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동등한 기회와 조건

이무기가 용 되려면 수많은 시련 극복 필요그러나 용 집안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지원우리세대 '보이지않는 카스트제도' 더 강화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균등한 여건'스롱 피아비. 부쩍 매스컴을 타서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3쿠션 당구를 제일 잘 치는 여성 중 한 분이다. 현재 한국랭킹 1위, 세계랭킹 3위다. 그분이 캄보디아에 계속 살았다면 그분은 당구에 '당'자도 모르면서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당구 인프라가 거의 없는 나라였다. 그분이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한국인 남편이 그녀를 당구장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당구장에 갔을 때 곧바로 그렇게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남편이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분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성과를 보인 뒤에도 남편이 계속 격려하고 응원하고 최대한 돕지 않았다면, 그분의 성공신화는 불가능했을 테다. 이런 경우가 희박하기에 뉴스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이다.EBS시사교양다큐 '극한직업'. 방송사의 설명에 따르면,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근로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고 꼭 '작업자'라고 하는데, 어떤 직업이 되었든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피디와 작업자의 대화가 있다."힘들지 않으세요?" (힘든 사람한테 힘드냐는 질문을 하는 게 왜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아무튼) "그럼, 힘들지 안 힘들어. 안 아픈 데가 없지." "이렇게 힘든데 왜 하세요?" "먹고 살려면 해야지." 혹은 "처자식(가족) 먹여 살리려면 힘들어도 참고 해야지."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세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그 육체적으로 힘들고 성취감을 갖기 어렵고(단순반복이고)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몹시 심하여서 견디기 어려운 추위' 같은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저분들의 노동 덕분에 내가 편안히 산다는 생각은 들어도) 숭고함과 가치는 느끼기 힘들었다.그런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도 '스롱 피아비' 같은 분이 수두룩하게 있었을 테다. 그분에게도 어떤 분야에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과 조건이 주어졌다면 그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며 '숭고한 의지'와 '직업정신의 가치'를 누리는 삶을 살았을 테다.인도 카스트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웃는 분이 많은 데, 과연 우리나라가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부터만 살펴보아도 대대로 금수저고, 대대로 스카이학벌이고, 대대로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고, 대대로 건물주고, 대대로 극한직업에 종사한다. 물론 무수한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보다 '용 집안에서 난 용'이 훨씬 많았다.개천에서 난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무수한 시련을 극복하며 기회를 쟁취하여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극한의 노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 집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최대한의 기회와 조건을 제공한다. 행운보다 더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극한직업 종사자들은 '먹고 사는' '먹여 살리는' 수준이니 자식 세대에게 충분한 기회와 조건을 제공할 수 없다. 경쟁에서 밀린 극한직업 종사자들의 자식세대는 '스롱 피아비' 같은 인생역전의 기회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역시 극한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테다. 대대로 부자유전사회인 것이다. 대놓고 세습하는 카스트제도랑, '눈 가리고 아웅' 세습되는 우리나라 사회가 뭐가 다른가.우리 40~50대 아저씨·아줌마들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세대라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더욱 더 비민주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주화운동세대가 진정 꿈꾸었던 것은 대개의 청년이 부모의 재력·학벌·권력·직업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와 조건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숭고함과 가치를 만끽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 세대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잖은가.지금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동등한 기회와 조건'이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1-31 김종광

[춘추칼럼]당신의 정원은 어디입니까?

올해는 수많은 현안 방향 가름하는 시기될듯국가·지역사회 책임지는 '정원사' 역할 중요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돌 던지지 말고팔 걷어붙이고 돌멩이·잡초 솎아내야 한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원은 정원사가 씨앗을 뭉텅뭉텅 뿌려놔 싹이 나온 곳만 뒤엉킨 채 열매를 맺었고 뿌려지지 않은 곳엔 새싹조차 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원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돋아난 열매조차 시들하여 그것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고 노력할 의지가 없는 정원사는 '올해 농사가 제대로 안되면 다음에 다시 하지 뭐'라는 막연하고도 안이한 생각으로 임하기에 정원은 제대로 가꿔지지 않는다."'민주주의의 정원'(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김문주 옮김, 2017,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우리의 '정원'은 어떤 상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의 풍경을 보노라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정원의 곳곳이 심각하게 망가지거나 훼손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2019년 기해년은 '우리의 정원'이 더 황폐하게 될지, 아니면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하는 기반을 다질 것인지 흐름이 드러나는 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넘어 보수정부와 개혁정부의 중심이동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와 현안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고령화, 젠더·페미니즘, 입시교육, 부동산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고 있는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 나와 관련된 문제만을 인식하거나 문제 삼는 데 급급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로 개별적인 수준이 아니라 쓰나미처럼 전면적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결국 나의 문제가 될 것이며, 내 가족의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 이웃의 문제가 될 것이다. 정원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는 '정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원사는 국가와 지역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 등이 그들일 것이고, 국회의원과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등도 해당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상당 부분 결정하고 책임지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동시에 행정의 영역에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의 영역이며 자율의 영역이다. 개인 혹은 커뮤니티의 일상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시민정치, 마을활동, 사회적경제, 독서, 교육운동, 인문활동, 문화, 예술 등 그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그들이 바로 또 다른 의미의 '정원사'가 되는 것이다."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날씨와 환경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맞춰간다. 아름다운 정원은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훌륭한 정원사는 흙을 갈아엎고 여러 식물을 바꿔가며 심는다."우리의 정원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적 관점과 더불어 구체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날 정원사는 '날씨'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건강한 수많은 정원사가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건강한 개인이 많아져야 한다. 건강한 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정원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이해하는 역량을 갖추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신체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이제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나의 정원은 어디인가?' 그 정원을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정원사만 욕하고 돌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정원'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팔을 걷고 신발을 벗고 그 정원에 들어가서 잡초를 제거하고 돌멩이를 솎아내는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사회는 당신이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1-24 권경우

[춘추칼럼]보수의 재건과 통합은 가능한가?

탄핵 당한 박前대통령 무조건 감싸면 안돼궤멸 책임 묻고 비판할 수 있는 용기 필요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 화합 유도분열의 씨앗 키우는 계파청산 반드시 실천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황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며 "자유한국당이 국민에게 시원한 답을 드릴 때"라고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메시지는 울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황교안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쾌도난마식으로 밝히지 못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국정 농단 책임에 대해 소신 있는 고뇌에 찬 답변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보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국민 통합이라 생각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정치 신인인 황 전 총리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적기에 말할 수 있어야 정치인의 메시지는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황 전 총리의 첫 행보는 '반기문 2'를 연상할 정도로 준비가 약했다. 황 전 총리의 입당은 한국당 당권 경쟁의 판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향후 한국 보수의 미래와 관련해 몇 가지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첫째, 보수 재건의 가능성 여부다. 한국 보수 세력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작년 지방선거 직후 진보 언론매체의 한 기자는 "보수는 비겁하고 교만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참패했다"고 분석했다. 단언컨대, 보수는 용기 있게 참회하고 겸손하며 실력을 쌓아야 재건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국민 70%, 국회의원 78.3%(234명), 헌법 재판관 전원이 합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인정하고 참회해야 한다.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으로 치욕적인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을 무조건 감싸서는 안 된다. 보수 궤멸의 책임을 물어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투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보수 우파 정당들은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야 재기한다. 대한민국 헌법 81조 ②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면 황 전 총리는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고 볼 수 있다. 황 전 총리는 이를 정치적 업보로 삼아 '도로 친박당' '박근혜 시즌2'로 회귀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보수가 산다. 둘째, 보수 통합의 문제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국민들은 자유, 성장, 경쟁, 효율, 안보와 같은 보수의 가치 못지않게 평등, 분배, 투명, 분권, 평화 등 진보의 가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보수는 진보의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지 말고 보수의 시각에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 진보 우파'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반문 연대'는 보수통합의 가치가 아니다. 전략에 불과하다. 통합은 전략이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통합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통합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해 가는 것이다. 통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력 있는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계파 청산 여부다. 김무성 전 대표는 황 전 총리의 전당대회 참여를 반대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전당대회에서) 대선 전초전을 앞당겨 치를 경우 그 결과는 또 분열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국당 전당대회가 친박과 비박 간에 골육상쟁의 내전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라도 홍준표, 김무성, 오세훈, 황교안, 김태호 등 모든 후보들이 출마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리한 새 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 국민은 아직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실패한 보수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민심은 늘 변화무쌍하고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1-17 김형준

[춘추칼럼]북중정상회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네번째 방중… 북미회담 임박 암시밀착관계 포석등 향후 전략들 가늠 가능해두번째 만남에 '한반도 비핵화' 명운 달려한미간 조율 중요… 입장 전달할 수 있어야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지난해에 3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올해 첫 방문이면서 총 4번째 방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및 북미협상을 전후하여 중국을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중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3월이었다. 5월의 2차 방중에서는 6·12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회담 전략을 논의하였다. 6·12 센토사 회담 직후 단행된 3차 방중에서는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연속 선상에서 현재의 네번째 방중을 통해 향후 북한의 전략을 가늠해 볼 수 있다.첫째, 올해 벽두부터 단행된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음을 암시한다. 지난해 북미고위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이렇다 할 북미 간 실무협상이 전개되지 못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완화를 유보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상응조치를 요구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신년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이러한 교착국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2차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도 긍정적으로 화답하였다. 며칠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간에 정상회담을 위한 장소문제를 계속 협의하고 있으며 짧은 기간 안에 발표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북미 간 일정부분에서 조율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둘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한은 핵동결을 토대로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를 최우선 목표로 둘 것이다. 한편 신년사에서 제안한 바 있는 평화체제 다자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와 다자를 병행할 경우 체제보장을 위한 안전판을 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짜나갈 수 있다. 북한이 상응조치로서 요구해 왔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참여를 공식화할 수 있다.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부침을 느껴왔던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적절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번 방중 수행원으로 김영철, 리수용, 리용호 등 북미 협상팀이 총출동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로드맵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셋째, 지난해 3차례의 중국 방문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배려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번 북중정상회담은 중국과의 밀착관계를 더욱 높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중 간 무역협상을 앞둔 틈새의 시점에 방중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또한 미중 간 무역협상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협상 전략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국 측에 당부를 요청할 필요도 있다. 올해는 북중수교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김 위원장은 많은 문제들을 중국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북한은 이번 중국과의 협의 이후 바로 북미정상회담 준비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도중에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나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기대하고 있으나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 전에 열릴지 후에 열릴지 불투명하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다. 만약 북미회담 전에 열릴 경우 북미정상회담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이후에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약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중재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면 지난해 5월 판문점 2차 남북정상회담과 같이 비핵화에 한정하여 약식으로 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이번 북중협의가 북미정상회담에 동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영철 통전부장의 방미나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여타 고위급·실무급회담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정말 중요하다. 비핵화 협상이 계속되느냐 지지부진하느냐의 분수령이 된다. 한반도 비핵화의 명운이 달려있다. 우리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협상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마지막까지 한미 간 조율이 중요하다. 특사 방북 등을 통해 북한과도 소통채널을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1-10 양무진

[춘추칼럼]투플러스원 엄마들

21세기 한국 주부 상당수는 '2+1 노동' 중경단녀 환영 3D업체서 2달 상처·1달 치유'학원비+알파' 벌려고 다른곳 찾을 수밖에보다 사람다운 일터 개선 '법부터 제대로!'어떤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집사람 일하니?" "두어 달 일하고 한 달 쉬어요." "투플러스원(2+1)이구나. 다 그래." 연전엔 아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21세기 한국 주부 상당수가 '2+1노동' 중이었다. 왜 끈덕지게 일을 못해? 의아한 이도 있겠지만, 엄마들은 '2+1'일 수밖에 없었다.엄마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싶기가 무섭게 아이 과외비가 호환마마처럼 다가온다. 엄마는 학원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일자리를 구한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의 세월 동안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무슨 '맥'(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미혼 때의 경력을 살리는, 재능을 살리고 보람도 얻을 수 있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인……, 암튼 마음에 드는, 흡족한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런데 언제든지 주부들을 환영하는 일들이 있다. "구인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하자마자 어서 와보시라고 하는 곳들. 형식상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지만 거의 일단 채용된다. 바로 3D업체들이다. 'Dirty'하고 'Difficult'하고 'Dangerous'한 일을 하는 곳. 콜센터, 청소, 간병, 식당, 캐셔, 판매, 노가다, 도우미, 공장…….이 일들은 깨끗하다 할 수 없고 어렵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도 아주 적게 받는다. 갖은 까닭으로 덜 주려고 한다. 고용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줄 수밖에 없기는 하다! 고용주는 정부법 탓을 하는데 확실히 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돈보다 더 문제는 이런 일들의 속성상, 무수히 받는 상처다. 육체적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 고용주에게만 받는 게 아니라 소위 중간관리자한테도 받고 동료끼리도 주고받는다. 물론 가장 큰 상처를 주시는 분들은 '고객님'들이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지니 사흘 넘기기 어렵고, 삼 주 버티기가 어렵고, 석 달 넘기기가 벅차다. 3D노동은 본디 (한 곳에서 오래 일하기가 힘들어) 잦은 퇴직과 이직이 당연지사라는 얘기다.다시 직장을 구하기까지 한 달 가량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두어 달 일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상당히 고장 났기에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그 고생을 했으니 다음 일할 곳을 찾을 때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래 쉬지도 못한다. 엄마가 버는 돈은 '학원비+알파(대출이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엄마는 쉬어도 아이가 학원을 쉴 수는 없기 때문에, '2'달 일한 후, 쉰다기 보다 전전긍긍하는 기간이 길어야 '1'달인 것이다.대우가 웬만하고 사람대접해주고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의 기쁨을 주는 업체라면 당연히 그만두거나 옮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엄마들이 '2+1'이라는 것은 가는 곳마다 대우가 웬만하지 않고 보람을 얻기는커녕 상처투성이가 된다는 증거다. 물론 한 번 들어간 곳에서 오랜 기간 일하신 분들도 숱하게 계시다. 직장이 괜찮은 곳인 경우라면 그런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내심이 뛰어난 경우라면 그분들의 인내심 때문에 투플러스원 엄마들이 모욕 받아서는 안 된다. 참는 게 능사만은 아니다. 못 참고 나올 수도 있다! 사실 못 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뤄지는 게 개선이다.투플러스원 아내를 둔 남편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돈은 남자만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혹은 마초적 사고를 가진 이뿐만 아니라 당연히 같이 벌어야지 생각하는 이라도 아내의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다. 투플러스원 엄마를 둔 자식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테다. 엄마 노동을 긍휼히 여겨 공부를 열심히 해주면 좋겠는데 성장하는 마음의 복잡함을 어찌 짐작하랴. 하지만 자식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자기들이 동수저급 흙수저급 경쟁이라도 하려면 엄마가 최소 투플러스원 해야 한다는 것을.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의 엄마들이, 3D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보다 상처를 덜 받으려면, 3D업계가 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개선되어야 한다. 법부터 제대로! 국회의원들이 3D노동을 해봐야 정신 차린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1-03 김종광

[춘추칼럼]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편의점·대형마트 입점 '소멸되는 동네슈퍼'도시재생으로 새롭게 꾸며지는 '마을 공간'시간 흐름에 쇠락하는 것들 그저 바라볼뿐2019년엔 남긴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 기대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즈음이 되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밀려온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그렇게 수 천 년을 반복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사라지는 것들은 아쉽고 슬프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은 벅차고 기쁘다. 우리는 매일 맞이하는 밤과 낮처럼 그 둘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그 둘의 균형이 흔들릴 때이다.서울시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근처 골목에는 오래된 동네슈퍼가 있다. 정확하게는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물건을 팔지 않고 낡은 간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간판에는 하얀색 페인트로 쓴 '봉다리슈퍼'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원룸이 많은 대학가 주변이라 장사가 될 법도 하지만, 10여 년 전 바로 옆에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이 작은 가게는 판매 물품을 조금씩 줄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지막 들렀을 때 팔고 있는 품목으로는 생수가 유일했다. '봉다리슈퍼'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낡은 간판으로 마지막 호흡을 연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도시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류 문명의 힘으로 세운 도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다시 새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씩 다듬고 고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넘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순간이고, 새롭게 조성된 매끄러운 편의공간에 금방 익숙해지고 만다. 자본의 특징은 '탐식'이다. 서울의 사례로만 보자면, 홍대에서 삼청동으로, 가로수길로, 서촌으로, 성수동으로,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현재로서는 이 포식자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이 '공공'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도 공공의 이름으로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공이나 개인의 소유 개념을 넘어 '공유'(commons) 개념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확장이다. 단계적으로 '공공의 공간'을 '공유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을 혹은 동네라는 이름의 지역에서 주민과 예술가, 청년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의 경험을 막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편리하고 기분 좋게 드나드는 공간일수록 자본이나 공공 등 소위 '주인'의 행세가 가장 적은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가을 한 연출가와의 대화에서 "연극인들(예술가들)은 공간을 잃는 일에 익숙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는 공공의 공간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공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일종의 체념이자 현실에 대한 인정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공간을 잃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잃는 일'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할 것입니다.'라는 태도가 있었다. 그 태도는 단순한 결심이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낸 삶의 표현이었다. 시인 고정희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중)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쇠락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그렇지만, 시인이 노래하듯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그 여백에서 새로운 탄생을 기대한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는 파괴와 죽음이 아니라 창조와 생명이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2-27 권경우

[춘추칼럼]동상이몽의 선거제도 개혁논란 해법은?

소수 野 3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연대양당대립 벗어나 다당제·협치 제도화 주장초과의석땐 비례·대표성 훼손 불편한 진실권력구조 개편 맞춰 설계 심도있게 논의를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격돌하고 있다. 소수 야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생존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야3당은 이 제도의 최대 장점으로 사표(死票)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며 극단적 양당 대립정치에서 벗어나 다당제와 협치를 제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제도는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그런데 선거제도가 왜곡되어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보다 훨씬 유리하고 심각한 표의 비등가성이 노정되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따라서 심각한 불균형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은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를 둘러싼 각 당의 입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년 1월까지 선거구제 개편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향후 선거제 논의가 정략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이며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가령 이 제도가 도입되면 초과 의석이 발생되어 의원 정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정당 득표율로 배분 의석을 정한 후, 배분의석 안에서 지역구 의석을 먼저 채우고 잔여 의석은 비례대표 의석으로 배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지난 2017년 9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 실시된 연방 하원 선거에서 무려 111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했다. 2016년 총선 결과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41석, 새누리당은 영남에서 11석, 국민의 당은 호남에서 7석 등 59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은 비례대표를 단 한 석도 배분받지 못한다. 초과 의석이 발생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인 비례성과 대표성도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초과 의석 문제는 단순히 의원 정수를 늘리고 지역구와 비례구의 비율을 균등하게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독일 연방 하원은 잠정적으로 의원 정수가 총 598명이고, 지역구와 비례구 비율이 1대1이지만 엄청난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지역구 소선구제로 인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면 초과 의석은 피할 수 없다. 단언컨대 초과의석을 억제하기 위한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은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당위성만을 강조할 경우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국민들은 의원 밥그릇을 늘리는 의원 정수 확대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둘째, 권력구조 개편에 조응하는 선거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 제도는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다당제에 바탕을 둔 연립정부가 보편화된 나라에서 주로 사용된다. 물론 각국의 선거 제도는 그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국정 안정과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의 핵심 방안인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에 각각 부합되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셋째, 국회가 국민에게 약속한 기일 내에 선거제 합의를 하지 못하면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은 손을 떼야 한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중앙선관위에 외부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선거제도 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선거제도 방식, 의원정수,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 비율, 공천 방식 등을 도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2-20 김형준

[춘추칼럼]연내 답방 무산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

철도연결 착공식 준비·남북 교류 확대 등비핵화 협상 진전위해 기초다지기 지속돼야신년초 성사땐 내년 남북관계 훈풍 기대기싸움 말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 이끌어야김정은 위원장의 연내답방은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연내답방과 관련 진척사항이 없으며 서두르거나 재촉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 연말도 절반이 지나간 만큼 경호, 의전 등 물리적 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내에 답방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첫째, 비핵화 부문에서 아직 북미간 기싸움이 지속 중이다. 이러한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9·19 평양정상회담에서는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 상응조치에 따른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북미간 신뢰의 접점을 찾기 위한 우리의 중재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북한이 미국에 대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북미 고위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북미 실무자간의 접촉 움직임은 있으나 특별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교착국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필수다. 북한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 보다는 북미정상회담에 올인해야 할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더라도 비핵화와 관련된 합의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둘째,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현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국면이다. 올해 이미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사항에 합의하였다. 물론 그 합의사항들은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 남북 정상간 만남이기 때문에 새로운 비전과 사업들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북핵협상의 지연에 영향을 받고 있다. 남북이 새로운 합의를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고려한 듯하다.셋째, 준비기간의 부족이다. 준비기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관련되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어있다. 국민 60~70%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견해도 있다.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나 이용호 외무상 등 북한 고위층의 외부 출장도 변수로 작용한 듯하다.결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답방은 어렵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년 초에 반드시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와 자신감을 거듭 내비치고 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대화의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다행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내년도 신년사를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밝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하여 제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G20 계기 한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게 되면 자신의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한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우리를 통해 미국의 의사를 탐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한편 우리가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대비하여 남북관계의 토대를 닦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철도연결에 대비하여 착공식을 준비하는 것, 제 분야의 남북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같은 인도적 사안의 협의,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남북간 사회문화분야 교류도 지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개최되어야 한다. 신년 초에 개최된다면 내년도 남북관계의 훈풍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해 남북관계는 무수한 도전과 기회 속에서 비교적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3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두 정상간 신뢰의 기반이 쌓이고 이러한 신뢰의 바탕 아래 남북간 합의사항이 지켜지고 있다.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합의까지 이뤄낸 것도 이러한 신뢰에 기반한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우리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과거처럼 주저하거나 기싸움을 해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더 이상 이러한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년 초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하여 이러한 기회가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2-13 양무진

[춘추칼럼]소설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왜 읽어야 합니까?" 어느 수감자 물음에내 답보다 '故 최옥정 작가'의 유언이 명쾌"읽는 사람 많은 만큼 세상은 행복해지고타인이 언제나 마음 열고 인생을 보여줘…"서른다섯 살 때인가 교도소에 갔었다. 동행한 두 분은 단풍놀이라도 온 듯 여유로웠다. 대조적으로 나는 도살장 본 황소처럼 떨었다. "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저는 막 춥고 무섭고, 얼빠져 갖고 제정신이 아니네요." 내가 엄벙덤벙 주워섬기자, 환갑의 L이 물었다. "혹시 교도소에 처음 와보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L은 대견하다는 듯이 뇌었다. "너, 참 세상 편하게 살았구나. 참 착하게 살았어." 불혹지년의 J는 "난 고향에 온 것처럼 친숙한데!"라고 했다. J는 젊은 시절에 시국사범으로 옥살이를 했었다.가장 먼저 들른 무슨 '실'에서 주민등록증과 소지품을 꺼내놓고 대신 명찰을 받았다. 명찰에 '지도' 혹은 '선도'라고 씌어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그저 '방문'이라고 적혀있었는지도. 몇 개의 철문을 통과했다. 교도소장은 아니었지만, 교도소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과 차를 마셨다. 그는 좋은 일 하러 오셨다고, 치하해주었다.'글쓰기반' 담당 교도관은 미안해했다. "좀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는데, 신청자가 거의 없네요. 훌륭한 분들 모셔놓고 정말 민망하게 됐습니다. 대개 귀찮아하기는 합니다. 종교 하는 분들, 바른 생활이니 도덕 함양이니 정의 실천이니 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주 오거든요. 그분들이야 봉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만, 아이구야, 여기 사는 사람들 귀에는 다 지겨운 설교죠. 초코파이나 사탕이나 군것질거리라도 나눠준다고 하면 좀 신청자가 있을까. 그래도 이번 프로그램만큼은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쓰기 강좌는 진짜 처음이거든요. 시, 수필, 소설! 말만 들어도 황홀하네요. 글 쓰게 도와주고 좋은 책 얘기 들려주고 얼마나 좋아요. 똑같더라고요. 지원자가 여덟 명밖에 없어서 스무 살 갓 넘은 애들 여섯 우격다짐으로 끌어왔습니다. 너희들은 감옥이 대학이거니 생각하고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 너희들이 언제 문학을 배워보겠냐 하고 강제로 포함시켰습니다."나는 덜덜 떨며 무슨 '실'로 들어갔다. '글쓰기반'에 모인 수인들은 가슴에 숫자를 달고 있었다. 세 자리 혹은 네 자리. 수인들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여유로웠다. 표정으로만 따진다면, 내가 더 수인 같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수인님? 대놓고 '수인'이라고 호칭할 용기는 없었다. '아저씨?' 갓 스무 살에서 환갑 넘은 게 틀림없는 백발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포진한 사나이들을 '아저씨'로 퉁칠 수 있을까. 열 명은 파란색 옷, 네 명은 황색 옷이었다. '파란색옷님'과 '황색옷님'이라고 부를까."선생님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성의 없게 하자니 별 볼일 없는 놈으로 깐볼 것 같고, 공들여 하자니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잘난 체하는 놈으로 오해 받을 것 같았다. 적당히 하고픈데, '적당히'처럼 어려운 게 없었다. 나는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글쓰기가 이러니저러니, 독서가 이러쿵저러쿵 마구 주워섬겼다.수인 한 분이 불쑥 물었다. "근데요 소설 쓰시는 분이라니까 한번 물읍시다. 소설을 왜 읽어야 합니까?" 나는 문득 넋이 나가버렸다. 중3 때부터 소설이 쓰고 싶었고 문예창작학과씩이나 다녔고 좋다는 소설깨나 읽었고 심지어 '소설은 사람의 지식과 사상과 감정을 문자로 형상화하여, 사람 간의 이해와 소통을 가능케 하고, 사람의 소양 발전과 인식 확장과 감정 조율 등에 기여한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실 소설 따위를 왜 읽어야 하는지 자신 있게 알지 못했다.이제 왜 읽어야 하는지 안다. 왜 읽어야 하냐면, 내 말보다, 향년 54세로 올해 9월 이 세상을 떠난 고(故) 최옥정 소설가의 유언이 명쾌하다. "책 좀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나는 믿는다. 소설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내가 아닌 타인이 언제나 마음을 열고 인생을 보여주며 기다리고 있는 소설, 내년에는 많은 사람이 읽기를."/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12-06 김종광

[춘추칼럼]호미와 굴착기

수요자 욕구 늘며 지역문화재단 설립 증가시설운영아닌 예술매개 모든 영역 망라 역할지자체 역사·문화 자원 발굴·콘텐츠 생산…굴착기 아닌 호미 들고 동네 삶 속으로 향해야최근 지역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6개 광역문화재단을 포함해서 대략 100개의 문화재단이 있고,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설립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설립 근거를 갖게 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예술 영역에서 생산자와 공급자 중심의 예술이 아니라 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수요자 중심의 예술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노동 중심의 삶에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기초한 문화가 있는 삶에 대한 갈증도 한몫하고 있다.물론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은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공연장과 미술전시관, 문화센터 등의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문화재단이 만들어지더라도 새로운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지역문화재단은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으로서 법령과 규정에 따른 행정 절차를 따르는 부분과 문화예술 영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원하는 유연함이라는 정체성의 측면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문화재단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의 해답은 지역문화재단이 대부분 기초자치단체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정책의 마지막 종착지인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정부나 광역 단위의 정책과 사업, 예산은 부서별, 분야별로 모두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교육과 문화,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돌봄, 복지 등이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문화재단이라는 이유로 '문화'와 '예술'만 사업 영역으로 설정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할 수 있는 모든 삶의 영역을 망라하고 관통하는 것으로서 지역문화재단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사업이 일어나면 문화재단과는 너무나 먼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SOC 투자나 문화적 도시재생 관점으로 들여다보게 되면 도시재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공동체의 삶이 단절되거나 파괴되지 않으면서 도시가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될 수 있고 공동체의 삶이 기록되거나 유지되거나 진화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이 공연장이나 전시관, 도서관 등 시설운영에만 머무르고 만다면, 아마도 인구절벽과 재정절벽의 시대에 조만간 한계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이제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자원들을 발굴하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고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 연결하고, 공공과 민간을 넘어 다양한 공간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그 공간의 연계와 활용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경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일은 무언가 새로운 길을 닦거나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골목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고 경험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은 굴착기를 장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호미이다.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손에 호미를 하나씩 들고 땅을 파는 일이다. 누군가 고구마 줄기를 발견하면 그 줄기에 엮인 알맹이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이 특별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만큼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 의사, 교사 등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갖는 이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공에서 일한다는 것이 '먹고사니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진전으로 향하는 걸음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이 시대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양손에 호미를 들고 굴착기와 싸우는 명분과 자신감으로 무장할 때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1-29 권경우

[춘추칼럼]'5무(無) 정치' 벗어나야 국정 성과가 보인다

정치권, 합의·소통없이 '투쟁' 갈등만 증폭 선출된 대표자들 권력 의존 '리더십 실종' 내각중심 정치로 전환 망가진 경제 챙겨야 잘못된 정책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용기 필요 우리 사회가 '5무(無) 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공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 정치권은 '민주당 20년 집권론', '반문 연대' 등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 공학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주저 없이 전략적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을 구사한다. 철학이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삶에 대해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철학의 빈곤 속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쟁과 대립, 포용과 협치보다는 독식과 배제, 합의와 소통보다는 투쟁과 불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통치만 있고 정치가 없다. 집권 세력은 이념과 코드에 맞춰 통치를 하고 종종 정치를 무시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군림하고 통치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에 빠져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추구가 아니라 갈등조정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셋째,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다.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 지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에만 의존하면 리더십은 발휘될 수 없다. 리더십은 설득을 통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권력에만 의존했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넷째, 투쟁만 있고 대안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에만 매몰되어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안을 적시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대표만 있고 책임은 없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지금까지는 국정 과제를 설계했다면, 이제부터는 국정의 성과를 정부와 함께 만들어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5무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다 함께 잘사는 포용 국가'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망가지면 경제도 망가지고 사회 갈등도 증폭된다. 문 대통령이 분열과 갈등의 '5무 정치'를 극복해 국정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담대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 중심의 통치'를 장관에게 전권을 주는 '내각 중심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권력을 폭넓게 분산하고 집권당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며 국회와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통합과 공존'의 정신과 함께 야당을 적폐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야당과 뜨거운 협치를 하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국정 과제 설계가 끝났다고 성과가 저절로 나오진 않는다. 한국갤럽이 향후 1년 우리나라 경기 전망을 물은 결과(11월 6~8일), '나빠질 것'(53%)이라는 응답이 '좋아질 것'(16%)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문제는 6개월 연속 비관이 낙관을 앞섰다. 상황이 이렇다면 아무리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이 옳더라도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부터는 시장과 기업이 반응할 수 있는 혁신 성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모든 것을 끌고 간다는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인 계도 민주주의와 행정독주적 사고와도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의 미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운동도, 촛불도,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겸손한 대통령이 되라는 주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1-22 김형준

[춘추칼럼]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

美 연구소, 北 삭간몰 기지 속임수라 보도협상 진전없는 민감한 시점 뜬금없는 악재20년 전 '금창리 핵의혹' 불신만 키운 전례현상타파 거부하면 한반도는 영속적 분단 며칠 전부터 난데없이 미국 한 연구소의 분석보고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미국의 한 언론이 이를 북한의 거대한 속임수·기만 등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우선 연구소 보고서에 언급된 삭간몰 미사일 기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리 군 정보 당국도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동 기지가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축인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연관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지금 핵·미사일 관련 북미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오히려 앞으로의 협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기지 폐기문제를 미국과 합의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쳤다느니 기만하고 있다고 하니 선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굳이 북한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뒤통수를 맞은게 누군지 좀 더 명확히 살펴볼 일이다. 지금은 매우 민감한 시점이다. 6·12 센토사 합의 이후 북미 간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북미 간 교착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차례 중재에 나서 북미 간 초기 조치의 연결점을 찾기도 하였다, 9·19 남북정상선언에서의 비핵화 관련 합의가 그러한 것이다. 막상 초기 조치로 들어가려니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의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여전히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비핵화 및 제재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북한은 핵동결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국면이다. 얼마 전 개최하기로 한 북미 고위급 대화의 연기도 명목상의 이유야 어찌되었든 양측의 입장차이가 명백히 좁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으며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차 정상회담의 준비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내년 초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비관적이나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지난한 협상의 과정에서 경계할 점은 상황의 변화와 뜬금없는 악재이다. 미국 중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입지에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잘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북미 협상의 운전자를 자처하고 북한문제 당사자인 우리도 미국 의회 및 조야에 퍼지고 있는 북핵해결 무용론에 대해 많은 설명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정말 경계할 것은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편승한 근거없는 기사들과 어떤 의도가 내포된 주장들이다. 의도를 내포한 주장들은 사안을 왜곡시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문제 해결을 지연 시킨다.20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이후 1998년 8월 미국 언론은 갑자기 북한이 몰래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 인근의 평북 금창리에 핵시설을 운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금창리 핵의혹'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를 부인했지만 미국은 사찰단을 꾸려 금창리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사찰단은 텅빈 동굴만 발견했을 뿐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미 간 불신은 더욱 커졌고 제네바 합의 이행은 늦춰졌다. 뒤늦게 페리 프로세스로 북미 수교협상이 진행되었지만 1~2년간 소비한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00여 년 전 우리 역사를 살펴보자.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에서 흘린 허위정보를 신뢰하여 이순신에게 출병명령을 내렸다. 거짓정보라고 판단한 이순신은 출병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당시 조정 내에 만연한 당파싸움을 이용하여 이순신을 모함·체포케 만들었다. 이후 등장한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게 처참히 패하였다. 민감한 시기에서 어떤 사안 하나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음은 여러 역사적 사건이 증명한다. 지금 한반도는 현상유지 세력과 현상타파 세력 간의 거대한 기싸움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70년 분단구조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맞춰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려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지도 잘 살펴보지도 않고 거부하고 경계를 한다. 이는 미국도, 주변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타파하는 것은 늘 어렵고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왜곡하고 조장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려 해서는 안된다. 계속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반도는 영속적으로 분단구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가짜뉴스·현상왜곡은 모두의 적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1-15 양무진

[춘추칼럼]소중한 기록자들

학생문학상 덕분에 풋풋한 소설읽는 호사멘토작가로 조언해주면서 오히려 더 배워선입견 없는 자유문체 '천재의 향연' 같아다양한 생각·재능품고 세대대표로 커주길모 학생문학상 덕분에 반년 넘게 풋풋한 소설들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여러 달 동안 학생들이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면, 소위 멘토 작가가 조언을 해주고, 학생들이 퇴고하고, 최종 투고하는 방식이었다. 입상 학생들과 직접 만나 1박 2일 동안 문학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주로 중학생의 소설을 만끽했는데, 지도했다기보다는 외려 느끼고 배웠다.다 같은 소설이 아니다. 소비 행태로 나누면 가장 널리 사랑받는 웹 소설 혹은 인터넷소설, 과거에는 대중소설로 폄훼당하기도 했지만 지금 대세인 장르소설,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과 유사한 클래식음악 같은 본격소설. 이야기 방식으로 나누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듯한 리얼리즘,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모더니즘,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황을 그럴듯하게 다루는 판타지, 여러 경향을 짬뽕한 퓨전….그 밖에도 얼마든지 소설을 나눌 수 있다. 전문가들이나 그런 쓸데없는 분류를 하는 줄 알지만, 실은 모든 사람이 하고 있다. 자기가 좋은/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설정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으면 좋은/재미있는 소설이고 안 맞으면 소설도 아닌 것이다. 대개의 소설가들은 평생 소설을 읽고 평생 소설을 써온 사람들로서 소설에 관한한 최고로 잘 아는 자들이기에, 자기가 최선을 다하여 쓴 소설에 대한, 문외한들의 몰이해와 몰인정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한 것이다. 독자는 자기만의 소설관에 따라 소비할 뿐이니까. 실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쓰는 존재라는 걸, 천진난만한 중학생들이 잘 보여준다. 정말이지 천재의 향연 같았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 그토록 할 것도 제약도 많고 즐길 것도 넘쳐 나는 시대에 그처럼 정성껏 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한 학교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우주를 날아다니고 미래세계를 넘나들고 헛것에 집착하는 판타지가 주류였지만, 역사로부터 성실히 배우려는 알레고리도 있었고, 지금의 학교 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리얼리즘도 있었고, 마음의 파동을 치열하게 포착한 모더니즘도 있었다. 편의상 억지로 분류한 것일 뿐, 공들여 쓴 소설들에는 저마다의 음색과 재능과 감각이 물씬 배어 있었다. 그렇게 천재적인 작품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덜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교과서소설이 문제인 것은 소설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방식이 문제다. 소설 한 편을 해체하여 부속품 설명서 외우듯 한다. 그렇게 배우면 당연히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같은 본격소설은 무조건 재미없는 것으로 고정관념처럼 박힌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중학생은 자기만의 문체로 뭔가를 열정적으로 썼다. 아직 소설이 뭔지 모르지만, 자기가 소설이라고 믿는 글을 썼다. 내 방식으로 소설들을 분류하고 평가하고 순위까지 가렸지만, 그들의 글은 꼰대들이 모르는 새로운 차원을 두드리는 새싹인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천재들은 무사히 성장할 수 있을까? 십대에 아무리 잘해도 국가대표급은커녕 어른 취급도 받지 못하는 분야가 우리나라에 딱 하나 있다면 문학계다.아무리 잘 써도 구상유취하다는 평가를 받을 테다. 이건 상당히 다행한 일이다. 만약 올림픽 금메달 같은 거라도 걸려 있다면 문학도 스포츠계와 예능계에서 흔히 보는 조기 스타시스템의 폐해로 꼴이 말이 아닐지도. 암튼 읽고 싶은 책 읽고 쓰고 싶은 글 쓰는 생활은 쉽지 않을 테다. 소설을 알면 알수록 자기가 가졌던 음색과 재능과 감각을 잃어버리게 될 테다. 훌륭한 스승들이 제시한 잣대로 자신의 생각과 글을 재단하는 자기 검열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평준화되는 것이다.희귀종들이 고맙다. 진지하게 소설을 쓰는 학생들이 이만큼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나름대로 튼튼하다는 증거다. 이 소중한 기록자들은, 어른들이 흔히 스마트 폰 게임 중독자 취급하는 요즘 학생도, 저마다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며 서로 존중하며 어른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대의 대표로서 증명해준 것이다. 몇몇은 미래에도 자기 세대의 기록자 노릇을 맡아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11-08 김종광

[춘추칼럼]자치분권, 공통경험 통한 '신뢰'에 달렸다

권한·책임 다른 주체에 분배·이양하는 자치성별·세대·직업 등 서로 다른 목소리 수렴 상대방 존재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게 중요 다양한 영역의 사례들 믿어주는것도 필요지난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에서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 2018'이 열렸다. 총 21만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자치분권의 제도화와 구체화라는 목표를 두고 '중앙권력을 나누면 지방의 역량이 배가 되고 주민 행복이 더해진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국적인 행사로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대한 다양한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생산성 측정 평가를 통한 수상과 함께 읍면동 기초단위의 우수 사례를 전시하고 시상하는 자리도 있었다.'자치분권'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라는 점을 넘어 분권이야말로 실제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 수준에도 맞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구절벽과 경제위기 등 우리가 직면한 삶의 다양한 현안들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출구전략이기 때문이다. 행정의 비효율성을 제고하거나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등은 어쩌면 부수적 효과일지도 모른다.이번 박람회를 둘러보면서 자치의 가장 기초단위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의 읍면동에서 실제로 만들어가고 있는 자치의 핵심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이 '자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권한과 책임의 분배와 이양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일상을 결정하고 규정하는 많은 권한과 책임이 공무원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조직과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한 소위 '직능단체'의 몫이었다. 자치는 이러한 권한과 책임을 전혀 다른 주체들에게 분배하고 이양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제도와 규정, 절차와 예산 등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껍데기는 훨씬 딱딱하고, 과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보다 절실한 요소는 구체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신뢰'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이념과 지역 등 오랜 갈등과 반목을 거치면서 '신뢰'를 상실해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없다. 지역사회에서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공무원과 주민 등 상호관계에서 신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나 욕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자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주민이나 예술가가 공무원의 행정을 향해 자신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신뢰는 구축될 수 없다. 반대로 공무원이 주민이나 예술가를 행정을 알지 못하는 민원인으로만 대한다면 역시 신뢰는 불가능하다. 성별과 세대, 직업 등 다양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정치와 행정은 이것을 잘 끌어안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치의 성공적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다양한 주체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이다. 행정기관과 중간지원조직, 민간단체 등이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존의 'OO협의체'와 같은 형식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실제로 지역활동 속에서 새로운 지역문화와 지역경제를 창조하는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의 문제이다. 기관과 단체, 개인과 개인 등 사이에 신뢰를 잘 쌓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신뢰를 이야기할 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 스스로를 신뢰의 주체로 여긴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신뢰는 불가능하다. '자치'는 일종의 혁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의 경험과 사례를 축적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제도와 예산, 사람 등 모든 자원을 경험과 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1-01 권경우

[춘추칼럼]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국정 운영

청와대 중심 정치 일상화·여당의 무기력언론자유 제한 등 대수롭지않게 간주하면정권 운명 바뀔수 있는 사태 발생할수도…국정 운영엔 무시할 만큼 사소한게 없다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은 입증됐다. 구석진 골목에 두 대의 차량을 주차시켰다. 한 대는 보닛을 열어둔 채,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앞 유리창이 깨져있도록 방치했다. 일주일을 관찰한 결과,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이전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되었다. 이 이론이 주는 함의는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최초의 변화를 야기한 작은 원인을 잡아내면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줄리아니는 이 이론을 적용해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지우는 운동을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취임 2년 만에 중범죄가 50% 정도 줄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국정 운영과 접목시키면 주목할 만한 통찰력이 생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곧 1년 6개월을 맞이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는 "이게 나라냐"를 외치면서 적폐 청산을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았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열정과 도전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 갤럽 조사 결과, 집권 2년차 2분기 문 대통령의 지지도(60%)는 비슷한 시기의 노태우(28%), 김영삼(55%), 김대중(52%), 이명박(27%), 박근혜(50%)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높은 지지 속에서 권력의 3대 축인 당·정·청에서 그동안 우려할 만한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가령, 통일부는 지난 15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풀(pool) 취재할 예정이었던 탈북자 출신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북한이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상황의 특수성과 장소의 제한성을 근거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정면 배치된다. 정부는 작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탈북자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고, 탈북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통일부가 탈북자라는 이유로 특정 기자의 활동을 제약한 건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지난 3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흘에 걸쳐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하기도 전에 청와대가 대통령 주도의 개헌안을 내놓은 것이 오히려 개헌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개헌만이 아니라 정부 부처를 제치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중심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현 정부 들어 6명의 장관급 인사들에 대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청와대의 졸속 인사 검증에 대해 비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재철 자유 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폭로했지만 민주당은 자료 취득 과정의 불법성에만 집중하면서 청와대를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집권당은 그동안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스스로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는 무기력의 극치를 보였다. 대통령 국정 운용 지지도가 높다고 "이것 하나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향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미 관계가 꼬이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청와대 중심 정치의 일상화, 여당의 무기력 심화, 언론 자유 제한 등을 사소한 일로 간주하면 정권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단언컨대, 국정 운영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8-10-25 김형준

[춘추칼럼]개성공단 재개와 5·24 조치

MB때 산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와 무관朴정부도 대북강경책 일관 공단가동 중단한국당 10년자성은 뒷전 더 강한제재 요구北비핵화 유도 남북·북미 선순환구도 중요최근 국정감사에서 5·24조치와 개성공단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다.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관련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와 관계없다. 5·24조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 외 방북 불허, 개성공단지역 외 남북교역 중단, 개성공단을 포함한 대북 신규투자 불허,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을 담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을 제외한 남북관계의 인적 물적 교류 전반을 중단한 것이다.이명박 정부는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등 한반도 상황은 한국전쟁 후 최악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남북관계의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중단 시켰다. 북한의 비핵화는커녕 핵능력 고도화를 방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화해협력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의 비교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남북화해협력정책은 북한의 핵능력 완화를 포함한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기여했다. 대북강경정책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 속에서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도 실패했다.국정감사에서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더 강한 압박과 제제를 강조한다. 5·24조치 해제는 대북압박제재라는 국제공조에 역행하며 개성공단 재개는 한미공조의 균열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비핵화도 이끌지 못하고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도 하지 못한 지난 10년의 자기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미래를 열어나가는 역사발전의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발전을 지향하는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다. 5·24조치 내용 중에 유엔안보리 제재와 일치되는 부분들은 유지하되 그렇지 않은 영역들은 탄력적 해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정책은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가 추진동력의 근간이다. 집권 여당은 남남갈등 해소에 배가의 노력이 요구된다.5·24조치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와 연계된 '남북교역 중단 및 신규투자 불허'를 제외한 모든 분야가 유명무실해졌다. 남북교역 및 신규투자가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이와 무관한 분야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도 수행이 가능하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시설물 점검 및 확인'을 위한 방북은 재산권 보호 차원의 요구이다. 5·24조치 및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정부는 기업 자산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가 있다. 지속적인 자산점검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긍정적 검토가 요구된다.개성공단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기 사업에 합의하고 노무현 정부 시기 첫 생산품이 출시되었다. 남북화해협력정책의 상징성이 담겨있다. 개성공단사업이 진행될 때에는 북핵문제와 분리되었지만 중단·재개의 과정에는 연계되는 모습이다. 남과 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 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조건은 비핵화의 진전이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두 사업이 재개되고, 두 사업의 재개를 통해 비핵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혹자는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요구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속도에 한국이 맞추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환경과 여건이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 남북 간에는 민족분단이지만 북미 간에는 분단이 성립되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155마일을 경계선으로 해서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북미간에는 1만㎞이상 떨어져 있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국가로서 한반도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한반도의 안정 여부가 별 중요치 않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기 위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도가 중요하다. 선순환은 발전적 선순환을 의미한다. 평균 신장 150cm의 아동 사회에서 160cm의 아동에게 성장을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140cm의 아동이 빨리 성장하도록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설득력을 지닌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속도가 빠른지 늦는지 자기 검열이 요구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10-18 양무진

[춘추칼럼]십대 올인 사회

특출한 재능 발견하면 '모 아니면 도' 요구승자독식 서바이벌게임 벌이는 그들에게 '공부·인성 겸비한 성공' 무슨의미 있을까어릴때부터 경쟁시키는 우리사회 미래 암담보통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는 줄 모르고 평생을 산다. 뒤늦게 알아서 대기만성을 이루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취미 정도로 만족한다. 일찍 시작해서 이미 상당히 이룬 자를 따라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일찌감치 특출한 재주를 드러내면, 자의든 타의든 평범히 살 수가 없다. 빨리 이뤄야 한다. 프로선수 혹은 국가대표가 되거나, 굴지의 상을 받거나, '스타'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최소한 그런 대목으로 주목받아야 한다.천재의 부모는 가늠해야 한다. 이 놀라운 재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공 가능할지. 흔히 공부하는 재능 즉, 영수국과 문제 잘 푸는 능력이라면 고민이 없을 텐데, 스포츠·예술·문학·예능·게임 재능이라니!아무리 특출한 재능이라도 특출한 재능끼리 모이면 순위가 매겨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바둑 1급의 경지에 도달하면 엄청난 천재일 테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한국기원 연구생'이 될 수 있다. 청소년시절 내내 '연구생'끼리 경쟁하여, 다시 극소수가 '프로'가 된다.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이 되고자 하는 엄청난 가무 천재들이 있다. 이 중에 기획사 오디션에 통과하여 수련생이 되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이 극소수 중에 또 극소수만이 데뷔에 성공한다. 데뷔한 누구나 '방탄소년단'이나 '소녀시대'를 꿈꾸겠지만 그런 성공은 또다시 극소수만 가질 수 있다. 무수한 천재가 야구 축구 재능을 인정받아 경쟁하지만 프로선수 드래프트에 선발되는 아이는 극소수다. 차선인 대학 선수가 되는 것도 극소수다. 이 재능들처럼 십대 때 데뷔하거나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암담한 분야가 꽤 많다. 특히 대중의 인기가 드높은 스포츠·연예 분야일수록 모든 운명이 스무 살 이전의 성과로 결정된다.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조기에 발현되는 특출한 재능은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요구한다. 무조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올인하거나 아예 시작하지 말거나. 아이만 올인해야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함께 올인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이라면 취미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보통 가정은 집안의 모든 것을 거는 도박에 가깝다. 차라리 이러저러해서 가능한 빨리 포기할 수 있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이제 발을 뺄 수도 없다.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별다른 재능이 없어 국영수과만 했던 아이들은 어찌 됐든 대학의 길이 있지만, 남다른 재능 때문에 국영수과를 등한시하고 그 재능에 올인했던 아이들은 대학의 길조차 희미하다.각계각층에서 조기 발굴한 재능들이 '공부도 하는' '인성도 겸비한' 성공이 되도록 여러 가지로 애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최고가 되고 일부가 상위권이 되고 소수가 대학에라도 갈 수가 있고 다수는 암담한 이십 대를 맞이하는 승자독식 경쟁시스템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이들에게 그따위 빛깔 좋은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침내 뭔가 돼도 끝이 아니다. 청춘스타들은 끝없이 누가 최고인가 경쟁해야 하며 경쟁력을 상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어도 편한 경우가 있다. 장기를 잘 두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니 메달 따서 군대 안 갈 가능성 자체가 없고, 장기만 둬서 먹고사는 프로기사가 단 1명도 없고, 장기 재주로 갈 대학도 없고, 게임스포츠 같은 엄청난 장기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장기대회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언론에 기사 한 줄 안 나고, 그 어떤 부모가 장기 재능에 올인하도록 내버려두겠는가. 아이 스스로 크게 바랄 것이 없으니 취미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부모 또한 기대할 것이 없으니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야단이나 친다.감사하지 않은가. 특출나지 않은 것이, 특출나기는 하지만 아무도 별다른 취급을 해주지 않는 재주를 가진 것이. 허나 특출한 아이들이 재주에 올인하는 것과 평범한 아이들이 영수국과 문제풀이에 올인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재능이 있든 없든 어릴 때부터 줄 세우고 박 터지도록 경쟁시키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10-11 김종광

[춘추칼럼]우리 시대의 리더

지금 살고 있는 상황 정확하게 파악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후 문제해결 위해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전문가 배치 중요지도자가 모든것 결정하는 조직 결국 망해지난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역사적, 정치적, 외교적, 국제적 차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두 정상의 대화와 만남이 이뤄진 곳곳에 또 다른 가치와 해석의 여백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무엇보다 두 사람은 기존의 관습과 행태를 훌쩍 뛰어넘는 태도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정상회담에서도 나름 좋은 성과를 냈지만 궁극적으로 형식을 탈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로 절실하게 원하는 그 무언가가 형식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형식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형식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형식을 바꾸자고 하는 실무적 접근에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전략과 비전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다음으로 두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서로를 대했다. 우리의 태도와 표정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결국 형식까지도 변화시킨다. 그것은 사심(私心)의 문제이다. 사심 없는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왜곡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과 북한, 남한이 그동안 보여준 태도와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심 없는 사람의 태도와 표정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든다.이를 통해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고, 나아가 양쪽의 공동체 성원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 새로운 미래,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의 문제이다. 리더는 누구인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결국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의 기질을 언급하기도 한다. 개인적 혹은 사교적 만남이라면 기질의 문제로 쉽게 치환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순한 기질을 넘어 정확한 현실 판단과 목표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이 두루 담겨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잘못된 리더를 선택한 결과, 아직까지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리더는 단순히 인성이나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 똑똑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과제가 얽혀 있는 현대사회에서 리더 개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이다. 리더 개인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조직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이 리더의 결정만 기다리게 되면 조직은 경직되고 구성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실종될 것이다.이 지점에서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가짜 뉴스'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이유는 기술 발달에 따른 정보 공급 과잉의 문제도 있지만, 많은 정보 가운데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제대로 정보를 분석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리더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를 잘 구별해내서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일본의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의 대하 장편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웬리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멍청이는 보급 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지."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전략적 판단에 따른 보급 현황 등 구체적인 디테일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 분석과 자원 배분 등 통합적인 설계와 비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누구나 훌륭한 리더를 원한다. 경북 청도군에서 개그맨 전유성씨를 배제하고 코미디축제를 만들어가겠다고 결정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멍청한 리더'가 넘쳐난다. 시민들이 리더에 대한 고민을 절실하게 해야 할 때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8-10-04 권경우

[춘추칼럼]평양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하다

비핵화·적대관계 종식등 평화 분위기속남북관계 확대 발전위한 구상도 구체화美, 北 신뢰땐 '종전선언' 한발짝 다가가뉴욕 한미회담, 향후 북미회담 중요한 디딤돌2박 3일간 숨 가쁘게 전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사항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우리와 합의문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 문제를 남북간 핵심적 협의 의제로 삼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 없는 한반도, 핵위협 없는 한반도를 직접 언급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나아가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표명한 것은 그간 남북 간 합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구체적인 합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양 정상은 향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합의이다. 남북은 육상과 해상, 공중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상호 적대행위를 종식하는 내용의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간 남북간 우발적인 무력충돌 등 전쟁위험과 긴장 상황이 조성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매우 구체성을 띤 이번 부속합의들은 남북 간 사실상 종전선언을 한 셈이 된다. 앞으로 이 같은 합의가 잘 지켜지면 군비통제와 군비축소 등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더욱 용이해 지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는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 등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구상을 구체화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 개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정상화, 서해 경제 및 동해 관광특구 조성 등은 지난 10·4 선언 이후의 상황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문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한반도의 변화와 남북 정상의 노력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이제 공은 북미 간 협의로 넘어갔다. 북한이 검증의 논란이 있었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폐기를 관련국 전문가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국제사회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보다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하기는 하였지만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함으로써 보다 진전된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24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북한이 공표한 조치를 토대로 미국이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의하게 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며,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리용호 외무상과의 만남,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미 간 실무대화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향후 전망을 매우 밝게 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보인 조치를 신뢰하고 종전선언을 위해 한발 짝 다가간다면 비핵화 협상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 한미정상회담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하는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의 성사가 문 대통령 덕분이라고 하였고 미 대통령 또한 문 대통령을 수석 협상가로 명명하였다. 우리의 중재노력이 빛을 발하여 지연되었던 북미간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연결된다면 올해 더욱더 성과있는 이벤트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북미 간 협의가 잘 진행되어 남북미중 정상이 서울 혹은 워싱턴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게 된다면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보다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물론 최종 비핵화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와 앞으로 종전선언 등을 통한 신뢰구축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의 시대는 보다 빠르게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8-09-20 양무진

[춘추칼럼]독서 취미가 고맙다

할 일 산더미 상황속에서도 독서하는 일'입시문학' 고통스러운 행위 자리매김스마트폰등 볼것 많은데 책 읽는 청소년들그들 덕에 '국민 연간독서량 1권가량' 유지유유상종이라고, 청소년 때부터 1년에 50권 이상 기본으로 읽는 사람을 되우 만났다. 1년에 300권 이상 읽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만났다. 40대 들어 비문학인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평생 살면서 100권만 읽었어도 책 많이 읽는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 살 때부터 읽었다 쳐서 1년에 두세 권꼴. 한국인 연간 평균 독서량의 두 배 넘는 수치니 많이 읽은 사람이 분명하다. 고1 아들에게 물었다. 책 읽기 좋아하는 친구 없니? 있으면 아빠 책 한 권 선물해주고 싶어. 아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 명도 없다고. 실은 요새 아이들만 안 읽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다. 일제강점기에도 보릿고개 시절에도 산업화시대에도 새천년에도 책 읽는 학생은 반에 한두 명이었다. 묘한 일이다. 선생님과 부모님과 그 밖의 멘토 어른이 삼위일체가 되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인생 성공한다, 세뇌 교육하듯 해도, 청소년은 읽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도 읽지 않았다. 독서광이 책 읽다가 미쳐버린 돈키호테처럼 별종이고, 1년에 한두 권 읽는 이가 보통사람, 정상적인 사람인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인류에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무서운 말씀을 남긴 분들은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어야만 하는 까닭이 허다했다. 마찬가지로 비독서인은 아무리 해도 책을 읽을 수 없거나 읽기 싫은 까닭이 허다했다. 따져보면 독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어머니가 자주 쓰는 말인데 '머리 쓰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보고 듣는 것과 달리 읽는다는 것은 두뇌를 심하게 써야 한다. 게다가 재미없기 십상이다. 사람마다 재미가 다르고 감동이 다를 텐데, 늘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1년에 두어 권 읽는다면 둘 다 재미있을 수 있겠지만, 1년에 열 권 읽는다면 그중에 재미없는 책도 여럿일 테다. 1년에 100권은 읽는다는 것은 재미없는 책을 70권 넘게 읽는다는 의미다.게다가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특유의 입시문학으로 독서를 끔찍이 고통스러운 행위로 자리매김해버렸다. 초중고의 진정한 국어·문학 교육은, 사회구성원이 평생 누려야 할 소중한 권리인 독서 기초 훈련으로써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맛보는 스스로의 법을 찾도록, 글쓰기를 통해 자기의 견해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타자와 소통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보면 내 견해보다 훨씬 훌륭한 목표와 목적으로 도배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저 문제풀이 연습일 뿐이다. 다 그만두고 왜 그토록 괴롭게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의무적인 독후감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저 숙제일 뿐이다. 책 읽기 하면, 먹음직한 과일을 눈앞에 둔 듯 설렘이 앞서야 하는데, 주제 찾고 의도 파악하고 수사법 따지고 수행평가과제 해야 하고 엄청난 숙제가 바윗덩이처럼 굴러오는 듯한데, 읽고 싶겠는가. 골치만 아프고 재미도 없는 일은 하기가 싫은 법이고, 누가 어떤 식으로 강력 코치를 해주거나 숙제를 덧붙여주면 더욱 하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면 책을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느 세대에게나 독서인은 딱 그만큼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한 명도 못 만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 학 년에 세 명은 분명히 '독서가 취미 혹은 특기'라고 할 만한 친구가 있을 테다. 책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안 읽은 것보다, 할 일이 너무 많은 상황 속에서 책 읽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가공할 입시제도와 만화경 같은 스마트폰과 볼 거 너무 많은 텔레비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청소년들,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들은 평생토록 친구들의 몫까지 짊어지고 읽어나갈 테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국민 연간 평균독서량 1권 가량을 유지할 테다. 그들의 독서 취미가 참 고맙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8-09-13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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