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사과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대통령의 사과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일국의 국가원수가 국민을 상대로 또한번 고개를 숙인 것이지만, 그 시기와 형식, 진정성을 걸고 넘어지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껏 감성에 치우친 일부 누리꾼의 선정적 표현은 접어두고라도 진보정당쪽에선 '엎드려 절받기', '왕이라도 그렇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아무래도 사고발생 13일만에 이뤄진 '지각 사과', 국무회의 자리를 빌린 '간접 사과'에 방점이 놓인 모양새다.일일이 문헌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적으로 국가의 대재난 앞에 최고통치자가 사죄하고 근신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지금이야 천재지변이랄 것도 없지만, 식생활을 농경에만 의존하던 옛날에는 가뭄만 들어도 왕과 수령들이 '부덕의 소치'를 자처하며 기우제를 올리고 음식 가짓수를 줄여 몸을 낮췄다. 특히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권의 근원을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린다'고 여겨, 천재지변은 통치권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자연현상의 원인을 왕의 부덕으로 돌리는 비상식은 당시에도 분명 자각이 있었을 터다. 실제로 조선 성종때 흙비가 내리고 화재사고가 잇따르자 신하들은 앞다퉈 왕이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한다는 상소를 올렸지만, 임사홍은 왜 자연현상을 왕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파직된다. 절대권력인 왕으로서도 천재지변을 자기가 책임져야하는 게 억울할 법도 했겠지만, 이를 회피하면 천명을 부정당하는 꼴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국가의 대재변을 책임지려 하고 반성하려 하는 진정성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겠으나, 과거 왕의 사과와 근신에는 고도의 정치논리가 깔려있던 셈이다.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이 마당에,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왜 대통령에게만 돌리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임사홍처럼 간신배로 몰리기도 십상이려니와, 세월호 참변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인재에서 비롯된 참사라면 그 책임의 꼭짓점엔 의당 대통령이 서야 한다. 취임 초부터 유달리 안전을 강조해 온 대통령으로서도 세월호 사고 발생과 구조, 수습 과정에서 만천하에 드러난 무원칙·비정상에 땅을 쳤겠지만, 고작 부처 이름 바꾸고 의례적 지시 몇번 해서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면 직접적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비통과 분노에 젖은 국민 정서에 기대어, 대통령의 사과를 무조건 조롱하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아무래도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사고현장에 달려간 대통령을 '선거용 쇼맨십'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렇다. 대통령의 행보를 비난하는 쪽은 그동안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다고,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고 공격했던 사람들이었다. 사과가 늦은감이 있다면, 형식상 문제점이 있다면 그 자체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사과 직후 예고한 대대적 공직개혁 드라이브는 이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사고 발생과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과오들은 그것이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개인적 잘못이든 끝까지 책임을 가려 단죄해야 한다. 그것은 비탄에 빠진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을 위해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말대로 국가 개조의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는 일이다.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평가는 시기와 형식보다는 국민 앞에 내놓은 약속들의 이행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사고 이후 단 사람만이라도 살아돌아오길 간절히 원했던 국민들은 이제 체념을 강요받고 있다. 비보에 흔들리다 절망과 싸워야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논란보다 더 시급한 건 무너져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재건이다. 그건 정부와 공무원·대통령의 몫만은 아니다. 대통령의 사과는 어쩌면 나라가 이 꼴이 되도록 N분의1씩 일조한 대한민국 어른 모두를 대신한 사과였을 수도 있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4-30 배상록

구호정치의 실체적 진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대학시절 한 친구가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서산 대사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도 유명한 서산 대사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전,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그 뒷면에 적었다는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말이었다. 불교와 노장철학에 유난히 밝았던 그 친구는 이 말을 진실 추구의 화두처럼 여겼다. 원인과 결과, 처음과 끝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말을 설명할 때 제격이 아닌가 싶지만 언뜻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서산 대사의 이 마지막 글귀가 말하는 바를 사바세계의 용어로 푼다면 '실체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조계에서 사건의 핵심을 이야기할 때 꼭 쓰는 말이 '실체적 진실'이다. 특히 검찰은 피해자의 주장이나 겉으로 드러난 증거 이외에 사건의 배경이자 근본 원인을 밝히겠다는 수사 의지를 피력할 때 어김없이 '실체적 진실을 가리겠다'고 이야기한다. 사건 내막의 알짜이자 고갱이를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때면 어김없이 이 말이 등장한다. 법률가들이 쓰는 말에는 생각하면 할수록 묘한 맛이 난다. 그냥 '진실'이라고 해도 될 텐데 거기에 한 번 더 '실체'란 말을 덧붙였다. 검찰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세월호 참사 수사에 총력을 쏟고 있다. 결과에는 꼭 원인이 있는 법, 이번 세월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이번 사건 수사가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와 그 주변, 해운·항만 업계의 고질적 비리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환부마저도 말끔하게 도려낼 수 있기를 많은 국민은 바란다. 검찰의 수사 의지로 볼 때 몇몇 기업인과 관료들의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그것으로 다 드러났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대형 사건일수록 그 저변에는 늘 정치권이 있었다.국무총리는 사고 수습 도중에 돌연 사퇴하겠다고 하고, 야권은 그 사퇴 선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모두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권의 속셈으로 보일 뿐이다. 정치권은 서로 이번 사고가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여권은 여권대로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에 벌어질 일을 계산하고, 야권은 역풍을 맞지 않기 위해 언행을 조심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성난 민심이 현 정부의 무능을 표로 심판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인들 스스로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진심어린 책임 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정치권의 민낯이다.지금까지 정치권은 너나없이 구호(口號)만 외쳐댔다. 정치 구호란 게 원래 정치 이념을 짧은 한마디에 담아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 정치판에는 알맹이 없는 구호가 난무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현 정부는 시작부터 유난히 '안전'을 강조해 왔다. 정부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의 핵심 부서에 '안전'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 '안전'에 구멍이 뚫렸음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감으로써 여실히 증명됐다. 또한 정치인 누구나 '복지'를 말하는 사회인데 그 복지 구호 아래에서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나 버겁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회에 헛구호가 난무한다. 입으로 내뱉는 구호와 실제가 맞질 않는다. 이게 어디 현 정부의 잘못뿐이겠는가.정치인들은 선거는 구도의 싸움이라면서 그 구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섹시한 구호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 어떤 때는 '복지'가, 어떤 때는 '소통'이 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그 문제를 짧으면서도 핵심적으로 파고든 구호를 내건 쪽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안전 정부' 아래서 떼죽음 사건이 빚어진 것처럼 그럴듯한 구호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진실한 것은 아닌 법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그 점을 잘 웅변한다. 검찰이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수사 핵심으로 삼듯이,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구호 정치의 허점과 그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기를 바란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4-27 정진오

누가 자유로울 수 있나?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로도 진도 참사(慘死)를 대변할 수가 없다. 그저 먹먹하고 답답하고 토할 것 같고 숨이 막힐 뿐이다. 매일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물샘도 바닥을 드러내며 국상(國喪)이나 다름없는 지경이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청해진해운 선사와 파렴치한 선장과 선원 등 직접적인 가해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그러기엔 우리 모두가 '나 하나쯤 괜찮겠지?'하는 대충주의와 안전불감증이 쌓이고 쌓여 이 비극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보다 좀 더 배우고 잘 나간다는 소위 '출세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우리 사회 리더그룹들은 더더욱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잠을 깬 대한민국이 '빨리 빨리' 성미 하나로 전쟁의 폐허속에 급격한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최단기간내 IT최강국, 수출대국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을 자랑삼아왔다. 그런 이면에는 "이쯤이야 대의(大義)를 위해 괜찮지. 그렇게 원칙만 고집해서 어느 세월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나?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조직을 해치는 자" 등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건성주의, 실적주의로 내몰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과 변화를 외치며 재임정권내 가시적 실적을 내기위한 경쟁은 대한민국의 외형을 키우는데 기여한 역할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도 잃었다. 국책사업에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도저식 명분과 논리가 말없는 다수의 생각을 무시했다. 소수의 권력이 공권력을 내세워 건전한 비판마저 옥죄었다. 이래저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만 죄인취급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결국 비원칙이 지배하는 특히 갑(甲)의 위치에 있는 우리 사회 지배층들이 이 처참한 사태의 주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참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태파악조차 못한 정치꾼들이 사고 현장을 찾아 위로한답시고 '기념촬영', '장관님 오십니다' '팔걸이 의자 컵라면 끼니' 등 기가 찰 정도의 촌극을 연신 일삼으며 숨조차 제대로 못쉬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 않았는가? 유력 정치인이자 재벌가 아들은 전국민을 미개인으로 치부하면서 삼류연극의 하이라이트 정점을 찍었다.우왕좌왕하는 재난구조 컨트롤타워는 과연 정부가 존재하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국제사회에 망신을 드러냈다. 민간잠수부의 활약상에 자존심이 상한 해양경찰의 간부라는 사람은 "80명의 실종자를 수습했으면 잘한거 아닌가?"라며 훈장이라도 받겠다는 듯 의기양양 언론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게 작금의 정부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 국민 모두에게도 책임은 있다. 진도 참사가 터지자마자 "대한민국을 떠나야지 두려워 살겠나? 이 나라는 더이상 안돼" 등 나라 자체를 부정하는 국가 모독이 판을 쳤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국민들도 이러는지 자문해본다. 극단적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이런 불안한 나라에서 살 수 없어 이민을 떠날테니 대한민국은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얘기다. 얼마든지 정부와 정치권, 공권력을 향해 욕을 할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자체를 부정하기 이전에 이 지경의 나라가 되기까지 과연 나는 도리를 다했는지 나의 잘못은 없었는지 진지한 성찰이 먼저다. 욱하는 감정으로 단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야할 선진국에 진입하는 첫 단추가 바로 국민들의 올바른 국가관임은 자명한 진리다.이번 참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살아있는 국민들이 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소중한 어린 생명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나부터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버스를 타는 순간 안전벨트를 매는 작은 안전습관부터 어떤 경우에도 반칙과 변칙을 통한 뒷거래로 나의 뜻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진도 참사에서 "만약 이것만 안했더라면 또는 그거라도 했으면…"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많은 이유를 모두가 곱씹어야 한다. 어떤 애도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너무나 죄스럽다./김성규 경제부장▲ 김성규 경제부장

2014-04-23 김성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재난안전망

안산단원고 수학여행단 학생·교사를 포함한 476명(4월 18일 현재 정부 공식발표)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국내 최대 연안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난 16일 아침. 속보 방송을 통해 전해진, 선체가 기울어져 점차 가라 앉는 장면은 지켜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이 300명 넘게 타고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을 취재하던 언론이 사고난 지 몇 시간도 안돼 '전원 구출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끔찍한 사건은 안도와 환호속에 종료되는 듯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선객들이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구조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현장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안타까움은 더 커졌고 정부가 나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하지만 사고 첫날부터 우왕좌왕하더니 17일과 18일 잇따라 승선인원을 변경 발표하는 등 기본적인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 태도뿐 아니라 정부가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기보단 선사가 얘기하는 '숫자'를 확인도 않고 발표하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해양경찰청은 여객선 침몰과 같은 재난상황에서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승선객 파악조차 제대로 못했다. 선사측은 사고 직후 브리핑을 통해 승선권과 탑승객 명부를 대조해 477명이 탑승했다고 했다가 같은 날 오후엔 모두 462명이 탑승했다고 정정했다. 다음날인 17일 오전엔 475명이 최종 승선했다고 또 말을 바꿨다. 선사의 발표가 오락가락하자 해양경찰청은 인천항여객터미널 CCTV로 탑승객을 일일이 '카운팅'한 결과 475명이 맞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이 숫자 마저도 다음날 선사측이 476명이 최종 승선 인원이라고 수정하자 '해경의 CCTV를 통한 전원 확인' 작업도 해프닝이 된 셈이다. 경인일보는 여객선 사고 당일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 8명이 세월호에 승선했다고 보도했고 선사는 19일 "승선 명단에 없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침몰한 세월호는 해운조합에 화물 선적량도 축소 보고했다. 화물차량 150대와 657t의 잡화를 실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는 화물차 180대와 잡화 1천157t이 실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도 확인할 게 많다. 검찰이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별개로 사고를 낸 해운선사와 선주에 대해 20일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당연한 조치다.사고 닷새째를 맞는 20일 현재까지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되고 있다. 대신 정부의 부실한 재난대응체계만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사고에 대한 초동대처를 부실하게 한 것도 모자라, 구조상황 파악도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만큼 오락가락하고 있다. 21년전 292명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사고와 불과 4년전 46명의 장병이 순직한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월호는 침몰 직후 승객들의 생사를 가르는 30분 동안의 '골든타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참사를 자초한 인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탓만 하고 있으면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허술한 국가재난안전망 뿐 아니라 한 가지 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SNS를 통한 악성루머의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누나,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해. 사랑해" 등 실제 배에 탄 학생들이 보낸 문자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지만 생존자가 작성한 것 처럼 보이는 조작된 문자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실종자들의 전원 무사 귀환을 소망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안겨줬다. 검찰은 '사실인 양'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악성루머의 근원지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했다. 악성루머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부정적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IT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너없는 SNS 사용,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사고, 우리가 풀어야 할 새로운 숙제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4-20 이영재

인간 상실의 문명, 문화로 살려내야

칠곡·울산 계모는 인간이 맨정신으로 저지르기 힘든 학대로 어린 꽃봉오리를 꺾었다. 게임에 중독된 젊은 아빠는 두살배기 아들의 입과 코를 막아 살해했다. 아들의 주검을 담은 가방을 든채 엘리베이터 안에서 머리를 매만지던 태연자약이라니, 소름이 돋는다. 4남매를 쓰레기 지옥에서 키웠던 인천 엄마를 면담한 애들 담임은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의심을 접었다. 사람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엽기적인 세상이다. 자고 나면 마주하는 패륜 범죄에 사람들의 반응이 무덤덤하니 큰일이다. 21세기 경제대국 한국에서 19세기 프랑스의 '레 미제라블'이 만연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노출되지 않은 한국판 코제트들이 수 없이 많을 테지만, 그들을 구원할 장발장들은 종적이 묘연하다. 모두 자베르 경감에게 붙들린건가.이쯤이면 우리 시대의 문명에 회의를 품어야 자연스럽다. 토목과 디지털로 이루어낸 문명이 우리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준 건 사실이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70, 80대는 밥 굶는 고통을 면한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행복하다 찬양한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의문을 키우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경인일보 기자들이 최근 만난 대학가의 아웃사이더들이 대표적이다. 주변이 소외시킨 왕따가 아니라 스스로 주변과 담을 쌓은 자발적 독거 군상들이다. 그들은 오롯이 제 한 몸만 건사한다. 취업을 위해 친구를 끊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벗어나 도서관에 처박힌다. 학벌과 스펙사회에서 이런 친구들이 취업하기 유리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 절망한다. 그들을 고용한 기업들도 난감해진다.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그들의 사회성 결핍이 기업의 소셜네트워크를 해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엮여 드라마를 만드는 무대가 세상이라는 진리를 세상에 나가서 마주치니 불행한 일이다.우리 시대의 눈부신 물질 문명이 패륜의 에필로그로 훼손되는 이유는 문화결핍 때문이다. 물질과 기술과 제도가 정신문화를 압도하며 질주하는 세월동안 인간적 품위는 퇴적을 거듭해 화석으로 굳어버린 결과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 시대를 암울하게 만드는 온갖 패륜을 목격할 때마다 수 많은 대책을 마련하고 돈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발본에 이르지 못한다. 애초에 인성의 문제를 제도와 예산으로 교정하려는 발상 자체가 글러먹은 탓이다. 복지 담당 공무원과 경찰을 지금의 몇 배로 늘려도 칠곡과 울산의 계모를, 게임중독 아빠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막을 수 없다.문화가 유일무이한 해법이다. 세계적 성공사례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시스템을 뜻한 건조한 스페인 단어가 지금은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음악 교육'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문예부흥운동이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1975년 시작한 엘시스테마는 마약과 범죄의 수렁에 빠져 인성을 잃어가던 베네수엘라 빈민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쥐어주고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젝트였다. 35만명의 불우 청소년들이 흉기 대신 악기를 잡았고 마약 대신 음률에 취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30대 초반에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로 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이 엘시스테마의 성취를 상징한다. 독재자 우고 차베스는 엘시스테마의 열렬한 후원자. 정부사업으로 만들어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일부에서는 독재자와 엘시스테마의 동거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엘시스테마의 성취가 보여주는 문화의 위력 만큼을 부정하지 못한다.한국도 엘시스테마를 도입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보다는 빈곤층이 얇아서인지 관련 예산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문화의전당이 2011년부터 도내 저소득층 아동 600명으로 구성한 '경기-삼성 드림어린이합창단'. 명칭에서 보듯 삼성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이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수렁에 빠진 우리 문명을 문화의 지렛대로 견인해내야 한다. 우리 대통령이, 도지사, 시장, 군수가 차베스보다는 난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겠나./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4-16 윤인수

이상과 현실속에 갇혀버린 안철수

전국시대 말 초나라 왕족인 굴원은 정치적 갈등과 모함을 받아 강남으로 추방됐다. 뛰어난 학식으로 26세에 벼슬에 올랐던 굴원은 부패한 정치판을 개혁해 보겠다고 나서다 추방된 것이다. 깊은 좌절감에 초췌한 모습으로 호수가를 헤매던 굴원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이렇게 물었다.'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었나.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냐'고, 굴원은 대답했다. '세상 사람이 다 혼탁한데 나홀로 맑고, 대중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 홀로 취하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 추방당했다'고…. 어부가 다시 물었다. '성인은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능란하게 세상의 추이에 응할수 있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그 흙탕물에 같이 혼탁하게 물결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대중이 모두 취했으면 같이 술을 먹고 취하지 않고 어찌하여 혼자 깊이 생각하고 고고한 행동을 하다가 추방을 자초했냐고….' 굴원이 다시 대답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 것인데 어찌하여 몸이 깨끗한 자가 부정하고 얼룩진 자와 같이 하리. 오히려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흰 몸으로 세속의 때 묻음에 해를 입을쏘냐'고. 굴원이 밝힌 추방의 이유가 다소 엉뚱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패했는데 자기 혼자 깨끗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어서 추방당했다고 주장했다.굴원은 자신의 정치적 개혁과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성들을 술취함과 혼탁한 세상을 풍자적으로 지적했다. 이상과 현실속에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 정치에서도 굴원처럼 이상과 현실속에 갇혀 갈등하는 한 사람, 안철수다.2011년 한국 정치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새로운 정치를 부르짖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는 듯 했다. 그는 의사에서 유망한 사업가로, 대학교수로, 정치인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또한 현실 정치에 신물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다. 2011년 중순 '청춘콘서트'로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그에게 구태하고 신물난 정치를 바꿔줄 것을 요구했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박원순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했다. 그런 그에게 국민들은 기존 정치인들에게서 볼수 없었던 용기있는 양보라며 더 큰 꿈을 키우기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그는 대선에 도전할 뜻을 비쳤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며 흥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재인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줬고 결과는 패배로 끝났다. 그래도 국민들은 안철수에게 희망을 걸었다. 다시 그는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며 기존 정당과 차별화 된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뭔가 되겠구나하고 기대했지만 기존 정당과 통합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합의 조건으로 6·4지방선거에 기초단체 공천을 폐지, 새로운 정당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구태한 정당 정치를 개혁하겠다며 시도했던 공천 폐지는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현실 정치의 틀속에 갇히고 말았다.그는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할 때마다 국민의 뜻으로 돌리며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현실속에 주저 앉았다. 그가 앉아 있는 현실이 마치 국민들의 뜻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말이다. 과연 안철수가 추구했던 개혁 정치는 어떤 것일까.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 새로운 정당 창당, 무공천 계획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양보와 국민의 뜻으로 포장해 포기했던 그가 진정 꿈꾸는 정치 개혁은 무엇인가. 세상이 혼탁하고 대중이 술에 취해 자기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세상 사람들 처럼 술에 취하든 흙탕물 속에서 혼탁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들도 흙탕물 속에 그럭저럭 술에 취해 살 수 있으니까.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4-13 박승용

인천과 컨테이너

우리나라와 호주가 FTA(자유무역협정)를 공식 체결했다는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온다. 우리나라의 11번째 FTA로, 우리의 FTA 경제영토가 전 세계 GDP의 57.3%로 확대됐다는 앵커의 설명이 이어진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이 바다를 가르는 모습의 뉴스 배경화면을 보면서 '엉뚱한' 추론을 해본다. '만약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국가간 FTA가 이렇게 활발해질 수 있었을까?'컨테이너.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운송도구다. 항구에서, 공항에서, 도로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직육면체의 철제 박스다. 그런데 이 볼품없는 철제 박스의 쓰임새가 꽤나 다양하다. 교각 밑에 자리를 잡고 전우회 사무실로 사용되는 등 운송도구로서는 물론이고, 이동용 건축물로서 다양한 용도를 뽐낸다. 그 응용 범위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어떤 때는 '산성'(山城)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끔 '태생적 목적'에서 일탈하기도 하지만 이 철제상자가 참으로 획기적인 발명품인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이란 부제가 붙은 'THE BOX'의 저자로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마크 레빈슨은 컨테이너가 세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정확히는 물류에 컨테이너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세계 무역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컨테이너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화물수송은 주로 단순한 인부의 노동에 의존해야 했다. 각종 화물들이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가운데 인부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화물들을 배에서 창고로, 또다시 창고에서 트럭으로 옮기는 게 옛날 부두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컨테이너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고 세계 곳곳으로 쉽고 간단하게 화물을 운송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굳이 항구도시에 공장을 세울 필요가 없어지면서 도시와 항구도 재편됐다. 소비자들이 수많은 상품을 값싸게 구입해 쓸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컨테이너 덕분으로 이 철제상자가 세계 경제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는 경제성, 신속성, 안전성을 최대한으로 충족시키고 화물운송 도중 화물의 이적(移積)없이 일관수송을 실현시킨 혁신적인 수송도구로 일컬어진다. 이쯤 되면 컨테이너와 FTA를 접목시킨 앞서의 추론이 그리 빗나가지는 않은 듯 싶다.이 컨테이너가 최근 인천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인연을 맺었다. 인천항이 '대한민국 최초 컨테이너 부두'라는 타이틀을 되찾은 것이다.인천항은 1974년 갑문 준공과 함께 내항 4부두에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운영했다. 이같은 사실은 인천항만공사가 지난 2008년 펴낸 '인천항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그런데도 포털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부산 자성대 부두를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로 표기해 왔다. 이같은 사실이 경인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백과사전 편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확인작업을 거쳐 최근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로써 인천항 내항 4부두는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로서 우리나라의 대표 백과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백과사전의 내용 수정은 인천이란 도시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보탠 것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 인천항은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200만TEU'를 달성했다.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시점에서 인천항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유의미한 상징 하나가 더해진 것이다.컨테이너가 엄청난 교역의 시대를 견인한 것과 맞물려 이 철제상자에 대해 일부에서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인터넷에 버금가는 혁명적 도구'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도시를 표방하는 인천과 컨테이너의 이번 인연에 다시한번 눈길이 간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4-09 임성훈

무상·무상… 유권자의 책임은?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얘기도 있고 '사돈네 떡도 싸야 사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를 정확하게 짚은 표현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를 싫어하는 경우는 없다. 설령 독이 될지라도 일단은 받고 보자는게 보통사람들의 심리이기도 하다.직접 민주주의가 발달한 로마에서 무상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민회를 소집한 정치인이 풍성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잔뜩 제공한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 중요한 안건이 있다. 먼저 안건을 논의한 뒤 식량을 나눠 주고 여흥을 즐기도록 하자." 배고픈 군중들에게 안건이 들릴리 없다.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급하다. 이렇게해놓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걸 제시한다. 설령 그게 공동체에 독이 되고 국가를 좀먹는다고 해도 군중들에겐 관심밖이다. 시원하게 '통과'를 외치면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되는데 다른게 눈에 들어올리 없다. 황제를 비롯한 집권자들은 이런 심리를 잘도 이용했다. 원형경기장에 군중들을 모아놓고 검투사를 동원해 사자 등 맹수들과 대결을 시키는 오락을 제공하고 먹을거리를 공급한건 다 그런 속셈 때문이다.선거의 계절이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무상을 내세워 관심을 끌려는 공약들이 판을 친다. 무상교복에 무상교육, 무료건강검진에 생활임금 보장까지 참으로 다양한 공약들이 쏟아진다. 모두들 보편적 복지니, 삶의 질 향상이니, 생존권 보장이니를 내세우지만 기실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당선되고자 하는 표현에 다름없다. 무상급식이 효과를 봤으니 속편을 상영하는 셈이다.하지만 무상급식이 보편화된 교육현장에서도 폐해는 드러나고 있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에 재정의 대부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급식시설 개보수도 못하고 환경개선은 엄두도 못낸다. 필요한 시설이나 인력충원이 시급해도 실행하기가 힘들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냄새나는 헛간에 진수성찬 차려놓고 잔치하는 꼴이라는 얘기다.무상이 모두 나쁘다는건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들도 있다. 그렇더라도 실현 가능성과 대안,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 만큼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다.무상버스가 실현돼 모든 시민들이 공짜로 버스를 이용한다면 수천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그 돈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버스가 무상이면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과의 형평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하철도 무상으로 운행해야 할까. 버스와 지하철이 무상이 되면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택시업계는 고사지경에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택시도 무상으로 해야 할 것인지 등등 따져봐야될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그리스나 스페인의 심각한 재정위기의 책임을 과도한 복지때문이라고 단정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래도 분명한건 있다. 무상 때문에 국가재정이 악화되고 상황이 악화되면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보편적 복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입었지만 부자들은 상황이 악화돼도 크게 문제될게 없다. 가진게 있고 버틸 여력이 충분하니 말이다. 혜택은 함께 누렸지만 고통은 특정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진다.이쯤해서 유권자들의 책임을 거론할 때가 됐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있는지, 그걸 선택하면 희생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 그런 검증없이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일단 찍고 보자고 덤빈다면 대가는 혹독하고 후유증은 크다. 눈앞의 사탕에 정신이 팔려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잘못이 사탕발림에만 능한 정치인들을 양산한다.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고 책임있는 공약을 내세우는 단단한 정치인을 키우는건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에 앞서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했다. 잘못 선택하면 정말 도끼자루 썩는다. 현재의 달콤함을 위해 포기된 미래는 암울하고 답답하고 힘들다. 무상도 소중하지만 미래는 더욱 소중하다./박현수 편집국장▲ 박현수 편집국장

2014-04-06 박현수

초심(初心)

2014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국민들의 모든 사랑을 받아온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 지난 주말 전국에 태풍을 일으켰다. 선수들은 그동안 열악한 환경을 딛고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역사상 첫 올림픽 무대를 밟은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2012년과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세우며 한국 컬링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들의 활약은 컬링 규칙도 잘 몰랐던 팬들의 눈과 귀를 자극했으며, 전국에 컬링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체계적 지원에 국민적 관심까지 더해지며 이제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었다.그러나 이들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무서운 공포와 관습이 숨어 있었다. 선수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세상에 알렸다. 코치의 폭언과 성희롱, 포상금 기부 강요 등까지 열거하며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집단사표를 감독에게 제출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그간 한가족처럼 느꼈던 감독과 코치는 배신감을 느낀 듯 말문을 열지 못했고, 감독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병원 신세까지 졌다. 사태가 확산되자 해당 팀 소속인 경기도와 도체육회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선수와 코치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선수들이 밝힌 내용이 모두 맞다'며 코치를 전격 해임시켰다. 이후 선수들과 부모들은 도체육회의 설득으로 사직서를 철회하며 팀 훈련에 복귀할 뜻을 내비쳐 사태는 5일만에 일단락됐다.하지만 경기도청 컬링팀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해 세계 4강팀이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급부상한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지만, 이번 내홍으로 주도권을 타 시·도에 내주게 됐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착실히 준비한 경북체육회와 전북도청 등 다른 팀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큰 호재로 작용했다. 도는 후임 컬링 코치 선임을 서두르고, 사고 재발 방지 대책, 의정부 국제컬링장 조기 건립 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상처를 받은 선수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경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이 마음을 다시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선수들 간의 믿음도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컬링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단결력과 협동심, 정신력이 승패를 좌우할 만큼 조직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컬링은 선발팀이 아닌 단일팀이 국제 무대에 나가는 것이다. 도청 여자 컬링팀은 10년 동안 한국 여자 컬링을 이끌어왔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한국 컬링의 역사를 잇따라 갈아치웠다. 훈련비는 물론 기자재조차 구입하기 힘든 상황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서로 믿음과 용기로 난관을 헤쳐나갔다. 컬링 선진국 선수들이 버린 기자재를 재활용해 사용하기도 했고, 감독은 사재를 내면서까지 컬링팀을 이끌었다.이번 사태는 코치의 강압적이면서 불필요한 언행이 시발점이 됐다. 마땅히 잘못된 일이고 처벌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운동 선수라면 한번쯤 겪을 만한 일이 부풀려져 코칭스태프를 매도했고, 이런 문제를 소속팀과 한마디 상의없이 언론을 통해 곧바로 보도된 점은 아쉬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앞으로 도청 여자 컬링팀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태가 수습된 만큼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입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0년 전 동고동락했던 추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서로를 의지하며 희생했던 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남을 시키기보다 자신이 먼저 했던 행동, 정식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 순간 등 선수들의 고통이 지금의 환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치의 문제적 행동과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소속팀 관계자들은 선수들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되돌아봐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4년도 남지 않았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준비한다면 동계올림픽의 주인공은 바로 선수들일 것이다. /신창윤 체육팀장▲ 신창윤 체육팀장

2014-04-03 신창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중국 전한(前漢)의 원조는 걸핏하면 쳐들어 오는 골칫거리 흉노족과의 화친을 위해 흉노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야 했다. 궁녀 중 한 명을 공주라고 속여 보내기로 꼼수를 부린 그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 가장 못생긴 왕소군(王紹君)을 골랐다가, 흉노 땅으로 떠나는 그녀의 실물을 보고선 땅을 치고 말았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떼가 미모에 취해 날갯짓을 잊고 땅에 떨어질만큼 절세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는 왕소군이 '미운 놈에게 주는 떡 하나' 로 선정된 건, 어이없게도 괘씸죄 때문이었다. 당시 궁녀들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위해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쳐가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청했지만,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왕소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결국 모연수는 왕소군의 초상화를 가장 못나게 그렸고, 못생긴 궁녀 한명 보내 평화를 얻고자 했던 원조는 제 발등을 찍어버린 것이다. 훗날 이백과 동방규가 각각 소군원(紹君怨)이라는 시를 통해 그녀의 슬픔을 노래할 만큼 왕소군은 대표적인 비애의 주인공이지만, 한나라는 그 대가로 강대국과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동방규의 소군원에 나오는 구절이 바로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뜻이다.대로의 큼직한 건물마다 홍보 벽보가 내걸리고, 시시때때로 후보들의 지지호소 메시지가 휴대전화를 들볶아 대는 걸 보니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한데 어째 좀 이상하다. 오가며 후보들 명함 받아본게 꽤나 오래고, TV나 신문이나 앞다퉈 호들갑을 떤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닌 듯 한데 여전히 예선전일뿐,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단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아직 후보 선정을 위한 룰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기이하다. 공천·무공천 시비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컷오프니 경선이니, 우선공천이니 잡음만 무성할 뿐 명확하게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경기도지사 선거만 해도 그렇다. 이런저런 곡절끝에 여야별로 대진표가 짜여졌다지만, 대체 어떤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것인지 명쾌하게 답을 내는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은 도당위원장의 주선으로 후보군끼리 아침밥을 먹으며 토론회 일정까지 합의했다고 하더니,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중앙당에선 2배수·3배수 컷오프 논의를 진행했다. 통합으로 시너지를 누려야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은 저마다 아전인수의 경선룰만 되풀이할 뿐 논의를 위한 회동조차 하질 않고 있다.기초단체장 선거는 더 기막히다. 새누리당은 여성우선공천 지역을 발표했다가 해당 지역의 반발에 진땀을 빼며 모양을 구기더니, 지역마다 어느 후보가 국회의원의 낙점을 받았네, 미운털이 박혔네 하는 설들이 난무하다. 후보들도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던 당의 당초 발표를 그닥 믿지 않는 눈치여서, 표심잡기보다는 너나없이 줄대기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새누리당에 온갖 원색적 비난을 퍼부으면서, 한켠으로는 무공천 방침 철회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공천 방침을 유지하더라도, 사실상 공천을 대체할 방안을 마련하리란 게 당안팎의 관측이다.선거판 여야의 행태는 왕소군의 비애를 자초한 원조의 꼼수를 떠올리게 한다. 여야 모두 상대에겐 적게 내주고 자신들은 많은 걸 얻으려는 심보이다 보니, 서둘러 명확한 룰을 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후보들이 앞다퉈 지역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에 줄을 대려 기를 쓰는 것도 사실은 미모에 자신없는 궁녀들이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것과 같은 연유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선거판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인재들이 왕소군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꼼수를 거듭하는 정치권, 상향식 공천을 외치면서 기득권을 놓치않는 정치권이 엄연한 현실로 작용하는 한, 선거에서 진정한 일꾼들이 선택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진다. 국민들은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라며 한탄할 뿐이다./배상록 정치부장▲ 배상록 정치부장

2014-03-30 배상록

끊임없는 자본 실험장 '인천'

자본은 또다른 자본을 먹고 크는 속성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돈은 꼭 필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국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자본이 인간의 정신까지 좌우한다는데 있다. 늘 우리의 의식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자본은 긍정적 모습으로도, 또는 부정적 측면으로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 눈에 보이기에는 나쁜 쪽이 더 많다. 자본에 취한 사람을 우리는 속물이라고 부른다. 너나없이 돈에 한 번 취하면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 인천이 언제부터인가 '자본의 실험장'이 되고는 했다. 우리나라에서 인천처럼 자본의 투기장 노릇을 해온 곳이 역사적으로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인천이 카지노를 핵심으로 하는 복합리조트 개발 문제로 떠들썩하다. 외국 자본이 영종도에 추진중인 카지노 사업이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최근에 터주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화상(華商)그룹과 미국의 카지노 기업이 사업 주체이다. 미국 기업이 나서다보니 이번 영종도 카지노 사업에는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카지노 사업과 관련해 인천 특히 영종도에는 앞으로 외국 자본이 엄청나게 밀려들 태세다.인천에서는 1920년대부터 외국인 투자 리조트 사업이 활기를 뗬다. 호텔에서 자고, 해수욕장에서 놀고, 요정에서 술마시는 개념의 현대적 리조트가 월미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본 자본이 대부분이었다. 월미도 조탕(潮湯)은 국내 첫 바닷물 공동 목욕시설이었다. 대번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인천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안 오고는 못배겼다. 당연히 돈도 몰렸다. 월미도가 돈으로 범벅이 되면서 그 이미지는 한없이 떨어졌다. 남녀 불륜의 상징도시가 되었다.돈놓고 돈먹기 식의 자본시장도 커졌다. 요즘의 증권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두(米豆)도 인천이 가장 활발했다. 미두하면 인천으로 통할 정도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간혹 크게 챙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쫄딱 망해 거지꼴이 되기 십상이었다.1930년대에는 월미도 리조트사업의 성공이 인근 지역의 부동산 투기로 이어졌다. 송도유원지 개발이 시작되자 청량산 자락에 별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양산을 받쳐 든 복부인들이 청량산 일대의 땅을 보기위해 거니는 사진도 남아 있다. 지금 송도유원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는 중고차 야적장이 차지하고 있다. 유원지 인근은 밤이면 유흥주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인천은 한몫 챙기기 위한 '기회의 땅'이었다. 1970년대 중반 연안부두가 생겨날 때 어선 폭증 현상이 대표적이다. 어느날 인천의 한 선장이 서해 근해어장을 넘어 동중국해 어장을 발견했다. 인천에서 가려면 30시간이나 걸렸지만 동중국해 어장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하룻밤에 만선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 사이에 '인천에 가서 배를 부리면 떼돈을 번다'는 인식이 파다했다고 한다. 돈으로 무장한 서울 사람들은 나무 배 대신 철선을 지어서 연안부두에 들이닥쳤다. 연안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이 삽시간에 수백 척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 호시절은 얼마가지 않았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남획하는 바람에 물고기의 씨가 마른 것이다. 지금, 연안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은 몇 척 되지 않는다.정책 결정권자는 늘 자본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자본이 주는 당장의 맛은 달콤할지라도, 그 뒷맛은 영 개운찮은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얘기한 것들이 다 그런 경우이다. '기회'와 '상실'의 모습을 동시에 띤 카지노 사업이 인천에서 곧 본격화한다. 자본의 실험장 역할을 해온 인천의 역사는 말한다.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은 인천의 입장에서 반갑기도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할 것도 많다고. 중앙정부와 인천시 당국은 인천에 쏟아져 들어올 자본의 취향을 좀더 면밀히 살피고,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3-26 정진오

문화가 소외되는 선거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폭주하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놓고 팽팽하던 여야 기싸움이 야권의 신당창당으로 반전하더니, 여야 광역단체장의 면면들이 속속 시야에 들어오는 중이다. 여야 모두 내부경선을 통해 자당 후보를 확정할 테니, 경선국면부터는 여야 예비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낼 터이고 하나하나 꿀 처럼 달콤하고 밀랍같이 끈끈하리라. 벌써 무상의 혜택을 급식에서 교통으로 확대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대심도 급행전철망을 경기도 전체에 깔겠다는 약속도 나온다.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확대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며 복지사각을 없애겠다는 공약들은 기본이다.그런데 문화를 핵심공약으로 앞세운 후보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이해는 한다. 문화는 선전, 선동의 문구로 설명이 힘든 분야라서다. 문화기본법에서 정의한 문화는 이렇다. "문화란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체계, 전통 및 신념들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를 말한다." 어렵다. 한마디로 한민족이 고금에 걸쳐 살아오며 남긴 삶의 모든 흔적의 총합이라는 것이니 막연하다. 그러니 문화관련 공약은 거저 숨쉬는 공기를 호흡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맹랑한 말장난으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박근혜정권의 문화융성 국정기조가 허무한 것도 이런 이치에서다.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만들고,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공짜나 할인으로 공·사립 문화시설로 국민들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이런 야단법석을 체감하기 힘들다. 오히려 문화가 있는 날에 입장객이 준 문화시설들이 여러 곳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형편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한 시대의 문화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총합이라는 정의를 감안하면 문화는 애초에 관제 진흥의 대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부 전체예산의 1.5%정도로 문화·체육·관광을 진흥하겠다는 정부 아닌가.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이 돈이 아닌 말로 채워질 공산이 농후하다.중앙정부의 문화정책이 이러니 지방정부는 오죽하랴. 경기도 문화예산은 1.8%. 지사가 되겠다는 후보가 예산 1.8%짜리 문화를 공약으로 앞세운다면 정신나간 짓이다. 광역교통망이나, 이런저런 클러스터 등 수천억에서 수조원 짜리 개발분야를 공약의 첫머리로 삼는 것이 예산구조에 비추어 자연스럽다. 문화는 그 다음. 그나마 '문화향수권 확대'를 립싱크하고 모자란 미술관, 박물관, 문예회관을 시·군마다 공평하게 건립해주마 약속하는 게 고작이다.중앙,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문화정책의 기본이 이렇듯 초라하니, 문화에서 '각(角)'만 즐비하고 '숨결'이 사라졌다. 각진 대형 국·도·시립 문화시설이 넘쳐나지만 그안에 흘러야 할 문화의 숨결은 싸늘하다. 알량한 예산으로 말썽없이 분배하고 각진 문화시설 건설에 집착하는 문화행정과 관제예산 배급체제에 익숙해진 문화생산 주체들이 함께 그려낸 척박한 풍경이다.이제 문화행정의 문화를 바꿀 때가 됐다. 행정이 문화를 진흥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생산 주체가 행정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문화계의 적극적인 선거참여가 필요하다. 예총이든 민예총이든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시·도지사, 시장·군수 후보들을 불러 그들의 문화적 식견과 감성을 견주어 봐야 한다. 문화예산을 어디에 쓰는 것이 문화적인지 올바르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 행정하는 인력이 반문화적이고 비문화적인 마당에 문화 예산이 늘리도, 제대로 쓰여질리도 없다. 인생의 전환과 삶의 풍요를 만들어 준 책 한 권, 그림 한 점, 공연 한 편이 없는 사람들이 행정의 꼭대기에서 문화를 운운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문화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나라 아닌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문화 검증' 운동을 벌이는 것을 제안해 본다. 상당수 불량 후보를 걸러내리라 확신한다./윤인수 문화부장▲ 윤인수 문화부장

2014-03-16 윤인수

'바보의사'안수현, 당신이 그립습니다

의사가 꿈인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입학했고 내과 전문의가 됐다. 그는 아파서 힘들어 하는 환자들에게 위로와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의사를 선택했다. 그 청년은 의대에 재학하면서 학과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본과 4학년 때는 한 번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턴이 돼 본격적으로 환자를 돌보던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고 한다. 레지던트 1년차 때 돌봤던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어린 의사가 날 살렸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단다. 그는 헨리 나우웬의 말대로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며 안아주었던 것이다.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전국 의사들이 파업을 했을 때 그는 병원에 홀로 남아 환자를 돌봤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환자들을 두고 병원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선물을 주는 의사였단다. 암 투병 환자에게 찬송가 테이프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는 책을 선물했다. 또 동료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 기사, 구두닦는 아저씨, 매점 아주머니까지 그 청년은 따뜻한 겸손을 나눠줬다. 하지만 청년은 군의관 시절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돼 2006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굵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의사 안수현씨 얘기다.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병원 청소하시는 분, 식당 아주머니, 침대 미는 도우미, 구두닦는 분 등 어떤 계산도 깔리지 않은 순전한 슬픔으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저서 '그 청년 바보의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참 의약분업 문제로 병원들이 파업할 때 환자들을 지켜야만 했던 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되길, 하나님 앞에서 자유할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라고….요즘 의사들이 난리다. '원격진료'와 '의료법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자(子)법인 설립'에 따른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며 14년 만에 또다시 파업을 벌였다. 24일부터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격진료'에 따른 부가적 문제점도, 영리목적의 자(子)영리법인 설립허용으로 중소규모의 동네병원은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현실…. 이 때문에 전국의 30%가 넘는 의사들이 파업에 동참했을 게다. 그렇다 해도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파업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39도가 넘는 고열로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엄마의 심정을… 몸이 아파 의사의 처방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의사들은 알고 있을까.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는 선서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양심보다 생존의 현실을 택한 의사들을 보며 아쉬움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조지프 스티글리치가 쓴 '불평등의 대가'의 내용이다. "불평등은 시장의 힘과 정치적 권모술수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의 정치는 오랜 동안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희생시키면서 상위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 왔다. 정책적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분명히 상위계층에 속한다. 파업이 아니어도 분명히 정책적 대안이 있을 수 있는데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환자를 볼모로 파업이라는 극단적 행동은 합리화할 수 없다. 그들은 의사이기 때문이다.'바보의사' 안수현… 하늘에서 지금 의사들의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안수현 선생, 참의사인 당신이 그립습니다. /박승용 사회부장▲ 박승용 사회부장

2014-03-13 박승용

강원도의 추억 그리고 카지노

강원도 하면 설핏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20여년 전 혼자 강원도를 여행했을 때의 기억들이다.첫 번째는 강원도 한 읍내 목욕탕에서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식 목욕탕이었는데 사물함에 옷을 넣고 보니 열쇠가 없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열쇠가 없냐고 물으니 마치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훔쳐가는 사람도 없는데 열쇠가 왜 필요하냐'는 무언의 응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네는 10여년 동안 '범죄없는 마을'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사실 당시에 강원도의 거의 모든 마을이 그랬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또 하나의 기억은 그날 밤에 겪은 일이다.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차를 몰고 강원도의 한 지방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은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기판에선 연료가 거의 바닥임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지는데 나타나는 주유소마다 이미 영업이 끝나 불이 꺼져 있었던 것이다. 야간에도 별다른 불편없이 주유를 할 수 있는 도시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지라 당시로서는 아무리 시골이라 하더라도 초저녁에 주유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불이 켜져 있는 주유소를 찾느라 눈을 부라린 채 운전을 했는데, 미리 기름을 넣지 않은 것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이 맞물려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얼마 전 이러한 기억들이 깃들어 있는 지역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저 멀리 산꼭대기 스키장과 콘도의 불빛은 도시의 야경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마치 야경의 발원지처럼 카지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인천 최대 이슈 중 하나가 영종도 카지노 허가 사전심사 통과 여부인 터라 카지노의 불빛이 예사롭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가 용도폐기된 강원도 탄광지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1조원이 넘는 연매출, 그에 따른 파급 효과를 따지기 전에 리조트 곳곳에서 드러나는 고용창출 효과 하나만 보더라도 카지노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사실 최근 들어 카지노는 지역의 균형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로 인식되고 있다. 카지노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다른 산업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카지노로 번 돈은 5%도 안 되며 카지노를 매개로 한 컨벤션, 전시회, 관광 등의 수입이 나머지 9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카지노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싱가포르는 2009년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2곳을 연 이듬해인 2010년 경제 성장률이 역대 최고인 14%대를 기록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놓고 아시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우리나라, 그 중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아시아권 최대 규모의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관광업계에서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들어서기에 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다소 석연찮은(?) 이유로 영종도 카지노 심사결과 발표가 자꾸 미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사전심사 통과를 확신하는 분위기다.그런데 넘치는 것은 언제나 모자라는 것과 평행을 이루는 법이라 했던가. 불 켜진 주유소 찾아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매던 강원도의 모습이 환하고 활기차게 바뀐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반면 이제 강원도에서 사물함 열쇠 없는 목욕탕은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카지노를 비롯한 대규모 자본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아쉬움도 남겨주고 있다.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가장 활발한 도시가 인천이다. 도시의 발전 그리고 도시 구성원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인천에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덜했으면 좋겠다는 게 강원도에 다녀온 후 드는 생각이다./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4-03-10 임성훈

새 정치 센 정치 샌 정치

전혀 새롭지 않은데도 새롭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헷갈리긴 했지만 지난해 11월에 안철수가 새 정치를 기치로 한 창당을 선언했을때 제법 신선한 느낌이 났다. 낡은 관행과 구습에 찌든 기성 정치권과는 뭔가 다른 특별한 걸 보여 주려나 싶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란 명칭에도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그보다는 이제 안철수가 제대로 정치를 시작하는가보다 하는 기대들이 많았다. 그게 딱 100여일 전이다. 다만 새로 정치를 시작해서 새 정치인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해서 새 정치인지 처음부터 개념이 약간 모호하긴 했다.출범을 선언한 새정치연합의 기세는 사뭇 등등했다. 색깔이 비슷한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겠다고도 했다. 맹렬하게 기세를 올리며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고 경기도에서 발기인대회를 한게 불과 엊그제다.그런데 지난 2일 느닷없이 민주당과 제3지대 통합을 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기초선거에서의 무공천을 매개로 해서라고 했다. 무공천이 합당의 명분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집권을 추구해야하는 정당이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우리 정당법은 정당(政黨)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하는 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공천과 관련된 폐해가 자심하고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심부름꾼 정도에 그치는 등의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할 일이지 제도 자체를 없애겠다고 나서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야당의 입장에서 정치공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무공천은 국면타개를 위한 제법 훌륭한 수로 읽힐 수도 있다. 단일화된 여당을 상대로 다수의 야당이 후보를 냈다가는 패하기 십상이다. 막 출범해 인물난을 겪고있는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전국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게 어렵기도 하다. 합당은 이런 상황에서 퇴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당 역시 무공천을 통해 정체된 지지율 때문에 고전하는 국면을 타개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공약이라는 명분을 지렛대 삼고 현장의 무공천 요구를 반영한다는 민의수렴 형식을 빌린다면 합당은 훌륭한 대안이 됨직해 보인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런 명분을 선뜻 이해해주긴 어렵다는 것이다.돌이켜보면 안철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돼 치러진 지난 2011년의 지방선거때 지지율 면에서 자신보다 한참 뒤지는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참 신선하게 보였다. 권력에 욕심이 없진 않을진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그야말로 대인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때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안철수가 또다시 양보를 했다. 당시에 일부 국민들의 고개는 좌우로 흔들렸다. 그렇게 양보만 할 것 같으면 정치를 왜 시작한거냐 라는 의문이 슬그머니 똬리를 틀기 시작한 거다. 안철수는 뒤가 무른 것 아니냐, 현실정치에 약한 것 같다는 뒷담화도 나오기 시작했다.이번에 다시 제3지대 통합이란 명분으로 창당을 포기하자 안철수는 정치가 직업이 아니고 양보가 직업이라는 농담이 흘러 다닌다. 이래저래 양보만 하고 후퇴만 하다가 새 정치는 언제 할거냐는 지적도 들린다. 새 정치는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국민만 바라보는 변화와 개혁을 위한 (힘)센 정치가 아닌 후퇴와 양보, 끝이 희미한 (김)샌 정치로 사라져가는 건 아닐까. 그게 국민들의 갸웃거림이다./박현수 편집국장

2014-03-06 박현수

겨울왕국 경기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겨울왕국'은 영원히 꽁꽁 얼어버린 왕국의 여름을 되찾기 위해 언니를 찾아 떠나는 동생의 모험을 그린 3D 애니메이션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동심의 상징인 '눈'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어린 관객은 물론 성인 관객까지 사로잡으면서 올해 최고의 가족 영화로 사랑을 받고 있다.겨울왕국처럼 경기도도 지난 1일 폐막한 '겨울 스포츠의 대축제'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전 종목 상위권을 휩쓸며 13년 연속 종합우승컵을 안았다. 선수들의 값진 노력과 지도자들의 투혼, 그리고 종목 관계자들의 열성적인 지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도는 이번 동계체전에서 역대 최고 점수인 종합점수 1천373.5점을 획득하며 강원과 서울을 제치고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그러나 이번 동계체전은 2014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 곧바로 열린 탓에 선수들의 후유증도 많았다. 올해 동계체전은 지난달 26일부터 4일 동안 선수 2천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남을 비롯 강원도 평창, 서울 태릉·목동, 충남 아산, 경북 의성 등에서 종목별로 분산돼 열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본단이 지난달 25일 귀국한 뒤 하루 만에 동계체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문에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동계체전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은 지난달 24일 사전경기로 열린 컬링 여일반부 결승에서 전북도청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들은 이틀 전 소치에서 귀국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곧바로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훈련도 제대로 못한 채 경기를 벌이는 등 강행군을 이겨내지 못했다. 또 한국 선수중 유일하게 2관왕에 오른 박승희도 쇼트트랙 500m만 출전했을 뿐 나머지 종목은 컨디션 난조로 기권했다.경기도는 이번 동계체전을 통해 겨울왕국의 위상을 다시한번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제 국내에선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국내 잔치인 동계체전을 떠나 4년 뒤 홈에서 열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유망 선수 발굴도 중요하지만 시설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컬링이 국민적 관심을 받자 경기도는 선수들을 위한 전용컬링경기장 확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컬링은 선수들의 호흡이 중요해 선발팀이 아닌 단일팀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물론 경기도 여자 컬링팀도 처음에는 외인구단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 뒤 지난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의 기적을 이뤘고 지난 2013년부터 경기도의 지원으로 실업팀으로 발돋움했다.현재 전국에 있는 컬링장은 경북 의성과 태릉선수촌 내 컬링전용경기장 등 2곳 뿐이다. 이에 경기도도 컬링경기장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 인근 스포츠센터 다목적체육관 부지 또는 주차장 유휴부지를 검토 중이다. 도는 이미 만들어진 2곳을 벤치마킹해 국제경기장으로 추진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예산도 문제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최대 5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경기도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하다 자칫 도내 컬링 선수들에게 상처만 남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비타당성 연구용역 결과와 예산 문제, 그리고 6·4 지방선거 등이 바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경기도 선수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컬링을 비롯 봅슬레이, 루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모든 종목에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출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제 평창에서 열릴 다음 동계올림픽까지 4년도 남지 않았다. 겨울왕국 경기도가 글로벌 스타 발굴과 시설 인프라 구축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신창윤 체육팀장

2014-03-03 신창윤

세기의 대결 혹은 희대의 코미디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 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다른 한쪽은 1970년대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끈 장본인으로 각각 전설이 된 인물들이지만, 적어도 50세 전후의 중장년층 이상 세대에선 오래 전 두 사람간에 벌어졌던 '세기의 대결'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종합격투기가 흔해진 요즘과 달리 경기가 열렸던 1976년 당시만 해도 이종(異種)의 격투선수 간에 맞붙는 생소한 경기, 그것도 명실상부 최고수들이 링 위에 오르는 경기라는 점에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경기는 시종 지루하고 맥빠진 졸전으로 막을 내렸다. 이노키는 경기 내내 링 바닥에 누워 무의미한 발길질만 되풀이했고, 알리 역시 변변한 펀치 한방 제대로 날리지 못한 채 특유의 설전(舌戰)으로 실전을 대신했다. 수십만~수백만원씩의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간 관중들과, TV 앞에 몰려든 전 세계 수십개국의 팬들은 허탈해 하며 애써 분노를 삭혀야 했다.이 전대미문의 대결이 졸지에 '희대의 코미디'로 전락한 건, 바로 '룰' 때문이었다. 경기는 당초 '동양인 중 아무나 덤벼 보라'는 떠벌이 알리의 허풍에서 비롯됐다. 흥행을 위한 이벤트 정도로 출발했다가 어찌어찌하다 실전으로 바뀌게 되자, 알리는 경기를 코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룰을 정한다. 서있는 상태에서 킥 금지, 던지기나 관절기 금지, 태클 금지 등 대부분 복서인 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칙들이었고, 심지어 이 룰을 외부에 공표하지 못한다는 조항까지 달았다고 한다. 레슬링 기술을 쓸 수 없게 된 이노키 입장에서는 알리의 강펀치를 피하기 위해 '누워서 싸우기'라는 전법이 불가피했고, 알리 역시 누워있는 이노키를 공격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했다. 보잘 것 없는 내용이었으니, 결과는 당연히 무승부였다.채 100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가 꼭 알리-이노키간 '세기의 대결'을 연상시킨다.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앞다퉈 링에 오르겠다 아우성인데, 정작 경기를 어떤 룰로 진행할지, 선수의 자격요건은 무엇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수십년 행정 내공을 쌓은 공직자 선수, 밑바닥을 훑으며 팬클럽을 확보한 정치지망생 선수,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전문가 선수, 여기에 '인생 한방'이라며 요행을 바라고 나선 정치꾼 선수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필살기를 갖춘 이종 선수들이 수두룩하게 나섰지만,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발해 어느 팀 소속으로 나서게 할지는 도무지 오리무중인 것이다.관중들의 뜻에 따라 상향식으로 선수를 뽑겠다고 장담하던 여당팀은 슬그머니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선수를 내리꽂을 수도 있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고, 소속팀 없이 게임을 치르자고 목청 높이던 야당팀 역시 '저쪽이 그렇다면 우리도…'라며 기다렸다는 듯 발을 빼고 있다. 양자대결의 구도를 일약 3파전 양상으로 뒤흔들 것 같던 신당팀은 급작스레 대표 선발을 포기해 추종 선수들을 좌절케 하더니, 이내 이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겠다며 고심중이다.각 팀의 대표급으로 지목돼 온 선수들도 '간'을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자기가 뛸 경기 종목조차 정하지 않고 승산만 저울질하고 있는 선수, 확실한 입장표명 없이 나설 듯 말 듯 몸값만 올리고 있는 선수들 때문에 정작 일찌감치 링 위에 오른 '정규 선수'들은 관심권 밖으로 내몰리는 말도 안 되는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알리와 이노키는 숱한 말싸움으로 흥행몰이에는 성공했지만 경기 직전에서야, 그것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룰을 만들어 김빠진 경기를 자초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두 선수 모두 진검승부보다는 흥행과 개런티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선거까지 이래서는 안 된다. 관중들은 상식적 룰에 의해 정정당당 펼쳐지는 한판 승부를 원한다. 향후 대한민국의 4년을 좌지우지할 선거가 세기의 대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허풍쟁이와 흥행꾼들에 의해 놀아나는 희대의 코미디가 되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배상록 정치부장

2014-02-27 배상록

'다케시마의 날과 100년 전 '인천의 날'

1905년 2월 9일 인천에서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인천에 살던 일본인들이 '인천의 날'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성대한 축제를 즐겼다. 그 1년 전 2월 9일에 일본 함대와 러시아 함대 사이의 전투(제물포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었는데, 그 이름을 '인천의 날'로 정한 것이다. 이 '인천의 날'은 이때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제물포해전 당시 인천에서 의사로 있던 사람이 1932년 '인천의 날' 축제 현장에 나와 부상병을 치료했던 얘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는 장면이 1933년에 그들이 펴낸 '인천부사(仁川府史)'에 생생하다. 글쓴이는 이 대목 말미에 '백년 후 인천의 날을 상상하며 붓을 놓는다'고 했다.제물포해전이 있은 지 110년, 일본은 지난 22일 시마네(島根)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붙인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를 가졌다. 아홉 번째 행사였다. 이 자리에 아베 정부는 중앙정부 고위 당국자를 파견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 기조가 한반도를 직접 겨냥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일본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런 일본을 미국이 은근히 밀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일본을 이용하는 눈치다. 이런 분위기에 아베가 편승하면서 일본의 우경화 전략은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우리 외교 당국은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당국자를 파견한 것에 대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늘 하던 매뉴얼 대로 이번에도 거칠게 항의했다. 우리는 독도를 놓고 벌이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외교 당국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 외교전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있는 것일까. 괜한 걱정인지는 몰라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주제가 제물포해전으로 옮겨 오면 우리 당국의 태도가 영 미덥지 않다. 과거를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무지 잘못을 고치려고 들지를 않는다.110년이 지나면서 먼 역사가 된 '러일전쟁'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오류 투성이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군이 인천항을 빠져나가던 러시아 군함을 향해 어뢰공격을 가함으로써 인천에서의 전투행위가 시작되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 이튿날인 9일에는 러·일 함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군함 2척이 소월미도 부근 바다에 가라앉았다. 러일전쟁의 서막은 이렇게 인천 앞바다 제물포에서 올랐다. 이를 제물포해전이라고들 한다.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 연구기관 중 한 곳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행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제물포해전의 설명은 반쪽에 불과하다. 러일전쟁의 시작을 '2월 8일 저녁 일본의 중국 뤼순항 기습'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날 낮에 있었던 일본의 러시아 함정 공격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다른 백과사전 역시 마찬가지 형태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대부분 이들 자료가 나도는 실정이다.사정이 이러하지만, 우리 외교 당국은 관련 심포지엄 참여조차 거부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25일부터 27일까지 '러일전쟁 11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러일전쟁 연구자인 러시아와 일본의 전문가도 참석한다. 전쟁 당사국인 러·일, 피해국인 한국의 학자들이 참가하는데, 관련 정부 당국의 태도는 상반된다. 패배한 러시아는 적극적인데 반해 승전보를 울린 일본은 부정적이다. 일본 대사관 측은 일정상의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그런데 피해국인 한국 정부는 '치욕스런 역사를 얘기하는 자리에 정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면서 참가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너무 한가한 역사 인식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국제심포지엄을 통해 110년이나 지난, 그것도 아주 치욕적인 옛이야기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이유는 지나간 역사는 늘 지금과 내일의 거울이 된다는 점에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되씹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러일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전쟁이었지만 그 발발 시점조차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전쟁 피해국인 한국에서, 그 전장(戰場)이었던 인천에서부터 아픈 역사를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일본인들에 의한 '인천의 날'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그렇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4-02-23 정진오

봄이 정말 온 것인가?

설 연휴와 입춘이 훌쩍 지나가더니 어느새 봄기운이 성큼 다가왔다. 가는 해를 보내며 새해 소망을 빌어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하순이란다. 청마의 해인 2014년 갑오년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공통된 소망은 경기활성화. 이중에서도 부동산 시장 회복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회학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부동산 중병론'에 비유하기도 한다.요즈음 두 세사람 이상 모이는 곳에는 단답형 OX퀴즈가 유행이란다. 올해 부동산 시장, 다시말해 집값이 오를 것인지 아니면 더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설전(?)이 오가는 것이다. 식자층으로 분류되는 소위 배운 집단에서조차 부동산이 바닥(저점)을 쳤는지 여부에 대한 나름대로 논리를 내세우곤 한다. 온통 나라 전체가 부동산에 함몰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인데 기대이하의 메달 성적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계방송 시청률이 신통치 않다. 유수의 대기업들도 올림픽 메달의 영광을 대상으로 한 광고특수를 기대했지만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란 어떤 의미인가 새삼 곱씹게 하는 이유다. 전장의 폐허 속에서 반세기만에 선진국 대열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전세계 유일한 국가이자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유일한 민족이기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동산이란 '거주 공간 확보 이상의 삶의 지표'로 저변인식이 굳게 깔려 있는 듯하다.실제로 급속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국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은 내수경기 활성화 수단으로 부동산과 건설업 부흥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부동산은 결코 거짓말 하지 않는다. 사두면 효자 노릇한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징조다" 등 부동산에 얽힌 민초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이토록 국가경제, 아니 한국인의 중심사고를 지배해온 부동산이 10년 가까이 침체기로 이어졌으니 해괴망측한 괴담 수준으로 퍼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정말 부동산의 봄은 온 것인가?수도권 집값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분당, 평촌, 용인 등 신도시 버블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가 2년 11개월만에 상승세를 보이는 등 일단 수치상의 변화가 주목을 끌고 있다. 부동산114는 버블 세븐지역 전용 85㎡ 초과 아파트 매매가가 지난달 0.06% 오른 것은 부동산시장이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신호로 보여진다고 예측했다. 버블세븐 중대형 아파트 값도 지난 2011년 3월 떨어진 후 계속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해 '8·28전월세 대책' 이후 하락률이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다 지난달 약 3년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그러나 안으로 파고 들여다보면 강남의 일부 재건축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급매물을 위주로 거래가 다소 늘고있는 수준이다. 수도권 아파트 경매 경쟁률도 8.4대 1로 4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셋값이 줄곧 치솟자 아예 집을 사겠다는 수요자들이 경매시장으로 유입되는데 따른 반사효과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9.8대 1로 지난 2001년 조사를 시작한 후 최대치를 보였다. 서울은 7.2대 1을 기록했다. 경쟁률과 함께 낙찰가율도 상승했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4.3%로 지난 2009년 11월(8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정부와 부동산 업계간 시각차는 극명하게 다르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기에는 거래가 턱없이 부족하고 가격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아직은 싸늘하기만 하다"며 "수치상의 호조일 뿐 부동산 냉각기는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4·1주택경기활성화대책'과 '8·28전월세대책' 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심지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활성화 대책 약발이 제대로 통하고 있다는 섣부른 홍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섣부른 예측이 더 깊은 부동산 추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을 대체할 뾰족한 경기활성화 대책을 내놓지 못하니 부동산 중증환자가 더 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만이 유일한 불황 탈출구는 아니다./김성규 경제부장

2014-02-20 김성규

안현수 금메달과 대한민국

뜨거운 국민적 관심속에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고 있는 2014 동계올림픽이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이상화는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우승하면서 지난 밴쿠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는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처음이다. 오는 20일과 21일 경기를 펼치는 김연아의 2연패 여부 또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끄는 핫 이슈 중 하나다. 지난 13일 소치에 도착한 김연아가 가는 곳마다 대규모 취재진이 따라붙는 이유다. 한동안 우리 선수단의 메달 밭이라고 자부했던 쇼트트랙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중이다. 물론 여자 500m에서 박승희가 쇼트트랙에서 귀중한 첫 메달인 동메달을 따냈고, 이어 심석희가 1천500m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우리 대표팀에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아직도 여러 경기가 남아 있는 만큼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좋은 기록들이 나오길 기대해 마지않는다.쇼트트랙을 포함해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 중에 '안현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대표선수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고, 2003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를 5년 연속 제패한 '쇼트트랙의 전설'이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러시아로 귀화해 지금은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빅토르 안.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러시아 이름이지만, 이번 올림픽 기간중에 러시아와 우리나라에서 푸틴 대통령보다 많이 불린 이름일 것이다. 빅토르 안은 15일 열린 쇼트트랙 1천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장의 러시아 관중들은 그의 경기에 열광했다. 러시아 역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치러진 1천500m에서도 러시아에 첫 동메달을 안겨준 빅토르 안의 이날 경기는 여전히 그가 '세계 최고'임을 스스로 증명해 낸 멋진 경기였다.필자는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따내는 이 경기를 지인 몇 사람과 식당에서 지켜봤다. 숟가락을 든 채, 소주 잔을 입에 갖다 댄 채, 식당 안 손님들은 온통 쇼트트랙 1천m 결승 TV중계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신다운이 결승전에 올라 러시아의 빅토르 안과 함께 경기를 치렀지만 둘 중 누가 우승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했다. 빅토르 안이 결승선을 첫 번째로 들어오는 순간 식당 안에 환호성이 터졌다. 흡사 한국 선수가 우승할 때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곤 그 순간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주 잔을 내려놓고 힘껏 박수를 쳐대는 식당 안의 손님들에게 러시아의 '빅트로 안'은 다시 대한민국의 '안현수'가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입에서 "러시아에 귀화한 다음에 마음 고생이 심했을거야…"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어진 화제는 자연스럽게 그가 '파벌'의 희생자로 귀화를 선택했다는 안타까움으로 흘러갔다.러시아와 우리나라에서는 빅토르 안, 안현수가 단연 화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게 축전을 보내고, 페이스북 커버를 빅토르 안의 사진으로 변경하는 등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도 연일 빅토르 안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인터넷에는 빙상연맹의 파벌싸움으로 인해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러시아에 귀화한 안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을 되돌아 보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아들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순간,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 빙상 파벌의 피해자에서 러시아 영웅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정당당한 경쟁사회인지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2014-02-17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