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나혜석의 부활과 수원의 미래

나혜석의 생가 터가 있는 수원 행궁동 동사무소 강당에서 지난 22일 오후 제1회 나혜석 학술상 시상식이 열렸다.그는 1896년 4월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한 조선 최초의 여성 화가였으며 1917년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한 최초의 여성 작가이기도 했다.1919년 3월 조선독립운동 당시에는 여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생의 전반부에는 조선 최고의 명망가였다. 그러나 1930년 남편과 이혼한 이후 그의 삶은 비극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비참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특히 그가 1934년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당시 조선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대 사건이었으며 정조를 유린한 대가를 요구한 '위자료 청구사건'은 사회적 관습에 굴하지 않는 그의 불꽃 같은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파격적인 일이었다.나혜석의 찬란한 예술적 성취는 그가 불러일으킨 파란과 비참한 몰락으로 인해 망각의 저 편으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망각의 어둠 속에서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최초로 부활시킨 것이 이번 학술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구열 선생의 평전 '에미는 선각였느니라'였다. 1974년 간행된 이 책은 나혜석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으로서 이후 나혜석 연구의 길잡이가 되었다.이후 나혜석은 불사조처럼 다시 태어나 그가 생전에 염원했던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나혜석에 대해 긍정과 부정이 혼재하던 시기에 이번 최우수 학술상 수상자인 서정자 교수는 작가로서 나혜석의 작품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선구적 업적을 축적했다.서 교수는 1988년 처음 나혜석의 단편 소설 '경희'를 발굴한 것은 물론 그의 문학사적 의미를 부각시켰으며 2000년 나혜석의 예술적 업적을 총망라한 '정월 나혜석전집'을 발간하여 최초의 여성 작가로서 나혜석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나혜석의 본격적인 부활은 기념사업회를 이끈 유동준 회장의 열성적인 노력에 힘입고 있지만 수원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수원시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수원시의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예술인을 찾는다면 그 분은 나혜석일 것이다. 나혜석기념사업은 수원시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 중의 하나이다. 수원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화성행궁이 복원되었다고 하더라도 더 큰 미래를 위한 창조도시로서 수원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창조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선조들의 유산을 가꾸고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세대들이 이를 더욱 발전적으로 끌어나갈 때 수원시의 미래가 더 크게 열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수원시의 미래는 첨단산업과 문화유산의 창의적 공존이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계발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나혜석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일은 이러한 일들의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수원시의 격상은 나혜석의 부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처음 거행된 나혜석 학술상은 여러 의미에서 수원의 문화적 저력을 신장시키는 뜻 깊은 일 중의 하나이다. 어떤 예술도 학문적 심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깊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분명히 해 둘 것은 이러한 사업들은 나혜석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수원을 위한 것이다. 인구 100만명을 넘어서는 도시가 과거의 유물에 의존하거나 거기에 담을 창조적 콘텐츠가 없이 비대해진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가 얼마나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나혜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수원을 이끌어나갈 창조적 젊은 문화예술인의 탄생을 소망하는 헌사이다. 그것은 바로 미래로 뻗어나갈 수원시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11-07-26 최동호

융복합(融複合)장르로서의 문학

과학기술의 발달이 문화의 흐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문화 분야 전문가들조차도 과학기술의 변화에 둔감하다. 불황과 호황을 동시에 겪고 있는 최근 한국 출판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종이책 출판계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 그리고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같은 베스트셀러를 출판한 출판사들도 불황을 비껴가지 못하고 부도를 내고 있다. 출판계는 불황의 첫 번째 원인으로 아이패드, 스마트 폰 같은 IT 기기의 대중화를 꼽고 있다. 그런데 전자 출판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올해 상반기 전자책 매출은 전년 대비 64% 늘어났다.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전자책 이용 현황을 조사해 보니 전자책 이용자가 작년에는 조사 대상의 23%였으나 올해에는 51%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전자책에 대한 만족도도 58%에서 79%로 크게 늘어났다. 시민들은 만족한 가장 큰 이유로 휴대하기 편리한 아이패드, 갤럭시 탭, 스마트 폰의 출현을 꼽고 있다. 같은 IT 기기의 대중화가 한 쪽에는 불황, 다른 쪽에는 호황을 가져다주었다. 독자들이 휴대하기 편리한 단말기가 보급되지 못한 점이 전자책이 보급되지 못한 요인이었는데,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가 이 불편을 해소해 주었다종이책 출판의 불황과 전자책 출판의 호황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00년 전후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은 신문, 책과 같은 인쇄매체가 사라지고 인터넷 신문, 전자책과 같은 디지털 매체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하였다. 그러나 인쇄 매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주요 매체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자 이러한 예견은 잘못된 예견으로 치부되었다. 2007년 아마존 닷컴이 킨들이라는 휴대용 전자책 단말기를 출시하면서 미국에서는 전자책이 빠른 속도로 공급되기 시작하고, 한국에서 스마트 폰이 출시되어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가 시간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도 출판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전자책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의 예측은 어긋났고, 눈앞에 닥칠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종이책 출판사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전자 출판은 문학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전자책은 문자만이 아니라 음향과 영상도 함께 수록할 수 있기에, 시인이나 성우가 낭송하는 시를 들을 수 있는 시집,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시집 등 다양한 형태의 시집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지 영상도 함께 보여 주는 영상 여행기도 출현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여러 예술 장르가 융복합되어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였으나, 비교적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문학분야에서도 미술,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융복합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자 출판은 자가(自家) 출판 시대도 열어줄 것이다. 전자책 자가 출판시대에 작가들은 인쇄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책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가 출판물의 생명이 별로 길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전자 자가 출판은 계속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가 종이책의 3분의 1 수준이고,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제작비는 전혀 들지 않는다. 무료로 자가 출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미 인터넷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전자 자가 출판은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학책의 유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독자가 창작의지가 있으면 작가가 되어 스스로 제작한 문학 책을 유통시킬 것이다. 이제 대학 문예창작 관련 학과는 새로운 융복합한 장르로서의 문학을 교육하기 위한 변화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문단은 여러 장르가 융복합된 새로운 문학에 맞는 창작 방식을 모색하고,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필요한 듯하다. 21세기 디지털시대를 사는 문화인들은 과학기술의 변화에 항상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1-07-19 강진갑

중국 행보를 보는 핵심 관전포인트

'중국인들이 오고 있다', Chinese are coming,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을 보니 이런 주제를 놓고 대담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국이 이제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앞날에 대해 음양오행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현재 미국과 여타 서방세계는 은근히 중국을 한 번 자빠뜨려볼 생각을 하고있다. 이 정도에서 한 번 견제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렵겠다는 생각, 그거야 '현실 국제정치'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만일 날카로운 잽이 멋지게 성공한다 해도 뻗어가는 중국의 기세를 근본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과거 일본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미국의 공세, 특히 경제공세에 대해 많은 연구와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우선 중국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중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더하여 중국은 최근 들어 금리인상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고 있고 덩달아 증시도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시장만 고가권에 있을 뿐 종합적으로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유지해가고 있다. 줄여 말하면 상대의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 '가드'를 철저하게 올리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의 운세로 볼때 중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서 2018~2023년중 무술(戊戌)년부터 2023년 계묘(癸卯)년까지의 5년 동안 그 기세는 가히 전 세계를 진동하게 될 것이라 본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금년과 내년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이 서구식 데모크라시를 시도하지 않는 한, 그리고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한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로서는 중국에 대한 미국과 서구의 견제가 먹혀도 골치 아프고 그렇지 않아도 길게 보면 좋을 것이 없다. 만일 중국에 대한 견제가 성공하면, 다시 말해 중국 경제를 한 번 크게 흔들어 놓는데 성공한다면 그 악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인 셈이고, 그냥 중국이 이대로 순항한다면 동아시아 정치역학상 우리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 세계의 견제를 떠나 중국 자체의 내부 요인이 하나 있기는 하다. 현재 중국은 그 내부에 정치적 자유화를 외치는 이른바 진보세력과 경제적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만계층간의 연결과 유대가 급격히 높아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 사회적 동요가 있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점은 음양오행상으로 볼 때 2014년 갑오(甲午)년이라 볼 수 있다. 기운이 무토(戊土)인 중국에 있어 갑오년은 살기(殺氣)가 가득한 한 해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갑오년에는 유독 중국에 변란이 많았었다.1894년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펼친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옛날로 거슬러 가보면 중국 당나라 당시 안록산의 난이나 사사명의 난 모두 갑오년의 일이었다. 오는 2014년 갑오의 해에 중국이 그 정도의 위기에 빠져 들지야 않겠으나 내부로부터의 상당한 갈등과 모순에 시달릴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지금 중국은 급격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 중이라는 얘기이다. 경제적 자유화는 사회 생산 수준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양극화라는 달갑지 않은 모순도 동시에 야기하게 마련이니, 이 모순을 피해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다만 다행한 일이 하나 있다면 중국은 정치적 자유화를 여전히 어느 선에서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화는 서구 학자들의 눈에서 볼때 당연히 정치적 자유화를 동반하게 마련이지만, 현재 중국의 시도와 방향을 보면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될 필연적 이유는 없다는 입장임을 말해준다.금년과 내년 서구의 경제적 견제가 먹혀드느냐 아니면 2014년에 가서 중국 내부의 정치 사회적 불만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느냐 이게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는 핵심 관전 포인트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 http://www.hohodang.com

2011-07-12 김태규

연꽃 위로 강 바람은 불고 있는데…

학문과 인생의 대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뒤 늦은 귀갓길. 지하철 유리벽의 시 한 편이 가슴에 와 꽂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중략)…/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미당 서정주의 시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였다. 시의(詩意)의 깊이를 헤아리진 못했다. 그냥 좋아서 여러 대의 지하철을 지나친 채 한참을 서서 외웠다.미당의 시 '연꽃…'에 발길이 잡힌 것은 얼마 전, 남양주 예봉산과 운길산 하산 길에 들른 양평 세미원(洗美苑)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물머리(양수리) 강가 정원은 연꽃의 화해(花海)였다. 아직 만개하기엔 이른 철이었지만, 빗속에 핀 연꽃은 멀리 물안개 자욱한 북한강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당의 말년은 일제 말엽의 친일 행적으로 고달팠다. 작고할 때까지 30년을 살았던 서울 관악구의 봉산산방(蓬蒜山房)이 헐릴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원형을 유지했지만 미당의 삶 자체가 화해와 통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날 선배 부부와 저녁 자리에서는 지난달 초 돌아가신 김준엽 선생과의 인연이 화제에 올랐었다. 중국 대학들을 함께 둘러본 기억이었다. '중국 지도층 인사들이 얼마나 열렬히 환영하고 극진히 모시던지, 항일 투쟁에 대한 존경심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가 중경 임시정부로 탈출한 6천리 길의 신산했던 김준엽 선생의 여정은 자전적 독립운동사인 '장정(長征)'에 오롯이 남아있다. 항일과 민주화, 권력에 대한 선생의 초연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뚝 서기에 족하다. 비교의 영역이 아니다.다만 우리는 여전히 산행과 저녁식사의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항일·친일의 역사와 부딪치며 살고 있다. 광복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시점에. 언제쯤 진솔한 반성과 사회적 재평가 작업이 마무리되어 '대화해의 시대'는 올 것인가.하기야 최근 KBS 수신료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백선엽 장군의 친일 전력이 도마에 올랐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만주군 장교로 3년간 복무한 젊은 날의 전력이 빌미였다. '친일 전력에 대한 평가없이 어떻게 전쟁 영웅으로 미화할 수 있느냐?'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그 불행했던 시대에, 식민지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얼마나 되었을까. 시대적 불화가, 뒷날 전쟁의 참화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공로마저 퇴색하게 만들 만큼 공존할 수 없는 멍에인가. 여야의 논쟁을 보면서 내내 그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우리는 지난 세월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많은 것을 지우고 애써 잊어왔다. 친일잡지에 '이토(異土)'라는 한 편의 시를 쓴 월북 시인 정지용을 50여년이 지난 뒤 '향수'라는 노래로 겨우 만났던 터다. 중학시절 '사랑' '무정' '단종애사'를 밤새 읽으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춘원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육당의 '삼국유사 해제'와 '한국불교사론'은 또 어떠한가. 모두 친일의 겉옷에 싸여 지하에 묻혀 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으니, 나약하고 고달팠던 지식인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은 아니었을까.우리 사회의 친일 단죄에는 오늘의 일본 태도도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전후 일본이 보인 어정쩡한 사과와 반성이 친일 행적을 더욱 옥죄게 만든다. 여기에 광복 이후 분단의 아픔까지 내재되어 있으니 훨씬 엄혹한 측면이 있다. 새삼 2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나치부역 청산 과정을 들먹일 생각은 없다.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알베르 카뮈와 관용과 이해를 호소했던 프랑스와 모리아크 사이의 논쟁을 통해, 단죄의 단호함이 용서와 화해의 따뜻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인류사의 역설을 상기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 민족을 누천년 버티게 한 '한(恨)풀이'도 용서의 과정이지, 단죄의 결과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단 하루의 생활조차 비디오로 찍어 놓으면 혼자서도 보기 부끄러운 것이 인간들의 삶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름까지 바꾸게 한 모진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애이다. 전 인격과 업적으로 바라볼 때는 언제쯤일까. 미당이 노래한 '연꽃 만나고 가는' 연향(蓮香) 바람은 과연 우리 곁에 오긴, 올 것인가.

2011-07-05 양승현

아빠와 딸의 소통

[경인일보=]우리 시대의 최대의 문제가 소통 부재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해법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국회의원과 국민 사이에 국민과 국민 사이에 그리고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한국의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 강단에서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가장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이번 학기 담당 과목 중에 '시창작 기초'가 있었다. 이 시간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쓰고 싶은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 편씩 써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뒤에서 고생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였다. 남학생은 어머니에게, 여학생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로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읽으면서 학생들이 부모와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경험이 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 잘 하여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슴 속에 지니고 가급적이면 자녀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부모들의 태도이고 학생들 또한 간섭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한 학생이 다음 시를 제출하였다. "-아빠랑한잔할래/무심한 일곱 글자/한참을 들여다본다//아빠는 매일 새벽 넥타이를 맨다/목숨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하는 듯/목넘김이 불편할 때까지 조여맨다/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도/자기 목에 줄을 매진 않는다//아빠는 매일 새벽 집을 나선다/그 어떤 열기도 빼앗기지 않은 태양에/물소가 질주하듯 달려간다/목구덩이에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는데/아빠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킨다//아빠에게 차가운 보름달을 선물한다/이 달은 무거운 끈을 감싸고 /따가운 태양도 끌어안고/온통 다 녹아내린다//아빠와 나는 침묵 속에서/밤새 달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한 잔 두 잔 서로를 다독이는데/얼굴에서 뜨뜻하게 달빛이 묻어났다" (윤솔,「막걸리」) 이 시는 실제 체험을 거의 그대로 쓴 것처럼 보인다. 딸에게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문자를 보낸 아빠는 아마도 그날 상당히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가장 아끼는 딸과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응급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딸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넥타이를 매고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노고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정서적 소통이 없다면 인간적 이해는 깊어지기 힘들 것이다.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 무심코 이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며칠 후 둘째 딸아이가 늦게 귀가한 필자에게 '아빠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 날 더 이상 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사이에도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일들이 많았구나 생각하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과제를 하나 더 부과하였다. 자신들이 쓴 시를 모두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다수는 학교 과제를 핑계로 부모님에게 자신의 시를 한 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주에 다시 학생들을 만나 들어보니 그들의 시를 보고 부모님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 상당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개중에는 부모님과 이와 같은 대화를 처음 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몇 달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다가 이를 계기로 다시 말문을 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마지막 종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통에 있다. 소통이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통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 진정한 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 도처가 소통 불능의 상황에서 진정한 소통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화 없는 단절과 불화가 키운 난장에서 지식 경쟁만을 위해 성장한 청소년들이 10년이나 20년 후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세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때 우리는 인내심을 넘어선 갈등의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화와 소통은 시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강조해 두고 싶다.

2011-06-28 최동호

안마시술소가 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

[경인일보=]지난 주말 늦은 밤, 한 무리의 문화예술인들이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한 빌딩에 모여 파티를 하였다. 빌딩 4, 5층과 옥상에 '인계 마켓'이라 이름 붙인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공방에서 예술로 재생된 별별 것들을 파는 시장이 열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인계 마켓'의 공간 구조가 특이하였다. 중앙에 홀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지금은 작가들이 작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기에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방마다 욕조와 침대가 있었다 한다. 공간 구조가 수상쩍어 물어보니 안마시술소였다고 한다. 안마시술소가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혐오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는 많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쓰레기 소각장 기능을 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관광시설이 되었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합심하여 하늘 공원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그 예이다. 이곳에는 평화, 하늘 등의 테마를 가진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퇴폐 업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뀐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가나아트 센터가 경기도 장흥에 있는 러브호텔을 구입해서 미술인들의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여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 활동을 도운 사례가 있다. 2009년에는 해태제과가 이곳의 러브호텔을 구입하여 새로운 아트 밸리로 조성하였다. '인계 마켓'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 제작한 작품은 물론, 대중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미술시장도 겸하면서 교육도 한다. 입주 작가들의 면면도 다양하며 에너지도 넘친다. 겹벌이로 목수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작가는 버려진 폐가구를 모아 마켓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작가는 헌 옷과 버려진 현수막을 이용해서 재활용 의상, 가방을 제작하고 있었다. 유리를 즐겨 다루는 작가는 빈 병이나 깨진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여 조명 작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바리스타이기도 한 종이 작가는 주민을 대상으로 커피 관련 강좌를 열려고 한다.이들은 스스로 순수예술의 벽을 허물고자 하며, 소통과 협업을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공간도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입주한 작가간, 작가와 마켓 방문객간의 협업과 교감은 물론이고 거리에 나가 주민들과 대화하며 협업도 시도하고 있다. 인계동에는 유흥업소가 많다. '인계 마켓' 주변에는 많은 대리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 대리기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지금 '인계 마켓'의 김월식 촌장은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다. 주변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소통과 교감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공연할 것을 꿈꾸고 있다. '인계 마켓'은 도시가 물려 준 음성적인 소비 공간을 예술을 생산하는 양성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예술가로 만드는 일까지 시도하고 있다. '인계 마켓'이 있는 곳은 나혜석 거리이다. 나혜석은 수원이 낳은 화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으로 입상하여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소설가로서도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 친구인 최린과 바람을 피워 이혼을 당한 후, 최린을 상대로 정조를 유린한 데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개적인 글을 발표하여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홀로 최후를 맞은 슬픈 예술가이다. 나혜석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선각적 예술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은 있으나 나혜석은 없고 술집만 있다고 안타까워하였는데, 어쩌면 앞으로 이 거리에서 제2, 제3의 나혜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11-06-21 강진갑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면

[경인일보=]이웃과 잘 지내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살다보면 작은 시비도 생겨나게 마련이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리고 크게 보면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이 자명하고도 간단한 이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까닭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먼 장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볼 때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이웃인 일본, 중국 그리고 약간 멀긴 하지만 러시아와 잘 지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보면 그게 좀 그렇다. 일본?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나라이기에 여전히 감정이 깔끔하지가 않다. 우리는 아직 일본 대중가요를 공중파에서 들을 수 없는 사회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은근히 좋아한다. 중국? 역사상으로 늘 우리가 침략을 받았거나 또는 큰 나라로서 작은 우리가 섬겼으니 이른바 사대(事大)의 대상이었다. 그런 일로 해서 공식석상이 아니면 즉각 '쪽발이' 또는 '되놈'이란 말이 먼저 나오는 우리들이다. 독도 문제 그리고 동북아 공정 같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늘 흥분하곤 하는 우리들이다. 비교적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만 잘 지내는 것은 사실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지금이야 세계를 미국이 다스리고 질서를 잡고 있으니 별 탈이 없다 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일도 아닌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훗날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가는 날,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 적대 관계로 들어간다면 그건 우리 민족과 나라의 존립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이라 본다. 그러니 그때 가서 중국에 대해 또 다시 벌벌 기면서 사대하기도 사실 진짜 창피한 노릇일 것이다. 14 억 인구에 대해 남북한 합쳐 1억 인구는 이른바 쪽수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갑자기 친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우리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한 광개토대왕을 존경하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복속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며 일본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남북한 통일 후의 우리가 혹시라도 주변 이웃 국가들에게 어떤 위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주변 국가들 역시 그에 따른 대응을 해올 것이다. 당장 남북한의 통일문제부터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선린우호하는 것이 우선적인 방략(方略)이 될 것이며, 통일 후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야말로 주변 누구보다도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동북아시아 일대가 평화의 지역이 되게 하는 것은 주변 다른 나라들에 앞서 우리에게 가장 급선무라고 하겠다. 최근 들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 등과도 FTA 체결을 타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에 대해 선린하고 우호함에 있어 우리가 선제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 좀 어려운 말로 바꾸면 '이니셔티브'를 우리가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부 국민들이 보기에 우리가 지나치게 양보하고 때로는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이 세상은 '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가 사실은 이길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줌으로써 결국 갖는 것이고 너그러운 자가 더 강한 자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 연유로 이제 우리도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한 외교 자세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고 일본 대사관 앞에 가서 일장기를 태워버리는 감정적 처사만 반복할 것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갈수록 높아져 가는 중국의 위상에 지나치게 대응하는 것보다는 의연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가면서 좋은 친구 나라가 되려는 노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일본과 중국에 대해 감정의 앙금을 먼저 선제적으로 내려놓는 일, 의심의 눈초리보다는 신뢰의 악수를 먼저 내미는 것이 먼 미래의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수 있는 최우선적 장기전략(長期戰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 서서히 그럴 때가 되었지 않은가! ※ 블로그 : http://www.hohodang.com

2011-06-14 김태규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이후

[경인일보=]'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교수가 쓴 대학생들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책이다. 김 교수의 진성성과 온기어린 시선이 아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로 바싹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스펙 쌓기와 경쟁에 찌들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거리지 않는 이 시대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리라. '성공을 서두르지마라' '글은 힘이 세다' '신문을 읽어라'…. 강단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토해냈을 법한 내용들로 그득하다.그리 보면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다.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경험칙 상으로 꿰뚫고 있다. 방학이면 만사를 제치고 여행을 떠나는 결기가 먼 훗날 삶을 융숭하게 만드는 자산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인문학적인 사고력과 통찰력이 인생의 긴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진실도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년 급제'가 누대(累代)에 걸쳐 내려온,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쯤은 숙지하고 있다. 김 교수가 오늘에 맞게 정리했을 뿐이다. 영어와 상식, 여기에다 논문을 더하면 전공과 학점에 상관없이 어느 직장이나 공채에 응시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1등부터 점수 순으로 합격자를 끊고, 면접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되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필기시험 성적순이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식됐다. 그때 '스펙 쌓기 시대'가 올 것인지 누가 예측이나 했었는가.그 스펙 광풍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지 벌써 오래다. 어학 연수를 위한 휴학이나 학점 관리를 위해 목을 매는 것은 더이상 얘깃거리가 아니다. 성적을 산정할 때가 되면 교수나 학생이나 똑같이 긴장 상태가 된다. 출석 점수라도 하나 잘못 계산하면 곧바로 항의가 들어오고, 순위가 뒤바뀌면 난감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느새 이 스펙의 위력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인턴 시절에 쌓은 경험과 성과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신입사원을 채용한 대기업 임원의 전언이니, 변하는 흐름을 엿볼 수 있겠다. 급변하는 국제경제의 규모나 기업환경을 언제까지 스펙으로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필기시험이 종언을 고하듯 스펙도 역사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지금은 선진국 제품을 그대로 베끼고 흉내내어 수출하던 시대가 아니다. 싼 값의 모방제품 수출시장이 중국에 점령당한 것은 과거지사다.우리도 전자, 자동차, 가전, 철강 분야에서는 세계 일류기업들과 나란히 경쟁대열에 서있다. 눈 밑에서 창의의 환경이 개화하고 있는 중이다. 명품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그건 유사제품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창의적인 인재의 몸값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여기에 역량, 즉 위기를 관리하는 힘도 갖추어야 한다. 앞서가려다 보면 무수한 암초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최고의 전자 제품을 생산하던 일본 기업들의 현주소가 어떤가. 20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지배했던 핀란드 노키아의 신화는 또 어떤 상황인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역량이 부족하면 국가든, 기업이든 좌초되는 건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도 창의와 역량, 협력과 협동의 인재가 절실한 시대로 성큼성큼 진입하고 있다. 가히 스펙의 전성시대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배아(胚芽)가 발아하고 있는 것이다.흥망성쇠(興亡盛衰)의 인류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틀에 맞추려면 우리의 청춘들은 또 아파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협동의 시대를 앞두고 일렬로 세우는 상대평가를 고수하고 있다. 면접과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가르치는 취업 특강은 줄을 이어도 문화적 감성에 눈 뜨게 하는 예술 특강은 태부족이다.창의성은 생각의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는데서 나온다.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에 둔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이 그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대학 등급을 매기는 평가 지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성의 관행이 아픈 청춘을 더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절박하게 되돌아 볼 때다.

2011-06-07 양승현

스승 없는 스승의 날

[경인일보=]날이 갈수록 '스승의 날'이라는 말이 허전하게 들린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학생들에게 매 맞는 선생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인으로서 교사 지망생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이상한 기현상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직종에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직업인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학교 교육은 사라져버렸다. 교실에서 졸고 있는 학생들은 물론 그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 그리고 수업이 파하면 학원가로 몰리는 학생들은 분명히 정상적인 교육이 실종된 상황을 말해 준다. 교육의 성과가 오직 대학입학을 위해 평가되는 상황에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에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자기희생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엄격성이 사라진 자리에 진정한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사회에서 촌지가 사라지더니 이제는 체벌 금지가 일거에 실시되어 학교 현장은 통제력을 상실한 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잘못을 훈도하는 적절한 대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교실은 거의 무질서에 가까워졌다는 말이 들려오고 교사들은 자포자기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오로지 생존을 위한 점수 경쟁만이 있고 스승을 존경하거나 친구와의 우정을 존중한다는 인간적인 유대감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받는 제자도 있을 리 없다.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 그리고 직업인으로 전락한 교사들 어디서도 사랑과 존경이 감도는 곳이 없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 교육이나 기술교육에 우선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과 교감 속에서 삶의 지혜를 함께 하는 것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참 뜻이 생성된다. 한국 사회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진정한 열정을 지닌 교사들이 도처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쳐야 한다. 최근 '멘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군사부일체'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승은 단순한 안내자나 충고자가 아니다. 인간성 전체를 함양하는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스승의 상이다. '스승의 날' 즈음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거의 50년 만에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동창회를 가졌다. 가난한 시절 열성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 지니고 있었다. 구순에 가까우신 나이에도 아직도 건강한 선생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모두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중에서 졸업 후 처음 만난 한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담배 한 갑이라는 짧은 시 한 편을 썼다. "모두가 어려워 월사금커녕 시라기 죽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 가정 방문 온 담임선생께 드릴 것이 없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하며 이것 저것 별 것 아닌 야채나 푸성귀 같은 것들을 부끄러워하며 담아드린 농투성이 학부모 중에 누군가가 등 돌리고 돌아가고 있는 그를 멀리서 선생님을 크게 소리쳐 부르며 달려 와 어렵게 내밀던 꼬깃꼬깃한 뜯지 않은 담배 한 갑, 그처럼 큰 선물은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다고 40년 시골에서 교편생활하고 퇴임했다는 한 초등학교 동창이, 아직도 내가 교단에 있다니, 50년 만에 만난 술자리에서 처음처럼 이야기해 주었다" 이 시를 쓰고 나니 아직도 교직에 버젓이 서 있는 나에게 허전한 마음이 몰려 왔다. 내 자신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교단에 서 왔는가 하는 반성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성한 교단을 철모르고 40여년 가까이 오르내리고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부정할 길 없었다. 열정적인 교사들이 사라지고 나면 교육무용론이 대두될 지도 모른다. 최근 한 교육 사이트에 학교제도의 문제점을 제시하라는 의견란을 만들어 놓았더니 교사들에 대한 비난의 글이 쇄도해 폐쇄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심각한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돌아보며 스승 없는 스승의 날을 보내는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현안의 핵심은 빼놓고 선심공세처럼 무상교육이나 무상급식에 매달리는 정치가들의 표심잡기 경쟁을 보면 교육문제는 더욱 암담해진다.

2011-05-31 최동호

중소기업 문제를 문화경영으로 해결하기

[경인일보=]'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진 트로이전쟁은 고대 그리스 시대 대표적인 전쟁의 하나이다. 트로이 유적을 찾은 관광객 중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웅장한 성곽을 기억하는 이들은 트로이 성곽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 실망한다. 2007년 트로이 유적을 탐방한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실망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입구 쪽 안내판에 로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적 안내판 하단에 그려진 한국 기업 로고이다. 기업들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문화 경영을 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터키에까지 그들의 이미지를 심고 있었다. 유적에 실망한 한국관광객들에게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기업의 여러 홍보프로그램 중 그 효과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 같이 간 관광객들의 반응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문화 경영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다.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품질보다는 품격을 보고 선택한다. 품질은 단순히 제품의 성능만을 나타내 주지만, 품격은 품질에 문화적 감수성이 덧씌워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기업의 이미지에 문화를 입히기 위한 문화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경영은 활용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앞의 트로이 유적 사례와 같은 사회 공헌 전략, 예술 작품을 상품 디자인이나 광고에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 조직 관리에 문화를 도입하는 경영 전략 등이다. 한국에서 마케팅 전략과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은 다수 도입하고 있으나, 경영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매우 드물다. 문화 경영 전략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원에게 포상으로 책과 예술 공연 관람권을 지급하는 것, 직원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 직원 및 가족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문화예술 도서 위주의 도서 공간을 마련하는 것, 문화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것, 거래처 및 고객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사내 혹은 사외에 미술품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것 등이 있다. 지난 5월 20일 '아시아 문화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개최된 한 포럼에서 이정만 박사와 김형진씨가 공동으로 발표한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문화 경영 정책 제안'에 따르면 한국 기업 중 문화경영전략을 네 가지 이상 실시하는 기업은 조사 대상 기업의 15%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네 가지 이상의 문화경영전략을 도입한 기업과 한 가지도 도입하지 않은 기업 직원의 여러 설문에 대한 반응이다. '회사 내 동료와의 관계 만족도'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한 직원이 전자가 79.6%, 후자가 57.9%였다. '자기 회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전자는 68.8%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후자는 57.9%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생산을 높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자는 74.2%, 후자는 54.8%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특히 이직을 고려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자는 30.2%에 불과한데, 후자는 56.1%에 달하였다. 2010년 말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새해 목표를 조사하니 '이직과 전직'이 1위였다고 결과가 나오고 이것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중소기업 CEO들은 직원의 높은 이직률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기업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는 길이 문화경영이 아니겠는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문화 경영을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금부족과 문화경영기법을 모르거나, 활용가능한 문화예술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문제를 도와주기 위한 중앙정부의 프로그램이 있으나 매우 부족하다. 이제 자치단체와 문화 기관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 CEO들도 기업 경영 과정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경영전략을 도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

2011-05-24 강진갑

이제 또 다시 質(질)의 시대가 오고 있다

 [경인일보=]文(문)과 質(질)이란 말이 동양 古典(고전)에 있다. 문이란 文飾(문식), 즉 꾸밈이란 뜻이고 질은 바탕을 말한다. 論語(논어)를 통해 孔子(공자)는 '질이 문을 이기면 조잡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치하니 꾸밈과 바탕이 잘 조화되어야만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됨이 질박하기만 하면 멋이 없고, 반대로 '멋부림'만 있으면 진정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운을 살펴보건대, 1951년부터 1981년까지가 質(질)의 시대였고, 그 이후 금년 2011년까지가 文(문)의 시대였다. 대개 세상과 환경이 좋아지면 기본적인 의식주보다는 좀 더 高尙(고상)한 것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니 이는 人之常情(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가을들어 '88 올림픽 개최'라는 朗報(낭보)가 들려온 이래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간은 실로 승승장구의 세월이었다. 그 이후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현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니 비록 양극화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간의 세월을 통해 이제 우리는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서 서서히 멋도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몇 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호화사치로 달려가고 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성형수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면에서 멋부림이 지나친 면이 있다. 내용보다는 겉모습이 중요해졌으니 정치사회는 물론 학술과 예술 등등 모든 면에서 꾸미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30 년의 흐름이 裝飾(장식)의 문화였던 바, 그 또한 가장 적절했던 시점은 30년의 6할인 18년, 즉 1999년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식만 남고 질은 사라져간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우려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이처럼 언제까지나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반대 흐름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드린다.  우리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벽에 이미 봉착해있다. 내적인 상황을 보면 거주공간에 대한 과다한 비용지출과 투자로 인해 이미 가계살림은 팍팍해졌고, 또 취업이 잘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학력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사람들은 복지 문제에 신경을 쓰지만 그 또한 알고 보면 우리가 지불해야 돈이고 뒷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돈이다. 외적인 상황을 보면 그간 승승장구해온 우리 수출기업들도 이제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비중을 높여가기는 어려운 어떤 한계에 봉착했다. 그러니 앞으로의 세월은 지난 세월의 지나침을 교정하고 조정하는 흐름이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명백한 것이다.  부동산 가격 조정은 어차피 시간문제라 하겠고, 가계별 교육 투자도 조만간 위축될 것이 불가피하다. 또 중국을 비롯한 여타 신흥국 산업의 발전으로 조만간 우리 수출 산업들도 한 차례 역경을 맞이함은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전체적인 파이의 축소 조정이 불가피한 국면에서 재정적자를 통한 비용지출과 복지향상 역시 앞으로 확대보다는 축소 국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인기정책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헛일이 될 것이다.)금년 가을부터 당장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흐름이 서서히 꾸밈의 시대에서 다시 질박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처음에 사람들은 주로 남의 탓을 할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고 진짜로 어려워지면 탓을 하기에 앞서 각자 살 길을 찾아나서는 것 또한 인간의 지혜이다. 그러면 또 다시 의식주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고, 그로서 사람들은 소박해질 것이다. 소박해지면 힘이 생겨나고 꾸밈보다는 능률과 실질을 더 선호하게 된다.  저 옛날 박정희 독재시대였던 1968년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제정되어 모든 학생은 강제로 암송해야 했었다. 그 문구에 보면 '能率(능률)과 實質(실질)을 崇尙(숭상)하고'란 말이 들어있었다. 이제 한 차원 우리가 올라섰으니 강제로 암송할 일은 없겠으나, 분명 그런 분위기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돌아가게 될 것이다.  ※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5-17 김태규

어머니의 '봄날은 간다'

[경인일보=]지난 주말 교직원들 틈에 끼여 파주 임진각과 심학산을 찾았다. 내년 대학 통합을 앞두고 마음도 열고 여러가지 의견도 나눌겸 해서 따라나선 길이었다. 모처럼 나들이였는 데 변덕스런 봄 날씨가 시샘하는 듯했다. 간밤에 돌풍과 함께 비가 내리더니 아침부터 궂은 날씨였다. 그래도 봄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진달래와 벚꽃이 진 자리를 철쭉과 조팝나무 흰 꽃이 메우고 있었다. 목련이 진 봉오리엔 연둣빛 새 잎이 푸르름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임진각은 개인적으로 30여년 전 군에 있을 때 면회장소였다. 일년에 한 두 차례, 군용 트럭에 실려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전날 여관에서 밤을 새운 어머니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이다. 면회소로 쓰이던 함석 건물만 덩그러니 들어선 벌판이었는 데,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민통선에서 이 곳으로 옮겨놓은 철마(鐵馬)는 5분마다 기적소리를 울렸다. 짙은 운무 속에 철조망은 그 모습을 희미하게 감추고 있었다. 질척한 날씨 속에도 분단의 봄을 보려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비가 눈길을 끌었다. 분단을 노래한 시비(詩碑)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친근함이 앞섰다.비에 젖은 심학산은 연두색의 향연이었다. 화사하지 않은 봄 산이 어디 있으랴만, 오르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주변은 적막했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카페 분위기의 식당에서 봄날 오후를 풀어 제쳤다. 심학산 자락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식당을 고즈넉한 기운이 감싸 안았다. 봄날의 오후가 그렇게 깊어갈 즈음, 소박한 봄내음에 취했는지 한 직원이 벽에 쓰인 시를 조용히 낭송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 '물망초'였다.이런 날은 시 보다 벚꽃이 피듯 한 곡 흐드러지게 부르는 게 제격이지 싶었다. 시에 버금가는 노랫말이 어디 한 둘인가. 시인들로부터 '으뜸 노랫말'로 뽑힌 '봄날은 간다'가 맞춤이리라. 한참 뒤에 한영애, 조용필이 새롭게 부르기는 했으나, 1953년 발표한 백설희의 처음 버전이 단연 압권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하는 가사에는 어머니의 새색시 시절이 배어있다. 갓 결혼한 그 품에서 칭얼대던 나의 유년의 기억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느 한 구절 비켜놓을 대목이 없다. 3절의 '열아홉 시절엔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언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로 시작하는 첫 노랫말은 아련함을 지나 그리움이다. 간드러지게 부를 수만 있다면 가히 절창(絶唱)인 구절이다. 설운도의 노래비가 분단을 토해내고 있듯, 누가 '유행가'라고 가벼이 여길 수 있는가.지금은 자취를 찾기 힘들지만, 30~40년 전만 해도 고향마을에는 화전(花煎)놀이가 있었다. 4월 초에 한 날을 잡아 젊은 며느리들이 중심이 되어 하루를 질펀하게 놀았다. 날이 정해지면 마을 전체에 묘한 들뜸이 휘감았던 기억이 새롭다. 화사한 치마와 저고리로 치장한 젊은 어머니들은 장만한 음식을 싸들고, 장구·괭과리 같은 풍물까지 챙겨서 마을 앞 섶다리를 건넜다. 이내 산모퉁이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 날은 종일 할머니가 부엌을 지켰다. 해질 무렵, 봄볕에 그을린 것인지, 얼큰한 술기운 때문인지 진달래보다 화사한 어머니의 손에는 항상 참꽃이 한 묶음 들려 있었다.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흥얼대던 콧노래가 바로 이 '봄날은 간다'였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도회지에서 자란 젊은 며느리에게 시골 시집살이가 아마 고달픈 탓이었으리라.풍물이 달라졌을 뿐, 봄철 야유회의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찰쌀병에 참꽃을 얹은 화전을 기름에 지져 먹는 게 쉽지 않지만, 심학산 꽃 피는 삶에 홀리고 싶은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의 마음이야! 예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소박한 봄 잔치였다.4·27 보선 이후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개각이 이뤄지고,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파렴치한 행동으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서민들의 삶은 건강하다. 봄날이 가면 가는 줄 알고, 여름을 맞을 채비에 게으른 법이 없다. 서민들의 힘이다. 이런 저런 얘기꽃 속에 2011년 대한민국의 봄은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2011-05-10 양승현

젊은 꽃들의 인간 교육

[경인일보=]4월은 잔인했다. 꽃들이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기상이변이 계속되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지내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봄을 힘겹게 기다리고 있을 때 꽃과 같은 젊음을 지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생들이 네 명이나 잇달아 자살을 했다. 학생들에 뒤이어 교수까지 자살하자 여론은 들끓었고 대학의 최고 책임자였던 총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슬그머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뒤늦게 책임론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서둘러 덮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과 대책이 필요한 일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들의 사분의 일 정도가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이들 모두 잠재적으로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은 모두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점수 일 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과외 공부로 몰리는 아이들, 정규 수업시간에는 모두 졸고 있는 학생들, 그들을 아무도 깨우지 못하는 교사들, 그들에게는 수능 점수가 전부이다. 학부모들이 학생과 교사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것은 점수이다. 학원가의 최고 강사는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 언사를 거침없이 쏘아대며 학생들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그 정도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젊은 꽃들의 죽음이 주는 희생의 가치를 정말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공부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삶 또한 더없이 귀중하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경쟁의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잔혹한 경쟁의 논리만을 내세운 지식 교육은 그들이 긴 인생을 자신과 싸우며 살아나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쟁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속성교육집단은 미래가 없는 집단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고민 없이 오직 오늘의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근시안적 사고에 사로잡힌다면 오늘을 살 수 있는 이기적 경쟁심은 발휘될지 모르지만 내일의 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를 돌파할 내적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는다.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과 여유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수학 문제만 풀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닭장 속에서 모이를 먹고 자라는 양계장 병아리가 아니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모국어교육이다. 교육 개혁의 속도전을 위해서는 한국어도 영어로 가르치라고 한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사 교육도 영어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야말로 젊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경쟁의 논리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솔제니친은 모국에서 추방된 러시아 작가이다. 그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원한 것은 모국으로 돌아가 모국어 속에서 사는 것이었다. 모국어는 그 자신의 영혼이다. 영혼 없는 과학자는 인간을 위해 그리고 모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의 경쟁에서 이기고 내일의 경쟁에서 뒤지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젊은 꽃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심성을 함양하는 치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그들을 경쟁의 낙오자로 규정하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만 궁리한다면 그 나라와 국가는 진정한 미래가 없다.

2011-05-03 최동호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

[경인일보=]작년 중국 항저우에 있는 서호의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인상 서호'를 관람한 바 있다. 서호는 13세기 중국을 방문했던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엔 서호가 있다"고 극찬한 아름다운 호수이다. '인상 서호'는 인간이 되고 싶은 백사(白蛇) 백랑과 선비 허선과의 사랑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중국 설화 백사전(白蛇傳)을 수상(水上)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은 넓은 호수를 둘러싼 나무에 조명이 비치면서 시작한다. 이어 하얀 옷을 입은 배우들이 걸어나오는데, 수면 바로 아래에 무대를 설치하였기에 배우들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성을 음악 속에서 훌륭히 녹인 일본인 작곡가 기타로의 음악이 더해져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인상 서호'는 빛과 음악과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콘텐츠로, 연출가이자 영화 감독인 장이머우의 '인상 시리즈' 5연작의 하나이다. 인상 시리즈는 작품 한 편당 연간 100여만명이 관람하는 콘텐츠이다. 전문 배우만이 아니라 주민들도 배우로 참여하기에 주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콘텐츠이다. '인상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에 큰 자극을 주어 국내 여러 곳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작년 부여에서 열린 2010 세계 대백제전에서 백마강을 무대로 한 수상공연 '사비미르'도 그 중 하나이다. 예술가들은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탁트인 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 관객들도 열린 공간 속에서 공연을 즐기고 싶어한다. 예술가와 관객의 욕구가 만나 탄생한 것이 인상 시리즈와 같이 자연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다. 공연의 역사는 동서를 막론하고 야외공연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그리스와 로마 공연장은 모두 야외 무대였다. 무대가 실내로 옮겨간 것은 BC 1세기에 로마 극장에 커다란 둥근 천장이 씌워지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19세기말에 건립된 광무대이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토익이 동대문 밖 한성전기회사 전차고 안에 설치한 가설무대로, 낮에는 판소리를 공연하고 밤에는 영화를 상영하였다. 1908년 박승필이 인수한 후 본격적인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공연이 실내에서 이루어졌지만 대중을 위한 본격적인 공연 무대가 실내로 옮겨진 것은 광무대가 처음이다. 한국에서 무대가 실내로 옮겨진 것은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이다. 따라서 무대가 실내에서 야외로 나가는 것은 원래의 무대 모습으로 돌아가는 셈이다.자연을 무대로 한 공연은 이미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2006년 북한강변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서 개최된 실학축전에서 늦은 밤까지 강변 무대에서 여러 공연이 올려진 바 있다. 포천에서는 폐 채석장이 아트 스페이스로 변해 조각예술공원, 전시관, 홍보관, 야외공연장, 소공연장, 전암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여기서도 여러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스웨덴의 달할라 공연장은 원래 석회암 채석장이었으나 야외극장으로 변모하였다. 공연장은 지상에서 60m 깊이에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달할라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러나 이들 공연은 소규모 공연이었기에 지역 활성화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 '인상 시리즈'와 다른 점이다.2011년부터 경주보문단지에서도 관람석 2천석 규모의 대규모 야간 수상공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1979년 개장 이후 연간 8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휴양, 관광지였으나 그동안 후속 투자가 미흡하고 콘텐츠가 부족하여 갈수록 그 명성이 퇴색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가 민자 160억원을 포함하여 총 210억원을 투자하여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펼치는, '인상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의욕적인 프로젝트다. 경기도에서도 자연을 무대로 대규모의 공연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그 장소는 임진강 적벽이 될 수도 있고, 수원 광교저수지가 될 수도 있다. 두 공간 모두 야외 공연장으로는 적격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지역 활성화와 경기도의 문화예술 수준을 크게 높여줄 것이다.

2011-04-26 강진갑

주택시장의 향후 전망

[경인일보=]최근 우리 사회는 800조의 가계대출을 놓고 말이 많다. 절대 액수보다도 가처분 소득과의 비율을 보아야 한다느니 가계대출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결국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궁금증은 앞으로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일반 국민들의 재산은 부동산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당연한 궁금증이고 불안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간단히 전망해보자. 부동산 가격을 한강을 흘러가는 강물의 水位(수위)라 해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강의 수위가 약간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사실 크게 낮아진 것도 아니건만 문제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감이라 해도 좋겠다.그러나 그건 당장의 문제인 것이고 장차 한강의 수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상류 쪽에서 계속 물이 유입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이 될 것이다. 즉 북한강이나 남한강 방면을 살펴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가뭄이 해소되느냐 하는 문제라 하겠다. 유입되는 물의 양을 살피는 데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30대 연령 젊은층들의 주택구매 성향이다. 그러나 지금의 주택 가격으로 볼 때 소비성향이 높은 이들 계층은 외제차를 샀으면 샀지 집을 살 생각은 쉽사리 가지지 않고 있다. 집 한 채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당장 쓰고 보자는 생각이다. 둘째, 20대 연령의 실업 문제이다. 이는 장차 주택 구매의 예비군인데, 당장 취업도 안 되는 바람에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기란 어렵다. 셋째, 50대 연령, 베이비 붐 세대의 퇴직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 이 세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발전을 주도해온 세대로서 금년부터 은퇴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재산은 대부분 집 한 채가 전부이고, 게다가 백수세대인 20대 자녀의 지원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향후 주택가격의 동향은 이들 베이비 붐 세대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이 세대들은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가 때가 되면 정리해서 자녀 지원과 결혼 비용 등을 해결하고 남은 돈으로 전원으로 물러가 안온한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경우, 당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고 이에 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만일 가격이 하락한다는 판단이 서면 처음에는 누군가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것이고, 그러다가 그것이 대세가 되면 일시에 매물이 봇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우리 주택 시장은 연일 하한가를 치면서 상당 부분 하락조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베이비 붐 세대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는 뇌관은 사실상 현 40대의 활동력 강한 중년층이다.이들은 2004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한 계층들이다.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버티고는 있지만 장차 금리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원리금 상환의 부담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40대를 중심으로 주택 매도가 세를 형성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지켜보던 50대 베이비 붐 세대가 거취를 결정하게 되는 연쇄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주택 가격 문제인 것이다. 30대는 주택구매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고, 20대는 꿈꾸는 자체가 불가능해진 현실이다. 상류의 유입량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에 40대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자연 50대 베이비붐 세대가 이대로 가느냐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매도에 나서느냐가 결정되는 구조인 것이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수위보다도 결국 상류 쪽의 동향을 살피면 조만간 답이 나올 것이라는 게 내 얘기이다. 가계대출이 가처분 소득 대비 어떻게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양극화로 인해 그 비율 자체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생각도 해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빠르면 금년 9월 하순부터 얻게 될 것이라 본다. ※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4-19 김태규

분당 대전(盆唐 大戰)

[경인일보=]정치에는 유독 비정(非情)한 구석이 많다. 오직 살아 남아야만 하는 검투사의 승부일 때가 종종 있다. 4·27 재·보선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함의가 커지면서 '원형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乙)에 출사표를 던지던 날, 박지원 원내대표가 "분당 투우장에는 이미 피를 보려는 관객이 몰려있고, 이제 민주당의 투우사가 입장한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정치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여야의 전·현직 당대표인 강재섭· 손학규 후보가 맞붙은 분당을이나, MBC 사장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임한 엄기영·최문순 후보의 강원지사 쟁투, 그리고 정치 재기와 '노무현 정신'의 점화를 놓고 일합을 겨루는 김해을(乙) 열전도 마찬가지다. 선·후배도 없고, 정치적 동지의 인연도 찾아볼 수 없다. 엄혹한 승부세계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분당을은 4·27 재·보선의 종합판이다. 강재섭·손학규 두 후보 다 선출직으로는 두드러진 관록의 보유자다. 쉽지 않은 정치적 고비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문민정부 시절인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종필(JP) 최고위원은 김영삼(YS)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민자당에서 내몰리자 자민련을 창당했다. JP 동정론이 무서운 기세로 퍼지면서 '반(反)YS 정서'가 폭풍우처럼 대구를 휩쓸었다. 신한국당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 13명 가운데 단 두 후보만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 중 한 후보가 강재섭 의원이었다. 그의 정치적 저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손학규 후보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乙) 보선으로 정치에 입문한 '보선 스타'이다. 4·19 세대인 민주당 최정택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거머쥔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꺾어 스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그 파란의 여세를 몰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당선됐고, 지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떠나 여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후보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의 대표가 된 승부사다.두 승부사의 대진이 확정되면서 분당을은 이번 재·보선판을 키운 최고 동인이기도 하다.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진검승부이다. 그러나 관전자들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니 손님이 꼬이게 마련이고, 벌써부터 숱한 감상법이 장외를 풍미하고 있다. '누가 살아 돌아올 것인가'는 향후 정치지형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강·손 두 후보간 박빙의 승부를 점친다. 투표율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돈다. 주부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최근 집값하락으로 쑥 들어갔다지만 부와 이념, 세대의 측면에서 보수의 색채가 강해 안정 희구층이 주류를 이룬 탓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공천이 관건인 지역구였다.그런데 최근 들어 표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변화이다. 만약 손학규 후보가 당선되거나, 강재섭 후보가 힘겨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의 지각변동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은 총선 패배라는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 파장은 지도체제 개편문제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터이고, 이는 공천권과 맞물려 거대한 쓰나미(지진 해일)로 정치권을 뒤흔들 것이다. 정국은 백가쟁명의 논의 속에 급속히 총선체제로 재편될 게 분명하다. 강·손 두 후보 가운데 승자는 중심의 한 축에 서게 된다. 내년 총선의 방향타가 될 분당을의 승자를 배제한 채, 체제정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까닭이다.전략공천 잡음으로 속앓이를 한 강재섭 후보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그 연결고리를 끊으려 들 것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그로서는, 기존 당권파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손학규 후보는 단연 돋보이는 야권의 대선후보 반열에 성큼 오르게 된다. 탈당의 원죄도 희석되어 거의 사라질 것이다. 당의 요구로 서울 종로와 분당을 출마를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더 이상 '정체성 시비'를 걸고 나올 사람은 없다.이래 저래 분당을은 대전(大戰)이다. 개인의 정치적 명운은 물론 향후 정치구도와 맞물려 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비장한 승부, 그러나 정치권만 속이 타고 국민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1-04-12 양승현

조용한 슬픔과 독도 미사일 공격

[경인일보=]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역사적 사건이다. 대지진과 더불어 휘몰아 닥친 쓰나미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가를 보여주었다. 방파제는 물론 농경지와 도시와 산야를 뒤덮은 검은 흙탕물의 노도는 인간이 건설한 건축물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 진짜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지진의 여파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는 급기야 최악의 방사능 물질을 내뿜는 악마적 발전소로 전락하였다.이 놀라운 재앙을 생중계하듯 텔레비전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은 놀라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성금을 걷는 한편 위로의 시를 쓰고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다. 이 상황에서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려 보았던 것은 일제의 감옥에서 순절한 윤동주 시인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인들에게 과연 윤동주는 이 처참한 순간을 목격하고 무어라 말할 것인가. 윤동주를 대신해서 말해 본다면 그것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서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바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음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는 의지로 인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성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발표했다. 발표를 늦출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4월 1일 일본 각의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2011년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외무상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므로 독도가 미사일의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자신들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엄청난 자연의 재앙과 그들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가 방사능을 대거 유출하는 위기 상황에서 슬픔을 삼키고 의연하게 대처하던 일본인들의 참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온정은 값싼 동정심의 발로로 치부하고 예정된 수순에 따라 영토권 주장을 강변하는 그들의 논리를 접할 때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차분한 슬픔 밑에 잠복해 있던 독기서린 일본인들의 심적 근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나라가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그들의 주장은 더 크고 강하게 되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일본열도침몰'에 대한 대안으로서 대륙 진출을 위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진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대진재가 조선인 폭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여 그들의 피해의식을 보상하면서 민심을 회유한 바 있다.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도 그들 국민들의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고 조용한 슬픔의 배면에 잠복된 국민적 분노를 표출하는 출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숨겨져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16세기 후반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들은 대륙 진출을 위해 교두보로서 조선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다. 일본 정부 당국이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 할수록 스스로 세계사에서 고립적 존재가 되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라고 볼때 우리의 상황 판단도 더욱 성숙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집스럽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를 검정하고 외교청서를 발표했다는 것은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주범으로서 가져야 할 역사적 죄업을 망각했음은 물론 앞으로 자라날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역사적 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행의 씨앗을 배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 지표일 것이다. 관동대진재 당시 한국인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동북대지진은 우리들에게 결코 망각해서는 안되는 역사적 교훈을 되살려 준다. 명심해야 할 것은 '독도미사일대응'을 주장한 일본의 외상이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초대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외 5세손이라는 것은 대륙 진출을 향한 그들의 야욕이 중단되지 않는 역사관임을 웅변하는 객관적 사실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2011-04-05 최동호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 유산인가?

[경인일보=]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인가?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해서 부활시켜야 할 문화유산인가? 이 문제를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유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유교가 여성 차별적이고, 충과 효를 강조하는 데서 보듯이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가족 정실주의와 보수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이해도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1919년 5월 4일 일어난 신문화운동 시기에 유학은 나라를 망친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세계 문화를 주도해 온 강대국 중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속절없이 무너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그 원인이 유교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유교가 나라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고 유교를 멀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유교에 대해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한국사학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조선시대 유교의 역사적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세계 학계에서도 유교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등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 이들 국가가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고 유교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힘을 유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학계의 평가는 이처럼 달라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유교가 조선시대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발전된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라서 현대 자본주의와 맞지 않아서인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 대부분이 지금부터 1천500년에서 2천년 이전 시기, 유목사회 또는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었으나 지금 세계 종교로 인류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비슷한 시기에 성립된 유교만 현대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가. 필자는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는 모두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경전을 찬찬하게 읽어보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세계적인 종교는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재해석되고 정리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으나, 유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유교가 지금부터 할 일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중심으로 유교는 재해석되고 이해되어 일반인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에서 정약용의 글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단계별 학습이라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경영인들에게는 창의적으로 경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민 교수는 단순히 공부하는 방법이나 경영 기술을 뛰어넘어 지식경영이라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KBS가 엮은 '유교 아시아의 힘'에는 유교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21세기 아시아 나아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유교 문화유산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 문화적 자산, 교육 자산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서원과 향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고, 기업인들은 경영을 배우며, 정보전문가들은 정보를 조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전 경기도 향교와 서원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서 주민과 학생들에게 다가가려는 향교와 서원 운영자들의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국 유학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2011-03-29 강진갑

한 번 열렸으니 한 번 닫힘도 自然이라

[경인일보=]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1년 9월 30일,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52 대 27로 누르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이 되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이 환호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염려가 컸었다. 당시는 신군부에 의해 출범한 제5공화국 초기였기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어두웠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절대 다수가 절망감에 빠져 지내던 때였다.그로부터 8년 뒤, 우리 국민들은 실로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여 1988년, 대단히 성공적으로 올림픽 행사를 개최하고 또 마무리했다. 88올림픽 개최 성공은 갑작스럽게 1986년부터 3년간에 걸쳐 불어닥친 훈훈한 바람, 이른바 3저 경기로 인한 미증유의 호황 그리고 수출 신장세와 맞물리면서 당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을 비관에서 긍정으로 뒤바꿔놓은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뒤돌아보면 1981년 9월 올림픽 개최라는 낭보(朗報)가 들려온 이래, 우리 대한민국은 거침없는 약진을 거듭해 왔다. 많은 문제가 있었고 무수한 난관을 만났지만 끝내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통해 우리는 작년 11월 G20 서울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오늘날 지구촌의 새로운 강자(强者) 반열에 그 이름을 올렸다.올해는 2011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1981년으로부터 만 30년이다.여기에 하나의 예측을 드리고자 한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週期)로 해서 부단히 변화 발전해간다. 그 운동은 본질적으로 물결과 같아서 30년을 오름이라 한다면 30년은 내림의 파동이 지속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올림픽 개최 소식이 들려온 이래로 시도하고 도전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것은 상승 파동이었다. 이 기간 동안의 시대정신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다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시던 그 말씀 속에 말이다.금년 9월을 고비로 앞으로 30년간은 그 반대의 흐름이 닥쳐온다고 나는 본다. 우리가 가진 현재의 역량과 능력으로는 뭔가 부족한 까닭에 쉽게 해결되는 일이 좀처럼 없는 30년이 지속되리라. 물론 이는 현 시점에서 상당히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앞으로 30년씩이나 어렵다는 소리이니 정말이지 재수 없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은 뭐 독자들의 기를 죽이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보다 어떤 경우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비관론을 심어주자는 말도 아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생뚱맞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그러나 우리가 1981년 올림픽 개최 소식을 접하던 당시 대부분이 비관적이었듯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1년, 현 시점에서 모두가 어렵긴 하지만 낙관적인 것과 실은 동일한 경우라 본다.우리가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마무리하면서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듯이 앞으로 7년 뒤인 2018년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예측은 7년 뒤에 가서야 납득이 가는 말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 무려 7년을 앞당겨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으니, 이 글을 쓰는 취지이기도 하다. 앞날에 대해 비관하라는 것이 아니라, 앞날의 운수가 순조롭지 못할 것 같으니 미리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쉽게 일이 풀리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힘들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앞으로 30년에 걸친 어려움은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강건해진 대한민국을 창출해내기 위한 산고의 과정이 될 것이라 본다.세상의 흐름은 물결과도 같은 것이고 해안을 적시는 조수(潮水)와도 같은 것이다.※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3-22 김태규

쓰나미가 휩쓴 일본, 봄처럼 이겨내라

[경인일보=]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부지런한 걸음이다. 도심 여기저기에서도 꽃단장이 한창이다. 시민공원은 봄맞이에 여념이 없고, 겨우내 갈라진 도로를 보수하는 작업도 분주하다. 산과 들에도 깊이 응달진 골짜기에 잔빙(殘氷)이 조금 남아있을 뿐, 봄 기운이 완연하다. 올 봄은 지난 겨울 혹한과 폭설, 게다가 축산농가를 휩쓴 구제역 충격으로 유난히 기다리던 터다.그러나 그 봄의 초입에서 목도하게 되는 일본 열도의 비극은 우리들의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연일 말을 잃게 만든다. 자연의 위력 앞에 겨울, 봄과 같은 계절의 순환은 호사에 가깝다. 지진과 쓰나미를 확률과 통계에 의존하고 있는 21세기 과학문명의 한계는 겸허함을 넘어 초라한 느낌마저 들게한다.TV에 비친 쓰나미의 참상은 전쟁영화를 왜소하게 만드는 충격이었다. 거대한 배가 도로 위에 걸쳐있고, 수백 대의 자동차가 양철판처럼 구겨져 휩쓸려가는 화면은 경악이었다. 도시가 온통 뻘밭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접하고서는 '저 곳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당신 없이 살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사도 모른 채 나흘만에 만난 부부의 통곡에서는 오히려 전율이 느껴졌다.후쿠시마 원전도 1·3호기 원자로 외벽 폭발에 이어 2·4호기도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일본 국내는 물론 주변국까지 초긴장 상태이다. 피폭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엔 바람의 방향과 농산물 오염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안전지대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이번 지진이 일본 해안선을 4m 동쪽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지구자전축을 10㎝ 이동시켰다고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도면 인간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치명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쓰나미가 닥쳐올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미리 피해 달아나는 것 뿐"이라는 지진 연구학자의 전언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실제 바닷속 진앙이 육지와 가까울 때는 지진과 동시에 쓰나미가 해안 마을을 덮친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방재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피해가 이 정도인지도 모르겠다.우리가 대지진으로 주저앉은 일본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은 당연하다. 한류 스타들이 먼저 트위터와 페이스 북을 통해 일본 팬들에게 아픈 마음을 전하면서 '도울 방법을 찾겠다'는 글을 줄지어 올리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최근 현빈이 해병대에 입대할 때도 멀리 포항까지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은 일본 팬들이다. 이제 그 이웃나라 팬들에게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다.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약속은 큰 힘이 될 것이다.일본과 우리는 애증이 교차하는 파란의 역사를 나누고 있다.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국제경기에서 일본이 우리 아닌 다른 나라와 겨뤄도 선뜻 응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벌써부터 몇몇 지도자들의 말실수가 인터넷에 오르내린다. 예부터 이웃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는 말을 가려서 했다. 국가간에는 극진한 예를 다했다. 평소에 자주 했던 말이라도 고깝게 들려 국가간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쓰나미가 아름다운 일본의 해안도시를 강타한 다음날, 지인들과 저녁 모임에서 예전에 책 광고에서 언뜻 본 듯한 '일본 열도의 미래'가 화제로 올랐다. '영토의 대부분이 바다 속에 잠긴다' '지축이 수직이 된다'는 둥 한때 호사가들 사이에 회자됐던 미래예측서가 재밋거리로 등장했다. 호기심과 장난기까지 막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바탕에 깔린 복잡 미묘한 정서가 늘 마음에 걸린다.우리는 "딸의 손을 놓쳤다"고 울부짖는 한 일본인 엄마의 눈물과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느껴야만 한다. 이 상련(相憐)이 먼저다. 정성어린 손길이 진정한 인도주의다. 범부(凡夫)들의 관계도 그러하듯, 애도와 조문이 국가간 관계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곧 도쿄 우에노(上野) 공원과 황궁옆 치도리가우치(千鳥ヶ淵) 공원에는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일본 벚꽃은 유난히 희고 곱다. 일본이나 우리나 봄은 항상 새롭고, 화사하다. 생명의 숨결이 거세고, 꿈으로 들뜬다. 대재앙에도 침착하고 차분한 일본이, 이 봄, 꺼지지 않는 생명력으로 힘차게 일어서리라 믿는다.

2011-03-15 양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