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이윤기로부터 배운 말과 민주주의

[경인일보=]내 기억에 한 사 오 년 전이었다.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그의 짧은 에세이를 읽고는 단박에 반하여 버렸다. 품격 있는 문체에 배어나는 은근한 해학이란! 한 달여 전인 지난 8월 27일 63세라는 너무 이른 연배에 이윤기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사람 중의 하나, 뛰어난 번역가이자 그리스 신화 해설가, 그리고 소설가이기에 앞서 그는 나에게 잘 익은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로 다가온다. 부음을 접하고 집 문에 조기를 다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빌려 늦은 밤까지 읽었다. 역시 내 가슴 속으로 깊은 강물이 흘렀다. 그 유장한 물굽이에 한 도막 생각을 실어 흘러가보기로 하자. 유신의 칼날이 서슬 퍼렇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학교 정문에 탱크가 진을 치고 총검을 꽂은 군인들이 보초 서던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살벌하였던 기억은 아직도 내 영혼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무수한 젊은 피를 거름삼아 이제 더 이상 정치적 혼란이 군사쿠데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우를 하지 않는 시대를 누리고 있다. 누구 말대로 민주주의가 우리네 정치의 유일한 게임 규칙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향기를 맡기 쉽지 않다. 이윤기의 글을 읽다가 그 연유의 한 자락을 찾아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람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그런 갈등을 힘이 아닌 말로 해결하는 보편적 방식의 추구가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특히 한국처럼 갈등의 다양한 국면이 폭발적으로 내장된 사회에서는 말의 쓰임새가 특히 중요하다. 남북문제가 그렇고 지역문제가 그렇고 점점 더해가는 계층 간 격차문제가 그러하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세대 간의 문제까지 더해졌다. 대화하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깊으니 옅어지는 것은 관용의 정신이요 더해가는 것은 성마른 조바심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을 이윤기의 거울에 비추면 비례(非禮)의 언사로 되비침 될 것이다. 왕왕 이념대립의 실체는 알맹이 빈약한 막말 경쟁이라는 것이다.이윤기가 선호하는 입말(口語)의 핵심은 Be More, Seem Less라는 명령문에 들어 있다. '보기보다는 큰 놈이 되어라' 정도로 해석 가능한 이 문구는 '무겁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볍게 말하고, 똑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에둘러 말해야한다'로 전환 가능하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는 은근한 겸양의 미덕과 그에 기댄 튼실한 내용 전달이 입말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한 평론가가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끼는 대신 "나란히 서서 걷는 두 사람의 손등이 계속 스치듯 조짐을 형성"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대립각을 세운 상대에게 내질러 답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소통은 거기서 멈춘다. 화끈한 우리네 민심이 그렇고 이런 성깔을 이용한 정치 마케팅이 국회에서 판을 친다. 저녁 뉴스 시간에 어쩌다 듣는 북한 아나운서의 언사는 우리네 국회보다 몇 수 더하다. 10대 종손이며 비기독교도인 나는 아버님이 개종 후 예배와 찬송으로 주관하시는 제사며 추석상이 내심 마뜩찮다. 그럴 때는 이렇게 여쭈어야하지 않겠는가? "아버님, 작년 시제(時祭)때 유세차(維歲次)… 하시던 축문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 문장에 비하면 저는 초등생도 못됩니다." 아버님이 이렇게 답하실 것이다. "아비야. 나는 네 찬송가 소리도 듣기 좋더구나." 가정에서건 나라에서건 민주주의는 이념에 앞서 말하는 예의로부터 시작된다. 말로 싸워야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생의 영전에 재배하며 서툰 그곳 말투로 한 말씀 드린다. 우야 이리도 서둘러 가시니껴? 너무도 서운 하니더.

2010-10-03 강명구

GTX의 꿈이 익어간다

[경인일보=]마침내 GTX(Great Train eXpress: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이 추진되게 되었다. 경기도가 이 사업을 정부에 제안한 지 1년반 만에 이루어진 쾌거이다. 정부는 지난 9월 1일 KTX 고속철도망 구축 전략을 발표하면서 거점도시권내 광역·급행 교통망 정비를 위해 GTX를 지자체의 주도적 참여로 지역 실정에 맞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경기도가 제안한 GTX란 명칭 자체도 사용 안했는데 이번에 제도·행정·재정 측면에서 GTX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서비스 확대와 사업성 제고를 위해 KTX와 선로를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발표는 GTX 사업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 확정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경기도가 제안한 GTX 사업은 지하 40~60m에서 시속 100㎞로 달리는 광역급행철도를 3개 노선 즉 킨텍스~동탄(74.8㎞), 송도~청량리(49.9㎞), 의정부~금정(49.3㎞) 총 174㎞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킨텍스~동탄 구간의 경우 KTX 공용구간(수서~동탄)을 빼면 46.3㎞다. 이 사업의 배경은 이렇다. 신도시 건설 등으로 수도권이 광역화되면서 자동차 교통량이 늘고 이에 따라 대기 오염과 교통난이 심화되었다. 수도권 전철의 통행시간이 승용차보다 훨씬 더 걸려 승용차 통행량이 계속 늘고 있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승용차로 가면 35분이 걸리는데 전철로는 78분이 걸린다. 평균적으로 전철의 소요시간이 승용차의 두 배 반에 이른다. 광역교통 수송분담 구조를 보면 승용차가 42%가 넘는데 반해 철도는 16%에 머물고 있다. 교통혼잡비용이 매년 5.2% 증가하고 있는데 2007년의 경우 수도권에서만 14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교통난 해소, 대기 오염 개선, 수도권 경쟁력 강화 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혁명적 아이디어가 GTX 사업이다. GTX가 개통되면 동탄~삼성역은 67분에서 19분으로, 일산~서울역은 42분에서 16분으로 운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GTX 건설은 연간 교통혼잡비용 7천억원 절감, 생산유발효과 27조원, 고용유발효과 26만명, 연간 에너지소비 5천846억원 절감 등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수도권 도로교통량이 1일 38만대 감소되어 연간 149만t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경기도는 더 나아가 GTX뿐만 아니라 신분당선과 수인선 등 광역철도망 구축, 일반철도와 수도권 고속철도 건설, 그리고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각 철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연계교통망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그야말로 철도천국이라 할 만하다.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인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난 9월 14일 방한했다. 공항에서 바로 수원 화성행궁에 와서 김문수 지사와 함께 경기도와 캘리포니아주간 우호협력 양해각서에 서명을 하고 이튿날 고속철도인 KTX를 시승했다. 총 1천250㎞에 이르는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건설 계획에 참여코자 하는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수준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고속철도를 확충하고 있다. 세계는 거대지역권(mega region) 중심으로 대도시(mega city)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 창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속교통망 연결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 미국, 중국, 일본 등 국가간 경쟁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며 뉴욕, 상하이, 도쿄 등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도시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경기도의 GTX 건설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1일 생활권 범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수도권 주민들에게 쾌적한 교통·녹색환경을 제공하고 주택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게 된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도권 건설을 통해 세계 무한경쟁 시대에 적극 대응해 나가고 세계 최고의 광역급행 철도 기술과 수출 역량을 확보하게 될 계기를 마련하였다. '세계속의 경기도' 란 구호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2010-09-27 경인일보

학생체벌

[경인일보=]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9월부터 학생체벌을 전면 금지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이번 결정을 학생의 인권침해, 최근 학생폭행사례, 선진국의 경우 등과 관련지어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지난 6·2 지방선거에 당선된 신임교육감의 전격적인 지시에 의해 갑작스럽게 시행됨으로써 교사와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계 안팎에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이 문제는 현행 법적 규정과 충돌되고 정책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와도 사전 협의가 없었으며 소위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6명의 교육감이 포진하고 있어 앞으로 정부와 다른 시·도지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현재 초·중·고등학교에 자녀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 세대 이전에는 체벌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가 크게 반발하거나 문제 삼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 학생체벌의 사례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음에도 사소한 경우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문제가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이다. 학생체벌은 행하는 교사나 당하는 학생이나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교육적으로 학생체벌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학생은 이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그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다.그래서 관련법령에서는 학생지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훈육·훈계 등의 방법을 행하고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체벌의 방법도 적정한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하며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될 수 있고 과도한 체벌은 폭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상 학생에게 물리적으로 과도한 고통이나 상해를 유발하거나 정신적으로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할 경우 오히려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반감되고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민주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부모가 하나 또는 둘밖에 없는 자녀를 무제한적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세태 속에서 교단의 상황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달라졌다. 군사부일체라는 용어가 생소할 정도로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존경심은 엷어졌고, 말썽을 부리는 학생에게 훈육과 훈계를 통한 적정한 제어나 지도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부모의 세대에서 교사는 대부분의 학부모보다 고학력자였고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학력사회에다 정보화사회인 덕분에 교육에 관한한 모두가 전문가처럼 되어있는 분위기다. 그만큼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학생체벌금지는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체벌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 학생에 대해 체벌 대신 취하는 조치가 매우 엄격하다. 교칙을 위반하거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줄 경우, 학부모를 소환하고, 정학처리, 낙제처리, 일정시간 격리 등의 조치를 하며, 심한 경우 경찰이 개입하거나 학부모가 고발당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문제를 야기하는 학생에 대해 체벌 예방을 위한 단계별 대응조치에 따라 성찰교실 격리, 생활평점제 운영, 학생자치법정 운영, 봉사명령, 학부모 면담 등 체벌 대체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체벌 대체프로그램을 실시할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제도적 안정이 우선되는 교육의 장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다. 선(線)이 분명하고 법과 규칙의 적용이 엄격한 선진국과 인정을 중요시하는 우리와는 문화와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체벌금지에 따른 교실붕괴를 염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교육적인 체벌과 일부교사의 폭력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비교육적인 과도한 체벌이나 폭력행위가 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징계 또는 처벌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학생체벌금지에 관한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기본계획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될까 두렵다. 인천지역도 학생체벌문제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회적 합의이다.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여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교육이 한층 더 성숙되고 선진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0-09-19 이기우

대학평가의 금도(襟度)

[경인일보=]평가란 '비교나 판단에 의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비교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견주어 서로간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히는 일'이며, 판단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일'이다. 따라서 평가 즉 비교나 판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한데, 자료에는 수치상으로 표시된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자료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어서 사회적 공준(公準)에 부합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 대학평가가 이루어져 왔고, 그것들이 대학가에 미치는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미했던 것은 한국 지식사회의 무기력증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일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혐은 있으나, 일이 바로잡힐 단초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평가 결과 비교적 상위에 속하는 대학의 교수들이 비판대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한국 지식사회의 건강도가 아직 비관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합목적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疑懼)에 있다. 대학은 왜 평가받아야 하며 대학평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의 척도는 공정하며 평가자들은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 등등 이 시점에서 대학평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긴요하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적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대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평가라는 점,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국민들 특히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대학의 실상이나 순위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결과에 대하여 많은 대학들이 승복하지 않는다거나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평가주체의 자격과 능력 혹은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평가결과가 대학의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평가 결과에 따른 대학들의 획일적 줄 세우기'다. '자유와 자율에 근거한 진리탐구'가 대학의 근본이념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척도들은 대학들의 '차이와 독자성'을 사상(捨象)시킴으로써 많은 수의 대학들이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게 만든다. 나름대로의 이념과 교육철학에 의해 설립된 대학들은 그에 맞는 개성적인 교육을 수요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부 평가주체가 들이대고 있는 척도들은 대학들의 개성이나 독자성, 혹은 각각의 차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성을 완벽하게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떡판 위에 썰어놓은 떡들처럼 가지런하고 균일해야 한다면, 대학으로서의 존립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대학들은 그것들만의 필요와 시대적 요구에 의해, 사립대학들 역시 그런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들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설립목적이나 이념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국제화의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갖추지 못한 외국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한다거나, 학비 면제의 미끼를 던지면서까지 우리말을 못하는 외국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저해하는 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일,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고민이나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각종 학사관리 제도의 무사려한 도입 등 대학들의 자율적ㆍ독자적 발전을 저해하는 일들은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평가주체의 숨은 의도 역시 면밀히 관찰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 지식사회를 통제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요즈음 들어 대학만큼 확실하고 고분고분한 광고주들은 없기 때문이다. 근간 대학평가를 통해 일부 언론사들이 대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세하지만, 정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대학들의 가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의 값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칼릴 지브란의 금언을 평가라는 칼의 힘에 도취되어 있는 일부 언론사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0-09-12 조규익

미안해하는 마음

[경인일보=]늦은 밤 수원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는 버스안의 풍광은 서민의 고단한 일상이 배어있는 풍경화다. 강원도 산골 양구의 찌든 그러나 순박한 가난을 자양분으로 박수근이 화폭에 그려낸 군상들이 방금 그림 속에서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간다. 40대로 보이는 한 사내는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필경 오랜 노동으로 뭉툭해졌을 손마디로 억세게 머리 위 손잡이를 잡고 졸며 서있다. 그의 어깨에 걸린 빛바랜 가방에는 수건이며 작업복이며 소소한 연장이 들어있을 것이다. 손 전화로 아이에게 "그래 밥 먹었니? 학원 갔다 왔구? 여기 어딘데 엄마 곧 갈거야. 기다려" 하는 아주머니는 죽전 어디 근방의 대형 할인점 계산대 일을 마쳤거나 아니면 식당 홀 서빙 후 앞치마에 썩썩 손을 문대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길일게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침침한 불빛 아래서 토익 책을 펼쳐들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저 여학생은 휴학 중 알바하며 취업대비 스펙을 쌓고 있는 착실하지만 넉넉잖은 뉘 집의 사랑받는 딸 일게다. 옅은 화장에 단정한 차림새의 버스 기사 아주머니는 더위에 지쳐 얼음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면서도 "어서 오세요"라고 승객들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넨다. 참으로 찡한 풍광에 "참 열심히 사시네요" 라며 내가 덕담을 건네자 기사 아주머니는 "감사해요. 근데 안 그러면 죽어요" 라고 웃으며 답한다. 비록 10년은 다 된 자가용이지만 광주 집에서 수원 학교로 편안히 출퇴근하던 내가 술 모임 약속 때문에 평일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귀가하며 본 고단한 인생들의 일상이다.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하게 대접받고 사는 직업을 가진 내가 어찌 이들의 일상에 소소히 들어가 그 마음과 몸의 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랴마는 그래도 매일 가마타고 다니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한 심정으로 가마 메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느껴 보았다.새 내각명단이 발표된 지난 8월 8일 이후 한 달여는 신데렐라의 화려한 등장과 곧이어 드러난 권력 엘리트들의 비루함으로 얼룩져 온 국민을 혼돈으로 몰아간 시간이었다. 이제 가을 문턱에 섰으니 한 발자국 물러나 차분하게 돌아볼 시간이다.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조롱과 비난, 그리고 탄식과 분노는 많았지만 성찰의 화두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었다. 성찰을 대신한 것은 정파별 손익계산서와 향후 정국에 대한 언론의 전망이었다. 우리는 밥 술 좀 먹고살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누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에 관한 전략적 사고에는 능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규범적 사고에는 미숙아로 전락하여 버렸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외국 유명대학의 정치철학 교수가 쓴 정의에 관한 번역본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만 죄의식을 덜 느낄 정도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훌륭한 책이지만 단언컨대 그만한 책은 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성찰의 화두는 거창하지 않다. 미안해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첫 출근하며 국민에게 한 첫마디는 "나는 소장수의 아들이다" 였다. 어설픈 서민적 작위(作爲)를 통한 그의 대국민 소통 방식은 자수성가를 앞세운 일방성이었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서 '안 그러면 죽을' 정도로 성실하게 사는 무수한 '소장수 아들, 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읽기 힘들었다. 쪽방촌 투기와 위장전입 특허전문인 여타 후보자들은 논의의 대상도 못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번 칼럼(인민 루니 세대에 대한 오해) 에서 걱정하였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어이 낙마하였다. 아무리 말실수가 많았어도 적어도 딸의 특혜성 외통부 취업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시민들 자신이다. 이것 저것 다 눈감아주고 그것도 압도적 다수로 대통령 뽑을 때는 언제고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별 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 핏대 올리는 시민들은 스스로에게 미안해하여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2010-09-05 강명구

수교 18주년에 중국을 생각하며

[경인일보=]8월 24일로 한·중 양국은 수교 18주년을 맞았다. 양국관계는 지난 18년 동안 경제·통상, 정치·외교,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지도하에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1979년 이래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9.9%의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 마침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2조5천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진 중국 금융당국의 정책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은 물론 우리나라 은행이자율이 직접 영향을 받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중 수교는 중국 개방정책의 성공사례로 거론될 만큼 한·중 양국에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지난 18년 동안 양국 교역액은 22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우리는 중국의 제3위 무역상대국(홍콩 제외시)이다.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63억8천만달러였던 양국 교역액은 작년 1천409억달러(홍콩 포함시 1천621억달러)나 되었고 금년은 1천7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2천억 달러, 2015년까지 3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한국의 제2위 무역상대국 일본(712억달러), 제3위 무역상대국 미국(667억달러)을 합친 것보다도 큰 규모다. 중국에서만 작년 한해 동안 32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홍콩까지 합한다면 흑자가 507억달러에 달한다. 1일 평균 1억3천9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대중투자액(누계 기준)은 1992년 2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는데 금년 6월 기준 투자 누계액은 426억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한국의 제1위 투자대상국가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도 1992년 2만여개에서 4만여 개로 늘어났다.작년 한 해 동안 134만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금년도 상반기에 75만5천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았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38%나 급증했다. 현재는 한해 4천500만명의 중국인이 외국을 방문하는데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따라 외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금년 4월 영국의 BBC가 28개국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28개국 중 한국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인 응답자 57%가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한국에 온 중국관광객이 쇼핑을 많이 하는 큰 손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많이 오고있고 앞으로 더 많은 중국인이 올 터인데 준비가 안 되어있다며 염려를 하고 있다. 정부는 중국인 방문객을 2012년까지 3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해 비자발급 절차를 대폭 간소화 하였다.이렇듯 경제·통상, 인적교류면에서는 숨가쁘게 양국 관계가 증진되어 왔지만 안보·군사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최근 천안함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실망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국관계가 증진되는 과정에서 고구려사 문제, 문화원조 논쟁, 탈북자 문제 등 북한문제 처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보다 더 이해하게 되고 양국관계가 보다 굳건한 기초위에서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한 중국 한반도 전문가는 우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한 양국은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안보 문제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정치적 신뢰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한중관계의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부상과 변화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서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중국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중국 부상을 기회로 잘 활용하고 상생(win-win)의 한·중관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0-08-29 석동연

인천교육! 희망을 얘기하자

[경인일보=]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교육의 힘이었다. 21세기에 들어 세상은 더 넓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점검해 보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교육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그동안 우리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은 국가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으나 지금은 이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로 각 가정마다 자녀가 하나 또는 둘밖에 되지 않아 교육열은 더욱 과열화되는 추세에 있다. 대학 진학률이 84%를 상회하고 있어 양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국제적 연구기관이 매년 조사하는 '고등교육의 질' 평가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60여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서열화된 대학으로의 입학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미래가 결정되어진다는 생각속에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0학년도 수능성적 기초분석자료를 보면 아쉽게도 인천지역이 전국에서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좀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수능 성적과 이를 통한 대학입학 결과만 가지고 교육의 질과 성과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교육의 성과를 대학입시에 중점을 두어 평가를 계속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교육의 성과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위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각종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으나 학생, 학부모, 사회, 국가 모두가 교육의 결과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적, 경제적 투자와 많은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면 결코 좋은 시스템이라 말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창조화 사회에 이미 들어와 있다. 창조화 사회의 주역은 경쟁력있는 창조적 두뇌 개발이 가능한 교육체계를 갖춘 국가가 당연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로는 창조화 사회에서 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힘을 합쳐 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인천이 현재의 교육체계·내용·방법 등을 선진화하여 다른 지역에서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교육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경쟁력이 되고 미래사회의 주역을 제대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은 현재 동북아지역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을 갖춘 서해 요지의 항구도시로서 지리적 조건과 제반 여건이 우수하여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송도경제자유구역내에는 외국의 기업과 기관들이 유치되고 서울의 유명 대학들과 국제적 명성을 갖춘 세계적인 대학들도 캠퍼스를 운영할 예정이며 국제학교와 세계적 수준의 병원도 설치되는 등 국제도시로서의 충분한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있어 교육 여건도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추어 인천교육이 전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여건의 개선과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활성화에 따라 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부문의 보다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인천 교육의 발전을 위해 시장과 교육감이 손발을 맞추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지역내 모든 구성 요소들이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은다면 인천교육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2010-08-23 이기우

역사, 이젠 제대로 가르치자

[경인일보=]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에서 만나는 해외동포 3~4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말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모르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없고, 우리의 역사를 모르니 그들과 함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할 수가 없다. 다민족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고국의 말과 역사조차 모르는 처지에 고국에서 온 동포를 '동포 아닌 제3국인' 혹은 그들과 공존하는 '타민족'으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민지와 고국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으로 머물러 온 그들이 이제는 그런 중간자적 인식마저 상실하고 대책 없는 미아(迷兒)로 떠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그런 현상을 해외 동포들에게서만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의 위기'는 더욱 우려스럽게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 없는 기성세대나 나라를 경영한다는 지도층이 무사려(無思慮)하게 지향해온 '세계화'의 비극적 소산이다. 든든한 경제나 국방만이 세계의 복판에서 한 나라를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발판은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한갓 '경제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처럼 어려서부터 영어에만 몰입하게 하고 역사나 민족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들은 스스로 '세계시민'의 착각속에 빠져들고 만다.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투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람직한 세계시민이 될 수는 없다.그런 점에서 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독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이유나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조만간 우리는 제 땅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억지를 역사 교과서에 반영하여 가르쳐 오고 있으며, 중국 또한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역사의 날조에 동참했다. '날조된 역사'를 당당하게 교육시키는 그들의 심리 저변에는 그것이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경우 미래는 그 방향으로 되어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긴 시간이 지나 날조된 역사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헛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마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명한 직무유기이니 그것 또한 죄악이다.우리의 편견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금'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과거나 미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역사나 민족문화에 대한 몰각(沒覺)은 비롯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는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역사 철학자 E.H 카는 역설했다.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현대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원인은 과거에 있으며, 미래의 원인은 현재에 있다. 주변의 타민족, 타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적 관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려면 원인으로서의 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사실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독도만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전통인문학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신세대를 국제 미아로 만들고 있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적 현실이다. 경제와 군사, 문화면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일본이나 중국이 이 시점에 왜 '역사의 날조'와 '날조된 역사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멀지만 확실한' 길이다.

2010-08-15 조규익

'인민 루니' 세대에 대한 오해

[경인일보=]유인촌 장관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거리의 갑남을녀에게 대한민국의 장관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장관 한 번 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면 서운할 노릇이지만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누가 장관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7월 26일 하노이의 기자 간담회에서 던진 몇 마디 비외교적(?) 발언 때문에 거의 유인촌 장관만큼 유명해졌다. 핵심은 대충 이렇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전쟁난다고 6·2 지방선거 때 민주당 찍은 젊은 애들은 그럴 것이면 이북 가서 살아라. 민주화의 단물만 빨아먹는 세대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공직자 중에서도 특히 언사가 신중해야할 최고위 외교당국자의 말치고는 너무 거칠어 그의 발언에서 짙은 국내정치 냄새를 추적하는 해석이 그래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항시 젊은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유 장관의 해석은 사뭇 낯설다. 특히 우리네 젊은 세대의 대북관에 대한 흑백논리 인식은 다분히 교조적이다. 물론 전쟁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란 세대들의 대북인식이 기성세대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로 총성 없는 전투를 총지휘하는 당사자로서 우려스러울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허나 46년생이니 연배로 치면 4·19 세대의 끝머리쯤에 속하는 유 장관 역시 당대 젊은이들의 대북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기성세대가 고생해 이룩한 풍요가 같은 유형의 후세대를 잉태하리라는 기대는 무망하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거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그들이 옳고 그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기 쉽다. 지난 월드컵 기간 중 젊은 세대가 북한의 재일교포 출신 축구선수 정대세에게 붙인 애칭 '인민 루니'는 그들의 대북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상의 평균적 한국인에게 '인민'이란 단어는 아직도 불편함을 넘어서 희미하게나마 붉은 색으로 채색된 뜨끔함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그런데 우리네 젊은이들은 이런 '인민' 뒤에 이름난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 '루니'를 덧대어 단칼에 정대세로부터 인공기의 붉은 색을 지워버렸다. '인민'의 이념성은 '루니'로 상징되는 상업적 스포츠주의와 기묘한 그러나 동시에 '간지나는' 형용모순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대세는 한편으로는 루니 스타일로 축구 잘하는 '북한' 선수, 다른 한 편으로는 루니처럼 일반인의 사랑을 받는 빼어난 축구 선수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어디에도 북한 찬양이 없다. 북한은 다만 정대세를 통하여 가깝고 친근해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자막으로 번역된 서구의 국가(國歌)에 잘 드러나듯 서구의 '인민'은 자유를 향한 장엄한 투쟁사를 통해 얻어진 민주 정치철학의 체화(體化) 그 자체이다. 반면 우리는 '인민'을 세대라는 변수를 통하여 가볍게 우회 접근하고 있다.안다. 바로 이런 가벼움과 그에 수반된 빈약한 진정성이 젊은이들의 언어구사에 내재함을. 그리고 아쉬워한다. 서양의 자유와 풍요를 부러워하면서도 서양 국가에 나타난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사실에 그들이 상대적으로 무심함을.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자. 식자의 눈에 경박해 보이는 한류가 식자들의 그 어떤 언술보다도 실질적 영향을 발휘하듯 미래는 기성의 묵직한 근심보다 신세대의 경쾌한 번득임을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세대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를 반면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끝으로 사족 하나. 나는 유 장관의 발언이 진정 대내 정치용이기를 바란다. 만일 대외용이었다면 그의 우려와 달리 나라의 앞날을 위해 젊은이들이 유 장관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0-08-08 강명구

행복한 '베트남 댁'을 꿈꾸며

[경인일보=]우리는 한국 거주 외국계 주민이 114만명을 넘어선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경기도에는 이들 중 약 29%인 34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1위이다. 경기도의 결혼이민자(혼인 귀화자 포함)는 5만명 가까이 되며 그들의 자녀가 3만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중국(조선족 포함)이 57%(19만1천793명), 베트남 9%(3만687명),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의 순이다. 지난 7월 8일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지 8일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새댁' 사건이 부산에서 발생하였다. 피의자는 정신분열 증세로 57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피했으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07년에도 19세의 어린 나이에 베트남에서 시집온 신부가 신혼 시작 한 달여만에 천안의 어느 지하셋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져 있었는데 범인은 46살의 남편이었다. 이 두 사례 모두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결혼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국제결혼중개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의 66%, 캄보디아 여성의 84%가 결혼중개업체의 소개로 결혼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이주 여성과 남편의 연령차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모두 17세가 넘는다. 이와 같이 국제결혼이 대부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성사되고 있으나, 일부 중개업체는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결혼을 빨리 많이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를 거듭하고 있다. 타국의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이루어진 결혼은 당초부터 원만한 가정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고 가족간의 갈등, 이혼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두 남녀가 결혼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도 안쓰럽다. 그들의 문제는 대를 이어 계속된다. 바로 자녀의 언어교육 문제다. 이번 베트남 신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국제결혼 중개 건전화와 결혼이민자 인권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비영리 국제결혼 중개기관 설립 검토, 국제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내국인에게 출국전 소양교육 의무화 및 결혼사증 발급 심사기준 강화,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한 단속·점검 및 관리 강화, 결혼 이민자 상담 등 인권보호 강화 등이다. 매번 사건이 나고 나면 적지않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아직도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한 결혼에 문제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좀더 과감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경기도에서는 다문화 가족의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금년중 24개소로 확대), 외국인복지센터(총 5개소 운영), 결혼이민자 보호시설 및 글로벌다문화센터(안산시) 건립 등 인프라를 확충하여 다문화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어교육, 취업교육, 다문화이해 교육, 한국문화체험, 각종 상담,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교육 및 아동양육 지원, 결혼이민자 통·번역 서비스 제공, 다문화가정 부부 워크숍 개최 등 다문화 가정의 필요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결혼으로 인한 문제점 해소책의 일환으로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한국인 남성, 이미 국제결혼을 통해 다문화 가정을 이룬 부부 등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러한 체계적이며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이 땅을 찾아온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계속의 한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활짝 웃는 행복한 '베트남댁'을 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하루바삐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2010-08-01 석동연

경기도립 통일대학 설립을 희망한다

[경인일보=]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일 취임사를 통해 "안보를 위해 낙후된 경기북부를 통일 대한민국으로 가는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며 "경기북부에 북한연구와 통일역군을 양성하는 통일대학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도는 DMZ가 남북을 갈라놓은 세계 유일의 분단 도로, 경기북부는 지난 60년동안 대한민국을 지켜온 최전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통일에 대비한 도의 역할론과 전문가 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기사(경인일보 2010년 7월 2일자 2면)를 읽은 적이 있다.통일에 대해 접근하는 시각은 각 분야별로 다양하며 통일에 대해 연구하는 곳 또한 많다. 각 대학의 북한학과나 북한대학원, 통일대학원, 각종 연구소 등이 그러한 곳이다. 통일에 대하여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각론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남북이 분단된 지 언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통일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여러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창구는 통일부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중심의 통일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 성과는 지방정부 내지 민간 차원에서 노력한 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과는 별개로 경기도와 같은 접경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통일대학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는 통일의 선례가 되는 독일의 접경지역 지원정책이 그 추진방식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첫째, 접경지역 지원에 관한 사업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둘째, 소요재원을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부담했다는 점. 셋째, 접경지역 지원의 정책을 수립할 때 각 주의 특성을 최대한 배려하여 이를 반영하였다는 점이다.우리나라와 독일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접경지역을 지원할 때 당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경우, 국가 역시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정책에 관한 기본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향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접경지역 지원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재원은 남북한 교류 협력기금이나 정부의 일반회계 등에서 조달하도록 하여 그 동원기반을 폭넓게 확보하고, 지방자치단체도 광역단체별로 그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일정한 기준에 따라 비용을 일부씩은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경지역 정책 측면에서 경기도지사가 천명한 통일대학은 도립대학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으며, 학생 교육중심 대학이 아니라 북한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원 중심 대학설립이 되었으면 한다.그러나 경기도립대학으로 설립될 경우,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중앙정부와의 갈등 문제이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에 신규대학 설립을 금지하는 수도권 규제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대학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통일과 통일대학 설립에 대한 의지만 확실하다면 특별법 제정이나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가능하다고 본다. 아울러 지난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 제안된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면 한다. 둘째는 경기북부지역 내부 문제이다. 어느 곳에, 어떠한 방식으로 설립하는지가 문제일 수 있다. 각 지역마다 통일대학 설립 유치전이 치열하겠지만, 경기북부지역 입장에서는 희망의 유치전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향후 남북통일에 대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될 통일대학 설립에 희망을 걸어 본다.

2010-07-25 소성규

소부·허유, 그리고 태공망

[경인일보=]허유(許由)는 천하나 구주(九州)를 맡아 달라는 요임금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흐르는 영수(潁水)에 자신의 귀를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소부(巢父)는 허유가 은자(隱者)라는 소문을 냄으로써 명성을 얻게 된 점을 비판하고, 자신의 망아지에게 허유가 귀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하여 망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버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태공망(太公望)이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발탁했으니, 그가 바로 태공망이다. 그는 문왕의 초빙을 받아 왕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한 인물이다.최근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 안의 인물들을 바꾸었고, 조만간 내각도 개편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으나, 특별히 연줄의 문화가 강한 곳이 우리나라다. 연줄 즉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도 인사철만 되면 힘을 발휘한다. 연줄이 닿는 범위 안에 출중한 인사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줄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벗어나는 곳에 방치된 인사들은 더 많다. 이왕이면 '내 부류의 사람을 써야 한다'는 고질적인 인습 탓에, 인사철을 앞두고 '이런 저런 면에서 촉망 받는 인사들'은 임명권자와 연결되는 줄을 찾아 헤맨다. 인사철만 되면 임명권자로부터 부름이 올까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캐리커추어(caricature)들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언론에 등장하곤 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일이다.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 고위직의 제의를 거절한 유진룡 전 차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 정권에서 제의하는 고위직을 마다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정권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윗선의 청탁을 막아 낸 결기가 가식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리의 성격이나 자신의 능력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거나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간략하게 잘라내는 어조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멋스러움'을 읽어낸 것이다. 허유나 소부의 현대적 버전이라고나 할까.현재 '세종시' 건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운찬 총리 또한 임명 당시 여러 차례 고사(固辭)하는 바람에 임명권자의 애를 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중한 능력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직에 나아가 최선을 다했다. 제의를 거절한 사람이나 제의에 응하여 직에 나아간 사람이나 이런 경우들은 인재 발탁과 등용의 좋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사실 특정한 직에 쓰일 만한 세상의 현자들은 대체로 허유나 소부, 혹은 태공망에 속하고, 현자를 자처하는 나머지 부류는 직책의 명예만을 탐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나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소부나 허유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책임 있는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서서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태공망은 요즈음의 상황에 걸맞은 인재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탁월한 재능과 비전에 도덕성까지 갖춘다면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다. 연줄을 동원하여 등용되기를 도모하는 것보다 실력을 갖추고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행위 그 자체다.사실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재능이나 비전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가 연줄을 통해 사람을 발탁하려 한다면, 그 역시 인물의 능력이나 비전보다 끼리끼리 무리 짓고자 하는 현실적 욕망 때문이다. 연줄로 인재를 등용했을 경우 일을 그르친 후에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임명권자는 대부분 자신의 시야가 연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세상은 좁아도 연줄의 구속을 벗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살림이나 한 부서의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들이 제법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10-07-18 조규익

연예인 중심사회

[경인일보=]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다. 정치계, 교육계, 노동계, 종교계 등등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 많은 분야 중에 유독 한 분류의 계층만 한 주에 한 번 중계 방송을 한다.그것도 한 방송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3사에서 일제히 거의 한 시간씩 한다. 바로 연예계이다. 우선 연예인들이 불쌍하다. 방송 3사의 제작진들의 먹잇감이 되어 있다는 현실이 그렇고 항상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심리적 불안은 정신 건강에도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다.하도 정밀 묘사를 하다 보니까 정보가 고갈되고 그러다 보니 무익한 정보를 그 귀한 방송이 무의미하게 송출하고 있다.대개 정보는 두 가지다. 연예인 누가 이혼했다. 혹은 누가 결혼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연예인이 보통 두 번은 꼭 나온다. 보통 결혼 발표를 하면서 출연했다가 약 이 년이 지나면 이혼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나온다. 이런 방송 환경이 어쩌면 최근 줄줄이 터지고 있는 연예인 자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최근 박용하씨의 자살 사건을 방송으로 보면서 연예인 자살 보도가 마치 연속 방송극처럼 주기적으로 너무 자주 나온다는 생각에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살의 유혹을 느끼는 많은 삶들이 자주 그리고 장시간 보도하는 이 방송을 보면서 갖게 될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다.세상에는 긴급하게 알려할 정보가 참 많다. 좋은 일을 시작하면서 방송을 통해 알려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두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정말 훌륭하여 이 사회에 꼭 부각시켜야 할 인물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방송이 이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유독 연예인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이 문제이다. 방송 제작진은 시청률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시청자가 안 보면 무슨 소용이냐고 외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은 시청률 이상의 사회적 문화 기능을 조정하는 책임이 있다. 예컨대 시청률 5%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시청한 사람들 모두를 감동시켜 봉사활동에 나서게 했다거나, 욕심부리지 말고 이웃에게 기회만 있으면 베풀어야 하겠다라는 결심을 세우게 한 경우와 시청률 50%의 연예계 중계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자.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하지만 10초짜리 감동과 10초짜리 정보는 값 없는 것이다. 방송이 갖고 있는 문화의 조정 기능은 가공할 만한 것이다. 통일을 주제로 한 감동적 드라마 몇 편이 남북 간 민족 화해를 몇 년 앞당길 수도 있다.아이들은 모방하면서 자란다. 연예인이 많이 나오면 연예인을 모방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나오면 지식인을 모방한다. 요즘 성당에 나오는 청소년 중에 30%의 아이들이 연예인을 꿈꾼다. 그 나머지도 얼굴과 용모만 된다면 꿈꾸고 싶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의 첫 번째 의무는 물론 공정 보도이다. 그런데 이 공정성의 문제는 많은 경우 편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따라서 요즘 국민들은 해당 방송이나 신문의 논조와 기조를 감안해서 알아듣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어쩌면 연예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단점을 감추기 위한 기교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한다. 방송과 언론이 기사의 많은 부분을 인문학적이고 사회 과학적인 부분에 할애하지 않고 연예계와 스포츠 기사로 할애한다면 이 나라의 문화는 한없이 낮아질 것이고, 이런 언론의 환경 속에 자란 아이들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주어야 할 방송과 언론이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지 말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2010-07-11 홍창진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

[경인일보=]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었다.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건물과 시설은 물론 인간성마저 파괴해 버리는 고통의 경험을 가진 세대는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라지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나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화해·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소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로 고조된 긴장 상태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은 남북 관계를 예전의 대결 국면으로 되돌려놓은 느낌이다. 대북선전용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겠다고 하니까 이를 파괴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확성기는 과거 남북대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자기 체제를 선전하고 상대 체제를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던 것이다. 이는 일방향적 통고 수단이지 쌍방향적 소통 수단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확성기의 재등장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화의 논리보다 확성기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집단간 갈등이 발생하면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확성기를 동원하여 상대방보다 더 큰 소리로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전달하고 관철시키고자 한다. 이와 같은 확성기의 사용은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확성기로 증폭된 자신의 주장과 논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마치 소통이 잘 된 것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다른 집단의 목소리가 확성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따름이지 진정한 소통과 설득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확성기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가 묻혀버린 사람들은 이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확성기를 준비하게 된다. 그 결과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의 다원화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지향과 방식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소통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확성기에 담아 증폭시킨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될 것이며, 우리 공동체는 점차 갈등과 분열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욕구를 자제하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젠가 이런 애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 가방을 든채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 팻말 위치에 서 있었는데, 타려는 버스가 오더니 자기가 서 있는 곳까지 오지 않고 버스로 달려온 사람들만 태우고서는 그냥 떠나버리더라는 것이다. 가까스로 다음 버스를 탔지만 문제는 버스에서 내릴 때도 생기더라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승강구로 나가는데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넘어질 뻔 했다는 것이다. 미리 승강구로 나와 대기하게 하는 우리의 관행은 건강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신체장애자나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버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정차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는 것을 규칙으로 정한 나라도 있다니, 우리나라도 버스 문화를 이런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 얘기를 한 사람도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버스 문화가 신체 부자유자들에게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한가를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버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양한 집단의 소통을 위한 교육은 이와 같이 자신과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노인들의 신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인체험학습을 실시하는 것도 세대간 소통을 위한 하나의 의미있는 교육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통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교육자와 학습자간, 또 학습자 상호간의 원활한 소통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자가 학습자에게 교육 내용을 주입시키는 일방통행식 교육은 소통을 위한 교육 방식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일방통행식 교육을 통해 집단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학습자들에게 모순과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밝은 소통과 건전한 토론문화 정착, 갈등 관리와 상생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2010-07-04 정동권

6·2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

[경인일보=]6·2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은 투표율, 줄투표 현상, 깜깜이 선거 우려 등 세가지라고 지적할 수 있다. 첫째, 54.5%라는 투표율은 15년만에 이루어낸 최고의 투표율이다. 여당은 60대 이상 보수층의 결집을 기대했고, 야당은 젊은층이 몰릴 것을 기대했다. 어느 연령층에서 실제 기대에 부합했는지는 더 분석을 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러한 높은 투표율에 대하여는 단문 블로그인 '트위터'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둘째, 줄투표 경향이다. 대부분의 선거 전문가들은 광역단체장은 정당을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초단체장은 지역일꾼을 뽑는다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1인 8표 투표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유권자는 후보자를 잘 모르고 1, 2번을 줄투표한 경향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셋째, 깜깜이 선거 우려이다. 정치인들은 '노풍'과 '북풍'으로 비유하기도 했지만, 천안함 이슈에 정책이 묻혀 공보물만 보고 8표를 선택한 경우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방선거가 정책선거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6·2 지방선거는 '돈안드는 선거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전보다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도 있다. 첫째, 후보자들의 법정선거 비용문제이다. 경기도지사 선거비용 제한액은 40억7천300만원이다. 이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보자들은 후원금을 모금하거나 당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으며, 펀드조성을 통해 선거후 이자를 붙여 반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15%이상을 득표하면 돌려받기는 하지만, 후보자들에게 그 많은 돈을 모금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둘째,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호별방문을 금지하는 등 새로운 선거운동 방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선거운동방법은 도시지역에는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농촌지역의 경우 후보자들을 알리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셋째, 재외국민과 외국인 유권자 문제이다. 재외국민은 선거전 재외공관에 직접 가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을 하고 투표일에 다시 재외공관에 가야 한다. 유권자 투표 편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복수 국적자의 경우 자진신고를 하지 않는 한 한국 당국에서 이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 유권자들의 경우, 후보자들의 선거공약 이해에 한계가 있어, 외국인을 위한 배려 문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넷째, 후보자 초청 토론회의 문제이다. 4년전 5·31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의 토론회 참여 강제방안이 없었으나, 6·2 지방선거에서는 불참하는 경우, 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 나름대로 후보자 토론회가 활성화 되는 듯했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열띤 토론은 했는데, 유권자들이 토론내용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점 등은 풀어야 할 과제이다.6·2 지방선거를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원래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이다. 그러나 6·2 지방선거 일부는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보면 여당에는 '반성'을, 야당에는 '기회'를 준 것 같다. 야당이 지방정부를 잘 견제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표를 많이 주었다기 보다는 앞으로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한번 해보라는 유권자들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본다.한편 여당 역시 많은 표를 등에 업고 독주하기 보다는 바닥 민심과의 소통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의 반란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6·2 지방선거에 대한 민심이 어느 한쪽에 기울기보다는 여와 야에 절묘한 선택을 한 유권자들의 깊은 뜻을 정치인들이 헤아렸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뒤 유권자들은 다시 표의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2010-06-27 소성규

제 노릇 잘하기

[경인일보=]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논어-안연'편의 내용이다. '~다워야 한다'는 것은 각자에게 맡겨진 노릇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백 쪽이 넘는 정치학 교과서들보다 이 한 마디가 훨씬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실 정치의 난맥상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혼란에 빠져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지방선거가 끝나자 여야 혹은 보수와 진보세력은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며 마주 달리는 기차들처럼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수뢰(收賂)와 권력남용 등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독직(瀆職) 사건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탈세나 주가조작 등 기업인들의 탈선도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추상같은 법의 권위로 범죄를 다스려야 할 검찰이 민간인들로부터 돈과 접대를 받아온 부끄러운 관행도 일부이긴 하지만 드러나고 있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과 연줄로 사고 팔아온 비리나 빗나간 이념교육으로 어린 학생들을 오도하는 일부 교사들의 행위는 갈 데까지 가버린 교육계의 한심한 현실이다.그 뿐인가. 아동 성폭행 사건들의 범인 대열에 이제는 나이 든 어른들까지 끼어들고야 말았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기강이 무너진 군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감사원의 조사가 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엄연한 군기(軍紀)의 붕괴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안보의 현장에서 사건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한 것도 큰일이지만 사건의 수습 과정이 지리멸렬했던 것에 대하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군인으로서 '제 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가지고 국정을 이끌고 있는 여당은 참패를 인정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승리에 도취된 야당은 무리한 요구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국론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단체는 천안함 사건을 논의하는 유엔 안보리에 정부를 헐뜯는 편지를 보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가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이나 연줄로 사고파는 행위,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편향된 이념교육을 시키는 일 등에서 우리 교육의 붕괴를 점치게 되는 것도 교육자들이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이치는 간단하다. 모두가 '제 노릇'을 하면 된다.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 '제 노릇'이 나올 수 없다. 공익과 공리(公理), 도덕적 판단을 우선하여 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고 권리를 행사하면 충실한 '제 노릇'이 된다. 일의 수행 과정에서 꼼수를 부린다면 그건 결코 '제 노릇'이 아니다. 꼼수는 자신을 망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지도층의 꼼수 때문이다. 지도층의 꼼수는 국민들을 오도한다. 국민들까지 꼼수의 유혹에 넘어가면 사회는 대책 없는 혼란에 빠진다. 앞서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던 제나라의 경공은 "임금이 임금 노릇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못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으나 어찌 먹겠는가?" 라고 덧붙였다.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은 채 태연히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아비 노릇, 자식 노릇을 못하는 것은 사실 '제 노릇'을 못하는 임금과 신하가 있기 때문이다. 지도층만 '제 노릇'을 잘 해도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구한말의 혼란기를 닮았다는 평을 하는 논자들도 있다. 돌고 도는 게 역사라지만 지도층이 '제 노릇'을 못하는 것만큼은 닮아서 될 일이 아니다. 꼼수를 버리고 모두가 '제 노릇'을 성실히 수행하는 대장정(大長征)에 참여할 때다.

2010-06-21 조규익

핵 그리고 사람

[경인일보=]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할 것들이 생기면 산을 찾고 자연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은 우리의 작은 머리로 정리되지 않으며 작은 가슴으로 담아낼 수 없다. 그저 느끼고 감사할 따름이다. 자연과 산의 고요를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요는 '내심낙원' 즉 내 안에 우주의 원리가 있고 내 밖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내 고요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밖에서 나를 괴롭힌다고들 하지만 실은 내 안에서 그 사건을 소화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나를 비우는 일을 하지 못하고 내 안에 인간적인 나를 가득 갖고 있으면 이 놈의 이 인간적인 '나'라는 기준에 의해서 우리는 상처받는 것이다.내 밖에서, 우리 밖에서 요란한 일 최고는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인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6·15민족위원회 공동대표 자격으로 열 차례 가량 평양을 다녀왔다. 갈 때 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북한은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이 못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초라함 그리고 조직의 감시와 압박으로 늘 긴장된 모습들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외부 언론을 차단하고 김일성 부자를 신격화하고 신앙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사이비 광신 종교 집단이 북한 사회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김일성 수령은 아직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거리 곳곳에 써 놓은 이런 구호들에서 사이비 종교의 섬뜩한 기운을 느낀다.북한은 왜? 이런 사회를 조성했을까? 정치적 배경은 뒤로 하고 라도 그들의 지도자들의 욕심이 분명하다. 한 사람을 위해 존립했던 국가는 이미 왕정시대에 모두 지나갔다. 그런데도 북한의 김일성 부자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양심을 저버리고 자기 백성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다. 백성을 볼모로 이제 지구촌을 들쑤시는 생떼를 쓰는 것이다. 집안에서도 문제아가 생기면 부모로서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엄하게 벌을 주거나 타이르는 것이다. 그 전에 부모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벌을 주면 말을 들을 자식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닐 것 같으면 타이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자식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일 포기한다면 더 큰 재앙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실험이 바로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타이를 수 있는 권한이 우리 남한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은 우리 민족과는 혈연이 아니라서 그런지 포기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사실 미국도 핵을 갖지 말았어야 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비핵화가 중요한 것이다. 핵으로 평화를 이루는 일은 언어도단이다. 그래서 핵보유국은 핵보유국을 양산하게 될 위험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핵이 인류를 얼마나 엄청나게 파괴했는 지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우리는 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왜 핵이 자기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바보 같은 인류의 태도를 보고 갑갑해 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우리나라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럴 쯤이면 찾고 싶은 곳이 산이다. 초록이 깊어 가는 산에서 내 안으로 들어가 '내심낙원'에 빠지고 싶다.

2010-06-13 홍창진

학력경쟁과 입시위주교육에 대한 역사적 성찰

[경인일보=]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으로 과열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 단계에서 벌어지는 학력 경쟁이 우리 역사속에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조금씩 축적되고 있는데, 이들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시기에 학력경쟁 체제가 조성된 배경에는 우선 학력과 직업을 연계시키는 일제의 정책과 실력양성 운동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추긴 진학 열기가 있었다. 일제는 당시 법조인, 교사, 의사 등과 같은 선호 직업을 학력에 연계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실력 양성의 필요성이 학교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왔지만, 당시 학교는 이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일제는 한반도에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지 않았으며, 초등과 중등교육기관마저도 그 수업연한을 짧게 하고 교육 과정도 저수준의 실업교육 위주로 운영하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에 들어 초·중등교육의 수업연한 연장과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이 이루어지면서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연결되는 학력체제 즉 학력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학교로 몰려온 사람들은 이러한 학력의 사다리를 서로 오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중등과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상급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학력의 사다리가 급격히 좁아지는 병목현상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치열한 학력경쟁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등장한 학력 경쟁은 개인 사이뿐 아니라 학교간의 경쟁으로도 나타났다. 이는 지금도 그러하듯이 당시에도 학교의 명성이 상급 학교 진학 성적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성적 향상을 위한 소위 입시위주 교육의 양태, 이를 테면 비입시 교과목의 배제나 축소, 입시 주요 과목의 수업시수 확장 등과 같은 파행적 교육 과정의 운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반복 학습을 통한 지식의 암기가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으며, 과외학습이나 자율학습 등이 성행하고, 학교별 또는 학교연합 모의고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필자의 세대가 대학 입학을 준비할 때도 흔히 겪었던 이러한 교육의 모습이 1920년대와 1930년대 학교 현장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이 세 번의 세대를 거쳐 진행되면서 우리의 교육을 특징짓는 핵심 용어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이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성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첫째, 만연된 학습 소외현상의 문제이다. 학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보람있고 즐거운 과정이 되기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정도의 지나친 욕구 유보와 인내심을 강요하고 있어 일종의 극기 훈련 과정처럼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학습활동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둘째, 입시 도구적 교과 인식의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을 주요 과목으로 보고, 단기간 암기로도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과학을 암기 과목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전통적 인식의 지속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시험과 관련하여 교과의 중요성과 의미를 평가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이 성장해야 할 방향과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교과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학습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 본연의 논의와 인식을 생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교과 내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인내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관련하여 교과의 의미를 이해하고, 즐겁고 보람있게 공부하는 학습자들이 넘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2010-06-06 정동권

경기도지사 후보 공약의 촌평

[경인일보=]4년 전 5·31 동시지방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空約)부터 참신한 공약(公約)에 이르기까지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이번 제5회 6·2 전국 동시지방선거 또한 비슷한 양상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역시 정치인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메카인 경기도지사 후보의 공약을 분석하는 일은 한반도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경기도지사 선거 책자형 선거공보에 의하면,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는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김문수 후보의 대표 공약은 최고시속 200㎞ 쌩쌩 경기도(GTX 3개 노선 동시 착공), 대륙으로 세계로 무한 비상 경기도(서해안 산업 육성), 마지막 한 분까지 무한돌봄(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확대), 365일 24시간 보육 부모안심 교육(꿈나무 안심학교 확대, 부모안심 기숙학교 설립), 그리고 31개 시·군의 지역공약 등이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는 '함께 꾸는 꿈이 경기도를 바꿉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유시민 후보의 대표 공약은 굽이쳐 흐르는 한강, 살아나는 지류하천(4대강 사업 반대·실개천 살리기), 도민을 섬기는 복지, 효도하는 경기도(공공보육체계 획기적 개선·공교육 정상화·방과후 학교의 질 향상·어르신들 살피고 효도하는 경기 구현), 평화를 토대로 세계로 열린 경기도(환황해 평화산업 지대 만들기·군사시설 합리적 운영 및 휴전선 생태평화지대 실현), 그리고 31개 시·군의 지역공약 등이다.여러 곳에 발표된 두 후보의 공약을 총평해 보면, 유시민 후보는 복지·산업 콘셉트, 김문수 후보는 건설·산업 등의 개발 콘셉트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기본적으로 후보 각자의 정치적 신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육분야 공약에서 더욱 뚜렷하다. 경기도 교육국 설치와 무상급식에 대한 후보간 견해차는 명확하다.두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두 후보 모두 재원문제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김문수 후보는 SOC 투자사업을 위하여 민자유치를 하겠다고 한다. 민자유치는 당장 경기도의 재정부담은 적을지 모르겠지만, 국가적으로 민자유치사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자칫 세금먹는 하마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 후보의 복지공약 역시 재정문제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경기도민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투자성과는 전국적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복지지출에는 중앙정부의 몫이 커야 한다. 재정의 시각에서는 경기도를 위한 자치정책으로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본인이 제시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적 보완을 계속할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점이 있다. 경기도는 지리적으로 경기남부지역과 경기북부지역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고, 경기남북의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큰 과제이다. 경기북부지역은 경기남부지역에 비하여 주민등록 인구상으로는 25.7%, 예산규모상으로는 19.4%, 지역내 총생산인 GRDP는 17.8%, 대학교 수는 15.4%, 문화기반시설은 21.8%, 의료시설은 24.2%, 도로연장 24.4%로, 모든면에서 매우 열악해 같은 경기도내에서도 지역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이런 점에서 경기분도론은 정치인들의 대표적 공약이기도 했으며, 경기도 2청사의 자율권 부여 문제는 늘 논의되고 있는 이슈이다. 또한 경기북부지역은 다른 지자체와 달리 남북대치 상황에 있는 접경지역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제가 있는 지역이다. 국가안보의 혜택은 전국민이 누리고 있다. 통일과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경기북부지역에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당선자에게 바란다.

2010-05-30 소성규

유세(遊說) 유감

[경인일보=]6월 2일 지방선거 투표일이 한 주일 남짓 남았다. 전국적으로 유세가 시작되어 온갖 말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선거판에서 후보들이 내뱉는 대부분의 말들은 공수표(空手票)였다. 뻔히 거짓인줄 알면서도 들어주는 것이 순박한 민심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굳이 따지는 일이야말로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의 입을 통해서 빠져나온 말은 들어줄 사람의 귀를 선택하지 않는다. 감언이든 진실이든,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퍼부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행위를 '유세'라고 착각한다.유세란 후보자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행위다. '유(遊)'는 각처를 돌아다닌다는 뜻이고, '세(說)'는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뜻인데, 원래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제도가 생기기 전 각지의 현인(賢人)들은 등용되어 자신의 생각을 정치에 반영시킬 목적으로 제후들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현책(賢策)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연줄들을 동원하거나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국정의 책임자로부터 발탁될 기회를 노리기도 하지만, 그 옛날에는 직접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공자는 56세부터 14년간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각국의 제후들을 만나 유세를 펼쳤으나, 끝내 뜻을 관철하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둥대며 돌아다니는가? 말재주를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유세 도중 만난 미생묘(微生畝)는 공자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던졌다. 그러자 공자는 "감히 말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완고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논어-헌문편)라고 대답했다. 미생묘는 공자의 유세에 혐의의 눈길을 보냈고, 그에 대해 공자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완고한 제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공자는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피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워하여 바로잡힐 것"(위정편)이라 설파했으며, 계강자(季康子)란 대부가 도둑을 근심하자 "그대가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설사 국민들에게 상을 준다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안연편)이라고 일갈했다. 말하자면 공자의 유세는 감언이설의 말재주가 아니라 좋은 정치에 관한 강의였던 셈이다. 공자가 보기에 제후들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 광정(匡正)해야 할 당시의 문제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노구를 이끌고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에 나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유세하고 다닌 목적은 벼슬자리나 녹봉(祿俸)에 있지 않았다. 부와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목적으로 제후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그런 포부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남은 생을 바침으로써 유세의 참뜻을 후세에 남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설득의 대상이 제후 한 사람에서 다수의 주민들로 바뀌었을 뿐 지금도 유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제후가 정치의 주체였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정치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 당시 공자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내뱉었다면, 어디서든 벼슬 한 자리 정도는 쉽게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누구를 만나든 진심을 말하고자 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참된 의미의 유세다. 잔뜩 화장한 얼굴로 선거판에 등장하여 실현시킬 수 없는 약속들이나 남발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유권자는 이제 거의 없다. 지방정치는 나라 전체의 정치를 든든히 세워주는 바탕이다. 지방정치를 식물의 생태계에 비유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야흐로 유세장의 소음이 나라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지만, 유세의 참뜻이 진심과 겸손에 있음을 아는 후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유권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2010-05-24 조규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