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기억과 망각의 쌍곡선

잊고 싶은 것은 계속 기억되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누군가에게서 심한 모욕을 당한 일이나 기억하기조차 싫은 불행한 사건들은 시시때때로 생각이 나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일이나 성적 폭력을 당한 사건은 평생동안 상흔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심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잊어야할 것과 기억해야 할 것스스로 정리하는 시점이 '새해'마치 쭉정이와 검불은 날리고알곡만 모으는 키질처럼…새로운 한해를 보내기위한지혜이자 문화로 형성된 것반면, 밤새워 공부했던 것도 시험지를 받는 순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시험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쳤다가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아주 중요한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려 낭패를 보기도 한다. 잊을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것만 영원히 기억하면 얼마나 좋을까!새해는 지난 한해의 삶에서 잊어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좋은 기회이다. 새해의 풍습이 바로 그 방편이 된다. 나라마다 문화에 따라 그 주기와 기간은 다소 다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해가 다시 시작한다고 여기고 갖가지 새해맞이 행사를 한다. 새로 옷을 지어 입기도 하고 새로 만든 특별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노래와 춤, 산해진미와 온갖 술로 축제를 열기도 한다. 남녀노소와 귀천빈부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즐겁게 놀면서 먹고 마시면서 즐긴다. 일상의 생활을 떠나, 공부와 일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놀다보면 지난날들의 아픔과 슬픔을 잊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를 묻지 않을 수 있도록 잊을 것을 잊어버리는 시간이 새해이며, 그래야 새해다운 새해가 된다.새해에는, 그러나 그냥 먹고 놀지만은 않는다. 조상들에게 제사도 올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픈 소원을 빈다. 지난날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다시 환기하는 절기이다.꼭 기억해야 할 것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기는 때이다. 조상들이 가르쳐준 유훈을 회상하고, 신이 지키라고 한 계명을 외우며,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는 시기가 새해이다. 새로운 삶, 변화된 생활을 위해 해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을 명심(銘心)해야 하는 때가 새해인 것이다.그래서 새해는 잊어야 할 것을 잊고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시점이다. 망각과 기억은 마치 쌍곡선을 이루는 두 정점(定點)에 비유할 수 있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그어지는 쌍곡선은 항상 두 정점에서는 일정한 거리에 있다. 그래서 한 정점에서 멀어지면 다른 정점에서는 가까워진다. 잊어버리려면 더 잘 기억되고 기억하려면 더 쉽게 잊어버리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기억하고 있는 것과 잊어버린 것의 총합은 일정한 것이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하면 그만큼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고 오히려 우리를 슬프게 하고 괴롭히는 것이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잊을 것은 반드시 잊어버리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그러한 지혜가 새해의 문화로 형성된 것이리라.새해는 잊을 것은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시 새롭게 기억하는 시간이다. 마치 키질하여 쭉정이와 검불은 모두 날려버리고 알곡만 모으듯이, 적어도 지난 한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고 아프게 했던 기억들을 잊어버리고, 올 한해 우리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 주는 알곡 같은 교훈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변곡점(變曲點)이 새해인 것이다.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해가 뜨고 지난해와 거의 같은 일상으로 오늘을 산다 하더라도,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을 기억한다면 전혀 다른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각오와 기분으로 일과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해이고 새해의 문화이다. 이번 설에는 이러한 우리의 새해 문화를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3-01-21 류성민

진정한 지식인, 강수 선생

지난해 말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출마한 후보가 몇 있었지만 유권자의 관심을 집중시킨 유력한 후보는 두 분이었고, 사실상 두 분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선거는 극심한 양자 대결양상으로 진행되었다.신라시대 상위계층의 대학자합리주의 입각한 유교적 실천 노력삶과 학문 일치된 모습 보여줘…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층편협된 주의·완고한 명분 아닌말·행동에 대한 신념·책임 필요그 과정에서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이란 많은 사람들이 서로 두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방하면서 이른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장마철의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시끄러웠다. 물론 여기에는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정책과 공약에 뜻을 같이하여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반면 한편에서는 그저 주변 사람들이 다른 후보를 나쁘다, 비호감이라고 하자 그쪽에 부화뇌동해야만 지식인인양 착각하고 행동한 사람들도 있지 않았나 한다.평소 학문적 성향이나 언행으로 보건대, 저 사람이 저랬나? 그런가? 하고,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한층 가관인 것은 이런 사람일수록 더 과격하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튀고자했다는 것이다. 신라 삼국통일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대학자요 문장가인 강수 선생이 계셨다.그는 본디 멸망한 가야의 후손이었지만 신라에 들어와 골품제에서 6두품이란 상위 지배층에 속했다. '삼국사기'에는 강수가 어릴 적에 학문의 방향을 정할 때 있었던 아주 유명한 일화가 실려 있다.아버지 석체 나마가 강수의 학문의 뜻을 알고자 해서 묻기를 "네가 불교를 배울래? 유교를 배울래?" 하니, 강수가 대답하기를 "제가 듣기로 불교는 세상 밖의 가르침이라 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오니 유학자의 길을 배우고자 원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관직에 오르고 학자로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한편 강수가 일찍이 신분이 낮은 대장장이 딸과 야합하여 둘 사이의 애정이 퍽이나 깊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강수의 나이 20세가 되자 용모와 행실이 아름다운 읍내 여자를 골라 중매를 통해 그의 아내로 삼게 하려 했다.그러나 강수는 두 번 장가를 들 수 없다 하면서 거부하였다. 이에 부친이 화가 나 말하기를 "네가 세상에 이름이 나서 나라 사람들도 모르는 이가 없는데 미천한 여인으로 짝을 삼는다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니, 강수가 거듭 절을 하고 말하기를 "가난하고 천한 게 수치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도리를 배우고도 옮기지 않음이 실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일찍이 옛 사람 말을 듣건대 조강지처는 버리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고 천할 때에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고 했으니 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장장이 딸과 평생을 같이 하였다.강수는 출세한 뒤에도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는 학문적 신념을 앞세워 결코 미천한 신분의 아내를 버리지 않고 인간적 도리를 다하였다. 강수는 훌륭한 문장가이면서 아울러 자신의 행위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명분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에 입각한 유교적 도덕률의 실천가였다고 평가된다.또 신의를 중시하는 강수와 같은 면모는 대장장이 딸인 아내에게서도 함께 볼 수 있다. 뒷날 남편이 죽은 뒤에 있었던 행동에서 드러난다. 강수가 죽으매 장사 비용을 나라에서 주었다. 부의로 준 옷과 피륙이 대단히 많았으나 집사람이 그것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는 모두 불사에 바쳤다.기부 주체는 바로 강수의 아내였다. 아내 역시 강수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 일찍이 강수가 불교는 이 세상 밖의 가르침이라 하였다. 이제 강수가 죽으니, 그의 아내는 남편 강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산을 불사에 시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수의 뜻이 아니었을까? 즉 살아서는 이 세상 학문인 유학을, 죽어서는 세상 밖의 불교를 좇겠다고 한 것을 강수 자신과 그의 부인이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지도층, 그 가족들에게 무엇보다 우선하는 덕목은 바로 학문적 신념과 실천하는 행동이다. 말과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신념과 책임이 필요하다. 편협된 주의와 완고한 명분이 최고는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식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3-01-14 김창겸

봄을 기다리지 말라

12월 내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12월 추위로는 1956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엄동설한이란 말이 실감난다. 지구 온난화의 업보인지 기후변화의 역설인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에 움츠러든 어깨가 더욱 힘들어 진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엄동설한이라는 말을 잊고 살았던 듯싶다. 1960~70년대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도 길었다. 초등학교 때 쉬는 종이 울리면 추운 교실 안에 있기보다 바깥으로 나가 양지바른 건물 벽에 붙어 서서 해 바라기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그 때는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봄이 기다려졌었다. 그 때 우리가 기다리던 봄은 등 따습고 배부른 시절에의 염원이었다. 그래서 봄은 간절함이었고 희망이었다.2012년 겨울.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무엇인가. 학교는 전기난로와 중앙집중식 난방으로 훈훈해졌지만 예전처럼 씩씩하고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모습은 없다. 정신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이 내몰린, 벌써부터 지쳐버린 영혼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을 뿐이다.등 따습고 배부름을 실현한 자랑스러운 우리, 그러느라고 너무 바쁘고 각박했던 우리, 그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트라우마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우리, 그래서 아이들에게서마저 여유를 박탈하고 있는 우리. 얼마나 더 따뜻하고 얼마나 더 배가 불러야 하는 것일까.우리에게 봄은 이제 더 이상 등 따습고 배부름을 갈구하는 상징이 아니다. 봄은 따스함, 봄은 밝음, 봄은 푸르름, 그리고 자유로움인 그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봄을 만끽할 수 있게, 꿈을 꿀 수 있게 놓아 줄 때가 된 것이다.방법은 있다.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당겨쓰는 사교육의 상업 마케팅을 금지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보람을 캐는 교육자의 자리로 돌아오고, 정치는 양질의 직업을 많이 만드는데 능력을 발휘하는 제자리로 돌아올 때에 가능하다.1960~70년대의 봄은배부른 시절을 향한 간절함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따스함, 밝음, 푸름, 자유로움…각박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아이들에게 여유와 꿈을 줘야희망적인 것은 우리사회가 삶의 가치의 다양성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신분상승이라는 구시대의 낡은 관념에서 떨쳐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직도 매달리고 있는 신분상승을 위한 무한경쟁의 의미는 과연 있는 것일까.아니 지금 우리에게 신분이란 것이 있는가? 신분에 의한 제약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신분에서 자유롭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이루어온 가장 중요한 경쟁력 중의 하나이다. 반상의 신분과 사농공상의 순서가 없어진지 오래고 고위관료, 판검사, 국회의원이 높은 신분이라고 인정받는 시대도 지나갔다.젊은이들의 배우자 직업 호감도 기준이 교사, 공무원 같은 안정추구형으로 변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었다. 불확실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대기업, 의사, 변호사는 돈은 많이 벌지만 자기 시간이 없어서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이제 신분의 기준은 잘사는 것이고 그 잘사는 것의 기준은 벼슬의 높이와 돈의 많고 적음에 국한되고 있지 않다. 각자의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서 정해지는 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가 옛날과는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돈과 권력만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던 시대와는 다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그것은 분명히 등 따습고 배부른 바탕을 만든 기성세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정작 그 다른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는 배고픔의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기준에 얽매인 채 각박한 경쟁에 몰입되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인생의 골격과 꿈의 바탕이 형성되는 소년기를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말자. 좋은 시절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은 잃어버린 세월. 간절한 염원의 봄이 아닌 만물이 생동하는 푸르른 그 본래의 봄을 준비하며 이 겨울을 즐겨라. 봄이 없는 곳도 있을진대 섭리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을 가진 우리는 행복하지 아니한가.

2012-12-24 박연수

웰빙에서 힐링으로

한 때 웰빙(wellbeing)이 대세였다. 언론에서든 출판에서든 너나없이 웰빙을 말했다. '편안함', '안녕', '복지', '행복' 등이 웰빙의 원래 의미이고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지시하는 말이다. '참살이'라는 멋진 우리말도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우리 사회에서는 웰빙이 주로 건강이나 장수(長壽)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웰빙이란 수식어를 붙인 온갖 식품들이 나왔고, 다이어트도 운동도 모두 웰빙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웰빙 보조약품도 있고 웰빙여행에 웰빙의복까지 갖가지 웰빙 상품이 넘쳐났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웰빙이라 여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잘 먹고 잘 사는 것' 자체가행복한 삶 보장 할수는 없어정신적 평안·건전함 더해져야…억압·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우리사회를 치유할 수 있어이웃·자연과 더불어 사는삶 필요건강해야 행복할 수 있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건강 자체가 행복과 안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잘 먹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평안하고 건전해야 참된 의미의 웰빙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근에 힐링이란 말이 더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도 웰빙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단면적 인식의 결과일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최근에는 웰빙보다는 힐링이 뜨고 있다.'치유'(治癒)라는 의미의 힐링(healing)은 '완전해지는 것' 혹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정신적인 치유의 의미로 힐링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지만, 육체적으로 상처가 나거나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는 것도 힐링이고,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억압을 받아 괴로워하다가 평온하고 자유로움을 얻게 되는 것도 힐링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되는 것이 힐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힐링의 의미가 가장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 종교일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힐링 관련 책들의 대다수가 종교인들의 저작이고, 힐링을 위한 프로그램도 종교단체들에서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책이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일상에서 벗어나 이웃과 자연에로 관심을 돌리는 일이다.공부와 일에 지친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조용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힐링이 시작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곰곰이 명상하는 것이 힐링의 주된 방법이다.자기 자신만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먹고 더 많은 것을 얻으며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했던 지난날의 모습을 반성하는 것이 힐링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육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인식하며,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결심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힐링이 된다고 본다.그렇기 때문에 힐링이 되었더라도 그 이전과 똑같이 살면 다시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힐링이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것, 아니 일상의 삶 자체가 힐링이 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힐링 자체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사실상 우리는 힐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공부와 일을 해야 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세계 1위의 자살률이라는 불명예를 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만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병이 든 것이 아닌가.산다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무리 웰빙을 하고자 해도 소용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힐링이 필요하다.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고 고통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힐링이 될 수 있다. 산과 강, 대지와 바다를 자연 그 자체로 되돌리는 것이 힐링이다. 한번 실험해 보시라.

2012-12-17 류성민

당성의 역사문화와 개발에 대한 단상

인간은 땅을 중심으로 생활하기에 지역과 국가는 물을 경계로 나뉜 경우가 많다. 물에는 크고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지만 사람들은 왕래하고자 한다. 바다의 경우는 안전한 항로를 찾고, 튼튼하고 빠른 배를 건조하고, 바다로 출입하기 편리한 지역을 택하여 시설을 갖추면서, 한편으로는 항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안녕을 추구하는 신앙심을 발현하였다.서해 당은포 물류·무역 요충지中 당나라~신라 사신 교류 길패권 타툼 끝에 진흥왕때 복속해로 기착지 한반도 입국 관문고대 해상 실크로드 역사 간직사신 길 복원 등 정비계획 앞둬신라는 황해를 건너 중국 당나라와 교류에 노력하였다. 당의 도움을 받아 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이후에도 신라의 국제적 위상과 국내 정치와 사회·경제 및 사상·예술 등에서 당과 관계는 중요했다. 당 또한 신라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에 양국간에는 잦은 사신과 상인, 승려 등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한반도의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다. 이런 까닭에 신라와 당 사람들은 대부분 서해안 항구를 이용하였다.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사신은 왕경 경주를 출발해 육로로 서해안에 이르고,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중국 동해 연안에 도착한 뒤, 육로로 당 장안에 갔다. 반대로 당에서 신라로 오는 사신은 장안을 출발하여 바닷가에 이른 뒤, 황해를 건너 신라 서해안에 도착하고, 육로로 경주에 들어갔다.신라시대 서해안의 항구로는 화성 남양만의 당은포, 당진의 대진, 옥구 임피면 금강 하구의 진포, 부안 변산반도 남단인 희안현 연안, 나주 영산강 하구의 회진 등이 있는데, 이 중 당은포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당은포는 '당성' 또는 '당항성'이라고 불렸다.백제 영역이었으나, 고구려에 점령되어 '당성군'이 되었다가, 진흥왕 때에 신라에 복속되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이곳을 빼앗긴 백제는 642년 고구려와 함께 공격해 신라가 당과 통하는 것을 막고자 했고, 신라 선덕여왕은 사신을 보내 당에 이것을 알렸다.이처럼 당과 교통요충지로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절대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에도 서해안에서 해상 교역지로서 중요한 곳이었다. 경덕왕이 당은군으로 고쳤다가 다시 당성으로 복구하였으며, 829년(흥덕왕 4) 군사적 중요성이 커져 당성진을 설치했다.'해동역사'에는 '당 정관 16년(642)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을 빼앗아 신라인들이 들어오는 길을 끊었으며, 당항성은 (조선시대) 안산군'이라 했다. 또 낭혜화상 무염이 822년(헌덕왕 14) 당은포에서 출발하여 당에 사신으로 가는 왕자 김흔의 배를 타고 입당한 기록이 있듯이,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사신들은 당은포에서 출발하였다.또 가탐의 '도리기'에 의하면, 당에서 신라로 가는 길은 등주를 출발하여 요동반도 서남단의 노철산을 경유,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초도, 마전도, 덕물도 등을 거쳐 당은포에 이르렀다가, 육로로 동남쪽으로 700리 가면 신라 왕성에 이른다고 하였다.즉 등주를 출발하여 당에서 신라로 오는 경우도 당은포는 해로의 최종 기착지였고, 신라 입국의 관문이었다. 결국 당은포는 신라와 당을 오가는 사신과 유학생, 구법승, 상인을 실은 배들의 중요한 출항지이고 입항지였다.최근 연구에 의하면, 황해를 건너 당은포에 도착한 당 사신들은 여주를 거쳐 남한강 수로를 따라 충주에 도착하였다가 계립령을 넘어 함창―상주―선산―경주에 이르거나, 아니면 당은포에서 육로로 죽산을 거쳐 충주에 이른 뒤 계립령을 넘어 함창―상주―선산―경주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한다.얼마 전에 문화재청이 화성 당성의 체계적 보존관리를 위해 종합정비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라 하였다. 조만간 이 계획은 여러 전문가들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추진될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것보다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을 담은 문화콘텐츠를 갖추어 해당 지역만의 것이 아니라 이웃 지역 및 관련 지역과 연계하여 폭넓은 역사문화교육 공간으로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그 하나로 화성시가 당성을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라 표방하듯이, 당성에서 경주 가는 사신 길 복원과 체험, 당성에서 등주 가는 뱃길 체험과 문화행사 등을 생각해 본다.

2012-12-10 김창겸

안철수 현상은 미래진행형인가

18대 대선도 네거티브와 흠집내기, 지역정서에 호소하는 선거전략 등 역대 대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몇 가지 차이가 있다.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정당 제대로 표출시키지 못해무당파·중도층에게 나타난새로운 메시아 안철수새정치·쇄신의 아이콘으로서대선 이후 모습이 궁금하다우선 여야의 정책동조화 현상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 창출, 정치쇄신 등이 주요 어젠다들이다. 16대 선거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선거판세 전체를 흔들었고, 17대 대선이 이명박 후보에게 쏟아진 비리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경제살리기 어젠다가 대선정국을 관통했던 것과는 큰 차이다.둘째, 민주화 이후 선거때마다 예외없이 등장했던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탈당 요구나 스스로 탈당했던 정치적 데자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단 정당정치의 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다. 더 중요한 관점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살아있는 권력'과의 적절한 수위에서의 관계 조절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셋째, 이전 대선과의 가장 큰 차이이자, 한국정치가 고민할 지점을 제공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 국면에서 후보직을 일방적으로 사퇴한 이후, 오히려 안철수에 대한 여야의 쏠림 현상은 절실해지고 있는 국면을 맞고 있다.부동층의 향배가 다시 대선 정국의 핵심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의 사퇴 이후 그를 지지했던 무당파와 중도층이 다시 부동층으로 돌아선 결과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로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층이 늘어난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가 박 후보에게 돌아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안철수는 기존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정치판에는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신인이다. 아직도 '정치'라는 단어를 그에게 붙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대선 이후에 정치를 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엄연한 정치인이다.이 부분이 역설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강고하게 자리잡은 기득 거대정당의 카르텔화는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표출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란 사회의 균열을 제대로 관리하고, 갈등이 제도권 내에서 수렴되며 일정 부분 사회적 합의로 도출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민주화 이전의 정치구도가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의 쟁투과정이었고, 군사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관통했던 정치에서, 서구식 정당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과 이념적 정체성을 한국정치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이는 정부수립 후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성취된 1987년까지 불과 39년 동안 무려 9차례나 개헌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하고 있다.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기득정당의 체제에서 기존 정치에 식상한 무당파는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 당연히 중도층일 개연성이 높다. 다른 범주에 속하나 개념적 친화력을 보이고 있는 중도무당파는 그래서 당연히 전통적 새누리당 지지도 아니고, 확고한 민주통합당 동조집단도 아니다.이러한 유권자군에게 안철수라는 존재는 그의 개인적 리더십이나 정치적 스타일과는 연계되지 않는 새로운 메시아로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즉 정당체제(party system)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표출시키지 못할 때 나타난 것이 안철수다.그가 지금 다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원의 대결에서 승패의 향배를 거머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행태는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볼 때 흔쾌히 승복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18대 대선기간에 그는 어떤 행보를 할지, 야권의 승리를 위해 어떤 수위와 방법으로 역할을 할지 또다시 그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 이후 '정치인 안철수'가 그가 주창하는 새 정치와 정치쇄신의 아이콘으로 부활할 가능성 여부는 더욱 궁금하다.

2012-12-03 최창렬

아카사키 촌의 화분

아카사키 촌은 일본에 있는 마을이 아니다.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시려운 등을 기대고 사는 도시 가운데의 낮은 언덕배기 쪽방촌이다. 성장·팽창에 길들여진 사회더 많아지고 빨라지지 않으면불안에 빠져 증오만 키워이러한 '성장기 갈등' 해결너그러운 사회분위기 조성할진심·역량있는 지도자 그리워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자의 가슴에 아리게 그러나 훈훈하게 남아있는 그 마을은 일본식 이름이 말해주듯이 생겨난 유래부터 아픈 기억을 가진 '붉은 땅(赤琦)' 위에 지어진 일제치하 부두공사장 노동자들의 창고형 집단 합숙소였다. 해방 후 낡은 건물의 내부를 합판으로 얼기설기 칸을 치고 천장을 대어서 허리를 펴고는 들어갈 수 없는 2층짜리 쪽방을 만들어 갈 곳 없는 이들이 들어와 살았다. 아침이면 공동변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1989년 12월 말 동구청장으로 임명 받은 필자가 취임식에 가기 전 맨 먼저 방문한 곳이 거기였다. 초겨울 한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코끝이 매워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가 설 곳이 여기로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여기 있구나 하며 의지를 다잡았었다. 그러나 정말로 나를 울렸던 것은 그 이듬해 봄이었다. 늘 순찰코스에 넣어 들르던 중에 쇠약한 노인네 두 분이 사는 칸에 갔을 때 집 앞에 나란히 열 지어 선 허름한 화분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직업 없는 남편과 초등생 아이들을 힘겹게 키우던 억척 아주머니네도, 막일 가서 아무도 없는 위칸 집에도, 집집마다에 옹기종기 투박한 화분들이 보였고 꽃들은 건강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화장실만 공동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물도 멀리 공동수도에서 길어다 써야 했었다. 이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작으나마 행복을 키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로 고마워서 눈시울이 적셔 왔다. 그 당시 그 희망의 싹은 온 국민의 것이었고 우리의 하나로 된 힘과 면면히 이어져 온 지혜의 각성을 바탕으로 아낌없이 쏟아 낸 땀방울은 기적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나라는 발전의 터전을 굳게 했으며 국민은 가진 것이 있게 되었다. IT와 자동차를 넘어서 '강남스타일'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어느 나라도 쉽사리 해내지 못했던, 국제사회에서 마음을 얻는 문화적 단계까지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성장과 팽창에 길들여져 온 50년, 마치 마약의 금단현상처럼 더 많아지지 않으면, 더 빨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하다. 못견뎌한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증오를 싹틔운다. 그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면 넘쳐나는 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왜?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 왔던 것일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큼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불만은 더 커져가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자문하고 있다. 이 성장통은 성숙기에 접어들면 멈춰질 수 있을까? 성장기를 지나면 성숙기. 성숙기의 특징은 슬로 템포(slow tempo)이고 그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과정의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인해 금단현상을 겪는다. 그 금단현상의 기간을 줄이고 성장통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넘쳐나는 싸구려보다는 작고 적지만 제대로 된 것을 추구하는 단계가 되었음을, 헤픈 씀씀이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소비를 체득해 가는 튼실한 가계의 보람을, 그리고 행복도 물량으로서가 아니라 내실의 진한 향기를 만끽하는 진정한 자아를 일깨우면서 나눔으로써 넉넉한 그리하여 너그러움이 각박함을 밀어내는 존귀한 사회분위기를 애써 설득하고 제도적으로도 만들어 가는 진심과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그립다.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성장기의 갈등에서 벗어나야 할 때 그 때가 된 것이다. 언제까지 불만 속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것인가.행복과 풍요는 가진 것에만 비례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평등이요 은총임을 깨달을 때이다.

2012-11-25 박연수

과학과 종교는 다르기 때문에 상보적일 수 있다

아직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은 지구 주위를,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태양은 은하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과학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태양이 떠오르고 달이 진다고 말한다. 한 해가 가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해야 과학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감각은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에 더 민감하다. 지구가 자전(自轉)하고 공전(公轉)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분명 우리의 눈에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보이고, 석양을 남기며 산 너머로 지고 있는 붉은 해가 보인다. 정월 초하루(설날)의 태양은 새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몸이 아픈 환자에게과학자로서 의사의 치료와성직자의 기도, 모두 필요해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른관점아름다운 조화 이뤄가야사람들이 세계를 보고 인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망원경으로 달의 분화구를 볼 수도 있지만,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도 있다. 하늘에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분명 다르지만 모두 의미 있는 삶이다.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해묵은 논쟁거리이나 여전히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곤 한다. 특히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우리 사회에서조차 '교과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계속 재연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명이 진화의 과정을 밟으며 인간도 진화의 산물로 본다. 창조론은 신이 인간도 생명도 세계도 모두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두 이론에 모두 다양하고 복잡한 견해들이 있고 더 많은 입장들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주장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관점이고 창조론은 특정 종교의 관점이다. 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고, 창조론의 수용은 믿음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시간에는 과학적 이론인 진화론을 가르쳐야 한다. 종교적 설교 시간에는 창조론을 믿으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창조 이야기가 과학시간에 가르쳐져서는 안 되고, 설교 시간에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망원경으로 달의 토끼를 찾으라고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까?중요한 점은 과학과 종교가 비록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사는 과학자로서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한다. 성직자는 병의 치유를 위해 기원할 수 있다. 환자에게는 의사도 필요하고 성직자도 필요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들을 열심히 공부하도록 할 수 있다. 음식은 영양가가 있어야 하지만 맛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는 과학적인 성과도 도움이 되지만 종교적인 믿음도 삶을 의미있게 할 수 있다.진화론의 주창자였던 찰스 다원도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진화를 해온 생명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을 최고로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명을,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아름답게 보존하는 일에 진화론자도, 창조론자도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의사의 노력과, 환자의 구원이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성직자의 간절한 기도가 함께 어우러지는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2012-11-19 류성민

한국 성씨의 진실과 거짓

최근에 성씨의 출자와 조상 찾기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혈연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현상으로 보겠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 기능을 하지만 때로는 역기능도 한다. 조상과의 연계와 혈연의식을 표현하는 대표적 방법이 각 개인의 성씨와 이름을 통해서라 하겠다.한국인은 누구나 성명이 있으며, 성명에서 성과 본관은 소속 가문을, 이름은 흔히 가문에서의 세대수를 나타내는 항렬자와 각 개인을 구별하는 글자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성명은 개인의 구별뿐만 아니라 가문의 세대까지 드러내주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의 성씨에서 가장 큰 특징은 본관제도이다. 본관은 조상의 출신지 또는 씨족의 거주지를 성 앞에 붙여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대개 고려초 이후 성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혈족계통을 달리하는 같은 성이 많이 생겨남에 다른 혈족의 성과 구별하기 위해 쓰이게 되었다.조선후기 신분 해방전까지인구 절반은 성씨 없이 지내격동의 시대에 위조족보 판쳐혈족 아니어도 동성동본 오인성씨에 대한 배타적 현창 보다사실 여부 검증 먼저해야성이 같아도 본관이 다르면 다른 혈족이다. 반드시 성과 본관이 같아야만 동족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원칙론이지 실제는 예외가 많아 대단히 복잡하다. 씨족의 뿌리를 같이하면서도 성 또는 본관을 달리하는 성씨가 있고, 반대로 다른 혈족이면서도 성과 본관을 동일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실제 동일 직계는 물론 친족도 아니면서 동성동본으로 오인된 경우가 있다. 그 연유는 후대에 여러 이유로 고치고 바꾼데 있지만, 그 중에는 처음 고려 태조가 사성과 사관하면서부터 그렇게 유래된 것도 더러 있다.태조의 사성은 특정한 세력가 개인에게 준 경우도 있었지만, 때로는 그의 친족 구성원과 집단에 포함된 일정지역의 모든 양민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공신들과 고위관료 및 협조한 세력가들에게 출신지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내렸다. 그리고 전국 군현을 개편하여 명칭을 변경함과 더불어 각 지역의 토착 유력층에게 토성을 분정하고 본관을 사여하면서 지방사회를 재편성해 나갔다. 그 실질적 작업은 호적의 정리 작성으로 이루어졌다.이러한 사성과 본관 사여 및 호적 작성은 곧 국가의 구성상 필수요건인 백성들에 대한 파악을 전제로 하면서 후삼국시대 심각한 사회적 현상의 하나였던 유이민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성씨 시조를 일정한 지역단위에 본관의 수호신으로 인정하여 공동 시조 내지는 수호신으로 제사를 행함으로써, 지역단위의 공동체의식을 고취시켜 주민의 안정을 도모함과 여기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택리지'에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비로소 중국식 성씨제도를 전국에 반포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 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여, 우리 성씨의 보급시기를 고려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반민과 하층민에게 성씨가 획기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성씨가 없는 노비를 비롯한 천민층이 전체 인구의 대략 절반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신분 해방과 함께 새로이 성을 갖게 된 자들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본관에 따라 성씨의 우열과 가문의 품격에 차등이 있었기 때문에 본관을 유력 가문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았으며, 더구나 모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본관과 시조를 중국의 같은 성씨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위조족보가 대량 작성되었다. 그리하여 무명 성씨나 신흥 세력들은 대부분 큰 성씨와 명망있는 가문에 투탁함으로써 기존의 큰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1894년 갑오경장으로 종래의 신분제가 없어져 성씨의 일반화가 촉진되었고, 1909년 새 '민적법'의 시행으로 누구나 모두다 법적으로 성과 본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성이 없던 사람들이 새 성을 갖게 되자 호적담당 관리나 경찰이 임의로 성을 지어주기도 하고, 노비의 경우는 종전 주인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분과 계급제도가 타파된 한말을 거치면서 모든 한국인은 성과 본관을 갖게 되었고, 또 모두 양반성씨가 되고 훌륭한 가문이 되어졌다.현대사회에서 문중과 사람들은 조상과 성씨를 배타적으로 현창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 성씨의 변천이 이러할진대, 맹신적 행위보다는 우선 스스로가 그 사실 여부를 검증해 봄이 어떠할지?

2012-11-11 김창겸

'스윙 보터'의 선거

어느 선거나 부동층의 향배가 승패를 가른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 부동층이 줄어들고, 대신 '스윙 보터'라고 불리는 유동층이 선거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이들은 현재 10%내외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 변동은 그래서 거의 한 달째 고착화된 상태이다. 통념적 분석은 각 후보의 공약이 결정적 차별성을 드러내지 않고, 정수장학회와 NLL 공방, 야권후보 단일화, 여성대통령론, 투표시간 연장 관련 등 정치공학적 접근이 유난히도 대선 정국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지지율의 고착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6대, 17대 대선때의 수도 이전이나 대운하와 같이 대선의 명운을 가를 대형 공약이 없는 것을 이유로 꼽는다.한국정치 관통 '진영논리'보수 vs 비보수 구도 양분후보3인 지지율 고착화정책·공약도 큰영향 못미쳐10%내외 변덕스런 유동층승패 좌우할 키 가져그러나 유심히 들여다 보면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진영논리가 주범이다. 한국정치의 기본 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양립 구도가 아니라, 보수 대 비보수의 구도이다. 현재의 정당체계로 보면 새누리 대 비새누리의 얼개로 짜여져 있는 형국이다. 진보가 집권했던 15대 선거는 DJP 연합으로 진보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보수의 분열로 인한 보수 진영의 패배로 보는 것이 야권의 단일화로 보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보편적 분석과 전망에 의하면 결국 이번 대선의 표심은 40대와 50대 초반이 좌우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시절에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구도를 타파하는 대열에 섰던 나이든 386이 현재의 40대 중후반과 50대 초중반이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을 꼽는다.그러나 이는 어찌보면 도식적 분석이다. 부산도 대선의 향배를 가를 지역이라고 하고, 충청은 영원한 캐스팅 보트다. 호남은 또 어떤가. 야권 지지의 정치적 상징이지만 지난 총선때 새누리당의 약진도 돋보였던 지역이다. 제주와 강원은 유권자의 비율은 적지만 어차피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어느 지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러한 분석은 대선의 핵심을 관통하지 못한다.박근혜 후보의 갈 길을 더디게 만들곤 하는 이른바 '과거사' 논란은 생각보다 박 후보의 결정적 아킬레스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 현상이다. 유신에 대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과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는 인식을 보인 것은 나름대로 진전된 발언이라고 보자. 그러나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관련 발언에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이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여론조사 시기와 기관에 따라 지지율의 혼조가 보이긴 하지만 세 후보의 대결구도에서 대체로 박 후보는 40%대, 문 후보와 안 후보는 20~25%대에서 고착되어 있다. 양자대결 구도에서는 40~45%대로 여야 후보 지지율의 등락이 엇갈린다. 웬만한 정치적 충격이나 반전의 카드로는 지지율의 고정화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45%대의 보수층은 박 후보의 어떠한 실수에도 관대하다. 정책이나 공약은 별로 의미가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보냈던 '노사모'의 응집력 못지 않게 표의 충성도를 자랑한다. 그것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장 시대에 대한 회고적 지지에 기반하거나, 봉사와 배려의 아이콘처럼 인식돼온 고 육영수 여사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중첩적 이미지가 작동했거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야권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지지층, 또는 집토끼라고 정치권에서 표현하는 지지층은 야권의 어떤 실언이나 실수에도 관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한국정치를 퇴행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른바 진영(陣營)논리다.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구도의 정치적 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않고, 성장 이데올로기와 안보논리가 정권을 유지하는 기제로 작동했던 어두웠던 시대의 잔영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 대결은 선거 정국을 좌우할 추동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권자들은 정책이나 공약을 따지려 들지 않는다. 결국 대선이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지향을 도출해 내는 정치 과정이 아니라, 양 진영의 차이를 확인하는 선거공학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번 선거도 결국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10% 내외의 '변덕스런' 유동층(流動層)이 승패를 좌우할 키를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18대 대선은 이래저래 '스윙 보터'의 선거이다.

2012-11-04 최창렬

위험사회에서 사는 법

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소재 화학제품 생산업체에서 불소산(플루오린화 수소산)이 유출되어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2천여명이 치료받았으며 광범위한 지역이 오염의 불안에 휩싸였다. 급기야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었다. 원인은 관 연결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밸브를 연 어이없는 인재였다. 편리한 문명생활 이면 곳곳에대형사고 가능성 산재국가는 위험요소 체계적 관리국민의 안전보장 책임져야사회구성원 개개인도위험요소 제거 적극 대응 필요우리는 이런 위험물질을 제조, 저장, 운반, 사용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디 맹독성 화학물질뿐이랴. 폭발성 있는 가스, 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 동위원소 등 우리의 문명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위험요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류는 이런 극도의 위험성을 성공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고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에 들여와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러면 위험한 상황은 언제 발생하는가. 위험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그 즉시 발생한다.그 실패는 이런 극도의 위험은 단지 '제어'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 발생한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은 위험환경에도 쉽사리 적응해서 일상화된 위험은 더 이상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개인의 안전의식에만 의지하는 위험관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시스템은 믿을만한 것일까? 위험관리 시스템에서 최상위에 있는 것이 국가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국가는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험이 발생하는 것은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다기한 현대 문명사회에서 완벽한 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왕왕 제 목숨도 달려 있는데 오죽 잘 관리할까 하고 믿어 버리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자기 목숨이 달려 있는데도 그러니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고공 놀이시설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번지점프 시설의 줄이 끊어지는 일이 생긴다. 우리는 자기의 목숨이 달린 안전의 문제를 손쉽게 남의 손에 맡긴다. 시스템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사소한 잘못이 한 방향으로 중첩될 때 온다.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과정에서만이라도 잘못을 발견하고 시정하면 사고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부실의 결과이자 사회기강의 문제와 결부된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본분 중에 하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태민안(國太民安)이 정치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가 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조직과 우리 사회의 기강이 제대로 서 있고 작동이 되고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재사고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1:29:300의 법칙을 정립한 것인데 전조정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즉, 1건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규모의 유사사고가 29차례 발생하고 그 전에 300차례의 징후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조정보를 유념해서 관리하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적인 위험관리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전조정보 관리 시스템'이 개발 활용될 가치가 있다. 우리의 장기인 IT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현장에 떠다니는 위험 관련 전조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인공지능분석 프로그램으로 위험인자를 가려내어 집중적으로 점검 관리를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목숨을 시스템에만 맡길 수는 없다. 위험관리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몫을 해야 하는 주체는 위험에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개개인이다. 이때만큼은 불신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내 안전은 내가 챙긴다는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극복해야 할 과제는 '설마'와 '부담스러움'이다. 남들은 가만있는데 따지기가,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안전을 따지고, 위험요인을 보았을 때 종을 치고 호루라기를 부는 것이 내 목숨과 우리 사회를 위험에서 구하는 길임에야 다른 불만을 제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2012-10-29 박연수

축제에 다녀오셨습니까

가을에는 그 어느 계절보다 축제가 많다. 방방곡곡에서 온갖 축제가 넘쳐난다. 수원의 화성문화제, 이천의 쌀문화축제, 가평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부평의 풍물대축제, 소래의 포구축제 등 10월에만 수십 개의 축제가 경기·인천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무려 750여 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면서 즐기는 축제가 많다고 나쁠 것은 없겠지만, 왜 그렇게 많은 축제들이 열리고, 왜 우리가 축제에 참여하는지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순한 행사·장사 의미 아닌남녀노소·빈부귀천 없이평등해지는 '놀이의 시공'마음껏 즐기고 난 후이전과 다른, 보다 멋지고의미있는 삶 추구할 수 있어야축제(festival)는 말 그대로 축하의 제사이다. 제례나 연회 혹은 축일로 번역되기도 하는 축제는 종교적 의례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들을 찬양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의례가 축제였다. 다른 종교의례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공간(곧 성스러운 시공) 속에서 일상과는 전혀 다른 규범과 사회적 질서를 창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의례가 축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축제이든 간에 일하고 공부하고 잠자는 일상생활을 벗어나는 것에서 축제가 시작되고, 축제의 시공 속에서는 일상을 모두 잊어버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며,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면서 축제는 끝나는 것이다.평소에는 보잘 것 없이 먹어도 축제에서는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술 먹고 일할 수는 없지만 술 없는 축제는 거의 없다. 가면이나 탈을 쓰면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다 똑같다. 축제 중에는 사회적 신분도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별도 없어진다. 모두가 더불어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놀다보면 귀천도 빈부도 무색해진다. 때론 남녀의 구별도 나이에 따른 서열도 무시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축제를 즐기면서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삶을 향유하게 된다.축제가 끝나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간에 다시 이전에 생활하던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축제를 즐기고 나면 그 일과 공부를 더 힘차고 열성적으로 하게 된다. 한숨 푹 자고나면 온 몸이 개운해지듯이, 축제에서 정신없이 놀고 즐기고 나면 일할 힘과 용기가 치솟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진정으로 축제를 향유한 것이다. 모든 축제가 그저 놀고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축제는 마치 식물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다시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축제를 통해 부여받는 것이다. 축제에 참여한 후에는 그 이전과 다른, 보다 멋지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인류가 축제 문화를 간직하고 전승하여 온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축제에 다녀왔습니까? 다녀오니 어떻습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요? 더 충실한 삶을 살고픈 의욕이 넘치지는 않는지요?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혹시 좋은 물건 싸게 사려고 축제에 가지는 않았는지요? 돈벌이가 될 일이 없나 서성거리지는 않았는지요? 아이들에게 뭔가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아 축제에 데리고 가지는 않았는지요? 축제에 다녀와서 오히려 일할 맛을 잃지는 않았는지요?행사가 축제는 아니다. 축제는 장사도 아니다. 축제는 배움의 자리도 아니고 사업의 기회도 아니다. 춤과 노래가 흥겹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넘쳐나며,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이 모두 평등해지는 놀이의 시공이 축제이다. 이런 축제를 마련하여 즐겨보자. 가을하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축제는 우리 삶의 청명한 가을하늘이다.

2012-10-21 류성민

황제적 위상을 가진 신라의 국왕

최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역사 드라마가 제법 자주 방영되는 추세이다. 그만큼 대중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현상이라 고무적이라 하겠다. 특히 고대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여러 편 방영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왕을 모두 황제폐하라고 호칭하고 있다. 우리의 고대에는 국왕이 직접 황제를 칭한 왕은 보이지 않고 대왕을 칭하고 폐하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황제폐하가 아니라 대왕폐하라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대왕·황후·태제' 호칭과독자적 연호의 사용황룡사9층탑 등에서는중국과 별개의 세계관 표현드라마서 정확한 용어사용잘못된 지식 전달 막아야왕조국가에서는 최고통치자인 군주의 지위에 따라 권력구조가 황제국의 틀을 취하거나 제후국의 틀을 취하여 그 형식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가의 대외적 지위가 달라지고 그것이 국가의 위력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에 가장 근접한 외국은 중국에 향해서는 주변 번국의, 국내에 대해서는 독립의 이중 체제를 취하였다. 이는 중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체면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공격을 받거나 외교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었고, 아울러 국내에 대해서는 한 나라의 군주는 절대 존엄하지 않으면 그 지위가 보존되지 않았던 것에 이유가 있다. 실제로 중국의 주변국들은 황제국에 예속되었던 왕국에 만족하지 않고 비록 정도는 달랐지만 각각 나름대로 자기중심의 독자적인 국제질서를 상정하고 있었다. 한국 역사상의 왕조들도 그러하였다. 독립성의 정도는 고려 중기 이전에는 이후에 비하면 훨씬 높았다. 고려 중기, 즉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이전까지는 제도적으로 황제국의 체제였다. 지금도 중국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신라를 당의 제후국 정도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신라는 대외적으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속하였고, 내부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제후국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라가 단순히 중국 왕조, 특히 당나라의 제후국에 불과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신라도 '대왕' 칭호와 독자적 연호의 사용을 통해 황제국을 표방하였다. 신라 국왕과 왕족은 황제적 지위와 황족의식을 가졌고, 신라는 자국 중심의 천하관이 존재하였다.신라 국왕은 일찍부터 천자적 존재였다. 우선 신라 중고기의 왕들은 건원, 개국, 태창, 홍제, 건복, 인평, 태화와 같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국왕을 대왕이라 하면서도 때로는 '태왕'이니 '제'와 '제왕' '황왕'이라 하였고, 스스로 '짐'이라 하면서, '순수'니 '붕' '인산'이라는 용어, '태종'과 같은 칭호를 사용하여 황제적 위상을 표현하였다.신라 국왕이 황제의 지위를 가졌음은 친족용어에서 확실하게 보인다. 우선 국왕의 아내를 '황후' 또는 '왕후'라고 하였으며, 왕위계승자를 '태자', 왕의 어머니를 '황태후' 또는 '태후', 왕의 아우를 '태제'라고 한 것들이 있다. 이것은 이들 호칭의 중심이 되는 대왕이 황제적 지위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한편 신라는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나름대로 독자적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 황룡사9층탑을 세우면서, 1층 일본, 2층 중화, 3층 오월, 4층 탁라, 5층 응유, 6층 말갈, 7층 거란, 8층 여진, 9층 예맥 등 9한을 진압시킨다는 신라 중심의 독자적 세계관을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신라는 당시 발해와 일본 등 주변국을 번국으로 인식, 상정하는 나름대로의 천하관과 신라중심의 국제질서를 설정하였으며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라 국왕은 내적으로는 황제적 지위를 가진 군주이고, 그 친족은 황족의식을 가졌었다. 비록 외교상으로는 중국왕조로부터 책봉을 받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고 또 통치기구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모방하고 제후국의 제도를 표방하여, 당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재되었지만, 국내적으로는 나름대로 독립국의 위치를 가졌다.역사 드라마는 물론 언론과 책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긍정적 작용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만큼 역사용어는 사실에 근거하여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사용과 지식의 전달은 대중에게 혼란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역사 왜곡을 낳을 수 있다.

2012-10-15 김창겸

경제민주화와 시대정신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갈구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나날의 삶이 불공정하다는 정서적 공감이 결코 쉽지 않는 개념인 '공정'과 '정의'라는 인문학의 바다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학자다.표심 잡기 나선 대선 후보들사회정치적 철학 없는무분별한 영입·민생행보담합과 줄서기를국민통합으로 둔갑시켜유권자의 정확한 통찰력 필요그의 정의와 공정의 개념은 사회와의 유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고유한 문화 및 전통의 배경에서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사회의 상대적 형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정의관과 맞닿아 있다. 이것이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사회정치 철학의 기저이다. 18대 대선을 가르는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와 통합이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일견 야권과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어젠다를 선점하여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으나, 경제민주화는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자,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통합은 경제민주화와 별개의 의제가 아니다. 일반적 개념으로 '민주화'란 소극적 의미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뜻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이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사회구성원의 실질적 평등권 보장을 의미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전자의 절차적 측면을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은 민주화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후자의 실질적 평등권과 복지의 충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가 수반될때 비로소 형식과 내용에서 민주주의는 명실상부한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바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착근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것이다. 즉 경제민주화란 경제적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향한 공동체의 노력과 제도적 확립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전제될 때 밑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 급식과 교육, 보육의 무상시리즈나 선심성 복지 공약,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빈부격차의 완화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득권층의 경제적, 사회적 배려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면 공동체의 원심력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후보들의 이른바 '민생행보'와 무분별한 '영입'은 경제민주화와 통합을 예지(叡智)하는 철학을 담고 있지 않다. 사회경제적 형평과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가운데 사회통합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고, 이것이 정치통합으로 연결되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통합의 선순환이다.후보들의 주장으로 정치권의 유행처럼 치부되고 있는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은 논리적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성장에 방점이 찍힘으로써 지난 대선의 줄푸세나 747공약의 동어반복이 될까 두렵다.더구나 표심을 얻기 위한 소위 외연 확장이나 중도층 잡기 경쟁은 좌우 양쪽의 지지를 끌어모으려는 정당의 포괄정당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념적 지향을 상실한 공허한 눈속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의 정확한 통찰과 성찰이 없이는 정치인들의 능숙한 정치공학적 유혹에 현혹될 개연성이 어느때보다도 높은 것이 이번 대선의 흐름이다. 철학 부재의 탈근대시대에 샌델의 저서가 그토록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은 역설적으로 생활정치에 긴요한 정치철학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선거과정과 캠페인을 통하여 그 사회의 집단지성의 흐름을 형성해야 할 대선은 정치공학의 난무와 이념적 잣대가 모호한 인사들의 무분별한 영입 경쟁으로 점철되고 있으며, 담합과 줄서기가 국민통합으로 둔갑하고 있다. 샌델이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역설한 정의에 공감했던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간구와 열망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알 수 있는 깜냥이 안되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가? 70일 남짓 후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가 공동체의 지향을 성찰하고, 시대 및 역사를 마주하는 통찰이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2012-10-07 최창렬

지속가능한 사회 위해 '적정이윤 개념' 필요

1970, 80년대 서민들의 재산형성의 과정은 하루하루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야하는 참으로 고단한 길이었다. 쥐꼬리만한 한정된 수입에서 이것저것 쓸 것을 따지다보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부들은 위대했다. 우선 저축을 위한 몫부터 떼어놓고 살림을 시작했다. 눈치 없는 손님이 와서 한 끼를 축내고 가면 주부는 남몰래 배를 주려야 했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적금을 붓고 목돈마련을 위해 계를 들었다. 티끌모아 소중하고도 뿌듯한 성취를 이루어 아이들의 대학 입학금도 만들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그리고 작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상 받고 진한 행복감에 온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함께 했었다.공급자 중심의 가격책정 탓천문학적인 아파트 값 형성거품 빠지자 거래실종 시작건설경기 전체적 침체 몰고와철저하고 예외없는 과세 등구체적인 조처 시작해야2000년대, 근세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룩한 이 시대 사람들은 좌절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지나친 경쟁, 청년실업, 신분상승의 사다리의 상실, 물질만능의 사회적 풍토, 무엇하나 속 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격차'의 문제가 있다. 의외로 격차의 문제는 '적정이윤 개념의 상실'에서 시작한다.언제부터인가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큰 손님이 아니면 그렇고 그런 손님은 귀찮을 뿐이다. 박리다매는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기성복이 맞춤양복보다 비싸지면서 시장 지배권이 공급자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값은 제 가치보다 점점 높게 매겨졌다. 씀씀이가 커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계층에서는 연봉도 하는 일이나 벌어들이는 수준보다 크게 높아졌다. 값을 정하는 사람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모럴해저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연해갔다. 가격구조의 왜곡은 고비용 저효율 사회의 구조화를 초래해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 편중되면서 곳곳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라잡기가 요원해졌다. 성장의 저변은 약화되었고 사람들은 불만을 넘어서 좌절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요즈음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가 아파트 값이다. 문제의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역설적이게도 값이 내려가서 거래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적정이윤 개념이 실종된 대표적인 사례가 아파트 값이기 때문이다. 공급자가 결정하는 가격은 투기수요에 힘입어 토지비, 건축비, 금융비용, 이윤을 훨씬 넘어서는 기본가격을 형성하였고 거기에 거래이익이 붙어서 천문학적인 아파트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일확천금을 한 공급자는 이익을 챙겨서 떠나고 수요자들만 남은 시장에 투기수요의 거품은 꺼지고 과다하게 형성된 가격이라는 실상이 드러났으니 이 시점의 소유자는 막대한 손해를 보지 않고는 팔 수가 없게 되었다. 사려는 사람은 적정가격을 알 수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거래는 끊기고 고용확충과 시중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핵심이 되는 건설경기는 실종되었다. 더 큰 분양사업을 위해 투입했던 비용은 건설기업을 침몰시켰다. 악순환에 접어들었고 그 비용은 너무도 크다.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투기라는 악순환이 새로 시작되든지, 적정가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든지, 시장의 기능으로 적정가격에다가 최초 공급자가 가져가버린 부분 중에서 일부를 인정해서 새로운 조정가격이 형성되든지 세 가지 중에 하나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든 고통이 따른다. 일찍이 적정이윤에 의한 적정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면 고통의 크기와 기간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적정이윤 개념의 회복은 그동안 간과되어왔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가 쉽지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꼭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방법은 있다. 적극적인 소비자 운동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에 대한 철저하고도 집요한 예외 없는 과세에 이르기까지, 적정이윤 개념이 우리사회의 기본으로 다시 자리 잡도록 구체적인 조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2012-09-24 박연수

한가위 상념(想念)

하늘은 높아지고 말(馬)이 살찌는 계절, 가을이 되었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 한가위(추석, 중추절)가 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본다.우리는 흔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한다. 한가위에는 친지와 이웃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모여 놀이를 즐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때이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이웃을 돌본다.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주위의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人心)이 넉넉해지는 때가 한가위다.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괴로운 사람도 함께 명절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면 좋겠다. 아니 늘 한가위 같으면 좋겠다.한가위에는 고향을 간다. 민족대이동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한다. 먼 길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고향에 가면 고향 산천을 둘러보고 고향 친구와 친지를 만난다.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도 보게 되고, 고향에서 놀던 놀이도 한다. 수만리 바다를 떠돌다 태어난 개울가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은 연어처럼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음으로나마 고향을 그린다.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 있듯이, 누구나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즐기고픈 고향이 있게 마련이다. 고향은 그래서 꿈이고 희망이고 기쁨이다. 어디서든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한가위 보름달은 두 손 모은 우리의 염원을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한가위에는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한다. 제사를 드린다. 차례를 올린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린다. 모두 모여 그 분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되새겨본다. 어떻게 사셨는지를 생각해본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아갈 그날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언젠가 우리의 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영정과 위패 앞에서 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차를 따라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던 모습을 되새겨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가 어떠했었다고 말해질까? 그러고 보니,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멋지게 살아야겠다. 욕먹지 않고 살아야겠다. 좋은 일 많이 하며 살아야겠다. 부모님께 더 정성으로 효도해야겠다. 자식들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한가위에는 갖가지 놀이를 한다. 소싸움을 하기도 하고 길쌈을 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도 재미있고 씨름도 흥겹다. 차전놀이도 줄다리기도 이기나 지나 모두 즐겁다. 간만의 고스톱에 날 새는 줄도 모른다. 그렇게 놀이는 우리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게 한다. 일도 공부도 잊도록 만든다. 벌레처럼 일만하고 공부만 하던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놀이다. 놀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신명나게 놀 수 있는 때가 한가위다. 그렇게 놀아야 다시 열심히 일도 할 수 있고 신나게 공부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함께 놀자. 어린애와 어른도 같이 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같이 놀자. 여자와 남자도 한자리에서 같이 놀고, 처녀총각도 유부 남녀도 함께 놀자. '잘 놀아야 공부도 잘한다'고 했던 초등학교 때의 존경하던 담임선생님이 그립다.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에 황금빛이 확연하다. 머지않아 저 산도 아름답게 단풍이 들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찬바람도 불고 눈보라도 날릴 겨울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풍요의 때에 곤궁함을 염려하는 것, 배부를 때 배고픈 사람을 돌보는 것, 떠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것, 함께 놀고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이 사람의 순리가 아닐까. 한가위만 같은 나날이 순리가 아닐까!

2012-09-16 류성민

우산국 우해왕의 대마도 정벌 설화

근래 일본이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또다시 억지 주장하면서, 양국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은 '독도 합동기동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한다. 합동참모본부는 훈련 목적을 "이번 독도훈련은 외국 민간세력이 독도 영해를 침범 또는 접근해 오는 상황을 가정해 실시된다"고 한다. 즉 일본 극우세력 등의 '독도 도발'을 가정해서 훈련을 실시한다는 것이다.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기록된 것처럼, 지증왕 13년(512) 6월에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함으로써, 울릉도와 함께 독도는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울릉도에는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병합하기 이전 시기에 우산국의 왕이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한 내용의 '우해왕(于海王)과 풍미녀(豊美女) 설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할 당시의 비화를 담은 '사자바위'와 '투구봉' 전설이 전해온다.신라에 복속되기 이전에 우산국은 우해왕이 다스렸는데, 왕은 기운이 장사로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 우산국은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매우 강했다. 이때 왜구들이 가끔 우산국에 와서 노략질을 하였는데, 그 본거지는 대마도였다. 우해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대마도 왕을 만나서 담판하였는데, 대마도 왕으로부터 앞으로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복 문서를 받고 푸짐한 대접을 받았다. 서로 사이좋게 지낼 것을 약속하면서 대마도를 떠나려 할 때 대마도 왕은 셋째 딸인 풍미녀를 우해왕에게 바쳤으며, 우해왕은 그녀를 우산국으로 데려와 왕비로 삼았다. 그런데 이후 왕은 나라 다스리는 일을 멀리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심지어 신라에 몰래 쳐들어가 빼앗아 오기도 했다.한편 우산국이 몰래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자 신라 백성들은 지증왕에게 우산국을 토벌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신라왕의 명령을 받은 실직군주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먼저 사신을 보내어 우해왕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신라군을 가볍게 여기고 도리어 사신을 죽였다. 이에 신라군은 배에 싣고 온 나무사자의 입에서 불을 뿜게 하고 또 화살을 쏘게 하며 군선을 몰게 했다. 결국 우해왕은 이사부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던지고 항복하면서 이사부에게 "제발 데리고 온 사자 짐승을 남겨두어 그것이 이 섬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였고, 이사부는 그 부탁을 듣고 나무사자를 배에서 끌어내 물에 띄웠다. 이때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쳐 나무사자는 사자바위가 되었고, 우해왕이 벗어던진 투구는 투구봉이 되었다고 한다.이 설화와 전설은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많이 윤색되고 변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산국 우해왕이 대마도를 정벌하고 그곳 왕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보면, 이웃 나라 사이에 공주나 왕실 여자를 시집보내는 행위는 왕자나 왕의 아우 또는 왕실의 남자를 볼모로 보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대체로 힘의 논리에 의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국가간 협상의 부산물이며 동맹의 상징을 띤 정략결혼의 한 형태이다.우해왕이 풍미녀를 대마도에서 데려와 혼인한 일이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는 이유와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매우 중요하고도 분명하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독도훈련은 물론 서남 해안에서의 해상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독도가 우리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의 억지는 물론 이제는 미국의 한마디 말, 한 줄의 글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참 안타깝다.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해상활동을 생각해보라. 오늘날 삼면이 바다인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해상훈련은 독도 뿐만 아니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도 필요하다. 서해안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내몰아야 한다. 동해와 독도 근처로의 일본 선박의 접근과 조업을 막고, 만약에라도 있을 일본인들의 불법 상륙에 철저히 대비하여야 한다.

2012-09-09 김창겸

통합과 '통합행보'

통합이 화두다.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이 불러온 사회적 원심력의 증가는 한국의 미래를 파편화하고, 공동체를 형해화할 수 있다. 또한 성장의 신화를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가 이른바 '국민통합'이다. 통합과 민생이, 다가오는 대선의 화두임은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러나 통합은 그냥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역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과거와의 화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암울하고 음습한 시대의 터널을 지나왔다. 쿠데타와 인권 유린, 국가의 폭력이 일상화했고, 성장지상주의의 목표 아래 왜곡된 정치와 경제 권력의 횡포 앞에 속수무책인 시절을 보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은 확립됐으나 아직도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것이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공고화되어야 한다. 기득권층의 배려와 복지의 제도화가 아우러질 때 경제적 통합의 밑그림이 마련되는 것이고, 이념적으로는 암울했던 군사권위주의 정치가 배태했던 역사의 그늘을 걷어내는 작업과 인식의 대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이른바 '통합 행보'는 그래서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적 배제, 억압, 경제적 소외, 박탈 등으로 점철됐던 시대의 아픔을 예고나 격식을 갖춘 절차없이 불쑥 찾아가면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표는 저절로 온다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았던 일방통행식 권위주의의 부활 그 자체다. 상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러한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대화가 없는 득표에 대한 갈증이 초래한 예고된 이벤트다. 박근혜 후보의 5·16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에 머물러 있고, 유신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면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당위성도, 전태일 열사 재단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이휘호 여사를 예방하는 것은 뜬금없다.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연장보다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 위한 조치였다"는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은 박근혜 후보의 생각을 대신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민주화 이전의 헌법 전문에 명시되었던 '5·16 혁명'은 1987년의 직선제 민주화 개헌에서 삭제되었다. 최근 불거진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해서도 박근혜 후보와 측근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의 조작 과장에 대해서도 "가치없는 것, 모함"이란 입장에서 한 뼘도 바뀐 것이 없다. 2007년 법원의 재심에서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이후에도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자꾸 과거로 가려고 하면, 끝이 없다"는 박 후보의 말에서 규명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를 모두 과거로 치부하려는 듯한 왜곡된 역사관의 일단을 본다.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통합 행보'는 위선으로 비칠 수 있고, 득표를 위한 선거전략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과제는 경제적·사회적 격차와 정치사회적 갈등의 완화이다. 대선 주자에 대한 지지율이 세대별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지역적으로도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향이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다원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명백히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건강한 갈등이 아닌 대립의 보편화는 다양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엄중한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도 정파에 관계없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이 일상화되어 있고, 선거는 진영논리에 입각한 패권주의의 쟁투로 전락하고 있다. 공동체가 합의한 사회의 지향과 비전이 없다면 분배와 복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라는 정치인들의 구호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동체주의적 비전의 상호보완과 통합이 기획된 행보와 이벤트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역사는 엄혹(嚴酷)하다.

2012-09-02 최창렬

당신은 회사 물건을 '훔치지' 않는가?

아빠가 아이를 나무라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의 연필을 훔쳤기 때문이다. 아빠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한참 혼을 내던 아빠는 안쓰러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연필이 갖고 싶었니? 진작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그랬어? 아빠 회사에서 얼마든지 좋은 연필 갖다 줄 수 있는데…."아들이 학교에서 연필 훔쳤다고 야단치면서 정작 자신은 회사 물건을 그냥 가져오겠다는 건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언론에 난 정치인 등의 부정, 경제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엄청' 흥분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이런 저런 작은 부정과 작은 비리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센터의 기념품 매장이 잘되고 있어 거기에는 300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해 매출액이 40만달러 정도 되는데 재고 조사를 해 보니 15만달러 정도가 비는 것이었다. 물건은 없어졌는데 돈이 안 들어온 것이다. 틀림없이 도둑의 짓이라 생각하고 탐정을 고용해서 감시를 했다. 드디어 몰래 카메라에 한 사람이 잡혔다. 현금통에서 돈을 슬쩍하는 자원봉사자였다. 그 사람에게 변상을 하게 하고 조용히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현금 유출은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공모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작은 물건을 하나씩, 현금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이었다. 음악이나 연극을 애호하는 교양있는 그리고 부족할 것도 별로 없는 선량한 은퇴자들이 말이다.베이글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폴 펠드먼이라는 사람은 직장에 다니면서 우연히 둥그런 빵인 베이글을 사무실에 공급하게 되었다. 일 잘한 직원들에게 칭찬으로 베이글을 사다 줬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다른 부서에서도 베이글을 갖다 달라 해서 매주 금요일 베이글을 휴게실에 갖다 두고 빵값을 스스로 상자에 넣도록 했다. 회수율은 95%였다. 100%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폴은 직장에 문제가 생겨 아예 사표를 쓰고 베이글 장사에 나섰다. 여러 사무실을 섭외하여 아침 일찍 휴게실에 베이글을 갖다 놓고 점심 때 남은 빵과 돈상자를 수거해 왔다. 이때 평균 회수율은 87%였다. 과거 자신의 회사에서 기록했던 95%에 많이 못 미쳤다. 가끔은 돈상자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했다.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 웅진, 2005)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실험을 했다. 열두 개의 숫자 조합을 주고 합이 10이 되는 숫자를 찾는 약간 까다로운 문제를 5분 동안 풀게 했다. 20개 문제인데 정답 하나에 50센트를 준다고 인센티브를 걸었다. 감독자가 채점을 해 보니 평균 4문제 정도 풀었다. 그런데 피험자 스스로 채점하게 했다. 답안지를 파쇄하도록 하고 말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거짓을 이야기하고 돈을 탈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4문제가 아니라 6문제로 정답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두 문제를 부풀린 것이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높여 봤다. 정답 하나에 10달러를 준다고 해 봤다. 근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딱 2문제 정도만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이 실험은 미국 사람, 이스라엘 사람, 이태리 사람, 중국 사람들에게도 했는데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에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청림, 2012)'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이 여기저기서 밝혀지고 있다. 그것도 조금씩 말이다. 에리얼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부정을 저지른다." 조금씩 저지르는 이 부정을 모아 보면 사실은 어마어마한 것이 될 수 있다. 케네디예술센터 부정행위 자료는 너무 크니 베이글맨 통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13%가 부정이다. 그것의 반만 잡아도 6%면 엄청나지 않겠나? 은행 예금이자보다 크다.그러나 이 작은 부정은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케네디예술센터에서는 판매액을 잘 기록하게 함으로써 유실을 막았다. 베이글맨이 살펴 보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또 회사 분위기가 좋을수록 빵값 회수율이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도덕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라는 이야기다. 혹 회사 물건을 사적으로 쓰고 있다면 지금 당장 배상하라.

2012-08-26 조영호

올림픽 감독을 통해 본 새로운 리더십

한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사업에 참가하면서 외국 출장 기간에 올림픽을 보았다.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소개했던 한국이 역동성을 바탕으로 포효하며 웅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개발도상국에서 보았기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 체육에서도 개발도상국 형을 벗어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유망 메달 종목이던 태권도, 유도의 격투기 종목에서 수영, 펜싱, 체조 등 선진국 형으로 전환하는 모습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우리 시대의 영웅이 탄생되고 있었다. 사실 메달과 관계없이 몇 초간, 몇 분간의 연출을 위해 4년을 준비해 온 선수 개인 개인의 이야기는 모두가 감동적이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감독의 모습도 기억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 선수의 기량을 읽어 내고 발굴하는 것은 감독이다. 개인의 능력을 조직의 능력으로 승화시키는 조직 관리는 감독의 역량과 감각에 의존한다. 선수층의 나이를 고려하려 한 세대 교체, 경기의 흐름을 읽어 내고 적시에 단행해야 하는 선수 교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내는 기술 교체의 과정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 감독은 선수와 호흡을 맞추면서 이러한 변화가 게임에 녹아들도록 선수들과 같이 땀을 흘리는 것이다.일본의 전국시대 영웅을 다룬 대망(大望)의 책에서 울지 않는 새를 다루는 3가지의 리더십 유형이 제시되어 있다. 오다 노부가나와 같이 울지 않는 새는 필요없으니 죽여 버리는 리더가 있다(그 새의 노래는 영원히 듣지 못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이 때리거나 달래서라도 억지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리더가 있다(노래가 아니라 비명일 것이다). 도쿠가와 히데요시와 같이 노래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리더가 있다(서로가 피곤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 게임을 보면서 감독의 역할과 관련하여 먼저 노래를 부르는 리더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서로가 즐거울 수 있는 리더다. 특히 선수 출신 감독을 보면서 변혁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란 조직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고, 그러한 비전이 새로운 현실이 되도록 적절한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조직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리더십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며 지속적 학습을 지원한다. 변혁적 리더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극복하고 현상에 대한 각성을 확고하게 표명하여 부하들에게 자긍심과 신념을 심어주는 카리스마적 리더십도 공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림픽의 감독들이 한 역할을 보면 뒤에 서서 윽박지르고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하고 격려하고 자극적 요소를 발굴하여 선수를 촉발시키는 것이다. 특히 선배 선수가 감독을 하는 경우 이러한 변혁적 리더십이 더 돋보였다. 홍명보 감독이 병역 문제로 힘들어 하던 박주영 선수를 끝까지 지켜내고 결국 한일전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도록 한 것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리더 모형을 제시한다. 이제 12월 19일의 대선까지 100여일을 남겨놓고 있다. 곧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정해지고 본격적인 대선 경주가 시작될 것이다. 좋은 대통령을 뽑기보다는 흠집내기 식 전략과 전술이 지배될 것이 우려된다. 국민소득 3만달러로 진입하는 전환기에서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올림픽의 감독들이 보여준 변혁적 리더십이 보이기를 기대한다. 많이 알기보다는 많이 듣는 지도자, 권력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조정력으로 협력을 유도하는 지도자, 그리면서도 위기관리 능력을 보유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식민지 체제에서 신음하고 있는 조선을 보면서 매우 낙관적인 예언을 하여 주었다.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마음엔 두려움이 없고/---/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지금의 국제 정세에서 그러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오는 것 같다. 그 기회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을 기대하여 본다.

2012-08-19 이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