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춘경 유감… 공사판과 미술관 옆 동물원

수십년 된 소나무 베어 내고산자락 절개 불도저로 밀고철근 박아 콘크리트 붓고…처참한 광경에 말문만 막혀공사판은 천년이 흘러도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출근하는 길은 도회지를 벗어나면 금방 시골길의 풍경으로 바뀐다. 시오리 남짓 따스한 양광속에 펼쳐지는 창밖의 풍광은 참으로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벚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철쭉 라일락 등등 봄꽃이 흐드러진 산야에는 서서히 신록이 물들어가고 있다. 저 자연 스스로가 그려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붓끝을 어느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솟은 봉우리 구비쳐 흐르는 골짜기 이 땅은 어느 한귀퉁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만경들뿐이라고 볼멘소리 하는 이도 있지만, 일망무제의 평원이란 사실 무미건조할 뿐이다. 만일 내내 지평선만 바라보아야 한다면 아마 졸음밖에 다른 흥취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는 어디에 간들 자연이 일궈놓은 산수화를 연출하지 않는 곳이 없다. 소동파는 일엽편주를 타고 적벽의 맑은 바람과 강물에 비친 달빛을 자연이 주신 무진장의 보배라고 즐거워했다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봄 경치를 감상하는 이 흥취도 크게 손색이 없을 듯하다.그런데 20분 남짓 걸리는 그 길에는 4군데의 공사판이 벌려있다. 봄이오자 다시 재개한 공사판에서는 수십년 산림녹화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산자락을 절개해서 불도저로 밀어내고 철근을 박고 그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있다. 산자락은 뭉개진 채 붉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자본가는 이 광경을 보고 흐뭇해할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로 이 처참한 광경을 표현해야할지 말문이 막힌다. 무슨 사연인지 두 곳은 짓다만 콘크리트 건물벽에 '유치권행사중'이란 대형현수막까지 내건 싸움판까지 벌려놓았다. 이런 것을 보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고 해야할까? 흥이 깨져버려 그만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고 싶다.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가 있다. 어느 어리석은 노인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뿐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가면서 앞산을 파서 삼태기로 져서 옮기겠다고 하자 하늘이 감동해서 산을 옮겨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지간한 산언덕쯤은 2·3일만에 평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얼마전 우리 사회에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분묘(墳墓)보다는 화장이나 수목장 등의 새로운 장례문화가 공감을 받으며 확산된 적이 있었다. 필자도 우리의 성숙된 문화의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비유를 들자면 분묘는 산에 침을 찌른 정도라면 공사판은 산을 절단해버리는 격이다. 어떻게 통계를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연을 훼손하는 분묘가 전국토의 1%나 차지한다며 호들갑이지만, 사실 그 1%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봉분이 스러지고 초목이 뿌리를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원형으로 복원된다. 하지만 산맥을 절단하는 저 공사판은 천년이 흘러도 저절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자연파괴의 비율은 얼마가 되는지 우리는 왜 묻지 않는 것일까?작지만 우리의 땅은 생기가 넘치고 조화로운 땅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앞산의 고즈넉한 능선속에서 옥녀가 단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냇가 앞에 봉우리가 멈춰있으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고 해석했다. 높은 산이 죽 뻗으면 학이 날개를 펴고있다고 읽었으며, 두툼한 산자락이 뭉쳐있으면 봉황이 알을 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짓건 묘를 쓰건 어디 날갯죽지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 안에 보금자리를 틀어 앉으려 했다. 땅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토(覆土)를 해서 보완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산맥을 절단하고 산자락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공사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것 같다. 우리가 너무 가난했던 탓일까? '경제개발'이란 말은 모든 의혹을 가리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된 것 같다.봄이 돌아온 이 산하에 공사판이 지금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토목공사가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에 미친 영향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개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의 원형을 보존해서 후세에 물려줄 수 있도록 국가나 공신력있는 기관의 검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4-04-15 임채우

인문학과 예술이 부흥할 때 나라가 흥했다

한류라는 문화예술이세계를 강타하는 창조·창작의세계가 도래 했는데대학들이 취업률 잣대로예술·인문 전공과 없애자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기원전 500년 정도에서 200년 정도가 아닐까싶다. 이 시기에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왔고 그는 신에게 신탁받고 신전에 모시는 제우스나 디오니소스 따위의 신이 인간을 주관하던 때에 인간생활의 성격과 행위를 분석하는 대로 철학의 초점을 옮겼다. 그는 도덕적 가치가 상실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혼란기에 살면서 "너 자신을 알라"는 충고를 하였고 도덕적 용어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윤리생활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느꼈다 한다. 또한 젊었을 때에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한 플라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융성했던 아테네의 이 시기에 인류역사상 최고의 철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또한 이 시기에 예술에서는 연극의 거장들이 등장한다. '오이디푸스왕'의 소포클레스, '메데이아'의 에우리피데스 등 엄청난 시인들이 예술의 향연을 벌이고 시민들은 흠뻑 거장들의 예술을 감상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연극은 시에서 주관하고 부자들이 협찬하였으며 예술가들은 안정된 창작을 보장받았고 시민들은 즐기면 되었다 한다. 철학을 즐기고 예술을 사랑하고 나라에서 보호 장려까지 하였던 그때가 그리스의 행복시대였다. 그 후 로마에 점령을 당하고 그들의 문화예술 또한 점령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그들은 대륙을 정복하고 얼마 안 되어 당시 미개한 게르만민족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로마는 두 개로 갈라지고 역사는 미개인들의 손에 넘어가 무려 천년정도를 흐르니 역사에서는 이를 중세 암흑시대라 부른다. 다신교였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글도 모르는 미개인들이 유럽을 장악하여 유일신과 주술이 부조화를 이루며 이성이 사라지고 철학은 교회로 들어가고 예술 또한 교회 속 창작만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연극은 교회 예배 속에만 존재하는 시대가 천년을 흐르고 사람들은 어느 순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정신과 예술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결국 이 같은 인문과 예술의 말살은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을 가져오고야 만다. 시작은 로마에서부터 지적 운동 형태로 나타난 인문학의 회복이었으며 다음은 미술 건축 연극 등 모든 학문에서 고전을 찾는 운동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인문과 예술이 살아나는 시기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엄청난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21세기 대한민국으로 갈아타 보겠다. 필자는 격동의 1980년대 친구들도 의아하게 생각했던 몇 개 되지도 않았던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다. 그것도 당시 명문고라는 고등학교를 나와서이다. 난 건방지게 예술이 이 나라를 먹여 살리고 나도 먹여 살릴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웃었다. 그리고 30년 이상이 훌쩍 지나고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은 아이티와 문화예술이 이 나라의 고부가가치 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난 운 좋게도 연극을 하면서도 굶지 않고 살고 있다. 영화는 세계시장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고 연극시장도 곧 세계를 호령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류라는 문화예술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창조와 창작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 웃기는 코미디도 같이 가고 있다. 고급 희극이 아닌 저질 희극이다. 온 나라 대학들이 구조조정되고 있다. 당연하기도 하다. 아이를 낳지는 않고 대학은 잔뜩 늘려 놓았으니 이제 와서 수선 떠는 건 당연하다. 지지난주, 지난주 폐과통보를 받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거의 예술이나 인문 쪽이다. 그런데 그 잣대가 코미디다. 취업률을 구조조정의 축으로 만들어놓고 한답시고 최민식 전도연 같은 세계적 배우 만들라고 과 만들어주고 사대보험 들고 와야 취업이라 인정해준다. 소녀시대 만들라고 실용음악과 만들고 건강보험 들고 와야 한단다. 난 이제 연극과 교수로 피땀 흘려 예술가로 공부시키고 졸업할 때 제자에게 사대보험 되는 취직자리 알아봐야 한다. 중세 암흑기로 가지 말고 심각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문과 예술은 창작이 창조가 취업이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4-08 장용휘

인문의 정신은 시민의식이다

인문학은 이 시대를 사는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갈등에 대해 직면하고해결해 나갈 수 있는힘을 길러주는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오는 6월 중순에 정부는 인문정신문화진흥을 위한 대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인문정신 대토론회'가 작년 10월에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추진 TF가 2월에 구성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인문특위가 만들어졌다. 이 대토론회를 위한 사전 준비로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경기(수원), 강원(춘천), 충청(대전), 영남(부산), 호남(광주)을 중심으로 한 전국 5개 권역별 토론회가 5월 중에 각각 개최될 예정으로 있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보인다. 하나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더해 인문학을 사회적 생산의 매개로 보고자 하는 창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의식화의 가능성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토론회의 성격도 다양한 지역, 계층, 그리고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치유, 평화, 기억, 나눔, 소통처럼 분명한 주제의식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문도시'나 '인문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대중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대학이 중심이 된 시민강좌 형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아예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에 대한 체험을 직접 드러낼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을 시도하려는 데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중들에게 시혜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한 인문적 내용을 공유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의 생활 세계적 의의와 효용가치를 드러내고 시민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인문학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들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것이며 그들 일상적 경험의 산물로서 정신문화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범사회적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상당한 수준으로 진화되고 있다. 한동안은 시민들을 위한 계몽의 성격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의 인문학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가치나 태도, 인식 제공이 시급하다. 사회 한두 곳에 집중된 엘리트 문화가 아닌 시민 전체를 아우르는 시민의식 고양이 중요하다.그럼에도 여전히 인문학의 역할을 장식이나 보존 수준으로 제한해서 보는 시각이 있다. 수원의 예를 보자. 흔히 수원화성의 보존 자체를 인문학으로 대입시키거나 정조의 효를 인문적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하는 일은 단순히 도시 한가운데 길게 이어진 성곽이나 행궁 행차에 얽힌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타지에서 오는 사람을 화성에 데리고 가 성곽을 따라 걷긴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얽힌 얘기도 하고 정조의 효도에 대해서도 한 마디 섞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수원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수도권의 중심도시로서 수원이 갖는 진정한 정체성은 지금의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의 재현을 인문학적 행위로 볼 수는 없다.인문학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인문학은 도시의 갈등해결에 일조해야 하고 시민의식 같은 정신적 영역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 도시 속에서 빛을 발하려면 시민들의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고 이웃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문학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두드려 줘야 한다. 인문학은 도시 한 구석의 물질적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욕구와 갈등에 대해 직면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 정부가 기획하고자 하는 인문정신문화 대토론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인문학의 방향을 우리사회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나 태도에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이러한 기획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길 바라고 시민들 몫이 되어 그들의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정신은 시민의식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4-01 박연규

임계치를 극복하라

새로운 가치·세계를 얻기위해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금삶에 지치고, 목표 향하는데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면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난 지금 무엇을 걸고 달리는가'임계치는 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값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을 100도까지 끓이면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어떤 상태의 마지노선, 한계치에 마주했다는 표현을 임계치에 도달했다라고 합니다.얼마 전에 연합뉴스 TV와 다큐멘터리 5부작을 찍으려고 산티아고 800km의 순례길을 배낭구 메고 걸으면서 다양한 임계치를 경험했습니다. 열 개의 발가락에 모두 물집이 터지고, 발목에 염증이 생기고, 허리부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부상당한 몸을 끌면서 가파른 산길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걷다 보니 수시로 한계에 이릅니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배낭도 팽개치고 등산화도 집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 임계치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를 극복하고 한발 한발 걸으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 그날 걸어야 하는 목표 거리가 다른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상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5km를 처음 걸어본 날부터 그 다음날 걷는 목표가 25km정도면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30km를 걸어본 다음날부터 30km는 별 것 아닙니다. 35km를 걷고부터는 역시 35km는 별 것 아닙니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한 길이었지만 하루에 35km를 걸은 다음부터는 그 다음날 걷는 거리가 35km 이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임계치는 한번만 넘어보면 그 한계가 늘어납니다. 마치 고무줄처럼. 그래서 느낀 것이 '자신의 임계치를 한번만이라도 넘어보면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임계치가 생기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버드대 윌리엄 제임스교수는 '인간은 평생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 중에서 불과 5~7%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든 능력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정한 임계치안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죠. 세렝게티에서는 매일 죽고 사는 달리기가 펼쳐집니다. 사자는 잡으려고 달리고, 가젤은 살려고 달립니다. 그런데 사자, 표범, 치타 같은 동물은 500m이상 전력질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체온이 급상승해서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젤을 쫓을 때는 500m 안에서 승부를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자는 장시간 잠복과 대기로 가젤과의 거리를 줄여 놓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대로 가젤은 일단 500m만 잘 뛰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와 가젤 중 생존율이 누가 높을까요. 상식과는 달리 가젤이 높습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자의 생존율은 10~20%, 가젤은 30~40%입니다. 그리고 사자가 쫓고 가젤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가젤이 이길 확률은 무려 80%나 됩니다. 사자는 10번의 추격 끝에 2번만 가젤을 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젤은 어떻게 10번의 도망 중에 8번이나 살아서 달아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무엇을 걸고 달리느냐의 차이입니다. 사자는 실패하면 한끼의 식사를 놓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젤은 실패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자는 한끼를 걸고 달리지만 가젤은 목숨을 걸고 달리기 때문에 80%의 승률이 있는 것입니다.  임계치의 핵심은 절실함입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절실함, 한계를 넘어보자는 절실함, 죽지 않고 살겠다는 절실함입니다. 사자는 목숨을 잃을까 봐 500m 이상을 전력질주하기 않고 포기하지만, 가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자에게 물려 죽으나 체온급상승으로 죽으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절실하게 도전했는가. 임계치를 넘고자 전부를 걸었던가. 혹시 한발 뒤로 빼고 대응하지는 않았던가. 적당하게 타협하려 들지 않았던가. 사자와 가젤은 타협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내 삶도 적당하게 타협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임계치와 싸워야 합니다. 임계치와 싸우다가 무릎을 꿇으면 영영 그 임계치를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과 성취를 경험한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임계치를 경신합니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한번만 더 시도하면 그 임계치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임계치를 넘어가 본적이 없는 사람은 늘 중간에 멈추고 맙니다. 스스로 그 임계치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는 지점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는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임계치는 자신이 긋는 선입니다.  삶에 지친다면,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숨이 넘어가는듯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현재 무엇을 걸고 달리고 있는가'/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3-25 송진구

춘분을 맞아… 빛과 그늘의 조화를

전 사회에 만연된 무자비한약육강식·승자독식 시스템맹수는 배 부르면 사냥 멈춰생태계 균형 유지되지만인간의 탐욕은 한없어자연계보다 더 잔인해질 수도해가 바뀐 것이 엊그제 같건만 우수 경칩도 다 지나고 어느덧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봄의 한가운데 춘분이 다가왔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십여일전 아침에는 기러기떼들이 삼각편대를 지어 북녘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겨우내 이 땅에서 시베리아의 강추위를 피해 한철 잘 쉬었다가 떠나던 참이었을까? 아니면 호젓한 호숫가 들녘도 미세먼지와 AI소동에 더 견디지 못하고 먼 귀향길을 서두른 것이었을까?강호뿐 아니라 인간세상도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최근 모 TV방송사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이 압박감에 못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으로 여론이 시끄러웠다.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연출진들이 고의로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려 했을리야 만무하지마는, 아마도 시청률 경쟁이란 괴물이 멀쩡한 출연자들을 궁지로 내몬 배후일 것이다.또 얼마 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던 단역 배우 한 분이 일용직 노동판과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생을 접었다. "그쪽 방향에서 출세한 사람이 천 명에 하나, 만 명에 하나뿐이 안되잖아요. 그냥 싫은 거예요, 세상이…." 유족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란 99% 대 1%란 말이 아닌가? 텔레비전을 켜면 1% 소위 스타와 인기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들로 도배하고 있다. 이제는 운동선수들도 이 스타시스템에 편승하려 얼굴을 내민다. 피와 땀으로 일군 인간승리의 감동보다는 부와 명성을 얻는 편한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타시스템의 문제는 영광스런 1%의 아래에는 99%의 그늘이 짙게 깔려있고, 스타라는 절대강자가 파이를 독식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TV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드리워져있는 명암이다. 운동선수와 연예인은 모두 초등생의 장래희망 3위안에 드는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은 우리 현실에서 악몽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이런 시스템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물려줘도 되는 것일까? 무자비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시스템은 전 사회에 만연해있다. 맹수는 제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계의 평형은 유지된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한정이 없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자칫 자연계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다. TV를 켜면 꿈같은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TV를 끄면 자신의 현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늘이란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우리나라는 성범죄율 세계 1위일 뿐 아니라 자살률도 세계 1위라고 한다. 최근 가족간에 동반자살을 한 사건이나 빈곤속에서 홀로 고독사한 사건들도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이런 어둔 그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런 일이 아닐 수 없다. 99% 대 1%의 격차는 다른 곳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었다. 얼마전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니, 전국민의 47%가 사회 경제적으로 하류층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류층이라고 답한 비율로는 역대 최고의 수치란다. 거기에 비해서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중·하층이 적절하게 표준분포곡선을 그려야 할 터인데, 상류층만 2%이고, 나머지 98%는 중·하류이다. 99대1 혹은 98대2라는 비율이 실상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는 국민들 각자가 느끼고 있는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이 만들어낸 감성적 수치이겠지만, 참으로 공교롭고도 불안스런 형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사실 빛과 그림자, 밤과 낮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상생한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정음(正陰) 정양(正陽)의 절기이다. 왕은 이날 동쪽 교외에 나아가 떠오르는 태양에 제사하면서 우순풍조와 국태민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춘분절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도 빛과 그늘이 상생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기를 빌어본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4-03-18 임채우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아프다

기초생활수급보장제 허점에생활고 못견뎌 잇단 자살하는안타까운 현실사회 기득권층들 국민에 대한책임감과 도덕성으로사회정의 실천 앞장서야필자가 연출했던 아서 밀러의 희곡 '전무송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연극에 있어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힘의 양극화와 논리의 모순 그리고 대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힘든 삶을 보편적 가치로 잘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내용을 들여다보면 194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일을 좋아하고 아들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는 영업사원인 주인공 윌리로만이 나이 들어 업무성과를 못 내고 결국에는 젊은 사장에게 모욕을 당하며 해고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거기에 약간의 치매 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변변한 일없이 놀고 있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와의 심각한 갈등까지 겪어내며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파국으로 치닫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어 죽음으로 아들에게 보험금을 타도록 하는 것이었다. 부인 린다가 남편의 영정을 부여잡고 중얼 거린다. "여보 오늘 집 대출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네요." 이 비극을 연출하면서 작업 내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이야기나 별 차이가 없기에 그랬다. 가족을 위하여, 먹고살기 위하여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이 이야기 아니 이보다 훨씬 슬픈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0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가 자기 아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기 위하여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은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많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달 26일에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이라는 너무나 안타깝고 그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생활고로 목숨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집주인에게 폐를 끼칠 것을 염려하며 미안해했고 그들에게는 엄청난 돈이었을 70만원을 봉투에 넣어 마지막 월세를 감당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찌 설명이 되어야하는 건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잘 모르겠다. 국민행복시대라는 우리 하늘아래 사회 안전망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구원의 손길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세분의 아까운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 후 열흘도 안 되는 시간에 베르테르 효과까지 겹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을 내려놓고 있다. 노고산동의 노동자가 100만원을 옆에 두고 화장해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고, 지인에게 전기세를 좀 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차안에서 자살을 한 울산의 윤모씨도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연락도 되지 않는 가족이 행정상에 발견되어 부양의무제에 걸려 탈락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보장 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나타나는 지점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 이후 모든 언론, 사회단체, 정치권, 일반 국민들까지 불편하고 부당한 제도를 말하며 부양의무제의 문제점, 수급자신청절차의 어려움 등을 해소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기초생활보장의 혜택을 받는 제도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제는 그로 인해 부정수급자를 골라내는 득보다 가족이 있어도 경제적 도움을 못 받는 훨씬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하는 실이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있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문제만 생기면 위정자들은 윽박지르지만 인구 1천명에 한명 정도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숫자를 본다면 얼마나 생색내기용 멘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일들이 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 기득권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정신의 부활이다. 즉 사회 기득권층들이 국민에 대한 높은 책임감으로 도덕성을 앞세워 사회에 정의를 스스로 실천하여야 한다. 로마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의 자부심으로 스스로 전쟁터에 나갔으며 기부문화를 당연한 책임으로 여겨 재산을 기부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이 정신은 세계 선진국에 퍼져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지도층들이 지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사회 기득권층들이 군대를 기피하고 기부는커녕 부의 대물림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금의 권력으로 골목상권을 내몰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외면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한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지속된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3-12 장용휘

얼굴을 보자

얼굴 바라보는 것은말 걸기전 적극적인 배려상처받은 마음 드러나는 것주위에 소외된 이웃그냥 지나치지 말고관심 있게 봐주는게 최선타인의 얼굴을 일분만 봐 줘도 평소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남의 얼굴을 시늉만 하거나 물건 보듯 대충 본다. 잘났다 못났다는 식의 이분화, 피부가 좋다 나쁘다는 식의 물질화, 얼굴보기가 그저 단순하고 피상적이며 도구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얼굴을 진정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상대의 힘들고 어려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지난달 경기도의 공무원 직무연수 특강에서 이 얼굴보기 실험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연수 중 어느 정도 말을 튼 옆 동료의 얼굴을 잠시 보는 활동이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지만 이내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말을 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만으로 동료를 바라보기로 했다. 마주보는 사람에게 혹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넓고 푸근하게 다가가기로 했다.몇몇 짝들이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배가 고픈 듯하다, 피곤해 보인다, 눈이 참 맑아 보인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착해 보인다는 식의 소감이 나왔다. 이 얼굴보기 탐색 결과가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수강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건인 듯했다. 실제 얼굴보기는 마술과 같다. 아마 제대로 동료의 얼굴을 깊게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인간관계는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한 수강생이 복도까지 따라나와 말을 건다. 가족들 하고의 불편한 상황을 진지하게 묻는다.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느낌, 아이도 자기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다.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양심이나 동정심을 발동시키려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볼 줄 아는 태도와 어느 정도의 시간만 내면 된다. 동정심이나 양심은 의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냉정하게 얼굴만 돌리지 않으면 된다. 경청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긴급한 일은 관심을 갖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한 말에는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돌아앉아 고개만 끄덕이면 제대로 된 응답이 아니다. 얼굴은 보기만 해도 문제가 해소된다. 굳이 내가 힘들게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얼굴보기를 낯선 사람에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직장이나 이웃에게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도 아니고 괜히 말을 걸었다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지난달 26일 서울시 송파구에서 생활고 비관으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비극 기사에는 사회안전망의 한계와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말하길 그들이 직접 복지신청을 하지 않았고 이웃에서도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없었다고 한다. 힘들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세 모녀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 그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을까. 얼굴은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도움의 말 이전에 그들의 얼굴을 세심하게 볼 수만 있었다면 그들의 숨은 눈물, 감춰진 속사정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기초수급자 신청을 받고 지원 요청을 아무리 많이 홍보하더라도 정부기관에서 찾아낼 수 없는 이웃의 숨은 눈물은 있게 마련이다. 이 눈물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염려이다. 얼굴 보는 일은 말을 걸기 전에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배려의 자세이다. 가족이나 이웃 모두에도 얼굴을 보는 것만큼 윤리적인 일은 없다. 얼굴은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곳이라고 한다. 상처받은 마음이 방어 장치 없이 드러나는 곳이다.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데에는 얼굴보기가 최선일 것이다. 나 자신이 힘들 때도 누군가 또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3-05 박연규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

건강과 가족, 친구와 직장…그것이 있음에 감사 하지만남과 비교해 부족함 느끼면상실감은 불행으로 이어져인생의 고통 덮쳐도 3개월만참으면 행복은 또 옵니다어느 날 5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완전 대박이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50억 원으로 무엇을 살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현재 하는 일을 언제 그만둘지 리스트를 작성하느라고 잠도 못 자고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어느 날 사랑하는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그 친구와의 오랜 인연과 추억들이 생각나서 비통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술로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그런데 복권 당첨의 행복한 기분과 친구 죽음의 불행한 기분은 얼마나 유지될까요?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유효기간은 있습니다.50억 원이면 평생 행복하고, 친구가 죽었으면 평생 불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댄 길버트 교수가 제시합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고 합니다. 3개월이 지나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릅니다. 즉 50억 원의 복권이 당첨돼도 3개월이 지나면 50억 원 때문에 더 이상의 행복은 지속되지 않고, 친구의 죽음이 주는 비통한 슬픔도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웃으면서 일상생활을 한다는 주장입니다.일반적인 상식으로는 50억 원이나 갖고 있는 부자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불행하고 우울하게(예전에 그의 성격이 습관적으로 불행하고 우울했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유형의 자산이 주는 행복의 한계는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엄청난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재벌도, 돈과 인기가 넘치던 연예인도, 심지어 명예의 최고까지 가보았던 전직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풍족하지 않음에도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가고, 충분히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불행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행복하게 사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습관입니다.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정지해 있는 물체에 힘을 가하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언제까지나 정지해 있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언제나 운동을 계속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과 비슷한 보통의 상황을 습관처럼 비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통의 상황을 습관처럼 낙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습관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셈이죠.인생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현자들이 습관처럼 활용했던 다음 두 가지 팁을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습니다.첫째, 현재에 감사하라.건강한 정신과 육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급여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합니다. 건강과 가족, 친구와 직장은 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한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감사한 것을 느끼게 되죠. 감사하다 보면 감사가 습관이 됩니다. 가진 것이 남보다 적지만 그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게 되죠. 힘든 일이 삶을 덮칠 때도 '더 험한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야'라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한 시간이 늘어납니다.둘째, 남과 비교하지 마라.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상태를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자신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과 타인이 갖고 있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남보다 부족하게 느끼죠. 거기에서 오는 상실감은 곧 불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댄 길버트 교수의 연구결과는 한편으로는 위안을 줍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 인생을 덮쳐도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3개월이면 가능하다는 사실이지요.그러고 보면 눈앞에 닥친 아픔 때문에 너무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그나마 더 큰일이 아니었음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머지않아 행복한 일이 또 나에게 다가설 것입니다. 고통스러워도 3개월만 참아보자고요./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2-25 송진구

인천과 평창은 무엇을 보여줄까?

서해바다 배경 세계로 향하는활기찬 항구도시 인천과강원도의 아름다운 산하IT기술로 표현한 개막식이라면전세계가 '한류 저력' 알게되고한국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동계올림픽이 이제 종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 선수단의 성적이 예상보다 못하다고 걱정들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성적도 문제지만, 몇 달 앞으로 닥쳐온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인천과 4년 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는 무엇을 보여줄까가 더 걱정이다.특히 소치의 개막식은 훌륭했고 감동적이었다. 암울했던 러시아의 과거로부터 희망찬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급예술과 하이테크기술로 압축한 종합선물세트를 열어보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과장된 민족주의라고 혹평했지만, 올림픽 개최국으로 개막식에 자국의 위신을 선양하고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내용을 담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과장된 민족주의라는 식으로만 비판할 수는 없으며, 어느 나라든 완전한 코스모폴리탄이 되어서 올림픽정신만을 표현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개최국의 특수성을 무시하도록 압박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는 일종의 제국주의가 되어버릴 것이며,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한 개막식은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자칫 매스게임의 군무로 전락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다만 공연에서 표현한 내용이 얼마나 보편성과 예술성을 획득했느냐로, 그 성패를 가늠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편협한 민족주의냐 아니면 인류문화의 다양성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류보편의 가치를 담고 있느냐 자민족 중심의 특수한 선민의식에 제한되었느냐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소치 개막식은 예술성과 대중성, 보편성과 특수성이 아주 훌륭하게 융합되었다고 본다. 나는 러시아의 문화적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순진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류로서 그들이 보여준 꿈 같은 미래를 행복하게 감상했다. 이 점에서 러시아는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중세로부터 시작해서 제국의 붕괴와 혁명의 시기를 지나 밝고 희망찬 미래의 꿈을 힘차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해 낸 이번 개막식을 본 사람이라면 철의 장막에 가려진 음흉한 크레믈린이란 이미지를 버리고, 밝고 희망에 찬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소치는 음악과 무용 그리고 빛과 디지털기술을 이용해서 간결하고도 힘차게 자신들이 사랑하고 가꿔온 문화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국력을 기울인 그들의 화려한 공연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이제 우리 인천과 평창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소치와 비교될 텐데, 인천과 평창에서 손님상을 어떻게 차려내야 할지 걱정스럽다. 아파트 밀림속에 혹은 첩첩산중에 소치와 같은 초매머드급 스타디움을 건설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꿈을 예술성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거대한 건축과 수천명의 인력 같은 하드웨어보다는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의 IT기술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콘텐츠를 구성해서 세계에 보여준다면 어떨까? 소치는 평화라는 이상을 수학과 과학을 토대로 구성해냈다면, 우리는 보다 정감적인 우리의 신화와 설화를 테마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는 과학뿐만 아니라 신화와 전설속에서 인류보편의 홍익인간의 사상을 갖고 있다.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활기찬 항구도시 인천이나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하와 순박한 정감을 배경으로 한 평창에서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진 단군신화로부터, 눈먼 아버지를 위해 서해바다에 몸을 바친 효녀 심청이가 연꽃속에 부활하고, 강원도의 순박한 나무꾼이 복을 받는다는 인류보편의 정서를 가진 무리의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따뜻한 정감이 세상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의미를 담아 전 우주에까지 확대해서 홍익인간의 철학적 이념을 실현하는 콘셉트로 구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작지만 강한 나라, 아름다운 이상과 철학을 가진 나라, 동서의 문화가 이상적으로 융합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IT기술을 활용해서 표현한다면, 전 세계가 한류문화의 저력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우리 인천과 평창을 통해 한국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는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4-02-19 임채우

연극속의 말 현실속의 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할 수 있고감동과 생명 담긴 한마디로위대한 가르침 줄 수도 있다말(馬)의 해 말 조심하고조금만 더 심사숙고 하자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공포스럽고 두려운 최고의 고전 맥베드에서 장군 맥베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을 만나 "장차 왕이 되실 분 맥베드 장군 만세"라는 은밀하고 달콤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신하의 신분에서 반역을 꿈꾸며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왕이 되어서 왕을 이루게 한 마녀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맥다프에게 죽음을 맞는다. 주변의 말 한마디에 얇은 귀를 열어 일상을 버리고 지옥의 길을 들어선 것이다.그의 또 다른 비극 리어왕에서 리어왕은 세 딸에게 아비를 사랑하는 정도를 말로 표현하라고 시키는 바람에 진실이 감춰지고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말로 하지 못한 그러나 가장 리어를 사랑하는 셋째 딸을 추방시키는 우를 범하며 가문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이다. 리어를 별로 사랑하지 않지만 첫째와 둘째 딸은 온갖 단어들을 동원하여 리어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대고 그들은 재산과 권력의 반씩을 차지한다. 그 후 리어를 내팽개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말보다 내면을 보지 못한 늙은 왕의 결말이다.세 치 혀끝으로 나가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나락으로 보내기도 하고 천국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영화가 되어버린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최민식 분)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십오년 동안 좁은 방에 갇혀서 만두만 먹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황당하게도 그가 고통을 당한 이유는 고등학교 때 후배누나의 임신사실을 퍼트렸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후배 앞에서 혀를 잘라버린다. 세 치 혀를 잘못 놀린 무서운 결과이다.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금(昨今)의 현실은 연극이나 영화 속의 말들보다 더 연극처럼 다가오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더구나 요즘은 빛의 속도로 지구전체로 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할 수도 있는 시대이다.수일 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어리석은 사람 판정을 받았다. 부총리라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은 일이 생기면 남 탓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카드사들과 정부의 총체적 잘못으로 온 국민의 개인정보가 털렸는데 경제수장이 대놓고 어리석은 국민들로 몰아붙이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여수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로 바다가 오염되고 어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관계 장관이 사고 한참 후에 마실 나오듯 나와서 냄새가 싫었는지 코를 막고 심한 줄 몰랐는데 하고 가버렸다. 그 후 해명이 더 어지럽게 한다. 독감으로 옆 사람 피해 안 주려 코를 막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구차해 보인다.어디 민망한 말잔치가 이뿐인가. 사대 강의 녹조증가가 수질이 맑아진 증거라는 전임 대통령의 강변은 어찌 해석을 해야 하는지 아득하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연예계로 나온 국회의원, 연평도 포격 현장에 가서 보온병 들고 포 탄피라 말하고 기념사진 찍고 전 국민을 즐겁게 해주었던 정치인, 인터넷방송 나꼼수 진행하며 인기가 오르자 국회의원 나가려다 팔년 전 했던 무지막지한 막말이 들통 나 온 나라에 회자되고 고개 숙인 젊은이,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이라 말했다 혼쭐이 나고 물러난 대변인 이 모두가 말하기 전 조금만 심사숙고(深思熟考)했다면 그런 사단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그런가 하면 말에 감동과 생명을 불어넣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칼보다 강함을 일깨워 주는 말도 현실 속에 많다. 조선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던진 영웅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자 뤼순감옥으로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 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말이 할 수 있는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말(馬)의 해 말(言)을 조심하자. 익숙한 달변이 때론 말더듬으로 보인다 하였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2-12 장용휘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내자

교육하기전 대상을 꼼꼼하게살펴보고 설문조사나개별 또는 집단상담 가져야교육후엔 반드시 점검도 필요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어떻게 만들것인가가 중요지난 1월 학교 입학사정관실의 위탁을 받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2박 3일에 걸쳐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퇴계의 성학십도를 통한 집중력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옛 유학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집중의 경(敬)사상이 성실과 배려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성교육은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의도한 교육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첫째, 어떤 이론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방법의 명확성이다. 둘째, 누가 교육을 받는가 하는 교육 대상자의 명확성이다. 셋째, 자신의 인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해결의 명확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 요소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구조화해야 한다. 나는 이를 3+C, 또는 TOS+C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즉 이론(Theory), 대상(Object), 해결(Solution)이 구조화(Construction)된 인성교육 프로그램인 것이다.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위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지금의 많은 인성교육에서 가장 심각한 결격 사항은 프로그램의 이론 부재라 할 수 있다. 이론이 없게 되면 좋다는 덕목을 모두 끌어모으게 되고 결국에는 정체불명의 인성교육이 되어 의도한 만큼의 교육 효과를 검증할 길이 없어진다. 교육은 했는데 무엇이 잘 되고 못되었는지 그 근거나 기준을 제시할 수가 없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이렇게 되면 인성교육이 즉흥적이 되거나 계몽적이게 되어 교육자의 상식이나 주관에 편승할 위험이 커진다.프로그램의 대상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유아, 초등, 중고등학생들을 어느 정도 구분하고 있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교육여건이 잘 되어 있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차이가 나타나고, 농촌과 수도권의 차이도 일부 나타난다. 비행청소년집단이나 교도소 재소자들처럼 특정 집단의 경우에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엉뚱한 얘기를 하게 되고 결국에는 인성교육에 대한 불신만 심어주게 된다.어떤 인성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인성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흔히들 인성문제는 장기적인 차원의 예방에 있다고 하지만 실제 교육효과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문제해결에 더 많이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한 설문조사, 그리고 진행 과정에서 인성에 대한 개별 또는 집단상담 시간이 마련되어야 하며 교육이 끝난 후의 사후 점검도 필요하다. 자신의 인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프로그램 안과 밖에서 지속적이고도 집요한 해결의지가 있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위의 세 요소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많은 인성교육이 이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 되지 않는 원인은 인성교육을 강사 자신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은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다. 구조화가 잘 안된 프로그램을 보면 세부 활동들 간의 연계성이 취약하고 이를 강사의 설명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크다.인성교육이 좋은 효과를 내려면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맞춤식이 되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많은데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성교육을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전유물로 생각하여 특정 발달 시기에 한정하는 것도 맞춤식 프로그램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인성교육은 평생교육의 성격을 갖고 있고, 또 그런 이유로도 다양한 발달 과정에 맞추어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 무슨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인 인성교육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데 있어서 잘 짜인 인성교육 프로그램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2-05 박연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치열하게 살아내면내일이란 선물이 있지만그렇지 못하면 어느새 과거가돼버린 현재에 매달리게 되고그런 사람의 오늘은 이미 죽은것중세의 수도승들은 만나면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의 뜻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입니다.사람은 한번은 죽습니다.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지만 내일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일 수 있습니다. 시간은 삼 단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과거는 내가 살았던 시간이지만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인간은 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오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오로지 현재만이 인간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에 치열한 몰입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가진 소유가 아닌, 죽는다는 유한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우리의 삶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잡다한 일들, 번잡한 일들의 성가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내일을 기대하고 희망을 품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나 단순한 희망만으로 오늘을 소일하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지능적인 자기기만입니다.주변에서 평소에 아무 준비도 안하고 있다가 은퇴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황스런 말을 합니다."난, 은퇴하지 않을 줄 알았어. 은퇴는 남의 얘기일 줄 알았지. 난 다음 인사에서도 살아남을 줄 알았지."천천히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스스로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런 착각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바로 '메멘토 모리'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니 오늘에 몰입하고 치열하게 살아내라.'오래 전에 감동 깊게 보았던 영화 가 있습니다. 빽 파이프 연주를 앞세우고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서면서 1859년에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 학기 개강식이 시작됩니다. 이 학교 출신인 키팅 선생(로빈 윌리암스)이 영어 교사로 부임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게 해서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라'는 등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하는데, 그때 나온 대사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입니다. 카르페 디엠은 '지금을 즐겨라'라는 뜻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바꿀 수 없고, 미래가 중요한데 그 중요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하고 나머지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는 의미입니다.원래는 호라티우스가 쓴 라틴어 시의 구절입니다.'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즐겨라. 미래에는 최소한의 기대만 걸어라.'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합하면, '사람은 한번은 죽으니, 그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를 즐겨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늘은 없습니다. 어제와 같은 바람도, 어제와 같은 구름도, 어제와 같은 태양도, 어제와 같은 나무도, 어제와 같은 풀도, 어제와 같은 꽃도 없습니다. 오늘의 하늘, 오늘의 바람, 오늘의 구름, 오늘의 태양, 오늘의 나무, 오늘의 풀, 오늘의 꽃만 있을 뿐입니다.우리에게 할당된 시간도 그러합니다. 어제는 흘러 지나가서 뛰어가 잡을 수 없고, 내일은 오지 않아서 어떤 시간이 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지금만이 내 시간일 뿐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면 지금밖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당신의 현재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가고 싶은 곳에 있으면 지금 그곳으로 떠나고, 고백할 말이 있으면 지금 고백하고, 결심한 일이 있으면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면 우리에게 내일은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낸 사람만이 내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일을 잡는 방법은 간단하고도 의미 있습니다. 오늘을 놓는 것입니다. 오늘을 놓아야 내일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을 놓지 않으면 내일을 잡을 수 없습니다.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은 내일이라는 선물을 맞이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에 매달려있는 것입니다. 놓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의 오늘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정글의 왕자가 된 타잔의 생존비밀은 줄타기였습니다. 줄타기의 핵심은 잡았던 줄을 놓고 새로운 줄을 잡는 것입니다. 타잔이 줄을 탈 줄 몰랐던지, 잡은 줄을 놓지 않았더라면 사자나 표범의 먹이가 되었을 것입니다.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 싶다면 현재 당신이 갖고 있는 익숙한 것들을 놓아야 합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놓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올 한해 동안 이 아름답고 의미있는 단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4-01-29 송진구

중국의 윷놀이 무형문화재 지정 유감

윷놀이는 고유의 전통문화그럼에도중국이 먼저 그 가치를알아보았다는 점에서오히려 우리의 무감각을반면교사로 삼아야며칠전 한 인터넷 언론매체에서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조선족 윷놀이'를 성급(省級)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하며, 중국 국가무형문화재로도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7월에 공고된 내용이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파악도 못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아리랑이나 태권도처럼 중국이 또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져간다고 비난하면서 그간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는 자성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필자는 10여년전부터 우리의 윷문화에 대해 연구를 해왔고, 이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활동도 해왔던 터라서 이번 발표를 보면서 여러 감회가 들었다. 작년 10월 본 칼럼란에도 이미 윷판 암각화의 중요성이 울진반구대 암각화보다 뒤지지않다는 사실과 함께, 방치되어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윷판 바위그림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채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고발하면서 당국의 관심과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중국에서 행해지는 조선족 윷놀이는 우리의 윷문화에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단순하다. 우리 윷놀이에 대해 자세히 분석을 해보면, 콩윷 밤윷 쪽윷 손윷 장작윷 등의 재료가 다르고, 가락윷 종지윷으로 방식의 구별이 있으며, 자세윷 태극윷 등의 별종의 놀이가 있다. 또 건궁윷 맹인윷의 특수한 윷놀이도 있고, 이외에도 승경도 성불도 팔도유람도 등의 변형이 있다. 또 현재도 윷판을 바꾸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노는 변형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베링해를 건너간 우리의 고대 윷놀이는 알래스카에서 북미 남미까지 전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에 의해서 파치시나 파톨리 등으로 불리는 변형된 윷놀이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심지어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우리 윷과 같을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윷'이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번 보도에서도 "고대 부여의 관직명에서 유래한 윷놀이는 1천500년간이나 지속돼온 우리 고유의 문화"라고 했는데, 사실 도개걸윷모의 이름이 우리 고유의 가축이름이지만 부여의 관직명에서 윷놀이가 유래했거나 천오백년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만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민속놀이를 연구하고 있던 스튜어트 컬린이란 미국의 저명한 민속인류학자는 우리의 윷놀이를 보고 한 눈에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인디언 놀이의 기원임을 간파했고, 윷놀이가 '전세계 모든 민속놀이의 원형'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필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윷놀이와 한반도 방방곡곡에 펼쳐져있는 윷판 암각화의 존재에 근거해서 추론해볼 때, 윷은 세계 민속놀이의 원형일 뿐 아니라, 최소한 1만여년 이전으로 상회하는 '인류 놀이의 화석'이라고 본다.윷은 사실 놀이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아마도 그 기원은 주술이나 점술과 관련된 구석기시대의 원시종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윷판의 형태를 보면 달과 별의 운동을 해석한 고대천문학적 지식을 담고 있는 상징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암각화 윷판은 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인류의 윷문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고대 한반도문명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얼어붙은 베링해를 넘어 전 아메리카 대륙에 퍼져나간 고대 한류의 상징이다.사실 중국이 조선족 윷놀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해서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전에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중국의 네티즌들이 발끈했던 것은 속좁은 생각이다. 단오절은 분명히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산신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식 풍속이지, 굴원을 추모하며 용선(龍船) 경주를 하고 찹쌀떡을 먹는 중국 단오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윷놀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윷놀이의 가치를 우리보다 더 먼저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문화재 지정을 오히려 우리의 무감각을 깨우쳐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한다고 본다. 다행히 윷에 대해 우리는 중국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문화의 보고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더 차원높은 윷문화운동을 전개해 나가자. 문명은 독선과 폐쇄속에서 시들고, 교류와 융합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4-01-21 임채우

2014 조용한 아침의 나라

외형으론 '동방의 등불' 이나…OECD 국가 중 행복지수 32위사회통합·자유 등 사실상 꼴찌이념 무장한 정치권 다툼 멈추고언론, 올바른 보도 고민할때국민도 '정의'로 무장해야'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이 시는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며 시집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교육자였던 타고르가 1929년 일본을 방문할 당시 한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으로의 방문을 요청하였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의 아쉬움을 담아 같은 식민지 국가의 국민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써준 시이다.'마음에 두려움 없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은 곳,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이상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들지 않는 곳,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뜨게 하소서, 나의 님이시어…'. 이상적인 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강력하게 소망하는 이 시 역시 타고르의 시로 자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쓴 시이지만 동방의 등불 뒤에 언젠가부터 따라붙어 하나의 시처럼 되어 버렸다.하필 이 시기에 이 시를 꺼내든 것은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는 조선의 국민들에게 독립을 염원하는 심정으로 선사한 시이기에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등불 따위의 소리를 들으며 자란 필자가 아득해진 그 기억들을 꺼내어 도무지 조용해지지 않을 것 같은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운 대한민국에 2014년에는 진정으로 조용히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담아보려 함이다.분명 대한민국은 참담한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에 불과 짧은 세월에 타고르의 말대로 아시아에서 등불이 되어도 될 만큼 밝아지긴 했다. 엄청난 경제적 성장과 눈부신 문화 예술의 부흥, 최고의 IT선도, 또한 세계적 스포츠 강국, 한류 등등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동방의 등불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초에 발표된 OECD국가의 국민행복지수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를 금방 알 수 있다. 34개 나라 중 32위 꼴찌나 다름이 없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된 것이다.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불과 며칠 전 한 경제학자가 한국경제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참담하다 못해 언제까지 이런 상황들이 계속 되려나 두려움과 공포심마저 든다. 발표에 따르면 사회통합지수 24위, 관용부문(장애인 타인 외국인) 꼴찌, 안전부문(모든 사회안전망) 꼴찌, 자유부문(언론 출판 등등) 26위, 저출산 고령화 13위, 복지 분배 27위로 행복에 관련된 거의 전 부문에 있어 바닥을 치고 있다.2014 갑오년(甲午年) 행운을 준다는 청마(靑馬)의 해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가장 바뀌어야 할 곳은 시끄럽고 지저분한 정치판이다. 아침에 눈뜨면 연일 전쟁이다. 그것도 논리전쟁이 아니라 획일화된 이념으로 무장하여 신념은 없고 일방적 주장만 있다. 수십 년 같은 싸움질을 하는 이 판이 정의로 무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못지않게 바뀌어야 할 것은 언론이다. 국민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하나가 언론이다. 냉정한 분석과 비판은 사라지고 선정적인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그 폐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칼보다 무서운 정의의 펜대를 보고 싶다. 진학만 고민하게 하는 교육이 진로를 고민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고 속도만 고집하는 사회가 미래를 생각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하지만 그 모든 것에 주인인 국민이 가장 바뀌어야 한다. 어느새 우리 국민도 두 가지 이념에 사로잡혀 정치권과 다를 바 없는 정의가 사라지고 냉철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가 난장판이고 언론이 주눅 들고 사회가 혼탁할 때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의로 무장한 국민의 주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 된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꿈꿔본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1-14 장용휘

노숙인을 위한 '이웃의 인문학'

노숙인 자활에 도움될 수 있는맞춤식 강좌 마련하고중장기 인문교양교육 상설 운영대학 정규 교양과목 무료 청강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지원하는것 반드시 필요지난해 9월에 시작하여 12월까지 노숙인을 위한 '경기도형 탈노숙 Total-Care 사업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는 경기도지사도 참석하여 수료식까지 끝냈다. 이 사업은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이 되어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수원시다시서기센터의 도움을 받아 실시하였다. 교육에는 다섯 명의 교수들이 글쓰기, 철학, 예술, 체육, 명상 등을 각각 맡고 박물관 투어와 도서관 참관도 함께 진행했다. 인문학의 핵심 수업내용을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의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고자 했다.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행복사회와 인문도시로서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게 하려면 '인문학의 대중화'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학 대중화는 대학과 지자체와의 긴밀한 연계에 의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은 시민인문학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 사업을 통해 경기도와 수원시 그리고 대학이 인문학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대학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는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 자산인 인문학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와 교육 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행복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인문학 대중화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그것의 분명한 목적은 시민들로 하여금 인문정신이 지니고 있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얻어내게 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또 다른 목적 하나는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쌀 수 있도록 배려 능력을 증진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힘은 항상 개인의 자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고양시키는 데 있어 왔기 때문이다.40대에서 60대까지에 이르는 노숙인들은 한 학기 내내 늦은 저녁 시간에 자활의지를 불태우며 인문학 공부에 열정을 쏟아냈다. 젊은 학생들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과 삶의 의지를 갖고 공부에 임해준 그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그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열리고 자신감을 조금씩 얻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료식 마지막 작품발표회 때는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대학교 강의실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없다. 게다가 열심히 수업에 참석하긴 해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아 교실이 밝은 느낌은 아니었다. 많을 때는 30여명을 훌쩍 넘기다가도 어떨 때는 20명이 채 참석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매주 목요일 20회에 걸친 수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얻어가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반가웠다.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여 질문이나 웃음이 많아졌다는 사실, 주눅이 든 어깨가 조금이나마 펴지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징조였다.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통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며 연속성을 구축할 수 있는 강좌 개발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문학 강좌 여러 개를 단순히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맞춤식 강좌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와 수원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공유했다고 본다. 중장기적 인문교양교육 강좌의 상설 운영과 더불어 대학의 정규 교양과목의 무료 청강, 그리고 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노숙인 자활 사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나 시민단체도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해왔지만 그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만만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도시의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의 숨은 눈물을 찾아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야말로 '서로 마주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1-08 박연규

치유여정…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다

내가 아는 사람 이름 부르며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지은죄와나에게 아픔 줬던 사람들도용서했습니다, 새해엔 그동안맺혔던 마음 내려놓고 감사하는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얼마 전에 '연합뉴스TV Y'의 5부작 다큐멘터리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초청돼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멘티는 공모를 통해서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멘티, 방송촬영팀 등 11명이 배낭을 메고 30일 동안 800㎞를 걸으면서 대화와 강의를 통해 멘티를 힐링시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국경이 끝나고 스페인 국경이 시작되는 지점인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 땅끝,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입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길로 야고보가 참수당한 뒤 그 유해를 실은 배가 도착해 묻힌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야고보를 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입니다.1천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길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한 숲, 코발트 빛 하늘,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뭉게구름,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 아무리 다가가도 더 멀어지는 지평선을 쫓아 하루에 25~35㎞씩, 6~9시간을 산티아고를 향해 끝없이 걷는 길입니다. 중간에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은 '순례자의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얻으려고, 누구는 버리려고, 누구는 찾으려고, 누구는 잊으려고, 누구는 보려고, 누구는 보지 않으려고 이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게 됩니다.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순례자들은 광장에서 서로 부둥켜안거나 광장 바닥에 누워서 뜨거운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이 순례길을 완주해냈다는 것을 느끼는 감동의 순간입니다.순례길을 걸으면서 그야말로 수만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낭도 마음도 내려놓으면 가볍습니다. 무거우면 멀리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으려거든 배낭의 짐도, 마음의 짐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내려 놓으면 가볍습니다. 그동안 사무친 원한도 용서하면 가볍습니다.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멈추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꼭 빠르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니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걸으면서 산이 높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언젠가는 산을 넘게 됩니다. 산을 넘었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습니다.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않고 한발 한발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셋째,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누리고 살고 있던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제작진이 깜짝 쇼로 매운 떡볶이 파티를 열었는데, 출연진은 완전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 마른 옷, 편안한 침대와 이불, 김치찌개, 매운 닭발…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항상 옆에 있으니 그 고마움을 몰랐던 것입니다.그리고 걸으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들을 위해 걸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용서를 빌었습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제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했습니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지혜처럼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맺혔던 마음을 내려놓고, 뚜벅 뚜벅 한발씩 걸으면서, 현재의 제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새해를 위해 기도합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2-31 송진구

'동지'와 '크리스마스' 동서(東西)의 동거

동짓날은 모든 생명활동이극저점에 이르지만새로운 태양과 함께새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종교적비중을 가질수 밖에 없다동짓날을 지내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동지는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던 24절기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 음력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양력으로 태양의 주기를 계산해서 얻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크리스마스도 예수의 탄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로마제국의 동지축제의 변형으로서,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무렵을 택해서 부활의 의미로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고 한다.새해 첫날과는 열흘 차이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짓날이 한 해의 마지막이다. 그 이유는 한 해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끝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풍속으로 동지는 작은설(亞歲)이라고 부르면서 이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 것이나,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동짓날에 다음 해의 역서를 만들어 궁중에 바치고 관아에서 동지 선물로 책력을 선사하던 풍습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날이 그날 같고 또 그날이 그날 같기만 했을 일상의 나날속에서 정확한 1년의 주기를 파악하고, 동지란 극점까지 알아낸 것은 대단한 발견이며 인류 지성의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아무튼 이 날까지로 모든 생명활동은 극저점(極低點)에 이르지만,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부활하는 희망의 날로 전환된다. 그렇게 동지는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 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 동과 서를 막론하고 철학적 종교적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페루의 마추피추에도 영국의 스톤헨지에도 동짓날 새 태양이 떠올라 비친 각도와 그림자를 기준으로 배열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짓날 아침 피라미드나 마추피추에 가서 그 고대의 신비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동지는 생명이 부활하는 성스러운 시간이자 우주질서의 중심축(axis mundi)이다. 그래서 전통시기 중국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천자가 남쪽의 교외에 둥그런 제단(圓丘)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최대의 국가제사를 거행했다. 이 제사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천지의 '재생(rebirth)'을 경축하는 의례이기도 했다.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동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은 해가 길어진다는 점에 있다. 현대에서는 날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저 자연에 의존해 살아야 했던 고대시기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가 길어지면 비록 지금은 추워도 이제 머지않아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해질 것이며, 이제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죽음의 두려움에서부터 벗어나 다시 생명이 부활(復活)하리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아직은 한겨울이지만 해가 길어진다는 사실 자체는 추운 겨울을 나는 원시인들에겐 푸른 봄의 서광이자 생명의 약속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동지를 쇠고 나서 첫 태양이 뜬 아침에는 아마도 서로들 낮의 길이가 길어짐을 축하하고 새로운 생명의 다짐을 하던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지는 오랜 옛날부터 태양의 축제날이 되었다.공교로운 것은 오늘날 동지 무렵에서 크리스마스타이드는 젊은 청소년들의 축제 기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먼저 세계 최대의 종교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와 겹치는 데다가, 흰 눈이 천지를 뒤덮는 계절이자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은 아마 1년중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흥청이는 날이 되었다.고대 인류의 삶의 경험과 지혜를 담은 고전 주역에서는 복괘(復卦)가 바로 이 동지점을 상징한다고 한다. 맨 아래에 있는 양효 하나가 하나씩 자라나오면서 부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복괘에서는 우리에게 나라의 관문을 닫고 모든 인위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히 천도의 변화를 따라 새로운 기운이 자라나오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문다. 저 창밖에는 네온사인이 찬란하고 캐럴이 한창이다. 대체 나는 지난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 것일까? 이제 창문을 닫고 내면의 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아야겠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3-12-24 임채우

연말연시 홀몸노인들 보살펴야 한다

가족붕괴로 홀로 사는 노인 늘며고독하게 살다 안타깝게 生 마감노인들에 작은 일자리라도 제공지역사회 공헌 기회 주고더 중요한건 주위 구성원들이자주 돌보는등 많은 관심 가져야연말연시(年末年始)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은 흥청(興淸) 좋아하다 망청(亡淸)되기 쉬운, 그러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고 서러워지는 희비(喜悲)가 갈리는 계절이다.필자는 연극연출가이다. 사정이 없는 한 연말에는 따듯한 사랑을 전하는 감동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가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라 생각하기에 그럴 것이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젊은 사장에게 내쳐지고 오냐오냐 키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자식을 위해 보험금을 타게 해주려고 자동차를 타고 나가 고의사고를 내는 이 시대 최고의 비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말에 공연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설화로 자리잡은 버려진 딸이 버린 아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목숨을 걸고 생명수를 구하러 가는 도저히 현실에서 특히 이 시대에 납득하기 힘든 효를 행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도 연말에 공연하였다. 비슷한 주제인 '효녀심청'을 각색하여 만든 '명랑소녀 심청'도 연말에 공연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연말에는 힘겨운 주변이 더욱 크게 보이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이것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 자괴감이 든다. 너무도 힘겹고 현실이 고통이며 지옥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힘겨운 주변에 더욱 힘겨워 보이는 분들이 21세기 가족의 붕괴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홀몸노인 분들이다. 기존에 독거노인으로 명칭하고 이제 순화된 용어로 쓰이는 홀몸노인은 배우자나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노인을 의미하거나 부양해 줄 가족이 없어서 혼자서 생활을 하는 노인을 말한다. 이 홀로 사는 분들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방에서 홀로 삶을 마감하는 그리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 후에 발견이 되는 비극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정부조차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홀몸노인은 약 125만명 정도이며 2035년에는 350만명 가까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특히 현재 125만명 중 30만명은 고독사 위험군이며 10만명은 관심이 필요한 가구라 한다.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아직은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대도시 서울서만 일 년에 오백명이 훨씬 넘는 홀몸노인들이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홀몸노인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대부분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홀몸노인이 가족이 있지만 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고려장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안전 돌보미' '사랑 잇기' 등의 사업과 특히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지역 홀몸노인을 주민들이 스스로 돌보는 형태의 '홀몸노인 돌봄 사업'을 시작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예산과 인력문제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물론 최근에 안전행정부와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부산 도심에서 독거노인이 숨진 지 5년 만에 발견된 것을 계기로 고독사 예방을 위한 독거노인 돌봄 관련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우편집배원을 통해 불편한 독거노인의 불편사항을 접수하는 새로운 민원서비스인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을 도입한 것은 그래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또한 작은 일자리라도 노인들에게 일하도록 하여 지역에 공헌하게 한다고 한다.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그러나 이 모든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늙고 죽는다. 누구라도 고독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가족이 붕괴되고 효가 사라지고 인정이 식어버린 암울한 이 시대 다시 가져와야 한다. 바리공주가 자길 버렸던 아비를 위해 목숨을 건 것처럼 심청이가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빠진 것처럼 가족을 효를 정을 그리고 사랑을 이것이 안 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3-12-18 장용휘

늙으신 어머니를 상담하다

노일을 위한 진정한 상담은가까이 지내면서 옛 기억도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끔바쁜 일상으로 채워 드리고좋든 실든 얼굴 맞대고옆에 같이 있는 최선이다타지에 사는 탓에 여든이 훨씬 넘은 어머니를 명절이나 제사 때 말고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자식들이 같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유독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집안의 형은 그게 못내 안쓰러워 최근에는 아파트 가까이에 방을 하나 얻어 수시로 음식과 반찬을 해 나르면서 들여다본다. 그래도 남이 봤을 때는 영락없이 독거노인이다. 노인이 혼자 밥해 먹는 게, 말벗이 없어 종일 티브이를 보면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든 넘은 어머니의 삶은 거의 공황상태라 할 만하다. 혼자 밥 먹고, 주위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고, 미래 계획도 없고, 거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물이 날 것이다. 전화로는 바쁘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한번 말문을 열어놓으면 끝이 없다. 며칠 전에는 집안에 일이 있어 내려갔었는데 시무룩하신 게 화가 난 듯하다. "너는 자식이 되어 오랜만에 어미를 봐도 손도 한번 잡아주지 않는구나." 속이 뜨끔하여 가까이 앉아 열심히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도 만져드렸다. 늙은 자식이 하는 속내가 뻔해 보일 듯 한데도 이내 웃으신다. 시조 시인 이종문의 '효자가 될라카머-김선굉 시인의 말'이라는 시가 재미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보자마자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 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언젠가 이 시를 읽고는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그랬는지 젖은 둘째고 손도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꼴이 되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와 잠시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으려고 한다. 처음엔 네 방에 건너가 일찍 자라고 하지만 내심은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옆에 드러눕는다. 요새 만나는 이웃집 할머니 얘기며 경쾌하게 진행되던 얘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자동으로 옛날로 돌아간다. 나이 든 어머니는 옛날 기억으로 산다. 현재적인 삶에 더 이상 매력을 갖지 못한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의 상담학과 교수로 있기 때문에 열심히 들어주기를 한다. 노모 상담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들어주기' 상담도 밤 한두 시가 넘어서면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어머니 얘기를 다 들어드릴 테니 절대 백번 정도 했던 얘기는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건만 이내 소용이 없다. 노모의 감정이 격해지고 나도 짜증이 나서 같이 흥분해서 소리를 높이게 된다.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와버리면서 상담도 깨어져 버린다. 어둠 속에 누워 후회한다.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 하나도 못하면서 무슨 명상치유를 하며 인간주의적 상담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핵심감정을 찾아내면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무슨 들어주는 일조차 못하는가. 상담이란 연민을 갖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그 고통과 같이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여든 넘은 어머니는 살아있음 자체가 고통인 듯하다. 푸념과 한을 듣고 이곳저곳 아픈 데를 보다보면 사람이 고통을 지닌다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몸 밖으로 고통이 새어나오고 터지는 듯하다. 상담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년의 어머니의 고통이 나에게로 너무 쉽게 옮겨오기 때문이다. 집안의 형은 언젠가부터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는 식의 문제해결식 처치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분명 한 수 아래인 상담인데도 실효성은 더 있어 보인다. 그 속에는 전통적인 효도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 손 잡아드리고 음식 챙기고 불편한 일들 뚝딱뚝딱 고쳐드린다. 노인을 위해 진정 좋은 상담은 가까이 지내면서 옛날 기억도 나오지 않게, 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 지금의 바쁜 일상의 일로 가득 차게 해드리는 일이다. 옆에서 같이 얼굴을 대하고 좋든 싫든 현재적 삶으로 채워드리는 것이다. 고독과 우울의 해결은 사람 옆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최선이리라. 가끔씩 나타나 느긋하게 옛날 얘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늙어가는 일은 상담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3-12-12 박연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가속도와 힘의 방향은 같아매사 긍정적인 사람은지속적인 성공을 이끌어 내고늘 부정적인 사람은한번 실패하면또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도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개척하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더 큰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뉴턴이 확립한 역학의 기본이 되는 운동의 법칙입니다. 바로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입니다. 운동의 제1 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하고 있던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해 있고, 운동하고 있던 물체는 언제까지나 같은 속도로 운동'을 합니다.지구는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을 합니다.그런데 만약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면 지구의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은 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외부의 힘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 관성의 법칙은 깨지는 것입니다.이런 관성의 법칙은 물체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비관하며 미래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벗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비난하고 주변을 험담합니다. 자기가 잘못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 세상의 잘못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 정지해 있고, 그 절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 절망의 늪을 깨고 나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또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그들과만 대화합니다. 그들 역시 세상을 비난하고 헐뜯습니다. 패배의식은 늘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계속 절망 속에서 정지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늘 도전합니다.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희망을 갖습니다. 현실은 힘들고 어렵지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대부분 자신이 꿈꾸던 성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 역시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계속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돌이켜보면 지금은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최초의 도전을 시작했고, 그 도전이 성취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 때문에 또 다른 도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만약 여러분도 어떤 상태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한다면, 움직일 수 없다면 여러분의 꿈과 목표를 향해 일단 한 걸음씩만 내디뎌 보세요.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하면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첫 도전입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자, 그럼 성공한 사람들은 왜 항상 더 큰 성공을 거머쥐게 되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은 무슨 마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 마법의 법칙이 바로, 운동의 제2 법칙인 '가속도의 법칙' 때문입니다.가속도의 법칙에 따르면 '물체에 힘이 작용했을 때에 생기는 가속도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으며, 그 크기는 힘의 크기에 비례하고 질량에 반비례'합니다. 이 가속도의 법칙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늘 더 큰 성공을 거머쥐는 것입니다.'가속도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다'는 의미는 긍정적인 사람들은 늘 긍정적인 힘을 가합니다. 따라서 가속도의 방향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한번 성공한 사람이 지속적인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늘 더 크고 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방향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원하는 것을 향해서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직진하는 관성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탄력이 붙으면 가속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2-04 송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