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안녕들 하십니까, 대중매체님들'

대중매체들은 젊은이들이서로 '안녕 하십니까'를 묻고나섰다고 중계하고 있지만그들의 심중을 설명하지 않고제대로 응답하지 못한채질문들만 되풀이해줄 뿐이다'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자보 스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붙은 대자보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이웃한 이들이 퍼서 날랐고, 이어 토론에 불붙인 결과다. 과거 학생운동 당시의 고전적 수단이던 대자보가 갖는 의미가 강하게 되살아난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전연 닿지 않을 것 같은 뉴미디어와 접속되면서 절묘한 '미디어 믹스'가 이뤄졌다. 성공적 '미디어 믹스'는 사회에 무관심하다던 대학생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고, 자신이 처한 조건을 고민하고 토론하게 만들었다.절묘한 '미디어 믹스'와 함께 공감을 이끈 질문 또한 유효했다. 2013년 말 최고의 히트작이라 일컫는 '응답하라' 드라마와 묘한 짝을 이루어 공감을 유도해냈다. 강한 주장, 교조적 말투를 비켜나며 누구든 응답을 피할 수 없을 만큼의 공감적 질문을 해냈다. 안녕하냐는 질문은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나 혼자만 그런가요'의 함의를 깔고 있는 공감형 질문이었다. 응답을 비켜가면 도대체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이었고 등을 은근히 강하게 떠미는 찰진 질문이었다.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성공적 '미디어 믹스'를 곁들이면 누구든 의제 설정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음을 '안녕' 사건은 말해주고 있다. 대중매체의 의제 설정 권력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조직된 개인들이 아닌 답답한 마음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호응하는 일이 SNS로 일파만파로 번져간 사건으로 보자면 대중매체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니다. 대중매체는 의제 설정하는 개인들의 움직임을 받아 적기 바쁜 필기자의 존재로 추락했다고 할까. 질문 않고, 의제를 내세워 말하지 않는 '말 못하는 자'로 전락한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청년들은 대중매체에도 질문을 던진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중매체님들'.젊은이들이 서로 안녕을 묻는 말문을 대자보와 SNS를 통해 튼 데는 이유가 있다. 도대체 안녕하지 못한 듯한 젊은이들의 답답함을 탈탈 털어 정리해준 쪽이 사회 내 어느 구석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거라거나 열심히 스펙을 정리해 나가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구든 그런 시절을 거쳤으니 아픈 만큼 성숙할 거라 위로하는 말들만 넘쳤다. 왜 답답한지, 그 울화가 어디서 왔는지 정리해주는 쪽이 없으니 자신들끼리 그래 당신은 안녕하냐, 우리 정말 안녕한 것일까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 측에서 보자면 사회의 무능함을 질문한 것에 다름없다. 젊은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함이 아니라 그들 가슴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모르는 무능함 말이다. 심지어는 가슴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직무유기적 무능함도 되묻고 나선 것이다.며칠 동안 여전히 올드 미디어, 대중매체들은 젊은이들이 서로 '안녕 하십니까'를 묻고 나섰다고 중계하고 있다. 왜 그런지를 묻지 않은 채 그들의 대자보를 찍고, 그들의 행진을 그려내고, 모임을 스케치하는 등 보고로 분주하다. 결코 젊은이들의 심중을 설명하는 쪽으로까지는 가지 못한 채 말이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다'고 나선 쪽이지만 왜 그런지를 설명해주려 하진 않는다.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채 질문들만 되풀이해 중계해줄 뿐이다. 사후 약방문 식으로 설명을 시도해볼 만하건만 여전히 굳게 닫은 입을 하고 있다. 그럴수록 돌아올 반대급부는 명확해진다. '안녕들 하신가요, 대중매체님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2-16 원용진

"저 사람 전라도일 거야"

권력에 밉보이면고향도 바뀌는 세상개인정보 유출 조심한다지만관리소홀 대량 유출 심각유명인·공인은 신상털기 예사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다30여년 전만 해도 개인정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 두툼한 전화번호부가 굴러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고, 명함에 버젓이 집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찍어 넣은 사람도 흔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즈음은 금융실명제도가 실시되지 않을 때여서,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보험,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등의 발급 시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서류,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하여 직장에 내는 인사자료 정도에나 개인정보를 기술하면 되었고, 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요즈음은 어디에서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금융 관련 일을 처리하자면 당연히 신분증을 제시하고 꼬박꼬박 개인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기관이나 조직의 홈페이지에 의견을 올리려 해도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에도 매번 개인정보를 밝혀야 하고, 백화점에서 상품을 할부 구입하려 해도 영락없이 개인정보를 요구받는다.그런데 개인정보는 그 제공된 곳에 가만히 모셔져 있지 않다. 폐기된 서류뭉치에 섞여 재활용 쓰레기장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온라인 세상에 넘쳐 떠돌기도 한다. 이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수집하여 상품의 홍보, 판매에 이용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보이스 피싱 등 범죄에라도 악용되면 개인적, 사회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진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정보가 유출될까 보아 노심초사한다.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개인정보는 이래저래 유출된다. 장삼이사들의 개인정보는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등의 관리 소홀로 대량 유출되어 합법 비합법적으로 이용당한다. 스캔들에 휘말린 유명 인사들의 개인정보는 누리꾼들의 집단 '신상 털기'로 까발려진다. 그리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에서 보듯이, 권력기관이 불법으로 확보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나 '영혼 있는' 공무원의 개인정보는 '조폭언론'이 그 유통을 하청받아 여론의 시장에 뿌려댄다.특정인의 '고향'을 밝히기 위한 '신상 털기'도 극성이다. '고향 털기'는 재벌 그룹의 비리를 폭로한 인사,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연구자, 정보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을 갖고 대처한 공무원들에 집중된다. 삼성 재벌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국정원 직원의 댓글 의혹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권은희 전 서초경찰서 수사과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려 했던 윤석열 검사 등이 그들이다.왜 이들의 고향을 그렇게 알고 싶어 할까? 정확히 답하자면, 이들의 고향이 '전라도'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이다. '전라도'임이 확인되면 공인으로서의 정의감이나 책임의식, 원칙 같은 것은 무시되고, 그들의 처신을 인사에서 TK 정권의 대척점에 있는 전라도 출신의 불평불만으로 폄훼하고자 하는 데 속셈이 있는 것이다.일국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려 한 경찰공무원에게 '당신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일갈하는 것도, 그리고 춘천 출신인 '나꼼수'의 김용민의 고향을 전북 부안으로 바꿔 인터넷을 도배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얼마 전 인터넷에 '윤석열 검사 고향'이라는 검색어가 제법 상위에 랭크되었었다. 그런데 아무리 집단 신상 털기를 해도 윤 검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 대학교를 나왔으니, 전라도가 고향이 아니다. 그러자 다시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이란 검색어가 떴다. '당신은 서울이 고향이랄 수 있지만, 분명 당신 아버지 고향은 전라도일 거야!'라는 망상에서이다. 그런데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다! 이제 끝났을까? '공주는 옛 백제 땅이잖아? 그러니 공주도 전라도나 마찬가지'란다. 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지겹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2-08 김학민

군사시설이전 지평리탄약고 처럼 하면 안된다

다른 군사시설과 달리위험성 크고 비선호 시설은이전 결정을 공개해야 하고후보지 결정후 마지막에지역주민을 무마하려는방식은 버려야 한다경기도 사람들은 군사시설이 늘어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군사시설이 들어서면 재산권 행사도 어렵고 지역발전도 더디게 되는데다 경기도에는 이미 군사령부 1개, 군단급 부대 7개, 사단급 부대 30개 등 전군의 약 40% 가량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의 횡성군에 있던 탄약고를 양평군 지평면으로 옮긴다고 한다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발단은 이렇다. 군은 지난 5월 양평군에 '59탄약대대 현대화사업'을 한다고 인허가 서류를 냈다. 하지만 사실은 횡성에 있던 탄약고를 옮기려 한 것이고, 제1군수사령관과 횡성군수가 참석한 기공식까지 열었다. 그 과정에서 양평군과 협의 한번 없었다. 그 뒤의 일은 뻔한 것이다. 지평면의 주민들은 이전저지비상대책위를 만들고 국방부와 횡성군에 항의하고, 양평군이 제 할 일도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양평군수와 군의회도 나섰고, 국방부는 주민들과 이제부터라도 협의하지 않고는 이전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지평리는 6·25전쟁 때 전황을 역전시킨 지평리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1951년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지평리에서 막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은 3개 사단을 앞세워 원형진지를 구축한 미23연대(프랑스대대 배속)를 공격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적절한 지원군 투입으로 3일 간의 격전이 끝나자 진지주변은 중공군의 주검으로 넘쳐났다. 이 전투를 통해 유엔은 한국 국토 사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참조). 양평군 지평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있고,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축으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런 곳에 우리 군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군 탄약고는 지하형, 이글루형, 지상형 등의 3종으로 설계된다. 현재는 대부분 지상형인데다가 습기에 취약하여, 추진장약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고 탄종특성별로 관리되지 못하기에 군은 탄약고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의 이런 방침과 맞물려 횡성군은 200억원(기부대양여사업)을 들여서라도 숙원이던 탄약고이전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군과 횡성군 모두 이전결정과 인허가를 얻어내기까지 양평군과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 인허가 절차시 양평군에 알렸다고 하지만, 관련 인허가를 얻기 위해 개발행위와 농지전용 협의는 생태개발과, 전기 통신은 총무과, 개인하수관 설치 신고는 환경관리과와 하수도사업소로 각각 공문을 보내는 등 개별 부서의 업무로 처리했다. 양평군은 탄약고 관련 업무를 행복도시과에서 하니 이전사업을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놓고 자칫하면 자치단체 간에 소송이 날 판이다.우리 군이 군사시설사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전결정을 비공개로 하고, 후보지를 결정한 다음에 마지막에 해당 지역을 무마하는 방식 말이다. 특히 탄약고처럼 보통의 군사시설과는 달리 위험성이 크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2배로 설정되는 비선호군사시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탄약고에 드나드는 작업차량 때문에 주민이 알아챈 것처럼 요즈음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국가와 군은 이 기회에 국방·군사시설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첫째로 비밀주의를 버려야 한다. 군사시설의 이전에 대한 계획을 해당 지역이 미리 알게 하여야 한다. 이번 횡성탄약고이전은 59탄약대대의 중대급 탄약고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라 했다. 터놓고 이야기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둘째, 도시계획을 반영하여야 한다. 군사시설이 입지해 있거나 향후 입지할 곳의 도시계획과 상충되는지를 군과 해당 지역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주민의 희생이 적도록 해야 한다. 지평은 역사적 자존심에 비해 도시발전이 왜곡돼 있는데 이런 아픈 점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국가는 탄약고와 같이 외부불경제가 큰 군사시설의 주변지역을 지원할 수 있는 비선호(특정)군사시설주변지원법을 만들고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협력을 얻는 방법을 제도화해서 환영받는 군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안보에도 중요하다./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2-01 허훈

응답하라 1987

6·29선언의 주역이었던학생들과 문민정부의 탄생을보았던 사람들은 어느덧 40대,한치 양보없이 무한표류 하는지금의 '대한민국호'를 구하는건'40대의 힘' 밖에 없어 보인다1994년을 조명한 케이블방송 드라마가 인기다.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막장드라마처럼 이상한 전개와 결말이 없는데다 우리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다. 이 드라마의 기획자가 1994년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4년의 시대적 상황은 드라마 내용보다 더 복잡했다.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의 탄생을 내걸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될 성수대교 붕괴사태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고는 모두 인재(人災)였다. 기업인의 부도덕한 탐욕과 공무원의 무사안일이 만들어낸 참사에 우리 모두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2013년 한국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케이블 방송의 20여 년 전 드라마 상황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국정치는 '대선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념정글'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 15일에서 17일사이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자. 여야의 대치국면 책임에 대해 '새누리당과 정부'라는 의견이 18.8%, '민주당'이 23.8%였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55.9%로 가장 높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95%신뢰수준 ±3.1%P). 대선과정 의혹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필요하지만 대통령 선거에만 매달려 있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가 폭발 직전임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이미 세 가지 경고를 했다. 첫째는 NLL(서해북방한계선)은 대한민국 영토로 사수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응답했다. 둘째로 NLL과 관련한 대통령 기록물 열람에 대해서도 정쟁의 불씨가 될 것이므로 추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셋째로 지난 8월말 국정조사가 끝난 뒤 정쟁을 끝내고 '경제활성화(30%)'와 '부정부패척결(15.4%)'에 노력하라는 여론을 내놓았다(리서치앤리서치, 8월23일 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원에 의한 조사, 95%신뢰수준 ±3.1%P).지금 정국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방송 드라마의 무대가 된 1994년에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후 우리 사회는 이념적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대선과정의 댓글, 트위터부터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까지 북한관련 이슈에 따라 진영논리가 얼마나 확산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정치적 발언은 현재의 꼬인 정국을 지혜롭게 풀기보다는 더 꼬여서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되어버릴 것이다.정치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 국민대표자회의인 국회는 정상적이라면 국회 내에서 문제를 진작 풀었어야 했다. 국민들은 이 와중에 국가기관들을 차례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과거를 되돌아 볼 때 1994년 또는 97년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해는 1987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화를 이끌어낸 6·29 선언은 바로 1987년의 일이었다. 6·29 선언의 주역이었던 학생들과 문민정부의 탄생을 보았던 학생들은 어느덧 4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다. 말그대로 40대이다.지난 10월 통계청 인구현황을 보면 10세 단위의 인구분포 중 40대의 인구가 가장 많다. 그리고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인구계층이다. 사회의 중추적인 위치임과 동시에 국가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한 치 양보 없이 무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구할 것은 '40대의 힘' 밖에 없어 보인다. 진영대결뿐만 아니라 세대갈등까지 빚어지고 종교계까지 정치판에 휘둘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대담하게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의 통근 역할을 더 이상 지체 없이 40대가 해내야 한다. 의혹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고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 정쟁만 있고 '국민'은 보지 못하는 여의도 국회를 '특검'해야 한다는 준엄한 옐로카드도 전달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가장 형편없는 '2013년'으로 드라마화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40대가 제대로 응답해야 할 때이다. 응답하라 1987./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11-25 배종찬

볼링장과 동네 마실

현대 도시인은 구성원간 대화가줄어들어 신뢰도가 하락하고공동체의식도 형성 안된다이젠 비생산적 냉소를 거둬내고마을·고장·동네 제대로 갖추는일을 삶의 첫과제로 삼아야 할때공동체 삶에 대한 언급이 점차 늘고 있다. 아예 공동체 혹은 코뮨이란 이름을 달고 일상을 영위하는 곳까지 생기고 있다. 그에 대한 이론도 늘뿐 아니라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이 공동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비슷한 말에 속하는 고장, 마을, 동네 등의 단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그 함의를 바꾼 채 존재하고 있다. 고장이란 말은 사라진 듯하고, 동네란 말 속엔 '잠자는 곳' 정도의 함의만 담겨 있을 뿐이다. 결핍된 것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 우리는 오매불망 건강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구하고 있다.한국 사회보다 더하진 않겠지만 대체로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사회가 선진제도를 갖춘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그 운용이 원활치 않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공동체 의식이 담기지 않으니 좋은 제도조차도 빛을 좀체 보지 못함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웃한 사람들끼리 동네 걱정을 나누는 일이 점차 줄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소한으로 이웃을 사귀는 것에 그치고 당장의 이익이 개입되지 않으면 외면해버리는 개인주의적 습속이 주요 일상으로 자리잡았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공동체 문제를 낭만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당장의 삶을 윤택하거나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나홀로 볼링'이란 책을 통해 로버트 퍼트남은 공동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현실 문제인지 알리고자 했다. 미국의 대부분 마을 어귀에는 볼링장이 있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던 사교장이었다. 공을 굴리고 맥주를 나누며 마을 걱정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곳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볼링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볼링 치는 사람도 늘었다. 퍼트남은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감소라고 보았다. 널리 사람을 알아 생활을 도모하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지탱해주던 힘이 동네 이웃 간의 신뢰, 협조였고 큰 사회적 자본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사회의 침체는 경제나 정치제도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제도가 원활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감소했음에 원인이 있다고 퍼트남은 파악했다.퍼트남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의 기본 바탕은 신뢰와 호혜성이다. 이웃 간에 신뢰가 쌓이면 서로 혜택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그럼으로써 서로 돕기 위한 실천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 실천이 거듭되면 자연스레 사회적 자본이 쌓인다. 그를 통해 진정한 공동체라는 범주가 가시화될 수 있다. 공동체 형성을 위해선 신뢰와 호혜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엔 신뢰와 호혜성을 길러내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퍼트남이 볼링장에 주목했던 것은 그곳에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현대 도시 내에서 구성원간 대화가 줄어든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화가 줄어듦에 따라 신뢰와 호혜성도 동반 하락하게 마련이고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대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상실을 한탄하는데 익숙할 뿐이다. 그 공동체를 구하는 데는 선뜻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다. 도시의 공동체는 파편적이어야 마땅한 것처럼 여기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단정 짓는 일에 익숙하다. 몇몇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를 주요 과업으로 내걸었을 때도 그런 냉소가 강했다. 사회적 자본을 키우고,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는 일은 지역민들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가치여야 함에도 정작 우리는 그를 잘도 비켜갔다.미국이 볼링장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만큼 우리도 사랑방이나 동네 마실의 소멸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옛 풍속에 대한 낭만적 기억 탓만은 아니다. 더 편한 삶을 위해서는 대화, 그를 기반으로 한 신뢰가 필요하고, 그럼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형성이 이뤄져야 함은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 결코 더 늦추어선 안 될 과제다. 비생산적 냉소를 거두고 마을, 고장, 동네 제대로 갖춰보는 일을 삶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 할 온 사회의 화두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1-18 원용진

경기도식 김치를 아시나요

봄까지무르지 않는사각사각 경기도 김치,요즘은진한, 짭조름한 맛,전라도식 김치에 밀려무나 배추에 양념을 넣지 않고 통으로 소금에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흔히 짠지라고 하는데, 황해도, 함경남도 지방에서는 김치 자체를 짠지라고도 한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무를 절이지 않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싱건지라고 부른다. 오이를 짠지 비슷하게 담근 것은 오이지다. 이밖에 부추도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지방에 따라 부추김치를 솔지 또는 정구지라고 한다. 장아찌는 무, 배추, 오이 등 채소를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숙성시킨 저장식품을 말한다. 우리의 옛 조리서에는 장아찌를 장으로 담근 김치, 곧 '장지'라고 적고 있다.짠지, 싱건지, 오이지, 솔지, 정구지, 장지(장아찌) 등에 붙은 '지(찌)'란 무엇일까? '지'는 16세기 김치의 옛말인 '딤채'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김치의 이름이다. 고려 중기의 시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염지(鹽漬)'라고 했는데, '지(漬)'는 '적실 지, 물에 담글 지'로 풀이되므로 곧 '지'가 김치임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 말기가 되면서 '지'는 사라지고 '저(菹)'가 김치를 뜻하는 말로 떠오른다.'딤채'라는 말은 조선 초기에 보인다. 1525년 '훈몽자회'는 저(菹)를 '딤채 저'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딤채'는 무엇일까? 이때의 김치는 고춧가루와 젓갈을 쓰는 오늘날의 김치와는 달리, 소금에 절인 채소에다 마늘 등 몇 가지 향신료만을 섞어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소금물에 침지(沈漬)되는 형태이거나, 동치미처럼 소금의 양이 많으면 마침내 가라앉는 형태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김치는 가라앉은 채소 곧 '침채(沈菜)'로 불리고, '침채'가 '팀채'로, 다시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가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이것이 변해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김장철이 시작된다. 김장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이, 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찬인 김치를 추운 겨울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먹기 위해 담그는 연중행사다. 김장김치는 채소가 부족한 겨울철에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의 산물이다. 김장은 가라앉혀 보관한다는 뜻의 '침장(沈藏)'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한다. 곧 음운이 변화되어 '침장'이 '팀장'으로, '팀장'이 '딤장'이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김장'으로 굳어진 것이다.김장은 4도 이하일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인 11월 말에서 12월 초인 입동 전후를 김장하기 제일 좋은 시기로 여겼는데, 이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등이 얼기 전에 하는 것이 좋고, 너무 따뜻할 경우 김치가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기상청에서 매년 김장하기 좋은 날을 발표한다.(2013년은 11월 13일 발표) 그러나 김치냉장고가 개발되고 나서는 김장 시기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사시사철 채소가 나기 때문에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어머니는 늦가을이면 10여일 전부터 분주하게 김장준비를 하셨다. 우리 집이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 부지런히 무채를 썰고 여기에 파, 마늘, 생강을 다져 넣고,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간하여 잘 버무려 배춧속을 넣는다. 속을 넣은 배추는 뒷마당에 파묻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포개 넣는다. 김장을 끝내고 남은 자투리 무와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버무리면 바로 섞박지이다.친가 외가 모두가 경기도 토박이인 나는 어머니가 담그는 경기도식 김치에 익숙하다. 경기도식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고 새우젓만 써 삼삼한 얕은맛을 낸다. 경기도식 김치는 봄이 되어도 쉽게 무르지 않으며, 김치찌개를 끓여도 시원하다.그런데 요즈음은 경기도식 김치는 찾아 볼 수 없고, 찹쌀 죽에 멸치젓이나 까나리젓으로 속을 버무려 넣은 짭조름하고 진한 맛을 내는 전라도식 김치가 대부분이다.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일까? 더욱 경기도식 김치가 생각나는 김장철이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1-10 김학민

'새도 좌 우 날개로 난다'

새들은 좌우날개로 잘 나는데왜 여야는 제쪽만 옳다거나잘됐다는 식의 논법으로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가?균형 맞추며 비행하는 철새처럼한국정치도 지혜로웠으면…이제 겨울새들의 계절이다. 수만 ㎞를 지치지 않고 날아오는 두루미나 청둥오리 떼가 반갑다. 그 가냘픈 몸으로 무리가 우두머리를 앞세워 기류를 제 것으로 만들어 오는 저것들이 대견하다. 서로 협동하는 무리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티격태격 사는 모양새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새들이 보면, 우리한테 한수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까.특히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을 보면 새들이 뭐라 할까? 공무원 개인의 정치개입 사건으로 끝나야 할지, 행정체계의 조직적 정치개입으로 보아야 할지. 이것을 두고 정국이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야당이 연일 공세수위를 높여가자, 여당은 대선불복이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에 대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달라고 하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야당이 지난 대선패배를 자신의 잘못에서 찾기보다, 외부에서 찾는 것이 꼴사납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대응도 군색하기는 피차일반이다. 기류라는 현실적 조건에 맞추어 좌측 행렬이 늘어났다가 우측행렬이 늘어났다가를 반복하는 철새 떼를 보면, 현실의 정치리더십이 아쉬워 보인다. 우두머리새가 이끄는 모습도 부럽고, 그를 따르는 철새들도 부럽다.우주에서 보면, 철새 떼의 무리에 비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체제도 대통령이 나서서 좀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해외외교에 나서기 전에 국내정치의 갈등해법을 찾고 나서기를 바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계속되는 정쟁에 지겨워지고 먹고사는 일이 급해진 탓이다. 그래서 유럽순방 직전에 국정원 의혹 철저 조사 후 문책하겠다는 의지표명을 한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전공노와 전교조의 선거개입이 더 문제라고 맞받아친 것은 과연 시의적절했나 하는 의심이 간다. 장군멍군하는 식으로 이쪽도 잘못했으나, 저쪽의 잘못이 더 크다는 식으로 핑퐁게임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화성과 포항의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보수당의 입장에서 보면 쾌재를 부를 일일지 모른다.하지만 국민의 시각에선 대선이 끝난 지, 이제 달포만 있으면 1년이 지나는 정부에서 여전히 좌우 진영 간의 극한대립이 심해질까 걱정이다. 새들을 바라보면 분명히 좌우날개로 가는데 왜 우리는 좌우가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가? 오른쪽이 힘찬 날갯짓을 할 차례가 되었으니, 좀 맡겨두면 안될까? 왼쪽이 날갯짓을 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때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패자의 미학이 야당에는 없는가? 오른쪽 대열이 왼쪽 대열을 포용하여 좀 느긋하게 대하면 안 되는가? 이런 것을 기대하는 국민으로서는 제 쪽만 옳다거나 잘됐다는 식의 논법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극한 좌우대립이 결국 분단에 이르게 하고, 전쟁을 겪고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국가로서는 새가 좌우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교훈은 없다. 자본주의 몰락을 예측했던 자본론을 틀리게 한 것은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정할 기회로 삼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이제는 좌우 진영의 꼭두각시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주권국가이니 더더욱 좌우편향에서 벗어날 시점이다. 학교 무상급식을 서로 못해 안달인 것도 정책수단인 재정을 살필 일이지 좌우 이데올리기 탓이 아니다. 중국도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이데올리기 편향을 극복한 마당에, 우리가 좌우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일이 없다. 철새들이 만나게 되는 기류의 형태를 파악하여 목적지를 날아가듯이 현재를 파악하여 좌우균형을 잡아가면 그만이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정치권으로서는 균형을 잡아간다는 말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오해만 하기에는 아까운 지적재산의 하나인 이영희의 '새는 좌우날개로 난다'라는 책의 서문을 한번 되새겨보자.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한국의 정치가 좌우날개로 균형을 잡아가는 철새처럼 지혜롭길 바란다./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1-03 허훈

일본은 없다

아베총리는 인기를 의식해'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전과오를 재현해선 안된다이웃국가들 목소리를 외면하고막무가내 우경화를 고집한다면한일관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17년 전 일본 유명 사립대학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생들의 한국 교류 모임에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에 관해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방송에서 보았던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일본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교류 프로그램은 한일 관계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숨김없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프로그램 일정에는 일본학생들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동행하는 것도 포함되었다.대체로 한국학생들은 과거사와 관련된 예민한 토론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일본학생들의 반응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운 표정들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와 일본이 생각하는 과거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의 일본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동안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정확히 몰랐던 일본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선명하게 느껴졌고 '일본은 있다'였다.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우경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10월 26일은 '한일 강제 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이웃국가를 강점하고 '동양평화'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단죄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역사적 도발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고 부끄러운 역사를 자국민들에게 교육하지 않는 것이다. 천황을 비롯해 많은 일본 지도층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다수의 역사교과서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왜곡을 일삼아도 수수방관한 것이다.둘째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웃국가에 대한 진정한 우호의 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통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 문화 개방 조치를 취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가장 민감한 독도문제를 건드리며 첨예한 대립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곳곳을 유린하고 수탈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를 통째로 재편집할 야욕마저 내비치는 것이다. 그 정점에 일본정부가 내놓은 독도여론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일본국민의 60% 이상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이 조사는 설문조사의 가장 기본인 표본의 대표성과 설문의 객관성을 원천적으로 도외시한 자료였다. 이러한 의도적인 일본정부의 자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다. 셋째로 아베 총리의 막무가내 우경화가 지속될 경우 한일관계에 있어 미래는 없다. 지난 3월과 4월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국민들은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가 71%였지만 우리 국민들은 '혐오한다'가 85%였다. 1990년대 후반처럼 한일관계가 퍽 괜찮았던 적도 있었다. 한일관계에 있어 일본 지도층의 태도와 인식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누출이 주변 국가에 피해를 끼침에도 무사안일하다면 한일관계를 더 발전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한일관계가 비뚤어진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크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할 수 있는 국력과 대외적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의거했던 것이 불과 104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에 대한 고종의 칙령이 선포된 지가 113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복잡하게 얽힌 두 나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동양평화'였다. 아베 총리는 자국 내 인기를 의식하여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 전의 과오를 재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웃 국민들의 비장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릇된 우경화의 길을 고집한다면 친구로서의 일본은 없을 것이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10-27 배종찬

담당자 울린 수원 행궁동 주민들

4300여주민 옹기종기 사는곳정조대왕 효행 흔적 곳곳에한달간의 생태교통 페스티벌걷고 경험하고 즐기고 맛보고주민 도움 소통으로…역사 조화 관광도심으로 재생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4천30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행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그와 함께 하던 무사들의 '화성무예 24기'가 매일 공연되는 역사 마당이기도 하다. 한반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고, 그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매년 열리는 동네다.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조성한 공방거리가 소담하게 낮볕을 받는 정겨운 곳이다. 그렇게만 알려졌던 행궁동에 지난 9월 한 달 동안 수상하고도 괄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지난 9월 한 달 내내 행궁동에서는 생태교통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 별것도 아니련만 행궁동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특정해 들여다보자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한 지역축제는 모두 752개에 달한다. 그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그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 판에 박힌 행사, 억지춘향식 볼거리, 미래가 실종된 관주도형 부실 기획 등의 이미지가 늘 겹친다. 안전행정부가 지역축제를 제대로 감리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런데 행궁동 축제를 챙겨보자며 소매를 끄니 그 이유가 궁금할 법하다.수원 행궁동의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범적이었고, 생산적이었으며 기록해둘 만했다. 무엇보다 소모성 행사가 아닌 생산성 축제가 되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생태교통 행사는 행궁동의 낙후성을 일거에 제거해냈다. 행궁동을 역사, 생태가 함께 이뤄지는 관광 도심으로 재생시켜냈다. 파내고 뒤엎는 개발 패러다임의 도시 개발을 생태적으로, 생산적으로 전환해낸 것이다.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확신한다.행궁동 축제이긴 했지만 수원을 넘어 전국구 축제로 갈 가능성도 보여줄 만큼 잘 기획된 행사였다. 역사라는 관광 테마에 생태교통을 끼워 넣음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결합시킨 온고이지신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소담한 동네를 생태교통과 연결시켜내면서 도시를 마치 워크숍 체험의 공간으로 바꾸는 장면 전환을 연출해냈다. 걷기, 경험하기, 즐겨보기, 맛보기를 통해 몸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촉각적 시간도 제공하였다. 볼거리에 집착하던 지역 축제를 촉각적, 경험적 이벤트로 바꾸어내면서 특화시킨 셈이다. 재기발랄한 기획이 각종 미디어의 눈길을 끌었고, 수도권을 넘어 전국의 관광객을 매혹해 100만여명의 발길을 유치했고, 광역 축제가 되는 행운도 누렸다.그 무엇보다 주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축제 담당자들이 가장 주력했다는 점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의 도움 없이는 지역 축제, 지역 재생의 성공이 어렵다는 사실을 행궁동 축제가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행궁동에 있는 자동차를 빼내고 지역을 생태교통 지역으로 만드는 이른바 '빼내기' 축제였다. 주민의 '빼내기'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축제였다. 담당자들은 주민과의 대화와 설득을 위해 수개월 공을 들였고, 방문을 거듭했다. 반대편이 없진 않았지만 종내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빼내기'에 동의해주었다. 축제 시작하는 날 새벽, 주민들의 자발적인 차 빼기로 차량이 줄을 잇는 장관을 이뤘다. 이를 지켜보던 담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미 축제는 그 공식 일정이 있기도 전부터 성공이 예감되었고, 감동의 눈물로 젖어 있었다. 소통과 대화의 힘을 보여준 축제였다.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시 전역으로 그 기운이 넘치게 하는 일, 축제일 외에도 생태관광을 일상화시키는 일, 아직은 덜 마무리된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 등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지만 생산성을 꾀했고, 재기발랄한 기획을 장기적으로 해내 축제를 성공으로 이끈 것에 기댄다면 과제 해결도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소통을 성공의 최대 열쇠로 파악했던 그 정신을 잘 살려간다면 이 축제의 일꾼들은 어쩌면 계속 감동해서 울 일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0-20 원용진

건국과 정부수립

있는 것을 왜곡 하거나없는 것을 조작하는 역사는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공자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빌 데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사립학교들은 가급적 자기 학교의 역사를 올려 잡으려 애쓴다. 나의 모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사립 고등학교로, 1885년 8월에 겨우 두 명의 학생을 구워삶아 '학교'를 시작했고, 1886년 6월에야 고종의 편액을 받아 '정식 학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내 모교의 개교일자는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가 증기선에서 내려 제물포에 발을 내디딘 1885년 6월 8일이다. 내가 다닌 대학 역시 1915년에 개교한 전문학교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개교일자는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인 의사가 진료를 시작한 1885년 5월이다.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실낱같은 근거라도 찾아 조금이라도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오늘에 이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무작정 올려 잡으려는 짓거리는,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진 판이 수 천 년 켜켜이 쌓여 이룩된 인류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범죄행위이다. 한반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조작하기 위해 가공의 천왕들을 만들어 자기 역사에 끼워넣은 일본,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 된 흥산문명이 발견되자 고대부터 만주 일대가 자기들 통치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렇다. 말도 되지 않는 국수주의, 오도된 민족주의의 발로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국 중심주의, 자국 이익의 관철이 국제관계의 실체임을 감안한다면, 그들 사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2008년, 이명박 정권은 그 해를 건국 60주년으로 삼고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다. 곧 미군정을 끝내고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식민사관에 바탕한 완전한 역사왜곡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건국된 것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그 동안의 어쩔 수 없는 '임시' 정부를 정리하고 '정식' 정부가 출발한 날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임시정부 출범 때 신석우 선생이 발의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1948년의 제헌의회도 압도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하였으니, '임시'정부 대한민국이 '정식'정부 대한민국으로 바로 이어진 것이다.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개식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 둘째로 애국선열들의 희생적인 혈전, 셋째로 우방의 원조이다. 우리는 먼저 헌법을 제정해야 하고, 대한민국 독립민주정부를 재건설해야 한다. 나는 이 국회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이 국회가 우리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한다"라 하였으며, 기자회견이나 자신의 글에서도 누차 "우리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발행된 관보 창간호도 발간연도를 임시정부 수립 30년이라는 뜻의 '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건국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첫째는 우리 민족 최초로 나라를 연 고조선의 건국이고, 둘째는 왕건의 고려 건국,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즉위식을 하고 국호를 바꾼 건국이다. 두 번째 건국으로 보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이 건국일임은 너무나 당연하다.요즈음 일제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운동을 축소하거나 폄하하려는 시도들이 소위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명목 하에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우기 위해 '건국'의 시의조차 무참히 농단한다. 그러면서 이를 교과서로 만들어 후세들을 가르치겠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역사는 일월이 조명하는 정의의 재판정이다. 있는 것을 왜곡하고 없는 것을 조작하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 공자님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 빌 데가 없다"고 했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0-13 김학민

이 가을, 정치의 후안무치

정당공천제 폐지 의제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아무런 성과없이 활동 종료여야 정치인들 공약 뒤엎은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긴후진적 정치행태 보여줘정치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 인간이 이기적이지만도 이타적이지만도 않은 존재인 이상 정치는 인간사회의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력적인 관계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서로 다투고 투쟁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는 조정력을 갖기 위해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다. 국가사회의 의사조정권을 주기 위해 우리는 선거를 하며, 이 권력을 가졌거나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치인이라 부른다. 정치경쟁의 장에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민들은 이 약속으로 그들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돌에 새긴 금언과 같이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공약이며, 그들의 말로 우리는 미래를 짐작한다.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정치인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경우는 홍수 때의 빗줄기처럼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키지 못할 공약남발, 일단 권력을 쥐고 나면 약속은 파기하고 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후진적 양상이다. 요즈음 대통령의 복지공약 실현을 두고 장관사퇴라는 초유의 사건이 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약 작성에 참여했다는 핵심측근인 장관이 이제 와서 자기 신념이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고, 그 공약이 지키지 못할 것이었지만 표를 얻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도 문제이다.정당공천제의 폐지 약속이 또 그렇다. 이 문제는 정치의 공약 깨기 중에서 모든 정당이 관련되고 모든 정치인이 관련된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적인 약속위반 사례가 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중앙정치도 지방정치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수장 및 지방의원들도, 국민도 시민도 모두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지난 12월로 되돌아가 보자. 여야당의 대통령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하였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하향식 비민주적 정당공천제는 없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이 탄생했다. 이 정부의 안전행정부장관도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3월 13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당공천제의 부정적인 사례로 지난해 치른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꼽았다. "기호 1번 후보가 사퇴했는데도 실제 선거에선 그를 찍은 표가 14%가 나왔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수렴 및 관련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7월에는 야당인 민주당도 당원투표에서 67.7%가 폐지에 찬성하였고 이것이 당론이 되었다. 또 국민은 어떤가. 언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 조사(9월28일)에서 응답한 국민들의 65.7%가 폐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이의 의견이 결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는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약속을 뭉개는 검은 연기가 가을 하늘을 뒤덮는다. 쓰레기 태우는 악취가 풍기는데, 여야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약속을 뒤집는 냄새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의제로 한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난 9월 30일 활동을 종료했다. 한 정치비평가는 여야당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이 줄 세우기도 힘들어지고', '공천장사를 하기도 어려워지고', '당원과 지역관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치인들이 후안무치하게 공약을 뒤엎는 것은 명료하다. '그 좋은 걸 왜 없애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기는 후진적인 정치행태이다.2013년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148개 국가 중 25위로 2012년에 비해 6계단이나 내려갔다(세계경제포럼 WEF 9월 4일 발표). 그중 가장 꼴찌가 정치 분야에서 책임져야 하는 '정책결정의 투명성' 지표인데 이것이 137위이다. 공약파기를 일삼고 밀실에서 야합하는 냄새를 나라 밖에서도 다 맡는 모양이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태도를 눈여겨보아 다음 선거에서 거짓과 위선을 좀 치워냈으면 좋겠다. 가을하늘이 다시 푸르게…./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0-07 허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한다'맹자는 여민동락을 강조했다브레이크 없는 한국정치는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못주는지 멈추고 되돌아 봐야한다왜냐하면 국민들이 있기 때문올해 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선배를 면회 가게 되었다.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공공기관의 꽤 높은 요직에 있던 선배였다. 재임 중 민간업체와의 계약에서 비리 혐의가 문제되어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본인은 매우 억울한 심정이고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게 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고 석방되면 사업가의 길을 가겠노라며 울먹였다.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영치해 주었다. 구치소를 빠져나오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는 '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지난 추석 직전, 유명 성악가의 공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성악가의 남편은 영향력있는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다. 오랜 기자생활의 인연과 인맥 때문인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여야 유력 정치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노래가 대부분 외국의 유명 가곡이었다. 우리말 가사와 선율이 아니라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악이 주는 매력으로 마음이 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앙코르송으로 우리 가곡인 '보리밭'이 열창되자 참석한 몇몇 여야 정치인들도 손수건을 연신 눈에 갖다 대며 감동에 겨운 모습이었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는 이들에게도 이날 공연은 큰 감동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왜 365일 여의도 정치는 1시간 30분여의 공연에 비해 감동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는 것일까.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영향력은 지나칠 정도이다. 다른 국가에 비해 정치적 관심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치력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이것을 통해 다양한 이익 추구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13년 파워조직 인식조사를 보면 검찰, 경찰, 국세청, 청와대 순으로 10위권 내 위치하고 있다. 2011년 조사와 비교할 때 영향력 순위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반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21위에 그쳤다. 경제 수준은 선진국에 버금가지만 '시민의 힘'은 권력의 그것만 못한 것이다. 여전히 경찰 앞에서는 이유 없이 위축되고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상징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많은 지도층까지도 개인적 비리와 욕심으로 단죄 받아도 정치적 불이익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곧잘 볼 수 있다.정치적 영향력이 큰 것만큼 그것으로부터 받는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연일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들은 즐겁고 유쾌한 내용은 별로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희망과 기대를 가졌지만 임기 초부터 들려오는 뉴스는 대부분 짜증나는 내용들이다. 정부인사의 성추행 파문, 대선 과정의 여러 가지 의혹, 4대강 사업관련 수사, NLL 대화록 논란, 검찰총장 사퇴, 복지 공약의 변경과 축소 등 국민들이 감동받거나 치유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런 한국인의 자살 이유 중에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중요하게 거론된다. 검찰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다시 분열되고 공방을 벌였다. 거의 모든 국민은 검찰총장의 개인사와 권력기관 사이의 힘겨루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치권이 당분간 대타협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여야가 국민을 볼모로 벌이는 청문회도 수차례 지켜봐야 하고 엉성한 공약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순식간에 바꾸는 모습도 수차례 지켜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맹자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의미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한국 정치는 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하는지 지금 멈추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09-29 배종찬

조선인 가미카제와 역사 교과서

日정부 침략 역사 유감 표하자반대 세력들은 전쟁미화에 활용국내선 친일과 저항 애매한 해석식민시기 조선인의 불편함을기회로 바꾸어 말하려는 의도도건강한 역사의식 위협받아 걱정서정주 시인은 1944년 12월 '마츠이 오장 송가'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발표한다. 조선인 최초의 가미카제였던 마츠이(본명 인재웅) 오장의 죽음에 대한 송가였다. 소년비행병 13기 출신인 그가 해방전 해 미국 군함을 향해 자살 특공을 감행한 이래 총 17명의 조선인이 특공 감행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일제에 의해 총력전 선전에 활용되었다. 그러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서성거렸고, 잊혀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2000년 이후 한일 양국은 그 죽은 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가미카제 훈련과 출격 기지였던 가고시마의 지란에는 조선인 가미카제만을 위한 전시 코너가 마련되었다. 일본인들이 죽은 이의 화신이라 믿는 '반딧불'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인 가미카제가 영화화되기도 했다. 일본 방송들도 이야기 발굴에 열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소설, 르포, 다큐멘터리, 신문기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2008년에는 경남 사천에 조선인 가미카제 대원의 망향비 건립 시도가 있었다 사천 지역 주민, 광복회 등의 반대로 실패하고 경기도 여주의 한 사찰로 기념비가 옮겨가면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왜 그토록 긴 시간 침묵했던 양국은 그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을까? 1995년 8월 15일의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가 침략 역사에 유감을 표하는 담화를 발표한다.이 담화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반성에 반발하는 기운이 동시에 일었다. 반발하는 기운은 가미카제를 재조명했고, 그들 안에 있던 조선인 가미카제를 톺아내 전쟁 미화에 활용한다. 이시이 현의 가나자와 내 호국신사에 세워진 '대동아 성전 대비'에도 몇몇 조선인 가미카제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그들의 성전에 조선인도 참여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역사 왜곡을 다반사로 해오던 일본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언급 의도는 뚜렷하지 않다. 그들을 언급한 국내 이야기에서도 조선인 가미카제는 때론 친일 인사로, 다른 땐 식민지배의 희생자로 애매하게 그려진다. 늘어난 담론, 평가의 다양함을 징후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짐작해보면 식민지배 내 개인 마음속에서도 저항과 협조를 오갔던 불편함을 가미카제라는 극단적인 예를 통해 드러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리라.조선인 가미카제 대원 중 살아남은 자들은 나중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의미없는 죽음과 출세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 가미카제의 발굴은 부끄럽지만 우리 것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드러내는 진솔한 작업이다.친일과 저항으로만 드러나지 않는 애매한 공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솔직하고도 자기 성찰적인 노력이다. 일본은 조선인 가미카제 이야기를 통해 일본만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들은 일본과 조선을 구분해내고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노력을 벌이진 않았다. 한국은 조선인 가미카제를 통해 식민시기 동안의 분열된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하려 했다. 아직은 한국의 역사의식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더 건강해 보이는 징후다. 하지만 우려가 없진 않다. 식민시기 조선인들의 불편함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 그 불편함을 기회로 바꾸어 말하려는 역사해석, 교과서까지 등장하고 있다. 조선인 가미카제 이름을 성전기념비에 새겨 넣는 일본의 극우 작업에 버금가는 일이 큰 저항 없이 스멀스멀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조선인 가미카제를 통해 본 지금 현재 한국의 역사의식,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심하게 위협받아 흔들리고 있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09-22 원용진

300년만에 경기도에서 민란?

경기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어중앙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경기동부연합 내란음모사건은통진당 울산부산·광주전남연합중유독 경기의 수원·안양·성남지역당원들이 관련되었다고 한다북으로 개성, 동으로 여주, 남으로 안성, 그리고 서쪽의 강화 앞바다까지 포괄하여 선을 그어보면, 경기도는 원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이 원 안에 달걀노른자위처럼 서울이 자리하고 있으니, 곧 서울과 경기도가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지방을 경계 지을 때 대개는 산과 강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일부러 둥글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서울과 경기도는 동그랗게 생겼다. 왜일까?고대 중국의 국가·사회제도를 체계화한 '주례'에 의하면, 왕의 침소로부터 사방 3리를 성(城:내성)이라 하고, 그 성으로부터 사방 7리를 곽(郭:외성)이라 했다. 그리고 성과 곽을 포함한 사방 10리 구역이 경(京)이다. 또 곽으로부터 사방 100리까지를 교(郊)라 하고, 교로부터 사방 100리 안을 전(甸)이라 한다. 그리고 교와 전을 포함하여 경(京)으로부터 사방 500리 안을 기(畿)라 했다.곧 왕의 침소를 중심으로 성, 곽, 교, 전의 동심원이 그려지는데, 이는 왕궁을 지키는 방어선들이다. 그리고 왕의 침소로부터 10리되는 곽(郭)까지인 경(京)과 500리까지인 기(畿)는 행정구역 개념이다. 그래서 옥편에서는 기(畿)자를 '경기 기'라 훈하고 '왕국천리'라 보한다. 왕궁으로부터 사방팔방 500리까지 기(畿)이므로,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1천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예이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축소되어 왕궁으로부터 200리 정도를 기(畿) 구역으로 친다.'경기'라는 말은 고려 문종 23년(1069)에 처음 나왔다.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50여 개 현을 합쳐 '경기'라 칭한 뒤 왕실 직할지로 삼은 것이 그 기원이다. 서울보다 위에 있는 개성을 중심으로 사방을 경계짓다보니 황해도와 평안남도 일부 지역까지 기(畿)에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 건국 후 3대 임금 태종에 의해 8도제가 실시되면서, 고려 때의 지역으로서의 '경기'는 사라지고 행정단위로서의 '경기도'가 확립되었다. '지리지'의 "경기도의 동쪽은 강원도 춘천과 원주에 이르고, 서쪽은 황해도 강음과 배천에 이르며, 남쪽은 충청도 죽산과 직산에 이르고, 북쪽은 황해도의 토산과 강원도 이천에 이르러서 동서가 264리요, 남북이 364리가 된다"는 기술로 보아, 팔도를 경계 지을 때 경기도는 철저히 를 원용한 것 같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경기도를 기내(畿內), 기전(畿甸), 근기(近畿)지방이라고도 부른다.조선조 임금들은 나라의 위기에서 몸을 바쳤거나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경기도 땅들을 공전으로 내려 주었다. 곧 경기도에는 한양의 벼슬아치 부재지주 하에 그들을 대리하는 마름들이 좌지우지하는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다. 성호 이익은 에서 "경기는 토지가 메마른데도 인구가 밀집하였으며, 토지의 소출이 가장 낮은데도 서울로 수송하기 때문에 이곳 백성들이 가장 가난하다"고 적고 있다.이런 사정인 데도 경기도에서는 숙종 때 양주에서 중 여환이 만민평등의 미륵사상을 내세워 민란을 모의하다 발각된 사건 외에 한 번도 민란이 일어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경기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어 중앙권력의 예리한 감시를 항시 받을 수밖에 없다. 곧 민란을 모의해도 지방 관리와 벼슬아치들에 기생하는 마름들에게 쉽게 포착될 수밖에 없고, 민란이 일어나더라도 개성, 강화, 수원, 광주 4개 유수부 군사에 의해 쉽게 진압당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근 한 달째 소위 '경기동부연합 내란음모사건'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연합, 울산부산연합, 광주전남연합 중에서 유독 경기동부연합의 수원, 안양, 성남지역 당원들이 관련되었다고 한다. 300여 년 만에 경기도에서 일어난 민란 음모다. 그런데 그 혐의가 너무 우습다. 비비탄총을 개량해 총을 만들 계획이었고, 130여 명이 모여 내란음모를 '분임토의'했단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09-15 김학민

김종삼의 시 '민간인'과 이석기

묻고싶다, 은밀하게 자신들의보안체계를 갖춘비밀혁명 조직을 만들고총기를 사용해서라도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뒤집어얻고싶은 세상이 뭐냐고…"1947년 봄/심야/황해도 해주의 바다/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울음을 터트린 한 영아를 삼킨 곳./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1921년에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월남한 김종삼(1921~1984) 시인의 '민간인'이란 시다.이 시에 나오는 1947년이라면 남북분단이 고착되는 해. 북은 토지 몰수와 공산체제를 완성하면서 자유를 억압하였고, 일단의 월남피난민은 그때부터 나왔다. 시인이 탄 조각배가 공산압제를 피해 해주바다를 숨죽여 건너던 중 아이가 울자, 제 어미가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압제를 피해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는 '민간인'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하고, 공산체제를 수호하는 자들은 찾아 죽이려 한다. 김일성의 수하들은 눈이 벌겠다. 바다가 삼키다 실패한 숨소리라도 찾아내서 죽이려고 한다. 그런 죽음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아이는 울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미는 어미대로 '살고' 싶었다. 아이는 살고 싶어 울고, 어미는 살고 싶어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한 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아이는 싸늘하다. 차가워진 아이를 붙잡고 어미는 오열한다.잡히면 죽임을 당하는 슬픈 현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야음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제 동포를 죽이는 오늘의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제 동포를 찾아 죽이는 버릇은 65년 이상이 지나도 여전하다. 아니지. 자기 체제가 옳다고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민간인'들을 죽인 버릇은 비뚤어진 권력을 쥔 못된 인간들의 속성이다. 피의 숙청을 통해 공산체제를 세상에 보인 스탈린이 그랬다. 파시스트 독재를 완성하려고 600만 이상의 유태인을 죽인 히틀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죽음을 선사하고 만들려는 세상은 정말 생산과 소비를 공평하게 나누자는 공산주의인지, 아니면 피로 채색한 권좌에 대한 집착인지는 이제 다 알려져 있다.그리고 지금. 우리가 시인처럼 묻는다. 국가분단이 주는 이 아픔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야하느냐고. 국회의원 이석기는 RO의 수장으로서 이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북미간 전쟁 상황에 대비해 전쟁을 준비하자", "통신과 유류저장고 등을 파괴하자" 등. 이 말들은 남한에서 전쟁을 대비해 미국을 물리치고 북한 공산세력 위주로 통일하자는 의미라 한다. 이 말들과 저간의 사정들이 내란음모에 해당하는지는 수사과정과 법원에서 드러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언론에 비친 이석기의 말만으로도 용당포에서 아이를 죽인 시대가 다시 겹쳐 보인다.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이건청 시인이 김종삼시비를 찾은 날 말한다. 한국의 수많은 시들 중 김종삼 시인의 시는 순도와 밀도가 가장 높은 시라고. 필자는 '민간인'이라는 시제목이 바로 그 정수라고 생각한다. 민간인은 모든 권력을 쥔 사람과 그 수호자에 대응되는 말이다. 이 땅에 사는 민간인들은 식민제국의 총검으로 위협한 체제가 무섭고,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밤이면 이편에 서주어야 하고, 낮이면 저편에 서주어야 했던 세월이 무섭고, 그러다가 죽은 엄마, 아버지가, 떨어진 형과 누나가 그립다. 이런 고통 속에 얻은 민주주의가 그래서 소중하다. 아이를 용당포에 바칠 일도,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아들을 붙잡고 오열할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석기에게 되묻는다. 은밀하게 자신들의 보안체계를 갖춘 비밀혁명조직을 만들고, 총기라도 사용해(이정희의 말로는 농담으로) 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뒤집어서 얻고 싶은 세상이 무어냐고 말이다.김종삼 시인의 어머니는 포천시 소흘읍의 부인터라는 곳에 묻혔다. 그 어머니가 그리워서 생전에 그는 포천에 자주 왔고, 동료와 후배시인들은 그를 포천의 국립수목원 부근에 시비를 만들어 기려주었다(현재 고모리저수지로 이전). '민간인'이란 시도 그 시비에 적혀있다. 그가 무명세계로 돌아간 지도 30년. 그의 시비 앞에서 그의 말을 듣는다. 이석기에 대한 재판은 법원보다 무명세계의 시인이 먼저 하고 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숨쉬는' 세상을 만드는 체제가 좋은 것이라고./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09-08 허훈

문제는 정치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데대선전쟁 끝날 기미 안보여국민들 민생현안 승부 원해장외로 나간 민주 국회 복귀과거와의 숨바꼭질에더이상 시간 허비 말아야얼마 전 법조계의 존경을 받던 한 대법관이 퇴임했다. 대형 로펌으로 갈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부인이 운영하던 야채가게 도우미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마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대형 로펌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가 노심초사 내놓은 결심의 배경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존경했던 대법관의 변심에 몹시 서운했지만 맹자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민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사탕발림을 다했다. 만약에 국민이 원한다면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아양을 떨었다. 치열했던 '대선 전쟁' 드라마는 지금쯤 당연히 끝났어야 하지만 '대선 진실 게임'이라는 지루한 드라마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대선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감한 이슈들이 많았다. NLL대화록 논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등이 그렇다. 사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 알기 쉽지 않다. 각 정당은 내 주장이 진실이고 상대방은 '국기문란'이라고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둘 다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파워 게임'의 결과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매우 어렵다. 승자는 패자를 다독이고 패자는 재기를 노려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대한민국의 전부가 될 수 없듯 국민들을 위한 민생공약 실천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대통령 임기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는 국민의 여론을 살펴보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서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 10명 중 7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국회복귀 의견이 더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응답은 민주당의 주장이 틀렸다고 국회로 복귀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 장외가 아니라 국회이므로 민생현안 대결로 승부를 보라는 당부인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도 국민들의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대선 공약 중 재정부담이 되는 정책에 대해 반이 넘는 55%가 수정하거나 철회해도 된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무리한 공약 이행보다는 할 수 있는 공약을 가능한 예산범위 내에서 제대로 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엉성한 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욱이 국민을 '거위'에 비교하는 무책임한 생각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국민들의 여론은 한결같다.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지만 민생현안을 챙겨야 할 많은 시간을 '과거와의 숨바꼭질'에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 안에서의 투쟁, 장외투쟁, 철야투쟁 등 수많은 정치인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국민을 위한 투쟁으로 와 닿는 것이 없다. 오죽했으면 일부 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여론이 40%에 육박했을까. 의원들의 세비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을 위한 교부금도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이렇게 하고도 2016년 총선에서 다시 전국을 돌며 한 표를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신예 빌 클린턴 후보는 예상을 깨고 조지 H 부시 현역 대통령을 이겼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에 몰두하며 경제난에 내몰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금 정치를 보면 새누리당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민주당은 친노만 바라보고, 통합진보당은 북한만 바라보는 꼴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소리치지만 정작 국민을 바라보지도 않는 것이다. 단언컨대, 국민들은 '무항산 무항심'의 심정으로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2013-09-01 배종찬

취임 6개월의 '정치'와 '민생'

국정원 국정조사 끝났지만여야갈등 수그러들지 않아집권당은 야당에게 퇴로를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대통령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자리가 아니기에 직접 나서야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임기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초반의 국정 드라이브는 중요하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50% 후반에서 60%대의 안정된 지지세를 보인다. 노무현, 이명박 등 전임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 높은 지지도를 보이다가 하락하는 경우와 대비된다. 방미 성과나 방중에서 나타난 외교적 결실, 대북 관계에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반한 안정감 있고, 일관된 정책은 남북관계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대외적 성과와는 달리 내치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의지와 원전 비리 수사 등을 제외하고 임기 초반 이렇다 할 성과를 발견하기 어렵다. 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법 통과의 지연과 인사파동은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식의 전환이 긴요하다. 일방적인 지시에 기반한 정책은 토론과 건의를 실종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그래서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이다.권한과 책임을 분담하는 참모의 부재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에는 저해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 등이 연이어 낙마한 인사파동 이후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에 초청해 '야당과의 국정동반자 관계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통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당청 관계의 유기적 작동도 소원해 보인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도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정국수습을 위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 제안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3자회담 방식도 거부했다.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 사항이었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국회를 민생과는 무관한 소모적 정쟁의 장으로 폄하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권위주의적 리더십은 감동을 수반하지 못한다.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이 요원한 곳에서 통합이 들어설 공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을 외면하고 갈등의 관리와 조정을 위한 토론도 정쟁이라고 보는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권위주의는 민생을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시키고, 국민들의 즉자적 경제 생활에만 1차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구조의 틀에 친근했던 산업화 시대의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리더십과 맞닿아 있다. 권위주의와 '민생'의 왜곡된 조화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민생과 분리시키는 기현상을 잉태한다. 그리고 이는 국회의 왜소화, 정치의 부재, 여야 정당의 경시와 친화력을 갖는다.민생과 정치는 별개가 아니다. 정치는 정쟁적이라는 사고와, 정치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라는 인식속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할 토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삶 그 자체인 민생은 시민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 해내고, 이를 관리, 조정, 타협 시키는 정치라는 장을 거치지 않고는 제도화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입법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 대안이라도 집행할 수가 없다. 비록 여야의 주요 정당이 카르텔 구조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계층과 지역 대표성과 갈등 관리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정당체제에서 정치의 기능을 폄하한다면 민생은 중장기적은 물론이고, 단기적으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과정이고, 국회의 입법 과정이기 때문이다.국정원 국정조사가 끝났지만 여야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의 집권당의 정치력으로는 야당에게 퇴로를 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청와대로서는 여야의 첨예한 정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겠으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치 그 자체다. 정치의 중심이고, 정치는 일정부분 정쟁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를 조정해 내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다. 진정한 정치의 복원이 전제될 때 민생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와 민생은 별개가 아니다./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8-25 최창렬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

이제 우리의 관심과 화두는경제에서 행복으로 바꿔야한다행복할 수 있는 길을 어려서부터제대로 된 교육으로 학습하고인성을 찾는 노력에 사회가 뜻과힘을 모으고 투자해야 한다길고도 길었던 장마도 결국은 물러가고 염천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굽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여름도 가고 어느덧 가을이 올 것입니다. 세월이란 덧없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다툼도 욕심도 다 부질없어 보입니다. 이제 저의 1년에 걸친 월요논단을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서툰 글 솜씨로 풀다가 보니 거친 점도 미숙한 점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너른 이해를 바랍니다.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첫째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그 자체의 관리입니다. 삶과 희망과 행복의 바탕이 바로 공동체입니다.마치 고기에게 물과 같은 것이지요. 우리의 공동체는 건강한가요? 최근의 '묻지마 차량돌진 살인'을 기억합니다. 충격적이게도 그 이유는 '웃는 사람 보면 죽이고 싶었다'라고 합니다. 이 묻지마 증오범죄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막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죽고 다친 사람이 나와 무관한 사람임을 안도하고 있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진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혼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불행이 내 차례가 될 때까지는 아직도 여유가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일까요. 탐욕, 불만족, 오만함, 무례함, 염치없음, 적개심, 분노 이런 것들은 가슴속에서 자라서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마치 오염된 공기 속에서는 누구도 건강을 지킬 수 없듯이 병든 사회에서는 아무도 행복할 수도 안전할 수도 없게 됩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그동안 우리 사회의 관심이 너무 오래 경제에만 함몰되어 왔습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한 염원은 우리를 뭉치게 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자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게 하는 참으로 순수한 열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히려 물질의 욕망에 육체도 영혼도 매몰당하여 모두가 길을 잃고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과 화두를 '경제'에서 '행복'으로 돌려야 합니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어려서부터 학습하고 인성을 찾는 노력에 온 사회가 뜻과 힘을 모아야 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 수단으로 교육만큼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이 없겠지요. 물론 제대로 된 교육 말입니다.다음으로는 '긴 호흡'을 되찾는 일입니다.기업실적도, 경제정책도, 그리고 백년대계라는 교육마저도 조급증에 빠져 허덕대고 있습니다. 실적만 보고 비전은 보지 않습니다. 비축은 없고 소모만 있습니다. 우리만 있고 우리 아이들은 없습니다. 현재만 있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탐욕이라는 악마의 손에 우리는 긴 호흡을 잃어 버렸습니다. 선량한 제도가 왜곡되고 악용되어 탐욕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투표라는 제도는 우리 사회를 승 아니면 패의 이분법과 그에 따른 한탕주의의 유혹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증시제도는 더 이상 투자 자본을 모으는 수단이 아닙니다. 제도화된 투기판이라면 과한 표현일까요? 그러면 왜 월가에 돌을 던지고 개미는 패가망신하는 것인가요.누군가는 씨를 뿌려야 뒤에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모두 당대에 거두는 일만 하려하고 사람들은 거기에만 박수를 보냅니다. 씨를 뿌린 사람에게도 잊지 않고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또한 탐욕이란 악마의 도구가 된 모든 제도를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갈 수 있게 과감히 그리고 신속히 고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다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편화하고 그것이 믿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2013-08-18 박연수

문화재, 국가 표준 복제품 제작의 필요성

원본 하나만 존재하기에문화재로서 가치 높지만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하면영원히 없어지는 위험 있어미리미리 대비해야 하고가짜가 남발돼서는 안된다지난달에 유럽에 나간 김에 프랑스 파리의 몇몇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역사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루브르 박물관과 기메 박물관의 전시유물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이곳의 전시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프랑스 자국의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유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한 것이다. 기메 박물관에는 한국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김홍도의 8폭 병풍, 금동 불상 여러 점, 조만영 초상화, 심지어 삼국시대 신라금관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쩌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가? 이것들은 분명 우리가 대여한 것이 아니라 도난당했거나 무단 반출된 것들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지키지 못해 완전히 없어질 수도 있었던 것을 대신 잘 보존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올해 초부터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오는 10월 29일부터 미국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할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전시하기 위해 국외 반출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격앙된 논쟁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에 이 반가사유상을 포함하여 국보와 보물급 국가지정 문화재를 빌려주기로 하고 문화재청에 국외 반출을 요청하였다.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의 대량 반출은 위험하면서, 특히 반가사유상은 이미 여러 차례나 국외에 반출되어 전시되면서 벌써부터 훼손의 우려가 제기되어 온 지라 반대의 입장을 완고히 하였다. 이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은 '핵심 유물의 제외로 대단히 실망한다'면서 '전시 진행 자체를 재검토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결국 8월 9일 문화재청은 반가사유상을 국외 반출하여 전시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반출 결정을 했지만 무언가 좀 개운하지 않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재를 철저하게 보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과 우리 문화 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 둘 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완전하게 보존하면서 아울러 해외에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반가사유상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향후에 분명히 유사한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번이 선례가 되어 자꾸만 우리 문화재를 해외로 내돌릴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역사성과 문화 예술적 가치가 훌륭한 문화유산들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 전문가들 역시 유일무이한 문화재는 보호를 위하여 가급적이면 해외 전시에 내보내는 것을 자제할 것을 이야기한다.오늘날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삼국의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그것을 남긴 민족과 국가의 과거 문화적 수준과 우수성에 감탄을 한다. 그러나 사실상은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의 문화재를 지키지 못하여 강대국에 넘겨준 꼴을 보면서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비장함마저 느낀다.이러한 생각에서 필자는 중요한 문화재의 복제를 주장한다. 하나만 존재하기에 문화재로서 가치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본 하나만을 고집하다가 만약에 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하면 영원히 없어지는 위험이 있다. 이것에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조선왕조실록을 한 질만 편찬한 것이 아니라 네 질을 만들어 네 곳의 사고에 각각 따로 보관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전란과 화재에도 우리는 완질의 조선왕조실록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것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음을 본받아야 한다.국내에 있는 문화재는 물론 해외에 있는 것들도 조사하여 국가 차원에서 협상을 통해 복제품을 제작하였으면 한다. 그러면 현존하는 우리 문화재들을 모두 갖추게 될 것이다. 당연히 문화재의 복제품, 이른바 '짜가'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통제 아래 국가 공인 표준 복제품을 만들어 관리한다면, 이것 또한 그때그때 필요와 용도에 따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3-08-11 김창겸

차별없는 사회를 위하여…

모든 차별은 사회적 갈등과분쟁의 주요 원인이 된다차별과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고차이에서 배울수 있어야 한다몇 년 전부터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차별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2008년에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던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언행으로 인해 생겨난 교육이다. 일부 공직자들이 특정 종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기도 했고, 근거 없는 비방과 억측으로 반발을 사는가 하면, 자신이 믿는 종교만을 우대하거나 특혜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모든 종교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규정이 공무원 관련 법령에 추가되었다. 종교에서도 차별이 중대한 문제가 된 것이다.종교차별이나 종교편향이 된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특정 종교를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만을 절대화하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공직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교 차별적 언행을 함으로써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예컨대 공립학교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의식을 강제하거나 공공기관에서 특정 종교에 재정적 혜택을 주는 것, 혹은 공공단체에서 특정 종교인을 우대하여 채용하는 것 등이다. 또한 공직자가 특정 종교를 '사이비 종교'나 '이단'이라고 비방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모든 차별이 그러하듯이 종교 차별도 차별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종교의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교이든 간에 그의 종교가 절대적 신념체계이자 절대적 가치이다. 종교차별은 바로 그러한 자유의 침해이며 종교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훼방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종교차별은 종교인들의 공동체에 위해를 끼치고, 그로 인해 사회적 분쟁으로 치닫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며, 심지어 전쟁도 불사하게 된다. 종교 분쟁의 참담한 비극을 전쟁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증명되고 있지 않는가!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전형적인 종교다원사회에서는 종교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 사이에서 상호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내가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종교를 절대적으로 신앙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종교를 그렇게 신앙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를 믿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종교를 믿는 자유도 보장된다.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는 종교가 달라도 같은 국민이고 시민이며 이웃이 될 수 있다. 한 가족 내에서도 아내와 남편의 종교가, 부모와 자식의 종교가 다를 수 있다. 마치 인종이 달라도 같은 국가의 국민일 수 있듯이, 자라난 문화가 달라도 다문화 가정을 이룰 수 있듯이, 종교다원사회에서는 다종교 가정도 생길 수 있다. 인종차별과 문화적 편향이 심각한 범죄와 부도덕으로 취급되듯이 종교차별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차별과 편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이해가 필수적이다. 무지가 오해를 낳고, 오해가 차별과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미국종교학회에서 펴낸 한 책자에 '종교적 문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글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종교에 대한 무지를 종교적 문맹이라 지칭한 것이다. 이 책자에서는 종교적 문맹으로 인해 편견과 적대감이 생겨나고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협력을 방해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내가 믿는 종교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이 믿는 종교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종교학자이기에 종교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차별은 종교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 지역차별 등등 모든 종류의 차별은 무지의 소치이고, 그 무지가 분쟁의 원인이 된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고, 차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적을 이기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차별을 극복하여 평화로운 공존과 바람직한 협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3-08-04 류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