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한국사회를 믿습니까

설날 밥상위 이야기 보따리는금융기관의 카드개인정보 유출정부 조류인플루엔자 대응책기대 저버린 국회 정치개혁 등여전한 '저신뢰 사회' 입증뿐…이제 국민은 누구도 믿지 못한다엊그제가 설날이었다. 가족 친지들이 모여 설날 밥상 위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화제는 카드개인정보유출 사건으로 향했다. 어느 누구 하나 정보가 온전한 이는 없었다. 정보유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정부와 서로 간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머릿속에 1998년 설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97년 말 IMF 경제위기 직후의 명절이었다. 친척들 상당수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친지들은 졸업 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한숨만 내쉬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다. 당시 IMF 경제위기에 대한 원인분석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저신뢰사회'라는 평가였다. 직접적으로는 외환 유동성 문제였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내부와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문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학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나며,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경제적 자산'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한국 사회를 '저신뢰사회'로 지목한다.카드개인정보유출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한국사회는 '저신뢰사회'로 입증되었다.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창조경제를 반석에 올려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1월 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사회의 신뢰는 100점 만점에 57.39점으로 나왔다(전국 1천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P). 특히 30대는 우리 사회 신뢰도를 가장 낮은 51.36점으로 평가했다. 사실상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불신 사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의 투명성에 있다.못 믿는 사회로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책임은 우리 사회 지도층에게 있다. 지도자가 되려고만 했지 단 한 번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믿음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10점 만점)에 국민의 대표회의인 국회는 3.4점으로 최저수준이었다. 행정부는 겨우 중간 턱걸이한 5점이었다. 카드개인정보유출로 혼쭐이 나고 있는 금융기관은 중간에도 못 미치는 4.7점이었다. 여야 정쟁 현안뿐만 아니라 대기업 비리 근절 및 사회 기강을 주도해야 할 사법부 역시 중간에도 못 미치는 4.6점이었다.'저신뢰사회'의 피해는 단순히 구성원간의 불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신뢰 회복 없이는 본격적인 경제성장도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래는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거래 비용으로 인해 창조경제는 고사하고 불신경제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정부에서는 추가적인 개인 정보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못하고 있다. 너나할 것 없이 카드를 재발급 받거나 해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정부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 대응 관련, 닭과 오리를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온갖 루머가 사실 확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국민들을 위해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수를 늘리기로 하는 등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면서 절대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결국은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이미 누구의 약속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법과 원칙'보다도 '법과 원칙'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신뢰가 먼저다. 남북관계를 개선할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신뢰' 역시 누구의 신뢰인가. 후쿠야마 교수는 '한 사회에서 신뢰야말로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믿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사회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4-02-03 경인일보

지방선거의 틀 짜는데 민의 반영해야

지방의회 23년·민선 19년청년기 맞은 지방자치광역선거 후보 정당내민주적 절차로 선정하고기초선거 정당공천제는민주주의 말살로 폐지돼야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연일 새로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 흐름을 크게 보면 하나는 서울특별시장 같이 향후 권력의 향방을 가늠할 큰 판에 누구를 후보로 내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공천제의 폐지 여부 등 선거 틀을 어떻게 짜는가 하는 이야기 들이다. 권력을 잡으려는 측과 수성하려는 측의 전략과 지략 혹은 술수들이 읽혀진다. 이를 바라보는 것이 그다지 재미있지 만은 않다. 현재의 지방선거제도가 주민들의 민의를 잘 반영하여서 지방자치를 신장시키고, 지역발전을 이루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이러한 논의는 보이지 않고, 어느 정파 어느 후보가 유리한가 하는 논평과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샅바 싸움만 구경하는 까닭이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 정당공천제 여부 등 선거판 룰도 못 정한 게 답답하기도 하다.이 와중에 눈길을 끌던 것은 김한길 민주당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회동이다.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는 화두로 유명한 연애를 했던 김 대표가 어떤 화법으로 안 의원을 포용할 지도 관심이었다. 모호한 화법으로 늘 그 의중을 궁금하게 만드는 안 의원이 새정치를 어떻게 만들어갈 지도 관전포인트였다. 두 사람이 만난 결과는 지방선거의 기초공천제 폐지에 대한 합의와 야권연대에 대해 '아직은'이라는 두가지였다. 이를 두고도 새누리당은 야합이라고 비난한다. 뭐가 야합이란 말인가? 하여간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공세다. 그런 거 말고 현재 가동중인 정개특위에서 논의해보자는 식의 화답이 더 세련되지 않았을까?지금의 시점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리 지방정치사에서 얻은 교훈을 지방자치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잘 반영하는가 하는 것이다. 각 정파들이 이런 점을 잘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자치 부활 후 지방의회로서는 1991년 지방선거 부활 후 7기이고, 1995년 민선수장 선거후 6번째를 뽑는 선거이다. 해수로 계산해 보면 각각 23년, 19년이 지났으니 이제 우리 지방자치도 한창 청년기이다. 청년기는 성인으로 진입하기 전의 시대이다. 심리사회이론가인 에릭슨은 청년기란 정체감을 형성하고 자기상을 확립하는 역할실험을 한다고 한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우리의 지방자치도 이젠 점차 제도적으로 안정이 되어 가느냐마느냐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지방자치는 '진짜 민주주의'를 하자는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곤 오랜 싸움 끝에 1980년대 민주화투쟁의 결과물로서 지방자치를 얻었다. 1990년대 중앙집권론자들과 지방분권 세력과의 길항, 2000년대 중앙집권으로의 반동의 움직임, 그 과정에서 지방권력을 쥐려는 정파들의 싸움과 이합집산 등이 지방자치 제도적 실험의 근저를 형성하였다. 의정비제도, 기초의원공천제, 중선거구제 도입 등 숱한 제도 변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지방자치가 한 국가의 정치행정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데는 성공하였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학교라 설파한 J. 브라이스의 말이 실현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두 가지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첫째, 광역지방자치선거의 민주적 절차에 의한 후보자 선정이다. 광역자치단체의 후보자를 공천하는데 있어서도 정당내의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후보를 내보내주기 바란다. 시·도지사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시·도의원 후보의 경우에는 여전히 지역구의원의 손에 달려있다. 상의하달식으로 결정된 후보자가 정당공천으로 선거에 나서게 되고 중앙의 이슈에 의해 선거운동이 진행되면, 지역유권자와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된다. 시·도의원들이 지역의제를 붙잡고 유권자와 교감하면서 성장해야 지방자치가 민주주의학교라는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둘째 기초지방자치선거에서 정당공천제의 폐지이다. 민주주의 학교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하향식 정당공천제는 지방의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원흉이다. 약속 잘 지키는 이미지로 권좌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이 한 약속이라고 세종시 이전을 강행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이 분명하게 공천제 폐지를 말해야 한다./허 훈 대진대 행정학 교수

2014-01-26 허 훈

유권자는 바보다

정당공천은 당선 '특급티켓'여론 엄중·선거 코앞인데정치권 폐지 설왕설래 '졸속'예산눈감고 단체장발목 알면서또 묻지도 않고 투표할 것인가가장 큰 책임은 유권자지난 2006년 지방선거였다. 부산시 구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공천받은 후보가 등록 직후 바로 실종되었다.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도 후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후보자는 선거운동기간동안 유권자들과 얼굴 한번 본적 없었지만 당선되었다. 후보자가 없는 상황에서 당선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경쟁 후보들의 허탈감은 더했다. 사건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당선된 후보는 실종 한 달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비극으로 끝난 당선자의 운명도 안타깝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지방선거 그 자체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든 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당 공천이 당선으로 향하는 특급 티켓이 된 것이다.지방선거를 5개월도 남겨놓지 않는 시점에서 지방선거제도와 관련된 여야의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 중 백미는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1991년 재출발한 지방자치제도가 가장 강조한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제도라고 할 만큼 대통령 중심적 국정에다 중앙당이 지방정치의 생명줄을 쥐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당공천제인 것이다. 지방행정의 리더를 선택하는 과정이 오롯이 지역민들에게 맡겨지지 않고 중앙당의 방침과 유력인사의 정치력에 놀아났던 것이다. 지난 10일과 11일 MBC와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천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를 보면 '정당공천제 폐지' 의견이 46.5%, '정당공천제 유지' 의견이 35.4%였다. 국민여론이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졸속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공천제에 대해서 찬반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논의를 지켜보며 국민들은 불쾌감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정당 공천과 관련된 몇몇 주장에 대해 실상과 다름을 파헤쳐보자. 첫째 정당공천을 하는 이유가 후보의 난립을 막고 정치 신인의 발굴, 여성정치인에 대한 배려차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일부지역에서 무소속이 여전히 난립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까지 지방선거 공천 제도를 유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치인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제대로 된 정치신인은 발굴되지 않았던 것일까. 결국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인 것이다. 둘째 공천제도가 없으면 토호세력이 발호하고 현직의 부패와 전횡이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치의 부정부패와 무능한 현직 단체장의 연임이 공천제도가 없다고 하여 일어날 문제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능한 현직 단체장과 부정부패한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는 왜 공천을 주어왔는가. 지방정치의 문제점은 공천제도가 없어질 경우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공천제도가 있음에도 꾸준히 발생해 온 문제였다. 오히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정치개혁특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부정부패와 연루된 선출직에 대한 법적 처벌을 몇 배로 강화해야 한다. 무능력하고 정책수행 기능을 상실한 단체장에 대해서는 주민소환을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도록 보완되어야 한다.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방만한 예산을 눈감아주거나 단체장에 대한 이유 없는 발목잡기를 못하도록 지역 선관위와 연계한 '주민감시제도'를 본격화해야 한다.지방정치는 기로에 서있다. 지난20여 년간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 지방정치를 도외시한 중앙정치권 때문일 수도 있다. 선거 때만 90도로 절하고 아플 만큼 악수하는 진정성 없는 지방 정치인들의 무성의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우리가 불평하고 불만을 가지는 그 사람들을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자의 경력과 공약을 제대로 안다고 한 유권자는 24.5%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식의 투표를 우리가 한 것이다. 심지어 지방선거제도를 마음대로 손대는 것에 대해 분노조차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의 생활과 직결된 지방선거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우리는 설명조차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다. 청마의 해 갑오년,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식의 투표에 그친다면 우리에게 남겨질 말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유권자는 바보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4-01-19 배종찬

타산지석 일본과 한국 사회

2020년 올림픽 유치한 일본외양적 활기 띠는것 같지만시민 생활 밑바닥 열어보면없는자의 고단함·분노뿐…사회적 시스템 변화 '절실'우리도 교훈 삼아야2020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한 일본은 그를 국가 개조의 계기로 삼는 듯하다. 어린 학생들을 꿈나무 선수로 선발하고 그를 미디어로 온 사회에 알리고 미래를 향한 투자라며 분위기를 조성한다.외국인 선수나 관광객과 영어로 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명령조 광고도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올림픽 때 즈음하여 내놓을 최첨단 기술, 제조품에 대한 열망도 대단하다.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을 통해 일본이 아직 살아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양을 앞서가고 있음을 과시했던 때를 재연이라도 할 태세다.자연스레 올림픽 유치 성공 분위기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유치에 공을 세운 인물들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영웅 대접을 받는다. 유치 때 내놓은 언사들은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다가올 소치 동계 올림픽, 브라질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선전을 다짐하느라 분주하다. 불황에 시달려온 기업으로서도 스포츠와 연결된 애국 마케팅으로 한몫 노리고 있으니 일본 전체가 올림픽으로 들썩이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제국 경영을 해본 적이 있고, 세계 경제 1위국의 지위를 누렸던 적도 있으니 일본의 국력, 저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순 없다.비록 일본 사회가 경제 침체, 자연 재해 등으로 지금 풀이 죽어있는 듯 보이지만 특수를 만들고 현저한 기술개발이 성사되면 과거의 명예를 되찾지 못할 일도 아니다.그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열망이 강하고 정치권, 기업도 열망에 공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대체로 사회도 전에 비해 활기차 보이기도 한다. 올림픽을 널리 선전하고 그를 통해 사회 개조를 꾀해 보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도 그런 외양으로 드러나는 활기에 기반해 있다.하지만 외양을 넘어 시민들의 생활 밑바닥 현장에 돋보기를 갖다 대면 전혀 다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가진 자들의 '갑질'은 철옹성과도 같다. 세입자가 들여야 하는 노고는 고단함을 넘어 없는 자의 분노까지 자극한다.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업무는 꼼꼼히 처리되긴 하지만 관료화의 그물에 얹혀 '느림의 미학'의 희생물이 되기 일쑤다. 정치인들의 허리 숙임은 선거철에나 볼 수 있는 '정치인 코스프레'일 뿐이다. 일본만이 가진 전통적 시스템이라며 자랑하지만 마치 주인만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자물통과 같은 시스템으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일본의 밑바닥 정서로 보자면 올림픽을 계기로 꾀하려는 일본 개조는 개조의 대상을 하루바삐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개조를 부르짖는 쪽이 첫 번째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권력을 쥔 쪽에서 더 많이 개조를 설파하지만 정작 개조는 그들이 속한 편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 '갑질'을 버리지 않는 한 일본의 시민들은 얼른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자신만이 자랑하는 시스템으로는 일본 바깥의 글로벌 시스템과는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 교환을 해내지 못한다.오히려 고립 시스템을 자초할 뿐이다. 지금까지 해온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기반으로 시스템 개조를 해내지 않고선 그 고립을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서야말로 이른바 분수효과가 필요하다. 위에서의 변화가 아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뿐 그 반대는 참으로 어렵다.일본이 걸어온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미래처럼 여겨지지 않는 쪽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리 유쾌한 비유는 아니지만 쉽사리 피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한 결론이다. 일본이 자신의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인식하게 되는 일이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권력자들의 무능함이 아니라 시민에 전가하려는 일 등도 남의 일이라 가벼이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다.타산지석 삼는 일은 많아서 나쁠 게 없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4-01-13 원용진

변호사와 변호인

영화속 변호인과는 다르게40년전 그 변호인은학생들에게 중형 구형되자충격받고 변론에 나섰지만재판도중 끌려나가 구속 되는사법사상 초유의 사태 벌어져요즈음 영화 '변호인'이 선풍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이 영화는 학벌도, 배경도 없는 상고 출신의 한 변호사가 기득권 사회의 따돌림 속에서 등기·세금 전문 변호사로 돈만을 향하는 삶을 이어가다가, 우연찮게 시국사건을 맡은 후 인권변호사로 변해 가는 상황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기승전결의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송강호 등 배우들의 열연 외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데는 다른 외부적 요인도 작용했다.우선 이 영화의 모티브가 전두환 독재정권 초기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그 피의자들을 변호한 사람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실제적 상황이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0여 년 전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통치가 오늘의 헌법 유린, 국민 무시로 새롭게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 국민들의 울림이 일파만파 파동친 결과 수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으리라 추측된다.그런데 왜 '변호사'가 아니고 '변호인'인가? 변호사는 '일정한 법적 자격을 가지고 의뢰자를 위해 민사·형사 소송에 관하여 활동하며 기타 일반 법률사무를 다루는 전문적 직업법률종사자'를 말하고, 변호인은 그 중 '형사 피고인의 변호를 맡는 변호사'이다. 곧 형사사건으로 인신을 구속당하여 자기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법률적 지식을 동원하여 그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주장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변호인이다.그러므로 당연히 모든 변호사는 변호인이 될 수 있다. 소정의 수임료를 받고 형법 등에 규정된 형사범을 변호하면 변호인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 형사범에 대해서는 그냥 변호인으로 수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독재정권 시절 권력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건의 수임이 줄어들어 부의 축적은커녕 사무실 유지조차 힘들 수도 있고, 신변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영화 속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현실에서도 부와 명예가 보장된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가시밭길의 '변호인의 길'을 걸어간 분들도 여럿 있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가, 노동·농민운동가들을 집중 변호한 김병로·이인·허헌 변호사,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이병린·이병용·홍남순 변호사,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하의 수많은 시국사건을 도맡아 변호했던 황인철·홍성우·한승헌·조준희·조영래 변호사 등이 그분들이다.박정희 정권은 1972년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유린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전국의 대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73년 가을부터 유신헌법 철폐 시위를 벌였고 종교인, 교수, 문인 등이 유신헌법 철폐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1974년이 되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철폐 주장을 펴면 군법회의에 회부,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긴급조치를 선포했다.1974년 4월 3일, 긴급조치를 무시하고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가 다시 전국 대학에서 일어났다. 소위 민청학련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 운동을 뿌리 뽑으려 했다. 중앙정보부는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구속했고, 6천여명의 학생을 연행, 그 중 200여명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국가단체를 조직, 정부전복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기소했다.군사법정에서 학생들은 민주회복이라는 순수한 주장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구타로 반국가 음모로 조작되었음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군 검찰은 학생들에게 사형, 무기, 징역 20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한 변호인이 열띤 변론 끝에 "본 변호인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론을 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고 싶다"고 했다. 중앙정보부는 그날 저녁 그 변호인을 바로 구속, 피고인석에 앉혔다. 40년 전 그 변호인, 강신옥 변호사이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4-01-05 김학민

새해에도 거리의 정치를 하려는가?

국민들은 정부가 잘 돌아가고이를 견제하라고 만든국회가 제몫을 다해주길 바란다서로 자기편들을 거리로 끌어내투쟁상태로 몰고 가는이런 정치를 원하는건 아니다새해가 코앞인데.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넘기기가 겁난다. 한해 내내, 온기가 넘쳐야 할 거리가 권력을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투쟁의 장으로 변했다. 급기야는 철도를 운행해야 할 기관사들마저 거리에 서더니, 쟁투의 깃발과 목소리가 서울 도심 곳곳의 세밑 거리를 채웠다.새해를 희망차게 마주하고 싶은 거야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다. 하지만 이대로 한해를 보내면 그렇게 될까? 더 지겨운 갈등과 더 역겨운 권력투쟁이 거리를 메우지 않을까 두렵다. 처음에는 댓글사건이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머리 허연 야당 당수가 여름철에 국회를 박차고 나와 찬바람이 불 때까지 거리를 지켰다. 한 종교단체의 따뜻한 구호와 이름 모를 선행들로 넘쳐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거리로 나섰다. 망발을 한 두 야당의원을 규탄한다는 게 이유였다.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모택동이 한 말이다. 이것을 이젠 '권력은 거리에 있다'고 바꾸어야 할까보다. 거리는 사람들이 사는 실재적 공간이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에겐 국민이요, 모택동에겐 인민이다. 국민당 정부와 전쟁을 벌이던 장정의 시기 그가 기댈 곳은 당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 밖에 없었다. 그는 농촌에 혁명근거지를 만들고, 농민들로 수혈한 혁명군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모는 군대에 3대 규율과 8대 행동수칙을 제정해 농민들을 수탈할 수 없도록 하여 농민들의 마음을 샀다. 예를 들어 행동수칙 1조는 "자려고 인가에서 빌려온 문짝은 제자리에 걸어놓아야 한다" 이다. 권력자들의 오랜 수탈을 지겨워하던 농민들을 권력투쟁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중국을 공산화했다. 그런 그의 말로도 행복하지 않았다. 정상국가를 버리고 홍위병에게 거리를 내맡기는 실수에서 비롯된다.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영불의 절대왕권과의 투쟁에서 시작된다. 혁명의 시기에 대중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라 할 정도로 정치사상도 많았고 권력을 쥐고 싶은 세력도 많았다. 끝없는 거리에서의 투쟁과 실험 끝에 겨우 민주주의가 태어났다. 선거라는 제도로 가장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세력이 권력을 가져가게 하여 정부를 구성하게 하였다. 정치의 제도화요, 권력투쟁을 제도화시킨 기막힌 발명품이다. 이제 거리의 국민들은 누가 미래를 이끌어갈 말을 하는지 지켜보고 뽑아준다. 그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늘 권력투쟁에 휘말려 살지 않는 정치제도를 만든 것이다.한국사회 역시 이 민주주의를 값비싼 거리의 경험을 치르면서 만들어냈다. 36년의 식민지의 설움과 해방, 그로 인한 분단과 전쟁, 초기정부의 무능과 독재, 이에 대한 반발로서의 1960년의 4·19혁명, 그리고 이에 대응한 5·16쿠데타와 오랜 군부집권의 시기를 거쳐, 잠시 맞은 서울의 봄과 5·18 광주사태, 1987년의 6·10항쟁을 통해 비로소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마음에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항거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거리로 나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선거로 뽑아준 정치인들이 거꾸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제 각각 자신들을 찍어준 국민들을 선동한다. 거리로 나오라고. 그래서 상대방을 쳐부수자고. 이런 꼴이다.정치기제가 잘 작동되면 거리의 정치는 보기 어려워야 한다. 국민들로서는 힘들여 구성해 준 정부가 잘 작동하고, 이를 견제하라고 만든 국회가 제 값을 다하길 바란다. 서로 제 편들을 거리로 끌어내어 투쟁 상태로 몰고 가는 이런 정치를 원한 게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및 교역 규모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제 단선적이지 않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수도 많고, 이해관계와 가치들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갈등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잘 해결하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높은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다른 사회 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어렵게 만든 민주주의 틀 안에서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이다. 새해에는 정상적인 정치를 보고 싶다. 국민들을 거리로 불러내지 말라./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2-30 허훈

[월요논단]국민이 꿈꾸는 크리스마스

소외계층 목소리 듣기위해대통령과 집권 여당은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고야당도 대결 논리에서 벗어나대한민국호가 전진할 수 있게손을 맞잡아야 한다며칠만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어느 종교를 믿건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며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 크리스마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타할아버지다. 산타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이 여러 곳 있지만 대표적인 곳이 핀란드의 로바니에미라고 한다. 핀란드하면 산타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여성지도자 타르야 할로넨의 나라이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었던 타르야 할로넨을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정치인 타르야 할로넨이 대통령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핀란드는 남녀평등의식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대통령은 21세기가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할로넨은 2000년 핀란드 대선 투표에서 남성후보였던 에스코 아호를 51.2% 대 48.8%로 가까스로 이겼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 대선 투표 결과까지 2012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너무도 비슷하다. 할로넨 대통령의 핀란드는 승승장구했다. 12년간의 재임기간동안 핀란드는 국가청렴도 1위, 국가경쟁력 1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1위, 환경지수 1위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핀란드 국민들은 할로넨을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선물'로 기억하고 있다.크리스마스가 다 되어가지만 한국 사회가 심상치 않다.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선물은 보이질 않는다. 정치권은 끝도 없는 논쟁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지 오래다. 사회적으로는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파업이 최장기간 계속되어 국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불안정한 상태이고 북한의 국지적 도발도 예상되고 한다. 방공식별구역 이슈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이웃 국가인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도 부담이다.경제와 사회적 통합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내놓은 경제지표와는 다른 체감경기 침체에 많은 국민들은 신음하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결과, 국가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14.8%에 그쳤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은 현재 국가 경제 상황이 나쁜 것으로 보았다(12월 19일. 전국 1천명 유무선RDD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P). 국가경제 상황을 볼 때 경제 활성화가 최우선 과제로 될 수밖에 없겠지만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공약도 놓칠 수 없는 과제다. 이념, 세대, 지역간 갈등 역시 매우 심화되어 있다. 끝나지 않는 대선전쟁을 치르면서 진보와 보수의 진영 대결이 극도로 첨예해졌다. 대통합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특정지역의 소외감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2030세대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한 대학에서 비롯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많은 공감을 얻는 이유다. 임기 초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문제로 허니문 효과(honeymoon effect: 국민들의 국정 기대감과 언론의 호의적 보도 태도 등으로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은 현상)를 맛보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과 효과적인 글로벌 외교로 70%에 가까운 높은 지지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쟁이 지속되고 공약실천이 미흡하다고 평가받으며 지지도는 하락했다. 대선 1년이 되는 12월 19일 현재 대통령의 지지도는 55.7%로 나타났다. 선거 당시의 득표율 51.6%와 큰 차이가 없다. 새해에는 여야 정쟁으로 갈라진 민심을 봉합하는데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이 앞장서야 한다. 소외된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역시 시시비비의 대결논리에서 탈피해 '대한민국호'가 전진할 수 있도록 손을 맞대야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국민이 알아주지 못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타르야 할로넨은 대통령 당선 직후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고 스스로 일반 국민들과 같은 한사람의 국민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핀란드 산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 그것은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고 바로 국민이 꿈꾸는 크리스마스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12-22 배종찬

'안녕들 하십니까, 대중매체님들'

대중매체들은 젊은이들이서로 '안녕 하십니까'를 묻고나섰다고 중계하고 있지만그들의 심중을 설명하지 않고제대로 응답하지 못한채질문들만 되풀이해줄 뿐이다'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자보 스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붙은 대자보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이웃한 이들이 퍼서 날랐고, 이어 토론에 불붙인 결과다. 과거 학생운동 당시의 고전적 수단이던 대자보가 갖는 의미가 강하게 되살아난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전연 닿지 않을 것 같은 뉴미디어와 접속되면서 절묘한 '미디어 믹스'가 이뤄졌다. 성공적 '미디어 믹스'는 사회에 무관심하다던 대학생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고, 자신이 처한 조건을 고민하고 토론하게 만들었다.절묘한 '미디어 믹스'와 함께 공감을 이끈 질문 또한 유효했다. 2013년 말 최고의 히트작이라 일컫는 '응답하라' 드라마와 묘한 짝을 이루어 공감을 유도해냈다. 강한 주장, 교조적 말투를 비켜나며 누구든 응답을 피할 수 없을 만큼의 공감적 질문을 해냈다. 안녕하냐는 질문은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나 혼자만 그런가요'의 함의를 깔고 있는 공감형 질문이었다. 응답을 비켜가면 도대체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이었고 등을 은근히 강하게 떠미는 찰진 질문이었다.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성공적 '미디어 믹스'를 곁들이면 누구든 의제 설정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음을 '안녕' 사건은 말해주고 있다. 대중매체의 의제 설정 권력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조직된 개인들이 아닌 답답한 마음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호응하는 일이 SNS로 일파만파로 번져간 사건으로 보자면 대중매체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니다. 대중매체는 의제 설정하는 개인들의 움직임을 받아 적기 바쁜 필기자의 존재로 추락했다고 할까. 질문 않고, 의제를 내세워 말하지 않는 '말 못하는 자'로 전락한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청년들은 대중매체에도 질문을 던진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중매체님들'.젊은이들이 서로 안녕을 묻는 말문을 대자보와 SNS를 통해 튼 데는 이유가 있다. 도대체 안녕하지 못한 듯한 젊은이들의 답답함을 탈탈 털어 정리해준 쪽이 사회 내 어느 구석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거라거나 열심히 스펙을 정리해 나가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구든 그런 시절을 거쳤으니 아픈 만큼 성숙할 거라 위로하는 말들만 넘쳤다. 왜 답답한지, 그 울화가 어디서 왔는지 정리해주는 쪽이 없으니 자신들끼리 그래 당신은 안녕하냐, 우리 정말 안녕한 것일까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 측에서 보자면 사회의 무능함을 질문한 것에 다름없다. 젊은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함이 아니라 그들 가슴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모르는 무능함 말이다. 심지어는 가슴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직무유기적 무능함도 되묻고 나선 것이다.며칠 동안 여전히 올드 미디어, 대중매체들은 젊은이들이 서로 '안녕 하십니까'를 묻고 나섰다고 중계하고 있다. 왜 그런지를 묻지 않은 채 그들의 대자보를 찍고, 그들의 행진을 그려내고, 모임을 스케치하는 등 보고로 분주하다. 결코 젊은이들의 심중을 설명하는 쪽으로까지는 가지 못한 채 말이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다'고 나선 쪽이지만 왜 그런지를 설명해주려 하진 않는다.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채 질문들만 되풀이해 중계해줄 뿐이다. 사후 약방문 식으로 설명을 시도해볼 만하건만 여전히 굳게 닫은 입을 하고 있다. 그럴수록 돌아올 반대급부는 명확해진다. '안녕들 하신가요, 대중매체님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2-16 원용진

"저 사람 전라도일 거야"

권력에 밉보이면고향도 바뀌는 세상개인정보 유출 조심한다지만관리소홀 대량 유출 심각유명인·공인은 신상털기 예사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다30여년 전만 해도 개인정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 두툼한 전화번호부가 굴러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고, 명함에 버젓이 집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찍어 넣은 사람도 흔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즈음은 금융실명제도가 실시되지 않을 때여서,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보험,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등의 발급 시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서류,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하여 직장에 내는 인사자료 정도에나 개인정보를 기술하면 되었고, 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요즈음은 어디에서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금융 관련 일을 처리하자면 당연히 신분증을 제시하고 꼬박꼬박 개인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기관이나 조직의 홈페이지에 의견을 올리려 해도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에도 매번 개인정보를 밝혀야 하고, 백화점에서 상품을 할부 구입하려 해도 영락없이 개인정보를 요구받는다.그런데 개인정보는 그 제공된 곳에 가만히 모셔져 있지 않다. 폐기된 서류뭉치에 섞여 재활용 쓰레기장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온라인 세상에 넘쳐 떠돌기도 한다. 이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수집하여 상품의 홍보, 판매에 이용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보이스 피싱 등 범죄에라도 악용되면 개인적, 사회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진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정보가 유출될까 보아 노심초사한다.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개인정보는 이래저래 유출된다. 장삼이사들의 개인정보는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등의 관리 소홀로 대량 유출되어 합법 비합법적으로 이용당한다. 스캔들에 휘말린 유명 인사들의 개인정보는 누리꾼들의 집단 '신상 털기'로 까발려진다. 그리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에서 보듯이, 권력기관이 불법으로 확보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나 '영혼 있는' 공무원의 개인정보는 '조폭언론'이 그 유통을 하청받아 여론의 시장에 뿌려댄다.특정인의 '고향'을 밝히기 위한 '신상 털기'도 극성이다. '고향 털기'는 재벌 그룹의 비리를 폭로한 인사,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연구자, 정보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을 갖고 대처한 공무원들에 집중된다. 삼성 재벌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국정원 직원의 댓글 의혹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권은희 전 서초경찰서 수사과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려 했던 윤석열 검사 등이 그들이다.왜 이들의 고향을 그렇게 알고 싶어 할까? 정확히 답하자면, 이들의 고향이 '전라도'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이다. '전라도'임이 확인되면 공인으로서의 정의감이나 책임의식, 원칙 같은 것은 무시되고, 그들의 처신을 인사에서 TK 정권의 대척점에 있는 전라도 출신의 불평불만으로 폄훼하고자 하는 데 속셈이 있는 것이다.일국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려 한 경찰공무원에게 '당신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일갈하는 것도, 그리고 춘천 출신인 '나꼼수'의 김용민의 고향을 전북 부안으로 바꿔 인터넷을 도배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얼마 전 인터넷에 '윤석열 검사 고향'이라는 검색어가 제법 상위에 랭크되었었다. 그런데 아무리 집단 신상 털기를 해도 윤 검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 대학교를 나왔으니, 전라도가 고향이 아니다. 그러자 다시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이란 검색어가 떴다. '당신은 서울이 고향이랄 수 있지만, 분명 당신 아버지 고향은 전라도일 거야!'라는 망상에서이다. 그런데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다! 이제 끝났을까? '공주는 옛 백제 땅이잖아? 그러니 공주도 전라도나 마찬가지'란다. 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지겹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2-08 김학민

군사시설이전 지평리탄약고 처럼 하면 안된다

다른 군사시설과 달리위험성 크고 비선호 시설은이전 결정을 공개해야 하고후보지 결정후 마지막에지역주민을 무마하려는방식은 버려야 한다경기도 사람들은 군사시설이 늘어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군사시설이 들어서면 재산권 행사도 어렵고 지역발전도 더디게 되는데다 경기도에는 이미 군사령부 1개, 군단급 부대 7개, 사단급 부대 30개 등 전군의 약 40% 가량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의 횡성군에 있던 탄약고를 양평군 지평면으로 옮긴다고 한다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발단은 이렇다. 군은 지난 5월 양평군에 '59탄약대대 현대화사업'을 한다고 인허가 서류를 냈다. 하지만 사실은 횡성에 있던 탄약고를 옮기려 한 것이고, 제1군수사령관과 횡성군수가 참석한 기공식까지 열었다. 그 과정에서 양평군과 협의 한번 없었다. 그 뒤의 일은 뻔한 것이다. 지평면의 주민들은 이전저지비상대책위를 만들고 국방부와 횡성군에 항의하고, 양평군이 제 할 일도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양평군수와 군의회도 나섰고, 국방부는 주민들과 이제부터라도 협의하지 않고는 이전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지평리는 6·25전쟁 때 전황을 역전시킨 지평리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1951년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지평리에서 막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은 3개 사단을 앞세워 원형진지를 구축한 미23연대(프랑스대대 배속)를 공격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적절한 지원군 투입으로 3일 간의 격전이 끝나자 진지주변은 중공군의 주검으로 넘쳐났다. 이 전투를 통해 유엔은 한국 국토 사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참조). 양평군 지평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있고,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축으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런 곳에 우리 군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군 탄약고는 지하형, 이글루형, 지상형 등의 3종으로 설계된다. 현재는 대부분 지상형인데다가 습기에 취약하여, 추진장약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고 탄종특성별로 관리되지 못하기에 군은 탄약고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의 이런 방침과 맞물려 횡성군은 200억원(기부대양여사업)을 들여서라도 숙원이던 탄약고이전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군과 횡성군 모두 이전결정과 인허가를 얻어내기까지 양평군과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 인허가 절차시 양평군에 알렸다고 하지만, 관련 인허가를 얻기 위해 개발행위와 농지전용 협의는 생태개발과, 전기 통신은 총무과, 개인하수관 설치 신고는 환경관리과와 하수도사업소로 각각 공문을 보내는 등 개별 부서의 업무로 처리했다. 양평군은 탄약고 관련 업무를 행복도시과에서 하니 이전사업을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놓고 자칫하면 자치단체 간에 소송이 날 판이다.우리 군이 군사시설사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전결정을 비공개로 하고, 후보지를 결정한 다음에 마지막에 해당 지역을 무마하는 방식 말이다. 특히 탄약고처럼 보통의 군사시설과는 달리 위험성이 크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2배로 설정되는 비선호군사시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탄약고에 드나드는 작업차량 때문에 주민이 알아챈 것처럼 요즈음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국가와 군은 이 기회에 국방·군사시설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첫째로 비밀주의를 버려야 한다. 군사시설의 이전에 대한 계획을 해당 지역이 미리 알게 하여야 한다. 이번 횡성탄약고이전은 59탄약대대의 중대급 탄약고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라 했다. 터놓고 이야기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둘째, 도시계획을 반영하여야 한다. 군사시설이 입지해 있거나 향후 입지할 곳의 도시계획과 상충되는지를 군과 해당 지역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주민의 희생이 적도록 해야 한다. 지평은 역사적 자존심에 비해 도시발전이 왜곡돼 있는데 이런 아픈 점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국가는 탄약고와 같이 외부불경제가 큰 군사시설의 주변지역을 지원할 수 있는 비선호(특정)군사시설주변지원법을 만들고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협력을 얻는 방법을 제도화해서 환영받는 군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안보에도 중요하다./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2-01 허훈

응답하라 1987

6·29선언의 주역이었던학생들과 문민정부의 탄생을보았던 사람들은 어느덧 40대,한치 양보없이 무한표류 하는지금의 '대한민국호'를 구하는건'40대의 힘' 밖에 없어 보인다1994년을 조명한 케이블방송 드라마가 인기다.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막장드라마처럼 이상한 전개와 결말이 없는데다 우리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다. 이 드라마의 기획자가 1994년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4년의 시대적 상황은 드라마 내용보다 더 복잡했다.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의 탄생을 내걸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될 성수대교 붕괴사태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고는 모두 인재(人災)였다. 기업인의 부도덕한 탐욕과 공무원의 무사안일이 만들어낸 참사에 우리 모두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2013년 한국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케이블 방송의 20여 년 전 드라마 상황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국정치는 '대선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념정글'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 15일에서 17일사이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자. 여야의 대치국면 책임에 대해 '새누리당과 정부'라는 의견이 18.8%, '민주당'이 23.8%였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55.9%로 가장 높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95%신뢰수준 ±3.1%P). 대선과정 의혹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필요하지만 대통령 선거에만 매달려 있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가 폭발 직전임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이미 세 가지 경고를 했다. 첫째는 NLL(서해북방한계선)은 대한민국 영토로 사수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응답했다. 둘째로 NLL과 관련한 대통령 기록물 열람에 대해서도 정쟁의 불씨가 될 것이므로 추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셋째로 지난 8월말 국정조사가 끝난 뒤 정쟁을 끝내고 '경제활성화(30%)'와 '부정부패척결(15.4%)'에 노력하라는 여론을 내놓았다(리서치앤리서치, 8월23일 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원에 의한 조사, 95%신뢰수준 ±3.1%P).지금 정국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방송 드라마의 무대가 된 1994년에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후 우리 사회는 이념적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대선과정의 댓글, 트위터부터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까지 북한관련 이슈에 따라 진영논리가 얼마나 확산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정치적 발언은 현재의 꼬인 정국을 지혜롭게 풀기보다는 더 꼬여서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되어버릴 것이다.정치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 국민대표자회의인 국회는 정상적이라면 국회 내에서 문제를 진작 풀었어야 했다. 국민들은 이 와중에 국가기관들을 차례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과거를 되돌아 볼 때 1994년 또는 97년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해는 1987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화를 이끌어낸 6·29 선언은 바로 1987년의 일이었다. 6·29 선언의 주역이었던 학생들과 문민정부의 탄생을 보았던 학생들은 어느덧 4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다. 말그대로 40대이다.지난 10월 통계청 인구현황을 보면 10세 단위의 인구분포 중 40대의 인구가 가장 많다. 그리고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인구계층이다. 사회의 중추적인 위치임과 동시에 국가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한 치 양보 없이 무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구할 것은 '40대의 힘' 밖에 없어 보인다. 진영대결뿐만 아니라 세대갈등까지 빚어지고 종교계까지 정치판에 휘둘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대담하게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의 통근 역할을 더 이상 지체 없이 40대가 해내야 한다. 의혹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고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 정쟁만 있고 '국민'은 보지 못하는 여의도 국회를 '특검'해야 한다는 준엄한 옐로카드도 전달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가장 형편없는 '2013년'으로 드라마화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40대가 제대로 응답해야 할 때이다. 응답하라 1987./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11-25 배종찬

볼링장과 동네 마실

현대 도시인은 구성원간 대화가줄어들어 신뢰도가 하락하고공동체의식도 형성 안된다이젠 비생산적 냉소를 거둬내고마을·고장·동네 제대로 갖추는일을 삶의 첫과제로 삼아야 할때공동체 삶에 대한 언급이 점차 늘고 있다. 아예 공동체 혹은 코뮨이란 이름을 달고 일상을 영위하는 곳까지 생기고 있다. 그에 대한 이론도 늘뿐 아니라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이 공동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비슷한 말에 속하는 고장, 마을, 동네 등의 단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그 함의를 바꾼 채 존재하고 있다. 고장이란 말은 사라진 듯하고, 동네란 말 속엔 '잠자는 곳' 정도의 함의만 담겨 있을 뿐이다. 결핍된 것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 우리는 오매불망 건강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구하고 있다.한국 사회보다 더하진 않겠지만 대체로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사회가 선진제도를 갖춘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그 운용이 원활치 않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공동체 의식이 담기지 않으니 좋은 제도조차도 빛을 좀체 보지 못함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웃한 사람들끼리 동네 걱정을 나누는 일이 점차 줄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소한으로 이웃을 사귀는 것에 그치고 당장의 이익이 개입되지 않으면 외면해버리는 개인주의적 습속이 주요 일상으로 자리잡았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공동체 문제를 낭만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당장의 삶을 윤택하거나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나홀로 볼링'이란 책을 통해 로버트 퍼트남은 공동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현실 문제인지 알리고자 했다. 미국의 대부분 마을 어귀에는 볼링장이 있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던 사교장이었다. 공을 굴리고 맥주를 나누며 마을 걱정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곳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볼링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볼링 치는 사람도 늘었다. 퍼트남은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감소라고 보았다. 널리 사람을 알아 생활을 도모하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지탱해주던 힘이 동네 이웃 간의 신뢰, 협조였고 큰 사회적 자본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사회의 침체는 경제나 정치제도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제도가 원활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감소했음에 원인이 있다고 퍼트남은 파악했다.퍼트남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의 기본 바탕은 신뢰와 호혜성이다. 이웃 간에 신뢰가 쌓이면 서로 혜택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그럼으로써 서로 돕기 위한 실천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 실천이 거듭되면 자연스레 사회적 자본이 쌓인다. 그를 통해 진정한 공동체라는 범주가 가시화될 수 있다. 공동체 형성을 위해선 신뢰와 호혜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엔 신뢰와 호혜성을 길러내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퍼트남이 볼링장에 주목했던 것은 그곳에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현대 도시 내에서 구성원간 대화가 줄어든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화가 줄어듦에 따라 신뢰와 호혜성도 동반 하락하게 마련이고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대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상실을 한탄하는데 익숙할 뿐이다. 그 공동체를 구하는 데는 선뜻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다. 도시의 공동체는 파편적이어야 마땅한 것처럼 여기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단정 짓는 일에 익숙하다. 몇몇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를 주요 과업으로 내걸었을 때도 그런 냉소가 강했다. 사회적 자본을 키우고,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는 일은 지역민들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가치여야 함에도 정작 우리는 그를 잘도 비켜갔다.미국이 볼링장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만큼 우리도 사랑방이나 동네 마실의 소멸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옛 풍속에 대한 낭만적 기억 탓만은 아니다. 더 편한 삶을 위해서는 대화, 그를 기반으로 한 신뢰가 필요하고, 그럼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형성이 이뤄져야 함은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 결코 더 늦추어선 안 될 과제다. 비생산적 냉소를 거두고 마을, 고장, 동네 제대로 갖춰보는 일을 삶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 할 온 사회의 화두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1-18 원용진

경기도식 김치를 아시나요

봄까지무르지 않는사각사각 경기도 김치,요즘은진한, 짭조름한 맛,전라도식 김치에 밀려무나 배추에 양념을 넣지 않고 통으로 소금에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흔히 짠지라고 하는데, 황해도, 함경남도 지방에서는 김치 자체를 짠지라고도 한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무를 절이지 않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싱건지라고 부른다. 오이를 짠지 비슷하게 담근 것은 오이지다. 이밖에 부추도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지방에 따라 부추김치를 솔지 또는 정구지라고 한다. 장아찌는 무, 배추, 오이 등 채소를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숙성시킨 저장식품을 말한다. 우리의 옛 조리서에는 장아찌를 장으로 담근 김치, 곧 '장지'라고 적고 있다.짠지, 싱건지, 오이지, 솔지, 정구지, 장지(장아찌) 등에 붙은 '지(찌)'란 무엇일까? '지'는 16세기 김치의 옛말인 '딤채'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김치의 이름이다. 고려 중기의 시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염지(鹽漬)'라고 했는데, '지(漬)'는 '적실 지, 물에 담글 지'로 풀이되므로 곧 '지'가 김치임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 말기가 되면서 '지'는 사라지고 '저(菹)'가 김치를 뜻하는 말로 떠오른다.'딤채'라는 말은 조선 초기에 보인다. 1525년 '훈몽자회'는 저(菹)를 '딤채 저'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딤채'는 무엇일까? 이때의 김치는 고춧가루와 젓갈을 쓰는 오늘날의 김치와는 달리, 소금에 절인 채소에다 마늘 등 몇 가지 향신료만을 섞어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소금물에 침지(沈漬)되는 형태이거나, 동치미처럼 소금의 양이 많으면 마침내 가라앉는 형태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김치는 가라앉은 채소 곧 '침채(沈菜)'로 불리고, '침채'가 '팀채'로, 다시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가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이것이 변해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김장철이 시작된다. 김장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이, 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찬인 김치를 추운 겨울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먹기 위해 담그는 연중행사다. 김장김치는 채소가 부족한 겨울철에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의 산물이다. 김장은 가라앉혀 보관한다는 뜻의 '침장(沈藏)'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한다. 곧 음운이 변화되어 '침장'이 '팀장'으로, '팀장'이 '딤장'이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김장'으로 굳어진 것이다.김장은 4도 이하일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인 11월 말에서 12월 초인 입동 전후를 김장하기 제일 좋은 시기로 여겼는데, 이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등이 얼기 전에 하는 것이 좋고, 너무 따뜻할 경우 김치가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기상청에서 매년 김장하기 좋은 날을 발표한다.(2013년은 11월 13일 발표) 그러나 김치냉장고가 개발되고 나서는 김장 시기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사시사철 채소가 나기 때문에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어머니는 늦가을이면 10여일 전부터 분주하게 김장준비를 하셨다. 우리 집이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 부지런히 무채를 썰고 여기에 파, 마늘, 생강을 다져 넣고,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간하여 잘 버무려 배춧속을 넣는다. 속을 넣은 배추는 뒷마당에 파묻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포개 넣는다. 김장을 끝내고 남은 자투리 무와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버무리면 바로 섞박지이다.친가 외가 모두가 경기도 토박이인 나는 어머니가 담그는 경기도식 김치에 익숙하다. 경기도식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고 새우젓만 써 삼삼한 얕은맛을 낸다. 경기도식 김치는 봄이 되어도 쉽게 무르지 않으며, 김치찌개를 끓여도 시원하다.그런데 요즈음은 경기도식 김치는 찾아 볼 수 없고, 찹쌀 죽에 멸치젓이나 까나리젓으로 속을 버무려 넣은 짭조름하고 진한 맛을 내는 전라도식 김치가 대부분이다.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일까? 더욱 경기도식 김치가 생각나는 김장철이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1-10 김학민

'새도 좌 우 날개로 난다'

새들은 좌우날개로 잘 나는데왜 여야는 제쪽만 옳다거나잘됐다는 식의 논법으로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가?균형 맞추며 비행하는 철새처럼한국정치도 지혜로웠으면…이제 겨울새들의 계절이다. 수만 ㎞를 지치지 않고 날아오는 두루미나 청둥오리 떼가 반갑다. 그 가냘픈 몸으로 무리가 우두머리를 앞세워 기류를 제 것으로 만들어 오는 저것들이 대견하다. 서로 협동하는 무리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티격태격 사는 모양새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새들이 보면, 우리한테 한수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까.특히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을 보면 새들이 뭐라 할까? 공무원 개인의 정치개입 사건으로 끝나야 할지, 행정체계의 조직적 정치개입으로 보아야 할지. 이것을 두고 정국이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야당이 연일 공세수위를 높여가자, 여당은 대선불복이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에 대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달라고 하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야당이 지난 대선패배를 자신의 잘못에서 찾기보다, 외부에서 찾는 것이 꼴사납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대응도 군색하기는 피차일반이다. 기류라는 현실적 조건에 맞추어 좌측 행렬이 늘어났다가 우측행렬이 늘어났다가를 반복하는 철새 떼를 보면, 현실의 정치리더십이 아쉬워 보인다. 우두머리새가 이끄는 모습도 부럽고, 그를 따르는 철새들도 부럽다.우주에서 보면, 철새 떼의 무리에 비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체제도 대통령이 나서서 좀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해외외교에 나서기 전에 국내정치의 갈등해법을 찾고 나서기를 바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계속되는 정쟁에 지겨워지고 먹고사는 일이 급해진 탓이다. 그래서 유럽순방 직전에 국정원 의혹 철저 조사 후 문책하겠다는 의지표명을 한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전공노와 전교조의 선거개입이 더 문제라고 맞받아친 것은 과연 시의적절했나 하는 의심이 간다. 장군멍군하는 식으로 이쪽도 잘못했으나, 저쪽의 잘못이 더 크다는 식으로 핑퐁게임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화성과 포항의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보수당의 입장에서 보면 쾌재를 부를 일일지 모른다.하지만 국민의 시각에선 대선이 끝난 지, 이제 달포만 있으면 1년이 지나는 정부에서 여전히 좌우 진영 간의 극한대립이 심해질까 걱정이다. 새들을 바라보면 분명히 좌우날개로 가는데 왜 우리는 좌우가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가? 오른쪽이 힘찬 날갯짓을 할 차례가 되었으니, 좀 맡겨두면 안될까? 왼쪽이 날갯짓을 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때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패자의 미학이 야당에는 없는가? 오른쪽 대열이 왼쪽 대열을 포용하여 좀 느긋하게 대하면 안 되는가? 이런 것을 기대하는 국민으로서는 제 쪽만 옳다거나 잘됐다는 식의 논법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극한 좌우대립이 결국 분단에 이르게 하고, 전쟁을 겪고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국가로서는 새가 좌우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교훈은 없다. 자본주의 몰락을 예측했던 자본론을 틀리게 한 것은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정할 기회로 삼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이제는 좌우 진영의 꼭두각시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주권국가이니 더더욱 좌우편향에서 벗어날 시점이다. 학교 무상급식을 서로 못해 안달인 것도 정책수단인 재정을 살필 일이지 좌우 이데올리기 탓이 아니다. 중국도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이데올리기 편향을 극복한 마당에, 우리가 좌우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일이 없다. 철새들이 만나게 되는 기류의 형태를 파악하여 목적지를 날아가듯이 현재를 파악하여 좌우균형을 잡아가면 그만이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정치권으로서는 균형을 잡아간다는 말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오해만 하기에는 아까운 지적재산의 하나인 이영희의 '새는 좌우날개로 난다'라는 책의 서문을 한번 되새겨보자.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한국의 정치가 좌우날개로 균형을 잡아가는 철새처럼 지혜롭길 바란다./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1-03 허훈

일본은 없다

아베총리는 인기를 의식해'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전과오를 재현해선 안된다이웃국가들 목소리를 외면하고막무가내 우경화를 고집한다면한일관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17년 전 일본 유명 사립대학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생들의 한국 교류 모임에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에 관해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방송에서 보았던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일본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교류 프로그램은 한일 관계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숨김없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프로그램 일정에는 일본학생들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동행하는 것도 포함되었다.대체로 한국학생들은 과거사와 관련된 예민한 토론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일본학생들의 반응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운 표정들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와 일본이 생각하는 과거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의 일본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동안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정확히 몰랐던 일본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선명하게 느껴졌고 '일본은 있다'였다.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우경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10월 26일은 '한일 강제 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이웃국가를 강점하고 '동양평화'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단죄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역사적 도발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고 부끄러운 역사를 자국민들에게 교육하지 않는 것이다. 천황을 비롯해 많은 일본 지도층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다수의 역사교과서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왜곡을 일삼아도 수수방관한 것이다.둘째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웃국가에 대한 진정한 우호의 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통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 문화 개방 조치를 취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가장 민감한 독도문제를 건드리며 첨예한 대립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곳곳을 유린하고 수탈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를 통째로 재편집할 야욕마저 내비치는 것이다. 그 정점에 일본정부가 내놓은 독도여론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일본국민의 60% 이상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이 조사는 설문조사의 가장 기본인 표본의 대표성과 설문의 객관성을 원천적으로 도외시한 자료였다. 이러한 의도적인 일본정부의 자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다. 셋째로 아베 총리의 막무가내 우경화가 지속될 경우 한일관계에 있어 미래는 없다. 지난 3월과 4월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국민들은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가 71%였지만 우리 국민들은 '혐오한다'가 85%였다. 1990년대 후반처럼 한일관계가 퍽 괜찮았던 적도 있었다. 한일관계에 있어 일본 지도층의 태도와 인식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누출이 주변 국가에 피해를 끼침에도 무사안일하다면 한일관계를 더 발전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한일관계가 비뚤어진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크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할 수 있는 국력과 대외적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의거했던 것이 불과 104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에 대한 고종의 칙령이 선포된 지가 113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복잡하게 얽힌 두 나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동양평화'였다. 아베 총리는 자국 내 인기를 의식하여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 전의 과오를 재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웃 국민들의 비장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릇된 우경화의 길을 고집한다면 친구로서의 일본은 없을 것이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10-27 배종찬

담당자 울린 수원 행궁동 주민들

4300여주민 옹기종기 사는곳정조대왕 효행 흔적 곳곳에한달간의 생태교통 페스티벌걷고 경험하고 즐기고 맛보고주민 도움 소통으로…역사 조화 관광도심으로 재생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4천30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행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그와 함께 하던 무사들의 '화성무예 24기'가 매일 공연되는 역사 마당이기도 하다. 한반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고, 그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매년 열리는 동네다.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조성한 공방거리가 소담하게 낮볕을 받는 정겨운 곳이다. 그렇게만 알려졌던 행궁동에 지난 9월 한 달 동안 수상하고도 괄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지난 9월 한 달 내내 행궁동에서는 생태교통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 별것도 아니련만 행궁동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특정해 들여다보자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한 지역축제는 모두 752개에 달한다. 그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그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 판에 박힌 행사, 억지춘향식 볼거리, 미래가 실종된 관주도형 부실 기획 등의 이미지가 늘 겹친다. 안전행정부가 지역축제를 제대로 감리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런데 행궁동 축제를 챙겨보자며 소매를 끄니 그 이유가 궁금할 법하다.수원 행궁동의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범적이었고, 생산적이었으며 기록해둘 만했다. 무엇보다 소모성 행사가 아닌 생산성 축제가 되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생태교통 행사는 행궁동의 낙후성을 일거에 제거해냈다. 행궁동을 역사, 생태가 함께 이뤄지는 관광 도심으로 재생시켜냈다. 파내고 뒤엎는 개발 패러다임의 도시 개발을 생태적으로, 생산적으로 전환해낸 것이다.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확신한다.행궁동 축제이긴 했지만 수원을 넘어 전국구 축제로 갈 가능성도 보여줄 만큼 잘 기획된 행사였다. 역사라는 관광 테마에 생태교통을 끼워 넣음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결합시킨 온고이지신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소담한 동네를 생태교통과 연결시켜내면서 도시를 마치 워크숍 체험의 공간으로 바꾸는 장면 전환을 연출해냈다. 걷기, 경험하기, 즐겨보기, 맛보기를 통해 몸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촉각적 시간도 제공하였다. 볼거리에 집착하던 지역 축제를 촉각적, 경험적 이벤트로 바꾸어내면서 특화시킨 셈이다. 재기발랄한 기획이 각종 미디어의 눈길을 끌었고, 수도권을 넘어 전국의 관광객을 매혹해 100만여명의 발길을 유치했고, 광역 축제가 되는 행운도 누렸다.그 무엇보다 주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축제 담당자들이 가장 주력했다는 점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의 도움 없이는 지역 축제, 지역 재생의 성공이 어렵다는 사실을 행궁동 축제가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행궁동에 있는 자동차를 빼내고 지역을 생태교통 지역으로 만드는 이른바 '빼내기' 축제였다. 주민의 '빼내기'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축제였다. 담당자들은 주민과의 대화와 설득을 위해 수개월 공을 들였고, 방문을 거듭했다. 반대편이 없진 않았지만 종내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빼내기'에 동의해주었다. 축제 시작하는 날 새벽, 주민들의 자발적인 차 빼기로 차량이 줄을 잇는 장관을 이뤘다. 이를 지켜보던 담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미 축제는 그 공식 일정이 있기도 전부터 성공이 예감되었고, 감동의 눈물로 젖어 있었다. 소통과 대화의 힘을 보여준 축제였다.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시 전역으로 그 기운이 넘치게 하는 일, 축제일 외에도 생태관광을 일상화시키는 일, 아직은 덜 마무리된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 등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지만 생산성을 꾀했고, 재기발랄한 기획을 장기적으로 해내 축제를 성공으로 이끈 것에 기댄다면 과제 해결도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소통을 성공의 최대 열쇠로 파악했던 그 정신을 잘 살려간다면 이 축제의 일꾼들은 어쩌면 계속 감동해서 울 일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10-20 원용진

건국과 정부수립

있는 것을 왜곡 하거나없는 것을 조작하는 역사는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공자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빌 데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사립학교들은 가급적 자기 학교의 역사를 올려 잡으려 애쓴다. 나의 모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사립 고등학교로, 1885년 8월에 겨우 두 명의 학생을 구워삶아 '학교'를 시작했고, 1886년 6월에야 고종의 편액을 받아 '정식 학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내 모교의 개교일자는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가 증기선에서 내려 제물포에 발을 내디딘 1885년 6월 8일이다. 내가 다닌 대학 역시 1915년에 개교한 전문학교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개교일자는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인 의사가 진료를 시작한 1885년 5월이다.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실낱같은 근거라도 찾아 조금이라도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오늘에 이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무작정 올려 잡으려는 짓거리는,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진 판이 수 천 년 켜켜이 쌓여 이룩된 인류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범죄행위이다. 한반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조작하기 위해 가공의 천왕들을 만들어 자기 역사에 끼워넣은 일본,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 된 흥산문명이 발견되자 고대부터 만주 일대가 자기들 통치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렇다. 말도 되지 않는 국수주의, 오도된 민족주의의 발로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국 중심주의, 자국 이익의 관철이 국제관계의 실체임을 감안한다면, 그들 사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2008년, 이명박 정권은 그 해를 건국 60주년으로 삼고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다. 곧 미군정을 끝내고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식민사관에 바탕한 완전한 역사왜곡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건국된 것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그 동안의 어쩔 수 없는 '임시' 정부를 정리하고 '정식' 정부가 출발한 날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임시정부 출범 때 신석우 선생이 발의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1948년의 제헌의회도 압도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하였으니, '임시'정부 대한민국이 '정식'정부 대한민국으로 바로 이어진 것이다.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개식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 둘째로 애국선열들의 희생적인 혈전, 셋째로 우방의 원조이다. 우리는 먼저 헌법을 제정해야 하고, 대한민국 독립민주정부를 재건설해야 한다. 나는 이 국회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이 국회가 우리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한다"라 하였으며, 기자회견이나 자신의 글에서도 누차 "우리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발행된 관보 창간호도 발간연도를 임시정부 수립 30년이라는 뜻의 '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건국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첫째는 우리 민족 최초로 나라를 연 고조선의 건국이고, 둘째는 왕건의 고려 건국,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즉위식을 하고 국호를 바꾼 건국이다. 두 번째 건국으로 보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이 건국일임은 너무나 당연하다.요즈음 일제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운동을 축소하거나 폄하하려는 시도들이 소위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명목 하에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우기 위해 '건국'의 시의조차 무참히 농단한다. 그러면서 이를 교과서로 만들어 후세들을 가르치겠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역사는 일월이 조명하는 정의의 재판정이다. 있는 것을 왜곡하고 없는 것을 조작하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 공자님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 빌 데가 없다"고 했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10-13 김학민

이 가을, 정치의 후안무치

정당공천제 폐지 의제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아무런 성과없이 활동 종료여야 정치인들 공약 뒤엎은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긴후진적 정치행태 보여줘정치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 인간이 이기적이지만도 이타적이지만도 않은 존재인 이상 정치는 인간사회의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력적인 관계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서로 다투고 투쟁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는 조정력을 갖기 위해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다. 국가사회의 의사조정권을 주기 위해 우리는 선거를 하며, 이 권력을 가졌거나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치인이라 부른다. 정치경쟁의 장에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민들은 이 약속으로 그들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돌에 새긴 금언과 같이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공약이며, 그들의 말로 우리는 미래를 짐작한다.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정치인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경우는 홍수 때의 빗줄기처럼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키지 못할 공약남발, 일단 권력을 쥐고 나면 약속은 파기하고 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후진적 양상이다. 요즈음 대통령의 복지공약 실현을 두고 장관사퇴라는 초유의 사건이 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약 작성에 참여했다는 핵심측근인 장관이 이제 와서 자기 신념이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고, 그 공약이 지키지 못할 것이었지만 표를 얻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도 문제이다.정당공천제의 폐지 약속이 또 그렇다. 이 문제는 정치의 공약 깨기 중에서 모든 정당이 관련되고 모든 정치인이 관련된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적인 약속위반 사례가 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중앙정치도 지방정치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수장 및 지방의원들도, 국민도 시민도 모두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지난 12월로 되돌아가 보자. 여야당의 대통령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하였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하향식 비민주적 정당공천제는 없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이 탄생했다. 이 정부의 안전행정부장관도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3월 13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당공천제의 부정적인 사례로 지난해 치른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꼽았다. "기호 1번 후보가 사퇴했는데도 실제 선거에선 그를 찍은 표가 14%가 나왔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수렴 및 관련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7월에는 야당인 민주당도 당원투표에서 67.7%가 폐지에 찬성하였고 이것이 당론이 되었다. 또 국민은 어떤가. 언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 조사(9월28일)에서 응답한 국민들의 65.7%가 폐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이의 의견이 결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는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약속을 뭉개는 검은 연기가 가을 하늘을 뒤덮는다. 쓰레기 태우는 악취가 풍기는데, 여야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약속을 뒤집는 냄새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의제로 한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난 9월 30일 활동을 종료했다. 한 정치비평가는 여야당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이 줄 세우기도 힘들어지고', '공천장사를 하기도 어려워지고', '당원과 지역관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치인들이 후안무치하게 공약을 뒤엎는 것은 명료하다. '그 좋은 걸 왜 없애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기는 후진적인 정치행태이다.2013년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148개 국가 중 25위로 2012년에 비해 6계단이나 내려갔다(세계경제포럼 WEF 9월 4일 발표). 그중 가장 꼴찌가 정치 분야에서 책임져야 하는 '정책결정의 투명성' 지표인데 이것이 137위이다. 공약파기를 일삼고 밀실에서 야합하는 냄새를 나라 밖에서도 다 맡는 모양이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태도를 눈여겨보아 다음 선거에서 거짓과 위선을 좀 치워냈으면 좋겠다. 가을하늘이 다시 푸르게…./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10-07 허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한다'맹자는 여민동락을 강조했다브레이크 없는 한국정치는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못주는지 멈추고 되돌아 봐야한다왜냐하면 국민들이 있기 때문올해 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선배를 면회 가게 되었다.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공공기관의 꽤 높은 요직에 있던 선배였다. 재임 중 민간업체와의 계약에서 비리 혐의가 문제되어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본인은 매우 억울한 심정이고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게 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고 석방되면 사업가의 길을 가겠노라며 울먹였다.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영치해 주었다. 구치소를 빠져나오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는 '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지난 추석 직전, 유명 성악가의 공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성악가의 남편은 영향력있는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다. 오랜 기자생활의 인연과 인맥 때문인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여야 유력 정치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노래가 대부분 외국의 유명 가곡이었다. 우리말 가사와 선율이 아니라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악이 주는 매력으로 마음이 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앙코르송으로 우리 가곡인 '보리밭'이 열창되자 참석한 몇몇 여야 정치인들도 손수건을 연신 눈에 갖다 대며 감동에 겨운 모습이었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는 이들에게도 이날 공연은 큰 감동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왜 365일 여의도 정치는 1시간 30분여의 공연에 비해 감동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는 것일까.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영향력은 지나칠 정도이다. 다른 국가에 비해 정치적 관심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치력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이것을 통해 다양한 이익 추구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13년 파워조직 인식조사를 보면 검찰, 경찰, 국세청, 청와대 순으로 10위권 내 위치하고 있다. 2011년 조사와 비교할 때 영향력 순위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반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21위에 그쳤다. 경제 수준은 선진국에 버금가지만 '시민의 힘'은 권력의 그것만 못한 것이다. 여전히 경찰 앞에서는 이유 없이 위축되고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상징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많은 지도층까지도 개인적 비리와 욕심으로 단죄 받아도 정치적 불이익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곧잘 볼 수 있다.정치적 영향력이 큰 것만큼 그것으로부터 받는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연일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들은 즐겁고 유쾌한 내용은 별로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희망과 기대를 가졌지만 임기 초부터 들려오는 뉴스는 대부분 짜증나는 내용들이다. 정부인사의 성추행 파문, 대선 과정의 여러 가지 의혹, 4대강 사업관련 수사, NLL 대화록 논란, 검찰총장 사퇴, 복지 공약의 변경과 축소 등 국민들이 감동받거나 치유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런 한국인의 자살 이유 중에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중요하게 거론된다. 검찰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다시 분열되고 공방을 벌였다. 거의 모든 국민은 검찰총장의 개인사와 권력기관 사이의 힘겨루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치권이 당분간 대타협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여야가 국민을 볼모로 벌이는 청문회도 수차례 지켜봐야 하고 엉성한 공약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순식간에 바꾸는 모습도 수차례 지켜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맹자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의미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한국 정치는 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하는지 지금 멈추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2013-09-29 배종찬

조선인 가미카제와 역사 교과서

日정부 침략 역사 유감 표하자반대 세력들은 전쟁미화에 활용국내선 친일과 저항 애매한 해석식민시기 조선인의 불편함을기회로 바꾸어 말하려는 의도도건강한 역사의식 위협받아 걱정서정주 시인은 1944년 12월 '마츠이 오장 송가'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발표한다. 조선인 최초의 가미카제였던 마츠이(본명 인재웅) 오장의 죽음에 대한 송가였다. 소년비행병 13기 출신인 그가 해방전 해 미국 군함을 향해 자살 특공을 감행한 이래 총 17명의 조선인이 특공 감행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일제에 의해 총력전 선전에 활용되었다. 그러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서성거렸고, 잊혀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2000년 이후 한일 양국은 그 죽은 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가미카제 훈련과 출격 기지였던 가고시마의 지란에는 조선인 가미카제만을 위한 전시 코너가 마련되었다. 일본인들이 죽은 이의 화신이라 믿는 '반딧불'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인 가미카제가 영화화되기도 했다. 일본 방송들도 이야기 발굴에 열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소설, 르포, 다큐멘터리, 신문기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2008년에는 경남 사천에 조선인 가미카제 대원의 망향비 건립 시도가 있었다 사천 지역 주민, 광복회 등의 반대로 실패하고 경기도 여주의 한 사찰로 기념비가 옮겨가면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왜 그토록 긴 시간 침묵했던 양국은 그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을까? 1995년 8월 15일의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가 침략 역사에 유감을 표하는 담화를 발표한다.이 담화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반성에 반발하는 기운이 동시에 일었다. 반발하는 기운은 가미카제를 재조명했고, 그들 안에 있던 조선인 가미카제를 톺아내 전쟁 미화에 활용한다. 이시이 현의 가나자와 내 호국신사에 세워진 '대동아 성전 대비'에도 몇몇 조선인 가미카제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그들의 성전에 조선인도 참여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역사 왜곡을 다반사로 해오던 일본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언급 의도는 뚜렷하지 않다. 그들을 언급한 국내 이야기에서도 조선인 가미카제는 때론 친일 인사로, 다른 땐 식민지배의 희생자로 애매하게 그려진다. 늘어난 담론, 평가의 다양함을 징후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짐작해보면 식민지배 내 개인 마음속에서도 저항과 협조를 오갔던 불편함을 가미카제라는 극단적인 예를 통해 드러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리라.조선인 가미카제 대원 중 살아남은 자들은 나중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의미없는 죽음과 출세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 가미카제의 발굴은 부끄럽지만 우리 것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드러내는 진솔한 작업이다.친일과 저항으로만 드러나지 않는 애매한 공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솔직하고도 자기 성찰적인 노력이다. 일본은 조선인 가미카제 이야기를 통해 일본만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들은 일본과 조선을 구분해내고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노력을 벌이진 않았다. 한국은 조선인 가미카제를 통해 식민시기 동안의 분열된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하려 했다. 아직은 한국의 역사의식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더 건강해 보이는 징후다. 하지만 우려가 없진 않다. 식민시기 조선인들의 불편함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 그 불편함을 기회로 바꾸어 말하려는 역사해석, 교과서까지 등장하고 있다. 조선인 가미카제 이름을 성전기념비에 새겨 넣는 일본의 극우 작업에 버금가는 일이 큰 저항 없이 스멀스멀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조선인 가미카제를 통해 본 지금 현재 한국의 역사의식,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심하게 위협받아 흔들리고 있다./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3-09-22 원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