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 이렇게 하면 대선도 진다

'패배 책임 사퇴' 성명서 한장익숙한 야당 레퍼토리 예측돼서민들이 왜 투표하는지야당 지지토대·바탕 몰라선거마다 분열→敗 무한반복후보사퇴 시한 코앞 '중대변수'4월 13일 오후 6시. 여당의 압승.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야당의 성명서 한 장.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일여 다야의 선거구도에서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선거가 끝나고 도대체 무엇을 책임진다는 것인가. 야권의 분열이 곧 패배라는 것을 몰랐던 국민들이 있었던가. 기업이었다면 망하는 길을 끝까지 고집한 CEO에게 그런 식의 사퇴란 있을 수 없다. 아주 엄중하게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몸짓으로 진짜 책임져야할 상황을 회피한다. 그래서 다짐한다. 패배했다고 눈물을 흘리지 말자. 사퇴한다고 섭섭해 하지도 말자. 반성도 낭비다. 헛된 분노는 정신까지 해친다. 그러나 우리들은 알고 있다. 가을이 되기 전에 잠룡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내년 말까지 거듭될 분열과 이합집산도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힘과 낙하산의 달콤함을 아는지라 백병전에 가까운 대선 판이 될 것이다.보수의 기치를 내건 후보와 정당 간 합종연횡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될 것이다. 대선 판을 좌우할 키워드는 개헌이다. 통치구조의 변경과 선거제도의 변경은 대선의 블랙홀이다. 중대선거구를 채택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한다면 일본식 자민당의 장기집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일 문제도 살아있는 변수다. 이런 결론에 이를 때마다 과연 야당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2013년 12월. 문재인은 한권의 책을 썼다. '1219, 끝이 시작이다'. 자신의 대선 패배 이유를 자성한 책이다. '평소 준비와 실력 부족 그리고 벼락치기'를 그 이유로 들었다. 패배의 원인을 '우리 안의 근본주의'에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야당은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 변하고 있는가. 물론 야당의 단골메뉴는 서민사랑이다. 공약도 구호도 서민의 대변자임을 결코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거마다 패배의 길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멀쩡한 당을 쪼개고, 대표를 내보낸 야당이다. 어설픈 공천의 칼날로 지지자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자기실력을 통한 승부가 아니라 당대표까지 빌려다 선거를 치르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야당은 잊고 있다. 서민들이 어디에 투표를 하는가. 왜 정치를 비난하는가. 왜 투표장에 가지 않는가.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여당보다 야당에게 투표하는가. 투표하는 서민들은 특정 지역출신인가. 투표장에 간 저소득층이 여당의 승리를 만들어 주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야당이 철저하게 따져 보았다는 자료들을 찾기 어렵다. 야당의 지지토대와 바탕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지구당이 없어지면서, 현재 야당의 지역 기반은 대부분 사라졌다. 야당의 바탕이었던 민주개혁세력은 그 기반이 크게 퇴보하고 있다. 모이는 사람들만 모이는 지역의 시민운동도 탈진 직전이다. 일부 종교의 편향적인 보수화와 정치적 영향력도 큰 변수다. 지역에 세력화되어 있는 관변단체의 활동도 위협적이다. 종편으로 지칭되는 일부언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바탕도 지지자도 없는 야당은 선거 때마다 급조된 조직으로 대응하고 있다.그래서일까. 청년실업과 양극화가 극에 달해도 분노하지 않는다. 후보자가 누구이든지 공약이 무엇이든지 관심이 없다. 헌법은 국회의원을 헌법기관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선거를 후보자나 그들 주변의 권력과 이권을 위한 절차로 여긴다. 입에 달린 공약과 구호에 감동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국민들의 절망이 클수록 민주주의는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의 변수를 좌우할 후보사퇴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야권의 분열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 것인지. 후회할 시간은 많지 않다. 야권, 정말로 이렇게 하다가는 대선도 진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4-03 김민배

[월요논단] 식목일과 무궁화 심기운동

우리민족 정기 말살하기 위해日, 전국의 무궁화 베어내고그들의 국화 벚나무 대량 식재이제 전국의 영혼없는 벚꽃축제그만 하고 무궁화 심기운동 펼쳐후손들에게 애국 정신 심어줘야4월 5일 식목일은 절기로는 청명이다. 바로 다음날이 한식인데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 중 하나이다. 계절적으로 청명, 한식을 전후하여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임으로 1949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하여 4월 5일을 식목일로 지정하였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여 나무를 심으면서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제정된 날이었다. 1960년에는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폐지하고 3월 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였다. 그러나 1961년에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어 식목일이 부활되고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2006년부터 다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지만 식목일에 나무심기 행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대한민국이 출범하고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의 양축과 함께 가장 대표적으로 성공한 치적을 들라면 무엇보다도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 사업이다. 새마을운동은 낙후된 농촌을 개조하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벌거숭이 산이었던 온 산하가 녹색이 창연하게 푸른 산으로 바뀐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 기적도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대통령, 공무원,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열정을 모은 결과이다. 지난해 광복 70년을 기념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외교통일, 산림녹화 6개 분야로 나누어 70년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중 산림녹화 편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산림녹화에 성공한 것은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8년 동안에 걸쳐 황폐지를 복원하기 위하여 사방사업을 하고 화전을 정리하여 그 기반을 닦은 다음, 조직적인 국민 참여에 의한 산림보호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조림사업을 체계적으로 시행한 결과였음이 기술되어 있다. 또한 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식재한 것이 잘 자라고 있는지 이듬해 철저히 점검한 즉 검목 작업을 한 것이 실효를 거두었음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앞으로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나무심기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민족의 상징인 무궁화 심기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쳤으면 하는 큰 바람이 있다. 필자는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해마다 식목일에 무궁화 200주씩을 심어 무궁화동산을 가꾸고 무궁화 노래비도 세웠다. 무궁화는 한반도,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한민족의 상징이다. 한반도를 예로부터 근역(槿域)이라 불러왔고 흔히 '무궁화동산',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일컬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해온 나라꽃이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하다는 의미로 민족의 무궁한 발전의 기원을 담고 있다. 생명력이 강하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끈기 있게 꽃을 피운다. 무궁화는 강인함과 끈질김과 순박함과 기다림이 있다. 봄꽃들이 다 피고 진 다음에 여름날 강렬한 햇빛 아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기를 거듭하면서 7월부터 3개월 이상을 지속적으로 아름답게 피는 꽃이다.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일제는 우리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자라는 무궁화를 베어내고 그들의 국화인 벚나무를 일본에서 가져다가 대량으로 심었다. 창경궁의 벚꽃놀이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벚꽃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난 광복을 기념하고, 대한민국의 성취를 자랑하고, 독도 수호를 외치면서 지금도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일본이 만들어낸 관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정서는 모순이 아닌가? 꽃을 미워하자는 것이 아니라 영혼 없는 벚꽃축제는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식목일에는 전국적으로 무궁화 심기운동을 펼쳐 우리 민족 정체성의 상징인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사랑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6-03-27 이배용

[월요논단] 지연의 용인술, 시간을 휘두르는 권력의 기술

고의적으로 할일 미루거나고통의 시간을 연장해가면서타인을 괴롭히는 대인기술을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은참으로 무서운존재참으로 경계해야 할 존재다옛말이 "도둑질도 하지는 않을망정 배워는 두라"고 했다. 도둑질을 배워두라니? 해서는 안 될 짓을 왜 배운단 말인가?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하기 싫은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할 줄 모르는 일이 일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할 줄 모르는 일과 같은 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이다. 유감스럽지만 우리 사회가 그러한 좋은 세상에 미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닥치게 되면 대처를 해야 하니 알아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다. 그 으뜸이라면 '학대'가 아닐까 싶다. 학대란 다른 생명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하는 행동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죽음을 능가하는 고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학대는 죽음의 순간을 계속 연장하면서 다른 생명을 계속 되풀이 살해하는 행동이다. 사악하기로는 으뜸이라 하겠다. 폭력도 나쁘지만 '지연', '연장'이야말로 학대를 학대로 만드는 핵심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알아두어야 할 대인기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연',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어려워 약속을 어기거나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결정을 미루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고의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고통을 주는 시간을 연장해가면서 타인을 괴롭히는 대인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 참으로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대상, 시간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라고 봐야 한다. 그런 자들의 내면을 사실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근대 이후 인간이 인간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참고하는 영역은 인문학이지만 다양한 권력자의 실체를 이 시대 인문학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재벌집 자식이나 권력자의 모습은 시청자의 희망사항일 뿐, 실제 모습은 아니다. 문학이 대부르주아지의 내면을 기록했던 것은 잠깐이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걸작 '외제니 그랑데 Eugenie Grandet' 정도가 그 단편을 보여준달까. 주인공 그랑데 영감은 전통적인 '수전노(守錢奴)' 인물로 자본주의적 비약을 보여준다. 부인의 지참금으로 재산을 불리고 동전 한 푼도 절대로 그냥 쓰지 못하게 하며 지참금을 바라고 딸 외제니에게 구혼하러 오는 남자들을 휘둘러 이익을 도모하는 것쯤은 별 것 아니다. 그 정도 인물은 우리 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랑데' 영감이 대단한 것은 같은 수전노 사이에서도 탁월한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아우 빅토르가 파산해 엄청난 빚을 아들 샤를에게 남긴 채 자살하자 그랑데 영감은 파리로 가서 채권단과 협상한다. 그랑데 영감은 가문의 신용도 지키고 빚도 갚지 않기 위해 최고의 전략을 구사하니 바로 '지연작전'이었다. 그랑데 영감의 재산규모로는 충분히 빚을 갚아줄 수 있었지만 영감은 빚을 갚는 대신 채권자들이 스스로 이자를 포기하고 원금을 깎아주도록 끝없이 결정을 유보한다. 그랑데 영감의 대응 앞에 악귀 같다는 채권자들도 속수무책 처분만 바라고 결국 원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감지덕지 고마워할 지경이 된다. 그 핵심 기술이 바로 지연책이니 그랑데 영감은 본래 어눌한 체, 무식한 체하면서 상대방이 모든 속내를 드러낼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치세, 용인술의 대가였던 것이다. 이 '연기'의 기술은 '탈무드'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그 역사는 수천년이며 오늘도 여전히 정치판, 경제판 한편에서 빈번히 사용된다. 이기고 싶은 자라면, 아니 이러한 비인간적 학대형 공격에 자신을 지키려면 쓰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익혀두어야 할 방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가진 자의 방법이다. 없는 사람이 함부로 구사했다가는 먹이가 지나가고 기회가 사라져 후회하기 십상이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3-20 윤진현

[월요논단] 신문명을 예고하는 '알파고'

바둑 최고수를 이긴 인공지능사람 언어·생각마저 해독·추론상상력·창의성까지 무한 진화부작용과 위험 극복하고미래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인간의 한 수, 신의 한 수 어디에…인공지능 바둑 컴퓨터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세계 최강 이세돌 바둑기사를 연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두뇌 스포츠의 대명사로 4천년 역사를 가진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19줄, 361점의 반상 위에서 흑백 두 돌이 우주에 있는 원자 수만큼이나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로 펼쳐지는 게임으로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는 분야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초지능 컴퓨터 알파고는 바둑의 규칙과 무궁무진한 변화를 학습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수 읽기 뿐만 아니라 직관과 형세 판단 및 게임 운영 능력까지 갖추어 세계 바둑최고수에게 완승하고 있다. 알파고의 개발자인 딥마인드의 허사비스나 많은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해치지 않고 인간복지의 질적 향상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스티브 호킹 같은 과학자와 여러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자가발전을 거듭하여 개발자인 인간까지 정복함으로써 인간 문명의 종말을 초래하리라 경고하고 있다. 20세기 초 발표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바탕하여 개발된 원자력이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킴과 동시에 고도화된 핵무기로 한순간의 오판과 실수로 전쟁에 사용되어 인류를 공멸의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첨예한 양면성을 지닌다. 알파고라는 이름은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의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극점)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어 자모 중 알파(α)는 첫 글자이고, 오메가(Ω)는 끝 글자이다. 샤르댕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융합하여, 혼돈 상태의 무기물에서 극적인 변화로 탄생한 유기물과 원시적 생명체가 장구한 시간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쳐 질적 복잡화 고도화를 통하여 고등동물이자 지성체인 인간으로까지 진화하였으나, 오만한 인간 상호간 또는 인간과 자연간의 갈등과 부조화 상태로 전쟁과 환경파괴 같은 부조리를 반복한다고 하였다. 크리스천인 샤르댕은 하나님의 창조프로젝트에 따라 진화의 극점에서 조화된 하나의 생명공동체에 도달하는 것이 메시아의 재림이고 최후의 심판이며, 진화의 방향은 복잡성의 증가와 함께 고도화되는 인격체이고, 진화의 동력은 극점을 향하여 수렴하는 존재 상호간 사랑의 인력이라 주장하였다. 제망찰해(帝網刹海)라고도 하는 불교적 우주관 인드라망은 무한 차원의 그물망으로서, 그물이 이어지는 마디마다 그물코가 있고 그 그물코에는 입체구슬이 달려 있어, 모든 구슬이 서로 비추며 전체가 하나 되고 하나가 전체를 이룬다. 인드라망은 오늘날 World Wide Web(www)으로 현실화된 거미줄 같은 인터넷 정보망을 놀랍도록 흡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공지능 초컴퓨터도, 인드라망과 같이, 오늘날 지구 위에 사는 인간들의 정신을 한 점에 모아 연대성 안에서 의식의 진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동양철학의 밑뿌리로 만학의 제왕이라 불리는 주역은 음양의 두 가지 기호를 조합 배치하여 우주만물과 인간세상의 무한한 순환과 생장이멸(生長異滅) 현상을 은유와 상징으로 설명하였다. 주역의 음양철학은 라이프니쯔의 이진법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및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을 탄생케 하는 밑바탕이 되었고, 만물의 변화를 음양의 무한순환과 상생상극 원리로 풀어내며 종즉유시(終則有始), 즉 끝이 곧 시작이라 하였다. 바둑 최고수를 이긴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는 현 인류문명을 극점으로 곧장 이끌며 조만간 신문명의 시작을 예고하는 신호탄 같기도 하다. 사람의 언어와 생각까지 해독하고 추론하며 인간만의 고유영역이라 여겨지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분야까지 무한 진화하는 인공지능이, 숨겨진 이면의 부작용과 위험을 극복하고, 미래의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지구촌 인간의 한 수, 신의 한 수가 어디에 있을까?/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3-13 손수일

[월요논단] 국회의원 200석 그 후

야권후보들은 산업·민주화 과정희생자와 절대권력 파시즘적폭력성을 기억한다면자기패·이익 먼저 버리는 희생이민주주의가 야권에 기대하는마지막 희망임을 깨달아야국회의원 200석. 꿈의 숫자다. 하지만 어느 정당이든 권력자든 한번 쯤 갖고 싶은 의석수다. 야권의 재통합이 무산되고, 1여 다야 구도로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당의 과반 저지를 위해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인사들도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만큼 시민들에게는 수도권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야당의 수도권 필패는 동시에 거대 여당의 탄생을 예고한다. 만약 선거든 혹은 그 후 합당을 하든 200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재앙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이 200명. 그것은 통제 불능인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 제헌에 가까운 헌법 개정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헌법개정안의 의결 정족수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다. 권력체계의 변경도 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 신대통령제, 내각제에 이르기까지 해보고 싶은 권력체계도 많을 것이다. 당장 2017년 대선과 관련하여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 모델과 의원 내각제 체제를 합성한 권력분점의 통치체제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것이다. 권력체계의 변혁을 통해 장기집권의 견고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석이라는 절대 권력은 단순한 숫자적 의미를 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야당 필패와 여당 압승 논쟁 때마다 유신헌법체제를 생각한다. 유신헌법에 대한 평가를 잠시 접고 나면, 그 독특한 권력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유신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은 대통령, 통일주체국민회의, 그리고 헌법위원회였다. 행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는 하위기관이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했다. 일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으로부터 질타를 받던 국회도 손 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듬뿍 임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헌법위원회 수준으로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바꾼다면 탄핵과 같은 위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그런 모델을 반추할 때마다 일본의 천황제와 의원내각제로 60여년을 집권하고 있는 자민당 모델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이념 확장에는 항상 한계가 존재한다. 거기에다 1여 다야 구도는 특정정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풍부한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차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숱한 이합집산 끝에 현존하는 정당들은 본부중대와 2중대 논쟁거리에 불과하다. 야당은 선거에 승리해야 한다는 투기적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토대마저 포기했다. 대표와 주요 정책 기구가 구태의연한 인물들로 채워지는 야당의 현실. 평화적 통일과 민주화를 꿈꾸었던 국민들이 미래가 암담하다. 그래서일까. 재통합을 놓고 거친 언사들이 오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필패와 절망이 커질수록 절대 권력의 등장은 더 빨리 다가온다.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감내해야 할 김정은 정권은 우리 선거판에 살아 있는 변수다. 북한을 둘러싼 신냉전이 만들어낼 거대 정당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체제를 예고하고 있다. 위기를 예감하기 때문일까. 눈치 빠른 인사들의 사이버망명이 급증하고 있다. 야권의 분열과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 구도가 파시즘 체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로 대변되는 극우주의의 확산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는 강하지만 파시즘에는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도 사회주의도 우리가 희망하는 국가체계가 아니다. 건강한 국가는 좌우 권력이 균형 있게 공존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야권의 후보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한 분들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절대 권력의 파시즘적 폭력성을 기억하고 있다면 투기적인 출마보다 양보를 권한다. 상투적 구호보다 자기 패와 이익을 먼저 버리는 희생. 그것이 민주주의가 야권에 기대하는 마지막 희망이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3-06 김민배

[월요논단] 3·1 독립정신을 다시 생각할 때

온 민족 굳은 신념과 애국심으로일제에 항거 빼앗긴 나라 되찾아…선열들 희생정신 깊이 성찰한다면위기는 기회로, 분열은 화합으로승화시키는 지혜 발휘할 수 있어통일시대·희망의 미래 앞당길 것바로 내일이 3·1절이다. 지금으로부터 97년 전 온 민족이 하나 되어 태극기 한 장 손에 들고 일제의 총칼 앞에 분연히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치던 날이다. 이 거대한 물결에는 남녀노소, 신분과 계층, 종교와 지역의 차이도 없었다.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과 애국심으로 온 민족이 함께 뭉쳐 일제에 항거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당당한 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렸고, 민족 자존의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릴 수 있음을 자손 만대에 알리게 됐다.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3·1독립정신은 중국, 인도 등 비슷한 처지의 이웃나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3·1독립운동 이후 선열들의 계속된 투쟁은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결정할 때에도 막중한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한국이 독립할만한 강렬한 의지와 역량을 갖춘 민족이라는 것을 3·1독립운동 때 전 세계에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제의 치밀한 준비 끝에 강제로 단행된 1910년 경술국치 때만 해도 세계 각국들은 한국인들이 원해서, 나아가서는 동양평화를 위해서 잘된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것은 일제가 치밀하게 만들어낸 각본이었다. 애초에 1905년 11월 고종황제의 허가도 없는 한·일늑약으로 통감정책이 시행되고 외교권을 박탈하고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고 외국과 직접 정보를 주고받는 일을 차단했다. 우리 스스로 세계에 어떤 호소도 직접 전할 수 없었다.또한 1907년 7월 정미 7조약으로 일본인을 정부 각 부처에 차관으로 들여보낸 소위 차관정치가 실시되고 사법권을 박탈당했다.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이에 항거해 전국에 의병들이 궐기했으나 사법권을 장악한 일본의 잔혹한 탄압으로 희생은 더해가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한 중에 고종황제는 나라가 기울어져가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꺾일 나라가 아니라는 자존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왕실의 고문헌들을 모아 황실도서관(후에 장서각)을 세우는 노력을 기울였다. 품격 있는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위상을 세우기 위해 우리 역사를 정리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일제에 맞서려는 지적 독립운동이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에 있는 장서각에는 17만여 책의 찬란한 기록유산들이 소장돼 있다. 3월은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달이다. 유관순열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달이다. 이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뿌리가 되고 가지가 되고 열매가 되어 천신만고 끝에 다시 찾은 나라이다. 어떻게 다시 찾은 나라인데 우리는 안이하게 정쟁만 일삼고 있는가! 예로부터 "무기보다 무서운 것은 분열"이라고 했다. 지금 북한은 핵을 가지고 위협하고 미사일을 날리고 한반도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모든 힘과 마음을 모아도 경제위기, 안보위기, 저출산의 인구위기를 비롯해 당면한 과제를 헤쳐 나가기가 힘든 마당에, 이제 이기심을 버리고 순수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다시 찾아준 우리 선조들이 꿈꾸었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 나라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국제관계의 질서가 얼마나 냉혹한데 우리는 아직도 남의 나라에 의지해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광복 70년만의 산업화,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대한민국의 성취는 그냥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유형들이 재현되는 현상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106년 전 빼앗겼던 나라, 다시 35년 만에 찾은 나라, 이 역사의 대장정을 겸허하게 깊이 성찰하고 헤아릴 때 위기는 기회로, 갈등은 상생으로, 분열은 화합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과 뜻을 모아 나라를 위해, 우리 후손들을 위해 단합할 때 통일과 평화의 시대, 희망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6-02-28 이배용

[월요논단] 분쟁의 통찰

영화 '대학살의 신' 네 인물처럼화해보다 분란 야기하는 행동통해분쟁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자한걸음 떨어져서 스크린속 일처럼우리 자신의 일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진실 만날 수 있다일각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젊은 세대는 무덤덤하다고 걱정인 듯하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에 무덤덤한 것이 젊은 세대뿐일까? 북한의 도발은 늘 특정한 시기에는 있어왔으니 이번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그보다 현실에서 통일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말이 더 이상 긍정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이다. 더욱이 전쟁은 이미 현재형이다. 당장 오늘, 당장 이번 달, 당장 올해의 생존을 걱정하는 '전쟁 같은 노동'이 지금 이곳의 문제이다. 더욱이 언제 우리의 삶이 안전하기나 했던가.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는 일도 있었고 자동차는 물론이요 전철, 지하철, 선박도 맘 편히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필요하니까 목숨 걸고 타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시 전시 상태에서 치솟는 아드레날린, 치솟는 전투지수가 아닐까 싶다. 소소한 일에도 큰소리가 나고 다툼이 발생하는 것은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배려나 온화한 태도, 너그러운 이해 따위는 일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너그럽다.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저것이 뭐 싸울 일인가 싶은 일로 싸우는 사람이 많다면 단지 사람이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럴 때는 세상을 바꾸는 것,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이 우선이다. 그러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각자 몫이다. 시스템이 안전하지 못하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으니 솟구친 아드레날린이 부질없이 자신과 가족, 이웃을 해치지 못하도록 삼가면서 동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때 한 걸음 물러나 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살필 수 있다면 유용할 것이다.영화 '대학살의 신 Le Dieu du Carnge(The od of Carnage)'은 그 참고서이다.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의 희곡을 영화화한 것인데 아동성추행으로 수배된 폴란스키 감독이 30년 만에 체포되어 연금되어 있을 때 작업한 작품이다. 폴란스키 감독의 역량이나 스타일보다는 원작의 문제의식과 극적 성격 자체가 뛰어난 작품이라 감독의 기분 나쁜 이력은 조금 비켜놓아도 괜찮다. 게다가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등 등장하는 유명 배우의 열연도 굉장하다. 본래는 연극으로 영국 웨스트엔드, 미국 브로드웨이 등지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으며 공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2012년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었다. 영화에서도 공간적 배경은 거의 집안을 벗어나지 않아서 연극처럼 볼 수 있다. 총칼도 대량살상도 등장하지 않으니 '대학살'이라는 살벌한 제목은 얼핏 부합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의 본질은 '전쟁'이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소위 '올 킬(all kill)'의 본능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두 부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다투다가 이빨이 부러지고 부러뜨린 두 아이의 부모들이다. 이들은 아주 교양 있고 품위 있게 시작하지만 결국은 저마다 1대3으로 다투면서 끝장 분란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분쟁의 전개 자체에 집중하면 된다. 연극에서는 없던 부분이지만 영화 말미에 이들의 논쟁거리였던 아이들의 싸움과 햄스터의 유기도 그저 핑계였음을 보여준다. 싸운 두 아이는 사이좋게 놀고 있고 가족 몰래 갖다 버린 햄스터마저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의 세계에서는 원인이 결과를 설명하는 것 같지만 원인이 결말을 향해 가는 데는 지속적으로 분쟁거리가 조달되기 마련이다. 화해보다 분란을 향해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끝없이 화제를 제공하는 네 인물의 행동을 보면서 분쟁이 어떻게 성장하는가 따져보자. 한 걸음 떨어져서 남의 일, 스크린 속의 일처럼 우리 자신의 일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전투지수를 높이고 화를 내는데 어떤 장작을 던져 넣고 있는가, 어떤 장작을 던져 넣을 것인가./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2-21 윤진현

[월요논단] 따뜻하면서 중정(中正)한 법원

복잡 첨예한 분쟁의 심판자로 치우침없이 中道 걷는 것은성인의 가르침처럼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도 어려울 수 있어이해충돌속 법률·양심에 따라 주재자의 자리를 지켜야금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는 붉은 원숭이해라 하여 불처럼 따뜻하고 밝은 지혜로움을 가지라는 덕담들을 건넨다. 이 덕담은 오늘날 분출하는 분쟁의 원만한 해결이나 죄의 경중을 지혜롭게 가려 공정한 재판을 이끌고자 노력하는 우리 법원에 전하여 주고 싶다. 근자에 우리 법원은 높은 문턱을 낮추어 국민과 소통하고 따뜻하게 다가서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정의 높다란 법대를 낮추어 재판받는 양 당사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법정내외에 밝은 그림을 걸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거나 종합민원실내의 무료 상담을 상설화하고 있다. 또한 많은 법원예산을 들여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국선변호나 소송구조를 확대하고 있다. 법원이 재래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벗어나 국민들에게 부드럽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은 법적 약자인 국민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사법적 지원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가 억울하게 패소하거나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적절한 범위에서 절제되어야 한다. 최근 국비로 보수를 제공받고 형사재판에서 국선변론만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별로 10~20명 이상까지 선발하고 있다. 변호사업계의 불황이 깊어짐에 따라 지망하는 변호사가 늘어 국선전담변호사 선발은 수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력 취약 등 국선변호인 선임 조건도 완화되어 대부분 받아들여지고, 상소이유서 제출이 필수적인 항소심 및 상고심은 신청이 없어도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어 통보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충분한 피고인 중에서도 재판 초입에서 국선 변호인에게 맡겨 재판부의 성향을 저울질하다가 여의치 않다고 생각되면 사선을 선임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선변호를 확대하다 보니 힘없는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국선변호의 본래 취지를 넘어서는 면도 있다. 또한 다른 사람 또는 공익에 피해를 주었다고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변호를 강화하다 보면 그 피해자보호가 소홀하게 되니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론도 필요하다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심판을 해야 하는 법원이 심판받는 당사자나 이해관계인을 어디까지 지원하고 배려해야 하는가? 근대 자유민주주의 삼권분립 법치국가에서의 사법의 역할은 국법을 해석 적용하여 공익과 국민의 정당한 권익을 지켜주는 사후적, 소극적 역할이 그 본질이다. 법원이 따뜻한 사법서비스를 확대하고 재판장이 아무리 친절하게 재판한다 하여도 이해 충돌하는 당사자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죄를 지은 피고인의 권익보호에만 치중하다 보면 그 범죄피해자의 권리나 공익의 보호가 소홀하여질 수도 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듯이 재판의 본질적 가치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엄정한 중립을 지키는 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재판제도가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하여 최선이라고 채택한 제도는 원·피고 사이 또는 검찰과 피고인 간에 서로 간 공격 방어의 변론을 하는 대심구조(對審構造)이다. 따라서 재판주체인 법원이 재판받는 한쪽 당사자를 위하여 지원하는 국선변호 또는 소송구조는 당사자의 대등과 균형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범위에 맞게 절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단기간에 산업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반면 경제적 계층, 세대간 양극화와 경제 불황의 장기화, 이해집단의 권익 주장의 과잉 분출로 법적 분쟁 양상이 질적 양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분쟁해결의 선진화를 이루자면 중용(中庸)의 도리와 중정(中正)의 품격을 갖춘 따뜻하고도 엄정한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복잡 첨예한 분쟁의 심판자로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중도(中道)를 지키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처럼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주역(周易)에 나오는 중정유경(中正有慶)이란 말처럼 법원은 소용돌이치는 이해관계 충돌 속에서도 법률과 양심에 따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하고 따뜻한 주재자의 자리를 지킨다면 경사스러움이 있지 않겠는가./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2016-02-14 손수일

[월요논단] 왕 실장의 자격

주요시정 합리적 방안 선택해추진되도록 정책 조율하고공직자들은 엄격히 관리문제점 발생땐 즉시 바로 잡아야부디 인천과 시민들을 위한새로운 비서실장 모델되길 기대'왕 실장, 회전문 인사, 특정 지역 챙기기'. 제목만을 보면 청와대 소식 같다. '학연·지연·직급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 수행능력이다'. 답변 역시 자주 듣던 말이다. 인천의 왕 실장이 논란이다. 당사자인 조동암 비서실장에게는 이런 논란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그는 1975년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인천경제청 차장으로 영예롭게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런 그가 다시 복귀하자 억측과 무성한 말의 잔치가 넘쳐난다. 나는 그가 문화관광체육국장으로 일할 때 함께 했다. 그러나 인천유나이티드 FC 대표이사로 간 후 제때에 시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인천 FC의 재정상황 등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였지만 그는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정복 시장이 취임하면서 안전행정국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었다.예상치 못한 비서실장으로의 복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원조라 할 수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생각했다. 되돌아보니 오래된 인연이 새롭다. 20여년전 장학생 모임의 회장이었던 그 분과 함께 잠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서로 가는 길이 달라서 거의 뵙지 못하였다. 그를 다시 기억하게 만든 것은 몇 년 전 모친상을 당했을 때다. 외국 출장 중 황망한 소식을 듣고 귀국한터라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후 조전과 경조환이 배달되었다. 야인생활을 하시던 오랜 동안 연락이 없었고, 새로 이사 간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때였다. 겉봉투를 보고 아내가 물었다. 그 분이냐고.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유신헌법은 물론이고, 초원복집 사건이나 노무현 탄핵사건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부 국민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념적 지향점에 대한 평가는 별도의 문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였다. 무엇이 그를 그 자리에 가도록 하였을까. 김 전 실장을 보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했다는 '3엄3실(三嚴三實)'을 떠올렸다. '본인 수양, 권력사용, 자기관리'에 엄격해야 하며, '일을 도모하고, 창업하는 자세 그리고 사람 됨됨이가 진실'해야 한다는 세 가지가 그것이다.김 전 실장이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갖추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인상 깊은 장면을 가끔 경험했다. 평소 의사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들이 사경을 헤맬 때도 그는 청와대를 지켰다. 부모로서 왜 눈물이 없겠는가. 몇 분 어른들과 함께 위로를 할 겸 점심시간에 근처에서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해외에 계신 때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가 권력을 둘러싼 온갖 억측과 음해에 맞설 때 마다 함께 힘들어 했던 분들이 가족이었을 것이다. 청와대를 떠난 후 갑자기 일본을 다녀오는 뉴스를 보면서 사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정작 단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의 카리스마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제 그리고 책임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그를 선택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 주석의 뜻을 빌어 조 실장에게 몇 가지 당부 드리고 싶다. 본인은 물론 일부 공직자나 주변인물들이 특권이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권한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주요 시정이 현실에서 출발하여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해 추진되도록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그리고 공직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즉시 일깨워 바로 잡아야 한다.왕 실장은 왕도 도승지도 아니다. 행동으로 말하는 자리다. 그래서 지금의 그 자리를 더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정은 합리적 정책의 집행이 핵심이며, 엄격한 감독이 동반될 때에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조동암 비서실장이다. 부디 인천과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비서실장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6-01-31 김민배

[월요논단] 누리 과정 대상 (만 3~5세) 수준의 도의회 난투극

도의회 의장은 공석이고 도지사는 고발 당하고…복잡한 예산집행 문제 풀기위한성실한 정책적 고민 대신정치적 입장 내세운 '난장판'지방의회수준 새삼 깨닫게 해경기도민의 2016년 새해는 제9대 경기도의회 의원들의 괴성과 몸싸움 때문에 극악스러웠다. 도의원들의 악쓰고 멱살 잡고, 욕하는 모습은 과거 도끼로 문을 부수고, 최루탄을 터뜨리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전국적으로 방송된 이들의 폭력적 난장판을 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이들이 이러한 난장판을 연출한 이유가 만3~5세 유아의 심신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돕고 민주 시민의 기초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 무상보육 관련 예산 즉, 누리과정 예산 편성 때문이라는 사실이 기막히다.난장판 의회는 도교육청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이미 예견돼 있었다. 작년 9월 경기도의회 다수당인 구(舊)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도의원들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위해 중앙정부(교육부)가 지원 지방교부금으로 지원한 것을 도교육청 예산에 편성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와 경기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마련을 도교육청 예산이 아니라 별도 예산으로 책정하지 않으면 경기도교육청이 제시한 누리과정 3차 추경 예산 1천79억여원 전액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한 후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새누리당 출신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정 교육감이 집행권한을 갖는 학교 운영 관련비용, 교육환경 개선 관련비용 등에 쓸 돈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과정에서 벌어진 난장판 사태는 한정된 예산에서의 정책적 우선순위 결정문제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실제로 국가가 돈이 많으면 더민주 측 의원들 주장처럼 별도 예산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운영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다. 나라가 돈이 없어서 중앙정부가 어떤 정책(누리과정)에 얼마의 예산(1천79억원)을 투입할지 선별적으로 결정하고 이를 도교육청에 지방교부금 형식으로 예산을 보내면 이를 도교육청이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도의회 다수당인 더민주 소속의원들은 이 구조가 잘못됐다며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며 거부한 것이다.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런 주장을 할 정도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을 져야 할 더민주 소속 도의회 의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산안 협의로 진통을 겪으면서도 경기도 의회 의원들은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인 연봉을 다시 최고 상한선(1.9%)까지 올려 6천300만원 넘게 책정한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도민 복지 정책인 무상보육 예산은 삭감하고 자신들의 봉급은 올리는 이 모습은 과거 국회의원들이 했던 못된 짓(?)과 흡사하다. 여기에 불난 곳에 불을 끈다며 도지사가 긴급 편성한 준예산에 대해 더민주 소속 한 총선 예비후보는 누리과정 비용을 준예산에서 편성해 집행하는 것이 실정법 위반이라며 도지사를 특경법상 배임과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발했다. 법적으로 어떤지 잘 모르지만 급한 불 끄는 사람이 옆집 소화기를 이용한다고 고발하는 것을 경기도민이 아니 그 지역구민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겉으로는 누리과정 예산이 지방교부금으로 내려와 도교육청 예산 편성 어쩌고 하는 복잡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정된 예산에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다가 폭력적 난투극을 벌인 것 같아 씁쓸하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아직도 합의되지 않았고 경기도 의회 의장직은 공석이며 도지사는 고발당했다. 누리과정과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복잡한 예산 집행 문제를 풀기 위한 성실한 정책적 고민 대신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며 벌인 폭력적 난장판 경기도 의회의 모습은 우리나라 지방의회 수준이 아직도 누리과정 대상 (3-5세) 수준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더 늦기 전에 경기도 의회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바란다./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1-24 홍문기

[월요논단] 권력의 뜻을 거스르는 자의 가치

셰익스피어 '겨울이야기'로맨스이며 질투 다뤘지만통제를 원하는 권력자 욕망과정의의 실현에 관한 연극…권력 휘두르는 권력자에 맞서정의를 실천하는 자 간절하다올해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00주기가 되는 해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상연되고 있다. 국립극단에서도 지난 1월 10일부터 셰익스피어 말년의 작품 '겨울이야기'가 상연되는 중이고 하반기에는 '십이야'가, 4월에는 중국화극원의 '리처드3세' 초청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사유와 인식으로 인도하는 그의 작품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무엇보다 인간사회의 역학, 그 정치성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환기하는 데 탁월하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겨울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단순하게 보면 그냥 로맨스이고 질투에 관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통제를 원하는 권력자의 욕망과 이를 넘어서는 정의의 실현에 관한 연극이다. 이 작품은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아내 헤르미오네와 친구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의 관계를 의심하여 결국은 왕비와 자식을 모두 잃고 15년을 자책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다행히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양치기의 딸로 자라난 레온테스의 딸 페르디타와 폴릭세네스의 아들 플로리젤이 사랑이 빠지고 이들 사이를 반대하는 아버지 폴릭세네스를 피해 시칠리아로 와서 레온테스의 보호를 받는 사건이 엮여 전개된다. 불륜과 질투, 영아유기, 신분을 넘어선 사랑 등 오늘날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 되는 흥미진진한 화소가 총출동한다. 물론 그뿐이었다면 그냥 잊혀졌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 같은 진부하고 뻔한 사건 위에서 지금/여기에서 중요한 현재적 문제를 탁월하게 제기한다. 이번 '겨울이야기'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왕을 섬기되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정의의 힘이었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는 친구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가 더 머물러달라는 자신의 부탁은 거절하였으면서도 아내 헤르미오네의 권유는 받아들여 더 머물겠다고 하자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한다. 얼핏 보면 레온테스의 의심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더 머무르라 만류하다 못해 아내에게 지원을 요청하고는 아내가 친구를 붙잡는 데 성공하자 곧바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권력자의 심리이다. 자신의 명령은 소용없는데 다른 사람의 명령이 수용되었을 때 권력자는 분노한다. 그 분노가 아내와 친구에 대한 것이기에 불륜으로 의심되는 것이고 만약 이것이 신분이나 계급의 관계일 때는 반역, 거역, 불복종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카밀로의 '거역'과 연속된다.이 교만한 권력자는 급기야 신하 카밀로에게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를 살해하라 명령한다. 카밀로는 레온테스의 잘못을 알기에 왕의 명령이지만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폴릭세네스를 보호하여 함께 보헤미아로 탈출한다. 그리고 카밀로는 다시 폴릭세네스 왕을 거역한다. 아버지 레온테스에게 버림 받고 양치기의 딸로 자라난 페르디타는 보헤미아의 왕자 플로리젤과 사랑에 빠진다. 폴릭세네스 왕은 변장하고 아들에게 와서 연인을 부왕에게 소개하고 사랑을 허락받으라 권유한다. 그러나 몇 번을 권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격분하여 아들을 버리고 양치기와 페르디타를 벌하겠다고 협박한다. 자신의 말보다 아내의 말이 힘을 가진 것을 알자 이들을 의심하는 레온테스 왕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밀로는 사랑하는 연인을 떼어놓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고 폴릭세네스 왕을 거역하여 이들 젊은 연인을 시칠리아로 보내어 결국 부녀상봉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레온테스 왕의 곁에서 왕이 자책하며 후회하도록 직언을 계속하는 파울리나 부인도 왕이 충분히 반성할 때까지 왕비 헤르미오네를 숨겨두었다가 조각이 살아난다는 이벤트를 벌여 왕과 왕비를 다시 만나게 하니 이 또한 권력자를 위해 거짓을 감수하며 진실을 지키는 능동성을 의미한다. 권력자가 정의보다 권력을 휘두르는 데 열중하는 징후가 역력하다. 감히 그 뜻을 거슬러 정의를 실천하는 자가 간절하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6-01-17 윤진현

[월요논단] 우리 경제와 기업의 자금조달

올해 미국 금리인상 앞두고불안한 금융시장 대비책 필요기업들 성장위해선 신규 주식과회사채 발행해 자금 조달하고정확한 정보·합리적 신용평가로투자자관리 무엇보다 중요하다의욕적이고 진취적인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주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중국 증시의 잇단 폭락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라 주식시장의 코스피주가지수는 지난 8일 한때 1천900선을 깨면서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면서 1천917로 마감을 했다. 기준금리가 되는 국고채 3년물은 지난 4일 1.634%였고, 8일에는 1.665%로 마감해 약간 상승했다. 달러 환율은 4일 1천189원으로 시작했다가 주중 1천200원을 돌파하였고, 주말에는 1천199원으로 마감했다. 올해의 화두가 미국의 금리 인상인데 작년 말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금리를 0.25% 상승으로 결정, 제로금리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앞으로 올해 중에 금리를 1.375%로 상승시킨다고 한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세계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미국 채의 수요가 늘어나 돈이 미국으로 몰린다. 자연스레 자금력이 약한 나라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진다. 우리나라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금리 인상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기축통화 발행국이기 때문에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토록 많은 빚이 있어도 국가에서 달러를 발행하면 해결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달러가 부족하여 IMF체제를 맞이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200억달러가 부족해서 몇 년간 온갖 수모를 다 당했다. 이제는 외환 보유고도 많이 쌓아놨고, 무역수지 흑자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어느 정도 튼튼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유가의 하락은 석유가 부족한 우리에서는 당장에 좋을 듯 보이지만, 건설업의 중동 수주액 하락과 석유시추선과 해양 플랜트의 수요 감소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 경제의 체질은 내수 쪽이 약하다는 데 있다. 가계부채의 증가와 자영업자 수가 많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등이 지나치게 많은데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하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미래의 새로운 신산업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개인 자영업자보다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기업들이 성장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주식시장에서 새롭게 주식을 발행하거나 사채 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법이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도 되지만 직접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발행해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에서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한 금액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도 미공개정보를 이용하는 등 주가조작을 통하여 불공정한 거래행위가 있었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투자자 보호문제가 발생되었고, 회사채의 부실한 신용평가, 유통시장의 부당한 거래 관행 등 근절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 여건이나 전망으로 볼 때 회사채는 기업의 유리한 자금조달 수단이다. 사채는 투자자에게도 투자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이 발전하려면 기업과 사채관리회사 그리고 신용평가기관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은 투자자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사채관리회사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건전한 계약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채의 신용을 평가하는 신용평가기관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유가 하락, 미국 금리인상 등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우리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제주체들이 각자 맡은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우리 경제는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해 굳건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 일환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주식시장과 회사채시장의 건전한 육성은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김두환 한경대 법학과 교수김두환 한경대 법학과 교수

2016-01-10 김두환

[월요논단] 병신년(丙申年) 병신(病身) 짓 하지 않으려면…

의정부 화재·메르스 사태 등황당·기막힌 일 많았던 한해안전의식·기본원칙 준수 교훈위기 이용하는 정치인들 답답우리 사회 ‘부끄러운 자화상’2016년 공동체 정신 깨달아야한 해를 돌이켜 보면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 많았다. 지난 1월 4명이 죽고 128명이 다친 의정부 화재의 주 원인은 신고 13분 만에 도착한 소방차가 불법주차로 인해 화재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월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피습 당했고, 4월에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교육하는 일본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때 정치권은 계파싸움과 막말논란으로 세월을 보냈다. 6월부터는 메르스 확산으로 수 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고, 9월에는 남북 군사 대치 상황이 비등점에 다다르면서 20·30대의 대북관이 주목을 받았다. 10월에는 내년 4월에 있을 총선 공천권과 관련해 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과 야당의 계파 갈등 등이 극에 달했다. 11월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로, 12월에는 민주노총 폭력시위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조계사 피신이 이슈가 됐다.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첫째, 올 한해 사건·사고는 우리에게 평소에 준비돼 있어야 대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 불의에 그리고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벌어지는 각종 참사는 사고초기 짧은 시간에 집중해 해결해야 한다. 세월호도 그렇고 의정부 화재도 그랬다. 사건·사고가 의례 그러려니 하고 여기는 순간 시간이 지나면서 참사가 됐다. 그리고 그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평소의 안전의식과 기본원칙 준수였다. 그것을 소홀히 한 우리는 올초 의정부 화재를 비롯해 단순 사건·사고로 끝낼 일을 참사로 겪은 것 같아 안타깝다. 둘째, 올 한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할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고, 실체도 없고, 그래서 실현도 불가능 한 것을 온 국민과 언론이 매달려 갈등을 빚은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그 난리를 쳤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구체적(예: 소송 등)이지 않았고, 노동법 개악·비정규직 운운하며 폭력 시위는 있었지만 노동법을 어떻게 개정할지 공론을 형성하는 작업을 시작도 못했다. 민주화를 외치며 온갖 주장을 외친 사람들의 실체는 공천권을 목표로 한 계파 싸움의 명분에 불과했음이 이제는 명료해지고 있다. 셋째, 올 한 해 우리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이를 안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우왕좌왕 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경우가 메르스 바이러스 확산이었다. 국민은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다가, 곧 다 죽을 것이라는 괴담에 시달렸고, 아무도 믿지 않은 채 열심히 손 씻다 보니 메르스가 끝났다는 정부 발표에 어처구니 없어 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 문제는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국민 등 모두에게 공동체 생존을 고민하게 했다. 그 와중에 정부는 특정 대형 병원 눈치를 보다가 대응시기를 놓쳤고 일부 지자체 장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튀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는 메르스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해진다.일본은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데도 우방국인 미국 대사가 서울 복판에서 피습당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어서 부끄럽다. 법질서를 유린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폭력 시위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이 야당의 입장이고, 불법행위를 위한 복면에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는 비양심과 비윤리에 대한 비판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 2015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6년에는 우리 공동체가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고, 이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 바란다. 그래야 우리 모두 병신년 (丙申年) 병신 (病身) 같은 짓 하지 않고 무사히 한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2-27 홍문기

[월요논단] 소리의 원인

인간의 도리 어긋나고 있기에저마다 살기도 바쁜 형편인데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소리 내는 것은 세상의 이치소리 없애겠다고 서슬푸른 칼을휘두르기전 근본부터 반성해야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당나라 말기에 ‘의산 이상은(義山 李商隱, 813~858)’이란 시인이 있었다. 당쟁에 휘말려 관료로서는 불행하였고 4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나 전통적인 시작(詩作) 방식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미적으로 승화하면서 깊은 인간애를 추구한 특출한 시인이었다. 시인으로서 그의 명성은 생존 시에 이미 공고한 것이었으며 그의 반역적 성향은 이후 세대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중에 ‘낙씨정에 묵으며(宿駱氏亭)’라는 시가 있다. 일곱 자로 된 4행시, 칠언절구인데 시재가 둔하여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의미를 단순히 해석해도 그 아름다움과 깃든 뜻이 심오하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연못은 티 하나 없고 물가 난간도 깨끗한데(竹塢無塵水檻淸) 그리움은 아득히 첩첩한 성에 막히었네(相思초遞隔重城). 흐린 가을 날씨는 흩어지지 않으니 서리는 늦어지는데(秋陰不散霜飛晩) 마른 연잎을 남겨두어 빗소리를 듣노라(留得枯荷聽雨聲). 얼핏 보기에는 쓸쓸한 정취가 두드러진다. 늦은 가을, 그리움에 사무쳐 빗소리를 듣는 슬픔이 애절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애상이 아니다. 여기에는 제 때 오지 않는 시운(時運)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책무가 엄연하다. 첫 행의 의미는 깨끗함이다. 죽오(竹塢)란 대나무가 마치 방죽처럼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을 모아두었다는 의미의 수함(水檻) 또한 연못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티 없이 깨끗하게 정돈해 두었다. 옛사람들이 연못을 가까이 했던 것은 늘 자신을 비춰보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단정하게 가꾼 연못가에 나와 앉으니 그리운 것, 보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첩첩한 중성에 갇혀 나가지 못한다. 그리움이나 사랑은 사적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인간의 솔직한 본성이다. 그리움이나 사랑이 쉬 전달되지 못하고 막히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최근에 이르러 젊은이들이 3포 세대니 5포 세대라 자조하니 젊은 사람들이 본성 중의 본성인 사랑을 포기하는 세상이란 말 그대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이상은이 살던 당나라 말기도 그러했다. 어떤 세상이기에 그리움을 첩첩 막는가. 절기는 서리가 내려야 하는데 내리지 않고 음산하게 흐린 가을날씨가 흩어지지 않는 때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 하늘이 높은 멋진 계절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가고 눈서리 휘몰아치는 겨울이 와야 한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겨울이 추워야 봄이 기름진 법이다. 그런데 수확도 끝나고 물가도 깨끗하게 치워두었다. 죽오, 수함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겨울맞이 준비를 끝내두었지만 흐리고 음산한 가을날씨는 사라지지 않고 서리조차 늦어지고 있다. 떠나가야 할 것이 가지 않는 것은 세상의 이치, 인간의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우리는 보통 어려운 시기를 겨울에 견주고, 찬서리에 견준다. 그러나 이상은은 난세를 겨울에 비유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 그것이 무엇이든 제때를 지키지 않는 것이 재앙이라는 진실을 적시하였다. 세상이 그러할 때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연못가를 깨끗이 치웠으나 마른 연잎을 모두 거둬들이지 않은 것은 눈이 내려야 할 겨울에 비가 내릴 것을 경계한 뜻이다. 너푼너푼한 연잎이 말라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좋은 경치일 리 없다. 더구나 거기에 초겨울 빗방울이 후두들기는 소리는 심란하고 울적한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심회를 돋울망정 마른 연잎을 거둬 소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빗소리가 요란해도 그것은 연잎의 문제가 아니라 때 아니게 쏟아지는 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저마다 살기도 바쁜 터에, 음산한 날씨는 건강에도 해로운 터에,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소리를 내는 것은 세상의 이치, 인간의 도리가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없애겠노라 서슬 푸른 칼을 휘두르기에 앞서 소리를 자초한 근본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5-12-20 윤진현

[월요논단] 사법시험 존치논의

많은 국민들 사법시험폐지 반대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이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작은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국회, 국민의 뜻에 따라법안처리 해주길 기대해 본다지난 3일 법무부는 전문 조사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법시험 폐지를 당분간 유예하고 좀 더 논의를 계속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지 판단할 자료가 충분치 않고, 좀 더 연구와 분석이 필요한 상황에서 2017년 폐지될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4년간 그 폐지를 유예하고,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법시험 폐지 관련 대안에 대해서는 첫째, 로스쿨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게 별도의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둘째, 로스쿨의 입학, 학사 관리, 졸업 후 채용 등 전반적으로 로스쿨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셋째, 불가피하게 사법시험 존치가 논의될 경우에는, 현행 사법연수원과 달리 별도 대학원 형식의 연수기관을 설립하여 자비로 연수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위와 같은 발표가 있자 전국 로스쿨 학생들이 집단으로 자퇴서를 내고 집단행동에 들어갔으며, 로스쿨 교수들이 사법시험 폐지유예를 철회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사법시험 존치를 원하는 준비생들은 대규모 집회를 가지고, 대한법학교수회와 전국법과대학 교수회, 사시 폐지 반대 전국대학생연합 등 단체들은 로스쿨 측에 맞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법무부는 4일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유예 결정이 최종은 아니라고 번복했다. 이러한 갈등이 깊어지자 10일 대법원은 법조인 양성제도 관련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 대법원, 정부 관계부처 등 관련 국가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협의체는 변호사단체, 법학교수단체 등 이해관계 단체의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사시 존치 여부와 로스쿨 제도 개선 등 관련 현안을 논의하여 합리적 해결 방안을 도출하자고 발표했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기로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7년에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로스쿨법)’이 제정되었고, 현재는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이 병행해 실시되고 있으나, 사법시험은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2016년 2월에 1차 시험을 마지막으로 치르고, 2017년 2차와 3차 시험을 실시하면서 폐지하기로 했던 것이다. 2018년부터는 법조인 양성제도가 일원화되어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경우에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로스쿨을 시행해 본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고비용 구조의 로스쿨에서 지원하기로 했던 장학금이 충분하지가 않았고, 도입 취지와 달리 다양하고 전문화된 인력 양성이 아닌 시험 위주의 교과목 편성, 철저한 학사관리의 미흡, 특성화 전문화 교육의 부족, 공개되지 않는 변호사시험 성적 등의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자녀의 로스쿨 졸업시험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보도되기도 해 국민들이 로스쿨 제도에 곱지 않은 시선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노출된 문제점에 대해 사법시험은 폐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등록금 대비 충분한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고, 제도 개선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면 되며, 로스쿨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합의로 통과된 제도라고 맞서고 있다. 법무부가 로스쿨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게 별도의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는데 다각도로 현 제도에 대해 검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법시험 존치 문제는 법학교육제도와 법조인양성제도의 문제 수준을 벗어나 국민의 커다란 관심사로 부각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많은 국민이 공정성의 대명사인 사법시험의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이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사법시험 관련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뜻에 따라 법안을 처리해 주길 기대해 본다./김두환 한경대 법학과 교수김두환 한경대 법학과 교수

2015-12-13 김두환

[월요논단] 전자발찌와 님비현상

언론통해 성폭력범 재범과전자발찌 훼손만 보도 됐을뿐보호관찰기관 실제적 성과는안 알려져 왜곡된 이미지만 난무주민들에 충분한 정보제공과올바른 이해 전달하는 소통 절실2013년 9월 어느 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보호관찰소 OUT!”, “우리 동네가 봉이냐! 목숨 걸고 지키자” 등의 현수막들을 내걸고 1천5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시위는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은 성폭력범들을 관리하는 보호관찰소를 지역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시설로 간주하고 시설의 이전을 반대하는 집회였다. 주변에 900여명의 경찰관들이 배치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지금까지도 시장, 국회의원, 장관들까지 나서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형국에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미 여러 지역의 보호관찰소가 유사한 상황을 겪었고, 향후에도 또 다른 지역에서 이 같은 갈등이 얼마든지 발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범죄예방의 최전선에 있는 보호관찰소가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혐오시설로서 갈등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보호관찰소 이전반대집회는 ‘내 집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Not In My Backyard)’는 님비(NIMBY)현상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주민들이 성폭력전과자에 대한 엄격한 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실행하는 기관은 그들의 이웃에는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반대시위는 핵폐기물 저장시설, 송전탑, 하수처리장, 화장장, 그리고 심지어는 장애인시설 까지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개 이러한 사태는 이해 당사자 간에 의사소통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왜곡된 정보가 난무한 상태에서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생기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특히 보호관찰소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보호관찰업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주민들이 청사를 방문해 성폭력범 유치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할 정도로 왜곡된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흉악범죄자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2004년 20여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유영철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용산, 안양, 제주 등지에서 성폭력 전과자들에 의해 어린 여아들이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급물살을 타고 전개되었다. 이런 와중에 여론조사, 시민단체, 정치권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성폭력범으로부터 아동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2008년 전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흔히 전자발찌로 알려진 전자감독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통해 일부 대상자들의 재범과 전자발찌 훼손 사례만이 알려졌을 뿐, 실제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아 왜곡된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성폭력범죄 재범률은 과거 14.1%에서 전자감독제도의 시행 후 1.7%로 감소했고, 전자발찌의 훼손율도 0.32%로 선진국가의 2~3%대 보다 훨씬 낮은 편에 속한다. 도주자 역시 모두 즉각 체포되었고, 보호관찰소의 반경 500m이내에서 재범을 저지를 확률 역시 0.9%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실상은 인근 주민들이 우려하는 바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청사이전 반대 시위현장을 지켜본 어느 보호관찰관은 “주민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고 공청회와 같은 절차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한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지켜온 직장이 이웃들로부터 배척당한다는 사실은 보호관찰관들에게 상상이상의 자괴감과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지역사회의 보호관찰기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정한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루빨리 척박한 님비현상이 사라지고 주민들 스스로 앞장서서 자녀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발 내 집 앞마당으로 들어오세요!”(Please In My Front Yard)라고 외치는 핌피(PIMFY)현상이 보호관찰소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2015-12-06 이백철

[월요논단] 폭력적 복면 시위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여야와 ‘복면금지법이 집회·시위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인권위는대한민국의 안정과 성숙한민주주의를 위해 불분명한 것을명료하게 하는데 힘과 지혜를모으는게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야한국영화 ‘복면달호’에서 주인공 달호는 먹고 살기 위해 고상한(?) 록 뮤직 대신 저급한(?) 뽕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것이 창피해 그는 복면을 한다. 여기서 복면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도구다. 도둑이나 강도도 복면을 한다. 이들은 절도·강탈·강간 행위 시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나중에 잡힐 것을 우려해 복면을 한다. 이러한 복면행위는 검거 시 가중처벌 대상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무장단체인 IS에 비유해 집회에서 폭력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복면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해 이슈가 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며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하는 IS 테러리스트와 무고한 경찰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르고 시민들에 교통마비의 불편을 주는 폭력적 시위대의 외형적 공통점이 복면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여러 가지 이슈들은 몇 가지 관점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첫째, 복면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복면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복면이 불법행위를 위한 것이라면 처벌돼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 무고한 국민의 불편과 사회질서를 지키게 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헌법 21조 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조 (적법한 집회(集會) 및 시위(示威)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를 실현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2003년 10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원 결정에서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복면을 쓴 집회 참가자가 폭력 행위를 하지도 않았는데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헌재는 집회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평화적·비폭력적 집회라고 명시했다. 이는 폭력을 사용한 의견의 강요는 헌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면 여부가 아니라 복면의 의도가 폭력 등 불법적 행위와 관련이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면과 폭력적 불법행위의 관계에 대한 희화화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작가 이외수씨는 복면금지법이 통과되면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이 종방되는지 묻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이러한 행위는 이슈의 본질인 폭력시위와 복면 간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이처럼 이슈의 본질을 희석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의 희화화는 심각한 폭력시위 근절의 문제와 이 과정에서 위축될 수 있는 민주적 시위방식에 대한 고민을 무력화시킨다. 그 결과 폭력적 시위를 정당화시키고 민주적·평화적 시위의 가치를 폄훼할까 우려된다. 복면도둑과 강도는 법질서를 유린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복면한 폭력시위꾼들은 헌법과 법률만으로 충분했던 평화적 시위에 특별법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강도와 도둑이 복면을 한 것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임을 알기 때문이고, 폭력시위꾼들이 복면한 이유는 폭력시위가 처벌 대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적 집회와 시위문화 확립을 위해서라도 분명한 것과 분명하지 않은 것은 구별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타당한 주장을 하든 폭력시위는 처벌 대상이고, 불분명한 것은 복면한 나쁜 폭력시위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이다. 이제라도 여야는 물론 복면금지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국가인권위원회도 함께 나서서 대한민국의 안정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불분명한 것을 명료하게 하는 데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한 여러 수사학적인 주장보다 중요한 일임을 조속히 깨닫기 바란다./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1-29 홍문기

[월요논단]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이 있다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에서조씨집안 혈육 지키기위해목숨 바친 공손저구 역할 맡았던인천시립극단 배우 ‘임홍식’ 영면자신 연기분량 모두 소화하고빛난 인상 준 고인의 명복을 빈다올 하반기 국립극단 가을마당 상연작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란 작품이다. 중국 원나라 때 기군상(紀君祥)이 진(晉)나라 때의 일을 희곡으로 쓴 것이다. 중국 CCTV에서 제작한 41부작 드라마도 소개된 바 있고 2013년에는 첸카이거 감독의 ‘천하영웅’(원제 趙氏孤兒)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진나라에는 두 사람의 대신이 있었다. 문신으로는 조순(趙盾)이었고 무신으로는 도안고(屠岸賈)였다. 도안고는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음험한 위인으로 조순을 경계하였다. 조순이 공주를 며느리로 맞아 진영공과 사돈이 되자 도안고는 더욱 시기하였고 결국 음모를 꾸며 조순을 제거하였다. 공주와 결혼한 아들 조삭 또한 죽음을 맞이했고 조씨 집안은 모조리 도륙을 당하였다. 임신 중이던 공주는 냉궁에 갇혀 조씨 집안의 유일한 혈육을 출산하였다. 공주는 이 혈손을 지키고자 문객 정영을 불러 아이를 당부하고 자결하였고 냉궁을 지키던 장군 한궐도 아기를 내보내기 위해 자결하였으며 아기를 감추기 위해 은퇴한 대신 공손저구도 자결하였다. 정영은 자신의 아들과 고아를 바꿔 아들을 희생시키고 고아를 살려내었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정영의 아내는 절망하여 자결한다. 끝내 살아남은 고아는 정영의 아들로 자라며 아이러니하게도 도안고의 양아들이 되어 도안고에게 무술을 전수받는다. 성장한 고아는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되자 도안고를 죽여 가문의 원수를 갚는다. 상식의 시선으로 보면 ‘복수’가 뭐라고 아기 하나 살리려 수많은 사람이 죽으며 심지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나 비판할 수 있다. 물론 타당하다. 모든 생명의 본능은 자손을 낳아 후대를 잇는 것이다. 더욱이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아기를 대신 죽게 하다니 ‘희생’을 미화할 수는 없다. 작품에서도 모든 사람이 고아를 위해 죽으나 정영의 아내는 자신의 자식을 위해 죽는다. 비극은 하나가 아닌 것이다. 이는 곧 희생의 정당성, 희생의 숭고함에 대해 품어야 할 당연한 의구심을 이 작품이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실 ‘희생’을 예찬하며 강요하는 데는 대체로 비인간적이고 사악한 저의가 숨어있다. 관객이 고아의 복수보다 죄 없이 희생된 아기와 아비 정영의 고뇌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드라마란 극단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오늘의 문제를 질문하는 장르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목숨을 내놓지는 않더라도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즉 이 작품 ‘조씨고아’는 우리가 정영이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여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를 질문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 할 것, 나는 물론이고 내 자식까지도 동원해서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옛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충성심’이거나 ‘정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이고 ‘해방’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일관되게 가르쳐 온 것은 ‘민주주의’였다. 어려서는 이승복 어린이가 롤모델이었다.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이승복 어린이처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소리쳐보리라 굳은 결심이 있었다. 자라서는 목이 타도록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를 위한 이들 행동은 ‘싫다’느니 ‘타도하라’느니 모두 부정과 반대에 기반하고 있었다. 공산당이 싫다고 외친다고 저절로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독재를 타도하고 호헌을 철폐한다고 곧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도 아니다. ‘조씨’가 민주주의라면 ‘고아’는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인데 복수를 마친 고아는 무엇을 했을까? 반대, 타도, 철폐 너머에 어떤 행동이 있을까? 어떤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아직도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한 가치일까? 지금 우리의 과제다. 이 작품에서 공손저구의 역할을 맡고 있던 배우 임홍식은 11월 19일 자신의 연기분량을 모두 소화한 뒤 무대 뒤에서 영면하였다. 임홍식은 인천시립극단의 배우였고 작은 배역에도 늘 빛나는 인상을 남겼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2015-11-22 윤진현

[월요논단] 인종·마약·총기

사건 발생후 구금·엄벌로사회적 비용 감소시킬 수 없다사전 예방차원서 따뜻한 정치로소수인종과 공동체 이루고극빈·소외계층의 복지와 기회를확대하는 등 근본대책 선행돼야미국의 범죄학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범죄문제를 논할 때, 미국과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으로 나열하는 몇 가지가 있다. 미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로서 인종, 마약, 그리고 총기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가 짊어져야 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거론하곤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사법경찰관이 흑인 청년이나 심지어는 흑인여성들에게 까지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또한 흑인이 감옥 생활을 하는 비율은 백인의 6배이며,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숨질 확률이 백인청년보다 21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약과 관련해서도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게 마리화나를 흡입한 적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아니요’라고 답변한 대통령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80년대 이래 ‘마약과의 전쟁’을 국가적 어젠다로 선포하고 강력하게 처벌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약이 전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만연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최근 콜로라도, 워싱턴을 포함 4개주에서는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인의 58%가 마리화나의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의 결과도 있다. 미국에서 총기소유 또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존재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총 구하기가 신선한 채소 구하기보다 더 쉽다’ 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누구나 총기를 쉽게 소유할 수 있어서 그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11세 소년이 8세 소녀아이를 단지 애완견을 안보여 준다는 이유로 엽총을 난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오리건 주의 대학 캠퍼스에서도 총기난사 사건으로 1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이 올해 학교 내 총기사고로서 45번째라는 놀라운 보도도 있었다. 미국은 명실상부하게 세계의 최강국임은 분명하지만 범죄문제에 있어서만은 그 명성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특히 총기사용으로 인한 범죄의 발생은 미국적 특수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일반인이 소유한 총기의 수는 약 2억7천만 정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매년 약 500만 정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인 1인당 거의 1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내에서 총기 사고로 매일 약 80명씩, 연간 약 3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 근간에 미국만이 앓고 있었던 인종, 마약, 총기와 같은 문제들이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나타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흑백문제와 같은 인종분규는 없지만, 타국적의 체류외국인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 다인종사회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타국적인에 의한 각종 범죄가 증가일로에 있다. 이들 범죄의 절대적인 수치도 증가하고 있지만 더 염려되는 것은 살인을 포함한 강력범죄의 증가율이 내국인 범죄의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사범 역시 일부 조직폭력배나 유흥업소 종사자들에 한정되었던 범위를 넘어 근간에 사회 부유층 및 일반인들에게 까지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 또한 총기와 관련해서도 최근 민간인들에 의한 엽총난사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들이 병영내 군인들이나 탈영병에 의한 사고가 아닌 민간인들 간의 금전적 다툼에서 총기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총기문제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미국이 인종, 마약 및 총기문제로 치르고 있는 사회적 비용을 담 너머 남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시점이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가 앞선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경험이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위법행위를 한 소수인종을 대량구금하고 마약이나 총기사범에 엄벌만을 가하는 사후대처 방식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결코 감소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보다 사전 예방적인 차원에서 따뜻한 정치로 소수인종 사회와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고, 극빈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와 기회를 확대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

2015-11-08 이백철

[월요논단] 국어교과서로 본 국정화 문제의 원인과 책임

야권·일부 역사단체 등에서 진정 역사교과서 검정 상황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헌재에 판결 맡기는것도 고민해야정치권은 교육부가 어떻게책임져야 하는지 머리 맞대야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격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할 정도로 정부의 국정화 의지는 강하다. 이는 역사 교과서 검정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런데 야당과 일부 사학자들은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교과서에 정부가 개입하면 정치적 중립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92년 헌법재판소는 한 중등 교사가 제기한 국어 교과서 국정화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 결정(89헌마88)한 바 있다. 따라서 당시의 헌재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경우에 교과서 국정화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1992년 헌법재판소는 국어 교과서 국정화가 헌법 제31조 등에 위배 되는지에 대해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헌재는 어떤 경우에 정부가 교과서 편찬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초·중·고교 교과서는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나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구성될 경우 정부 개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교과서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독자적인 생활영역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품성과 보편적인 자질을 배양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과정에서 공사립, 지역, 교육환경, 교원 자질/능력 등에 의해 교과의 과목별·내용별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만약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색다른 역사관이나 한국사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면 이는 교과서로서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크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헌재는 교과서가 피교육자에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균등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반 교육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사물의 시비, 선악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능력이 미숙하므로 가치 편향적이거나 왜곡된 학문적 논리에 대하여 스스로 이를 비판하며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교육을 책임지는 정부는 이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교과서에 내용 중 편향성과 왜곡의 논란이 있다면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역사 교과서 편향성과 왜곡 논란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이 검정 기관인 교육부에 있고, 교육부는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교과서 국정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헌재는 세 번째 이유로, 교과서가 국민의 수학권(受學權: 교육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국민의 수학권은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문화·민주·복지국가의 이념구현을 위한 기본적 토대이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정교과서 제도는 교과서를 정부가 독점하는 것이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민 수학권 보호를 위해 학년과 과목에 따라 교과용 도서를 자유발행제로 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한 경우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그리고 그 인정의 범위 내에서 국가가 이를 검·인정제로 할 것인가 또는 국정제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재량권을 갖는다고 판시했다.헌재 결정문 내용을 정리하면 교과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균등한 교육을 받기 위한 도구이며, 국민의 수학권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 내용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의 개입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결과는 교과서 국정화가 되는 것이다. 만약 야권과 일부 역사 단체 등에서 진정 역사 교과서 검정제 상황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헌재에 판결을 맡기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결과적으로 교육부 과오에 대한 면죄부만 주게 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역사교과서 주무부서인 교육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이념적·정략적으로 이용되기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1-01 홍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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