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

 

[시인의 연인]가정백반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가정백반은 집에 없고상가 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집에는 가정이 없나밥이 없으니 가정이 없나?혼자 먹는 가정백반남원집 옆 24시간 편의점에서도 파나?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기웃기웃 가정으로 돌아가는데대모산이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신달자(1943~)21세기 가정은 2000년대를 경유하면서 '빠름의 즉시성'과 '불안전의 불규칙성'으로 다원적인 구성원 간에 가족이 재편성되면서, 이른바 독거가족이 탄생되었다. 혼자 먹고 마시는 혼밥, 혼술이라는 신조어는 이들이 만들어낸 '쓸쓸한 존립의 세계'를 지배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가족 간에 남녀의 역할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지면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면 남성과 여성의 일을 나눈다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그것은 현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외부 세계와의 조우와 파생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집 앞 상가' 어느 곳이든 한상 차려진 '가정백반'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혼자 먹는 가정백반'은 자본 아래 가족의 이산과 분열이 아니라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을 섭취하면서 '꾸역꾸역'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신달자(1943~)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5-21 권성훈

[시인의 연인]엄마 딸이 더 좋아

붕어빵에 붕어 없고 / 국화빵엔 국화 없네, 내가 노래하면 / 칼국수엔 칼이 없고 / 빈대떡엔 빈대 없네, 따라하는 엄마 // 없어서 좋은 것도 참 많겠지 / 내 맘에도 내 마음이 없어지면 / 내 속에도 내가 없어지면 / 그래도 엄마 딸이냐고 물었더니 / 엄청 깊고 넓은 큰 사람이 될 거란다 / 성자聖者가 될 거란다 / 성자보다 나는 엄마 / 딸, 이대로가 더 좋아.유안진(1941~)자신이 지향하는 모델은 스스로 선택한 타입(type)이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는 어느 누구도 채택할 수 없다. 엄마는 아이가 자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평생을 잘 살아가기를 원하면서 지켜본다. 자식은 '붕어빵에 붕어'와 같이, '국화빵엔 국화'와 같이, '칼국수엔 칼'과 같이, '빈대떡엔 빈대'와 같이 또 다른 닮은꼴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없어서 좋은 것도 참 많겠지"만 "내 맘에도 내 마음이 없어지면" 어느 누가 있을까? 엄마는 자식을 위해 열 달 동안 자신을 비워낸 '성자'가 아니겠는가. 높아가는 5월 하늘가 "성자보다 나는 엄마"라는, 고단하지만 보람 있는 이름으로 살다간, 또한 살고 있는 "엄청 깊고 넓은 큰 사람" 하나 '내 속에 내가 없어져도' 여전히 거기에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유안진(1941~)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5-07 권성훈

[시인의 연인]5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나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푸르디푸른 이 봄날,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가시를 품었습니다.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 자꾸만 손짓을 하고.오세영(1942~)눈에 보이는 것은 시선 안에 놓인 것만 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자면 시선 밖은 제외하고 보는 것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모래알보다도 작은 '근시적 시안'를 가졌다. '푸르디푸른 이 봄날' 푸름이 더해가는 5월 역시 '부신 초록'을 바라보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 세계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초록을 들여다보면 사물들이 죽고 썩어서 그 형체가 사라진 흙에서 얻은 양분으로 5월의 푸름을 일궈내는 것이다. 따라서 5월의 뿌리는 죽음이 되는 것으로써 그것을 깨닫는 순간 5월은 죽은 '육신을 붙들고' 땅에서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죽음의 색채'로 파고든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먼 하늘가에 서서'보면 당신의 곁에서 사라져간 당신이 '자꾸만 손짓을 하고' '장미의 가시'로 찔려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오세영(194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30 권성훈

[시인의 연인]사랑 이미지… 직선과 곡선

직선의 힘으로 남자는 일어서고곡선의 힘으로 여자는 휘어진다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집이 된다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곡선은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이지엽(1958~)무엇이 된다는 것은 역학적으로 다른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직선이 직선을 만나거나, 곡선이 곡선을 만났을 때에는 1차원적인 연장선에 지나지 않지만 직선이 곡선을 만나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2차원적 '면이 되고' 3차원적 '집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직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곡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선이라는 남성성과 곡선이라는 여성성이 화합하여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 이른바 태생적으로 직선은 곧지만 구부러지기 쉽고, 곡선은 부드럽지만 강하지 못한 점들을 상호 보완하는 생명성을 가졌다. 혼자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길 가운데 어디쯤 당신의 사랑도 '직선의 힘'으로 일어서거나, '곡선의 힘'으로 휘어지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지엽(1958~)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23 권성훈

[시인의 연인]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1939~)회한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마치 앞면만으로 뒷면을 모르듯이 뒷날에 만나게 되는 후회다. 미련한 사람은 아집에 사로잡혀 반벙어리 또는 귀머거리와 같이 입과 귀를 막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치는 사이 성숙하게 된다. 인간이 인공지능(AI)보다 우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성찰과 반성이 아닐까? 그것을 깨달은 당신은 '노다지'를 얻은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면서, 앞으로 또 있을 실수를 줄이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더 열심히 사랑'하는 방법으로서의 사랑의 실천은 자신을 척박한 세계에서 '꽃봉오리'로 매순간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09 권성훈

[시인의 연인]다시 봄 편지

날이 많이 풀렸지요?// 흰 꽃 피워 그대에게 한 송이/보내고 싶은 정옵니다// 꽃은 시들겠지만 하고, 이어서는(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문장이어야겠지만)// 나의 아트만도 내일이면 시드니/그대가 오늘 이 꽃을 보면//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하겠습니다// 다시 추위가 있을까요? 하는/질문은 가능하겠지 만은// 그건 모르는 일이겠지요//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를 보세요// 때로는 쇠락함이, 다시 그럴 수 없는// 영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원래 나타나지 않았던 듯/―하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마음에 드나요?// 아직 불러줄 노래도 많은데/짧게, 우리 서로의 //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있었지요함성호(1963~)변하지 않는다는 말만 변화하지 않듯 불변할 것 같은, 사랑도 움직인다. 자연이 보여주는 사계는 그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날이 풀린 따듯한 봄날 정오, 활짝 핀 목련꽃과 같이 곱게 핀, 사랑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 시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고 소멸되어 가는, 사랑을 고정시키는 것은 그대라는 '흰 꽃 한 송이'처럼 '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사랑의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하지 않는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 우리는 어떻게 사랑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의 무모함일지라도, 불러줄 노래가 있다면 그대로 하라. 매순간 "우리 서로의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 머물게 되리니, 짧은 그 순간만큼 괄호( )라는 영원 속에 놓여있지 않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함성호(1963~)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02 권성훈

[시인의 연인]봄 편지

물길 마구 토막 내는 무엄한 삽질 속에생명 길 도륙하는 포클레인 폭격 속에팔려 간 금모래 은모래는어디서 울고 있을지요콘크리트 강둑마다 앓는 물을 토하는데그 아래 죽살이마을 보는 자꾸 터지는데참살이 두물머리 참 들녘씨는 어찌 넣었는지요정수자(1957~)실려 온 모래 속에는 개봉되지 않은 편지같이, 아직 피어나지 않은 설렘의 씨앗들이 포장되어 있다. "물길 마구 토막 내는 무엄한 삽질 속에"서도 죽지 않고, "생명 길 도륙하는 포클레인 폭격 속에"서도 살아 남아, 그야말로 '금모래' '은모래'로 반짝이는 생명성이 비밀스럽게 봉합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표면으로는 그 뒤에 숨은 심층을 알 수 없지만, 이제 곧 회색빛 도시의 '콘크리트 강둑마다 앓는 물을 토'할 때 '그 아래' 아무도 몰랐던 삶들이 머리를 내밀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생명의 '죽살이 보'가 보여주는, 놀라운 생명의 편지를 읽게 된다. 벌써부터 여기 저기 아무도 모르게 움트고 있는, 이 땅의 '참살이'로부터 연원한, 금강산의 푸른 씨앗이 펼쳐 보이는 '참 들녘'의 '봄 편지'가 한층 더 궁굼해 진다. 당신도 눈물로 써내려간 가슴 속 미개봉 편지가 봄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정수자(1957~)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3-05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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