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다산의 꿈, 백성의 나라

이번 주 토요일은 다산 선생의 묘제(墓祭)가 있는 날이다. 다산 선생이 돌아가신 날이 결혼한 지 60주년이 되는 회혼일인 1836년 2월 22일인데 당시 양력으로 4월 7일이었다. 그래서 다산연구소에서 이날을 기려 해마다 다산 선생의 생가 위편 언덕에 있는 묘소에서 묘제를 지내고 있다. 다산 선생의 묘제를 앞두고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이 한창 국민을 위한 선량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하여 자신을 내던지겠다고 목청 높여 외치는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가득하지만 과연 이들중에 진정한 목민관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이 사는 시대가 '성인(聖人)의 도(道)'가 땅에 떨어진 시대라고 말이다. 백성들을 위한 선하고 정직한 마음과 정책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너무도 많이 목민관을 하고 있어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흑산도에 유배가 있던 둘째형 정약전 선생에게 보낸 편지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 세상은 더 이상 썩을 데가 없습니다." 세상이 하도 썩어 있어 더 이상 썩을 곳이 없다는 다산의 탄식은 그 당시 상황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오로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해야 할 책무를 잃어버리고 강한 자에는 굴복하고 약한 자를 강압하는 행태를 보이는 인간들이, 조정과 지방 관리와 이들과 결탁한 토호, 장사치 등이 나라에 가득했기 때문이다.다산의 자조와 탄식은 계속되었다. 호랑이와 매는 사나워서 사람과 동물을 잡아 먹으나 배가 부르면 옆에 사람과 동물이 있어도 사냥하지 않는데,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관리들은 욕심이 끝이 없어서 백성들을 착취하여도 배불러하지 않고 끊임없이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백성을 위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할 자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으니 성인의 도는 땅에 떨어졌고, 세상은 썩을대로 썩어 더이상 썩을 곳이 없게 된 것이다.그래서 다산 선생은 목민심서 서문에 수령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였다. 수령은 본인이 되고 싶어서 되면 안되고, 많은 백성들이 수령이 되어야 한다고 천거해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가지고 싶거나 혹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금력을 얻고자 하는 이들, 더 나아가 무능력하여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이들은 절대 수령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과 지역에서 백성들을 위한 올바른 마음과 실천력이 있는 이들이 발굴되어 온 백성들이 그가 우리 지역에 와서 수령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야 수령 노릇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요즘 국회의원 선거를 보며 과연 이들 중에 얼마나 다산이 이야기한 백성들이 원하는 목민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세상이 과연 백성을 위한 나라인가 하는 탄식을 하곤 한다. 백성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나라라면 다산이 탄식하던 시절의 나라 처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다산 선생이 꿈꾼 나라는 백성을 위한 나라다. 바로 민국(民國)인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자신의 저서 '탕론(蕩論)'에서 군주가 잘못하면 군주를 내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하였다. 백성의 힘이 이토록 무섭기도 하고 백성들을 위하지 않으면 권력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리석은 백성이 되어 가진자들의 꽁무니에서 약간의 떡고물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체가 되어 살 것인가를 백성들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제발 이번 선거에서 백성들이 원하는 진실된 목민관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다산 선생의 꿈이자 백성을 위한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04-03 김준혁

춘설을 뚫고 나온 새싹들

이번 학기 학생들과 미국문학을 공부하면서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을 읽고 있다. 자연이 자신의 집이었던 소로의 세계를 직접 느끼고 싶어 가까운 양재천을 향해 집을 나섰다. 느닷없이 연무 같은 '춘설이 난분분하니' 설풍에 눈앞이 아득하다. 발길 가는 대로 한참을 걷다보니 거짓말처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이 하얀 눈꽃송이 옷을 입고 연두색 새싹을 뾰족이 내밀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나온 것들이다. 새삼 자연의 경이를 깨닫는다.소로는 에머슨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초절주의자이면서 동양사상에 깊이 심취한 바 있어 노장(老莊)의 무위,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가 생전에 소유한 것이라고는 보트를 제외하고는 텐트 하나뿐이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28세가 되던 1845년 고향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여를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소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말하듯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구태여 소로에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자신의 저서 '월든'에서 시종 강조하고 있는 '단순함'과 '느림'의 미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월든'에는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남보다 앞서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의미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문명생활이라고 하는 복잡하고 험난한 바다 한 가운데 있다. 국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조직체가 되어 있어 자기가 쳐놓은 덫에 스스로가 걸려든 형국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사치와 낭비, 목표 부재로 인하여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른 이 국가와 가정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구제책은 단순함과 뚜렷한 목표의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무질서하게 난립해 있는 우리 정부의 수많은 정책 과제들, 행정부가 바뀌면 조령모개 식으로 언제든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사업들,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엄청난 재정과 자원 등,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목표 의식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통한 단순함의 미학을 강조하는 19세기의 현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우리는 또한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는 왜 우리들이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반문한다.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무도병 환자처럼 잠시도 머리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국가든 가정이든 우리 개인이든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지식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수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 하나라도 놓치면 혼자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정신은 깨어 있기에는 너무나 피로해 있어 최근에는 우울증, 자살 등 병리적 징후가 점점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철학자에게는 소위 뉴스라는 것은 모두 가십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우리는 롤러코스트를 타듯 초고속으로 달리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무엇을 보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가장 빠른 여행은 도보 여행'이라는 소로의 경구를 되새기고 싶다. 우리는 진리가 저 먼 어떤 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오로지 미래를 향하여 서둘러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매 순간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영원처럼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겨울의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쑥과 냉이가 긴 긴 잠에서 깨어나 사방에서 소곤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새싹들의 반란은 단순하고 느리지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질서를 향한 자기실현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단순하고 느리게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진정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한 생명력이 될 것이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동자에서 새싹들과 같은 우리 시대의 희망을 본다.

2012-03-28 김구슬

고조되는 한반도의 핵위기

담담타타(談談打打) 타타담담(打打談談). 상대가 강할 때는 회담하자며 대화하는 척하고, 약할 때는 가차없이 때리는 마오쩌둥(毛澤東) 전법이다. 그는 '한 톨의 불씨로 광야를 불태운다'며 소수의 중국공산당원을 이끌고 1924년 쑨원(孫文)을 설득해 1차 국공합작으로 공산세력을 확대했다. 이어 대장정(大長征)으로 미화된 2만 5천리 패주(敗走)로 정강산까지 쫓겨가 오합지졸로 만신창이가 된 공산당을 1936년 장제스(蔣介石)와의 2차 국공합작으로 재건, 정세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전략가였던 그는 마적떼 수준의 유격대 홍군을 팔로군으로 키우며 국민당과 두 차례 국공합작(國共合作)에 성공, 1949년 국민당을 대만으로 내쫓고 중국을 창건했다. 북한은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담담타타 타타담담이라는 통일전선 전략전술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정권 수립 후 지속적으로 대남 적화전략에 원용하고 있다. 적화통일을 전략적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북한은 그동안 '도발한 뒤 회담을 통해 대가를 얻고, 다시 도발하는' 타타담담 담담타타식의 전형적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북-미 대화의 새로운 '국면'으로 나타난 베이징의 2·29 회담에서는 북한의 '담담'으로 미국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미국의 식량 공급 대신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플라토늄 농축활동 잠정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식량지원 모니터링 등'을 북한이 약속하자 성급하게 6자회담 재개 등이 기대됐지만 김일성 사망 직후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판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아니나 다를까, 2009년 4월 '광명성 2호'를 발사했던 북한은 2·29 합의문 발표 16일 만에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4월 15일)을 맞아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설정한 북한이 핵탄두도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위성으로 위장해 발사하겠다며 '타타'를 선언하고 나서자 한국과 미국은 "지역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라고 경고했고, 중국 러시아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처럼 타타담담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구사하고 있는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한 것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금지라는 2·29 북미 합의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피하면서도 앞으로 있을 대미 협상에서 새로운 카드로 이용하려는 이중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시간에 쫓기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공습 위협과 얽혀 있는 이란 핵문제로 어지러운데 북한까지 맞대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대미협상에서 북한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취약점을 활용할 것으로 보여 미국은 2·29 합의 파기냐, 유지냐를 놓고 딜레마에 직면했다.북한은 이미 10여기를 넘어서는 기준원폭(20kt 폭발위력) 수준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플라토늄을 확보했고, 핵실험(2회)을 통해 핵무기 보유사실도 분명히 했다. 남북 간 전력(戰力) 불균형, 유사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 우려가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3월 들어 당·정·군이 총동원돼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특히 김정일 100일 탈상과 겹치는 오는 26, 27일 열릴 핵 안보정상회의 목전에 대남 비난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본토를 직접 거론하며 '타격강도와 타격계선에 한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전쟁수단', '그 어떤 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최첨단 타격장비' 등을 거론하며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핵폭발 때 발생하는 전자기파로, 컴퓨터와 통신장비 등 모든 전자장비를 일거에 마비시켜 버린다는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 등 전자전을 상정하고 있는 듯한 북한의 '무자비한 복수전'을 강조하는 대남(對南) 공세가 체제안정이 최대 과제인 '김정은 리더십' 안착의 시금석으로 포장된 것 같아 심상치 않다.북한 핵문제는 '바위 위에서 계란 굴리듯' 조심조심 처리해도 걱정되는 '민족의 대우환(大憂患)'으로 북한 리스크에 따른 국가위기관리에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깨어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없애지 않으면 핵무기가 우리를 없앨 것이다'는 명제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12-03-21 박종렬

'老-老 케어' 지원할 방법은 없나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노인문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이야기의 시작은 노후 준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80대를 넘어서는 부모님 문제가 화제가 된다.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해방과 전쟁, 분단을 경험하였고, 농촌에서 태어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뼈가 부서져라 일해 자식을 가르쳐 온 세대들이다.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현재 노인 세대는 당신들의 노후는 자식들이 책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 왔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고 살고 싶어도 이미 그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노인 가구 유형을 보면 소위 자식의 부양을 받는 3세대 동거 가족 유형은 드라마에서조차 낯설고, 대부분 노인들은 혼자 살거나 부부만이 세대를 이루어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의 출발은 수명은 연장되지만 건강 나이는 연장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후기 노년기에 갈수록 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보살핌으로 생활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런 문제에 세심하게 대응할 만큼 우리 사회는 준비가 덜 돼 있다. 현재 노인복지정책 및 사회서비스의 한계가 가족 안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미치는 사회적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대책을 세우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비공식 보호 제공자의 보호역할과 보호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노인 당사자의 욕구와 노인 돌봄자의 변화하는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서비스가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되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정책 내용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사적 영역이고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가 사회복지서비스 정책을 미루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심한 경우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 노인들은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질병 정도가 중해 등급을 받아 요양시설이나 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이면 장기요양보호제도를 이용하겠지만 그 틈새 노인들은 돌봄의 측면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자녀와 친척이 노인 돌봄의 제일 주체였지만 최근 사회 변화는 가족과 지역사회에 기존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노인 건강관리의 일차 주체자는 노인 자신과 부부에게로 전도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생각해 보고 싶은 문제는 老-老 케어의 문제이다. 노인 부부 가구에서 한 배우자에게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다른 배우자가 노인을 돌보는 문제에서 老-老 케어 문제가 생긴다.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전체 노인 가구 중 노인 부부 가구는 39.7%에 이르고 특히 이런 추세는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인 부부의 경우 건강한 동안은 서로 돌봄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지만 한 배우자에게 건강 문제가 발생되면 남은 배우자는 환자를 돌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때 남은 배우자에게도 다시 건강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대부분 정책은 예방에 집중되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도 거시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예방비용은 질병 발생 후 치료비용보다 적게 들지만 건강보험이 치료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어 예방에는 대부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인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도 이미 문제가 발생한 노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노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가정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최근 세계적인 사회복지 기조 역시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필요하다면 대형 시설보다는 가정 같은 안락한 소형 시설인 그룹 홈 중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익숙한 거주지를 포함하는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추세이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정부는 시설 중심의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고령 노인 부부가 가정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급격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에 대응하여 노인으로만 이루어진 가구에 대해 가족을 통한 지원을 대체할 사회서비스 내용의 변화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12-03-13 한옥자

수원시 공직자들의 '희망도시 만들기'

다산 선생의 문집을 읽다보면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그분의 시에 처참한 백성들의 모습이 너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 관리들의 탐학이 극에 달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백성들 수탈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그 가렴주구를 다산은 가슴 한쪽이 파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그 가슴 아픈 시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바로 '애절양(哀切陽)'이다. 군역 의무에 대한 터무니없는 세금에 항거하기 위해 스스로 남근(男根)을 잘라낸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내의 슬픈 모습을 그린 시가 바로 애절양이다. 다산은 이 모습을 보고 끝내 '관리들의 탐학으로 반드시 나라는 망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결국 90년 후에 그의 예언대로 되고 말았다.왜 나라가 망했냐고 물어보면 필자는 망설임없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종과 민왕후, 고위관리 등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사치, 그리고 지방에 근거를 둔 수령과 하급 이서배들의 부정부패로 망했다라고! 실제 조선이 망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나라를 운영하는 관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 참혹스런 36년의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그래서 관리, 즉 오늘날 공직자들의 인식과 행동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더불어 발전시키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나라라고 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왜냐고? 실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모든 사업을 국가가 주도하고 있으며, 국가 주도를 진두지휘하는 사람들은 공직자들이다. 이들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정책을 세우면 나라와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들이 거짓과 부정으로 가득하다면 나라와 국민들은 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공직자들이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게 인문학적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을 중요시 여겨야만이 지역과 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 절대로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사람을 사랑하면 자연히 자연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획과 헌신을 할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반드시 인문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인문학 강좌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혹은 광역자치단체가 스스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공직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최근 수원시가 필자가 재직하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인문학교육 협약식을 체결하였다. 인문학 도시 만들기를 천명한 수원시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인문학 교육을 전담하는 대학에서 다양한 커리큘럼과 검증된 교수진을 제공하여 수원시의 공직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역사 · 문학 · 철학 · 시민교육 등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재미와 감동이 공존하는 강좌들이다. 하루종일 바쁜 일과를 마치고 야간에 듣는 강좌가 비록 힘들 수 있겠지만 60여명의 수원시청 공직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이제 이들의 참여가 점차 확대되어 머지않아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인문학을 통해 사람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시민들을 위한 보다 올바른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부정부패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100여년전 그때처럼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불신과 배척이 사라지고 서로를 위한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의 인문학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고 이 교육은 반드시 성공될 것이다. 수원시만이 아니라 경기도의 모든 지자체가 인문학 교육을 추진하여 새롭고 희망찬 도시만들기를 출발시켰으면 한다.

2012-03-06 김준혁

동아시아 시대와 한국학

지난 2월 18~19일 국립대만대학 인문사회고등연구원이 주최한 동아시아 연구 심포지엄을 다녀왔다. 국립대만대학이 그간 대만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해오던 심포지엄에 올해 처음으로 한국을 포함시켜 명실공히 동아시아학이라는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고자 한 것 같다. 대만에서의 동아시아 연구는 주로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으며 이는 청일전쟁 이후 대만이 일본의 최초 해외 식민지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동아시아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필자는 한국학이 처음으로 심포지엄에 포함된 것을 두고 동아시아학의 종주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일본 학자들과 대만, 중국의 학자들의 태도에는 사소한 듯하나 복잡하고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명의 한국 학자 중 필자는 21세기가 동서 융합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동서양의 사유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흔히 동양이 인간과 자연, 나와 너, 그리고 정신과 물질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는 일원론적인 사유를 보인다면, 서양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혁명적 선언이 함의하듯 생각이 존재를 정의한다는 이성중심주의적인 이원론적 사유가 지배적이다. 사상이 감정을 앞서고, 정신이 물질의 우위에 있는, 그리하여 나는 너와 분리되고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게 되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유는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수정되기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유럽 문명의 붕괴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성의 황폐함을 목도한 일부 유럽의 지성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타자를 지배하고 자연을 착취하려는 이성중심주의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이원론에 있다고 진단하여 나와 너를, 정신과 물질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일원론적 사유만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게 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였다.필자가 주목한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 역시 뜻있는 선비들이 무고하게 죽어가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 욕망만이 발흥하는 탁류와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화(士禍)를 경험하면서 그 누구보다 시대의 불행과 무질서를 발견하였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주희를 스승으로 삼아 주자학을 독자적으로 체계화했던 퇴계는 무엇보다 우주 만물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면서 조화로운 통일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물은 서로 대응하는 두 개의 성질로 이루어져 있으나 양자는 서로 대립적이거나 적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며 보완적인 것이어서 우주와 자연의 궁극은 이 양자의 조화와 통일에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천인합일을 강조하는 퇴계의 일원론적 우주관은 원론적으로 동양의 기본적인 사유일뿐더러 당시의 무도(無道)한 사회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가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퇴계는 2천여 편의 시를 쓰기도 했는데 퇴계에게 학문을 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른바 학문소이정심(學文所以正心), 즉 학문을 하고 시를 쓰는 시초도 끝도 모두 '바른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바른 마음이란 타자를 나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일원론적인 자세이다. 퇴계를 동양 사상의 시각에서 뿐 아니라 현대 서구 사상의 문맥 속에 놓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를 융합과 소통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시의성을 고려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학의 현대적 의의를 밝혀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심포지엄이 끝나고 소감을 피력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이 심포지엄이 21세기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동서가 대결하거나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하는 의미 있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학자들뿐만 아니라 서구의 학자들도 참여하여 서양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동양의 관점에서 서양을 바라보기도 하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언급으로 마무리했다. 필자의 발상에 공감을 표하는 발언이 이어지는 것을 들으며 적어도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대결보다는 통합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대학 캠퍼스에 줄지어 서 있는 종려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늦겨울 비로 한기가 으슬으슬 스미는 대회장에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2012-02-28 김구슬

지도자 선택이 국운(國運) 좌우

흑룡의 해라고 유난히 떠들썩하게 시작된 금년도 벌써 2월이 다 가고 있다. 어느 해나 어렵고 시끄럽지 않은 해가 없는 나라였지만 금년은 향후 10여년 국가의 명운(命運)을 가를 중차대한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역사적인 전환기다. 특히 총선과 대선이 20년만에 동시에 치러지는 정치적 빅 이벤트가 열리는 해다. 한마디로 무대와 배우가 바뀌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시대적 분기점에서 여야는 사활을 걸고 집권전략을 펴고 있다. 연일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이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발표되는가 하면 예산의 뒷받침은 아랑곳하지 않는 각종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강이 없는데 다리를 논다'는 식의 공약(空約)은 물론이고 어설픈 정책들이 남발되고 정치권은 이전투구(泥田鬪狗)가 한창이다. 언론도 천방지축으로 정당들이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공약이나 정책을 여과없이 보도하고 있다. 양시양비론으로 선심성 공약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며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식의 보도자세다. 정책을 검토하고 비판하는 능동적 선거보도가 아닌 워게임 중계하듯 경마식(競馬式) 보도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유럽의 재정위기로 세계경제 위기가 장기화될 전망이고, 국내적으로는 기업실적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 등 국가재정도 악화되는 등 국제환경과 나라 살림은 녹록지 않은데 선거를 둘러싼 국론 분열 등 정쟁의 과열현상은 나침반을 잃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불안감을 자아낸다. 한·미 FTA를 둘러싸고 공수(攻守)가 바뀐 여야 대결은 국익앞에 일치단결해도 힘이 부족한 판국에 적전분열현상을 드러내고, 표만을 의식한 부산저축은행 관련법 처리는 법치주의 근간을 훼절시키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분명하고 치열한 성찰 없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해야 할 각종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하고, 지역사업에 예산을 끌어온 것을 전리품인양 내세우고 있다.'한 인물이 한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는 말처럼 북한은 카리스마를 가진 독재자 김정일 사망으로 권력공백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3대 세습자인 20대 지도자가 통치하는 '불확실한 리더십'은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신흥 핵보유국으로 분류되는 '불량국가'의 낙인이 찍힌 북한은 핵 위기 뿐만아니라 식량위기, 경제위기, 권력승계에 따른 체제위기 등 각종 국가적 리스크가 중첩된 시한폭탄같은 중압감을 주고 있다. 비록 파탄국가라는 비아냥속에서도 '핵을 포기하는 것은 체제를 포기하는 것'과 같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핵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는 북한과의 대결은 한반도 정세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해전 등으로 단절된 남북접촉은 개성공단이라는 희미한 연결통로로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정경분리라고는 하지만 과거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상을 보는 듯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기성관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뒤죽박죽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은 도무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기 어려운 고단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금년 임진년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국난이 자주 일어나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던 불길한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해다. 1232년 임진년에는 6차례나 우리를 침략했던 몽고의 2차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몽진(蒙塵)하는 치욕을 겪었다. 1592년 임진왜란은 1910년 조선병탄을 위한 전주곡으로 백성들이 도륙당했다. 1952년 임진년에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백만명의 인명이 살상되었고, 이산가족 문제 등 한반도는 그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아직도 휴전상태다.앞으로는 국가 단위의 경쟁을 생각하게 되고 생존전략이 국가 차원에서 모색되는 국제정치의 흐름속에서 '전략이 없는 국가는 좌절한다'고 하지 않는가.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금년에 우리 모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차원의 문제'로 현실을 인식하고,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들어설 새 국회와 정부 지도자가 어떤 국가전략과 역량을 가진 인물인지 부릅뜬 눈으로 예의 주시해야겠다.

2012-02-21 박종렬

정지된 세상, 그러나 급격히 변화하는 인도

인도 여행 동안 우리를 태웠던 버스 뒤쪽에 'Incredible'이라는 글자가 아주 큼직하게 적혀있다. 우리네 상식으로 보면 이 글자는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글자이지만 인도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상징으로 이 단어를 쓰는 듯하다. 그렇다. 정말 모르겠는 것이 인도 모습이었다. 믿을 수 없다기보다는 잘 모르겠는 것이 인도다. 70년대 한국사회 모습인가? 아니 그 이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50년대 모습인가라고 생각하고 보면 한편으로는 2012년 오늘 세계를 선도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고, 자연에 순응하고 그 일부분으로 살아가는 모습인가 하고 보면, 자연을 적당히 조정할 줄 아는 모습들이고, 길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보며 오로지 신을 추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하고 보면, 각자의 삶을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하여튼 잘 모르겠고 혼돈스러운 것이 지난 보름간 내가 만난 인도의 모습이다. 물론 겨우 보름간 주마간산으로 돌아본 그 넓은 땅을 어찌 한두 마디로 표현하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한 국가(지역)는 그곳에 처음 간 사람이 가장 잘 표현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여행에 맛을 들일 만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인도 여행을 꿈꾼다. 나 역시 일상의 때를 벗고 싶거나 사람에 지쳤을 때 떠남의 공간으로 항상 인도를 꿈꾸어 왔다. 여러 차례 계획을 세웠지만 그 때마다 이런저런 일로 못 나섰다. 그러나 2012년 1월 역시 총선, 대선이 있는 한국 역사의 변곡점이 될 중요한 시기라 주변 눈치도 보이고, 맡은 일도 있어 선뜻 나서기 어려웠지만 모든 것 내려놓고 영혼의 땅 인도로 훌쩍 떠났다.내 인도여행은 힌두인의 성소 인더스 강변에 자리한 바라나시에서 시작했다. 첫 인상은 '놀람' 그 자체였다. 떠나기 전 충실히 자료를 읽기도 하고 여행기를 읽기도 하고, 영화도 몇 편 보고 여행길에 올랐지만 첫 느낌은 그 모두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 우선 너무 많은 사람에서, 그 다음은 귀청을 때리는 소음에서, 그 다음은 너무 당당히 하던 일 계속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시바신을 차에 태우고 미친 듯 춤을 추며 너무 즐겁고 신나게 종교 활동을 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고 다녀왔던 그 어느 지역과도 다른 인도와의 첫 대면 느낌이다. 오직 사람의 두 다리 힘만으로 움직이는 릭샤를 타고 어둠이 내리는 갠지스 강변으로 오는 길은 시간을 뒤로 돌리는 과거로의 여행길이었다. 주변 상점 모습이나 사람들의 복색, 길을 오가는 소와 개의 모습, 그 주변에 죽 늘어선 구걸하는 사람들, 몇 살을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나무들, 큰 나무 밑에 의레 차려진 신당, 이 모두는 우리가 상상하는 21세기 모습이 아니고 박제된 어느 역사적 시점의 모습처럼 보인다. 우기 때나 건기 때나 3천년을 하루같이 이어왔다는 갠지스 강변의 다사스와메드 메인 가트에서 벌어지는 뿌자 의식은 정지된 세상 인도 모습의 결정이다. 어쩜 내 자식의 자식이 100년 뒤 이곳을 찾는다 해도 그 의식은 정지된 채로 그대로 이어질 거다. 이와 같은 모습은 비단 바라나시에서만이 아니다. 도시화로 주거 환경이나 생활 양식은 도시화된 생활을 하면서도 생활 연료로 익숙한 소똥이 도시 안에서 거래되고 한편에서는 소똥이 말려지는 풍경이나, 이른 아침 강가나 도로변에 죽 앉아 잡담하는 듯 보이던 그 사람들이 사실은 아침 통변을 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감히 인도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일 거다. 여전히 정통을 고수하는 여성의 복색이나 도시 곳곳에 붙어있는 여성폭력 근절 광고는 지참금 문제와 함께 견고한 가부장 문화의 정지된 인도의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뭄바이를 비롯해 몇몇 도시의 현대화는 또 다른 인도의 모습이다. 뭄바이 해변을 따라 늘비하게 늘어선 고층빌딩과 구경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초호화 호텔, 총을 든 경비원이 지키는 현대식 마켓, 세련된 차림의 가족들의 나들이 모습 등은 변화하는 인도의 모습이다. 차에서 지낸 시간이 차를 벗어나 지낸 시간보다 더 많았던 인도여행을 마감하며 이 극단의 차이를 극복하는 인도의 힘은 무엇인지, 종교의 힘만으로 해석이 가능한지, 아님 차이를 넘어 다양성을 인정하는 인도 문화가 그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한국사회 갈등 해결의 시사점도 함께 생각해 본다.

2012-02-14 한옥자

대추나무골 조원시장의 나눔 이야기

수원의 북쪽에 조원시장이 있다. 조원동은 대추나무골로 불리는 동네로 조선시대부터 조상님들에게 지내는 제사의 제수중에서 대추는 수원의 조원동 대추가 최고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기고 아버지의 제사를 위한 대추를 마련하기 위해 풍수적으로 좋은 이 마을에 대추나무를 심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이 마을의 입구에 그리 크지 않지만 정감이 가는 시장이 몇 십년 전부터 자리잡게 되었다. 마을 이름이 조원동이니 당연히 마을 시장 역시 조원시장이라고 했다. 조원시장이 전통시장으로 지정을 받은 것은 몇 년 전이다. 시장으로 인가를 받아 장사를 한지는 꽤 되었지만 정식으로 전통시장 인가를 받은 이후부터 시장 상인들의 노력은 남달랐고 그래서 전국적으로도 안정된 시장으로 정평이 나있다.그런데 이 시장은 일반적인 시장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이 마을에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강의하러 갔다가 조원시장 사람들을 만나고 반해버렸다. 시장 사람들이 장사를 해서 얻은 이익을 지역 주민들을 위해 환원하는 나눔과 베품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가진 사람들은 거꾸로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그런데 조원시장 상인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조원시장 상인회 회원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인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기 위해 장사를 한다는 의주상인 임상옥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생을 하며 얻은 이익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상인회에서 지역의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흔쾌히 기금을 내어 놓는다.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상인회장은 연간 600여만원의 쌀을 주민자치센터에 기부하고 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이들은 상인회에서 김장을 하여 저소득 지역 주민을 위해 나누어주고, 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를 한다.그런데 이러한 일보다 더 깜짝 놀랄 일은 바로 마을의 어린이들을 위한 상시 공부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는 것이다. 수원시가 민선5기에 들어와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마을만들기 사업이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인데 조원동 마을만들기에 상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대추나무골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을 가지고 조원시장 상인들은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서로 일을 나누어 봉사하고 있다.어린이들을 위한 역사교육, 글쓰기 교육 등은 모두 상인회에서 기획하여 자발적 재능 기부와 좋은 강사들을 모셔서 운영하고 있다. 상인회의 사무실내에 독서실과 강의실을 만들어 이번 겨울방학에도 2달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운영되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50여명의 아이들의 웃는 소리와 흥겨워서 박수치는 소리는 시장의 활력을 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 속에서 마을이 새롭게 태어나고 행복은 충만해지는 것이리라. 이러한 나눔의 실천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이제 조원시장은 단순히 마을의 시장에서 벗어나서 화성과 수원야구장과 연계된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거듭 태어나려고 준비중이다. 프로야구 10구단의 수원 유치가 확정되면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장으로 끌어들여 시장과 지역 주민의 경제활성화와 방문자들 모두에게 기쁨을 주려고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의 노력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들을 위해 여러 기관들이 함께 노력하였으면 한다. 그래서 나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지 보고 싶다.

2012-02-08 김준혁

흑룡의 해와 여의주

'점을 하나 찍으세요'. 오랜만에 붓글씨로 '용(龍)'자를 써서 새해 연하장을 만들고 있는 자기 남편에게 선배가 한 말이다. '용(龍)'자 옆에 점을 콕 찍어 여의주를 만들어주라는 조언을 하는 바로 그때 필자가 우연히 새해 인사차 전화를 한 것이다. 휴대전화에 찍힌 '김구슬'을 보며, "이건 '금구슬' 아니야? 그럼 바로 이게 여의주잖아." 부부는 때마침 걸려온 필자의 이름을 보며 신기해하면서 '점'을 찍었다고 한다. 며칠 후 약 2년 만에 만난 선배는 자주 전화도 하지 않는 내가 바로 그 순간 전화를 준 그 사실을 여전히 신기해하며, '올해는 김선생의 해야'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여의(如意)는 '뜻대로', 주(珠)는 '구슬'이므로 여의주는 뜻대로 할 수 있는 영묘한 구슬이라는 뜻이니 성취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무심히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것에서도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소설가 특유의 섬세한 직관과 통찰에 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또한 용이라고 하면 여의주가 핵심인데 요즘은 왠지 '화룡점정'에만 치우치고 있으니 핵심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불만 섞인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완결성을 강조하는 화룡점정의 실용주의에 밀려 여의주가 함의하는 상상력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내친 김에 설날 아침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용 전시회를 보러 갔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장자는 기(氣)를 우주와 생명을 주재하는 천지의 근원이자 도덕성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장자'의 '천운'편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용은 천지의 정기가 모이면 용의 모습을 취하고, 천지의 정기가 흩어지면 아름다운 색채가 되어, 불가사의한 변화를 하며, 더욱이 구름을 타고 청담주야(晴曇晝夜)의 변화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용을 '천지의 정기'가 모인 조화와 융합의 원리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용을 물의 신으로 보아 농민들은 풍작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어부들은 풍어를 위해 용왕제를 지낸다. 용을 물의 상징으로 보아 기우제와 용왕제를 지낸다는 것은 농민의 꿈이요 어부의 꿈인 용꿈을 원한다는 것이다. 전시관에서 유독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붉은 곤룡포를 입은 왕의 형상이다. 사슴, 낙타, 토끼, 뱀, 매, 호랑이 등 여러 동물들의 좋은 점만을 뽑아 만든 만큼 '장자'에서 말한 조화와 융합, 그리고 권위를 상징하는 용은 예로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지향하는 왕의 정체성을 표방하기에 적절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서 조화와 융합은 잊은 채 권위만을 행사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 절대자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용안에 흐르는 용루에서 진실과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역사는 수없이 증언해 보인 것이다. 권력과 진실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직도 순전히 국민들의 몫인 것 같다.문제는 용은 보통 시시하게 개천 같은 데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이다. 과거의 계급사회가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이 되기까지는 무명의 물고기나 이무기의 운명으로 살아야 한다. 등용문(登龍門)의 신화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중국 황하 상류에는 용문폭포가 있는데 그 밑에는 폭포 위로 뛰어오르려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용문에 오르기만 하면 용으로 변할 수 있으니 이를 두고 입신출세의 관문인 등용문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용문에 이르지 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용문에 이른다고 모두가 다 승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여의주가 필요하다. 여의주는 인간에게는 잔재주와는 다른 고귀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입신출세의 관문을 통과했으나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갖지 못해 다시 이무기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의 해이다. 자칭 현대적 등용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후보들이 사방에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여의주 없이 권력만을 탐할 때 그 말로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흑룡에게는 조화와 융합의 상징인 여의주가 필수적이다. 2012년, 출사표를 던진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시키기를 기원해 본다.

2012-01-31 김구슬

설날 아침, 고향을 나서면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씨가 쓴 중편 소설이다. 27, 28년 전 읽었는데도 기억이 또렷하다. 옛 고향이 지닌 수백 년 자취와 정취가 흐릿해지고, 사람들의 관계가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산골이 고향인 나로선 저절로 이입이 되는 대목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뒤로부터 이어진 고향나들이 때마다 알게, 모르게 소설이 남긴 흔적을 떠올리곤 했다. 나에게도 역시 고향집은 머무는 안식처가 아니라, 몸만 잠시 들르는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올해도 엷어진 마음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차가 많이 막힐 테니, 하룻밤 자고 내일 새벽에 떠나지." 뻔히 갈 줄 알면서도 아버지는 잊지 않고 이 말씀을 또 하셨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허겁지겁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에 대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지가…. 서둘러 출발해봐야, 고속도로 위에서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안다. 도시 집에 가봐야 뾰족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어김없이 도로 위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정녕 고향 길은 이제 효도의 자기위안이며 어린시절을 잠시 되살려보는 인사치레에 머무는 것일까.이렇듯 우리는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는 터여서,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명절 귀성길 정체가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급속한 도시화가 불러올 변화된 풍속도이다. 느림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도시생활과, '나아가지 않으면 그건 퇴보'라고 믿는 경쟁심리의 발로이다. 또 시댁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음이리라. 자식들 키우느라, 겨우 논밭 몇 마지기로 남은 장수사회는 며느리의 입김을 크게 만들어 놓았다. 갈수록 딸 하나 뿐인 장모의 눈치도 살펴야할 세태이다.여기에 고향은 해마다 아쉬움이다. 옛 추억의 자리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산뜻한 개발계획과 편리한 시설들이 대신 메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가 여럿 사라지고 회관 건물이 새롭게 단장을 했다. 지지난해 새로 난 도로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놀았던 정자가 세워져 있던 터다. 지천(支川)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을과 마주 보던 강 건너 마을에는 대형 콘도공사가 한창이다. '불꽃이 누가 더 오래 가나'를 놓고 '달집 오래 태우기'로 다투던 강 양쪽 모래사장은 하천 정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연을 날리고, 팽이를 치던 마을 뒤 등천(登天) 공터는 또 어떤가. 아담한 새 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정성스레 심었던 포플러가 우리보다 빨리 자라고 있던 읍내 초등학교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버렸다. 지금은 아파트촌이다.도회지에 살다가 명절 때나 잠깐 들르는 출향 인사들 추억의 높이에 고향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물론 없으리라. 지리산 둘레길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민박집까지 생겨나고 있는 터이다. 쥐불놀이를 하다 설빔인 나일론 새 옷을 홀랑 태워먹던 그 시절을 마냥 붙들어 맬 순 없는 일이다. 시골집에도 가스가 들어오고, 수세식 화장실로 교체한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가 길손처럼 들르듯, 고향도 옛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워가고 있다.고향길은 언제나 세월의 변화이다. 부모님의 깊어진 주름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쓸쓸함도 함께 배어나온다. 재촉하듯 떠나오지만, 희미하게 전해져 오는 마을 곳곳의 이력 뒤에는 고향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느끼는 고향이 우리 세대의 그것과 달라도 고향은 고향이듯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들만의 마음의 강도로, 그들의 눈높이로 변함없이 고향을 바라볼 것이다.'세월은 솔나무 스치는 바람/삶은 댓돌에 쌓인 눈송이/친구의 하얀 머리칼/ 착한 웃음/ 또 한 해가 갔구나'. 설날 새 아침의 느낌을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언제부터인가 귀경길은 이 시구에 공감을 더하고 있다. 옛 자취는 사라졌어도 숨결은 면면히 이어진다.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에 들렀다 와야 '아, 한 살 더 먹었구나'를 절감하게 된다. 정말이지, 이것만으로도 다시 고향에 가야하는 아늑함 아닐까.

2012-01-24 양승현

역사와 이야기가 숨쉬는 옛길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지지대고개 옆에는 효행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노변에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보행조건이 썩 좋지는 않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주말에 광교산을 찾는 등산객들이나 가끔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춘향전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이야기 속 그 길임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우리 주변의 길이,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역사적 스토리를 갖춘 길이었던 것이다.오늘날 전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갖춰져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전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조 대에 간행된 관찬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를 기준으로 하자면 한양에서 전국 각지에 이르는 도로는 크게 9개로 구분되는데 이 모든 길은 반드시 경기도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길을 꼽자면 한양과 충청, 호남, 영남의 삼남지방을 모두 잇는 '삼남대로'를 들 수 있다. 삼남대로는 한양에서 지금의 과천, 수원, 화성, 오산, 평택과 천안, 삼례를 거쳐 통영으로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평택에서 갈라져 충청도로 가거나 삼례에서 갈라져 해남과 제주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길은 한양에서 남부 지방을 가장 유기적으로 잇는 도로라고 할 수 있다.근대에 들어 철도와 차량을 위한 길이 생기기 전까지 이 길을 오고간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명멸했다. 여말선초의 정치가 정도전이 나주로 유배를 가면서 정치개혁의 의지를 다졌던 길이 바로 이 길이었고 정조대의 실학자 정약용이 개혁의 좌절을 곱씹으며 강진으로 유배를 갔던 길도 바로 이 길이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이순신이 전라좌도에 부임하면서 달렸을 길도 이 길이었고 앞서 말한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가던 길도 이 길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길도 이 길이었고 전국의 장돌뱅이들이 장시를 찾아 걷던 길도 이 길이었다.이처럼 길이란 단지 마을과 마을, 지점과 지점을 잇는 단순한 '선(線)'이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의 가옥은 길을 향해 열려 있었고 사립문이나 담장의 높이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길은 곧 생활의 공간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사람들은 길을 통해 소통했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산업화 이후 길은 물자 수송의 효율성에 따라 개편되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옛길은 넓고 곧게 뻗은 대로로 변했다. 그리고 그 도로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달성한 지금 우리는 다시 길의 의미를 되새겨 볼 여유를 얻었다. 물자의 효율적인 운송에 더하여 문화와 이야기가 쌓이는 관점에서도 길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걷기 열풍은 길의 그러한 기능에 대한 사람들의 희구가 반영된 결과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효율과 속도가 가장 중요한 이 시대에, 너도나도 휴일만 되면 느릿느릿 길을 걸으려고 각지의 걷기 좋은 길로 몰려가는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이제 길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길이라고 하면 자동차와 철도가 오고가는 삭막한 풍경만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길의 본래 목적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문화가 오가고 이야기가 쌓이는 것에 있다. 최근에 경기도는 경기도 내의 옛길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옛길을 찾으려는 경기도의 사업은 길의 본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첫단추라고 평가할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옛길이란 수원 화성이나 융·건릉, 궐리사 등의 역사유산을 지나는 길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지지대고개의 사례처럼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길이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가 지나다니는 바로 그 길이 역사와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바로 그 길인 것이다.

2012-01-17 경인일보

遺物 기증이 지역문화를 바꾼다

한달도 채 되지않은 작년 12월에 안산시에 특별한 일이 있었다. 성호 이익 선생님의 후손이 집안에 소장된 유물을 안산의 성호기념관에 기증한 일이었다. 기증 유물의 내용을 보면 가히 깜짝 놀랄 일이다. 기증된 유물은 이익 선생의 부친인 매산 이하진의 친필 서첩인 천금물전(千金勿傳ㆍ보물 1673호) 10책과 청풍계첩(靑楓契帖), 옥동금 등 167종 366점이다. 유물 감정가로 15억원이 넘는다고 기념관측에서는 이야기하는데 실제 인사동 감정가로 보면 2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물로 지정된 천금물전을 소장하고 있지 않고 사회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큰 결단을 내린 이는 경희대학교 이효성 공과대학 학장이었다.이효성 학장의 부친은 안산의 문화계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고 이돈형 박사이다. 성호 이익 선생님의 후손답게 안산을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셨던 분이다. 경기도향토사연구협의회 모임에서 몇 번 뵈었던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학교 치대 교수를 하셨던 이 분이 역사를 전공한 우리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셔서 무척 놀라곤 했었다. 이는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돈형 박사는 1993년 12월에 성호 이익 선생님의 필사본 '성호사설' 등 집안에서 6대에 걸쳐 집필하고 소장한 자료 800여점, 1천여권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이 단순히 여주 이씨 가문의 소장자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국가에 기증하게 한 것이다. 결국 이 기증으로 국립도서관에서는 성호 이익 특별전을 개최하고 성호 선생님 연구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후기 실학의 양대 줄기의 하나인 경세치용 학파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돈형 박사의 유지를 받든 이효성 교수 역시 천금물전을 비롯한 가문의 보물을 성호기념관에 기증함으로써 역사 인물 연구와 안산의 문화발전에 새로운 초석을 깔았다.이처럼 지방자치단체의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하는 사례들은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예전 수원시에서 연구직 공직자로 근무하던 시절에 화성을 축성한 정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던 번암 채제공 선생님의 후손으로부터 채제공 초상화와 정조어필을 비롯한 유물 300여점을 기증받은 바 있었다. 초상화는 문화재위원장을 하셨던 안휘준 교수의 평가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전시하면서 문화재 지정을 받아 보물 1477호가 되었다. 이러한 귀한 유물을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면 일반 국민들은 전혀 볼 수 없었을 것이다.수원박물관의 경우 유물 기증자가 무려 50여명이 넘는다. 수원박물관의 경우 전시된 유물의 상당수가 기증 유물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운 이종학 선생님을 비롯한 수원분들이 자신들이 많은 비용을 주고 구입하였거나 혹은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기증하였다. 이 분들의 헌신으로 수원의 문화는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이다.수원화성박물관의 경우 부여의 도강영당측으로부터 2010년에 동방전서의 대가인 미수 허목 선생과 수원부사를 지낸 의병장 홍가신 선생의 초상화를 기증받기도 하였다. 도강영당측에서 이 분들이 수원과 인연이 있고, 또한 유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 수원시에 기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이것이다. 이제는 개인들이 집안에 소장하는 것보다 유물을 올바로 관리하여 후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해야만 유물이 잘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다. 더불어 집안의 명예 또한 올라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유물 기증 집안의 문화적 능력과 선대를 계승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에게 좋은 유물기증운동이 더욱 정착되고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2012-01-10 김준혁

꽃배달이요!

'꽃배달이요!' 좋아하는 분들에게 새해인사차 꽃배달 동영상을 보냈다.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제각기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못해 황홀하다. 동영상의 첫 배경에서 흰 장미가 함초롬히 우리를 꽃의 삶으로 안내한다. 제일 먼저 새빨간 장미가 정열의 꽃잎들을 생동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뒤이어 꽃망울을 터뜨리는 노란 수선화, 보랏빛 패랭이, 하얀 백합, 빨간 카네이션, 흰 국화, 노란 해바라기, 진분홍 철쭉에 이르기까지 때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의 향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돌아 나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꽃들의 자기실현이었던 것이다. 꽃을 피워내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장미 스스로에 쏟은 값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뜩 작은 것이 주는 기쁨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는 "오직 소설만이 사소한 것의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건만, 아무리 미세한 생명체라도 그 안에는 풀 길 없는 신비가 내재해 있는가보다.평소 존경하던 원로 선생님 한 분이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김선생, 이거 어떻게 된거지? 잘 안열리는데?" "선생님, 비디오 플레이할 때처럼 삼각형 모양을 한번 눌러 보세요." "응, 그래, 그래." 선생님은 잠시 후 다시 전화를 주셨다. "김선생, 이거 너무 멋진데? 감동이야, 감동! 김선생, 이런 거 어떻게 알았어? 정말 좋은데?" 평소 근엄하게만 보였던 선생님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정말 감동을 느끼셨나보다. '그래, 잘했어. 사실 감동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나오는 거야.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은 거라니까' 혼자 흐뭇해할 새도 없이 연이어 답장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향기로운 새해 맞이하시길' '향기가 아주 좋습니다' 등 뛰어난 후각을 자랑하는 감각적 답신에서부터 '보내주신 꽃 비디오 교수님처럼 넘 예쁘네요' 등 아부 내지 격려형 답장, 그리고 '선생님의 귀한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데…' 등 자책형 답신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나의 선택에 내심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이처럼 작은 것이 이토록 큰 기쁨과 감동을 주는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며 싸워야 하는가? 욕망의 현실 앞에서 작은 것의 가치는 더욱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 연전에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권력과 욕망의 화신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오지맨디아스의 거상을 룩소르신전 앞에서 바라보면서 '왕중왕'을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기억이 있다. '내 이름은 오지맨디아스, 왕중왕이로다./ 나의 위업을 보라, 너희 강력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주변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 거대한 잔해의/ 부식 주변에는, 끝없이, 풀 한 포기라곤 없이/ 고적하고 평평한 사막이 저 멀리까지 뻗어 있다.'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의 '오지맨디아스'의 일부인 이 작품에서 셸리가 적확하게 포착한 것은 '아이러니'와 '상징'이다. 인생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된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하면서 '오지맨디아스'를 '아이러니'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인생이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최고 권력의 야망과 영생의 꿈에도 불구하고 그 주변에는 잔해만 남아 있고 고적한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새삼 이 작품의 의미를 되씹어보는 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3대 세습을 시도한 또 다른 전제군주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적인 권력이나 영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2011년의 마지막 날, 송년음악회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신영옥의 노래를 들으며 잠시 현실을 잊고 있었다. 예술이야말로 현실의 과도한 욕망을 해소하고 이를 승화시켜줄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날 즈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깜짝이벤트도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날렸다. 내가 처음 '꽃배달이요!'의 동영상을 받은 그에게. 2012년 흑룡의 해, 우리 모두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공감과 사랑으로, 작지만 값진 자기실현을 해나가는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2012-01-03 김구슬

굿바이 김정일, 아듀 2011!

빛바랜 사진이 있다. 11년 전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찍은 사진이다. 방북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인민대회당 만찬 대표 취재기자로 갔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공식 수행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 우연히 끼어들어 찍은 것이다. 대한민국 기자로는 처음이었다. 수행 기자실이 발칵 뒤집혔다. 그때만 해도 단독 사진은 대특종이었다. 역전의 무용담처럼 지금도 아끼고 있는 이유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악수를 하면서 내 명찰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몸집이 아주 통통했다. 부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배도 많이 나와 있었다.그는 아주 달변이었고, 의전에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이든 자기 식으로 했다. 수행원들과 소파에 앉아 '금강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수행기자가 상대국 정상과 회담장에서 악수를 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이제 이 사진도 역사의 뒤 안으로 묻어둬야 한다. 낡은 빛깔만큼이나 흘러간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니, 지나온 시간의 작은 파편일 뿐이다. 시간의 엄혹함을 다시금 느낀다. 우리 사회가 차분하고, 의연하게 그의 장례를 지켜보는 것도 이런 기록의 힘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2000년 그가 평양 순안공항에 극적인 효과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숱하게 보아왔다. 외신을 통해 그의 지치고 병든 모습을 지켜봤다. 국내 언론의 보도로 열차를 타고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그의 동선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의 돌연사는 뇌경색으로 쓰러질 때 이미 예고되어온 터다. 불안과 두려움의 정도가 과거와는 처음부터 달랐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도 무던하게 견뎌온 우리다. 북한체제의 불가측성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쌓아온 것이다.이렇듯 2000년 이후 남북관계의 주역들을 역사의 저편으로 모두 떠나보냈다. 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김 위원장까지 떠났다. 정상회담의 공과는 물론 있을 것이다. 미화한다고 치부가 감춰지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인류에게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또 자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았다 해도, 인민을 굶주리게 한 반인륜의 독재 기록을 결코 덮을 수는 없다. 누가 역사를 비켜갈 수 있겠는가.우리가 할 일은 이 토대 위에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느냐이다. 지난 4년 동안의 대북정책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되었다. 원칙 고수가 답보나 정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위(無爲)도 하는 것'이라는 담론은 철학적 사유이다. 정치와 외교는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여야 한다. 더구나 북한체제는 예측 자체가 어렵다. 2000년 순안공항으로 걸어나오던 김 위원장을 처음 발견한 것도 전용기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어, 저기…' 어느 누구도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몇몇 전문가들이 가능성만을 점쳤을 뿐이다. 현재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일 사후(死後)'를 얘기하고 있지만, 나는 단언한다. 모두 빗나가리라는 것을….2011년도 벌써 세밑이다. 어느 해라도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을까마는, 남북관계에서 올해는 커다란 매듭이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해마다 매듭을 짓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어디 사람의 삶만 그러하겠는가. 회사의 미래도, 국가 장래도 예외일 수 없다. 하나씩 매듭을 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현실적 대안이 한반도에 움트도록 해야 한다. 신묘년 한 해를 떠나보내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김 위원장의 장례를 지켜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나 더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의 답방이 이뤄졌더라면, 오늘의 한반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임진년 새해는 정말,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2011-12-27 양승현

게르만 민족이동에 비견되는 조선족의 이동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시점에, 주말에 열린 학회 참석차 일본 교토에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조선족 연구학회, 한국의 재외한인학회,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대학이 공동으로 '한중일 협력시대의 코리안'을 주제로 개최한 학회였다. 학회에는 필자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학자, 일본에서 활동 중인 조선족 학자, 재일동포학자, 브라질 이민 출신 학자 등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성장 배경이 달라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학자들이 모여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도 벌였다. 학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한중일 협력을 위해 조선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한국인 중 상당수가 아직도 조선족 하면 힘든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떠올리고, 다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조차도 이러한 인식에서 머물러 있는 현실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 조선족 중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전문분야에 진출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5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우승을 차지한 중국 옌볜 출신 가수 백청강도 그 중 한 명이다. 지금 중국은 문화산업을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간의 경제 교류에서 문화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학회에서 경기도의 역사문화자원의 활용 현황 및 가치에 대한 글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유학을 리더십, 환경, 자본주의와 같은 현대적인 키워드로 재해석하는 경기문화재단의 작업을 소개하고, 유학을 우리 시대 새로운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같은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논지로 글을 발표하니 여러 학자들이 반응을 보이며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날 학회에서 발표된 글 중 특히 관심을 끈 글은 옌볜과학기술대 이승율 부총장의 글이다. 이 부총장은 남북관계 전개과정에서 조선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남북한과 주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 정리되겠지만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 양쪽과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고, 남북한 모두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남북관계 진전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선족은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사업을 펼치고 있기에 시장경제를 모르는 북한경제를 개방으로 이끌 수 있으며, 남북한을 오가며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과 중국 문화와 소통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및 일본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유학생, 상사 주재원, 기업인 등 조선족 엘리트들이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견되는 시점에 눈여겨볼 주장이다. 이제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조선족을 더 이상 한국에 와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조선족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조금씩 상실해가고 있는 도전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등 중국 동북 3성에 살던 200여만 명의 조선족 중 그들의 집거지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들은 60여만 명이고 나머지 140여만 명은 모두 새로운 성취를 위해 살던 곳을 떠났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에 버금가는 자발성에 기초한 민족 대이동을 한 이들이 조선족이다. 이처럼 강인하게 새로운 곳을 개척해가는 집단이 앞으로 10년, 20년, 50년 뒤에 어떠한 집단으로 성장해 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제 우리가 조선족의 성장을 도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고 함께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들을 규제 대상으로만 파악하여 조선족이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성장의 길로 가게 내버려둘 것인지.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2011-12-20 강진갑

북녘 동포에게 보내는 밀가루는 평화의 시작

최근 탈북 여성들에 대한 특집기사가 언론에 등장했다. 탈북여성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성매매 여성으로 상당수가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녀들이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온 것은 딱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사라지고 1994년 이후부터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인하여 북한의 농토는 거의 궤멸 수준에 이르렀다. 그 결과, 북한의 경제는 참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고 굶어서 뼈가 앙상한 어린 아이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남쪽의 국민들 중에 북한 어린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법륜 스님은 북한에 다녀와서 300만명이 굶어 죽은 것이 사실이라며 북한 주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남쪽의 동포들이 적극적으로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북한의 주민들이 300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실제 그 정도의 상황까지 갈 정도의 고통스런 세상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북한의 어린이와 노인들, 아니 북한 주민 전체를 돕기 위해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그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의료기기와 약품이 없어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분단이 되어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형제들이 굶주리고 아파서 신음을 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나누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북한에 쌀과 밀가루를 보내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간에 불신이 없어야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지 않으면 신뢰는 쌓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평화운동의 시작인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5·24조치는 해제되고 적극적으로 북한에 식량지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근 정부 역시 남북간 화해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이야기가 솔솔 언론에 나오고 있는 것이 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남북간 평화정착 모색의 첫 번째 길이 바로 대북 식량지원이다. 인도적 식량지원만이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북한의 어린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최근 수원지역사회에서 북한의 동포들, 특히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나눔 단체가 결성되었다. '통일나눔'이 바로 그 단체이다. 우리의 것을 나누어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보수와 진보 인사들이 하나가 되어 하루에 백원씩 한달에 3천원을 모아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돕자고 모인 것이다. 그 일환으로 통일나눔에서 12월 말까지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기 위하여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2만원을 후원하면 밀가루 100㎏을 북한에 보내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이 추운 겨울에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루에 백원으로 북한의 동포를 구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실천이지만 세상을 위한 거대한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한반도의 냉전은 서서히 종식될 것이다. 이는 남북간의 화해가 한반도 경제발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지난 4년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러시아 가스와 천연자원이 북한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올 시기가 불과 몇 년 안 남았다. 이러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북에 손을 내밀고 평화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해 탈북을 해서 몸을 파는 여성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 통일나눔의 북한 동포 돕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 통일나눔 문의처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370-4번지. 전화 (031)242-6150농협 351-0381-5296-13 (예금주:통일나눔)

2011-12-13 김준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겨울은 잔혹의 계절이기도 하고 축복의 계절이기도 하다. 2011년 겨울은 내게는 축복의 계절인 것 같다. 엘리엇은 "한겨울의 봄은 독자적인 계절이다/ 해거름에 축축하지만 영원하고,/ 극지와 열대 사이 시간 속에 정지된 계절이다"라고 했다. 한겨울의 봄은 실제의 계절이어서 해질 무렵이면 축축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로 인해 그 자체가 독자적인 계절이 되며, 마치 이 세상의 계절 같지 않은 영원한 계절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이 겨울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과거를 고스란히 되돌려 놓았기에 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확인하게 되고, 그 순간 시간은 '정지'되어 마치 영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거의 40년을 만나지 못했던 소중한 친구를 최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사실은 그냥 친구 정도가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연애하듯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하얀 얼굴에 선한 눈을 가진 그 친구는 어느 날 홀연히 외국으로 가버렸고 그 이후로 우리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은 망각의 강 속으로 서서히 흘러들어가 버렸던 것 같다. 예기치 않았던 해후의 충격은 필자로 하여금 기억의 의미를 찬찬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이후 두어 차례 더 만나는 동안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의 편린들이 서서히 의식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자신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오히려 상대가 더 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대화는 마치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았다.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변화란 삶의 필연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변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우리 내면에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현재적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과거를 환기시켜주는 아주 작은 실마리만 주어져도 우리는 곧바로 과거로 되돌아가게 되고, 동시에 과거의 특정한 경험의 의미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내가 즐겨 불렀다던 맷먼로의 워커웨이(Walk Away)나 낫킹콜의 투영(Too Young) 등 주로 노래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이국에서 이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그리움에 가슴이 저려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나는 커다란 눈에 유난히 섬세하고 다감했던 그 친구를 주로 사소한 몸짓이나 표정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각자는 상대가 자신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통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환기된 기억은 당시의 경험을 너무나 세밀하고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기억의 방은 마치 그 가운데 자신만의 고유한 날짜와 인상을 적어두고 있는 것 같다.나는 서서히 기억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재동 모퉁이를 돌아 가회동 길로 접어들면 백송의 기품이 서린 학교가 나타난다. 다시 교문을 돌아 나와 안국동 길로 들어서면 '박리다매'를 외치던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타나고 그 길을 죽 따라가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입시학원이 떡 버티고 있다. 일순 아이스크림 가게는 베레모에 흰 깃을 세운 여학생들의 깔깔거림으로 하얗게 빛난다. 그러고 보니 과거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은 그만의 고유한 경험의 질과 감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때도 오늘처럼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기억 밖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서로 환기시켜 주고 그것을 확인하면서 참으로 행복해했다. 잠시 우리는 과거를 살았던 것이다. 마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느를 홍차에 찍어먹으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듯이. 우리는 경험은 했으되 그 당시에는 그 경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경험은 회상을 통해서만 의미가 완성되기 때문일까? '네 개의 사중주'에서 엘리엇이 말하고자 한 바도 이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했으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의미에 접근함으로써 그 경험은/ 우리가 행복에 부여하는 어떤 의미 이상의/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바람 불어와 신산한 이 겨울, 기억을 통해 되찾은 시간은 황량한 현재적 삶 가운데에서도 신생 같은 환희를 맛볼 수 있게 한 축복의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충격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2011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복잡한 마음으로 황망히 끝내는 올 한해도 훗날 또 다른 형태의 의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회상될 수 있을까?

2011-12-06 김구슬

세대 갈등, 그 끝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할머니는 10여년을 혼자 지내셨다. 산골 외진 마을을 들를라 치면 반가워 하기에 앞서 입버릇처럼 되뇌이시던 말씀이 있었다. '아가, 너는 늙지 마라. 늙으면 서러운 게 참, 많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 며느리와 불편함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완고한 편이셨다. 신식교육을 받은 며느리들을 항상 못 미더워 하셨다. 한 30년 터울로 세대를 느끼던, 그 시대에도 갈등은 있었다. 단지 담장을 넘지 않고 안에서 삭였다. 주말에 만난 유명 제약회사 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지난 여름, 수도권 책임자들 회식 자리에서 '6월이 되면 맨 처음 생각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당연히 6·25 전쟁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40대가 태반인 팀장들의 답은 '6·10 항쟁'이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쉬운 대로 공감이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 30대 후반 팀장들의 대답을 듣고서는 '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붉은 악마의 월드컵 길거리 응원'. 세대간 감성의 차이가 이처럼 크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광장의 축제는 하늘과 땅이다. 우리사회가 준비에 게을렀을 뿐, 세대 갈등은 이미 예고되어온 터다. '20~30대의 반항'이니, '40대의 반란'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어찌 보면 붉은 악마 옷을 입고 광장으로 뛰쳐나왔을 때부터 갈등의 골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그 당시 40·50대에게 광장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러나 애써 예쁘게만 보고, 기성의 가치를 거기에 이식시키려 했을 뿐이다. 그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치부했던, 열린 공간의 젊은이들이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목청을 높인 것이다. 동력을 잃은 기존 정치를 향해 자신들의 의지와 분노를 표로 분출한 것이다. 20~40대와 50·60대는 소통의 방식부터 극명하게 나뉜다. 50대는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다. 구시대의 막내쯤 된다. 40대는 '최초의 디지털 세대'로 신세대의 맏형 격이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스마트 폰에도 익숙하다. 종이 신문보다는 21세기 광장인 소셜네트워킹 서비스(SNS)에 친숙하다. 여론의 흐름이나 정보도 인터넷으로 파악한다. 20·30대는 아예 인터넷 속에서 생활한다. 전문조사 기관에 따르면 50·60대는 한 주 동안 하루나 이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에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 예전 외할머니와 며느리 정도가 아니다.우리사회는 지금 모두 불안의 늪 속에 빠져 있다. 20대는 취업, 30대는 육아, 40대는 내 집, 50대는 노후, 60·70대는 건강이다. 20~40대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부잣집 아들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 사장이 되는데, 가난한 집 아들은 그 가난을 대물림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세상 보는 눈이 관대해진다. 능력과 분수에 따라 사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만 쳐다보지 말고 괜찮은 중소기업도 지천이니, 그 곳에 가서 일하라고 윽박지른다. 바탕이 이럴진대, 골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이치이고, 자연의 섭리이다. 조병화 시인의 얘기처럼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게 의자를 양보하면 쉽다. 그러나 평생을 맞대고 사는 부부의 갈등도 머리가 희끗 희끗해져서야 결판이 난다.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도 고부간에 힘의 균형이 깨질 때라야 가능하다. 공력의 기간을 쏟지 않으면 정면충돌의 불행이 불가피하다. 세대의 간극은 더하다. 이제 그 세대갈등이 집 담장을 넘어 사회 한복판으로 뛰쳐나왔다. 서울시장 보선이 전초전이 아닐까 싶다. 지난 세월 힘겹게 일궈온 사람들과, 앞으로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이 각기 피부로 느끼는 세상의 온도차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숱한 체험을 통해 안다. 부드러운 위로와 따뜻한 공감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꿰뚫어본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 터득한 경험칙이 젊은 세대를 숨 막히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50대 이상에게는 젊은 날의 소중한 교훈이지만, 신세대에게는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다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싶어하는 그들이다. 좀 더 세상을 아는 세대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세대 공존의 출발점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2011-11-29 양승현

경기마을 사람들의 귀향

중국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에는 경기도의 마을 이름을 붙인 '경기툰(마을)'과 '가평툰'이 있다. 그곳에는 경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난 10월에 그곳에서 만난 서덕환 할아버지는 올해 84세로 수원 비행장 옆에 살다가 1940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지금까지 70년간 경기툰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서 할아버지는 쩡쩡한 목소리로 젊었을 때 자신이 경기툰을 이끌어 왔다면서, 남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며 대낮부터 술을 권하였다. 평택 출신의 최봉화 할아버지는 86세 나이인데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고향을 평택시 포승면 석정리 검은 돌 마을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1940년대 초 일제는 만주에 가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으며 땅과 집을 주겠다고 조선인들을 회유하여 약 5만여명을 집단 이주시켰다. 경기툰은 1941년 수원사람 25호와 평택사람 25호가 집단 이주하여 정착한 마을로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왔으나 한 마을에 정착하였기에 굳이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경기툰이라 마을 이름을 정했다. 가평툰은 1943년 가평 사람들이 집단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이외에 광주·용인 등지의 사람들도 집단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1945년 해방 후 다른 마을은 해체되었으나 경기툰과 가평툰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주 초기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경기툰 사람들은 강한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지역 사람이 경기툰으로 이주해 오려면 마을 회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행정당국에 등록된 60호 중 한족 3~4호를 제외하면 모두 조선족이다. 그런데 그 중 조선족이 살고 있는 집은 16호 정도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빈집이다. 남아있는 마을 사람도 노인과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며 청년과 아이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돈을 벌러 갔다고 한다.지린성을 포함한 중국의 동북 3성에는 한때 조선족이 200여만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50여만 명으로 줄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들어 한국내 조선족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조선족 수는 2009년 38만명에 달하였으나 2011년에는 28만여 명으로 줄었다. 조선족을 외국인으로 취급해 방문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 통계에는 결혼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불법 체류자가 빠져 있기에 실제 한국 거주 조선족은 이보다 많을 것이다.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조선족이 외국인인지, 그리고 그들의 국내 입국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 되묻게 된다. 조선족은 만주로 떠난 이주민 1세대들의 아들 딸들이 아닌가. 현재 경기툰에 사는 이주민 1세대는 이제 거의 사망하고 경기툰의 조선족 공동체 역시 거의 해체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신 새로운 공동체가 한국에서 형성되고 있다. 경기툰을 떠난 이주민 2세대들은 가족의 결혼식을 한국에서 올리고 이주민 1세대인 부모의 칠순잔치도 한국에서 치른다. 많은 경기툰 사람들이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주를 떠난 이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공동체를 이루며 삶의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이 정녕 외국인인가?그런 점에서 조선족을 다문화정책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보다는 재외동포정책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 미국과 일본 동포의 2, 3세들이 한국에 입국하는데 제한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조선족에게도 같은 정책이 적용되어야 한다. 물론 여러 현실적 문제가 있겠지만 그 정도는 한국 사회가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도와 수원, 평택, 가평 등 여러 시·군도 경기툰과 가평툰 등 경기마을 출신 조선족을 고향으로 돌아온 손님으로 여기고 이들을 한자리에 초청해서 잔치를 하자. 그리고 조선족을 외국인이 아닌 재외동포로 맞이하여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자.

2011-11-22 강진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