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냐 <유치환 (1908~ 1967)> ‘보고싶다’라는 말을 꽃망울 터트리듯이 해 본적 있는가. 허공같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얼굴을 향해 당신도 모르게 나온 그 말은 하나의 고백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지금-여기 없는 대상을 슬프도록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떠한가? 그 가슴을 열면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바람부는 텅빈 ‘하늘 아래’에서 울고 있는, 당신은 분명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을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하면서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날 ‘깃발’처럼 가만있지 않고 온종일 펼럭인다. 공중에 깃발을 달아준 당신의 사랑은 지고 없는 “꽃같이 숨었느냐” 탄식하지만 이제 그 울음을 그쳐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5-09-20 권성훈

신의 악기

하이힐은 가락이고 음악이다/주눅 든 일요일 낮 열한시, 계단은 대리석이다/똑 똑 똑, 단아한 하이힐 목소리 어디로 가는 걸까/무료한 일요일 다가구 주택, 갈 곳 없는 사내도/힐 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길을 나선다//바라만 보아라 핑크빛 하이힐/얼마나 정교한 여자의 비밀인가/힐의 예술은 여자의 하반신, 탄력 있는 경주마 엉덩이,/그 아래 꼬리처럼 모여진 살색 종아리/여자는 제 힐 소리 들으며 걸을 때 삶이 출렁인다//땅의 건반을 울리는 하이힐 자꾸만 어디론가/떠나고 싶은 걸까/굽의 모양 따라 음색 다르고/굽의 높이에 따라 음의 고저가 다른 힐 악기 이초우 (1950년~) 이 시의 ‘하이힐’은 매여 있는 여자의 몸을 싣고 일상으로부터 탈출시킨다. 하이힐은 ‘가락과 음악’이 되며 ‘주눅 든 일요일 낮 열한시, 계단은 대리석을 똑 똑 똑, 깨우는 단아한 목소리’가 된다. 하이힐에 맞춰 움직이는 여자는 속박에서 풀려난 수직이면서 수평을 향하는 기호다. 하이힐의 ‘똑 똑 똑’이라는 의성어는 대지와 허공의 벌어진 거리만큼의 무게를 알리는 소리로서 수직과 수평, 그리고 허공과 대지 사이에서 여자를 해방시키는 사유로서 작용한다. 화자의 시선은 “힐 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길을” 나서는 여자가 아닌 하이힐이라는 ‘도구적 존재’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이힐은 여자의 몸을 싣고서 여자를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유적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2015-09-06 권성훈

좋은 사람들

누군가 일요일의 벽에 못을 박는다.텅텅 울리는 깡통처럼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일요일의 벽에 박힌 못은월요일의 벽에도 여전히 매달려 있고화요일의 벽에도 균열은 나아가겠지만//이웃은 누구인가?이웃은 냄새를 풍기는 자이며,이웃은 소리를 내는 자이고그냥 이웃하고 사는 자일뿐인데,//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은나쁜 이웃을 만나는 일처럼 어렵지 않은가.하지만 누가 이웃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좋은 이웃으로 남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현승(1973~)“이웃은 누구인가?” 벽하나 사이에 이웃이 살고 있다. 이웃은 ‘벽’에 박힌 ‘못’같이 밀착되어 있지만 서로의 ‘냄새’와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깝지만 교류 없는 이웃은 막연히 “그냥 이웃하고 사는 자일뿐”이다. 자식이 부모를 결정하지 못하듯이 주변을 둘러보면 “누가 이웃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웃은 숙명적인 인연을 현시하며 가족을 달리 부르는 말인 지 모른다. 내가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만큼 나 또한 “좋은 이웃이”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돌아보면 당신도 자신만의 벽에 박혀 빠지지 않는 녹슬은 못처럼 주변에 균열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던가./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2015-08-30 권성훈

빙의

사랑하는 사람이여당신과 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신은 내 아픈 눈동자 속으로 내 안에 들어와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오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깊어나는 당신이 아픈 곳에 손을 대고당신과 함께 웃지 방민호(1965~)끝없는 그리움이 있다. 이 그리움은 영원히 오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해 고정된 ‘마음의 창’이다. 기다려도 오지 못하는 이승에의 애절함은 이성을 전복시키며 꿈, 환상을 통해 “당신과 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만난다. 이보다 더 절실한 사랑은 환영을 넘어 당신의 “신은 내 아픈 눈동자 속으로 내 안에 들어와” 동일자적 시선으로 동화되기도 한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것은 “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깊어” 사별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에서 온 것이며, “나는 당신이 아픈 곳에 손을 대고” 모노 드라마틱한 ‘영적 재현’을 통해 죄의식을 ‘당신과 함께’ 해소시킨다. 지젝은 ‘억압은 돌아온다’라고 말 한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언어’를 빌려 “채무 변제를 위해 죽은 자가 귀환한다”고 했는데, 너무 아픈 ‘사랑의 빙의’도 다르지 않다./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2015-08-09 권성훈

나의 거처

너는 고산지대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다빈 집 절구독에 고인 빗물에 비치는 낮달이다붙박이별을 이정표 삼아 비탈길을 가는 나귀 걸음걸이다너는 무명천에 물들인 쪽빛이다노인정 앞 평상에 내려앉은 후박나무 잎사귀다 김선향(1966∼)중심을 향해 있거나 중심에서 멀어진 그곳을, 우리는 주변부라고 한다.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부를 있게 하며 빛나게 만든다. 마치 존귀한 사물에 깃들어 있는 아우라처럼 주변부는 존재한다. 중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하늘과 가까운 옥탑방과 같이 안채에서 떨어져 모퉁이 세계에 있다. 거기는 외로운 장소로서 ‘고독한 시간’이 배어 있는 시공간이다. 고산지대의 높은 곳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같이. 비온 뒤 빈 집 절구독에 고여 있는 ‘빗물에 비치는 낮달’같이. 주인과 함께 비탈길을 가는 ‘나귀의 걸음걸이’같이.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명천을 물들인 쪽빛’같이. 눈여겨 봐 주지 않는 노인정 평상에 피어나는 ‘후박나무 잎사귀’ 같이, 단독으로 뜻을 가질 수 없지만 홀로 의미를 가지는 존재군이다. 조명 받지 못하지만 조명하고 있는, 그 곳은 사랑 받지 못하지만 사랑하고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머무는 ‘고독의 거처’가 아니겠는가./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2015-06-21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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