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환경 변화에 따른 스포츠 콘텐츠의 변화

미세먼지 일상화 실내스포츠 대세닌텐도·VR 운동콘텐츠 속속 개발스크린스포츠 10년새 50배 증가세급변 속에 스포츠 본질 간과말아야전통성에 전 연령층 소비 충족을요즘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바로 미세먼지이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가 되었으며 공기청정기는 가정과 학교, 회사에 필수품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환경도 점점 트렌드가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전에는 실외스포츠를 선호했다면 현재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감 없이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결과적으로 탁구, 배드민턴, 수영과 같은 전통적인 실내스포츠들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미세먼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으며 매출에서 그 뚜렷한 성과를 볼 수 있다. 예시로 수영업계의 경우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수영장 운영업의 매출액은 2012년 132억원에서 2016년 236억원으로 약 2배가 상승하였다.이외에도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욱 다양한 형태의 운동 콘텐츠들 또한 속속히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닌텐도 Wii를 활용한 운동, VR을 활용한 승마, 야구 등의 콘텐츠들이 있다. 지난 3월 개최된 서울국제스포츠레저사업전(SPOEX)에서는 실내운동 기구들은 물론 화려하고 재미있는 모양새를 보이는 새로운 기구들과 운동 콘텐츠들이 전시되었다.야구, 축구 같은 대표적인 실외 스포츠도 이제는 스크린 야구나 풋살 같이 규모는 작지만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모양새로 다변화하고 있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골프, 낚시, 사격, 배드민턴, 컬링, 등 다양한 스포츠로 이루어진 스크린 스포츠의 총 규모는 2007년 1천억원에서 2017년 5조원의 시장규모로 10년 이내에 약 50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미세먼지와 최근의 기후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스포츠 산업 기업들이 발 빠른 대처를 하고 있고,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눈에 보기에도 큰 변화가 스포츠 산업계를 흔들고 있다. 환경에 따른 대안을 내놓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변화이다. 다만 이렇게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변화 속에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스포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스포츠는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개인의 정신적 발달과 사회적 측면을 형성시키고 공동체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를 존속 및 발전시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줄다리기, 계주 등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체육활동을 통해 사회의 적응력을 기르며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기른다.역사와 전통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체육은 그 의미가 깊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세계인들의 축제인 올림픽이 있다. 기원전 776년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올림피아에서 처음 개최되었다는 이 이벤트는 진행되는 동안 전쟁이 중단, 휴전이 되어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이러한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올림픽은 현재까지도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며 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와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기존 스포츠의 의의는 현재 막 발전되고 있는 신생 스포츠들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존의 체육을 여러 방식으로 접목시켜 보다 재미있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좋은 현상이다. 다만 우리는 스포츠의 본질에 중심을 두고 그 역사와 전통성, 의의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급격하게 다변화하는 스포츠 산업계에서 하루빨리 모든 연령층의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전통성과 소비자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콘텐츠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필수항목으로서 스포츠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4-02 유승민

[수요광장]말의 인저리 타임을 위하여

사계절 표현 言衆들 인준받고 정착공통감각 없으면 사용 드물고 사라져훌륭한 작가들 없어지는 말 되살려미학적 변형 거쳐 예술적으로 승화창조적인 언어 만들어 내는 역할우리가 쓰는 말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그 타당성과 적실성이 언중(言衆)들에 의해 인준을 받으면 정착되고 그렇지 못하면 드물게 사용되거나 사라져가게 마련이다. 가령 사계절을 뜻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당연히 평등한 위상을 갖추고 있지만, 합성어나 파생어를 만들면 어울리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보통 봄이 오면 '새봄'이라고 하지만 우리 말에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은 없거나 거의 쓰지 않는다. 아마도 봄만 '새로움'에 어울린다는 언중들의 공통감각이 그러한 선택적 불균형을 낳았을 것이다. 반면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한창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한'을 붙여 파생어를 만들면 '한여름'이나 '한겨울'은 자주 쓰는 데 비해 '한봄', '한가을'은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여름과 겨울은 심리적으로 길고 또 더위와 추위의 정점을 표현하는 말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봄과 가을은 비교적 짧게 지나가는 과정적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한'을 붙일 정도의 정점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자연 현상이나 사물에 계절을 붙여보아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계절을 뜻하는 '철'을 붙여보면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 모두 평등하게 많이 쓴다. 이르거나 늦은 느낌을 주려는 초봄,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도, 늦봄, 늦여름, 늦가을, 늦겨울도 그렇다. 그런데 비나 눈, 바람 같은 것을 붙이면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 현상이나 사물은 대체로 봄에 기지개를 펴고 여름에 절정을 보이다가 가을에 소멸하기 시작하여 겨울에 잠드는 형상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모든 자연 현상이 활력을 보이는 여름은 그것을 특화하여 지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령 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은 많이 쓰지만 굳이 여름바람은 많이 쓰지 않고, 봄비, 가을비, 겨울비도 낭만적으로 다가오지만 여름에 비가 많이 오므로 여름비는 따로 부르지 않는다. 눈의 경우는 거꾸로 겨울눈이라는 말이 없고 대신 '봄눈'이 있다. 여름에는 아예 눈이 안 오니 여름눈은 없을 테고, 가을눈도 있을 법한데 별로 쓰지 않는다. 봄눈은 한자로 '춘설'이라 하여 한 해를 축복하는 서설로 여긴 적이 많다. 정지용의 명편 '춘설(春雪)'도 있지 않은가?"문 열자 선뜻!/먼 산이 이마에 차라"라고 시작하는 이 작품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옛시조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한시의 상투어들은 봄눈이나 꽃샘추위를 한결같이 봄의 방해자로서만 그려낸다. 그러한 외적인 '손발의 추위'를 내면적인 '이마의 추위'로 만들어낸 이가 시인 정지용"이라면서 '춘설'의 첫 구절이 천하의 명구라고 감탄한 바 있다. 만일 이 작품이 겨울에 내린 눈을 대상으로 했다면 그 파생적 감동은 훨씬 덜했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춘설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봄눈'은 아직도 우리 귀를 울리고 있다. 옛적에 봄꽃 피어나는 순서를 뜻하는 '춘서(春序)'라는 말이 있어 매화에서 시작하여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이 피어나는 차례를 가리킨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러한 순서가 물리적으로 확연하지 않아 이 단어도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말은 마치 화폐와 같아 이미 언어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을 다시 쓰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흡수하고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좋은 작가들이야말로 선행 언어들을 흠모하고 훈련하여 거기에 일정한 미학적 변형을 가하여 그것을 예술적 차원에 놓은 이들이라고 갈파하였다. 지금도 어디선가 말은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사라져간다. 공통감각에 안 맞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공감을 얻은 말들은 지속적으로 퍼져만 간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말도 무한경쟁 속에 살아남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륭한 작가는 사라져가는 말을 되살려 그네들에게 일종의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을 주어 그 시간 동안 가장 아름다운 결승골을 넣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위대한 작가가 언중들에게 가장 낡은 말을 새로운 공통감각의 차원으로 건네는 창조적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3-26 유성호

[수요광장]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다

뉴질랜드 테러로 전세계 큰 충격이주민·난민적대 국내도 예외 아냐고든 올포트 증오범죄 5단계 나눠부정적 발언·기피 극단행위 '씨앗' 평화 지키려면 내부 차별등 맞서야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지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두 곳에 백인 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가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현재까지 50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이민자와 난민, 특히 무슬림에게 반대하며, 백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극단주의자다. 그는 이 테러 장면을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방비의 시민에게 총을 난사해서, 심지어 3살에 불과한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행동에 어떤 논리적 해석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져있으며, 한국사회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상황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왜냐하면, 이주민, 난민 특히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있어 더 이상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후인 3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은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샤프빌에서 벌어졌던 인종학살을 기리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샤프빌 사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의해 통행증을 소지하고 다녀야 했던 흑인들이 경찰서에 통행증을 반납하는 비폭력 시위에 백인경찰들이 총기를 난사해서 6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이 사건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부는 자신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각자의 차이에 따라 분리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분리를 당연시하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에 UN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이날을 세계 인종차별철폐의날로 정하고 전 세계에서 기념행사와 더불어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날을 기념하여 기념일과 가까운 3월 17일 일요일에 전국 곳곳에서 행사가 이어졌다. 서울에서 진행된 인종차별철폐의날 기념행사 맞은편에는 비록 30여명의 소수의 인원이지만, 난민과 이주민 그리고 다문화사회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이들은 이주민과 난민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되고,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분리되어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과 뉴질랜드 총기 테러범의 주장 그리고 며칠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반난민, 반이주민 집회의 주장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난민 이주민 반대집회를 보며, 뉴질랜드 총기테러를 연상한다는 것이 너무 과한 상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도 테러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혐오와 차별의 끝에는 결국 이런 비극적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증오범죄를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 부정적 발언, 2단계 기피, 3단계 차별 및 은밀한 적대, 4단계 물리적 공격, 5단계 학살의 단계다. 한국사회는 현재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부정적 발언과 차별이 결국에는 극단적인 배제와 테러행위로 이어지는 씨앗이 된다.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한 대응에 국가와 사회가 전력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총격사건 이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우리는 200개 이상의 민족과 160개 이상의 언어로 구성된 자랑스러운 국가입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 참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공감과 지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행동을 저지른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규탄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선택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그리고 그 너머 세계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곳이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함께할 수 없는 것은 이민자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다.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규탄하고, 한국사회 내부의 차별과 혐오에 온 힘으로 맞서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3-19 이완

[수요광장]n분의 1은 공정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역할 주고다양한 수준 참여기회 제공해야'쓸모없는 사람없고, 모든 시간은동등하다'는 타임뱅크 사상에 근접상황맞게 '1인분役 부여' 가장 공평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3차 협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신고·인가된 협동조합은 1만615개로 확인되었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된 이후 약 4년 만에 드디어 1만개를 넘어선 것이다. 가히 협동조합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그러나 실제 사업 운영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은 53.4%로 절반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협동조합이 만들기는 쉬워도 운영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의 운영, 왜 어려울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은 한두 가지 사례를 일반화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 필자가 쓰는 이야기는 어느 가치지향적인 모임과 커뮤니티가 사업조직으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 협동조합 이야기임을 밝혀둔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노동과 자발적 참여로 작동한다. 이때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참여하고 일하는 게 민주적이고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낯선 조직이다. 오랜 시간 시장에서 거래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우리가 협동하는 인간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조합원 노동의 문제는 스스로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때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타트업 협동조합 대부분의 초기 조합원들은 관계로 참여한 것이다. 도와주는 마음으로. 사실 이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상태의 조합원들이 늘어나면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리더그룹은 소진현상이 나타나고 조력자 그룹은 "왜 나만?"하는 화가 쌓이고 '연결'보다는 '느슨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다수는 언제든 발을 뺄 준비가 되어 있다.나름 조직의 체제가 필요한 것이 이 시점이다. 조합원으로서 자부심, 활동의 가치, 성장의 기회 등 조합이 조합원에게 미치는 경제적 비경제적 영향이 개인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조직의 체계를 구성하여 모든 조합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다양한 수준의 참여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조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조합활동에 투입한 돈과 시간에 비례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새로운 차별과 권력이 되지 않고 건강한 리더십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주목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의 비전과 미션 신념체계, 조합원으로서의 행동강령 등을 공유하면 효과적일 것이다.정례적인 활동과 교육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리더그룹을 발견하여 활동가로 육성하여야 한다. 협동조합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봉사자, 서번트 리더십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이 돌아가도록 하는 사람들, 환대하고 맞이하는 사람들, 함께 하자고 손 내미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 이러한 리더십이 조직 내부에 확산되고 드러날 때, '느슨한'에 중심을 두고 있던 사람들이 '연결'을 경험하며 스스로 '나도 조합원이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 것이다.다시 n분의 1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것은 어쩌면 (화폐로 환산된) 등가가치의 교환을 의미한다. 이 시스템에는 평가보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일반회사는 여기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쓰고 있다. 그런데 늘 불만이고 오히려 평가보상체계가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은 어떻게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등하다"라고 주장하는 타임뱅크의 사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 교환은 꼭 PtoP(당사자간)일 필요가 없다. 커뮤니티(공동체) 내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순환할 수 있다면 자본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소중한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이러한 선물과 증여의 경제, 리더십의 순환이 작동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협동조합의 조합원 노동은 타인과 비교에 의한 n분의 1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1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이다.n분의 1의 미신을 깨는 것, 협동조합의 협동은 그곳에서 시작된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3-12 김수동

[수요광장]북·미 하노이회담에 가려진 3·1절 100주년을 보내며

매체들 회담결과 갑론을박 호들갑'100주년 의미·과제' 보도엔 인색비폭력으로 더 빛난 헌신·애국정신공유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 중요'기념비적 축일' 덮는 일 없어야지난 3·1절,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늘 그렇듯이 3·1절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하루 반짝 기념행사를 한다. 언론 매체들도 이날을 전후해 기념행사를 다루거나 자체 특집 보도를 하곤 했다. 그리곤 끝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마저도 하노이회담에 가려 조명받지 못한 것 같다. 실제로 매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북·미 하노이 회담 결과를 두고 갑론을박 호들갑스럽게 논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3·1절 100주년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보도엔 매우 인색했다. 심지어 어느 유력 일간지는 3·1절 당일 1면에서 12면을 모두 회담 내용으로 채우고도 성이 안 차는지, 노딜이 여권의 실책 인양 비판적 논조로 일관했다. 물론 '논평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던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 찰스 스콧의 말이 떠오른다.사람은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지 심리학 연구 결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언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리고 싶은 것만 관심갖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는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 100주년이 되는 3·1절을 눌러가며 매체에 도배된 그 많은 하노이 회담 논평들은 사실을 잘 전달한 것일까? 넘쳐나는 정보로 사실을 왜곡시키지는 않았을까 의문이 들면서 이번 100주년 3·1절은 특별한 언론 보도를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 또한 크게 다가왔다.필자는 돌아가신 애국지사 아버님 때문에 유독 더 3·1절이나 8·15처럼 특별한 날 언론의 보도나 논평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필자의 부친처럼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일생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떠난 모습을 지켜본 가족이라 느껴지는 기대일 수도 있겠다. 3·1절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끔 선조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을 기대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발굴, 존경과 추모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기대했다.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대했다. 물론 북·미 회담 성과 여부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기대하는 세계적인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 더없이 중요한 순간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비핵화와 비폭력은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우리 국민의 열망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전 세계가 비폭력을 열망하며 회담에 관심을 보내는 이때, 3·1운동이 비폭력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리고 부각시킬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싶은 것이다. 비폭력으로 더 빛난 3·1 운동의 헌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 형성 또한 언론의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언론은 적어도 3·1 운동이 세계사적 비폭력의 원형이라는 관점에서 더 관심을 보였어야 했다.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보도가 3·1절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역사의 축일을 간단히 덮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문득 오래전 필자가 일본 히로시마 시에 소재한 한 대학의 객원교수 시절, 경험한 일본의 8·15와 이번 우리의 3·1절이 오버랩 되며 그들의 추모행렬이 떠오른다. 덥고 습한 여름날, 종일 이어지는 검은 정장 차림의 긴 상복 행렬은 신기하다 못해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원폭에 희생된 슬픔과 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한 대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반면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된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는 우리 국민들의 추모 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몇 분이나 알고 있을지….이번 3·1절 관련 언론만 탓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독립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탑골공원은 국민 모두가 기념할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빈곤 노인들의 슬럼가처럼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게 바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현주소이자 3·1운동의 이중적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어느 교수의 탄식이 깊게 와 닿는다. 언론도 국민도 모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3-05 김정순

[수요광장]"고령사회 대한민국, 체육의 가치를 더해야 할 때"

'고령화' 선진국 비해 엄청난 속도준비도 못한채 상황 맞은게 문제노인 대상 프로그램 미비 한계점참여 의지 높이는 대책 마련 시급건강한 노년의 삶 '운동'은 필수대한민국은 IT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한일월드컵과 평창올림픽 등 세계적인 대회들을 치러낼때마다 성공적인 대회 운영과 함께 자국 기술력의 발전 속도는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놀라움을 자아냈다. 필자 역시 스포츠선수로서, 스포츠행정가로서 다양한 대회를 다니다 보면 자국의 변화 속도에 놀라곤 한다. 이렇듯 질주하는 변화의 속도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가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 자리 잡고 어느 시점에서 확연하게 다가온다.한국은 기술력의 발전 속도만큼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를 가진 변화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고령화 속도이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17년만인 2017년 8월 고령사회로 진입하였으며 통계청에서는 2022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령사회 도달 속도는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일본보다도 무려 7년이나 빠르게 도달한 것이며 프랑스 115년, 스웨덴 85년, 미국 65년 독일과 영국이 각각 45년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라 할 수 있다.고령화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저출산 등과 맞물려 일어난다. 국내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도 겪고 있는 변화이며 흐름이다. 이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평균 50년 정도의 고령사회 진입속도를 보였던 선진국은 고령화로 인한 자국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반면 한국은 그 변화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고령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생산인구의 감소와 의료비 및 복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체육이다. 체육을 통한 건강한 삶의 영위는 의료비 절감의 효과와 더불어 노인 인구의 지속적 생산활동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질병의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체육은 궁극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독일 등에 비하면 한국은 전 국민의 체육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스포츠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근래에 들어 지자체별로 주민들의 거주지 인근에 운동시설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과거보다 나은 스포츠 인프라를 구성해 가고 있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의 미비 및 지도자의 전문성과 운영 프로그램이 일부에 제한되는 등 한계점을 갖고 있다. 또한 거시적 관점에서 노인들의 참여 의지를 북돋고 지속할 현실적인 해결책도 시급하다. 미국의 경우 연령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과 프로그램이 정착해 있다. 이러한 스포츠 인프라는 약 19개 종목으로 구성된 미국시니어올림픽이 30년 넘게 이어지는데 기여했다.스포츠 인프라부터 시니어올림픽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인들의 건강에 대한 의식제고와 참여의지를 높이고 참여를 통해 심리적 소외감을 덜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래 세대가 노인에 대한 재해석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 속도, 그 완급조절에 체육이 필요한 이유이다.얼마 전 매체를 통해 가동 연한(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최대 나이)이 60세에서 65세로 높여진다는 뉴스를 접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나이를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높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내용이다. 어느덧 급속한 고령화 속도로 인한 변화는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고령화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느낄 것이다. 체육이 그 변화 속에 함께 한다면 한국의 초고령사회는 늙어도 늙은 것이 아닐 것이며 체육의 가치는 선수들의 금메달보다 더 빛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2-26 유승민

[수요광장]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에 빠진다는 것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상상 결과물도장 이용해 창조한 '스탬프 아트'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취미·놀이건조한 삶에 에너지 순간적 부여봄이 오면 '예술 세계' 발견해가자모든 예술은 현실 질서의 억압으로부터 순간적인 탈주를 꿈꾸는 상상적 운동의 결과이다. 물론 예술은 그러한 원심력에 일종의 관습적 형태를 부여하여 매우 구체적인 매혹의 대상이 되게끔 한다. 소리, 색채, 물질 등에 형식을 개입시키면 음악이 되고, 회화가 되고, 건축이 되고, 또 여러 예술 양식으로 번져갈 것이 아니겠는가. 프랑스 비평가인 장 벨망 노엘은 '정신분석과 문학'에서, "꿈, 놀이, 예술의 환영은 억압된 욕망의 변형된 성취이며, 현실 법칙에 길들여진 이들은 두 가지를 잃어버리는데, 그것이 유머와 예술"이라고 하였다. 역시 프랑스 비평가인 조르주 풀레도 '비평과 의식'에서 "놀이와 취향은 가장 매혹적인 자극인 동시에 가장 마르지 않는 몽상의 원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예술은 '꿈(몽상)', '놀이', '취향'과 겹쳐지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끔 하는 매혹을 두루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falling in art의 순간이다.최근 이러한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여기서 소개하는 '스탬프 아트'는 말 그대로 도장을 이용해 창조해낸 예술 세계를 뜻하는데, 윤정현이 쓴 '스탬프 아트에 빠지다'는 파격적인 친절함과 구체성으로 이 생소한 예술을 살갑게 만나게 해준다. 책에 들인 시간과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에 관한 저자 자신의 실물 경험을 다양한 시각적 서비스로 알려주는데, 저자는 이 복합적 현대예술에 빠져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우리에게 낱낱이 전해준다. 예술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일반론과 역주행하면서, 그녀는 예술이 행복 체험의 소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윤정현은 학창 시절 밤샘 공부는 하지 않았어도 미술 숙제할 때만큼은 아침 해 뜨는 것을 볼 정도로 심취했다는데, 그만큼 그녀는 예술과 오랜 연애를 한 셈이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가 스탬프와 잉크패드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세계로서, 시작만 하면 배우고 활용하고 장식해가는 확장성이 무궁하게 열린다는 것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예술은 더없이 행복한 취미이자 놀이가 된다. 이러한 경험적 확장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모양의 스탬프를 이용해 스토리북, 팝업북, 카드, 액세서리 등 세상에 유일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스탬프 아트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falling in stamp art다.그런가 하면 우리가 가장 오래된 예술 양식의 하나로 거론하는 서정시 역시 깊은 행복 체험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일찍이 아는 자보다는 좋아하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는 즐기는 자가 윗길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그처럼 모든 예술은 '즐거워함'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고, 우리가 읽는 서정시 역시 조곤조곤 그러한 행복의 순간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나태주 선생의 유명한 작품 '멀리서 빈다'에서는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된다//가을이다/부디 아프지 마라"는 전언을 들려주는데, '나'와 '너'가 서로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내는 상호의존적 행복 체험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더없이 중요함을 암시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이렇게 서정시에 빠지고, 한 편의 서정시는 마음의 '스탬프 아트'가 된다. falling in a poem이다.이처럼 우리가 예술에 빠진다는 것은, 나날이 가지는 건조한 삶의 사이클에 인지적, 정서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자신을 새롭고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부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니 예술은 이성적 영역을 넓히는 학문과는 달리, 체험의 부피를 키워가면서 상상적인 소망 충족을 해가는 행복 체험의 한 방식인 셈이다. 일찍이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는 세계라 갈파하였다. 봄이 오면, 우리도,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 세계를 발견해가자./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2-19 유성호

[수요광장]공동체 구성원의 자격, 기여론과 동정론

사회적 소수자였던 프레디머큐리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사랑받아사회기여 가능 여부로 구성원 판단동조 못하는 사람들 분리 배제 안돼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전설적인 록그룹 퀸과 리드싱어인 프레디머큐리의 생애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와 그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이 흥행의 주요 이유였다고 한다. 프레디머큐리는 아프리카의 잔자비르지역, 현재의 탄자니아에서 출생했다. 부모의 국적은 인도였고, 그는 인도인중에서 아주 소수민족인 페르시아계였으며, 20세 전후로 난민이 되어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리고 프레디머큐리 자신은 성소수자였고, 튀어나온 앞니 때문에 미남은 아니었다는 평이 있다. 출생지, 민족, 종교, 성적지향, 외모 면에서 그는 사회적 소수자였다. 게다가 '난민'이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와 관련된 국가인 이란, 인도, 영국 모두에서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 소수성의 집합과 같은 프레디머큐리가 이런 모든 불리한 배경을 극복할 만큼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모든 소수자가 대중 다수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럼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없거나, 속한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역할과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일까?작년에 한국사회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과 관련하여 유심히 살펴볼 법원과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 마크(가명)는 1999년 한국에 체류 중이었던 나이지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불법체류자로 단속되어 추방되고 난 후, 어머니와 동생들과 한국에 남아 체류비자 없이 줄 곧 생활하며,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되는 처지였던 마크는 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다 2018년 단속에 적발되었고, 외국인보호소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된다. 법원은 마크가 부모의 국적국가에 가본 적이 없고 부모국적국의 언어도 못하는 반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모두 능통하다는 점 그리고 마크가 한국에서 12년간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을 성실히 마쳤다는 점을 들며, 그를 추방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동안 마크에게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감안할 때, 한국사회에 사실상 손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게 하라고 판결했다.법무부도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영주 비자를 주었다. 비자가 없이 장기 체류했던 사람이 영주권을 받게 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사례는 이주민과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임에 분명하다. 다만, 마음 한구석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한국체류 허가에 있어 중요한 사유가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기여론과 동정론이라는 점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또는 인권과 인류애를 들먹일 정도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사연이 없고서야,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주민과 소수자를 옹호하는 쪽에서도,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결국 국가 사회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기여론을 강조하며, 동정적 시각과 함께 주류사회를 설득하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국가 사회에 대한 기여 가능 여부로 구성원의 자격을 판단한다면, 결국 개개인이 얼마나 그 사회에 필요한가를 주류의 기준으로 분리하고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 기준에 부합하거나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리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잣대가 항상 외부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모두가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기존의 한국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국립소록도병원 박물관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모두 다 모두가 다 이름 있는 모든 것이다.' 사람 한명 한명이 각자의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세상, 사실은 기존 한국 구성원 모두가 원하는 세상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구성원의 자격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2019-02-12 이완

[수요광장]'집값' 걱정 없는 집, 공동체주택

전셋집 옮겨 다닐땐 늘 마음 불안내집 없는 서민들 난민되는 현실 주거·자산 분리해야 악순환 탈피좋은 이웃 함께하는 '공동체주택'살 곳 걱정 안 해도 인생 짐 덜어내나는 '여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주택(흔히들 '코하우징'이라 말하는)에 살고 있다. 여백은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제각각인 10가구가 모여 함께 지은 집이다. 우리는 힘들고 불안한 도시의 주거 문제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기 원했던 사람들이 모인 생활 공동체다. 공동체주택을 위해 처음 만난 우리는 그 꿈을 이루고자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공동체를 이루어갔고, 집짓기를 병행한 끝에 2016년 8월 지금의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나는 50대 중반이 훌쩍 넘어 처음으로 내 명의로 된 집에 살게 된 것이다.지금의 공동체주택에 자리를 잡기까지 나 또한 여러 차례 전셋집을 옮겨 다녔고 하염없이 오르기만 하는 집값과 전셋값에 마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돈을 모아 다음엔 꼭 집을 사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을 모으기도 힘들 뿐 아니라 모아놓은 돈보다 집값 전셋값이 훨씬 더 많이 오른다. 이사를 안 가려면 힘들게 모아 놓은 돈에 더 돈을 보태 보증금을 올려 주거나 일부 월세로 전환을 하여야 한다. 그것도 감당이 안 되면 결국 집의 크기를 줄이거나 더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다 이룬 이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내 집을 소유하지 못한 다수의 서민들은 난민이 되어 떠돌아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은 어느 정도 조정을 받았고 그 후 상당시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 시기에 소위 전문가들 사이에는 상승론과 하락론이 팽팽히 맞섰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심정적으로 하락론을 지지하며 빚내어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살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부는 서민의 주거안정보다 경기부양을 선택했다.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에 버티다 못한 다수의 시민들이 매수 대열에 뛰어들며 집값은 다시 한 번 폭등을 하였다.부동산시장은 지금 또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과연 앞으로 "집값은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오를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도 이와 같이 집값이 내리느냐 오르느냐에 대한 질문만 반복한다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부동산 시장은 단순히 인구통계학적 변화나 수요공급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에는 정부와 기업, 개인, 외국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의지다.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펴고 토지와 공공주택의 공급과 금리를 조절하느냐에 따라 시장은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서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의 공공성회복 보다는 경기부양에 치중하였고, 그 결과 자산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집값이 오를까, 내릴까?"가 아니다. "왜 나는 집값 때문에 불안한가?"를 물어야 한다. 집 없는 서민은 말할 것도 없고 과연 집하나 가지고 있는 서민들에게 집값이 오르면 좋은 일이고, 내리면 나쁜 일인가? 결국 이 악순환은 결국 내가 살아야 할 집, 즉 주거공간으로서의 집과 자산으로서의 집을 분리할 때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는 너무나 버겁고 힘든 일이다. 내 집 마련이 어렵다면 우리 집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혼자서는 어렵지만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가능하다.'집값'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터 잡고 살 집을 구하는 것이다. 그 집은 불필요한 거품이 없는, 나의 최소한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하는 최소의 집이라면 더욱 좋겠다. 거기에 좋은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좋은 이웃과 함께하는 최소의 집, 그것이 바로 공동체주택이다. 이 집은 내가 오래도록 살 집이기 때문에 집값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집 걱정만 안 해도 인생의 커다란 짐 하나 덜은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9-01-29 김수동

[수요광장]'SKY캐슬'의 언어적·비언어적 폭력성과 배양효과

인기 고공행진 중 종편채널 드라마 부·명예 물려주고픈 일그러진 욕망잦은 폭력적장면·가치관 왜곡에도시청자 비판보다 공감 압도 놀라움현실과 동일시 현상 경각심 요구돼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연일 자체 시청률을 갱신하더니 지난 주말에는 21.3%를 기록했다고 한다. 실은 필자도 인기에 동참해서 매회 열심히 시청한 터라 대단한 기록 경신에 한몫했다.'SKY캐슬'은 고급스러운 동네에 살면서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과 그 자녀들이 겪는 입시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극 중 부모들은 자녀에게 부와 명예를 물려주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쓴다.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한마디로 일그러진 욕망을 다루고 있다. 폭력적 장면도 많다. 첫 회부터 서울대 의대에 아들을 합격시킨 극중 인물 영재 엄마가 엽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은 매우 자극적이다. '아갈머리를 찢어버린다'며 극중 예서 엄마, 곽미향(엄정화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뱉는 말마디는 섬뜩하다. 이 짧은 대사가 매회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그때마다 매번 깜짝 놀라게 된다. 어떤 욕설보다도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언어적 비언어적 폭력 장면이 넘쳐난다. 마치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가치관의 왜곡도 난무한다. 철학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력만 뛰어나면 그만이라는 극중 전교 일등 예서의 왜곡된 해설과 주장이 당연한 것처럼 지지받는다. 특히 로스쿨 교수라는 사람은 자녀들에게 피라미드 꼭대기를 강요하며 보이는 집착적인 행동은 가히 코믹적이다.극에 등장하는 청소년 중에서 가장 반듯한 인성을 가진 우주는 살인범으로 몰린다. 불평등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미디어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사뭇 궁금했다. 어쩌면 궁금증보다는 우려스럽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미디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 흔적이 나타나게 된다. 이 때문에 미디어 영향에 관심을 갖고 주의해야 한다. 미디어 효과 이론 중에 배양효과 이론이 있는데 주로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이용자일수록 매체가 보여주는 방식이나 상에 따라 현실을 구성한다는 논의를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텔레비전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이미지나 상이 이용자에게 배양되어 현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흐리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 점이 폭력적인 방영물에 대해 우려를 낳은 이유이다. 필자의 직업병적 촉과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묘하게 나타났다.우선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보다는 공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현상에 놀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닦달하고 몰아붙이는 드라마 속 부모들에 대해 그 마음 안다며 그게 다 자식을 위한 일 아니겠냐는 공감 글이 커뮤니티에 도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입시제도 문제를 겪어 본 필자 입장에서 자녀 입시로 시달리는 부모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드라마의 폭력성을 비판하기보다는 공감이 압도적으로 많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어쩌면 이 드라마를 시청한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미디어 배양효과가 제대로 나타난 것 아닐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배양효과에는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이용자들은 현실 관점이 흐려진다고 한다. 즉 미디어가 보여 준 폭력이나 어떤 상을 사회적 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 배양효과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관점이 흐려져 드라마 속 부모들의 비정상적인 욕망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오히려 공감하면서 현실을 드라마와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인지.미디어 배양효과 이론은 어느 면에서 한계를 지적받기도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폭력성이나 제시하는 상이 이용자들에게 배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를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매체에서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 현실과 흡사하다고 믿는 경향, 바로 이 점 때문에 미디어에 노출되는 폭력성과 비윤리적인 현상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되는 것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9-01-22 김정순

[수요광장]건강한 신체활동이 건강한 미래를 만든다

도교육청·WKBL, 학교체육 활성화 협약학생 건강한 삶·스포츠 복지 실현 골자스마트폰 중독등 갈수록 신체활동 줄어협동·배려심등 습득하면 사회서도 도움지역·국가 전체에 신선한 영향 줄 것기해년 새해를 맞이하여 경기도 체육계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경기도교육청과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이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협약식을 맺었다는 소식이다. '학생들의 건강한 삶과 스포츠 복지 실현'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는 골자의 이 협약식은 최근 어려워지는 학교체육 환경과 일반학생들도 스포츠를 즐기면서 건강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의미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우선 농구라는 종목에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일반학생들이 함께 농구를 즐기며 스포츠를 이해하고 신체활동을 함으로써 건강한 학창생활을 하고 그중에 소질을 발견하면 특기자로서 육성하는 것이 생활체육과 학교체육 그리고 엘리트 체육의 순환구조의 밑바탕이 될 거 같아 체육인으로서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갈수록 학생들은 신체활동이 줄어들고 스마트 폰 중독이나 비만 등 각종 안 좋은 영향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지난 6일에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이재정 교육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스포츠 클럽 및 학교 체육발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특히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는 뜻이 같았다.필자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교육으로서 협동심·배려심·판단력·체력 등 많은 부분들이 스포츠를 통해 실제 몸으로 습득이 돼서 사회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말을 인용한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더욱더 치열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갈수록 기계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머리로 습득하는 것은 기계를 이길 수가 없다.기계가 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음악·미술·체육을 가리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그렇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계가 해주고 사람들은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고 상호 협력하는 관계들이 감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건강문제가 떠오를 것이고 신체활동을 통한 교육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번 경기도교육청과 WKBL 간의 협약은 신선하고 건강한 영향을 경기도 전반에 줄 거라 생각한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체육대회 100주년에 종합우승을 목표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친 스포츠 정책들이 지역사회 및 국가 전체에 건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학교스포츠와 클럽스포츠의 활성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스포츠의 가치가 우리의 미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9-01-15 유승민

[수요광장]시간이라는 절대권력

흥분했던 새로운 세기 벌써 20년째여전히 한해 소망·베풀 자비 기원빠름은 '창조' 동시에 '폭력' 되기도우리사회 점점 맹목적 가속만 붙어올해엔 세심함·사려 깊음 빌어본다공자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흘러감이란 과연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말했다. 그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감을 강물의 비유를 들어 강조한 것인데, 아마도 공자는 인생에서 시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이로서 첫 손에 꼽히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는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황폐화한다"라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간 시간 뒤에 남는 것은 절대적 무상(無常)이요 폐허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속도의 양감(量感)을 통해 차가운 잔해를 남기면서 흘러갈 뿐이다. 영화로 만들어져 설경구의 빛나는 연기를 기억하게 해주었던 김영하의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은 "무서운 건 악(惡)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것을 이길 수 없거든"이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시간만이 가진 절대권력을 고백하는 순간인 셈이다.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은 매번 맞는 평범한 이치이겠지만, 새로운 세기가 왔다고 흥분했던 시간도 벌써 20년째를 맞으니 감회가 없을 수 없겠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자유와 평화와 이미지로부터 인류는 여전히 역주행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한 해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저 냉혹한 시간이 베풀 자비를 염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른바 '파시스트적 속도'를 동반한 숨 가쁜 성장 리듬을 통해 비약적으로 전진해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질주해온 이러한 아폴론적 활력은, 문명과 테크놀로지의 획기적 발전과 함께 인류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견까지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긴 어둑한 그늘도 만만치 않아, 우리는 깊은 존재론적 소외와 상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이면을 꿰뚫는 혜안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유를 생성해온 역사를 가지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공간이 동질적이고 정적이고 단일한 데 비해 시간은 그 움직임으로 인해 다양의 이질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시간을 앞으로도 숱하게 경험해갈 것이고, 그 점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시간관을 첨예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속도감에 반비례할 줄 아는 성찰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해가야 할 것이다.얼마 전 나는 옛 학교의 한 제자로부터 새해 인사를 담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신을 했더니 이런 문자가 다시 왔다. "새해 첫날 문자가 오늘 도착했나 봐요. 그날 문자가 잘 안 가서 여러 번 전송했거든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신기하네요."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새해 첫날 보낸 문자가 일주일 만에 도착하다니! 그의 밝고 따뜻한 메시지는 그렇게 오래도록 시간의 궤도를 그리다가 늦게 도착하여 조금은 느리게 주위를 돌아보며 사는 것의 신비로움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쩌면 시간의 핵심은 빠르기가 아니라 깊이에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면서, 나는 뜻하지 않은 '달팽이'의 형식을 실감 있게 받아들였다. 그 메시지의 형식은, 느리면서도 선명하게 각인되는 마음씀을 올 한 해 간직하라는 부드러운 권면을 담고 있었다.'시간'이라는 명저를 쓴 칼 하인츠 가이슬러는 "빠름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된다. 속도는 창조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점점 가속이 붙으면서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안에는 우리가 빠른 기차를 타고 가면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결국 속도의 효율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속도가 가져다주는 맹목의 성취 제일주의를 비켜서려는 이러한 태도만이, 시간이라는 절대권력에 저자세로 투항하지 않고 그것에 무모하게 저항하지도 않으면서, 예정된 소멸의 덧없음을 향해 친화해가는 마음 자세일 것이다. 한 해 내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리는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을 빌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9-01-08 유성호

[수요광장]이민국가

日, 이주민 관련법안 진통끝에 통과유엔, 한국정부에 '난민 혐오 발언인종차별 강력조치 취할 것' 권고새해엔 그들이 기여한 만큼의 대우기본권 존중받는 '이민정책' 기대지난 12월 9일과 10일 이주민과 관련한 두 가지 중요한 소식이 해외에서 들려왔다. 12월 9일, 일본 국회는 이주민과 관련한 법안을 진통 끝에 통과시켰고, 일본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었다. 10일에는 유엔 회원국들이 모로코에 모여 이주자의 권리보호와 노동시장에 대한 차별 없는 접근 허용 등을 핵심으로 담고 있는 이주에 관한 국제적 약속인 '글로벌컴팩트'를 채택하였다. 이번 합의에는 한국을 포함하여 164개국이 참여했다. 이주민에 관한 사항은 거의 모든 나라에 걸쳐진 매우 주요한 관심사이다. 유엔이 추산하고 있는 이주민은 현재 2억5천800만명이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4%에 달한다. 두 가지 소식 중 당장, 일본의 이주민 정책과 관련한 큰 변화는 한국사회에도 향후 많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에 따르면, 그간 소수의 고급기술 인력에게만 허용했던, 영주권을 단순기능인력 이주자에게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기능실습생이나, 유학생을 사실상 이주노동자로 활용하면서도, 이민국가가 아니라며 이를 부정해 왔던 일본이 이번 정책을 통해 사실상 이민국가를 선언한 것이라며 일본 언론들은 이를 '일본 사회를 바꿀 역사적 전환'이라고 보도했다.또한 일본의 이주민 정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변화의 배경 중 하나는, 아시아권의 양질의 노동력을 한국에 지속적으로 빼앗길 우려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주민 유입국들 또한 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멀지 않아 보인다. 매우 보수적인 일본 정부가 이런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따른 심각한 인력난이며, 더 이상 임시변통식 대응으로는 일본 사회를 유지 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외국인력을 착취하며,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았다. 기본적 인권을 지키지 않고, 수급정책만 바꾼다고 제대로 된 이민국가가 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일본의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한 것이다. 그럼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는 어떨까? 2006년 한국정부가 다문화사회로 진입을 선언한지도 12년이 지난, 2018년 이주민과 관련한 뉴스들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역시 가장 먼저, 500여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떠올려진다. 가짜 난민은 안 된다거나, 난민 자체가 안 된다며, 난민법의 폐지까지 요구하였고 특정 종교나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여과 없이 표출되며, 한국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한 해였다. 또한, 한 젊은 이주노동자가 법무부 출입국의 단속에 쫓기다 추락해서 사망하기도 했으며, 고양 저유소 화재의 원인을 한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모두 전가하려다, 전 국민적 지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과 처우는 여전하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18년 12월 3~4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2012년에 이어 6년 만에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한국 심의가 있었다. 한국 심의 국가보고관을 맡은 게이 맥두걸(Gay McDougall) 위원은 2012년 심의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이행상황에 뚜렷한 진전이 없다고 지적하며, "한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이 노동력을 제공하여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있음에도 그에 따른 대가를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인종과 피부색, 민족과 사회계층에 따라 명확하게 국가의 부를 향유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혐오발언과 인종차별 선동 확산에 정부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이주민과 난민,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종식시키고 이해와 관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계획 수립과 혐오발언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2018년 초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을 보면, 외국인 정책의 개념을 이민정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기여한 만큼의 공정한 대우를 받고 기본권이라도 존중받아야 이민정책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새해에는 진짜 이민정책을 기대해 본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9-01-01 이완

[수요광장]여기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관계 단절된 작은 집과 방에서홀로 비싼 주거비 부담하며 살아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름 인정하고서로 포용하는 '사회적 우정의 시대'잃어버린 '함께 사는법' 다시 배워야여기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청년도 아닌 노인도 아닌 신혼부부도 아닌 다문화가정도 아닌 예술인도 아닌…. 그 아무것도 아닌 중장년 1인가구입니다. 기존 주택시장에서 공급되는 집들은 너무나 비싸고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비싼 집을 살 만한 여유도 없지만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집을 사기도 싫습니다. 집을 소유하지 않으니 전세난민이 되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의 그 촘촘한 입주자격조건, 신기하게도 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주거복지제도,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독거중년은 지금 관계가 단절된 작은 집과 방에서 홀로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며 살고, 아니 살아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혼자 살면 자유롭고 편하겠다고. 맞습니다. 그러나 불편함도 많습니다. 혼자 밥해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간편식 위주의 식사가 반복되니 건강을 잃기도 쉽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보호자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합니다. 셀프로. 어느덧 노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가 이제는 버겁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웃 하나 없는 속에서 모든 사람을 경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택배 하나도 조심스럽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불안하고 낯선 사람은 더욱 불안합니다. 결국 집은 잠만 자고 나가는 온기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내가 선택한 혼자의 삶, 당당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차별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전통적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는 비정상 가족입니다. 4인 가구와 비교 시 3배 가까이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사회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독립적이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집, 굳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적정 비용으로 쫓겨날 염려 없는 집,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집 어디 없을까요? 사실 주거 이전의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독거'가 아니라 '단절된 사회관계'입니다. '관계의 단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홀로 사는 삶은 전 세대에 걸쳐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청년 1인가구는 독거중년이 되고, 독거중년이 독거노인이 됩니다. 외로움은 지구상의 모든 고령화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병리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자본과 시장은 사업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1코노미, 욜로, 나 혼자 산다…, 매우 디테일하고 유혹적인 마케팅으로 관계가 단절된 혼삶과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정상가족으로의 회귀를 고집하는 저출생고령화 정책에 어마어마한 예산(지난 10년간 무려 127조원이라는)을 쏟아붓고 있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혼삶도 정상가족도 아닙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차별하고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개인 간 세대 간 단절된 사회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어느덧 우리가 잃어버린 함께 사는 법, 그것을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 다양한 가치와 취향을 추구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관계근력을 키우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지역마다 이러한 주민자치 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간과 인프라를 제공하여 그 누구도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활기 있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이곳에도 '독거중년'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닙니다./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

2018-12-25 김수동

[수요광장]'오로지 네 탓' 보다 '지지와 격려' 절실한 때

촛불혁명으로 출발한 문재인 정부국민행복 중심 정책 뿌리 내리는중소득주도성장·포용국가 향해 순항'어차피 불가능하다'는 비판 보다국민적 뒷받침과 호응이 필요하다요즘은 TV 켜기가 겁난다. 끔찍한 사건 사고가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또 시사프로그램 패널 등 전문가들은 어찌나 자극적인 언어로 일 방향적인 주장을 하는지, 시청자 입장에서 피로감만 느끼게 된다. 문제 발생 원인을 오로지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모습이 무섭다.종편과 일부 매체는 약속이나 한 듯 한국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며 남북문제 등 굵직한 정치현안에 대해 비판 일색 보도를 한다. 심지어 한국 경제는 지금 국가비상사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하고 있다. 이렇듯 편향된 비판일색 보도와 극단적 부정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일자리 문제 때문에 초조한 구직자들과 어려운 살림살이로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실업자 100만이 넘는 시대의 당연한 국민적 관심사이자 염원이다. 그런 만큼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포용국가를 표방하는 국정 목표와 가치를 인정하고 지켜봐야 한다. 또 언론도 이 중차대한 국정과제를 공정하게 보도하고 평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민적 관심과 긍정의 시선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성과를 내려면 국민적 지지와 온전한 관심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비판과 긍정적인 관심이 없으면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설령 수행을 해도 국민의 지지 없이 대통령의 노력과 호소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의 담담한 국정운영 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필자에게는 도무지 마음이 쓰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지인이 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 신분으로 발달장애인을 돕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수년째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일반인들과 행동양식이나 지적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이나 생활을 함께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는 발달장애인의 '다름의 능력'을 잘 살피고 활용해 이들에게 '쉬운 말 감수위원' '기자' '키워드검색사' 등 새로운 미디어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더 많은 일자리 마련을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모습이 지금의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고독한 모습과 어딘가 닮아 보인다. 국가 통치와 작은 시민단체 운영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다르다. 하지만 처한 형편이 닮은 데가 있다. 뜻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지지하는 마음이 모이면 이들이 세우고 추구하는 가치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작부터 불가능하다'며 비판일색이라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그 뜻을 펼치기 어려운 게 세상 이치이다. 이 시민단체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힘은 주변의 응원과 지지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민단체와 그의 리더십은 계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촛불혁명과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 위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다. 낡은 관습의 국정운영을 송두리째 바꾸고 국민행복 중심의 새 정책을 뿌리내리는 중이다. '국정운영 체질변화'의 목적은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로 오랜 국민적 염원이다. 이를 위해 사회전체가 체질을 바꾸느라 진통 중이다. 하지만 이런 리더십을 향해 '세상의 모든 불편이 당신네 탓'이라는 극단적 비판은 우리 스스로 '역사적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행복한 삶'이 보장돼야 한다. 이런 사회를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순 없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고 진통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소득주도성장과 포용국가라는 큰 국가적 목표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다. 이 항해는 국민적 관심과 응원이라는 바람이 불 때 목표 지점에 더 빨리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뜻인지 알지만,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식의 비판 일색은 '국민 행복'이라는 염원을 밀어내려는 역풍처럼 느껴진다. '해서 좋은' 일이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행복 중심 국정운영은 이 시점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적 지지와 격려와 호응이 절실한 것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8-12-18 김정순

[수요광장]스포츠 영웅들, '희망'의 상징에서 '실직자' 신세로

힘든 시기 이겨낼 용기준 선수들 투혼은퇴하면 영광 사라지고 재취업 힘들어59.9% 비정규직… 35.4%는 실업 상태체육인들의 제2의 출발 지원·기회 줘야1998년, IMF가 터지며 대한민국은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이때 우리 국민에게 다시금 용기를 갖게 한 사건이 있다. 바로 골프 박세리 프로의 세계정복이다. 호수에 맨발로 들어가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은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것도 골프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세계제패였기에, 온 국민은 한 줄기 희망을 봤다. 스포츠와 우리 운동선수들은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투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은퇴를 하면 선수 때의 환희와 영광은 사라진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 자리를 메운다. 김영주 국회의원이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작년도 자료에 의하면, 은퇴 선수의 35.4%가 실업 상태이다. 취업한다 해도 59.9%는 비정규직이고, 월수입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38%에 달한다. 한 분야에서 20~25년이나 활동해도, 재취업은 어렵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월수입은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통계다. 이것이 체육인들의 현실이고 아픔이다.선수 생활은 어느 직종보다도 치열하다고 단언한다. 필자 경우엔, 8세의 어린 나이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5세에는 본격적으로 선수촌에 들어갔다. 선수촌 생활은 군대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새벽 6시에 기상해 시작하는 훈련이 야간 시간까지 빈틈없이 이어진다. 33세에 은퇴할 때까지 25년이란 세월을 온전히 운동에 쏟았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25년은, 일반적인 회사에 입사한 평사원이 승진을 거듭해 회사의 별인 임원이 될 때까지 필요로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수의 경력 끝에 임원 승진이라는 달콤한 열매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보통은 연차가 높아질수록 직급과 호봉, 연봉이 함께 오른다. 운동선수는 연차가 지날수록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기량은 쇠퇴한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전성기를 기다리며 버틴다. 전성기가 한번 온다 해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며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경우에도 25년 선수 생활 중 전성기는 약 7년여에 불과했다. 선수로서의 삶도 만만치 않지만 언제나 마음 한편에는 은퇴 시기를 염두에 둬야 한다. 60~65세에 퇴임하면 되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운동선수의 은퇴는 그보다 30년 이상 앞서기 때문이다. 심지어 은퇴 연령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상헌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에 은퇴하는 선수의 수도 2015년엔 83.8%였는데, 이듬해에는 85.4%가 되더니, 작년인 2017년엔 87%에 육박했다. 2년 사이에 3.2%p나 증가한 수치다. 그렇다고 은퇴 준비를 마음 놓고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은퇴 전에 경력 전환에 대비할 여유를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선수촌의 일정은 취업준비를 위한 여분의 시간까지 제공하지 않는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엔 운동 외의 곳에 한눈을 팔 심리적 여유가 없다. 뒤늦게 전성기가 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코치 진과 팀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희망은 그동안의 선수 경력을 살려 스포츠 분야로 재취업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공한 운동선수 현황은 낭만적이지 않다. 은퇴 후 스포츠 관련 분야 취업자는 불과 22.7%에 그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동안 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과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선수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은퇴선수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1년여 전에 체육인진로지원통합센터를 열었다. 그러나 73.6%의 선수들은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조차 몰랐다.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는 10%에 그쳤으니 선수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은 아니다. 수많은 재취업 프로그램 속에서도 선수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IOC에서도 2005년부터 체육인들의 성공적인 경력전환을 위해서 선수 경력 프로그램 (Athletes Career Programme: ACP) 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엔 ACP의 강사로 선발되어 이탈리아 로마로 향했다. 4일간의 교육을 수료하였고 지난 11월에는 우리나라 은퇴 체육인들 40명을 대상으로 제1회 ACP를 진행했다. 체육인들의 네트워킹 확장, 효과적인 학습과 운동 계획 수립, 이력서 작성, 면접 기술 강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런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싶다"는 것이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다시 글의 처음인 IMF로 돌아가 보자. 수많은 실직자가 있었고 조기 은퇴가 만연했다. 그러나 아무도 실직을 개개인의 무능으로 돌리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이자 국가적인 위기로 봤다. 국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각종 지원이 쏟아졌다. 어쩌면 이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경제 위기 수렁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 은퇴선수들에겐 IMF이다. 체육전공자들의 고질적인 취업난을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한때 그들에게 보냈던 '뜨거운 박수'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희망'의 상징이고 '용기'의 아이콘이었다. 체육인들이 제2의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의 지원과 기회가 제공된다면, 이들은 은퇴 후에도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당당한 모습으로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12-11 유승민

[수요광장]현실 탐색과 지향으로서의 시

권력의 부당한 간섭 '저항' 일반화'억압' 현대시 중요 관심사 돼버려다양한 문제들과 끝없이 싸우면더욱 강력한 창작 모티브로 작용詩 역사뒤로 넘어야 할 산 아직 많아다시 현실의 시대다. 원래 '현실'이란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나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이상(理想)'이나 '허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가령 "대학생들의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든지 "우리는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같은 표현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미학에서 그것은 사실로서 부여되어 있는 것 또는 실제로 존재하며 활동하는 것, 곧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실제로 성립되어 있는 상태를 이른다.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읽고 쓰는 시(詩)는 현실의 정보 전달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물론 시라고 하여 현실의 정보나 사실을 전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서양 문학사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귀중한 정보들을 제공해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공주는 하녀들이 빨래하는 것을 손수 도와주고, 오디세우스 왕 또한 농사 때가 되면 밭갈이를 하고 목수 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호메로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왕족 또한 육체노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이로써 알 수 있다.하지만 시의 기능은 이러한 현실의 사실적 세부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의미 있는 현실적 경험을 미학적으로 가공하여 그것을 정서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현실을 그대로 인지하기 위해서라면 시보다 차라리 다른 문헌을 살피는 편이 한결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시가 인간이 살아가는 구체적 현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흔히 시를 '현실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현실의 구체적 경험이 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시가 다루는 현실 속에는 수많은 권력의 양태들이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개재하는 국가 간 권력 위계로부터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권력에 이르기까지의 거시적 권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 행사되는 미시적 권력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 권력 주체들은 언제나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세력을 위해 자신의 힘을 행사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권력이란 본래적인 자기 집중성 때문에 타자들에 대해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자기 동일성을 띨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권력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자체는 물론, 법률이나 제도, 암암리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관념, 여론이나 유행 심지어는 사소한 생활적 관행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억압할 수 있다. 물론 인간 사회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과 충돌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수단으로서의 권력의 순기능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인간의 삶에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러한 권력의 양상들은 우리의 현대시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온 문제 가운데 하나다. 시는 우리의 삶 속에 편재한 권력의 폭력성에 우회적으로 저항한다. 폭력이 남긴 환부를 드러내고 그에 대한 치유의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부당한 권력의 숨겨진 속내를 폭로하고 야유한다. 그리고 한쪽에 떠밀려 있는 소외 그룹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타자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옹립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주체와 객체가 타자성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돕는 평화의 상태가 회복되기를 역설적으로 꿈꾼다.특별히 근대 이후 각성된 개인들이 자기 권리의 영역을 확보하고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되면서 생활 세계에서 행해지는 미시적 권력의 억압이라는 문제는 현대시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가부장적 권력, 남성 중심주의 문화,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유형무형의 폭력, 어쩌면 기억에 가해지는 폭력까지 우리가 겪어야 하고 넘어야 할 의제들은 무수히 많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군(群)과 끝없는 분투를 치러야 하는 우리 시대에, 시의 현실 탐색과 지향의 속성은 더욱 강력한 창작 모티프로 작용해갈 것이다. 오도된 권력과 오래도록 싸워온 우리 시의 역사 뒤로,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8-12-04 유성호

[수요광장]인종차별에 중립이란 없다

경제난에 이주민·난민 혐오 확산사회불안 해결책 책임전가 하는지열악한 노동환경·폭력적인 단속정부의 방관자적 애매한 태도 등지적 겸허히 수용하고 바로 잡아야12월 3·4일 양일간 스위스 제네바의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대한민국의 인종차별철폐조약 이행상황에 대한 심의가 열린다. 이번 심의는 2012년에 이어 6년만에 진행되는 것으로,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전문위원이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에 대해 심의를 예정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은 1965년 UN총회에서 채택되었고, 현재 178개국이 가입하고 있으며, 한국은 1978년 가입했다. 유엔의 한국 인종차별 상황 심의는 국제기준에 맞추어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이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6조에 의하면,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상이 그러한지는 여러 가지로 의문이지만, 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다수의 공무원이 이번 심의에 대응하기 위해, 제네바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심의를 받는 것이 의무이기도 하지만, 위원회의 따가운 질책에 이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조금이나마 피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도 이에 맞추어 지난 1년간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시민사회의 별도 보고서를 발표 및 제출했고, 이번 심의과정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스위스 제네바 현지로 출국하여,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위원 및 유엔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낼 계획이다. 한국의 인종차별은 확산 일로에 있다. 체류 외국인은 약 240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이주민에 대한 권리보장은 이주민의 증가와는 오히려 반비례하고 있으며, 인종차별과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이주민과 난민 등에 대한 혐오도 함께 커져가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공공연하게, 정부의 주요인사에게서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차별대우를 법제화할 기세다.2014년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을 방문 조사했던 UN인종차별특별보고관은 경제가 어려워질 때를 더욱 경계하라고 한국에 조언했다.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이들에게, 어려움의 원인을 전가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통해,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불만을 돌리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인종차별특보의 선견지명이었을까? 아니다, 어쩌면 이는 인종차별의 매우 고전적 수법이다. 사회 전체가 어렵고 힘들어질 때마다,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던 경험을 한국사회 또한 역사적으로 누차 겪어왔던 일이다. 한국사회도 경제와 사회불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주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또한 이번 심의에서는 혐오발언과 표현에 대해 정부가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문제, 폭력적인 단속 추방문제, 인종차별금지 등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그리고 보편적 출생등록 등 그간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줄기차게 한국사회에 호소해왔던 사항들이 모두 다루어질 전망이다. 어찌 보면 심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픈 지적이 나왔다면,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바로 잡아, 더 나은 사회로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수많은 혐오와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에 기인한 바가 매우 크다. 그간 정부는 인종차별 문제에 매우 애매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인종 혐오와 차별 행위에 대해 모른 척 방치하거나, 심지어 일부이지만 국민의 의견이라며, 공식적인 자리에 초청해 혐오 발언을 하게까지 했다.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중립'이라거나 '사회적 합의'가 아직 덜 이루어졌다는 말로 피해갔다. 인종차별에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인종차별에 중립이란 없으며, 인종차별과 차별금지 그사이 어떤 지점에서도 사회적 합의란 존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동조하거나 혹은 싸우거나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8-11-27 이완

[수요광장]노후를 위한 집도, 커뮤니티도 없는 커뮤니티 케어

건강한 노년 유지 핵심은 '공동체'내 집과 동네에서 어울려 사는 것시민들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사회관계망·자조시장 만들어야공공기관 적극적인 지원은 필수지금 일본의 노인복지는 시설중심에서 커뮤니티 케어로 옮겨가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 즉 공동체를 통한 복지사회 구현이다. 어르신 돌봄을 과거와 같은 요양시설 중심 체계로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커뮤니티(공동체)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하지 못하면 존엄한 노년은 결코 지켜질 수 없다.일본의 노인복지가 시설요양에서 커뮤니티 케어로 전향한 배경에 '2025년 문제'가 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자랑하는 일본에서는 2025년이 되면 약 650만 명인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후기고령층(75세 이상)이 돼 의료와 간병 시스템이 따라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선 이를 '2025년 문제'라 한다. 이때가 되면 의료비는 54조엔으로 2006년의 약 2배, 사회보장비는 162조엔으로 약 1.8배에 달할 것이라고 후생노동성은 전망한다.우리나라도 지난 3월 12일 보건복지부가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중장기 발전방향으로서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커뮤니티 케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Community)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체계를 의미한다.커뮤니티 케어는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중심의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로, 국가 제도중심에서 지역 주도로,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복지서비스 시스템을 재정비하여 한국의 복지서비스 체제를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참여와 논의가 필요하다. 커뮤니티케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의료와 돌봄 이전에 노년에도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집과 지역 커뮤니티(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후를 위한 집도 커뮤니티도 없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커뮤니티케어를 외치기 전에 준비하여야 할 것은 나이 들어서도 시설에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고령화를 사업(돈 버는 일)의 기회로 보았던 많은 시도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버산업이라고도 하고 시니어비즈니스라고도 한다.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여전히 유망하기만 한 사업이 되었다.시니어 비즈니스는 고령자의 구매를 자극하거나 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지구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장수사회, 한쪽에서는 4차산업과 첨단기술을 논하지만 기승전 결론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귀결된다. 보통의 시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노년의 삶은 공공복지의 최저 생활 보장도, 고급 실버타운의 비싼 서비스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에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행복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 소박한 요구에 대해 시장도 기술도 여전히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는 노인복지를 편하게 시장에 넘겨 버렸다. 지금 말 많은 사립유치원과 동일한 구조다.노년의 삶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핵심은 주거와 관계(공동체)이다. 선진국에서도 노후주거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론은 시설도 아닌 고급 실버타운도 아닌 내 집과 동네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다. 코하우징과 같은 수요자 주도 건축과 주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이다.노인돌봄 또한 미국의 빌리지운동이나 일본의 복지클럽생협과 같은 지역사회 공동체 기반 시민주도 활동이 지금 커뮤니티케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이제 정신 차리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시니어 비즈니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적 접근을 넘어 적정기술 개발과 커뮤니티 기반 사회적경제 관점에서 사회혁신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공동체활동에 참여하여 호혜적 사회관계망과 자조시장을 만들어야 하며, 공공은 이를 지원하여야 한다. 모두 함께 노후를 위한 집과 마을을 준비하여야 한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8-11-20 김수동

[수요광장]국감장의 '수준 미달·품격 실종' 제발 사라져야

여야간 정쟁과 날세운 공방 '여전'정책·현안에 대해 유치한 질문호통·삿대질 등 '망신주기' 일관피감기관 무성의한 답변도 '눈살'허용범위 정할 매뉴얼 마련 시급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국정감사는 많은 숙제를 남겼다. 이번 국감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년여 문재인정부는 국가 체질의 기본기를 다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정책들이 어디를 향하고, 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국민적 관심사가 높았던 것이다.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협치와 통합에 거는 국민적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번 국감 현장에서 보인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망을 감출 수 없게 했다. 국격이 높아지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국감장에서는 실력도, 의지도, 품격도, 성의도 없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바뀌는데 국감장 모습은 이토록 안 바뀌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야 간 정쟁과 날선 공방이 여느 때보다 유독 많았다. 일단 상대 당을 비방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았다. 정작 날카로워야 할 피감기관의 정책과 현안에 대해선 맥 빠지는 질의가 많았다. 국감이란 행정부에서 하는 일을 국민의 시각에서 점검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잡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 기대와는 다르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국감장에서 노출됐다. 의원들의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질문, 왜곡되고 과장된 공격은 오로지 '피감자 망신주기'가 목적인 듯 보였다. 그나마 2년 연속 '국감 홈런'을 날린 박용진 의원(민주당), 서울시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한 유민봉 의원(한국당) 등 몇몇 유능한 공격수의 활약 덕분에 체증이 조금이나마 풀렸을 뿐이다. 물론 철저하게 준비된 피감 기관장들은 의원들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진솔하게 답변하거나 노련하게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책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은 기관도 눈에 띄었다. 이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질문이든 무딘 질문이든 '검토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 반복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피감기관도 있었다. 국감장에서 저급한 고성이 오가고 상스러운 삿대질이 난무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뀔 조짐이 안 보인다. 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죄인 취급하듯 하며 권위적인 태도로 호통치고, 무안 주고, 버럭 화내는 모습은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의원들은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쏟아놓고, 피감기관이 답을 하려 들면 '됐어요'라고 하면서 말을 잘라버린다. '방송 분량 욕심' 때문인지 보좌진이 준비해 올린 원고를 큰소리로 계속 읽어 내려간다. 애당초 피감기관에 답변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쁜 시간 쪼개 성실하게 준비한 증인이나 참고인들의 답변은 종종 이렇게 무시됐다. 이런 모습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올해 국감에선 신선한 풍경도 눈길을 끌었다. '책(冊)' 형태의 정책자료집들이 주목을 끌었다. 국감 질의시간은 깊이 있게 정책을 논의하기엔 시간적 제한이 있는데 정책 제안을 통해 피감기관의 개선을 이끌기 위해선 정책자료집을 통한 소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국감장 풍경이 발전적으로 변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의원들의 날카로운 공격과 피감기관의 성실한 수비 외에도 국감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언론의 사명과 역할이다. 잘 준비된 의원의 수준 높은 질의와 무성의한 의원의 질의 수준을 구체적인 보도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피감기관장의 능력과 노력을 국민들이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언론보도는 확실한 검증을 바탕으로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합리적인 국감을 위한 시스템 개선과 해서는 안 되는 구체적 매뉴얼 마련도 시급하다. 분명한 문제제기 대신에 막말과 호통으로 망신주기식 국감은 더 이상 안 된다. 이런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정책 검증과 현안 문제로 국민적 관심사를 끌어내 국민들에게 흥미를 일깨워야 한다. 국감 진행과 관련해 어느 수준에서 허용 범위를 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18-11-13 김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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