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정보화사회와 윤리의식

[경인일보=]며칠 전 상냥한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손님의 자동차보험이 다음 달에 만기가 되오니 갱신하여야 합니다. 저희 보험회사를 이용하시면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하겠습니다"라고 하여 깜짝 놀랐다. 처음엔 보험만기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터에 나의 보험만기일을 미리 챙겨서 갱신할 것을 안내해주니 '이렇게 고마운 일이 있나'라고 느꼈으나 곧 '이 사람들이 어떻게 남의 자동차보험 만기일을 알고 있지'라는 생각에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최근에 고객 3천만명을 관리하는 농협전산망 마비와 현대캐피탈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 일련의 사고로 많은 국민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현대캐피탈 해킹사건은 범인들이 단돈 2천만원에 전문 해커를 고용해 고객정보를 빼내어 이를 범죄에 악용하기 위해 시도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피해액은 11조원에 이르고 집단소송 등 참가자만 20여만명, 청구금액은 2천여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IT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정보화 사회는 개인이나 집단간 거래에서 많은 편리와 혜택을 가져다 주었고, 경제성장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그 역기능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비단 인터넷 해킹문제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 미니 홈페이지, 이메일, 휴대전화, 트위터 등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 대한 악성루머를 퍼뜨리거나 공포감을 주는 '사이버스토킹' 범죄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러하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범행을 하는 당사자들 대부분이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큰 죄의식 없이 행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피해사례는 다양한 형태로 보고되고 있는데, 실례로 청소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한 후 온라인 게임 회원으로 가입시켜 부당하게 이용요금을 편취한 사례도 있고, 독신 여성이나 고급 승용차 소유자의 주소를 알아내어 강도 대상으로 삼은 사례도 있었으며, 원하지 않는 광고성 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내 극심한 불쾌감과 시간낭비를 초래하는 사례는 거의 일상사가 되었다. 한편, 현재까지는 사이버세상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그 폐해를 정확히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객관적 규제방안이 그 뒤를 힘겹게 쫓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문득 2년 전 어느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재임 당시 실행해 보았던 '교통질서 확립운동'이 생각난다. 교통사고율 전국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필자가 시도했던 것은 더욱 엄격한 법의 적용이 아니라 지역시민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병행한 교육과 계도였다. 다행히 그간의 형식적이고 단발적인 단속의 강화와 계도에 식상했던 시민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 저변에서부터 '예향의 고을에서 교통사고율 전국 꼴찌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라는 분위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한 자각의식은 최하위였던 사고발생률을 중상위권으로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어차피 미래의 발전 속도 특히 사이버 세계의 놀라운 성장속도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위의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에서 보듯이 사이버 세계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일방적인 통제의 강화보다는 인간 자체의 귀한 내면적 속성 개발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리적 행동으로 인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 정신세계의 건전한 육성이 미래의 건강한 정보사회를 건설하는데 필수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과거 우리가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사라져가는 가치관-예를 들어 가족간의 깊은 유대감, 친구들간의 지속적인 우정, 인간에 대한 긍정적 믿음, 직장에서의 소속감과 안정감, 소유와 분배에 대한 전통적 윤리의식,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 권위에 대한 자발적 순종, 공동체간의 협동 등의 회복이라 생각한다. 작년 말 국내 유수의 기업체 및 민간단체 대표들이 '사단법인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를 발족시켜 기업체와 각 민간단체들이 스스로 개인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 보호하고, 선진정보사회가 지향하는 정보안심사회의 구현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이러한 정부와 기업체 및 여러 사회단체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관심 제고와 구체적인 실천의지로 국민의 정보인권이 확보되고, 정보안심사회가 구현되어 국민 개개인이 안심하고 첨단 현대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IT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가정과 학교 및 사회교육을 통한 인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2011-06-05 박영렬

일본, '상실의 시대' 넘어 '사회적 공황'으로

[경인일보=]최악의 사태를 맞은 일본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 동북지방에서 관동지방에 걸친 대재앙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수만 명에 달하고,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피난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들도 무려 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파악하는 작업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전후 최악의 사태다. 게다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중대 사고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 노출 및 전력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일본이 '국책'으로서 추진해온 원자력 인프라 및 원자력 발전 행정에도 지대한 타격이 가해졌다.일본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인적, 물질적 피해 뿐 아니라 향후 일본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미칠 영향 역시 매우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물자 공급 위기에 직면한 일본 이미 일본 대지진 이전부터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러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현상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를 습격한 홍수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전 세계 곡물 생산 역시 큰 폭으로 줄고 있으며, 나아가 중국과 인도 등과 같은 신흥국에서는 석유와 곡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맞물려 전 세계 원유 및 곡물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고, 내려갈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악조건하에서 일본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지진을 맞게 되었는데, 참사 이후 피해지역에 석유와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지는 물론 동북 및 관동 지역 전체에서 식량을 비롯한 물자 공급 전반의 위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없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식량 등 물자 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생활 자체에 대한 불안감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상실의 시대' 넘어 '사회적 공황'으로이와 같은 일본 국민들의 심각한 불안감은 우리 언론에서 소개되고 있는 모습과 달리, 휘발유·등유·쌀 같은 기본 물자에 대한 경쟁적 사재기 현상을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피해지역 이외 국민들에게는 사재기 자제를, 유통업자들에게는 석유제품의 시장 공급을 공식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지진 피해지역에 있는 일부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냉정함' 이면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일본 국민들의 '서두름'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피해지역과 인근지역의 물자부족 패닉현상은 일본사회 전체에 장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이나 석유제품 품귀 현상으로 불안해 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그동안 일본사회는 석유와 전기에 의존하는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생활의 근간이랄 수 있는 석유는 100% 외국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식량 역시 60%를 외국에 의존해왔다. 부유한 나라로 소문이 나 있는 일본의 에너지 및 식량에 대한 취약함이 이번 대지진에 의해 완전히 노출됐다. 이른바 'Japan as Number One'으로 불리던 1980년대 말까지 일본사회에 형성되어 있던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은 그 후 약 2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오랜 불황에 의해 많이 상실되어 왔다. 이런 와중에 닥쳐온 대지진 참사는 일본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를 안겨주며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시키고 있다. 지금 일본은 이른바 '사회적 공황(Social Panic)'의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사회적 공황, 극우주의를 낳을 수 있어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도래된, '잃어버린 세월'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불황 하에서 일본 국민들은 자신감을 크게 상실하였으며, 이를 해결해보기 위해 단행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경제 회복은커녕 양극화 현상이 구조화된 이른바 '격차사회'를 도래시켰다. 이는 전후 일본 국민들이 자랑으로 삼던 '모든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1억 총 중류' 인식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 '상실의 시대'를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일본의 사회심리적 상황이 고이즈미, 아베와 같이 '네오콘(neo-conservatives)'으로 불리는 극단적 극우주의자들의 전면 대두를 초래하였다.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사회는 이미 만연되어 있던 상실감이 깊어져 이른바 '사회적 공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상황이 자칫 이전보다 더욱 극단적이고 강한 극우주의자들을 불러내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1-05-29 양준호

집 밥의 고마움에 대하여

[경인일보=]우리 집은 외식하는 횟수로만 치자면 대한민국 하위 10%에 속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웬만하면 집안 식구들이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는 집에서 먹는다. 손님이 방문하면 당연히 집에서 대접한다. 밖에 나가 대접하는 것 보다 정성 담긴 집 밥이 낫다는 판단이다. 10대 종손인 나는 가족 모임도 집에서 하길 좋아한다. '와서 반갑고 가서 더 반갑다'는 옛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 년이면 몇 차례 오랜 세월을 그러고 살았다. 게다가 회의 등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이면 도시락이 당근이다. 심지어 각각 다섯 살 터울의 아이 셋을 키우면서 예외 없이 중고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저녁을 같이 먹을 행복한 권리가 강요된 상급학교 진학보다 중요하다는 나의 감언이설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다음 날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단비야 어제 저녁 잘 먹었니?" 사정이 이러하니 결혼 생활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김치고 밑반찬이고 조리된 식품을 사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된장, 고추장, 간장에 식초까지 직접 담가 먹는다. 내 눈에 집 사람 손은 만지면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꾼다는 미다스(Midas) 왕의 손처럼 만지면 모든 것이 맛난 음식이 되는 반찬 손이다. 아이 셋에 같이 공부까지 한 아내를 착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 혹사시키는 사람이 뭐 잘났다고 용감하게 떠들어 대냐고 타박을 넘어 협박을 받을 수준이다. 그러나 나도 아주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외식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집 밥이 밥집 밥보다 더 맛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그리고 밥을 해대는 당사자인 아내도 꼭 같은 소리를 한다. "라면을 먹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이 낫지" 라고 말이다.그러나 집 밥이 밥집의 밥을 앞서는 것은 아내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의 문제만은 아니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인데 집 밥을 식구들이 둘러 앉아 같이 먹는 것은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다.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먹는 거다. 밥이 밥이 아니라 가족 해체를 막는 사랑의 응고제인 것이다. 방과 후 학원 가는 길에 걸어가며 홀로 먹는 햄버거나 피자 '쪼가리'를 어찌 둘러앉아 젓가락, 숟가락 부딪혀 가며 먹는 조촐한 된장찌개 저녁 밥상과 비교할 건가.집 밥의 고마움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집안 식구들이 도와가며 같이 만드는 음식 만들기는 즐거움이고 수업료 받지 않는 예술 교육이다. 손끝에서 시작하여 혀끝에서 마감하는 미각의 예술은 도제식 수업과 같이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다. 요리책에 나온 '몇 테이블 스푼을 몇 분간 어쩌고…'를 보고 만든 신혼의 식사가 사랑의 감칠맛만 뺀다면 수 십 년 경력 주부 구단의 밥상과 비교 불가능한 이유다.나의 집 밥 찬양은 더 나아가 거창한 이념에까지 다다른다. 인류사에 시장경제 체제가 등장하자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달라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사회속의 한 개인으로 해체되었다. 내 보기에 한국은 이른바 직주분리(職住分離)를 통한 먹을거리의 시장화가 가족해체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전범(典範)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집에서 직접 내 손으로 밥을 해먹는 것은 (편리하지만 좀 감시가 느슨해지면 나를 파괴하려는) 시장의 압제로부터 나를 지키는 즐겁고 또한 준엄한 저항의 몸짓인 것이다.욕 먹을 거리가 한 둘이 아닌 글임을 잘 안다. 주부가 무슨 음식 노예냐, 누구는 같이 밥 먹기 싫어 그러느냐, 먹고 살려니 그렇지, 그렇게 고상한 당신은 뭘 하느냐, 밥 집하는 사람 다 굶겨 죽이려는거냐…등등 끝이 없다. 나의 답은 이렇다. 양 쪽 모두 이유야 대려면 끝이 없지요. 제가 해보니 좋더라구요. 실은 저도 가끔씩은 외식합니다. 더 이상 외식하지 않기 위해서요. 밥집 밥 먹어보면 집 밥 좋은 것을 알게 되니까요.

2011-05-22 강명구

흡연 폐해와 금연 운동

[경인일보=]한때 금연하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그만큼 담배 끊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동시에, 금연자를 독종으로 여겨 은연중에 흡연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을 의지박약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특히 흡연으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러한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흡연문제는 모든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현안이다. 우리나라도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삽입한 지 꽤 오래되었으며, 공공건물을 비롯해 버스정류장 등 많은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그 범위를 계속 확대해 가고 있다. 그 결과, 흡연율이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OECD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10년 12월 조사한 결과 발표에 의하면, 만 19세 이상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39.6%로 1년 전 조사결과 43.1%보다 6.5%p 감소하였으나 그 수치는 여전히 OECD 평균의 약 2배나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세 이하 청소년 흡연율이 20%를 넘어 중고생 5명 중 1명이 담배를 피우는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살펴보면,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암, 심장마비, 뇌졸중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간접흡연에 의해 위해를 가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흡연이 유발하는 질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의료비 부담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전체 암 사망자의 30%, 폐암 사망자의 85%가 흡연에 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흡연 때문에 세계적으로 매년 500여 만 명이, 우리나라는 매년 5만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한다. 담배에는 청산가스와 비소 등 62종의 발암물질과 4천여종의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담배 한 개비가 생명을 약 10분 단축시키며, 하루에 한 갑씩 피우게 되면 1년에 13.9%의 수명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흡연은 WHO의 국제질병분류기호에서도 이미 질병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세계적으로 흡연율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이 비교적 높으며 선진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흡연하는 정도로 낮아졌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성인 흡연율이 1966년 42.4%에서 2008년 20.6%로 크게 감소했고, 흡연율을 더 줄이기 위해 FDA가 2012년 10월부터 좀 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추진한다고 한다. 담뱃갑과 담배광고 등에 흡연의 해로움을 일깨우는 경고 문구와 함께 관에 안치된 시신, 간접흡연 때문에 우는 아기, 흡연으로 썩어 들어간 치아 등 끔찍한 경고 그림을 삽입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담배는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매우 강하여 좀처럼 끊기 어렵다. 많은 흡연자들의 새해 목표에는 금연이 늘 1순위이다. 그러나 금연 목표를 굳게 세우고 열심히 실천하다가도 얼마 못가 포기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자주 본다. 이처럼 흡연이 해로운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끊지 못하는 이유는 강한 중독성 이외에 개인의 성격과 주변 환경 등의 영향도 크다. 이것이 금연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이다. 이제는 금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2009년부터 금연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회적인 금연운동 확산에도 적극 참여할 생각이다.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그동안 담뱃값 인상, 금연지역 확대, 지역보건소를 활용한 금연지원 활동 등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 성과는 낮은 편이다. 특히 정부가 강력한 금연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것을 담뱃세 때문이라고 백안시하는 국민들도 있다.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또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도 이제 금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금연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매너라는 사실을 잘 새겼으면 좋겠다.

2011-05-15 이기우

진실의 승리

[경인일보=]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다. 신체 각 부위에 중요치 않은 기관이나 장기가 없듯이 모든 직업은 사회에서 나름의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직업에는 통념상 약간의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필자의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로 '아빠, 검사는 벌만 주는 나쁜 직업이고, 변호사는 좋은 직업이야?'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한 기억이 난다. 이제 공직을 떠나 가끔 과거 처리했던 사건들을 회상해보곤 하는데 만약 딸이(지금은 대학졸업반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아니, 검사도 벌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도 많이 풀어준단다'라고 대답하면서 필자의 기억에 떠오르는 이 사건을 도란도란 이야기해주고 싶다.1980년대 초 어느 날 평온하던 서울 강동구 하일동 C씨 마을에 소장이 날아들었다. 원고측은 과거 C씨 마을 일대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부자 A씨의 상속인들이었고, 피고측은 1958년 A씨로부터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살아온 C씨 집성촌 사람들이었다. 원고측은 A씨가 1957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피고측이 1958년에 A씨와 작성했다는 매매계약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하면서 마을에서 퇴거하라고 주장하였다. 수십 년간 평온하게 살아온 피고측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원고측은 A씨의 맏사위를 증언대에 세워 1957년에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는 증언을 얻어냈다. 피고측은 경찰에 맏사위를 위증으로 고소하였고 사건은 단순한 민사사건에서 형사사건으로 발전하였다.피고측은 A씨가 1959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했으나, 실제로 1957년 사망 후 2년이 지나 사망신고를 하였다는 원고측 주장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당시에는 출생신고도 2~3년 뒤늦게 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원고측 주장을 허위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원칙에 따라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위증사건은 필자에게 배당되었다. 기록을 검토한 결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 전체가 집단으로 계약서를 위조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마을 사람들을 1차로 조사한 필자는 그들의 얼굴표정에서 너무나 억울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사를 하면 할수록 사건은 더욱더 미궁에 빠져들었다. 1950년대에는 별로 비싸지 않은 저렴한 땅이었지만 이제는 땅값이 오를 대로 오른 수십만 평의 땅을 찾으려는 원고측과 수십 년간의 생활터전을 하루 아침에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게 될 운명에 처한 피고측은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나날이 쌓여가는 사건서류 속에서 이 사건에만 매달릴 수 없는 필자의 입장도 그리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무슨 뾰족한 단서가 없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평소 답답할 때 찾던 하남시 고향 선산을 방문하였다. 그곳에 세워진 생몰연대가 기재된 비석을 보는 순간 서울부자였던 A씨도 그 묘소 앞에 비석과 같은 기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곧 맏사위를 소환하여 산소의 위치를 묻자 망우리 공동묘지에 모셨는데 비석을 세웠는지 확실한 기억이 없고 산소의 위치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졌다. 설사 망우리에 함께 간다고 한들 원고측에서 계속 그 위치를 모른다고 고집한다면 수많은 산소 중에서 어떻게 A씨의 묘소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고민하던 중 그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를 관리하던 곳이 동대문구청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긴장 속에 그곳에 보관된 1957년부터 1959년까지의 관리부를 추적한 결과, A씨는 1959년도에 매장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제시된 문서 앞에 넋을 잃은 듯 잠시 허공을 쳐다보다가 두 손 모아 용서를 빌던 맏사위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원고측은 관련 민사소송을 모두 취하하면서 마을사람들과 합의하였다.어떤 사건이나 진실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그 때 가장 필요한 덕목중 하나가 '성의'를 다하는 자세일 것이다. 너무나 고마워하던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추억할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던 훈훈한 사건이었다. 오늘도 야근하면서 진실을 찾기 위해 쌓여있는 미제사건과 씨름하고 있을 많은 후배검사들이 생각나는 하루다.

2011-05-08 박영렬

고용문제 해법으로서의 '덴마크 모델'

[경인일보=]'고용대란'에 허덕이는 우리사회 지금 우리사회는 이른바 '취업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매년 높아만 가고 있으며, 현 정부에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뾰족한 정책수단도 없어 보인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이제 10%대에 근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일본(7.7%)과 독일(8.6%)보다 훨씬 높다. 심각한 문제다. 유럽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그런데 유럽 국가 일부에서는 저성장 기조하에서도 취업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유럽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ALMP:Active Labor Market Policy)' 때문으로 본다.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경제성장 그 자체가 고용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용에 관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낮은 경제성장률하에서도 취업률을 높이고 있는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고용정책과 '적극적노동시장정책' 간의 적절한 조합이야말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가장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위원회가 발표한 '유럽의 고용'이라는 보고서는 낮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EU의 취업자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원인을 유럽고용전략에 의거한 고용정책에 의해 실업률이 낮아진 것과 국가가 주관하는 모든 취업대상자에 대한 생애학습, 기능훈련에 대한 투자, 개인 차원의 경력(career) 지도 등과 같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사람들의 노동시장에의 복귀에 크게 기여한 것에서 찾고 있다.해법으로서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또 이 보고서에 따르면, EU 가맹국 중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 현상으로서 첫째, 실업기간이 짧게 나타나고 있는 점, 둘째, 기업의 구인이 신속하게 메워지고 있는 점, 셋째, 구직자들의 보다 구체적인 목표에 특화되어 있는 훈련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 넷째, 시장 상황에 맞는 급여가 지급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의 네 가지 결과적 양상에 의해, 결국 이들 국가에서는 파트타임 노동 및 기한부 고용계약 등과 같은 매우 유연한 고용형태 역시 늘어나고 있다. 즉 고용의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이것이 '적극적노동시장정책'과 같은 사회정책에 의해 그 '안정성'이 동시에 확보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동시에 지향하는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전략이다. 우리 대기업들의 경우 고용보호 완화, 즉 고용의 유연성만 강조하면서 그 안정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사회를 '취업대란'으로 치닫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덴마크 모델'의 교훈 '적극적노동시장정책'에 의거한 '유연안정성'전략을 가장 충실히 시행하고 있는 덴마크의 경우, 유럽 국가 중에서도 그 경제와 고용 사정이 매우 양호하다. 해서 EU에서는 이를 '덴마크모델'로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총과 같은 친대기업적 기구가 덴마크 사례를 보면서 그 고용 유연성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러나 덴마크의 고용 유연성은 '황금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1)유연한 노동시장, 2)실업자에 대한 실업보험제도, 3)실업자의 기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 직업훈련을 시행하는 '적극적노동시장정책'과 같은 세 가지 요소의 밀접한 상호작용에 의해 확보되는 고용의 안정성의 기초 위에서만 발휘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덴마크 모델'이 우리사회에 고용문제와 관련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식 고용 유연성 추구방식이 '일자리'라고 하는 현 시점 최대의 국가 과제와 극히 대립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우리사회에 적합한 형태로 수정해야 하며, 또 그 모델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역시 일상화되어야겠지만 말이다.

2011-05-01 양준호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경인일보=]왜 그리 생각의 오지랖이 넓으냐는 아내의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회현상에 예민한 더듬이를 들이대는 것은 굳이 신문 칼럼을 맡아서가 아니다. 인간과 사회를 공부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훈련받은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교수라고 일종의 지적 의무감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즈음은 머릿속이 벅찰 정도로 의미심장한 획기적 사건들이 즐비하여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이러다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예후나 전조를 느낀다는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접하니 그런 느낌이 더하다.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가장 큰 모순의 하나는 영향력이 작은 일상적 일들은 예측과 대비가 가능한데 정작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건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아 예측과 대비가 어렵고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나마 부분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류사를 바꾼 프랑스, 러시아, 중국혁명의 여파부터 시작하여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일본의 원전사고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대지진이나 쓰나미의 예에서 보듯이 자연과학도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재해보다는 인간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재해의 위험성이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라는 학자는 이를 위험사회의 도래라는 개념으로 집약하였다. 위험사회의 도래가 진정 걱정되는 소이는 알면서도 당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떻게 이런 대재앙의 전조를 대략은 인지하면서도 대비하지 못하고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커다란 연유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달나라로 보내고 거대한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체세포 복제로 생명체의 창조주가 될 수 있고 거시경제 이론은 금융위기의 파국을 미리 막을 수 있고…. (그 발상이 매우 유치한 수준이기는 해도) 이런 맹신의 서열상 가장 끄트머리에는 환경을 감시하는 로봇 물고기가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탐욕과 이를 이용하는 오도된 자기 확신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 혹은 보다 편안한 삶을 위해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를 되뇌면서 자연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간다는 점이다. 당연히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경고음이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이 때쯤이면 위장된 구세주가 나타난다. 투자 대비 최소 비용의 경제법칙을 들이대면서, 또는 대안이 없다면서, 그리고 또한 위험의 확률을 몇 십 만분의 일로 표시하면서…. 마지막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정치적 반대자(우리나라에서 일부 한심한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를 흔히 좌파라고 딱지 붙인다)로 낙인찍으면서 자신은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할 소리는 하는 용기 있는 선의의 지도자로 확신한다. 인간 능력의 무궁한 발전을 무시할 수도 없고, 또한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편안한 삶과 이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능력에 대한 과신은 의심 못지않게 무지한 것이며, 아무리 지도자들이 나름대로의 진정성으로 위험사회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해도 제 홀로 바르고 제 홀로 옳은 것은 아집이요 독선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면서 수 만 가지 정치 제도적 실험을 해보았는데 문명이 발달할수록 민주주의 쪽으로 기우는 연유가 무엇이겠는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시행착오를 겪고 배운 인류의 DNA에 진화적으로 각인되어가고 있는 학습효과의 결과일 것이다. 엔진의 성능이 좋아지면 질수록 브레이크의 성능도 높아져야 한다. 위험사회의 도래에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이유이다. 이런 의미에서 KAIST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아마도 가장 낮은 수준의 민주적 통제 필요성에 대한 실험일게다. 4대강 죽이기나 원전사고에 비하면 말이다.

2011-04-24 강명구

음주문화

[경인일보=]박목월 시인이 '나그네'에서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고 노래 불렀듯이, 술은 멋과 풍류의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술 인심은 참 좋은 편이다. 옛날 선비들은 술을 서로 권하면서 풍류를 즐겼고, 서민들은 농터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힘을 북돋았다. 지금도 우리의 희로애락 일상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며, 술에 관한한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정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건강에 유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잔을 서로 권하는 것을 주도(酒道)처럼 여기는 우리의 독특한 음주문화와 술이 갖고 있는 중독성으로 인해 술 소비량과 그로 인한 폐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세청이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전에 비해 맥주, 탁주, 와인, 위스키 등의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소주와 청주만 약간 감소했다고 한다. 한때 자가용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음주운전을 피하고 건강도 생각해서 술을 절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보니 삶이 더 팍팍해져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많아지고, 또 저가 대리운전 업체가 늘어난 것도 술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한 요인으로 본다.술을 마시면 대부분의 경우 평상심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즐거운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괴로운 사람에게는 잠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들로 혼자 또는 여럿이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술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과음을 하게 되거나 타의에 의해 억지로 마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술을 잘 먹어야 호방해 보이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며 비즈니스도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술자리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요즘은 폭탄주와 원샷을 비롯한 희한한 형식의 음주방법도 많아져 더욱 그렇다.특히 대학생의 음주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매년 대학가에는 봄철이 되면 술로 인한 각종 사고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모임, MT 또는 OT, 체육대회 등 적지 않은 행사들이 3월에서 5월 사이에 몰려 있고, 서로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도 술자리를 자주 갖다 보니 대학생의 술 소비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신의 주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입생에게 사발식이라는 통과의례를 만들어 음주를 강요하며 과음과 폭음을 조장하여 목숨을 잃는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 생활에서 잘못 배운 음주 행태와 습관은 이후 사회생활로도 연결되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대학의 음주문화 개선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현안인 것이다.매년 되풀이 되는 대학생의 음주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그리고 본인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2월 16일 보건복지부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음주폐해 예방활동 권고안' 실천 등 '알코올 클린 캠퍼스' 만들기를 위한 공동노력을 실천해 가기로 하였다. 대학생활에서 습관적인 음주를 절제하여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음주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우리의 음주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술은 담배와 달리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애용할 수밖에 없는 기호식품이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서면 술도 담배와 같이 우리에게 많은 폐해를 안겨준다. 그러므로 술이 우리의 건강과 사회생활에 윤활유같은 약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음주습관과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후손들이 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는 길이며 미래사회도 더욱 환하게 밝히는 길이다.

2011-04-17 경인일보

'시민금융'의 시대

[경인일보=]지역사회의 금융소외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을 '공간'과 '대상'으로 하는 단체의 자금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어렵다. 이는 지역성을 갖는 주체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충분한 대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소외'가 현저한 우리 지역금융시장의 현실을 의미한다. 이렇듯 금융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 지역 주체들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인재, 기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지역의 고용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 자금 제약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시민금융'의 등장이러한 우리 지역사회의 양상과 맥을 같이 하는 일본에서는 최근 이와 같은 지역 금융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이 대지진 이전부터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중 '시민금융'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금융'이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환경, 복지, 교육, 경제, 개발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러한 단체의 관계자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소규모 비영리 은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목적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각자 출자한 돈으로 소규모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일반 사적 금융기관과는 달리 '시민금융'은 경기 변동과는 무관한 안정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불황 국면에서 그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사업에 대해 무담보 저리 대출을 시행하여 그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불황으로 인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영리회사의 투자의 경기변동성을 상쇄시키고 있다. 해서 지역사회 전체의 거시경제 안정성이 확보되어 실업과 기업도산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시민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기관이 무려 10개나 되며, 주로 사회적 문제와 관련한 실천을 선호하는 지식인들의 주도에 의해 설립되어 퇴직 은행원과 같은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들이 대출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에 대한 긍정적 작용 이와 같은 '시민금융'의 움직임으로 인해, 일반 지역밀착형 금융기관도 지역사회의 문제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우리의 신협과 유사한 일본 각지의 노동금고는 금융당국의 규제로 인해 지금껏 수익성이 있는 사업에 대해서만 대출을 한정하는 등, 지역사회의 금융소외를 초래한 일 원인으로 작용해왔으나, '시민금융'의 영향을 받아 금융의 공공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최근 경쟁적으로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다. 킨키 노동금고는 교토노동자복지협의회의 예금 1천만엔을 보증금으로 하여, 교토의 사회적기업 및 NGO를 대상으로 최대 5천만엔을 사업 착수자금으로 융자하고 있으며, 융자 대상 기관의 공익성 심사는 중간지원조직인 교토 NGO센터가 담당하고 있다. 이는 금융기관과 NGO, 그리고 노동자단체가 컨소시엄을 맺어 커뮤니티 금융의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례이다. 일본 교토가 아시아 사회적기업의 메카로 불리는 것이 이 때문이다. '금융의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각지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금융가들에 의해 커뮤니티 금융시스템이 창안되고 있다. 이들로부터 시민섹터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뜨거운 가슴과 '금융' 그 자체가 갖는 근본적 역할을 추려내는 차가운 머리를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사업은 금융의 공공성과 결합되어 추진될 때 그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 이는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사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시민금융'이 뿌리내려야만 한다. 우리 정부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경직적 자금 지원, 일반 금융기관의 수익성원리주의, 심각한 금융 양극화 현상을 고려하면 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이제 '차가운 머리'를 발휘해야 할 때다.

2011-04-03 양준호

일본 대재앙과 생각들

[경인일보=]나는 일본 언어에 대체로 무지하고, 가깝게 견해를 나누는 일본인 친구도 별로 없고, 일본의 사상가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일본은 평생 고작 네댓 차례 방문이 전부인 한국의 대학교수다. 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일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느낌은 한 일 년 반 동안 타본 꽤 오래된 일본 중고자동차의 성능과 내구성이 참으로 믿을만하다는 평가로부터 유래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도 대체로 지식인 그룹에 속할 수 있다는 넉넉한 기준치가 적용된다면, 나의 일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아마 한국 지식인 그룹의 중위권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긴 후한 점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나아가 인종적으로 멀면 멀었지 결코 가까울 수 없는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과 어느 정도 지식에 비하면 일본에 대한 이런 대체적 무관심과 무지는 참으로 놀랄만하고 동시에 창피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 무관심과 어느 정도의 무지가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번 일본의 대참사와 같이 평소에 잘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일어나기만 하면 한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격변 상황에서는 기존의 지식이 오히려 문제의 정확한 해석과 해결 방안 찾기에 방해가 되는 수가 많다.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성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로 시장 만능주의 외골수 경제학자들을 비판적으로 칭하는데 사용되는 이른바 '훈련받은 무능력'(trained incapacity) 이라든가 혹은 '합리적인 바보'(rational fool)는 지역 전문가도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일본 대재앙 관련 한국 언론의 보도 중 편견의 진수는 '일본 열도 침몰론'이었다. 주로 섣부른 국수주의적 견해를 반영한 이런 방향 설정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다분히 선정적이다. 아주 나쁘게 해석하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실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하고 아주 좋게 해석해도 동정적 편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본 포기하지마!'라는 헤드라인을 대문짝만하게 달았다는 어느 영국 신문과 너무 대조적이다. 이런 부류의 보도 주체들이 평소에는 다분히 친일본적인 역사 해석과 보도 경향성을 은근히 또는 대놓고 견지해 왔다는 점에 있어서 자못 이채롭다.'일본 열도 침몰론'에 대비되는 해석의 전형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으로 총칭할 수 있는 또다른 여론의 희망적 흐름이다. 핵심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대참사 극복을 적극적으로 돕다보면 이런 협력이 단초가 되어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있어 화해 무드가 조성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이다. 그 결과 과거 역사의 아픈 상처를 딛고 유럽연합을 넘어서는 세계에서 최고로 활력이 넘치는 지역공동체가 가능하다는 야무지고 당찬 기대까지 숨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숭고한 낙관적 기대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으로부터 발원하여 한-일 양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에 점차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독도 관련 일본 역사 교과서 대응 방안이나 일본 산업에 종속적인 한국 산업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아직은 아득함을 지우기 힘들다.일본을 잘 모르는 내가 그나마 제 나름 그럴듯하다고 판단하는 두 가지 사실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가수 김장훈의 판단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이다. 독도를 생각하면 마음은 굴뚝같지만 쉽게 성금모금에 동참하기 힘들다는 가수 김장훈과 단순한 생각에 덜커덩 10만원 성금을 낸 나와 둘 중 누가 더 현명한가? 명색이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호들갑을 떨며 생방송한 일본돕기 모금 음악회를 보니 그런 의문이 더 들었다. 두 번째는 일본의 관료제는 참으로 문제라는 것이다. 매뉴얼이 문제가 아니라 답답함과 보신, 감추기가 문제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문제를 다루는 일본 관료제를 보면 왜 관료사회의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인지 절감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를 자문해보니 모골이 송연하다.

2011-03-27 강명구

달라진 입학식과 졸업식

[경인일보=]새봄을 맞아 새내기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캠퍼스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인천재능대학교 신입생들의 입학식에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참석하여 축사를 통해 "이제는 학력이 아닌 실력이 필요하다"며 "여러분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이라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교육부 수장인 장관이 전문대학의 입학식에 참석한 경우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2월과 3월은 매우 바쁜 계절이다. 특히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동안 대학들은 2월에는 졸업식을 하고 3월 개강과 더불어 입학식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대학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풍경이 세태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다. 판에 빅힌 의례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이색적인 행사로 진행하며 시기와 장소도 바꾸고 있다. 농구장이나 격납고 또는 대형체육관 등 예상을 깨는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축하공연은 물론 총장이 청바지를 입고 젊은이들과 함께 댄스 공연을 하는 등 파격적인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명인사의 특강, 책 선물 등 차분하면서도 뜻 깊은 입학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입학식과 졸업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다투어 개발하거나 동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양상은 더욱 더 다양하고 경쟁적으로 전개될 것 같다. 이는 대학이 시대적 흐름에 보조를 같이 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주변환경이나 현실 등을 생각할 때 한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동안 입학식보다 더 성대하고 화려했던 졸업식은 극심한 취업난 속에 그 열기가 계속 식어가고 있다. 과거처럼 온 가족들이 졸업식에 참석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축하해 주던 모습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식장에는 가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학위증만 챙겨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유명대학의 졸업식도 눈에 띄게 썰렁해지고 있다고 하니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졸업식이 학창시절의 고생이나 낭만이 즐거운 추억으로 마무리되고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받는 자리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매년 연례행사로 치러 온 입학식과 졸업식을 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인천재능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만큼은 모두가 참여하는 의미있는 행사로 구성하여 신입생이나 졸업생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인천재능대학교의 2011학년도 신입생 입학식과 2010학년도 졸업식은 색달랐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충실하게 하여 우리대학을 믿고 입학한 신입생들이 알차고 경쟁력이 있는 직업교육과정을 체계적이고 성실하게 수행하여 졸업식에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취업을 통해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대학생활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자신감과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교수로서 학생을 직접 지도해 본 경험이 풍부한 이주호 장관은 축사에서 현대와 같은 능력중심사회에서는 전문능력과 인성이 조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어떠한 시련과 고난에도 긍정의 변화를 믿고 실천하라고 당부하였다. 이 격려가 신입생들에게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계기는 물론 평생의 지침이 될 것이다. 또한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재학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미래의 꿈' 리스트와 대학생활을 뜻깊게 보내겠다는 내용이 담긴 '사명선언문'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하였다. 지난 졸업식에는 졸업생들에게 우리대학 사진영상미디어과 학생들이 정성들여 만든 앨범을 무료로 나누어주며 새로운 사회생활의 출발을 축하해 주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형식이 아닌 의미있는 행사를 통해 가치와 보람을 함께 할 수 있는 입학식과 졸업식이 될 수 있도록 대학발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2011-03-20 이기우

한국인의 저력

[경인일보=]가끔 이른 새벽 지방에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들어서다보면 동이 트기 전인데도 고속도로는 이미 많은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또 전국을 다니다 보면 지방도 국도 고속국도 할 것 없이 매끈하게 정비된 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있다. 최근 착공한 모습을 본 듯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완성된 건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지난해 동남아의 어느 나라를 간 적이 있다.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공사장비들만 덩그러니 서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늘 밑에서 누워있거나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저 도로가 완성될까 (쓸데없이) 속으로 걱정도 해 보았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특히 성공한 기업인들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호텔들은 각종 조찬모임들로 이른 새벽부터 북적인다. 이런 근면과 성실의 미덕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풍요의 원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전 세계에 인구 5천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인 나라가 7개국(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중국은 인구는 많으나 소득이 부족하고, 캐나다는 소득은 높으나 인구가 모자란다)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천6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는데 이것 또한 세계 7번째 규모이다. 반도체, 자동차, 건설,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제품들은 전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기업 활동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이미 세계강국이 된지 오래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종합 7위를 달성하였다.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면, 높은 교육열, 하면 된다는 투지와 끈기 등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제반 사회를 이끌어 왔던 미덕들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계가 경탄할 만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자라고 있던 문제점들(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첨단 IT 부문과 비 IT 부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구조적 문제, 임금구조의 양극화 등)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요인들을 견지하면서도 환경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차원의 성장이론과 전략이 필요하다.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동반성장'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차원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추진방법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성장을 우선시 하는 무한경쟁 사회에 '상생'이라는 아름다운 씨앗이 뿌려졌다는 데서 희망을 본다. 지금까지는 나라 전체가 양적인 충족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라 생각하고 달려왔다. 이제는 '상생'이라는 충분조건을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작금의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세계 경제의 암울한 소식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부분이 많고 그에 대한 효과적 대처는 일정 부분 시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필자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고,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나를 위해 전적으로 호의적일 수 없다. 물론 그런 점이 때로는 삶을 힘들게도 하지만, 삶을 발전시키고 도전의식을 심어주며 나의 역량을 키우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 것이다. 눈앞의 어려움은 또 다른 축복으로 가는 출입문에 불과하다.우리는 미국·EU와 FTA를 체결한 상태다. EU는 비준절차를 마무리했고, 미국도 금년 상반기 중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FTA 비준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FTA에 관한한 극동아시아 3개국 중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후속조치가 지연되면서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국회에서 신속하게 논의가 이루어져 금년 1조 달러 교역 달성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국민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세계를 감탄케 할 내일을 기대해 본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추위도 자연의 섭리에는 겸손히 순응하듯 하루하루 햇살의 빛깔을 달리하고 있다.

2011-03-13 박영렬

혁신의 원동력으로서의 '똘레랑스'

[경인일보=]▶'똘레랑스'란? 요즘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기업 및 지역사회 경영 등과 같은 다양한 부문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프랑스어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조직이나 공간 내에서 그 구성원 각각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닌텐도와 볼로냐의 공통점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근 이 용어가 민주주의의 개념 일반에 관한 정치학 교과서나 타인의 정치적 의견, 사상, 이념 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설정하는 정치권내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동종 타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탁월한 혁신 퍼포먼스를 내보이는 세계적 우수 기업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곳에서의 생활을 선호하는 세계의 유수 '명품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교토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세계적 명문 기업 닌텐도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콘텐츠 능력의 근원을 '똘레랑스'에서 찾고 있으며, 문화와 예술을 동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이로 인해 경제적 수요를 창출하여 지역사회 전반의 활성화에 크게 성공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역시 그 창조도시의 선순환 메커니즘 근저에 있는 미시적 기초를 바로 '똘레랑스'로 설명하고 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존중되고 또 이를 극대화해낼 수 있는 기업과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이들이 견지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묵살되지 않고 존중받기에, 그 과정에서 이른바 '혁신적 기초'가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의 원천으로서의 '똘레랑스'개성보다는 표준을 선호하고 또 엉뚱하고 독특한 생각과 아이디어보다는 경영자의 경영판단에 일사불란하게 추종하는 조직을 선호해왔던 소니, 마츠시타, 토시바 등 기존의 잘 알려진 일본기업과는 달리, 닌텐도는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기반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게 하고 또 이를 위해 직원들을 회사의 매뉴얼에 속박시키지 않는 이른바 '유목형' 인사관리를 고집하는, 해서 '똘레랑스 기업경영'으로 불리는 혁신경영의 대표 주자였던 것이다. 볼로냐 역시 지방정부의 일괄적인 도시계획 행정을 지양하고 문화예술인들에게 이른바 '창조적 공간'을 제공하여 그곳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이들 간의 활발한 교류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는 매우 새롭고 참신한 경제적 수요를 창출하는 혁신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닌텐도와 볼로냐의 '혁신'은 '똘레랑스'의 기초 위에서 잉태된 것이다. ▶'자기 본질의 분석과 부정'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볼로냐와 같은 창조도시를 조성하고 또 닌텐도와 같은 혁신기업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기업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계열 지향적 사고, 집단 군집형 사고의 속박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이질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기는커녕 학연, 혈연, 지연 등과 같은 인맥을 강조함으로써 동질성과 순응성, 그리고 충성심을 중시하는 토호세력적 '성장연합'이 판을 치는 지역사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기업과 지역사회 역시 닌텐도와 볼로냐와 같은 퍼포먼스를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획일적인 동질 사회 특유의 특징, 즉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타인 부정에 의한 자기 긍정'이라는 자기 본질의 분석과 부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자기 본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장과 사회적 기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추동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인 것이다.

2011-03-06 경인일보

퇴비화 변기

[경인일보=]십여년 전 연구년으로 미국 시애틀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세든 아파트의 첫달 물값을 받아보고 눈을 의심하였다.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었던 정신이 확 깰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그곳의 휘발유 값과 비교해 보았다. 물 세 컵이면 휘발유 한 컵 값이었다. 당시 그곳의 유가가 한국과 비교해 약 3분의1 수준임을 감안하였어도 믿기 힘든 물값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얼추 휘발유 한 컵과 물 아홉 컵의 값이 같은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아마 누구도 물 쓰듯 물을 쓰기 힘들 것이다. 고지서를 받아보고 물론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변기 물탱크에 벽돌을 두 어장 넣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니 바닷가로 직접 흘러 내려가는 정화된 오수가 맑고 깨끗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돗물에 비싼 오염부담금이 포함된 것이다.우리도 수돗물 값을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근대화의 풍광인 수세식 변기가 얼마나 물을 많이 쓰고 또한 얼마나 많이 환경을 오염시키는가를 깨닫자는 말이다. 남한강 상류 산골 강변에 사시는 큰 이모(부)가 잘 아신다. 더 상류에 위치한 제천에 새마을 운동으로 수세식이 소개되면서 떠먹어도 되던 강물이 얼마나 혼탁해졌는지. 물론 충주댐이 완공된 후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졌단다. 팔순이 가까운 이모부는 열렬한 박정희 숭배자로서 자랑스럽게 산업화 세대를 살아내신 분이다. 그러나 당시와 오늘을 비교해 어느 삶이 좋은 것인가 판단이 어렵다고 고백하시며 참으로 물 맑은 하얀 백사장에서 천렵하던 날들이 너무도 그립다고 하신다.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권 주변 시골 비슷한 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화장실에 관한한 그 어느 호사스런 최고급 변기도 부럽지 않은 자연 화장실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도 집안에. 집안에서도 부엌 바로 곁의 따스하고 밝은 곳에. 더욱이나 물도 한 방울 쓰지 않고 냄새도 없이 말이다. 물론 아무리 추워도 얼어 터질 걱정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 하나 더하자. 이 화장실은 내 밥상의 윤기 나는 채소까지 책임져 준다. 그래서 이름하여 퇴비화 변기다. 내 얘기에 그게 정말이냐고 적잖은 사람들이 일부러 보러오기까지 하였다. 궁금하신 분들은 '녹색평론사'에서 번역 출간한 '땅 살리기 똥 살리기'라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그대로 따라서 한 것뿐이다. 그도 아니면 조셉 젠킨스(Joseph Jenkins)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든지 아니면 www.humanurehandbook.com을 방문해보시라.만드는 법과 작동원리는 너무도 간단하다. 흔해 빠진 20ℓ 들이 플라스틱 들통을 육면체 나무 상자에 넣고 들통의 직경에 맞게 나무상자 상단을 오려내고 그 위에 수세식 변기 덮개를 장착한 후 일을 보시라. 그리고 마른 풀이나 짚, 혹은 낙엽 부순 것, 톱밥 등으로 덮어 주시라. 냄새 완벽 제거다. 꽉 차면 마당 한 켠의 퇴비 칸에 비우고 다시 마른 풀 등으로 꼭 꼭 덮어 주시라. 물론 통은 물로 닦아 주시라. 그리고 그냥 기다리시라. 일 년 지나면 냄새도 향기로운 초콜릿 색깔의 짙은 갈색 퇴비가 나온다. 우리 부부는 이것을 갈색 황금이라 부른다. 이걸 텃밭에 덮어 주시라. 모종을 꽂아놓기만 해도 저절로 자란다. 당신의 똥이 당신의 밥이 되는 것이다. 물로 똥을 씻어 내리고 그 물을 다시 정화시킨다고 별 오만가지 과학적 지식을 들이대고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들여가며 생난리를 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춥디 추운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혹한으로 수도가 얼어 화장실 때문에 고생한 경험 기사를 하도 실감나게 읽어 옛 생각에 더하여 최근 내 경험을 소개해 보았다. 물론 조금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은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근대화의 편리함에 너무 익숙하여 이처럼 간단하고 값싸고 환경 친화적인 삶의 지혜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일이다. 곧 우리가 누리는 (혹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리함의 대가를 요구하는 지불 청구서가 배달될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새 발의 피다. 조만간 보시라. '4대강 죽이기'의 대가가 얼마인가를. 개봉박두.

2011-02-27 강명구

지역교육과 대학

[경인일보=]오랫동안 교육부문에 몸담아 왔지만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본다. 교육은 개인의 인생과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어서 대상의 범위가 넓고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경우도 많아 해야 할 일도 많고 탈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교육부문에 종사하는 구성원들은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통해 교육수요자를 만족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지방화시대의 발전에 따라 지역간 교육경쟁도 가열화되고 있다. 이제 지역내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지역교육의 발전을 함께 모색하고 힘을 보태야 할 때다. 따라서 대학도 지역교육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누구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연(緣)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속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위 명문대학일 수록 출세와 성공의 지름길에서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인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확실한 해답을 내기는 어려워도 지금과 같은 교육관과 대처로는 개인이나 국가나 참 쉽지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저출산·고령화사회의 영향으로 학령 인구와 생산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미래의 사회구조, 생활방식, 취업여건 등도 크게 바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과 관련하여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초·중·고교와 대학 등 각급 교육기관의 규모 축소가 10년 이내에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특히 입학자원의 감소, 고용여건의 변화, 저성장 경제구조, 소득수준의 양극화, 교육체제의 다양화 등은 앞으로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과 교육부문 종사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대학은 학생에게 직업적 소양과 능력을 키워주어 원하는 일자리를 갖게 하고 인생에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준 높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이 84%를 상회하다 보니 대학교육을 위한 수학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그리고 입시경쟁의 과열화로 개인의 소질, 적성, 흥미, 능력보다는 대학의 이름과 인기학과만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전공과 취업여건의 불일치로 졸업 후 방황하는 사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학생 개인은 많은 기간과 경제적 소비의 부담을 안아야 하며, 국가와 고용시장은 교육훈련과 인력배치의 불균형으로 인력충원과 활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은 입학정원 충원과 양질의 입학자원 유치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하고 초중등교육부문은 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는데 치중해야 하며 학부모는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초중등교육과 대학이 연결된 공동의 현안과제이며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재능대학은 지금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내어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최고수준의 직업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총장을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다. 고용시장과 사회가 '쓸모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우리 대학의 가치를 신뢰하고 우리의 졸업생을 선호하게 하기 위해 학과개편과 교육내용 및 방법을 바꾸고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송도국제도시에 최첨단 시설의 제2캠퍼스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인천지역의 초중등교육이 발전해야 우리 대학도 우수한 자원을 신입생으로 유치하여 그들에게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역교육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찾고 있으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동참하여 최선을 다해 협조할 생각이다. 인천지역의 대학들이 발전해야 우리 지역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아 자신들이 스스로 인생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또 우리 지역의 초·중·고등학교의 학력과 인성교육이 전국 최고수준으로 발전되어야 지역주민이 공교육에 만족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정보공시제가 시행되어 교육에 관한 각종 정보가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앞선 우리 지역의 교육경쟁력을 확인할 때, 인천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아질 것이다.

2011-02-20 이기우

청송지본 재어성의 (聽訟之本 在於誠意)

[경인일보=]나는 지난해 7월 14일자로 공직을 사퇴하였다. 사법시험 23회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것이 1981년이고, 검사로 임관된 것이 1983년이니 햇수로 따져보면 공직자로 30년, 검사로 28년간 근무한 셈이다. 인생의 젊은 시절 대부분을 검사로서 근무했으니 퇴직을 하면서 느끼는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초임검사 시절 마을 전체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삶의 터전을 잃을 뻔한 사건을 해결한 일, 부장검사 시절 영구미제로 남을 뻔했던 홍콩 살인사건을 해결하여 15년간 간첩으로 오인받았던 유족들의 한을 풀어 준 일, 검사장 시절 지역주민과 함께 교통질서 확립을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한 일등은 검사라는 직책의 중요성과 사명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좋은 경험이었다. 한편, 업무 처리나 처신을 잘못하여 당사자들에게 결례를 범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은 없었는지 걱정도 된다. 무심코 던진 말이 당사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나 당사자 입장에서 수사가 미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모든 것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검사라는 직업은 참 어렵고 외로운 측면이 많다. 타인의 시시비비를 가려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게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쉽지는 않다. 특히 재산범죄의 경우, 수사결과에 따라 엄청난 재산적 이해득실이 걸려있어 양 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직무수행도 어려워진다. 그와 같은 경우 나름대로 소신이 없으면 직무수행이 어려워진다. 언젠가 다산 선생님의 저서 '목민심서'를 읽다가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라는 문장을 접하게 되었다. '송사를 다룸에 있어서 근본은 성의를 다함에 있다'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순간 나는 이 문장이 검사를 비롯한 판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을 정확히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건 기업의 임직원이건 공무원이건 일상생활이나 직무수행시 가장 중요한 덕목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誠意'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송사를 다룸에 있어 '성의'를 다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첫째, 경청하는 자세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벌써 사건의 절반은 해결된 셈이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양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뿐만 아니라 태도, 표정의 변화까지 감지함으로써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배당된 사건을 나의 일처럼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오늘날 남녀평등의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떻든 우리 조상들은 무성의한 태도를 가리켜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과정에 정성이 들어있지 않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셋째, 당사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진술청취와 증거수집 과정을 거쳐 수사가 종결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사건 당사자들과 차 한 잔 나누며 수사과정과 그 결론에 대해 잠시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본다. 모든 사건에 대해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중요사건이나 특히 검사실에서 직접 구속한 사건의 경우, 처리하기 전에 그런 기회를 갖는다면 당사자들도 수사결과에 좀 더 승복하게 될 것이다. 수사는 냉철한 머리로 하되 처분은 따뜻한 마음으로 하는 자세-이것이 다산 선생님이 제시하신 수사관의 진정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나는 기관장으로 부임하는 곳마다 그 지역의 명필에게 위 문장을 부탁하여 검찰청 현관 입간판에 써 넣었다.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줌과 동시에 민원인들에게 우리의 근무태도를 알려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 문구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다산 선생님의 말씀에 따른 자세로 처리한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그 결론에 떳떳했고, 많은 사건 당사자들도 그 처리결과에 승복했으리라는 믿음이다. 재야에 있는 지금 외형상 업무의 역할에는 변화가 생겼으나 주어진 사법시스템 안에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이념 자체는 법조 3륜에게 공통된 과제일 것이다. 법조 3륜의 한 축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여전히 매 사건마다 이러한 '성의'를 다하는 자세가 될 것이다.

2011-02-13 박영렬

사회적기업 정책의 방향성

[경인일보=]작년 6·2지방선거 이후 '사회적기업'이라는 용어가 크게 성행하고 있다. 이는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수준과는 무관하게, 정치인들이 이를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인식하여 그들의 공약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최근 언론을 보면 사회적기업에 관한 내용이 특집으로 소개되는 등, 이전에 비해 그 사회적 인지도는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기업을 무슨 '사회주의적' 기업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황당한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를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의 수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적기업을 고용정책의 수단으로서만 이해할 뿐이지 사회적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주체로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이해와 지원 정책이 동반되지 않은 상황하에서의 사회적기업은 그저 하나의 붐에 불과하지, 정치권에서 희망하고 있는 고용난을 해결하는 주체로서 또 그 본질일 수밖에 없는 사회 변혁을 이끌어 나갈 주체로서 간주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사회적기업은 공공적 가치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어서, 영리기업에 비해 경제적 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책적 관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국의 사회적기업 정책을 보면, 비영리 조직 및 중소기업 지원의 측면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경제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산업정책 또는 상공정책을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경향은 사회적기업을 그저 고용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산업구조 고도화 및 대안적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로서 인식한 것의 귀결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지만, 경제성 또는 수익성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사회적기업을 사업 수익성 또는 투자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용 성과의 관점에서 사회적기업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나, 외국과는 달리 사회적기업을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나 만들어내는 소극적인 주체로 간주하는데 그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이와 같은 현주소와 관련해서, 그 경제성을 보다 유연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기업을 지역사회에 있어서의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또 육성해 나가는 중장기적 전략이다. 사회적기업의 특징은 스스로 사회적 과제를 발견하여 그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이노베이션'에 도전하는 주체라는 점에 있다. '이노베이션'에는 새로운 상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첫 번째 단계'와 그와 같은 새로운 상품을 응용하여 수평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두 번째 단계'가 있다. 정부와 같은 지원 주체는 전자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의 사업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후자의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기업의 지속적인 파트너로 작용할 수 있는 지자체의 관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사회적기업 정책은 사업 지원(자금 및 인재)과 같은 공급 지원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수요 지원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 사회적기업의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으로, 행정기관의 아웃소싱을 통한 사업 수요 창출이 대표적이다. 위탁사업은 사업 수요와 수입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재정개혁 효과 역시 확보할 수 있다. 단, 공적사업을 사회적기업에 위탁할 때는, 예를 들어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한다든지 또는 위탁에 의한 빈곤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임금을 조건으로 하는 공공 조달 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공급 지원으로서는, 사회성과 사업성을 양립시켜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화 및 보급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기업은 인재난에 허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직원들의 생활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공한 사회적기업의 사업체계를 구조화하고 그 모델을 보급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게 되면,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이들의 참여를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기업 지원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2011-02-07 양준호

국사교육, 하려면 제대로 하라

[경인일보=]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은 고위당정협의를 통해 내년부터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모처럼 듣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나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우선 논의의 과정이나 결정 자체가 너무 즉흥적이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교육부서나 일선학교들이 과연 당장 내년부터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국사를 선택으로 돌렸으며, 그에 따라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국사를 홀대하는 데 대하여 뜻 있는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왔음에도 정책 당국의 국사에 대한 생각은 단호했다. 그런 마당에 갑작스레 필수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다수 국민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한다거나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안도 나온 모양이니, 국사에 대한 대우가 '굶어 죽어가던 흥부네 안방에 황금을 쏟아 부은' 격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나 교육당국 혹은 일선학교에 지금 당장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은 무엇보다 심각하다. 과거 시행해 왔던 국사교육을 상기해보면 왜 우리가 앞으로 부활할 국사교육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는지 분명해진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사관(植民史觀) 같은 잘못된 바탕 위에서 역사적 사건들의 암기만을 강요함으로써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암기 위주의 국사교육에 환멸만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기보다는 자기비하의 모멸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련과 극복'은 세계 모든 민족들의 역사에 공통된 주제다. 그러나 우리만큼 그 정도가 심한 민족이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도 동북아의 한ㆍ중ㆍ일 3국은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꽤 오래 전부터 역사를 날조하고 날조된 역사를 그대로 교육시켜 왔으며, 중국도 역사 날조에 동참하고 있음은 최근에 불거진 '동북공정'의 실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일본과 중국은 역사의 무기화를 통해 이 지역의 패권을 쥐어보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국사를 선택으로 돌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온 것이다. 그들이 역사를 날조한다고 우리까지 그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역사를 무기화 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응전략 정도는 세워두었어야 한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의 칼날을 드러냈을 때 우리의 사학계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일본이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도발을 해올 때도 시원한 논리로 대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뜻 있는 재야 사학자들로부터 비판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실증사학의 울타리나 식민사관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는 우리의 사학계는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제왕의 이름, 연대 혹은 사건의 개요나 외우게 하는 것은 국사 교육이 아니다. 역사교사는 국사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역사가의 명쾌하고 공정하며 미래지향적인 해석을 가르쳐야 한다. 영광의 역사는 그것대로 불운의 역사는 그것대로 정당한 사관에 입각한 해석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제대로 된 국사교육이 될 수 있다. 카(E.H.Carr)가 말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라면, 제대로 된 국사교육을 통해서만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나라가 망해도 정신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나철의 말은 역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금언이다. 나라 사이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시대일수록 국사나 민족사를 교육시켜야 하는 것은 '드넓은 벌판에 홀로 설만한 줏대' 즉 자아 정체성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자아 정체성은 조상들이 헤쳐 나온 역경의 체험을 들려주고 극복의 지혜를 잘 다듬어 가르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국사교육이 졸속으로 재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왕 국사교육을 재개하려면 제대로 준비한 다음에 하는 게 옳다.

2011-01-31 조규익

장하준과 생각들

[경인일보=]헤아려보니 벌써 30여년 전인 1980년 초엽의 일이다. 외국 국적의 비행기를 타고 난생 처음 미국이라는 세계의 제국(帝國)으로 유학을 가보니 말로 듣고 글로 읽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풍광들이 촌놈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리 잘 살 수가 있는가? 어쩌면 이리 넓을 수가 있는가? 어쩌면 이리 다양할 수가 있는가? 나보다 200여년 전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나보다 100여년 전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심사가 짐작이 갔다. 그런데 더욱 궁금하였던 것은 내 눈에 비친 평균적 미국인들은 여유 있고 농담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에 비하면 별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도 그토록 잘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돌이켜 보니 미국인들이 잘 산다는 '현상'과 별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인식'간의 괴리를 설명하는 작업이 내 공부의 출발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공부 초창기의 그 신선했던 의문들이 시들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다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좀 살게 되니 문제의식이 희박해진 연유도 분명 무시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서양식(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여 미국식) 공부가 내게 심어준 기본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연유 또한 못지않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성(modernity)이라 부르는 경쟁적 시장, 민주적 정치, 세속화된 사회에 대한 의문 없는 칭송이 바로 그런 가정에 속한다. 한 마디로 서양이 잘 사는 것은 근대성을 일찍이 획득한 덕분이니 그 연장에서 한국이 서양 아니, 미국 비슷해지면 좋은 것이라는 바로 그 생각 말이다. 그런데 시들해진 나의 옛적 질문들을 환기시키는 일들이 요즈음 심심치 않다.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에는 주로 3세계 출신의 외국인 대학원생이 120여명이나 된다. 영어로 진행하는 '발전론' 강의에는 이들 뿐 아니라 유럽에서 온 외국인 교환학생들도 적잖다. 이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렇게 가난하던 한국이 어떻게 이리 잘 살게 되었는가, 앞으로도 이렇게 아니 더 잘 살게 될 것인가"이다. 한국이 서양처럼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근대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한국적인 특수성과 세계사적인 보편성의 독특한 조합이 어쩌구 저쩌구 설명해대지만 이들이 얼만큼 내 설명을 알아듣고 공감하는지는 미지수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출간하여 내 고민을 좀 덜어주었다. 익히 그의 생각의 둘레와 향방을 짐작하고 있던 터라 단숨에 독파한 23가지 주제는 별로 신선하지는 않았다. 독창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가 거명하였던 여러 선각자에 비하면 특히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매우 유용하였고, 시의적절하였으며 또한 호소력이 컸다. 내가 30여 년 전 품었던 질문과 내 외국인 학생들이 던진 질문들에 대하여 명쾌하게 답하였다. 한 마디로 선진국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선진국들이 하였던 대로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무역과 국가 규제가 없는 경쟁적 시장을 주창하는 선진국들도 예전에는 보호무역과 국가 개입이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말이다. 즉, 근대성이나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근대성이고 어떤 자본주의냐가 보다 적절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 장하준은 박지원과 유길준을 뛰어넘은 훌륭한 후학이다.그렇다고 일부 호사가들의 예언과는 달리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그가 노벨 경제학상 후보 반열에 들기는 힘들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일부 진보적 경제학자가 지적하듯 장하준이 친재벌적이라는 지적에는 더욱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공감하지 않는 것은 그의 실력이 하찮기에 서울대 교수가 되기 힘들다고 세 차례나 거부하였다고 전해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장 교수를 만나면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서울대로 오고 싶어 하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은 왜 그렇게 반대하는가? 케임브리지 대학이 더 좋은데(?) 말이다. 정말 멍청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멍청하지만은 않은 질문이다.

2011-01-23 강명구

미·중 정상회담 관전법

[경인일보=]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월 18~21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미국 국빈방문은 흔치 않다. 오바마 미 대통령 집권 이래 2년 동안 인도 총리와 멕시코 대통령만이 국빈방문을 했을 뿐이다.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32년 전 미국과 중국이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뒤 이뤄진 덩샤오핑(鄧小平)의 방미 이래 가장 중요한 미·중 간 국가이벤트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후진타오 주석의 이번 방미가 '죽의 장막'이 걷히고 미국과 왕래가 시작된 지 40년 만에 이뤄진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미·중 수교 이후 가장 큰 외교행사라고 띄우고 있다. 지난해는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류사오보 노벨평화상 수상 문제 등 중국 인권문제, 달라이 라마 미국 방문, 북한 도발 대처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위안화 절상과 무역불균형 해소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중 간의 갈등이 크게 부각되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인접국가와의 관계가 후퇴하여 경제발전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번 방미를 통해 최근 갈등과 대립 양상을 보인 중·미 관계를 협력과 화해 기조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도닐런 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정상회담의 주제는 크게 미·중의 전반적인 양자관계 설정문제, 안보 및 정치 현안, 경제 문제, 특별한 관심을 요하는 국제적 이슈 등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면서 "안보 및 정치현안 가운데는 북한 문제가 단연 '최고 의제(top topic)'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수개월간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남북한 직접대화 등 외교적인 틀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중국과 매우 긴밀히 협력했다"고 상기시켰다. 북한의 도발과 핵문제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6자 회담, 남북대화 등 외교적 해결방안이 미·중 정상 간에 깊숙이 논의될 것이다. 도닐런 보좌관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 다음으로 논의될 안보분야 의제로는 이란의 핵개발, 남(南)수단 분리독립, 미·중 간 군사협력 강화문제 순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중 정상회담의 4대 의제 중 가장 핵심주제는 양국관계의 성격과 목적, 협력의 범주 등에 관한 것"이라며 향후 미·중 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안보·정치분야 다음으로 중요한 의제는 경제분야라고 설명하면서 "여기에는 환율절상 및 무역 불균형 해소 노력 등 거시적인 측면과 G20정상회의처럼 다자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글로벌 이슈에는 인권문제가 포함된다고 밝혀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사오보의 석방 등 중국의 인권상황 개선 문제를 언급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주요 장관들은 연일 공개 연설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무려 2천520억 달러에 달했다. 12일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압박했다. 13일 로크 상무장관은 중국내 외국기업 차별 철폐와 지적 재산권 보호를 중국측에 촉구했다. 14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바람직한 미·중 관계를 주제로 연설했다.그녀는 세계적 경기침체, 핵 확산, 테러리즘 등 여러 분야에서 미·중 양국은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관계임을 역설했다. 또 위안화의 조속한 평가절상, 중국 시장 개방 등을 촉구하고, 북한의 추가도발을 억제하고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도록 보다 적극적인 압력을 중국이 행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위안화 환율 절상을 강하게 압박하겠지만 중국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미국 상품 수입을 확대하는 등 큰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이며 미·중 관계도 협력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우리로서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향후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1-01-16 석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