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거대한 부패 그리고 약탈

한국은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이같은 물음에 어떤 사람은 한국은 지금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와 유럽의 경제 불안 같은 것도 없는 한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자기도취에 빠진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착각이야말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나위없다.단언컨대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은 경제발전 하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산유국으로 부를 누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같은 나라를 보고 선진국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진국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넘쳐 흐르는 문화가 있고, 빈부격차가 없는 복지사회와 함께 흔들림이 없는 윤리의식이 사회의 저변을 받치고 있고,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살아있고, 거기다 부패가 없는 깨끗한 사회여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그 어느 것 하나 가진 것이 없다.현재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부패현상이다. 국가기반을 좀먹어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부패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오늘날 한국의 부패는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져있는데다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감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액의 수입이 보장되는 높은 자리는 서로 끼리끼리 나누어 갖는다. 법조인들의 전관예우라는 행태,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정당 공천권을 움켜쥔채 내놓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의 질긴 탐욕, 선거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류층들만의 공천파티, 정경유착으로 인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두껑을 열면 터져나오는 상류층의 비리 백태….교육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들은 울상이고, 대학 당국은 차비도 안 되는 강의료로 시간강사들을 착취하고 있는데도 고액연봉을 받는 교직원들은 나몰라라하고 자기 안전만을 꾀하고 있다.연전에 일본 외상 마에하라 세이지가 식당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할머니한테서 4년에 걸쳐 25만엔을 정치헌금으로 받은 것이 말썽이 되어 사임한 일이 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인들의 비리 액수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역대 대통령들과 그 처자식들, 또 그 형제가 종횡으로 해먹은 횡령액은 수천수백억원에 이르고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사과상자로 옮긴 현찰만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다.상류층의 끊임없는 탐욕은 결과적으로 서민에 대한 약탈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횡령하고 그들 때문에 하수구로 흘러들어간 돈은 모두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저축은행 사태 하나만 봐도 그 실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은행대출길마저 막인 불쌍한 서민들은 제2금융권에 손을 내밀지만 간교한 금융권은 고액의 이자로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다. 그 마저 막히면 결국 사채업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 이자가 가히 살인적이다. 우리사회의 구조는 상류층에는 항상 관대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민들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이처럼 비리 탐욕 낭비 부도덕 약탈 등 모든 악덕은 다 가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수로 선진국 국민이 되겠다는 것인가.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상류층이 더 이상의 탐욕을 멈추고 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는 일이다. 최근 스위스는 날로 커져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비상조치로 고액 연봉자들의 보수를 삭감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70% 정도가 지지의사를 밝혔고, 이 같은 방침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광대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중국은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절약과 검소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자원 하나 없는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는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지금까지 절약과 검소를 국정의 기반으로 삼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2013-03-08 김성종

미래창조와 판타지 산업

박근혜 정부의 2대 중심축은 복지와 미래이다. 미래창조부에 대한 무게 비중이 다른 어떤 정부 조직보다 더 크고 무겁다. 과학에서도 IT산업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일단 과학이 미래 국부 창출의 핵심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직 미래의 과학을 선점하는 국가만이 세계 경제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창조의 근원을 논하는 것은 무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우둔함의 소치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에 우선하는 것이 인문학이요 문화예술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그 과학을 발전시키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이를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과학은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 과학을 위한 과학은 인간을 과학의 노예로 만드는 과학 만능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시적 영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자연의 법칙을 창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도 인간의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없었더라면 이태백의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는 과학적 성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이 없다면 그 과학은 무용한 것이다.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도 인간이요 그것을 향유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이며 미래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이다. 이는 새로운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에 대한 인문학자의 억지 하소연이 아니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판타지 산업이다. 판타지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 이는 물론 디지털 코드의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문화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산업에서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영화산업이다. 최근 한국 영화는 관객 1천만명 시대에 돌입했다. 이제 몇 백만 정도는 예사롭다. 다시 말하면 판타지 산업이야말로 새로운 국부창출의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예를 들어 영국에서 시작한 해리포터 시리즈는 처음 소설로 출판되고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 독자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해리 포터의 저자 로안 롤링은 일 년에 전 세계에서 거두어들이는 인세 수입만 1조7천억원이라고 한다. '다빈치 코드'로 정통 기독교에 도전하여 세계적인 흥행작을 만든 댄 브라운은 현재 '단테 코드'를 집필 중이며 이 또한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리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은 자료와 지식을 동원하여 최고의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 사람의 천재에 의해 창조되던 소설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창작한 소설이 문화산업의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국부창출에 있어서나 미래 성장 산업에 있어서나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한국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미래 창조에 있어서의 과학의 강조가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중의 하나로 판타지 산업도 심도 있게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중예술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이룬 케이 팝이나 싸이의 성공이 우연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 나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전 세계인이 호응한 것이다. 미래 창조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확실한 투자와 그 바탕이 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제고되어야 할 시점이다. 세계를 무대로 삼아 세계인에 통하는 판타지 문학과 예술이 한국인에 의해 문화산업으로 창출될 때 한국은 확실한 문화적 선진국이 될 것이며 그 성과 또한 지속적으로 국부창출에 기여할 것이다./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2013-02-28 최동호

낯선자들의 사회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로 농촌에 모여 살았던 인구는 서울과 그 인근으로 옮겨 이제는 전 나라의 절반 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부산, 대구, 대전, 인천과 광주와 같은 그외 다른 주요 도시는 누구라도 기회만 있으면 옮겨가는 곳들이 되었다.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껏 보아오던 급격한 도시화는 생각보다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설 연휴 서울에서 있었던 층간 이웃의 살해사건은 이런 급속한 사회 발전의 부작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 남자가 두 명의 이웃을 살해한 이유가 층간의 소음 때문이라고 했다. 이 섬뜩하고 잔인한 범죄로 온 나라 사람들이 경악했고 모두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놀랐다.설을 쇠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오는 동안 나는 서울이 텅비어 있는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다른 편 상행선에 비해서 또 다른 날들에 비해서도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던 길이라 서울 안은 몹시도 한가로웠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는 본래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곳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이방인들의 거대한 도가니다.안타깝게도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네의 라이프 스타일은 명백히 이런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다. 한 예로 광주에 처음 왔을 때 아파트에서 살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 광주 방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살게 되었다. 그 동네엔 한국 그 어디에도 흔한 아파트 한 동 없이 오직 올망졸망 모여있는 작은 집들과 간혹 가다 남아 있는 한옥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의 아내와 나는 재미로 그 동네를 방림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정겨운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던 곳이라 마을이라 불렀던 것 같다.우리는 동네 이웃들을 잘 알았고 나이 많으신 이웃 어른들은 햇빛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나와 앉으시곤 한나절 내내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동네 곳곳 어디서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알고 우리도 그들을 잘 알아 서로가 인사를 나누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 아파트가 모여있는 신지구로 이사를 오면서 전에 느껴왔던 이웃 간의 정겨움은 찾기 힘들었다.몇m 떨어지지 않은 곳에들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매우 조용할 때 들려오는 우리 집 밖의 목소리나 발자국 소리로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몇 년을 가깝게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사실 부끄럽게 느껴지고 다른 이방인과 더불어 사는 나도 그들에게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단 생각에 슬픈 느낌마저 든다.한국 사회에서는 어디 출신인가가 언제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느 김가인지, 이가인지 서로에게 물어보고 출신지역이 크게 같기라도 하면 친척이나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한다. 서로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자라왔는지에 대해 연관짓는 것은 사회적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중요하리라. 현 서울은 어디에서도 어떻게든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었다. 명절 연휴로 비어있는 도시는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큰 도시들에서의 익명성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존재하며 익명성은 범죄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위에서 언급한 나의 단순한 이론은 어쩌면 이번 사건에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생활에서의 소음으로 빚어내는 문제들을 줄이기 위해선 규제를 만들어 시설을 보강하고 공동생활 준수 강령이라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 한지붕 아래에도 여러 가족이 모여 살지 않았던가? 좁은 골목, 지금보다 좋지 않은 건축 자재 및 기술로 만들어진 집들이 모인 한 동네에서도 이웃과 정겹게 살지 않았는가?충격적인 사건 이후 근래 더욱 극성스러워진 5살배기 아들이 우리 집 아파트에서 뛸 때마다 하는 것은 뛰지 말라고만 말하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이웃들과 가깝게 서있으면서도 어색한 침묵 속에 우두커니 서있을 것이 아니라 인사를 건네며 적어도 누군가 먼저 내려야 할 그때까지 몇 초간이라도 말을 걸어 보는 것이다.

2013-02-22 안톤 숄츠

학생교육원에 의병정신을 담자

1959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당시 나는 서울의 동덕여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생회장 후보로 대대장 후보와 함께 왕십리에 있던 무학여고에서 간부 학도훈련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에 있는 모든 여고에서 학생 두 명씩을 선발하여 장미반과 백합반으로 분반, 숙식시키며 집중교육을 시켰던 것이다.간부로서의 자질 함양이 목표라고 했는데 교과과정은 다양하였다.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리더십에 대한 정의,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에 대한 담론 등은 물론이고 자유시간엔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있었고 뚝섬에 수영하러 가기도 하였다. 간부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교육은 사고하나 없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고 훈련하는 선생님이나 훈련받는 학생이나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건만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뒤에 회고해 보니 이 경험은 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전까지는 사회나 국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오직 나 하나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는데 나를 넘어선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해 학생회장이 되어 4·19혁명 와중에서도, 그 후의 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시절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강원학생교육원'은 강원도내 청소년들에게 의병정신을 고취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 학교가 위치한 가정리가 바로 조선 망국의 시기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의암 유인석 장군의 사적지이므로 그곳의 시설물이 의병운동이나 의병정신과 관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암선생이 어떤 인물인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구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춘천시 남면 가정리까지 거동하여 의암선생 묘소에 제의를 행하며 바친 고유문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의병정신은 한마디로 애국정신이다. 의병정신의 뿌리는 깊다. 의병운동은 멀리 조선 중기 병자호란과 임진왜란까지 소급되는 외세배격운동이자 구국운동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민초들이 일어나 구국의 대열에서 목숨 바쳐 싸우는 전통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국가다.향촌사회에서 존경받는 선비가 거의(擧義)하여 의병장이 되고 백성들이 호응하여 의병이 되었다. 1895년 국모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어나기 시작한 한말 의병들은 1910년 망국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그 의병의 총사령관이 바로 의암 유인석 선생일진대 춘천은 커다란 자부심의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춘천 가정리에 '강원학생교육원'을 세운 것은 무엇보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의도로 읽힌다. 천마디 말보다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그 유적지에서 느끼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정리는 학생들에게 1주일씩이라도 의병정신을 통한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일깨워 주는 성지가 되어야 한다. '강원학생교육원'이 그동안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모르지만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청된다.그런데 바로 그 학교가 다른 목적으로 전용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2011년부터 문제학생의 대안학교로 되었다가 다시 국제대안학교(강원Wee스쿨)가 된다고 한다. 물론 대안학교는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필 '강원학생교육원'을 전용할 필요는 없다.강원도교육청은 '강원학생교육원' 본래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고 강원도의 청소년들에게 의병정신을 고취시켜 애국심을 기르고 심성교육과 리더십 교육을 하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안학교는 그 학교의 목적에 맞게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마련하는 것만이 상생의 길이다.

2013-02-15 정옥자

위험한 건물들

서민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닷가의 값비싼 고층 아파트들. 겉으로 보기에는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떠있는 것이 마치 꿈의 궁전같이 보이고 더할 수 없이 멋지고 근사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들이다.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서 50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이 하나같이 질식사였다. 모두가 화학물질이 타면서 내뿜은 시커먼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질식사한 참사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 한밤중에 불이 나자 곤한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나 대피하기 위해 현관으로 몰려나가 출입문을 열었다. 순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연기가 몰려들어왔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눈을 찌르고 악취를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문 틈을 통해 집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대피할 공간이 없으니 도무지 속수무책이다.아이들은 울부짖으면서 매달리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손바닥만한 창문을 열어놓는 것뿐이다. 그제서야 그는 테라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럴 때 테라스가 있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버리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파트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화재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하게 되어 있는지 우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일본의 아파트들은 저층이건 고층이건 반드시 테라스가 설치되어있고, 테라스를 새시로 가려놓지도 않는다. 거기다 테라스는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세대간 테라스에는 형식적으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언제라도 발로 차면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그러니까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또는 다른 집에서 난 불 때문에 연기가 몰려올 경우 그 집 가족들은 일단 자기 집 테라스로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으면 칸막이를 걷어치우고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막판에는 건물의 뒤쪽 테라스까지 피신할 수가 있다. 피할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이 온 가족이 집 안에 갇혀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우리네 아파트하고는 얼마나 다른가.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아파트 업자와 설계자는 요즘 아파트에는 2, 3층마다 대피공간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문 밖에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있을 경우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대피소까지 찾아간단 말인가. 과거에는 우리 아파트에도 테라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적인 강제 규정이 엄연히 있었다.그래서 모든 아파트에는 테라스가 있었는데, 입주자들이 거실을 넓게 쓸 욕심으로 하나둘씩 불법적으로 테라스를 없애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그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론에 눌려 법규정마저 흐지부지되더니 급기야 테라스를 없애는 것이 합법화되고 말았다.법으로 한 번 안 된다고 규정해 놓으면 당국은 그것을 끝까지 집행해야 하고 시민들도 그것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좀더 넓게 살려고 하다가 참극을 맞으면 누구한테 그 탓을 돌리겠는가. 앞으로 짓는 아파트들은 이제부터라도 의무적으로 테라스를 설치해야 하고, 당국도 테라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되살려 테라스를 없애는 어리석음을 막아야 한다. 그런 조치들을 통해 우리 아파트의 안전 수준을 일본 아파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테라스를 설치함으로써 돌아오는 이득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층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통풍을 해결할 수가 있고, 태풍에 대비해서 외국처럼 덧문이나 자동 셔터를 설치할 수도 있고, 급하면 합판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도 있다. 태풍의 길목에 살면서도 태풍에 대비한 설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부산의 고층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마치 준비나 대비를 할줄 모르는 우리의 국민성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2013-02-08 김성종

100세 건강시대와 청춘노년문학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80을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생을 60으로 생각하고 70이 드물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했다.이제 누구나 60 이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20년 이상 연장된 생에 대해 나름대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늦게 다시 시작하는 젊은 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젊은 노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른 것은 5060세대라고 한다. 이제 사회의 중심 동력을 2030세대와 더불어 보다 성숙한 연령의 세대가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물론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세대는 젊고 유능한 신세대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노년세대에 대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생산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산업 현장에 노년 인구가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속도 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노년인구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분야 중의 하나가 문학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당 수준의 전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펜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초보적인 글쓰기이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초보적인 글쓰기가 아니다.본격적인 글쓰기의 중심에 있어서도 세대 이동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2010 경인일보 신춘문예에서는 74세의 여성이 시부문의 당선자가 되었고 2012년에는 71세 할아버지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했으며 70에 한글을 배우고 73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의 시집 '치자꽃 향기'가 2012년 우수문학도서가 되었다. 이런 소식은 국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일본에서는 2013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다카와 문학상에 75세의 문학소녀가 선정되었으며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등단하여 일본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시바다 할머니가 1월 20일 새벽 101세로 행복한 노년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한국의 여러 문학잡지에서도 신인상 최종 후보에 노인 지망생들이 몰리고 있어 심사자들이 나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진 괴테의 '파우스트'는 60여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며 80에 이른 만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또한 중년에 시작하여 노년에 이르는 25년 동안 집필된 작품이다. 원숙한 경험이 원숙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오늘날 한국의 노년세대가 지닌 문학적 열정은 그 이전 다른 어떤 세대도 누리지 못한 독자적 존재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일만 하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세대가 아니라 일하고 남은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에 더 본질적인 존재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세대이다.물론 누구도 돌보지 않아 고독하게 죽는 노인들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 부부도 있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이지만 사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써달라고 자신의 전세금을 기탁한 노인도 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중대한 문제이다.한 단체가 제정한 '신노년문학상'에 응모작이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100세 건강시대를 맞아 문학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분들을 청춘노년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문학을 청춘노년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인생의 사이클이 달라진 상황에서 청소년문학만이 아니라 청춘노년문학에도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은 부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청춘은 나이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춘노년문학 지망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13-02-01 최동호

자살하는 나라

최근 고(故) 조성민씨의 자살로 전국이 쇼크에 빠졌다. 그의 전 아내였던 고 최진실씨와 그녀의 남동생의 죽음에 이어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남겨놓은 채였다.지난 몇 년에 걸쳐 한국의 많은 부자와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도 10대와 20대는 사망이유에 자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나 병이 아니라 불행과 우울증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나는 개인적으로 이 테마를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 결과, 이는 가치에 대한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현실에서의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들을 놓아버림으로써 한 개인의 마음과 어쩌면 온 나라에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질 수 없는 커다란 공허감을 안아 버린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돈이나 명예로도 채울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란 TV 시리즈 중 한 인물이 주인공에게 행복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왜 그와 결혼했나요?" "왜냐면 그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결혼 후 그는 당신에게 원하던 모든 것을 주었나요?" "네, 그는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왜 당신은 여전히 불행한거죠?" "왜냐면 제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틀린 것들이란 걸 깨달았거든요."이 짧은 장면은 '왜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불행하고 가련하게 생을 마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진정 원하는 것을 갖게 된 후, 결국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원하는 것을 못 갖는 것보다 더욱 최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상상해 보라. 당신이 원해오던 것을 모두 갖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행복해 지지 않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또, 나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는 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갈수록 피상적으로,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것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적, 외모 등에서 아이들은 실패로 자신을 평가한다.여자들은 성형의 칼날과 끊임없는 다이어트에 고통받지만 남보다 예뻐지기만 한다면 더욱 사랑받을 거라고 믿는다. 삶의 성공을 지불 능력이나 직장과 직위의 순위로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우울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했던 적이 있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란 질문조차 중요하지 않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우울증은 암세포처럼 누구에게나 또 아무런 예고 없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중요하다. 무엇이 이러한 우리 인생의 암흑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내 경험상,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데엔 돈이나 명예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다음 사야 할 더 큰 차, 다음 살 더 큰 아파트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할 내 직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그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지 않는가? 이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쫓고 그걸 얻었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들은 부모의 목표에 떠밀려 살아왔고, 부의 축적을 가치로 여기는 사회 속에 적응하느라 현실의 작은 가치만을 발견하며 살아왔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영혼과 마음이 빈곤한 가치와 잘못된 사회적 가치로 채워질까 봐 두렵다.한국은 아시아의 역동적인 파워하우스가 되었다. 이는 대단한 개가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국민은 자신의 삶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성공이 성공인지,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만약 내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지 그 예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난 이미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대답을 하나 준비해 두었다. "아이가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답할 작정이다. "행복한 사람이요!"

2013-01-25 안톤 숄츠

정조대왕의 왕 노릇

조선왕조의 22대 왕 정조대왕은 조선의 스물일곱명의 임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왕이다. 전기의 세종대왕, 후기의 정조대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그는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다른 임금들도 시문이나 글씨 등 족적을 남겼지만 이렇게 방대한 단독문집을 남긴 이는 정조대왕 뿐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듯이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었다.둘 다 인재양성과 문화정치를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세종대왕이 형님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일이 순탄치 못했음에 견주어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정조대왕은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구명을 위하여 대신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비명에 갔다. 이 사건은 정조대왕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생애는 이 사건의 극복과정이 아니었나 싶다.우선 그는 군사(君師)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에 들어갔다. 조선왕조는 왕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세자 때는 당연히 서연을, 왕이 되어서도 정사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조강(아침) 주강(낮) 석강(저녁) 세 번이나 경연을 하였으니 왕들의 하루는 참으로 고된 것이었다고 하겠다.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면 숙종 영조 등 임금이면서 스승을 자처하는 군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7세기 세도(世道)를 담당하였던 산림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림은 17세기 붕당정치의 영수로서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통섭하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 18세기 탕평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 학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산림의 역할까지 한 군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정조는 할아버지들을 계승하여 군사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런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여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겪었기에 그의 분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기 위하여 밤새도록 공부에 열중하고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1776년 25세의 청년왕이 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절한 큰아버지 진종(추존)을 계승하는 위차(位次: 왕위계승의 차례)로서 세손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계승에서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사라졌고 그에게 사도세자는 사친(私親)에 불과했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할아버지 영조의 처분은 공정한 천리(天理)의 문제이고 자신이 애통해 하는 것은 인정의 문제라고 규정하였다. 할아버지의 입장을 의리로, 자신의 입장을 인정으로 정리함으로써 상치되는 부분을 보완하였다.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화정치의 산실로 삼았다. 기존의 굳어진 관료체제로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그곳에서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문화정책을 추진하였다.경연을 주도하여 밤늦도록 신하들과 토론하고 새로운 시대사상으로 부상하던 북학사상도 수용하여 조선왕조의 개혁과 변화를 유도하였다.그렇게 정사에 몰두한지 20년이 경과한 1796년 45세의 장년의 정조대왕은 측근의 신하 김조순에게 "나는 왕 노릇 하기를 즐기지 않았다.…나는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하루가 지나면 마음속에 스스로 말하기를 '오늘 하루가 지났구나!'하고 이틀이 지나면 역시 그렇게 여기며 하루 이틀 살얼음 밟듯이 20여년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다.최고통치자의 자리는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자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언사다. 학자군주 정조대왕이 숙종 영조에 이어 군사가 되어 탕평정치를 계승 성공시킨 비결이 이 한마디 말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싶다.

2013-01-18 정옥자

아, 대통령!

우리는 멋지고 근사한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까.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이런 생각이 간절하게 다가오곤 했다.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들은 거의가 우리 가련한 백성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다가 끝내 모멸감을 안겨준 채 떠나가곤 했다. 왜 우리한테는 그런 대통령들만 있었을까? 우리한테 복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이었을까.생각건대 우리는 복도 없었고, 선택도 잘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은 그렇다치고 선택이 잘못된 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그 첫째가 선택의 어리석음이다. 민심과 여론은 현명하지 못하고 큰 과오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독일 국민이 나치의 선동에 현혹되어 열화같이 히틀러의 등장을 환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군국 일본은 일본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대재앙을 불러왔다.둘째는 선택의 비루함이다. 권력의 횡포와 그로 인한 공포 분위기에 주눅이 들면 백성들은 비루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그 속성을 알고 있는 권력은 백성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분열시키고, 부패시키고, 결국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비루한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이 군부 독재였고, 계속해서 이어진 어리석은 선택으로 군부 세력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셋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체육관에서 의식이라고는 없는 로봇 인간들을 앉혀놓고 대통령을 뽑았으니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이승만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 중에 두 번씩이나 막강한 상대 후보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단독 출마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결국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백성들이 어떻게 선택했든 간에 그 결과는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현대사의 불행한 한 페이지로 장식되었다. 그렇다 해도 권력을 움켜쥔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력욕에 눈이 멀대로 먼 탐욕의 화신에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의 빈곤, 옳고 그름도 판단할 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어떻게 정치를 잘할 수 있었겠는가.멋지고 훌륭한 대통령은 어떻게 대미를 장식했는지를 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엉터리 대통령은 마지막 장면이 지저분하고 혐오스럽지만 멋진 대통령은 죽음 자체가 예술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다.2차 대전 중에 항독전선을 이끌었던 그는 전후에 대통령이 되어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은 위업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쏟아진 영광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유언하기를 자신의 주검을 국가장으로 치르지 말고 가족장으로 치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국립묘지에도 묻지 말고 고향 콜롱배에 있는 딸 옆에 뉘여달라고 당부했다.그의 당부대로 그의 유해는 어릴 때 장애아로 죽은 딸 옆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그의 유언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정부가 주는 대통령 연금도 받지 말고 그 돈을 불우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현재의 드골 기념관은 그의 사후 형편이 어려워진 부인 이본느 여사가 팔려고 내놓았던 집을 어느 사업가가 인수해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만든 것이다.중국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오늘의 중국 경제를 있게 한 장본인인 등소평 역시 유언에 따라 화장한 다음 그 유해는 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에 의해 바다에 뿌려졌다. 주은래 총리 역시 "내 유골은 조국의 강산에 뿌려다오"라고 유언했고 그 말에 따라 그 유골은 톈진과 황허등 산곡등에 살포됐다. 모든 영광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그 마지막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2013년, 이제 곧 새 대통령이 등장한다. 정부가 수립된지 65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우리도 멋지고 근사한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감히 한 번 기대해본다.

2013-01-11 김성종

대통령과 채마밭 늙은이

치열한 선거전 끝에 국민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최근 한국의 모든 관심은 당선자의 인사에 모아져 있다. 당선하는 것도 지난한 일이지만 그 다음 적정한 인물을 발탁하여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더욱 지난한 일이다.인수위원회나 일부 인선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에 대해 사퇴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정부의 실수나 잘못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당선자는 전문가를 등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인사가 그렇게 진행될 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여기서 공자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공자의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일과 채소 기르는 일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답했다. "나는 농사일에는 늙은 농부만 못하고 채소 기르는 일에는 채마밭 늙은 농부만 못하다." 공자는 제례에 대해서도 일일이 다 물어서 법도를 찾아 처리했다.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일이나 채마밭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공자는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고 했다. 공자가 농사일에 간섭하거나 이를 아는 체하고 처리했다면 공자가 아니다. 농사일은 농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요새 말로 하자면 전문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수많은 전문가의 활동이 밑받침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 사회 곳곳에 훌륭한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었고 이 분들이 각 분야를 선도해 오늘의 눈부신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없어서 또는 전문가가 부족해서 눈에 보이는 국가적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며 기술대국이다. 이제는 전문가를 등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등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탕평의 정치이다. 극단의 편가르기를 극복하고 대통합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화합과 탕평의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선조를 망친 것은 사색당쟁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1724년 복잡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등극한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대립을 치유하기 위해 탕평책을 시행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변을 치르게 된다.이는 당쟁을 주도하는 정치세력들의 대립과 갈등으로 야기된 조선조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정치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대파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화합이나 탕평의 정치란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하기 힘든 과제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국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과제가 탕평의 정치이며 중도정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극단의 편가르기에 앞장선 등용이 아니라 정말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중용하는 탕평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물론 이러한 주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실현하기는 힘든 일이다. 초야에 묻혀 있는 제갈공명을 등용하기 위해 유비현덕이 세 번이나 그 초옥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음미하고 되새겨 볼만한 고사이다. 유비현덕이 천하를 얻은 것은 유능한 인재의 등용에 있었다.권력의 이동을 뒤쫓는 철새들의 무리가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젊은 인재들이 도처에서 국가의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 발전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인재의 발굴과 등용이 새 정부의 가장 화급한 과제이다.농사일은 늙은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지나간 옛말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그리고 방금 들어설 정부의 새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금언이다. 5년 후 탕평의 정치에 실패한 불행한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국가발전에 기여한 명예로운 지도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탕평의 인사정책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반면교사로서 지난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2013-01-04 최동호

자살, 그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절망적인 비명이 자주 들린다. 그제는 누가 자살하였고, 어제는 또 누가 자살하고, 오늘도 역시 누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이 슬퍼지고 있다.어찌하여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빈번해지면서 마음을 이렇게 무겁게 해주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가 망해서 비탄에 빠진 애국지사들이 자결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의 침략을 받아 망해가는 나라가 서러워서 애국심으로 죽어가는 지사들도 아닌 마당에, 삶이 팍팍하고, 앞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압제와 탄압에 시달리고, 최악의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래도 정권이라도 바뀌면 일루의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겠느냐면서, 참고 참아 왔지만, 정권 교체가 실패로 돌아가고 현 정권이 연장된다는 절망감에서 끝내 목숨을 끊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죽음, 우선 그분들의 자결에 삼가 명복을 빌고 빈다.마찬가지로 시민운동 지도자의 죽음에도 삼가 애도의 뜻을 밝히며 그분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쓰리며 속이 탔으면, 하나밖에 없는 그 귀한 생명을 끊어서까지 자신의 한을 풀고자 했다는 것인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쓰리다.MB정권의 노동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실의에 빠졌던 그 많은 노동자,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정리해고라는 명분으로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직장을 잃고 생계 걱정으로 신음하고 고생을 했는데, 정권의 연장으로 희망을 엿볼 기력마저 없어졌으니 그들이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일도 결코 좌시할 일만은 아니다.하나뿐인 생명, 하늘이 주신 목숨인데 어떻게 감히 자살이라는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단 말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에 아무리 동정을 한다 해도, 죽음을 무릅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지, 죽는다고 해서 어떤 생산적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시작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면 영원한 끝이 아닌가.잘못된 노동정책에 대한 원한, 대기업에 대한 증오, 노동운동에 대한 작위적인 방해와 노동조합에 대한 의도적인 분열 등,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해도, 죽음을 택한 것만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고 국민 대화합을 이룩하겠노라던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 살아있고,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말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간이니, 조금은 참으면서 희망과 꿈에 기대를 걸어라도 봐야지 그냥 포기해 버리고 극단적인 행위로 삶을 마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그렇다고 죽어간 그들에게 무엇을 탓하며, 그들의 비통한 죽음에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는가.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책무를 맡은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이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더 이상의 죽음은 막아야 한다.분쟁이 종식되지 않았거나, 노동자와 대치하고 있는 대기업의 현장을 파악하여, 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이 죽음을 택하지 않고 희망과 꿈을 품을 수 있는 노동정책의 변화를 예고해 주어야만 한다. 해고노동자들의 원대복귀나 비정규직의 근본적 대책 등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날 조치를 해줘야 한다.불이 나면 우선 불을 끄는 일이 소방관들의 임무가 아닌가. 국가의 통치를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대통령 당선자라면, 취할 수 있는 온갖 조치를 동원하여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 5년 동안 해야 할 통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훌륭한 계획을 세우는 일의 전초전이 바로 이 문제에 있다.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충동에서 벗어날 특단의 조치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바로 미래 5년을 내다보는 시금석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뀌지 않은데 대한 실망을 꼭 변화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돌려주는 일이 바로 당선자가 해야 할 초미의 급선무다.정권이란 유한한 것이지만 인간의 생명이 우주의 영원한 중심적인 가치임을 증명해주기 위하여 유한한 정권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사람이 통치자다. 통치자라면 우선 노동자들이 더는 죽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2-12-28 박석무

죽음과 죽는다는 것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테마인 죽음과 내가 겪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겪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장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됐다.그동안 장례식에 가본 적이 꽤 있어서 동서양의 장례문화가 당연히 다르다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2주만에 독일에 계신 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 예전에 죽음과 장례 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사찰에서의 수도생활(한국생활 초반)이나 10여 년전에 있었던 향교에서의 전통 혼례 경험 등 외국인으로서는 운좋게도 한국 고유한 의례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그런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장례식이란 그저 조문객으로서 부의금을 담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쉽지 않은 인사말을 하고 오는 일이었다. 아내의 아버지의 죽음은 한국의 삶을 제대로 보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장인어른이 계획에 없었던 심혈관 수술을 받은 뒤 모든 가족의 생활은 바뀌었다.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리 모두는 황급히 병원으로 불려갔다.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작은 캠프와도 같았다. 그저 환자의 호전만을 기다리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웠다.독일에서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고 면회시간 외에는 중환자실 근처에는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를 중환자실에 두고 있다면 병실이 어디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당연했다. 어느 저녁 우리 모두는 중환자실에 불려 들어갔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서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이 사라져 가는지를 보게 됐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로는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죽은 육신은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옮겨졌고 30분 후에는 우리 모두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아 관과 조화, 조문객을 위한 음식 등 장례절차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아들은 주변에서 '강남 스타일'을 부르며 펄쩍펄쩍 뛰놀다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냐고 물어왔다. 당혹스럽고 황망스런 순간들.다음날 아침 우리 모두는 장례식장 안에 있었다. 곧 가족 친지와 조문객들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조문객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멀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도 찾아왔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아내의 외숙부께서도 먼 길을 마다않고 바로 오셨다. 이제껏 한국의 모든 장례 의식이 다소 경직되고 형식적이진 않나란 생각이었다.우리의 경우도 계산적으로 대하는 장례식장의 일부 업소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란 생각을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정성스런 문상으로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결혼 이후 8년만에 다시 보는 친지들이 정말 반가웠다. 먼 곳에서 이른 새벽 시간에까지 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보며 내 스스로가 가족과 한국 사회의 일원임이 느껴지고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중환자실 앞에서 면회시간을 기다리며 보낸 병원 '캠핑'은 내 한국가족과 함께 떨어지지 않고 보낸 시간 중에 가장 길었으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침내 장인어른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자 장모님께서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님을 안고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 괜찮아질거라 말씀드렸다. 그 순간은 서로 다른 문화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확고히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어느 한 사람의 인생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내는 내 아버지의 장례식 부고문과 초대장을 쓰는 내 어머니 옆에서 마치 딸처럼 돕고 있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겠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 캄캄한 순간,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2012-12-21 안톤 숄츠

대선후보 TV토론 자격 기준 논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에게 어지간히 혼난 모양이다. 지난 4일 1차 TV토론회가 끝나자 새누리당은 국민적 지지도가 1%에 불과한 후보가 40% 이상의 지지도를 받는 메이저 후보들이 겨루는 법정 토론회에 출연하여 판을 어지럽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그리고선 대선후보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 등으로 제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른바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하였다.지난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 세 명의 메이저 후보 외에 3명의 군소후보가 법정토론회에 진출하여 모두 6명의 후보자가 토론회를 벌였음에도 당시 한나라당은 아무 말이 없다가 3명이 겨룬 이번 토론회를 두고서는 새누리당은 불만이 매우 많다.지난 5년 동안 새누리당은 마이너 후보들의 법정 토론회 진출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후보자간 TV합동토론은 그동안 후보들 간의 충분한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선거법은 토론 참가자, 진행과정 등에 있어서 공정성과 기계적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토론의 역동성과 흥미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사실 TV토론의 모든 문제는 토론회 참여 후보의 자격 기준에서 비롯된다. 자격기준을 낮추면 군소후보와 정치신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TV토론 자체가 난삽해지고, 경쟁력을 갖춘 메이저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다.반대로 자격기준을 높이면 다수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고 각종 법과 제도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 군소후보들이 희생될 뿐만 아니라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정신에 위배되고 만다. 이 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가치판단의 문제이다.TV토론에 참여하는 후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토론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방송토론회는 후보자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임과 동시에 올바른 후보 선택을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은 후보자의 당선가능성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문제는 경쟁력 기준을 어느 선으로 정하느냐이다. 현행법은 ①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 후보자 ②직전의 각종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의 후보자 ③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로 규정하고 있어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 새누리당은 미국과 같이 지지율 15%를 주장하는데 이 기준은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에 비추어 보면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따라서 필자는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서 적용했던 ① 원내 교섭단체 정당의 후보자 ②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10% 이상의 후보자 기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TV토론 진출후보는 잘해야 세 명에 불과하게 되어 지금보다 심도 있고, 효과적인 토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비해 국민적 관심도가 낮은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 지지율 기준을 5%로 낮출 필요가 있겠다.또한 질문의 무게와 복잡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1분 또는 1분30초 내에 답변하도록 하는 기계적인 형평성이 토론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다. 따라서 각 후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총 시간 중에서 한 문제에 대한 답변 시간을 최대 5분을 넘지 않는 선에서 후보 자신이 시간을 신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총량시간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후보자간의 심층적이고 활발한 토론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지금의 TV토론은 하루 빨리 보다 역동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2012-12-14 권혁남

엇갈린 박자

필자는 바흐의 음악을 아주 사랑한다. 그 많은 곡 중에서도 '푸가'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특히 사랑한다. 푸가란 서양음악의 음악구조 중 하나로 두 개 이상의 성부로 구성됐다. 첫 주제(subject)는 다른 성부에서 다른 음조로 모방되면서 전개된다.3성부 푸가에서는 주제가 세번 모방되고, 4성부 푸가에서는 네번 모방된다. 곡은 대위법에 따라 발전되며 주제는 다양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사라진다. 주제의 반만 돌아올 수도 있고, 주제의 조각들만 계속해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아예 주제가 도치(inversion)되어 다른 요소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푸가를 처음부터 유심히 들어보면 이 주제들이 반복되면서 일종의 사이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형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엇갈린 박자들을 만들어낸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상 깊게 남는 기억들은 삶에서의 엇갈린 박자들이 만들어준 선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행 중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골목을 돌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해변에서 파도를 피하려 뒷걸음질치다 누구와 부딪쳐 첫 눈에 반했을 때. 새벽에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교회에서 감명 깊은 종소리가 침묵을 깨며 울려 퍼질 때. 우는 아기를 안았는데 조용해졌을 때.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리게 해주며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침묵과 어둠의 기억마저 잊어버린 우리는 이 순간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기대와 욕망. 어쩌면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욕망을 품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기대를 품게 되고, 높은 기대는 인간이 계획을 세우게 만들며, 계획은 인간을 희열 또는 절망의 양쪽 길 중 하나로 인도한다.여기서 희열을 얻게 됐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만약 절망에 빠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좌절이나 분노 속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 엉뚱한 춤은 멈출 줄 모른다. 끊긴 줄 모르는 소리와 빛들 안의 기대와 욕망.바흐의 푸가들은 으뜸화음에서 시작해 으뜸화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의 리듬과 화음들이 선을 긋고 색깔을 칠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주제들이 매번 다르게 발전해야 된다는 규칙 아래 리듬과 화음들은 다양한 색채로 변하면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이것이 똑같은 푸가를 매일 들어도 항상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어떤 날은 평소에 잘 안 들리던 리듬이 부각돼 들리고, 어떤 날은 화음이 들리기 시작하며, 어떤 날은 기억했던 리듬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냈지만 혼돈은 여전히 그 질서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혼돈이 신만이 즐길 수 있는 자유라면 바흐의 음악이야말로 신에게 바쳐진 음악이다.푸가는 듣는 이의 감각이 깨어있을수록 더 흥미로워진다. 더 많은 것들이 들리면서 질서 속에 숨은 혼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질서 안의 혼돈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삶의 엇갈린 리듬들은 바로 이 혼돈들이다. 이를 즐길 수 있게 됐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개인적으로 현재 생존하는 작곡가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피에르 불레즈에게 필자는 이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선생님은 작곡하실 때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합니까?"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나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며 또 질서 안에서 혼돈을 찾으려 하지. 그리고 그런 음악들을 좋아한다네."바흐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이여 깨어나라. 너희들도 신이 될 수 있다."

2012-12-07 박종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

'불신 시대', '불신 사회', 참으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오늘의 사회다. 그런 가운데서도 더더욱 불신의 수렁에 빠진 분야는 바로 '정치 불신'이다.지위가 높고 책임이 무거운 지도자일수록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하는 짓마다 국민을 속여 먹는 작전에 능숙해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정치 혐오증에 걸려 무조건 정치인은 싫고, 정치는 타기의 대상에 오른 지 오래되었다.정치 없이는 나라도 안 되고 세상도 돌아가지 않음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처럼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가 어디서 왔단 말인가.지겹도록 거짓말만 하던 자유당 독재의 12년, 억지로 헌법을 고쳐 정권 연장을 지속했던 위대한 거짓, 그것도 부족해 역사에 없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국민의 분노로 4·19혁명에 의해 이승만 독재는 무너졌었다.정치 불신이 이제나 가실까 여길 때, 5·16쿠데타로 정치 불신과 사회 불신은 가속화의 길을 걷고 말았다. 군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뒤집고 정권을 잡은 쿠데타 주역의 식언(食言)이 계속되면서 정치는 바로 나락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국민을 속이는 정권 연장이 계속되고, 신조어인 '번의(飜意)'라는 추악한 용어가 신문을 도배하면서 정치에 믿음을 갖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3선 개헌의 그 엄청난 정치 속임수에 영구집권의 '유신'까지 선포되었는데 국민의 누가 정치에 신뢰를 할 수 있었겠는가.이런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집권과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아낄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이 통하면서 정치 불신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2012년 중반부터 오늘까지 몇 개월,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런 정치 풍토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며, 메시아를 갈망하던 민중의 염원이 모인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진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짓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여길 때, 정당도 싫고 구정치인도 싫고, 낡은 것이나 거짓은 더욱 싫다는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준 사람이 바로 안철수라는 우람한 정치 신인이었다.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신인이 꼭 정치를 잘하리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믿음이 가고 거짓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서의 여론조사 수위를 달릴 수 있었다.이제 그는 후보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정권교체와 야권 단일화라는 시대적 대의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그 많은 지지자의 붙잡음과 애통 속에서도 미련 없이 사퇴를 결행하고 말았다. 대단한 일이다. 정치는 그래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이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장엄하게 뜻을 접었다.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많았다면, 어떻게 이 나라와 사회가 이렇게 무서운 정치 불신에 빠져 있겠는가. 공자(孔子)는 오래전에 말했다. 먹을 것이 많은 것보다, 강한 군대보다도 더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국민이 정치를 믿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불신의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장래는 어둡다.여기에 한줄기 청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 안철수 현상,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통령의 꿈도 접어버린 결단, 그런 싹과 움에서 우리의 미래가 설계되어야 한다. 정치를 꿈꾸는 사람에게서 그런 믿음의 정치가 어떤 것보다 상위 개념의 '가치'라는 생각, 그 점 하나로도 안철수 전 후보는 위대한 정치라는 선물을 우리 국민에게 선사하였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이른바 6·3세대라는 우리, 식언·번의라는 기만적인 정치에 얼마나 치를 떨었던 세대였는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본연의 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속임수에 걸려들면서 우리는 정말 얼마나 속고 또 당했던가.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에 또 속아, 그 뒤로도 5공·6공의 군인들에게 우리는 또 얼마나 당했던가.1987년 양김(兩金)의 단일화 실패에 우리는 또 얼마나 불행했던가.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서운함을 접고 다시 뛰어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주는 일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시대적 큰 가치의 하나다.

2012-11-30 박석무

언론의 용비어천가 유감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언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치켜세우기와 노골적 지지, 반대로 상대 후보에 대한 깎아내리기와 흠집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흔히 권력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개에 비유하곤 한다. 여기에는 모두 4마리 개의 유형이 있다. 먼저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 권력 감시를 넘어 사사건건 권력을 물어뜯어 권력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공격견(attack dog), 이들 개와는 반대로 권력의 총애를 받기 위해 꼬리치는 애완견(lap dog), 권력에 꼬리치지는 않으나 그저 순종하고 잘 따르는 안내견(guide dog) 등이 있다.공격견은 자칫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며, 안내견과 애완견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권력을 건전하게 비판, 감시하는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대체로 지난 1960년대까지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파수견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1970년대 유신정권을 거쳐 5공 정권시대에는 애완견 역할로 전락하였으며, 6공화국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에는 안내견 역할이 강했던 게 우리 언론이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보수신문들은 파수견을 넘어 공격견으로 돌변해 정부를 끊임없이 물어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격견부터 애완견까지 네 가지 유형의 모든 개들이 혼재하여 존재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우리 신문과 방송들은 새로운 대통령인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힘차게 합창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불굴의 용기와 끈기로 이겨낸 일로 시작하여,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투옥됐을 정도로 투철한 민주의식과 애국심을 갖고 있으며,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장황하게 보도하였다. 또한 BBK사건,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그리고 자녀위장취업 등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과거 10년 동안 침체되었던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려놓을 적임자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였다. 심지어 보수신문의 한 언론인은 칼럼을 통해 "요즘 이 나라에는 어떤 희망과 설렘이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는 무언가 안심할 수 있고, 잘 될 것 같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나누고… 마치 함박눈이 내린 아침 같다.…나라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대감이 온 땅에 퍼져있다"고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의 등극을 온몸으로 축하한 이 언론인은 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과연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09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자 보수언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창피주기와 물어뜯기가 계속되었는데, 2009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 정당 대변인의 논평이 아닌 자칭 이 나라 최고 정론지의 대표 언론인의 글 치고는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공격적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한 달 후에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만다. 일찍이 나폴레옹 황제는 "천개의 총검보다 단 4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에도 꼭 맞는 말이다.언론과 권력이 유착되어서도 안 되지만 사사건건 서로 물어뜯어서도 안 된다. 권력과 언론은 항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다. 이제라도 우리 언론은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 객관성으로 돌아가 정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는 올바른 저널리즘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한 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언론은 새로운 당선자에게 과연 어떤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동원하여 또 다른 용비어천가를 목 놓아 불러제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2012-11-15 권혁남

선(line)과 원(circle)

'매크로코즘(Macrocosm)'과 '마이크로코즘(Microcosm)'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원으로 '큰' 또는 '대규모의'를 뜻하는 'macros', '아주 작은' 또는 '극소의'를 뜻하는 'micros'와 '질서' 또는 '세계'를 뜻하는 'kosmos'의 합성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에 근원을 둔 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단계, 즉 가장 큰 단위인 우주부터 원자보다 작은 단위의 것들까지에는 동일한 양식이 반복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다르게 표현해 공간과 시간안에 존재하는 것들에서 공통된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큰 것에서 작은 것들을 터득할 수 있으며 또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사회의 규칙을 만드는 자, 집행하는 자,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세력 갈등을 거듭하며 누가 더 우월한 지위를 점령하는가를 기준으로 성공을 가늠해왔다. 하나 이는 사회적 성공에 불과할 뿐 개인적 성공을 가늠하는 표준이 되지는 못한다. 개인적 성공은 사회적 성공과 평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행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그 모양이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성공을 '선(line)'으로 본다면 개인적 성공은 '원(circle)'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져그렇다면 개인적 성공은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인 성공은 물질적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삶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깨우치고 행동으로 옮긴 후 시간이 경과되면 그 깨우침에 갈등이나 의문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그 깨우침은 몸에 배게 된다. 깨우침의 직전을 시발점으로, 그리고 시간을 추진제로 가정한 전제하에 이때 이 개인은 '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원'을 한번 완주했다고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깨우침이 몸에 배거나 아니거나 일단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시 얻는 깨우침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고는 보이나 실제로 각도를 달리 해보면 도달점은 시발점보다 더 깊은 곳에 있게 마련이다. 결국 '원'은 무한차원에서 존재 가능한 계속되는 '원'이 된다. 개인적 성공은 깨우침을 원동력으로 '원'을 깊이 탐구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며, 그것을 가늠하는 기준은 지속적인 깨우침을 통해 얻는 '자유'일 것이다.여기서의 '역설(paradox)'은 왜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기능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어째서 본능을 중요시하는 사회디자인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본능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조금 더 개개인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은 불가능했을까?예컨대 과학자와 음악가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과학자가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연구중인 이론을 논한다면 음악가는 이해하기 힘들어 할 것이고 반대로 음악가가 음악의 섬세한 뉘앙스를 설명하려 한다면 과학자도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의 내용은 이성적일지 모르나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주 원시적이며 본능적으로 변하게 된다. 마치 이솝의 '여우와 학' 이야기 꼴이 되는 셈이다. 양쪽이 맛있게 수프를 음미하려면 공통되는 그릇을 찾아야 한다. 이때 둘 다 전문지식을 과시하지 않고 서로의 '도(道)'에 대해서 논한다면, 비로소 둘 다 풍요로운 지혜의 나눔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도(道)'는 '통(通)'한다는 표현처럼 '매크로코즘(Macrocosm)'과 '마이크로코즘(Microcosm)' 역시 하나를 터득하면 만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원리를 주장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원'이며 '원'의 모양이 다차원적으로 일그러져 있을수록 이 원리를 터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도(道)'를 터득한 사람들은 항시 변하는 우주와 함께 자기 특유의 '원'을 자유자재로 통제 가능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통 '선'만 보일 뿐, '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원'은 지금 어떤 모양인가?

2012-11-08 박종화

필주(筆誅) 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지난달 10월 17일은 유신독재가 선포된 40주년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은 10·26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날이자 유신독재가 끝나던 3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40년과 33년이라는 짧지않은 세월, 안타까움과 처량한 탄식만 나올 뿐, 그 긴 세월에 우리의 삶이 보람된 생애였다는 아무런 징표도 없으니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후퇴만 되고 있는데….간추린 일기4·19를 고등학교때 겪었고, 대학에 들어와 6·3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날을 세웠으며, 그런 와중에 '신망잃은 박정희 정권 하야를 권고한다'라는 최초의 하야권고 시위로 확대되면서 첫 번째로 학생의 몸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오래지않아 풀려났으나, 65년에는 한일협정비준 반대로 싸우다가 마침내 월남파병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가 두 번째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몸이 풀려나오자 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기다리기에 강원도 전방에서 3년 세월을 국토 방위로 젊음을 보내고 말았다. 68년에야 제대하여 그해 가을에야 재입학으로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69년에는 3선개헌 반대의 시국에 또 기웃거리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려고 몸을 굽히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있을 때, 마침내 72년 영구독재가 완전무결하게 자리잡는 유신이 선포되고 말았다.정말로 암담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국회가 해산되고 모든 법과 헌법까지 확실하게 중단되어 한 사람의 말이 법이고 헌법인 절대 권력으로 장악되는 엄연한 역사의 현실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지켜보던 그때, 참으로 분개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된다는 것인가.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따위 통곡이 어떤 힘을 발휘했으랴.최초의 유신반대 투쟁계엄령으로 군이 온갖 권력을 장악한 그때, 맨주먹인 국민들이 무슨 용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나의 모교 전남대학교에서는 마침내 그해 12월초 유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함성'이라는 지하신문이 학교와 시내의 곳곳에 뿌려지는 쾌거가 일어났다. 죽음을 각오한 내 후배 대학생들이 일으킨 거사이자 의거였다.고등학교 교사이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서 잡혀가 경찰국 공작분실의 지하에서 숱한 고문과 강압에 의해 '함성'과 '고발'을 제작하여 국가반란을 예비 음모한 수괴로 둔갑되고 말았다. 내가 잘 알고 지내던 동지이자 후배들이 했던 일인데, 나를 지령한 수괴라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기소하고는 73년 연말까지 독방의 감옥에 처박아 버려 그해 내내 법정에서 싸워야 했다. 교수가 되려던 꿈과 희망은 무너지고, 고문에 망가진 몸만 남아 앞이 캄캄한 세월이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해 연말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출소하였다. 생사람 잡아다가 고문으로 간첩도 만들고 역적으로도 만들어 인생을 파탄시키고, 통치자 한 사람만 천하의 자유를 누리며, 그의 추종자들만 한세상 만났다고 삶을 구가하던 시절이 유신독재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40년이 흘렀고, 그 종말을 고한지가 3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과거사가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힌 세상이 지구의 어디에 존재하겠는가.춘추필법은 무섭다세상에 무서운 것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다. 역사는 반드시 진실만이 승자가 된다. 시간이야 아무리 지연되더라도 결코 역사적 정의와 진실만은 묻히지 않는다. 역사에 맡기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역사란 어떤 것인가. 역사에 기록되는 진실과 정의가 바로 춘추필법이다. 진실과 정의의 힘은 모든 권력과 역사를 뒤엎을 수도 있지만 거짓과 불의에는 무서운 필주(筆誅)를 내리기도 한다. 유신이 불가피했고 옳았으며,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사람들, 춘추필법은 거짓과 불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세월이 지났다고 관대해지지 않는다. 필주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2012-11-02 박석무

한국 모터스포츠의 도래

나처럼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자동차 생산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모터 스포츠와 거리를 두며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갖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카레이싱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F1 세계자동차경주대회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르망이나 뉘어브르크 서킷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이같은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생산이나 소비 과정에 있어서 '빨리빨리' 태도가 더해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터 스포츠에서는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리고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그 엄청난 운전솜씨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모터 스포츠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물론 한 스포츠의 인기를 올리고 싶다면 정체성이나 연대감이 느껴지는 팀이나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박세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온 나라 전체가 골프에 열광하기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큰 이벤트는 한국인의 '파이팅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어 왔다. 나는 사실 한국팀이나 한국인 선수가 없지만 F1 국제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불붙듯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방문객의 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고 엄청난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크지 않다. 2010년에 있었던 1번째 경주를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심지어 2011년에 한국에서 F1경주가 계속될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영암에 찾아오는 레이싱팀에게 나는 자신있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다음해 경기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슬 앞으로 다가올 매년 F1경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고조되기를 희망하며 어쩌면 대선이 지난 후에는 한국의 행정가를 비롯한 중앙 정부 그리고 기업들이 이 같은 빅이벤트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다시 깨달아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때엔 영암만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터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강원도 인제에서 새로운 서킷이 공사중에 있고 내년이면 아시아 르망 레이스를 비롯, 다른 경주 대회 또한 개최될 예정이다. 혹시 앞으로 모터사이클 세계 챔피언십이 한국에서 개최될 수도 있을까? 아니면 현대와 기아에서 홍보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 개발에 있어 모터 스포츠의 세계 최강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진 않을까? 한국의 자동차가 싼 자동차이기 때문에 구입하던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났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는 매우 섹시하게 디자인되고 있으며 퍼스트 클래스를 대변할만한 멋진 옵션과 좋은 엔진 또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스텝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글로벌 마케팅 도구로서 껴안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는 요즘 들어 한국인들이 수입차 구입을 더욱 선호하는 지금의 트렌드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훗날 한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의 자동차 박물관에 레이싱 트로피들과 함께 세계 경주에서 우승한 레이서들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들을 소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유산을 만들어 가는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모터 스포츠 역사에도 손기정 선생과 같은 영웅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소망한다. 현대 i20 랠리카나 현대 자동차의 슈퍼 GT 레이싱 대회 참여는 새로운 도약들이다. 만약 한국의 자동차들이 모터 스포츠의 강국들과 겨루는 자리를 보게 된다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우수한 자동차 산업과 그에 대한 열정을 세계에 알리기에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때라고 본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 멋진 쇼를 볼 수 있길 바란다.

2012-10-25 안톤 슐츠

선거여론조사 공화국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 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향력 크지만 신뢰도는 떨어져 아이러니전문성 낮은 '싸구려 조사기관' 난무감독기구 만들어 공정·정확성 높여야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다간 국민의 직접 투표 대신에 아예 여론조사만 가지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자는 얘기가 나올지 모를 지경이다. 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들이 서로 달라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조사마다 결과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 표본추출, 질문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론사들이 값싼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돈들인 만큼 나온다. 선거 때만 반짝하는 싸구려 조사기관들의 낮은 단가, 전문성 부족, 조사원칙 무시 등이 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싸구려 조사 회사들은 주로 ARS조사를 하고 있다.ARS조사는 선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표본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ARS조사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열성 지지자가 많은 후보자들의 지지도가 실제보다 많이 나오게 되어있다. 본질적으로 여론조사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를 독자들이 흥미롭고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과학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술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더욱이 과학성보다는 기술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상업적 저널리즘과 다름 없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처럼 여론조사의 질을 평가, 감독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저질의 여론조사결과가 실시되거나 공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이제는 심각히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이러한 감독기구가 생긴다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또는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공개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며,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된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일이다. 그래서 38.6% 등의 소수점 이하의 수치로 치장한 여론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사결과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2012-10-18 권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