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꿈이 없는 아이들을 향한 부탁

[경인일보=]실물크기의 3분의1로 축소한 항공사, 방송국, 은행 등이 있는 어린이 직업 체험시설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폼 나는 제복을 입고 경찰관, 소방관 역할도 할 수 있고, 자동차 정비 기술자나 제빵사도 돼 볼 수 있는 곳이다. 막연했던 각각의 직업들을 나름 진지한 자세로 '맛'보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요즘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그런데 아이들이 좀 크면, 부모들의 이런 극진한 노력도 종종 배신(?)을 당하는 듯하다. 얼마전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키우는 직원의 고민을 들었다. 성적이 제법 상위권이어서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줄까 고민하던 엄마의 기대와 달리, 아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학생의 본문이니까' 갖가지 당위성을 설명해 봤지만, 아이는 도무지 납득하고 수긍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직원은 결국, '그래서 넌 뭐가 될 건데?', '꿈이 있을 거 아냐? 그게 공부 없이도 되는 거면, 공부 안 해도 돼' 라고 마지막 수를 던져 보았더니, 돌아오는 답은 '하고 싶은 거 없어요'였다고. '아마도 사춘기여서 그렇겠지' 싶다가도, 그저 어느 집 아들이야기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뭐 될래?'라고 질문하면, 돌아오는 답의 열에 여덟, 아홉은 '몰라요'다. 미국에 살 때, 대부분의 십대들이 꿈이 없는 그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던 적이 있는데,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컴패션 수혜국 현지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경찰이 되어서 엄마를 지켜주고 싶다', '의사가 되어 아빠 병을 고쳐주겠다', '선생님이 되어 동생을 가르쳐 주고 싶다' 등 이유까지 보태서, 척척 답을 한다. 컴패션이 보는 '가난'은 개인의 삶에 선택의 기회가 없는 것을 말한다.가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어린이는 가난의 가장 큰 피해자다. 어린이는 전쟁과 학대와 질병에서도 도망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가난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순수한 영혼들이다. 경제적 빈곤과 문맹, 사랑의 결핍과 같은 여러 가지 가난한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에게 후원자의 도움은 최소한 꿈을 꿀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아이 하나가 교육을 받게 되면, 그 가정에 한줄기 빛이 생기고, 그 아이를 통해 꿈꾸는 미래는 곧 그 가족의 희망이 된다.지난해 후원자의 밤 행사 때 우간다에서 온 청년, 이사야를 만났다. 12남매 중 장남인 이사야는 9년 동안 온 가족이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다가 컴패션을 만나면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해가 지면 기름 램프를 켜고 공부를 해서, 우간다 기독교대학 지역개발학과에 들어갔고, 졸업하면, 조국 우간다가 한국처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큰 기여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말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난과 풍요를 모두 경험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사야만큼은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어렵게 공부하면서 가슴에 품었던 꿈, 그 열망의 온도를 요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게 아쉽다.그러고 보니, 꿈꾸기 좋은 환경은 차라리 풍요롭지 않은 쪽인 것도 같다. 다만, 꿈꾸기보다 꿈을 펼치기에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다음세대에게 고백하건대, 지난 시절 우리 어른들의 꿈에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은 있었지만,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한 목표인식은 부족했다. '이웃'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커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대신 부탁하고 싶다. 윗 세대가 놓친 '이웃'에 대해 고민하고 그와 관련된 꿈을 발견해 보라고. 그 안에 얼마나 사람이 필요하고, 할 일이 많은지 알게 되면, 꿈을 꿔야 하는 이유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10-10-13 서정인

다함께 행복한 사회를 위한 다문화교육

[경인일보=]올해 초 국내 거주 외국인이 120만명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하철 혹은 노선 버스를 타보면 한두 분의 외국인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일일 드라마나 티브이 쇼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들이 등장한다. 그 뿐인가. 일명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의 경우처럼 국내 거주 외국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한국 생활을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제는 정말 다문화란 용어가 생경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데 역사를 되짚어 보면 외국인의 도래가 요즘의 일만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외래 민족들을 포용하여 다문화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고려 초 약 100년 동안 출세를 위해 찾아온 중국인들과 유민, 포로 신분으로 온 발해인과 여진인, 거란인을 포함해 귀화인은 약 17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고려 가요 '쌍화점'은 고려시대 이슬람 상인(회회아비)과 고려 여인간 스캔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민간에서 널리 부르던 노래에 이슬람이 등장할 만큼 고려시대 이슬람은 낯설기만 한 이방인이 아니었다. 고려시대 무역항인 예성강 하구 벽란도는 이슬람 지역을 비롯해 각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북적이는 국제 무역도시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정수일 교수에 따르면 족보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275개(1985년 통계) 성씨가 있는데, 그중 귀화성이 무려 136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시대별로 보면, 신라 때 40여개,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각 60여개와 30여개인데, 그 가운데 절대다수인 약 130개가 중국계 귀화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화산 이씨의 경우는 귀화 성씨로 베트남인 이용상(李龍祥)이 시조이다.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살아왔으며,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다문화로 구성해오고 있다. 다시 말해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다문화'는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이웃처럼 살아 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좀 더 그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우선 준비해야 한다.먼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다문화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배려적인 교육을 넘어서 그들과 함께하는 일반 학생들에 대한 다문화이해 교육이 수행되어야 한다. 즉 일반 학생들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이 구성되어야 한다.또한 사회교육의 영역에서는 다문화교육을 평생교육에 편입시키는 방안이다. 다문화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다문화 시민이 가져야 할 가치를 교육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협동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 지자체 단위에 설치되어 있는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주민자치센터 단위까지 확장해야 한다. 이울러 이 센터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과 봉사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위의 제안 이외에도 다양한 다문화교육 활성화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책들을 견인해갈 수 있는 재정과 인력이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다문화교육을 위해 복권기금처럼 일시적인 예산이 아니라 정규 예산을 반드시 편성해야 한다. 나아가 모든 공무원들에게 다문화교육을 소양교육으로 이수토록 권장해야 하며 이를 인사에 반영하여 그들이 다문화사회에 기여토록 해야 한다. 또한 다문화교육의 일선을 담당할 다문화교육사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다문화교육에 관한 많은 과제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그것은 그만큼 다문화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느냐 아니냐 여부에 따라 미래의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느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10-10-05 김영순

농업이 효자산업 될 수 있다

[경인일보=]유학시절 독일의 괴팅엔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 관련 국제행사에 초청되었단다. 그가 귀국하기 전날밤 독일의 농업정책이 유럽연합이라는 틀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그래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몇 개의 품목 외에는 모두 고품질 위주의 친환경유기농으로 관심을 모아갈 수밖에 없는 정치적이고 지역적인 여건에 대해 실감나게 나누었다. 그리고 한국의 농업정책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점도 충분히 나누었으며 취약한 영농기반에 대해서도 이해를 함께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처럼 주변의 농산물시장여건이 좋은 나라가 얼마나 될까?"라는 반문으로 우리나라의 농업 전망에 대한 큰 의미를 던져주었다.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26% 수준이고 식량을 포함하는 농산물자급률은 약 23%수준이다. 우리의 농산물생산이 품목에 따라서는 남아도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모자라서 70%이상의 농산물을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국민의 농산물수요에 30%도 공급하지 못하는 땅덩어리를 가지고 우리 국민의 몇 십배 인구가 모여 사는 이곳(동아시아)에서 농업정책이 어렵다니…. 생각을 바꾸어보자. 이제 국제무역기구(WTO)가 주도하고 있는 농산물시장개방은 주어진 여건이며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좋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의 수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만 고민하지 말고 우리의 농산물을 어떻게 수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 농업이 수출을 위해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생산기술 뿐만 아니라 생산이후의 가공, 저장, 유통 등 농산업화 기술도 발전되어야 한다. 농산물은 원료농산물 자체로는 경쟁력이 없어도 이를 가공하거나 저장 유통시키는 기술에 의해 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농산물수출정책' 하면 사람들은 먼저 '경쟁력'을 생각하고 '경쟁력' 하면 대부분이 가격경쟁력을 먼저 손꼽는다. 그러나 농산물이나 식품의 소비는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품질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우리는 높은 기술력을 활용한 품질 고급화와 새로운 수요인 기능성 농산물, 식품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품질경쟁력은 아무리 우수한 것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소비자에게 알려지고, 그것도 좋은 식품, 농산물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수브랜드로 만들어져야 한다.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전략에서 가격경쟁력이나 품질경쟁력 그리고 유통경쟁력을 강력하게 뒷받침 받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생산보다는 조직적인 생산과 가공, 저장, 유통(마케팅)이 필요하다. 품목별로 생산조직이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조직이 협동으로 가공과 저장, 유통사업을 한다면 조직경쟁력까지 갖추는 것이다. 농산물이나 농수산 식품들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단위의 산업화 즉 단지화를 통한 농산업클러스터 구축이 중요하다.그런데 이제 우리가 큰 시장으로 보고 있는 중국이 우리의 시장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대부분이 중국에서도 생산되고 그것도 값싸게 공급되어 우리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소비수준도 높아지면서 고급수요층들은 믿을 수 있는 고급식품을 수입해서 먹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농수산물과 식품을 일본의 알려진 값비싼 브랜드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산물의 품질은 기후와 풍토에 영향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대륙성기후로 일본의 해양성기후보다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햇빛도 좋아 일본보다는 훨씬 좋은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이다. 기무치를 만들어도 한국에서 길러진 배추로 만든 것이 더 인기있는 일본, 그래서 한국산 농산물에 까다롭게 수입장벽을 만들어 방어하고는 있지만 우리농산물들과 식품의 수출은 계속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농산물과 식품에 신용도를 높인 고품질의 브랜드로 중국의 고급수요층과 일본의 까다로운 시장을 어떻게 뚫어갈 것인지? 우리농업을 효자산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진할 좋은 기회(FTA)가 오고 있다.

2010-09-28 정명채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와 수도권

[경인일보=]미래의 유망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표적인 서울산업이다. 종사자수를 기준으로 하면 소프트웨어 산업의 83%가 서울에 있다. 경기도의 비중은 7%이며 나머지 전국 비중은 10%에 불과하다.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1990년대 강남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다수의 벤처기업이 창업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테헤란밸리가 포화상태에 이른 2000년대 이후에는 그 구심점이 구로의 디지털 산업단지로 전환되었다.소프트웨어 산업이 서울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서울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필요로 하는 하부구조, 즉 생태계가 가장 잘 갖추어진 곳이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가장 풍부하며, IT와 관련한 세계 시장 동향, 기술정보 등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이공계 대학, 벤처캐피털, 금융기관 등 소프트웨어 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조직들이 인근에 존재한다. 둘째, 서울에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관련된 전후방 관련 산업이 다수 집적되어 있어서 상호 협력과 네트워킹이 용이하다. 소프트웨어의 수요처도 서울에 가장 많다.이런 서울의 입지적 장점 때문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진흥하기가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서울 중심의 산업 구조는 서울의 과밀화와 수도권 교통난을 촉진할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향후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형 공장을 공급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요람으로 성장한 구로 디지털밸리도 이제는 포화상태로 공장과 사무실의 가격이 비싸다. 또한 근처의 유휴 토지도 거의 다 사용되어 앞으로 확장에 필요한 신규 토지의 공급이 어렵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이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인력을 현재 12만명에서 향후 3년 이내에 28만명으로 증가시킨다는 야심찬 비전을 올 2월에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발표가 아니라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입지 수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소프트웨어 산업을 앞으로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산업이 필요한 입지 수요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지 산업 육성 계획에서 핵심은 산업이 어디에 입지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원칙은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적용된다. 서울은 이미 만원인 상태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입지로 우선적 후보지역은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지방 중소도시이다. 수도권은 서울이 보유한 장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서울과는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입지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인력 공급, 글로벌 정보의 접근성 면에서 서울에 비해 손색이 없다.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 입지 공급 정책에 변화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신도시의 외곽에 작은 규모의 산업 단지를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미래의 지식 산업을 배양하기 어렵다.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왜 테헤란밸리, 디지털밸리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표적인 도시형 산업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산업 입지 정책에 대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도시형 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단지 개념도 맞지 않고, 소규모 파크형 테크노밸리 개념도 맞지 않다. 서울의 테헤란밸리, 디지털밸리 같은 대형 밸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능성이 높은 후보 도시를 선정하고, 이 도시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지식산업과 주거, 문화가 어우러지는 미래형 창조도시를 조성하여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 발전 기반을 제공해야 할 시점이다.

2010-09-14 이원영

편지의 힘

[경인일보=]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한 새로운 기술들이 매일같이 진화하고 있는 이때, 지구 한 편에는 '편지'만이 소통의 방법인 나라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특히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일 없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편지는 세상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다리'요, '창'이다. 그런데 컴패션 사무실에 도착하는 후원자들의 편지는 어린이가 보내오는 편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후원자를 둔 어린이가 전세계에 총 8만여명인데, 결연 이후 한번도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어린이 수가 3만3천여명에 달한다. 어린이센터의 다른 친구들이 해외 후원자로부터 사진이 든 편지를 받아볼 때, 부러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어린이의 심정은 어떨까? 답장은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으로 열심히 소식을 전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단 한 장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할 때의 그 기다림은 또 얼마나 애가 닳을까? 문득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바쁜 일상에, 더구나 우리한테는 때마다 편지나 카드를 써 보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에, 시간을 내고 정성을 쏟아 편지를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후원자의 편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수혜국 현지에 가서 가정방문을 할 때면, 어린이들은 "너희 후원자는 어떤 분이니"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고이 간직했던 편지를 자랑하듯 꺼내 보인다. 어린이들에게 편지는 즉, 유형으로 느껴지는 후원자의 '존재감'인 것이다. 편지를 받고 읽는 순간과 과정은 어린이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용이 짧든 길든 종이 위의 글씨들이, 이젠 혼자가 아니란 걸 일깨워준다. 이 만큼 소중한 편지들이 수혜국의 열악한 체신 사정으로 인해 분실되어선 안되기에, 대부분의 현지 사무실에서는 상당량의 편지를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고 있다.태국 컴패션에서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인 앨런은 편지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아홉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9년동안 컴패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컴패션 출신'이다. "가뜩이나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도 부족했던 나에게만 유독 편지가 안 왔다. 친구들은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후원자가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맞아, 맞아'하며 울었다. 그러다 마침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안에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며 냉장고에 네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기도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앨런에게 그랬듯, 후원자의 편지 속 단 한 문장이 어린이들의 삶을 바꾼다. 50년 전,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해외 후원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산의 보육원에서 지내던 백이선 목사는 고등학생때, '목사가 되라'는 후원자의 편지 때문에 신학교에 진학했고, 광주의 고아원에서 자란 한명동 원장은 의사였던 후원자를 좇아 의사가 되었다. 글은 말보다 강하다. 또, 때로 편지에 적힌 메시지는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충고보다도 강력하다.지난 1월 아이티 지진 직후에, 가수 션씨는 후원하던 어린이 중에 '신티치'라는 여자 아이의 집이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그녀의 생사를 물어왔다. 션씨가 더욱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신티치가 그 무렵 보낸 편지에 '다음 생일에 받고 싶은 게 있어요. 후원자님의 사진을 보내주세요.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해요'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 션씨는 답장도 못한 그 편지가 마지막일까 전전긍긍했다. 그로 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신티치가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우리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션씨는 미안한 마음에 직접 아이티로 날아가 신티치에게 사진 대신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돌아왔다. 어린이들이 편지를 기다린다. 후원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자신과 지구 반대편의 후원자를 인연으로 묶어준 축복을 함께 감사하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한다.

2010-09-07 서정인

2014 수능개편안 유감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경인일보=]지난 8월 14일 중장기대입선진화연구회(이하 '연구회'라 칭함)가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를 살펴보면, 2014학년도부터 수능이 복수로 시행되어 응시 횟수가 연 2회로 늘어난 점, 수험생의 학력 수준과 진학할 대학의 계열 등에 따라 국·영·수 세 과목 각각의 A형과 B형 중 하나를 골라 시험을 보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A형은 현행 수능보다 출제 범위를 줄이고 쉽게 출제해 수험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에 없었던 별도의 '쉬운 시험'이 생기는 셈이고, B형은 현행 수능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 한 번의 수능시험이 수험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을 해소하고, 학교 수업 외에 사교육과 같은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학생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개편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개편안이 '다양성'과 '선택'의 원리를 얼마나 무시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탐구영역의 응시과목 수를 보면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 선택 시험과목수가 각각 한 과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입시 위주의 파행적 교육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염려를 현실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구회측은 사회탐구영역에 대해 유사 과목을 통합해 한 과목만 선택해 시험에 응시토록 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미 언론에서는 2009 개정교육 과정과 관련해서 일선 학교장에게 주어진 20%의 교육과정 자율권, 교육과정 자율학교에게 주어진 50%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국·영·수에 할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국·영·수의 집중화는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여 정부가 지향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2009개정 교육 과정의 핵심 방향인 창의인성교육에 장애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연구회측은 2009 교육과정 개편의 주요 방향을 반영해 수능에서도 교과별로 통합을 시도하면서 과목간의 유사성, 교육과정 내용 분량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 교사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사회탐구영역 일반사회 과목의 경우 무슨 유사성이 있어서 법, 정치 그리고 사회·문화를 함께 묶었을까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적어도 학생들이 일반사회 과목에 응시하려면 사회학, 문화인류학, 법학, 정치학 네 개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정말 그렇게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 부담이 다른 과목의 절반에 불과한 경제와 한국사 과목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연구회가 경제와 한국사를 다른 과목과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학생들의 시험 과목 선택을 특정 과목으로 유도하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통제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가 봐도 고등학교에서는 수능 과목인 경제 혹은 한국사만을 개설하고 학습시키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과 학습의 다양성을 무시한 처사이며, 일반사회에서 경제 과목을 독립시키려는 발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수능개편안이 설령 바람직한 취지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수능시험에 반영되지 않거나 점수를 따는데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과목은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수능 시험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와 관련해 개편안 발표회 자유토론에서 연구회의 수능체제 개편 분과장인 백순근 교수는 "사실 수능은 평가이고 꼬리에 불과하다"면서 "교육 과정이 있고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있는 상황에서 꼬리가 이러한 몸통을 흔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과목수 축소로 인해 국·영·수로의 무차별적 집중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도 그럴진대 수능 여건이 국·영·수로 편향되니 이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2010-08-31 김영순

농업문제 풀고 가자

[경인일보=]지금 우리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는 국제무역기구(WTO)가 추구하고 있는 무역 자유화를 위한 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농업부문의 대응 방안의 문제이다.우리나라는 WTO 회원국으로 WTO가 추구하는 '관세없는 자유시장으로의 세계화'의 방향과 질서에 따르고 참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가 무역으로 경제를 일구어가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개방은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WTO는 없어서는 안될 버팀목이며 WTO가 추진중인 DDA협상이나 각 회원국간의 양자간 협상(FTA)에서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 협상에서 사회 전부문에 걸쳐 적극적인 활동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도 갖추었다.그런데 한 가지 국내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이 있다. 아직도 취약한 우리의 농업 부문이다. 이 농업 부문의 안정기반을 조성하고 농어민의 소득보장 기반을 갖추며 농어촌의 활력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그래서 시급하다. 지금 시장 개방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의 기간에 우리 농업을 경쟁력이 있는 농업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농업의 붕괴를 막을 길이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 농업은 전혀 경쟁력이 없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산물수출국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우리의 농지면적은 180만㏊인데 네덜란드는 219만㏊이다. 호당 경지면적도 1.5:17㏊. 그러나 농업생산성은 우리가 높아 곡물생산은 3.7배, 채소생산량도 4.1배나 높다. 단 네덜란드의 주력 품목인 축산은 우리의 생산성이 그들의 70% 수준이다. 종합적으로 볼때 농축산물 생산액으로는 우리가 1.8배나 높다. 결국 우리 농업은 기술이나 생산성 어느 면에서도 수준급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농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경영 규모의 영세성과 높은 생산원가에서 비롯된 가격경쟁력 때문이다. 그래서 영농 규모화와 농자재 가격 적정화, 기반조성 정책 등 농업의 구조개선 정책이 강조되는 것이다.우리 농업도 이제 안정 기반을 만들어 문제를 풀고 가야 한다. 농업 문제를 농민들이 종사하는 직업의 하나로만 보아서는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우리 농업을 안정시키고 제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가지의 기본적인 문제는 목적과 수단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첫째는 국민식량주권의 확보 유지다. 우리나라의 식량주권문제에서는 쌀농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 쌀은 좁은 땅에서 많은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 중요한 농사다. 또한 물관리는 장마철의 물저장을 통해 홍수 조절 기능을 가지게 했으며, 지하수 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었고 논둑 관리를 통해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등 물관리의 하부구조와 국토관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강조하여 논농사의 물관리 비용, 홍수 조절 비용, 지하수 공급 비용 등을 평당 얼마씩 지원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쌀값을 떨어뜨려도 농가 소득이 보장되며 국산쌀의 가공용 소비를 늘리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다음은 농가소득보장이다. 쌀소득이 보장되어도, 농업생산 소득만으로는 타 산업분야의 소득성장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농가 소득의 계속적인 향상을 위해서는 쌀 농업의 산업화를 지원해야 한다. 그 다음은 농어촌 지역의 생활여건 개선을 위한 교육인프라 개선과 주거생활 편익시설의 확충이 중요하다.우리 농업도 이제는 모두 개방되고 수입농산물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우리의 농산물도 세계시장으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농경지의 면적이 좁아서 규모화를 바탕으로 하는 가격경쟁력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품질경쟁력과 가공산업화를 포함하는 마케팅 경쟁력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할 조직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특히 품질 경쟁력과 가공산업의 뒷받침은 과학 기술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화해야 한다.농수산물 가공산업은 우리 농촌사회의 활력 요소가 되고 농촌경제를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 농수산물과 지역의 특산물들을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키워내는 농어촌산업 육성 정책은 그래서 지금 시급하고 긴요하다.

2010-08-24 정명채

되돌아보는 한국경제 성장과 기술축적 과정

[경인일보=]지난 일요일은 광복 65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광복 이후 현재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과 기술 축적 과정을 회고하고, 미래의 전개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광복 이후 65년은 한민족 역사상 유래없는 고속 경제 성장기이다. 광복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인데 비해서, 65년후인 2010년 1인당 소득은 2만달러로 400배 증가하였다. 반면에 단군께서 고조선을 개국했을 때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달러라고 가정하면, 그 시기부터 1945년까지 430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50배 증가한데 그쳤다. 그러므로 광복 후 현재까지 기간은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의 산업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내재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의 높은 성취욕, 근면성, 교육열 등도 고속 성장의 원인이기는 하나, 이런 국민적 소양만으로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북한은 남한과 똑같은 국민적 소양을 보유한 국가였지만, 외국 기술의 도입과 대외 무역을 억제하는 정치 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남한보다 성장의 속도가 월등히 낮았다. 기술 축적을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들 수 있다. 한국이 최초로 생산한 자동차 모델은 1962년 출시된 신진자동차의 새나라였는데, 이 차는 전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한국에서 조립한 것으로 그 성능은 외국차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외국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도입된 기술을 개량하는 자체 연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을 무색하게 하였다. 한번 주변국은 영원히 중심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핵심인데, 한국의 사례는 이런 가설에 확실한 반증을 제공한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후진국의 굴레를 벗고 중진국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근접한 유일한 사례이다. 한국의 성공은 중국, 동남아시아 등 후발개도국이 한국형 개발 전략을 채택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잠재력과 기술 능력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만해서는 안된다. 미국 MIT 대학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은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과 기술축적은 한국의 혁신 능력이 뛰어나기보다는 '후발자의 이익'(late-commer's advantage)을 향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은 후발자의 이익을 활용한 고속 경제 성장은 한국의 전용물이 아니라, 중국, 태국 등 후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실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한국은 후발자의 이익을 향유하는 단계는 졸업할 시점이며, 졸업후에는 과거와 같이 기술 혁신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 기술의 무임승차는 더이상 불가능하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 기술이거나,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특허 등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받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전략이란 측면에서 한국은 모방국의 대열에서 창조국의 대열로 소속이 변경된 것이다. 모방형 전략을 계속 추구하고 싶어도 임금 등 생산비용이 높아져서 중국 등 다른 모방형 전략 국가와의 경쟁이 어렵다. 광복 후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난관과 시련도 컸지만, 경제 발전의 측면에서는 대성공의 시기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모방에서 창조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모방국에서 창조국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개인과 기업의 창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제도, 사회제도, 경제제도, 과학기술 관련 제도 등이 혁신되어야 한다.

2010-08-17 이원영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양육한다는 것

[경인일보=]휴가 시즌이면 후원자님들과 함께 이른바 '비전트립'이라고 하는 컴패션 수혜국 현지 방문여행을 떠난다. 올해에도 7~8월 두 달 동안만 벌써 세 번을 다녀왔다. 컴패션 비전트립은 수혜국 현지를 직접 찾아가 컴패션(compassion)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하고, 매달 후원금으로 돕는 어린이들에게 후원자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는 기회다.얼마 전 후원자들과 함께 태국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다. 태국에는 북부 국경쪽 난민문제와 방콕과 대도시의 도시 빈민문제가 있다. 그리고 어딜 가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한 성적 학대 문제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컴패션의 한 어린이센터에서는 1998년부터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학대받은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기본적인 어린이 양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한편 학대받은 어린이들을 돌보고 경찰과 학교, 지역 기관과 연계하여 주민들에게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전하고 있었다. 친엄마에게 다리미로 팔과 다리를 화상 입은 소년, 한 집안에서 세 명의 직계가족인 남성들에게 성 학대를 당한 8살 여자 아이, 엄마가 매춘을 시킨 16세 소녀 등 200여명의 어린이들이 등록되어 있었고, 지난 10년동안 쉼터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학대를 당한 89명의 어린이가 현재 이 곳에 있거나 다녀갔다. 마침 하교시간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헐렁한 교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신기한듯 까르르 웃고 간다. 도무지 학대를 당한 것 같지 않은 밝은 얼굴이다. 그 중에는 할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8살 여자 아이도 끼어 있다. 얼마 전까지는 어른들 곁에는 오지도 못했다던 이 어린이가 지금은 낯선 우리들에게 미소를 보여 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자신을 후원하는 한국인 후원자에게 안부를 전해달라 부탁까지 한다. 무엇이 이 아이의 상처를 아물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컴패션이었다. Compassion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연민이나 동정심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나눔의 현장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컴패션의 의미는 확실히 직접적이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받아야했던 심정적 고통까지도 공감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으로 아이를 보듬었더니,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한 것이다.지속적인 관심을 쏟게 돼 있는 '양육'은, 사람을 살린다. 이것이 컴패션이 구호나 지역사회 개발이 아닌 양육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사람을 양육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고, 그 기간만큼 돈도 따박따박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양육이 아니고서야 그 끈질긴 가난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어릴 적 받은 상처는 폭력과 낙담, 정신적 나약함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가난은 아이들의 육체만 나약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병들게 한다. 컴패션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입히고 먹이지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모든 어린이들이 감사해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어린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기 위한 가장 큰 도구이다. 그럼에도 가정방문에서 어린이가 받는 혜택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그 부모다. 어린이들은 혜택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손길과 정성에 끌려 센터에 나온다. 그래서 당장 보여지는 성과도 없고 지칠 때도 있다. 어린이 스스로 낙오되거나 눈앞의 현실때문에 교육을 포기하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칠 때도 있다. 그럴 때의 낙심천만한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태국에서 만난 어린이가 보여준 환한 미소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 동안의 낙담과 수고를 잊을 수 있는 큰 선물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께, '당신안의 컴패션이 이미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꼭 알려드리고 싶다.

2010-08-10 서정인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경인일보=]요즘 각 대학 입학처에서는 2011학년도 대입 모집요강을 확정해 발표하였다. 주목할 것은 지난해에 비해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란 대학이 학생의 성적,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먼저 이 제도는 대학이 주체가 되어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학교의 특성이나 설립 목적에 맞는 학생 선발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을 지양하기 때문에 보다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학생 측면에서는 적성과 소질 위주로 대학 및 학과를 선택하는 폭이 늘어나게 된다. 이밖에도 소외 계층 학생의 대학 진학 기회가 확대되고, 명문대 입학 선호에 따른 과열 경쟁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입학사정관제도의 장점은 학교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생 활동이 활성화되어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사교육이 지양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기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 대학 측에는 평가기준의 객관화와 공정화 등이 요구되며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지원할 학과의 전공에 적합한 창의성을 배양해야 할 과제가 주어진다. 아울러 우리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경감될 것이다. 혹자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사교육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는 소위 '있는 자식'들에게 대학 가기 유리한 제도라고 본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적 장치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발표가 되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창의·인성교육 혁신방안'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부에 의하면 2011년부터 교과별 학습내용을 20% 이상 감축하고, 교과 학습에서는 창의·인성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비교과에서 초·중학교는 주당 3시간, 고교는 주당 4시간 실시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영역별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학생, 학급, 학년, 학교 및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게 학교에서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초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학생의 기초생활습관 형성, 공동체 의식의 함양, 개성과 소질의 발현에 중점을 둔다. 중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의 확립, 자신의 진로에 대한 탐구, 자아의 발견과 확립에 중점을 둔다. 고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학습자의 다양한 욕구를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진로를 선택하여 자아실현에 힘쓰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이런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을 학교 현장에 착근시키기 위해서 교육부는 2010년 8월말까지 창의적 체험활동에 활용 가능한 지역의 모든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록하여 종합적으로 DB화하고 포털기능을 수행하는 창의체험자원지도(CRM)를 작성·보급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일선 학교가 창의적 체험활동의 실질적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장비 및 시설, 인적자원 및 자연자원 등을 학교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기부 운동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창의적 체험활동 과정과 결과들이 입학사정관제에 반영된다면 분명 한국의 공교육은 희망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새로운 제도에는 찬반의 시끄러움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창의인성 교육과정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는등 뜨거운 화제임은 분명하다. 늘 교육은 희망을 약속하고 이상을 말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는 분명히 학생과 학부모들이 행복하고 교사와 학교가 행복한 이상적인 제도이다. 이 이상을 위해서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활발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이제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은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분명 의무의 문제이다.

2010-08-03 김영순

나를 알아주는 세상이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경인일보=]어려서 곧잘 '괴도 뤼팡'과 '셜록 홈즈'를 견주었었다. 최고의 도둑과 최고의 탐정, 누가 더 매력적인가? 물론 도덕적으로야 탐정이 좋고 경찰이 훌륭하지만 멋진 도둑, 불의에 맞서는 의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없는 기층민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때문에 로빈후드, 임꺽정, 홍길동 등 허다한 의적들은 지금도 끝없이 대중의 상상력 안에서 변주되고 있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도를 넘어 독자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적의 이야기는 작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게 마련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해조, 홍명희, 박태원, 김사량 같은 최고의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작품은 '수호전'이었다. 구한말 애국계몽기 최고의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는 '한씨보응록'과 '홍장군전'이란 소설에서 '수호전'의 에피소드를 응용하였고 조선의 3대 천재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홍명희는 그의 불후의 명작 '임꺽정전' 첫머리에 '수호전'을 일컬어 '일백단팔마왕이 묻힌 복마전을 어림없이 파젖히는 엄청난 재주'라 평가하면서 자신에게는 그 같은 재주는 없다고 겸사했지만 곳곳에 '수호전'의 흔적을 남겼다. 박태원은 '삼국지'와 함께 '수호전'을 새로이 번역하였고 일제말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인을 능가하는 일본어쓰기로 일본 굴지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김사량은 '수호전'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언급하더니 마치 갈 곳 없는 호한들이 양산박으로 향하듯이 급기야 일본의 감시를 뚫고 탈출하여 항일 근거지 태항산으로 입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적으로 상상하는 정의와 희망이 성취되기는 어려웠다. 이는 동서양 구분이 없었으니 쉴러의 희곡 '군도'에서 칼(Karl)이 결국은 자기 정의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이율배반에 처했던 것과 같이 '수호전'의 송강 또한 대의를 지킬 수 없는 세상을 버리고 양산박으로 피난하여 오히려 충의를 이루기 위해 황제의 진정한 초무를 기대했지만 결국 좌절하여 피붙이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의형제들과 자결하고 만다. 호풍환우조차 자유로운 호한들의 세계에서도 제도권의 높은 벽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달리 살피면 단순히 도적들조차 수호코자 애쓰는 의리와 충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호전'을 음미하다보면 호걸들의 활약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 깊은 욕망'이다. 108명의 의형제 중 으뜸인 송강은 의리 굳고 어질지만 이렇다 할 재주도 없어 공손승의 신이한 법력이나 오용의 지략, 이규·무송·노지심의 용력, 신행태보 대종의 속도 등 빛나는 여타의 캐릭터와 비교하면 다소 밋밋하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마다 그 인품에 감복하지 않는 이 없고 가뭄에 '때 맞춰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급시우(及時雨)라 높이 일컬으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것보다 더 먼 고을, 지나는 사람을 약탈하고 목숨을 빼앗는 흉악한 도적들조차 혼잣말로 하는 '송강' 소리만 들어도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도대체 이 같은 존경은 무엇일까? 크지 않은 체구에 얼굴조차 검어서 '흑송강'이란 별칭이 있으니 용모가 눈에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신분은 '압사'라니 지방 하급관리 서리로서 평생 한동네를 떠날 필요 없는 아전이다. 재산은 넉넉하다지만 엄청난 부호가 비일비재한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그다지 유표할 정도도 아니다. 그럼에도 온 나라에 꼭 필요한 인물로 이름 높으니 생각해보면 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꿈이 아닐까? 특별히 대단한 경력, 이력이 아니어도 이름만 듣고도 나를 알아주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수호전'에 열광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꿈은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지나는 노파의 곤경을 넘겨버리지 못하여 은전을 쥐어주는 아전,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호한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는 아전, 약속을 지키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며 도리와 덕으로 사람을 대하는 아전이면 백성들이 원하는 바로 족했던 것이다. 결국 평범하지만 인간을 아끼는 인간을 서로 알아보는 세상이야말로 '수호의 세계'의 핵심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또한 그리 멀지 않으니 송강 같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지방관리, 아니 인간을 꿈꾸어 볼 일이다.

2010-07-27 윤진현

'광화문' 이 좋다

[경인일보=]광화문에는 '광화문'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초등학생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광화문'이었다. 신기했다. 집에 걸린 문패를 비롯해서 가게나 회사 간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한자를 쓰던 시절이었다. 그 한자 때문에 심부름을 다니는 것도 두려웠었다. '永華商社' 코앞에서 "아저씨, 이 근처에 영화상사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가 창피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런 시절이었기에 '광화문'이란 한글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 보면 남대문에 걸린 '崇禮門'이라는 현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일, '興仁之門'을 보고 '동대문'을 왜 넉 자로 썼을까 궁금해 했던 일 등이 모두 한자에서 비롯한 사건들이었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니 한자 현판을 달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도처에 널려있는 한자 표기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중국에 의존해야만 했던 글자 더부살이의 역사를 말해준다.광화문의 현판이 '光化門'이었던 것 역시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던 궁박한 시절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했다. 세종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어린 백성도 하고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 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가 되어서야 이룬 문자 독립이고 자립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광화문은 '光化門'이었다.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걸린 것은 1968년이었다. 한자 현판을 떼고 한글 현판을 단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었지만, 한글을 중시한 위정자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한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글을 소통의 바탕으로 삼은 대한민국 호의 출항이었다. 한글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자 나어린 꼬맹이들도 자신 있게 '광화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한글 상용으로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소통도 한층 원활해졌다.그런데 몇 년 전 광화문 복원 이야기가 나오고, 현판 글씨가 박정희 친필이라는 사실에 대한 논란이 일더니 새 현판에 한자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세기 말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걸었던 무관 임태영의 글씨를, 광화문이 찍힌 옛날 사진이 흐릿해서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1900년대 유리 원판을 바탕으로 어렵사리 복원했다고 한다. 일본까지 갔다 왔다니 '수고했소'라는 인사를 해야 마땅하겠지만 왠지 괜한 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문화재 복원의 원칙은 원형 그대로일 것이다. 옛 것 그대로, 조상의 숨결이 밴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본모습 그대로일 때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정조때 사용한 설계도인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광화문 현판만큼은 다르다. 한글은 우리 고유의 문자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한자나 영어 알파벳 같은 외국 글자도 활용하지만 한글이 그 모든 수단에 우선한다. 당연히 새롭게 복원한 광화문의 현판은 '光化門'도 'Gwanghwamun'도 아닌 '광화문'이어야 한다.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는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다. 박정희 친필이 문제였다면 다른 글씨체를 쓰면 된다.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찾는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도 광화문을 찾는다. '광화문'을 바라보며 한글의 나라 대한민국을 느끼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화문은 '광화문'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한글의 나라이고 한글은 대한민국의 표상이다.

2010-07-20 정재환

日 '하류사회' 韓 '청년실업'은 이웃사촌 ?

[경인일보=]2005년에 미우라 이츠시가 일본에 '하류사회'를 출판한 이후로, '하류'는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 특히 일본 젊은층의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다. 미우라는 '하류'의 의미를 단순히 소득이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일할 의욕, 배울 의욕 등 삶에 대한 의욕이 총체적으로 낮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일본 젊은이는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일본 하류의 주류는 프리터(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또는 취업을 희망하는 무직자)와 니트(학교에도 가지 않고 구직하지 않는 무직 젊은이)이다. 2008년 일본 정부의 통계에서 이러한 젊은이가 170만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니 하류라는 용어가 회자될 만하다.이러한 분위기가 국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얼마 전 4학년생에게 취업을 추천하였더니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집 근처 호프집에서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나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 있어, 우리 젊은이에게도 하류화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잠시 해 본 적이 있다.우리 주변에 대학 졸업 후 집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가 꽤 많다. 주위에서 취업을 부탁하는 연락을 부모님에게 자주 받는다. 정작 취업을 알선하면 젊은이들은 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으며, 월급이 적거나, 주말이 보장이 안 되거나, 힘이 들거나 등의 이유로 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급 많고, 쉴 거 다 쉬고, 편안한 직장이 있으면 대학을 그만두고 당장 내가 취업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지만, 부모님에게도 섭섭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모르면 부모가 나서서 설득하여 진정한 삶의 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다시 과잉보호로 돌아가 버리니 안타까운 일이다.이러한 문제는 요즘 젊은이나 부모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전 국민의 대학생화를 만들어 버린 교육제도, 대기업의 해외 생산시설 이전 등으로 신규 고용이 줄어드는 변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등 수많은 문제점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이의 의식구조이다. 대학에 입학하면 집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서구의 젊은이에 비해 우리 젊은이는 너무 나약하다. 일본의 하류 사회의 젊은이가 되지 않으려면 남의 탓을 하지 말고 현실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부모의 과보호에서 뛰쳐나와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세상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취업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어 첫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후에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부모님도 자식이 귀할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여 커갈 수 있도록 과잉보호를 자제해야 한다. 우리 자식들을 프리터나 니트로 만들 수는 없다.정부나 지자체도 말로만 몇백만 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실행 정책이 필요하다. 대학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 고졸 졸업생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많아지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고학력 청년실업을 양산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학도 더욱 적극적인 산·학 연계에 의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일본의 하류사회와 같이 되지 않기 위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각 분야에서 고학력 청년실업이 일본의 하류사회로 진전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에서도 여러 부처가 대응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도 중앙정부에서 대책이 나오면 연계한 정책이 수립되고, 예산이 배정되어 실행되어야 한다. 실행 결과를 검토하여 미비한 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대학 및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고학력 청년실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대학 졸업생과 관련 부모님들도 취업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의 하류사회가 한국 내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전 국민이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2010-07-13 현동훈

다수결이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경인일보=]10명이 사는 공동체를 상정해보자. 그리고 다수결에 의하여 공동체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 공동체에서 발생할 법한 이런 경우를 생각하여 보자. 10명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농사짓고 수확한 곡물로 먹고 지내왔는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서 보니 9명은 곡물들이 모두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지만 1명은 다음 수확기까지 먹을 식량을 저장해두었다. 그래서 열린 공동체 회의에서 1명은 자신이 저장해 놓은 것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9명은 그 1명이 저장한 것을 10등분하여 이 고비를 넘기자는 쪽에 찬성하는 바람에 자신이 배고파하면서 아껴두었던 곡물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그 1명은 자신이 굳이 아껴두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저장한 곡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이번에는 곡물을 저장하지 아니하였고, 다시 봄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곡물을 나누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공동체 회의가 열렸지만 다른 9명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곡물을 나누어받지 못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다수결 원칙이 발생시킬 수 있는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배를 타고 가다가 거친 파도가 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다수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선장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타당한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원래 원양어선의 선장이었던 분인데, 자서전에는 '배를 타고 가다가 파도가 거세게 치면 선원들은 파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장의 얼굴을 본다. 선장이 흔들리면 선원들도 동요하여 결국 그 파도를 헤치고 나올 수 없지만 선장이 침착하게 대처하면 그 난국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축구 경기할 때 전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한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다수결은 그 자체로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왜 많은 경우 우리는 다수결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그것은 사회 구성원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선장과 축구감독의 경우에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결정하여도 별 문제 없이 그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신뢰라는 것은 단순한 인기와는 다르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쓴 칼럼에서 사람들의 기본적인 행동 동기는 자신의 생존 본능이라고 하였는데, 신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생존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생길 수 있지만 인기라는 것은 이와 전혀 관계가 없다. 진정한 신뢰는 현재에 대한 정확한 파악 및 이를 토대로 한 공동체 미래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그런 신뢰 위에서 그 공동체의 발전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인기는 단순히 현재를 위로해줄 뿐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요즘 답답한 점은 주위를 둘러보아도 진정한 신뢰를 줄만한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결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보다 다수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자극적인 말들만 난무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가장 앞에서 이끌어가면서 미래를 설계하여야 할 정치인들 속에서 신뢰할만한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1만큼 유리하고 국가에 10만큼 불리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하고, 자신에게 1만큼 불리하고 국가에 10만큼 유리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뽑는 정치인들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서 불안해하여야 할까.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누가 당선되면 그곳을 떠나겠다는 말까지 하는 것도 들었지만 거친 파도 속에도 정말 그 결정을 신뢰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2010-07-06 강태순

시장답게… 공무원답게… 시민답게…

[경인일보=]경상 북부지역에 널리 전해지는 설화에 어리고 지혜로운 원님 고창영에 대한 시리즈가 있다. 시중에는 '지혜로운 꼬마원님'이란 어린이용 동화로 각색되어 출판된 판이 여럿 있다. 이야기인즉 고창영은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고을 원이 되어 부임한다. 그러나 원님이 어리다고 깔보고 놀리는 고을 아전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곤란을 겪는다. 이에 고창영은 어느날 수수밭을 지나가다 짐짓 어리석은 체하고 아전들에게 묻는다. "저기 저 나무는 몇 년이나 자랐기에 저리도 키가 큰가?" 아전들은 비웃으며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한해살이 곡식 수수라고 알려준다. 원님은 수숫대를 꺾어오게 하여 아전들에게 소매 속에 넣어보라고 명령했고 아전들이 쩔쩔매며 용서를 빌자, "한 해 자란 수숫대도 소매 속에 넣지 못하면서 열 세 해나 자란 나를 얕보고 놀리려 드느냐!"고 호령한다.어른보다 지혜로운 어린이는 근대에 들어와 '어린이'를 단순히 어른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던 전근대적 인식을 넘어 어린이 시기가 지닌 사회적 중요성과 이 시기의 교육 등이 특별히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성격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요갈등을 구성하는 어른과 어린이를 강자와 약자로 놓고 보면 강자보다 지혜로운 약자의 이야기는 임금보다 지혜로운 광대, 현자보다 더 현명한 바보의 이야기로 변주되며 늘 권력을 해석하는 민중적 시선 안에서 살아 움직여왔다. 전통적으로 지방의 아전들은 중앙에서 임명된 고을 원들이 바뀌어도 그대로 직책을 유지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는 각 고을의 시속에 밝은 아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으니 이들은 지방행정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나 세력 간의 알력은 있기 마련이니 지방의 하급 관리와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 관리의 갈등이 정도를 넘어서는 일도 적지 않았고 지방실정에 어두운 중앙관리를 놀리고 얕보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심지어 고을 원의 눈을 피해 한술 더 떠 백성들의 재산을 우려내는 일조차 없지 않았으니 이상의 설화는 바로 그 흔적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하며 목민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지방관리들이 범처럼 싸우는 동안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져 갔다는 것일 터이다. 요즘으로 환치해서 생각해보면 새로 당선된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의 관계쯤 되겠다. 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자체장의 다짐이 가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맹세를 하고 공무원이 된 이들의 본심도 역시 진짜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국민을 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니 하나 더하기 하나가 늘 둘은 아닌가보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자체장이니 공무원이니 하는 존재들이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그들도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출근하는 인천시민의 일원일 뿐이다. 그들의 이해가 일반 시민의 이해와 다를 리 없는데도 어쩐지 공유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 권력이 시민에게서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망각의 근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을 위하여'라는 봉사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서로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렇지만 살림하는 주부를 보자. 가족을 위하여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어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한다. 노동하는 가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먹여살릴 가족이 없어도 일은 해야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사는 것이고 여기에 더 나은 삶을 위한 '위하여'가 보태지는 것이다. '위하여'를 핑계로 서로를 해칠 바엔 차라리 위하지 말고 각기 본분만을 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제 곧 민선 5기가 시작된다. 빚만 인수했다는 인천시정부 인수위의 평가가 들리는 형편이고 보면 희망찬 축복의 말보다는 우려의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빚잔치한다고 시살림을 떠엎을 수도 없으니 벌여놓은 엄청난 공사판들을 어쨌든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주어진 일은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먼 데 있는 낯모르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새 시정부와 인천시 공무원과 인천시민 모두의 일이다.

2010-06-29 윤진현

올바른 언어생활, 남은 건 실천이다

[경인일보=]선생님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잊히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도 '잊힌 계절'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과일이 담겨진 접시'나 '잘 닦여진 도로'는 '과일이 담긴 접시', '잘 닦인 도로'여야 한다. 잘못 사용하고 있는 피동 표현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우리말 지킴이' 체험학습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거둔 값진 성과이다.학생들은 우리가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체험 학습에 임한 것 같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우리말 지킴이와 우리말 훼방꾼을 찾아 나선 어느 날, 비빔밥 가게에 걸린 'bibigo'라는 표기가 눈에 거슬렸나 보다. 역시 비빔밥은 '비벼' 먹어야 제격이라는 지적과 함께 훼방꾼 3위를 기록했고, '세□프라자웨딩홀'이 2위, 1위는 한글이 한 자도 적혀있지 않은 'THE COF□EE B□AN'이었다.광화문 근처에서 체험 학습을 마친 학생들은 영어 간판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며 탄식했다. 그리고 마치 그 영어 간판들이 세종대왕을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지만 영어를 모르면 살기 어렵겠다는 푸념도 있었고, 영어 간판을 단 가게들을 '배신자'로 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성찰과 반성도 있었다. 난 외래어를 항상 사용했고 외래어가 쓰인 간판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니 심각한 상태다. 난 앞으로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말에서는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진다.이구동성으로 영어 남용을 지적한 학생들은 '세종온누리약국', '어른을 공경하는 종로구', '국수생각', '꼬르륵 꼬르륵' 같은 우리말을 더 많이 애용해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忠武公李舜臣將軍像'이라는 한자 표기의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이라면 초등학교 동생들도 금방 이순신 장군을 알아볼 거라는 의견이었다.어떤 학생은 학습의 딱딱함을 풀기 위해 우스갯소리를 게시하기도 했다. 가요 방송을 시청하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다. "아빠, 화면 위쪽의 LIVE가 무슨 뜻이야?" "지금 노래 부르는 가수가 살아있다는 뜻이지." 문득 옛날 얘기 한토막이 떠오른다. 서울역에 도착한 어느 시골 청년이 'SEOUL STATION'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감개무량한 듯 이렇게 말했다. "음, 드디어 서울 스타티온에 도착했군!" '타임지'가 아닌 '티메지'를 들고 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영어 남용의 문제가 아닌 영어 자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학생도 있었다. 지붕이 없는 자동차를 흔히 오픈카라고 합니다만 정확한 표현은 '컨버터블 카'입니다.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점검해주는 가게를 카센터라고 하는데 올바른 표현은 '보디 숍(body shop)'입니다. "어라, 보디 숍은 화장품 가게 아냐?" 하실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콩글리시가 많다.스폰서는 있지만 '스폰'은 없다. 없는데도 '스폰'을 한다거나 잡았다고 한다. '리어카'나 '백미러'도 그렇다. 안정효의 '가짜영어사전'에 따르면 '백' 자 들어가는 외래어가 대개 그런데 요즘 축구가 한창이니 '백 패스'와 '백 헤딩'만 예를 들어보자. '백 패스'는 공을 뒤로 돌리는 것이 아니고 '가방을 건네주는 것'이다. 축구장에서 웬 가방을? '백 헤딩'이라고 하면 머리로 상대방의 등을 들이받았다는 뜻이 된다. 하긴 요즘 축구를 보면 공보다 등이나 뒤통수를 들이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체험 학습을 통해 드러난 학생들의 의견은 외국말글 숭배하지 말고 우리말을 잘 챙기고, 꼬부랑글자 남용 말고 한글을 많이 사용하고, 어려운 말보다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을 사용하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얘기는 다 나왔다. 남은 건 실천이다.(중학생들의 체험학습 자료는 한글문화연대 누리집 참고.)

2010-06-22 정재환

중소기업정책 재점검 효율 높여라

[경인일보=]경기도의 도정을 책임질 도지사가 선정되었다. 처음으로 재선 도지사가 탄생하여 도정의 연속성을 가지게 되어 다행이지만,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변화의 바람을 어떻게 수용하느냐도 과제로 남아 있다. 경기도의 산업정책 방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여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경기도의 살림살이를 보다 더 좋게 하는 것이라고 보인다.지난 4년간 여러 가지 방면에서 경기도의 정책이 도민들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재선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정책과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는 다른 분야보다 두드러진 실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추론은 경기도와 인접한 지역의 시·도지사들의 산업 정책에 관한 공약을 살펴보면 경기도 도지사의 공약이 구체성이나 비전 제시가 다소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도 도지사의 산업정책은 수도권 규제라는 틀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피해의식도 다소 엿보인다. 수도권 관련 규제 말고도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완전히 철폐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규제 철폐 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정책도 펴내면서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도 구체성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경기도 도지사의 산업정책 공약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첨단 지식 기반 산업단지를 구상 중이고, 반도체·디스플레이·BT·NT·자동차·섬유 산업 등의 산업군에 IT를 접목하고 친환경 분야도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IT 및 과학기술 육성 정책도 지속적으로 육성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육성 정책은 다소 미흡하다. 서울시 오세훈 당선자의 IT를 바탕으로 1인 앱개발자들을 육성하여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거나, 인천시 송영길 당선자의 시장 직할 중소기업진흥 위원회를 신설하고 강소 중소기업 1천개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책과 같은 구체성이 없다.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중소기업 종합 지원센터를 만들어 중소기업 지원을 잘 해오고 있지만, 최근 들어 경기도 중소기업 종합 지원센터에 대한 경기도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존재감은 많이 떨어져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이 중소기업 종합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기관들이 신설되거나 다른 기관으로 분산되어 실행되고 있어 경기도 중소기업 종합 지원센터의 종합지원이라는 용어가 무색하다. 인천의 경우 시장 직속으로 중소기업 진흥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보면 다른 지역에서 중소기업 정책과 1인 창조기업 정책을 산업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이나 관련 기관을 신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정책이나 관련 기관을 좀 더 활성화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새로운 지자체장이 선출되면 새로운 정책 발굴 및 실적에만 급급하여 기존 좋은 정책과 관련기관을 무시하고 또 다른 정책과 기관을 신설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도 그러한 부분이 없는지 그동안의 중소기업 정책과 관련 기관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기능이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지, 기관들이 너무 세부적으로 분산되어 중소기업이 접근하기가 오히려 불편해진 것은 아닌지, 지자체와의 연계성은 있는지, 도내 중소기업들의 만족도는 어떤지 종합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부처별 담당 과를 위한 중소기업 정책이 아닌 중소기업이 이용하기 편리한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경기도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효율을 올리려면 경기도 중소기업 정책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 담당 과별로 중소기업 지원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을 조정, 통합, 보완 등을 통해 수요자인 중소기업에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도지사가 직접 영세 중소기업을 가능한 한 많이 방문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반영하는 방안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제 경기도의 중소기업은 도지사의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겉치레가 아닌 진정성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2010-06-15 현동훈

중국보다 한 발 앞서기

[경인일보=]지구본을 가지고 하는 이런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장학사가 초등학교에 가서 지구본에 있는 지구가 왜 옆으로 기울어 있는지 질문하자 처음에 초등학생은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담임선생은 '제가 올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학교 교장은 '원래 중국산은 다 그래요'라고 답하였다는 우스갯소리.그런데 필자가 학창시절 때 들었던 똑같은 우스갯소리의 교장 답변은 '원래 국산은 다 그래요'였다. 그랬던 것이 우리나라 공산품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중국산으로 바뀐 것이다. 공산품뿐 아니라 농산품이나 심지어 한약재도 그 품질이 좋지 않으면 중국산 아닌가 한 마디쯤 하는 것이 요즘 현상이기도 하다.이렇게 중국산을 우습게 여겼던 것은 아마도 이전에는 없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중국에 공산국가가 세워지고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경제발전에 뒤처지는 동안 우리나라는 고속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그런데 중국에 여러 번 갔다 온 기업가의 견해에 의하면 중국산이라고 무시하는 시절이 곧 끝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이 지난 2008년 올림픽과 지금 진행되고 있는 2010 상하이 엑스포를 거치고 나면 옛날처럼 우리나라를 모든 면에서 앞서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지금까지는 중국이 생산기반을 확충하기 위하여 전 세계로부터 기업을 유치하고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 덕을 많이 보았지만 중국의 생산기반 확충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전 세계로 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품질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지니지 못한 분야는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제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그 기업가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자신은 중국에 가서 중국 젊은이들이 하는 발마사지를 받고 왔지만 다음 세대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중국에 가서 2등 시민으로 살면서 중국 사람들의 발을 마사지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이라도 우리나라 경쟁력을 확고한 우위에 올려서 계속 중국에 한 발 앞서 가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노조를 중국에 수출하면 시간은 좀 더 벌 수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중국 대륙이 통일되어 흥하게 되면, 항상 우리나라가 핍박받아 왔던 역사를 생각하여 보면, 이런 말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32권으로 번역되어 나온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보면 임진왜란의 당사자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아니었고, 결국 강화조약도 명나라와 일본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는 단지 전쟁터였던 것뿐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우리나라가 입으면서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에 다시 피해를 입었다.조선 말기에 청나라와 일본제국에 온갖 수모를 당한 것을 생각하여 보면 현재 우리나라 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여행하면서 중국 사람들을 무시한 것이 뉴스거리로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이다.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이런 시절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경쟁력 있는 의사나 기술자 같은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떠나더라도 삶의 질에 커다란 변화가 없지만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자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법률가나 공무원들 특히 정치인들은 다른 나라에 가면 막노동밖에 할 것이 없어 결국 떠나는 결정을 하기 어렵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패자들만의 이전투구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였다.처음처럼 찾아온 우리나라의 부흥기를 지속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기필코 완수해야 하는 의무이며, 그 의무감이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의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져 있기를 희망해본다.

2010-06-08 강태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후보에 한 표

[경인일보=]대한민국 선거사에 전설적인 악명을 떨치고 있는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요새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특급 엽기 그 자체였다. 투표와 개표 과정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기술이 동원되었으니 '3인조 투표', '9인조 투표' 등이 투표 과정을 통제했고 '올빼미 개표', '샌드위치 개표', '닭죽개표' 따위가 개표 과정에서 저질러진 부정이었다. 단어만으로는 뭔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3인조, 9인조라 함은 국민들이 투표에 미숙하다고 셋씩, 아홉씩 조를 이뤄 투표를 하도록, 예를 들면 "자아, 여기에 찍으면 됩니다"하는 방식으로 특정 후보를 찍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밀없는 투표를 하도록 하고도 모자라 그 다음에 개표에서 표를 바꿔치는 부정을 또한 저질렀으니 '올빼미 개표'란 개표소가 갑자기 정전이 되는 것이니 전등이 켜지면 투표용지가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샌드위치 개표'란 같은 지지표끼리 묶어두는 관행을 이용한 것이니 샌드위치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겉은 부정 당사자의 지지표요, 속은 경쟁 후보의 지지표로 구성된 경우를 말하였다. 진짜 엽기는 '닭죽 개표'인데 개표 참관인에게 수면제를 먹여 닭처럼 졸게 만든 후, 투표용지를 바꿔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소위 '자유당때' 이야기다. 그러나 이후 부정선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욱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선출직이던 지자체장을 임명직으로 바꾸었고 공무원이 나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했으며, 개별 선거구마다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아 으레 한 명은 집권 여당이 선출되도록 하였다. 직접선거를 폐지하고 간접선거제로 바꾸어, 아무런 반대나 이의 제기 없이, 선출이 아니라 옹립이나 추대라고밖에 표현될 수 없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놓고 부정을 저지르는 방식은 고작 10년밖에 버틸 수 없었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이 방식으로는 20년을 넘겼다. 이제 대한민국에 이 같은 엽기선거는 없다. 그렇다고 그 어떤 부정도 없이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규모 주류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내용이나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선관위의 고리타분한 운영도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이는 부차적이다. 최근들어 대한민국 모든 선거의 최대 키워드는 '경제'이다. 신도시를 세운다, 재개발을 한다와 같은 투기성·선심성 공약이 선거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7년 국회의원 선거였다고 한다. 공무원을 앞장세워 어디에 공장을 지어주겠다, 어디에 다리를 놓아준다와 같은 시정 현안을 독점하여 지역을 차별하고 집권 여당의 지지를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구사했던 것이다.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란 말도 있으니 어쨌거나 물질적인 풍요가 안정적인 삶의 기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자가 되면 무조건 행복한가? 비싸고 좋은 옷, 차, 집 따위가 있으면 확실히 행복이 보장되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화려한 외양을 중시하는 문화의 이면에는 초라하면 무시당한다는 공포가 잠재되어 있다. 결국 2010년 현재 한국인의 공포는 물질적 차별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현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반인권적 풍토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다스림(治)이란 본래 군림하는 것이 아니었다. 치산(治山), 치수(治水)란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스림이란 조화와 안정을 전제하는 단어였다. 그렇기에 정치라는 것은 사람과 더불어 산과 물, 자연까지 포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먹을 밥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면 무료 급식소라도 서둘러 세워야 할 것이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어 당당하게 살 수 없다면 시민교육이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러운 거리와 하천이 문제여서 건강과 행복을 해치고 있다면 청소와 정리가 급한 일이고 사람들이 함께할 공간이 없다면 운동장을 세우고 건물을 짓는 것이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물질적 차별에서 시작된 인간적 불안을 해소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회, 우리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오늘은 지방선거날이다. 후보들의 약속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놓은 것인지 곰곰 따져봐야 할 일이다.

2010-06-01 윤진현

한글박물관을 아십니까?

[경인일보=]아침부터 창밖이 시끄럽다. 5월 20일, 지방선거운동이 시작된 때문이다. 6월 1일까지는 후보의 이름을 알리는 소리, 노래 소리, 박수 소리가 요란할 것이다. 4대강 사업 지속과 중단, 세종시 수정과 원안 고수, 무상급식과 교육복지 실현 등등 주요 쟁점과 지역 현안을 둘러싸고 각각의 후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시·도지사에서 교육감과 교육의원에 이르기까지 1인 8표를 행사해야 하는 만큼 각각의 후보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간 이름도 모르는 후보에게 도장을 찍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민군합동조사단이 증거로 제시한 어뢰 파편에는 '1번'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1번'은 러시아나 중국산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1'은 세계 공용이지만 '번'은 북한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번'을 쓰지만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가 대한민국제일 수는 없다. 5월 24일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남북교류 전면 중단과 북의 무력 침범 시 자위권 발동을 선언했으며, 북한의 공식 사과와 천안함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5월 22일, 문화방송의 박혜진 아나운서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물리학자와 결혼했다. 박혜진 아나운서는 오랫동안 9시 뉴스데스크를 진행했고 최근 종영된 '성공의 비밀'을 진행했다. 같은 날, 배우 이범수는 14살 연하의 국제회의 통역사와 결혼했다. 이범수가 가수 비의 영어 선생님으로도 유명한 신부 이윤진을 만난 것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단다. 배움의 길은 고되지만 열매는 달다.5월 24일 저녁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월드컵 평가전 한일전에서 박지성은 전반 시작하자마자 강력한 슈팅으로 첫 골을 터뜨렸다. 순간 6만의 울트라닛폰은 침묵했으며 불과 3천밖에 되지 않는 붉은 악마의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이날 대표팀은 일본에 2-0으로 낙승하였고 국민들은 열광했으며 월드컵 본선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고조되었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 누군가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누리꾼들은 윤종신, 전미라 부부가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 노홍철이 살빼기에 성공해서 완벽한 복근을 공개한 것, 배우 하지원이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시사회에서 늘씬한 각선미를 선보인 것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태국의 비상사태, 인도 여객기 추락 사고 등과 같은 외신과 더불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 노무현 대통령 1주기에 관한 기사들도 신문과 인터넷 지면을 크게 장식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지난 5월 19일 오후 2시,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는 한글박물관 자문회의가 열렸다. 한글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문화부 관계자와 자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문위원들이 모여 한글박물관을 잘 짓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은 어떤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한글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라도 한글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고맙긴 하지만 한글박물관은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과 지혜와 뜨거운 사랑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한글박물관 건립에 대해 찬반으로 다툴 일은 없겠지만 박물관의 모습과 내용에 대해서는 온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우선 한글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한다. 한글박물관에 대한 기사가 자주 언론에 보도되어야 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를 다뤄야 하며, '진품명품'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한글의 재발견' 같은 순서를 마련해 한글박물관에 전시될 값진 유물을 발굴하는 데 한몫해 주어야 한다. 한글박물관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2010-05-26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