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2014 조용한 아침의 나라

외형으론 '동방의 등불' 이나…OECD 국가 중 행복지수 32위사회통합·자유 등 사실상 꼴찌이념 무장한 정치권 다툼 멈추고언론, 올바른 보도 고민할때국민도 '정의'로 무장해야'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이 시는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며 시집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교육자였던 타고르가 1929년 일본을 방문할 당시 한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으로의 방문을 요청하였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의 아쉬움을 담아 같은 식민지 국가의 국민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써준 시이다.'마음에 두려움 없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은 곳,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이상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들지 않는 곳,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뜨게 하소서, 나의 님이시어…'. 이상적인 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강력하게 소망하는 이 시 역시 타고르의 시로 자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쓴 시이지만 동방의 등불 뒤에 언젠가부터 따라붙어 하나의 시처럼 되어 버렸다.하필 이 시기에 이 시를 꺼내든 것은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는 조선의 국민들에게 독립을 염원하는 심정으로 선사한 시이기에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등불 따위의 소리를 들으며 자란 필자가 아득해진 그 기억들을 꺼내어 도무지 조용해지지 않을 것 같은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운 대한민국에 2014년에는 진정으로 조용히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담아보려 함이다.분명 대한민국은 참담한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에 불과 짧은 세월에 타고르의 말대로 아시아에서 등불이 되어도 될 만큼 밝아지긴 했다. 엄청난 경제적 성장과 눈부신 문화 예술의 부흥, 최고의 IT선도, 또한 세계적 스포츠 강국, 한류 등등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동방의 등불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초에 발표된 OECD국가의 국민행복지수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를 금방 알 수 있다. 34개 나라 중 32위 꼴찌나 다름이 없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된 것이다.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불과 며칠 전 한 경제학자가 한국경제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참담하다 못해 언제까지 이런 상황들이 계속 되려나 두려움과 공포심마저 든다. 발표에 따르면 사회통합지수 24위, 관용부문(장애인 타인 외국인) 꼴찌, 안전부문(모든 사회안전망) 꼴찌, 자유부문(언론 출판 등등) 26위, 저출산 고령화 13위, 복지 분배 27위로 행복에 관련된 거의 전 부문에 있어 바닥을 치고 있다.2014 갑오년(甲午年) 행운을 준다는 청마(靑馬)의 해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가장 바뀌어야 할 곳은 시끄럽고 지저분한 정치판이다. 아침에 눈뜨면 연일 전쟁이다. 그것도 논리전쟁이 아니라 획일화된 이념으로 무장하여 신념은 없고 일방적 주장만 있다. 수십 년 같은 싸움질을 하는 이 판이 정의로 무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못지않게 바뀌어야 할 것은 언론이다. 국민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하나가 언론이다. 냉정한 분석과 비판은 사라지고 선정적인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그 폐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칼보다 무서운 정의의 펜대를 보고 싶다. 진학만 고민하게 하는 교육이 진로를 고민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고 속도만 고집하는 사회가 미래를 생각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하지만 그 모든 것에 주인인 국민이 가장 바뀌어야 한다. 어느새 우리 국민도 두 가지 이념에 사로잡혀 정치권과 다를 바 없는 정의가 사라지고 냉철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가 난장판이고 언론이 주눅 들고 사회가 혼탁할 때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의로 무장한 국민의 주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 된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꿈꿔본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4-01-14 장용휘

노숙인을 위한 '이웃의 인문학'

노숙인 자활에 도움될 수 있는맞춤식 강좌 마련하고중장기 인문교양교육 상설 운영대학 정규 교양과목 무료 청강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지원하는것 반드시 필요지난해 9월에 시작하여 12월까지 노숙인을 위한 '경기도형 탈노숙 Total-Care 사업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는 경기도지사도 참석하여 수료식까지 끝냈다. 이 사업은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이 되어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수원시다시서기센터의 도움을 받아 실시하였다. 교육에는 다섯 명의 교수들이 글쓰기, 철학, 예술, 체육, 명상 등을 각각 맡고 박물관 투어와 도서관 참관도 함께 진행했다. 인문학의 핵심 수업내용을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의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고자 했다.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행복사회와 인문도시로서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게 하려면 '인문학의 대중화'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학 대중화는 대학과 지자체와의 긴밀한 연계에 의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은 시민인문학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 사업을 통해 경기도와 수원시 그리고 대학이 인문학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대학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는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 자산인 인문학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와 교육 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행복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인문학 대중화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그것의 분명한 목적은 시민들로 하여금 인문정신이 지니고 있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얻어내게 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또 다른 목적 하나는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쌀 수 있도록 배려 능력을 증진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힘은 항상 개인의 자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고양시키는 데 있어 왔기 때문이다.40대에서 60대까지에 이르는 노숙인들은 한 학기 내내 늦은 저녁 시간에 자활의지를 불태우며 인문학 공부에 열정을 쏟아냈다. 젊은 학생들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과 삶의 의지를 갖고 공부에 임해준 그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그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열리고 자신감을 조금씩 얻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료식 마지막 작품발표회 때는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대학교 강의실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없다. 게다가 열심히 수업에 참석하긴 해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아 교실이 밝은 느낌은 아니었다. 많을 때는 30여명을 훌쩍 넘기다가도 어떨 때는 20명이 채 참석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매주 목요일 20회에 걸친 수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얻어가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반가웠다.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여 질문이나 웃음이 많아졌다는 사실, 주눅이 든 어깨가 조금이나마 펴지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징조였다.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통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며 연속성을 구축할 수 있는 강좌 개발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문학 강좌 여러 개를 단순히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맞춤식 강좌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와 수원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공유했다고 본다. 중장기적 인문교양교육 강좌의 상설 운영과 더불어 대학의 정규 교양과목의 무료 청강, 그리고 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노숙인 자활 사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나 시민단체도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해왔지만 그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만만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도시의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의 숨은 눈물을 찾아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야말로 '서로 마주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4-01-08 박연규

치유여정…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다

내가 아는 사람 이름 부르며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지은죄와나에게 아픔 줬던 사람들도용서했습니다, 새해엔 그동안맺혔던 마음 내려놓고 감사하는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얼마 전에 '연합뉴스TV Y'의 5부작 다큐멘터리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초청돼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멘티는 공모를 통해서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멘티, 방송촬영팀 등 11명이 배낭을 메고 30일 동안 800㎞를 걸으면서 대화와 강의를 통해 멘티를 힐링시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국경이 끝나고 스페인 국경이 시작되는 지점인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 땅끝,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입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길로 야고보가 참수당한 뒤 그 유해를 실은 배가 도착해 묻힌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야고보를 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입니다.1천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길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한 숲, 코발트 빛 하늘,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뭉게구름,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 아무리 다가가도 더 멀어지는 지평선을 쫓아 하루에 25~35㎞씩, 6~9시간을 산티아고를 향해 끝없이 걷는 길입니다. 중간에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은 '순례자의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얻으려고, 누구는 버리려고, 누구는 찾으려고, 누구는 잊으려고, 누구는 보려고, 누구는 보지 않으려고 이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게 됩니다.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순례자들은 광장에서 서로 부둥켜안거나 광장 바닥에 누워서 뜨거운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이 순례길을 완주해냈다는 것을 느끼는 감동의 순간입니다.순례길을 걸으면서 그야말로 수만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낭도 마음도 내려놓으면 가볍습니다. 무거우면 멀리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으려거든 배낭의 짐도, 마음의 짐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내려 놓으면 가볍습니다. 그동안 사무친 원한도 용서하면 가볍습니다.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멈추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꼭 빠르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니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걸으면서 산이 높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언젠가는 산을 넘게 됩니다. 산을 넘었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습니다.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않고 한발 한발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셋째,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누리고 살고 있던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제작진이 깜짝 쇼로 매운 떡볶이 파티를 열었는데, 출연진은 완전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 마른 옷, 편안한 침대와 이불, 김치찌개, 매운 닭발…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항상 옆에 있으니 그 고마움을 몰랐던 것입니다.그리고 걸으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들을 위해 걸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용서를 빌었습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제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했습니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지혜처럼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맺혔던 마음을 내려놓고, 뚜벅 뚜벅 한발씩 걸으면서, 현재의 제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새해를 위해 기도합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2-31 송진구

'동지'와 '크리스마스' 동서(東西)의 동거

동짓날은 모든 생명활동이극저점에 이르지만새로운 태양과 함께새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종교적비중을 가질수 밖에 없다동짓날을 지내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동지는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던 24절기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 음력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양력으로 태양의 주기를 계산해서 얻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크리스마스도 예수의 탄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로마제국의 동지축제의 변형으로서,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무렵을 택해서 부활의 의미로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고 한다.새해 첫날과는 열흘 차이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짓날이 한 해의 마지막이다. 그 이유는 한 해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끝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풍속으로 동지는 작은설(亞歲)이라고 부르면서 이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 것이나,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동짓날에 다음 해의 역서를 만들어 궁중에 바치고 관아에서 동지 선물로 책력을 선사하던 풍습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날이 그날 같고 또 그날이 그날 같기만 했을 일상의 나날속에서 정확한 1년의 주기를 파악하고, 동지란 극점까지 알아낸 것은 대단한 발견이며 인류 지성의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아무튼 이 날까지로 모든 생명활동은 극저점(極低點)에 이르지만,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부활하는 희망의 날로 전환된다. 그렇게 동지는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 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 동과 서를 막론하고 철학적 종교적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페루의 마추피추에도 영국의 스톤헨지에도 동짓날 새 태양이 떠올라 비친 각도와 그림자를 기준으로 배열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짓날 아침 피라미드나 마추피추에 가서 그 고대의 신비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동지는 생명이 부활하는 성스러운 시간이자 우주질서의 중심축(axis mundi)이다. 그래서 전통시기 중국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천자가 남쪽의 교외에 둥그런 제단(圓丘)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최대의 국가제사를 거행했다. 이 제사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천지의 '재생(rebirth)'을 경축하는 의례이기도 했다.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동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은 해가 길어진다는 점에 있다. 현대에서는 날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저 자연에 의존해 살아야 했던 고대시기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가 길어지면 비록 지금은 추워도 이제 머지않아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해질 것이며, 이제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죽음의 두려움에서부터 벗어나 다시 생명이 부활(復活)하리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아직은 한겨울이지만 해가 길어진다는 사실 자체는 추운 겨울을 나는 원시인들에겐 푸른 봄의 서광이자 생명의 약속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동지를 쇠고 나서 첫 태양이 뜬 아침에는 아마도 서로들 낮의 길이가 길어짐을 축하하고 새로운 생명의 다짐을 하던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지는 오랜 옛날부터 태양의 축제날이 되었다.공교로운 것은 오늘날 동지 무렵에서 크리스마스타이드는 젊은 청소년들의 축제 기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먼저 세계 최대의 종교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와 겹치는 데다가, 흰 눈이 천지를 뒤덮는 계절이자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은 아마 1년중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흥청이는 날이 되었다.고대 인류의 삶의 경험과 지혜를 담은 고전 주역에서는 복괘(復卦)가 바로 이 동지점을 상징한다고 한다. 맨 아래에 있는 양효 하나가 하나씩 자라나오면서 부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복괘에서는 우리에게 나라의 관문을 닫고 모든 인위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히 천도의 변화를 따라 새로운 기운이 자라나오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문다. 저 창밖에는 네온사인이 찬란하고 캐럴이 한창이다. 대체 나는 지난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 것일까? 이제 창문을 닫고 내면의 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아야겠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3-12-24 임채우

연말연시 홀몸노인들 보살펴야 한다

가족붕괴로 홀로 사는 노인 늘며고독하게 살다 안타깝게 生 마감노인들에 작은 일자리라도 제공지역사회 공헌 기회 주고더 중요한건 주위 구성원들이자주 돌보는등 많은 관심 가져야연말연시(年末年始)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은 흥청(興淸) 좋아하다 망청(亡淸)되기 쉬운, 그러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고 서러워지는 희비(喜悲)가 갈리는 계절이다.필자는 연극연출가이다. 사정이 없는 한 연말에는 따듯한 사랑을 전하는 감동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가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라 생각하기에 그럴 것이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젊은 사장에게 내쳐지고 오냐오냐 키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자식을 위해 보험금을 타게 해주려고 자동차를 타고 나가 고의사고를 내는 이 시대 최고의 비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말에 공연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설화로 자리잡은 버려진 딸이 버린 아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목숨을 걸고 생명수를 구하러 가는 도저히 현실에서 특히 이 시대에 납득하기 힘든 효를 행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도 연말에 공연하였다. 비슷한 주제인 '효녀심청'을 각색하여 만든 '명랑소녀 심청'도 연말에 공연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연말에는 힘겨운 주변이 더욱 크게 보이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이것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 자괴감이 든다. 너무도 힘겹고 현실이 고통이며 지옥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힘겨운 주변에 더욱 힘겨워 보이는 분들이 21세기 가족의 붕괴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홀몸노인 분들이다. 기존에 독거노인으로 명칭하고 이제 순화된 용어로 쓰이는 홀몸노인은 배우자나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노인을 의미하거나 부양해 줄 가족이 없어서 혼자서 생활을 하는 노인을 말한다. 이 홀로 사는 분들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방에서 홀로 삶을 마감하는 그리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 후에 발견이 되는 비극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정부조차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홀몸노인은 약 125만명 정도이며 2035년에는 350만명 가까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특히 현재 125만명 중 30만명은 고독사 위험군이며 10만명은 관심이 필요한 가구라 한다.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아직은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대도시 서울서만 일 년에 오백명이 훨씬 넘는 홀몸노인들이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홀몸노인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대부분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홀몸노인이 가족이 있지만 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고려장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안전 돌보미' '사랑 잇기' 등의 사업과 특히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지역 홀몸노인을 주민들이 스스로 돌보는 형태의 '홀몸노인 돌봄 사업'을 시작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예산과 인력문제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물론 최근에 안전행정부와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부산 도심에서 독거노인이 숨진 지 5년 만에 발견된 것을 계기로 고독사 예방을 위한 독거노인 돌봄 관련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우편집배원을 통해 불편한 독거노인의 불편사항을 접수하는 새로운 민원서비스인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을 도입한 것은 그래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또한 작은 일자리라도 노인들에게 일하도록 하여 지역에 공헌하게 한다고 한다.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그러나 이 모든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늙고 죽는다. 누구라도 고독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가족이 붕괴되고 효가 사라지고 인정이 식어버린 암울한 이 시대 다시 가져와야 한다. 바리공주가 자길 버렸던 아비를 위해 목숨을 건 것처럼 심청이가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빠진 것처럼 가족을 효를 정을 그리고 사랑을 이것이 안 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3-12-18 장용휘

늙으신 어머니를 상담하다

노일을 위한 진정한 상담은가까이 지내면서 옛 기억도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끔바쁜 일상으로 채워 드리고좋든 실든 얼굴 맞대고옆에 같이 있는 최선이다타지에 사는 탓에 여든이 훨씬 넘은 어머니를 명절이나 제사 때 말고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자식들이 같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유독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집안의 형은 그게 못내 안쓰러워 최근에는 아파트 가까이에 방을 하나 얻어 수시로 음식과 반찬을 해 나르면서 들여다본다. 그래도 남이 봤을 때는 영락없이 독거노인이다. 노인이 혼자 밥해 먹는 게, 말벗이 없어 종일 티브이를 보면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든 넘은 어머니의 삶은 거의 공황상태라 할 만하다. 혼자 밥 먹고, 주위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고, 미래 계획도 없고, 거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물이 날 것이다. 전화로는 바쁘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한번 말문을 열어놓으면 끝이 없다. 며칠 전에는 집안에 일이 있어 내려갔었는데 시무룩하신 게 화가 난 듯하다. "너는 자식이 되어 오랜만에 어미를 봐도 손도 한번 잡아주지 않는구나." 속이 뜨끔하여 가까이 앉아 열심히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도 만져드렸다. 늙은 자식이 하는 속내가 뻔해 보일 듯 한데도 이내 웃으신다. 시조 시인 이종문의 '효자가 될라카머-김선굉 시인의 말'이라는 시가 재미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보자마자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 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언젠가 이 시를 읽고는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그랬는지 젖은 둘째고 손도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꼴이 되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와 잠시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으려고 한다. 처음엔 네 방에 건너가 일찍 자라고 하지만 내심은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옆에 드러눕는다. 요새 만나는 이웃집 할머니 얘기며 경쾌하게 진행되던 얘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자동으로 옛날로 돌아간다. 나이 든 어머니는 옛날 기억으로 산다. 현재적인 삶에 더 이상 매력을 갖지 못한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의 상담학과 교수로 있기 때문에 열심히 들어주기를 한다. 노모 상담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들어주기' 상담도 밤 한두 시가 넘어서면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어머니 얘기를 다 들어드릴 테니 절대 백번 정도 했던 얘기는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건만 이내 소용이 없다. 노모의 감정이 격해지고 나도 짜증이 나서 같이 흥분해서 소리를 높이게 된다.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와버리면서 상담도 깨어져 버린다. 어둠 속에 누워 후회한다.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 하나도 못하면서 무슨 명상치유를 하며 인간주의적 상담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핵심감정을 찾아내면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무슨 들어주는 일조차 못하는가. 상담이란 연민을 갖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그 고통과 같이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여든 넘은 어머니는 살아있음 자체가 고통인 듯하다. 푸념과 한을 듣고 이곳저곳 아픈 데를 보다보면 사람이 고통을 지닌다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몸 밖으로 고통이 새어나오고 터지는 듯하다. 상담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년의 어머니의 고통이 나에게로 너무 쉽게 옮겨오기 때문이다. 집안의 형은 언젠가부터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는 식의 문제해결식 처치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분명 한 수 아래인 상담인데도 실효성은 더 있어 보인다. 그 속에는 전통적인 효도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 손 잡아드리고 음식 챙기고 불편한 일들 뚝딱뚝딱 고쳐드린다. 노인을 위해 진정 좋은 상담은 가까이 지내면서 옛날 기억도 나오지 않게, 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 지금의 바쁜 일상의 일로 가득 차게 해드리는 일이다. 옆에서 같이 얼굴을 대하고 좋든 싫든 현재적 삶으로 채워드리는 것이다. 고독과 우울의 해결은 사람 옆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최선이리라. 가끔씩 나타나 느긋하게 옛날 얘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늙어가는 일은 상담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3-12-12 박연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가속도와 힘의 방향은 같아매사 긍정적인 사람은지속적인 성공을 이끌어 내고늘 부정적인 사람은한번 실패하면또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도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개척하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더 큰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뉴턴이 확립한 역학의 기본이 되는 운동의 법칙입니다. 바로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입니다. 운동의 제1 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하고 있던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해 있고, 운동하고 있던 물체는 언제까지나 같은 속도로 운동'을 합니다.지구는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을 합니다.그런데 만약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면 지구의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은 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외부의 힘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 관성의 법칙은 깨지는 것입니다.이런 관성의 법칙은 물체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비관하며 미래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벗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비난하고 주변을 험담합니다. 자기가 잘못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 세상의 잘못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 정지해 있고, 그 절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 절망의 늪을 깨고 나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또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그들과만 대화합니다. 그들 역시 세상을 비난하고 헐뜯습니다. 패배의식은 늘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계속 절망 속에서 정지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늘 도전합니다.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희망을 갖습니다. 현실은 힘들고 어렵지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대부분 자신이 꿈꾸던 성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 역시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계속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돌이켜보면 지금은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최초의 도전을 시작했고, 그 도전이 성취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 때문에 또 다른 도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만약 여러분도 어떤 상태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한다면, 움직일 수 없다면 여러분의 꿈과 목표를 향해 일단 한 걸음씩만 내디뎌 보세요.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하면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첫 도전입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자, 그럼 성공한 사람들은 왜 항상 더 큰 성공을 거머쥐게 되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은 무슨 마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 마법의 법칙이 바로, 운동의 제2 법칙인 '가속도의 법칙' 때문입니다.가속도의 법칙에 따르면 '물체에 힘이 작용했을 때에 생기는 가속도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으며, 그 크기는 힘의 크기에 비례하고 질량에 반비례'합니다. 이 가속도의 법칙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늘 더 큰 성공을 거머쥐는 것입니다.'가속도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다'는 의미는 긍정적인 사람들은 늘 긍정적인 힘을 가합니다. 따라서 가속도의 방향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한번 성공한 사람이 지속적인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늘 더 크고 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방향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원하는 것을 향해서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직진하는 관성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탄력이 붙으면 가속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2-04 송진구

게임중독법 발의를 보며

판단력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게임 즐길지 말지 선택하라는건'공정한 게임이 아니다'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건강한 습관을 가지도록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최근 신문지상과 TV에 게임중독법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알코올 도박 마약 인터넷 중독 등에 빠진 중독 고위험군이라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던 도박이나 마약 사건 정도는 이제 인터넷게임 중독 사건에 밀려서 아예 기사화되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돌이켜보면 40년 전에도 전자오락이란 게임이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중반 지방 도회지의 번화가 귀퉁이에 오락실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기껏해야 17인치 흑백TV를 보던 시절, 대형 화면 위에서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공중전 '전자오락'은 시골 소년에겐 그야말로 놀라운 신천지였다. 다음날부터 들락날락하면서 한 달 용돈을 며칠 만에 다 탕진했지만, 적기의 꼬리를 물고 공중제비를 돌면서 기총사격을 가하면 굉음과 함께 적기가 폭파되던 순간의 짜릿한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지막 코인까지 다 털어넣고 난 뒤에 오락실문을 나서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계문명의 쾌락은 맛보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의 인터넷게임은 이보다 훨씬 강렬한 쾌감을 주는데다가, 누구나 어디서나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데에 문제는 심각성을 띤다. 중독은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황홀상태에 빠뜨린다.그러나 중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한번 건강한 중독과 불건강한 중독으로 구분해보자. 요즘 문제가 되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은 불건강한 중독들이다. 기계가 주는 쾌락에 빠져서, 사이버공간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빠지는 게임 중독은 불건강하고도 나쁜 중독이다. 얼마 전 TV토론장에서 어느 학부모가 그 잔혹하고도 절망스러운 실상을 통곡하면서 고발하는 것을 보았다. 어둔 골방에 처박혀 가상의 세계에 빠져버린 채 이미 눈동자가 풀려버린 아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학부모의 울부짖음을, IT산업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현행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가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오죽하면 소련의 과학기술자들이 서방세계를 타락시키기 위해 전자오락 게임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 말을 그저 항간에 떠도는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블록격파 게임이 퍼지던 30, 40년 전에 나돌던 말이니, 그래픽이나 콘텐츠로나 지금의 인터넷게임과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왜 이런 말이 떠돌았던 것일까? 실정법의 테두리내에서도 얼마든지 인간을 파괴시키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런 불건강한 중독에 비해 가수 김장훈씨가 기부천사나 독도지킴이로서 선행을 반복하는 것은 착하고도 건강한 중독이다. 계속되는 그의 선행 중독은 우리 사회를 한층 더 밝고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또 생활의 달인이란 TV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들도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착한' 일중독에 걸린 경우이다. 달인들은 고된 노동을 즐겁고 멋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우리들 보통 사람들도 사실 일종의 중독에 걸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중독되지 않았다면 어찌 똑같은 공간에서 조상대대로 살아가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단조로운 일을 평생 반복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의 습관성 중독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습관을 넘어 중독에 이르는 과정을 잘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그러나 중독은 대단히 위험해서, 자칫 방심하면 손을 베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 게임을 즐길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먹지 마란 격이니,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정당한 이윤추구나 자유의 이념과는 또 다른 문제이며, 시장의 논리에 맡길 수만도 없는 문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음습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건강한 습관을 갖도록 구체적 대책을 강구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한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3-11-27 임채우

청소년범죄와 학교폭력 중등교육 확 바꿔야

국·영·수 입시위주의 교육아이들 정서·인성·역사의식 실종예체능과 도덕·역사 과목중심으로 나라를 위하고인권 존중과 감성이 풍부한사람을 만드는 교육과정 필요참으로 많은 뉴스거리가 등장하는 현대사회이다. 한마디로 뉴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매체가 없던 시절 들을 수 없었고 듣지 말아야 할 듣고 싶지 않은 소식도 어쩔 수 없이 무조건 들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듣기 싫지만 점점 늘어가는 뉴스가 청소년 범죄이고 학교폭력이다. 이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날로 흉폭 해지는 범죄소식을 들을 때면 미안함과 함께 참담함, 어른으로서 부끄러움, 결국엔 책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19세 소년이 여자 친구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시신을 훼손한 후 SNS에 죄책감 대신 시신을 조롱하며 지옥에 가고 싶다고 글을 올린 최악의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들끓었지만 이내 시간이 흐르며 별다른 대책도 없이 잊혀져가고 있다.청소년들의 극악한 범죄는 학교 안에서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서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친구들의 악랄하고 지속적인 폭력으로 아파트 집 베란다에서 유서 한 장 남겨놓고 자살한 권모군의 유서 내용은 분노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온갖 폭력에 돈 갈취, 개 줄을 하고 바닥의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게 하는가 하면 피아노 의자에 구금하고 장시간 때리기 등 도저히 성인들도 생각하기 힘든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사소한 이유로 부모에게 폭력을 가하고 학교선생을 고발하며 집단으로 폭력과 강간을 저지르며 범죄 후에도 뉘우침이 없는 아이들, 이러한 무서운 현상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무엇이 그토록 우리들의 청소년을 흉악하게 만들고 있나. 그 원인은 너무나 많아 보인다. 영화, TV, 인터넷 등 온갖 매체들의 무자비한 폭력 막장드라마에 갖은 선정성. 뿐인가. 현실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상식적인 법치가 판을 치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취해 추한 싸움질을 해대고 이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문제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교육이다. 가정교육의 왜곡과 학교교육의 붕괴 그리고 세계에 유례가 없는 건조한 입시교육이다. 가정에서는 있는 집 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과보호와 없는 집 부모들의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들에 대한 방관이 아이들을 양극화로 몰아가고 있다. 이 문제는 곧바로 학교로 이어져 돌아가며 피의자와 피해자가 되어 폭력과 왕따 문화 그리고 선생을 무시하고 대들어도 매 한대도 들 수 없는 이상한 공간으로 되어버렸고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이 입시위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이 없는 교육이 되어버렸다. 중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체육 음악 미술 등이 짐짝 취급을 받아 사라져가고 국사가 선택당하고 난도질 당하는 코미디 같은 나라가 되었다. 국어 영어 수학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대단히 왜곡되어 있다. 아이들의 정서 인성 역사의식 등이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교육과정이다.단언컨대 비뚤어진 교육과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도 이른 시간에 음악 미술 체육이 후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도덕과 역사과목이 중심에 서서 나라를 위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인권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러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인간을 만드는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근본을 바꾸고 목적을 바꿔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한다면 교육연극을 중등교육 정규 교과목에 넣어야 한다. 연극의 교육적 가치와 활용은 선진국 여러 나라에서 이미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교육수단이다. 연극이 교실로 들어오면 공연을 위한 연극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연극을 활용하는 것으로 연극놀이를 통하여 창의성 협동심 사회성 인성 등을 크게 향상시켜 전인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이제라도 비뚤어진 교육을 바로잡고 큰 틀에서 나라를 바로세우는 마음으로 기초 중등교육의 체계를 바로잡고 대학은 이에 부응하여 입시방법을 대전환하고, 기업은 구인방법을 새롭게 해야 한다. 실제로 살아가며 영어가 필요한 사람, 미적분이 필요한 사람은 2%면 족하다. 하지만 한번 망가진 인성들은 돌이키기 힘들다. 우리 아이들에게 숨쉴 자유를 주어야 한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3-11-20 장용휘

'인성검사' 때문에 사회가 멍든다

심리검사하듯 해서 될 일 아냐출처 불분명 적용도 의구심취업생 상당수 합격위한 거짓말자신속이는 것으로 사회생활 시작회사 명운 생각하면 '위험'좋은인성 여유·세심 관찰로 충분필자가 만약 회사 대표라면 직원 채용을 위해 지금의 인성검사와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 문항수 100개의 인성검사로 인성을 테스트하겠다는 생각은 무지이기도 하고 직무유기에 가까운 게으름일 수도 있다. 1천개의 문항이 있다고 한들 좋은 품성을 갖춘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성은 이렇게 심리검사하듯이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여러 인성검사지를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 출처도 불분명할뿐더러 제대로 적용될까싶은 의구심이 든다. 채용하는 입장에서 좋은 인간관계나 적극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성 좋은 인재 찾기에 이런 식으로 회사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인성검사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 취업생이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린다. "이번 하반기에 ○○회사에 지원했는데 인적성검사가 고민입니다. 기업 인재상에는 사교성과 창의력이 높은 인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실제로 답하게 된다면 사교성 부분에서 낮은 점수가 나올 듯합니다. 인성검사 시에 기업문화를 고려해서 적당히 답변을 바꿔 선택해야 하는지 정말 걱정입니다…." 이 취업생이 인성에 대해 갖는 고민은 예측 불가능에 더해 거의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뭣보다도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왜 이 젊은이로 하여금 이렇게 비극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가.이에 대한 인스턴트 식의 댓글을 보면 그 비극이 얼마나 왜곡되어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다. "되도록이면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시험 보러가기 전에 외향적인 사람들과 같이 자주 대화를 하거나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그런 사람인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같이 있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당히 답을 선택해서 합격하고 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댓글을 보고 그 취업생은 어떻게 취업대비를 했을까? 인성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오랫동안의 총체적인 품성의 합이다. 특정 회사를 위한 맞춤된 인성이 따로 있어 그것을 마치 시험 대비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슬픈 모습이며 사회적 비용으로 쳐도 이만한 낭비가 없다.인성에 대해 아주 상식적인 얘기를 해보자. 첫째, 온전한 인성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둘째, 좋은 인성은 가정과 학교생활에서 사람들과의 만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오는 입체적인 것이다. 셋째, 인성은 자신의 몸으로 체질화되는 것으로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당일치기 인성검사를 위한 검사기관이 사업처럼 성행하고 인터넷 상에는 유무료로 검사할 수 있는 곳이 무분별하게 생겨난다. 회사나 공공기관은 이런 인성검사를 인성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이나 되는 듯 죄의식 없이 한다. 중소기업조차 인성검사를 유행처럼 따라한다.인성검사는 종이 한 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 좋은 사람을 뽑겠다는 진정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가장 전통적인 채용방식을 통해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좋은 인성은 면접시간을 조금 늘리는 여유만 가져도 된다. 많은 채용기관에서는 이 단순하고 강력한 이점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학교의 성적표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학년별 추이나 수강과목들의 특성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최근의 의식있는 대학들은 인성관련 과목들을 인증제로 하여 묶음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것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초적이고 단순한 작업들을 진지하고 세밀하게 살펴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굳이 필요하다면 채용 후 적합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면 되는 것이다.좋은 인성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인성검사가 시험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사회가 인성에 대한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확신도 없이 젊은이들에게 인성검사지 한 장을 제시한다면 채용자나 취업자 모두에게 좋을 일은 아니다. '윤리적 폭력'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3-11-12 박연규

자존심과 자존감

내마음의 주인이내게 있느냐 타인에게 있느냐가인생을 결정한다자존심 버리고 자존감을 키울때내마음의 진정한 주인은비로소 내가 되는것이다'자존심'과 '자존감'은 글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본질적으로 보면 판단기준의 문제이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나'냐, '타인'이냐의 문제이다.자, 이 둘의 관계를 풀어보자.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남이 세워주는 것으로 상대에게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무시당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내가 세우는 것으로 자신에게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하면 자존감이 손상된다고 느낀다. 결국 자존심은 외부 평가나 비교에 민감한 관점이고, 자존감은 외부평가는 아무런 상관없이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존심 때문에 패망한 인물도 많고, 자존감 때문에 성공한 인물도 많다.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두 인물을 분석해보자.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인물로 8년 동안 70여 차례의 싸움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무적의 전사였다. 팽성전투에서는 고작 5만 명의 군사로 11배에 달하는 56만의 유방군사를 무찌른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의심 때문에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은 부하로 등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단했던 항우가 유방과 한신의 군대에 포위당해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자 항우가 실성한 사람처럼 얘기했다. "큰일 났군, 큰일 났어. 유방이 초나라를 점령한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초나라 사람이 한나라 군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면초가라는 말은 이때 나온 말이다.그 많던 병사들이 죽고 항우의 곁에는 20여명의 병사들만 남아있을 때 부하인 정장이 강 기슭에 배를 댄 후 속히 배에 오르라고 항우를 재촉하면서 말한다. "강동은 비록 작지만 1천여 리가 넘는 땅이 있고 수십만이 되는 인구가 있습니다. 강을 건너 강동에 이르면 다시 왕위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항우는 강동의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배에 오르기를 거절하고, 울면서 당대 최고의 미인인 우희를 죽이고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을 한다. 항우의 나이 31살이었다.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항우가 그 배에 오르고 후일을 도모했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바뀔 수도 있었을 텐데 항우는 자존심 때문에 자결을 한다.항우를 죽게 만든 한신은 어렸을 때 끼니조차 이을 수 없는 형편으로 밥을 얻어먹고 사는 거렁뱅이로 무능력한 인물로 취급되었다. 한신은 큰 키에 항상 큰 칼을 차고 다녔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본 불량배들이 한신에게 한판 붙자고 시비를 걸더란다.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대응하지 않자, "네가 진정 사내대장부라면, 나를 죽이든가 아니면 내 가랑이 사이로 개처럼 기어가라." "그래, 너를 베지는 않겠다. 너를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베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으니 너를 베지 않고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겠다."그때부터 한신은 거렁뱅이에다가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겁쟁이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한신도 초기에는 항우의 수하였으나 미천한 신분 때문에 중용되지 못했고 나중에는 유방에게 몸을 의탁했다. 결국 한신은 유방을 도와서 천하를 통일하였고, 초나라 왕으로 금의환향하면서 당시의 그 불량배를 불렀다. "내가 당시 너를 죽였더라면 나는 평생 살인자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품은 꿈이 있기 때문에 너를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불량배를 치안을 담당하는 간부로 임명하였다. 항우는 자존심 때문에 후일을 도모하지 못하고 자결해서 인생을 마감했고, 한신은 자존감으로 무장해서 후일을 도모했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내 마음의 주인이 내게 있느냐 타인에게 있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키울 때 내 마음의 진정한 주인은 내가 되는 것이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1-05 송진구

'한국인의 꿈'

꿈은 타임머신 이다단군에서 현재까지 5천년을단숨에 뛰어넘고 지구 끝이라도순식간에 연결해 주는 통로다한국인은 꿈을 이룰 줄 아는창조적 민족, 이제 무슨꿈을 꿀까아프리카에 머물며 연구를 하던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어느날 아침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에 살던 원주민이 빌려간 닭을 내놓으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그는 "어젯밤 꿈에 자기에게서 닭을 빌려갔으니 돌려달라"고 했다. 이 원주민에게 꿈은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세계였던 것이다.중국에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멋진 고사성어가 있다. 하지만 남가일몽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에 비한다면 그 스토리로나 교훈적 의미로 봤을 때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조신의 꿈 이야기는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서 한국에서는 그 원조가 되는 설화다. 승려 조신이 속세에 있는 김 태수 댁 규수를 보고 반해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는 그녀와 40여년을 같이 살며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으나, 살림은 몹시 가난해 나물죽조차 넉넉지 못했다. 그러다 15세 된 큰 아이는 굶어죽고 말았다. 조신이 깜짝 놀라 꿈을 깨고 보니, 날은 이미 저물어 밤이 이슥히 깊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조신은 그뒤로 김랑에게 반했던 마음을 깨끗이 씻고 불도(佛道)에만 힘썼다는 이야기이다.우리 민족에 면면히 내려오는 '단군신앙'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꿈의 힘이었다. 솔거가 단군화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꿈속에서 단군할아버지를 봤기 때문이고, 정훈모 선생이 단군석상을 구월산에서 모셔왔던 것도 꿈을 꾼 결과였다. 또 계룡산 일대에 있던 단군전 역시 모두 꿈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이진탁 선생은 아동들의 훈학에 힘쓰다가 단군의 현몽을 얻어 작산에 최초의 단군전을 지었다. 해방후 남예훈 여사는 단군의 현몽을 얻어 단군전을 착공했고, 꿈에 보았던 모습대로 영정을 그려 모셨다. 그 뒤에는 대전의 한학자 조병호 선생이 꿈을 꾸고 그 날로 보령 성주산에 가서 환인 환웅 단군의 석상을 찾아서 모시기도 했다.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사찰의 건립 내력을 살펴보면 청신남녀(淸信男女)들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한 것들이 많다. 1천500년을 건너 뛰어 은산의 별신제가 부활한 것도 어느날 부락민이 꾼 백제 장군의 꿈 때문이었다. 이런 특별한 동제(洞祭)뿐 아니라, 동네 어구나 강가 언덕에 자리잡은 성황당이나, 해신당의 내력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하지만 꼭 이렇게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가끔 "무슨 일 없냐?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라며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모든 어머님의 꿈은 신통력을 갖고 있어서, 부처님이나 적어도 도사 수준은 된다.꿈에서 신선이나 학자를 만나 일가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6·25 전쟁 중 한 학자의 집에 피란민이 찾아와 그에게 행랑채를 내주었는데, 간간이 글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이 유심히 들어보았는데, 이전엔 못듣던 글소리였다. 집주인이 "무슨 글을 읽으십니까?"하고 묻자, 행랑객은 "허허 도련님은 이런 글을 잘 모르실 겁니다. 자미두수란 역학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소 경서만 읽던 주인은 자못 궁금했다. "그래 이런 글을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그러자 행랑객은 "도련님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밤마다 꿈속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가 나와서 매일밤 자미두수를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꿈을 통해 저는 자미두수를 통달하게 됐습니다. 도련님도 간절히 원하면 실물을 얻든 꿈에서 얻든 실제로 감응이 일어납니다."한국인들처럼 꿈을 많이 꾸고, 꿈을 믿고, 꿈을 사랑하는 민족은 없는 듯하다. 4강 신화의 기적을 보여준 지난 2002년 월드컵의 마지막 준결승 응원전에 등장했던 카드섹션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꿈은 타임머신이다. 꿈은 단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렇게 5천년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고, 지구끝이라도 우리를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통로가 된다. 우리 한국인은 꿈을 이룰 줄 아는 창조적 민족이다. 이제 우리는 또 무슨 꿈을 꿀까?/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 교수

2013-10-29 임채우

상아탑(象牙塔)에서 취업기관으로…

진리·학문 탐구 지성의 전당민주화 후 설립 쉬워져 우후죽순본질 퇴색 부 축적 수단 변질교육부는 취업률로 대학평가예술·문학·사학 사라질 판구조조정·퇴출로 본모습 찾아야상아탑이란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비니를 평론가 생트뵈브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용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로는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었고 현실과 거리를 둔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유럽 대학들이 상아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말인즉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하는 공적인 기관인 것이다. 당장 눈앞의 돈벌이를 목적으로 취업할 직장인을 찍어내는 수단이 아닌 것이다.대한민국의 근대적 형태를 갖춘 대학은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곤고히 하려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해 연희전문 보성전문 이화학당 혜화전문 등이 시작일 것이다. 대부분 일제의 교육억제와 탄압으로 전문학교로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후에 연차적으로 대학으로 승격하게 된다. 한국전쟁 전 20여개의 국립 사립대학이 전쟁 후 70여개로 늘었고 민주화 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우후죽순 대학의 수가 마구잡이식으로 불어나 현재 300여개가 넘는 대학이 들어서 있다. 학령인구의 증가와 재수생의 사회문제 특히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교육열이 대학의 양적팽창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질보다는 양적으로만 늘어난 우리의 대학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을 나온 고학력 실업자는 늘어나고 고등학교 졸업수준의 노동력은 매년 3만명 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이다.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학은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넘어 개발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지금은 또 무엇인가! 필자가 유년시절을 보낸 60, 70년대에 어머니는 내게 흥얼거리듯 습관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나오고 판검사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전쟁으로 최악의 빈곤국가가 되어서도 자식들에게는 교육을 시키고 당신들은 굶어서라도 대학을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세계적인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최단시간에 세계적인 국가로 만들어낸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 대학은 지금처럼 수적으로 많지 않았고 상아탑의 본래의 모습인 지성의 전당으로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대한민국에 독재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민주적인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질적인 발전을 이루어야할 대학이 이상한 쪽으로 변화되었다. 대학의 입학정원이 자율화되고 대학 설립이 쉬워진 틈을 이용해 대학주인들이 사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의 본질은 퇴색되고 대학이 잉여자산을 축적하여 부를 누리고 사업에 눈을 돌려 장사를 하고 교육부는 한 술 더 떠서 대학의 우수평가를 연구 실적이나 기초학문의 사회적 기여 대학의 사회적 봉사 등을 고려하지 않고 취업률이나 충원율이라는 도식적 평가를 앞세워 정부의 정책 잘못으로 벌어진 상황들을 숫자놀이로 들이대 구조조정하려 한다. 저질대학이 널려있는 이 시점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퇴출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4대보험이 적용되는 취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예술과 인문학분야 조차도 취업자 수를 들이대며 대학을 위협하고 있다.이 사회에 예술이 사라지고 문학과 철학 사학이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은가! 전 근대적이고 원시적인 정책을 벗어나야 이 나라가 풍성해지고 문화강국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학의 개혁 및 지원정책을 다른 각도에서 재고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다. 대학들도 교육부의 정책에 말리지 말고 대학 본연의 자세인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진리의 탐구와 학문의 연구를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 이제 다시 고등학교를 취업전면에 두고 대학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퇴출을 하고 본래의 모습인 상아탑으로 돌아가야 한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3-10-22 장용휘

인성, 그 시시한 모든 것들

청소년 대상 인성교육은성실·정직·양심·의사소통 등추상적인 내용들 보다는실생활에서 우리의 행복을갉아먹는 인간성 문제점을조목조목 짚어볼 필요가 있다얼마 전 교실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상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조별로 분석도 해보고 해결책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뭣보다도 학생들이 내 놓은 항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200여개가 넘을 정도로 그 양이 대단했다. 개수가 많아 영역별로 분류를 하기도 어려웠지만, 대체로 학생들의 생각은 인간성이나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나 길거리, 아파트, 지하철,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서의 경우처럼 내적, 외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설문의 주제를 약간 비틀어서 '현대사회에서 놀부 되기'라는 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남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학생들은 상당히 신이 난 듯 했다.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력 착취하기, 새치기하기,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물 내리지 않기, 자기 할 말만 하기, 이간질하기,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기, 뒤에서 험담하기, 다른 사람 말 끊기, 다 같이 밥 먹고 계산할 때 빠지기 등. 물론 학생들이라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대리출석이나 표절 등도 있었지만 아마 이런 물음을 일반인이나 직장인들로 확대했다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인성문제 지도를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가 괴로워하고 피곤해하는 것은 계층 간의 갈등이니 복지니 하는 거창한 문제 이전에 이러한 시시한 인성의 모든 것들 때문인지도 모른다.이 설문이 있은 후 가족들 사이에서 겪는 인성 문제에 대한 항목을 다시 제시해보라고 했는데 가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인성 문제가 도출되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문제는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역시 가정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돌봄, 또는 배려의 부족 탓이 컸고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이전 수업에서의 폭력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항목들에 대한 답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상식적인 결론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작년에 출판된 데이비드 핼펀의 '국가의 숨겨진 부'는 경제적 부와 달리 사람들의 행복은 그 사회가 갖고 있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도덕적 자본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한 사회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또는 문화적 자본인데 그 핵심은 존중과 돌봄이다. 이 책의 역자는 '한국의 사회적 신뢰 수준'에 관한 도표를 책 속에 끼워 넣었는데 그 자료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대체로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국가 간 비율이 노르웨이가 74%라면 한국은 28%로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돌봄, 믿음 이런 인성항목들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우리 사회가 옛날부터 늘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것들의 결핍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삶에서 만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10월 말 한 주간 동안 교육부의 시민인문강좌사업으로 '이웃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하에 이웃과의 친밀한 삶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 한 프로그램이 "층간소음, 인문학으로 풀자"라는 것인데, 층간소음 문제를 두고 아파트 층간의 두께 등 건축물의 구조적인 논의를 하지만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삶에 더해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층간소음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살인이 발생하는 나라는 한국사회 말고는 없을 것이다.흔히 인성교육하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두고 성실, 정직, 양심, 자율, 자신감 또는 헌신, 의사소통 등 검증하기도 쉽지 않은 내용들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것들로 채워지는 인성보다는 실제로 우리 행복을 갉아먹는 인간성 문제의 숲을 헤쳐나가면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의 시시하다고 여겨지는 놀부 같은 인성의 잔가지를 쳐 나가다보면 진정 우리 사회가 원하는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3-10-15 박연규

멍청한 리더, 현명한 리더

조직 구성원들에게 질문을 통해몸과 마음, 머리를 쓰게하고꿈을 만들어 비전을 제시하며인간존중과 솔선수범으로변화를 주도하는 영향력을발휘할 줄 알아야 '진정한 리더'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해리가 기업의 인재 채용형태를 다년간 분석해 도출해낸 법칙이 있다. 해리의 법칙(Harry's Rule)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이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리더들은 자기 부하들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하들의 재능이 자신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을 내치기보다는 오히려 등용함으로써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유방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한신, 장량, 소하를 기용하고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자신보다 유능한 부하를 내쳤기 때문에 비참한 결말을 맞았던 것이다.리더는 세가지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멍청한 리더: 모든 일을 자신이 하는 사람이다. 멍청한 리더도 처음에는 업무를 아랫사람에게 위임하려고 시도하지만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에는 자신이 모든 일을 하는 리더이다. 업무에 투여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많지만, 성과는 한정적이며 조직은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구조이다.둘째, 보통의 리더: 구성원의 몸만 쓰는 리더이다. 이 타입은 구성원을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는 사람이다. 이런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활력이 없다. 마지못해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이다. 물론 발전도 제한적이고 성과도 미미하다.셋째, 현명한 리더: 구성원의 머리와 마음을 모두 쓰게 하는 리더이다. 지시 받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한 조직은 통상적인 일조차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지시가 없으면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도 구성원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리더의 잘못이다.누구나 현명한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몸은 물론 머리와 마음을 쓰게 할까? 정답은 질문이다. 구성원의 머리를 쓰게 하려면 질문을 하면 된다. 지시 받으면 몸을 쓰지만 질문을 받으면 머리를 쓰게 된다. 질문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조직은 활력에 넘친다. 리더가 질문을 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리더는 구성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잘 모르는 구성원들에게 질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한다. 자수성가한 오너경영자가 이끄는 조직이 이런 착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물론 회사의 업무에 대해서는 창업자보다 더 잘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오너경영자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시장과 고객의 욕구는 바람처럼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바람처럼 빠르게 변하는 욕구에 맞출 수 없다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바람처럼 빠르게 변하는 욕구에 대해서 오너경영자보다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이 더 잘 알수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답을 찾아낸다. 따라서 구성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이 습관이 된 구성원들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리더인 것처럼, 자신이 의사결정권자인 것처럼 한 번, 두 번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멍청한 리더와 보통의 리더는 리더라기보다는 보스라고 부를 수 있다. 보스는 구성원들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만든다. 마지못해 억지로 움직이게 만든다. 잘못을 구성원에게 돌리고,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현명한 리더는 꿈을 만들어낸다. 구성원은 그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한다. 이때 자신의 꿈과 조직의 목표가 일치하는 것을 느낀다. 성과가 나타난다. 관심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조직전체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보스이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누구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에게 질문을 통해서 머리와 마음을 쓰게 하고, 명확한 꿈을 만들어서 비전을 제시하며,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할 줄 알고, 정직하게 솔선수범하며, 변화를 주도하는 영향력, 즉 리더십을 행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이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10-08 송진구

반구대암각화와 윷판 바위

윷판암각화는 최소 1만년전이란오랜 역사와 아메리카대륙에이르는 넓은 분포를 갖고 있어전세계 선사시대 어느 암각화보다가치가 매우 높아 파괴 되지않게각지자체와 정부는 적극 보호해야대통령께서 반구대암각화를 생각하면 '저녁에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강한 애정을 표명했다. 대통령의 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로 이어서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등에서 정부 대책들이 신속하게 나오고, 카이네틱댐 설치안이니 반구대보존위원회니 심지어는 반구대에 관한 정기간행물까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선사문화 유산에 대한 썰렁했던 분위기에 비해 볼 때, 이런 뜨거운 관심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우리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반구대암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사시대 한반도의 2대 유적으로 고인돌과 윷판형 암각화를 들고 싶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나 제례의식과 관련된 종교건축물로 추정되는데, 한반도에만 약 3만5천기가 남아있다.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만주 지역까지 합산한다면 전 세계의 70%가 우리 조상들의 거주지역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그러나 이보다 더 놀랍고 신기한 것은 윷판형 암각화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바위그림이다. 그 숫자는 제대로 집계된 적은 없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200여개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해 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를 보일 것이다.윷판형 암각화는 윷놀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인돌 위에 새겨진 것도 몇 점 발견되었다. 대체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윷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면 아들을 기원하는 성혈(性穴)의 민속으로 간주했고, 기껏해야 철기시대의 별자리 정도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역사나 의미를 분석해 보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의 운동 규칙 및 사방과 사계(四季) 등 고대인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담고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윷놀이는 같은 동아시아지역에는 없고, 오히려 아메리카 전 대륙에 퍼져 있다. 알래스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 인디언들이 윷과 거의 흡사한 놀이를 즐기고 있으며, 파라과이나 볼리비아의 인디언들은 우리처럼 '윷'이라고 부른다고 한다.19세기 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놀이문화를 연구하던 미국의 유명한 민속인류학자인 스튜어트 컬린은 우연히 우리의 윷놀이를 보고서는 '윷놀이는 전 세계 민속놀이의 원형으로 심오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놀이'(1895년)란 대작을 남겼다.컬린도 간파했던 바와 같이 인디언 윷이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면, 대체 언제 건너갔을까? 선사시대에 한반도에서 미주대륙으로 가려면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고 볼 수는 없다. 오직 가능한 단 하나의 통로는 베링해가 얼어붙었을 빙하기에 해협을 건넜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만년 전에 있었다는 마지막 간빙기에 우리의 윷문화가 한반도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체계적인 게임형태를 갖춘 윷놀이는 윷판형 암각화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뒤에 형성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으니, 윷판 암각화나 윷놀이의 역사는 아득한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황하문명은 4천년 전에 꽃을 피웠다고 하지만, 우리의 윷판 암각화는 최소 1만년 전이란 오랜 역사와 아메리카대륙에 이르는 넓은 분포를 갖고 있어서, 현재 발견된 전 세계 선사시대의 어떤 암각화보다도 가치를 갖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이 윷판형 암각화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거나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도심의 주변까지 산을 허물어 아파트단지를 짓고 산마루에는 체육공원을 개설하면서 하늘에 인간의 경건함을 바치던 윷판 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냇가에 전망좋은 경관을 갖고 있던 윷판 바위는 일말의 고려도 없이 파괴되어 관광단지로 변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각 지자체와 함께 정부의 관심과 대책을 촉구한다. 자칫하다 놀이공원과 음식점 짓는다고 수만년 전 선조가 남긴 선사시대의 보물을 파괴해 놓고, 중국과 유럽으로 관광여행 다니는 못난 후손들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2013-10-01 임채우

지혜로운 연출을 바라며…

경제는 침체되고사상은 둘로 나뉘어극단적 대립이 춤을 추고…모든 연출이 무대를 상당히어지럽게 만들어 버렸기에이젠 보듬어주는 연출 필요연극이라는 예술이 탄생한 것은 대륙과 나라마다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연극경연대회를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기원전 3세기쯤으로 축제의 성격을 띤 부여의 영고와,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띤 고구려의 동맹과 예의 무천, 마한의 시월제 등이 있다. 이때는 농경사회로 사회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의식주 모든 것을 하늘에 기대며 신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며 춤추며 노래 부르는 축제가 연극으로 발전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연극 또한 희곡과 코러스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으면 되는지라 연출의 기능이 발휘될 곳이 별로 없었고 연출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연극은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19세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전기가 발명되고 대량 생산과 함께 사회의 중심이 왕이나 귀족 따위가 아니라 나와 가족, 우리라는 인간보편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 한층 복잡한 양상을 이루게 된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연출이라는 기능이고 역할이며 직업으로서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비단 연극뿐 아니라 탄생한지 100년 조금 넘은 영화, TV 쇼 행사에서도 연출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연출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연출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공연 예술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희곡 또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기, 장치, 의상, 조명, 소품, 음악 따위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통일성과 독창성을 갖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을 연출이라 할 것이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연출가의 연출을 통해서 드러난다.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 필자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무대도 늘 누군가에게서 연출되어져 왔다.내가 태어난 60년대에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연출지시가 내려지고 배우인 국민들은 따르고 또 따르고 그러다 보니 배고픔은 조금씩 덜해지고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식들 교육시켜 너 잘 먹고 덤으로 나까지 먹여라 하며 엄청난 교육열이 무대를 장악하고 70년대까지 이어진다. 연출가는 이왕 시작 한 거 한 작품 더하길 원하고 강력한 연출을 이어나간다. 배우들은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따라야 했다. 하지만 연출이 작품 막바지에 비극을 맞이하며 극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구세주를 기다리지만 배우들은 듣도 보도 못한 무대포의 연출자를 만나게 된다.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다치고 무대는 혼란스러우며 분장실은 가면을 썼다. 그렇게 80년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의도이든 프로스포츠가 생겨나고 컬러TV가 세상을 뒤바꾸고 굵직한 세계적 스포츠 행사가 벌어졌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연출가가 강력하든 무소불위하든 우리의 무대는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배불러져 연출이 보이지 않아도 동선을 그런대로 만들고 있었다.90년대에는 드디어 배우들이 좋은 연출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고 무대는 그야말로 수많은 장치들이 생겨나고 다양한 작품들을 마음대로 써내려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복잡성을 띠며 지금까지 다양한 연출을 배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연출을 선택하였다. 막 이야기의 전개 단계이다. 전 연출이 무대를 상당히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경제는 침체이고 젊은이들은 머리 둘 곳이 없으며 사상은 둘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이 춤을 추고 있다. 이럴 때 연출의 기능과 역할이 절실하다. 그동안 수없이 연출을 공부해 온 연출에게는 더욱 지혜로운 그리고 따듯한 연출이 필요하다. 배우들은 힘들고 지쳐있다.지친 배우들을 진정으로 따듯하게 보듬어 주고 얽힌 스태프들을 불러 지혜를 주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배우들은 맡은 역을 잘할 것이다. 훌륭한 공연을 할 것이고 연출가는 후세에 가장 아름답게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이 배우들의 내적갈등과 스태프들의 싸움을 조정하지 못하고 연출의 스타일만 고집할 경우 배우들이 무대를 외면하고 무대를 내려갈 수도 있다. 다 같이 지혜로운 연출을 기대해본다./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2013-09-24 장용휘

인문학, 이제 대학이 나설 때다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더이상관심과 지원을 안할때를 대비현재 인문학 르네상스의좋은 기회를 살려야 하고이제부터라도 주변의 이웃과사회문제에 적극 관심 가져야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인문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교육부는 2013년 시민인문강좌지원사업에 15억원의 예산으로 57개 과제를 선정하여 9월부터 전국 도시에서 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속에는 10월 29일부터 일주일 동안의 '인문주간' 행사도 포함된다. 또한 3회째를 맞이하는 세계인문학포럼(WHF)이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10월에 예정되어 있다. 이 모든 인문학의 잔치는 인문학이 대학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 대중화'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있다.인문학 대중화는 지방 정부의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인문도시 수원' 만들기 사업이 지자체 차원에서 2년간 이어져 왔고 내년에도 계속된다. 경기평생교육진흥원의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사업과 같이 소외계층 대상의 인문학지원사업을 통해 인문교육의 질적 다양성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갖는 관심, 그에 따른 인성교육의 강화는 우리사회가 인문학을 보는 관심이나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한때 인문학이 천대받던 시절, 목소리를 높이며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과히 인문학 천국의 문에 와 있다고나 할까, 대략 그런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평화롭지 만은 않다. 경쟁 사회이다 보니 대학들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인문학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바삐 움직이며 선정 시기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선의의 경쟁이긴 해도 인문학 교수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인문학 교수들이 과제를 얻어내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들이 인문학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벗어난 그 자체로 인문학은 반쯤 성공했다.그럼에도 대학 내에서의 인문학은 정부나 지자체가 원하는 만큼 활발하고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문학에 대한 세상의 요구만큼이나 인문학을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굴레지어 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들이 폐지되고 인문교양과목은 배경 저편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부도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이런 학과들에 취업률을 높이라고 닦달한다. 이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인문학의 잔치를 꾸려나갈 대학 자신이 흥이 나지 않고 쉽게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잘못은 대학 스스로 인문학에 대한 자신감, 의욕 부족과 동기화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대중적 영향력과 효과에 대한 확신감 부족이며 대학이 직접 챙겨야 할 주도권을 정부나 지자체에 빼앗긴 탓이라고 본다. 인문학 최고의 정신이 자율인데 그 자율성이 관제의 힘에 의해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아마 대학들은 인문학을 자생적으로 키우지 못했다는 열등의식과 관 중심으로 끌려가는 인문학에 자존심을 상했는지도 모른다.정부가 더 이상 인문학에 관심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대학 스스로가 인문학을 학대하는 분위기에서 언제까지 밖에서 열정을 갖고 인문학에 지원을 해주겠는가. 대단히 역설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대학들은 취업에 매달릴수록 인문교양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졸업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인문학을 들을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 백화점 문화강좌를 기웃거리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려면 인문학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인문학 르네상스의 좋은 기회를 살려내야 하고 정부의 지원에만 목을 매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은 사회의 갈등해결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인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경쟁이나 싸움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옛날의 그 게으르고 쓸쓸했던 '평화로운 인문학'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대학은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이웃과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인문학의 힘은 결국 대학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2013-09-10 박연규

위기를 읽으면 기회가 잡힌다

위기는 발생 전 신호 보내9·11테러 쓰촨성 지진신중 대처했다면 피해 줄였을 것베이비부머 713만명 은퇴 시작자식에 헌신만… 노후준비 못해미리 상황 감지 기회 만들어야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경악하게 하고, 세계를 벌컥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에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첩보를 입수했다. 9·11테러가 터지기 전에 FBI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알카에다 조직이 민간항공기를 납치해서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하고 백악관까지 들이받는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었다. 당시 FBI는 이 첩보를 국가정보위원회에 이첩했고, 국가정보위원회에서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 지진이 발생한 것 역시 기억할거다. 뉴스 보도에서 하루종일 댐과 산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도했는데, 본인이 정작 놀란 것은 쓰촨성에 지진이 터지기 3일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면 두꺼비떼 수십만마리가 마을을 덮치면서 이동을 하는 사진이었다. 두꺼비떼는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마을을 지나갔기 때문에 밟으면 두꺼비가 깔려서 발을 디딜 틈이 없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두꺼비떼가 지나가고 3일후에 쓰촨성에 지진이 터졌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가 주는 신호를 읽지 못하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두꺼비를 미물이라고 하지만, 위기가 주는 신호를 읽으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는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만약 위기는 터지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감안하여 좀더 신중하게 대처했더라면 9·11테러의 상황은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고, 중국 쓰촨성의 지진 피해는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위기는 터지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이론이 있다. 그 이론이 '하인리히 법칙'이다. 1930년대 초 미국 한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는 수많은 보험사고를 분석한 결과 '1:29:300'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법칙은 1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이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300번의 이상징후가 감지됐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하면 1회의 사망사고 이전에 35~40회 정도의 접촉 및 추돌사고로 중·경상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 이전에 수백건의 위험한 신호위반 등 교통법규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고 한다. 그렇다. 위기는 신호를 보낸다.자, 이런 위기가 보내는 신호를 우리 실생활에 적용해 볼까? 현재 우리나라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해 있다. 1955~1963년생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무려 71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6%에 해당한다. 준비되지 않은 무서운 은퇴가 시작되었는데, 은퇴하면서 비참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이런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은 우리나라 5천년 역사의 전통이 지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3대 공동 생활제도가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자식을 부양하는 구조였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될 때쯤이면 본인 자산은 남아있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자식이 아버지가 돼서 자신을 부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조가 지금에 와서 와해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자식을 부양했지만 자식은 할아버지가 된 자신을 부양하지 못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또한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은퇴는 한번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퇴는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난다. 첫 번째 은퇴는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40대 중후반에 지출이 수입을 역전할 때 일어난다. 금전적 은퇴다. 이때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집중지출이 시작된다. 두 번째 은퇴는 직업에서 물러날 때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먹지않고 입지 않으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그러나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준비하지 못한다. 바로 노후준비이다. 위기는 터지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 신호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적용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길 바란다./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2013-09-03 송진구

경제 어렵다고 자식들 밥그릇부터 빼앗겠다고요?

초등학교시절 숨어서강냉이죽을 먹던 상처나허기져 눈칫밥 안먹겠다던외환위기 시절…그 아이들의 아픔더는 되풀이돼선 안된다최근 경기도는 내년도 예산을 세우면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기다렸다는듯 인천시와 경상남도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경상북도와 대구시도 무상급식 대상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이 세수 부족에 따른 살림살이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경제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삭감 대상 1호가 급식 예산이어야 하는지는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다.60년대 중반 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도시락은커녕 아침밥도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급식으로 강냉이 죽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당시 어린 눈으로 보기에 정말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이 소리를 내면서 타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누런 강냉이 죽이 설설 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없던 나는 그 죽이 먹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지만, 죽을 받아먹는 친구들은 우리들과 눈을 못 맞추고 슬금슬금 피해 고픈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더 지나 만난 한 동창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속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픈 배의 설움보다 쭈그리고 앉아 강냉이 죽을 먹을 때 친구들의 눈길이 그리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외환위기 시절 당장의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해체를 가져오고 많은 결식아동을 양산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식사 제공이나 바우처 제도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배를 곯을지언정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꺼려 이유를 물으니 '창피해서'라고 했다. 이 아이들의 창피해서라는 것은 '부끄럽다'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를 흔드는 자존감의 문제이다. 밥을 앞에 놓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당시 당장 위기상황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정책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결식아동 정책은 그리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단체는 학교급식만큼은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부모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추진해야한다는 지난한 주장을 해왔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실시되던 무상급식이 2011년 8월 오세훈 시장이 학교급식문제로 셀프 탄핵을 한 이후 겨우 정착되는듯했는데 경기도가 내년 예산을 삭감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즉, 줄 수도 있고 늘 수도 있는 세입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고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후 발생될 문제를 최소화하고, 나를 뽑아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줄여야하는 1순위가 아이들 밥그릇인가? 우리는 지난 몇 년 잘못된 자원 배분이 가져온 심각한 사회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대책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멀쩡한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설치하고 시멘트를 쳐 바르는데 22조원의 돈을 쏟아붓고, 시장과 결탁한 관료들은 수요조사를 부풀려 도로와 운하를 파는데 헤아릴 수 없는 돈을 쏟아부었다.그런데도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만 말이 많다. 재벌 손자 밥값을 왜 국민이 내주어야하냐고, 세금 한 푼 안낸 사람의 자식 밥값을 아까운 세금으로 채워야하냐고 궁시렁댄다. 속내를 들여다보자. 일 년이면 수억원의 세금을 내는 사람의 손자에게 몇 푼의 밥값을 대주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어떤 사람은 세금 한 푼 안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조세제도를 잘 들여다보면 이 역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월 100여만원의 수입으로 4식구가 근근이 살아도 나도 모르게 나가는 세금(간접세)이 최소한 10여만원이니 세금 한푼 안내고 밥만 축낸다는 말도 안맞는 말이다.최소한 아이들 밥그릇은 빼앗지말자. 초등학교 시절 숨어서 강냉이죽을 먹던 내 친구의 상처나, 허기져도 눈칫밥 안 먹겠다던 외환위기 시절 그 아이의 아픔을 더는 되풀이해서 안된다. 밥은 생명이고 평화다. 아이들이 맘 편히 밥 먹도록 해주자./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2013-08-27 한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