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

 

[시인의 연인]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제 몸을 쳐서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천양희(1942~)자신의 몸을 세계에 던져 살고 있는 실존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락으로 실추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몸짓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날아가는 '벌새'는 살아 있는, 이 시대의 표상일 수밖에 없다. 벌새가 날개를 접는 순간 공중에서 내려와야 하듯이, 우리도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회적 구조에서 멀어지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타자로부터 검증 받으며 세계로 나아가는 것으로써 타자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은, 더 이상 사회적 존재로서 보장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당신은 삶의 바다에서 제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내는 '파도'를 보면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또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쳐서 더 많이 더 높게 올라가야 하는,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하염없이 길고도 슬프게 느껴진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3-06 권성훈

[시인의 연인] 위험한 동거

머리를 풀어헤친 칡넝쿨이 발목을 휘감는다 질긴 손아귀 같은덩굴 밑에 켜켜이 쌓인 음지가 있다무성한 푸른빛 속에 살기를 숨기며 큰 소나무를 포박중이다 바람결에 날아와 어느새 터를 잡고야금야금 파고들며 휘어잡더니제 뿌리를 땅 속 깊이 묻고 끝없이 뻗어가는저 치명적인 호의,누대를 이어온 그들의 보행법이다 우경주(1956~)현실은 화합과 배반이 공존하는 모순으로 도착해 있다. 여기에는 거짓과 진실이 혼재하며, 거짓의 얼굴을 한 진실과, 진실의 얼굴을 한 거짓이 착종된, 이 세계는 갈등의 넝쿨이 서로를 감싸며 운신한다. 양립할 수 없는, 이러한 갈등(葛藤)의 어원은 '칡과 등나무'에서 비롯되었다. 칡 나무는 왼쪽으로 휘감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휘감으며 자라는데, 서로의 사정에 따라 하나 되지 못하고 얽혀있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맞설수록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갈등의 운명'이다. 요컨대 "머리를 풀어헤친 칡넝쿨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덩굴 밑에 켜켜이 쌓인 음지가" 있을 뿐이며, "무성한 푸른빛 속에 살기를 숨기며" 가면을 쓰고 있다. 혼란과 불화를 표상하는, 이 광경은 "누대를 이어온 그들의 보행법"이 아닐까? '욕망의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보행법은 "땅속 깊이 묻고 끝없이 뻗어 가는" 뿌리같이, 오늘도 '야금야금' 우리의 목을 조이며 온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2-21 권성훈

[시인의 연인] 설화(雪花)

썩은 가지에 눈발이 살아 있다절속(絶俗) 후 하릴없는 생각들이겨울눈으로 허공을 껴안아뿌리 쪽 관다발 어디쯤에선물길이 막힐수록 빛나는 적요죽음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생(生)이 외도(外道)라면 눈은 또 무슨 경계의 밖인가 고사(古寺)의 숲은 밝아여태 걸은 길들이 능선에 엉킨다 연(緣) 없는 나목(裸木)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야윌 때대처로 가는 길 영원히 막힐러니김종태(1971∼)상대방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만큼의 상처를 덮어주는 일이다. 상처의 부피가 깊을수록 나눠야하는 슬픔의 진폭도 비례한다. 죽어가는 생명은 삶으로부터 멀어지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누군가 옆에 있기에 가능하다. 삶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겨울눈'을 보면 자신을 키워온 '인생의 육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뿌리 쪽 관다발에서 물길이 막히어 썩어가는 나무에 내린 눈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눈꽃은 존재 내면의 크기를 '대처'해 주는 형상물로서 '생(生)이 외도(外道)'라고 할 수 있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있는 삶에서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서 있는, 겨울 한복판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했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1-24 권성훈

[시인의 연인] 겨울 자작나무 숲

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으로 가득한 겨울 자작나무 숲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을 따라 이파리에 매달린 애벌레가 일광욕을 즐기고 참새 떼는 빛을 쪼며 흥겨워하고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겨울 자작나무 숲 허형만(1945~)시간을 수평적이라고 한다면 공간은 수직적이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고정된 공간 속에서 시간의 단위로 현전한다. 이 시간에 있지 못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 없는 사람인바, 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시공간은 언제나 동행자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살고 싶었던 오늘이며,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죽고 싶은 오늘을 산다. 그런 한해가 석양으로 물들고 있다.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면 지나온 시간의 “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을 만나게 된다.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을 느껴보라. “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과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희망이 오고 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시간은 분명히 갈등과 충돌이 해소된 장소로서 ‘인간들의 숲’이 된다. 그렇다면 2015년을 아름답게 저물게 할 수 있으련만./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5-12-27 권성훈

[시인의 연인] 망忙을 보다

망忙을 본다는 것은/ 망亡을 보는 것이다.나의 온갖 부끄러운 행동들이 모두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망亡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산을 오르다 만난 박새둥지에서털도 나지 않은 망亡을 보았다.망보기가 떠난 곳은 망忙이 뚫린 곳이다.허술하게 썩어가는 둥지 안이나의 이곳 저 곳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박무웅(1944~)하나의 단어가 많은 의미를 생산해 내는 시 일수록 시적인 가치를 지닌다. 시는 일반적인 것에서 시작되지만 언어화되면서 다의적인 의미로 발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언어’로서는 존재 의미를 타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망’은 빠르다는 뜻 ‘망忙’과, 소멸한다는 뜻 ‘망亡’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망忙을 본다는 것”과 “망亡을 보는 것”은 ‘망’이라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분명한 차이로 나타난다. 망은 빠르게 가는 것과 소멸해 가는 것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소멸해 가는 “나의 온갖 부끄러운 행동들”에서 유례된다. 나를 응시하는 일이야 말로 ‘허술하게 썩어가는 박새 둥지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곳은 “망보기가 떠난 곳”이면서 “망忙이 뚫린 곳”으로서 “나의 이곳 저 곳일지도 모른다는” 죽음 앞에선 인간의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적 해석에 도달하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5-12-13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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