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스마트 시대와 인간적 서정

9월 4일 김달진 문학제 국제시낭송회가 창원시 진해,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 열렸다. 마당을 들어서자 하얀 깃발들이 하객을 맞이하듯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돌담을 죽 돌아 올해 수상한 시인들을 포함해 그간 수상한 시인들의 대표작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소곤대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탑돌이 하듯 돌담을 돌며 깃발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년부터는 창원KC국제시문학상도 제정되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최고의 시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축제가 시작되자 프랑스, 일본, 중국, 몽골 등지에서 온 각국의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마치 귀 기울이면, 언어는 잘 알 수 없지만,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들을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모두가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있어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하다. 각국의 대표 시인들이 낭송을 끝내면 참으로 감동을 받은 듯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낸다. 프랑스어나 일본어, 중국어, 몽골어 등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을 수 있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 할 수 있는 원로 시인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프랑스어는 학부 시절에 공부한 바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추억의 미로를 걷듯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언어로 시를 낭송하는데도 모두가 열광하고 일제히 감동과 환희의, 때로는 한숨 섞인 박수를 쏟아내는 것이다. 이 미스터리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올해 창원KC국제시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시인 끌로드 무샤르는 유독 '소통'에 의미를 두어, 시란 "세상에 대한 열정"이고, 그런 까닭에 "나와 세상 간에는 '함께-사이에'라는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속삭인다. 무엇을 구태여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지 않았음에도 그날의 그 시들은 그대로 존재하면서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과 진정성이 전제되고 소통과 공감을 원할 때 구태여 이해시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진실은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막걸리와 음식들이 기막히게 맛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동민들의 소박하고 훈훈한 마음이 그들이 준비한 음식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농경 사회의 인간은 타자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상호의존의 구조 속에서 훈훈하고 인정 넘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스마트 사회의 인간은 넘치는 정보와 지식으로 타자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터치스크린의 방식은 어떤가. 고도의 기술 정보 스마트 시대일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할 것이다. 삼성이나 애플 모두 슬라이딩 터치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터치의 방식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 폰 속의 모든 정보 역시 인간의 욕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을 인간에게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담아 놓아야 하니 스마트 폰이야말로 인간 욕망의 화신인 셈이다. 그날 시인의 생가 마당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 시대의 개인주의적이고 세련된 삶의 편리함을 즐기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농경 사회의 훈훈하고 정겨운 소통과 공감의 삶에 대한 욕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스마트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인간 삶의 복잡성, 그것은 동시에 풀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깃발 속을 뛰어다니며 유년을 그리워하다 서울로 돌아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여서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어놓았던 일이 떡 버티고 있다. 이번 추석은 우리 집 차례다. 제수 준비도 해야 하고 집안 정리도 해야 한다. 명색이 스마트시대의 원조인데 이런 거 다 해결해 줄 스마트한 방법은 없을까?

2011-09-13 김구슬

가을에서 정치가 배워야 할 것

내일이면 백로(白露)다. 늦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 아침 저녁으로 성깃성깃 차가움이 느껴진다. 여름 내내 쏟아진 비를 지켜보면서 '올 더위는 끝났다' 싶었던 게 얼마 전이다. 그 두 달 사이에, 장대비에서 늦더위를 거쳐 이제 서리가 목전이다. 올 고추 농사는 금값이라는데, 고추밭도 서리를 맞으면 흐물흐물 녹아내려 못쓰게 된다. 사람의 삶도 여기에서 한 발짝도 비켜설 수 없다. 정치라고 별것이겠는가.올 가을은 묘하게 정치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면서 생긴 정치 공간이 말 그대로 난마다. 으르렁거리는 품새들도 예사롭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 진퇴 문제까지 겹쳐 얽히고 설킨 방정식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가도에는 일단 빨간 불이 켜졌다. 서울시장 보선에 380억원이 드는데, 김 지사마저 대권 도전을 위해 지사직을 내놓는 게 쉽지 않다. 여권에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경기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싸움이 될 것이다. 비장함과 결기가 뚝 떨어짐에랴.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도 여의치 않다. 사실 지난 주민투표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정치인이 박 전 대표다.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수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터다, 지지율 하락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만약 지원에 나섰더라면, 아마 지금쯤 '박근혜 대세론'은 위기에 봉착해 있을 공산이 크다. 정치가 지닌 속성상, 가만히 놓아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10월 서울시장 보선의 짜임새도 심상치 않다. 자칫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 마저 배제할 수 없다. 민심의 파고는 언제나 거칠고, 변화무쌍하지 않은가.손학규 대표라고 해서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내 경선을 치르고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야권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여럿 중 하나로의 자리매김이다. 지난 김해을 보선의 재판이 된다면, 전통 지지층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진보성향이긴 하나, 무소속 출마가 확실해 보인다. 손 대표로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후보조차 내지 못하면 누가 야당의 맏형이라 하겠는가.그런데도 당장은 속수무책이다. 안철수 원장의 돌풍이 기성 정치를 형해화시킨 까닭이다. 안 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정치를 피해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기는 이제 만만치 않다. 짧았으나, 그가 불러온 파장이 정치행위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봐야한다. 안철수 돌풍에 마구 뒤틀린 우리 정치의 바다가 가을을 많이 닮았다. 가을은 어디까지나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봄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봄꽃의 화사함과 달리, 가을 단풍의 화려함에는 어딘지 울음도 함께 머무는 느낌이다. 겸손과 절제, 고뇌가 어우러져 있다. 아마 숲이 빚어내는 마지막 아름다움의 뒤 끝에는 결국 익숙했던 것들, 화려했던 것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 아닐까. 수원 광교산 형제봉 초입에는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라는 시비가 있다. '…/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로/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정치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참, 오묘한 자연의 질서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바다는 다시 건강해진다고 한다. 바람이 바닷속을 온통 뒤집어놓고, 혼들어 놓아 갯벌조차도 팔팔하게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위력이 크면 클수록 정화기능도 동시에 커진다니, 자연이 지닌 아이러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정치 현역 시절, 입버릇처럼 얘기한 화두 비슷한 게 있다. '순리는 답답하고 지루하고 늘 지는 것 같고, 반대로 역리는 화려하고 돋보이고 늘 이기는 것 같지만, 역리가 순리를 결코 이기는 법은 없다'고.이 가을, 낮은 곳으로 임하는 낙엽처럼 정치권도 조락의 시간을 피할 수는 없겠다. 언젠가 안철수 원장도 맞닥뜨리게 될 근원적인 문제이다. 검투장에 들어서는 순간, 벌거벗어야 한다. 가을 단풍이 마침내 제 속살을 내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시인들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을까. 올 가을, 정녕, 기도하는 마음이다.

2011-09-06 양승현

연천군 바로알기, 연천의 미래를 바꾼다

동두천역에서 출발하는 경원선을 타고 연천으로 들어서다보면 너른 들판과 개천들이 한 폭의 그림같다. 동두천 일대의 미군기지와 여타의 군부대들이 아직도 한반도의 냉전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한강 북부지역의 아름다움은 감동이었다.경원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연천군청의 요청으로 연천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기 위해서였다. 연천과 특별한 연고가 없는 필자가 연천을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연천과의 인연은 우리 산천과 문화유산 답사를 좋아해 연천 일대를 꽤나 많이 돌아다니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연천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우연한 자리에서 지인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연천군청의 강의 요청을 받게 됐다.연천군청이 필자를 포함해 '연천군 바로알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연천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한편으로는 경기도의 대부분 지자체들이 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연천이 소외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현지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공직자들의 의식과 변화는 지역의 발전과 절대 무관할 수 없다. 필자가 지금은 대학에 근무하지만 몇 달 전까지 수원시청에 소속된 공직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역이 변하기 위해서 공직자가 변해야 하고 공직자가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그 이전과 달리 더욱 헌신하며 공직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주 단순한 논리인 것 같지만 실제 이는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된다.연천의 역사와 문화 강의 내용에서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라 짧은 소견으로 연천의 미래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천은 엄청난 미래가 예고되고 있다. 연천이 오늘날 낙후된 것은 철저하게 분단 때문이다. 분단으로 인해 경원선이 막혔기 때문이다. 경원선의 단절은 연천 발전의 단절을 가져왔다. 18세기 이후 한반도는 물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서울과 연결되는 6대로, 10대로가 만들어졌고, 교통이 좋은 지역이 대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때 철도가 만들어지면서 철도가 연결된 곳은 발달하고, 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도시는 쇠퇴하게 된다. 지금도 KTX가 정차하는 지역은 성장하고 역사가 없는 곳은 쇠퇴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북관계의 개선만이 아니라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가스공급의 논의가 시작되고, 북한이 남한으로의 가스 수송로를 인정하겠다는 뉴스도 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분명히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스 수송로는 러시아 지역에서 두만강 건너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다가 원산에서 연천으로 올 수밖에 없다. 경원선의 부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금강산도 연천에서 경원선을 타고 갈 것이다. 경원선의 부활은 머지않은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연천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비롯한 역사자원과 한탄강 임진강을 비롯한 천연자연은 남북의 소통이라는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연천을 역사문화도시와 교통을 통한 혁신도시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필자의 강의와 토론을 통해 연천의 공직자들은 서서히 자부심을 되찾기 시작했다. 미래를 예견하면 준비를 해야 그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에 연천군민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연천을 지켜보기 바란다. 지금은 느린 것 같지만 향후 다가올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연천 사람들 모두가 연천인임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만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오늘 필자는 또 경원선을 탈 것이다.

2011-08-30 김준혁

앙코르 와트에서 뱀은 친숙한 존재였다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그동안 미루어왔던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를 다녀왔다. 앙코르 와트는 19세기 프랑스 박물관학자가 밀림 속에서 발견한 유적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앙코르 와트로 떠나면서 궁금했던 것은 그 위대했던 문명이 어떻게 한 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는가, 그리고 비록 폐허가 되었겠지만 꽤 큰 도시인데 외국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사람이 전혀 살고 있지 않았을까 였다. 앙코르 와트 유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15세기이다. 앙코르 와트 유적 주인공은 앙코르 왕국이다. 왕국은 9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번창하였으며, 앙코르 왕국의 대표적 유적인 앙코르 와트는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만명의 기술자가 참여하여 만든 거대한 사원이다. 해자를 포함한 동서의 길이는 1천500m, 남북은 1천300m이며 넓이는 210㏊로 약 198만㎡에 달한다. 사원 주위에 해자가 있어 앙코르 와트 사원은 거대한 저수지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전성기 앙코르 왕국의 인구는 100여만명에 달하였다 한다. 1432년 앙코르 왕국은 이웃한 타이 시암족의 침략을 받았다. 시암 족은 앙코르 왕국의 무희 압사라와 왕국의 신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사원을 포함하여 도시 시설을 철저히 유린하였다. 남아 있던 앙코르 왕국 사람들은 수리 시설이 파괴되어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가 없어 앙코르를 떠났고, 앙코르 유적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침략하던 19세기에 프랑스 박물관학자가 이곳을 찾았다. 이 때 앙코르 유적 주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프랑스 박물학자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앙코르 와트를 조사한 후 앙코르 와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프랑스 박물학자가 앙코르 와트를 세상에 알린 것은 맞으나 그가 발견했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디언이 살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으로 서술한 세계사 교과서가 생각났다. 앙코르 와트에 대한 의문을 해결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앙코르 와트 사원을 둘러보는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뱀신 '나가' 조형물이다. '나가'는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코브라이다. 그런데 얼굴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앙코르 신화 속에 나오는 동물이다. 뱀신 '나가'는 힌두교에서 불사(不死)를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부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앙코르 와트는 3중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회랑에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의 신상(神像)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상징물이 부조되어 있다. '나가'는 사원 회랑은 물론이고 사원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난간에도 조각되어 있다. '나가'가 인간의 세계와 피안의 세계인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원 곳곳에 무희(舞姬) 압사라가 조각되어 있다. 캄보디아 민속춤인 압사라 춤은 손동작이 화려한 춤이다. 그런데 압사라 춤의 동작이 '나가'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캄보디아 인에게 뱀신 '나가'는 경외로운 존재이다. 캄보디아 건국 신화에도 뱀이 나온다. 인간이 뱀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자손이 캄보디아 인이라는 것이다. 왕이 뱀의 딸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인도 원주민들은 뱀 숭배 신앙이 있다. 캄보디아 인들에게 뱀은 매우 친숙한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앙코르 와트가 있는 씨엠립 시내 곳곳에서 머리가 일곱 달린 뱀신 '나가'를 만날 수 있었다. 사원 입구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인이 드나드는 호텔 입구에도 상징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국인에게 무섭고도 징그러운 뱀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성스럽고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앙코르와트와 씨엠립에 며칠 있는 동안 뱀신 '나가' 조형물이 혐오스럽지 않고 하나의 문화적 상징물로 느껴졌다. 성스러움과 혐오스러움은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문화 경험의 소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2011-08-23 강진갑

동해표기와 작은 풀꽃

국내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인체의 곡선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섬세한 이해와 해석을 주무기로 한 한국 디자이너들의 독창적인 행보는 한류열풍에 새로운 불을 지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한류열풍이 뜨거운 다른 한 편에는 반(反)한류의 차가운 물결도 거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류열풍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던 일본 도쿄에서 극우파들이 주도하는, 한류 드라마 방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트위터에서는 반한류를 외치면서 한류 드라마를 비판하는 논쟁이 뜨겁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미묘한 역학적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이는 우리에게 한류열풍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영국이 세계지도 제작의 표준이 되는 해도(海圖)를 만드는 곳인 국제수로기구(IHO)에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하는 것을 지지하는 서한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어 미 국무부는 9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본해'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이 82년간 유지해 온 '일본해' 표기의 기득권을 바꾸기 위해 그간 우리 정부가 제대로 노력해 왔는지 의심하는 눈길이 따가운 화살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18세기 중반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세계지명사전에 동해를 '한국해'(Sea of Corea)로 표기한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고 난 다음에야 야단스럽게 소동을 벌이는 한국식 대응을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15일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국제퇴계학회에 참석한 바 있다. 21세기에 무슨 16세기의 고전적 학자 퇴계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필자 역시 퇴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퇴계가 지닌 현대적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퇴계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지 30년을 넘기면서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 독일, 중국, 홍콩 등의 세계적 학자들이 대거 퇴계학에 관심을 가지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퇴계 사상의 핵심은 일차적으로 우주를 리(理)와 기(氣)라는 두 가지 성질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로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이다. 또한 그의 제자 이굉중이 주자서를 읽으려 하자 "옛날부터 어찌 시서를 공부하지 않은 이학이 있겠느냐"고 한 말에서 드러나듯이 문(文)과 리(理)가 분리될 수 없다는 퇴계의 통합적 사유야말로 객체를 포용하고 타자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에서 소통과 융합이 요구되는 21세기에 신선한 화두가 된다는 것을, 이것이 퇴계학이 지닌 현대적 의의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의 폐해를 도처에서 보고 있다.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아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개발하고 착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이원론적 사유가 쓰나미와 같은 엄청난 자연의 재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퇴계학의 정수는 무엇보다 겸손에 있다. 광기의 욕망 때문에 남의 것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억지로 빼앗으려는 폭력적 이기심이 아니라 타자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관용과 겸양의 자세야말로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 될 것이다. 퇴계학이 세계적 학문의 하나로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일시적이고 시류적인 한바탕 물결에는 범람하는 홍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단지 가시적이고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깊이 들여다볼수록 진가를 발하는 것일 때 지속적 의미를 지닐 것이다. 30년 이상 동서양 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 열기를 더해가는 퇴계학의 진수가 이것이다. 동해 표기 문제의 해법도 시끄러운 소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300여 년 전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한 중요한 역사적 문헌에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뿌리를 찾아 면밀하게 사실을 검토한다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깊이 들여다볼 때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이번 홍수에, 즐겨 걸었던 '예술의 전당' 옆 예쁜 오솔길이 다 망가져버렸다. 비 그치고 난 뒤 다시 찾은 그 길에 진흙을 뒤집어쓴 채 작은 풀꽃 하나가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치 진흙 속에 핀 연꽃같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나태주,「풀꽃」). 동해야, 너도 그렇다.

2011-08-16 경인일보

오세훈과 김문수

정치적 라이벌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얽혀 있다. 일반인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앙금 같은 것, 자기는 갖지 못한 특장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끝없는 견제…. 이런 것들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기 마련이다. 범부들의 눈높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합적 관계이다. 죽음의 시간 까지 경쟁했던 미 대통령 애덤스와 제퍼슨,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도 라이벌군에 속한다. 한국정치를 30년 넘게 재단했던 YS와 DJ 역시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을 역임했지만,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온 두 사람의 정치역정을 긍정과 부정, 어느 한쪽으로만 평가하긴 어렵다.송영길 인천시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라이벌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의원'을 꼽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정치 여건상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라이벌은 말로, 희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라이벌, 그 자체가 역사적 맥락이고 궤적이다. 나이와 정치적 위상, 야망이 엇비슷하다고 해서 라이벌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전당대회장에서 격돌하는 한 때의 경쟁관계일 뿐이다.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까지는 못된다. 라이벌은 오랜 시간 정치 현장에서 함께 하고, 오랜 기간 국민의 희망이어야 한다.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정치적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긴 정치적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조건은 좋다. 사법고시를 거쳐 잘나가는 변호사 출신으로 정치권의 영입 대상 1호였던 오 시장은 흔히 말하는 '꽃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젊은 날, 노동운동으로 옥고까지 치르고 민중당을 거친 김 지사는 말 그대로 '가시밭길' 인생에 가깝다. 96년 15대 총선 때 YS에 의해 나란히 국회에 입성했고, 같은 모임에서 활동도 했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싸우는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의 정치적 파괴력이 어디 여느 보통 자리와 같은가. 대중성과 단박에 주자로 도약할 정치적 위상을 어느 정도 갖췄기에 가능했다. 한 사람은 수도권을 대표하고, 또 한 사람은 대구·경북 출신으로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점도 맞수로서 호조건이다. 50대 초반과 후반으로 낡은, 오래된 느낌도 주지 않는다.그러나 두 사람이 라이벌로 서기엔 아직 미흡하다. 이렇다 할 드라마가 없다. YS와 DJ의 '40대 기수론'과 같은 대반전의 신화도, 국민의 정서적 에너지를 모을 시대적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다. 여의도에 집중되는 한국정치의 특성상, 지방자치 단체장으로서 이 한계를 넘기가 어쩌면 역부족일 지도 모르겠다. 오 시장이 승부수로 던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위력도 그런 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원하는 대로 '복지 포퓰리즘의 종언'이 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서울이라고 하지만 지역적인 한계에다가, 계몽적 성격이 강하다. 서울을 강타한 폭우와 태풍 무이파의 피해 여파로 달궈지지 않고 있지만, 곧 판이 뜨거워지긴 할 것이다. 만약 오 시장의 정치적 중간평가와 겹치게 되면 부분적으로 치열한 양상을 띨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국지전의 형태를 벗어나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김 지사가 '이 일을 가지고 주민투표까지 할 일인가'라고 나름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진정한 승부처가 되지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오 시장의 정치적 수를 어느 정도 읽고 있는 그로선, '취지에 공감한다'는 선에서 더 나아가진 않을 게 틀림없다. 김 지사로서는 의회를 우회한 서울 주민투표를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는 경기 도의회와 좋은 관계 아닌가. 오 시장도 '4년 뒤에 두 사람이 어떤 성적표를 받을 지 지켜봐 달라'며 섭섭한 속내를 애써 감추지 않고 있다. 그의 언급에는 김 지사에 대한 서운한 심사와 정치적 견제가 깔려 있다고 봐야 옳다.정치에도 운동경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반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흥행성을 높이는 요소로도 작동한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복지이슈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적 성향을 지나치게 전투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정치인 오세훈'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각인시키는 득은 얻게 될 것이다. 김 지사는 김 지사대로 소탈한 대중적 의회주의자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을 빼놓고 한나라당의 미래를 얘기하긴 어렵다. 주목할 만한 정치적 동행이다. 그러나 라이벌, 그 첩첩이 힘든 길은, 두 사람을 넘어 국민이 주는 선물이다.

2011-08-09 양승현

분노한 영혼의 눈물과 우리의 죽음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100년 만의 폭우라고. 대통령도 그렇게 이야기하셨단다. 내가 서울에 53년을 살면서 이렇게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맞다. 100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비이기도 하고, 근 반세기만에 서울에서 내린 가장 많은 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내렸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환경론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동으로 한반도가 아열대지대로 변하고 있어 장마가 아닌 우기의 시대가 와서 비가 많이 온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 실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닌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렇게 엄청난 비가 내린 것은 우리들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천대 때문이다. 이 끊임없이 흐르는 비의 정체는 눈물이었다. 속절없이 죽음에 이른 수많은 생명들의 저주의 눈물이었다. 그들의 영혼이 구천에서 떠돌다가 마침내 분노와 슬픔을 드러내며 미친 듯 울고만 눈물이 바로 이 비였다.2011년 한반도는 근 100년 만에 가장 끔찍한 일이 발생하였다. 올해 초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무려 60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어 인간이 파놓은 거대한 구덩이에 매몰되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구제역에 걸린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식에 대한 욕망이 그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우리에 가두어 비정상적인 음식을 먹게 했기에 구제역이 발생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에 이른 것이다.그들을 구덩이로 몰아넣을 때 최소한의 양심도 없었다. 마취제라도 맞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죽은 그들은 차라리 나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가축 마취제가 떨어졌다고 그냥 구덩이에 묻혀진 생명체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생명체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우리가 이런 악독한 인간들이 아니었는데 그런 일을 하고 말았다.우리 민족은 정말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과거 백정들이 소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스님이 오셔서 독경을 하고 염불을 외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그저 농사일을 도와주는 가축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여 가급적이면 소 잡는 일을 금하였지만 피치 못할 공동체의 행사를 위하여 소를 잡아야 했다. 그럴때마다 소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가 극락왕생하여 훗날 축생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문화였다. 그런데 이제 그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사라졌다. 평화로운 강에서 살던 생명들이 사라지고, 뭍에서 살던 생명들도 사라졌다. 뭍에서 사라진 600여만의 생명은 강에서 사라진 생명에 비하면 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좋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 치자. 그 생명보다 인간의 생명이 중요했기에 더 중요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명복을 빌어줄 겨를이 없었다 치자.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명을 마감한 이후 우리 삶이 안정되었다고 생각되었을때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어야 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뭍에서 죽은 축생들을 위해 '포제'를 지냈다. 길거리에 떠돌다 죽은 행려자들을 위한 제단인 '여단'도 만들고 또 그들을 위한 '여제'를 해마다 지냈다. 인간에 대한 제사만이 아니라 '포제'를 통해 축생을 위한 제사 또한 지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내세의 삶을 빌어주었다.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가치이자 최소한의 양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린 어땠는가? 대다수의 국가지도자들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려주어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왜? 생명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내린 이 엄청난 비는 바로 우리가 버린 저들 생명체의 눈물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비가 끝나면 이번에 생을 마감한 고인들을 위한 기도와 인간의 욕망으로 사라진 생명들을 위한 정성어린 제사를 지냈으면 한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야만 한다.

2011-08-02 김준혁

나혜석의 부활과 수원의 미래

나혜석의 생가 터가 있는 수원 행궁동 동사무소 강당에서 지난 22일 오후 제1회 나혜석 학술상 시상식이 열렸다.그는 1896년 4월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한 조선 최초의 여성 화가였으며 1917년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한 최초의 여성 작가이기도 했다.1919년 3월 조선독립운동 당시에는 여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생의 전반부에는 조선 최고의 명망가였다. 그러나 1930년 남편과 이혼한 이후 그의 삶은 비극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비참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특히 그가 1934년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당시 조선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대 사건이었으며 정조를 유린한 대가를 요구한 '위자료 청구사건'은 사회적 관습에 굴하지 않는 그의 불꽃 같은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파격적인 일이었다.나혜석의 찬란한 예술적 성취는 그가 불러일으킨 파란과 비참한 몰락으로 인해 망각의 저 편으로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망각의 어둠 속에서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최초로 부활시킨 것이 이번 학술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구열 선생의 평전 '에미는 선각였느니라'였다. 1974년 간행된 이 책은 나혜석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으로서 이후 나혜석 연구의 길잡이가 되었다.이후 나혜석은 불사조처럼 다시 태어나 그가 생전에 염원했던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나혜석에 대해 긍정과 부정이 혼재하던 시기에 이번 최우수 학술상 수상자인 서정자 교수는 작가로서 나혜석의 작품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선구적 업적을 축적했다.서 교수는 1988년 처음 나혜석의 단편 소설 '경희'를 발굴한 것은 물론 그의 문학사적 의미를 부각시켰으며 2000년 나혜석의 예술적 업적을 총망라한 '정월 나혜석전집'을 발간하여 최초의 여성 작가로서 나혜석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나혜석의 본격적인 부활은 기념사업회를 이끈 유동준 회장의 열성적인 노력에 힘입고 있지만 수원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수원시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수원시의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예술인을 찾는다면 그 분은 나혜석일 것이다. 나혜석기념사업은 수원시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 중의 하나이다. 수원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화성행궁이 복원되었다고 하더라도 더 큰 미래를 위한 창조도시로서 수원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창조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선조들의 유산을 가꾸고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세대들이 이를 더욱 발전적으로 끌어나갈 때 수원시의 미래가 더 크게 열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수원시의 미래는 첨단산업과 문화유산의 창의적 공존이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계발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나혜석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일은 이러한 일들의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수원시의 격상은 나혜석의 부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처음 거행된 나혜석 학술상은 여러 의미에서 수원의 문화적 저력을 신장시키는 뜻 깊은 일 중의 하나이다. 어떤 예술도 학문적 심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깊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분명히 해 둘 것은 이러한 사업들은 나혜석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수원을 위한 것이다. 인구 100만명을 넘어서는 도시가 과거의 유물에 의존하거나 거기에 담을 창조적 콘텐츠가 없이 비대해진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가 얼마나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나혜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수원을 이끌어나갈 창조적 젊은 문화예술인의 탄생을 소망하는 헌사이다. 그것은 바로 미래로 뻗어나갈 수원시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11-07-26 최동호

융복합(融複合)장르로서의 문학

과학기술의 발달이 문화의 흐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문화 분야 전문가들조차도 과학기술의 변화에 둔감하다. 불황과 호황을 동시에 겪고 있는 최근 한국 출판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종이책 출판계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 그리고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같은 베스트셀러를 출판한 출판사들도 불황을 비껴가지 못하고 부도를 내고 있다. 출판계는 불황의 첫 번째 원인으로 아이패드, 스마트 폰 같은 IT 기기의 대중화를 꼽고 있다. 그런데 전자 출판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올해 상반기 전자책 매출은 전년 대비 64% 늘어났다.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전자책 이용 현황을 조사해 보니 전자책 이용자가 작년에는 조사 대상의 23%였으나 올해에는 51%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전자책에 대한 만족도도 58%에서 79%로 크게 늘어났다. 시민들은 만족한 가장 큰 이유로 휴대하기 편리한 아이패드, 갤럭시 탭, 스마트 폰의 출현을 꼽고 있다. 같은 IT 기기의 대중화가 한 쪽에는 불황, 다른 쪽에는 호황을 가져다주었다. 독자들이 휴대하기 편리한 단말기가 보급되지 못한 점이 전자책이 보급되지 못한 요인이었는데,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가 이 불편을 해소해 주었다종이책 출판의 불황과 전자책 출판의 호황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00년 전후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은 신문, 책과 같은 인쇄매체가 사라지고 인터넷 신문, 전자책과 같은 디지털 매체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하였다. 그러나 인쇄 매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주요 매체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자 이러한 예견은 잘못된 예견으로 치부되었다. 2007년 아마존 닷컴이 킨들이라는 휴대용 전자책 단말기를 출시하면서 미국에서는 전자책이 빠른 속도로 공급되기 시작하고, 한국에서 스마트 폰이 출시되어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가 시간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도 출판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전자책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의 예측은 어긋났고, 눈앞에 닥칠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종이책 출판사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전자 출판은 문학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전자책은 문자만이 아니라 음향과 영상도 함께 수록할 수 있기에, 시인이나 성우가 낭송하는 시를 들을 수 있는 시집,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시집 등 다양한 형태의 시집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지 영상도 함께 보여 주는 영상 여행기도 출현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여러 예술 장르가 융복합되어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였으나, 비교적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문학분야에서도 미술,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융복합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자 출판은 자가(自家) 출판 시대도 열어줄 것이다. 전자책 자가 출판시대에 작가들은 인쇄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책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가 출판물의 생명이 별로 길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전자 자가 출판은 계속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가 종이책의 3분의 1 수준이고,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제작비는 전혀 들지 않는다. 무료로 자가 출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미 인터넷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전자 자가 출판은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학책의 유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독자가 창작의지가 있으면 작가가 되어 스스로 제작한 문학 책을 유통시킬 것이다. 이제 대학 문예창작 관련 학과는 새로운 융복합한 장르로서의 문학을 교육하기 위한 변화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문단은 여러 장르가 융복합된 새로운 문학에 맞는 창작 방식을 모색하고,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필요한 듯하다. 21세기 디지털시대를 사는 문화인들은 과학기술의 변화에 항상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1-07-19 강진갑

중국 행보를 보는 핵심 관전포인트

'중국인들이 오고 있다', Chinese are coming,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을 보니 이런 주제를 놓고 대담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국이 이제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앞날에 대해 음양오행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현재 미국과 여타 서방세계는 은근히 중국을 한 번 자빠뜨려볼 생각을 하고있다. 이 정도에서 한 번 견제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렵겠다는 생각, 그거야 '현실 국제정치'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만일 날카로운 잽이 멋지게 성공한다 해도 뻗어가는 중국의 기세를 근본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과거 일본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미국의 공세, 특히 경제공세에 대해 많은 연구와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우선 중국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중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더하여 중국은 최근 들어 금리인상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고 있고 덩달아 증시도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시장만 고가권에 있을 뿐 종합적으로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유지해가고 있다. 줄여 말하면 상대의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 '가드'를 철저하게 올리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의 운세로 볼때 중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서 2018~2023년중 무술(戊戌)년부터 2023년 계묘(癸卯)년까지의 5년 동안 그 기세는 가히 전 세계를 진동하게 될 것이라 본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금년과 내년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이 서구식 데모크라시를 시도하지 않는 한, 그리고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한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로서는 중국에 대한 미국과 서구의 견제가 먹혀도 골치 아프고 그렇지 않아도 길게 보면 좋을 것이 없다. 만일 중국에 대한 견제가 성공하면, 다시 말해 중국 경제를 한 번 크게 흔들어 놓는데 성공한다면 그 악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인 셈이고, 그냥 중국이 이대로 순항한다면 동아시아 정치역학상 우리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 세계의 견제를 떠나 중국 자체의 내부 요인이 하나 있기는 하다. 현재 중국은 그 내부에 정치적 자유화를 외치는 이른바 진보세력과 경제적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만계층간의 연결과 유대가 급격히 높아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 사회적 동요가 있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점은 음양오행상으로 볼 때 2014년 갑오(甲午)년이라 볼 수 있다. 기운이 무토(戊土)인 중국에 있어 갑오년은 살기(殺氣)가 가득한 한 해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갑오년에는 유독 중국에 변란이 많았었다.1894년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펼친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옛날로 거슬러 가보면 중국 당나라 당시 안록산의 난이나 사사명의 난 모두 갑오년의 일이었다. 오는 2014년 갑오의 해에 중국이 그 정도의 위기에 빠져 들지야 않겠으나 내부로부터의 상당한 갈등과 모순에 시달릴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지금 중국은 급격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 중이라는 얘기이다. 경제적 자유화는 사회 생산 수준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양극화라는 달갑지 않은 모순도 동시에 야기하게 마련이니, 이 모순을 피해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다만 다행한 일이 하나 있다면 중국은 정치적 자유화를 여전히 어느 선에서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화는 서구 학자들의 눈에서 볼때 당연히 정치적 자유화를 동반하게 마련이지만, 현재 중국의 시도와 방향을 보면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될 필연적 이유는 없다는 입장임을 말해준다.금년과 내년 서구의 경제적 견제가 먹혀드느냐 아니면 2014년에 가서 중국 내부의 정치 사회적 불만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느냐 이게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는 핵심 관전 포인트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 http://www.hohodang.com

2011-07-12 김태규

연꽃 위로 강 바람은 불고 있는데…

학문과 인생의 대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뒤 늦은 귀갓길. 지하철 유리벽의 시 한 편이 가슴에 와 꽂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중략)…/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미당 서정주의 시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였다. 시의(詩意)의 깊이를 헤아리진 못했다. 그냥 좋아서 여러 대의 지하철을 지나친 채 한참을 서서 외웠다.미당의 시 '연꽃…'에 발길이 잡힌 것은 얼마 전, 남양주 예봉산과 운길산 하산 길에 들른 양평 세미원(洗美苑)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물머리(양수리) 강가 정원은 연꽃의 화해(花海)였다. 아직 만개하기엔 이른 철이었지만, 빗속에 핀 연꽃은 멀리 물안개 자욱한 북한강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당의 말년은 일제 말엽의 친일 행적으로 고달팠다. 작고할 때까지 30년을 살았던 서울 관악구의 봉산산방(蓬蒜山房)이 헐릴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원형을 유지했지만 미당의 삶 자체가 화해와 통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날 선배 부부와 저녁 자리에서는 지난달 초 돌아가신 김준엽 선생과의 인연이 화제에 올랐었다. 중국 대학들을 함께 둘러본 기억이었다. '중국 지도층 인사들이 얼마나 열렬히 환영하고 극진히 모시던지, 항일 투쟁에 대한 존경심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가 중경 임시정부로 탈출한 6천리 길의 신산했던 김준엽 선생의 여정은 자전적 독립운동사인 '장정(長征)'에 오롯이 남아있다. 항일과 민주화, 권력에 대한 선생의 초연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뚝 서기에 족하다. 비교의 영역이 아니다.다만 우리는 여전히 산행과 저녁식사의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항일·친일의 역사와 부딪치며 살고 있다. 광복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시점에. 언제쯤 진솔한 반성과 사회적 재평가 작업이 마무리되어 '대화해의 시대'는 올 것인가.하기야 최근 KBS 수신료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백선엽 장군의 친일 전력이 도마에 올랐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만주군 장교로 3년간 복무한 젊은 날의 전력이 빌미였다. '친일 전력에 대한 평가없이 어떻게 전쟁 영웅으로 미화할 수 있느냐?'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그 불행했던 시대에, 식민지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얼마나 되었을까. 시대적 불화가, 뒷날 전쟁의 참화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공로마저 퇴색하게 만들 만큼 공존할 수 없는 멍에인가. 여야의 논쟁을 보면서 내내 그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우리는 지난 세월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많은 것을 지우고 애써 잊어왔다. 친일잡지에 '이토(異土)'라는 한 편의 시를 쓴 월북 시인 정지용을 50여년이 지난 뒤 '향수'라는 노래로 겨우 만났던 터다. 중학시절 '사랑' '무정' '단종애사'를 밤새 읽으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춘원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육당의 '삼국유사 해제'와 '한국불교사론'은 또 어떠한가. 모두 친일의 겉옷에 싸여 지하에 묻혀 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으니, 나약하고 고달팠던 지식인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은 아니었을까.우리 사회의 친일 단죄에는 오늘의 일본 태도도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전후 일본이 보인 어정쩡한 사과와 반성이 친일 행적을 더욱 옥죄게 만든다. 여기에 광복 이후 분단의 아픔까지 내재되어 있으니 훨씬 엄혹한 측면이 있다. 새삼 2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나치부역 청산 과정을 들먹일 생각은 없다.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알베르 카뮈와 관용과 이해를 호소했던 프랑스와 모리아크 사이의 논쟁을 통해, 단죄의 단호함이 용서와 화해의 따뜻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인류사의 역설을 상기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 민족을 누천년 버티게 한 '한(恨)풀이'도 용서의 과정이지, 단죄의 결과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단 하루의 생활조차 비디오로 찍어 놓으면 혼자서도 보기 부끄러운 것이 인간들의 삶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름까지 바꾸게 한 모진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애이다. 전 인격과 업적으로 바라볼 때는 언제쯤일까. 미당이 노래한 '연꽃 만나고 가는' 연향(蓮香) 바람은 과연 우리 곁에 오긴, 올 것인가.

2011-07-05 양승현

아빠와 딸의 소통

[경인일보=]우리 시대의 최대의 문제가 소통 부재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해법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국회의원과 국민 사이에 국민과 국민 사이에 그리고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한국의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 강단에서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가장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이번 학기 담당 과목 중에 '시창작 기초'가 있었다. 이 시간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쓰고 싶은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 편씩 써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뒤에서 고생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였다. 남학생은 어머니에게, 여학생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로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읽으면서 학생들이 부모와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경험이 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 잘 하여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슴 속에 지니고 가급적이면 자녀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부모들의 태도이고 학생들 또한 간섭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한 학생이 다음 시를 제출하였다. "-아빠랑한잔할래/무심한 일곱 글자/한참을 들여다본다//아빠는 매일 새벽 넥타이를 맨다/목숨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하는 듯/목넘김이 불편할 때까지 조여맨다/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도/자기 목에 줄을 매진 않는다//아빠는 매일 새벽 집을 나선다/그 어떤 열기도 빼앗기지 않은 태양에/물소가 질주하듯 달려간다/목구덩이에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는데/아빠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킨다//아빠에게 차가운 보름달을 선물한다/이 달은 무거운 끈을 감싸고 /따가운 태양도 끌어안고/온통 다 녹아내린다//아빠와 나는 침묵 속에서/밤새 달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한 잔 두 잔 서로를 다독이는데/얼굴에서 뜨뜻하게 달빛이 묻어났다" (윤솔,「막걸리」) 이 시는 실제 체험을 거의 그대로 쓴 것처럼 보인다. 딸에게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문자를 보낸 아빠는 아마도 그날 상당히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가장 아끼는 딸과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응급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딸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넥타이를 매고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노고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정서적 소통이 없다면 인간적 이해는 깊어지기 힘들 것이다.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 무심코 이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며칠 후 둘째 딸아이가 늦게 귀가한 필자에게 '아빠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 날 더 이상 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사이에도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일들이 많았구나 생각하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과제를 하나 더 부과하였다. 자신들이 쓴 시를 모두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다수는 학교 과제를 핑계로 부모님에게 자신의 시를 한 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주에 다시 학생들을 만나 들어보니 그들의 시를 보고 부모님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 상당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개중에는 부모님과 이와 같은 대화를 처음 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몇 달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다가 이를 계기로 다시 말문을 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마지막 종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통에 있다. 소통이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통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 진정한 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 도처가 소통 불능의 상황에서 진정한 소통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화 없는 단절과 불화가 키운 난장에서 지식 경쟁만을 위해 성장한 청소년들이 10년이나 20년 후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세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때 우리는 인내심을 넘어선 갈등의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화와 소통은 시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강조해 두고 싶다.

2011-06-28 최동호

안마시술소가 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

[경인일보=]지난 주말 늦은 밤, 한 무리의 문화예술인들이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한 빌딩에 모여 파티를 하였다. 빌딩 4, 5층과 옥상에 '인계 마켓'이라 이름 붙인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공방에서 예술로 재생된 별별 것들을 파는 시장이 열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인계 마켓'의 공간 구조가 특이하였다. 중앙에 홀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지금은 작가들이 작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기에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방마다 욕조와 침대가 있었다 한다. 공간 구조가 수상쩍어 물어보니 안마시술소였다고 한다. 안마시술소가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혐오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는 많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쓰레기 소각장 기능을 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관광시설이 되었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합심하여 하늘 공원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그 예이다. 이곳에는 평화, 하늘 등의 테마를 가진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퇴폐 업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뀐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가나아트 센터가 경기도 장흥에 있는 러브호텔을 구입해서 미술인들의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여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 활동을 도운 사례가 있다. 2009년에는 해태제과가 이곳의 러브호텔을 구입하여 새로운 아트 밸리로 조성하였다. '인계 마켓'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 제작한 작품은 물론, 대중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미술시장도 겸하면서 교육도 한다. 입주 작가들의 면면도 다양하며 에너지도 넘친다. 겹벌이로 목수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작가는 버려진 폐가구를 모아 마켓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작가는 헌 옷과 버려진 현수막을 이용해서 재활용 의상, 가방을 제작하고 있었다. 유리를 즐겨 다루는 작가는 빈 병이나 깨진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여 조명 작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바리스타이기도 한 종이 작가는 주민을 대상으로 커피 관련 강좌를 열려고 한다.이들은 스스로 순수예술의 벽을 허물고자 하며, 소통과 협업을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공간도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입주한 작가간, 작가와 마켓 방문객간의 협업과 교감은 물론이고 거리에 나가 주민들과 대화하며 협업도 시도하고 있다. 인계동에는 유흥업소가 많다. '인계 마켓' 주변에는 많은 대리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 대리기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지금 '인계 마켓'의 김월식 촌장은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다. 주변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소통과 교감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공연할 것을 꿈꾸고 있다. '인계 마켓'은 도시가 물려 준 음성적인 소비 공간을 예술을 생산하는 양성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예술가로 만드는 일까지 시도하고 있다. '인계 마켓'이 있는 곳은 나혜석 거리이다. 나혜석은 수원이 낳은 화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으로 입상하여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소설가로서도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 친구인 최린과 바람을 피워 이혼을 당한 후, 최린을 상대로 정조를 유린한 데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개적인 글을 발표하여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홀로 최후를 맞은 슬픈 예술가이다. 나혜석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선각적 예술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은 있으나 나혜석은 없고 술집만 있다고 안타까워하였는데, 어쩌면 앞으로 이 거리에서 제2, 제3의 나혜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11-06-21 강진갑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면

[경인일보=]이웃과 잘 지내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살다보면 작은 시비도 생겨나게 마련이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리고 크게 보면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이 자명하고도 간단한 이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까닭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먼 장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볼 때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이웃인 일본, 중국 그리고 약간 멀긴 하지만 러시아와 잘 지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보면 그게 좀 그렇다. 일본?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나라이기에 여전히 감정이 깔끔하지가 않다. 우리는 아직 일본 대중가요를 공중파에서 들을 수 없는 사회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은근히 좋아한다. 중국? 역사상으로 늘 우리가 침략을 받았거나 또는 큰 나라로서 작은 우리가 섬겼으니 이른바 사대(事大)의 대상이었다. 그런 일로 해서 공식석상이 아니면 즉각 '쪽발이' 또는 '되놈'이란 말이 먼저 나오는 우리들이다. 독도 문제 그리고 동북아 공정 같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늘 흥분하곤 하는 우리들이다. 비교적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만 잘 지내는 것은 사실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지금이야 세계를 미국이 다스리고 질서를 잡고 있으니 별 탈이 없다 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일도 아닌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훗날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가는 날,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 적대 관계로 들어간다면 그건 우리 민족과 나라의 존립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이라 본다. 그러니 그때 가서 중국에 대해 또 다시 벌벌 기면서 사대하기도 사실 진짜 창피한 노릇일 것이다. 14 억 인구에 대해 남북한 합쳐 1억 인구는 이른바 쪽수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갑자기 친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우리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한 광개토대왕을 존경하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복속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며 일본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남북한 통일 후의 우리가 혹시라도 주변 이웃 국가들에게 어떤 위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주변 국가들 역시 그에 따른 대응을 해올 것이다. 당장 남북한의 통일문제부터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선린우호하는 것이 우선적인 방략(方略)이 될 것이며, 통일 후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야말로 주변 누구보다도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동북아시아 일대가 평화의 지역이 되게 하는 것은 주변 다른 나라들에 앞서 우리에게 가장 급선무라고 하겠다. 최근 들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 등과도 FTA 체결을 타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에 대해 선린하고 우호함에 있어 우리가 선제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 좀 어려운 말로 바꾸면 '이니셔티브'를 우리가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부 국민들이 보기에 우리가 지나치게 양보하고 때로는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이 세상은 '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가 사실은 이길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줌으로써 결국 갖는 것이고 너그러운 자가 더 강한 자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 연유로 이제 우리도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한 외교 자세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고 일본 대사관 앞에 가서 일장기를 태워버리는 감정적 처사만 반복할 것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갈수록 높아져 가는 중국의 위상에 지나치게 대응하는 것보다는 의연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가면서 좋은 친구 나라가 되려는 노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일본과 중국에 대해 감정의 앙금을 먼저 선제적으로 내려놓는 일, 의심의 눈초리보다는 신뢰의 악수를 먼저 내미는 것이 먼 미래의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수 있는 최우선적 장기전략(長期戰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 서서히 그럴 때가 되었지 않은가! ※ 블로그 : http://www.hohodang.com

2011-06-14 김태규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이후

[경인일보=]'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교수가 쓴 대학생들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책이다. 김 교수의 진성성과 온기어린 시선이 아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로 바싹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스펙 쌓기와 경쟁에 찌들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거리지 않는 이 시대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리라. '성공을 서두르지마라' '글은 힘이 세다' '신문을 읽어라'…. 강단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토해냈을 법한 내용들로 그득하다.그리 보면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다.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경험칙 상으로 꿰뚫고 있다. 방학이면 만사를 제치고 여행을 떠나는 결기가 먼 훗날 삶을 융숭하게 만드는 자산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인문학적인 사고력과 통찰력이 인생의 긴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진실도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년 급제'가 누대(累代)에 걸쳐 내려온,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쯤은 숙지하고 있다. 김 교수가 오늘에 맞게 정리했을 뿐이다. 영어와 상식, 여기에다 논문을 더하면 전공과 학점에 상관없이 어느 직장이나 공채에 응시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1등부터 점수 순으로 합격자를 끊고, 면접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되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필기시험 성적순이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식됐다. 그때 '스펙 쌓기 시대'가 올 것인지 누가 예측이나 했었는가.그 스펙 광풍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지 벌써 오래다. 어학 연수를 위한 휴학이나 학점 관리를 위해 목을 매는 것은 더이상 얘깃거리가 아니다. 성적을 산정할 때가 되면 교수나 학생이나 똑같이 긴장 상태가 된다. 출석 점수라도 하나 잘못 계산하면 곧바로 항의가 들어오고, 순위가 뒤바뀌면 난감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느새 이 스펙의 위력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인턴 시절에 쌓은 경험과 성과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신입사원을 채용한 대기업 임원의 전언이니, 변하는 흐름을 엿볼 수 있겠다. 급변하는 국제경제의 규모나 기업환경을 언제까지 스펙으로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필기시험이 종언을 고하듯 스펙도 역사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지금은 선진국 제품을 그대로 베끼고 흉내내어 수출하던 시대가 아니다. 싼 값의 모방제품 수출시장이 중국에 점령당한 것은 과거지사다.우리도 전자, 자동차, 가전, 철강 분야에서는 세계 일류기업들과 나란히 경쟁대열에 서있다. 눈 밑에서 창의의 환경이 개화하고 있는 중이다. 명품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그건 유사제품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창의적인 인재의 몸값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여기에 역량, 즉 위기를 관리하는 힘도 갖추어야 한다. 앞서가려다 보면 무수한 암초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최고의 전자 제품을 생산하던 일본 기업들의 현주소가 어떤가. 20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지배했던 핀란드 노키아의 신화는 또 어떤 상황인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역량이 부족하면 국가든, 기업이든 좌초되는 건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도 창의와 역량, 협력과 협동의 인재가 절실한 시대로 성큼성큼 진입하고 있다. 가히 스펙의 전성시대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배아(胚芽)가 발아하고 있는 것이다.흥망성쇠(興亡盛衰)의 인류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틀에 맞추려면 우리의 청춘들은 또 아파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협동의 시대를 앞두고 일렬로 세우는 상대평가를 고수하고 있다. 면접과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가르치는 취업 특강은 줄을 이어도 문화적 감성에 눈 뜨게 하는 예술 특강은 태부족이다.창의성은 생각의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는데서 나온다.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에 둔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이 그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대학 등급을 매기는 평가 지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성의 관행이 아픈 청춘을 더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절박하게 되돌아 볼 때다.

2011-06-07 양승현

스승 없는 스승의 날

[경인일보=]날이 갈수록 '스승의 날'이라는 말이 허전하게 들린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학생들에게 매 맞는 선생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인으로서 교사 지망생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이상한 기현상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직종에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직업인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학교 교육은 사라져버렸다. 교실에서 졸고 있는 학생들은 물론 그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 그리고 수업이 파하면 학원가로 몰리는 학생들은 분명히 정상적인 교육이 실종된 상황을 말해 준다. 교육의 성과가 오직 대학입학을 위해 평가되는 상황에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에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자기희생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엄격성이 사라진 자리에 진정한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사회에서 촌지가 사라지더니 이제는 체벌 금지가 일거에 실시되어 학교 현장은 통제력을 상실한 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잘못을 훈도하는 적절한 대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교실은 거의 무질서에 가까워졌다는 말이 들려오고 교사들은 자포자기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오로지 생존을 위한 점수 경쟁만이 있고 스승을 존경하거나 친구와의 우정을 존중한다는 인간적인 유대감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받는 제자도 있을 리 없다.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 그리고 직업인으로 전락한 교사들 어디서도 사랑과 존경이 감도는 곳이 없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 교육이나 기술교육에 우선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과 교감 속에서 삶의 지혜를 함께 하는 것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참 뜻이 생성된다. 한국 사회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진정한 열정을 지닌 교사들이 도처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쳐야 한다. 최근 '멘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군사부일체'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승은 단순한 안내자나 충고자가 아니다. 인간성 전체를 함양하는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스승의 상이다. '스승의 날' 즈음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거의 50년 만에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동창회를 가졌다. 가난한 시절 열성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 지니고 있었다. 구순에 가까우신 나이에도 아직도 건강한 선생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모두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중에서 졸업 후 처음 만난 한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담배 한 갑이라는 짧은 시 한 편을 썼다. "모두가 어려워 월사금커녕 시라기 죽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 가정 방문 온 담임선생께 드릴 것이 없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하며 이것 저것 별 것 아닌 야채나 푸성귀 같은 것들을 부끄러워하며 담아드린 농투성이 학부모 중에 누군가가 등 돌리고 돌아가고 있는 그를 멀리서 선생님을 크게 소리쳐 부르며 달려 와 어렵게 내밀던 꼬깃꼬깃한 뜯지 않은 담배 한 갑, 그처럼 큰 선물은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다고 40년 시골에서 교편생활하고 퇴임했다는 한 초등학교 동창이, 아직도 내가 교단에 있다니, 50년 만에 만난 술자리에서 처음처럼 이야기해 주었다" 이 시를 쓰고 나니 아직도 교직에 버젓이 서 있는 나에게 허전한 마음이 몰려 왔다. 내 자신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교단에 서 왔는가 하는 반성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성한 교단을 철모르고 40여년 가까이 오르내리고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부정할 길 없었다. 열정적인 교사들이 사라지고 나면 교육무용론이 대두될 지도 모른다. 최근 한 교육 사이트에 학교제도의 문제점을 제시하라는 의견란을 만들어 놓았더니 교사들에 대한 비난의 글이 쇄도해 폐쇄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심각한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돌아보며 스승 없는 스승의 날을 보내는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현안의 핵심은 빼놓고 선심공세처럼 무상교육이나 무상급식에 매달리는 정치가들의 표심잡기 경쟁을 보면 교육문제는 더욱 암담해진다.

2011-05-31 최동호

중소기업 문제를 문화경영으로 해결하기

[경인일보=]'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진 트로이전쟁은 고대 그리스 시대 대표적인 전쟁의 하나이다. 트로이 유적을 찾은 관광객 중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웅장한 성곽을 기억하는 이들은 트로이 성곽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 실망한다. 2007년 트로이 유적을 탐방한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실망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입구 쪽 안내판에 로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적 안내판 하단에 그려진 한국 기업 로고이다. 기업들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문화 경영을 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터키에까지 그들의 이미지를 심고 있었다. 유적에 실망한 한국관광객들에게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기업의 여러 홍보프로그램 중 그 효과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 같이 간 관광객들의 반응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문화 경영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다.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품질보다는 품격을 보고 선택한다. 품질은 단순히 제품의 성능만을 나타내 주지만, 품격은 품질에 문화적 감수성이 덧씌워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기업의 이미지에 문화를 입히기 위한 문화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경영은 활용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앞의 트로이 유적 사례와 같은 사회 공헌 전략, 예술 작품을 상품 디자인이나 광고에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 조직 관리에 문화를 도입하는 경영 전략 등이다. 한국에서 마케팅 전략과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은 다수 도입하고 있으나, 경영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매우 드물다. 문화 경영 전략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원에게 포상으로 책과 예술 공연 관람권을 지급하는 것, 직원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 직원 및 가족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문화예술 도서 위주의 도서 공간을 마련하는 것, 문화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것, 거래처 및 고객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사내 혹은 사외에 미술품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것 등이 있다. 지난 5월 20일 '아시아 문화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개최된 한 포럼에서 이정만 박사와 김형진씨가 공동으로 발표한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문화 경영 정책 제안'에 따르면 한국 기업 중 문화경영전략을 네 가지 이상 실시하는 기업은 조사 대상 기업의 15%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네 가지 이상의 문화경영전략을 도입한 기업과 한 가지도 도입하지 않은 기업 직원의 여러 설문에 대한 반응이다. '회사 내 동료와의 관계 만족도'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한 직원이 전자가 79.6%, 후자가 57.9%였다. '자기 회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전자는 68.8%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후자는 57.9%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생산을 높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자는 74.2%, 후자는 54.8%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특히 이직을 고려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자는 30.2%에 불과한데, 후자는 56.1%에 달하였다. 2010년 말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새해 목표를 조사하니 '이직과 전직'이 1위였다고 결과가 나오고 이것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중소기업 CEO들은 직원의 높은 이직률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기업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는 길이 문화경영이 아니겠는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문화 경영을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금부족과 문화경영기법을 모르거나, 활용가능한 문화예술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문제를 도와주기 위한 중앙정부의 프로그램이 있으나 매우 부족하다. 이제 자치단체와 문화 기관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 CEO들도 기업 경영 과정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경영전략을 도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

2011-05-24 강진갑

이제 또 다시 質(질)의 시대가 오고 있다

 [경인일보=]文(문)과 質(질)이란 말이 동양 古典(고전)에 있다. 문이란 文飾(문식), 즉 꾸밈이란 뜻이고 질은 바탕을 말한다. 論語(논어)를 통해 孔子(공자)는 '질이 문을 이기면 조잡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치하니 꾸밈과 바탕이 잘 조화되어야만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됨이 질박하기만 하면 멋이 없고, 반대로 '멋부림'만 있으면 진정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운을 살펴보건대, 1951년부터 1981년까지가 質(질)의 시대였고, 그 이후 금년 2011년까지가 文(문)의 시대였다. 대개 세상과 환경이 좋아지면 기본적인 의식주보다는 좀 더 高尙(고상)한 것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니 이는 人之常情(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가을들어 '88 올림픽 개최'라는 朗報(낭보)가 들려온 이래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간은 실로 승승장구의 세월이었다. 그 이후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현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니 비록 양극화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간의 세월을 통해 이제 우리는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서 서서히 멋도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몇 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호화사치로 달려가고 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성형수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면에서 멋부림이 지나친 면이 있다. 내용보다는 겉모습이 중요해졌으니 정치사회는 물론 학술과 예술 등등 모든 면에서 꾸미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30 년의 흐름이 裝飾(장식)의 문화였던 바, 그 또한 가장 적절했던 시점은 30년의 6할인 18년, 즉 1999년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식만 남고 질은 사라져간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우려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이처럼 언제까지나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반대 흐름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드린다.  우리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벽에 이미 봉착해있다. 내적인 상황을 보면 거주공간에 대한 과다한 비용지출과 투자로 인해 이미 가계살림은 팍팍해졌고, 또 취업이 잘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학력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사람들은 복지 문제에 신경을 쓰지만 그 또한 알고 보면 우리가 지불해야 돈이고 뒷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돈이다. 외적인 상황을 보면 그간 승승장구해온 우리 수출기업들도 이제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비중을 높여가기는 어려운 어떤 한계에 봉착했다. 그러니 앞으로의 세월은 지난 세월의 지나침을 교정하고 조정하는 흐름이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명백한 것이다.  부동산 가격 조정은 어차피 시간문제라 하겠고, 가계별 교육 투자도 조만간 위축될 것이 불가피하다. 또 중국을 비롯한 여타 신흥국 산업의 발전으로 조만간 우리 수출 산업들도 한 차례 역경을 맞이함은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전체적인 파이의 축소 조정이 불가피한 국면에서 재정적자를 통한 비용지출과 복지향상 역시 앞으로 확대보다는 축소 국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인기정책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헛일이 될 것이다.)금년 가을부터 당장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흐름이 서서히 꾸밈의 시대에서 다시 질박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처음에 사람들은 주로 남의 탓을 할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고 진짜로 어려워지면 탓을 하기에 앞서 각자 살 길을 찾아나서는 것 또한 인간의 지혜이다. 그러면 또 다시 의식주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고, 그로서 사람들은 소박해질 것이다. 소박해지면 힘이 생겨나고 꾸밈보다는 능률과 실질을 더 선호하게 된다.  저 옛날 박정희 독재시대였던 1968년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제정되어 모든 학생은 강제로 암송해야 했었다. 그 문구에 보면 '能率(능률)과 實質(실질)을 崇尙(숭상)하고'란 말이 들어있었다. 이제 한 차원 우리가 올라섰으니 강제로 암송할 일은 없겠으나, 분명 그런 분위기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돌아가게 될 것이다.  ※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5-17 김태규

어머니의 '봄날은 간다'

[경인일보=]지난 주말 교직원들 틈에 끼여 파주 임진각과 심학산을 찾았다. 내년 대학 통합을 앞두고 마음도 열고 여러가지 의견도 나눌겸 해서 따라나선 길이었다. 모처럼 나들이였는 데 변덕스런 봄 날씨가 시샘하는 듯했다. 간밤에 돌풍과 함께 비가 내리더니 아침부터 궂은 날씨였다. 그래도 봄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진달래와 벚꽃이 진 자리를 철쭉과 조팝나무 흰 꽃이 메우고 있었다. 목련이 진 봉오리엔 연둣빛 새 잎이 푸르름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임진각은 개인적으로 30여년 전 군에 있을 때 면회장소였다. 일년에 한 두 차례, 군용 트럭에 실려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전날 여관에서 밤을 새운 어머니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이다. 면회소로 쓰이던 함석 건물만 덩그러니 들어선 벌판이었는 데,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민통선에서 이 곳으로 옮겨놓은 철마(鐵馬)는 5분마다 기적소리를 울렸다. 짙은 운무 속에 철조망은 그 모습을 희미하게 감추고 있었다. 질척한 날씨 속에도 분단의 봄을 보려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비가 눈길을 끌었다. 분단을 노래한 시비(詩碑)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친근함이 앞섰다.비에 젖은 심학산은 연두색의 향연이었다. 화사하지 않은 봄 산이 어디 있으랴만, 오르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주변은 적막했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카페 분위기의 식당에서 봄날 오후를 풀어 제쳤다. 심학산 자락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식당을 고즈넉한 기운이 감싸 안았다. 봄날의 오후가 그렇게 깊어갈 즈음, 소박한 봄내음에 취했는지 한 직원이 벽에 쓰인 시를 조용히 낭송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 '물망초'였다.이런 날은 시 보다 벚꽃이 피듯 한 곡 흐드러지게 부르는 게 제격이지 싶었다. 시에 버금가는 노랫말이 어디 한 둘인가. 시인들로부터 '으뜸 노랫말'로 뽑힌 '봄날은 간다'가 맞춤이리라. 한참 뒤에 한영애, 조용필이 새롭게 부르기는 했으나, 1953년 발표한 백설희의 처음 버전이 단연 압권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하는 가사에는 어머니의 새색시 시절이 배어있다. 갓 결혼한 그 품에서 칭얼대던 나의 유년의 기억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느 한 구절 비켜놓을 대목이 없다. 3절의 '열아홉 시절엔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언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로 시작하는 첫 노랫말은 아련함을 지나 그리움이다. 간드러지게 부를 수만 있다면 가히 절창(絶唱)인 구절이다. 설운도의 노래비가 분단을 토해내고 있듯, 누가 '유행가'라고 가벼이 여길 수 있는가.지금은 자취를 찾기 힘들지만, 30~40년 전만 해도 고향마을에는 화전(花煎)놀이가 있었다. 4월 초에 한 날을 잡아 젊은 며느리들이 중심이 되어 하루를 질펀하게 놀았다. 날이 정해지면 마을 전체에 묘한 들뜸이 휘감았던 기억이 새롭다. 화사한 치마와 저고리로 치장한 젊은 어머니들은 장만한 음식을 싸들고, 장구·괭과리 같은 풍물까지 챙겨서 마을 앞 섶다리를 건넜다. 이내 산모퉁이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 날은 종일 할머니가 부엌을 지켰다. 해질 무렵, 봄볕에 그을린 것인지, 얼큰한 술기운 때문인지 진달래보다 화사한 어머니의 손에는 항상 참꽃이 한 묶음 들려 있었다.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흥얼대던 콧노래가 바로 이 '봄날은 간다'였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도회지에서 자란 젊은 며느리에게 시골 시집살이가 아마 고달픈 탓이었으리라.풍물이 달라졌을 뿐, 봄철 야유회의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찰쌀병에 참꽃을 얹은 화전을 기름에 지져 먹는 게 쉽지 않지만, 심학산 꽃 피는 삶에 홀리고 싶은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의 마음이야! 예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소박한 봄 잔치였다.4·27 보선 이후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개각이 이뤄지고,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파렴치한 행동으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서민들의 삶은 건강하다. 봄날이 가면 가는 줄 알고, 여름을 맞을 채비에 게으른 법이 없다. 서민들의 힘이다. 이런 저런 얘기꽃 속에 2011년 대한민국의 봄은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2011-05-10 양승현

젊은 꽃들의 인간 교육

[경인일보=]4월은 잔인했다. 꽃들이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기상이변이 계속되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지내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봄을 힘겹게 기다리고 있을 때 꽃과 같은 젊음을 지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생들이 네 명이나 잇달아 자살을 했다. 학생들에 뒤이어 교수까지 자살하자 여론은 들끓었고 대학의 최고 책임자였던 총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슬그머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뒤늦게 책임론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서둘러 덮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과 대책이 필요한 일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들의 사분의 일 정도가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이들 모두 잠재적으로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은 모두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점수 일 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과외 공부로 몰리는 아이들, 정규 수업시간에는 모두 졸고 있는 학생들, 그들을 아무도 깨우지 못하는 교사들, 그들에게는 수능 점수가 전부이다. 학부모들이 학생과 교사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것은 점수이다. 학원가의 최고 강사는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 언사를 거침없이 쏘아대며 학생들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그 정도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젊은 꽃들의 죽음이 주는 희생의 가치를 정말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공부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삶 또한 더없이 귀중하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경쟁의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잔혹한 경쟁의 논리만을 내세운 지식 교육은 그들이 긴 인생을 자신과 싸우며 살아나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쟁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속성교육집단은 미래가 없는 집단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고민 없이 오직 오늘의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근시안적 사고에 사로잡힌다면 오늘을 살 수 있는 이기적 경쟁심은 발휘될지 모르지만 내일의 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를 돌파할 내적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는다.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과 여유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수학 문제만 풀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닭장 속에서 모이를 먹고 자라는 양계장 병아리가 아니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모국어교육이다. 교육 개혁의 속도전을 위해서는 한국어도 영어로 가르치라고 한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사 교육도 영어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야말로 젊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경쟁의 논리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솔제니친은 모국에서 추방된 러시아 작가이다. 그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원한 것은 모국으로 돌아가 모국어 속에서 사는 것이었다. 모국어는 그 자신의 영혼이다. 영혼 없는 과학자는 인간을 위해 그리고 모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의 경쟁에서 이기고 내일의 경쟁에서 뒤지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젊은 꽃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심성을 함양하는 치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그들을 경쟁의 낙오자로 규정하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만 궁리한다면 그 나라와 국가는 진정한 미래가 없다.

2011-05-03 최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