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가해자를 '악마'라 해도 '위로'가 될 수 없다

아동 학대·살해·유기 해마다 늘어나정부, '아이문제 정책' 우선순위 놓고사회안전망 재정립등 빠른 실행 필요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 했다.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배반하며 분노케 하고 좌절시킨다. 많은 어린 아이들이 세상과 제대로 공감을 나눠 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한다. 많은 아이가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당하고 내팽개쳐진다.이천에 사는 20대 싱글맘과 외할머니는 세 살배기 여아가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등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지난 18·19일 이틀간 나무 회초리와 훌라후프 등으로 마구 때렸다. 여아의 몸 안에 상당량의 출혈이 발생했고 결국 전신 피하 출혈로 인해 목숨을 빼앗겼다.전남 광양에서는 2살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20대 아버지가 지난 23일 경찰에 구속됐다. 20대 아버지는 지난 2014년 11월 아들을 훈육한다며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집에 이틀 동안 방치했다가 여수지역 바닷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며칠 사이에 언론을 장식하며 우리를 분노케 한 아동살해사건이다. 그 사이 경북 구미에서는 한 보육교사가 지난해 7월부터 2개월간 자신이 근무하는 어린이집 유아 7명을 상습적으로 폭행(아동학대)한 사실이 밝혀졌다.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 2014년 1만7천791건에서 2015년 1만9천214건으로, 학대로 숨진 아동은 2014년 14명에서 2015년 16명으로 각각 증가했고, '학대'·'살해' 모두 지난해에 더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된 상태다. 여기에다 또 다른 문제인 '영아 유기'도 2014년 76건, 2015년 42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109건으로 급증했다.영아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대·살해·유기 등은 그 특성상 드러나지 않거나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현실은 통계보다 훨씬 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많은 아이가 외지고 차가운 곳에 누워 있거나 매질에 눈물만 흘리며 견디고 있을 것이다.단적인 사례가 '원영이 사건'이다. 7살 원영이는 3개월여간 락스와 찬물로 학대당하고 매질 당하며 화장실에 갇혀 지냈다. 음식은 하루 한 끼만 주어졌고 한겨울에도 트레이닝복만 입고 지내다 결국 짧디짧은 삶을 마감했다. '원영이 사건' 이후 교육 당국은 초등학교 입학 대상 아이들을 특별 관리하기 시작했고 지난 10일 2차 예비소집일에 불참한 아이들에 대해 경찰과 함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이런 아이가 경기도에만 57명에 이른다.어른들은 가해자를 '악마'라고 비난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왜 자신에게 그런 불행이 닥쳐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결코 위로가 될 수 없다. '아이들의 비극'은 애완동물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가 쏟아지고, 지난해 새로 태어난 아이 숫자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며 '인구절벽'이 현실화됐다는 우려와 '오버랩'된다.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면서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정부는 지난해 3월 '올해를 아동학대 근절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원인과 진단, 대책은 이미 쏟아져나와 있다. 아이 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고 부모와 아이들에 대한 복지제도, 사회안전망 재정립, 관련법 개선 등의 과감한 결단과 실행이 필요하다./김순기 사회부장김순기 사회부장

2017-02-26 김순기

[데스크 칼럼]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라

농·축산업 근간 유지 돈으로 대체 못해식량 자급률·외국산으로부터 시장 사수제값 받도록 유통구조 개선 정부가 할일이제 듣기도 보기도 어려운 말이 됐다. 그만큼 우리가 그들을 잊고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한은 먹어야 하고, 그 먹는 것을 농업이 해결하니 농업과 농민이 천하의 근본이란 말은 틀림 없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말을 꺼냈다가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고리짝 시대 이야기냐"고 핀잔을 듣기 딱이다. 하기는, 이제 이 말은 명절이나 전통놀이 행사 때에 겨우 볼 수 있는 잊혀져 가는 말이 됐다. 세상에 먹을 것이 넘쳐나 밥 굶을 걱정이 없다 보니 농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 탓이다.지금 우리 경제의 중심은 제조업이다. 뭐든 열심히 만들어 국내외에 팔고, 그렇게 들어온 돈이 돌고 돌아 경제가 굴러간다. 특히 제조업체가 많은 경기도, 항만과 공항이 있는 인천은 제조와 무역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에서 제조업과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정부의 정책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쏠렸다. 무역장벽을 낮춰 수출을 늘리기 위해 해외 각 나라들과 부지런히 협정을 체결했다. 우리는 자동차와 반도체, TV를 팔아야 했다. 상대편은 우리나라에 농축산물과 지식시장을 내놓으라 했다. 비록 시차를 두고 내놓았지만, 우리는 결국 시장을 내줬다. 그러면서 정부는 "자동차와 반도체, TV를 팔아 번 돈으로 농업을 살리겠다"고 했다. 쌀 시장을 열겠다고 약속한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라 우리는 차근차근 외국쌀에 문을 열어 주었다. 가뜩이나 쌀 소비량이 줄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국산 소고기와 호주산 소고기, 프랑스·벨기에산 삼겹살도 시장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장은 차츰차츰 외국산 농축산물에 점령당해 갔다. 식탁에는 외국산 농축산물이 자연스럽게 놓여졌다.시장을 개방하면서 정부는 농축산업이 죽지 않도록 경쟁력을 높이고, 손해를 보는 만큼 보전을 해 주겠다고 했다. 작년에 쌀값이 폭락했다. 그 때문에 쌀 변동직불금으로 1조5천억원 가까운 돈을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작년 11월에 나눠준 고정직불금에 다시 변동직불금을 얹어 쌀값 폭락분을 가까스로 메우게 됐다. 문제는 이런 지원금 정책이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작년분 쌀 변동직불금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한국의 농업보조금 상한선에 걸렸다. 내년에 쌀값이 더 떨어져 보조금을 더 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도, 더 많은 돈을 농민들에게 나눠줄 수 없게 됐다. 이쯤 되면 정부가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쌀 농업을 비롯한 우리 농축산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값이 폭등하자 곧바로 정부는 계란을 수입했다. 이어 닭고기 값이 뛰자 닭고기도 수입한다고 한다. 쌀값이 폭락하자 경지 면적을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닥친 것을 해결하고 보자는 식이다. 쌀값 폭락에 보조금으로 대처하는 것도 결국 눈앞에 닥친 것을 쉽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은 농업이 삶의 근본임을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내는 사이에, 글로벌 식량 위기는 바로 눈앞에 닥쳐와 있다. 때문에 농축산업의 근간을 유지하는 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 식량 자급률을 지키고, 농축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외국산으로부터 우리 시장을 지키고, 제 값을 받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라고 하지 말라. 그것을 해야 제 일을 하는 정부다./박상일 경제부장박상일 경제부장

2017-02-22 박상일

[데스크 칼럼]반려동물 기르는 인구 1천만명 시대

해마다 8만마리 이상 버려지거나 길 잃어버려'등록제' 강화 등 제도장치 보완·책임의식 필요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중 약 457만가구, 인구 1천만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다섯 가구 중 한 가구, 네 명 중 한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났음에도 잘 키우던 반려동물을 길에 내다 버리는 '유기동물'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정부 통계에는 해마다 8만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이 고의로 버려지거나(유기), 길을 잃고(유실)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아직도 재미삼아, 혹은 호기심으로 반려동물을 키웠다가 무책임하게 길에 내다 버리는 행위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휴가철만 되면 반려동물의 유기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지난 2015년 유실·유기동물 처리비용은 128억9천만원에 달했다. 이 비용은 전년보다 23.5%나 늘어난 수치다.이처럼 반려동물 유기 행위가 계속되는 이유로는 양육자의 무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부 사람들은 비용부담을 이유로, 그리고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면서 병이 나거나 사고 등으로 불구가 될 경우 그동안 가족처럼 살아왔던 반려동물을 길에 내다 버리고는 한다.여기에 동물은 마음대로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대신해서 키워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심리가 좀처럼 유기동물 개체수를 줄어들지 않게 하고 있다.동물보호단체들과 지자체, 일부 동물병원들이 나서서 반려동물 교육 및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 등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그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반려동물 문화 선진국들에서도 유기동물 문제가 발생하고는 있지만 이후 이들 동물에 대한 입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 배워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에서도 이런 유기견들을 대상으로 한 입양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달 중 전담 조직을 꾸려 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산업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지난 2014년 의무화 된 '반려동물 등록제'로 인해 유기동물 개체 수가 다소 줄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버려진 유기동물(개, 고양이)들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이에 '반려동물 등록제'를 더욱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기 행위에 대한 적발과 처벌 수준강화 등 행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등록대상도 현재 애완견에서 고양이 등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무엇보다 반려동물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문화를 개선하고 한번 입양하면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반려동물 사육 인구 1천만명 시대'. 최근 '경찰청' 공식 페이스북에 가평경찰서 마스코트인 '잣돌이'의 입양 사연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1월초 가평경찰서 앞에서 서성이던 한 강아지를 의무경찰대원들이 발견하고 주인에게 찾아주기 위해 유기견센터로 보냈지만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14일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센터 측의 지침을 알게 된 의무경찰대원들은 상의 끝에 결국 강아지를 입양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현재 '잣돌이'는 명예 의경으로 가평경찰서 앞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김신태 디지털뉴스부장김신태 디지털뉴스부장

2017-02-19 김신태

[데스크 칼럼]"하필(何必) 왜 불필(不必)입니까"

정치인들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눈치 못 채선거때마다 출마자들 특권 내려놓겠다고 아우성'진정 '쓸모있음'은 비움에서 출발' 성철은 가르쳐김정남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독살을 당했을까. 김정남은 그렇게도 북한 측에 불필요한 존재였을까. 이 두 문장에서 쓰인 하필(何必)과 불필(不必)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참 많은 군상이 등장한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치인은 필수이고 관료와 법조계 인사, 그리고 대학교수 집단까지. 돈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좇아가는 저잣거리 간상배나 진배없는 이들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장면을 연속극 보듯 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들은 어김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괴롭혀 결국은 자괴감에 젖게 한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 하나, 저들은 꼭 필요한 존재일까. 그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요새는 '나는 필요한가'로 옮아가고야 말았다. 답을 못 내놓는 불초한 입장에서 스스로 묻고 답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이 두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는 성철 스님(1912~1993)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1957년 스님의 딸 수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를 깎았다. 성철은 딸에게 법명을 내렸는데 바로 '불필(不必)'이었다. 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으니 그 맘이 오죽하였으랴. "하필 왜 불필입니까." 딸은 따지듯이 물었다. 이제 사바세계의 아버지가 아니라 산중의 스승이 된 성철은 답했다.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을 알게 된다." '왜 꼭 필요한지'를 알면 '쓸모없음'을 알게 된다니, 세속에 찌든 우리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다.성철은 산중으로 자신을 찾는 이들 누구에게나 삼천배를 시켰다. 노인이나 병자도 예외가 없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이다. 몸이든 마음가짐이든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절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삼천배를 하는 데 며칠이나 걸린 경우도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폐병 말기 비구니가 있었다. 죽기 전에 스님의 법문을 꼭 듣고 싶었다. 성철은 죽게 생긴 이 환자에게도 삼천배를 요구했다. 걷지도 못하던 이 비구니는 이를 악물고 며칠이 걸려서 드디어 삼천배를 마쳤다. 그런데 웬일인가. 중증환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 비구니는 몇 달이나 계속해서 삼천배를 이어갔고, 마침내 그의 몸에서 폐병이 사라졌다. 아무 쓸모도 없을 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삼천배의 그 과정에서 그 환자는 쓸모 있는 몸으로 다시 환생했다.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전혀 눈치조차 못 채고 있다. 오죽하면 경제분야이고 사회분야이고 정치만 개입하지 않으면 다 잘 돌아갈 것이란 우스갯소리마저 나올까. 제일 꼴불견이 남들은 다 쓸모없다고 평가하는데 정작 자신은 엄청나게 쓸모가 많은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 정치인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특권도 그만한 쓸모가 있다면 얼마든지 누려도 된다. 문제는 그런 쓸모도 없는 존재들이 특권을 누리고, 그 특권에 기대어 더욱 쓸모없어지는 데에 있다.진정한 의미의 '쓸모 있음'은 아무것도 없이 비우는 데서 출발한다고 성철은 가르쳤다. 그 비움은 재물 욕심을 버림에 있다. 성철이 가난을 가르치면서 자주 인용했다는 경구는 매일같이 쓸모없는 정치판을 바라봐야 하는 오늘에 무척이나 쓸모 있게 다가온다. '지난해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마저도 없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7-02-15 정진오

[데스크 칼럼]하던 거나 잘 하자

차별화 보다 평준화 추구하다 보면 망하는건 시간문제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 사라지지 않는건 불경기 증거출근 시간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나서는 젊은 직장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바쁜 출근길 직장인들에게 '커피+샌드위치' 조합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좋고, 스타벅스도 아침 시간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기회다.원두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대형 고깃집을 비롯한 웬만큼 규모 있는 식당마다 원두커피 취급 공간을 늘리는 것을 보면 유행을 어설프게 따르는 한국판 한단지보(邯鄲之步)를 보는 듯하다. 남의 것 흉내 내다 제 것마저 잊어버리면 따라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최근 대형 음식점 중에 별도의 커피숍을 마련하거나 비싼 커피머신을 들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중에는 까다로운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바리스타를 고용하는 가하면 주인이 직접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곳도 있다고 한다. 고깃집 주인이 신선한 고기 찾지 않고 고급 커피 원두 구하러 다닌다면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특화한 제품으로 전문성을 키울 것인지, 다양한 상품군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출 것인지는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다. 차별화라는 것이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보니 불안한 마음에 평준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너무 하나의 제품에만 의지하는 것 아닌가. 다른 것도 좀 섞어 팔면 낫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남들도 하는데 나만 안 하는 것이 불안해 이것저것 손을 뻗다 보면 일의 근본인 줄기는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고깃집에서 커피로 매출을 올리겠다는 생각은 오만에 가깝다.차별화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오래된 맛집에는 식단 메뉴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 맛집에 가면 보통 "2그릇 주세요. 4명이요"라는 말만 하면 된다. 메뉴만 50개가 넘는 곳을 맛집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듣거나 본적이 드물다. 맛집이라면 냉면이든, 해장국이든 한두 가지 음식으로 평가받는 곳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이런 오래된 맛집에서는 인스턴트 커피 한 잔 얻어먹기 힘들다. 그런 거 찾지 말고 몸에 좋은 매실차나 누룽지탕 먹고 가라고 핀잔받지 않으면 다행이다.심장 수술하는데 성형외과 찾아가거나 감기 걸렸는데 산부인과 찾아가는 환자 없다. 특정한 병이나 질환을 집중해서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전문의를 찾아가야 제대로 치료받는 건 상식이다. 약점 살리겠다고 장점 죽이는 어설픈 평준화보다 '하던 거 잘하는 것'이 진정한 차별화 전략일 수도 있다.뉴욕타임스가 2008년 1월 '병든 스타벅스를 낫게 하려면(Curing what Ails Starbuks)'이라는 비판 기사를 여러 차례 실었던 것이 회자 된 적이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바리스타가 직접 에스프레소를 만들어주던 것을 버튼 하나로 커피를 퍼내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끊임없는 상업성으로 채우고 말았다. 처음 스타벅스를 만났을 때의 그 새롭고 이국적인 공간과 향기, 그 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제발 매장에서 에그샌드위치를 치워달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돈 버는 데 급급해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커피를 내달라는 얘기다.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문화콘텐츠'가 변질되는 것을 지키려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기사를 본 스타벅스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매장 수를 줄이고 아침 식사용 샌드위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일은 미국에서나 가능했던 모양이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아직 샌드위치가 사라지지 않은 것 보면.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 땐 다른데 눈 돌리지 말고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남는 거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7-02-12 이진호

[데스크 칼럼]코너링,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딸

이름 좋고 코너링 탁월한 운전병 '민정수석의 아들'수십억짜리 말타고 돈도 실력이라는 '가정주부의 딸'컵라면 남긴채 숨진 비정규직 청년보니 '가슴 먹먹''코너링'이 고도의 운전기술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이다.회사가 새 건물에 둥지를 튼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지하 주차장에 진입할 때면 여전히 핸들에 긴장감이 전해진다. 쇼트트랙을 연상케 하는 나선형의 난코스(?)를 최대 일곱 바퀴를 돌아내려 가야 하는데, 운전에 몰입하다 보면 마치 레이스를 펼치는 드라이버가 된 듯한 기분이다. 문제는 규정속도를 잠깐이라도 어길라치면 바퀴와 경계석의 마찰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바퀴의 스크래치는 늘어만 가니, 미숙한 운전실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벽에 페인트 자국을 남기지는 않은 만큼, 드라이버로서의 기본 테크닉은 갖추었다고 자위해 본다. 그런데 스물을 갓 넘은 청년이 코너링을 그렇게 잘한다고 하니 수십년 경력의 운전자로서 부럽기 그지없다. 북악스카이웨이 길에 코너가 많고 요철이 많은데도 굉장히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고 코너링도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이 청년은 카레이싱계의 테크니션이자, 베스트 드라이버가 아닐 수 없다.그런데 부러운 일이 또 있다. 이 청년의 이름 또한 아주 일품이라는 것이다.이 청년을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병으로 발탁한 모 경위는 "임의로 뽑은 5명 가운데 그 청년의 이름이 좋아서 운전병으로 선발했다"고 밝혀 특검팀의 감탄사(?)를 자아냈다고 한다. 일찍이 코너링 실력과 운전병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갈파한 혜안에, 성명학적 근거까지 접목했으니 그 얼마나 치밀한 인재발굴의 전형인가.더 나아가 이 청년의 사례는 세월에 묻혀버린 유머까지 소환하고야 만다. 우리나라 병역제도에 '방위병'이라는 보충역 제도가 있던 시절이다. 부모를 잘 만나 군대에 가지 않는 병역면제자는 이른바 '신의 아들'로 일컬어졌다. 6개월 방위병은 '장군의 아들', 18개월 방위병은 '사람의 아들'로 불리었다. 18개월 방위에 이르러서야 신의 영역에서 드디어 소시민 영역의 실질적인 '인간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면 군복무기간을 꼬박 채우는 현역병은 뭐라고 불렀을까? 바로 '어둠의 자식들'이다. 웃을 일 하나 없는 세상에 다시 쓴웃음이라도 짓게 만드는걸 보면, 코너링으로 시작해 성명학으로 귀결되는 이 '발탁론'은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창조적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이쯤에서 이 유머를 잇는 후속 버전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코너링에 탁월하고 이름까지 좋은 운전병은 '민정수석의 아들'이다. 내친김에 조금만 더 '오버'해 보자. 수십억 원 짜리 말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돈도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자는 누구의 딸일까? 정답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딸'이다. 대통령이 직접 제시한 모범답안이니 믿을 수 밖에….이들 아들과 딸은 지난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비정규직 청년과 동갑내기다. 허기진 배 때우지도 못한 채, 찌그러진 컵라면 하나 달랑 남겨 놓은 이 청년은 '민정수석의 아들'도, '평범한 가정주부의 딸'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슴이 더 먹먹하다./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7-02-08 임성훈

[데스크 칼럼]약속어음 vs 현찰

정치권, 조기 대선 겨냥 표심잡기용 장밋빛 공약들재원마련 구체 계획없는 공약, 국민들이 심판해야대선열차 이행 가능한지 두 눈 부릅뜨고 골라타야대선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온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빠르면 벚꽃 필 무렵부터 늦으면 연말까지 기간도 정해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헌법재판소의 인용 또는 기각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모양새다. 한쪽은 조기 인용을 주장하고 또 다른 진영은 기각을 주장하며 주말마다 광장에서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조기 대선을 겨냥해 한치도 양보없는 대국민 민심잡기에 나섰다. 줄잡아 여야 정치권 등에서 20여명 정도가 사실상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권 전체가 과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치러진 역대 6번의 대통령 선거보다 더 치열한 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덩달아 제자·백가들도 주군을 옹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표심잡기용 장밋빛 공약 남발로 정국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중소기업을 위하고, 서민·자영업자를 위해, 학부모·학생들을 위해, 지역경제를 위해, 국가안보를 위해 등 전 국민 모든 계층·지역·세대를 위해 세금을 풀고 제도를 뜯어고치겠다고 각종 약속어음을 남발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만남부터 모병제 실시, 복무단축, 사교육 철폐, 수도이전, 아이 많이 낳기, 일자리 몇 백만개 창출, 규제철폐, 청년수당, 국민소득·토지배당 소득 등 듣기만 해도 국민 모두의 배가(?) 부를 지경이다.반면에 눈 씻고 찾아봐도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국민 희생을 강요하는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증세는 표가 안되는 것은 물론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내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화는 유한하고 한정돼 있다. 지금도 예산은 늘 부족하다. 국민 숙원·현안 사업들이 예산 부족으로 늦어지고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새로운 복지와 정책에는 반드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세금을 신설하든지 기존 정책을 폐지해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장밋빛 공약 남발로 표를 사겠다는 후보를 이제는 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역대 대통령들도 많은 공약을 발표했다. 약속어음을 받아 든 국민들은 5년 임기가 끝날 때마다 부도난 수표를 막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심지어 '747'이라고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세계 7대 강국 국민소득 4만달러 7% 경제성장'이란 공약이 등장했었다.일각에선 공약을 믿지 않는 국민들을 겨냥, 주술에 가까운 '10년 주기설'도 등장했다.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헌법체제 속에 진행된 역대 대선결과, 처음에는 보수 우파 진영이 10년을 집권했다. 이후 진보 좌파 진영이 10년간 정권을 잡았으나 또다시 보수진영에 10년을 내주었다. 이로인해 정치권에선 10년 주기설이 정설처럼 퍼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진보진영 쪽이 대권을 잡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여론조사 결과도 진보 인사들의 대국민 지지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보측 대선후보들의 지지도가 50%를 훌쩍 넘고 있다. 반면에 보수 진영 후보의 합계 지지율은 고작 20%를 넘나들고 있다. 이를 반영해 시중 술자리에선 주관자가 술잔을 어디로 돌릴까를 고민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좌익척결 우익보강'을 외치고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국의 민심을 술잔에 빗대서 좌우측으로 돌리는 씁쓰레한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오고 있다.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세대교체 등을 외치는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통일한국 시대를 열겠다며 화려하게 치장한 대선 열차를 출발시키고 있다. 어떤 대선열차가 종착역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승차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약속어음도 이행이 가능한 지 확인하고 승선해야 한다. 그동안 발행된 약속어음에 속지 말고 즉시 사용이 가능한 현찰인지 확인해야 할 시점이다. 개인적으로 어음보다 현찰이 좋더라./김학석 정치부장김학석 정치부장

2017-02-05 김학석

[데스크 칼럼]박근혜와 트럼프, 두 혼란의 사이

박대통령 둘러싼 갈등, 가치 중심적보다 지엽말단적트럼프와 반대진영 공방, 철저한 미국적 가치 중심미국에서 벌어진 정치혼란으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벌어진 소동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가치를 둘러싸고 현재권력 트럼프와 미래권력 민주당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양측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도 양분됐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둘러싼 충돌인 만큼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다.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라는 대선공약을 대담하게 실행하고 있다.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유턴중이고, 멕시코 장벽 추진 의지를 재천명한데 이어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하늘길까지 봉쇄하고 나섰다. 국수주의적 백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 진보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는 "이민자를 환영해 온 미국의 위대한 전통이 짓밟혔다"며 분루를 삼켰고, 샐리 예이츠 법무부장관 대행은 명령이행을 거부했다가 바로 해임됐다. 트럼프의 가치를 부인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도 점점 견고해지는 추세다. 미국은 바야흐로 트럼프의 미국과 반대진영의 미국으로 갈려 극심한 혼돈으로 치닫는 형국이다.대통령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을 놓고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정치·사회적 갈등. 공교롭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비교체험 주제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민망한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초래된 혼란의 양상은 비슷하다. 그러나 혼란의 출발이 다른 점을 음미하고 혼돈의 종결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가 겪는 정치·사회적 혼란의 기승전결을 견주어보면 우리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지 싶어서다.우선 출발이 다르다. 혼란의 단초를 제공한 한국의 박근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다르다. 똑같이 선출된 권력임에도 박 대통령은 공적인 통치기구와 공론장을 외면한 채 비서실 실세 김기춘씨와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의존해 국정을 펼쳤다. 미디어와의 접촉을 단절함으로써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했다. 청와대가 주도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실행한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에서 보듯이 음지에서 국정을 운영했다. 이와 달리 트럼프는 적어도 당당하다. 싸움꾼일지언정 양지를 피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론에 대항해 SNS 매체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한다. 공론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또 갈등의 전개 양상도 다르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갈등은 가치 중심적이기보다 지엽말단적이다. 대통령의 비선 통치가 위헌인지 여부가 본질인데, 이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가십성 소재에 집착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사실상 여론에 의해 정권은 사망선고를 받은 상황이고, 죽은 자에게 침을 뱉을 이유는 없다. 박 대통령을 누드로 등장시킨 '더러운 잠'은 불필요한 조롱이었다. 금도가 없는 조롱은 죽어가는 사람도 깨운다. 박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반발하고 그를 지지하는 태극기 부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태의 진행은 점점 국가나 국민에게 수치스럽게 흘러가고 있다.트럼프와 그 반대진영이 벌이는 갈등의 전개는 다르다. 철저히 미국적 가치를 중심에 둔 충돌이다. 현재의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지, 미래의 미국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란이다. 트럼프는 막 선출된 권력을 앞세워 자신의 공약을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중이고, 미래의 권력인 진보진영은 연방정부에서, 주정부에서, 의회에서, 거리에서 항명하고 반대하고 시위한다. 말의 공방은 격렬하지만 어느 쪽이 더 미국의 가치를 대변하느냐는 본질은 벗어나지 않는다.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지만 시작과 전개가 다른 만큼 종결의 과정도 영향을 받을게 틀림없다. 바로 그 종결의 질에서 두 나라의 수준차이가 결정될 것이다. 눈여겨 볼 일이다./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윤인수 편집국 국차장

2017-02-01 윤인수

[데스크 칼럼]스포츠는 쉬지 않는다

겨울농사 결과가 한해 결정짓는 스포츠 선수들프로야구·축구단 해외 전지훈련 체력·전술 다져설 연휴 다양한 경기로 국민들에 희망·용기 선사이제 곧 설날이다. 설날에는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다. 그러나 스포츠 만큼은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오히려 선수들은 더 바쁘다. 특히 올해는 국내 스포츠뿐만 아니라 야구 국가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남은 경기까지 굵직굵직한 대회가 이어진다.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 요즘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대부분 설날 하루만 쉬고 다시 본격적인 훈련에 대비한다. 이는 겨울 농사가 곧 한 해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목들은 비시즌기간 따뜻한 남쪽 지방을 찾는다. 추운 날씨보다 더운 날씨에서 체력을 키우고 그 힘으로 한 해를 버텨내야 한다. 비시즌 기간인 겨울에는 체력에 큰 비중을 둔다.이 기간 대부분의 프로야구단은 미국 플로리다와 일본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미국 플로리다는 메이저리그 팀들을 비롯해 쟁쟁한 파트너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 프로구단들도 그곳으로 향한다. 각 팀 사령탑들은 연습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베스트멤버를 구상한다. 이후 선수들은 시차 적응을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에선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점검뿐만 아니라 옥석을 가려내는 게 훈련의 목적이다. 투수는 투수대로, 내야수는 내야수대로, 외야수는 외야수대로 상호 경쟁을 펼친다.프로축구단은 설날을 외국에서 보낸다. 12월 말~1월 초면 이미 외국으로 떠나 체력과 전술 훈련을 병행한다. 야구에 비해 프로축구 K리그는 3월에 경기가 펼쳐진다. 3월부터 11월까지 긴 레이스를 벌이기 위해선 축구 역시도 겨울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야구에 비해 축구의 전지훈련 장소는 다양하다. 유럽과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태국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는다.아마추어 선수들도 동계 전지훈련은 필수적이다. 프로 스포츠와 다른 점은 훈련비가 적어 주로 국내에서 훈련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선수들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대표적인 지방자치단체는 제주도와 전남 해남이다. 이들 자치단체는 대규모 체육센터를 지어놓고 상금이 걸린 대회도 개최하는 등 10~20개 종목 선수단 유치가 치열할 정도다. 1~2개월 장기 전지훈련은 그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시민들도 반기는 분위기다.이번 설 연휴에도 국내에는 풍성한 스포츠 행사가 이어진다. 민속씨름과 프로농구, 프로배구, 해외스포츠까지 나라가 어지럽고 비선 실세가 판을 치는 이런 상황에도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준다.올해는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라이벌' 일본을 누르고 우승했다는 소식과 동계아시안게임 종합 2위 쾌거 등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란다. 또 국내 처음으로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대회 우승도 기다려진다. 스포츠는 쉬지 않는다. 스포츠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정정당당히 자신의 실력으로 싸우는 페어플레이는 스포츠에서만 통한다./신창윤 체육부장신창윤 체육부장

2017-01-25 신창윤

[데스크 칼럼]최순실과 그들이 찾아 준 수표 3장

김기춘·조윤선 나란히 구속 법조인 생리 떠올라대학때 산 법률서적 뒤적이다 10만원권 수표 발견기한 지나 못 쓴다면 누구에게 조력 구하나 걱정이제는 많은 국민이 변호인의 조력 없이도 검찰 수사나 법원의 재판에 임할 수 있게 된 듯싶다. 정말이지 법률 선진국의 문턱까지 왔다는 느낌이 확 든다. 이게 다 '선생님'으로 불렸다는 최순실과 그들의 덕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으레 검찰의 소환 통보만 받아도 다리가 후들거리게 마련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최순실과 그들의 사건 응대는 너무나 많은 법률정보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검·경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호락호락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수사에 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고, 헌재가 부르는데도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팁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는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면 웬만한 조사는 통과 가능한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다는 점도 각인시켰다. 앞으로는 '최순실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수사 대상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검·경만 골치 아프게 생겼다. '최 선생님과 그들의 법률 강의'가 생각보다 더 오래간다면 변호사들마저 그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20여 년 전 법조 출입 초창기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다소 낯선 법률 지식을 알게 되었다. 법원 관계자에게서 보기 드문 판결이 나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취재했던 바다. 경찰관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등을 고지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경우였다. 경찰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게 바로 미란다 원칙이란 거였다. 수사 과정에 흠결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다. 명색이 법조 출입기자가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야 되겠냐는 생각에 법률 상식을 다룬 책부터 샀다. 요새 부쩍 그렇게 법률 지식에 다가갔던 기억이 새롭다.유명 법조인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나란히 구속되는 것을 보고서는 그동안 가까이서 보아 온 일부 법조인의 생리 하나가 떠올랐다. 검사든 판사든 변호인이든 일부 법조인 중에는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유난히 짙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하면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법 위반 문제가 이처럼 소명, 즉 입증의 문제로 나아가면 더욱 그렇다. 나의 범죄를 너희가 입증하지 못하면 나는 무죄란 인식이 굳어 있다. 김 전 실장이 특히 그 경우에 속한다고 느껴진다.최순실도 김 전 실장도 특검 조사에 불응했던 지난 토요일에는 집안에 있는 몇 안 되는 법률 관련 서적을 빼놓고 이리저리 훑어보게 되었다. 잊고 있던 묵비권 얘기까지 나오니 그동안에는 보이지도 않던 법률 서적이 눈에 들어온 터였다. 대학 때 교양과목 이수를 위해 샀던 '법학개론'을 뒤적이다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맨 뒷장에서 난데없는 10만 원짜리 수표 3장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발행일이 20년이 다 된 것이었다. 그 수표는 어떻게 해서 그 책 속에 들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꼭꼭 숨어 있던 것일까. 정말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최순실과 그들이 아니었으면 그 수표는 영영 눈에 띄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최순실과 그들에게 감사인사라도 전해야 하나. 혹시 은행 측이 기한이 오래전에 지난 수표여서 쓸 수 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때는 누구에게 조력을 구하나./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7-01-22 정진오

[데스크 칼럼]독도 소녀상과 연정

경기도의회 "부산 소녀상 철거 논란전 계획된 사안"연정 외치는 남지사 "독도·소녀상 구별" 어정쩡 입장공론화 거쳤는데 도지사 다른 목소리 연정의미 없어혼란스럽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정유년(丁酉年) 새해 벽두가 시끌벅적하다. 420년 전 이순신 장군이 상유십이(尙有十二·저에게는 아직도 열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를 외치며 300여 척의 대일본 군단을 명량 앞바다에서 수몰시키며 대승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운명의 아이러니인가? 최순실 비선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내환(內患)과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망언을 서슴지 않은 일본정부의 외환(外患)이 겹친 게 임진왜란 당시의 국내 정세 상황과 너무 닮아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 우리 정부의 외교적 기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도 서애 유성룡과 같은 대인이 없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국민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그래도 촛불을 태워 광장으로 모여든 민심이 살아있고 외국 언론들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바로 그 꺼지지 않는 촛불이라고 인정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은 뜻하지 않게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회장·민경선 도의원)가 독도 소녀상 건립을 위해 지난 16일 도의회 로비에 모금함을 설치한 것이 발단이 됐다.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별도의 이슈로 진행되는 와중에 '독도 소녀상'이라는 폭발력 강한 두 이슈를 한데로 묶은 대반격이 정부도, 광역자치단체도 아닌 광역의회에서 화두를 내던진 것이다. 그동안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 실험과 이를 둘러싼 도의회 정파 간 싸움 등에 지쳐온 터라 도의회의 독도 소녀상 건립 추진 발의 자체만으로 경기도민들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하지만 지방의회에서 추진되는 독도 소녀상 설치문제가 일본의 망언 발언과는 별개로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합쳐서는 안된다며 내홍을 겪고 있다. 정작 독도를 지역구로 둔 경북도의회 의원들은 독도 소녀상 추진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울릉도(독도 포함)를 지역구로 둔 남진복(58·독도수호특위 위원장) 경북도의원은 "독도는 영유권 수호 차원이고,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인데 둘을 섞어 놓으면 각각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경선 도의원은 "독도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려는 계획은 부산 소녀상 철거 논란이 발생하기 전 공론화를 거친 일"이라며 장소의 적절성 논란은 충분한 대화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문제는 연정을 외치는 남경필 도지사의 어정쩡한 입장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설치문제에 대권후보로서 목소리를 높여오던 남 지사가 독도와 소녀상은 구별해서 봐야 할 중대사안이라며 경북도지사와 경북도의회와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적 민감한 사안이라 정부와 외교부가 직접적인 입장표명은 어렵더라도 남 지사는 경기도의회와 같은 목소리를 내야 옳다고 본다. 연정이 무엇인가? 도의회가 공론화를 거쳐 합의된 사안에 도지사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연정의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싶다. 지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지방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독도를 지칭하는 일본말)의 날로 제정해 한·일간 외교적 분쟁을 촉발했어도 아직까지 흔들림없이 매년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반면교사 삼을만하다.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은 다음 달 8일 시·도의회 의장단협의회에 독도 소녀상 설치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키로 하고 전국 시·도의회를 일일이 다니며 협조를 구하겠다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나라를 지켜내고 애국심을 발휘하는 표현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경기도의회의 독도 소녀상 설치 추진 어젠다의 동력은 어떤 이유로도 시들해져서는 안 된다./김성규 사회부장김성규 사회부장

2017-01-18 김성규

[데스크 칼럼]최순실과 경호실

'프리패스' 사실에 대통령 경호시스템 전면 개선 주장당연히 해야하지만 국가적 자산 일거에 날리면 안돼사극(史劇)을 보면 왕(王)을 호위하는 무사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왕의 안위를 지키는 지금의 경호 요원이다. 시대마다 그 명칭은 달랐지만 예로부터 왕과 왕실의 경호 임무는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 민족의 경호역사는 그래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깊다. 경호시스템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구촌에서 다자간 정상회의가 해마다 수차례씩 열리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정상에 버금가는 최상의 경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식 경호'가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데에는 경호 실력과 시스템이 최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개최된 APEC, G20,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통해 대통령 경호실의 경호역량은 외국 정상 경호팀 사이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경호 한류'란 용어까지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이러한 대통령경호실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정 농단의 주범과 공범들이 청와대를 '프리패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국회의원뿐 아니라 유력 대선주자가 나서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경호실을 떼어내는 등 대통령 경호시스템을 전면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경호 조직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것은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산물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에 동조하기도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경호실이 대통령 직속기구로 유지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26과 같은 대통령 위해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경호실의 존재 이유인 대통령에 대한 경호작전을 실패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패스'에 대한 징벌적 조처로 경호실 시스템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고약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의 대통령 경호는 국가안보 차원의 임무를 요구하고 있다. 군사적 위협이나 국제테러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유럽 등지의 경호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이같은 특성을 감안해 경호실은 군경과 함께 경호작전을 실행하고 있고, 국정원·합참 등 16개 경호관계기관이 참여하는 대통령 경호안전대책위원회를 주관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대통령 직속기구인 경호실을 경찰 소속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경찰이 군경 통합 경호작전을 지휘하고, 다양한 경호관계기관을 통제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또 다른 체제 개편 방안을 이끌어 내야 하고, 실행하는데도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개편 과정에서 예상되는 관계기관 사이의 갈등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이영재 인천본사 경제부장대통령 경호시스템의 개편보다는 질적 향상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대통령경호실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법적 권한이 봉쇄되어 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대를 지나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를 천명하면서 대통령 경호실은 경호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기관으로 탈바꿈했다. 그 이후 거듭된 노력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경호시스템을 국제 경호 트랜드로 만들었고, '경호 한류'라는 국가적 자산을 일궈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접한 국민적 공분은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에 올렸고, 정치권은 제2, 제3의 최순실 게이트를 예방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개선안을 찾는 등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적 자산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이영재 인천본사 경제부장

2017-01-15 이영재

[데스크 칼럼]종자 주권은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는 미래산업이다

국내 해외법인 개발 종자 막대한 법인세 과세 '황당'국익위해 '토종형 원종 개발' 정부지원 절대적 필요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종묘업계에 닥쳤던 잔혹사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종묘,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등… 국내 종묘산업을 이끌던 토종 간판 업체가 몬산토, 신젠타, 다끼이, 누넴 등의 외국 자본에 넘어간 '종자 주권'의 상실 시대를 맞이하게 했던 하나의 굴욕사로 기록된다. 우리 미래 먹거리 산업이 거대 외국자본에 이처럼 속절없이 무너진 당시 국민적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우리의 먹거리를 외국계 회사에 맡기게 된 잘못된 운명 탓이다. 아쉽게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국내 종묘업계는 당시 충격을 아직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후유증 탓일까? 국가 경제의 빠른 발전상과는 달리 유독 이 업계만큼은 영세성의 그늘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종자 개발부터 상용화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요구하는 종묘업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은 이처럼 더딘 걸음으로 나타나고 있다.세계열강의 종자 주권 경쟁에서 가뜩이나 뒤처진 국내 종묘업계에 최근 믿기 어려운 황당 사건이 벌어졌다. 국세청이 최근 N종묘사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이 업체의 지난 2015년 기준 1개 분기 매출분의 막대한 법인세를 과세한 것이다. 국내 해외 법인에서 개발된 종자를 채종·보급한 일을 두고, 도매유통업으로 규정해 내린 세무당국의 결정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른 시각에서 보여지는 인식차에 불과하다. 현 조세특례제한법상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법인세를 면제 또는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먹거리를 책임지는 업계의 중요성을 법 취지에 살려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종자산업을 보호 육성하려는 의도를 잘 살린 대목이다. 그럼에도 단순 인식차에 불과한 결정이었다면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우리의 국내 종자산업의 발목을 스스로 잡은 엄청난 자살골 행위나 다름없다.해당 업체는 이 과세에 불복해 이의 신청을 한 상태다. 하지만 증권가에서 이 업체 주가의 폭락세가 이어지고, 외국계 지분률이 절반 이상 꺾여 나가는 등의 혹독한 대가를 치른 뒤였다. 이 같은 황당 사건은 종묘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상황을 순식간 살얼음판으로 내몰았다.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종묘 개발 기술마저 미천한 국내 농업계 현실도 아랑곳 않는 냉혹한 현실이 야속할 따름이다. 같은 처지의 업체들은 이를 두고 정부의 정부에 의한 '종묘 말살책'으로 비유하고 있다. 탈루 등에 따른 정당한 과세나 세금 추징에 이의가 있을 리 없지만 이러한 애매한 경우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 한송이, 딸기 낱알에 조차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치르는 현실에 비춰, 여지없는 칼을 빼 든 정부 당국의 처사가 과연 옳은 일인지 판단이 좀처럼 서지 않는 이유다.지금 세계 각국은 자국 보호 차원의 치열한 세금 인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기업의 국내 회유를 위해 3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15%까지 인하할 태세다. 각국도 세금인하의 '당근책'을 제시하며 기업유치 또는 자국으로의 회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비교 기준과 시점이 다소 다를 수 있으나 갈길 바쁜 우리의 종자 산업은 오히려 정부에 의해 발목이 잡힌 형국이니 안타깝다. 외환위기 당시 현 상황을 연상시키는 비싼 수업료는 괜히 낸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미래 먹거리의 자멸을 부르는 화(禍)를 자초해선 안된다. 미래 국가 식량 확보의 핵심이 곧 종자 주권에 있듯, 국익의 큰 틀에서 정부의 융통성이 진정 발휘되길 기대해본다. 지금 종묘업계에는 세금 추징이 아니라, 토종형 원종 개발을 위한 정부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심재호 경제부장심재호 경제부장

2017-01-11 심재호

[데스크 칼럼]플라타너스 그늘

국정농단 후안무치 사람들 대부분 고위층에 언변 화려낮은 위치·말주변 없으면 그들의 뻔뻔함 대응도 못해한여름 찌는 더위를 피하려고 나그네들이 플라타너스 그늘에 누웠다. 그들이 누워 나무를 바라보니 열매가 없었다. 더위를 식힌 나그네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쓸모가 없다며 자리를 떠났다.무슨 말일까. 나무 그늘에 쉬면서 한 말이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라 쓸모가 없다'는 것인데. 잠시나마 열매를 맺지 못하는 플라타너스가 생물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볼 뻔했다.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한다. 후안무치 특징 중 하나가 오만이다. 이런 유형에서 나타나는 오만은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신이나 가족의 사회적 지위, 권력이나 부를 믿고 행동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부분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후안무치의 또 다른 증세는 '탐욕'이다. 내 것은 물론 남의 것도 내 것이어야 한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성공할 것 같은 일에 숟가락 슬쩍 얹어 이익을 나눠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겉으로는 돕겠다는 취지로 접근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이뤄놓거나 이루기 직전에 말 한마디 얹는 정도로 슬쩍 무임승차하는 민첩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혹시 일이 잘못이라도 되면 자신은 전혀 무관하고, 그 일에 관여했던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이런 유형은 '착하면 손해 본다, 정당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상관없다'는 고약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지금 대한민국에서는 4개월 가까이 '국정농단 TV 방송'이 연일 화제다. 몇몇 개인과 정부관리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도 죄 없다 주장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조선 임금 중 선조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준 인물이다. 자신만 살겠다고 중국으로 달아나려다 신하들의 간청으로 어쩔 수 없이 국경인 의주에 머물면서 온갖 갑질을 다 했다고 한다. 1597년 정유년(丁酉年) 3월 4일 일본 침략에 맞서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있던 이순신은 죄인 신분으로 서울로 압송된다. 군공(軍功)을 날조해 임금을 기만하고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게 죄목이었다. 선조에게 이순신은 나그네들이 더위를 식혔던 플라타너스였다. 적이 임금인 자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이순신이 큰 공을 세웠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도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함을 드러낸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보낸 교서에는 '백 리를 가는 자는 구십 리로 반을 삼는 법이니 그대는 끝까지 힘쓰라'는 대목이 나온다. 칭찬 없는 이 교서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다. '이제 적의 형세가 기울어지니 하늘이 노여움을 푸는 줄을 알겠도다'극단적으로 표현해보면 "적의 기세가 기우는 것은 이순신 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노여움을 푼 것이니 자랑 말라. 하늘도 노여움을 풀고 적의 기세를 꺾는데 어찌 너는 적군을 몰아내지 못하느냐. 내가 명령을 내렸는데도 너는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했으니 너의 죄가 무겁다"는 얘기다.후안무치를 보이는 사람들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언변이 화려하다. 반면 낮은 위치에 있거나 말주변이 궁색한 사람들은 그들의 뻔뻔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산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구차하게 따져야 하나. 이의를 제기했는데 혹시나 애매한 사실관계를 따지다 증거라도 내놓으라 하면 뭐라 할 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고 만다. 한편으로는 지위가 높거나 힘이 센 사람에게 대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나약한 의지 때문일 수도 있다. 더러는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다투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대단한 진실이나 큰돈을 놓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굳이 다툴 필요가 없어서란 변명도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거다. 플라타너스처럼./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17-01-08 이진호

[데스크 칼럼]4·12 재보궐선거

전임 단체장 추진했다고 공들인 사업 좌초돼선 안돼유권자들 피해가지 않게 적임자 신중하게 선택해야 선거 임하는 각 후보들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대목오는 4월 12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지난해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 총선과 함께 치러졌던 재보궐 선거 이후 1년여만이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정한 현재 4·12 재보궐 선거 대상 지역은 전국적으로 21곳(기초자치단체장, 기초·광역의원)이다. 경기도의 경우 하남시와 포천시 등 2곳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을, 용인 3선거구(용인 기흥구)에서는 광역의원을 각각 뽑게 된다.재보궐 선거는 사망 또는 선거법 등 법령 위반 등으로 당선무효나 피선거권 상실, 그리고 개인 사정 등으로 그 직에서 물러나는 경우에 치러지게 된다.이교범 전 하남시장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이 금지한 기부행위와 관련, 한 장애인 단체장에게 '당신이 식사비를 낸 것으로 해달라'고 허위 진술을 교사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시장직을 잃었다. 서장원 전 포천시장은 지난 2014년 9월 한 여성을 성추행한 뒤 돈을 주고 입막음을 하려 한 혐의로 2015년 1월 구속기소 됐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면서 지난해 7월 29일 시장 직무가 정지됐다.시장들의 중도하차로 당시 하남시와 포천시 공직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그리고 이들 시장이 주도했던 현안사업들은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시장의 시장 권한대행으로는 시장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현안사업들을 계속 추진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4·13 총선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을 뽑는 재보궐 선거가 병행됐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중도 하차한 양주시장과 구리시장을 새롭게 뽑았다. 여기에 광역의원(경기 7곳, 인천 1곳)과 기초의원(경기 1곳, 인천 2곳)도 함께 뽑았다.지난 2014년 6월 4일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내 31개 기초자치단체장이 선출됐고 그동안 4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이 중도 하차했다.여기에 이재홍 파주시장도 지난해 12월 30일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법정 구속됐다. 향후 법원판결 일정 및 결과에 따라 4·12 재보궐 선거에서는 3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을 새롭게 뽑아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이유야 어떻든 국민들이 나름대로 공을 들여 뽑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중도 하차하면 행정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당장 선장을 잃어버린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사업에서 추진동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새로운 사업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그동안 추진해 왔던 목표도 바뀔 수밖에 없다. 행정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추진하던 각종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물론 누구나 공감하는 잘못된 사업이라면 이를 변경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단지 전임 단체장이 추진하던 사업이었다는 이유로, 당적이 다른 단체장이 추진했던 사업이란 이유 등으로 신중한 검토 없이 수년간 공들였던 사업들이 좌초돼서는 안된다. 잘된 정책들은 수장이 바뀌더라도 계속되는 것이 옳다.유권자들도 신중하게 적임자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들이 뽑았던 단체장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 하차하면 그 피해는 유권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재보궐 선거를 치르기 위한 선거비용도 결국은 유권자들이 낸 혈세가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했던 각종 지역개발 추진도 어렵게 돼 유권자들은 유·무형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이번 재보궐 선거에 임하는 각 후보들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김신태 지역사회부장김신태 지역사회부장

2017-01-04 김신태

[데스크 칼럼]'아름다운 강산' 에서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엿보다

1974년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명단 올라원곡의 가치 재현 창법 광화문 광장에선 사뭇 달라알껍질 깨려는 부리소리 '격렬한 저항 몸짓' 같아누군가 지난해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름다운 강산'을 꼽을 것 같다. 정확히는 정유년을 코앞에 둔 2016년의 마지막 날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노래다. 이 노래는 '금지곡 시대'(?)로 일컬을 수 있는 70, 80년대, 당시 권력의 빗나간 문화의식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당시 수백 곡의 가요 및 팝송이 국가안전 수호와 공공질서에 반하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민간 문화영역에 권력의 자의적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민주사회에서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일이지만,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금지곡 판정 사유다.가령,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는 '행복의 나라로 간다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이유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나'란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송창식의 '왜불러'는 '경찰의 장발 단속에 저항하고 정부 정책에 반발할 우려가 있다'며,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현역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금지곡 낙인이 찍혔다.개인적으로, 압권은 배호의 '0시의 이별'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 0시에 이별하면 통행금지 위반이라나?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1974년에 만든 '아름다운 강산' 또한 당시 금지곡 명단에 올랐던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금지곡 판정 사유는 앞의 곡들과 조금 다르다.신중현의 아들이자 유명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최근 밝힌 일화에 따르면, 이 노래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신중현이 '각하'의 노래를 만들라는 권력의 강권을 거부하고 만든 곡이다.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지금 돌이켜 보면 록의 저항 정신으로 탄생한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록 영상으로 접하긴 했지만, 광화문 광장에서의 '아름다운 강산'은 사뭇 달랐다. 우선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면서도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신대철의 편곡과 전인권의 원시적인 창법은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원곡의 가치를 재현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수단체들이 맞불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과 관련해, '아름다운 강산은 이렇게 부르는 거야'라며 한 수 가르치는 대가들의 모습이 엿보였다.무엇보다 '아름다운 강산'은 블랙리스트로 물의를 빚고 있는 빗나간 문화권력을 향해 항의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70, 80년대의 금지곡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좀 거칠게 표현해, 블랙리스트는 금지곡 시대의 천박한 유물이다. 그래서인지 대금에 태평소, 장구, 꽹과리 등 우리의 소리와 록밴드가 발산하는 일렉트릭 사운드의 조화는 마치 알 껍질을 깨기 위해 어미닭과 병아리가 부리를 마주하는 '줄탁동시'를 연상케 했다. 결코 물려받지 말아야 할 유물을 쉼 없이 쪼아대는 격렬한 저항의 몸짓을 읽을 수 있었다. '줄탁동시'의 의미가 남다른 닭의 해이다. 정유년에는 이 말 본래의 가치가 보다 다양한 영역에 접목되기를 기대해 본다./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17-01-01 임성훈

[데스크 칼럼]왕건 vs 남지사

혼돈의 시대 '호족연합'·'연정'으로 화합 유도 닮은점대권 꿈꾼다면 '대한민국 리빌딩'위한 메시지 던져야'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한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혼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과 촛불시위, 여권발 분당에 따른 정계개편 등 정치권도 요동치고 있다. 당초 내년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따라 시기가 결정된다. 정치권에선 자신들 입맛에 맞는 '벚꽃대선' '썸머대선''단풍대선' 등 대선 장날을 예측하며 정국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현재로선 대선이 언제 열릴지 신도 모르는 형국이다. 여권의 분당으로 국회는 26년만에 4당 교섭단체 체제로 바뀌었다. 가히 춘추전국시대이고 제자백가들은 대권욕에 사로잡힌 군웅들과 민심을 잡기 위한 본격 대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격동의 후삼국 시대를 평정한 고려 태조 왕건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 정국이 후삼국 시대만큼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더불어 왕건 같은 리더가 나타나 통일 한국을 이끌어 주기 바라는 심정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자연스레 대권 주자 중 유일하게 왕건의 성장배경과 정치이력 등 동선이 상당부분 겹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둘은 태생이 금수저이고 선대가 상인 호족 정치인이다. 유복한 집안으로 구김살없이 낙관적이고 어려서부터 해외견문을 쌓았다. 이를 통해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다양성과 개방성을 인정하며 실용적인 감각을 익힌 것으로 분석된다. 왕건은 궁예의 카리스마와 견훤의 저돌성을 뛰어 넘는 리더십을 갖춰 후삼국을 통일했다. 혼돈의 시대를 호족 연합과 연정을 통해 화합의 시대로 이끌어내는 면도 닮았다. 왕건은 통일과정과 통일후에도 왕권 안정및 강화를 위해 호족세력 29명과 혼인정책을 통해 호족연합의 화합정치를 펼쳤다. 현대판 연정이다.남 지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연정'은 이제 초기 혼란을 뛰어넘어 시스템에 따른 완숙기에 접어들어 화합형 정치 롤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기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 송악출신 왕건은 영남(신라)·호남(후백제)의 민심을 화합으로 통합해 진정한 통일 고려시대를 열었다. 남 지사는 수원출신으로 4색 당파에다 영·호남 패권으로 나누어진 지역감정을 화합으로 극복해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왕건이 호족 연합을 통해 통일을 이뤄냈다면 남 지사는 통일의 과제를 안고 출발할 시점이다. 궁궐건축이란 인연도 닮아있다. 왕건이 송악에 만월대 궁궐을 지었다면 남 지사는 광교산 자락의 광교 신도시에 도청 신청사를 짓고 있다. 광교(光敎)산은 원래 광악(光岳)산이었으나 928년 왕건이 견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산 위에서 이상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빛의 가르침을 뜻하는 광교산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곳은 도선국사가 수원권 3대 명당으로 손꼽았던 터이다. 절묘한 동선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1018년 고려 현종때 중국을 본떠 경기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 2018년이면 경기명칭 탄생 천년이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심장부인 경기에서 또다시 새천년의 시작이 울렸다.우리 국민들은 현재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희망하고 있다. 혼돈의 정국을 거두어 내고 밝고 맑은 투명사회로의 진입을 갈구하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국민을 위한 정책대안은 외면한채 지지율 상승을 위한 현 정부 헐뜯기와 상대후보 깎아 내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모름지기 대권을 꿈꾼다면 경륜과 그동안의 성적표를 토대로 남 지사처럼 대한민국 리빌딩을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던질때이다. 과연 누가 왕건 따라잡기에 성공할까./김학석 정치부장김학석 정치부장

2016-12-28 김학석

[데스크 칼럼]포스트 박근혜, 패권의 해체로 출발해야

민심 선포 '박근혜 정권 사망선고' 변할 가능성없어사람이 변하지 않으니 제도변화 절실 '개헌이 대안'위기틈새 사익추구 하려는자들 퇴장위해 촛불켜야역사의 흥망성쇠는 반복된다. 변하지 않는 건 흥망성쇠의 파도를 타고 계속 이어지는 역사의 항상성이다. 규모의 고저장단은 있을지언정 파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이자 역사의 순환법칙이다. 탄핵정국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지만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다른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 박근혜의 몰락을 거름삼아 희망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고, 박근혜의 쇠락과 함께 운명의 절벽에서 추락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흥망과 성쇠의 기로에 서 있다.흥분과 선동의 시간은 지났다.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 소추되어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진행 중이고 특검은 어둠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헌재의 심판을 두고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과 반대하는 촛불이 부딪힌다지만, 역사와 시대는 사실상 박근혜의 종언을 선포했다. 만에 하나라도 헌재가 탄핵 이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릴지라도, 민심이 선포한 박근혜 정권의 사망선고가 변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헌재의 탄핵 여부와 신속한 판결을 조르는 일에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 이제 국운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촛불을 밝혀야 할 때다.박근혜 이후의 시대를 모색하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박근혜까지의 시대를 성찰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자부심에 가려졌던 시대적 폐해를 직시하는 것이 성찰의 화두이다. 국가의 주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시민의 열정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을 사장시켜왔다. 경제성장을 이끈 군정세력은 시민의 권리를 강제로 유보한 독재적 패권주의자들이었다. 또한 민주화를 쟁취한 시민세력의 지도자들은, 그 공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권위적이고도 집단적인 패권주의를 키워왔다. 서로 자신의 신념에 박제돼 양립불가를 외치면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위대한 성취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려 왔다.경제성장 세력을 대의하는 자들과 민주화 세력을 대의하는 자들이, 철 지난 신념과 이념의 대결에 빠져 공화의 정신을 훼손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시대착오가 불행한 시대의 원인이다. 보수 패권의 상징인 박근혜의 몰락은 패권 일각의 붕괴에 불과하다. 보수 패권이 몰락한 자리에 진보 패권이 들어서면, 보수 패권은 상처를 치유하고 더욱 지독한 패권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패권을 패권으로 대체하는 것은 그래서 최악이다. 하나의 패권이 다른 패권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며 대한민국에 뿌려놓은 갈등, 해체, 분열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다.촛불은 진영을 불문하고 어둠과 공존하는 모든 패권을 거부하는 시대의 아우성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박근혜가 대세를 역류하지 못하듯, 촛불을 패권의 발판으로 삼는 제2, 제3의 패권적 정치공학도 촛불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위기를 사적·정파적 이익으로 환원하는 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위기를 진정한 위기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진로를 비추는 자가 지도자다. 시대가 켠 촛불파도는 지도자의 각성과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으니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공화의 가치를 실현하고 시대의 과제를 실천하며, 새로운 삶의 규범을 세울수 있는 제도의 변화. 개헌 말고는 대안이 없다.시민이 변했다. 지도자의 손가락만 보지 않는다. 그 손가락이 공화를 가리키는지 공멸을 겨냥하는지 분별하는 집단지성이다. 반성과 참회 없는 구태 정치는 도태시킬 것이고, 공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의 출발을 축복해줄 것이다. 흥분과 선동의 시간은 지났다. 잠시 침묵하고 관찰하고 사색하면 위기의 틈새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정상배, 모리배, 협잡배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추악한 과거를 위기의 소동에 버무려 세탁한 뒤 완장 차고 낙인찍기에 나선 위선자들이 보일 것이다. 그들을 향해 퇴장을 명하는 촛불을 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윤인수 문화부장윤인수 문화부장

2016-12-25 윤인수

[데스크 칼럼]정유년에는 스포츠도 좋은 일만…

올해 체육계 '최순실 게이트' 직격탄에 '휘청'승부 조작·심판 매수 등 프로도 '부끄러운 민낯'정정당당 최정상 실력이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요즘 체육계는 타 단체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송년회를 보내고 있다. 올 한해를 뒤돌아보고 반성한 뒤 내년에는 더욱 발전하고 화합하자는 취지에서 송년회를 맞이한다. 특히 체육계는 올해 잦은 불신과 불협화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체육인들은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스포츠가 왜 정치에 좌지우지되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사실 올해 체육계는 '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에 휘청거렸다. 그 신호탄은 올 초 체육 단체 통합부터 시작됐다. 엘리트 스포츠를 담당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맡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했지만, 양 단체의 이해득실로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결국 통합 대한체육회는 공동 회장체제로 8월 올림픽을 맞았고 한국 선수단은 3회 연속 '10-10'(금메달 10개 이상-종합순위 10위 이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8위로 위안을 삼았다.'마린보이' 박태환도 마음고생을 했다.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국제수영연맹(FINA) 징계를 마친 뒤 올림픽 출전을 노렸지만, '이중처벌' 성격의 규정을 내세운 대한체육회와 갈등을 빚다 결국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판단을 구한 끝에 리우행에 몸을 실었다. 몸과 마음을 다친 박태환으로서는 재기는커녕 올림픽 예선 탈락이라는 쓴맛만 봤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박태환은 이후 전국체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건재를 과시했고 쇼트 코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라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올림픽 이후 체육계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 스포츠계 각종 이권 사업과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씨는 딸 정유라가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판정상 특혜를 받는 데 관여했고, 정유라의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인 삼성을 통해 '맞춤 지원'을 추진하는 등 비리가 속속 터졌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최순실의 사적 이익에 함께하는 등 체육인들을 실망하게 했다. 김 전 차관은 체육 단체 통합을 주도하면서 체육계에 만연된 각종 비리를 철폐하기 위해 '체육계 4대악 척결'이라는 대책을 주도한 사람이었다.프로스포츠도 연이어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 시대를 연 KBO 리그에선 '승부조작'이 이어지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고, 해외원정도박에 불법도박 사이트 개설, 음주 운전 사건 등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메이저리거 강정호가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낸 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히기까지 하는 등 있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프로축구도 또다시 심판 홍역을 앓았다. 심판매수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결국, K리그 전북 현대는 '승점 9 삭감'의 솜방망이 징계를 받고 리그 우승까지 놓쳤다.이제 2016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올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 스포츠는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스포츠는 엄연히 '페어플레이'가 존재한다. 정정당당히 자신의 실력만으로 최정상에 오르는 것이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2016년처럼 정치 수단에 스포츠가 이용된다면 또다시 한국 스포츠는 퇴보될 것이다. 스포츠는 스포츠다. 그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넘보지 마라./신창윤 체육부장신창윤 체육부장

2016-12-21 신창윤

[데스크 칼럼]하 수상한 연말을 보내며

촛불 정국에도 朴대통령 명예회복 별러 결딴날 판각국 새 외교질서 짜느라 숨가쁜데 우리만 허우적무능·참혹 절절했던 1950년 연말과 별반 차이없어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는 말은 필시 요즘 시국에 꼭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연초만 해도 한 해를 넘기기가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주 남은 연말의 느낌이 여느 해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시절은 하 수상하기 그지없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05년 을사년(乙巳年)만큼이나 국민의 마음은 쓸쓸하고 어수선하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을 반대했던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썼다는 시조의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둥 말 둥 하여라'는 대목처럼 한 치 앞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벌써 두 달째 주말 저녁마다 서울 광화문과 청와대 일대는 촛불에 뒤덮인다. 전국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하야 요구로 들끓는다. 그 목소리에 국회는 탄핵안 통과로 응답해야만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 본인은 천부당만부당하다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이라고 억울해 한다. 박 대통령 옹호세력도 나름대로 힘을 모으고는 있지만 들불처럼 타오르는 촛불의 위세를 어쩌지는 못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는 이미 국민들에게 코미디 극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작 박 대통령은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그 사이에서 자칫 대한민국이 결딴나게 생겼다.지금의 시국을 병자호란이나 일제에 외교권을 박탈당했던 그 난리 통에 비유하는 것은 그만큼 목하의 사태가 엄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개월 뒤면 러시아와의 밀월 시대를 진작부터 예고해 왔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미·일·러 3국이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국제 이슈에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국은 그만큼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외교질서를 짜느라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말 난리 통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만 '대통령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전쟁 중이던 1950년 연말의 하 수상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해방이 되자마자 우리에게 읽기 쉬운 '조선역사'부터 펴냈던 사학자 김성칠 서울대 교수의 일기에 나타난 그 모습은 지금 다시 눈에 넣기가 여간 아픈 게 아니다. 정권의 무능함과 야비함, 피란의 참혹함이 절절하다. UN군 주둔 문제를 얘기하는 대목도 있는데 이는 오늘의 사드(THAAD) 배치 문제와 겹쳐지는 듯하여 짠하기만 하다. 1950년 12월 15일자를 보자. '미 대통령 트루먼이 UN군은 여하한 사태에 당면하여도 절대로 한국에서 철퇴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하여 모두들 얼마쯤 안도의 빛을 보인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서 마침내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 결과는 외국 군대가 언제까지나 있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지,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다는 이 나라의 몰골에 술이라도 억백으로 퍼마시고 얼음구멍에 목을 처박아 죽어버리고 싶은 심경이다.'그때와는 벌써 70년 가까이나 흘렀건만 이 나라의 몰골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제 몸 하나 밝히는 데만 혈안이다. 겉으로는 너나없이 국가와 민족을 운운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말뿐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음독 자결한 매천 황현(1855~1910)은 그랬다. '나는 국가와 백성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재난이나 변란이 우연히 발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16-12-18 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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