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평창 동계올림픽과 지역발전

경제적 부수효과 44조 장담 못해이젠 적자폭 줄이기 고민해야추운 날씨 행사진행 고생 알지만국민들 세금 신중히 사용 당연더 이상 정치인들 굿 놀음에놀아나는 바보되지 말아야지난 2월9일 개막된 제23회 동계올림픽이 며칠 뒤면 17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끝을 맺는다. 개최도시인 평창은 그 동안 세계 98개국에서 참가한 수천 명 선수와 임원, 그리고 수백만 명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애를 쓰기도 했지만 올림픽이라는 대단히 중요하고 세계적인 스포츠행사를 준비하느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갖은 노력을 해왔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크고 작은 어떤 종류의 행사든지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을 다 해왔고, 참가선수들의 선전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국위를 세계에 알리는 일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러우며, 아직은 크게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일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낙제점은 면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우여곡절을 겪고 유치해 온 강원도민의 숙원과제였고, 정치인들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한 판의 근사한 놀음이며, 체육인들로서는 꿈의 향연이기도 하겠지만, 잔치가 끝난 후의 뒷감당은 모두 평창시민과 강원도민, 더 나아가서는 전 국민들의 몫이 되어버린다. 평창보다 앞서 2010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밴쿠버시가 10억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고, 2014년의 소치동계올림픽도 러시아정부가 550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예산을 들인 초호화판 올림픽이었지만 경기 후의 시설유지를 위해서는 매년 12억 달러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규모의 국제스포츠행사는 서울올림픽이나 LA올림픽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흑자를 기록한 예가 거의 없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축구 같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포츠행사가 행사 자체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를 치르고 난 뒤 우리가 겪고 있는 빚잔치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축구장들의 쇠락한 모습은 국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해주고 있다.도시나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계획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서울올림픽의 경우는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고, 또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도시환경의 질적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평창의 경우는 도시발전의 동력이 거의 없는 인구 4만5천명의 작은 군에 불과한 조그마한 도시다. 이런 지역에서 비록 동계올림픽이지만 참가인원이 6천900명, 자원봉사자 1만5천명에다 관람자 및 방문자 수를 합치면 불과 20여일 남짓에 수백만 명이 이 곳에 와서 머물며 경기에 참여하고 관람하며 즐기다 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천에서부터 강릉까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신설하였고, 각종 경기장과 부대시설, 그리고 선수와 관계자들의 숙박시설을 신축하는 등 무려 14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물론 올림픽경기 이후의 대책에 대한 예상처럼 경기가 끝난 후 평창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관광명소가 되고, 또 겨울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다면 예상적자가 약 3천억원 정도로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조직위원회와 유치단에서 전망한 것처럼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적 부수효과가 44조원에 이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와 강원도, 그리고 체육관계자들은 평창군민들과 함께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투자된 시설을 잘 활용하여 적자폭도 줄이면서 평창의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다른 개최도시들의 예를 교훈삼아 적지 않은 연구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평창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수성과 지역성을 고려한 지역발전이나 생존전략은 일반적인 해법으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 더구나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적자해소와 관련된 연구와 관심이 사후에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고, 또한 사람이 바뀌고 지역의 여건이 달라져버리면 올림픽 후의 적자보전을 담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쓴 사람들이나 행사를 치르느라 추운 날씨에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는 우리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리고 세계박람회 같은 대규모 국제행사의 유치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나라경제를 위하고 국민들의 세금을 아껴 쓰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을 더 이상 정치인들의 한바탕 굿 놀음에 놀아나는 바보로 만드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 같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8-02-20 양윤재

[수요광장]행복한 설 명절이 되려면

부모님께 효도, 형제간 화목함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가족들 모여 음식 나누는 이유서로 혀끝으로 상처 주지 않고배려있는 행동으로 존중해 주는흐뭇한 명절 기대해 본다이제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어릴 땐 설날이 그저 설빔과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날이라서 좋았다. 부모님은 양손 가득 조카들에게 줄 선물까지 챙긴 채 어린 삼남매와 직행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아궁이에 불을 때시다가 손자손녀를 반갑게 맞이하시던 할아버지의 따스한 품과 정갈한 한복이 그립고, 약과와 수정과, 모듬전까지 맛깔난 음식을 척척 해내시던 전성기의 할머니도 무척 그립다. 한 그릇을 먹어야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두, 세 그릇 떡국을 먹으며 사촌들과 나이 경쟁을 했던 따듯한 추억이 있는 설날이었다.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져 그런지 명절 연휴가 되면 예전만큼 온 식구가 다 모이지 않는다. 매년 명절 때마다 인천공항 출국자들의 숫자가 증가되고, 해마다 갱신되는 것을 보면 이제는 설 연휴가 친인척이 전부 모여 덕담을 나누는 전통적인 의미보다는 일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해외여행의 기회로 쓰이는 것 같다. 명절 직후, 이혼신청 접수율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족 간 갈등이 설 명절을 계기로 터져버려 이혼을 급격히 결심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명절 때 있었던 한두 가지 해프닝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갈등이 명절 때 폭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상담 시 만나는 일부 젊은 며느리 중 시댁에 대하여 극도의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체로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크게 시집살이를 해서 어릴 적부터 시댁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그런 선입견이 있는 경우는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해가 잦고 화합하기 힘들다. 그런 편견이나 오해가 없어도 아직도 많은 집안들이 가부장적인 잣대와 태도로 며느리를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시어머니는 출산 전에는 아들 보다 돈을 더 벌었던 며느리가 두 아이 낳고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전업주부가 된 것을 뻔히 아는데도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버는데 너는 우리 아들한테 기생하고 무위도식하며 노는 것 같다" 는 차마 농담으로도 할 수 없는 말을 해서 며느리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어느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내 아들이 밖에 나가서 늦게까지 놀 수도 있지. 어디, 여자가 12시 전에 귀가하라고 감히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느냐"며 손찌검까지 했다. 또 왜 그렇게 많은 시어머니들은 큰며느리와 작은 며느리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비교하고, 나이 어린 손위동서가 나이 많은 아래동서를 괄시하는 지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기 싫은 이유가 시어머니 보는 것보다 동서보기 싫어서 그렇다는 사람도 꽤 있다. 게다가 시부모님 모두 안 계신 집이 최고의 시댁이라는 말도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하지만 모든 것이 관점의 차이 아닐까. 시부모님이 안 계시면 시집살이를 안 해서 좋을 것 같지만 자신을 며느리로서 사랑해줄 또 다른 부모님이 없다는 말이니 그 만큼 풍성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큰아들과 결혼하면 며느리 입장에서 시부모를 부양해야하는 부담의 무게가 작은 아들보다 더 클 수도 있지만 형제들 간 순위를 바꿀 수 없을 바에야 기왕 제일 크게 사랑받는 큰며느리가 차라리 낫지 않은가. 시부모 입장에서는 며느리도 당신의 딸처럼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니 당신의 딸이 대우받기를 바라는 대로 똑같이 며느리를 귀하게 대우하면 좋지 않은가. 성경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해한 후 예물을 드리라는 취지의 구절이 있다. 신에 대한 외식적인 제사보다 마음속 형제간의 화해가 먼저라는 의미다. 우리가 명절에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우린 그 본연의 목적을 잊지말아야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고 그런 것을 후손들에게 삶과 생활로써 가르치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 함께 모이는 이유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혀끝으로 사람 마음에 상처주지 않고 배려있는 행동으로 서로를 존중해주는 행복한 설 명절을 기대해본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8-02-13 장미애

[수요광장]인구절벽 시대의 교육개혁

지금부터라도 백년대계 걸맞은교육개혁 통해 출산율 높여야정부,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실효성 향상 노력하고 있지만가시적 효과 나타나지 않아출산·육아문제, 사회적 관심 필요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book)' 세계 각국 출산율 자료에서 한국의 가임 여성 1명의 출산율이 1.26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세계 224개국 중 21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야말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신생아 숫자는 1972년 100만 명에서 한 세대 후인 2002년 50만명 선이 무너져 이미 초저출산 시대를 맞게 됐고, '인구절벽'이란 단어가 실감나는 상황이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출산기피로 인해 나타난 인구절벽 현상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해리 덴트가 2014년 처음 제기한 개념으로, 생산가능 인구(15~64세)의 비율이 전체 인구에서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한국의 경우 2018년부터 인구절벽에 직면해 경제 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해결방안으로 정부는 출산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로,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의 부담을 들고 있다. 일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자녀들의 사교육비 비중이 소득의 20%에 달한다고 한다. 몇 해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국의 발전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는데, 역설적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열정에 걸맞은 교육비 부담 때문에 심각한 출산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교육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현재 인구절벽으로 인한 사회적 파급효과가 우려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2016-2026 중장기 인력수급전망'에 따르면 2016년 61만명 수준인 고등학교 졸업생이 2026년에는 지금보다 16만명이 적은 45만명 수준으로 크게 감소할 것이며, 특히 2024년은 고등학교 졸업생(40만명)이 가장 적은 해로, 2016년 대학정원(52만명) 대비 12만명이 적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른바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강력한 교육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개혁에 있어 대학 구조조정은 중요한 과제다. 학령인구가 지금과 같이 가파르게 감소할 경우, 고등학생보다 대학정원이 많아 생기는 대학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절벽은 현재 예비 고1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당장 가시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 교육과 취업 위주의 대학교육을 개혁하고, 가계의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인구절벽에 대처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향후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여파와 학령인구의 감소는 한국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이미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나라 대학의 30% 이상이 존립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자체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다. 물론 교육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백년대계에 걸맞은 교육개혁을 통해 출산율 증가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 심각한 인구절벽 현상을 경험했던 일본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정부 주도하에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나간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 재정비에 착수, 생애주기별 맞춤형 대책으로 실효성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저출산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출산과 육아 문제에 대한 범사회적인 관심을 촉발시켜야 할 때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8-02-06 문철수

[수요광장]'미래 먹거리'라는 이상한 말

누군가 독점 큰수익 얻는 '데이터'누군가 먹고 누군가엔 먹히는 것우리는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한국 곡물자급률 23.8%에 불과식량자급률 OECD국가중 꼴찌정말 지켜야 할 미래먹거리 뭔지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자치와 자급 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월요일 저녁마다 모여 책도 읽고 생각도 나누는 자리에는 먹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여름에는 밭에서 딴 딸기며 참외며 수박, 찐 감자나 옥수수가, 겨울에는 감말랭이나 고구마말랭이 같은 말린 것들이 단골 메뉴다. 생각도 나누고 먹거리도 나누며 이웃의 삶도 함께 나눈다. 그저께 공부모임에서는 낯선 먹거리 용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래 먹거리'라 하는 것이다.요즘 계속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미래 먹거리란 말을 쓰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해요. 먹을 게 하나도 안 보이는데 왜 미래 먹거리래? 맞아요. 4차 산업혁명이 미래 먹거리를 만든다는데 하나같이 먹지도 못할 것이더만. 그렇죠? 나도 그랬어. 사람이 먹지도 못할 것을 왜 먹거리라고 해? 사람이 밥을 먹지 데이터를 먹고 사나? 먹거리가 공장이 아니라 저 컴퓨터 안에서 나온다는 거지. 야 공장에서 나온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먹거리가 땅에서 나오지 어째 공장에서 나오냐. 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 그런 거야? 난 어디서 보니 미래 먹거리가 '곤충'이라고 하기에 그건 줄 알았는데. 으악! 뭐라고? 하하하하! 박장대소로 끝났지만 웃음의 뒤끝에는 무엇인가 씁쓸함이 남았다. 마을의 글동무들에게선 가끔 예리한 직관이 번득인다. 삶으로부터의 통찰이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다시 머리를 맞대본다. FTA 할 때는 차 팔아서 쌀 사 먹고 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데이터가 돈이 되고 밥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진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어디에도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인간인 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식량과 그 토대인 땅(자연, 지구)에 대한 고민이 말이다. 미래 대안 식량으로 '곤충'을 개발한다는 건 농업에 대한 포기를 전제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발상이다. 인공지능은 전기를 먹고 인간은 곤충을 먹고 사는 시대가 목전에 와 있다. 하우스 농업 기술은 기름을 먹는 작물을 키우더니 이제 전기로 작물을 키우는 스마트 팜이 혁신 농업이라 한다. 그러나 그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아마 곤충도 전기가 키우겠지.그러나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단백질과 지방 칼슘 등등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결합체가 아니며, 곤충도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이다. 생명 존재인 인간은 다른 생명 존재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쩌면 저 미래기술들은 산업사회의 기술문명보다 더 가혹하게 생명과 생명들이 기대 사는 관계와 연결의 고리들을 끊어 놓을 기술은 아닐까.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존재다. 밥에 들어 있는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모두 제거하여 인간을 오직 몸뚱이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식량을 그 몸뚱이에 처넣어 가동시킬 연료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미래 먹거리' 같은 저런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인간과 밥, 인간과 식량, 인간과 토지와의 관계는 생물체와 영양소의 관계가 아니다. 밥이 존귀함을 잃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잃는 것이다. 데이터를 '21세기의 원유'라고 한단다. 그럼 인간은 그 데이터를 만드는 유전(油田)인 셈이다. 20세기 문명을 가동시켰던 원유는 고대 생물의 화석에서 왔다. 오늘날의 데이터 밭은 살아있는 인간의 활동이다. 석유는 대지 속에서 나왔지만 데이터는 광대한 전산망 속에서 생성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독점하고 큰 수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먹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먹히는 것이다. 대지에 속한 인간은 대지의 의미가 낮아질수록 그의 존재의 의미도 땅과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땅이 자원을 내놓아야 할 창고가 되고 생산력을 높이라며 닦달당하고 식량 공장이 될 때에는 땅에 속한 존재 역시 모욕당하고 수탈당한다. 땅에 속한 존재는 동식물만이 아니다. 농민만도 아니다. 우리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들 중 꼴찌이고, 곡물 자급률이 23.8%에 불과하다. 지켜야 할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는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8-01-30 채효정

[수요광장]선진국, 선진국민?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잇단 사고제천참사 주차질서만 지켰어도많은 생명 구할 수 있었을텐데올해엔 모든 국민이 법과공동체 기본질서 제대로 지켜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가졌으면새해 들어서자마자 정부에서는 올해의 국민소득이 드디어 3만달러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우리가 꿈꿔오던 30~50그룹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20여 년 동안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소위 마(魔)의 벽(?)이라는 3만달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계나 경제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마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6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어엿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혼란을 겪기도 했고, 경제적 위기도 맞았으며, 노동운동의 시련과 민주화의 고난을 거쳐 오긴 하였지만,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힘은 누가 무어라 해도 바로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힘이라고 확신하고 있다.이처럼 오랜 세월, 온 국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정치적 후진성 때문에, 재벌의 횡포 때문에, 노조의 폭력적 저항 때문에, 심지어는 우리의 후진적 국민성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새로 권력을 잡은 쪽에서는 선진국이 되는 것보다는 먼저 통일을 해야 하고, 경제성장보다는 분배를 통한 공평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이란 과연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선진국에 대한 정의는 매우 애매하여 하나로 통일된 개념은 없지만, 대체로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이로 인해 정치, 문화, 교육, 복지 등이 골고루 발달되어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나라라고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유엔이나 OECD에서 발표하는 매우 다양한 지표들을 비교하여 매년 선진국 순위를 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조차도 정확한 통계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많은 국제기구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넣어두고 있으며, 2017년 IMF가 정한 경제대국순위에서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8위에 올라있고, 유엔개발프로그램의 인간개발지수로는 18위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그룹 다음으로 최하위에 속한 25위 정도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그러나 정작 지표나 지수에 나타난 선진국 순위와는 관계없이 실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통계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기술과 산업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선진국이라고 그 나라 사람들 모두가 선진국민이 아니듯이 어느 사회나 행복을 느끼는 것도 상대적일 수 있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나 가치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십 수년 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을 때 교통체증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도 교차로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 그곳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운전면허취소라는 엄중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이는 결코 법률위반에 대한 벌칙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시점은 교차로에서 꼬리물기가 없어지는 날이라고 말해왔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한 약속, 즉 법을 제대로 지켜나갈 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연초부터 제천의 화재참사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연달아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주차질서만 제대로 지켰어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주차질서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되는 일이 계속되는 나라에서 무슨 선진국이며 선진국민이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올해부터는 부디 모든 국민들이 교통질서와 같은 공동체의 기본질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나가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선진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8-01-23 양윤재

[수요광장]진정성의 힘

누구든지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상대방 감동시켜 솔직함과진정성 때문에 도와주려 애쓴다그게 '세상의 이치'다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나 통하는대단하고 강력한 힘을 지녔다상담을 하다보면 말은 어눌하지만 표정과 기록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계속 듣다보면 그 억울함이 전해져서 어느새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반면 말도 유창하고 표정도 진지하지만 뭔지 모르게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유능한 변호사일수록 의뢰인과 신뢰를 쌓기 전에 기록 검토와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점검을 하고 진실을 파악한 후에야 의뢰인을 전적으로 믿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벌써 17여 년 전, 극빈자들을 위해 무료로 변론을 해주던 법률구조공단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가정을 꾸린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신의 이웃집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구속된 사건을 변호하게 되었다. 구치소로 절도 피고인을 만나러 갔더니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생활비라도 집에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에 우발적으로 죄를 짓게 되었는데 피해자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신의 처가 이웃집에 찾아가 문전박대당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의 처는 생후 10개월 된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날마다 찾아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해도 만나주지조차 않아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재판 받는 동안 절도범의 아내는 나와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를 업은 채 사무실에 들러서 어느 날은 음료수 1병이라도 어느 날은 빵 한 봉지라도 놓고 갔고, 매번 올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지,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이런 모습을 친정에서 알게 되면 안 된다며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자신의 신세 한탄과 하소연을 담은 짧은 편지를 전해주고 갔다. 나는 그 가정을 진정으로 구해주고 싶었다. 직장을 잃은 젊은 가장의 절박함과 아내 사랑이 절절해서 없는 문장 실력으로 피해자에게 무작정 편지를 쓰게 되었다. '돈을 주고 선임한 변호사도 아니고, 돈 없는 사람을 무료로 변호해주는 가해자의 변호사인데 월세 방 보증금이라도 빼서 합의를 하려는 의사가 있으니 제발 그 처를 만나만 달라.'고 호소했다. 기록상으로도 워낙 피해자의 의사가 강경하여 긍정적인 대답이 올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피해자의 처가 밝은 얼굴로 합의서를 가지고 찾아왔다. 게다가 그 피해자분은 피고인의 처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당신 남편의 변호사가 쓴 글을 보니 사정이 딱하더라. 크게 뉘우치고 있다고 하니 그 말을 믿겠다. 아이를 봐서라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면서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합의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물론 결과 역시 좋았다. 석방되어 나온 피고인 부부가 일부러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전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 끝이 발개졌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감동시켜야 변호사도 판사를 감동시킬 수 있다." 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다.그 후로 지금까지 형사사건을 하면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은 위 절도사건 이후로 딱 한 번 더 있었을 뿐이다. 그 피해자 역시 합의를 잘 해주었고, 나의 의뢰인은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의뢰인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게 된 것이 모두 내 덕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뢰인의 진정어린 뉘우침과 현재의 딱한 처지가 나를 먼저 감동시킨 것이고, 그 방법 외에는 선처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피고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진심어린 문장과 말로 피해자에게 어려운 시도를 해보게 된 것이다. 역시 진정성의 힘은 대단하다. 누구든지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감동받은 상대방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의 솔직함과 진정성 때문에 최대한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과연 이런 일이 변론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진정어린 열정을 가지고 매번 오디션에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던 연습생이 결국에는 소속사 대표에 감동을 주어 아이돌로 변신하는 과정이나 창고에서 시작된 보잘 것 없는 작은 회사가 열정과 비전으로 큰 투자자를 만나는 과정처럼 진정성은 세계 어느 곳이나 어느 시대나 통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8-01-16 장미애

[수요광장]'入試 浪人'을 양산하는 사회

현 입시제도는 고교 졸업하는청소년에게 재수생 굴레 씌우고대학 입학생들에 학교 적응보다반수생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불합리한 제도라는 것 인식하고교육당국은 합리적 선택 해주길어제로 2018학년도 대입 정시 원서접수가 마무리 되었다. 전국 4년제 대학 기준으로 수시 전형 비중이 80%대에 육박한 가운데, 이번 정시 전형도 수험생들에게 있어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대입 정시모집 기간과 발맞추어 입시 학원들은 이른바 '재수 선행반'이라는 이름으로 개강을 했다. 이미 수시 전형에서 고배를 마신 학생들과 수능 점수가 기대치에 못 미친 많은 학생들이 내년 입시를 기약하며 학원에 몰리고 있다. 보통 2월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으니 엄격히 말하자면 이들은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면서 재수생 신분을 겸하는 셈이다.사실 재수생이라는 단어를 외국어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비교적 우리와 입시제도가 유사하다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 낭인(浪人)이라는 단어로 재수생을 표현할 정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낭인은 옛날 일본의 방랑 무사를 일컫는 말인데, 세월이 흘러 일정한 직업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지칭해 왔다.재수생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고 있는데, 사법시험이 폐지된 이후 로스쿨 졸업생 중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辯試 浪人', 약학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PEET考試 浪人',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公試 浪人' 등 다양한 신조어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변호사 시험의 경우 법무부는 매년 입학 정원의 75% 수준인 1천500명 선에서 합격자를 관리하고 있어, 불합격자는 2012년 214명에서 매년 200~300명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실제로 매년 '辯試 浪人'이 300명가량 증가하고 있어 금년에는 시험 불합격률이 5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8학년도 수능 응시자 통계를 보면 재학생 44만4천874명(74.9%), 재수생 13만7천532명(23.2%), 검정고시 등 기타 1만1천121명(1.9%)으로 나타나 해마다 재수생 숫자는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대입제도 개편의 핵심 키워드로 '단순'과 '공정'을 제시했고, 얼마 전 개최된 국가교육회의 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도 "새로운 입시 제도는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공정하고, 누구나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은 수능 시험이 주입·암기식 교육을 심화하고 점수로 학생을 한 줄로 세워 입시 경쟁을 조장한다며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를 추진해 왔다.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작년 8월 당시 중3생들이 치르는 2021학년도 수능부터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현재 2과목에서 4과목 또는 7과목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커다란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편안 발표를 1년 연기한 바 있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에 대한 비판 여론 중 쟁점은 바로 정시 전형은 줄어들고,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대통령 말대로라면 수시 학종을 줄여야 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학종은 각종 스펙 쌓기는 물론 모든 교과목의 내신 관리까지 해야 하고, 선발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할 바에는 차라리 정시 모집을 다시 늘리고,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자는 의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수시 전형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능 점수 1점에 매달리며 친구들과 경쟁하는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능은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수능 절대평가 하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학종의 경우 대학 입장에서는 내신 성적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을 위한 사교육이 아니라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현재의 대입 제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10여만 명의 청소년들에게 재수생의 굴레를 씌우고, 대학에 입학한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기 보다는 반수생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점을 교육 당국은 제대로 인식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 주길 바란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8-01-09 문철수

[수요광장]시간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연말연시 되면 성과 달성했는지대차대조표가 삶 성찰 대신한다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고밤낮없이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자본의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가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새해에는 누구나 새해 계획을 세운다. 자연의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그런 시간의 마디를 끊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절기와 주기가 있다. '시간 앞에 선 존재'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시간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란 뜻이고, 시간이라는 자기의식을 갖는 존재란 뜻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간만이 시간을 의식하며 시간 속에서 산다. 시간적 존재란 말의 의미는 곧 성찰적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고, 지난 겨울을 생각해보면서 올 해 겨울을 비축한다. 앞날을 계획할 때 항상 우리는 지나온 길을 좌표로 삼는다. 지나온 시간 속에 쌓여있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반성하고 정리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과거'라는 시간이었다. 과거는 축적된 시간이며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과거라는 시간성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혁신'에 의해서다. 혁신(innovation)이란 말은 '새로움 속으로(into-novus)',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말이다.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은 늘 '창조적 파괴'이며 '파괴적 혁신'이다. 혁신에서 중요한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새로운 것은 오직 미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움직이라는 요구는 시간의 준거점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과거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단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대신 미래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보고가 되었고, 누가 더 빨리 그 미래에 도달할 것이냐에 대한 경쟁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가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미래는 마치 미지의 신세계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콜럼버스가 찾고자 했던 인도처럼. 15세기의 해상무역단이 찾고자 했던 신대륙이 자원의 보고, 금과 은이 쏟아지는 땅으로 여겨졌듯이 오늘날 '미래'라는 신대륙도 그러하다. 미래는 현재의 식민지다. 쌓이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시간, 미래는 끝없이 앞으로만 확장될 뿐이다.내가 어릴 적에 세웠던 방학계획표는 보통 일일계획표였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원형의 시간판 속에 일어나는 시간, 밥먹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을 그림과 함께 그려 넣었다. 밥먹는 시간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그릇을, 노는 시간에는 신나게 노는 내 모습을, 잠자는 시간에는 달님과 함께 꿈나라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이었다.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고, 제 때 밥을 먹고, 제 때 일하고, 제 때 노는 것. 진부한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간상 속에는 가장 중요한 삶의 리듬에 대한 감각이 담겨있었다. 하루의 리듬은 달의 리듬으로 해의 리듬으로 다시 반복되었다. 할머니의 하루는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농사절기와 함께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식하고 비오는 때와 눈 오는 때 해야 할 일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계획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시간 동안의 목표치를 설정한다. 미래는 읽어야할 책, 풀어야할 문제집, 벌어야할 돈, 가야할 곳, 만나야할 사람, 처리해야할 일 등등으로 가득 찬 '버킷리스트'가 되어 빈 양동이(bucket)를 채우듯이 각자의 할 일을 각자의 시간 속에 채워 넣는다. 미래로부터 역산해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의 양을 산출하고, 스스로 성과지표를 부과하고 달성해가는 것이 꿈이 되고 계획이 되었다. 마치 기업이 연간생산량과 수익률을 계획하듯이 개인도 자기의 연간생산량과 목표량을 설정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성과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대차대조표가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대신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는 인간, 밤도 낮도 없이 살아가는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 표준화된 자본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해 아침에, 시간을 잃어버린 세계를 생각한다. 어떤 시간을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8-01-02 채효정

[수요광장]치욕과 혼돈의 한해를 보내며

촛불시위 위력에 대통령 탄핵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정치권 진보·보수 떼몰이 싸움사회지도층 불·탈법·비리 오염내년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정책정권 발목 잡지 않을까 걱정뿐2017년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치욕적이며 시끄러웠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호 참사라는 여객선 전복사고로 숨진 어린 학생들의 영혼을 볼모삼아 정치적 헤게모니를 쟁탈하려는 진보세력의 끈질긴 투쟁이 계속되어 왔고, 여기에다 기름을 퍼붓듯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지면서 거침없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촛불시위의 위력 앞에 결국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폐청산이라는 가히 혁명적인 싹쓸이가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전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수갑을 찬 모습으로 재판정을 오가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간단없이 비춰지고, 역사상 초유의 정보기관 수장 4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도 이번 정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련의 검찰수사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감히 혁명군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봤자 신상에 별로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더구나 북한의 김정은은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차례에 걸친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어도 우리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 만이 해결책이라고 우기면서 미국과 일본과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한 상태를 넘어서 이제는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노미상태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보니 보수니 케케묵은 떼몰이 싸움에 여념이 없고,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집권세력의 선심성 퍼주기 예산안 통과로 내년의 나라경제가 도무지 어떻게 견뎌 나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세계열강들은 앞 다투어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우수기업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정부는 법인세율과 최저임금 인상, 복지수당 증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 나라가 어떻게 된 나라인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주요 언론들은 새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정책비판은 고사하고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으며,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노조를 앞세워 현직 임원들을 강압적으로 퇴출시키는 불법과 탈법적 행위가 판을 쳐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이를 제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나라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이 맡은 바 사명을 다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서 모든 일들이 정의롭고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는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위로는 정치지도자들이나 사회 지도층들이 저질러 온 온갖 비리와 탈법적 행위가 그렇고, 재벌기업의 소유주들이 더 많은 부를 챙기기 위해 저지른 불법과 탈선, 교육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진 비교육적 비리들이 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범죄를 방지하고 사회악을 없애야 하는 검찰과 경찰은 범죄 집단에 뒤질세라 온갖 범법행위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며, 신성한 노동운동이 일부 귀족노조의 불법적 탈선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술 취한 사람이 경관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공유지를 점거해도 마냥 떳떳해하는 나라에서 공권력의 권위와 힘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야말로 총체적 불신과 불안, 부정과 불만이라는 소위 4불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는 자국보호주의를 앞세운 미국과 일본,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경제적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는 예상외로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전해진지 오래다.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제가 불안하면 정치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민심이 동요되면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통일이나 안보도 결국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정책이나 세제개편을 비롯한 복지정책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정책들의 남발이 결국에는 정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뿐이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7-12-26 양윤재

[수요광장]한해를 마무리하며

올 연초에 세웠던 계획 중몇가지 이룬 소소한 것들이 있다그래서 정말 좋고 감사할 뿐이루지 못했다는 낙심은 사치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실망하기 보단 새 희망을 꿈꾸자2017년 한해도 이제 십 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상가마다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넘쳐나고 흥겨운 음악들도 들려오고 있다. 붉은 뺨에 연신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겐 2017년도 한해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이맘때쯤이면 다들 연 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연초에 "반드시 다이어트를 하고 말겠어. 공무원 시험 1차에 꼭 붙을 거야. 한 달에 한권 정도는 책을 읽어야지. 계절마다 한 번씩 여행을 다니겠어. 적어도 월10만 원 이상을 저축하겠어. 원하는 대학에 꼭 붙어야지" 라고 저마다 다짐했던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고,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며칠 더 남았으니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달에 한번 씩 수원 관내 여성변호사들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연말 모임에서는 자신이 읽었던 책을 가져와서 서로 소개하고 나누는 행사를 겸하고 있다. 모임 때마다 매번 공통된 화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점,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들인데 이번 12월 모임에서도 여전히 그 주제가 빠지지 않았다. 비단 여성변호사뿐이랴.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된 관심사이자 공통된 성토 대상이다. 아직 다른 말은 제대로 못하는 두 돌 지난 아들이 "엄마 힘들어?"라고 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힘들다, 힘들다"는 말을 했기에 아이가 그런 말을 할까 싶어 반성하였다는 어느 새내기 엄마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 경험이 있는 다른 변호사들은 경험에서 우러난 실감나는 충고들을 한마디씩 해준다. "가사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으니 집에 오면 화장도 지우지 말고 모든 일을 뒤로하고 아이부터 안아주고 충분히 놀아줘라." "아이들에게 못해준다는 죄책감, 죄의식 갖지 말고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당당한 엄마가 돼라" 등등. 아직 미혼인 여성 변호사들은 장래에 닥칠 운명을 감지하며 비장한 얼굴로 열심히 경청한다. 무슨 일을 겪든 지금이 인생의 힘든 지점이거나 혹은 평탄한 지점이라고 생각 될 때 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여러 사람의 셀 수 없는 은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진다. 혼자 잘나서 사법고시에 붙고, 변호사로서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친정 부모님, 든든한 남편, 힘든 순간마다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소중한 아이들, 일하는 며느리를 충분히 배려해주시는 시댁식구들, 존경스런 은사님들, 고마운 친구들,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배들,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믿음직한 직원 등등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의 수고와 인덕이 따라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울 뿐이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을 거울삼아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거나 조언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그것뿐이랴. 나를 전문가로 만들어준 지금까지 거쳐 간 수없이 많은 의뢰인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골치 아픈 사건들, 저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몇몇 상대방들, 소송의 승패에서 오는 작은 깨달음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연말에 구입한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2017년 초에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포기한지라 몇 가지 이룬 것들을 보면 대개는 정말 소소한 것들이다. 그래도 정말 좋다. 게다가 커다란 두 세 가지도 이루어졌기에 올 한해는 더 없이 감사할 뿐이다. 또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실망은 사치다. 아직 갖지 못한 것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 실망하기보다 새 희망을 꿈꾸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의 독백처럼 우리에게는 내일의 태양이 있다. 2018년 새해가 또 기다리고 있다. 한 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겸손함으로 무장하여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2-19 장미애

[수요광장]수능제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다양한 수시전형 있다지만결국 3년간 내신 성적에 근거해선발되는 전형이 주를 이뤄1년에 단한번 수능 학생에 큰 부담 최소한 상·하반기 2회 기회 주고수시편중 입시제도 빨리 바뀌어야어제 2018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수험생들에게 배부되었다. 수능 당일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맹추위가 기승을 부려 많은 수험생들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번 수능은 시험 전 날 발생한 포항지역 지진으로 인해 수능 시작 12시간을 앞두고 시험 시행이 일주일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치러졌다. 당혹감 속에서 수능을 치르고 고사장을 나선 수험생들은 대체로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능 직후 학교별로 가채점이 이루어졌고, 지난해와 비슷한 '불수능'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울러 만점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재학생은 대구의 강 모 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그러나 어제 발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최종 채점 결과를 보니, 수능 만점자는 모두 15명(재학생 7명, 졸업생 7명, 검정고시생 1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이 대체로 하락해 난이도로 볼 때는 전년보다 쉬운 시험이었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이 체감한 난이도와 실제 채점 결과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입시 전문가들은 우선 사상 최대 규모의 수능 결시자 수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실제 올해 수능 지원자 수는 59만3천527명인데 결시율이 10.5%로 무려 6만2천여 명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지난해 수능 지원자(60만5천987명)와 결시율(8.9%)을 비교해 보면 8천510명이 늘어난 셈이다.또한 평소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중하위권에서 결시자 수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상대평가인 수능에서 원점수 커트라인이 상승하고, 절대평가인 영어에서도 응시자 중 90점 이상(1등급) 비율이 전년도의 2배가 넘는 10.03%로 나타났다.아울러 수능 응시자 중 졸업생 비율이 늘고, 재학생이 감소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졸업생은 전년도 보다 0.9% 증가(2천412명)한 반면, 고3 재학생은 전년도 보다 0.9% 감소(1만4천468명)했다. 대체로 수능 성적이 중상위권에 속하는 졸업생 비중이 커진 점이 점수 상승의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한다면 앞으로 재학생들은 정시 입학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유행어처럼 되어있는 "대입에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기정사실화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201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4년제 대학은 전체 모집인원 34만9천28명의 26%인 9만772명을 모집하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1만2천373명 감소한 수치로, 2019학년도에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교육 당국은 향후 수시 전형을 더욱 확대하고 수능은 절대평가화 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는데, 과연 수시에만 의존하는 대학입시가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다양한 수시 전형이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고등학교 3년간 내신 성적에 근거해 선발되는 전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영원히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말인가?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자칫 공부하는 시기를 놓친 청소년들에게 있어 수능 시험은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1년에 단 한 번 뿐인 기회는 많은 학생들에게 커다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번 포항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상황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는 1주일 연기라는 즉흥적인 결정 밖에 할 수 없었다. 많은 수험생들이 묵묵히 1주일을 참아 냈지만 포항 지역 수험생들이나 다른 수험생들이나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년에 단 한 번인 시험에 실패하고, 내년에는 어떠한 난이도의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하에 다시 1년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너무나 가엾다. 최소한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 차례 정도 기회를 주고, 지나치게 수시 전형에 편중되어 있는 입시제도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2-12 문철수

[수요광장]올가와 메카, 그리고 인간

로봇에 의존해서 살면서도이성·몸이 없다고 학대하는 인간기계 아닌 여성·아동·빈곤층 등물음도 없이 폭력 대상될 수 있다 왜 다르고 함께 살 수 없는지?누가 질문하고 질문하지 않는가동네 중학생들과 책읽기 모임에서 '에이 아이(A.I.)'라는 영화를 보았다. 우리는 종종 SF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미래를 상상해보고 현실을 돌아보기도 한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미래학 도서들보다 이런 과학적 픽션에 근거한 작품들이 훨씬 더 깊이가 있다. 확률이 아니라 성찰에 근거한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나온 "너는 올가인가, 메카인가"라는 물음도 그런 것이다. 올가는 유기적(organic) 존재를, 메카는 기계적(mechanical) 존재를 뜻하는 줄임말이다. 한 부부가 아들을 대신할 로봇을 입양한다. '엄마'라고 부르는 인공지능과 교감하며 차츰 정이 들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데이빗'이란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하지만 냉동 중이던 진짜 아들이 완쾌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데이빗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어느 날 생일 파티에 온 아이들은 데이빗을 장난감처럼 취급하며 괴롭힌다. "넌 우리와 달라, 넌 가짜고 우리는 진짜야, 넌 메카, 난 올가라구!" 겁에 질린 데이빗은 "도와줘!"를 외치며 가짜 형제를 껴안은 채 물에 빠진다. 그 일로 데이빗은 인간 가족에게서 영영 버려진다. 진짜 인간들은 메카와 올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분선을 그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짜 인간은 질문을 한다. 어째서 난 메카고 넌 올가지? 어째서 난 가짜고 넌 진짜지? 오직 로봇만이 왜냐고 묻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다름에 대해서. 그의 질문은 왜냐고 묻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진짜 아이가 되어 함께 살 수 있느냐고.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자기에게 아무런 정보도 입력되어 있지 않은 낯선 세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계속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한다. 올가와 메카 사이에서 나는 누구냐고 묻는 그의 질문을 통해, 나는 이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묻지 않는 중요한 물음을 발견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단지 인간은 유기체고 로봇은 기계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존재'는 그런 이분법을 거부한다. 나는 왜 다르냐고 그가 질문하는 순간, 기계냐 유기체냐 라는 물성(物性)에 의한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근대 인간은 인간을 다른 종과 구분하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성적 동물'이란 동물성을 열등한 것으로 놓고 이성을 우위에 놓는 사고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 미래의 인간은 인간이라는 증거를 이성이 아니라 동물성(orga)에서 가져온다. 인공지능인 데이빗은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인간과 똑같지만, 살아있는 몸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다르다.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과 달리 그는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다. 하지만 오늘의 인간은 기계의 일부가 되었고, 기술융합적인 존재로 진화했다. 현대 인간은 모두 '기계 없는 몸'을 상상할 수 없는 메카-올가적 존재이며 기술은 생존의 조건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인가. 영화는 인간성을 저버린 인간을 보여준다. 로봇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면서도 로봇을 차별하는 인간. 그게 너무 당연해서 질문할 필요를 모르는 인간이다. 이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학대한 인간이 몸이 없다는 이유로 로봇을 학대하지 않을 리가 없다. 로봇을 학대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속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찢어 죽이고, 태워 죽이는 쇼 장면이 나온다. 그런 폭력은 기계에 대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질적 존재가 결핍된 존재로 표상될 때, 여성, 아동, 유색인, 빈곤층, 이교도, 성소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북한까지도, 얼마든지 물음이 필요 없는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왜 나는 다른가? 나는 당신과 함께 살 수는 없는가? 여기서 질문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진짜 인간'인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2-05 채효정

[수요광장]초고층아파트, 왜?

땅값 비싼 곳 개발밀도 높아많은 건축면적 확보 위해높게 짓는 건 당연한 경제 법칙고부가가치로 투자자도 몰려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한결정권 행사 관행 없어져야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의 건물 높이를 두고 주민과 시 당국이 서로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사업추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민들의 주장에 의하면 법적으로 허용된 최고 높이로 건축을 하겠다는 것이고, 시에서는 주변 환경과 경관을 고려하여 건물을 일정높이(35층)로 제한하겠다는 것을 두고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에는 주민들이 시의 주장에 승복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이 된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 아파트단지에서는 시장이 바뀌면 시의 의견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하여 잠시 사업을 연기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건물의 높이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나 내용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응징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의 노여움이었다면, 인간의 경제력과 기술의 상징으로 탄생한 마천루는 현대도시의 발전과 매력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인류역사에 있어 건물의 규모나 높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과 경제적 힘의 크기에 따라 비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피라미드나 왕궁, 중세교회의 첨탑과 돔, 성곽도시의 종탑과 망루, 산업혁명시대의 공장의 굴뚝 등이 바로 상징적, 실용적 목적에 의한 인간의 높이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철강 산업의 발달과 건축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건축물의 높이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를 시험해보는 대상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등장했던 에펠탑을 두고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난 것이 불과 130년 전인 1889년이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카고와 뉴욕을 중심으로 초고층건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소위 마천루의 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를 즈음하여 대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등장한 그림엽서에 초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즐겨 사용되었고, 지구촌의 유수한 도시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지겠다는 야심찬 경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회의 첨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높이를 24.5m 또는 길의 폭만큼 규제하는 런던법이 1888년에 만들어졌고, 건물을 경쟁적으로 높이 짓는 것이 도시의 무질서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파리의 도시계획가 오스만은 파리를 재개발하면서 건물의 높이를 5~6층으로 획일화시켰으며, 1909년의 시카고 계획에서도 건물의 높이를 통일시켜 도시경관을 가지런히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10년 만들어진 법률 때문에 워싱턴 시에서는 아직도 40m의 높이규정으로 미국의 유일한 수평도시가 되어버렸다. 1916년 뉴욕시는 최초로 건축선후퇴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길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전망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고층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건축법에서도 일조권과 관련된 건축선 후퇴규정과 마주보는 건물의 이격거리에 따라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고 있으며, 용도지구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서도 높이규제가 달라지기도 하며, 건축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건물의 높이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건물 높이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면서도 엄격하지만 이 또한 경직되게 운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리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 대부분의 유럽 중소도시들도 나름대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도시경관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건물의 일정 높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단조로운 도시경관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비판도 수용하면서 예외적인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도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마다 초고층건물의 허용에 대한 찬반 논란도 많이 있지만, 도시경관법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시형태나 도시경관의 질은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땅값이 높고 개발의 요구가 많은 곳에서는 개발밀도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정해진 토지에서 많은 건축면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높이 짓는 것이 당연한 경제의 법칙이다. 현대의 도시는 경제논리에 의해 도시발전이 가늠되는 곳이기도 하다. 개발밀도가 높은 곳이 땅값이 비싸고 임대료도 높다. 이 말은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지금도 대규모 개발의 경우 건물의 높이는 물론 개발에 따른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전근대적인 행정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도 지난 80년대에 만들어진 수도권 신도시들의 아파트가 재건축되는 날에 대비하여 서울의 예를 본보기삼아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2017-11-28 양윤재

[수요광장]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포항지진으로 연기됐던 수능내일이면 진짜 시험 보는 날작은 여진없이 잘 마치길 기원모든 실력 발휘한 날로 기억되길인생·미래 결정하는 날 아니니실망 않길 바라며 '모두 파이팅!'일주일 전 포항에서 일어난 진도 5.4의 큰 지진으로 사상 처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그 날 하루를 위하여 3년을 쉼 없이 달려온 재학생이나, 더한 고생을 했을 재수생이나 삼수생들, 휴가 받아 수능을 치러 나온 군인들, 학부모들 등등 모두 수능 연기라는 큰 충격에 빠졌지만 그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들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포항의 수험생들이었을 것이다. 수능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수능을 보는 이들을 위하여 이해해주고, 감수하는 점이 많다. 그만큼 우리 국민 전부가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고, 학력고사 세대든 수능 세대든 시험을 앞둔 그 절박한 심정을 스스로 겪어보았거나, 자식들을 통해 겪어보았기 때문이리라. 영어듣기평가를 위하여 항공기 이착륙 일정을 조정하고, 출근을 늦추고, 금융시장 개장시간도 늦추는 등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져도 큰 불만 없이 당연히 양해하고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수능 날에 지각하다 겨우 입실하는 수험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감정이입이 된다. 작년에 도시락에 깜박 잊고 놔둔 엄마 핸드폰 때문에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시험도 보지 못한 어느 고3 학생의 사연을 듣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안타깝고 속상해하지 않았던가. 지진이 난 직후 긴급회의를 하고, 현장에 나가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효율"보다는 학생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시험 12시간 전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다보니 수험표나 고사장은 그대로 유지되는지, 원래 합격자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학교는 예정대로 발표하는 지 등 이런 저런 혼란이 많았다. 다행히 하루 만에 대학교별 논술, 면접 일정도 거의 일주일 순연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여행취소 수수료 등을 수험생 가족이 전부 부담해야할 상황이었지만 이를 면제해주기로 한 여행사의 훈훈한 미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사장을 재빨리 점검 진단하고 포항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최대한 안전한 장소에서 시험 볼 수 있도록 조치한 것도 다행이다. 세기말에 태어난 99년생이라서 그럴까. 학창시절에 신종플루, 세월호, 메르스, 대통령 탄핵 등 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이 유독 많아서 제대로 된 수학여행도 가보지 못했고,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고, 몇 십 년 만에 한번 온다는 금년 추석 연휴 같은 긴 휴가를 누리지도 못했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저마다 최선을 다해 컨디션을 조절하며 실력을 발휘할 그날을 생각하며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능 연기로 인해 허탈감과 실망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포털 댓글에 포항 학생들 때문에 링겔까지 맞아가며 컨디션 조절을 한 것이 허사가 됐다며 그들을 원망하고 짜증을 내는 투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후 지진 피해 동영상을 보거나 여진 소식을 듣고서는 수능을 미룬 것은 잘한 결정이라는 사연이 더 많았다. 더 나아가 지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서로가 힘들어도 우리보다 포항 애들이 몇 배는 더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해주거나 조금만 참고 다 같이 시험 잘 보자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왔다.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또래를 경쟁상대로만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공감하고 동행하고자 하는 밝은 미래를 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진짜 수능이다. 적어도 내일 만큼은 작은 규모의 여진이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포항 수험생들이 온전히 시험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포항 수험생뿐 아니라 지난 3년간 게임의 유혹, 잠과의 싸움에서 크고 작은 패배와 승리를 경험해왔던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내일 하루는 자신의 전 실력을 쏟아 부은 날로 기억되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그리고는 시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길 바란다. 수능은 통과의례 일뿐 인생이나 미래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그 누구도 이에 실망하거나 우쭐대지 않기를 바란다. 수험생 모두 파이팅./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1-21 장미애

[수요광장]대입 수능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다양한 인재 시험으로 평가하고줄 세우는 제도 개혁돼야 하지만수능 통해 대학에서 학습 가능성제대로 평가 받는 것은 필요어떠한 수시전형에서도최소한의 수능성적 반영 있어야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 응시인원은 지난해보다 1만2천460명이 감소한 59만3천527명으로 6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전체 응시자 중 재학생은 감소한 반면, 졸업생은 13만7천532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천412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대학 입시에 재도전하는 수험생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입 전형 추세를 보면, 수능 성적순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는 방식이 아닌 수시 전형의 비중이 80% 까지 확대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수시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교과전형, 특기자전형, 논술전형 등이고, 정시는 수능으로만 신입생들을 선발한다. 수시 전형은 수능 일변도의 학생 모집 방식이 아니라, 대학이 자율적으로 모집 체계를 강화할 수 있고, 일회적인 시험 결과가 아닌 장기간의 고교 생활이 녹아든 학생부 반영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부여된다는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수시의 경우 기본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수능 점수를 정해 놓은 전형도 있지만 수능 성적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 '수능최저 없는 전형'이 늘어나면서, 수능 시험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입시전문기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수능 점수와 무관하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경우가 정원의 10% 내외이며, 이는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수능 본래의 취지와 어긋나고 나아가 고등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본래 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집행·감독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수능의 목적을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으로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로 규정해 놓고 있다.즉, 수능시험이란 대학의 교육 과정, 교과 과정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이다. 당연히 대학의 입장에서는 신입생들의 수학 능력 수준을 고려하여 가장 최적화된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그들이 학문적인 성취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게 된다. 그런데 수학능력의 객관화된 지표들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됨은 물론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 양성도 어려워질 것이다.또한 수능이 필요 없는 전형이 늘어날수록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게 되어, '대학에서의 학습을 준비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결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임시적 방편 마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 다. 특히 융합적 인재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특정 분야의 장점만을 취하는 전형 방식은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들은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인재를 찾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라볼 때, 수시 전형 기준의 형평성이나 효율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례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고교 입학 전부터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스펙 쌓기를 위해 입시전문 컨설팅 학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우리 사회의 인재는 다양한 개성과 적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재들을 일괄적인 시험으로 평가하고 줄을 세우는 획일적 시험제도의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수능을 통해 대학에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고교 공교육 정상화라는 구호가 실현되기 위해 지난 12년간 공교육을 받아온 대입 수험생들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어떠한 수시 전형에서도 최소한의 수능성적 반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바로 수능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1-14 문철수

[수요광장]마트의 왕국

공동체는 없고 시스템만 있는 곳세계가 '마트'를 닮아 가는 듯모든 게 예측 가능한 질서있는사회에선 갈등도 분쟁도 없다평화롭고 안전하다 여기지만그 곳에서 정치는 사라진다'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공동생활의 기본 원칙들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정정 당당하게 행동하라, 물건을 제 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치워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땐 미안하다고 말하라, 밖에선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의지하라 등등. 그 원칙대로 유치원에서 배운 것만 실천하면서 살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에 오기 전에 이미 아이들은 사회를 배우고 오기 때문이다. 그 사회 학교는 '마트'가 아닐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놀이 삼아 자주 갔다. 마트에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나는 느리게 동선을 이동하며 손가락으로 '사과, 바나나, 귤' 같은 것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마트는 없는 것이 없는 세계였고, 세계의 모든 단어를 배울 수 있는 작은 학교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마트는 우리가 이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간섭하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세계의 학교 같은 마트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단어들이 거의 '명사'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트에서 배운 명사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였다. 동사는 빈약했다. '사다(buy)'와 '~하고 싶다' 말고는 거의 없었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사고 싶다, 사야겠다, 사지 말자 등등.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이 학교가 무서워졌다. 대형마트는 이 세계가 얼마나 풍요롭고 안전한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교과서였다. 하지만 거기엔 그 세계를 만드는 노동은 보이지 않았다. 물건은 모두 개체로만 존재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열리지만 마트의 사과는 언제나 하나의 사과로서 완전체였다. 모든 것이 그랬다. 관계를 절연한 사물과 존재로 가득 찬 세계.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부딪치지 않고 누구도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동선에 따라 각자가 각자의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곳.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산대 앞에선 줄을 서고, 계산원과는 인사도 대화도 없이 계산을 마쳤다. 문제가 생기면 고객만족센터에 가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옆 사람이 아니라 직원을 찾았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곳이지만 여기서 나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우리는 유령처럼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사물의 공간 속을 떠돌았다. 마트는 어떻게 이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 마트의 지배자는 그 공간에 들어가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트의 시스템' 그 자체다. 우리에게 줄을 서라고 가르치고, 보는 것은 자유지만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가르치고, 남의 카트에 신경 쓰지 말고 제 볼일이나 보라고 가르치는 곳. 마트의 왕국에서 우리는 시스템의 명령과 규율을 따른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가 이 '마트'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공동체는 없고 시스템만 남은 곳 말이다. 질서와 안전은 마트의 규율인데 이제 그 규율은 사회 어디서나 공통된 규약이 되었다. 심지어 촛불 광장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질서와 안전이다. 그게 왜 문제인가?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패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는 우발성과 우연성이 삭제된 사회다. 인간의 창의성과 주체성도 발현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정신은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의 경험에서 자란다. 인간은 다른 존재와 마주치고 부딪치고 섞이는 가운데 자기를 깨고 타자를 만나며 세계를 확장한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는 갈등도 분쟁도 없다. 우리는 그런 세계가 평화롭고 안전하다 여긴다. 그래서 오늘날 저 말은 이미 다음과 같이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마트에서 배웠다'로. 그러나 마트가 시민의 학교가 된 곳에서 정치는 사라진다./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1-07 채효정

[수요광장]역사보존과 도시개발

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가는 곳이 아니라후손들도 살아가야 하기에삶의 흔적 새겨진 곳이 역사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모습 그려보는 지혜 절실하게 요구우리는 살다보면 매우 난처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어릴 때는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물어봐서 당황스럽고, 좀 더 커서는 사랑과 우정 중에 하나를 선택받기를 강요당하기도 하며, 술자리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원자력에너지냐 대체에너지냐로 나라가 시끄럽고 각종 사안마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야 한다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모든 의사결정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시장이나 관료들은 물론 전문가들에 따라 도시의 흔적이나 역사유적 그리고 중요한 역사적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개발과 변화를 통해 도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서 개발이 지연되기도 하고 행정이 마비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라마다 도시마다 항상 겪는 일이고보면 이런 논쟁은 도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이기도 하고 도시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도시의 흔적들을 보존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보존이 개인의 이해나 공공의 필요에 따라 상충되는 경우에는 그 해법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80년대 초 일본의 역사도시 교토의 철도역 복합개발을 두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가치가 충돌한 예는 유명하다. 10년이라는 지루한 공방 끝에 1993년 드디어 개발로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역사보존과 개발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 것도 건축과 도시계획분야로서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유적이나 주요건물과 함께 도시경관에 대한 규제는 오래된 역사도시의 경우는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경우는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신축되는 건물의 높이를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을 가로막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파리의 경우 건물 하나하나마다 외관, 구조, 용도 등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되어있어 개인의 재산이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디시도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건물의 높이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건축규제를 하고 있지만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의 과도한 집착과 제도의 경직된 운용으로 현실성이 결여되거나 시행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도시에서 역사경관을 보호하고 역사유적이나 역사적 건물의 보존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무쏠리니와 히틀러는 일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혼란기를 틈타 전체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장악한 후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국민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선조들이 남긴 역사유적을 보존, 복원하여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파시즘을 선전하는데 이용하였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역사가 깊은 유럽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유적발굴과 역사보존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면서 이 분야의 발전을 선도해 나갔고, 도시와 건축분야에서도 이에 뒤처질세라 적극적으로 역사복원과 보존을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라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이후 도시역사연구가 활발해지고 역사유적보존과 복원, 주요 건축물의 보존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도시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이며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도시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발을 마치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적극 반대하는 반면, 개발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라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둬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가운데 주요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유적보존을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시행하고 있다. 도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남겨둔 흔적 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 없어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이곳이 바로 도시의 역사이다. 현대의 첨단정보통신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가 미래의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유적도 중요하고 건물의 보존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도시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는 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양윤재 대우재단 이사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2017-10-31 양윤재

[수요광장]무엇이 중요한가

일·가족·친구 다 포기할순 없지만우선순위 정하고 삶 균형 맞춰야온 국민이 일주일에 한끼 정도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먹고담소 나누며 행복 느끼길 소망적어도 밥 같이 먹어야 식구니까심리학자가 쓴 '행복의 기원'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최대 행복이라고 한다. 요즘은 혼밥, 혼술 등이 널리 퍼져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밥은 모여서 먹어야 제 맛이다. 양푼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비벼먹는 비빔밥이나, 캠핑장에서 구워먹는 삼겹살과 소시지도 그 맛 자체보다 같이 먹는 사람들이 정겨워서 더 좋은 것이다. "학교는 지각해도 밥을 굶어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지각은 해봤어도 아침식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온 가족이 아침과 저녁 거의 매번 머리를 맞대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추억이 바로 어제 일 같다. 먹을 땐 국물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엄격한 집안도 있었겠지만 우리 가족은 조잘조잘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서로 경쟁하듯 이야기하기 바빴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정치적인 이슈나 뉴스 거리가 있을 때 서로의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를 수가 있었다. 때론 새 운동화가 필요한 이유를 대면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용돈 인상을 협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 세태는 어떠한가. 애들은 애들대로 학원 가느라 바쁘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회식과 모임에 각자 바쁘다보니 온 식구가 다 모여 식사를 하는 날이 과연 일주일에 몇 번이나 될까. 심지어 애들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차안이나 길가의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급하게 도시락을 먹는 애들도 있다니 밥상머리 교육은커녕 소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것에서도 예전에 볼 수 없던 매우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담소를 나누기보다는 각자 게임이나 문자 하느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과연 같이 밥을 먹는다고 할 수 있을까. 끼니를 때울 뿐 소통이나 교감이 전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얼마 전 한 지긋한 신사분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분은 대기업 영업사원 출신인데 젊은 시절 주말도 반납하며 늘 야근을 하거나 골프 접대 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가족들과 식사나 여행도 못하고 애들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행사에도 거의 참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은퇴를 했는데 낮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식구들과 같이 있어도 공통 관심사가 없어서 그런지 가족들이 자신만 왕따를 시킨다고 이를 어쩌면 좋으냐고 묻는다. 베이비붐 세대들 중 많은 가정이 겪고 있는 고민이다. 젊을 때 일 때문에 바빠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빠는 나이가 든 후, 아이들 곁에 있고자 해도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친구나 애인 만나러 간다고 나가버린다. 타이밍이 왜 이리 안 맞을까. "뭣이 중헌디?" 라는 영화의 대사가 한때 유행했었다. 과연 우리는 왜 일을 할까,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게 맞는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등등 늘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사는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일에 너무 열심인 것도 좋지만 아이와 공 던지기를 하거나 공개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시기는 아주 잠깐뿐이다. 일, 가족, 친구 다 포기할 수 없지만 우선순위를 정하고,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할 것이다.아침을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고, 저녁까지 주는 회사면 더 좋다고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는 사실 시대와 역행하는 회사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회사가 야근해서 돈 많이 주는 회사보다 인기 있으면 좋겠다. 온 국민이 일주일에 몇 끼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담소를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적어도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니까. 또 아빠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 졸업식에 간다며 당당히 말하고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니까./장미애 변호사장미애 변호사

2017-10-24 장미애

[수요광장]4차 산업혁명과 대학 교육의 변화

국가적 화두 '제4차 산업혁명'대학은 용어 집착할게 아니라학교별 특화된 목표 설정하고시대에 맞는 인재 육성 위해융합적 지식 키울수 있도록색다른 교육·사고 방식 가져야'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표현이 새 정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능정보화 사회를 기반으로 산업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용어는 클라우스 슈밥(Klasu Schwab)이 2016년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이후 국내에서 유달리 급격하게 확산되었는데, 이 표현 자체는 이미 20세기 초반에도 언급된 바 있고 학자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개념의 혼돈에 따른 방향성 논쟁은 이미 지난 대선 기간에 나타났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가 우리나라 산업 육성의 지향점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들고 나오면서 누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인지에 대한 주요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또한 관료들이나 전문가들 역시 개념이 소개되었던 초기와 달리 그 방향성과 한국사회의 적용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그래서 현재는 무엇이 제4차 산업혁명인지에 대한 논쟁보다는 세계적인 산업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기계화, 산업화, 정보화의 3단계 산업혁명 이후 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이나 빅 데이터 기술로 인해 추동되면서 국가 시스템이나 산업, 사회 및 삶의 영역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기회 요인과 위협 요인을 두루 갖고 있다고 보이는데, 기회라고 하면 우수한 ICT 기반, 인적 자원의 높은 교육 수준, 제조업 경쟁력 등을 들 수 있겠고, 위협이라고 하면 첨단 지능기술 수준이 낮고 이에 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하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위협 요인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 과제로서 중요한 지향점으로 설정되었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핵심적인 바탕이 바로 인재와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졸업 후에 바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종종 이런 노력들이 단순한 취업 인력을 양산하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사회 변화 속도에 걸맞은 인재들을 양성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핵심이 될 수 있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대학별로 특화된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인공지능 학과나 빅 데이터 학과 같은 맞춤형 창과를 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 대처일 것이다. 오히려 기존에 인정받고 육성해 온 분야를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는데, 일례로 농업 부문의 경우 스마트 자동화 설비나 토질, 영양에 대한 빅 데이터 구축을 통해서 4차 산업혁명의 기조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또한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인 화두가 되었다고 해서, 그 용어에만 집착하여 부화뇌동하는 것은 대학이 나아갈 방향은 아닐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보다 색다른 교육과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학생들에게 단순 지식을 주입하기 보다는 융합적 지식을 배양토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2017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경우 30년도 안된 젊은 대학이지만 모든 수업을 동영상으로 녹화하여 미리 예습 하고 수업시간에는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 발달이 인간 소외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능력과 덕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대학 교육의 목표 수립이 절실히 요구된다./문철수 한신대 교수문철수 한신대 교수

2017-10-17 문철수

[수요광장]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마을이 사라진곳엔 아파트가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전망 좋은 곳엔 펜션·카페 들어서옛날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장소의 의미도 변해 버렸으니흔적 지워진 곳에서 고아된 듯이번 추석에도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에 갈 때마다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마을도 사라지고, 옛날부터 같이 살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 장소의 의미도 모두 변해 버렸으니, 기억과 흔적이 지워진 곳에서 점점 고아가 되는 것만 같다. 고향집 앞 골목길이 2차선 차로로 확장되었을 때는 1980년대였다. 동네 집들이 길 만드는 터를 내느라 허물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살아남았다. 그 때 '살아남은' 집들은 행운이라 여겼고, 떠나게 된 이웃들은 위로를 받았다. 친근한 이웃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웃공동체의 상호부조 체계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무언가 아쉽고 위급할 때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만큼 위험하고 불안한 일은 없다. 갑자기 밥이 떨어져도, 연탄불이 꺼져도, 옷을 빌려 입거나 돈을 꾸어야 할 때도, 옆집 문을 두드려야 했으니까. 보상금이 얼마든,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가 어디든, 처음부터 다시 관계와 신용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지나야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이웃을 얻게 될 것이니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는 설레는 일이 아니라 살처럼 익숙한 고장을 잃고 낯선 사람들 틈을 헤매야 하는 실향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90년대가 지나고 한 이십년이나 흘렀나, 그랬을 때인데 이번에는 소방도로를 낸다고 오래된 동네 한 토막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 때도 고향집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과 불행이 바뀌었다. 떠나는 사람들이 축하를 받고 남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부동산 시장도 그닥 형성되어 있지 않은 소도시에서 낡은 집을 짐처럼 지고 있던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집을 처분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좋아하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길은 좁고 차도 막히고 자꾸 개발을 해야 한다고들 하니 곧 성님도 좋은 일이 있겠지." 동기간처럼 친하게 지냈던 이웃사촌이 그런 말을 하고 새 아파트로 떠났을 때 어머니는 민심이 얄궂게 변했다고 하셨다. 그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에는 대형 마트와 편의시설들이 따라 들어왔다. 돈만 있으면 밥 한 끼 정도야 24시간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고, 친구와 이웃이 없어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금융자본이 강화되는 곳에서 우정이나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은 약화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옆집 문을 두드리는 대신 관공서나 대출회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작은 항구를 낀 어촌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덕분으로 연휴만 되면 모든 도로가 막히는 낯설어진 고향에서, 20분이면 돌아올 길을 2시간이 넘게 차에 갇혀 있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집들이 허물어져야 이 손님들을 위한 새 도로를 낼 수 있을까. 더 많은 도로가 필요하다지만, 저 자동차들의 행렬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저 행렬에 우리의 미래를 의탁해도 되는 것일까. 바닷가 비탈진 구릉마다 알뜰히도 농사짓던 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 전망이 좋다 하는 밭이며 논자리에는 펜션이나 카페가 들어섰다. 관광산업 여가산업이 주요 소득원이 되면서 자급의 경제는 무너지고 금융과 투자의 경제가 지배하게 되었다. 돈도 사람도 넘쳐나지만 모두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유동성이 정주성(定住性)을 해체하는 것은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 시대의 특징이다. 산업화 시대와 다른 것은 이주(移住)가 아니라 이산(離散)이라는 점이다. 파편화된 삶의 양식은 소비적으로 재구성되었지만,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유민의 땅, 떠돌이의 땅은 불안하고 위험하며 황폐해진다. 살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계속 '떠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글로벌 인재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세계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상류사회 엘리트에 불과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처하게 된 현실은 주거 불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글로벌 난민화였음을 이미 목도하지 않았는가./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7-10-10 채효정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