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자살하는 나라

최근 고(故) 조성민씨의 자살로 전국이 쇼크에 빠졌다. 그의 전 아내였던 고 최진실씨와 그녀의 남동생의 죽음에 이어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남겨놓은 채였다.지난 몇 년에 걸쳐 한국의 많은 부자와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도 10대와 20대는 사망이유에 자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나 병이 아니라 불행과 우울증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나는 개인적으로 이 테마를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 결과, 이는 가치에 대한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현실에서의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들을 놓아버림으로써 한 개인의 마음과 어쩌면 온 나라에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질 수 없는 커다란 공허감을 안아 버린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돈이나 명예로도 채울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란 TV 시리즈 중 한 인물이 주인공에게 행복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왜 그와 결혼했나요?" "왜냐면 그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결혼 후 그는 당신에게 원하던 모든 것을 주었나요?" "네, 그는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왜 당신은 여전히 불행한거죠?" "왜냐면 제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틀린 것들이란 걸 깨달았거든요."이 짧은 장면은 '왜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불행하고 가련하게 생을 마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진정 원하는 것을 갖게 된 후, 결국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원하는 것을 못 갖는 것보다 더욱 최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상상해 보라. 당신이 원해오던 것을 모두 갖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행복해 지지 않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또, 나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는 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갈수록 피상적으로,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것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적, 외모 등에서 아이들은 실패로 자신을 평가한다.여자들은 성형의 칼날과 끊임없는 다이어트에 고통받지만 남보다 예뻐지기만 한다면 더욱 사랑받을 거라고 믿는다. 삶의 성공을 지불 능력이나 직장과 직위의 순위로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우울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했던 적이 있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란 질문조차 중요하지 않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우울증은 암세포처럼 누구에게나 또 아무런 예고 없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중요하다. 무엇이 이러한 우리 인생의 암흑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내 경험상,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데엔 돈이나 명예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다음 사야 할 더 큰 차, 다음 살 더 큰 아파트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할 내 직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그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지 않는가? 이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쫓고 그걸 얻었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들은 부모의 목표에 떠밀려 살아왔고, 부의 축적을 가치로 여기는 사회 속에 적응하느라 현실의 작은 가치만을 발견하며 살아왔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영혼과 마음이 빈곤한 가치와 잘못된 사회적 가치로 채워질까 봐 두렵다.한국은 아시아의 역동적인 파워하우스가 되었다. 이는 대단한 개가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국민은 자신의 삶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성공이 성공인지,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만약 내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지 그 예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난 이미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대답을 하나 준비해 두었다. "아이가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답할 작정이다. "행복한 사람이요!"

2013-01-25 안톤 숄츠

정조대왕의 왕 노릇

조선왕조의 22대 왕 정조대왕은 조선의 스물일곱명의 임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왕이다. 전기의 세종대왕, 후기의 정조대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그는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다른 임금들도 시문이나 글씨 등 족적을 남겼지만 이렇게 방대한 단독문집을 남긴 이는 정조대왕 뿐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듯이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었다.둘 다 인재양성과 문화정치를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세종대왕이 형님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일이 순탄치 못했음에 견주어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정조대왕은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구명을 위하여 대신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비명에 갔다. 이 사건은 정조대왕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생애는 이 사건의 극복과정이 아니었나 싶다.우선 그는 군사(君師)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에 들어갔다. 조선왕조는 왕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세자 때는 당연히 서연을, 왕이 되어서도 정사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조강(아침) 주강(낮) 석강(저녁) 세 번이나 경연을 하였으니 왕들의 하루는 참으로 고된 것이었다고 하겠다.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면 숙종 영조 등 임금이면서 스승을 자처하는 군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7세기 세도(世道)를 담당하였던 산림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림은 17세기 붕당정치의 영수로서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통섭하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 18세기 탕평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 학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산림의 역할까지 한 군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정조는 할아버지들을 계승하여 군사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런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여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겪었기에 그의 분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기 위하여 밤새도록 공부에 열중하고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1776년 25세의 청년왕이 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절한 큰아버지 진종(추존)을 계승하는 위차(位次: 왕위계승의 차례)로서 세손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계승에서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사라졌고 그에게 사도세자는 사친(私親)에 불과했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할아버지 영조의 처분은 공정한 천리(天理)의 문제이고 자신이 애통해 하는 것은 인정의 문제라고 규정하였다. 할아버지의 입장을 의리로, 자신의 입장을 인정으로 정리함으로써 상치되는 부분을 보완하였다.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화정치의 산실로 삼았다. 기존의 굳어진 관료체제로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그곳에서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문화정책을 추진하였다.경연을 주도하여 밤늦도록 신하들과 토론하고 새로운 시대사상으로 부상하던 북학사상도 수용하여 조선왕조의 개혁과 변화를 유도하였다.그렇게 정사에 몰두한지 20년이 경과한 1796년 45세의 장년의 정조대왕은 측근의 신하 김조순에게 "나는 왕 노릇 하기를 즐기지 않았다.…나는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하루가 지나면 마음속에 스스로 말하기를 '오늘 하루가 지났구나!'하고 이틀이 지나면 역시 그렇게 여기며 하루 이틀 살얼음 밟듯이 20여년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다.최고통치자의 자리는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자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언사다. 학자군주 정조대왕이 숙종 영조에 이어 군사가 되어 탕평정치를 계승 성공시킨 비결이 이 한마디 말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싶다.

2013-01-18 정옥자

아, 대통령!

우리는 멋지고 근사한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까.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이런 생각이 간절하게 다가오곤 했다.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들은 거의가 우리 가련한 백성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다가 끝내 모멸감을 안겨준 채 떠나가곤 했다. 왜 우리한테는 그런 대통령들만 있었을까? 우리한테 복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이었을까.생각건대 우리는 복도 없었고, 선택도 잘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은 그렇다치고 선택이 잘못된 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그 첫째가 선택의 어리석음이다. 민심과 여론은 현명하지 못하고 큰 과오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독일 국민이 나치의 선동에 현혹되어 열화같이 히틀러의 등장을 환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군국 일본은 일본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대재앙을 불러왔다.둘째는 선택의 비루함이다. 권력의 횡포와 그로 인한 공포 분위기에 주눅이 들면 백성들은 비루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그 속성을 알고 있는 권력은 백성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분열시키고, 부패시키고, 결국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비루한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이 군부 독재였고, 계속해서 이어진 어리석은 선택으로 군부 세력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셋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체육관에서 의식이라고는 없는 로봇 인간들을 앉혀놓고 대통령을 뽑았으니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이승만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 중에 두 번씩이나 막강한 상대 후보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단독 출마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결국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백성들이 어떻게 선택했든 간에 그 결과는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현대사의 불행한 한 페이지로 장식되었다. 그렇다 해도 권력을 움켜쥔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력욕에 눈이 멀대로 먼 탐욕의 화신에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의 빈곤, 옳고 그름도 판단할 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어떻게 정치를 잘할 수 있었겠는가.멋지고 훌륭한 대통령은 어떻게 대미를 장식했는지를 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엉터리 대통령은 마지막 장면이 지저분하고 혐오스럽지만 멋진 대통령은 죽음 자체가 예술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다.2차 대전 중에 항독전선을 이끌었던 그는 전후에 대통령이 되어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은 위업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쏟아진 영광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유언하기를 자신의 주검을 국가장으로 치르지 말고 가족장으로 치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국립묘지에도 묻지 말고 고향 콜롱배에 있는 딸 옆에 뉘여달라고 당부했다.그의 당부대로 그의 유해는 어릴 때 장애아로 죽은 딸 옆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그의 유언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정부가 주는 대통령 연금도 받지 말고 그 돈을 불우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현재의 드골 기념관은 그의 사후 형편이 어려워진 부인 이본느 여사가 팔려고 내놓았던 집을 어느 사업가가 인수해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만든 것이다.중국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오늘의 중국 경제를 있게 한 장본인인 등소평 역시 유언에 따라 화장한 다음 그 유해는 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에 의해 바다에 뿌려졌다. 주은래 총리 역시 "내 유골은 조국의 강산에 뿌려다오"라고 유언했고 그 말에 따라 그 유골은 톈진과 황허등 산곡등에 살포됐다. 모든 영광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그 마지막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2013년, 이제 곧 새 대통령이 등장한다. 정부가 수립된지 65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우리도 멋지고 근사한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감히 한 번 기대해본다.

2013-01-11 김성종

대통령과 채마밭 늙은이

치열한 선거전 끝에 국민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최근 한국의 모든 관심은 당선자의 인사에 모아져 있다. 당선하는 것도 지난한 일이지만 그 다음 적정한 인물을 발탁하여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더욱 지난한 일이다.인수위원회나 일부 인선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에 대해 사퇴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정부의 실수나 잘못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당선자는 전문가를 등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인사가 그렇게 진행될 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여기서 공자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공자의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일과 채소 기르는 일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답했다. "나는 농사일에는 늙은 농부만 못하고 채소 기르는 일에는 채마밭 늙은 농부만 못하다." 공자는 제례에 대해서도 일일이 다 물어서 법도를 찾아 처리했다.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일이나 채마밭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공자는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고 했다. 공자가 농사일에 간섭하거나 이를 아는 체하고 처리했다면 공자가 아니다. 농사일은 농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요새 말로 하자면 전문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수많은 전문가의 활동이 밑받침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 사회 곳곳에 훌륭한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었고 이 분들이 각 분야를 선도해 오늘의 눈부신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없어서 또는 전문가가 부족해서 눈에 보이는 국가적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며 기술대국이다. 이제는 전문가를 등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등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탕평의 정치이다. 극단의 편가르기를 극복하고 대통합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화합과 탕평의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선조를 망친 것은 사색당쟁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1724년 복잡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등극한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대립을 치유하기 위해 탕평책을 시행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변을 치르게 된다.이는 당쟁을 주도하는 정치세력들의 대립과 갈등으로 야기된 조선조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정치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대파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화합이나 탕평의 정치란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하기 힘든 과제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국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과제가 탕평의 정치이며 중도정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극단의 편가르기에 앞장선 등용이 아니라 정말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중용하는 탕평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물론 이러한 주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실현하기는 힘든 일이다. 초야에 묻혀 있는 제갈공명을 등용하기 위해 유비현덕이 세 번이나 그 초옥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음미하고 되새겨 볼만한 고사이다. 유비현덕이 천하를 얻은 것은 유능한 인재의 등용에 있었다.권력의 이동을 뒤쫓는 철새들의 무리가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젊은 인재들이 도처에서 국가의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 발전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인재의 발굴과 등용이 새 정부의 가장 화급한 과제이다.농사일은 늙은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지나간 옛말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그리고 방금 들어설 정부의 새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금언이다. 5년 후 탕평의 정치에 실패한 불행한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국가발전에 기여한 명예로운 지도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탕평의 인사정책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반면교사로서 지난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2013-01-04 최동호

자살, 그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절망적인 비명이 자주 들린다. 그제는 누가 자살하였고, 어제는 또 누가 자살하고, 오늘도 역시 누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이 슬퍼지고 있다.어찌하여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빈번해지면서 마음을 이렇게 무겁게 해주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가 망해서 비탄에 빠진 애국지사들이 자결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의 침략을 받아 망해가는 나라가 서러워서 애국심으로 죽어가는 지사들도 아닌 마당에, 삶이 팍팍하고, 앞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압제와 탄압에 시달리고, 최악의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래도 정권이라도 바뀌면 일루의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겠느냐면서, 참고 참아 왔지만, 정권 교체가 실패로 돌아가고 현 정권이 연장된다는 절망감에서 끝내 목숨을 끊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죽음, 우선 그분들의 자결에 삼가 명복을 빌고 빈다.마찬가지로 시민운동 지도자의 죽음에도 삼가 애도의 뜻을 밝히며 그분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쓰리며 속이 탔으면, 하나밖에 없는 그 귀한 생명을 끊어서까지 자신의 한을 풀고자 했다는 것인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쓰리다.MB정권의 노동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실의에 빠졌던 그 많은 노동자,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정리해고라는 명분으로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직장을 잃고 생계 걱정으로 신음하고 고생을 했는데, 정권의 연장으로 희망을 엿볼 기력마저 없어졌으니 그들이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일도 결코 좌시할 일만은 아니다.하나뿐인 생명, 하늘이 주신 목숨인데 어떻게 감히 자살이라는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단 말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에 아무리 동정을 한다 해도, 죽음을 무릅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지, 죽는다고 해서 어떤 생산적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시작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면 영원한 끝이 아닌가.잘못된 노동정책에 대한 원한, 대기업에 대한 증오, 노동운동에 대한 작위적인 방해와 노동조합에 대한 의도적인 분열 등,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해도, 죽음을 택한 것만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고 국민 대화합을 이룩하겠노라던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 살아있고,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말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간이니, 조금은 참으면서 희망과 꿈에 기대를 걸어라도 봐야지 그냥 포기해 버리고 극단적인 행위로 삶을 마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그렇다고 죽어간 그들에게 무엇을 탓하며, 그들의 비통한 죽음에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는가.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책무를 맡은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이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더 이상의 죽음은 막아야 한다.분쟁이 종식되지 않았거나, 노동자와 대치하고 있는 대기업의 현장을 파악하여, 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이 죽음을 택하지 않고 희망과 꿈을 품을 수 있는 노동정책의 변화를 예고해 주어야만 한다. 해고노동자들의 원대복귀나 비정규직의 근본적 대책 등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날 조치를 해줘야 한다.불이 나면 우선 불을 끄는 일이 소방관들의 임무가 아닌가. 국가의 통치를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대통령 당선자라면, 취할 수 있는 온갖 조치를 동원하여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 5년 동안 해야 할 통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훌륭한 계획을 세우는 일의 전초전이 바로 이 문제에 있다.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충동에서 벗어날 특단의 조치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바로 미래 5년을 내다보는 시금석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뀌지 않은데 대한 실망을 꼭 변화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돌려주는 일이 바로 당선자가 해야 할 초미의 급선무다.정권이란 유한한 것이지만 인간의 생명이 우주의 영원한 중심적인 가치임을 증명해주기 위하여 유한한 정권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사람이 통치자다. 통치자라면 우선 노동자들이 더는 죽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2-12-28 박석무

죽음과 죽는다는 것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테마인 죽음과 내가 겪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겪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장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됐다.그동안 장례식에 가본 적이 꽤 있어서 동서양의 장례문화가 당연히 다르다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2주만에 독일에 계신 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 예전에 죽음과 장례 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사찰에서의 수도생활(한국생활 초반)이나 10여 년전에 있었던 향교에서의 전통 혼례 경험 등 외국인으로서는 운좋게도 한국 고유한 의례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그런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장례식이란 그저 조문객으로서 부의금을 담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쉽지 않은 인사말을 하고 오는 일이었다. 아내의 아버지의 죽음은 한국의 삶을 제대로 보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장인어른이 계획에 없었던 심혈관 수술을 받은 뒤 모든 가족의 생활은 바뀌었다.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리 모두는 황급히 병원으로 불려갔다.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작은 캠프와도 같았다. 그저 환자의 호전만을 기다리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웠다.독일에서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고 면회시간 외에는 중환자실 근처에는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를 중환자실에 두고 있다면 병실이 어디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당연했다. 어느 저녁 우리 모두는 중환자실에 불려 들어갔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서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이 사라져 가는지를 보게 됐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로는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죽은 육신은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옮겨졌고 30분 후에는 우리 모두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아 관과 조화, 조문객을 위한 음식 등 장례절차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아들은 주변에서 '강남 스타일'을 부르며 펄쩍펄쩍 뛰놀다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냐고 물어왔다. 당혹스럽고 황망스런 순간들.다음날 아침 우리 모두는 장례식장 안에 있었다. 곧 가족 친지와 조문객들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조문객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멀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도 찾아왔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아내의 외숙부께서도 먼 길을 마다않고 바로 오셨다. 이제껏 한국의 모든 장례 의식이 다소 경직되고 형식적이진 않나란 생각이었다.우리의 경우도 계산적으로 대하는 장례식장의 일부 업소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란 생각을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정성스런 문상으로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결혼 이후 8년만에 다시 보는 친지들이 정말 반가웠다. 먼 곳에서 이른 새벽 시간에까지 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보며 내 스스로가 가족과 한국 사회의 일원임이 느껴지고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중환자실 앞에서 면회시간을 기다리며 보낸 병원 '캠핑'은 내 한국가족과 함께 떨어지지 않고 보낸 시간 중에 가장 길었으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침내 장인어른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자 장모님께서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님을 안고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 괜찮아질거라 말씀드렸다. 그 순간은 서로 다른 문화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확고히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어느 한 사람의 인생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내는 내 아버지의 장례식 부고문과 초대장을 쓰는 내 어머니 옆에서 마치 딸처럼 돕고 있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겠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 캄캄한 순간,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2012-12-21 안톤 숄츠

대선후보 TV토론 자격 기준 논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에게 어지간히 혼난 모양이다. 지난 4일 1차 TV토론회가 끝나자 새누리당은 국민적 지지도가 1%에 불과한 후보가 40% 이상의 지지도를 받는 메이저 후보들이 겨루는 법정 토론회에 출연하여 판을 어지럽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그리고선 대선후보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 등으로 제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른바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하였다.지난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 세 명의 메이저 후보 외에 3명의 군소후보가 법정토론회에 진출하여 모두 6명의 후보자가 토론회를 벌였음에도 당시 한나라당은 아무 말이 없다가 3명이 겨룬 이번 토론회를 두고서는 새누리당은 불만이 매우 많다.지난 5년 동안 새누리당은 마이너 후보들의 법정 토론회 진출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후보자간 TV합동토론은 그동안 후보들 간의 충분한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선거법은 토론 참가자, 진행과정 등에 있어서 공정성과 기계적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토론의 역동성과 흥미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사실 TV토론의 모든 문제는 토론회 참여 후보의 자격 기준에서 비롯된다. 자격기준을 낮추면 군소후보와 정치신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TV토론 자체가 난삽해지고, 경쟁력을 갖춘 메이저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다.반대로 자격기준을 높이면 다수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고 각종 법과 제도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 군소후보들이 희생될 뿐만 아니라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정신에 위배되고 만다. 이 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가치판단의 문제이다.TV토론에 참여하는 후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토론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방송토론회는 후보자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임과 동시에 올바른 후보 선택을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은 후보자의 당선가능성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문제는 경쟁력 기준을 어느 선으로 정하느냐이다. 현행법은 ①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 후보자 ②직전의 각종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의 후보자 ③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로 규정하고 있어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 새누리당은 미국과 같이 지지율 15%를 주장하는데 이 기준은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에 비추어 보면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따라서 필자는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서 적용했던 ① 원내 교섭단체 정당의 후보자 ②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10% 이상의 후보자 기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TV토론 진출후보는 잘해야 세 명에 불과하게 되어 지금보다 심도 있고, 효과적인 토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비해 국민적 관심도가 낮은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 지지율 기준을 5%로 낮출 필요가 있겠다.또한 질문의 무게와 복잡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1분 또는 1분30초 내에 답변하도록 하는 기계적인 형평성이 토론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다. 따라서 각 후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총 시간 중에서 한 문제에 대한 답변 시간을 최대 5분을 넘지 않는 선에서 후보 자신이 시간을 신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총량시간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후보자간의 심층적이고 활발한 토론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지금의 TV토론은 하루 빨리 보다 역동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2012-12-14 권혁남

엇갈린 박자

필자는 바흐의 음악을 아주 사랑한다. 그 많은 곡 중에서도 '푸가'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특히 사랑한다. 푸가란 서양음악의 음악구조 중 하나로 두 개 이상의 성부로 구성됐다. 첫 주제(subject)는 다른 성부에서 다른 음조로 모방되면서 전개된다.3성부 푸가에서는 주제가 세번 모방되고, 4성부 푸가에서는 네번 모방된다. 곡은 대위법에 따라 발전되며 주제는 다양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사라진다. 주제의 반만 돌아올 수도 있고, 주제의 조각들만 계속해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아예 주제가 도치(inversion)되어 다른 요소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푸가를 처음부터 유심히 들어보면 이 주제들이 반복되면서 일종의 사이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형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엇갈린 박자들을 만들어낸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상 깊게 남는 기억들은 삶에서의 엇갈린 박자들이 만들어준 선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행 중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골목을 돌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해변에서 파도를 피하려 뒷걸음질치다 누구와 부딪쳐 첫 눈에 반했을 때. 새벽에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교회에서 감명 깊은 종소리가 침묵을 깨며 울려 퍼질 때. 우는 아기를 안았는데 조용해졌을 때.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리게 해주며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침묵과 어둠의 기억마저 잊어버린 우리는 이 순간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기대와 욕망. 어쩌면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욕망을 품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기대를 품게 되고, 높은 기대는 인간이 계획을 세우게 만들며, 계획은 인간을 희열 또는 절망의 양쪽 길 중 하나로 인도한다.여기서 희열을 얻게 됐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만약 절망에 빠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좌절이나 분노 속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 엉뚱한 춤은 멈출 줄 모른다. 끊긴 줄 모르는 소리와 빛들 안의 기대와 욕망.바흐의 푸가들은 으뜸화음에서 시작해 으뜸화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의 리듬과 화음들이 선을 긋고 색깔을 칠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주제들이 매번 다르게 발전해야 된다는 규칙 아래 리듬과 화음들은 다양한 색채로 변하면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이것이 똑같은 푸가를 매일 들어도 항상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어떤 날은 평소에 잘 안 들리던 리듬이 부각돼 들리고, 어떤 날은 화음이 들리기 시작하며, 어떤 날은 기억했던 리듬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냈지만 혼돈은 여전히 그 질서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혼돈이 신만이 즐길 수 있는 자유라면 바흐의 음악이야말로 신에게 바쳐진 음악이다.푸가는 듣는 이의 감각이 깨어있을수록 더 흥미로워진다. 더 많은 것들이 들리면서 질서 속에 숨은 혼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질서 안의 혼돈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삶의 엇갈린 리듬들은 바로 이 혼돈들이다. 이를 즐길 수 있게 됐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개인적으로 현재 생존하는 작곡가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피에르 불레즈에게 필자는 이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선생님은 작곡하실 때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합니까?"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나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며 또 질서 안에서 혼돈을 찾으려 하지. 그리고 그런 음악들을 좋아한다네."바흐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이여 깨어나라. 너희들도 신이 될 수 있다."

2012-12-07 박종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

'불신 시대', '불신 사회', 참으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오늘의 사회다. 그런 가운데서도 더더욱 불신의 수렁에 빠진 분야는 바로 '정치 불신'이다.지위가 높고 책임이 무거운 지도자일수록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하는 짓마다 국민을 속여 먹는 작전에 능숙해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정치 혐오증에 걸려 무조건 정치인은 싫고, 정치는 타기의 대상에 오른 지 오래되었다.정치 없이는 나라도 안 되고 세상도 돌아가지 않음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처럼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가 어디서 왔단 말인가.지겹도록 거짓말만 하던 자유당 독재의 12년, 억지로 헌법을 고쳐 정권 연장을 지속했던 위대한 거짓, 그것도 부족해 역사에 없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국민의 분노로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는 무너졌었다.정치 불신이 이제나 가실까 여길 때, 5·16쿠데타로 정치 불신과 사회 불신은 가속화의 길을 걷고 말았다. 군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뒤집고 정권을 잡은 쿠데타 주역의 식언(食言)이 계속되면서 정치는 바로 나락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국민을 속이는 정권 연장이 계속되고, 신조어인 '번의(飜意)'라는 추악한 용어가 신문을 도배하면서 정치에 믿음을 갖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3선 개헌의 그 엄청난 정치 속임수에 영구집권의 '유신'까지 선포되었는데 국민의 누가 정치에 신뢰를 할 수 있었겠는가.이런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집권과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아낄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이 통하면서 정치 불신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2012년 중반부터 오늘까지 몇 개월,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런 정치 풍토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며, 메시아를 갈망하던 민중의 염원이 모인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진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짓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여길 때, 정당도 싫고 구정치인도 싫고, 낡은 것이나 거짓은 더욱 싫다는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준 사람이 바로 안철수라는 우람한 정치 신인이었다.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신인이 꼭 정치를 잘하리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믿음이 가고 거짓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서의 여론조사 수위를 달릴 수 있었다.이제 그는 후보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정권교체와 야권 단일화라는 시대적 대의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그 많은 지지자의 붙잡음과 애통 속에서도 미련 없이 사퇴를 결행하고 말았다. 대단한 일이다. 정치는 그래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이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장엄하게 뜻을 접었다.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많았다면, 어떻게 이 나라와 사회가 이렇게 무서운 정치 불신에 빠져 있겠는가. 공자(孔子)는 오래전에 말했다. 먹을 것이 많은 것보다, 강한 군대보다도 더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국민이 정치를 믿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불신의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장래는 어둡다.여기에 한줄기 청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 안철수 현상,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통령의 꿈도 접어버린 결단, 그런 싹과 움에서 우리의 미래가 설계되어야 한다. 정치를 꿈꾸는 사람에게서 그런 믿음의 정치가 어떤 것보다 상위 개념의 '가치'라는 생각, 그 점 하나로도 안철수 전 후보는 위대한 정치라는 선물을 우리 국민에게 선사하였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이른바 6·3세대라는 우리, 식언·번의라는 기만적인 정치에 얼마나 치를 떨었던 세대였는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본연의 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속임수에 걸려들면서 우리는 정말 얼마나 속고 또 당했던가.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에 또 속아, 그 뒤로도 5공·6공의 군인들에게 우리는 또 얼마나 당했던가.1987년 양김(兩金)의 단일화 실패에 우리는 또 얼마나 불행했던가.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서운함을 접고 다시 뛰어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주는 일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시대적 큰 가치의 하나다.

2012-11-30 박석무

언론의 용비어천가 유감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언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치켜세우기와 노골적 지지, 반대로 상대 후보에 대한 깎아내리기와 흠집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흔히 권력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개에 비유하곤 한다. 여기에는 모두 4마리 개의 유형이 있다. 먼저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 권력 감시를 넘어 사사건건 권력을 물어뜯어 권력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공격견(attack dog), 이들 개와는 반대로 권력의 총애를 받기 위해 꼬리치는 애완견(lap dog), 권력에 꼬리치지는 않으나 그저 순종하고 잘 따르는 안내견(guide dog) 등이 있다.공격견은 자칫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며, 안내견과 애완견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권력을 건전하게 비판, 감시하는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대체로 지난 1960년대까지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파수견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1970년대 유신정권을 거쳐 5공 정권시대에는 애완견 역할로 전락하였으며, 6공화국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에는 안내견 역할이 강했던 게 우리 언론이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보수신문들은 파수견을 넘어 공격견으로 돌변해 정부를 끊임없이 물어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격견부터 애완견까지 네 가지 유형의 모든 개들이 혼재하여 존재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우리 신문과 방송들은 새로운 대통령인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힘차게 합창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불굴의 용기와 끈기로 이겨낸 일로 시작하여,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투옥됐을 정도로 투철한 민주의식과 애국심을 갖고 있으며,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장황하게 보도하였다. 또한 BBK사건,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그리고 자녀위장취업 등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과거 10년 동안 침체되었던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려놓을 적임자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였다. 심지어 보수신문의 한 언론인은 칼럼을 통해 "요즘 이 나라에는 어떤 희망과 설렘이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는 무언가 안심할 수 있고, 잘 될 것 같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나누고… 마치 함박눈이 내린 아침 같다.…나라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대감이 온 땅에 퍼져있다"고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의 등극을 온몸으로 축하한 이 언론인은 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과연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09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자 보수언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창피주기와 물어뜯기가 계속되었는데, 2009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 정당 대변인의 논평이 아닌 자칭 이 나라 최고 정론지의 대표 언론인의 글 치고는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공격적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한 달 후에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만다. 일찍이 나폴레옹 황제는 "천개의 총검보다 단 4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에도 꼭 맞는 말이다.언론과 권력이 유착되어서도 안 되지만 사사건건 서로 물어뜯어서도 안 된다. 권력과 언론은 항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다. 이제라도 우리 언론은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 객관성으로 돌아가 정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는 올바른 저널리즘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한 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언론은 새로운 당선자에게 과연 어떤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동원하여 또 다른 용비어천가를 목 놓아 불러제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2012-11-15 권혁남

선(line)과 원(circle)

'매크로코즘(Macrocosm)'과 '마이크로코즘(Microcosm)'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원으로 '큰' 또는 '대규모의'를 뜻하는 'macros', '아주 작은' 또는 '극소의'를 뜻하는 'micros'와 '질서' 또는 '세계'를 뜻하는 'kosmos'의 합성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에 근원을 둔 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단계, 즉 가장 큰 단위인 우주부터 원자보다 작은 단위의 것들까지에는 동일한 양식이 반복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다르게 표현해 공간과 시간안에 존재하는 것들에서 공통된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큰 것에서 작은 것들을 터득할 수 있으며 또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사회의 규칙을 만드는 자, 집행하는 자,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세력 갈등을 거듭하며 누가 더 우월한 지위를 점령하는가를 기준으로 성공을 가늠해왔다. 하나 이는 사회적 성공에 불과할 뿐 개인적 성공을 가늠하는 표준이 되지는 못한다. 개인적 성공은 사회적 성공과 평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행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그 모양이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성공을 '선(line)'으로 본다면 개인적 성공은 '원(circle)'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져그렇다면 개인적 성공은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인 성공은 물질적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삶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깨우치고 행동으로 옮긴 후 시간이 경과되면 그 깨우침에 갈등이나 의문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그 깨우침은 몸에 배게 된다. 깨우침의 직전을 시발점으로, 그리고 시간을 추진제로 가정한 전제하에 이때 이 개인은 '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원'을 한번 완주했다고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깨우침이 몸에 배거나 아니거나 일단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시 얻는 깨우침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고는 보이나 실제로 각도를 달리 해보면 도달점은 시발점보다 더 깊은 곳에 있게 마련이다. 결국 '원'은 무한차원에서 존재 가능한 계속되는 '원'이 된다. 개인적 성공은 깨우침을 원동력으로 '원'을 깊이 탐구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며, 그것을 가늠하는 기준은 지속적인 깨우침을 통해 얻는 '자유'일 것이다.여기서의 '역설(paradox)'은 왜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기능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어째서 본능을 중요시하는 사회디자인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본능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조금 더 개개인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은 불가능했을까?예컨대 과학자와 음악가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과학자가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연구중인 이론을 논한다면 음악가는 이해하기 힘들어 할 것이고 반대로 음악가가 음악의 섬세한 뉘앙스를 설명하려 한다면 과학자도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의 내용은 이성적일지 모르나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주 원시적이며 본능적으로 변하게 된다. 마치 이솝의 '여우와 학' 이야기 꼴이 되는 셈이다. 양쪽이 맛있게 수프를 음미하려면 공통되는 그릇을 찾아야 한다. 이때 둘 다 전문지식을 과시하지 않고 서로의 '도(道)'에 대해서 논한다면, 비로소 둘 다 풍요로운 지혜의 나눔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도(道)'는 '통(通)'한다는 표현처럼 '매크로코즘(Macrocosm)'과 '마이크로코즘(Microcosm)' 역시 하나를 터득하면 만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원리를 주장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원'이며 '원'의 모양이 다차원적으로 일그러져 있을수록 이 원리를 터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도(道)'를 터득한 사람들은 항시 변하는 우주와 함께 자기 특유의 '원'을 자유자재로 통제 가능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통 '선'만 보일 뿐, '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원'은 지금 어떤 모양인가?

2012-11-08 박종화

필주(筆誅) 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지난달 10월 17일은 유신독재가 선포된 40주년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은 10·26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날이자 유신독재가 끝나던 3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40년과 33년이라는 짧지않은 세월, 안타까움과 처량한 탄식만 나올 뿐, 그 긴 세월에 우리의 삶이 보람된 생애였다는 아무런 징표도 없으니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후퇴만 되고 있는데….간추린 일기4·19를 고등학교때 겪었고, 대학에 들어와 6·3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날을 세웠으며, 그런 와중에 '신망잃은 박정희 정권 하야를 권고한다'라는 최초의 하야권고 시위로 확대되면서 첫 번째로 학생의 몸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오래지않아 풀려났으나, 65년에는 한일협정비준 반대로 싸우다가 마침내 월남파병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가 두 번째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몸이 풀려나오자 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기다리기에 강원도 전방에서 3년 세월을 국토 방위로 젊음을 보내고 말았다. 68년에야 제대하여 그해 가을에야 재입학으로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69년에는 3선개헌 반대의 시국에 또 기웃거리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려고 몸을 굽히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있을 때, 마침내 72년 영구독재가 완전무결하게 자리잡는 유신이 선포되고 말았다.정말로 암담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국회가 해산되고 모든 법과 헌법까지 확실하게 중단되어 한 사람의 말이 법이고 헌법인 절대 권력으로 장악되는 엄연한 역사의 현실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지켜보던 그때, 참으로 분개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된다는 것인가.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따위 통곡이 어떤 힘을 발휘했으랴.최초의 유신반대 투쟁계엄령으로 군이 온갖 권력을 장악한 그때, 맨주먹인 국민들이 무슨 용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나의 모교 전남대학교에서는 마침내 그해 12월초 유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함성'이라는 지하신문이 학교와 시내의 곳곳에 뿌려지는 쾌거가 일어났다. 죽음을 각오한 내 후배 대학생들이 일으킨 거사이자 의거였다.고등학교 교사이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서 잡혀가 경찰국 공작분실의 지하에서 숱한 고문과 강압에 의해 '함성'과 '고발'을 제작하여 국가반란을 예비 음모한 수괴로 둔갑되고 말았다. 내가 잘 알고 지내던 동지이자 후배들이 했던 일인데, 나를 지령한 수괴라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기소하고는 73년 연말까지 독방의 감옥에 처박아 버려 그해 내내 법정에서 싸워야 했다. 교수가 되려던 꿈과 희망은 무너지고, 고문에 망가진 몸만 남아 앞이 캄캄한 세월이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해 연말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출소하였다. 생사람 잡아다가 고문으로 간첩도 만들고 역적으로도 만들어 인생을 파탄시키고, 통치자 한 사람만 천하의 자유를 누리며, 그의 추종자들만 한세상 만났다고 삶을 구가하던 시절이 유신독재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40년이 흘렀고, 그 종말을 고한지가 3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과거사가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힌 세상이 지구의 어디에 존재하겠는가.춘추필법은 무섭다세상에 무서운 것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다. 역사는 반드시 진실만이 승자가 된다. 시간이야 아무리 지연되더라도 결코 역사적 정의와 진실만은 묻히지 않는다. 역사에 맡기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역사란 어떤 것인가. 역사에 기록되는 진실과 정의가 바로 춘추필법이다. 진실과 정의의 힘은 모든 권력과 역사를 뒤엎을 수도 있지만 거짓과 불의에는 무서운 필주(筆誅)를 내리기도 한다. 유신이 불가피했고 옳았으며,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사람들, 춘추필법은 거짓과 불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세월이 지났다고 관대해지지 않는다. 필주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2012-11-02 박석무

한국 모터스포츠의 도래

나처럼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자동차 생산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모터 스포츠와 거리를 두며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갖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카레이싱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F1 세계자동차경주대회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르망이나 뉘어브르크 서킷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이같은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생산이나 소비 과정에 있어서 '빨리빨리' 태도가 더해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터 스포츠에서는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리고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그 엄청난 운전솜씨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모터 스포츠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물론 한 스포츠의 인기를 올리고 싶다면 정체성이나 연대감이 느껴지는 팀이나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박세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온 나라 전체가 골프에 열광하기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큰 이벤트는 한국인의 '파이팅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어 왔다. 나는 사실 한국팀이나 한국인 선수가 없지만 F1 국제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불붙듯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방문객의 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고 엄청난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크지 않다. 2010년에 있었던 1번째 경주를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심지어 2011년에 한국에서 F1경주가 계속될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영암에 찾아오는 레이싱팀에게 나는 자신있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다음해 경기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슬 앞으로 다가올 매년 F1경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고조되기를 희망하며 어쩌면 대선이 지난 후에는 한국의 행정가를 비롯한 중앙 정부 그리고 기업들이 이 같은 빅이벤트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다시 깨달아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때엔 영암만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터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강원도 인제에서 새로운 서킷이 공사중에 있고 내년이면 아시아 르망 레이스를 비롯, 다른 경주 대회 또한 개최될 예정이다. 혹시 앞으로 모터사이클 세계 챔피언십이 한국에서 개최될 수도 있을까? 아니면 현대와 기아에서 홍보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 개발에 있어 모터 스포츠의 세계 최강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진 않을까? 한국의 자동차가 싼 자동차이기 때문에 구입하던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났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는 매우 섹시하게 디자인되고 있으며 퍼스트 클래스를 대변할만한 멋진 옵션과 좋은 엔진 또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스텝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글로벌 마케팅 도구로서 껴안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는 요즘 들어 한국인들이 수입차 구입을 더욱 선호하는 지금의 트렌드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훗날 한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의 자동차 박물관에 레이싱 트로피들과 함께 세계 경주에서 우승한 레이서들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들을 소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유산을 만들어 가는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모터 스포츠 역사에도 손기정 선생과 같은 영웅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소망한다. 현대 i20 랠리카나 현대 자동차의 슈퍼 GT 레이싱 대회 참여는 새로운 도약들이다. 만약 한국의 자동차들이 모터 스포츠의 강국들과 겨루는 자리를 보게 된다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우수한 자동차 산업과 그에 대한 열정을 세계에 알리기에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때라고 본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 멋진 쇼를 볼 수 있길 바란다.

2012-10-25 안톤 슐츠

선거여론조사 공화국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 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향력 크지만 신뢰도는 떨어져 아이러니전문성 낮은 '싸구려 조사기관' 난무감독기구 만들어 공정·정확성 높여야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다간 국민의 직접 투표 대신에 아예 여론조사만 가지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자는 얘기가 나올지 모를 지경이다. 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들이 서로 달라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조사마다 결과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 표본추출, 질문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론사들이 값싼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돈들인 만큼 나온다. 선거 때만 반짝하는 싸구려 조사기관들의 낮은 단가, 전문성 부족, 조사원칙 무시 등이 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싸구려 조사 회사들은 주로 ARS조사를 하고 있다.ARS조사는 선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표본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ARS조사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열성 지지자가 많은 후보자들의 지지도가 실제보다 많이 나오게 되어있다. 본질적으로 여론조사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를 독자들이 흥미롭고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과학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술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더욱이 과학성보다는 기술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상업적 저널리즘과 다름 없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처럼 여론조사의 질을 평가, 감독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저질의 여론조사결과가 실시되거나 공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이제는 심각히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이러한 감독기구가 생긴다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또는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공개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며,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된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일이다. 그래서 38.6% 등의 소수점 이하의 수치로 치장한 여론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사결과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2012-10-18 권혁남

메세나(Maecenas)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로마제국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설립될 무렵 제국의 첫 황제의 측근자인 마에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프랑스 발음 메세나)의 이름에서 만들어졌다. 메세나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귀족층의 가문 후손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같은 귀족층 출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즐겼다. 황제와 나란히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제 로마제국의 행정과 외교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메세나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재능이 아닌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그의 이름이다. 메세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만 그 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후원 동기는 명예나 이윤 같은 비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문학에 대한 얄팍한 흥미나 허영심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문학가들과 지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가능했던 그는 주택의 호화스러운 정원에서 젊은 예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주 즐겼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술가들의 관심사 밖에 있던 주제인 정사를 수시로 논하면서 예술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메세나를 시인들은 존경했고 그의 지혜는 고스란히 시인들의 책에 담겼다.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호라티우스의 '서정시집' 과 '서간시집' 같은 문학의 보석에서 후원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예는 아마도 메세나밖에 없을 것이다. 메세나는 젊은 예술인들의 후원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메세나는 자연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에 많은 변화가 없이 지속되어왔다. 플로렌스의 르네상스를 이룬 메디치 가문,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음악적 천재들을 지원했던 합스부르그 가문 역시 막강한 부와 세력, 그리고 가문 멤버들에게 강조된 광범위한 문학과 예술의 교육을 배경으로 메세나활동을 펼친 예다.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초대기업들도 활발하게 메세나 활동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러나 기업의 주목적이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 가족재단들의 활동에 비해 어느 정도 성질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가족재단도 좋은 이미지나 가문의 명예 향상 등 사회에서의 득을 바라는 기대가 없진 않지만 기업에 비하면 훨씬 순수한 편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가족재단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반면 기업의 후원 사업을 책임지는 부서나 인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회의 영혼이자 문명의 꽃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예술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이런 단점은 장기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화를 두 갈래로 나누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될 수 있겠다. 고급문화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하에 빛을 내고 대중문화는 비교적 단기적인 노력하에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얕으면 얕을수록 후원 사업에 있어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장기간의 자본주의 지배하에 정신세계가 나약해진 근대사회에 정신적 부를 가져다 줄 고급문화의 양성은 필수과제이며 이를 위해 후원자들의 교양과 지식 향상도 필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렇게 보면 메세나는 우리 개개인에게는 거리가 먼 상류층의 소유물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개인의 작은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콘서트의 티켓 구매도 일종의 메세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인터넷의 대중모금(Crowdfunding)을 통해 개개인이 아예 제작단계에서부터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예술후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의 교육과 함께 예술과 문학의 교양교육을 꼭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2012-10-12 박종화

함세웅 신부의 은퇴

얼마 전 우리시대의 사제 함세웅 신부님이 만70세로 성당의 주임신부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촉박해서 들었던 탓으로 꼭 참석해야 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은퇴기념 만찬을 하자는 통보를 받고도 오래 전에 약속된 긴급한 일 때문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애석함을 느껴야 했다. 이래서 미안하고 저래서 죄송한 신부님의 은퇴 행사, 어떻게 해야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그래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함신부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지난 해 여름 10년을 넘게 써오던 '선포와 봉사'라는 사목지의 서문으로 쓴 글을 묶어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책이다. 함신부는 1999년 연말 여러 사제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찰하고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단체의 기관지가 바로 '선포와 봉사'였고, 그 책의 서문을 도맡아 쓰신 분이 함신부였다.그런 함신부께서 주임신부직을 은퇴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에서 태어난 함신부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에 유학을 가 신학석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이래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서울대교구의 홍보국장으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바로 1974년이었다. 유신독재가 백성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에 의해 범죄자로 조작해 투옥시키고 극형에 처하는 등 악랄한 짓을 감행하였다. 이 무렵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는 등 극악한 참상에 사제의 신분으로 괴로워하던 함신부는 마침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저항단체를 결성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말았다.1976년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함신부는 그해 3·1구국선언에 앞장서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뒤에도 또 구속되어 함신부는 신자나 비신자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독재타도의 기수였으며, 민주화운동의 전국적인 대부로서 이름이 나라 안과 밖에 가득한 사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던 용감한 사제로 여러 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였고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창설하여 초대 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약간의 민주화가 이룩된 2004~2010년 사이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뒷걸음질 치는 민주주의를 붙잡으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천주교 사제라는 기득권층의 신분이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세상과 사회의 정의를 위해 70평생을 바친 그분의 노고에 어떤 찬사를 바쳐도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본당의 주임신부야 은퇴했지만, 사제에게 무슨 은퇴가 있는가. 사제로 서품되는 날부터 하늘나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신부는 신부이고 사제는 사제가 아닌가. 그래서 함신부는 은퇴 뒤에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아 뜨거운 안의사의 의혼을 선양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혁당 사법살인 희생자 유족이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후원 사업에 쉼 없이 일하고 있으며,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받고, 민주정권으로서의 정권교체에도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다. 함신부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선두에 서서 약한 우리 모두를 인도해 줄 것이다. 함신부와 필자는 같은 나이다. 우리는 지난 2005년 6·15공동선언 5주기를 맞아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서 성대한 기념식을 올렸다. 그때 함신부와 필자는 고려호텔의 룸메이트가 되어 몇 밤을 함께 숙박하면서 민족의 통일에 대하여, 완전한 조국의 민주화에 대하여 깊고 넓게 담론을 펼친 바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도 우리는 함께 뜨겁게 일하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사제, 신부님! 우리 신부님! 더욱 힘차게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2012-10-04 박석무

자연에 대한 특이한 취향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곳곳에 숨이 멎을만한 놀라운 곳이 있다. 우아한 긴 해안가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겹겹이 쌓인 수많은 산들은 사계절 내내 끝없이 변화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름다움이 매년 사라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한국의 인구 증가는 정체상태지만 도시나 도로 개발은 여전히 한창이다. 1994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온 나로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가는 곳마다 산천의 모습이 현격히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엄청나게 훼손됐고, 가보기 쉽지 않았던 신비롭고 평화롭기까지 했던 외진 곳에는 이제 6차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상업적으로 개발됐다.개발이라는 괴물에 삼켜진 '보물같은 한국'자연스러운 하천·산세에 맞는 국도 잃어버려불편 감수한 자연으로의 발걸음 '희망이길…'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새 길이 들어선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산과 들을 관통하며 보기 싫은 흉터처럼 남은 환경이 무시된 채 건설된 새 도로는 본래 한국의 평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과연 이 많은 새 도로들이 다 필요하기나 한 걸까? 수 년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차가 없었다. 당시엔 오직 내가 갖고 있던 오토바이크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그래도 보통의 한국인들보다는 한국의 곳곳을 많이 둘러 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100편이 넘는 사진과 글을 담은 여행기사를 써오며 바이크 투어를 오래 한 덕분에 작은 국도와 비포장도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내가 좋아했던 국도에는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그 길을 가로지르며 곳곳에 어마어마한 기둥이 세워진 것을 봤다. 자주 다녀본 적이 있는 그 길만 하더라도 한 번도 교통체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천과 그 지역의 산세에 맞게 건설된 국도를 왜 마다하는 것일까?가끔 나는 이 나라에서는 무조건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은 차로 쉽게 갈 수 있어야하고 그곳에는 무조건 잠자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생각없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욕심은 주변의 환경과는 전혀 조화롭지 못한 모습으로 모텔과 식당들을 줄줄이 늘어 세워 놓았다.올해 초여름 독일에서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으로 홍도에 갔다. 외진 아름다운 돌섬이야말로 단연코 한국의 보물 중 하나다. 그러나 홍도에 가서 보니 숨막힐 절경으로 둘러싸인 그림같이 작고 아담한 항구 한가운데에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새로운 여객선 터미널이 세워지고 있었다.그 뿐만이 아니다. 이미 더 이상 세워질 자리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가파른 언덕배기에는 각자의 상업공간들을 알리기 위해 눈이 시릴 정도로 어지러운 간판들이 걸쳐져 있었다. 과연 그저 큰 돈을 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섬사람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일까?이 귀한 섬이 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조차 생각해 보지 않은 정치가 또는 행정가나 개발자들에 의해 쉽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취향 때문인걸까? 아무튼 전국의 보물같은 곳들을 찾아 갈 때마다 이미 '개발'이라는 괴물에 하나씩 차례대로 삼켜져 똑같은 환경의 도시 클론처럼 내뱉어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해 환경을 지키려는 그리고 한국에 대한 그저 단순한 낭만적 발상을 하는 어느 괴팍한 외국인의 생각처럼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인인 나만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지난해부터 전국에 걸쳐 새로운 캠핑지가 이곳저곳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지 아니면 단순한 유행처럼 금세 사라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면 편리함 정도는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소음으로부터 그리고 바쁘다 못해 쉽게 지치게 만드는 도시 생활에서 자연을 느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임을 보여주는 미래 한국 자연 생활에 대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싶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30년 뒤엔 내 아들이 자신의 유년기에 보았던 한국의 자연을 과연 볼 수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든다.

2012-09-28 안톤 슐츠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싸움 그만둬라

지난해 추석을 시발점으로 18대 대선 마라톤 레이스가 본격화된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레이스에서 떨어져 나갔고, 이제 선두권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선수만이 남아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그런데 대선 마라톤 레이스를 중계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두고서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중들의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를 칭찬하고 지지하는 반면에 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흠집 내기하는 불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두패로 나뉘어진 '정당 기관지'로 전락일부신문 특정후보 편들기·흠집내기 도넘어사실에 입각한 철저한 후보검증 역할해야60여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선거사에서 지금까지 선거의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70년대까지는 관권과 금권 개입이 불공정 시비의 핵심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로는 언론의 불공정성이 시비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엄정중립을 견지하고, 공정보도를 통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직접 선수로 뛰는 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선거철만 되면 우리 언론은 말로는 공정보도, 객관보도를 외치면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노골적으로 편들곤 하는데, 특히 신문이 심한 편이다. 조중동의 보수신문과 경향과 한겨레의 진보신문들은 똑같은 정치인과 정치 현안을 두고서 보도하는 시각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적으로 길이 남을 최악의 편파보도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있는 날 아침에 배달된 우리나라 최대 신문의 사설 내용이다. 투표일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하는 돌발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두고서 이 신문은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라고 하였다. 아예 내놓고 국민들에게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회창 후보를 찍으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18대 대선을 이제 겨우 90일 정도 남겨놓은 지금도 일부 신문들의 특정 후보 편들기와 상대후보 흠집 내기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현행 선거법 제96조는 엄연히 언론의 특정 후보 지지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일부 언론은 비겁하게 숨어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곤 하는데, 그러지 말고 아예 언론이 특정 후보를 자유롭게 지지하는 신문의 후보 공개지지(media endorsement)를 합법적으로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사실 언론의 지지후보 공개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다. 그러나 미국의 신문들은 적어도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먼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는 오직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일반 기사에서는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를 밝히고, 이러한 선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유권자들의 후보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후보 공개지지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신문들은 미국의 신문과는 달리 편집권 독립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지금처럼 사설과 칼럼은 물론이고 일반기사에서조차도 편파보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 목소리를 옹호하는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후보 공개의 허용은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지금처럼 신문이 두 패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언론이라기보다는 정당기관지에 가깝다. 역시 언론은 불편부당해야 한다. 선거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네편 내편 가리지 않고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후보의 자질과 정책, 선거자금의 출처와 사용처, 그리고 과거 경력이나 업적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고, 진실 밝히기는 바로 언론 활동의 핵심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2012-09-20 권혁남

음악 안의 거짓

음악은 언어와 달리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노래나 교향곡에 담긴 선율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만약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매력적인 차이콥스키 6번 교향곡의 제목이 '비창'이 아니라 '행복한 하루' 였다면, 이 곡을 기만하는 것은 음악의 제목일 뿐이지 음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딸림화음이 으뜸3화음으로 진행하지 않고, 다른 화음으로 진행하는 경우인 '거짓 마침(Deceptive Cadence)'도 거짓말이 아니라 나중에 올 화음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이다. 음악은 기만의 도구가 아니다.반면 언어는 누군가를 기만시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엉뚱한 정보라도 청중들로 하여금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찬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며댈 수 있다. 물론 음악에서도 신념과 확신에 찬 연주가 연주자의 기대와는 달리 청중들에게는 다른 의도로 엉뚱하게 전달될 수는 있다. 이것은 고의가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구두를 통한 거짓말은 글을 통해 거짓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안했어'라고 종이에 쓰는 것 보다 말로 거짓말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신체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등 표시가 난다. 거짓을 말할 때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얼굴 근육들의 경련, 빨라지는 맥박, 높아지는 체온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받거나,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음악을 지배하는 세 개의 원칙은 리듬, 화음, 멜로디이다. 이 원칙들이 모두 존중되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존중되지 않으면 음악이 아름답기는커녕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세개의 원칙을 바탕으로 음악이 완성된다면 감동적인 연주를 청중과 나눌 수 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성실하게 준비를 안 했거나 해석의 의도가 불명확하면, 연주자의 모습 속에서 거짓말을 했을 때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처럼 비슷한 증상을 관찰하게 된다.우선, 화음을 어겼을 때 나타나는 '화음의 질병' 증상을 꼽을 수 있다. 화음이 변할 때 아무런 반응이 없고, 연주의 개별적인 표현이나 색깔, 밸런스가 모호해져 의미가 없는 연주가 되어버린다. 화음은 저마다의 개성과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귀를 열어 잘 듣고 연주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리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리듬의 자동화' 증상이 일어난다. 큰 가치의 음들을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연주한 나머지 작은 가치의 음들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4개의 16분음표는 하나의 4분음표와 똑같지 않다. 작은 음들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큰 음들은 더 여유있게 움직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곡의 구조와 물리를 등한시 하는 연주자에게는 '끊임없는 국수' 현상이 관찰된다. 이것은 긴 선율을 세분화 시키지 않고 하나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열 개의 음이 넘는 선율을 리듬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세분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무언극의 절정'은 곡의 본질과 목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연주자가 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연주할 때 불필요한 동작들을 연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연주자는 머리, 팔, 몸을 불필요하게 움직이거나 얼굴 표정을 일부러 연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클래식 음악가의 보디랭귀지는 억지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요구와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이렇게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은 음악도 때로는 연주자의 불성실함에 의하여 청중에게는 고의 아닌 거짓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진정한 연주자라면 음악을 지배하는 원칙에 성실해야 한다. 청중 또한 연주자의 증상들을 잘 관찰해 연주에 대한 참된 의견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12-09-13 박종화

독서율 최하위의 한국인

인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격자나 사상가를 성인(聖人)이라고 호칭한다. 일반적으로 오늘의 세계에서는 4대 성인으로 석가·공자·예수·마호메트를 거론한다. 공자를 제외한 세분들은 성인이자 신처럼 받드는 종교의 창시자가 되어 수많은 교도들이 그분들의 정신과 사상을 받들고, 그분들이 행한 행실을 본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공자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유학(儒學)이라는 학문의 창시자가 되어 인류를 교육하는 교육자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의 인간들은 그런 4대 성인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성서(聖書)나 성경(聖經)을 필독서로 여기면서 그분들을 본받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을 고르자면 첫째 예수의 말씀인 '성서'요, 둘째가 공자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논어'며, 그 뒤를 이어 석가의 경(經)인 '불경(佛經)'이요, 마호메트의 '코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성서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대로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어떤 통계를 보면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한국인들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다. 영국 사람으로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기 나라의 최고 문학가의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 문화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니, 5대 비극이니 하는 그런 책은 문자를 아는 영국인들은 대부분 읽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들이 300년이 넘도록 식민지로 여겼던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두고, 인도를 버렸으면 버렸지 셰익스피어는 버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우리나라의 지폐에는 우리 국민들의 멘토 격인 네 분의 인물 초상화가 실려 있다. 일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 오천원 권에는 율곡 이이, 일만원 권에는 세종대왕, 오만원 권에는 사임당 신씨의 초상화가 인화되어 있건만,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 네 분에 관한 책이나 그분들의 저서를 몇 권이나 읽었겠는가.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 율곡 이이의 글이 있다. "성현들이 마음을 기울인 자취와 착함과 악함의 본받아야 할 일, 경계해야 할 일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격몽요결)"라고 말하여 선악을 구별하고 본받거나 경계해야 일이 무엇인가를 책에서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책을 읽지 않고서 옛날의 일이나 옛사람들이 살아갔던 자취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옛날의 일이나 옛사람의 자취를 모르고 어떻게 오늘을 알며, 오늘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미래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금년 2012년은 다산 정약용의 탄신 250주년이다. 탄생 300주년인 루소, 150주년인 드뷔시, 서거 50주년인 헤세와 함께 유네스코는 그들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이라 하여 다산을 포함한 4명을 기념인물로 선정하였다. 그렇다면 다산은 유네스코가 기념해 주는 2관왕이 되었다. 오래전에 정약용이 설계하여 축조한 수원의 화성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자신은 기념인물로, 화성은 기념할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2관왕이 아닌가. 올림픽 금메달에 환호하는 우리 국민들, 1관왕에도 극찬을 보내는데 유네스코의 2관왕인 다산에게는 환호성을 보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세계에서는 위대한 인물로 인정하여 추앙해 주는데 제 나라 국민은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독서율이 최하위이기 때문이다. 500권이 넘는 그분의 책, 이제는 많이 번역도 되었는데,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책을 읽지 않는 국민, 과연 미래가 있겠는가. 세계적인 인물의 2관왕, 다산의 책이라도 읽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12-09-07 박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