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리비아 철수와 한국인의 마음

[경인일보=]리비아에 녹색 바람이 불면서 반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속속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초동 단계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마지막 철수 작전에서 한국인들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일하던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8천여명이 철수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본인들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삼국인들도 동행하여 리비아를 탈출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남다른 모습이다.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떠올려 볼 때 이 철수작전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갈등은 종전의 사회적 갈등과 양상을 달리 한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사갈등이나 계층갈등이 전면에 돌출되던 시대와 달리 지역 갈등이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세종시 문제로 지역갈등이 국가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우 이 문제가 봉합되고 나자 정치와 종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사대강 사업은 정치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비화된 것 중의 하나이고 이슬람 수쿠크법은 경제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번져나간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논쟁과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 벨트 선정 문제 등은 지역연고권과 더불어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것 같다.새 봄이 돌아오니 이런 여러 문제들이 터져나와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희망찬 앞날을 설계해야 할 봄날 어떻게 하면 여러 난관들을 성공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한국인들의 욕구는 더 크게 증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게 분출되는 것 같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분출되는 갈등비용이 대략 삼백조원에 달하며 이는 거의 국가 전체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은 갈등의 대국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사회발전의 에너지가 분출된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을 한국인이 지닌 열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열된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여러 갈래 분열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였던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겠지만 그 이전에 지켜져 왔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의 붕괴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정일치의 시대가 고대원시사회에 있었지만 현대와 발달된 사회에서 제정일치는 여러 가지 불가피한 요인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부정된 제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종교가 한국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한국을 끌어나가는 지배집단이 그만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소통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사회발전이 소통보다는 속도를 더 강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며 그동안 성취한 민주화가 내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발전의 속도보다는 소통의 확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갈등의 증폭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과 더불어 더욱 강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은 중요한 참조 사항이 된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한 동료들의 안전도 동시에 중요하다는 판단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 한국인의 진정한 마음의 표현이다.한국의 저력은 아무리 증폭된 갈등이라도 지혜롭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지금의 증폭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본래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교훈적 사례를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한국인이 지닌 정신적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이를 잠시 잊고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명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2011-03-08 최동호

최용신의 사랑과 헌신

[경인일보=]지금도 어릴 때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 설레고 눈물이 나는 80 넘은 제자가 있다. 1930년대 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하 농촌의 가난한 마을 안산 샘골에 살고 있던 7살 소년에게 22살의 처녀 선생님이 불쑥 찾아왔다. 그 선생님은 어린이의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자라면 크게 될 아이이니 잘 키우라"는 말을 하였고,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은 심훈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이며, 아이는 제자 이덕선씨이다. 최용신의 사랑과 격려 한마디가 샘골마을 한 어린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이덕선씨는 최용신 선생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삶의 기준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한다.그러나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처음 샘골에 나타났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책상물림의 젊은 처녀가 무엇을 안다고 저러는가"라며 핀잔만 주었다. 후원을 요청하러 찾아간 사회운동가마저도 그에게 "날고 기는 놈도 농촌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는데 네가 무엇을 한다고 하느냐"며 차디찬 경멸을 보냈다.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 나가 밭 매는 주민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말없이 일손을 도왔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불과 7개월이 지나지않아 주민들은 그를 마을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여겼다. 최용신은 부녀자들과 마을 청년들을 지도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샘골 곳곳을 다녔다. 그의 손길과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강습생은 점점 늘어났으며, 강습소가 좁아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글을 배웠다. 강습소를 증축하기로 하고 건립 기금을 모으자 부인들은 그동안 어렵게 모은 돈 300원을 선뜻 내놓았다. 최용신은 그 돈의 반을 부인회에 돌려주었다. 여러분의 피와 땀이 담긴 이 돈을 다 받을 수 없다며. 여기에 감동한 주민들에 의해 모금 활동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다. 최용신은 마을에 온지 1년이 조금 지난 기간 안에 주민의 힘을 모아 강습소 증축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이듬해 최용신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으나 병을 얻고 고향으로 돌아가려하나, 드러누워 있더라도 샘골로 오라는 주민의 요청을 받아들여 샘골로 돌아간다. 그러나 얼마 있지않아 1935년 초 최용신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샘골마을에서의 과로가 한 원인이 되었으리. 마을 주민들은 그의 장례를 1천여명의 조문객이 애도하는 속에 사회장으로 치렀고,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최용신 이야기가 알려지자 신문과 잡지는 앞다투어 그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고, 소설가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최용신이 떠난 지 80여년이 지났으나, 나이 든 제자들은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재산을 최용신기념관을 짓는데 기부하고, 또다른 이는 사재를 털어 길바닥에 기념 표석을 심었다. 주민들은 지금 최용신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최용신기념관에는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냉소적이던 당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무엇이 그가 떠난지 80여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가? 최용신이 한 일이 우리 역사를 바꾸어 놓은 대단한 일은 아니나, 그가 보여준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최용신은 주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헌신하였다. 소통을 통해 공감을 얻었다. 사랑과 격려를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최용신이 설정한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실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용신과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으며,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제자와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살아간 인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많다. 최용신의 삶은 한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011-03-01 강진갑

이슬람권의 소요(騷擾)와 신묘(辛卯)년

[경인일보=]필자는 동아시아의 오랜 지혜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평생 연구해 온 사람이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어지러운 이슬람권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음양오행과 연관 지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집트를 시작으로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은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마저도 실각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달러 찍어내기로 인한 과다한 국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압력, 여기에 작년 세계적인 곡물 흉작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현재 이슬람권 국가들이 소요사태에 휘말려들고 있다.'민주혁명'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서구 세계 미디어들이 이럴 때 으레 사용하는 정치적 발림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밥먹고 살기 어려우니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고 여기에 오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현상은 음양오행의 견지에서도 충분히 좋은 설명이 가능하다. 올해는 辛卯(신묘)년인바, 이 기운이 상징하는 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상으로 辛(신)은 金氣(금기)에 속한다.金(금)이란 맺히는 기운이고 응축하는 것으로서, 조직이나 단체를 단속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규율과 통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규율과 통제를 의미하는 금의 기운인 辛(신)이 올해에는 卯(묘)라는 코드를 만나고 있다. 여기에서 올해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묘는 12地支(지지)의 하나로서 방위상으로 正東(정동)을 뜻함과 동시에 '봄'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은 만물이 피어나고 뻗어가는 때이다.그러니 금년 辛卯(신묘)년의 형국은 위에는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운이 있고 밑에서는 뻗어가고 피어나는 기운이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다.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모순이니 올해 신묘년은 사회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잦은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른 나라들은 별 문제가 없는데 왜 그곳만 그러지? 하는 의문이다. 사실 지구촌의 다른 지역에서도 올해는 만만치않는 사회적 불만이 제기되겠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이슬람권의 경우 집권 세력이 지나치게 오래 자리를 잡아오면서 내부 불만과 갈등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너무 오래 해먹은'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집권층이 해먹든 말든 사실 그런대로 밥 먹고 살 수만 있다면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최근 식량 흉작으로 기본적인 생계가 어려워지자 이에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 중동 소요라 하겠다.이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추가해 볼 필요가 있으니, 세상 만물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60년을 하나의 週期(주기)로 한다는 점이다. 주기 즉 사이클은 기본적으로 사인(sine) 곡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고등학교때 배웠던 곡선 말이다. 곡선을 보면 오르내림이 있는데, 그것을 세상 변화와 흥망성쇠의 곡선이라 보면 되는 것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절반인 30년은 오름이라 보면 되고 그 나머지 30년은 내림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은 30년이 지나면 기존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흐름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줄여 말하면 오름 30년이 있다면 내림 30년이 이어지는 법이다.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해볼 때, 30년이 지나면 반대의 흐름이 생긴다는 것을 하나의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대단히 재미나고 때로는 신통한 예측을 가능케 할 것이다. 30년이 지나면 반대 흐름이 생겨난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여기에도 아주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장기 독재자 무바라크가 이번에 실각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집권한 지 금년이 꼭 3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1981년에 집권한 무바라크는 30년이 지난 2011년으로서 실각하게 되었으니 주기의 엄밀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다음 번 글에서는 주기에 대해 더 흥미로운 얘기를 하겠다.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2-22 김태규

김문수 지사, 정치신화에 도전할 것인가

[경인일보=]김문수 지사가 조용하다. 정치적인 현안을 놓고 후발 주자는 조금 시끄럽게 해 국민의 시선을 끄는 법인데, 인근 서울시에 비해 차분하다. 지난해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지명될 때만 해도, 김 지사의 정치적 관심 영역이 경기 도정(道政)의 경계를 넘어서나 했다. 실제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구인지 모르겠다'라는 발언 이후, 그의 관심이 국가적 어젠다로 확대되지 않을까 예상됐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않은 채 멈춰 섰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과감한 복지'로 도의회와 절충점을 모색한 뒤로는 자제하는 듯한 태도이다. 절친한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정치생명을 건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는데, 중앙정치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하긴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다. 경기지사 직무만으로도 여념이 없을지 모른다.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도 "신문 볼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할 정도이니, 지금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지사는 대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사가 말해 주는 숙명 비슷한 것이다. 1997년 당시 이인제 지사에 이어, 2007년 손학규 지사도 대선에 출마했거나 후보 경선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진 못했지만, 모두들 유력한 주자들이었다. 이인제 전 지사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격돌했고, 손학규 지사 역시 당적을 바꿔가며 대선가도를 향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인제, 손학규 모두 위협적인 경선 흥행 메이커였다. 경기지사가 갖는 정치적 힘이자, 한계이다. 경기도는 여러 도시와 그 구성원의 다양함, 지역의 광활함, 그리고 인구수와 유권자의 성향에서 서울에 견줄 만하다. 전국을 압축해 놓은 축소판이다. 지사로 당선된 순간부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다. 어찌 보면 큰 정치에 뜻을 두었기에 경기지사에 도전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지방 행정가로만 머물기에는 성이 차지 않는 자리이다. 충남이 고향인 이인제 지사가 그랬듯이 경북 영천이 고향인 김 지사도 예외는 아니다.여기에 김 지사에게는 소박한 풍모에서 비롯되는 '사람 냄새'가 강점이다. 젊은 날 노동운동을 하면서 몸에 밴 어려운 사람들의 이웃 같은 인상을 준다. 순수하고 성실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 유명 석학 중 한 분이 식사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김문수 지사가 참 좋다"고 말한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왜 좋으신가'를 물으려다 자리의 성격상 어색해 그만 두었지만, '일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를 일반에 심어준 듯하다.또 승부사적 기질도 갖췄다. 그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당시 민주당 대변인으로 스타 정치인이었던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정치에 입문했다. 후에, 박지원 의원이 김 지사의 선거운동을 얘기하면서 혀를 내두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승부욕이 강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절대 지지층을 갖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눌렀다. 야권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차례로 꺾은, 쌓기 힘든 전적을 갖춘 것이다. 이런 김 지사를 여권의 대선가도가 가만히 놓아둘 리 만무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대항마로서는 '안성맞춤'이다. 경기도는 정치적 무늬는 그럴 듯하나 서울과 지방의 중간지대이다. 강한 응집력이 없다. 서울의 화려함에 가리고, 지방의 끈끈함에 찢기어 빈 지갑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강점인 사람 냄새는 언제든 그가 지닌 정체성의 발목을 잡는 낙인이 될 수 있다.그런데 묘하게도 정치는 늘 '신화'를 찾는다. '신화는 없다'는 MB 정부 자체가 샐러리맨의 성공기, 청계천 복원과 같은 신화의 결과물이다. 국민 가슴에 전해지는 감동과 울림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이다. 오늘 박근혜 전 대표가 갖는 정치력 역시 천막 당사와 선거 무패 행진, 그리고 원칙의 산물이다. 김 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치, 보수정치로 이어지는 전환이 그러하다. 대권은 기업으로 치면 독과점 기업이다. 주식회사가 아니다. 이제 원하건, 원하지 않건 김 지사는 신화 창출의 입구에 서 있다. 복지·개헌·정치개혁·중산층과 서민·남북문제와 같이 울림의 전선은 널브러져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느냐는 전적으로 김 지사의 몫이다.

2011-02-15 양승현

두 여성 거목의 죽음과 봄 편지

[경인일보=]두 여성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분은 박완서 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송정희 선생이다. 작가로서 박선생은 세인의 주목 속에서 가셨고 송선생은 조용히 남모르게 세상을 떠나셨다.연초에 학교에 나갔더니 발송자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포가 하나 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더니 송정희 선생의 시집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여서 이 분이 또 시집을 내셨구나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보려는데 유고시집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송선생은 몇 년 전부터 일면식이 없는 필자에게 시집을 우송해 주셨는데 언젠가 한번 직접 뵙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70년대부터 한학에 진력하여 동양의 고전적 경전들을 두루 번역한 이 분의 숨은 노력의 지대함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송선생의 타계는 더욱 아쉬웠다. 최근 10년 동안은 주로 시창작에 전념하셨는데 이 분이 한학의 온축을 시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유고시집의 표제가 된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는 그동안의 학문적 온축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여름은 봄의 청춘식장이며 가을은 봄의 산실이고 겨울은 봄의 신방인 까닭에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상식의 틀을 깨트리는 참신한 시적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집을 되풀이 읽으며 이 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비슷한 연배의 박완서 선생도 나이 40인 70년대에 등단하여 4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많은 역작을 발표했다. 박선생은 여성문학이 부재하던 시절 여성의 내면적 심리를 특유의 문체로 묘파하면서 여성의 삶을 문단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작가였다. 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접한 순간 필자는 빈소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통독했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명료한 의식을 지니고 돌아가셨다는 전언이 무언가 더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박선생의 가슴 속에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꽃봉오리 같던 20대에 맞이한 전쟁이 가져다 준 공포 그리고 남편과 사별한 직후 젊은 아들의 돌연한 죽음 등 하느님으로부터 한 말씀만이라도 듣고 싶었던 참척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란 고통에 의해 탄생한다는 말이 그대로 적중하는 것이 작가 박완서였을 것이다. 박선생이 인생에 오직 한번 밑줄을 치고 읽었던 것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에서 '스쳐간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예수가 자신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스쳐간다'고 말했을 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지닌 근원이 무엇인지를 박선생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이 아픔이 작가로서 박선생의 대성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박선생도 자신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길이 아니라 학문의 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마지막 산문집의 제목을 정한 것도 아마 그러한 연유가 아닐까 싶다. 학문의 길을 간 송선생이 말년에 갱지에 시를 썼다는 것과 대조되는 발언이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 모두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소망을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 숙연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시절 오로지 자신의 길을 걸어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아직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의 열망을 두 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인생은 누구나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속언은 두 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것은 두 분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분의 삶에 경외감을 갖는 것은 40여년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한 삶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루었느냐는 그 다음이다. 박선생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생이 너무 허망하게 느껴진다는 분에게 짧게 메일을 보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면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입춘 우수가 다가오고 한강물이 풀리고 꽃들이 피어나 새들이 우는 봄이 오더라도 그것들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생명 속에 움트고 자라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송선생의 시적 어투를 빌려 누군가에게 봄 편지를 쓰고 싶다.

2011-02-08 최동호

학생인권과 교실붕괴는 어떤 관계일까

[경인일보=]"출석을 부르고, 자는 아이 깨우게 하고, 이어폰 빼게 하고, 휴대전화 끄게 하고, 교과서 꺼내게 하고, 수업 중 못 떠들게 하고, 자는 학생 또 깨우고…. 이건 수업이 아니라 차라리 전투예요." 이 말은 그래도 교육에 열정이 있으신 어떤 중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근간에 들어 이와 같은 교실 붕괴의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필자의 제자인 모 중학교 김모 교사는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줄 수 없어요. 그러면 선생님을 마치 자신들의 친구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해 버려요. 요즘 학생들이 인권 조례 운운하니 도저히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할 수 없어요" 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필자도 이 상황을 경험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다. 3년전 스승의 날에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의 1일교사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의와 교수법에 일가견이 있는 사범대 교수가 중학교 교실에서는 10분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의 주목을 끌어야 했는 데 흥미로운 수업은 실패하고 나 혼자 떠들다가 나온 경험이 있다. 옆 친구들과의 이야기, 불쑥 일어나 다른 자리의 친구에게 다가가는 아이들…. 수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와 예절들은 이미 상실된 채였었다. 그 후로 필자는 중학교 교사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런 교실 붕괴 분위기에서 주당 평균 16~20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분들이기에 말이다. 특히 학생 인권 조례가 나온 이후 교사가 학생들에게 매 맞고,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육체적인 폭행을 당한 건수는 2008년 25건에서 2009년에 35건, 2010년 상반기에 53건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폭행 건수에 여교사 비율이 초등이 74%이고 중학교가 65%라고 한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제공한 것은 바로 학생체벌금지와 학생 인권조례라고 한다. 이 제도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격을 존중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들에 의하여 학생들의 교사 폭력과 성희롱이 일어나고 교실이 붕괴되는 것은 왜 일까? 일선 학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 제도들이 교실 붕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에 누구든 토를 달 수 없게 되었다.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간접 체벌은 허용하는 방침을 제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교실 뒤 서 있기, 운동장 걷기, 팔굽혀 펴기와 같은 훈육·훈계 수준의 교육적 벌은 가능해진다. 아울러 출석정지 제도와 학부모 상담제가 도입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두발과 복장 등의 학생생활 규정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학교의 자율권도 확대된다. 교육부의 간접 체벌 허용 방안은 늦은 감이 있으나 일선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체벌과 관련해서 찬성 입장은 그릇된 행동을 하는 학생을 통제하는 효율적 방법으로 여기는 반면, 반대 입장은 벌을 주는 사람에게 증오심을 갖게 되고, 벌을 피하려는 회피학습이 이뤄진다고 한다. 물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라는 체벌 금지의 아름다운 격언이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방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체벌에 대해서는 어느 시대 건 찬반 공방이 늘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를 감안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간접체벌 방침을 정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학생인권을 강조하고 체벌을 금지하는 분위기로 인해 일선 학교현장에서의 부작용 사례들이다.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칙 제정에 대해 학교장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는 교육감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지만 교장에 의한 단위 학교 책임경영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미 했어야할 일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일선 학교는 학칙에 대한 자율권이 크게 확대되는 만큼 간접 체벌의 내용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할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 입장뿐만 아니라 새 법령에 따라 학생의 의견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번 간접 체벌 허용이 교실 붕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김교사에게 자신 있게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라고 말하고 싶다.

2011-01-25 김영순

국가교육정책의 목표

[경인일보=]나라를 경영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국민교육정책은 곧 그 나라의 사회문화와 경제, 정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최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칭찬했다는 기사를 몇 번인가 대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 국민의 교육열? 우리정부의 교육정책?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우리의 교육정책은 정권만 바뀌면 목표가 흔들리는 나라이니까…, 우리나라는 그 대단한 국민들의 교육열을 제대로 승화시켜 주지도 못하는, 그래서 그것을 단점으로 만들어버리는 교육정책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나라의 교육정책은 나라를 이끌어 나아가는 관련정책들과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적일 수가 없다. 유럽의 선진국들을 보면 교육당국은 "가능하면 빠른 기간 내에 국민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직업능력이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주는 것"을 교육의 첫째 목표로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정책이 "모든 국민은 노동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국민이 노동할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이는 나라의 교육이 잘못 되었거나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간주하여 정부는 이들에게 일자리가 더 많은 분야로의 새로운 직업교육을 안내하고 추가교육(정부 부담)을 시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 그리고 그가 취업을 할 때까지는 먹고 살 수 있도록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실업수당과 실업보험금은 전혀 다르다. 실업보험금은 취업자가 어떤 연유로 실직을 했을 때 받게 되는 보험금이고 실업수당은 직장을 잡아보지 못한, 그래서 직업을 구하고 있는 예비취업자에게 주어지는 생계비로, 정부가 교육을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부과금 성격의 돈이다.이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의 취업연령을 22~25세로 보고 30세가 넘어서도 취업을 못할 경우는 취업의사가 없거나 특수한 케이스로 보아 정밀조사를 하게 된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도 30세 이전에 학업을 마치도록 하며 따라서 장학금도 30세가 넘으면 대부분 신청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박사학위는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여 대부분 연구소나 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는 하지만 곧바로 교수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교수가 되려면 연구를 3~5년 정도하여 그 결과를 교수논문으로 제출하고 합격하여야만 한다. 연구기간동안의 많은 실수와 성공의 경험이 교수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젊고 활기넘치는 시기에 마음껏 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평균 25세 이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마치고 이때부터 정년인 65세까지는 배운 것을 써먹는 기간이 된다. 그러니까 평균 5세부터(유치원 포함) 22세까지 17년정도 교육시켜 65세까지 약 48년 동안을 활용하는 매우 경제적인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25세 이전에 취업이 어렵고(군복무 감안) 전문직의 경우는 30세 이전에 교육과정을 마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취업재수생들이 대학원을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평균 교육기간은 더욱 길어졌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대부분 55세 정도면 퇴직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어 25년 이상을 교육시켜 30년도 못 써먹는 매우 비경제적인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고, 30세 장년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하고 사는 이상한 나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고쳐야한다. 교육기간이 길다고 좋은 것인가? 인력 활용도 젊음만 착취하는 기업편이의 인력정책을 그대로 갈 것인가? 이제라도 교육은 일할 수 있는 능력교육으로, 직장은 평생직장개념으로, 교육과 인력 활용이 효율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2011-01-18 정명채

산학협력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경인일보=]기술의 융합화와 시스템화가 진행되면서 산학협력을 통한 개방형 기술혁신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 내부의 연구 자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폐쇄형 기술혁신 전략으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시장경제체제에서 산학협력은 수요과 공급의 논리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시장의 실패가 초래되어 과소투자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기업이나 대학이 산학협력을 하고 싶어도 믿을만한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아가 산학협력을 통해서 개발된 기술의 가치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여 공동연구 등의 거래행위가 성사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는 정책적으로 산학협력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산학협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정책은 산학협력 연구비에 대한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유망 연구과제를 선정하여 정부와 기업이 연구비를 분담하여 산학협력 연구를 추진하고, 연구결과 창출되는 지적재산권은 최소한의 기술료만 받고 기업으로 이관한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서도 이런 방식의 산업협력 지원정책이 김문수 도지사의 주도로 3년 전에 시작되어 도내 중소기업과 대학간의 연구협력 증진에 큰 역할을 하였다.그동안 '경기도기술개발사업'을 통해서 산학협력 연구를 지원한 경험에 의하면 산학협력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행이 우리 사회와 조직 곳곳에 남아 있어서 정책의 효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우리의 산학협력 관련 제도와 관행은 1970~80년대 모방형 혁신을 추구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새로운 기술혁신의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이런 구시대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해야 한다.첫째, 산학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학의 경영방침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은 교육과 학술연구를 일차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산학협력은 부수적인 목표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산학협력을 통해서 연구비를 많이 유치한 교수보다는 우수한 학술논문을 발표한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대학교수의 임용과 평가에서 산학협력 경험과 능력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산학협력에 장애가 되는 많은 제도와 관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들을 산학협력에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둘째,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과 산업의 지리적 배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는 공단, 대학, 주거가 지리적으로 분리된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대학과 주거지는 도시 내에 있는 반면 기업은 멀리 떨어진 공단에 위치하도록 하여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서울 구로지역의 디지털밸리가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도 이런 입지적 장점 때문이다. 따라서 주거, 교육, 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산학협력 친화적 입지 패턴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국토 활용 계획과 도시계획이 바뀌어야 한다.셋째, 산학협력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동안 산학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과 과학기술 인프라를 고려한 산학협력 정책을 수립하고 현장 밀착형 정책의 추진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잘 할 수 있다. 지역 단위의 산학협력 지원정책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중앙정부가 기획한 정책에 지방이 매칭자금을 제공하는 현재의 구도를 전환하여 지방자치단체가 기획한 정책에 중앙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이글을 맺으면서, 산학협력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작업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산학협력의 주체인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 등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2011-01-12 이원영

받는 입장을 존중하는 자세

[경인일보=]오는 1월 12일은 아이티가 대지진을 맞은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968년부터 시작된 1:1 어린이 양육을 통해 당시 6만3천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던 컴패션은 즉시 현지 어린이센터에서 돌보고 있던 어린이들의 신원 파악을 시작했다. 아이티 현지 직원들과 교사들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대신 아이들의 행방부터 찾아 나섰다. 긴급하게 구호와 의료 지원이 진행된 후에는 곧바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양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현지의 장기적 노력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얼굴과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사랑으로 기금을 모아 주었고(한국컴패션 약 20억원), 다른 10개 후원국과 더불어 많은 기금을 아이티 현지에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콜레라나 정치적 위협 등 많은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 아이티이지만, 이 기금을 바탕으로 재건을 위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고 멈출 수 없는 회복의 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이렇듯 국내 후원자 분들을 대신해 많은 기금을 아이티에 전달한 한국컴패션으로서는, 모아주신 따뜻한 온정의 손길에 대한 감사와 현지에서 이를 잘 쓰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전해야 할 책임이 생겼다. 이런 현지 방문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후원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에 봉착했다. 아이티 현지에서 후원국 방문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현지의 양육 환경 재건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후원국의 방문에 난색을 표했다. 꼼꼼한 점검과 확인에 재확인을 거쳐야만 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숨가쁜 일정으로 움직이는 한국 언론의 현지 방문도 그런 이유로 종종 무산에 그치고는 했다. 물론 충분한 보고서가 왔고 어렵게 들어간 몇 번의 현지 방문을 통해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고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진이 났을 때부터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후원국 방문은 나중에, 현지 파악과 복구가 먼저. 아이티에게 후원국의 하나인 한국은 자신들을 돕는 나라로서가 아니라 대등하게 어린이들을 돌보는 연합체라는 인식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1952년 후원을 받기 시작해 1993년까지 수혜국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는 후원국으로 존재하는 한국컴패션과 이를 바라보는 국제컴패션의 시선을 볼 때 컴패션 안에는 분명 수혜국과 후원국의 뚜렷한 구분이 있다. 하지만 그 구분은 역할의 구분이지, 도움을 주는 나라와 받는 나라로서의 구분은 아닌 것 같다.도움을 주는 것에는 분명 큰 자부심과 기쁨이 있다. 그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열정적인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작년에는 작정을 하고 아시아 6개국 컴패션 수혜국 대표들을 초청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면면을 보여주었고 큰 감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도저 같은 한국의 방식이 때로는 다른 수혜국에서는 어렵고 낯설 때가 있는가 보다. 진정한 사랑이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맞다면, 한쪽의 입장만을 주장하면 안 된다. 컴패션에서는 수혜국이 먼저 필요한 것을 말한다. 후원국 입장에서는 기금 모금 형태가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고 현지의 입장을 후원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주는 입장보다 받는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한다. 어떤 그림에서 각자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각각의 퍼즐이 빛을 발하고, 이를 위해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 그림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사랑을 전하는 일은 그 이상이다. 단순히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하며 돕는 일, 아이티 지진 1주년을 맞아, 그 나라를 향한 안타까움이 큰 만큼 더욱 생각해 보게 된다.

2011-01-04 서정인

창의인성 교육을 위한 바람직한 평가방향

[경인일보=]내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줄 아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바로 각 교과에서의 창의인성교육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시한 '창의 인성 교육총론'에서 창의성(creativity)은 독창적이면서도 유용한 산물을 산출할 수 있는 사람의 특성이라고 정의되며, 인성(character)이란 신뢰 있고 협동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는 생활태도와 품성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른 인성은 사회와 조직 속에 신뢰와 협동의 사회적 자본을 증대시킨다. 창의성과 인성은 구성 요소나 함양 방법 등에 있어 상호 유사성과 보완성이 높은 자질(예: 개방성, 적극성, 협동 능력 등)로 구성된다. 나아가 창의성을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으로 규정하고, 인성은 '창의성을 사회 속에서 의미 있게 발현시킬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이제 교육은 이러한 창의성과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창의인성 교육은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의 선진국에서 핵심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창의인성 교육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개정 교육과정에도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교육의 변화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창의인성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사들이 기존 교수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다양한 창의적 교수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이를 연구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잡무가 해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밖에도 성공을 위한 여러 전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평가 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의 방식은 창의적인데 평가가 기존의 선다형 평가라면 창의인성 교육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평가 역시 창의적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가 방식으로 학생들의 창의 인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제시한 창의인성교육의 평가 방향은 3가지(수행평가 확대 실시, 교사의 학력평가 전문성 제고, 그리고 절대평가 체제로의 단계적 전환)로 나누어진다. 현재로서는 창의인성 교육에 관한 평가 방식이 구체적으로 개발되지 않아서 현행 수행평가의 확대 실시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학교에서 주의해야할 부분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의 영역이 지필평가의 주관식으로 대체되는 일이 많은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적절한 창의인성의 평가를 위해서는 단답형의 주관식 평가 문항들이 서술형 혹은 논술형 평가 문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모든 교사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이러한 평가를 주저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평가 이후의 객관성에 대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평가가 학교에서 잘 정착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주관식 혹은 서술형 평가에 대한 교사의 '채점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대부분 서술형 평가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교수의 주관식 채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수의 평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오직 학생뿐이다. 다른 기관에서 교수의 평가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교사의 채점에 대한 견제는 교육청의 장학 지도나 감사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어야 한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답안에 대한 평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 스스로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앞으로 창의인성 교육이 현장에 적용되면서 특히 평가부분에 있어서 많은 논란을 가져올 것은 뻔한 일이다. 이에 대해 교사의 객관적인 평가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이 평가를 신뢰하고 수긍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풍토를 조성하는 데 모두 노력해야할 것이다.

2010-12-29 김영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있다

[경인일보=]최근 언론에서 재벌들의 서민업종 싹쓸이(?) 기사가 종종 뜬다. 경제투데이는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폐지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심화되고 있다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발표한 우리나라 '15대 재벌그룹의 계열사 변동추이 및 관계사 출자액 분석결과'를 인용하고 있다.우리나라 15대 재벌이 2007년 4월 이후 2010년 4월의 조사시점까지 계열회사나 비계열회사의 주식취득(소유지분 취득)을 위해, 회사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쓰인 출자액은 총 92조8천400억원으로 2007년 50조2천520억원에서 85%나 급증했다. 계열사 수는 같은 기간 472개에서 679개로 3년동안 207개(44%)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15대 재벌이 신규편입한 업종을 보면 계열사 332개 중 제조업은 80개사(24.1%)인 반면, 비제조서비스업은 252개사(75.9%)로 건설업종과 부동산업종 그리고 임대업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15대 재벌들이 우리경제에 대한 기여와 책임의식을 갖고 장기적 안전성과 기초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생산, 개발 관련영역에 대한 투자보다는 눈에 보이는 단순 돈벌이 중심으로 치우쳐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산업경제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의 악화와 위축을 가져오게 될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최근 우리나라 대재벌기업의 주식(자본)도 외국의 자본참여가 커지고 이들의 이익배당요구가 심해져 총이익금의 반 이상을 주식배당으로 요구하기도 한다.기업들의 성실한 생산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금이 대부분 출자배당(주식배당)과 고정지출(관리비 등)로 나가고 남은 적은 돈이나마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대부분이 이렇게 출자를 통해, 그것도 대부분이 생산업종이 아닌 서비스업종에 출자해 다시 출자배당을 챙겨가면 생산증대를 위한 투자는 제자리걸음이 된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가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산경쟁력은 어찌될 것인가?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일부의 학자들은 금산분리원칙에 입각한 과도한 금융규제 때문에 재벌들의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공격하고 있으며, 자본의 유출입규제를 더욱 과감하게 풀어야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정권 초기에 재벌들은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출총제폐지를 요구했고 정부는 학계의 반대에도 이를 감행했었다. 출자와 투자는 다르다. 출총제 때문에 재벌들의 투자가 어려웠다면 출총제를 없앤 결과가 투자증대로 나타나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출자를 통해, 그것도 서비스업종의 집중적인 지분늘리기로 문어발식 확장만을 촉진시킨 출총제폐지는 실책이었다고 본다.출총제를 폐지시키면서 기업집단공시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정부의 주장도 허구였다. 기업집단공시제도는 그 처벌규정이 약해 재벌집중억제력이 약했다. 지난주 정부는 우리나라의 금년도 경제성장률도 최근 유례없는 6%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중소업체들과 일반 서민대중들이 느끼는 경제의 활성도는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의 과실은 어디로 갔는가? 재벌들에 집중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국제재벌들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는 것인가? 자본의 속성상 투자자에게 이익이 배당되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기업들의 확대재생산을 저해하는 과도한 배당과 출자를 통한 지분늘리기, 과도한 재벌집중과 무분별한 서민업종 싹쓸이식 기업질서는 나라의 장래경제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제라도 출총제의 재도입을 고려하고 혁신적인 기업정책을 통해 중소기업과 서민경제가 기본적으로 뒷받침받을 수 있는 산업구조 조정정책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0-12-21 정명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설화 이후의 과제

[경인일보=]지난주 국회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상설화를 위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내년 상반기에 150명 규모의 장관급 행정위원회가 새로 신설된다. 상설화되는 국과위는 범부처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종합조정 기능을 맡게 된다. 사실상 국가 과학기술의 컨트롤타워가 생기게 된 것이다. 국과위 상설화는 지난 정부의 기술혁신본부를 다시 부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돌이켜보면, 2007년 정부조직개편에서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폐지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정책을 다수 부처가 나누어 추진하는 분산형 행정체제인데, 분산형 행정체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범부처적 종합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 필요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정부조직 개편시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폐지하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런 정부조직 체계상의 문제점은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계속 지적돼왔으며, 이제라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 대안으로 국과위를 상설하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과학기술정책은 글로벌시대 국가의 백년대계를 열어가는 핵심 수단이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복지정책처럼 득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회간접투자처럼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정운영에서 과학기술의 우선 순위가 낮아졌다. 이번에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선봉장이 되기를 기대한다.정부는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과 권한들을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상설 국과위가 출범하는 내년 3월까지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핵심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논의 주제는 국가위의 국가 연구개발예산 조정 권한의 내용과 범위,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재배치, 국과위의 전문성 강화 등이다.필자는 이런 주제들 이외에 지방과학기술의 문제도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과학기술정책 추진 체제상 많은 현안문제가 있지만 국가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지방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일이 많지만, 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크다. 교육부, 지경부, 중기청, 지역발전위원회 등 상대해야 할 부처가 너무 많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에 어떤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면 연구개발사업을 갖고 있는 정부부처를 개별적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그 숫자가 18개에 이른다.나아가 지방자치단체 과학기술정책의 기본 방향은 중앙정부가 제시해 주어야 하지만 어느 부처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다. 그 주된 이유는 정부의 지방과학기술정책이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과학기술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지역혁신정책은 중앙정부에서 방치되고 있다. 반면에 비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비 매칭에 많은 재원이 투입되어 독자적인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할 재원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과위가 나서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기를 지방에서는 바라고 있다.이 글을 맺으면서 국과위가 당초의 의도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수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국과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타부처의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강력한 조정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예산에 대해서 실질적인 심의와 조정 권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권한이 부여되지 않으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재경부, 교육부, 지경부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처들에 휘둘리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당초의 구상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정치권의 각별한 지원을 촉구한다.

2010-12-14 이원영

나눔 찬가

[경인일보=]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생기가 넘친다. 때때로 무엇이 저렇게 사람들에게 힘을 내게 할까 궁금할 때가 있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데에 왜 그렇게 열심을 낼까 싶은 것이다.얼마 전 부산에서 한국컴패션 행사가 있었다. 많은 컴패션 후원자들이 5일 동안이라는 행사기간내내 자신이 나눔 활동을 하면서 받은 감동과 기쁨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도 첫날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선수의 깜짝 방문은 행사를 주관한 우리 쪽이나 행사 참석자들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부산으로 왔으니 장미란 선수의 어린이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일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눔활동에 관련된 질문만 해달라고 기자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나눔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살면서 때로는 힘든 일에 처할 때도 있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년 중 반을 수혜국 현지로 후원자들을 인솔하며 양육현장을 안내하고 국제회의에 참석한다. 때로는 시차 때문에 잠을 못자 며칠씩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몸을 혹사하기도 한다. 모처럼 사무실에 나가게 되기라도 하면 줄을 잇는 설교와 강의, 인터뷰가 기다린다. 그럴 때 매월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얼굴이 생각나면 이런 일들을 이겨낼 동기가 생긴다.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야 하고 이 일을 지속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이런 컴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다른 후원자들 역시 같은 경험을 들려준다는 것이다.처음 한 어린이를 결연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한 작은 어린이가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은 갑자기 평범한 일상이 커다란 선물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건이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그때만큼 나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한 때는 이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끔씩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미를 상실하고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버리며 출발선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더 큰 성공을 위해 열의를 내는 것이 그렇게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럴 때, 어떤 의미 부여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라고 대답한다면 얼마나 그 의미가 약해지는지. 연약한 듯하지만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일 줄 알고, 무거운 짐도 불끈불끈 들고 갈 줄 아는 가정주부들에게 물어보라.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이니, 없던 힘도 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혜나 용기도 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나눔 활동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상에 큰 동기부여가 되어 주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북한의 연평도 도발 등 뒤숭숭한 시기를 맞아 어쩌면 연말의 온정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전보다는 잦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추운 겨울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정이 이런 시기를 감안해 줄지는 모르겠다.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럴 때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생기는 일은 굉장한 일이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때, 바로 나누는 대상의 음성을 들어보라.나눔 활동은 이처럼 그런 나를 살리는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매우 특별한 통로이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서로의 연약한 어깨를 기대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더욱 중요한 경험이다.

2010-12-08 서정인

공정사회를 위해 교육이 실천해야 할 일

[경인일보=]요즘 들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비문학 분야의 스테디 셀러로 평가받고 있다. 때맞추어 우리나라에서는 '공정 사회'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아마 이렇게 '공정 사회'가 부상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새로운 국정지표로 제시하면서부터인 것 같다.한국행정연구원의 설문조사(2007년)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72%는 '정부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공정한 사회'란 화두가 국민적 공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구태여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주변의 수많은 비공정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장관 내정자들이 지난 청문회에서 보여 준 비공정한 실태들은 우리 지도층이 얼마나 공정성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학벌·지역 등에 따른 차별을 생각해 보자.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이 제기한 '공정한 사회'에 대한 진정성의 여부나 세습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 사회를 이루려고 하는 시민들의 의지 내지는 합의이다.그렇다면 우리는 공정한 사회가 어떤 모습의 사회이고 이 공정 사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두 가지의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공정 사회란 절차와 과정과 규정이 준수되고 이를 뒷받침할 법치주의가 실현되어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 또한 인권을 중시해야 하며 시민의 도덕성이 회복된 사회일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이런 공정 사회를 위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 한국 전쟁, IMF위기로 인해 급격한 변동을 겪었기에 늘 생존에 급급해왔다. 따라서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여건이 성숙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생존 논리를 앞세워 불공정 행위를 정당화하고 이것이 누적되어 불공정 사회를 고착화시키기까지 했다.이런 맥락에서 '공정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화두가 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국민적 공감대와 공론화를 가져왔다고 하여 더불어 해결책도 일시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위로부터 정부가 서둘러 공정 사회를 구호화 하고 제도화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뜻이다. 앞에서 언급한 법치주의와 도덕성은 공정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법치주의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자 사회적 합의인데 반해, 도덕성은 법치주의를 전제로 하되 그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적 규범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해선 이 둘을 학습해야만 한다. 이 학습의 장으로 가장 적합한 곳은 역시 교육이란 제도이며 학교라는 장이다. 어떻게 보면 공정 사회를 위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것은 교육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우리 사회가 공정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제도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한 데 그것을 교육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은 '입시'라는 숙명적인 제도 앞에서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한 법치주의적인 교육과 도덕성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9 개정교육과정의 공표와 아울러 창의인성교육이 미래교육의 방향으로 설정된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제 새로운 교육과정을 지침으로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양성될 수 있는 교육적 기반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내년부터 초·중학교는 주당 3시간, 고등학교는 주당 4시간씩 창의적 체험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입시는 선다형 선택문제 중심의 수능보다는 입학사정관제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은 교육과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공정 사회를 살아갈 '시민'들을 양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끝으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학생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심어주어 중대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깊이 고민하는 시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이에 비추어 우리의 교육은 언제쯤이나 깊이 고민하는 시민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2010-12-01 김영순

농어촌 노인공동거주제

[경인일보=]경남 하동군이 홀로 사는 노인들을 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거주제를 추진해 다른 지역 농어촌 노인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끌고 있다는 농업관련 신문의 보도가 있었다. 공동거주제의 내용을 보면 "혼자 생활하는 노인들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농어촌 고령화 사회의 안전망 구축"이라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타 지역 노인들의 부러움은 그것 외에도 식사와 주거, 난방 등 혼자서는 불편했던 생활불편 문제와 외로움을 해결하게 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농어촌 노인들의 4고(苦)라 불리는 고독과 질병, 무위, 빈곤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효율적인 정책으로 농어촌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의 농가인구 중 60세 이상의 노령인구는 이미 2009년에 43.5%이고 65세 이상의 고령층만 해도 33.3%를 넘어섰다. 농어촌 인구는 줄고 있지만 60세 이상의 노령층은 귀농으로 늘어나고 있어 농어촌의 고령화 속도는 도시의 두배가 넘는 실정이다. 이중 영세농과 고령농, 영농이 어려워진 은퇴농들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조사연구보고서는 이미 여러차례 발표된 적이 있다. 특히 농업에 종사해온 고령농민들이 힘이 부쳐 영농이 어려워지는 경우 노후대책이 미비하여 생활도 어렵게 되는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서글픈 것은 최근까지의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한 결과, 농약사고 사망자가 연간 약 1천200명인데 이중 70%정도가 음독사망이었고 그 음독사망자 중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노령자라는 것이다.이들은 그동안 자녀교육을 위해 버는 돈이 모자라면 자갈논까지 팔아 키워 왔으나 시대가 변하고 성공한 자식이 소위 '신식 며느리'를 얻게 되고, 그 며느리가 부모님 모시기 싫다고 선언하면서 고민은 시작된다. 장날 장에서 만난 친구가 "여보게 김서방! 자네 아들이 고시합격했다며…, 좋겠다. 한잔 사!" 그래서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민한다. 아파 오는 허리통증에 잘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생각하니, 이제는 부모 못 모시겠다고 선언한 며느리한테 가서 시집살이를 해야 할까? 아니면 여기서 더 버텨 볼까? 하다가 "늙으면 자식들에게 짐 되지 말고 일찍 가는게 좋지!"하고 마시는 게 농약이란다. 영세농들은 돈이 없어 자녀교육도 제대로 못시키고 그래서 그 자녀들이 제대로 된 직장하나 잡지 못하고, 그래서 저하나 먹고살기도 힘들어 부모와 연락도 끊고, 그런 부모들은 그들대로 어려운 노후를 견디기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이들 고령농이 길러낸 자녀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켰고 우리를 키워 냈다는 것을…, 그런 이들은 지금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또는 고령으로 홀몸이 되어 농촌을 지키며 어려운 생활을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그런데 농어촌의 노인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거나 낯선 노인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특히 싫어한다. 이들은 가까운 곳에 아는 얼굴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이번의 하동군이 만들어낸 공동거주제는 농어촌노인들의 마음에 딱 드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아는 사람들과 어울려 가정집처럼 살수 있게 된 것이다. 가능하다면 원하는 노인들은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늘려주고 하루빨리 전 지역으로 확대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이러한 정책은 중앙정부의 노인복지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지만, 도시 노인들에게는 수요가 낮아 서울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어가는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에서는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농어촌지역의 시군들이 앞장서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한다면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는 효도정책이 되는 것이며 장차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복지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응원을 보내고 싶다.

2010-11-23 경인일보

지방자치단체 재정 위기의 본질과 대책

[경인일보=]내년도 경기도 과학기술예산이 대폭 감축되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산학연 협력 연구를 지원하는 기술개발사업도 대폭 위축될 전망이다. 문제는 예산의 대폭 감축이 과학기술 분야 뿐 아니라 경제, 복지, 문화, 건설 등 전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도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이 금년 8천700억원에서 내년에는 6천400억원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가용재원의 규모가 1조6천억원에 달했던 2004년과 비교하면, 내년도 가용재원의 규모는 반도 되지 않는다. 가용재원이 대폭 축소된 원인은 첫째, 도 세수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부동산 거래세가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감소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에는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대폭 축소되어 경기도 세수는 더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복지, 보육 분야 등 중앙정부 사업에 대한 매칭 비용이 대폭 증가하였다. 셋째, 학교용지 매입비, 교육청 전출금 등 교육부문에 대한 경기도의 지원이 확대되었다. 이같은 지방자치단체 재정 위기는 경기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의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체성은 가용재원으로 추진하는 자체사업의 내용과 성과를 통해서 확보된다. 일례로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도와 중앙정부가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여 추진하는 복지 사업보다는 도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무한돌봄' 같은 사업이 도의 정체성과 직결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가용재원의 규모가 계속 축소되어 도가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업이 없어진다면, 지방자치제도도 실종된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경기도는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세수를 늘릴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위기는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불요불급 예산을 줄이는 것은 좋은 방안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절감할 수 있는 예산은 제한적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는 세율 조정 등 세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지방 재정의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8:2인데 이를 6:4 정도로 조정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분권화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중앙정부 보다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둘째, 경기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목은 중앙정부 소관으로 하고, 경기 순환에 덜 민감한 세목은 지방으로 이양한다. 부동산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래세는 중앙정부에서 회수하고, 그 대신 그에 상응하는 재원이 확보될 수 있도록 부가가치세나 소득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으로 할애한다. 이런 세목 교환은 지방재정의 안정성 제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부동산 거래세 이외에도 세원이 다수이기 때문에 거래세의 변동이 전체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중앙정부는 채권발행 등을 통해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기순환에 따른 세수의 급변을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불황기에는 적자 재정을 편성하는 것이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론이다. 셋째, 중앙정부는 지방에 대해서 무리하게 매칭 투자를 요구하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지방의 입장에서는 중앙정부 사업비를 많이 유치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무리한 매칭 요구에 응하는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지방의 재정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국가사업 유치를 위한 지방간의 매칭 투자 경쟁은 지방의 재정 자립도와 자치역량을 낮추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중앙과 지방간의 세원 배분은 결국 누가 더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동안 지방의 정책역량도 대폭 신장되어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재정 투자사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상실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의 재정 위기에 대한 중앙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2010-11-16 이원영

관계로 커가는 아이들

[경인일보=]우간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길거리에서 한 어린 엄마가 아기를 안고 거의 주저앉아 있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다. 어린 나이도 나이지만, 남편과 가족들에게 보살핌 받지 못하는 티가 역력했다. 같이 간 우간다의 컴패션 직원이 아기 엄마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자(아시아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직원의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 아기 엄마가 목을 움츠리며 "바바라…"라고 말을 흐렸다. 나중에 컴패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직원이 이름을 물었을 때 자기가 뭔가를 잘못해서 잡으러 온 줄 알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바바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긴 살벌한 뒷골목에서 누군가 아무 이유 없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웃음이 많아져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바바라를 보며,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관심'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IT, 통신 기기들을 활용해 자신의 관계 범위 가운데 집어 넣는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사람이 사람을 향해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펼치는 건, 역시 이름을 불러주고 신뢰를 쌓아가는 장기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어린이들의 성장에도 이런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1952년 시작된 컴패션은 불과 2년도 채 안된 1954년부터 1대1 결연을 통해 어린이 양육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히 밥을 먹이고 옷을 주는 것, 더 나아가 교육을 시켜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어린이와 한 후원자 또는 한 가정이 결연을 맺고, 고아들은 후원자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전쟁이 준 상처를 회복했다. 지금은 장년층을 훌쩍 넘긴 수혜자들은 어릴 적 부모라 불렀던 사람들의 사진을 꺼내들며 애틋해 한다. 예전에 비해 우리 주변에는 여러 좋은 일을 하는 NGO 단체들도 많아지고, 역할도 다양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사회복지체계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나눔의 시스템도 날로 새로워져 이미 오래 전부터 전화 한 통만으로도 지구 저편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도 많지만, 사람을 돕는 일이,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 맺기까지 수월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결핍되어 있는 나눔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일이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지금도 손이 많이 가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우리 주변의 어떤 엄마 아빠들은 자녀들과의 관계 맺기를 인간적인 접촉이 아닌 물질로, 또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또는 많은 투자를 해 다른 자녀들이 갖지 못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낳아만 놓으면 자란다는 말은 이미 옛날 말이다. 양육의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시되면서 엄마 아빠들은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훗날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보다는 지금 현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어린이들을 돕는 각종 형태의 나눔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방식으로 돕는가를 떠나서, 어린이라는 흡수력이 뛰어난 연령대에게는 '관계'는 꼭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좋은 시스템과 정제된 체계를 갖췄다고 해도, 이런 사람 냄새 나는 관계성이 그 과정 가운데 어떻게 녹아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한다. 어린이는 그만큼 소중하고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11-10 서정인

방과후학교의 올바른 평가를 위하여

[경인일보=]방과후학교의 본질은 저소득층 지원 확대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와 아울러 사교육비를 경감하는 데 있다. 이 방과후학교가 교육청을 대상으로 한 2010년 국정감사에서 화두가 되었다. '민간위탁 과정의 교육 비리', '국영수 관련 프로그램 증가', '방과후학교 고액 수강료', '낮은 참여율 및 만족도' 등이 방과후학교에 쏟아진 질타들이다. 그러나 방과후학교의 운영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질타들은 곧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예체능과 달리 국영수 등 교과의 경우 수준별 다양한 강좌 개설이 용이하다. 학생들의 요구와 다양한 수준을 반영한 강좌 개설로 총 강좌 수가 증가했다면 과연 방과후학교 운영이 교과목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는 것인지. 뿐만 아니라 실제 수업에서 시수를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비중이 높은 교과에 대한 보충수업의 차원에서 국영수 교과가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학부모들이 국영수 교과 관련 사교육 학원을 보내기보다는 방과후학교에 요구했기 때문이라면 평가는 달라져야 했다. 현행 입시위주 제도하에서 학부모의 국영수 교과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교육비 흡수 차원에서 교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과연 교육정책의 실패인지를 되묻고 싶다. 만약 방과후학교에서 일률적 문제풀이식, 선행학습을 한다면 이는 당연히 타파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준별 다양한 교과관련 강좌 수 증가에 기인하여 총강좌 수가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 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방과후학교 고액 수강료'와 같은 지적사항에 대해서도 역시 할 말이 많다. 사교육 학원과 달리 학교는 어떤 교과에 대해 거의 매일 내지 주 3회 이상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강사 인력풀을 확보하여 매일 또는 주 3회 이상 실시할 경우 월 수강료가 상향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고액 수강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참여율과 만족도 부문에 있어서도 '○○교육청 참여율 및 만족도 전국 꼴찌'라는 문구는 평가의 도를 넘어서는 비난의 수준이다. 어떤 교육청이 부여된 교육적 행위를 게을리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문구들은 성실하게 교육의 일선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육정책에 대해 평가를 통하여 개선점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지만, 이와 같이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는 문구들은 교육적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국정감사는 교육정책에 대한 개선점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테면 지금까지의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진 교육정책들의 결과를 바탕으로 2009 개정 교육 과정의 현장 착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창의인성교육에 대하여 교육청은 물론 일선 학교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방과후학교 운영은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물었을 것이고 이와 같은 본질적 물음이 해소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방과후학교에 대한 지적이라면, '운영의 본래 취지에 부합되게 운영되는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저소득층 자녀 참여를 통한 교육복지, 특기적성 활성화 등 부합될 수 있는 평가항목으로 방과후학교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단순 수치만 가지고 방과후학교 운영을 평가하는 것은 평가의 올바른 잣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교육정책이든 정량적 수치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쳐진다면 교육은 교육수요자의 태도와 가치 변화라는 질적 차원에서 벗어나 실적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히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좀 더 유념해야 할 것이다. 교육계는 이미 교육감 직선제를 선택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간에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교육감이 있다면, 그리고 수치와 실적만을 앞세운 평가가 우선시된다면 교육은 본질보다는 외형에 치우쳐 교육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2010-11-02 김영순

쌀 생산감소? 쌀 공급과잉? 어떻게 해야하나

[경인일보=]쌀의 국내 생산은 2002년 이후 2008년까지 국내 소비량보다 평균 20만t씩 부족했는데 생산과잉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국민의 쌀 소비량이 줄고 있는 가운데 생산면적과 생산량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급량이 넘쳐서 쌀값이 하락하고, 남아도는 재고량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니. 매년 늘어가고 있는 의무수입 쌀 때문인가 아니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수입쌀이 있는 것인가?식량자급률 26% 밖에 안되는 우리나라가 지금 쌀의 공급과잉으로 쌀 수확기를 앞두고 재고미 처리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쌀은 남아도는데도 쌀 수입은 계속 늘릴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지난번의 쌀 협상때 수입개방(관세화)을 피해가기 위해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으면서 주어진 의무수입 규정에 의한 수입목표량 8%(협상 당시의 우리 국민 쌀 소비량의 8%)가 지난해 30만t을 넘어섰고 매년 2만400여t씩 늘어나고 있다. 그 영향이 공급과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의무수입량이 2014년까지 40만8천700여t으로 늘어나고 결국은 쌀시장을 개방하게 될 것이어서 이 문제를 미뤄둘 수만은 없다. 이대로 두면 수입쌀의 공급이 계속 늘어나면서 국내 쌀값의 하락과 시장의 혼란으로 우리 쌀의 생산기반이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지금 쌀 생산을 줄이려는 정부의 유도정책과 농민들의 작목 전환으로 주곡인 쌀의 생산면적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상태이다. 학계와 정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식량주권 옹호론자들과 쌀 생산감소를 주장하는 소위 개방론자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2008년까지는 소비량보다 20만t씩 모자라던 쌀 생산이 2009년의 연례 없는 풍작과 늘어난 의무수입량으로 공급과잉과 가격 폭락을 가져 왔으며 그로인해 수입개방론자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입개방론 측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쌀의 개방(관세화)을 통해 의무수입 되는 쌀의 증량을 막고 국내 쌀값은 떨어뜨려 경쟁력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농가들은 쌀농사를 포기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쌀농사도 줄여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의무수입량의 증가를 막기 위한 조기관세화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쌀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쌀농사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잘 어울리며, 문화이고 과학이다. 쌀농사는 물을 이용하는 농사이기 때문에 연작피해가 없다. 물이 없어진 미량원소를 공급해 주고 병해충까지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쌀농사는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과학적인 농법이며 생산성이 높아 좁은 국토에서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최상의 작물인 것이다. 또한 우리의 기후는 여름철 비가 잦아 물관리만 잘하면 쉽게 쌀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 결과 물관리를 위해 협동하는 전통(계, 보, 두레 등)이 만들어졌고 집촌문화도 쌀농사를 통해 발달하게 된 것이다.우리 전통문화의 뿌리인 쌀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가고 있는 농정을 보면서 그리고 그렇게 쌀농사를 줄여가도록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우리의 쌀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거대한 국제곡물기업과 이를 지원하고 있는 선진 강국의 숨겨진 전략을 느끼면서 가슴이 아리다.쌀을 살려야한다. 이제라도 우리의 쌀을 살리려면 논농사지원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쌀을 지원하는 정책은 모두 WTO의 규정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논이 물을 가두어 둠으로써 지하수 생성량의 45%를 공급하고 있고 홍수조절능력도 가지며 논둑을 막아 토양 유실도 방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지원하는 소위 물관리비용 또는 환경관리비용을 단위면적당 얼마씩만 지급하면 쌀값을 떨어뜨리면서 쌀소득은 보장되고 쌀값 하락으로 가공용쌀까지 국산쌀로 대체되는 소비확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쌀의 조기관세화(개방)도 가능하고 쌀농업의 유지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과 예상되는 문제점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주식인 쌀을 살려 나아갈 전략과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

2010-10-27 정명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성공을 위한 제언

[경인일보=]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 사업이다. 이 사업은 첨예한 첨단기술의 세계 경쟁 속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구상되었다. 미래형 첨단 과학을 육성하여,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사업에 벨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지리적 근접성을 가진 혁신 클러스터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기초과학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단계로 세계 일류의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설립되며, 이 연구원이 관리를 맡을 대형 연구장비로 중이온 가속기가 건설된다. 그 다음 단계는 신설되는 과학기술 인프라를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와 산업을 창출한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서 3조5천억원의 국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1만6천개의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업은 한국의 기술전략을 모방에서 창조로 전환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현정부 출범 이후 여야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순항하던 이 사업의 추진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행정복합도시 추진과 이 사업이 연계된 이후이다.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정부청사 입주의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 제안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면, 비즈니스벨트 사업도 순조로이 진행되었겠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도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세종시와 연계가 안되었다면, 작년에 입법되었을 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이 현재까지 국회에서 계류되어 처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세계와의 경쟁에서 한국의 생존을 위한 필수 사업으로 세종시의 건설이나 수도 이전 문제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더욱이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위해서 기획된 사업도 아니다. 이 사업의 핵심 내용은 이미 청사진이 마련된 상태이며, 현재는 어디에 입지를 선정하고, 어떤 속도로 추진할 것인가 등 절차적인 문제들이 조속히 결정되어야 할 단계이다. 최대 현안 문제로 대두된 입지 선정에서 수도권도 후보지역으로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대형 국책사업이나, 대형 과학기술인프라의 구축에서 수도권이 배제되었다. 그 결과 기업 부설연구소와 연구인력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런 민간의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는 부족한 현상이 초래되었다. 기업 연구활동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의 수도권 비중은 40% 수준이다. 수도권에는 기업은 많지만, 기업을 지원하는 대학, 공공연구기관 등은 부족한 실정이며, 역으로 비수도권에는 기업을 지원하는 대학, 공공연구기관 등이 많지만, 이런 인프라를 활용할 기업이 부족하다. 이번의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 선정에서 이런 문제점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언하면,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는 지방에 더 많은 과학기술 인프라를 구축해서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방에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국회에 계류된 과학비즈니스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입지 선정과 관련한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려서 사업이 계속 지연되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 일단 특별법을 제정하여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예산이 내년도 국가 예산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 선정은 세종시 건설이나 국토균형발전 문제와 연계하지 말고, 과학기술의 논리, 경제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지 선정을 정치인보다는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위원회에 위임해야 한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국민의 한사람으로 이 사업이 초심대로 추진되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는 성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10-10-19 이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