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시간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연말연시 되면 성과 달성했는지대차대조표가 삶 성찰 대신한다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고밤낮없이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자본의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가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새해에는 누구나 새해 계획을 세운다. 자연의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그런 시간의 마디를 끊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절기와 주기가 있다. '시간 앞에 선 존재'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시간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란 뜻이고, 시간이라는 자기의식을 갖는 존재란 뜻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간만이 시간을 의식하며 시간 속에서 산다. 시간적 존재란 말의 의미는 곧 성찰적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고, 지난 겨울을 생각해보면서 올 해 겨울을 비축한다. 앞날을 계획할 때 항상 우리는 지나온 길을 좌표로 삼는다. 지나온 시간 속에 쌓여있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반성하고 정리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과거'라는 시간이었다. 과거는 축적된 시간이며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과거라는 시간성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혁신'에 의해서다. 혁신(innovation)이란 말은 '새로움 속으로(into-novus)',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말이다.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은 늘 '창조적 파괴'이며 '파괴적 혁신'이다. 혁신에서 중요한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새로운 것은 오직 미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움직이라는 요구는 시간의 준거점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과거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단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대신 미래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보고가 되었고, 누가 더 빨리 그 미래에 도달할 것이냐에 대한 경쟁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가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미래는 마치 미지의 신세계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콜럼버스가 찾고자 했던 인도처럼. 15세기의 해상무역단이 찾고자 했던 신대륙이 자원의 보고, 금과 은이 쏟아지는 땅으로 여겨졌듯이 오늘날 '미래'라는 신대륙도 그러하다. 미래는 현재의 식민지다. 쌓이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시간, 미래는 끝없이 앞으로만 확장될 뿐이다.내가 어릴 적에 세웠던 방학계획표는 보통 일일계획표였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원형의 시간판 속에 일어나는 시간, 밥먹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을 그림과 함께 그려 넣었다. 밥먹는 시간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그릇을, 노는 시간에는 신나게 노는 내 모습을, 잠자는 시간에는 달님과 함께 꿈나라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이었다.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고, 제 때 밥을 먹고, 제 때 일하고, 제 때 노는 것. 진부한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간상 속에는 가장 중요한 삶의 리듬에 대한 감각이 담겨있었다. 하루의 리듬은 달의 리듬으로 해의 리듬으로 다시 반복되었다. 할머니의 하루는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농사절기와 함께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식하고 비오는 때와 눈 오는 때 해야 할 일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계획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시간 동안의 목표치를 설정한다. 미래는 읽어야할 책, 풀어야할 문제집, 벌어야할 돈, 가야할 곳, 만나야할 사람, 처리해야할 일 등등으로 가득 찬 '버킷리스트'가 되어 빈 양동이(bucket)를 채우듯이 각자의 할 일을 각자의 시간 속에 채워 넣는다. 미래로부터 역산해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의 양을 산출하고, 스스로 성과지표를 부과하고 달성해가는 것이 꿈이 되고 계획이 되었다. 마치 기업이 연간생산량과 수익률을 계획하듯이 개인도 자기의 연간생산량과 목표량을 설정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성과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대차대조표가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대신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는 인간, 밤도 낮도 없이 살아가는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 표준화된 자본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해 아침에, 시간을 잃어버린 세계를 생각한다. 어떤 시간을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8-01-02 채효정

[수요광장]치욕과 혼돈의 한해를 보내며

촛불시위 위력에 대통령 탄핵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정치권 진보·보수 떼몰이 싸움사회지도층 불·탈법·비리 오염내년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정책정권 발목 잡지 않을까 걱정뿐2017년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치욕적이며 시끄러웠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호 참사라는 여객선 전복사고로 숨진 어린 학생들의 영혼을 볼모삼아 정치적 헤게모니를 쟁탈하려는 진보세력의 끈질긴 투쟁이 계속되어 왔고, 여기에다 기름을 퍼붓듯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지면서 거침없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촛불시위의 위력 앞에 결국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폐청산이라는 가히 혁명적인 싹쓸이가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전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수갑을 찬 모습으로 재판정을 오가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간단없이 비춰지고, 역사상 초유의 정보기관 수장 4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도 이번 정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련의 검찰수사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감히 혁명군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봤자 신상에 별로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더구나 북한의 김정은은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차례에 걸친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어도 우리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 만이 해결책이라고 우기면서 미국과 일본과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한 상태를 넘어서 이제는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노미상태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보니 보수니 케케묵은 떼몰이 싸움에 여념이 없고,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집권세력의 선심성 퍼주기 예산안 통과로 내년의 나라경제가 도무지 어떻게 견뎌 나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세계열강들은 앞 다투어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우수기업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정부는 법인세율과 최저임금 인상, 복지수당 증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 나라가 어떻게 된 나라인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주요 언론들은 새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정책비판은 고사하고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으며,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노조를 앞세워 현직 임원들을 강압적으로 퇴출시키는 불법과 탈법적 행위가 판을 쳐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이를 제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나라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이 맡은 바 사명을 다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서 모든 일들이 정의롭고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는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위로는 정치지도자들이나 사회 지도층들이 저질러 온 온갖 비리와 탈법적 행위가 그렇고, 재벌기업의 소유주들이 더 많은 부를 챙기기 위해 저지른 불법과 탈선, 교육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진 비교육적 비리들이 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범죄를 방지하고 사회악을 없애야 하는 검찰과 경찰은 범죄 집단에 뒤질세라 온갖 범법행위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며, 신성한 노동운동이 일부 귀족노조의 불법적 탈선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술 취한 사람이 경관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공유지를 점거해도 마냥 떳떳해하는 나라에서 공권력의 권위와 힘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야말로 총체적 불신과 불안, 부정과 불만이라는 소위 4불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는 자국보호주의를 앞세운 미국과 일본,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경제적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는 예상외로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전해진지 오래다.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제가 불안하면 정치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민심이 동요되면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통일이나 안보도 결국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정책이나 세제개편을 비롯한 복지정책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정책들의 남발이 결국에는 정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뿐이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7-12-26 양윤재

[수요광장]한해를 마무리하며

올 연초에 세웠던 계획 중몇가지 이룬 소소한 것들이 있다그래서 정말 좋고 감사할 뿐이루지 못했다는 낙심은 사치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실망하기 보단 새 희망을 꿈꾸자2017년 한해도 이제 십 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상가마다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넘쳐나고 흥겨운 음악들도 들려오고 있다. 붉은 뺨에 연신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겐 2017년도 한해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이맘때쯤이면 다들 연 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연초에 "반드시 다이어트를 하고 말겠어. 공무원 시험 1차에 꼭 붙을 거야. 한 달에 한권 정도는 책을 읽어야지. 계절마다 한 번씩 여행을 다니겠어. 적어도 월10만 원 이상을 저축하겠어. 원하는 대학에 꼭 붙어야지" 라고 저마다 다짐했던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고,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며칠 더 남았으니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달에 한번 씩 수원 관내 여성변호사들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연말 모임에서는 자신이 읽었던 책을 가져와서 서로 소개하고 나누는 행사를 겸하고 있다. 모임 때마다 매번 공통된 화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점,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들인데 이번 12월 모임에서도 여전히 그 주제가 빠지지 않았다. 비단 여성변호사뿐이랴.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된 관심사이자 공통된 성토 대상이다. 아직 다른 말은 제대로 못하는 두 돌 지난 아들이 "엄마 힘들어?"라고 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힘들다, 힘들다"는 말을 했기에 아이가 그런 말을 할까 싶어 반성하였다는 어느 새내기 엄마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 경험이 있는 다른 변호사들은 경험에서 우러난 실감나는 충고들을 한마디씩 해준다. "가사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으니 집에 오면 화장도 지우지 말고 모든 일을 뒤로하고 아이부터 안아주고 충분히 놀아줘라." "아이들에게 못해준다는 죄책감, 죄의식 갖지 말고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당당한 엄마가 돼라" 등등. 아직 미혼인 여성 변호사들은 장래에 닥칠 운명을 감지하며 비장한 얼굴로 열심히 경청한다. 무슨 일을 겪든 지금이 인생의 힘든 지점이거나 혹은 평탄한 지점이라고 생각 될 때 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여러 사람의 셀 수 없는 은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진다. 혼자 잘나서 사법고시에 붙고, 변호사로서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친정 부모님, 든든한 남편, 힘든 순간마다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소중한 아이들, 일하는 며느리를 충분히 배려해주시는 시댁식구들, 존경스런 은사님들, 고마운 친구들,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배들,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믿음직한 직원 등등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의 수고와 인덕이 따라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울 뿐이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을 거울삼아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거나 조언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그것뿐이랴. 나를 전문가로 만들어준 지금까지 거쳐 간 수없이 많은 의뢰인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골치 아픈 사건들, 저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몇몇 상대방들, 소송의 승패에서 오는 작은 깨달음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연말에 구입한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2017년 초에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포기한지라 몇 가지 이룬 것들을 보면 대개는 정말 소소한 것들이다. 그래도 정말 좋다. 게다가 커다란 두 세 가지도 이루어졌기에 올 한해는 더 없이 감사할 뿐이다. 또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실망은 사치다. 아직 갖지 못한 것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 실망하기보다 새 희망을 꿈꾸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의 독백처럼 우리에게는 내일의 태양이 있다. 2018년 새해가 또 기다리고 있다. 한 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겸손함으로 무장하여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2-19 장미애

[수요광장]수능제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다양한 수시전형 있다지만결국 3년간 내신 성적에 근거해선발되는 전형이 주를 이뤄1년에 단한번 수능 학생에 큰 부담 최소한 상·하반기 2회 기회 주고수시편중 입시제도 빨리 바뀌어야어제 2018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수험생들에게 배부되었다. 수능 당일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맹추위가 기승을 부려 많은 수험생들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번 수능은 시험 전 날 발생한 포항지역 지진으로 인해 수능 시작 12시간을 앞두고 시험 시행이 일주일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치러졌다. 당혹감 속에서 수능을 치르고 고사장을 나선 수험생들은 대체로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능 직후 학교별로 가채점이 이루어졌고, 지난해와 비슷한 '불수능'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울러 만점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재학생은 대구의 강 모 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그러나 어제 발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최종 채점 결과를 보니, 수능 만점자는 모두 15명(재학생 7명, 졸업생 7명, 검정고시생 1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이 대체로 하락해 난이도로 볼 때는 전년보다 쉬운 시험이었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이 체감한 난이도와 실제 채점 결과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입시 전문가들은 우선 사상 최대 규모의 수능 결시자 수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실제 올해 수능 지원자 수는 59만3천527명인데 결시율이 10.5%로 무려 6만2천여 명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지난해 수능 지원자(60만5천987명)와 결시율(8.9%)을 비교해 보면 8천510명이 늘어난 셈이다.또한 평소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중하위권에서 결시자 수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상대평가인 수능에서 원점수 커트라인이 상승하고, 절대평가인 영어에서도 응시자 중 90점 이상(1등급) 비율이 전년도의 2배가 넘는 10.03%로 나타났다.아울러 수능 응시자 중 졸업생 비율이 늘고, 재학생이 감소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졸업생은 전년도 보다 0.9% 증가(2천412명)한 반면, 고3 재학생은 전년도 보다 0.9% 감소(1만4천468명)했다. 대체로 수능 성적이 중상위권에 속하는 졸업생 비중이 커진 점이 점수 상승의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한다면 앞으로 재학생들은 정시 입학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유행어처럼 되어있는 "대입에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기정사실화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201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4년제 대학은 전체 모집인원 34만9천28명의 26%인 9만772명을 모집하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1만2천373명 감소한 수치로, 2019학년도에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교육 당국은 향후 수시 전형을 더욱 확대하고 수능은 절대평가화 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는데, 과연 수시에만 의존하는 대학입시가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다양한 수시 전형이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고등학교 3년간 내신 성적에 근거해 선발되는 전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영원히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말인가?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자칫 공부하는 시기를 놓친 청소년들에게 있어 수능 시험은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1년에 단 한 번 뿐인 기회는 많은 학생들에게 커다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번 포항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상황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는 1주일 연기라는 즉흥적인 결정 밖에 할 수 없었다. 많은 수험생들이 묵묵히 1주일을 참아 냈지만 포항 지역 수험생들이나 다른 수험생들이나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년에 단 한 번인 시험에 실패하고, 내년에는 어떠한 난이도의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하에 다시 1년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너무나 가엾다. 최소한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 차례 정도 기회를 주고, 지나치게 수시 전형에 편중되어 있는 입시제도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2-12 문철수

[수요광장]올가와 메카, 그리고 인간

로봇에 의존해서 살면서도이성·몸이 없다고 학대하는 인간기계 아닌 여성·아동·빈곤층 등물음도 없이 폭력 대상될 수 있다 왜 다르고 함께 살 수 없는지?누가 질문하고 질문하지 않는가동네 중학생들과 책읽기 모임에서 '에이 아이(A.I.)'라는 영화를 보았다. 우리는 종종 SF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미래를 상상해보고 현실을 돌아보기도 한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미래학 도서들보다 이런 과학적 픽션에 근거한 작품들이 훨씬 더 깊이가 있다. 확률이 아니라 성찰에 근거한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나온 "너는 올가인가, 메카인가"라는 물음도 그런 것이다. 올가는 유기적(organic) 존재를, 메카는 기계적(mechanical) 존재를 뜻하는 줄임말이다. 한 부부가 아들을 대신할 로봇을 입양한다. '엄마'라고 부르는 인공지능과 교감하며 차츰 정이 들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데이빗'이란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하지만 냉동 중이던 진짜 아들이 완쾌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데이빗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어느 날 생일 파티에 온 아이들은 데이빗을 장난감처럼 취급하며 괴롭힌다. "넌 우리와 달라, 넌 가짜고 우리는 진짜야, 넌 메카, 난 올가라구!" 겁에 질린 데이빗은 "도와줘!"를 외치며 가짜 형제를 껴안은 채 물에 빠진다. 그 일로 데이빗은 인간 가족에게서 영영 버려진다. 진짜 인간들은 메카와 올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분선을 그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짜 인간은 질문을 한다. 어째서 난 메카고 넌 올가지? 어째서 난 가짜고 넌 진짜지? 오직 로봇만이 왜냐고 묻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다름에 대해서. 그의 질문은 왜냐고 묻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진짜 아이가 되어 함께 살 수 있느냐고.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자기에게 아무런 정보도 입력되어 있지 않은 낯선 세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계속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한다. 올가와 메카 사이에서 나는 누구냐고 묻는 그의 질문을 통해, 나는 이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묻지 않는 중요한 물음을 발견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단지 인간은 유기체고 로봇은 기계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존재'는 그런 이분법을 거부한다. 나는 왜 다르냐고 그가 질문하는 순간, 기계냐 유기체냐 라는 물성(物性)에 의한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근대 인간은 인간을 다른 종과 구분하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성적 동물'이란 동물성을 열등한 것으로 놓고 이성을 우위에 놓는 사고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 미래의 인간은 인간이라는 증거를 이성이 아니라 동물성(orga)에서 가져온다. 인공지능인 데이빗은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인간과 똑같지만, 살아있는 몸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다르다.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과 달리 그는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다. 하지만 오늘의 인간은 기계의 일부가 되었고, 기술융합적인 존재로 진화했다. 현대 인간은 모두 '기계 없는 몸'을 상상할 수 없는 메카-올가적 존재이며 기술은 생존의 조건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인가. 영화는 인간성을 저버린 인간을 보여준다. 로봇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면서도 로봇을 차별하는 인간. 그게 너무 당연해서 질문할 필요를 모르는 인간이다. 이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학대한 인간이 몸이 없다는 이유로 로봇을 학대하지 않을 리가 없다. 로봇을 학대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속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찢어 죽이고, 태워 죽이는 쇼 장면이 나온다. 그런 폭력은 기계에 대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질적 존재가 결핍된 존재로 표상될 때, 여성, 아동, 유색인, 빈곤층, 이교도, 성소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북한까지도, 얼마든지 물음이 필요 없는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왜 나는 다른가? 나는 당신과 함께 살 수는 없는가? 여기서 질문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진짜 인간'인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2-05 채효정

[수요광장]초고층아파트, 왜?

땅값 비싼 곳 개발밀도 높아많은 건축면적 확보 위해높게 짓는 건 당연한 경제 법칙고부가가치로 투자자도 몰려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한결정권 행사 관행 없어져야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의 건물 높이를 두고 주민과 시 당국이 서로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사업추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민들의 주장에 의하면 법적으로 허용된 최고 높이로 건축을 하겠다는 것이고, 시에서는 주변 환경과 경관을 고려하여 건물을 일정높이(35층)로 제한하겠다는 것을 두고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에는 주민들이 시의 주장에 승복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이 된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 아파트단지에서는 시장이 바뀌면 시의 의견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하여 잠시 사업을 연기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건물의 높이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나 내용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응징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의 노여움이었다면, 인간의 경제력과 기술의 상징으로 탄생한 마천루는 현대도시의 발전과 매력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인류역사에 있어 건물의 규모나 높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과 경제적 힘의 크기에 따라 비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피라미드나 왕궁, 중세교회의 첨탑과 돔, 성곽도시의 종탑과 망루, 산업혁명시대의 공장의 굴뚝 등이 바로 상징적, 실용적 목적에 의한 인간의 높이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철강 산업의 발달과 건축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건축물의 높이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를 시험해보는 대상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등장했던 에펠탑을 두고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난 것이 불과 130년 전인 1889년이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카고와 뉴욕을 중심으로 초고층건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소위 마천루의 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를 즈음하여 대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등장한 그림엽서에 초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즐겨 사용되었고, 지구촌의 유수한 도시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지겠다는 야심찬 경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회의 첨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높이를 24.5m 또는 길의 폭만큼 규제하는 런던법이 1888년에 만들어졌고, 건물을 경쟁적으로 높이 짓는 것이 도시의 무질서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파리의 도시계획가 오스만은 파리를 재개발하면서 건물의 높이를 5~6층으로 획일화시켰으며, 1909년의 시카고 계획에서도 건물의 높이를 통일시켜 도시경관을 가지런히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10년 만들어진 법률 때문에 워싱턴 시에서는 아직도 40m의 높이규정으로 미국의 유일한 수평도시가 되어버렸다. 1916년 뉴욕시는 최초로 건축선후퇴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길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전망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고층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건축법에서도 일조권과 관련된 건축선 후퇴규정과 마주보는 건물의 이격거리에 따라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고 있으며, 용도지구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서도 높이규제가 달라지기도 하며, 건축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건물의 높이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건물 높이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면서도 엄격하지만 이 또한 경직되게 운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리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 대부분의 유럽 중소도시들도 나름대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도시경관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건물의 일정 높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단조로운 도시경관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비판도 수용하면서 예외적인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도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마다 초고층건물의 허용에 대한 찬반 논란도 많이 있지만, 도시경관법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시형태나 도시경관의 질은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땅값이 높고 개발의 요구가 많은 곳에서는 개발밀도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정해진 토지에서 많은 건축면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높이 짓는 것이 당연한 경제의 법칙이다. 현대의 도시는 경제논리에 의해 도시발전이 가늠되는 곳이기도 하다. 개발밀도가 높은 곳이 땅값이 비싸고 임대료도 높다. 이 말은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지금도 대규모 개발의 경우 건물의 높이는 물론 개발에 따른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전근대적인 행정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도 지난 80년대에 만들어진 수도권 신도시들의 아파트가 재건축되는 날에 대비하여 서울의 예를 본보기삼아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7-11-28 양윤재

[수요광장]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포항지진으로 연기됐던 수능내일이면 진짜 시험 보는 날작은 여진없이 잘 마치길 기원모든 실력 발휘한 날로 기억되길인생·미래 결정하는 날 아니니실망 않길 바라며 '모두 파이팅!'일주일 전 포항에서 일어난 진도 5.4의 큰 지진으로 사상 처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그 날 하루를 위하여 3년을 쉼 없이 달려온 재학생이나, 더한 고생을 했을 재수생이나 삼수생들, 휴가 받아 수능을 치러 나온 군인들, 학부모들 등등 모두 수능 연기라는 큰 충격에 빠졌지만 그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들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포항의 수험생들이었을 것이다. 수능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수능을 보는 이들을 위하여 이해해주고, 감수하는 점이 많다. 그만큼 우리 국민 전부가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고, 학력고사 세대든 수능 세대든 시험을 앞둔 그 절박한 심정을 스스로 겪어보았거나, 자식들을 통해 겪어보았기 때문이리라. 영어듣기평가를 위하여 항공기 이착륙 일정을 조정하고, 출근을 늦추고, 금융시장 개장시간도 늦추는 등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져도 큰 불만 없이 당연히 양해하고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수능 날에 지각하다 겨우 입실하는 수험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감정이입이 된다. 작년에 도시락에 깜박 잊고 놔둔 엄마 핸드폰 때문에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시험도 보지 못한 어느 고3 학생의 사연을 듣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안타깝고 속상해하지 않았던가. 지진이 난 직후 긴급회의를 하고, 현장에 나가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효율"보다는 학생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시험 12시간 전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다보니 수험표나 고사장은 그대로 유지되는지, 원래 합격자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학교는 예정대로 발표하는 지 등 이런 저런 혼란이 많았다. 다행히 하루 만에 대학교별 논술, 면접 일정도 거의 일주일 순연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여행취소 수수료 등을 수험생 가족이 전부 부담해야할 상황이었지만 이를 면제해주기로 한 여행사의 훈훈한 미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사장을 재빨리 점검 진단하고 포항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최대한 안전한 장소에서 시험 볼 수 있도록 조치한 것도 다행이다. 세기말에 태어난 99년생이라서 그럴까. 학창시절에 신종플루, 세월호, 메르스, 대통령 탄핵 등 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이 유독 많아서 제대로 된 수학여행도 가보지 못했고,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고, 몇 십 년 만에 한번 온다는 금년 추석 연휴 같은 긴 휴가를 누리지도 못했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저마다 최선을 다해 컨디션을 조절하며 실력을 발휘할 그날을 생각하며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능 연기로 인해 허탈감과 실망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포털 댓글에 포항 학생들 때문에 링겔까지 맞아가며 컨디션 조절을 한 것이 허사가 됐다며 그들을 원망하고 짜증을 내는 투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후 지진 피해 동영상을 보거나 여진 소식을 듣고서는 수능을 미룬 것은 잘한 결정이라는 사연이 더 많았다. 더 나아가 지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서로가 힘들어도 우리보다 포항 애들이 몇 배는 더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해주거나 조금만 참고 다 같이 시험 잘 보자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왔다.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또래를 경쟁상대로만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공감하고 동행하고자 하는 밝은 미래를 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진짜 수능이다. 적어도 내일 만큼은 작은 규모의 여진이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포항 수험생들이 온전히 시험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포항 수험생뿐 아니라 지난 3년간 게임의 유혹, 잠과의 싸움에서 크고 작은 패배와 승리를 경험해왔던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내일 하루는 자신의 전 실력을 쏟아 부은 날로 기억되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그리고는 시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길 바란다. 수능은 통과의례 일뿐 인생이나 미래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그 누구도 이에 실망하거나 우쭐대지 않기를 바란다. 수험생 모두 파이팅./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1-21 장미애

[수요광장]대입 수능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다양한 인재 시험으로 평가하고줄 세우는 제도 개혁돼야 하지만수능 통해 대학에서 학습 가능성제대로 평가 받는 것은 필요어떠한 수시전형에서도최소한의 수능성적 반영 있어야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 응시인원은 지난해보다 1만2천460명이 감소한 59만3천527명으로 6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전체 응시자 중 재학생은 감소한 반면, 졸업생은 13만7천532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천412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대학 입시에 재도전하는 수험생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입 전형 추세를 보면, 수능 성적순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는 방식이 아닌 수시 전형의 비중이 80% 까지 확대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수시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교과전형, 특기자전형, 논술전형 등이고, 정시는 수능으로만 신입생들을 선발한다. 수시 전형은 수능 일변도의 학생 모집 방식이 아니라, 대학이 자율적으로 모집 체계를 강화할 수 있고, 일회적인 시험 결과가 아닌 장기간의 고교 생활이 녹아든 학생부 반영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부여된다는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수시의 경우 기본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수능 점수를 정해 놓은 전형도 있지만 수능 성적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 '수능최저 없는 전형'이 늘어나면서, 수능 시험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입시전문기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수능 점수와 무관하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경우가 정원의 10% 내외이며, 이는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수능 본래의 취지와 어긋나고 나아가 고등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본래 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집행·감독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수능의 목적을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으로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로 규정해 놓고 있다.즉, 수능시험이란 대학의 교육 과정, 교과 과정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이다. 당연히 대학의 입장에서는 신입생들의 수학 능력 수준을 고려하여 가장 최적화된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그들이 학문적인 성취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게 된다. 그런데 수학능력의 객관화된 지표들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됨은 물론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 양성도 어려워질 것이다.또한 수능이 필요 없는 전형이 늘어날수록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게 되어, '대학에서의 학습을 준비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결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임시적 방편 마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 다. 특히 융합적 인재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특정 분야의 장점만을 취하는 전형 방식은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들은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인재를 찾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라볼 때, 수시 전형 기준의 형평성이나 효율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례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고교 입학 전부터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스펙 쌓기를 위해 입시전문 컨설팅 학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우리 사회의 인재는 다양한 개성과 적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재들을 일괄적인 시험으로 평가하고 줄을 세우는 획일적 시험제도의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수능을 통해 대학에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고교 공교육 정상화라는 구호가 실현되기 위해 지난 12년간 공교육을 받아온 대입 수험생들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어떠한 수시 전형에서도 최소한의 수능성적 반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바로 수능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1-14 문철수

[수요광장]마트의 왕국

공동체는 없고 시스템만 있는 곳세계가 '마트'를 닮아 가는 듯모든 게 예측 가능한 질서있는사회에선 갈등도 분쟁도 없다평화롭고 안전하다 여기지만그 곳에서 정치는 사라진다'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공동생활의 기본 원칙들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정정 당당하게 행동하라, 물건을 제 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치워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땐 미안하다고 말하라, 밖에선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의지하라 등등. 그 원칙대로 유치원에서 배운 것만 실천하면서 살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에 오기 전에 이미 아이들은 사회를 배우고 오기 때문이다. 그 사회 학교는 '마트'가 아닐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놀이 삼아 자주 갔다. 마트에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나는 느리게 동선을 이동하며 손가락으로 '사과, 바나나, 귤' 같은 것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마트는 없는 것이 없는 세계였고, 세계의 모든 단어를 배울 수 있는 작은 학교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마트는 우리가 이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간섭하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세계의 학교 같은 마트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단어들이 거의 '명사'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트에서 배운 명사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였다. 동사는 빈약했다. '사다(buy)'와 '~하고 싶다' 말고는 거의 없었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사고 싶다, 사야겠다, 사지 말자 등등.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이 학교가 무서워졌다. 대형마트는 이 세계가 얼마나 풍요롭고 안전한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교과서였다. 하지만 거기엔 그 세계를 만드는 노동은 보이지 않았다. 물건은 모두 개체로만 존재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열리지만 마트의 사과는 언제나 하나의 사과로서 완전체였다. 모든 것이 그랬다. 관계를 절연한 사물과 존재로 가득 찬 세계.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부딪치지 않고 누구도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동선에 따라 각자가 각자의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곳.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산대 앞에선 줄을 서고, 계산원과는 인사도 대화도 없이 계산을 마쳤다. 문제가 생기면 고객만족센터에 가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옆 사람이 아니라 직원을 찾았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곳이지만 여기서 나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우리는 유령처럼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사물의 공간 속을 떠돌았다. 마트는 어떻게 이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 마트의 지배자는 그 공간에 들어가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트의 시스템' 그 자체다. 우리에게 줄을 서라고 가르치고, 보는 것은 자유지만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가르치고, 남의 카트에 신경 쓰지 말고 제 볼일이나 보라고 가르치는 곳. 마트의 왕국에서 우리는 시스템의 명령과 규율을 따른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가 이 '마트'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공동체는 없고 시스템만 남은 곳 말이다. 질서와 안전은 마트의 규율인데 이제 그 규율은 사회 어디서나 공통된 규약이 되었다. 심지어 촛불 광장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질서와 안전이다. 그게 왜 문제인가?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패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는 우발성과 우연성이 삭제된 사회다. 인간의 창의성과 주체성도 발현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정신은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의 경험에서 자란다. 인간은 다른 존재와 마주치고 부딪치고 섞이는 가운데 자기를 깨고 타자를 만나며 세계를 확장한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는 갈등도 분쟁도 없다. 우리는 그런 세계가 평화롭고 안전하다 여긴다. 그래서 오늘날 저 말은 이미 다음과 같이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마트에서 배웠다'로. 그러나 마트가 시민의 학교가 된 곳에서 정치는 사라진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1-07 채효정

[수요광장]역사보존과 도시개발

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가는 곳이 아니라후손들도 살아가야 하기에삶의 흔적 새겨진 곳이 역사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모습 그려보는 지혜 절실하게 요구우리는 살다보면 매우 난처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어릴 때는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물어봐서 당황스럽고, 좀 더 커서는 사랑과 우정 중에 하나를 선택받기를 강요당하기도 하며, 술자리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원자력에너지냐 대체에너지냐로 나라가 시끄럽고 각종 사안마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야 한다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모든 의사결정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시장이나 관료들은 물론 전문가들에 따라 도시의 흔적이나 역사유적 그리고 중요한 역사적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개발과 변화를 통해 도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서 개발이 지연되기도 하고 행정이 마비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라마다 도시마다 항상 겪는 일이고보면 이런 논쟁은 도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이기도 하고 도시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도시의 흔적들을 보존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보존이 개인의 이해나 공공의 필요에 따라 상충되는 경우에는 그 해법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80년대 초 일본의 역사도시 교토의 철도역 복합개발을 두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가치가 충돌한 예는 유명하다. 10년이라는 지루한 공방 끝에 1993년 드디어 개발로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역사보존과 개발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 것도 건축과 도시계획분야로서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유적이나 주요건물과 함께 도시경관에 대한 규제는 오래된 역사도시의 경우는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경우는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신축되는 건물의 높이를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을 가로막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파리의 경우 건물 하나하나마다 외관, 구조, 용도 등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되어있어 개인의 재산이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디시도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건물의 높이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건축규제를 하고 있지만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의 과도한 집착과 제도의 경직된 운용으로 현실성이 결여되거나 시행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도시에서 역사경관을 보호하고 역사유적이나 역사적 건물의 보존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무쏠리니와 히틀러는 일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혼란기를 틈타 전체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장악한 후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국민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선조들이 남긴 역사유적을 보존, 복원하여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파시즘을 선전하는데 이용하였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역사가 깊은 유럽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유적발굴과 역사보존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면서 이 분야의 발전을 선도해 나갔고, 도시와 건축분야에서도 이에 뒤처질세라 적극적으로 역사복원과 보존을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라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이후 도시역사연구가 활발해지고 역사유적보존과 복원, 주요 건축물의 보존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도시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이며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도시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발을 마치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적극 반대하는 반면, 개발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라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둬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가운데 주요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유적보존을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시행하고 있다. 도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남겨둔 흔적 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 없어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이곳이 바로 도시의 역사이다. 현대의 첨단정보통신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가 미래의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유적도 중요하고 건물의 보존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도시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는 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10-31 양윤재

[수요광장]무엇이 중요한가

일·가족·친구 다 포기할순 없지만우선순위 정하고 삶 균형 맞춰야온 국민이 일주일에 한끼 정도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먹고담소 나누며 행복 느끼길 소망적어도 밥 같이 먹어야 식구니까심리학자가 쓴 '행복의 기원'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최대 행복이라고 한다. 요즘은 혼밥, 혼술 등이 널리 퍼져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밥은 모여서 먹어야 제 맛이다. 양푼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비벼먹는 비빔밥이나, 캠핑장에서 구워먹는 삼겹살과 소시지도 그 맛 자체보다 같이 먹는 사람들이 정겨워서 더 좋은 것이다. "학교는 지각해도 밥을 굶어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지각은 해봤어도 아침식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온 가족이 아침과 저녁 거의 매번 머리를 맞대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추억이 바로 어제 일 같다. 먹을 땐 국물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엄격한 집안도 있었겠지만 우리 가족은 조잘조잘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서로 경쟁하듯 이야기하기 바빴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정치적인 이슈나 뉴스 거리가 있을 때 서로의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를 수가 있었다. 때론 새 운동화가 필요한 이유를 대면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용돈 인상을 협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 세태는 어떠한가. 애들은 애들대로 학원 가느라 바쁘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회식과 모임에 각자 바쁘다보니 온 식구가 다 모여 식사를 하는 날이 과연 일주일에 몇 번이나 될까. 심지어 애들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차안이나 길가의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급하게 도시락을 먹는 애들도 있다니 밥상머리 교육은커녕 소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것에서도 예전에 볼 수 없던 매우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담소를 나누기보다는 각자 게임이나 문자 하느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과연 같이 밥을 먹는다고 할 수 있을까. 끼니를 때울 뿐 소통이나 교감이 전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얼마 전 한 지긋한 신사분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분은 대기업 영업사원 출신인데 젊은 시절 주말도 반납하며 늘 야근을 하거나 골프 접대 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가족들과 식사나 여행도 못하고 애들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행사에도 거의 참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은퇴를 했는데 낮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식구들과 같이 있어도 공통 관심사가 없어서 그런지 가족들이 자신만 왕따를 시킨다고 이를 어쩌면 좋으냐고 묻는다. 베이비붐 세대들 중 많은 가정이 겪고 있는 고민이다. 젊을 때 일 때문에 바빠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빠는 나이가 든 후, 아이들 곁에 있고자 해도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친구나 애인 만나러 간다고 나가버린다. 타이밍이 왜 이리 안 맞을까. "뭣이 중헌디?" 라는 영화의 대사가 한때 유행했었다. 과연 우리는 왜 일을 할까,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게 맞는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등등 늘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사는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일에 너무 열심인 것도 좋지만 아이와 공 던지기를 하거나 공개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시기는 아주 잠깐뿐이다. 일, 가족, 친구 다 포기할 수 없지만 우선순위를 정하고,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할 것이다.아침을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고, 저녁까지 주는 회사면 더 좋다고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는 사실 시대와 역행하는 회사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회사가 야근해서 돈 많이 주는 회사보다 인기 있으면 좋겠다. 온 국민이 일주일에 몇 끼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담소를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적어도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니까. 또 아빠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 졸업식에 간다며 당당히 말하고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니까./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0-24 장미애

[수요광장]4차 산업혁명과 대학 교육의 변화

국가적 화두 '제4차 산업혁명'대학은 용어 집착할게 아니라학교별 특화된 목표 설정하고시대에 맞는 인재 육성 위해융합적 지식 키울수 있도록색다른 교육·사고 방식 가져야'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표현이 새 정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능정보화 사회를 기반으로 산업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용어는 클라우스 슈밥(Klasu Schwab)이 2016년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이후 국내에서 유달리 급격하게 확산되었는데, 이 표현 자체는 이미 20세기 초반에도 언급된 바 있고 학자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개념의 혼돈에 따른 방향성 논쟁은 이미 지난 대선 기간에 나타났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가 우리나라 산업 육성의 지향점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들고 나오면서 누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인지에 대한 주요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또한 관료들이나 전문가들 역시 개념이 소개되었던 초기와 달리 그 방향성과 한국사회의 적용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그래서 현재는 무엇이 제4차 산업혁명인지에 대한 논쟁보다는 세계적인 산업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기계화, 산업화, 정보화의 3단계 산업혁명 이후 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이나 빅 데이터 기술로 인해 추동되면서 국가 시스템이나 산업, 사회 및 삶의 영역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기회 요인과 위협 요인을 두루 갖고 있다고 보이는데, 기회라고 하면 우수한 ICT 기반, 인적 자원의 높은 교육 수준, 제조업 경쟁력 등을 들 수 있겠고, 위협이라고 하면 첨단 지능기술 수준이 낮고 이에 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하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위협 요인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 과제로서 중요한 지향점으로 설정되었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핵심적인 바탕이 바로 인재와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졸업 후에 바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종종 이런 노력들이 단순한 취업 인력을 양산하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사회 변화 속도에 걸맞은 인재들을 양성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핵심이 될 수 있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대학별로 특화된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인공지능 학과나 빅 데이터 학과 같은 맞춤형 창과를 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 대처일 것이다. 오히려 기존에 인정받고 육성해 온 분야를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는데, 일례로 농업 부문의 경우 스마트 자동화 설비나 토질, 영양에 대한 빅 데이터 구축을 통해서 4차 산업혁명의 기조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또한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인 화두가 되었다고 해서, 그 용어에만 집착하여 부화뇌동하는 것은 대학이 나아갈 방향은 아닐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보다 색다른 교육과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학생들에게 단순 지식을 주입하기 보다는 융합적 지식을 배양토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2017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경우 30년도 안된 젊은 대학이지만 모든 수업을 동영상으로 녹화하여 미리 예습 하고 수업시간에는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 발달이 인간 소외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능력과 덕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대학 교육의 목표 수립이 절실히 요구된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0-17 문철수

[수요광장]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마을이 사라진곳엔 아파트가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전망 좋은 곳엔 펜션·카페 들어서옛날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장소의 의미도 변해 버렸으니흔적 지워진 곳에서 고아된 듯이번 추석에도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에 갈 때마다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마을도 사라지고, 옛날부터 같이 살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 장소의 의미도 모두 변해 버렸으니, 기억과 흔적이 지워진 곳에서 점점 고아가 되는 것만 같다. 고향집 앞 골목길이 2차선 차로로 확장되었을 때는 1980년대였다. 동네 집들이 길 만드는 터를 내느라 허물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살아남았다. 그 때 '살아남은' 집들은 행운이라 여겼고, 떠나게 된 이웃들은 위로를 받았다. 친근한 이웃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웃공동체의 상호부조 체계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무언가 아쉽고 위급할 때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만큼 위험하고 불안한 일은 없다. 갑자기 밥이 떨어져도, 연탄불이 꺼져도, 옷을 빌려 입거나 돈을 꾸어야 할 때도, 옆집 문을 두드려야 했으니까. 보상금이 얼마든,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가 어디든, 처음부터 다시 관계와 신용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지나야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이웃을 얻게 될 것이니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는 설레는 일이 아니라 살처럼 익숙한 고장을 잃고 낯선 사람들 틈을 헤매야 하는 실향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90년대가 지나고 한 이십년이나 흘렀나, 그랬을 때인데 이번에는 소방도로를 낸다고 오래된 동네 한 토막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 때도 고향집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과 불행이 바뀌었다. 떠나는 사람들이 축하를 받고 남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부동산 시장도 그닥 형성되어 있지 않은 소도시에서 낡은 집을 짐처럼 지고 있던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집을 처분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좋아하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길은 좁고 차도 막히고 자꾸 개발을 해야 한다고들 하니 곧 성님도 좋은 일이 있겠지." 동기간처럼 친하게 지냈던 이웃사촌이 그런 말을 하고 새 아파트로 떠났을 때 어머니는 민심이 얄궂게 변했다고 하셨다. 그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에는 대형 마트와 편의시설들이 따라 들어왔다. 돈만 있으면 밥 한 끼 정도야 24시간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고, 친구와 이웃이 없어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금융자본이 강화되는 곳에서 우정이나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은 약화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옆집 문을 두드리는 대신 관공서나 대출회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작은 항구를 낀 어촌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덕분으로 연휴만 되면 모든 도로가 막히는 낯설어진 고향에서, 20분이면 돌아올 길을 2시간이 넘게 차에 갇혀 있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집들이 허물어져야 이 손님들을 위한 새 도로를 낼 수 있을까. 더 많은 도로가 필요하다지만, 저 자동차들의 행렬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저 행렬에 우리의 미래를 의탁해도 되는 것일까. 바닷가 비탈진 구릉마다 알뜰히도 농사짓던 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 전망이 좋다 하는 밭이며 논자리에는 펜션이나 카페가 들어섰다. 관광산업 여가산업이 주요 소득원이 되면서 자급의 경제는 무너지고 금융과 투자의 경제가 지배하게 되었다. 돈도 사람도 넘쳐나지만 모두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유동성이 정주성(定住性)을 해체하는 것은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 시대의 특징이다. 산업화 시대와 다른 것은 이주(移住)가 아니라 이산(離散)이라는 점이다. 파편화된 삶의 양식은 소비적으로 재구성되었지만,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유민의 땅, 떠돌이의 땅은 불안하고 위험하며 황폐해진다. 살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계속 '떠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글로벌 인재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세계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상류사회 엘리트에 불과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처하게 된 현실은 주거 불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글로벌 난민화였음을 이미 목도하지 않았는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0-10 채효정

[수요광장]민주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광장

광장은 시민들에게 바꿀 수 없는사회체계 구조적 의사소통의 장모든 사람들 자유롭고 평화로운평등이용 공공공간임에도 불구때론 독선적이고 폭력이 난무특정집단 불법 장기점유 없어야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몰고 왔던 촛불집회가 열린 곳도, 이에 맞서 탄핵만은 안 된다고 소리를 높인 태극기집회가 열린 곳도 둘 다 광장이라는 이름의 장소였다.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할 때면 왜 광장이라는 곳에 모여 집단적으로 소리를 높여 외쳐야만 하는 것일까? 정치학에서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진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이 아크로폴리스라는 공공장소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구의 도시문화를 대표하는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공공간을 집단시위와 투쟁의 장소로 이용해오고 있는가?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와 민주노조의 천막농성 등 특정집단이 장기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광장이 과연 이런 용도로 계속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농경사회로부터 근대도시사회로 넘어오면서 그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도시생활 중 한 가지가 바로 광장과 공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광장은 앞서 말했듯이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로마의 포럼, 중세와 르네상스의 광장을 거치면서 유럽 도시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반면 공원은 과거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대규모 장원이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 떠밀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바뀌어 진 것이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권의 도시에서는 광장이나 공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광장이나 공원과 같은 도시의 공공공간은 오랜 역사 속에서 생활화된 광장도 아니었고 종교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징공간도 아니었으며, 목숨을 걸고 투쟁한 전리품으로서의 공원도 아닌,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우리에게도 정치적 의미에서 서구의 광장과 같은 기능을 담는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왕의 실정을 집단적으로 토로하거나 백성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곳은 궁궐 앞이나 관청사 앞마당이었고, 농민들이 봉기한 동학혁명이나 독립을 외치던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장터나 길거리였음을 볼 때, 관청 앞마당이나 시골의 장터가 서구도시의 광장과 같은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서구문화에서는 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도시공간은 상징화되고 나치즘과 파시즘이 대두되던 전체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의 소련을 비롯한 전제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 광장이 출현하면서 광장의 용도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나 북경의 천안문광장, 파시스트의 산지 밀라노의 성 바빌라광장, 뉘른베르그의 군사훈련장, 북한의 김일성광장과 서울의 여의도광장도 거의 같은 목적과 용도로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주의국가의 독재자들은 인간을 압도하는 스케일의 대규모광장을 만들어 막강한 군대의 위용을 자랑하는 퍼레이드를 펼침으로써 절대권력을 과시하는 일에 이용하곤 했다. 그런가하면 프라하의 벤체슬라브 광장과 모스크바의 마네츠광장, 그리고 천안문광장은 공산주의에 항거한 군중의 시위로 민주화를 부르짖은 장소가 되기도 했다. 광장이라는 공공공간은 도시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평화라는 가장 소중한 인간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는 곳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에 의하면 민주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은 도시민들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활세계의 구체적 표현이자 사회체계 속에서 작동되는 구조적 의사소통의 장이라 한다. 광장은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평등하게 이용되어야 하는 공공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전제적이며 독선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광장과 같은 도시의 공공공간들이 사회체제 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고 내재된 가치를 드러내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이중성을 띠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선진화되고 민주화된 광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특정집단의 장기적 점유라는 불법적 행태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우선과제가 아닌가 싶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9-26 양윤재

[수요광장]소년법에 대한 단상(斷想)

사건처리과정 효율성 높이려면 경찰조사후 바로 법원 송치해야법 위반 반드시 죗값 치른다는것느낄 수 있도록 반성문 작성 필수빠른 첫 재판도 좋지만 중요한건가정환경 등 고려 '신중한 처분'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 2조에서 규정한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대개 전치 2주나 3주의 상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폭행인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구타당하는 동영상을 보게 되면 현장감 때문인지 폭행에 대한 감이 생생하다. 이번 부산여중생 폭행사건의 CCTV 동영상이 그러했다. 뉴스를 접한 온 국민은 공분했다. 어떻게 여학생들이 같은 또래를 저토록 무자비하게 때릴 수 있을까. 신발로 차는 것은 물론이고, 의자까지 들어서 내리치다니…. 학교폭력 사건을 상담하다보면 위 여중생보다 중한 사례들도 꽤 있다. 치아가 부러지거나 눈 밑 뼈가 함몰되어 실명의 위기가 온 사례도 있다. 또 성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한 경우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그 상해의 후유증이 몇 달, 아니 몇 년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따돌림은 피해학생이 피해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뻔뻔스런 가해자들의 태도와 증거부족으로 인하여 신고한 후 더 힘들어지는 사례도 많다. 한편 이런 식으로 중상의 결과가 나왔는데도 단지 가해학생이 아직 만14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구속도 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과연 이 사회를 정의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최근 인터넷을 달구면서 소년법을 폐지하자, 개정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소년법은 19세 미만의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반 형법보다 먼저 적용하는 특별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법의 목적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소년일지라도 범죄의 중대성, 피해의 심각성 때문에 엄벌에 처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과 아직 덜 성숙한 소년을 일반 성인 범죄자와 똑같이 처벌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법철학적 고민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명제다. 소년의 범죄는 단지 그 소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과 사회의 책임, 환경적인 영향 등 고려해야할 요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소년법의 목적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교화와 교정이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 섣부른 폐지는 옳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 14세보다 더 낮추는 방안과 현재 제도 내에서 운용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범죄의 특징은 보통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죄의식이 덜하다. 재판 전까지는 자신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빨라야 4~5개월이 지나서야 첫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가다보니 그 시기적절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만큼 자신의 잘못과 그것이 미치는 파장을 바로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처리과정을 보면 피해자의 고소, 경찰의 사건조사, 검찰로 송치, 검찰에서 법원으로 이송, 법원에서 소년 분류심사원으로 위탁, 위탁 후 법원의 재판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한다. 사건은 많은데 인력이 부족한 것도 재판이 늦어지는 원인이다. 효율성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경찰조사 후 바로 법원에 사건을 송치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만일 검찰단계에서 소년부로 보내지 않고 바로 기소유예를 하는 경우라면, 법을 위반하면 반드시 죄 값을 치른다는 통과의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직접 소년을 검찰로 출석시킨 후,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나마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보다는 첫 재판의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지길 바란다. 하지만 신속한 재판 개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년의 가정환경, 범죄 성향 등 여러 가지 개인적 특성을 고려한 신중한 맞춤 처분일 것이다. 또한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에 대한 부모, 학교의 지속적인 관심, 보호관찰기관의 실질적인 사후관리와 교육이야말로 재범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9-19 장미애

[수요광장]대입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바람직한가

교사들 3년동안 매년 반 바뀌어희망진로 맞춤형 교육 불가능‘학종’합격 목표 우수자 집중관리나머지 학생 지원 기회조차 박탈컨설팅학원은 학생부관리 대행친구들을 경쟁자로 만들어 버려이번 주가 2018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기간이다.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에서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수시 원서를 접수 중이다. 올해 대입 전체 모집인원(34만9천776명)에서 수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도보다 3.5%포인트 상승한 74.0%(25만8천920명)에 달한다.수시는 학생부중심전형(교과/종합), 논술, 실기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학생부중심전형이 정원의 86.4%(22만 3712명)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런데 2018학년도 대입 수시의 경우, 교과 성적만 보는 학생부교과전형보다는 수상실적, 동아리, 봉사, 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학종 전형'의 경우 단순히 교과 성적만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학업역량, 전공적합성, 고교시절 활동, 인성까지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학종'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와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학생부에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은 물론 수상경력, 희망진로, 동아리와 봉사활동과 같은 창의적 체험, 독서활동, 행동특성 등을 포함한 '비교과 영역' 관련 모든 것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매년 다른 반을 맡아야 하는 교사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생들의 희망 진로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에 어떤 활동이 도움이 될지 정확한 정보도 없다. 결국 많은 학교들에서 교과 성적이 좋은 몇 몇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내상 밀어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특히 일반고의 경우 '학종' 합격을 목표로 1학년 때 우수 학생을 선발해 학교차원에서 집중 관리하고 있어, 나머지 학생들은 지원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또한 입학과 함께 학생부에 진로희망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는데, 3년 동안 일관성 있게 진로희망을 기재하는 것이 유리하게 되어 있어 학생들은 진로희망이 바뀌어도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대로 밀고 나간다고 한다. 이처럼 한창 자신의 미래를 꿈꿔야 할 청소년들에게 고등학교 입학 시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교육적인 처사라 볼 수 없다.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는 '학종' 컨설팅 학원에서는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생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진로를 정해주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소상한 계획을 알려주는 등 학생부 관리를 대행해 주고 있다. 교과 성적 위주로만 학생들을 선발하는 폐단을 해소하고, 사교육이 줄어들 것으로 상상했던 '학종'이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자소서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수시는 최대 6번까지 지원이 가능한데, 자소서 역시 고가로 대리 작성해 주는 업체가 성업 중이라 하니, '학종'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또 다른 '금수저 전형'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교과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학종'이 현실과 맞지 않다면 바로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학 입시를 치르는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정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도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학입시제도는 무엇보다 공정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지금의 '학종'은 학교친구 모두를 경쟁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학종' 자소서 공통문항에 '학교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어보라'는 문항이 있다. 과연 교육현장에서 진정 친구들 간에 배려와 나눔을 실천한 친구가 합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9-12 문철수

[수요광장]양이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로봇에 대해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라고 한다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어떤 의도로 유포되는지 물어야더 나은 삶 이끌지, 더 많은 인간이새로운 양들의 먹이가 될건지…양은 돈이 되었다. 털과 젖과 고기를 주었던 양은 방직산업이 발달하자 신사 숙녀들의 고급 모직코트가 되었고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다. 더 많은 양들이 필요했다. 양을 먹일 더 많은 목초가 필요했다. 지주들은 농토를 목초지로 바꾸었다. 사람의 먹거리가 양들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갈아엎어졌다. 땅주인들은 양들에게 땅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쫓아내고 울타리를 쳤다. 삶터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흘러들어 노동자가 되었다.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에서 당시 영국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정말로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을까. 그 때 땅주인들은 양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짐승들을 보았다. 실은 그들이 보기에 '짐승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의 노동이 자신들을 먹여 살려 주었음에도 이제 양들만큼의 값어치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잡아먹을 수도, 가죽을 벗겨 구두로 만들 수도, 털을 깎아 양복을 만들 수도 없다. 가죽이 벗겨지도록, 일을 시킬 수는 있지만 그도 쉽지만은 않았다. 양들과 달리, 그들은 말을 할 줄 알고, 생각도 할 줄 알고,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는 대들 줄도 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칼을 갈 줄도 알고, 낫을 쓸 줄도 알았다. 돈 버는 신기술에 일찍 눈을 뜬 혁신가들에게 울타리를 부수는 그들은 중차대한 '산업혁명'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자 무식꾼에, 골칫덩어리인 인간들이었다. 지주들은 기업가가 되었고 무역상이 되었다. 새로운 산업의 개척자인 그들은 '앙트레프레너(창업가)'라고 불렸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어 점점 더 많은 방적기계를 샀다. 기계는 돈이 되었다.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며 돈을 벌어다줬다. 그 때 그들은 기계 옆에 부속된 또 다른 기계를 보았다. 실은 그들이 기계처럼 다루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계는 원천적으로 불량품이었다. 그들은 기계와 달리, 잠을 자고, 쉬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였다. 1844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직조공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적기계 앞에서 쓰러져 죽을 지경이 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기계가 인간을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혹한 노동을 시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기계를 나막신을 던져 멈춰 세우고 도끼와 망치로 부수었다. 양과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왔을까.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콜센터의 노동자가 가혹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컴퓨터는 쉴 새 없이 콜을 연결하고 업무량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옆자리의 동료인간과 경쟁시켰다. 그를 죽인 것이 과연 '컴퓨터'였을까. 1990년대 IT혁명이 왔을 때 우리는 미래의 청년들이 실리콘 밸리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다. 물론 그런 미래가 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되는 대신 컴퓨터 앞에서 밤낮없이 일하다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G밸리'라고 불리는 구로디지털단지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지상의 오징어잡이 배'라 불린다. 이제 로봇이 돈이 되는 시대가 왔다. 우리 시대의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정신)은 '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이 로봇은 이제 누구를 잡아먹을까. 로봇은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고, 단체교섭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지도 쉬지도 않고 일하며, 무제한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59조'의 철폐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런 로봇과 인간이 경쟁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존재인 인간이.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로봇에 대해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라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과연 로봇인가.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 담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유포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게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지, 아니면 더 많은 인간이 새로운 양들의 먹이로 되고 말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로 갈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09-05 채효정

[수요광장]도시 발전과 철도 지하화

지상엔 공원 조성 환경질 높이고기형적 교통동선 해결 소통 원활낙후된 철도 주변 공간 개발로지역경제 활성화 세수확보 기여코레일·정부 개발의지 없다면민간사업 시행도 좋은 방법우리나라에 철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인 1899년 서울 인천 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이다. 그 동안 철도의 총연장길이가 약 3천500㎞가 넘어설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고, 우리나라의 교통은 물론 도시와 산업발전에도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다. 특히 KTX와 SRT가 도입된 이후 지역 간 교통수단에 대변혁을 일으키면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790년 제임스 왓트의 증기기관 발명, 1803년 트레비식의 증기기관차 발명으로 산업혁명은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철도는 도시화와 함께 교통과 산업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철도의 부설로 도시공간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도시로 몰려든 하층 노동자들의 집단거주지 철거를 조건으로 철도회사에 철도부설권을 양도하였지만, 외곽으로 쫓겨났던 노동자들이 도심부로 되돌아오면서 철도변과 철도역 주변은 다시 슬럼화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대도시 철도변과 철도역 부근이 거의 대부분이 오늘날까지 우범지역이거나 낙후지역으로 남아있는 것도 아마 이 같은 오랜 역사적 배경이 아닌가 싶다. 철도 강국이던 유럽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자동차가 급속적으로 보급되면서 1980년을 전후하여 철도의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철도의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철도산업은 대표적 부채공기업으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기획해왔으며, 2004년 서울-동대구 구간을 완성하고 본격적인 고속철도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대전, 대구, 부산 등 대도시 진입구간을 지하화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부족한 예산을 핑계로 지상철도로 건설하여 도시공간을 두 쪽으로 쪼개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일찍이 서울의 경우 경인선이 들어오면서 수도권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자리를 잡은 영등포는 급격한 도시화로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시가지로 변모하였으나, 철도로 양분된 도시공간구조는 열악하기 이를 데 없고, 철로변 낙후지역들은 소외된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의 경우 경부선과 경의선, 경춘선의 도시통과 구간으로 서울의 도시공간은 철로에 의해 양분되어 버렸고, 부산은 경부선 진입으로 도심과 해변구역이 단절되어 부산도심의 발전에 막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철도로 인한 도시발전의 침체는 대구나 광주도 예외가 아니며, 중소도시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유럽의 런던, 파리, 베를린이나 미국의 뉴욕, 워싱턴 디시 등 대도시들의 철도지하화는 물론 작년에 완공된 경의선 지하화사업은 지상부를 공원으로 만들고 연변지역을 개발하여 마포 일대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사례에서 보여주었듯이 철도의 지하화는 도시발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우선 철도지하화로 지상부를 공원화하여 도시환경의 질을 높이고, 기형적 교통동선을 해결하여 원활한 교통소통을 가능케 하며, 낙후된 철도변 공간을 개발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지방세수의 확보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이 같이 경제적, 사회적, 도시 공간적 파급효과가 큰 공공사업에 대해 코레일과 정부는 계속 부정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으며, 피해 당사자인 지방정부마저도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거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외면해오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경기도와 서울시 경부선 구간의 지자체장들이 철도지하화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여 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직도 가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코레일이나 정부가 개발의지가 없다면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사업을 시행토록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철도변 공공소유 토지의 개발권을 일부 민간에 이양해주면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은 물론 도시환경의 개선과 도시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유사시에는 피난처로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8-29 양윤재

[수요광장]가정위탁제도

너무 적은 양육보조금 현실화나이 따른 단계적 차등 지급 필요일반가정위탁에 더 주는 방안도각종 서류발급 엄격한 기준 정해위탁자가 진짜 부모로서의 역할제대로 다할 수 있도록 해줘야민수(가명, 남)의 어머니는 20대 초반에 40대 초반의 남자를 만나 민수를 임신했다. 그러나 곧 정신분열증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민수 아버지는 사기죄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민수 외할머니는 신용불량자로 폐지를 주워 생활하고 있고, 민수의 이모는 미혼인 직장인이다. 이런 경우 민수는 누구 손에서 자라게 될까. 가정위탁은 친부모의 사정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일정기간 위탁가정을 제공하여 보호하고 양육하는 아동복지제도 중 하나다. 친부모가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연락이 두절 되었거나, 있어도 아동학대 등의 소견이 있거나 질병, 경제적 형편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양육하기 어려울 때 고아원 등 시설보다는 친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보호하며 친부모의 양육능력이 회복되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정 기간이라는 것은 친부모가 자립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나, 고교졸업까지 장기위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대학졸업까지 연장보호가 되기도 한다. 가정위탁의 세 가지 유형은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인에 의한 '일반가정위탁'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조부모에 의한 '대리양육가정위탁'이나 조부모를 제외한 고모나 이모 등 '친인척가정위탁' 도 위탁부모로 지정하는 신청을 할 경우 가정위탁에 포함된다. 위에서 말한 민수의 경우 이모나 외조부모에 의해 양육된 것이 아니라, 생후 6개월부터 8세가 다 되도록 일반가정에 장기 위탁되어 보호되고 있다. 아동복지법에 따른 위탁가정의 요건은 위탁아동을 양육하기에 적합한 수준의 소득이 있어야 하고, 위탁아동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양육과 교육이 가능하여야 하며, 위탁부모의 나이가 25세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위탁아동과의 나이 차이가 60세 미만이어야 하고, 자녀가 없거나 자녀(18세 이상 제외)의 수가 위탁아동을 포함하여 4명 이내이며, 가정에 성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정신질환 등의 전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 모두 부합하고 가정위탁을 희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비위탁부모교육을 이수하여야 위탁부모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요즘 같이 자신의 자녀 한두 명도 키우는 것이 버거운 시대에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더구나 1인당 지원되는 월 12만원 내지 15만원의 양육보조금만 받고 말이다. 일반가정위탁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좋아하고, 깊은 신앙심이 있으며,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사람만 할 것 같아도 꼭 그렇지 않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소명감, 양육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 경제적인 것을 압도한다. 경기가정위탁지원센터가 개소한 지 15년째가 된다. 필자는 오랜 기간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몇 안 되는 센터 직원들이 매년 바뀌는 담당공무원들에게 가정위탁제도를 반복하여 설명하면서 홍보를 위해 발로 뛰고, 가정위탁 부모들을 모집하고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고, 곧 성년이 될 위탁아동에게 자립을 위한 안내, 교육을 하는 자립캠프나 값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가족캠프 행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봐왔다. 또 생면부지 아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친자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소중하게 키우고자 노력하는 일반가정위탁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분들이 얼마나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만한지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그러나 일선에서 보면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우선 현재의 양육보조금 액수가 너무 적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아동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지급되는 것보다는 나이에 따른 단계적 차등을 두고 지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대리나 친인척가정위탁보다 일반가정위탁 부모에게 조금 더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친권자가 아니어서 뗄 수 없는 각종 서류 발급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엄격한 기준과 범위를 정해 가정위탁지원센터나 보건복지부의 추가적인 확인서를 첨부하면 발급 가능하게 해서 위탁기간만큼은 위탁부모가 진짜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센터나 보건복지부는 감독자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8-22 장미애

[수요광장]대한민국 광복과 우리 방송의 주권 회복

90년전인 1927년 2월 16일'경성방송국' 첫 라디오 방송 송출해방후 '서울중앙방송'으로 변경1947년 9월 3일 ITU로 부터 HL이란 독자 호출부호 처음 받아 사실상 자주적 방송시작 계기 마련어제는 대한민국이 광복 72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이었다. 72년 전 8월 15일 정오 히로히토 일왕의 "나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전했다"라는 항복 방송을 접하며, 우리 민족은 비로소 광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920년에 창간된 양대 신문인 동아와 조선은 1940년 8월 11일자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상태였기에 안타깝게도 지면을 통해 해방의 소식을 접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방송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90년 전인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에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로 시작하는 첫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었다.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미국 피츠버그 KDKA가 출범한 지 7년, 일본 도쿄에서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JODK'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일본에 할당한 호출부호(콜사인) 'JO'에 도쿄(AK)·오사카(BK)·나고야(CK)에 이은 4번째 방송국이라는 뜻의 'DK'를 결합한 것이었다. 경성방송국은 초기에 일본어와 조선어를 7대 3의 비율로 방송하다가 조선인의 불만이 커지자 같은 해 7월부터 일본어와 조선어의 비율을 6대 4로 조정했고, 1933년 4월부터 연희송신소를 세워, 900㎑의 경성 제1방송(일본어)과 610㎑의 경성 제2방송(조선어)으로 나눠 운영했다.방송이 시작되자 신문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뉴 미디어인 라디오에 대해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 쌀 한 가마니 값이 5원 정도였는데 월 청취료가 2원이고, 수신기 가격은 보통 40∼100원대였다고 하니 서민들은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려면 경성방송국과 계약을 맺어야 했고, 수신 계약자는 청취허가장을 대문 밖에 붙여야만 했다. 개국 당시 청취자는 조선인 275명을 포함해 1천440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어 전용 방송이 생겨난 1933년에는 2만5천여 명으로 불어나 당국이 불법 청취자 단속에 고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1935년부터는 경성방송국이 경성중앙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같은 해 부산방송국의 개국을 필두로 청진·평양(1936년), 이리(1937년), 함흥(1938년) 등 지방에 방송국이 잇달아 설치된데 따른 것이었다. 일제 총독부에 의해 시행된 경성방송은 식민지 경영이 목적이었고 비상시에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된 방송인 JODK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최초로 알리게 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여기서 방송 호출부호에 대해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ITU가 세계 각국별로 무선국, 방송국을 식별하기 위해 제공하는 중복되지 않는 일련의 문자열이 바로 호출부호인데 콜사인(call sign)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미군정 체제에서 '경성방송'이 '서울중앙방송'으로 바뀐 상태에서도 일본의 호출부호인 JODK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호출부호로만 보면 아직 해방이 되지 않은 식민 상태였던 것이다. 해방을 맞았지만 우리는 2년여 동안 이 호출부호를 계속 사용하다가 1947년 9월 3일, ITU로부터 처음으로 HL이라는 독자적인 호출부호를 부여받게 된다. 사실상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고, 이를 통해 방송에 관한 독립적인 주권을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 해를 기점으로 하여, 올해를 우리 방송 70주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되었든 방송계는 이날을 기념해 9월 3일을 방송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ITU의 호출부호 할당으로 인해 사실상 우리나라가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방송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방송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그 의미를 기억하고 공공재인 방송 전파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8-15 문철수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