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인문학 도시 수원, 인문학 학습의 장으로

몇 년 전 잠깐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 집에 머문 적이 있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문 앞에 던져진 신문을 주워 들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나는 그저 한자를 통해 오늘 중요 기사를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신문 두께보다 더 수북한 간지는 재밋거리였다. 실용주의 학문 한계에 봉착마음과 영혼이 윤택한 삶그 바탕엔 인문정신 있어수원에서 인문학주간 선포식화성 탐방 등 다양한 강좌시민이 알게하는 방법 찾자식당 홍보부터 대머리치료제, 미용실 신장 개업 등등 상업성 광고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 거의 매일 한 장쯤은 마을에서 열리는 공익적인 성격을 띤 행사 홍보물이었다. 그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공민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 홍보물이었다. 그 강좌 내용은 요리교실부터 아버지학교 등 매우 다양했지만 단연 주는 인문학 강좌 안내문이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시민참여 문제는 항상 고민거리였기에 한수 배울 요량으로 진행 중인 강좌에 참여해보니 한국사회와 다른 모습의 강좌가 진행 중이었다. 우선 대중을 동원하는 1회성 강의가 아니고 연속 강의가 주를 이루었고, 참여자들이 너무 소수라는 점이 신기했다. 또 진지하게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도 우리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그런 모임은 공민관을 비롯해 주민센터 등 주민 접근이 편리한 다양한 기관에서 규모에 상관없이 열리고 있었다. 이 모두를 알게 해 준 것은 신문 간지였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홍보를 간지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지금은 일본도 바뀌었겠지만 말이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이 변하고 있다. 관심과 조금의 부지런함만 보탠다면 누구나 아주 손쉽게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시내 전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수원평생학습관은 물론 도서관, 박물관, 시민단체에서 문학, 역사, 철학과 관련한 단기, 장기 강좌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작은 마을 도서관이 여러 곳에 만들어지면서 문턱을 낮추는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이 경제 위기 시대에 웬 인문학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물질에 기반을 둔 실용 학문이 강조되면서 가장 기초 학문인 인문학이 소외되어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했던 적도 있다.그러나 실용주의 중심 학문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물질의 가치를 넘어서 좀 더 창조적이며 인간에게 이로운 삶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면서 인문학은 다시 중요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커트 스펠마이어 미국 러트러스대 교수는 철학, 언어·문학, 예술학은 물론 공학, 의학, 생명과학 등 인류사회에 적용되는 모든 문명생활에서 인문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되면 개인의 발전,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인문학의 위기가 사회의 위기, 곧 인간의 위기라는 지적을 통해 인문학이 창조적인 인간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하고 있다.우리가 너무 잘 아는 스티브잡스는 대학을 한 학기만에 중퇴하고 철학과 인문학 강의를 도강하면서 배운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애플의 창의적인 IT제품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반장 한번 못해본 안랩 창시자 안철수 대선후보 역시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밖으로 돌기보다는 열심히 읽었던 독서가 오늘의 안철수를 만들었다고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는 유명 인사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물질적인 윤택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윤택한 삶을 꿈꾼다. 그 기저에 인문학이 있다. 올해 인문학 주간은 10월29일부터 11월4일까지인데 올해는 수원시가 인문학 도시로 선정되어 선포식을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수원학'을 포함해 10강에 이르는 '역사속에 수원', 화성 유적지 탐방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이번 가을을 수놓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원시민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까? 물론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인터넷 구석구석을 뒤져서라도 각종 강좌를 찾아다니겠지만 많은 시민들은 아직도 지금 수원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변화를 전혀 모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를 알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 신문 속 간지가 낯선 외국인에게 공민관을 방문하도록 했듯이 말이다.

2012-09-26 한옥자

'ㄱ, ㄷ, ㅅ' 이름 서둘러 바꿔야

최근 케이팝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해외 한국어교육의 거점이 되고 있는 세종학당도 2012년 현재 43개국 90개소나 되는 등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위상이 나라 안팎으로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류 덕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 예술성에 반하게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글 자음 'ㄱ, ㄷ, ㅅ' 이름인 '기역, 디귿, 시옷'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바꾸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현대 한글 기본 자음 14자 가운데 세 명칭만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자음은 '니은, 리을'처럼, 모음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 모음이면서 바탕 모음인 'l, ㅡ'를 활용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명명법 자체가 한글의 과학성을 드러내준다. 자음은 단독으로 음가를 낼 수 없고 모음의 도움을 받아 발음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발음하기 편한 기본모음인 '이'와 가장 약한 바탕 모음인 '으'를 통해 자음의 음가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두 모음을 통해 첫소리(초성)에서 나는 자음과 끝소리(종성)에서 나는 자음을 동시에 드러내 주는 명칭이 바로 '니은, 리을'식의 명명법이다. 명칭 자체에 첫소리와 끝소리에 쓰이는 용법 자체를 드러내 줌으로써 명칭의 효용성을 최고로 높이고 있는 셈이다. 곧 '기역, 디귿, 시옷'만이 이런 합리적 명명법에서 벗어나 있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이나 일반인이나 모두 이를 헷갈려 한다. 특히 관련 용어인 '키읔, 티읕, 지읒' 등과도 달라 언중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현재 명칭 '기역·디귿·시옷'자음 명명법 규칙 벗어나 있어'기윽·디ㅤㅇㅡㄷ·시읏'으로 써야관습이라고 유지하는것 잘못한글 배우는 외국인 느는데학습에 불편함 줘선 안돼'니은, 리을'식의 과학적인 명명법은 기록으로는 최세진이 1527년(중종 27년)에 '훈몽자회'에서 처음으로 정리했다. 안타깝게도 잘못된 세 명칭의 전례를 남긴 것도 최세진이었다. 훈몽자회는 한자 학습서였기에 자음 명칭을 한자로 적으면서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윽, -ㅤㅇㅡㄷ, -읏'을 이두식 한자로 적다 보니 '기역, 디귿, 시옷'이 된 것이다. 곧 기역은 '其役'으로, 디귿은 '池末'로, 시옷은 '時衣'로 적었는데, '역(役)'은 '윽' 대신 적은 것이고, '末(끝 말)'은 'ㅤㅇㅡㄷ' 대신 비슷한 발음의 훈 '끝(귿)'을 가진 '末'자를 빌려 적고 '읏'은 발음이 비슷한 '옷'의 훈을 가진 '衣(옷 의)'자를 빌려 적었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고자 했던 이두식 표현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최세진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 명칭이 합리적임을 알았지만 한자에 의존해 설명하다 보니 그런 실수를 했다. 실수라고 한 것은 그가 한글로 병기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글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던 16세기의 실수를 21세기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무척 잘못된 일이다. 1933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한글맞춤법에서는 그 당시 관습을 중요하게 여겨 최세진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북한은 1954년 조선어 철자법 제정을 통해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을 위해서라도 남한 쪽이 명칭을 바꿔야 한다. 명칭은 학습과 소통의 바탕이자 기본 통로이다. 16세기에 잘못 붙여진 명칭을 관습이란 이유로 지금까지 유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로 인해 어린이들이 학습과 명칭 사용에서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학생이나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왜 쉽고 과학적인 한글을 사용하면서 비과학적인 명칭을 유지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기존에 쓰고 있던 '자장면, 태껸, 품세'외에 '짜장면, 택견, 품새'를 복수 표준어로 제정했다. 국민들의 언어 사용 정서를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기역, 디귿, 시옷'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고치는 일은 '짜장면'을 복수표준어로 수용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시급한 일이다. 일단 복수표준 용어라도 설정해 '기역'을 '기윽'으로 썼다고 괴로워하고 혼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

2012-09-19 김슬옹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길

얼마 전 오사카에 잠깐 다녀왔다. 오사카대학에 가서 조선어문학과 교수들을 만나고 한국문화원에 들렀다가 한류 붐을 타고 새롭게 관광지가 되었다는 한인타운에도 갔었다. 더운 여름날 일본인들의 친절한 환대는 매우 고마웠다. 오며가며 택시도 타고 버스나 전철도 탔다. 지하철에서는 남에게 방해가 될까봐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휴대전화는 아예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나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전철에 빈 좌석이 드문드문 있는데도 사람들이 앉지 않고 그 앞에 서 있는 것이 의아해서 지인에게 물었더니 일본 사람들은 서로 몸이 닿는 것을 싫어해서 6인용 좌석이지만 대개는 5명이 앉는다는 것이었다. 친구 사이에도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늦은 시간에는 전화도 조심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일본인들이 전철에서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좀 낯선 것이기도 했다.일본은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흐름이나 민족적 특성 등에서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남다른 경쟁의식 또한 그 특성 중의 하나로 본다. 더구나 가까이 있기 때문에 경쟁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듯도 하다. 얼마 전 올림픽 한일축구경기도 양국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이번 여름동안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어느 때보다도 한일관계에 관심이 쏠렸다.우리는 가까운 나라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을 알고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의 역사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한국전쟁 이후로 줄곧 양국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다가 1965년 6월 한일협정이 맺어지면서 양국의 국교가 회복되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서 야기되는 문제들도 많이 있지만 쉽게 흥분했다 잊어버리는 우리의 감정적 대응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류 열풍을 비롯해서 민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두 나라가 가까워질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조성돼 있다. 일본은 개인주의적이고 자국중심적인 반면 일본인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외국인에게도 참 친절하다. 이번 여행에서도 목적지를 안내해주기 위해 애를 쓰던 평범한 행인들의 따뜻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조선시대에 일본어, 중국어, 몽골어 등 7개 국어를 두루 구사하여 외교 일선에서 크게 활약했던 신숙주는 일본에 다녀온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한일외교를 위해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 신숙주는 서문에서 우리와 풍속이 다른 외국과 원만한 수교를 위해선 반드시 상대국의 실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워 칼쓰기와 배타기에 익숙하다. 무마를 잘 해주면 예로써 사신을 보내고 무마를 잘 못하면 곧 노략질을 자행하곤 하였다"라고 했다.사실 섬나라 일본은 매우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이(武威), 즉 무력과시를 앞세우는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는 쇼부(勝負), 승부가 제일의 가치다. 그 세계에서 지는 것(負)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일본이 한국지배의 불법성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경제대국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도 무사들의 무위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는 일본의 전통연예와 달리 정서적 욕구에 대한 갈증을 달래주기 때문일 것이다.유사 이래 우리는 일본 땅을 넘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국력이 강해지면 우리 땅에 욕심을 냈다. 독도를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이는 통에 모두가 시달리고 있다. 독일은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한데 비해, 일본은 과거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계속 현실을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벼락에 있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처럼 우리는 잊을 수 없을지언정 용서할 준비는 되어있다. 가까운 나라들이 미래의 발전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일관계에서 우리가 선조보다 얼마나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아야 한다. 한층 복잡해진 국제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한일 양국은 서로 가까운 이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길을 찾자.

2012-09-11 이화형

기후변화와 탄력적 홍수 방어

며칠전 태풍 볼라벤 및 덴빈 때문에 온 국민이 긴장했었다. 비바람으로 인하여 농작물의 피해가 컸고 제주도를 비롯한 서·남해안 일대는 집중호우로 인한 범람 피해도 대단했다. 지난해에 이어 지난 7월에는 서울 심장부인 강남역이 물에 잠겨 통행이 제한되었고 인천의 곳곳에서도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사실 장마기간 동안이나 태풍으로 인한 재해는 이미 예고된 재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몬순지역에 속하여 매년 6~9월까지 4개월동안 1년 강우의 3분의2가 내리는 특성이 있고, 장마후에는 거의 매년 수차례의 태풍이 내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같은 홍수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경우는 아니며 기후변화로 인하여 그 강도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공동 해결과제가 되었으며 거의 모든 나라가 기후변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각종 방안을 마련중에 있다. 기후변화가 우리 생활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특히 강우량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는 강우강도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며 비가 적은 지역에는 강우량도 적어지는 경향을 보여 과거보다 물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강우강도의 증가는 과거 설치된 시설의 부족을 가져와 곳곳에서 홍수 범람이 일어나고 있다. 인천을 예로 들면, 기후변화로 인하여 강우강도가 10년마다 5%정도씩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강우강도 증가에 따른 홍수문제는 과거와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홍수를 비롯한 각종 재해 대책을 수립할 때 네덜란드의 사례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네덜란드는 전국토의 반 이상이 바다의 수위보다 낮아 홍수 배제나 바닷물의 역류방지 문제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다. 우리나라는 빗물 배제를 위한 하수도 설계기준으로 10~30년 빈도의 강우를 채택하고 위험성이나 중요도가 높은 강이나 댐의 경우 100년이나 200년 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경우 1천250년 빈도까지 늘려가면서 홍수대책을 세워왔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전통적 방법에서 탄력적 홍수방어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이른바 '탄력적인 홍수방어 (Flood Resilience)'의 개념은 생태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어떤 일을 겪은 이후에 빠르게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를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나 미리 미리 어떠한 시설이나 활동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한다.이러한 개념의 도입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기존에 어떤 기준에 의하여 하수도가 설치되었는데, 기후변화로 인하여 집중강우가 5% 늘었다면 이를 기존시설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거미줄처럼 지하에 깔려있는 하수도를 모두 들어내어 5%만큼 크기를 늘릴 수는 없다. 더군다나 앞으로 10년후에 또 다른 5%가 증가된다면 그때 가서 또다시 도시를 온통 파헤쳐 놓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래를 대비한다며 무조건 큰 시설을 설치하여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 아닌가. 탄력적 홍수방어는 단순히 하천이나 하수도 시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 참여를 강화하고 정책적으로는 전방위적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는 각종 교육과 훈련, 보험, 홍수 위험지도나 예경보 시스템 등의 개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또한 도시계획이나 유역계획수립시나 신도시 건설을 할 때 적절한 저류시설을 설치하게 한다든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정책적 보조나 인센티브를 통하여 빗물저류조를 설치하거나 지하 침투를 증가시키기 위한 조치 등과 공원이나 빈공간 활용 등을 통한 극한 홍수에 대비하는 모든 조치를 포함한다. 특히, 중요 시설 위치의 재조정, 범람지역 감소를 위한 블록화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논의와 적용이 요망된다.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를 예측하고 미리미리 대비하여 각종 사회간접시설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일과 미래를 보다 더 현명하게 예측하고 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12-09-04 최계운

밤길이 무서운 요즘, 근본적 대책 필요

연일 세상이 뒤숭숭하다. 길거리를 거니는 것이 두렵다. 좀 늦은 시간에 한적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이 조이는 느낌이다. 어둠을 피해 걷지만 자꾸 뒤를 힐끔거리게 된다. 아파트에 도착했다고 그 긴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과 타는 것이 두려워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집에 들어와서도 문이 잠겼는지 또 확인한다. 이런 증상이 나만 있는 것일까? 최근 수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불특정인에 대한 폭력 사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소위 '멘붕' 상태다. 삼삼오오 모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끔찍한 사태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긴장한다. 그러면서 밤길이 안전한 나라라고 했던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험악해졌는지 한탄을 한다. 배트맨이 나타나 자기가 활동하던 도시 '고담'을 지켜주듯이 우리도 이 불안사태에서 어서 놓여나기를 기대하지만 아직 뾰족한 묘안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정부가 최근 일어나는 사태의 심각성 인지도 부족하고, 더 문제는 다분히 사건을 일으킨 개인적 요소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논의되고 있는 정책 대안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한 재소자 늘리기 정책이나 경찰력 증가, 거미줄처럼 촘촘한 CCTV 설치 등인데 과연 작금의 심각한 우리사회 병적 상황을 통제와 억압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몇 달 전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책을 한 권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의 근·현대 100년간 일어난 살인율과 자살률을 연구한 보고서(제임스 길리건(2012)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로 다시 그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살 소식이었다. 가족 동반 자살을 포함해 각종 사건 연루자, 공직자 등의 자살 소식은 참으로 황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실제 언론을 통해 들리는 우리나라 자살 소식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계가 답해 주었다. 2010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천명당 0.31명으로 OECD회원국 평균 0.11명에 비해 거의 3배 가까이 된다. 그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에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논의가 있을 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살 예방 정책수립 과정에 폭력 예방을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보다 비교적 낮은 폭력률과 살인율로 인해 그 주장은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밤길이 두렵고 묻지마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점에서 자살과 폭력 문제를 동일 선상에 놓고 다시 원인과 대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길리건 교수가 쓴 보고서는 100년간 미국에서 벌어진 살인율과 자살률이 늘 동반상승, 동반하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이 비율은 백악관 주인의 정당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혀낸다. 패배감과 열등감을 조장하고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도록 부추기는 불평등 문화를 조장하는 정책 지향 정부에서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거나 해고되었을 때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 때 모욕감과 수치심은 타인에게(폭력 또는 살인) 또는 자신에게(자살) 의도된 살해를 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의 배경이나 살인의 배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신의학자인 길리건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람들이 수치심 때문에 참을 수 없거나 고통스러울 때 자기 안에 있는 수치심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벗어나려고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수치와 불명예를 느낄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하루아침에 신분이나 지위가 뚝 떨어지는 추락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폭력의 수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한 학자의 보고서가 해결의 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으로 얼마 남지 않은 공동체 문화마저 파괴하는 작금의 '묻지마 폭력' 문제 해결이 개인적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선 지금 사회 현상에 대한 폭넓은 진단과 그 진단에 따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그 다음 시민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12-08-28 한옥자

효인문학 캠프, 희망의 미래를 만든다

지난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날이었다. 바로 정조대왕께서 승하하신 날이었다. 1800년 6월 28일에 돌아가셨으니 212년 기일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일찍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원찰인 용주사에서 특강이 있었다. 용주사에서는 수원화성오산의 화합을 위한 산수화 상생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청소년을 위한 효인문학캠프를 인근의 한신대학교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제2교구라는 큰 사찰임을 뛰어넘어 우리나라 전 사찰중에서 효찰대본산으로 이름이 높은 절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효인문학캠프를 일부러 효의 대명사인 정조대왕께서 승하하신 날로 잡아 정조와 다산의 삶과 효행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런 마음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60여명을 대상으로 효인문학캠프를 진행하기로 기획하였는데 무려 8배가 넘는 500여명이 신청을 하여 어렵게 선발을 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교육 담당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 어려운 주제의 캠프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신청을 하였구나 하고 말이다. 청소년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신청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이 신청을 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주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었다.오전 7시20분부터 진행된 강의 시간에도 똘망똘망한 눈빛을 발산하는 녀석들은 정조와 다산의 효행과 리더십에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선의 국왕이 된 정조, 정조를 보좌해서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은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질문도 예리하고 진지하였다. 이 캠프가 이들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자질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녀석들이 훗날 이 나라를 이끌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아쉬운 시간을 마무리하고 정조대왕의 능인 건릉으로 향했다. 정조의 승하일에 건릉을 참배하는 것이 오랜 일이었기 때문이다.9시가 조금 넘은 그 시간에 융건릉은 고요 그 자체였다. 아침에 비가 많이 왔던 일기 때문이었는지 더욱 고요했다. 건릉으로 들어가는 솔숲길은 정조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신성함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정조의 능 앞에서 참배를 올렸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다. 제발 이 나라를 살려달라고…. 212년 전 돌아가신 정조가 다시 살아나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 나라를 살릴 길이 어디 있겠냐만은 필자의 소원은 간절했다. 나라는 분단된 지 60년이 지나도 통일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날로 대립은 커져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한 마을에 살아도 원수처럼 여기게 되어 공동체는 파괴되어버린 사회가 바로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다.2012년 8월 15일, 정조대왕의 승하일이자 해방을 맞이한 광복절에 정조의 능 앞에서 서 있던 한 인간은 절망하고 있었다. 과연 이 나라가 올바른 나라로 다시 설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부터 득세한 친일파가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그 권력을 놓지 않고 오늘날까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모두 차지한 이 나라에서 과연 희망이 존재할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순간 갑자기 정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전 용주사 효행문화원에서 함께 하였던 청소년들의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다. 희망은 이곳에 있는데 어찌 나에게 기도를 하냐는 정조의 음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맞다! 희망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있었다. 권력과 금력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세상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효와 청렴 그리고 소통과 통합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이 나라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이 아름다운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 세상 사람들과 함께 평화와 평등이 가득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서 효인문학캠프는 중요하다!

2012-08-21 김준혁

아폴론의 눈물과 런던 올림픽

폭염과 더불어 런던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기록적인 열대야도 우리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에 열광하는 가운데 물리칠 수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 일요일 장대비를 뚫고 예술의 전당으로 '루브르박물관전'을 보러 갔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화와 전설을 중심축으로 고대 유물들과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한 후대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회였다. 신화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이야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신화를 모티프로 현대적 의미를 재구성해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강력한 힘을 지닌 신화 속의 신들에게서조차 사랑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실수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며 허물투성이인 나 자신을 은근히 정당화해본다.18세기 프랑수아 르무안의 작품 '올림포스'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궁전으로 일컬어지는 올림포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가운데 최고의 신 제우스가 자신의 상징인 독수리를 옆에 둔 채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에 결혼의 여신인 아내 헤라, 그리고 제우스의 딸인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있다.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사랑과 결혼과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는듯하여 몽상에 빠져 있던 중 홀연 '아폴론과 다프네'가 눈에 들어온다.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의 극적 일화가 묘사되어 있는 아름다운 님프 다프네와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 이야기. 왜 화살에는 황금 화살과 납 화살이 있는 것일까?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가 여기에서 탄생된다. 활을 만들고 있던 사랑의 신 에로스는 백발백중 명 사냥꾼인 아폴론에게 활을 포기하라는 조롱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황금의 화살을 쏘아 다프네를 사랑하도록 하는 한편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쏘아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도록 했다. 사랑에 빠져 필사적으로 다프네를 쫓아다니는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가 두려워진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자신을 월계수로 변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사랑하는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한 순간 아폴론은 눈물을 흘리며 맹세한다. "지금부터 내 머리는 너의 잎으로 장식하고, 저 영광의 대회에서 우승한 청년과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싸워 이긴 용사의 머리에 너의 잎과 가지로 만든 관을 씌워 찬양하겠다." 자신의 머리를 다프네의 월계수 잎으로 장식하는 순간 아폴론과 다프네는 하나가 되고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언제나 월계관을 쓰고 있는 아폴론을 만나게 되고 델포이 신전의 시와 노래, 그리고 4년마다 열리던 제전의 우승자의 머리에 최고의 영예의 상징인 월계관이 씌워지는 것을 보게 된다. 계관시인의 유례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이례적인 폭염으로 온 대지가 달아올랐던 올 여름, 우리의 마음은 런던 올림픽으로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연이은 금메달 소식으로 우리의 역량을 세계에 과시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올림픽 폐막과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올림픽 출전 64년 만에 첫 메달을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전의 응어리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린 축구에서의 쾌승은 가슴 벅차다. 절제와 노력을 통한 자기완성의 극적 순간이다.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은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전멸시킨 기적 같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격전지인 아테네 근교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까지 전력 질주했던 한 병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그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라톤이든 아폴론의 월계관이든 자기완성을 향한 필사적인 노력이 근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완성을 향해 결연하게 나아가는 자야말로 월계관을 쓸 수 있는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올림픽의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준 우리의 역량은 이제 한국이 후진 약소국이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우뚝 섰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스스로 당당해지고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 속에서 세계적인 것을 발굴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한 계기가 된 것이 이번 올림픽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독서와 사색과 성찰의 계절이다. 올림픽의 열기를 심화시켜 더욱 굳건한 한국의 토대를 다져야 할 것이다.

2012-08-14 김구슬

'안철수 파워' - 분노를 잃어버린 세대의 반란

입에서 젖 비린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는 1969년 11월 8일 당시 42살이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가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자 야당 원로였던 60대 유진산 신민당 부총재가 내뱉은 독설이었다. 1년 뒤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YS와 45세의 김대중(DJ) 의원, 48세의 이철승씨 등 40대 기수 세 명이 대결했다.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긴박한 경선에서 DJ가 YS를 꺾으면서 40대 기수론은 30여년 지속된 양김시대를 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생으로 44세에 집권해 53세였다. 50세인 안철수 돌풍이 이어지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기성 정치권의 비판은 안 교수가 백면서생으로 구상유취라는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안 교수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직후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예능프로 출연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해 대세론으로 여론조사에서 4년여 부동의 1위인 박근혜 후보를 3.9%p 앞서 48.8%의 지지율을 보여 돌풍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존 정치 불신이 높아가면서 안철수로 대변되는 신진세력의 급부상은 여-야당의 존재와 정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존의 사고, 기존 관행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정치판에 투영돼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첫째 현상은 정치 패러다임 전환으로 정치게임의 룰을 바꾸는 극단적 변환의 파열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를테면 구세대 기존 정치인들은 출마선언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이라든가, 독립문, 광장시장 등 대부분 공간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장소를 선택해서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출사표를 올렸다. 캠프마다 참석자 숫자를 부풀려 발표하지만 대중동원은 무의미하다. 이에 반해 안 교수는 힐링캠프라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 수백만명에게, 그것도 기자 출신의 여교수가 인터뷰 형식으로 쓴 자신의 저서를 소개한다면서 자연스럽게 출마의지를 애매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밝혔다. 재미와 흥행을 도모하는 정치의 쇼(Show)화가 미디어의 상업성에 힘입어 극적으로 연출된 셈이다. 속도 모르는 둔감한 아날로그 시대 정치인들은 출마선언 하고 정정당당하게 나서라고 채근하지만 안 교수는 저널리즘 정신이 실종된 미디어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날마다 홍보기사를 통해 캠페인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둘째, 안 교수가 조직이 없다고 폄하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무지한 기성 아날로그 세대들의 착각이다. 과거 인연(因緣)은 그야말로 인연(人緣) 즉 인맥(人脈)으로 맺어졌지만 요즘은 인터넷 인연이라 할 전연(電緣)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모바일 서비스 등으로 만나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로 연결되는 전연이 실생활에서 만나는 인연의 수를 앞서고 있다. 미니 홈피로 인맥을 관리하고 채팅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네트워크가 사이버세계를 조직화하고 있다. 또 안 교수는 전국 24개 도시를 순회하는 토크 강연 형식으로 적게는 1천500명에서 많게는 3천명 정도까지 몰린다는 '청춘 콘서트'라는 대화 강의를 통해 "스펙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등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구호를 내걸고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일종의 팬덤 형성을 완료한 것이다.셋째, 인터넷세대라 할 20~40대들은 안 교수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예방 백신을 개발한 그는 당연히 상업화할 만한 데도 불구하고 10만~20만원대 가치가 있는 백신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사회라는 대한민국에서 '더불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며 대기업들도 외면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만한 자신의 주식 절반을 내놓고 재단을 설립했다. '정치는 타이밍'이라 하지만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 마케팅의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에 걸맞게 절묘한 시기에 이런 선행을 통해 착한 이미지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장치기획 이벤트를 집행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가운데 안 교수 인기가 폭발적 파괴력을 갖고 기존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이다. 타깃을 세분화해서 '분노를 잃어버린 20, 30대의 반란'을 조직화하는 안 교수의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치실험이 어떻게 귀착될지 두고 볼 대목이다.

2012-08-08 박종렬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어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를 감상할 때는 영화 팩트보다는 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의도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더 관심이 가면서 영화를 좀 더 인문학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만 좇는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시원스럽게 한바탕 웃었다면 그것으로 몇 천원의 가치는 있겠지만 그조차 없는 영화는 정말 돈이 아까울 때가 많다. 최근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350만을 동원했다는 '연가시'이다. 이미 극장가는 바람이 한번 훑고 지나가 심야 시간만 상영을 하는 관계로 늦은 시간에 열대야를 피하면서 조금은 한가로이 영화를 즐길 수가 있었다. 충분한 메시지를 담은 내용과 화면을 꽉 채운 영상미, 그리고 리얼한 배우의 연기가 충분히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고요한 새벽녘 한강에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오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메뚜기, 사마귀 등과 같은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을 만들어 인간이 감염된 이후 인간의 뇌를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해 익사시킨다는 것이다. 짧은 잠복기간과 치사율 100%, 4대강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가는 '연가시 재난'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사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국가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하지만, 이성을 잃은 감염자들은 통제를 뚫고 물가로 뛰쳐나가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제약회사 영업직원인 한 가장은 아내와 자녀들이 연가시에 감염된 것을 알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영화 자체만 보자면 재난 영화다. 실재 존재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되면 인간이 감염되지 않을까라는 가정 속에서 본다면 분명 재난 영화다. 특히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플루가 돼지 감염에서 시작되었다는 황당한 초기 발표를 생각하면 뭐 그리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때도 연가시처럼 제약회사 음모론이 있었던 걸 기억해 본다면 더욱 그럴 듯하다. 그러나 조금 달리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지금 무엇에 감염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인이 모두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듯하다.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면 물로 뛰어드는 자기 하나의 희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체면도, 이면도 다 버리고, 형제도, 부모도, 자식도 팽개치고, 타인을 해치게까지 하는 무서운 감염이다. 특히 영화 속 연가시는 '윈다졸'이라는 치료제가 있지만 '돈'에 감염되면 아직은 치료제가 없다. 어쩜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끝은 파멸만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돈에 감염된 사람들의 말로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유산을 두고 싸우는 우리나라 대표 재벌의 형제간 법정 다툼, 형제 간 회사 장악을 위한 모 기업의 형제간 물고 물리는 싸움질, 살 만큼 살텐데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공직자의 모습,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나 남편을 죽이고, 유산 상속을 위해 부모를 살해하는 현실, 이 모두는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그 정도의 극단적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황금만능주의의 '돈'에 감염되어 살아간다. '부자되세요'라는 신년 인사를 거부감 없이 듣고 또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경제를 살려 부자 만들어 줄 거라는 말을 믿고 투표 용지에 도장 꾹 눌렀다면 이미 나도 '돈'에 감염된 거다.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 때 우리는 어땠나? 자고 일어나면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을 보면서, 또 부동산 투기로 얼마를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 소문에 나만 뒤지는 듯해 발을 구르거나, 웬걸 그 대열에 못 낀 것이 안타까워 우울했거나, 무리하게 아파트를 장만했다면 내 병도 이미 중증이다. 연가시에서는 정부가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기로 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더 큰 부(富)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더해 국가·사회적으로는 황금만능주의를 키우는 틀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내면서 도리어 병을 전파하고 있다. 이 병을 고칠 큰 지도자가 필요하다. 몇 달 뒤 분명한 기회가 있다. 우리의 선택 여하에 따라 이 심각한 병은 치유될 수도, 더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2012-07-31 한옥자

태양광 에너지의 도시만들기

지난 주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에 다녀왔다.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서구와 아시아 문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땅이었던 터키 문화에 대한 동경을 늘 가지고 있다 좋은 기회를 맞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그야말로 놀라운 유산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처음엔 성당으로, 뒤이어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로 사용된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지배자인 술탄들의 궁전은 그 규모가 어머어마하여 필자뿐 아니라 함께 답사를 간 연구자들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었다.하지만 필자는 터키 전역을 여행하는 10일동안 터키에 남아있는 그리스, 로마와 오스만투르크의 유적보다 더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국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이었다.터키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전 세계의 3분의1의 영토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광대하였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체로서 패전국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그 많은 영토들을 승전국들에 의해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북한의 4배 가까운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이러한 역사적 자연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 터키는 엄청난 에너지 자원과 문화자원을 가지고 현재 1인당 GNP는 1만 달러가 안되지만 G20에 들어있는 강국으로 발전하였고, 유엔의 예상에 의하면 2030년엔 미국과 중국을 능가하는 세계 제1의 국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석유자원을 비롯한 모든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향상되고 있는 이 나라가 화석에너지를 지양하고 미래 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전국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세계 최고의 문화도시로 평가되고 있는 이스탄불에서도 대형 빌딩에서부터 개인 가정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길가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도 태양광 전지판은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다. 처음 어색했던 도시 경관이 오히려 태양광에너지 전지판으로 인해 새로운 도시 경관이 구축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전지판들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여 설치해준 것이라고 우리를 안내하는 이는 설명해주었다. 비록 터키에 자원이 많지만 자연 환경을 지키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안정적 자원을 주기위하여 태양에너지를 적극 이용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터키의 집집마다 설치된 태양광전지판을 보면서 우리 한국 사회를 생각해보았다. 아니 한국 사회 전에 경기도 지역을 떠올렸다. 경기도 전역에 태양광전지판이 설치된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역시 대형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대체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건축비의 일부를 사용하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개인 가정이나 공장 등은 더더욱 설치하지 않고 있다. 실용적인 측면보다 자신들의 집경관이 훼손된다는 이유도 있고,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고 운영하려면 처음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축에서는 자연에너지 이용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다. 터키 곳곳에 들어서있는 아파트에는 모두 태양광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설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이런 현실이면서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대중들은 환경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할때 '그린' 혹은 '녹색성장' 이라는 말을 집어넣으면서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앞장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환경정책에 대한 자랑을 하고 싶어 1회성 사업으로 엄청나게 돈이 들어간다. 해마다 작게는 몇 백만원에서부터 크게는 몇 백억원까지 1회성 사업으로 사라지는 돈을 전국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이런 돈으로 모든 가정마다 태양광 전지판을 달아준다면 우리는 국가 재정을 절감하고 자연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제라도 정책 집행자들이 1회성 사업으로 돈을 지출하기보다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을 집행하였으면 한다.

2012-07-24 김준혁

백석 시 열풍과 '나타샤 병'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 모처럼 수원화성박물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석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누군가 백석이 수원 백씨라는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하자 '나타샤'는 누구인가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자야'가 당연히 그 시의 주인공 '나타샤'일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나타샤가 다른 여인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자 잠시 모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백석과 함께 톨스토이의 대하소설을 영화화한 '전쟁과 평화'를 함께 보고 나오면서 백석이 자야에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고 했다는 말로 나타샤의 정체는 일단 확인되었다. 그 후 모든 여성이 나타샤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빙수를 하나 시켜 나누어 먹으려는 우리 부부에게 함께 자리한 분이 '두 분이 다정하게 나눠 드세요'라고 말한다. 필자가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라고 유머를 던지자 좌중에 또 다시 웃음이 퍼진다. "한 번도 제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는 말을 안했거든요." 여성들은 모두 나타샤가 되고 싶어하는 '나타샤 병'이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문학계에 이상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백석(1912~1995) 열풍이다. 이 기류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가 걸어온 문학적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올해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석 문학전집'이 출간되고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열리는 등 백석 문학축제 열기가 뜨겁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해방 후 북에 남아 있었던 탓에 분단체제 중 그의 존재는 문학사에 등장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88년 납북·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이며 최근 들어서야 그가 1995년 1월에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금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타올랐다. 백석을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만 총 600여 편에 이를 정도로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일반 대중들의 사랑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인이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에 출간된 '백석문학전집1 시'와 '백석문학전집2 산문'에는 광복 이후 백석이 북에 머물면서 1950~60년대에 쓴 시 3편과 산문 4편이 포함되어 있고, 번역시와 번역소설(고요한 돈강 2권) 등 3권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백석문학전집1 시'와 '백석문학전집2 산문'은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으로 그간 진행되어 온 백석문학의 집대성과 정본화 작업에 큰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6월 30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학술대회는 발표자나 지정 토론자뿐만 아니라 일반 연구자들의 열띤 질의와 토론으로 저녁 7시 가까이까지 진행되어 백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백석의 대표시 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낭송으로 학술대회의 열기는 더해갔다.'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하면서 혜성과 같이 문단에 등장한 그는 그해 4월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기생 자야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문재를 겸비한 자야에게 숙명적으로 이끌리게 된다. 북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논조의 글을 쓴 백석은 1959년 1월 평양에서 삼수군 관평리의 현지지도원으로 내려가 양치기 목동으로 30여년의 세월을 살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어 양치기 목동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천재 시인의 비극적 운명 앞에서 백석의 인생과 예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나타샤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일찍이 여성의 '나타샤 병'을 간파했던 백석을 떠올리면서 낭만과 서정을 상실하고 찰나적 사랑에 탐닉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가여워지는 것은 왜일까?

2012-07-17 김구슬

역사는 반복되는가 - 러시아와 얽힌 조선의 비극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안다고 했던가?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지만 일주일 동안 다녀온 러시아의 풍물과 정경, 그리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러시아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공산혁명의 성지요, 베이스캠프로 공산당의 심장부였던 모스크바와 제2의 도시라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성자 베드로의 도시'와 '표트르 대제의 도시'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 '문화의 고도(古都)'였다. 2003년 5월 27일로 도시 창건 300주년을 기념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네바강 위에 '성스러운 로고스'로 세워진 화강암 도시이자 인공문화도시였다.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1917년 10월에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한 진원지가 되어 새로운 사회주의가 시작된 이곳에 예수님의 흔적이 곳곳에 보존되고 있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막스 말대로 하나님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종주국 심장부에 공산당 지배 70년을 받고도 예수님을 그리는 러시아정교의 흔적이 성당에 그대로 곳곳에 보존돼 있고, 신자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었다. 숱한 순교자들을 냈고, 정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성경 등 종교서적을 불태우는 등 철저한 종교탄압이 자행된 역사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피터대제가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발틱해를 바라보고 있는 늪지대에 조성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많은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 러시아 발레의 본산인 마린스키극장을 위시해 1년 내내 오페라공연이 끊이지 않는 예술의 도시로 도시전체가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련시대 공산혁명의 비조인 레닌이 죽자 1924년 그의 공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시 이름을 레닌그라드로 변경했다가 1991년부터 옛 이름을 되찾았다는데, 혁명과 전쟁의 참화속에서도 도시의 건물을 포함한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유럽보다 더 고색 창연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푸시킨의 동상이며, '죄와 벌'의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의 흔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서구도 아니고, 동양도 아닌 난개발로 스카이라인도 뒤죽박죽인 우리 도시들을 떠올리면서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식한 도시행정의 한심함을 새삼 절감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여름궁전은 이제 예르미타시 박물관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표트르대제(피터대제)가 파티 장소로 쓰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대영,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1817년 완성된 바로크양식의 예르미타시 국립박물관은 그 규모와 화려함이 대단했다. 피카소, 고흐, 세잔, 고갱, 미켈란젤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루브르박물관보다도 진품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다는데, 300만여점을 준비하여 전시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50만여명이 공사에 동원되고, 공사기간만 40년이 걸린 세계 3대 성당의 하나인 이삭성당은 높이 102m, 지름 1.8m의 대리석 기둥 48개로 세워졌는데, 황금빛 돔은 100㎏ 이상의 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러일전쟁때 대한해협에서 크게 패한 러시아 발틱함대의 군함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 성피터스버그 니바 강변에 전시되어 있는데, 당시 500여명이 승선하는 거대한 군함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세계 조선산업 1등국이라는 우리지만, 러일전쟁 당시 발틱함대를 건조했던 제정 러시아의 모습과 당시 조선의 고종황제가 아관파천(俄館播遷)하여 지낼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겹쳐져 착잡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국의 왕과 왕세자가 자국의 왕궁에 있지 못하고 타국의 공관에 피신하여 1년여 타국 군대의 보호를 받았으니 약소국의 비참한 처지가 새삼 한탄스러웠다. 친러파 정치가로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러시아공사를 지내다 헤이그 특사 파견을 고종의 밀명을 받아 주도했던 이범진은 1910년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충격을 받고 이듬해 상트 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자결했다. 망국(亡國)의 한을 순국(殉國)으로 대응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4대 강국이 새로 판을 짜는 구한말을 연상시키는 소용돌이 치는 한반도정세를 보면서,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소회이다.

2012-07-11 박종렬

여성 주간에 한국여성의 위치를 생각한다

7월 첫째 주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정한 여성 주간이다.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국가와 지방정부가 여성 발전과 양성평등 촉진 등에 관한 의식을 높이고자 시작된 여성주간 행사는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1995년 즈음과 오늘 한국사회의 여성 지위를 비교하면 일면 나아진 점도 있지만 국제 비교를 통해 보면 여전히 여성의 지위와 삶은 차별적이고, 버거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로 보면 양성평등 이슈는 법과 제도 속에서의 여성참여 저해의 제도적 개선, 공적 영역의 여성참여를 저해하는 군경력 가산점제 폐지 등을 포함한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실시 요구,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던 호주제 폐지를 포함해 가정폭력 및 성폭력 등 여성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 요구, 정부 정책 과정의 여성 참여 확대 등이었다. 1995년 법을 제정하면서 세계화에 걸맞은 여성정책을 약속했던 문민정부를 넘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법이 정한 가치와 목표가 한국사회 전역에 반영되어 여성의 실질적 지위와 삶의 변화로 나타났을까?물론 이제 성이 직업 선택의 기회와 활동을 제한하지는 못한다. 즉, 기회는 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과 여전한 문화적 배경은 차별적 결과를 낳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여성단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약속을 해 왔지만 '2012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7%로 OECD 평균 61.5%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이고, 이마저도 여성 노동자의 43%는 저임금과 안정성이 위협을 받는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임신, 출산 후 재취업을 하는 40대 이상 여성 취업자의 대부분은 경력과는 상관없이 비정규직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오늘 한국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2% 수준으로 20~30대에 비슷했던 남녀 간 임금 수준은 40대 이상에서 크게 벌어지면서 양성 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화 현상으로 이어진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의 '고위직 여성비율 확대의 중요성: 아시아의 시각'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 이사회 내 여성비율은 1%, 최고경영진 내 여성비율은 2%로 아시아에서 꼴찌 수준임을 밝히고 있다. 물론 기업 고위직뿐 아니라 중간 관리직만 가도 여성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한국 대졸자 중 여성비율은 48%, 신입사원 때는 40%로 다른 아시아국가와 비교하면 평균수준은 되지만, 중간 및 고위급 관리자 때는 6%로 현격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 원인을 육아와 가사와 같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이중의 부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공직은 한 국가 정책의 표준이다. 이명박정부 들어와 TV에 비치는 청와대 참모의 회의 장면은 100% 흰색 와이셔츠의 모임이고, 17명으로 구성된 국무회의 역시 여성가족부장관을 포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고위 공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공직 내 여성 공무원 비율은 41.8%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4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6.3%로 여전히 낮은 상태이고, 2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2.4%에 불과한 실정으로 17년 전이나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전 여성단체 대표들이 차기 연도에 여성관련 예산 확대를 위해 기획처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 때 개념있다고 알려졌던 그 장관은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 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우리에게 이미 양성평등 사회를 넘어 여성상위 시대가 되어 도리어 남성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자신도 월급을 타다 주기만 하지 모든 가계 경제는 자신의 부인이 관리하고 본인도 용돈을 받는 처지라는 말로 형편없는 성인지 의식을 드러냈다. 오늘 한국사회의 흐름을 움직이는 위정자의 의식은 그 사이 얼마나 달라졌고,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최근에는 간담회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17년 전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글로벌 젠더 보고서가 증명하고 있다. 135개국의 성 평등지수 조사를 해 보니 우리는 107위라는 우울한 결과가 여성주간에 한국여성 정책 수준을 객관화해 주고 있다.

2012-07-03 한옥자

욕심 내려놓기

지난 주에 스승님과 대전에 갔다왔다. 대전에 가기 며칠 전에 용주사에 들러 포교국장 스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스님의 방에 걸려있는 위엄있는 부처님 사진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부처님 사진을 보아도 되냐고 여쭤보니 스님께서 선뜻 액자를 내려주셨다. 참으로 멋진 부처님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5대째 이어져오는 가톨릭의 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절집에 가기가 예사로웠다.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불교사상사를 연구하시는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면서 귀하고 멋진 부처님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사진에 있는 부처님은 예사 부처님이 아니었다. 스님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스님은 껄껄 웃으며 아예 액자를 열어 사진을 직접 찍으라고 한수 더 뜨셨다. 필자 역시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액자를 열어 사진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사진이 나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스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아니! 스님 이 분은 누구세요?"하고 여쭸더니 "이 분이 제 스승님이신 송담스님입니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송담 스님이라면 '남진제 북송담'이라 불리는 그 유명한 분이셨던 것이다. 일찍이 송담 스님의 위명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연인즉슨 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수행을 하실 때 눈빛이 너무 세서 일반인들이 쳐다볼 수 없어서 일부러 검은 선글라스를 쓰셨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소설속의 이야기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얼핏 전설적인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어 맞장구를 치면서 송담 스님을 어떻게 하면 뵐 수 있을까 하고 조심스레 질문을 드렸다.사실 필자는 여러 해 동안 선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 스님이나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회를 위해 희생하시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만나러 다녔다. 그 이유는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필자의 인생도 그런 분들처럼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을 알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이것은 대의를 위한 길 같지만 사실은 욕심 때문이었다.포교국장 스님을 통해 대전의 모 사찰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나이는 비록 동갑이지만 한 소식을 얻은 필자의 스승님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아우와 더불어 일요일에 대전에 내려갔다.다행히 송담 스님이 계시다는 곳이 대전 시내의 한 사찰이어서 쉽게 찾아갔지만 끝내 뵙지는 못했다. 얼마 전 인천의 다른 사찰로 가셨다는 것이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주유천하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아쉽기가 그지 없었다. 스님께서 한 말씀을 하시면 무엇인가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뵙지를 못했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절집의 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에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오르자니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라도 얻고자 하는 욕심이 발동해 30도가 넘는 더위에 산에 오른 것이다. 산의 약수는 가뭄으로 메말랐고, 산 능선에 있는 밭의 작물도 메말라갔다. 인간 세상의 탐욕이 거꾸로 백성들을 아수라 지옥으로 빠뜨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자마자 부처님께 인사하고 곧바로 내려와 막걸리집으로 향했다.나라의 중심부에 왔으니 막걸리나 한잔 하고 올라가자는 스승님의 제안에 약간 서운해 했다. 무엇인가 큰 것을 얻으려하고 왔는데 끝내 얻지 못한 것 때문에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스승님께서 막걸리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들고 필자의 호를 부르며 한 말씀하셨다. "학산! 우리가 비록 도를 얻지 못해도 좋으니 여기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합시다!" 그 순간 도는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에 있음을 알았다. 욕심을 부린다고 도를 얻는 것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막걸리에 도가 있음을 그 술잔에서 깨달았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 술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2012-06-26 김준혁

이상한 나라, 한국의 엘리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의 상금이 재정 악화로 인해 63년 만에 약 13억원으로 삭감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각종 상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중 상금 규모가 가장 큰 상은 총 15억원에 달하는 '호암상'이다.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선생의 사회공익정신을 기려 제정된 '호암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2년 전 상금을 3억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청암(靑巖)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을 계승,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청암상 역시 상금이 현재 2억원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가 실물경제에서 문화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파급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각종 상들이 오히려 상금을 인상하거나 적어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반갑고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단기적인 경제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문화 예술의 논리로 풀어나가려는 것에 우리 해법의 독창성이 있다. 필자는 2012년 6월 2일 '호암예술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이 준비한 렉처 콘서트에 참석한 바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로부터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지목받은 당사자는 정작 수상에 대해, 아마 이번 콘서트를 먼저 듣고 수상자 결정을 했으면 수상을 못했을 것이라는 유머 섞인 소감도 잊지 않는다. 아마도 윤이상을 잇는 급진적 모더니즘을 개척한 작곡가라는 평가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그날의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연주된 콘서트 곡 중 루이스 캐럴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발췌곡에 주목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젊은 세대라면 어린 시절에 한두 번쯤은 읽었을 법한 책이다. 이 책을 즐겨 읽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진은숙 작곡가 역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쓰면서 내 개인적 경험으로 오페라를 쓰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도 내가 꿈속에서 경험했던 것이 책을 통해 다시 반복되는 듯해 굉장히 놀라워하던 것이 기억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판타지 문학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실이 어둡고 힘들수록 우리는 우리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새로운 나를 재정립하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역시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를 통해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는 책의 2장 '눈물의 웅덩이'에 나오는 '나는 누구인가'로 이 작품의 첫 장면을 시작한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보인다. 어느 날 오후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던 엘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어 순식간에 몸이 엄청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른바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이 경험을 통해 오히려 엘리스는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신비한 세상과의 만남은 무한한 상상력을 촉발한다. 관습적 시선이 아니라 낯선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새롭게 보일 것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의 해법을 거기에서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문화 예술의 힘이 여기에 있다. 예술은 경제 논리가 요구하듯 단박에 가시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곰삭은 우리의 먹거리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우리만의 맛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미래의 한국은 물론 세계를 이끌어나갈 저력이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단지 기술이나 정보가 아니라 그러한 기술과 정보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발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이다.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니 위기에 처할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 예술을 더욱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살스러운 음향과 리듬으로 환상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재현해낸 진은숙 작곡가는 물론이거니와 탁월한 곡 해석으로 이를 다채롭게 표현해 낸 소프라노 서예리 역시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였다. 지금 세계무대를 주도해 나가는 한국 출신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눈부신 활동에서 이상한 나라, 한국의 엘리스를 상상해 본다.

2012-06-20 김구슬

왜 다시 삼강오륜인가-법고창신(法古創新) 지혜로 수용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다. "낡은 질서가 소멸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기 소르망은 주장했지만 우리 사회의 변혁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이다. 주자학을 신봉하던 조선조 봉건사회에서 근대국가, 또 현대국가로 숨가쁘게 변신한 한국은 가족관계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모계사회 등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과거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분명한 윤리관이나 가족관이 자리잡지 못해 숱한 갈등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최근 늘어나는 여성의 사회 진출, 자녀 양육이 외가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신 모계사회'라는 말이 유행하고 전통적 개념의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2010년 전국 중고교생 7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어머니 형제인 이모와 외삼촌을 아버지 형제인 고모와 백부·숙부보다 친밀하게 느끼고, 이모부가 고모부보다, 외숙모도 백모·숙모보다 더 가깝게 느낀다고 답해 친가보다 외가가 친밀하며, 심지어 '애완견도 가족'이라는 답변이 많았다고 전한다. 특히 저임금과 실직, 이혼 등으로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남성이 늘어나면서 여성은 육아와 가사 외에 경제적 의무도 짊어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신 모계사회'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남편이 천덕꾸러기가 된 자조적 농담도 유행한다. '집에서 한끼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씨, 한끼 먹는 남편은 일식씨, 두끼 먹는 남편은 두식이지만 세끼 먹는 남편은 삼시쉐끼, 세끼 먹고 간식까지 달라는 남편은 간나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마누라는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은 쌍노무쉐끼' 란다. 늙어 힘없고 수입이 줄어든 남편은 '구두 밑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칙칙한 낙엽' 신세로 가장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속담도 옛말이어서 1990년 1만8천명이던 처가살이 남성이 20년 지난 2010년 5만3천명으로 늘어난 반면, 시집살이를 하는 여성은 44만명에서 19만명으로 절반 넘게 준 통계청 인구주택조사결과는 남성의 처가살이 부활을 보여준다. 가정의 중심이 '바람처럼 왔다 사라지는' 남성 대신 여성이 되는 모계사회가 21세기 신인류를 통해 재현되고 있다는 증좌다. 이렇게 사회가 급변할수록 인간사의 덕목을 돌아보게 한다. 유교 도덕의 기본 덕목인 세가지 강령(綱領)인 삼강(三綱)과 사람이 항상 행해야 할 다섯가지 실천 덕목인 오륜(五倫)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하다. 강령이란 일의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며, 강(綱)이란 그물의 벼리줄(그물의 맨 위에 있는 굵은 줄로 이 줄만 관리하면 복잡한 그물의 밑 부분도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을 말한다.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즉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 오륜은 군신유의(君臣有義 : 임금과 신하는 의가 있어야 하고), 부자유친(父子有親 :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어야 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이다. 원래 중국 전한(前漢) 때의 거유(巨儒)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한 데서 유래되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윤리도덕으로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다. 봉건시대의 '통치와 도덕 윤리'인 삼강오륜이 지배층과 남성들 위주여서 선비 이외 직업에 종사하는 일반 상민과 여성들에게는 불리하였다. 이제 삼강오륜은 박제(剝製)된 교과서가 됐지만 도덕을 기본으로 한 인간의 원형질이 변하지 않는 한 현재도 살아 숨쉴 것이다. 옛것에 토대(土臺)를 둬 정밀하게 배워 본받으며, 그것을 변화시켜 새 것을 창조하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본다면 '삼강오륜의 근본정신은 잃지 않으면서 새 시대에 맞는 덕목으로 오늘날에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훌륭한 '실용적 인간학'으로 활용할만하지 않는가.

2012-06-13 박종렬

사도세자 서거 250주년과 자주의식

벌써 사도세자가 돌아가신 지 250년이 되었다. 비운의 왕세자라고 우리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사도세자! 그가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250년 동안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수원, 화성, 오산 사람들에게 사도세자는 매우 귀한 존재이다. 정조가 1789년 7월 15일에 그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옛 수원지역이 대대적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단지 옛 수원 지역만이 아니라 현재의 경기남부 지역 전체가 사도세자의 현륭원 이전으로 발전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남부 지역의 도시발전 역사에서 사도세자의 기여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바라보아야 할 때가 왔다.사실 사도세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정신병에 의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꾸며 남을 해쳤다"는 설이 있다고 하였고 자신은 그 말을 신뢰한다고 하였다.그렇다.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처럼 사도세자는 당쟁에 의한 희생물이었다. 2007년에 필자가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던 시절 사도세자의 서거 245주년을 맞아 화성행궁 앞에서 진혼제를 지낸 일이 있었다. 당시 이 진혼제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1만여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당시 진혼제는 인간문화재인 김금화 만신이 주도하였는데 3시간이 흐른 뒤 사도세자와 접신이 되었는지 김금화 만신이 절규에 찬 목소리로 '목말라, 목말라!'를 외쳤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사도세자는 1762년 7월 4일에 뒤주에 들어가 물 한 모금, 밥 한 톨도 먹지 못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겠는가! 그런데 '목말라, 배고파'라는 절규를 뒤로 하고 만신의 목소리는 어느덧 평온을 찾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과 같은 비극적 죽음을 만들지 말아 달라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쓰러지면서 진혼제가 막을 내렸다.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 같은 죽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당쟁으로 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쟁이란 것이 결국 서로의 이익을 위해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상대방을 죽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어떤 논리를 가져다 대어도 결국 백성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당쟁일 뿐이다. 그리 보자면 오늘날 정치 역시 조선후기 살육의 당쟁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그렇다면 사도세자는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일을 한 인물일까? 사실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세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역적으로 몰려서 죽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그에 대한 자료를 대부분 없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유고 문집인 '능허관만고'와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 그리고 아들인 정조가 정리한 그의 전기 '현륭원지' 등을 분석해 보면 그는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 인물이었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외세에 의해 우리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죽어 나가고, 아녀자들이 능욕을 당하고,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것에 대해 늘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외세의 침략을 당하지 않는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당시 안정적 입장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들에 의해 사도세자는 분란의 대상자로 지목되었고 결국 제거 대상이 된 것이다. 신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세자! 하지만 이제 그의 진정한 국정운영 의도가 밝혀지고 있다.사도세자 서거 250주년을 맞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사도세자의 원찰인 용주사와 공동으로 6월 1일부터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한다. 사도세자와 관련된 국내 첫 번째 전시이기에 귀한 자료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도세자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가 무엇인지, 현재 그 꿈이 이루어졌는지를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당쟁이 오늘날에는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였으면 한다. 서로를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정치를 하였으면 좋겠다.

2012-05-30 김준혁

미소 짓는 고흐

최근 몇 주간 복잡한 일들이 많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차였다. 그날도 학생들 행사에 참석하느라 꽤 늦은 시간에 귀가하면서 생각해보니 외국 출장이 이틀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평소처럼 메일을 확인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음악을 보낸다. 옛날 생각 좀 해 보렴." 친한 친구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배경으로 음악이 흐른다. 1888년 고흐는 약 9개월동안 함께 작업했던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게 되고, 정신 이상을 자각하고는 스스로 생 레미 정신병원을 찾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은 생 레미 병원에 있던 1889년 6월에 그린 그림이다. 돈 맥린이 부른 이 팝송은 예전부터 좋아해 친구와 즐겨 부르던 노래였건만, 이 아침 고흐의 그림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곡조와 가사는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별이 빛나는 밤/ 그대 팔레트를 푸른 잿빛으로 칠하고/ 여름 날 내 영혼의 어둠을 알아보는 눈으로/ 밖을 내다봐요/… /난 이제 알아요 그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그대가 온전한 정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 사람들은 들으려하지 않았고/ 들을 줄도 몰랐지요/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일 거예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보라고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해서 가사를 음미해가며 들어본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소통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 한 동안 대화를 별로 못한 것 같다.마침 뉴욕 출장길이어서 내친 김에 '별이 빛나는 밤'이 소장되어 있는 MOMA(뉴욕 현대미술관)로 향했다.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의미를 발견하려는 듯 고흐 앞에 몰려 있었다.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훨씬 전 창 밖 시골 정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새벽별만이 있었다." 이 작품과 관련해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글이다. 고흐에게 상상력의 끝은 항시 자연을 향하고 있었다. 별들로 상징된 상상의 세계를 지향하는 역동성과 기억의 세계를 재현하려는 정태성이 거친 붓질로 재현되어 있다. 순간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고흐의 내면을 일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상과 실제의 대립이면서 양자의 결합이기도 하다. 소용돌이치는 하늘 아래 첨탑으로 상징되는 조용한 시골마을이 있고 두 세계 사이에 생 레미 시절 고흐가 즐겨 그리던 사이프러스가 있다. 뿌리는 땅에 있으되 저 높은 곳을 향하는, 화염을 환기시키는 사이프러스는 격동과 고요, 그리고 상상과 현실을 연계하는 상징물이 된다. 첨탑으로 의미화된 시골마을은 떠나온 조국 네덜란드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나온 것이리라. 이렇듯 자연은 고흐에게 단지 피조물이 아니라 갈등과 상충이라는 우주와 인간세계의 본래적 의미를 재현하는 심미적 공간이 된다.발길을 돌려 지하철을 타고 거트루드 스타인 컬렉트가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향한다.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을 이마에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미술관 앞에는 우산을 받쳐 든 예술애호가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번 스타인 컬렉트가 전시된 특별관에는 알 수 없는 흥분이 가득 차 있다. 스타인은 미술 수집가였던 동생 레오 등과 파리로 이주해 살롱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마티스, 피카소 등의 미공개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 시인이자 예술 후원자이다. 상당 부분 그들의 소장품인 약 200여점에 달하는 스타인 컬렉트 중 청동시대의 어둡고 음울한 피카소 앞에 한참을 서 있다 계단을 돌아 내려오며 얼핏 보니 희랍의 조각품들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인간과 예술이 하나가 된 순간이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환희로 가득찬 예술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니 이제 고흐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다. 예술에 목말라 빗속을 뚫고 달려온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 고단할수록 예술은 우리에게 진정 의미있는 위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작품이 주는 깊은 영혼의 울림에 잠시 일상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갈 길은 멀지만 깨달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2012-05-23 김구슬

'초코파이 혁명' 한류 방어는 바람을 멈춰 세우려는 것…

폴란드 출신 유태인으로 소련 붕괴를 일찍이 예언했던 '전략의 달인' Z. 브레진스키는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담당 특별 보좌관을 지냈다. 국제전략가였던 그는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파악하고 통찰력을 갖춘 혜안으로 소련 붕괴를 미국의 승리가 아닌 부전승으로 평가했다. 당시 러시아에 근무했던 미국의 한 외교관은 소련 붕괴 과정에서 맥도널드 햄버거의 역할이 컸다고 주장했다.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모스크바에 상륙했던 맥도널드는 공산체제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 브레진스키가 말한 대로 인류역사의 '장대한 실험'이라던 공산주의 멸망의 촉매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패스드 푸드에 불과한 문화상품이 냉전시대 철의 장막이 둘러쳐진 소련을 붕괴시킨 비밀병기였던 셈이다. 유사 이래 제국이나 대기업의 멸망도 거의 대부분 내부 분열이나 부패로 시작되었다는 사실(史實)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유토피아를 파는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혁명을 수출하며 평등사회가 되어 천년 만년 지속될 것만 같았던 소련이 해체된 것은 서방의 핵 공격이 아닌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키는 '문화적 충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당시 소련정부의 개혁 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미국 문화가 유입되면서 세계공산주의 심장부 모스크바 시내에 개설된 맥도널드 가게 앞에 1천여명씩 장사진을 친 모스크바 시민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첫째, 누구나 줄을 서서 돈을 내면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고, 둘째, 카운터에서 주문받은 여자종업원이 큰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소비자는 왕'임을 실감했다. 셋째, 맥도널드는 집단농장에서 현지 재배한 감자 튀김을 제공했다. 맥도널드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식욕을 만족시키며 역설적으로 평등이라는 공산주의 이상을 당당하게 시현한 것이다.모든 악의 근원이 사유재산제도에 있다고 본 카를 마르크스는 사유제 철폐를 통해 계급없는 진정한 평등과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브레진스키의 지적대로 공산주의는 이처럼 '과도한 단순논리'를 시의적절하게 내놓아 한때 수십억 인구의 열정과 희망을 사로잡고 20세기 냉전체제의 역사를 지배했고, 그 망령은 지금도 유령처럼 한반도 일부에서 활보하고 있다. 코카콜라를 능가할 문화상품인 초코파이는 1974년 출시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100여 개 국에 수출되고 남녀노소가 즐겨먹는 '국민과자'다. 북한에 한류 전파의 선봉장인 초코파이는 외국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초코파이는 안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베트남 제사상에 오르고 중국에서는 결혼식 답례품으로 애용된다. 개성공단 근로자 4만6천여명에게 간식으로 지급된 일부가 북한 장마당(사설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하면서 북한 주민들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단일품목 매출 1조원대를 돌파한 과자업계 최고강자인 초코파이를 처음에는 근로자 1인당 하루 2, 3개씩 나눠 주다 생산성과가 좋으면 '인센티브'로 하루 10개 이상 주는 업체가 생기면서 평양 장마당으로까지 유입되고 있다. 간식 시간 뒤 쓰레기통 어디에서도 초코파이 포장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10여명씩 생산라인별로 '초코파이 계(契)'까지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인에게는 영어나 일어, 중국어로 적확(的確)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정(情)과 한(恨)이라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언어가 없으면 사고할 수 없다'는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고려하면 초코파이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서인 이 정(情) 콘셉트를 광고로 활용해 장기적으로 브랜드 관리에 성공했다는 평가다.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개성공단 노동자 평균 월급은 약 12만여원인데 암시장 거래가격이 개당 무려 1만원에 거래되면서 간식으로 받는 초코파이를 모아 팔면 임금보다 더 많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에서 사치품 대접을 받는 초코파이가 한류 심벌로 떠오르면서 초코파이 폭발력은 모스크바의 햄버거에 비견된다.탈북자 2만명시대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유동적인 한반도 정세는 북한이 아무리 '한류'를 막으려 해도 '바람을 멈춰 세우려는 것과 같다'는 말을 상기시킨다.

2012-05-16 박종렬

가정의 달 5월, 가족과 말이 아닌 대화를 하자

가족은 가장 오래된 인간 조직이며, 이 사회의 기초 단위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아득하게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또 개인적으로 휴식과 보호, 안정과 위로의 안식처이면서 자기 내면의 세계를 추구할 수있는 공간이다. 가족은 관계를 기초로 맺어진다. 가족관계는 혼자가 아니고 2인 이상이 서로 노력해서 일구어가는 정원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정원에 대화가 없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한 단순한 연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대화가 소외되고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의 초록 잔치가 절정에 이르렀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그 잔치 행렬에 알록달록 손에 손을 잡은 가족 나들이 행렬이 이어진다. 가족이라야 달랑 두 식구인 우리 가족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지나는 사람 구경과 모여앉은 가족 무리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가끔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봄나들이는 김밥과 맛난 음식을 싸들고 나와 봄꽃 향기를 가득 실은 간지러운 봄바람을 쏘이면서 지천인 꽃과 새로 갈아입은 초록잎 구경도 하고, 가족간 바빠서 나누지 못했던 일상생활의 나눔과 공유, 그리고 이해에 더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나눌 추억을 만드는 자리이다. 물론 나서는 순간 나들이길 기대는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 욕구는 소통하고 상호 사랑하는 가족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는 오가는 길의 그 다정했던 모습들과는 달리 모여앉은 가족들의 시선이 제각각임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 많은 가족들이 이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선 고정을 넘어 두 귀에 이어폰을 끼고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각자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식사시간에는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니 준비한 음식을 펴 놓고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도 모든 가족의 시선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머물고 거의 대화없이 점심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4시간여를 머무는 동안 가족이 나눈 이야기는 필요한 물건을 달라는 요구 소리와 더 먹겠느냐는 의사를 묻는 말, 어떻게 하라는 지시, 그만 가자고 털고 일어나는 소리 정도였다. 이런 수준의 나눔은 대화라기 보다는 말을 나누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옆자리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간 대화 부재는 통계가 증명해 준다. 얼마 전 직장인 남녀를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가족간 대화 시간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0%가 1시간 미만이라고 답변을 했다. 그 중에는 30분 미만인 경우도 39.3%나 되었다. 그 대화의 질도 봄나들이 길에 만난 그 가족처럼 대화가 아니라 말에 해당한다면 최소한 40%의 가족은 대화없이 사는 것이다.최근 '함께 있는 외로움(Alone Together)'이라는 책을 펴낸 MIT공대의 셔리 터클 교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잘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단순히 연결만 될뿐 대화를 희생하고 있고, 기술에 의존하면서 사람간의 관계가 줄어들고 있다며, 아이들이 실제로는 상대방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는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기술이 식탁을 점령하여 유일한 대화 광장인 식사 시간마저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집안의 부엌이나 식탁을 기계의 해방구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시간을 이용해 대화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알려주자고 주장한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늘어나는 청소년 문제, 가정 폭력, 이혼, 가족 구성원간 갈등의 근저에 가족원간 대화 부재가 깔려 있다. 말을 할 줄 알지만 대화를 할 줄 모르는 가족이 많다. 대화하는 기술 습득이 이루어져야 하고,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선 가족간 대화 회복을 위해 작은 약속부터 시작해 보자. 가족간 부엌과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추방하자'는 결정부터 대화로 합의를 해보자. 밥을 먹으며 눈을 맞추고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가족 관계가 눈에 띄게 변화할 것이다.

2012-05-09 한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