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

 

[시인의 연인]별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 항시 나의 뒤편에서/ 나의 길을 비춰 주는 그대여,//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 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 일생 동안 깨어 등을 밝혀도/ 하늘 구석구석 헤쳐 보아도/ 나는 바라볼 수가 없구나/ 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 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 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 어느새 아침은 닿고,//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 볼 수가 없구나김완하(1958~)당신은 도구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두 눈으로 민낯을 한 번이라도 마주한 적이 있는가. 이 가운데 보는 것만이 아는 것이라는 명제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을 절대적 가치로 인식 되어왔다. 시선에 들어오는 것만이 참이라는 사실로 믿는, 우리는 욕망 앞에서 나머지 진실은 스스로 폐기해야 했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의 별'이라는 실제를 찾을 수 없기에 '나의 뒤편에서 나의 길을 비춰 주는' 그대라는 별도 바라볼 수 없다. 거짓이라는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그것이 참인 줄만 알고 '일생 동안 깨어 어두운 등을 밝혀주는' 실상을 망각한 채. '진실로 나의 별을 나의 눈으로' 조우할 수 없는 것은 '그을린 등피'를 수많은 '욕망 아래'묻으며 왔기에.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10-29 권성훈

[시인의 연인]시마(詩魔)

그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고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 하여성급한 그의 모양을 찾아내기 어렵다//펴 든 책 도로 덮고 들은 붓 던져두고말없이 홀로 앉아 그 한낮을 다 보내고이 밤도 그를 끌리어 곤한 잠을 잊는다//기쁘나 슬프거나 가장 나를 따르노니이생의 영과 욕과 모든 것을 다 버려도오로지 그 하나만은 어이할 수 없고나이병기(1891~1968)인간에게 상상력은 무한한 에너지다. 상상 속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불가해 한, 상상이 구체화될수록 상상은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현실화되기도 한다. 그 세계는 성급하게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며, 그 속은 너무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기도 하고, "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인에게 창작의 과정이며 상상을 언어로 현현시키는 고뇌인 것으로써 흔히들 '영감'이라고 부른다. 시인에게 "말없이 홀로 앉아 그 한낮을 다 보내고" 있는 밤의 시간은 휴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잠을 건너가는 '노동의 새벽'이 된다. 마찬가지로 '기쁘나 슬프거나 이생의 영과 욕과 모든 것을 다 버려도' "그 하나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 당신이 오늘도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자신이, 바로 한편의 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9-24 권성훈

[시인의 연인]지금

커다란 고요가 있고여름 해가 있고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있다네가 떠난 다음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이승훈(1942~)세계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시끄러운 것들은 사실상 공허한 잡음이며, 역설적으로 '커다란 고요'에 불과할 뿐이다. 내 안에 없는 것들, 여기 속하지 않은 것들은 세상엔 있지만 내게 없는 것이며, 때로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써 그 자체로 가치를 말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유의미를 가동하지 못한다. 시조시인 조오현 스님은 이것을 본질적인 것에 비유하면서 "삶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법한 적이 있다. 반대로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은, 삶의 경계 밖에 있으므로 지금 내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지금 여기' 있는 것은 그대로 있어 왔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삶이란 뜨거운 '여름 해'에 그을리면서 흘러온, 혹은 '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이른바 지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떠난 다음' 무엇이 남겠는가. 결국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은 당신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바로 지금' 이 아니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8-20 권성훈

[시인의 연인]강물을 보면서

내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들용서하자, 용서하자 하면서도 저 강바닥의 수심 같은 옹이 하나,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등을 밟아야 오를 수 있는저 물살의 무게,그들도 내 등을 밟고 가느라 꽤도 힘들었을 게다내 등에 박힌 상처, 상처에서 불꽃 수시로 피어오르는데오늘 이 강에 이르러서야 물결처럼 놓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생각의 깊이로 돌아가 누워야 할 물의 심지그 심지에 이르러 나를 버리는 일,상선약수上善若水이리라이영춘(1941~)상처를 덮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만들었다. 자신의 빈틈만큼 남의 흉터에 집을 짓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면서 흘러왔다. 물과 같이 가벼워지기 위해 "강바닥의 수심 같은 옹이 하나" 모르는 척, 깊도록 잠재우면서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등을 밟아야 오를 수 있는/저 물살의 무게"를 넘어 '위선의 부력'을 행사하면서 '삶의 자장'을 넓혀온 지난날. 내가 그들의 등을 밟고 갔듯이 돌이켜보면 "그들도 내 등을 밟고 가느라 꽤도 힘들었을 게다" 당신이라는 강물은 옹이를 드러내며 "오늘 이 강에 이르러서야 물결처럼 놓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물의 심지'를 보는 순간, '생각의 깊이'는 그동안 길고도 깊게 늘어트려 온 욕망이라는, 그 생각마저도 돌아가 버리고 싶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8-06 권성훈

[시인의 연인]고백성사 -못에 관한 명상

못을 뽑습니다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여간 어렵지 않습니다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여간 흉하지 않습니다오늘도 성당에서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김종철(1947~2014)못이 상징적으로 작동할 때, 못은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 수많은 의미의 못으로 박힌다. 이때 못은 못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상상 사이에서 전도되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못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성질은 누군가의 표면을 뚫고 가슴에 뿌리박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타자에게 못을 박는 주체가 나일수도 있고, 타자가 주체가 되어 나에게 못을 박을 수도 있다. 특히 가슴에 '휘어진 못'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고통을 감수해야 그것을 뽑아낼 수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더라도 그 자리는 흉터로 남기 마련이다. 이러한 흉이 많다는 것은 못자국이 가슴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뽑아도 뽑히지 않는 못대가리가 있다는 것은 고백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없는 죄의 뿌리가 깊다는 말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7-16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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