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소유의 종말, 공유의 몰락

스마트폰·정보통신기술 발달로누구나 '접속' 가능한 시대 열려빠르고 효율적 플랫폼 경쟁 시작자본이 독점하면서 곳곳서 충돌기업권리만 주장 사회적책임 외면'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천불 국민소득'.초등학생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당시에는 저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국민소득 1천불'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80년대를 맞이하고 국민소득이 1천불을 넘어서면 모든 국민이 자기 차와 집을 가질 수 있다고 희망찬 미래를 제시했었던 기억. 그 기억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고 우리는 '마이 카, 마이 홈'을 향하여 치열하게 소유의 경쟁을 벌여왔다. 그 희망찬 미래, 우리는 다 이루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자기 차를 소유하고,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으며, 자가보유율도 60%가 넘는다. 국민소득은 무려 3만불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 가지고 다 이룬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소유' 대신 '공유'라는 낯선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유는 빠르게 우리 일상에 퍼져나갔다. 옷, 공구를 비롯한 다양한 물건에서부터 자전거, 차와 같은 이동수단, 집과 사무실, 동네부엌 등 부동산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은 물론 지식과 기술, 시간까지 이른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으며,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접속하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면서 그의 예언대로 '공유경제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듯했다. 사람들은 고장 난 자본주의 속에서 과거 '국민소득 1천불'과 같은 희망을 공유경제에 품기 시작했다. 모두가 공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유를 이야기하면 구시대적이고 공유는 무조건 좋은 것이란 사회적 착각이 작동했다. 그러자 선의와 호혜를 기반으로 했던 공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접속하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자본은 다시 그 플랫폼을 소유하였다. 공유경제는 자본이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기존 시장이해관계자들과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기업의 권리만 주장할 뿐,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였다. 최근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IPO(기업공개) 철회 기사를 보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워크 사태는 겉으로는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설립자가 부동산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 때,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다. 공유경제의 본질은 신뢰의 문제이다. 막대한 돈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자본은 사람을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으라고 했다. 대대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키웠다. 그들은 시스템을 믿으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공유경제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공유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그래서 플랫폼 기반 공유경제와 차별화되는 '커먼즈(commons)'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원하는 공유는 서로 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본이 소유한 시스템이 아니다. 상호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그 운영이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소유의 종말 이후 공유경제의 부흥을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아직 불확실하다. 아니 공유경제의 몰락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유와 공유의 문제는 단순히 '소유냐 공유냐'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공유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어렵다. 일단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소유는 줄이고 일상에서 다양한 관계와 공유를 늘려보자. 나는 공유주택에 살고 있다. 나의 일터는 조합원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다. 우리 사무실은 여러 입주단체가 함께 이용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공유사무실이다. 공유자전거인 '따릉이' 정류장이 곧 우리 집 가까이에 생길 예정이다. 나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공유주택에 살면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공유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 내 것은 많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10-08 김수동

[수요광장]'통합 메시지' 아예 없는 편가르기 세상

조국장관 임명 '긍정-부정' 갈려의혹 위법·윤리 본질보다 '진영논리'갈등만 보이고 '합의 노력' 안보여분노·분열보다 냉정 찾는게 바람직'네편-내편' 싸움 폐해 국민들 몫최근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시절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휴먼다큐 '아메리칸 팩토리'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하며 영화사들의 찬사 속에서 '융합'이라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큐 내용은 미국 내 중국 공장 얘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국경과 문화 차이로 갈등이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융합을 다루고 있다. 다큐는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편가르기식 정치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은 시기에 이런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던진 융합메시지가 전 세계에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의 갈등은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사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통합에 대한 신념과 노력은 이미 재임 시절에 높게 평가받았다. 실례로 재임 당시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는 심각한 갈등 상황에서도 오바마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을 감싸안았다. 갈등을 부추기는 대신 통합에 이르는 연설로 그렇게 했다. "우리 미국에는 두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애국자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애국자다." 대통령의 이 연설은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으로 가는 힘을 발휘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갈등 상황은 어떤가. 어느 정치인이 신념을 가지고 통합을 향한 노력을 보여줬던가? 조국 장관 혹은 정치권의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에 통합 메시지로 국민을 설득한 이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신념을 내세우며 정치인들의 삭발 릴레이가 있었지만, 통합 메시지와는 거리 먼 퍼포먼스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야당의 행보는 '발목잡기식'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를 맹비난하는 거친 모습 외엔 그 무엇도 없었다. 민주주의에서의 정당 정치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정당 간 서로 다른 의견과 조우하게 된다. 조국 장관 임명과 관련해 긍정과 동의도 많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갈등 수준을 간과하기에는 우려스럽다. 편향된 언론의 보도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 표출 방식도 다양하게 감지된다. 조 장관을 둘러싸고 있는 의혹에 대한 위법성 여부나 윤리적 책임이라는 문제의 본질보다 진영논리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요란스럽게 변질되고 있어 갈등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조국 장관을 지지하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건너편에서는 조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렸고 그 다음날에는 검찰이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과 혼란스러움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상대 진영의 잘못에 책임을 요구하며 집회할 수 있다. 또한 대립하고 경쟁하며 의견을 내고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건전한 대립을 통해 통합에 이르는 과정과 그 노력 속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갈등만 보이고 함께 풀어내려는 합의 노력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통합은커녕 편을 갈라서 서로 자꾸만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마치 공동체 정신은 실종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싸울 수도 있지만 대개는 대화에 공을 들이며 설득하거나 서로 양보해 타협 지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싸워서 양측 모두 손해를 보기보다는 타협하는 방법이 손실과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갈등과 분열로 가는 것 같은 현재 상황에서는 의견을 보태며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분열만 더 심화될 것이다. 분노하며 분열로 가기보다는 냉정을 유지하면서 여·야 모두 리스크 관리를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네편 내편' 편을 갈라 진영 싸움의 늪에 빠지게 될 때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10-01 김정순

[수요광장]전국체전 100주년,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길

최초 개최지 서울서 열려 '상징성'민족화합·체육발전 중추적 역할항상 국민에 희망·자부심 안겨줘국민들 경기장 찾아 많은응원 필요'역사·권위있는 행사' 관심 가져야올해로 100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산실인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이제 10일 앞으로 다가왔다(2019. 9. 24. 기준). 요즘 서울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100년을 맞이하는 전국체전을 알리는 홍보깃발과 현수막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대회는 오는 10월 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7일간 진행되며 야구, 농구, 수영, 탁구 등 올림픽 종목부터 씨름, 택견, 궁도 등 한국 전통 스포츠까지 총 47개 종목(정규45, 시범2)에서 17개 시·도 3만여명의 선수단이 열띤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전국적으로 매년 개최되는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인 전국체전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는다. 전국체전은 일제강점기 말기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6·25전쟁으로 중단된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1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올해는 제1회 대회 개최지인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은 전국체전 최초 개최지로서 100년의 상징성을 기리고 한국체육 발전의 전환점이 되는 미래 100년의 출발점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또한 각종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체육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발전 및 세계 스포츠 중심 도시로의 재도약을 준비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전국체전은 스포츠를 통한 민족 화합의 역할뿐 아니라 스포츠 참여 증대 및 저변 확대, 우수 지도자 및 선수 발굴, 스포츠 시설 확충 등 그동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감격을 안았던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은 국제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와 발판이 되었다. 또한 피겨여왕 김연아, 역도의 장미란, 체조의 손연재, 마린보이 박태환 등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올림픽 스타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미래의 올림픽 스타를 꿈꾸는 대한민국 스포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이다. 더불어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전문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즉, 전국체전은 대한민국 스포츠를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발판이었다. 대한민국 체육의 중심에서 언제나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최근 전국체전 현장의 텅 빈 관객석을 보면 씁쓸하다. 많은 국민들이 경기장에 찾아올 수 있는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해봐야 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자기고장 선수, 올림픽 스타선수 또는 미래의 스포츠 꿈나무들을 응원하고, 단순히 '보는 스포츠'가 아닌 '함께 하는 스포츠'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체전은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스포츠 행사인 만큼 국내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통해 선수들의 피와 땀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해주고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꿈과 희망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모두의 노력을 합쳐 스포츠 역사와 문화, 환경이 함께 100회를 맞는 전국체전이 국민 모두의 화합과 참여 속에 재도약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9-24 유승민

[수요광장]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의 산문

부드러운 표현·진솔한 고백 '산문'비평집엔 시큰둥하던 친구도 반색충격적 정보 '스캔들화' 하는 요즘과잉문장으로 사람들 내면에 상처산문 통해 한시적 소음 벗어났으면얼마 전 처음으로 산문집을 한 권 냈다. 그동안 펴냈던 비평서들이 워낙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대뜸 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자연인 아무개'가 간직하고 있는 섭렵과 경험의 기억들을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줄 수 있었다. 그렇게 글에는 전문성과 보편성 혹은 낯섦과 친숙함이 상대적으로 담기게 마련인데, 흔히 '산문'의 범주로 묶이는 것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표현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산문'의 반대는 '비평'이 아니라 '운문'이 아니었던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리듬에 언어를 대응시켜 낭독과 음송에 어울리는 형식을 입힌 글을 운문이라고 한다면, 산문은 그러한 외적 리듬보다는 내용상의 명료함과 서사성을 강화하다 보니 생겨난 줄글 형식을 말한다. 장르로 말하면 소설, 수필, 비평 등이 모두 산문이다. 사전에서는 "운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산문에 무한정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장르적 관습(convention)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 장르를 통해 경험하고 또 기대해왔던 어떤 기율이나 원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산문을 가장 잘 쓴 작가들은 누구일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개성을 담은 산문을 쓴 분은, 일제강점기만 예로 든다면, 정지용과 이태준과 이효석과 김기림과 이상(李箱)이다. 이분들은 본인들의 주력 장르였던 시나 소설이나 비평만큼 아름다운 산문을 우리 문학사에 남겨주었다. 아쉽게도 김소월, 백석, 윤동주는 그분들이 남겨준 탁월한 시적 성과에 비해 산문적 충격은 약한 편이다. 반대로 산문에서 일가를 이룬 변영로, 양주동,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등의 수필가들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점에서 근대문학사는 산문의 일대 부흥을 이룬 시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 Baudelaire)는 산문을 일러 "영혼의 서정적 격정에도, 몽상의 파동에도, 의식의 충격에도 능히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한" 글이어야 하고, "이러한 이상(理想)은 무엇보다도 도시와 서로 무수하게 얽힌 복잡한 관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운문인 서정시가 격정과 몽상과 충격을 순간적으로 주는 근대 이전 사회의 잔광(殘光)이라면, 산문은 막 떠오르는 근대 도시의 문학이요 서정시를 유연하고도 강하게 감싸고 있는 서광(曙光)임을 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형성시켜가는 '산문적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만큼 산문은 근대의 본격적 산물인 셈이다.어쨌든 '산문'은 진솔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을 욕망하면서, 특정 토픽에 대해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줌으로써 그들의 삶과 생각에 충격과 변형을 주려는 계몽 의지가 그 안에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여기에서의 계몽이 위압적 훈계나 자기 확신의 강요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감에의 간곡한 요청이요 오랜 경험과 기억을 나누자는 호소일 뿐이다. 그러니 문장이 글쓴이의 인격이나 사람됨을 담고 있다면, 그 대표 사례는 아마도 산문일 것이다. 그동안 진력해온 비평과 달리 산문이 이러한 소통과 공감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산문집을 건네니까, 비평집에는 시큰둥하던 친구들도 더러 반색을 해준다. 네 글이 재밌다면서 말이다. 나로서도 재미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금, 충격적인 정보를 스캔들화(化)하는 데 앞장서는 과잉 문장들에 사람들의 내면적 상처가 오히려 깊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고르고 다듬고 세련화해야 할 주체들이 그러한 언어 과잉을 통해 존재론적 잔명(殘命)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평화로운 위안을 주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충전을 꾀하는 산문을 통해 그러한 한시적 소음에서 벗어나 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을 가다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9-17 유성호

[수요광장]외국인 앞에서만 멈추는 공정성과 형평성, 건강보험의 경우

6개월이상 머물땐 의무가입 법개정먹튀·재정적자 논란 연장선상 나와저소득에도 전체 평균 보험료 가혹부모·성년자녀도 부과대상 큰 부담빈틈없는 사회보장 형평성 담보부터지난 7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이제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그간 많은 시민사회단체 및 국제사회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보편적이고 차별 없는 건강권이 실현돼야 한다는 취지에 동감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면 본래의 취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작년 한때, 여론을 달구었던, 이른바 외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2018년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재외국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수지 적자액이 2017년 2천51억원에 이르고 지난 5년간의 누적 적자액이 약 7천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서 몇 십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몇 억원이 넘는 의료혜택을 봤다는 어떤 재외동포와 외국인의 사례가 크게 보도됐다. 여론은 매우 험악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2017년 건강보험 전체 재정수지 적자가 4조4천475억원에 달하는데, 외국인들이 부당하게 혜택을 받아간다는 점에 분개했다. 언론들은 먹튀 논란과 재정적자만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며, 외국인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아가고 국민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2017년 외국인의 직장가입과 지역가입을 모두 합친, 전체 외국인의 건강보험료 재정 수지는 오히려 2천490억원 흑자였으며, 2013년~2017년 5년간의 재정수지는 무려 1조1천억원의 흑자에 달한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외국인이 건강보험을 축낸다며 혐오와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이러한 논란의 연장 선상에서 정부의 이번 건강보험 개편안이 나왔다. 그렇다면 건강권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 실현을 떠나, 보다 공정한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변화됐을까?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등은 국내에 소득 및 재산이 없거나 파악이 곤란해 내국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즉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한 이주민은 소득이 훨씬 낮더라도 최소한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인 11만3천50원을 내야 한다. 2018년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전체 직장인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가난한 외국인의 주머니를 더욱 쥐어짜, 형편 나은 한국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했다. 이 기준은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내국인과 다르게 부양가족 범위도 매우 좁다. 내국인의 경우 폭넓게 세대원을 인정해 주지만, 이주민은 원칙적으로 개인을 하나의 세대로 보며, 세대주의 배우자와 19세 미만의 자녀만을 동일 세대 구성원으로 한다. 부모와 성년의 자녀가 각각 보험료 부과대상이 되어 훨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외국인도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사회보장에 빈틈이 없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형평성이 우선 담보되어야만 한다. 사실과 다르게 호도됐던 외국인의 명예 회복은커녕 더 가혹한 보험료 부과 그리고 보험료를 4회 이상 내지 않으면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겁박을 하고 있다.한국정부는 몇 달 동안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치료는커녕 비자를 취소시키고 내쫓을 수 있다는 냉혹함을 보이고 있다. 먹튀나 역차별이라며 성내던 언론과 여론은 더 가난한 외국인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당함에는 침묵한다. 정말 이것이 한국사회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생기자 문제를 파악해 보겠다고 한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의료 접근성의 문제, 농어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비용을 내야 하는 지역가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직도 여전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이주민들, 그리고 소득 조사 없이, 더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의 문제까지, 공정하고 양심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9-10 이완

[수요광장]이름 있는 집

어린시절 부흥주택 문패 기억 또렷전세난민 늘며 도시 익명 공간으로캐슬·팰리스… 공동주택 이름 난해욕망대상·상품화로 자의적 조어법공간 걸맞은 의미부여 '건축의 완성'청량리 부흥주택, 1960년대 초 홍릉 서편에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주택영단('LH'의 전신)에서 공급한 2층 연립형 국민주택단지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200호가 넘으니 당시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집들이 골목을 마주하여 어깨를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작은 마당도 있었고, 옆집과는 낮은 울타리로 경계를 삼았지만 늘 열려 있는 문이 있어 자유로이 왕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부흥주택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그 집과 골목 마당이 작다고 하는 것은 4년 전 우연히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다닥다닥 붙어있는 협소한 집과 골목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 가지 정보를 유추해보니 바로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그곳은 나에게 절대로 작지 않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었다.이제는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또렷이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문패. 아버지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직사각형 나무 문패가 대문 기둥에 반듯하니 걸려 있었다. 문패는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수유리 집에도 당당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집안 경제사정의 악화로 전세난민의 삶이 시작되면서 문패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리며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영영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문패가 필요 없는 익명의 공간들로 도시가 채워진 것이다.이름 없는 집 또는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이름과 숫자로 호명되는 집이 익숙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집에 의미 있는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절골마을'이다. 천년고찰을 품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최근 개발이 허용되면서 20~3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캐슬OOO, OOO몽마르뜨, OOO파크, OOO하우스.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공동주택의 이름들이다. 어쩌다 우리 공동주택의 이름들이 이렇게 국적불명의 언어공해 수준이 되었을까? 그것은 집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시장에서 쉽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 사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10평대 아파트에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20~30평 내외의 중소형 아파트에 '팰리스', '캐슬', '로얄' 등의 이름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물며 '빌라'는 이제 저층 주거지 다세대주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들은 거의 다 사용되었고 기존의 이름들과 차별화를 위한 자의적 조어법이 난무하다 보니 난해한 이름들이 속출하고 있다.아무튼 주택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의 고민의 결과이고 어쩌면 집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을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집 이름을 짓는다면 저런 이름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구름정원사람들, 오시리가름, 하심재, 푸른마을, 가치이은, 꽃보라마을, 눈뫼가름, 소행주, 어쩌다집, 일오집, 오우가… 집이 위치한 지역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사연이 있는 공동체주택의 이름들이다.우리 집은 '여백'이다. 집에 대한 덧없는 욕망을 비우고 그 여백을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채워가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우리는 다세대주택 두 개 동을 나란히 지으면서 각 건물에 '파란여백'과 '하얀여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물리적으로 집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집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것으로 건축은 완성된다. 우리도 스스로의 언어로 집 이름을 한번 지어보자. 그곳은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내겐 너무나 특별한 삶의 공간, '이름 있는 집'이 될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09-03 김수동

[수요광장]어느 작은 단체의 소통 지혜에 대하여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둘러싼 의혹청문회서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언론등 사회갈등 유발 책임 못피해반면 기자로 활동 발달장애인 '감동'그 나름의 노력을 우리가 배워가야 요즘은 TV를 켜고 싶지가 않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온통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둘러싼 의혹 보도뿐이다. 도무지 뉴스를 보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넘쳐나는 의혹에 더는 실망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엄청난 기세로 미디어를 점령, 국민적 관심사가 돼버렸다. 어쩌면 관심사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분노와 갈등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 같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위에 지친 여름의 끝자락을 다시 또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듯해 갑갑하다. 조 후보자에 자격 논란과 의혹은 내달 2~3일 청문회를 통해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확정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매체는 긴급 여론조사를 통해서 조 후보 반대 여론전까지 가세하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 문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더 큰 문제는 따로 또 있다. 조 후보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거나 혹은 반대로 의혹 내용과는 다른 결론이 난다 해도 정치권에 대한 이미지 손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불신 속에서 국민들이 입었을 상처 또한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조 후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여당, 야당과 의혹 보도에 열을 올린 언론까지도 사회적 갈등 유발에 무죄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불필요하게도 과도한 국민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아무튼 조 후보에 대한 의혹 보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도 길고 힘든 여름처럼 느껴진다. 일본의 경제보복 등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관련 복잡하고 무거운 이슈, 조 후보의 의혹에 대한 여야의 대립 등 온통 소통의 부재로 불거진 일이다. 물론 외교 문제는 국가 간 복잡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소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거운 이슈로 얼룩진 무더운 8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그나마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전화를 걸어온 용건은 '휴먼에이드'라는 잡지 표지에 자기 사진이 나왔으니 이 잡지를 꼭 사서 보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이유로 잡지 표지에 얼굴이 나왔냐고 물었더니 언론사 기자가 됐다면서 발달장애인 특유의 하이톤에 격앙된 어조로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말해 필자도 함께 크게 웃었지만 실은 깊은 감동으로 한동안 먹먹했다. 사실 이 단체와는 필자가 봉사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인데, 발달장애인들이 읽기 쉽도록 '쉬운 말로 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글 취약계층에게는 쉬운 말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일들은 발달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일반인들의 편견 불식에 기여한다. 쉬운 말 뉴스 만들기로 고생하면서 그리도 많은 품을 들이더니 어느덧 발달장애인을 기자로 채용할 정도로 성장한 것 같아 놀라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발달장애인 취재기자 추가 모집이라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없던 일이라 더 놀라웠다.굳이 필자가 이 단체 이름까지 밝히며 소개하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차별받는 이들이 보여준 특별한 소통 능력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과 다름의 능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콘텐츠는 가치가 있어 보인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뭔가 나름의 소통 능력을 키우며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올여름은 아베의 경제 도발과 복잡 미묘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체감 온도는 더 높고 견디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법부무장관 후보자의 의혹까지 불거져 불신과 갈등은 증폭되고 사회적 소통 능력은 축소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비록 작은 단체이지만 이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한 소통 지혜를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8-27 김정순

[수요광장]스포츠인들의 방송 진출

다양한 예능프로서 재능·끼 '발휘'신선함·재미 선사 시청자와 '소통'종목 호기심 유발 저변확대 효과도선수들 인정받는 '스포테이너' 위해꾸준한 운동·분야별 자기계발 필요요즘 TV를 틀면 그라운드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스포츠스타들의 예능프로 출연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두 곳의 프로그램이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스포츠스타들은 다양한 재능과 끼를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더불어 많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과거만 해도 운동선수는 운동에 집중하고 TV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겉 멋들고 운동을 등한시 한다는 말이 있었다. 특히 TV 출연 후에 성적이라도 안 좋아지면 많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스포츠스타들이 TV에 자주 등장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운동선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운동 경기에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운동선수라고 운동만을 해야하고, 운동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선수들이 운동이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스포츠에서의 이런 변화된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합을 할 때의 엄숙하고 강한 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보여주며, 이미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더불어 TV를 통해 스포츠스타를 만난 시청자들과 한발 더 가까워질수 있다. 결국 운동경기도 내재되어있는 끼와 능력을 발산하여 시합에 승리하고 팬들을 즐겁게하는 서비스업종이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운동선수들의 TV출연을 통한 인기상승은 당연지사라고 생각된다. 또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친숙해지고 저변이 늘어나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TV를 통해 익숙해진 선수들을 통해 스포츠 종목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도 유발 할 수 있다. 실제로 종영이 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예능과 스포츠를 접목한 프로그램 이후에 많은 종목들의 저변이 상당히 확대된 경험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방송이란 것이 그 종목과 선수를 알리는데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몇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 꿈이 방송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개인기도 연마하고 다양한 방송출연으로 내공을 쌓아가기도 한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늘면서 운동선수들의 방송진출도 자연스레 늘고 있는 추세다. 방송까지 나올 정도의 커리어라면 본인관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수준이라고 인정한다.스포츠선수 출신의 예능인을 뜻하는 신조어로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인 '스포테이너', 이제 인정받는 스포테이너를 꿈꾸는 운동선수들이라면 더욱더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업인 스포츠도 게을리해서는 안될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자기계발도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들의 보는 관점이 높아지고 방송의 콘텐츠들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환경에서 스포츠스타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콘텐츠 개발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인에서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Career transition)을 한 씨름 천하장사 강호동, 축구의 테리우스 안정환, 농구의 대한민국 국보급 센터 서장훈 선수 등과 같은 경우도 소재의 다양성과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알고 있다.운동선수들의 장점인 성실함과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한다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송계에도 운동선수들은 시청자들과 국민들에게 참신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8-20 유승민

[수요광장]그들 속의 우리, 우리 속의 그들

日, 식민지배 사과·우경화반대 존재국내도 아베의 속내 지원자들 있어이번 사태 한일간 단기적 갈등아닌역사에 얽힌 오랜 저항의 싸움인 셈과정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되는 이유최근 한일 간의 갈등이 공식적으로 발생하고 번져가면서 둘 사이의 오랜 역사를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지적 흐름이 커졌다. 관계 서적도 많이 팔리고 있고,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는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해묵은 역설로 곧잘 그려져왔다. 지리적 인접성과 오랜 교섭 경험에서 발생한 근린성이 가까움이었다면, 둘 사이에 엄존하는 역사적 적대감은 오랫동안 서로를 멀게 했던 정서적 실체였다. 또한 일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근대의 표본 노릇을 하곤 했다.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핵심을 간취하고 활용하였고, 일본식 행정 직제나 경제 시스템을 선진적 전범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표현되는 침략과 지배와 폭력의 엄연한 역사는 그러한 경험과는 정반대 쪽에서 항일 혹은 극일(克日)의 정신을 요청했던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하나의 민족은 그것을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여러 조건과 함께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측면이 맞물려 형성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민족 경험에서 일본은 언제나 완강한 적대감 속에 위치해 있었다. 중세기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반일의식은 근대 식민지시대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증폭되었고, 우리에게 일본이란 언제든지 우리를 침탈할 수 있는 폭력의 근원지로 암암리에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한일 간 양가적 교섭 양태는 우리에게 선망과 혐오라는 이중의 정서적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모든 주체에게는 자신을 개진하기 위해 부단히 마주 보면서 검색 및 수정을 할 수 있는 타자가 필수적이다. 타자는 본래 자신의 반성적 거울이자 자신 안으로 들어온 능동적 의식의 촉발자인데, 우리로서는 일본을 그 자리에 놓을 때 역사적 적실성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해석의 주체가 비록 우리 자신이지만, 일본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해석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 전환을 그동안 경험해온 것이다. 투항주의적 동일화 욕망에 의한 친일 성향과 피해 경험을 넘어 정당한 자기 복원을 목표로 했던 저항 성향이 그 맥락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저항'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유형, 무형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값을 주장하는 일련의 사유와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하나의 힘에 대한 반작용과 역동성(逆動性)을 그 핵심 속성으로 삼는다.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세워왔던 엄혹한 역사의 흐름이 그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한일 간에 드러난 이번 갈등은 그것이 역사 해석 차원이든 경제 차원이든 단기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할까? 확연하게 드러난 현상은 일본의 아베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준 절묘한 정치적 화음(和音)이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과거 일에 빠져 한일 관계를 그르친 것으로 규정하였다. 양국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들의 역사 감각이 오랜 민족 경험을 뛰어넘어 놀랍게 일원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문제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으며 제대로 된 역사 해석과 입장 천명을 통해 일본이 새로운 길에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일본과 우리 쪽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우리-그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그들 속의 우리'도 '우리 속의 그들'도 있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김응교 교수는 "일본의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더 자주 대화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일본에도 식민지배의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한국에도 아베의 속내를 지원하면서 민족 경험을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한일 간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양국 역사에 얽힌 오래고도 선명한 존재론적 저항의 싸움인 셈이다.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8-13 유성호

[수요광장]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외국인화

열악한 작업현장 시스템 개선 대신기본 안전교육 조차 제대로 못 받은이주노동자 대거 투입 산업재해 속출더이상 맨몸으로 당하는 일 없도록실태조사·보호조치 반드시 선행돼야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유럽의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책 '제7의 인간'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표현하며,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 자체가 부정되고 그저 부족한 인력을 메워주는 커다란 기계의 대체 가능한 부속이 된 이주노동자를 표현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의 삶도 바로 이렇다. 며칠 전, 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농촌에서 작업 준비를 하던 중,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달라고 했다가 한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리고 7월 31일 비가 아주 많이 내렸던 서울에서는 6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23살 미얀마 청년이 폭우가 내릴 때 서울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빗물 펌프장 안전 점검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국가재난에도 이주노동자가 최일선을 맡고 있다. 가축에게 전염병이 발생하는 경우, 몇백만 마리에 달하는 가축을 도살하거나 생매장하면서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전염성 질환 등에 대한 위험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투입되던 관계 당국의 공무원은 점차 줄었다. AI가 가축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군인들도 동원하기 어려워졌다. 더 이상 위험한 현장에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는 위험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외주화를 했고, 이 외주화의 현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외국인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현장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대신, 그곳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내고 있다. 결국,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거 투입되고 있다.2018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천798명이었고 사망자도 511명이나 되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0.18%인데 반해, 외국인노동자 산재발생률은 1.16%로 내국인노동자에 비해 6.4배가 높았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소규모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체류가 불안정안 이주노동자도 많아 산재 신고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산재 발생률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의를 해줄 노동조합도 가족도 없고, 이들의 외침에 반응해줄 정치권력도 없는 이들이 적절한 예방 교육도 후속조치도 없이 현장으로 더욱더 내몰리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의 버팀목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안전과 재난 현장에 투입되면서도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 잣대로 정당한 대우 없이 대체 가능한 일회용 딱지를 붙여 놓고 있다.우리의 일상 어느 부분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을 담보한 것이라면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미얀마 등에서 온 어떤 20살 젊은 노동자들을 등 떠밀어 위험한 곳에 보내고, 부당한 대우를 통해 착취해서 나온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가족'만의 화목한 일상을 꿈꾸고, '우리 국민'만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몰염치한 환상이다.이주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맨몸으로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 위험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버리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이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겠다. 8월 3일 아침, 콘크리트 제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19살 청년이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방치할 것인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8-06 이완

[수요광장]50 이후 더 나은 삶을 위한 '전환의 기술'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지우고…하루빨리 독립생활자 능력 갖춰야기존 인맥 대신 '느슨한 관계' 구축돈 잘 못 벌어도 의미 있는 일 하기걸으면서 생각하고 글로 옮겨보자대기업 정년퇴직예정자 대상 강의 기회가 있었다. 휴양지의 화려한 호텔에서 진행되는 교육이었지만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퇴직 후 계획에 대해서도 대부분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막연한 상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중장년세대들은 주된 일(자리)을 떠나 새로운 일과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환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급하거나 무리한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한번 살펴보자.# 나는 자연인이다지위와 역할로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하루빨리 지우자. 그리고 당장 뭘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도 내려놓자.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명함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다.# 혼자서도 잘해요자연인의 자유도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림자노동을 감당해 왔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루빨리 독립생활자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일을 완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훌륭한 직원들은 이제 내게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는 시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살림의 주체가 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혁신도 좋지만 스스로 1인분의 삶을 감당하는 자기혁신이 우선이다.# 관계능력 강화인맥에 메이지 말고 느슨한 연결의 관계망에 어울려 보자.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다양한 명분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 이해관계가 앞서고 알게 모르게 경쟁과 서열이 작동하는 그 인맥들,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신뢰와 충성을 증명해야 하기에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그나마도 현직에서 물러나면 상당수는 다시 보기가 어색한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이제 혈연 지연 학연의 부담스런 인맥이 아닌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 보자. 이러한 커뮤니티는 관리가 필요한 부담스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어울릴 때,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돈독한 이웃은 어쩌면 나중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니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N잡러평생직장, 평생직업이 사라진 시대. 이제는 투잡, 스리잡을 넘어 멀티잡을 할 수 있는 N잡러만 살아남는 시대라고 하니 더욱 노오~력 해서 우리도 N잡러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풀타임 잡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과 활동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면 어떨까? 나를 위한 일, 공동체를 위한 일, 우리 사회를 위한 일, 그리고 돈 버는 일과 돈은 잘 못 벌어도 의미와 가치 있는 일. 이렇게 말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벌이는 좀 줄겠지만 의미 있는 존재로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다.# 걷기와 글쓰기치유와 성찰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고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걷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옮겨 보자.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고 차마 열어 보지 못한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과감히 열어 마주해 보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스토리텔러이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지, 이제 또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길며 그저 노후 걱정만 하며 지내기엔 우리에게 아직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혹자는 장수의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비관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 기술이면 이제야말로 우리 인생의 전성기를 누릴 만하지 않을까?/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2019-07-30 김수동

[수요광장]강사 일자리 박탈하는 강사법의 역습

대학, 재정난에 해고·신규임용 제한과목 축소로 학점 이수 더 어려워져시행 앞두고 대책 내놨지만 역부족정부, 처우개선 위해 재정지원 우선누구를 위한 법인지 씁쓸한 느낌만오는 8월 1일부터 강사법이 시행된다. 강사법은 2010년 고달픈 시간강사의 비애를 호소하며 생을 마감한 조선대 강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 이듬해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마련되었다. 이후, 전례 없이 긴 유예기간을 거쳐 드디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강사법의 핵심 내용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 방학기간에도 급여를 지급하고 1년 이상의 임용과 3년 동안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처우개선이라는 강사법의 취지에 맞게 강사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시행을 앞두고 강사들이 대량 해고되면서 강사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사법 관련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강사를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가는 가중되는 재정난을 호소하며 기존 강사들을 해고시키거나, 신규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피해는 강사뿐 아니다. 강의를 들어야 할 대학생들의 과목이 축소되어 수강 학점 이수가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졸업을 못하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올 학기 초 대학가의 수강신청 대란도 강사법이 만들어낸 풍경 중 하나다. 개설 과목이 줄어들어 수강신청이 어렵게 되자 학생들 사이에 수강신청 과목을 사고파는 일까지 생겼다. 한마디로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마련된 법이 이들의 일자리를 박탈시키고 있다. 이도 모자라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까지 일으키고 있어 강사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그 모순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17개 대학의 올해 1학기 강의 수가 지난해보다 6천655개 감소했다고 한다. 대학들은 올 1학기에 2만여명의 강사를 해고하면서 발 빠르게 강사법 시행에 대응하고 있다. 과목을 통폐합하거나 대형 강의로 바꾸고 전임교원의 강의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강사 인원을 줄이고 있다. 이외에도 겸임교수나 초빙 또는 명예교수에게 강의를 맡기는 등 여러 방법으로 강사 신규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선제 대응과 관련해 "2019년 1학기에 미리 강사 수를 축소한 대학을 조사해 2019년 2학기 고용 현황을 2018년 2학기 또는 그 이전 학기와 비교해 그에 따른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의를 못하게 된 해고강사들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책을 내놨지만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오히려 대학의 강사 대량 해고 이전에 교육부의 장치 마련이나 구체적 대안 제시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의를 줄인 대학에 지원금을 줄이는 등 정부의 페널티 방침이 이제 와서 얼마나 실효성을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이제 법·제도가 마련되고 정부의 방침이 나왔다. 이 법의 수용자인 대학들이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얼마나 공감하면서 법을 준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제 공은 강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에 넘어간 셈인데 대학도 학생수가 줄고 있는 구조조정기인 만큼 법 이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법과 제도는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기존의 경우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부 정책이야말로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의 질을 올리고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먼저라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교육부 예산에 시간강사 처우개선비로 288억원이 반영됐다. 원래 여야가 합의했던 550억원의 절반 규모인데, 국립대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71억원이 배정된다. 나머지 217억원은 사립대 시간강사 명목인데 대폭 삭감된 예산으로 시간강사의 처우가 개선될지 염려스럽다.필자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수년간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지내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 때문인지 강사법 시행에 유독 관심이 많이 간다. 강사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씁쓸한 느낌도 든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결코 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공적 영역이라는 문제의식이 필요해 보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7-23 김정순

[수요광장]스포츠와 삶의 균형

현대인들 스포츠 활동 점점 늘어다양한 게임 즐기는 사람도 많아선의의 경쟁 통해 인간관계 형성'주 52시간 근무제' 여가시간 활용'워라밸'로 신체·정신적 건강 되찾자지난 2018년 7월,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로 직장인들은 근무시간 단축을 이뤄냈다. 근무시간 단축 시행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시 되고 있다. 워라밸이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표현으로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워라밸은 연봉에 상관없이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거나, 퇴근 후 SNS로 하는 업무 지시, 잦은 야근 등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긴 근무시간 및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이를 적절히 해소할 시간조차 없었던 직장인들은 정부의 워라밸 제도를 통해 다양한 여가 및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 활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경기를 관람하는 등 스포츠 관련 활동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최근 전 국민을 하나로 모았던 U-20 월드컵 결승의 시청률은 30%를 넘은 것(닐슨코리아)으로 조사되었고, 이 외에도 MLB 경기 중계,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경기 시청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프로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많은 관중들은 여전히 경기장을 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계청의 '국민여가생활 실태(2018)'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여가활동은 '스포츠'의 비율이 높았고, 그 중 배드민턴, 줄넘기, 체조 등 생활체육의 비율이 제일 높았으며 탁구, 축구, 야구 등이 뒤를 이었다. 이렇듯 늘어난 여가시간을 스포츠와 함께하여 진정한 워라밸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스포츠 활동으로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활동은 심리적 측면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신체활동을 통해 우울과 불안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 완충 효과가 있어 심리적 안정감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자존감 고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그린우드 등(Greenwood et al., 2005)은 연구를 통해 운동이 긍정적 정서와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전달을 활성화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이러한 긍정적 효과로 상사와의 관계, 긴 업무시간, 높은 업무강도 등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스포츠 활동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 활동은 직장 외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이처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늘어난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즉 워라밸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스포츠 활동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7-16 유승민

[수요광장]박두진문학관 특별전

안성서 출생 유년시절 보낸 20여년문학적 상상력·정서 길러줬던 시간1·4후퇴땐 산·해·돌 통해 생명 노래수백편 시·산문과 수석·글씨·그림고향에 대한 그리움 전시회서 웅성경기도 안성의 박두진문학관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박두진문학관은 박두진 선생의 문학사상을 널리 알리고 기리며, 박두진 관련 자료의 체계적 수집과 보존을 목적으로 작년 11월에 개관했다. 문학관은 상설전시 코너에서 선생이 펴낸 시집을 통해 그의 시적 생애를 조감할 수 있게 했으며, 선생이 남긴 수석과 글씨와 그림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결정(結晶)들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선생은 1916년 3월 10일 안성군 안성읍 봉남리 360번지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네 살까지 그곳에 살다가 안성의 가터, 양협을 거쳐 고장치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안성에서 살던 20여년은 선생의 문학적 상상력과 정서를 길러주었던 시간이었다. 선생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도 안성의 '고장치기' 마을은, 들판 한가운데 스물 남짓한 오두막집이 엎드려 있는 쓸쓸하고 가난한 곳이었다. 그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박두진 형제들 정도였다. 선생의 집도 농가는 아니었지만 댓 마지기 남의 땅을 소작하며 가난한 생활을 했다. 방학이 되면 지게를 얻어 지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곤 했던 어린 박두진은, 새소리 물소리를 따라 혼자 산골짜기를 들어가며 소박한 자연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신비한 교감을 얻었으며, 고독에 대한 강한 매혹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동경을 배웠다고 한다.선생은 청룡산의 높고 푸른 산줄기와 사계절 내내 부는 사갑들의 바람을 헤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침엔 모래 반, 흙 반의 신작로를 따라 안성읍내의 학교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엔 굽이쳐 흐르는 안성천을 지나 사갑들로부터 청룡산 줄기까지 풀숲을 헤치며 자연과 교감했다. 선생은 고장치기에서 일인 지주의 농토를 소작하면서 일제의 수탈을 경험했으며 기나긴 밤 등잔 아래서 독립운동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시선과 민족의식을 길렀다. 고장치기에서의 경험은 선생의 문학사상을 만들어준 토대였던 것이다. 열여섯 살부터 습작을 시작하여 '아(芽)'라는 동인지에 동시 등을 발표하곤 했던 선생은, '시'야말로 신(神)이 인간에게 준 은총이며 시로써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신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이 시기부터 강하게 가졌다 한다. 선생은 우리 현대시가 너무 감상적, 퇴폐적이고 경박한 외래 취향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싱싱한 야성의 시를 쓰리라 마음먹었다.서울에서 살던 선생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피난을 왔다. 안성에 머무는 동안, 검문에 걸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1·4후퇴 당시 대구로 피난한 뒤에는 '창공구락부'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때로부터 선생은 '산'과 '해'와 '돌'을 통해 생명과 정열을 줄곧 노래하였고, 그것들을 통해 보다 더 밝은 앞날을 예견한 예언자적 시인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 의지의 실현이자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충동의 시적 형상화였다. 선생이 타계하고 난 후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던 말년의 작품들은 유족과 친지들에 의해 '당신의 사랑 앞에'라는 시집으로 꾸며졌는데, 거기에는 우리를 영원과 믿음에 대한 사유로 이끄는 높은 정신의 언어가 하나의 완결된 화폭으로 담겨 있다. 그렇게 선생의 언어는 지금 고향 안성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혜산 박두진 문학제'를 통해서, '청록파'라는 유파를 떠나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의 권역을 이룬 대가 시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선생은 안성 금광면에 작은 조립식 집을 마련한 뒤부터는 주소를 안성에 두고 매주 안성에 머물며 수백 편의 시와 산문을 썼다. 특히 시적 관심을 사람과 신앙, 수석에 기울인 이후부터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와 산문에 담아 펼쳐냈다.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이 박두진문학관에서 열리는 '박두진 서재에서 찾은 문학유산' 전시회에서 웅성거리고 있다. 선생이 소장했던 백석 시집 '사슴'을 비롯한 근대문학 유산을 실물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다. 선생의 마음과 흔적이 물씬 묻어나는 문학사의 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7-09 유성호

[수요광장]차별 방관자, 기여자, 가해자

다름 공존·상생하는 '문화다양성'평화 화합하자는 전세계 협약인데구성원간 갈등·폭력 조장 일부언론곳곳에 혐오·차별 씨앗 뿌리는 세력대응 못하는 정치권… 모두 '가해자'며칠 전 너무나 노골적으로 인종 간 혐오와 갈등 그리고 폭력을 부추기는 한 인터넷 언론사의 기사가 있었다. 기사는 최근 인천시와 서울 일부의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으로 근래 국내에 급격히 유입된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내용이었다.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의 발언으로 "붉은 수돗물 사태 원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테러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보당국자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같은 기사에서 다른 공공기관의 담당자는 그 가능성을 일축하는 가운데, 기사의 제목은 놀랍게도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 였다. 매우 노골적이고 악의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다. 이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을 떠올렸다고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지진 직후 퍼졌고, 당시에 학살된 조선인이 6천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끔찍한 대학살을 떠올리게 만드는 위 내용은 언론사의 기사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구성원간 혐오와 차별을 옮기는 혐오차별세력의 행동의 일환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그럼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한국사회 구성원간 불신과 혐오 및 갈등을 양산하는 악의적인 행위가 펼쳐지고 있을 때, 제도와 정치는 무얼 했을까. 제도는 부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해야 하는 정부 및 정치권은 최근 부천시의 사례에서 보듯, 혐오세력의 반대에 매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문화다양성 조례를 오랫동안 지역의 여러 단위가 함께 준비해왔다. 하지만 기독교계중 매우 일부가 중심이 돼서, 문화다양성 조례가 통과되면 이슬람, 난민, 동성애가 확산된다며 조례제정을 적극 반대했다. 결국, 지난 6월 25일에 이들의 항의로 부천시 시의원 28명 중 14명이 공동발의하고, 상임위까지 통과된 조례안이 본회 직전 자진 철회되는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문화다양성이란, 한 사회나 국가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들이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모두가 평화롭게 화합하자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협약이다. 2001년 유네스코에서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문화다양성 선언을 했고, 국제협약이 만들어졌다. 한국도 가입은 물론, 2014년 문화다양성 법을 제정했다. 지역에서도 서울특별시, 경기도, 부산광역시 등 전국에 14개 시도와 교육청에서 문화다양성 조례가 제정되어 활발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조례안이 특정 세력의 실력행사에 좌초된 것이 물론 이번만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개탄스러운 점은 모두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차이를 존중하자는 전 세계적 약속까지도 소수 세력의 항의에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의회에서는 혐오표현 예방 및 대처에 관한 조례를 준비하고 지난 10월부터 정책연구와 토론회가 열렸지만, 도의회에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경기도 이주아동 지원 조례안도 난민반대 세력의 반발로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세력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차별과 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구성원 전체의 공익에 부합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특정 종교의 일부 세력에 계속해서 굴복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다수 시민의 바람을 배반하고 기본적인 정의와 인권 실현이라는 본분을 다하지 못하여 차별에 방관하고 기여한 것이다. 기여 정도가 아니다. 정치는 우리의 삶이 보다 나아지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번 조례철회에 동의했다면, 모두가 결과적으로 혐오차별의 가해자다. 구성원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는 언론, 한국사회 곳곳에 혐오와 차별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 다수 시민의 염원과 상관없이 이들에게 굴복하고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정치권, 결국 모두 혐오차별의 적극적 가해자다. 결국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대다수 시민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7-02 이완

[수요광장]집에 갇히다

차별과 배제 공간 넓혀가는 아파트CCTV·스마트폰 실시간 모니터링안전 아닌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것불안한 사회의 확실한 보안대책은언제든 편안하게 대하는 '이웃'이다"뭐라고? 크게 이야기해, 안 들려!" 대학교 졸업을 앞둔 딸은 연초에 학교 앞 하숙집에 방을 얻어 나갔다. 그리 늦지 않은 밤 시간에 아이와 통화할 일이 있어 전화를 하니 평소와 다르게 작은 소리로 소곤대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 이유가 놀랍다. 처음에 하숙집으로 이사를 와서 집처럼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방문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내용인즉, 음악소리가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해달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딸아이를 만나 또 물었다. 그래도 한집에서 사는 사이인데 그런 불편이 있어도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되지 삭막하게 그런 식으로 소통을 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놀랍다. 요즘 대학가 하숙집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응답하라 1988'이 아니다. 서로 알려고 하지 않으며 카톡과 포스트잇 같은 비대면 도구를 통해 꼭 필요한 정보 전달 및 불만제기와 같은 소통만 오간다고 한다.지난해 서울의 한 자치구 청년임대주택 입주자 선발을 위한 지원자 서류심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입주자들의 자치적인 공동체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입주 후 입주자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또는 기여 계획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상당수의 청년들이 일상소음 문제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경험과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었다. 관계가 단절된 협소하고 열악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청년들의 삶이 이제 이해가 간다. 당연히 집이 편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일상을 밖에서 지내고 집은 그야말로 늦은 시간에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되었다.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주거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월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은 이웃을 잃어버린 우리 주거 현실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웃과의 단절이 단순히 소통의 부재와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위험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말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주거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이웃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도시 주거의 현실을 살펴보자. 빠른 속도로 도시를 잠식하는 아파트는 지역, 이웃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차별과 배제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일터인 아파트 경비 업무도 관리비 부담으로 점차 보안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다. 골목길로 연결된 저층 주거지 또한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골목길은 이웃들과의 사이를 지켜주고 연결하여 주었던 공유지,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다세대 빌라가 자리 잡은 골목길, 이웃이 사라진 골목길은 스산하다. 사람은 안 보이고 차들만이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서있다. 구석구석 늘어나는 CCTV만이 우리를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기업들은 역시 빠르다. 1인가구 증가는 커다란 사업의 기회이다. 1인가구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주거와 안전이다. 1인가구는 주거 보안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다. 특히 여성, 노인의 경우 주거침입 범죄 등 안전 및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신속하게 스마트홈 보안 서비스를 내어 놓기 시작했다. CCTV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부가서비스가 추가되는 형태이다.안타깝게도 이 모든 흐름은 우리가 사는 도시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염려로 이동은 제한되고 활동성은 저하될 것이다. 첨단기술은 우리를 스마트하게 고립시킬 것이다.불안한 현대사회의 가장 확실한 안전대책은 첨단보안경비시스템이 아니라 '이웃'이다. 집은 관계의 빈곤을 이웃과 함께 채워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나만의 공간으로서 집,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서면 언제든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이웃이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가 도시에서 다시 마을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6-25 김수동

[수요광장]품격있고 절제된 정치언어가 그립다

정치권 '막말'·'혐오' 언어문화 파괴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 직면여야·진보보수 진영논리 잠시접고한마음으로 뭉쳐 위기에 대처해야오로지 '국민 우선' 상생정치 시급 최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막말 논란으로 정치권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란스럽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로 나라 전체가 슬픔에 휩싸인 가운데 '골든타임 3분뿐'이라는 페이스북 글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찼는지,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렵질'이라는 상스러운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후진적 정치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가 강대국은 아니지만 이제 어엿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술과 과학은 첨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론 자유의 세계적 순위도 미국보다 훨씬 높고,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위에 서 있다. 어디 이뿐인가. 영화나 케이팝, 스포츠 등 우리 문화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무대에서 그 저력을 인정받으면서 선진국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정치 문화는 퇴보를 거듭하는 분위기다. 반대진영을 향한 분노와 증오만 표출하며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권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피로가 누적된다. 여야 모두 합의와 설득 대신 서로 네 탓이라며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은 정말 봐주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의 '막말', '혐오'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막말 때문에 제1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한때 '막말 금지' 움직임이 있었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면서 오히려 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의 막말 난타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필자는 지난 4월에도 같은 지면에 정치권의 막말 논란에 대해 글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과 궁금증이 있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막말로 무엇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막말을 내뱉음으로써 지지세력 결집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상대 진영에 대한 갈등 유발 노림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정말로 이들은 저주 섞인 막말과 조롱으로 국민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제 막말은 야당의 역할 수행에 빠져서는 안되는 필수코스로 인식될 정도인 듯하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막말과 혐오 발언이 야당의 중요한 책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야당 입장에서 대통령의 국정과 여당을 견제하고 공격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다. 집권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야당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격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비난을 위한 비난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대안제시가 동반되어야 함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조롱과 저주에 가까운 막말 비난만으로는 야당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감정의 절제 없이 거친 혐오와 막말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인이라면 공인으로서 사적인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권의 폭언과 혐오 표현으로 불신과 정치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 정치인의 독한 막말과 폭력적인 막말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사회 환경을 오염시키고 언어문화를 파괴한다. 거친 막말로 혼탁해진 정치문화를 정화시켜줄 수 있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절제된 말과 품격 있는 언어 사용 △역지사지의 자세 △국민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꼽고 싶다. 여당 역시 '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막말을 막말로 받아치며 난타전을 즐기는 모양새보다는 품격과 절제된 언어와 역지사지의 자세로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요즘 우리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속에서 양측의 날 선 기 싸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서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면서 막말로 흠집 내고, 끌어내리는 그야말로 막말 포화 속에서 부침이 많아 보인다.막말로 무장된 비판적인 공격보다는 진보와 보수는 진영논리를 잠시 접어두고 한마음으로 뭉쳐 대외적인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보수건 진보건 서로 상대 진영 흠집 내기에 올인하지 말고 역지사지 자세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오로지 국민이 잘사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막말 속 정쟁이 아닌 품격과 절제의 언어로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여야 상생하는 정치가 그립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6-18 김정순

[수요광장]누구를 위한 스포츠 혁신인가?

혁신위원회 권고안 살펴보니 '유감'규제는 확고한데 대안없어 아쉬움학생선수 스스로 바뀌는 기회 제공개혁위한 예산·정책 지원체계 마련꿈 펼칠 수 있도록 환경 만들어줘야'혁신(革新)'은 묵은 풍습,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성)폭력 등 체육분야 비리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위한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차례에 걸쳐 권고문을 발표했다. 스포츠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현 실태 파악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선수·학부모·지도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번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은 참담하고 유감스럽다. 권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규제는 확고한데 대안은 확실치 않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스포츠 혁신의 주인공은 선수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몇 가지 고민해보아야 한다.첫째, 운동하는 학생들의 선택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본인의 선택을 존중받고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학교 급별에 따라 학생선수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게 학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이 존중되고 있다. 획일적으로 정규수업 참여와 주말 대회 참가만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학생선수들의 다양성과 종목에 대한 이해, 특수성, 무엇보다 학생선수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학습법의 다양성을 요구한다. 일반학생과 같은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가두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최저 학력제 기준 등 기존의 교육제도 점검 및 학생선수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온라인 수업, 홈스쿨링은 외국에서도 이미 운동을 진로로 선택한 선수들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2020년부터 세계최초로 커리큘럼에서 학교 과목을 삭제하고 모든 공식적인 학교 과목의 파괴라는 새로운 교육의 시스템을 적용하여 교육의 혁신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실행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 생각된다. 셋째, 스포츠 혁신을 위한 인프라와 지원 체재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체육시설을 살펴보면 초·중·고교의 학교체육시설은 더없이 열악하다. 선수 훈련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학생들이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가 태반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제100회 전국체전 수영 경기를 할 수영장이 없어 인천에서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반 비용의 대부분은 선수들과 학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생활환경과 주변 여건상 합숙소 생활을 유지해야만 하는 학생들은 간과하고 합숙소 전면폐지를 시행했을 때 그 학생들을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폐지보다는 기존에 있는 제도와 정책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실태 파악이 먼저다.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제재와 규제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넷째, 스포츠의 참여 목적에 따른 정책이 명확해야 한다. 일방적인 통합과 현실감 없는 정책은 학생선수와 대한민국 스포츠 전체에 혼란을 초래한다. 스포츠는 경쟁과 유희성을 기반으로 하는 신체운동의 총칭이다. 운동을 취미로 하는 클럽 스포츠와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학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소년체전의 경우 학생선수들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지방 체육 활성화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 우수선수 조기 발굴 등 스포츠 분야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스포츠의 참여 대상과 목적에 따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스포츠 종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종목 특성에 따라 단체와 개인, 하계와 동계, 실내와 실외 등으로 나뉘어 다양하고 특성에 맞는 훈련 또는 대회가 이루어진다. 특히 랭킹 포인트로 운영되는 종목은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도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또한 체급조절을 해야 하는 종목이 주말에만 시행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따라서 종목 특성을 배제한 제도는 현실적용이 어렵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인 학생선수들이 그들의 꿈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누군가부터의 혁신이 아닌 선수 스스로가 바뀌고 자성하여 혁신할 기회도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는 체육계의 개혁을 위해 예산과 정책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선수들이 우선이 되는 실효성 있는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2019-06-11 유승민

[수요광장]막말의 정치학과 언론

SNS 노출 안되면 불안한 정치인들멋진 말보다 요란한 뉴스거리 '골몰'언론, 편승·침소봉대 기사화 자제끊임없이 비판 '언어 중요성' 강조사회갈등 통합·조정역할 책임 있어생각해보면 지난날의 정치지도자들은 기억에 남을 명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가령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YS)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다."(DJ)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JP) 등 그때그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꾼 정치인들의 어록은 이른바 3김정치의 폐해에 대한 끝없는 강조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아우라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물론 그때와 지금은 매체 조건이 전혀 달라졌고 국민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급변했다. SNS에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대중들 뇌리에서 지워질 것 같은 불안감이 정치인들에게 생겨났고, 자신의 존재증명에 필요한 말들을 세심하게 준비하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의제도 달라지고 상황도 변해간다. 그러다 보니 가슴을 울리는 멋진 말보다는 이른바 막말을 통해 요란한 뉴스거리를 만드는 데 정치인들이 골몰하게 된 것도 같다.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인권을 감안하지 않고 뱉는 비하의 말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속어와 비어들, 어차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가치들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나누어 배제의 정치학을 구사하는 독선의 언어들, 성폭력의 잔재를 떨치지 못하고 남발되는 관습적 언어들이 우리 정치인의 품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있다.명언을 여럿 남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음미할 만하다. 그는 정치인들이 왜 시를 가까이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권력이 사람을 오만으로 이끌 때 시는 그의 한계를 일러준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그에게 자기 존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일깨워준다. 권력이 사람을 부패시킬 때 시는 사람을 정화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진리들을 정립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는 시라는 장르를 가까이하라는 말이기보다는 정치인의 자의식에 깊고도 보편적인 삶의 지표가 세워져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스스로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거나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지속적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같은 어록을 남긴 케네디의 마음속에는 정치를 통한 자기실현은 물론 민주주의라는 더 커다란 준거가 충일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발언의 전체 맥락보다는 귀에 거슬리는 부분적 표현을 침소봉대하여 기사 제목으로 삼는 언론의 태도 역시 온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언론은 스스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키우고 맹목의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성찰해야 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막말에 편승하고 또 그것을 대대적으로 기사 머리말로 뽑는 것은 그 점에서 최악의 상(像)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언론은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으로서 행해지는 계산된 막말, 품성의 결함으로 인해 발화되는 막말,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적대감의 막말 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 그 당사자를 몰아세움으로써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언어'가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해가야 한다.지금 우리 사회에는 갈등의 골이 깊은 이해집단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자크 랑시에르에 의하면 정치란 '일치(consensus)'가 아니라 '불일치(dissensus)'를 생성해내는 행위이다. 일사불란하게 일치를 수행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치안(police)'일 뿐이다. 그러니 갈등과 반목 그리고 그로 인한 담론의 끝없는 생성과 유포는 민주 사회에서 퍽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이때 정치권력과 언론은 이러한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극대화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무한 권력에 합당한 공공선으로서의 책임 말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6-04 유성호

[수요광장]차별을 조장하는 정부의 '균형' 감각

정부, 논란 제기된 다문화정책 논의국민여론 공식언급 혐오 강화시켜발표의 일방적 피해자는 또 이주민선입견 교정·불평등구조 개선 먼저인종차별·철폐사이 중립 존재 못해지난 4월 12일 정부부처 관계자가 참여한 국적 통합제도개선 실무분과위원회가 개최되었고, 국민역차별 논란이 제기된 일부 다문화정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다문화가족 전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할 소외계층으로 낙인되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국민들도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느껴, 장기적으로는 국민과 이민자가 원활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으므로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다문화가족은 물론 이주민 전체를 차별하고 분리를 강화시킨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해왔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일면, 그동안 이어져왔던 비판을 뒤늦게나마 수용하고 이를 교정하려는 바람직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소위 '균형' 잡힌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 필요성 논의는 매우 부적절하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이주민들을 낙인찍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갈등을 조장해온 것은 이번 보도 자료에서도 밝혔듯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사과나 언급 없이, 그동안 다문화가족에게 너무 과한 지원을 해서 역차별 논쟁까지 있다고만 밝히는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정책을 요구한 적도 없는 다문화가족에게 또 한 번 모든 비난을 전가하는 것이다.또한 법무부가 국민들이 역차별로 느낀다며 제시한 사례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 글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입니다. 한국의 외국인정책 여러 부문에 문제점 고쳐주세요."('18.8.14. 종료, 참여 인원 75,051명)를 제외하면, "자국민 역차별금지법을 만들어주세요", "정부와 인권위는 국민역차별법 폐지하라", "국민 역차별 혜택 폐지해 주세요" 등은 사실, 그 동의가 수백에 불과했다. 이런 청원 글이 정부의 주장대로 전반적인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혐오 차별 세력을 제발 규제하고 처벌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그동안의 요구에는 왜 이런 대규모의 대책 회의를 한 적이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차별 이런 단어가 언급된 사례만을 나열하며 역차별 논쟁이 마치 국민들의 전반적 여론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 하는 것이야 말로 정부가 혐오차별 세력에 동조하여 차별과 혐오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결국 정부에서 말하는 소위 '균형'이라는 것이, 이주민과 난민을 혐오하는 일부 극우적 혐오 세력과 이주민 인권 사이에서의 '균형'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다문화가족이라는 행정편의적인 용어 사용으로 구분과 배제의 씨앗을 심어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대책으로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를 상정하고 정책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제, 극우적 혐오세력의 발호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균형'이라는 마치 양극단을 중재하고 달래는 듯한 인상의 단어를 새롭게 꺼내들었다. 이주민을 그동안 너무나 많은 혜택을 염치없이 받아온 당사자로 지목하고, 혐오차별 세력의 주장은 매우 근거 있는 국민의 목소리로 둔갑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발표의 일방적인 피해자는 또다시 이주민이다. 더욱이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일부 혐오차별 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진정한 균형 잡힌 정책이 되려면, 첫째, 그동안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혜택을 많이 받아 간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교정하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하며, 둘째, 이로 인해 발생한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혐오차별세력을 규제 처벌하고 이를 넘어 다양성 증진을 통해 사회 전체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종합적으로 함께 논의되어야만 한다. '균형'은 사회 구성원 간에 어떤 기계적 지점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인종차별 조장과 철폐 사이에 중립이나 균형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5-28 이완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