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집에 갇히다

차별과 배제 공간 넓혀가는 아파트CCTV·스마트폰 실시간 모니터링안전 아닌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것불안한 사회의 확실한 보안대책은언제든 편안하게 대하는 '이웃'이다"뭐라고? 크게 이야기해, 안 들려!" 대학교 졸업을 앞둔 딸은 연초에 학교 앞 하숙집에 방을 얻어 나갔다. 그리 늦지 않은 밤 시간에 아이와 통화할 일이 있어 전화를 하니 평소와 다르게 작은 소리로 소곤대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 이유가 놀랍다. 처음에 하숙집으로 이사를 와서 집처럼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방문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내용인즉, 음악소리가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해달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딸아이를 만나 또 물었다. 그래도 한집에서 사는 사이인데 그런 불편이 있어도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되지 삭막하게 그런 식으로 소통을 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놀랍다. 요즘 대학가 하숙집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응답하라 1988'이 아니다. 서로 알려고 하지 않으며 카톡과 포스트잇 같은 비대면 도구를 통해 꼭 필요한 정보 전달 및 불만제기와 같은 소통만 오간다고 한다.지난해 서울의 한 자치구 청년임대주택 입주자 선발을 위한 지원자 서류심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입주자들의 자치적인 공동체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입주 후 입주자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또는 기여 계획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상당수의 청년들이 일상소음 문제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경험과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었다. 관계가 단절된 협소하고 열악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청년들의 삶이 이제 이해가 간다. 당연히 집이 편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일상을 밖에서 지내고 집은 그야말로 늦은 시간에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되었다.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주거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월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은 이웃을 잃어버린 우리 주거 현실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웃과의 단절이 단순히 소통의 부재와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위험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말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주거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이웃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도시 주거의 현실을 살펴보자. 빠른 속도로 도시를 잠식하는 아파트는 지역, 이웃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차별과 배제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일터인 아파트 경비 업무도 관리비 부담으로 점차 보안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다. 골목길로 연결된 저층 주거지 또한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골목길은 이웃들과의 사이를 지켜주고 연결하여 주었던 공유지,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다세대 빌라가 자리 잡은 골목길, 이웃이 사라진 골목길은 스산하다. 사람은 안 보이고 차들만이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서있다. 구석구석 늘어나는 CCTV만이 우리를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기업들은 역시 빠르다. 1인가구 증가는 커다란 사업의 기회이다. 1인가구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주거와 안전이다. 1인가구는 주거 보안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다. 특히 여성, 노인의 경우 주거침입 범죄 등 안전 및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신속하게 스마트홈 보안 서비스를 내어 놓기 시작했다. CCTV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부가서비스가 추가되는 형태이다.안타깝게도 이 모든 흐름은 우리가 사는 도시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염려로 이동은 제한되고 활동성은 저하될 것이다. 첨단기술은 우리를 스마트하게 고립시킬 것이다.불안한 현대사회의 가장 확실한 안전대책은 첨단보안경비시스템이 아니라 '이웃'이다. 집은 관계의 빈곤을 이웃과 함께 채워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나만의 공간으로서 집,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서면 언제든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이웃이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가 도시에서 다시 마을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6-25 김수동

[수요광장]품격있고 절제된 정치언어가 그립다

정치권 '막말'·'혐오' 언어문화 파괴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 직면여야·진보보수 진영논리 잠시접고한마음으로 뭉쳐 위기에 대처해야오로지 '국민 우선' 상생정치 시급 최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막말 논란으로 정치권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란스럽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로 나라 전체가 슬픔에 휩싸인 가운데 '골든타임 3분뿐'이라는 페이스북 글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찼는지,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렵질'이라는 상스러운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후진적 정치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가 강대국은 아니지만 이제 어엿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술과 과학은 첨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론 자유의 세계적 순위도 미국보다 훨씬 높고,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위에 서 있다. 어디 이뿐인가. 영화나 케이팝, 스포츠 등 우리 문화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무대에서 그 저력을 인정받으면서 선진국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정치 문화는 퇴보를 거듭하는 분위기다. 반대진영을 향한 분노와 증오만 표출하며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권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피로가 누적된다. 여야 모두 합의와 설득 대신 서로 네 탓이라며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은 정말 봐주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의 '막말', '혐오'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막말 때문에 제1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한때 '막말 금지' 움직임이 있었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면서 오히려 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의 막말 난타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필자는 지난 4월에도 같은 지면에 정치권의 막말 논란에 대해 글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과 궁금증이 있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막말로 무엇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막말을 내뱉음으로써 지지세력 결집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상대 진영에 대한 갈등 유발 노림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정말로 이들은 저주 섞인 막말과 조롱으로 국민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제 막말은 야당의 역할 수행에 빠져서는 안되는 필수코스로 인식될 정도인 듯하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막말과 혐오 발언이 야당의 중요한 책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야당 입장에서 대통령의 국정과 여당을 견제하고 공격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다. 집권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야당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격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비난을 위한 비난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대안제시가 동반되어야 함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조롱과 저주에 가까운 막말 비난만으로는 야당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감정의 절제 없이 거친 혐오와 막말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인이라면 공인으로서 사적인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권의 폭언과 혐오 표현으로 불신과 정치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 정치인의 독한 막말과 폭력적인 막말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사회 환경을 오염시키고 언어문화를 파괴한다. 거친 막말로 혼탁해진 정치문화를 정화시켜줄 수 있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절제된 말과 품격 있는 언어 사용 △역지사지의 자세 △국민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꼽고 싶다. 여당 역시 '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막말을 막말로 받아치며 난타전을 즐기는 모양새보다는 품격과 절제된 언어와 역지사지의 자세로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요즘 우리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속에서 양측의 날 선 기 싸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서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면서 막말로 흠집 내고, 끌어내리는 그야말로 막말 포화 속에서 부침이 많아 보인다.막말로 무장된 비판적인 공격보다는 진보와 보수는 진영논리를 잠시 접어두고 한마음으로 뭉쳐 대외적인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보수건 진보건 서로 상대 진영 흠집 내기에 올인하지 말고 역지사지 자세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오로지 국민이 잘사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막말 속 정쟁이 아닌 품격과 절제의 언어로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여야 상생하는 정치가 그립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6-18 김정순

[수요광장]누구를 위한 스포츠 혁신인가?

혁신위원회 권고안 살펴보니 '유감'규제는 확고한데 대안없어 아쉬움학생선수 스스로 바뀌는 기회 제공개혁위한 예산·정책 지원체계 마련꿈 펼칠 수 있도록 환경 만들어줘야'혁신(革新)'은 묵은 풍습,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성)폭력 등 체육분야 비리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위한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차례에 걸쳐 권고문을 발표했다. 스포츠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현 실태 파악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선수·학부모·지도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번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은 참담하고 유감스럽다. 권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규제는 확고한데 대안은 확실치 않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스포츠 혁신의 주인공은 선수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몇 가지 고민해보아야 한다.첫째, 운동하는 학생들의 선택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본인의 선택을 존중받고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학교 급별에 따라 학생선수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게 학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이 존중되고 있다. 획일적으로 정규수업 참여와 주말 대회 참가만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학생선수들의 다양성과 종목에 대한 이해, 특수성, 무엇보다 학생선수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학습법의 다양성을 요구한다. 일반학생과 같은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가두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최저 학력제 기준 등 기존의 교육제도 점검 및 학생선수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온라인 수업, 홈스쿨링은 외국에서도 이미 운동을 진로로 선택한 선수들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2020년부터 세계최초로 커리큘럼에서 학교 과목을 삭제하고 모든 공식적인 학교 과목의 파괴라는 새로운 교육의 시스템을 적용하여 교육의 혁신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실행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 생각된다. 셋째, 스포츠 혁신을 위한 인프라와 지원 체재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체육시설을 살펴보면 초·중·고교의 학교체육시설은 더없이 열악하다. 선수 훈련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학생들이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가 태반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제100회 전국체전 수영 경기를 할 수영장이 없어 인천에서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반 비용의 대부분은 선수들과 학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생활환경과 주변 여건상 합숙소 생활을 유지해야만 하는 학생들은 간과하고 합숙소 전면폐지를 시행했을 때 그 학생들을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폐지보다는 기존에 있는 제도와 정책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실태 파악이 먼저다.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제재와 규제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넷째, 스포츠의 참여 목적에 따른 정책이 명확해야 한다. 일방적인 통합과 현실감 없는 정책은 학생선수와 대한민국 스포츠 전체에 혼란을 초래한다. 스포츠는 경쟁과 유희성을 기반으로 하는 신체운동의 총칭이다. 운동을 취미로 하는 클럽 스포츠와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학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소년체전의 경우 학생선수들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지방 체육 활성화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 우수선수 조기 발굴 등 스포츠 분야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스포츠의 참여 대상과 목적에 따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스포츠 종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종목 특성에 따라 단체와 개인, 하계와 동계, 실내와 실외 등으로 나뉘어 다양하고 특성에 맞는 훈련 또는 대회가 이루어진다. 특히 랭킹 포인트로 운영되는 종목은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도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또한 체급조절을 해야 하는 종목이 주말에만 시행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따라서 종목 특성을 배제한 제도는 현실적용이 어렵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인 학생선수들이 그들의 꿈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누군가부터의 혁신이 아닌 선수 스스로가 바뀌고 자성하여 혁신할 기회도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는 체육계의 개혁을 위해 예산과 정책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선수들이 우선이 되는 실효성 있는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6-11 유승민

[수요광장]막말의 정치학과 언론

SNS 노출 안되면 불안한 정치인들멋진 말보다 요란한 뉴스거리 '골몰'언론, 편승·침소봉대 기사화 자제끊임없이 비판 '언어 중요성' 강조사회갈등 통합·조정역할 책임 있어생각해보면 지난날의 정치지도자들은 기억에 남을 명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가령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YS)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다."(DJ)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JP) 등 그때그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꾼 정치인들의 어록은 이른바 3김정치의 폐해에 대한 끝없는 강조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아우라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물론 그때와 지금은 매체 조건이 전혀 달라졌고 국민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급변했다. SNS에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대중들 뇌리에서 지워질 것 같은 불안감이 정치인들에게 생겨났고, 자신의 존재증명에 필요한 말들을 세심하게 준비하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의제도 달라지고 상황도 변해간다. 그러다 보니 가슴을 울리는 멋진 말보다는 이른바 막말을 통해 요란한 뉴스거리를 만드는 데 정치인들이 골몰하게 된 것도 같다.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인권을 감안하지 않고 뱉는 비하의 말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속어와 비어들, 어차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가치들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나누어 배제의 정치학을 구사하는 독선의 언어들, 성폭력의 잔재를 떨치지 못하고 남발되는 관습적 언어들이 우리 정치인의 품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있다.명언을 여럿 남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음미할 만하다. 그는 정치인들이 왜 시를 가까이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권력이 사람을 오만으로 이끌 때 시는 그의 한계를 일러준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그에게 자기 존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일깨워준다. 권력이 사람을 부패시킬 때 시는 사람을 정화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진리들을 정립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는 시라는 장르를 가까이하라는 말이기보다는 정치인의 자의식에 깊고도 보편적인 삶의 지표가 세워져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스스로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거나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지속적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같은 어록을 남긴 케네디의 마음속에는 정치를 통한 자기실현은 물론 민주주의라는 더 커다란 준거가 충일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발언의 전체 맥락보다는 귀에 거슬리는 부분적 표현을 침소봉대하여 기사 제목으로 삼는 언론의 태도 역시 온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언론은 스스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키우고 맹목의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성찰해야 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막말에 편승하고 또 그것을 대대적으로 기사 머리말로 뽑는 것은 그 점에서 최악의 상(像)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언론은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으로서 행해지는 계산된 막말, 품성의 결함으로 인해 발화되는 막말,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적대감의 막말 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 그 당사자를 몰아세움으로써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언어'가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해가야 한다.지금 우리 사회에는 갈등의 골이 깊은 이해집단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자크 랑시에르에 의하면 정치란 '일치(consensus)'가 아니라 '불일치(dissensus)'를 생성해내는 행위이다. 일사불란하게 일치를 수행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치안(police)'일 뿐이다. 그러니 갈등과 반목 그리고 그로 인한 담론의 끝없는 생성과 유포는 민주 사회에서 퍽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이때 정치권력과 언론은 이러한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극대화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무한 권력에 합당한 공공선으로서의 책임 말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6-04 유성호

[수요광장]차별을 조장하는 정부의 '균형' 감각

정부, 논란 제기된 다문화정책 논의국민여론 공식언급 혐오 강화시켜발표의 일방적 피해자는 또 이주민선입견 교정·불평등구조 개선 먼저인종차별·철폐사이 중립 존재 못해지난 4월 12일 정부부처 관계자가 참여한 국적 통합제도개선 실무분과위원회가 개최되었고, 국민역차별 논란이 제기된 일부 다문화정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다문화가족 전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할 소외계층으로 낙인되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국민들도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느껴, 장기적으로는 국민과 이민자가 원활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으므로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다문화가족은 물론 이주민 전체를 차별하고 분리를 강화시킨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해왔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일면, 그동안 이어져왔던 비판을 뒤늦게나마 수용하고 이를 교정하려는 바람직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소위 '균형' 잡힌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 필요성 논의는 매우 부적절하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이주민들을 낙인찍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갈등을 조장해온 것은 이번 보도 자료에서도 밝혔듯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사과나 언급 없이, 그동안 다문화가족에게 너무 과한 지원을 해서 역차별 논쟁까지 있다고만 밝히는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정책을 요구한 적도 없는 다문화가족에게 또 한 번 모든 비난을 전가하는 것이다.또한 법무부가 국민들이 역차별로 느낀다며 제시한 사례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 글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입니다. 한국의 외국인정책 여러 부문에 문제점 고쳐주세요."('18.8.14. 종료, 참여 인원 75,051명)를 제외하면, "자국민 역차별금지법을 만들어주세요", "정부와 인권위는 국민역차별법 폐지하라", "국민 역차별 혜택 폐지해 주세요" 등은 사실, 그 동의가 수백에 불과했다. 이런 청원 글이 정부의 주장대로 전반적인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혐오 차별 세력을 제발 규제하고 처벌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그동안의 요구에는 왜 이런 대규모의 대책 회의를 한 적이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차별 이런 단어가 언급된 사례만을 나열하며 역차별 논쟁이 마치 국민들의 전반적 여론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 하는 것이야 말로 정부가 혐오차별 세력에 동조하여 차별과 혐오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결국 정부에서 말하는 소위 '균형'이라는 것이, 이주민과 난민을 혐오하는 일부 극우적 혐오 세력과 이주민 인권 사이에서의 '균형'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다문화가족이라는 행정편의적인 용어 사용으로 구분과 배제의 씨앗을 심어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대책으로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를 상정하고 정책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제, 극우적 혐오세력의 발호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균형'이라는 마치 양극단을 중재하고 달래는 듯한 인상의 단어를 새롭게 꺼내들었다. 이주민을 그동안 너무나 많은 혜택을 염치없이 받아온 당사자로 지목하고, 혐오차별 세력의 주장은 매우 근거 있는 국민의 목소리로 둔갑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발표의 일방적인 피해자는 또다시 이주민이다. 더욱이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일부 혐오차별 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진정한 균형 잡힌 정책이 되려면, 첫째, 그동안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혜택을 많이 받아 간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교정하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하며, 둘째, 이로 인해 발생한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혐오차별세력을 규제 처벌하고 이를 넘어 다양성 증진을 통해 사회 전체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종합적으로 함께 논의되어야만 한다. '균형'은 사회 구성원 간에 어떤 기계적 지점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인종차별 조장과 철폐 사이에 중립이나 균형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5-28 이완

[수요광장]신뢰사회로 가는 길

편법·불법 전횡 근본적 차단 못한채선의의 피해자만 있다면 잘못된 구조법 잘 지키는자만 '바보' 인식 확산시민을 잠재적 범법자 만들게 아니라선량한 사람을 믿는 정책 전환 시급# 장면 1 올해 들어 어머니의 치아 통증이 심해져서 치과에 갔더니 틀니를 새로 해야 한다고 한다. 새로 하신지 얼마 안 되어 보험 적용이 안된다고 한다. 보험적용이 될 때까지 어머니께 참으시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새로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160만원을 부르더니 어찌어찌 100만원까지 내려갔다가 수납담당자가 브레이크를 건다. 간호사(그들끼리 '코디'라 부름)가 잘못 이야기했다고 하며 120만원이라고 한다. 그 숫자의 적절성을 따질 아무 기반이 없는 난 결국 120만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3개월여 주기적으로 어머니 모시고 치과를 다녔다. 그 사이 나도 치과 간 김에 오랜만에 스케일링을 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스케일링은 연 1회 보험이 적용된다. 당연히 그렇게 예상했다. 그런데 왠지 아쉽게 대충한듯한 느낌이었는데, 코디가 와 잇몸이 부었다고 잇몸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보험도 된다고 한다. 또 그러자고 했다. 잇몸치료를 좌·우·중앙 3번에 걸쳐 했다. 최종 점검을 위해 한 번 더 오라고 하는 것을 안 갔다. 나의 소심한 저항이다. 결론은 과거 스케일링 한 번에 끝날 일을 나눠서 한 것이다. 결국 나는 보험이 적용된 치료비를 합해서 거의 10만원을 지불했다. 능력 있는 코디를 만난 대가는 비쌌다. 지금까지 나는 '공동체주거 코디네이터'라고 나의 일을 소개해왔다. '코디네이터'라는 이 이름을 아무래도 바꿔야 할 것 같다.# 장면 2 대학 다니는 딸에게 연락이 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친구 언니가 창업을 했는데, 그 회사로부터 인건비를 지급받아서 일부 수수료를 떼고 환급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딸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래서 딸에게 물었다.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니?" 자신도 느낌 적으로 옳지 않은 것 같고 내키지 않아서 확인 차원에서 물어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불편함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딸에게 말했다. 너의 생각이 옳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고지식한 사람으로 살라고. 고지식한 딸이 불신 가득한 세상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이 예상돼 마음이 아프다.# 장면 3 내가 일하는 협동조합은 가끔 공공의 보조금을 받아 공익사업을 수행한다. 사업의 본원적 활동 이외 보조금 사업의 관리를 위한 행정업무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행정업무 간소화의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보조금 관리 집행 정산에 관한 업무가 간소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공공의 돈을 집행하는 것이니 투명하게 관리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행정 편의적으로 절차와 규제를 강화하고 사업자의 자율성을 제한한 결과가 '장면1~3'과 같이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편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전횡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도 못하면서 선의의 시민과 사업자만 힘들게 하는 구조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위법의 대가는 약하고 위법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위법이 반복되고 심지어 순진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불신을 확산시키고 그 대가를 엉뚱하게 법을 지키는 선량한 시민들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접근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시민과 사업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가정할 것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을 믿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후에 믿음을 저버린 자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량한 다수를 믿지 못하고 그 비용을 공공과 시민에게 부담시킬 것이 아니라 신뢰를 저버린 자에게 철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지만, 믿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신뢰의 법칙' 저자 데이비드 테스테노의 말이다. 믿는 자를 보호하고 배신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바로 신뢰사회로 가는 길이다. "어머님은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했던 김주영 선생을 믿었던 학부모만을 탓할 게 아니라 김주영 선생 같은 자가 더 이상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5-21 김수동

[수요광장]식탐 자극 먹방프로, 비만의 사회적 비용 책임 있어

방송가 점령 '적잖은 후유증' 지적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물 섭취과장되고 자극적인 장면 '한숨'시청률에 얽매여 '인기프로 고집'결국 '비만 연결' 부담은 국민의 몫요즘 TV를 켜고 리모컨을 돌리다 보면 온통 '먹방'과 '쿡방'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이 매우 흔하게 등장한다. 이 두 콘텐츠 중에서 하나가 없는 예능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먹방 전성시대'임이 실감난다.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은 물론이고 지상파 3사에서도 이런 먹는 방송이 넘쳐난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먹방'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먹방과 쿡방이라 쓰고 예능이라 읽는다'는 말이 억지스럽지 않아 보일 정도다.종영한 예능프로 중 '윤식당'을 떠올려보면 요리 프로가 얼마나 대세인지 그 위력이 느껴진다. 당시 '윤식당2'는 케이블 예능 최초로 시청률 16%를 기록하는 등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를 만든 나영석 PD 연봉이 4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능프로의 경제적 영향력도 새삼 알 수 있었다. '윤식당' 성공 이후 나 PD 사단에서 독립해 비슷한 소재와 기획으로 제작비를 덜 들이면서 재미를 보고 있는 예능프로가 우후죽순 늘어난 점도 방송가에서는 화젯거리다. '돈 벌려면 나영석처럼 해라'는 공식까지 생긴 것이다. 현재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는 '스페인 하숙'이나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도 그중 하나이다. '먹방' '쿡방'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물론 상식 수준의 '먹방' '쿡방'의 재미와 가치를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요리와 부엌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이는 요리하는 남자가 나오는 '쿡방' 덕이 크다고 본다. 요리와 거리가 멀었던 남성을 주방으로 끌어들이고, 가사분담 등 긍정적인 사회 변화에 일조한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쿡방'이나 '먹방'이 방송가를 점령하면서 그 후유증 또한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도한 '먹방' '쿡방'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탐 문화를 조장하거나 비만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과장되고 자극적인 '먹방'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모방'할까 염려스럽다. 어쩌면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폭식 욕구를 느끼게 할 수도 있어 보인다.최근 우리나라 비만 통계를 보면 엄청나게 가파르게 비만인구가 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초고도비만 인구 비율이 특히 20~30대 사이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104명, 잘못된 식습관으로 사망하고 10년 이내 국민 10%가 고도비만이 된다고 하니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쿡방' 열풍에 대한 또 다른 부정적인 지적은 '푸드 포르노(Food Porno)' 관점이다. '푸드 포르노'라는 용어는 미국의 여성학자 로잘린 카워드가 처음 사용했는데, 음식이나 먹는 영상, '먹방'이나 '쿡방'을 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뜻한다고 한다. 비만 조장이나 '푸드 포르노' 관점의 문제점 외에도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방송 프로그램 포맷의 획일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다양한 포맷과 풍부한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시청률과 트렌드만 좇는 비슷한 프로그램만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먹방'과 '쿡방' 모두 다른 예능프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데 비해 높은 화제성을 보이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청률과 제작비 등 방송 속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시청률에 얽매여 비슷한 인기 프로만 고집하면, 시청자의 시청 선택권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도한 '먹방'과 '쿡방' 열풍으로 인한 문제는 비만과 연결되어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곧 국민들 부담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올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식욕을 자극해 '먹방'과 '쿡방' 열풍 혜택을 보았다면 이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5-14 김정순

[수요광장]평창올림픽, 영원한 유산으로 남기자

올림픽 성공 좌우하는 '유산 관리' 스포츠 발전 외에도 사회변화 유도이달부터 정식업무 시작된 기념재단남북체육교류 등 다양한 사업 준비국민의 많은 관심·지원 요구된다 지난해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산사업을 총괄할 2018평창 기념재단이 강원도 평창올림픽 주사무소에서 5월 1일부터 정식업무를 시작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올림픽 개최에 소요되는 투자규모가 커지고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의제가 대두되면서 올림픽 유산(Olympic Legacy)은 올림픽 유치와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올림픽 유산은 올림픽 개최가 대회의 전(前)과 후(後)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고, 성공적인 대회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와 관련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주된 관심사는 '긍정적인 유산' 창출이다. IOC는 올림픽 유산을 도시의 대회이미지 제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스포츠 시설·교통 인프라 확충, 도시재생 등의 '유형적' 형태와 국민의 자부심, 국가 문화유산의 재발견, 새로운 기술 습득, 환경의식 변화 등의 '무형적' 형태로 나누고 있다. 또한 유산의 범주를 크게 스포츠, 사회, 환경, 도시, 경제 등 5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스포츠 유산(Sporting Legacy)은 올림픽을 위해 지어지거나 재정비된 스포츠 베뉴들로, 올림픽 폐막 후 지속적인 스포츠 유산의 계승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둘째는 사회유산(Social Legacy)으로, 올림픽은 사회적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유산들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는 대회를 위한 자연지역 복원,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등 환경정책 수립을 통한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환경유산(Environmental Legacy)이다. 넷째, 도시유산(Urban Legacy)이다. 많은 경우 도시의 낙후된 지역들이 올림픽 경기장의 건설을 위해 재건되며, 이 장소들은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으로 도시에 활력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유산(Economic Legacy)이다. 올림픽은 직접적으로 대회계획과 운영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대회 중·후 경제활동의 증가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 낸다.이와 같이 올림픽유산은 스포츠의 발전에 국한되지 않으며 한 국가의 사회전반에 걸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올림픽의 사회적 유산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며, 올림픽을 통한 사회 기본발전이라는 것이 유산의 핵심적인 사안이다.이제 막 새롭게 출발하는 2018평창 기념재단은 평화와 새로운 지평, 동계올림픽발전을 위한 유산사업을 추진한다.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대회가 관계기관 간 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처럼, 올림픽유산사업도 협력기반인 기념재단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유산을 관리하고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남북체육교류 사업 등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유산 중 하나인 평화를 계승하고 개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동계스포츠 교육프로그램(드림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다. 이를 통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슬로건인 '새로운 지평'을 열어 동계스포츠 발전을 위해 다양한 국내외 동계스포츠 대회의 개최를 지원하고, 동계스포츠 체험캠프 등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계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2018평창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필자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평창올림픽 당시 선수촌장을 맡아 대한민국 스포츠역사의 한순간을 함께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기념재단의 올림픽유산을 확산하기 위해 IOC 및 국제경기연맹, 국제기관 등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조직에 스포츠계는 물론 다양한 분야·계층이 참여해 유산정책 개발 및 추진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다양한 유산과 기억이 역사의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8 평창올림픽이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긍정적 유산이 되려면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2018 평창올림픽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5-07 유승민

[수요광장]수필에 대한 기억

해방후 문학은 '母語 세련화' 선호1970~80년대 '미셀러니 류' 압도적1990년대 이후에는 법정수필 각광날카로움으로 새로운 지향성 제시점점 교과서수록 빈도 줄어 아쉬움해방 후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문학교육'은 매우 중요한 국민국가 구성원 만들기에 기여하게 된다. 이때 모어(母語)를 미학적으로 세련화하고 현대인의 일상을 잘 묘사한 수필 작품이 선호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특별히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수필들이 해방 후 교과서에 집중 수록된 것은, 해방 후 씌어진 새로운 작품의 성층이 두텁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학사에서 수필의 전통이 연면하게 이어져왔음을 알리려는 계몽기획의 일환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1970년대까지 이어져갔다.우리 기억 속에 1970~80년대에 배운 교과서 소재 수필은 피천득의 '수필'에 나오는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는 비유적 명명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래서인지 중후한 인문적 에세이보다는 경험적 구체성이 녹아 있는 미셀러니 류가 압도적으로 실렸다. 그 애틋한 목록을 열거해보자. 지금은 교과서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작품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양주동의 '몇 어찌'와 '면학의 서'와 '질화로', 김진섭의 '백설부', 정비석의 '산정무한', 나도향의 '그믐달', 최남선의 '심춘순례', 피천득의 '인연', 이양하의 '경이 건이'와 '나무', 이희승의 '딸깍발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 유달영의 '슬픔에 관하여', 이상의 '권태'와 '산촌여정', 윤오영의 '마고자', 이하윤의 '메모광', 전숙희의 '설', 한흑구의 '보리' 등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와 제목만 열거해도 그 자체로 고색창연하기 그지없다.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법정 수필이 많이 실렸고, 전혜린, 이어령, 박완서, 장영희 등이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광범위한 제재 확장에 따라 월북작가들 작품이 수록 범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월북작가들의 전면적 해금에 따라 수필 분야에서는 이태준, 김용준 등 소위 문장파(文章派)들의 고담한 수필이 즐겨 수록되었다. 김기림의 짧은 글 '길'도 선호되었다. 또한 시인이나 작가들이 쓴 수필들도 적지 않게 실렸는데, 박두진, 조지훈, 이청준, 전상국 등의 수필이 실리기도 하였고, 예외적으로는 해외 수필이 번역되어 다수 실리기도 했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비롯하여 가드너, 임어당 등이 주요 고객이었다가, 최근에는 나쓰메 소세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미셸 투르니에, 움베르토 에코 등의 작품도 들어와 있다. 지금도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슈낙의 작품은 우울함과 비애의 선명한 감각으로 곧잘 회상되곤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고전 작품들 중에 교술 양식에 포함되는 작품들도 수필에 준하여 많이 소개되었는데, 박지원의 '물'이라는 작품을 배운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교과서 수록 수필들은 대개 진솔하고 투명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 욕망을 줄곧 보여주었고, 나아가서는 특정 주제에 대하여 독자와 소통하려는 친화와 계몽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울리는 명편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진솔함과 소통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때 고백과 소통의 내용이 그 자체로 타자의 삶에 충격과 변형을 주려는 계몽 의지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 수록 수필들은 서정성과 비평 정신, 고백과 소통, 인생론과 문명 비판론 등 다양한 문양들을 복합적으로 내장하면서, 수필이 창작과 비평의 정신을 동시에 가진 양식임을 증명해주었다.수필은 문학 갈래 중에서도 독특한 성질을 지니는 문학이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과 같이 창작 문학에 가까우면서도 형상화에 의한 순수한 창작이 아니고, 비평적이면서도 이해와 성찰에 의해 평가에 이르는 순수한 비평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여 그 형상과 존재의 의미를 밝히기도 하고, 날카로운 지성으로 새로운 양상과 지향성을 명쾌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이러한 수필의 속성을 두루 경험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나, 요즘 점점 수필의 수록 빈도가 낮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도 더해져 간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4-30 유성호

[수요광장]더욱 적극적인 소통·교류에 모두 나서야 할 때다

다문화수용도, 성인보다 청소년'↑'이주민과 이웃·선생님·친구·가족順긴밀한 관계일수록 쉽게 받아들여교류 적은 어른들의 인식개선 노력자주 만날수 있는 환경만들기 시급 지난 4월 19일 여성가족부는 2018년 국민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다문화수용도는 52.81점에 불과했으며, 같은 조사를 한 2015년에 비해 더욱 낮아졌다고 한다. 이는 적어도 이주민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공존하기 위한 여러 관련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올곧이 믿는다면 더욱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결과이다. 성인과 다르게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도는 71.22점으로 성인과 큰 차이를 보였으며, 2015년에 비해서도 증가했다고 한다. 그럼 청소년과 성인의 결과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주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비율이 청소년은 3년 전에 비해 34.7%에서 41.1%로 증가했으나, 성인은 오히려 41.2%에서 32.4%로 크게 감소한 점을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이번 실태조사의 책임연구원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연구위원은 "청소년이 성인보다 다문화수용성 수준이 월등히 높은 것은 이주민의 증가가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다문화학생과 관계의 양과 질이 높아졌으며, 지속적인 다문화이해교육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듯 이주민과의 관계 유형에 따라 다문화수용도가 달라졌다. 이주민과 이웃, 선생님, 친구 그리고 가족의 순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을수록 수용도가 높았으며, 다문화교육과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많을수록 다문화수용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주민과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그 만남이 많을수록 기존의 오해와 편견을 넘어 상호 이해의 폭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정은 더 파악해 봐야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이주민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0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한국에서 지속적인 삶을 영위해 온 점을 생각한다면, 성인들의 이주민과의 관계회수와 만남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그러나 만일, 성인들의 다문화수용성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가 이주민과 더욱 심화된 관계단절 그리고 배제 현상 때문이라면, 그래서 관계가 단절되고, 수용도가 더욱 떨어지고 이로 인해 더욱 배제와 단절의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 것이라면 이는 매우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2014년 UN인종차별특별보고관과 함께 인종차별을 당한 당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들이 머물고 있는 쉼터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로 농업노동자였던 이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물어보자, 모두가 당황하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농촌과 산간에서 주로 일해 왔으며,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하루 이틀의 휴일을 가졌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으로부터 단절되고 배제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일반 한국 대중들과의 접촉점이 거의 없어서, 사장으로부터 심한 인종차별을 당한 사람은 많았으나, 이외의 한국인에게는 일상적인 인종차별을 겪을 기회마저 없었다. 외지고 단절된 곳에서 한국인과 교류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로 한국인들이 먹을 채소와 야채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이주민은 한국사회에 이미 200만명이 넘게 존재하지만, 기존 한국인의 일상적인 시각과 생활밖에 존재한다. 한국인의 생활수준과 건강유지를 위해 필요한 생산물을 만들어 내지만, 더욱더 배제된 존재로 그들만의 게토로 내몰리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를 그들만의 게토로 몰아넣는 현재의 잘못된 정책을 당장 변화시켜야 하겠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청소년에 비해 수용도가 더욱 떨어지고, 교류의 양과 질도 하락하고 있는 성인들의 인식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성인들에게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공간에서 집중적인 다문화이해교육이나 다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그렇다면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더욱 적극적인 교류와 소통시도일 것이다. 시민들이 이주민과의 교류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이주민들도 한국인과의 만남과 교류에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고 이를 자연스럽게 독려해야 하겠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소통과 교류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4-23 이완

[수요광장]가장 '나' 답게 사는 '우리' 집

과밀화된 도시 주거 갈등 진원지로잇단 시민 발길 공동체주택 설명회 '비싼 집값·단절된 관계' 대안 주목수요맞춤·지불가능·좋은이웃 장점'외롭고 힘든 시기 대비' 바로 시작얼마 전 우리 협동조합이 공동주관하는 수도권 협동조합형 공동체주택 입주자 모집 설명회가 있었다. 충분히 여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다. 공동체주택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빠르게 늘고 있음을 실감했다. 여러 해 동안 공동체주거 전도사를 자처하며 공동체주택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나로서는 매우 보람된 순간이기도 했다.그렇다면 공동체주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집값이다.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싸져 버린 집값은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는 물론 보통의 중산층마저도 하우스푸어와 전세난민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다음은 '관계'의 문제다.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중시했던 우리 사회는 어느새 함께 사는 법과 공동체 기반을 잃어버렸다. 과밀화된 도시 주거 환경에서 관계가 단절된 우리의 집은 많고 다양한 주민갈등과 세대갈등의 진원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주택이 하나의 대안으로 시민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주택은 일반 주택과 무엇이 다른가?첫째, 나의 필요에 맞는 집이다. 공동체주택은 수요자 맞춤형 주택이다. 사업자에 의해 만들어진 집에 맞추어 사는 집이 아니라 나의 필요에 맞도록 집의 크기와 공간을 직접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둘째, 지불 가능한 집이다. 사적소유를 압박하는 현 주택시장에서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상당한 빚을 지고 집을 살 수밖에 없으며, 집을 사고 나면 집값에 집착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공동체주택은 소비자주도 건축으로 집값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으며, 공유공간을 활용하여 내 집을 작게 해도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유권도 개인소유, 협동조합소유, 임대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내 형편에 맞춰 적정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셋째, 관계가 살아 있는 집이다. 공동체주택은 서로가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이다. 이들의 관계는 과거와 같이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힌 부담스러운 관계가 아니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무시하는 폭력적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가치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인 자율적 개인의 느슨하면서도 열린 공동체이다.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독립적이면서 고립되지 않고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공동체주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이상 이야기한 3가지가 일반주택과 비교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주택은 함께라서 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공동체주택의 개발절차 또한 일반주택과 확연히 다르다. 일반 주택은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분양하고 집이 지어진 후에 입주를 하게 된다. 하지만 공동체주택은 입주희망자 모임이 먼저 형성된 후에 건축과 공동체 관계형성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집만 짓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으로서의 관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동체주택의 주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마련하는 소비행위가 아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소중한 이웃과 함께 나답게 우리답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인 것이다. 다양한 자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공동체주택을 이야기하고 집과 주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공감을 한다. 하지만 막상 언제쯤 공동체주택을 실행에 옮길 것이냐고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자녀들 독립하고 난 후에, 심지어 더 나이 들어 홀로 남은 후에 생각해 보시겠다 하는 분도 계시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 당장 절실한 문제는 아니기에 막연하게 후일로 미루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나이 들어 특별한 일 없고 외롭고 힘들 때' 공동체를 찾겠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나이 들어 외롭고 힘든 나를 누가 반기겠는가? 공동체주거는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외롭고 힘든 시기를 대비하여 바로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4-16 김수동

[수요광장]언어폭력 막말 정치인들, 실 보다 득이 많다고?

폭언·수준 낮은 질문 '인사청문회'돌출발언·품격 잃은 표현들 '난무'인지도·존재감 짧게 유지되겠지만갈등 유발로 국민들 신뢰하지 않아미래세대 위해 혐오정치 자제해야서슴없이 막말을 내뱉는 그들은 당당했다. 막말 전문가답게 침착하고 자신감까지 넘쳐 보였다. 마치 혐오 유발 경진대회를 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인사청문회장 풍경이다. 내정 인사 후보자들의 부적절한 언사와 이들에게 제기된 의혹도 민망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인신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인 낮은 질문 수준에 폭언과 막말만 무성했다는 점이다. 청문회의 본질은 업무능력이나 정책 관련된 질문을 통해서 후보들의 업무수행 능력 검증에 있다. 당연히 시간과 품을 들인 수준 높은 질문 속에서 후보들의 면면이 드러날 수 있고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진다. 그저 '막말쇼' 같아 보이는 청문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공직자들의 바른 품성과 바른 언어사용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뿐 아니다. 얼마 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돌출발언은 또 어떤가. 국회에서의 당 원내대표 연설 파문도 모자라 대구 방문에서는 '뼛속까지 빨갱이' 등 운운하는, 가뜩이나 경색된 정국에 사회적 갈등까지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젊은 야당의원의 품격 실종 막말까지 가세해 점입가경이다. 당대표를 향해 '꼰대', '불통', '찌질' 등 혐오정치의 극단을 보이는 듯한 표현들이 난무했다. 물론 막말을 일삼는 그들의 속내와 셈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 자극적인 말을 통해 유명세를 빨리 손쉽게 획득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매체 시대에 이들의 막말이 매체의 화제로 떠오르고, 갑론을박으로 이어진다. 막말 당사자는 인지도를 얻고 또 나름의 존재감까지 더해진다. 막말 정치인이 점점 많아지는 실태를 보면 실보다는 득이 많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과연 정말 그럴까. 단기적으로는 지지자들을 열광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생명을 짧게 끝내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언어적 유희와 막말 공격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입만 열면 막말을 내뱉는 이들의 말을 일부가 추종할 수 있지만, 다수 국민들이 이런 행태를 신뢰하진 않을 것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신뢰는 생명줄이다. 인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유권자들에게 받는 신뢰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과 막말을 지지할 정도로 국민들은 낮은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그들에게 더 혐오를 느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독기 어린 맹비난과 혐오 발언에 무거운 피로감이 느껴진다. 정치인의 독한 막말 언어폭력은 정치 혐오와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킨다. 사회적 제재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우리 사회는 불신, 정치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환경 파괴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진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상대라도 상대방의 바른 언어사용과 바른 태도 앞에서는 무조건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상대가 경청하고 싶어지도록 품격 있고 올바른 언어를 통해 상대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고 툭하면 거친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한다면 남는 것은 갈등과 상처뿐일 것이다. 여기에다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 있다. 이 험한 표현들은 방송과 각종 사회망서비스(SNS)를 타고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도 쉽게 전달된다. 우리나라 국민을 대표한다는 지위 높은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우리 어린 꿈나무들은 고스란히 지켜보고 배운다.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모습을 전체 국민, 특히 학생·청소년에게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을 보고 배울지 끔찍하고 두렵다. 진보·보수 진영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 모두 흉측하고 저질스러운 혐오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곧 황사가 심한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대기오염과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눈에 보이는 황사로 인한 환경 문제는 국가적 과제이다. 막말과 언어폭력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언어를 훼손시키고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막말 사용 정치인들은 황사나 미세먼지 못지않게 심각한 환경 파괴자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4-09 김정순

[수요광장]환경 변화에 따른 스포츠 콘텐츠의 변화

미세먼지 일상화 실내스포츠 대세닌텐도·VR 운동콘텐츠 속속 개발스크린스포츠 10년새 50배 증가세급변 속에 스포츠 본질 간과말아야전통성에 전 연령층 소비 충족을요즘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바로 미세먼지이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가 되었으며 공기청정기는 가정과 학교, 회사에 필수품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환경도 점점 트렌드가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전에는 실외스포츠를 선호했다면 현재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감 없이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결과적으로 탁구, 배드민턴, 수영과 같은 전통적인 실내스포츠들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미세먼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으며 매출에서 그 뚜렷한 성과를 볼 수 있다. 예시로 수영업계의 경우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수영장 운영업의 매출액은 2012년 132억원에서 2016년 236억원으로 약 2배가 상승하였다.이외에도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욱 다양한 형태의 운동 콘텐츠들 또한 속속히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닌텐도 Wii를 활용한 운동, VR을 활용한 승마, 야구 등의 콘텐츠들이 있다. 지난 3월 개최된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사업전(SPOEX)에서는 실내운동 기구들은 물론 화려하고 재미있는 모양새를 보이는 새로운 기구들과 운동 콘텐츠들이 전시되었다.야구, 축구 같은 대표적인 실외 스포츠도 이제는 스크린 야구나 풋살 같이 규모는 작지만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모양새로 다변화하고 있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골프, 낚시, 사격, 배드민턴, 컬링, 등 다양한 스포츠로 이루어진 스크린 스포츠의 총 규모는 2007년 1천억원에서 2017년 5조원의 시장규모로 10년 이내에 약 50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미세먼지와 최근의 기후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스포츠 산업 기업들이 발 빠른 대처를 하고 있고,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눈에 보기에도 큰 변화가 스포츠 산업계를 흔들고 있다. 환경에 따른 대안을 내놓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변화이다. 다만 이렇게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변화 속에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스포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스포츠는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개인의 정신적 발달과 사회적 측면을 형성시키고 공동체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를 존속 및 발전시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줄다리기, 계주 등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체육활동을 통해 사회의 적응력을 기르며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기른다.역사와 전통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체육은 그 의미가 깊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세계인들의 축제인 올림픽이 있다. 기원전 776년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올림피아에서 처음 개최되었다는 이 이벤트는 진행되는 동안 전쟁이 중단, 휴전이 되어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이러한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올림픽은 현재까지도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며 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와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기존 스포츠의 의의는 현재 막 발전되고 있는 신생 스포츠들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존의 체육을 여러 방식으로 접목시켜 보다 재미있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좋은 현상이다. 다만 우리는 스포츠의 본질에 중심을 두고 그 역사와 전통성, 의의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급격하게 다변화하는 스포츠 산업계에서 하루빨리 모든 연령층의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전통성과 소비자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콘텐츠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필수항목으로서 스포츠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4-02 유승민

[수요광장]말의 인저리 타임을 위하여

사계절 표현 言衆들 인준받고 정착공통감각 없으면 사용 드물고 사라져훌륭한 작가들 없어지는 말 되살려미학적 변형 거쳐 예술적으로 승화창조적인 언어 만들어 내는 역할우리가 쓰는 말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그 타당성과 적실성이 언중(言衆)들에 의해 인준을 받으면 정착되고 그렇지 못하면 드물게 사용되거나 사라져가게 마련이다. 가령 사계절을 뜻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당연히 평등한 위상을 갖추고 있지만, 합성어나 파생어를 만들면 어울리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보통 봄이 오면 '새봄'이라고 하지만 우리 말에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은 없거나 거의 쓰지 않는다. 아마도 봄만 '새로움'에 어울린다는 언중들의 공통감각이 그러한 선택적 불균형을 낳았을 것이다. 반면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한창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한'을 붙여 파생어를 만들면 '한여름'이나 '한겨울'은 자주 쓰는 데 비해 '한봄', '한가을'은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여름과 겨울은 심리적으로 길고 또 더위와 추위의 정점을 표현하는 말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봄과 가을은 비교적 짧게 지나가는 과정적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한'을 붙일 정도의 정점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자연 현상이나 사물에 계절을 붙여보아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계절을 뜻하는 '철'을 붙여보면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 모두 평등하게 많이 쓴다. 이르거나 늦은 느낌을 주려는 초봄,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도, 늦봄, 늦여름, 늦가을, 늦겨울도 그렇다. 그런데 비나 눈, 바람 같은 것을 붙이면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 현상이나 사물은 대체로 봄에 기지개를 펴고 여름에 절정을 보이다가 가을에 소멸하기 시작하여 겨울에 잠드는 형상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모든 자연 현상이 활력을 보이는 여름은 그것을 특화하여 지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령 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은 많이 쓰지만 굳이 여름바람은 많이 쓰지 않고, 봄비, 가을비, 겨울비도 낭만적으로 다가오지만 여름에 비가 많이 오므로 여름비는 따로 부르지 않는다. 눈의 경우는 거꾸로 겨울눈이라는 말이 없고 대신 '봄눈'이 있다. 여름에는 아예 눈이 안 오니 여름눈은 없을 테고, 가을눈도 있을 법한데 별로 쓰지 않는다. 봄눈은 한자로 '춘설'이라 하여 한 해를 축복하는 서설로 여긴 적이 많다. 정지용의 명편 '춘설(春雪)'도 있지 않은가?"문 열자 선뜻!/먼 산이 이마에 차라"라고 시작하는 이 작품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옛시조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한시의 상투어들은 봄눈이나 꽃샘추위를 한결같이 봄의 방해자로서만 그려낸다. 그러한 외적인 '손발의 추위'를 내면적인 '이마의 추위'로 만들어낸 이가 시인 정지용"이라면서 '춘설'의 첫 구절이 천하의 명구라고 감탄한 바 있다. 만일 이 작품이 겨울에 내린 눈을 대상으로 했다면 그 파생적 감동은 훨씬 덜했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춘설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봄눈'은 아직도 우리 귀를 울리고 있다. 옛적에 봄꽃 피어나는 순서를 뜻하는 '춘서(春序)'라는 말이 있어 매화에서 시작하여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이 피어나는 차례를 가리킨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러한 순서가 물리적으로 확연하지 않아 이 단어도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말은 마치 화폐와 같아 이미 언어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을 다시 쓰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흡수하고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좋은 작가들이야말로 선행 언어들을 흠모하고 훈련하여 거기에 일정한 미학적 변형을 가하여 그것을 예술적 차원에 놓은 이들이라고 갈파하였다. 지금도 어디선가 말은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사라져간다. 공통감각에 안 맞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공감을 얻은 말들은 지속적으로 퍼져만 간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말도 무한경쟁 속에 살아남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륭한 작가는 사라져가는 말을 되살려 그네들에게 일종의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을 주어 그 시간 동안 가장 아름다운 결승골을 넣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위대한 작가가 언중들에게 가장 낡은 말을 새로운 공통감각의 차원으로 건네는 창조적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3-26 유성호

[수요광장]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다

뉴질랜드 테러로 전세계 큰 충격이주민·난민적대 국내도 예외 아냐고든 올포트 증오범죄 5단계 나눠부정적 발언·기피 극단행위 '씨앗' 평화 지키려면 내부 차별등 맞서야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지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두 곳에 백인 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가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현재까지 50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이민자와 난민, 특히 무슬림에게 반대하며, 백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극단주의자다. 그는 이 테러 장면을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방비의 시민에게 총을 난사해서, 심지어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행동에 어떤 논리적 해석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져있으며, 한국사회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상황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왜냐하면, 이주민, 난민 특히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있어 더 이상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후인 3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은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샤프빌에서 벌어졌던 인종학살을 기리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샤프빌 사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의해 통행증을 소지하고 다녀야 했던 흑인들이 경찰서에 통행증을 반납하는 비폭력 시위에 백인경찰들이 총기를 난사해서 6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이 사건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부는 자신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각자의 차이에 따라 분리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분리를 당연시하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에 UN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이날을 세계 인종차별철폐의날로 정하고 전 세계에서 기념행사와 더불어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날을 기념하여 기념일과 가까운 3월 17일 일요일에 전국 곳곳에서 행사가 이어졌다. 서울에서 진행된 인종차별철폐의날 기념행사 맞은편에는 비록 30여명의 소수의 인원이지만, 난민과 이주민 그리고 다문화사회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이들은 이주민과 난민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되고,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분리되어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과 뉴질랜드 총기 테러범의 주장 그리고 며칠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반난민, 반이주민 집회의 주장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난민 이주민 반대집회를 보며, 뉴질랜드 총기테러를 연상한다는 것이 너무 과한 상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도 테러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혐오와 차별의 끝에는 결국 이런 비극적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증오범죄를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 부정적 발언, 2단계 기피, 3단계 차별 및 은밀한 적대, 4단계 물리적 공격, 5단계 학살의 단계다. 한국사회는 현재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부정적 발언과 차별이 결국에는 극단적인 배제와 테러행위로 이어지는 씨앗이 된다.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한 대응에 국가와 사회가 전력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총격사건 이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우리는 200개 이상의 민족과 160개 이상의 언어로 구성된 자랑스러운 국가입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 참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공감과 지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행동을 저지른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규탄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선택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그리고 그 너머 세계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곳이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함께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다.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규탄하고, 한국사회 내부의 차별과 혐오에 온 힘으로 맞서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3-19 이완

[수요광장]n분의 1은 공정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역할 주고다양한 수준 참여기회 제공해야'쓸모없는 사람없고, 모든 시간은동등하다'는 타임뱅크 사상에 근접상황맞게 '1인분役 부여' 가장 공평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3차 협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신고·인가된 협동조합은 1만615개로 확인되었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된 이후 약 4년 만에 드디어 1만개를 넘어선 것이다. 가히 협동조합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그러나 실제 사업 운영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은 53.4%로 절반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협동조합이 만들기는 쉬워도 운영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의 운영, 왜 어려울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은 한두 가지 사례를 일반화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 필자가 쓰는 이야기는 어느 가치지향적인 모임과 커뮤니티가 사업조직으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 협동조합 이야기임을 밝혀둔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노동과 자발적 참여로 작동한다. 이때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참여하고 일하는 게 민주적이고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낯선 조직이다. 오랜 시간 시장에서 거래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우리가 협동하는 인간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조합원 노동의 문제는 스스로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때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타트업 협동조합 대부분의 초기 조합원들은 관계로 참여한 것이다. 도와주는 마음으로. 사실 이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상태의 조합원들이 늘어나면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리더그룹은 소진현상이 나타나고 조력자 그룹은 "왜 나만?"하는 화가 쌓이고 '연결'보다는 '느슨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다수는 언제든 발을 뺄 준비가 되어 있다.나름 조직의 체제가 필요한 것이 이 시점이다. 조합원으로서 자부심, 활동의 가치, 성장의 기회 등 조합이 조합원에게 미치는 경제적 비경제적 영향이 개인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조직의 체계를 구성하여 모든 조합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다양한 수준의 참여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조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조합활동에 투입한 돈과 시간에 비례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새로운 차별과 권력이 되지 않고 건강한 리더십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주목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의 비전과 미션 신념체계, 조합원으로서의 행동강령 등을 공유하면 효과적일 것이다.정례적인 활동과 교육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리더그룹을 발견하여 활동가로 육성하여야 한다. 협동조합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봉사자, 서번트 리더십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이 돌아가도록 하는 사람들, 환대하고 맞이하는 사람들, 함께 하자고 손 내미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 이러한 리더십이 조직 내부에 확산되고 드러날 때, '느슨한'에 중심을 두고 있던 사람들이 '연결'을 경험하며 스스로 '나도 조합원이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 것이다.다시 n분의 1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것은 어쩌면 (화폐로 환산된) 등가가치의 교환을 의미한다. 이 시스템에는 평가보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일반회사는 여기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쓰고 있다. 그런데 늘 불만이고 오히려 평가보상체계가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은 어떻게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등하다"라고 주장하는 타임뱅크의 사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 교환은 꼭 PtoP(당사자간)일 필요가 없다. 커뮤니티(공동체) 내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순환할 수 있다면 자본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소중한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이러한 선물과 증여의 경제, 리더십의 순환이 작동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은 타인과 비교에 의한 n분의 1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1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이다.n분의 1의 미신을 깨는 것, 협동조합의 협동은 그곳에서 시작된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3-12 김수동

[수요광장]북·미 하노이회담에 가려진 3·1절 100주년을 보내며

매체들 회담결과 갑론을박 호들갑'100주년 의미·과제' 보도엔 인색비폭력으로 더 빛난 헌신·애국정신공유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 중요'기념비적 축일' 덮는 일 없어야지난 3·1절,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늘 그렇듯이 3·1절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하루 반짝 기념행사를 한다. 언론 매체들도 이날을 전후해 기념행사를 다루거나 자체 특집 보도를 하곤 했다. 그리곤 끝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마저도 하노이회담에 가려 조명받지 못한 것 같다. 실제로 매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북·미 하노이 회담 결과를 두고 갑론을박 호들갑스럽게 논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3·1절 100주년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보도엔 매우 인색했다. 심지어 어느 유력 일간지는 3·1절 당일 1면에서 12면을 모두 회담 내용으로 채우고도 성이 안 차는지, 노딜이 여권의 실책 인양 비판적 논조로 일관했다. 물론 '논평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던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 찰스 스콧의 말이 떠오른다.사람은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지 심리학 연구 결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언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리고 싶은 것만 관심갖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는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 100주년이 되는 3·1절을 눌러가며 매체에 도배된 그 많은 하노이 회담 논평들은 사실을 잘 전달한 것일까? 넘쳐나는 정보로 사실을 왜곡시키지는 않았을까 의문이 들면서 이번 100주년 3·1절은 특별한 언론 보도를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 또한 크게 다가왔다.필자는 돌아가신 애국지사 아버님 때문에 유독 더 3·1절이나 8·15처럼 특별한 날 언론의 보도나 논평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필자의 부친처럼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일생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떠난 모습을 지켜본 가족이라 느껴지는 기대일 수도 있겠다. 3·1절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끔 선조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을 기대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발굴, 존경과 추모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기대했다.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대했다. 물론 북·미 회담 성과 여부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기대하는 세계적인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 더없이 중요한 순간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비핵화와 비폭력은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우리 국민의 열망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전 세계가 비폭력을 열망하며 회담에 관심을 보내는 이때, 3·1운동이 비폭력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리고 부각시킬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싶은 것이다. 비폭력으로 더 빛난 3·1 운동의 헌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 형성 또한 언론의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언론은 적어도 3·1 운동이 세계사적 비폭력의 원형이라는 관점에서 더 관심을 보였어야 했다.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보도가 3·1절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역사의 축일을 간단히 덮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문득 오래전 필자가 일본 히로시마 시에 소재한 한 대학의 객원교수 시절, 경험한 일본의 8·15와 이번 우리의 3·1절이 오버랩 되며 그들의 추모행렬이 떠오른다. 덥고 습한 여름날, 종일 이어지는 검은 정장 차림의 긴 상복 행렬은 신기하다 못해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원폭에 희생된 슬픔과 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한 대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반면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된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는 우리 국민들의 추모 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몇 분이나 알고 있을지….이번 3·1절 관련 언론만 탓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독립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탑골공원은 국민 모두가 기념할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빈곤 노인들의 슬럼가처럼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게 바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현주소이자 3·1운동의 이중적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어느 교수의 탄식이 깊게 와 닿는다. 언론도 국민도 모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3-05 김정순

[수요광장]"고령사회 대한민국, 체육의 가치를 더해야 할 때"

'고령화' 선진국 비해 엄청난 속도준비도 못한채 상황 맞은게 문제노인 대상 프로그램 미비 한계점참여 의지 높이는 대책 마련 시급건강한 노년의 삶 '운동'은 필수대한민국은 IT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한일월드컵과 평창올림픽 등 세계적인 대회들을 치러낼때마다 성공적인 대회 운영과 함께 자국 기술력의 발전 속도는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놀라움을 자아냈다. 필자 역시 스포츠선수로서, 스포츠행정가로서 다양한 대회를 다니다 보면 자국의 변화 속도에 놀라곤 한다. 이렇듯 질주하는 변화의 속도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가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 자리 잡고 어느 시점에서 확연하게 다가온다.한국은 기술력의 발전 속도만큼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를 가진 변화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고령화 속도이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17년만인 2017년 8월 고령사회로 진입하였으며 통계청에서는 2022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령사회 도달 속도는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일본보다도 무려 7년이나 빠르게 도달한 것이며 프랑스 115년, 스웨덴 85년, 미국 65년 독일과 영국이 각각 45년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라 할 수 있다.고령화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저출산 등과 맞물려 일어난다. 국내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도 겪고 있는 변화이며 흐름이다. 이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평균 50년 정도의 고령사회 진입속도를 보였던 선진국은 고령화로 인한 자국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반면 한국은 그 변화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고령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생산인구의 감소와 의료비 및 복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체육이다. 체육을 통한 건강한 삶의 영위는 의료비 절감의 효과와 더불어 노인 인구의 지속적 생산활동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질병의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체육은 궁극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독일 등에 비하면 한국은 전 국민의 체육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스포츠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근래에 들어 지자체별로 주민들의 거주지 인근에 운동시설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과거보다 나은 스포츠 인프라를 구성해 가고 있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의 미비 및 지도자의 전문성과 운영 프로그램이 일부에 제한되는 등 한계점을 갖고 있다. 또한 거시적 관점에서 노인들의 참여 의지를 북돋고 지속할 현실적인 해결책도 시급하다. 미국의 경우 연령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과 프로그램이 정착해 있다. 이러한 스포츠 인프라는 약 19개 종목으로 구성된 미국시니어올림픽이 30년 넘게 이어지는데 기여했다.스포츠 인프라부터 시니어올림픽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인들의 건강에 대한 의식제고와 참여의지를 높이고 참여를 통해 심리적 소외감을 덜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래 세대가 노인에 대한 재해석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 속도, 그 완급조절에 체육이 필요한 이유이다.얼마 전 매체를 통해 가동 연한(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최대 나이)이 60세에서 65세로 높여진다는 뉴스를 접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나이를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높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내용이다. 어느덧 급속한 고령화 속도로 인한 변화는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고령화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느낄 것이다. 체육이 그 변화 속에 함께 한다면 한국의 초고령사회는 늙어도 늙은 것이 아닐 것이며 체육의 가치는 선수들의 금메달보다 더 빛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2-26 유승민

[수요광장]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에 빠진다는 것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상상 결과물도장 이용해 창조한 '스탬프 아트'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취미·놀이건조한 삶에 에너지 순간적 부여봄이 오면 '예술 세계' 발견해가자모든 예술은 현실 질서의 억압으로부터 순간적인 탈주를 꿈꾸는 상상적 운동의 결과이다. 물론 예술은 그러한 원심력에 일종의 관습적 형태를 부여하여 매우 구체적인 매혹의 대상이 되게끔 한다. 소리, 색채, 물질 등에 형식을 개입시키면 음악이 되고, 회화가 되고, 건축이 되고, 또 여러 예술 양식으로 번져갈 것이 아니겠는가. 프랑스 비평가인 장 벨망 노엘은 '정신분석과 문학'에서, "꿈, 놀이, 예술의 환영은 억압된 욕망의 변형된 성취이며, 현실 법칙에 길들여진 이들은 두 가지를 잃어버리는데, 그것이 유머와 예술"이라고 하였다. 역시 프랑스 비평가인 조르주 풀레도 '비평과 의식'에서 "놀이와 취향은 가장 매혹적인 자극인 동시에 가장 마르지 않는 몽상의 원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예술은 '꿈(몽상)', '놀이', '취향'과 겹쳐지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끔 하는 매혹을 두루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falling in art의 순간이다.최근 이러한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여기서 소개하는 '스탬프 아트'는 말 그대로 도장을 이용해 창조해낸 예술 세계를 뜻하는데, 윤정현이 쓴 '스탬프 아트에 빠지다'는 파격적인 친절함과 구체성으로 이 생소한 예술을 살갑게 만나게 해준다. 책에 들인 시간과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에 관한 저자 자신의 실물 경험을 다양한 시각적 서비스로 알려주는데, 저자는 이 복합적 현대예술에 빠져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우리에게 낱낱이 전해준다. 예술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일반론과 역주행하면서, 그녀는 예술이 행복 체험의 소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윤정현은 학창 시절 밤샘 공부는 하지 않았어도 미술 숙제할 때만큼은 아침 해 뜨는 것을 볼 정도로 심취했다는데, 그만큼 그녀는 예술과 오랜 연애를 한 셈이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가 스탬프와 잉크패드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세계로서, 시작만 하면 배우고 활용하고 장식해가는 확장성이 무궁하게 열린다는 것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예술은 더없이 행복한 취미이자 놀이가 된다. 이러한 경험적 확장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모양의 스탬프를 이용해 스토리북, 팝업북, 카드, 액세서리 등 세상에 유일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스탬프 아트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falling in stamp art다.그런가 하면 우리가 가장 오래된 예술 양식의 하나로 거론하는 서정시 역시 깊은 행복 체험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일찍이 아는 자보다는 좋아하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는 즐기는 자가 윗길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그처럼 모든 예술은 '즐거워함'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고, 우리가 읽는 서정시 역시 조곤조곤 그러한 행복의 순간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나태주 선생의 유명한 작품 '멀리서 빈다'에서는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된다//가을이다/부디 아프지 마라"는 전언을 들려주는데, '나'와 '너'가 서로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내는 상호의존적 행복 체험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더없이 중요함을 암시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이렇게 서정시에 빠지고, 한 편의 서정시는 마음의 '스탬프 아트'가 된다. falling in a poem이다.이처럼 우리가 예술에 빠진다는 것은, 나날이 가지는 건조한 삶의 사이클에 인지적, 정서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자신을 새롭고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부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니 예술은 이성적 영역을 넓히는 학문과는 달리, 체험의 부피를 키워가면서 상상적인 소망 충족을 해가는 행복 체험의 한 방식인 셈이다. 일찍이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는 세계라 갈파하였다. 봄이 오면, 우리도,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 세계를 발견해가자./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2-19 유성호

[수요광장]공동체 구성원의 자격, 기여론과 동정론

사회적 소수자였던 프레디머큐리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사랑받아사회기여 가능 여부로 구성원 판단동조 못하는 사람들 분리 배제 안돼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전설적인 록그룹 퀸과 리드싱어인 프레디머큐리의 생애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와 그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이 흥행의 주요 이유였다고 한다. 프레디머큐리는 아프리카의 잔자비르지역, 현재의 탄자니아에서 출생했다. 부모의 국적은 인도였고, 그는 인도인중에서 아주 소수민족인 페르시아계였으며, 20세 전후로 난민이 되어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리고 프레디머큐리 자신은 성소수자였고, 튀어나온 앞니 때문에 미남은 아니었다는 평이 있다. 출생지, 민족, 종교, 성적지향, 외모 면에서 그는 사회적 소수자였다. 게다가 '난민'이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와 관련된 국가인 이란, 인도, 영국 모두에서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 소수성의 집합과 같은 프레디머큐리가 이런 모든 불리한 배경을 극복할 만큼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모든 소수자가 대중 다수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럼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없거나, 속한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역할과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일까?작년에 한국사회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과 관련하여 유심히 살펴볼 법원과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 마크(가명)는 1999년 한국에 체류 중이었던 나이지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불법체류자로 단속되어 추방되고 난 후, 어머니와 동생들과 한국에 남아 체류비자 없이 줄 곧 생활하며,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되는 처지였던 마크는 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다 2018년 단속에 적발되었고, 외국인보호소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된다. 법원은 마크가 부모의 국적국가에 가본 적이 없고 부모국적국의 언어도 못하는 반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모두 능통하다는 점 그리고 마크가 한국에서 12년간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을 성실히 마쳤다는 점을 들며, 그를 추방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동안 마크에게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감안할 때, 한국사회에 사실상 손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게 하라고 판결했다.법무부도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영주 비자를 주었다. 비자가 없이 장기 체류했던 사람이 영주권을 받게 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사례는 이주민과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임에 분명하다. 다만, 마음 한구석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한국체류 허가에 있어 중요한 사유가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기여론과 동정론이라는 점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또는 인권과 인류애를 들먹일 정도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사연이 없고서야,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주민과 소수자를 옹호하는 쪽에서도,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결국 국가 사회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기여론을 강조하며, 동정적 시각과 함께 주류사회를 설득하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국가 사회에 대한 기여 가능 여부로 구성원의 자격을 판단한다면, 결국 개개인이 얼마나 그 사회에 필요한가를 주류의 기준으로 분리하고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 기준에 부합하거나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리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잣대가 항상 외부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모두가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기존의 한국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국립소록도병원 박물관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모두 다 모두가 다 이름 있는 모든 것이다.' 사람 한명 한명이 각자의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세상, 사실은 기존 한국 구성원 모두가 원하는 세상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구성원의 자격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2-12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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