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우리의 입시제도는 공정한가

시험지 유출·교수 자녀 공동논문 등대학입시 불공정·위법 갈수록 진화도쿄대 부정·하버드대 亞계 차별…日·美서도 계속되는 '공정성 논쟁'관련자 재량폭 줄여 정의 회복해야11.15.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찰에도, 교회에도, 성당에도 수험생을 위한 부모님의 소원이 가득하다. 성공한 자녀교육을 좋은 대학입학으로 판단하는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그 진입을 위한 대학입학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숙명여고 사태는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시험문제 유출과 성적, 교수와 자녀의 공동논문, 각종 표창과 허위 실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불공정과 위법의 사례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그것은 입시의 불공정을 넘어 우리사회의 근간을 훼손하는 우려할 만한 사건들이다.입시가 공정한가에 대한 논쟁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도쿄 의과대 입학부정 사건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도쿄 의과대가 여학생이나 3수생과 4수생 등에게는 가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불합격시켰다. 외국학교 출신자나 검정고시 출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의 입시에서 대학의 부정한 점수 조작에 의해서 101명이 불합격했다. 문제는 81개의 일본 의과대학 중에 최소 6개 대학에서 불공정한 입학전형이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가 입학 사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입학 지원자들을 지속적으로 차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은 하버드대가 학업성적 이외의 지표인 주관적 개인평가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낮은 점수를 부여하여 입학 심사에서 아시아계를 차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개성평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2013년의 경우 학업 성적만을 따지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비율이 전체 입학자의 43%가 되어야 하지만 다른 평가 요소를 도입하여 19%로 떨어졌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학업성적과 시험점수가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성적 이외의 다른 지표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학에서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폐기시키겠다고 한 트럼프 정부의 개입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을 반영한 입시정책을 두고 미국 법무부와 하버드대·컬럼비아대 등이 충돌하고 있다. 물론 학업성적과 시험점수가 대학에서의 학문적 성공이나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예견하는 최고의 지표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입학자에 대한 전형은 대학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므로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생 선발에 대한 재량이 있다고 해도 그 방법은 공정하고 타당해야 한다. 입시제도의 기본인 성적과 활동사항들이 조작되고 있는데도 그에 바탕을 둔 대학입시는 계속되고 있다. 묻고 있다. 우리의 입시는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왜 학생과 학부모들이 분노하는가. 각종 조작과 과대 실적 등에 기초한 수시제도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불거진 입시제도의 문제점들에 대해 각 대학과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분노가 들끓는데도 특정학교의 일탈로만 보고 있다. 어느 대학도 숙명여고 사태 등을 입학정책에 어떻게 반영하여, 이것을 근절시킬 것인가를 밝힌 것이 없다.대학입시에서 공정성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은 입시 관련자의 재량의 폭을 줄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주장은 수험생에 대한 예단이나 편견을 제거하고,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데 적합하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회의 수능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혹하다면 학년별 혹은 연 2~3회로 수능을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학은 사회적 책무와 대학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공정한 입시와 경쟁을 보장하는 새로운 입학 제도를 제시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도 입시에서 자행되는 각종 편법과 위법을 법적으로 엄중히 제재하고 처벌해야 한다. 입학제도는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1-11 김민배

[월요논단]정부·여당의 지역신문지원 확대를 촉구한다

디지털 콘텐츠 유통혁신 지원할발전기금 규모·사업 모두 부족지역신문 역할은 지역의제 설정등사회의 공론장으로 확대되고 있어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11월 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지역신문 콘퍼런스가 '지역신문, 새로운 시장을 향하여'란 주제로 열렸다. 지역신문의 '새로운 시장'이라니, 지역신문 콘퍼런스 자료집을 살펴봤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독자 참여형 기사나 지역주간신문 중심으로 진행된 미디어융합 이외에는 눈에 띄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운 지역신문시장 창출이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신문을 읽는 사람을 만나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신문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역신문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가 함께 가기 마련이겠지만. 지역신문의 존재가 지역의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신문의 공적인 지원이 마련되곤 한다. 경기·인천 지역일간신문은 다른 지역일간지와 비교하면 인구나 경제 여건 등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갖지만 전국 일간지를 포함하는 신문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의 최대 위기는 종이신문 전반이 직면한 미디어환경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신문이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역신문이 기획기사 등 뉴스 콘텐츠의 질을 제고한다고 하자. 뉴스 소비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 중심 뉴스유통환경 등을 감안하면 지역신문의 뉴스 콘텐츠 경쟁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는 없다.신문콘텐츠의 유통을 신문 배달과 같은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대는 흘러갔다. 지역신문의 콘텐츠가 온라인에 유통되어야 매체 영향력이 확대되고 광고 수입도 증대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신문이 발굴해낸 특종들이 네이버를 거치고 전국일간지와 방송이 받으면서 원작자로서 가치가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보는 경우가 드물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얼마 전 지역 주요 일간지들이 공동으로 칼럼을 연재 한 바 있다. 지역언론 기사를 네이버 등 포털이 의무적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포털과 지역언론 상생 법안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신문 경쟁력 강화에 지역신문 콘텐츠 유통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지역언론 기사 의무 게재 관련 법안을 야당 의원들만 발의했다. 지역신문 지원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신문을 지난 2005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규모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은 2005년 250억원에서 2018년 80억원으로 3분의 2나 축소됐다고 한다. 2019년도 정부 예산안에서는 10억 가까이 줄어 71억5천만원만 편성된다고 한다.지역신문발전기금은 감소하고 있는데, 지원대상사는 늘어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우수한 지역신문만 지원한다는 취지는 어디 갔는지? 대통령 공약에는 '지역언론 육성을 위해 지역신문 지원 확대 추진'이 포함되어 있었다.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신문발전 3개년 계획(2017~2019)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서 비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혁신의 미디어서비스(지역 언론의 다양화·지역문화와 혁신 선도·지역사회와 상생발전'이고 목표는 '역동적 혁신을 통한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우선지원대상사의 디지털 부문 매출 10% 성장)'이었다. 비전과 목표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로 설정되어 있다. 예산 탓인지, 역량 부족인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지원사업 중 디지털 부가가치 창출이란 목적에 해당되는 사업은 '기사 자료 디지털화 지원사업' 이외에는 없었다. 지역신문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 혁신을 지원할 지역신문발전기금의 규모나 사업이 모두 부족하다. 지역신문발전 3개년 계획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지역신문은 지역 의제 설정 등 지역사회의 공론장으로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다시 한번 정부와 여당의 지역신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11-04 이용성

[월요논단]축제의 계절

평소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설렘과 즐거움 안겨주는 행사일회성 아닌 지속 연구·발전시켜 '그 책 축제는 가볼만하다' 라는좋은 평가가 나와야 할 것이다매년 9월과 10월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축제들이 열린다. 지역 특산물 축제와 가을의 풍광을 만끽하기 위한 축제들이 대부분인데, 최근 몇 년 사이 각 지자체들이 책과 도서관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국 곳곳에서 책 관련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주제로 하여 축제가 기획된다는 것은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그런데, 전국에서 열리는 책 축제들을 보면 특색 있는 기획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출판사 부스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단순히 책을 전시·판매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지역의 책 축제를 그대로 들어다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행사들이 많다. 이 와중에 출판사라도 재미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다시 가져온다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책 축제에 대해 아쉬움을 갖다보면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영화 관련 축제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영화제가 있는데, 보통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한 장르의 영화를 수집해서 상영한다. 그리고 영화 상영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책을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제의 중심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그 자체가 주인이듯 책 축제 또한 책이 주인이 되어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여러 출판사를 불러 모아 책을 전시하거나 책은 빠진 채 체험 행사들로 채워진 행사가 아닌, 지역문화와 어울리고 각자의 특색을 지닌 깊이 있는 책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몇년 전 프랑스에 살면서 책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의 탄생기념식을 하면서 그 작가의 삶에 대한 전시와 함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생각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조용하면서 깊이 있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부족하여 이해도가 낮았음에도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느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책 도시 베슈렐(Becherel)의 책 축제 또한 요란한 행사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만져보고 바라보는 신비로움은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책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체험은 조용하고 진지하고 깊이 몰입되면서 설렘을 듬뿍 안겨주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경험한 책 축제에는 책의 중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그림책 '중요한 사실'(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은 그림.최재숙 옮김/보림)에서 그림책 작가는 본질적인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한 장면, 한 장면을 말해주고 있다. 눈은 차갑고, 가볍고,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오고,눈은 환하게 빛나고, 조그만 별이나 수정처럼 생겼어.눈은 언제나 차가워. 그리고 눈은 녹아.하지만 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눈이 하얗다는 거야.'눈이 하얗다'는 사실처럼 책 축제에서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여 한 명 한 명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고, 그 속에서 책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책과의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 책 행사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축제라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기다렸다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 축제들이 일회성 행사로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지 말고 '왜, 이 축제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과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금씩 발전시켜서 축제 자체가 역사를 갖게 되어 '그 책 축제는 가볼만 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10-28 최지혜

[월요논단]혐오로 얼룩진 신조어와 뇌과학의 진단

맘충·한남충·진지충·급식충 등혐오감 근거한 신조어 유통 촘촘돌발 사건 발생땐 '뇌 짜증' 감정공감여지 사라진 이해불가 유령스트레스 유발 스스로 발목 잡아자고 일어났더니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설정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의 도입부 내용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도처에 벌레가 득실대고 있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아이를 동반한 엄마는 맘충(Mom­蟲)이며, 한국 남성은 한남충(韓男蟲)이고, 뭔가 곰곰이 따져보려면 진지충(眞摯蟲)이 되고 만다. 학교 급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10대 청소년에게는 급식충(給食蟲)이라는 딱지가 붙고, 늙기도 서럽거늘 노인이 되면 틀딱충(틀니 딱딱거리는 蟲)으로 내몰리고 만다. 벌써 맘충, 한남충, 진지충, 급식충, 틀딱충을 줄줄 늘어왔으니 이 순간 나는 영락없이 설명충(說明蟲)으로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 셈이다.어디 벌레만 문제겠는가. 벌레 신분을 겨우 면했어도 찐득찐득 들러붙는 모멸을 피해내기가 또 만만치 않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성은 된장녀라는 틀에 갇히며,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요구하는 남자는 꽁치남으로 전락한다. 운전이 미숙한 여성은 그나마 실수한 근거가 드러났으니 김 여사라는 비아냥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걸까. 하다 하다 요새는 서로에 대하여 폭력 행사가 필요하다는 신조어까지 확산되고 있다. 여자는 삼일에 한 번은 패야 한다고 하여 삼일한이란 말이 만들어졌고, 이에 대응하여 한국 남자는 숨 쉴 때마다 맞아야 한다고 해서 숨쉴한이란 용어가 출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대체 누군들 이 촘촘하게 직조된 모멸적인 언사(言事)의 그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겠는가.혐오감에 근거하여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널리 유통시키고 있는 이들은 참신하고 발랄한 자신들의 감각에 내심 뿌듯해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네들은 결국 그 참신하고 발랄한 감각에 자신의 발목을 잡히고 말 터이다. 신조어를 즐기는 그네들은 벌레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뇌과학이 거두고 있는 성과에 주목한다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소이가 어느 정도 알기 쉽게 해명되지 않을까 싶다.최근까지 인간의 뇌 구조는 '삼위일체 뇌'에 입각하여 이해되어 왔다. 파충류 뇌, 변연계, 신피질로 나뉘어 있어서 이는 각각 욕구(예: 배고픔과 성욕), 감정, 이성(합리적 사고)을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짐승의 경우엔 뇌에 신피질 부위가 없는 까닭에 합리적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감정과 이성을 대립시킨 뒤,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였던 서구 철학의 오랜 전통에 입각한 관찰 결과에 불과하다. 자, 뇌의 어느 영역에도 이미 입력된 감정 지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신생아는 경험맹 상태인 까닭에 감정에 관한 개념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외부 자극에 대하여 나름의 반응을 보이면서 점차 경험을 쌓아 나간다. 예컨대 화가 나면 소리칠 수도 있고, 침묵할 수도 있으며, 노려볼 수도 있고, 찡그릴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그는 자신의 의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즉 문화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체험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보편 범주로 이월하게 된다. "분노 같은 감정 단어는 다양한 사례들로 이루어진 개체군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이런 단어들은 모두 주위 환경 속에서 행동을 가장 잘 인도하기 위해 구성된 것들이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짐승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인간은, 구체적인 감정 사례가 아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감정 범주에 근거하여 타인의 상태와 의도를 읽어낸다. 또한 타인과 뒤섞였던 과거 경험의 안내를 받아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뇌과학에서는 예측을 신체 예산의 결부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다른 운전자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혈압이 오르고, 손에 땀이 날 때, 그래서 당신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큰소리를 치고 짜증을 느낄 때" 신체 예산이 조절된다. 즉 뇌는 사태 발생 이전 시뮬레이션에 따른 에너지의 사용처와 사용량을 계산해 두었는데, 돌발적인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예산이 조절되었다는 것이다. 짜증이라는 감정은 이러한 순간 발생한다.요즘 확산되고 있는 신조어들은 혐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까닭에 배타적인 감정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이때 감정 범주에서 이미 배제된 이들의 감정은 추체험할 수 없게 된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 영역에서 도저히 이해가 곤란한 유령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유령과 맞닥뜨린 이들은 신체 예산의 급작스러운 조절에서 허우적대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타인을 벌레로 만들기에 골몰하는 이들이 제 스스로 발목을 잡아채게 되는 과정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10-21 홍기돈

[월요논단]다른 욕망을 욕망하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욕망'현대는 뒤틀린·분열된 욕망에 허덕생각없는 좀비 아닌 삶·존재·공감,그들 아닌 나의 욕망을 길어올리자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한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다. 욕망하는 본성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욕망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이며 인간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욕망의 선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는 다만 어떤 욕망인가에 달려있다. 우리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뒤틀린 욕망이나 분열된 욕망은 우리를 뒤틀리게 한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우리를 결핍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한다. 과도한 욕망은 우리를 과도하게 만든다. 그러니 욕망하라, 다만 올바르게 욕망하라. 이것은 인간 본연의 일이다.철학자들은 이 욕망을 수많은 다른 말로 표현했다. 욕망이란 말이 추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여하튼 존재를 드높이려는 욕망, 이성의 욕망, 감춰진 욕망으로 욕망을 대신 말했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문화는 보다 직접적으로 욕망을 말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말했다. 그 의지가 없으면 인간은 죽은 존재가 된다. 고대와 현대에는 다만 욕망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욕망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금 뒤틀리지 않은 욕망, 분열되지 않은 욕망을 말해야 한다. 생각 없는 욕망은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은 자, 그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이는 자이다. 뒤틀린 욕망은 뒤틀린 영혼을 만든다. 권력과 자본에, 명예와 탐욕에, 지배와 폭력의 욕망을 부나비처럼 쫓는 자들이다.다른 이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를 나라고 생각하는 분열된 자들이다. 현대 문화는 뒤틀린 욕망과 착각하는 욕망,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이게 만든다. 다시금 욕망을 욕망해야 한다. 나의 욕망을, 생명의 욕망을, 존재의 욕망을 욕망해야 한다. 힘에의 의지는 생명의 힘일 수도, 죽음의 힘일 수도 있다. 그것이 파멸의 욕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다움에 달린 일일 것이다.남북 관계가 죽음의 욕망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욕망으로 돌아서는 것은 이 시대의 힘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죽음의 욕망을 뒤쫓는 좀비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욕망에 속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금 물어보자. 우리는 어떤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일 때 우리 존재는 끊임없는 갈증과 죽음을 향해 걸어갈지도 모른다. 욕망을 채우려 하나 그 깊은 심연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을 채우는 길은 욕망을 길어 올리는 데 있다. 그 길은 그들의 욕망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죽음의 욕망이 아니라 삶의 욕망을, 소유와 지배의 욕망이 아니라 존재와 공감의 욕망을 욕망하는 데 있다. 내 존재의 심연에 가득 찬 욕망을 비우려 할 때 그 욕망은 길어 올려진다. 이 비움을 잘못 이해할 때 이 욕망은 헛된 금욕으로, 위선의 언어로, 분열된 욕망으로 나아가게 된다.현대 문화는 뒤틀린 욕망, 분열된 욕망에 허덕이고 있다.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여전히 가난한 까닭은, 눈부신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지 않은 것은, 나의 삶에도 불구하고 너의 삶이 더 욕망스러운 것은 뒤틀린 욕망, 분열된 욕망 때문이다. 욕망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이 분열된 자아는 욕망을 분열시킨다. 그럴 때 마침내 나 자신도 분열된다. 삶을 말하면서 죽임의 욕망을 따르는 자, 존재를 말하면서 소유의 욕망을 감추는 자, 자신의 이념을 열변하면서 다른 욕망을 속이는 자, 그들은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향하게 한다. 그래서 언제나 쫓기고 결핍되고, 충혈된 삶으로 자신을 분열시킨다. 분열된 욕망에 고개 숙인 문화가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 벌거벗은 욕망을 말하게 한다. 그들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 길어 올려야 할 욕망을 대신하고 있다.지금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다른 욕망을 욕망하자. 그들의 욕망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욕망하자. 그 욕망은 타인의 삶과 함께 하는 욕망이며, 살려가는 욕망이다. 욕망 속에서 생명과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그 삶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길어 올릴 수 있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10-14 신승환

[월요논단]김정은의 브랜드와 인천경제자유구역

北,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 추진한국 지렛대 삼아 다른 국가로부터외국인 투자·기술유치 전략 필요법 집행 공정성·제도적 차이 조정세제·관세등도 세심하게 정비해야'김정은 브랜드'는 무엇일가. 2015년 KDI 보고서는 그의 경제정책 브랜드로 '경제개발구'를 들고 있다. 물론 김정일 시대에도 경제특구 정책이 추진되었다. 1993년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2013년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여, 중앙과 지방에 차별화된 경제개발구 정책을 구체화하였다. 각 지역에 20여 개가 넘은 경제개발구가 추진 중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고강도의 대북제재가 실시되었음에도 올해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개발에 집중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여 주변 국가들과 긴밀한 연계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밝혀 왔다.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 성장을 이룩할 것인가. 외부의 강제에 의해 조정을 당할 것인가. 북한은 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종전선언과 대북제재의 해제를 기대하는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같은 차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접경지대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제 11회 투먼포럼'이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연변대에서 개최된다. 최종자료를 보니 7개 분과에 중국, 일본, 남북한 그리고 러시아의 교수와 전문가 200여 명이 참여한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5개 대학의 총장과 국책 연구원장 등이 참여하고, 북한의 김일성종합대 부총장과 15명의 교수가 발표한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포럼에 대거 참여하는 것을 보니 북한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경제 분야의 주제는 두만강 지역의 공동이익을 위한 방안과 전망, 법학분야는 인류공동체의 시각에서 본 동북아지역의 법제도 협력방안이다. 향후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의 사업 참여를 염두에 두고,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운용경험이 창지투와 나선에 주는 법적 시사점'을 발표논문으로 제출하였다. 최근 중국은 지린 및 창춘과의 연계 강화와 산업의 전후방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지린성 13.5규획, 훈춘시 경제개발 추진전략, 그리고 북한의 나선지역과의 연계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열리면 훈춘과 나선 그리고 러시아 자루비노의 삼각지역은 주변 국가들의 참여로 환동해권 경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중국 일대일로 전략과 함께 한국의 안보환경과 경제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창지투와 나선 경제지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경험을 상호 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국인 투자가가 중시하는 것은 재산권의 보장이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경제자유구역이라고 해도 외국인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의 경우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외국인 투자와 기술유치를 이끌어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자유구역의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과 기술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의 자본과 투자규모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은 노동기반 사업을 AI나 로봇으로 대치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의 경제자유구역을 R&D와 기술 중심으로 조성하여 상호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경우 법 집행의 공정성, 주변국가의 정치, 인프라, 기술 수준, 문화, 법적 제도 등의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전략도 마련되어야 한다. 외국인투자법제, 노동자의 권리, 기술의 지원과 보호, 세제와 관세, 출입국과 비자, 주거와 주택, 의료보험, 외국인학교, 종교적 배려, 문화적 공간 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기술 그리고 자본이 전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기준과 패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경제자유구역은 법률 속에만 존재한다. 제도적 장치와 그를 보장하는 법률이 없다면 해외자본과 기술 그리고 기업들은 이미 그것들이 보장된 국가나 검증된 경제자유구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게일사와 포스코건설의 갈등 그리고 최근 게일사 주식의 홍콩 매각 논란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준비를 하고 있는가. 중국에 또 추월당하는 것은 아닐까. 낙관보다 우려가 앞선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0-07 김민배

[월요논단]지금 대중은 어떤 존재일까?

'디지털대중' 상당한 정보력 갖추고사안에 따라 연대·분열 신속 대응정치·기업 마케팅에 휘둘릴 것인지공유하는 연결성으로 넘어설 것인지소셜미디어 역할 계속 주목해야정치인과 정당은 유권자, 기업은 소비자(고객), 미디어는 수용자(이용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의 영향은 막강하지만 요구와 성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각 기관과 기업은 데이터를 조사하고 분석해서 그 집단의 특성을 파악해 왔다. 이들을 통칭하는 대중은 근대 정치혁명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력과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에 엘리트는 대중을 통제하고 제어할 대상으로 여겨 왔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대량소비·표준화 시스템 속에서 대중은 소비자로 자리 잡으면서 정치와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이 그들의 정치와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하자 엘리트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이분법 등의 프레임으로 제어하려고 했다. 엘리트 입장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중들을 제어하고 통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매스미디어였다. 미디어 역사를 '방송(매스미디어) 시대'와 '디지토럴 시대'로 나누는 분석도 있다. 디지토럴은 디지털과 '구전·구두의'란 영어 단어의 합성어이다. 방송 등 전통적 미디어 시대는 백 년 정도 지속됐는데, 정보(스토리)를 제공하면 일방적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였다. 정보(스토리)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힘에 의해 좌우됐다. 반면에 디지토럴 시대에는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스토리)를 내놓고 대중들의 선택을 받게 된다. 정보(스토리)의 약육강식, 치열한 자유경쟁 시대인 것이다. 대중의 자율적 선택권이 확대됐다.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기관과 기업은 소비자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은 어느 때보다 많지만 친숙하기는 가장 어려운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시장인 '마켓 4.0'에서 강조되는 것도 개인화 마케팅이다. 소비자 개인의 취향, 관심, 생활방식을 반영한 맞춤형 마케팅이 가능해져 개인화된 상품과 콘텐츠 추천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인터넷기반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를 들곤한다. 넷플릭스는 이용자 테이터 분석을 통한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시스템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드라마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연출자와 연기자를 선호한다는 3천300만 가입자의 시청습관 데이터 분석을 확신해서 천억 원을 투자한 일이 있었다. 드라마 이야기 구조보다 가입자 시청습관에 더 주목했다는 것이다.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는 실제 상품을 체험하고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좋아하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은 과거와 달리 상품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검색하고 그것을 다른 이나 커뮤니티와 공유하는 능동적 소비자로 진화했다. 연결성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 소비자는 수동적인 마케팅 대상이 아니고 기업이 함께 가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마케팅이 소비자를 전략적으로 세분화하여 표적 고객을 설정하고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지금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 소비자를 참여시키려 하고 있다. 미디어나 마케팅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대중의 자율적 선택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대중지성'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개인적 선택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건 기업의 마케팅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대중은 여전히 정치적 설득과 마케팅 대상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중심으로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대중'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대중은 상당한 정보력을 갖추고 소셜 미디어로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사안에 따라 신속하게 연대하고 분열하고 있다. 정치나 기업이 쉽게 특성을 포착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집단이긴 하지만 이들도 소셜 미디어 등에 축적한 데이터로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다. 갈수록 정밀해지는 정치와 기업의 마케팅 기술에 대중의 자율적 선택성과 개성마저 이용될 것인지, 공유하는 연결성으로 이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계속 주목해야 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09-30 이용성

[월요논단]아직은 작은 아이들

불량 급식·이불 덮어 질식사…끊이지 않는 어린이집 아동학대CCTV설치 효과없이 불신 키워보육선생님 자격강화·처우 개선교사로서 자부·소명의식 회복을도서관을 운영하다보니 도서관 이용 예절을 배우거나 책을 보기 위해서 단체로 방문하는 어린이 이용자들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사립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이나 국·공립 유치원 등 다양한 곳에서 온 교사와 어린이를 만난다. 어린이 이용자들의 공통점은 보통 처음에는 조용히 책을 보는듯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뛰어다니고, 책을 던지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가만히 책을 보기는 어렵다. 교사 혼자서 대여섯 살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단체로 도서관을 방문할 때는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을 주위로 불러 모아 책을 읽어주곤 한다. 이런 어린이 이용자들이 떠나고 나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흩어진 책들을 정리하면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어린이집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잠을 자지 않는다고 이불을 덮어씌우고 몸으로 눌러 질식사로 숨지게 하거나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아이를 들어 내동댕이치고 음식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는 등의 아동학대 사건, 사과 7개로 9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주고 상한 음식을 먹이는 등 부실 급식 문제, 폭염 속 통학차량에서 미처 내리지 못해 질식사 한 사건 등 어린이집 관련 사건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 도서관에서 단체 이용자로 만났던 어린이집 교사들의 고충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집 교사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어린 아이들에 대한 학대는 정당화 될 순 없다. 다만, 어떤 범죄사건처럼 특정한 누군가가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 많은 어린이집에서 왜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매번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터진 댐의 구멍 막듯이 정부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오고 있다.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린이집 곳곳에 설치된 CCTV는 아동학대 사건을 막아내지 못했다. 사건, 사고 속에서 어린이집을 믿지 못하는 부모들은 아이들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원시키기도 했다. 녹음기를 발견한 교사들은 또 서운함과 현실의 어려움에서 오는 분노를 터트렸다. 서로간의 불신과 분노만 더욱 커져 가는 것 같다.오래 전 일이지만 영국 버밍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이집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아이가 만 2살, 4살이었다. 함께 일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곳 교사들이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교사로서 만족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해 존경의 마음과 함께 깊은 신뢰감이 생겼었다. 그들이 지녔던 자부심과 소명의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현재 우리나라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필요한 과목을 이수하면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로서의 인성이나 전문성을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맡기면서도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또 보육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근무환경이나 노동 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보수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 스스로의 만족감이나 소명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에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면서 근무조건과 처우 개선에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아직은 힘없고 작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직은 작은 나 /가사이 마리 글. 오카다 치아키 그림/김숙 옮김/북뱅크' 그림책을 조용히 읽어본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이 그림책의 아이처럼 '아직은 작은 나'이다. 아직은 자라고 있는 어리고 작은 존재이기에 국가, 교사, 부모 모두가 함께 보살펴주고, 혼자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 그림책의 작은 아이는 말한다. '이것저것 다 잘 할 수 있게 되면 더는 작은 나는 아닐 거예요. 그때는 나 어떤 아이가 되어 있을까요?'아직은 작은 어린이들을 평온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자라게 보듬어주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9-16 최지혜

[월요논단]석가모니의 비구 승가 해산과 탁발 없는 조계종

걸식은 육신 욕망 끊는 수행이자가장 적극적인 무소유의 실천타인 통해 자신 존재 깨닫는 계기한국 1964년부터 '탁발 금지'타당한 근거 어디엔가 있길 바라당분간 조계종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불교계 상황은 암울할 듯하다. 총무원장 설정을 탄핵했다고는 하나, 그간 만연했던 악습을 청산해 나갈 세력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현재의 간선제를 반대하고 있다. 선거인단 대부분이 자승 전 총무원장의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새로운 총무원장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기실 자승 전 총무원장을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의혹들도 사소하다 치부하기는 곤란한 수준이다.혼란한 불교계를 접하면서 석가모니의 비구 승가 해산 일화가 떠올랐다. 공양물의 배분을 두고 비구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자 석가모니는 승가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후 뉘우친 비구들이 하나, 둘씩 다가와 사죄하며 모였을 때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출가의 목적이 생활필수품을 마련하는 데 있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는 내용이었다."걸식이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가장 미천한 방법이다. 세상에서 걸식하러 돌아다닌다는 것은 욕하는 말이다. 하지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라서 걸식하는 삶을 산다. 왕에게 이끌려서도 아니고, 도둑에게 이끌려서도 아니며, 빚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생계 때문에도 아니다. 오직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고통·절망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괴로움의 무더기가 끝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다."(상윳따니까야- '걸식경')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 즉 걸식(乞食, 탁발)이 아닐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음식 섭취 문제는 생존에 직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식하라는 것은 음식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초기승가에서는 음식에 대한 집착 및 욕망을 막기 위하여 음식의 저장·취사를 금지하였다. 그러니 걸식은 육신의 욕망을 끊어내는 수행이자 가장 적극적인 무소유의 실행이었던 셈이다. 또한 낮은 자리로 내려갔으니 하심(下心)을 수행하는 방편이기도 하였으며, 타인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매양 깨닫게 되니 아상(我相)을 끊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겠다. 다른 한편에서는 걸식 과정에서 중생의 삶을 이해하고 포교해 나가기도 했으리라.중요한 수행 방식이었던 만큼 석가모니 역시 걸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컨대 잡아함경의 '걸식경(乞食經)'을 보면, 가사 입고 지팡이 짚은 석가가 아침 일찍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면모가 표현되어 있다. 심지어 탁발에 실패하여 굶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래도 석가는 걸식의 원칙에 따라 공양을 걸렀다. 마명(馬鳴)의 '붓다차리타'에 따르면, 인간의 숙명에 대해 고뇌하는 태자에게 사문(沙門)의 삶을 일러준 존재는 정거천(淨居天)의 왕이었다. 출가한 태자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처음 들었던 사문의 생활 방편, 즉 걸식을 이어나갔으니 끝까지 초발심을 이어나간 셈이라고 하겠다.한국의 조계종에서는 1964년부터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탁발 금지의 이유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략 네 가지 정도가 확인되었다. 승려라 사칭한 이들로 인해 발생하는 민폐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많았고, 타 종교에 대한 배려라는 주장도 있었다. 일각의 주장이기는 하나, 화폐를 중심으로 경제 체제가 바뀐 데 대한 적응이라는 해석도 있었고, 승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설도 나타났다. 글쎄, 나로서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탁발 금지의 근거로 타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쪼록 내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탁발 금지의 타당한 근거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계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구라면 마땅히 걸식으로써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시대의 치열한 수행 자세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드러난다면 더욱 반가운 일이겠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9-09 홍기돈

[월요논단]교육개혁

여전히 이 사회는 명문대학 프레임산업시대 교육 허상에 갇혀 있다정부, 근본적 위기 이해하고 있는지개혁 당위성 불구 장관 교체 그쳐'재정논의로만 맹목 대처' 어쩌나한 국가에서의 교육에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다. 교육의 일차적 목표는 개인에게 필요한 전문지식과 직업 적합성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그와 함께 교육에는 정치적이며 존재론적 목표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교육은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와 토대로 작동한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한 외적 실재를 넘어 국가를 구성하는 원리와 국민적 동의를 보편적으로 국가 구성원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정치적 함의이다. 나아가 교육은 근대 대학의 원리에서 보듯이 개인의 자아와 존재를 실현하는 문화교양 교육이란 존재론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교육의 정치적 원리는 헌법에서 규정한 대로 민주제와 공화정으로 표현된다. 또한 전문지식교육이란 측면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교육에 담긴 근본적인 교양교육의 원리가 토대로 작동한다. 지난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집회는 교육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그 과정에서의 온갖 비리에 대한 항의가 이 집회를 촉발시켰지 않은가. 촛불 집회의 혁명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는 별개로 이 과정에서 나타난 시민의 정치적 의사는 이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의 토대일 뿐 아니라, 그 목소리에 국가의 원리에 대한 구성원의 포괄적 합의가 담겨있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촛불 집회의 시작은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였다. 그런 만큼 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과 과제에서 교육이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너무도 아쉽게도 지난 1년 반 동안의 교육 정책은 이런 요구에 대해 또 다른 절망을 안겨준 시간이었다.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 정도가 지옥과도 같은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라는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했던가? 이른바 명문 대학이란 허상을 향한 부나비 같은 질주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교육이 공공재이며, 공동선이란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임에도 80%가 넘는 사학재단에 대한 공공성 개념은 조금도 실현되고 있지 않다. 분잡하게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고 혁신 경제를 외치면서도 교육은 여전히 산업시대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70~80년대 이 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시대 교육 패러다임은 이제 후기 자본주의를 넘어 포스트 자본주의를 거론하는 시대를 겨냥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는 전혀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교육 관료들이 공공성과는 무관하게 교육정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거시적이며 장기적으로 교육의 내용과 지향성을 설정해야 함에도 1년 단위로 장관을 교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관료들과 재정정책에 종속되어 지극히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 안주하고 있다. 교육개혁을 거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등교육 정책은 더 한심하다. 촛불집회의 촉발제 역할을 한 배후에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불합리함에 대한 항의가 있었음에도 그 이후 이름만 바뀐 그 정책은 여전하다. 얼마 전 있었던 가짜학술지와 가짜 학회소식을 생각해보라. 한국 대학의 현실이 얼마나 교육의 목적과 무관하고 심지어 반교육적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그저 명문대학과 산업시대 교육에 대한 허상에만 갇혀있다. 정시 비율 조정 정도로 이 불합리한 체제가 바뀔 수 있을까. 이 나라의 교육과 학문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 산업화 이후의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해 철저히 돌아보고, 교육의 목적과 지향성을 바탕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감히 말하지만 이 국가의 미래를 장담하기란 너무도 어렵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인문학, 공학 위기 선언이나 입시제도의 맹목성 따위는 이런 위기를 보여주는 수많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이 정부는 교육에 당면한 이런 근본적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는 것일까. 교육의 공공성이나 미래 지향성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공약은 그냥 정권용인가. 교육과 학문이 처한 근본적 위기와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장관 교체만으로, 또는 재정 논의만으로 대처하는 이 맹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9-02 신승환

[월요논단]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취업·진로와 직결 평가결과 민감구성원들 스스로 성찰·혁신 필요학생성공 헌신·연구성과 없다면지역·학교·경제 동시에 '도산'퇴출당한 대학들의 '마지막 경고'촌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때로는 뇌물로, 청탁으로 변질되었다. 왜 촌지 문화가 변했을까. 공직자의 경우 촌지 수수의 주된 이유가 사교육비 때문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각종 사교육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난마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점에는 항상 대학이 있었다. 어떤 정부도 교육부총리도 사교육과 입시라는 난제를 성공적으로 돌파한 적이 없다.그런 대학에 최근 위기감이 넘쳐난다. 대학 절반이 도산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다. 저출산의 쇼크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취업 절벽과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에 절망한다. 지난주 발표된 대학 2주기 구조개혁 발표가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대학 총장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재정지원제한'대학은 사실상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1주기에 퇴출된 대학의 지역경제는 초토화되었다. 식당도 원룸도 커피숍도 문을 닫았다.대학이 처한 어려운 현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지 오래다. 연구시설이나 연구 장비는 물론이고, 연구비도 부족하다. 몇 년째 동결된 임금에 대한 불만도 크다. 대학의 재정난 때문일까. 교육부가 최근 기본역량진단에서 전임교수 강의비율을 제외하였다. 대학평가를 하는 국내 언론사도 교수확보율에 대한 배점을 낮추었다. 대신 외국인 학생 비율과 기숙사 배점을 확대하였다. QS 세계대학평가는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학생 비율을 각 5%씩 반영한다. 대학이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교수 확보를 통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물론 대학평가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평가지표의 정당성에 대한 시비다. 과거의 잣대라는 비판이나 교수와 종합대 중심의 평가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상업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서는 평가 거부를 요구하기도 한다. 외형보다는 내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평가결과에는 모두가 민감하다. 학생들이나 부모가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졸업 후 취업이나 진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대학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특성화와 융·복합화 그리고 재구조화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변화에 대한 요구가 자율개선대학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되었다. 교육부는 질 높은 인재 육성과 지역 인재정착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들고 있다. 미국의 미네르바대학은 미래형 모델이다. 온라인을 통해 강의영상을 학습한 후 오프라인에서 교수와 토론하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으로 진행한다. 1학년은 미국, 3학년은 인도와 한국에서 학습한다. 입학정원 175명에, 교수 72명인 일본의 아키타 국제교양대는 영어수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49개국 191개 대학에 상호면제 조건으로 모든 학생을 1년간 교환학생으로 파견하고 있다. 미국의 애리조나 대학은 혁신의 목표로 사회 필요에 부응하는 변화 촉진,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연구 수행, 개별 학생들의 성공을 위한 헌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사회·경제·문화적 자산 활용 등을 들고 있다. 전통적인 전공 및 학과 중심 체계를 교수와 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재구조화를 추진하였다. 7만5천명의 학생들에게 250개 학부전공, 100개의 석·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과정 혁신의 핵심인 '창업'이 필수과목이다.대학이 도산하는 현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제 우리에게 대학은 무엇인가. 제4차 혁명과 지식산업사회가 도래하는데 그 핵심이어야 할 한국대학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학 구성원 스스로의 근본적인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공동체와 경제가 발전하는 선진 국가를 보면 대학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지역과 국가에 어떤 대학이 있는가 하는 것이 공동체의 생존과 경제발전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의 성공에 헌신하는 대학, 자유로운 영혼을 교육하는 대학,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두는 대학,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기관들이 지원하는 대학들은 지역과 함께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지역과 대학 그리고 경제가 동시에 도산한다. 퇴출당한 대학들이 남긴 마지막 경고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8-26 김민배

[월요논단]공룡이 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사회적 책임 필요

출범초 상업주의로부터 거리 둔'모든 사람의 텔레비전'이라는지향과 멀어져가는 것인가?막강한 영향력 고려한다면국내 서비스와 동등규제 이뤄져야글로벌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올해 상반기 국내 모바일 동영상 앱 점유율이 85.6%에 달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2017년 동영상 광고매출에서도 38.4%로 1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의 보급,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유튜브는 함께해온 것이다. 2014년 12월 MBC, SBS의 방송콘텐츠가 유튜브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다. MBC, SBS 등이 만든 온라인 영상광고대행사가 유튜브와 광고 수익 배분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포털에만 방송콘텐츠를 제공하게 된 적이 있다. 신문이 단결해서 콘텐츠 제값 받기를 하지 못해 지금 포털과 불평등한 관계에 처한 것을 반면교사로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튜브의 성장세에 지상파방송과 종편은 유튜브에 뉴스콘텐츠를 서비스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사들은 공익성이 있는 뉴스와 시사교양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유튜브가 어린이, 청소년의 미디어이기 때문에 미래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클 것이다.이미 유튜브는 10대에게 검색, 뉴스, 오락 등에서 가장 중요한 미디어가 됐다. 지난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26.7%가 유튜브 같은 1인 방송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은 기존 미디어가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스마트폰을 통해서 주로 소비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유튜브의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미치는 영향력 이외에 최근 극우채널들이 제공하는 가짜뉴스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동영상 서비스는 유튜브와 비교해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규제 역차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유튜브에 인터넷 망사용료, 콘텐츠 규제 등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게 만든 정부의 책임이 크고 검색시장 등의 점유율에 취해서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대응을 간과한 네이버 등의 대응도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구글(유튜브)은 해외 주요 광고주들의 요구가 계기가 됐지만 외설적이고 극단주의적 영상에 대해 광고를 금지하는 등 자율규제와 모니터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자율규제 회의체에 참여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내 동영상서비스와 비교하면 동등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유튜브는 "마음에 드는 동영상과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만든 콘텐츠를 업로드하여 친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다"고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는 스스로 만들어낸 영상을 공유하는 '이용자들의 튜브'(youtube)로 기존 미디어인 텔레비전(튜브)에 대비된다. 유튜브는 초기 수익모델이 안정되지 않았지만 대기업의 극단적 상업성에 묻히지 않고 젊은 이용자들이 스스로 만든 동영상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 일상을 담은 영상에서 사회적 사건을 담은 저널리즘 내용까지 담아내기도 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공동체적 네트워크로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수익모델이 불확실하고 서비스의 성격상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2006년 구글에 인수됐다.젊은 이용자들이 발견하고 열광했던 공동체적 네트워크인 유튜브는 이젠 마케팅의 주요 거점이 됐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방적 메시지 전달을 위주로 하는 광고와 마케팅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러했다. 타킷 고객이 흥미와 매력을 느낄 만한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는 '마지막 마케팅 방식'이라는 '콘텐츠 마케팅'도 유튜브가 주 무대이다. '영향력 있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에서도 구독자가 천만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가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다. 유튜브가 수익모델을 안정화시킨 대신에 서비스 출범 초기에 보여줬던 상업주의로부터 거리를 둔 '모든 사람의 텔레비전'이라는 지향과 멀어져 가는 것인가? 유튜브 규제가 만능이 아니고 자율적인 사회적 책임의 이행을 기대해야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적어도 국내 동영상 서비스와 동등 규제는 이뤄져야 할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08-19 이용성

[월요논단]강물이 흘러가도록

인명피해 컸던 라오스댐 붕괴사고제주도의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새로운것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지구 아프게 해 결국 재앙 몰고 와이젠 개발보다 보전에 힘써야 할 때라오스라는 나라와 인연이 닿아 3년째 라오스 산골마을 초등학교 한 공간을 그림책도서관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한 주 전에 사전답사로 라오스를 방문해야 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이번 라오스 방문은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7월에 일어난 댐 붕괴 사고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SK건설이 라오스에서 시공 중인 세피안-세남노이 댐의 보조댐 하나가 집중호우와 맞물려 무너지면서 인명 피해가 컸고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등 큰 어려움에 놓였다. 라오스의 남동부 아타파 주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댐은 다섯 개의 보조댐과 두 개의 본 댐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곳은 '새들 댐'으로 불리는 보조댐 중 한 곳이다. 세피안-세남노이 댐은 한국의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 태국의 라차부리전력 등이 합작법인(PNPC)을 구성해 수주했다. 2013년 착공됐고, 내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라오스에서 현재 가동 중인 수력발전소는 모두 46개에 이른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의 80%는 태국 등 인접국가에 수출한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라오스는 전력이 주요 수출품목이다. 라오스 정부는 2020년까지 전력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동남아의 배터리'가 되는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댐의 붕괴 원인이 부실 공사로 인한 것인지, 자연 재해로 인한 것인지는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인간의 과욕이 부른 참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라오스 댐 붕괴사고를 접하면서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그림책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 훼손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많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1900년대 초기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쿼빈에서 댐을 만들어서 아름다운 고향이 물에 잠겨야 했던 이야기가 그려진 < 강물이 흘러가도록 / 바버러 쿠니 그림. 제인 욜런 글/ 이상희 옮김/ 시공주니어> 그림책이다. 좋은 물, 맑은 물, 깨끗한 물, 차가운 물이 낮은 언덕 사이를 쉬지 않고 흐르고, 자연이 아름다웠던 그 마을에도 개발이라는 검은 손이 다가왔다.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면, 대신 돈을 주고, 새로운 집을, 지금보다 더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에 자연이나 아이들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댐을 만들었다. 댐은 아름답던 작은 마을 여럿을 삼켜버렸다. 오랜 세월이 지나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을 가보지만 추억도 친구도 자연도 물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없다. 이 책 속 주인공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놔 주렴, 샐리 제인."개발이란 무엇을 위해 행해지는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는 제주도의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로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제주 삼나무 숲길인 '비자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의 이익과 편리라는 목적으로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인간이 얻게 되는 이익과 편리함이 오랜 세월을 안고 만들어진 저 숲보다 더 큰 걸까? 우리는 왜 가만히 놔 두지 않을까? 무엇이든 쉽게 부숴버리고, 잘라버리고, 새로운 것을 쌓아 올려 흘러가는 물을 막을까? 좀 성숙하고 알맹이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경솔하고 망령된 행동들이 우리를, 지구를 힘들고 아프게 하고 있다. 이제는 개발보다는 보전에 힘을 쏟아야 할 때가 되었다.올 여름은 지구 전체가 이상기온으로 여느 해보다도 더 불볕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욕심이 빚은 재앙은 다시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8-12 최지혜

[월요논단]대대(待對)와 생물학적 페미니즘의 한계

싸움이라면 증오로 충분하겠지만다른 세상 그리기 위해서는희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일부 페미니즘이 우려스러운 것은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구릉 한 편에 해가 비치면 다른 편에는 그늘이 진다. 양(陽)이고 음(陰)이다. 양과 음은 속성상 반대되는 타자이지만, 적대적인 관계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각자 존재할 수 있는 관계로 이해해야 온당하다. 이를 인정한다면 음­양이라는 상반 관계는 배척 관계가 아닌, 상호 대립하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하는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 동아시아 사상가들은 '대대(待對)'라는 용어로 이를 개념화하였으며, 만물 변화의 추동 원리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동의하기 곤란한 일부 페미니즘 운동의 양태를 접할 때면 대대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마땅히 극복해야 하겠으나, 그렇다고 남성을 멸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호 대립하면서 갈등하되,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여성­남성)의 측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의 몇 가지 사례는 쉽사리 동의하기가 곤란하다.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예컨대 남성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벌어진 '성체(聖體) 훼손'을 보면, 사건이 일으킨 논란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효과는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예수는 남성이었으며, 가톨릭에서 성체는 예수의 육신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로써 성체가 훼손되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라는 남성들(서기관들, 바리새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답변하여 그네들을 돌려세우는 예수를 보건대, 그가 주장했던 사랑의 가치가 여성을 비껴서 적용되지도 않았던 듯하다.(요한복음)천주교에서 여성은 왜 사제가 될 수 없는가. 천주교에서는 왜 낙태를 반대하는가. 내가 보건대, 성체 훼손은 이와 같은 부류의 물음 혹은 비판과 층위를 달리 한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물음은 나름의 근거를 따져 물을 수 있는 반면, 성체 훼손은 타자의 믿음 체계를 멸시하고 폄훼하는 데 머물러 대화의 길을 단절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체 훼손과 같은 방식의 시도는 결국 페미니즘의 고립을 자처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말 공산이 크지 않을까. 성체 훼손 사진에 이어 남성태아 훼손 사진이 게재됨으로써 워마드는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7일 열렸던 혜화역 집회 준비 과정에 불거졌다는 논란도 요령부득이기는 마찬가지다. 남자 영유아를 일러 '한남유충(韓男幼蟲)'이라 비하하는 흐름이 있었고, 기혼자는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으리라는 따위 혐오에 근거한 예측도 펼쳐져서, 결국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의 참여는 권고하지 않기로 결론 났다고 하는데, 한국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무차별적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기혼 여성들이 배신자 취급을 받아 마땅한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남성을 불가촉(不可觸) 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에 득이 될 수 있을까.기실 생물학적 여성을 배타적인 중심으로 삼는 페미니즘의 조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2년 대통령선거를 맞아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전개하였던 국회의원 박근혜 지지는 그 전례로 꼽을 만하다. 당시 그녀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여성의 정치적 지분이 커질 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여성 지위를 둘러싼 상승효과가 파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반론이 있었고, 페미니즘 바깥에서도 이견이 제출되었다. 내 경우 여성문인동인 사이트 '살루쥬'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던 바 있다.'페미니즘이 여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박근혜가 과연 여성 정책에서 남성 정치인들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만약 당선 후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러한 성취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먼저 따라붙었던 답변은 마초라는 비난이었다. 이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한 일들이 두루 존재하며, 박근혜 지지는 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녀들이 바랐던 것처럼 정치인 박근혜는 결국 2012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그에 따른 효과도 기대했던 대로 펼쳐졌는가는 의문이다. 이 또한 내가 남성인 까닭에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싸움이 목적이라면 증오로써 충분하겠지만, 지금과 다른 세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남성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페미니즘의 일부 경향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해서이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8-05 홍기돈

[월요논단]지식인선언

수많은 영역 근본기조 변함 없어변화 요구 진보의 조급함이나정략적 발언으로 몰아가지 말라 많은 세력 담대하게 척결 안하면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7월 17일자 지식인 323명 선언에 대해 이른바 좌우협공이란 비판과 함께, '현장 감각 제로 건백서'로 '속대발광욕대규'로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앞의 비판은 한겨레신문, 뒤는 중앙일보의 칼럼이니 어쩌면 좌우협공으로 비치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런 선언을 좌우협공 따위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정략적이다. 촛불의 열망을 딛고 선 이 정부에게 이 선언은 가깝게는 사회경제의 담대한 개혁을 요구하거나 크게 보면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력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공성에 바탕해야 하며,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맹목적 자본주의에 의한 끝없는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공정함이란 주장이 담겨있다. 또한 그동안의 일면적 경제성장에 대한 강박을 넘어 사회와 경제 체제에 민주와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더 멀리는 지겨운 종북논쟁을 넘어 이 땅의 지속적 평화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했을 것이다.여기에 좌와 우가 자리할 곳은 없다. 촛불 시민은 흔히 말하는 좌우나, 진보 보수란 프레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간다운 사회를 요구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성향 분석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미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에 따른 개혁의 담대함을 요구한 것이다.(2017년 10월 30일자 월요논단) 너무도 오래 우리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개발독재 시대를 넘어서는, 이후의 사회와 인간다움에 대한 요구를 좌우협공 따위의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 선언의 의미를 지나치게 정쟁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촛불이 척결하기를 바란 것은 보수가 아니라, 특권을 독점하는 음습한 수구 세력이다. 그 세력을 우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런 세력은 벌써 사라져야 했음에도 여전히 우란 이름으로 이 정부의 실패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 이 선언을 좌우협공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런 세력에게 정치적 권리를 합리화시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차라리 맹랑한 비난은 중앙일보 송호근의 글이다. 그는 이 선언에 대해 "정말 미쳐버리기 전에 외치고 싶다. 제발 현장에 가봐라"고 질타한다. 내가 아는 한 이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더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이들이다. 이렇게 질타하는 그는 어느 현장에 있었는가, 혹시 을과 병이 죽어간다고 외치는 그 현장이 아니라, 이런 구조적 모순을 만든 갑들이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현장은 아니었던가. 나는 을의 현장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 이와는 별개로라도 그가 주장하는 해법은 정면으로 촛불 정신에 반대된다. 을과 병의 싸움에 을의 양보를 말하고, 규제완화를 말하는 주장 어디에 이 정부가 해야 할 개혁의 정신이 담겨있는가. 구조적 모순을 초래하는 갑의 체제에는 침묵하고, 그나마 을이 가진 한 줌의 밥그릇을 병에게 양보하는 것이 대안인가. 건물주, 가맹점주, 대기업의 약탈적 구조와 시스템을 규제하라는 촛불의 요구에 규제완화를 말하는 것이야 말로 '속대발광욕대규'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의 문제는 특권적 지대를 독점하는 그들의 배타적 결탁에 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그들만의 축제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이 사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사법농단이 얼마나 반민주적이며, 우리 사회의 근본적 합의를 도외시하는 반체제적 사건인지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기업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지대독점 세력이 얼마나 이 사회의 암적 존재인지 애써 감추려 한다. 기무사 문건에서 보듯이 벌써 사라졌어야 할 독점적 세력이 여전히 이 정부의 실패를 바라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사회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영역에서 이 사회의 근본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교육영역에서만도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지식을 전 산업화 시대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만,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그러니 이 개혁 요구를 진보의 조급함이나 정략적 발언으로 몰아가지 말라.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그 세력을 담대하고 당당하게 척결하지 않으면 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7-29 신승환

[월요논단]계엄령 트라우마

80년대 경험 집대성한 증보판 소름기무사 문건은 일종의 헌정유린권력찬탈 향한 기획이라는 의심헌법 파괴하고 국민에게 총 겨누는악마의 지침서란 사실 용서 못해트라우마(Trauma). '큰 상처'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은 잊거나 되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상처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때가 있다. 최근 기무사가 준비했다는 계엄문건 보도를 보면서 40년 전 상처가 떠올랐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던 1979년 10월. 대학은 물론 강의실에까지 경찰과 기관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 사라지자 대학에는 바로 휴교령이 떨어졌다. 대학에 탱크와 군인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 일상이 되었다. 종강도 없이 방학을 했다. 성적이 리포트로 대체되는 사이 12·12가 발발했다. 상황을 짐작한 학생운동권 일부가 잠수를 탔다. 겨울은 길었다. 고시를 핑계 삼아 암자로 도피했던 친구가 월정사 근처에서 조난을 당해 짧은 인생을 끝냈다. 남몰래 민주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던 친구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슬펐다. 그리고 서울에도 봄이 왔다. 하지만 3김에 대한 희망은 정치적 욕망과 뒤섞이면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계엄해제를 외치며, 최루탄으로 범벅이 되는 날들이 길어졌다. 꿈도 대학생활 마지막 봄도 5월 17일 계엄령 확대로 사라졌다. 대학은 또 문을 닫고, 비극적인 광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80년 계엄령은 크든 작든 국민들의 인생을 흐트러 놓았다. 그해 5월 광주로 입영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던 친구는 다른 시민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는 오랫동안 방황을 한 후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아마 계엄령이 없었다면 그도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많은 친구들의 삶이 헝클어진 것은 계엄령과 쿠데타 때문이었다. 헌법 제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하며,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2017년판 국군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이 문제가 된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 등의 조치를 통해 계엄해제를 할 수 없도록 한 내용 때문이다. 기무사는 일상적인 계엄업무 편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명백한 헌법파괴와 내란 예비 음모죄에 해당한다. 그것이 바로 계엄령을 획책한 집단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 80년대 계엄령의 경험을 집대성한 67쪽짜리 2017년 증보판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한다는 옛말을 다시 떠올렸다. 기무사의 계엄문건은 일상 업무를 넘어선 일종의 헌정유린과 권력찬탈을 향한 기획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기무사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악마의 지침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는 군의 존재 이유를 포기한 것이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지금도 러시아나 중국의 전투기들이 한반도를 넘나든다.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다. 혹시나 북한의 재래식 무기들이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의 141개 방위산업 기술이 안전한지도 걱정이다. 외국의 정보기관들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자국의 국민 보호와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군인들은 촛불에 맞서 80년대 계엄령을 복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평화를 꿈꾸는 한반도에서 계엄과 쿠데타를 획책하는 일부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다. 일부 군인들의 권력욕망에 국민들의 삶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자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다시 상처를 들여다본다. 민주화를 바라던 80년대에 서울의 봄이 실현되었다면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계엄령이 없었다면 친구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더 이상 계엄령의 트라우마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7-22 김민배

[월요논단]검색인간과 인공지능 알고리즘 투명성

알고리즘의 투명성 제고는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 할 수 있게정보 신뢰도 높이는 소중한 원칙갈수록 뉴스와 여론 영역에서지배력 강화… 책임성 또한 중요낯선 용어였던 '알고리즘'이 이젠 우리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포털의 검색서비스와 추천서비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추천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정보기호학자인 이시다 히데타카는 우리가 '검색인간'이 됐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정보와 지식을 얻는데, 검색으로 세계가 열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우린 인터넷에서 네이버, 카카오, 구글의 첫 화면에서 출발해서 검색을 거듭하면서 몇 분이 지나면 각기 다른 화면으로 이용한다. 검색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검색인간은 검색과정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검색어로 자신을 개인화하고 있을 뿐이다. 검색어는 순위가 매겨지고 광고가 연동되는 존재이다. 포털서비스 이용자는 화면 상단에 노출되는 기사와 자주 사용되는 언어(검색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 검색을 통해 그 이력이 포털에 축적되어 개인화된 마케팅과 광고의 대상이 된다. 검색이력을 들여다보면서 소비경향을 읽어서 이용자들에게 개인화된 맞춤형 광고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검색최적화(검색사이트에서 자사 콘텐츠나 페이지를 상위 페이지에 노출시키기 위한 작업)'란 용어가 마케팅업계에서 쓰인 지도 오래됐다. 개인의 소비활동이 알고리즘화되어 관리되는 알고리즘형 소비가 등장한 셈이다. 더 나아가 이시다 히데타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규율되어 모든 정보가 추적되고 방향이 정해지는 원리적으로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알고리즘형 통치사회가 등장한다고 지적했다.알고리즘의 상업적 활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여론형성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포털의 기사배열과 기사 추천 알고리즘일 것이다. 포털이 언론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최근 여러 수용자조사에서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한 응답자가 50%를 넘어섰고 법원도 여러 차례 포털의 언론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다만 포털이 기존의 언론과 성격이 같으냐 아니냐만 남았을 뿐이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인터넷 뉴스서비스'라고 불리는 포털의 뉴스서비스는 기사 배열의 기본방침과 책임자를 밝히도록 되어 있다. 기사배열에 사용된 알고리즘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 장치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포털의 기사배열방침들은 저널리즘의 원칙과 같은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포털이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반으로 기사 배열과 기사추천을 하고 있다면, 기사배열 방침 공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기본 구성요소 등이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지난 6월 18일 학계, 언론계 등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네이버 뉴스 기사배열 공론화포럼'은 공청회를 통해 뉴스편집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람 편집과 병행하고 그 내용을 공개하며 활용 결과에 대해 주기적으로 외부 검증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네이버가 이 제안을 제대로 수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포털의 뉴스 알고리즘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독점적인 뉴스 유통권력 때문이다. 지난 5월 9일 네이버 대표이사의 말처럼 "네이버 첫 화면 최상단에 배열된 기사에 3천만 명의 시선이 집중되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뉴스 유통권력이 분산되지 않고 이렇게 집중되면 여론을 획일화되고 정치·경제 권력의 통제와 조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최근 독일 메르켈 총리는 알고리즘의 투명성 결여는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키고 토론문화와 공론장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알고리즘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개발자의 세계관, 성향, 외적 압력이 개입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편향될 가능성이 높다. 뉴스 등 사회적 정보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생각과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고리즘의 투명성 제고는 우리가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정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 된다. 알고리즘이 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뉴스와 여론 영역에서 알고리즘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책임성과 투명성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검색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때가 온 것이다./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

2018-07-08 이용성

[월요논단]취준생 '선아'를 누가 보듬을까

젊은이들 희망 느끼지 못한채 불안"살아남고 싶어!"라고 외치기만정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 정책한시적 아닌 복합적 원인 잘 반영다각도로 모색 지속적 추진돼야7월부터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됐다.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손으로 꾹꾹 눌러 뽑은 사람들이 내건 공약들이 얼마나 지켜질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이런 기대와 걱정의 중심에는 청년실업에 대한 비중도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다. 나는 청년기를 훌쩍 지났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애달픈 마음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하는데, 청춘의 아픔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엔 그들의 짐이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청춘들이 좀 덜 아프게 도와줄 순 없을까? 올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5월 기준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뿐만 아니라 취업자 수 증가치도 낮았다.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청년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함에도 취업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청년층의 경제활동 소외는 생계유지 곤란과 주거문제를 비롯한 줄줄이 부작용으로 이어져 한국경제 성장의 둔화를 낳는다. 지금은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따질 수도 없는 지경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난이 단순히 일자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경직성, 중소기업 기피 현상 등 다양한 문제가 얽힌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와 함께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니트족과 캥거루족이다. 이것은 최근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1990년대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처음 나타나 확산되면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은 경기회복과 함께 고용지표도 개선되고 있다. 미국은 완전고용의 단계까지 왔다고 하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올해 기업들이 고용난을 겪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3포 세대를 넘어 이제는 9포 세대라고 한다.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건강, 외모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런 힘든 세태를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선아(문인혜 글·그림/이야기꽃)'. 이 그림책 속의 선아는 취준생이다. 가진 것이 없는 선아는 생계유지를 위해 매일매일 숙소 문을 나선다. 이곳저곳 면접을 보고, 힘없이 굶주린 배를 안고 숙소로 돌아오는 날이 반복된다. "졸업한 지가 꽤 됐네요. 그동안 뭘 했지요?, 결혼은…?"세상은 참 많은 것을 취준생인 선아에게 묻는다.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정답은 어디에 있는가? 취준생인 선아는 사회에서 정한 어떤 금지의 선을 넘어본 적도 없다. 올곧게 살아온 선아는 왜 불안해야 하는가. 취준생인 선아는 외친다. "살아남고 싶어!" "살아남고 싶어!"라고.우리 사회는 늘어나고 있는 많은 '선아'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정부는 특단의 한시적 대책과 구조적 대응을 병행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일자리위원회는 현재의 청년고용 위기를 '재난 수준'으로 판단하고 한시대책으로 취업청년의 소득·주거·자산형성, 고용증대기업 지원 강화 및 연 12만개 창업 유도, 지역 및 해외취업 등 새로운 취업 기회 창출, 군장병 교육훈련, 일학습병행제 도입 등 즉시취업 역량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조적 대응으로는 규제개혁 및 혁신성장 가속화 등 민간기업 일자리 창출 지원을 비롯하여 인적자본의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체계 혁신과 노동시장 구조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한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복합적인 원인을 잘 반영하여 다각도로 깊이 있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청년들도 본인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임을 잊지 않고 지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필요하겠다. 부디 한 나라의 중심에 서 있는 많은 '선아'같은 청년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오늘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7-01 최지혜

[월요논단]페미니즘과 시선의 권력

신지예 서울시장후보 선거포스터여성단체 상반신 탈의 시위 등…시선처리 논란으로 벌어지는 사건남녀간 권력 재분배 함의 거부 당연역사는 기득권 저항 넘어서며 발전시선(視線) 처리는 권력의 문제이고, 존재 방식의 문제이다. 수컷 냄새 풀풀 풍기며 기선을 제압하려는 사내는 그래서 "뭘 꼬나봐. 눈 깔아라." 으르렁대며 상대를 위협한다. 폭력 현장에서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는 도처에 잠복해 있다. 남녀 관계라고 예외일 리 없다.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 논란이 최근 시선 처리를 매개로 펼쳐지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시선 처리에 내재해 있는 남녀 간 권력 문제가 이제 수면 위로 부상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먼저 지난 2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이 전개했던 상반신 탈의(脫衣) 시위를 보자. 이들은 페이스북에 따져 물었다. 남성의 맨 가슴 사진은 문제가 안 되는데, 여성의 맨 가슴 사진은 왜 음란물로 분류·삭제되어야 하느냐. 이러한 항의는 바라보는 주체의 문제로 귀착한다. 남성의 가슴과 달리 여성의 가슴이 음란한 것은 남성의 자리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때 여성은 바라봄의 대상(객체)으로 전락하여 '보여주다/ 보여주지 못한다' 판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불꽃페미액션의 시위가 일부 남성들의 비난에 직면한 까닭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시선­권력 체계에 교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하고 출마했던 신지예 후보는 선거 포스터로 인해 논란에 휘말렸다. 포스터는 반측면 얼굴과 도도한 시선, 자신감을 내비치는 다문 입술의 옅은 미소가 특징이었는데, 이는 도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기실 수성(守成)하려는 후보가 안정감을 내세우는 반면, 공성(攻城) 위치에 자리 잡은 후보는 진취성을 강조하는 것이 선거 전략의 상식이다. 그러니 신지예 후보의 포스터는 별 문제될 바가 없다. 그렇지만 그 도도한 시선이 페미니즘과 결합하는 순간, 이는 기존 시선­권력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자리매김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포스터를 찢거나 뜯었으며, 또 누군가는 담뱃불로 눈 부위를 지져 버리기까지 했다. 모 변호사가 "개시건방진" "더러운 사진"이라면서 "나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고 분노했던 것도, 감정의 근원을 의식하였을지 모르겠으나, 지켜야 할 무언가에 대해 도전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터이다.아주 오랫동안 남성은 사회 활동 가운데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 왔다. 정치라든가 경제 영역, 사회 조직 등에서 누군가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여부가 남성의 존재감을 결정해 왔다는 것이다. 문명에 입각한 제도가 구비되기 이전에는 육체 능력이 존재 증명의 지표였으리라. 그러한 까닭에 남성의 시선은 힘의 행사 여부가 결정되는 외부를 향하여 고착하게 되었다. 반면 여성은 제한된 공간 내에 머무르는 상태에서 남성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 왔다. 남성의 시선을 경유하여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여성의 시선이 유지되어 온 것은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여성은 자신이 타인, 특히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묶이면서 외부가 아닌 스스로를 주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존 버거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을 다루기 전에 우선 관찰한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녀의 처우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깨달은 여성은 비로소 그 순서를 스스로의 내부에 수용하게 된다. 관찰자로서의 여성은 피관찰자로서의 여성을 타인에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보여준다. 이와 같이 그녀 자신에 의한 그녀의 모범적인 행동은 그녀의 사회적 존재를 결정한다."('이미지') 시선­권력 관계는 이처럼 관찰자로서의 남성과 '모범적인' 여성의 공조를 통하여 그동안 커다란 불협화음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남성 보호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불온한' 여성들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존중받고자 한다. 제한된 공간 바깥으로 뛰쳐나와 사회의 당당한 일원임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선 처리 논란은 그로 인하여 벌어지는 사건이다. 물론 이는 사회적인 존재 방식에서 남녀 간 권력 재분배를 함의하고 있으므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는 언제나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면서 발전해왔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6-24 홍기돈

[월요논단]사법농단을 넘어서는 길

예외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법의 정당성 무너지면 붕괴의 길로그 상태 넘어 정상성 회복하는 길은자신의 부정 돌아보는데서 시작된다역사는 또다른 정상 찾아가는 과정지난 정부 시절 있었던 사법농단 사건은 사태의 심각함에 비해 너무도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최고의 정치권력과 최고의 법치권력이 음습한 거래를 통해 법을 사사로이 적용했다고 한다. 이런 불법적 거래 의혹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 운운하는 말은 사태의 본질에서 한 참을 벗어난 피상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에서도 권력은 그 구성원의 합의와 동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때 그 정치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은 법에 대한 동의와 수용에 있다. 그런데 그 법이 마음대로 집행된다는 것은 이 정치 체제의 정당성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이제 그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했으며, 그 순간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정지되었다.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이 판결을 무시하고 계속 청와대에 머물겠다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가 전체가 파국에 이르렀을 것이며, 생각하기도 싫은 폭력과 혼돈이 몰아닥쳤을 것은 자명하다. 다행히도 그는 법을 수용했으며 그래서 법의 정당성과 국가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법이 법을 판단한다는 이들에 의해 정말 '제멋대로' 작동한다는 엄청난 일이 실제였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본질은 우리가 합의한 정치체제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정당성을 잃었으며, 그래서 이 모두가 유효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죄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최고의 모순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법을 집행하는 최고 기관의 책임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난 6월 7일 전국 법원장들이 내놓은 입장이란 것이 기껏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이었다. 법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들이 스스로 합법적 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법에 의해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이들이 스스로 그 정당성을 부인하고 있다. 자기부정과 자기모순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그나마 일부 부장판사들이 이러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하여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깊이 우려하고",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사회를 유지하는 최후의 정당성이 무너진 마당에 신뢰 운운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니다. 지강헌이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사실이 되었다. 누가 판결에 불복하더라도 그를 정당하게 심판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체제 정당성이 무너진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이제 우리는 왜 법은 언제나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알게 되었다. 왜 수많은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처벌받는지 알게 되었다. 평범하게 살던 이웃 아저씨가 왜 갑자기 무서운 간첩이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왜 어떤 사람은 수십 억, 수백 억원을 받아도 죄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몇 천원의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지 알게 되었다. 왜 그들은 퇴임 후 몇 십억원이라는 불가능한 돈을 수임료란 이름으로, 전관이란 이름으로 부당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잘못이 없어도 감옥에 갈 수 있으며, 죽을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법이라는, 정당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부당한 법집행에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예외가 정상이 된 상태에 처해졌다.예외 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이다. 법의 정당성이 무너진 사회는 붕괴의 길로 내닫게 된다. 이 예외 상태를 넘어 정상성을 회복하는 길은 자기가 초래한 부정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예외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그들은 멍청한 것일까, 아니면 악한 것일까. 스스로에서 비롯된 부정을 넘지 못할 때 그 자신이 부정되고 해체된다. 역사는 예외에서 또 다른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예외상태를 넘어서는 새로운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문법은 무엇일까./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6-17 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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