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시진핑 (習近平) 주석께 드리는 글

공무원 사무실 반으로 줄이고관공서 담장 헐고고급음식점·술집·노래방 등출입도 크게 줄어…중국발전 가장 큰 문제점인부정부패 줄었다는 사실 체감지난 5월 중국 옌볜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지린성 옌볜대학은 주로 심장병환자 수술을 위해 매년 한두번 씩 들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 훈춘에 있는 인민병원과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서였습니다.옌볜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중국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외화보유액수로나 수출입 금액 등 경제적 지표로만 보면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선진국이지만 과연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는 선진국인가 하는 점에서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중국은 한국에 비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우월감이 있었다고나 할까요.몇해전 옌지시를 방문했을 때 느낌입니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초 겨울거리는 먼지바람이 불었고 포장이 덜돼 비가 오면 빗물이 길가는 사람에게 튀기기도 하고 쌓아둔 석탄가루가 바람에 날려 빨래는 물론 옷깃을 시커멓게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갈때마다 썩 기분좋은 여행이 아니었지요. 담배와 술로 분위기를 만드는 회식문화, 푸짐하게 차려야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음식문화, 인맥과 관계중심의 사회를 접하고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고속도로에는 이따금 달구지가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도 횡단보도처럼 길을 건너는 습관때문에 고속도로인지 농로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였지요.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됐다 해도 우리나라 같이 전국민의료보험은 꿈도 못꾸고 있었고 관료들의 부패는 또 얼마나 언론에 회자됐습니까? 상하이나 베이징은 서울 못지않게 발달했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중국이 변하기는 힘들다고 믿었습니다. 옌볜지역만 보기는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중국은 인구만 많고 땅만 넓었지 선진국은 아니야 하고 자만을 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그런 중국이 달라졌더군요. 제가 방문했던 옌볜대학병원 앞 비포장도로는 깨끗한 아스팔트로 포장이 됐고, 주도로 옆에 서비스도로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병원앞 헐리기 직전의 허름한 건물들도 깨끗한 아파트로 단장됐고 화장실들도 수세식으로 변했습니다. 옌지시를 관통하는 강변도로는 한강만큼 멋있는 야경을 보여주었고 석탄가루는 사라졌으며 훈춘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한국의 어느 도로보다 깨끗했습니다. 내년에는 베이징·창춘에서 훈춘까지 고속철도가 완공된다고 하더군요. 백두산 장백폭포 가는 길도 포장이 됐을 뿐아니라 보기쉬운 안내문과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진 멋진 국립공원으로 탈바꿈됐고 노점상은 사라졌더군요.문제는 이런 것들은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중국 발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정부패가 시진핑 주석님의 취임이후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부터입니다. 공무원들의 사무실은 반으로 줄였다고 하고, 관공서 담장은 백성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헐렸다고 했으며 시내 고급음식점·술집·노래방이 거의 망해갈 정도로 공무원 손님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어느 나라나 선진국이 되려면 부정부패의 산을 넘어야 합니다. 중국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부정부패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정부패 때문에 어쩌면 공산당 정권까지도 흔들릴 것이고 대한민국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던 제 선입관은 보기 좋게 이번 여행에서 무너졌음을 고백합니다.우리나라에서 겪은 세월호사건을 보면서 현재 당신께서 다스리시는 중국과 비교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수준은 어떨지? 우리들의 청렴도는 어떠할지? 솔직히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즐겁다기 보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미 앞서있는 것들도 수년 후에는 당신들이 앞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교만한 마음으로 중국을 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행을 통해 저는 겸손한 마음으로 중화민국을 바라보게 됐습니다./박국양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장▲ 박국양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장

2014-09-16 박국양

재미는 사람을 부른다

사회 곳곳엔 도움의 손길이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루게릭병 환자 돕는흥미롭고 눈길 끄는얼음물 뒤집어쓰기 처럼재미있는 일 이어졌으면…쉽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가장 풍요롭게 산다. 재미의 즐거운 비밀은 '탁월함'이라는 낱말에 담겨 있다. 누구나 살면서 많은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벽은 우릴 멈추게 하려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워 주려고 있는 것이다.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가장 현명하고 간단한 답은 웃음이다.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그렇게 하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이다. 잡은 손의 온기(溫氣)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선물은 무얼까. 재미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요즘 루게릭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유행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열풍처럼 번져가고 있다. 참여자가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100달러를 기부하고 다시 세명을 지목한다. 가장 전파력이 강한 기부캠페인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인증샷을 보노라면 그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난다. 영상·네트워크 시대에 기발한 착상이다. 빌 게이츠·메시 등 세계적인 인물도 나서서 얼음물을 뒤집어 쓴 영상이 재미를 더 한다. 우리나라도 연예인·운동선수·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나섰다. 요즘처럼 재미없는 세상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재미는 사람을 부른다. 루게릭병을 모르던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병은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힘을 잃어가며 생기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우리나라에도 1천500여 명이 앓고 있다. 희귀병인 만큼 병을 세상에 알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블랙홀과 양자우주론 등 혁명적 이론을 정립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40년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 게릭(Lou Gehrig)은 미국 양키스 프로야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던 전설의 4번 타자다. 그가 38세 때,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으로 사망했다. 훗날 그의 이름을 따 루게릭 병명이 생겼다. 너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짐을 나눠 들어 주라는 말이 있다. 재미있는 삶을 위한 구호가 절실한 때다.지난 주말에는 남양주시 진접읍 한 시인의 포도밭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있었다. '포도밭예술제'다. 꽃을 노래한 작고시인 김춘수가 포도밭을 일구고 있는 제자 시인에게 포도밭에서 예술제를 펼쳐보라는 제의가 발단이 돼 5년전부터 열리고 있다. 포도밭이 아름다운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포도나무에 시와 그림을 걸고 공연을 펼쳐 관광객을 유치하는 풍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의 시작 필사본 노트, 시집, 시와 그림 등을 전시하고 시낭독과 함께 작은 음악회도 포도밭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문인뿐 아니라 일반관광객 등 3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자리매김됐다. 재미가 사람을 부르는 행사장이다. 특히 올해는 김춘수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시집·시론집·수필집·친필편지가 전시됐다. 1959년 발표한 시집 '꽃의 소묘' 탈고과정을 볼 수 있는 필사본 노트가 있어 대표작 꽃이 어떻게 형상화됐는지도 알 수 있었다. 농산물개방으로 농촌이 어려운 때, 이 역시 농업인을 돕는 기발한 착상이다. 예술은 이처럼 발랄한 상상을 던진다. 참여한 문인만이 아니라 찾아온 관광객도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축제장인 듯싶다.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거기에 있어준다는 것도 축복이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기에 그렇다. 사회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을 향한 손길은 일회성 캠페인이면 안 된다. 동정이나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대중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재미있을 때 거기에 반응한다. 방송프로도 그렇다. 재미없으면 이내 채널을 돌린다. 광고 카피도 그렇다. 재미있으면 눈길이 가고 귀가 열린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얼음물 뒤집어쓰기가 기부 모델로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이유다. 사회가 날로 기계화되고 있어 재미있는 행사는 기계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다. 주변에 재미있는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회장▲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회장

2014-09-02 김훈동

닫힌 문을 여는 방법

엄청난 시련이 닥쳤을때해결의 문은생각만으로 열 수가 없다직접 다가가서밀거나 당겨야열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자연과 외부의 도전에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도전이 두려워 피한 민족이나 문명은 사라지고 말았고, 도전이 없었던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지고 말았다고 주장합니다.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민족의 원조는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6천년 전 아프리카북부에 걸쳐 있던 강우전선이 북유럽으로 이동하자 아프리카는 사막지대로 변해갔습니다. 이들은 셋중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째, 그곳에 남아 기존의 수렵생활을 영위하거나, 둘째, 남되 수렵생활이 아닌 유목이나 농경생활을 하는 형태로 생활방식을 바꾸거나, 셋째, 거주지역과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거나였습니다. 셋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한 것입니다.그 자리에 남아 조상의 방식대로 수렵생활을 한 부족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졌고,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나중에 아프리카 스텝지역의 유목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주지역과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마침내 찬란한 이집트문명을 만들었습니다.도전에 응전할 때만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살면서 만나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그것을 넘지 못하고 무릎 꿇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전부를 걸고 그 장벽을 넘어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벽을 넘어서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치열한 응전입니다. 굴복하지 않는 것이죠.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상대가 갖고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현실적으로 내가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대부분 가서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절이 두렵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전과 응전은 재미있는 확률의 비밀이 있습니다. 자존심 상한다고 가지 않으면 얻을 확률은 0%입니다. 그런데 쫓아가면 50%로 변합니다. 내가 어떤 것을 달라고 해도 상대는 카드가 2개밖에 없습니다. 주거나 또는 안주거나. 이 상황에서 가야 할까요, 가지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가야 합니다. 가서 말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세요." 그런데 용기내서 달라고 했는데 상대가 주지 않으면, '거봐 내가 괜한 짓을 했어. 자존심상해. 다시는 안 갈 거야'라고 생각하죠.그런데 한번 달라고 해서 상대가 바로 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때 포기하면 확률은 다시 0%로 떨어집니다. 오늘 다시 출발하면 확률은 50%로 다시 바뀝니다. 도전과 응전의 확률이란 포기하면 0%, 다시 시작하면 50%로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꿈을 이룬 사람들은 이 확률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대부분 한두 번 도전하다 안된다 싶으면 포기하고 마는데 959번을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무려 960번만에 성취를 이룬 놀라운 사례가 있습니다. 69세의 차사순 할머니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960번 만에 취득, '959전 960기 신화'를 창조해 냈습니다. 5년동안 주말과 국경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아 시험을 치렀다고 합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느라고 밥값과 버스비 2천만원, 인지대 500만원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차 할머니는 국내 자동차회사 광고에도 모델로 등장해 '올해의 광고모델상'을 받았고 흰색 승용차를 선물 받아 오너 드라이버가 됐습니다. 차 할머니는 959번을 낙방하면서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을까요.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도전했기 때문에 확률은 늘 50%로 살아있었던 것입니다.살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이 올 때가 있습니다. 거대한 문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죠. 보통사람들은 굳게 닫힌 그 거대한 문을 열 자신도 없고, 열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그 앞에서 주저앉게 됩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포기하죠. 그러나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친절하게도 여는 방법이 거기에 적혀 있습니다. '미시오' 또는 '당기시오'.문은 생각만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다가가서 밀거나 당길 때만 열립니다. 당신의 무릎을 꺾는 엄청난 도전이 당신을 덮칠 때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은 밀거나 당길 때만 열린다는 사실을./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8-26 송진구

폐쇄적인 군대 병영문화 싹 바꿔야 한다

사고땐 軍지휘부 상황인식 전환병사들을 내 가족으로 봐야재발 막기위해 최고형량 처벌과지휘계통의 완전파면 시키고민간 인권감시 조직 만들어저녁시간 생활관 수시점검 필요1992년 작 톰 크루즈 데미무어 그리고 잭 니콜슨 주연의 군대 구타와 사망 조직적 은폐, 그것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을 끌어내는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소수 정예 미 해병대 상징)'은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볼 때 필자는 젊었던 탓인지 톰 크루즈 데미무어에 그저 열광했고 잭 니콜슨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연출가 풋내기로 감동받은 정도였지 군대문화의 심각성을 분노하거나 대한민국의 군대와 비교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필자도 군대를 무사히 갔다오고 별 탈이 없었기에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어 퓨 굿맨'은 관타나모를 배경으로 한 미 해병대내 살인사건을 다룬 군사법정 영화다. 관타나모에서 해병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산티아고 일병.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크게 문제되고 있는 '관심병사'이었다. 그 부대에는 지나치게 군인정신만 외치며 살고 있는 제셉 대령이 있었고 그런 그에게 비친 산티아고 일병은 한심한 병사였다. 그는 결국 해병대내의 암묵적인 전통 '코드 레드(구타와 얼차려)'를 당하다 죽음을 맞게 된다.대한민국 28사단의 윤일병과 똑같이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다가 죽는 것이다. 가해자는 같은 소대원 두 명. 치열한 법정 공방을 통해 가혹행위를 명령한 제셉 대령은 법정 구속이 되고, 위계질서와 명령을 성전처럼 받들던 가해 사병은 불명예 제대를 당한다. 이처럼 '코드 레드'는 미 해병대의 불문율이었다. 불법이지만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문화로 전해져 왔던 것이다.이 영화의 실제 모델은 1976년 미 해병대 훈련병이던 린 매클루어로 고된 훈련과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 사병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교관이 참지 못하고 군기를 잡기 위해 매클루어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그는 숨지게 된다. 미 해병대는 매클루어 사건 이후 가혹행위 근절을 선언했다. 처음 시행할 때는 해병대정신을 말살하려 한다는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오히려 점차 호응을 얻어 정착됐다. 미 해병대는 이 사건으로 후진적인 악습을 철폐하고 지상 최고 군대로서 명예와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쁜 악습이 습관적으로 전해져 오면 그것이 적폐일지라도 따르게 되고 오히려 없애려면 저항이 따를 수 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국에는 정의와 진리가 이긴다는 큰 교훈을 주는 사건이었다.대한민국 21세기 현재 우리는 믿기 힘들 정도로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은 암울한 시기를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온 국민이 충격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학교에서의 폭력과 왕따문제, 반인륜적 범죄가 매일 터져 나오고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해묵은 적폐 군병영 문화가 폭발하고 있다. 임병장의 동료병사들을 향한 총기난사, 그리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윤일병이 악마 같은 동료들에 의한 인권유린과 가혹행위로 사망하는 참담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전군 전수 조사에서 수없는 가혹행위가 확인됐다.무엇이 문제일까? 위에서 보았듯이 철저히 폐쇄된 집단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반인권적 행위 그리고 은근히 묵인하고 조장하는 선임들, 사건이 터져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은폐하기에 바쁜 군 간부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이랍시고 옛 것을 똑같이 베껴대는 한심한 상황인식, 이 모든 것이 군대를 썩게 만들고 있다고 군 밖에서는 보고 있다. 부모들은 불안하게 아들을 보내고 있는데 그 불안을 없애 주어야 할 군 지도자들은 그 아들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그렇지 않으리라 믿지만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군인이 있다면 문제라는 것이다.해법은 달리 없어 보인다. 군 지휘부의 상황인식 전환, 그리고 병사들을 내 가족으로 보는 것, 사건이 터지면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정도의 최고형량 처벌, 지휘계통의 보직해임 정도가 아닌 완전파면, 또한 생활관 저녁 휴식시간을 수시로 민간으로 구성된 군 인권감시조직을 만들어 체크하게 하면 가혹행위가 없어지지 않을까 진단해 본다. 필자의 아들도 곧 군대를 보내야 한다. 군에 갔다와야 사람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이 민망해졌다./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2014-08-19 장용휘

일상화된 폭력이 더 위험하다

가정에선 자식이 잘 되라고학교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때리는것 부터가 일상적 폭력이러한 악습을 보호하고그럴듯한 명분을 주는것 부터폭력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것윤일병 사건의 원인에는 일상화된 폭력이 들어 있다. 흔히 폭력범죄가 만연하는 이유를 영화나 게임 등에서의 무분별한 폭력 장면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보여주기' 위한 특이성에 가까운 폭력이지 일상적인 폭력은 아니다. 일상화된 폭력은 너무나 사소하고 시시해서 감상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귀를 잡아당기고 발길질을 하고 골탕을 먹이는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누가 보겠는가.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이런 것들이 쌓여 분노와 원한을 만들어 낸다. 이런 괴롭힘은 조직적이거나 계획적이지도 않으며 폭력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생활화돼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고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분노와 억울함을 유발하는 폭력이 있다. 오랫동안 감정의 앙금으로 남는 폭력이 있다. 강자가 약자를 일방적으로 위해를 가할 때다. 실제 폭력 영화에서의 폭력은 쾌감을 만들어낸다. 액션 또는 무협 영화에서의 폭력은 윤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즐긴다. 정의가 늘 승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인격적 모멸감이나 인간적인 역겨움이 없다. 누군가는 이런 폭력마저 없어야 한다고 하겠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테러나 전쟁에서의 폭력도 일상을 넘어선 특이성에 가까운 폭력이다. 특이성으로 전환된 폭력은 메시지나 상징적인 도구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일상적인 폭력은 그 목적이 타인에 대한 위해 그 자체로 집중된다.총기 난사처럼 '사회적 사건'으로 규정되는 폭력은 피해와 가해의 성격이 섞인 일상을 넘어선 폭력이다. 사연이 있고 파고들면 들수록 누가 옳은가 혼란이 올 정도다. 실제로 사회가 우려하는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격히 구분되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괴롭힘이나 왕따 등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타인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흥적인 위해에 지나지 않는다.자식이 잘 되라고 때리는 것, 학교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때리는 것부터가 일상적 폭력이다. 우리는 이런 폭력은 폭력이라고 하지 않고 그럴듯한 명분을 달아서 옹호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상적 악습을 보호하고 명분을 주는 데서부터 폭력은 시작된다. 윤일병사건의 잔인함에는 사소하다고 생각해 온 일상적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군대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정도만 달랐지 누구나 그러려니 생각했던 작고 작은 일상적 폭력의 합이 이 사건의 잔인성을 구성하고 있다.옛날이지만 학교에서는 등록금을 늦게 낸다고 맞았고, 지각했다고 맞았고, 수학시험 성적이 떨어졌다고 맞았고,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맞았다. 이것이 일상적인 폭력이다. 무슨 대단한 폭력을 경험한 일이 없음에도 이런 것들이 쌓여 그 시절을 폭력과 억압으로 기억한다. 군대에서는 줄을 잘못 섰다고 맞았고, 늦게 도착했다고 맞았고, 문을 세게 닫았다고 맞았다. 대단한 군기위반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선임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으며 자신이 선임자가 되면 또 그렇게 했다. 폭력이 황야의 결투처럼 장렬했더라면 그것이 추억거리는 될지언정 그 어떤 분노나 억울함의 찌꺼기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윤일병사건을 들여다보면 사소한 폭력으로 간주돼 온 것들이 여과장치없이 걸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축적돼온 탓이 컸다. 주범인 이병장 앞에서는 피해자였던 몇몇 선임자들이 가해자로 돌변한 데는 폭력의 일상성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은 일상화되면 조금씩 익숙해진다. 이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할 때는 몽둥이로 맞는 것보다 말 그대로 꽃으로 맞는 게 더 모욕적이다. 이 사소함을 우리 사회는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이나 교사가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그것을 알 까닭이 없다.맞을 짓을 했다, 왕따 당할 짓을 했다는 말처럼 폭력의 일상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없다. 일상화된 이러한 습성을 방치한다면 폭력은 군대로 전이되고 교도소라든지 폐쇄된 기관할 것 없이 걷잡을 수 없이 전염된다. 학교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폭력을 없애나가는 일이야말로 폭력예방의 지름길일 것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8-12 박연규

인생의 평형수는 눈물이다

세상살이라는 먼 바다를항해할때 겪는 좌절과 절망…그 아픔을 느낄때더 많이 더 크게 울어 보세요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당신의 복원력이 더 커진다는 걸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작용한 힘에 의해 평형상태가 무너졌을 때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합니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곳이 배입니다. 배가 파도나 급격한 방향전환 등 외부의 힘에 의해 기울어지려고 할 때, 그 외부의 힘에 저항해 기울어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울어지게 한 원인을 제거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인 복원력이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배가 전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크기의 복원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배의 복원력 핵심은 평형수입니다. 평형수는 배가 항해할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을 말합니다. 화물을 선적하면 싣고 있던 바닷물을 버리고, 화물을 내리면 다시 바닷물을 집어넣어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합니다. 적절한 평형수로 중심을 유지한 배는 집채만한 파도나 폭풍도 뚫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평형수가 없거나 부족한 배는 작은 파도나 폭풍에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때로는 전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적절한 평형수는 필수요소입니다.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도 평형수가 있습니다. 배의 평형수가 바닷물이라면 인생의 평형수는 눈물입니다.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장이 끊어지는 듯한 경험으로 흘리는 좌절과 절망, 슬픔과 아픔의 눈물이 인생의 평형수입니다.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내 삶의 평형수가 돼줍니다. 그래서 그 평형수는 내 삶의 중심으로 자라잡아서 어지간한 인생풍랑에도 견딜 수 있는 복원력이 됩니다. 평형수인 눈물이 부족한, 즉 삶의 아픔과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인생에서 풍랑을 만나면 추풍낙엽처럼 흔들립니다.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다가 좀 더 심각한 풍랑을 만나면 전복되고 맙니다.그래서 돌이켜 생각하기 싫을 정도의 아픔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평형수를 갖고 있고 복원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평형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살면서 만나는 웬만한 좌절과 절망은 별 것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먼 항로를 끝까지 안전하게 가려면 평형수를 채워야 합니다. 같은 조건하에서 어떤 배는 전복되고 어떤 배는 견디는 이유는 배의 크기가 아니라 복원력의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실패의 크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깊이 때문에 죽습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절망이 사람을 죽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절망의 깊이는 스스로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역시 발생한 사건의 크기 차이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원력의 차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원력의 핵심인 인생의 평형수를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럼 어떻게 인생의 평형수를 채워야 할까요. 예고없이 수시로 찾아와서 나를 덮치는 아픔에 관해서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아~ 이 아픔 때문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내 인생의 평형수가 되겠구나. 이 눈물이 인생의 결정적 위기에서 나를 구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바꾼다면 아픈 경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아파서 눈물이 흐르나요? 넘어설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지쳐서 눈물이 흐르나요? 치욕적인 배신감 때문에 후회의 눈물이 흐르나요?그 눈물을 흔쾌히 받아들이세요. 그 눈물은 인생의 평형수입니다. 눈물은 인생이라는 먼 바다를 항해할 때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생의 평형수입니다. 따라서 더 도전하고 더 경험해보세요. 그러면 그 도전과 경험 때문에 당신은 성취도 많아지겠지만 좌절과 절망 또한 비례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아픔을 만날 때 더 많이, 더 크게 울어보기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복원력이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생의 평형수는 눈물입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8-05 송진구

세월호 참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건 실체 모르고 범인 파헤치다자신이 범인임을 안 오이디푸스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무능·무책임서 한 발도 못나가작금의 우리와 다를게 무엇인가대통령 약속처럼 국가 개조해야고대 그리스의 저 유명한 신화 오이디푸스 왕을 생각하면 작금의 우리가 오이디푸스가 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으로 인해 친부모에게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기적적으로 코린토스의 폴리보스 왕에게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코린토스의 왕자로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을 찾아갔다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신탁을 듣는다. 친아비 라이오스가 받았던 예언과 같은 것이었다.오이디푸스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난다. 테베로 가는 좁은 길에서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일행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라이오스 일행을 다 죽여 버린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테베에 들어간 오이디푸스는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마저 다 풀어내 영웅이 되고 당당하게 테베의 왕이 돼 친어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생산한다. 나라에 역병이 돌자 걱정스런 맘으로 신전에 가서 라이오스왕이 죽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역병이 멈출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사건을 파헤치다 자기가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눈알을 뽑았고 왕비도 자살을 해버린다.자신이 저지른 일의 실체를 모르고 범인을 파헤치다 스스로가 범인임을 깨달은 것이다.세월호 참사가 빚어진지 100일이 지났다. 당시에는 모두가 죄인의 심정으로 아파했고 울어댔고 분노하는 듯 했다. 누군가는 국가의 안전망을 탓했고 누군가는 세월호 선사를 탓하는가 하면 해경을 원망하고 정부를 꾸짖기도 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졌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참사 이전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희생자 수습이 완료되지도 않은 것은 고사하고 참사의 첫 단추인 세모그룹 전 회장 유병언을 잡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모든 검경 언론이 유병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찾아 헤맸는데 유병언이 말없는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희대의 블랙코미디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리곤 우수수 잡히고 자수하는 유병언의 조력자들, 국민은 헷갈린다. 종교지도자라는 배경에 기업을 하면서 얼마나 대한민국을 갖고 놀았고 비아냥 거렸는지, 거기에 진정한 도움을 준 자들은 누구인지 당연히 있을 테고 밝혀야 할 터인데 그런 말들은 아예 없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돼가고 있다.국회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세월호 참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법을 만들자고 하더니 정쟁으로 시간 다보내고 아직도 싸움만 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국회의원은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라느니 희생자보상 문제를 교묘하게 엮어서 본질을 호도하거나 심지어 유가족들과는 전혀 다른 사안인 천안함 사건까지 들고 나와 민심을 흐리기도 한다.세월호 특별법은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께서 약속한 국민과의 약속임을 알아야한다.진정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 말해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선박수명 연장부터 선박증개축 등 국민의 생사가 걸린 사안에 종교의 탈을 쓴 불량 기업인이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피아·해피아 등 수없는 피아들이 빌붙어 만든 참사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죄없는 국민, 그것도 학생들이 당한 어이없는 일로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의 약속대로 국가를 개조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모르고 사건을 파헤친 오이디푸스가 되지 말자고,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 믿는다고! 이것이 국민의 소리이고 민심이다./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2014-07-29 장용휘

이런 젊은이들을 뽑을 수 있다면

힘든 일 서로 다독거리며용기 불어 넣어주는 협동심주어진 일에 자율성과책임의식 갖고 동료 배려하면자연스럽게 전문성도 뒤따라업무수행 매끄럽게 처리먼저 양심고백부터 해야겠다. 대학에 있으면서도 나는 학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젊음이란 늘 유치하고 서투르며 예의가 없고 게으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책임의식이나 확고한 자기주관도 없이 남의 말에 쉽게 휘말리기도 한다. 내가 오래 전 수업시간에 겪었던 가장 황당했던 일은 친구 할아버지 문상으로 시골에 갔으니 출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학생때문이었다. 그것은 자네가 결석하고 문상을 가든지 아니면 가지 않든지 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얘기했더니 교수님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냐며 나의 도덕성 문제까지 언급했다. 그 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므로 결석도 정당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대학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무책임한 모습은 수강신청을 스스로 하지 않고 선배나 동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데서도 나타난다. 심했던 것은 60여명의 교양수업 시간에 반이 넘는 같은 과의 학생들이 선배 말 한 마디에 동시에 수강신청을 한 경우다. 수강신청이란 학생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리이자 행복인데 그것을 여론에 휘말려 너무 쉽게 결정해 버린 것이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자신의 권리 확보에 취약한가를 보여주는 예다. 만약 그렇게 수강 신청한 과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선배를 욕하고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할 것인가.대학에는 체육대회며 축제로 수업 결손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학과 MT에 마지못해 끌려갔다고 해서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체육대회로 인해 무려 한 달 동안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 학생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자기 과가 결승까지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한다. 부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면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원색적인 방식으로 찔러 봤는데도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그저께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제자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은 대학에 있으니 학생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지요. 6학년 담임을 맡고있는 저는 죽을 지경입니다. 물론 비교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철모르고 선생님한테 대드는 초등학생은 나이가 들면서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이미 성년이 됐는데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대학생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은가. 어느 것이 더 비극적인가.최근 외부 연구과제 때문에 석사 과정 학생들을 두 명 임시로 고용해 일을 시키게 됐는데 감탄에 더해 감동까지 받았다. 자신이 맡은 일에 얼마나 열심인지 놀랐다. 나는 얼마 전부터 젊은이들을 평가하는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있다. 하나는 착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선한데다가 일 잘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예비 사회인으로서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선함에는 희생·배려 이런 게 따라 나오게 되며 일의 능력에는 전문성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일에 있어 필요한 덕목은 협동심이다. 전문성도 건전한 윤리적 태도가 받혀주어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과제신청 마감 때문에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컴퓨터 작업으로 편집을 멋있게 해치우고 일을 요령있게 처리하며 서로가 잘 못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과연 내가 그토록 비난했던 학생들의 모습인가…, 나의 잘못된 선입견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주어진 일만 잘했다면 그러려니 생각했겠지만 놀라운 점은 힘든 일을 서로 다독거리며 용기를 불러내주는데 있었다.기업체에서 이런 젊은이들을 뽑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애들은 저토록 훌륭한 장점을 갖고 있는데도 스펙이 부족하고 상위권 대학을 못 나왔다고 해서 취업전선에서 뒤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상상해 본다. 주어진 일에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동료를 배려하면서 업무수행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콕콕 집어낼 수 있는 사회! 아마 그런 사회는 채용시장의 효율성도 증대시킬 것이고 섬세하고 지혜롭게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데도 한 몫을 하리라 본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7-22 박연규

생각세포 길들이기

어떤 생각 하느냐에 따라몸도 바꾸고 인생도 바꾼다'난 안될 거야' 부정적이면도전도 못하고 포기하지만'난 잘될 거야' 긍정적이면실패와 좌절 극복 결국 성공인체는 60조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들 세포가 간·심장·피부 등 모든 장기와 조직은 물론 혈액과 뼈도 만들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60조개의 세포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대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오래된 것은 파괴되는 과정을 밟는다는 것입니다.적혈구는 120일 동안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120분의 1만큼 새로운 세포가 골수를 통해 만들어지고, 오래된 세포는 120분의 1만큼 비장을 통해 파괴됩니다. 피부는 4~5개월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신생세포로 시작해서 진피로 그리고 표피로 바뀌고 마지막은 목욕탕에서 이태리 타월에 의해 '때'로 생을 마감합니다. 뼈도 매일매일 새로운 골세포가 만들어지고 오래된 세포는 파골되는 데 1년 정도 걸려 완전히 바뀝니다. 따라서 1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릅니다.그래서 현재 내 몸속에 비정상적인 세포가 있다고 하더라도 약이 되는 음식을 섭취하는 식생활과 함께 좋은 환경에서 생활한다면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매일매일 소생되고, 환원되는 과정을 거쳐 건강하고 정상적인 세포로 부활하게 돼 우리 몸은 건강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식생활을 고집하고 생활환경에 변화가 없다면 비정상적 세포들은 더욱 늘어나 병세는 좋지 않은 쪽으로 진행할 것입니다.그런데 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신은 물론 몸을 지배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내 몸도 바꾸고 인생도 바꿉니다.그래서 저는 생각에도 세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각세포'도 매 순간 태어나고 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생각세포를 심어 놓느냐입니다. '난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세포를 심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데도 제대로 시도도 못하고 포기합니다. '난 잘될 거야'라는 긍정의 생각세포를 심은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을 도전으로 극복하면서 결국 이뤄냅니다.생각이 몸도 바꾸고 인생도 바꾸는 원인은 생각세포는 자가증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세포를 심은 사람들은 세포가 긍정의 세포를 복제하면서 자가증식을 하죠. 이 사람들도 한때는 현실적인 절망감에 좌절을 맛보기도 하지만 다시 도전합니다. 도전하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생각세포가 증식하고 있기 때문이죠. 포기하지 않은 사람, 즉 긍정의 생각세포를 심은 사람이 결국에는 이뤄냅니다.우리 몸 안에는 하루 50만개의 세포가 죽고, 50만개가 새로 생기는데 세포 100만개마다 불량세포가 1개씩 생긴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불량세포가 암으로 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불량세포가 죽어서 배출된다고 합니다.모든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불량세포(암세포)가 들어오지만 암에 걸리고, 멀쩡한 이유는 평소에 자신이 어떤 세포를 보유하고 있었던가의 차이입니다. 건강한 세포를 가진 사람은 불량세포를 공격해 죽게 하지만, 비정상적인 세포를 가진 사람은 암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긍정적인 생각세포를 가진 사람은 간혹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고 맙니다. 생각세포가 부정적인 사람은 매일 매 순간 불량세포를 심습니다. 그 불량세포는 몸에 생기는 암처럼 생각에도 암을 자라게 합니다. 몸의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생각의 암세포입니다. 생각의 암세포는 절망의 암으로 자라서 결국 모든 것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듭니다.따지고 보면 희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 있고, 절망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현재는 대단한 것도 시작할 때는 미미했습니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도 한때는 알 속에 있었고,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도 한때는 씨앗이었습니다. 알이 독수리가 되고, 씨앗이 주목을 만드는 것처럼 생각은 현실을 잉태하는 씨앗입니다.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대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성장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생각을 물리적 실체로 전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희망을 품고 그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생각세포입니다. 오늘부터 인생을 바꿀 긍정의 생각세포를 키워 보실 것을 권합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7-15 송진구

책임지는 사람 없는 사회 두렵다

국민 개개인의 마음부터개조 않는다면 사회가 어떻게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정의엔 박수, 부조리엔 분노하며무책임에 책임 물을 수 있는극히 상식적 태도부터 지켜져야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세계4강 신화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를 감동시킨 거리응원, 거기에 낯선 이방인 감독 거스 히딩크-그의 어퍼컷 세리머니, 하나 더 전장의 장수들처럼 멋지게 최선을 다해 싸워준 붕대와 마스크로 상징되는 투혼 때문이었다. 황선홍이 그랬고 김태영이 또 그랬다. 최진철의 링거 투혼도 잊을 수 없다.그러나 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우리가 기억해야할 자산은 바로 히딩크의 경영철학이었다.히딩크 감독은 병역기피 의혹과 경기 감각이 땅에 떨어져 있는 선수를 국민들이 반대하는 데도 오기로 선발하지 않았고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제스처를 쓰지 않았다. 또한 똑같은 부상으로 위기에 처한 두 선수에게 한 선수는 특혜로 황제훈련을 시키고 한 선수는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표에서 탈락시키는 편애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본인의 입으로 장담한 일들은 책임을 졌다.인기와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실력으로 가름한 그는 박지성이라는 낯선 선수를 세계적 선수로 만들어 냈고 이운재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골키퍼를 발굴했다. 이미 스타가 된 선수들도 정신력에 문제가 생기면 벤치를 지키게 하였고 엄청난 체력훈련으로 정신과 육체를 강하게 만들었다. 대표팀 초반 5대0으로 두 번 패해도 그만의 전술을 묵묵히 이어갔다. 그리고 월드컵 세계4강 전술이 왜 중요한지 인맥과 학맥이 왜 불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월드컵을 선물하였다. 승패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소중한 시간이었다.2014년 브라질월드컵.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국민들의 상처를 씻어줄 필요가 있었다. 정치에 기대보지만 기댈수록 화만 더욱 치밀어 오르고 편법과 불법, 안전불감, 무슨 피아가 그리도 많은지 관피아, 해피아, 교피아, 법피아 등 온갖 나쁜 관행들이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어딘가에 누군가는 바르고 원칙과 소신을 생명으로 여기고 책임을 질줄 아는,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월드컵, 국민들은 그곳에서 카타르시스를 원했다.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는 무책임과 무능의 진수를 보여준 축구협회와 독선의 진정한 표본을 보여준, 더구나 국민들이 철저히 믿었던 젊은 감독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철저히 무너져버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축구의 성패와는 전혀 다른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인 것이다. 반칙이 이기는 세상, 무원칙이 이기는 세상, 소신을 부와 바꾸는 세상, 학맥과 인맥 뒤에 숨어서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자기부정을 해버리는 사람이 계속 무언가를 가져간다면 국민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또한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 젊은이들에게는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고 살아 갈 것인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왜 계속 우리가 보아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참으로 안타깝다.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당한후 국가개조를 한다고 난리들이지만 진정한 국가개조는 국가부처 몇 개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장관 몇 명 바꾼다고 될 일은 더욱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부터 개조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쓰든 뭐가 개조될 것이며 어떻게 이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나! 정의로운 일에 박수칠 수 있고 부조리한 일에 분노하며 무책임에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부정한 일을 올바르게 가라고 지적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2014-07-08 장용휘

수원시의 인문학 모험

인문중심도시 정책 펴려면제반사항들 인문적으로 바꿔시민변화 유도해야 하고책임·배려·정의 같은목표의식 분명한 강좌 통해생활속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이런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시의 과장들이 총 출연하고 국장, 부시장까지 중요 직책 공무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도시의 인문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수원시 인문중심도시 용역과제의 착수보고회를 하면서 느낀 점이다. 비록 최근들어 인문학을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논의가 무성했지만 이건 정말 낯선 풍경이다. 적어도 이런 장면은 '시정은 먹고 사는 현안으로만 가득 차 있으리라' 생각해 온 인문학자의 눈에는 경이의 모습으로 다가온다.수원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한마디로 놀랍다. 대학이 챙겨야 할 일들을 오히려 지자체가 총체적인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양상이다. 지난 3년동안 수원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라는 표어아래 인문학도시 조례 제정을 마련했고, 다양한 인문학 콘텐츠 개발과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전국 최초로 인문학 팀을 조직하고 인문학 강좌 홈페이지를 만들어 시에서 개최되는 인문학 강좌의 접수와 신청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의 인문적 자산이 남김없이 동원되고 수많은 시민강좌들이 도서관, 박물관, 여러 교육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수원시는 향후 5년간의 인문중심도시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필자가 이러한 구상에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한 도시의 인문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인문학은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어떤 도시가 살기 좋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그 도시에 오래 살아봐야 하는 것과 같다. 거리의 깨끗함, 사람들의 친절, 교통질서, 안전, 복지 등은 그 도시를 경험해야만 알 수 있다. 빈부격차, 소외계층 문제, 시민들 간의 갈등 요인들은 도시가 부유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결국은 도시 안의 사람들, 즉 시민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나눔, 배려, 책임, 정의와 같은 인문적 덕목들은 공동체적 시민사회를 담보하는 요건이 된다. 수원시가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앞으로의 인문중심도시 정책에 바라는 것이 있다.첫째, 도시의 제반 정책들이 인문학과 같이 가야 한다. 도시정책을 인문적으로 바꿈으로써 시민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도시가 변화되어야 개인이 변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정책이 잘못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양보하고 배려할 수가 없다. 교통정책이 입안되는 시점부터 시민의식의 미덕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인문정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수원시도 일부 그런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의 인문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들의 잘못은 인문축제나 활동을 많이 하면 도시가 인문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장식이 아니다. 인문축제를 한다면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질서의식이 부족하고 친절 개념이 없다면 껍데기 인문도시일 뿐이다.셋째, 인문학 대중화의 목표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인문강좌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좋은 인문도시가 되지 않는다. 대학의 강의를 도시로 끌어내는 것이 시민인문강좌는 아니다. 오히려 책임이나 배려, 정의와 같은 목표지향적인 강좌를 개발해서 시민들의 생활에 선명한 변화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잡아야 한다.넷째, 시민이 인문정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을 인문학을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접근방식에는 낡은 계몽주의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대에 맞는 인문도시의 최종 목표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정신을 갖추고 그것을 생활세계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정신의 생산 주체로서 '시민 인문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수원시가 온 힘을 기울여 인문정책을 펴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문학에 관심이 없을 듯 보이는 공무원들이 인문학의 비전을 논의하는 것도 멋있다. 다만 수원시가 진정으로 선도적인 인문도시가 되려면 모험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인문정신으로 정치를 하고자 했던 공자의 일생 자체가 모험이었듯이 인문으로 시정을 편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7-01 박연규

'습관'

나로부터 시작된작은 습관이 결국 인생전체를장악하고 결정해 버린다성공하고 싶거나원하는 삶을 살고 싶거든행동방식을 당장 바꾸자강의가 직업인 저는 늘 고민이 있습니다. 제 강의를 듣는 청중들은 대부분 저 보다 훨씬 탁월한 지식과 경륜을 갖고 계신 분들인데, 그 분들을 논리로 이해시키고, 진정성으로 감동시키며, 사례로 영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해답을 대부분 책에서 찾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부족한 것이 책을 읽을 시간이죠.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일부러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책을 읽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열탕 독서법'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에 두 번의 반신욕 또는 사우나를 합니다. 새벽에 책과 볼펜을 들고 약 43도의 열탕으로 들어갑니다. 300쪽짜리 책은 반으로 접어서 열탕에 앉아서 20분 동안 75쪽을 읽고 냉탕에서 몸을 식히고 다시 열탕에서 20분 동안 나머지 75쪽을 읽습니다. 40분만에 책의 절반을 읽는 셈이죠. 물론 정독할 수 없습니다. 속독하면서 중요하게 느끼는 부분은 볼펜으로 죽죽 긋고 읽어갑니다. 나머지 75쪽은 밤에 읽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는 150쪽을 40분만에 읽게 되고, 세 번째 읽을 때는 20분 정도면 됩니다. 밑줄 친 부분만 읽기 때문입니다. 통상 대여섯 번 읽으면 핵심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영감을 얻은 부분을 정리하는데, 그 분량이 대부분 3쪽을 넘지 않습니다. 그 3쪽을 강의에 활용하려고 한 권의 책을 읽는 셈이죠. 저는 '열탕 독서법'이라는 '습관' 때문에 별도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많은 양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심리학자들은 '습관'이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행동의 95%를 결정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합니다. 즉 성공과 실패의 95%를 결정하는 것이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에 늦는 사람은 매번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나고,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은 늦는 경우가 없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은 조그만 좌절에도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은 거절이나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습관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습관은 후천적인 것입니다. 살면서 학습하고 체화되죠. 즉 성공과 실패의 95%를 결정하는 습관은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을 원한다면 그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습관으로 만들면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습관을 만드는 5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결심: 자신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롤 모델이나 갖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을 습관화시키기 위해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2. 공지: 특정한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중이라고 주변에 알리는 것입니다. 금연자나, 다이어트중인 사람은 그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언제까지 금연하고, 몸무게를 얼마나 감량할지 알리는 것입니다. 3. 상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습관으로 가져서 그로 인해 변해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금연자의 모습이나 다이어트로 다듬어진 날렵한 몸매를 그리면서 상상하는 것입니다. 4. 보상: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면 자신에게 멋진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5. 불굴: 습관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몸은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습관이 바뀌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죠.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경과해서 습관이 되면 오히려 결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결국 그 녹이 점점 쇠를 갉아 먹는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의 95%는 습관인데, 내가 만든 작은 습관이 결국 내 인생 전체를 장악하고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그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나로부터 시작된 그 작은 습관이 나를 성공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거든, 원하는 삶을 살고 싶거든 습관을 바꾸세요. 지금 당장./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6-24 송진구

국가개조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책임규모 크게 잡는건사안을 정확하게해결하려는 자세도 아니며어떤 면에선 주제 넘는 일 될수도이젠 시민들도 참여의식 갖고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해야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정부만으로는 안 되며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자주 이런 두 가지 축의 하나를 쉽게 망각한다. 국가 단위의 정부이든 지자체 단위의 정부이든 정부는 그 자체 한계가 있고 나머지 일의 많은 부분은 시민들의 몫이다. 공무원들조차도 자신들의 역할이 무한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정부 역할의 쏠림 현상이 지나치다.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보면 이러한 쏠림 현상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대처 방식의 잘못을 정부 탓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정부도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내가 만난 관련 기관 지자체 공무원들도 죄인이 된 듯한 모습으로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번 일로 정부의 책임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국가개조 수준으로 격상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부에서 국가개조를 들고 나왔을 때 가졌던 불안한 감정은 문제 해결을 자신들의 몫으로 가져가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언뜻 들으면 정부가 책임을 깊이 느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지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지금이 국가 중심의 계몽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시점에서 국민이나 시민의식의 실종만큼 비효율적인 것은 없다. 민주국가의 두 축은 정부와 시민인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시민 한 축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 국가개조라는 말은 다른 맥락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책임의 폭을 너무 크게 잡아 일종의 물 타기를 하여 일을 흐지부지 만들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시민의 의식이나 정체성을 몽땅 가져가 주도하고자 하는 데 있다. 누구는 국가개조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무능, 무책임의 개조라고 하지만 이 생각에는 정부의 시민들의 의식 개조까지 덧붙여져 있을 수 있다. 국가개조라는 말이 마음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부가 절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자기 할 일을 아무리 다 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책임의 규모를 너무 크게 잡는 것은 사안을 정확하게 해결하려는 자세도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주제넘은 일이다. 정부와 시민들이 문제 원인에 대한 책임을 나누게할 수 있어야 한다. 송호근은 그의 책 '시민의 탄생'에서 시민의 탄생을 개인의 출현으로 보며 그러한 개인의 특성을 자율이라는 인문적 자원으로 규정한다. '시민과학자로 살다'의 저자인 일본의 타카기 진자부로오는 원자력 발전 증축과 같은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조차 시민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국가개조와 같은 정치 슬로건으로 해결책을 정부가 다 가져가려고 하는 것은 과욕이다. 정부는 자신이 책임질 만큼의 몫만 가져가면 된다. '정부나 기관이 책임을 진다'는 말도 공허하고 무책임할 수 있다. 책임은 본래 사람이 지는 것이다. 시스템이나 기관이 책임을 진다는 말을 못할 것은 없지만 사실적인 표현은 아니다. 책임을 이렇게 의인화시키면 책임의 소재를 따질 수가 없게 된다. 책임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책임의 주체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진다'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 선장이나 업주, 해운 관계자들을 문책하는 것은 옳다. 해양수산부 해체 정도는 이번 참사의 비극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좋은 정부는 시민들의 역할과 몫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일로 이 정부가 기관장에 시민 참여 배분을 지정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잘된 일이다. 다만 국가개조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국가개조라는 말로 시민들이 정부만을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가져야 할 문제 해결의 권한이나 책임까지도 정부 몫으로 가져가는 것만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은 없다.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 생겨났다고 한다면 사회 문제를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착시 효과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데 있다. 시민의 참여의식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절실할 때가 없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6-11 박연규

비워야 멀리 간다

상처 준 사람은 기억 못하는데받은 사람은 계속 괴로워 하고증오심만 키우게 된다억울한 마음을 비워야 한다그래야 그 공간에 다른것을채울 수 있고 전진할 수 있다모 방송국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생의 길을 찾고 싶은 시청자를 공모해서 세 명의 멘티를 선발했습니다. 저는 그 멘티들에게 강의와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길을 안내하는 멘토로 참여했습니다. 30일 동안 800㎞를 걸어야 하는 험하고 먼 길이라서 온갖 것을 배낭에 넣었습니다. 침낭, 옷, 양말, 책, 세면도구, 반창고 100개, 파스, 통증 약, 감기약 등. 길을 걸으면서 바리바리 짊어지고 간 배낭 때문에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낭에 지고간 물건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우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멘티 중에 58년생 어머님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중국 유학 갔다가 그 곳에서 공부를 잘해서 칭다오의 한 회사에 취직을 했던 딸은 25살의 재기 발랄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도에 의해 중국에서 살해당한 것입니다. 그 어머님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순례길에 참여한 것입니다. 가장 심한 아픔을 안고 참여한 어머님을 대상으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어머님도 저처럼 배낭에 있던 물건을 계속 버리시더군요. 왜 버리셨어요?" "무거워서 그랬어요. 너무 무거우면 끝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버렸어요." "그렇습니다. 배낭이 무거우면 멀리 갈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무거우면 멀리 갈 수 없어요. 내려 놓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복수심과 분노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따님이 들어올 수 있어요. 증오를 비워야 사랑이 들어옵니다. 범인을 위해서 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따님을 위해서 비우라는 겁니다."어머님은 강의를 듣다가 울면서 뛰쳐나갔고 녹화는 중단되었죠. 그 분과 저는 30일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분은 피를 토하듯 자신의 인생에 관한 아픔을 토해내면서 울고, 저는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눈물과 성찰의 길이었습니다.순례길을 완주한 마지막 날 개인별 인터뷰를 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 어머님은 "처음부터 송교수님이 나보고 계속 내려놓아라, 비우라고 했는데, 저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비워요.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보니 절반 정도를 내려 놓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비워놓은 공간으로 사랑하는 딸이 들어와 있는 것이 느껴지고, 그 딸과 대화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웃는다고 합니다.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그 쓰리고 아픈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합니다. 마치 잊어서는 안 되는 사진이 담긴 오래된 앨범처럼 간직하고 매일 매 순간 꺼내 들여다 보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상처와 아픔을 키우죠. 그런데 상처와 아픔은 특이한 특징이 있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받은 사람만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아픔을 지속적으로 재생시키면서 매일 칼끝으로 그 상처를 찌릅니다. 결국 상처받은 나만 계속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삶은 더욱 피폐해지죠.상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비워야 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데 받은 나만 혼자서 계속 아파야 하는 이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멈추고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그 공간에 다른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증오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한 순간도 편할 날이 없죠. 마음속 어느 지점에서 분노의 닻을 내린 사람은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가 되고, 자신의 영혼마저 파멸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이제 그 마음의 닻을 끊어내야 합니다. 바람과 해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아픔의 바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배낭이 무거우면 멀리 갈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무거우면 멀리 가지 못합니다. 먼 길을 가려거든, 원하는 길을 가려거든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멀리 갑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6-03 송진구

원칙은 지키고 속도는 늦추자

끝나지 않은 비극 '세월호 참사'정부·정치권·국민 모두 자중,지혜롭게 규칙 세우고 천천히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그리고 진정한 혁신은남이 아닌 자기부터 시작해야지난 수요광장에 필자는 우리 모두 석고대죄하고 이 나라를 다시 만들고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것이 진정 우리 후손들에게 미래를 부끄럽지 않게 내어 주는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작금의 돌아가는 상황은 과연 진정 이 나라가 처음부터 다시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능력이 있는지 사뭇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가 잠긴 바다 밑의 우리 아이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안 끝났다. 또한 이 참사의 진정한 원인조차 정확하게 나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끝나지 않은 이 비극을 최후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 왜 죽어야 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희생된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그 후 우리의 그동안의 병폐를 찾아내어 도려내고 수술하고 보완하여 후진적인 재앙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참사현장은 다소 잊혀가고 너무도 급한 처방과 심지어는 희생자 가족을 비참하게 하고 온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엄청난 실망을 주고 분노를 자아내게 한 해경, 필자 또한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일부 부도덕한 해경을 보며 분노를 참기 힘들었지만 최소한 현재 실종자 찾기에 정신이 없는 해경이 어떤 공청회 한 번 없이 해체가 되고 안전행정부 역시 반 해체되는 모습을 보며 이건 급해도 너무 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리 급한 것일까?물론 너무나 큰 비극에 국민들은 슬픔에 잠겼고 이사람 저사람 불평을 쏟아내니 처방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백년대계의 마음으로 없애고 뜯어고치더라도 섬세한 부분까지도 다 고려하고 생각하고 연구하여 정권마다 바뀌는 전형적 관립이 아닌 백년이 가도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어떤 재앙이 생겨도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속도는 빠르고 원칙이 무시당하는 세상이다. 지금의 원칙은 실종자 찾기에 최선을 다하고 안전망 시스템을 하나하나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견고하게 구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이 타들어 가는 것을 온 국민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봤다. 그런데 더 찢어지는 마음은 지금의 복원된 숭례문이다. 속도에 미쳐 부실하고 비리에 젖어 또 부실하고 해서 만든 것이 벌써 일그러져 가는 처참한 작금의 숭례문이다. 원칙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적에 치중한 결과이다. 필자는 얼마 전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이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제가 만든 원칙을 제가 깼습니다 하는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 입으로 강하게 원칙을 정하고 말한 것을 온 국민이 다 들었는데 이제 와서 성적 운운하며 원칙을 쉽게 깨버리는 것이 과연 도리인가! 지도자로서 저리 쉽게 말한다면 이 땅의 어린이들 특히 축구를 꿈꾸는 많은 이들은 무엇을 배워서 국가대표를 꿈꿔야 하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필자가 느끼는 감정은 나라 곳곳 어디에도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켜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인맥이 우선이고 학맥이 우선이고 실적이 우선인 사회 그러다 보니 관피아 해피아 법피아 같은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단어와 해괴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는 시간과 진정한 각자 자기혁신과의 싸움이라 필자는 말한다. 각자의 원칙을 바로잡고 속도보다는 느림의 미학으로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모두가 자중하고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정의롭게 지혜롭게 원칙을 세우고 그리고 천천히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특히 국민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 정신 차려야 한다. 대형교회 목사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 세월호 가족과 국민을 미개하게 몰고 가고 폄훼하고 나라의 입이라는 사람이 피땀 흘리며 고생하는 잠수사들 일당을 거론하고 이상한 이슈를 만드는 것, 이런 사람들이 물러나고 정직하며 능력 있는 사람들이 원칙과 소신으로 천천히 이 나라를 바꿔야 할 것이다. 진정한 혁신은 남이 아니라 자기부터 시작해야 한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5-27 장용휘

캐나다 친구가 말했다

인간의 이기심이불안의 원인 이란다남을 도와 주거나배려할 줄 모르고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삶이불안을 야기한다고…요즘 한 동안 소식없이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전화를 자주 주고받는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도 있고 카톡의 편리함 덕분이기도 하다. 캐나다 중부 도시 사스카츈의 새로 낸 스시 가게도 잘 되는 듯해 전에 비해 음성도 한결 밝다. 직업도 다르고 일찌감치 이민을 간 탓에 대화 내용이 옛날에 머무는 한계는 있다. 현실감도 없으며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묘한 느낌 하나가 올라온다. 이쪽 사회에 익숙해 있다 보니 놓친 것 하나, 즉 한국적 삶 속에서의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법이나 규정에 덜 얽매여 있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이다. 좋게 말해 일종의 여유나 융통성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나 자신도 오랜 외국 생활을 했지만 그쪽 나라들과 비교해서 한국이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법이나 규정을 적당히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미국생활을 돌이켜 보면 숨통이 막힐듯한 그 법질서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파킹을 잘못했다가 속절없이 눈앞에서 내차가 끌려가는 걸 봐야 하는 잔인함, 아이가 가볍게 일일 체험하는데도 보험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 도대체 우리 식으로 "봐 준다"는 게 통하지 않는 답답함,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끽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기다리는 미련함, 근무 시간이 끝나면 하던 일 그만 두고 일어서는 냉정함, 경찰 폴리스 라인의 그 엄정함, 친구의 식당 하나 오픈에 지루했던 그 심사의 까다로움. 아마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가 규정대로 움직이려면 이런 속성들을 가진 법질서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것이다.캐나다 친구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말했다. 하나는 물음표의 삶, 다른 하나는 느낌표의 삶. 물음표의 삶은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며 뭔가를 더 알아내고자 하는 '생각'이 중심이 되는 삶이다. 느낌표의 삶이란 수치로나 손익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멀찌감치 돌아앉아 보는 '사색'이 중심이 되는 삶이란다. 이 친구는 오랜만의 전화에서 나이 듦에 대해 얘기한 것이겠지만 나는 이 분류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느낌표의 삶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거시적으로 한번 크게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느슨한 법질서로 살 것인가, 우리 문화의 가치나 태도에 진짜 문제는 없는가, 정부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각자 삶의 태도에 문제는 없는가.캐나다 친구가 말했다. 인간의 이기심이 불안의 원인이란다. 남을 도와주거나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삶이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그런 거라면 어느 누구도 타인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쪽에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바쁜 가게 일에 잠시 나와 쉬다가 바닷물 속에 갇힌 아이들 생각하면 안타깝고 몸서리가 쳐지고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다고 한다. 생각하기가 싫단다. 이미 그렇게 된 아이들 놔두고 책임을 따져본들 뭐 하겠냐, 정부며 회사 이곳저곳 욕하고 분노하고 그러다 세월이 가면 예전에도 그러했듯 다 잊어버릴 것 분명하지 않겠나, 어디 세월호 뿐이겠나, 어디를 파본들 세월호보다 나을 게 있겠나, 질퍽질퍽하기는 매 한가지가 아니겠냐고 한다. 한국 사회 곳곳에 이기적인 전문성만 난무하고 리더십에도 사색이 없는 전문성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법질서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되며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잘못 받아들인 탓이 아닌가 한다. 친구가 이리저리 풀어준 말에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진정한 사색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집단적 우울이나 분노, 사건 대처 방식에 있어 국가개조 수준의 처방이 나오는 것도 이기심 노출에 따른, 그리하여 불안에 사로잡힌 범국민적 신경증인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에는 하나같이 법질서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우리 모두의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캐나다 친구는 이민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이십년 전에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더 영적이고 순수하단다. 이 말이 한국적 삶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아 감사하다는 뜻이라면 정말 우리 사회는 국가 수준의 개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5-20 박연규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건분명하지만 먼 미래를 위해오늘을 볼모로 잡히지는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내일 아침을 맞지 못한다는걸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며칠 전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연합뉴스 TV 특집 '산티아고 순례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스페인에 함께 갔던 어대일 PD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전화였습니다. 쓰러지기 전날도 며칠동안 밤샘 편집작업을 하다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응급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나이는 35세로 결혼도 하지않은 총각 PD였고, 지나치리만큼 건강한 체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0일동안 걸으며 24시간을 함께 보낸 특별한 인연인 터라 충격과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만났는데 며칠 후에 함께 갔던 촬영감독과 셋이서 '소맥'을 하기로 약속해 놓고 쓰러진 것입니다. 병실에 가보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기도에 꽂은 호수로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어떻게 순식간에 이렇게 쓰러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어이없고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뿐이었습니다.이 땅의 사람들은 참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CNN이 뽑은 한국의 세계 최고 10가지 중에 하나가 일 중독입니다. OECD 국가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고있는 한국은 공부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늦게까지 일한다고 소개하면서 한국의 주당 근무시간이 OECD 평균(32.8시간) 보다 훨씬 많은 44.6시간을 일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일 중독입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잠자기 일쑤고 삼일 동안 뜬눈으로 일한 적도 있었죠. 우리는 왜 이렇게 미친듯이 일할까요. 아마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일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기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라도 오늘을 철저하게 희생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준비하고 기대했던 내일이 막상 가보니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할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어 PD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티베트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제의 노력과 집중이고,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 역시 오늘의 헌신과 인내임에는 틀림없으니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너무 먼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볼모로 잡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일보다 다음 생이 먼저 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지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지금 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 돋아나서 봄 산을 덮는 연둣빛 나뭇잎의 싱싱함도 느껴보고 봄 꽃의 현란한 향기도 맡으면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면서 더할 나위없는 욕심이겠지만 다음 생보다 내일이 먼저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봅니다. 내일보다 다음 생이 먼저 닥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 얘기도 못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영역 밖의 일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 뿐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하지말고 다시 오지않을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내일 아침을 만나지 못하고 다음 생을 먼저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써 자기최면을 걸죠. '나는 아닐 것이다'라고요.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대일 PD의 회복을 기도합니다. 머리가 커서 더 사람 좋아보이는 그 웃음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 봄의 나뭇잎이 얼마나 싱싱한지, 봄 꽃 향기가 얼마나 현란한지를 다시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원합니다. 저도 오늘을 느끼고, 만지고, 붙들 수 있기를. 그동안 복잡한 일정때문에 "다음에 소주한잔 하시죠"라며 미뤄왔던 사람들과 '소맥'을 대취하도록 마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취해서 기억이 없어지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5-13 송진구

석고대죄하고 다시 만들자

수백명의 어린 목숨을 뒤로한채혼자 살겠다고 뛰쳐나온 괴물들네일 내일 따지며 시간만 허비한짐승조직만도 못한 엉터리 시스템어른들은 통렬한 반성과 눈물로사죄하고 잘못된건 개조해야 한다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그리고 필자는 두 아이의 아비이고 소위 말하는 이 사회의 어른이다. 잘나서 어른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책임과 의무를 가진 어른이다. 그 어른이 죄를 지었다.고로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석고대죄 한다. 그리고 이제 난 그냥 어른이 아니다. 못난 어른이다. 나쁜 어른이다. 어른만을 믿고 기다리다 속절없이 하늘로 가버린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진정 부끄럽고 죄스럽고 창피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눈물로 사죄한다.아이들아 미안하다. 피눈물로도 씻을 수 없는 이 어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말거라. 그리고 혹 다른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나쁜 어른 못난 어른 잊어버리고 너희가 꿈꾸던 세상 만들어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또 기원한다. 이것밖에 너희들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렇게 밖에 너희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중학생 대학생 두 아이가 있다. 그리고 학교에 출근하면 많은 학생들이 있고 늘 당연하듯 강의실서 거실에서 아이들에게 떠들었다. 어른으로 선생으로 아비로 세상이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고 그 이유는 잘난 어른들이 있어서라고 말했다.이젠 아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세상이 이정도로 미처 돌아가는지 몰랐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른들이 얼마나 못된 짓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내가 낸 세금이 얼마나 함부로 쓰여졌는지 그래도 믿었던 나라가 국가가 얼마나 쓰레기처럼 지저분해졌는지 몰랐다. 고로 어른이라는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안일하고 이기주의에 찌들어 있었는지 이제 알겠다.수백 명의 목숨을 뒤로 하고 속옷만 입고 혼자 살겠다고 뛰쳐나온 괴물들을 과연 우리가 내가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그 괴물들을 어느새 우리 모두가 키운 건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어린 목숨들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니 일이니 내 일이니 하며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시간허비로 날려버리는 이 짐승조직 만도 못한 엉터리 시스템을 우리 모두가 방조해 준 것은 아닌지 언론이 사명을 제대로 다한다면 칼보다도 날카롭고 총보다도 무서워 그래도 어른들의 못된 짓거리가 좀 나아졌을텐데 한여름 개처럼 무뎌진 언론을 우리가 방관하여 이리 된 것은 아닌지 냉정하고 차갑게 머리와 마음으로 생각해본다.이 모든 것이 네 탓이고 내 탓은 없어진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우리 어른들은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직시하고 통렬한 반성과 눈물로 아이들에게 석고대죄 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내가 살아가야하는 대한민국을' 내 자식들이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건강하고 깨끗한 나라로 진정 만들고 싶으면 나의 고백 나의 부끄러운 죄를 먼저 뉘우치고 모든 바르고 정의로운 일에 눈 부릅뜨고 앞장서야 한다. 영웅이 없는 세상 영웅이 없는 사회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 하였으나 우리는 이 사고에 한명의 영웅도 없었다. 가장 침착하였고 가장 어른 같은 이들은 바로 어른들을 기다리던 학생들이었다. 이 부끄러운 사실을 우리는 영원히 갖고 가야 할 것이다.너희들은 당연히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중 젊은 선생의 대사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5-06 장용휘

책임의 시대

승객들에 등돌린 세월호 선장탈출후 자신의 행위반성·후회한들 소용없어배가 기울기 시작하던 순간책임 다했다면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책임이라는 말에는 오래된 시커먼 벙커시유 기름 냄새가 난다. 한물간 코미디언 얼굴처럼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나눔, 행복, 평화 같은 말들에 압도적으로 밀려나 책임은 진즉 물살 센 바다 한 쪽에 깊이 잠수해버렸다. 소통이며 융합 같이 우리네 삶을 이끌어주던 세련된 근대성 속에서 소리 한번 제대로 못 지르고 사라져 버렸다.세월호 사건 얘기를 하는 것이다. 승객들을 놔두고 먼저 내린 그 사람, 3등 항해사, 그리고 해경과의 그 미련스럽게 반복되던 무전기 속의 음성, 한 개만 열린 구명정, 기념촬영, 컵라면, 그리고 그 18년이 넘었다는 일본 배.우리 모두는 책임을 말한다. 기술적인 문제나 행정의 미숙함, 느린 구조 방식을 두고 분노한다. 전문성 뒤에 가려져 있던 책임을 끄집어내 한 개인의 실종된 도덕규범을 말하고 일처리에 있어 직무유기를 말한다. 수준 높은 책임의식의 부재와 용기 없음, 비겁함에 대해 말한다. 대한민국에 갑작스럽게 책임의 시대가 온 듯하다.이렇게 물어보자. 책임이 그저 한 고매한 인격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었던가. 그런 의미라면 우리는 더 이상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누구도 그런 대단한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책임은 벌써 법적으로 전용되고 조정된 지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한때 '책임의 시대'라는 진중했던 분위기를 떠나 그 소유권을 법률적 의식에 넘겨줘 버렸다. 지금 어느 곳에서 그 단순한 만큼이나 소박한 책임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가슴을 열고 받아주고 있는가.우리가 조우한 세월호의 전말은 이렇다. 선장은 승객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탈출했다는 것, 기념촬영이나 라면 식사에 한순간 유가족들의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힘들고 지친 타인에 대한 강렬한 의식이 없었고 그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없었다는 것이다. 책임은 내가 마음을 다잡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저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얼굴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시작했어야 했다. 책임은 탈출 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후회하며 유감을 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책임은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것이 아니다. 책임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이리저리 재면서 할 일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책임은 배에 남아 방송 마이크를 붙잡고 있던 여승무원의 것이었고, 구명조끼를 하나라도 더 입히려고 동분서주했던 한 교사의 것이었다. 또한 책임은 선실 안에 남아있던 승객들의 두렵고 공포에 젖은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다 함께 갇혀버린 그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 자기 주위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을 챙기다 일어나는 즉각적인 반응이었다.누가 책임을 그렇게도 평화롭게 얘기하고 있는가. 뒤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등을 돌린 사람은 책임을 논할 자격이 없다. 학생들 사이를 얼굴을 돌리고 스쳐 지나간 사람, 한참을 생각해본 뒤 느껴지는 책임은 책임이 아니다. 책임은 순간 저절로 일어나 그 얼굴을 보고 지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하며 책임을 느낀다고 하면 이미 늦다. 책임의 시효가 지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책임이라는 말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책임은 온몸이 물에 젖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지 물기가 마르고 담요를 두르고 나면 이미 책임이 아닌 것이다.세월호가 바다에 진 후 세상은 온통 압수수색, 부실 수사로 떠들썩하지만 이것은 책임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기도, 분향, 애도, 추모도 책임의 의례가 아니다. 기적을 바라고 슬픔에 젖는 것도 책임이 아니다. 책임은 재난이나 비극이 종료된 후에 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배의 아이들에게 져야 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숨처럼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던 그 때의 책임이 진짜 책임이었고 그런 책임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책임은 아이들과 함께 실종되어 버렸는데 남은 우리는 한가롭게 도의적 법적 책임을 얘기하고 있다. 저 배를 인양한들 그 때 한번 밖에 기회가 없었던 책임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책임의 시대가 온 듯해도 책임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수상한 사월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4-29 박연규

폴포츠와 다이애나의 선택

남들에 비해 보잘것 없는유일한 카드밖에 없다면오로지 앞을 향해전진하게 만드는 동력될 것이고성공으로 이끌어 줄핵심적인 키가 될 것이다얼마 전에 부산 강의를 다녀오면서 KTX에서 영화를 두 편 보았습니다. 하행선에서는 한번의 기회(One Chance)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모여있는 듯한 휴대전화 외판원 폴포츠가 영국의 인기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프로에 출연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리얼 영화입니다. 어눌한 말투와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폴포츠는 우연히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서 우승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과 포기를 놓고 갈등하죠. 심사위원들의 냉소적인 표정에 더욱 기가 눌린 폴포츠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릅니다. 감동한 청중과 심사위원의 기립박수를 받죠. 그리고 마침내 기적은 이루어집니다. 영화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폴포츠의 선택은 성공으로 끝을 맺습니다.상행선에서 본 영화는 50억 지구인이 사랑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랑을 그린 다이애나 영화였습니다. 찰스 황태자에게 버림받은 다이애나는 심장외과 의사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실연의 상처로 상심한 다이애나는 차선책으로 부호의 아들을 선택하죠. 그들은 파파라치에 쫓기다가 결국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이애나의 선택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날 KTX 상하행선에서 본 영화는 공교롭게 주인공이 둘 다 영국인이었고, 둘 다 선택의 문제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왜 폴포츠의 선택은 성공으로, 다이애나의 선택은 실패로 끝났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 편의 영화가 주인공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고, 저 또한 영화 한 편으로 두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봅니다. '그 선택이 유일한 선택이었나? 그 선택이 얼마나 절실했는가?' 전쟁에 쓰이는 전략으로 '배수의 진(背水之陣)'이라는 전략이 있습니다. 물을 등에 지고 싸운다는 뜻으로 싸우다 죽든, 도망가다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운다는 뜻입니다. 폴포츠는 유일한 선택밖에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다이애나는 또 다른 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손에 다양한 선택의 카드를 쥐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유일한 카드를 쥐고 있는 경우가 승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선택이 승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있는 위기감, 물러나면 죽는다는 절박함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서 도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물러날 수 있는 두 개의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선택의 상황에서만 보면 유리한 조건이지만 목숨 건 싸움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물러날 수 있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실 속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던 재벌의 2세는 대부분 당대에 파산하지만, 하나의 유일한 카드밖에 없어서 목숨 걸고 고난을 뚫고 자수성가한 1세는 대부분 다음 세대에까지 자산을 물려줍니다. 핵심은 절실함입니다. 남들은 여러 개의 카드를 갖고 있는데 당신은 카드가 하나밖에 없어서 두려웠나요? 열악한 환경 때문에 고통스러웠나요? 폴포츠와 다이애나의 사례를 보면 그럴 일도 아닙니다. 유일한 카드밖에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오로지 앞을 향해 전진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후퇴할 수 없고, 곁눈질할 수 없도록 하는 전진장치입니다. 오로지 하나의 길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신이 선택할 것은 역시 하나입니다. 앞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결국 남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유일한 카드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핵심적인 키가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현재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유일한 카드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성공가능성이 높은 카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카드에 당신의 모든 것을 걸기 때문입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4-22 송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