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우리 시대의 자랑스러운 영웅들

[경인일보=]대~한민국! 짝짝 짝짜짝!!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아시아 45개국에서 1만4천500여명의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여 42개 종목에서 464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틀 전 한국 남녀 골프 대표팀은 골프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 4개를 모두 휩쓸었다. 고등학생인 김민휘와 김현수가 남녀 개인전에서 우승하여 2관왕이 되었다. 단체전에서 한국 남자는 최종 합계 22언더파로 인도를 무려 32타차 앞섰고 여자 대표팀도 최종 합계 16언더파로 2위 중국을 11타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단은 이렇게 압도적 우세를 보이며 골프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였다.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높이고 있는 운동은 골프다. 국내에서는 골프가 이런저런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2016년부터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다. 전남 완도 출신 촌사람 최경주 선수는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프로골프(PGA)에 도전하여 골프 한국의 선구자로서 길을 뚫었다. 그의 도전 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 PGA 투어 7회, 유럽 투어 1회, 아시아 및 일본 투어 6회 등 14차례 우승을 했으며 이제껏 상금으로만 2천200만달러를 벌었다. 그는 3년 전부터는 자신의 꿈이었던 '최경주재단'을 설립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양용은 선수는 2006년 11월 유럽 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기고 우승했다. 2009년 8월 17일 제91회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역전 우승하며 아시아 남자 골프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타이거 우즈는 지금까지 메이저대회에서만 14승을 올렸는데 특히 3라운드 이후에 선두로 나섰던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양용은은 이런 역전 불패 우즈를 맞아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당당한 플레이로 전세계 골프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호랑이 조련사(Tiger Tamer)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필자가 근무하던 홍콩의 유력 영자신문 South China Morning Post는 바로 다음날 1면에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양용은 선수가 마지막 홀에서 버디 퍼팅에 성공하여 챔피언이 되어 환호하고 타이거 우즈가 고개 숙이고 있는 극적인 사진이었다. 또 '아시아와 위대함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승리'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양용은 선수가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전 아시아와 함께 축하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한국의 여자 골프 선수들은 이미 골프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음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남녀 선수들이 지금 정점에 다다른 것은 기념비적인 성과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지금도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동적인 사설이었다.박세리 선수는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데뷔한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 두 개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여 세계적인 골프 스타로 떠올랐다. 그녀는 '박세리 키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골프 붐을 일으켰으며 한국 여자 선수들이 미국과 일본 여자 프로골프 투어에 대거 진출하여 성공을 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신지애 선수는 현재 세계 랭킹 1위이며 최나연 선수는 LPGA 투어에서 상금과 최저타수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자 골프 세계랭킹 톱 10중 5명이 한국(계) 선수들이다.경기도 출신 얼짱 골퍼 최나연은 얼마 전 경기도가 운영하는 무한돌봄사업기금으로 대회상금 3천만원을 기탁했다. 김인경 선수는 지난 주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상금으로 받은 22만달러 전액을 자선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밖에도 많은 운동 선수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어 우리 사회를 보살피며 나누는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 남녀 골프선수와 함께 박찬호, 추신수, 박지성, 박주영, 김연아 선수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해외에서 높이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영웅들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2010-11-21 석동연

교육자치의 발전방향

[경인일보=]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교육감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한지 몇 달이 지났다. 무상급식실시, 학생체벌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민감한 선거공약의 내용과 당선된 교육감들의 성향을 보면서 당시 우려하였던 일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어 걱정이 된다. 교육감들이 선거공약의 이행과 자신의 교육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지방교육정책을 바꾸고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대립하거나 지방자치 영역과 의견이 충돌하는 일도 발생되고 있다. 교육감의 새로운 정책에 대해 교육계 내부에서도 이견 조정이 쉽지 않아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으며, 교육감을 직접 선출한 주민이나 이를 지켜본 관련기관과 언론 등에서도 새로운 교육감 선출방식의 적합성에 대해 주목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교육감 주민직선제 선출과 더불어 교육위원회의 시·도의회로의 일원화 등 교육자치제도의 변화가 새롭게 시행되는 초기단계에서 성급하게 주요 문제에 대한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변화에 따른 민주화, 분권화, 지방화, 세계화, 경쟁의 가속화 등의 영향으로 교육에 관한 국민의 인식과 욕구가 많이 달라지고 있고 함께 협력해야할 지방자치부문에서도 지역경제와 주민복지 못지 않게 지역교육을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교육수요자는 이제 양적 만족이 아닌 교육의 질을 따지고 있어 이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교육발전이 지체되고 교육자치도 더 큰 위기를 맞게될 우려가 있다.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교육 부문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학진학률이 84%를 상회하고 있어 교육의 기회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으나 자녀를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여 과열화의 양상마저 띠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행태는 전인교육의 어려움과 공교육의 위축, 사교육의 열풍과 학부모의 부담 증가, 조기유학의 증가,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 초래와 정부에 대한 불신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최근 교육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비교육적인 각종 사건들로 인해 교육계를 보는 사회일반의 시각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교육영역에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이 있다는 얘기다. 국민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현시키기는 누가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교육환경도 마찬가지이며 국민의 교육에 대한 욕구는 다양하게 분출되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역간 교육경쟁도 불가피해졌다. 따라서 지방자치부문이나 교육자치부문이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와 교육서비스를 시대변화에 알맞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인사나 기관이 보다 큰 틀에서 현안문제를 생각하고 소통하며 상생의 자세로 풀어가야 한다. 특히 교육선진화를 위해 교육대상자와 학교현장을 중심에 두고 기득권 유지보다는 교육의 발전을 우선해야 교육자치가 제 역할을 다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 대한 개념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공급자 위주에서 사용자 위주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교육에도 상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학생과 학부모, 고용주 등에 대해 교육소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육자치영역에서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시대상황에 알맞은 변화의 결과를 지역주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이제 교육계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교육발전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지방자치부문에서도 지역교육의 발전이 지역주민 모두의 공동목표이므로 조직의 영역을 떠나 지역교육의 발전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장을 비롯한 교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칠 수 있도록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주민의 이해와 협조도 필요하다. 지방행정조직의 변화가 어려운 것처럼 교육부문의 변화도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을 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지방화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교육의 질이 향상되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다.

2010-11-15 이기우

시간강사와 지식사회의 그늘

[경인일보=]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신자유주의가 삶의 원리로 자리 잡을수록 사회의 소외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것은 '비인간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만능의 열쇠'라도 되는 듯 경쟁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경쟁에서 도태되는 다수 구성원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비정함 또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더구나 경쟁의 필수 전제조건이라 할 '공정함'의 결여에 대하여 애써 눈 감고 있는 의식의 원시성은 언필칭 '선진국 진입'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 건'일 수밖에 없다.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최근에야 공론화되기 시작한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소외와 관련된 우리 시대의 약점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기의 뇌관이라 할 수 있다. 매주 정해진 시간만 강의하고 일정액수의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 전임 교수 아닌 지식인들이 바로 시간강사다. 말하자면 그들은 노동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의 노동시장에서 선택되지 않으면 그날 하루 일당을 벌 수 없듯이, 강사들은 학기 초에 대학 혹은 학과로부터 선택되지 않으면 그 학기의 수입은 없다. 하루와 한 학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일용직 근로자와 강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다.일용직 근로자들의 삶을 국가가 책임질 수 없듯이 학기 단위로 살림을 꾸려나갈 강사들의 삶 또한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형식 논리로 친다면야 그런 말도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 자체가 정책의 오류로부터 비롯되었거나, 적절한 방안만 강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대학이나 지식사회 혹은 학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은 국가의 학문정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정부가 그런 학문정책을 세우기 위해 선진국 대학들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왔다면 그런 나라들이 강사들에 대하여 어떤 처우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사를 포함한 국가의 인재들을 세밀히 관리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그러나 그동안 '학문진작'이란 명분으로 쏟아부은 천문학적 재원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는가, 그런 정책들은 과연 그렇게 다급했으며 합목적적이었는지 등을 돌이켜 본다면, 그런 일들이 '강사들의 현안해결'보다 우선적인 것이었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학문정책의 중요도나 시급성에서 선후관계를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처가 곪아 터져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지금에서야 겨우 대책을 내놓는 관련부서의 무심함이 답답할 뿐이다. 현실로 닥친 생활고와 암담한 미래 때문에 목숨을 끊는 강사들이 속출하고, 3년이 넘도록 천막 속에서 농성하는 강사를 보고 나서야 이 땅의 교육 당국은 겨우 움직이는 시늉 정도를 보여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대책 또한 '격화소양(隔靴搔양)'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니, 더욱 답답하다.강사는 누구인가. 대학, 대학원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학문을 연마해온 해당 분야의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들이면서, 지금까지 그들은 전문성이나 실력보다는 '시간강사'라는 '품위 없는 용어'로 통칭되기 일쑤였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전임교수들이 강사를 거친 사람들이며, 현재의 강사들은 전임교수로 대학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는 지식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쉽게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그래 왔듯이 조금만 고생하면 전임의 대열에 합류할 것 아닌가'라는 속 편한 계산으로 우리 사회는 그들의 요구를 철저히 뒷전으로 미루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40%에 육박하는 대학 강의를 이들이 맡고 있으며, 모든 학회들에 집행부 혹은 회원으로 참여하여 학회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 역할을 이들이 맡고 있다. 강의와 연구라는 한국 지식사회의 두 축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기약도 없는 '교수사회에 진입할 날'을 무작정 기다리며 참고 있으라는 말만 건넬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가 힘을 합쳐 더 늦기 전에 이들부터 구해야 한다.

2010-11-08 조규익

배움이 무엇인고 하니…

[경인일보=]"하루 공부한다고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작고한 소설가 이윤기가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스리 살짝 패러디한 문장이다. 너무 감동적인 문장이라 혼자 읽기 아까워 내 강의 수강생을 위해 전자 강의 노트에 올려놓았다. 클릭수가 꽤나 되었지만 아차 싶었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수준은 아니지만 젊은이들 사고 주파수에 통 맞지 않는 고답적인 교훈조의 발언임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동틀 녘 즈음하여 집 뜰의 낙엽을 쓸면서 도대체 공부는 무엇 하러 하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나는 아닌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한 객관적 징후가 농후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순진한 열정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그야말로 학문이 '학문'이 아니라 '직업'이 되었다. 취업 스펙 쌓으려고 (내가 보기에) 별로 쓸데없는 토익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승진 논문점수 고려하여 편수 늘리는 교수나 뭐가 그리 다른가?한데 정년을 보장받는 운 좋은 반열에 들어서게 되어 학문의 호구지책 인센티브가 줄게 되자 공부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깨닫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때로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라는 공자 말씀 근처를 때때로 서성이는 시간이 늘었다는 말이다.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문구에 혹하는 늦바람이 난 것이다. 그러나 공자 수준 근처에도 못가니 깨닫는 과정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봄 뜰의 풀과 같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내가 무엇을 아는지 알 수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그러다보면 철밥통의 편안한 유혹이 손짓한다. 학문의 바다에 논문이라는 물 한 방울 떨어뜨려보았자 티도 안 나는 것을 알게 되니 학문적 글쓰기 대신 신문에 신변잡기를 무슨 대단한 성찰이나 한 것처럼 쓰게 되고 (어험! 웬 헛기침 소리인가?) 좀 더 용감하면 정치판을 기웃거리게 된다. 정치판 가서는 학자 티내고 대학에 와서는 정치인 흉내 내는 최악의 주객전도가 나타나게 된다. 배움이 밥벌이에서 벗어나서도 깨닫는 즐거움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과정이다.나보다 10여년 정도 아래인 연하(年下) 친구 윤 누구는 소소한 농업, 건설 기계수리 전문점 일인 사장이다. 내가 내 정원의 황제 겸 노예이듯 그도 가게의 사장 겸 직원이다. 자칭 타칭 '(경기도)광주의 맥가이버'인 그는 가져만 가면 못 고치는 것이 없다. 수도권 주변 시골 생활 12년차인 내가 그와 친구관계가 된 연유이다. 얼마 전 친구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기름 때 절은 작업실 한 켠에 지금은 보기도 힘든 LP 레코드판이 꽤나 수북이 꽂혀 있다. 돈 좀 모이면 자신이 디스크 재키가 되어 멋진 음악다방 여는 것이 오랜 소망이란다. 언젠가 이루어질 꿈을 위하여 그는 사십대 중반을 살짝 넘긴 나이에 영어 학원에 다닌다. 한 젊은 시절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지른 팝송을 이해하고 싶어서란다. 그 놈의 꼬부랑 말만 더 잘 알아들으면 아무래도 더 멋진 DJ가 될 것 같단다. 이리하야 윤 모 사장은 봄 뜰의 풀 수준을 넘어 '때로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고 공부해서 밥 벌어 먹고 산다는 내게 온 몸으로 훈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수강생이 몇 달이나 자기 혼자라 월세도 못 내겠다고 사정하며 강좌를 접은 소도시 변두리 영어 학원 사장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야속할 따름이다.

2010-10-31 강명구

중국의 부상과 기회

[경인일보=]욱일승천하는 중국의 위세가 대단하다. 마침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앞질러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은 금년 4~6월간 GDP에서 중국이 일본을 능가했음을 발표하였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2030년 무렵이면 GDP상으로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달 센카쿠 열도 부근 해상충돌로 촉발된 중·일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은 일본의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역 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의 대폭 평가 절상을 요구해 왔는데 중국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여년 동안 덩샤오핑의 외교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를 지켜오면서 조용한 외교정책을 구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 정치·경제 무대에서 갈수록 대담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손사래를 치지만 우리는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이끌고 있는 G2 시대에 살고 있다.중국은 1978년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지도하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30여년 동안 연평균 9.9%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가히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78년 95억 달러 수준이던 수출은 매년 1조4천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 제1위의 무역대국이 되었다. 2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으며 8천500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이 큰소리를 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이 되었다. 중국은 2009년에 전년보다 무려 46% 증가한 1천365만대의 자동차 판매량을 기록해 미국을 앞지르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 되었는데 올해는 2천만대의 판매량이 예상되고 있다. 1949년 35세에 불과하던 평균수명은 73세로 늘었고 농촌빈곤인구는 2억5천만명에서 1천400만명으로 감소되었다. 또 1949년부터 1978년까지 30년간 외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20만명에 불과하였으나 작년 한해동안 4천500만명이 외국을 방문하여 중국 관광객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완벽한 개최와 선조우(神舟) 7호 유인우주선의 성공적인 발사를 통해 중국의 막강한 종합국력과 첨단과학기술의 면모를 전세계에 과시하였다. 상하이 세계박람회도 중국의 드높은 위상을 7천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금년도 국제관계 10대뉴스에 아마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중·일 영유권 분쟁이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 분쟁은 동아시아의 외교지형을 바꾸고 있다. 일본이 지난달 7일 센카쿠 인근 수역에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간 충돌혐의로 중국어선 선장을 구속한 후부터 중국은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계속 높였다. 결국 일본은 중국의 강압 외교에 굴복하여 중국어선 선장을 석방하였다. 청나라는 1895년 청일전쟁 참패후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과 함께 댜오위다오를 일본에 넘겨주어야했다. 중국인은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아직 청산하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의 우리의 대중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가 늘었고 금년 한중 양국 교역액은 1천7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한국의 제2, 제3 무역상대국인 일본과 미국을 합한 것보다 큰 규모이다. 중국대륙에서만 작년 한해동안 32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한중관계는 천안함 사건 처리 등을 둘러싸고 비바람을 겪었다. 항상 날씨가 쾌청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고 앞으로도 비바람이 있겠지만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중관계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큰 틀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중국의 부상을 기회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외교전략을 보다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이를 수행하는 체제를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통상부 중국과 직원이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이제껏 8명 수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번에 과를 두 개로 늘린다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잘 되기를 바란다.

2010-10-25 석동연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경인일보=]풀뿌리 민주주의가 다시 시작된 지 20여년 가까이 되고 있다. 이제는 지방분권도 많은 진척이 이루어지고 주민자치가 활성화되면서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지방자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시·도 광역자치단체와 광역의회, 그리고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를 중심으로 한 지방행정을 먼저 떠올리거나 이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에 의한 지역자치의 대상사무로 교육에 관한 규정이 정해져 있으며,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할 수 있는 규정에 의해 영역자치로서 교육자치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교육자치제도는 교육행정 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와 통제를 통해 지방자치의 틀 안에서 교육의 전문성 및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의 대표기구가 교육 관련 전문 인력을 활용하여 지역적 성격을 지닌 교육사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제도이다. 지방화 시대의 중심축인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동반자적 관계로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교육감은 교육·학예에 관한 의안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의안을 시·도의회에 제출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시·도지사와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시·도교육청은 '지방재정법'에 의해 교육비특별회계를 따로 편성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수입 외에 정부로부터의 보통교부금과 특별교부금,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교육재정 지원금을 주요 세입원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시·도지사의 교육부문에 대한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교육은 모든 국민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며 사실상 우리 자녀들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창조화의 시대적 흐름속에서 교육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따라 교육정책의 내용과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지방화시대를 맞아 교육부문에 있어서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하던 업무의 상당부분을 시·도교육청을 비롯한 지방교육자치 부문으로 이양하였다. 지역에 따라 교육 과정과 교육행정이 다르게 운영될 수 있고 교육의 질과 성과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교육부문에도 지방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화시대에서 지역주민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의 질을 계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에 필요한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재정의 확보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육재정에서 등록금 등 자체 충당 세입의 비중이 매우 낮아 대부분의 재원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고 있어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자립도가 낮거나 두 기관의 협력 정도가 낮은 경우 지역교육의 예산 확보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나 지역에 따라 상호 협력의 정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 부문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교육자치의 부문에서는 자주성과 전문성을 강조함으로써 협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제 교육감도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로 바뀌었고 교육재정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하는 시·도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선거 과정에서 교육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반면에 교육자치단체의 장인 교육감은 정당에 소속될 수 없으나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도지사와 교육감간에 정치적 또는 이념적 성향이 다를 경우 교육 문제를 둘러싼 마찰로 협조가 아닌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시·도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직접 선출해야 하는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교육의 발전을 위해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내용과 변화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합리적인 발전 방향도 함께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방화시대에서는 지방자치를 대표하는 시·도지사와 교육자치를 대표하는 교육감과의 협력적 관계 유지 정도와 지역주민의 관심과 협조 정도가 지역교육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차제에 교육자치제도와 교육감 선출방법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10-10-17 이기우

'노벨상' 강박증

[경인일보=]2010년 10월 7일 오후 8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각이었다. 며칠 전부터 언론 매체들이 고은(高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확신하는듯 떠들썩하게 기대치를 높여왔던 만큼, 사람들은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흡사 고 시인의 노벨상 수상이 민족적 '비원(悲願)'이라도 된다는 듯, 사람들은 그 시각이 가까워지자 입을 모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해 역시 그 예측은 빗나갔고, 기원은 허사로 돌아갔다. 다시 기다려야 할 1년을 지루하게 느끼며 사람들은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접어둔 채 조용해졌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 화학 분야에서 공동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의 표현대로 '민족적 모욕'에 견줄만한 일이 벌어졌으므로, 우리는 쓰라린 가슴을 접어 눌러야 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만 해도 일본은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들 모두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우리가 물리학이나 화학, 생리학, 의학, 경제학 등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겨우 문학 분야 하나에만 목을 매다시피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미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겐자브로(1994년) 등 두 명이 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기초과학과 평화상까지 합하면 총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간 해온 방식대로 올해도 몇몇 언론매체들은 일본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는데서 원인을 찾아 제시하는 것으로 전 국민적 실망감을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분석은 이유가 궁금한 대중들의 갈증을 우선 풀어줄 '한 컵의 물'일 뿐이다. 좀더 근본적인 요구는 국가 차원의 정책과 실천일텐데, 국가나 국민 모두 아마추어리즘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우리의 한계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노벨상 보기를 집중적으로 대표선수 몇 명 길러 금메달을 따내는 올림픽 대하듯 한다. 사실 '올림픽의 금메달'이 스포츠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속에서 즐기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다. 지난 시절 사회주의권 국가들이나 저개발 국가들에서 특정 분야의 뛰어난 선수들만을 돈 들여 키우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이 성행했는데, 그것은 체육 인구의 저변 확대를 통한 선수 육성이라는 본질과 거리가 멀다. 당분간 금메달은 따오겠지만, 그것으로 그 나라의 총체적인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의 분석과 처방을 거치지 않고, 특정 분야 특정 선수 한 두 사람에게 노벨상을 받아올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대책없는 노벨상 기대심리'는 오히려 '엘리트 체육'보다도 못한 셈이다. 설사 내년에 고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탄다 해도, 후속 수상자의 배출은 다시 '요행'이나 '기적'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 시인급(級)의 '잠재적 노벨상 수상 후보자들' 수십 혹은 수백 명이 우글거리도록 만들자면 길게 보고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문학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다양한 외국의 인재들을 불러다 제대로 된 우리 문학의 번역자로 키워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려면 지금과 같은 교육과 학문의 토양을 완벽하게 바꾸는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자면 많은 시일과 돈이 필요할 것이니, 상당 기간 우리는 노벨상의 존재를 잊어야 한다. 투자와 노력도 안하면서 노벨상에 모든 것을 거는듯한 행위는 국가적 차원의 '파렴치'일 뿐이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우리 노력의 부산물이어야 한다. '문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더라'는 말이 정답이다. 문학이든 기초과학이든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다. 1964년 프랑스의 문호 장 폴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노벨문학상이 아니라도 자신의 문학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그는 견지했을 것이고, 또 사실이 그렇다. 수준 높은 문학과 학문을 가꾸어 나가고, 그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을 높여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노벨상 강박증'을 극복할 수 있다.

2010-10-11 조규익

이윤기로부터 배운 말과 민주주의

[경인일보=]내 기억에 한 사 오 년 전이었다.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그의 짧은 에세이를 읽고는 단박에 반하여 버렸다. 품격 있는 문체에 배어나는 은근한 해학이란! 한 달여 전인 지난 8월 27일 63세라는 너무 이른 연배에 이윤기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사람 중의 하나, 뛰어난 번역가이자 그리스 신화 해설가, 그리고 소설가이기에 앞서 그는 나에게 잘 익은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로 다가온다. 부음을 접하고 집 문에 조기를 다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빌려 늦은 밤까지 읽었다. 역시 내 가슴 속으로 깊은 강물이 흘렀다. 그 유장한 물굽이에 한 도막 생각을 실어 흘러가보기로 하자. 유신의 칼날이 서슬 퍼렇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학교 정문에 탱크가 진을 치고 총검을 꽂은 군인들이 보초 서던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살벌하였던 기억은 아직도 내 영혼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무수한 젊은 피를 거름삼아 이제 더 이상 정치적 혼란이 군사쿠데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우를 하지 않는 시대를 누리고 있다. 누구 말대로 민주주의가 우리네 정치의 유일한 게임 규칙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향기를 맡기 쉽지 않다. 이윤기의 글을 읽다가 그 연유의 한 자락을 찾아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람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그런 갈등을 힘이 아닌 말로 해결하는 보편적 방식의 추구가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특히 한국처럼 갈등의 다양한 국면이 폭발적으로 내장된 사회에서는 말의 쓰임새가 특히 중요하다. 남북문제가 그렇고 지역문제가 그렇고 점점 더해가는 계층 간 격차문제가 그러하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세대 간의 문제까지 더해졌다. 대화하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깊으니 옅어지는 것은 관용의 정신이요 더해가는 것은 성마른 조바심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을 이윤기의 거울에 비추면 비례(非禮)의 언사로 되비침 될 것이다. 왕왕 이념대립의 실체는 알맹이 빈약한 막말 경쟁이라는 것이다.이윤기가 선호하는 입말(口語)의 핵심은 Be More, Seem Less라는 명령문에 들어 있다. '보기보다는 큰 놈이 되어라' 정도로 해석 가능한 이 문구는 '무겁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볍게 말하고, 똑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에둘러 말해야한다'로 전환 가능하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는 은근한 겸양의 미덕과 그에 기댄 튼실한 내용 전달이 입말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한 평론가가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끼는 대신 "나란히 서서 걷는 두 사람의 손등이 계속 스치듯 조짐을 형성"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대립각을 세운 상대에게 내질러 답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소통은 거기서 멈춘다. 화끈한 우리네 민심이 그렇고 이런 성깔을 이용한 정치 마케팅이 국회에서 판을 친다. 저녁 뉴스 시간에 어쩌다 듣는 북한 아나운서의 언사는 우리네 국회보다 몇 수 더하다. 10대 종손이며 비기독교도인 나는 아버님이 개종 후 예배와 찬송으로 주관하시는 제사며 추석상이 내심 마뜩찮다. 그럴 때는 이렇게 여쭈어야하지 않겠는가? "아버님, 작년 시제(時祭)때 유세차(維歲次)… 하시던 축문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 문장에 비하면 저는 초등생도 못됩니다." 아버님이 이렇게 답하실 것이다. "아비야. 나는 네 찬송가 소리도 듣기 좋더구나." 가정에서건 나라에서건 민주주의는 이념에 앞서 말하는 예의로부터 시작된다. 말로 싸워야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생의 영전에 재배하며 서툰 그곳 말투로 한 말씀 드린다. 우야 이리도 서둘러 가시니껴? 너무도 서운 하니더.

2010-10-03 강명구

GTX의 꿈이 익어간다

[경인일보=]마침내 GTX(Great Train eXpress: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이 추진되게 되었다. 경기도가 이 사업을 정부에 제안한 지 1년반 만에 이루어진 쾌거이다. 정부는 지난 9월 1일 KTX 고속철도망 구축 전략을 발표하면서 거점도시권내 광역·급행 교통망 정비를 위해 GTX를 지자체의 주도적 참여로 지역 실정에 맞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경기도가 제안한 GTX란 명칭 자체도 사용 안했는데 이번에 제도·행정·재정 측면에서 GTX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서비스 확대와 사업성 제고를 위해 KTX와 선로를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발표는 GTX 사업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 확정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경기도가 제안한 GTX 사업은 지하 40~60m에서 시속 100㎞로 달리는 광역급행철도를 3개 노선 즉 킨텍스~동탄(74.8㎞), 송도~청량리(49.9㎞), 의정부~금정(49.3㎞) 총 174㎞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킨텍스~동탄 구간의 경우 KTX 공용구간(수서~동탄)을 빼면 46.3㎞다. 이 사업의 배경은 이렇다. 신도시 건설 등으로 수도권이 광역화되면서 자동차 교통량이 늘고 이에 따라 대기 오염과 교통난이 심화되었다. 수도권 전철의 통행시간이 승용차보다 훨씬 더 걸려 승용차 통행량이 계속 늘고 있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승용차로 가면 35분이 걸리는데 전철로는 78분이 걸린다. 평균적으로 전철의 소요시간이 승용차의 두 배 반에 이른다. 광역교통 수송분담 구조를 보면 승용차가 42%가 넘는데 반해 철도는 16%에 머물고 있다. 교통혼잡비용이 매년 5.2% 증가하고 있는데 2007년의 경우 수도권에서만 14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교통난 해소, 대기 오염 개선, 수도권 경쟁력 강화 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혁명적 아이디어가 GTX 사업이다. GTX가 개통되면 동탄~삼성역은 67분에서 19분으로, 일산~서울역은 42분에서 16분으로 운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GTX 건설은 연간 교통혼잡비용 7천억원 절감, 생산유발효과 27조원, 고용유발효과 26만명, 연간 에너지소비 5천846억원 절감 등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수도권 도로교통량이 1일 38만대 감소되어 연간 149만t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경기도는 더 나아가 GTX뿐만 아니라 신분당선과 수인선 등 광역철도망 구축, 일반철도와 수도권 고속철도 건설, 그리고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각 철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연계교통망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그야말로 철도천국이라 할 만하다.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인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난 9월 14일 방한했다. 공항에서 바로 수원 화성행궁에 와서 김문수 지사와 함께 경기도와 캘리포니아주간 우호협력 양해각서에 서명을 하고 이튿날 고속철도인 KTX를 시승했다. 총 1천250㎞에 이르는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건설 계획에 참여코자 하는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수준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고속철도를 확충하고 있다. 세계는 거대지역권(mega region) 중심으로 대도시(mega city)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 창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속교통망 연결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 미국, 중국, 일본 등 국가간 경쟁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며 뉴욕, 상하이, 도쿄 등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도시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경기도의 GTX 건설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1일 생활권 범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수도권 주민들에게 쾌적한 교통·녹색환경을 제공하고 주택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게 된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도권 건설을 통해 세계 무한경쟁 시대에 적극 대응해 나가고 세계 최고의 광역급행 철도 기술과 수출 역량을 확보하게 될 계기를 마련하였다. '세계속의 경기도' 란 구호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2010-09-27 경인일보

학생체벌

[경인일보=]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9월부터 학생체벌을 전면 금지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이번 결정을 학생의 인권침해, 최근 학생폭행사례, 선진국의 경우 등과 관련지어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지난 6·2 지방선거에 당선된 신임교육감의 전격적인 지시에 의해 갑작스럽게 시행됨으로써 교사와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계 안팎에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이 문제는 현행 법적 규정과 충돌되고 정책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와도 사전 협의가 없었으며 소위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6명의 교육감이 포진하고 있어 앞으로 정부와 다른 시·도지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현재 초·중·고등학교에 자녀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 세대 이전에는 체벌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가 크게 반발하거나 문제 삼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 학생체벌의 사례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음에도 사소한 경우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문제가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이다. 학생체벌은 행하는 교사나 당하는 학생이나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교육적으로 학생체벌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학생은 이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그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다.그래서 관련법령에서는 학생지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훈육·훈계 등의 방법을 행하고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체벌의 방법도 적정한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하며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될 수 있고 과도한 체벌은 폭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상 학생에게 물리적으로 과도한 고통이나 상해를 유발하거나 정신적으로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할 경우 오히려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반감되고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민주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부모가 하나 또는 둘밖에 없는 자녀를 무제한적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세태 속에서 교단의 상황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달라졌다. 군사부일체라는 용어가 생소할 정도로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존경심은 엷어졌고, 말썽을 부리는 학생에게 훈육과 훈계를 통한 적정한 제어나 지도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부모의 세대에서 교사는 대부분의 학부모보다 고학력자였고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학력사회에다 정보화사회인 덕분에 교육에 관한한 모두가 전문가처럼 되어있는 분위기다. 그만큼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학생체벌금지는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체벌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 학생에 대해 체벌 대신 취하는 조치가 매우 엄격하다. 교칙을 위반하거나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줄 경우, 학부모를 소환하고, 정학처리, 낙제처리, 일정시간 격리 등의 조치를 하며, 심한 경우 경찰이 개입하거나 학부모가 고발당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문제를 야기하는 학생에 대해 체벌 예방을 위한 단계별 대응조치에 따라 성찰교실 격리, 생활평점제 운영, 학생자치법정 운영, 봉사명령, 학부모 면담 등 체벌 대체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체벌 대체프로그램을 실시할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제도적 안정이 우선되는 교육의 장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다. 선(線)이 분명하고 법과 규칙의 적용이 엄격한 선진국과 인정을 중요시하는 우리와는 문화와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체벌금지에 따른 교실붕괴를 염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교육적인 체벌과 일부교사의 폭력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비교육적인 과도한 체벌이나 폭력행위가 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징계 또는 처벌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학생체벌금지에 관한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기본계획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될까 두렵다. 인천지역도 학생체벌문제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회적 합의이다.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여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교육이 한층 더 성숙되고 선진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0-09-19 이기우

대학평가의 금도(襟度)

[경인일보=]평가란 '비교나 판단에 의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비교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견주어 서로간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히는 일'이며, 판단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일'이다. 따라서 평가 즉 비교나 판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한데, 자료에는 수치상으로 표시된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자료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어서 사회적 공준(公準)에 부합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 대학평가가 이루어져 왔고, 그것들이 대학가에 미치는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미했던 것은 한국 지식사회의 무기력증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일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혐은 있으나, 일이 바로잡힐 단초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평가 결과 비교적 상위에 속하는 대학의 교수들이 비판대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한국 지식사회의 건강도가 아직 비관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합목적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疑懼)에 있다. 대학은 왜 평가받아야 하며 대학평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의 척도는 공정하며 평가자들은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 등등 이 시점에서 대학평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긴요하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적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대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평가라는 점,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국민들 특히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대학의 실상이나 순위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결과에 대하여 많은 대학들이 승복하지 않는다거나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평가주체의 자격과 능력 혹은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평가결과가 대학의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평가 결과에 따른 대학들의 획일적 줄 세우기'다. '자유와 자율에 근거한 진리탐구'가 대학의 근본이념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척도들은 대학들의 '차이와 독자성'을 사상(捨象)시킴으로써 많은 수의 대학들이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게 만든다. 나름대로의 이념과 교육철학에 의해 설립된 대학들은 그에 맞는 개성적인 교육을 수요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부 평가주체가 들이대고 있는 척도들은 대학들의 개성이나 독자성, 혹은 각각의 차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성을 완벽하게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떡판 위에 썰어놓은 떡들처럼 가지런하고 균일해야 한다면, 대학으로서의 존립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대학들은 그것들만의 필요와 시대적 요구에 의해, 사립대학들 역시 그런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들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설립목적이나 이념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국제화의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갖추지 못한 외국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한다거나, 학비 면제의 미끼를 던지면서까지 우리말을 못하는 외국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저해하는 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일,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고민이나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각종 학사관리 제도의 무사려한 도입 등 대학들의 자율적ㆍ독자적 발전을 저해하는 일들은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평가주체의 숨은 의도 역시 면밀히 관찰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 지식사회를 통제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요즈음 들어 대학만큼 확실하고 고분고분한 광고주들은 없기 때문이다. 근간 대학평가를 통해 일부 언론사들이 대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세하지만, 정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대학들의 가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의 값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칼릴 지브란의 금언을 평가라는 칼의 힘에 도취되어 있는 일부 언론사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0-09-12 조규익

미안해하는 마음

[경인일보=]늦은 밤 수원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는 버스안의 풍광은 서민의 고단한 일상이 배어있는 풍경화다. 강원도 산골 양구의 찌든 그러나 순박한 가난을 자양분으로 박수근이 화폭에 그려낸 군상들이 방금 그림 속에서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간다. 40대로 보이는 한 사내는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필경 오랜 노동으로 뭉툭해졌을 손마디로 억세게 머리 위 손잡이를 잡고 졸며 서있다. 그의 어깨에 걸린 빛바랜 가방에는 수건이며 작업복이며 소소한 연장이 들어있을 것이다. 손 전화로 아이에게 "그래 밥 먹었니? 학원 갔다 왔구? 여기 어딘데 엄마 곧 갈거야. 기다려" 하는 아주머니는 죽전 어디 근방의 대형 할인점 계산대 일을 마쳤거나 아니면 식당 홀 서빙 후 앞치마에 썩썩 손을 문대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길일게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침침한 불빛 아래서 토익 책을 펼쳐들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저 여학생은 휴학 중 알바하며 취업대비 스펙을 쌓고 있는 착실하지만 넉넉잖은 뉘 집의 사랑받는 딸 일게다. 옅은 화장에 단정한 차림새의 버스 기사 아주머니는 더위에 지쳐 얼음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면서도 "어서 오세요"라고 승객들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넨다. 참으로 찡한 풍광에 "참 열심히 사시네요" 라며 내가 덕담을 건네자 기사 아주머니는 "감사해요. 근데 안 그러면 죽어요" 라고 웃으며 답한다. 비록 10년은 다 된 자가용이지만 광주 집에서 수원 학교로 편안히 출퇴근하던 내가 술 모임 약속 때문에 평일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귀가하며 본 고단한 인생들의 일상이다.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하게 대접받고 사는 직업을 가진 내가 어찌 이들의 일상에 소소히 들어가 그 마음과 몸의 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랴마는 그래도 매일 가마타고 다니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한 심정으로 가마 메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느껴 보았다.새 내각명단이 발표된 지난 8월 8일 이후 한 달여는 신데렐라의 화려한 등장과 곧이어 드러난 권력 엘리트들의 비루함으로 얼룩져 온 국민을 혼돈으로 몰아간 시간이었다. 이제 가을 문턱에 섰으니 한 발자국 물러나 차분하게 돌아볼 시간이다.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조롱과 비난, 그리고 탄식과 분노는 많았지만 성찰의 화두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었다. 성찰을 대신한 것은 정파별 손익계산서와 향후 정국에 대한 언론의 전망이었다. 우리는 밥 술 좀 먹고살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누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에 관한 전략적 사고에는 능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규범적 사고에는 미숙아로 전락하여 버렸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외국 유명대학의 정치철학 교수가 쓴 정의에 관한 번역본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만 죄의식을 덜 느낄 정도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훌륭한 책이지만 단언컨대 그만한 책은 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성찰의 화두는 거창하지 않다. 미안해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첫 출근하며 국민에게 한 첫마디는 "나는 소장수의 아들이다" 였다. 어설픈 서민적 작위(作爲)를 통한 그의 대국민 소통 방식은 자수성가를 앞세운 일방성이었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서 '안 그러면 죽을' 정도로 성실하게 사는 무수한 '소장수 아들, 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읽기 힘들었다. 쪽방촌 투기와 위장전입 특허전문인 여타 후보자들은 논의의 대상도 못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번 칼럼(인민 루니 세대에 대한 오해) 에서 걱정하였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어이 낙마하였다. 아무리 말실수가 많았어도 적어도 딸의 특혜성 외통부 취업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시민들 자신이다. 이것 저것 다 눈감아주고 그것도 압도적 다수로 대통령 뽑을 때는 언제고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별 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 핏대 올리는 시민들은 스스로에게 미안해하여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2010-09-05 강명구

수교 18주년에 중국을 생각하며

[경인일보=]8월 24일로 한·중 양국은 수교 18주년을 맞았다. 양국관계는 지난 18년 동안 경제·통상, 정치·외교,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지도하에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1979년 이래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9.9%의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 마침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2조5천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진 중국 금융당국의 정책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은 물론 우리나라 은행이자율이 직접 영향을 받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중 수교는 중국 개방정책의 성공사례로 거론될 만큼 한·중 양국에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지난 18년 동안 양국 교역액은 22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우리는 중국의 제3위 무역상대국(홍콩 제외시)이다.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63억8천만달러였던 양국 교역액은 작년 1천409억달러(홍콩 포함시 1천621억달러)나 되었고 금년은 1천7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2천억 달러, 2015년까지 3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한국의 제2위 무역상대국 일본(712억달러), 제3위 무역상대국 미국(667억달러)을 합친 것보다도 큰 규모다. 중국에서만 작년 한해 동안 32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홍콩까지 합한다면 흑자가 507억달러에 달한다. 1일 평균 1억3천9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대중투자액(누계 기준)은 1992년 2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는데 금년 6월 기준 투자 누계액은 426억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한국의 제1위 투자대상국가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도 1992년 2만여개에서 4만여 개로 늘어났다.작년 한 해 동안 134만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금년도 상반기에 75만5천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았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38%나 급증했다. 현재는 한해 4천500만명의 중국인이 외국을 방문하는데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따라 외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금년 4월 영국의 BBC가 28개국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28개국 중 한국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인 응답자 57%가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한국에 온 중국관광객이 쇼핑을 많이 하는 큰 손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많이 오고있고 앞으로 더 많은 중국인이 올 터인데 준비가 안 되어있다며 염려를 하고 있다. 정부는 중국인 방문객을 2012년까지 3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해 비자발급 절차를 대폭 간소화 하였다.이렇듯 경제·통상, 인적교류면에서는 숨가쁘게 양국 관계가 증진되어 왔지만 안보·군사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최근 천안함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실망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국관계가 증진되는 과정에서 고구려사 문제, 문화원조 논쟁, 탈북자 문제 등 북한문제 처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해 보다 더 이해하게 되고 양국관계가 보다 굳건한 기초위에서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한 중국 한반도 전문가는 우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한 양국은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안보 문제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정치적 신뢰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한중관계의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부상과 변화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서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중국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중국 부상을 기회로 잘 활용하고 상생(win-win)의 한·중관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0-08-29 석동연

인천교육! 희망을 얘기하자

[경인일보=]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교육의 힘이었다. 21세기에 들어 세상은 더 넓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점검해 보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교육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그동안 우리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은 국가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으나 지금은 이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로 각 가정마다 자녀가 하나 또는 둘밖에 되지 않아 교육열은 더욱 과열화되는 추세에 있다. 대학 진학률이 84%를 상회하고 있어 양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국제적 연구기관이 매년 조사하는 '고등교육의 질' 평가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60여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서열화된 대학으로의 입학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미래가 결정되어진다는 생각속에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0학년도 수능성적 기초분석자료를 보면 아쉽게도 인천지역이 전국에서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좀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수능 성적과 이를 통한 대학입학 결과만 가지고 교육의 질과 성과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교육의 성과를 대학입시에 중점을 두어 평가를 계속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교육의 성과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위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각종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으나 학생, 학부모, 사회, 국가 모두가 교육의 결과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적, 경제적 투자와 많은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면 결코 좋은 시스템이라 말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창조화 사회에 이미 들어와 있다. 창조화 사회의 주역은 경쟁력있는 창조적 두뇌 개발이 가능한 교육체계를 갖춘 국가가 당연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로는 창조화 사회에서 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힘을 합쳐 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인천이 현재의 교육체계·내용·방법 등을 선진화하여 다른 지역에서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교육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경쟁력이 되고 미래사회의 주역을 제대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은 현재 동북아지역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을 갖춘 서해 요지의 항구도시로서 지리적 조건과 제반 여건이 우수하여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송도경제자유구역내에는 외국의 기업과 기관들이 유치되고 서울의 유명 대학들과 국제적 명성을 갖춘 세계적인 대학들도 캠퍼스를 운영할 예정이며 국제학교와 세계적 수준의 병원도 설치되는 등 국제도시로서의 충분한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있어 교육 여건도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추어 인천교육이 전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여건의 개선과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활성화에 따라 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부문의 보다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인천 교육의 발전을 위해 시장과 교육감이 손발을 맞추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지역내 모든 구성 요소들이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은다면 인천교육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2010-08-23 이기우

역사, 이젠 제대로 가르치자

[경인일보=]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에서 만나는 해외동포 3~4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말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모르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없고, 우리의 역사를 모르니 그들과 함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할 수가 없다. 다민족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고국의 말과 역사조차 모르는 처지에 고국에서 온 동포를 '동포 아닌 제3국인' 혹은 그들과 공존하는 '타민족'으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민지와 고국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으로 머물러 온 그들이 이제는 그런 중간자적 인식마저 상실하고 대책 없는 미아(迷兒)로 떠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그런 현상을 해외 동포들에게서만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의 위기'는 더욱 우려스럽게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 없는 기성세대나 나라를 경영한다는 지도층이 무사려(無思慮)하게 지향해온 '세계화'의 비극적 소산이다. 든든한 경제나 국방만이 세계의 복판에서 한 나라를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발판은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한갓 '경제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처럼 어려서부터 영어에만 몰입하게 하고 역사나 민족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들은 스스로 '세계시민'의 착각속에 빠져들고 만다.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투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람직한 세계시민이 될 수는 없다.그런 점에서 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독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이유나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조만간 우리는 제 땅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억지를 역사 교과서에 반영하여 가르쳐 오고 있으며, 중국 또한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역사의 날조에 동참했다. '날조된 역사'를 당당하게 교육시키는 그들의 심리 저변에는 그것이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경우 미래는 그 방향으로 되어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긴 시간이 지나 날조된 역사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헛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마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명한 직무유기이니 그것 또한 죄악이다.우리의 편견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금'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과거나 미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역사나 민족문화에 대한 몰각(沒覺)은 비롯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는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역사 철학자 E.H 카는 역설했다.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현대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원인은 과거에 있으며, 미래의 원인은 현재에 있다. 주변의 타민족, 타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적 관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려면 원인으로서의 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사실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독도만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전통인문학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신세대를 국제 미아로 만들고 있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적 현실이다. 경제와 군사, 문화면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일본이나 중국이 이 시점에 왜 '역사의 날조'와 '날조된 역사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멀지만 확실한' 길이다.

2010-08-15 조규익

'인민 루니' 세대에 대한 오해

[경인일보=]유인촌 장관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거리의 갑남을녀에게 대한민국의 장관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장관 한 번 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면 서운할 노릇이지만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누가 장관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7월 26일 하노이의 기자 간담회에서 던진 몇 마디 비외교적(?) 발언 때문에 거의 유인촌 장관만큼 유명해졌다. 핵심은 대충 이렇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전쟁난다고 6·2 지방선거 때 민주당 찍은 젊은 애들은 그럴 것이면 이북 가서 살아라. 민주화의 단물만 빨아먹는 세대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공직자 중에서도 특히 언사가 신중해야할 최고위 외교당국자의 말치고는 너무 거칠어 그의 발언에서 짙은 국내정치 냄새를 추적하는 해석이 그래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항시 젊은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유 장관의 해석은 사뭇 낯설다. 특히 우리네 젊은 세대의 대북관에 대한 흑백논리 인식은 다분히 교조적이다. 물론 전쟁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란 세대들의 대북인식이 기성세대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로 총성 없는 전투를 총지휘하는 당사자로서 우려스러울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허나 46년생이니 연배로 치면 4·19 세대의 끝머리쯤에 속하는 유 장관 역시 당대 젊은이들의 대북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기성세대가 고생해 이룩한 풍요가 같은 유형의 후세대를 잉태하리라는 기대는 무망하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거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그들이 옳고 그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기 쉽다. 지난 월드컵 기간 중 젊은 세대가 북한의 재일교포 출신 축구선수 정대세에게 붙인 애칭 '인민 루니'는 그들의 대북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상의 평균적 한국인에게 '인민'이란 단어는 아직도 불편함을 넘어서 희미하게나마 붉은 색으로 채색된 뜨끔함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그런데 우리네 젊은이들은 이런 '인민' 뒤에 이름난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 '루니'를 덧대어 단칼에 정대세로부터 인공기의 붉은 색을 지워버렸다. '인민'의 이념성은 '루니'로 상징되는 상업적 스포츠주의와 기묘한 그러나 동시에 '간지나는' 형용모순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대세는 한편으로는 루니 스타일로 축구 잘하는 '북한' 선수, 다른 한 편으로는 루니처럼 일반인의 사랑을 받는 빼어난 축구 선수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어디에도 북한 찬양이 없다. 북한은 다만 정대세를 통하여 가깝고 친근해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자막으로 번역된 서구의 국가(國歌)에 잘 드러나듯 서구의 '인민'은 자유를 향한 장엄한 투쟁사를 통해 얻어진 민주 정치철학의 체화(體化) 그 자체이다. 반면 우리는 '인민'을 세대라는 변수를 통하여 가볍게 우회 접근하고 있다.안다. 바로 이런 가벼움과 그에 수반된 빈약한 진정성이 젊은이들의 언어구사에 내재함을. 그리고 아쉬워한다. 서양의 자유와 풍요를 부러워하면서도 서양 국가에 나타난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사실에 그들이 상대적으로 무심함을.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자. 식자의 눈에 경박해 보이는 한류가 식자들의 그 어떤 언술보다도 실질적 영향을 발휘하듯 미래는 기성의 묵직한 근심보다 신세대의 경쾌한 번득임을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세대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를 반면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끝으로 사족 하나. 나는 유 장관의 발언이 진정 대내 정치용이기를 바란다. 만일 대외용이었다면 그의 우려와 달리 나라의 앞날을 위해 젊은이들이 유 장관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0-08-08 강명구

행복한 '베트남 댁'을 꿈꾸며

[경인일보=]우리는 한국 거주 외국계 주민이 114만명을 넘어선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경기도에는 이들 중 약 29%인 34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1위이다. 경기도의 결혼이민자(혼인 귀화자 포함)는 5만명 가까이 되며 그들의 자녀가 3만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중국(조선족 포함)이 57%(19만1천793명), 베트남 9%(3만687명),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의 순이다. 지난 7월 8일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지 8일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새댁' 사건이 부산에서 발생하였다. 피의자는 정신분열 증세로 57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피했으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07년에도 19세의 어린 나이에 베트남에서 시집온 신부가 신혼 시작 한 달여만에 천안의 어느 지하셋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져 있었는데 범인은 46살의 남편이었다. 이 두 사례 모두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결혼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국제결혼중개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의 66%, 캄보디아 여성의 84%가 결혼중개업체의 소개로 결혼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이주 여성과 남편의 연령차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모두 17세가 넘는다. 이와 같이 국제결혼이 대부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성사되고 있으나, 일부 중개업체는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결혼을 빨리 많이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를 거듭하고 있다. 타국의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이루어진 결혼은 당초부터 원만한 가정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고 가족간의 갈등, 이혼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두 남녀가 결혼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도 안쓰럽다. 그들의 문제는 대를 이어 계속된다. 바로 자녀의 언어교육 문제다. 이번 베트남 신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국제결혼 중개 건전화와 결혼이민자 인권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비영리 국제결혼 중개기관 설립 검토, 국제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내국인에게 출국전 소양교육 의무화 및 결혼사증 발급 심사기준 강화,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한 단속·점검 및 관리 강화, 결혼 이민자 상담 등 인권보호 강화 등이다. 매번 사건이 나고 나면 적지않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아직도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한 결혼에 문제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좀더 과감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경기도에서는 다문화 가족의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금년중 24개소로 확대), 외국인복지센터(총 5개소 운영), 결혼이민자 보호시설 및 글로벌다문화센터(안산시) 건립 등 인프라를 확충하여 다문화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어교육, 취업교육, 다문화이해 교육, 한국문화체험, 각종 상담,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교육 및 아동양육 지원, 결혼이민자 통·번역 서비스 제공, 다문화가정 부부 워크숍 개최 등 다문화 가정의 필요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결혼으로 인한 문제점 해소책의 일환으로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한국인 남성, 이미 국제결혼을 통해 다문화 가정을 이룬 부부 등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러한 체계적이며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이 땅을 찾아온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계속의 한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활짝 웃는 행복한 '베트남댁'을 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하루바삐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2010-08-01 석동연

경기도립 통일대학 설립을 희망한다

[경인일보=]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일 취임사를 통해 "안보를 위해 낙후된 경기북부를 통일 대한민국으로 가는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며 "경기북부에 북한연구와 통일역군을 양성하는 통일대학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도는 DMZ가 남북을 갈라놓은 세계 유일의 분단 도로, 경기북부는 지난 60년동안 대한민국을 지켜온 최전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통일에 대비한 도의 역할론과 전문가 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기사(경인일보 2010년 7월 2일자 2면)를 읽은 적이 있다.통일에 대해 접근하는 시각은 각 분야별로 다양하며 통일에 대해 연구하는 곳 또한 많다. 각 대학의 북한학과나 북한대학원, 통일대학원, 각종 연구소 등이 그러한 곳이다. 통일에 대하여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각론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남북이 분단된 지 언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통일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여러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창구는 통일부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중심의 통일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 성과는 지방정부 내지 민간 차원에서 노력한 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과는 별개로 경기도와 같은 접경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통일대학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는 통일의 선례가 되는 독일의 접경지역 지원정책이 그 추진방식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첫째, 접경지역 지원에 관한 사업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둘째, 소요재원을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부담했다는 점. 셋째, 접경지역 지원의 정책을 수립할 때 각 주의 특성을 최대한 배려하여 이를 반영하였다는 점이다.우리나라와 독일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접경지역을 지원할 때 당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경우, 국가 역시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정책에 관한 기본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향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접경지역 지원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재원은 남북한 교류 협력기금이나 정부의 일반회계 등에서 조달하도록 하여 그 동원기반을 폭넓게 확보하고, 지방자치단체도 광역단체별로 그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일정한 기준에 따라 비용을 일부씩은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경지역 정책 측면에서 경기도지사가 천명한 통일대학은 도립대학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으며, 학생 교육중심 대학이 아니라 북한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원 중심 대학설립이 되었으면 한다.그러나 경기도립대학으로 설립될 경우,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중앙정부와의 갈등 문제이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에 신규대학 설립을 금지하는 수도권 규제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대학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통일과 통일대학 설립에 대한 의지만 확실하다면 특별법 제정이나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가능하다고 본다. 아울러 지난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 제안된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면 한다. 둘째는 경기북부지역 내부 문제이다. 어느 곳에, 어떠한 방식으로 설립하는지가 문제일 수 있다. 각 지역마다 통일대학 설립 유치전이 치열하겠지만, 경기북부지역 입장에서는 희망의 유치전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향후 남북통일에 대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될 통일대학 설립에 희망을 걸어 본다.

2010-07-25 소성규

소부·허유, 그리고 태공망

[경인일보=]허유(許由)는 천하나 구주(九州)를 맡아 달라는 요임금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흐르는 영수(潁水)에 자신의 귀를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소부(巢父)는 허유가 은자(隱者)라는 소문을 냄으로써 명성을 얻게 된 점을 비판하고, 자신의 망아지에게 허유가 귀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하여 망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버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태공망(太公望)이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발탁했으니, 그가 바로 태공망이다. 그는 문왕의 초빙을 받아 왕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한 인물이다.최근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 안의 인물들을 바꾸었고, 조만간 내각도 개편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으나, 특별히 연줄의 문화가 강한 곳이 우리나라다. 연줄 즉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도 인사철만 되면 힘을 발휘한다. 연줄이 닿는 범위 안에 출중한 인사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줄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벗어나는 곳에 방치된 인사들은 더 많다. 이왕이면 '내 부류의 사람을 써야 한다'는 고질적인 인습 탓에, 인사철을 앞두고 '이런 저런 면에서 촉망 받는 인사들'은 임명권자와 연결되는 줄을 찾아 헤맨다. 인사철만 되면 임명권자로부터 부름이 올까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캐리커추어(caricature)들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언론에 등장하곤 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일이다.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 고위직의 제의를 거절한 유진룡 전 차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 정권에서 제의하는 고위직을 마다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정권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윗선의 청탁을 막아 낸 결기가 가식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리의 성격이나 자신의 능력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거나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간략하게 잘라내는 어조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멋스러움'을 읽어낸 것이다. 허유나 소부의 현대적 버전이라고나 할까.현재 '세종시' 건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운찬 총리 또한 임명 당시 여러 차례 고사(固辭)하는 바람에 임명권자의 애를 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중한 능력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직에 나아가 최선을 다했다. 제의를 거절한 사람이나 제의에 응하여 직에 나아간 사람이나 이런 경우들은 인재 발탁과 등용의 좋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사실 특정한 직에 쓰일 만한 세상의 현자들은 대체로 허유나 소부, 혹은 태공망에 속하고, 현자를 자처하는 나머지 부류는 직책의 명예만을 탐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나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소부나 허유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책임 있는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서서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태공망은 요즈음의 상황에 걸맞은 인재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탁월한 재능과 비전에 도덕성까지 갖춘다면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다. 연줄을 동원하여 등용되기를 도모하는 것보다 실력을 갖추고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행위 그 자체다.사실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재능이나 비전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가 연줄을 통해 사람을 발탁하려 한다면, 그 역시 인물의 능력이나 비전보다 끼리끼리 무리 짓고자 하는 현실적 욕망 때문이다. 연줄로 인재를 등용했을 경우 일을 그르친 후에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임명권자는 대부분 자신의 시야가 연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세상은 좁아도 연줄의 구속을 벗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살림이나 한 부서의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들이 제법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10-07-18 조규익

연예인 중심사회

[경인일보=]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다. 정치계, 교육계, 노동계, 종교계 등등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 많은 분야 중에 유독 한 분류의 계층만 한 주에 한 번 중계 방송을 한다.그것도 한 방송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3사에서 일제히 거의 한 시간씩 한다. 바로 연예계이다. 우선 연예인들이 불쌍하다. 방송 3사의 제작진들의 먹잇감이 되어 있다는 현실이 그렇고 항상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심리적 불안은 정신 건강에도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다.하도 정밀 묘사를 하다 보니까 정보가 고갈되고 그러다 보니 무익한 정보를 그 귀한 방송이 무의미하게 송출하고 있다.대개 정보는 두 가지다. 연예인 누가 이혼했다. 혹은 누가 결혼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연예인이 보통 두 번은 꼭 나온다. 보통 결혼 발표를 하면서 출연했다가 약 이 년이 지나면 이혼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나온다. 이런 방송 환경이 어쩌면 최근 줄줄이 터지고 있는 연예인 자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최근 박용하씨의 자살 사건을 방송으로 보면서 연예인 자살 보도가 마치 연속 방송극처럼 주기적으로 너무 자주 나온다는 생각에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살의 유혹을 느끼는 많은 삶들이 자주 그리고 장시간 보도하는 이 방송을 보면서 갖게 될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다.세상에는 긴급하게 알려할 정보가 참 많다. 좋은 일을 시작하면서 방송을 통해 알려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두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정말 훌륭하여 이 사회에 꼭 부각시켜야 할 인물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방송이 이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유독 연예인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이 문제이다. 방송 제작진은 시청률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시청자가 안 보면 무슨 소용이냐고 외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은 시청률 이상의 사회적 문화 기능을 조정하는 책임이 있다. 예컨대 시청률 5%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시청한 사람들 모두를 감동시켜 봉사활동에 나서게 했다거나, 욕심부리지 말고 이웃에게 기회만 있으면 베풀어야 하겠다라는 결심을 세우게 한 경우와 시청률 50%의 연예계 중계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자.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하지만 10초짜리 감동과 10초짜리 정보는 값 없는 것이다. 방송이 갖고 있는 문화의 조정 기능은 가공할 만한 것이다. 통일을 주제로 한 감동적 드라마 몇 편이 남북 간 민족 화해를 몇 년 앞당길 수도 있다.아이들은 모방하면서 자란다. 연예인이 많이 나오면 연예인을 모방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나오면 지식인을 모방한다. 요즘 성당에 나오는 청소년 중에 30%의 아이들이 연예인을 꿈꾼다. 그 나머지도 얼굴과 용모만 된다면 꿈꾸고 싶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의 첫 번째 의무는 물론 공정 보도이다. 그런데 이 공정성의 문제는 많은 경우 편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따라서 요즘 국민들은 해당 방송이나 신문의 논조와 기조를 감안해서 알아듣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어쩌면 연예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단점을 감추기 위한 기교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한다. 방송과 언론이 기사의 많은 부분을 인문학적이고 사회 과학적인 부분에 할애하지 않고 연예계와 스포츠 기사로 할애한다면 이 나라의 문화는 한없이 낮아질 것이고, 이런 언론의 환경 속에 자란 아이들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주어야 할 방송과 언론이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지 말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2010-07-11 홍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