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스승과 제자 부대끼며 지냈던 아름다운 학창시절지금의 '왕따니… 자살이니' 어디서 나온 말인지선생님도 학생도 어떤 마음으로 학교로 향할까시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올해도 어김없이 휴대전화 화면에 익숙한 문자가 떴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초등학교 동문체육잔치를 선후배 동문님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오랜 불경기와 침체된 사회분위기, 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오셔서 고향과 동문의 정을 함께 나누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다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올해는 유난히 붉은 저녁 노을을 훔쳐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문자가 바로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온 소식이다. 오래 전에 졸업한 학교로 놀러오라는 소식.학교는 왜 자꾸만 우리를 부르는 것일까. 학교는 대체 무엇일까. 떠나온 학교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스해지는가, 아련해지는가, 얼굴이 화끈거리는가. 당신은 어떤 경우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학교 따윈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가. 떠나온 학교를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선생님인가, 친구인가, 좋아했지만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그 누구인가. 학교는 왜 우리들 각자의 기억속에 애증으로 자리 잡은 채 틈이 날 때마다 부르는 것일까. 마치 당시에 마무리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듯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인생에서 학교는 많고도 많다. 네 개의 학교를 모두 지나오려면 1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학교는 우리들의 또 다른 고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하기에 지나온 학교에서 부르면 그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철수는 왜 거의 매일 지각을 한 것일까. 그 선생님은 풍금도 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매번 음악시간을 진행했을까. 길동이는 나머지수업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선생님은 왜 그렇게 무뚝뚝했을까. 만동이는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면서 기분이 좋았을까. 그 어여쁜 처녀선생님은 산골마을에 부임해와 살면서 동네의 시커먼 총각들이 득실거리는 밤이 두렵지 않았을까. 지린내가 진동하던 화장실은 왜 그리 무서웠을까. 학교는 어떤 이유로 대부분 공동묘지 자리에 지어서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까.초등학교 시절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중학생이 된 남학생들은 나이를 조금 먹었다고 점점 거칠어졌고 여학생들은 말이 없어졌다. 선생님들도 초등학교 때완 판이하게 달랐다.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인 남학생들은 힘을 겨루려고 툭하면 싸웠다. 가출을 했다가 잡혀왔다. 선생님들의 몽둥이 굵기는 초등학교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저 이가 과연 선생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그 와중에도 사춘기로 접어든 남학생들은 젊은 여선생의 치마와 가슴을 훔쳐보며 여드름을 키우고 짰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는지 자습시키는 선생이 허다했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렇고 모든 학생이 그랬었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란 건 늘 어느 한쪽에 편중돼 있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중학교보다 초등학교의 기억이 그나마 아름다운 편에 속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슬슬 세상의 전쟁터로 발을 들이미는 것일 테니 말할 나위도 없다.지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떤 학교일까. 어떤 철수·길동이·만동이들이 있고 어떤 선생님들이 교단을 지키고 있을까. 왕따니 자살이니 하는 말들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어떤 당부의 말을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것일까.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을 보듬으며 학교로 가는 것일까. 지금의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마음아픈 한 아이를 교정의 울타리 밖에서 홀로 울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옛날의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깊어가는 가을의 동문체육대회에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호주머니에 준비해야겠다. 그런데 정녕 학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2014-10-09 김도연

물레방아 도는데

70년대 배고픔·가난 싫어 고향 떠난 소년소녀들구로공단생활, 고향에 대한 비애 형상화한 노래'공돌이·공순이'로 불렸지만 진정한 산업화 주역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유행가는 '물레방아 도는데'였다. 물론 유행가에 앞서 웬만한 동요는 취학 전에 이미 끝냈다. 그때 배운 동요가 아직도 선명하다. 과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올해도 과꽃이 피었고 과꽃을 좋아한 누나는 꽃이 피면 아예 꽃밭에서 살았다며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 뿐인가. 과꽃을 보면 누나 얼굴이 떠오르고 시집간 후 영영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난다는 구절에 어린 마음에도 숙연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동요는 딱 그 뿐이다. 초등시절, 당시 폭풍 같은 인기속에 등장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가 곧 나의 애창곡이 된다. "돌담길 돌아가며 또 한번 보오오고"를 정말 열심히 따라 불렀다. 의미도 모르고 그냥 불렀다. 학교 오가는 길, 길 옆 전파사도 종일 이 노래를 틀었다. 그러나 노래가 그다지 행복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서다.나와 같은 386세대들의 고민은 이 땅의 노동운동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어깨를 짓누르던 노동현장의 질곡속에 이 노래가 만만치 않음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1972년 발표된 노래는 창작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농(離農)현상으로 도시로 몰려든 개발연대 한국인들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비애를 형상화한 노래로 이해된다. 등 떠밀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물레방아 도는데'를 통해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사무침을 달랬다.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 다 가도록 소식이 없는' 떠난 이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너무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깊은 노스탤지어를 노래를 통해 달랬던 것이다. 꺾기로 불리는 창법도 창법이지만 노래는 너무 슬퍼 결국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그래서 가난했던 그 시절 한국인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떠난 십대 소년소녀들은 '공순이'나 '식모'로, 또는 '공돌이'로 불렸고 그들이 둥지를 튼 곳은 구로공단이다.'공순이'는 특히 서러웠다. 가난해 못 배웠으니 당연히 무식했다. 특히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남동생이나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밀려 떠난다. 속옷에다 작은 돈주머니를 달아주던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온 그들이다. 그래서 1970년대의 여공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 시절 구로공단 여공들은 국졸 혹은 국교 중퇴가 대부분. 영어로 된 라벨을 다는 것은 한글도 모르는 소녀들에게는 고역이었고 M과 W를 혼동해 작업반장에게 따귀를 맞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그런 구로공단이 '최첨단 디지털단지'로 변했다. 봉제·가발산업이 저문 빈자리엔 화려한 쇼핑몰이 들어섰다. 올해는 구로공단 조성 50년. 이를 기념한 '공단 노동자 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체험관은 벌집으로 불리던 여공들의 주거공간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작은 방, 수십명이 살지만 사춘기 소녀들이 아침마다 긴 줄을 서야 했던 딱 한 개뿐인 푸세식 화장실 모습에 가슴이 짠해 온다. 그래서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는 지난 산업화시대에는 국민가요처럼 불렸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가 민주화와 산업화일진대 산업화 측면에서 가장 도드라진 시대정신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사실 산업화의 진정한 주역은 그 시절의 공화국을 담당했던 정치인도, 경제정책 입안자도, 몇몇 이름난 민주화 운동가도 아니다. 인간에게 배고픔만큼 잊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배고픔과 대물림 가난이 싫어 정든 고향을 떠나 공순이·공돌이란 이름 아래 꽃다운 젊음을 바친 이 땅의 노동자들이야말로 산업화의 빛나는 주인공이 아닐까. 왔다고 느낄 때쯤이면 저만치 떠나는 가을, 구로공단 50주년에 바치는 나의 헌사다./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2014-10-02 김동률

젊은층 고도비만 해결방안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선언할 정도로 개인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비만이 국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비만 치료와 예방에 힘쓰고 있다. 다행히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은 31.8%로 이웃한 일본(23.7%)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다.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2년간(2002~2013년)의 일반건강검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20~30대 젊은층의 고도 또는 초고도 비만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층의 고도비만 증가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관련 전문가들은 1980년대부터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의 소비 증가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따른 신체활동량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비만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 20~30대 젊은층의 비만율이 계속 증가한다면 머지않아 국가의 큰 사회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만문제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를 교훈삼아 예방적 차원에서 젊은층의 주요 비만원인이 되고 있는 패스트푸드 등에 의한 불균형적 영양섭취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개선대책이 필요하다.특히 정부차원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른바 'Health in All Policies(HiAP)'개념을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공정책은 비만과 같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예방 또는 최소화하고,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된다.비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중요하다. 탄산음료를 만드는 세계 최대 음료업체는 활력넘치는 건강한 삶, 교육, 물관리, 공동체 재활용 등 지속가능한 공동체 지원을 위해 많은 재원을 기부하고 있다. 미국의 한 건강의료품 업체는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을 설립해 미국인들의 비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Active Living Research 사업 등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 기업의 사례처럼, 국민들의 신체활동 감소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동차·인터넷·스마트폰 등과 관련된 국내 기업들도 보행·자전거타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 중 신체활동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사업이나 환경조성사업 등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면 어떨까 한다.20대 젊은 세대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학도 학생들의 비만과 건강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캠퍼스내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거나 보행전용구간을 확대하는 방안,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시설을 설치하고 다양한 신체활동 증진 프로그램도 개발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끔 졸업기준에 일정 수준이상의 운동능력, 예를 들어 수영을 1㎞이상 할 수 있는가를 포함한다면 어떨까? 농담삼아 질문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비만율 증가는 단지 스쳐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병들어 가는 미래세대를 위해 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4-09-25 박경훈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의 관리였다. 스물여덟 과거에 급제하고 3년뒤 성균관 정6품이 돼 서거정과 함께 민족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을 편찬하는데 힘을 쏟는다. 그 뒤 새로운 직책을 명받아 1487년 9월 제주도로 떠난다. 추쇄경차관. 정확한 인구조사가 임무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거친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인 나주로 향한다. 일원 42명과 함께 배에 오른 이 항해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풍랑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한 끝에 남중국 태주부 임해현 우두산 아래 당도한다.최부 일행은 중국 내륙 운하를 따라 베이징까지 이른 다음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표류한지 넉달 보름만이다. 왕명을 받들어 그간의 일을 소상히 기록해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 책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9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과 함께 세계3대 중국견문록으로 손꼽힌다. 15세기 중국 저간의 사정을 이토록 정밀하게 서술한 기록은 중국 내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는 마르코폴로처럼 구술방식을 택해 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 승려 엔닌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 험한 여정속에서도 '조선의 관리'로서 기품과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표해록'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15세기 중국 동부지역에 대한 세밀한 기술은 그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던 엘리트 문필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어낸 나라. 왕명으로도 고칠 수 없는 추상같은 엄정함의 정신. 그 방대하고 정밀한 데이터베이스. 이러한 문화콘텐츠가 최부같은 교양인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요하다.이 책의 가치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난 극복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공익의 리더십이 강해서 오늘의 답답한 현실에도 호소력이 강하다. 최부는 어떠한 난관에 닥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빗물받을 그릇조차 없어 오줌을 받아 식수로 마셔야 했고,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이 어깨에 작두를 내리치며 겁박해도 "몸뚱이를 뭉개고 뼈를 부순다고 해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해안에 표착해서는 왜구로 오인받아 모진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더로서의 지혜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가장 귀감이 되는 것은 함께 한 42명 전원과 동반 귀국했다는 점이다. 136일간 파란만장한 고난의 여정동안 그는 어찌하여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았던가.참된 지도자는 간난신고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이순신이 그러했고 그보다 100년 전엔 최부가 바로 지도자의 전범이었다. 아쉽다. 위대한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선조들은 그러했는데 오늘 이 땅엔 참된 지도자가 귀하다. 불신과 배타의 논리가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 아프고 심란한 국민 모두의 마음 함께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으면서 최부는 일행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해 골육지친과 다름없으니, 지금부터 서로 돕는다면 몸을 보전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구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같이 나눠 먹는다. 병이 생기면 같이 돌보아 한 사람이라도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최부는 어떻게 모두를 살렸던가. 그는 매순간 문제 해결을 주도했다. 공동체 정신을 강조했고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당부는 왕명보다 지엄했다. 그리하여 그에겐 '존경'이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존경'의 힘으로 42명 전원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존경'앞에서는 낙심도 원망도 미움도 다 사라진다. 생명의 열망과 내일의 희망이 새로 생겨난다. 이런 존경의 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조롱이 비판적 지성으로 위장되는 사회에 존경을 새롭게 초대해야 한다. 최부가 진정 나라의 공복아닌가. 좋은 나라 멀리에서 찾을 필요없다.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4-09-18 윤재웅

보름달 아래서

추석이 지났다. 다행히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괜찮았다. 고향집은 여전했으나 부모님의 등은 조금 더 굽어져 있었다. 누렁이는 앞다리를 들어 반겨주었고 살이 오른 흰 토끼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빨간 눈으로 토끼장 밖의 웅성거림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봄 병아리였던 닭들은 어느새 중닭으로 자랐고 수탉은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을 건드릴까봐 부리부리한 눈으로 철망 앞에서 시위를 했다. 고향집에 오면 마치 순례를 하듯 하나하나 돌아보는 습관이 든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예년보다 일찍 추석이 찾아온 탓에 고추는 아직 반밖에 물들지 않았고 수수열매를 찾아왔던 새들은 양파 망이 씌워져 있는 걸 확인하자 치사하다고 지저귀며 다른 밭으로 날아갔다. 품종개량을 한 것은 아닐텐데 들깨줄기는 사람 키보다 컸다. 깨를 베고 옮겨서 털려면 꽤나 품이 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쓰다듬고 담장을 따라 뻗어간 머루줄기에 매달린 검은 머루 알을 지그시 눌러본 뒤 겨우 네알밖에 열리지 않은 사과나무에 애틋한 눈길을 주었다. 작년에는 한 집에 한 봉지씩 들고 돌아갔는데 올해는 한 알씩 가져가야할 형편이었다.집 뒤편 개울가에서 자라는 돌배나무는 이미 열매를 모두 떨어트린 채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돌배는 다른 과일과 달리 익기도 전에 열매를 툭툭 떨어트리곤 했다. 어린 시절 돌배를 줍다가 돌처럼 단단한 돌배에 머리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고향에서는 돌배를 맛이 몹시 시다해서 심배라고 불렀다. 잘 익은 돌배라 하더라도 한 입 깨물면 그 신맛에 몸서리를 치는 게 돌배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열매보다 인기가 없었는데 최근에 들어와 돌배 술로 일약 주가가 치솟았다. 잘 담근 돌배 술은 외국의 와인보다 그 맛이 깊고 그윽하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는 길고 깊은 겨울밤, 구들장이 뜨끈뜨끈한 고향집 뒷방에 앉아 문밖의 눈을 내다보며 마시는 돌배 술의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겠는가.뿔뿔이 떨어져 사는 식구들이 먼 길을 달려와 모두 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성묘 가는 길이 어렸을 때만큼 멀고 규모가 크며 왁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산길을 달린다. 먹을 게 부족했던 그 시절, 한 시간은 걸어야 되는 성묫길이었지만 사촌들은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코를 흘리며 악착 같이 걸었다. 성묘를 가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벌에 쏘이고 넘어지고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지면서도 조만간 입으로 들어올 음식들을 상상하며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 세월을 건너 지금 여기에 도착해 자동차를 타고 십분만에 산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사촌들은 없다. 어른이 된 사촌들은 묘소를 바꿔 자기의 부모님 묘소에 성묘를 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딸들은 시댁의 산소에 성묘를 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전처럼 서로 음식을 먹으려고 산소를 뱅뱅 돌며 법석을 떨지도 않는다. 그 그림자만, 그 기억만 산소 주변에 맴돌 뿐이다.추석의 밤을 밝히는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보름달이 떴음에도 고향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 사업에 실패했을까. 형제들과 대판 싸운 게 아직 풀리지 않았을까. 명절에 때맞춰 부부싸움을 했을까. 고향에 가도 아무도 없으니 외국으로 여행을 간 것일까. 또 취업에 실패한 것일까. 결혼은 언제할 거냐는 친척들의 위로가 지겨워진 것일까. 이유도 가지가지일 테고 변명도 갖가지일 것이다. 세상사 그렇고 그렇지 않은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저 깊은 바다 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하루빨리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이번 추석의 소원은 그것뿐이었다./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2014-09-11 김도연

한 교포가 울고 있다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동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립대학이 대부분 소도시에 위치한데다 주민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도시라 외국인들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그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일어났다. 미시시피 어느 시골에서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뒤 화장실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화이트(white)라고 쓰인 화장실이 전면에 있고, 컬러(colors)라고 적힌 화장실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 있었다. 뒤편 화장실은 불결하기 그지 없었다. 잠깐 망설이다 우리 가족은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다행히 주유소측에서 시비를 붙지 않아 무사히 빠져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여행내내 흑인들의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미국 남부 오지에 가면 아직도 이같은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미국에서 남부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넘어서 복잡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예해방, 남북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남부는 양키(북부)에 대해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남부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하며 우아한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거대한 저택과 화려한 파티 등을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은 암울한 지역을 떠올린다.남부에 대한 북부의 경멸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심하다. 북부 백인들은 게으른 남부 백인을 일컬어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 레드 넥(red neck) 이라고 비웃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레드 넥'은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는 의미로 볕에 탄 무지한 백인 단순 노동자를 뜻한다. 또 남부의 여러 주들을 두고 바이블 벨트라고 비웃는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골수 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앨러바마·미시시피 등 남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놀랄때 급히 나오는 "오 마이 갓"조차도 불경스럽다며 문제삼는 이도 있다. 반대로 골수 남부인들의 양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또한 만만찮다. 필자가 남부 어느 대학의 세미나 중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인용하자 양키신문을 언급 말라는 일부 참석자들의 항의에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불과 1950년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부는 북부에 싼 원료를 공급하고 가공품을 비싼 값으로 되사는 전형적인 식민지형 경제였다. 정서적·문화적으로 북부에 대해 우월주의에 취해 있던 남부로서는 엄청 자존심 상하는 구조였다. 남부가 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공장들이 크게 기여했다. 현대·기아차도 남부에 똬리를 틀어 이 지역 경제발전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남부 주들이 점차 살만해졌고 '양키들이 목화밭을 구경오던 시절에서 이제는 살기 위해 남부로 온다'는 말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남부의 가난한 흑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북쪽으로 이주한다. 미주리·네브래스카 등등 중북부 공장지대가 커지면서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인구 유입이 시작된 것이다.흑인 시위사태로 지구촌의 관심을 모은 미주리 퍼거슨 시도 이같은 흐름의 중심에 있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흑인 인구가 급증, 전통적인 백인거주지역이 무너지면서 흑백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이 이번 사태의 숨겨진 원인쯤 된다. 문제는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이 점차 동양인에게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 건너 퍼거슨 시의 상황은 미국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불탄 가게를 무대로 한국TV와 인터뷰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교포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외로움·고통 등을 실감한다. 초록이 야위어 가는 구월, 태평양 건너 들려오는 한 교포의 울음소리에 나는 오늘 밤 잠을 뒤척이고 있다./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2014-09-04 김동률

지속가능 발전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 필요

최근 정부는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업 진흥을 위한 규제완화 및 지원방침을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서민경제와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책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국민의 안전과 건강, 환경훼손을 담보로 하는 규제완화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처럼 여론이 나누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 용어는 1987년 발표된 유엔(UN)보고서 '우리들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다소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연 또는 환경용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경제·사회·환경, 나아가 문화부문의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이런 측면에서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는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기업의 생산성을 감소시키고 투자를 어렵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복잡한 행정절차는 혁신적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될 수 있는 환경규제 완화는 성급하게 실행하기보다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규제완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예를 들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 유해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하는 것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매체를 통해 학교 주변의 각종 유해업소들이 불법으로 영업하다가 적발되거나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안전과 학습환경을 저해할 수 있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한다는 경제활성화 대책에 대해서 자녀를 둔 부모라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규제완화 이전에 아이들이 교통사고 위험 없이 안전하게 통학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 청소년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대책이 보다 시급하다.최근 늘어나는 폭염·폭설·집중호우 등 이상기후로 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많은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사회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2012년 이상기후로 인한 도시재해 등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이상기후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환경생태계획 수립 지침을 마련했다. 또 '선계획 후개발' 체계구축을 위해 계획단계부터 환경을 고려하기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제도 도입, 각종 환경정보의 구축 및 제공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물론 개발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환경영향평가 협의절차가 부담스러운 환경규제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발생할 수 있는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재해 등에 따른 피해는 개발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훨씬 초과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활성화 측면에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개선한다면 환경적 영향이 미미한 사업에 대해서는 협의절차를 보다 간소화 또는 면제하고 소규모 개발이라도 환경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이뤄지는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보다 철저히 실시하는 등 유연한 제도 마련과 적용이 필요하다.사회 전반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더욱 팽배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들의 미래세대를 생각하고 경제와 환경, 사회적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현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4-08-28 박경훈

미래의 엘론들 한국의 희망

엘론,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안녕, 엘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왔네요.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죠?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무렵을 '처서'라 부릅니다. 처서가 되면 왕성한 여름기운이 수그러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도 많이 읽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기도 한답니다.엘론, 당신은 24절기 내내 바쁘죠? 당신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해서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하면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현란하고 아름답죠. 21세기형 슈퍼 히어로, 혁신의 아이콘, 제2의 스티브잡스, 영화 '아이언 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 당신이 창업한 회사들의 면면 또한 세계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죠.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친환경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인류의 화성시대를 개척하려는 민간 우주선 제작업체 '스페이스X'. 그곳의 CEO가 자산 91억달러의 43세 미남자라니, 많은 이들에게 어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테슬라가 보유한 300여개의 특허권을 모두 개방해 버린 당신의 대담한 결정을 보면 충격 그 자체죠. '기업이 빠른 혁신을 계속하면 기존 특허권이 의미없게 된다'는 당신의 선언은 삼성과 애플에도 귀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엘론,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엘론 머스크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죠? 우리나라에도 미래의 엘론들이 있지 않겠어요? 풋내기 공학도가 단순한 엔지니어로 기업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과 도전정신으로 사회의 틀 자체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당신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사람들은 그걸 미국의 힘이라고 진단하는데요, 당신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더군요. …미국은 누구에게나 창업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대학에서도 체계적으로 창업교육을 시키고 국가적인 지원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러니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사람이 벤처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결국 시스템 이야기네요. 대학과 기업과 국가가 미래의 수많은 엘론들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국력을 좌우한다는 건데, 이는 국가의 진정한 내공이죠. 국가경쟁력 생태계라고 할까요, 교육과 생산과 관리의 주체들이 상호 공생적으로 협력해서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한데 저 수많은 청년들을 어쩌면 좋겠어요. 10대 20대를 온통 공부에 매달려 전력투구했는데 사회에 나오니 일자리 부족하죠, 선망하던 기업에 취업해도 거시구조에서 보면 패스트 팔로어 체제로는 퍼스트 무버 체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보니까 기업 경쟁력이 금세 뒤처지는 겁니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다 포기해버리는 안타까운 엘론, 엘론들…. 문제는 이들이 진정한 엘론으로 다시 태어나기 힘든 구조속에서 살아간다는 거죠.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정치인들이 헛된 싸움만 계속 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요?시스템 탓, 정치인 탓…. 남 탓만 하고 있다간 해결되는 게 없죠. 그래서 개인의 구체적 행위의 좋은 사례를 찾아봤어요. 엘론 머스크씨, 당신의 이력 중 이채로운 건 독서더군요.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죠. 동생을 비롯해 주위의 친구들이 모두 장난감에 빠져 지낼 때도 당신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었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빠져들었던 소년. 호기심 많고 질문을 많이 하던 엘론.우리나라 엘론에겐 어림없는 이야기죠. 여기는 참 이상한 나라예요. 초등학교때까지는 경쟁적으로 책을 읽는데 중학교만 가면 갑자기 이상해지죠. 입시위주 교육정책의 대표적인 폐해인데 그게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최고수준이 되면서 전 연령대로 확대되네요. 나이가 들수록 책을 더 안 읽는 나라란 말씀이죠.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곳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말 걱정돼요. 난 미래의 엘론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라고 꿈꿔요. 그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4-08-21 윤재웅

세월은 약이 아니다

지난 봄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자리한 문인집필실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며 봄날을 건너가던 중이었다. 때늦은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마침내 봄을 알리는 목련이 하나둘 피었다.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변해 아직 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목련이 얼어버렸고 그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시인·소설가·동화작가들은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 얼마 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한 척의 배가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그렇게 잔인한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도착했다. 그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일부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복과 입추가 겹친 날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곧바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세월호 특별법 무효를 선언했다. 요지는 이렇다. 참극에 대한 1차 책임이 있는 집권세력이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꾸리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것.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특별법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것. 게다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무슨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동시에 축소·은폐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술에 취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이 웃음이 과연 온당한 웃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의 웃음을 황급히 지우기도 했다. 복 더위를 넘기기 위해 삼계탕 집에서 닭 뼈에 붙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다가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젓가락을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아직도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뜨거운 천막 안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술 냄새를 감추고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입술에 묻은 기름기를 닦은 채 저자거리를 떠나야만 했다. 혹시 우리의 불의(不義)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죄의식을 껴안은 채.세월호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이 세상에 떠다니고 있다. 동시에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조금씩 세월호를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세월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새로운 사건은 마치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뻥뻥 터진다. 하지만 우리는 저 캄캄한 바다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기억해야만 한다. 언제·어떻게·누가·무엇을 잘못해서 그리 되었으며, 또 누가 무엇을 감췄고, 누가 어떻게 꼬리를 자르고 달아났는지 하나하나 또렷하게 밝혀내고 머리에 새긴 뒤에야 비로소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 겉모습만 바뀐 세월호가 도착해 다시 침몰을 준비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 세월호에 탑승할 여행객이 바로 나일지도, 당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세월호, 또 그 다다음 세월호, 앞으로도 똑같이 침몰할지 모를 무수한 세월호들에 우리가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이 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은 결국 세월이 약이라고 우기는 특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다. 온갖 의혹들의 시비를 밝히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 그리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제대로 된 특검법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지난 봄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2014-08-14 김도연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학창시절, 국사 수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는 의병에 관한 기록이었다. 임진왜란 의병 기록은 지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소상히 배웠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시험에 자랑스런 의병의 역사는 꼭 출제되었고 행주치마 유래까지 곁들인 역사 선생님의 자부심이 가득한 수업을 들으며 뿌듯해 했다. 그런데, 커서 어른이 된 뒤 가진 의문은 병자호란 때에는 어찌하여 자랑스러운 의병의 역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의병의 활약사는 배운 기억이 많지 않다. 아니 나의 경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이같은 의문은 책을 읽고 역사학자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풀려 나갔다.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큰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전쟁은 특권만 있고 의무는 없는 사대부 지배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선조는 전쟁이 발발하자 의주로 도망간다. 조선의 정궁은 왜적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들에 의해 불타는 치욕을 겪게 된다. 선조의 도망은 곧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도피하면서 사흘 뒤 평양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허언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당시 선조의 명나라 망명 시도는 걸내부(乞內附) 파동으로 정의된다. 걸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속으로 들러붙기를 애걸한다는 의미다. 곧 자신과 비빈들만이 살기 위해 조선을 버리겠다는 것. 그러던 이 저열한 조선왕은 이내 왜적과 싸우기로 맘을 바꾼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명이 선조를 요동의 빈 관아에 유폐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명에 빌붙어 비빈들을 거느리며 제후로 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선조는 내키지 않은 전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이 시기 류성룡은 노비들이 왜적의 수급을 가져 오면 양민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면천법을 강행한다(선조 26년). 왜적 수급 하나면 양민으로 돌려준다는 데 의병을 마다할 노비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몇몇 개혁입법과 함께 수많은 조선 의병들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노비제 철폐는 궁궐을 불태웠던 백성들이 희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런 개혁이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임란은 조선에 되레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그러나 선조는 이같은 기대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고 자리가 어느 정도가 보전되자 생각이 달라진다. 전쟁영웅 제거가 시작되었다. 육지전투의 영웅 의병장 김덕령을 역적모의했다며 혹독하게 고문해 죽인다. 이순신도 제거 대상. 선조는 "이순신은 작은 적일지라도 잡는 데 성실하지 않았고…, 내가 늘 의심하였다"('선조실록' 29년 6월 26일)고 비판했다. 남인 류성룡이 천거한 것을 부정적으로 보던 좌의정 김응남 등 서인의 비판을 핑계로 이순신 제거에 나선다. 한달간 처절한 고문을 받던 이순신은 목숨만 건져 백의종군에 처해졌다. 이 와중에 원균이 1597년 한산도와 칠천도에서 거듭 대패해 수군은 궤멸되고 자신도 전사했다. 선조는 할 수 없이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았으나 스스로 수군은 끝났다고 판단하고 수군 해체령을 내리고 이순신을 육군으로 발령하기까지 한다.저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사력을 다해 싸우면 적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는 대목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지루했던 전쟁은 끝났다. 수백만 백성의 죽음 위에 선조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왜적을 죽이면 양민으로 신분을 돌려주겠다는 면천법을 선조는 아예 없던 일로 해 버렸다. 이후 44년 만에 병자호란이 터졌다. 의병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백성들을 저버리고 저 혼자 살기위해 의주까지 도망간 기득권 세력에 대해 민초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슬프게도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계절은 어느 덧 여름의 끝이다. 이순신 영화가 화제라고 한다. 이 비운의 영웅을 생각하며 올 여름과 이제 이별해야 겠다./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2014-08-07 김동률

건강한 자연공원과 건강한 삶

요즘 도심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아마도 건강한 삶, 웰빙(well-being)에 대한 욕구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캠핑문화의 확산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최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 도립공원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가서 방문객들에게 태백산이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질병 치유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태백산의 건강증진 가치를 위해서 얼마를 기부할 수 있는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백산을 찾는 것이 건강과 질병 치유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있는 부분은 건강증진을 위해서 태백산을 많이 찾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과 같은 자연공원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장소일 것이다.최근 미국과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Healthy Parks Healthy People(HPHP)'이라는 새로운 국립공원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HPHP는 인간과 자연을 서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립공원 등의 자연공원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역할, 생물종 다양성 증진, 미기후조절, 수원함양, 공기정화 등의 생태적·환경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면, 이젠 인간의 건강한 삶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우리는 국립공원 등의 우수한 자연자원을 보전할 것인가,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서 개발할 것인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에서 건강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과 호주 등의 HPHP 정책과 같이 어떠한 모습을 가진 국립공원일 때 과연 인간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줄 것인가,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공원정책수립에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개발과 보전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많은 관심이 건강과 웰빙에 있다면, 이젠 국립공원 등의 자연공원 관리정책도 그에 부합하도록 발전시켜나가야 될 것이다. 공원 방문객들의 신체활동을 감소시키는 편의위주의 과도한 시설물 설치, 건강한 먹거리와 거리가 다소 먼 음식문화 및 관련시설 등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 듣고, 다양한 동식물들을 볼 수 있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건강한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는 자연공원을 통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단기간에 많은 관광객을 유도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고자 하는 공원개발행위 못지않게 잘 보전된 자연공원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지역주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문득 태백산에서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공원 출입구 주변의 식당에서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우며 술을 드시고 계시는 한 할아버지께 다가가 "할아버님, 좋은 공기도 마시고 땀도 흘리시고 한 십년은 젊어지셨을 것 같네요. 담배와 약주만 줄이시면 더 건강해 지실 것 같네요"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4-08-01 박경훈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 장마철 풍경장마철에 접어들어도 마른 장마가 지속되더니 어느새 국지성 호우가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이라더니 여름 한 철 강수량이 꼭 그렇다. 예측 가능하다면 퍽이나 좋을까. 장마철엔 비가 오래도록 많이 내려야 제격이다. 산과 들이 충분히 젖고, 저수지가 만수위에 올라 넉넉해져야 안심이다. 농부는 논에 물꼬를 터주고 시청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넘쳤던 도심 하수구를 새로 정비한다. 그러는 사이 천산만야의 풀과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절기도 질서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삶의 축축한 비애를 한 장의 빈대떡으로 달래보는 소시민들의 심사는 제법 풍류에 속한다. 제격이건 풍류건 그런 빗속 풍경이 문득 그립다. 요즘 장맛비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단의 해소와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윤흥길의 소설 '장마'에 보면 빗속 풍경은 '제격'도 '풍류'도 아닌 하나의 상징이다. 현대사 최고의 비극과 갈등이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중 외할머니가 할머니 집으로 피난살이를 온다. 두 할머니의 아들들은 국군과 빨치산이다. 소년 화자인 '나'에게는 외삼촌과 삼촌이 된다. 전사한 외삼촌을 그리워하면서 외할머니는 문득 비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며 바위 새에 숨은 '뿔갱이'를 다 쓸어가라고 저주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격분한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돈의 저주는 금기 위반을 넘은 전쟁선포와 다름없다.마을의 소경 점쟁이는 모월 모일에 아들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그 날 나타난 것은 빨치산 삼촌이 아니라 큰 구렁이다. 동네 아이들은 구렁이를 향해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치며 쫓아버린다. 이를 본 할머니는 기절하고 외할머니가 뒷일을 수습한다. 그녀는 나타난 뱀을 자신이 저주했던 빨치산 사돈의 혼령이라 생각하고 잘 달래서 좋은 곳으로 보낸다. 뒤에 깨어난 할머니가 이를 알고 사돈 간에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는 진술이 소설을 마감한다. 장마의 끝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도 끝난다.여기서의 장마는 한 집안의 갈등과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면서 한국전쟁의 민족적 아픔을 극화한다. 갈등의 해소와 비극적 아픔의 치유를 통한 화해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분단 극복의 방안이다. 1980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장마철에 문득 이 소설이 생각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소설 속의 갈등과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분단이래 남북한의 대치는 소설 속 '빗속 풍경' 그대로다. 두 어른 사이의 갈등은 남북의 갈등구조를 빼닮았다. 35년 전, 작가가 상징적으로 갈파했던 화해의 요청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에 바란다지난주에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위원이 50명에 이르는 특별조직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연구가 이뤄지고 수많은 시나리오에 대한 실무 검토가 진행될 모양이다. 외교적 상황관리가 막중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민족 내부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사안들이 많을 듯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이미 한 세대 전에 작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갈등 주체들은 이념적 판단이나 경제적 득실에 따라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맺힌 감정을 풀어버림으로써 평온에 이른다. 민족화해에도 감정의 영역이 중요한 단초가 된다는 뜻이다.남과 북이 오래 헤어져서 이념과 관습과 문화가 많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바로 감정이다. 슬프고 기쁜 것,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감정의 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은 막대한 통일비용을 줄이는 선결과제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기회는 많다. 통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롭다면 감정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을 통일준비의 중요한 내용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용운 시인이 노래한 '푸른 하늘'이 아닐까. 명시 '알 수 없어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2014-07-25 윤재웅

군대 이야기

집에 총을 든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트럭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나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헌병에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물었다. 헌병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적이더니, 군 시절 서류를 위조해 세 달이나 빨리 전역을 한 게 발각이 됐으므로 다시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서류란 대학 일·이 학년 때 받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저런 이유로 그 수업에 F를 맞으면 3개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즉 30개월을 꼬박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 서류를 위조해 제출한 뒤 3개월 먼저 전역을 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트럭의 짐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일찍 전역을 했다가 들통이 나 잡혀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맙소사! 내가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가만, 저 인간은? 트럭 안쪽에서 나를 주시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전역하는 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Y병장이었다. 내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인간과 또 군 생활을 함께 해야 한다니….이것은 내 꿈의 일부다. 오랜만에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놀란 내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왜 오래전에 사라졌던 꿈이 되살아났을까. 군대란 곳이 과연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떤 계기만 있으면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일까. 군대에 대한 꿈은 이것 외에도 많았다. 소총을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는 꿈. 전역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제대특명이 내려오지 않는 꿈. 찾아가 항의를 하니 시국이 불안정해 한 달을 더 복무해야 한다는 꿈. 참 종류도 가지가지였고 그 까닭도 그럴 듯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그 꿈들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나는 군사교육이수증명서를 위조하지도 않았고 현역 시절 총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으며 어처구니없는 제대특명 역시 받지 않았다. 선임에게 못 견딜 정도의 고통을 받은 적도 없다. 대부분의 병사들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에 대해 그저 묵묵히, 비겁하게 견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악몽들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에 익은 철책선 풍경이 흐르고 있다. 나도 저들처럼 야간 근무를 섰고 밀어내기를 하느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갔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을 지겹도록 들었다. 폭설이 철책을 덮을 정도로 내리면 며칠이고 제설작업에 매달렸다. 거의 매일같이 산꼭대기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며 막사로 돌아와 빵을 먹고 잠들었다. 어떤 밤에는 철책까지 접근한 산양을 만나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러다 제대특명을 받고 '추억록'을 한 장 한 장 채워나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오래된 '추억록'을 찾아 펼쳤다.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선임과 후임들의 얼굴이 사진 속에서 하나둘 튀어나왔다. 그때 우리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꿈을 꾸며 저 산꼭대기의 날들을 건너갔던 것일까. 모두들 잘 살고 있을까. 벌써 자식을 군에 보낸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추억록' 속의 풍경과 텔레비전 화면 속, 총기난사의 가슴 아픈 풍경을 흐린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둘 다 틀림없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이십여 년 전 같은 막사에서 생활했던 한 병사이기에 먹먹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 악몽을 막을 방법은 정녕 없을까.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다고 쉬쉬하는 건 아닐까./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2014-07-17 김도연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강에 투신한다. 뒤따라간 남자 A가 건져낸다. 전쟁이 일어났다. 남자 C는 점령군 독일군의 고급 장교로 등장한다. 엄청난 권력자다. 피아니스트 남자 B는 권력자로 돌아와 다시 여자를 욕망하는 그를 보고 좌절해 자살한다. 남자 C는 생명의 은인인 남자 A를 가스실로 보낸다. 남자 A를 구해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 C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C가 추억속에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늘 찾던 비프 롤을 먹던 그는 목을 움켜쥐고 죽는다. 독살이다. 이어 백발의 한 여자가 샴페인을 치켜들며 행복해한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꼰대소리쯤 들어도 될 법하다. 1999년 개봉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줄거리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는 설정이 우리 정서에 불편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방학을 틈타 헝가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방문 일정중 어느 하루,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스토랑은 부다페스트 도심 외곽 동물원 옆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현관에는 교황·영국여왕·반기문총장 등 세계 저명인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순간 영화속의 한 여자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저마다의 인간관계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무엇이 인간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고 오래 가는지를 생각게 한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의 변신과 집념, 광기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더불어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나약한 피아니스트는 권력자의 위세에 눌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고, 부유하지만 무기력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두고 운명에 순응한 채 가스실로 간다. 여자는 몸을 던져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하지만 도로에 그치고, 광기에 휩싸인 남자는 생명의 은인마저 가스실로 보내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를 배반한다. 이런 장면은 우리게도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배신하고 낯을 바꾼다. 믿음과 신뢰, 사랑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하루가 다르게 빛바래져 가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말 중의 하나는 의리다. 잔혹한 폭력영화라고 몸서리치면서도 느와르 영화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의리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훨씬 강력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의리라는 말은 본래의 말보다는 패거리 정서 정도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 '의리없는 놈'이란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그러나 건달들이 주고받던 '의리'는 원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나는 의리없는 한국 사회를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의를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극단적인 태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조차 없는 우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의리없는 시대에 나 홀로 의리를 외치는 한물간 한 남자가 뜬금없이 '으리으리하게' 보이는 것이다./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2014-07-10 김동률

폭염 취약 계층과 지역 배려하는 녹색 복지도시

지난 몇 년 간 이상기온 현상으로 유럽을 비롯한 가까운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blackout) 사태의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올 해도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작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빠른 5월 말에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고, 경남지역에서도 6개 시·군에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폭염특보는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열적 스트레스를 지수화한 열지수와 최고기온을 사용하여 국민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로 나누어 발표된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32℃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는 일 최고기온이 35℃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41℃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각각 발표된다. 이처럼 폭염특보를 발표하는 것은 폭염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실제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최근 10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기상재해 중 폭염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도 폭염과 같은 극한적 기후현상과 자연재해, 전염병과 온열질환 등을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건강 위험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폭염이라는 극한적인 기후현상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의 고령인구와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기나 샤워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기 힘든 경제적 취약계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대책 마련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남지역의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에서 2011년부터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등의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2013년도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1천195명이 발생하였고, 이 중 경남지역이 181명으로 가장 많았다. 따라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이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폭염특보가 자주 내려지고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 그리고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의 노령자와 경제적 빈곤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등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폭염 취약 지역'을 파악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도시행정 전반에서의 대책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우선적으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에 대비하기 위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폭염특보와 같은 사전 예방과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가정, 산업, 의료, 행정 분야 등의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교육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무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공원, 가로수, 분수 등과 같은 도시 속 오아시스를 '폭염 취약 지역'에 우선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원이나 가로수와 같은 공원녹지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 제공이 풍부한 수종을 선택하여 심거나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폭염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노인관련 시설이나 보행로를 중심으로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로수를 식재하거나 그늘막 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현재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변화 안심마을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경남 지역에서 폭염에 취약한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 대비 쿨링존 조성' 사업을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폭염은 단순히 무더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폭염 등 기상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너무나도 힘든 우리의 이웃과 어르신들이 잠시나마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땀을 식힐 수 있는 동네를 가꾸어 가는 것에서부터 폭염에 취약한 계층과 지역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녹색의 복지도시를 그려본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4-07-03 박경훈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들

세상 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불과 두 달 전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있었고, 그런 엄청난 사고를 낸 해운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미 다른 나라로 밀항했는지 어쨌는지 땅 속으로 꺼지거나 땅 위로 증발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사고가 다 수습되기 전인 짧은 시간 동안 지방자치행정의 수장과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만 그 일은 벌써 수년 전의 일처럼 멀어진 느낌이다.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현직 총리가 시한부 사퇴를 하고 그 뒤를 이어받을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이런저런 결격 사유로 낙마했다. 전방 부대에서 한 사병이 동료 사병들에게 총을 쏘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으며, 성적이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조차 명함을 내밀 자리가 없이 메가톤급의 사고 사건들이 우리를 흔들고 지난다.그런 중에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요즘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전자책 서점이고, 또 하나는 45년 전에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회 사이트이다.예전엔 독서라면 으레 책으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종이책으로만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필요한 책을 다운받아 읽는다. 뜻밖에도 예전에 챙겨 읽어야 했는데, 미처 읽지 못하고 흘려버린 작품들이 그 바다속에 있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컴퓨터로 글을 보내고 받고, 또 컴퓨터로 작품을 읽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나 역시 작가 생활을 한 지 30년쯤 되는 세월동안 처음엔 원고지 위에 펜으로 글을 썼으며, 그것보다는 타자기가 능률적이어서 타자기로 바꾸었고, 그다음 컴퓨터와 타자기의 중간 형태쯤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지금은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하고 있다. 불과 30년 남짓한 시간동안 펜에서 타자기로, 워드프로세서로, 컴퓨터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그런 변화속에 근래 자주 가고 있는 인터넷 동창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 가면 시간이 오히려 멈춘듯한 느낌이다. 한해 졸업생이 쉰 명도 되지않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 시골학교 동창회다. 전형적인 농경사회 속에서 유년을 보낸, 동창이라기보다는 한 동네의 육친같은 사이들이다. 졸업 앨범 대신 받아든 단체사진 속엔 까까머리 친구들이 더 많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두 명뿐 모두들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귀 중간까지 깡통하게 올라간 원단의 단발머리 소녀도 그 사진 속에 다시 만날 수 있다. 마을에 자동차가 한 대만 들어와도 공부 시간에 모두 밖으로 나가 그것을 구경했다. 그런 그때의 산골 소년이 자라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다운받아 읽으며,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아주 까마득히 잊었던 옛시절의 단발머리 소녀와 추억의 코고무신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앞으로 20년이나 30년 후엔 또 어떤 세상이 올까? 문명이나 문화의 발전 속도로만 본다면 지금보다 더 정신없어질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나중엔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또다른 모습으로 숨막히게 하지는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야 시대에 따라 달라져가도 우리 삶에 본질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텐데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지금 우리 곁을 정신차리지 못할 속도로 휙휙 지나고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긴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6-27 이순원

통합의 가산효과 감산효과

6·4 지방선거도 끝이 났다. 이어 7·30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가는 지금 그 결과를 두고 셈이 한창이다. 지역, 세대, 이념 등 여러 각도에서 득표결과를 분석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내의 계파는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행했던 여러 전략 및 선택에 대하여 효과도 분석하고, 공과도 따진다. 아무래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끌었던 일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를 2달여 앞둔 시점에서의 합당이었을 것이다. 과연 합당효과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득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나름대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분명치는 않은 것 같다. 합당을 주도했던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주류와 이에 소외돼 전략공천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비주류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것을 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할 뿐, 정확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언론에서도 여야 양당이 무승부라고 두리뭉술하게 짚고 넘어가는 듯한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통합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나 보다'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사실, 우리가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인사가 만사여서 팀워크가 대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중요도에 비추어 선택 전에 그 효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데 있다. 물론, 잘 아시다시피, 물질들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많은 경우 여러 성분들이 쉼 없이 서로 섞이거나, 나누어지는, 분리와 혼합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물질의 경우는 사람과 다르게 '혼합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전문 용어여서 다소 생소하지만 '부분 몰 특성치'라는 값을 산출함으로써 계산이 가능하다. 예로, 물과 알코올을 같은 양 혼합하는 경우, 혼합 후의 부피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 낼 수 있다. 이 경우 혼합 후의 부피는 원래보다 대략 3%가량이 작아진다. 이 계산의 핵심원리는 섞이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분자들이 서로 영향을 받아 자기 고유 에너지인 포텐셜 값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물론 성분의 양과 온도 등 주변의 여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 계산 원리를 잘 원용하면 '사람들 간의 통합효과를 유추'해 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물질계에서는 사람과 다르게, 혼합은 쉽게 이루어지고 분리는 어렵게 진행된다. 그 이유는, 자연계에서는 모든 분자가 에너지를 고루 나누어 안정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쌀알과 보리를 섞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성분을 섞는 일은 어린아이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원상태로 나누어 분리하는 일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면 사람의 경우는 그 반대다. 자기만의 에너지를 높이는,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해가 상충되어 헤어짐은 쉽게 일어나고, 함께 하는 연합이나 통합은 어렵게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가 하나 있다. 혼합에서의 가산과 감산효과이다. 빛의 색은 혼합하면 더 밝아진다. 즉 빨강, 파랑, 초록인 빛의 삼원색을 합치면 원래 색보다도 더 밝아진 흰색이 된다. 가산효과다. 반면에 물감의 색은 더 어두운 색이 된다. 마젠타, 시안, 노랑, 즉 액체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정색이 된다. 감산효과다. 즉 끈적끈적한 액체 물질들을 합치면 더 어두워지고, 빛과 같이 투명하고 밝은 분자들은 이전보다 더 밝아진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다르듯이, '사람들 간의 통합'에 물질을 예로 들어 해석하려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여,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고 상대를 밝히는, 투명한 물질들 간의 혼합, 즉 욕심 없는 순결혼합에는 '가산효과'가 있다는 점은 참고해 볼 만하다. 우리 정치에서,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되도록 상호 에너지가 증가하는 '가산혼합' 쪽으로 진행되길 바라본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6-19 김병식

동학농민운동, 섣부른 '개방정책'이 문제였다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은 1천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로 쳐들어가 군수 조병갑을 쫓아냈다. 갑오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이었다. 농민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즉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기로 다짐하였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도 농민군에게 함락되었다. 겁에 질린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이것은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청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벌였고, 승기를 잡은 일본은 경복궁까지 무력 점령했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강화되자, 농민군은 다시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워 농민군을 공격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꺾이고 말았다.1894년, 소위 '토벌작전'에 참가한 일본군은 2만~5만명의 농민군을 처형하였다. 농민군의 10분의 1쯤이 외국 군대에 목숨을 잃자, 농민군은 재기 불능이 되어버렸다.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도 타격을 받았다. 외세에 의존해 농민군을 탄압하였기 때문이다.그 이듬해 4월 17일, 청일 양국은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강화조약을 맺고 청일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승전국 일본은 전쟁배상금으로 은화 2억 냥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청나라에게서 받아냈다. 당시 일본의 수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이를 군비 확장에 쓸어넣은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에 깊이 빠져들었다.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농업기술이 점차 발달된 결과 농촌사회가 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지가 대지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사회가 불안해졌다는 말이다. 둘째, 전정(田政), 군정(軍政) 및 환곡(還穀) 등 수취체제에 모순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셋째, 19세기 이후 본격화된 세도정치로 인해 부패가 만연한 것도 이유라 한다.내가 보기에는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 전라도의 경우, 농민의 처지는 더욱 열악했다. 그들은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되었다. 전라도는 양반들까지도 오랫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상하계층 모두가 조정에 등을 돌리기 쉬웠다.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1876년 일본과 불평등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 상인들이 개항장을 통해 값싼 면직물과 공산품을 들여왔다. 임오군란(1882년) 뒤로는 청나라 상인들까지 몰려들어 공산품 시장이 더욱 커졌다. 소수의 객주와 보부상은 이익을 얻었지만, 전통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에게는 타격이 컸다. 가내수공업을 통해 가계 적자를 메우던 농민들의 피해는 더욱 심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쌀과 콩 등 국내산 곡물의 유출이었다. 셈이 빠른 지주들은 곡물 수출을 통해 벼락부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일부 자영농을 포함한 대다수 농민들은 곡물가격의 급격한 변동으로 위기에 빠졌다.한 마디로,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것은 조정의 무분별한 무역개방 조치였다. 고종과 그의 측근들이 주도한 '개화정책'이 화근이었다.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개화정책을 편 것은 옳았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거듭된 재정 부족은 매번 증세 조치로 이어져, 농민들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농민군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외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외세는 정치적 주권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갔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한 농민군은 '서울의 권귀(權貴)'와 '횡포한 지방 양반'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다. 기득권 세력을 농민들은 배신자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남에게 주권을 팔아먹은 죄인이었다. 농민들의 현실 인식은 날카로웠다.무분별한 시장 개방은 늘 사회문제를 낳는다. 1997년의 외환위기도 외환시장을 함부로 개방해 각국의 투기자본을 끌어들인 결과였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공산품 수출을 늘리려고 농수산물 수입시장을 열어젖혔지만, 그 폐해가 심하다. 지난 몇년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자유무역협정(FTA)'들 또한 부작용의 염려가 있다. 빈사상태에 빠진 농촌은 물론 도시의 중산층도 자칫 붕괴시킬 수 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6-12 백승종

근대화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갈등을 겪었다.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체제로 가야할 과제와 침략을 막아야 하는 이중의 막중한 부담을 안고 출발하였다. 1876년 개항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항구를 개방하여 통상수호조약을 맺음으로써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그동안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프랑스, 미국 등의 통상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서구 열강과의 통상 기회는 물 건너갔다. 결국 후발자본주의국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시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소위 강화도조약이라고 불리는 1876년 체결된 한일수호통상조약은 완전히 불평등한 조건으로 점철되었다. 준비 안 된 미래는 희망과 보장이 없듯이 제1조부터 '조선은 자주국가이며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조문에 우리는 오히려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안심했지만 일본이 초장에 심리적 무장해제를 시키려는 함정이었고 중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일본의 입지를 넓히려는 계략이었다. 그외에 3항구(부산, 후에 원산, 인천 지정)의 개방도 남의 나라 땅에서 일본의 일방적 선정이나, 조선 땅에서 일어나는 일본인 범죄를 일본법으로 처리한다는 치외법권 조항은 후에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특히 통상조약인데 관세율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우리 물품을 보호할 근거조차 없는 심히 불평등한 조약이었는데 우리는 전혀 몰랐다. 6년 후(1882) 미국과 조약을 맺을 때에나 통상조약에 관세율이 설정되어야 함을 뒤늦게 알았지만 많은 것을 일본에 잃은 후였다.한편 거세게 밀려오는 외압을 감당하려면 내부의 결속력이 필수건만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론분열은 국가의 동력을 떨어트리는 데 치명적이었다. 개화세력도 보수세력도 나라의 앞날을 지킨다는 목표는 같았을지 몰라도 방법론에서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상대방에게 틈을 벌려 침략의 길을 열어준 모양이 되었다.그럼에도 역사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이 시절의 희망은 교육이었다. 오로지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일념으로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필두로 민간 유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립학교 설립 운동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뻗어나갔다. 바로 근대식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애국심으로 뭉쳐 민족 운동에 앞장서고 계몽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쳐 희망의 내일을 준비하였다.일제 식민지시대에도 3·1운동의 불꽃 같은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을 위한 치열한 투쟁과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35년 만에 빼앗긴 나라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8·15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 지 내년이면 어언 70년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성장으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국가의 위상을 떨치면서 오늘날의 성취가 있었다. 이 역사의 길 위에는 애국의 순국선열과 6·25전쟁 때 목숨 바쳐 싸운 전몰장병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이분들에 대한 추념일이 현충일이고 6월은 호국의 달이다. 내 나라 남이 지켜주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이 얼마나 참담했고, 나라의 소중함이 얼마나 절실한지 임시 정부의 안살림을 도맡고 실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정정화 여사의 귀국전야의 글을 인용해 본다. "서신 연락조차 닿지 못했던 중원대륙의 흙바람이 휘몰아칠 때, 손가락 같이 굵은 빗줄기가 천형인 듯이 쏟아져 내려와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을 때 그래서 서글프고 쓸쓸할 때마다 늘 생각이 사무치던 곳 그 곳이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이었다. 그렇게 조국은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어린 아이가 집 밖에 나가 놀 때도 어머니는 늘 집 안에 계시듯이 조국은, 잃어버렸던 조국은 그렇게 있었다." - 정정화 여사 회고록 '녹두꽃'의 '해방 후 귀국전야'에서.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6-05 이배용

안전이 구호로만 남발되는 사회

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8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까지 지하철을 타보았다. 철로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만 뚫는 줄 알았는데, 이 굴 속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전철요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 금액이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그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표를 받자마자 꼭 쥐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렇게 굴속을 달리던 중 중간에 멈춰서면 어떻게 하나, 혹시 이 굴속에서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손안에 땀이 배어들며 몇 정거장 가는 동안 딱지와 같은 승차권이 후줄근하게 젖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38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고양 일산이다.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면서 신도시로 이사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저런 일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간다. 한동안 전철의 안전에 대해 무감하게 지내다가 세월호 침몰사고 후, 또 얼마 전 서울지하철 사고 후 다시 내가 굴속을 지나다니는 것에 대해, 또 그런 동안의 신변안전에 대해 생각한다.실제 우리 주변에 보면 안전만큼 강조되는 구호도 없다. 신축건물 공사현장에도, 길을 새로 내거나 정비하는 토목 공사현장에도 안전띠 내지는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고 거기에 어김없이 안전제일 구호가 적혀 있다. 아마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만큼 도처에 말과 구호로 안전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은 것일까. 안전이 생활 속의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냥 입으로만 떠드는 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해가 떠도 안전이고 달이 떠도 안전이고, 안전을 마구 내팽개친 현장에도 어김없이 안전띠와 안전구호가 자리잡고 있다.며칠 전 내가 사는 고양시의 종합터미널에 화재가 발생해 귀한 목숨을 8명이나 앗아갔다. 그 사고로 터미널 매표대기실에서만도 수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남의 일이고 다른 동네의 사고일 뿐이다.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 사고는 좀 더 가깝고 아찔하게 다가온다. 바로 그 사고가 있기 몇 분 전 내 아들이 그곳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갔기 때문이다. 어떤 일로 몇 분만 미적거렸다면 화재 현장에 내 아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고를 피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다행한 일이지만 세월호도, 이런저런 지하철사고도, 고양터미널 화재사건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발생한 전남 장성요양원 화재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보면 기업하기 좋게, 장사하기 좋게 모든 규제 다 풀기가 국가 경제부양의 제일 정책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마다 얼마나 살림살이가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어제까지 아무 사고 없었던 건물에 당장 일어날 불도 아니고 당장 무너질 기둥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업하기 어렵게 또 장사하기 어렵게 지켜야 할 쓸데없는 규칙들과 돈 들여 시설하거나 갖추어야 할 안전규정들이 많으냐면서 이런저런 안전규제 다 풀어버리고, 관리감독도 눈가리고 대충하도록 서로 상부상조하는 부정부패의 먹이사슬 속에 당장 나와 내 가족이 아니다뿐이지 언제 어디에서든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 사회가 이미 들어가버린 느낌이다. 일상생활 속의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사고방지와 안전대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거기에 주술적인 힘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입으로만 떠드는 안전구호들이 오히려 도처에 널려 있는 위험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안전불감증만 더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5-29 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