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지방선거 당선인들, 발달장애인 복지 관심 더 쏟아야

쉬운말 뉴스 만들며 느낀게 있다면발달장애인 인식개선은 이들의사회적 참여와 함께 이뤄진다는것작은 일자리 마련과 관심으로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기대해 본다6·13 지방선거가 막을 내린지 1주일이 지났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 때문인지 선거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제1 야당에서는 지도부 줄사퇴 요구와 내분 등 야권의 재편성이 화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 지각 변동과 거센 후폭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어디 이뿐인가. '여배우 스캔들'에 얽힌 경기도지사 당선인에 대한 수사는 어떤 스토리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 된다.여러 이슈 가운데 유난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발달장애인들의 농성이 종료됐다는 소식이었다.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이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며 4월부터 68일간 벌인 긴 농성에 청와대가 국가 차원의 발달장애인 종합계획을 약속했다고 하니 우선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발달장애란 신체 및 정신이 해당하는 나이와 다르게 발달이 나타나지 않아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장애유형으로 지적장애와 자폐증을 포괄한다. 장애인 증가 추이를 보면 지체장애 수는 감소하는데 발달장애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의 발달장애에 대한 복지정책은 유럽,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 창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철저한 국가책임제로 보편적인 복지가 아닌 과감한 선택복지를 펼치고 있다. 물론 장애인 등급제도 부양 의무제도 없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발달장애인법(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생기면서 이들의 복지에 많은 변화를 꿈꾸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되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개선되거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발달장애 가족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그나마 이번 지방선거 당선인 중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은 고무적이다. 서울시장은 선거 당시 발달장애인들도 알 수 있도록 쉬운 말 공약집에 이어 생활편의 서비스 지원 확대 등 장애인을 배려하고, 대구시장 당선인도 발달장애인 맞춤형 서비스 지원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이어 인천시교육감 당선자는 장애·비장애학생 통합교육 강화를 비롯해 다수 지역에서 교육 환경 공약으로 기대감을 높여준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은 주거와 교육환경도 급하지만 열악한 경제력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한 발표에 따르면 경기도 내 발달장애인은 4만1천여명인데 이 중에서 소득 200만원 미만인 가구는 55.3%이고 100만원 미만이 28.0%나 된다고 한다.열악한 경제력보다도 더 큰 문제는 사회적 편견이다. 필자는 쉬운 말 뉴스 만들기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쉬운 말 뉴스는 일반기사를 중고등대학생일반인 등으로 구성된 '온라인 자원봉사자'들이 1차로 쉽게 풀고, 쉬워진 기사를 발달장애인들이 정말 이해하는지 감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수위원이라는 작은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뉴스 용어를 쉬운 말로 편집 하는 과정에서 느리지만 어휘력과 사진 찍는 능력이 신장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게 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감수 과정에서 탄생된 발달장애인 기자는 지난 패럴림픽에서 김정숙 여사를 인터뷰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이처럼 꾸밈없고 단순한 인터뷰어의 질문에 인터뷰이도 솔직하게 답해주기 때문에 의외로 감동스럽고 재미있는 분위기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쉬운 말 뉴스를 만들면서 느낀 게 있다면 발달장애인의 인식 개선은 이들의 사회적 참여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을 자주 접하는데 한결같이 "우리 애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며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이것이 바로 중앙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거듭나고 있다. 장애·복지·시설 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작은 일자리 마련과 관심으로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기대해본다./김정순 신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겸임교수김정순 신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2018-06-19 김정순

[수요광장]'평화의 길'을 여는 스포츠의 위대함

지난달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27년만에 '남북단일팀 결성' 감동정치적 논리나 상부의 지시 아닌탁구인 스스로 현장서 실행 큰 의미지속적 체육교류의 장 열리길 소망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넘어 서로를 반기며 평화의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 직후 남과 북의 하나된 모습에 전 세계가 감동과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5월 3일 스웨덴의 작은 도시 할름스타드에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2018년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체전 8강전, 치열한 남북 대결이 예고됐다. 서로를 상대로 피말리는 승부를 다퉈야 할 상황이 불과 12시간 만에 악수와 포옹, 평화의 미소로 바뀌었다. 남북단일팀이 어깨를 겯고 나란히 4강에 진출하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펼쳐졌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북 스포츠 사상 최초의 단일팀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지 무려 27년 만의 단일팀 결성이었다. ITTF 이사회가 한창이던 그 시각, 전 세계 탁구 리더들은 이사회를 잠시 중단한 채 현장 TV 생중계를 예의주시했다. 카메라가 어깨동무를 한 남북 선수들을 비췄다. '오늘, 남북은 싸우지 않는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코멘트에 이사들과 집행위원은 전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남북 단일팀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세계 탁구인들에게 이렇게 뜨거운 환영을 받는 것일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스포츠 활동을 통한 올바른 교육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이라는 모토 아래 올림픽을 창시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 세계에 올림픽 정신, 평화의 정신을 전파해왔다. 지난 겨울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남북 공동입장,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전격 결성은 바로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이라는 IOC의 가치 아래 추진되고 이뤄진 것이었다.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평창동계올림픽의 바통을 남북 정상이, 그리고 남북 탁구선수들이 이어받았다.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이 탁구를 통해 하나가 된 모습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스포츠라는 매개 아래 선수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승부에 몰두했다. 남북 관계자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다시 한 번 감동의 역사를 이끌어냈다. 27년 전 남북 스포츠 교류의 선봉에 섰던 탁구가 다시 한 번 남북 관계 증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는 점, 그 역사의 현장에서 진심을 다해 발로 뛰었다는 점, 남북의 선수, 지도자, 협회 관계자들이 한마음으로 소통하며 불과 12시간 만에 기적 같은 단일팀을 이뤄낸 점은 다시 생각해도 뿌듯하고 가슴 벅차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계기로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남북 스포츠 모두 분명히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온 우리 선수들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는 것은 선수 보호를 최우선하는 IOC선수위원이자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으로서 나의 신념이자 평창부터 스웨덴까지 일관되게 관철시켜온, 단일팀의 기본 전제다. 스웨덴에서의 남북 단일팀 경험은 다시 한번 스포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정치 논리나 상부의 지시가 아닌 현장의 탁구인 스스로 평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은 의미 있다. 대한민국 모든 스포츠인들이 스포츠인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스포츠를 통한 평화의 가치를 실현해 나간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앞으로 지속적인 남북 체육교류의 장이 열리길 소망한다. 철의 장막을 걷어냈던 핑퐁 외교처럼, 스포츠가 평화의 첫 길을 여는 길라잡이가 되길, 스포츠인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함께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06-12 유승민

[수요광장]금석지감으로 바라보는 '민촌문학제'

해방후 곧바로 북으로 간 '이기영'최근 그를 기념하는 행사 잇따라월북작가라고 금기됐던 '민촌문학'그의 고향 천안에서 새삼 관심 받아냉전체제 황혼기로 바라볼 수밖에최근 급변해가는 남북관계는 그동안의 분단체제가 남북 양쪽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사를 불구의 것으로 몰아왔다는 사실을 잘 시사해준다. 그 점에서 지금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화와 상생 지향의 움직임은 우리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70여 년 동안 누적해왔던 서로에 대한 적의(敵意)를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갈 것을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해방과 전쟁을 전후하여 북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던 이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이념적인 것일 수도, 인맥에 관련된 것일 수도, 그저 고향을 찾아간 것일 수도, 불가피한 폭력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들 역시 분단의 피해자라는 것, 그들의 작품이 그 피해 양상의 극점을 증언하고 있고 우리 근대사의 첨예한 반영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일 터이다. 1988년 납월북작가 해금 이후 행해졌던 홍명희, 정지용, 이태준, 김기림, 임화, 김남천, 박태원, 백석, 이용악, 오장환 등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수용의 과정은 그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때 우리가 민촌(民村) 이기영(李箕永·1895~1984)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한국 근대사의 사상적, 이념적 궤적을 체현한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는 프로문학 최고의 작가였으며 식민지 시대 농민소설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그는 철저히 현장의 구체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인물들도 생생한 구체성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 탁월한 작가였다. 그는 최고 농민소설로 일컬어지는 '고향'에서 식민지 체제를 비판하면서 소작농, 마름, 지식인, 노동자 등의 역동적 관계망을 통해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귀농인이며 지식인인 김희준의 형상은 그의 사상과 미학을 통합시키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의 창작 궤적은『서화』(1933), '고향', '신개지'(1938), '봄'(1940) 등의 농민소설뿐만 아니라 '종이 뜨는 사람들'(1930) 같은 현장 중심의 노동소설, '인간수업'(1936) 같은 지식인소설 등으로 확장되어감으로써, 그의 작가로서의 폭넓은 관심을 잘 보여주었다. 이 작품들은 당대 민초들의 경험적 진실성과 근대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망을 동시에 담아냄으로써 민족사의 과제라고 여겼던 민족과 계급 문제를 통합적 시선으로 암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해방 후 일찌감치 북으로 간 이기영은 대하소설 '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1984년 8월 9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비교적 유복한 천수를 누리다가 작고 후에는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그가 북쪽에서 쓴 중요한 작품은 '땅'과 '두만강'인데, '땅'(1948)에서는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다루었고, '두만강'(1954)에서는 20세기 초부터 해방 때까지 벌어진 민족해방 투쟁의 양상을 그려내기도 하였다. 이 작품들 역시 민촌 소설의 특징이었던 생활의 구체성과 활달한 인물상의 재현이 고스란히 약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성취라 할 것이다.최근 이기영을 기념하는 행사가 충남 천안에서 학생 주도로 열렸다고 한다. 지난 5월 26일에 복자여고, 북일고, 천안고 학생 연합 모임이 북일고에서 천안 출신의 이기영을 기념하는 '제1회 민촌문학제'를 개최했는데, 이날 고등학생들의 이색적인 문학제는 백일장, 발표, 특강 순으로 모두 160여 명이 참여하여 진행되었다고 한다. 근자에는 단편 '민촌'의 무대가 된 천안 지역 문인들을 중심으로 민촌에 대한 추모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데, 분단체제 내내 월북작가라는 금기 안에 유폐되었던 민촌 문학이 그의 고향에서 이렇게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우리로서는 다시금 냉전 체제의 황혼기를 금석지감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불어 분단의 뿌연 장막 때문에 가려졌던 우리 근대문학의 여러 모습이 더욱 활발하게 연구되고 수용되어가기를 마음 깊이 바라게 된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8-06-05 유성호

[수요광장]문화다양성 확산, 혐오와 갈등을 넘어서

한국인 배경·문화·견해 다른사람에20%만 '매우 관용적'이란 조사 나와서로의 다양한 정체성 존중하고갈등 해소·평화로운 사회 일구는데문화다양성 가치 존중 했으면 한다세계적으로 문화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으며 한국도 문화다양성을 확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이다. 한국은 2010년에 세계에서 110번째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했다. 2014년에는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문화다양성법)을 제정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문화다양성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화다양성법에 따라 5월 21일부터 일주일간을 문화다양성 주간으로 선포했으며, 관련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었다.문화다양성에서 문화는 좁은 의미의 문화개념이 아니다. 단순하게 더욱 다양한 예술장르를 즐기고 확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다양성은 다양한 배경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편견과 갈등을 넘어서 함께 공존하며 발전해 나가자는 개념이다.한국의 문화다양성법에도 '국적, 민족, 인종, 종교, 언어, 지역, 성별, 세대 등에 따른 문화적인 차이를 이유로 문화적 표현과 문화예술 활동의 지원이나 참여에 대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법의 목적 중 하나는 문화다양성에 기초한 사회통합이다. 그럼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 수용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110번째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하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의 문화다양성의 인정과 수용 수준이 딱 그 정도일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갈등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무척 심각한 편이다. 2016년 OECD 국가 34개국을 대상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사회갈등지수(Social Conflict Index)'에서 대한민국은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를 기록했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지수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5년 5년 주기로 측정한 사회통합 지수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중 2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을까? 개별적인 평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한국사회에 어느 정도의 갈등과 차별이 존재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으로 보았을 때는 일정한 수준에 올라있다고 자부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수준을 보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매우 낯부끄러운 면이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7년 11월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평등지수는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이며, 심지어는 2015년 115위에 이어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4월 BBC 글로벌서베이의 다양성 포용정도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27개 조사대상국 중 26위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 사람들은 배경, 문화, 견해가 다른 이들에 얼마나 관용적인가에 대한 응답에 단 20%만인 매우 관용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UN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2017년 대한민국 정부의 제4차 보고서를 심의하고 최종견해를 통해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 부족에 매우 우려하며 문화다양성 확산에 힘쓰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며 정책 속에 문화다양성이 표현되고 있다. 2018년 문화부가 밝힌 업무계획의 3대 비전을 보면 개인의 자율성 보장,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 사회의 창의성 확산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비록 개헌안이 발의되지 못했으나, 2018년 3월 정부에서 국회로 제출한 정부의 헌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제9조 국가는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증진하고, 전통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국가가 문화의 자율성 및 다양성을 증진할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서로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고 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일구는데, 문화다양성의 가치 존중과 인식 확산이 기여했으면 한다. 지난 시절 많은 정책들이 구호에 그치고 사라진 전철을 밝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8-05-29 이완

[수요광장]친절의 대가, 5천원

태워다 줘 택시비라며 돈 건네 씁쓸사소한 일에도 경제로 따지는 세상부자되면 다 좋아진다는 믿음 접자서로 용기내 신세 좀 지고 살다보면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 쌓여갈것집 근처에 작은 온천이 하나 있다. 도시의 찜질방처럼 크지는 않지만 물이 좋다고들 한다. 올해 구순의 어머니, 고령이시다 보니 허리 무릎 등 만성통증이 있으시다. 통증완화에 뜨거운 온천욕이 효과가 있어 가끔 온천에 다녀오신다. 거리가 가까워도 어르신이 걷기에는 쉽지 않아 주로 주말에 내가 차로 모셔다 드리고 모셔 오곤 한다. 언젠가 주말에도 어머니 모시러 나가던 차에 동네 입구에서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내가 가고자 하는 온천이 어디냐고 묻는다. 마침 가는 길이니 차에 타시라고 했다. 일행이 한 분 더 계셔서 두 분의 중년 여성을 태우고 갔다. 차에 타고는 너무 과하게 고맙다는 말을 거듭한다. 길도 모르고 택시도 안 잡혀서 한참 고생을 한 모양이다. 나야 어차피 가는 길에 좋은 일을 하게 된 거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 분이 내리시면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하시기에, "아유 뭘요? 어차피 가는 길이었는데요 뭐" 이러며 덕담을 주고받던 차에 다른 한 분이 "그래도 어떻게 공짜로 타? 택시비라고 생각하고 받아요!" 하며 오천원짜리 한 장을 앞 조수석에 던진다. 2~3번의 실랑이 끝에 어렵게 그 분께 돌려드렸다. 마음이 씁쓸하다. 그저 덕담을 주고받으며 내렸으면 서로가 좋았을 것을…. 생각이 복잡하다. 우리는 어쩌다 이리 사소한 친절도 주고받기 불편한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만약 내가 그 5천원을 받았다면 나의 행위는 더 이상 친절이 아니다. 거래로 변질된다. 그분들도 처음에는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곧 신세진 것 같은 불편함이 되었고, 5천원을 지불함으로써 그 불편함을 털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상에서 소소한 친절과 호의, 나눔을 주기도 받기도 힘든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공동체지수가 꼴찌인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과거 인간의 선의와 공동체 관계망 속에서 호혜적으로 주고받던 친절, 호의, 나눔은 이제 서비스산업이라는 미명 하에 거의 모든 것들이 상품화되었다. 이제는 그저 서로의 필요를 경제적으로 교환하는 거래일뿐이다. 물론 낯선 이의 친절을 마냥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알게 모르게 원가에 포함된 감정노동자의 과하거나 영혼 없는 친절은 서글프거나 부담스럽거나 불편하다. 이유 없는 친절에는 대부분 무엇인가 목적이 숨어 있다. 그 숨은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신뢰를 상실한 우리 사회는 사소한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시장에서 소비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것이 경제라고 우긴다.선의는 교환이 아니라 흘러야 한다. 지금 돈이나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없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젊은 사람이 어르신에게, 장년이 청년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지금 선의를 제공받은 사람은 나중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선의를 흘려보낼 것이다. 갚지 못한들 어떠랴. 베푸는 사람도 기꺼이 한 일이니 좋고, 누군가는 그 선의를 통해 어려움을 넘겼으니 고마운 것이다. 서로가 좋은 것이다. 지금은 내가 베풀었으니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미덕이고,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 코앞에 다가온 초고령사회.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혼자 잘 살 수 있을까?분명한 것은 누구나 더 이상 혼자서는 지낼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리고 시장화된 사회서비스도 공공복지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제 경제만 성장하면, 부자가 되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그만 거두어들이자.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자. 작고 사소한 도움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서로 주고받자. 그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이웃을 만들 수 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라는 자산을 축적하여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신세 좀 지고 살자./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8-05-22 김수동

[수요광장]뉴스편집 포기인 듯 포기 아닌 포털에 대하여

네이버, 개선책 내놓을때 마다'눈가리고 아웅하는 식' 비난 거세언론사·이용자 공감하는 정책 필요밥그릇 싸움 모양새로 가면 안돼서로 상생길 가야 멀리 갈수 있어드루킹의 댓글 조작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포털 댓글 조작 방지 정책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이버가 모바일 앱 첫 화면에서 뉴스를 없애고 뉴스 편집을 않겠다는 발표를 하고도 뉴스 유통 권력을 더 정교하게 마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선책을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비판 수위도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국민 3천만명이 이용하는 거대 포털에서 댓글 서비스를 없애지 않는 한 매크로를 이용해 또 다른 댓글 조작이 가능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인공기반 뉴스 추천(인공지능이 사용자 취향에 맞게 뉴스를 추천 하는 방식인 '뉴스피드판') 방식을 신설한다고 한다. 정작 편집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으면서도 편집과 댓글 운영 방식은 언론사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어물쩍 공을 언론사에 넘기려 하다 보니 꼼수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댓글 조작 파문 이전보다 네이버의 알고리즘 권력이 더 세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언론의 비판은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일부 대형일간지의 경우 네이버가 발표한 개선안 항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거기다가 정치권, 학자들까지 가세해 포털 규제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연일 언론에 보도 되는지라 어쩔 수 없이 네이버와 힘겨루기 싸움판의 구경꾼이 돼 버린 포털 이용자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시선이 곱지 만은 않을 것 같다. 개선안을 내놓은 네이버측도 이를 비판하는 언론사 측도 혹시 각자 이해득실 만 앞세우는 것은 아닐까? 네이버 고객의 한사람으로서 이용자 시각에서 따지고 보면 이번 '굿판'은 포털과 언론사 모두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는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포털이 사적인 기업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실제 3천만 포털 이용자들이 뉴스를 소비하고 여론을 만드는 공간인 만큼 공적 기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공적 기능에 부합하는 막중한 책임과 그에 걸맞은 역할 수행이 따라야 한다.네이버의 개선 방안과 이에 대한 비판 내용에 공익적인 측면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논의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포털 고객인 이용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이들의 의견이 잘 수렴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일반 사기업 정책과는 달리 플랫폼에 핵심 상품인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와 포털을 이용하는 고객 입장과 공익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한마디로 어느 한편이 턱없이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는 합리적인 내용의 공감 정책이라야 한다.국민의 60%가 이용하는 네이버는 막강한 플랫폼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언론사가 제공한 뉴스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며 재미를 보고 있다. 뉴스 편집과 댓글 장사로 네이버의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다. 당연히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로 상생하며 같이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네이버가 당장 자신들의 이익만 먼저 생각하면 멀리 갈 수 없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 우선 편할지 모르지만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멀리 오래 갈수 없다. 적어도 언론사와 포털 간에 밥그릇 싸움 하는 모양새로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드나들며 이용하는 네이버의 3천만 고객들도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이어야 한다. 손을 맞잡고 함께 가야 할 파트너인 언론사에게 외면 받는 정책, 사용자인 고객에게도 공감 안 되는 자세로는 지금 보다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네이버는 국민을 속이고 민심을 훔친 댓글 조작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방조 내지는 묵인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뼈아픈 성찰로 진정성 있게 언론사들과 이용자들을 설득하며 다함께 갈 수 있는 바람직한 개선 정책을 기대해본다./김정순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김정순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

2018-05-15 김정순

[수요광장]4차산업혁명시대의 스포츠 IT 기술과 스포츠산업

전문가·지도자들 신기술 이해와현장에 적용해 보려는 노력 필요 생활스포츠인 함께 즐길 수 있는인프라 확충 등 정부 지원 절실IT기술 융합 벤처기업도 육성해야4차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의 차세대 기술들이 일상생활과 산업전반에 걸쳐 앞다투어 도입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예외없이 관련 기술들이 융합되어 성공적인 ICT 올림픽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덧붙이게 되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보듯이, 스포츠는 다른 산업과 달리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세계인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스포츠 4차산업혁명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이 도입한 '매치인사이트' 분석프로그램, 2016년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활용한 '키나트랙스' 인공지능 시스템 등 이미 해외에서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기록과 움직임을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센싱기술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활용되고 있고, 골프, 마라톤 등의 생활 스포츠를 즐기는 일반인들도 웨어러블 착용을 통해 개인의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등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전반적인 스포츠영역으로 4차산업혁명이 확산되고 있다.스포츠용품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언더아머, 나이키 등 해외 유명 스포츠용품사들은 이미 경쟁상대를 삼성과 애플로 여기며, 운동관리와 피트니스 관리 애플리케이션 제작사등을 인수하는 등 디지털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스마트 운동화, 스마트 의류들을 출시하면서 스포츠용품 산업의 4차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가 스포츠와 IT 강국임을 다시 한 번 전 세계로부터 확인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스포츠산업 분야는 여전히 열악하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이 산업전반에 거처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우선, 스포츠 전문가와 지도자들의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실제로 현장에 적용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성과와 목표를 이루기에는 이미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하더라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고, 활용되지 않는다면 관련 산업 또한 성장할 수 없다.두 번째로, 생활 스포츠 인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기술개발을 위한 R&D 지원을 넘어 생활 스포츠인들이 쉽게 참여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프라 확충과 서비스모델 개발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생활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생활 스포츠인들이 늘어날 때, 스포츠 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사람 중심의 IT 기술을 융합한 스포츠분야 벤처기업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의 중심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고 IT 기술을 융합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평가와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T 기술 주도기업에 비해 평가절하되고 있는 스포츠 벤처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는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스포츠는 대부분 합의된 규칙이 적용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다른 규제로 인해 글로벌 시장으로의 성장과 발전에 한계가 있는 다른 산업에 비해 분명 기회가 존재한다.스포츠와 IT 강국인 우리나라에게 스포츠분야의 4차산업혁명은 또 한번의 기회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함께 스포츠 4차산업혁명시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05-08 유승민

[수요광장]섭리와 운명 사이의 생성적 지혜

더 큰 재능 가진 사람에 질투보다가장 귀한 존재에게 주어지는'사랑=슬픔' 힘이란 지혜 찾으면서섭리·운명 속뜻 헤아려야 한다이것이 불행 초월한 존재론적 발견30여 년 전에 개봉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를 질투했던 한 궁정음악가의 생애를 다루어 우리에게 깊은 기억을 안겨준 바 있다. 빈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는 천재 작곡가로 소문이 난 모차르트의 연주를 듣고 나서 그가 천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그 천재는 참으로 오만방자했고 여성들을 희롱하거나 비속어를 남발하는 등 한마디로 미성숙한 철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철부지가 천부적인 음악적 재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본 살리에리는, 정작 자신에게는 그러한 재능을 주지 않은 신(神)에 대한 항의와 절망으로 모차르트에 대한 한없는 적대감을 키워간다. 그 결과 살리에리가 의도적으로 모차르트를 파멸시켜간다는 것이 영화의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때 살리에리가 외친 "신이시여, 주께선 제게 갈망만 주시고 절 벙어리로 만드셨으니, 말씀해주십시오. 만약 제가 음악으로 찬미하길 원하지 않으신다면 왜 그런 갈망은 심어주셨습니까. 갈망을 심으시곤 왜 재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는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재능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 외침이 되기에 족한 것이었을 게다. 재능에 대한 감별력은 주었지만 정작 그것을 펼칠 능력은 주지 않은 신의 처사에 대한 항변은, 그것이 섭리이든 운명이든 예술가가 견지하는 욕망과 재능 사이의 관계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천분의 불가항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해준다.이와 함께 떠오르는 소설이 최인훈의 단편 '라울전(傳)'이다. 최인훈은 '광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분단소설의 출발을 알린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이다. '광장'에서 작가는 북쪽 사회가 가지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비판하고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자유방임에 가까운 개인주의를 고발하였다. 그런 최인훈이 '광장' 한 해 전인 1959년에 발표한 소설이 '라울전'이다. 주인공인 라울과 사울은 석학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여 랍비가 된 동급생 친구이다. 라울이 학구파이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사울은 성깔 있는 한량에 가까운 편이었다. 라울은 나사렛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그가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어보지만, 사울은 바로 예수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부활한 예수는 라울이 아니라 사울을 찾아가 그를 회심시킴으로써 사도로 삼는다. 이때 라울은 "신은, 왜 골라서, 사울 같은 불성실한 그리고 전혀 엉뚱한 자에게 나타났느냐? 이 물음을 뒤집어 놓으면, 신은 왜 나에게, 주를 스스로의 힘으로 적어도 절반은 인식했던! 나에게, 나타나지를 아니하였는가?"라는 말로 항변한다. 이는 그대로 궁정예술사 살리에리의 외침을 닮았다. 이때 사울은 성경의 비유를 들어 "옹기가 옹기장이더러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빚었느냐고 불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옹기장이는 자기가 좋아서 못생긴 옹기도 만들고 잘생긴 옹기도 빚는 것이니"라고 일갈함으로써 신의 의지에 따른 섭리의 전권을 다시금 설파하게 된다.이 두 편의 예술적, 종교적 서사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신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 같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살리에리와 라울의 운명과 항의 속에서 인간의 한계와 고뇌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섭리와 운명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방식을 상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백석 시편 '흰 바람벽이 있어'의 마지막 구절은 매우 융융한 시사를 던져준다. 백석은 이 아름다운 작품에서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노래하였다. 섭리이든 운명이든 가장 귀한 존재에게 주어지는 것이 '사랑=슬픔'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과 슬픔'의 생성적 지혜를 발견하면서, 섭리나 운명의 속뜻을 헤아려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살리에리와 라울의 불행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발견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18-05-01 유성호

[수요광장]이주여성의 미투가 가능하려면

성폭력 당하지 않도록 긴급조치불행한 일 벌어졌을때 신고하고도움 요청할 수 있게 최선 다해야부족한 부분 채우는 도구로 보는정부·지자체 근본적 인식 전환 필수많은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어지던 미투는 문화예술계를 넘어서,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피해를 받은 여성들의 고백으로 이어졌다. 그간 남성중심의 권위주의 사회였던 한국 사회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변화하는데 미투운동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응원한다. 한편으로 예전에 들었던 한 이주여성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던 이 이주여성은 "한국에는 남성, 여성 그리고 이주여성이 있어요" 라고 한탄 어린 말을 했다. 아마도 한국사회에서는 이주여성이 한국인 여성보다도 더욱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미투운동이 지속되면서 이주여성들에 대한 관심도 평소보다 더욱 커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이주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 3월 9일에는 국회에서 이주여성들의 미투사례 발표가 있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한 이주여성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성폭행 당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사업장 변경에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성폭력이 발생해도 한국 실정에 어둡고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또한 체류신분이 불안정해지면 신고를 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이를 악용한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실제로 2017년 11월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던 한 태국인 여성은 공장의 관리자로부터 "불법체류 단속이 있으니, 자신의 차에 타라"는 이야기를 듣고 동승했다가 경기도의 한 야산으로 끌려가 성폭행 시도 끝에 살해당했다. 이 여성은 평소에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공장의 남자가 계속 치근덕거린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주여성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효과 있는 것이라면 빠짐없이 실행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처는 매우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당연히 이주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행의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당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근본적으로 이주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대책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4월 4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신영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상임대표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결혼이주여성을 후손을 이어갈 씨받이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이주여성 담당 부서의 명칭은 출산·다문화팀이다. 이주여성을 저출산·고령화 사회라는 사회현상의 대책으로 상정하고 이를 너무나 노골적이고 저열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주여성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더욱이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이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사실상,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사회에서의 존재 목적과 이유가 한국인과의 결혼생활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 있다고 여겨진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하고 정부가 이주여성을 한 사람의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국민의 배우자와 엄마로서만 존재 이유를 부여하면서 업신여기는 일에 앞장서온 것이다. 이주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의 시각과 구조는 그대로 두고, 성희롱과 성폭행이 발생하면 자유롭게 신고하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이주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당장에 필요한 긴급한 조치를 취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주여성을 한국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도구로서만 바라보는 정부와 지자체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이주여성의 진정한 미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이주여성을 한국 사회의 특정 문제 해결의 도구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 교정이 한국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함께 지속되어야 한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 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2018-04-24 이완

[수요광장]드디어 60…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이듦을 배우자

58년 개띠 한국의 '베이비부머'경제적 여유로워도 불안해 하고서민들 더 위축 소중한 시간 허비누구도 경험 못해 본 새로운 노년숨겨진 곳과 틈에서 기회를 찾자58년 개띠로 상징되는 한국의 베이비부머. 이들이 올해 드디어 60이다. 베이비부머에 대해 참 말도 많다. 지면이고 방송이고 하루도 이들에 대한 뉴스는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다.인터넷에서 '베이비부머'를 검색어로 검색한 결과, 눈에 띄는 제목 몇 개를 골라 보았다.'벼랑 끝 베이비부머… 700만 은퇴 쓰나미 온다', '베이비부머, 청년세대에 죽을죄를 지고 있다', ''낀 세대' 베이비부머 더 숨 막힌다', '베이비부머 10명중 6명, 은퇴자금 전혀 준비 못했다', '위기의 베이비부머세대, 노후 준비 막막하다', '베이비부머 4가구 중 1가구 노후 '절대 빈곤''… 등. 이건 뭐 끝이 없다.매일 같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누군들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싶다.하지만 염려를 쏟아낼 뿐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하고, 다른 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살 만큼 살았고 알만큼 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직장이라는 우산을 내려놓고 보니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가끔은 '이 분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분들도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모습을 볼 때,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무엇이 문제인가?'먼저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공통의 불안과 염려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건이 좋은 사람조차도 불안해하고 있으며, 보통의 서민들은 더욱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모두가 집단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착각하지 말자. 집단의 문제가 모두 내 문제는 아니다. 내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아니 역으로 생각하면 집단의 문제가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집단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집단의 문제 속에서 기회를 탐색하기도 하는 것이다. 집단의 문제는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삶의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다. '4050 후기청년'의 저자 송은주 박사는 4050세대를 과거 중장년이란 말 대신 밀도 높고 성숙한 청년이라는 뜻의 '후기청년'이라고 불렀다. 후기청년이란 이미 낡은 사회적 기준에 따라 억지로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패턴을 직접 디자인하고 자신만의 드라마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이듦을 배우다'(마거릿 크룩생크, 2016)의 번역자 이경미 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우리는 누구나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제대로 상상하지도 않고 준비할 여유도 없다. 기껏해야 연금이나 보험을 들거나 일찌감치 안티에이징 마케팅에 휘둘릴 뿐이다. 그러나 노년은 훨씬 더 큰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사회적으로 노년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로서 노년은 더욱 블루오션이다. 그러므로 늙음에 대해, 나이 들어감에 대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노년의 의미이고 목적인지 성찰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책임하게 쏟아지는 광고나 기사에 휘둘리지 말고 이 시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노년, 나이듦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자. 숨겨진 곳을 보고 수많은 문제의 틈 속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오롯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나이, 드디어 60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2018-04-17 김수동

[수요광장]'강함과 약함의 공존' 인정하고 지키는 사회-반려견을 떠나보내며

인형처럼 작고 힘 없는 나의 분신목줄 없는 진돗개에 희생 당해반려동물 천만시대 걸맞게시스템 마련·제도 정착 등 절실내게 소중한만큼 타인에게도 소중'나는 언제 줄 거예요?' 고기 굽는 옆에서 녀석이 침을 흘리며 묻는다. 녀석은 천둥벼락이 쳐도 꿈쩍 않지만 냉장고 여는 소리에는 꿀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더 이상 체중 증가는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 속에 가족들의 타박에도 '나도 먹고 싶거든요'라는 애절한 눈빛에 나는 매번 무너지고 만다.주전부리 할 때는 앉지도 못하고 뒤돌아서서 녀석 몰래 허겁지겁 먹다가 들키면 꼼짝없이 나눠줘야 한다. 외식이라도 하고 온 날에는 킁킁 검사를 해댄다. 비만 견에게 다이어트는커녕 또 주고 말았다는 자책과 후회는 내 몫이지만,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며 더 큰 행복감이 밀려오는 걸 어찌 한단 말인가.순진무구한 녀석의 눈빛은 도무지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과 함께 있을 때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하며 미소 짓게 된다. 생각해보니 참 많은 순간, 위로받았다. 함께 뒷산을 산책할 때면 깊은 교감이 느껴진다. 그 순간 온전한 평화까지 맛본다면 과장일까? 그만큼 녀석은 반려동물 이상이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부대끼며 기쁨도 주지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 서운함을 주고받는 가족과 다른 그 무엇이 있다. 하기야 녀석이 말로 직접 확인해준 적은 없으니 우리가 완벽한 관계라고 믿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녀석이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그런데 이제 녀석이 그토록 좋아하던 맛난 음식을 더 이상 줄 수 없다. 이제는 녀석과 산책할 수도 없다. 함께 나누던 그 행복을 다시는 느낄 수 없게 돼버렸다. 얼마 전 녀석은 우리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났다. 목줄도 견주도 없이 홀로 어슬렁거리던 이웃집 진돗개에게 물려 11년 견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녀석이 제일 좋아하던 집 근처 산책로 입구에서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인형처럼 작고 힘없는 포메라니안을 땅에 내려놓자마자 이웃집 진돗개는 급소를 물고 놓지를 않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통곡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물려버린 그 순간 목줄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처참하게 당하는데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의 끔찍함과 무력감을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 나는 키우던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덜자는 것이 아니다. 사고 후에 알았지만 그 진돗개에게 희생당한 소형 견은 이번뿐이 아니다. 옆집 시추도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견주는 자신의 개에게 목줄을 맬 수 없다고 한다. 원망과 황당함이 말로 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한 분노를 쏟아놓자는 것도 아니다. 나의 분신 같은 녀석의 부재를 견뎌내며 감당해야 되는 공허와 먹먹함을 하소연하자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느낀 것이 있다. 강함과 약함으로 우열을 나누는 게 아니고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강한 반려동물과 약한 반려동물, 혹은 동물을 꺼려 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다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애견인은 반드시 '펫티켓'을 잘 지켜야 한다. 자신의 반려견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반려견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산책할 때 목줄 매기는 물론 배변 수거 등 펫 문화가 바로 서야 한다. 반려동물 천만시대에 걸맞게 반려견 관리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과 제도 정착이 절실하다. 반려동물이 위해를 당했을 때 민사적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책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는 국내 법제 하에서는 그 처벌이나 보상이 적합하게 이뤄질 리 없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도 시급해 보인다.강함이 약함을 억압하는 폭력적 약육강식 구조라면 문명세계라고 할 수 없다. 강함과 약함이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반려동물을 관리하는 반려인, 또는 반려동물끼리 혹은 반려동물을 꺼려 하는 사람들도 다 함께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바람직한 펫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김정순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김정순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

2018-04-10 김정순

[수요광장]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길

전세계인의 스포츠 축제평창동계·패럴림픽 성공했지만올림픽시설 활용 풀어야할 숙제비인기 종목도 인프라 확충 쏠림없이 다양하게 즐겨야전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2018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대회 전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모든 우려는 눈녹듯 사라졌다.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은 실로 대단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선수들은 최고의 시설, 안방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 자원봉사자 및 지원 스태프들의 따뜻한 미소 속에 지난 4년간 갈고 닦은 최고의 경기력을 뽐냈다. 이 모든 성과 뒤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평창의 혹한에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넘은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자원봉사자들, 조직위원회와 군·경, 정부의 헌신적인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 특히 현장 응원을 아끼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진심 어린 관심과 지지는 평창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올해 대한민국 체육의 슬로건은 '스포츠 강국을 넘어 선진국으로'다.대한민국은 하계, 동계올림픽을 모두 치러낸 전세계 8개국 중 하나가 됐다.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이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전세계에 '스포츠 코리아'의 이름을 드높였다. 무엇보다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은 대한민국 스포츠가 한 단계 올라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선수들의 경기를 즐기는 자세, 메달색에 상관없이 선수들의 투혼에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성숙한 관중 매너, 그리고 경기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미디어까지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안팎으로 성장했다.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평창의 성공은 눈부셨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거나 성공에 취해 있을 틈이 없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을 뛰어넘어 스포츠의 체질과 내실 측면에서도 더욱 강해지고 깊어져야만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우선 해결해야 될 당면과제는 바로 올림픽 시설 활용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올림픽 레거시(Legarcy)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강원도 지역, 올림픽 레벨의 훌륭한 경기시설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해서 우리 동계종목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관심 속에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제2영동고속도로와 KTX의 개통으로 접근성은 현격히 좋아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평창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스포츠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고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충분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 역시 과제다.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최신식 올림픽 레벨의 경기장에서 해외선수들의 전지훈련 및 국제대회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최고의 시설과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시설 유지비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애물단지'로 전락할지, 지역 경제발전을 이끌 효자 노릇을 할지 결정될 것이다.두번째는 동계종목 인프라 확충과 지속적인 발전이다.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딴 봅슬레이 선수단이 기자회견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했다. "올림픽 후 국가대표 상비군에 지원금이 끊겨 상비군을 해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시아 최초의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은 "내 이름보다 비인기 종목 스켈레톤을 기억해달라"며 울먹였다. "내 금메달로 비인기 종목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이 금메달보다 더 값진 성과"라고 했다.각 기업과 지자체의 동계종목 실업팀 창단과 시설 구축도 '평창 레거시'를 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여자아이스하키팀 창단을 선언한 수원시는 현재 아이스링크 건립을 논의중이다. 의정부시는 3월 27일 컬링전용경기장을 개장한다. 이런 실질적인 투자를 통해 동계 선수층이 두터워지고 경쟁력이 유지되면 국민들의 지속적인 응원과 관심도 이어질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치른 나라다운 인프라와 수준 높은 선진 스포츠 문화를 향유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비인기 종목은 언제까지 비인기 종목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비인기 종목과 인기종목을 나누어야 할까. 모든 종목이 균형을 맞추며 전 국민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의 스타를 열렬히 응원하며,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쏠림 없이 행복하게 어우러지는 길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을 넘어선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유승민 IOC 선수위원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04-03 유승민

[수요광장]재건축 규제와 주택정치

정부 주택정책 '10년전 정책 답습'선진국에선 시장 기능에 따라자율적 조절 되도록 제도 운영심각한 사회적 문제 생기지 않아이제라도 서민위해 집중해야지시장 간섭 계속하면 갈등만 증폭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그 동안 주택정책과 관련하여 3차례의 강력한 집값 상승 억제책과 최근의 재건축규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당초에 목적했던 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취임과 동시에 발표했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의 짝퉁으로 태생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우리나라 도시의 노후주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올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해 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기 때문에 5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다고 공언을 했지만 실상은 시범지역 몇 곳의 사업시늉으로 끝이 날 공산이 크다. 8·3 투기대책은 주택투기와 다주택자들을 겨냥한 마녀사냥이었지만 집값 하락은커녕 선의의 주택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보는 헛발질을 하고야 말았다. 얼마 전 정부가 집값 상승의 주요인을 서울 강남의 재건축으로 규정하고 재건축 요건을 대폭 강화하여 원천적으로 재건축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주택투기도 잡고 집값도 안정시키겠다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지만, 강남 이외 지역 재건축 대상 아파트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재건축 규제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알 수 없다. 경제개발이 막 시작되던 7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주택투기현상은 50년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와 부동산 투기세력 간의 쉼 없는 숨바꼭질은 번번이 정부의 실패로 끝나는 것을 한 두 해 보아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투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주장하는 부동산 투기세력이 아닌 정부의 계속되는 정책실패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0년 동안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민주택을 늘리고 세입자를 보호함으로써 안정된 주거환경을 제공하여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실로 교과서적인 내용을 강조해왔다. 때로는 주택가격의 폭등은 주택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미명 하에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수도권 외곽에 대대적인 신도시를 건설하였지만, 집값의 안정은 고사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치솟는 집값을 잡을 수는 없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실패의 백미는 문재인 정부의 롤 모델인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겠다. 헌법불일치판정을 받은 종합부동산세의 도입과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징벌적 규제에도 우리나라 부동산 역사상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시기가 바로 노무현 정부 5년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본질은 국민들의 주거안정이나 복지가 아닌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이간질시킴으로써 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로 가공할 정책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10년 전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 정부의 주택정책이 무엇을 추구하려는 것인지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도시란 그 자체가 다양성을 가지기 때문에 존재의미가 있다. 주택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주택이 마련되어야 도시가 도시다워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이나 런던, 파리와 도쿄 같은 세계의 유수한 도시에도 초고가의 호화주택들이 있고 서민들이 사는 동네도 있다. 선진국 도시들이라고 주택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민간부문이 역할을 조화롭게 분담함으로써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간다. 주택문제가 심각한 싱가포르나 홍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초고가아파트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심지어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중국의 대도시들도 수십억 원이 넘는 초고가의 주택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분양이나 매매에 정부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선진국이라고 주택투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기능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절되도록 정부가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투기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에 노력을 집중해야지 재건축을 비롯한 민간주택시장에의 간섭을 계속하는 것은 주택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어느 주택문제 전문가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정책은 사회적 갈등만을 증폭시키는 주택정치와 다름 없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8-03-13 양윤재

[수요광장]못남과 못됨

오늘날 잘남은 혈통의 잘남이요재능의 탁월함만 있을뿐이다잘난자들 못된 짓 드러나는 요즘할머니라면 뭐라고 하셨을까지금 미투(#Metoo)운동도사람됨의 길 찾는 것 같다다시는 못난 짓 하지마라. 못됐구나. 어릴 때 우리 할머니는 뭔가 잘못한 일을 나무랄 때면 못난 일과 못된 일을 구분해서 말씀하셨고, 아마도 어떤 기준을 가지신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쉽게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못남은 뭐고 못됨은 뭘까. 나중에서야 이 말의 의미와 용법을 점차 깨치게 되었고 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왜 '나쁜 짓'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하여 말하는 대신, 옛날 어른들은 '못된 짓'이라고 하는지.못남은 타고난 한계를 이른다. 못남의 반대말은 잘남이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이 있고 못난 사람은 못난 짓을 계속 하며 사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저마다의 잘남과 못남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잘남은 고대 그리스말로 '아레테'라고 한다. 아레테는 '덕성' 혹은 '탁월함'으로 번역되는데, 원래는 전사적 귀족적 탁월함을 뜻하였다. 이런 의미의 잘남이란, 전쟁의 신 아레스를 자기의 혈통 속에 갖지 못한 채 말(馬)도 무장(武裝)도 없이 태어나는 평범한 이들에겐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아테네에 민주정이 수립된 이후, 이 말의 의미는 사람들 각자가 지닌 재능의 탁월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레테의 의미를 그렇게 기술과 기능으로 평준화시켜 설명한 사람은 아버지가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으며 가장 친한 친구는 구두장이였던 민중 출신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러면 한 번 타고난 잘남과 못남은 고칠 수 없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특히 잘남 중에서도 지적 탁월함이 아닌 품성의 탁월함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읽어보면 잘남을 탁마하는 것보다 못난 짓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못난 짓을 하지 않으려면 자기의 못남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용기'라는 탁월함에 대해 보자면, 겁이 많은 사람은 좀 더 용기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반대로 겁이 없는 사람은 무모함을 삼가는 두려움을 배워야 한다. 모자람뿐 아니라 넘치는 것도 못난 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자람은 채우고 넘침은 비우는 것이 못난 사람이 되지 않고 못난 짓을 하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행위'를 통해 '습관'을 기르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습관은 한 사회의 관습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관되고 사람의 됨됨이는 일생에 걸쳐 만들어져간다. 사람은 그렇게 '되어가는 존재'다. 이 '사람 되어가는 사람'이라는 말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말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똑똑함은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됨의 길에는 오직 사람 말고는 설 수 있는 존재가 없다. 그러면 못된 사람은 어떻게 사람 되게 만들 수 있을까.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사람들 각자에게 각자 다른 잘남을 각자 다른 기술을 통해 '다르게' 나누어주었다고 하는데, 함께 사는 기술만은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함께 살라고 우리가 똑같이 나누어 가진 정치적 기술, 그게 정의와 염치다. 염치를 아는 것, 즉 부끄러움에 대한 감각은 자기의 못남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고, 정의에 대한 감각은 못됨을 옳지 않은 일로 분별하는 능력이다. 못된 짓을 그치도록 하는 방법은 모두 함께 그게 못된 짓이라고 분별하여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는 정치공동체 안에서만 수립할 수 있다. 잘남을 칭송하여 본을 삼고 양 극단의 못남을 고쳐나갈 수 있다면 못됨은 못된 짓을 꾸짖음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못된 짓에 대해 그건 못된 짓이라고 모든 사람의 입으로 거듭하여 말하는 것으로 그 못된 짓을 멈추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잘남이란 다시 혈통의 잘남이요 재능의 탁월함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잘남과 사람됨이 계속 어긋난다. 잘난 사람들이 저지른 못된 짓이 세간에 드러나고 있는 요즘, 이 반똑똑이들의 못된 짓에 대하여 할머니라면 뭐라 하셨을까. 그런 못된 일이 없어질 때까지 두고두고 말하라 하지 않았을까. 지금 미투(#Metoo)운동도 함께 사람됨의 길을 찾는 운동이라 생각한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8-02-27 채효정

[수요광장]평창 동계올림픽과 지역발전

경제적 부수효과 44조 장담 못해이젠 적자폭 줄이기 고민해야추운 날씨 행사진행 고생 알지만국민들 세금 신중히 사용 당연더 이상 정치인들 굿 놀음에놀아나는 바보되지 말아야지난 2월9일 개막된 제23회 동계올림픽이 며칠 뒤면 17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끝을 맺는다. 개최도시인 평창은 그 동안 세계 98개국에서 참가한 수천 명 선수와 임원, 그리고 수백만 명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애를 쓰기도 했지만 올림픽이라는 대단히 중요하고 세계적인 스포츠행사를 준비하느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갖은 노력을 해왔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크고 작은 어떤 종류의 행사든지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을 다 해왔고, 참가선수들의 선전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국위를 세계에 알리는 일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러우며, 아직은 크게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일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낙제점은 면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우여곡절을 겪고 유치해 온 강원도민의 숙원과제였고, 정치인들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한 판의 근사한 놀음이며, 체육인들로서는 꿈의 향연이기도 하겠지만, 잔치가 끝난 후의 뒷감당은 모두 평창시민과 강원도민, 더 나아가서는 전 국민들의 몫이 되어버린다. 평창보다 앞서 2010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밴쿠버시가 10억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고, 2014년의 소치동계올림픽도 러시아정부가 550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예산을 들인 초호화판 올림픽이었지만 경기 후의 시설유지를 위해서는 매년 12억 달러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규모의 국제스포츠행사는 서울올림픽이나 LA올림픽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흑자를 기록한 예가 거의 없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축구 같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포츠행사가 행사 자체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를 치르고 난 뒤 우리가 겪고 있는 빚잔치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축구장들의 쇠락한 모습은 국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해주고 있다.도시나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계획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서울올림픽의 경우는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고, 또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도시환경의 질적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평창의 경우는 도시발전의 동력이 거의 없는 인구 4만5천명의 작은 군에 불과한 조그마한 도시다. 이런 지역에서 비록 동계올림픽이지만 참가인원이 6천900명, 자원봉사자 1만5천명에다 관람자 및 방문자 수를 합치면 불과 20여일 남짓에 수백만 명이 이 곳에 와서 머물며 경기에 참여하고 관람하며 즐기다 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천에서부터 강릉까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신설하였고, 각종 경기장과 부대시설, 그리고 선수와 관계자들의 숙박시설을 신축하는 등 무려 14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물론 올림픽경기 이후의 대책에 대한 예상처럼 경기가 끝난 후 평창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관광명소가 되고, 또 겨울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다면 예상적자가 약 3천억원 정도로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조직위원회와 유치단에서 전망한 것처럼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적 부수효과가 44조원에 이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와 강원도, 그리고 체육관계자들은 평창군민들과 함께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투자된 시설을 잘 활용하여 적자폭도 줄이면서 평창의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다른 개최도시들의 예를 교훈삼아 적지 않은 연구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평창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수성과 지역성을 고려한 지역발전이나 생존전략은 일반적인 해법으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 더구나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적자해소와 관련된 연구와 관심이 사후에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고, 또한 사람이 바뀌고 지역의 여건이 달라져버리면 올림픽 후의 적자보전을 담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쓴 사람들이나 행사를 치르느라 추운 날씨에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는 우리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리고 세계박람회 같은 대규모 국제행사의 유치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나라경제를 위하고 국민들의 세금을 아껴 쓰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을 더 이상 정치인들의 한바탕 굿 놀음에 놀아나는 바보로 만드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 같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8-02-20 양윤재

[수요광장]행복한 설 명절이 되려면

부모님께 효도, 형제간 화목함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가족들 모여 음식 나누는 이유서로 혀끝으로 상처 주지 않고배려있는 행동으로 존중해 주는흐뭇한 명절 기대해 본다이제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어릴 땐 설날이 그저 설빔과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날이라서 좋았다. 부모님은 양손 가득 조카들에게 줄 선물까지 챙긴 채 어린 삼남매와 직행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아궁이에 불을 때시다가 손자손녀를 반갑게 맞이하시던 할아버지의 따스한 품과 정갈한 한복이 그립고, 약과와 수정과, 모듬전까지 맛깔난 음식을 척척 해내시던 전성기의 할머니도 무척 그립다. 한 그릇을 먹어야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두, 세 그릇 떡국을 먹으며 사촌들과 나이 경쟁을 했던 따듯한 추억이 있는 설날이었다.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져 그런지 명절 연휴가 되면 예전만큼 온 식구가 다 모이지 않는다. 매년 명절 때마다 인천공항 출국자들의 숫자가 증가되고, 해마다 갱신되는 것을 보면 이제는 설 연휴가 친인척이 전부 모여 덕담을 나누는 전통적인 의미보다는 일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해외여행의 기회로 쓰이는 것 같다. 명절 직후, 이혼신청 접수율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족 간 갈등이 설 명절을 계기로 터져버려 이혼을 급격히 결심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명절 때 있었던 한두 가지 해프닝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갈등이 명절 때 폭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상담 시 만나는 일부 젊은 며느리 중 시댁에 대하여 극도의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체로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크게 시집살이를 해서 어릴 적부터 시댁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그런 선입견이 있는 경우는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해가 잦고 화합하기 힘들다. 그런 편견이나 오해가 없어도 아직도 많은 집안들이 가부장적인 잣대와 태도로 며느리를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시어머니는 출산 전에는 아들 보다 돈을 더 벌었던 며느리가 두 아이 낳고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전업주부가 된 것을 뻔히 아는데도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버는데 너는 우리 아들한테 기생하고 무위도식하며 노는 것 같다" 는 차마 농담으로도 할 수 없는 말을 해서 며느리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어느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내 아들이 밖에 나가서 늦게까지 놀 수도 있지. 어디, 여자가 12시 전에 귀가하라고 감히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느냐"며 손찌검까지 했다. 또 왜 그렇게 많은 시어머니들은 큰며느리와 작은 며느리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비교하고, 나이 어린 손위동서가 나이 많은 아래동서를 괄시하는 지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기 싫은 이유가 시어머니 보는 것보다 동서보기 싫어서 그렇다는 사람도 꽤 있다. 게다가 시부모님 모두 안 계신 집이 최고의 시댁이라는 말도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하지만 모든 것이 관점의 차이 아닐까. 시부모님이 안 계시면 시집살이를 안 해서 좋을 것 같지만 자신을 며느리로서 사랑해줄 또 다른 부모님이 없다는 말이니 그 만큼 풍성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큰아들과 결혼하면 며느리 입장에서 시부모를 부양해야하는 부담의 무게가 작은 아들보다 더 클 수도 있지만 형제들 간 순위를 바꿀 수 없을 바에야 기왕 제일 크게 사랑받는 큰며느리가 차라리 낫지 않은가. 시부모 입장에서는 며느리도 당신의 딸처럼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니 당신의 딸이 대우받기를 바라는 대로 똑같이 며느리를 귀하게 대우하면 좋지 않은가. 성경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해한 후 예물을 드리라는 취지의 구절이 있다. 신에 대한 외식적인 제사보다 마음속 형제간의 화해가 먼저라는 의미다. 우리가 명절에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우린 그 본연의 목적을 잊지말아야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고 그런 것을 후손들에게 삶과 생활로써 가르치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 함께 모이는 이유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혀끝으로 사람 마음에 상처주지 않고 배려있는 행동으로 서로를 존중해주는 행복한 설 명절을 기대해본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8-02-13 장미애

[수요광장]인구절벽 시대의 교육개혁

지금부터라도 백년대계 걸맞은교육개혁 통해 출산율 높여야정부,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실효성 향상 노력하고 있지만가시적 효과 나타나지 않아출산·육아문제, 사회적 관심 필요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book)' 세계 각국 출산율 자료에서 한국의 가임 여성 1명의 출산율이 1.26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세계 224개국 중 21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야말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신생아 숫자는 1972년 100만 명에서 한 세대 후인 2002년 50만명 선이 무너져 이미 초저출산 시대를 맞게 됐고, '인구절벽'이란 단어가 실감나는 상황이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출산기피로 인해 나타난 인구절벽 현상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해리 덴트가 2014년 처음 제기한 개념으로, 생산가능 인구(15~64세)의 비율이 전체 인구에서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한국의 경우 2018년부터 인구절벽에 직면해 경제 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해결방안으로 정부는 출산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로,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의 부담을 들고 있다. 일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자녀들의 사교육비 비중이 소득의 20%에 달한다고 한다. 몇 해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국의 발전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는데, 역설적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열정에 걸맞은 교육비 부담 때문에 심각한 출산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교육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현재 인구절벽으로 인한 사회적 파급효과가 우려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2016-2026 중장기 인력수급전망'에 따르면 2016년 61만명 수준인 고등학교 졸업생이 2026년에는 지금보다 16만명이 적은 45만명 수준으로 크게 감소할 것이며, 특히 2024년은 고등학교 졸업생(40만명)이 가장 적은 해로, 2016년 대학정원(52만명) 대비 12만명이 적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른바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강력한 교육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개혁에 있어 대학 구조조정은 중요한 과제다. 학령인구가 지금과 같이 가파르게 감소할 경우, 고등학생보다 대학정원이 많아 생기는 대학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절벽은 현재 예비 고1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당장 가시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 교육과 취업 위주의 대학교육을 개혁하고, 가계의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인구절벽에 대처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향후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여파와 학령인구의 감소는 한국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이미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나라 대학의 30% 이상이 존립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자체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다. 물론 교육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백년대계에 걸맞은 교육개혁을 통해 출산율 증가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 심각한 인구절벽 현상을 경험했던 일본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정부 주도하에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간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 재정비에 착수, 생애주기별 맞춤형 대책으로 실효성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저출산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출산과 육아 문제에 대한 범사회적인 관심을 촉발시켜야 할 때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8-02-06 문철수

[수요광장]'미래 먹거리'라는 이상한 말

누군가 독점 큰수익 얻는 '데이터'누군가 먹고 누군가엔 먹히는 것우리는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한국 곡물자급률 23.8%에 불과식량자급률 OECD국가중 꼴찌정말 지켜야 할 미래먹거리 뭔지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자치와 자급 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월요일 저녁마다 모여 책도 읽고 생각도 나누는 자리에는 먹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여름에는 밭에서 딴 딸기며 참외며 수박, 찐 감자나 옥수수가, 겨울에는 감말랭이나 고구마말랭이 같은 말린 것들이 단골 메뉴다. 생각도 나누고 먹거리도 나누며 이웃의 삶도 함께 나눈다. 그저께 공부모임에서는 낯선 먹거리 용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래 먹거리'라 하는 것이다.요즘 계속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미래 먹거리란 말을 쓰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해요. 먹을 게 하나도 안 보이는데 왜 미래 먹거리래? 맞아요. 4차 산업혁명이 미래 먹거리를 만든다는데 하나같이 먹지도 못할 것이더만. 그렇죠? 나도 그랬어. 사람이 먹지도 못할 것을 왜 먹거리라고 해? 사람이 밥을 먹지 데이터를 먹고 사나? 먹거리가 공장이 아니라 저 컴퓨터 안에서 나온다는 거지. 야 공장에서 나온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먹거리가 땅에서 나오지 어째 공장에서 나오냐. 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 그런 거야? 난 어디서 보니 미래 먹거리가 '곤충'이라고 하기에 그건 줄 알았는데. 으악! 뭐라고? 하하하하! 박장대소로 끝났지만 웃음의 뒤끝에는 무엇인가 씁쓸함이 남았다. 마을의 글동무들에게선 가끔 예리한 직관이 번득인다. 삶으로부터의 통찰이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다시 머리를 맞대본다. FTA 할 때는 차 팔아서 쌀 사 먹고 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데이터가 돈이 되고 밥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진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어디에도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인간인 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식량과 그 토대인 땅(자연, 지구)에 대한 고민이 말이다. 미래 대안 식량으로 '곤충'을 개발한다는 건 농업에 대한 포기를 전제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발상이다. 인공지능은 전기를 먹고 인간은 곤충을 먹고 사는 시대가 목전에 와 있다. 하우스 농업 기술은 기름을 먹는 작물을 키우더니 이제 전기로 작물을 키우는 스마트 팜이 혁신 농업이라 한다. 그러나 그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아마 곤충도 전기가 키우겠지.그러나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단백질과 지방 칼슘 등등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결합체가 아니며, 곤충도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이다. 생명 존재인 인간은 다른 생명 존재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쩌면 저 미래기술들은 산업사회의 기술문명보다 더 가혹하게 생명과 생명들이 기대 사는 관계와 연결의 고리들을 끊어 놓을 기술은 아닐까.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존재다. 밥에 들어 있는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모두 제거하여 인간을 오직 몸뚱이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식량을 그 몸뚱이에 처넣어 가동시킬 연료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미래 먹거리' 같은 저런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인간과 밥, 인간과 식량, 인간과 토지와의 관계는 생물체와 영양소의 관계가 아니다. 밥이 존귀함을 잃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잃는 것이다. 데이터를 '21세기의 원유'라고 한단다. 그럼 인간은 그 데이터를 만드는 유전(油田)인 셈이다. 20세기 문명을 가동시켰던 원유는 고대 생물의 화석에서 왔다. 오늘날의 데이터 밭은 살아있는 인간의 활동이다. 석유는 대지 속에서 나왔지만 데이터는 광대한 전산망 속에서 생성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독점하고 큰 수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먹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먹히는 것이다. 대지에 속한 인간은 대지의 의미가 낮아질수록 그의 존재의 의미도 땅과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땅이 자원을 내놓아야 할 창고가 되고 생산력을 높이라며 닦달당하고 식량 공장이 될 때에는 땅에 속한 존재 역시 모욕당하고 수탈당한다. 땅에 속한 존재는 동식물만이 아니다. 농민만도 아니다. 우리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들 중 꼴찌이고, 곡물 자급률이 23.8%에 불과하다. 지켜야 할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는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8-01-30 채효정

[수요광장]선진국, 선진국민?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잇단 사고제천참사 주차질서만 지켰어도많은 생명 구할 수 있었을텐데올해엔 모든 국민이 법과공동체 기본질서 제대로 지켜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가졌으면새해 들어서자마자 정부에서는 올해의 국민소득이 드디어 3만달러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우리가 꿈꿔오던 30~50그룹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20여 년 동안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소위 마(魔)의 벽(?)이라는 3만달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계나 경제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마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6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어엿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혼란을 겪기도 했고, 경제적 위기도 맞았으며, 노동운동의 시련과 민주화의 고난을 거쳐 오긴 하였지만,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힘은 누가 무어라 해도 바로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힘이라고 확신하고 있다.이처럼 오랜 세월, 온 국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정치적 후진성 때문에, 재벌의 횡포 때문에, 노조의 폭력적 저항 때문에, 심지어는 우리의 후진적 국민성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새로 권력을 잡은 쪽에서는 선진국이 되는 것보다는 먼저 통일을 해야 하고, 경제성장보다는 분배를 통한 공평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이란 과연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선진국에 대한 정의는 매우 애매하여 하나로 통일된 개념은 없지만, 대체로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이로 인해 정치, 문화, 교육, 복지 등이 골고루 발달되어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나라라고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유엔이나 OECD에서 발표하는 매우 다양한 지표들을 비교하여 매년 선진국 순위를 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조차도 정확한 통계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많은 국제기구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넣어두고 있으며, 2017년 IMF가 정한 경제대국순위에서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8위에 올라있고, 유엔개발프로그램의 인간개발지수로는 18위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그룹 다음으로 최하위에 속한 25위 정도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그러나 정작 지표나 지수에 나타난 선진국 순위와는 관계없이 실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통계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기술과 산업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선진국이라고 그 나라 사람들 모두가 선진국민이 아니듯이 어느 사회나 행복을 느끼는 것도 상대적일 수 있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나 가치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십 수년 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을 때 교통체증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도 교차로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 그곳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운전면허취소라는 엄중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이는 결코 법률위반에 대한 벌칙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시점은 교차로에서 꼬리물기가 없어지는 날이라고 말해왔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한 약속, 즉 법을 제대로 지켜나갈 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연초부터 제천의 화재참사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연달아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주차질서만 제대로 지켰어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주차질서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되는 일이 계속되는 나라에서 무슨 선진국이며 선진국민이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올해부터는 부디 모든 국민들이 교통질서와 같은 공동체의 기본질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나가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선진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8-01-23 양윤재

[수요광장]진정성의 힘

누구든지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상대방 감동시켜 솔직함과진정성 때문에 도와주려 애쓴다그게 '세상의 이치'다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나 통하는대단하고 강력한 힘을 지녔다상담을 하다보면 말은 어눌하지만 표정과 기록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계속 듣다보면 그 억울함이 전해져서 어느새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반면 말도 유창하고 표정도 진지하지만 뭔지 모르게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유능한 변호사일수록 의뢰인과 신뢰를 쌓기 전에 기록 검토와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점검을 하고 진실을 파악한 후에야 의뢰인을 전적으로 믿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벌써 17여 년 전, 극빈자들을 위해 무료로 변론을 해주던 법률구조공단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가정을 꾸린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신의 이웃집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구속된 사건을 변호하게 되었다. 구치소로 절도 피고인을 만나러 갔더니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생활비라도 집에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에 우발적으로 죄를 짓게 되었는데 피해자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신의 처가 이웃집에 찾아가 문전박대당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의 처는 생후 10개월 된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날마다 찾아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해도 만나주지조차 않아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재판 받는 동안 절도범의 아내는 나와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를 업은 채 사무실에 들러서 어느 날은 음료수 1병이라도 어느 날은 빵 한 봉지라도 놓고 갔고, 매번 올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지,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이런 모습을 친정에서 알게 되면 안 된다며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자신의 신세 한탄과 하소연을 담은 짧은 편지를 전해주고 갔다. 나는 그 가정을 진정으로 구해주고 싶었다. 직장을 잃은 젊은 가장의 절박함과 아내 사랑이 절절해서 없는 문장 실력으로 피해자에게 무작정 편지를 쓰게 되었다. '돈을 주고 선임한 변호사도 아니고, 돈 없는 사람을 무료로 변호해주는 가해자의 변호사인데 월세 방 보증금이라도 빼서 합의를 하려는 의사가 있으니 제발 그 처를 만나만 달라.'고 호소했다. 기록상으로도 워낙 피해자의 의사가 강경하여 긍정적인 대답이 올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피해자의 처가 밝은 얼굴로 합의서를 가지고 찾아왔다. 게다가 그 피해자분은 피고인의 처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당신 남편의 변호사가 쓴 글을 보니 사정이 딱하더라. 크게 뉘우치고 있다고 하니 그 말을 믿겠다. 아이를 봐서라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면서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합의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물론 결과 역시 좋았다. 석방되어 나온 피고인 부부가 일부러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전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 끝이 발개졌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감동시켜야 변호사도 판사를 감동시킬 수 있다." 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다.그 후로 지금까지 형사사건을 하면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은 위 절도사건 이후로 딱 한 번 더 있었을 뿐이다. 그 피해자 역시 합의를 잘 해주었고, 나의 의뢰인은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의뢰인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게 된 것이 모두 내 덕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뢰인의 진정어린 뉘우침과 현재의 딱한 처지가 나를 먼저 감동시킨 것이고, 그 방법 외에는 선처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피고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진심어린 문장과 말로 피해자에게 어려운 시도를 해보게 된 것이다. 역시 진정성의 힘은 대단하다. 누구든지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감동받은 상대방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의 솔직함과 진정성 때문에 최대한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과연 이런 일이 변론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진정어린 열정을 가지고 매번 오디션에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던 연습생이 결국에는 소속사 대표에 감동을 주어 아이돌로 변신하는 과정이나 창고에서 시작된 보잘 것 없는 작은 회사가 열정과 비전으로 큰 투자자를 만나는 과정처럼 진정성은 세계 어느 곳이나 어느 시대나 통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8-01-16 장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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