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품격 없는 방송, 시청자는 멍든다

언론으로서의 영향력 커진 '종편''민주여론 형성' 당초목적 실현하고건전한 콘텐츠·질적 수준 갖춰야자사 유불리 따지는 도구 인식 탈피사회적 책임·공적기능 함께 봐야최근 종합편성채널인 MBN이 승인 당시의 편법 자본금 충당과 관련해 검찰 조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종편효과에 대한 비판이 촉발되고 있다. 종편 승인 10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시점에 방송콘텐츠 질적 하락문제 등 미디어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종편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MBN을 포함 4개 종편이 승인 당시, 황금 채널 배정 등 특혜라는 비난과 함께 출범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0년.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엄청난 반대와 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제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디어법 개정안이 기습적으로 통과되던 그해 연말, 그날 분위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당시 필자는 한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미디어법에 통으로 묶여있던 신문법도 덩달아 개정되면서 지금의 언론진흥재단과 필자가 근무하던 두 기관이 통합됐다. 말이 좋아 통합이지 당시 덩치가 더 큰 언론재단에 흡수된 셈이어서 필자를 비롯해 신문발전위원회의 연구원 4명은 하루아침에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꼭 실직을 당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언론 유관 분야의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때 미디어법 개정은 종편 승인을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명분이 없어 보였다. 암튼 당시 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이 종편 출범을 우려하면서 제기했던 문제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하나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종편이 우리나라 미디어 시장의 생태계를 교란시켰다는 지적에는 반대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JTBC를 제외한 일부 방송의 질적 저하로 언론의 신뢰도 하락에 일조한 것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편법 자금 문제는 비단 MBN뿐이 아니다. 승인 당시 다른 종편들도 신문사의 방송 지배력을 줄이기 위해 30%만 소유할 수 있도록 한 상한선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자본금 편법충당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문제 외에도 미디어법 개정 목적에 얼마나 부응했는지를 살펴보면 과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디어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했었는데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일례로 정치시사토크 프로의 경우 평균 33%의 편성 비율로 너무 많다. 게다가 몇몇 패널은 중복 출연하기 때문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식상한 지 오래고 이제는 피로감까지 느껴진다. 자극적인 언어로 정치 혐오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패널을 보면 시청률만 보이고, 정작 멍들어가는 시청자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다. 때로는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진영논리에 유리한 프레임도 서슴지 않아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린다.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일을 전해 듣고 알게 된다. '탈진실'의 프레임이 판을 칠 때 시청자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하면서 언론을 외면하게 된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신뢰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사프로 일부 패널의 무책임한 언어와 그 태도는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나아가서 정치 혐오를 부추기게 된다. 일부 종편은 이렇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종편 합산 시청점유율이 2012년 5.03%에서 2018년도 14.29%로 약 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방송사업매출도 안정권으로 진입하고 있어 보인다. 2012년 2천264억원에서 2018년 8천18억원으로 연평균 23.46% 늘어났으니 말이다. 이런 수치들은 종편이 방송·광고매출 등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종편은 지상파와 경쟁력에서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언론으로서 영향력도 그만큼 함께 성장한 것이다. 성장한 만큼 특혜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8년 전 출범 당시를 되돌아보고, 건전한 민주여론 형성이라는 애초의 목적을 실현해야 한다. 이는 건전한 콘텐츠와 질적 수준의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방송의 영향력은 공적 임무와 사회적 책임을 준수할 때 함께 올라간다. 언론은 국민의 의사소통 통로다. 언론을 통해 국민은 건전한 정치참여가 가능하기도 하고 반대로 언론에 의해 멍들기도 한다. MBN 등 종편은 언론을 자사의 유불리를 따지는 이해의 도구로만 인식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과 언론의 공적 기능도 함께 봐야 할 것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12-10 김정순

[수요광장]대한민국 인재를 국제스포츠 무대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통해韓, 세계 4대 스포츠 그랜드슬램국제무대 활발한 의사소통 결실유능한 '글로벌 인재' 육성 위해중장기적 로드맵 갖고 지원해야대한민국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대회 개최를 통해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 그랜드슬램의 타이틀과 함께 올림픽 최초 남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또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동계올림픽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통해 국내 스포츠 전문가들의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의사결정 수준뿐 아니라 실무 수준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국제스포츠계와 의사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낸 결과들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국제스포츠의 중심에 있기까지는 많은 전문가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국제스포츠 역량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내 유능한 인재들이 다양한 분야의 국제무대로 진출하여 활발히 활약함과 동시에 현장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도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국제연맹(IFs) 그리고 각종 분과위원회에 진출한 임원들이 141명(2018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전문가뿐만 아니라 실무자들까지도 국제기구로 진출하여 소통 창구로서 국내에 있는 기관 및 단체들과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정부 및 다양한 기관에서도 우리나라 국제스포츠인재들이 제 기량을 펼쳐 대한민국의 스포츠 위상을 넓혀가고 스포츠 외교력을 증대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인 대한체육회는 국제연맹(IFs) 인턴 파견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약 70명을 파견하였다. 또한, 국제전문인력을 채용하여 국내의 종목별 회원종목단체에 배치, 종목단체의 원활한 국제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특히, 국제스포츠기관 진출 역량 강화와 차세대 국제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유일 국제스포츠 전문 재단인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는 국제스포츠기구 및 관련 분야에 취업을 희망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국제 업무 실무경험 및 국제스포츠대회(회의) 참석 기회를 제공하는 실무체험 인턴십을 진행하였다. 또한, 지난 11월 IOC 스포츠국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실제적이고 실속있는 프로그램으로 한국 젊은이들의 스포츠 국제기구 진출에 발판이 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해당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수료생 일부는 국내연맹 국제전문인력과 국제대회 조직위원회 등으로 취업에 성공하는 등 일회성 경험이 아닌 향후 진로와 연계될 수 있는 성과를 나타냈다. 필자는 국제스포츠 역량 강화는 인재 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하계 스포츠 강국인 대한민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더욱 큰 역량을 갖추기 위해 유능한 인재들의 국제무대 진출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제스포츠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 또한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예산과 정책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인재양성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한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이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 동향 및 흐름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글로벌한 역량을 개발시키고 경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12-03 유승민

[수요광장]전쟁과 분단과 시

지식인들에게 허무·운명론 선사전후문학은 그 경험으로부터 출발가장 비타협적인 배타성 드러내후대의 '전쟁' 평가 다양한 만큼역사적 구체 발화한지 70년 지나올해 내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잇달았다. 내년은 한일강제병합 110주년, 6·25전쟁 70주년, 4·19혁명 6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등 굵직한 현대사의 모뉴멘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70년이 된다. 얼추 셈해 보아도 두 세대 이상이 지나가버린 오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전쟁의 기억도 조금씩 흐려가고, 당대적 경험을 가진 이들은 어느새 고인이 되었거나 노년으로 들어섰고, 이른바 전쟁 미체험 세대조차 중년을 넘어서고 있다. 과연 전쟁은 말끔하게 잊혀져버린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한반도는 분단의 연장선에 있으니, 종전 아닌 '휴전'의 상황은 여전히 강한 잠재적 압박으로 다가들고 있지 않은가. 이때 우리는 당대적 경험을 치른 이들의 기억에 남은 전쟁의 충격과 해석을 재차 조회함으로써, 전쟁과 문학의 관련성, 더 정확하게는 서정시 안에 해석된 전쟁에 대해 깊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충격을 주었던 전쟁은 전후문학의 존재 근거이자 한계 상황으로 다가왔다. 또한 전쟁은 전후 지식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허무와 운명론을 선사하였다. 해방 후에 민족 통합의 소망을 가졌던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한계의식을 경험하게끔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와 한계의식은 당대 시인들에게 전대(前代)와는 확연히 변별되는 정신사적 단절을 부여했으며, 그 결과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환멸과 자기 부정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장 명확한 물리적, 언어적 실체로서의 분단을 경험하게 되며, 남북 문학의 이질화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전쟁과 가난, 반공과 서구 추수라는 공통된 경험을 통해 전후의 시인들은 문학적, 사상적 '아비'를 상실한 채 폐허 속을 거닌다. 그것은 국토 전반에도, 도시 살롱에도, 만취의 육신과 영혼에도, 그들이 써간 문학작품 속에도 두루 걸쳐 나타나게 된다.이렇듯 우리가 전후에 발표된 문학작품을 역사적, 미학적으로 탐구해보고 거기서 어떤 역사적 연속성을 찾아내려 할 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전쟁이라는 발생론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의 문학적 전개를 전쟁이라는 물리적 힘과 그에 대응하는 정신적 힘의 응전으로 읽는 독법은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후의 문학이 전쟁에 대한 응전의 성격을 띨 경우, 그것은 대개 일방적 적의(敵意)로 나타나거나 허무주의에 깊게 침윤된 추상적 인간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주지하듯, 당대 서정시에서 전쟁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종군과 참전이라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분단에 비판을 가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반공의식, 뚜렷하고 명징한 적의와 강렬한 조국애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구상의 '초토의 시'나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등은 일방적 적대의식을 넘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갔다. 후자는 분단의 비극성을 비판적으로 조감하되 그것을 민족 통합의 과제와 연관시키는 방식이었다. 박봉우, 신동문, 신동엽 등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당대로서는 퍽 소중한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의 비극성과 환멸을 보여준 제3의 목소리도 있는데 김종삼, 전봉건, 정한모, 김규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이처럼 전후문학은 한결같이 전쟁이라는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 중에서 가장 비타협적인 배타성을 띠는 것이 경험적 인식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일반인들은 물론 창작 주체였던 시인들마저도 경험적 직접성이라는 당대의 지평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어느 유파에 속했든 전쟁으로 인한 경험을 어느 정도 반영하지 않은 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다양한 만큼, 그렇게 다양한 등차를 가지면서 펼쳐진 역사적 기억과 해석의 구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구체가 발화하기 시작한 지 70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11-26 유성호

[수요광장]내 목소리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공정사회다

이주민 시각으로 본 한일정책 토론회 흔하지 않아… '정책 대상자'였을 뿐이자스민 前의원, 정의당 입당 화제가짜뉴스등 이율배반적 생각 드러나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 보장해야11월 18일 '이주민의 시각으로 본 한일 양국의 이주민정책'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네팔,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의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한일 양국에 오가며 보았던 이주민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사자라는 경험한 이주민 정책에 대한 소해와 새로운 견해는 새로운 통찰과 반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렇게 이주민이 자신의 목소리로 정책 전반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아쉽지만,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이주민 및 다문화정책의 논의 자리에는 주로 한국인 학자, 관련 전문가, 교수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며, 가끔 한두명의 이주민이 관련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를 갖는다. 이주민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현안에 당사자인 이주민의 시각과 견해는 의도적으로 과소평가되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주민들은 늘, 정책의 대상자이며 소비자였을 뿐이다.또다시 선거철이다. 이주민은 250만명에 이르며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5%에 가깝게 증가했지만, 국회에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나 정당을 찾기 어렵다. 이주민 당사자성을 가진 국회의원은 현재 국회에는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일부 정치인들은 이주민에게 더욱 가혹하게 정책을 바꾸는 것으로, 다수 한국인들의 표를 받으려 노력한다. 왜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기존 한국인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이 와중에 이자스민 전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긴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20여 년 전 필리핀에서 귀화한 결혼이주민이다. 이자스민 전의원은 일베와 오유 양쪽에서 욕을 먹는, 즉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치지형에서 지지받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인터넷에는 이자스민 전의원에 대한 여러 가지 악플이 순식간에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한국인을 역차별하고 이주민들에게 특혜를 주려고 한다는 내용과 몇몇 사건을 들며,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 등이다. 잠깐만 시간을 들여 사실 확인을 하면 파악될 가짜 뉴스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악플들은 이자스민이라는 한 정치인에 대한 혐오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이주민 당사자 정치인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여기서 한국사회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주민이 한국사회에 들어와 한국인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위험하고 어려운 곳을 채워 주는 점에는 환영하지만, 당연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에는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다.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이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줄 정당이나 정치인은 존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주민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낼 수 있었던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주민은 늘 다수자를 대변하는 정치권력에 관용과 배려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주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다수자 정치인을 통해, 혹은 그들의 배려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강원도 영월의 한 마을에서는 '굴러온 돌', '박힌 돌', '굴러올 돌'이라는 뜻을 가진 '삼돌이축제'라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이 마을은 인구감소를 겪는 다른 마을들과 다르게 매년 평균 10가구 이상씩 인구가 순 유입된다고 한다. 마을 관계자는 그 비결로 마을에 새로 들어온 이주민들은 기존 마을주민과 한 가지 취미 활동을 함께 해야 하며, 여러 마을 사업에 필요한 사업 예산 관리 또한 원주민 이주민 가리지 않고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맡기는 등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점을 꼽았다. 작은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기본이다. 권리와 의무를 출신과 상관없이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새롭게 내어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공정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주민 및 다문화정책의 대상자 및 수혜자로서의 이주민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 그리고 삶의 주체로서의 당사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사회다. 기본적인 권리 보장 없는 포용국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11-19 이완

[수요광장]모두를 위한, 노후를 위한 집과 마을

고령 1인가구 급증 '노년 삶' 위험다수 사는 곳 안떠나 '사회적 고립'삭막한 도시는 이웃 잃었기 때문멋진 건물보다 공동체 회복 중요'따로 또 같이 삶' 가능한 공간 필요"아~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 격동의 세월 속에서 그래도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고 굳게 믿으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이제 홀로 꾸려나가야 하는 노년의 삶이 점점 버겁고 이러한 자신의 존재가 자식들은 물론 이 사회에도 짐이 된 것 같아 서글프다고 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2014년 어느 날의 기억이다.독거노인,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과거에 돌봐줄 가족이 없는 소수의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독거노인'이 일부 취약계층을 의미하지 않는다.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하는 '무연사회'가 우리에게도 이미 다가왔다. 노후준비,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을 것으로 착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노년의 관계빈곤과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홀로 사는 노년의 삶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기 힘들며, 사별, 이혼, 졸혼, 비혼, 직장,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령 1인 가구에게는 외로움, 건강악화, 안전, 사회적 소외와 배제 등의 위험이 노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건강한 자립생활이 가능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르신들은 70대 중후반을 넘어서며 서서히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개인적 질환 또는 노화에 따른 체력의 저하로 조금씩 일상생활의 통제력을 잃어 가기 시작하지만 가끔씩 다녀가는 자녀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당신들의 참여가 타인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활동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사회 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어른들의 심신 또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사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혼자서 모든 살림을 감당하셔야 한다. 어르신들의 집은 익숙할 뿐, 고령의 어르신들이 생활하시기에 불편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어르신들 낙상사고의 절반은 가정에서 발생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지내시며 일상생활의 조그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주거와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없다.고급 실버타운이 있지만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주택은 부동산개발업자들을 위한 편법적 개발수단으로 왜곡되어 십수년이 넘도록 개선되지 않고 피해자만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의료안심주택, 보린주택, 공공실버주택 등과 같은 의미 있는 공공복지주택 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이런저런 어려움과 불편이 있어도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집을 쉽게 떠날 수 없다. 어르신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소중한 자산인 집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집도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 손보고 고칠 곳이 생기지만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르신도 집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주택의 양적공급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의 주택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도시를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의 격리된 공간'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 사는 도시가 삭막한 이유는 집이 부족하고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라 이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멋진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그리고 공유지의 회복이다. 공공실버주택의 확대는 물론 '따로 또 같이'의 삶이 가능한 서비스제공형 고령자 임대주택, 어르신들이 이웃과 어울려 교류할 수 있는 공유 주택, 커뮤니티 공간 및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렇게 모두를 위한, 노후를 위한 집과 마을을 만들 때,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라는 탄식이 멈추고 내가 살던 집과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행복한 노년이 가능할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11-12 김수동

[수요광장]악플 문제, 댓글 폐지보다 근본적 해법 찾아야

디지털 공론장 활용하는 소비자 건전한 이용과 노력은 필수요소 뉴스 유통망 장악하고 있는 포털획기적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언론과 불평등 관계 재정립 해법최근 댓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15일,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69.5%가 댓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수치는 댓글 폐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조사가 실시된 바로 전날 악플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한 연예인의 비극적 사건이 우려와 자성의 분위기를 촉발한 셈이다. 실제로 이 사건을 계기로 포털 사이트 '다음'은 연예기사 댓글 폐지라는 방침을 내놨고, 이 외에도 댓글 관련 법안 발의와 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어 악플 근절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사실 악플의 위해성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악플 피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어서 새삼 강조하기도 진부해 보인다. 이 문제는 악플로 인해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 악플러의 문제로 풀기 보다는 악플을 양산하는 거대 포털과 언론의 생태계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 악플러 뒤에는 자극적인 제목을 미끼로 클릭을 유도하며 먹이를 던지는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제일 큰 문제라면 저널리즘 자체에 대한 지적에 반박하기 힘든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정보량은 폭증하고 가짜뉴스가 넘쳐난다. 선정성과 오인성 넘치는 제목으로 뉴스 이용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소위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제목으로 이용자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특히 연예인 등 사회적 저명인사와 관련해 이슈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선정적 뉴스가 양산된다. 즉 포털의 실검과 언론의 클릭장사라는 악순환이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언론 생태계와 악플 확대 재생산에 용이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와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물론 포털과 언론의 개선책으로만 악플이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디어의 이용자로서 시민도 규범인식과 바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디어 이용에 앞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보호 인식에 대한 교육이 선행해야 한다. 유럽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미디어교육과 SNS 이용 예절과 혐오발언 근절 교육을 실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세계 최초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과장된 표현이나 정보 구분 등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이버 예절 등 필수 교과과정은 어려서부터 미디어 이용에 대한 바른 인식과 올바른 태도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이 없어 보이는 포털 다음이 발표한 연예기사 댓글 폐지는 디지털 공론장이 주는 순기능을 포기한 것으로 미봉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포털뿐 아니라 댓글 문화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큰 감동은 절제에서 온다고 한다. 댓글이야말로 감정 절제가 우선되어야 한다. 비극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시적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는 건전한 댓글 문화정착은 기대할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 확산 등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치·사회 뉴스 댓글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 포털인 네이버의 동참이나 아웃링크 없는 다음 카카오의 댓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요즘 많은 언론이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거나 뉴스와 사설을 혼용한 의견 저널리즘 형식의 정파적 보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파적 보도로 인한 파편화된 뉴스의 폐혜와 그 심각성은 실로 크다. 이념을 전파하고 상업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전한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이 주는 공론장으로서 건전한 순기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디지털 공론장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건전한 이용과 노력은 필수 요소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포털의 획기적인 정책 마련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건전한 댓글 문화 정착을 위해 언론은 품격있는 저널리즘을 향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뉴스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포털과 언론의 불평등 관계의 재정립이 해법의 기본이 아닐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11-05 김정순

[수요광장]전세계 탁구인의 축제 '2020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 개최성공 위한 홍보·예산·인력 부족지름 40㎜ 무게 2.7g 작은 공으로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 필요탁구는 일정한 규격의 탁구대에서 작고 가벼운 공을 라켓으로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경기로 좁은 장소에서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라켓 스포츠이다. 스포츠 중 가장 작은 공(지름 40㎜) 그리고 가장 가벼운 공(2.7g)으로 즐기는 스포츠이지만 국제탁구연맹(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 ITTF)은 전 세계의 국제경기연맹 중 가장 많은 회원국(226개국)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결성 및 우승 등 작은 공으로 무게감 있는 굵직한 외교활동에도 앞장서 온 종목이다.탁구 경기는 총 7개의 세부종목으로 남녀단식, 남녀복식, 혼합복식, 남녀단체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88서울올림픽에서 처음 4개의 세부종목(남녀단식, 남녀단체)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2020년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에는 혼합복식이 추가로 채택되면서 5개의 세부종목(남녀단식, 남녀단체, 혼합복식)으로 성장하였다.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큰 세계대회이다. 세계선수권대회는 1926년부터 열렸으며, 1957년부터 2001년까지는 2년마다 개최하여 7개 세부종목(남녀단식, 남녀복식, 혼합복식, 남녀단체)을 치러냈으나 너무 많은 경기수와 선수보호차원에서 2001년 후부터는 격년제로 짝수연도에는 단체전, 홀수연도에는 개인종목을 치러내고 있다.대한민국 탁구는 역대 올림픽 금메달 수 3개(88서울올림픽 여자복식- 양영자·현정화, 88서울올림픽 남자단식- 유남규,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 유승민)로 중국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탁구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 탁구 강국인 중국(5회)과 일본(7회)이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했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 번의 경험이 없었다. 오는 2020년 3월 드디어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된다. 부산은 유남규, 현정화, 안재형 등 탁구 스타들을 배출한 탁구도시로서 역사상 첫 번째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더더욱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단체전 대회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탁구인의 응집력을 볼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2020도쿄올림픽 전초전으로 전 세계의 스포츠인의 기대와 관심이 주목된 대회이다. 이번 대회는 130개국의 선수단이 참가하고, 226개국의 대표단이 국제연맹 총회를 위해 부산을 방문할 예정으로 부산을 전 세계에 알리고 스포츠의 도시로 한 번 더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전 세계 스포츠인이 주목한 본 대회를 위해 지난 6월 대한탁구협회장으로 취임한 필자는 부산시와 함께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홍보 및 예산 그리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비롯한 모든 탁구인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여 예산 확보 및 홍보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탁구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사들을 홍보대사로 참여시켜서 붐업을 조성하고, 탄탄한 예산(국비, 시비, 스폰서 등)을 확보하여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대회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 수립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2020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부산 시민, 탁구인, 정계, 재계. 정부 할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작은 공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멋진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본 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조직위와 부산시 관계자들께 감사하며…./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10-29 유승민

[수요광장]외솔 최현배의 시조

일제강점기 민족의식 발견과 깨침엄혹한 역사·생애 작품마다 녹여내해방후 고향·나라·한글사랑 더깊어이승만·박정희정부 가차없는 비판제언 마다않던 민족·민주주의자였다한글날을 맞아 외솔회 주관으로 '집현전 학술대회'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문학과 한글'이라는 이색적인 주제를 다루어 청중들 호응이 퍽 컸다. 한용운, 윤동주, 방정환 그리고 최현배의 문학과 한글 관련성이 논의된 자리였다. '외솔회'는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을 기념하는 모임으로서, 외솔의 손녀 최은미 이사장과 유명 국어학자 성낙수 회장이 정성껏 이끌어가고 있다. 선생의 뜻을 이어 국어 연구와 교육과 운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외솔 돌아가신 1970년에 창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외솔의 고향인 울산에서는 한글날부터 나흘간 '한글, 미래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한글문화예술제가 열려 선생 탄생 125주년을 기념하였다. 그리고 18일에는 울산 중구청에서 외솔시조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는데, 이날에는 이지엽 시인이 수상을 함으로써 외솔과 시조가 눈부시게 결합하는 순간을 창출하였다. 외솔시조문학회 한분옥 회장의 정성과 노력이 이러한 결실을 얻어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들은 모두 '한글날'이라는 민족의 축제에 '외솔 최현배'라는 거목을 연결한 성과들이었던 셈이다.외솔 선생은 국어와 한글을 한 축에, 민족 독립과 문화 발전을 한 축에 놓고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은 잘 알면서도, 선생이 시조 백여 편을 남긴 시인이었다는 점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선생의 시조는 외솔회에서 펴낸 전집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쓴 시조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견고한 수납, 민족의식의 발견과 깨침, 형무소에서의 옥고를 통한 스스로의 정체성 확인 같은 주제로 쉼 없이 흘러갔다. 이 땅의 엄혹한 역사와 궤를 함께한 선생의 생애가 작품 편편마다 실감 있게 녹아 있다. 해방 후에 쓴 시조에는 고향과 나라와 한글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목소리가 깊이 있게 담겨 있다. 그 목소리에는 선생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origin)에 대한 열망이 가라앉아 있는데, 선생은 시조를 통해 자신의 학자적 정체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근원적으로 표상한 것이다. 대체로 시인들은 삶의 길목마다 그 생성적 항체를 얻기 위해 자신의 기원을 상상하곤 한다. 외솔 선생은 자신의 기원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고향'과 '나라'와 '한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행해간 것이다.외솔 선생이 우리 지성사에 남긴 문양은 다양하다. 선생은 어려서 배운 한문과 일신학교 때부터 익힌 근대적 학문의 결속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조선어강습원에 다니면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것이 민족의식 발로의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와 교토대학 문학부에서 더욱 넓고 깊은 근대적 학문을 배웠는데, 이때 선생은 전통과 근대 가운데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 맞춤복을 마련하게 된다. 귀국해서는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본격적 한글 연구와 조선어학회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에 갇혀 해방이 되어서야 출옥할 수 있었다. 해방 후에는 문교부 편수국장, 연세대 교수, 한글학회 이사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일생 국어학 연구와 국어정책 수립에 정성을 다했다. 그런 선생에게 만만찮은 시조 창작의 열정과 그 결실이 있었다는 점이 최근 각별하게 연구되어 그 결과로 외솔시조문학상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선생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알맞게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선생은 일제에는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정부에도 가차없는 비판과 제언을 마다하지 않은 민족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다. 이러한 저항의 존재증명에 '말'과 '글'의 가치를 부가한 것은 두고두고 선생의 독자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내년이면 선생 50주기를 맞는데, 새삼 선생이 평생 정성을 다한 겨레의 문화적 자산으로서 '한글'과 '시조'를 양쪽에서 귀납하고 해석하는 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말본', '조선민족 갱생의 도',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의 저자가 시조시인으로 또한 각인되어가는 순간을 마음 깊이 기다려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10-22 유성호

[수요광장]한국의 인권현실… 산업재해 사망은 고작 1점

이주노동자들 일터에서 다치거나죽는 경우 하루평균 '18.4명' 달해사업장 평가지표 점수도 '모욕적'現 고용허가제 사고 절대 못 줄여정부, 최소한의 생명권 지켜줘야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다. 필자가 일하던 외국인인권단체에서는 주된 주말 업무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상담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2006년에는 네팔사람들과 병원기록들을 수소문해가며,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찾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먼 타향에서 죽어갔는지에 대해 기록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긴 조사 끝에, 60여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사망을 찾고 기록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병으로, 각종 사고로, 산업재해로 그리고 가혹한 조건 속에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도 당연히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 형제였고 아들과 딸이었다. 네팔로 찾아가서 만난 유가족들은 비탄에 빠져 있었고, 대부분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사결과로 충격에 빠졌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절절한 이야기는 아주 작은 책자로 묶여져 나왔다. 이후, 한국에서 기록조차 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 후로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덧없이 죽어가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예전의 참혹한 시절의 옛이야기면 좋겠다. 그러나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매일같이 예전보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2019년 10월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의원실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발표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자 실태 자료는 충격을 넘어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총 971명중 11.14%인 114명이 외국인노동자였다. 산업재해로 인한 전체 사망자수도, 내국인의 경우 2014년 1천765명에서, 2018년 2천6명으로 13.65% 증가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경우 2014년 85명에서 2018년 136명으로, 60%나 증가하였다. 산재로 인정을 받은 부상자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18.4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0.54%인데,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는 0.86%에 달한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어촌 영세 사업장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니고 가입의무조차 없는 곳들도 많다. 심지어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2009년에서 2018년까지 자살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만 43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위의 통계는 아마도 최소한의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비용과 노력을 들여, 위험한 작업장의 환경을 바꾸고 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드는 대신,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사망자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줄일 실효성이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사업장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업장은 사전 배점에 의한 점수로 이주노동자 배정 가능 여부나 순서가 정해진다. 이 점수 평가지표를 살펴보면, '최근 2년 동안 사망재해 1명이 발생한 사업장은 감점 1점'. '2명 이상 발생 사업장은 2점 감점을 받는다.', 이에 비해 임금체불은 3점, 폭행 및 폭언은 5점 감점을 받는다. 그리고 심지어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허용인원에 대비하여 실제 고용인원이 낮으면, 최대 30점에서 최소 22.4점을 기본적으로 준다. 산업재해로 한 명이 죽는 경우 단 1점이 감점되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이 평가지표가 얼마나 이주노동자에게 모욕적인 상황인가! 이런 현재의 고용허가제 시스템으로 드러난 정부의 인식으로는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절대 줄일 수 없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1년간 사망자가 136명에 매일같이 평균 18.4명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아니 이것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전쟁과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다.정부를 비롯한 한국사회 전체에 다시 한 번 호소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건, 최소한의 생명권은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10-15 이완

[수요광장]소유의 종말, 공유의 몰락

스마트폰·정보통신기술 발달로누구나 '접속' 가능한 시대 열려빠르고 효율적 플랫폼 경쟁 시작자본이 독점하면서 곳곳서 충돌기업권리만 주장 사회적책임 외면'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천불 국민소득'.초등학생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당시에는 저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국민소득 1천불'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80년대를 맞이하고 국민소득이 1천불을 넘어서면 모든 국민이 자기 차와 집을 가질 수 있다고 희망찬 미래를 제시했었던 기억. 그 기억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고 우리는 '마이 카, 마이 홈'을 향하여 치열하게 소유의 경쟁을 벌여왔다. 그 희망찬 미래, 우리는 다 이루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자기 차를 소유하고,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으며, 자가보유율도 60%가 넘는다. 국민소득은 무려 3만불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 가지고 다 이룬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소유' 대신 '공유'라는 낯선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유는 빠르게 우리 일상에 퍼져나갔다. 옷, 공구를 비롯한 다양한 물건에서부터 자전거, 차와 같은 이동수단, 집과 사무실, 동네부엌 등 부동산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은 물론 지식과 기술, 시간까지 이른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으며,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접속하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면서 그의 예언대로 '공유경제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듯했다. 사람들은 고장 난 자본주의 속에서 과거 '국민소득 1천불'과 같은 희망을 공유경제에 품기 시작했다. 모두가 공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유를 이야기하면 구시대적이고 공유는 무조건 좋은 것이란 사회적 착각이 작동했다. 그러자 선의와 호혜를 기반으로 했던 공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접속하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자본은 다시 그 플랫폼을 소유하였다. 공유경제는 자본이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기존 시장이해관계자들과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기업의 권리만 주장할 뿐,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였다. 최근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IPO(기업공개) 철회 기사를 보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워크 사태는 겉으로는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설립자가 부동산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 때,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다. 공유경제의 본질은 신뢰의 문제이다. 막대한 돈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자본은 사람을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으라고 했다. 대대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키웠다. 그들은 시스템을 믿으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공유경제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공유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그래서 플랫폼 기반 공유경제와 차별화되는 '커먼즈(commons)'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원하는 공유는 서로 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본이 소유한 시스템이 아니다. 상호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그 운영이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소유의 종말 이후 공유경제의 부흥을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아직 불확실하다. 아니 공유경제의 몰락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유와 공유의 문제는 단순히 '소유냐 공유냐'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공유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어렵다. 일단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소유는 줄이고 일상에서 다양한 관계와 공유를 늘려보자. 나는 공유주택에 살고 있다. 나의 일터는 조합원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다. 우리 사무실은 여러 입주단체가 함께 이용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공유사무실이다. 공유자전거인 '따릉이' 정류장이 곧 우리 집 가까이에 생길 예정이다. 나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공유주택에 살면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공유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 내 것은 많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10-08 김수동

[수요광장]'통합 메시지' 아예 없는 편가르기 세상

조국장관 임명 '긍정-부정' 갈려의혹 위법·윤리 본질보다 '진영논리'갈등만 보이고 '합의 노력' 안보여분노·분열보다 냉정 찾는게 바람직'네편-내편' 싸움 폐해 국민들 몫최근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시절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휴먼다큐 '아메리칸 팩토리'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하며 영화사들의 찬사 속에서 '융합'이라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큐 내용은 미국 내 중국 공장 얘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국경과 문화 차이로 갈등이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융합을 다루고 있다. 다큐는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편가르기식 정치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은 시기에 이런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던진 융합메시지가 전 세계에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의 갈등은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사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통합에 대한 신념과 노력은 이미 재임 시절에 높게 평가받았다. 실례로 재임 당시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는 심각한 갈등 상황에서도 오바마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을 감싸안았다. 갈등을 부추기는 대신 통합에 이르는 연설로 그렇게 했다. "우리 미국에는 두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애국자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애국자다." 대통령의 이 연설은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으로 가는 힘을 발휘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갈등 상황은 어떤가. 어느 정치인이 신념을 가지고 통합을 향한 노력을 보여줬던가? 조국 장관 혹은 정치권의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에 통합 메시지로 국민을 설득한 이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신념을 내세우며 정치인들의 삭발 릴레이가 있었지만, 통합 메시지와는 거리 먼 퍼포먼스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야당의 행보는 '발목잡기식'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를 맹비난하는 거친 모습 외엔 그 무엇도 없었다. 민주주의에서의 정당 정치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정당 간 서로 다른 의견과 조우하게 된다. 조국 장관 임명과 관련해 긍정과 동의도 많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갈등 수준을 간과하기에는 우려스럽다. 편향된 언론의 보도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 표출 방식도 다양하게 감지된다. 조 장관을 둘러싸고 있는 의혹에 대한 위법성 여부나 윤리적 책임이라는 문제의 본질보다 진영논리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요란스럽게 변질되고 있어 갈등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조국 장관을 지지하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건너편에서는 조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렸고 그 다음날에는 검찰이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과 혼란스러움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상대 진영의 잘못에 책임을 요구하며 집회할 수 있다. 또한 대립하고 경쟁하며 의견을 내고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건전한 대립을 통해 통합에 이르는 과정과 그 노력 속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갈등만 보이고 함께 풀어내려는 합의 노력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통합은커녕 편을 갈라서 서로 자꾸만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마치 공동체 정신은 실종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싸울 수도 있지만 대개는 대화에 공을 들이며 설득하거나 서로 양보해 타협 지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싸워서 양측 모두 손해를 보기보다는 타협하는 방법이 손실과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갈등과 분열로 가는 것 같은 현재 상황에서는 의견을 보태며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분열만 더 심화될 것이다. 분노하며 분열로 가기보다는 냉정을 유지하면서 여·야 모두 리스크 관리를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네편 내편' 편을 갈라 진영 싸움의 늪에 빠지게 될 때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10-01 김정순

[수요광장]전국체전 100주년,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길

최초 개최지 서울서 열려 '상징성'민족화합·체육발전 중추적 역할항상 국민에 희망·자부심 안겨줘국민들 경기장 찾아 많은응원 필요'역사·권위있는 행사' 관심 가져야올해로 100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산실인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이제 10일 앞으로 다가왔다(2019. 9. 24. 기준). 요즘 서울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100년을 맞이하는 전국체전을 알리는 홍보깃발과 현수막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대회는 오는 10월 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7일간 진행되며 야구, 농구, 수영, 탁구 등 올림픽 종목부터 씨름, 택견, 궁도 등 한국 전통 스포츠까지 총 47개 종목(정규45, 시범2)에서 17개 시·도 3만여명의 선수단이 열띤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전국적으로 매년 개최되는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인 전국체전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는다. 전국체전은 일제강점기 말기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6·25전쟁으로 중단된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1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올해는 제1회 대회 개최지인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은 전국체전 최초 개최지로서 100년의 상징성을 기리고 한국체육 발전의 전환점이 되는 미래 100년의 출발점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또한 각종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체육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발전 및 세계 스포츠 중심 도시로의 재도약을 준비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전국체전은 스포츠를 통한 민족 화합의 역할뿐 아니라 스포츠 참여 증대 및 저변 확대, 우수 지도자 및 선수 발굴, 스포츠 시설 확충 등 그동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감격을 안았던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은 국제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와 발판이 되었다. 또한 피겨여왕 김연아, 역도의 장미란, 체조의 손연재, 마린보이 박태환 등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올림픽 스타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미래의 올림픽 스타를 꿈꾸는 대한민국 스포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이다. 더불어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전문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즉, 전국체전은 대한민국 스포츠를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발판이었다. 대한민국 체육의 중심에서 언제나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최근 전국체전 현장의 텅 빈 관객석을 보면 씁쓸하다. 많은 국민들이 경기장에 찾아올 수 있는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해봐야 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자기고장 선수, 올림픽 스타선수 또는 미래의 스포츠 꿈나무들을 응원하고, 단순히 '보는 스포츠'가 아닌 '함께 하는 스포츠'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체전은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스포츠 행사인 만큼 국내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통해 선수들의 피와 땀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해주고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꿈과 희망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모두의 노력을 합쳐 스포츠 역사와 문화, 환경이 함께 100회를 맞는 전국체전이 국민 모두의 화합과 참여 속에 재도약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9-24 유승민

[수요광장]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의 산문

부드러운 표현·진솔한 고백 '산문'비평집엔 시큰둥하던 친구도 반색충격적 정보 '스캔들화' 하는 요즘과잉문장으로 사람들 내면에 상처산문 통해 한시적 소음 벗어났으면얼마 전 처음으로 산문집을 한 권 냈다. 그동안 펴냈던 비평서들이 워낙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대뜸 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자연인 아무개'가 간직하고 있는 섭렵과 경험의 기억들을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줄 수 있었다. 그렇게 글에는 전문성과 보편성 혹은 낯섦과 친숙함이 상대적으로 담기게 마련인데, 흔히 '산문'의 범주로 묶이는 것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표현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산문'의 반대는 '비평'이 아니라 '운문'이 아니었던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리듬에 언어를 대응시켜 낭독과 음송에 어울리는 형식을 입힌 글을 운문이라고 한다면, 산문은 그러한 외적 리듬보다는 내용상의 명료함과 서사성을 강화하다 보니 생겨난 줄글 형식을 말한다. 장르로 말하면 소설, 수필, 비평 등이 모두 산문이다. 사전에서는 "운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산문에 무한정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장르적 관습(convention)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 장르를 통해 경험하고 또 기대해왔던 어떤 기율이나 원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산문을 가장 잘 쓴 작가들은 누구일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개성을 담은 산문을 쓴 분은, 일제강점기만 예로 든다면, 정지용과 이태준과 이효석과 김기림과 이상(李箱)이다. 이분들은 본인들의 주력 장르였던 시나 소설이나 비평만큼 아름다운 산문을 우리 문학사에 남겨주었다. 아쉽게도 김소월, 백석, 윤동주는 그분들이 남겨준 탁월한 시적 성과에 비해 산문적 충격은 약한 편이다. 반대로 산문에서 일가를 이룬 변영로, 양주동,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등의 수필가들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점에서 근대문학사는 산문의 일대 부흥을 이룬 시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 Baudelaire)는 산문을 일러 "영혼의 서정적 격정에도, 몽상의 파동에도, 의식의 충격에도 능히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한" 글이어야 하고, "이러한 이상(理想)은 무엇보다도 도시와 서로 무수하게 얽힌 복잡한 관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운문인 서정시가 격정과 몽상과 충격을 순간적으로 주는 근대 이전 사회의 잔광(殘光)이라면, 산문은 막 떠오르는 근대 도시의 문학이요 서정시를 유연하고도 강하게 감싸고 있는 서광(曙光)임을 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형성시켜가는 '산문적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만큼 산문은 근대의 본격적 산물인 셈이다.어쨌든 '산문'은 진솔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을 욕망하면서, 특정 토픽에 대해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줌으로써 그들의 삶과 생각에 충격과 변형을 주려는 계몽 의지가 그 안에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여기에서의 계몽이 위압적 훈계나 자기 확신의 강요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감에의 간곡한 요청이요 오랜 경험과 기억을 나누자는 호소일 뿐이다. 그러니 문장이 글쓴이의 인격이나 사람됨을 담고 있다면, 그 대표 사례는 아마도 산문일 것이다. 그동안 진력해온 비평과 달리 산문이 이러한 소통과 공감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산문집을 건네니까, 비평집에는 시큰둥하던 친구들도 더러 반색을 해준다. 네 글이 재밌다면서 말이다. 나로서도 재미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금, 충격적인 정보를 스캔들화(化)하는 데 앞장서는 과잉 문장들에 사람들의 내면적 상처가 오히려 깊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고르고 다듬고 세련화해야 할 주체들이 그러한 언어 과잉을 통해 존재론적 잔명(殘命)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평화로운 위안을 주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충전을 꾀하는 산문을 통해 그러한 한시적 소음에서 벗어나 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을 가다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9-17 유성호

[수요광장]외국인 앞에서만 멈추는 공정성과 형평성, 건강보험의 경우

6개월이상 머물땐 의무가입 법개정먹튀·재정적자 논란 연장선상 나와저소득에도 전체 평균 보험료 가혹부모·성년자녀도 부과대상 큰 부담빈틈없는 사회보장 형평성 담보부터지난 7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이제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그간 많은 시민사회단체 및 국제사회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보편적이고 차별 없는 건강권이 실현돼야 한다는 취지에 동감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면 본래의 취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작년 한때, 여론을 달구었던, 이른바 외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2018년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재외국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수지 적자액이 2017년 2천51억원에 이르고 지난 5년간의 누적 적자액이 약 7천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서 몇 십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몇 억원이 넘는 의료혜택을 봤다는 어떤 재외동포와 외국인의 사례가 크게 보도됐다. 여론은 매우 험악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2017년 건강보험 전체 재정수지 적자가 4조4천475억원에 달하는데, 외국인들이 부당하게 혜택을 받아간다는 점에 분개했다. 언론들은 먹튀 논란과 재정적자만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며, 외국인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아가고 국민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2017년 외국인의 직장가입과 지역가입을 모두 합친, 전체 외국인의 건강보험료 재정 수지는 오히려 2천490억원 흑자였으며, 2013년~2017년 5년간의 재정수지는 무려 1조1천억원의 흑자에 달한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외국인이 건강보험을 축낸다며 혐오와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이러한 논란의 연장 선상에서 정부의 이번 건강보험 개편안이 나왔다. 그렇다면 건강권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 실현을 떠나, 보다 공정한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변화됐을까?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등은 국내에 소득 및 재산이 없거나 파악이 곤란해 내국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즉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한 이주민은 소득이 훨씬 낮더라도 최소한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인 11만3천50원을 내야 한다. 2018년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전체 직장인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가난한 외국인의 주머니를 더욱 쥐어짜, 형편 나은 한국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했다. 이 기준은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내국인과 다르게 부양가족 범위도 매우 좁다. 내국인의 경우 폭넓게 세대원을 인정해 주지만, 이주민은 원칙적으로 개인을 하나의 세대로 보며, 세대주의 배우자와 19세 미만의 자녀만을 동일 세대 구성원으로 한다. 부모와 성년의 자녀가 각각 보험료 부과대상이 되어 훨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외국인도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사회보장에 빈틈이 없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형평성이 우선 담보되어야만 한다. 사실과 다르게 호도됐던 외국인의 명예 회복은커녕 더 가혹한 보험료 부과 그리고 보험료를 4회 이상 내지 않으면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겁박을 하고 있다.한국정부는 몇 달 동안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치료는커녕 비자를 취소시키고 내쫓을 수 있다는 냉혹함을 보이고 있다. 먹튀나 역차별이라며 성내던 언론과 여론은 더 가난한 외국인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당함에는 침묵한다. 정말 이것이 한국사회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생기자 문제를 파악해 보겠다고 한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의료 접근성의 문제, 농어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비용을 내야 하는 지역가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직도 여전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이주민들, 그리고 소득 조사 없이, 더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의 문제까지, 공정하고 양심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9-10 이완

[수요광장]이름 있는 집

어린시절 부흥주택 문패 기억 또렷전세난민 늘며 도시 익명 공간으로캐슬·팰리스… 공동주택 이름 난해욕망대상·상품화로 자의적 조어법공간 걸맞은 의미부여 '건축의 완성'청량리 부흥주택, 1960년대 초 홍릉 서편에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주택영단('LH'의 전신)에서 공급한 2층 연립형 국민주택단지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200호가 넘으니 당시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집들이 골목을 마주하여 어깨를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작은 마당도 있었고, 옆집과는 낮은 울타리로 경계를 삼았지만 늘 열려 있는 문이 있어 자유로이 왕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부흥주택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그 집과 골목 마당이 작다고 하는 것은 4년 전 우연히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다닥다닥 붙어있는 협소한 집과 골목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 가지 정보를 유추해보니 바로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그곳은 나에게 절대로 작지 않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었다.이제는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또렷이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문패. 아버지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직사각형 나무 문패가 대문 기둥에 반듯하니 걸려 있었다. 문패는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수유리 집에도 당당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집안 경제사정의 악화로 전세난민의 삶이 시작되면서 문패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리며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영영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문패가 필요 없는 익명의 공간들로 도시가 채워진 것이다.이름 없는 집 또는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이름과 숫자로 호명되는 집이 익숙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집에 의미 있는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절골마을'이다. 천년고찰을 품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최근 개발이 허용되면서 20~3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캐슬OOO, OOO몽마르뜨, OOO파크, OOO하우스.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공동주택의 이름들이다. 어쩌다 우리 공동주택의 이름들이 이렇게 국적불명의 언어공해 수준이 되었을까? 그것은 집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시장에서 쉽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 사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10평대 아파트에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20~30평 내외의 중소형 아파트에 '팰리스', '캐슬', '로얄' 등의 이름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물며 '빌라'는 이제 저층 주거지 다세대주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들은 거의 다 사용되었고 기존의 이름들과 차별화를 위한 자의적 조어법이 난무하다 보니 난해한 이름들이 속출하고 있다.아무튼 주택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의 고민의 결과이고 어쩌면 집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을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집 이름을 짓는다면 저런 이름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구름정원사람들, 오시리가름, 하심재, 푸른마을, 가치이은, 꽃보라마을, 눈뫼가름, 소행주, 어쩌다집, 일오집, 오우가… 집이 위치한 지역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사연이 있는 공동체주택의 이름들이다.우리 집은 '여백'이다. 집에 대한 덧없는 욕망을 비우고 그 여백을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채워가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우리는 다세대주택 두 개 동을 나란히 지으면서 각 건물에 '파란여백'과 '하얀여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물리적으로 집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집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것으로 건축은 완성된다. 우리도 스스로의 언어로 집 이름을 한번 지어보자. 그곳은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내겐 너무나 특별한 삶의 공간, '이름 있는 집'이 될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09-03 김수동

[수요광장]어느 작은 단체의 소통 지혜에 대하여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둘러싼 의혹청문회서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언론등 사회갈등 유발 책임 못피해반면 기자로 활동 발달장애인 '감동'그 나름의 노력을 우리가 배워가야 요즘은 TV를 켜고 싶지가 않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온통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둘러싼 의혹 보도뿐이다. 도무지 뉴스를 보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넘쳐나는 의혹에 더는 실망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엄청난 기세로 미디어를 점령, 국민적 관심사가 돼버렸다. 어쩌면 관심사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분노와 갈등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 같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위에 지친 여름의 끝자락을 다시 또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듯해 갑갑하다. 조 후보자에 자격 논란과 의혹은 내달 2~3일 청문회를 통해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확정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매체는 긴급 여론조사를 통해서 조 후보 반대 여론전까지 가세하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 문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더 큰 문제는 따로 또 있다. 조 후보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거나 혹은 반대로 의혹 내용과는 다른 결론이 난다 해도 정치권에 대한 이미지 손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불신 속에서 국민들이 입었을 상처 또한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조 후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여당, 야당과 의혹 보도에 열을 올린 언론까지도 사회적 갈등 유발에 무죄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불필요하게도 과도한 국민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아무튼 조 후보에 대한 의혹 보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도 길고 힘든 여름처럼 느껴진다. 일본의 경제보복 등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관련 복잡하고 무거운 이슈, 조 후보의 의혹에 대한 여야의 대립 등 온통 소통의 부재로 불거진 일이다. 물론 외교 문제는 국가 간 복잡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소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거운 이슈로 얼룩진 무더운 8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그나마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전화를 걸어온 용건은 '휴먼에이드'라는 잡지 표지에 자기 사진이 나왔으니 이 잡지를 꼭 사서 보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이유로 잡지 표지에 얼굴이 나왔냐고 물었더니 언론사 기자가 됐다면서 발달장애인 특유의 하이톤에 격앙된 어조로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말해 필자도 함께 크게 웃었지만 실은 깊은 감동으로 한동안 먹먹했다. 사실 이 단체와는 필자가 봉사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인데, 발달장애인들이 읽기 쉽도록 '쉬운 말로 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글 취약계층에게는 쉬운 말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일들은 발달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일반인들의 편견 불식에 기여한다. 쉬운 말 뉴스 만들기로 고생하면서 그리도 많은 품을 들이더니 어느덧 발달장애인을 기자로 채용할 정도로 성장한 것 같아 놀라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발달장애인 취재기자 추가 모집이라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없던 일이라 더 놀라웠다.굳이 필자가 이 단체 이름까지 밝히며 소개하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차별받는 이들이 보여준 특별한 소통 능력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과 다름의 능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콘텐츠는 가치가 있어 보인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뭔가 나름의 소통 능력을 키우며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올여름은 아베의 경제 도발과 복잡 미묘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체감 온도는 더 높고 견디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법부무장관 후보자의 의혹까지 불거져 불신과 갈등은 증폭되고 사회적 소통 능력은 축소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비록 작은 단체이지만 이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한 소통 지혜를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8-27 김정순

[수요광장]스포츠인들의 방송 진출

다양한 예능프로서 재능·끼 '발휘'신선함·재미 선사 시청자와 '소통'종목 호기심 유발 저변확대 효과도선수들 인정받는 '스포테이너' 위해꾸준한 운동·분야별 자기계발 필요요즘 TV를 틀면 그라운드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스포츠스타들의 예능프로 출연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두 곳의 프로그램이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스포츠스타들은 다양한 재능과 끼를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더불어 많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과거만 해도 운동선수는 운동에 집중하고 TV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겉 멋들고 운동을 등한시 한다는 말이 있었다. 특히 TV 출연 후에 성적이라도 안 좋아지면 많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스포츠스타들이 TV에 자주 등장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운동선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운동 경기에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운동선수라고 운동만을 해야하고, 운동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선수들이 운동이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스포츠에서의 이런 변화된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합을 할 때의 엄숙하고 강한 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보여주며, 이미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더불어 TV를 통해 스포츠스타를 만난 시청자들과 한발 더 가까워질수 있다. 결국 운동경기도 내재되어있는 끼와 능력을 발산하여 시합에 승리하고 팬들을 즐겁게하는 서비스업종이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운동선수들의 TV출연을 통한 인기상승은 당연지사라고 생각된다. 또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친숙해지고 저변이 늘어나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TV를 통해 익숙해진 선수들을 통해 스포츠 종목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도 유발 할 수 있다. 실제로 종영이 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예능과 스포츠를 접목한 프로그램 이후에 많은 종목들의 저변이 상당히 확대된 경험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방송이란 것이 그 종목과 선수를 알리는데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몇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 꿈이 방송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개인기도 연마하고 다양한 방송출연으로 내공을 쌓아가기도 한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늘면서 운동선수들의 방송진출도 자연스레 늘고 있는 추세다. 방송까지 나올 정도의 커리어라면 본인관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수준이라고 인정한다.스포츠선수 출신의 예능인을 뜻하는 신조어로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인 '스포테이너', 이제 인정받는 스포테이너를 꿈꾸는 운동선수들이라면 더욱더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업인 스포츠도 게을리해서는 안될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자기계발도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들의 보는 관점이 높아지고 방송의 콘텐츠들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환경에서 스포츠스타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콘텐츠 개발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인에서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Career transition)을 한 씨름 천하장사 강호동, 축구의 테리우스 안정환, 농구의 대한민국 국보급 센터 서장훈 선수 등과 같은 경우도 소재의 다양성과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알고 있다.운동선수들의 장점인 성실함과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한다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송계에도 운동선수들은 시청자들과 국민들에게 참신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8-20 유승민

[수요광장]그들 속의 우리, 우리 속의 그들

日, 식민지배 사과·우경화반대 존재국내도 아베의 속내 지원자들 있어이번 사태 한일간 단기적 갈등아닌역사에 얽힌 오랜 저항의 싸움인 셈과정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되는 이유최근 한일 간의 갈등이 공식적으로 발생하고 번져가면서 둘 사이의 오랜 역사를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지적 흐름이 커졌다. 관계 서적도 많이 팔리고 있고,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는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해묵은 역설로 곧잘 그려져왔다. 지리적 인접성과 오랜 교섭 경험에서 발생한 근린성이 가까움이었다면, 둘 사이에 엄존하는 역사적 적대감은 오랫동안 서로를 멀게 했던 정서적 실체였다. 또한 일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근대의 표본 노릇을 하곤 했다.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핵심을 간취하고 활용하였고, 일본식 행정 직제나 경제 시스템을 선진적 전범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표현되는 침략과 지배와 폭력의 엄연한 역사는 그러한 경험과는 정반대 쪽에서 항일 혹은 극일(克日)의 정신을 요청했던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하나의 민족은 그것을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여러 조건과 함께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측면이 맞물려 형성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민족 경험에서 일본은 언제나 완강한 적대감 속에 위치해 있었다. 중세기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반일의식은 근대 식민지시대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증폭되었고, 우리에게 일본이란 언제든지 우리를 침탈할 수 있는 폭력의 근원지로 암암리에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한일 간 양가적 교섭 양태는 우리에게 선망과 혐오라는 이중의 정서적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모든 주체에게는 자신을 개진하기 위해 부단히 마주 보면서 검색 및 수정을 할 수 있는 타자가 필수적이다. 타자는 본래 자신의 반성적 거울이자 자신 안으로 들어온 능동적 의식의 촉발자인데, 우리로서는 일본을 그 자리에 놓을 때 역사적 적실성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해석의 주체가 비록 우리 자신이지만, 일본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해석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 전환을 그동안 경험해온 것이다. 투항주의적 동일화 욕망에 의한 친일 성향과 피해 경험을 넘어 정당한 자기 복원을 목표로 했던 저항 성향이 그 맥락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저항'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유형, 무형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값을 주장하는 일련의 사유와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하나의 힘에 대한 반작용과 역동성(逆動性)을 그 핵심 속성으로 삼는다.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세워왔던 엄혹한 역사의 흐름이 그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한일 간에 드러난 이번 갈등은 그것이 역사 해석 차원이든 경제 차원이든 단기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할까? 확연하게 드러난 현상은 일본의 아베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준 절묘한 정치적 화음(和音)이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과거 일에 빠져 한일 관계를 그르친 것으로 규정하였다. 양국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들의 역사 감각이 오랜 민족 경험을 뛰어넘어 놀랍게 일원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문제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으며 제대로 된 역사 해석과 입장 천명을 통해 일본이 새로운 길에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일본과 우리 쪽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우리-그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그들 속의 우리'도 '우리 속의 그들'도 있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김응교 교수는 "일본의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더 자주 대화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일본에도 식민지배의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한국에도 아베의 속내를 지원하면서 민족 경험을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한일 간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양국 역사에 얽힌 오래고도 선명한 존재론적 저항의 싸움인 셈이다.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8-13 유성호

[수요광장]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외국인화

열악한 작업현장 시스템 개선 대신기본 안전교육 조차 제대로 못 받은이주노동자 대거 투입 산업재해 속출더이상 맨몸으로 당하는 일 없도록실태조사·보호조치 반드시 선행돼야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유럽의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책 '제7의 인간'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표현하며,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 자체가 부정되고 그저 부족한 인력을 메워주는 커다란 기계의 대체 가능한 부속이 된 이주노동자를 표현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의 삶도 바로 이렇다. 며칠 전, 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농촌에서 작업 준비를 하던 중,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달라고 했다가 한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리고 7월 31일 비가 아주 많이 내렸던 서울에서는 6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23살 미얀마 청년이 폭우가 내릴 때 서울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빗물 펌프장 안전 점검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국가재난에도 이주노동자가 최일선을 맡고 있다. 가축에게 전염병이 발생하는 경우, 몇백만 마리에 달하는 가축을 도살하거나 생매장하면서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전염성 질환 등에 대한 위험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투입되던 관계 당국의 공무원은 점차 줄었다. AI가 가축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군인들도 동원하기 어려워졌다. 더 이상 위험한 현장에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는 위험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외주화를 했고, 이 외주화의 현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외국인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현장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대신, 그곳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내고 있다. 결국,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거 투입되고 있다.2018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천798명이었고 사망자도 511명이나 되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0.18%인데 반해, 외국인노동자 산재발생률은 1.16%로 내국인노동자에 비해 6.4배가 높았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소규모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체류가 불안정안 이주노동자도 많아 산재 신고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산재 발생률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의를 해줄 노동조합도 가족도 없고, 이들의 외침에 반응해줄 정치권력도 없는 이들이 적절한 예방 교육도 후속조치도 없이 현장으로 더욱더 내몰리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의 버팀목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안전과 재난 현장에 투입되면서도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 잣대로 정당한 대우 없이 대체 가능한 일회용 딱지를 붙여 놓고 있다.우리의 일상 어느 부분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을 담보한 것이라면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미얀마 등에서 온 어떤 20살 젊은 노동자들을 등 떠밀어 위험한 곳에 보내고, 부당한 대우를 통해 착취해서 나온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가족'만의 화목한 일상을 꿈꾸고, '우리 국민'만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몰염치한 환상이다.이주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맨몸으로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 위험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버리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이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겠다. 8월 3일 아침, 콘크리트 제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19살 청년이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방치할 것인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8-06 이완

[수요광장]50 이후 더 나은 삶을 위한 '전환의 기술'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지우고…하루빨리 독립생활자 능력 갖춰야기존 인맥 대신 '느슨한 관계' 구축돈 잘 못 벌어도 의미 있는 일 하기걸으면서 생각하고 글로 옮겨보자대기업 정년퇴직예정자 대상 강의 기회가 있었다. 휴양지의 화려한 호텔에서 진행되는 교육이었지만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퇴직 후 계획에 대해서도 대부분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막연한 상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중장년세대들은 주된 일(자리)을 떠나 새로운 일과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환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급하거나 무리한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한번 살펴보자.# 나는 자연인이다지위와 역할로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하루빨리 지우자. 그리고 당장 뭘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도 내려놓자.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명함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다.# 혼자서도 잘해요자연인의 자유도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림자노동을 감당해 왔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루빨리 독립생활자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일을 완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훌륭한 직원들은 이제 내게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는 시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살림의 주체가 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혁신도 좋지만 스스로 1인분의 삶을 감당하는 자기혁신이 우선이다.# 관계능력 강화인맥에 메이지 말고 느슨한 연결의 관계망에 어울려 보자.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다양한 명분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 이해관계가 앞서고 알게 모르게 경쟁과 서열이 작동하는 그 인맥들,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신뢰와 충성을 증명해야 하기에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그나마도 현직에서 물러나면 상당수는 다시 보기가 어색한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이제 혈연 지연 학연의 부담스런 인맥이 아닌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 보자. 이러한 커뮤니티는 관리가 필요한 부담스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어울릴 때,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돈독한 이웃은 어쩌면 나중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니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N잡러평생직장, 평생직업이 사라진 시대. 이제는 투잡, 스리잡을 넘어 멀티잡을 할 수 있는 N잡러만 살아남는 시대라고 하니 더욱 노오~력 해서 우리도 N잡러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풀타임 잡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과 활동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면 어떨까? 나를 위한 일, 공동체를 위한 일, 우리 사회를 위한 일, 그리고 돈 버는 일과 돈은 잘 못 벌어도 의미와 가치 있는 일. 이렇게 말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벌이는 좀 줄겠지만 의미 있는 존재로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다.# 걷기와 글쓰기치유와 성찰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고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걷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옮겨 보자.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고 차마 열어 보지 못한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과감히 열어 마주해 보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스토리텔러이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지, 이제 또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길며 그저 노후 걱정만 하며 지내기엔 우리에게 아직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혹자는 장수의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비관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 기술이면 이제야말로 우리 인생의 전성기를 누릴 만하지 않을까?/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07-30 김수동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