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1년, 얼마나 달라졌나?

사람 됨됨이 가르치는 인성교육교원단체간 시각 달라 안타까워협의와 협력통해 적극 지원해야요즘 학교 다양한 교육기능 수행되레 전통적 역할 공부·人性교육소외받고 있다는 사실 '아이러니'사회생활에서 지능지수(IQ)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지능(Moral Intelligence)과 공존지수(Network Quotient), 쉽게 말해 '인성'이다. 요즘 들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 인성 붕괴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에도 처남이 매제를 흉기로 살해하는 등 재산다툼이나 모욕, 가치관 차이 등으로 인한 사건들이 발생했다.우리나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해 2015년 7월부터 시행했다. 이 법 제2조에서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성교육의 목표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8가지 '핵심 가치·덕목'을 설정했다.인성교육의 현주소그렇다면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인성교육의 현황은 어떠할까. 인성교육 목표로 정한 8가지 '핵심 가치·덕목' 중에서 우리사회에 가장 긴요한 것은 다른 사람, 공동체 및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배려를 기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원활하게 소통·협동하며 커닝과 가짜 학위 및 불량식품이 없이 정직하게 공부하거나 사업하는 것,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것. 하지만 이러한 인성 덕목을 기르는데 시간을 투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에서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교육, 진로체험교육, 소프트웨어교육 등을 추가하니 인성교육을 강화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인성교육의 시기와 주체가 모호하다. 인성교육은 10살 이전에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도덕적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前頭葉)은 이 때 발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능력을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여 생활화하는 것은 유아 시절과 초등학교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러자면 인성교육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인성교육의 적정 시기로 보면 주된 교육공간은 가정이어야 하고, 부모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는 인성교육의 보조 공간이어야 한다. 이처럼 인성교육의 1차적 책임이 가정과 부모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진흥법에서는 교육계가 할 일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각각 인성교육 종합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고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동력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이처럼 인성교육의 상황이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양대 교원단체조차 학교 인성교육에 대해 상이한 시각을 가진 것 같아 안타깝다.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람 됨됨이를 기르자는데 교원단체 간의 입장이 다를 수 없다. 교원단체들은 협의와 협력을 통해 인성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인성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교권을 확립해 교사가 학생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에서 '뭣이 중한디?'요즘 학교는 학생의 꿈과 끼를 발현시키는 교육과정 이수, 가정교육을 보완하는 인성교육, 방과 후에 학생들을 보호하는 돌봄 교실, 진로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학교 기능이 확대되는 가운데, 오히려 학교의 전통적 역할이었던 공부와 인성교육은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면 지난 세기 일제 식민지 시기와 6·25전쟁, 급속한 산업화와 경쟁시대를 거치며 메마른 우리 사회의 도덕지능과 공존지수를 되살릴 수 있다. 경제성장 시대에 비교적 풍요를 누리며 자라난 세대에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인성을 기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이재희 경인교육대학교 총장이재희 경인교육대학교 총장

2016-09-25 이재희

[월요논단] 한가위에 느껴보는 가족공동체

최근 번거로운 전통 차례상 대신성묘겸 간단한 묘사 대신 하기도생활패턴 달라지니 명절 풍속도바뀔 수 있겠지만 조상 기리고부모 공경하며 자식 사랑하는근본가치 흔들릴까 걱정이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상에 복귀한다. 추석을 앞두고 오랜만에 고향 선산의 선대 묘소 10여 위를 차례로 찾아 성묘하였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은 문중 선산에 새로 마련한 납골 묘원에 모셨는데 봉분없이 비석으로만 표시된 묘소를 찾아 꽃과 술잔을 올리고 참배하였다. 수풀 우거진 언덕길을 더듬어 윗대 산소를 차례로 참배하다 보면 혈족의 강줄기 속에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조상님의 은덕과 보살핌 및 이 시대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추석 당일 장남인 필자는 제주가 되어 도포를 차려입고 지방을 써 붙이고 추석 차례를 주제한다. 맏며느리인 처가 여러 날 시장을 보고 전통식으로 정성껏 장만한 제수를 차리고 아들과 동생 가족 더불어 단란하게 차례를 올린다. 대학원생인 아들은 제 어머니가 여러 날 장을 보아 전통식 상차림으로 제수를 마련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생선 지짐과 야채전 대신 자기가 피자를 만들어 제상에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제수를 진열하는 전통적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상차림 예법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옛 성인도 시절 풍속을 따른다 하였으니 상차림의 옛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없겠으나 돌아가신 아버님은 생전에 손자들과 피자를 가끔 드셨으니 싫어하지 않으시겠지만 수십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피자 구경도 못 하셨을 터이니 어떠실까? 조상은 내 존재의 뿌리이니 이를 기리는 차례는 돌아가신 이를 존중하고 정성과 예를 다함이 근본이라 산 자의 편리보다 조상님의 입장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답변해 본다.요즈음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 회자된다. 명절 연휴가 지난 후 정신건강 의학과를 찾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많고 최근 몇 년간 추석 지난 다음 달에는 평균 이혼 건수가 10% 가까이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하여 부부가 대등한 맞벌이 전선에서 바쁜 요즈음 며느리들은 모처럼 연휴에 쉬고 싶거나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잔소리 들어가며 익숙하지 않은 제수 마련에 온종일 허리를 굽히고 있자니 심신의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고 평소의 가정 불만과 갈등까지 증폭되어 참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평소 고부 또는 부부간 소원한 인간관계에서 뭔가 어색하거나 얄밉거나 따분하거나 젠 체 하거나 아집스러움이 복합된 그 어떤 부조화의 누적됨에서 비롯됨이 아닐까.최근 번거로운 전통식 차례상을 마련할 것 없이 조상님 산소에 성묘 겸 간단한 묘사로 추석 차례를 대신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한다. 생활 패턴이 달라지니 명절 풍속도 바뀔 수밖에 없겠으나 조상을 기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식을 사랑하는 근본 가치가 흔들릴까 걱정이다. 노인 인구가 어린이 인구를 추월하는 고령화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젊은 층의 취업난과 만혼 경향 및 독신과 이혼의 증가 등으로 작년에는 우리나라 1인 가구가 520만, 전체 가구의 27%에 이르러 처음으로 2인 가구를 앞지르고 수위를 차지하였다. 분열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족공동체 속에서 효친자애(孝親慈愛) 숭조애족(崇祖愛族)의 근본을 어떻게 지켜갈까?잘 익은 밤이 땅에 툭 떨어진다. 천지의 선물인 뭇 열매들은 성숙하면 모체를 떠나 동물이나 인간의 먹이가 되거나 적당한 물과 햇빛과 공기를 만나 땅속에서 새순을 싹 틔우며 생명의 순환을 이어간다. 모든 생명은 가을철이면 하나의 생장주기를 마감하고 퇴장하게 되니 가을기운을 추살기운(秋殺氣運)이라 하였다. 결실의 계절 한가운데서 때가 되면 도적처럼 스며들어 모든 생명을 살리고 키우고 마감시키는 하늘기운, 우주자연의 이치를 관조하며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천부경에 담긴 천지인(天地人) 합일사상을 새겨본다. 살아있는 동안 이웃과 가족을 형통하게 하고 만인을 이롭게 하고 나를 바르게 하며 하늘 땅 조상의 은혜와 하나되어 천지인이 합일하는 조화세상을 꿈꾸어 본다. 하늘에 빛나는 둥근달을 쳐다보며 가족과 국가공동체 한가운데 있는 오늘날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물으며 심신의 안정과 신명(神明)의 회복, 우주 자연과 생명 율동에 대한 신비로운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9-18 손수일

[월요논단] 사외이사제도 필요한가

정권 잡으면 '들러리' 공모절차로우수한 인재들 지원조차 안해엽관주의 인사를 해야하기 때문 대권 꿈꾸고 국민 삶 걱정한다면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 막을근본적 제도개혁 먼저 다뤄야사외이사제도가 올바른가. 감사제도가 올바른가.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운영·감시하는데 어떤 제도가 좋다고 생각하는가. 2010년 11월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국제상거래학회의 발표회장은 매우 뜨거웠다. 당시 공공기관의 사외이사 경험을 토대로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학자들 특유의 성실함과 관심이 증폭되면서 매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일본 학자들은 양 제도의 장단점은 물론 한국의 운영 경험에 대해 관심이 컸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감사제도의 강화가 올바른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한국의 사외이사제도에 관심이 있었을까. 일본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고민거리였다.돌이켜 보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대한 개혁은 정권마다 큰 관심사였다. IMF의 뒤처리를 해야 했던 김대중 정부는 38개 공기업의 민영화와 11개 공기업에 대한 통폐합을 하였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물리적 통합보다 286개에 달했던 기관의 운영과 관리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정권마다 성과주의나 개혁을 핑계로 자기 사람 챙기기에 더 바빴다. 당연히 최고의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각종 선거공신이라는 명함을 매달고 한자리를 뜯어내는 전리품의 대상이 되었다. 사장, 상임이사, 상임감사 그리고 사외이사와 비상임감사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낙하산으로 채워진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최근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인 없는 기업들이 운영과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대표적이다. 모두가 알맹이가 없는 맹탕 청문회라고 난리들이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와 감사실 폐지의 문제점을 지적한 증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감사실을 폐지하면서 내부통제가 무너졌고, 청와대가 인사에 개입한 것이 결국 부실의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진술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제도에 큰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의 운영모델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물론 제도설계 초기부터 비상임이사나 사외이사가 견제와 감시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공무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더 큰 낙하산을 타고 온 기관장에 대응할 장치로서 사외이사 제도를 설정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사외이사에게 적극적으로 기관장이나 조직을 견제해야 할 권한도 인센티브도 없었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도 부족한 사외이사가 제대로 된 결정을 할 리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면서 불행하게도 그런 예측이 적중했다. 그래서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표현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때마다 정부는 공모절차와 인사의 투명성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공모절차가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년에 4~5회 회의에 참여하는 비상임이사나 사외이사의 경우 경영목표 등을 작성하는 서류제출이나 탈락 우려 등으로 우수한 자원들이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법률과 제도는 사외이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도 권력도 번거롭기만 하다. 들러리 공모절차에 응해야 하는 사람들도 피곤하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추진하지 않는다. 이유야 뻔하다. 정권을 잡으면 다시 엽관주의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조직의 내부를 통제할 것인가. 조직과 기관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과연 현재의 사외이사제도는 필요한가. 감사 제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부실과 세금투입, 그리고 파산과 실업이라는 악순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권력은 힘이 빠졌다. 새로운 권력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대권을 꿈꾼다면, 국민들의 삶을 걱정한다면. 제 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개혁에 먼저 나서야 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9-11 김민배

[월요논단] 바른 생각과 판단을 위하여

예전처럼 정보를 제한하여속임수 쓰는게 쉬운일 아니건만거짓 정보·본질 호도 책략 여전많은 방송·온라인 통한 말 홍수로신중해야 할 요즘 더 각박해지고불신풍조로 '깨어있는 사고' 절실'증삼살인(曾參殺人)'이니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니 하는 말이 있다. 전자는 어질고 효성 깊기로 유명하던 증자(曾子)와 이름이 같은 증삼이란 자가 살인을 했는데, 사람들이 세 번이나 연속해서 증자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살인했다고 전하니 처음에는 믿지 않던 증자의 어머니까지도 결국은 아들을 의심하고 베틀에서 내려와 숨었다는 내용이고 후자는 세 사람이 시장통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건만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연속하여 전하니 이치를 따져 믿지 않던 사람도 결국은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틀린 말도, 헛소문도 계속되면 믿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반복'만큼 힘센 것이 있으랴. 일상적으로만 보아도 듣기 싫게 반복되는 말씀을 '잔소리'라고 하여 저마다 질색이지만 생각해보면 '잔소리'는 결국 습관이 되고 규칙을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선악 시비, 말로 결정되는 판단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세 번이 아니라 30번, 300번도 불사하며 같은 소리를 방출하는 대상을 앞에 놓고 그 생각을 거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고사성어가 실린 '전국책(戰國策)'이란 책이다.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이 기원전 6년경에 편찬한 책으로 전국시대에 대륙을 누비며 세 치 혀로 세상을 움직이던 소진(蘇秦), 장의(張儀) 등 대단했던 책사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외교관의 변설과 권모술수를 기록한 것이다. '전국시대'란 중국에서 진(秦)나라, 초(楚)나라, 위(魏)나라 등 일곱 제후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시대이니 이제는 많은 세력이 서로 주도권을 잡고자 다투는 시기를 전국시대라 칭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주무르던 이들 외교관을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삼아 종횡가(縱橫家)라고도 하니 '합종연횡(合從連橫)'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전국책'이란 전국시대의 책략이란 뜻이다. 여론을 조작하고 반복되는 정보로 사람을 속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외교술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난세의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이 바뀌어 예전처럼 정보를 제한하여 속임수를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건만 거짓 정보의 반복, 은밀한 재정의 따위를 통해서 본질을 호도하는 책략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국가 간 책략에 활용되던 것이 이제는 사회 일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된 듯하다. 예전보다 계책을 관철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니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듯도 하다. 그러나 거짓에 기반한 책략은 효용을 따지기 전에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태가 쓸모가 있는 동안에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어찌하면 그 쓸모를 줄이고 없앨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 같은 현란한 말의 영역에서 타인의 생각을 조종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수월한 것은 그 단어들이 추상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들은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충분히 역지사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자신의 가치 기준을 정립하고 여기에 판단해야 할 사건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해보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구분될 것이다. 두 번째는 각기 다른 설명과 입장을 따져보는 것이다. 이현령비현령의 합리화를 듣자는 뜻이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각기 다른 인물이 다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상황과 행동을 구분해보는 것이다. 셋째는 성급하게 서둘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쉽게 판단해도 될 만큼 단순한 일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진위시비를 가리는데 신중하고 바른 판단이란 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더 신중할 때가 있다면 방송도 많아지고 갖은 온라인 매체까지 늘어나 말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사람 사이가 각박해지고 불신이 아예 풍조가 된 요즘이 아닐까 싶다. 깨어있는 사고가 간절한 때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9-04 윤진현

[월요논단]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나라가 바르면 민심 순후하고관청이 맑으면 백성 편안해지듯국민들이나 공직자 모두가법률 위반여부 따지기 전에밝은 양심과 청렴한 소신선공후사의 정신 지키는게 중요2016년 9월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법관 출신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2011년 제안해 2015년 3월 제정 공포된 이 법은 공무원·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을 포함하는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을 주고받는 다양한 행위유형을 금지하고 위반자를 벌함으로써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시장경제를 바탕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공직 수행의 청렴성 못지않게 일반 국민의 자유로운 언론·집회·교류 특히 대관(對官) 업무에서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명시된 금지행위 유형과 처벌 조항은 포괄적이면서도 세세하고 엄격하여, 경우에 따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까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청구의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7월 28일 부정청탁금지법의 모든 쟁점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다. 쟁점 조항은 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에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포함한 조항, 부정청탁의 개념과 유형을 규정한 조항 및 그 예외사유를 규정한 조항, 배우자 금품수수 신고의무 조항, 처벌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한 조항 등이다. 주요 쟁점 중 언론인 및 사립학교 관계자 포함 여부에 관해서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반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공직자에 포함시키는 조항이 헌법에 합치된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법률 상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나 사회단체가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정책운영 등의 개선에 관한 제안과 건의 등 공익적 활동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이는 국민의 고충민원 전달창구로서 국민의 의사전달 자유를 보장하려는 의미이다. 부정청탁금지와 관련해, 이 법은 인가·조세·채용·의결 등 14가지 직무행위 유형을 열거하고, 법령에 위배하는 청탁을 하는 자는 과태료, 청탁받고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는 징계, 수행한 공직자는 벌금형 등에 처한다. 예외규정 상, 법령에 정하는 절차 및 방법에 따라 문의·확인·신청·상담하거나 기타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부정청탁의 면책사유로 규정한 '사회상규' 는 구체적 사안에서 판가름하기 어려운 유동적이고 관습적인 개념이어서 일관되고 공정한 판결이 어려울 수 있다.위 법률규정에 의하면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회에 100만원, 1년에 합하여 300만원을 넘는 금품 기타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으면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처벌되며, 수수한 금액이 100만 원 이하라도 직무와 관련성이 있으면 준 자나 받은 자 모두 과태료에 처한다. 100만 원 이하 금품수수에서 '직무와의 관련성'을 구체적 사안에서 판별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또 시행령에 의하면, 직무와의 관련성이 있어도 식사류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까지 면책된다고 고시하고 있는데, 요식업이나 농축수산업 등 업계에서는 미풍양속과 해당 품목의 유통을 제약한다며 금액 상한선에 대한 논란이 크다.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부정청탁금지법이 금지하는 행위의 범위가 넓고 조항이 복잡해 그 위반여부를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고 공직자와 국민 사이의 소통과 교류가 경직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라가 바르면 민심이 순후하고, 관청이 맑으면 백성이 저절로 편안하다(國正天心順 官淸民自安)는 말이 있듯이 일반국민이나 공직자 모두 법률 위반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밝은 양심과 청렴한 소신, 선공후사의 정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적절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우려되는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한국 공직사회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8-28 손수일

[월요논단] 월미도와 건국절

북한의 인천상륙작전 역사 왜곡통일전에 바로 잡을 준비해야난데없는 '건국절 소동'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고 싶다면법률 아닌 개헌통해 실행해야헌법수호자는 국민이기 때문에월미도. 한국인이라면 책으로 배우거나 한 번쯤 방문하는 역사의 현장. 1950년 9월 15일 미군이 인천상륙을 한 지점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월미도 그린비치를 방문했다.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등을 돌아보면서 관광 활성화를 강조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잊고 있었던 20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1996년 겨울 어느 날. 중국 유학생을 면접하기 위해 선양에 갔다. 우리 역사에 굴욕과 참패가 무엇인가를 알려준 청나라의 수도가 있었던 곳. 눈이 사정없이 내렸다. 짧은 일정인지라 시내 서점을 들렀다. 당시만 해도 한글로 된 중국 법령집이나 북한 책들도 있었다. 작은 만화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북한판 월미도'. 호기심에 펼쳐 보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이게 뭐지. 월미도에서 최후까지 저항한 인민군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배운 인천상륙작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월미도가 북한에서 일종의 전쟁 성지이자 영웅담의 장소로 교육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둘러보니 그런 유의 엉성한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지라 만화책이라고 해도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가 즐겨 찾던 월미도가 전혀 다르게 북한에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으로서는 완전한 패배를 정당화할 구실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퇴각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인민군을 미화할 방법도 마련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에도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다. 그러나 동일한 사실을 놓고, 전혀 상반된 평가를 하는 북한의 역사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월미도 만화책을 접한 후 심란했다. 통일 후 국민들의 정신적 혼란과 오해에 기인한 위험도 걱정이 되었다. 시험으로 대변되는 교육현장에서 혼동은 더 클 것이다. 통일 대박을 말하기 전에 북한의 왜곡된 역사에 대해 바로잡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이미 우리는 일본의 뻔뻔한 역사 왜곡만으로도 신물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난데없는 건국절 소동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볼 것인가. 아니면 건국절로 볼 것인가. 건국절 법안까지 준비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미국의 보크(Bork)를 생각했다. 그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판사였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지명되었지만 보수적이며, 사법 소극주의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상원에서 인준이 거부되었다. 보크는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헌법의 제정자와 비준자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유명한 원의주의 논쟁이다. 미국에서는 원의주의가 보수주의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들은 법관에 의해 헌법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법 적극주의에도 반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미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보크라면 헌법에 명백히 선언된 원의와 다르게 주장하는 건국절 논쟁에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과 정책화. 물론 낯선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보수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지켜내는 데서 존재의 명분을 찾는다. 진보는 기득권이 만든 격차를 줄이기 위한 투쟁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다. 그런데도 한국의 일부 보수는 헌법이 지향하는 질서나 체제의 수호보다 왜곡과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헌법은 정권이나 누군가의 입맛대로 해석하거나 왜곡될 대상이 아니다. 정말로 광복절을 없애고, 건국절로 덧칠하고 싶다면 법률이 아니라 개헌을 통해 해야 한다. 헌법의 최후 수호자는 권력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8-21 김민배

[월요논단] 이간질의 정치를 넘어

'사드'라는 '황금사과'가결국 한반도에 떨어지고 말아성주 주민-외부인 프레임 이분분열의 전쟁스킬 자국민에 사용그 본의 짐작하기 두려울 지경모든 말 모아 길 찾아야 할때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의 이야기이다. 사람과 신이 두 패로 나뉘어 트로이가 완전히 초토화될 때까지 싸웠던 이 엄청난 전쟁의 시작은 '황금사과' 한 알이었다.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Eris)는 인간과 신이 모두 모이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씨가 씌어있는 황금사과 한 알을 연석에 던졌다. 이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며 다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의 분쟁은 양치기로 일하던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튀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고 사과를 받은 쪽과 받지 못한 쪽은 트로이와 아테네로 나뉘어 전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화는 인간과 역사의 진실을 대단히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명사는 당연히 '황금사과'요, 동사는 '받다'이다. '황금사과'는 비싸고 가치 있고 갖고 싶지만 이롭지 만은 않은, 말하자면 불화의 상징이며 이것은 '받다'를 결정하는 인간의 의지에 연속된다.'사드'라는 위력적인 '황금사과'가 결국은 한반도에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의 군비확장도 예사롭지 않은 마당에 중국의 동태까지 불안한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정세에 앞서 한국사회의 분열과 불화가 더욱 걱정스럽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의 한 목소리를 성주 주민과 외부인의 프레임으로 이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너머에 종북과 같은 색깔론이 이어지는 것은 자동옵션이다.그런데 본래 분열은 적을 교란하는 효과적인 기술이다. 흔히 '간계(間計)'라고 하거니와 이간질로 틈을 만들고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는 자를 간자(間者), 세작(細作)이라고 하니 '간첩'이란 바로 적국의 화합과 안녕을 해치기 위해서 파견된 이러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물로 사람을 보내지 않고도 이간질을 꾀할 수 있는 허다한 방법이 있으니 세계 각지의 분쟁과 참사의 이면에 부당하고 편협한 여론의 증폭이 있는 것은 이미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열의 전쟁스킬이 적국이 아니라 자국민에게 사용되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걸핏하면 건강한 비판의식을 가진 많은 국민을 적국을 따르는 자들로 모함하는 것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인데, 국가의 중대사를 국민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주민문제로 한정하고 함께하는 많은 국민을 '외부인'이라 제외하며 이간질하다니 그 본의를 짐작하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설마 자국민을 적국민 보듯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솟구치는 것이다. 이미 국민을 '개, 돼지'에 비한 바도 있으니 의심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것을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이라고 나무랄 수도 없지 않은가. 정치(政治)라는 단어는 바름(正)을 드러내도록( /文) 흐르고(水) 키우는(台) 데서 만들어졌다는 멋진 표현은 그저 원론일 뿐일까? 지난 4월 13일 총선, 20년만의 여소야대 국회에 국민이 요구한 것은 바른 정치의 회복이었다. 국민은 그간 한쪽으로 치우쳤던 국정의 균형을 잡고 다수의 전횡이나 독단을 막으며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협력하는 자세와 지혜를 요구하였다. 성미 급한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느리고 소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있나? 바늘 허리에 실을 매서는 바느질을 하기는커녕 귀한 실이 엉켜 못쓰게 될 위험마저 커질 뿐이다. 대화 없이, 충분한 판단과 이해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능사는커녕 오해와 분란만 키운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지 않은가.다시 '불화의 황금사과'로 돌아가자. 이야기 속의 파리스 왕자는 결국 황금사과 값으로 차지했던 아내도 빼앗기고 부모와 형제는 모두 죽고 노예가 되었으며 조국 트로이는 풍비박산이 났다. 놀라운 것은 전쟁을 야기했던 신들은 여전히 신으로서 올림포스에서 잘 살았다는 것이다. 만 사람이 만 가지 말을 하는 것을 시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 해당지역 주민이다, 아니다 나누고 배제할 일도 아니다. 모든 말들을 모두 모아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8-07 윤진현

[월요논단] 해외에서 만난 한류의 뿌리

카자흐스탄 거주 13만 고려인아리랑·도라지 불러 가슴 뭉클한국말·요리·음악 등 관심 높아무슬림이면서 다른 종교도 존중이해와 관용 정신 인상적우리민족 우수성 재발견 계기수원의 한 문화원과 국제 민간교류단체의 주선으로 휴가 기간에 가족을 동반한 20여명의 일행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카자흐스탄의 최대도시이자 구 수도였던 알마티를 거쳐 현 수도인 아스타나 일대 주요 시설 기관과 현지 가정을 방문하여 만찬과 선물교환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해 카자흐인 64%, 러시아인 24%, 기타 등으로 구성된 대통령제 공화국이다. 국토면적 남한 27배, 인구 1천770만명, 1인당 국민소득 1만3천 달러, 가용소득 2만 달러를 상회하는 자원부국이다. 그 중 일제시대에 구소련으로 건너간 고려인(카레이스키)이 1937년께 카자흐스탄 평원에 강제이주해 정착한 고려인 2·3·4세대가 현재 카자흐스탄에 13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수는 전체인구의 약 0.6%에 불과하지만 정부 부처 고위관료, 주요 은행장, 전자, 건설, 유통업계 기업인 등 사회 상류층에 다수 진출해 있다. 고려인의 높은 교육열과 성실성, 명석함과 화목한 가정 등으로 백 수십 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존중받는 민족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알마티에서 한국 스님이 운영하는 한의원을 방문했을 때 만난 70대 고려인 할아버지는 손자손녀가 현재 서울의 대학교에서 유학중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즉석에서 스마트폰으로 필자와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50대의 한 아주머니는 한민족 특유의 명랑하고 구성진 표정으로 아리랑과 도라지를 불러주기도 했다. 낯선 무슬림 국가에서 고려인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지키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수도인 아스타나에 소재한 한국문화원장에 의하면 한국말과 요리, 음악 등에 관심이 높고 배우려고 하는 카자흐스탄 인들이 많다고 한다. 2017년에는 고려인 이주 80주년 기념으로 카레이스키의 활동 및 한류문화를 소개하는 기념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마침 2017년 6월부터 9월까지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에서 미래에너지를 주제로 세계 100여국이 참여하는 엑스포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라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와 무역협회(KOTRA)에서도 주최 측과 한국관 개설을 약정해 한국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참가 준비를 하고 있다.아스타나의 한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는 젊은 변호사 부부가 만찬 초대를 하여 방문했다. 카자흐스탄 전통 속담에 손님이 가정을 방문하면 손님이 10가지 복을 가져와 그 중 9가지를 놓고 간다 하며 손님 접대에 지극했다. 뷔페식으로 테이블 가운데 차려진 음식을 일일이 우리들의 앞접시에 담아주며 많이 먹기를 권하고 만찬을 마칠 때까지 쉼 없이 음식과 차를 권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가난해 끼니가 없어도 내 집에 온 손님 접대에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전통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 변호사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도 훨씬 우리 한국인과 닮은 외모여서 몸에 몽고반점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 가족들도 푸른 몽고반점이 있다고 한다. 무슬림들이 매일 5회 철저히 지킨다는 기도시간(살라트)이 되자, 만찬 도중에 우리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방에 들어가 성지 메카 방향을 향하여 엎드려 기도하는 행사를 가진 후 다시 만찬 테이블에 나와 기도내용까지 스스름 없이 이야기해 줬다. 유일신 알라를 고집하지 아니하고 불교나 천주교 등 타종교의 신이나 철학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점점 좁아지면서도 국익 대립이 날카로운 지구촌 시대에 비정부 민간단체(NGO)를 통한 해외 민간교류를 통해 타 문화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정신을 높인다면 자기 정체성(正體性)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건강한 한류정신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7-31 손수일

[월요논단] 현직 변호사의 9급 응시와 신분제 파괴

1%가 되기 위해 각종 위법을저지르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그것은 '직업서열을 조장하는그 어떠한 행위와 편견에도강력하게 반대한다' 는 1% 신분제타파 첫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다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나향욱. 파면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가 뱉어낸 '개·돼지' 막말에 묻힌 단어. 바로 '신분제 공고화'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뿌리다. 그가 말한 사다리도 곳곳에 있다. 일류대학도, 각종 고시도. 그의 표현대로 라면 1%의 피라미드를 향한 신분상승 장치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1%는 무엇인가. 재벌이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그렇다 치고. 개천에서 난 용이라던 일부 법조인들도 부패의 대열에서 뒤지지 않는다. 사법 권력도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의 상징이 된 지금. 이 장면을 보자. '부끄러운 정도를 넘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7급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변호사 시험에는 어떻게 합격한 것인가. 로스쿨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지난 14일 사법시험 출신인 대한법조인협회가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이에 대해 로스쿨 출신인 한국법조인협회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 대한 의도적인 폄하시도에 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도 '변호사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그 변호사가 로스쿨 출신인지 아닌지가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문제되어야하는가'라면서 강력히 비판했다.그러나 7급에 이어 9급 공무원에 응시한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출신임이 밝혀지면서 정정보도와 성명서를 수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이미 5년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변호사 시장이 더 악화될 것 같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경험삼아 봤다고 했다. 시험과목도 다르고, 준비기간도 짧았는데 일방적으로 매도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도 시각은 나뉜다. '어떻게 변호사가 9급에 응시하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가 철옹성이냐. 직업에는 귀천 없다'. 이러한 상호비방에는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신분차별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때 뺑뺑이로 들어온 후배들을 무시하며, 동창회에서 눈길도 주지 않던 세칭 일류고등학교와 비슷하다. 돌이켜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최루탄 자욱한 길거리로 나선 대학생들이 있었다. 1%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채. 그들이 투쟁할 때 책상머리에 앉아 고시를 준비했던 사람들. 그들 중 일부가 판검사가 되어 동료와 선후배들을 법의 이름으로 단죄했다. 그리고 일부는 다시 사법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돈벌이에 나섰다. 그래서일까. 안주하려는 그들보다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변호사가 백번 신선하다. 이미 많은 변호사들이 소방, 경찰, 마을변호사, 시민단체에서 근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에서 전공실력과 변호사 자격으로 무장한 그들이다. 연수원 몇 기에 성적순으로 고착화된 일부 사법 권력과 달리 학문적 융합을 이룬 변호사들도 많다. 처음부터 1%가 되기 위해 각종 위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미국 로스쿨 출신들이 제3세계에서 몇 년째 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4년 용산역 앞의 허름한 건물에서 시민단체 창립을 위해 2년간 봉사한 적이 있다. 그 때 나에게 궁금했던 것이 변호사의 파견근무제였다. 시민단체에서 그것도 적은 월급만을 받고, 무한 봉사를 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참여연대를 만든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함께 했던 조희연은 서울시 교육감으로, 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기식과 박원석은 당시 간사였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길을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과 시민들은 더 큰 일을 맡겼다. 현직 변호사의 9급 공무원 도전. 그것은 '직업서열을 조장하는 그 어떠한 행위와 편견에도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성명서처럼 1% 신분제 타파를 향한 첫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7-24 김민배

[월요논단] 한글로 피어난 여성들의 애절한 사연들

문학·생활·사회 등 여러방면을밝혀내는 귀중한 기록유산으로애틋하고 진솔한 내용과 함께서체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앞으로도 전통한류로서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가 될 것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우리 민족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당대에도 한글이 임금으로부터 양반, 서민, 여성들 그리고 천민 계층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는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라는 주제로 조선왕실도서관인 장서각에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장면 장면마다 섬세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글은 어느 한 계층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계층 간의 소통과 배려 그리고 화합을 지향한 문자였다. 특히 모든 계층에서 사용된 한글편지는 안부와 정감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역시 말이 다른데 글을 남의 나라 글로 쓴다는 것은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엄청난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한글 자료들을 보면서 새삼 한글이 없었다면 이렇게 애절하고 애틋한 사연들이 기록될 수 있었을까 하는 안도감과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읽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은 아버지가 딸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시할아버지가 손자며느리에게 그리고 여성 자신들이 그 가슴 속 깊은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한글은 여성의 문자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은 더 이상 글을 읽는 독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편지뿐 아니라 문서 및 각종 기록을 직접 작성하면서 문자생활의 영역을 점차 확장시켜 나갔다. 여성의 역할이 요구되는 음식, 의복, 제사 등을 비롯하여 그들의 한평생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 남겼다. 한평생 규방의 생활을 기록한 고행록, 음식조리법에 관한 기록, 관가에 억울함을 호소한 소지, 원정, 상언 등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비로소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그중 한 예로 시집간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편지에 담겨 있는 '어머니 신천강씨가 딸 순천김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는 한 여인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편지는 1977년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일대가 비행장 건설 공사로 한창일 때 산재한 무덤들을 이장하면서 순천김씨 묘에서 발견되었다. 대량의 종이뭉치 속에서 192개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그중 3매는 한문으로 적혔고, 189매는 한글편지였다. 이 가운데 순천김씨의 친정어머니인 신천강씨가 쓴 것이 128매나 된다. 이 편지를 쓴 시기는 1560년대에서 1580년대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한글이 창제된 지 백 년 남짓된 시기에 지방의 사대부가에서 편지글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한글의 보급과 전파 속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내용은 딸의 해산 소식을 묻고, 민씨 집안에 시집간 막내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과 함께 첩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심경이 진솔하게 표현되고 있다.또 하나의 예로 한산이씨 고행록은 거의 6미터(5m 84cm)에 달하는 두루마리에 깨알같이 찬찬하게 정성들여 손수 한글로 썼는데 자신이 평생 동안 겪은 슬픔과 고통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 자손에게 보이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한산이씨는 숙종 대에 남인 사대부 유명천의 부인으로 '고행록'에는 한산이씨의 탄생부터 회갑까지의 삶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고난을 의연히 감내해 온 종부답게 비교적 담담하게 서정적으로 술회하였으나 마지막 구절에서는 지난 세월 서러움에 벅차 여성으로서 겪었던 한 많은 세상의 회한을 토로하고 있다.이와 같이 여성들이 기록한 한글은 문학사, 생활사, 사회사 등 여러 방면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아름답게 이어지는 한글로 쓴 이야기들은 내용의 애틋함, 진솔함과 함께 서체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앞으로도 전통한류로서 우리나라의 대표브랜드가 될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6-07-18 이배용

[월요논단] 더 나은 삶을 요구할 권리, 인간의 권리

1%의 군림하는 사람들이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는 헛된 것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 삶빚이 있어야 파이팅 하는 삶에우리가 동의해선 안된다"민중은 개, 돼지이다.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이 나라 교육정책의 심장부,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취중진담'이다. 격분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먼저 사람을 동물에 견주는 비속어 같은 표현이 거슬린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 입에서 나올 수 있고 인간이라고 당연히 인간 이외의 동물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니 이야말로 취중에 가능한 욕설로 치고 듣는 민중 입장에서 마주 욕설하며 한바탕 싸우고 나면 될 일이다.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 표현에 들어있는 진실이다. 2016년 현재 한국사회를 함축하는 상징으로 '수저'가 있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더니 이제는 무(無)수저까지 등장했다.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고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다. 열심히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주인의식을 갖자며 사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던 회사들은 형편이 어려워지자 제일 먼저 노동자를 해고했다. 최고학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승진해도 금수저 오너일가보다는 아래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인정하는 절망의 표현이 바로 이 '수저론'이다. 이 신계급론이 아직은 자조 섞인 비유에 머물러 있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타고 난 경제적 기반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이 정착하면 어찌될지 상상만으로도 두렵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명백한 계급이 성문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여 우리는 세상에 요구할 수 있다. 출발점이 달라도 저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라! 능력이 달라도 저마다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방법을 고안하라! 요구할 수 있어야만 한다.이는 특히 교육부가 할 일이다. 성장기에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권리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부여해야만 다른 출발점의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출발점의 격차는 줄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고 추구하고 요구할 줄 알아야 인간다운 삶의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아예 다른 출발선을 고착시켜 신분제를 공고화하잔다. 다시 골품제의 세계, 카스트의 세계로 돌아가잔다. 이것이 이 나라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 핵심간부 정책기획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로 보면 개, 돼지는 은유가 아니라 하위계급의 지능을 의심하며 가축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던 전시대 통치계급의 인식을 대변한 것이었다. 소위 1%의 눈에 나머지 99%는 밥이나 굶지 않으면 되는 개, 돼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것이 비단 실언했다는 당사자 1명의 생각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 자신도 '수저론'에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아주 가까이에 신분제의 공고화를 함께하는 동지가 있으니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이다. 한국장학재단의 중요임무는 국가장학금의 운영이다. 지난 선거 때 핫이슈였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절충한 결과 겨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관장하는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이란 자가 현재 시행되는 국가장학금을 축소하고 대출로 전환하겠다며 학생들이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고 공표하였던 것이다. '빚'이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젊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핑계로 '빚'의 굴레를 씌워 할 말이 있어도 못하는 죄인,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빚 때문에 일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분제는 이미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저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자진해서 우리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는 헛되고 헛된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일 것이다.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 삶, 빚이 있어야 파이팅하는 삶에 동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7-10 윤진현

[월요논단] 언론은 사회의 목탁

맑은소리로 어둠과 고요에 묻힌삼라만상 일깨우는 목탁처럼날카롭고 바른 눈으로 세상 비추며공명정대한 필봉으로 무지한 대중 일깨우는 언론으로서혼탁한 사회 등불되고 청량제돼야깊은 산중 호젓한 산사에서는 새벽 3시경 절 마당과 법당을 돌며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며 울려 퍼진다. 수도하는 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인 동시에 잠들어 있는 천지 만물을 일깨우는 도량석(道場釋)이다. 청정한 도량을 여는 목탁은 박달나무 같은 단단한 통나무를 둥글게 다듬고 속을 파내어 만든다. 고요한 마음으로 두드리면 맑은소리를 내는 목탁은 욕심에 흐려지고 게을러진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그 생김새도 밤낮없이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 모양을 본떠서 만든다.동이 트기도 전 새벽녘에 문간을 두드리는 또 하나는 조간신문과 함께 찾아오는 세상 소식이다. 30여 지면에 가득히 펼쳐진 나라 안팎 뉴스, 최신 정치·경제·과학 정보와 다각도의 논평, 화려한 컬러판으로 소개되는 문화·예술·스포츠 소식들이 현관 앞에 나날이 배달된다.조간이 배달되는 시간도 대략 새벽 3~5시경 인시 무렵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중에 사람이 깨어나는 시각이다. 하늘은 자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에 열리며, 사람은 인시에 차례로 깨어난다는 옛 선조들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이다. 사람을 깨우며 새 날을 연다는 점에서 속세의 조간신문과 산사의 목탁소리는 서로 상통하는 듯하다. 현대 언론은 사실 보도와 지식 정보의 전달, 논평과 비판을 통하여 무지한 대중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고 사회 여론 형성의 구심점이 된다는 점에서, 어두운 세상을 일깨워 수도 정진으로 인도하는 목탁의 울림소리에 비견되곤 한다. 신문은 속세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용한 지식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목탁은 번다한 세상사에 지치고 흐려진 마음을 깨끗이 닦아 고요한 청정심으로 인도한다. 사회의 공기(公器)이지만 경쟁 사회 속에 하나의 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언론이 당면한 문제는 높은 구독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방에 난립하여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진 오늘날, 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당겨야 살아남는다.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보도 내용이나 화면 구성에 있어서 흥미 위주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거나, 당파성을 조장하며 다수 대중의 입맛에 맞춰 포퓰리즘으로 기울기도 한다. 언론의 필봉이 대중의 눈을 흐리게 하고 여론을 오도하는 흉기가 되는 것이다.자유민주주의 대중사회에서 언론은 다수 국민 대중의 안목과 여론의 향배를 일차적으로 좌우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정치적 상업적 동기나 함량 부족의 윤리의식, 기타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되어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휘두른 필봉은 엎질러진 물이 되어 사회구성원의 존엄성과 명예에 치유 불능의 상처를 남긴다.변화무쌍한 세태 변화와 크고 작은 사건들을 선별, 보도, 논평함에 있어 언론의 날카롭고도 중립적인 직필은 중요하다. 그러나 팍팍한 일상에 고달픈 대중을 위무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안목으로 독자의 교양을 살찌우는 학문, 기예, 문화, 예술적 콘텐츠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겨울날의 양지와 여름날의 응달에는 사람들이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모인다(冬日之陽 夏日之陰 不招而人自來). 어둡고 시린 사회 이면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이 되고, 혼탁한 세태를 경책하는 서늘한 목탁소리가 되어, 부조리하고 뜨거운 세상을 보듬고 식히며 사람들을 모으고 구독률을 높일 일이다. 똑똑똑 똑또그르르~ 맑은소리로 어둠과 고요에 묻힌 삼라만상을 일깨우는 목탁처럼, 날카롭고 바른 눈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며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무지한 대중을 일깨우는 언론으로서 혼탁한 사회의 등불이 되고 청량제가 될 일이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7-03 손수일

[월요논단] 말뫼의 눈물과 브렉시트의 쓰나미

말뫼의 눈물을 내세워강제퇴직을 합리화하기에 앞서 해고자의 생계대책을 말해야… '한국형 21세기 뉴딜정책'을시급히 대규모로 실시하여이들을 흡수해야 한다말뫼의 눈물(Tears of Malmo). 조선업의 몰락을 뜻한다. 2002년 9월 5일,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 크레인이 해체돼 한국행 배에 실렸다. 조선 강국이었던 스웨덴의 국영방송은 장송곡과 함께 이 장면을 내보냈다. 인수비용 1달러에 운송비용 220억이 든 크레인이 도착한 곳이 울산 현대중공업이다. 3년 전 나는 말뫼의 터닝토르소(turning torso) 앞에 있었다. 크레인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며 한국의 조선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최근 말뫼가 관심을 끈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개원연설 때문이다. 대통령은 말뫼를 들어, 구조조정 관련 법률의 통과를 요청했다. 대통령이 말뫼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이 급박하다는 증거다.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의 쓰나미까지 몰려오고 있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손봐야 할 산업은 조선이다. 지역으로 보면 울산과 거제다. 조선사로 말하자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그리고 대우조선해양이 그 대상이다. 조선분야의 구조조정과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앞두고 조선사의 파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유일호 부총리가 울산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플랜이 있었을까. 아마도 구조조정을 위한 세금투입, 국책은행의 자본비율 제고, 사측과 채권단의 가혹한 조치, 대규모 구조조정과 강제퇴직이라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이미 파업을 결정한 일부 조선사에 대해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혜택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던 시간.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에 있었다.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기술보호 특강 때문이었다. 현재의 구조조정과 연계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협력업체에서 '기술유출사건'이 있었다. 우려했던 IMF의 망령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술유출이 일어나고, 우수한 인력들이 제3국으로 간 후 부메랑이 되었던 과거가 재현되고 있다. 강의에 집중하기보다는 수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약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이 집행되면 더 큰 비극인 '피눈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산업기술과 국가핵심기술은 기업의 '종자'이다. 그 뿌리와 줄기가 바로 기술자들이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쳐내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다. 대부분 숙련된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다. 정부는 다른 기술을 교육하거나 재취업을 시킨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이 평생을 숙련한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잣대를 정부나 채권단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과거 신발과 섬유의 구조조정 실패를 반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채권단이 저지른 실패는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와 범죄만으로도 충분하다. 말뫼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시민과 전문가, 기업과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도록 하는 일이다. 새로운 산업을 찾기보다 조선업으로 집적된 전기, 철강, 용접, 배관, 물류 등을 재결합하도록 해야 한다. 한 차원 높은 산업기술로 융합되도록 예산을 대폭 지원해야 한다. 말뫼가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덴마크 코펜하겐을 잇는 경제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속초, 포항, 울산, 부산, 거제 그리고 광양으로 이어지는 해상 산업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구조조정만이 생존의 길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말뫼에는 대량 실직에 대처하는 국가 차원의 사회안전망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말뫼의 눈물을 내세워 강제퇴직을 합리화하기에 앞서 해고자의 삶과 가족의 생계대책을 말해야 한다. 시급히 '한국형 21세기 뉴딜정책'을 대규모로 실시하여 이들을 흡수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판 말뫼의 피눈물을 넘고, 브렉시트의 쓰나미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6-26 김민배

[월요논단] 군사기록유산의 백미, 군영등록(軍營謄錄)

조선후기 군사제도뿐 아니라정치·외교·경제·사회분야 등다양한 생활사 담아낸 자료 가치있는 300년 기록속에서 평화의 의미 찾아볼 수 있어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돼야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기록문화의 나라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 13개가 등재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속된 조선왕조 왕실도서관인 장서각에는 왕실문헌 12만 권과 문중에서 기증 기탁한 고문헌이 5만 권으로 총 17만 권의 찬란한 기록문헌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조선왕실의궤, 동의보감은 이미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군영등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왕조가 문무양반제도를 갖추었음에도 무를 경시하고 문치에 치중했다고 하지만 무에 대한 중요성을 소홀히 여긴 것은 아니다. 장서각이 소장한 조선왕조의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도성(都城)에 주둔하던 중앙 군영에서 제작한 국가기록물로서 조선후기의 군사제도를 비롯하여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 기록물이다. 군영등록에는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를 지나며 형성된 국방강화와 평화유지라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역사상에 시사하는 바가 큰 기록이다. 즉 군영등록은 1615년 인조 재위기간부터 1894년 고종 대(代)까지 약 300년에 걸쳐 기록한 책으로 전체 분량은 89종 689책이며, 기록유산적 가치는 물론 기존의 연대기 자료로 대체할 수 없는 역사적 실상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자료이다.조선왕조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왕실의 호위와 도성의 경비를 담당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각 군영의 일지류, 규정집, 왕의 거동 수행, 성역 감독, 군사훈련, 시재 및 포상, 재정, 공문 모음, 인사, 민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내용은 기존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에 없는 내용들이다. 조선왕조 군영등록은 대외적인 침략이나 진출목적에서가 아니라 왕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평화적 군사조직의 기록으로서 군영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작성한 방대한 양의 1차 자료이다. 등록의 기재 방법은 한자를 이용하여 해서체와 초서체를 사용한 필사본이다. 글자체도 매우 유려하여 군사문화의 품격을 헤아릴 수 있다.조선왕조가 임진왜란이라는 대규모 전면적 침략을 당한 후 국난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설립하였던 군영의 주요 무기는 화약병기로 전환되었다. 특히 훈련도감의 군인에게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화약병기를 다룰 수 있는 군병들이 배치되었으며 이에 따라 병력자원에서 제외되었던 노비와 천민들도 군병으로 선발되었다. 조선왕조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극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군영등록에는 군인 구성에서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보니 민초들의 애환도 진솔하게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충청도 덕산에서 살았던 안사민(安七敏)이라는 노비는 전란 중에 훈련도감에 들어가 훈련 성적이 월등하여 정식무관으로 승격되어 근무하던 중 애초에 주인이라는 자가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처지가 위태로워진 절박한 상황에서 효종에게 직접 호소하였다. 임금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미 안사민은 노비신분에서 벗어났으니 노비의 주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과 함께 훈련도감에 근무할 것을 지시하여 사기를 독려했다. 또한 가족들과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운 군인들에게는 전립이나 망건 같은 품목을 파는 것을 허락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함으로써 군인들이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이외에도 제주도에 표류해 온 벨데브레이(박연)의 이야기, 하멜의 기사도 보인다. 이와 같이 군영등록은 제도사적인 측면뿐 아니라 잔잔한 휴먼스토리가 담겨 있어 조선왕조 생활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가치 있는 자료이다. 이러한 300년의 기록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6-06-19 이배용

[월요논단] 친일, 그 자기기만의 역사를 넘어

인천연극계나 문단에서함세덕을 기리고 싶은것은 당연그의 뛰어난 성과와 과실조차안타깝게 이해하는 날 올것그가 남긴 작품 깊이있게 탐구사색하며 실천하는게 중요지난 7일 인천 문학시어터에서는 인천연극협회 주관으로 '함세덕과 인천연극의 미래'라는 주제로 작은 포럼이 열렸다. 2015년이 탄생 100주년이었으나 변변한 기념행사도 준비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공유된 자리였다. 함세덕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인천이 낳은 한국근대연극사 최고의 작가이다. 그러나 친일과 월북으로 그의 문학이 제대로 조명되고 해석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친일부역행위가 명백한 인물을 기념하는 사업에 공공재원을 지원받을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불공평하게 시행되고 있는 현실이나, 과실 때문에 공적으로 기릴 수 없는 불합리한 지점을 들어 재고를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당시에는 누구나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더 이상 이를 거론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일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아예 거론되지 않거나 누구나 다 그랬다는 합리화로는 절대 극복될 수 없다. 친일의 문제는 현재에도 청산되지 않았고 이는 우리 사회 전 영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론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문학의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의 판단으로 친일문학은 일종의 자기기만의 결과이다. 친일작품을 심층 분석하면 대부분 친일부역을 강요받는 자아와 이를 용인하는 자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의 대부분 작가는 식민지 조선인이 평등하게 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친일작품의 1차 주제는 일본제국을 찬양하고 전쟁참여를 독려하며 희생과 헌신을 예찬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을 외칠수록 표현은 과격해지고 목소리는 높아졌으며 종국에는 한낱 식민지의 소모품인 주제에 제국의 지배자처럼 사고하고 산 채로 먹히면서도 그것이 영광이라고 호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현재도 남아있는 친일문제의 일원인 것은 이 같은 자기기만의 형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당연하게 남아 비판되고 반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이토록 흔하게 된 시초가 바로 여기에 있고,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솔직하게 시비를 가리지 않고 앵무새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탄생한 시초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평범한 인간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고쳐 다시 행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이 같은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봉쇄한다. '자기기만'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새로운 악행과 고통의 발신처가 되게 한다. 경과가 어떠했든 그 결과는 책임져야만 한다. 원래는 피해자요, 강요되었다는 변명이 책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친일문학을 연구하고 친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고통스러운 '자기기만'을 넘어서기 위한 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원을 받아 기념사업을 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우리에게 '친일문제'가 무엇인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 자신이 어떻게 그 후예가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함세덕을 오랫동안 공부해왔고 또 공부 중인 연구자로서 함세덕의 장점과 공적으로 그를 높이 기리고 싶은 욕심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함세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작품을 제대로 조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며 그와 완전히 같은 비중으로 그의 과오와 오판의 맥락, 그리고 그 결과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이라 믿는다. 인천연극계나 문단에서 함세덕을 기억하고 기리고 싶은 소망은 당연하다. 이는 비단 인천의 소망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함세덕의 뛰어난 성과는 물론이요 그의 과실조차 안타깝게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준비하는 것은 성급하게 함세덕에게 숭배의 의장을 입히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얄팍한 2차 콘텐츠를 서둘러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사색하며 이를 실천하는 데 있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6-12 윤진현

[월요논단] 현충일과 태극기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와21세기 문명전환의 시대에태극기에 담긴 조화통일의 원리남북통일 뜻과 길을 새겨 보는 현충일이 되었으면오늘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61회 현충일이다. 이 강토를 목숨으로 지켜온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새기며 나라사랑의 정신과 실천을 일깨운다. '호국영령(護國英靈)'은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주로 6·25전쟁 중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산화하신 국군용사들을 지칭한다. '순국선열(殉國先烈)'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먼저 죽은 열사'로 주로 일제강점기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고통과 탄압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목숨 바쳐 저항하다 돌아가신 독립투사들을 일컫는다. 즉,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삶보다 죽음을 기꺼이 택했던 모든 애국지사들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다. 생자(生者)는 사지근(死之根)이요 사자(死者)는 생지근(生之根)이란 말처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오늘날 꽃피어 있는 우리들의 삶의 밑뿌리가 되어 영원히 살아있는 거룩한 혼령들이다. 현충일을 처음 제정하던 1956년 당시 추모 대상은 한국전쟁 전사자 즉 호국영령에 한정되었다가, 1965년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부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함께 추모하게 되었다. 이후 국립묘지에는 6·25 전몰장병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대한민국 수립 이후 국가원수, 국가유공자,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되었다. 1982년 5월부터 현충일을 국정공휴일로 정하여 모든 애국지사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아울러 추모하는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현충일에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반기(半旗)로 게양하고 아침 10시에는 전 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명복을 빌며, 국립현충원, 국립묘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위령을 모신 곳을 방문하여 분향하고 헌화한다. 올해 현충일에는 가족 자녀와 함께 현충일의 의미를 새겨보며 잊지 말고 태극기를 걸어보자.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는 일제 암흑기 동안 그리고 해방과 6·25동란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항상 우리 곁에 있으며 나라의 명운과 길흉사에 따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응집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태극기는 1882년 9월(고종 19년),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을 계기로, 박영효가 '태극·건곤감리 4괘 도안'의 기를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백의민족의 국민성을 나타낸다. 가운데의 청홍으로 맞물린 태극은 음(파랑)과 양(빨강)이 나누어지고 동시에 하나 되는 우주의 궁극적 중심에 해당한다. 4방에 배치한 건(乾) 곤(坤) 감(坎) 리(離) 4괘는 음양 두 효(爻)의 조합을 통해 우주 자연의 근본 4요소를 형상화한다. 그 가운데 건괘는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는 물을, 리괘는 불을 상징한다. 4괘의 위상과 성질 및 에너지는 태극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음과 양이 상생상극(相生相剋)하며 변화 발전하는 우주와 생명의 근본원리를 나타낸다. 태극기는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음양철학의 원리를 응축하여 끝없는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과 기운을 담고 있다. 회갑을 맞는 현충일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수많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숭고한 피의 대가임을 되새겨 볼 일이다. 나아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와 21세기 문명전환의 시대에 태극기에 담긴 조화 통일의 원리와 에너지를 통하여 남북통일의 뜻과 길을 새겨 보는 현충일이 되면 좋겠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6-05 손수일

[월요논단] 홍만표의 불법과 강봉수의 감동

홍 전검사장 '거액 수임료·탈세'강 전법원장의 '73세 박사학위'많은 사람들 퇴직후 삶 걱정과인생 마무리에 대해서도 고민강 박사의 도전과 성취는돈·권력보다 더 중요함을 보여줘홍만표와 강봉수. 같은 시기, 뉴스에 등장한 인물이다. 홍만표 전 검사장.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 다만 100억대 수임료로 문제가 된 최유정 전 부장판사와 함께 '유전무죄와 전관예우' 라는 사법부와 검찰의 오랜 부패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전직 검사장의 소환을 놓고, '검찰의 추락'이라고들 한다. 진경준 전 검사장의 주식대박 문제에 이어 홍 전 검사장의 거액 수임료와 탈세가 일파만파이기 때문이다. 홍 전 검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에 직접 관여했던 터라 국민들이 보는 시선이 더 싸늘하다. 그러나 강봉수 전 법원장에 대해서는 낯선 이들이 많다. 한때 인천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그가 최근 뉴스에 등장한 것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 때문이다. 그것도 73세의 나이에. 미국에 건너간 지 7년 만에 딴 학위다. 그는 본래 물리학자가 되고자 했으나 부친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법조인이나 법대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법고을 LX'의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수억 원대 연봉을 마다하고', 퇴임 후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66세에 토플과 GRE를 보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그의 육성 인터뷰를 보면서 생각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감동이 몰려왔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분들 가운데 퇴임 이후 행태가 실망스러웠던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인들이 퇴직 후 홍 전 검사장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동아대의 조무제 전 대법관이나 인하대의 박시환 전 대법관은 후학양성의 길을 선택했다. 대형 로펌에 비하면 형편없는 월급이다. 비서도, 차량제공도 없다. 그렇기 때문일까. 전 대법관의 대학교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한다. 전 대법관이라고 해서 평교수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강의를 위해 매일 준비한다. 로스쿨 학생들의 답안지를 강평하고, 첨삭지도를 한다. 학생들의 고민도 상담하고, 교수회의에도 참석한다. 몇 달을 꼬박 쓴 논문보다 마지막 영문요약이 더 어렵다는 말에 파안대소한다. 구내식당에서 4천 원짜리 점심을 하고 나면, 함께 교내를 산보한다. 커피 한잔을 놓고, 가끔은 세상사도 함께 섞어 마신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대형 로펌에서의 예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다. 단조로운 일상은 강 전 법원장에게도 찾을 수 있다. 도미 후 7년 동안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집과 강의실 그리고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 공부에 리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취를 '전자파(Microwave)'에 관한 물리학박사 학위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데도 강 전 법원장보다 더 높다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마치고도 다시 여의도에 어슬렁거리는 법조인들이 있다. 볼썽사납다. 그렇게 돈과 권력을 탐하고자 했으면 명예와 존경을 포기했어야 한다. 로스쿨 학생들에게 말했다. 만약 전직 검사장이나 검찰총장 중에 한 분이라도 전담 국선변호사를 자원하여, 무료 변론에 여생을 보냈다면 지금 검찰을 보는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거듭되는 일부 검찰과 법관들의 부패문제는 권부에 있었던 자들의 삶의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적어도 남의 불행을 악용하여 불법적 축재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발행된 '부산법조'에서 변영철 변호사의 'DNA와 진화론에 대하여'와 김영수 변호사의 '별 반짝이는 밤 -공간의 세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전혀 다른 학문분야에 변호사들이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관심 분야를 연구하면서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퇴직 후 삶의 방식에 대해 걱정한다.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도 고민한다. 강봉수 박사의 도전과 성취는 돈과 권력보다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5-29 김민배

[월요논단] 한국의 서원, 세계화에 힘을 모으자

도산·소수서원 등 9개 서원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예비심사서 자료 보완점 지적신청기준 미흡함 보충작업 필요국민적 관심과 긍지 가지고지구촌 공유 문화공간 만들어야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로 세계에 알려져 왔다. 그러한 교육의 힘이 20세기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독립투쟁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성취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다. 국가의 지원을 안 받아도 민간인들이 자율적으로 학교를 세운 전통도 사립 명문학교 서원의 큰 특징이다. 특히 전통교육에는 지식의 전수뿐 아니라 심성을 끊임없이 바로 잡는 인성교육이 중심에 있었다. 서원 교육에는 인류의 미래지향적 가치인 소통, 화합, 나눔, 배려, 자연, 평화를 추구하는 융합적인 조화의 기능이 있다. 서원에 들어서면 수려한 자연 경관이 눈길을 끌고 주변 산세, 계곡과 어울리는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2011년 국가브랜드위원장 시절, 여러 전문가와 함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문화재청, 해당 지방자치단체, 각 서원의 유림들이 힘을 합하여 5년 동안 온갖 열정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국내외 학술대회도 수차례 열면서 더욱 서원의 유형유산으로서 가치와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교육정신에 공감한 바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서원은 9곳이다. 즉 경상북도 영주 풍기의 소수서원(안향, 1243~1306), 안동의 도산서원(퇴계 이황, 1501~1570), 안동 하회마을의 병산서원(유성룡, 1542~1607), 경주 양동마을의 옥산서원(이언적, 1431~1553),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김굉필, 1454~1504), 경상남도 함양의 남계서원(정여창, 1450~1504), 전라남도 장성의 필암서원(김인후, 1510~1560),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최치원, 857~?), 충청남도 논산의 돈암서원(김장생, 1548~1631)이다. 유네스코의 자격기준인 진정성, 완전성에 맞추다 보니 600개 가까운 서원 중 9개가 연속유산으로 선정된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원형 자체가 훼손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670여개 서원 중 47개만 남는, 대 파란을 겪었고, 6·25 때도 파괴된 서원이 많아 문화재청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대원군 시절 훼철되지 않고 현재 문화재청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을 검토해보니 9곳의 서원이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등재 작업을 하다 보니 단일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5개 도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 보니 연속유산으로 묶어서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서원에서 느끼고 배우는 감동으로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갖게 되고 진정성 있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방향을 찾는 것 같아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한편 제향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최고의 높은 지성으로 충효의 의리를 다한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과 기여했던 공로와 자세는 우리를 더욱 경건하게 한다. 또한 공동체 기숙생활을 하면서 상하질서·상부상조하는 협력 체제를 갖추게 하고 바로 지역사회와 팀워크가 이루어지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하는 지혜는 오늘날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다.최근에 유네스코 예비심사라고 할 수 있는 이코모스위원회 평가에서 등재신청 자료의 보완점이 지적되었다. 그 지적사항을 겸허히 수용하여 충분한 보완절차를 거친 뒤 재신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서원 자체유산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있었다. 그렇다고 서원의 의미와 본질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원이 지향했던 인성교육의 가치나 수많은 인재를 키워내어 사회적, 국가적으로 기여한 역할 및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조화의 극치는 세계 어느 교육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만큼 그 기준에 미흡함이 있다면 보완할 필요는 있다. 스포츠도 대표주자가 나가면 국민적 응원을 하듯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긍지를 가지고 함께 힘을 모아 세계인이 찾아와 공유할 수 있는 감동의 교육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6-05-22 이배용

[월요논단] 차별을 승인하는 사회, 다시 평등을 생각하며

현실을 오해하는 '돈키호테형'재산·권력, 인간 평등에 우선왜곡된 세계관 우리 사회 횡행부단한 투쟁·희생으로 성취한'인간·민주주의·평등'에 대해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할 때흔히 저돌적이고 무모한 인물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중세 기사소설에 심취한 라만차의 사나이 '돈키호테'는 이웃의 평범하고 어리숙한 처녀를 고귀한 공주로 오해하고 이 공주를 지키겠다, 기사의 맹세를 한다. 그리고는 풍차를 거인이라며 공격하고 죄수들을 폭정의 희생자라 단정하고는 호송행렬을 습격해 탈옥시키는 등 도처에서 '악'을 발견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며 좌충우돌 소동을 빚는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17세기 초반 스페인과 유럽에서 새삼스럽게 유행했던 중세 기사도 소설과 대결한다는 목표로 집필된 것이었다. 요즘식으로 보자면 유행하는 막장드라마가 인간의 갈등과 선택에 바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쓴 것이라고 보면 될까.그런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돈키호테'라는 탁월한 인물의 중심이 무모하고 저돌적이라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돈키호테는 말 그대로 현실을 '오해'하는 인물이다. 비현실적으로 추상화한 세계, 대체로는 역사적으로 과거를 이상화해 그 세계를 철석같이 믿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인 것이다. 용이 날아다니고 거인이 세계를 위협하는 중세를 현실로 살고 있다.물론 혼자서 중세를 살든, 고대를 살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나아가 전 시대의 옳은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라면 '이 시대 마지막 선비' 같은 낭만적이면서도 존경 어린 찬사를 바칠 수도 있다. 소설 속의 돈키호테 또한 고귀한 공주로 표상되는 중세적 가치, 달리 말하면 절대적 가치가 의심되고 선악시비가 상황에 따라 재고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여 여기에서 비롯된 영화, 뮤지컬, 연극, 애니메이션 따위에서는 멋진 로맨스로 각색되기도 한다.그러나 이런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재앙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가 전제하는 중세적 세계는 낭만적인 허다한 가치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는 끔찍한 세계, 그러니까 대다수 인간에게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이며, 하여 부단한 투쟁과 희생으로 극복해온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보자. 태어나보니 신분이 평민이나 천민인데 단지 그 이유로 상위신분의 인간 앞에서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 심지어 홀로 밥을 먹을 때도 평민은 다리가 낮은 밥상이나 아예 밥상도 없이 밥을 먹는 세상이다. 능력이나 형편과 무관하게 모든 것에 제약이 있고 심지어 더 나은 삶을 꿈꾸어서도 안 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요컨대 아주 끔찍한 세상 아닌가.그런데 이러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있다. 여전히 인간 세상에는 고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있고 자신들은 특정한 고귀한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는 옳은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상의 로열패밀리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잘못된 줄 모른다. 이들의 비현실적인 충성심은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풍차를 파괴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옹호하며 나아가 이들로 하여금 더 큰 죄를 짓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경중을 따지자면 풍차를 파괴하거나 이웃 처녀를 공주로 착각하는 따위의 행동은 당장 현실적으로 피해를 주어서 그렇지 차라리 가벼운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왜곡된 세계관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차별을 승인한다. 재산과 권력이 인간적 평등에 우선할 수 있다는 위험한 사고가 생각보다도 훨씬 넓게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극복해 온 것으로 생각했던 이 노예적 세계관이 여전히 강성하게 번영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단지 돈키호테의 정신병으로 간주되지만 그것은 '돈키호테'가 발표되던 17세기 새로이 부상하던 근대의 중심, 근대적 의료이성이 해결책으로 수용되던 시절의 답변일 뿐이다.인간과 민주주의, 평등에 대해서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5-15 윤진현

[월요논단] 가정의 달에 새겨보는 童心

푸른 신록속 따사로운 햇살과상쾌한 바람이 축복 쏟아내는 5월해맑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내곁에 머무르지만 곧 떠나버릴애틋한 자녀·부모·스승·제자에아름다운 감사 인사 건네보자계절의 여왕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지나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이 연이어 있다. 어린이를 보살피고, 부모·스승을 공경하는 정신과 실천을 일깨운다.오늘날 어린이는 존중되며 사랑받기보다는 대부분 부모의 과욕으로 과중한 학습에 내몰리거나 결손 또는 빗나간 부모로부터 학대·방임 당하며 아동인권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 사례들도 빈번해 지고 있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짓고 보급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사상에 입각해 어린이는 곧 하늘(童乃天)이라 했다. 어린이는 민족의 희망이자 미래 그 자체이며 대우주 뇌신경의 끝은 늙은이에게도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다고 갈파하셨다. 예수님도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어린이의 맑은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마음이 없이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어린이날을 맞으며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 물건이나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아님을 상기하고 내일의 주인공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개성을 펼칠 시간과 공간을 돌려주어야 한다.부모는 내가 세상에 나온 통로이자 뿌리이다. 나의 뿌리를 소홀히 하고서 내가 세상에 존립할 수 없다. 효행과 부모공경은 일찍이 모세 10계명, 유교의 효경과 불교의 부모은중경에서 으뜸가는 계율로 강조돼 왔다. 유교의 효경에 따르면 부모는 하늘이 내리신 분으로 부모를 공경함이 곧 하늘을 공경함이 되니 경친(敬親)과 경천(敬天)은 하나이다. 부처님이 설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효성 깊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세운 용주사 은중경 탑에 잘 새겨져 있다. 부모 십대은(十大恩)은 ①어머니 태에 품은 은혜 ②해산날에 고통을 이기시고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며 ④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고 ⑤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며 ⑥젖을 먹여서 기르시고 ⑦손발이 닳도록 씻어주시며 ⑧길을 떠날 때 걱정하시고 ⑨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마다 않고 ⑩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이다. 이러한 부모의 은덕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번 돌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스승의 날은 1950년대 충청도 여자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 위문과 위로 활동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돼 현재까지 학교 및 교육단체 별로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실시하며 유지되고 있다. 부모가 나의 육신을 주셨다면 스승은 나의 영혼과 정신을 기르는 은인으로 좋은 선생과 제자가 만나 지혜와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은 인생의 크나큰 축복이지만 이 나라에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 진실하게 눈 뜬 자만이 참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는 축복을 누릴 뿐이다.하느님이 세상에 제일 먼저 세우신 공동체 가정은 모든 공동체의 기본이 된다. 로마제국 붕괴의 원인도 가정의 붕괴로부터 시작됐다. 하늘 땅 사람(天地人)의 무궁한 조화원리를 설하는 주역(周易)은 가정의 도리에 관해 37번째 괘인 풍화가인(風火家人) 괘에서, 남녀가 안팎의 바른 위치에 처함이 천지의 큰 뜻이고, 부자·형제·부부가 올바른 관계를 지켜 바른 가정이 천하의 기본이 된다고 설명한다. 공자님은 주역의 가르침에 따라 가정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나라를 다스리거나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없다고 하셨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푸른 신록 속에 따사로운 햇빛과 상쾌한 바람이 축복을 쏟아내는 오월, 고단한 일상에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어두워진 본래의 시력이 회복되기를 희망해 본다. 내 곁에 살아있는 천지 자연, 크고 작은 인간관계의 대하(大河) 속에 이 순간 내가 존재하는 무한한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회복하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처럼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가 내 곁에 아직은 머물러 있지만 조만간 떠나버릴 애틋한 자녀, 부모, 스승, 제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아름다운 오월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5-08 손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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