 시대를 견인한 것과 맞물려 이 철제상자에 대해 일부에서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인터넷에 버금가는 혁명적 도구'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도시를 표방하는 인천과 컨테이너의 이번 인연에 다시한번 눈길이 간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4-09 임성훈

무상·무상… 유권자의 책임은?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얘기도 있고 '사돈네 떡도 싸야 사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를 정확하게 짚은 표현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를 싫어하는 경우는 없다. 설령 독이 될지라도 일단은 받고 보자는게 보통사람들의 심리이기도 하다.직접 민주주의가 발달한 로마에서 무상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민회를 소집한 정치인이 풍성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잔뜩 제공한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 중요한 안건이 있다. 먼저 안건을 논의한 뒤 식량을 나눠 주고 여흥을 즐기도록 하자." 배고픈 군중들에게 안건이 들릴리 없다.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급하다. 이렇게해놓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걸 제시한다. 설령 그게 공동체에 독이 되고 국가를 좀먹는다고 해도 군중들에겐 관심밖이다. 시원하게 '통과'를 외치면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되는데 다른게 눈에 들어올리 없다. 황제를 비롯한 집권자들은 이런 심리를 잘도 이용했다. 원형경기장에 군중들을 모아놓고 검투사를 동원해 사자 등 맹수들과 대결을 시키는 오락을 제공하고 먹을거리를 공급한건 다 그런 속셈 때문이다.선거의 계절이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무상을 내세워 관심을 끌려는 공약들이 판을 친다. 무상교복에 무상교육, 무료건강검진에 생활임금 보장까지 참으로 다양한 공약들이 쏟아진다. 모두들 보편적 복지니, 삶의 질 향상이니, 생존권 보장이니를 내세우지만 기실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당선되고자 하는 표현에 다름없다. 무상급식이 효과를 봤으니 속편을 상영하는 셈이다.하지만 무상급식이 보편화된 교육현장에서도 폐해는 드러나고 있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에 재정의 대부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급식시설 개보수도 못하고 환경개선은 엄두도 못낸다. 필요한 시설이나 인력충원이 시급해도 실행하기가 힘들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냄새나는 헛간에 진수성찬 차려놓고 잔치하는 꼴이라는 얘기다.무상이 모두 나쁘다는건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들도 있다. 그렇더라도 실현 가능성과 대안,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 만큼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다.무상버스가 실현돼 모든 시민들이 공짜로 버스를 이용한다면 수천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그 돈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버스가 무상이면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과의 형평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하철도 무상으로 운행해야 할까. 버스와 지하철이 무상이 되면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택시업계는 고사지경에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택시도 무상으로 해야 할 것인지 등등 따져봐야될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그리스나 스페인의 심각한 재정위기의 책임을 과도한 복지때문이라고 단정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래도 분명한건 있다. 무상 때문에 국가재정이 악화되고 상황이 악화되면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보편적 복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입었지만 부자들은 상황이 악화돼도 크게 문제될게 없다. 가진게 있고 버틸 여력이 충분하니 말이다. 혜택은 함께 누렸지만 고통은 특정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진다.이쯤해서 유권자들의 책임을 거론할 때가 됐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있는지, 그걸 선택하면 희생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 그런 검증없이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일단 찍고 보자고 덤빈다면 대가는 혹독하고 후유증은 크다. 눈앞의 사탕에 정신이 팔려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잘못이 사탕발림에만 능한 정치인들을 양산한다.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고 책임있는 공약을 내세우는 단단한 정치인을 키우는건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에 앞서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했다. 잘못 선택하면 정말 도끼자루 썩는다. 현재의 달콤함을 위해 포기된 미래는 암울하고 답답하고 힘들다. 무상도 소중하지만 미래는 더욱 소중하다./박현수 편집국장▲ 박현수 편집국장

2014-04-06 박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