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환상

인사·공천 권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한 현실민주화 이후 독자적 결정할 수 있는것 많지 않아국회와 수평적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 이뤄야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야당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때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제왕적 대통령은 혹시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 또한 매우 낮다. 대통령제 하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대통령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적인 대통령제라면, 대통령은 절대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과 의회 간 구조적 분리이며, 또한 이 분리된 두 기관이 정책결정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늘 국회의 견제를 받게 돼 있으며, 국회의 협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권력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 하에서 수상이나 총리가 의회의 협력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대통령제의 성패는 대통령-의회 간 협력의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 누리던 제왕적 권한은 민주화가 되면서 이미 사라졌지만, 우리의 기억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어졌어도 제왕적 ‘대통령’의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임에 틀림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여전히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주된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속한 정당에서 행사하는 공천권이다. 이 두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 이 두 권한 또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변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여전히 중요한 당근임에 틀림 없지만, 최근의 총리와 장관 임명 동의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고유권한 또한 상당부분 국회 그리고 여론의 견제를 받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의원 공천권은 실로 엄청난 권력이며, 비민주적 정당 구조로 되어 있는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권력 또한 점차 줄고 있다. 3김(金)이 물러난 이후 정당 구조가 과거에 비해 점점 분권화되어 가고 있으며, 단임제 하에서 레임덕 현상의 조기화로 인해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 때 임기를 1년 반 남겨 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국의 대통령(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정치현실과 기대와의 커다란 격차에 있다. 많은 국민·언론, 그리고 심지어 정치엘리트 조차도 대통령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현실 하에서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의 감소를 경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향후 한국 대통령제의 올바른 개혁 방향은 대통령의 권력 약화가 아니다. 이미 대통령의 힘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한적이며, 국회의 힘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과 국회 양자 간에 견제와 함께 동시에 협력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의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적절치 않다. 사실 이 제도의 취지는 대통령 힘의 약화가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 간 연결고리의 마련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중임제의 도입을 통한 레임덕 현상의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발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민주적으로 활발하게 작동하는 정당을 연결고리로 대통령과 국회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해서 당장에 시급한 것은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5-14 김 욱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정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되게 관심 필요귀농인 교육프로그램·지원 전문인력 양성 시급지속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시스템 갖춰야요즘 귀농·귀촌은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40~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흔히 듣는 얘기가 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도시의 높은 집값과 비싼 생활비로 힘들어진 가정형편을 해결하거나,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최근에는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난 속에서 귀농을 선택하는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학기 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외삼촌이 계시는 시골로 가서 농업으로 성공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남기면서 자퇴신청을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지역으로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난 3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귀농·귀촌인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촌으로 이주해 농사를 짓는 귀농가구는 2013년 대비 2% 증가한 1만1천144가구로 40~50대의 1~2인 전입가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원생활을 선택한 귀촌가구는 작년 대비 무려 55.5% 증가한 3만3천442가구로 나타났다. 귀촌은 주로 수도권에 인접해 생활여건이 좋거나 자연경관이 좋은 농촌지역에 집중되었고, 연령대와 전입가구원 수는 귀농가구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 농촌지역이 저출산·고령화 단계를 넘어 무(無)출산·초고령화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귀농·귀촌가구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농촌 살리기를 위한 작은 희망의 메시지로 느껴진다.이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귀농·귀촌가구의 증가를 쇠퇴하는 농촌에서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농촌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지난 1월 20일 제정된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귀농어업인 및 귀촌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을 유도하고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은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고 5년마다 귀농어·귀촌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해 관련 현황 및 실태 파악, 교육훈련과 전문인력 육성, 홍보 및 정보화 촉진, 재원 조달 등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한편 귀농이나 귀촌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농촌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귀농·귀촌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프로그램과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도시민뿐만 아니라, 이들을 공동체로 받아들일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더디지만 제대로 가는 길’을 걸어온 진안군의 ‘살기 좋은 농촌 마을만들기’ 경험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다양한 시도들이 귀농·귀촌 활성화와 살기 좋은 농촌마을만들기의 해답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진안군은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학습활동과 행정 및 마을만들기 전문가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2006년 귀농·귀촌 정책과 결합해 연간 100가구 정도가 진안군으로 이주해 오기도 했다.마지막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의 유치만이 농촌 주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준다는 고정된 관념을 조금씩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도시로부터의 귀농·귀촌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지역마다 차별화되고 특색있는 특산물이나 청정한 농산물, 고유한 전통문화와 풍습, 그리고 자연생태 및 농촌경관·역사자원들을 서로 연계한 지속 가능한 농촌형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행정과 풀뿌리 민간조직 및 전문가 그룹의 지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5-07 박경훈

근로자의 날과 노동의 종말

좁은 취업문 뚫기위해 청춘을 바치는 대학생들21세기 지구촌은 창의력이 통하는 ‘예견된 미래’대학, 노동없는 ‘무서운 지옥’ 대처능력 길러줘야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메이데이로 불리는 국제노동절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제정된 이 기념일은 정부나 사용자 측에서 각종 포상과 유급휴무를 후원하게 되어 있어 근로자들에겐 특별한 휴일이다. 그러나 대학에선 메이데이가 실감나지 않는다. 강의는 평소대로 이루어지고 구성원들은 특별한 기념행사 대신 하루쯤 대체 휴일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다. 메이데이는 오히려 미래의 근로자가 될 학생들을 걱정하는 날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세계적인 고민거리 아닌가. 이들 대다수가 대졸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늘의 대학은 점차 고민의 생산기지로 바뀌는 중이다.항간에 떠도는 ‘인구론’은 대학정신이 실제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시스템적 모순을 보여준다. ‘인문계 대학생의 90%가 논다’는 자조와 푸념은 정부의 고용정책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 일찍이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 제러미 리프킨의 ‘피곤을 모르는 기계들에 의한 인간 노동의 탈취’라는 무서운 지옥의 묵시록을 간과한 자책에 가깝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취업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은 ‘근로자의 날’이 점차 폐허화 되어 가는 지구생명 공동체를 탈출해 찾아갈 수 있는 ‘희망 행성’과도 같다. 그들은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열정과 청춘과 건강과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낭비족’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돌진한다.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걸, 취업을 해도 10년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려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학에서도 이런 ‘과잉 노동력’의 위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속담은 오늘의 청년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각국의 창업지원정책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문명사적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 뿐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구조를 바꾸려면 정권 교체를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차선 아니면 차차선이라도 찾아야 한다. 창업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한 모험길 치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권유하는 문법 속에는 ‘성공은 개인의 창의와 열정과 도전정신에 달려 있다’는 ‘국가책임 회피론’이 어른거리는지도 모른다. 21세기 지구촌 시민들은 어차피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렵다. 컴퓨터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상상력, 시와 미술과 음악 등이 결합하는 예술적 역량들이 오히려 ‘인구론’의 위기에 대처하는 역설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유심히 귀 기울여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예견된 미래다. 다만 창의성은 현실적 구현 능력이 겸비되어야 꽃을 피울 수 있으므로, 미래의 대학들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노동이 사라지는 ‘무서운 지옥’의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최근, 외국대학을 졸업한 뒤 그곳에서 대학관련 유통시스템으로 창업한 후 우리나라에 지사를 세우고 싶어 방한한 한국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이템을 보니 흥미로웠다. 대학 내 단체 티셔츠나 학과 점퍼 등에 대한 유통시스템을 개발하여 학생들의 상권을 보호하고 대학들이 상표와 상호 등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 공급이 핵심개념이었다. 마침 여러 대학들이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되어 이 같이 참신한 사업 아이템을 지원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소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다. 나는 이 도전적인 청년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는 ‘무서운 지옥’에 미리 대처하고 있는 ‘퍼스트 무버’이며, 각 대학과 제휴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는 창의적 상상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 속에 대학의 내일을 희망적으로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사례가 보이기 때문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4-30 윤재웅

선별적 복지보다 선별적 증세를

선별적 증세 우선돼야 보편적 복지·급식 기초 잡혀비리 연루돼 공짜 삼키고도 잡아떼는 사람 많아그 내공들 한결같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진부해월사금·사친회비·육성회비·기성회비 등등은 초·중·고등학교 수업료의 변해 온 이름들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초·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은 월사금이나 사친회비 등을 제때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을 많이 겪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시험시간 중에 서무과 직원이 교실에 들이닥쳐 월사금이나 사친회비 안 낸 학생들을 일일이 호명하여 교실 밖으로 내몰기도 했다.내쫓긴 학생들은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으로 답답한 학교를 벗어나 들로 산으로 신바람 나게 먹거리를 찾아다니며 궂은 짓들을 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슬금슬금 다시 학교로 기어들었다. 쫓겨났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면 시험감독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모르는 체 눈감아 주시기도 했다.학교에서 쫓겨나는 아이들 중에는 집에서 준 월사금이나 사친회비를 딴 데 써버리고 냉가슴을 앓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최근 서울 어느 학교에서 급식비 안 낸 학생들을 따로 호명해서 급식비를 재촉한 교감선생님이 화제로 오르내리던데, 사친회비를 딴 데 써버린 아이들처럼 집에서 준 급식비를 딴 데 써버리고 호명 받는 아이들도 필시 비슷한 냉가슴을 앓았을 게다.한국전쟁 전후에 학교에서 쫓겨난 경험을 가진 이들은 그런 정도의 일이 화제가 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는 세상에 대해서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나기도 했을 테고 비교육적 처사라며 지탄받는 그 교감선생님의 고충에 한 가닥 연민이 앞서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던가. 급식비 안 낸 학생을 하필이면 식사 전에 따로 호명하는 건 누가 봐도 비교육적이다.우리나라 일부 지자체에서도 학생들 무상급식 중단으로 시끄럽다. 무상급식 문제는 때마침 치러야 하는 성완종 회장 리스트 수사와 맞물려 아무래도 상당기간 논란이 계속될 모양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데지 밥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라는 막말까지 동원된 걸 보면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해당 단체장의 집념도 만만찮아 보인다.그게 몇 년 전 서울시장이 자진사퇴하게 된 일인데도 틀린 답을 애써 옮겨 쓰는 수험생처럼 같은 일로 남다른 집념을 보이는 걸 보면 해당 단체장의 집념에는 그럴 이유가 꼭 있는 것처럼 비장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랫돌 빼 윗돌로 삼는 듯한 그의 대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학부모도 많다고 한다.그런 비장한 집념의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무상급식이라는 말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세금으로 먹는 밥이 어째서 무상급식인가. 공것이라는 말은 ‘공공(公共)의 것’의 준말이다. 공(公)것은 공짜라는 고정관념이 무상이라는 말 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혀 있는 건 아닐까. 무상급식 의무급식 등등의 말들이 다소 찜찜한 뒷맛을 남기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말들 속에 못 박힌 ‘공(公)것은 공짜’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보편적 급식과 선별적 급식의 충돌 지점에서 증세 문제가 필연적인 것처럼 제기되기도 하는데, 국민 건강을 위해서 올렸다는 담뱃값 같은 보편적 증세는 국민의 건강뿐만 아니라 국가의 건강까지 난폭하게 좀먹고 있다. 현실적인 듯 합리적인 듯 내세우는 선별적 복지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선별적 증세다. 선별적 증세가 선행되어야 보편적 복지도 급식도 그나마 기초가 잡힐 것이다.무슨 리스트나 각종 비리와 관련되어 공짜를 꿀꺽 삼키고도 딱 잡아떼는 이들이 요즘 무더기로 거론된다. 왕년의 차떼기에 크게 놀랐던 이들도 요즘의 잡아떼기 행태에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꿀꺽꿀꺽 삼키고도 딱 잡아떼는 그 내공들이 한결같이 소름 돋을 정도로 진부하기 때문이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4-23 정 양

이념 양극화에 대한 오해

보수·진보 갈등, 유권자 의식 성숙해졌다는 의미상대방 정책 부정적 평가 민주정치 발전 도움 안돼서로다른 생각 이해하고 타협하는 관대함 보여야현재의 한국 정치를 부정적으로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지역주의와 이념 양극화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병폐와 해악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념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오해와 혼란이 있는 듯하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중요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이념 갈등이 부상하면서 지역 갈등이 한국 정치에서 누리던 독점적 영향력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초창기의 이념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이념 갈등이 이념 양극화 현상으로 표현되면서, 지역주의에 버금가는 한국 정치의 병폐로 묘사되고 있다.먼저 이념 갈등 그 자체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회에서의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떠한 갈등이든 그것이 표출되지 않고 숨어있는 것보다는 표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의 신호다. 특히 사회의 다양한 갈등 중에서도 이념 갈등은 다른 갈등에 비해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역 갈등이나 세대 갈등과 비교해 볼 때 이념 갈등은 타협점을 찾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이 대립할 때는 중간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충돌할 경우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대변해 주는 세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 보수-진보 간의 갈등에서는 얼마든지 정책적 타협이 가능한데, 그것은 보수와 진보가 기본적으로 연속적 개념이기 때문이다.이념 갈등이 다른 갈등에 비해 바람직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정책에 대한 입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특정한 이념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선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유권자는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선호하고 진보적 유권자는 성장보다는 환경보호를 위한 정책을 중시한다. 따라서 많은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분명히 나누어지고 대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민주정치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에서 보수-진보 이념 갈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균열로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이념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표현이 중도 혹은 중도실용주의다. 그런데 중도란 분명한 이념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관용하고 이해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나 입장 없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중도실용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중도 정치세력은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을 부정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관용과 타협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다.만약 한국에서의 이념 갈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보수-진보 간 타협이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 갈등이나 양극화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양자 간 타협이 한국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념 갈등이 가지는 특수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이다. 반공, 친북과 연계되면서 이념 갈등은 타협 가능한 정책적 대립보다는 타협이 어려운 감정적인 대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특수성은 이념 갈등이 세대 갈등과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결과,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신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이념 갈등과 중첩되어 기성세대는 보수,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이념 갈등이 세대 간에 존재하는 기본 가치관의 차이와 결합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다.서구 민주국가에 비해 한국 유권자가 이념적으로 더욱 분극화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 양극화를 내세우며 유권자가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가지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결코 한국 민주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을 없애는 일이 아니고, 서로 다른 이념을 관용하고 타협하는 성숙함이다. 이러한 성숙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4-16 김 욱

인간성 회복 위한 지역사회 공동체만들기

인간과 자연 ‘더불어 사는 삶’ 끝없이 노력가정·학교·직장·마을등 인성교육의 장 활용사회문제 해결과 미래세대에 희망 주는 초석많은 논란과 우려 속에서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올해 1월 제정되어 7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에서는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개인과 집단의 이익, 편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오로지 승자만이 인정받는 경쟁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상실돼 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와 갈등을 치유하는데 인성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인성교육이 유치원생이나 초·중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중심의 교육에 머무른다면,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은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학교 중심의 인성교육과 함께 가정을 비롯한 지역사회 전반적으로 인성, 즉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특히 인간성 회복의 관점에서 가정과 학교, 직장, 동네 등의 크고 작은 규모와 다양한 성격의 지역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을 배려하면서 더불어 갈 수 있는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환경문제를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환경공학 분야의 전공교육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환경교육에서도 인간이 형성한 도시를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유기체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도시 속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연생태계의 원리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강의 주제를 가장 먼저 다룬다.한편으로 생각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도시가 인성교육이나 인간성 회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이기적 개발행위는 더 이상 다양한 야생 동식물들이 도시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고, 자동차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잠식해 버린 정주공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도시에서 타인, 공동체,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기 위한 인성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최근 국내외적으로 생태성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지역사회 공동체 만들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다. 도시계획적 시도로서 도시의 사회문제가 무분별한 도시확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공공시설이나 공원 등의 오픈스페이스 조성, 자동차 중심이 아닌 보행과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 및 토지이용,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심 속 자연의 보전과 복원 등을 강조한 미국의 신도시주의(New Urbanism), 일본의 도시환경주의 등이 그 예가 되겠다.아울러, 최근 국내의 많은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사업 등도 상실돼 가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개념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보다는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노력이 인간성 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의 살아있는 장소로 연결된다면, 현세대의 당면한 많은 사회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튼튼한 초석이 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4-09 박경훈

걷는 즐거움

바쁜 삶 잠시 쉬고 건강도 챙기는 ‘또다른 여유’햇볕·바람·꽃… 자연과 하나되어 ‘행복한 순간’걷다 보면 새로운 느낌이나 영감 얻는 ‘행운도’지난 주말 걷기대회에 참가하고 왔다. 서귀포 유채꽃 국제걷기대회다. 처음엔 ‘걷기대회도 있나?’ 하면서 의아해 했으나 직접 참가해 보니 금세 그 취지에 공감하게 되었다. 바쁘게 살지만 말고 건강을 돌보면서 좀 쉬라는 뜻 아니던가. 따뜻한 햇볕, 시원한 바람, 진노랑빛 흐드러진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걷는 사람들…. 모든 게 도시의 일상과 다른 시간이었다.걸으면서 나는 무얼 했나 되짚어 보았다. 햇살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 몸의 피부 세포들이 태양풍을 향해 일제히 돛을 펴는 걸, 그리고 햇살은 나만 편애하지 않고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는 저 동백나무도 나무의 그늘도, 바다의 은빛 물결들이며 영원한 방랑자 구름에게도 자기를 나눠줄 줄 아는 햇살들…. 부처님의 자비 광명, 주님의 은혜로 흔히 비유되는 이런 햇빛이 순간순간의 느낌으로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게 행복했다.말보다 실천은 확실히 좋다. 걷기대회에 참가한다고? 이렇게 망설이는 이들에게 나는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걷는 데도 결단이 필요하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서로를 격려한다. 아내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려는 주부, 자기에게 휴가를 주고 싶은 직장인들. 중국·일본·러시아 등지에서도 많은 인원이 참여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다.나는 이들이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대회에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모든 참가자는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 부드러운 미소, 활달한 걸음걸이의 바로 그 순간이 극락이고 천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걷기대회야말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의 행복을 누리는 천국여행’이 아니던가. 제주 올레길 열풍이며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 순례문화 역시 행복을 찾아가는 자기치유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면 문득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이 찾아오는 행운도 누리게 된다. 예술의 천재들에게 영감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위한 교훈 중에 ‘준비된 사람에게 하늘의 천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배가 비슷한 운명에 있다는 것을 서귀포 중문 일대 야트막한 산언덕에 올랐을 때 나는 비로소 보게 되었다.‘보라 저 운하에 잠자는 배들/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그들의 버릇’.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라는 시가 떠오른 것은 서귀포 앞바다 위의 평화로운 돛배들을 보는 순간이었다. 떠도는 것이 배들의 운명이라면 사람의 사람다움은 걷는 게 아니던가. 이렇게 되자 걷기대회가 갑자기 보람있는 배움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잠들어 있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게 배들의 운명인 것처럼, 사람 역시 걸어야 하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고대 그리스의 비극 가운데 ‘오이디푸스대왕’이 있다.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는 끔찍한 이야기인데, 거기 인간의 본질을 묻는 수수께끼가 나온다. 괴물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이 문제를 내고 알아맞히지 못하면 잡아먹는다. “아침엔 네 발, 낮엔 두 발, 저녁엔 세 발인 짐승은?” 정답은 바로 사람. 어려서는 기어 다니고 성장해서는 두 발로 걸으며 나이 들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하게 된다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걸어야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중에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건강관련 서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걷기 힘든 분들 모두에게 행복한 기회가 오기를!/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4-02 윤재웅

희망고문

유신·삐라… 역사의 시계 거꾸로 가는일 많아져온라인엔 ‘성계육’보다 더 험악한 말들 난무‘희망고문’에 지친 비아냥들 민망하기 그지없어1930년대에 발표된 홍명희의 미완 명저 ‘임꺽정’에는 최영 장군의 사당에 관련된 사연과 거기 송악산 자락에서 펼쳐지는 축제 장면이 홍명희 특유의 된장 냄새 묻은 필치로 자상하게 서술되어 있다. 통나무 모닥불에 통돼지를 굽고 거기 모인 이들이 그 통돼지 구이를 몇첨씩 다투어 뜯어먹으면서 씨름도 하고 그네도 뛰고 제기차기도 윷놀이도 한다.그렇게 뜯어먹는 통돼지구이를 사람들은 성계육이라고들 했다. 이성계가 돼지띠라서 그렇게 통돼지 구이를 만들었단다. 이성계가 닭띠나 개띠였다면 통닭구이나 통개구이가 성계육이 됐을 것이다. 그 성계육 축제는 최영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면서 쿠데타로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대한 고려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와 야유가 질펀하게 번지는 현장이었다.관우나 악비 같은 중국 고대사의 비극적 영웅들이 중국 곳곳에 세워진 사당에서 두고두고 중국인들의 기림을 받고 있다고 한다. 고려왕조의 비극적 영웅 최영 장군의 경우 관우나 악비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오지는 않았지만 조선왕조 수백 년 동안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 만들어지고 그의 충정을 섬기는 민심이 그처럼 축제가 되고 민속이 되어 전해졌던 것 같다.이른바 최고 존엄의 이름을 내세워 성계육을 뜯어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그런 반체제적 민속이 봉건왕조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었던 것인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민중적 에너지가 모임 직한 일마다 미리 초를 쳐서 희석시키는 정권에 길든 언론 같은 것들이 그 시대에는 물론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식으로는 최고 존엄 모독죄, 우리식으로는 국가원수모독죄쯤에 해당될 당시의 서슬 퍼렇던 역모죄, 조선왕조의 원죄로 못 박혔기에 오히려 더 사납게 휘둘러대던 그 역모죄를 어찌 감당하면서 백성들은 그렇게 성계육을 뜯었단 말인가.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일은 물론 더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마음 놓고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통쾌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시작은 필시 은밀했겠지만 은밀하게 시작되었을 그 모임이 축제가 되고 민속으로 정착되기까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은 고려의 유민들은 마침내 조선왕조의 최고 존엄 이성계를 맘 놓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다투어 성계육을 뜯어먹는 통쾌함을 맘껏 누렸던 것 같다.명예훼손이니 허위사실유포니 종북이니 불온이니 하는 명목으로 걸핏하면 고소하고 가두고 벌금을 물게 하면서 유신시대로 삐라시대로 서북청년단시대로 역사의 시계가 자꾸 거꾸로만 되감기는 것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아선지 요즘의 온라인에는 성계육보다 더 험악한 말들이 난무하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희망고문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뭔가를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때문에 두고두고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희망고문,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의 성계육 축제도 오랜 세월을 두고 백성들이 견뎌왔던 희망고문의 결과물일 것이다.희망이라는 설렘과 고문이라는 끔찍함이 난폭하게 야합해 버린, 절망보다 더 지긋지긋하고 좌절보다 더 쓰라리고 체념보다 더 인간 존엄이 짓밟히는 게 희망고문이다. 눈조심 말조심 귀조심 심지어 꿈까지 조심하면서 최고 존엄을 맘 놓고 저주하고 조롱하고 미워해도 괜찮은 그런 쾌감을 위해서라면 그런 고문쯤은 과연 얼마든지 견딜 만한 것인가. 그 나물에 그 밥, 걸레는 빨아도 걸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같은 말들 속에는 그 희망고문에 지친 비아냥들이 늘 민낯으로 깔려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그런 말들이 민망하기 그지없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3-26 정 양

지방에 정치가 있다

권위주의 시절 ‘행정중심 사고’ 지방정치 무시지방분권화 안돼 갈등문제 여전히 중앙에서 결정중앙정치 요인, 실제로 지역에서 생기는 경우 많아지방선거 결과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거나 혹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다는 말은 현시대 한국정치와 선거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지방자치의 척박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는 교훈적인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으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중앙보다는 지방에 정치가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정치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지방선거 결과의 해석에 있어서 문제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중앙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 승리했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정당 간의 승패를 결정하는 거시적인 선거 결과(보통 정당들이 차지한 광역단체장 자릿수)는 각 지역과 지방에서 미시적으로 발생하는 정치과정과 갈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특정 정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했다고 하자. 그러나 미시적으로 부산 내 여러 지역 선거결과를 들여다보면 지역 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의 차이는 결코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거시적인 승패 결과만 보면 모든 지방선거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각 지역과 지방의 이슈와 요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정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행정중심 사고가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과거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와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벌써 20년이 됐는데도,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보다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 무슨 정치와 정당이 필요한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러한 행정중심의 사고는 정치불신과 결합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론으로까지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기초의회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정치가 중앙보다 지방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먼저 가정·학교·직장을 포함한 그 어떤 작은 규모의 자치 단위에도 이해 갈등과 다양한 생각 간의 충돌은 존재하게 마련인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구성원 간 이익과 가치를 분배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광역단위는 물론 기초단위에서도 다양한 이익과 가치의 충돌이 존재하며, 이의 분배를 위한 정치과정이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단순 행정서비스인 ‘눈 치우는 일’에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중 어느 동네부터 먼저 치울 것인가에 대한 이해 갈등이 있고, 또한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얼마나 고려할지에 대해서도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존재한다.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근접한 곳에서 발생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앙에서의 갈등보다는 지역과 지방에서의 갈등이 유권자에게는 더 중요하다. 실제로 지방자치가 자리잡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투표행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중앙정치 요인보다는 자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과 지방의 이슈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 민주주의의 국가에 비해 지방이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지방분권화가 덜 진행돼 지방의 힘이 아직 중앙에 비해 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지역과 지방의 문제를 중앙에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보통 중앙정치 요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지방정치의 합인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지지율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 지지율이란 결국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에서 ‘지방정치 요인을 매개로 해서’ 이뤄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앙은 서울이 아니고,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의장을 역임한 오닐(Tip O’ Neil)이 남긴 유명한 문구인 “모든 정치가 지방에 있다”는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김 욱 배재대학교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학교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3-19 김 욱

변화와 개혁,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과거탈피 없는 작은 마음도 기득권 될수 있어변하는 교육여건 무시한 개혁… 미래세대 큰 짐지속가능한 발전 함께 고민할때 성공 결실 거둬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변화와 개혁을 통해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 지금껏 가져왔던 기득권은 모두가 내려놓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채 변화와 개혁의 옳은 방향을 찾아내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그동안 가져왔던 크고 작은 기득권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더는 변화와 개혁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과감히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일반적으로 기득권은 부와 권력 등을 가진 특정 개인이나 조직, 계층 등에 국한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변함없이 영원히 가지고자 하는 작은 마음도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소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도로 위에서 약자인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자의 모습, 업무시간이 지났는데도 민원인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해결하려고 애쓰는 공무원의 모습, 방황하는 학생을 위해서 친구처럼 다정하게 오랜 시간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의 모습, 맞벌이하는 아내를 위해서 집안일을 함께 하는 남편의 모습, 학생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나 직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동안 담당해 왔던 교과목을 새롭게 개편하고 새로운 강의교재를 개발하는 교수의 모습도 각자의 위치에서 크고 작은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았을 때 가능해 질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지금 대학가는 지난해 불어 닥친 구조개혁의 거센 파도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다. 저출산 문제 등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지속해서 감소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구조개혁은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의 구조개혁도 모든 구성원들이 그동안 가져왔던 기득권을 조금의 양보도 없이 계속해서 지키고자 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이나 제도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교육여건을 무시한 채 변화와 개혁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현세대의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미래 세대에게 짊어지고 가기 힘든 큰 짐을 맡기는 꼴이 될 것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와 개혁도 결국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에 공감할 때 모두가 만족하고 동의하는 모습으로 실현될 것이다.이번 칼럼을 쓰면서 지난 1년 동안 운동과 식사조절을 통해서 비만에서 정상체중으로 돌아온 내 몸의 변화와 개혁(?)도 그동안 가져왔던 내 몸의 기득권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비만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불균형적인 영양섭취와 자동차와 같이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편리성으로 인한 신체적 활동의 감소가 주된 원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동안 하루 삼시 세끼, 그것도 부족하여 야식까지 배부르게 챙겨 먹어 왔던 내 몸의 기득권과 잠시를 움직여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편리성에 대한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았을 때, 몸의 변화가 서서히 다가왔다. 오랜 시간 동안 불어난 몸무게를 빼는 일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다. 많은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공공, 교육, 노동, 금융부문의 변화와 개혁도 모든 이해당사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 성공적인 결실로 맺어질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3-12 박경훈

문화융성의 참뜻과 길

수도권과 지방·계층간 문화격차 해소 중요관람객 욕구 못 채워주는 콘텐츠 전시행정일뿐행복한 삶 위해 고품격 문화장려와 지원책 필수지난달 26일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 공연이 있었다. 300석 규모의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 500명 가까이 운집했다. 관객 대부분은 시가 좋아 스스로 찾아온 중년의 문화 향유자들. 이들은 이날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시가 실시간 소리로 살아 자기 몸에 다가오는 경험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 것.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연극배우, 가수, 시낭송가들은 시의 생명을 매순간 새로 탄생시키고 있었다. 낭송을 마치고 객석에 앉아 있던 이시영 시인이 배우들의 낭송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극배우들이 시를 낭송하니 확실히 또록또록 들린다. 시인도 독자를 위해 더 노력해야겠네…!” 낭송의 새로운 모형을 보여준 경우는 시낭송가들. ‘국화 옆에서’가 독송, 윤송, 합송으로 변주되면서 새로운 콘텐츠로 태어나는 순간, 객석 전체에 압도적인 감동이 일었다. ‘신부’를 전통음악으로 작곡하여 초연을 한 주인공은 박정욱 명창. 소리꾼 장사익 역시 미당의 ‘저무는 황혼’을 애절한 가락으로 불러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다. 명사들의 인터뷰 장면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연극배우 손숙 선생의 뼈 있는 말. “요즘 문화융성 문화융성 하는데 그게 별건가. 삶 속에 문화를 들이는 것. 가령 일상에서 시를 자주 낭송하는 것. 우리들 삶 속에, 가슴 속에, 정서 속에 문화나 예술이 촉촉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이 한결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날 공연은 문화융성의 체험현장이었다.공연 이틀 전, 대통령은 한국메세나협회 회원 기업인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 지원을 독려했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기업으로 하여금 문화의 발흥을 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화란 근본적으로 지원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논어’ 옹야편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는 대목이 있다. ‘즐기는 것(樂之者)’은 최상의 공부 방법이자 높디높은 문화향유의 기품과 관습을 뜻한다. 스스로 좋아한 나머지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은 기호와 취향. 좋은 것을 좋다 말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말하는 풍토. 이런 문화가 풍성해야 진정한 문화융성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즐긴다는 건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날 공연 콘텐츠를 채워준 출연자들에 그 답이 있다. 이들은 흔쾌히 재능기부를 했으며 관객들은 고품격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출연진들 모두 미당을 사랑하고 존경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인, 배우, 가수, 낭송가들의 가슴에 미당의 시는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어서 언제든 꺼내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고급문화를 사랑하는 진정한 애호가의 정신을 관객들도 이심전심 공감하게 된 점은 이날 공연의 또 다른 수확이다.문화행사에 대한 지원도 이런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 그 효과가 커지게 마련이다. 수도권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문화격차 해소도 중요하고 특정한 날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다양한 관람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걸 제공하지 못하면 전시행정이 되기 십상인 게 정부 정책이다. 고품격 문화에 대한 장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즐기는 이들을 위한 지원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위한 문화융성의 지혜로운 방책이다. 백범 김구선생께서도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3-05 윤재웅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

요즘 가난 때문에 집단 자살하는 일 너무 많아정부, 복지없는 증세하면서 아닌척 온갖 꼼수담뱃세 올려놓고 무엇을 또 더 올릴 작정인지…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있었다. 그 빈부갈등은 인류에게 주어진 지난한 숙제다. 홍익인간이니 인내천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들도 필시 그 갈등과 더불어 움텄을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가난의 문제는 우리에게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밑이 째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다. 밑이라는 말은 더러 성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항문을 일컫는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가난과 항문과의 관계를 잘 모르는 이가 많다. 먹은 걸 배설해 버리면 뱃속을 또 채워야 하므로 아무리 뒤(밑)가 마려워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 보릿고개를 넘기는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참다 보면 변비가 심해지고 그러다가 밑이 째질 수밖에 없었다. ‘30년대 강경애의 소설 ‘적빈’에도 배변을 참느라고 깡충거리며 걷는 주인공의 안간힘이 리얼하다.우리 문학에서 흥부는 가난의 상징이다. 마음 착한 것 말고는 가난하게 살 이유가 없는 흥부였다. 흥부 내외가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도 한 달에 아홉 끼니 먹기가 어려웠던 건 놀부로 상징되는 천민자본주의의 착취구조 탓이었기에 흥부가를 즐기던 청중들은 흥부의 가난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는 않았다.흥부가에는 흥부네 집의 쥐들이 먹거리를 찾아 집안을 뒤지고 다니다가 마침내는 다리에 가래톳이 서고, 가래톳 선 쥐들의 끙끙 앓는 소리로 마을 사람들이 잠을 설친다는 대목이 있다. 요즘의 흥부가 청중들은 그 대목을 들으면서 가볍게 웃고 말겠지만 옛날의 흥부가 청중들은 가래톳 선 쥐들의 끙끙 앓는 소리를 우스개로 즐기면서도 먹거리를 찾다 지친 자신들의 참담함을 쓰라리게 되새겼을 것이다.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의 원인을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미련함 게으름 낭비벽 등등에 근거를 두고자 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것은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포기해 버리는, 원망할 테면 하늘한테나 하라는,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가라는 참으로 음험한 말이다. 부정부패나 봉건시대의 고질적인 착취구조 같은 것들을 희석시키려는 그 음험한 말은 지금도 이 나라에서 흥부시대처럼 톡톡히 제구실을 하고 있다.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제일 높고 자살의 상당 부분이 가난과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밑이 째지던 우리의 절망적인 가난은 과연 옛날 얘기에 불과한가? 밀린 집세와 공과금이 담긴 돈 봉투를 유서와 함께 두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의 눈물겨운 절망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가난 때문에 집단 자살하는 일이 요즘 이 나라에 어디 한두 번 이던가.대선 공약이던 증세없는 복지 대신 복지없는 증세를 하면서도 정부는 증세가 아닌 척하느라 온갖 꼼수를 다 부린다. 담뱃세를 그렇게 허망하게 올려버리고도 무엇을 또 얼마나 더 올릴 작정인지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도 우긴다. 증세 논란은 담뱃값 올리기 전에 했어야 마땅하다.이런저런 증세 논란의 중심에 현행 법인세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증세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최근 입장은 백 번 천 번 옳다. 그것이 함부로 증세를 해버린 뒤끝이 아니라면, 그리고 법인세율을 끝끝내 동결하려는 안간힘이 아니라면 말이다.공산주의가 야만의 끝에 이른 게 북한이고 자본주의가 야만의 끝에 이른 게 한국이라는 말이 꼭 악의적인 양비론만은 아니지 싶어 우리의 가난이 벼랑 끝처럼 아슬아슬한데, 요즘의 증세 논란의 꼼수도 그 안간힘도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다./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2-26 정 양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균형발전

수도권 규제완화, 중장기적 관점서 접근지방대학, 경쟁력 확보위한 발전방안 모색소득수준 건강과 연계, 간과 해선 안돼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심각한 잠재적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고도 성장기를 지나고 저성장의 안정적 경제발전 단계에 접어들면서 소득·교육·지역·고용·복지·정보화 등 사회 전반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양극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경제발전의 안정화 단계에 있는 미국·프랑스·독일 등 많은 선진국에서도 소득분배·의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에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최근 수도권규제 완화와 지역균형 발전의 저해,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와 학문의 수도권 집중화 등에 따른 지방대학의 위기, 소득수준과 건강의 불균형 등이 많은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과거 정부에서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던 수도권규제 완화와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뜨거운 감자는 양극화 해소와 사회 전반에 걸친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만약 수도권규제 완화로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소득·생산·고용·의료·교육·복지 등 여건이 악화되고 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지역 간 양극화현상이 가속화된다면, 모든 국민이 간절히 희망하는 경제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더욱이 국토의 난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주거지와 인접한 산업단지의 입지에 따른 주거환경의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완화는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누려야 하는 ‘환경복지의 양극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많은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수도권규제 완화는 경제활성화라는 단기적·사안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수도권-비수도권의 양극화 해소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보다 중장기적이고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최근 학령인구의 감소와 수도권 대학 집중화 현상의 가속화 등으로 지방대학의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물론 지방대학 스스로 지역 산업 등과 연계한 특성화 전략 등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문만의 개혁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 전반에 걸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 내부적으로도 정원감축과 학과 통·폐합 등과 연계된 학문 간, 대학 구성원 간에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갈등도 스스로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고, 학문 간 양극화 해소와 대학 전체의 균형발전, 학생들의 경쟁력 확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상생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소득수준과 건강의 양극화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하는 건강 관련 통계자료는 소득수준 격차가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2013년 국민건강 행태 및 만성 질환 통계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고도비만이나 만성질환 등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소득수준과 건강의 양극화 문제는 비단 의료복지 증진뿐만 아니라 도시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상호 협력해 시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갈 때 비로소 해결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2-12 박경훈

봄바람 봄 냄새

민심 소통되지 않는 사회 침묵의 집단일뿐분위기 쇄신 한창인 政街… 좋은 일만 생기길정책결정·집행, 살결에 감기는 훈풍 같아야이 무렵 되면 봄 생각 절로 난다. 입춘(立春)이란 이름 때문인가. 천지 시간표가 예정 시각에 정확하게 도착하는 봄 열차를 알려주는 것 같다. 예전엔 입춘일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입춘첩’을 붙여 새 봄의 소망을 나타내곤 했다. ‘올봄엔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立春大吉 建陽多慶)’는 붓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인다. 인심 좋은 집안에선 여러 장 써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행복한 세상을 위한 덕담 공유 문화다. 하지만 입춘첩은 글 읽을 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식자층들만의 의사소통이 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문화나 밸런타인데이의 사랑 고백 풍습은 왜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까. 의미전달 체계인 기호(sign)만으로는 다중(多衆)에 호소하기 어렵다. 실제로 내 몸에 와 닿는 감각,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미치는 영향, 기호의 단선적 기능을 넘어서는 풍성한 스토리텔링이 결합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게 된다. 그것이 참된 의미의 의사소통이다. ‘입춘’보다 다른 게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봄 사이의 의사소통은 뭐니 뭐니해도 감각이 우선이다. 달래, 냉이, 씀바귀 같은 나물이 밥상에 올라오면 봄은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향긋한 향내가 입안에 감돌면 묵은김치로 겨울나던 입맛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처럼, 땅에서 막 나기 시작한 풀들이 생명의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 결말의 한 대목이 시사적이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는 청춘남녀의 ‘썸 타는’ 사랑을 체감하게 해준다. 그래서 봄 향기는 ‘입춘’보다 확실한 봄의 증거다.바람은 봄의 최고 짝이다. 살결에 다가오는 봄바람은 그 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만물생육을 관장하는 너그러운 어머니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관대함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 속에 제왕의 정치술에 관한 ‘대아(大雅)’ 편목이 있는데, 요즘 말로 하면 백성 섬기는 지도자의 마음가짐과 국정철학에 대한 것이다. ‘대아’의 성격과 그 활용은 추사 김정희가 쓴 ‘봄바람은 제왕의 마음과 같아서 큰 아량으로 만물을 품어 안는다(春風大雅能容物)’는 글귀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진정한 봄이란 이런 것이다. 자기들끼리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청춘남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여야 하고 백성들을 고생에 빠뜨리지 말라(民勞)는 민심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살충제에 의한 지구 생태계의 재앙을 경고한 레이첼 카슨의 책에 “전에는 아침에는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 등 여러 새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름 하여 ‘침묵의 봄’이다. 생명이 약동하지 않는 봄은 봄이 아니다. 민심이 소통되지 않는 사회는 침묵의 사회일 뿐이다. 자연은 정직하고 정확하며 예측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 또한 이래야 한다. 정치가 요즘 분위기 쇄신에 바쁘다. 청와대도, 여당과 야당도 ‘올봄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는 입춘첩을 붙이고 싶은 게다. 그러나 개혁, 의사소통, 민심 수습 같은 말 잔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책 결정과 집행이 살결에 감기는 훈훈한 바람 같아야 한다.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연애하도록 해야 한다. 백화난만 꽃피듯이 감동의 개별적인 사례들이 이야기로 전해져야 한다. 국정의 봄바람과 봄 냄새, 국민 모두가 바란다. 구호는 가고 체감은 오라.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2-05 윤재웅

이완구 총리 후보 지명의 정치적 의미

3년차 접어든 박대통령 정치적 영향력 점차 감소지지율 하락·변하는 당청관계 등 현실 반영한듯언론들 이후보에게 '대통령에 직언' 요구 분위기이완구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아직 청문회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나, 무난히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청문회 통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번 총리 후보 지명은 그 자체로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모든 언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번 후보 지명의 가장 큰 의미는 관료 혹은 교수 출신의 '관리형'이 아닌 정치인 출신의 '책임형' 총리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인 출신 총리 지명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해서 관리형 총리가 임명돼 왔기 때문이다. 정치인 출신 총리라고해서 뭐가 다르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대통령에게 복종할 가능성이 적다. 많은 사람들이 이완구 총리 후보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소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물론 정치인이라고 영향력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3선 의원이며, 충남도지사를 역임하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기 때문에 기대가 남다르다. 일단 광역단체장의 경험을 통해 이 후보는 현재 우리나라의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인 지방분권화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 완성 등 지방분권화를 위한 정책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이 후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는 정당 내에서, 그리고 국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한 정치력 영향력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자리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향후 행정부와 국회 관계, 혹은 당-청 관계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러한 논리를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이완구 총리 후보는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의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그 핵심은 대통령과 의회(국회) 간 협력의 어려움에 있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간 권력의 분립과 공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그 성패는 두 부처간 협력 여부에 달려있다. 일부에서 책임총리제 실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두 부처 간 연결 고리 및 협력 강화를 위해서이다. 물론 이 후보가 분권형 대통령제 하에서의 총리와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에 근접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일방적인 대(對)국회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일부에서는 이 총리 후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아무리 직언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권력은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이 후보의 성패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임제 하에서 3년차로 접어드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완구 총리 후보 지명은 이처럼 변화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관리형 총리가 더욱 편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떨어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변화하는 당-청 관계 등 정치적 환경 변화가 이러한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총리가 되면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할 말은 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대표에 당선되었다. 모든 언론이 이 후보에게 직언을 요구하는 분위기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1-29 김 욱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건강증진 내세워 세수증대 위한 '담뱃값 인상''화가 나도 참아달라'고 정직해진다면…그나마 국민건강에 다소 도움될지도 몰라민주공화국인 남쪽에서나 인민공화국인 북쪽에서나 다투어 공화국임을 내세우는 걸 보면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닌가본데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는 그 말이 비아냥처럼 쓰이고 있다. 겨울공화국을 비롯해서 부패공화국, 비리공화국, 막장공화국, 사고공화국, 불륜공화국, 자살공화국, 투기공화국, 찌라시공화국 같은 말들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쓰이고 요즘에는 또 거짓말공화국까지 거기 보태어져 그야말로 공화국이라는 말의 체면이 말도 아닌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뭔가 찜찜하고 불쾌하고 심란한 뒷맛을 남기는 말들이지만 그 중 우리를 가장 심란하게 하는 건 아마도 거짓말공화국이지 싶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거짓말들이 하도 많아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지만 필자로서는 감히 감당 못할 덩치 큰 거짓말들은 그만두고 이 글은 우선 가벼운(?) 거짓말 하나만 화제로 삼겠다. 길가에 줄 하나가 떨어져 있기에 주워들고 집에 갔더니 줄 끝에 웬 소 한 마리가 달려 있어서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는 민담 속의 억울하다는 소도둑은 누가 들어도 속이 환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속이 보이는 거짓말을 듣는 이들은 입술에 침이나 바르라고 비아냥거리곤 하는데, 그때 입술에 바르라는 침은 최소한적 양심 표현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할 때 보통사람 같으면 입술이 바짝 마를 테고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입술에 침을 바르게 되는 상식을 바탕삼아 그런 비아냥이 생겼을 것이다. '정직'을 가훈으로 삼고 살았다는 전직 대통령에 관한 말을 들으며 오죽했으면 그런 걸 가훈으로까지 삼았겠는가 싶어 나랏일들이 아슬아슬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사대강 수질오염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 대통령은 TV를 통한 대국민 담화에서 느닷없는 로봇물고기 얘기를 꺼내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으시딱딱 장담을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니면 묵은 버릇인지 말끝마다 그는 입술에 재빠르게 침을 바르곤 했다. 지난 연말 무렵 보건복지부 장관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길가에 늘어진 줄 끝에 소가 매달려 있을 줄은 몰랐다는 민담 속의 소도둑이 문득 떠올랐다. 국민 건강증진은 길가에 늘어진 줄이고 줄 끝에 매달린 소는 막대한 세수증진이라는 걸 모를 이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흡연자들은 건강이나 돈보다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꼴이 괘씸해서 이참에 아예 담배를 끊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심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보건복지부가 그 동안의 통계를 통해서 이미 환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담뱃값이 비싸다는 나라들의 국민소득이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담뱃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 금연을 하겠다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얼마 안 되어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될 것이고 담배보다도 그 부글거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국민의 암 발병 확률은 아마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곧 바로잡을 때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제라도, 나라 재정이 어렵지만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그들이 무슨 오기를 부릴지 겁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생각 끝에 만만한 담뱃값을 올렸노라고, 머지않아 물값도 술값도 교통비도 전기요금도 그렇게 올리게 될 거라고, 화가 나더라도 좀 참아달라고 구차하게나마 그렇게 좀 정직해진다면 그나마 국민건강에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정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정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2015-01-22 정양

국민대통합을 위한 국토·환경계획 연동제 필요성

정부, 국책사업 정책 국민들과 공유해야무리하게 추진땐 엄청난 행·재정적 손실중앙·지방에 사회적 갈등 중재기구도 필요지난 해 12월16일 2년여만의 오랜 논의 끝에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토-환경계획 연동제' 추진을 위한 정부 입법절차가 마무리 됐다. 물론 국회의 심의단계가 남아있지만,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적 국토관리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그동안 국가에서 추진했던 영월 동강댐, 새만금 간척, 시화호 담수화, 경부고속철도, 밀양 송전탑, 4대강 살리기 등과 같은 많은 국책사업들이 단순히 개발과 환경보전간의 갈등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세대·계층 간의 갈등, 이념과 가치관의 갈등, 정치·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과 대립으로 확대됐다. 비단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지역사회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개발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지역구성원간의 다양한 갈등과 막대한 예산낭비를 발생시킨 사례를 적지않게 접하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토-환경계획 연동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룬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 하겠다.국책사업이 더 이상 사회적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확보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단순히 법적인 근거에 의한 형식적인 절차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정부는 국책사업의 정책 및 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국민들에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와 정보를 제공·공유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국책사업과 관련된 정책과 계획을 수립하는 주체는 정부며, 국민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해 추진하는데 협력자이자 조언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라 판단된다. 만약 일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잘못된 방향으로 사업을 변경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정책의 일관성과 방향성을 잃는다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아울러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국책사업일수록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해관계자들의 폭넓은 참여와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진행해야 한다. 특히 단기간에 공약사업을 달성하고 성과를 내겠다는 인식을 가지고 무리하게 추진하던 국책사업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엄청난 행정적·경제적 손실을 야기했던 과오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한편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강화하는데 있어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우선과제가 있다. 현재 국토기본법에 근거한 국토계획은 그 결과물이 공간화, 즉 지도로 나타나지만 아직까지 환경정책기본법에 근거한 환경계획의 공간화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국토계획의 주요 근간이 되는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공간적으로 고려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군·구 단위에서 토지의 환경·생태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활용가능한 환경지도를 의무적으로 제작·보급해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합의형성을 이뤄낼 수 있는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기구를 중앙정부 및 지자체에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국토-환경계획의 연계를 위한 개발과 환경보전에 대한 균형있는 융합적 사고와 지식·소양 등을 갖춘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5-01-15 박경훈

기쁘고 좋은 일

일상의 평안 비는 새해 소망 팍팍한 현실 반증영화 '국제시장' 아픈 과거사 감정이입 위로받아시인처럼 따뜻한 생명공동체 연대서 기쁨 찾아야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다짐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덕담도 나눈다. 올해는 좀 더 살기 편안해지기를…. 가족들 건강하고 경제사정이 보다 좋아지기를…. 가만히 헤아려보면 우리의 소망은 현실적이다. 일상의 평안이면 족하다.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전세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감내하며 경제적 불평등과 위화감 속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정부는 소득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삶의 구체적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진학걱정·취업걱정·결혼걱정·양육걱정·연금걱정…, 우리는 어느새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사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간다.기쁘고 좋은 일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우리를 위로하는가.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경우 복고가 그 해답이 되기도 한다. 서럽고 가슴 아픈 과거라도 거기에는 최소한의 공감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 관객 수가 곧 1천만명을 넘어설 듯하다. 흥남 출신의 꼬마소년이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해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골간을 이루는 가운데 필름은 격동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듬성듬성 보여준다. 흥남철수·파독광부·월남전참전·이산가족 찾기 등 당대의 주요한 사건을 재현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영화는 주인공 윤덕수의 개인사나 가족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사를 동시에 보여준다.세대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반응 차이가 있지만 조국 근대화 세대의 노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점은 많은 관객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그것은 찬란한 과거의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기억과 역사의 켜 속에 잠들어 있던 서러운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 오늘 우리의 작은 즐거움과 기쁨이 이전 세대에게 빚지고 있다는 심리적 채무감을 확인시켜 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이전에는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억척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조국 근대화에 몸바쳐 살아왔던 이들에 대한 헌사로 읽힌다.삶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찾는 일은 단순한 쾌락추구가 아니다. 또한 일상의 평안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선(善)도 아니다. 우리가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쁘고 즐거운 일은 허공의 구름처럼 덧없게 된다. 활기찬 건강과 아름다운 외모, 신분의 안정과 물질적 풍요가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인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구생명공동체 전체로 눈을 돌려 모두 함께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다.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1993)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은/낳아서 백일쯤 되는 어린 애기가/저의 할머니 보고 빙그레 웃다가/반가워라 옹알옹알/아직 말도 안되는 소리로/뭐라고 열심히 옹알대고 있는 것.//그리고는/울타릿가 감나무에/산까치가 날아와서/뭐라고 거들어서/짹짹거리고 있는 것.//그리고는/하늘의 바람이 오고 가시며/창가의 나뭇잎을 건드려/알은 체하게 하고 있는 것."시인은 생명체들이 따뜻하게 연대하는 모습에서 삶의 기쁨과 공동선을 발견한다. 이런게 지혜가 아닐까? 새해 들어 새롭게 기쁘고 즐거우려면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면 된다. 추운 겨울에도 햇빛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는가.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밥은 우리 생태계의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나를 위해 베풀어주는 것이던가.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크게 떠서 더 멀리 바라보자./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1-08 윤재웅

사법 민주주의에 대한 경계

헌재, 권력 본래목적 뭔지 스스로 염두에 둘 필요사법부가 지나친 정치개입은 정치권 잘못도 커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떠넘겼기 때문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눈에 띄게 중요해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행정부의 힘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헌재가 민주화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결정에 반하는 판결을 종종 내놓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정치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2004년 5월 노무현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기각 결정과 동년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이 있다. 보다 최근으로는 2014년 10월 선거구제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12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이 있었다.이러한 헌재의 영향력과 독립성 증대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칙중 하나인 3권 분립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며, 나가 입헌주의 원칙 아래에서 헌법의 절대성을 수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의 지나친 영향력과 그에 따른 소위 '사법민주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법을 대표하는 입헌주의와 정치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와의 잠재적 갈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선출되지 않고 정치적 책임도 직접 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부여함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해 미국·독일 등 일부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사법부에게 행정부와 입법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위헌심사권을 부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다수결 원칙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다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다수결 원칙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칫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헌법에 명시돼 있는 소수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헌법을 다수결 원칙의 상위에 두는 것이다.모든 권력은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헌재의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헌법은 추상적이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사법부의 권력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남용의 정도와 부작용이 더욱 심할 수 있다. 위헌심사제도가 처음 시작된 미국도 사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행정부와 크게 충돌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뉴딜 입법이 계속 대법원의 위헌판결을 받자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법원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통해 대법원의 정치개입 자제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 이후 미국 대법원은 소위 '자제주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판결을 자제하고, 주로 소수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사건에 전념하는 전통을 가지게 됐다.여기서 한국 헌재가 그 동안 내린 주요 판결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판결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며, 이처럼 평가가 엇갈린다는 사실이 그 판결의 정치적 성격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만 헌재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사용할 때 그 권력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견을 내세우거나 혹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국민 다수의 여론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헌법에 보장된 소수의 기본권 보호를 우선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사법부가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데에는 정치권의 잘못도 크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에 떠넘기거나, 선거구 획정 불합치 사례와 같이 심각한 문제를 방치해 둠으로써 사법부의 개입을 초래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권이 앞으로도 사법부에게 정치적 판단을 맡길 생각이라면, 독일의 경우처럼 헌재의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현행 대통령 중심의 판사임명 방식을 바꿔 입법부와 정당의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지나친 정치 개입을 줄이거나, 아니면 정치적 책임성을 증가시키거나, 이 두 가지 방안중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법부가 정치를 좌우하는 사법민주주의의 폐해가 앞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2015-01-01 김 욱

행복한 왕자가 불행하게 울고 있다

타인의 성공·불행이 나에겐 정반대로 가고 있어우리사회 사라져 가고 있는 이타주의 안타까워남을 위해 희생한 왕자와 제비가 몹시 그립다지난 주 종강을 했다. 여름방학과 달리 겨울방학 캠퍼스는 눈 내린 산사(山寺)처럼 적요하다. 나는 이제 몇 달동안 내 나름의 동안거에 들어간다. 먼 훗날 서울거리 어디에서 문득 만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졸업을 앞둔 제자들과의 마지막 강의는 헤어짐으로 인해 묘한 느낌을 준다. 해마다 종강 날에는 나는 짧은 동화 '행복한 왕자'로 작별의 인사에 가름한다.어느 늦가을 저녁, 따뜻한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한다. 순간, 행복한 왕자가 흘리는 눈물에 놀라게 된다. 살아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내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왕자를 장식한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제비는 남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멋진 동상이 보석이 사라진 흉측한 무쇠덩이로 변해 있자, 창피하다며 부숴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다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줄거리다.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쓴 동화다.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 닥친 당시 영국사회의 이기주의·물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타인에 대한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 있다. 당대를 주름잡던 유미주의자이지만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와일드는 아일랜드출신의 다른 저명 작가인 예이츠나 버나드 쇼 등과 마찬가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이래 빼어난 작품으로 일약 유럽의 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30대 중반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생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요즈음 말로 성 소수자, 즉 동성애다. 당시 지배세력에 의해 외설로 단죄되어 2년 형에 처해지는 등 불행한 삶을 이어가다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다.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속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나머지 극도로 버림받은 삶이었다. 하지만 사후 90여년 뒤인 1998년 영국 정부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그의 동상을 건립함으로써 비로소 명성을 인정받았다.나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에 갈 때면 반드시 와일드 동상을 찾는다. 이 불행했던 천재의 행복론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사라져 가는 이타주의(altruism)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 개념을 창안한 석학 자크 아탈리는 초연결망 사회에서는 이타주의가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혼자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곧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재앙이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나는 '행복한 왕자'를 종강의 변으로 수강생들에게 들려줄 때마다 한세기 전 와일드가 우리에게 던져 준 타인을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가엾은 제비는 점점 추워졌지만, 왕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빵집 문앞에 떨어진 부스러기빵을 쪼아 먹고 양날개를 파닥이며 몸을 녹이려고 했다. 하지만 제비는 자기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남은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왕자의 어깨 위로 날아 올랐다. 제비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왕자와 제비가 몹시도 그리운 한해의 끝이다. 아듀 2014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2014-12-25 김동률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