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강에 투신한다. 뒤따라간 남자 A가 건져낸다. 전쟁이 일어났다. 남자 C는 점령군 독일군의 고급 장교로 등장한다. 엄청난 권력자다. 피아니스트 남자 B는 권력자로 돌아와 다시 여자를 욕망하는 그를 보고 좌절해 자살한다. 남자 C는 생명의 은인인 남자 A를 가스실로 보낸다. 남자 A를 구해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 C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C가 추억속에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늘 찾던 비프 롤을 먹던 그는 목을 움켜쥐고 죽는다. 독살이다. 이어 백발의 한 여자가 샴페인을 치켜들며 행복해한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꼰대소리쯤 들어도 될 법하다. 1999년 개봉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줄거리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는 설정이 우리 정서에 불편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방학을 틈타 헝가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방문 일정중 어느 하루,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스토랑은 부다페스트 도심 외곽 동물원 옆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현관에는 교황·영국여왕·반기문총장 등 세계 저명인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순간 영화속의 한 여자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저마다의 인간관계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무엇이 인간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고 오래 가는지를 생각게 한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의 변신과 집념, 광기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더불어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나약한 피아니스트는 권력자의 위세에 눌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고, 부유하지만 무기력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두고 운명에 순응한 채 가스실로 간다. 여자는 몸을 던져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하지만 도로에 그치고, 광기에 휩싸인 남자는 생명의 은인마저 가스실로 보내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를 배반한다. 이런 장면은 우리게도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배신하고 낯을 바꾼다. 믿음과 신뢰, 사랑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하루가 다르게 빛바래져 가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말 중의 하나는 의리다. 잔혹한 폭력영화라고 몸서리치면서도 느와르 영화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의리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훨씬 강력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의리라는 말은 본래의 말보다는 패거리 정서 정도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 '의리없는 놈'이란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그러나 건달들이 주고받던 '의리'는 원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나는 의리없는 한국 사회를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의를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극단적인 태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조차 없는 우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의리없는 시대에 나 홀로 의리를 외치는 한물간 한 남자가 뜬금없이 '으리으리하게' 보이는 것이다./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

2014-07-10 김동률

폭염 취약 계층과 지역 배려하는 녹색 복지도시

지난 몇 년 간 이상기온 현상으로 유럽을 비롯한 가까운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blackout) 사태의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올 해도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작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빠른 5월 말에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고, 경남지역에서도 6개 시·군에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폭염특보는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열적 스트레스를 지수화한 열지수와 최고기온을 사용하여 국민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로 나누어 발표된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32℃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는 일 최고기온이 35℃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41℃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각각 발표된다. 이처럼 폭염특보를 발표하는 것은 폭염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실제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최근 10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기상재해 중 폭염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도 폭염과 같은 극한적 기후현상과 자연재해, 전염병과 온열질환 등을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건강 위험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폭염이라는 극한적인 기후현상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의 고령인구와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기나 샤워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기 힘든 경제적 취약계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대책 마련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남지역의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에서 2011년부터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등의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2013년도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1천195명이 발생하였고, 이 중 경남지역이 181명으로 가장 많았다. 따라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이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폭염특보가 자주 내려지고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 그리고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의 노령자와 경제적 빈곤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등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폭염 취약 지역'을 파악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도시행정 전반에서의 대책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우선적으로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에 대비하기 위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폭염특보와 같은 사전 예방과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가정, 산업, 의료, 행정 분야 등의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교육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무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공원, 가로수, 분수 등과 같은 도시 속 오아시스를 '폭염 취약 지역'에 우선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원이나 가로수와 같은 공원녹지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 제공이 풍부한 수종을 선택하여 심거나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폭염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노인관련 시설이나 보행로를 중심으로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로수를 식재하거나 그늘막 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현재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변화 안심마을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경남 지역에서 폭염에 취약한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 대비 쿨링존 조성' 사업을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폭염은 단순히 무더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폭염 등 기상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너무나도 힘든 우리의 이웃과 어르신들이 잠시나마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땀을 식힐 수 있는 동네를 가꾸어 가는 것에서부터 폭염에 취약한 계층과 지역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녹색의 복지도시를 그려본다./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경훈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4-07-03 박경훈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들

세상 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불과 두 달 전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있었고, 그런 엄청난 사고를 낸 해운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미 다른 나라로 밀항했는지 어쨌는지 땅 속으로 꺼지거나 땅 위로 증발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사고가 다 수습되기 전인 짧은 시간 동안 지방자치행정의 수장과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만 그 일은 벌써 수년 전의 일처럼 멀어진 느낌이다.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현직 총리가 시한부 사퇴를 하고 그 뒤를 이어받을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이런저런 결격 사유로 낙마했다. 전방 부대에서 한 사병이 동료 사병들에게 총을 쏘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으며, 성적이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조차 명함을 내밀 자리가 없이 메가톤급의 사고 사건들이 우리를 흔들고 지난다.그런 중에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요즘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전자책 서점이고, 또 하나는 45년 전에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회 사이트이다.예전엔 독서라면 으레 책으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종이책으로만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필요한 책을 다운받아 읽는다. 뜻밖에도 예전에 챙겨 읽어야 했는데, 미처 읽지 못하고 흘려버린 작품들이 그 바다속에 있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컴퓨터로 글을 보내고 받고, 또 컴퓨터로 작품을 읽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나 역시 작가 생활을 한 지 30년쯤 되는 세월동안 처음엔 원고지 위에 펜으로 글을 썼으며, 그것보다는 타자기가 능률적이어서 타자기로 바꾸었고, 그다음 컴퓨터와 타자기의 중간 형태쯤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지금은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하고 있다. 불과 30년 남짓한 시간동안 펜에서 타자기로, 워드프로세서로, 컴퓨터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그런 변화속에 근래 자주 가고 있는 인터넷 동창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 가면 시간이 오히려 멈춘듯한 느낌이다. 한해 졸업생이 쉰 명도 되지않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 시골학교 동창회다. 전형적인 농경사회 속에서 유년을 보낸, 동창이라기보다는 한 동네의 육친같은 사이들이다. 졸업 앨범 대신 받아든 단체사진 속엔 까까머리 친구들이 더 많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두 명뿐 모두들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귀 중간까지 깡통하게 올라간 원단의 단발머리 소녀도 그 사진 속에 다시 만날 수 있다. 마을에 자동차가 한 대만 들어와도 공부 시간에 모두 밖으로 나가 그것을 구경했다. 그런 그때의 산골 소년이 자라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다운받아 읽으며,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아주 까마득히 잊었던 옛시절의 단발머리 소녀와 추억의 코고무신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앞으로 20년이나 30년 후엔 또 어떤 세상이 올까? 문명이나 문화의 발전 속도로만 본다면 지금보다 더 정신없어질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나중엔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또다른 모습으로 숨막히게 하지는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야 시대에 따라 달라져가도 우리 삶에 본질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텐데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지금 우리 곁을 정신차리지 못할 속도로 휙휙 지나고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긴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6-27 이순원

통합의 가산효과 감산효과

6·4 지방선거도 끝이 났다. 이어 7·30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가는 지금 그 결과를 두고 셈이 한창이다. 지역, 세대, 이념 등 여러 각도에서 득표결과를 분석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내의 계파는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행했던 여러 전략 및 선택에 대하여 효과도 분석하고, 공과도 따진다. 아무래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끌었던 일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를 2달여 앞둔 시점에서의 합당이었을 것이다. 과연 합당효과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득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나름대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분명치는 않은 것 같다. 합당을 주도했던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주류와 이에 소외돼 전략공천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비주류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것을 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할 뿐, 정확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언론에서도 여야 양당이 무승부라고 두리뭉술하게 짚고 넘어가는 듯한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통합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나 보다'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사실, 우리가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인사가 만사여서 팀워크가 대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중요도에 비추어 선택 전에 그 효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데 있다. 물론, 잘 아시다시피, 물질들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많은 경우 여러 성분들이 쉼 없이 서로 섞이거나, 나누어지는, 분리와 혼합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물질의 경우는 사람과 다르게 '혼합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전문 용어여서 다소 생소하지만 '부분 몰 특성치'라는 값을 산출함으로써 계산이 가능하다. 예로, 물과 알코올을 같은 양 혼합하는 경우, 혼합 후의 부피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 낼 수 있다. 이 경우 혼합 후의 부피는 원래보다 대략 3%가량이 작아진다. 이 계산의 핵심원리는 섞이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분자들이 서로 영향을 받아 자기 고유 에너지인 포텐셜 값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물론 성분의 양과 온도 등 주변의 여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 계산 원리를 잘 원용하면 '사람들 간의 통합효과를 유추'해 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물질계에서는 사람과 다르게, 혼합은 쉽게 이루어지고 분리는 어렵게 진행된다. 그 이유는, 자연계에서는 모든 분자가 에너지를 고루 나누어 안정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쌀알과 보리를 섞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성분을 섞는 일은 어린아이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원상태로 나누어 분리하는 일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면 사람의 경우는 그 반대다. 자기만의 에너지를 높이는,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해가 상충되어 헤어짐은 쉽게 일어나고, 함께 하는 연합이나 통합은 어렵게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가 하나 있다. 혼합에서의 가산과 감산효과이다. 빛의 색은 혼합하면 더 밝아진다. 즉 빨강, 파랑, 초록인 빛의 삼원색을 합치면 원래 색보다도 더 밝아진 흰색이 된다. 가산효과다. 반면에 물감의 색은 더 어두운 색이 된다. 마젠타, 시안, 노랑, 즉 액체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정색이 된다. 감산효과다. 즉 끈적끈적한 액체 물질들을 합치면 더 어두워지고, 빛과 같이 투명하고 밝은 분자들은 이전보다 더 밝아진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다르듯이, '사람들 간의 통합'에 물질을 예로 들어 해석하려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여,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고 상대를 밝히는, 투명한 물질들 간의 혼합, 즉 욕심 없는 순결혼합에는 '가산효과'가 있다는 점은 참고해 볼 만하다. 우리 정치에서,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되도록 상호 에너지가 증가하는 '가산혼합' 쪽으로 진행되길 바라본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6-19 김병식

동학농민운동, 섣부른 '개방정책'이 문제였다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은 1천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로 쳐들어가 군수 조병갑을 쫓아냈다. 갑오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이었다. 농민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즉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기로 다짐하였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도 농민군에게 함락되었다. 겁에 질린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이것은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청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벌였고, 승기를 잡은 일본은 경복궁까지 무력 점령했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강화되자, 농민군은 다시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워 농민군을 공격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꺾이고 말았다.1894년, 소위 '토벌작전'에 참가한 일본군은 2만~5만명의 농민군을 처형하였다. 농민군의 10분의 1쯤이 외국 군대에 목숨을 잃자, 농민군은 재기 불능이 되어버렸다.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도 타격을 받았다. 외세에 의존해 농민군을 탄압하였기 때문이다.그 이듬해 4월 17일, 청일 양국은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강화조약을 맺고 청일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승전국 일본은 전쟁배상금으로 은화 2억 냥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청나라에게서 받아냈다. 당시 일본의 수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이를 군비 확장에 쓸어넣은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에 깊이 빠져들었다.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농업기술이 점차 발달된 결과 농촌사회가 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지가 대지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사회가 불안해졌다는 말이다. 둘째, 전정(田政), 군정(軍政) 및 환곡(還穀) 등 수취체제에 모순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셋째, 19세기 이후 본격화된 세도정치로 인해 부패가 만연한 것도 이유라 한다.내가 보기에는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 전라도의 경우, 농민의 처지는 더욱 열악했다. 그들은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되었다. 전라도는 양반들까지도 오랫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상하계층 모두가 조정에 등을 돌리기 쉬웠다.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1876년 일본과 불평등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 상인들이 개항장을 통해 값싼 면직물과 공산품을 들여왔다. 임오군란(1882년) 뒤로는 청나라 상인들까지 몰려들어 공산품 시장이 더욱 커졌다. 소수의 객주와 보부상은 이익을 얻었지만, 전통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에게는 타격이 컸다. 가내수공업을 통해 가계 적자를 메우던 농민들의 피해는 더욱 심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쌀과 콩 등 국내산 곡물의 유출이었다. 셈이 빠른 지주들은 곡물 수출을 통해 벼락부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일부 자영농을 포함한 대다수 농민들은 곡물가격의 급격한 변동으로 위기에 빠졌다.한 마디로,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것은 조정의 무분별한 무역개방 조치였다. 고종과 그의 측근들이 주도한 '개화정책'이 화근이었다.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개화정책을 편 것은 옳았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거듭된 재정 부족은 매번 증세 조치로 이어져, 농민들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농민군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외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외세는 정치적 주권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갔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한 농민군은 '서울의 권귀(權貴)'와 '횡포한 지방 양반'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다. 기득권 세력을 농민들은 배신자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남에게 주권을 팔아먹은 죄인이었다. 농민들의 현실 인식은 날카로웠다.무분별한 시장 개방은 늘 사회문제를 낳는다. 1997년의 외환위기도 외환시장을 함부로 개방해 각국의 투기자본을 끌어들인 결과였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공산품 수출을 늘리려고 농수산물 수입시장을 열어젖혔지만, 그 폐해가 심하다. 지난 몇년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자유무역협정(FTA)'들 또한 부작용의 염려가 있다. 빈사상태에 빠진 농촌은 물론 도시의 중산층도 자칫 붕괴시킬 수 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6-12 백승종

근대화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갈등을 겪었다.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체제로 가야할 과제와 침략을 막아야 하는 이중의 막중한 부담을 안고 출발하였다. 1876년 개항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항구를 개방하여 통상수호조약을 맺음으로써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그동안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프랑스, 미국 등의 통상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서구 열강과의 통상 기회는 물 건너갔다. 결국 후발자본주의국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시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소위 강화도조약이라고 불리는 1876년 체결된 한일수호통상조약은 완전히 불평등한 조건으로 점철되었다. 준비 안 된 미래는 희망과 보장이 없듯이 제1조부터 '조선은 자주국가이며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조문에 우리는 오히려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안심했지만 일본이 초장에 심리적 무장해제를 시키려는 함정이었고 중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일본의 입지를 넓히려는 계략이었다. 그외에 3항구(부산, 후에 원산, 인천 지정)의 개방도 남의 나라 땅에서 일본의 일방적 선정이나, 조선 땅에서 일어나는 일본인 범죄를 일본법으로 처리한다는 치외법권 조항은 후에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특히 통상조약인데 관세율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우리 물품을 보호할 근거조차 없는 심히 불평등한 조약이었는데 우리는 전혀 몰랐다. 6년 후(1882) 미국과 조약을 맺을 때에나 통상조약에 관세율이 설정되어야 함을 뒤늦게 알았지만 많은 것을 일본에 잃은 후였다.한편 거세게 밀려오는 외압을 감당하려면 내부의 결속력이 필수건만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론분열은 국가의 동력을 떨어트리는 데 치명적이었다. 개화세력도 보수세력도 나라의 앞날을 지킨다는 목표는 같았을지 몰라도 방법론에서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상대방에게 틈을 벌려 침략의 길을 열어준 모양이 되었다.그럼에도 역사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이 시절의 희망은 교육이었다. 오로지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일념으로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필두로 민간 유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립학교 설립 운동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뻗어나갔다. 바로 근대식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애국심으로 뭉쳐 민족 운동에 앞장서고 계몽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쳐 희망의 내일을 준비하였다.일제 식민지시대에도 3·1운동의 불꽃 같은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을 위한 치열한 투쟁과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35년 만에 빼앗긴 나라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8·15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 지 내년이면 어언 70년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성장으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국가의 위상을 떨치면서 오늘날의 성취가 있었다. 이 역사의 길 위에는 애국의 순국선열과 6·25전쟁 때 목숨 바쳐 싸운 전몰장병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이분들에 대한 추념일이 현충일이고 6월은 호국의 달이다. 내 나라 남이 지켜주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이 얼마나 참담했고, 나라의 소중함이 얼마나 절실한지 임시 정부의 안살림을 도맡고 실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정정화 여사의 귀국전야의 글을 인용해 본다. "서신 연락조차 닿지 못했던 중원대륙의 흙바람이 휘몰아칠 때, 손가락 같이 굵은 빗줄기가 천형인 듯이 쏟아져 내려와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을 때 그래서 서글프고 쓸쓸할 때마다 늘 생각이 사무치던 곳 그 곳이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이었다. 그렇게 조국은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어린 아이가 집 밖에 나가 놀 때도 어머니는 늘 집 안에 계시듯이 조국은, 잃어버렸던 조국은 그렇게 있었다." - 정정화 여사 회고록 '녹두꽃'의 '해방 후 귀국전야'에서.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6-05 이배용

안전이 구호로만 남발되는 사회

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8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까지 지하철을 타보았다. 철로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만 뚫는 줄 알았는데, 이 굴 속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전철요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 금액이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그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표를 받자마자 꼭 쥐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렇게 굴속을 달리던 중 중간에 멈춰서면 어떻게 하나, 혹시 이 굴속에서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손안에 땀이 배어들며 몇 정거장 가는 동안 딱지와 같은 승차권이 후줄근하게 젖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38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고양 일산이다.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면서 신도시로 이사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저런 일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간다. 한동안 전철의 안전에 대해 무감하게 지내다가 세월호 침몰사고 후, 또 얼마 전 서울지하철 사고 후 다시 내가 굴속을 지나다니는 것에 대해, 또 그런 동안의 신변안전에 대해 생각한다.실제 우리 주변에 보면 안전만큼 강조되는 구호도 없다. 신축건물 공사현장에도, 길을 새로 내거나 정비하는 토목 공사현장에도 안전띠 내지는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고 거기에 어김없이 안전제일 구호가 적혀 있다. 아마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만큼 도처에 말과 구호로 안전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은 것일까. 안전이 생활 속의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냥 입으로만 떠드는 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해가 떠도 안전이고 달이 떠도 안전이고, 안전을 마구 내팽개친 현장에도 어김없이 안전띠와 안전구호가 자리잡고 있다.며칠 전 내가 사는 고양시의 종합터미널에 화재가 발생해 귀한 목숨을 8명이나 앗아갔다. 그 사고로 터미널 매표대기실에서만도 수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남의 일이고 다른 동네의 사고일 뿐이다.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 사고는 좀 더 가깝고 아찔하게 다가온다. 바로 그 사고가 있기 몇 분 전 내 아들이 그곳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갔기 때문이다. 어떤 일로 몇 분만 미적거렸다면 화재 현장에 내 아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고를 피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다행한 일이지만 세월호도, 이런저런 지하철사고도, 고양터미널 화재사건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발생한 전남 장성요양원 화재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보면 기업하기 좋게, 장사하기 좋게 모든 규제 다 풀기가 국가 경제부양의 제일 정책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마다 얼마나 살림살이가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어제까지 아무 사고 없었던 건물에 당장 일어날 불도 아니고 당장 무너질 기둥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업하기 어렵게 또 장사하기 어렵게 지켜야 할 쓸데없는 규칙들과 돈 들여 시설하거나 갖추어야 할 안전규정들이 많으냐면서 이런저런 안전규제 다 풀어버리고, 관리감독도 눈가리고 대충하도록 서로 상부상조하는 부정부패의 먹이사슬 속에 당장 나와 내 가족이 아니다뿐이지 언제 어디에서든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 사회가 이미 들어가버린 느낌이다. 일상생활 속의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사고방지와 안전대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거기에 주술적인 힘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입으로만 떠드는 안전구호들이 오히려 도처에 널려 있는 위험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안전불감증만 더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5-29 이순원

6·4 지방선거 이런저런 걱정들

6·4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그 한복판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 슬픔,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났을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7가지'란 시중에서 지금 유행하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임에 틀림없다.선거는 사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예술이다. 출마 당사자에게는 결과인 당선여부가 더 중요하겠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선거과정에서 얻어지는 과실(果實)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각 후보들이 지역사회에 관한 여러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이에 대하여 토론하고 수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그 자체가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데 유효한 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당선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정에서 다수가 만들어 낸 정책의지, 아이디어, 공감대 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이 정책토론과 수렴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시간들을 대부분 놓쳐 버렸다. 재론할 필요도 없이 지역을 대표하고, 수많은 국가 예산을 집행하며 인사권까지 거머쥔 선출직 장으로 어떤 사람을 선출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춘향전의 변사또와 같은 현대판 단체장이 선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사실 후보를 검증하는 작업은 선거에서 중요한 핵심 절차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늦었지만 어떻게든 이루어졌으면 하는 이유다. 사실 후보의 검증은 물리적으로 생업에 바쁜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 같은 전문기관이 일정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종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과 단체들은 생태적으로 중앙정부의 대권이나,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 서민들이 직접 살고 있는 지방현장에 대한 사정들을 잘 모른다. 더욱이 회사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풀뿌리선거에는 관심이 없다. 걱정되는 대목이다. 사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이전에도, 우리에게 주어졌던 금쪽 같은 시간들을 놓쳤었다. 불과 달포 전 일이다. 기억하다시피 기초선거 출마자들의 정당공천 여부를 두고, 여야가 심히 다투면서 다 소진해 버린 것이다. 정말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결국 아무 수확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 일이었다. 정치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어 왔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에는 대선에서 한 약속들을 맘대로 바꾸어 버리고, 제1 야당은 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곡예하듯 당명과 강령 등을 새로 내놓으니, 유권자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여당인 새누리당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여밖에 안 된 정당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우리 정치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4년 만에 한 번 갖는 지방선거는 아직 많이 낯설다. 그 내용도 복잡하다. 개개인이 한 투표소에서 무려 7장의 투표지에 기표해야 하는 선거이다. 유권자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 보도 때문에 정보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선거까지 2주 남은 오늘까지도, 후보가 누구인지, 무슨 정책과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유권자 대부분은 잘 모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출마하는 후보자들 간에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산에서는 무소속의 오거돈 후보와 야당의 김영춘 후보 간에 연횡이 이루어지고, 광주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무소속의 강운태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합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4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여러모로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지혜로워야 할 것 같다. 분위기보다는 냉철한 판단을, 감성보다는 이성(理性)으로 투표하기를 기대해 본다. 감성보다는 아무래도 이성의 유효기간이 길 것이기 때문이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5-22 김병식

후쿠시마,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

"우리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도 먹을 수가 없고, 아무 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 절망적입니다." 연전에 만난 일본 농부는 청중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피해 규모를 제대로 공개하지 못한다. 정치적 고려 때문일 것이다. 각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후쿠시마 사태의 사고 뒷수습은 30~40년도 더 걸린다고 한다.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우리 돈으로 최소한 1경 원이 필요하단다.애초 인류가 핵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값도 싸고, 안전하며, 전기공급도 안정적이라고 믿어서였다. 핵발전은 하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1954년 6월27일, 모스크바 남서쪽 오브닌스크 시에 사상 최초의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그 이듬해에는 영국에 그 10배 규모(50메가와트)의 상업용 핵발전소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인류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핵발전소는 건설비용이 비싸다. 반감기가 긴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문제는 해답이 없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열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핵발전소는 불의의 초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1986년 구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는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상당수 나라에서는 핵발전소를 혐오시설로 취급한다. 미국 정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건설보조금을 지급 중단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영국은 핵발전소에 대한 특별세의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안에 세계 각국의 핵발전소 가운데 30%정도는 저절로 폐쇄될 것이다.이런 판국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또 한 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유럽의 시민사회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25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핵발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 달 실시된 독일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대승을 거뒀다. 녹색당은 독일 경제의 선두주자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집권당으로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벤츠와 포르셰로 대표되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산업지대를 녹색산업라인으로 전환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당시 독일연방의 집권당이던 기민당도 에너지 전환을 국책사업으로 결정했다. 2050년까지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유럽시민들은 에너지와 환경 정책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를 쏟아냈고, 독일에서는 정책전환까지 구현되었던 것이다.일본에도 일찍부터 한 선각자가 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라는 '시민과학자'가 그 사람이다. 그는 대학에서 핵화학을 전공하였으나, 평생을 반핵운동에 바쳐왔다. 처음에는 그도 핵발전을 미래 에너지산업의 총아라 확신하였으나, 산업현장에서 핵문제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핵발전 시설에서는 방사능 유출이 불가피했는데, 회사는 그 사실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다카기는 방사능 찌꺼기가 '죽음의 재'이며, 핵이란 인간이 끌 수 없는 재앙의 불이라 확신했다. 설사 가동을 멈추더라도 핵발전소에서 타고 남은 플루토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는 2만4천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핵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는 빵점짜리 기술'이 틀림없다.본래 핵은 '하늘의 불'이었다. 지구의 탄생도 그렇지만,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빛은 핵융합의 결과다. 최초 지구를 뒤덮은 방사성 물질의 독성이 사라질 때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다. 그런 다음에야 지구상에 생명체가 모습을 나타냈다. 현대인들은 핵의 이러한 맹독성을 망각한 채, 함부로 핵발전소의 스위치를 켰다. 인간의 오만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카기의 경고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일본인들은 귀를 틀어막았다.후쿠시마의 재앙은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를 상징한다. 대안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만 말라. 핵 발전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둡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5-15 백승종

세월호 참사 아픔이 헛되지 않게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피지도 못한채 하늘나라로 간 영혼들의 영정 앞에 서니 슬프고 참담한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이번 사고를 당한 모든 희생자들께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처절한 아픔을 겪는 유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인들 위안이 될 수 있겠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허망함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저밀 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총체적 반성과 구석구석 세밀한 점검이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다시는 이러한 천재지변도 아닌 어처구니없는 인간에 의한 재난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서는 국가적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술적인·제도적인 부분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정신과 가치의 문제까지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두 내 탓이오'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국민 모두가 정신적 재무장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첫째, 생명 존중과 직업윤리 의식의 부재가 더 큰 재난을 몰고 왔음을 인지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공동체의식·책임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 선장의 자기만 살아야겠다는 파렴치한 생의 탐욕, 선장과 함께 배를 버리고 달아난 항해사들의 직업윤리의 기본적 도의마저 저버린 비겁한 도주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이기심의 극치였다. 오히려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친구들을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한 우정, 안내방송만 믿고 제자리를 지킨 질서의식, 오히려 선생님을 걱정하고 부모를 걱정했던 순수성들을 이제 어디서 만나보겠는가.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관련자는 철저히 응징하고,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사회질서의 회복이 절실한 시절이다.둘째, 위기대처 능력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재난이 처음으로 발생한 일은 아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의 일이 일어났을 때는 모두 관심이 집중되다가 얼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잊혀지고 다시 무관심과 방심으로 되돌아간다. 또한 대강대강 넘어가는 행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다시는 이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일찍이 율곡 선생께서 지혜에는 3등급이 있는데, 가장 높은 지혜인 상지(上智)는 아직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나 미리 예견하고 방비책을 세울 수 있는 지혜, 중지(中智)는 지금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하고 신속한 대처를 취할 수 있는 지혜, 하지(下智)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갈팡질팡·속수무책의 단계라 하였다. 앞으로 뼈아픈 경험과 폭넓은 지식과 사려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상지(上智)의 단계까지 국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셋째, 사람의 마음에서 진정성을 갖추는 길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년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백만의 매뉴얼을 작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뉴얼을 작동하고 움직일 인간의 마음과 손길이 가지않는 한 의미가 없는 일이다.정말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게 다가가야지 기술도 제대로 작동하고, 제도도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숨가쁘게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왔다. 물질문화 못지않게 이 시점에서 정신문화의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잘 사는 나라로서뿐 아니라 바르게 사는 나라, 안전하고 좋은 나라, 신뢰받고 품격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주력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분석을 나침반 삼아 다시 한 번 위기대처 기능과 정신적 가치를 튼튼히 해야 누구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5-08 이배용

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늘 하던 일도 어떤 때는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칼럼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방지시스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고, 선박의 안전운행이라든가 해상사고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안전이니, 재난방지니, 안전보장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기 이전 우리 사회가,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오랜 기간동안 마치 무르익히기라도 하듯 준비해온 가장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사고가 있기 얼마 전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직감적으로 테러인가 떠올리고, 일본에서는 지진인가 떠올리며, 한국은 부실공사인가 떠올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으며, 가깝게는 경주리조트 참사가 그랬습니다.그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자조적이고 씁쓰레하기 짝이 없는 이 삼국의 비교를 경주리조트참사 무렵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저 씁쓰레한 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떤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미국은 여전히 테러를 떠올리고 일본은 지진을 떠올리는데, 한국은 건물이든 배든 비행기든 도로에서든 장소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나면 한국인가를 떠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그렇지요. 신문과 텔레비전에 나와서 얘기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정적인 사고원인만도 열 가지가 넘지요. 선장이 어떻게 했으면, 승무원들이 어떻게 했으면, 해운회사가 어떻게 했으면, 화물을 어떻게 했으면, 평소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관리감독기관이 어떻게 했으면, 정부가 인허가를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열 가지도 넘는 사고원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그 중에 단 한 가지만이라도 바로 잡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바로 잡혀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늘 해왔던 대로'였습니다. 정부도 국민안전이야 어찌되든 늘 해왔던 대로 기업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물배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관리기관도 늘 해왔던 대로 업주와 한통속으로 고물배의 증설을 허락하고, 탐욕스러운 회사 역시 늘 해왔던 대로 이윤만 앞세워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선장과 승무원 역시 늘 해왔던 대로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거지요.누군가 '한국적인 사고'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없이도 건물에서도, 배에서도, 비행기에서도, 도로와 전철에서도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대형사고는 늘 있어왔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만 그때그때 자신의 불운으로 그 사고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왜 이렇게 똑 같은 사고가 똑 같은 방식으로 터지는 걸까요. 국가가 관리를 허술하게 하고 방비를 허술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라의 주인으로 국민은 책임이 없는 건가요. 이제까지 사고 때마다 내가 당한 사고가 아니니까, 나와 내 가족은 운 좋게 그 사고에서 벗어나고 피했으니까, 국민들 역시 늘 해왔던 대로 그걸 남의 일처럼 여겨왔던 것이지요. 성수대교 붕괴 때 우리가 정말 그것을 나와 내 가족의 일처럼 분노했더라면 뒤이어 일어난 삼풍 사고와 씨랜드 사고, 그리고 얼마 전 경주리조트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21년 전 292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사고 때 역시 우리가 늘 해왔던 대로 그것을 내 일이 아니라며 가슴만 쓸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온갖 부정과 부실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분노했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방송도 신문도 치유라는 말 함부로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유가 아니라 우리 삶을 흔들고 나라를 흔들 듯 제대로 분노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늘 해왔던 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고,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고에 다음 차례로 나와 내 가족이 선택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입니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5-01 이순원

21세기 미래 사회, '안전'이 먼저다

유능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핵심 능력중의 하나가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나 복합 다원화된 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고려하여 미리 대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엔이 1996년에 창립한 워싱턴 소재 'UN 밀레니엄 프로젝트'이다. 세계적인 2천5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미래 연구 싱크탱크이다. 최근에 '15대 도전과제 및 미래 사회 동인(動因)'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주기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시적 흐름인 미래 메가트렌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 오고 있다. 미국 정보위원회(NIC)의 미래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25', 일본 정부의 '이노베이션 2025', 영국 국방성 산하 발전 구상 독트린센터의 '전략적 글로벌 트렌드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들을 정리, 요약해 보면 미래의 거시적 변화를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예견하고 있다. 환경과 자원문제의 심화,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전 및 글로벌화, 인구구조 변화, 기술의 융합 가속화, 안전과 안보, 지속가능한 성장 등을 변화 방향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세계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이 트렌드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가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닌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벌써 우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분석하여 지적한 바 있다.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안전'에 관한 노력이다. 재해·재난의 문제는 이제 세계 모두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안전은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비롯하여 대규모 자연재해 및 인재가 전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도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재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하고 싶다. 지난 2012년 6월 우리나라는 세계 200여 나라중에서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한 나라가 되었다. 인구가 5천만명이 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걸맞은 안전에 대한 의식과 진정성, 대응하는 자세는 너무나 취약하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한 압축 성장의 대가가 물질적·정신적 요인으로 남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는 변화된 기후의 영향을 받아 대형 태풍·홍수 등의 발생이 심히 우려되고 있고, 지진으로부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최근의 몇 경우만 보더라도, 즉 1년여 전의 볼라벤 태풍, 11년의 전국적 순환 정전사태, 경주 마우나 리조트의 금년 초 붕괴사고 등에서 보듯이 곳곳이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원전·고속철도·지하철·가스관·송유관·초고압전력망 등 고도의 대형 시설물 등이 좁은 국토에 밀집되어 있다. 또한 북한과의 충돌이나 테러 가능성, 이른바 북한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어 보다 폭넓은 종합적인 대응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보는 안전에 대한 이해와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수준에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반인은 안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난 진행에 대한 정보와 대처 요령 등을 일반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정보체계와 인프라도 잘 마련되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안전한 사회', 진도 해역에서의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에 접하여 꽃같은 우리 아이들을, 수백명이나 가슴에 묻고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절규하며 갈망해 본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4-24 김병식

예언문화에서 민심을 읽다

국가와 사회의 흥망을 점친 것이 정치적 예언서이다. 이것이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 말부터였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자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가 빈번히 나타났다. 한 참 뒤인 후삼국시대에도 왕건과 궁예의 쟁패를 예언한 '고경참(古鏡讖)'이 출현해, 왕건의 승리를 예고했다. 유학자 최치원도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리라고 점쳤다 한다. 풍수도참설의 선구자인 도선(道詵) 대사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왕건의 나라 고려가 탄탄대로를 걸으리라고 예측했다.고려 때에도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예언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선의 예언을 빙자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고려왕실로서 더욱 듣기 민망했던 것은, 이씨가 남경에 도읍한다는 예언이었다. 왕실에서는 남경에 오얏나무를 심어두고, 가지가 무성해지면 몽땅 베어버리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14세기 말에는 이성계가 일어나서 결국 고려를 멸망시키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왕조교체와 천도(遷都)를 바라는 민심이, 역사의 방향을 틀어버리고 말았다.조선 중기이후 사화와 당쟁이 격화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거듭되자, 예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18~19세기는 사실상 '예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는 서북지방에서 출현한 '정감록(鄭鑑錄)'이 전국에 유행했다. 예언서를 구실로 '정감록 역모사건'까지 일어났다. '정감록 열풍'은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실시되자 다시 격렬해졌다.예언서에는 민중이 느끼는 '현재의 고통'과 그것의 '미래 해결책'이 담겨있다. 가령 '정감록'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외침의 위협과 국내정치의 부패와 문란,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예언서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진인(眞人), 즉 구세의 영웅이 나타나,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예언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언 때문에 민심이 요동치고, 그것이 결국 반(反) 왕조 활동으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하지만 민중은 정치적 예언에 기대를 걸었다. 그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하여, 예언을 널리 유포시켰다. 상당수 민중들은 예언을 토대로 지하에 비밀조직을 구축하고, 왕조의 전복을 노렸다.내가 보기에, 조선후기의 민중은 예언서의 창작에도 힘을 쏟았다. 민중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기왕의 예언서를 윤색하였다. 그것은 집단창작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다. 18세기 후반에는 '평민지식인'들이 그 일을 주도하였다. 평안도, 황해도 및 함경도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유교지식은 물론, 풍수지리와 점술 및 의약에도 능통했다. 본래 그들은 정치참여를 원했지만 기득권층의 차별과 냉대에 부딪치자,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에 매달렸던 것이다.19세기말이 되자 각지의 평민지식인들은 동학(東學)이라는 신종교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동학을 통해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려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이런 분위기를 웅변한다. 역사 속의 민중은 사회적 불의에 저항할 줄 알았고, 자신들의 기대에 합당한 지도자를 역사의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하였다. 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한국예언문화의 특질이 거기 있다. 공자가 말했듯, 정치란 백성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다. 민중의 불안과 그들의 갈망을 외면하고서는 어떠한 국가나 사회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오늘날 우리사회는 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불안요소도 상당히 많다. '소셜 미디어'에는 현대의 사회적 병폐를 질타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일렁인다. 물론 편향된 목소리도 적지않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까지도 송충이 떨구듯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조선의 지배층이 '정감록'에 담긴 민중의 고통과 목마름을 똑바로 이해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 아닌가.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언제나 똑같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하늘의 큰 뜻이 담겨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4-17 백승종

통일을 향한 사회·문화 교류의 과제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된 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반도 통일의 출구전략은 막연하기만 하다.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보유로 인한 불안의 가중, 서로 간의 대립과 불신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남북한 주민들의 민족 동질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오히려 적대감과 거부감의 간격은 커지고 있다. 그로인한 남북한의 이질화는 이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및 언어의 이질화, 가치의 이질화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문화교류의 확대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이질성을 해소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상호 존중성을 가질 수 있는 기본 척도가 된다.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여는데 한 걸음 나아가는 중대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당위론적 통일의 주장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제시한 것이다. 더불어 상호신뢰의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남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됨은 물론이다.앞으로 남북한 사회 문화 이질화의 극복방안으로 다음의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행되는 전제 안에서 민간교류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제 1세대가 타계하고 2세대 시대로 들어서면서 서로의 동질감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친지방문이 상호 확대되어 서로의 동질감을 인식해야 한다. 서신의 왕래, 문화 행사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갖추어야 한다.둘째, 전통문화의 복원을 통한 동질성의 확보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전통문화가 파괴된 것도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여 조사 및 복원에 착수해야한다. 그동안 남한은 세계화 추진으로 인해 전통문화가 주목받지 못했고, 북한은 혁명화로 인해 전통이 부정되었다. 이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인식아래 남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현대적으로 스토리텔링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 세계화의 문화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 가치와 규범의 공감대 확산이다. 남북한은 공히 조상숭배의 효 사상, 공동체적 질서, 미풍양속의 명절풍습 등을 가지고 있다. 동양정신의 가치가 부상되는 이 시기에 미래지향적인 세계화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리랑, 단오제, 한산모시, 길쌈 등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는 매우 좋은 본보기다.넷째, 통일은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역사공동체라는 인식에서 필연성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역사인식에 차이가 크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토대를 구축하여 민족공동체의 동질성을 정착시켜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우리의 뿌리를 찾아주고 하나로 묶어주어 진정한 동행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중심축이다.다섯째, 남북한 차세대에 대한 인성교육 및 통일교육의 중요성이다. 자유, 정의, 정직, 상호존중의 배려, 인간의 존엄성, 인류공존의 평화 등 이러한 교육이 남북한 공동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한류, IT문화가 북한으로 확산되었을 때 서로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문화적, 정서적 장벽을 눈 녹듯이 해소할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이 온 세계를 흔드는데 어찌 북한 청소년만이 이질감을 느끼겠는가? 차세대들의 높은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의 자긍심을 불어넣고 글로벌 리더로 키워 한민족의 세계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앞으로 한반도의 분단은 오히려 세계평화 정착의 점화지가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국제적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남북한의 노력과 합의로 경의선 철도가 뚫려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달릴 때 기차역에서 때로는 기차간에서 그동안 고단했던 삶을 이야기하고 위로할 때 민족의 화합과 내일의 희망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자손들에게는 분단의 아픔과 동족끼리의 미움과 갈등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정한 마음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한반도 통일의 길이 밝게 펼쳐질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4-10 이배용

청운의 푸른 빚을 안고서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는 용주형께 씁니다. 내가 용주형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대학에 막 입학해서였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그때 나는 어느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 입학생이었고, 용주형은 같은 1학년이어도 예비역 복학생으로 법학과 학생이었습니다.학과가 다르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과목도 강의실도 달랐겠지만, 그래도 1주일에 네 시간씩 같이 수업을 받는 군사교육훈련장에서 처음 용주형을 보았습니다. 1학기 때는 학과가 달라 눈에 잘 띄지 않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법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방학동안 다음학기 등록금을 스스로 벌어서 학교에 다니는 용주형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그것은 좀 숙연한 이야기였는데,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길어야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간동안 다음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용주형이 노동판에서도 일당이 가장 높은 험한 일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여름엔 시멘트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건축현장에서 어깨에 고름이 흐르도록 질통을 메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공중 철판을 오르내리고, 겨울이면 이 산 저 산 능선으로 고압선 철탑을 세우는 작업현장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짧은 방학동안 당시 사립대학등록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국립대학 등록금과 최소한의 기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 얘기를 듣고 나자 용주형이 거인처럼 우러러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으로 따르며 꽤 가깝게 지냈고, 졸업 후엔 서로 다른 길로 가 소식이 끊기게 되었지만 그 시절 고학생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며 청운의 꿈 역시 그런 거였지요. 푸른색의 구름은 어두운 색의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위와 벼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젊은 시절 성취하는 학문과 연구의 비유이기도 하지요.그때 헤어지고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용주형을 오늘 새삼스레 떠올린 건 지금 우리 아들세대의 청년실업과 학자금대출로 비롯된 청춘의 빚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00만 명쯤 되는 대학생의 절반이 넘는 160만 명이 이런저런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고, 그중에 연 20%의 고금리대출을 빌린 학생도 9만명에 이르며, 청춘의 시작부터 빚을 갚을 능력이 바닥난 대학생이 5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며 시작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쟁이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지요.대학생들이 이렇게 돈을 빌리는 이유가 무얼까요. 물으나마나 우선 학생 스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싼 등록금과 비싼 생활비 때문이겠지요. 저렇게 힘들게 빚을 안고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다음 단계로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서 우리 아비세대의 고학생 용주형 얘기를 한 것은 우리 세대는 스스로 이렇게 마련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비세대는 한여름 건축현장이든 한겨울에 바람 쌩쌩 부는 능선에 올라 철탑작업을 하든 짧은 방학동안 자기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여건이라도 되었지만, 지금 학생들에게 등록금은 방학동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제법 괜찮아보이는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조차 자녀학비 마련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현실이 아닌지요. 이렇게 학비를 대출받지 않으면 안될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 되어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는 고학생이라는 말은 그 아이들이 방학동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져버린 등록금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우리 아비세대는 어쩌다 이런 여건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일까요. 집에 학생이 있든 없든 이런 현실이 정말 너무 답답하지 않은지요.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청운의 빚을 떠안고, 끝내는 그 빚에 눌려 신용불량의 실업자로 대학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저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선거 때만 되면 반짝 나오는 반값 등록금 문제, 이거야말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 아니겠는지요?/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4-03 이순원

'슬픈 인문계'현상의 이해와 의미

요즘 취업시장에, '슬픈 인문계'라는 다소 낯선 말이 나돌고 있다. 일자리 마련에 고심해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심경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이는 최근 (주)현대자동차가 올해 직원채용 방침을 발표하면서, 정시에는 이공계 출신 졸업자만을 모집하고, 인문계는 상시 채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상시 채용'이라는 말은, 용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필요에 따라 최소인원만 채용하겠다는 뜻이어서 인문계 졸업자들이 낙담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 엘지, SK 등 국내의 다른 4대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인문계열 출신을 20% 정도만 채용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사실 국가적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먹거리는 기업들이 창출해 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슬픈 인문계' 현상에는 현재의 우리 산업에 관한 몇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문계는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무형의 지식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이공계는 하드웨어인 물질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산업이 지금 필요로 하는 인력수요의 양은 우리 산업의 현주소, 즉 구조적 특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 볼 때 우리의 1970, 80년대는 경영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계열 학과가 인기가 있었고, 취업도 더 잘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우리사회가 산업화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시기여서 산업화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소요자금을 확보하는 등 정무에 관한 일이 많이 필요했고 중요했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나고, 구체적이며 분명한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한 기술개발이 중요해진 구조로 이행되었음을 이 현상은 말해 준다.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산업이 바람직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산업이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아직 구체적 물질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조 및 가공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기반사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장 깊은 곳에서는 투자대비 고가치를 지닌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중심의 선진국형 산업구조에는 못 미치고, 아직 많은 부분이 전통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IT강국 등을 내세우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이 분석의 근거를 신뢰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내놓는 인력 수요에 대한 숫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정부의 숫자에 비해 훨씬 정직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량화한 구체적 이윤을 목표로 한다.박근혜 새 정부는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해에 출범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과를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예산도 확보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같은 새로운 정부기구도 만들었다.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만 하던 기존의 경제 패턴에서, 창의적 변화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그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만 간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 우리 대부분의 국부는 전통적 산업에서 나온다는 엄연한 현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더불어 사는 국가에서는, 지향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이행과정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창조경제를 지향은 하되 전통산업에 대한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철지난 전통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의식되어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즉, 전통산업이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現實)과 창조경제의 중심인 지식융합산업 등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이상(理想)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황금률을 현 시점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일에는 균형을 잡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양단 사이에서 조화로운 배분 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고려 및 조선조를 거쳐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최고 인재를 양성했던 교육기관의 명칭이 '균형을 이루다'는 '성균(成均)'이었다는 점은 되새겨 볼 만하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3-27 김병식

경제민주화, 정도전의 꿈

조선왕조와 고려왕조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미국의 한국사가 존 B. 던컨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선 초기 지배층의 대부분이 고려의 구 귀족 출신이었고, 두 왕조 사회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내 생각은 정반대다. 조선의 건국세력은 평범한 집안에서 많이 나왔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인기를 누리는 정도전(鄭道傳)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의 외가와 처가는 노비였다. 그런데도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건국을 주도했다.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는 평민중심, 특히 소농중심의 유교사회를 꿈꿨다. 조선은 고려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새 세상이었다. 정도전의 개혁구상이 모두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후대에도 그의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본정치로 이름난 세종 역시 정도전의 사상적 후계자였다.'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사람이 논밭을 소유해야한다는 믿음. 이것이 정도전의 사상적 출발점이었다. 그 당시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문제는 중앙과 지방의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논밭을 앞 다퉈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한 조각의 땅에도 임자가 여럿이었다. 농민이 부담할 소작료 역시 2중3중이었고, 세금의 운반비용도 무거웠다. 지주의 심부름꾼을 접대하는 비용도 많았다.그러나 고려의 지배층은 농민의 고통을 외면했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임금의 할 일이다."(논어) 이런 가르침을 가슴 깊이 간직한 정도전과는 달랐다. "공(정도전)은 그 폐단을 잘 알고, 반드시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우리 태조(이성계)를 적극 도왔다. 국내의 토지를 전부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만든 다음, 인구 비례에 따라 토지를 재분배해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를 회복할 생각이었다."(정도전, 삼봉집(三峰集)) 이성계(李成桂)가 자신의 견해를 인정하자, 정도전은 토지 개혁안을 재상회의에 제출했다(1389). 그는 조선의 왕안석이었다.당시 구 귀족들은 머리로는 토지 개혁안을 이해했지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반대했다. 정도전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색조차 그러했다. 학자들 중에서는 조준과 윤소종만이 개혁에 찬성했다. 결국 개혁안은 세에 밀려 좌초했다.보통사람은 사회적 약점 때문에 보수적이 되기가 쉽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농민군을 진압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대개 양반의 서자나 아전으로서 약간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득권층에 온전히 편입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출신을 배반하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달랐다. 자신의 한미한 출신을 끝내 잊지 않았던 그는, 정치의 근본을 백성의 삶에 두었다. 그는 지주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과거제와 무상교육 등 각종 개혁안을 마련했다. 기회 균등한 새 사회의 건설을 통해 다수에게 행복을 선사하고자 했다. 공리주의자라고도 불릴만한 정도전이 '왕자의 난(1398)'을 만나, 쓰러지고 만 것은 유감이었다.떵떵거리는 오늘날의 기득권층도 정도전의 뜻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196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국가는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었고, 시민들은 희생을 감내하였다. 현재의 무역대국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자살률이 유난히 높은데,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문제가 심각하다.그런데도 부자증세를 비롯한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온 세상이 다 그런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2013년 5월, 나는 독일 공영방송에 출연한 그 나라의 고위성직자가 물질적 '재분배'야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역설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국 교회에서는 언제 다시 이러한 양심의 목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정도전의 '경자유전'이란 주장 자체는 이미 낡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전히 새롭다. 소수의 부자들이 국토와 자본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지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가을, 뉴욕 월가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전 세계 거대자본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다. 정도전이 추구하던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3-20 백승종

장서각(藏書閣)과 기록보존의식

조선왕조는 기록문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었던 시기였다. 기록문화의 꽃, 의궤만 보아도 기록의 섬세함과 정교성 그리고 예술성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러한 왕실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보존하던 곳이 대표적으로 규장각(奎章閣)과 장서각(藏書閣)이다. 규장각은 1776년 정조대왕 즉위년 궐내에 설치되었다.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 고명(顧命), 유교(遺敎), 선보(璿譜) 등을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화하였다.장서각은 1908년 고종황제가 궁궐 안의 수많은 서적들을 수집해 황실 도서관의 건립을 구상하고 청사진을 그렸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1918년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에 건물을 짓고 조선왕조실록 등 왕실의 귀중본을 보관한다는 의미로 장서각이라는 현판을 내걸을 수 있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때 북한이 조선왕조실록(무주 적상산 사고본)을 강탈해 가서 이것을 대본으로 국역작업에 착수하여 '리조실록'을 간행하였다. 강탈해가는 와중에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성종실록'(권 3-5) 한 책을 흘리고 말았는데 그 한 책이 지금 장서각에 남아 지난날의 수난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1981년 장서각의 모든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12만여 책의 국가왕실 도서와 4만3천여 책의 민간 사대부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장서각은 국가경영자료뿐 아니라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는 더없이 진솔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특히 선원록으로 대표되는 왕실족보는 장서각에만 있는 유일본이 대부분이며 낙선재본 고소설과 한글편지는 여성문학의 백미를 이룬다.현재 장서각에는 크게 두 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의 각종 행사기록인 의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학서적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의궤는 조선시대의 국가 및 왕실 행사를 기록한 자료로서 오늘날 영상 자료처럼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각자료이다. 의궤는 역사기록물로서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한류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색감도 찬란한 의궤 중 숙종임금과 인현왕후 민비의 가례(혼례) 반차도가 주목된다. 반차도란 행사를 치를 때 참석자들의 위계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표시한 그림으로, 왕실에서 행사가 있으면 미리 반차도를 그려 국왕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철저하여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때에는 무려 사전 예행연습을 세 차례나 거행했다고 전해지며 19장면으로 구성되었다.1613년 간행된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은 한국 의학사에 빛나는 명저이다. '동의보감'의 편찬자는 전설적 명의 허준이지만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국책간행사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 바탕에는 신분과 직업을 초월하는 인본정신과 박애사상, 나아가 위정자가 백성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여민동락의 정신이 강하게 반영되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장서각에만 소장되어 있는 '동의보감' 한글본의 존재는 이 책이 한문 지식인에 국한되지 않고 백성들을 폭넓게 시혜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잘 보여준다.한편 장서각에서는 세계기록유산의 발굴과 신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실족보류, 종묘기록류, 군영등록류 등이다. 특히 군영등록류는 조선시대의 군사체계와 함께 사회 문화사를 대변하는 귀중본이다. 장서각 도서 가운데 군사관련 자료가 약 150종 700책 정도이며, 이 가운데 60종 555책이 군영등록이니 꽤 많은 분량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왕실호위와 수도경비를 담당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삼군문 자료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장서각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군사문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오군영제도는 물론 당시 군인들의 생활모습이나 처우까지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이와 같이 선조들의 치밀하고 책임있는 기록보존의식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앞으로 고문헌의 보존처리와 현대적 활용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아울러 다른 나라와 차별성을 가진 고품격의 전통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을 감동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한류 3.0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3-14 이배용

눈물의 정치학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중 가장 정직한 것이 땀과 눈물이다. 고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참을 수 없는 격정이 마음을 흔들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나 땀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도의 변화만으로도 흘릴 수 있지만 눈물은 억지로 흘릴 수 없다.눈물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는 침묵의 언어이다. 그것은 때로 백 마디의 말보다 기도보다 호소력이 강하다. 탈무드에도 '천국의 문은 기도에는 닫혀 있더라도 눈물에는 열려 있다'고 적혀있다.눈물에는 그가 처한 상황의 진실이 담겨있다. 그가 말하는 뜻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타인의 눈물을 보면 누구나 일단 숙연해진다. 약하고 서럽고 그래서 핍박받는 자의 이미지가 눈물 몇 방울 안에 들어 있다. 단순히 약해 보여서만이 아니라 눈물이 우리 감정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는 어떤 화학적인, 또 사회적인 반응을 일으킬까. 지난 3월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이 6·4지방선거 전에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기로 전격 선언했다. 이것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또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두 번 눈물을 내비쳤다.언론에 조금은 별일처럼 보도되었듯 정치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다. 문득 그것이 궁금해 찾아보니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박근혜의 눈물'이 있었다.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텔레비전을 통해 정당대표 연설을 하면서였다."1960년대 가뭄이 심했던 어느 날, 지방순시를 다녀오신 후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왜 식사를 안하냐고 물으시니 한참동안 천장만 바라보시다가, 지방에 가보니 아이들의 얼굴에 버짐이 피어 있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먹지 못해서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셨습니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아버지의 어깨는 흔들리고 있었고, 저희 식구는 아무도 저녁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아버지와 나를 일치시키는 대목에서 흘린 눈물의 반응은 곧바로 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지지도가 추락한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로, 아니 박근혜의 깃발 아래로 다시 지지자들이 모여들었고, 박 대표는 전국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때의 눈물은 후에도 여의도 강변의 천막당사와 함께 지지자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는 장면이 되었다.이처럼 정치인의 눈물은 종종 그 사람뿐 아니라 한 국가의 정치 운명을 바꾸어놓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 선거 광고방송으로 나온 '노무현의 눈물'도 그랬다.존 레논이 부르는 '이매진'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노동자와 술잔을 나누는 노무현 후보의 얼굴 위로 붉은악마의 월드컵 응원과 고달픈 삶의 현장이 오버랩되어 스친다. 그러다 화면은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고 노무현 후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가운데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한 눈물 한방울이 모든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그렇다고 눈물이 모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1972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였던 에드먼드 머스키는 어떤 지역신문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 도중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그의 지지율은 곧바로 수직 하락해버렸다.3월 2일 두 차례 보인 김한길 대표의 눈물이 앞으로 신당창당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지, 또 국민들 마음속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눈물만큼 빨리 마르는 것도 없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눈물만큼 오래 기억되는 것도 드물다. 그것은 남녀의 연애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이순원 소설가

2014-03-07 이순원

그래도 대학이 희망이다

지금 우리의 대학들이 전례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역소재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안팎에서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대학의 위기는 지난 27일,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 개혁안'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급감하는 입학 적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향후 9년 동안 현 입학정원의 33%에 해당하는 16만명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를 위하여 모든 대학을 5단계로 분류 평가하여 하위 2단계는 퇴출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점잖게 표현해서 조정이지, 실제는 대학의 수와 양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이래저래 요즘 대학총장들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사실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대학의 구조조정도 그렇지만, 대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학구조조정은 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여러 현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문제는 유독 이 구조조정이 대학들에 대한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한 것처럼 부각되며 대학이 폄하 당하고 있다는데 있다.대학에 대한 부정적 논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반값 등록금'이라는 다소 정치적 색채를 띤 슬로건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대학에, 아니 등록금에 관심을 가지면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서 대학들을 압박하며 극히 일부 대학의 부도덕과 부실이 필요 이상으로 부추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실 대학의 생사가 걸린 '구조 조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진행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들이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취업률, 학생 충원율 같은 정량 지표에만 치중할 때 이 정신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자기중심적 생각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계속되는 한국교육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그 열정과 땀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했던 강의실과 복도에서, 그리고 주린 배를 안고 앉은 교정 앞 잔디밭과 선술집에서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학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진 것도 없이, 도전정신 하나로 뭉쳐, 짧은 영어의 두려움 속에서도 중동, 동남아 등으로 떠났던 그 시절 젊은이들의 치열했던 정신을 오늘 되새기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입학인구의 급감이나 취직의 어려움 같은 문제는 결국은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대학정신의 훼손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늘 더 중요하다.이제 와 새삼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와 같은 원론적 물음을 되풀이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난해한 고차원 미분 방정식과 같이, 즉 국립과 사립, 소규모 대학과 대규모 대학,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등 여러 요인이 심하게 얽혀 있는 대학들의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짚어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하기 때문이다. 혹시 대학이 세상에서 부와 출세를 얻기 위한 인적 지적 인프라 만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더 이상 학문의 공간은 특별하지 않고, 그런 공간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인성과 지성 그리고 인문학과 같은 말들이 그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꼭 되돌아보아야 한다.흔히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 한다. 이번 정책 시행에서는 효율과 효과, 시효에만 급급하지 말고, 대학 본연의 의미와 임무에 대한 성찰을 정부가 심도있게 해줄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싶다. 대학도, 이에 맞춰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대국화 사이에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이고 국가적인 물음에도 보다 치열하게 답해야 한다. 대학이 결국 우리의 희망이니까./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2-28 김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