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사법농단을 넘어서는 길

예외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법의 정당성 무너지면 붕괴의 길로그 상태 넘어 정상성 회복하는 길은자신의 부정 돌아보는데서 시작된다역사는 또다른 정상 찾아가는 과정지난 정부 시절 있었던 사법농단 사건은 사태의 심각함에 비해 너무도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최고의 정치권력과 최고의 법치권력이 음습한 거래를 통해 법을 사사로이 적용했다고 한다. 이런 불법적 거래 의혹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 운운하는 말은 사태의 본질에서 한 참을 벗어난 피상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에서도 권력은 그 구성원의 합의와 동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때 그 정치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은 법에 대한 동의와 수용에 있다. 그런데 그 법이 마음대로 집행된다는 것은 이 정치 체제의 정당성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이제 그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했으며, 그 순간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정지되었다.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이 판결을 무시하고 계속 청와대에 머물겠다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가 전체가 파국에 이르렀을 것이며, 생각하기도 싫은 폭력과 혼돈이 몰아닥쳤을 것은 자명하다. 다행히도 그는 법을 수용했으며 그래서 법의 정당성과 국가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법이 법을 판단한다는 이들에 의해 정말 '제멋대로' 작동한다는 엄청난 일이 실제였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본질은 우리가 합의한 정치체제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정당성을 잃었으며, 그래서 이 모두가 유효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죄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최고의 모순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법을 집행하는 최고 기관의 책임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난 6월 7일 전국 법원장들이 내놓은 입장이란 것이 기껏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이었다. 법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들이 스스로 합법적 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법에 의해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이들이 스스로 그 정당성을 부인하고 있다. 자기부정과 자기모순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그나마 일부 부장판사들이 이러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하여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깊이 우려하고",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사회를 유지하는 최후의 정당성이 무너진 마당에 신뢰 운운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니다. 지강헌이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사실이 되었다. 누가 판결에 불복하더라도 그를 정당하게 심판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체제 정당성이 무너진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이제 우리는 왜 법은 언제나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알게 되었다. 왜 수많은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처벌받는지 알게 되었다. 평범하게 살던 이웃 아저씨가 왜 갑자기 무서운 간첩이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왜 어떤 사람은 수십 억, 수백 억원을 받아도 죄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몇 천원의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지 알게 되었다. 왜 그들은 퇴임 후 몇 십억원이라는 불가능한 돈을 수임료란 이름으로, 전관이란 이름으로 부당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잘못이 없어도 감옥에 갈 수 있으며, 죽을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법이라는, 정당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부당한 법집행에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예외가 정상이 된 상태에 처해졌다.예외 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이다. 법의 정당성이 무너진 사회는 붕괴의 길로 내닫게 된다. 이 예외 상태를 넘어 정상성을 회복하는 길은 자기가 초래한 부정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예외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그들은 멍청한 것일까, 아니면 악한 것일까. 스스로에서 비롯된 부정을 넘지 못할 때 그 자신이 부정되고 해체된다. 역사는 예외에서 또 다른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예외상태를 넘어서는 새로운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문법은 무엇일까./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6-17 신승환

[월요논단]대법원장도 헌법 아래에 있다

법관·대법원장 헌법에 기속돼 있다前대법원장 형사소추대상 예외아냐혐의 유죄판단 여부는 그후의 문제법관들 탄핵사유 있으면 절차 거쳐야김명수 대법원장 결단 필요한 기준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오늘 개최되는 전국법관대표회의 결과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과 선택이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5월 31일 대법원장은 담화문을 통해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의 의견을 종합하여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려진 것처럼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고위법관들이나 법원장들은 '자체 해결'을 요구하고, 국민을 법정에서 마주하는 일선 법관들은 '검찰수사 의뢰'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법관들은 자신들이 검찰의 수사의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12일의 북미회담, 13일의 지방선거, 14일의 월드컵 개막이 아니었다면 사법거래의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더 큰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것은 대법원장의 최종결정에 따라서는 향후 일파만파의 걷잡을 수 없는 사법 불신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징후다. 그 단초는 담화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참혹한 조사결과'에 참담한 심경을 억누르기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사법거래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찰을 당한 법관들에 대해서는 위로를 하면서도 죽음에까지 이른 당사자에게는 의례적인 사과조차 없는 대법원장의 담화문, 그것이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대법원장은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헌법기관의 장이다. 법관이나 직원들만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조직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교수와 변호사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다. 헌법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징계법상 가장 강한 징계가 1년 이하의 정직이다. 일반 공무원들은 위법한 행위로도 파면이나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의혹이 있다고 보도된 법관들까지도 경징계나 사표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법관을 위한 강력한 신분보호 장치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가 철저히 유린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신헌법과 군사독재정권하에서 법관들의 신분은 보장되지 못했다. 과거 사법시험이나 법관임용에서부터 민주화나 연좌제 관련자의 사법부 진입이 차단되기도 했다. 그 반성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보장을 헌법에 규정한 것이다. 사법부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 법관을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법관윤리강령 제 1조가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고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법원과 일부 법관들이 자신들의 인사나 권한확대를 위해 정치권력과 거래했다는 실태조사보고서에 국민들의 억장이 무너진다.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위법행위라는 뜻이다. 만약 '자체 해결' 주장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덮기 위한 전략이라면 또 다른 사법 불신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시민들의 시각으로 보자. 대통령이 높은가. 대법원장이 높은가. 불행한 헌정사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탄핵을 받았고, 형사법에 의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이나 법관에게 대통령의 헌법상 특권보다도 우월한 특권을 부여한 규정은 없다. 이미 판결을 통해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부인한 것도 법관들이었다. 더구나 위법한 행위를 행한 전직 대법원장이나 현직 법관에 대해 사법심사를 배제하거나 치외법권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자만의 늪에 빠지므로 공적 평가를 받아야 하며, 최종판결을 내리는 연방대법원은 다른 법원보다 더욱 엄정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워런 버거(Warren E. Burger)의 말이다. 법관도 대법원장도 헌법에 기속되어 있다. 전직 대법원장은 형사소추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혐의가 유죄로 판단되는가 여부는 그 후의 문제다. 현직 법관들에게 탄핵사유가 있으면 절차를 거쳐 탄핵을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에 필요한 기준이다. 법관도 대법원장도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헌법의 가치와 정신을 천명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6-10 김민배

[월요논단]4차산업혁명 길목의 경기도, 융복합 콘텐츠가 '답'

현장 중심의 창의 인재 많이 양성게임·영상 중소콘텐츠기업 지원인프라·지역별 창의공간도 확대콘텐츠 수출기업 애로점으로 꼽는정보·네트워킹·수출상담 강화해야한국의 K-POP스타 BTS(방탄소년단)가 일을 냈다. 지난 27일 BTS는 미국 '빌보드 200'차트에서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비영어권 앨범으로 1위에 랭크된 것은 12년 만이라고 한다. 외신 AFP는 BTS의 인기에 대해 "작년 BTS의 트위터 언급량은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과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합친 것의 2배"라고 언급했다. 이에 콘텐츠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모 게임사는 이들을 소재로 한 게임을 개발, 상반기에 출시 예정이라 한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는 전통의 강자 디즈니 마블의 최신작 '어벤져스3'의 흥행 돌풍이 거세다. 영화로 20억 달러 수익을 올린 것 외에 캐릭터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를 통한 물품, 테마파크 놀이기구, 게임, 패션, 식음료 등 다양한 융복합 콘텐츠들이 이른바 '돈 되는' 상품으로 각인되고 있다.이렇게 콘텐츠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산업은 최근 5년간 국내 경제성장률 대비 두 배가 넘는 5.6%를 기록하며 경제에 새로운 힘이 되고 있다. 또한 타 산업 대비 일자리 창출이 용이하다. 10억 원의 재화를 통해 직간접 창출되는 고용자 수를 나타내는 고용 유발 계수는 10.83에 달해, 반도체(1.60), 자동차(2.90), 조선(2.64) 대비 비교 우위에 있다. 또한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 4차 산업 혁명 패러다임의 확산은 콘텐츠산업 육성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경기도는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과 종사자 수의 21.6%를 점유하고 있는 핵심 거점이다. 젊고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 판교, 광교, 시흥, 고양, 의정부 등 제조 및 첨단 산업 클러스터와 31개 시군의 다양한 문화 자원 등 산업 육성에 더할 나위 없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융복합의 형태는 여러 가지를 구상해 볼 수 있다. 게임과 VR/AR(가상/증강현실)이나 3D 기술을 결합한 기술융합형(콘텐츠+기술), 방송과 게임 혹은 캐릭터, 도서 등이 결합된 장르융합형(콘텐츠+콘텐츠), 그리고 캐릭터와 테마파크의 결합이나 영화와 관광산업과의 결합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가 융복합 기반 콘텐츠산업을 잘 육성키 위한 선결 요건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현장 중심의 창의 인재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학생과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최근 화제인 메이커 운동을 통해 시제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돕고 게임, 차세대 영상 크리에이터, VR/AR 분야별 교육도 지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소 콘텐츠기업 집중 지원이다. 게임 분야는 오디션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IP/플랫폼 및 리소스를 지원하고, '플레이엑스포'와 같은 글로벌 마켓 플레이스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영상 분야는 산업의 다양성과 근간을 다지기 위해 다양성 영화 지원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셋째, 인프라 및 창의 공간의 확대다. 하반기 고양시에 조성 예정인 '경기문화창조허브', 부천시의 열린 창작 공간 '메이커스 허브' 시설과 지원 프로그램을 기대해 봄직하겠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중소 서점은 도민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요긴한 과제다. 넷째, 글로벌 교류 촉진을 통한 진출이다. 콘텐츠 수출 기업이 애로점으로 꼽는 정보 및 네트워킹, 현지화 마케팅, 법률 금융 분야 지원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 상시 수출 상담 및 비즈니스 매칭, 멘토링에 집중해야 한다. VR/AR 분야에서 유수의 글로벌 기관/기업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연합체 'NRP'(Next Reality Partners)를 조직하여 아이템 발굴, 후속 투자 등을 지속하고 있는 사례는 참고할만하겠다. 마지막으로, AI(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 활용을 지원해 콘텐츠 제작, 유통 및 소비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올해 6월은 4차산업 혁명의 기대감과 글로벌 무역전쟁의 그림자가 가져온 불확실성의 교차점을 지나고 있다. 융복합 콘텐츠 산업 육성 강화 방안은 미래 경기도의 지속 성장을 위한 좋은 해답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

2018-06-03 오창희

[월요논단]지방선거도 중요하고 보도도 중요하다

후보자간 대립·갈등 구도 만드는선정적 경마중계식 보도 자제 당·출마자 정책·공약 평가유권자 이해하기 쉽도록 제공지역감정 부추기는 기사화 금지6·12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모양이다. 긴장과 대결을 해소하고 평화와 안정으로 가는 길에 더 이상 후퇴가 없길 바란다. 북미정상회담 다음날인 6월 13일에는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처음으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동일한 선거일정으로 치러진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12곳에서 치러지고 경인지역에서는 1곳에서 치러진다. 지방선거가 북미정상회담이란 거대 이슈와 '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지역 이슈가 중심이 돼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지자체의 대표들을 선택한다는 원래의 의미가 약화돼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지역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언론은 지방선거에 지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정당과 후보를 제대로 선택하도록 지역이슈를 중심으로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행한 지방선거 유권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한 적극적 투표참여 의향층이 70.9%로 지난 제6회 지방선거에서 같은 시기에 조사한 결과와 비교하면 15.1%p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적극적 투표참여 의지가 투표율로 나타나야 하는데, 여기서도 언론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방선거에 대비해 전국의 시민언론단체가 참여한 '전국 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가 발족하여 지방선거 보도 모니터 결과를 발표하고 있으며, 선거기사를 심의하기 위한 선거기사심의위원회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선거보도 감시와 심의 기준에는 올바른 선거보도의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전국 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의 감시준칙이 이번 지방선거보도의 나침반이 될 수 있겠다. 감시준칙은 6가지 선거보도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 선거를 대립과 갈등 구도로 만들고 후보의 우열과 서열을 부각시켜 유권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선정적인 경마 중계식 보도를 하지 않는다. 둘째,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의제에 대해 후보와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평가해 유권자가 이해하기 쉽게 제공해야 한다. 셋째, 양적 균형을 이유로 정당과 후보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중계보도가 아니라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적극적인 검증보도를 해야 하며 흑색선전과 의혹 폭로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넷째, 신진 후보나 군소 정당 후보도 충분히 보도해야 한다. 다섯째, 유권자의 정치적 냉소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지역주의·소지역주의 선거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언론단체가 제시한 선거보도의 방향이 실제 선거보도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정책의제 중심의 선거보도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고 경쟁과 대결국면으로 보도하는 경마 중계식 보도는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흥미로운 정책의제 선거보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범죄 정보를 확인하고 언론이 이 내용을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언론은 후보자와 선거운동을 비판적으로 보도해야 마땅하다. 동시에 냉소와 혐오를 만들어내는 선거보도를 자제하고 선거 참여를 유도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다. 희망적인 것은 이런 선거보도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에서 지역언론의 영향력이 여전할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소셜미디어 전략에 집중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유통되고 확산되는 정보는 대부분 지역언론 기사로 추정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거관련 정보 흐름을 직접 살펴보는 기회가 있었다. 제한적인 경험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언론의 선거보도 기사들이 공유되어 선거여론 형성과 확산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분권의 시대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지방선거는 매우 중요하고 유권자의 참여와 올바른 선택에 있어서 지역언론의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이용성 한서대 언론학 교수이용성 한서대 언론학 교수

2018-05-27 이용성

[월요논단]아직도 아픕니다

38周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9월에 '특별법진상규명委' 가동과거 정부의 범죄적 행위국방부 진실 왜곡 반드시 밝혀고통받는 '아재·아주머니' 보듬어야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지났다. '오월 광주, 정의를 세우다!' 라는 주제로 진행된 서른여덟 번째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당시의 아픔을 보여주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작년 기념식에서부터 목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해서 올해도 어김없이 완전한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와 다짐 속에 다 함께 부르며 기념식은 빗속에 진행되었다. 38년 전 사라진 아들을 오늘까지 찾고 있는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귀복씨의 절규에 찬 목소리는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아무리 찾아도 한 번 간 아들은 오지 않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는 아직도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사실을 왜곡하고 광주의 명예를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진실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눈물을 머금고 말한 기념사 중 일부분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 동안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신군부는 공수 부대를 투입하여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끝내는 발포까지 하였다.그 당시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쳤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알려지지 않고 실종된 사람도 많으며,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묘비는 있으나 묘비명이 없기도 하다. 아직도 그때의 악몽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자살한 사람도 있다. 그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고, 5·18 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5·18이 발생한 지 한 세대가 지나도록 최초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 장소와 같은 핵심 쟁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고, 38년 전 그들은 아직도 아프다.상처는 묻을수록 더 커지고, 드러내고 표현해야 치유되는 법이다.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단체와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때의 진실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관련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우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그림책으로도 제작되고 있다.그림책 '운동화 비행기'(홍성담 글·그림/평화를 품은 책)는 38년 전 저수지에서 늦은 봄 수영을 즐기며 놀던 초등학생들이 계엄군에 의해 총격을 당한 사건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알리고 있다. 평화로운 오월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달아나던 소년이 생일 선물로 받은 운동화 한 짝을 줍기 위해 되돌아섰다가 운동화와 함께 10여 발의 총탄을 맞고 땅에 묻혔다. 이유 없는 죽음을 맞은 그 아이는 무덤 앞에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려주고자 운동화 비행기를 타고 우리들에게 끔찍했던 38년 전 참상을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의 작가인 홍성담 화백은 미대를 갓 졸업한 후 광주항쟁 내내 도청을 지키면서 경험한 참상을 그의 다양한 작품으로 알리고 있다. 2018년 9월부터는 '5·18 특별법 진상규명위원회'가 가동될 것이고, 과거 정부의 범죄적 행동과 국방부의 진실 왜곡이 사실로 규명될 것이라고 한다. 반드시 왜곡된 그 참상들이 제대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아파하는 아재와 아주머니들의 어렸을 적 그 오월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 오월에 향기롭게 피는 꽃처럼 진실의 꽃이 만개해야 할 것이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5-20 최지혜

[월요논단]판문점 선언과 문학의 자리

전쟁참상 고발 베트남 작가 바오닌"분단 넘어서려는 전쟁 안된다" 강조"영웅이 왜 소설로 고생하나" 질문에"영웅은 그들이 만든거고 난 글쓸 뿐"문학이란 공간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둥근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의로운 전쟁이란 개념도 성립하지 않는다. 어떠한 명분을 내걸었든 전쟁은 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들 피로써 피를 씻어낼 수 있겠는가. 증오로써 증오를 해소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피와 증오를 발판 삼아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는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출현하였고, 그네들의 흐름이 단절되지 못하고 이어질 때 나름의 역사가 구축되기도 하였다.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충만 훑어봐도 이는 금세 드러난다.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을 '성전(聖戰)'이라 칭송하며 조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이들 친일파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청산되기는커녕 반공주의로 재무장함으로써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지상과제로 공공연히 주장했던 것이 북진 통일이었다. 군사정권이 퇴출된 지 사반세기 지났어도 이러한 견해는 여전히 공공연하게 주창되고 있다. 북의 주석궁을 탱크로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태극기 꽂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목소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정의로운 전쟁을 강변하는 이들의 유구한 역사 반대편에서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해체하려는 이들의 저항 또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은 후자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얻어낸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한반도 비핵화 및 정전(停戰) 상태에서 평화­체제에로의 전환,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합의는 한반도의 전쟁­체제에 맞서왔던 이들의 흔들리지 않는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은 전쟁 발발의 위기 국면을 극적으로 돌파하여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간 유의미한 사건으로 기록될 터이다.한반도가 평화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느냐고 따지고 있다. 전쟁 체제에 근거한 기반 자체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리라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뿐더러, 대결(전쟁)이란 본디 적을 전제하고 나서야 작동하는 구조인 까닭에 그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현상이겠다. 이 지점에서 문학의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전쟁을 다루는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쟁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적개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해. 전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사랑과 인도적인 성품과 관용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전쟁에 관한 글은 곧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야."바오 닌은 베트남전에서 작전을 수없이 수행한 군인이었다. 사이공(현 호찌민) 진공 작전에 참가하여 떤 선 넷 공항을 점령할 때 마지막 살아남은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이러한 체험은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의 질료가 되었는데, 그 내용은 전쟁의 참상 고발이었다. 전쟁에서 삶과 죽음은 우연에 의해 갈릴 따름이며, 사랑·인간·미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전쟁 뒤의 개인은 어찌하여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지가 절박하게 진술되어 있다. 전쟁 승리의 영광을 고취함으로써 베트남에 대한 자부심을 끌어올리려는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달가웠을 리 없을 터, '전쟁의 슬픔'은 검열에 의해 '사랑의 숙명'으로 제목이 뒤바뀌기도 했고,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베트남 내에서의 핍박과는 아랑곳없이, 2008년 '20세기 세계명작 50선'(영국번역가협회)에 선정되는 등 '전쟁의 슬픔'에 대한 세계 문단의 호평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던 날, 바오 닌은 마침 제주도에서 열렸던 4·3항쟁 70주년 관련 국제문학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분단을 넘어서기 위한 방편으로 결코 전쟁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뒤풀이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는 소회와 함께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이를 테면 전쟁 영웅인데, 선생님께선 왜 하필 그런 소설을 써서 굳이 고생하셨나요?""영웅을 만드는 건 그들의 일이고, 글을 쓰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지요."문학의 자리가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5-13 홍기돈

[월요논단]김정은과 재벌 3세 쇼크

세습, 돈·권력향유·갑질수단 안돼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역할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립 필요국민행복·사회보탬 안된 기업·국가사멸했던 역사적 교훈 직시해야김정은 위원장과 재벌 3세. 세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12시간 만에 장안의 화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재벌 3세에 대한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후 그는 3세 세습이라는 비난과 조롱 속에 등장했다. 자칭 북한 전문가들은 그와 함께 북한체제도 바로 붕괴할 것이라는 예언과 희망을 쏟아냈다. 그가 핵을 내세워 북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마다 악의 축으로 낙인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반도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난무했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결기어린 한반도 평화정착메시지를 수용하면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바뀐 데에는 생방송과 신문의 위력이 컸다. 동시에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결단 그리고 남북한의 교류와 평화통일을 희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함께 기여했다. 돌이켜 보면 북한과 지도자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때로는 일방적이었다. 북한 자체의 정보도 대부분 가공된 것이었다. 김정은의 실체 역시 국민들이 직접 접해본 적이 없었다. 세습과 핵무장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가능했던 이유다. 온갖 부정적인 대명사의 상징이었던 그가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 준 파격적인 행보가 일종의 신선한 쇼크로 다가왔다. 그것은 베일에 덮여 있던 것이 드러날 때 오는 극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1983년 1월 태생에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것 이외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가 세습한 북한의 체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멸망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의 3세 후계구도는 김정일 위원장이 개정한 북한 헌법 제 11조에 이미 명문화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당이 주도하는 선군정치이지만 의무교육과 비밀경찰 등으로 유지되는 통치시스템이다.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세습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대상과 영역이 다를 뿐 우리에게도 3세 세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방식이다. 거기에다 불법과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 재벌, 언론, 기업, 교회, 사학 등의 부정한 세습에까지 관대하다 못해 당연시 했다. 눈을 감고 침묵하는 사이에 입시나 채용부정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참다못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오히려 희생양이 되었다.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부정한 현실을 회피하였다. 위로는커녕 강자의 편에서 상처를 헤집는 파렴치한 자들도 있다. 재벌과 3세들의 갑질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돈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침해하는 일부 재벌과 부패한 3세들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누적된 해악들에 대한 거센 분노에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변화 요구가 담겨있다.과연 재벌 혹은 세습한 3세들이 집착하는 물질적 부의 토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그리고 명퇴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희생과 피눈물의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그 토대가 무너지면 상부구조도 존재할 수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제 3세계의 기술추격으로 상징되는 변수들은 우리사회에 당면한 위기적 요소다. 그런데도 일부 재벌과 3세들의 행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비판의 칼날이 그들의 능력과 자질로 집약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세습. 그 자체를 비난할 대상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하지만 세습이 돈과 권력을 향유하는 자리나 갑질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세습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한 논거다. 재벌들과 세습권력에게 국민들이 묻고 있다. 과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은 무엇인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에 대한 고민이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이라고 했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리더와 CEO, 올바른 공동체와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는 기업과 국가는 반드시 사멸했던 역사적 교훈을 직시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4-29 김민배

[월요논단]게임 한류, 스타트업 육성에 기반해야

게임산업, 콘텐츠 수출 53% 차지장르 다양성 위해 아이디어 창출스타트업 발굴과 육성 필수적내달 글로벌 게임쇼 'PlayX4' 개최수출계약 추진 8천만달러 등 기대중국발 게임 콘텐츠의 공세가 매섭다. 십수년간 '대한민국 수출 효자 종목'으로 게임 산업이 회자되어 왔지만, 최근 시장 상황을 복기해 보면 그리 녹록치 않다. 게임 매출은 '라그나로크M', '삼국지M', '벽람항로', '드래곤네스트M' 등 중국산 게임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출시를 앞둔 게임들도 상당수다. 반면, 우리나라 게임이 작년 한 해 동안 중국 내 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를 발급 받은 건수는 0건이었다. 대중 관계를 포함, 복합적 환경 요인이 있겠지마는 결론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대형 게임사에 비해 경영 여건이 취약한 중소 게임 기업의 존립은 물론 게임 산업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게임 산업은 국내 콘텐츠 수출의 53%를 차지하는 한류 콘텐츠 핵심이다. 영상은 물론 음악, 교육 요소와의 결합, VR/AR(가상/증강현실) 및 인공지능(A.I) 기술 융합이 용이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하지만, 셧다운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사회 문화적 이슈가 중심이 되다보니 정작 필요한 산업 육성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된 모양새다.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게임 산업 매출의 절반인 49%(약 5조 3천 억 원)를 차지하고 있는 경기도의 게임 기업육성 방향을 되짚어 봄직 하다.경기도는 성남시를 중심으로 대형 게임 기업인 넥슨,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NHN 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 등이 자리잡고 있고, 관련 업계 종사자 수는 약 2만6천명으로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판교는 연관 산업인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 기업과 공용 인프라가 집적해 대한민국 게임의 중심지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최근 3년간(2013~2015) 성남 소재 게임 기업 수와 종사자 수는 각각 190개, 1만2천명 수준에서 정체를 기록하고 있고, 관련 업종인 판교 내 CT(문화기술 기반) 기업 수는 연 50%씩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경기도 게임 산업 생태계에 있어 대형 게임사는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중소 개발사, 스타트업과 전후방 콘텐츠 관련 기업이 부족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건강한 게임 산업 생태계와 장르 다양성을 위해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내놓는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이 필수적이다. 우수 중소 게임 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허리와 근간을 보강하는 것으로, 건강한 게임 산업 생태계 조성의 단초가 될 수 있다.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16년부터 중소개발사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비즈니스 플랫폼 'G-NEXT' 센터를 판교에 구축 운영 하고 있다. G-NEXT 센터는 우수 아이디어 발굴 및 인력 양성, 멘토링과 창업, 제작 및 상용화, 투자 유치와 글로벌 시장 진출 등 전주기적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개소 후 지원을 받은 도내 397개 기업이 235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신생 스타트업 46개가 창업했다. 또 이들이 2억 달러 이상의 수출계약을 추진했다. 초기 스타트업이나 연 매출 10억 미만의 중소 기업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센터는 대형 기업 중심의 게임 산업 생태계 개선에 일조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G-NEXT 센터는 중소 게임기업의 애로 중 하나인 글로벌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오는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글로벌 게임쇼 'PlayX4'를 개최한다. PlayX4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텐센트 등 대형 글로벌 퍼블리셔 160개 사를 초청했다. 이를 통해 수출계약 추진 8천만 달러, 참가기업 650개사, 관람객 7만명 이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상반기 국내 최대 게임쇼인 PlayX4는 가족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도 다수 준비한다. 남녀노소가 게임을 온몸으로 즐기고, 국내외 게임의 현재를 체험하였으면 한다. 특히 국내 중소 게임 기업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0살이 된 PlayX4가 게임 스타트업 지원의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대한민국 게임 산업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오창희 경기콘텐츠진흥원장

2018-04-22 오창희

[월요논단]'신문의 날'을 보내면서

객관·공정·전문성, 품격 부정에절독 내몰리는 신문현실 안타까움소셜미디어는 저널리즘아닌 정보각국선 민주주의위해 다양한 지원 우리도 자기노력 전제 관심 절실지난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신문협회가 주최한 행사가 5일에 미리 개최됐지만 관련된 특집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 썰렁한 느낌이었다. 신문이 직면한 현실이 보여주는 듯했다. 신문은 저널리즘과 산업의 두 가지 측면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신문 저널리즘이 처한 현실은 객관성, 공정성, 전문성, 품격이 부정되는 '기레기'란 말로 집약될 수 있다. 최근 진보와 보수를 대표한다는 신문까지도 같은 진영이라는 독자들의 집중적인 비판에 노출되고 심지어 절독에 시달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7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의 신뢰도가 조금 향상됐다. 그러나 신문의 위기는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종이신문의 경우 1996년에 비교해, 2017년 열독률이 약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1년 조사 이후 증가 추세여서 신문의 영향력을 믿게 해줬던 결합열독률(일주일간 종이신문, PC, 모바일, 일반 휴대전화, IPTV로 신문기사를 이용한 비율)마저 2017년부터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우리사회가 신문의 위기를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문의 위기를 방관하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신문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문자·활자문화진흥법'을 제정해서 신문을 이용한 교육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신문을 지원하기 위한 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디지털미디어환경에 적합한 지원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 2009년부터 미국 의회에서도 신문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2월에는 영국에선 처음으로 신문산업의 위기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가 시작됐고 이를 위한 전국 실태조사가 추진된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는 가장 신문 지원의 역사가 오래되고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 중인 나라이다. 프랑스에서 신문은 민주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사상과 의견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신문을 지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젊은 세대가 책과 신문 읽기를 기피하기 시작하자 문자·활자 진흥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에서 문자·활자문화란 지식과 지혜의 계승 및 확산, 풍요로운 인간성의 함양과 건전한 민주주의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규정된다. 덴마크는 신문 등 미디어를 진흥하기 위한 기금지원 정책이 단순히 언론기업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모두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신문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신문지원을 위한 실태조사 추진을 언급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뉴스 미디어의 쇠퇴로 가짜뉴스 등에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신뢰할 수 있는 뉴스 미디어인 신문에 지원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소셜 미디어의 뉴스 신뢰도가 감소하고 전통미디어의 뉴스 신뢰도가 상승하는 추세가 감지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여러 나라에서 펼쳐진 신문지원에 대한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신문은 우리의 알 권리 보장과 민주적인 여론 형성, 읽기 문화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미디어이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정보다. 정보를 가지고 하는 일이 저널리즘이다"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신문을 위협하고 있는 인터넷과 모바일환경은 도리어 전통적인 신문의 객관성, 전문적 분석과 해설이 여전히 필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적절한 신문 지원정책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신문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미디어인데도 말이다. 신문저널리즘의 본질로 더 다가서고 디지털미디어환경이나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적응하는 신문의 자기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신문의 위기 극복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적·사회적 관심도 절실한 상황이다./이용성 한서대 언론학 교수이용성 한서대 언론학 교수

2018-04-15 이용성

[월요논단]플라스틱의 반격

한반도 면적 15배 이상의태평양 복판 플라스틱 쓰레기 섬심각한 생태계 혼란 인간 위협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 이용 등작은 실천으로 지구환경 지켜야중국이 폐자원 수입을 중단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 대란'이 일어났다. 쓰레기 대란을 보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한 걸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 플라스틱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시계의 알람을 끄고,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으며 욕실에 들어가서 플라스틱 칫솔에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있는 치약으로 이를 닦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는다. 마트에 한번 다녀오면 종류별로 채소를 담은 비닐봉지, 플라스틱 사각 팩 등의 쓰레기가 나오고, 마트에서 오는 길에 마신 커피 한잔은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뚜껑으로 남는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비닐봉지 등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며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 편리함 이면에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생산된 플라스틱은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지구 어딘가에 남아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런데 세계 도처에서 플라스틱 제품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한반도 면적의 15배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바람과 해류를 타고 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쓰레기가 모여 만들어진 섬이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그 양은 더 늘었다고 한다. 이 쓰레기의 90%가 플라스틱이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바다를 뒤덮고 있다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이다. 커다란 플라스틱이 지구를 떠돌다가 마모되어 미세한 입자로 잘게 부셔지면 해양 생물들은 먹이로 착각해 먹게 되고 그들의 위(胃)는 쓰레기로 가득 차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쓰레기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긴 시간 동안 여기저기 떠돌며 많은 생명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담은 그림책 '플라스틱 섬'(이명애 글·그림/상출판)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를 간결한 문장과 그림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느 바다 한가운데에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용품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곧 알록달록 플라스틱이 모인 섬(島)으로 바뀐다. 이 섬에 살게 된 새들을 비롯해 많은 생명이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먹는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많은 생명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수묵화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먹먹해진다.당장에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16년 9월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제품(세정제, 각질 제거제 등)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가 마련되었다. 아직은 미비한 시작이지만 앞으로 정부와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정부의 규제와 함께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과대 포장을 줄이고 제품의 사용 후 폐기처리에 대한 연구 등 지구환경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들 하나하나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큰 섬이 만들어진 것처럼 반대로 우리들 개개인의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쓰레기대란을 계기로 우리들 개개인이 먼저 움직여야겠다. 막연한 환경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이용하는 등 아주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 하나하나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4-08 최지혜

[월요논단]70주년 맞은 4·3과 내부 식민지로서의 제주 역사

배제·고립된 제주 공동체문화는해방 맞아서도 다른 사람에겐여전히 낯설게만 남아 있었다4·3 일어나기전 美군정·경찰은도민 60~90%가 좌파라고 예단올해는 제주에서 4·3이 일어난 지 70주년 되는 해다. 이를 맞아 동백꽃 배지가 제작되었고, 배지 달기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4·3과 동백 이미지가 결합하게 된 계기는 강요배의 연작그림 '동백꽃지다'라 할 수 있다. 동백은 질 때 한순간 통으로 툭 떨어지는데, 제주 출신 화가는 4·3 당시 국가폭력에 의해 양민들이 살육 당하는 현장을 한순간 명줄이 툭 끊기고 마는 이미지로 해석해 내었던 것이다.동백을 항쟁과 연관 짓는 제주 민중의 상상력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제주에서 동백은 '장두꽃'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네들은 아마 지는 동백을 바라보면서 장두의 머리가 베이는 장면을 되새겼으리라. 흔히 장두(狀頭)는 장수(將帥)로 오해되지만, 실은 소장(訴狀)의 첫머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장두 출현은 중앙정부가 제주를 내부 식민지로 운영했던 정책과 관련된다.몇 가지 굵직한 사건만 보자. 말 산업으로 번창했던 제주 경제는 조선 태종·세종 대에 이르러 파탄을 맞이하고 만다. 말을 국가의 통제 대상으로 묶어 사사로운 매매를 금지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부박한 토질 탓에 제주에서는 농사로써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호구책을 잃게 된 제주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섬 밖으로 탈출하였는바, 이들 대부분은 한반도 근해를 떠도는 배 위의 유민으로 전전해야만 했다.중앙정부로서는 제주 유민을 막아야 했다. 유민들은 수적(水賊)으로 돌변하기 일쑤였을 뿐만 아니라, 유민 발생에 따라 제주 특산물의 진상이라든가 말의 안정적인 생산·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조 7년(1629)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이 내려졌고, 이는 순조 23년(1823) 해제될 때까지 200여 년 동안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가지는 의미는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남쪽에 '식민지' 탐라(제주)를 거느리고 있으니 '제국'으로서 대한이 성립한다는 논리가 주창된 것이다.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채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면서 무거운 진상·부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제주인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두였다. 간난한 생활에 경래관(京來官)의 가렴주구가 겹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제주 민중들은 민란을 일으켰다. 중앙정부에 처지를 호소할 방식이 민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란이 성공하여 제주읍성을 함락하면 경래관은 섬 밖으로 추방당했고, 이들의 소장은 비로소 중앙정부에 전달되었다.민중들의 분노가 아무리 극에 달했어도 경래관을 처형하지 못한 까닭은 중앙정부의 응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경래관을 처형한 순간 역모(逆謀)로 내몰릴 우려가 있지 않았겠는가. 이에 왕은 소장의 요구안을 수용하여 민심을 다독이는 한편, 왕의 대리자와 맞선 책임을 물어 장두의 목숨을 거두어 갔다. 그러니까 장두는 민란 이후 난민의 안위를 지켜내는 한편 중앙정부의 분노를 무마하는 장치였던 셈이다. 민란을 성공으로 이끌고도 효수될 수밖에 없었던 강제검, 이재수는 장두의 운명을 대표하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배제되고 고립된 조건에서 형성된 제주의 공동체문화는 해방을 맞고도 타자(他者)에게 여전히 낯설게만 남아 있었다. 예컨대 4·3이 발발하기 이전 미 군정과 경찰은 그 이질감을 넘어서지 못한 채 각각 도민의 60~80%, 90%가 좌파라고 예단해 버렸다. 4·3 소재 최초의 소설 '비바리'(문예, 1950.2)의 작가 허윤석 또한 마찬가지다. 무장대를 이끄는 고·양·부 세 성씨의 지도자가 삼성혈에 모여 제사를 지낸 뒤 "계집은 남을 주어도 삼성혈을 더럽혀선 안 된다"고 결의하는 것으로 4·3을 그려내는데, 이는 제주문화를 신화시대 혈족의 연대 수준에서 파악한 소산이기 때문이다.4·3이 일어난 지 70주년을 맞는 이즈음, 우리 사회의 4·3 이해는 어느 만큼이나 성숙해졌을까. 동백꽃 피고 지는 일이야 자연의 조화이지만,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사람의 소관이다. 릴레이 캠페인의 "제주4·3은 대한민국 역사입니다" 라는 구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18-04-01 홍기돈

[월요논단]MB를 위한 변명

부패·파렴치 그의 잘못만은 아냐그것을 용납·추종했기에 가능우리는 정치적 무능과 맹목그 안의 욕망·이중성 교정 필요온 몸으로 과제 수행하는 그에게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미래 좌우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던 사람이 그 나라의 규범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사실은 예외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G. 아감벤이 말하듯이 이 사건은 법률의 힘이 스스로를 무효화하면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예외상황일까. 아니면 그가 대표하던 국가와 그 구성원을 철저히 기만했기에 그 법의 이름으로 단죄 받는 지극히 정상적 상황일까. 어떤 경우라도 이런 상황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어떠한 통치 합리성이나 존립의 정당성도 보증 받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은 한국이란 국가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위해 반드시 해명해야할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국민 대다수가 그의 구속을 반기는 데 비해 반대로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하는 제일 야당에서는 공공연히 정치보복이란 주장을 펼치는 상황은 분명 분열적이며 이율배반적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정치가 한 공동체 내에서의 권력과 이해의 불가피한 상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라면 그 안에서 삶과 존재를 보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정치는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정치에서 배제되거나 초연해지길 강요받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정치가 과잉되거나 과소하게 재현된다. 정부수립 이후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모두 수감된 현실은 우리 정치의 역동성 못지않게 그 역기능과 이율배반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시금 우리는 우리 삶과 존재를 위해 국가 내의 정치적 상황을 면밀히, 과잉과 과소함을 넘어 정당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체계화해야한다. 그렇지 않을 때 이런 역기능과 이율배반은 점차 위기를 재생산하고 증폭시킬 것이다. 정치적 분열증이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런 해명과 재건설 작업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며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한 사회가 합의한 법과 법정신을 현저히 침해했을 경우 그가 누구든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적용되는 법이 법정신에 어긋난다면 아감벤이 말한 것처럼 법률이 정지됨으로써 법률적 힘이 달성되거나, 절차적 법은 지켜지지만 그 정신이 폐기되는 예외상태일 수밖에 없다. 정상국가를 위해서는 이 예외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삼성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면죄성 판결이나 MB의 구속은 그 개인의 치욕을 넘어 우리 사회와 국가의 정상성과 합리성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가 한 때 이 나라의 최고 통치자였기에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을 바쳐 우리의 정상성과 합리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준 것일지 모른다. 현재까지 나타난 그의 불의하고 부패한 정치적 행위는 마땅히 법의 이름으로 단죄되고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를 단순히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 사회의 예외상태는 지연될 뿐이다. 끝없는 자본과 사적 이익에의 욕망, 국가 통치 수단의 사익화는 물론, 생태계와 평화 상황을 파괴함으로써 초래한 생존 위기 문제 등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뒤에는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했고, 그가 통치했던 그 시간을 용납했던 우리들 내면의 욕망과 맹목적 정치의식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철저히 해명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의 과소와 과잉, 정치 맹목을 넘어 정치의 정당함과 합리성이 복원되어야 한다. 그의 부패와 불의, 그 파렴치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잘못만이 아니다. 그것을 용납하고 추종했던 우리들의 정치적 무능과 맹목, 그 안에 똬리를 틀고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불의한 욕망과 이중성에 대한 해명과 교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없이 공동체와 정치 위기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한 때의 최고 통치자가 자신의 몸을 바쳐 이 혹독한 정치적 성찰 과정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아무나 최고 통치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에게는 그에게 맞는 정치적 사명이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정치적 사명이 있다. 감옥 안에서, 혹은 감옥 밖에서 이 과제와 직면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적 과제이다. MB는 온 몸으로 이 정치적 과제의 수행을 외치고 있다. 그 외침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우리 공동체의 미래가 좌우된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3-25 신승환

[월요논단]6·13 선거와 출판기념회

신인들 정치입문 알리는 장점편법·부작용 불러오는 단점 존재이젠 선거비용 모금방식 바꿔야선거운동도 실현 가능한 공약희망 정책으로 관심 유도 필요우리 삶의 중요한 현안이기 때문'출판기념회'. 선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지역의 곳곳에서 다양한 후보들이 출판행사를 개최한다. 형식도 토크쇼에서 노래까지. 다채롭다. 예비후보들이 선거자금도 만들고, 선거운동도 함께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다 보니 현장은 항상 뜨겁다. 하지만 엄격해졌다는 선거법의 뒷문이라는 평가도, 편법과 부작용을 지적하는 비판도 있다. 출판행사를 하지 않고, 깨끗한 선거를 공언하는 후보자들도 있다.대학의 교과서도 안 팔리는 시대. 교수도 출판사도 책 간행을 꺼려하는 출판의 빙하기이다. 그런데도 선거와 연계되어 출판기념회가 성행하는 것은 특이한 정치적 현상이다. 물론 출판계로서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책은 본인이 직접 쓴 것인가. 개인사나 자화자찬을 책에 담아야 하나. 책에 담은 내용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현실에서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실천전략이나 예산은 검토해 본 것인가.구름같이 몰려든 행사장의 시민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정도면 적당한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켜보면 참가한 분들의 특이한 행동을 볼 수 있다. 방명록에 사인만하거나 후보자와 눈도장만 찍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세를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것 같은 대규모 시민들이 함께 입장하기도 한다. 물론 책을 구매할리 만무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판행사에서 기대이하의 참담한 성과를 거둔 후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현상은 대학가에서도 있었다. 과거 원로 교수님들의 회갑이나 정년퇴임식을 맞이하여 기념논문집을 발간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논문집의 발간과 호텔행사비용이었다. 90년대에도 몇 천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가족들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후학들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에서 각종 기념논문집이 안개처럼 사라진 것은 바로 그 비용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행사장에 오신 분들이 인사만하고 돌아갔다.책은 물론 음식도 그대로 남고, 비용청산이 골칫거리로 남겨졌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기념논문집에 정작 기념할만한 논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재탕이거나 그저 그런 수준의 논문인 경우도 많았다. 무겁고, 읽을 것이 없는 책이라는 것을 아는지라 그냥 드려도 받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보들이 건넨 책을 다시 본다. 회갑 기념논문집만도 못한 책도, 자신의 업적으로 가득한 책도 있다. 지역의 현안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잘 정리한 책도 있다.며칠 전 동료교수가 지역의 예비후보 책을 전해주었다. 책을 받고 보니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하지만 예비후보의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그 책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 기초자치단체의 주민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 지역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물론 그 지역의 분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같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현재의 선거용 출판기념회 행사에는 장단점이 있다. 특히 신인들에게는 정치입문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편법과 부작용 역시 존재한다. 각종 선거과정에서 출판기념회 행사가 언제까지 생명력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분명한 것은 회갑기념논문집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이다. 출판행사에 참가하는 특정 연령대와 직업군의 편중을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더 늦기 전에 후보자들의 선거비용 모금과 보전방식을 보완해야 한다. 동시에 SNS와 앱 그리고 정책보고서 등을 통한 선거운동 방식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가 90여일 남았다. 우리 지역의 후보자가 어떤 신념과 공약을 갖고 있는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실현가능한 공약인지. 미래의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정책인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후보자의 공약과 정책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현안들이기 때문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3-11 김민배

[월요논단]소중한 것을 지키는 용기

불길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이대로 사그라들까 걱정소중한 것 지키기 위해 용기있게"ME TOO, WITH YOU" 외쳐야우리들 외침이 법과 정책 바뀌고상처받은 사람들 치유될 수 있길요즈음 우리 사회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 운동(Me Too)'이 확산되면서 연일 언론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투 운동은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시작한 캠페인이다. 타라나 버크는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한 단체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SNS에서 "#Me Too"라는 문구를 쓰도록 제안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를 통해 제안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이런 세계적인 움직임 속에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 물결은 지난 1월 현직검사의 검찰 내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해서 문화계, 연예계, 종교계까지 퍼지고 있다. 미투 운동의 시작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듯, 성범죄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이미 만연되어 있는 문제이다. 사건이 폭로될 때마다 놀랍고 실망스러운 한편 이것 또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며 우리 사회 깊숙한 어둠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까지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성범죄 사건과 다른 점은 우리가 웬만하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시인, 유명 극단대표, 인기 배우, 호평을 받고 있는 사진작가 등이다. 각 조직에서 권력(權力)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전에는 성범죄라 하면 '가해자인 남성과 피해자인 여성'의 구도로만 보았으나 이번에 폭로된 사건들을 보면서 권력구조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기관인 검찰 내부에서의 상하 관계, 교수와 학생, 감독과 배우, 선배와 후배 등등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오랜 시간 망설이다가 폭로를 하게 되는데 권력 구조 안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가 입게 될 2차, 3차 피해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동안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관대했고 피해자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했다. 특히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별것 아닌 일로 유야무야 지나는 일이 많았다. 지난 달 2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성폭력에 대한 안이한 대응에 대해 질타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유엔측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 고소에 나서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도 고통 속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며 그림책 하나를 들여다본다. 그림책 '말해도 괜찮아(제시 글·그림/권수현 옮김/문학동네)'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비밀'을 지켜야 했고 이 모든 일이 아이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협박당했다. 이 그림책 속 피해 어린이는 다행히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상담사의 치료를 받았고, 가해자는 법이 적용되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끔찍한 성폭력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 용기를 내어 더 이상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말해도 괜찮아'로 'ME TOO, WITH YOU'를 외치고 있다.불길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이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이대로 사그라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만 세상을 바꾸는 미션을 홀로 떠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ME TOO, WITH YOU(미투, 위드 유-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를 외쳐야 한다. 미투 운동의 원래 목적대로 우리들의 외침을 통해 법과 정책이 바뀌고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될 수 있어야 하겠다./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3-04 최지혜

[월요논단]어떤 합리성인가?

이재용 부회장 353일만에 석방법의 합리성 정치·경제 이상 중요이 판결은 공동체 정당성 위해 진정 숙고해야할 문제 뭔지 질문그 대답따라 우리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와대발 국정 농단 사건으로 불거진 의혹은 마침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징역 12년 구형으로 이어졌다. 비록 1심 선고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최고 권력이 관여된 사건인 만큼 2심 선고가 어떻게 내려질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구형과는 확연히 다르게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면서 그는 구속 353일 만에 석방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25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파면 청원을 청와대에 올리기도 했다. 삼권이 분리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관의 판결을 행정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일을 했을 리는 없지만 그만큼 이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비해 주류 언론들은 대체로 이 판결을 환영하거나, 또는 한국 경제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기도 했다.평창 올림픽이 열리면서 이 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찰하고 분석해야할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 권력의 내적 연관성이다. 정치와 경제의 최고 권력이 어떻게 결탁되었으며, 그런 내밀한 결탁을 법은 어떻게 다루는지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이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민의에 의해 합의된 법체제이다. 그런데 그 법이 민주공화국의 근본 토대를 위협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법은 법체계와 그 절차의 합리성에 의해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외적인 타당성이 법의 전부일 수 있는가. 법적 정당성을 충족시켰다 하더라도 내적 합리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온갖 현란한 말로 판결을 정당화해도 반발이 심한 까닭은 그 내적 합리성을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법치의 정당성은 법이 지니는 외적 타당성을 넘어 법 정신과 원리에 상응할 때 달성된다. 그런데 그것이 법관의 개별적 정의관이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또는 조직의 논리에 따라 왜곡된다면 우리 사회의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무로 된 쇠가 있을 수 없듯이, 불의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이 정당성을 상실한 법은 법이 아니다. 나치도 법의 이름으로 죽음의 수용소를 운영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고심한 것은 법의 정당성일까, 정의일까 아니면 그 무엇이었을까.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이재용의 석방여부였다."사회철학자 A. 네그리는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된 제국이 되었다고 말한다. 제국 밖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제국은 정치와 경제가, 권력과 금권이 결합하여 통치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이 판결은, 이를 환영하는 주류언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법이 스스로 권력과 금력에 굴복할 때 그 법의 정당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민주공화국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권력과 금력에 종속된 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법을 독점한 이들의 자의에 따라 체제 자체가 흔들린다면 어떻게 민주공화국을, 정의와 공동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최고 권력과 최고 금력이 불의하게 결탁하고 이를 부당하게 합법화할 때, 어떻게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가 가능할까. 불의한 결탁은 소외와 억압을 낳는다. 법의 합리성은 정치, 경제의 합리성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또는 국가든 그것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합리성이 지켜져야 한다.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내적 합리성을 필요로 하듯이 사회나 국가도 이런 합리성을 필요로 한다. 민주공화국에 타당한 법적 합리성을 어떻게 일궈내야 하는 것일까. 이 판결은 우리 삶과 공동체의 정당성을 위해 진정 숙고해야할 문제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질문한다. 그 대답에 따라 우리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대답과 그에 따른 실천 없이 민주공화국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2-25 신승환

[월요논단]맏형으로서 남한의 역할

축제보다 평화 강조 '평창올림픽'남북 교류·협력·북미대화 성사땐한반도 위기 해소 될 수 있어이산가족 상봉·개성공단 등과제 실마리 찾을 수 있다는 뜻'북, 공존번영 길' 찾도록 이끌어야장형부모(長兄父母). 큰형의 지위는 부모와 같다. 맏형이 부모처럼 집안과 아랫사람을 돌보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형만 한 아우 없고, 아비를 넘을 수 있는 자식 없다'는 말에 담긴 뜻도 비슷하다. 하지만 유교적 유산이라는 비판을 넘어 요즘 시대에도 맞는가. 맏형이 과거처럼 가족의 서열순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국가를 맏형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금도 타당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맏형들이 대거 등장한 곳이 평창이다. 하지만 무례하다든가, 굴욕적이라는 상반된 시각이 넘쳐난다.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위원장은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상호무관심이라는 외교적 표현을 쓰면서까지. 아베 총리는 말 그대로 염장을 지르고 있다. 잔치 집에서 소금뿌리는 행태다. 러시아는 도핑파문으로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다.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폐막식에도 오지 않을 모양새다. 그러나 예외 없이 혈맹을 강조하는 성조기와 동포를 강조하는 한반도기가 평창에서 펄럭이고 있다.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다소 과장해보면 중국과 북한, 미국과 한국 관계는 형제로 볼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 미국과 중국이 맏형이라면 북한과 한국은 동생쯤 된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이라는 이복형제를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간의 갈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힘과 이익만이 판치는 국제질서에서 장유유서가 통할 수 없기 때문일까.최근 중국은 유엔을 내세워 북한을 강도 높게 제재하고 있다. 사드를 핑계로 시작된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도 풀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일종의 선제공격인 '코피 작전'을 거론하고 있다. 빅터 차의 낙마 이유가 코피작전에 대한 반대의 결과라면. 올림픽 이후 한반도 상황은 예측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제한적 공격일지라도 한반도는 파국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혈맹이라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트럼프의 시나리오. 수백만의 사상자는 물론 경제파탄은 불을 보듯 뻔하다.러시아와 일본은 미운 시누이 역할에 바쁘다. 끔찍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병상련의 처지에 한국과 북한만이 놓이게 됐다. 북핵문제에서 시작된 국제사회의 제재와 한반도의 위기가 '넘사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만큼이나 미국의 코피작전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자국 우선주의 앞에서 더 이상 선택의 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축제보다 평화를 강조하는 평창올림픽. 거기에는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여정이 특사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향후 남북한 관계의 극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가 진행된다면 위기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서해평화협력 지대 등의 과제가 실마리를 찾는다는 뜻이기도 하다.돌이켜 보면 남북한 간 관계는 미국이나 중국과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맏형이 부모다'라는 말에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엇나가는 형제가 있을수록 부모의 지위에서 맏형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한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이 아니라 남북한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존번영의 길을 찾도록 이끌고,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수평이면서도 때로는 수직관계인 형제. 맏형은 배려와 베풂을 다해야 하고, 동생은 존중과 이해를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되 결정이 내려지면 그에 따를 때 형제 관계가 유지된다. 욕심과 불신이 겹치면 남는 것은 파국이다. 가족과 대학 그리고 기업과 국가도 마찬가지다. 설이 다가온다. 조상 앞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우리시대에 걸 맞은 형제관계는 무엇인지. 시대가 요구하는 맏형의 올바른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다 함께 생각하는 명절이기를 기대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2-11 김민배

[월요논단]미세먼지와 우리의 역할

오염된 공기로 건강 걱정 만큼범 지구적 생각과 작은 실천 필요지금부터라도 한 그루 나무 심듯자동차 사용 줄이고 에너지 절약공장가동때 먼지 발생 줄인다면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리라최근 미세먼지 농도가 증가하면서 일기예보를 자주 보게 된다. 보통 일기예보를 보는 이유는 기온과 눈, 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으나 이제는 미세먼지 농도를 함께 체크하게 된다. 올해 벌써 4차례나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졌다. 실제로 느끼기에도 안개 낀 것처럼 뿌연 대기를 보면서 깜짝 놀란 날이 여러 번 있었다. 미세먼지와 함께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기 걸렸거나, 기관지 계통에 심한 병이 있는 사람들만 착용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요즘은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는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북쪽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행사건으로 내려온 어떤 인사는 말을 아끼면서 남쪽의 특이 풍경으로 마스크 착용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미세먼지는 사전의 뜻을 빌리자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먼지 입자로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1㎛=1천분의 1㎜) 이하의 먼지를 말한다. 주로 연료를 태우는 등 인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고 자연적인 발생물은 흙먼지나 꽃가루 등이 있다. 미세먼지는 호흡 과정에서 폐에 들어가 폐 기능을 저하시키고 면역기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세먼지 중 입자의 크기가 더 작은 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라 부른다. 초미세먼지는 머리카락 직경의 20∼30분의 1보다 작아 폐를 통해 혈액 속으로 들어와 온몸 전체를 돌아다닌다. 이로 인해 호흡기 질환은 물론 심혈관질환을 악화시키고 뇌졸중을 발생할 수도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전국의 지자서는 미세먼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저감 정책과 대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실시했고, 경기도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학교체육관 건립 예산' 문제로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그 외에도 관내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를 지원하기도 하고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각종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발암물질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인데, 이런 대책들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식인지,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찌되었든 앞 다투어 내놓는 대책들 덕분에 미세먼지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인지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차원에서의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 기대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미세먼지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국가적 차원의 대책과 규제에 기댈 수밖에 없는지 생각하다 보면 케냐의 여성 환경 운동가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여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초록 나무가 우산처럼 드리운 작은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케냐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고 점점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맑은 공기와 고갈되지 않는 샘솟는 물을 얻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한 그루 한 그루 심고 또 심었다. 한 사람의 노력은 점차 번져나가 검은 땅이 초록의 산이 되었다. '지구의 상처가 아물어야 우리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함께 껴안아야 합니다.'(나무들의 어머니-지네트 윈터 글·그림/미래아이 출판)우리들이 오염된 물이 걱정되어 집에 정수기를 들여 놓고, 오염된 공기가 걱정되어 공기청정기를 들여놓는다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물론 국가적 대책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미세먼지에 대해 걱정하고 우리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만큼 범지구적인 생각과 작은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왕가리 마타이처럼 지금부터라도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듯이 자동차 사용을 가급적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기업들의 공장가동시 철저한 시설로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는 실천을 해 나가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리라./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2-04 최지혜

[월요논단]예지몽

일본 제국주의의 반인륜적 폭력경제가 전부라는 개발독재의반민주·반인간적 겁박에 굴종우리의 무지와 비겁함이초래한 결과라고 회상한다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된다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싶은 인간의 희망이 예지몽이란 생각을 만들어냈다. 사실 우리 삶에서 내일 일어날 일을 오늘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지몽을 꾼다면 그래서 모두가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런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예지몽이 일어날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의 의미를 미리 감지하게 해준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 그에 따라 지금을 바꿀 수 있을 테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신경생물학 연구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의 기억 장치와 같지 않다. 사람은 지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이것을 마치 한글 프로그램의 '불러오기'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기억하는 현재에서 바라는 미래와 희망을 토대로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구성한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이 과거 사실을 조작하거나 있지도 않던 일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기억이 있는 사실을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조합해서 회상한다는 뜻이다. 그런 과정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라 한다.이렇게 본다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과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그 회상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미래의 희망과 바람이, 또 현재를 사는 우리 삶의 중요한 동기와 터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내일 주식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꿈은 불가능하지만, 내일 그 주식과 관련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려주는 꿈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철학에서도 회상을 매우 중요한 진리 인식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꿈과 회상은 현재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과거에의 해석이라고 말한다. 우리 역사는 지난 100여 년 사이의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구한말의 처참한 경험과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참혹한 고통은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최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그 고통이 현재진행형임을 잘 보여준다. 그에 덧붙여 분단과 전쟁의 고통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이념 대립으로 몰아가면서 식민시대의 고통 못지않은 아픔을 주고 있다. 개발독재 시대와 민주화 과정, IMF 구제 금융 사태 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역사가 아닌가. 그러니 역사를 회상하고 해명하는 작업은 그 역사적 경험을 추체험하고 이를 회상하는 현재의 해석이 중요하며, 그 안에는 철저히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의 바람이 자리한다.최근 <택시 운전사>, <1987> 따위의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지금 그 역사를 호명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 호명이 결코 자랑스러운 투쟁의 기억이거나 과거의 야만에 대한 눈물 어린 아픔, 또는 그 어떤 자괴감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사건을 호명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이 가야 할 미래를 꿈꾸면서, 지금 그 역사를 새롭게 회상하게 된다. 지난 시간 겪었던 야만과 고통이 제국주의와 독재권력, 경제가 전부라는 겁박에 굴종했던 우리의 무지와 비겁함이 초래한 결과였다면, 지금 그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불러옴으로써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야만과 폭력을 새롭게 회상해야 한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반인륜적 폭력이건, 개발독재의 반민주와 경제만능의 반인간적인 야만이건 그 어떤 것도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단이다. 그 결단에 따라 지난 역사를 회상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과 공동체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기억하고 회상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촛불 이후에도 이 폭력과 야만이 여전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를 잘못 회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가,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가./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18-01-28 신승환

[월요논단]반대로 하면 된다는 우리사회

정책 수립하는 고위 공무원이나정치인들은 성공한 사람들로삶 개척하는 방식 다를 수밖에규제와 엄벌이 아니라부작용 최소화 하면서 시장과국민들 도와주는 정책 시행해야"반대로 하면 된다". 법무부장관의 거래소 폐쇄발언으로 가상화폐는 검색뉴스 순위를 휩쓸고 있다. 20~30대의 분노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정부의 방침과 학교의 가르침 그리고 부모님의 삶과 반대로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댓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사회의 최근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자는 흐름이 우리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존의 관념에 기초한 정책들에 거부하고 있다는 징표다. 동시에 정부보다 앞선 사고의 표현이자 국민들의 행동방식이다.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들은 이미 붕괴되었다. 부모님의 기대처럼 공부를 잘해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고 바람직한 삶의 패턴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것을 꿈꾸던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린 지 오래다. 사오정이나 오륙도는 옛말이다. 아예 정규직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넘쳐 난다. 부모님과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공부도 하고, 착실히 살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바르게 살았던 사람보다 비합법과 불법적 수단을 통해 부를 추적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 왜 10대 청소년까지 가상화폐에 뛰어드는가. 당연히 어른들은 한탕주의가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실업이거나 비정규직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잣대, 좋은 직장을 평생 다닐 수 있다는 희망, 노후에 삶을 여유롭게 살수 있다는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세대들은 각종 제도와 규제정책이 만들어 놓은 틀에 분노한다. 그것들이야 말로 기성세대와 기득권을 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상화폐를 돈의 문제나 한탕주의로 보아 칼을 빼들기 전에 생각해봐야 한다. 청소년들까지 왜 교과서적 삶을 거부하는가. 일탈이든 한탕주의든 왜 기꺼이 감내하려고 하는가. 가상화폐는 청소년과 청년세대들이 가장 잘 아는 마켓이다. 가상화폐가 기존의 화폐시장을 흔들고,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화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국가를 뛰어넘는 가상화폐는 세금과 규제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체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국제간 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폐쇄로 대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섰다.가상화폐와 부동산 그리고 최저임금.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문제들이다. 정부는 부동산을 잡겠다고 했다. 그러나 강남불패, 서울사수는 지방을 더 멍들게 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와 인간다운 삶을 내걸고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해고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장관마다 나서 강력한 규제와 엄벌을 연이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방침과 반대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입안과 집행 방식은 교과서적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추어 정부에 학자 장관이라는 표현이 왜 나오는가. 세상의 흐름을 읽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공무원이나 정치인보다 앞서 움직인다. 격동의 시대를 산 기성세대는 경험칙으로, 젊은 세대는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인터넷과 SNS를 통해 꿰뚫어 보고 있다.가상화폐 폐쇄논란과 부동산 정책 혼선 그리고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규제위주 잣대로는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정부는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책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국민들이 묻고 있다. 정책을 수립하는 고위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말 그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잣대와 그렇지 않은 국민들이 삶을 개척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왜 나처럼 살지 않느냐고 법으로 다그칠 수 없다. 규제와 엄벌이 아니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시장과 국민들을 도와주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국민들이 당면한 현실적 삶은 춥고 어렵다. 국민들을 부패나 투기집단으로 매도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도덕적 결벽주의에 매몰되어 정책의 집행에서 유연성을 추구하지 않는 권위주의가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는 경험을 상기할 때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1-14 김민배

[월요논단]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를 맞이하며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언제나 마음가짐은 어렵지만수첩 첫 페이지에 적어두고내 마음을 재다짐 하는 것올해도 매 순간 처음처럼 맞자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7년이 지나갔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에 있었던 큰 사건으로는 광화문 사거리 일대가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로 밝혀졌었고, 시민의 힘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진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 후 바다 밑에서 절대 올라올 수 없을 듯이 갇혀있던 세월호도 뭍으로 쑥 올라왔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1980년 5월 18일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같은 날 태어난 한 여성이 아버지를 그리며 축사를 읊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고 함께 울었다. 문화계를 보자면 '방탄소년단'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5월에 미국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rd Music Awards)'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면서 승승장구 세계무대를 휩쓸고 있다. 이렇게 큰 사건들 외에도 우리들 각자 각자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일들로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2017년은 가고 무술년(戊戌年) 새 해 첫 달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육십간지의 35번째 해인 무술년으로 무(戊)는 황이고 술(戌)은 개를 상징하므로 황금개띠의 해이다.새 해를 시작하며 그림책 '문을 열어! (황동진 글.그림/낮은산)'를 펼쳐들었다. 다양한 문(門)들이 말을 건넨다. 오래된 문, 새로 갓 만든 문, 커다란 문, 작은 문, 열려 있는 문, 닫혀 있는 문, 조금 열려 있어 꼭 들어가 보고 싶은 문, 녹 슬어서 무섭게 닫혀 있는 문….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날들 같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서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낯선 문 앞에 서서 지금은 알 수 없는 문 뒤에 있을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지만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어. 문은 안과 밖을 나누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거지. 문밖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구절을 가만히 읽어보면서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의 문 앞에 서 있다. 새 달력을 걸고 새 수첩도 마련하고 새해에는 어떻게 지낼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 다짐을 해본다. 새 수첩에 주소록을 정리할 때 이제는 이 세상에 없어서 적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수첩을 새로 바꾸면서 매년 내 수첩의 첫 장에 적는 글귀가 있다. 신영복선생의 '처음처럼'의 글귀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언제나 처음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수첩 첫 페이지에 적어두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재다짐 하는 것이다. 올 한해는 매 순간을 설렘으로 늘 처음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자./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2018-01-07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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