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300년만에 경기도에서 민란?

경기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어중앙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경기동부연합 내란음모사건은통진당 울산부산·광주전남연합중유독 경기의 수원·안양·성남지역당원들이 관련되었다고 한다북으로 개성, 동으로 여주, 남으로 안성, 그리고 서쪽의 강화 앞바다까지 포괄하여 선을 그어보면, 경기도는 원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이 원 안에 달걀노른자위처럼 서울이 자리하고 있으니, 곧 서울과 경기도가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지방을 경계 지을 때 대개는 산과 강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일부러 둥글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서울과 경기도는 동그랗게 생겼다. 왜일까?고대 중국의 국가·사회제도를 체계화한 '주례'에 의하면, 왕의 침소로부터 사방 3리를 성(城:내성)이라 하고, 그 성으로부터 사방 7리를 곽(郭:외성)이라 했다. 그리고 성과 곽을 포함한 사방 10리 구역이 경(京)이다. 또 곽으로부터 사방 100리까지를 교(郊)라 하고, 교로부터 사방 100리 안을 전(甸)이라 한다. 그리고 교와 전을 포함하여 경(京)으로부터 사방 500리 안을 기(畿)라 했다.곧 왕의 침소를 중심으로 성, 곽, 교, 전의 동심원이 그려지는데, 이는 왕궁을 지키는 방어선들이다. 그리고 왕의 침소로부터 10리되는 곽(郭)까지인 경(京)과 500리까지인 기(畿)는 행정구역 개념이다. 그래서 옥편에서는 기(畿)자를 '경기 기'라 훈하고 '왕국천리'라 보한다. 왕궁으로부터 사방팔방 500리까지 기(畿)이므로,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1천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예이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축소되어 왕궁으로부터 200리 정도를 기(畿) 구역으로 친다.'경기'라는 말은 고려 문종 23년(1069)에 처음 나왔다.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50여 개 현을 합쳐 '경기'라 칭한 뒤 왕실 직할지로 삼은 것이 그 기원이다. 서울보다 위에 있는 개성을 중심으로 사방을 경계짓다보니 황해도와 평안남도 일부 지역까지 기(畿)에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 건국 후 3대 임금 태종에 의해 8도제가 실시되면서, 고려 때의 지역으로서의 '경기'는 사라지고 행정단위로서의 '경기도'가 확립되었다. '지리지'의 "경기도의 동쪽은 강원도 춘천과 원주에 이르고, 서쪽은 황해도 강음과 배천에 이르며, 남쪽은 충청도 죽산과 직산에 이르고, 북쪽은 황해도의 토산과 강원도 이천에 이르러서 동서가 264리요, 남북이 364리가 된다"는 기술로 보아, 팔도를 경계 지을 때 경기도는 철저히 를 원용한 것 같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경기도를 기내(畿內), 기전(畿甸), 근기(近畿)지방이라고도 부른다.조선조 임금들은 나라의 위기에서 몸을 바쳤거나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경기도 땅들을 공전으로 내려 주었다. 곧 경기도에는 한양의 벼슬아치 부재지주 하에 그들을 대리하는 마름들이 좌지우지하는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다. 성호 이익은 에서 "경기는 토지가 메마른데도 인구가 밀집하였으며, 토지의 소출이 가장 낮은데도 서울로 수송하기 때문에 이곳 백성들이 가장 가난하다"고 적고 있다.이런 사정인 데도 경기도에서는 숙종 때 양주에서 중 여환이 만민평등의 미륵사상을 내세워 민란을 모의하다 발각된 사건 외에 한 번도 민란이 일어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경기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어 중앙권력의 예리한 감시를 항시 받을 수밖에 없다. 곧 민란을 모의해도 지방 관리와 벼슬아치들에 기생하는 마름들에게 쉽게 포착될 수밖에 없고, 민란이 일어나더라도 개성, 강화, 수원, 광주 4개 유수부 군사에 의해 쉽게 진압당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근 한 달째 소위 '경기동부연합 내란음모사건'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연합, 울산부산연합, 광주전남연합 중에서 유독 경기동부연합의 수원, 안양, 성남지역 당원들이 관련되었다고 한다. 300여 년 만에 경기도에서 일어난 민란 음모다. 그런데 그 혐의가 너무 우습다. 비비탄총을 개량해 총을 만들 계획이었고, 130여 명이 모여 내란음모를 '분임토의'했단다./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2013-09-15 김학민

김종삼의 시 '민간인'과 이석기

묻고싶다, 은밀하게 자신들의보안체계를 갖춘비밀혁명 조직을 만들고총기를 사용해서라도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뒤집어얻고싶은 세상이 뭐냐고…"1947년 봄/심야/황해도 해주의 바다/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울음을 터트린 한 영아를 삼킨 곳./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1921년에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월남한 김종삼(1921~1984) 시인의 '민간인'이란 시다.이 시에 나오는 1947년이라면 남북분단이 고착되는 해. 북은 토지 몰수와 공산체제를 완성하면서 자유를 억압하였고, 일단의 월남피난민은 그때부터 나왔다. 시인이 탄 조각배가 공산압제를 피해 해주바다를 숨죽여 건너던 중 아이가 울자, 제 어미가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압제를 피해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는 '민간인'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하고, 공산체제를 수호하는 자들은 찾아 죽이려 한다. 김일성의 수하들은 눈이 벌겠다. 바다가 삼키다 실패한 숨소리라도 찾아내서 죽이려고 한다. 그런 죽음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아이는 울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미는 어미대로 '살고' 싶었다. 아이는 살고 싶어 울고, 어미는 살고 싶어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한 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아이는 싸늘하다. 차가워진 아이를 붙잡고 어미는 오열한다.잡히면 죽임을 당하는 슬픈 현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야음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제 동포를 죽이는 오늘의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제 동포를 찾아 죽이는 버릇은 65년 이상이 지나도 여전하다. 아니지. 자기 체제가 옳다고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민간인'들을 죽인 버릇은 비뚤어진 권력을 쥔 못된 인간들의 속성이다. 피의 숙청을 통해 공산체제를 세상에 보인 스탈린이 그랬다. 파시스트 독재를 완성하려고 600만 이상의 유태인을 죽인 히틀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죽음을 선사하고 만들려는 세상은 정말 생산과 소비를 공평하게 나누자는 공산주의인지, 아니면 피로 채색한 권좌에 대한 집착인지는 이제 다 알려져 있다.그리고 지금. 우리가 시인처럼 묻는다. 국가분단이 주는 이 아픔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야하느냐고. 국회의원 이석기는 RO의 수장으로서 이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북미간 전쟁 상황에 대비해 전쟁을 준비하자", "통신과 유류저장고 등을 파괴하자" 등. 이 말들은 남한에서 전쟁을 대비해 미국을 물리치고 북한 공산세력 위주로 통일하자는 의미라 한다. 이 말들과 저간의 사정들이 내란음모에 해당하는지는 수사과정과 법원에서 드러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언론에 비친 이석기의 말만으로도 용당포에서 아이를 죽인 시대가 다시 겹쳐 보인다.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이건청 시인이 김종삼시비를 찾은 날 말한다. 한국의 수많은 시들 중 김종삼 시인의 시는 순도와 밀도가 가장 높은 시라고. 필자는 '민간인'이라는 시제목이 바로 그 정수라고 생각한다. 민간인은 모든 권력을 쥔 사람과 그 수호자에 대응되는 말이다. 이 땅에 사는 민간인들은 식민제국의 총검으로 위협한 체제가 무섭고,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밤이면 이편에 서주어야 하고, 낮이면 저편에 서주어야 했던 세월이 무섭고, 그러다가 죽은 엄마, 아버지가, 떨어진 형과 누나가 그립다. 이런 고통 속에 얻은 민주주의가 그래서 소중하다. 아이를 용당포에 바칠 일도,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아들을 붙잡고 오열할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석기에게 되묻는다. 은밀하게 자신들의 보안체계를 갖춘 비밀혁명조직을 만들고, 총기라도 사용해(이정희의 말로는 농담으로) 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뒤집어서 얻고 싶은 세상이 무어냐고 말이다.김종삼 시인의 어머니는 포천시 소흘읍의 부인터라는 곳에 묻혔다. 그 어머니가 그리워서 생전에 그는 포천에 자주 왔고, 동료와 후배시인들은 그를 포천의 국립수목원 부근에 시비를 만들어 기려주었다(현재 고모리저수지로 이전). '민간인'이란 시도 그 시비에 적혀있다. 그가 무명세계로 돌아간 지도 30년. 그의 시비 앞에서 그의 말을 듣는다. 이석기에 대한 재판은 법원보다 무명세계의 시인이 먼저 하고 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숨쉬는' 세상을 만드는 체제가 좋은 것이라고./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2013-09-08 허훈

문제는 정치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데대선전쟁 끝날 기미 안보여국민들 민생현안 승부 원해장외로 나간 민주 국회 복귀과거와의 숨바꼭질에더이상 시간 허비 말아야얼마 전 법조계의 존경을 받던 한 대법관이 퇴임했다. 대형 로펌으로 갈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부인이 운영하던 야채가게 도우미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마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대형 로펌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가 노심초사 내놓은 결심의 배경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존경했던 대법관의 변심에 몹시 서운했지만 맹자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민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사탕발림을 다했다. 만약에 국민이 원한다면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아양을 떨었다. 치열했던 '대선 전쟁' 드라마는 지금쯤 당연히 끝났어야 하지만 '대선 진실 게임'이라는 지루한 드라마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대선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감한 이슈들이 많았다. NLL대화록 논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등이 그렇다. 사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 알기 쉽지 않다. 각 정당은 내 주장이 진실이고 상대방은 '국기문란'이라고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둘 다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파워 게임'의 결과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매우 어렵다. 승자는 패자를 다독이고 패자는 재기를 노려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대한민국의 전부가 될 수 없듯 국민들을 위한 민생공약 실천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대통령 임기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는 국민의 여론을 살펴보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서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 10명 중 7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국회복귀 의견이 더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응답은 민주당의 주장이 틀렸다고 국회로 복귀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 장외가 아니라 국회이므로 민생현안 대결로 승부를 보라는 당부인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도 국민들의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대선 공약 중 재정부담이 되는 정책에 대해 반이 넘는 55%가 수정하거나 철회해도 된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무리한 공약 이행보다는 할 수 있는 공약을 가능한 예산범위 내에서 제대로 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엉성한 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욱이 국민을 '거위'에 비교하는 무책임한 생각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국민들의 여론은 한결같다.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지만 민생현안을 챙겨야 할 많은 시간을 '과거와의 숨바꼭질'에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 안에서의 투쟁, 장외투쟁, 철야투쟁 등 수많은 정치인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국민을 위한 투쟁으로 와 닿는 것이 없다. 오죽했으면 일부 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여론이 40%에 육박했을까. 의원들의 세비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을 위한 교부금도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이렇게 하고도 2016년 총선에서 다시 전국을 돌며 한 표를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신예 빌 클린턴 후보는 예상을 깨고 조지 H 부시 현역 대통령을 이겼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에 몰두하며 경제난에 내몰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금 정치를 보면 새누리당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민주당은 친노만 바라보고, 통합진보당은 북한만 바라보는 꼴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소리치지만 정작 국민을 바라보지도 않는 것이다. 단언컨대, 국민들은 '무항산 무항심'의 심정으로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2013-09-01 배종찬

취임 6개월의 '정치'와 '민생'

국정원 국정조사 끝났지만여야갈등 수그러들지 않아집권당은 야당에게 퇴로를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대통령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자리가 아니기에 직접 나서야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임기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초반의 국정 드라이브는 중요하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50% 후반에서 60%대의 안정된 지지세를 보인다. 노무현, 이명박 등 전임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 높은 지지도를 보이다가 하락하는 경우와 대비된다. 방미 성과나 방중에서 나타난 외교적 결실, 대북 관계에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반한 안정감 있고, 일관된 정책은 남북관계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대외적 성과와는 달리 내치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의지와 원전 비리 수사 등을 제외하고 임기 초반 이렇다 할 성과를 발견하기 어렵다. 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법 통과의 지연과 인사파동은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식의 전환이 긴요하다. 일방적인 지시에 기반한 정책은 토론과 건의를 실종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그래서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이다.권한과 책임을 분담하는 참모의 부재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에는 저해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 등이 연이어 낙마한 인사파동 이후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에 초청해 '야당과의 국정동반자 관계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통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당청 관계의 유기적 작동도 소원해 보인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도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정국수습을 위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 제안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3자회담 방식도 거부했다.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 사항이었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국회를 민생과는 무관한 소모적 정쟁의 장으로 폄하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권위주의적 리더십은 감동을 수반하지 못한다.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이 요원한 곳에서 통합이 들어설 공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을 외면하고 갈등의 관리와 조정을 위한 토론도 정쟁이라고 보는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권위주의는 민생을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시키고, 국민들의 즉자적 경제 생활에만 1차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구조의 틀에 친근했던 산업화 시대의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리더십과 맞닿아 있다. 권위주의와 '민생'의 왜곡된 조화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민생과 분리시키는 기현상을 잉태한다. 그리고 이는 국회의 왜소화, 정치의 부재, 여야 정당의 경시와 친화력을 갖는다.민생과 정치는 별개가 아니다. 정치는 정쟁적이라는 사고와, 정치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라는 인식속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할 토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삶 그 자체인 민생은 시민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 해내고, 이를 관리, 조정, 타협 시키는 정치라는 장을 거치지 않고는 제도화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입법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 대안이라도 집행할 수가 없다. 비록 여야의 주요 정당이 카르텔 구조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계층과 지역 대표성과 갈등 관리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정당체제에서 정치의 기능을 폄하한다면 민생은 중장기적은 물론이고, 단기적으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과정이고, 국회의 입법 과정이기 때문이다.국정원 국정조사가 끝났지만 여야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의 집권당의 정치력으로는 야당에게 퇴로를 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청와대로서는 여야의 첨예한 정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겠으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치 그 자체다. 정치의 중심이고, 정치는 일정부분 정쟁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를 조정해 내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다. 진정한 정치의 복원이 전제될 때 민생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와 민생은 별개가 아니다./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8-25 최창렬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

이제 우리의 관심과 화두는경제에서 행복으로 바꿔야한다행복할 수 있는 길을 어려서부터제대로 된 교육으로 학습하고인성을 찾는 노력에 사회가 뜻과힘을 모으고 투자해야 한다길고도 길었던 장마도 결국은 물러가고 염천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굽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여름도 가고 어느덧 가을이 올 것입니다. 세월이란 덧없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다툼도 욕심도 다 부질없어 보입니다. 이제 저의 1년에 걸친 월요논단을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서툰 글 솜씨로 풀다가 보니 거친 점도 미숙한 점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너른 이해를 바랍니다.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첫째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그 자체의 관리입니다. 삶과 희망과 행복의 바탕이 바로 공동체입니다.마치 고기에게 물과 같은 것이지요. 우리의 공동체는 건강한가요? 최근의 '묻지마 차량돌진 살인'을 기억합니다. 충격적이게도 그 이유는 '웃는 사람 보면 죽이고 싶었다'라고 합니다. 이 묻지마 증오범죄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막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죽고 다친 사람이 나와 무관한 사람임을 안도하고 있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진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혼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불행이 내 차례가 될 때까지는 아직도 여유가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일까요. 탐욕, 불만족, 오만함, 무례함, 염치없음, 적개심, 분노 이런 것들은 가슴속에서 자라서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마치 오염된 공기 속에서는 누구도 건강을 지킬 수 없듯이 병든 사회에서는 아무도 행복할 수도 안전할 수도 없게 됩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그동안 우리 사회의 관심이 너무 오래 경제에만 함몰되어 왔습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한 염원은 우리를 뭉치게 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자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게 하는 참으로 순수한 열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히려 물질의 욕망에 육체도 영혼도 매몰당하여 모두가 길을 잃고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과 화두를 '경제'에서 '행복'으로 돌려야 합니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어려서부터 학습하고 인성을 찾는 노력에 온 사회가 뜻과 힘을 모아야 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 수단으로 교육만큼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이 없겠지요. 물론 제대로 된 교육 말입니다.다음으로는 '긴 호흡'을 되찾는 일입니다.기업실적도, 경제정책도, 그리고 백년대계라는 교육마저도 조급증에 빠져 허덕대고 있습니다. 실적만 보고 비전은 보지 않습니다. 비축은 없고 소모만 있습니다. 우리만 있고 우리 아이들은 없습니다. 현재만 있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탐욕이라는 악마의 손에 우리는 긴 호흡을 잃어 버렸습니다. 선량한 제도가 왜곡되고 악용되어 탐욕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투표라는 제도는 우리 사회를 승 아니면 패의 이분법과 그에 따른 한탕주의의 유혹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증시제도는 더 이상 투자 자본을 모으는 수단이 아닙니다. 제도화된 투기판이라면 과한 표현일까요? 그러면 왜 월가에 돌을 던지고 개미는 패가망신하는 것인가요.누군가는 씨를 뿌려야 뒤에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모두 당대에 거두는 일만 하려하고 사람들은 거기에만 박수를 보냅니다. 씨를 뿌린 사람에게도 잊지 않고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또한 탐욕이란 악마의 도구가 된 모든 제도를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갈 수 있게 과감히 그리고 신속히 고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다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편화하고 그것이 믿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2013-08-18 박연수

문화재, 국가 표준 복제품 제작의 필요성

원본 하나만 존재하기에문화재로서 가치 높지만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하면영원히 없어지는 위험 있어미리미리 대비해야 하고가짜가 남발돼서는 안된다지난달에 유럽에 나간 김에 프랑스 파리의 몇몇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역사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루브르 박물관과 기메 박물관의 전시유물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이곳의 전시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프랑스 자국의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유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한 것이다. 기메 박물관에는 한국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김홍도의 8폭 병풍, 금동 불상 여러 점, 조만영 초상화, 심지어 삼국시대 신라금관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쩌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가? 이것들은 분명 우리가 대여한 것이 아니라 도난당했거나 무단 반출된 것들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지키지 못해 완전히 없어질 수도 있었던 것을 대신 잘 보존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올해 초부터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오는 10월 29일부터 미국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할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전시하기 위해 국외 반출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격앙된 논쟁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에 이 반가사유상을 포함하여 국보와 보물급 국가지정 문화재를 빌려주기로 하고 문화재청에 국외 반출을 요청하였다.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의 대량 반출은 위험하면서, 특히 반가사유상은 이미 여러 차례나 국외에 반출되어 전시되면서 벌써부터 훼손의 우려가 제기되어 온 지라 반대의 입장을 완고히 하였다. 이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은 '핵심 유물의 제외로 대단히 실망한다'면서 '전시 진행 자체를 재검토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결국 8월 9일 문화재청은 반가사유상을 국외 반출하여 전시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반출 결정을 했지만 무언가 좀 개운하지 않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재를 철저하게 보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과 우리 문화 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 둘 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완전하게 보존하면서 아울러 해외에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반가사유상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향후에 분명히 유사한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번이 선례가 되어 자꾸만 우리 문화재를 해외로 내돌릴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역사성과 문화 예술적 가치가 훌륭한 문화유산들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 전문가들 역시 유일무이한 문화재는 보호를 위하여 가급적이면 해외 전시에 내보내는 것을 자제할 것을 이야기한다.오늘날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삼국의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그것을 남긴 민족과 국가의 과거 문화적 수준과 우수성에 감탄을 한다. 그러나 사실상은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의 문화재를 지키지 못하여 강대국에 넘겨준 꼴을 보면서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비장함마저 느낀다.이러한 생각에서 필자는 중요한 문화재의 복제를 주장한다. 하나만 존재하기에 문화재로서 가치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본 하나만을 고집하다가 만약에 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하면 영원히 없어지는 위험이 있다. 이것에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조선왕조실록을 한 질만 편찬한 것이 아니라 네 질을 만들어 네 곳의 사고에 각각 따로 보관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전란과 화재에도 우리는 완질의 조선왕조실록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것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음을 본받아야 한다.국내에 있는 문화재는 물론 해외에 있는 것들도 조사하여 국가 차원에서 협상을 통해 복제품을 제작하였으면 한다. 그러면 현존하는 우리 문화재들을 모두 갖추게 될 것이다. 당연히 문화재의 복제품, 이른바 '짜가'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통제 아래 국가 공인 표준 복제품을 만들어 관리한다면, 이것 또한 그때그때 필요와 용도에 따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3-08-11 김창겸

차별없는 사회를 위하여…

모든 차별은 사회적 갈등과분쟁의 주요 원인이 된다차별과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고차이에서 배울수 있어야 한다몇 년 전부터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차별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2008년에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던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언행으로 인해 생겨난 교육이다. 일부 공직자들이 특정 종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기도 했고, 근거 없는 비방과 억측으로 반발을 사는가 하면, 자신이 믿는 종교만을 우대하거나 특혜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모든 종교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규정이 공무원 관련 법령에 추가되었다. 종교에서도 차별이 중대한 문제가 된 것이다.종교차별이나 종교편향이 된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특정 종교를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만을 절대화하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공직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교 차별적 언행을 함으로써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예컨대 공립학교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의식을 강제하거나 공공기관에서 특정 종교에 재정적 혜택을 주는 것, 혹은 공공단체에서 특정 종교인을 우대하여 채용하는 것 등이다. 또한 공직자가 특정 종교를 '사이비 종교'나 '이단'이라고 비방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모든 차별이 그러하듯이 종교 차별도 차별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종교의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교이든 간에 그의 종교가 절대적 신념체계이자 절대적 가치이다. 종교차별은 바로 그러한 자유의 침해이며 종교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훼방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종교차별은 종교인들의 공동체에 위해를 끼치고, 그로 인해 사회적 분쟁으로 치닫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며, 심지어 전쟁도 불사하게 된다. 종교 분쟁의 참담한 비극을 전쟁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증명되고 있지 않는가!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전형적인 종교다원사회에서는 종교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 사이에서 상호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내가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종교를 절대적으로 신앙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종교를 그렇게 신앙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를 믿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종교를 믿는 자유도 보장된다.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는 종교가 달라도 같은 국민이고 시민이며 이웃이 될 수 있다. 한 가족 내에서도 아내와 남편의 종교가, 부모와 자식의 종교가 다를 수 있다. 마치 인종이 달라도 같은 국가의 국민일 수 있듯이, 자라난 문화가 달라도 다문화 가정을 이룰 수 있듯이, 종교다원사회에서는 다종교 가정도 생길 수 있다. 인종차별과 문화적 편향이 심각한 범죄와 부도덕으로 취급되듯이 종교차별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차별과 편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이해가 필수적이다. 무지가 오해를 낳고, 오해가 차별과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미국종교학회에서 펴낸 한 책자에 '종교적 문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글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종교에 대한 무지를 종교적 문맹이라 지칭한 것이다. 이 책자에서는 종교적 문맹으로 인해 편견과 적대감이 생겨나고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협력을 방해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내가 믿는 종교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이 믿는 종교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종교학자이기에 종교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차별은 종교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 지역차별 등등 모든 종류의 차별은 무지의 소치이고, 그 무지가 분쟁의 원인이 된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고, 차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적을 이기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차별을 극복하여 평화로운 공존과 바람직한 협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3-08-04 류성민

NLL과 '출구전략'

NLL 정쟁은 양비론의 전형출구전략을 논한다고 하지만여야의 셈법은 아주 달라당리당략 계산속 회의록 공개가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성찰이끼어들 틈은 애당초 없었다지난 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문제제기 이후, NLL 논란의 촉발 주체는 새누리당이지만, 민주당도 수저를 슬그머니 얹었다. NLL을 둘러 싼 백해무익한 논쟁 아닌 정쟁이, 여야 자신들이 보기에도 민망했는지 양측이 모두 이른바 출구전략을 얘기한다. 새삼스레 어느 정파의 책임론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사태를 보는 시야를 흐리게 하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양비론(兩非論)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NLL을 둘러싼 정쟁은 양비론의 전형이다. 정치권이 출구전략을 논한다고 하지만 여야의 셈법은 판이하다. 국정원에 보관중인 대화록의 녹음 파일은 공개하지만, 회의록 부속자료 열람은 반대한다는 새누리당이나, 정 반대의 주장을 펴는 민주당은 여전히 출구전략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여야의 당리당략의 계산속에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성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당초 없었다.대체적인 이념 공방에서 비교적 새누리당이 유리한 구도를 형성해 왔던 과거와는 달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작년 10월 정문헌 의원이 NLL을 정치의 한 복판으로 끌고 들어온 이후 초지일관 전직 대통령의 대북 인식을 문제삼는다. 일견 보수독점적 카르텔 정당구조에서도, 보수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함으로써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결집을 도모하고 다가오는 각종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지극히 정치적, 당리당략적 사고의 소산인줄 알았다.그러나 NLL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여권의 주류는 뼛속 깊숙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북한에 갖다 바치려고 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성사될 것 같지 않지만 여야가 NLL 수호에 대한 공동선언을 함으로써 논란을 종식시키자고도 한다. 뜬금없다. 언제 민주당 등 야당이 NLL을 수호하지 말자고 했던가. 기회있을 때마다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야당은 입장을 표명해 왔다.지난 대선 며칠 전, 권영세 주중 대사의 NLL 관련 언급이나, 12월 14일 김무성 의원의 부산 유세에서의 NLL 관련 내용 등은, 이와 관련한 여야의 정치적 쟁투와 상관없이 여권이 NLL을 자신들의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추론과 논리적 인과관계의 형성에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여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NLL 관련 발언을 어떻게든 '영토의 포기'라는 논리적 정합성이 전무한 논리로 끌고 가려했다. 또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공개, 이어 회의록 전문의 공개라는 국정원장의 직무를 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행위는, 지난 대선에서의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의혹을 덮으려는 계획된 도발이라는 정황과 심증을 갖기에 충분하다.민주당은 애초의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불가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고, 갑자기 공개 입장으로 선회했다. 어차피 회의록 전문이 공개됐으니, 이것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자는 취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문재인 의원과 친노 그룹 등 당내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듯한 흔적은 지울 수가 없다. 진정성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순히 친노그룹이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순진할 정도다. 따라서 야당도 국익과 민생을 담보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급기야 민주당 내 친노와 비노의 해묵은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익을 위해 끝까지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및 공개의 부당함을 설파했어야 했다. 그리고 국정원 국정조사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령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는 한이 있어도,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국익과 민생을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반대한다'라고. 그리고 새누리당의 NLL 대화록 공개의 부당성을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새누리와 민주는 적대적 공존을 택했고, 독점적 카르텔 정당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권력을 사유화 하지 않고 이러한 국민 우롱 행위가 가능할까. NLL 출구전략은 그래서 국민에게 다가오지 않는다./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7-28 최창렬

교육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교육현장 뒤흔드는 각종 부패와성적에만 치중하는 시스템 문제선행학습 없애는 분위기 조성 등무엇보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지덕체 균형잡힌 커리큘럼 통해위기에 처한 공교육 바로세워야스승이기를 포기한 일부 교사들의 일탈이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제자 성폭행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르치는 자세나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여기까지 왔나싶은 생각에 우리 사회의 바탕과 우리의 미래가 흔들리는 느낌을 어찌할 수 없다. 어찌 교사뿐이랴. 일부 악덕 학부모의 행태와 교육당국의 부패, 그리고 교육현장에 파고든 정치도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있다. 교육의 위기, 이제 국가 존립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정부는 단호하게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현대인은 거의 모든 것이 학교 교육에서 만들어진다. 유아시절부터 생활에 바쁜 부모를 떠나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등으로 이어지는 외부교육에서 인성, 가치관, 지식 등이 형성되어간다. 옳지 않은 것이나 잘못된 것이 주입되어도 그렇게 알고 살 수밖에 없다. 특히 처음 채워진 것은 인식의 주도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우리 미래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교육의 중요성, 선생님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누구도 범죄형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 부모형제를 사랑하고 이웃과 잘 지내는 자녀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길러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부모는 적다. 학교에 맡겨 놓고 챙기는 것은 오로지 시험성적이다. 정부에서도 '교육'이나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보다는 입시제도와 성적순위가 교육행정과 인재양성의 목표인양 하고 있다.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인가?당연히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는 일로부터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공교육 정상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해야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다. 먼저 제대로 된 선생님을 찾든지 양성하든지 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바로 정하고 그에 따른 커리큘럼을 만들어 교육의 균형을 잡아야한다. 유아원부터 대학원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학교만 남겨야 한다. 공교육이 바로 서면 사교육은 공교육을 보완하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 제대로 관리하면 된다. '선행학습'을 필요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이 횡행하는 한 학교수업에서는 가르칠 것이 없다. 구구단도, 알파벳도, 인수분해도 학생들이 미리 배워오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지루하다.그러다보니 안 가르치게 되고 사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은 배울 기회가 없어진다. 선생님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나 선행학습 수요는 공교육에서 제공한다. 왜 선행학습을 돈을 들여가며 하는 것일까?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다. 시험문제는 누가 내는가. 그것은 학교 선생님이다. 가르친 범위 내에서, 가르친 내용 중에서 출제하고 가르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출제도 마찬가지다. 변별력만을 생각하여 범위와 수준을 넘나든다면 아래 학제의 교육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필기시험 결과 부족한 변별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내신이나 특별활동 또는 면접이 있는 것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영어, 수학 등에 치우친 교육과 시험의 문제점이다. 인성과 학문의 다양성, 즉 지덕체의 균형 잡힌 커리큘럼과 한국인으로서 필요한 역사관 등은 인격형성 과정에 있는 중등과정까지는 고르게 익히게 해야 한다.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도 교육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교육의 본질을 찾아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가운데 지킬 것은 지키고(이념화, 정치화 방지) 키울 것은 키우는(교사의 정예화) 등 근본을 바로 하는 것이 교육을 바로 잡고 우리사회와 미래를 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2013-07-21 박연수

'쉼'과 '비움'의 앙상블

프랑스어 '바캉스'는본래 '비움'이란 의미이다몸도 마음도 가장 평안한상태가 될 수 있어야 한다휴가후 일의 의욕이 생기도록철저히 비우는 휴식을 보내야장마철이다. 무더운 나날이다. 일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힘들고 짜증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머잖아 방학과 휴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은 이미 방학에 들어갔고, 초·중·고등학교도 곧 방학이 시작된다. 직장인들도 휴가 계획을 세울 것이고, 집집마다 어디로 얼마동안 휴가를 갈지 설왕설래할 때다. 유명한 산과 바다에는 사람들로 넘칠 것이고,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산과 바다를 이룰 것(人山人海)이 분명하다.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마음껏 놀아보라는 광고말도 귀에 솔깃하다.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픈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 있겠는가. 그렇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학생들의 공부시간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는 아닌지. 그렇다고 우리의 노동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제 일도 공부도 양보다 질을 중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도 쉼은 필수적이다. 쉬어야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떻게 쉴 것인가?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오지의 섬으로 갈까 외국으로 여행할까, 고민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면 쉬기도 되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쉬면서 다이어트 하고, 쉬면서 운동도 하고, 쉬면서 책도 읽고, 쉬면서 여행도 하고, 쉬면서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등등 쉬면서도 하고픈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쉬는 것이 미처 하지 못한 일과 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기 마련이다.미국으로 유학을 간 한 고등학생의 아버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학생이 방학이 되어 일시 귀국을 했다. 나름 보람된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여 부족한 영어 공부도 하고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과목도 수강했다. 시간 나는 대로 박물관 견학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도 빌려보았다. 방학이 끝나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방학동안 어떻게 보냈는지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불쌍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학은 쉬라고 시간을 준 것인데 너는 공부만 하다 왔구나. 너는 방학을 잘못 보냈다."쉬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순간 쉼은 더 이상 쉼이 되지 않는다. 뭔가를 하면서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말을 보내고 나면 '월요병'에 걸리고, 휴가를 다녀오면 '휴가병'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마치 밭을 1년 동안 아무런 경작도 하지 않고 풀을 뽑거나 거름을 주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듯이, 아무런 일도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쉬어야 한다. 복잡하고 힘든 문제를 풀듯이 많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도 말아야 한다. 지칠 정도로 신나게 놀지도 않는 것이 쉬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다. 속이 거북할 정도로 많이 먹지 않아야 쉴 수 있다. 몸도 마음도 모두 가장 평안한 상태가 될 수 있어야 쉬는 맛이 날 수 있다. 쉼은 무엇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휴가나 방학의 뜻인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는 본래 '비움'이란 의미이다. 머리도 비우고 몸도 비울 수 있어야 '바캉스'가 되는 것이다. 쉼이 없으면 비움도 없다. 비움이 없는 쉼은 쉼이 아니다. 그래서 쉼과 비움은 앙상블을 이루어야 한다. 휴가도 주지 않는 기업은 그래서 정말 나쁜 기업이다.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오게 하거나 학원에 다니게 하고 숙제를 많이 내주는 학교는 참으로 못된 학교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주어야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길 수 있다. 공부하지 않고 쉴 수 있어야 알아서 공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휴가를 다녀와서도 일의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휴가가 아니다. 방학을 보내고도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헛된 방학일 뿐이다. 철저히 비움이 있을 때 채움이 시작되듯이, 모든 것을 비우는 휴가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3-07-14 류성민

여성의 사회 참여와 최송설당의 육영사업

김천고보 설립 사회참여 실천여성과 불우한 집안출신이란시대적 장벽 넘어 전재산 투자처지와 한계를 극복하고민족 인재양성에 열정 쏟아한국 근대여성사에 족적 남겨한국도 여성이 인구 절반의 시대가 되었다. 남성중심사회가 남녀균등사회로 바뀌었다. 더불어 여성의 사회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대한민국을 이끌다'는 주제로 2013년 여성주간 기념 특별기획전이 지난 3일 개막해 10월까지 서울 동작구의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개최된다. 역사 속 여성들이 각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회참여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루었음을 알린다는 취지에서 각 지역별 대표 여성을 선정하여 관련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15명의 자료가 전시되었는데, 잘 알려진 신사임당 같은 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종전에 그만큼 여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음에 있다. 전시된 여성에 최송설당이란 분이 있다.최송설당은 홍경래 난으로 멸문당한 집안 후손으로 1855년 김천에서 태어나 어렵게 생활하다가, 동학란을 피해 상경했다. 1897년 엄상궁이 영친왕을 낳자 덕수궁으로 입궐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다. 그러나 1907년 9월 고종황제가 퇴위하고, 일제의 강요로 영친왕은 12월 5일 이토 히로부미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로써 송설당은 '영친왕 보모'라는 직책이 없어졌다. 궁에서 나온 뒤 1912년 서울 무교동에 '송설당'이라는 큰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곳곳에 많은 의연금을 내놓았다.최송설당은 일찍부터 많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희사했다. 1926년 신문에는 '송설당이 평소 소작인들에게 너그러웠고, 그래서 친부모와 다름없이 칭송을 받았으며', '남자도 아닌 여자'가 72세 고령에, 또 "재산 전부를 사회적 사업에 투입하기로 결심하고 고아원 혹은 유치원을 설립하여 부모 없고 가엾은 아이들을 교양하기 위해 늙은 몸을 바치고 가진 물질을 희생한다"는 계획을 담은 기사가 있다.최송설당은 1930년 2월 당시 엄청난 거금 총 30여만원 전 재산을 '김천고보' 설립을 위해 희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이에 반대하였다. 이유는 일제는 인문계 학교 증설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에 따라 김천고보 설립신청에 대해 상업이나 농업학교, 즉 실업학교로 방향을 잡으라고 요구하였다.송설당은 총독부에 강경하게 맞섰다. 인문계 고등보통학교가 아니라 실업계 학교라면, 아예 기부 사실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면서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민족을 살려낼 인재를 양성하자면 인문계 학교를 설립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확고부동한 생각이었다. 결국 총독부는 1930년 10월에 김천고보 설립을 허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고, 1931년 1월 고등보통학교 규정 일부를 개정하여 인문계 학교에 실업과목을 교과과정에 첨가하였다.마침내 1931년 2월 '재단법인 송설당교육재단'이 인가를 받았다. 3월 김천고보 설립이 총독부에 의해 정식 승인되었다. 한 푼도 남겨두지 않고 전 재산을 투입하겠다는 결연한 송설당의 의지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 뒷날 "최여사는 조선여성사 또한 조선문화사의 1항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평가되기도 한다.최송설당이 만 80세가 된 1935년 열린 동상제막식에 송진우·여운형·방응모·백남훈·최규동·이인 등 유력 인사를 비롯해 각지에서 1천여명이 참석하였다. 언론은 뉴스와 논설로 그녀의 업적을 찬양하고, 동상제막은 "사회를 위한 헌신적 실행인으로서의 활교훈의 씸볼로 볼 것"이며, 최송설당을 본받은 제3의 교육투자가를 기다린다며 독려하고 나섰다. 송설당의 행적을 교훈삼아 '확대재생산'하라는 주문이었다.최송설당의 삶에는 두 번의 큰 전기가 있다. 하나는 늦었다고 느껴지는 만 41세에 상경하여 돌파구를 열어나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 75세에 김천고보 설립을 실행한 것이다. 그는 전근대사회에서 태어나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에 살면서 사회참여를 적극 실천한 여성이다. 여성이라는 처지와 불우한 집안출신이라는 한계를 깨쳐 나갔으며, 시대적 장벽을 넘어서 모은 전 재산을 민족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에 투자한 것은 한국 근대 여성사에 기록되어 빛날 일이다.앞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는 많으며 클 것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또 제도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사회참여인지는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겠다./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3-07-08 김창겸

국정조사와 단상(斷想)들

정치권과 한국사회를뜨겁게 달구고 있는몇가지 의제는한국사회의 성숙함과지적능력·건강성을시험하는 시금석들이다여야가 국정원 대선개입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댓글 의혹과 수사개입 의혹에 방점을 찍는 민주당과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과 민주당의 이른바 '매관매직' 의혹에 무게를 두는 새누리당이 증인 채택부터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조사 범위와 의제(議題)도 최종 합의를 본 상태가 아니라서 순조롭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 3월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할 때의 대상은 대선때의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사건과 경찰 수사에 개입했느냐의 여부, 경찰의 작년 12월 16일 댓글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축소·은폐에 의한 것이었느냐의 여부였다. 현재 이는 검찰의 불구속 기소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 그리고 6월24일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이후 국정원 사건과 NLL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진퇴를 거듭하면서 한 편의 반전(反轉)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그러나 국정원 사건과 NLL 관련 공방에서 국민과 정치권이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태의 핵심과 본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본질은 첫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느냐의 여부다. 이는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야당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야당 일각과 일부 진보 시민단체에 의해 이미 정통성에 대한 시비는 제기된 바 있다. 둘째, 국정원의 대화록 전문 공개의 적법성 여부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청와대와 교감없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공개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 교감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단지 상식의 차원이며,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보느냐, 공공기록물로 보느냐에 따른 해석의 차이다. 이러한 본질적 쟁점을 덮고, 지난 대선때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이후 대선 기간을 관통하면서 블랙홀처럼 여타의 정책 의제를 압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의 존재 유무가 쟁투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여전히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 내용이 국정조사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이쯤에서 집단지성과 이성적 공론(公論)이 작동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련의 상황 전개에서 본말의 전도, 본질과 지엽말단의 혼돈, 거시와 미시의 공존, 규범과 존재의 동거, 정치세력의 공학적 계산 등이 엉키면서 카오스는 국정조사 기간 내내 지속될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해소될 것인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개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념적 굴레를 씌워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반역'의 대통령으로 몰고 가려는 정략적 발상의 적정성 유무에 대한 사회적 심판에 대한 합의는 단초라도 열릴 수 있는 것인가도 국정조사를 보는 관전 포인트다. 물론 이것도 국조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에서다.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단상(斷想)들이 있다. NLL의 연원은 무엇이며 성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지적 탐구는 진지하게 되고 있는 것인가. 103쪽에 달하는 대화록 전문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꼼꼼히 읽고 예단(豫斷)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발췌본은 전문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에 대한 성찰은 또 누가 얼마나 해 봤을까. 집단 의식의 발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을거라고 이미 단정짓고 전문을 읽거나, 보수적 관점의 언론이나 정당의 말에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애당초 비판적 성찰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가 그 정도의 지적 정화(淨化)능력은 갖추지 않았을까. 그 정화능력과 집단지성을 가볍게 보는 곳은 정치권밖에 없다. 뜨거운 여름 못지않게, 정치권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몇 가지 의제(議題)는 한국사회의 성숙함과 지적 능력, 건강성을 시험하는 시금석들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이념적 편향으로 몰고 감으로써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색깔론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구태의 추방은 오로지 건강한 시민의 몫이다./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6-30 최창렬

오클라호마의 돌개바람

우리나라 산지 많은탓에돌개바람을 키울순 없지만홍수·가뭄등 기후재난에 취약올해도 어김없이 이상기후 징후더 늦기전에 '재난·안전관리'정치 중심으로 떠올라야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과 그 위 파란하늘에 피어오른 흰 뭉게구름. 오클라호마 지역의 평화스러운 5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구름색깔이 검게 변하고 지평선과 맞닿으면서 깔때기 모양으로 변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시속 500여킬로미터의 믿을 수 없는 속도의 돌개바람은 광란의 재앙이 되어 단숨에 모든 것을 쓸어간다. 토네이도라는 것이다. 오클라호마에서는 올해 5월에만 두 차례의 토네이도로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여러 개의 마을이 초토화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의 600여배가 되는 위력이었다고 한다. 가슴 아픈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기술의 진보에 오만해져 있는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는 자연의 위력이다.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피해를 일으킨 토네이도가 없었다. 산지가 많은 탓에 돌개바람을 키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지가 많은 것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종심이 짧은 반도의 형태라서 홍수와 가뭄 등 기후재난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히 여름철에 집중된 강우는 일시에 많은 양의 물이 급경사를 따라 쏟아져 내려와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키고, 비가 적은 계절에는 물이 부족하다. 농경시대에 치산치수를 왕도의 중심으로 삼았던 이유다.올해도 어김없이 이상기후의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겪은 겨울철의 혹한은 여름철의 혹서를 예고하고 있다. 태풍, 호우 등 기후재난은 절대적으로 기온과 바닷물 온도의 변화에 좌우된다. 특히 태풍은 높은 해수온도에서 급속하게 성장한다. 이론적으로 해수면 온도 1℃ 상승시 태풍의 최대풍속은 5%가 증가된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평균 해수면 온도가 0.5℃ 가량 상승했으며 이에 따른 최대풍속 증가는 3% 정도이고 태풍의 잠재강도는 대략 10% 증가되었다고 한다. 태풍 1개가 원자폭탄 1만개에 해당하는 위력이라고 할 때 10% 증가는 100개의 원폭이 더 폭발하는 위력인 것이다.실제로 지난 1960년대 후반부터 지구의 평균온도는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나라의 평균온도상승은 세계평균의 2배에 달하고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의 증가도 아주 높은 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기후재난의 강도는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에 내습한 태풍의 순간최대풍속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2000년을 전후해서 분포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도시가 위험하다.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강도가 급격하게 커지기 전까지만 해도 도시는 비교적 안전했다. 큰비로 제방이 터지고 마을이 물에 잠기는 곳은 하천정비가 안되고 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비도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래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호우의 양과 강도는 기존의 집배수시설의 용량을 크게 넘어섰고, 게다가 녹지와 습지를 대체한 건물과 포장노면은 강우의 대부분을 일시에 낮은 곳으로 쏟아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도시가 물에 잠기면 그 피해는 크다. 많은 사람과 비싼 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마비는 경제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을 크게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나마 국토의 골간이 되는 주요 강이 정비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도시의 배수시설과 저수시설을 확충한다 해도 넘치는 물을 처리할 강이 부실하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도시를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돈과 좋은 방법, 그리고 세월이 필요하지만 특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과 시민의 뒷받침이다. 왜냐하면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투자와 조처이지만 재난에 대한 경각심은 당할 때 뿐이기 때문이다.우리의 도시들은 과연 이 강력한 이상 징후에 대비하고 있는가? 기후변화 시대, 더 늦기 전에 재난 및 안전관리가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라야 한다./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2013-06-23 박연수

추모(追慕)와 위령(慰靈)의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국가위해 목숨바친 영혼들을추모 하는건 국민의 도리이고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위령 하는건 국가의 의무이다추모 문화보다 평화의 문화를위령 문화보다 사랑과 자비를오뉴월은 전 국민적으로 죽은 자를 기억하는 시기이다. 살아있는 우리가 그 삶과 모습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국민이 유난히 많이 저 세상으로 간 때가 그 즈음이다. 무엇보다 5·18과 6·25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숫자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 숫자 속에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기억 속에 뼈저린 아픔과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서려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죽임을 그 숫자는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언제나 그러했듯이 올해도 그 숫자를 생생한 역사로 만든 무덤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 앞에 꽃을 놓거나 심기도 했고, 술과 음식을 진설하기도 했으며, 절을 하며 울기도 했을 것이다. 안타깝고 서러운 심정에 선뜻 돌아서지 못한 채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던 부모와 형제자매, 일가친척들, 그들이 모두 우리의 국민이다.국가적으로도 그 무덤의 주인들을 추모하고 위령하고 있다. 그런데 그 주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죽은 '국가유공자'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민주화 유공자' 등 희생자들이다. 전자는 '국립 OO현충원' 혹은 '국립 OO호국원'에 안장되어 있고, 당사자나 가족이 관련 법률에 따라 예우와 지원을 받는다. 후자는 '국립 OO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당사자와 가족이 예우와 명예회복, 보상을 받는다.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국가와 국민이 예우하고 그 가족을 지원하는 일은 마땅하다. 국민 모두가 그 은혜와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현양하고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국가의 모든 의식에서 '애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행하고, 도처에 추모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그래도 그분들의 죽음은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국가를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의 길을 가야 했지만, 그래서 그 죽음이 고결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죽음마저 없길 바랄 것이다. 가족과 친구도 그 죽음을 슬프고 애달프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국민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국민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고 애국심을 함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희생이 필요 없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훌륭하고 용감한 군인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그러한 군인마저 필요가 없는 평화로운 국가가 더 좋은 국가가 아닌가.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거나 희생당한 사람들에게는 응당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분들에게 명예회복은 물론 그 가족에게 피해를 보상하고 최대한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민주화를 위해, 독재에 저항하다가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민주 유공자에게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위령탑을 세우고 위령시설을 건축하며 위령 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국민도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이지 않는가. 국민이 억울하게 죽지 않는 국가가 더 좋은 국가가 아닌가.물론 국가를 위해 죽거나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국민이 전혀 없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죽음과 죽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모와 위령의 문화가 횡행하는 국가와 사회에서 국민들은 마냥 편안할 수 없다. 검은 옷 입은 정치인들이 국립묘지에서 추모의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행복감을 느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령제를 지내는 종교인들의 기원과 발원도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도록, 그래서 더 이상 추모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치인이 참된 정치인일 것이다. 더 이상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없는, 그래서 더 이상 위령을 필요로 하는 억울한 영혼이 없는 세상을 위해 사랑과 자비를 일상으로 하는 종교인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3-06-16 류성민

벼슬자리 청탁과 백제 목간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바뀔땐벼슬자리 청탁·인사추천 심해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투명하고 공정하게 할순 없을까청탁할땐 몰래 했다고 하지만결국 몇천년후 다 밝혀지는것을흔히 우리가 벼슬이라 일컫는 관직은 인간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쳐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벼슬에 나가고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출세의 기준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보다 좋은 벼슬자리를 갖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안간힘을 다했다.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실력으로 다행히 원하는 벼슬자리를 얻는 것은 능력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을 알아달라고 선전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에게 힘을 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취직이나 승진, 전직 등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인사 청탁은 그 종류와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물론 벼슬자리 청탁은 아주 오래 전에도 있었다.지난 5월 25일 '문문'(문헌과 문물) 학술대회에서 백제시대 벼슬자리 청탁의 실례를 소개하는 흥미로운 글이 발표되었다. 부여 구아리 319 유적에서 출토된 13점 목간 중에서 442번 목간에 적힌 묵서의 내용이 그것이다.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또는 그 사용이 용이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흔히 문서나 편지 등의 글을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목독) 또는 대나무 조각(죽간)에 썼으며, 이것들을 통칭하여 목간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죽간이 보다 많이 발견되었고, 일본에서는 목간이 많이 발견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목간이 소량 확인되었다. 그러나 비록 숫자는 많지 않지만, 당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442번 목간에는 글자가 앞면에 12자, 뒷면에 20자가 쓰여 있다. 물론 이것이 쓰인 시기가 워낙 오래된 까닭에 글자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 정확한 판독과 해석은 어려움이 있으나, 그런 대로 대강은 이해할 수 있다. 발굴자 심상육의 발표에 따르면 그 내용은 "보내주신 편지 삼가 욕되게 하였나이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라고 한다.이 목간을 보낸 이와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호칭이 적혀 있지 않다. 보낸 곳과 받은 곳도 날짜도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 있는 누가 보낸 것이고 또 누가 받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출토된 곳이 부여이고 이곳이 백제 후기의 도성인 사비성인 만큼 약간의 추측은 해 볼 수 있다.이것은 벼슬자리를 청탁한 편지 성격의 글이다. 첫 문장을 보건대 사비성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리하여 편지를 받은 사람은 보낸 이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내게 하는 수고를 끼쳤다고 의례적인 사과를 하고 있다. 아마 누군가가 목간이 발견된 사비성 안에 거주하는 지체 높은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고 다시 그에게 답신으로 작성한 것임을 추측케 한다.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누군가가 사비성 안의 사람에게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글을 보냈고, 이에 받은 사람이 편지를 보내 무언가를 이야기했던 모양이다. 이에 청탁한 사람은 자신은 가난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좋고 나쁜 것에 화를 내지 말아 달라. 당신으로부터 입은 어떤 음덕이라도 뒷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이다.이것은 이른바 칭념형 서간문으로, 자신이 바라는 목적과 생각을 편지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벼슬자리를 갖고자 하는데 도와달라는 청탁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과연 벼슬자리를 얻었을까? 또 편지를 받은 사람은 벼슬자리를 만들어 주었을까? 못내 궁금하다. 아마 백제시대에 이 목간을 받은 사람은 이것을 몰래 보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약 1천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발굴자에 의해 드러나고 말았다. 목간을 주고받은 인물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이것이 벼슬 추천의 실제이건, 아니면 인사 청탁의 비리건 백제시대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옛날이나 지금이나 벼슬자리 청탁, 인사 추천은 참 말도 말고 탈도 많다. 정권이 바뀔 때면 더욱 그러하다. 좀 투명하고 명확한 자료에 의해 공정하게 추천하고 부탁할 수는 없을까? 설사 청탁할 때는 몰래 했다고 하지만. 이 목간을 보세요. 몇 천 년 뒤에도 밝혀지는 걸!/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3-06-10 김창겸

대통령의 취임 100일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벤트포장대통령 기자회견 꼭 할 필요없어부족하면 부족한 대로의미 있는건 의미있는 대로국민과 진솔하게 마주할때소통에 성공한것 아닐까내일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는 날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처음 100일은 여러 모로 상징성을 갖는다. 인수위 시절 다듬었던 국정 청사진의 대강(大綱)을 선보이고, 정부 직제의 확정과 내각과 청와대 인사 등을 통하여 임기 동안의 이념적 지향과 국정 추진의 밑그림을 확정하는 기간이다. 야당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언론과 국민도 차분히 새 정부의 지향을 지켜본다. 각종 개혁 정책의 기반도 이때 다져놓지 않으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통해서 임기 초의 국정성과를 설명하고, 향후 정책과 국정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던 이유이다. 따라서 취임초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선거때의 득표율을 상회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00일의 지지율은 대체로 50%를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기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는 낮지만,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100일은 상징성 있는 정책이나 특징적인 산출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에서 개혁과 사정이란 단어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역대 대통령들과 대조를 이룬다. 정부직제개편이 늦어졌고, 각종 인사의 난맥이 취임초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았다. 윤창중 사건같은 대형 악재는 인사 실패의 상징이 되었고,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됐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은 성공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한 안보 위기의 무난한 관리는 급전직하했던 지지율을 50%이상으로 끌어올렸다.관례적으로 해오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이 시대 정치의 화두는 소통이다. 인수위 시절, 언론과의 '불필요한' 접촉에 대해 유난히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하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특종도 낙종도 없다'식의 불통 이미지 등은 국민과의 소통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윤창중 사건때의 청와대 참모들의 '부적절한' 사과 이후에 나타난 대통령의 반응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때의 사과 발언이었다. 대국민성명이나 담화, 기자회견을 통한 진솔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제3자적 관점에서의 사과가 얼마나 국민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을까.'박근혜 스타일'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창조경제 비전 선포식이 박 대통령 지시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 때문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아직도 창조경제 개념의 애매모호성이 지적되고 있는 마당에 비전선포식의 의미를 크게 두기는 어렵다. 일회성 이벤트로 포장된 포퓰리즘적 행사가 진정성을 상실하고, 정치적 상징 조작에만 치우친 예는 많다. 과거 정권때 '국민과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권때의 '신한국인', 김대중 취임 초의 '신지식인' 등도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식 이미지 창출에 다름없다.그러나 일회성 이벤트와 국민과의 부단한 소통의 시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취임 100일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여하히 부여하느냐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보느냐, 국민과의 소통으로 보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소통은 단순히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 1조 1항과 2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위임한 권력의 지출과 수입의 명세를 주인에게 보고하는 것은 소통의 차원을 넘는 의무이다. 기자회견에 인색한 대통령이 될 필요는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의미있는 것은 또한 그것대로 진솔하게 국민과 마주할 때 소통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6-03 최창렬

우리 사회가 싫어하는 것은 '오만함'이다

가진 자의 오만함과황폐한 기업문화에최근 공분하고 있는 한국갑의 횡포에는 분노하면서오만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지우리는 되돌아 보아야한다미국사회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실수는 용납해도 거짓말은 관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나면 두고두고 싸늘한 시선이 따라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재기의 기회는 사정없이 박탈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막가는 사람도 거짓말을 조심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미국이 되는데 중요한 신뢰라는 날실이 형성되었다.최근 우리 사회가 특정한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 있다. 이른바 가진 자의 오만에 대하여 싸늘한 시선을 넘어서는 공분과 무관용의 현상이다. 대기업 계열사 임원의 여승무원에 대한 도를 넘은 인격무시에 참지 못한 시민들의 반발로부터 시작된 이 현상은 중소 베이커리 업주의 안하무인을 준열하게 꾸짖고 급기야 슈퍼 갑의 지위에 기댄 어느 분유회사 영업사원의 횡포에 분노하고 있다.이 현상은 특정인의 행동의 잘못됨을 징치하는 것 같지만, 실은 현재 우리사회가 가진 자 또는 우월적 지위(갑)에 있는 사람이 약자 또는 열등한 입장(을)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억압해도 괜찮다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못견뎌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개 소속원에 불과한 당사자의 그 잘못된 행위를 들어 대기업의 인식과 행태를 비판하고 대기업이 아니라도 가진 자의 오만함과 그 오만함에 기초한 황폐한 기업문화를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자존심에 유달리 민감한 민족이다. 일제의 비열하고 무자비한 무단통치아래서도 온 국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존을 해칠수록, 오만함이 더할수록 그리고 억누름이 강할수록 참지 못하는 것이다.그러나 갑과 을의 관계는 경우에 따라 변한다. 을의 입장에서 고통받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갑의 위치가 되기도 하는 일이 다반사다. 또한 갑과 을의 관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경우 외에도 힘 있는 자와 약한 자, 기득권자와 그렇지 못한 자, 젊은이와 노인, 남자와 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많은 경우에서 그렇다. 행여 남의 오만함에는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오만함에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지 신랄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무시하고 무례하며 경우에 맞지 않는 것도 감수하기를 요구하면서 강자를 인정하지도 않는 잘못된 자존심, 아전인수식 자존심으로 뭉쳐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지난 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리틀싸이'라는 애칭을 얻은 8세의 어린이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두었다는 이유로 온당치 못한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쾌거이자 국민적 자존심을 높여준 그 작품속의 천진난만한 어린이에게까지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뿌리 깊은 오만함이자 천민의식의 발로로 우리 모두에게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강남스타일'에 열광했던 베트남 사람들이 느낄 분노의 대상은 몇몇 온당치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한국인이 될 것이고 그 분노의 크기는 또 얼마나 클 것인지 우려스럽다. 국제적으로도 다문화 시대에 살면서 인종과 출신국가에 따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은 스스로 다른 사람의 오만함을 탓할 자격이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이 기회에 우리 한국사회는 오만함을 관용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스스로 오만함을 경계하는 사회풍토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몸에 배고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밝고 훈훈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문화국민으로서의 가치 있는 번영을 구가해가는 인간적인 대한민국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제안한다./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2013-05-27 박연수

神들의 전성시대… 어떤 신을 믿을까?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원하고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빌고…나와 당신이 생각하고 믿는신은 항상 누군가의 신이다우리가 신을 바라보는 눈이곧 신이 우리를 보는 눈이기에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3부작 소설 '신'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었다. 신이 되고자 하는 후보생들의 치열한 분투와 경쟁이 무수한 신화와 종교의 이야기와 접목되면서 흥미진진한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아마도 신이 되고픈, 아니 최소한의 신적인 능력이라도 갖길 바라는 인간의 끊임없는 열망과 그 좌절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직장의 신'이란 드라마가 공중파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직장에서 우리는 할 수 없지만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해대는 주인공은 '신'이라 칭해진다. '경영의 신', '공부의 신', '게임의 신' 등등 온갖 '신들'도 회자된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들을 그렇게 '신'이라 부르곤 한다. 그런 '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픈 우리의 소망은 온갖 신들을 만들어내어 추앙한다.인도에는 3억3천의 신들이 있다고 한다. 창조의 신도 있고 창조한 것을 보존하고 유지토록 하는 신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신도 있다. 전쟁의 신이 있는가 하면 평화의 신도 있고, 사랑의 신이 있는가 하면 증오의 신도 있다. 직업마다 그 직업을 관장하는 신도 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신들을 대하며 산다고 한다. 그래서 신들은 인도인들의 애환과 성패를 좌우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신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여서 사람들은 늘 신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원한다. 사랑과 성공도, 건강과 행복도, 그리고 죽은 후의 환생이나 환생을 하지 않는 영원한 저세상도 신을 향한 사람들의 기원이다.오직 하나의 신만 있다고 믿는 종교인들도 있고, 신들 사이에 최고신을 정점에 두고 무수한 신들의 서열을 정하여 신전을 만든 판테온(Pantheon, 萬神殿)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있고,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여간 사람들은 신을 믿고 경배하면서 자신들의 소망을 간청한다.우리가 자유를 빼앗겨서 노예처럼 살아가게 될 때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나 불치의 병으로 고통과 고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께 용기와 지혜를 구한다. 피할 수 없는 가난에 허덕이게 될 때 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신자가 있겠는가!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아니 적어도 150살 정도는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간청한다면 어떨까? 거액이 걸린 복권을 사면서 당첨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도 신에 대한 믿음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우리와 같은 조건에 있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도 신앙이라 할 수 있을까? 운동 경기를 하면서 자신들보다 뛰어난 상대편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신이 들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그런데 만일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신과 같은 능력을 조금이라도 갖게 된다면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보통사람들로부터 신이라 불리게 될 정도라면 그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까?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어떤 기원을 풀어줄까? 어떤 일에 신적인 재능을 쓸까?그렇다. 신은 항상 누군가의 신이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신은 나의 신이고 당신이 생각하고 믿는 신은 당신의 신이다. 우리가 신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 우리가 믿는 신은 부자의 신이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신께 빌면 우리는 해방의 신을 믿는 것이다. 신에 대한 우리의 기원이 우리가 믿는 신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을 바라보는 눈이 곧 신이 우리를 보는 눈이다./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3-05-19 류성민

신라 해적의 일본 침입과 동아시아 인구이동

9세기 신라·당·일본서 발생한많은 유이민은 동아시아를혼란속으로 몰아갔고인구이동은 3국에 심각했지만인적·물적 교류로써 상호작용東亞 변화발전의 요인이었다9세기 중국의 당과 신라 그리고 일본은 다함께 혼란에 빠졌다. 그 현상의 하나로 동아시아에서 해적의 극성과 인구 이동을 들 수 있다. 신라 역시 정치사회 변동으로 많은 유이민이 발생하였고,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로 이동하였다.특히 바다 건너 일본 서부 연안으로 진출한 많은 신라인의 잦은 출현을 일본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일본에 나타난 신라인의 모습은 오랜 표류와 굶주림에 지쳐 처참하였다. 게다가 자신을 지키고자 무장을 하고, 많은 수가 무리를 지어 활동하였으며, 때로는 연안지역에 불법 상륙하여 노략질하거나 공물을 약탈하는 해적집단 모습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마도와 일본 대재부를 비롯한 서부지역 관민이 공격을 받아 다치거나 죽은 자도 부지기수였다.일본 역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일본의 풍속과 교화를 흠모하여 자발적으로 귀화하였고 일본은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여 돌려보냈다는 식으로 자국 우월에 입각하여 기술된 것이 보인다. 하지만 신라인들이 일본에 간 이유와 배경은 일본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측에 더 있었다. 물론 단순한 표류의 경우는 태풍과 폭우 등 자연재해가 이유이다. 그리고 상인들은 부의 획득 대상지로 일본을 선택하였다. 반면에 피난민이나 범죄자, 유망민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일본으로 진출한 것이다. 이 경우 신라인들은 생활의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세계를 찾아 나선 생존투쟁이었다.이렇게 출몰하는 신라인들이 많아지고 빈도가 잦아짐에 일본에서는 이것을 신라인의 침공이라 여기고 공포감이 조성되어 심각한 정치사회 문제가 되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대비가 있었다. 처음엔 단순 표류인으로 보고 귀국조치하거나 귀화인으로 받아들여 안치하였다. 그러나 869년에 발생한 신라 해적의 공물 약탈사건을 전후하여 그 반응과 대책은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중요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여 경계경비를 한층 강화하였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부에서는 신라인의 출몰과 약탈행위에 불안해진 분위기를 틈타 조만간 신라의 침공이 있다거나, 신라인과 연계한 반란을 도모한다고 고변하는 정치사건이 발생하는 등 매우 흉흉하였다. 게다가 신라가 침공하면 일본 대재부 관내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이 내응할까 염려하여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또 표착 신라인을 추방하듯이 귀국 조치하였으며, 그들의 상륙을 저지 퇴치하고 때로는 추격 체포하여 처형하였다.한편으로는 여러 신사의 신들과 사찰의 불상에가호를 빌어 막고자 노력하였다. 9세기 말에 신라 해적의 침입이 더욱 극심해지자 일본 조정은 신라 해적 토벌군을 편성하여 대대적으로 추포하였다. 그러나 신라 해적의 출몰은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9세기 많은 신라인의 진출이 일본에 끼친 파급 효과는 대단히 컸다. 특히 극성스러운 신라해적의 잦은 출몰과 침공 위험은 종전 일본의 적극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대외교류 방향을 이후 한동안 소극적이고 배타적이며 패쇄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하였다. 한편 신라인들의 일본지역으로의 활발한 진출은 인구 이동과 함께 문물의 전파가 이루어져, 일본의 역사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요인이 되었다.일본 특수지역에 인구를 보충하고 성씨 시조가 되기도 하였다. 우수한 신라 기술과 문물을 일본으로 전하는 전파자 구실을 하였다. 일본은 신라 해적선에 대응하려고 신라의 우수한 건조술을 배웠다. 또 신라 병기의 제작기술을 습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라인들이 이주함에 불안과 위협을 느낀 자국내 일본인들의 유망을 방지하면서, 신라인 침공에 대비해 해안지역에 축성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하였다. 아울러 이들의 침공을 불교의 힘을 이용하여 막고자 하여 사찰의 신축이 있었다.결국 9세기 신라와 당, 일본에서 발생한 많은 유이민은 동아시아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갔으며 이것은 연계 작용하였다. 간혹 해적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구이동은 신라와 당과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지역간 인적 물적 교류로써 상호 작용하였고, 당시 동아시아의 변화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3-05-13 김창겸

건강한 야당

국민들의 관심은 정치권내부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 의한볼썽사나운 이합집산이 아니라실질적인 이익을 반영하고갈등을 표출해서 집약하는새로운 정당체제 개편이다대의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정당의 기율이 다르고, 태생적 차이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현대정치의 경향 중 뚜렷한 흐름 중 하나가 정당정치의 퇴조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한 정당을 빼고 정치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국민의 이익을 표출, 집약함으로써 정책을 수립한다는 정당이론의 원론적 측면과 시민사회의 균열을 조직화 해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정당의 역할은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 정당이 위기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당정치의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책임성이다. 정책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대표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에 대해 반응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이다. 정당정치를 책임정치라 하는 이유이다.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립되고 난 이후, 역대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임기말에 예외없이 자신이 속한 집권당에서 탈당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후보자 요인과 정당지지가 결합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당정치적 관점이다. 그러나 자신을 공천한 정당을 탈당한다는 것은 적어도 정치이론적으로 볼 때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실정치에서 예외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정치관행은 한국정치에서 책임정치가 실종되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모습이다. 대통령의 임기 초에 집권당이 청와대의 위세에 눌려 정당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에 소홀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임기초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정당의 모습도 여전하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기는 대통령이나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나 같은 무게로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제왕적 대통령'의 수사를 달고 다니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당마저 위축시키고 있다.제1야당인 민주당이 김한길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하고, 4명의 최고위원과 함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의 닻을 올렸다. 대선 패배의 여진이 강력하게 남아있고, 당내의 폐쇄적이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계파가 적대적으로 존재하는 민주당을 여하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인가가 민주당의 새 지도부에게 주어진 임무다. 김한길 대표는 상향식 공천을 도입할 것과 당원들의 정당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한길 의원의 대표 선출은 친노를 중심으로 하는 범주류가 강력히 존재해도 대선패배에 친노가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며 이것이 당심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민심과 당심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127석은 결코 적은 의석이 아니다. 비록 최근의 4·24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했지만 더 이상 민주당은 물러설 곳이 없다. 10월의 재보선에서도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 이번 전대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야권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내년의 지방선거가 야권 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의 권력구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단순히 광역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당선 숫자에 의한 정치공학적 승패가 아닌, 정치권의 지형 자체가 바뀔 개연성이 크다.국민의 관심은 정치권 내부의 이합집산이 아니다. 바람직한 지각 변동은 선거 전후 나타나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득실 계산에 의한 볼썽사나운 '헤쳐모여'가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갈등을 조직화해내서 담아내는 새로운 정당체제의 개편이다. 정치권과 항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정치지형의 변화 담론이 '그들만의 리그'로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10월의 재보선은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초선 거물' 안철수와 민주당이 경쟁하는 첫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과 '안철수 현상'은 경쟁적 협력관계에서 적대적 갈등관계로 얼마든지 전화(轉化)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무엇이든 국민들의 이해를 조직화해내지 못하고, 의미있는 갈등들을 표출해서 집약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든, 안철수든 정치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야당이 건강해야 정치가 산다./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2013-05-06 최창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