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대한민국 광복과 우리 방송의 주권 회복

90년전인 1927년 2월 16일'경성방송국' 첫 라디오 방송 송출해방후 '서울중앙방송'으로 변경1947년 9월 3일 ITU로 부터 HL이란 독자 호출부호 처음 받아 사실상 자주적 방송시작 계기 마련어제는 대한민국이 광복 72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이었다. 72년 전 8월 15일 정오 히로히토 일왕의 "나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전했다"라는 항복 방송을 접하며, 우리 민족은 비로소 광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920년에 창간된 양대 신문인 동아와 조선은 1940년 8월 11일자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상태였기에 안타깝게도 지면을 통해 해방의 소식을 접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방송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90년 전인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에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로 시작하는 첫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었다.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미국 피츠버그 KDKA가 출범한 지 7년, 일본 도쿄에서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JODK'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일본에 할당한 호출부호(콜사인) 'JO'에 도쿄(AK)·오사카(BK)·나고야(CK)에 이은 4번째 방송국이라는 뜻의 'DK'를 결합한 것이었다. 경성방송국은 초기에 일본어와 조선어를 7대 3의 비율로 방송하다가 조선인의 불만이 커지자 같은 해 7월부터 일본어와 조선어의 비율을 6대 4로 조정했고, 1933년 4월부터 연희송신소를 세워, 900㎑의 경성 제1방송(일본어)과 610㎑의 경성 제2방송(조선어)으로 나눠 운영했다.방송이 시작되자 신문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뉴 미디어인 라디오에 대해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 쌀 한 가마니 값이 5원 정도였는데 월 청취료가 2원이고, 수신기 가격은 보통 40∼100원대였다고 하니 서민들은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려면 경성방송국과 계약을 맺어야 했고, 수신 계약자는 청취허가장을 대문 밖에 붙여야만 했다. 개국 당시 청취자는 조선인 275명을 포함해 1천440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어 전용 방송이 생겨난 1933년에는 2만5천여 명으로 불어나 당국이 불법 청취자 단속에 고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1935년부터는 경성방송국이 경성중앙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같은 해 부산방송국의 개국을 필두로 청진·평양(1936년), 이리(1937년), 함흥(1938년) 등 지방에 방송국이 잇달아 설치된데 따른 것이었다. 일제 총독부에 의해 시행된 경성방송은 식민지 경영이 목적이었고 비상시에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된 방송인 JODK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최초로 알리게 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여기서 방송 호출부호에 대해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ITU가 세계 각국별로 무선국, 방송국을 식별하기 위해 제공하는 중복되지 않는 일련의 문자열이 바로 호출부호인데 콜사인(call sign)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미군정 체제에서 '경성방송'이 '서울중앙방송'으로 바뀐 상태에서도 일본의 호출부호인 JODK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호출부호로만 보면 아직 해방이 되지 않은 식민 상태였던 것이다. 해방을 맞았지만 우리는 2년여 동안 이 호출부호를 계속 사용하다가 1947년 9월 3일, ITU로부터 처음으로 HL이라는 독자적인 호출부호를 부여받게 된다. 사실상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고, 이를 통해 방송에 관한 독립적인 주권을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 해를 기점으로 하여, 올해를 우리 방송 70주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되었든 방송계는 이날을 기념해 9월 3일을 방송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ITU의 호출부호 할당으로 인해 사실상 우리나라가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방송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방송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그 의미를 기억하고 공공재인 방송 전파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8-15 문철수

[수요광장]가로환경과 도로안내표지판

도시의 첫 인상 결정하는 '길'가로수·간판등 문화수준 가늠돼대형 초록색 도로안내표지판담당기관·설치시기 '제각각''비효율적 점용' 가로경관 해쳐체계·디자인 개선 필요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길이다. 도시민들의 생활은 길 위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 길은 바로 도시민의 생활의 터전이자 중요한 장소이며, 도시민들의 생활의 한 부분으로 도시민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소중한 공공공간이다. 우리는 도시의 길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과 접하게 되고, 길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경험하며 도시의 가로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 도시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도시의 문화를 알려면 바로 그 도시의 길을 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도시의 길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가로환경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그 도시의 문화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도시의 길은 어느 정도의 문화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도시가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한 번쯤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길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로와 길의 차이를 굳이 전문가적인 견해를 빌려 말하자면 도로는 길의 물리적 공간 자체를 말하고 길은 그 공간에 담겨진 모든 것, 즉 사람의 활동을 비롯하여 가로변에 들어선 건물과 간판, 그리고 가로수, 가로등, 각종 표지판과 버스 승강장은 물론 가드레일과 소화전, 쓰레기통 등 우리가 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장소라고 일컫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도시가 매력적인가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도시의 어떤 특정 건물이 아름답다거나 음식 맛이 좋다거나 아니면 도시의 분위기가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엇보다 도시의 첫인상은 그 도시의 길이 결정해준다. 몇 년 전부터 도시전문가와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보행전용도로를 만들어 도시의 길을 보행자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들이 도시들마다 열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가로변의 건물에 부착된 크고 작은 간판들도 옛날과 달리 컴퓨터그래픽의 도움과 조명기술의 발달로 제법 산뜻하고 멋지게 단장하여 과거의 가로경관을 혼란스럽게 만든 원흉(?)의 오명을 씻어가고 있다. 이렇듯 지방정부나 시민들 모두가 그들이 사는 도시나 동네의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고 있지만 유독 한 가지, 도시의 간선가로에서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초록색의 대형 도로안내표지판이 가로경관을 해치고 있음을 아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도시교통정보를 빠르고 편리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경찰청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전국의 모든 간선도로에 교통표지판을 설치해오고 있다. 교통표지판은 도로안내와 안전, 그리고 각종 규제를 위한 표지들이며, 몇 년 전부터 제법 산뜻한 디자인의 도로명 표지가 가로에 걸려있다. 이들은 담당기관이 서로 다르고 설치시기가 같지 않아 별도의 계획과 설계에 따라 설치되기 때문에 때로는 가로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점용하여 보기에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요즈음처럼 최신의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시대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나 걸어서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내비게이션이나 구글맵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로안내표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사실 소용이 없어져버린 셈이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는 물론 선진국의 유명 도시의 가로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형의 도로안내표지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도시에는 교차로마다 교통신호등과 함께 도로명 표지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 동안 공직자들이나 정부의 관료들이 뻔질나게 선진국을 드나들며 연수와 출장을 다녀와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우리나라의 도로안내표지판이 가로경관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그리고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이제라도 도로교통안내체계의 개선과 함께 도로안내표지판을 제거하고, 필요 이상으로 설치되어 있는 각종 표지판의 수량을 줄이고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가로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길 바란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8-01 양윤재

[수요광장]가정폭력·데이트폭력 어디까지 왔나

상대방을 맘대로 다뤄도 되는소유물로 여긴다는 공통점초기대처 제대로 못해 재발 높고피해자 자존감 심각하게 훼손가정폭력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성인되면 대물림 가해자 되기도"변호사님, 저는 남편이 술 마시고 늦는 날에는 청바지를 입고 자요. 신발은 담장 밖에 숨겨놓고요. 언제든지 도망치려면 그렇게 해야 해요." 가정폭력 피해자다. 남편이 술에 만취할 때마다 괜한 시비를 걸면서 폭행을 하자 그 여인은 처음엔 동네 창피하여 숨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폭행 강도가 심해지다 보니 만신창이가 되는 것보다는 맨발로라도 뛰어 도망가야 했던 한 여인의 절규다. 팔, 다리뿐 아니라 눈과 코가 부어 오른 피멍든 사진은 차마 평정심을 가지고 보기 어려워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흐린 날인데도 상담실 안에 들어온 후, 문이 닫혀야 겨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선글라스를 벗는 손님의 눈 주위도 빨갛다. 가정폭력은 아직까지도 이혼 소송의 주된 이유이다. 대부분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경우지만 요즘은 여성도 남성을 폭행하는 경우도 있고, 시부모가 며느리를, 장인 장모가 사위를 폭행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처음 폭행을 당했을 때 112신고를 하기보다는 친구나 부모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혼자 삭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폭행은 처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후 지속될 수도 있고, 근절될 수도 있어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서는 아직도 가정 내의 폭행을 생판 모르는 타인으로부터 맞은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대부분 신고를 꺼려한다. 처음이 어렵지 두세 번째가 되면 가해자는 죄책감을 찾기보다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이 상습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통상은 112신고를 하면 경찰이 수분 내로 출동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 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어떤 가해자는 경찰이 도착 전 자리를 피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정일에 웬 간섭이냐고 큰소리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경찰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 처벌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한 후, 격리조치나 100m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를 한다. 피해자가 집에 그대로 있겠다고 하면 가해자에게는 집을 피하여 다른 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계도를 한다. 전화나 문자를 금지하고, 집이나 직장에 접근을 금지하는 조치는 경찰이 검찰에게 신청하여 법원에서 최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2개월간 가능하고, 추후 연장도 가능하다. 지난주 한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해 치아가 5개나 부러지는 중상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주변인의 도움으로 그나마 폭행이 중단되어 더 큰 화를 면했고, CCTV 동영상까지 공개돼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피해자만 46명에 이른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가정 폭력처럼 데이트 폭력도 신고를 꺼리는 관행 때문에 신고 건수보다 발생 건수가 훨씬 많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점은 경찰에 신고되어도 현재나 과거의 가족구성원간, 사실혼 배우자 간 이라는 전제조건에 맞지 않다 보니 특례법을 적용할 수 없어 경찰이 격리 조치 등 긴급임시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경고 정도에 그칠 뿐이고, 법적 강제성도 없다. 작년 어느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경찰 조사 직후 피해자를 다시 찾아가 더 심한 폭행으로 보복한 사례도 있었고, 끝내 그 피해자는 며칠 후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이래서야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신고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스럽다. 폐기되었던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빠른 시일 내 다시 발의되거나 더 개선된 법이 제정되길 촉구한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의 공통점은 상대방을 자신이 마음대로 다루어도 되는 소유물로 여긴다는 점이다. 또 초기 대처를 제대로 못 했을 때 재발률이 높고, 피해자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가정 내 폭력에 오랜 기간 노출된 아동들 역시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폭력을 극도로 혐오하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대물림 되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불행이 유전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더 이상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뉴스가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본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7-25 장미애

[수요광장]대입 수능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쟁점

찬성입장은 사교육 줄이고 지나친 입시과열 현상막아보자는 취지이지만변형된 대학별 자체 시험 부활사교육 비중 되레 커질수 있다는우려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교육부는 며칠 전 '대입 단순화 및 수능개편 추진 태스크포스팀'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번개편안의 최대 쟁점은 대입 수능 절대평가 도입과 적용범위로 요약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미 과도한 입시경쟁을 줄이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 및 취임식에서 수능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 제도의 첫 적용 대상은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고, 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부터 도입될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새 교육 과정의 핵심은 '문·이과 통합 과정' 교육이다. 요약해 보면, 1학년 때에는 공통과목(국어·영어·수학·한국사·통합사회·통합과학·과학탐구실험)을 이수하고, 2·3학년 때에 문·이과 구분 없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선택과목(일반선택·진로선택)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2021년 대입에서 절대평가 제도가 본격적으로 선 보이게 될 예정인데, 수능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수능 절대평가를 긍정적으로 본 이유로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가 가장 많았고, '학생들 입시부담 완화', '다양하고 내실 있는 교육활동이 가능해짐', '사교육비 경감'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부정적인 생각을 밝힌 응답자들은 '변별력 확보가 어려움'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고, '변별력 확보를 위한 대학별 새 전형방법 도입 우려', '내신이 불리한 학생의 대학진학 기회 축소', '정시모집 위축 우려' 순이었다.찬성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현재 고교 교육이 수능에 맞춰져 있기에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수능 부담을 줄여야 학생이 진학하고 싶은 학과와 진로를 탐색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 입장의 경우,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변별력이 사라져 정시에서조차도 학생부를 반영해야 하는 등 선발 공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순수한 의미의 정시 제도는 사라지게 되며, 수능 성적에 면접이나 논술, 또는 학생부 평가를 추가하는 등 대학마다 새로운 전형을 만들게 되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이렇게 찬반 입장이 나눠진 가운데, 현재수능 절대평가 전환 범위는 '단계적 전환'과 '전면적 전환'으로 좁혀지고 있는데, 서울 9개 대학 입학처장협의회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부터 단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교육부 등에 전달한 바 있다. 아마 정부도 당장 전 과목에 대한 절대평가제 도입은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현행 상대평가 하에서는 등급 인원이 정해져 있어 정시에서의 변별력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으나, 절대평가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수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 시행의 찬성 입장은 사교육을 줄이고, 지나친 입시 과열 현상을 막아보자는 취지이지만, 절대평가 제도 하에서 변형된 대학별 자체 시험이 부활해 사교육 비중이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그 어느 것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평가 방식이든 수험생들의 실수를 유도하거나 문제 잘 푸는 요령을 숙지시켜 기계적으로 정답만 찾아내게 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역대 모든 정부에서 다양한 교육정책을 제시했지만 수험생과 교사, 학부모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경우가 많았다. 부디 새 정부 정책 당국자들이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최선의 방안을 찾아주길 기대해 본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7-18 문철수

[수요광장]인공지능시대의 교육

'4차산업혁명' 회의적이지만기술발전이 인간의 기계화와기계의 인간화 점점 촉진할것그때는 생명과 교감하는농사야 말로 인공지능 시대의인문학이 될지도 모른다"손해가 크시겠어요." 연일 오는 큰비가 야속해서 걱정을 하고 있으니 손해가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귀촌해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금 6월말부터 7월까지가 한창 수확기다. 열매가 달릴 때는 가뭄으로 애를 태우더니, 이제 열매를 따야하는 데 큰 장마가 졌다. 비는 오고, 제 때 따지는 못하니, 베리는 떨어지고, 달린 것은 달린 채로 과육이 물러지고 있다. 하지만 베리를 따지 못하면 '손해'라서 이 장마비가 괴로운 것이 아니다. 이익과 손실로 사물과 사태를 파악하는 것은 투자자의 관점이요 상인의 자세다. 농부들의 심성은 그에 매여 있지 않다. 물론 농부의 경제에도 손익계산서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생명을 지키지 못하여 괴로운 것이다.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열매를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 하나라도 살려보려 애쓰는 것은 그걸 잃어버리는 것이 하늘에 짓는 죄 같아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들은 '손해가 크겠다'는 소리가 달갑지 않았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보다 무엇이든 쉽게 화폐적 가치로 환산하는 사유방식이 먼저인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가뭄에는 물을 대주고, 큰 비가 오면 물을 빼주고, 눈이 오면 어린 가지의 눈을 털어주며 동고동락해온 나무들이다. 내가 나무를 키우기도 하지만 나무도 나를 농부로 키워준 시간. 그 시간성의 관계가 어떻게 손익의 대차대조표로 정리될 수가 있겠는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뺄셈과 덧셈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고 깊어져가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교육도 농사와 같은 일이다. 그것은 상품 생산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을 돌보고 키우는 일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니 교육의 장은 시장이 아니라 텃밭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품에 대하여 생산자나 판매자는 인격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오직 대상을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신뢰와 책임과 그와 내가 맺는 관계의 성격을 고민한다. 내가 나무를 삶의 동반자라 여길 때, 나무도 나를 믿고 의지한다. 우리는 서로 배운다. 나무는 사람을 배우고 사람은 나무를 배운다. 배움은 무엇보다도 관계다. 오늘날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 관계성의 상실이다. 인격적 관계가 화폐 관계, 상품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교육이 서비스 산업이 되면 학교 구성원들은 생산성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효율성과 생산성이 교육의 철학이 될 수 있는가. 교육은 교과과정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 교사, 친구, 노동자 등 학교를 통해 맺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삶을 배운다. 경쟁이 극심해지고 고립될수록 우리는 관계를 갈망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교육 혁신안으로 나오는 고교학점제와 무학년제와 같은 발상은 우려스럽다. 공동체적 관계의 회복과 재구성이 아니라 배움의 단위를 아예 개인으로 완전히 파편화하기 때문이다. 국가주의 획일주의 교육을 타파하고 교육적 다양성을 옹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선택권'이라는 것은 교육의 철학이 아니라 시장적 가치다. 대학에서는 학점당 등록금제와 다전공제, 선택학기제 등이 대학 혁신 과제로 예고되어 있다. 모두 '수요자 중심 교육'이란 말로 쉽게 정당화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교육철학이 부재할 때 수요자 중심은 소비자주의의 다른 말일 뿐이며 선택의 다양성은 곧 상품 선택의 다양성을 뜻할 뿐이다. 교육이 상품 생산 과정이 되면 학교는 더 큰 수요자의 이해에 봉사한다. 그 수요자는 시장이다. 시장의 투자자들은 학교가 기업이 되기를 원한다. 인간상품, 인간자원을 생산하는 교육산업의 확장과 발전을 원한다. 그런데도 미래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육을 미래 시장과 미래 산업에 종속시키는 경향이 너무 심각하다. 그러나 생명의 존재를 사물화 하는 과정이 교육일 수는 없다. '4차산업혁명'이란 섣부른 예언에는 회의적이지만 나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를 점점 촉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끊임없이 생명과 교감하는 농사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의 인문학이 될지도 모른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07-11 채효정

[수요광장]부동산투기대책,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수요·공급 불균형' 투기 원인특정 지역·주택에 맞춘 정책 남발정부, 저소득층 문제 해결 총력중산층 이상 시장자율에 맡겨야제도·세제 너무 복잡 불·탈법 조장정책 제대로 만들고 제도 개혁 시급새 정부의 경제부총리와 국토부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꺼내든 카드가 부동산투기규제다. 지난 몇 년 새 서울 강남 4구의 아파트들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이들 아파트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 오르고, 재건축이 완료된 아파트는 놀랄 정도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재건축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변의 아파트는 전세물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요, 전세가격 마저도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의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가격이 들썩이는 것을 보다 못한 정부가 뒤늦게 칼을 빼든 모양새다. 부동산투기와 규제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부동산투기열풍은 자그마치 50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때로는 매서운 회초리로 또 때로는 어르고 달래면서 아파트 분양시장을 길들여왔다. 88올림픽을 앞두고는 서울시가 나서서 부동산투기를 조장하기도 하였으며, 90년대에 들어서는 수도권 신도시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는 갖은 사탕발림으로 투기를 부추긴 적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정부는 부동산투기를 잡겠다고 모르긴 해도 이 지구상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가 내놓은 규제와 처방은 약효를 잃어버렸고, 심지어는 부동산투기가 더 극심해진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정부의 관료나 정책을 수립하는 전문가들은 부동산투기의 원인과 성격을 꿰뚫어보고 있을 법도 한데 왜 똑같은 규제를 재탕 삼탕하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고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이번에도 정부는 약 1천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이 주택관련 대출이기 때문에 DTI와 LTV를 강화하고 금리를 올려 주택자금 대출을 억제하고, 분양현장에서의 투기행위를 적발하여 부동산투기를 막아보겠다고 한다. 최근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분양보증발급을 전면 중단한다는 발표를 한바 있다. 분양보증이 없으면 분양승인이 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분양이 불가능해진다. 아파트로 대별되는 부동산투자(?)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웬만한 사람이면 이 분야의 전문가 뺨칠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꿰뚫고 있다. 특히 부동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경우 정부에서 내놓는 어떤 정책이나 규제도 그들에게는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일일뿐 소나기만 피하고 나면 또다시 햇살은 비춰지는 것이라는 걸 수십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부동산투기가 일어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런 불균형을 해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한 정책만 남발하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문제는 정책의 초점이 특정지역, 특정주택에 맞춰져 왔기 때문에 정책의 보편성이 결여되어 성공하기가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 주택 수는 약 1천600만호 정도가 된다. 그 중 서울 강남 4구의 소위 투기지역(?)의 초고가 아파트는 불과 5만호 남짓이다. 우리 정부의 주택정책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중간정책이 아니라 0.3%의 초고가 주택을 타깃으로 한 특정주택 말살정책이 되어왔다. 이제 정부는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에 총력을 쏟고, 중산층 이상의 주택문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두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문제는 주택관련 제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다. 무릇 법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탈법이나 불법이 성행한다. 아파트 분양제도도 그렇고 부동산 관련세제도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투기가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지 않나 싶다. 부동산은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부동산에 투자를 하면 투기가 되고, 여윳돈을 이용해 부동산을 사면 투자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투자든 투기든 둘 다 정부에서 만든 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만들고 제도를 개혁해서 이를 올바로 운용하는 것이 투기를 방지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정부에서는 깊이 새겨주었으면 좋겠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7-04 양윤재

[수요광장]말과 글은 자신을 드러내고 삶을 반영하는 것

한 사람의 과거 글이나 말이현재의 그를 나타내진 않아언행이 쌓여 명성 만들어지는데한번 잘못 싸잡아 인생 매도 안돼그러나 스스로 되돌아본다면어느직 수행할지는 양심이 알려줘아주 오래전 알게 되었던 한 중년 남성분이 그 당시 자주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 "이래서 여자가 문제라니까"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해서 당황하고 불쾌했던 적이 있었다. 그분은 늘 가부장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부끄러운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여성을 하대하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분은 아들만 둘 있었는데 만일 그분에게 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딸이 있어야 그나마 아무 느낌도 없이 내뱉는 여성비하 발언이 얼마나 여자들에게 상처로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누구도 그분의 여성관을 바꾸기 어려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꼭 자신의 딸이 아니라도 자신의 어머니, 아내나 여동생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이 막말하는 상대방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어머니이고 사랑스러운 아내이며, 아끼는 여동생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이혼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여성관과 남성관에 대한 부부간의 극명한 입장 차이가 느껴질 때가 많다. 남편은 시부모님 생신이니까 아내가 직접 밥과 국을 해서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장인 장모 생신에 자신이 못 가도 조금의 미안함도 없다. 반대로 시댁행사는 연례행사조차 무시할 정도로 소홀하면서도 친정에는 매주 가야만 하는 아내도 있다. 또한 맞벌이하는 아내는 남편이 '같이' 집안일을 하길 바라지만 남편은 이렇게 많이 '도와'주는데 아내가 매일 불평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사위가 집안일을 많이 하면 딸을 위해주는 착한 사위고, 딸이 복 받아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아들이 집안일을 많이 하면 그 집 며느리는 남편 부려 먹는 나쁜 여자가 된다. 동일한 사람의 동일한 행동이 누구 입장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좋게도 때론 나쁘게도 평가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중 잣대를 여러 곳에 들이대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간통죄가 없어진 이후로 요즘은 배우자와 바람피운 상대방 여자나 상대방 남자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위자료 청구소송이 많아졌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당사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변명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비슷한 소송을 해본 소회를 말하자면 법원은 부정행위로 보이는 증거들이 있어 위자료를 인정할 때 금액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금액 차이의 원인은 부정행위가 지속된 기간, 파탄에 기여한 정도, 금전적인 손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대체로 소송에서의 피고의 반성하는 태도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너무나 뻔한 증거인데도 반성 없이 계속 우겨대면 일반적으로 법원은 괘씸하다고 생각하여 위자료 액수를 상향하고, 오히려 반대로 이런저런 변명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점에 대하여 사죄한다고 깔끔하게 인정하면 통상의 금액으로 인정한다. 상대방으로부터 "미안해"라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이어지는 말이 "그렇지만 말이지.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사과라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참된 사과는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요즘에 인구에 회자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을 공격하기 위하여 내뱉은 말과 글들이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것과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과 글은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고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은 통상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기에 과거의 글이나 말이 반드시 현재의 자신을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하나의 언행이 쌓여서 명성이 만들어지는데 한 가지 잘못으로 싸잡아 인생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엄중히 돌아본다면 어느 직을 수행할 만한지 아닌지는 양심이 알려줄 것이다. 자신이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여야 하는 직업일수록 엄격한 자기관리가 요구되고, 겸손과 자아 성찰이 필요한 덕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6-27 장미애

[수요광장]외고와 자사고 폐지론에 대한 단상

본래 설립목적 준수하지 않으면제도 개선후 폐지해도 늦지 않아일관성 있는 교육정책 위해정권 초월 '국가교육위원회' 같은기구 필요하다는 목소리 높지만신정부에선 논의 안돼 아쉬워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외고와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8일 전국단위 자사고인 광양제철고, 민사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현대청운고 등 5개교 교장단은 "자사고의 본질을 편견으로 해석하거나 터무니없이 왜곡한다"며, '자사고에 대한 올바른 이해'란 반박문을 냈고, 전국 자사고 교장협의회는 자사고 폐지 반대 성명을 낼 계획이며,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역시 폐지 반대 성명 발표와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시도교육감 중에서는 가장 먼저 외고와 자사고 폐지를 거론한 바 있는데, 경기지역 내 외고와 자사고를 2020년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특목고의 폐지는 교육부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김상곤 교육부총리 내정자도 같은 입장이어서 폐지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높아졌다.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 논쟁은 2000년대 중반부터 불거진 문제로 이번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고·자사고에 대한 비판은 이들 학교에 우수 학생들이 몰리면서 일반고의 학습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빠지는 것은 물론, 이들 학교가 본래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명문대 입학생을 늘리는 입시전문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진보성향의 교원 및 학부모 단체에서는 외고·자사고 폐지가 일반고 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외고·자사고 폐지가 '일반고 위기론'을 잠재우고 고교 서열화를 해소할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맞서고 있다. 특히 일괄적인 폐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외고·자사고를 전부 없앤다 하더라도 일반고에 배정되는 인원은 한 학급당 한 두 명 선에 그칠 것이고, 이 정도로 학습 분위기가 나아질 리 없다는 교육 전문가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 간 학업 능력의 격차가 커져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고 하향평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외고·자사고의 폐지가 노무현 정부는 물론 신정부가 중시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외고·자사고 폐지 시 지방의 교육환경 수준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서울의 경우 한 동안 잠잠했던 소위 '강남 8학군'이 다시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번 근본을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외고와 같은 이른바 특목고의 설립 취지는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이며, 자사고는 '일반 고등학교들과 달리 학교 운영과 교육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고등학교'이다. 현재 이들 학교가 본래의 설립 목적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제도적으로 개선 작업을 시행하고 난 뒤 폐지 결정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특목고는 과고, 외고, 체고, 예고, 국제고 등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외고와 국제고만 폐지 한다는 것 역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생 시절부터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사교육 문제가 특목고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에 교육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정책은 계속 바뀌고 있어,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 불안하고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일관성을 갖기 위해 정권을 초월한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서인지 신정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는 것이 아쉽다.교육정책은 정치와 상관없이 연속성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수시로 뒤바뀌는 정책 하에서는 국가와 사회를 믿고 자녀들의 교육을 맡기기 어려울 것이다. 초저출산 사회로 들어선 우리나라가 미래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 양성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이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6-20 문철수

[수요광장]'쌍빠삐에', 대학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고등교육법' 개정안 2011년 통과세차례 유예끝에 내년 시행 앞둬수많은 강사들 대학서 쫓겨났고교원지위 회복 농성 3500일 넘어이제는 '돌려 달라'… 그래야만고용·임금·차별 문제도 개선 가능늦깎이로 시작한 공부의 길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국솥은 끓고, 업은 아이는 울고, 설거지가 가득 쌓인 싱크대 위에 간장물이 묻은 파르메니데스를 펼쳐 놓고 읽는 나는, 대통령이 선물 받았다는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70년생 김지영'이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단절된 시간은 반복적으로 경력과 학업을 단절시켰다. 연구원으로, 시간강사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종종 거리면서 살았던 시간은 한 발만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처럼 언제나 위태로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맡고 있던 모든 강의가 모조리 폐지 혹은 미개설로 통고 받은 것이다. 타당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건 그냥 일방적인 해고였고 추방령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가르쳤으니 여기가 내가 발 딛고 설 대지의 일부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한국의 대학은 그런 사람이 부적격자가 되고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다. 아니 거기까지만 했으면 그냥저냥 대학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대자보를 붙이지 않고,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 않고, 저널에 기고하지 않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지 않고, 동료 강사와 학생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하지 않고, 왜 정당한 이유 없이 강좌를 없애느냐고 묻지 않고, 다음 학기든 그 다음 학기든 무슨 강의든 줄 때까지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해버린 이후에 대학에서 살아남기 힘든 부적응자는 이제 대학에 살려두면 안 되는 추방자가 되었다. 시민이 아닌 자가 시민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추방자는 한 둘이 아니었다. 각각의 사안은 달라도, 지금 대학과 싸우고 있는 모든 해직강사들의 공통된 '죄'는, 불복종의 죄다. 항거했기 때문에 추방되었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이 1977년 교육법을 개정하여 대학 강사에게서 교원 지위를 박탈한 것은 바로 이런 강사들을 대학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후로 전국의 대학 강사는 갑자기 법적 근거가 상실되어 지금과 같은 '시간 강사'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갖게 되었다.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자 시간강사는 대학이 더 쉽게 맘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자기의 대지를 빼앗기고 추방될 수 있는 이 존재는, 거주권도 시민권도 없는, 대학의 불법체류자이다. 프랑스에서는 증명서류(papier)가 없는 불법체류자들을 '쌍빠삐에(sans papier)'라 부른다. 마치 종이 한 장이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재밌는 말이다. 그들이 필요해서 데려왔고 필요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신분증이 없어지면 '불법의 존재'가 되는 것처럼, 다른 교수와 똑같은 연구자이며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우리도, 대학에 없어선 안 될 존재이면서도 '교원'이란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해 쌍빠삐에와 같은 사람들로 존재해왔다.그동안 수많은 대학 강사들이 죽음으로 이 문제를 고발했다. 2008년 건국대 강사 고 한경선 박사는 대학의 부실한 강의 교재 강매에 항의하고 강사료를 강의시수의 절반밖에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했다가 임용길이 막히자 절망하여 이런 사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010년에는 조선대 강사였던 고 서정민 박사가 논문대필과 임용비리를 고발하고 자살했다. 이런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로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상황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세 차례나 유예되었고, 오는 2018년 다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강사들이 대학에서 쫓겨났고,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정상화를 요구하는 해직강사들의 국회 앞 천막농성이 3천500일을 넘어섰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교원 지위를 돌려 달라. 그게 시작이다. 그리고 나서야 고용과 임금과 차별의 문제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06-13 채효정

[수요광장]도시재생과 미래도시

상당수 지역 좋은 환경 경험없어개념 재정립과 사업 이해 필요골목 치장·겉보기식 개선보다삶의 질 높이고 미래 위해 설계정부 주도 특별사업 민간자본과주민들 자발적 참여로 추진돼야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발표된 도시재생뉴딜정책은 10년 전 노무현정부 막바지에 발표된 도시재생사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도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재생활성화특별법에 의하면 도시재생사업은 기존의 낙후된 도시환경을 공공의 지원으로 자생적 기반을 확충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회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도시재생사업은 6개 시범사업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46곳에서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번 정부에서는 앞으로 5년 동안 약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500개 지구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지원으로 지금까지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이게 될 도시재생사업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행 도시재생특별법의 제도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개념정립과 사업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되었으면 한다. 도시재생이란 도시의 특정지역이나 시설이 쇠퇴하여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을 때 이를 회복시키거나 다른 기능으로 대체시켜 그 지역을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되살려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능을 상실한 조선소를 상업과 쇼핑으로 되살린 런던의 도크랜드나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 21, 쇠락한 탄광촌을 디자인 녹색도시로 변모시킨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 폐쇄된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등은 도시재생의 성공적 사례라 하겠다. 이번에 정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도시재생뉴딜도 도시재생활성화특별법에 근거한 것으로 그 내용과 방법이 기존의 도시재개발이나 도시정비사업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아 개념상 혼동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따라서 도시재개발의 한 유형으로서의 도시재생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하고, 사업구역으로 지정될 대상지에 대해 도시재생사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통하여 목표와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지역은 과거나 지금이나 한 번도 좋은 환경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재생(?)하겠다는 건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다음으로는 우리나라 도시의 노후 환경은 선진외국의 도시재생 대상지와 달리 주거밀집지역이 많고, 대부분의 집들은 수선이나 개축 정도로는 환경개선의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편익시설을 갖춘다고 해도 정작 주민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현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은 대상지의 환경이나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이나 주민들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진행과정에서 주민참여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그들의 재산가치가 올라가는 것이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세입자들의 권익보호에만 매몰된 채, 정작 지역의 환경 수준을 높이는 일에는 소홀해지기 쉬운 점도 지적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미래의 도시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도시의 재생이 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골목치장이나 겉보기식의 공동체사업만으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미래를 위한 도시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은 정부의 예산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특별'사업이다. 시범사업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정부가 자칫 계몽적으로 사업을 지도하고 감독해야한다는 경직된 사고로는 사업의 지속성이나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대로 경험을 쌓은 도시재생전문가들이 태부족한 상태에서 공공이 해야 할 역할도 있겠지만, 언제까지 국가의 인력과 예산을 민간의 재산보전에 투입할 수 있겠는가? 유연한 사고와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미래의 도시재생사업은 민간의 자본이 투입되고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참여에 의해 발전되어야하기 때문이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6-06 양윤재

[수요광장]경청과 소통

선입견 없이 바른 태도로 집중눈 맞추고 맞장구 치며 들으면구체적 사례·에피소드 통해배경·배후·인격·인성 등 파악모든 문제해결 출발점은잘 듣고 공감하며 신뢰 쌓는것일을 하다보면 워낙 다양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니 특별히 상담학을 전공한 적이 없어도 상담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오래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면 때론 미주알고주알 다 들어야 사건 이면에 있는 비밀까지 알 수 있고 그런 사소한 것이 실마리가 되어 문제해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급함이나 선입견 때문에 미리 결론짓고 속단하는 것을 피하면서 듣는 것을 계속 연습하다보면 주의 깊게 듣는 중에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어 많은 이야기를 끌어 낼 수 있는 "경청"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경청만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공감하는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소통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의뢰인의 약점이나 단점을 물어보아도 진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언이 가능하다. 굳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가 아니라도 많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경청과 소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하며 잘 듣다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으면 상대방을 신뢰하게 된다. 하나만 물어봐도 스스로 열을 알아서 이야기할 만큼 똑똑한 의뢰인도 있지만, 말이 어눌하여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거나 핵심적인 증거를 두고도 그것이 중요한지 몰라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분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이야기하게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경청을 잘하는 것은 선입견 없이 바른 태도로 온전하게 집중하여 듣되 적절한 눈 맞춤과 맞장구를 치며 듣는 것일 테고 더 나아가서는 적절한 질문을 하여 구체적인 사례나 에피소드를 들음으로써 일의 배경, 배후, 관계자의 인격, 인성 등을 파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귀가 어두운 어르신이 찾아오셨다. 토지관련 민사소송 1심 재판에서 졌다는데 판결문도 없이 무작정 설명을 하시니 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고, 빽빽 소리를 질러야 의사소통이 되니 나도 모르게 뒷골이 아팠다. 연세가 92세라는 말을 듣고서는 더욱더 사건을 맡고자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 다른 곳에 가시길 바라며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런데 그분은 웬일인지 이틀 연속 상담료를 내시며 상담을 하시는데 그분 성의를 봐서라도 일단 판결문과 소송기록을 가져오시면 검토해보기로 했다. 기록을 보면서 어르신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보니 쟁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였고, 억울함이 다가왔으며, 몇 가지 질문을 하다 보니 1심 때 부족했던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결국 제때에 만족할만한 항소이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문제해결의 출발은 잘 듣는데서 비롯된다. 또 최근에 한 젊은 여성이 외도문제로 상담을 왔다. 남편이 알게 돼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그 후 자신을 용서해준다고 했지만 너무나 급작스럽게 자신이 바뀔 것을 요구하니 힘들어서 이혼을 해야 하나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분의 평상시 결혼생활 및 남편의 요구사항을 들어보니 그리 무리한 요구들도 아니었고, 상간남에게 전혀 해코지도 하지 않는 등 오히려 신사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경우의 다양한 사례를 들려주며 입장을 바꿔서 본인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 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상담하기 전까지는 남편이 자신에게 너무하다 싶었는데 결코 그게 아니었다며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고통과 행복은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면이 있지만 옆집, 그 옆집 사람도 고민과 슬픔이 있고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환경이나 처지를 비교하고 자신의 처지를 덜 고통스럽게 여기는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면도 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거나 객관적인 지표를 알게 됨으로써 위로를 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경청은 소통의 전제이고, 공감하는 소통은 신뢰를 쌓는 출발점이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5-30 장미애

[수요광장]대통령 취임 초기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은 필요한가?

감시역할 위해 갈등 필요하지만허위·과장·길들이기 악용 안돼탄핵 정국속 조기대선 치러지고대내외적 어수선할 때 출범한새정부가 제대로 뿌리 내리도록조용히 지켜보는 인내심 필요제19대 대통령 선거일 바로 다음 날이었던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이번 대선은 전임 대통령의 탄핵 인용으로 봄에 치러져 장미 대선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당선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되는 특이한 상황을 맞아 취임식은 국회의사당 내에 있는 로텐더홀에서 500여명의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매우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의 취임사 중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습니다"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취임사 내용이 그대로 지켜진다면 언론과의 소통 역시 이전의 그 어떤 정권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일반적으로 대통령 취임 초기, 정부와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honeymoon period)' 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대략 100일 정도 의회와 언론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주는 관행을 말하는 것인데, 신랑과 신부에게 허니문 기간이 있듯이 새 대통령 역시 정권을 이양 받은 임기 초반에는 서툴 수밖에 없으니 일정 기간 지켜봐 달라는 취지일 것이다. 미국의 대공황기였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직후 시작된 의회 특별회기 100일 동안 대통령이 의회와 손잡고 많은 경제 위기 극복 법안을 통과시켜 위기 탈출의 토대를 닦았던 것이 '허니문 기간'의 원조라고 한다. 한편, 이번 취임식을 취재했던 국내 주요 언론들의 시각을 보면 신임 대통령과의 허니문 기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신문의 경우 1면에 야권을 직접 찾아간 대통령의 협치 모습, 탕평 인사 실천, 대통령의 신선한 취임사 등을 부각시켰다. 과거 정부는 통상 12월 중순 당선 이후 다음 해 2월 25일 취임식까지 정권 인수위원회를 가동하는 기간 동안 2개월여의 허니문 기간을 거쳐 왔기에 인수위가 없는 이번 정부도 정권 출범 초기 당분간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얻고 출범한 버락 오바마에게 언론은 비교적 오랜 기간 허니문을 유지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과 취임 첫날부터 싸움을 벌여 허니문은 커녕 바로 파경을 맞았고, 최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 파문이 커지면서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해 놓은 상태이다. 물론 어느 정권이나 언론과의 갈등은 있어 왔고, 이른바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이러한 갈등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갈등이 허위, 과장으로 부풀려지거나 정권을 길들이는 구실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언론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본연의 임무 때문에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마냥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임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총체적인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이번 정권의 경우 어느 정도 권력과 언론의 허니문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통령의 바지 길이나 안경테, 즐겨 마신다는 커피 브랜드 등을 부각시키는 일부 언론 보도는 '허니문 기간'을 잘 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탈권위적이고 국민들에게 친화력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이러한 보도들이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홍보로 비쳐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당분간 새 정부가 힘을 얻고, 정상적으로 가동할 때까지 정부와 언론간의 발전적인 '허니문 기간'이 유지되길 기대해 본다. 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출범한 신정부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5-23 문철수

[수요광장]대학을 비판해야 대학이 산다

기업화 된 대학 비용절감 위해서슴없이 강좌 줄이고 강사 해고교육도 인간도 비용으로 환산한국 고등교육 담당하는 실체지금 우리 대학에서 그 무엇보다절실한 것은 비판하는 정신이다스승의 날 아침, 문자 한 통. "선생님,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지요?" 라고 묻는 말에, 목이 콱 막힌다. 학생들 걱정 않도록,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하는 것이 내 임무다. 나는 강단을 잃어버린 해직 강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메일로 45명의 다른 동료 강사들과 함께 해고를 통보 받고 11학기 동안 강의했던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탄원서를 쓰고, 작년 스승의 날에는 교내에서 인문정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사까지 하며 선생님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일했던 경희대학교에서는 2012년 총강의수 8천243개에서 2014년 7천497개로 강의수가 746개나 줄어들었다. 강의수가 줄었다는 것은 그 강의를 담당하던 누군가가 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경희대에서 강사 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 동안 무려 197명이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는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대학 기업화의 결과다. 강좌 축소, 강사 해고는 모두 '효율적인' 비용 절감의 방법이다. 영리형 대학에서는 교육도, 인간도, 모두 비용으로 환원된다. 일반 상품에서도 원가 절감은 품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교육은 어떻겠는가. 학생 수는 그대로인데 강좌 수는 줄어드니 학기 초마다 '수강신청대란'이 일어나고, 학생들이 강의를 사고 파는 일까지 벌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는 대학에서 듣고 싶은 강의, 들어야 하는 강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00명 200명씩 수강하는 대형 강의실에서는 출석을 부를 시간도 모자라 전자출결시스템을 이용하고 대리출석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출석인증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준 학생은 매 시간 사진에 찍힐 때마다 마치 범죄용의자인 것처럼 채증을 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했다. 이런 강의가 과연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까. 온라인 강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강의실 없어도 되고 한 번 찍어 놓은 영상으로 몇 번이고 쓸 수 있고 강사 대신 전임교수 강의 비율을 높이기도 좋다. 대학에서 온라인 강좌 전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과연 기술혁신에 따른 교육혁신으로 볼 수 있을까. 학생들은 말한다. "방통대도 아니고, 사이버대도 아닌데, 대학 와서 이 비싼 등록금 내고, '인강'으로 학점 때우고 졸업하다니 솔직히 돈 아깝죠." 우리는 이런 비정상적 교육을 '미래교육'이라고 부르고 '혁신'이라고 선전한다. 고등학교 때도 보지 못했던 '콩나물 교실'에 교수·학생들과의 인간적 관계는커녕, 한 학기가 다 가도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로 끝나는 강의, 캠퍼스는 멋진데 정작 모여 공부할 곳은 없어서 학교 밖 카페를 전전해야 하는 학생들 '무늬만 교수'인 채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학기당 계약을 연장해가야 하고 강의 평가 점수가 그대로 해고 사유가 되니 수업 시간에 소신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학생들 눈치 보기 바쁘며 방학이 되면 월급도 없고 연구공간은커녕 도서관 이용도 학교 인트라넷도 제한되어 논문 하나 다운받아 보기 힘든 대학 강사들, 이들이 한국의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실체이다. 이런 대학에서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고, '융·복합'을 논하고, '미래 교육'을 꿈꾼다. 스승의 날, 늦은 밤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에는 "선생님이 나의 롤 모델"이라고 쓰여 있다. 살면서 학문과 실천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자 노력했지만, 이 사회와 대학이 나에게 돌려준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당해야하는 차별과 모욕·비판에 대한 처벌이었으니, '나처럼 되면 안되지' 라고 답을 쓰려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라고 썼다. 복종을 달게 받지 않고 거부할 줄 아는 사람. 대학에 대한 나의 불경죄에는 그렇게 학생들을 사주하고 선동했다는 것도 있다. 스튜어트 홀은 대학은 비평적 기관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대학에서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바로 그 비판정신이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05-16 채효정

[수요광장]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5천만 국민들이 새로운 꿈 꾸며희망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개헌통한 새 공화국 출범시켜재도약할 수 있는 기틀 마련 기대국민대통합·통일 정치적 슬로건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오늘 우리나라는 열아홉 번째 대통령을 새로 맞이하는 날이다. 지난 정부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리와 사익 추구로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아갔던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의 재판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과 두 달여의 선거기간을 통해 새 대통령을 뽑은 셈이다. 선거기간 내내 국민들은 후보자들이 내놓은 선거공약과 정책들을 미처 살펴보기도 전에 투표장에 가야했었고, 전에 없이 혼탁한 후보자들 간의 자질검증과 거짓공방으로 여섯 차례의 토론회는 유권자들에게 많은 실망과 분노를 주었을 뿐이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지지후보를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민심과 주장들은 여느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일 것 같아 자못 걱정스럽다. 하기야 민주국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대립과 갈등을 하면서 의견을 하나로 수렴시켜 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녕보다는 당리당략과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몰된 광경을 너무나 많이 보아온 국민들로서는 이번의 대선 이후 정국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선거기간 내내 보여 온 각 당의 행태나 후보들의 자질 검증에서 나타난 국정수행능력과 공약이행에 대한 믿음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새 정부가 또 한 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물들어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새로 시작되는 정치판에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선 결과로 말해주었다. 이제 나라의 운명은 새 대통령과 기존의 정치권이 얼마나 슬기롭게 나라를 끌고 가는가에 달려있다. 국민들은 새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이나 정책들이 나라를 발전시키거나 민생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5천만 국민의 대통령으로서의 그가 미래의 우리들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가 벌써 20년이 가까워오는데 우리는 아직도 30년 전 민주화의 노도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헌법의 틀에 갇혀있다. 이래서는 나라의 발전은 물론 정치적 성숙도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미루어둘 수는 없다. 국회의 개헌특위에서는 그 동안 검토되었던 헌법개정내용을 광범위하게 토론의 장으로 들고 나와 국민들의 뜻을 반영시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새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마무리하고 새 헌법에 의한 공화국을 출범시켜 우리 국민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존의 정치적 행태가 더 이상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세계는 새로운 약육강식의 냉정한 싸움터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치판에는 법조계 인사들이 유난히 많이 진출해 있다. 법의 속성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매우 과거 지향적이어서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사람들에게서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국가발전은 그들처럼 과거에 매몰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용기 있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대통령은 마음 깊이 새기길 바란다.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이나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인 슬로건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무슨 특별한 능력이나 비책이 있어 오랜 세월 뿔뿔이 갈라져 온 국민들의 이념의 틈을,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있단 말인가? 국민대통합은 모든 국민들이 바라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풍요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의 경제력이 탄탄해지고 안보가 튼튼해져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때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그 날은 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5-09 양윤재

[수요광장]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가끔 터지는 아동·노인학대 사건인간의 잔인함에 회의감 들 정도그러나 주변엔 자신처지 어려움속선의 베푸는 훈훈한 미담 더 많아오늘 하루 자녀들에게 고맙다고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보자울긋불긋 탐스런 꽃들과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가는 나무들을 보면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지 알 것 같다. 5월이 좋은 것은 날씨나 환경이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달은 1일 근로자의 날, 3일 석가탄신일, 5일 어린이날, 9일 대통령 선거 날까지 공휴일이 많기도 하고 징검다리 휴일이라서 가족끼리 함께 할 시간이 다른 5월보다 더 많다. 이미 산으로 들로 아님 해외로 놀러 가신 분들도 많겠지만 연휴를 즐기기는커녕 공휴일에도 출근해서 일해야 할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중소규모의 제조업체들은 대기업의 빡빡한 요구에 맞춰 제품 납기일을 채우느라 휴일도 정작 쉴 수가 없고, 맞벌이 부모들은 재량휴일이라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이 집에 혼자남아 있는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다.몇 해 전부터 잊을만하면 보도되는 아동 학대 사건들은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지금은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령이 많이 정비되어 있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문제는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되도록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오랜 습관이 결합되어 나아지지 않았었다. 잘 드러나지 않는 방임이나 정서학대 및 성 학대부터, 외관상 표시가 나는 신체학대까지 아동학대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동학대처벌에관한특례법에서는 아동복지시설의 종사자나, 아동복지전담공무원, 유치원 원장, 교직원, 학원의 운영자, 의료원, 구급대원 등 아동학대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영역의 거의 모든 종사자들에게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의무화 해놓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신고율이 낮은 편이다. 2년 전 평택의 한 친부와 계모가 7세 된 아들에게 락스를 뿌리거나 굶기고, 때리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여 사망한 '원영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자나 전국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고도 오지 않은 아이들을 전수 조사하고 있으나 최근까지도 아동학대 사건은 도무지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영이의 계모는 징역 27년, 친부는 17년이란 중형을 선고받고 최근에 형이 확정됐다. 노인 학대는 또 어떠한가. 부모는 자식에게 맞아도 대체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혼자 넘어져서 다쳤다고 뻔한 거짓말도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그런다기보다 행여나 자녀가 전과자가 될까봐 그것을 더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이다. 노인 학대의 대부분은 돈 없고, 병든 경우가 많으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이상 앞으로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요양원에 대한 감독소홀과 일부 요양보호사의 폭력성으로 인하여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에 대한 방치나 학대도 개선되어야할 부분이다. 또한 어르신들의 부양 문제도 이제는 법이 개입되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장남이 집안에서 부모님을 돌보면서 본인이 부담하거나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은 집이든 요양병원이든 비용 때문에 형제들 간에 부양료 분담을 청구하는 사건이 많아졌다. 오죽하면 같은 핏줄끼리 얼굴을 붉히며 소송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긴병에 효자 없고 사는 게 다 어려우니 나무랄 수만은 없다. 이제는 자녀들의 우애를 위해서라도 건강을 위해 힘쓰고 병 없이 늙길 소망하며 노후 자금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 일찍 은퇴하고, 아주 오래 사는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노후 자금 및 노인 빈곤 문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의 달. 우울한 이야기만 해서 아쉽다. 그러나 주변에는 자신의 처지도 어려운데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장애 아이의 위탁부모가 된 이야기나 아버지의 간암치료를 위해 간을 내놓은 딸의 이야기까지 세상에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더 많다. 오늘 하루, 자녀들이 자는 머리맡에서 이렇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께는 낳아주시고, 지금까지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하다고 안부 전화 한 번 드리면 어떨까./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5-02 장미애

[수요광장]19대 대선 TV 토론에 대한 소회

5명이 18분내 상대 후보에 질문자기방어·정책 설명 하다보니충분한 논의없어 유권자 혼란자신의 강점 내세우기 보다는상대 약점 공격 네거티브로 변질발언 팩트 확인 검증시스템 절실19대 대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상 최초로 봄에 치러져 장미 대선이라 불리는 이번 선거에 유권자들은 대선 주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TV토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지난 23일 TV토론회 시청률이 40%에 육박했다고 하니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도 후보자에 대한 지도자 자질이나 정책에 대한 검증은 실종된 채 상호 비방만 난무한 토론회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선에서 후보자 TV토론이 본격화된 것은 1997년 제15대 대선부터이다. 1997년 11월 개정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서는 공영방송사인 KBS와 MBC 공동으로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설치해 후보자 중에서 1인 또는 여러 명을 초청하여 3회 이상 대담·토론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이 법에 따라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한시적으로 구성된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토론회를 주관해, 일정한 초청요건을 충족시킨 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총 3회, 나머지 후보들을 대상으로 1회의 토론회를 개최했고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도 총 4회의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방송사가 주관한 대통령선거후보자토론의 중립성 문제, 획일적인 진행방식 등이 논란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고, 2004년 3월 12일 법 개정을 통해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상설화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16개 시·도 선거방송토론위원회, 181개의 구·시·군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설립한 바 있다.이번 19대 TV토론의 경우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토론회는 총 3회 실시되는 데, 1차 토론회가 지난 23일 정치 분야를 주제로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 '권력기관 및 정치개혁 방안'에 대해 진행된 바 있다. 2차 토론회는 경제 분야를 주제로 28일에, 3차 토론회의 경우 사회분야를 주제로 5월 2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1차와 3차 토론회의 경우 후보자들이 주제별로 사회자의 공통질문에 답변한 후 총 18분의 발언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진행하는 스탠딩 토론 방식이다. 한편, 2차 토론회는 1차, 3차 토론회와는 달리 한 후보자의 정책 발표 후 나머지 후보자와 1:1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정책 검증 토론이며 앉아서 진행한다.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선 토론회는 후보자들의 자질과 정책 비전 등을 비교해 봄으로써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TV토론은 정책선거를 촉진하고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 의지를 고취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 23일에 개최된 1차 토론회를 되돌아보면, 5명의 후보가 18분 안에 상대 후보에 대한 질문과 자기방어 및 정책 설명을 하다 보니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질문 쏠림 현상으로 인해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파면으로 인해 단기간에 대선을 치르다 보니 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네거티브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또한 중앙선관위 주관 토론회를 포함해 지난 세 차례 토론회가 끝난 뒤 후보자의 발언 진위가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발언에 대한 팩트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난해 미국 대선 TV토론의 경우 토론회 직전까지 기자들이 팩트 체크 항목을 미리 작성해 놓고 실시간으로 발언의 진위를 검증한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언론사들이 중심이 되어 후보자 토론내용에 대한 신뢰성 높은 팩트 체크를 통해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에 일조해야 할 것으로 본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4-25 문철수

[수요광장]증오하는 힘

불의 저지른 자 그 힘 두려워하며그것 해체하려고 온갖 수단 강구오늘날 정당한 증오 파편화 하고무력화 시키는 것은 웃음과 기쁨증오 못해 용서·관용 베푸는 동안부활해야 할 생명 돌아오지 못해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땅을 적시는 봄비는 농부에겐 반갑지만,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원망스럽다. 꽃들은 피어나고 나무는 춤을 추지만 오늘도 광화문 광장 광고탑 위에는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곡기를 끊고 서있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신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고통은 피어나는 꽃과도 싸워야 한다. 내가 사는 강원도 산골의 접경지역도 꽃무덤에 뒤덮인 골짜기마다 숨겨진 죽음들이 황홀경에 감춰져 있다. 향락의 시간이 된 봄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을 외면하며 아름다움은 망각의 힘도 동시에 발휘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온 힘을 다해 기억의 투쟁을 해야 한다. 4·3, 4·16, 5·18… 아직도 끝나지 않은 6월의 전쟁까지, 숨 막히게 돌아오는 이 땅의 봄은 그렇게 화해할 수 없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생명이 부활하는 봄이 죽음을 뒤덮으며 올 때 나는 휴머니즘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종종 휴머니스트들은 치유와 위로를 통해 고통을 중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망각은 인간을 고통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직 그 고통의 사회적 원인과 의미가 드러나고 역사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휴머니즘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는 곳에서 시작된다.중학교 때 도시에서 온 영어 선생님은 영어에는 새가 운다는 표현이 없다고 했다. "버드(bird)는 크라잉(crying)하지 않아. '싱어송(sing a song)'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얼마나 좋아? 응? 좀 밝게 밝게 살자. 응!" 하지만 나는 늘 '새가 운다'고 말했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 싫었고, '밝게 살라'는 말이 거북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새의 울음은 아름답고 처연했다. 새는 곳곳에서 들은 슬픈 사연들을 전하고 있었다. 새의 울음은 슬픈 노래이기도 했다. 노래가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소리는 어떤 이들에겐 불온한 소리였지만 어떤 이들에겐 '같은 마음'을 확인시켜주는 단결의 노래였다. 그건 민중이 증오를 사회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증오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겪고 나면 인간도 사회도 모두 황폐해지는 법이다. 증오가 사적인 상태로 남게 되면 복수의 악순환을 낳거나 집단적 혐오로 빠져든다. 그것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에 대한 죄과는 반드시 법에 의해 응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개인적 증오는 파편화된 에너지로 잠재되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한 뇌관으로 남지만, 사회화된 증오는 개인적 증오를 공적인 힘으로 전환시키고 공공을 위한 정의를 수립한다. 그러니 필요한 건 증오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증오하는 힘이다. 불의한 지배자는 그 힘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오늘날 정당한 증오의 힘을 파편화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웃음과 기쁨이다. 독재정권은 총칼로 지배했지만 자본은 오락과 쾌락으로 지배한다. 시장의 용어들은 '과도 긍정성'이 특징이다.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광고에는 절망이 없고 우울이 없다. 인간도 유쾌한 사람이어야 잘 팔린다. 오늘날엔 누구나 '노래하는 새'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증오하는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 용서받고 인간성을 지킨 사람들의 인간성이 다시 짓밟히게 된다. 얼마 전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前)대통령 전두환은 회고록을 출판했다. 5월의 봄은 '폭동'이 되어 돌아왔다. 그 정권에서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은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광주학살의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국가정보원 간첩조작사건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남재준은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이 역사의 반복이 어떤 비극으로 재현될지는 알 수 없다. 마땅히 증오해야할 것을 증오하지 못하고 용서와 관용이 남용되는 동안, 부활해야할 생명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봄 들녘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다. 5월에는 장미도 피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가 운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04-18 채효정

[수요광장]주택정책의 오류와 함정

우리나라 주택문제 가장 큰 원인'1가구 1소유 정책' 50년 넘게 고수30여년간 신규 분양에만 의존기존 주택시장 고사상태 빠뜨려집값 내려가면 되레 사는사람 없고안 지으면 모자라 가격상승 '악순환'봄이 되면 이사철을 맞아 연례행사처럼 집값이 들썩이고 전세와 월세가 제철을 만난 듯이 올라가곤 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값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것이 나쁠 게 없겠지만 집 없이 남의 집살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사철을 맞는 기분이 아주 죽을 맛이지 않나 싶다. 얼마 전 경실련에서 발표한 지난 50년 동안의 우리나라 토지가격 상승이 6천704배가 되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토지와 주택관련 정책이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경제가 제대로 지탱될 수 있으며, 무주택 서민들이 안정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못 걱정스럽다.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약 35만호를 건설해 2015년 기준으로 총 주택 수 1천636만호에 주택보급률 102%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나타내고 있지만 아직도 남의 집에 사는 가구가 수도권의 경우 45%에 이르고 있으며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가고 있다. 주택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도 국가에서 제공한 공공임대주택 약 18%를 포함해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36%나 되는 것을 보면 주택문제는 유토피아에서도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언제까지 세입자의 서러움에 시달려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우리나라 주택문제의 가장 주된 원인은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도 실현하지 못한 1가구 1소유 주택 정책을 50년 넘게 고수해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책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1가구 다주택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 하겠다. 현재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이 5%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동안 다주택 소유자들이 집값 상승으로 많은 이익을 취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가 해야 할 임대주택의 공급을 30% 이상 담당해 왔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뉴스테이사업으로 기업들로 하여금 임대주택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긴 했으나 앞으로 임대주택의 확대를 위해서는 다주택소유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철폐하고 민간자본을 적극적으로 임대주택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주택시장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거의 신규분양에만 의존한 채 기존주택시장을 거의 고사상태에 빠뜨려 왔다. 주택관련 세금의 80% 이상을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 등 1회성 거래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주택을 사고 팔 경우 과도한 거래세 때문에 다시 그만한 집을 살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주택시장이 활성화되기란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거래세는 거의 없이 보유세 중심으로 과세함으로써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시장을 활성화시켜 안정된 지방세수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주택소유자가 최종적으로 주택시장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국가가 양도세를 유예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택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집값은 내려가야 한다는 정책의 착각이다. 물론 과거처럼 집값이 일 년에 두, 세배씩 오르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집값이 내려간다면 아무도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집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집값이 내려간다면 집을 살 수가 없다. 집값이 내려가면 전세나 월세는 올라가게 되고 집을 사지 않으니 집을 짓지 못한다. 집을 짓지 않으면 집이 모자라게 되고 결국에는 집값이 오르게 된다. 이렇게 집값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결국에는 집 없는 사람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집값이 오르는 것이 투기꾼들의 작당 때문이라고들 알고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온전히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좋은 정부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04-11 양윤재

[수요광장]부부간의 사랑은 신뢰와 배려

배우자 믿는다면 감정소비 없고믿어줄 한명만 있어도 외롭지 않아사랑한다면 배려 안할 수 없어일방적 희생 결코 오래가지 못해결혼생활 행복하게 유지하려면서로 믿고 배려하려고 노력해야변호사로 출발한 20년 전만 해도 여성변호사가 그렇게 많지 않을 때였다. 여성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공감해줄 것 같은 여성이라며 찾아오고, 남성분들은 여성의 심리를 잘 말해줄 것 같다며 상담을 청하였다. 비교적 순탄한 코스를 걸어온 나로서는 간접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들의 덕이다. "행복한 가정은 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다 저마다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문장처럼 각 가정마다 불화의 이유가 다르고, 같은 일에 대한 고통의 강도나 반응도 다 다르다. 좋을 때는 하루라도 못 보면 죽을 것 같던 사람들이 싸울 때는 하루라도 같이 있으면 죽을 것 같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선글라스를 낀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중년부인은 과거에는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눈 밑의 멍을 보여준다. 반백의 칠순이 넘으신 어르신은 45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당하거나 폭행도 참고 지내왔는데 이제 좀 살만하자 은퇴한 남편이 50대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였다며 황혼이혼을 하겠다고 하신다. 여태 괄시당하고 사셨을 때는 이혼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는데 왜 새삼스럽게 지금이냐고 조심스럽게 여쭙자 "영감이 바람피우는 꼴은 절대 못 봐"라며. 담담한 얼굴로 오신 어떤 부인은 남편의 외도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 여자는 돈을 달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물어보신다.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편의 표정이 애처롭다. 이 분에게는 남편의 외도는 별거 아니고, 돈이 가장 중요하리라.변호사 초년생일 때는 남편의 외도나 시댁 욕을 하느라 몇 시간씩 상담을 하신 분이 소장을 접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찾아오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 사이의 오묘함을 알기에 당황하지 않고 충분한 재발방지책을 안내해드리고 다시는 같은 일로 뵙지 않기를 빌어드린다. 소송으로 수개월간 치열하게 다투었는데 소송과정에서 진정어린 사과를 접한 후 화해를 하는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다. 결혼생활 24년차라서 그런지 몰라도 상습폭력이 아닌 한, 돈 문제든 외도든 일단 이혼을 결심한 분이라도 이혼사유가 부족하다거나, 아직은 자립에 대한 대비책이 없거나 여전히 배우자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일 때는 이혼보다는 부부 상담을 적극 권유해왔다. 오랜 시간 살아왔는데 하루 이틀 소장 먼저 낸다고 달라지는 것 아니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신중히 결정하라고 권한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다보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혼인지, 아니면 이혼보다는 재산을 지키고 싶어하는 지, 상대방의 진정한 사과만 있으면 되는지 등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다양하다.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우거나 적절한 제안을 배우자에게 함으로써 관계가 개선되기도 한다. 알려준 대로 했더니 갈등이 해결되었다며 좋아하는 의뢰인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혼전문변호사보다 부부관계회복 상담변호사라는 말이 더 좋다. 결혼은 남녀 간에 일대일로 만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아도 그 상대방의 가족, 집안뿐 아니라 역사,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비슷하든 전혀 다르든 서로가 만나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결혼. 결혼은 과연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고루할지 모르지만 답을 하자면 여전히 '사랑'이다. 흔히 생각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신뢰와 배려야말로 부부간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배우자를 신뢰하면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 이 세상에 한명이라도 믿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또 사랑하면 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왕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아내를 왕비로 대접하고, 왕비가 되고 싶으면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된다. 사랑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방의 희생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하려면 상대방을 믿고, 배려하기 위해 쌍방이 모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04-04 장미애

[수요광장]가짜 뉴스(Fake News)와 사실 확인(Fact Checking)

언론이 올바르게 식별해 낸다면위상 인정받는 계기 되겠지만제대로 검증조차 못한다면거짓양산 집단 전락할 수밖에지금이야말로 신뢰·객관성 바탕사실 확인 만전 기해야 할 시기최근 언론에 가짜 뉴스에 대해 우려하는 기사와 기고가 부쩍 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이루어짐에 따라 19대 대선일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가짜 뉴스에 대한 주의가 한층 요구된다. 가짜 뉴스에 대한 논란은 지난 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는데, 당시 가짜뉴스가 보여준 파급력은 대단했다.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5개 중 4개가 가짜 뉴스였고, '프란체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1위)거나 '힐러리가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3위) 등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이처럼 가짜 뉴스는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유통되기 좋은 환경이어서 삽시간에 퍼져 진실을 왜곡하고 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줄 수 있기에 한국 대선에서도 얼마든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우리나라의 경우 유력 대선 후보로 꼽혔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가짜 뉴스의 피해자로 볼 수 있겠다. 대선 출마 선언 직전 '반기문, 한국 대통령 출마는 유엔법 위반'이란 가짜 뉴스가 터져 나왔고, 유력 정치인들도 감쪽같이 속아 이 가짜 뉴스를 인용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인격살해와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는 말을 남기고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정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지만, 가짜 뉴스의 개념 정립과 함께 생산자에 대한 처벌강화 그리고 포털과 SNS 운영자들에게 가짜 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일정한 책임을 부여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우선 금년 하반기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의 경우 가짜 뉴스나 증오 표현을 방치하는 SNS 기업에 최대 5천만 유로(약 609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도 구글, 페이스북, 르몽드, AFP 등 플랫폼과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크로스체크(CrossCheck)' 프로젝트를 통해 가짜 뉴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선관위와 검찰, 경찰에서 가짜 뉴스 전담반을 가동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200명 규모의 사이버대응센터를 운영 중이다. 경찰청도 사이버안전국에 '가짜 뉴스 전담반'을 꾸렸다. 하지만 현행법상 가짜 뉴스 생산·유포자를 밝혀내고 처벌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정파성과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가짜 뉴스를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가짜 뉴스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잘못된 정보, 허위 정보로서 가짜 뉴스는 과거부터 있어 왔기에, 가짜 뉴스의 범주를 확대해 무조건 규제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유통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가짜 뉴스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사실 확인(Fact Checking)'이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이 엄격한 사실 확인을 통해 가짜 뉴스를 올바로 식별해 낸다면 자신의 위상을 확인 받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언론이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이들 역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각국의 주요 언론사와 디지털 플랫폼들은 '가짜 뉴스'를 걸러내기 위한 '검증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디지털 기술의 일반화로 인한 방대한 정보의 유통은 언론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가짜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잘못된 정보들이 유통되면서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사의 정보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이 가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언론이 신뢰성과 객관성을 바탕으로 사실 확인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03-28 문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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