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젊은 꽃들의 인간 교육

[경인일보=]4월은 잔인했다. 꽃들이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기상이변이 계속되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지내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봄을 힘겹게 기다리고 있을 때 꽃과 같은 젊음을 지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생들이 네 명이나 잇달아 자살을 했다. 학생들에 뒤이어 교수까지 자살하자 여론은 들끓었고 대학의 최고 책임자였던 총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슬그머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뒤늦게 책임론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서둘러 덮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과 대책이 필요한 일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들의 사분의 일 정도가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이들 모두 잠재적으로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은 모두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점수 일 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과외 공부로 몰리는 아이들, 정규 수업시간에는 모두 졸고 있는 학생들, 그들을 아무도 깨우지 못하는 교사들, 그들에게는 수능 점수가 전부이다. 학부모들이 학생과 교사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것은 점수이다. 학원가의 최고 강사는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 언사를 거침없이 쏘아대며 학생들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그 정도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젊은 꽃들의 죽음이 주는 희생의 가치를 정말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공부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삶 또한 더없이 귀중하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경쟁의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잔혹한 경쟁의 논리만을 내세운 지식 교육은 그들이 긴 인생을 자신과 싸우며 살아나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쟁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속성교육집단은 미래가 없는 집단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고민 없이 오직 오늘의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근시안적 사고에 사로잡힌다면 오늘을 살 수 있는 이기적 경쟁심은 발휘될지 모르지만 내일의 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를 돌파할 내적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는다.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과 여유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수학 문제만 풀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닭장 속에서 모이를 먹고 자라는 양계장 병아리가 아니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모국어교육이다. 교육 개혁의 속도전을 위해서는 한국어도 영어로 가르치라고 한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사 교육도 영어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야말로 젊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경쟁의 논리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솔제니친은 모국에서 추방된 러시아 작가이다. 그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원한 것은 모국으로 돌아가 모국어 속에서 사는 것이었다. 모국어는 그 자신의 영혼이다. 영혼 없는 과학자는 인간을 위해 그리고 모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의 경쟁에서 이기고 내일의 경쟁에서 뒤지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젊은 꽃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심성을 함양하는 치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젊은 학생들의 자살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그들을 경쟁의 낙오자로 규정하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만 궁리한다면 그 나라와 국가는 진정한 미래가 없다.

2011-05-03 최동호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

[경인일보=]작년 중국 항저우에 있는 서호의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인상 서호'를 관람한 바 있다. 서호는 13세기 중국을 방문했던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엔 서호가 있다"고 극찬한 아름다운 호수이다. '인상 서호'는 인간이 되고 싶은 백사(白蛇) 백랑과 선비 허선과의 사랑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중국 설화 백사전(白蛇傳)을 수상(水上)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은 넓은 호수를 둘러싼 나무에 조명이 비치면서 시작한다. 이어 하얀 옷을 입은 배우들이 걸어나오는데, 수면 바로 아래에 무대를 설치하였기에 배우들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성을 음악 속에서 훌륭히 녹인 일본인 작곡가 기타로의 음악이 더해져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인상 서호'는 빛과 음악과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콘텐츠로, 연출가이자 영화 감독인 장이머우의 '인상 시리즈' 5연작의 하나이다. 인상 시리즈는 작품 한 편당 연간 100여만명이 관람하는 콘텐츠이다. 전문 배우만이 아니라 주민들도 배우로 참여하기에 주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콘텐츠이다. '인상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에 큰 자극을 주어 국내 여러 곳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작년 부여에서 열린 2010 세계 대백제전에서 백마강을 무대로 한 수상공연 '사비미르'도 그 중 하나이다. 예술가들은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탁트인 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 관객들도 열린 공간 속에서 공연을 즐기고 싶어한다. 예술가와 관객의 욕구가 만나 탄생한 것이 인상 시리즈와 같이 자연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다. 공연의 역사는 동서를 막론하고 야외공연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그리스와 로마 공연장은 모두 야외 무대였다. 무대가 실내로 옮겨간 것은 BC 1세기에 로마 극장에 커다란 둥근 천장이 씌워지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19세기말에 건립된 광무대이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토익이 동대문 밖 한성전기회사 전차고 안에 설치한 가설무대로, 낮에는 판소리를 공연하고 밤에는 영화를 상영하였다. 1908년 박승필이 인수한 후 본격적인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공연이 실내에서 이루어졌지만 대중을 위한 본격적인 공연 무대가 실내로 옮겨진 것은 광무대가 처음이다. 한국에서 무대가 실내로 옮겨진 것은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이다. 따라서 무대가 실내에서 야외로 나가는 것은 원래의 무대 모습으로 돌아가는 셈이다.자연을 무대로 한 공연은 이미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2006년 북한강변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서 개최된 실학축전에서 늦은 밤까지 강변 무대에서 여러 공연이 올려진 바 있다. 포천에서는 폐 채석장이 아트 스페이스로 변해 조각예술공원, 전시관, 홍보관, 야외공연장, 소공연장, 전암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여기서도 여러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스웨덴의 달할라 공연장은 원래 석회암 채석장이었으나 야외극장으로 변모하였다. 공연장은 지상에서 60m 깊이에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달할라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러나 이들 공연은 소규모 공연이었기에 지역 활성화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 '인상 시리즈'와 다른 점이다.2011년부터 경주보문단지에서도 관람석 2천석 규모의 대규모 야간 수상공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1979년 개장 이후 연간 8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휴양, 관광지였으나 그동안 후속 투자가 미흡하고 콘텐츠가 부족하여 갈수록 그 명성이 퇴색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가 민자 160억원을 포함하여 총 210억원을 투자하여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펼치는, '인상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의욕적인 프로젝트다. 경기도에서도 자연을 무대로 대규모의 공연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그 장소는 임진강 적벽이 될 수도 있고, 수원 광교저수지가 될 수도 있다. 두 공간 모두 야외 공연장으로는 적격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지역 활성화와 경기도의 문화예술 수준을 크게 높여줄 것이다.

2011-04-26 강진갑

주택시장의 향후 전망

[경인일보=]최근 우리 사회는 800조의 가계대출을 놓고 말이 많다. 절대 액수보다도 가처분 소득과의 비율을 보아야 한다느니 가계대출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결국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궁금증은 앞으로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일반 국민들의 재산은 부동산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당연한 궁금증이고 불안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간단히 전망해보자. 부동산 가격을 한강을 흘러가는 강물의 水位(수위)라 해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강의 수위가 약간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사실 크게 낮아진 것도 아니건만 문제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감이라 해도 좋겠다.그러나 그건 당장의 문제인 것이고 장차 한강의 수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상류 쪽에서 계속 물이 유입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이 될 것이다. 즉 북한강이나 남한강 방면을 살펴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가뭄이 해소되느냐 하는 문제라 하겠다. 유입되는 물의 양을 살피는 데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30대 연령 젊은층들의 주택구매 성향이다. 그러나 지금의 주택 가격으로 볼 때 소비성향이 높은 이들 계층은 외제차를 샀으면 샀지 집을 살 생각은 쉽사리 가지지 않고 있다. 집 한 채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당장 쓰고 보자는 생각이다. 둘째, 20대 연령의 실업 문제이다. 이는 장차 주택 구매의 예비군인데, 당장 취업도 안 되는 바람에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기란 어렵다. 셋째, 50대 연령, 베이비 붐 세대의 퇴직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 이 세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발전을 주도해온 세대로서 금년부터 은퇴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재산은 대부분 집 한 채가 전부이고, 게다가 백수세대인 20대 자녀의 지원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향후 주택가격의 동향은 이들 베이비 붐 세대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이 세대들은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가 때가 되면 정리해서 자녀 지원과 결혼 비용 등을 해결하고 남은 돈으로 전원으로 물러가 안온한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경우, 당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고 이에 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만일 가격이 하락한다는 판단이 서면 처음에는 누군가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것이고, 그러다가 그것이 대세가 되면 일시에 매물이 봇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우리 주택 시장은 연일 하한가를 치면서 상당 부분 하락조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베이비 붐 세대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는 뇌관은 사실상 현 40대의 활동력 강한 중년층이다.이들은 2004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한 계층들이다.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버티고는 있지만 장차 금리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원리금 상환의 부담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40대를 중심으로 주택 매도가 세를 형성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지켜보던 50대 베이비 붐 세대가 거취를 결정하게 되는 연쇄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주택 가격 문제인 것이다. 30대는 주택구매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고, 20대는 꿈꾸는 자체가 불가능해진 현실이다. 상류의 유입량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에 40대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자연 50대 베이비붐 세대가 이대로 가느냐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매도에 나서느냐가 결정되는 구조인 것이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수위보다도 결국 상류 쪽의 동향을 살피면 조만간 답이 나올 것이라는 게 내 얘기이다. 가계대출이 가처분 소득 대비 어떻게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양극화로 인해 그 비율 자체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생각도 해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빠르면 금년 9월 하순부터 얻게 될 것이라 본다. ※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4-19 김태규

분당 대전(盆唐 大戰)

[경인일보=]정치에는 유독 비정(非情)한 구석이 많다. 오직 살아 남아야만 하는 검투사의 승부일 때가 종종 있다. 4·27 재·보선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함의가 커지면서 '원형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乙)에 출사표를 던지던 날, 박지원 원내대표가 "분당 투우장에는 이미 피를 보려는 관객이 몰려있고, 이제 민주당의 투우사가 입장한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정치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여야의 전·현직 당대표인 강재섭· 손학규 후보가 맞붙은 분당을이나, MBC 사장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임한 엄기영·최문순 후보의 강원지사 쟁투, 그리고 정치 재기와 '노무현 정신'의 점화를 놓고 일합을 겨루는 김해을(乙) 열전도 마찬가지다. 선·후배도 없고, 정치적 동지의 인연도 찾아볼 수 없다. 엄혹한 승부세계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분당을은 4·27 재·보선의 종합판이다. 강재섭·손학규 두 후보 다 선출직으로는 두드러진 관록의 보유자다. 쉽지 않은 정치적 고비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문민정부 시절인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종필(JP) 최고위원은 김영삼(YS)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민자당에서 내몰리자 자민련을 창당했다. JP 동정론이 무서운 기세로 퍼지면서 '반(反)YS 정서'가 폭풍우처럼 대구를 휩쓸었다. 신한국당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 13명 가운데 단 두 후보만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 중 한 후보가 강재섭 의원이었다. 그의 정치적 저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손학규 후보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乙) 보선으로 정치에 입문한 '보선 스타'이다. 4·19 세대인 민주당 최정택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거머쥔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꺾어 스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그 파란의 여세를 몰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당선됐고, 지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떠나 여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후보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의 대표가 된 승부사다.두 승부사의 대진이 확정되면서 분당을은 이번 재·보선판을 키운 최고 동인이기도 하다.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진검승부이다. 그러나 관전자들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니 손님이 꼬이게 마련이고, 벌써부터 숱한 감상법이 장외를 풍미하고 있다. '누가 살아 돌아올 것인가'는 향후 정치지형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강·손 두 후보간 박빙의 승부를 점친다. 투표율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돈다. 주부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최근 집값하락으로 쑥 들어갔다지만 부와 이념, 세대의 측면에서 보수의 색채가 강해 안정 희구층이 주류를 이룬 탓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공천이 관건인 지역구였다.그런데 최근 들어 표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변화이다. 만약 손학규 후보가 당선되거나, 강재섭 후보가 힘겨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의 지각변동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은 총선 패배라는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 파장은 지도체제 개편문제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터이고, 이는 공천권과 맞물려 거대한 쓰나미(지진 해일)로 정치권을 뒤흔들 것이다. 정국은 백가쟁명의 논의 속에 급속히 총선체제로 재편될 게 분명하다. 강·손 두 후보 가운데 승자는 중심의 한 축에 서게 된다. 내년 총선의 방향타가 될 분당을의 승자를 배제한 채, 체제정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까닭이다.전략공천 잡음으로 속앓이를 한 강재섭 후보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그 연결고리를 끊으려 들 것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그로서는, 기존 당권파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손학규 후보는 단연 돋보이는 야권의 대선후보 반열에 성큼 오르게 된다. 탈당의 원죄도 희석되어 거의 사라질 것이다. 당의 요구로 서울 종로와 분당을 출마를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더 이상 '정체성 시비'를 걸고 나올 사람은 없다.이래 저래 분당을은 대전(大戰)이다. 개인의 정치적 명운은 물론 향후 정치구도와 맞물려 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비장한 승부, 그러나 정치권만 속이 타고 국민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1-04-12 양승현

조용한 슬픔과 독도 미사일 공격

[경인일보=]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역사적 사건이다. 대지진과 더불어 휘몰아 닥친 쓰나미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가를 보여주었다. 방파제는 물론 농경지와 도시와 산야를 뒤덮은 검은 흙탕물의 노도는 인간이 건설한 건축물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 진짜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지진의 여파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는 급기야 최악의 방사능 물질을 내뿜는 악마적 발전소로 전락하였다.이 놀라운 재앙을 생중계하듯 텔레비전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은 놀라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성금을 걷는 한편 위로의 시를 쓰고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다. 이 상황에서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려 보았던 것은 일제의 감옥에서 순절한 윤동주 시인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인들에게 과연 윤동주는 이 처참한 순간을 목격하고 무어라 말할 것인가. 윤동주를 대신해서 말해 본다면 그것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서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바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음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는 의지로 인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성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발표했다. 발표를 늦출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4월 1일 일본 각의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2011년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외무상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므로 독도가 미사일의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자신들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엄청난 자연의 재앙과 그들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가 방사능을 대거 유출하는 위기 상황에서 슬픔을 삼키고 의연하게 대처하던 일본인들의 참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온정은 값싼 동정심의 발로로 치부하고 예정된 수순에 따라 영토권 주장을 강변하는 그들의 논리를 접할 때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차분한 슬픔 밑에 잠복해 있던 독기서린 일본인들의 심적 근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나라가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그들의 주장은 더 크고 강하게 되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일본열도침몰'에 대한 대안으로서 대륙 진출을 위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진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대진재가 조선인 폭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여 그들의 피해의식을 보상하면서 민심을 회유한 바 있다.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도 그들 국민들의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고 조용한 슬픔의 배면에 잠복된 국민적 분노를 표출하는 출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숨겨져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16세기 후반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들은 대륙 진출을 위해 교두보로서 조선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다. 일본 정부 당국이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 할수록 스스로 세계사에서 고립적 존재가 되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라고 볼때 우리의 상황 판단도 더욱 성숙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집스럽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를 검정하고 외교청서를 발표했다는 것은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주범으로서 가져야 할 역사적 죄업을 망각했음은 물론 앞으로 자라날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역사적 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행의 씨앗을 배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 지표일 것이다. 관동대진재 당시 한국인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동북대지진은 우리들에게 결코 망각해서는 안되는 역사적 교훈을 되살려 준다. 명심해야 할 것은 '독도미사일대응'을 주장한 일본의 외상이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초대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외 5세손이라는 것은 대륙 진출을 향한 그들의 야욕이 중단되지 않는 역사관임을 웅변하는 객관적 사실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2011-04-05 최동호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 유산인가?

[경인일보=]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인가?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해서 부활시켜야 할 문화유산인가? 이 문제를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유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유교가 여성 차별적이고, 충과 효를 강조하는 데서 보듯이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가족 정실주의와 보수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이해도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1919년 5월 4일 일어난 신문화운동 시기에 유학은 나라를 망친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세계 문화를 주도해 온 강대국 중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속절없이 무너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그 원인이 유교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유교가 나라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고 유교를 멀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유교에 대해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한국사학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조선시대 유교의 역사적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세계 학계에서도 유교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등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 이들 국가가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고 유교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힘을 유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학계의 평가는 이처럼 달라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유교가 조선시대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발전된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라서 현대 자본주의와 맞지 않아서인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 대부분이 지금부터 1천500년에서 2천년 이전 시기, 유목사회 또는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었으나 지금 세계 종교로 인류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비슷한 시기에 성립된 유교만 현대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가. 필자는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는 모두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경전을 찬찬하게 읽어보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세계적인 종교는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재해석되고 정리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으나, 유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유교가 지금부터 할 일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중심으로 유교는 재해석되고 이해되어 일반인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에서 정약용의 글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단계별 학습이라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경영인들에게는 창의적으로 경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민 교수는 단순히 공부하는 방법이나 경영 기술을 뛰어넘어 지식경영이라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KBS가 엮은 '유교 아시아의 힘'에는 유교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21세기 아시아 나아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유교 문화유산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 문화적 자산, 교육 자산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서원과 향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고, 기업인들은 경영을 배우며, 정보전문가들은 정보를 조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전 경기도 향교와 서원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서 주민과 학생들에게 다가가려는 향교와 서원 운영자들의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국 유학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2011-03-29 강진갑

한 번 열렸으니 한 번 닫힘도 自然이라

[경인일보=]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1년 9월 30일,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52 대 27로 누르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이 되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이 환호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염려가 컸었다. 당시는 신군부에 의해 출범한 제5공화국 초기였기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어두웠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절대 다수가 절망감에 빠져 지내던 때였다.그로부터 8년 뒤, 우리 국민들은 실로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여 1988년, 대단히 성공적으로 올림픽 행사를 개최하고 또 마무리했다. 88올림픽 개최 성공은 갑작스럽게 1986년부터 3년간에 걸쳐 불어닥친 훈훈한 바람, 이른바 3저 경기로 인한 미증유의 호황 그리고 수출 신장세와 맞물리면서 당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을 비관에서 긍정으로 뒤바꿔놓은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뒤돌아보면 1981년 9월 올림픽 개최라는 낭보(朗報)가 들려온 이래, 우리 대한민국은 거침없는 약진을 거듭해 왔다. 많은 문제가 있었고 무수한 난관을 만났지만 끝내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통해 우리는 작년 11월 G20 서울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오늘날 지구촌의 새로운 강자(强者) 반열에 그 이름을 올렸다.올해는 2011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1981년으로부터 만 30년이다.여기에 하나의 예측을 드리고자 한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週期)로 해서 부단히 변화 발전해간다. 그 운동은 본질적으로 물결과 같아서 30년을 오름이라 한다면 30년은 내림의 파동이 지속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올림픽 개최 소식이 들려온 이래로 시도하고 도전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것은 상승 파동이었다. 이 기간 동안의 시대정신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다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시던 그 말씀 속에 말이다.금년 9월을 고비로 앞으로 30년간은 그 반대의 흐름이 닥쳐온다고 나는 본다. 우리가 가진 현재의 역량과 능력으로는 뭔가 부족한 까닭에 쉽게 해결되는 일이 좀처럼 없는 30년이 지속되리라. 물론 이는 현 시점에서 상당히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앞으로 30년씩이나 어렵다는 소리이니 정말이지 재수 없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은 뭐 독자들의 기를 죽이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보다 어떤 경우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비관론을 심어주자는 말도 아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생뚱맞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그러나 우리가 1981년 올림픽 개최 소식을 접하던 당시 대부분이 비관적이었듯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1년, 현 시점에서 모두가 어렵긴 하지만 낙관적인 것과 실은 동일한 경우라 본다.우리가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마무리하면서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듯이 앞으로 7년 뒤인 2018년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예측은 7년 뒤에 가서야 납득이 가는 말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 무려 7년을 앞당겨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으니, 이 글을 쓰는 취지이기도 하다. 앞날에 대해 비관하라는 것이 아니라, 앞날의 운수가 순조롭지 못할 것 같으니 미리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쉽게 일이 풀리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힘들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앞으로 30년에 걸친 어려움은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강건해진 대한민국을 창출해내기 위한 산고의 과정이 될 것이라 본다.세상의 흐름은 물결과도 같은 것이고 해안을 적시는 조수(潮水)와도 같은 것이다.※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3-22 김태규

쓰나미가 휩쓴 일본, 봄처럼 이겨내라

[경인일보=]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부지런한 걸음이다. 도심 여기저기에서도 꽃단장이 한창이다. 시민공원은 봄맞이에 여념이 없고, 겨우내 갈라진 도로를 보수하는 작업도 분주하다. 산과 들에도 깊이 응달진 골짜기에 잔빙(殘氷)이 조금 남아있을 뿐, 봄 기운이 완연하다. 올 봄은 지난 겨울 혹한과 폭설, 게다가 축산농가를 휩쓴 구제역 충격으로 유난히 기다리던 터다.그러나 그 봄의 초입에서 목도하게 되는 일본 열도의 비극은 우리들의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연일 말을 잃게 만든다. 자연의 위력 앞에 겨울, 봄과 같은 계절의 순환은 호사에 가깝다. 지진과 쓰나미를 확률과 통계에 의존하고 있는 21세기 과학문명의 한계는 겸허함을 넘어 초라한 느낌마저 들게한다.TV에 비친 쓰나미의 참상은 전쟁영화를 왜소하게 만드는 충격이었다. 거대한 배가 도로 위에 걸쳐있고, 수백 대의 자동차가 양철판처럼 구겨져 휩쓸려가는 화면은 경악이었다. 도시가 온통 뻘밭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접하고서는 '저 곳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당신 없이 살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사도 모른 채 나흘만에 만난 부부의 통곡에서는 오히려 전율이 느껴졌다.후쿠시마 원전도 1·3호기 원자로 외벽 폭발에 이어 2·4호기도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일본 국내는 물론 주변국까지 초긴장 상태이다. 피폭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엔 바람의 방향과 농산물 오염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안전지대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이번 지진이 일본 해안선을 4m 동쪽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지구자전축을 10㎝ 이동시켰다고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도면 인간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치명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쓰나미가 닥쳐올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미리 피해 달아나는 것 뿐"이라는 지진 연구학자의 전언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실제 바닷속 진앙이 육지와 가까울 때는 지진과 동시에 쓰나미가 해안 마을을 덮친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방재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피해가 이 정도인지도 모르겠다.우리가 대지진으로 주저앉은 일본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은 당연하다. 한류 스타들이 먼저 트위터와 페이스 북을 통해 일본 팬들에게 아픈 마음을 전하면서 '도울 방법을 찾겠다'는 글을 줄지어 올리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최근 현빈이 해병대에 입대할 때도 멀리 포항까지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은 일본 팬들이다. 이제 그 이웃나라 팬들에게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다.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약속은 큰 힘이 될 것이다.일본과 우리는 애증이 교차하는 파란의 역사를 나누고 있다.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국제경기에서 일본이 우리 아닌 다른 나라와 겨뤄도 선뜻 응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벌써부터 몇몇 지도자들의 말실수가 인터넷에 오르내린다. 예부터 이웃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는 말을 가려서 했다. 국가간에는 극진한 예를 다했다. 평소에 자주 했던 말이라도 고깝게 들려 국가간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쓰나미가 아름다운 일본의 해안도시를 강타한 다음날, 지인들과 저녁 모임에서 예전에 책 광고에서 언뜻 본 듯한 '일본 열도의 미래'가 화제로 올랐다. '영토의 대부분이 바다 속에 잠긴다' '지축이 수직이 된다'는 둥 한때 호사가들 사이에 회자됐던 미래예측서가 재밋거리로 등장했다. 호기심과 장난기까지 막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바탕에 깔린 복잡 미묘한 정서가 늘 마음에 걸린다.우리는 "딸의 손을 놓쳤다"고 울부짖는 한 일본인 엄마의 눈물과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느껴야만 한다. 이 상련(相憐)이 먼저다. 정성어린 손길이 진정한 인도주의다. 범부(凡夫)들의 관계도 그러하듯, 애도와 조문이 국가간 관계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곧 도쿄 우에노(上野) 공원과 황궁옆 치도리가우치(千鳥ヶ淵) 공원에는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일본 벚꽃은 유난히 희고 곱다. 일본이나 우리나 봄은 항상 새롭고, 화사하다. 생명의 숨결이 거세고, 꿈으로 들뜬다. 대재앙에도 침착하고 차분한 일본이, 이 봄, 꺼지지 않는 생명력으로 힘차게 일어서리라 믿는다.

2011-03-15 양승현

리비아 철수와 한국인의 마음

[경인일보=]리비아에 녹색 바람이 불면서 반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속속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초동 단계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마지막 철수 작전에서 한국인들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일하던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8천여명이 철수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본인들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삼국인들도 동행하여 리비아를 탈출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남다른 모습이다.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떠올려 볼 때 이 철수작전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갈등은 종전의 사회적 갈등과 양상을 달리 한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사갈등이나 계층갈등이 전면에 돌출되던 시대와 달리 지역 갈등이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세종시 문제로 지역갈등이 국가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우 이 문제가 봉합되고 나자 정치와 종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사대강 사업은 정치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비화된 것 중의 하나이고 이슬람 수쿠크법은 경제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번져나간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논쟁과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 벨트 선정 문제 등은 지역연고권과 더불어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것 같다.새 봄이 돌아오니 이런 여러 문제들이 터져나와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희망찬 앞날을 설계해야 할 봄날 어떻게 하면 여러 난관들을 성공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한국인들의 욕구는 더 크게 증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게 분출되는 것 같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분출되는 갈등비용이 대략 삼백조원에 달하며 이는 거의 국가 전체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은 갈등의 대국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사회발전의 에너지가 분출된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을 한국인이 지닌 열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열된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여러 갈래 분열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였던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겠지만 그 이전에 지켜져 왔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의 붕괴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정일치의 시대가 고대원시사회에 있었지만 현대와 발달된 사회에서 제정일치는 여러 가지 불가피한 요인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부정된 제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종교가 한국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한국을 끌어나가는 지배집단이 그만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소통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사회발전이 소통보다는 속도를 더 강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며 그동안 성취한 민주화가 내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발전의 속도보다는 소통의 확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갈등의 증폭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과 더불어 더욱 강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은 중요한 참조 사항이 된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한 동료들의 안전도 동시에 중요하다는 판단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 한국인의 진정한 마음의 표현이다.한국의 저력은 아무리 증폭된 갈등이라도 지혜롭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지금의 증폭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본래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교훈적 사례를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한국인이 지닌 정신적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이를 잠시 잊고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명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2011-03-08 최동호

최용신의 사랑과 헌신

[경인일보=]지금도 어릴 때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 설레고 눈물이 나는 80 넘은 제자가 있다. 1930년대 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하 농촌의 가난한 마을 안산 샘골에 살고 있던 7살 소년에게 22살의 처녀 선생님이 불쑥 찾아왔다. 그 선생님은 어린이의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자라면 크게 될 아이이니 잘 키우라"는 말을 하였고,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은 심훈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이며, 아이는 제자 이덕선씨이다. 최용신의 사랑과 격려 한마디가 샘골마을 한 어린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이덕선씨는 최용신 선생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삶의 기준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한다.그러나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처음 샘골에 나타났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책상물림의 젊은 처녀가 무엇을 안다고 저러는가"라며 핀잔만 주었다. 후원을 요청하러 찾아간 사회운동가마저도 그에게 "날고 기는 놈도 농촌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는데 네가 무엇을 한다고 하느냐"며 차디찬 경멸을 보냈다.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 나가 밭 매는 주민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말없이 일손을 도왔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불과 7개월이 지나지않아 주민들은 그를 마을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여겼다. 최용신은 부녀자들과 마을 청년들을 지도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샘골 곳곳을 다녔다. 그의 손길과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강습생은 점점 늘어났으며, 강습소가 좁아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글을 배웠다. 강습소를 증축하기로 하고 건립 기금을 모으자 부인들은 그동안 어렵게 모은 돈 300원을 선뜻 내놓았다. 최용신은 그 돈의 반을 부인회에 돌려주었다. 여러분의 피와 땀이 담긴 이 돈을 다 받을 수 없다며. 여기에 감동한 주민들에 의해 모금 활동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다. 최용신은 마을에 온지 1년이 조금 지난 기간 안에 주민의 힘을 모아 강습소 증축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이듬해 최용신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으나 병을 얻고 고향으로 돌아가려하나, 드러누워 있더라도 샘골로 오라는 주민의 요청을 받아들여 샘골로 돌아간다. 그러나 얼마 있지않아 1935년 초 최용신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샘골마을에서의 과로가 한 원인이 되었으리. 마을 주민들은 그의 장례를 1천여명의 조문객이 애도하는 속에 사회장으로 치렀고,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최용신 이야기가 알려지자 신문과 잡지는 앞다투어 그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고, 소설가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최용신이 떠난 지 80여년이 지났으나, 나이 든 제자들은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재산을 최용신기념관을 짓는데 기부하고, 또다른 이는 사재를 털어 길바닥에 기념 표석을 심었다. 주민들은 지금 최용신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최용신기념관에는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냉소적이던 당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무엇이 그가 떠난지 80여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가? 최용신이 한 일이 우리 역사를 바꾸어 놓은 대단한 일은 아니나, 그가 보여준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최용신은 주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헌신하였다. 소통을 통해 공감을 얻었다. 사랑과 격려를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최용신이 설정한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실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용신과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으며,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제자와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살아간 인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많다. 최용신의 삶은 한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011-03-01 강진갑

이슬람권의 소요(騷擾)와 신묘(辛卯)년

[경인일보=]필자는 동아시아의 오랜 지혜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평생 연구해 온 사람이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어지러운 이슬람권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음양오행과 연관 지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집트를 시작으로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은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마저도 실각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달러 찍어내기로 인한 과다한 국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압력, 여기에 작년 세계적인 곡물 흉작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현재 이슬람권 국가들이 소요사태에 휘말려들고 있다.'민주혁명'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서구 세계 미디어들이 이럴 때 으레 사용하는 정치적 발림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밥먹고 살기 어려우니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고 여기에 오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현상은 음양오행의 견지에서도 충분히 좋은 설명이 가능하다. 올해는 辛卯(신묘)년인바, 이 기운이 상징하는 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상으로 辛(신)은 金氣(금기)에 속한다.金(금)이란 맺히는 기운이고 응축하는 것으로서, 조직이나 단체를 단속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규율과 통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규율과 통제를 의미하는 금의 기운인 辛(신)이 올해에는 卯(묘)라는 코드를 만나고 있다. 여기에서 올해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묘는 12地支(지지)의 하나로서 방위상으로 正東(정동)을 뜻함과 동시에 '봄'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은 만물이 피어나고 뻗어가는 때이다.그러니 금년 辛卯(신묘)년의 형국은 위에는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운이 있고 밑에서는 뻗어가고 피어나는 기운이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다.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모순이니 올해 신묘년은 사회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잦은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른 나라들은 별 문제가 없는데 왜 그곳만 그러지? 하는 의문이다. 사실 지구촌의 다른 지역에서도 올해는 만만치않는 사회적 불만이 제기되겠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이슬람권의 경우 집권 세력이 지나치게 오래 자리를 잡아오면서 내부 불만과 갈등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너무 오래 해먹은'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집권층이 해먹든 말든 사실 그런대로 밥 먹고 살 수만 있다면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최근 식량 흉작으로 기본적인 생계가 어려워지자 이에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 중동 소요라 하겠다.이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추가해 볼 필요가 있으니, 세상 만물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60년을 하나의 週期(주기)로 한다는 점이다. 주기 즉 사이클은 기본적으로 사인(sine) 곡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고등학교때 배웠던 곡선 말이다. 곡선을 보면 오르내림이 있는데, 그것을 세상 변화와 흥망성쇠의 곡선이라 보면 되는 것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절반인 30년은 오름이라 보면 되고 그 나머지 30년은 내림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은 30년이 지나면 기존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흐름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줄여 말하면 오름 30년이 있다면 내림 30년이 이어지는 법이다.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해볼 때, 30년이 지나면 반대의 흐름이 생긴다는 것을 하나의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대단히 재미나고 때로는 신통한 예측을 가능케 할 것이다. 30년이 지나면 반대 흐름이 생겨난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여기에도 아주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장기 독재자 무바라크가 이번에 실각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집권한 지 금년이 꼭 3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1981년에 집권한 무바라크는 30년이 지난 2011년으로서 실각하게 되었으니 주기의 엄밀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다음 번 글에서는 주기에 대해 더 흥미로운 얘기를 하겠다. /www.hohodang.com (필자의 블로그 주소)

2011-02-22 김태규

김문수 지사, 정치신화에 도전할 것인가

[경인일보=]김문수 지사가 조용하다. 정치적인 현안을 놓고 후발 주자는 조금 시끄럽게 해 국민의 시선을 끄는 법인데, 인근 서울시에 비해 차분하다. 지난해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지명될 때만 해도, 김 지사의 정치적 관심 영역이 경기 도정(道政)의 경계를 넘어서나 했다. 실제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구인지 모르겠다'라는 발언 이후, 그의 관심이 국가적 어젠다로 확대되지 않을까 예상됐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않은 채 멈춰 섰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과감한 복지'로 도의회와 절충점을 모색한 뒤로는 자제하는 듯한 태도이다. 절친한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정치생명을 건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는데, 중앙정치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하긴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다. 경기지사 직무만으로도 여념이 없을지 모른다.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도 "신문 볼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할 정도이니, 지금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지사는 대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사가 말해 주는 숙명 비슷한 것이다. 1997년 당시 이인제 지사에 이어, 2007년 손학규 지사도 대선에 출마했거나 후보 경선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진 못했지만, 모두들 유력한 주자들이었다. 이인제 전 지사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격돌했고, 손학규 지사 역시 당적을 바꿔가며 대선가도를 향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인제, 손학규 모두 위협적인 경선 흥행 메이커였다. 경기지사가 갖는 정치적 힘이자, 한계이다. 경기도는 여러 도시와 그 구성원의 다양함, 지역의 광활함, 그리고 인구수와 유권자의 성향에서 서울에 견줄 만하다. 전국을 압축해 놓은 축소판이다. 지사로 당선된 순간부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다. 어찌 보면 큰 정치에 뜻을 두었기에 경기지사에 도전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지방 행정가로만 머물기에는 성이 차지 않는 자리이다. 충남이 고향인 이인제 지사가 그랬듯이 경북 영천이 고향인 김 지사도 예외는 아니다.여기에 김 지사에게는 소박한 풍모에서 비롯되는 '사람 냄새'가 강점이다. 젊은 날 노동운동을 하면서 몸에 밴 어려운 사람들의 이웃 같은 인상을 준다. 순수하고 성실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 유명 석학 중 한 분이 식사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김문수 지사가 참 좋다"고 말한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왜 좋으신가'를 물으려다 자리의 성격상 어색해 그만 두었지만, '일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를 일반에 심어준 듯하다.또 승부사적 기질도 갖췄다. 그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당시 민주당 대변인으로 스타 정치인이었던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정치에 입문했다. 후에, 박지원 의원이 김 지사의 선거운동을 얘기하면서 혀를 내두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승부욕이 강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절대 지지층을 갖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눌렀다. 야권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차례로 꺾은, 쌓기 힘든 전적을 갖춘 것이다. 이런 김 지사를 여권의 대선가도가 가만히 놓아둘 리 만무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대항마로서는 '안성맞춤'이다. 경기도는 정치적 무늬는 그럴 듯하나 서울과 지방의 중간지대이다. 강한 응집력이 없다. 서울의 화려함에 가리고, 지방의 끈끈함에 찢기어 빈 지갑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강점인 사람 냄새는 언제든 그가 지닌 정체성의 발목을 잡는 낙인이 될 수 있다.그런데 묘하게도 정치는 늘 '신화'를 찾는다. '신화는 없다'는 MB 정부 자체가 샐러리맨의 성공기, 청계천 복원과 같은 신화의 결과물이다. 국민 가슴에 전해지는 감동과 울림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이다. 오늘 박근혜 전 대표가 갖는 정치력 역시 천막 당사와 선거 무패 행진, 그리고 원칙의 산물이다. 김 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치, 보수정치로 이어지는 전환이 그러하다. 대권은 기업으로 치면 독과점 기업이다. 주식회사가 아니다. 이제 원하건, 원하지 않건 김 지사는 신화 창출의 입구에 서 있다. 복지·개헌·정치개혁·중산층과 서민·남북문제와 같이 울림의 전선은 널브러져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느냐는 전적으로 김 지사의 몫이다.

2011-02-15 양승현

두 여성 거목의 죽음과 봄 편지

[경인일보=]두 여성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분은 박완서 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송정희 선생이다. 작가로서 박선생은 세인의 주목 속에서 가셨고 송선생은 조용히 남모르게 세상을 떠나셨다.연초에 학교에 나갔더니 발송자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포가 하나 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더니 송정희 선생의 시집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여서 이 분이 또 시집을 내셨구나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보려는데 유고시집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송선생은 몇 년 전부터 일면식이 없는 필자에게 시집을 우송해 주셨는데 언젠가 한번 직접 뵙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70년대부터 한학에 진력하여 동양의 고전적 경전들을 두루 번역한 이 분의 숨은 노력의 지대함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송선생의 타계는 더욱 아쉬웠다. 최근 10년 동안은 주로 시창작에 전념하셨는데 이 분이 한학의 온축을 시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유고시집의 표제가 된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는 그동안의 학문적 온축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여름은 봄의 청춘식장이며 가을은 봄의 산실이고 겨울은 봄의 신방인 까닭에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상식의 틀을 깨트리는 참신한 시적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집을 되풀이 읽으며 이 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비슷한 연배의 박완서 선생도 나이 40인 70년대에 등단하여 4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많은 역작을 발표했다. 박선생은 여성문학이 부재하던 시절 여성의 내면적 심리를 특유의 문체로 묘파하면서 여성의 삶을 문단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작가였다. 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접한 순간 필자는 빈소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통독했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명료한 의식을 지니고 돌아가셨다는 전언이 무언가 더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박선생의 가슴 속에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꽃봉오리 같던 20대에 맞이한 전쟁이 가져다 준 공포 그리고 남편과 사별한 직후 젊은 아들의 돌연한 죽음 등 하느님으로부터 한 말씀만이라도 듣고 싶었던 참척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란 고통에 의해 탄생한다는 말이 그대로 적중하는 것이 작가 박완서였을 것이다. 박선생이 인생에 오직 한번 밑줄을 치고 읽었던 것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에서 '스쳐간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예수가 자신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스쳐간다'고 말했을 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지닌 근원이 무엇인지를 박선생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이 아픔이 작가로서 박선생의 대성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박선생도 자신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길이 아니라 학문의 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마지막 산문집의 제목을 정한 것도 아마 그러한 연유가 아닐까 싶다. 학문의 길을 간 송선생이 말년에 갱지에 시를 썼다는 것과 대조되는 발언이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 모두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소망을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 숙연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시절 오로지 자신의 길을 걸어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아직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의 열망을 두 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인생은 누구나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속언은 두 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것은 두 분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분의 삶에 경외감을 갖는 것은 40여년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한 삶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루었느냐는 그 다음이다. 박선생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생이 너무 허망하게 느껴진다는 분에게 짧게 메일을 보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면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입춘 우수가 다가오고 한강물이 풀리고 꽃들이 피어나 새들이 우는 봄이 오더라도 그것들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생명 속에 움트고 자라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송선생의 시적 어투를 빌려 누군가에게 봄 편지를 쓰고 싶다.

2011-02-08 최동호

학생인권과 교실붕괴는 어떤 관계일까

[경인일보=]"출석을 부르고, 자는 아이 깨우게 하고, 이어폰 빼게 하고, 휴대전화 끄게 하고, 교과서 꺼내게 하고, 수업 중 못 떠들게 하고, 자는 학생 또 깨우고…. 이건 수업이 아니라 차라리 전투예요." 이 말은 그래도 교육에 열정이 있으신 어떤 중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근간에 들어 이와 같은 교실 붕괴의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필자의 제자인 모 중학교 김모 교사는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줄 수 없어요. 그러면 선생님을 마치 자신들의 친구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해 버려요. 요즘 학생들이 인권 조례 운운하니 도저히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할 수 없어요" 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필자도 이 상황을 경험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다. 3년전 스승의 날에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의 1일교사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의와 교수법에 일가견이 있는 사범대 교수가 중학교 교실에서는 10분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의 주목을 끌어야 했는 데 흥미로운 수업은 실패하고 나 혼자 떠들다가 나온 경험이 있다. 옆 친구들과의 이야기, 불쑥 일어나 다른 자리의 친구에게 다가가는 아이들…. 수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와 예절들은 이미 상실된 채였었다. 그 후로 필자는 중학교 교사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런 교실 붕괴 분위기에서 주당 평균 16~20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분들이기에 말이다. 특히 학생 인권 조례가 나온 이후 교사가 학생들에게 매 맞고,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육체적인 폭행을 당한 건수는 2008년 25건에서 2009년에 35건, 2010년 상반기에 53건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폭행 건수에 여교사 비율이 초등이 74%이고 중학교가 65%라고 한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제공한 것은 바로 학생체벌금지와 학생 인권조례라고 한다. 이 제도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격을 존중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들에 의하여 학생들의 교사 폭력과 성희롱이 일어나고 교실이 붕괴되는 것은 왜 일까? 일선 학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 제도들이 교실 붕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에 누구든 토를 달 수 없게 되었다.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간접 체벌은 허용하는 방침을 제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교실 뒤 서 있기, 운동장 걷기, 팔굽혀 펴기와 같은 훈육·훈계 수준의 교육적 벌은 가능해진다. 아울러 출석정지 제도와 학부모 상담제가 도입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두발과 복장 등의 학생생활 규정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학교의 자율권도 확대된다. 교육부의 간접 체벌 허용 방안은 늦은 감이 있으나 일선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체벌과 관련해서 찬성 입장은 그릇된 행동을 하는 학생을 통제하는 효율적 방법으로 여기는 반면, 반대 입장은 벌을 주는 사람에게 증오심을 갖게 되고, 벌을 피하려는 회피학습이 이뤄진다고 한다. 물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라는 체벌 금지의 아름다운 격언이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방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체벌에 대해서는 어느 시대 건 찬반 공방이 늘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를 감안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간접체벌 방침을 정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학생인권을 강조하고 체벌을 금지하는 분위기로 인해 일선 학교현장에서의 부작용 사례들이다.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칙 제정에 대해 학교장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는 교육감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지만 교장에 의한 단위 학교 책임경영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미 했어야할 일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일선 학교는 학칙에 대한 자율권이 크게 확대되는 만큼 간접 체벌의 내용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할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 입장뿐만 아니라 새 법령에 따라 학생의 의견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번 간접 체벌 허용이 교실 붕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김교사에게 자신 있게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라고 말하고 싶다.

2011-01-25 김영순

국가교육정책의 목표

[경인일보=]나라를 경영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국민교육정책은 곧 그 나라의 사회문화와 경제, 정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최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칭찬했다는 기사를 몇 번인가 대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 국민의 교육열? 우리정부의 교육정책?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우리의 교육정책은 정권만 바뀌면 목표가 흔들리는 나라이니까…, 우리나라는 그 대단한 국민들의 교육열을 제대로 승화시켜 주지도 못하는, 그래서 그것을 단점으로 만들어버리는 교육정책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나라의 교육정책은 나라를 이끌어 나아가는 관련정책들과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적일 수가 없다. 유럽의 선진국들을 보면 교육당국은 "가능하면 빠른 기간 내에 국민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직업능력이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주는 것"을 교육의 첫째 목표로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정책이 "모든 국민은 노동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국민이 노동할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이는 나라의 교육이 잘못 되었거나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간주하여 정부는 이들에게 일자리가 더 많은 분야로의 새로운 직업교육을 안내하고 추가교육(정부 부담)을 시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 그리고 그가 취업을 할 때까지는 먹고 살 수 있도록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실업수당과 실업보험금은 전혀 다르다. 실업보험금은 취업자가 어떤 연유로 실직을 했을 때 받게 되는 보험금이고 실업수당은 직장을 잡아보지 못한, 그래서 직업을 구하고 있는 예비취업자에게 주어지는 생계비로, 정부가 교육을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부과금 성격의 돈이다.이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의 취업연령을 22~25세로 보고 30세가 넘어서도 취업을 못할 경우는 취업의사가 없거나 특수한 케이스로 보아 정밀조사를 하게 된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도 30세 이전에 학업을 마치도록 하며 따라서 장학금도 30세가 넘으면 대부분 신청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박사학위는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여 대부분 연구소나 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는 하지만 곧바로 교수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교수가 되려면 연구를 3~5년 정도하여 그 결과를 교수논문으로 제출하고 합격하여야만 한다. 연구기간동안의 많은 실수와 성공의 경험이 교수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젊고 활기넘치는 시기에 마음껏 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평균 25세 이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마치고 이때부터 정년인 65세까지는 배운 것을 써먹는 기간이 된다. 그러니까 평균 5세부터(유치원 포함) 22세까지 17년정도 교육시켜 65세까지 약 48년 동안을 활용하는 매우 경제적인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25세 이전에 취업이 어렵고(군복무 감안) 전문직의 경우는 30세 이전에 교육과정을 마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취업재수생들이 대학원을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평균 교육기간은 더욱 길어졌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대부분 55세 정도면 퇴직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어 25년 이상을 교육시켜 30년도 못 써먹는 매우 비경제적인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고, 30세 장년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하고 사는 이상한 나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고쳐야한다. 교육기간이 길다고 좋은 것인가? 인력 활용도 젊음만 착취하는 기업편이의 인력정책을 그대로 갈 것인가? 이제라도 교육은 일할 수 있는 능력교육으로, 직장은 평생직장개념으로, 교육과 인력 활용이 효율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2011-01-18 정명채

산학협력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경인일보=]기술의 융합화와 시스템화가 진행되면서 산학협력을 통한 개방형 기술혁신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 내부의 연구 자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폐쇄형 기술혁신 전략으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시장경제체제에서 산학협력은 수요과 공급의 논리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시장의 실패가 초래되어 과소투자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기업이나 대학이 산학협력을 하고 싶어도 믿을만한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아가 산학협력을 통해서 개발된 기술의 가치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여 공동연구 등의 거래행위가 성사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는 정책적으로 산학협력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산학협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정책은 산학협력 연구비에 대한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유망 연구과제를 선정하여 정부와 기업이 연구비를 분담하여 산학협력 연구를 추진하고, 연구결과 창출되는 지적재산권은 최소한의 기술료만 받고 기업으로 이관한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서도 이런 방식의 산업협력 지원정책이 김문수 도지사의 주도로 3년 전에 시작되어 도내 중소기업과 대학간의 연구협력 증진에 큰 역할을 하였다.그동안 '경기도기술개발사업'을 통해서 산학협력 연구를 지원한 경험에 의하면 산학협력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행이 우리 사회와 조직 곳곳에 남아 있어서 정책의 효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우리의 산학협력 관련 제도와 관행은 1970~80년대 모방형 혁신을 추구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새로운 기술혁신의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이런 구시대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해야 한다.첫째, 산학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학의 경영방침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은 교육과 학술연구를 일차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산학협력은 부수적인 목표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산학협력을 통해서 연구비를 많이 유치한 교수보다는 우수한 학술논문을 발표한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대학교수의 임용과 평가에서 산학협력 경험과 능력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산학협력에 장애가 되는 많은 제도와 관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들을 산학협력에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둘째,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과 산업의 지리적 배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는 공단, 대학, 주거가 지리적으로 분리된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대학과 주거지는 도시 내에 있는 반면 기업은 멀리 떨어진 공단에 위치하도록 하여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서울 구로지역의 디지털밸리가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도 이런 입지적 장점 때문이다. 따라서 주거, 교육, 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산학협력 친화적 입지 패턴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국토 활용 계획과 도시계획이 바뀌어야 한다.셋째, 산학협력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동안 산학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과 과학기술 인프라를 고려한 산학협력 정책을 수립하고 현장 밀착형 정책의 추진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잘 할 수 있다. 지역 단위의 산학협력 지원정책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중앙정부가 기획한 정책에 지방이 매칭자금을 제공하는 현재의 구도를 전환하여 지방자치단체가 기획한 정책에 중앙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이글을 맺으면서, 산학협력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작업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산학협력의 주체인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 등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2011-01-12 이원영

받는 입장을 존중하는 자세

[경인일보=]오는 1월 12일은 아이티가 대지진을 맞은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968년부터 시작된 1:1 어린이 양육을 통해 당시 6만3천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던 컴패션은 즉시 현지 어린이센터에서 돌보고 있던 어린이들의 신원 파악을 시작했다. 아이티 현지 직원들과 교사들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대신 아이들의 행방부터 찾아 나섰다. 긴급하게 구호와 의료 지원이 진행된 후에는 곧바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양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현지의 장기적 노력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얼굴과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사랑으로 기금을 모아 주었고(한국컴패션 약 20억원), 다른 10개 후원국과 더불어 많은 기금을 아이티 현지에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콜레라나 정치적 위협 등 많은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 아이티이지만, 이 기금을 바탕으로 재건을 위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고 멈출 수 없는 회복의 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이렇듯 국내 후원자 분들을 대신해 많은 기금을 아이티에 전달한 한국컴패션으로서는, 모아주신 따뜻한 온정의 손길에 대한 감사와 현지에서 이를 잘 쓰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전해야 할 책임이 생겼다. 이런 현지 방문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후원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에 봉착했다. 아이티 현지에서 후원국 방문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현지의 양육 환경 재건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후원국의 방문에 난색을 표했다. 꼼꼼한 점검과 확인에 재확인을 거쳐야만 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숨가쁜 일정으로 움직이는 한국 언론의 현지 방문도 그런 이유로 종종 무산에 그치고는 했다. 물론 충분한 보고서가 왔고 어렵게 들어간 몇 번의 현지 방문을 통해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고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진이 났을 때부터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후원국 방문은 나중에, 현지 파악과 복구가 먼저. 아이티에게 후원국의 하나인 한국은 자신들을 돕는 나라로서가 아니라 대등하게 어린이들을 돌보는 연합체라는 인식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1952년 후원을 받기 시작해 1993년까지 수혜국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는 후원국으로 존재하는 한국컴패션과 이를 바라보는 국제컴패션의 시선을 볼 때 컴패션 안에는 분명 수혜국과 후원국의 뚜렷한 구분이 있다. 하지만 그 구분은 역할의 구분이지, 도움을 주는 나라와 받는 나라로서의 구분은 아닌 것 같다.도움을 주는 것에는 분명 큰 자부심과 기쁨이 있다. 그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열정적인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작년에는 작정을 하고 아시아 6개국 컴패션 수혜국 대표들을 초청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면면을 보여주었고 큰 감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도저 같은 한국의 방식이 때로는 다른 수혜국에서는 어렵고 낯설 때가 있는가 보다. 진정한 사랑이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맞다면, 한쪽의 입장만을 주장하면 안 된다. 컴패션에서는 수혜국이 먼저 필요한 것을 말한다. 후원국 입장에서는 기금 모금 형태가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고 현지의 입장을 후원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주는 입장보다 받는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한다. 어떤 그림에서 각자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각각의 퍼즐이 빛을 발하고, 이를 위해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 그림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사랑을 전하는 일은 그 이상이다. 단순히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하며 돕는 일, 아이티 지진 1주년을 맞아, 그 나라를 향한 안타까움이 큰 만큼 더욱 생각해 보게 된다.

2011-01-04 서정인

창의인성 교육을 위한 바람직한 평가방향

[경인일보=]내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줄 아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바로 각 교과에서의 창의인성교육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시한 '창의 인성 교육총론'에서 창의성(creativity)은 독창적이면서도 유용한 산물을 산출할 수 있는 사람의 특성이라고 정의되며, 인성(character)이란 신뢰 있고 협동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는 생활태도와 품성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른 인성은 사회와 조직 속에 신뢰와 협동의 사회적 자본을 증대시킨다. 창의성과 인성은 구성 요소나 함양 방법 등에 있어 상호 유사성과 보완성이 높은 자질(예: 개방성, 적극성, 협동 능력 등)로 구성된다. 나아가 창의성을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으로 규정하고, 인성은 '창의성을 사회 속에서 의미 있게 발현시킬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이제 교육은 이러한 창의성과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창의인성 교육은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의 선진국에서 핵심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창의인성 교육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개정 교육과정에도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교육의 변화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창의인성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사들이 기존 교수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다양한 창의적 교수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이를 연구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잡무가 해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밖에도 성공을 위한 여러 전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평가 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의 방식은 창의적인데 평가가 기존의 선다형 평가라면 창의인성 교육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평가 역시 창의적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가 방식으로 학생들의 창의 인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제시한 창의인성교육의 평가 방향은 3가지(수행평가 확대 실시, 교사의 학력평가 전문성 제고, 그리고 절대평가 체제로의 단계적 전환)로 나누어진다. 현재로서는 창의인성 교육에 관한 평가 방식이 구체적으로 개발되지 않아서 현행 수행평가의 확대 실시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학교에서 주의해야할 부분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의 영역이 지필평가의 주관식으로 대체되는 일이 많은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적절한 창의인성의 평가를 위해서는 단답형의 주관식 평가 문항들이 서술형 혹은 논술형 평가 문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모든 교사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이러한 평가를 주저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평가 이후의 객관성에 대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평가가 학교에서 잘 정착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주관식 혹은 서술형 평가에 대한 교사의 '채점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대부분 서술형 평가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교수의 주관식 채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수의 평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오직 학생뿐이다. 다른 기관에서 교수의 평가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교사의 채점에 대한 견제는 교육청의 장학 지도나 감사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어야 한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답안에 대한 평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 스스로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앞으로 창의인성 교육이 현장에 적용되면서 특히 평가부분에 있어서 많은 논란을 가져올 것은 뻔한 일이다. 이에 대해 교사의 객관적인 평가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이 평가를 신뢰하고 수긍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풍토를 조성하는 데 모두 노력해야할 것이다.

2010-12-29 김영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있다

[경인일보=]최근 언론에서 재벌들의 서민업종 싹쓸이(?) 기사가 종종 뜬다. 경제투데이는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폐지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심화되고 있다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발표한 우리나라 '15대 재벌그룹의 계열사 변동추이 및 관계사 출자액 분석결과'를 인용하고 있다.우리나라 15대 재벌이 2007년 4월 이후 2010년 4월의 조사시점까지 계열회사나 비계열회사의 주식취득(소유지분 취득)을 위해, 회사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쓰인 출자액은 총 92조8천400억원으로 2007년 50조2천520억원에서 85%나 급증했다. 계열사 수는 같은 기간 472개에서 679개로 3년동안 207개(44%)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15대 재벌이 신규편입한 업종을 보면 계열사 332개 중 제조업은 80개사(24.1%)인 반면, 비제조서비스업은 252개사(75.9%)로 건설업종과 부동산업종 그리고 임대업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15대 재벌들이 우리경제에 대한 기여와 책임의식을 갖고 장기적 안전성과 기초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생산, 개발 관련영역에 대한 투자보다는 눈에 보이는 단순 돈벌이 중심으로 치우쳐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산업경제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의 악화와 위축을 가져오게 될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최근 우리나라 대재벌기업의 주식(자본)도 외국의 자본참여가 커지고 이들의 이익배당요구가 심해져 총이익금의 반 이상을 주식배당으로 요구하기도 한다.기업들의 성실한 생산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금이 대부분 출자배당(주식배당)과 고정지출(관리비 등)로 나가고 남은 적은 돈이나마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대부분이 이렇게 출자를 통해, 그것도 대부분이 생산업종이 아닌 서비스업종에 출자해 다시 출자배당을 챙겨가면 생산증대를 위한 투자는 제자리걸음이 된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가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산경쟁력은 어찌될 것인가?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일부의 학자들은 금산분리원칙에 입각한 과도한 금융규제 때문에 재벌들의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공격하고 있으며, 자본의 유출입규제를 더욱 과감하게 풀어야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정권 초기에 재벌들은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출총제폐지를 요구했고 정부는 학계의 반대에도 이를 감행했었다. 출자와 투자는 다르다. 출총제 때문에 재벌들의 투자가 어려웠다면 출총제를 없앤 결과가 투자증대로 나타나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출자를 통해, 그것도 서비스업종의 집중적인 지분늘리기로 문어발식 확장만을 촉진시킨 출총제폐지는 실책이었다고 본다.출총제를 폐지시키면서 기업집단공시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정부의 주장도 허구였다. 기업집단공시제도는 그 처벌규정이 약해 재벌집중억제력이 약했다. 지난주 정부는 우리나라의 금년도 경제성장률도 최근 유례없는 6%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중소업체들과 일반 서민대중들이 느끼는 경제의 활성도는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의 과실은 어디로 갔는가? 재벌들에 집중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국제재벌들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는 것인가? 자본의 속성상 투자자에게 이익이 배당되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기업들의 확대재생산을 저해하는 과도한 배당과 출자를 통한 지분늘리기, 과도한 재벌집중과 무분별한 서민업종 싹쓸이식 기업질서는 나라의 장래경제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제라도 출총제의 재도입을 고려하고 혁신적인 기업정책을 통해 중소기업과 서민경제가 기본적으로 뒷받침받을 수 있는 산업구조 조정정책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0-12-21 정명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설화 이후의 과제

[경인일보=]지난주 국회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상설화를 위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내년 상반기에 150명 규모의 장관급 행정위원회가 새로 신설된다. 상설화되는 국과위는 범부처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종합조정 기능을 맡게 된다. 사실상 국가 과학기술의 컨트롤타워가 생기게 된 것이다. 국과위 상설화는 지난 정부의 기술혁신본부를 다시 부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돌이켜보면, 2007년 정부조직개편에서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폐지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정책을 다수 부처가 나누어 추진하는 분산형 행정체제인데, 분산형 행정체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범부처적 종합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 필요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정부조직 개편시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폐지하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런 정부조직 체계상의 문제점은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계속 지적돼왔으며, 이제라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 대안으로 국과위를 상설하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과학기술정책은 글로벌시대 국가의 백년대계를 열어가는 핵심 수단이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복지정책처럼 득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회간접투자처럼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정운영에서 과학기술의 우선 순위가 낮아졌다. 이번에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선봉장이 되기를 기대한다.정부는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과 권한들을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상설 국과위가 출범하는 내년 3월까지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핵심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논의 주제는 국가위의 국가 연구개발예산 조정 권한의 내용과 범위,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재배치, 국과위의 전문성 강화 등이다.필자는 이런 주제들 이외에 지방과학기술의 문제도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과학기술정책 추진 체제상 많은 현안문제가 있지만 국가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지방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일이 많지만, 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크다. 교육부, 지경부, 중기청, 지역발전위원회 등 상대해야 할 부처가 너무 많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에 어떤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면 연구개발사업을 갖고 있는 정부부처를 개별적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그 숫자가 18개에 이른다.나아가 지방자치단체 과학기술정책의 기본 방향은 중앙정부가 제시해 주어야 하지만 어느 부처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다. 그 주된 이유는 정부의 지방과학기술정책이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과학기술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지역혁신정책은 중앙정부에서 방치되고 있다. 반면에 비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비 매칭에 많은 재원이 투입되어 독자적인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할 재원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과위가 나서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기를 지방에서는 바라고 있다.이 글을 맺으면서 국과위가 당초의 의도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수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국과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타부처의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강력한 조정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예산에 대해서 실질적인 심의와 조정 권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권한이 부여되지 않으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재경부, 교육부, 지경부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처들에 휘둘리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상설화되는 국과위가 당초의 구상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정치권의 각별한 지원을 촉구한다.

2010-12-14 이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