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초심(初心)

2014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국민들의 모든 사랑을 받아온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 지난 주말 전국에 태풍을 일으켰다. 선수들은 그동안 열악한 환경을 딛고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역사상 첫 올림픽 무대를 밟은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2012년과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세우며 한국 컬링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들의 활약은 컬링 규칙도 잘 몰랐던 팬들의 눈과 귀를 자극했으며, 전국에 컬링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체계적 지원에 국민적 관심까지 더해지며 이제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었다.그러나 이들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무서운 공포와 관습이 숨어 있었다. 선수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세상에 알렸다. 코치의 폭언과 성희롱, 포상금 기부 강요 등까지 열거하며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집단사표를 감독에게 제출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그간 한가족처럼 느꼈던 감독과 코치는 배신감을 느낀 듯 말문을 열지 못했고, 감독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병원 신세까지 졌다. 사태가 확산되자 해당 팀 소속인 경기도와 도체육회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선수와 코치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선수들이 밝힌 내용이 모두 맞다'며 코치를 전격 해임시켰다. 이후 선수들과 부모들은 도체육회의 설득으로 사직서를 철회하며 팀 훈련에 복귀할 뜻을 내비쳐 사태는 5일만에 일단락됐다.하지만 경기도청 컬링팀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해 세계 4강팀이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급부상한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지만, 이번 내홍으로 주도권을 타 시·도에 내주게 됐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착실히 준비한 경북체육회와 전북도청 등 다른 팀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큰 호재로 작용했다. 도는 후임 컬링 코치 선임을 서두르고, 사고 재발 방지 대책, 의정부 국제컬링장 조기 건립 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상처를 받은 선수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경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이 마음을 다시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선수들 간의 믿음도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컬링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단결력과 협동심, 정신력이 승패를 좌우할 만큼 조직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컬링은 선발팀이 아닌 단일팀이 국제 무대에 나가는 것이다. 도청 여자 컬링팀은 10년 동안 한국 여자 컬링을 이끌어왔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한국 컬링의 역사를 잇따라 갈아치웠다. 훈련비는 물론 기자재조차 구입하기 힘든 상황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서로 믿음과 용기로 난관을 헤쳐나갔다. 컬링 선진국 선수들이 버린 기자재를 재활용해 사용하기도 했고, 감독은 사재를 내면서까지 컬링팀을 이끌었다.이번 사태는 코치의 강압적이면서 불필요한 언행이 시발점이 됐다. 마땅히 잘못된 일이고 처벌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운동 선수라면 한번쯤 겪을 만한 일이 부풀려져 코칭스태프를 매도했고, 이런 문제를 소속팀과 한마디 상의없이 언론을 통해 곧바로 보도된 점은 아쉬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앞으로 도청 여자 컬링팀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태가 수습된 만큼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입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0년 전 동고동락했던 추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서로를 의지하며 희생했던 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남을 시키기보다 자신이 먼저 했던 행동, 정식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 순간 등 선수들의 고통이 지금의 환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치의 문제적 행동과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소속팀 관계자들은 선수들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되돌아봐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4년도 남지 않았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준비한다면 동계올림픽의 주인공은 바로 선수들일 것이다. /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4-03 신창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중국 전한(前漢)의 원조는 걸핏하면 쳐들어 오는 골칫거리 흉노족과의 화친을 위해 흉노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야 했다. 궁녀 중 한 명을 공주라고 속여 보내기로 꼼수를 부린 그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 가장 못생긴 왕소군(王紹君)을 골랐다가, 흉노 땅으로 떠나는 그녀의 실물을 보고선 땅을 치고 말았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떼가 미모에 취해 날갯짓을 잊고 땅에 떨어질만큼 절세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는 왕소군이 '미운 놈에게 주는 떡 하나' 로 선정된 건, 어이없게도 괘씸죄 때문이었다. 당시 궁녀들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위해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쳐가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청했지만,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왕소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결국 모연수는 왕소군의 초상화를 가장 못나게 그렸고, 못생긴 궁녀 한명 보내 평화를 얻고자 했던 원조는 제 발등을 찍어버린 것이다. 훗날 이백과 동방규가 각각 소군원(紹君怨)이라는 시를 통해 그녀의 슬픔을 노래할 만큼 왕소군은 대표적인 비애의 주인공이지만, 한나라는 그 대가로 강대국과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동방규의 소군원에 나오는 구절이 바로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뜻이다.대로의 큼직한 건물마다 홍보 벽보가 내걸리고, 시시때때로 후보들의 지지호소 메시지가 휴대전화를 들볶아 대는 걸 보니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한데 어째 좀 이상하다. 오가며 후보들 명함 받아본게 꽤나 오래고, TV나 신문이나 앞다퉈 호들갑을 떤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닌 듯 한데 여전히 예선전일뿐,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단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아직 후보 선정을 위한 룰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기이하다. 공천·무공천 시비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컷오프니 경선이니, 우선공천이니 잡음만 무성할 뿐 명확하게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경기도지사 선거만 해도 그렇다. 이런저런 곡절끝에 여야별로 대진표가 짜여졌다지만, 대체 어떤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것인지 명쾌하게 답을 내는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은 도당위원장의 주선으로 후보군끼리 아침밥을 먹으며 토론회 일정까지 합의했다고 하더니,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중앙당에선 2배수·3배수 컷오프 논의를 진행했다. 통합으로 시너지를 누려야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은 저마다 아전인수의 경선룰만 되풀이할 뿐 논의를 위한 회동조차 하질 않고 있다.기초단체장 선거는 더 기막히다. 새누리당은 여성우선공천 지역을 발표했다가 해당 지역의 반발에 진땀을 빼며 모양을 구기더니, 지역마다 어느 후보가 국회의원의 낙점을 받았네, 미운털이 박혔네 하는 설들이 난무하다. 후보들도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던 당의 당초 발표를 그닥 믿지 않는 눈치여서, 표심잡기보다는 너나없이 줄대기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새누리당에 온갖 원색적 비난을 퍼부으면서, 한켠으로는 무공천 방침 철회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공천 방침을 유지하더라도, 사실상 공천을 대체할 방안을 마련하리란 게 당안팎의 관측이다.선거판 여야의 행태는 왕소군의 비애를 자초한 원조의 꼼수를 떠올리게 한다. 여야 모두 상대에겐 적게 내주고 자신들은 많은 걸 얻으려는 심보이다 보니, 서둘러 명확한 룰을 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후보들이 앞다퉈 지역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에 줄을 대려 기를 쓰는 것도 사실은 미모에 자신없는 궁녀들이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것과 같은 연유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선거판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인재들이 왕소군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꼼수를 거듭하는 정치권, 상향식 공천을 외치면서 기득권을 놓치않는 정치권이 엄연한 현실로 작용하는 한, 선거에서 진정한 일꾼들이 선택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진다. 국민들은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라며 한탄할 뿐이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3-30 배상록

끊임없는 자본 실험장 '인천'

자본은 또다른 자본을 먹고 크는 속성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돈은 꼭 필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국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자본이 인간의 정신까지 좌우한다는데 있다. 늘 우리의 의식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자본은 긍정적 모습으로도, 또는 부정적 측면으로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 눈에 보이기에는 나쁜 쪽이 더 많다. 자본에 취한 사람을 우리는 속물이라고 부른다. 너나없이 돈에 한 번 취하면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 인천이 언제부터인가 '자본의 실험장'이 되고는 했다. 우리나라에서 인천처럼 자본의 투기장 노릇을 해온 곳이 역사적으로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인천이 카지노를 핵심으로 하는 복합리조트 개발 문제로 떠들썩하다. 외국 자본이 영종도에 추진중인 카지노 사업이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최근에 터주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화상(華商)그룹과 미국의 카지노 기업이 사업 주체이다. 미국 기업이 나서다보니 이번 영종도 카지노 사업에는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카지노 사업과 관련해 인천 특히 영종도에는 앞으로 외국 자본이 엄청나게 밀려들 태세다.인천에서는 1920년대부터 외국인 투자 리조트 사업이 활기를 뗬다. 호텔에서 자고, 해수욕장에서 놀고, 요정에서 술마시는 개념의 현대적 리조트가 월미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본 자본이 대부분이었다. 월미도 조탕(潮湯)은 국내 첫 바닷물 공동 목욕시설이었다. 대번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인천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안 오고는 못배겼다. 당연히 돈도 몰렸다. 월미도가 돈으로 범벅이 되면서 그 이미지는 한없이 떨어졌다. 남녀 불륜의 상징도시가 되었다.돈놓고 돈먹기 식의 자본시장도 커졌다. 요즘의 증권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두(米豆)도 인천이 가장 활발했다. 미두하면 인천으로 통할 정도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간혹 크게 챙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쫄딱 망해 거지꼴이 되기 십상이었다.1930년대에는 월미도 리조트사업의 성공이 인근 지역의 부동산 투기로 이어졌다. 송도유원지 개발이 시작되자 청량산 자락에 별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양산을 받쳐 든 복부인들이 청량산 일대의 땅을 보기위해 거니는 사진도 남아 있다. 지금 송도유원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는 중고차 야적장이 차지하고 있다. 유원지 인근은 밤이면 유흥주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인천은 한몫 챙기기 위한 '기회의 땅'이었다. 1970년대 중반 연안부두가 생겨날 때 어선 폭증 현상이 대표적이다. 어느날 인천의 한 선장이 서해 근해어장을 넘어 동중국해 어장을 발견했다. 인천에서 가려면 30시간이나 걸렸지만 동중국해 어장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하룻밤에 만선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 사이에 '인천에 가서 배를 부리면 떼돈을 번다'는 인식이 파다했다고 한다. 돈으로 무장한 서울 사람들은 나무 배 대신 철선을 지어서 연안부두에 들이닥쳤다. 연안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이 삽시간에 수백 척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 호시절은 얼마가지 않았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남획하는 바람에 물고기의 씨가 마른 것이다. 지금, 연안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은 몇 척 되지 않는다.정책 결정권자는 늘 자본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자본이 주는 당장의 맛은 달콤할지라도, 그 뒷맛은 영 개운찮은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얘기한 것들이 다 그런 경우이다. '기회'와 '상실'의 모습을 동시에 띤 카지노 사업이 인천에서 곧 본격화한다. 자본의 실험장 역할을 해온 인천의 역사는 말한다.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은 인천의 입장에서 반갑기도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할 것도 많다고. 중앙정부와 인천시 당국은 인천에 쏟아져 들어올 자본의 취향을 좀더 면밀히 살피고,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3-26 정진오

문화가 소외되는 선거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폭주하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놓고 팽팽하던 여야 기싸움이 야권의 신당창당으로 반전하더니, 여야 광역단체장의 면면들이 속속 시야에 들어오는 중이다. 여야 모두 내부경선을 통해 자당 후보를 확정할 테니, 경선국면부터는 여야 예비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낼 터이고 하나하나 꿀 처럼 달콤하고 밀랍같이 끈끈하리라. 벌써 무상의 혜택을 급식에서 교통으로 확대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대심도 급행전철망을 경기도 전체에 깔겠다는 약속도 나온다.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확대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며 복지사각을 없애겠다는 공약들은 기본이다.그런데 문화를 핵심공약으로 앞세운 후보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이해는 한다. 문화는 선전, 선동의 문구로 설명이 힘든 분야라서다. 문화기본법에서 정의한 문화는 이렇다. "문화란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체계, 전통 및 신념들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를 말한다." 어렵다. 한마디로 한민족이 고금에 걸쳐 살아오며 남긴 삶의 모든 흔적의 총합이라는 것이니 막연하다. 그러니 문화관련 공약은 거저 숨쉬는 공기를 호흡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맹랑한 말장난으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박근혜정권의 문화융성 국정기조가 허무한 것도 이런 이치에서다.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만들고,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공짜나 할인으로 공·사립 문화시설로 국민들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이런 야단법석을 체감하기 힘들다. 오히려 문화가 있는 날에 입장객이 준 문화시설들이 여러 곳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형편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한 시대의 문화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총합이라는 정의를 감안하면 문화는 애초에 관제 진흥의 대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부 전체예산의 1.5%정도로 문화·체육·관광을 진흥하겠다는 정부 아닌가.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이 돈이 아닌 말로 채워질 공산이 농후하다.중앙정부의 문화정책이 이러니 지방정부는 오죽하랴. 경기도 문화예산은 1.8%. 지사가 되겠다는 후보가 예산 1.8%짜리 문화를 공약으로 앞세운다면 정신나간 짓이다. 광역교통망이나, 이런저런 클러스터 등 수천억에서 수조원 짜리 개발분야를 공약의 첫머리로 삼는 것이 예산구조에 비추어 자연스럽다. 문화는 그 다음. 그나마 '문화향수권 확대'를 립싱크하고 모자란 미술관, 박물관, 문예회관을 시·군마다 공평하게 건립해주마 약속하는 게 고작이다.중앙,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문화정책의 기본이 이렇듯 초라하니, 문화에서 '각(角)'만 즐비하고 '숨결'이 사라졌다. 각진 대형 국·도·시립 문화시설이 넘쳐나지만 그안에 흘러야 할 문화의 숨결은 싸늘하다. 알량한 예산으로 말썽없이 분배하고 각진 문화시설 건설에 집착하는 문화행정과 관제예산 배급체제에 익숙해진 문화생산 주체들이 함께 그려낸 척박한 풍경이다.이제 문화행정의 문화를 바꿀 때가 됐다. 행정이 문화를 진흥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생산 주체가 행정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문화계의 적극적인 선거참여가 필요하다. 예총이든 민예총이든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시·도지사, 시장·군수 후보들을 불러 그들의 문화적 식견과 감성을 견주어 봐야 한다. 문화예산을 어디에 쓰는 것이 문화적인지 올바르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 행정하는 인력이 반문화적이고 비문화적인 마당에 문화 예산이 늘리도, 제대로 쓰여질리도 없다. 인생의 전환과 삶의 풍요를 만들어 준 책 한 권, 그림 한 점, 공연 한 편이 없는 사람들이 행정의 꼭대기에서 문화를 운운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문화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나라 아닌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문화 검증' 운동을 벌이는 것을 제안해 본다. 상당수 불량 후보를 걸러내리라 확신한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3-16 윤인수

'바보의사'안수현, 당신이 그립습니다

의사가 꿈인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입학했고 내과 전문의가 됐다. 그는 아파서 힘들어 하는 환자들에게 위로와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의사를 선택했다. 그 청년은 의대에 재학하면서 학과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본과 4학년 때는 한 번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턴이 돼 본격적으로 환자를 돌보던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고 한다. 레지던트 1년차 때 돌봤던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어린 의사가 날 살렸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단다. 그는 헨리 나우웬의 말대로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며 안아주었던 것이다.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전국 의사들이 파업을 했을 때 그는 병원에 홀로 남아 환자를 돌봤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환자들을 두고 병원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선물을 주는 의사였단다. 암 투병 환자에게 찬송가 테이프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는 책을 선물했다. 또 동료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 기사, 구두닦는 아저씨, 매점 아주머니까지 그 청년은 따뜻한 겸손을 나눠줬다. 하지만 청년은 군의관 시절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돼 2006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굵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의사 안수현씨 얘기다.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병원 청소하시는 분, 식당 아주머니, 침대 미는 도우미, 구두닦는 분 등 어떤 계산도 깔리지 않은 순전한 슬픔으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저서 '그 청년 바보의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참 의약분업 문제로 병원들이 파업할 때 환자들을 지켜야만 했던 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되길, 하나님 앞에서 자유할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라고….요즘 의사들이 난리다. '원격진료'와 '의료법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자(子)법인 설립'에 따른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며 14년 만에 또다시 파업을 벌였다. 24일부터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격진료'에 따른 부가적 문제점도, 영리목적의 자(子)영리법인 설립허용으로 중소규모의 동네병원은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현실…. 이 때문에 전국의 30%가 넘는 의사들이 파업에 동참했을 게다. 그렇다 해도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파업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39도가 넘는 고열로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엄마의 심정을… 몸이 아파 의사의 처방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의사들은 알고 있을까.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는 선서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양심보다 생존의 현실을 택한 의사들을 보며 아쉬움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조지프 스티글리치가 쓴 '불평등의 대가'의 내용이다. "불평등은 시장의 힘과 정치적 권모술수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의 정치는 오랜 동안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희생시키면서 상위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 왔다. 정책적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분명히 상위계층에 속한다. 파업이 아니어도 분명히 정책적 대안이 있을 수 있는데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환자를 볼모로 파업이라는 극단적 행동은 합리화할 수 없다. 그들은 의사이기 때문이다.'바보의사' 안수현… 하늘에서 지금 의사들의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안수현 선생, 참의사인 당신이 그립습니다.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3-13 박승용

강원도의 추억 그리고 카지노

강원도 하면 설핏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20여년 전 혼자 강원도를 여행했을 때의 기억들이다.첫 번째는 강원도 한 읍내 목욕탕에서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식 목욕탕이었는데 사물함에 옷을 넣고 보니 열쇠가 없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열쇠가 없냐고 물으니 마치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훔쳐가는 사람도 없는데 열쇠가 왜 필요하냐'는 무언의 응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네는 10여년 동안 '범죄없는 마을'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사실 당시에 강원도의 거의 모든 마을이 그랬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또 하나의 기억은 그날 밤에 겪은 일이다.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차를 몰고 강원도의 한 지방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은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기판에선 연료가 거의 바닥임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지는데 나타나는 주유소마다 이미 영업이 끝나 불이 꺼져 있었던 것이다. 야간에도 별다른 불편없이 주유를 할 수 있는 도시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지라 당시로서는 아무리 시골이라 하더라도 초저녁에 주유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불이 켜져 있는 주유소를 찾느라 눈을 부라린 채 운전을 했는데, 미리 기름을 넣지 않은 것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이 맞물려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얼마 전 이러한 기억들이 깃들어 있는 지역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저 멀리 산꼭대기 스키장과 콘도의 불빛은 도시의 야경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마치 야경의 발원지처럼 카지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인천 최대 이슈 중 하나가 영종도 카지노 허가 사전심사 통과 여부인 터라 카지노의 불빛이 예사롭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가 용도폐기된 강원도 탄광지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1조원이 넘는 연매출, 그에 따른 파급 효과를 따지기 전에 리조트 곳곳에서 드러나는 고용창출 효과 하나만 보더라도 카지노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사실 최근 들어 카지노는 지역의 균형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로 인식되고 있다. 카지노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다른 산업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카지노로 번 돈은 5%도 안 되며 카지노를 매개로 한 컨벤션, 전시회, 관광 등의 수입이 나머지 9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카지노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싱가포르는 2009년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2곳을 연 이듬해인 2010년 경제 성장률이 역대 최고인 14%대를 기록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놓고 아시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우리나라, 그 중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아시아권 최대 규모의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관광업계에서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들어서기에 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다소 석연찮은(?) 이유로 영종도 카지노 심사결과 발표가 자꾸 미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사전심사 통과를 확신하는 분위기다.그런데 넘치는 것은 언제나 모자라는 것과 평행을 이루는 법이라 했던가. 불 켜진 주유소 찾아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매던 강원도의 모습이 환하고 활기차게 바뀐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반면 이제 강원도에서 사물함 열쇠 없는 목욕탕은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카지노를 비롯한 대규모 자본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아쉬움도 남겨주고 있다.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가장 활발한 도시가 인천이다. 도시의 발전 그리고 도시 구성원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인천에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덜했으면 좋겠다는 게 강원도에 다녀온 후 드는 생각이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3-10 임성훈

새 정치 센 정치 샌 정치

전혀 새롭지 않은데도 새롭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헷갈리긴 했지만 지난해 11월에 안철수가 새 정치를 기치로 한 창당을 선언했을때 제법 신선한 느낌이 났다. 낡은 관행과 구습에 찌든 기성 정치권과는 뭔가 다른 특별한 걸 보여 주려나 싶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란 명칭에도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그보다는 이제 안철수가 제대로 정치를 시작하는가보다 하는 기대들이 많았다. 그게 딱 100여일 전이다. 다만 새로 정치를 시작해서 새 정치인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해서 새 정치인지 처음부터 개념이 약간 모호하긴 했다.출범을 선언한 새정치연합의 기세는 사뭇 등등했다. 색깔이 비슷한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겠다고도 했다. 맹렬하게 기세를 올리며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고 경기도에서 발기인대회를 한게 불과 엊그제다.그런데 지난 2일 느닷없이 민주당과 제3지대 통합을 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기초선거에서의 무공천을 매개로 해서라고 했다. 무공천이 합당의 명분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집권을 추구해야하는 정당이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우리 정당법은 정당(政黨)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하는 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공천과 관련된 폐해가 자심하고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심부름꾼 정도에 그치는 등의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할 일이지 제도 자체를 없애겠다고 나서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야당의 입장에서 정치공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무공천은 국면타개를 위한 제법 훌륭한 수로 읽힐 수도 있다. 단일화된 여당을 상대로 다수의 야당이 후보를 냈다가는 패하기 십상이다. 막 출범해 인물난을 겪고있는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전국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게 어렵기도 하다. 합당은 이런 상황에서 퇴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당 역시 무공천을 통해 정체된 지지율 때문에 고전하는 국면을 타개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공약이라는 명분을 지렛대 삼고 현장의 무공천 요구를 반영한다는 민의수렴 형식을 빌린다면 합당은 훌륭한 대안이 됨직해 보인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런 명분을 선뜻 이해해주긴 어렵다는 것이다.돌이켜보면 안철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돼 치러진 지난 2011년의 지방선거때 지지율 면에서 자신보다 한참 뒤지는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참 신선하게 보였다. 권력에 욕심이 없진 않을진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그야말로 대인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때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안철수가 또다시 양보를 했다. 당시에 일부 국민들의 고개는 좌우로 흔들렸다. 그렇게 양보만 할 것 같으면 정치를 왜 시작한거냐 라는 의문이 슬그머니 똬리를 틀기 시작한 거다. 안철수는 뒤가 무른 것 아니냐, 현실정치에 약한 것 같다는 뒷담화도 나오기 시작했다.이번에 다시 제3지대 통합이란 명분으로 창당을 포기하자 안철수는 정치가 직업이 아니고 양보가 직업이라는 농담이 흘러 다닌다. 이래저래 양보만 하고 후퇴만 하다가 새 정치는 언제 할거냐는 지적도 들린다. 새 정치는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국민만 바라보는 변화와 개혁을 위한 (힘)센 정치가 아닌 후퇴와 양보, 끝이 희미한 (김)샌 정치로 사라져가는 건 아닐까. 그게 국민들의 갸웃거림이다./박현수 편집국장

2014-03-06 박현수

겨울왕국 경기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겨울왕국'은 영원히 꽁꽁 얼어버린 왕국의 여름을 되찾기 위해 언니를 찾아 떠나는 동생의 모험을 그린 3D 애니메이션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동심의 상징인 '눈'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어린 관객은 물론 성인 관객까지 사로잡으면서 올해 최고의 가족 영화로 사랑을 받고 있다.겨울왕국처럼 경기도도 지난 1일 폐막한 '겨울 스포츠의 대축제'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전 종목 상위권을 휩쓸며 13년 연속 종합우승컵을 안았다. 선수들의 값진 노력과 지도자들의 투혼, 그리고 종목 관계자들의 열성적인 지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도는 이번 동계체전에서 역대 최고 점수인 종합점수 1천373.5점을 획득하며 강원과 서울을 제치고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그러나 이번 동계체전은 2014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 곧바로 열린 탓에 선수들의 후유증도 많았다. 올해 동계체전은 지난달 26일부터 4일 동안 선수 2천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남을 비롯 강원도 평창, 서울 태릉·목동, 충남 아산, 경북 의성 등에서 종목별로 분산돼 열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본단이 지난달 25일 귀국한 뒤 하루 만에 동계체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문에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동계체전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은 지난달 24일 사전경기로 열린 컬링 여일반부 결승에서 전북도청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들은 이틀 전 소치에서 귀국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곧바로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훈련도 제대로 못한 채 경기를 벌이는 등 강행군을 이겨내지 못했다. 또 한국 선수중 유일하게 2관왕에 오른 박승희도 쇼트트랙 500m만 출전했을 뿐 나머지 종목은 컨디션 난조로 기권했다.경기도는 이번 동계체전을 통해 겨울왕국의 위상을 다시한번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제 국내에선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국내 잔치인 동계체전을 떠나 4년 뒤 홈에서 열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유망 선수 발굴도 중요하지만 시설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컬링이 국민적 관심을 받자 경기도는 선수들을 위한 전용컬링경기장 확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컬링은 선수들의 호흡이 중요해 선발팀이 아닌 단일팀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물론 경기도 여자 컬링팀도 처음에는 외인구단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 뒤 지난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의 기적을 이뤘고 지난 2013년부터 경기도의 지원으로 실업팀으로 발돋움했다.현재 전국에 있는 컬링장은 경북 의성과 태릉선수촌 내 컬링전용경기장 등 2곳 뿐이다. 이에 경기도도 컬링경기장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 인근 스포츠센터 다목적체육관 부지 또는 주차장 유휴부지를 검토 중이다. 도는 이미 만들어진 2곳을 벤치마킹해 국제경기장으로 추진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예산도 문제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최대 5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경기도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하다 자칫 도내 컬링 선수들에게 상처만 남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비타당성 연구용역 결과와 예산 문제, 그리고 6·4 지방선거 등이 바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경기도 선수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컬링을 비롯 봅슬레이, 루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모든 종목에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출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제 평창에서 열릴 다음 동계올림픽까지 4년도 남지 않았다. 겨울왕국 경기도가 글로벌 스타 발굴과 시설 인프라 구축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신창윤 체육팀장

2014-03-03 신창윤

세기의 대결 혹은 희대의 코미디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 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다른 한쪽은 1970년대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끈 장본인으로 각각 전설이 된 인물들이지만, 적어도 50세 전후의 중장년층 이상 세대에선 오래 전 두 사람간에 벌어졌던 '세기의 대결'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종합격투기가 흔해진 요즘과 달리 경기가 열렸던 1976년 당시만 해도 이종(異種)의 격투선수 간에 맞붙는 생소한 경기, 그것도 명실상부 최고수들이 링 위에 오르는 경기라는 점에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경기는 시종 지루하고 맥빠진 졸전으로 막을 내렸다. 이노키는 경기 내내 링 바닥에 누워 무의미한 발길질만 되풀이했고, 알리 역시 변변한 펀치 한방 제대로 날리지 못한 채 특유의 설전(舌戰)으로 실전을 대신했다. 수십만~수백만원씩의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간 관중들과, TV 앞에 몰려든 전 세계 수십개국의 팬들은 허탈해 하며 애써 분노를 삭혀야 했다.이 전대미문의 대결이 졸지에 '희대의 코미디'로 전락한 건, 바로 '룰' 때문이었다. 경기는 당초 '동양인 중 아무나 덤벼 보라'는 떠벌이 알리의 허풍에서 비롯됐다. 흥행을 위한 이벤트 정도로 출발했다가 어찌어찌하다 실전으로 바뀌게 되자, 알리는 경기를 코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룰을 정한다. 서있는 상태에서 킥 금지, 던지기나 관절기 금지, 태클 금지 등 대부분 복서인 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칙들이었고, 심지어 이 룰을 외부에 공표하지 못한다는 조항까지 달았다고 한다. 레슬링 기술을 쓸 수 없게 된 이노키 입장에서는 알리의 강펀치를 피하기 위해 '누워서 싸우기'라는 전법이 불가피했고, 알리 역시 누워있는 이노키를 공격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했다. 보잘 것 없는 내용이었으니, 결과는 당연히 무승부였다.채 100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가 꼭 알리-이노키간 '세기의 대결'을 연상시킨다.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앞다퉈 링에 오르겠다 아우성인데, 정작 경기를 어떤 룰로 진행할지, 선수의 자격요건은 무엇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수십년 행정 내공을 쌓은 공직자 선수, 밑바닥을 훑으며 팬클럽을 확보한 정치지망생 선수,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전문가 선수, 여기에 '인생 한방'이라며 요행을 바라고 나선 정치꾼 선수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필살기를 갖춘 이종 선수들이 수두룩하게 나섰지만,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발해 어느 팀 소속으로 나서게 할지는 도무지 오리무중인 것이다.관중들의 뜻에 따라 상향식으로 선수를 뽑겠다고 장담하던 여당팀은 슬그머니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선수를 내리꽂을 수도 있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고, 소속팀 없이 게임을 치르자고 목청 높이던 야당팀 역시 '저쪽이 그렇다면 우리도…'라며 기다렸다는 듯 발을 빼고 있다. 양자대결의 구도를 일약 3파전 양상으로 뒤흔들 것 같던 신당팀은 급작스레 대표 선발을 포기해 추종 선수들을 좌절케 하더니, 이내 이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겠다며 고심중이다.각 팀의 대표급으로 지목돼 온 선수들도 '간'을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자기가 뛸 경기 종목조차 정하지 않고 승산만 저울질하고 있는 선수, 확실한 입장표명 없이 나설 듯 말 듯 몸값만 올리고 있는 선수들 때문에 정작 일찌감치 링 위에 오른 '정규 선수'들은 관심권 밖으로 내몰리는 말도 안 되는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알리와 이노키는 숱한 말싸움으로 흥행몰이에는 성공했지만 경기 직전에서야, 그것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룰을 만들어 김빠진 경기를 자초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두 선수 모두 진검승부보다는 흥행과 개런티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선거까지 이래서는 안 된다. 관중들은 상식적 룰에 의해 정정당당 펼쳐지는 한판 승부를 원한다. 향후 대한민국의 4년을 좌지우지할 선거가 세기의 대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허풍쟁이와 흥행꾼들에 의해 놀아나는 희대의 코미디가 되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배상록 정치부장

2014-02-27 배상록

'다케시마의 날과 100년 전 '인천의 날'

1905년 2월 9일 인천에서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인천에 살던 일본인들이 '인천의 날'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성대한 축제를 즐겼다. 그 1년 전 2월 9일에 일본 함대와 러시아 함대 사이의 전투(제물포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었는데, 그 이름을 '인천의 날'로 정한 것이다. 이 '인천의 날'은 이때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제물포해전 당시 인천에서 의사로 있던 사람이 1932년 '인천의 날' 축제 현장에 나와 부상병을 치료했던 얘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는 장면이 1933년에 그들이 펴낸 '인천부사(仁川府史)'에 생생하다. 글쓴이는 이 대목 말미에 '백년 후 인천의 날을 상상하며 붓을 놓는다'고 했다.제물포해전이 있은 지 110년, 일본은 지난 22일 시마네(島根)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붙인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를 가졌다. 아홉 번째 행사였다. 이 자리에 아베 정부는 중앙정부 고위 당국자를 파견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 기조가 한반도를 직접 겨냥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일본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런 일본을 미국이 은근히 밀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일본을 이용하는 눈치다. 이런 분위기에 아베가 편승하면서 일본의 우경화 전략은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우리 외교 당국은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당국자를 파견한 것에 대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늘 하던 매뉴얼 대로 이번에도 거칠게 항의했다. 우리는 독도를 놓고 벌이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외교 당국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 외교전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있는 것일까. 괜한 걱정인지는 몰라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주제가 제물포해전으로 옮겨 오면 우리 당국의 태도가 영 미덥지 않다. 과거를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무지 잘못을 고치려고 들지를 않는다.110년이 지나면서 먼 역사가 된 '러일전쟁'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오류 투성이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군이 인천항을 빠져나가던 러시아 군함을 향해 어뢰공격을 가함으로써 인천에서의 전투행위가 시작되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 이튿날인 9일에는 러·일 함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군함 2척이 소월미도 부근 바다에 가라앉았다. 러일전쟁의 서막은 이렇게 인천 앞바다 제물포에서 올랐다. 이를 제물포해전이라고들 한다.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 연구기관 중 한 곳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행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제물포해전의 설명은 반쪽에 불과하다. 러일전쟁의 시작을 '2월 8일 저녁 일본의 중국 뤼순항 기습'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날 낮에 있었던 일본의 러시아 함정 공격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다른 백과사전 역시 마찬가지 형태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대부분 이들 자료가 나도는 실정이다.사정이 이러하지만, 우리 외교 당국은 관련 심포지엄 참여조차 거부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25일부터 27일까지 '러일전쟁 11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러일전쟁 연구자인 러시아와 일본의 전문가도 참석한다. 전쟁 당사국인 러·일, 피해국인 한국의 학자들이 참가하는데, 관련 정부 당국의 태도는 상반된다. 패배한 러시아는 적극적인데 반해 승전보를 울린 일본은 부정적이다. 일본 대사관 측은 일정상의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그런데 피해국인 한국 정부는 '치욕스런 역사를 얘기하는 자리에 정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면서 참가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너무 한가한 역사 인식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국제심포지엄을 통해 110년이나 지난, 그것도 아주 치욕적인 옛이야기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이유는 지나간 역사는 늘 지금과 내일의 거울이 된다는 점에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되씹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러일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전쟁이었지만 그 발발 시점조차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전쟁 피해국인 한국에서, 그 전장(戰場)이었던 인천에서부터 아픈 역사를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일본인들에 의한 '인천의 날'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그렇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2-23 정진오

봄이 정말 온 것인가?

설 연휴와 입춘이 훌쩍 지나가더니 어느새 봄기운이 성큼 다가왔다. 가는 해를 보내며 새해 소망을 빌어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하순이란다. 청마의 해인 2014년 갑오년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공통된 소망은 경기활성화. 이중에서도 부동산 시장 회복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회학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부동산 중병론'에 비유하기도 한다.요즈음 두 세사람 이상 모이는 곳에는 단답형 OX퀴즈가 유행이란다. 올해 부동산 시장, 다시말해 집값이 오를 것인지 아니면 더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설전(?)이 오가는 것이다. 식자층으로 분류되는 소위 배운 집단에서조차 부동산이 바닥(저점)을 쳤는지 여부에 대한 나름대로 논리를 내세우곤 한다. 온통 나라 전체가 부동산에 함몰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인데 기대이하의 메달 성적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계방송 시청률이 신통치 않다. 유수의 대기업들도 올림픽 메달의 영광을 대상으로 한 광고특수를 기대했지만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란 어떤 의미인가 새삼 곱씹게 하는 이유다. 전장의 폐허 속에서 반세기만에 선진국 대열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전세계 유일한 국가이자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유일한 민족이기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동산이란 '거주 공간 확보 이상의 삶의 지표'로 저변인식이 굳게 깔려 있는 듯하다.실제로 급속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국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은 내수경기 활성화 수단으로 부동산과 건설업 부흥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부동산은 결코 거짓말 하지 않는다. 사두면 효자 노릇한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징조다" 등 부동산에 얽힌 민초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이토록 국가경제, 아니 한국인의 중심사고를 지배해온 부동산이 10년 가까이 침체기로 이어졌으니 해괴망측한 괴담 수준으로 퍼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정말 부동산의 봄은 온 것인가?수도권 집값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분당, 평촌, 용인 등 신도시 버블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가 2년 11개월만에 상승세를 보이는 등 일단 수치상의 변화가 주목을 끌고 있다. 부동산114는 버블 세븐지역 전용 85㎡ 초과 아파트 매매가가 지난달 0.06% 오른 것은 부동산시장이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신호로 보여진다고 예측했다. 버블세븐 중대형 아파트 값도 지난 2011년 3월 떨어진 후 계속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해 '8·28전월세 대책' 이후 하락률이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다 지난달 약 3년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그러나 안으로 파고 들여다보면 강남의 일부 재건축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급매물을 위주로 거래가 다소 늘고있는 수준이다. 수도권 아파트 경매 경쟁률도 8.4대 1로 4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셋값이 줄곧 치솟자 아예 집을 사겠다는 수요자들이 경매시장으로 유입되는데 따른 반사효과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9.8대 1로 지난 2001년 조사를 시작한 후 최대치를 보였다. 서울은 7.2대 1을 기록했다. 경쟁률과 함께 낙찰가율도 상승했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4.3%로 지난 2009년 11월(8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정부와 부동산 업계간 시각차는 극명하게 다르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기에는 거래가 턱없이 부족하고 가격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아직은 싸늘하기만 하다"며 "수치상의 호조일 뿐 부동산 냉각기는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4·1주택경기활성화대책'과 '8·28전월세대책' 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심지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활성화 대책 약발이 제대로 통하고 있다는 섣부른 홍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섣부른 예측이 더 깊은 부동산 추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을 대체할 뾰족한 경기활성화 대책을 내놓지 못하니 부동산 중증환자가 더 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만이 유일한 불황 탈출구는 아니다./김성규 경제부장

2014-02-20 김성규

안현수 금메달과 대한민국

뜨거운 국민적 관심속에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고 있는 2014 동계올림픽이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이상화는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우승하면서 지난 밴쿠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는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처음이다. 오는 20일과 21일 경기를 펼치는 김연아의 2연패 여부 또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끄는 핫 이슈 중 하나다. 지난 13일 소치에 도착한 김연아가 가는 곳마다 대규모 취재진이 따라붙는 이유다. 한동안 우리 선수단의 메달 밭이라고 자부했던 쇼트트랙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중이다. 물론 여자 500m에서 박승희가 쇼트트랙에서 귀중한 첫 메달인 동메달을 따냈고, 이어 심석희가 1천500m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우리 대표팀에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아직도 여러 경기가 남아 있는 만큼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좋은 기록들이 나오길 기대해 마지않는다.쇼트트랙을 포함해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 중에 '안현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대표선수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고, 2003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를 5년 연속 제패한 '쇼트트랙의 전설'이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러시아로 귀화해 지금은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빅토르 안.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러시아 이름이지만, 이번 올림픽 기간중에 러시아와 우리나라에서 푸틴 대통령보다 많이 불린 이름일 것이다. 빅토르 안은 15일 열린 쇼트트랙 1천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장의 러시아 관중들은 그의 경기에 열광했다. 러시아 역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치러진 1천500m에서도 러시아에 첫 동메달을 안겨준 빅토르 안의 이날 경기는 여전히 그가 '세계 최고'임을 스스로 증명해 낸 멋진 경기였다.필자는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따내는 이 경기를 지인 몇 사람과 식당에서 지켜봤다. 숟가락을 든 채, 소주 잔을 입에 갖다 댄 채, 식당 안 손님들은 온통 쇼트트랙 1천m 결승 TV중계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신다운이 결승전에 올라 러시아의 빅토르 안과 함께 경기를 치렀지만 둘 중 누가 우승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했다. 빅토르 안이 결승선을 첫 번째로 들어오는 순간 식당 안에 환호성이 터졌다. 흡사 한국 선수가 우승할 때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곤 그 순간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주 잔을 내려놓고 힘껏 박수를 쳐대는 식당 안의 손님들에게 러시아의 '빅트로 안'은 다시 대한민국의 '안현수'가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입에서 "러시아에 귀화한 다음에 마음 고생이 심했을거야…"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어진 화제는 자연스럽게 그가 '파벌'의 희생자로 귀화를 선택했다는 안타까움으로 흘러갔다.러시아와 우리나라에서는 빅토르 안, 안현수가 단연 화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게 축전을 보내고, 페이스북 커버를 빅토르 안의 사진으로 변경하는 등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도 연일 빅토르 안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인터넷에는 빙상연맹의 파벌싸움으로 인해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러시아에 귀화한 안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을 되돌아 보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아들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순간,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 빙상 파벌의 피해자에서 러시아 영웅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정당당한 경쟁사회인지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2-17 이영재

국민 문화권 선포와 문화계의 재정난

전국에서 '문화예산 2%미만' 경기도가 유일현장에선 신규 커녕 기존사업 유지도 버거워문화기본법·지역문화진흥법 '문화요람' 기대최근 문화계는 기대와 좌절이라는 단어가 공존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희망을 소근대는 속삭임과 돈이 말라버린 현장의 비명이 빚어내는 불협화음 때문이다.경기도와 시·군 문화 관련 기관들은 새해가 희망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새해를 전후해 국회를 통과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 메마른 문화의 전답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물꼬가 터지리라 믿어서이다. 물론 충분하지 않으리라 짐작은 한다. 그래도 예산 가뭄에 이골이 난 처지이다 보니 한 줄기 강우 예보에도 기대는 풍선처럼 부푼다.3월 말 시행되는 문화기본법은 모든 문화 관련 법령의 모법이다. 국민의 '문화권'을 국민의 권리로 선포했다. 문화권 보장을 위한 문화진흥 정책 수립·시행과 '재원확충 노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 '재원확충 노력'이라는 문장이 애매하지만 문화계는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며 반긴다. 환경영향평가처럼 문화영향평가를 의무화시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앞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립하는 각종 계획과 정책에 문화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계획과 정책에 문화부담금을 매달 수 있다는 얘기다.7월 말 시행되는 지역문화진흥법의 핵심은 5개년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기본계획에 따라 5년마다 시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과연 문화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처럼 국가 주도 계획사업이어야 하는지는 논쟁이 가능하다. 그러나 논쟁은 사치. 법으로 문화를 이렇게 챙겨준 적이 처음 아닌가. 이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칭얼거릴 명분이라도 생겼으니 다행이다. 두 법안에 거는 문화계 인사들의 기대는 간절하다.장면을 전환해 보자. 문화기본법 시행 원년인 2014 문화현장, 특히 경기도 문화현장은 생기 없이 휑하다. 정부는 올해 기본법을 의식해서인지 문화관광체육 분야 예산을 5.7% 증액했지만 전체예산의 1.48%에 불과하다. 이 돈이 경기도까지 스밀지는 장담할 수 없다. 수도권보다는 그 아래 지방을 챙기는 정치관행 때문이다. 경기도 문화예산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일반회계 기준으로 전체예산의 1.80% 1천903억원이다. 지난 7년간 계속 감소했다고 한다. 전체예산에서 문화예산이 2% 미만인 광역자치단체는 경기도가 유일하단다. 참고로 전국광역자치단체의 평균 문화예산 비중은 5%에 달한다. 도내 문화관련 기관, 단체들이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산다. 도는 경기불황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긴축재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 분야 예산 수백억, 수천억원 줄이는 일과 문화 분야 예산 수십억원 덜어내는 일은 체감도가 전혀 다르다. 부잣집 쌀 한 섬과 판잣집 쌀 한 됫박이 전혀 다른 가치임은 삼척동자도 분간한다.돈이 말라버린 문화현장에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은 그저 법문(法文)의 나열일 뿐이다. 문화 진흥과 문화권 향유의 현장에서는 경상경비를 제외한 사업예산 부족으로 신규사업은커녕 기존사업을 유지하는 데도 버겁다. 오랜 세월 내핍에 길들여진 체질로도 해마다 가팔라지는 경기도 문화예산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다. 얼마 전 만난 한 문화기관의 간부는 난데없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있는지 물어왔다. 부동산 거래가 살아야 도 세수가 늘고 그래야 추경이 가능해진다고 토를 달았다. 문화기관 및 단체장 모두가 추경에 목을 매고 있기는 피차 일반. 그들 모두 부동산 경기 회복을 간절히 기원하겠다 싶어 실소가 터졌다.올해는 국민 문화권 선포 원년이다. 문화계 종사자들은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 확실한 문화의 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문화현장에는 이런 기대가 항상 '발칙한 상상'으로 종결된 기억들로 가득하다. 정부가, 경기도가 문화계의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길 고대한다. 그리고 경기도가 첫 추경에서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 지켜봐야겠다./윤인수 문화부장

2014-02-13 윤인수

기본도 못 지키는 판사

적확한 법률해석 통해 공정한 판결 내려야권위 지키기 위해선 강압적 언행 삼가고법위에 군림 말고 법으로 말하고 행동해야십수년전, 사건기자로 법조를 출입할 때 일이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출입하는 검찰과 법원이지만 들어갈 때마다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 경력도 10년이 넘었고 법조 출입한지도 수년이 됐지만 왠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던 것 같았다. 검사나 판사들과 사건과 판결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서로간에 긴장을 놓지 않았던것 같다.일부 검사나 판사들이 취재와 관련해 고압적인 태도를 보일때 마다 서로 언쟁 하며 다투는 일도 많았다. 때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출입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어느 정도겠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도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기자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판사들은 재판정에서도 역시 똑같은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물론 극히 일부 판사들 얘기다. 그 당시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면서 반말을 하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든, 항의하거나 문제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법정에 선 사람들 대부분이 판사의 선처를 바라는 상황에서 '왜 반발하느냐, 고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일부 판사들의 잘못된 언어와 태도는 점점 보편화 됐고 법정에서는 마치 관행처럼 오히려 자연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요금 판사들의 언행을 보면 언어 폭력 수준이다. 솔직히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법조를 출입했던 기자의 인연으로 판사들을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최근 벌어지는 막말파동을 보면서 불쾌할 게다. 극히 일부 판사들의 언행을 놓고 전체 판사들의 문제인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고…. 그러나 한번이라도 재판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잇따른 판사들의 잘못된 언행은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다. 일종의 정제되지 않은 영웅심리로 언론의 조명을 받겠다는 듯이 말이다.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판사들의 막말 파동에 국민들은 모든 판사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사실 판사들이 심문과정에서 반말은 문제도 아니다. 재판에서 선입견을 갖고 노인들을 비하하거니 인격적인 모욕 등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때도 많다. 어느정도이기에 법원들 마다 판사들의 잘못된 언행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겠는가. 법원들 마다 묘수라고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도 미봉책일 뿐 여전히 판사들의 막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지방 변호사회마다 '좋은판사'와 '나쁜판사'를 선정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웃지 못할일은 여기서 부터다.몇년전부터 지역 변호사회가 판사들을 평가하고 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도 최근 수원지법과 관할 지원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우수법관과 하위법관을 선정 발표했다. 이번 법관평가에는 109명의 변호사가 참여해 공정성과 품위, 친절, 직무능력 등 10개 항목을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정과정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판사가 법률의 테두리안에서 얼만큼 적확하게 법 해석을 통해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노력했느냐가 아니다.우수법관으로 선정된 판사들의 공통점이다. 웃는 낮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관계인에게 경어를 사용해 친절하게 대했느냐. 또 소송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변론 기회를 주고 별다른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했느냐. 반면 개인의 선입견을 드러내거나 증거신청 제한, 재판도중 화를 내거나 중간에 말을 자르는 행동을 한 판사들은 하위법관으로 선정됐다. 정말 판사들이 곱씹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나라 판사의 수준이 정말 이정도 밖에 안되는가….앞서 열거한 것들은 판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모든 판사는 이같은 기본을 지키며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기본이 좋은판사를 선정하는데 가장 큰 기준이 됐다면 판사들은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리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판사가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는 것은 강압적인 언행과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적확한 법률해석을 통해 공정한 판결을 내릴 때다. 판사가 법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것 아닌가. 판사는 법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이상 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법조를 출입했던 기자의 바람이다./박승용 사회부장

2014-02-09 박승용

정당공천제를 위한 변명

폐지땐 사회적 약자들 정치참여 기회 줄어부작용 최소화·잘못된 점 개선 노력 중요무조건 없애면 자칫 '교각살우' 우 범할수도직접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는 도편추방(陶片追放)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민회에서 위험인물로 결정되면 최장 10년간 해외로 추방된다.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는 제법 운영이 잘된 듯 싶었다. 한동안 독재는 발을 붙이지 못했고 민주정치가 꽃을 피웠으니까. 하지만 어떤 제도에나 단점은 있다. 잘 운용되던 제도는 정치가들에 의해 악용되기 시작한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것. 아테네의 대표적인 민주정치가이며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이던 데미스토클레스같은 인물조차 정적의 덫에 빠져 해외로 추방돼야 했다. 부작용이 커지자 결국 제도는 폐지됐지만 아테네도 중우정치와 독재의 혼란속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지금 정치권에서 진행중인 기초의원과 시장·군수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를 지켜보면서 느닷없이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도가 생각난 건 왜일까. 국민의 60%이상이 공천제 폐지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그만큼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공천제를 폐지해야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론은 특정한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다. 민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존중돼야 마땅하지만 무조건 여론에 편승하는건 자칫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책은 국가를 잘못된 길로 오도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건 페론주의라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렸던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보면 된다.여기서 정치권의 공천제 폐지 논의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방정치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정당공천제 때문이라는듯한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제도부터 뜯어고치자고 나선다. 왜 제도가 잘못 운영됐는지, 운영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다.얼마전 국회의원들과의 자리에서 공천제 폐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한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기초뿐 아니라 국회의원에 대한 공천제를 폐지하자고 해도 국민의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그건 아마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일듯 싶다. 그만큼 국민들의 정당정치에 대한 혐오가 한계를 넘었다는 의미다. 정당이 아닌 붕당이 돼버린 현재의 정치풍토를 생각하면 국민들의 식상함이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렇게되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가고 잘된 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운영의 묘를 기할 필요가 있다."전적으로 공감했다. 어떤 제도건 문제는 있고 부작용도 있다. 그걸 최소화하고 잘못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공천제가 잘 운영됐다면 지금 이런 논의가 나오긴 어려울게다. 국민들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천제가 폐지되면 지방자치가 순풍에 돛을 단듯 그렇게 운용될까. 아마 그렇게 믿는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 먼저 고치자고 나서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공천제를 폐지하면 정치신인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참여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지역정치는 자칫 토호들의 놀이터로 전락될 수 있다. 국가적이고 전국민적인 관심사조차 지역단체장의 입맛에 따라 엉뚱하게 변질될 가능성도 크다. 지금보다 부패가 심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문제는 또 있다. 공천제를 하고있는 지금도 행정은 뒷전인채 행사만 쫓아다니는 행사시장, 상갓집만 기웃거리는 상가군수, 모임이라는 모임은 모조리 기웃거리는 표바라기의원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는데 그마저 폐지되면 어떻게 될까.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지만 최악의 결과는 예방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서툰 목수 연장탓부터 한다'고 했다. 정당공천제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부정적인 의견들이 있다고 무조건 폐지부터 하자고 덤비는 건 아니다.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는듯해 걱정이 앞선다./박현수 편집국장

2014-02-03 박현수

책의 수도 인천과 출판기념회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권 앞다퉈 출간주로 자기 홍보성… 내용은 재밌지 않아향후 4년간 즐겁고 행복감 느낄수 있었으면…지난해 7월 유네스코(UNESCO)는 '2015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로 인천시를 선정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해 왔다. 국내 도시 가운데 책의 수도로 선정된 곳은 인천이 처음이다. 인천시는 '책으로 하나되는 세상(Book's for All)'을 표방하고, 시민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한 '책 읽는 도시 인천만들기' 등을 추진해 온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시는 '책의 수도' 유치를 위한 제안서에 아시아지역 도서나누기, 찾아가는 북 콘서트, 세계 대학생 책 함께 읽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과 관련, 북한 어린이에게 책 보내기, 북한 문학가와의 만남 등의 사업도 추진한다고 했다. 세계 책의 수도로서 책을 통한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키고,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시는 밝혔다. 2015년이 지나면 인천은 문화가 강한 도시로 성장할 것이란 목표도 제시했다.경인일보는 시가 목표로 하는 '문화가 강한 도시 인천'을 위해 '2015 세계 책의 수도' 연중기획을 시작했다. 책의 수도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 책 읽는 인천을 위해, '책'을 올해의 화두로 정한 것이다. 문학 책도 읽고, 그 속에 담긴 인천의 지나간 모습과 현재 모습을 함께 살핌으로써 인천사람, 더 나아가 한국사람의 삶을 '인천'과 '문학'을 키워드로 삼아 깊이 성찰하자는 차원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문학 작품 속의 인천을 찾아 나서 매주 목요일 지면에 연재하고 있다. 지면에 소개할 것은 문학 속에 드러난, 혹은 숨어 있는 인천은 인천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 문학 속 인천은 곧 인천사람들이 살아 온 역사이다. 경인일보가 매주 한 차례 내보내는 이번 연중기획이 마무리되면 '문학'으로 읽는 인천사이자, 신개념의 인천 문학지도가 형성될 것으로 자신한다. 1년 동안 매주 한 차례씩 50여 작품이 모이면 또 다른 인천이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을 것이다.이러한 때에 '책 읽는 부평'을 추진해 온 부평구의 문화 확산 활동이 새삼 관심을 모은다. 지역 내 유관 기관과 구립도서관, 공·사립 작은도서관 등이 연계해 민·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문화운동을 부평구가 펴고 있다. 구립인 부개도서관이 주관하는 '책 읽는 부평'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에 독서문화를 정착하고 구민들이 책읽는 분위기를 확산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평구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표도서를 선정하여 함께 읽고 토론하며 계층·세대 간 소통하는 지역 공동체를 위해 '책 읽는 부평, 행복한 BookFun'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내 17개 기관 단체 관계자들이 추진협의회를 구성하여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업무협력 방안도 마련한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부개도서관측은 책을 매개로 지역 내 유관기관과 민·관 도서관이 연계하는 '책 읽는 사업'을 꾸준히 펼쳐 나갈 계획이다.연말연시에는 정치권의 출판기념회가 많다. 특히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더 그렇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 러시다. 이들이 발간한 책을 보면 그 주제나 형식 면에서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다른 문학서적과의 차이점을 보면 필자의 자기 홍보성 내용이 유독 강하다. 그러니 책의 내용도 그다지 재밌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출판기념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다 보니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책 값보다 많은 돈을 내고도 거스름돈 없이 책을 받아 간다. 지지자의 후원인지, 을(乙)의 입장에서 지켜야 할 의무인지 알 수 없다. 재밌는 영화나 연극을 보고, 흥겨운 음악을 듣고, 전시회에 좋은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그 순간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그 여운은 오랜 기간 지속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정치인이나 지방선거에 나설 이들이 준비한 출판기념회를 보면서 향후 4년간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며 즐겁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1-26 이영재

안중근 의거와 광제호, 그리고 인천

日제국주의 추종자들 연회장 사용 가슴 아파만국공원·차이나타운·청일·러일전쟁…국제도시 되기위해 모든 기억들 드러낼 필요인천은 생각할수록 묘한 곳이다. 국제적인 사건과의 연관성이 유난히 많다. 며칠 전 문을 연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국제적인 이야깃거리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인천에 생각이 미쳤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이다. 그 시각 인천에는 이토 히로부미에 이어 2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한 소네 아라스케와 매국노 이완용이 놀러 와 있었다. 인천항에 정박 중인 광제호(光濟號) 함장이 개최한 연회에 참석한 뒤 밤을 지낸 터였다. 소네 통감은 문란한 생활로 인해 일본 내 일부 급진파로부터 공격을 받을 정도로 소문난 방탕아였다. 광제호 연회가 어땠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인천항을 근거지로 한 대한제국의 군함 광제호가 을사조약 체결 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과 그 추종자들을 위한 연회장으로 쓰였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광제호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당한 다음날 이완용 일행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 중국 다롄항까지 가야 했다. 이토의 시신이 다롄항에서 일본 도쿄로 옮겨질 예정이어서 이완용 일행은 다롄으로 길을 잡은 것인데, 이들이 다롄에 도착한 것은 28일 오전이었다. 이완용 일행은 그러나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다롄에 살던 일본인들의 격앙된 분위기가 보통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완용은 조문하는 데 성공했다. 이토의 시신을 실은 군함 아키츠시마(秋津洲)호가 다롄항을 출항하면서 광제호가 머물던 부근 해상에 잠시 정박했고, 이완용은 이때 아키츠시마에 승선해 조문한 것이다.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국제적 이슈가 된 것은 지난 연말 아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이 깊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공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여기에 일본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인해 새로운 관심사로 부상한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 관계는 인천의 수많은 근대 유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인천 중구청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 국제도시로 개발됐다. 특히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인 마을과 일본인 마을이 형성됐다. 양쪽의 신경전은 말이 아닐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 옆에는 다국적 개발부지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는 만국공원(또는 각국공원)도 만들어졌다. 아직도 이쪽에는 일제가 남긴 근대건축물이 많다. 또한 차이나타운도 그 옛날 청관(淸館)거리를 중심으로 여전하다. 만국공원은 또 어떤가.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동상이 되어 정상을 지키고 있다. 동상이 세워지면서 공원의 이름도 바뀌어 자유공원이 되었다. 광제호가 물살을 가르던 인천항은 청일전쟁의 군수항이었으며, 러일전쟁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만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기억이 한꺼번에 녹아 있다.한반도의 가장 번화한 국제도시 인천이 일본의 수중에 떨어진 것은 러일전쟁 직후다. 러시아도 한반도에서의 이익을 최대한 많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지만 결국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상징 군함은 일제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을 꺾었다면, 광제호는 친러파의 연회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인천과 국제성을 연결짓다보면 광제호 수난과 같은 잊어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천은 몇 년 전부터 국제도시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실제로 수많은 국제기구가 인천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인천이 명실상부한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잊고 싶은 기억, 담아 두고 싶은 기억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인천은 광제호 수난의 현장이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백범 김구가 항일의식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그 백범은 안중근 집안과의 특별한 인연도 갖고 있다. 안중근 의사 한 명이 이렇듯 많은 인천의 옛것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인천은 참 묘한 땅이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1-22 정진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시간에는 '생로병사'와 '선택'의 시간이 있지만…국가·사회 발전은 선택의 시간으로 성패 갈려수원컨벤션시티 타결 너무 긴 시간 삐걱대선 안돼헬라어(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중의 하나로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자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의 한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다. 즉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운명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최근 이 카이로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해주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광교신도시내 '수원컨벤션시티 21' 건립사업이 14년만에 극적 정상화 물꼬를 텄다는 낭보가 새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지난해까지 총 7차례의 공판과 행정소송 등 수원시와 경기도, 국토교통부간 법적공방으로 치달았던 이 사업이 돌연 극적 합의된 배경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배경에는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전에 지역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광교신도시 입주민들과 갈등의 핵에 빠져있는 도청사 이전 문제도 한층 완충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경기도와 수원시 양측 모두에게 손해볼 게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뒷받침된 윈윈(WIN WIN) 효과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합의 내용은 이렇다. 현재 경기도시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컨벤션 센터 건립부지(9만6천721㎡)를 공동사업자인 수원시에 조성원가(1천680억원)로 공급하고, 각종 계획 수립과 사업시행 등의 권한도 함께 넘긴다는 게 골자다. 대신 컨벤션센터와 함께 '수원컨벤션시티21' 양대 핵심사업인 주상복합용지 개발(9만8천557㎡ ) 사업은 도시공사가 주체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합의가 나오기까지 잃어버린 14년, 다시말해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에 대한 보상책임 주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0년 수원시가 민간건설사인 현대건설측과 협약을 맺고 독자추진하던 컨벤션시티 사업은 광교신도시 개발로 편입되면서 실타래가 얽히기 시작했다.건설사는 이 부지에 주상복합건설 이익금중 일부로 컨벤션센터를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는 게 당초 원안이었다. 하지만 광교지구에 편입되면서 개발 1대주주인 경기도가 이 사업부지 활용방안을 놓고 수원시의 조성원가 공급요구를 거절하면서 지루한 14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물론 도는 수원시 자체재원이 아닌 민간자본투자방식에 조성원가 공급이 특혜라는 이유로 설득력있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은 이번 합의를 단순 도식하면 '너따로 나따로'다. 이걸 해결하는데 14년이란 세월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카이로스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그러나 이번 합의로 모든 현안사안이 끝난 게 아니다. 수원시가 경기도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다면 벌써 했어야 한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컨벤션센터 건립 재원마련에 대한 수원시의 궁색한 답변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시는 민간자본 투자방식에서 직접 재원조달방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우선 토지매입비용 1천680억원은 광교개발이익금으로, 건축비용은 국·도비와 시비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이를 두고 도와 도시공사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무슨 이익금이냐'는 반응이다. 국·도비 지원도 아직까진 수원시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표심을 사보겠다는 얄팍한 합의로 끝날 경우 주체할 수 없는 민심 후폭풍이 몰려올 게 뻔하다. 수원 컨벤션센터 건립의 시급성은 경기남부권역 도민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있다. 경기북부지역인 고양에 킨텍스 하나를 제외하고 기업들이 즐비한 경기동·서·남부지역에 컨벤션시설이 전무해 서울로 올라가는 말도 안되는 역외유출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크로노스의 시간이 돼선 안된다./김성규 경제부장

2014-01-19 김성규

배려, 그리고 간디의 신발

어느 기관을 방문했을 때 벽에 붙어 있는 글을 한참을 서서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인도의 어느 기차역. 기차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치이이익~' 기차가 곧 출발하려나 봐요.'칙칙~덜커덩 덜커덩' 막 출발한 기차를 향해 한 젊은이가 헐레벌떡 뛰어옵니다.사람들은 함께 "조금만 더~!"를 외칩니다.젊은이가 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기차에 겨우 올라탄 순간 기차가 크게 흔들리고 젊은이의 신발 한 짝이 떨어지고 말았어요. "앗! 내 신발."젊은이는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곧 다른 한 짝의 신발도 이미 떨어진 신발 쪽을 향해 힘껏 벗어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하자 "어떤 사람이 신발 한 짝만 줍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한 짝도 주울 수 있게 한 거예요. 이제 그 사람이 저 대신 신발을 잘 신고 다녀 줄 겁니다"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기차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답니다.바로 이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무저항주의 운동으로 영국의 지배에서 인도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입니다.이 일화 뒤에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다.'간디는 왜 신발 한 짝을 던졌을까? 작은 것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누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나의 한 번의 작은 나눔이 상대방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배려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이 지난 7일 100도를 넘어서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목표액 39억5천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1억원 이상을 기부하는 인천지역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회원만도 35명에 달한다.이 정도면 인천시민들의 '사랑의 온도'는 전국에서 최고로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공동모금회에 성금을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시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가 인천에 특히 많다는 얘기다.그동안 생활환경의 인프라를 따져 '삶의 질'의 높고 낮음을 판단했다면 지역 기부 문화의 성숙도에 따라 '배려의 질' 수준을 책정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가늠자가 있다면 인천시민의 '배려의 질' 수준은 사랑의 온도만큼이나 높게 나올 것 같다.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인도와 스위스 순방길에 올랐다. 두 나라와의 교역확대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표방하고 있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노력을 펼치겠다는 게 이번 순방의 목적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인도는 12억 인구가 갖고 있는 시장 가치가 매우 큰 나라다. 인도 하면 '마하트마 간디'를 빼놓을 수 없다. 인도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고, 비폭력·무저항주의의 대명사다.그는 인내와 깊은 배려심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기차에 오르다 떨어진 신발 한 짝. 짧은 순간 또 다른 한 짝을 기차 밖으로 던질 수 있는 마음. 간디는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배려를 실천해 온 것이 아닐까. 간디는 왜 신발 한 짝을 던졌을까? '배려'다. 공동모금회에 정성을 모아 사랑의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이미 배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배려는 주는 이에게 뿌듯함을 주지만, 받는 이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고마움으로 남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배려합시다. 간디처럼./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1-16 이영재

지방자치제 당리당략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오는 6월 4일은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일이다. 날짜로 따지면 140일을 남겨 놓고 있다. 다음달 4일과 21일부터는 시·도지사 및 교육감과 광역시·도의원, 기초시·구의원·구청장·시장에 출마하려는 인사는 각각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에 나설 수 있다. 이와 함께 후보자 정식 등록기간은 오는 5월 15~16일 이틀간이며, 공식 선거운동기간은 5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다. 각종 언론매체들은 해가 바뀌기가 무섭게 관련 기사를 특집으로 다루는 등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많은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는 또 어떤 인물이 출마해 어느 장르에서 당선될까 하고 내심 궁금해 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이미 많은 출마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으며, 일부는 향후 지방정치의 방향 등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의견을 표출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 선거는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에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단체장 및 의원에 대한 선거 방식이 아직까지 명쾌하게 정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새누리당이 단체장 공천 폐지 대신 특별시·광역시의 기초의회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내 놓으면서 야당은 물론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까지 반발하는 등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정당공천폐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는 제쳐둔 채 되레 지방자치의 근간을 허무는 제도 개편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어 이들은 "지방선거 때마다 우려먹는 중앙정치권의 '자치구의회 폐지' 논쟁을 강력 규탄한다"며 "지방 선거는 중앙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들은 "대도시 자치구의 의회 폐지 문제는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19대 총선 직전에도 제기돼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며 "중앙정치권은 더 이상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문제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18대 대선 등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공론화됐으며,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등 유력 당선 후보가 약속이나 한듯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여·야는 기초단체장 등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방안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즉 국민과 큰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대선이 끝났다고 해서 번복되어서는 안된다. 바뀐다면 '기초단체 정당 공천체 폐지' 약속은 지방정치를 개혁하겠다는 당초 목적 발표와는 달리 주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당리당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 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여·야는 대선 때 약속한 대로 기초단체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폐지해 국민 부담을 줄일까를 고민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어떤 명분으로도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쉽지않을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적 성공을 기대하기란 절대로 쉽지 않다. 가령 우리가 밤길을 걸어 어딘가를 갈 때,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친다면 누가 밤길을 나서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상식과 믿음, 즉 신뢰가 있기에 밤길을 나서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선진화는 지방의 창의성과 잠재력 발휘를 속박하는 '소용돌이 정치체제'를 '분권과 참여체제'로 확 바꾸는 것이지 중앙정치의 집권 유지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당 공천 폐지'가 지방 정치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탄생해야지, 중앙정부의 나눠 먹기식 유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점을 중앙 정치권은 깊이 이해해 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박석희 편집국 국차장

2014-01-13 박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