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동서독 보건의료협력 교훈

북한 코로나19 확진 한명도 없다 주장하나일부 방역·의료체계 감안 적잖은 피해 추측동독도 과거 소극적 협정 통일후에나 성과 차제에 北 관심분야 우선 협력 제도화해야북한은 지난 3월17일 평양에 종합병원을 착공하기로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한 착공식에서 김 위원장은 "인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면서 올해 내로 이를 완공할 것을 지시하였다. 연설 중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스스로가 "수도인 평양에마저 현대적인 의료보건시설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실토한 점이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에 북한은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의 방역 및 의료체계를 감안할 때 북한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차제에 남북 방역 및 보건의료분야의 협력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과거 동서독은 어떠했을까? 서독의 동방정책으로 1972년 동서독은 우리의 기본합의서와 같은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교통, 환경, 보건,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부속협정을 맺었다. 1974년 동서독 보건협정에서는 전염병의 예방과 퇴치에 있어 정보를 교류하기로 하였고, 의약품, 의학 기술품, 소모품 등의 내용을 공유하기로 하였다. 앞서 1973년에는 접경지역의 감염성 질환이나 재난, 환경오염 등이 상대국에 미칠 때 협력하기로 한 공동재난과 관련된 협정도 체결되었다. 사실 이러한 분야의 협력은 동독이 우선적으로 체결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서독에 비해 열세에 있었던 동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이 동독 내에 미칠 영향을 가장 낮게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에도 불구하고 통일 전까지 동서독 보건의료 협력분야에 큰 진전은 없었다. 동독이 여전히 소극적인 데다가 국제정세의 악화로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남북간 보건의료분야의 협력은 어떤가.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체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경험하였다. 또한 중앙집권적 의료배급 시스템으로 인해 여전히 의약품 부족, 의료시설과 의료기술의 낙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보험 체계의 부재로 도·농간, 계층별 보건의료 혜택이 상이한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부터 우리는 북한에 대규모 식량과 비료지원을 추진한 바 있고 이후 보건의료분야에 취약한 임산부,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지원을 지속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고 당국 차원의 구체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남북 보건 당국 간에 보건의료 분과회담을 개최된 바 있다. 전염병 방지를 위한 정보교환, 결핵과 말라리아 등 치료협력, 중장기적인 방역과 보건의료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이후 추가적인 협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일거에 어느 수준으로 올릴 수 없다. 많은 재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스템의 질이 동시에 향상되어야 한다. 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을 채워야 할 의료기기와 의료진, 의약품과 기반 시설 또한 선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동등한 수준의 복지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년간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결국에는 통일이 되어서야 보건의료 등 양측의 복지수준을 맞추는데 있어 수천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단순히 재정적인 투입을 넘어 남북이 생명과 건강 공동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간에 협력을 해 나가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우리는 아직까지도 코로나19와 지난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남북간 보건의료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 동독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소극적인 자세를 충분히 예견해야 한다.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체제에 부담이 되는 사항은 뒤로 넘기고 예방의학, 한의학, 전염병 치료 등 북한이 관심있는 분야의 정보교류와 기술적인 분야의 협력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연대하여 의료장비와 기술의 지원을 병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인적교류가 수반되고 정치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제도화의 과정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4-09 양무진

[춘추칼럼]사랑의 거리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 배려·존중 필수미투운동후 사람들 관계 더 조심스런 세상코로나19 확산에 '사회적 거리' 까지 등장이 모든 간격들이 생명을 살리는 해법되길예전, 젊어서 고향에 살 때의 기억이다.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로 가끔 청둥오리 사냥을 가는 젊은 축들이 있었다. 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백조에 대한 것이다. 백조는 우리 말로는 고니라고 불리는 몸집이 크고 털 빛깔이 새하얀 새이다.녀석들은 갈대숲이나 습지에 무리 지어 앉아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사람이 다가간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거리인 셈이다. 동물치고는 참 영리하고 똑똑한 녀석들이라 하겠다.인간 세상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 해도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진력이 나고 싫증이 나게 되어 있다. 좋은 사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 사이도 그렇고 심지어 애인 사이도 그렇다. 가까운 사이 좋은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삼갈 것은 삼가고 눈감거나 비켜 갈 것은 또 그래야 한다. 그러기에 옛날 어른들도 부부유별이라 했다.부부 사이는 구별이 안 되는 밀접한 인간관계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교훈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사귀면서 내가 지키고 있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누구하고든 거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사람, 내가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지만 지나칠 정도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도 모조리 하지는 않고 조금은 아껴 둔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미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나빠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좋은 느낌으로 그 자리에 그냥 멈추어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좋은 관계로의 새로운 복원이 가능하다.이것을 나는 사랑의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말은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사람들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경향이다. 언어폭력이든지 성추행이란 말까지 나돌아 특히 남녀 사이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따스한 말이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그런 말조차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그야말로 이것은 마음의 거리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랑의 거리가 아니고 강제로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왜 우리가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는가. 많이 서글픈 마음이다.최근엔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란 것이 다시 생겨났다. 일상의 평범한 삶은 멈추고 갑자기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살아보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신종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신체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다. 우리 풀꽃문학관만 해도 계속 휴관 중이다. 뜨문뜨문 관광객들이 오고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갑지가 않다.멀리서 바라보며 인사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다시 오시라 인사를 보낸다. 물론 악수도 하지 않고 사진도 같이 찍지 않고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다음에 하자고 미룬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참 많이 소원해진 느낌이다.어쨌든 다 좋다. 고니들에게는 생명의 거리, 나에게는 사랑의 거리, 미투 사태에는 마음의 거리, 코로나19에는 사회적 거리, 모든 거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의 단절이 있을 수 있고 소통의 부재가 있을 수 있겠다.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모든 '거리'들이 사람을 살리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쯤 섭섭함과 공허함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넘어서 생명의 거리, 소생의 거리, 끝내는 사랑의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4-02 나태주

[춘추칼럼]어둠 속의 희망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막연한 불안·두려움지구촌 전체의 일상이 대혼란·격변의 시대문제는 언제끝날지 모른다는 사실 인생 닮아각자 성찰로 공동체의 선한 영향력 쌓을때"미래는 어두운데,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체로 미래가 띨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1915년 1월18일, 버지니아 울프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이다. 지금처럼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왠지 위로가 된다. 재난과 위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미래는 항상 어두운 것이다.'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자본과 경제에 대한, 노동과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 주변의 일상은 그야말로 대혼란과 격변의 시대이다.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하고, 대학은 온라인강의로 대체되고 있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급감해서 단축 운영 및 휴관이나 폐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공공시설은 대부분 휴관 상태이다.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측은 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지금 사태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른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으로 90세, 100세를 예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질병으로, 누군가는 사고로 일찍 죽는다. 이 불확실성은 우리를 어둠으로 이끈다. 그 결과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다. 그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어둠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 속에서 '희망'을 떠올린다.'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에서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희망하는 것은 도박하는 것과 같다. 희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에, 희망하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다. 희망이란, 약속되거나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솔닛이 생각하는 '희망'은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성취와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선한 일을 바라보고 그 일을 해나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지키는 일이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좀 더 삶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과 공동체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노동을, 시간을, 돈을,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다음은 리베카 솔닛의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어느날 아침 비를 맞으며 케네디의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노라니 참으로 바보 같고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여성파업' 소속의 그 여성은 말했다. 몇 년 후 그는, 가장 주목받는 반핵행동 중 한 사람이 된 벤저민 스팍 박사가 자기 삶의 전환점은 한 작은 무리의 여성들이 비를 맞으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어둠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거대한 악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키고 서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하찮은 것이라고 비웃을지라도, 비록 큰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작은 위로와 격려의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그 일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선을 향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하나씩 쌓아갈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만약 그것을 일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면 비록 연약할지라도 작은 승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와 사회 각 영역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일, 서로의 필요를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이 아니겠는가./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3-26 권경우

[춘추칼럼]국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투표하나?

눈앞 총선, 코로나19 사태로 '깜깜이' 우려현 정부 '소주성·한반도 평화 정책' 빨간불정치 진영논리·조국사태·연동형비례 실종 유권자 어리석지않아 꼼수·반칙 심판할 것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접촉 선거운동이 금지되면서 '깜깜이 선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위성 비례정당' 출연에다 첫 시행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유권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여야 모두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혼돈과 혼란이 지배하는 미증유의 선거가 되고 있다. 이번 총선 판을 흔들 최대 변수는 무엇일까? 경제 침체, 여야 공천 평가, 코로나 사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 중도·무당층 표심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총선은 본질적으로 정권과 집권당에 대한 회고적 심판이 핵심이다. 이런 정권 심판론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정책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 여부다. 현 정부의 양대 핵심 정책은 소득주도성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로 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이 제대로 작동되어 저성장과 소득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문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 정책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그런데 현 정부 핵심 정책에 대해 민심의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6개월 시점에 실시한 여론조사(2019년 11월 12~14일) 결과, 경제 정책에 대해 긍정 27%, 부정 57%였다. 집권 초기에는 반대로 긍정 54%, 부정 17%였다. 대북 정책도 긍정(38%)보다 부정(49%)이 많았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에 긍정(83%)이 부정(7%)을 압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이다. 통상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정 철학이 반영되어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이 제시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 "공정한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이런 철학적 기조 속에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진영의 논리에 갇히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 셋째, 정부의 도덕성과 정체성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통해 특권과 차별이 없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현 정부의 도덕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검찰 개혁은 사라지고 검찰 장악이 부각되면서 청와대와 검찰간의 갈등,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간의 갈등이 도를 넘었다. 누가 원칙을 지키고 누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행보를 했는지 평가받을 것이다. 작년 12월 27일 여권은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만들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개정했다. 미래통합당이 선거법 개정안의 허점을 파고들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자 민주당은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 "쓰레기 가짜 정당"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국민을 얕잡아 보고 눈속임으로 만드는 위성정당 앞길에 오직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17일 친문 성향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 시민당'에 참여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이 유례없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대표성을 높인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제 가장 큰 관심은 누가 제1당이 될 것인가 여부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과연 어느 정당이 꼼수와 반칙을 일삼고 있는지, 어느 정당이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지, 누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지, 누가 미래로 나아가는지를 기준으로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3-19 김형준

[춘추칼럼]비전통적인 안보분야의 남북협력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과 수세적인 대응과거·현재 변하지않는 북한의 '대남 인식'코로나 방역·보건 협력·인도적 지원 강구北 빗장풀면 남북 안보협력 이끌어 낼 수도25년 전인 1995년 이맘때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한 계기에 북한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을 발표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심각한 체제위기에 직면하였다. 80년대 말 탈냉전의 격변기에다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대기근 발생, 배급제 붕괴로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1994년 추진했던 남북정상회담의 기대감이 사라지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중에 김영삼 대통령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북한에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도 불구하고 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었지만 식량사정이 절박한 상황에 이르자 북한도 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해 6월부터 남북 간 베이징 쌀 회담이 개최되었다. 수세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북한은 당국 간 회담이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협의하는 형식을 요구했다. 남북의 공방 끝에 쌀 15만t을 원산지는 표기하지 않고 남측 선박으로 수송한다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분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아쉽게도 후속회담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우리 측은 이 기회를 당국 간 접촉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활용코자 하였으나 북한은 최대한 비공개적으로 추진하되 식량 지원만을 확보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쌀 수송과정에서 인공기 게양사건, 삼선 비너스호 선원 억류사건 등 여러 악재들이 출몰하여 합의 이행도 늦어졌다. 이듬해 북한은 다시 대홍수 피해를 입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남한 정부에 대한 공식 지원요청을 주저하였고 남한도 당국 간 공식절차를 통한 협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베이징 쌀 회담은 탈냉전 직후 발생한 남북회담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바뀌면 변화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북한의 근본적인 대남 인식이라고 판단된다.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과 이에 따른 수세적인 대응이 그것이다. 자존감 때문에 어려워도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에서는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을 붕괴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북한은 스스로라기보다는 우리쪽의 이끌림에 따라 서서히 남북대화에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도 북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남북관계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요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북한 내 상황이 불확실한 국면에서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북한 당국도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세우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으며 해외 감염사례들을 실시간으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고는 있으나 국경유입과 외부정보 차단을 엄격히 시행하고 있어 내부 사정을 알기 어렵다. 북한은 진짜 코로나19의 안전지대일까? 이참에 남북 간 방역협력, 보건협력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도 부족한 마스크를 제조하고 북한에도 지원하자는 제안들도 눈에 띈다.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명분과 자존심을 중요시하고 고난의 행군과 자력갱생의 방식에 익숙한 북한은 우리 쪽에 협력이나 지원을 먼저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초국가적 방역협력의 문제를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해 보인다.먼저 우리 내부의 코로나19 극복 노력이 우선이다. 다행히도 이번 주를 중심으로 확진자 증가세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국민들이 단합한 결과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코로나19 청정지대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다음으로는 국제적인 확진자 증가에 대비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유입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일치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남북 접경지역부터 시작하여 북한 내부의 감염병 퇴치, 보건의료 분야 협력을 위한 남북 간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우리와의 협력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남북 정상 간 친서가 오고 갔다. 과거처럼 여건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노하우를 북한 지역에 전달하고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강구하고 북한이 빗장을 연다면 코로나19와 같이 비전통적인 안보분야의 남북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3-12 양무진

[춘추칼럼]슬럼프에 대하여

처음엔 당황… 답답함 벗어나려 '발버둥'상처 치유 '시간'이란 능력 믿고 기다려야참고 물러설 줄도 알면 '새로운 출구' 열려목전의 유익·편리보다 '미래' 품고 살아야가끔 문학강연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 독서에 대해서, 더러는 인생에 대해서. 한결같이 쉽게 대답해줄 수 없는 무거운 문제들이다.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그다음은 슬럼프에 관한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경험도 있고 그런 경험 가운데 사랑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알고 있겠고 슬럼프 극복에 대해서도 무언가 묘안을 갖고 있지 않겠나 싶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자 얼버무리지만 슬럼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답을 내놓기도 한다. 슬럼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일종의 고난이고 고통이겠다. 슬럼프가 뭐 별것일까. 내내 잘 굴러가다가 주춤주춤하는 것이 슬럼프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가속도가 떨어져 아예 제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막막한 일이고 답답한 일이다. 이러한 절망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나름대로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인데 우리가 살아있는 한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어찌해야 좋은가? 이쯤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 경험을 불러내야만 한다. 그러한 때 나는 어찌했던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젊은이들도 나에게 묻는 것이리라.그러하다. 나에게도 나름 몇 차례 슬럼프가 있었다. 인생의 슬럼프가 있었고 시인으로서 시가 제대로 써지지 않는 슬럼프가 있었다. 처음엔 무척 당황해하고 답답해하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우선은 기다려야 하고 생각을 좀 더 느슨하게 가져야 했다. 단기전으로 생각지 말고 장기전으로 접근해야 했다. 거기에 첫 번째 항목이 기다림이고 느긋함이다. 시간의 은택을 입어야 한다. 시간이란 참으로 은혜로운 존재이다. 많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새로운 능력을 마련해주기도 한다.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사막에 사는 전갈의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전갈은 사막의 맹독성 절지동물. 생김새도 흉측하지만 꼬리 부분에 치명적인 독침이 있어 이 독침으로 먹잇감을 공격하고 나서 그 대상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식량으로 삼는다고 한다. 때로는 그 먹잇감 가운데 제법 큰 동물도 걸려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천하무적 같은 전갈도 잡아먹히는 때가 있다고 한다. 바로 독침으로 먹잇감을 쏘았을 때이다. 그 순간을 노려 사막여우 같은 짐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전갈을 집어먹는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전갈은 일단 상대방을 쏘고 난 다음에는 재빨리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긴다고 한다. 몸에서 빠져나간 독이 새로 생겼을 때 슬그머니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기다림이고 물러섬이고 인내이고 시간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 안에서 새롭게 생기는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비록 작은 동물이지만 우리 인간도 이러한 전갈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이것이 하나의 지혜요 현명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가? 슬럼프에 빠졌는가? 그렇다면 일단은 참을 줄 알아야 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나름 궤도 수정도 필요하다. 터닝포인트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힘을 비축할 때 새로운 출구가 열린다.나 자신만 해도 여러 차례 슬럼프가 있었고 위기가 있었다. 인생의 위기. 시인의 슬럼프. 그 슬럼프와 위기가 그 이후의 나의 인생과 시를 새롭게 좋은 쪽으로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마운 일이고 다행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 없이 성급하다.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고 물러날 줄 모른다. 그러니 나날이 고달프고 지치고 답답한 것이다. 목전의 유익이나 편리보다는 보다 먼 날의 성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지루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름답고 찬란하기도 한 것이기도 하다./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3-05 나태주

[춘추칼럼]코로나19와 봄이라는 기적

불안·공포로 송두리째 뒤바뀐 우리의 일상감염확산에 정보 무차별 양산 대응도 난감자연도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봄이 오듯이현실 고통, 원칙준수 공동체 신뢰로 극복을매년, 그리고 매일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계획한다. 그리고 대부분 새로운 삶을 만들기보다는 실패하고 만다. 본인의 의지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실패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이 내적 의지만 있을 뿐 외부 환경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계획한 사람은 저녁 회식을 줄이거나 취침시간을 앞당겨야 하는데, 실제로는 환경은 그대로 두고 의지로만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만큼 우리의 삶의 조건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사례는 근래 없었던 것 같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상황 역시 큰 충격이 있었지만 개인의 일상을 이렇게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이 상황은 거의 전쟁이나 쓰나미를 겪은 지역의 '그라운드 제로'와 같은 현실에 가깝다. 그 결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면서 공동체가 약화되고 있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복잡하고 바쁜 삶이 새롭게 성찰되고 있는 점이다. 사람들의 삶이 단순해지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관계는 가장 중요한 관계로 축소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이후 이 두 가지 특징이 어떤 양상으로 이어질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정보 과잉 측면에서 '마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전문가와 비전문가, 일반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확산된다. 전문가들 또한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마스크'에 대한 관점이다. 최소한 국가인증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입장부터 해외 사례를 들면서 굳이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는 관점까지 서로 다른 정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지금처럼 감염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대중은 불안 속에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대형마트 앞에 줄을 서는 풍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태도로 이 과정을 견뎌야 하는 걸까? 우선 수많은 정보 가운데 핵심 원칙을 가려내서 준수하고, 나아가 삶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화되고 현실에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남과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은 맞지만, 지금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도 결국 공동체의 힘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지난 겨울은 유난히 온화했다. 과일이나 벼농사 등 열매를 맺어 추수를 하는 것들은 추운 겨울을 지나야 속이 꽉차고 맛이 난다고 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 없는 인생이야 없지만, 이러저러한 고통을 견디고 어려운 시간들을 거친 이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문제는 그러한 순간들을 어떤 자세로 직면하고, 그 시간들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우리는 자연이 제공하는 추위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언젠가, 봄은 올 것이다. 분명, 봄은 올 것이다. 시인 김소연은 '봄'을 가리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 '기적'을 위해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시점에서 봄이 오는 순간까지 어떤 시간으로 채우는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혐오,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채울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맞이할 봄에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 땅을 다지고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누군가는 벽을 지탱할/대들보를 운반하고,/창에 유리를 끼우고,/경첩에 문을 달아야 하리.//……"(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중에서)/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2-27 권경우

[춘추칼럼]통합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

황교안·유승민·김형오 3자회동 추진 시급정파적 이익만 쫓는게 아니라 민생 챙겨야국민위한 정책제시·미래 이끌 인재육성도진영논리 분열 치중땐 국민들 준엄한 심판자유한국당과·새보수당, 전진당이 합당해서 '미래통합당'(통합당)으로 17일 공식 출범했다.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보수가 뿔뿔이 흩어진지 3년 만이다. 통합당 지도부는 한국당 체제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기존 한국당의 김형오 공관위원장 체제도 이어받기로 했다. 일단 야권 정계개편의 가장 큰 축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주목 받을 만하다. 총선을 두 달 정도 남기고 그동안 파편화된 보수 정당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설 연후 직전에 KBS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1월 18일~21일)에 따르면, "선거 전에 보수 야당 간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필요하다'(50.7%)는 응답이 '필요하지 않다'(37.5%)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통합 필요성에 각각 59.9%와 55.3%가 동의했다. 통합당은 일단 탄핵의 강을 건너 새로운 집을 짓고 개혁 보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통합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통합의 한 축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통합당 출범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통합 세력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 의원은 김형오 위원장이 "갈수록 이상해 진다"라며 총선 공천 작업에서 새보수당 인사들이 부당 대우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을 표출했다. 여하튼 유승민 의원의 '전략적 두문불출'이 길어지면 그만큼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반감된다. 통합의 화룡점정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황교안 대표, 유승민 의원, 김형오 위원장간의 3자 회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공천을 포함해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정치로 풀어야 통합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단언컨대, 흩어졌던 보수 세력이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보수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통합당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정당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표출된 국민들의 이해를 잘 집약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고,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충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할 것이 아니라 대안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당명과는 달리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얽매이거나, 통합에 앞장서지 않고 분열에만 치중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원내 113석의 통합당 출범으로 이번 총선은 '1여다야' 구도가 아니라 '진보 대 보수'간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은 본질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통합당이 내세운 정권심판론이 보수 세력 결집과 중도표심 확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갤럽의 2월 둘째 주 조사(11~13일)에 따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지원론'(43%)보다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견제론'(45%)이 앞섰다. 한 달 전 조사(1월7~9일)에서는 정부 지원론이 견제론보다 무려 12% 포인트 앞섰으나, 이번에 역전됐다. 민주당의 잇단 악재에 불만이 쌓인 중도층에서도 지원론(39%)보다 견제론(50%)이 훨씬 많아졌다. 보수 통합으로 지금까지 진보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이제 겨우 평평해졌다. 선거는 통상 새로움의 경쟁이다. 어느 정당이 더 큰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지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변화가 최상의 전략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02-20 김형준

[춘추칼럼]학교, 부모, 청소년이 함께하는 통일교육

다양한 계기 통해 통일미래 희망 심어줘야 기성세대들 '비용·갈등' 부정적 인식 개선항구적 평화 구축 점진적 통합 추구 바람직이산가족 방문·민간교류땐 더할 나위 없어지난 11일 통일부와 교육부가 지난해 학교통일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통일이 필요한가'에 대한 우리나라 초중고 청소년들의 대답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55.5%라고 한다. 10명이면 절반 정도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할 대상인 북한에 대한 이미지도 청소년들의 대략 60%가 전쟁, 군사, 독재 등 과거 남북 대결구조 속의 이미지를 연상하고 있다. 북한을 협력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43.8%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비중도 35.8%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그렇듯이 이러한 수치들은 그해 그해의 남북관계 상황 등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실제로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에는 훨씬 더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결과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생 통일문제를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청소년들의 통일의식이 변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소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초중고 청소년들이 앞으로 통일미래시대를 열어나가는 세대라고 볼 때 청소년들이 통일문제에 대해 희망적인 사고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통일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80%에 육박한다는 것은 국영수 문제풀이와 입시에 바쁜 우리 청소년들이 그나마 도덕이나 별도의 체험을 통해 통일문제에 대해서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계기를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통일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한편으로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아직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대부분 부모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모든 사안을 판단한다. 부모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만났던 지인은 어린 손주가 "통일을 하면 우리나라가 망한데요"라는 말을 하기에 누구에게 들었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에게 들었다고 해서 좀 놀랐다고 했다. 산업화, 민주화 이후 치열한 입시와 높은 취업문 속에서 처절한 경쟁을 경험한 젊은 부모 세대들은 통일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자녀 세대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인식될 경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 쉽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들은 전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앞둔 자녀들의 인식에 그대로 투영될 가능성이 높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이나 탈북자들도 동등하고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는 통일문제가 더 이상 당위가 아닌 개개인의 현실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다양한 체험활동 제공, 적절한 자료뿐 아니라 통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의식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통일'이라는 이미지가 통일비용(10.9%)이나 사회갈등(10.6%)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평화와 화합(34.0%)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표출된 것은 그동안의 평화 유지노력 덕분이다. 당장의 통일이 어려운 현실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항구적인 평화상태를 구축하고 점진적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비핵화 협상이 조속히 마무리되어 핵 없는 평화구조를 정착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현재 북미협상이 교착국면이지만 남북관계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북미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북제재와는 별개로 우리 국민들의 개별관광이 실현된다면 남북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우선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허용되고 나아가 지난 금강산관광처럼 민간교류의 하나로서 남북관광교류가 실현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산 통일교육의 장은 없을 것이다. 통일 전 동서독도 동방정책 이후 동서독 청소년 교류도 전개하였다. 일전에 만난 독일 학자는 전범국이자 분단국이었던 동서독이 자신들의 통일염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지만 교류를 통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통일은 남녀노소, 남북을 구분할 것 없이 전체 민족의 단합된 염원의 결집으로 나타나야 한다. 북한이 조속히 핵 포기 결단을 내리고 남북이 생명공동체로서 공존 공영하는 틀을 만들 때 가능하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2-13 양무진

[춘추칼럼]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공주문화원장 8년은 내 생애의 좋은시절재정 돕기에 찬조금 걷던 일을 떠올리며베풀며 사는 분들의 '나눔·배려심' 배워자기가 못한다고 선행 헐뜯지는 말아야내 생애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꼽는다면 우선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초등학교 시절과 교장이 되어 8년 동안 시인 교장 소리를 들으며 살던 시절일 것이다. 거기다 더 하나를 보탠다면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역시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며 지내던 시절을 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서천 출신인데 30대 초반부터 공주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고장이든 문화원장은 그 고장 출신을 앉히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자존심 높은 공주 사람들이 나를 문화원장으로 허락해준 것이다. 두고두고 감사한 노릇이다. 만약 나에게 문화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매우 단조롭고 조그마했을 뻔했다. 교직 생활은 어린 학생들과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교직원들과 어울려 약간은 울타리 안에 갇혀진 생활이고 소극적인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원장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면서 문화 일반에 폭넓게 관여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애는 비로소 문화원장의 날들을 추가해야만 어렵사리 완성된다고 본다. 내가 문화원장이 되어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찬조금을 많이 받아 문화원의 재정을 보다 부드럽게 하는 일이었다. 나부터 찬조금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다. 그런 다음 그 찬조금 명세를 문화원 소식지에 상세히 밝혔다. 그것이 찬조금을 낸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찬조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길이라 여겼던 까닭이다.몇 차례 찬조금 명세를 밝히고 났더니 조금씩 반응이 왔다. 소식지를 받아본 분들 가운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 찬조금을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찬조금은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찬조금이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싶은 쾌재가 왔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왜 찬조금 명세를 자꾸만 밝히느냐고. 그렇게 하면 안 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실은 찬조금을 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찬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명세를 밝히는 거라고 대답해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좀 생각해주어야 한다. 돈이나 학식이나 교양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반대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을 배려해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문화원장을 하는 동안 나에게 모범과 교훈을 보여주신 분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내가 문화원장이 되면서 고문으로 모신 분 가운데 한 분이시다. 그분은 내가 문화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상당한 액수의 찬조금을 주셨다. 그것도 당신이 손수 연금통장에서 돈을 찾아가지고 문화원장실로 와 살그머니 봉투를 놓고 가시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치고 결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능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여유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을 문화계를 위해서 쓰자. 참 이런 생각은 이전의 나로선 불가능했던 생각이다. 선생님이 몸으로 본을 보여주셨기에 스스로 배운 결과이다. 그 뒤로 나는 해마다 수월찮은 액수를 문화계를 위해서 사용해오고 있다. 고향 서천에 신석초문학상 제정을 지원하고 미주의 시인들을 위해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가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심이 있어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2-06 나태주

[춘추칼럼]너무 애쓰지 말자

'빡빡' 보다 헐렁한 삶이 타인에게 유연할듯교육·재테크… 애쓰면서 승자는 없는 구조가만히 두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도 많아올해 거창한 목표보다 조금씩 줄이는 계획을계획 세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갈 때도 꼼꼼하게 일정을 짜기보다는 일단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이다. 경자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일 년을 열두 달로 나누게 되면 벌써 12분의 1이 흐른 셈이다. 작년에는 1월에 최소한의 계획 같은 걸 세웠다. 왠지 모르게 올해에는 잘 세우지 않던 계획을 그나마도 미루고 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막연함이 존재한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계획을 세우려 한다. 업무 차원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장 앞서는 일은 책을 꾸준하게 읽는 것과 건강을 위한 운동이 될 듯하다. TV를 거의 안 보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읽기는 삶의 새로운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운동은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 걷기, 계단 오르기, 아이들과 축구하기 등이다. 대부분 일상의 간단한 것들이지만 정작 하지 않고 있던 것들이다. 그 외에도 커피를 조금 줄이고 물 자주 마시기, 묵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돌아보는 시간 갖기 등도 포함해야겠다. 지면을 빌려 이렇게라도 말해 놓으면 조금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 믿음으로 하나씩 실천해볼 생각이다.이 정도만 잘 하더라도 성공적인 한 해가 될 것 같다. 평소 잘 하지 않던 일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온몸으로 경험하지 않았던가. 조금씩, 하나씩 하면서 바꿔나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최근에는 독서도 '빡세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잘못된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을 가져서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빡세게' 하는 것은 그 하나의 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빡세게' 만든다. 빡빡한 삶이 아니라 조금은 헐렁한 삶이어야 타인을 대하는 것도 유연해지지 않을까. 흔히 계획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올해 내가 '할 일'이고, 금연이나 금주와 같은 것들은 '하지 않을 일'에 해당한다. 얼핏 보면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정반대의 두 가지 특징이 동시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둘은 하나다.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은 모두 '애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한쪽으로 힘껏 끌어당기는 일이다. 지금 우리 주변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서로 애쓰면서 정작 승자는 없는 구조이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재테크나 교육, 다이어트, 심지어 독서까지 적당히 하자는 말은 없고 빡세게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렇게 힘쓰다 보면 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애쓰는 형국이다. 차라리 애쓰지 않고 가만히 두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내가 올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을 '계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계획을 조금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 위해 애쓰지 않기, 힘쓰지 않기, 이 악물지 않기 등이 필요하다. 그 대신에 그냥 가만히 바라보기, 곁에 서서 지켜보기, 충고나 참견하지 않기, 아무 말 하지 않기, 앞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기, 스치는 바람결 느끼기, 풀과 꽃의 향기 맡기, 온몸으로 햇살 받기 등은 어떨까.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충고하지 않아도 참견하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신경 쓰고 개입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애쓰지 말자. 그리고 하고 싶은 목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을 줄이자. 비닐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과도하게 섭취하는 음식을 줄이고, 불필요한 물 사용을 줄이자. 습관적으로 하는 욕을 줄이고, 타인을 공격하거나 혐오하는 일을 줄이고, 다양한 이유로 차별하는 언어와 행위를 줄이자. 지금 우리는 충분히 누리고 있고, 너무 많은 것들을 갖고 있고,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조금씩만 줄이자./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1-30 권경우

[춘추칼럼]남측은 독자성을 강화하고 북측은 경직성을 탈피해야 한다

북한 '통미봉남' 전략 정세 반전 효과 미미올해 자력갱생·전략무기 '정면돌파전' 내놔文대통령, 신중 대응·선순환구조 발전 강조北 국제사회 일원화 남북관계 뒷받침 필수얼마 전 국내외 학자들과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학자들의 최고 관심사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과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느냐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2019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러한 북한의 핵폐기 의사를 전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핵 폐기의 순서, 방식 등 구체적인 협상에 있어서는 북미 양국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디테일의 악마는 존재했고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나타났다. 지난해 북한은 각종 미사일 발사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실무협상을 거부하면서 미국의 결단을 압박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은 없었다.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보려던 북한은 지난해 완전히 '통미봉남'으로 돌아섰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갖는 데 있어 한미관계를 벌리고 우리를 초조하게 하면서 미국과의 담판에 올인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를 결산하고 올해를 전망해 보건대 북한의 전략은 그다지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반전시키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연말 시한을 설정했지만 미국의 유연한 조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남북관계 역시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북한이 내놓은 것이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은 제재해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제재가 계속되더라도 버티는 자력갱생식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방력은 계속 강화하여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것도 지난 당 전원회의 결과에 나타난 북한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반응은 없지만 '선미후남'의 기조는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이 김계관 담화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이다.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포기 불가론과 남북관계 단절, 대북정책의 실패로 연결시키려 한다. 물론 올 한해도 매우 불투명하고 유동적인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오랜 북한의 협상전략이나 최근 일련의 행보로 볼 때 북미대화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우선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를 우선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연말연시 레드라인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고 북미대화를 중단하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고 북한이 즉각 반응을 보인 것도 북미 정상 간의 신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통상 신년사를 통해 대남정책의 기조를 공표하던 것을 생략하고 정세변화를 관망하고 있다. 북한은 대남 선전매체를 통해 대남비난을 하고는 있으나 당국의 공식입장은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수준에 비하면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신년사와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차분한 정세판단과 신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남북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북미 간 교착국면을 해소하는 데 있어 우리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였다. 제재 국면이지만 남북 간 할 수 있는 협력을 전개하면 북미대화의 긍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역도 및 탁구 선수권 대회 초청, 올림픽 단일팀 구성,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의 국제 평화지대화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개별관광 등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독자적 영역의 협력 사업들을 제안하였다.문 대통령의 제안은 대부분 남북 간 이미 합의 사항이라는 점에서 의지만 있다면 이행이 어렵지 않다. 한미공조를 저해하거나 대북제재에 정면 위반되는 것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북 간 합의에 의해 독자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분위기를 만들고 영역을 넓혀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마치 제재나 한미관계를 훼손하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님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호응이 중요하다. 경직성을 탈피하여 우리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북한이 북미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정상국가로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남북관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20-01-16 양무진

[춘추칼럼]빨라도 너무 빠르다

예전 궁핍할땐 너그럽고 과격하지 않았다고속도로 정상속도 주행이 신고감 이라니무조건 재촉보다는 자신을 살필 필요 있어인생도 조절하면 보이지않던 것이 보인다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속도 제일주의, 조급증이다. 도무지 진득하지 못하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참지를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특히 남의 일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그리고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 우리가 예전에도 그랬을까? 내가 살기 이전 세상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어려서 보아온 세상은 조금은 여유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타인에게도 좀 더 너그러웠으며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렇게 조급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우선 자동차가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번 서울서 저녁 행사를 마치고 후배 시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가한 적이 있다. 마침 밤이었고 그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라서 한껏 속도를 낮추어 한참을 달렸다. 많은 차들이 비껴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을 때 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후배 시인을 불러세우는 거였다.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해서 왔습니다. 혹시 약주를 잡수셨습니까?" 그러더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가 술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다시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신 건 아닙니까?" 후배 시인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경찰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느 만큼은 속도를 내어 달려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를 합니다."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론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것 같던데 그것이 신고의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자동차가 웬만큼 달려서는 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갑갑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그건 마찬가지다.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좋은 기계인가. 그런데도 컴퓨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빠른 것이 될 것인가. 이는 속도 불감증 수준이다. 일 처리 하나하나가 그렇고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대응방식이 모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빨리만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속도를 아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나 빨리 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속도가 조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의 방책이 나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감을 느끼고 불만을 말한다. 심한 경우는 화가 나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속도감에 있지 않나 싶다.'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이것은 또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만 낸다면 망하는 길이 빠를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나태주 시인나태주 시인

2020-01-09 나태주

[춘추칼럼]"때는 와요"

절망속 내일을 꿈꾸고 노래하는 것이 인간역사적 인물의 삶을 보면 '기다림의 연속'일상속 목표를 향해 타인과 협력하는 태도비난·저주 내려놓고 '좋은 언어'로 채우길새로운 해가 밝았다. 하루하루가 항상 새로운 날이지만, 해가 바뀌는 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인류가 '시간'과 함께해온 까닭이다. 이렇게 새로운 해가 되면 사람들은 결심을 하거나 소망을 품는다. 결심이든 소망이든 결론은 모두 같은 지점을 향한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변화이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그러한 변화를 일굴 수 없을 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의 영역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새해가 되었는데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라면, 절망하는 수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간은 꿈을 꾸고, 노래하고,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다림은 포기나 판단중지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직면을 뜻하며 나아가 내일을 모색하는 일이다. 현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강한 비바람으로 흔들거나 적신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기다림은 단단해지는 일이다. 딱딱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함은 두껍고 튼튼한 껍데기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기다림만이 단단함을 만들어낸다.기다림은 태도의 문제이다. 단순히 결심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소망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다림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과 맞닿아 있다. 태도는 그 일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결국 개인은 어떤 목표에 한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살아가고, 어느 순간 목표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의 변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서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자칫 태도를 예의나 싸가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타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태도는 존중이자 배려이다. 어떤 태도를 갖겠다, 혹은 유지하겠다는 선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며, 동시에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으로서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 다른 가치 등을 무시하지 않는 자세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태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거부하는 자세를 포함한다. 모든 폭력은 위계적이며, 어느 한 쪽의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이와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태도는 오히려 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타나며, 나와 너가 만나는 그 사이와 경계에서 드러난다.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소망을 품고 때를 기다린다. 자신의 때, 공동체의 때, 인류의 때를 생각하고 기다린다. 때는 올 것인가. 지난해 50주기를 맞은 신동엽 시인은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좋은 언어'라는 시에서 "때는 와요"라고 말한다. "외치지 마세요/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버려요.//조용히/될수록 당신의 자리를/아래로 낮추세요.//그리고 기다려보세요./모여들 와도//하거든 바닥에서부터/가슴으로 머리로/속속들이 굽어돌아 적셔보세요.//하잘것없는 일로 지난날/언어들을 고되게/부려만 먹었군요.//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허지만/그때까진/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채워야 해요."시인은 '때는 온다'거나 '때는 올 것이다'라는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때는 와요'라고 슬며시 말을 내려놓는다. 외치지 말고, 자리를 낮추고, 기다리자고 말한다. 심지어 '그때까진 이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자'고 한다. '때는 와요'라는 속삭임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이다. 비난과 저주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고 가장 낮은 곳에서 기다리고 단단해져야 한다. 나와 너,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한 해를 소망한다. "여러분, 때는 와요."/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20-01-02 권경우

[춘추칼럼]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정부 부동산대책 反시장적 기본권 침해 소지여론조사 긍정 27% 불과… 국민 평가 냉정교육 공정성 강화 지시 '행정 독재' 경고도헌법정신·법절차 준수 민생·도덕성 회복을2019년 기해년 한 해를 보내면서 현 정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헌법정신과 법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을 전면 금지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은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의 기본정신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충분한 상환 능력이 있는데 고가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 없이 수요만 잡겠다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 더구나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로 갑자기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촉발된 교육 공정성 강화에 대한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는 지난 11월 7일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관련된 사립학교 법인들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끝내 폐지를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국회 논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시행령을 하나 바꿔 서둘러 추진한다는 것은 '행정 독재'나 다름없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중립성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연구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현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국가교육회의가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검찰이 조 전 장관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을 압박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명백한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한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 19일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경제는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실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선 "한국 경제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1%대 경제 성장률, 13개월째 수출 감소세, 40대와 제조업 고용률 추락 등 경제가 침체된 상황을 두고 '궤도 이탈'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떠한가?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은 안정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군사 작전을 펼치듯 규제 일변도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리서치·KBS의 여론조사(2019년 12월 5~6일) 결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27%에 불과했다. 경제 현실을 놓고 대통령과 실무 부처가 따로 노는데 어떻게 국민들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믿겠는가? 여러 사례들을 통해 확인되었듯이 문재인 정부는 유독 올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과도 같은 '법치와 제도적 자제'를 무시한 채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절차를 가볍게 여기며 중요 현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과 자유의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심지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도덕적으로 파탄이 난 정부라는 비난마저 대두되고 있다. 한국리서치의 12월 정기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3명 정도(36%)만이 우리나라 국정방향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임기 중반을 넘긴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헌법 정신과 법 절차를 준수하고 실력을 쌓아 민생 경제를 살리고 정직하게 국정에 임하고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2-26 김형준

[춘추칼럼]북한의 신년사 예상과 우리의 대응전략

美엔 "적대정책 철회·제재해제땐 조치철회"남측엔 "美 눈치보면 더이상 대화·교류없다"한반도평화 프로세스 원칙적 입장견지 중요中·러·日과 1.5트랙수준 협력분야 개발 시급북한의 신년사는 한 해의 정책방향이 담겨있다. 2020년 신년사의 대미 부분에 있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및 미국에게 지난 연말까지 시한을 주었으나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선제조치를 자신의 과실로서만 활용했다. 부득불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천명한다. 우리가 선의로서 취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유예를 해제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정신을 차리고 적대시정책 철회와 제재 해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면 우리의 조치들은 다시 철회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기간을 설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갈 길을 갈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대남 부분에 있어, "2019년 남한이 대미굴종적 태도를 일관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격화되었다. 금강산 및 개성공단 재개 등에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눈치나 보면서 기회를 저버렸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이 미진한 것은 전적으로 남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북미관계 개선은 남한의 도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북미 정상 간 신뢰에 따른 것이며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앞으로 남한 대통령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과 대화·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이 계속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외세의존적으로 나아가고 환경과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나 교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9·19 군사분야합의서의 무효화와 함께 남북관계는 파탄날 것이다. 남한 보수 세력의 비난의 도가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넘어가고 있다. 반북 분위기를 계속 조성한다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남한 내 평화세력과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의 내용이 예상된다. 대외 부분에 있어 "중국과 쿠바, 러시아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며 제국주의 미국이 펼치는 압살정책의 부당함을 계속 전파해 나갈 것이다"가 주요 내용으로 담길 듯하다.2020년도 한반도 정세는 엄중함을 예고한다. 엄중할수록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원칙적 입장 견지가 중요하다. 북한의 인위적인 긴장 고조와 통미봉남, 총선을 앞둔 국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원칙에 흔들림 없이 버터 나가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적으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다. 정권 담당자가 성과에 서두르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한 북핵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완전히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속적인 관여를 해야 만이 나중에 북미대화 구도가 정립되더라도 '코리아 패싱'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어떤 비핵화 상응조치를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요구된다.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북관계 특수성에 따른 우리의 독자성 확보도 중요하다. 당장 내년초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관광·인프라 구축·사회문화·국제경기·대북지원 등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들에 대한 인내심 있는 관여 노력이 요구된다. 반드시 9·19 군사분야 합의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무효화되면 남북관계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접경지역의 긴장관계에 적절히 대응하고 불필요하게 쟁점화하거나 악재로 작용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사업은 지속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1.5 트랙 수준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분야 개발이 시급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 등 정상 차원에서 한중 공조를 해나가는 동시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진영 구도로 가지 않도록 균형외교를 펼쳐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모두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노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위기 극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12-19 양무진

[춘추칼럼]진정한 힐링

지난한 삶에 즐거움 준다면 그것이 '힐링'그렇지 못하는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라가난과 노동으로 휴식이 불가능 하기 때문차라리 책과 노는게 마음만은 부자가 된다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도대체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시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 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12-12 김종광

[춘추칼럼]무엇을 남길 것인가

한달 남은 올해… 조직은 다양한 방식 평가수익은 수입·지출 비교 객관적 자료 추출성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간단하지 않아기관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좌우열두 달 기준으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맘 때가 되면 대부분 한 해를 정리하거나 마무리한다. 개인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를 살필 것이다. 조직도 그 성격에 따라 수익을 따져 평가하거나 성과라는 이름으로 평가를 진행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때 수익은 수입과 지출 항목의 비교를 통해 객관적 자료가 추출된다는 점에서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성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을 많이 한 사람과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인가. 이러한 기준은 조직이나 기관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그런 점에서 공공기관, 특히 수익을 주로 창출하지 않는 곳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기준에 따라 조직 운영과 사업 방식 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공공의 문화 행사나 프로그램은 가능하면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행사를 떠올리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 결론은 유명 연예인을 불러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지역축제에 연예인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주민 참여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행사와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한 활동이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중요한 성과가 측정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실제로 정책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과거 '행사'나 '프로그램' 중심에서 '일상' 혹은 '활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광역단체의 문화정책이 생활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처럼 주민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문화/예술을 창조하거나 생산하는 주체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주민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종의 플랫폼 조성이다. 공공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이 주민들이 이용할 때 불편하거나 여러 제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과 규정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주민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거나 기획하는 자산화 단계가 될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단순히 관람객이나 소비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생활예술인, 동네예술가, 마을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적어도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성과'로 경쟁해야 할 것은 사람과 경험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닿아 있으며 같이 움직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했는가 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그 사람의 경험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 지역의 문화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도시의 공간을 바꾸는 것은 몇 년 만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도시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이 쌓여야 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윤주 작가의 '나를 견디는 시간'(행성B, 2019)을 읽다가 오랜만에 만난 구절이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칼 세이건, '코스모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2019-12-05 권경우

[춘추칼럼]무엇을 위한 선거법 개정인가?

기존 제도서 비례성 강화 '준연동형 …대표제'의석배분 복잡 유권자 선택권 훼손등 '한계'전세계 대통령제 나라서 채택한 경우 없어'신뢰회복' 같은 목표 위한 개혁 필요하다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 협의체를 가동해 처리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에서 극적으로 합의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사회의 제도는 규칙과 절차의 집합으로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이 전개되는 틀을 제공한다. 한편,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주요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각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 선거제도가 소수 득표를 한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면 민의를 의정에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해 대의 민주주의가 퇴보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거대 정당들은 자신들이 얻은 득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에서 25.5% 득표했지만 총 의석수에서 41%(123석)를 얻었다. 무려 15.5%의 보너스율(의석률-득표율)을 획득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26.7%의 정당 득표를 했지만 실제 의석률은 12.7%(38석)에 불과했다.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기존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의석 배분 방식이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의 투표 선택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 유권자는 자신이 던진 표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알아야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있다. 가령, 기존 선거제도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 사표를 생각해 다른 정당 후보를 찍고, 정당 투표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른바 '전략적 분리 투표'가 가능하다. 2016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의 12.6%가 정당투표에서는 국민의 당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법에는 "비례대표국회의원 의석은 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에서 해당 정당의 지역구국회의원 당선인 수를 뺀 후, 그 수의 50%를 먼저 배분하고, 잔여의석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를 배분한 다음 6개 권역별로 최종 의석을 배분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배분 방식을 이해하고 투표할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비례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더구나 지역주의 타파 명분으로 지역구(225석)의 3분의 1에 불과한 비례대표 75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한다는 것도 난센스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수가 298명으로 동일하다. 일본에서는 지역구 289석, 비례구 176석, 뉴질랜드에서는 지역구 63석, 비례대표 50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적정 규모의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간과한 채 적은 비례대표 숫자로 비례성 강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다당제가 부상되고,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들 간에 '권력 나눠먹기식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어쩌면 정치 갈등과 정치 불안정이 일상화될 개연성이 있다. 미국 정치에서 보듯이, 다당제는 선이고 양당제는 악이란 명제는 없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제도를 공수처법과 연계해 처리하는 식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합의 처리돼야 한다. 득표-의석 간 비례성 증대도 중요하지만 정치 제도 간의 조화성,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정치의 제도화, 그리고 정치 신뢰 회복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11-28 김형준

[춘추칼럼]주한미군 주둔은 특혜가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지원 29년동안 '10배' 증가美, 셀프 책정 내년 주둔비 44억6천만달러'부당한 요구' 한미간 특별협정 스스로 위배패권전략 전초기지화 의도 동맹가치 훼손지난 20일 한미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국가간 협상은 이해관계의 정도와 협상의지에 따라 합의되기도 하고 결렬되기도 한다. 동맹은 상호존중의 자세와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일반 국가관계와 다르다. 미국은 다음 협상 날짜도 잡지 않고 협상장을 나가버렸다. 냉전시대 남북협상에서 북한의 행동에서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기에 스스로 동맹의 가치를 손상시켰다.방위비 분담금의 개념은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말한다. 법적 근거는 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 및 이행약정에 있다. 5조에는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구역(토지)·통행권을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항목은 인건비·군사건설비·군수지원비 등이 핵심이다. 인건비는 주한미군사령부가 고용한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비용이다. 100% 현금 지원이다. 군사건설비는 막사·훈련장·환경시설 등 비군사시설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88%의 현물과 12%의 현금 지원이다. 한국이 계약권을 가진다. 군수지원비는 탄약저장·정비·수송·장비 물자·시설 유지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100% 현물이다. 미국이 계약권을 보유하고 한국은 승인권을 가진다.방위비 분담금 지원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는 미국이 대부분 부담했다. 1991년 이후부터는 한국의 경제력 신장으로 지원 규모가 점점 증가되어 왔다. 1991년 1천73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1조389억원을 지원했다. 29년 동안 지원 규모가 10배 증가했다. 지원 비용 결정은 전년도 총액에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하고 인상률 상한선은 4%를 적용했다. 2020년도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은 50억달러이다. 미국이 스스로 책정한 2020년도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44억6천만달러이다. 44억6천만달러 속에는 주한미군 인건비 21억 달러, 운영유지비 22억달러, 가족숙소 관련 비용 1억4천만달러, 기타 군사건설비 등으로 구분돼 있다. 2020년도 분담금 요구액이 주둔경비 책정액을 능가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비용을 한국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는 주한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경비 일부를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국의 요구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한미간 특별협정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인건비까지 한국이 부담한다면 주한미군이 한국의 용병이 되어야 한다.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는 인도·태평양 전략 등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수행 비용과 연계되어 있다. 한미연합연습에 참가하는 해외 미군, 항모전단 등 전략자산의 전개, 호르무즈 해협과 남중국해 작전 등의 비용 요구에 잘 나타난다.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의 작전지원 신설 항목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 실행 비용 요구는 한국 방어에 한정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넘어선다. 한국을 패권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은 동맹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국은 충분한 수준의 안보분담을 해 왔다.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카투사 지원·세금감면·공공요금 감면 등 상당한 수준의 직·간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평택·오산 등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한 사업비 108억 달러를 충당했다. 주한미군은 세계 최대 규모와 최적의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군은 월남전·이라크전·아프간전 등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활동에 모두 동참해 왔고 최근까지 12개국에서 파병활동을 하고 있다.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 기여도, 한국의 재정부담 능력, 한반도 안보상황,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평성에 토대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책정돼야 한다. 무임승차론이나 주한미군 철수론 같은 낡은 주장은 미국 스스로 논리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주한미군 주둔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한 특혜가 아님을 미국만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11-21 양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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