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한국의 대학에 대한 불편한 진실

대학이 없는 한국을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모두 한국의 대학에서 젊은 인재를 양성한 결과이다. 자연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노동력과 창의성이며 이에 의지하여 오늘의 국가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를 구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할 용기가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는 쉽지 않은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다. 여기서 필자가 경험한 한국대학의 진실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해 두고자 한다.우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반값 등록금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반값 등록금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 처음 공론화시킨 다음 그들의 생색내기 용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유권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 대학 현실에서 반값 등록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수업 시간을 단축한다든가 강의 단위를 대형으로 조정한다든가 아니면 전임 교원에게 수업시수를 더 많이 요구한다든가 하는 일이 여러 대학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반값 이야기로 인해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은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이고 이에 역행하면 여러 제재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교육 당국자의 위협이 무섭기도 하다.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한국의 대학 경쟁력을 논하는 상반된 요구가 있다. 국내 순위가 정해지고, 아시아 순위가 발표되고, 세계 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아주 부진하다고 질타한다. 한국의 대학이 새로운 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성과물을 산출하게 만드는 확실한 지원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미래창조의 현장이 대학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대학이 미래 창조의 생산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정부의 발표가 현실화될 것이다.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재들을 그대로 산업현장에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의 유수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만났다. 그 분은 대학 평가 왜 그렇게 합니까?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평가가 현장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연봉과 그 몇 배에 해당하는 교육비를 들여 신입사원들을 훈련시키고 나면 삼사년 사이에 상당수가 회사를 퇴직하고 만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생산 현장에 있는 그들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겨우 유능한 인재로 훈련시켜 놓으면 직장을 바꾸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좀 더 편하고 쉬운 직종을 찾아가는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 한국은 앞으로가 아주 문제라는 그 분의 독백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의 이야기는 겉으로 화려한 스펙을 쌓느라고 방황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생산 현장에서 견딜 수 있는 인간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지표라는 것이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그 분의 발언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대학은 당장 현장에 필요한 교육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대학은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당장의 필요는 당장의 쓸모일 뿐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국의 대학교육이 현장교육도 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문 교육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국가 발전의 동력이 되고 인류문화에 기여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국가적 경쟁력은 순식간에 추락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생 유권자를 유혹하고 대학을 압박하는 정치권력이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는 대학 당국 모두 일대 개혁이 요구되는 중대한 시점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2013-06-20 최동호

게으름의 등장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인에 대해 받은 첫 인상은 매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삼사십년 전에 전쟁과 가난에 힘들어하던 나라에서 아시아 강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눈부신 급성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천연자원이 펑펑 쏟아져 나와 부국이 된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경우이다. 한국의 성공은 힘든 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강인함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러한가?그동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한국을 일으켜 세웠던 이전 세대와 달리 앞으로 이끌어갈 세대는 전과 같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전에 없던 게으름을 목격하면서 앞으로 한국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특히, 늙은 용이 깊은 잠에서 다시 깨어난 듯 과거의 위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중국의 급부상을 본다면 이런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물론,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해가 진 후에도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고층 빌딩가의 사무실에선 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감히 게으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일하는 것'은 종종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고 싶은 내용은 왜 한국인들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과거 한국은 성공에 굶주려 있었다. 그러나 한 이십년 전부터 등장한 신세대들은 빈곤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않는 듯하다. 부모들은 아이의 안녕을 추구하며 결국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때 종종 볼 수 있었던 어처구니 없던 광경 중의 하나가 3층 밖에 안되던 건물 안 승강기 앞에서 학생들이 겹겹이 줄 서 있던 모습이다. 서둘러 계단으로 가면 그나마 지각은 면할 수 있을텐데도 지각을 하더라도 덜 걷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함께 등산을 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가보면 학과 학생 대부분이 참석하지 않았다.심지어 그 전에 점심을 사겠다고 학생들에게 제안을 하면 처음 듣게되는 질문은 "하이킹 대신 바로 점심 먹으러 가면 안되나요?"라는 것이다. 분명 과거에는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산에 오를 때면 한국을 일으켜 세웠던 전세대의 어르신들이 육체적으로도 얼마나 강한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나의 큰 보폭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산길을 힘차게 오르고 내려가는 이들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주차장이 없는 카페나 식당은 안될 말이고 어디를 가더라도 십미터 이내의 주차장은 기본이며 발렛 파킹과 같은 대리 주차 서비스를 먼저 찾는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한 백미터가 좀 넘게 걸어보자고 했던 것은 분명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던 셈이다.이러한 한국인의 구미에 부응하기 위해선지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서비스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돈만 내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젊은이들의 결혼은 점점 더 늦어지고 서른살이 넘어서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부모님의 집에서 의지해 살고 고통과 고난을 이겨가며 힘들게 모은 부모의 돈과 자산에 의존해 살더라도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부모로부터 받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쩌면 앞으로도 늘 그렇게 편히 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일까?한국은 위험한 교차로에 서 있고 일이나 돈에 대한 가치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갖고 있던 돈이 다 없어졌을때 지금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곤두박질 칠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제력을 움직여 왔던 추진력은 타고난 창조 능력과 같은 재능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라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태도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부모가 더 이상 곁에 있지 않는 상황을 신세대가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를 축적해 가는 길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 과정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욱 더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2013-06-13 안톤 숄츠

잊지 말자 6·25

해마다 6월이 오면 제일 먼저 6·25전쟁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현재 진행중이다. 그 명칭도 6·25사변에서 한국전쟁으로, 그리고 6·25전쟁으로 변화하였다.1950년 6월 25일 유난히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콩볶는 소리(따발총 소리)는 요란한데 라디오에서는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총소리는 요란한데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고 하니 38선이 지척인 춘천의 시민들은 갈피를 못잡고 피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피난민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총알이 마당에 떨어지고 나서야 피난을 서둘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비상식량으로 미숫가루를 만들고 우리 네 자매들은 꼬까옷으로 단장하였다. 아마도 잠깐 나들이 떠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대로는 위험하다하여 산길, 들길로 가던 피난길의 산천은 녹음방초 우거지고 뻐꾸기소리, 꾀꼬리소리 등 온갖 새들의 지저귐으로 하여 천국이 따로 없었다. 뒤에서는 전쟁이 쫓아오고 눈앞에는 천국이 펼쳐지는 이율배반의 계절이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달려가던 피난길은 차츰 고행길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아홉 살, 그 다음이 여섯 살, 네 살, 두 살이었으니 나는 차라리 어른 취급을 받으며 걸었다.청평의 솔이 마을에 이르자 서울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후 진행된 상황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고 우여곡절 끝에 춘천으로 돌아왔을 때는 엄마와 나 단 둘만 남았다. 인민군 치하의 춘천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하늘에서는 쉴새 없이 폭격이 계속되고 어른들은 부역에 끌려가서 집에 홀로 남아 방공호로 달려가는 일을 되풀이하였다.미처 방공호로 피신하지 못했을 때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나머지 네 손가락 두 쌍으로 두 눈을 누르고 솜이불을 뒤집어썼다. 폭격에 귀가 멀고 눈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숨이 컥컥 막히는 무더운 여름에 폭탄의 파편을 막을 수 있다는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고역쯤은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그 여름이 가자 드디어 국군이 들어왔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그러나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4후퇴로 매섭게 추운 겨울에 또 피난길에 올라 서울을 거쳐 신갈리쯤 갔을 때는 중공군과 맞닥뜨렸다. 중공군은 심리전이라 하여 밤이면 구슬픈 피리소리를 흘려보냈다. 꼭 귀신이 곡하는 소리같아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중공군은 흰 앞치마 같은 것을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위장전술을 썼으므로 무고한 피난민들이 중공군으로 오인받고 폭격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1953년 6월 휴전이 되어 춘천으로 돌아와 학교에 가자 가족이 온전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결손가정 출신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울지 않았다. 상처는 가슴 깊숙이 담아둔 채 질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누군들 그 상처를 잊을 수 있었겠는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6·25전쟁의 기억은 어제일 같이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 상처는 소금을 뿌리듯 쓰라리다.올해가 휴전한지 꼭 60년이 되는 환갑 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은 눈부신 바 있다. 이에 취해서 지금 우리는 평화기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감이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면역이 되어 그러려니 귓등으로 듣고 통일에 대한 의지도 흐려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다. 6·25전쟁은 제2차세계대전 후 최대의 국제전쟁으로 부상자 빼고도 쌍방의 군인 전사자만 240만명이었고 민간인 사상자는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남북한 모두 폐허로 변했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 상호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등 정신적 피해도 컸다. 이 전쟁은 통일을 이루어야 끝나는 전쟁이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의 의지를 다지면서 현재도 진행중인 전쟁임을 결코 잊지 말자./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2013-06-06 정옥자

가짜 세상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지처럼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은 유식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휘저으려고 든다. 그 결과 이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무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가짜들이다. 가짜들은 가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내고, 그래서 이 세상에는 가짜 물건들이 범람하고 있다. 가짜 인물군과 가짜 물건들은 서로 한 통속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고, 그 유기적인 관계로 해서 해악은 견고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필자가 알고 있는 어떤 이는 수십년 전부터 석박사 학위 논문을 대필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석사학위 논문은 한 편에 500만원, 박사학위 논문은 1천만원,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공정가격을 매겨놓고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가짜 논문을 써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배출된 석박사가 줄잡아 수백 명은 된다고 하니 그 수를 전국적으로 확대 계산해보면 어머어마한 숫자가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양산된 가짜 석박사들이 성스러운 캠퍼스에 우글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런 가짜들한테서 학문을 배운 대학생들의 실력이 오죽하겠는가. 그런 행태는 해외유학파라고 다르지 않다. 신정아 사건이 말해주듯 외국에서 가짜 학위를 받아가지고 와서 교수 행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자격증도 없는 가짜 의사들뿐만아니라 자격증이 있어도 가짜나 다름없는 엉터리 의사들도 수두룩하다. 해마다 전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의사들이 쏟아져나오다보니 실력은 뒷전이고 돈벌이에 급급해서 인간 생명을 상품처럼 주물러댄다. 얼굴을 망쳐놓은 가짜 성형외과 의사, 관절과 척추를 멋대로 수술해서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놓은 정형외과 의사, 돈을 받고 가짜 진단서를 마구잡이로 떼주는 양심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비리 의사, 여대생을 공기총으로 살해하도록 사주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기업체 사장의 부인이 의사가 떼어준 가짜 진단서를 이용해서 교도소가 아닌 일반 병원에서 편하게 지내왔다는 사실은 가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원전의 부속품들이 가짜라는 사실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가동을 중단할 정도로 가짜가 많은 것을 보면 원전 사고가 일어나 방사능이 누출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열을 이기지 못해 원전이 폭발이라도 할 경우 부산 울산 포항을 포함한 경상도 일대는 죽음의 땅으로 변할게 자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 사고를 예방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문화 쪽을 들여다봐도 가짜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돈만 주면 무슨무슨 강사 자격증을 남발하고, 돈만 주면 문예지에 시 수필 따위를 실어주고, 그때부터 당사자는 평생 동안 시인 수필가로 행세한다. 시인 수필가가 이렇게 많은 나라도 아마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외국에 서너 번 갔다와서는 외국여행 전문가로 행세하는 등 가짜 전문가들도 제 세상을 만난듯 기승을 부리고 있다.가짜가 가장 숨어있기 좋은 곳은 정치판이다. 당선만 되면 가짜가 덮여버리니까 그때부터는 가짜 실력을 얼마든지 발휘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가짜는 양심이 없기 때문에 부패하기 쉽고,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운줄 모르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휘두르려고 기를 쓴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자각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 우리는 적어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2013-05-31 김성종

중국 대학생들과 한국 도깨비

지난 16일 한국 시인 20여 명과 중국 난카이대학에서 '한중 시낭송 및 세미나'가 있었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과연 한국의 시나 문학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강의장에 들어섰는데 중국대학생들의 반응은 진지하고 무거웠다. 150여 명의 중국 학생들은 강연 내내 진지하게 듣고 있었으며 강의가 끝난 다음에 여러 학생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질의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 누구며 한국에 프랑스문학의 영향은 어떤 것인가. 시와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등등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가 시를 통해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호기심을 넘어선 한국 시에 대한 관심은 애초에 우리가 가지고 갔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는 것이었다. 다음날 60여 명의 대학원생들과 한국현대시에 대한 학술적인 세미나가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한국현대시와 도깨비'라는 제목으로 짧은 발표를 했다.한국인들은 모두 도깨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 한국인의 특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적인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성격 중의 하나이다. 비약적이고 돌발적이며 진취적인 한국인의 기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역경을 기회로 21세기 비약적인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발휘한 것이다. 도깨비는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경이라도 이를 극복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나의 강연의 요지였다. 물론 도깨비는 인간이 되고자하며 또 인간 세계에 잘잘못이 있을 때 이를 징벌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 한국의 도깨비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수 없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후일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상당수의 기록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왜 우리는 서양의 신화나 전설을 훌륭하다고 말하고 동양의 그것은 무시해 왔는가, 나는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고구려인들이 축구를 하고 신라인들이 전자산업을 일으키고 백제인들이 자동차를 만들고 이 모든 힘이 하나로 합해져 오늘의 한국이 세계 첨단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보자면 정상을 일탈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 지닌 창의적 발상과 사고의 원동력이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불가사의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성과는 모두 한국인들이 지닌 이런 특징의 발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싸이의 음악은 말도깨비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는 추신수 선수가 휘두르는 방망이가 도깨비 방망이이며 지난 세계스케이트 선수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가 바로 아름다운 도깨비이다.도깨비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의 존재들이다. 다시 말하면 가상과 현실을 매개한 중간적 존재들이다. 도깨비는 꿈을 꾸는 존재들이고 현실을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표출되지 않은 에너지이다. 서양인들은 물론 중국인들도 한국인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중국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고대인들이 과거에서 뛰쳐나와 한국의 드라마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독성은 매우 심해서 한 번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나면 다른 드라마가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필자는 강연의 마지막을 요약했다. 한국인의 특성은 한 문장으로 집약된다. "한국인은 도깨비이고 도깨비는 한국인이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필자의 강연을 듣고 있던 중국의 학생들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이제야 한국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지만 최소한 그들과 인간적 소통의 계기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일어나는 한류의 붐도 이런 기본적인 정서적 이해를 공유할 때 포말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붐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중국대학생들의 진지한 경청의 자세였다. 중국의 미래가 아주 밝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의 총리가 자꾸 역사 왜곡 발언에 앞장 서는 것은 그들의 막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아주 대조적이었다./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2013-05-24 최동호

잘못된 메시지 보내기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분명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당시 삼성의 새로운 광고 문구를 보았는데 광고판 자체가 매우 커서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소리치는 듯해 보였다. 'Samsung-The best company in the world'(삼성-세계 최고의 회사) 순간 웃음이 나왔고 잠시 후 이 광고문장은 재미로 보는 작품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 광고인지 한 순간 의아하게 생각해 볼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국인들의 정서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광고의 영문 의미에 대해 추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90년대의 과거 이야기고 삼성은 지금의 삼성이 아니었다. 지금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그들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어쨌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것들은 이곳의 모든 것은 '최고', '최대', '최선'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겨선지 내게는 이런 큰소리치는 듯한 자랑식의 표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며 최대, 최고 등의 수식어가 붙은 것들에 대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보게 만든다. 이런 반응이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가 다가와서는 나는 최고라고 말을 걸어왔다면 순간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순간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반응으로 이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통역가와 컨설턴트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한국 회사들에게 우선적으로 부탁하는 것 중의 한가지가 국외 비즈니스 상대들에게 좀 더 겸손하고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디 에아츠테'(의사들)라는 독일의 한 유명한 펑크록 밴드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계 최고의 밴드'라고 늘 주장한다. 예를 들어 콘서트장 무대에 커다랗게 현수막을 걸거나 밴드이름의 수식어로 자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완전히 말도 안 되게 웃기고 늘 기발하고 능청스러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 최고라는 선전 구호를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다.자신의 언어와 문화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인식이나 지각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같은 문화권 안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하고 동기부여가 될만한 말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웃기거나 모욕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는 자신의 나라를 장시간 동안 벗어난 적이 없거나 다른 문화에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목표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어떤 내용의 자문을 받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저항적이며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을 발견했다.이제 삼성은 세계 최고란 선전문구를 지속적으로 내건 지 20여 년이 되었고 그동안 큰 성장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갤럭시 4모바일폰의 론칭 이벤트에서 그들은 브로드웨이식의 쇼를 넣었고 결국 이것은 세계 곳곳에 참으로 큰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안타깝게도 모두 호평이 아니었다. 기술에는 완전 문외한인 행복한 주부,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 등 사회의 고정관념이 담긴 완전히 낡은 성차별적 견해를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그 일이 있은 지 몇 주 후 인도에서 개최되었던 또 다른 한 론칭 행사에서는 '강남 스타일'을 '삼성스타일'로 개사한 이목을 끌려는 저급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는 현지인에게는 너무도 기이하고 선정적으로 지각되어짐에 따라 또 한 번 조롱당하고 말았다. 분명 삼성이 좋은 자문가와 함께 일하는데 돈이 없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아니면 자문가와 일을 하면서도 조언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구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지난 90년대와 비교해 본다면 한국은 지난 20년간 더욱더 국제화되었고 삼성과 같은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른 메시지로 한국과 그들의 상품과 행사를 홍보하는 데에는 여전히 개선해야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확신한다./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2013-05-16 안톤 숄츠

가정의 달에 종교를 돌아본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에는 국교가 없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국민은 누구나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믿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헌법에 규정되었다고 하여 종교문제가 쉽고 편안한 일일까?전통시대에도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면 기존의 종교와 부딪치면서 사달이 일어났다. 불교가 신라사회에 들어올 때도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조선후기에도 천주교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같은 사건을 천주교에서는 박해(迫害)라고 하지만 공식기록에는 사옥(邪獄)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용어는 인식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후에 기독교도 들어와 우리 사회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으로 대분되는 종교지도를 갖게 되었다. 그 외에 대종교나 천도교 등 민족종교도 존재하지만 교세는 미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종교, 그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사람은 무교(無敎)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교라고 하는 편이 맞다. 왜냐하면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적 제의인 제사를 지내고 유교적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지도를 가진 만큼 문제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가정의례문제이다.가정에서 행하는 대표적인 의례가 제사이다. 제사는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유교적 제의가 확고하게 뿌리 내린 것은 조선후기이다. 신분을 불문하고 제사는 효도의 구현으로 제사 안 지내는 이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여인들이 머리를 잘라 팔아 제사비용을 마련한다거나 무엇에 쪼들리는 상황을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종교가 다양화된 현재도 제사는 제일 큰 가정의 행사이고 친척간의 화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도시화하고 핵가족화하고 있다는데 있다. 아파트생활을 하면서 많은 친척들이 모일 공간이 부족하고 직장생활을 하므로 제사시간을 조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으며 특히 제물을 준비하는 일을 고역으로 여기게 되었다.전통시대는 농경사회였고 마을 중심으로 친척들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다. 공간도 터져 있어서 마당에서라도 자리 깔고 지내면 되었다. 제물준비도 친척들이 모여 다 함께 준비하면서 축제분위기까지 있었다. 제삿날이 맛있는 음식 마음껏 먹고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더욱 풍성한 제사를 기획했을 터이다.그러나 지금은 살 빼는 일이 사람들의 중요 관심사가 된 시대다. 자기 직전에 제사 지내고 음복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제물을 약소하게 차리면 조상님께 죄송하고 많이 차리는 것은 과소비가 되는 이율배반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제사음식을 버리는 일까지 생겨나고 어차피 먹지도 않는 제사음식 애써 만들 필요 없으니 차라리 주문하여 제사 지내자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한데 정성이 빠진 제사는 허례가 되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맏아들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권리는 따로 없는데 제사, 부모님 모시기 등 의무만 남아서 맏아들은 물론 맏며느리를 옥죄는 사슬이 된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 중엔 맏아들 맏며느리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 제사는 조상님을 정성껏 모시고 추모하는 성스러운 의식이 아니라 후손에게 짐이 되는 허식이 되어가고 있다.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국가에서 간편화 작업도 했지만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옛날부터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여 집집마다 제물이 조금씩 다르고 제사법도 조금씩 차별성이 있었던 법도가 집집마다 전승되고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하기 어려운데다 종교생활이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자신의 종교에 맞는 제의를 행하면 되고 이중제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제사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종교 창시자들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원대한 뜻을 품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겪으며 구도의 길을 걸어 마침내 인류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파하였다. 그분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족적을 보여준 위대한 스승들이다. 그분들의 경유하는 길은 달랐지만 목적지는 같았다고 생각한다./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2013-05-09 정옥자

테러리즘

일본 적군파, 독일의 대명사 바더 마인호프,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은 모두 1960~70년대에 악명을 떨쳤던 좌파 테러단체들이다. 그러나 좌파 테러단체들은 70년대를 고비로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소멸되고 대신 새롭고 강력한 힘을 가진 테러단체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이다.이슬람 테러의 상대는 처음에는 이스라엘이었지만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지금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계이고, 문명 충돌의 양상까지 띠고 있다. 이슬람 테러의 가장 충격적인 신호탄은 1972년 9월5일에 발생한 뮌헨 올림픽 테러이다. 그날 새벽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소속의 무장괴한들은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한다. 골다 메이어 여수상은 이스라엘 정보부인 모사드에게 전세계를 뒤져서라도 테러분자들을 색출하여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때부터 모사드는 20년에 걸쳐 보복작전을 수행, 테러분자들을 모두 암살한다.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기독교 문명은 과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신성 모독과 같은 개념을 상실, 비판에 익숙해지고 너그러워진 반면 이슬람은 신성 모독을 금기시, 편협한 종교관으로 신성을 모독한 자를 단호하게 응징한다. 영국 작가 샐먼 루시디가 소설 '악마의 시'에서 마호메트를 풍자하고 코란을 악마의 계시라고 썼다가 호메이니의 명령으로 목에 100만 달러의 현상금이 내걸린 채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닌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갈수록 격렬해지던 이슬람 테러는 급기야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함으로써 그 정점에 이른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9·11테러는 사망자만 3천여명에 이른 대참극이었는데, 테러를 감행한 19명의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이 함부르크 공대 출신들로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 그들은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을까?이슬람 테러와 미국과의 관계는 2차 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군이 침공해오자 스탈린은 소련연방 내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 이슬람 청년 수백만명을 징집, 총알받이로 대독전선에 내보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나치의 설득에 소련 군복을 벗고 이번에는 독일군이 되어 소련군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그리고 얼마 후 종전이 되자 그들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소련은 회교도 포로들을 반역자로 처단할 준비를 해놓고 당장 돌려보내라고 독촉한다. 오갈데없이 국제 미아가 된 포로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그들을 받아준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였다.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될 것을 예견한 미국은 그 포로들을 냉전에 이용하기 위해 소련에 돌려보내지 않고 대부분 독일에 정착시킨다. 그들은 러시아어에 정통하고 소련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독일에는 400만명의 이슬람 교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9·11테러의 범인들은 2차 대전 당시 포로로 붙잡혔다가 독일에 정착한 이슬람 교도들의 후손인 셈이다.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서 이슬람 교도들을 십분 이용한 곳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지칠대로 지친 미국은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직접 개입할 여력이 없었고, 그래서 대신 이슬람 교도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첨단 무기들을 지원해서 그들을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투입시켰다. CIA가 당시 뉴욕에서 이슬람 용병들을 모집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CIA가 훈련시키고 지원한 이스람 교도들은 무자헤딘으로 단련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소련군과 맞서 싸웠고, 결국 소련은 10년 동안 고전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하고 만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그 자리에 이번에는 미군이 들어온다.9·11테러 직후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들이 훈련시키고 지원했던 무자헤딘들이었다. 과거의 동지가 이제는 적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이제 전세계에서 무자헤딘의 테러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래도 신만이 아는 것일까./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2013-05-03 김성종

영화 '지슬'과 스탈린의 편지

흑백 영화 '지슬'을 인상 깊게 보았다. 음울한 화면에 펼쳐지는 리얼한 장면과 그곳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영상과 고통이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누가 죄 없는 이들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가. 영화가 끝나고도 관중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여 토벌대와 양민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느낌이 전해 왔다. 아마 영화가 주는 가슴 저린 감동 때문에 관중들은 무언가 여운을 가지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4·3사건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자막에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미군과 미군정 당국'이라는 문구는 영화 전체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정말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한라산'의 작가 현길언의 증언을 읽게 되었다.제주 4·3사건은 항쟁사가 아니라 수난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현길언의 주장이다. 현길언 자신이 4·3사건 당시 아홉 살의 나이로 제주 남원읍 수당리에 살다가 가족들과 20여일간 피난살이를 했고 일가친척들이 수난을 당한 당사자라고 한다. 4·3사건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맞선 권력투쟁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수난사라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현길언의 장편 '한라산'은 제주도민의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다루고 있으며 2003년 간행된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에서는 민속학자 고종민을 통해 수평적 관계가 수직적 관계로 변할 때 발생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역학적 구도로 인해 4·3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민초들의 희생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편의 작품은 유사한 현실인식을 보여 준다. 결국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의 왜곡과 변형으로 인해 우리가 경험한 사실이나 진실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4·3사건은 뒤이어 일어난 6·25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는 한반도를 두고 권력 투쟁의 장으로 만든 거대한 정치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2005년 소련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스탈린의 편지이다. 이 문건은 체코의 클레멘트 대통령에게 전하는 구두 명령으로 당시 프라하 주재 소련대사에게 보낸 스탈린의 편지이다. 이 편지에 스탈린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대사 말리크가가 왜 참여하지 않았는가를 설명한 부분이 있다. 소련대사가 회의에 참여해 표결하지 않음으로 인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주도로 유엔군 파병이 결정됐으며 이는 소련의 실책이었다는 것이 그동안 학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의도적으로 미국을 한반도 전쟁에 끌어들임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를 만들었고 중공군의 대거 투입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살육전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기간 300만명에 가까운 인명이 살상됐는데 이는 1·2차 세계대전의 피해규모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을 한반도에 붙잡아둠으로써 유럽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으며 호시탐탐 동북아로 진출하는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결국 6·25는 배후에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작동하고 있었으며 적화통일을 내세웠던 김일성 또한 스탈린의 전략에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거대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과 죽음이다. '지슬'에서 토벌대를 피해 산에 숨어든 사람들이 삶은 감자를 놓고 벌이는 갈등과 나눔은 진정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박진감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생략돼 관람자들은 사실의 한 면만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사실의 말단으로 전체를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본의 아닌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잘잘못을 편가르기 시작하면 서로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더 깊이 민초들의 체험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4·3의 진실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이상하게 발효되어 의문을 증폭시켜 나갈 때 한국현대사는 부당하게 왜곡되고 비참하게 희생당한 민초들은 다시 정치권력의 이용물로 전락하기 쉽다. '지슬'은 담담하게 사실을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 감동적이다. 그러나 역사나 사실의 해석에서는 부분적이다. 투쟁할 힘도 이유도 모르는 민초들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 것은 후대의 의무이다. '지슬'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통합의 과정에서 한국 현대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향성을 시사한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파편적인 역사 인식에서 총체적인 역사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는 시각에서 '지슬'은 깊이 음미되어야 한다./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2013-04-26 최동호

누가 크고 사나운 늑대를 무서워하나?

세계 곳곳에 있는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요근래 부쩍 안부를 묻는 메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김정은의 섬뜩한 협박에 대한 충격적인 머리말과 기사로 가득한 독일 온라인 뉴스를 읽는 것으로 매일 하루를 시작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뉴스는 북측의 향후 동향보다는 태평스럽게도 K팝과 스포츠에 관해 좀 더 중요하게 다루는 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나라는 북한의 가능할지도 모를 잠재적 핵공격과 전쟁 도발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나는 여전히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의 소요를 기억하고 있다. 김일성의 사망일 하루 전 한국에 막 도착했던 나는 사연을 제대로 모른 채 당시의 야단법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추후 어쨌든 지금보다 더 걱정스럽긴 했던 것 같다. 지난 20년에 걸쳐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 왔던 북측의 위협으로 인한 모든 분쟁과 소규모의 충돌은 나의 공포심을 점차 잃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위험한 지역에 가장 가깝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 공포는 적게 느끼는 것 같은 우리네 삶은 그래서 더욱 신기한 모습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특히 근래, 한국에서보다 북한에 대한 톱기사가 더욱 많았다. 한국의 승려들과의 인터뷰와 통일에 대한 그들의 생각, 그리고 거대한 로켓을 올라타고 있는 김정은의 이미지가 커버로 실린 독일 유력 시사 주간지인 '스피겔'지(주당 백만부 이상이나 발행)까지 어디고 빠지는 곳이 없었다. 어떻게 이 계속되는 북측의 위협 이벤트에 대해 한국과 서양측의 지각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어쩌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린 학습하듯이 실제로 어떻게 북한이 움직이는지에 대해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포속에서 공포심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는 확실한 거리를 두고 살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에게 완전히 비이성적이며 거의 자폭하는 듯해 보이는 북한의 도발 상황은 한국인들에게는 아마도 그동안 끊임없이 있어왔던 북한의 위협과 공격 중 그저 지나가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로 보이는 것일까? 심각하게 따지고 보면 북한의 대공격으로부터 누가 가장 이익을 얻는가? 누구도 아니다. 결국엔 북한조차 국가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어쨌든 내 소견으로는 이 한반도의 위기가 유로 위기와 그 밖에 모든 문제들을 안고 있는 서구 사람들에게 당장 그들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사람들을 봄으로써 조금의 위안을 얻지는 않나 싶다. 이러한 내 추측이 서구 미디어들이 왜 이렇게 대대적으로 이 일을 선전하고 있는지, 그들이 우리가 실제로 들여다봐야 할 질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울한 시나리오를 그리는데 그토록 관심을 두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실로 질문은 전쟁이냐 전쟁이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교착상태를 궁극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가다. 이러한 일이 영원히 되풀이되어 김정은의 아들이나 딸이 20년이고 30년이고 계속해서 그 뒤를 잇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 독일에서처럼 어떤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다. 한국의 이 같은 숙제는 아마도 전쟁에 의해서나 외교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그 문제를 풀어내는 길과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 이명박 정부 때보다 북한에 대응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곧 보게 될 것이다.크고 나쁜 늑대를 죽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면 그 누구도 그건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늑대를 길들인다는 것은 가능하긴 한 걸까? 여성적인 손길로 그 같은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모두가 함께 지켜보게 될 것이다./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2013-04-19 안톤 숄츠

4·19혁명 정신을 계승하자

1960년 4월 내가 다니던 동대문 밖 숭인동의 동덕여고는 온갖 봄꽃이 피어나면서 소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 평온한 일상을 뒤흔든 사건이 18일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의 함성이었다. 안암동에 있던 고려대 학생들이 시내로 들어가기 위하여 신설동을 거쳐 우리 학교가 있던 숭인동을 경유하여 동대문 쪽으로 향했던 것이다.이 후 전개된 상황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느낌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정권 연장을 위한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젊은이들의 항거는 시민은 물론, 교수사회까지 합세하게 만들었다. 경무대로 향하던 학생들에게 발포명령까지 떨어지고 결국 피를 보고나서야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하였다.4·19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순수한 의거였다.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없는 자연발생적인 혁명이었다. 정치권은 외무부장관 허정을 수반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하여 정권을 야당이던 민주당에 넘겼다. 야당은 파벌싸움에 얼룩지고 수권능력이 부족하였다. 더구나 직전에 조병옥 신익희 같은 거물 지도자들을 잃은 상태여서 구심점이 약했고 사회 전반에 팽배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추슬러 국가동력으로 묶기엔 역량이 미약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컸으나 아직 훈련이 부족했던 것이다.그 후 개혁 열풍은 국가전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 열풍을 비껴간 분야는 거의 없었던 듯싶다. 나는 공교롭게도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고려대 학생회장의 부름을 받고 고등학교-대학교 학생회장 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여고생도 참여한다는 명분과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에 불과하였다. 정작 문제는 학교 안에서 일어났다. 학생회에는 학생들의 개혁 요구가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중에서 감정이 보이는 것은 회의를 통해 걸러내고 학교에 보고하고 건의하는 방식을 취했다.개교한지 50년이나 된 학교라 오래된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있었지만 학교 당국은 미온적으로 대처하였고 한번 터진 봇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 나는 갈피를 잡으려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사태는 악화되어 결국 동맹휴학으로 치달았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협박편지였다. 학생들의 사상이 불온하다느니 빨갱이들의 사주를 받고 있다느니 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10월 어느 날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전교생이 도열한 가운데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고 학교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데모는 끝났다. 내가 시작한 일도 아니고 학생회의 요구사항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일인데 모두 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대학입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학생회 간부들은 하나 둘 중도 하차하고 나 홀로 남았다. 나의 문제는 남들이 물러설 때 슬그머니 물러서지 못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강박증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개인의 영역에서 맴돌던 나의 의식을 확대시켜 사회정의에 대한 최초의 각성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년도 훨씬 지나서 서울대 교수시절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던 제자들을 이해하게 된 열쇠가 되었다.4·19혁명은 민족자존에 대한 깨달음을 몰고 왔다.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인 4·19혁명은 그 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3·15 부정선거에서 촉발되었지만 자유, 민주, 정의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통일, 자주, 변혁 등으로 그 지향점은 계속 확대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초석이 되었다.미완의 혁명인 4·19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그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정의에 대한 높은 관심, 타성에 젖은 기성의 질서나 기득권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 민족자존의식, 통일에 대한 열망 등 그 정신만은 오늘날에도 맥맥이 살아있어서 우리를 지켜주는 구심점이 되고 있으니 4·19혁명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혼을 지키는 길이다./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2013-04-12 정옥자

'한국의 지식인' 그 부끄러운 자화상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구한말 시인 문장가로, 1855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구례에서 칩거하며 살다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며칠 후 통분을 이기지 못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음독자결했다. 그때 나이 56세. 절명시 한 수가 가슴을 저민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세상이 이젠 망해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식자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반면 같은 시인이면서도 미당 서정주는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행적을 보여준다.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죽은 일본군 오장에게 바친 헌시는 읽을수록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중략)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온 원수 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미당의 비열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십 년 후까지 이어진다. 1987년에 발표된 전두환 56세 생일 축시를 보자.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 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중략)---'한 번은 고은이 미당의 친일 행각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옳은 지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당의 제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감히 한국의 시성(詩聖)을 비난하다니 하면서 고은을 맹렬히 공격했다. 이런 얼빠진 지식인들 덕분에 미당은 죽을 때까지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에게는 지식인으로서의 정의나 양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시적 감각과 감성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시적 기교와 감성적 문체는 부도덕한 사람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미당이다.서구의 경우 지식인 그룹 가운데서 작가나 시인들은 단연 시대를 리드하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손색이 없다. 1936년 스페인에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즘 세력이 내란을 일으키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세계의 작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쟁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작가로 헤밍웨이, 말로, 조지 오웰, 케스틀러 등이 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희망' '카탈루니아 찬가' 등 걸작들이 탄생했다. 2차 대전시에는 사르트르, 카뮈, 말로, 레마르크 등 많은 작가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우리의 지식인들은 부끄럽게도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군부 독재시절에는 권력에 아부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 악랄한 것은 언론인 출신이 군부 세력에 빌붙어 언론 통폐합에 앞장서고 같은 동료들을 학살한 점이다. 꽃의 시인으로 알려진 유명한 노시인은 군사정권하에서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를 주자 감읍하여 기꺼이 여당의 거수기 노릇을 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입을 꾹 다문 채 내 한 몸만 지키면서 편하게 지내는 지식인도 있다. 영특하기 짝이 없는 그는 시대의 아픔을 철저히 외면한 채 국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구름 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시인 김지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발언들을 여과없이 쏟아내 우리를 당혹케 하고 있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백낙청을 느닷없이 비난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더니 얼마 후에는 문재인에게 투표한 48%의 국민들을 공산당을 좇는 국가 전복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무지하고 안하무인격인 그의 발언은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지닌 사람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착란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매천의 말마따나 정말 지식인 노릇하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2013-04-05 김성종

증오의 관계?

국제행사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행사 개최 준비를 위해 한 해 중 꽤 많은 시간을 국내 여러 도시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언제나 내게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의 홈타운인 광주에서 한국에 있는 어느 도시로든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엔 그곳이 부산 또는 대전이기도 했고 지금껏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이며 올해 들어선 대구에 갈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 대구 왕래가 잦다 보니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그 불편한 88고속도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88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한국의 역사를 반영한다. 거의 바뀌지 않은 오늘날의 광주와 대구간의 좋지 않은 관계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이어오는 듯하다. 도로만 보더라도 호남 지역과 영남지역은 대칭적인 양극 같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경제 및 산업 동력을 갖춘 부산, 대구, 울산 그리고 포항 등이 위치한 영남지역은 서울과 경기지역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개발이 잘된 지역이다. 반면에 호남지역은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비약적인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낸 지난 40년 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더 앞서나갈 수 없었다. 경상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적 힘들이 세력을 갖고 있는 동안 전라도는 늘 혁명적인 좌익의 기지였다.그래서 88고속도로는 내게 있어 두 지역이 서로 친해지는 데엔 무관심하다는 명백한 진술로 여겨진다. 원래 이 도로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계획되었던 것으로, 당시 전두환이 화해의 제스처로 호남인들에게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게 된 도로가 지금껏 실제로 변화되어온 것을 보자면 꽤 흥미롭다. 1984년 개통된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로는 예전과 거의 다름없다. 온 나라 전역이 공사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대구와 광주에 제대로 된 고속도로(심지어 KTX 등 다른 교통편도 없이) 하나 만들지 못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지 않나 싶다.사실 요즘엔 88고속도로에서 공사가 한창이라 가까운 미래에 두 도시간의 원활한 교류와 소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에선 공사의 진행이 더디고 새롭게 확장되어 완성되는 고속도로의 개통은 2015년으로 미뤄졌다. 아무튼 그 약속이 지켜질지 우리 모두 두고 봐야 하겠다. 외국인인 나로서도 지역 감정은 한반도를 자르는 마치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부터 5년간 영남지역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밝은 미래를 보장받은 듯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선거기간 호남 사람들에게 내세웠던 많은 선거공약이 계획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으로 재선하기 위해서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재선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심이 없거나 불가능한 일이어선지, 오직 한 임기 내에서 이 나라의 오랜 오해와 균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뻗어 균형과 조화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려는 엄청난 위업의 기회를 누구도 손에 넣으려 하지 않는다.사실 올 가을에 개최될 국제행사 준비를 위해 최근 대구를 방문하면서 두 도시간의 불신을 개인적으로도 느낄 만한 계기가 있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시 관계자들과 토론을 하던 중 한 사람이 나의 명함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이제서야 봤네요. 회사가 광주에 있으시네요. 음, 그럼 아마도 함께 일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거리가 문제라는 것일까? 사실 대구에서 보자면 광주가 서울보다 더 가까운데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새롭게 고쳐질 고속도로에도 불구하고 결코 두 도시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엄청난 틈이 존재해서일까?/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2013-03-22 안톤 숄츠

대한민국에 문장가가 없다?

2008년 3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된 직후였다.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장을 좀 다듬을 일이 있는데 아무리 알아봐도 우리나라에 문장가가 없는 것 같다. 문장 잘 하는 사람 좀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시 "왜 이렇게 문장가가 없는지 궁금하다. 옛날에도 그랬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시대에는 문·사·철을 함께 하지 않아서 문장가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안 되어 있다. 옛날에는 문·사·철을 겸수하는 학문체계였기 때문에 문장가가 많았다"고 대답하였다.문장이란 화려한 수사만 나열해서도 안 되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가 없는 문장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알맹이, 다시 말하면 메시지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해야 생긴다. 그런데 철학만 공부하면 공허해지고 역사만 공부하면 사건의 나열이나 현상만을 제시하고 만다. 그래서 철학과 역사는 상호보완해서 연구해야 한다.그 방법을 전통시대에는 경경위사(經經緯史)로 표현했다. 경경의 앞의 경(經)자는 날줄을 말하고 뒤의 경(經)자는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을 말한다. 경학을 날줄로 한다는 뜻이다. 뒤의 위사에서 위(緯)자는 씨줄을 말하고 사(史)자는 역사를 말한다. 역사를 씨줄로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경경위사란 경학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아 입체적으로 진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경학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를 말한다. 예컨대 사람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진선미(眞善美)라던가, 사람은 효도를 해야 한다던가, 사람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등 삶의 지표는 시간이 경과해도 변함없는 동서고금의 진리임에 틀림없다.역사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제반 양상을 밝히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에서 시간개념을 빼면 역사로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시간에 따라 추적하는 학문이 역사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예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렇게 경학과 역사를 날줄과 씨줄로 삼아 직조하듯이 입체적으로 세상의 진리인 도(道)를 파악해도 좋은 문장이 없으면 표현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바로 그 도를 담는 좋은 문장이라는 그릇이 필요하다. 이를 도기론(道器論)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경위사와 도기론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기초이자 인문학의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문·사·철에 대입해 보면 경학은 바로 오늘날의 철학이다. 역사는 물론 오늘날도 역사이다. 문(文)은 오늘날의 문학이라기보다 문장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은 문·사·철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약칭으로 해석되고 세 학문분야는 각기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따로따로 놀고 있지만 전통시대 세 분야는 경학과 역사와 문장으로서 경경위사의 학문방법과 도기론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보완의 틀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오늘날 학문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각론에 치우쳐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늪에 빠져 시너지 효과를 상실하고 학제 간에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통합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인문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어 인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결국 인문학의 문제가 문장가의 배출을 막고 있다는 결론이다. 문장은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면서 예술적 향기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되 확실한 메시지가 있어야 하니 예술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춰야 제대로 된 문장이 되고 문장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옛 선현들은 만권의 책을 읽어야 그 책에서 나오는 기운이 흘러넘치고 문자의 향기 그윽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결국 훌륭한 문장가는 독서가 생활화되고 문·사·철이 통합된 인문학이 융성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의 발전이 좋은 문장가를 배출할 수 있는 토대이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에 문운(文運)이 열려 좋은 문장가가 줄줄이 배출되는 성세(盛世)가 오기를 고대해 본다./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2013-03-15 정옥자

거대한 부패 그리고 약탈

한국은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이같은 물음에 어떤 사람은 한국은 지금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와 유럽의 경제 불안 같은 것도 없는 한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자기도취에 빠진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착각이야말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나위없다.단언컨대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은 경제발전 하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산유국으로 부를 누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같은 나라를 보고 선진국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진국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넘쳐 흐르는 문화가 있고, 빈부격차가 없는 복지사회와 함께 흔들림이 없는 윤리의식이 사회의 저변을 받치고 있고,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살아있고, 거기다 부패가 없는 깨끗한 사회여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그 어느 것 하나 가진 것이 없다.현재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부패현상이다. 국가기반을 좀먹어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부패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오늘날 한국의 부패는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져있는데다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감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액의 수입이 보장되는 높은 자리는 서로 끼리끼리 나누어 갖는다. 법조인들의 전관예우라는 행태,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정당 공천권을 움켜쥔채 내놓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의 질긴 탐욕, 선거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류층들만의 공천파티, 정경유착으로 인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두껑을 열면 터져나오는 상류층의 비리 백태….교육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들은 울상이고, 대학 당국은 차비도 안 되는 강의료로 시간강사들을 착취하고 있는데도 고액연봉을 받는 교직원들은 나몰라라하고 자기 안전만을 꾀하고 있다.연전에 일본 외상 마에하라 세이지가 식당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할머니한테서 4년에 걸쳐 25만엔을 정치헌금으로 받은 것이 말썽이 되어 사임한 일이 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인들의 비리 액수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역대 대통령들과 그 처자식들, 또 그 형제가 종횡으로 해먹은 횡령액은 수천수백억원에 이르고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사과상자로 옮긴 현찰만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다.상류층의 끊임없는 탐욕은 결과적으로 서민에 대한 약탈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횡령하고 그들 때문에 하수구로 흘러들어간 돈은 모두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저축은행 사태 하나만 봐도 그 실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은행대출길마저 막인 불쌍한 서민들은 제2금융권에 손을 내밀지만 간교한 금융권은 고액의 이자로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다. 그 마저 막히면 결국 사채업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 이자가 가히 살인적이다. 우리사회의 구조는 상류층에는 항상 관대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민들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이처럼 비리 탐욕 낭비 부도덕 약탈 등 모든 악덕은 다 가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수로 선진국 국민이 되겠다는 것인가.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상류층이 더 이상의 탐욕을 멈추고 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는 일이다. 최근 스위스는 날로 커져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비상조치로 고액 연봉자들의 보수를 삭감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70% 정도가 지지의사를 밝혔고, 이 같은 방침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광대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중국은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절약과 검소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자원 하나 없는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는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지금까지 절약과 검소를 국정의 기반으로 삼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2013-03-08 김성종

미래창조와 판타지 산업

박근혜 정부의 2대 중심축은 복지와 미래이다. 미래창조부에 대한 무게 비중이 다른 어떤 정부 조직보다 더 크고 무겁다. 과학에서도 IT산업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일단 과학이 미래 국부 창출의 핵심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직 미래의 과학을 선점하는 국가만이 세계 경제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창조의 근원을 논하는 것은 무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우둔함의 소치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에 우선하는 것이 인문학이요 문화예술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그 과학을 발전시키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이를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과학은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 과학을 위한 과학은 인간을 과학의 노예로 만드는 과학 만능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시적 영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자연의 법칙을 창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도 인간의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없었더라면 이태백의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는 과학적 성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이 없다면 그 과학은 무용한 것이다.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도 인간이요 그것을 향유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이며 미래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이다. 이는 새로운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에 대한 인문학자의 억지 하소연이 아니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판타지 산업이다. 판타지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 이는 물론 디지털 코드의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문화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산업에서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영화산업이다. 최근 한국 영화는 관객 1천만명 시대에 돌입했다. 이제 몇 백만 정도는 예사롭다. 다시 말하면 판타지 산업이야말로 새로운 국부창출의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예를 들어 영국에서 시작한 해리포터 시리즈는 처음 소설로 출판되고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 독자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해리 포터의 저자 로안 롤링은 일 년에 전 세계에서 거두어들이는 인세 수입만 1조7천억원이라고 한다. '다빈치 코드'로 정통 기독교에 도전하여 세계적인 흥행작을 만든 댄 브라운은 현재 '단테 코드'를 집필 중이며 이 또한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리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은 자료와 지식을 동원하여 최고의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 사람의 천재에 의해 창조되던 소설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창작한 소설이 문화산업의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국부창출에 있어서나 미래 성장 산업에 있어서나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한국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미래 창조에 있어서의 과학의 강조가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중의 하나로 판타지 산업도 심도 있게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중예술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이룬 케이 팝이나 싸이의 성공이 우연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 나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전 세계인이 호응한 것이다. 미래 창조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확실한 투자와 그 바탕이 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제고되어야 할 시점이다. 세계를 무대로 삼아 세계인에 통하는 판타지 문학과 예술이 한국인에 의해 문화산업으로 창출될 때 한국은 확실한 문화적 선진국이 될 것이며 그 성과 또한 지속적으로 국부창출에 기여할 것이다./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2013-02-28 최동호

낯선자들의 사회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로 농촌에 모여 살았던 인구는 서울과 그 인근으로 옮겨 이제는 전 나라의 절반 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부산, 대구, 대전, 인천과 광주와 같은 그외 다른 주요 도시는 누구라도 기회만 있으면 옮겨가는 곳들이 되었다.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껏 보아오던 급격한 도시화는 생각보다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설 연휴 서울에서 있었던 층간 이웃의 살해사건은 이런 급속한 사회 발전의 부작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 남자가 두 명의 이웃을 살해한 이유가 층간의 소음 때문이라고 했다. 이 섬뜩하고 잔인한 범죄로 온 나라 사람들이 경악했고 모두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놀랐다.설을 쇠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오는 동안 나는 서울이 텅비어 있는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다른 편 상행선에 비해서 또 다른 날들에 비해서도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던 길이라 서울 안은 몹시도 한가로웠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는 본래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곳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이방인들의 거대한 도가니다.안타깝게도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네의 라이프 스타일은 명백히 이런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다. 한 예로 광주에 처음 왔을 때 아파트에서 살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 광주 방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살게 되었다. 그 동네엔 한국 그 어디에도 흔한 아파트 한 동 없이 오직 올망졸망 모여있는 작은 집들과 간혹 가다 남아 있는 한옥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의 아내와 나는 재미로 그 동네를 방림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정겨운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던 곳이라 마을이라 불렀던 것 같다.우리는 동네 이웃들을 잘 알았고 나이 많으신 이웃 어른들은 햇빛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나와 앉으시곤 한나절 내내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동네 곳곳 어디서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알고 우리도 그들을 잘 알아 서로가 인사를 나누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 아파트가 모여있는 신지구로 이사를 오면서 전에 느껴왔던 이웃 간의 정겨움은 찾기 힘들었다.몇m 떨어지지 않은 곳에들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매우 조용할 때 들려오는 우리 집 밖의 목소리나 발자국 소리로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몇 년을 가깝게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사실 부끄럽게 느껴지고 다른 이방인과 더불어 사는 나도 그들에게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단 생각에 슬픈 느낌마저 든다.한국 사회에서는 어디 출신인가가 언제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느 김가인지, 이가인지 서로에게 물어보고 출신지역이 크게 같기라도 하면 친척이나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한다. 서로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자라왔는지에 대해 연관짓는 것은 사회적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중요하리라. 현 서울은 어디에서도 어떻게든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었다. 명절 연휴로 비어있는 도시는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큰 도시들에서의 익명성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존재하며 익명성은 범죄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위에서 언급한 나의 단순한 이론은 어쩌면 이번 사건에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생활에서의 소음으로 빚어내는 문제들을 줄이기 위해선 규제를 만들어 시설을 보강하고 공동생활 준수 강령이라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 한지붕 아래에도 여러 가족이 모여 살지 않았던가? 좁은 골목, 지금보다 좋지 않은 건축 자재 및 기술로 만들어진 집들이 모인 한 동네에서도 이웃과 정겹게 살지 않았는가?충격적인 사건 이후 근래 더욱 극성스러워진 5살배기 아들이 우리 집 아파트에서 뛸 때마다 하는 것은 뛰지 말라고만 말하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이웃들과 가깝게 서있으면서도 어색한 침묵 속에 우두커니 서있을 것이 아니라 인사를 건네며 적어도 누군가 먼저 내려야 할 그때까지 몇 초간이라도 말을 걸어 보는 것이다.

2013-02-22 안톤 숄츠

학생교육원에 의병정신을 담자

1959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당시 나는 서울의 동덕여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생회장 후보로 대대장 후보와 함께 왕십리에 있던 무학여고에서 간부 학도훈련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에 있는 모든 여고에서 학생 두 명씩을 선발하여 장미반과 백합반으로 분반, 숙식시키며 집중교육을 시켰던 것이다.간부로서의 자질 함양이 목표라고 했는데 교과과정은 다양하였다.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리더십에 대한 정의,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에 대한 담론 등은 물론이고 자유시간엔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있었고 뚝섬에 수영하러 가기도 하였다. 간부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교육은 사고하나 없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고 훈련하는 선생님이나 훈련받는 학생이나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건만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뒤에 회고해 보니 이 경험은 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전까지는 사회나 국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오직 나 하나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는데 나를 넘어선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해 학생회장이 되어 4·19혁명 와중에서도, 그 후의 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시절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강원학생교육원'은 강원도내 청소년들에게 의병정신을 고취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 학교가 위치한 가정리가 바로 조선 망국의 시기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의암 유인석 장군의 사적지이므로 그곳의 시설물이 의병운동이나 의병정신과 관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암선생이 어떤 인물인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구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춘천시 남면 가정리까지 거동하여 의암선생 묘소에 제의를 행하며 바친 고유문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의병정신은 한마디로 애국정신이다. 의병정신의 뿌리는 깊다. 의병운동은 멀리 조선 중기 병자호란과 임진왜란까지 소급되는 외세배격운동이자 구국운동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민초들이 일어나 구국의 대열에서 목숨 바쳐 싸우는 전통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국가다.향촌사회에서 존경받는 선비가 거의(擧義)하여 의병장이 되고 백성들이 호응하여 의병이 되었다. 1895년 국모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어나기 시작한 한말 의병들은 1910년 망국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그 의병의 총사령관이 바로 의암 유인석 선생일진대 춘천은 커다란 자부심의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춘천 가정리에 '강원학생교육원'을 세운 것은 무엇보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의도로 읽힌다. 천마디 말보다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그 유적지에서 느끼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정리는 학생들에게 1주일씩이라도 의병정신을 통한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일깨워 주는 성지가 되어야 한다. '강원학생교육원'이 그동안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모르지만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청된다.그런데 바로 그 학교가 다른 목적으로 전용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2011년부터 문제학생의 대안학교로 되었다가 다시 국제대안학교(강원Wee스쿨)가 된다고 한다. 물론 대안학교는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필 '강원학생교육원'을 전용할 필요는 없다.강원도교육청은 '강원학생교육원' 본래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고 강원도의 청소년들에게 의병정신을 고취시켜 애국심을 기르고 심성교육과 리더십 교육을 하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안학교는 그 학교의 목적에 맞게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마련하는 것만이 상생의 길이다.

2013-02-15 정옥자

위험한 건물들

서민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닷가의 값비싼 고층 아파트들. 겉으로 보기에는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떠있는 것이 마치 꿈의 궁전같이 보이고 더할 수 없이 멋지고 근사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들이다.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서 50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이 하나같이 질식사였다. 모두가 화학물질이 타면서 내뿜은 시커먼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질식사한 참사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 한밤중에 불이 나자 곤한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나 대피하기 위해 현관으로 몰려나가 출입문을 열었다. 순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연기가 몰려들어왔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눈을 찌르고 악취를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문 틈을 통해 집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대피할 공간이 없으니 도무지 속수무책이다.아이들은 울부짖으면서 매달리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손바닥만한 창문을 열어놓는 것뿐이다. 그제서야 그는 테라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럴 때 테라스가 있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버리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파트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화재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하게 되어 있는지 우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일본의 아파트들은 저층이건 고층이건 반드시 테라스가 설치되어있고, 테라스를 새시로 가려놓지도 않는다. 거기다 테라스는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세대간 테라스에는 형식적으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언제라도 발로 차면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그러니까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또는 다른 집에서 난 불 때문에 연기가 몰려올 경우 그 집 가족들은 일단 자기 집 테라스로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으면 칸막이를 걷어치우고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막판에는 건물의 뒤쪽 테라스까지 피신할 수가 있다. 피할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이 온 가족이 집 안에 갇혀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우리네 아파트하고는 얼마나 다른가.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아파트 업자와 설계자는 요즘 아파트에는 2, 3층마다 대피공간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문 밖에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있을 경우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대피소까지 찾아간단 말인가. 과거에는 우리 아파트에도 테라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적인 강제 규정이 엄연히 있었다.그래서 모든 아파트에는 테라스가 있었는데, 입주자들이 거실을 넓게 쓸 욕심으로 하나둘씩 불법적으로 테라스를 없애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그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론에 눌려 법규정마저 흐지부지되더니 급기야 테라스를 없애는 것이 합법화되고 말았다.법으로 한 번 안 된다고 규정해 놓으면 당국은 그것을 끝까지 집행해야 하고 시민들도 그것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좀더 넓게 살려고 하다가 참극을 맞으면 누구한테 그 탓을 돌리겠는가. 앞으로 짓는 아파트들은 이제부터라도 의무적으로 테라스를 설치해야 하고, 당국도 테라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되살려 테라스를 없애는 어리석음을 막아야 한다. 그런 조치들을 통해 우리 아파트의 안전 수준을 일본 아파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테라스를 설치함으로써 돌아오는 이득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층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통풍을 해결할 수가 있고, 태풍에 대비해서 외국처럼 덧문이나 자동 셔터를 설치할 수도 있고, 급하면 합판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도 있다. 태풍의 길목에 살면서도 태풍에 대비한 설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부산의 고층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마치 준비나 대비를 할줄 모르는 우리의 국민성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2013-02-08 김성종

100세 건강시대와 청춘노년문학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80을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생을 60으로 생각하고 70이 드물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했다.이제 누구나 60 이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20년 이상 연장된 생에 대해 나름대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늦게 다시 시작하는 젊은 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젊은 노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른 것은 5060세대라고 한다. 이제 사회의 중심 동력을 2030세대와 더불어 보다 성숙한 연령의 세대가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물론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세대는 젊고 유능한 신세대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노년세대에 대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생산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산업 현장에 노년 인구가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속도 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노년인구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분야 중의 하나가 문학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당 수준의 전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펜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초보적인 글쓰기이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초보적인 글쓰기가 아니다.본격적인 글쓰기의 중심에 있어서도 세대 이동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2010 경인일보 신춘문예에서는 74세의 여성이 시부문의 당선자가 되었고 2012년에는 71세 할아버지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했으며 70에 한글을 배우고 73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의 시집 '치자꽃 향기'가 2012년 우수문학도서가 되었다. 이런 소식은 국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일본에서는 2013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다카와 문학상에 75세의 문학소녀가 선정되었으며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등단하여 일본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시바다 할머니가 1월 20일 새벽 101세로 행복한 노년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한국의 여러 문학잡지에서도 신인상 최종 후보에 노인 지망생들이 몰리고 있어 심사자들이 나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진 괴테의 '파우스트'는 60여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며 80에 이른 만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또한 중년에 시작하여 노년에 이르는 25년 동안 집필된 작품이다. 원숙한 경험이 원숙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오늘날 한국의 노년세대가 지닌 문학적 열정은 그 이전 다른 어떤 세대도 누리지 못한 독자적 존재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일만 하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세대가 아니라 일하고 남은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에 더 본질적인 존재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세대이다.물론 누구도 돌보지 않아 고독하게 죽는 노인들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 부부도 있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이지만 사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써달라고 자신의 전세금을 기탁한 노인도 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중대한 문제이다.한 단체가 제정한 '신노년문학상'에 응모작이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100세 건강시대를 맞아 문학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분들을 청춘노년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문학을 청춘노년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인생의 사이클이 달라진 상황에서 청소년문학만이 아니라 청춘노년문학에도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은 부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청춘은 나이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청춘노년문학 지망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13-02-01 최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