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

 

[시인의 연인] 소망

생애 끝에 오직 한 번화사하게 꽃이 피는대나무처럼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대나무처럼 //텅 빈 가슴에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곧은 길 한 마음단 한 번 눈부시게 꽃피는대나무처럼김후란(1934~)언제나 변화하지 않는 절개와 정조의 식물, 대나무가 있다. 푸르고 곧은 대나무의 형상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간의 마음을 비유하기에 충분하다. 대나무가 피어올린 꽃은, 생애 한번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면서 개화 시기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나면 죽고야 만다는 속설과 같이 그 꽃은 대나무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생애 끝에 오직 한 번/화사하게 꽃이 피는/대나무"에서 인간의 가치를 자연의 숭고한 것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대나무"는 "텅 빈 가슴에/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바람에 부서지는 시간"과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온갖 비바람을 서서 맞이하며 숙명적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대나무에게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가 배워야 할 '마음의 길'을 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후란(193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8-21 권성훈

[시인의 연인] 나체족

벗음으로 오히려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벗어버리면 덜렁거리는 남근도질척이는 사랑의 입구도그림자일 뿐이다.김왕노(1957~)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최소한의 물질을 취하고 보유해야 살 수 있기에,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무소유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 소유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욕망의 바닥은 집착이며, 이 집착의 근원지를 찾았을 때, 그토록 욕망했던 물질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질은 보이지 않는 욕망의 실체이며, 물질의 채움과 비움은 욕망의 움직임이 된다. 욕망에 매여 있는 한, 소유에서 다른 소유에로 나아 갈 뿐 욕망의 벗어남은 불가능하다. 소유를 끊고 대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물질에 관계하는 '대상없는 마음'이 필요하며 대상을 동기화시킬 때 최적화될 수 있다. "벗음으로 오히려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역설이야 말로 있음의 욕망을 모두 벗고 자유로운 상태에 이른 경지다. 따라서 감추고 있었던 '덜렁거리는 남근'과 '질척이는 사랑의 입구'로 음부만 남기는, 전라의 형상은 '무소유의 이미지'인 줄 모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왕노(1957~)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7-31 권성훈

[시인의 연인] 묵념 5분 27초

묵념 5분 27초 황지우(1952~)소통의 방식은 소리―언어에만 있지 않다. 소리를 제거하고 난, 침묵―언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1952년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은 공연을 위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랐으나, 무대에서는 아무런 연주가 없었다. 객석에서 관객들의 술렁임만 감지될 뿐 무대는 4분 33초 동안 침묵과 고요만이 흘러가다 연주가 끝났다. 때로는 '침묵의 언어'―기의와, 말해야 되는 '시적 언어'―기표 사이에서 '5분 27초'라는 '고요한 묵념'만이 '진실한 소리'를 들려줄 때가 있다. 이 때 '묵념'을 수용하면서 '침묵'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는 말할 수 없으므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 한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폭력적 세계에서 상식을 깨버린 '파괴적 언어'는 일상적인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를테면 1980년 5월 27일 광주에서 계엄령이라는 비정상적인 법칙과 이에 따른 희생자들을 묵도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정보적 기능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고요함 속에서 배치되는 정적의 사태 속에서 '혼란의 진실'과 '통증의 모순'을 웅전하게 된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5-15 권성훈

[시인의 연인] 노라

나는 인형이었네/아버지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낸 인형으로/그네의 노리개였네//노라를 놓아라, 순순히 놓아다구/높은 장벽을 헐고/깊은 규문을 열어/자연의 대기 속에/노라를 놓아라//나는 사람이라네/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자식의 어미 되기 전에/첫째로 사람이 되려네//나는 사람이로세/구속이 이미 끊쳤도다/자유의 길이 열렸도다/천부의 힘은 넘치네//아아, 소녀들이여/깨어서 뒤를 따라오라/일어나 힘을 발하여라/새날의 광명이 비쳤네나혜석(1896~)'진정한 주체'란 자신을 억압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자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관습화된 제도와 사회적 규범이라는 일상성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거기에 얽매여 자신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타자라는 누군가에게 구속된 이른바 '인형의 시간'을 보낸다. 인형은 사람의 형상을 닮은 조형물이지만 그 자체로 인격이 없는 '비무형의 비인격체'다. 인형 같은 삶은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 '자식의 어미'인바, 한낱 '타자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대기'를 향해 인형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높은 장벽을 헐고' '깊은 규정의 문을 열고' "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며 '날 노라'라고 외치며 커밍아웃할 때 가능해 진다. 그리하여 선구자는 '새날의 광명'을 바라보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매단 자"일 수밖에 없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5-01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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