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열 개만 있다면

글로벌 거대시장속 '대기업 역할' 더욱 중요나라마다 암묵적으로 키우는데 우리만 예외세계 일류기업은 삼성전자 뿐… 참으로 걱정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악한들'의 첫 자리는 늘 재벌이 차지했다. 현정권이 들어서자, 재벌에 대한 공격은 더욱 거세어졌고 재벌에 대한 규제는 부쩍 엄격해졌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정책은 인기가 높다.묘한 것은 모두 재벌을 믿고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재벌 제품들을 높은 값을 치르고서도 산다. 사람은 누구나 소비자이므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시민들은 재벌을 믿고 좋아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종업원들을 잘 대우하니, 재벌의 종업원이 되거나 종업원을 배우자로 얻기를 모두 바란다. 재벌이 빚을 내려 하면, 은행 차입이든 사채 발행이든, 모두 중소기업들보다 싼 이자를 받겠다고 나선다. 해외에서도 사정이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을 혐오하면서도 모두 재벌을 신뢰하고 거기서 일하려 한다는 현상은 기괴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왔는가? 재벌과 다른 기업들을 변별하는 기본적 기준은 크기이니, 재벌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려면, 먼저 크기에 대해 살피는 것이 순서다.생명체든 사회 조직이든 오래 사는 데는 크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풀이나 곤충은 한 해를 넘기기 어렵지만, 나무는 몇백 년을 거뜬히 살고 짐승은 몇십 년을 산다. 조직도 마찬가지니, 큰 나라는 오래 가지만 작은 나라는 늘 위태롭고, 대기업은 오래 가지만 개인 기업은 몇 해 못 간다.이처럼 큰 존재들이 오래가는 까닭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생명체든 사회 조직이든 구성 요소들의 무작위적 움직임들이 항상성을 위협한다. 생명체는 분자들의 끊임없는 운동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사회 조직은 구성원들의 비행이나 이탈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몸집이 커서 구성 요소들이 많으면, 이런 무작위적 움직임들의 영향이 크게 줄어든다.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내부의 항상성을 지키는 데도 크기가 중요하다. 실제로, 급격한 정치적 또는 기술적 변화에 대기업들이 작은 기업들보다 훨씬 잘 대처한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생명체나 기업이나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 자연스럽게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자연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생명체는 개체들이 늘어나 전체 생질량(bio-mass)이 커진다. 시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기업은 규모가 커진다. 따라서 대기업을 억압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성공적 적응을 벌하는 짓이다. 이치에 맞지 않고 경제에 크게 해로울 수밖에 없다.기업이 계속 성공하려면, 제품들을 개발하고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외주에 맡기던 공정들을 내부에서 하게 되어, 종사하는 분야들은 점점 늘어난다. 즉 성공적 기업은 몸집만이 아니라 사업 범위도 늘어난다.대기업이 지닌 결정적 이점은 시장에서 나온 좋은 변화들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큰 성공은 큰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작은 기업들은 그럴 힘이 없다. 지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누리는 반도체 경기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큰 위험을 지면서 큰 투자를 한 덕분에 좋은 기회가 왔을 때 큰 이익을 보는 것이다.게다가 대기업의 규제가 대체로 우리 기업들에만 적용되어서, 외국 대기업들은 오히려 우대 받는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드높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역차별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은 야릇하다.이제 국경이 빠르게 낮아지고 성기어져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자연히, 대기업들은 더욱 중요해진다. 나라마다 암묵적으로 자국 대기업들을 지원한다. 우리 사회만 예외다. 중소 기업들만 온실에서 키워서, 중소 기업들은 중견 기업으로 자라나는 것을 마다하고, 중견 기업들은 대기업 지정을 사약처럼 여긴다. 기업에 대한 정책이 이래서야, 어떻게 경제가 발전하고 나라가 커져서 둘레의 강대국들로부터 대접을 받겠는가? 지금 형편에선 대기업들이 늘어나기도 더 자라기도 어렵다. 세계에서 일류 기업 대접을 받는 우리 기업은 삼성전자 하나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열 개만 있다면, 내 통장의 잔고가 달랑달랑 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것이다./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

2017-10-19 복거일

[춘추칼럼]대북특사 검토 필요

특사, 문재인정부 한반도 평화·번영 구상 설명北 대남정책 기조·核·미사일전략 등 파악 중요'남북관계 정상화' 위한 협력 필요성 강조해야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이 흐르고 있다. 북미간의 주고받는 말폭탄은 일촉즉발 상황을 연상케 한다. 한반도의 불확실성은 수출주도형의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일관된 대북메시지를 보낸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염원이 담겨있다. 북한은 말폭탄과 몰아치기식 도발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남북한은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대화의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다. 북측은 '선 북미대화, 후 남북대화'를 선호한다. 자신들이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스스로 위배한다. 우리측은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을 강조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으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군비통제·비핵화 문제로 나아가는 단계적 전략을 선호한다. 당분간 남북관계의 교착상태와 한반도의 긴장고조는 지속될 듯하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적극적 지지와 협조를 약속했다. 문대통령은 7월 6일 '평화로운 한반도'의 신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세계 주요 20개국 국제기구인 G20 정상회의 기간 중국·러시아·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겠다, 우리의 안보를 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서 한반도운명의 한국 결정을 역설했다. 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붕괴 불원, 흡수통일 불추진, 인위적 통일 불추구'의 3-NO 원칙을 밝히면서 한국이 나아갈 길은 평화와 번영임을 분명히 했다.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7일 남북군사당국회담·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지난 9년 동안 대남 불신의 골이 깊고 현안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선듯 나서지 못한 듯하다. 한반도는 정전체제 상태이다. 불신과 오해는 언제든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철학도 전략도 없는 북미간 최고지도자들의 겁쟁이 게임은 국민들의 희생만 강요한다. 경계태세 강화와 쉴틈 없는 검열로 피로감이 누적된 남북한 초병들은 안전사고의 복병들이다. 우발적 총기 사고가 충돌로 이어지고 국지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다. 대화의 틀도 없고 오고 가는 길목도 없다, 연락하는 통신채널도 없다. 서해에서, 동해에서, 접경지대에서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거나 확전을 방지할 수단이 없다. 남북관계 복원의 시급성을 보여준다.남북대화 복원에는 상향식과 하향식이 있다. 상향식은 실무접촉, 고위급, 정상회담 등 대표급을 높여 가는 것이다. 시간이 소요되지만 결렬에 대한 위험 부담이 덜하다. 대화를 복원할 때 많이 사용하는 접근방법이다. 하향식은 정상회담, 고위급, 실무급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오랜 대립상태에서 대화로 전환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접근방법이다. 최고지도자에 집중된 남북한의 권력구조에서 하향식이 효율적이다. 남북한은 2000년 제1차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하향식을 경험했다. 2007년 제2차 정상회담까지 상향식도 경험했다. 현단계 남북관계는 대화의 복원 차원에서 상향식이 현실적이다. 현안문제에 대한 입장차이가 크고 당국간 불신의 골도 깊기 때문에 하향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대북특사 파견은 상향식과 하향식의 절충형이다. 특사는 회담 대표가 아니다. 특사를 매개로 최고지도자간의 간접적인 의사소통이다.대북특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대북정책을 정확히 이해하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여야와 우리 사회에서 신뢰받는 중량급 인사면 더 좋다. 준특사든 실무자든 북측과 의제·시기·방법·절차 등을 조율 한 후 우리 정부가 먼저 공개적으로 대북특사를 파견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파견 시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후 11월 하순이 적절하다. 너무 늦으면 평창 평화올림픽 개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북특사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번영 구상을 설명하고 북한의 대남정책 기조, 핵·미사일 전략, 북미관계 등에 대한 입장 파악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핵·미사일의 북미간 논의(남한 배제), 제재와 대화 병행 불가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및 설득 논리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특사 상호 교환방문으로 한반도의 비핵화·평화체제·평화통일이 진전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10-12 양무진

[춘추칼럼]우리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유전자원

미래성장동력·생존환경·민족성·문명발달 등 경제·생태·문화·사회 분야 다양한 가치 지녀 우리도 유전자원관리 전략 조속한 논의 필요2004년부터 유전자원 복원의 중요성을 인식해 환경부를 중심으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곁에서 사라졌던 지리산 반달가슴곰, 백두대간의 산양, 화천의 수달, 소백산의 여우 등 우리 민족의 얼과 함께 수천년을 살아 숨쉬었던 멸종위기 동물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완성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은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우리의 고유한 민족정서와 조상들의 삶 속에 녹아 있던 애환까지 복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진 우리의 백두산 호랑이, 곰, 여우, 늑대, 표범 등은 1915년부터 조선총독부가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을 통해 맹수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우리 산하의 야생동물을 무차별하게 사냥하고 도살해 그 종을 멸종 시켰고, 결국 민족정기마저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기간 동안 표범은 약 500여 마리가 희생됐고, 광복 후에는 남한에서만 서식하다가 1970년대 가야산에서 마지막 목격이 된 후 그 명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외에도 곰은 1천여두, 늑대는 3천여두, 여우는 1천500여두, 삽살개는 매년 수십만 마리를 사살해 모피나 군수용품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대호'에서 조선의 마지막 백두산 호랑이 사냥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절멸된 우리땅의 토종동물은 단순히 멸종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마저도 함께 빼앗긴 잔혹사를 우리 가슴에 안기게 된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일제의 고유자원 멸절정책에도 큰 저항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오류를 범해 안타까운 진실을 간직하게 됐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먹거리 해소정책을 명분으로 우리의 고유한 유전자원을 상당부분 스스로 훼손시키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몇 몇 위정자들에 의해 펼쳐진 육고기 증산정책은 외국의 유전자원을 우리의 것과 교잡종을 만들어 오로지 육류 생산량만 늘려보겠다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도입했다. 이렇게 한우는 외국종과 교잡돼 다시 한우 고유의 유전자원을 복원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을 허비했고, 토종닭은 그 원종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전자원이 뒤섞여 버렸다. 다행히도 몇몇 토종동물 지킴이를 통해 원종을 복원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 받아 국가의 보호를 받는 동물로 거듭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축양동물은 소(제주 흑우), 돼지(제주 흑돼지), 말(제주마), 닭(연산 오계) 각 1종, 그리고 개가 3종(진돗개, 삽살개, 동경이)으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유품종인 흑염소나 지리산 흑돼지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어서, 이들의 피 속에는 우리의 우매함으로 인해 외래 유전자원이 아직도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최근 파주농장의 재래닭 지킴이 노부부가 50년전 재래닭을 수집해 육종과 번식을 통해, 훌륭하게 복원시킨 재래닭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는 민원을 문화재청에 요청했지만 요건의 미비로 지정이 연기됐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재래가축 유전자원 확보와 보존에 대한 개념이 아직까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한 사례다. 이들 노부부는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소중한 재래종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비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어려운 재래가축 일지라도 그 종의 유전자원이 보존될 수 있도록 정부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유전자원은 종자, 천연물 신약, 산업소재 등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으로서 중요한 경제가치를 지니며, 생태계 유지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생태가치를 지닌다. 또한 다양한 생물종으로 구성된 자연환경이 음식, 생활습관, 종교 등에 영향을 미쳐 민족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문화가치를 지니며, 다양한 생물자원을 통한 새로운 문명의 탄생으로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회가치도 지닌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치열해지는 유전자원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전자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 나가야 하며, 유전자원의 경제적가치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생태, 정치적가치 등을 포함한 국가유전자원관리 전략에 대한 조속한 논의가 필요하며 향후 이 분야에 대한 잠재적 가치의 발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2017-09-28 김민규

[춘추칼럼]음력과 양력

우린 스스로 일어설수 있는데 인정않으려 해타자는 합리적인 것처럼 의지를 훼방하지만때론 의식·의지가 이룰수 없는걸 이뤄내기도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추석은 물론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이다. 우리에게는 음력 날짜를 짚어 쇠는 명절이 아직도 여럿 남아 있다. 설과 대보름이 그렇고, 단오와 백중이 그렇다. 이 명절들이 이름만으로도 존속하는 한 음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향이 서남해안지방인 우리 집은 언제나 섣달 그믐날에 차례상을 차려 왔다. 그 섣달이나 그믐이 늘 음력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지만, 어쩌다 양력설을 쇨 뻔한 적은 있었다. 내가 대학생일 때, 배운 자식들의 권에 못 이겨 신정 과세를 하기로 결정을 내린 어머니가 차례상을 준비하던 중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손에 든 접시를 내려놓으셨다. "오늘 차례 못 지낸다. 어찌 섣달그믐에 달이 뜬단 말이냐." 양력과 음력의 개념과 차이에 관해 설명할 계제가 아니었다. 어떤 설명도 설날의 밤하늘이 지녀야 하는 유현한 기운을 어머니의 마음속에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바닷가 사람들인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늘 썰물 밀물과 연결되어 있다. 이 시간의 리듬은 곧 달의 숨결이며, 우주의 율려(律侶)이다. 이 박자를 짚어 비도 오고 바람도 분다. 적어도 바닷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사리 때인 보름이나 그믐에는 날이 맑고 그 사이에 있는 조금 때는 비가 온다. 흘러가는 시간을 균일하게 분할해 놓은 것이 달력이지만 거기에는 천지의 리듬도 함께 표시된다. 보름에는 만월이고 삭망에는 달이 없다. 봄이 오고 가을이 오는 태양의 변화야말로 간만의 변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리듬이지만 그것은 강한 권력과도 같기에 리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법칙처럼 여겨진다. 사실상 양력에 해당하는 24절기는 책력에서 지극히 합리적으로 배열되었지만 달력의 씨실이 되는 것은 월과 일이다. 농사는 절기에 따라 짓고 제사는 날짜에 따라 지낸다. 양력에는 공식적인 삶이 있지만 음력에는 내밀한 삶이 있다.아마도 '양력 설'이 어머니를 실망시킨 데는 그믐밤의 중천에 달이 떴다는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저 시간의 리듬과 연결되어 있는 삶의 내밀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조금의 썰물에 너른 갯벌에서 게를 잡고 조개를 주웠던, 삭망과 보름이면 상방에 메를 지어 올렸던, 옥토끼와 계수나무에 관해 몽상했던, 이슬 내리는 밤에 곡식 여무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 그 잃어버린 기억들이 시간의 주름 속에 숨어 있다. 한 인간에게서 이 무의식의 기억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는 이 기억에 의해 인간이라는 종에 속할 수 있다. 그는 묻혀 있는 기억의 역사 속에 있다. 설날에, 좀 더 넓게는 명절에 가족들이 한데 모이는 시간은 균일하게 분할된 시간 속에서 질이 다른 시간이다. 그것은 기억이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시간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든다'는 의례의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자기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입고, 공식적인 삶과 내밀한 삶 사이에 깊은 단절을 겪었던 한국인들에게서는 국가가 만들어주려 하는 연례행사의 시간과 개인들의 무의식이 떠받드는 의례의 시간이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으며, 그것이 태양력 속에 공공연하게나 은밀하게 숨어 있는 태음력으로 상징된다고 해야겠다. 겉치레와 속생각 사이의 온갖 분열이 모두 거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마다 자기 안에 의식되지 않은 자기를 또 하나 가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어떤 기회를 거기서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이면서 자기인 줄 모르는 자기, 자기라고 인정하기 싫은 자기를 자기 안에 품고 산다. 이 자기 안의 타자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의지를 훼방하지만, 많은 창조자들의 예에서 보듯이 때로는 의식과 의지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 타자가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 점은 국가와 같은 거대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명석한 독재'가 정연하고 잘 계산된 가능성의 기치를 내걸고 실패할 때, 반항하는 사회적 타자들의 들쑥날쑥한 정신은 명석한 정신의 계산 밖으로 밀려났던 무한대의 가능성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미래의 희망이 사회적 주체보다 사회적 타자에게서 기대되는 이유도, 민주주의가 가장 훌륭한 정치체제인 이유도 여기 있다./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2017-09-21 황현산

[춘추칼럼]판사와 판결

'남의 해석일뿐' 이라는 현직판사 주장 큰 충격비슷한 사건들 판결 다르다면 법 제구실 못해한번 결정되면 사회 큰 변화 없는한 존중돼야인천지법의 한 판사가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며 "판사마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판사의 얘기라고 믿기 어려운 주장이라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정치란 말의 뜻은 여럿이다.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정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미치는 영향들을 뜻한다. 일상적으로 쓰일 때, 정치는 국가 권력과 관계된 일들을 가리키며, 이념과 당파가 두드러진 요소들이 된다. 이 둘 사이는 무척 넓고, 갖가지 뜻을 지닌 채 정치라는 말이 쓰인다.그 판사는 정치라는 말이 하나의 뜻을 지녔다고 여겼고, 끝내 법의 본질에 어긋나는 결론에 이르렀다. 법이 정치적 현상이라는 사실과 판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 사이엔 큰 논리적 틈이 있다. 정치는 전자에선 너른 뜻을 지녔고, 후자에선 아주 좁은 뜻을 지녔다. 이 둘 사이의 틈은 너무 커서 그의 주장을 따르면, 인류가 다듬어온 법체계와 이론이 모두 그 사이로 빠져버린다.법적 추리(legal reasoning)의 핵심은 연역적 추리다. 그래서 법체계는 본질적으로 연역적 체계다. 하위 법들은 상위법들로부터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되고 재판은 법에 바탕을 둔 연역적 추리를 핵심으로 삼는다.당연히, 법체계는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법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비슷한 사건들에 대한 판결들이 서로 다르면, 법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거기서 '선례구속의 원칙'이 나왔다. 판결을 통해서 법체계는 자신을 확충해가므로 한번 판결이 나오면 사회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보편적 원칙인 '형벌불소급의 원칙'은 이런 원리가 시간적으로도 작동함을 일깨워준다. 현실에선 판사들의 해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법체계는 그 문제를 권위 있는 최종심의 판결로 대처한다. 이 상식을 판사가 거부한 것이다.그 판사가 그런 견해를 지니게 된 것은 근년에 우리 사회를 휩쓴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법과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특히 이데올로기 이론을 따른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도 그 사람의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편향되었다는 얘기다. 마르크스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편향되었다는 사실이 어떤 이론이나 주장을 필연적으로 그르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들을 상대적으로 만든다. 예컨대, 과학도 주술도 담론이니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범주에 속하면, 모두 가치가 같다는 얘기다. 그 판사는 판결마다 판사의 정치적 견해가 반영되니, 모든 판결들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선례들도 대법원의 판결들도 그저 다른 판사들의 판결이니, 마음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마르크스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놓친 것은 마르크스주의도 이데올로기고 포스트모더니즘도 담론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논파되었다. 과학과 주술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도 아프면 굿 하는 대신 병원을 찾는다.막 마흔 줄에 접어든 판사 한 사람의 주장이지만, 이 일은 보기보다 심중하다. 미국 대법원장을 지낸 찰스 휴스가 지적한 것처럼, 헌법은 실제로는 판사들이 그것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삶을 규제하는 법은 실제로는 판사들이 그것의 뜻이라 여기는 것을 뜻한다. 대한민국이 선 뒤 재판에 참여한 모든 판사들의 판결들을 그저 다른 사람들의 판단들이라고 가볍게 옆으로 밀어놓는 판사 앞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가 끔찍하지 않은가?게다가 같은 견해를 지닌 판사들이 많고 그들이 만든 단체가 근년에 법조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라 한다. 이번에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판사가 그 단체를 주도했다 하니,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대법원장 지명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이런 사정이 좀 더 명확하게 검토됐어야 했다./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

2017-09-14 복거일

[춘추칼럼]북핵해법, 단계적 포괄적 접근

현재핵 동결·미래핵 해체·과거핵 폐기 과정비핵화·관계 정상화·평화협정 등 연계 필요남북·북미대화·6자회담 재개 여건 만들어야지난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상당히 우려스럽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북핵은 임박한 위협이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주변국과의 협력하에 평화적 해결의 지혜가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진 상태에서 핵보유국인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담판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가진 듯하다. 지난 4일 유엔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대북제재를 둘러싸고 논쟁에서 시작해서 논쟁으로 끝났다.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대북압박과 제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됐다는 주장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비롯한 대북원유지원 중단을 강력히 제기했다. 중국은 미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북핵 개발의 원인이고 압박제재 일변도가 북한의 핵능력을 더욱 고도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북미간의 쌍중단(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양병행(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제시했다.원유는 북한의 생명줄이다. 산업 전력용, 군대 훈련용, 주민 왕래수단용이다. 중국은 3회 정도 송유관을 통한 대북원유 중단 사례가 있다.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중단했다. 북한에게는 고통을 주지 못했다. 중국이 대북원유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내세워 중국을 포위한다고 느끼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전방위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고한다. 중국은 경제·금융을 포함해서 명실상부한 G2 국가이다. 미중간의 연간 교역액은 6천200억 달러를 상회한다. 미중간의 경제전쟁은 양국 모두 거대한 손실을 수반한다. 경제적 셈법에 능통한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손실을 감당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정치권 일각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제기한다.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검토의 필요성은 있다. 도움보다 손실이 크다면 의미가 없다. 첫째, 전술핵이 있는 상태에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없다. 둘째, 전술핵이 있어도 우리가 운용할 수가 없다. 셋째, 한반도 핵우산을 약속한 미국에 대해 불신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넷째, 군비경쟁에 의해 한반도가 화약고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중국과 러시아의 보복으로 제2의 사드화가 될 수 있다. 일부에서 독자 핵무장의 주장도 있다. 수령독재국가로서 연일 고난의 행군을 하는 제2의 북한화를 각오하면 가능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는 피할 수 없다. 핵무기는 도미노 현상이 강하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면 일본과 대만의 핵보유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일본·대만이 핵을 가지면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 미국이 한국의 핵을 용인할 수 없는 이유이다.북한 핵문제는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 SPOT-2가 촬영한 영변핵시설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오늘날 북한핵의 고도화를 보고 28년 동안 대화·제재의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나친 결과론적 해석이다. 1994년 북미간에 북핵동결의 제네바합의가 있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 토대한 북핵동결의 2.13합의, 북핵불능화의 10.3 합의가 있었다. 2008년 12월 6자회담 전면중단 후 북한은 5회의 핵실험과 60여 차례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대화중에는 북핵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대결중에는 북핵고도화로 나아감으로 보여준다. 북핵문제의 과정론적 해석에 해법이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의 단계적·포괄적 접근은 과정론적 해석에 토대한다. 현재핵의 동결, 미래핵의 해체, 과거핵의 폐기가 단계론이다. 비핵화·관계정상화·평화협정 등의 연계가 포괄적 접근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합의·이행·검증·새로운 합의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으면서 진전한다. 시간·인내·비용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 기조는 대화와 압박의 병행전략이다. 북한의 도발에 압박의 모습은 보이지만 대화의 목소리는 없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와 함께 압박에 동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환경과 여건 조성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위기 속 대화의 출발점은 물밑접촉이다. 물밑접촉은 협상의 ABC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9-07 양무진

[춘추칼럼]새로운 발견(犬)

늘어나는 반려동물 '복지 전문가' 양성 시급자원봉사단체 활동으론 한계 지원방안 필요유기·학대·방치 줄고 국민 의식수준 향상 기대어느 날 60대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식들 모두 출가 시키고 노부부만 남아 외로워 반려견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여러 얘기를 주고 받아 결국 입양을 결정하게 됐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의 반려동물의 수가 1000만을 넘었다는 보도는 꽤 지난 이야기이다.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산업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 지속적으로 발전하다가 IMF 이후 잠시 주춤했다. 2005년도 이후 입양된 반려동물 수와 사료 및 용품 등의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해 현재의 반려동물 시장은 약 4조원 정도로 대규모 산업이 됐다.이 외에도 산술적으로 계산하지 못하는 부가적 가치를 합산하면 엄청난 경제규모라고 할 수 있다.세계미래학회의 미래 10대 유망산업 중 하나로 선정된 반려동물 산업은 크게 분양, 진료, 사료 및 용품, 훈련, 문화 콘텐츠, 동물 복지, 동물매개 치료 분야 등으로 분류 할 수 있다. 분야에 따라 상당부분 정착돼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이 아직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개나 고양이가 무슨 문화가 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가족으로의 지위를 누리는 반려동물은 현대인의 새로운 문화가치로 인정되고 있다.한동안 많은 대학에서 반려동물 관련 학과를 신설해 증가하는 반려동물 산업에 대비한 인력양성을 시도했으나 반려동물 산업이 시들해지면서 많은 대학에서 학과를 폐쇄한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으로 반려동물 문화 콘텐츠 개발 및 사회적 기여 분야 등의 인력을 양성했더라면 더 참신한 반려동물 문화가 증가하는 반려동물 수만큼 발전했을 것이라고 본다.외국의 경우 평생교육원과 같은 교육기관에서도 동물매개치료(pet assisted therapy·PAT) 전문가를 양성해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심리정서적 재활치료에 활용하도록 하고, 반려동물 문화 콘텐츠 개발 전문가를 양성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몇 개 대학이 PAT 전문가 양성과 문화 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서 학계 및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아울러 늘어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사안이 동물복지 분야이다. 동물복지법 시행이후로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러 매체에서 공장식 동물 생산 및 동물 학대에 관한 내용들이 보도돼 세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국민의식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동물복지 전문가의 양성이 매우 시급한 부분이다.현재의 동물자유연대, 동물유관단체협의회 등 자원봉사단체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교육기관 및 정부기관의 전문가 양성을 위한 지원방안이 필요한 시기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및 산하기관 등에서 많은 정책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으로 반려동물 산업을 활성화 시키기를 기대한다.최근 대통령이 유기견을 입양한 것을 계기로 내년부터 유기동물을 입양할 경우 정부지원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정부지원이 가시화되면 유기동물의 학대 및 방치와 관련된 문제가 줄어들고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일본에서 고령화 문제와 관련된 노인복지정책으로 반려동물 입양을 지원하는 사업이 시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입양한 반려동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실과 사별로 인해 노인들에게 더 큰 고독감과 비탄을 안겨줬다는 보고는 우리가 향후 반려동물 관련정책에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에 민간단체, 학계 및 정부는 더욱 성숙된 반려동물 문화 정착을 위해서 상호협력적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본다./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2017-08-31 김민규

[춘추칼럼]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지식의 변두리에선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되레 중심부에선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 본다무지 앞에 있고 둘러싸임 아는게 배움의 자세세계적으로 성공한 총서들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 대학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크세주' 문고를 아마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가로 11.5cm 세로 17.5cm의 문고본 판형 128쪽에 학식과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백과사전적 지식을 항목별로 담고 있는 이 총서는 현재 3천 표제를 훨씬 웃도는 책이 40여 개의 언어로 옮겨졌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한국어로도 발간되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지닌 독서 대중을 위해 각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을 담당한 이 '백과문고'는 우리 시대의 학술을 대표할 만한 기본지식의 저장고다.'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의 '크세주'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서양에서 에세이란 장르를 창시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가져온 말이다. 몽테뉴는 이 말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하는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았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방법적 회의주의라고 부르는데,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지식을, 특히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의심해 본다는 뜻이다. 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앎의 끝일 수 없다. 그 지식은 그의 지적 조건과 근면성과 주어진 자료에 따른 현재 상태의 지식일 뿐이니 모든 지식에 관한 담론은 그 탐구과정의 중간보고라고 말해야 옳다. "철학이라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의술인 것이 다른 의술은 치료된 다음에만 즐겁지만 철학은 즐거움과 치료를 동시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말도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은 모든 교육이 가벼운 축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원용되기도 하지만, 모든 지식은 교리와 독단의 형식으로 전해질 것이 아니라 유동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뜻을 그 배후에 숨기고 있다. 의심하는 상태에서 그 의심을 깨치면서 앎을 넓히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즐거운 일도 드물다. 몽테뉴가 남긴 수많은 말 가운데 내가 이 두 문장을 같은 순간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지식 탐구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에 내가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식에 대한 몽테뉴의 태도를 내 생활에서 다시금 긍정하게 되는 경험은 의술과, 아니 정확히 더 말해서 의사 선생들과 연결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대학생이던 때 어떤 의사가 쓴 칼럼 하나를 읽었다. 그는 유학 시절에 사귄 미국인 의사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인삼을 선물로 주었다. 그 미국인 의사는 제 나라에 돌아가 인삼을 분석했더니 치료나 건강유지에 특별히 유효한 성분이 없다는 편지를 한국인 친구, 다시 말해서 그 칼럼의 필자에게 보내왔다. 한국인 의사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인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미신일 뿐이라고 칼럼에 적고 있었다. 홍역을 앓는 중에 피란을 가서 생사의 길을 헤매던 나는 인삼탕으로 건강을 회복한 경험이 있기에 그 의사의 칼럼을 신용하기 어려웠다. 그의 미국인 친구가 별 성의도 없이 인삼을 분석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뒤로 인삼의 효능은 여러 실험과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여러 경험 중에 한 가지 예만 더 들자. 황희 정승이 말년에 한 쪽 눈을 감고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하인에게 "눈을 번갈아서 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 안과의사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두 눈의 초점을 맞춰 사물을 보는 '눈의 과학'을 말하며, 황희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밤중에 책을 읽다가 두 눈을 번갈아 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좌우의 시력이 다른 심한 짝눈이다. 눈이 피곤할 때는 초점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눈을 번갈아 뜨는 편이 더 나은 것이다. 뜨고 있는 눈은 힘이 들지만 감은 눈이 그 동안 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한 지식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2017-08-24 황현산

[춘추칼럼]지도력의 본질

원자력 정책은 전문적 지식들이 유난히 중요일반 시민 의견 수렴후 결정하겠다는건 문제한분야 전문가, 타분야도 전문이란 믿음 위험어떤 집단의 지도자가 지닌 지도력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이 점은 국가와 같은 공식적 조직의 경우에 뚜렷하다.그러나 지도력은 현실 속에서 발휘되므로, 상황에 따라 지도력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컨대 산행에서 병자가 나오면, 의학 지식을 가장 많이 갖춘 사람이 실질적 지도력을 발휘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 지도자도 장군들의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현실에선 이런 기술적 지도력(technical leadership)이 큰 몫을 한다.물론 최종적 결정은 정치 지도자가 내린다. 산행에서 생긴 병자의 구호방식이나 산행의 지속 여부와 같은 결정들은 최종적으로 산행의 대장이 내린다. 전쟁에선 물론 정치 지도자가 최종적 결정들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지도자의 선출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현 정권이 원자력 발전에서 발을 빼는 정책을 펴면서 발생한 문제들도 정치 지도자의 지도력과 관련되었다. 원자력 발전은 아주 어려운 주제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경제성, 기술 발전의 전망과 같은 여러 분야의 문제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것과 관련된 문제들은 전문가들만이 판단할 수 있어서 기술적 지도력이 유난히 중요해진다. 현 정권은 이처럼 깊은 전문적 지식들이 필요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정책을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문적 지식들이 필요한 일을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적이다. 그나마 국민투표를 통해 전체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정부가 선정해서 기구를 만든 뒤 그들의 결정을 대통령이 무조건 따르겠다는 얘기다. 그들이 무슨 권위와 권한으로 그런 복잡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인가?당연히,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은 지도력의 본질에 어긋난다. 전문가들이 포함되지 않은 기구에서 결정하니, 정치 지도자가 기술적 지도력을 받아들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구의 결정을 대통령이 무조건 따르겠다니, 정치 지도자가 자기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론화 절차는 이처럼 겹으로 문제적이다.지금 나온 상황은 현 정권의 평지풍파다. 이미 오래 전에 세워졌고 여러 정권들을 거치면서 다듬어진 산업 정책을 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이 원자력 발전의 실상을 알아가면서, 현 정권의 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이처럼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현 정권에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나오게 된 데엔 물론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눈에 덜 뜨이는 요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둘레에 전문가들이 경악할 만큼 적다는 사정이다. 대신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다른 분야들에서도 평지풍파가 많고 민중주의적 접근이 흔해서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엔 이것이 한몫 단단히 하는 듯하다.정치 지도자 둘레에 전문가들이 부족한 현상은 두 경우에 나온다. 하나는 필요한 전문 지식을 잘못 짚은 경우다. 예컨대, 수질 악화는 사람들이 오염 방지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서 나온다. 올바른 처방은 필요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정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지식은 본질적으로 경제학 지식이다. 한강 수질이 나빠졌다는 걱정이 일자, 대통령이 연구소의 화학자와 면담한 적이 오래 전에 실제로 있었다.또 하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경우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사실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임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처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하이에크가 오래 전에 경고한 이 위험은 현 정권에서 유난히 큰 것처럼 보인다. 현 정권의 원자력 발전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전문가'가 원래 환경분야 전문가라는 얘기가 돈다. 전문가의 부족에 대해 현 정권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

2017-08-17 복거일

[춘추칼럼]한반도 문제의 한국화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 구상'한국이 문제해결 주도 역할 하겠다는 전략남북간 물밑접촉 등 더 많은 대화노력 필요지난 6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가 채택됐다. 북한의 돈줄은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지만 생명줄은 건드리지 않았다. 북한의 광물과 수산물 수출의 전면 금지를 명시했다. 북한의 교역총액만 놓고 보면 외화수익을 일정 감소시키는 효과가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북한의 광물수출은 약 7억5천만불이었다. 수산물 수출은 3억불 정도였다. 둘을 합치면 10억5천만불로 추정된다. 지난해 북한의 수출총액 30억불을 감안하면 약 3분의 1의 외화수익이 감소되는 셈이다. 2371호에는 대북원유수출 중단을 명시하지 않았다. 원유는 북한의 생명줄이다. 북한산업의 전력용이고, 군대의 훈련용이며, 주민들의 운송수단용인 원유문제를 그대로 둔 것은 2371호의 실효성이 출발에서부터 반감을 보여준다.2371호의 채택과정은 두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첫째, 기간이 짧았다. 과거 결의안 채택은 보통 3개월 정도 소요됐는데 이번 결의안은 33일 걸렸다. 둘째, 만장일치 채택이다. 이전에는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들이 투표까지 갔는데 이번에는 투표의 과정이 없었다. 이런 특징은 미중간에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 받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광물수출 전면금지를 포함한 돈줄차단을 미국에게 주었고 미국은 원유지원 중단 제외라는 생명줄을 중국에게 주었다. 지난 8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이 채택됐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도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북한에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의 즉각적인 준수를 촉구했다.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데 지지를 표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축을 향한 남북관계 개선 구상에도 지지를 표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한반도 긴장격화의 본질을 심히 왜곡하는 미국과 몇몇 추종국들의 주장이 반영됐다고 비판했다.올해 ARF는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첫째,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본회의 개최 전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둘째, 의장성명은 폐막 후 며칠 걸리는데 이번 성명은 폐막 후 곧장 발표됐다. 셋째, 이전에는 의장성명에 북한의 입장도 반영됐지만 이번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이번 ARF에서 북한은 장내외에서 철저히 소외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김정남의 암살에서부터 잉태되고 있었다.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과 ARF 의장성명 채택 후 북미간에 주고 받는 '말폭탄'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말폭탄은 북한 정부 성명에서 시작해서 외곽기구들의 몰아치기식 지지 성명으로 이어졌다. 심지어는 정부 성명을 지지하는 군중대회도 개최됐다. 북한은 정부 성명을 통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1호의 '전면 배격'을 선언했다. 민족화해협의회는 서울 불바다를 들고 나왔다. 총참모부는 미국의 분별없는 '전쟁불사' 광증은 아메리카제국의 비극적 종말을 가져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략군 사령관은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4발로 미군기지가 있는 괌을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화염에 휩싸이는 분노 운운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빈말이 아님을 강조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도 메모지에 적힌 것을 그대로 읽었다. 사전 준비된 강력한 대북압박 메시지로 읽힌다.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구상'이다. 북핵불용, 도발불용,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등 3대 추진원칙을 가진다. 국민과 남북,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3대 추진전략도 가진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 통화에서 지금은 대화보다 압박과 제재에 집중할 때임을 강조했다. 북한의 ICBM도발에 대한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된 느낌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좋지 않을 때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는 미국과 중국이고 남과 북은 이방인으로 귀결됨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주도적 역할론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가 되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주변국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아니라 한국화로 이끌기 위해 남북간의 물밑접촉을 비롯한 더 많은 대화노력이 요구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8-10 양무진

[춘추칼럼]호모 헌드레드 시대의 바이오 헬스케어

100세 이상의 장수가 보편화되는 지금유전자 분석 규제완화 등 새 기준 절실바이오+헬스 시스템화 노력 기울여야'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장수가 보통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백세시대를 맞이하면서 생긴 신조어이다. 이 용어는 국제연합(UN)이 2009년에 작성한 '세계인구고령화(World Population Aging)' 보고서에서 의학기술 등의 발달로 100세 이상의 장수가 보편화되는 시대를 지칭하면서 만들어졌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에는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6개국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31개국으로 급격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수명 증가로 '건강하게 나이 들어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료비 지출 또한 상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질 높은 의료서비스와 비용대비 효율적인 헬스케어에 대한 기대감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전통적인 헬스케어보다 더욱 효율적인 모델을 필요로 하게 됐고, 건강에 대한 예방적 개입, 맞춤형 의료시스템과 노후 헬스케어 분야의 시장 성장 전망이 밝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최근 바이오 헬스케어의 기술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후성유전체, 줄기세포, 유전체 치료, 개인 맞춤형 치료제 등이 키워드로 등장하며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에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치료기술은 빅데이터 분석과 맞춤형 혁신제품 및 서비스의 트렌드에 맞추어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충족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맞춤형 치료기술은 인간 유전체 정보의 접근성 확대로 질병과 관련 있는 유전자 이상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하는 치료(Cure)중심에서 개별화된 헬스케어·예방(Care·Prevention)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예를 들어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가족(모친)의 유전력에 의한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양쪽 유방절제 수술을 감행했다. 이러한 사례는 특정 유전자의 변이가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갖는 경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발병률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규제와 개인의 유전정보를 분석할 수 없는 제도로 인하여 이러한 기술의 적용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전자 분석 범위를 제한적으로 규정한 '생명윤리법', '개인정보 보호법' 등의 규제완화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 확립이 시급한 상황이다.앞으로 전 세계의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은 정밀의료 시장 형성이 대세일 것이다. 정밀의료 시장의 핵심은 개인관련 유전체 정보와 임상·건강 정보 등이다.정부는 관계기관 및 민간과 협의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장치를 개선해 의료·산업적 활용을 통한 복지와 경제가치 창출이 가능하도록 심도 있는 논의가 시급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최근 정부는 신산업 창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했다. 따라서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의 성장확대를 위해 아시아와 개발도상국 등 신흥시장 진출 확대와 융합 신산업 초기시장 형성 및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원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정부는 바이오와 헬스를 융합한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 디지털 헬스케어, 정밀의료 등 융합 신산업의 주체인 대학, 기업, 병원 등이 초기시장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네거티브 규제 및 보완 장치를 균형 있게 조정해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의 시스템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양성, 기업은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의 비즈니스 모델 창출과 과감한 투자, 병원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위한 임상자료 확보와 정부의 규제 장벽 완화 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성숙해지고 있는 산업여건 상황에서 정부와 연구기관 및 민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선순환적 산업생태체계 조성이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2017-08-03 김민규

[춘추칼럼]희생자의 서사

거의 모든일 담당하는 여자 막중한 명령 느껴가부장 사회 착하든 나쁘든 남자의 서사 같아역사 발전 늘 희생자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근대 서정시의 걸작 가운데는 그 짧은 형식 안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들이 많다. 물론 그 이야기는 압축되고 생략되어 있으며,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그만큼 커지기도 한다. 가까운 데서 예를 들자면, 이용악이 식민지시대에 썼던 시 '강가'는 여덟 줄의 시 속에, 아들이 감옥에 잡혀 있는 한 늙은이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 네 줄로 그 이야기의 깊이를 만든다. "그 늙은인/암소 따라 조밭 저쪽으로 사라지고/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췬지/끄슬린 돌 두어 개 시름겹다." 노인이 떠난 강가에는 돌을 세워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솥단지를 걸어 밥을 지었던 흔적이 있다. 어느 나그네가 지나갔던 자취다. 이 길손의 취사는 기능으로만 본다면 오늘날의 등산객이 버너와 코펠로 밥을 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강가의 "끄슬린 돌 두어 개"가 그 시절 한 가정의 부엌을 간소한 형식으로 다시 조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엌은 가정의 중심으로 조왕신이 깃든 곳이다. 나그네는 혼자 몸으로 집을 이루고, 살 길을 찾아 그 집을 끌고 간다. 아마 노인도 감옥이 있다는 청진까지 아들을 찾으려 그렇게 밥을 지으며 갈 것이고, 청진에서 아들과 함께 그렇게 집을 짓고 허물며 돌아올 것이다. '강가'라는 제목은 무심하다. "시름겹다"는 말로 끝은 맺었지만, 어찌 이 시름을 다 말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무심하다. 한 시대에 이 민족이 유랑하며 겪었던 고뇌가 이 무심함 속에 다 들어 있다.그러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는 '살인자의 술'이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담은 끔찍한 시가 들어 있다. 어느 술꾼이 잔소리하는 아내를 우물 속에 밀어 넣어 살해한 뒤 또다시 술집에 앉아, 아내에게서 풀려난 해방감과 아내를 죽인 자의 절망감을 동시에 읊고 있는 시이다. 그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죽였다고 말하는데, 이 변명은 좀 평범하게 들린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늘 범죄와 자살의 유혹, 극심한 불안, 억압과 해방에 대한 갈증이 따라다닌다는 뜻의 말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범죄를 극적인 서사로 꾸민다. 벌써 150년이 지난 프랑스의 이야기다.그런데 최근에 들어 한국의 신문에서 아내나 애인을 죽인 남자들의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보들레르의 살인자와 한국의 살인자들은 물론 다르다. 저쪽 나라 살인자는 여자에게서 해방되기 위해서 살인을 했지만, 지금 이 땅의 살인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에게서 떠났거나 떠나가려는 여자들을 살해한다. 억압과 해방의 주체가 역전되어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살해된 여자들은 말할 수 있는 입이 없지만 남자 살인자들은 사랑의 서사건 증오의 서사건 자신의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사는 어느 나라 어느 남자를 막론하고 늘 똑같다. 남자에게 여자는 그가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회의 얼굴이다. 어렸을 때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어머니가 대신해서 전달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아내가 대신해서 요구한다. 남자를 붙잡고 잔소리하는 여자나 거꾸로 남자에게서 해방되려는 여자나 본질적으로 그 요구 사항은 같다. 남자는 저 '명령하는 사회'를 자기 힘으로 파괴할 수는 없지만 여자는 만만해서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살해된 여자에게 자기 서사를 만들 수 있는 입이 있다면 그 서사는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회의 요구를 전하기 전에 사회는 먼저 여자에게 명령한다. 가부장 사회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부터 다른 일까지 삶의 실제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는 사회의 막중한 명령을 자신의 어깨로 느낀다. 게다가 명령을 전달하는 여자는 남자를 달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어떤 마술로 저 명령을 말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여자에게 그런 마술은 없다. 여자는 살해당함으로 마지막 마술을 베푼다. 이 글을 읽는 남자들은 자기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가부장사회에서 착한 남자건 나쁜 남자건 남자의 서사는 같다. 남자의 서사는 못난 살인자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웅의 서사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2017-07-27 황현산

[춘추칼럼]약소국의 설득력

시진핑이 북한을 감싸들며 '혈맹'이라 했을때우린 "한국전쟁의 美와 16개국 있다"고 했어야 北 핵무기개발 돕는건 국제사회 가장 '부도덕'독일 G20회의에서 돌아와서, 문재인 대통령은 약소국 지도자의 무력감을 토로했다. 중국과의 교섭에서 겪은 어려움이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는 현 정권이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중국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면 중국이 보답하리라는 환상에 잡혀,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에 줄곧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의 후견인인 공산주의 중국을 먼저 방문하고 우방인 자유주의 일본을 끝내 찾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의 주장을 일축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중국이 거부했을 때, 판결을 따르라고 중국에 권고한 미국과 일본의 성명에 동참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중국 편을 든 것은 더욱 문제적이었다. 당연히, 중국은 신의 없는 한국을 아주 얕잡아보게 되었다.그러나 '사드' 문제는 문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문제 삼은 것은 '트집을 위한 트집'이었다. 그러나 우리 군부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되자, 중국은 점점 강경해졌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사드에 반대하자, 시진핑 주석까지 나섰다. 시 주석의 체면이 걸렸으니, 중국의 보복은 오래 갈 것이다.이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문 대통령의 얘기를 자세히 듣기도 전에 거부했다. 북한은 점점 위협적인 미사일을 선보였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풀 기색이 없다.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어렵다는 것은 정상 회담에서 확인되었다. 시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라는 모욕적 발언을 했네 안 했네 논란이 나오는 것에서 회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중국과 북한을 설득해서 한반도의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자신의 야심이 환상이었음을 문 대통령은 깨달은 듯하다.외교력은 국력에 비례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고, 약소국은 더 큰 불이익을 겁내어 강대국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인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우리와 중국처럼 힘의 비대칭이 심하고 체제까지 다른 경우엔, 특히 힘들다. "설득은 약한 자의 자원이다. 그리고 약한 자가 설득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에드워드 기번의 얘기가 아프게 떠오른다.우리가 중국을 설득할 힘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제 관계는 다자 경기(n-person game)이므로, 중국과 우리가 다투면, 중국도 손해를 본다. 바로 그런 사정이 약소국 한국이 강대국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다.그리고 우리에겐 강대국과의 동맹이라는 자원이 있다. 시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라고 말했을 때, 문 대통령은 바로 그 말을 받았어야 했다. "혈맹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우리도 혈맹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에서 함께 싸운 16개국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혈맹은 튼튼합니다."그것으로 족했다.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강한 나라임을, 지금 한국은 중요하고 활기찬 나라지만, 북한은 파산해서 중국의 도움 없이는 쓰러질 나라임을.우리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소중한 줄 모르니, 그것을 우리에 적대적인 나라들과의 교섭에서 활용하지 못한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할 때, 중국이 혈맹 북한을 도울 길은 없다. 반면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한, 북한은 물론 중국도 감히 한국을 공격할 수 없다. 그런 비대칭이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가 일깨워준다.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루려는 중국은 그 사실에 예민하다.실은 우리에겐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지니는 뛰어난 도덕성이다. 왜 우리 지도자들은 중국에게 말하지 못하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북한 정권을 돕는 것은 부도덕하며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돕고 감싸는 것은 더욱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다자 경기인 국제 관계에서 도덕은 근본적 요소고, 통념과 달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복거일 소설가· 사회평론가

2017-07-20 복거일

[춘추칼럼]북한에서의 한류 열풍

미용·말투 등 일상생활문화까지 확산시켜장기적으로 북한사회 변화 유도 중요 수단北주민들 자존심 지켜주면서 마음 얻어야전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에서의 한류 열풍은 남북한의 체제대결 속에서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일반 문화시장에서의 한류 열풍 과정과는 차이가 난다. 한류(Korean Wave)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타국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류의 시작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TV 드라마·가요 등이 중국·일본·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한국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K-Pop 열풍이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산되면서 제2의 한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류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인지도를 높였고 국가 브랜드를 강화시켰다. K-Pop의 간접적 파급효과인 미용·성형·화장품 사업이 관광의 핵심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한류의 확산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친한파 외국인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다.북한에서의 한류란 북한지역에서 수용되고 있는 남한의 대중문화를 지칭한다. 북한이 대중의 자발적 문화 향유가 어려운 폐쇄적 통제국가라는 점에서 한류는 양적인 확산 정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주목된다. 북한에서의 한류는 북중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조용히 시작되었으나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금기시되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도 향유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국적 열풍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초기엔 대중가요와 드라마 등 남한 대중문화의 수용으로 시작해서 현 단계에는 미용이나 말투 등 일상생활문화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서 한류의 유통구조는 장마당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된다. 녹화기 등은 장마당에서 공식적으로 판매·구입이 가능하다. 북한 CD는 전열대에서 팔지만 남한 대중문화 CD는 뒤에서 몰래 판매된다. 남한 영상물들은 혼자 보기도 하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보기도 한다. 서로 돌려 봄으로써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 속도는 빠르다.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통제와 단속을 피해가며 남한 영상물을 향유한다. 정치적 동기가 아닌 상업적 목적으로 유입됨으로써 당국의 단속에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한류는 대도시의 고위층이나 부유층 자녀들 중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뮤직비디오로 남한의 아이돌 그룹이 부른 랩·힙합·록 등을 들으면서 옷차림이나 몸짓을 흉내 내기도 한다. 당국은 비사회주의 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CDR·DVD 등 일명 '알판'의 단속강화 방침을 지속적으로 내린다. 시·도에 중앙당 검열단을 파견하여 집중 검열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한다. 단속반과 젊은이들 간의 숨바꼭질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상업적 목적으로 유입된 남한 영상물은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남한 문화와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남북한 사회문화통합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남한 영상물 수용은 정치적 행위가 아닌 문화수용 욕구에 기반한다. 단기적으로 북한체제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지만 되돌릴 수 없는 문화적 흐름을 형성한다면 장기적으로 북한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민족적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북한의 한류 현상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되는 이유다. 북한의 한류 현상을 성급하게 북한사회의 '아래로부터의 붕괴' 조짐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남한과 북한을 이어주는 한류 연결망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의식수준을 높이면서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서독의 TV 광고에서 오락·가요·퀴즈프로그램·드라마 등 방송매체가 동독 주민의 자본주의적 정치사회화에 영향을 미쳤다. 동독 주민들의 의식변화가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북한의 한류는 남북한 상호의존성을 증대시킨다. 장마당의 활성화와 정보유입으로 개인주의·물질주의 등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발달되고 이는 남한사회에 대한 적대감 완화를 이끌기도 한다. 서독은 동독을 도와주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 우리 보수 우파들의 대북퍼주기 주장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북한에서의 한류 열풍에 맞춰 북한 주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마음을 얻는 것이 평화통일의 출발이면서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7-13 양무진

[춘추칼럼]4차산업혁명과 줄기세포 치료신약 개발

미국 이어 두번째로 많은 임상시험 실시'미래성장동력 산업육성' 대응전략 강화 정부 지원체계 구축·규제정비 서둘러야세계 각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경쟁력을 이끌 차세대 미래산업 발굴에 뛰어들고 있다. 산업 경쟁력 제고로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대하면서 4차 산업혁명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줄기세포 치료, 바이오 인포메틱스, 유전자 편집 기술 등이 포함된 생명공학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나갈 대표적 기술로 부상하고, 사물인터넷(IoT), 빅테이터, 인공지능 등이 의료 및 바이오 산업과 융합하면서 의학계의 산업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자의무기록, 유전체 분석 등 의료와 직결되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폰, 클라우딩 컴퓨터, 3D 프린터 등의 디지털 기술이 의료 및 헬스 산업 분야에 다양하게 접목되면서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경계를 점점 허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기술은 3D 프린팅기술과 줄기세포가 결합해 생체조직프린팅이 발명되고, 물리학적·생물학적 기술이 사이버물리시스템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 세계 인구의 10%가 인터넷에 연결된 의류를 입고, 인터넷에 연결된 안경을 쓰고, 3D 프린터로 제작된 인공 간으로 이식 수술을 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의료·헬스산업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다. 이러한 미래 4차 산업혁명 중 의료산업의 중심에는 줄기세포의 개발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줄기세포를 활용한 바이오 잉크와 3D 세포프린터의 접목은 연구수준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장기 재생에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러한 점에서 국내 바이오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임상을 실시한 국가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도 최초의 상업적 줄기세포 임상연구를 개시한 이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2016년까지 전세계 총 314건의 임상시험 중 46건의 임상을 수행해 일본과 중국보다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및 스페인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어 국가적인 관심과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주도권을 완고히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2016년말 미국은 21세기 Cures법을 제정해 고위험, 고부가가치, 신규연구자를 위한 각종 생물의학연구 지원 및 체계적 전략 수립을 통해 제품의 개발과 승인에 이르기까지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EU도 첨단제제의 인허가를 염두에 둔 개발 및 신속개발 지원제도가 2017년 3월부터 신설 운영되고 있어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은 속도경쟁시대에 돌입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줄기세포 연구분야를 미래성장동력산업으로 인식해 대내외 여건변화를 감안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자효율성을 높이고, 차별화된 투자를 통해 미래성장동력 산업육성의 대응전략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바이오 및 헬스 산업은 시장 성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공공 및 민간 부문의 R&D 투자 확대와 보건복지부 또는 식품의약안전처와 같은 소관부처뿐만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지원체계 구축과 규제정비가 조속히 이뤄져서 줄기세포 치료제의 기술혁신 및 글로벌 밸류 체인 변화에 대응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것이다.기대수명의 증가로 의료비지출이 증가되고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와 비용 대비 효율적인 헬스케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서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기술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문기술직의 고용증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2017-07-06 김민규

[춘추칼럼]보수냐 민주냐

안보 도모해온 '냉전형 보수' 지지율 15%인데'합리적 보수' 선언한 당은 '5%'로 참담한 실상'보수의 위기?'… 그저 '반민주' 세력 위기일 뿐소설가 황석영이 광주전남지역 문화운동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서울에 들른 것은 1980년 5월 16일 금요일이었다. 받을 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서울에서 지내던 중 그는 광주로부터 올라온 비보를 듣는다. 문동환 목사의 교회 겸 공동체였던 '새벽의 집'에 도착해 있는, 광주 상황을 알리는 자료들은 '마치 조난자가 절해고도에서 구해달라고 아득하게 먼 곳에서 파도 속에 띄워보낸 병 속의 편지' 같았고, 그는 서울의 몇몇 동지들과 함께 그 '병 속의 편지'에 담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소위 UP(underground paper)조를 만들어 거리로 나서야만 했다.최근 출간된 황석영의 자전 '수인'(문학동네)에는 아득해지는 대목들이 많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진실의 자유로운 유통이 봉쇄됐던 시절의 저 숱한 희생들이었다. 유신정권 이래의 광기어린 언론 통제 속에서 운동가 혹은 활동가들의 투쟁이란 결국 진실로부터 격리돼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혹은 바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촛불혁명을, 이를테면 태블릿 피시의 진실을 보도한 언론과 그 진실을 신속히 공유하며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벅찬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지난 시대 진실의 운명을 생각할 때 또 한 번 착잡한 것은 당시 그토록 위태로운 진실의 생명을 짓이긴 이들 중에 문인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수인'의 한 대목을 펼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펜클럽은 뜻한 바 있어 펜클럽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펜클럽은 문인협회나 예총 등과 마찬가지로 관변단체에 불과"했으므로, 미국펜클럽 회장이었던 수전 손택은 황석영 등을 위시한 민주 진영 문인들과 접촉하여,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키고 한국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뜻을 전한다.그러나 뜻밖에도 결의문 채택은 부결됐는데 그때 분해서 눈물을 삼키던 수전 손택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국펜클럽 측의 환호였다. 당시 기사에 '동료 문인을 석방하자는 해외 문인들의 결의안을 부결시키고 오히려 기뻐하는 한국 문인들의 정체성에 국제펜클럽 회원들은 혼란을 느꼈다'라는 내용이 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훗날 밝혀진 저 부결과 환호의 내막은 이렇다. 한국펜클럽 회장과 관련자들이 대회 전날 해외 문인들의 호텔방을 방문해 거액이 담긴 봉투를 돌리며 반대와 기권을 유도했다는 것. 자, 이것이 군부독재 시절 자칭 '보수' 문인들의 활동이다.대한민국에서 '보수'란 무엇이었던가. 최근 출간된 사회학자 김종엽의 저서 '분단체제와 87년체제'(창비)의 한 대목(2장, 각주 20)에서 저자는 '보수와 진보' 대신에 '보수와 민주'라는 명명법을 택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구별의 두 항은 각각 상대가 아닌 것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즉, '보수와 진보'라는 구별에서 보수는 '진보가 아닌' 것이 되지만, '보수와 민주'라는 구도에서 보수는 '민주가 아닌' 것으로 제 자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이렇게 구별하면 분단체제 아래서 보수가 민주적 법치를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는 집단임을 보여줄 수 있다." '수구'라 불리는 '냉전형 보수'와는 구별되는 소위 '합리적 보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법하다. 그러나 "수구세력이 이른바 합리적 보수에 대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보수파의 특징"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다. 과연 그렇다. 자신들도 안 믿는 안보 선동으로 생존을 도모해온 '냉전형 보수' 정당의 최근 지지율이 15%인데, '합리적 보수'를 선언한 정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5%니 말이다. 이것이 한국적 보수의 참담한 실상이다. 보수의 위기? 아니, 진실을 감옥에 가두고 돈 봉투로 틀어막아온 '반민주' 세력의 위기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는 시작된 적도 없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6-29 신형철

[춘추칼럼]업보

문대통령 '5대비리 연루자 공직 배제' 약속결국 발목 잡아 능력있는 인사 임명 애먹어한국당도 야당만 할게 아니면 현실 직시해야순항하는 듯했던 문재인 정부가 위기에 봉착했다. 임명하는 장관마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으니 말이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논문표절에 음주운전까지, 낙마해야 할 사유는 차고 넘친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때 내건 소위 5대 비리 관련자는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는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심지어 법무장관에 지명됐던 안경환 후보자는 짝사랑하는 여성 몰래 혼인신고를 한 게 드러나 충격을 줬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일은 해야 하는데, 깨끗한 후보자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의 선택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당 장관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켜낸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UN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는 분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개혁의 적임자로, 중소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어서 빨리 임명해달라"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지명된 조대엽은 그간 기업 측 입장만 대변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제대로 된 노사관계를 추진할 적임자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분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문제는 현 대통령의 야당 시절에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여기에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도록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후임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데, 지명하는 총리마다 각종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총리가 그다지 하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한 흠결이 아니라면 그냥 통과시켜 주는 게 맞다. 중앙일보 출신인 문창극의 경우엔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념을 지녔으니 대한민국 총리로 부적합하다 해도, 대법관을 지낸 안대희마저 부적격 판정을 내린 건 지나쳤다. 그는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16억원의 수임료를 챙긴 게 도마에 올랐는데, 그의 명성과 직위를 고려했을 때 그 정도 수임료가 지나친 건 아니었다. 결국 총리로 임명된 이는 이완구였지만, 그 역시 병역기피와 부동산투기라는 흠결을 지닌 데다, 경남기업 회장인 성완종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려 사표를 낸 걸 보면, 깨끗한 공직자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깨끗한 공직자만 쓰겠다면서, 병역 면탈·논문 표절·위장 전입·부동산 투기·세금 탈루 등 소위 5대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인사에서 원천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멋지게 들렸던 이 말은 결국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야당 시절 흠결 없는 공직자가 드물다는 것을 이해하고, 능력이 있다면 통과시켜주는 등 정부가 일을 할 수 있게 협조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야당이 인사문제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건 국민적 지지가 높다고 그냥 밀어붙일 일만은 아니다. 과거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하고, 향후 공직자 인선을 어떻게 할지 야당과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처럼 까다로운 임명절차가 계속된다면, 아무도 공직을 맡지 않으려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자유한국당도 현실을 좀 돌아봐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 모든 장관과 총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대통령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뽑은, 국정농단의 주범이다. 그랬던 정당이 장관의 위장전입을 지적하는 건 일말의 양심조차 저버린 행위이며, 10%도 안되는 정당 지지율은 여기에 대한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다. 정당이 정권을 잡으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라를 더 잘 되게 만들자는 것일진대, 일 좀 하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절규를 무작정 외면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네가 그랬으니 나도 똑같이 해주겠다, 이런 초딩적인 마인드보다는 일단 일을 하게끔 도와주고 그 일의 잘잘못을 꼼꼼히 따지는 어른이 돼주길 빈다. 자유한국당이 만년 야당만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6-22 서민

[춘추칼럼]6·15 공동선언을 되새기면서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고도 전략 요구핵문제와 연계한다면 文정부 임기내 힘들듯대북제재와 연관돼 국제사회 설득시간 필요지난 15일로 6·15 공동선언 17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서명한 날이다.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통일,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 인도적 문제 해결, 교류협력의 활성화, 당국간 대화 등 5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동선언은 남북간의 화해협력, 평화협력, 통일협력이라는 3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대립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통해 민족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민족의 혈맥을 이어 평화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배타적 자주가 아닌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속에 자주적 평화통일로 나아가자는 방향성이 담겨 있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로 나아가는 '21세기 자주통일의 이정표'라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에는 의미있는 성과들이 나타났다.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한 수많은 실무회담이 개최되었다. 3대경협사업도 성실히 이행되었다. 인도적 협력으로 남북한 주민들에게 화해협력의 정신을 심어 주기도 했다. 남북대화의 틀이 있었기에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하여 9·19 공동성명과 2·13, 10·3 합의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혹자는 화해협력정책 10년 동안 북한에 퍼주고, 끌려 다니고, 퍼준 결과가 핵무기로 돌아 왔다고 비판한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북한에 퍼주지 않고, 현금이 들어가는 관광도 중단했는데 북한핵은 폐기되지 않았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압박과 제재에 집중하고, 심지어 전작권 전환 연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대청도 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한반도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최악이었다. 자고 나면 대북전단을 살포했지만 북한 주민들의 대남동경심은 커녕 대남 적개심만 심화시켰다.박근혜 정부 4년도 이명박 정부 5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의 환상에 빠져 대북압박과 제재에 집중했지만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되었다. 남북간에는 대화의 틀도 없어지고, 오고 가는 길목도 없어지고, 심지어 연락채널도 없어지는 그야 말로 남북관계의 암흑기로 만들었다. 결국 화해협력정책 10년과 대립대결정책 9년을 되돌아 볼 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남북이 함께 하는 화해협력정책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민주정부 3기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달포가 지났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천만 한민족이 전쟁의 두려움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이행이라는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두 사업은 북핵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좀 거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 없이 남북관계 복원이 어렵고, 금강산관광 재개 없이 이산가족상봉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경협사업 재개의 출발점에서 북핵문제와 연계한다면 문재인 정부 5년 임기내 재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인들도 재개에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경협사업 재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인들이 문재인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호흡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경협사업 재개의 시간은 점점 빨라질 것이다. 북한도 문재인 정부의 유연한 입장에 핵고도화·외세배격 주장으로 기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대남비방을 즉각 중단하고, 판문점연락사무소 복원과 서해·동해 군통신채널을 선제적으로 복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복원이 기본이다. 남북관계가 복원되어야만이 미국도 설득하고 북한도 설득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시동을 걸 수 있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6-15 양무진

[춘추칼럼]과학 강국으로 가는 길

한분야 집중연구 할 수 있는 정부정책 필요예산집행 공무원 개입 말고 지원만 해줘야분야별 4차산업혁명 개념·방향 재정립 필수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나라 국가발전에 과학기술의 성과와 역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연구생산성은 매우 낮다는 지적과 함께, 특히 정부 출연연구원의 미션과 역할에 대해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대한민국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시 한번 과학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반성하고 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첫째, 한우물을 팔 수 있는 정부정책이 필요하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전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찾기가 어렵고 전문연구보다는 과제수주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한우물 파는 연구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한우물 연구는 정부의 정책만으로 되지 않으며 연구자들의 투철한 열정과 도전의식이 함께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둘째, 실험실 수준의 연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연연이 산업화 초기에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 산업과 대학의 연구역량이 크게 향상돼 세계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아직도 실험실 수준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연구성과는 기업의 니즈나 시장 원리와 괴리가 큰 것이 사실이고, 연구는 90% 이상 성공하는데 시장에서는 써 먹을 성과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실험실 수준의 연구에서 벗어나 우리가 하는 연구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인류의 삶 향상에 얼마나 도움을 줄 것인지 고민하며 냉철한 철학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야 할 것이다.셋째, 과학정책은 정부관료가 좌지우지하지 마라. 연구개발 기획과정에 정부관료의 의견이 70% 이상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관료가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까지 기획 및 예산 집행을 좌지우지한다. 형식적으로는 정책에서 공무원 권한이 축소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정책수립 과정과 예산집행과정에서 공무원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근본적으로 과학정책 수립, 연구기획, 예산집행은 전문가, 민간인, 연구자에게 맡겨놓고 정부는 연구자가 필요로 하는 사항을 지원만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넷째, 감사제도를 개선하고 위반자는 일벌백계하는 정책을 펴라. 연구비 부정 사건이 한번 생길 때마다 새로운 규정은 점차 늘어나서 대한민국 연구계는 늘상 감사에 시달리고 있다. 연구비 부정이 나올 때마다 규정을 더욱 강화하고 모든 연구자들을 일단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연구활동을 저해하는 방법은 매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0.5% 이하의 연구 부정 때문에 99.5%의 연구원이 감사와 행정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연구활동을 저해하는 감사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정해진 규정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하는 정책으로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과학강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다섯째, 과학자들의 자긍심을 살려줘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우수한 연구원들은 정년에 상관없이 연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우수연구원 정년연장 제도를 확대해 많은 우수 연구원들이 1998년 외환위기 전과 같이 65세까지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희망한다. 그리고 아주 유능한 과학자는 중국의 사례처럼 정년 없이 종신 연구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능한 연구원에 대한 퇴출제도를 동시에 도입하는 것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여섯째,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제대로 잡고 가자. 정부, 연구계, 지자체, 교육계, 금융계 등 모든 분야에서 뒤질세라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방향에 대해서 모호한 점이 너무 많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너무 조급증에 휘말려 창조경제의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방향을 한번 더 심도있게 검토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특히 국가 주도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중장기적 연구를 통해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많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듯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조급증 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정용환 한국원자력硏 책임연구원정용환 한국원자력硏 책임연구원

2017-06-08 정용환

[춘추칼럼]시기상조의 나라

동성 결혼·커플 법적 인정 44개국에 달해한국, 관용·성숙지표 44위 안에 왜 못드나정신적 진보수준 하위권 탈피 아직 이른가시기상조라는 말은 듣기에 착잡하다. 당위성과 필요성은 인정하되 실행은 나중으로 미루자는 뜻이다. '미루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을 것이다. 그 계획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 일이 정말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조건이 무르익는 때를 기다려야지, 섣불리 밀어붙였다가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그 실패의 충격이 재기의 기회마저 앗아갈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이 말은 옳다. 문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 즉 사실은 그 계획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가끔 전자의 흉내를 내며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일종의 '시기상조 리스트'가 있어 왔고 지금도 있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다, 일본문화 개방은 시기상조다, 공무원의 노동조합가입 허용은 시기상조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시기상조다, 공교육 현장에서의 체벌금지는 시기상조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시기상조다…. '시기상조의 현대사'를 서술해볼 수 있을 정도다. 이중에는 이제 시행된 것도 있고, 아직도 '시기가 상조하여' 여전히 제자리인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놀랍게도 그 나라들은 망하지 않았다. 최근 한 성소수자 군인이 영외에서 합의하에 행한 성행위를 군 당국이 문제삼아 결국 그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법정에서 졸도했다. 이제 성소수자 군인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처벌받고 가도 처벌받는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호모포비아들은 차치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안타깝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다'라는 입장을 말하고 있으니 시기상조 리스트는 또 한 줄 늘었다. 세계최강군인 미군은 군인의 성적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법적 제재도 가하지 않으며 동성애자인 장성까지 있는데 왜 우리는 시기상조인가. 동성애자들에게도 국민성이 있어서 우월한 미국은 돼도 열등한 한국인은 안되는 것인가.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이다. 서구사회가 동성애는 '질환'이 아니며 따라서 '치료'의 대상도 아니라는 과학적 진실에 도달한 것은 1970년대다. 그것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주어진 정체성'이므로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세계의 사회적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대한민국의 몇몇 목회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월급을 받아간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그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사랑이어야 한다. 그러니 성소수자들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반했다.지난 대선 토론 때 논란이 된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 역시 그렇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에서 제작한 자료집에 따르면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영국·미국·프랑스·아르헨티나 포함 23개국이며, 시민 결합제도를 통해 동성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까지 포함하면 총 44개국이 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은 왜 이 같은 관용과 성숙의 지표에서는 44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나라여야 할까.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물질적 진보말고 정신적 진보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세계 순위 하위권에 속한다. 그 처지를 벗어나는 일도 아직은 시기상조인가.어슐러 르 귄의 유명한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전반부는 미래 세계의 어느 작은 나라 '오멜라스'가 얼마나 풍요로운 나라인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돼 있다. 그러나 그 전반부는 후반부의 끔찍한 진실과 대조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만 필요하다. 오멜라스의 어느 지하실에는 아무 죄도 없는 한 아이가 짐승처럼 묶인 채 굶주림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왜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아이 하나가 그런 고통을 받아야만 오멜라스의 그 풍요로운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비열한 사회적 계약을 알고도 우리는 계속 이 오멜라스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6-01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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