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인천교육! 희망을 얘기하자

[경인일보=]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교육의 힘이었다. 21세기에 들어 세상은 더 넓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점검해 보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교육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그동안 우리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은 국가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으나 지금은 이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로 각 가정마다 자녀가 하나 또는 둘밖에 되지 않아 교육열은 더욱 과열화되는 추세에 있다. 대학 진학률이 84%를 상회하고 있어 양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국제적 연구기관이 매년 조사하는 '고등교육의 질' 평가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60여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서열화된 대학으로의 입학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미래가 결정되어진다는 생각속에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0학년도 수능성적 기초분석자료를 보면 아쉽게도 인천지역이 전국에서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좀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수능 성적과 이를 통한 대학입학 결과만 가지고 교육의 질과 성과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교육의 성과를 대학입시에 중점을 두어 평가를 계속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필요한 교육의 성과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위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각종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으나 학생, 학부모, 사회, 국가 모두가 교육의 결과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적, 경제적 투자와 많은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면 결코 좋은 시스템이라 말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창조화 사회에 이미 들어와 있다. 창조화 사회의 주역은 경쟁력있는 창조적 두뇌 개발이 가능한 교육체계를 갖춘 국가가 당연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로는 창조화 사회에서 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힘을 합쳐 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인천이 현재의 교육체계·내용·방법 등을 선진화하여 다른 지역에서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교육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경쟁력이 되고 미래사회의 주역을 제대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은 현재 동북아지역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을 갖춘 서해 요지의 항구도시로서 지리적 조건과 제반 여건이 우수하여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송도경제자유구역내에는 외국의 기업과 기관들이 유치되고 서울의 유명 대학들과 국제적 명성을 갖춘 세계적인 대학들도 캠퍼스를 운영할 예정이며 국제학교와 세계적 수준의 병원도 설치되는 등 국제도시로서의 충분한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있어 교육 여건도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추어 인천교육이 전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교육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여건의 개선과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활성화에 따라 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부문의 보다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인천 교육의 발전을 위해 시장과 교육감이 손발을 맞추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지역내 모든 구성 요소들이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은다면 인천교육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2010-08-23 이기우

역사, 이젠 제대로 가르치자

[경인일보=]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에서 만나는 해외동포 3~4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말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모르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없고, 우리의 역사를 모르니 그들과 함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할 수가 없다. 다민족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고국의 말과 역사조차 모르는 처지에 고국에서 온 동포를 '동포 아닌 제3국인' 혹은 그들과 공존하는 '타민족'으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민지와 고국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으로 머물러 온 그들이 이제는 그런 중간자적 인식마저 상실하고 대책 없는 미아(迷兒)로 떠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그런 현상을 해외 동포들에게서만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의 위기'는 더욱 우려스럽게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 없는 기성세대나 나라를 경영한다는 지도층이 무사려(無思慮)하게 지향해온 '세계화'의 비극적 소산이다. 든든한 경제나 국방만이 세계의 복판에서 한 나라를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발판은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한갓 '경제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처럼 어려서부터 영어에만 몰입하게 하고 역사나 민족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들은 스스로 '세계시민'의 착각속에 빠져들고 만다.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투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람직한 세계시민이 될 수는 없다.그런 점에서 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독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이유나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조만간 우리는 제 땅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억지를 역사 교과서에 반영하여 가르쳐 오고 있으며, 중국 또한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역사의 날조에 동참했다. '날조된 역사'를 당당하게 교육시키는 그들의 심리 저변에는 그것이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경우 미래는 그 방향으로 되어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긴 시간이 지나 날조된 역사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헛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마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명한 직무유기이니 그것 또한 죄악이다.우리의 편견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금'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과거나 미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역사나 민족문화에 대한 몰각(沒覺)은 비롯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는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역사 철학자 E.H 카는 역설했다.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현대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원인은 과거에 있으며, 미래의 원인은 현재에 있다. 주변의 타민족, 타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적 관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려면 원인으로서의 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사실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독도만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전통인문학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신세대를 국제 미아로 만들고 있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적 현실이다. 경제와 군사, 문화면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일본이나 중국이 이 시점에 왜 '역사의 날조'와 '날조된 역사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멀지만 확실한' 길이다.

2010-08-15 조규익

'인민 루니' 세대에 대한 오해

[경인일보=]유인촌 장관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거리의 갑남을녀에게 대한민국의 장관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장관 한 번 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면 서운할 노릇이지만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누가 장관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7월 26일 하노이의 기자 간담회에서 던진 몇 마디 비외교적(?) 발언 때문에 거의 유인촌 장관만큼 유명해졌다. 핵심은 대충 이렇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전쟁난다고 6·2 지방선거 때 민주당 찍은 젊은 애들은 그럴 것이면 이북 가서 살아라. 민주화의 단물만 빨아먹는 세대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공직자 중에서도 특히 언사가 신중해야할 최고위 외교당국자의 말치고는 너무 거칠어 그의 발언에서 짙은 국내정치 냄새를 추적하는 해석이 그래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항시 젊은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유 장관의 해석은 사뭇 낯설다. 특히 우리네 젊은 세대의 대북관에 대한 흑백논리 인식은 다분히 교조적이다. 물론 전쟁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란 세대들의 대북인식이 기성세대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로 총성 없는 전투를 총지휘하는 당사자로서 우려스러울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허나 46년생이니 연배로 치면 4·19 세대의 끝머리쯤에 속하는 유 장관 역시 당대 젊은이들의 대북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기성세대가 고생해 이룩한 풍요가 같은 유형의 후세대를 잉태하리라는 기대는 무망하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거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그들이 옳고 그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기 쉽다. 지난 월드컵 기간 중 젊은 세대가 북한의 재일교포 출신 축구선수 정대세에게 붙인 애칭 '인민 루니'는 그들의 대북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상의 평균적 한국인에게 '인민'이란 단어는 아직도 불편함을 넘어서 희미하게나마 붉은 색으로 채색된 뜨끔함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그런데 우리네 젊은이들은 이런 '인민' 뒤에 이름난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 '루니'를 덧대어 단칼에 정대세로부터 인공기의 붉은 색을 지워버렸다. '인민'의 이념성은 '루니'로 상징되는 상업적 스포츠주의와 기묘한 그러나 동시에 '간지나는' 형용모순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대세는 한편으로는 루니 스타일로 축구 잘하는 '북한' 선수, 다른 한 편으로는 루니처럼 일반인의 사랑을 받는 빼어난 축구 선수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어디에도 북한 찬양이 없다. 북한은 다만 정대세를 통하여 가깝고 친근해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자막으로 번역된 서구의 국가(國歌)에 잘 드러나듯 서구의 '인민'은 자유를 향한 장엄한 투쟁사를 통해 얻어진 민주 정치철학의 체화(體化) 그 자체이다. 반면 우리는 '인민'을 세대라는 변수를 통하여 가볍게 우회 접근하고 있다.안다. 바로 이런 가벼움과 그에 수반된 빈약한 진정성이 젊은이들의 언어구사에 내재함을. 그리고 아쉬워한다. 서양의 자유와 풍요를 부러워하면서도 서양 국가에 나타난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사실에 그들이 상대적으로 무심함을.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자. 식자의 눈에 경박해 보이는 한류가 식자들의 그 어떤 언술보다도 실질적 영향을 발휘하듯 미래는 기성의 묵직한 근심보다 신세대의 경쾌한 번득임을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세대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를 반면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끝으로 사족 하나. 나는 유 장관의 발언이 진정 대내 정치용이기를 바란다. 만일 대외용이었다면 그의 우려와 달리 나라의 앞날을 위해 젊은이들이 유 장관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0-08-08 강명구

행복한 '베트남 댁'을 꿈꾸며

[경인일보=]우리는 한국 거주 외국계 주민이 114만명을 넘어선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경기도에는 이들 중 약 29%인 34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1위이다. 경기도의 결혼이민자(혼인 귀화자 포함)는 5만명 가까이 되며 그들의 자녀가 3만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중국(조선족 포함)이 57%(19만1천793명), 베트남 9%(3만687명),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의 순이다. 지난 7월 8일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지 8일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새댁' 사건이 부산에서 발생하였다. 피의자는 정신분열 증세로 57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피했으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07년에도 19세의 어린 나이에 베트남에서 시집온 신부가 신혼 시작 한 달여만에 천안의 어느 지하셋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져 있었는데 범인은 46살의 남편이었다. 이 두 사례 모두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결혼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국제결혼중개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의 66%, 캄보디아 여성의 84%가 결혼중개업체의 소개로 결혼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이주 여성과 남편의 연령차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모두 17세가 넘는다. 이와 같이 국제결혼이 대부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성사되고 있으나, 일부 중개업체는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결혼을 빨리 많이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를 거듭하고 있다. 타국의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이루어진 결혼은 당초부터 원만한 가정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고 가족간의 갈등, 이혼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두 남녀가 결혼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도 안쓰럽다. 그들의 문제는 대를 이어 계속된다. 바로 자녀의 언어교육 문제다. 이번 베트남 신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국제결혼 중개 건전화와 결혼이민자 인권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비영리 국제결혼 중개기관 설립 검토, 국제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내국인에게 출국전 소양교육 의무화 및 결혼사증 발급 심사기준 강화,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한 단속·점검 및 관리 강화, 결혼 이민자 상담 등 인권보호 강화 등이다. 매번 사건이 나고 나면 적지않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아직도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한 결혼에 문제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좀더 과감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경기도에서는 다문화 가족의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금년중 24개소로 확대), 외국인복지센터(총 5개소 운영), 결혼이민자 보호시설 및 글로벌다문화센터(안산시) 건립 등 인프라를 확충하여 다문화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어교육, 취업교육, 다문화이해 교육, 한국문화체험, 각종 상담,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교육 및 아동양육 지원, 결혼이민자 통·번역 서비스 제공, 다문화가정 부부 워크숍 개최 등 다문화 가정의 필요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결혼으로 인한 문제점 해소책의 일환으로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한국인 남성, 이미 국제결혼을 통해 다문화 가정을 이룬 부부 등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러한 체계적이며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이 땅을 찾아온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계속의 한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활짝 웃는 행복한 '베트남댁'을 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하루바삐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2010-08-01 석동연

경기도립 통일대학 설립을 희망한다

[경인일보=]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일 취임사를 통해 "안보를 위해 낙후된 경기북부를 통일 대한민국으로 가는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며 "경기북부에 북한연구와 통일역군을 양성하는 통일대학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도는 DMZ가 남북을 갈라놓은 세계 유일의 분단 도로, 경기북부는 지난 60년동안 대한민국을 지켜온 최전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통일에 대비한 도의 역할론과 전문가 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기사(경인일보 2010년 7월 2일자 2면)를 읽은 적이 있다.통일에 대해 접근하는 시각은 각 분야별로 다양하며 통일에 대해 연구하는 곳 또한 많다. 각 대학의 북한학과나 북한대학원, 통일대학원, 각종 연구소 등이 그러한 곳이다. 통일에 대하여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각론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남북이 분단된 지 언 60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통일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여러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창구는 통일부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중심의 통일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 성과는 지방정부 내지 민간 차원에서 노력한 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과는 별개로 경기도와 같은 접경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통일대학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는 통일의 선례가 되는 독일의 접경지역 지원정책이 그 추진방식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첫째, 접경지역 지원에 관한 사업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둘째, 소요재원을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부담했다는 점. 셋째, 접경지역 지원의 정책을 수립할 때 각 주의 특성을 최대한 배려하여 이를 반영하였다는 점이다.우리나라와 독일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접경지역을 지원할 때 당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경우, 국가 역시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정책에 관한 기본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향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접경지역 지원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재원은 남북한 교류 협력기금이나 정부의 일반회계 등에서 조달하도록 하여 그 동원기반을 폭넓게 확보하고, 지방자치단체도 광역단체별로 그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일정한 기준에 따라 비용을 일부씩은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경지역 정책 측면에서 경기도지사가 천명한 통일대학은 도립대학으로 설립될 필요가 있으며, 학생 교육중심 대학이 아니라 북한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원 중심 대학설립이 되었으면 한다.그러나 경기도립대학으로 설립될 경우,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중앙정부와의 갈등 문제이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에 신규대학 설립을 금지하는 수도권 규제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대학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통일과 통일대학 설립에 대한 의지만 확실하다면 특별법 제정이나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가능하다고 본다. 아울러 지난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 제안된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면 한다. 둘째는 경기북부지역 내부 문제이다. 어느 곳에, 어떠한 방식으로 설립하는지가 문제일 수 있다. 각 지역마다 통일대학 설립 유치전이 치열하겠지만, 경기북부지역 입장에서는 희망의 유치전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향후 남북통일에 대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될 통일대학 설립에 희망을 걸어 본다.

2010-07-25 소성규

소부·허유, 그리고 태공망

[경인일보=]허유(許由)는 천하나 구주(九州)를 맡아 달라는 요임금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흐르는 영수(潁水)에 자신의 귀를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소부(巢父)는 허유가 은자(隱者)라는 소문을 냄으로써 명성을 얻게 된 점을 비판하고, 자신의 망아지에게 허유가 귀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하여 망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버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태공망(太公望)이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발탁했으니, 그가 바로 태공망이다. 그는 문왕의 초빙을 받아 왕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한 인물이다.최근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 안의 인물들을 바꾸었고, 조만간 내각도 개편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으나, 특별히 연줄의 문화가 강한 곳이 우리나라다. 연줄 즉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도 인사철만 되면 힘을 발휘한다. 연줄이 닿는 범위 안에 출중한 인사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줄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벗어나는 곳에 방치된 인사들은 더 많다. 이왕이면 '내 부류의 사람을 써야 한다'는 고질적인 인습 탓에, 인사철을 앞두고 '이런 저런 면에서 촉망 받는 인사들'은 임명권자와 연결되는 줄을 찾아 헤맨다. 인사철만 되면 임명권자로부터 부름이 올까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캐리커추어(caricature)들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언론에 등장하곤 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일이다.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 고위직의 제의를 거절한 유진룡 전 차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 정권에서 제의하는 고위직을 마다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정권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윗선의 청탁을 막아 낸 결기가 가식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리의 성격이나 자신의 능력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거나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간략하게 잘라내는 어조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멋스러움'을 읽어낸 것이다. 허유나 소부의 현대적 버전이라고나 할까.현재 '세종시' 건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운찬 총리 또한 임명 당시 여러 차례 고사(固辭)하는 바람에 임명권자의 애를 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중한 능력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직에 나아가 최선을 다했다. 제의를 거절한 사람이나 제의에 응하여 직에 나아간 사람이나 이런 경우들은 인재 발탁과 등용의 좋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사실 특정한 직에 쓰일 만한 세상의 현자들은 대체로 허유나 소부, 혹은 태공망에 속하고, 현자를 자처하는 나머지 부류는 직책의 명예만을 탐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나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소부나 허유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책임 있는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서서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태공망은 요즈음의 상황에 걸맞은 인재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탁월한 재능과 비전에 도덕성까지 갖춘다면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다. 연줄을 동원하여 등용되기를 도모하는 것보다 실력을 갖추고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행위 그 자체다.사실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재능이나 비전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가 연줄을 통해 사람을 발탁하려 한다면, 그 역시 인물의 능력이나 비전보다 끼리끼리 무리 짓고자 하는 현실적 욕망 때문이다. 연줄로 인재를 등용했을 경우 일을 그르친 후에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임명권자는 대부분 자신의 시야가 연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세상은 좁아도 연줄의 구속을 벗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살림이나 한 부서의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들이 제법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10-07-18 조규익

연예인 중심사회

[경인일보=]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다. 정치계, 교육계, 노동계, 종교계 등등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 많은 분야 중에 유독 한 분류의 계층만 한 주에 한 번 중계 방송을 한다.그것도 한 방송국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3사에서 일제히 거의 한 시간씩 한다. 바로 연예계이다. 우선 연예인들이 불쌍하다. 방송 3사의 제작진들의 먹잇감이 되어 있다는 현실이 그렇고 항상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심리적 불안은 정신 건강에도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다.하도 정밀 묘사를 하다 보니까 정보가 고갈되고 그러다 보니 무익한 정보를 그 귀한 방송이 무의미하게 송출하고 있다.대개 정보는 두 가지다. 연예인 누가 이혼했다. 혹은 누가 결혼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연예인이 보통 두 번은 꼭 나온다. 보통 결혼 발표를 하면서 출연했다가 약 이 년이 지나면 이혼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나온다. 이런 방송 환경이 어쩌면 최근 줄줄이 터지고 있는 연예인 자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최근 박용하씨의 자살 사건을 방송으로 보면서 연예인 자살 보도가 마치 연속 방송극처럼 주기적으로 너무 자주 나온다는 생각에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살의 유혹을 느끼는 많은 삶들이 자주 그리고 장시간 보도하는 이 방송을 보면서 갖게 될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다.세상에는 긴급하게 알려할 정보가 참 많다. 좋은 일을 시작하면서 방송을 통해 알려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두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정말 훌륭하여 이 사회에 꼭 부각시켜야 할 인물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방송이 이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유독 연예인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이 문제이다. 방송 제작진은 시청률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시청자가 안 보면 무슨 소용이냐고 외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은 시청률 이상의 사회적 문화 기능을 조정하는 책임이 있다. 예컨대 시청률 5%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시청한 사람들 모두를 감동시켜 봉사활동에 나서게 했다거나, 욕심부리지 말고 이웃에게 기회만 있으면 베풀어야 하겠다라는 결심을 세우게 한 경우와 시청률 50%의 연예계 중계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자.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하지만 10초짜리 감동과 10초짜리 정보는 값 없는 것이다. 방송이 갖고 있는 문화의 조정 기능은 가공할 만한 것이다. 통일을 주제로 한 감동적 드라마 몇 편이 남북 간 민족 화해를 몇 년 앞당길 수도 있다.아이들은 모방하면서 자란다. 연예인이 많이 나오면 연예인을 모방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나오면 지식인을 모방한다. 요즘 성당에 나오는 청소년 중에 30%의 아이들이 연예인을 꿈꾼다. 그 나머지도 얼굴과 용모만 된다면 꿈꾸고 싶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의 첫 번째 의무는 물론 공정 보도이다. 그런데 이 공정성의 문제는 많은 경우 편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따라서 요즘 국민들은 해당 방송이나 신문의 논조와 기조를 감안해서 알아듣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어쩌면 연예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단점을 감추기 위한 기교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한다. 방송과 언론이 기사의 많은 부분을 인문학적이고 사회 과학적인 부분에 할애하지 않고 연예계와 스포츠 기사로 할애한다면 이 나라의 문화는 한없이 낮아질 것이고, 이런 언론의 환경 속에 자란 아이들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주어야 할 방송과 언론이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지 말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2010-07-11 홍창진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

[경인일보=]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었다.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건물과 시설은 물론 인간성마저 파괴해 버리는 고통의 경험을 가진 세대는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라지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나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화해·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소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로 고조된 긴장 상태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은 남북 관계를 예전의 대결 국면으로 되돌려놓은 느낌이다. 대북선전용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겠다고 하니까 이를 파괴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확성기는 과거 남북대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자기 체제를 선전하고 상대 체제를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던 것이다. 이는 일방향적 통고 수단이지 쌍방향적 소통 수단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확성기의 재등장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화의 논리보다 확성기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집단간 갈등이 발생하면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확성기를 동원하여 상대방보다 더 큰 소리로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전달하고 관철시키고자 한다. 이와 같은 확성기의 사용은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확성기로 증폭된 자신의 주장과 논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마치 소통이 잘 된 것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다른 집단의 목소리가 확성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따름이지 진정한 소통과 설득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확성기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가 묻혀버린 사람들은 이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확성기를 준비하게 된다. 그 결과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의 다원화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지향과 방식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소통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확성기에 담아 증폭시킨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될 것이며, 우리 공동체는 점차 갈등과 분열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욕구를 자제하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젠가 이런 애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 가방을 든채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 팻말 위치에 서 있었는데, 타려는 버스가 오더니 자기가 서 있는 곳까지 오지 않고 버스로 달려온 사람들만 태우고서는 그냥 떠나버리더라는 것이다. 가까스로 다음 버스를 탔지만 문제는 버스에서 내릴 때도 생기더라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승강구로 나가는데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넘어질 뻔 했다는 것이다. 미리 승강구로 나와 대기하게 하는 우리의 관행은 건강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신체장애자나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버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정차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는 것을 규칙으로 정한 나라도 있다니, 우리나라도 버스 문화를 이런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 얘기를 한 사람도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버스 문화가 신체 부자유자들에게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한가를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버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양한 집단의 소통을 위한 교육은 이와 같이 자신과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노인들의 신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인체험학습을 실시하는 것도 세대간 소통을 위한 하나의 의미있는 교육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통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교육자와 학습자간, 또 학습자 상호간의 원활한 소통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자가 학습자에게 교육 내용을 주입시키는 일방통행식 교육은 소통을 위한 교육 방식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일방통행식 교육을 통해 집단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학습자들에게 모순과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밝은 소통과 건전한 토론문화 정착, 갈등 관리와 상생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소통을 위한, 소통의 교육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2010-07-04 정동권

6·2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

[경인일보=]6·2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은 투표율, 줄투표 현상, 깜깜이 선거 우려 등 세가지라고 지적할 수 있다. 첫째, 54.5%라는 투표율은 15년만에 이루어낸 최고의 투표율이다. 여당은 60대 이상 보수층의 결집을 기대했고, 야당은 젊은층이 몰릴 것을 기대했다. 어느 연령층에서 실제 기대에 부합했는지는 더 분석을 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러한 높은 투표율에 대하여는 단문 블로그인 '트위터'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둘째, 줄투표 경향이다. 대부분의 선거 전문가들은 광역단체장은 정당을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초단체장은 지역일꾼을 뽑는다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1인 8표 투표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유권자는 후보자를 잘 모르고 1, 2번을 줄투표한 경향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셋째, 깜깜이 선거 우려이다. 정치인들은 '노풍'과 '북풍'으로 비유하기도 했지만, 천안함 이슈에 정책이 묻혀 공보물만 보고 8표를 선택한 경우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방선거가 정책선거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6·2 지방선거는 '돈안드는 선거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전보다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도 있다. 첫째, 후보자들의 법정선거 비용문제이다. 경기도지사 선거비용 제한액은 40억7천300만원이다. 이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보자들은 후원금을 모금하거나 당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으며, 펀드조성을 통해 선거후 이자를 붙여 반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15%이상을 득표하면 돌려받기는 하지만, 후보자들에게 그 많은 돈을 모금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둘째,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호별방문을 금지하는 등 새로운 선거운동 방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선거운동방법은 도시지역에는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농촌지역의 경우 후보자들을 알리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셋째, 재외국민과 외국인 유권자 문제이다. 재외국민은 선거전 재외공관에 직접 가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을 하고 투표일에 다시 재외공관에 가야 한다. 유권자 투표 편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복수 국적자의 경우 자진신고를 하지 않는 한 한국 당국에서 이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 유권자들의 경우, 후보자들의 선거공약 이해에 한계가 있어, 외국인을 위한 배려 문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넷째, 후보자 초청 토론회의 문제이다. 4년전 5·31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의 토론회 참여 강제방안이 없었으나, 6·2 지방선거에서는 불참하는 경우, 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 나름대로 후보자 토론회가 활성화 되는 듯했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열띤 토론은 했는데, 유권자들이 토론내용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점 등은 풀어야 할 과제이다.6·2 지방선거를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원래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이다. 그러나 6·2 지방선거 일부는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보면 여당에는 '반성'을, 야당에는 '기회'를 준 것 같다. 야당이 지방정부를 잘 견제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표를 많이 주었다기 보다는 앞으로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한번 해보라는 유권자들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본다.한편 여당 역시 많은 표를 등에 업고 독주하기 보다는 바닥 민심과의 소통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의 반란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6·2 지방선거에 대한 민심이 어느 한쪽에 기울기보다는 여와 야에 절묘한 선택을 한 유권자들의 깊은 뜻을 정치인들이 헤아렸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뒤 유권자들은 다시 표의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2010-06-27 소성규

제 노릇 잘하기

[경인일보=]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논어-안연'편의 내용이다. '~다워야 한다'는 것은 각자에게 맡겨진 노릇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백 쪽이 넘는 정치학 교과서들보다 이 한 마디가 훨씬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실 정치의 난맥상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혼란에 빠져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지방선거가 끝나자 여야 혹은 보수와 진보세력은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며 마주 달리는 기차들처럼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수뢰(收賂)와 권력남용 등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독직(瀆職) 사건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탈세나 주가조작 등 기업인들의 탈선도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추상같은 법의 권위로 범죄를 다스려야 할 검찰이 민간인들로부터 돈과 접대를 받아온 부끄러운 관행도 일부이긴 하지만 드러나고 있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과 연줄로 사고 팔아온 비리나 빗나간 이념교육으로 어린 학생들을 오도하는 일부 교사들의 행위는 갈 데까지 가버린 교육계의 한심한 현실이다.그 뿐인가. 아동 성폭행 사건들의 범인 대열에 이제는 나이 든 어른들까지 끼어들고야 말았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기강이 무너진 군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감사원의 조사가 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엄연한 군기(軍紀)의 붕괴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안보의 현장에서 사건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한 것도 큰일이지만 사건의 수습 과정이 지리멸렬했던 것에 대하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군인으로서 '제 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가지고 국정을 이끌고 있는 여당은 참패를 인정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승리에 도취된 야당은 무리한 요구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국론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단체는 천안함 사건을 논의하는 유엔 안보리에 정부를 헐뜯는 편지를 보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가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이나 연줄로 사고파는 행위,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편향된 이념교육을 시키는 일 등에서 우리 교육의 붕괴를 점치게 되는 것도 교육자들이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이치는 간단하다. 모두가 '제 노릇'을 하면 된다.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 '제 노릇'이 나올 수 없다. 공익과 공리(公理), 도덕적 판단을 우선하여 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고 권리를 행사하면 충실한 '제 노릇'이 된다. 일의 수행 과정에서 꼼수를 부린다면 그건 결코 '제 노릇'이 아니다. 꼼수는 자신을 망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지도층의 꼼수 때문이다. 지도층의 꼼수는 국민들을 오도한다. 국민들까지 꼼수의 유혹에 넘어가면 사회는 대책 없는 혼란에 빠진다. 앞서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던 제나라의 경공은 "임금이 임금 노릇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못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으나 어찌 먹겠는가?" 라고 덧붙였다.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은 채 태연히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아비 노릇, 자식 노릇을 못하는 것은 사실 '제 노릇'을 못하는 임금과 신하가 있기 때문이다. 지도층만 '제 노릇'을 잘 해도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구한말의 혼란기를 닮았다는 평을 하는 논자들도 있다. 돌고 도는 게 역사라지만 지도층이 '제 노릇'을 못하는 것만큼은 닮아서 될 일이 아니다. 꼼수를 버리고 모두가 '제 노릇'을 성실히 수행하는 대장정(大長征)에 참여할 때다.

2010-06-21 조규익

핵 그리고 사람

[경인일보=]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할 것들이 생기면 산을 찾고 자연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은 우리의 작은 머리로 정리되지 않으며 작은 가슴으로 담아낼 수 없다. 그저 느끼고 감사할 따름이다. 자연과 산의 고요를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요는 '내심낙원' 즉 내 안에 우주의 원리가 있고 내 밖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내 고요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밖에서 나를 괴롭힌다고들 하지만 실은 내 안에서 그 사건을 소화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나를 비우는 일을 하지 못하고 내 안에 인간적인 나를 가득 갖고 있으면 이 놈의 이 인간적인 '나'라는 기준에 의해서 우리는 상처받는 것이다.내 밖에서, 우리 밖에서 요란한 일 최고는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인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6·15민족위원회 공동대표 자격으로 열 차례 가량 평양을 다녀왔다. 갈 때 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북한은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이 못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초라함 그리고 조직의 감시와 압박으로 늘 긴장된 모습들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외부 언론을 차단하고 김일성 부자를 신격화하고 신앙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사이비 광신 종교 집단이 북한 사회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김일성 수령은 아직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거리 곳곳에 써 놓은 이런 구호들에서 사이비 종교의 섬뜩한 기운을 느낀다.북한은 왜? 이런 사회를 조성했을까? 정치적 배경은 뒤로 하고 라도 그들의 지도자들의 욕심이 분명하다. 한 사람을 위해 존립했던 국가는 이미 왕정시대에 모두 지나갔다. 그런데도 북한의 김일성 부자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양심을 저버리고 자기 백성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다. 백성을 볼모로 이제 지구촌을 들쑤시는 생떼를 쓰는 것이다. 집안에서도 문제아가 생기면 부모로서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엄하게 벌을 주거나 타이르는 것이다. 그 전에 부모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벌을 주면 말을 들을 자식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닐 것 같으면 타이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자식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일 포기한다면 더 큰 재앙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실험이 바로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타이를 수 있는 권한이 우리 남한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은 우리 민족과는 혈연이 아니라서 그런지 포기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사실 미국도 핵을 갖지 말았어야 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비핵화가 중요한 것이다. 핵으로 평화를 이루는 일은 언어도단이다. 그래서 핵보유국은 핵보유국을 양산하게 될 위험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핵이 인류를 얼마나 엄청나게 파괴했는 지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우리는 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왜 핵이 자기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바보 같은 인류의 태도를 보고 갑갑해 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우리나라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럴 쯤이면 찾고 싶은 곳이 산이다. 초록이 깊어 가는 산에서 내 안으로 들어가 '내심낙원'에 빠지고 싶다.

2010-06-13 홍창진

학력경쟁과 입시위주교육에 대한 역사적 성찰

[경인일보=]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으로 과열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 단계에서 벌어지는 학력 경쟁이 우리 역사속에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조금씩 축적되고 있는데, 이들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시기에 학력경쟁 체제가 조성된 배경에는 우선 학력과 직업을 연계시키는 일제의 정책과 실력양성 운동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추긴 진학 열기가 있었다. 일제는 당시 법조인, 교사, 의사 등과 같은 선호 직업을 학력에 연계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실력 양성의 필요성이 학교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왔지만, 당시 학교는 이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일제는 한반도에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지 않았으며, 초등과 중등교육기관마저도 그 수업연한을 짧게 하고 교육 과정도 저수준의 실업교육 위주로 운영하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에 들어 초·중등교육의 수업연한 연장과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이 이루어지면서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연결되는 학력체제 즉 학력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학교로 몰려온 사람들은 이러한 학력의 사다리를 서로 오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중등과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상급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학력의 사다리가 급격히 좁아지는 병목현상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치열한 학력경쟁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등장한 학력 경쟁은 개인 사이뿐 아니라 학교간의 경쟁으로도 나타났다. 이는 지금도 그러하듯이 당시에도 학교의 명성이 상급 학교 진학 성적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성적 향상을 위한 소위 입시위주 교육의 양태, 이를 테면 비입시 교과목의 배제나 축소, 입시 주요 과목의 수업시수 확장 등과 같은 파행적 교육 과정의 운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반복 학습을 통한 지식의 암기가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으며, 과외학습이나 자율학습 등이 성행하고, 학교별 또는 학교연합 모의고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필자의 세대가 대학 입학을 준비할 때도 흔히 겪었던 이러한 교육의 모습이 1920년대와 1930년대 학교 현장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이 세 번의 세대를 거쳐 진행되면서 우리의 교육을 특징짓는 핵심 용어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이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성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첫째, 만연된 학습 소외현상의 문제이다. 학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보람있고 즐거운 과정이 되기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정도의 지나친 욕구 유보와 인내심을 강요하고 있어 일종의 극기 훈련 과정처럼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학습활동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둘째, 입시 도구적 교과 인식의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을 주요 과목으로 보고, 단기간 암기로도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과학을 암기 과목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전통적 인식의 지속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시험과 관련하여 교과의 중요성과 의미를 평가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이 성장해야 할 방향과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교과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학습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 본연의 논의와 인식을 생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교과 내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인내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관련하여 교과의 의미를 이해하고, 즐겁고 보람있게 공부하는 학습자들이 넘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2010-06-06 정동권

경기도지사 후보 공약의 촌평

[경인일보=]4년 전 5·31 동시지방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空約)부터 참신한 공약(公約)에 이르기까지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이번 제5회 6·2 전국 동시지방선거 또한 비슷한 양상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역시 정치인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메카인 경기도지사 후보의 공약을 분석하는 일은 한반도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경기도지사 선거 책자형 선거공보에 의하면,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는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김문수 후보의 대표 공약은 최고시속 200㎞ 쌩쌩 경기도(GTX 3개 노선 동시 착공), 대륙으로 세계로 무한 비상 경기도(서해안 산업 육성), 마지막 한 분까지 무한돌봄(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확대), 365일 24시간 보육 부모안심 교육(꿈나무 안심학교 확대, 부모안심 기숙학교 설립), 그리고 31개 시·군의 지역공약 등이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는 '함께 꾸는 꿈이 경기도를 바꿉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유시민 후보의 대표 공약은 굽이쳐 흐르는 한강, 살아나는 지류하천(4대강 사업 반대·실개천 살리기), 도민을 섬기는 복지, 효도하는 경기도(공공보육체계 획기적 개선·공교육 정상화·방과후 학교의 질 향상·어르신들 살피고 효도하는 경기 구현), 평화를 토대로 세계로 열린 경기도(환황해 평화산업 지대 만들기·군사시설 합리적 운영 및 휴전선 생태평화지대 실현), 그리고 31개 시·군의 지역공약 등이다.여러 곳에 발표된 두 후보의 공약을 총평해 보면, 유시민 후보는 복지·산업 콘셉트, 김문수 후보는 건설·산업 등의 개발 콘셉트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기본적으로 후보 각자의 정치적 신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육분야 공약에서 더욱 뚜렷하다. 경기도 교육국 설치와 무상급식에 대한 후보간 견해차는 명확하다.두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두 후보 모두 재원문제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김문수 후보는 SOC 투자사업을 위하여 민자유치를 하겠다고 한다. 민자유치는 당장 경기도의 재정부담은 적을지 모르겠지만, 국가적으로 민자유치사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자칫 세금먹는 하마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 후보의 복지공약 역시 재정문제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경기도민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투자성과는 전국적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복지지출에는 중앙정부의 몫이 커야 한다. 재정의 시각에서는 경기도를 위한 자치정책으로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본인이 제시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적 보완을 계속할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점이 있다. 경기도는 지리적으로 경기남부지역과 경기북부지역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고, 경기남북의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큰 과제이다. 경기북부지역은 경기남부지역에 비하여 주민등록 인구상으로는 25.7%, 예산규모상으로는 19.4%, 지역내 총생산인 GRDP는 17.8%, 대학교 수는 15.4%, 문화기반시설은 21.8%, 의료시설은 24.2%, 도로연장 24.4%로, 모든면에서 매우 열악해 같은 경기도내에서도 지역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이런 점에서 경기분도론은 정치인들의 대표적 공약이기도 했으며, 경기도 2청사의 자율권 부여 문제는 늘 논의되고 있는 이슈이다. 또한 경기북부지역은 다른 지자체와 달리 남북대치 상황에 있는 접경지역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제가 있는 지역이다. 국가안보의 혜택은 전국민이 누리고 있다. 통일과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경기북부지역에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당선자에게 바란다.

2010-05-30 소성규

유세(遊說) 유감

[경인일보=]6월 2일 지방선거 투표일이 한 주일 남짓 남았다. 전국적으로 유세가 시작되어 온갖 말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선거판에서 후보들이 내뱉는 대부분의 말들은 공수표(空手票)였다. 뻔히 거짓인줄 알면서도 들어주는 것이 순박한 민심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굳이 따지는 일이야말로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의 입을 통해서 빠져나온 말은 들어줄 사람의 귀를 선택하지 않는다. 감언이든 진실이든,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퍼부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행위를 '유세'라고 착각한다.유세란 후보자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행위다. '유(遊)'는 각처를 돌아다닌다는 뜻이고, '세(說)'는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뜻인데, 원래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제도가 생기기 전 각지의 현인(賢人)들은 등용되어 자신의 생각을 정치에 반영시킬 목적으로 제후들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현책(賢策)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연줄들을 동원하거나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국정의 책임자로부터 발탁될 기회를 노리기도 하지만, 그 옛날에는 직접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공자는 56세부터 14년간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각국의 제후들을 만나 유세를 펼쳤으나, 끝내 뜻을 관철하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둥대며 돌아다니는가? 말재주를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유세 도중 만난 미생묘(微生畝)는 공자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던졌다. 그러자 공자는 "감히 말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완고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논어-헌문편)라고 대답했다. 미생묘는 공자의 유세에 혐의의 눈길을 보냈고, 그에 대해 공자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완고한 제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공자는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피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워하여 바로잡힐 것"(위정편)이라 설파했으며, 계강자(季康子)란 대부가 도둑을 근심하자 "그대가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설사 국민들에게 상을 준다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안연편)이라고 일갈했다. 말하자면 공자의 유세는 감언이설의 말재주가 아니라 좋은 정치에 관한 강의였던 셈이다. 공자가 보기에 제후들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 광정(匡正)해야 할 당시의 문제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노구를 이끌고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에 나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유세하고 다닌 목적은 벼슬자리나 녹봉(祿俸)에 있지 않았다. 부와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목적으로 제후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그런 포부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남은 생을 바침으로써 유세의 참뜻을 후세에 남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설득의 대상이 제후 한 사람에서 다수의 주민들로 바뀌었을 뿐 지금도 유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제후가 정치의 주체였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정치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 당시 공자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내뱉었다면, 어디서든 벼슬 한 자리 정도는 쉽게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누구를 만나든 진심을 말하고자 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참된 의미의 유세다. 잔뜩 화장한 얼굴로 선거판에 등장하여 실현시킬 수 없는 약속들이나 남발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유권자는 이제 거의 없다. 지방정치는 나라 전체의 정치를 든든히 세워주는 바탕이다. 지방정치를 식물의 생태계에 비유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야흐로 유세장의 소음이 나라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지만, 유세의 참뜻이 진심과 겸손에 있음을 아는 후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유권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2010-05-24 조규익

문화는 미래다

[경인일보=]일전에 동료 신부 몇이 시내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이 나와서 한참을 갔는데 뒤에서 주인 아줌마의 소리가 들렸다. "여봐요! 계산을 하고 가셔야죠!" 아뿔싸! 우리 일행 중에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고 무심결에 식당을 나오고 만 것이다. 보통 외식을 하게 되면 신자들의 초대를 받아 그들과 함께 하게 되기 때문에 신부들은 습관적으로 외식할 때 밥 값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신부들끼리 식사를 했으니 습관적으로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언론, 검찰, 경찰 분야에 계신 분들이 주로 밥 값을 내지 않고 또 다른 의미에서이겠지만 조폭들도 밥 값을 내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은 힘의 원리에서 주로 부탁받는 쪽이라 그런다고 하지만 신부들은 무슨 이유에서 동행인들이 밥을 살까? 그것은 신자들이 신부 수입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신부들의 월급은 지역교구별로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60만원 내외이다. 처자식이 없고 사택에서 밥 주니까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책정된 액수인 것 같다. 그러나 내 개인으로 보면 참으로 빠듯한 돈이다. 자동차 기름 값으로 반 정도 나가고 나면 책 몇 권 사기도 손이 떨린다. 이렇게 빠듯한 살림 가운데도 나머지 대략 25만원의 여유 돈을 내가 어디에다 쓰고 있는지 관찰해 보았다. 나도 놀란 일이지만 공연장에 갔다가 뒤풀이에 쫓아가서 그 뒤풀이 값을 치르는 데 거의 소모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자라면 신용카드까지 써 가며 비용을 지출하고 금액이 연체되어 다음달에는 전철을 이용해 가며 갚아 나갔다. 요즘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공연 관계자를 자주 만나곤 한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에게 없는 돈을 쪼개서 밥 값을 자진해서 내곤 한다. 왜냐하면 연극계의 현실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수입은 고사하고 연극을 하기 위해 부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심지어는 부업을 해서 번 돈을 연극 제작에 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박봉이지만 기꺼이 밥 값을 내고 싶었다.한 시대의 공연문화 활성화 정도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나라의 문화 수준은 월급 60만원짜리 천주교 신부가 공연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뒷풀이 비용을 기부해야 하는 수준이다. 언론계의 기자도 검찰 경찰 조폭에게도 대접을 받는 신부가 기부하는 이 현실을 보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요즘 공연문화의 최고 인기는 뮤지컬이다. 그래서 뮤지컬은 그나마 조금 자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 분야도 몇몇 성공한 작품에 불과하다. 아직도 창작 뮤지컬은 연극 수준과 별 차이 없다. 문화는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현행 정부의 공연문화 활성화 정책이라는 것이 극단별로 공연이 오를 때마다 예산의 10% 정도 지원해 주는 수준이다. 그나마 정책 당국의 예산 범위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국가 미래 비전을 생각할 때 정부가 통 큰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 첫째 공연 예술인 자체를 지원하는 일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를 공연 예술인들에게 확대하여 기초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생활이 보장되어야 문화 예술에 혼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공인된 예술 단체가 기획한 작품에 대해서는 제작비의 50%를 지원하자는 것이다.문화에 투자하면 국민의 정서적 수준이 높아진다. 문화 수준이 높은 국민은 비록 가난해도 행복해 할 줄 안다. 이해의 충돌 때문에 계층 간에, 지역 간의 갈등의 최고조를 달리고 있는 요즘 새로운 문화 비전의 제시로 국민 갈등을 해소하자.

2010-05-17 경인일보

저소득 계층을 위한 교육적 배려 필요

[경인일보=]우리나라 교육 문화를 얘기할 때 높은 교육열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자녀가 영유아 단계일 때부터 시작하여 대학진학 단계에 와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높은 교육열에는 자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주려는 부모의 마음도 담겨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학력을 갖추어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도록 해야겠다는 세대를 이은 계층 이동의 욕구도 적지 않게 반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초·중등, 고등교육의 학력 체계가 형성된 1920~3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제는 사람들이 선호했던 의사, 법조인, 교사, 관료, 은행원 등과 같은 주요 직업과 특정 학력을 연계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한국인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동기로 작용하였다. 학교가 계층 상승의 통로로 인식되면서 학력 경쟁은 점차 치열해졌으며, 그 와중에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사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흔히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로 표현되는 이러한 사례들이 언론과 주위 입소문을 통해 회자되면서 빈곤층 부모들도 자녀교육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현상은 사라져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얘기가 '개천에서 용 써봐야 소용없다'는 말로 바뀌어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되어버린 것이다. 왜 그 '개천 용'이 될 가능성이 이다지 희박해진 것일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도와 대학 진학 상황을 결정하는데 있어 힘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실제로 부모의 학력, 소득, 사회적 지위 등이 높을수록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내외 연구들이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빈곤층 가구가 빈곤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날 확률은 6.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 이유를 빈곤층의 교육비 지출이 상위층에 비해 현저히 적은데서 찾고 있다. 요컨대 고소득층은 자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여 자녀로 하여금 높은 학업 성취와 고학력자가 되게 함으로써 그 학력이 사회적 지위 획득을 용이하게 하는데 비해, 저소득층은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됨으로써 교육을 매개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층구조가 고착화된다는 것은 저소득층의 미래 희망이 작아짐과 아울러 사회적 갈등 가능성이 커짐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잠재력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장됨으로써 국가 차원의 인적자원 활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잠재력있는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각도로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입장에서 두 가지 정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영유아기의 교육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최근 유아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져가고 있지만, 영유아기의 성장 환경이 이후 지능 및 의식구조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소득층 영유아들의 환경을 성장에 적합하도록 조성해 주는 교육복지 정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성장을 위한 실질적 교육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무상의무교육의 질을 한 단계 높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학비 이외에도 다양한 학습활동 보조비가 소요되며,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보건복지 비용도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학비면제보다 한 단계 높은 교육복지 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2010-05-09 정동권

거주 외국인·다문화가족에 관한 법정책의 방향

[경인일보=]1년 12개월 중에 기념할 날이 가장 많은 달은 5월이다.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스승의 날/가정의 날(15일), 성년의 날(17일), 5·18 민주화 운동기념일(18일), 발명의 날(19일), 세계인의 날(20일), 석가탄신일/부부의 날(21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 등 무려 14가지가 있다. 4월 10가지, 10월 12가지 보다도 많다.그중에 5월20일 세계인의 날이 있다. 세계인의 날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법률 제8442호, 2007.5.17. 제정) 제19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법 제19조는 "국민과 재한 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매년 5월20일을 세계인의 날로 하고, 세계인의 날부터 1주간의 기간을 세계인 주간으로 한다"고 하고 있고, "세계인의 날 행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장관 또는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가 따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 취지에 따라 정부 및 각 지자체는 다양한 행사를 치르고 있다.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의 수가 가시적으로 증가하여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9월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수는 117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를 반영하여 2007년에는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고, 행정안전부는 거주 외국인 지원 표준 조례를 제정하여 외국인 및 다문화 가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정책에 대하여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최근 중앙일보 경영경제 월간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중국·베트남 등지에서 10~15년에 걸쳐 아시아계 남녀 100만명씩 모두 200만명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우리나라도 외국인 이민 장려책을 강조해 눈길을 끌고 있다.그러나 현행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 및 다문화가족지원법의 경우 그 제정목적의 출발점이 명백히 다름에도 외국인에 대한 통괄적 규정을 두고 있음으로 인해 상호 중복적인 규정이 되고 있다. 따라서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은 주재 외국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에 대한 인권 및 국적 취득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다문화가족지원법의 경우에는 장래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한국사회에 대한 동화모델을 중심으로 규율되어야 할 것이다.한편 지자체의 표준조례안의 경우 구체적인 행위규범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선언 규정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보다 구체적인 실천적인 내용을 포함할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안부 등의 경우 지자체에 대한 교부금의 지급에 대하여 인센티브의 지급 등의 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외국인 시책자문위원은 외국인 관리에 관련한 관공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형식주의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시책 자문위원회의 역할이 조례상으로는 (1) 외국인 주민지원 시책 기본계획 및 계획의 변경, 개별시책, (2) 외국인 주민 및 외국인 주민 가정에 대한 지원에 관한 사항, (3) 외국인 주민의 지역사회 적응 프로그램의 운영에 관한 사항, (4) 외국인 주민과 함께 하는 지역공동체 구현에 관한 사항 등 다양하나 그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못해 상징적인 역할만을 행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책 결정시 외국인 평등지수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양성평등을 위한 양성평등 지수처럼 각 정책이 외국인 및 국제결혼 가정을 고려하고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도록 하는 외국인 평등지수 제도를 각종 정책에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2010-05-02 소성규

장관의 탄식

[경인일보=]최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지식의 빈곤을 절감한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에 우리의 지식수준은 어림없고, 너무나 모자라다'는 요지의 한탄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았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한 나라의 경제수장으로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그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목에 힘을 주던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폭탄선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 선진국의 경제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였다. 그들의 대화에는 예술이나 문화 등 폭 넓은 교양에서 전문적인 경제정책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인 면에서 윤 장관의 소양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금융감독원장을 거쳐 이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 스스로가 '무식함'을 토로했다면, 그 고백 속에는 우리의 문제적 현실을 아프게 지적하려는 복합심리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아는 게 없는 것이 '무식'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무지'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지혜롭지 못할 수 있고, 배운 게 없어도 지혜로울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우리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강하게 요구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중 밥 먹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깡그리 배움에 쏟아붓는다. 그런 지옥 같은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 중 일부가 엔진역할을 하며 이끌어가는 게 우리나라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윤 장관이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자녀교육에 열성인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만큼 공교육, 사교육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국격(國格)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모두가 무식하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을 정도로 아이들이 공부에 몰두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임에도 그 결과가 '무식'이라면, 우리는 대체 공교육과 사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웠단 말인가. 현재 유치원부터 중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 단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듯 '중등학교는 대학에 골인하기 위한 관문'에 불과하다. 따라서 '좋은 인간'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학교 당국이나 학부모 모두의 유일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폭 넓은 교양과 훌륭한 인성의 바탕 위에 지식을 쌓는 것'이 교육의 보편적인 목표라면, 바탕을 도외시한 채 도구로서의 지식 획득에만 주력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일단 대학만 들어가면 그런 바탕은 저절로 마련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필수 영양소처럼 인간 성장의 단계마다 필요한 것이 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인데,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그런 영양소들을 공급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이들의 교육 실조(失調)가 대학에 들어왔다고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들,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어 요령껏 자라온 아이들이 대학에 적응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국가나 사회가 아닌 학생들이 수요자라고 착각하는 대학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법을 강구하고 애를 쓴다. 학생들의 마음이 떠나가면 대학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수들로 하여금 거친 지식을 '말랑말랑하게 씹어서' 학생들의 입속에 넣어 주길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걸 대학들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강변한다. 그런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예술이나 교양교육을 제대로 시켜 줄 리 없고, 학생들 또한 부족한 영양소를 스스로 찾아서 보충할 리는 더더욱 없다. 지금처럼 교수들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준 전공지식을 간신히 받아먹고 자란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의 중추를 이룰 때, 우리들의 입에서 '우리는 무식하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식함에 대한 자성을 많이 할수록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크겠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무식하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다.

2010-04-25 조규익

질투에서 사랑 찾기

[경인일보=]질투란 자기는 갖지 못했는데 남은 갖고 있는 재능이나 능력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비하시키려고 애쓰는 부덕을 말한다. 예컨대 이웃이 땅을 사면 기뻐해주고 축하해 주어야 하는데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남의 기쁨이나 축복을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속으로는 억울해하는 좋지 못한 심리이다. 부덕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인간인 이상은 이 부덕을 안 범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사는 일 자체가 번뇌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번뇌를 불가에서는 세심하게 살펴 108가지라 하지 않았던가! 질투는 인간 번뇌의 주요한 주범이라고 생각 한다. 이 질투라는 속스러운 기운이 우리 안에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어서 이 질투를 잘 다스리면 그 만큼 마음의 평화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언제부턴가 질투를 다스리는 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주소록 파일을 열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체크를 해 보았다. 이 사람이 정말 일이 잘 풀려서 내가 잘 된 것처럼 기쁘다고 생각하면 'O' 아니면 'X' 중간 정도면 '#' 표시를 해 보았다. 오히려 관계가 먼 사람들은 중간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정말 친한 그룹에서는 부끄럽게도 거의 'O' 표시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봐도 한심한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질투의 반대말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소록 파일에서 더도 말고 두 사람을 택해서 사랑의 대상 목표로 삼았다. 한 해에 이 두 분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여 그가 잘 되면 내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할 수 있도록 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야 그 만큼 내 사랑이 커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메일도 그 사람들에게 자주 보내고 일부러 식사 약속도 하면서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 매일 아침기도 지향도 그 두 분을 위해 두었다. 내 사랑이 전해져서 였을까! 그 두 사람들도 내게 무척이나 다정하게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 매해 두 명씩 필자의 사랑 다이어리에 'O'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만큼 내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질투도 사랑으로 다스리면 다스려지는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수행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주소록을 열어 보고 각자 질투의 성적표를 체크해 보자. 아마도 우리 모두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이기적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엄청 친하고 잘 지내는 친구같아도 속내를 알고 보면 질투의 화신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친형제에게도 'O'표를 못주는 사람이 있다. 기껏해야 배우자 혹은 자녀 외에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O'표를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배우자에게도 못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 사람들은 동료를 인정 못하고 자기 안에 빠져 매일 속앓이를 하고 살아야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항상 부딪치고 싸우고 반목하고 살아야할 것이다. 얼마나 괴로운 인생인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사는 기쁨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O'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그만큼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살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귀한 사람들인가! 나의 이웃이 없이는 내가 없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사랑의 다이어리를 만들자. 돈 벌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다이어리만 열심히 정리하지 말고 사랑하기 위한 다이어리를 만들고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자. 한 해 한 해 나의 사랑의 다이어리에 'O'표를 늘리는 기쁨을 만끽해 보자!

2010-04-18 홍창진

교육정책에 관한 열정과 냉정 사이

[경인일보=]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고, 교육에 관한한 우리 국민 모두가 전문가로서 자임하기 때문에 교육 관련 문제는 국가 정책의 가장 민감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연초부터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추진해온 학교 다양화 및 자율화 정책, 미래형 교육과정 개정과 시행, 입학사정관 제도 확대, 대학 통폐합 및 구조조정, 국립대학 교수 성과 연봉제 등 정부의 다양한 교육정책 시행 계획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새롭게 시도되는 여러 교육 정책들이나,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적 불만은 우리 사회의 교육이 지금보다 더 개선되었으면 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 정부가 초중등 및 대학 교육정책 방안을 열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현실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제시이며, 미래 한국 사회를 한발 앞서서 준비하고자 하는 이 정부의 의지 표현으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정책 제시는 일부 인순고식(因循姑息)하는 교육계를 자극하고 깨우치는 채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관련 부처가 어떤 교육 정책을 냉정하게 검토하고 토론하며 숙고하는 단계를 소홀히 하고, 단순히 지금 학교 현장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성급하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에 충실하여 이를 일방적이고 하향 방식으로 제안한다면 이러한 정책은 한국 사회의 전통과 현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간과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근래 각종 매체를 통해 공지되는 우리 사회의 교육 정책은 필자로 하여금 이 정책을 교육에 대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알묘조장(苗助長)'과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화를 통하여 우리 교육 정책의 방향을 음미해 보자. 춘추전국시대 송(宋) 나라의 어떤 농부는 "모(苗)를 심은 다음 날부터 매일 논에 나가 모를 돌보면서 이 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루종일 심은 모를 뽑아 올려놓고(苗助長)는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자신의 아들에게 '나는 오늘 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온 종일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자랑하였다. 아들이 놀라서 논에 나가 보니 이미 모든 모들이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가 '맹자'에 인용되어 있다. 맹자는 이 우화를 통하여 사람들은 어떤 일을 도모함에 반드시 어떤 결과가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갖기 마련인데, 만약 성급함과 조바심만이 지배하는 열망은 오히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자라는 생명의 본성을 일그러지게 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맹자는 특히 정치가들에게 농부가 농사일을 하면서 마치 봄이나 여름 한 철로 꽃피우고(生), 열매 맺고(長), 추수(收)해서 갈무리(藏)하는 일 년의 일거리를 다 하려는 진지한 열정이 지나쳐, 오히려 이 열정과 조급함이 생명을 가꾸고 살리는 일보다 생명을 죽이게 되는 실수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었을 것이다.교육정책에 관한 이러한 열정의 맞은 편에 인간의 차분한 인내와 불굴의 노력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우공이산'의 우화를 맞세울 수 있다. 인간의 인내심과 의지와 관련하여 이 우화는 '열자'편에서 인용되는 이야기로써, "90세의 늙은 우공은 자신이 살고있는 집이 산에 막혀 불편하자 이 산을 옮기기로 하고, 조그만 삼태기에 흙을 퍼 나르면서 산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은 노인네가 산을 옮긴다고 비웃으며 만류하자,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남고 그 아이들이 커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자자손손 대가 이어질 것이고, 산을 옮기는 작업도 계속되어 반드시 이 산이 옮겨져서 편편해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일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우화에서 우리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 정책의 다양한 제안은 구성원들의 열정과 열망에서 시작하지만 참된 인간 완성은 오랜 기다림과 진지함, 쉬지 않는 헌신과 노력, 인간에 대한 신뢰를 통하여 이룰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7세기 제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명재상 관중(管仲)은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며,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교육은 하루아침이나 한 해의 일거리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와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달린 거대한 과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백년대계인 교육을 성급한 열정만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이다.

2010-04-12 정동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