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화 '명량'에서 얻은 교훈

영화 '명량'이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일 관객 100만명은 물론 개봉 나흘 만에 350만명을 넘어섰다. 조선 중기의 일대 사건 임진왜란(1592~1598년)을 배경으로 한 '명량'은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00여 척 적선을 궤멸하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대사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영화의 내용 중에서 이순신 장군의 아들 회는 아버지에게 "왕(선조)은 갖은 고문까지 하며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뒤 또 죽이려 할 텐데 아버지는 왜 왕에게 충성을 다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 장군은 "충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스포츠에 있어서도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그 팀이 망가지거나 혹은 발전하기도 한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전남 드래곤즈는 지난 1월 출정식 때 명량대첩의 격전지인 울돌목을 찾았고, 지난 1일 후반기 첫 경기를 앞두고 '명량'을 선수단 전원이 관람했다. 선수단에게 용기와 정신력을 주기 위한 구단의 생각이었다. 지난 6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졸전을 펼친 한국 축구도 새사령탑 영입에 고민 중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새 기술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선임했고, 이 기술위원장은 위원회의에서 ▲대륙별 선수권대회 경험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월드컵 예선 경험자 ▲월드컵 본선 16강 이상 성적 ▲클럽팀 지도 경력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 참여가능자 ▲고령 감독 제외 ▲선수 지휘할 때 영어 사용 가능자 ▲즉시 계약 가능자 등 8가지 조건에 들어맞는 후보를 찾았다. 그 결과 외국인 감독 3명을 최종 후보로 가려냈다. 대한축구협회가 발빠르게 사령탑 물색에 나선 것은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다.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도자의 됨됨이다. 누가되든 사령탑은 대한축구협회장과 기술위원장을 위한 인물이 아닌 진정 한국 국민들을 위한 자가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 선수 선발도 유명 선수와 힘있는 구단이 아닌 모든 선수들을 조사하고 분석해 적재적소에 맞는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 각 구단 및 지도자들도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한국 축구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일군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히딩크 감독의 가장 큰 리더십은 바로 공정성이었다. 기존자료를 타파하고 능력과 실력 위주로 선수를 뽑았다. 한국 축구의 학맥·인맥 파벌을 깨뜨리고 실력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팀을 꾸린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사상 첫 16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 뒤에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는 말로 선수들을 자극했고, 곧바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4강 신화를 이뤘다. 히딩크 감독은 이후에도 끝없는 '한국사랑'을 펼치며 지금까지도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실망적인 경기 모습은 분명 축구팬들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축구 팬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전에서 많은 비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5만113명의 관중이 운집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아직도 팬들이 한국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증거다.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이 26세 3개월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가운데 5번째로 젊은 선수들이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을 더 키워나가고, 새로운 유망주들이 가세한다면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에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 장군처럼 한국 축구도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원해본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8-03 신창윤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의 비전

오늘 아침 미디어 시장은 어제 치러진 재·보선 보도로 넘쳐날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선거결과 분석의 예리함을 다툴 테고,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평론가들의 고담준론이 별처럼 쏟아질게다. 하지만 문화담당 데스크 처지에서 지켜보자면, 선거는 '반문화적 퍼포먼스'일 뿐이다. 이번 재·보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판, 규탄, 야합, 패륜 등 살벌한 단어들이 여야 선거 캠페인의 핵심을 관통했다. 스토리와 감동도, 인격과 상식도 없었다. 정책과 공약이 있다지만 욕설의 강물에 휩쓸렸다. 반문화적 선거의 귀결은 유권자의 무관심과 냉소. 우리는 언제까지 반문화적 정치 퍼포먼스에 국민의 심력을 소모해야 하는가.토니 블레어는 1997년, 보수당의 18년 집권을 종식시키고 영국 총리에 취임했다. 노동당의 젊은 총리는 국가이미지 전략으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내세웠다. 음악·예술·패션분야 육성을 통해 젊은 영국의 이미지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3년 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총리에 취임하자 새로운 국가 이미지 전략을 제시하는데 '올드 브리타니아(Old Britannia)'가 그것이다. 고성, 박물관 등 영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활용해 영국의 관광산업을 중흥시키겠다는 문화전략이었다. 그럼 '쿨'과 '올드'가 부딪혀 '브리타니아'는 엉망이 됐을까? 아니다. '쿨 브리타니아'로 영국의 대중문화와 관련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올드 브리타니아'는 영국의 고성에 개발도상국 여행자들을 가득 채웠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뿐, 영국 정부는 특정 문화분야를 정책에서 소외시키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부러운 건 블레어와 캐머런이다. 문화를 통해 자신의 치세에 어떤 영국을 만들지 선명하게 제시한 문화적 식견과 자질을 가진 정치지도자. 정치인의 문화적 식견과 자질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외치며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드물다. 매달 문화가 있는 수요일 하루로 문화융성이 이루어진다면 기적이다. 법으로 문화진흥을 강제할 수도 없다. 문화가 한 민족이 한 시대를 살아내는 삶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인식으로 전환해야 문화진흥은 가능해진다.경기도 공직자들이 문화인식 패러다임을 이렇게 바꿀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라는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지방문화는 중앙의 문화정책과 예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경기도의 문화행정이 중앙정부의 문화행정을 견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비전이다. 경기도의 문화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조선왕릉,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경기도내 도시와 농촌에는 날마다 새로운 창작집단이 세워지고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안양과 같이 공공예술분야를 선도하는 곳도 있다. DMZ는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회복될 것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자치단체이면서, 문화갈증에 시달리는 신세대 거주자들이 넘쳐난다. 경기도의 문화 잠재력은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에 지도자의 문화적 비전과 이를 실행할 열린 조직이 합쳐지면 엄청난 문화적 에너지 창출이 가능하다.작금의 현실은 이와 달라 마음이 서늘하다. 도지사 취임후 도내 문화기관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남는 자와 오는 자에 대한 선이 불분명해 행정의 공백이 심했다. 그 과정에서 낯 뜨거운 중상과 음해가 돌았다. 또 몇몇 기관의 통폐합 문제는 순전히 행정편의나 재정논리 수준에서 거론되면서 종사자들의 사기를 죽이고 있다. 이같은 진통이 경기도의 문화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방권력 교체기 관행의 답습이니 답답한 일이다.남경필 지사가 강조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상생의 정치는 우리 사회의 문화역량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경필 지사가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에 대한 비전을 세워주기 바란다. 전국에서 인재가 몰릴 것이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7-30 윤인수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유병언의 주검이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발견되고, 그 사체가 유병언이 맞는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까지 나서서 유병언의 죽음을 확인해 주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말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너나없이 지난주 유병언 사망관련 소식을 접하고 황당해 했다. 수사의 지휘부인 인천지검이 있는 곳에서 기자생활을 하니 좀 더 많이 알게 아니냐면서 "진짜 유병언이 죽은 게 맞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 온 국민을 경악에 빠뜨린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받아 온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엉뚱한 방식으로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 4월16일의 세월호침몰 사고 역시 믿기지 않게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유병언의 죽음을 확인해 준 것은 유전자 감별이었다. 그 유전자 감별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한반도 호랑이 역사를 되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멸종된 한반도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은 국내에서는 목포의 유달초등학교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 교토의 도시샤 고등학교에 있는 박제 호랑이가 조선 땅을 주름잡던 것이란 사실이 밝혀져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 있는 이 호랑이 표본은 1917년 11월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라는 일본의 거부가 호랑이 사냥을 했을 때 잡힌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성장과 함께 부를 축적한 야마모토는 조선의 탄광업 등에도 손을 뻗쳤다. 그 야마모토는 거액을 들여 조선의 호랑이 사냥을 기획했다. 호랑이 사냥팀의 이름도 군대의 명칭에나 어울리는 '정호군(征虎軍)'이라 붙였다. 박제가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호랑이는 야마모토의 사냥팀에 배속돼 있던 조선인 포수에 의해 죽은 2마리 중 하나다. 이 표본 호랑이의 DNA는 포획 100여년 만에 한반도에 다시 돌아와 그 계통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일본 도시샤 고등학교에는 이 호랑이박제 말고도 호랑이 골격과 표범박제, 표범골격 등 4점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당시 조선에서 호랑이 2마리와 표범 2마리를 잡아갔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호랑이 2마리를 누가 언제 어떻게 포획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야마모토는 조선 최고의 포수 10여명을 동원했는데, 그들 중 백운학과 최순원만이 1마리씩의 호랑이를 잡는데 성공했다. 야마모토는 사냥의 전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린 '정호기(征虎記)'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세월호사고가 있었던 지난 4월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야마모토는 그리고 거금을 들여 만든 이 박제품을 후세를 위한다면서 학교에 기증했다. 한반도 호랑이 멸종의 가해자이기도 한 야마모토가 남긴 이 호랑이 표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호랑이 연구의 자산으로 남았다. 이렇듯 호랑이마저도 그 죽음을 귀하게 남길 줄 안다. 가죽과 뼈만 남았을 망정, 그리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을지라도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야 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일진대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병언의 주검은 유병언의 것이 맞는다는 것만 증명했을 뿐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여전히 미궁이다.세월호 사고처럼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전쟁 등 극히 비정상의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그 책임을 정확하게 묻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원혼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병언의 생포는 중요했다. 검·경의 이번 사건 수사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유병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인해 세월호 참사의 본질적 책임 추궁도 난감해졌다.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단죄의 대상마저 믿기지 않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한반도에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만 남긴 채 말이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7-27 정진오

최경환식 '경제야 놀자'

유병언이란 보잘것 없는 노인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 지 몇 달째다. 결국 순천 야산 매실밭 기슭에서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초췌한 시체로 신병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갖가지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각 쇄신 차원에서 물갈이한 후임 장관들에 대한 청문회로 또 몸살을 앓고 있고 국가 기강이 안정모드로 정착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더 소비될 전망이다.이런 와중에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은 신임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이 취임일성으로 던진 한마디에 경제계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다름아닌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있는 부동산정책'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최경환노믹스, 최경환효과로까지 확대 해석된 최 부총리의 한마디는 경제계 전 분야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특히 부동산을 포함한 경제정책 운용에 바퀴의 한 축과도 같은 기준금리에 대한 민감한 부분은 한국은행 총재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주열 한은 총재와 조찬회동을 갖는 등 대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금리의 금(金)자도 언급한 적 없는 통상적인 상견례 조찬자리였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경제계는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유로존이나 일본·중국까지 금리인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언제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고금리 동결정책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다. 내수경제는 얼어붙어 소비심리 위축으로 모든 경제지표가 하향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마당에 누구나가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박근혜 내각 2기 경제사령탑에 오른 최경환 부총리는 이런 맥락에서 비판과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관록의 정치인다운 큰 틀의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노무현정부 때 도입된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 또는 철폐를 약속했다. 시장의 반응은 기다린 듯 후끈 달아올랐다. 주가가 2천28로 올들어 최고치를 경신하고 기업들 특히 주택건설업계가 분주히 움직이며 그동안 창고에 처박아 뒀던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들고 투자처를 물색하는 등 마치 개발광풍이 금세 불어닥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내친 김에 최 부총리는 경제5단체장과의 연대회동을 갖는 자리에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과도한 현금에 대해 과세를 하겠다"는 폭탄선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곳간에 쌓아둔 현금이 무려 518조원으로 5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이나 다름없다. 기업을 옥죈다는 볼멘소리를 피하기 위해 최 부총리는 "무조건적인 징벌과세가 아니라 보유현금을 신규투자나 주주배당, 임금 등으로 풀라는 의도였다"고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내려준 모양새가 돼 버렸다. 사실 기업 오너들이 신년 초에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천편일률적인 신년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최근 수년 동안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최 부총리의 의도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나라가 살려면 기업의 과감한 선투자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범한 경제순환 이론을 역설한 것이다.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최 부총리의 일련의 말들은 아직 법과 제도 등 규범의 틀 안에서는 변화된 게 없다. 그동안 먹먹한 가슴을 쥐어잡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침체된 경제계가 특히 부동산 및 건설업계가 '비록 말 한마디라도 숨을 좀 쉴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국내외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강경노선을 고집하자 아베노믹스 경제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24일 예정된 하반기 경제정책에 온 국민이 '이번엔 진짜 뭐가 좀 나오려나' 하고 관심을 쏟고 있다. 너무 침체된 대한민국 특히 경제성장 동력인 수도권 마당에서 크게 한판 놀아보는 큰 장이 펼쳐져야 한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7-23 김성규

리더의 조건

지금은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 홉킨스의 설립자인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1858~1943). 산부인과 의사로 미국에선 처음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성공하면서 유럽에 뒤처져 있던 미국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또 '무료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푼 배려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우유 한 잔에 얽힌 하워드 켈리의 일화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대학시절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그가 방문판매를 하던 어느날 허기진 배를 채우려 한 집에서 물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집에서 나온 여성은 '우유 한 잔'을 내밀었다. 우유를 마시고 어떻게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그에게 여성은 '친절을 베풀 때는 절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훗날 하워드 켈리는 의사가 됐다. 하워드 켈리는 어느날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희귀병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그 환자는 다름아닌 '한 잔의 우유'를 건넸던 여성이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환자는 완치됐고, 병원비 걱정을 하던 여성이 받아본 청구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그날 한 잔의 우유로 모든 비용은 지급되었음'. 한 잔의 우유로 인해 하워드 켈리는 환자를 우선 배려하는 권위있는 의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하워드 켈리와 의사 이길여(李吉女·가천대 길병원 이사장)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의사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다. 그리고 병원을 설립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려운 이들에게 차별없는 의술을 베풀 수 있는 '무료병원' '보증금없는 병원'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한 이들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겐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 1958년 인천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연 이길여 이사장은 보증금 없는 병원을 표방했다. 선금이 없으면 입원도 못 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보증금을 안 받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몰렸다. 치료를 받고도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환자도 많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농사지은 감자·고구마·쌀 등의 수확물이나 인천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망둥어 등 어획물을 들고 찾아와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 앞마당엔 지역특산물이 가득 쌓였다. 이 이사장의 배려의 크기만큼 보답이 이어졌던 것이다.세월호 사고 수습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순직한 고 정성철(52·소방령) 기장 등 소방공무원 5명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광주 도심에 추락하는 순간에도 사고 헬기는 대형 참사를 막으려는 기장과 부기장의 끈질긴 사투로 아파트 단지·상가 등 인구 밀집 지역을 간신히 피해 수직 낙하한 것으로 추정됐다. 마지막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한 이들에게 훈장이 추서됐다. 반면에 아직 대한민국에는 '봉사'를 근본으로 삼아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부적격자'들이 일부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키고 먼저 빠져 나온 선장, 빌린 돈 때문에 채권자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서울시의원, 공천헌금을 비롯한 해운비리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회의원 등등. 이들과 연관돼 매일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은 국민적인 불신을 조장하고 박탈감마저 주고 있다. '봉사'를 저버린 '부적격자들'에게 사법부는 종종 사회봉사활동을 명령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배려와 봉사'를 사회를 이끄는 근간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공자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제자 자장에게 '5가지 미덕(五美)과 4가지 악덕(四惡)'을 일러줬다. 공자는 5가지 미덕 중에 첫째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낭비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4가지 악덕 중 마지막을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놓고 온갖 생색을 내며 주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은혜 베풀듯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많아졌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무엇보다 중요한 리더의 조건이라고 오래 전부터 가르친 공자가 헛심만 쓴 것이 아닌지 씁쓰레하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7-20 이영재

여검사

얼마전 검찰에서 조용한 행사가 하나 치러졌다. 검찰 릴레이 포럼. 지난 2월 출범한 대검 여성정책팀이 마련한 이 행사에는 지난 2005년 수원지검에서 조직폭력 범죄를 맡았던 정옥자 검사를 비롯해 여성 최초로 특수, 공안, 강력, 기획 분야를 전담했던 여검사 4명이 나서 후배들에게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난달, 첫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여성검사, 대선배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후배들에게 강연한 데 이어 두번째다.대한민국 검찰에서 여성 검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7%, 검사 열명중 세명은 여성이란 얘기다.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500여명중 여성이 18명에 불과한 상황이니, 실제 수사현장에서의 체감 비율은 더 높아진다. 지난 2009년 사법연수원 수료 신규 검사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이후 검찰의 '여초(女超)'현상은 이제 표현 자체가 진부한 상황이 됐다.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지금에야 도통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내몰리기 십상이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이 별 거부감없이 통용됐던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여자가 무슨' 한마디면 주변사람들 대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당사자인 '여자'들은 이같은 편견에 맞서며 기껏해야 '그 여자 참 지독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정 검사가 회고하듯, 당시 수원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 '여자에게 걸리면 망신이니 싸움을 하지 말자'는 자정 결의까지 나온 것도 맥은 좀 다르되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여성비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성인 검사는 여전히 '여검사'다. 수년전, 내연관계였던 남성 변호사로부터 승용차와 핸드백을 선물로 받아 물의를 일으켰던 여성 검사는 '벤츠 여검사'로 지칭되며 온갖 지탄을 받았다. 사건의 본질은 검사로서 수사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과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였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보단 이 검사의 사생활, 해당 변호사와의 관계에 모였다. 젊은 여검사였기 때문이다. 여성 검사들의 수사상 성과나 실적들도 대개는 섬세함, 온정, 부드러움 같은 수식어와 함께 '여검사'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허다했다.7·30 재보선에서도 여검사가 화제다.수원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미경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백혜련 후보는 같은 대학·사시 1년 선후배 관계로, 둘다 검사 출신이다. 검찰을 떠나는 과정도 엇비슷했다. 정 후보가 노무현 정부시절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비판하는 책을 발간하고 검사직을 그만뒀다면, 백 후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대구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정치 검찰이 부끄럽다"며 사표를 냈다. 각각 여야로 나뉘어 상반된 길을 걷게 됐지만, 둘다 상명하복의 검찰내에서 권력에 맞서 옷을 벗었다는 공통의 개인사(史)를 갖고 있다. 이번 재보선이 거물 대 신인, 토박이 대 낙하산 등등의 구도를 형성하며 나름 열전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선 이 '여검사간 대결'이 자못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여당의 과반의석 회복에도, 야당의 세월호 민심 이어가기에도 그닥 관심없는 유권자들에게, 그것도 삼복지경 휴가절정기에 치러져 투표율을 걱정해야 하는 재보선에서 그나마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매치가 성사된 셈이다.기왕이면 이 재미있는 대결이 가뭄의 단비 같은 흥행성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구태와 이전투구가 판치는 게 작금의 선거판이었다면, 적어도 이 두 후보의 대결만큼은 권력의 부당함에 맞섰던 검사의 기개를 겨루는 장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해 범죄꾼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수십년 검찰의 폭탄주 회식문화까지 바꿔버린 여검사들의 힘이 이번 선거에서 재연된다면, 아직 이 사회 어디엔가 발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자가 무슨…' 따위의 편견은 남자들의 비겁한 자기합리화였을 뿐이란 걸 다시 증명하게 된다. 대한민국 여검사 출신다운 정정당당한 승부라면, 유권자가 누구를 택하든 두사람은 모두 승자가 된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7-16 배상록

'짜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 국민만 멍들어

십여년 전 '세상은 요지경' 노래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국민들의 눈에 정상이 아닌 가짜만 판치는 세상을 풍자한 가사에 소위 막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의 표정은 정말로 요지경 세상을 묘사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등의 가사는 당시 말 못하고 답답해 하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노래로 털어버리게 했다. 이 노래가 유행하던 당시에는 IMF 여파가 지속되면서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회 어느 것에서도 위로받지 못해 마음 둘 곳 없어 힘들어 하던 시절이었다.만나는 사람마다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꾸로 가는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또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이 사회 모든 것이 요지경이다. 지금 이 나라에 국민들은 없는 듯하다. 정치권은 정치권, 사회는 사회 나름대로 지도자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국민은 완전히 배제됐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라는 존엄한 이름이 팔리고 있다.지금 요지경 같은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각종 부패로 시작된 세월호 참사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수백명의 생명을 잃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눈치만 보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정쟁만 벌이고 있다. '세월호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며 국민들은 더 답답할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유가족과 국민들의 아픔은 기억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청문회에도 서지 못한 채 사퇴했다.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7·30 보궐선거 공천은 더 요지경이다.여·야 모두 전략공천 명분으로 자기 사람 심기에만 급급했다. 유권자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논리와 명분을 앞세워 국민들을 농락했다. 그래 놓고 유권자들에게 뽑아 달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움이 요지경이다.더 요지경은 그러고도 자기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이란다. 사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유병언 전 회장을 수사하는 검찰은 어떤가. 대한민국 검찰이 두 달이 넘도록 행방도 모른 채 뒷북만 치고 있는 모습도 요지경이다. 기소 만기일이 채 2주도 안 남았는데 오리무중이다. 검찰은 무작정 잡겠다고 말하지만 계획이나 대책은 없다. 그저 재수에 맡길 뿐이다.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GOP에 근무중인 장병이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초소장이라는 간부는 자기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치는 어처구니없는 일 또한 요지경 아닌가.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끌고 있는 사제는 '꽃동네'가 일종의 큰 강제수용소 모형이라며 교황의 방문을 반대했다. 국민 대다수가 '꽃동네'는 소시민이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사제들은 이곳이 수용소로밖에 비치지 않는 모양이다.요지경은 월드컵 축구 대표팀에서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힘들어하던 많은 국민들이 월드컵 축구를 통해 위로받기 원했다. 사상 최강팀이라는 떠벌림에 국민들은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했고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에 국민들은 실망했지만 4년 후를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그런데 웬 요지경!!! 국민들이 실망하는 동안 브라질 현지에서 선수단은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것도 현지 여성까지 불러놓고…. 국민들은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았다.그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의 모습은 안 보였을까. 사회 전체가 온통 요지경이다. 그저 국민의 이름을 팔아 가짜만 판치고 있다. 이 사회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요지경 세상속에 국민들의 가슴은 점점 멍들고 있다./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7-13 박승용

한국 축구 기적을 바라는가

답이 없다. 뒤로 가는 한국 축구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를 당한 수장은 '자기 책임이다'면서도 끝내 그만두지 않았고, 한국 축구의 총괄적 책임자인 대한축구협회도 이번 월드컵 책임론에 대해 얼버무렸다.한국 축구는 그동안 아시아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실력이 낫거나 전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바로 선수들의 '투혼'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투혼'은 끝까지 싸우려는 굳센 마음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를 기억한다. 당시 선수들의 투혼은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는 난공불락(難攻不落)과도 같았다. 선수들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인 '기적'과도 같은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한국 축구는 월드컵 때마다 전력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줬다. 2002년까지 월드컵 1승과 16강 진출은 국민적 염원이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이 마침내 이뤄졌고, 이후부터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 원정 1승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한 한국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승부사' 허정무 감독을 앞세워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그러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은 이전 한국 축구가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선수들의 투혼은 찾아볼 수 없었고, 경기력과 개인기술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과 남미를 따라잡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밝힌 '모두가 그라운드에선 리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수들은 경기때마다 당황했고, '무색·무취 전술'과 특징없는 세트피스 전술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1무2패) 이후 16년 만에 '조별리그 무승'의 악몽을 재현했다. 게다가 아시아 무대를 호령하던 강한 정신력과 체력도 이번 월드컵에선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됐다. 그 결과 한국은 1무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사상 최악의 졸전을 펼친 대표팀에 일부 팬은 인천국제공항 해단식에서 호박엿을 투척하기도 했다.그럼에도 대한축구협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느낌이다. 최악의 성적을 거뒀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사령탑도 유임시켰다. 협회 부회장은 "모든 질책을 달게 받겠다"면서도 '성적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회피했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는 완벽에 가까운 사조직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 밀실논의·불통행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수차례 나온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가맹경기단체지만, 국고 지원금이 협회 예산의 1%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으로 다른 종목의 경기단체와 달리 강도 높은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협회는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승인없이 보고만으로 협회 헌법에 해당하는 정관을 개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미 상업주의적으로 흐른 FIFA는 국가나 정치권이 회원 협회의 행정에 개입하면 자격을 정지하거나 박탈해 A매치를 치를 수 없도록 제재하고 있다.이런 이유에서 축구협회는 막강한 권한과 예산을 사용한다. 기업체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협회 예산을 늘리고, 지방자치단체에는 국가대표팀 친선경기(A매치) 유치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요구하기도 한다.그러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야 하는 팬들이 등을 돌렸다는 점은 결코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참패의 책임소재와 관련한 답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사실,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비판장인 자유게시판을 최근 폐쇄했다는 사실 등은 한국 축구가 분명 뒤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일본과 이란은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했고, 이탈리아는 축구협회장까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본은 아예 새로운 감독을 확정해 일찌감치 4년 뒤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고도 한국 축구가 기적을 바랄 수 있을 지 의문이다./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7-06 신창윤

'굿모닝! 경기도' 문화로 열자

경기도정의 수반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1일 취임식을 갖고 직무 수행에 들어갔다. 그는 취임사 머리말에서 "일자리가 넘치는 안전하고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굿모닝 경기도로 경기도민의 아침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광고카피처럼 달콤하다. 백문(百文)이 무슨 소용인가. '아침이 행복한 삶'이면 더 바랄게 없다. 이 시대에 아침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기는 힘들겠으나 짐작은 어렵지 않다. 세대와 계층에 관계없이 미로와 같은 경쟁구조에 갇혀 맹목적인 질주를 강요당하는 현대인에게 '아침이 행복한 삶'은 오매불망 바라는 염원이다.경기도민의 아침이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남 도지사는 일자리와 안전, 그리고 따뜻함을 앞세웠다. 일자리와 안전은 행정적으로 추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이자 그 성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일자리는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던 최고의 정책 목표였다. 호구지책이 있어야 행복한 삶의 조건이 충족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니 중언부언이 필요없다. 안전은 세월호 사고 이후 새롭게 등장한 화두이다. 압축성장과 이를 뒷받침해온 비리구조가 구축한 총체적 부실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에 이르렀으니, 안전은 행복의 새로운 전제가 됐다. 남 도지사 역시 일자리와 안전을 빼놓을 수 없었을 테고, 약속의 실천과 실현은 엄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그런데 '따뜻한 경기도'에 이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따뜻한'이라는 단어는 구체적이지도 않고 계량화도 힘든 형용사이다. 정치인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언어를 가능한한 삼가는 것이 맞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선명하고 선동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지사는 왜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했을까. 짐작컨대 '따뜻한'이라는 형용사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남 도지사는 당리당략과 저주의 언어로 굴러가는 정치판에서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의 주장은 옳았지만 현실 정치는 완고했다. 덕분에 개혁소장파의 리더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얻었지만, 그 탓에 비주류의 한계를 겪어야 했다.남 도지사는 이제 정치의 장에서 행정의 장으로 마당을 옮겨왔다. 정치의 장에서는 소수 개혁파의 리더로서 한계가 있었다면, 행정의 장에서는 자신의 개혁구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최대의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 아닌가. 기회가 온 것이다. 도정에 야당을 참여시키는 여야 연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승자독식의 희열을 반납하고 여야 동거의 고단함을 스스로 짊어졌다. 소모적이며 의미없는 정쟁이야말로 반민생이라는 깨달음의 결과라 믿는다. 남경필 정치의 요체는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케하는 따뜻한 정치이고, 이런 정치철학을 도정철학으로 전이시킨 것이 바로 '따뜻한 경기도'인 셈이다.문제는 '따뜻함'을 실현하는 일이다. 추상적이고 감성적이며 주관적인 '따뜻함'을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어 '느낌' 이상의 '실체'로 보여주어야 한다. 남 도지사는 따뜻하고 복된 마을공동체, 일명 '따복마을'을 6천개 만들겠다는 실천계획을 내놓았다. 사람 사는 정이 넘치는 마을공동체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이에 덧붙여 문화를 따뜻한 경기도 만들기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를 권한다. 문화향수권만큼 행복한 삶을 증거하는 강력한 지표도 없다. 또한 문화는 인간의 체온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분야이다. 도내 곳곳에서 늘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아,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인간적인 여백을 늘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 대규모 문화시설을 건립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인들이 크고 작은 공연을 쉼 없이 펼칠 수 있는 행정적 후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달에 한번 정도는 크고 작은 문화현장에서 넥타이 풀고 도민들을 만난다면 경기도정의 따뜻한 정도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굿모닝 경기도! 문화로 열어주길 희망한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7-03 윤인수

유정복,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으면

엊그제 언론계 한 선배와 저녁을 함께했다. 얘기가 자연스럽게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에게로 넘어갔다. 유정복 당선자가 어떻게 시정을 펼쳐야 할 것인지가 대화의 핵심이었다. 몇 년 전 방송사 기자로 정년 퇴직한 그 선배는 인천과 서울의 지난 일과 오늘의 사정에 두루 밝은 편이다. 그 선배가 말한 '좋은 시장상'이 참 맘에 와닿았다. 그것은 '좋은 이웃'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다. 의외로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시장론이지만 생각해보면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 되기란 정말 어려울 듯하다.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인천시정을 이끌었던 안상수 전 시장은 누구보다 많은 일을 벌였다. '국제도시 건설'이 콘셉트였는데, 그 정책 결정 스타일은 독선적인 데가 있었다. 원로 그룹의 지적도 무시할 때가 있었다. 원로들의 비판적 시선을 전해줄 때마다 그는 토론을 거쳐 여러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하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우선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안상수 전 시장은 결국 3선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송영길 시장도 지난 4년 동안 '인천을 대한민국의 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캐치프레이즈가 시민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2명의 전임 시장에게서 살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좋은 인천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 속에는 '나만이 좋은 인천을 만들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스며있다.인천시장이 시정의 최종 결정권자라고 해서 '나는 시민들을 끌고 나가는 존재'라고 여기거나, '시민에게 좋은 인천을 만들어 주겠다'는 식의 발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민을 어깨를 두른 동반자로 여기는 게 아니라 시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장은 자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치중하고, 자신의 입지를 키워 정치적으로 더 큰 꿈을 이룩하기 위한 행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물론 안상수 전 시장이나 송영길 시장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그러면 역대 시장 중 최고의 시장은 누구일까. 그 선배는 박배근 전 시장을 최고로 꼽았다. 인천시장에 이어 대구시장으로 발령받아 갔는데, 인천지역 유지들이 감사패와 함께 전별금까지 챙겨 준 첫 시장일 것이라고 했다. 박배근 시장이 인천에 재임한 것은 1986년 1월부터 1987년 5월까지 고작 1년4개월에 불과하다. 선배는 박배근 시장이 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지 두가지 예를 들었다. 하나는 가난한 동네의 후미진 뒷골목까지 포장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따뜻한 이웃 같은 시장이었다고 했다. 주안역 앞의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박배근 시장의 단골 술집이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손님 박배근이 주인장에게 "내일은 댁에서 쉬세요. 나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하고는 했는데, 그날이 불법 포장마차 단속하는 날이었다. 이걸 갖고 '단속 정보 누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걸 갖고 시장이 불법 포장마차를 조장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내일이면 인천시장에 취임하는 유정복 당선자도 선거 과정에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내가 만들어서 시민에게 준다'는 것인데, 본인이 부인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나'가 '시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란 누구 하나가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섞여 있어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웃이다. 유정복 당선자는 시민을 자신과 구분하지 말고 시민 속으로 들어가 시민과 섞이기를 바란다. 물론 27년 전과 지금의 인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당시 인구가 144만 명에 불과했으니 꼭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민이 원하는 '좋은 시장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뜻한 이웃 같은 유정복 시장'을 기대한다. 너무 소박한 바람일까./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6-29 정진오

도민은행 설립추진에 부쳐

'사회통합·야당과 연정·안전 경기도…'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경기(京畿)라는 명칭이 사용된 1018년 고려 현종 이후 천 년의 경기도정 역사 이래 처음 시도하는 임팩트(IMPACT)가 강한 제안들을 연이어 내놓아 화제다. 5선의 국회 정치경험을 토대로 차분히 준비해 온 자신의 구상을 과감하게 쏟아내고 있다. 민선 6기까지 6번의 도백을 뽑아 온 도민들은 이런 남 당선자의 행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남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그의 통 큰 결단과 직설화법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의 경제원동력이자 성장의 핵심 축인 경기도는 40대 젊은 도백의 출현으로 여야가 상생하고 민의가 직접 상달되는 새로 짜는 백년대계 지방자치의 모범적 모델을 꿈꾸고 있다. 특히 남 당선자가 이런 모델의 첫 실행작으로 정·관·재계 및 사회 저변에까지 깊숙이 만연된 '관피아' 척결을 제일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추진 과정에서 당선자 개인의 의욕과 주관만이 지나치게 강해 자칫 옥석 구분없는 획일적 강공 드라이브가 오히려 관피아 척결의 순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 틀을 마련하는 데 저항세력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여하튼 남 당선자의 새로운 행보가 신선함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남 당선자의 직설 화두 중 경제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제안이 있다. 1998년 문을 닫은 당시 '경기은행'인 지방은행 부활이다. 가칭 '경기도민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당선자의 깜짝 일성은 일약 금융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출사표를 던지면서 선거 공약리스트에 올라 있었지만 도정 혁신위원회에서조차 장기 추진 과제로 미룬 뜨거운 감자였다.지역 금융계의 상황은 대체로 이렇다. 경기도청을 비롯해 도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수원시(기업은행)를 제외한 나머지 30개 시군의 금고가 모두 농협은행이다. 과거 경기은행 존립 당시 경기도와 일부 시군의 금고가 있었지만 경기은행 퇴출 이후 모두 농협은행으로 넘어간 것이다. 점포 수와 인력 운영능력 등에서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조직을 거머쥐고 있는 농협을 상대로 남 당선자가 경쟁구도를 펴겠다는 사실상 전쟁선포로도 여길 수 있다.설립안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취임 첫 해에는 가칭 도민은행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년 임기차에 2천억원 목표의 재원조달 및 기금 조성, 3년차에 정식 출범시키겠다는 일련의 추진절차까지 소개했다. 자기자본 설립방식으로 경기도 및 31개 시군, 지역 상공회의소와 경제단체, 기업, 금융기관 등이 함께 자본금을 조달해 독자적인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335만여개의 중소기업이 밀집한 경기도가 우량 지역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어려움이 있어도 지방은행 설립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다.설립 타당성 주장에는 실제로 2012년 기준 금융 및 보험업이 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기도는 3.8%로 전국 5.9%를 훨씬 밑돌고 있는 반면, 지방은행이 있는 부산 6.2%, 대구 6.4%, 광주 5.7% 등을 내세웠다. 그는 또 지방은행 설립의 무리한 초기 투자에 대해서도 이미 경기도가 100% 출자한 공공특별법인인 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신보)이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한다. 경기신보는 이미 지난 17년 동안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신용보증업무를 해온 데다 올해부터는 1조원의 경기도중소기업육성자금의 보증업무와 대출심사에 준하는 자금배정평가업무를 맡았다. 도내 31개 시군에 19개 지점도 운영하고 있다. 점포를 새로 개설해야 하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논리만으로 따진다면 남 당선자에게 들이댈 도민은행 설립 반대 명분이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퇴출된 경기은행이 처음부터 부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지역기업과 끈끈한 정이 형성되면서 부실 담보나 채권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무뎌졌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지역 연고주의와 관피아란 독버섯이 언제 다시 자라날지 모르는 일이다. 취임 이후 관피아 척결 실행 여부가 도민은행 설립추진 성패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6-26 김성규

박상은 의원 그리고 추문들

박상은 의원이 지난 11일 돈가방을 도난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불거진 '금품 절도'사건이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차량 뒷자리에 있던 2천만원을 넣어둔 가방이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자신의 운전기사 A씨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A씨는 다음날 검찰을 찾아 현금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을 제출하며 (박상은 의원의) 불법정치자금이라고 신고했다. A씨가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의 한 검사실로 현금이 들어 있는 가방과 함께 서류 등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박 의원은 인천 중구 사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열린 당직자 회의에서 "2천만원은 집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의 일부로 변호사 선임료로 사용하려던 것이었다"며 "돈에 대해선 결백하다.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돈의 액수가 박 의원 측이 최초 경찰에 신고한 2천만원이 아닌 3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박 의원이 얼마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돈을 보관하고 있었던 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검찰은 "돈의 액수가 정확히 알려지면 박 의원에게 해명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박 의원을 압박했다.세월호 참사 사건이후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은 A씨의 신고가 있기 전부터 박 의원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검찰이 박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벌인 압수수색 현황을 보면 다각적이고도 강도가 높다. 지난 10일엔 가장 먼저 항만비리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키 위해 인천의 한 건설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이 업체의 공사수주를 도와주고 어떤 금전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박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학술연구원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여 연구원에 있는 박 의원 집무실에서 각종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박 의원과 한국학술연구원 사이 금전거래 내역 등을 확인한다고 한다. 또 박 의원 사무실 직원의 급여를 한국학술연구원이 대신 지급했다는 의혹도 조사중이다. 검찰은 나아가 박 의원의 아들 집도 전격 압수수색 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가 섞인 수억원 대의 현금뭉치를 발견했다. 지역해운 업체 여러 곳과 한 저축은행도 박 의원 후원금과 관련해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또 전직 비서 B씨가 지난달 "국회 비서에게 지급되는 급여 중 일부를 후원금 명목으로 가로챘다"며 박 의원을 갈취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인천시선관위는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을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박 의원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로부터 받은 공천헌금이 있는지 등도 검찰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사안이다. 아들 집에서 나온 거액의 현금도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검찰은 보고 있다. 오는 7월 1일 개원하는 제 7대 인천시의회 의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박 의원의 개입설과 함께 거액의 금품 제공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중·동·옹진 세 지역을 하나로 묶은 지역구를 갖고 있는 박 의원이 시·구·군의원 후보 지역 및 비례 공천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선거때만 되면 박 의원 주변에서 이 같은 의혹들이 불거지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박 의원이 은행 대출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미션을 받은 혐의도 수사대상이다. 검찰은 박 의원의 도움으로 한 업체의 대출 한도를 높여주고 그 대가로 박 의원에게 수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지역 모 장례식장 대표 C(64)씨를 알선수재혐의로 구속했다. 박 의원을 둘러싼 각종 비리는 이제 의혹 수준을 넘어 추문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박 의원의 각종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출당 등의 강력한 조치도 논의한다고 한다. 검찰은 박 의원 측근들의 폭로와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규명뿐 아니라 지금까지 주력해 온 해운비리 등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검찰은 한결같이 '성역없는 수사'를 천명해 왔다. 국민들은 이번 현역 의원을 상대로 한 수사가 성역없이 이뤄지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6-22 이영재

연정(聯政)? 연정(戀情)!

지방선거 이후 경기도 정가의 화두는 단연 '연정(聯政)'이다. 선거과정에서 남경필 후보가 야당과 연정을 하겠다고 밝힐 때만 해도, 이를 진정성 있는 약속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야권은 단순한 선거용 쇼맨십으로 평가절하했고, 여권 역시 괜한 관심끌기로 '집토끼'들을 분열시킨다며 곱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봉선화 연정은 알겠는데 지방정부 연정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캠프내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많다보니, 그 치열했던 선거전에서도 연정은 그닥 쟁점이랄 것도 없는,숱한 공약중 하나 정도로 치부됐다.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남경필은 당선자 신분이 되자마자 사회통합부지사 자리를 내주겠다며 야당에 공식적으로 연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정책 합의가 먼저'라는 야당의 역제안도 주저없이 받아들였고, 한발 더 나아가 상대후보가 내세웠던 공약을 상당부분 수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간간이 야당의 견제구가 날아들긴 했지만, 연정 논의기구 구성 등 현재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은 가히 속전속결, 일사천리 수준이다.남경필은 '독일식 연정'을 주창하고 있지만, 독일의 연정과 남경필의 연정은 서로 닮은듯 다르다. 독일에서 연정은 건국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을만큼 일반화되며 연정의 수범사례로 꼽히고 있으나, 온전치 못한 승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次善)의 측면도 적지 않다. 메르켈 총리처럼 군소정당과의 연합 대신 경쟁상대인 사회민주당과 손을 잡는 '대연정'을 이루기도 하지만, 내각제의 다수당 체제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집권당이 소수당과 연합,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정부를 꾸리는 것이 일반적인 독일식 연정이다.남경필의 연정은 양당 체제에서 승자의 자발적 의지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독일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불과 0.87%포인트 차이지만 그는 양자간 맞대결의 온전한 승자다. 도의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됐다지만, 도지사의 역할이 심각한 제한을 받을만큼 우리 지방의회의 권한이 크지는 않다. 지방의원들의 수준도 이젠 무조건 집행부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낮지는 않다. 지금까지는 사회통합부지사 자리 하나만 구체화된 작은연정이지만, 양당체제 상대방인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합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대연정의 성격이 짙다. 남경필은 일단 연정 카드를 통해 당선이후, 그리고 취임초기 도정 운영의 주도권을 쥔 것으로 보인다. 근소한 차이의 신승이라는 선거결과는 이미 화젯거리 밖으로 밀려났고, 야당 다수인 도의회의 견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정책 연합을 수용하고 야당이 추천하는 부지사는 '종북 좌파만 아니라면'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힌 마당이니, 설령 연정논의가 불발되더라도 현재로선 그 책임의 추가 야당쪽에 쏠릴 개연성이 더 크다. 정치인 남경필이 챙긴 전리품도 적지 않다. 몇몇 여론조사를 통해 그가 일약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경기지사 당선이라는 단순한 팩트 외에 연정에서 파생된 인지도·지지도 상승, 이미지 메이커로서의 반대급부도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시킨 것도 큰 소득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경필 연정의 성패는 여전히 예단하기 어렵다. 우선 초보 당선자의 의지에만 기대 연정의 순항을 점치기에는 우리 정치판 생리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통합과 혁신이라는 대전제에 밀려 숨죽이고 있으되, 연정에 대한 냉소는 여권내에 아직 분명히 존재한다. 대승적 견지를 내세우며 연정에 보조를 맞춰온 야당 역시 남경필 장단에 춤만 추는 모양새라 판단되면 언제든 판을 깰 수 있다. 노랫말처럼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게 지금 남경필의 연정이 처한 현실이다.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남경필의 연정이 독일식이든 경기도식이든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작은 연정, 대연정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국민들은 알듯 모를 듯 어려운 연정보다는 우리 정치권이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풍토, 비록 삼류 신파에 가까울지언정 그들의 '연정(戀情)'에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6-19 배상록

'대체빵'과 '교환빵' 그리고 '정치'

같은 직장에 다니는 청춘 남녀가 눈이 맞아 사귀다 결혼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사귀는 남녀를 '캠퍼스 커플'(Campus Couple), 줄여서 'CC'라고 하니 사내 커플도 'CC'(Company Couple)라고 해야 할 듯싶다.그런데 금융권, 특히 은행에서는 이들 사내 커플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가 있다고 한다. 가령 한 은행의 예금부서에 근무하는 A군과 대출부서의 B양이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했다. 이들 커플은 이른바 '대체빵'이다. 한 고객이 월급 통장에 있는 돈을 빼내 정기적금 통장에 넣으려고 한다. 월급통장, 적금통장 모두 같은 은행 계좌라면 굳이 월급통장에서 현금이나 수표를 인출해 적금통장에 다시 입금할 필요가 없다. 이렇듯 거래는 이루어지는데, 실제 현금거래 없이 같은 은행 내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대체거래'라고 하는 데서 연유한 듯싶다. 그럼 서로 다른 은행에 근무하다 눈이 맞아 결혼하는 커플을 표현하는 용어는 무엇일까? 바로 '교환빵'이다. '남녀상열지사'를 '은행간 거래'에 비유한 듯하다. 이쯤되면 은행원과 비은행원간의 결혼이나 사귐을 칭하는 용어도 있을 듯하다. 정답은 '출납빵'이다. 설명이 필요없을 듯싶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정치권에서 '교환빵', 더 나아가 '출납빵'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새누리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소통과 통합을 위해 정무부지사 자리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이름을 바꾸고 야당에서 추천받은 인사를 임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협력과 협치를 통해 지방에서부터 여야간 대립을 청산하고 사회적 통합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남 당선자는 사회통합부지사에 야당 인사를 임명하는 자신의 연립정부 제안과 관련해 오늘(12일) 여야 정책협의회 첫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같은 당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원 당선자는 제주지사 선거의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사직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물론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상존한다. 남 당선자와 원 당선자의 제안이 나왔을 때 야권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정치쇼'가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통합을 앞세운 '이미지 정치'로 책임정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자의 잔치'식으로 요직에 같은 당 인사를 끌어다쓰는, 달리 표현하자면 '대체빵'외에는 없을 듯했던 정치권에서 이같은 제안은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진 여야의 현실의 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인정해야 할 듯싶다. 특히 남 당선자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여·야간 '연정(聯政)'이 펼쳐지게 된다. 사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주요 정당 간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는 퇴색된지 오래다. 극단적 여야 대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진정 상생과 통합의 정치가 실현될지, 기대감과 함께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새 총리 후보에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지명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언론인 출신이 지명된 만큼 이번 총리 인선은 '출납빵' 정도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남 당선자 등이 추구하는 시스템은 한국 정치사에서 획기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의 교환빵이라 할 수 있는 이같은 새로운 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조합의 주체들이 정쟁(政爭)을 접고, 위민(爲民)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서로에 대한 신뢰는 기본이다. 이같은 실험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공사례로 기록되기를 꿈꿔 본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6-11 임성훈

월드컵 '대~한 민국'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이 오는 13일 오전 5시(한국시간)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1개월간 펼쳐진다. 이제 지구촌 사람들의 눈과 귀가 브라질로 모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지난 6·4 지방선거의 열기를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태극전사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16강을 넘어 목표인 원정 사상 첫 8강 진출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팬들은 벌써부터 한국이 같은 조의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를 넘어 상위 2팀 만이 주어지는 16강에 오를지 산술적 방식을 따져가며 화젯거리를 만든다.그렇다면 과연 한국 대표팀이 1차 목표인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 대다수 축구 전문가들은 '축구는 상대성이 있는 스포츠고,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강자와 약자도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축구라는 종목은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팀이 강하다고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심과 조직력, 단결력, 희생정신 등을 필요로 하는 단체 종목이어서 늘 이변이 존재한다.물론 축구에도 국가별 순위가 있다. FIFA는 매월 팀 성적에 따라 세계 랭킹을 매긴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FIFA는 6월 랭킹을 발표했는데, 한국은 57위를 기록해 벨기에(11위), 러시아(19위), 알제리(22위)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 본선 32개 국가 중에는 한국이 '꼴찌' 호주(62위) 보다 높은 31위다. 스페인과 독일이 전체 랭킹에서 1, 2위를, 브라질은 3위에 이름을 올렸다.랭킹 얘기를 더해보자. 그동안 기록에 의하면 하위국이 상위국을 이길 확률은 24%에 불과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열린 총 128차례의 경기 결과, FIFA 랭킹이 낮은 나라가 승리한 경기는 모두 31차례로, 이를 확률로 계산하면 24.2%가 나온다. 뒤집어 말하면 FIFA 랭킹이 높은 나라는 낮은 나라를 상대로 이기거나 비길 확률이 75.8%나 된다는 얘기다. 그럼 출전국 가운데 31위인 한국은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를 상대로 이길 확률이 24% 밖에 안된다는 것인데, 우리에겐 결코 달가운 얘기는 아닌 것 같다.그럼 한국이 내세울 만한 것은 있을까. 이에 대해 홍명보 감독은 '선수 모두가 리더'라고 답했다. '그라운드에서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선수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태극전사 23명의 평균 나이는 26.1세로 역대 대표팀 중 가장 낮다. 이번 대표팀에는 곽태휘가 유일한 30대 선수다. 대표팀의 주축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보니 24∼26세 사이의 선수가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다. '젊은 팀'이어서 기동력과 체력이 뛰어나지만 반대로 상황에 따라 급속하게 경기력이 요동친다는 단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풀어줄 '그라운드의 지휘관'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홍 감독은 특정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동료를 독려하기보다는 개개인이 리더가 돼 스스로 좋은 판단을 내려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어찌됐든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승점 4점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첫 경기인 러시아를 비롯해 알제리, 벨기에를 상대로 1승1무 이상의 성적을 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 태극전사들의 사기를 도와줄 12번째 태극전사 서포터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과 브라질의 시차가 12시간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가 한국 시간으로 오전에 잡혀있다. 온 국민이 밤잠을 설쳐가며 선수들을 응원한 뒤 회사에 출근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각 지역마다 치밀한 응원전이 준비됐고, 일부에선 '응원하고 출근하자'라는 구호를 만들기도 했다. 6월 한달 간 태극전사들이 이국 땅에서 화끈한 축구와 원정 사상 첫 8강 진출에 오를 수 있도록 모두가 외쳐보자. '대~한 민국'./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6-08 신창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이제 이틀 남았다. 2014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앞으로 4년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교육청을 이끌 대표자를 뽑는 날이 눈앞에 닥치고야 말았다.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원 등을 한꺼번에 뽑는 동시선거 체제로 전환한 지 여섯 번째를 맞는다. 내년이면 지금과 같은 지방자치의 틀이 갖춰진 지 꼭 20년이 된다.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성숙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다. 성숙한 지방자치는 나이만 먹었다고 되는 건 아니다. 뽑힌 사람이 그럴 만한 자질을 갖췄을 때에만 가능하다.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광역단체장 선거 현장. 현직 광역의원이 현직 광역시장이면서 다시 광역단체장 선거전에 뛰어든 후보자의 수행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 4년 전 유권자가 부여한 지방의원의 역할을 이처럼 내팽개쳐도 된다는 말인가. 단체장을 감시하라고 뽑아줬더니, 자신의 본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릴 수가 있는가. 어떤 기초 단위 선거 현장에서는 더욱 가관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현직인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가 소속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즉각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단체장 후보자와 같은 당 소속으로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선 해당 기초의원 몇 명이 덩달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같은 선거 단위의 현역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와 현직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소위 '무소속 연대'를 꾸린 이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들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을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겠다.우리의 지방선거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전쟁 통인 1952년 4월과 5월에 첫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4년 뒤인 1956년 8월에는 두 번째 지방의원 선거와 첫 번째 단체장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를 넘지 못했다. 1960년 12월에 예정돼 있던 4개의 지방선거가 사라진 것이다. 5·16 쿠데타 세력은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선거를 차단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대표자를 뽑는 지방선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쿠데타로 막힌 지 30여 년이나 지난 1991년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었다. 이는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끈질기게 이어 온 투쟁의 산물이기도 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피를 먹고 커 왔다.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지방자치이건만 여전히 그 내용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그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여전히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기능은 더욱 한심하다. 입법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은 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강제할 수 있는 법규 하나 만들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선출된 단체장과 의원들에게 있다. 그들을 뽑은 유권자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지방자치 20년이 된 지금 꼭 생각해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수준 높은 지방자치는 그냥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출된 단체장과 의원들의 수준이 높을 때 수준 높은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그것은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내가 수준 낮은 후보자를 택하면, 내 수준 또한 덩달아 낮아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는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대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내가 행사하는 이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다행히 지방선거 사상 처음 실시한 사전투표에 기대 이상의 관심이 쏠렸다. 전체적으로 투표율도 높았지만, 투표를 안 한다고 내놨던 20대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가 눈에 띈다. 어떤 후보자가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나의 기대에 부응할지 눈을 부라리고 살펴보자. 그리고 비판하기 전에 투표부터 하자./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6-01 정진오

선택… 고민 깊어지는 유권자

6·4 지방선거가 1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을 선거판은 세월호 여파로 아직 냉랭하다. 정당 공천 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았고, 전반적인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후보를 들여다 볼만한 시간도 그 만큼 줄었다. 선거운동 방식도 '조용하게' 바뀌면서 우리 지역의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유권자들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증할 수단도, 후보들을 별도로 판단할 근거도 여느 선거때보다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각종 협회나 모임 등 이익단체와 기관들이 나서 후보 토론회를 열고 있지만 해당 기관의 이익과 관련한 질의 응답만 오고 갈 뿐 일반 유권자들이 판단할 내용들은 별반 없어 보인다. 선관위가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역대 선거때보다 저조할 것이란 우려 속에 캠페인 등을 통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유권자들에게 '깜깜이 선거'로 인식되는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도 깜깜하긴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을 펴고 있는 후보들은 저마다 겉으론 승리를 장담하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유권자들의 반응을 도저히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악수할 때 '꽉 잡아주는 손', 인사를 할 때 '파이팅을 외쳐주는 입', 지나갈 때 '박수를 쳐주는 마음' 등 그 동안 '내 표'라고 인식됐던 유권자들의 동향 파악이 이번에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당선 가능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각 후보들이 관심있게 보는 것은 언론사들이 공표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 결과마저도 각 매체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와 실제 후보자의 지지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인해 후보자들도 '깜깜이 선거'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공식 선거운동이 22일 시작됐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요란한 선거운동에 피로감을 느낄 유권자들을 배려해 조용한 얼굴알리기에 나서는 후보들이 늘고 있다. 지역 곳곳을 청소하며 표심잡기에 나선 후보들도 눈에 띄고,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제약을 만회하기 위해 모바일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후보들도 많아지고 있다. 선거구를 걸어다니며 다양한 유권자를 만나겠다는 '뚜벅이 유세'도 유행이다. 그러다 보니 '목좋은 곳'에 선거현수막을 설치하려는 후보 진영간 신경전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 만큼 '조용한 선거'에는 동의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단이 적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조용한 선거도 좋지만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에게 '깜깜이 선거'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이러다간 우리 지역을 이끌어갈 지도자와 일꾼들을 공보에 나온 이력만 가지고 뽑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반 회사처럼 2차 면접 과정도 배제한 채 말이다.이번 선거부터는 사전투표제도가 전국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선거 당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유권자들은 5월 30일이나 31일 신분증만 있으면 전국 사전투표장소 어디에서나 미리 투표를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보다 더 쉽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는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의 후보자 공천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유권자들이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공천을 받은 정당 후보는 이미 어느 정도의 도덕성과 업무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로 여겨져 당선 후보군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 가능성만을 고려한 공천으로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유권자들의 눈총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한 시간이 많이 늘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후보는 얼마나 될까. 유권자가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는 만큼 정당들도 고민이 필요한 때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5-25 이영재

세월호,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의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늘은 어린 생명을 빌려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이지 않는 손, 섭리를 목격했다. 패륜적인 선원들, 천박한 자본,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치, 영혼 없는 언론…. 하나만으로도 재앙의 씨앗이기에 충분한데 이 모든 것들이 교묘하게 조합돼 세월호를 가라앉혔고, 어린 생명들이 수 없이 저물었다. 이리 많은 어린 생명을 희생시켜야 했던 특별한 섭리가 있다면, 우리는 그 희생에 담긴 섭리의 맥락을 직시하고 해석하고 실천해야 한다. 희생의 무게가 무한한 만큼 그 희생을 바탕으로 갱생해야 하는 우리의 노력은 처절해야 마땅하다.그런데 우리의 반성은 데면데면하고 대책은 건성건성이다. 대통령은 최종책임을 자임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호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책임의 자임과 반성의 눈물은 국가지도자의 품격으로 합당했다. 하지만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행정부 축소, 국가안전처 신설과 같은 대책은 성급했다. 애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참사에 대한 역대정부의 대응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나, 국민적 합의가 생략된 결단이라 정치적 시비의 발단이 되기 십상이라서다. 세월호에 남겨진 실종자와 그들을 기다리는 혈육들을 생각하면 대책을 거론하기 민망한 것도 사실이고, 더구나 참사의 진실을 감춘 채 도주중인 유병언은 오리무중이고, 참사의 진상조사를 위한 조직도 꾸리지 못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를 대한민국 갱생의 계기로 삼자는 국민적 각성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 찜찜하다. 지방선거에 돌입한 정치권은 겉으로는 제 탓을 강조하면서도 상대에게 참사의 책임을 미루는 영리한 레토릭을 구사중이고, 사회 일반은 참사에서 벗어나 일상을 복원하자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이래서는 세월호 참사도 죄책감과 탄식만으로 흘려보냈던 역대 대형 참사와 같은 수준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하지만 '하늘이 어린 생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유할 시간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한민국 전체의 집단사유의 결과를 가지고 이 시대와 결별하고 새 시대를 맞아야 한다. 미시적 응징과 대책에 연연해 거시적 사색과 각성을 포기하면 안된다. 사색의 주제는 다름아닌 '우리의 변화'이다. 공직자는 진정한 공복으로, 자본가는 양심적인 기업가로, 정치인은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은 각자의 영역에서 소통하는 상식인으로 변해야 한다. 제 아무리 시스템을 바꾸고 정밀한 매뉴얼을 만들어 본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국민적 각성을 한데 모으는 국민적 조직이 필요하다. 국회가 정파와 종교와 이념과 계층과 세대를 초월한 '국민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위원회의 의무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우리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져야 할 대한민국의 변화를 집대성한 '세월호 백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세월호 백서에는 참사 주체들의 잘못이 낱낱이 담겨야 하고, 이를 위해 진상조사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여야는 만장일치로 백서를 국가기록물로 지정해야 한다. 국민위원회의 백서에 따라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국가개조, 국민의식 전환 실천 항목들이 자발적으로 드러나고 정부 조직의 변화도 이를 따라야 한다. 몇년의 세월이 걸린들 무슨 상관인가.뜬 구름 잡는 소리라는 비판이 있다면 감수하겠다. 하지만 시대의 전환을 위한 윤리적·도덕적 각고면려를 회피한다면, 세월호 참사로 비롯된 이 시대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단원고 어린 학생들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은 위선이다. 유병언 일족을 단죄하고 세월호 선장을 엄벌하는 것으로 우리의 공분과 죄책감을 덜어내려 한다면 우리 시대의 부조리는 계속 살아남아 또 다른 청해진을 키울 것이다. 어린 생명들의 희생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깊이 사색할 시간이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5-21 윤인수

너무 빨리 잊혀지고 있다, 사고 공화국 오명을…

2014년 4월16일 오후 6시30분 탑승자 459명, 사망자 4명, 구조자 164명, 실종자 291명. 그리고 한달여가 지난 2014년 5월18일 탑승자 476명, 사망자 286명, 실종자 18명, 구조자 172명. 참담했던 한달이 흘렀다. 국민 모두가 억울해서 울었고 불쌍해서 울었다. 고통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수십만명이 합동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 가족들과 아픔을 같이 했다. 그 뿐인가. 수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사고현장인 진도와 안산을 찾아 유가족들을 달래며 같이 아파했다.직장인들은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을 이용해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동을 사죄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국민들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수없이 반복되는 대형 참사때마다 다시는 이같은 사고를 되풀이 하지 말자며 난리를 치던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은…. 물론 언젠가는 그날의 아픔을 달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전반적으로 안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잊혀지고 있다. 누구는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시간으로 아픔을 잊을 수는 있어도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다. 수십명, 수백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는 특별대책 운운하며 후진국형 참사를 예방하겠다고 떠들었지만 매번 공염불이었다. 그렇게 '사고 공화국'의 오명은 이어지고 있다.그동안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나.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등교하던 학생 등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로 무려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화재로 192명의 시민이 희생됐다.그 뿐인가. 1993년 10월10일 서해 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1999년 6월30일 화성 씨랜드 화재로 23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숨졌다. 또 1999년 10월30일 인천 라이브호프집 화재로 56명의 청소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안전 불감증에서 시작된 인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같은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부는 위령탑과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 외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날의 아픔보다 안전 불감증의 경각심을 일깨울 표지조차도 없다. 그렇게 국민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갔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 아니 평생 아물 수 없는 상처로 여전히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다른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사고를 기억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처구니 없이 발생한 사고 자체도 기억하지 않는다. 쉽게 잊혀지는 아픈 기억은 매번 대형사고를 되풀이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달. 아직도 18명의 실종자가 수습되지 못해 가족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잊어가고 있다. 안산 합동 분향소에는 몇시간씩 기다리던 조문객의 발길이 점차 줄고 있다.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슬픔과 분노로 들끓었던 국민들이 평상심(?)을 찾고 있는걸까. 유가족들은 조문객이, 자원봉사자가 줄어드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다. 유가족이 지금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아픔도 이젠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변한 것 없이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 등 기억속에 묻혀버린 대형 사고처럼 세월호 참사 역시 그냥 잊혀질까봐 두렵다. 유가족들은 몸부림친다. 너무 빨리 잊지 말아 달라고,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5-19 박승용

대한민국호의 만재흘수선

처음 항만분야 취재를 담당했을 때 접한 해양용어 중 하나가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었다. 당시 생소하기만 했던 이 단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만재흘수선을 해양용어로 표현하면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적하한도(積荷限度)의 흘수선'이다. 즉, 선박이 충분한 부력을 갖고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물에 잠겨야 할 적정 수위를 선박 측면에 표시한 선이다. 하기 만재흘수선과 동기 만재흘수선, 동기북대서양 만재흘수선, 열대 만재흘수선, 하기담수 만재흘수선, 열대담수 만재흘수선 등으로 만재흘수선이 지역이나 수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설정돼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만재흘수선이 해양과학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어쨌든 이 선을 넘어 화물을 싣게 되면 중력이 부력보다 크게 된다. 선박이 침몰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초과하여 화물을 적재해서는 안 된다.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셈이다.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우선적으로 '과연 만재흘수선이 제대로 지켜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재흘수선이 지켜졌다면 선박이 기울어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원성을 갖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순진함'과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사악한'(?) 의도에 의해 만재흘수선이 얼마든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세월호 참사 한 달을 맞는 동안 드러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세월호 참사는 과적과 무리한 구조변경, 결박 부실, 평형수 부족 등이 맞물려 빚어낸 합작품이다.특히 선사측은 '돈이 되는' 화물을 더 싣기 위해 선박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평형수는 4분의 1만 채우는 꼼수를 부렸다. 이러다 보니 외견상으로 만재흘수선은 지켜진 듯 보였지만 무게 중심이 위로 올라가 선박은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과적과 평형수 부족은 구조변경, 결박부실 등과 함께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세월호는 우리 사회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우선 세월호의 과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불법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과적은 연안여객선 업계의 고질적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선사측이 세월호의 승객 수와 화물선적량을 늘리려고 구조변경을 단행한 것은 이윤추구에 매몰돼 있는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부족한 평형수는 기반이 허약한 우리사회의 안전 시스템과 닮은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먼저 살겠다고 승객들을 나몰라라 한 선장 등 선원을 비롯한 청해진해운 관계자들과 대형사고 우려가 있는데도 방치한 해양수산부나 허술한 초기 대응에다가 무능함마저 드러낸 해경, 그리고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 등은 '대한민국호'의 '해피아' 집단을 연상시킨다. 정부가 지난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행정안전부의 간판을 안전행정부로 바꿔 달 때 상당수 국민은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간판은 결과적으로 세월호의 만재흘수선과 다름없었다. 청해진해운이 고철 수준의 선박을 일본에서 들여와 도색을 하고 만재흘수선을 새로 그려 세월호로 둔갑시켰듯이 곪을 대로 곪은 부조리는 그대로 둔 채 간판만 바꿔 달았다고 국민의 안전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이번 세월호 참사는 보여주고 있다.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전, 국민들은 일상의 온전함을 이미 무용지물이 돼 버린 정부의 만재흘수선 덕분이라 착각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짝퉁'으로 전락한 대한민국호의 만재흘수선을 믿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호에 승선하면서 낸 뱃삯(세금)마저 아깝게 생각하고 있다. 만재흘수선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대한민국호의 과제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5-14 임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