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가지 않은 길

[경인일보=]우리는 가끔 지난날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한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가지 않은 그 길들은 지금도 지난날처럼 우리에게는 꽃같은 아름다움, 보석같은 신비로움으로 남아 있다. 지난날 가지 않은 그 길이 아직도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지금은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이름 모를 산사의 무서운 사천왕상 앞에 선 것처럼 우리는 우리 앞을 막아선 갈림길 앞에서 길 떠날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긴 여정에의 첫발을 망설였다. 그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그 길들은 우리가 가기에는 어찌 그렇게 좁고도 험하게 보였던지…. 그래서 그 길은 지금도 우리에게 가지 않은 길로 남아 있는 것이다.어쩌면 그때 우리가 가고 있던 길 앞의 어느 골짜기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새로운 길에 대한 강한 우리의 열망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신비로움으로 우리를 이끌던 그 가지 않은 길들의 신선한 유혹도 우리가 가던 길이 주던 달콤한 기대를 이기지는 못했다.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길을 멈추고 우리는 문득 뒤돌아본다. 그리고 우리는 발견한다. 발걸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까마득히 멀리 있는 길들의 시작의 끝을. 행여나 남들이 앞서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조바심 때문에 허둥지둥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서둘러 달려온 길.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에는 언제나 앞서간 이들의 알 수 없는 고뇌와 땀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우리가 온 길의 까마득한 시작의 끝으로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의 꼬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지금도 그 길은 지난날 그때처럼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꾸고 있는 모든 꿈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러나 꾸지 않는 꿈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루어 진 적이 없다는 말을 함께 기억한다.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들로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의 길바닥은 윤이나 반들거린다. 길섶에는 앞서간 이들이 흘려놓은 수많은 사연과 회한들이 내려앉아 새로이 오가는 이들에게 웅변처럼 때로는 속삭임으로 전하고 있다. 앞서간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반복하고 만 그들의 부끄러운 실수에 대하여, 번번이 발휘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용기에 대하여, 끝까지 참는데 실패한 인내에 대하여, 도중에 그만 두고만 자비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대하여.가지 않은 그 길에 대한 포기하지 못하는 동경과 참을 수 없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가 지난날 가지 않은 그 길을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결코 멈추지 않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가지 않은 길 앞에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세계와의 멋진 조우 못지 않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의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가 지난날 가지 않았던 그 길을 지금은 누군가가 힘차게 가고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 누군가가 가지 못한 길을 지금 우리가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 있는 모든 길을 우리가 다 갈 수는 없으므로. 그래서 길을 가고 있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함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우리가 가지 않은 길도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지난날 우리가 가지 않은 길 못지 않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길,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지난날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지금 더욱 아름다워 질 것이다. 꽃처럼, 보석처럼.

2009-10-04 최양식

경기북부지역 법원관할의 개편논의

[경인일보=]전국이 행정구역 개편논의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경기도는 안양 군포 의왕시, 성남 하남 광주시, 안산 시흥시, 수원 오산 화성시, 의정부 양주 동두천시, 남양주 구리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은 강제가 아닌 자율적 통합이다.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하다. 아울러 지방행정체제 개편 관련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결과가 어찌되든 간에 논의의 출발점은 인구와 생활권, 지역특수성 등을 감안해 행정의 효율성과 지역경쟁력 강화, 지역주민들의 복리증진을 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법원관할도 맥을 같이 한다.행정구역과 법원의 관할구역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의 관할구역의 기준이 되는 행정구역의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의 관할구역 변경의 소지가 있다(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그리고 인구 및 사건수 등의 변동으로 인하여 시·군법원의 관할구역의 조정을 할 수도 있다(동법 제5조 제2항).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행정구역 개편이 미치는 영향은 법원관할 변경에도 영향을 미친다.경기도 전체는 별론으로 하고, 경기북부지역은 10개 시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원관할은 의정부지방법원과 고양지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고양지원은 파주와 고양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의정부지방법원은 의정부시를 비롯한 경기북부 8개시군과 강원도 철원군까지 관할하고 있다. 경기북부지역의 법원관할 구역면적은 의정부지방법원이 4천90.3㎢, 고양지원은 939.8㎢로 의정부지방법원의 관할면적은 고양지원에 비해 지나치게 넓다.이는 전국 각지원(지원으로 구분되는 지방법원 포함)의 관할구역 평균면적이 474.86㎢인 것을 감안하면 의정부지방법원의 관할구역 면적은 평균면적의 8.61배에 달하고 고양지원도 1.98배에 달한다. 경기북부지역의 법원 관할인구는 2009년 현재 의정부 지방법원이 168만6천571명이며, 고양지원이 122만8천670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 각 지원(지원으로 구분되는 지방법원 포함)의 관할인구 평균은 23만4천614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의정부지방법원의 관할인구는 전국 평균의 7.19배에 달하고, 고양지원도 5.24배에 달하고 있다. 즉, 의정부지방법원 및 고양지원은 관할구역 면적 및 관할인구 모두가 전국 평균에 비해 매우 높다.특히 의정부지방법원의 편중은 심각하다. 경기북부지역 법원의 관할시군은 의정부지방법원은 9개시군, 고양지원은 2개시군으로 관할 지자체의 편중도 나타난다. 경기북부지역은 교통망이 남북방향으로는 어느정도 구비되어 있으나, 동서방향의 교통망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따라서 경기동북부지역(구리, 남양주, 포천, 가평, 철원)에서 의정부지방법원으로의 접근성은 열악한 실정이다. 그리고 의정부지방법원은 서울북부지방법원과 근거리에 위치하고, 지리적으로도 편중되어 있다.경기북부지역 관할 11개 지자체의 도시기본계획상의 목표인구는 420만명에 달한다. 관할법원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의정부지방법원은 262만명, 고양지원은 158만명으로 의정부지방법원의 관할인구는 더욱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장래 인구성장을 고려하여 주민들의 법원서비스 제공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경기북부지역내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법원관할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법원관할 변경의 기준으로 동법 제5조 제2항은 인구 및 사건수 등을 들고 있다. 현재 경기북부지역에는 의정부지방법원의 이전을 둘러싸고, 의정부, 양주, 포천 지역간의 유치전이 뜨겁다. 행정구역 개편과 맞물려 법원이전 문제는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법원이전 문제도 중요하지만 경기북부지역 법원관할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리라 본다.

2009-09-27 소성규

평생학습시대, 새로운 학습문화 필요

[경인일보=]우리나라 학생들이 각종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2003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를 차지하였다. 3년 후인 2006년 PISA의 결과에서도 과학 성적이 2003년에 비해 약간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다른 영역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였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에서 주관하는 국제학력평가인 TIMSS에서도 2003년 한국은 수학 2위, 과학 3위를 기록하였으며, 2007년에는 수학 2위, 과학 4위를 차지하였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스러움의 한 구석을 씁쓸하게 하는 또 다른 평가 결과가 있다. 요컨대 한국 학생들의 성취도는 높지만 흥미나 자신감 등의 정의적 영역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2003년 PISA에 참가한 40개국 중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는 31위, 동기는 38위를 기록하였다. 같은 해 TIMSS의 교과에 대한 자신감에서도 수학은 38위, 과학은 25위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낮은 흥미와 동기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교과에 대한 흥미나 내적 동기 없이 외적 요구나 압력에 의하여 학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와 같이 학습에 대한 흥미와 동기가 부족한 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 독특한 학습방식이 형성되는데, 그것이 소위 '벼락치기'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체화된 학습법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시험을 며칠 앞두고 단기간에 집중력 있는 학습을 함으로써 높은 성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벼락치기'인데, 학습에 대한 동기와 흥미가 부족하면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것이 합리적인 학습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벼락치기 학습은 상당한 긴장과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으로 집중력과 체력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이 이를 행하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벼락치기 학습에 길들여지게 된 배경에는 경쟁적인 시험 위주의 학습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시험결과에 따른 칭찬 또는 질책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로서는 자신의 흥미나 관심을 고려하기 전에 시험을 잘 보아야겠다는 경쟁적 심리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흥미나 관심과 무관한 시험 준비 위주의 학습이 즐거울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평소 공부보다 벼락치기 학습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벼락치기 학습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시험, 취업이나 승진시험 등 각종 시험 이벤트에 의하여 의미가 부여된 이벤트성 학습으로, 학습을 강요하는 더 이상의 시험 이벤트만 없어지면 학습 역시 그 의미가 없어지는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량을 보여주는 학습곡선은 학창시절, 특히 대학 입학 직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그 후 감소하기 시작하여 취업 이후에는 급속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른바 '학습 조로증(早老症)'에 걸려 있는 셈이다.이와 같은 학습곡선은 배움이 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중심 시대에는 어울릴 수 있지만, 학교는 물론 학교 밖에서도 꾸준히 학습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생학습시대에는 걸맞지 않다. OECD 보고서는 2050년이 되면 지식이 급증하여 현재 지식의 1%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지식의 생성과 소멸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시대의 학습활동은 학창시절뿐 아니라 학교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벤트성 벼락치기 학습자가 아니라 학습을 생활화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주도적 학습자를 기르는 데는 초등학교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면서도 대입 준비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기초하여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주기에 더 없이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 학생들의 올바른 학습습관 형성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야 하고, 특히 교육대학 학생들은 자신부터 훌륭한 학습자로 성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생학습시대에 걸맞은 바른 학습문화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학습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9-09-20 정동권

대학생의 의사소통 능력

[경인일보=]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대학생들의 기초 의사소통능력이 기대 이하로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우리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 면에서는 거의 균질하게 낮은 수준을 보여준다. 특히 글쓰기 수준이 더 심각하다. 발표와 토론에 곧잘 참여하는 학생들도 막상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초라한 글쓰기 결과물 앞에서 당황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자주 "여러분들 탓이 아니니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일단은 학생들의 기를 살리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의 능력 수준이 많은 부분 지금까지 거쳐온 교육 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단적으로 말해, 우리 사회에서 독서와 글쓰기 교육은 초등학교 시절에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이란 숙달했다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다는 의미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서와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은 학교와 가정에서 크게 강조되고 실행된다.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학부모들의 구미에 맞게 사교육 시장 역시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초등교육 단계에서 형성된 학생들의 기초 글쓰기와 독서 능력은 더 이상 중급, 고급 단계로 향상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 'How to read a book'을 쓴 애들러에 의하면, 독서 능력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1단계이다. 초등 교육 단계의 독서 능력은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정해진 시간 동안 일정한 분량을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이다. 대부분 대학생들의 능력은 2단계 언저리를 맴돈다. 세 번째,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저자의 논증을 재구성하거나 비평할 수 있는 단계이다. 대학생 정도의 학력이라면 적어도 3단계 이상의 수준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관련 저서나 주제를 서로 비교하거나 연관시키며 읽을 수 있는 4단계 수준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일 것이다.글쓰기 능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학생들에게 크게 부족한 부분은 구체적 경험에서 의미를 산출하고 일반화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초등교육 단계를 지나 중등교육 단계에서 이미 대학입시 준비 체제로 진입하는 지금의 현실은 학생들에게 중급, 고급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직접적으로 기술하거나 혹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지식을 짜깁기하는 데 그친다. 외모는 대학생이지만 의사소통 능력은 여전히 초등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복사와 붙여쓰기'에만 능란한 정보 소화불량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의사소통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이제 막 대학 입시의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까. 학생 개인의 성실성이나 교수자의 열정과 노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실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담론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그 안에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교육 전반에 범교과적 글쓰기(Writing across the Curriculum) 교육을 제안하고 실현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공학습과 독서·글쓰기 교육을 연계하여, 각 전공영역의 특수성에 적합하고 전공 탐구에 도움이 되는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길이다.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것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힘은 한 사회의 문화 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다.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 향상을 통해 우리 문화가 한층 더 세련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2009-09-13 김신정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고객

[경인일보=]'"여러분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지난해 3월 나의 새로운 고객이 되었던 대학생들에게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했다. 의아해 하며 나의 젊은 고객들은 말했다. "우린 아직 고객이 없어요. 미래의 고객은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고객을 굳이 말한다면 부모님이나 교수님이 되나요?"' 그런데, 한참 뜸을 들인 뒤에 나의 매우 도전적인 한 고객이 소리쳤다. "나 아닌 모든 사람이 나의 고객인 것 같아요"라고. 고민 끝에 뱉은 자기의 대답이 꽤 만족스러운 듯 조금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그 고객 명단에서 빠져버린 '나'는 어떻게 하고?" "에이, 총장님도 참! 그럼 나도 그 누군가의 고객이 되면 되지 않아요?" 그렇다. 언젠가는 운 좋게 찾아오거나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고객이 될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고객명단에서 조차 빠져버린 엄청나게 소중한 나를 오늘 나의 새로운 고객 명단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숨가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도 집에 있는 가족생각을 한 순간도 잊는 일이 없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편한 일들을 모두 속으로 삭이면서 세계평화부터 쇠고기 개방, 신종플루까지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빼놓지 않고 다 받는,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슬프기까지 한 불쌍한 고객.그러나 하릴없이 갑작스레 걸려온 옛 친구의 전화 때문에 문득 보고 싶어진 또 다른 친구에게 밤늦도록 전화를 걸고, 1주일에 한번쯤은 동네 다방의 커피가 아닌 헤이즐넛, 카푸치노, 에티오피아 커피든 뭐든 이름만큼이나 맛도 어쩐지 다를 것 같은 그런 한 잔의 커피를 용기 있게 시도해 보는그런 고객.이름 모를 고상한 클래식 음악에 가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이따금씩은 동네 노래방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목청껏 고래고래 소리 높여 부를 만한 비장의 노래 한곡씩은 숨겨두고 있는 그런 평범한 고객.가족과 친구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그 간단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 도무지 서툴러 이따금씩은 난처한 지경에 빠져버리기도 하는 그런 고객.길섶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문득 시인이 되어버리는 고객.새벽을 깨우는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지난밤의 침묵을 못내 버리지 못하는 새벽 산의 고요한 여명에 공감하는 고객.눈감고도 걸을 정도로 익숙해진 동네 어귀에서 서산에 길게 걸린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라진 사람들, 땅속에 묻혀버린 돌아오지 않는 역사에 가슴 아파하는 고객.오늘을 사는 자신을 가장 소중한 고객으로 여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자랑스러운 고객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 없이는 그 어떠한 고객을 단 하루도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자꾸 미워지거나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요즈음 나란 고객에 대한 나의 사랑이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는 때문일 지도 모른다. 오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그 고객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보자. 아주 작은 관심만 보여도 언제나 커다란 감동을 보여주는 그를 행복하게 할 작은 일을 시작해보자. 내 앞에 다가올 먼 미래의 이름 모를 고객을 생각하면서 오늘 가장 가까이 있는 그간 잊혀진 나의 이 사랑스런 고객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2009-09-06 최양식

입양에 대한 법제도 정비

[경인일보=]우리나라 입양의 역사는 1961년에 제정된 고아입양특례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고아들의 입양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남긴 법률이기도 하다. 그후 1976년 12월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되었고, 1995년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전문개정된 뒤, 2008년 2월 29일 법률 제8852호까지 9차례 개정되었다.입양에는 국내입양과 국제입양이 있다. 국내입양은 민법과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입양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실적으로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입양보다는 민법에 의한 입양이 절대적으로 많아 입양아동들에 대한 보호가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특히 민법상의 입양은 아동의 친생부모와 입양부모와의 개인간 동의로만 입양절차가 이루어지고 있고, 입양도 신고만 하면 되도록 되어 있어,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절한 가정에 입양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 입양의 입양법 구분으로 인한 문제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반면에 국외입양에 대하여는 종래 국가가 일부 방치내지 묵인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동안 국외로 입양된 아동이 16만명을 넘으며 아직도 1천300여명의 아동들이 매년 국외로 입양되고 있다. 과거 6·25 직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아동들이 국외로 입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입양에 대한 국민들의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식, 국내입양 양부모의 까다로운 입양대상 아동선정, 국내입양에 대한 홍보부족과 입양기관의 해외입양 선호방침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국외입양의 경우 아동보호 및 기관운영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은 국외입양 부모로부터 받는 입양비로 충당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국제사회는 1960년대 이후 국제입양 건수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입양이 남용되는 등의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비해, 이를 조정할 국제적 법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하면서, 1993년 5월 국제사법에 관한 헤이그 회의에서 '국제입양에서 아동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 협약으로 약칭한다)을 결의하였다. 헤이그 협약은 국제입양에서 입양대상 아동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협약체결 국가들은 본 협약이 제시한 기본적인 내용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2009년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 78개국이 헤이그 협약 체약국이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입양되어 나가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헤이그 협약 당사국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아니어서 협약의 적용을 받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되어 나가는 국가의 대부분이 협약 체약국이다. 따라서 협약의 가입여부와 관계없이, 입양아동을 보호하고 입양 절차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절차를 확보하기 위하여, 협약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입양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헤이그 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민법,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아동 청소년 복지법 등 국내법의 정비와 입양과 파양 관련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국회에서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입양은 친생부모가 직접 양육할 수 없는 아동의 보호와 양육을 위하여 마련된 제도로서 입양법과 제도는 국내 입양이든 국외 입양이든 입양되는 모든 아동을 보호하고 입양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이러한 측면에서 유엔아동 권리협약과 헤이그 협약을 실현하고, 아동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2009년 7월 1일에 출범한 재단법인 중앙입양정보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2009-08-30 소성규

저출산ㆍ고령화 시대, 교육이 희망이다

[경인일보=]'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출산 억제를 외치던 정부의 캠페인 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각 가정에서 적어도 둘 이상의 자녀를 꼭 낳아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저출산의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은 2005년도에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세계적인 저출산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2305년에 인구 500명만 남게 되어 한국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편, 이러한 저출산 추세 속에서 한국인의 수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7.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략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와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가 2050년이 되면 72.0%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205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4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조세와 사회보장비를 부담해야 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를 독려하고,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는 시기, 즉 은퇴시기를 늦출 필요가 있다. 또한 입직 연령(최초로 직업을 얻는 연령)이 높은 우리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군병력의 감축, 조기취학, 수업연한의 단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문제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구 증가 정책을 마냥 추구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0%에 근접하는 상황에서 이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은퇴 시기를 늦춘다고 하더라도 고령으로 인한 생산성의 감소는 불가피하며 무리하게 일을 강요할 수도 없다. 또한 분단이라는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군병력의 축소와 군복무기간의 단축에 한계가 있으며, 조기 취학 및 수업연한의 단축 역시 교육적으로 고려해야할 점이 많다. 따라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교육에서 문제해결의 희망을 찾고 싶다. 그것은 바로 국민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각자가 타고난 잠재능력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잠재능력이 최대한 개발된다고 하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더라도 생산인구의 감소로 인한 경기침체 및 사회문제의 발생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가정에 부양식구가 늘어나고 돈을 벌어오는 식구가 줄어들더라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길러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나는 '국민 모두의 수월성 실현을 위한 교육'이 이제 교육계의 비전일 뿐만 아니라, 저출산ㆍ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시대의 주요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면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교육기관의 연간교육비는 OECD국가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다른 국민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공교육에 대한 과감한 재정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여기에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그 결과는 엄청난 희망과 결실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2009-08-23 정동권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경인일보=]"휴가 다녀오셨습니까?" 해마다 여름이면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주로 가족, 친지 단위로 휴가를 가고 여름 방학이 짧은 한국의 특성상, 7월말에서 8월 초순에 이르는 기간은 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룬다. 지난 주말 광복절 연휴를 보낸 지금, 막바지 휴가철을 남겨 놓고 있다.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피서지 행렬은 실상 백년이 채 안 된 근대적 풍경이다. 1913년 조선 제1호 해수욕장인 부산 송도해수욕장 개장에 이어 인천 월미도, 몽금포 해수욕장, 당시 조선 거주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였던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 등은 기차로 대표되는 근대적 교통수단에 의해 개발된 여름휴가 명소였다. 치료를 위한 해수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해수욕복'을 입고 즐기는 오락과 여흥은 가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대성황을 이룬 그 광경에 대해 만화가 안석영은 "소위 해수욕이라는 게 구정물 속에서 맨살 부비는 것이다 입으나마나한 속속뒤리 다-비최이는 해수욕복을 입고"라고, 조소어린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운행을 시작한 피서 열차는 70년대 말 승용차 바캉스족의 등장으로 불황을 맞이하기 전까지 해마다 초만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여비가 없어 그 행렬에 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20~30년대, 그들은 왕복 버스 삯 십전이면 갈 수 있는 '피서 여행'을 떠났다. 한강인도교다. 경성 최고의 명소에 매달린 채 사람들은 하늘로 치솟는 불꽃놀이와 강바람에 취해 더위를 잊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왜 우리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꼭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안석영은 경성의 도시 공간 변화와 가옥 구조를 통해 그 일단을 설명한다. 경성에 집은 늘어났지만 조선 사람의 집은 오히려 '오그라드는' 식민지 도시의 상황, 그 집마저 나무 하나 심을 뜰 없이 정체불명의 형태로 지어진 '근대 개량' 주택에서 폭염을 피할 방도를 마련하기는 어려웠다. 여름날,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스펙터클에 취해 스스로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점차 휴식 공간을 잃어 가는 도시 환경, 여가 산업의 거대 자본화, 지역 개발이 서로 맞물리면서, 매해 여름 휴가 강박증은 슬며시 찾아와 되풀이되었다. 휴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카드 회사의 광고 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직장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뒤, 날렵한 스포츠카를 타고 낯선 풍광 속으로 뛰어드는 젊은 직장인의 모습은 부러움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코 아무나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열심히 일한 당신'만이 떠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기에, 그리고 그 때의 '일'이란 적정 임금으로 보상받거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므로, 안타깝게도 열심히 일할 조건이 되지 않았던 당신, 열심히 일했으나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던 당신들은 그저 먼 나라의 풍경쯤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휴가, 특히 여름휴가란 숨가쁘게 돌아온 한 해의 반환점에서 일상의 묵은 더께를 훌훌 털어내고 맞이하는 몸과 마음의 이완(弛緩)의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과 휴식으로 반복되는 생활의 리듬감, 도시적 일상에서 상실해가는 자연성, 그리고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여름휴가 기간에 진정으로 누려야 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때에 우리는 과열된 소비와 과시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휴식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부담감으로, 지금 당장 손을 놓기 어려운 바로 그 일 때문에 휴가를 망설이는 당신, 눈치 보지 말고 떠나라! 유명 휴양지가 아니어도 좋다. 도심 한 모퉁이, 집안 한 구석에 나만의 장소를 숨기는 일도 충분히 '떠나는' 일이 되리라. 올 여름 변변한 벌이도, 눈에 띄는 성과도 얻지 못한 당신, 그러나 여름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소중한 땀을 흘린 당신에게 휴가는 스스로 그 노고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2009-08-16 김신정

이른 아침 산에서 만나는 미달이

[경인일보=]오늘 아침도 미달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이름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은 남양주의 황금산은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을 산기슭에 숨기고 있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30층 아파트 높이의 황금산의 정상 몇 발아래 떡갈나무 밑에서 강아지 미달이는 아침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반갑게 사람들을 맞는다. 밤새 기다려온 것처럼, 그러나 꼬리를 흔들지는 않는다. 맞이하는 그의 인사에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한발이라도 다가가면 어느새 몇 발을 물러서고 만다. 그래서 그는 조금은 소심한 미달이다. 이런 미달은 문득 우리에게 어린왕자에게 한 사막여우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참을성있게 서로를 길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더 가까워질 수 없어, 꽃이 너에게 소중하게 된 것은ㄹ 그 꽃을 위해 소비한 너의 시간들 때문이란다. 반년 전 어느 날 미달이는 혼자가 되었다. 쓸쓸한 그의 눈빛으로 우리는 그의 가족, 그와 함께했을 이름 모를 사람들에 관한 그 어떤 기억들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이제 그를 행복하게 했을, 아니 어쩌면 더 슬프게 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사람들에 관한 기억들로부터 떠나 황금산 속에서 머물고 있다. 산에 사는 미달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온 몸을 덮는 털로도 감출 수 없는 앙상한 갈비뼈나 굶주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쓸쓸한 미달의 눈빛이 그리 말한다. 앞에 보이는 사물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멀리 사물의 뒤쪽을 건너다보는듯한 그의 눈빛이. 미달은 그가 선택한 황금산이란 영역과 거기서 누리는 값비싼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소중한 것과도 바꾸지 않았다. 밤새도록 부시럭거리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게 하는 성가신 산속의 새 가족들, 털가죽을 뚫고 뼛속까지 젖게하는 차가운 밤이슬, 한줄기 별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숲속의 짙은 어둠도 미달을 결코 마을로 다시 돌아가게 하지는 못하였다.매일 아침 마음씨 좋은 몇사람의 지금동 아주머니들이 미달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와 물을 들고 산을 오른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아침 그의 산에 입산을 허락해주고 말없이 반겨주는 미달을 고맙게 생각한다. 오늘은 그간 산의 주인에게 눈인사만 해오던 필자도 한 조각 빵을 들고 그의 앞에 서 본다. 그러나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미달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고 짐짓 딴전을 피우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음이 조금 아파온다. 먹이를 내어놓은 필자가 몇 발짝을 물러난 뒤에야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대어본다. 미달이 식사를 마친 뒤에 산을 내려가는 필자를 미달이 멀찌감치 뒤따라 내려온다. 산 어귀 황골 약수터쯤에서 필자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발길을 돌리지 않는 미달이. 미달은 마을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산에 남은 미달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제 미달은 따가운 여름 햇볕, 차가운 밤이슬을 피할 어느 바위 밑이나 다른 동물 가족들이 있는 동굴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미달이라 불렀을까? 온달·서달·추달은 용맹스러운 고구려 장수들의 이름이었을 터인데…. 그래, 어쩐지 미달은 늠름해보였어! 먹을 것 앞에 비굴하지 않았고 등산객이 던지는 몇 마디 인사에 가볍게 꼬리를 흔들지 않았어!미달의 모습에서 우리는 용맹스러운 고구려의 장수를 본다. 가난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조선 선비의 모습을 본다. "그래! 미달공! 그리고 미달선비! 밤사이 황금산에 내리는 아름다운 별빛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그대가 택한 자유, 그대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대에 대한 사랑, 그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내일 아침도 그대의 산에 입산을 허락해 주시게나! 아참! 미달공! 그리고 내일 아침은 내가 그대에게 한발 더 다가가더라도 물러서지 마시게 제발. 그리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대의 등에 나의 손을 얹는 걸 허락해 주게." 친구의 손을!

2009-08-09 최양식

경인일보 채널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