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6·4 지방선거 이런저런 걱정들

6·4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그 한복판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 슬픔,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났을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7가지'란 시중에서 지금 유행하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임에 틀림없다.선거는 사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예술이다. 출마 당사자에게는 결과인 당선여부가 더 중요하겠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선거과정에서 얻어지는 과실(果實)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각 후보들이 지역사회에 관한 여러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이에 대하여 토론하고 수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그 자체가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데 유효한 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당선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정에서 다수가 만들어 낸 정책의지, 아이디어, 공감대 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이 정책토론과 수렴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시간들을 대부분 놓쳐 버렸다. 재론할 필요도 없이 지역을 대표하고, 수많은 국가 예산을 집행하며 인사권까지 거머쥔 선출직 장으로 어떤 사람을 선출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춘향전의 변사또와 같은 현대판 단체장이 선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사실 후보를 검증하는 작업은 선거에서 중요한 핵심 절차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늦었지만 어떻게든 이루어졌으면 하는 이유다. 사실 후보의 검증은 물리적으로 생업에 바쁜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 같은 전문기관이 일정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종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과 단체들은 생태적으로 중앙정부의 대권이나,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 서민들이 직접 살고 있는 지방현장에 대한 사정들을 잘 모른다. 더욱이 회사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풀뿌리선거에는 관심이 없다. 걱정되는 대목이다. 사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이전에도, 우리에게 주어졌던 금쪽 같은 시간들을 놓쳤었다. 불과 달포 전 일이다. 기억하다시피 기초선거 출마자들의 정당공천 여부를 두고, 여야가 심히 다투면서 다 소진해 버린 것이다. 정말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결국 아무 수확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 일이었다. 정치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어 왔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에는 대선에서 한 약속들을 맘대로 바꾸어 버리고, 제1 야당은 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곡예하듯 당명과 강령 등을 새로 내놓으니, 유권자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여당인 새누리당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여밖에 안 된 정당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우리 정치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4년 만에 한 번 갖는 지방선거는 아직 많이 낯설다. 그 내용도 복잡하다. 개개인이 한 투표소에서 무려 7장의 투표지에 기표해야 하는 선거이다. 유권자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 보도 때문에 정보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선거까지 2주 남은 오늘까지도, 후보가 누구인지, 무슨 정책과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유권자 대부분은 잘 모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출마하는 후보자들 간에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산에서는 무소속의 오거돈 후보와 야당의 김영춘 후보 간에 연횡이 이루어지고, 광주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무소속의 강운태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합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4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여러모로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지혜로워야 할 것 같다. 분위기보다는 냉철한 판단을, 감성보다는 이성(理性)으로 투표하기를 기대해 본다. 감성보다는 아무래도 이성의 유효기간이 길 것이기 때문이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5-22 김병식

후쿠시마,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

"우리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도 먹을 수가 없고, 아무 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 절망적입니다." 연전에 만난 일본 농부는 청중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피해 규모를 제대로 공개하지 못한다. 정치적 고려 때문일 것이다. 각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후쿠시마 사태의 사고 뒷수습은 30~40년도 더 걸린다고 한다.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우리 돈으로 최소한 1경 원이 필요하단다.애초 인류가 핵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값도 싸고, 안전하며, 전기공급도 안정적이라고 믿어서였다. 핵발전은 하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1954년 6월27일, 모스크바 남서쪽 오브닌스크 시에 사상 최초의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그 이듬해에는 영국에 그 10배 규모(50메가와트)의 상업용 핵발전소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인류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핵발전소는 건설비용이 비싸다. 반감기가 긴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문제는 해답이 없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열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핵발전소는 불의의 초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1986년 구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는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상당수 나라에서는 핵발전소를 혐오시설로 취급한다. 미국 정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건설보조금을 지급 중단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영국은 핵발전소에 대한 특별세의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안에 세계 각국의 핵발전소 가운데 30%정도는 저절로 폐쇄될 것이다.이런 판국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또 한 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유럽의 시민사회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25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핵발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 달 실시된 독일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대승을 거뒀다. 녹색당은 독일 경제의 선두주자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집권당으로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벤츠와 포르셰로 대표되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산업지대를 녹색산업라인으로 전환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당시 독일연방의 집권당이던 기민당도 에너지 전환을 국책사업으로 결정했다. 2050년까지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유럽시민들은 에너지와 환경 정책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를 쏟아냈고, 독일에서는 정책전환까지 구현되었던 것이다.일본에도 일찍부터 한 선각자가 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라는 '시민과학자'가 그 사람이다. 그는 대학에서 핵화학을 전공하였으나, 평생을 반핵운동에 바쳐왔다. 처음에는 그도 핵발전을 미래 에너지산업의 총아라 확신하였으나, 산업현장에서 핵문제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핵발전 시설에서는 방사능 유출이 불가피했는데, 회사는 그 사실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다카기는 방사능 찌꺼기가 '죽음의 재'이며, 핵이란 인간이 끌 수 없는 재앙의 불이라 확신했다. 설사 가동을 멈추더라도 핵발전소에서 타고 남은 플루토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는 2만4천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핵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는 빵점짜리 기술'이 틀림없다.본래 핵은 '하늘의 불'이었다. 지구의 탄생도 그렇지만,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빛은 핵융합의 결과다. 최초 지구를 뒤덮은 방사성 물질의 독성이 사라질 때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다. 그런 다음에야 지구상에 생명체가 모습을 나타냈다. 현대인들은 핵의 이러한 맹독성을 망각한 채, 함부로 핵발전소의 스위치를 켰다. 인간의 오만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카기의 경고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일본인들은 귀를 틀어막았다.후쿠시마의 재앙은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를 상징한다. 대안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만 말라. 핵 발전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둡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5-15 백승종

세월호 참사 아픔이 헛되지 않게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피지도 못한채 하늘나라로 간 영혼들의 영정 앞에 서니 슬프고 참담한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이번 사고를 당한 모든 희생자들께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처절한 아픔을 겪는 유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인들 위안이 될 수 있겠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허망함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저밀 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총체적 반성과 구석구석 세밀한 점검이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다시는 이러한 천재지변도 아닌 어처구니없는 인간에 의한 재난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서는 국가적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술적인·제도적인 부분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정신과 가치의 문제까지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두 내 탓이오'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국민 모두가 정신적 재무장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첫째, 생명 존중과 직업윤리 의식의 부재가 더 큰 재난을 몰고 왔음을 인지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공동체의식·책임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 선장의 자기만 살아야겠다는 파렴치한 생의 탐욕, 선장과 함께 배를 버리고 달아난 항해사들의 직업윤리의 기본적 도의마저 저버린 비겁한 도주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이기심의 극치였다. 오히려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친구들을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한 우정, 안내방송만 믿고 제자리를 지킨 질서의식, 오히려 선생님을 걱정하고 부모를 걱정했던 순수성들을 이제 어디서 만나보겠는가.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관련자는 철저히 응징하고,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사회질서의 회복이 절실한 시절이다.둘째, 위기대처 능력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재난이 처음으로 발생한 일은 아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의 일이 일어났을 때는 모두 관심이 집중되다가 얼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잊혀지고 다시 무관심과 방심으로 되돌아간다. 또한 대강대강 넘어가는 행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다시는 이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일찍이 율곡 선생께서 지혜에는 3등급이 있는데, 가장 높은 지혜인 상지(上智)는 아직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나 미리 예견하고 방비책을 세울 수 있는 지혜, 중지(中智)는 지금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하고 신속한 대처를 취할 수 있는 지혜, 하지(下智)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갈팡질팡·속수무책의 단계라 하였다. 앞으로 뼈아픈 경험과 폭넓은 지식과 사려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상지(上智)의 단계까지 국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셋째, 사람의 마음에서 진정성을 갖추는 길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년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백만의 매뉴얼을 작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뉴얼을 작동하고 움직일 인간의 마음과 손길이 가지않는 한 의미가 없는 일이다.정말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게 다가가야지 기술도 제대로 작동하고, 제도도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숨가쁘게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왔다. 물질문화 못지않게 이 시점에서 정신문화의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잘 사는 나라로서뿐 아니라 바르게 사는 나라, 안전하고 좋은 나라, 신뢰받고 품격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주력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분석을 나침반 삼아 다시 한 번 위기대처 기능과 정신적 가치를 튼튼히 해야 누구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5-08 이배용

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늘 하던 일도 어떤 때는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칼럼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방지시스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고, 선박의 안전운행이라든가 해상사고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안전이니, 재난방지니, 안전보장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기 이전 우리 사회가,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오랜 기간동안 마치 무르익히기라도 하듯 준비해온 가장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사고가 있기 얼마 전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직감적으로 테러인가 떠올리고, 일본에서는 지진인가 떠올리며, 한국은 부실공사인가 떠올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으며, 가깝게는 경주리조트 참사가 그랬습니다.그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자조적이고 씁쓰레하기 짝이 없는 이 삼국의 비교를 경주리조트참사 무렵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저 씁쓰레한 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떤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미국은 여전히 테러를 떠올리고 일본은 지진을 떠올리는데, 한국은 건물이든 배든 비행기든 도로에서든 장소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나면 한국인가를 떠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그렇지요. 신문과 텔레비전에 나와서 얘기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정적인 사고원인만도 열 가지가 넘지요. 선장이 어떻게 했으면, 승무원들이 어떻게 했으면, 해운회사가 어떻게 했으면, 화물을 어떻게 했으면, 평소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관리감독기관이 어떻게 했으면, 정부가 인허가를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열 가지도 넘는 사고원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그 중에 단 한 가지만이라도 바로 잡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바로 잡혀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늘 해왔던 대로'였습니다. 정부도 국민안전이야 어찌되든 늘 해왔던 대로 기업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물배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관리기관도 늘 해왔던 대로 업주와 한통속으로 고물배의 증설을 허락하고, 탐욕스러운 회사 역시 늘 해왔던 대로 이윤만 앞세워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선장과 승무원 역시 늘 해왔던 대로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거지요.누군가 '한국적인 사고'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없이도 건물에서도, 배에서도, 비행기에서도, 도로와 전철에서도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대형사고는 늘 있어왔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만 그때그때 자신의 불운으로 그 사고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왜 이렇게 똑 같은 사고가 똑 같은 방식으로 터지는 걸까요. 국가가 관리를 허술하게 하고 방비를 허술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라의 주인으로 국민은 책임이 없는 건가요. 이제까지 사고 때마다 내가 당한 사고가 아니니까, 나와 내 가족은 운 좋게 그 사고에서 벗어나고 피했으니까, 국민들 역시 늘 해왔던 대로 그걸 남의 일처럼 여겨왔던 것이지요. 성수대교 붕괴 때 우리가 정말 그것을 나와 내 가족의 일처럼 분노했더라면 뒤이어 일어난 삼풍 사고와 씨랜드 사고, 그리고 얼마 전 경주리조트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21년 전 292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사고 때 역시 우리가 늘 해왔던 대로 그것을 내 일이 아니라며 가슴만 쓸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온갖 부정과 부실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분노했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방송도 신문도 치유라는 말 함부로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유가 아니라 우리 삶을 흔들고 나라를 흔들 듯 제대로 분노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늘 해왔던 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고,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고에 다음 차례로 나와 내 가족이 선택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입니다./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5-01 이순원

21세기 미래 사회, '안전'이 먼저다

유능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핵심 능력중의 하나가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나 복합 다원화된 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고려하여 미리 대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엔이 1996년에 창립한 워싱턴 소재 'UN 밀레니엄 프로젝트'이다. 세계적인 2천5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미래 연구 싱크탱크이다. 최근에 '15대 도전과제 및 미래 사회 동인(動因)'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주기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시적 흐름인 미래 메가트렌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 오고 있다. 미국 정보위원회(NIC)의 미래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25', 일본 정부의 '이노베이션 2025', 영국 국방성 산하 발전 구상 독트린센터의 '전략적 글로벌 트렌드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들을 정리, 요약해 보면 미래의 거시적 변화를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예견하고 있다. 환경과 자원문제의 심화,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전 및 글로벌화, 인구구조 변화, 기술의 융합 가속화, 안전과 안보, 지속가능한 성장 등을 변화 방향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세계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이 트렌드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가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닌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벌써 우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분석하여 지적한 바 있다.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안전'에 관한 노력이다. 재해·재난의 문제는 이제 세계 모두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안전은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비롯하여 대규모 자연재해 및 인재가 전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도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재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하고 싶다. 지난 2012년 6월 우리나라는 세계 200여 나라중에서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한 나라가 되었다. 인구가 5천만명이 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걸맞은 안전에 대한 의식과 진정성, 대응하는 자세는 너무나 취약하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한 압축 성장의 대가가 물질적·정신적 요인으로 남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는 변화된 기후의 영향을 받아 대형 태풍·홍수 등의 발생이 심히 우려되고 있고, 지진으로부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최근의 몇 경우만 보더라도, 즉 1년여 전의 볼라벤 태풍, 11년의 전국적 순환 정전사태, 경주 마우나 리조트의 금년 초 붕괴사고 등에서 보듯이 곳곳이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원전·고속철도·지하철·가스관·송유관·초고압전력망 등 고도의 대형 시설물 등이 좁은 국토에 밀집되어 있다. 또한 북한과의 충돌이나 테러 가능성, 이른바 북한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어 보다 폭넓은 종합적인 대응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보는 안전에 대한 이해와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수준에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반인은 안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난 진행에 대한 정보와 대처 요령 등을 일반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정보체계와 인프라도 잘 마련되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안전한 사회', 진도 해역에서의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에 접하여 꽃같은 우리 아이들을, 수백명이나 가슴에 묻고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절규하며 갈망해 본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4-24 김병식

예언문화에서 민심을 읽다

국가와 사회의 흥망을 점친 것이 정치적 예언서이다. 이것이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 말부터였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자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가 빈번히 나타났다. 한 참 뒤인 후삼국시대에도 왕건과 궁예의 쟁패를 예언한 '고경참(古鏡讖)'이 출현해, 왕건의 승리를 예고했다. 유학자 최치원도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리라고 점쳤다 한다. 풍수도참설의 선구자인 도선(道詵) 대사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왕건의 나라 고려가 탄탄대로를 걸으리라고 예측했다.고려 때에도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예언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선의 예언을 빙자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고려왕실로서 더욱 듣기 민망했던 것은, 이씨가 남경에 도읍한다는 예언이었다. 왕실에서는 남경에 오얏나무를 심어두고, 가지가 무성해지면 몽땅 베어버리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14세기 말에는 이성계가 일어나서 결국 고려를 멸망시키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왕조교체와 천도(遷都)를 바라는 민심이, 역사의 방향을 틀어버리고 말았다.조선 중기이후 사화와 당쟁이 격화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거듭되자, 예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18~19세기는 사실상 '예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는 서북지방에서 출현한 '정감록(鄭鑑錄)'이 전국에 유행했다. 예언서를 구실로 '정감록 역모사건'까지 일어났다. '정감록 열풍'은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실시되자 다시 격렬해졌다.예언서에는 민중이 느끼는 '현재의 고통'과 그것의 '미래 해결책'이 담겨있다. 가령 '정감록'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외침의 위협과 국내정치의 부패와 문란,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예언서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진인(眞人), 즉 구세의 영웅이 나타나,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예언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언 때문에 민심이 요동치고, 그것이 결국 반(反) 왕조 활동으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하지만 민중은 정치적 예언에 기대를 걸었다. 그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하여, 예언을 널리 유포시켰다. 상당수 민중들은 예언을 토대로 지하에 비밀조직을 구축하고, 왕조의 전복을 노렸다.내가 보기에, 조선후기의 민중은 예언서의 창작에도 힘을 쏟았다. 민중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기왕의 예언서를 윤색하였다. 그것은 집단창작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다. 18세기 후반에는 '평민지식인'들이 그 일을 주도하였다. 평안도, 황해도 및 함경도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유교지식은 물론, 풍수지리와 점술 및 의약에도 능통했다. 본래 그들은 정치참여를 원했지만 기득권층의 차별과 냉대에 부딪치자,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에 매달렸던 것이다.19세기말이 되자 각지의 평민지식인들은 동학(東學)이라는 신종교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동학을 통해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려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이런 분위기를 웅변한다. 역사 속의 민중은 사회적 불의에 저항할 줄 알았고, 자신들의 기대에 합당한 지도자를 역사의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하였다. 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한국예언문화의 특질이 거기 있다. 공자가 말했듯, 정치란 백성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다. 민중의 불안과 그들의 갈망을 외면하고서는 어떠한 국가나 사회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오늘날 우리사회는 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불안요소도 상당히 많다. '소셜 미디어'에는 현대의 사회적 병폐를 질타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일렁인다. 물론 편향된 목소리도 적지않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까지도 송충이 떨구듯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조선의 지배층이 '정감록'에 담긴 민중의 고통과 목마름을 똑바로 이해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 아닌가.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언제나 똑같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하늘의 큰 뜻이 담겨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4-17 백승종

통일을 향한 사회·문화 교류의 과제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된 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반도 통일의 출구전략은 막연하기만 하다.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보유로 인한 불안의 가중, 서로 간의 대립과 불신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남북한 주민들의 민족 동질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오히려 적대감과 거부감의 간격은 커지고 있다. 그로인한 남북한의 이질화는 이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및 언어의 이질화, 가치의 이질화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문화교류의 확대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이질성을 해소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상호 존중성을 가질 수 있는 기본 척도가 된다.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여는데 한 걸음 나아가는 중대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당위론적 통일의 주장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제시한 것이다. 더불어 상호신뢰의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남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됨은 물론이다.앞으로 남북한 사회 문화 이질화의 극복방안으로 다음의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행되는 전제 안에서 민간교류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제 1세대가 타계하고 2세대 시대로 들어서면서 서로의 동질감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친지방문이 상호 확대되어 서로의 동질감을 인식해야 한다. 서신의 왕래, 문화 행사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갖추어야 한다.둘째, 전통문화의 복원을 통한 동질성의 확보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전통문화가 파괴된 것도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여 조사 및 복원에 착수해야한다. 그동안 남한은 세계화 추진으로 인해 전통문화가 주목받지 못했고, 북한은 혁명화로 인해 전통이 부정되었다. 이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인식아래 남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현대적으로 스토리텔링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 세계화의 문화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 가치와 규범의 공감대 확산이다. 남북한은 공히 조상숭배의 효 사상, 공동체적 질서, 미풍양속의 명절풍습 등을 가지고 있다. 동양정신의 가치가 부상되는 이 시기에 미래지향적인 세계화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리랑, 단오제, 한산모시, 길쌈 등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는 매우 좋은 본보기다.넷째, 통일은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역사공동체라는 인식에서 필연성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역사인식에 차이가 크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토대를 구축하여 민족공동체의 동질성을 정착시켜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우리의 뿌리를 찾아주고 하나로 묶어주어 진정한 동행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중심축이다.다섯째, 남북한 차세대에 대한 인성교육 및 통일교육의 중요성이다. 자유, 정의, 정직, 상호존중의 배려, 인간의 존엄성, 인류공존의 평화 등 이러한 교육이 남북한 공동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한류, IT문화가 북한으로 확산되었을 때 서로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문화적, 정서적 장벽을 눈 녹듯이 해소할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이 온 세계를 흔드는데 어찌 북한 청소년만이 이질감을 느끼겠는가? 차세대들의 높은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의 자긍심을 불어넣고 글로벌 리더로 키워 한민족의 세계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앞으로 한반도의 분단은 오히려 세계평화 정착의 점화지가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국제적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남북한의 노력과 합의로 경의선 철도가 뚫려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달릴 때 기차역에서 때로는 기차간에서 그동안 고단했던 삶을 이야기하고 위로할 때 민족의 화합과 내일의 희망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자손들에게는 분단의 아픔과 동족끼리의 미움과 갈등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정한 마음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한반도 통일의 길이 밝게 펼쳐질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4-10 이배용

청운의 푸른 빚을 안고서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는 용주형께 씁니다. 내가 용주형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대학에 막 입학해서였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그때 나는 어느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 입학생이었고, 용주형은 같은 1학년이어도 예비역 복학생으로 법학과 학생이었습니다.학과가 다르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과목도 강의실도 달랐겠지만, 그래도 1주일에 네 시간씩 같이 수업을 받는 군사교육훈련장에서 처음 용주형을 보았습니다. 1학기 때는 학과가 달라 눈에 잘 띄지 않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법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방학동안 다음학기 등록금을 스스로 벌어서 학교에 다니는 용주형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그것은 좀 숙연한 이야기였는데,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길어야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간동안 다음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용주형이 노동판에서도 일당이 가장 높은 험한 일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여름엔 시멘트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건축현장에서 어깨에 고름이 흐르도록 질통을 메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공중 철판을 오르내리고, 겨울이면 이 산 저 산 능선으로 고압선 철탑을 세우는 작업현장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짧은 방학동안 당시 사립대학등록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국립대학 등록금과 최소한의 기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 얘기를 듣고 나자 용주형이 거인처럼 우러러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으로 따르며 꽤 가깝게 지냈고, 졸업 후엔 서로 다른 길로 가 소식이 끊기게 되었지만 그 시절 고학생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며 청운의 꿈 역시 그런 거였지요. 푸른색의 구름은 어두운 색의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위와 벼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젊은 시절 성취하는 학문과 연구의 비유이기도 하지요.그때 헤어지고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용주형을 오늘 새삼스레 떠올린 건 지금 우리 아들세대의 청년실업과 학자금대출로 비롯된 청춘의 빚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00만 명쯤 되는 대학생의 절반이 넘는 160만 명이 이런저런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고, 그중에 연 20%의 고금리대출을 빌린 학생도 9만명에 이르며, 청춘의 시작부터 빚을 갚을 능력이 바닥난 대학생이 5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며 시작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쟁이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지요.대학생들이 이렇게 돈을 빌리는 이유가 무얼까요. 물으나마나 우선 학생 스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싼 등록금과 비싼 생활비 때문이겠지요. 저렇게 힘들게 빚을 안고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다음 단계로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서 우리 아비세대의 고학생 용주형 얘기를 한 것은 우리 세대는 스스로 이렇게 마련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비세대는 한여름 건축현장이든 한겨울에 바람 쌩쌩 부는 능선에 올라 철탑작업을 하든 짧은 방학동안 자기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여건이라도 되었지만, 지금 학생들에게 등록금은 방학동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제법 괜찮아보이는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조차 자녀학비 마련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현실이 아닌지요. 이렇게 학비를 대출받지 않으면 안될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 되어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는 고학생이라는 말은 그 아이들이 방학동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져버린 등록금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우리 아비세대는 어쩌다 이런 여건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일까요. 집에 학생이 있든 없든 이런 현실이 정말 너무 답답하지 않은지요.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청운의 빚을 떠안고, 끝내는 그 빚에 눌려 신용불량의 실업자로 대학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저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선거 때만 되면 반짝 나오는 반값 등록금 문제, 이거야말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 아니겠는지요?/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2014-04-03 이순원

'슬픈 인문계'현상의 이해와 의미

요즘 취업시장에, '슬픈 인문계'라는 다소 낯선 말이 나돌고 있다. 일자리 마련에 고심해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심경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이는 최근 (주)현대자동차가 올해 직원채용 방침을 발표하면서, 정시에는 이공계 출신 졸업자만을 모집하고, 인문계는 상시 채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상시 채용'이라는 말은, 용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필요에 따라 최소인원만 채용하겠다는 뜻이어서 인문계 졸업자들이 낙담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 엘지, SK 등 국내의 다른 4대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인문계열 출신을 20% 정도만 채용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사실 국가적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먹거리는 기업들이 창출해 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슬픈 인문계' 현상에는 현재의 우리 산업에 관한 몇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문계는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무형의 지식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이공계는 하드웨어인 물질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산업이 지금 필요로 하는 인력수요의 양은 우리 산업의 현주소, 즉 구조적 특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 볼 때 우리의 1970, 80년대는 경영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계열 학과가 인기가 있었고, 취업도 더 잘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우리사회가 산업화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시기여서 산업화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소요자금을 확보하는 등 정무에 관한 일이 많이 필요했고 중요했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나고, 구체적이며 분명한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한 기술개발이 중요해진 구조로 이행되었음을 이 현상은 말해 준다.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산업이 바람직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산업이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아직 구체적 물질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조 및 가공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기반사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장 깊은 곳에서는 투자대비 고가치를 지닌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중심의 선진국형 산업구조에는 못 미치고, 아직 많은 부분이 전통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IT강국 등을 내세우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이 분석의 근거를 신뢰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내놓는 인력 수요에 대한 숫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정부의 숫자에 비해 훨씬 정직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량화한 구체적 이윤을 목표로 한다.박근혜 새 정부는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해에 출범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과를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예산도 확보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같은 새로운 정부기구도 만들었다.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만 하던 기존의 경제 패턴에서, 창의적 변화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그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만 간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 우리 대부분의 국부는 전통적 산업에서 나온다는 엄연한 현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더불어 사는 국가에서는, 지향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이행과정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창조경제를 지향은 하되 전통산업에 대한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철지난 전통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의식되어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즉, 전통산업이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現實)과 창조경제의 중심인 지식융합산업 등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이상(理想)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황금률을 현 시점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일에는 균형을 잡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양단 사이에서 조화로운 배분 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고려 및 조선조를 거쳐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최고 인재를 양성했던 교육기관의 명칭이 '균형을 이루다'는 '성균(成均)'이었다는 점은 되새겨 볼 만하다./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3-27 김병식

경제민주화, 정도전의 꿈

조선왕조와 고려왕조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미국의 한국사가 존 B. 던컨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선 초기 지배층의 대부분이 고려의 구 귀족 출신이었고, 두 왕조 사회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내 생각은 정반대다. 조선의 건국세력은 평범한 집안에서 많이 나왔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인기를 누리는 정도전(鄭道傳)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의 외가와 처가는 노비였다. 그런데도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건국을 주도했다.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는 평민중심, 특히 소농중심의 유교사회를 꿈꿨다. 조선은 고려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새 세상이었다. 정도전의 개혁구상이 모두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후대에도 그의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본정치로 이름난 세종 역시 정도전의 사상적 후계자였다.'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사람이 논밭을 소유해야한다는 믿음. 이것이 정도전의 사상적 출발점이었다. 그 당시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문제는 중앙과 지방의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논밭을 앞 다퉈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한 조각의 땅에도 임자가 여럿이었다. 농민이 부담할 소작료 역시 2중3중이었고, 세금의 운반비용도 무거웠다. 지주의 심부름꾼을 접대하는 비용도 많았다.그러나 고려의 지배층은 농민의 고통을 외면했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임금의 할 일이다."(논어) 이런 가르침을 가슴 깊이 간직한 정도전과는 달랐다. "공(정도전)은 그 폐단을 잘 알고, 반드시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우리 태조(이성계)를 적극 도왔다. 국내의 토지를 전부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만든 다음, 인구 비례에 따라 토지를 재분배해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를 회복할 생각이었다."(정도전, 삼봉집(三峰集)) 이성계(李成桂)가 자신의 견해를 인정하자, 정도전은 토지 개혁안을 재상회의에 제출했다(1389). 그는 조선의 왕안석이었다.당시 구 귀족들은 머리로는 토지 개혁안을 이해했지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반대했다. 정도전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색조차 그러했다. 학자들 중에서는 조준과 윤소종만이 개혁에 찬성했다. 결국 개혁안은 세에 밀려 좌초했다.보통사람은 사회적 약점 때문에 보수적이 되기가 쉽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농민군을 진압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대개 양반의 서자나 아전으로서 약간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득권층에 온전히 편입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출신을 배반하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달랐다. 자신의 한미한 출신을 끝내 잊지 않았던 그는, 정치의 근본을 백성의 삶에 두었다. 그는 지주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과거제와 무상교육 등 각종 개혁안을 마련했다. 기회 균등한 새 사회의 건설을 통해 다수에게 행복을 선사하고자 했다. 공리주의자라고도 불릴만한 정도전이 '왕자의 난(1398)'을 만나, 쓰러지고 만 것은 유감이었다.떵떵거리는 오늘날의 기득권층도 정도전의 뜻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196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국가는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었고, 시민들은 희생을 감내하였다. 현재의 무역대국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자살률이 유난히 높은데,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문제가 심각하다.그런데도 부자증세를 비롯한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온 세상이 다 그런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2013년 5월, 나는 독일 공영방송에 출연한 그 나라의 고위성직자가 물질적 '재분배'야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역설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국 교회에서는 언제 다시 이러한 양심의 목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정도전의 '경자유전'이란 주장 자체는 이미 낡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전히 새롭다. 소수의 부자들이 국토와 자본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지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가을, 뉴욕 월가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전 세계 거대자본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다. 정도전이 추구하던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3-20 백승종

장서각(藏書閣)과 기록보존의식

조선왕조는 기록문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었던 시기였다. 기록문화의 꽃, 의궤만 보아도 기록의 섬세함과 정교성 그리고 예술성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러한 왕실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보존하던 곳이 대표적으로 규장각(奎章閣)과 장서각(藏書閣)이다. 규장각은 1776년 정조대왕 즉위년 궐내에 설치되었다.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 고명(顧命), 유교(遺敎), 선보(璿譜) 등을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화하였다.장서각은 1908년 고종황제가 궁궐 안의 수많은 서적들을 수집해 황실 도서관의 건립을 구상하고 청사진을 그렸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1918년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에 건물을 짓고 조선왕조실록 등 왕실의 귀중본을 보관한다는 의미로 장서각이라는 현판을 내걸을 수 있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때 북한이 조선왕조실록(무주 적상산 사고본)을 강탈해 가서 이것을 대본으로 국역작업에 착수하여 '리조실록'을 간행하였다. 강탈해가는 와중에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성종실록'(권 3-5) 한 책을 흘리고 말았는데 그 한 책이 지금 장서각에 남아 지난날의 수난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1981년 장서각의 모든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12만여 책의 국가왕실 도서와 4만3천여 책의 민간 사대부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장서각은 국가경영자료뿐 아니라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는 더없이 진솔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특히 선원록으로 대표되는 왕실족보는 장서각에만 있는 유일본이 대부분이며 낙선재본 고소설과 한글편지는 여성문학의 백미를 이룬다.현재 장서각에는 크게 두 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의 각종 행사기록인 의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학서적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의궤는 조선시대의 국가 및 왕실 행사를 기록한 자료로서 오늘날 영상 자료처럼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각자료이다. 의궤는 역사기록물로서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한류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색감도 찬란한 의궤 중 숙종임금과 인현왕후 민비의 가례(혼례) 반차도가 주목된다. 반차도란 행사를 치를 때 참석자들의 위계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표시한 그림으로, 왕실에서 행사가 있으면 미리 반차도를 그려 국왕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철저하여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때에는 무려 사전 예행연습을 세 차례나 거행했다고 전해지며 19장면으로 구성되었다.1613년 간행된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은 한국 의학사에 빛나는 명저이다. '동의보감'의 편찬자는 전설적 명의 허준이지만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국책간행사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 바탕에는 신분과 직업을 초월하는 인본정신과 박애사상, 나아가 위정자가 백성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여민동락의 정신이 강하게 반영되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장서각에만 소장되어 있는 '동의보감' 한글본의 존재는 이 책이 한문 지식인에 국한되지 않고 백성들을 폭넓게 시혜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잘 보여준다.한편 장서각에서는 세계기록유산의 발굴과 신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실족보류, 종묘기록류, 군영등록류 등이다. 특히 군영등록류는 조선시대의 군사체계와 함께 사회 문화사를 대변하는 귀중본이다. 장서각 도서 가운데 군사관련 자료가 약 150종 700책 정도이며, 이 가운데 60종 555책이 군영등록이니 꽤 많은 분량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왕실호위와 수도경비를 담당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삼군문 자료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장서각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군사문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오군영제도는 물론 당시 군인들의 생활모습이나 처우까지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이와 같이 선조들의 치밀하고 책임있는 기록보존의식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앞으로 고문헌의 보존처리와 현대적 활용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아울러 다른 나라와 차별성을 가진 고품격의 전통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을 감동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한류 3.0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3-14 이배용

눈물의 정치학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중 가장 정직한 것이 땀과 눈물이다. 고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참을 수 없는 격정이 마음을 흔들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나 땀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도의 변화만으로도 흘릴 수 있지만 눈물은 억지로 흘릴 수 없다.눈물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는 침묵의 언어이다. 그것은 때로 백 마디의 말보다 기도보다 호소력이 강하다. 탈무드에도 '천국의 문은 기도에는 닫혀 있더라도 눈물에는 열려 있다'고 적혀있다.눈물에는 그가 처한 상황의 진실이 담겨있다. 그가 말하는 뜻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타인의 눈물을 보면 누구나 일단 숙연해진다. 약하고 서럽고 그래서 핍박받는 자의 이미지가 눈물 몇 방울 안에 들어 있다. 단순히 약해 보여서만이 아니라 눈물이 우리 감정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는 어떤 화학적인, 또 사회적인 반응을 일으킬까. 지난 3월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이 6·4지방선거 전에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기로 전격 선언했다. 이것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또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두 번 눈물을 내비쳤다.언론에 조금은 별일처럼 보도되었듯 정치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다. 문득 그것이 궁금해 찾아보니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박근혜의 눈물'이 있었다.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텔레비전을 통해 정당대표 연설을 하면서였다."1960년대 가뭄이 심했던 어느 날, 지방순시를 다녀오신 후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왜 식사를 안하냐고 물으시니 한참동안 천장만 바라보시다가, 지방에 가보니 아이들의 얼굴에 버짐이 피어 있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먹지 못해서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셨습니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아버지의 어깨는 흔들리고 있었고, 저희 식구는 아무도 저녁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아버지와 나를 일치시키는 대목에서 흘린 눈물의 반응은 곧바로 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지지도가 추락한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로, 아니 박근혜의 깃발 아래로 다시 지지자들이 모여들었고, 박 대표는 전국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때의 눈물은 후에도 여의도 강변의 천막당사와 함께 지지자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는 장면이 되었다.이처럼 정치인의 눈물은 종종 그 사람뿐 아니라 한 국가의 정치 운명을 바꾸어놓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 선거 광고방송으로 나온 '노무현의 눈물'도 그랬다.존 레논이 부르는 '이매진'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노동자와 술잔을 나누는 노무현 후보의 얼굴 위로 붉은악마의 월드컵 응원과 고달픈 삶의 현장이 오버랩되어 스친다. 그러다 화면은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고 노무현 후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가운데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한 눈물 한방울이 모든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그렇다고 눈물이 모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1972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였던 에드먼드 머스키는 어떤 지역신문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 도중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그의 지지율은 곧바로 수직 하락해버렸다.3월 2일 두 차례 보인 김한길 대표의 눈물이 앞으로 신당창당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지, 또 국민들 마음속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눈물만큼 빨리 마르는 것도 없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눈물만큼 오래 기억되는 것도 드물다. 그것은 남녀의 연애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이순원 소설가

2014-03-07 이순원

그래도 대학이 희망이다

지금 우리의 대학들이 전례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역소재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안팎에서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대학의 위기는 지난 27일,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 개혁안'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급감하는 입학 적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향후 9년 동안 현 입학정원의 33%에 해당하는 16만명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를 위하여 모든 대학을 5단계로 분류 평가하여 하위 2단계는 퇴출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점잖게 표현해서 조정이지, 실제는 대학의 수와 양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이래저래 요즘 대학총장들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사실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대학의 구조조정도 그렇지만, 대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학구조조정은 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여러 현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문제는 유독 이 구조조정이 대학들에 대한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한 것처럼 부각되며 대학이 폄하 당하고 있다는데 있다.대학에 대한 부정적 논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반값 등록금'이라는 다소 정치적 색채를 띤 슬로건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대학에, 아니 등록금에 관심을 가지면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서 대학들을 압박하며 극히 일부 대학의 부도덕과 부실이 필요 이상으로 부추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실 대학의 생사가 걸린 '구조 조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진행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들이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취업률, 학생 충원율 같은 정량 지표에만 치중할 때 이 정신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자기중심적 생각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계속되는 한국교육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그 열정과 땀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했던 강의실과 복도에서, 그리고 주린 배를 안고 앉은 교정 앞 잔디밭과 선술집에서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학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진 것도 없이, 도전정신 하나로 뭉쳐, 짧은 영어의 두려움 속에서도 중동, 동남아 등으로 떠났던 그 시절 젊은이들의 치열했던 정신을 오늘 되새기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입학인구의 급감이나 취직의 어려움 같은 문제는 결국은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대학정신의 훼손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늘 더 중요하다.이제 와 새삼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와 같은 원론적 물음을 되풀이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난해한 고차원 미분 방정식과 같이, 즉 국립과 사립, 소규모 대학과 대규모 대학,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등 여러 요인이 심하게 얽혀 있는 대학들의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짚어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하기 때문이다. 혹시 대학이 세상에서 부와 출세를 얻기 위한 인적 지적 인프라 만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더 이상 학문의 공간은 특별하지 않고, 그런 공간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인성과 지성 그리고 인문학과 같은 말들이 그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꼭 되돌아보아야 한다.흔히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 한다. 이번 정책 시행에서는 효율과 효과, 시효에만 급급하지 말고, 대학 본연의 의미와 임무에 대한 성찰을 정부가 심도있게 해줄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싶다. 대학도, 이에 맞춰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대국화 사이에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이고 국가적인 물음에도 보다 치열하게 답해야 한다. 대학이 결국 우리의 희망이니까./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2-28 김병식

'로컬푸드 운동' 사회 정의를 이끌어

피폐한 농촌과 공룡처럼 몸집이 커진 도시가 함께 살자는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이다. 이것은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식품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에서는 시장이 생산지로부터 50㎞ 이내에 있을 경우를 로컬 푸드라고 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운송시간이 24시간 이내일 때로 정의했다. 일본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 하여,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그 곳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을 일컬었다.2008년부터 이 운동은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농민들은 농산물을 가까운 도시의 직거래장터로 가져간다. 상품진열도 가격 책정도 스스로 한다. 포장이나 운반도 알아서 하고, 재고물량도 날마다 거둬간다. 자신의 농산물에서 농약이 과다 검출되거나 품질과 규격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를 처벌한다. 현재 여러 도시에서 이런 방식의 직거래가 이뤄진다.한국의 농산물 유통단계는 7단계나 된다. 그것을 단 한 개로 줄인 것이 로컬 푸드 장터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직거래가 정작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기왕의 농산물 시장이 소농들에게 매우 불리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업농 또는 대농들은 여러 가지 유통경로를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농민의 대다수인 소농들의 처지는 사뭇 달랐다. 소농은 일정한 종류와 수량을 꾸준히 생산하는, 공장식 농업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급자족 위주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이다. 이러한 소농이야말로 마을공동체를 지켜온 힘의 원천이었다. 그들의 존재 방식은 생태계의 존속에도 기여하였다.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소농들은 결국 시장에서 소외되었다. 농촌사회를 농가부채와 고령화의 수렁에 빠뜨린 주범은 바로 시장의 논리였다.경제논리만 따지는 사람들은 농촌을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유물로 취급한다. 진실은 어떠한가. 농촌은 한국인 전체의 고향이자 아직도 전통문화가 숨쉬는 공간이다. 농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것은 196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였다. 그와 유관한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도 한 몫 하였다.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이라고들 말하는 쌀 가격조차 시장에서는 널뛰듯 한다. 20㎏ 한 포대에 6만4천원 하는 쌀값이, 툭하면 특가라며 4만5천원에 거래된다. 요동치는 가격은 소비자들의 요행심리를 부추긴다. 농민에게는 이것이 경제적 희생의 강요로 나타난다. 적정가격도, 생산단가도 없는 것이 농산물이다.한국 사회가 눈부신 경제개발을 이뤘다는 20세기 후반에도 농촌의 비극은 심화되었다. 농촌에는 노령연금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농촌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노령화 지수가 도시보다 갑절이나 높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20%대로 추락하고 만 것도 농촌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다행히 한국은 국제시장에서 부족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제공받는다. 현재로서는 식량조달에 어려움이 없다. 이런 상태는 과연 무한정 지속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무관심하다. 그 틈을 노리고 국내외 중간상인들이 마구 끼어들어 돈벌이에 열중한다. 죽어나는 것은 생산자인 국내외의 농민과 최종 소비자인 우리네 시민이다.오늘날의 시장은 불의하다. 소비자의 가격부담은 줄어드는 일이 없는 반면, 생산자인 농민의 소득은 최소생계비도 못된다. 브라질의 바나나 농장에 고용된 농민들은 소비자가격의 3퍼센트 미만을 나눠가진다. 이 판국에 비교우위론을 들먹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단시간 내에 시장의 왜곡을 바로 잡고, 식량자급의 과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불가능한 과제라고는 볼 수 없다. 세계 굴지의 산업 국가들도 식량자급률이 100% 이상이다.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 로컬 푸드 운동의 시작은 소농을 살리고, 시민들에게 건강을 약속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식량자급 문제에도 기여할 것이다. 국제교역에도 자극을 주어, 해외의 농민들도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열망에 불타게 만들 것이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2-21 백승종

시대정신과 선현들의 어록

역사의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역사의 길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수난의 길도 있고, 극복의 길도 있고, 희망의 길도 있다. 이 길 위에 수놓았던 선현들의 영혼의 울림 같은 시대의 종소리를 되새겨 보는 것도 오늘날을 열어 가는 데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하지 않는가.원효의 아들 설총이 지은 화왕계(花王戒)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뒤 해이해져 가는 왕실을 비롯한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신문왕(신라 31대 재위 681~692)에게 지어 바친 유교의 교훈서이다. 그 속에는 왕을 모란꽃에 비유하여 장미꽃의 화려한 유혹에 현혹되는 임금에게 풍요로운 때일수록 띠풀도 아껴야 하고 지도자는 진실과 허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할미꽃의 진언으로 신문왕을 각성케 했다는 이야기다.한편 지배층의 부패가 극심해서 민생이 도탄에 빠져가는 고려 말에 가정 이곡(1238~1351)이 지은 차마설(借馬說)을 통해서는 시대를 바로잡기 위한 지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돈이 없어 말을 빌려 탈 때 날쌘 말을 빌렸을 때는 낙상의 위험이 크고 야윈 말을 빌렸을 때는 넘어질까 조심하여 냇물은 걸어서 건너고 비탈길도 조심하여 오히려 낙상의 위험이 적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덧붙여 모든 것은 다 빌린 것으로 세상 떠날 때 가져갈 것이 없는데 제 것인 양 착각하고 집착하여 화를 자초한다는 뜻이다.우리 역사에서 민족문화의 토대를 이룬 세종대왕(조선왕조 4대, 재위기간 1418~1450)의 따뜻한 정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중에 세종대왕이 즐겨 썼던 생생지락(生生之樂)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을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과 함께 지도자가 성심으로 이끌면 백성들은 부지런히 근본에 힘써 종사하여 그 생업을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로 세종대왕의 나라사랑, 인간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노비에게 부부합산 160일의 출산휴가를 주고, 글을 몰라 어두운 세상을 사는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광명을 찾아준 찬란한 업적을 이루기도 하였다. 훈민정음은 사랑의 문자이고 소통의 문자이고, 나눔의 문자로 세계인에게 자랑해야 할 지도자의 진정성이 담긴 인류 최고의 문자이다.또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군주로 평가받는 정조임금(조선왕조 22대, 재위기간 1776~1800)은 지식과 실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신하의 질문에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알면 행하는 것인데 행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기가 맛있는 줄 알면 먹지 않을 사람이 없고, 독초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 먹지 않을 것이라는 비유를 들어 명확한 지식이 바른 실천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됨을 주장하였다.한편 실학의 대표적인 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의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재물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방법을 적어 놓았다. "아무리 귀하게 숨겨 놓아도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면 허망하게 날아갈 것인데 가장 필요한 어려운 이웃에게 주면 그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하였다. 19세기 전반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시달리는 암울한 시대를 정화시키는 산소 같은 힘이었다.20세기 들어 일제의 잔악한 침략 앞에서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우리에게 나라사랑의 주인정신을 잃지 않고 희망을 열어가야 한다. 어린이는 방그레, 노인들은 벙그레, 청년들은 빙그레, 전국에 미소운동을 펼치자"는 도산의 독립을 향한 열정적인 호소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 되었다.현대의 물질만능 시대, 경쟁의 시대,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 우리 선현들이 남겨 놓은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으면서 새 생명이 싹트는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희망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2-14 이배용

억울한 표정을 짓는 공직자들

기름유출 현장 냄새 때문에 입 막은건 '오해라고'카드사 정보유출 국민탓인양 막말 '실수 정도로'고위직 기용때 논문표절 학계 해명에도 '손사래'세상 살다보면 누구나 억울한 일 한두번 겪기 마련이죠. 예전에는 이게 힘이 없는 사람과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 겪는 일들이었지요.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하루 묵으려고 어느 집에 머뭅니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나그네는 봉당에 앉아 주위를 살핍니다. 그때 마당에 무언가 반짝 빛나는 것이 보입니다. 저런, 옥구슬이 떨어졌군, 하고 그걸 주워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집의 거위도 햇빛에 반짝이는 구슬을 본 모양입니다.저녁에야 주인집은 옥구슬이 없어진 것을 깨닫습니다. 구슬을 어딘가에 흘렸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훔쳐갔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죠. 나그네는 사람들에게 묶이고, 날이 밝으면 관가로 끌려갈 참입니다. 나그네는 자기 옆에 거위를 함께 묶어달라고 말합니다. 다음날 아침 나그네 옆에 묶인 거위가 눈 똥에 옥구슬이 나왔습니다. 진즉에 말하면 지난밤 풀려났겠지만, 그러면 죄 없는 거위가 성급한 사람들에게 배가 갈려 목숨을 잃었겠지요.톨스토이의 소설 '하느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에는 그보다 끔찍한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여인숙에 듭니다. 그날 밤 여관주인이 누구에겐가 살해되고 나그네는 살인 누명을 쓰고 먼 곳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청춘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머리까지 허옇게 센 노인이 되었을 때 진범이 들어와 지난날 여인숙 주인 살해사건을 자기가 저질렀다고 말합니다.끝내 진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감옥에서 보낸 저 청춘을 어떻게 할까요? 진실이 밝혀져도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도 주인공은 하느님이 진실을 저버리지 않았다는데 감사합니다.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관료들 가운데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보면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 절대 당하지 않을 것처럼 힘 있고 권력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왜 저렇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얼마전 윤진숙 해수부 장관이 여수 기름유출 현장에서 코를 막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장관이 어떻게 현장에 와서 피해주민들 앞에 코나 틀어막는 모습을 보이냐는 질타가 이어진 것이죠.여기에 대해 윤 장관은 어떤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기침이 자꾸 나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입을 막은 것이고, 냄새 때문에 입을 막았다는 것은 오해라고 매우 억울하다는 얼굴로 해명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이 분, 배려라는 말을 어떤 때 쓰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명하러 나와 국민들 앞에 자신이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는 말을 방송에까지 말할 정도면 이건 국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말의 기본을 모르는 막말 수준인 거지요. 당연히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이보다 먼저 카드사의 정보유출 문제가 터졌을 때에도 그것이 국민의 잘못인 양 막말을 하고, 그게 문제가 되자 거듭 죄송하다고 사죄를 한 장관이 있었지요. 공직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의 잘못을 그냥 어쩌다 할 수 있는 실수 정도로 여길 때 저절로 억울하다는 표정이 지어지는 것입니다.고위공직자 기용 때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는 논문표절 사건들도 그렇지요. 밝혀지면 다들 첫마디에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공방 끝에 해당 학교와 학계에서까지 표절로 인정해도 자기는 억울하다며 끝까지 공직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우리가 보기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만 억울한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은 왜 그렇게 이상한 쪽으로 억울한 얼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자칫 억울한 사람들의 억울한 내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이순원 소설가

2014-02-07 이순원

서둘러 갈 일이 무엇인가

신년사 잘 살펴보면 새해 예견하는 단초 발견진정한 소통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시작변화가 늦으면 시장은 최후를 경고하고 위협새해 정월이다. 다음 주면 설이다. 높은 정신에서 보면 시간은 지혜의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한다. 그러나 세파를 이기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 맘 때쯤이면, 무엇인가 새로운 계획도 세우고 올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 상정이다.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책임자들도 새해 신년사라는 것을 내 놓는 것을 보면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이때가 되면 나는 홈페이지를 뒤져 이것들을 살펴보곤 한다. 대개 덕담과 함께 자기 조직이 해야 할 계획 등을 밝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름대로 잘 살펴보면, 그 해의 흐름을 예견할 수 있는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해 내 일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사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사람의 욕망이 관여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고도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경제나 주가 예측이 그토록 터무니 없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앞일이 궁금하니,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지도자들이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는 속내를 신년사의 행간에 드러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는 또 다른 덤이다.보름 전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경제를 생각하면 '1초도 아깝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나는 '아, 올해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올해는 물론이고, 예년에도 빠지지 않는 신년사의 단골 메뉴는 역시 '변화에 대한 강조'이다. 보통 신년사에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는 두 부류가 있다. 소극적으로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냐이다. 조직의 상황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국내외 경제나 정치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의 수가 많은가를 가늠해 보면 그 해의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소극적 입장이 많다는 판단이다. 물론 변화를 적극적으로 리드하겠다는 초일류 기업인 삼성의 경우는 예외지만.그런데, 다른 하나, 올해 신년사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많은 이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왜 새삼스레 소통인가. 카카오 톡, 페이스 북, 문자 주고받기 등 소통의 도구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스마트 1등인 우리 사회에서 말이다. 정쟁으로 다투기만 하는 정치권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일까. 아니면 여성대통령을 맞아 따뜻한 카리스마를 기대했는데 역으로 원칙만을 주장한데 대한 실망일까.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새삼 그 원인 등을 따질 계제는 아니지만 다만, 무엇인가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진정한 소통은 관심사, 가치관, 감성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정월의 상념이 무겁다.종합하면 올해도 역시 세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 같다. 그래서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드셀 전망이다. 빅 데이터 시대라는 전문용어를 빌지 않더라도 편리한 도구로, 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인네와 노약자까지 경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변화는 가속될 것 같다. 과거 수 천년동안 생성되었던 정보의 양이 지금은 단 10분 만에 생산된다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아니, 변화속도가 주변의 속도보다 늦으면 최후를 염두에 두라고 시장은 위협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인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현실이 꼭 그렇다.다른 이야기지만, 어떤 연유로, 즉 몸이 불편하다든지 해서, 몸을 천천히 움직일 때 우리는 의외로 편안함을 느낀다. 느림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제 속도다. 움직임이 본질인 자연계는 나름대로 모두 자기만의 속도영역 즉, 유효속도가 있다. 물질속의 전자(electron)는 전자대로, 초원을 달리는 타조는 타조대로 말이다. 일 전에 눈 밝은 친구가 놓고 간 판각, 그 모퉁이의 글귀가 생각난다. "서둘러 갈 일이 무엇인가."/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2014-01-23 김병식

사회적 자본 벽을 넘어

돈·정보력 등 세습적 사회적자본 출세 지름길과거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고시천국인 한국공교육 질 높이고 다양한 인재선발법 모색해야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 사회의 성격을 꿰뚫어보았다. 그가 사용한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만 해도 그렇다. 파리 중산층 자녀들에게 소르본 대학교의 졸업장은 출세의 날개를 달아주지만, 시골 농부의 자녀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같은 조건이라도 사회적 자본여하에 따라 성취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조선후기 서울의 명문가인 '경화세족(京華世族)'들은 대대로 습득한 시험비결에 힘입어 수월하게 문과에 급제했다. 그들은 노른자위 벼슬만 지내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시골 수재들이 죽을 힘을 다해 시험에 합격하고도 좌절한 것과는 딴판이었다.과거시험 자체는 상당히 공정하였다. 조선후기의 정규시험에서 평안도 출신 문과 합격자가 많았다는 사실이 증명하는 바다. 문제는 그들의 행운이 합격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벼슬은 기껏해야 성균관 전적(典籍) 또는 시골의 현감이나 군수였다. 하릴없이 고향에서 벼슬을 기다리다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조선사회의 '용'이 되지 못했다.따지고 보면 사회 부조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항거했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었으나, '용'이 될 행운을 기다리느라 조직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사태는 개선되지 않았다.그 당시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수험 인구는 50만명도 넘었다. 시험지옥이었다. 많은 선비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치질과 위장병에 시달렸다. 서울의 젊은 선비 유만주(兪晩柱)도 그렇게 병고에 시달리다 34세에 요절했다. 그래도 그는 '흠영(欽英)'이라는 일기책을 남겨 후세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문제는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높이 평가할 만하였다. 서양 여러 나라는 프랑스혁명(1789)이 일어난 다음까지도 그만큼 공정한 인재등용 방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선사회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뽑아 썼다는 사실은 길이 기억할 일이다.조선시대에는 총 1만4천620여명이 문과에 급제했다. 해마다 30명 정도 합격한 셈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20~30년씩 과거 공부에 정진했다. 두세 살 때부터 말과 글을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다는 선비들도 많았다. 조기교육 열풍도 셌고, 시험 열기도 뜨거웠다.예외도 없지 않았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과거시험을 보이콧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 집안은 노론 중에서도 영조와 뜻을 달리한 '청명당(淸明黨)' 계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원으로서는 영조의 조정에 나아가기가 불편한 노릇이었다. 그가 백지 답안을 내는 등의 기행을 벌인 것은 정치적 고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박지원에게 벼슬길이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 벼슬길에 나선 그는, 아들 박종채(朴宗采·1780~1835)의 과거시험 공부도 닦달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재주가 부족해서였을까. 문과에 급제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조선후기에는 과거시험과는 거리가 먼 인재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내가 '평민지식인'이라 부르는 이들인데, 최제우(崔濟愚·1724~64)와 강일순(姜一淳·1871~1909, 호는 甑山)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동학과 증산교를 비롯한 신종교 운동을 통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선사회에 선사했다.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과거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고시천국이다. 현재의 '고시'는 물론 서양의 고등고시제도를 본뜬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제도는 19세기 영국 사람들이 중국의 과거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유럽 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처음 실시된 이 제도의 장점에 놀랐다. 중국과 한국도 그 제도를 역수입했다.고시에 이어 '언론고시'와 '임용고시'까지 등장해 우리 젊은이들은 시험지옥에 산다. 대기업의 취업문도 바늘구멍이다. 경쟁이 심할수록 '사회적 자본'은 위력을 발휘한다. 대학입시만 해도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이 필수적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한국사회, 이대로는 어렵다. 세습적인 '사회적 자본'의 위력을 줄일 방법이 있어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선발의 방법을 모색할 때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2014-01-17 백승종

문화유산과 보존의 지혜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첨단과학기술이 다른 학문과 서로 융합하여 발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을 끊임없이 재편해 가는 과정에 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필수과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보석을 알고 소중하게 가꾸어서 그 감동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문화융성시대 대한민국의 국격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함께 협력하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열어가는 자세를 갖출 때 높아질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 하였다. 미래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들인 협동심과 창의성, 나눔과 배려, 소통과 화합, 자연과 인간의 조화, 평화와 생명 존중 사상은 우리 역사 속에 속속들이 새겨져 있다.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물질만능 풍조와 기계 문명에만 젖어 있어 유형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가치를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바로 숭례문 화재사건이 그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숭례문을 물질 또는 형태로만 보았기 때문에 범인이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던 것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시대의 고귀한 숨결과 민족의 혼을 일찍이 역사교육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면 사람을 살상하는 일 못지않게 망설임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일이 저질러지고 난 후에 후회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첨단과학기술, 건축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시대를 잃어버렸고 순수한 정신을 잊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키고 보존하여 다음 시대로 넘겨주는 일이 더더욱 중요하다. 지금 문화재 복원사업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고 또한 보존에 대한 빈번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시대변화와 함께 개발논리도 적용되어야 할 때가 있겠지만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은 우리 문화의 가치를 너무 잘 알아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부러 파괴했고, 우리는 몰라서 스스로 파괴했던 우(愚)를 범했던 일을 경각심을 가지고 기억해야 한다.문화재에는 시대정신과 자연에 대한 소통과 존중의 정신이 배어 있다는 점을 사대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이념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지향하였다. 따라서 도성에 사는 사람들과 도성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유교윤리에 바탕한 심성과 도덕성을 갖추기를 기대하였다. 즉 자연의 이치인 목, 금, 화, 수, 토 오행(五行)과 인간의 이치인 인, 의, 예, 지, 신의 오성(五性)의 상호합일의 원리를 적용하여 사대문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동대문의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나무 (木)에 해당되며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으로 쇠(金)에,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으로 불(火)에, 북문은 숙정문(肅靖門)으로 물(水)에 해당되며, 흙(土)에 해당하는 보신각(普信閣)이 세워져 있다. 동대문만 유독 흥인지문의 네 글자가 된 것은 동쪽의 지세가 서쪽보다 낮아 지맥을 보강하는 의미로 之자를 더 넣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혜는 문을 드나들면서 깨우칠 수 있는 인성교육의 실천이다.역사문화 현장을 가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울창한 나무들이다. 몇백년을 역사의 증인으로 지켜온 소나무, 은행나무들의 마음을 인간의 오만함과 무심함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데서부터 문화재 관리의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와 역사의 준엄함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역사가 주는 교훈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숭례문이 600여년을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서서 역사를 지켜왔는데 한순간에 검은 숯덩이로 변했을 때 그 자신 얼마나 놀라고 아팠겠는가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헤아려야 한다. 정조임금 때 화성건설에서 물목대장과 노역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록에 남겼듯이 이제 다시 겸허한 자세로 진정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임할 때 더 이상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바로 숭례문 복원은 이러한 세울 때의 시대정신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의 의미를 아우르면서 기술적인 면을 적용해야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2014-01-10 이배용

새해는 우리 모두 안녕해질까?

불안한 시대 반영 최근 신춘문예 응모자 늘어사회적 박탈감에 절박한 안부 묻기 계속될 것누군가 대답해야 하는데 입막을 생각만 해서야새해 아침 많은 신문에 각 신문사마다 실시한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자의 얼굴이 나왔다. 신춘문예를 실시하는 신문도 있고, 하지 않는 신문도 있지만 어떤 신문이든 지난 일년간 기사를 통틀어 신춘문예 당선작만큼 여러 지면을 한 사람의 얘기로 채우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소설 당선작의 경우 오직 한 사람의 말과 생각으로 적게는 두 지면을 많게는 세 지면을 가득 채운다.올해에도 몇 군데 신문의 신춘문예 심사를 보았다. 문학처럼 그 시대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것도 드물다고 한다. 그것은 내용에서도 그렇고, 형식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 심사를 하며 그것과는 또 전혀 다른 느낌 하나를 더 받았다. 내용과 형식뿐 아니라 동기에서도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이다.최근 몇 년 간 신춘문예 응모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문학의 위상이 높아져서 응모자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은, 더구나 시와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신춘문예의 응모자는 반대로 늘어나고 있다. 뭔가 할 얘기가 많은 시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꽤 오래 전 IMF가 처음 시작되던 해에도 신춘문예 응모자가 그 전해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패션업계에서 여자들이 입는 치마길이가 길어지면 호경기이고, 짧아지면 불경기로 진단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해그해 신춘문예 응모자 수야말로 우리 사회의 또다른 경기 지표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삶이 절박할수록, 그리고 일자리가 불안정할수록 신춘문예 응모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은 틀림없다.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하는가. 갑자기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해져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면 한 나라의 문화로서도, 문학으로서도 다행한 일이겠지만 그것의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저마다의 일터에서 저마다의 일을 잡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어느날 일자리를 놓게 되거나, 젊은이들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그런 기회가 박탈되었을 때 시대에 대해서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자신의 얘기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아니라 그런 사회적 박탈감이 무슨 말이든 하고 싶게 만든다. 또 한 가정의 가장이 그런 궁지에 몰렸을 때 함께 위기의식을 느끼는 가족 중에 자신이라도 나서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모른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읽은 어느 고등학생 응모자의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왜 자신이 신춘문예에 응모하는가에 대해서 쓴 수기 같은 글이었다. 어느 날 직장을 잃은 아버지와 그 때문에 하루 몇 시간씩 저임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소녀는 자신의 글 속에 여러 차례 신춘문예 상금 얘기를 했다. 또 중간중간 이렇게 쓰면 상금이 날아가버리고 말텐데 하는 불안을 내비치며 사실은 문학에 대해서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할 시기인데, 지금은 상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책을 읽을 사이도 없이 글부터 쓰고 있다는 말도 했다. 당선과는 거리가 먼 얘기지만 삶의 이야기로는 그보다 더 절박할 수가 없다.그러나 그 소녀만 절박한 게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서로 묻기 시작한 우리사회의 가장 절박한 안부가 바로 '안녕들 하십니까?'이다. 묻는 말의 형식이야 타인에 대한 안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불안한 사회 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이다. 당장의 내 삶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고 우리는 정말 안녕한 것일까. 한 대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던진 질문에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새해가 밝았어도 저 질문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사회를 이끌고 나라를 이끄는 누군가 대답해야 하는데, 이제 어린 학생들까지 나서 묻는 질문의 입만 막을 생각을 하지 아무도 우리 안녕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하여 나는 묻고 싶다. 저 질문의 입을 막고 싶은 그대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안녕하신가?/이순원 소설가

2014-01-03 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