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뇌물죄는 반드시 들킨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다'라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그냥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헌법에 의해 권력은 십년에 이르지 못하고, 5년에 그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권불5년이다'라고 본다면 권력의 무상함은 옛날의 일과 다르다. 상왕의 권력이라던 '영일대군', 최고 권력자의 멘토라던 '방통대군', 차관급이면서도 왕의 지위에 가까운 권력을 지녔기에 '왕차관'이라던 권력자들이 연달아 구속되어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간의 이야기가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부패했기 때문에 천년의 제국 로마도 힘없이 망해버렸고, 500년의 조선왕조도 부패했기 때문에 망하고 말았다. 부패하면 나라도 망한다던 말도 역시 맞는 말임에 틀림없다. 권불5년인데, 천년 만년 가리라고 위세당당하게 권력을 쥐락펴락하던 그들의 신세가 너무나 허망하게만 보인다. 국가를 대표하여 자원외교를 펼치면서 세계를 누비던 권력, 4대 종편을 허가해 주면서 언론매체를 장악했던 권력, 모든 인사는 왕차관을 거쳐야만 이루어진다던 그런 권력, 그들은 모두 '뇌물'이라는 사슬에 걸려 막강한 권력의 힘을 잃고 옥창의 별빛을 바라보고만 있게 되었다.한국의 역사는 '뇌물'과 무관한 때가 많지 않았다. 청와대 안방에서 뇌물을 챙겼다고 임기가 끝나자 두 전직 대통령(전씨·노씨)이 뇌물죄로 처벌받은 것을 비롯하여, 대통령 주변의 실세들이 처벌되었던 것이 한두번이 아닌데, 왜 그런 범죄는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은 천륜의 관계다. 대통령의 아들도 뇌물죄만 확인되면 천륜도 어쩌지 못하고 구속시킬 수밖에 없는데, 여타의 친인척이나 실세들이라고 빠져나갈 어떤 길이 있겠는가.'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말도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공직자들의 청렴만이 나라를 바르고 깨끗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그렇게도 역설했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의 '목민심서'에서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어느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오마는 한 밤중에 주고받은 행위라도 아침만 되면 벌써 소문이 쫙 퍼지게 되어 있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라고 말하여 뇌물의 수수는 반드시 들킬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거듭거듭 주장하였다. 권력은 유한하고 뇌물은 반드시 들키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 범죄행위는 근절되지 않는 것인가. 이쯤 해서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단계가 아닐는지.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라고 떠들지만, OECD 가입 34개 국가 중에서 삶의 질이 낮기로는 32번째라니 할 말을 잊을 지경이다. 뇌물의 공화국이요, 부패의 공화국에 다른 어떤 명예가 있을 수 있겠는가. 뇌물죄를 규정한 형법을 손질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수억원, 수십억원을 받고도 뻔뻔스런 범죄자들은 끝까지 우기는 것이 '대가성'이 없음을 증명하느라 발버둥을 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재판에서 대가성이 없다는 입증으로 무죄를 선고받아 죄가 없음을 공인받는 경우가 잦다.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성 없이 그냥 수억, 수십억원을 퍼줄 수 있다는 것인가. 몇백만원이나 몇천만원인들, 그냥 남에게 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어떤 이유로도 권력자나 고위 공직자는 돈을 받을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일단 돈을 받으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성을 논하고 따지는 일 자체가 세상을 희롱하고 만인을 웃기게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가난한 거지에게 몇천원, 몇만원 주는 일도 아깝고 아쉬운데, 부모형제간도 아닌 남에게 거액의 돈을 그냥 퍼줄 수 있겠는가. 이런 법의 맹점 때문에 행여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믿고, 뇌물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도 최고책임자는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 권력은 유한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는데, 입만 다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가.

2012-07-13 박석무

인생에 단 한 번 있는 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딱 한 번만 일어날 법한 사건이 있다. 그렇다고 태어나고 죽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인생에서 벌어지는 아주 특별한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보통 전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얼마나 그 경험이 다르고 또 좋았는지 깨닫게 되곤 한다.2002년 한일월드컵은 나에게 있어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매 순간 한국의 곳곳이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분위기로 넘쳐났다. 한국에서 또다시 그런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 두근거림의 경험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아무튼 2002년의 여름은 지금으로부터 이미 10년 전 일이 됐고, 그 이후 지금껏 있어왔던 국제 행사들에서 그런 경이로운 순간을 볼 순 없었다. 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가 한국 전역을 하나로 엮을만한 행사로, 모두에게 정열을 발산할 기회를 주는 동시에 한국이 세계적인 국제 스포츠행사 주최국으로 당당히 등극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엉성한 마케팅뿐만 아니라 한국의 F1국제자동차경주대회 주최 진영의 내부 갈등 등으로 기대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호응도는 놀라울 것도 없었다.그러고 보니 이 시점에서 여수세계박람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중앙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오랫동안 꾸준한 홍보를 해오며 전 세계의 집약적인 첨단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된 행사가 하나 있다. 여수 엑스포 뒤에 선 정부와 기업의 지원으로 이 행사가 잘못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된 뒤 7주가 지나오면서 매번 접하는 언론 매체들의 주된 반응은 문제만 많은 엑스포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는 행사라는 것이다.행사 조직위원회가 보여준 많은 실수들은 당연히 수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에는 언제나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나의 엑스포는 그야말로 인생에 단 한번 볼 수 있는 전 세계적인 행사로,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훌륭한 행사다. 만약 지금 한국에 있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꼭 이 행사를 보길 바란다. 올바른 태도로 관람을 즐긴다면 엑스포를 경험한 그날을 꽤 오랜 시간 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여수에서 가까운 광주에 산다는 이유이거나 엑스포의 독일관에 관여해서가 아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엑스포야말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있기까지 시간과 돈을 들여 볼만한 멋진 국제 행사라고 믿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그저 가기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올바르게 엑스포를 이해하고 관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엑스포란 만국박람회로, 그야말로 세계를 전시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다른 나라를 배우며 잘 모르는 문화를 경험하고 심지어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음식까지 맛볼 수 있는 모든 기회의 장인 셈이다. 엑스포 기간에만 볼 수 있는 그 많은 국가관들을 제쳐두고 엑스포가 끝난 뒤 줄을 서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아쿠아리움 앞에서 어떻게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몇 시간이고 서서 입장을 기다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현대 한국 사회는 너도나도 편리만을 찾으며 순간의 만족을 좇아가는 욕구가 강하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스스로 보고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다운로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10대 소년이었을 때 나는 맹랑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의 라이브 콘서트를 보기 위해 혼자서 독일 함부르크에서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했다. 며칠 간의 여행에서 콘서트장 앞 자리에 앉기 위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더운 태양 아래 긴긴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고, 호텔에서 잘 돈이 없어 길가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고생인가 묻는다면 서슴없이 그렇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절대 놓칠 수 없는 내 인생의 단 한 번의 이벤트였다.

2012-07-06 안톤숄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오해와 진실

지난 6월 26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금년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일부 교사단체와 학부모단체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를 전후하여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일제고사'로 매도하고 평가 참여여부는 선택권이라고 주장하며 평가를 거부하고 일부 단체에서 마련한 체험학습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 수는 전수평가가 시작된 2008년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반대하는 단체들의 목소리도 약해지고 있지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논란이 시험거부라는 물리적 행동보다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갖는 부작용의 해소를 위한 노력과 토론으로 이어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다.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평가대상 해당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을 학업성취도 변화추이를 파악한다거나 교육과정 개선자료로 활용한다거나 교수·학습방법 및 장학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삼는 것에 한정한다면 표집평가를 실시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이전에 실시했던 표집평가와는 달리 그 목적이 확대되었다. 개별 학부모들이 알고자 하는 그들 자녀의 학업성취 수준을 전국적 수준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여 제공하고, 개별 학교가 교육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드러냄으로써 단위학교로 하여금 책무이행에 보다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는 것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에 추가하고 있다. 특히, 국가가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책임지고 완성하게 하는 국가의 교육적 책무 이행 정도의 파악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중요한 목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표집평가를 전수평가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전수평가가 학교간 서열화를 촉진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전수평가가 학교간·학생간에 서열을 매기는 것을 본래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학생들에게 교과별로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절대적 수준의 4단계로 통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단위학교로 하여금 절대적 성취수준에 도달하도록 경쟁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상대적 서열을 놓고 경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그들의 성취 수준을 알려주고 단위학교로 하여금 책무이행을 독려하려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일부 학교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대비하여 학생들에게 문제해결력과 같은 기본 역량을 길러주기보다는 시험 준비를 위한 정답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기초학력 미달학생에게 실시하는 보정교육의 왜곡 가능성을 경고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학교행정가와 교사들은 보정교육이 시험문제 정답 중심의 단순 암기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교과 성격을 고려하면서 이해와 탐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평가는 남에게 나를 드러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부담스러움이 사라질 수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분명,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자신에 대하여 알게 하고, 교사와 학교에는 수업을 개선하도록 하며, 국가에는 학생들의 학력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더 이상 부담스러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12-06-29 김성열

통합 내세우기 보다 다원·법치주의 실천해야

독일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를 번역한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사회에 공유되고 있는 정신으로 이해된다. 요즘 언론매체를 통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현 시국을 전망하거나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할 때 사용하는 듯하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시대정신의 내용은 사회통합이다.정치적 분열의 역사는 오래된다. 의회민주주의의 태동기에도 당쟁은 있었다. 최초의 근대정당으로 불리는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 간의 싸움은 걸리버여행기에서도 풍자될 정도로 심각하였다. 비슷한 시기 대륙의 끝 조선에서도 붕당정치는 있었다. 서인과 동인 간의 대립, 그리고 동인에서 갈린 남인과 북인 간의 대립, 그리고 서인에서 갈린 노론과 소론 간의 대립이 비판되었다. 이는 조선인에게 자율적 조정 능력이 없어 식민지배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일제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오늘날 다른 민주국가들에 비해 정당간 차이가 적다는 미국에서조차 민주당과 공화당간 가치 차이는 계속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털어 당파적 정쟁이 전혀 없는 정당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내부의 갈등은 외부와의 경쟁에서 패배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되는 적전분열(敵前分裂)과 반대되는 현상은 오월동주(吳越同舟)이다. 서로 원수관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협력하여 풍랑을 극복한다는 오월동주는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적개심이 풍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약해야 가능하다.한국의 경우 국내 분열의 정도가 외국과의 갈등보다 더 클 때가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북한, 미국, 중국 등 남한 외부의 문제로 남남갈등이 전개되는 것은 내부 경쟁세력에 대한 불신이 외부 세력에 대한 불신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내부 분열이 심각한 이유는 그 분열이 패거리적이기 때문이다. 패거리적 분열에서는 무엇을 지지하고 비판하느냐는 측면보다 누구를 옹호하고 비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언론매체의 청탁으로 원고를 기고하게 되면 글의 내용보다 기고 매체로 판단될 때가 많았다. 주장의 논리성보다 가담한 패거리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물론 색깔이 뚜렷한 언론들은 원고를 청탁하고도 작성된 글 내용이 자신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다고 게재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언론과 SNS는 상대와의 소통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성격이 강하다.사회가 분열되었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FTA와 같은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내 협상파의 대척점에 있는 국내 강경파의 존재 때문에 외국이 더 양보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내부 분열이 외부와의 협상에 유리할 때도 있다.민주주의, 특히 정당민주주의는 분열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의회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은 낮아진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 불신과 분열은 민주주의의 필요악이다. 따라서 분열 자체를 없애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과도한 불신과 분열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도 한다. 따라서 합리적 분열이 되어야 한다.세상의 이치를 음과 양으로 설명하는 음양설에서 음과 양은 대립된다는 의미보다 상호보완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음양설은 순음 또는 순양으로 구성된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분열은 합리적인 합의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극단적 입장보다 중도적 입장이 두터워야 한다.중도 비중의 증대는 정치 엘리트 차원에서 모색될 수 있다. 이편저편 왔다갔다하는 행태는 중도가 아니다. 그러한 행태는 한쪽으로 힘을 몰아주어 단기적으로 정치적 통합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론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여 오히려 사회통합에 부정적이다.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더라도 남의 소신도 인정하면 통합이 될 수 있다. 또 합의된 게임규칙을 지키는 것도 통합에 필수적이다. 통합을 정치 슬로건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다원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실천해야 한다.

2012-06-22 김재한

생각하지 않는 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 손녀 등과 함께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지난 9일 SNS 트위터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6월 8일 육군사관학교 발전기금 200억원을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서 전 전 대통령은 생도들이 열병 도중 '우로 봐!'라는 구호에 맞춰 경례할 때 거수경례로 답했다. 육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 전 대통령은 1천만~5천만원 출연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초청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누군가? 쿠데타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책임을 물어 '내란 수괴죄', '내란목적 살인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던 사람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장교를 교육시키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젊은 생도들이 충성을 외치며 바라본 사람이 바로 쿠데타와 민간인 학살의 주역이었다. 말이 되는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 나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저 자리에 서서 후배들의 자랑스런 선배가 되자. 쿠데타면 어떤가. 일단 성공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는가.검찰은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로 사용될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터 불법 매입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고발한 이 대통령 등 피고발인 7명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 시사주간지의 폭로로 촉발된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이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 240여일간의 숱한 논란만을 남긴 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마무리됐다. 검찰은 다만 청와대가 땅을 구입한 뒤 부담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며 대통령 장남인 이시형씨가 이득을 보도록 행정을 처리한 청와대 직원에게 잘못을 묻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이씨와 대통령실의 지분 비율과 매매대금간 불균형에 대한 내용을 감사원에 통보해 관련 공무원들의 과실이나 비위행위에 대한 감사에 참고토록 조치했다.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라더니. 2012년 6월 대한민국 육군의 정신을 대표하는 육군사관학교는 쿠데타의 주역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 대통령에게 최대한 예의를 표했으며,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했던 대한민국의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충견이 됐다.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충성 경쟁이 가관이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예루살렘 재판 과정을 지켜 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온순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데 놀랐다. "그는 사악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반성적 사유의 결여' 때문에 '냉철한 톱니바퀴 기술자'가 되어 유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했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법정의 검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것이 아이히만의 죄"라며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2012년 6월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수장인 국회의장에 강창희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강 의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멘토단으로 알려진 '7인회' 멤버중 한사람으로 하나회 출신이다. 5선 의원인 강창희 의장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열정의 시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치생활의 멘토"라고 말했다. 연희동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29만원 할아버지'라는 글을 썼다. "29만원 할아버지!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세요. 물론 그런다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아요…제 말이 틀렸나요? 대답해 보세요! 29만원 할아버지!…"

2012-06-15 송기도

책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초등학교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자유교양경시대회'라는 게 열렸다. 문교부에서 필독도서를 선정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읽게 한 뒤, 그 책 속의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러서 우수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였다. 독서 분위기의 진작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그 연례행사는 돌이켜 볼 때마다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학교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어찌나 심했는지, 담임선생에 의해 선발된 학생들은 운동회 매스게임에도 빠지는 특혜 아닌 특혜를 받으며 밤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책장에 밑줄을 그으며 여러 권의 책을 통째로 달달달 외워야 했다.내 경우에는 '김유신전', '이순신전' 같은 위인전과 '신유복전', '박씨부인전', '흥부전', '춘향전' 같은 고대소설, 그리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읽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 뜬금없이 단테의 '신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 유명한 기독교 고전을 일찌감치 접하긴 했지만, 거기에 대응되는 불교관련 서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책 선정 과정에서 외압에 의해 종교적 편향이 가해진 게 아닐까 싶다.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험방식에 있었는데,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단답형 문항들을 가지고 일종의 모의고사를 보아야 했던 것이다. 이를 테면 흥부의 몇 번째 박에서는 어떤 물건들이 나왔는지, '신곡'의 '지옥편'에서 지옥의 몇 번째 계곡에서는 어떤 인물이 어떤 벌을 받고 있는지 '맞혀야' 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늦게까지 책상 앞에 붙들려 앉은 채 그 방대한 내용을 원시적으로 암기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는데, 정작 본인들로서도 왜 그런 것들을 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의 독서 기억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기야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암기시키던 시절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기들이 고른 책을 읽게 하고서 반드시 독후감을 쓰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 속의 내용에 대해 질문하여 정말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입에 담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읽게 하는 폐단이 있거니와, 진부하고 틀에 박힌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조장할 따름이다.그런 뜻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독서를 권장한다. 읽을 책을 스스로 선택하여 발췌독이든 낭독이든 정독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눈길을 끄는 책을 뽑아들고 내키는 대로 뒤적이며 책을 '맛'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어버리면 된다. 그러다가 책 속의 내용에 이끌리면 집중해서 읽으면 된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서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책과 독자는 궁합이 맞는 것이다. 나는 책과 사람 사이에 분명 궁합이라는 게 있다고 믿고 있다.책을 반드시 진지하게 정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가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정보를 얻는 방식 중에 책은 가장 비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와 시간을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필요로 한다. 빠르고 복잡한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그러나 독서의 비효율성이야말로 귀중한 것이다. 거의 무한정으로 널려 있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비로소 완전히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보들의 제공을 책이 담당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궁합이 잘 맞는 짝을 찾는 것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신중하게 행해야 좋은 결실을 맺는 게 아니겠는가.

2012-06-08 최수철

소규모 학교 통폐합 논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5월 17일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하여 학교의 적정 규모에 관한 기준을 신설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는 입법예고를 하였다. 입법예고에 의하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정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의 적정규모 최소 학급수는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년별 1학급을 원칙으로 6학급, 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교원의 평균수업시수 및 교육과정의 단위별 수업시간을 고려하여 중학교 6학급, 고등학교 9학급이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최소 20명 이상 되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강원·전남·전북지역 등 농산어촌이 주를 이루는 도의 경우에 해당지역 학교의 절반 내외가 통폐합 대상이 된다고 한 언론보도는 전하고 있다.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은 농어촌 인구의 감소에 따라 농어촌 지역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1980년대 초반부터 추진되어 왔다.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소규모 학교가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학생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효과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규모 학교를 유지하자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의 경제나 규모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규모 학교의 유지는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체육활동, 합창이나 합주와 같은 음악활동, 학예회와 같은 교육활동은 어느 정도 수의 학생들이 있어야 가능하고, 도덕성이나 사회성의 발달도 친구들끼리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는 점을 찬성의 논거로 내세운다. 교육 여건도 규모의 경제가 유지되기 때문에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통폐합 이전보다 좋아질 뿐만 아니라, 교원들도 일정수 이상 유지되어 누가 가고 누가 오느냐, 즉 교원인사에 의하여 학교의 교육활동이 급격하게 좌지우지되는 일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소규모학교 통폐합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일정 수의 학생과 학급을 기준으로 그것에 미달하는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이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바람직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산어촌에서 학교는 단지 아이들을 교육하는 장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학교는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매개로 서로 간에 관심사를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학교는 지역주민 체육대회, 각종 행사 등이 열리는 지역사회 활동의 중심지이다. 학교가 폐지되어 예컨대, 읍·면단위에 학교가 없게 되면 지역주민들에게 크나큰 상실감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딜레마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중앙정부보다는 시·도교육청이 지금과 같이 지역적 여건을 반영한 자율성을 가지고 그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법령을 개정하여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동력을 강화하려는 것은 이제까지 중앙정부가 교육청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추진을 해당 교육청에 맡겨 놓은 결과, 그 성과가 미흡하였다고 판단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교육청에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정책 추진의 자율성을 부여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에는 독립적으로든지, 통합운영을 하든지 간에 '1면 1교',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1군 1교와 같은 원칙을 유지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규모 학교 통폐합정책 추진에서 학교급별로 지역의 특성을 크게 고려함으로써 이 정책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순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성공하려면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집단으로 하여금 그 정책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그 정책의 효과에 관하여 믿음을 가지게 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규모의 경제나 규모의 교육의 관점에서 법령으로 획일적 기준을 정하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교육청으로 하여금 학교급별·지역적 특성을 크게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추진하게 하는 게 적절하다. 그게 농산어촌과 그 지역의 교육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2012-06-01 김성열

대북정책 일관성 상호주의서 찾아야

오는 5월 29일 제19대 국회가 출범한다. 임기 개시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300명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분위기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거취가 아직도 논란중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절차의 공정성에 대해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일부 언론들은 일부 비례대표 당선자의 북한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중 보도하고 있다.북한 이슈는 한국 사회를 나누는 주요한 이념적 기준이다. 북한은 직간접적으로 남한 정치의 큰 축이 되어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소위 남남갈등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 심화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강한 바람은 실패하고 따뜻한 햇볕이 성공했다는 이솝우화를 근거로 김대중 정부는 따뜻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따뜻한 대북정책은 다른 이솝우화로 비판되기도 한다. 숲은 도끼자루가 필요한 나무꾼에게 나무 한 그루를 선의로 주었지만, 나무꾼은 그 도끼로 숲의 많은 나무를 베었다는 이야기이다. 즉 대북지원은 남침 능력만 강화시켰다는 주장이다.적대적인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지속적인 관용이 있어야 한다. 3년의 전면전과 60년의 냉전을 겪고 있는 남북한이 상대의 마음을 단기간에 얻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마음보다 행동이 협력적이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상호협력을 실현시키는 방법은 상호주의가 거의 유일하다. 적대적인 상대에게 무조건 강경하거나 무조건 유화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호협력에 도움 되지 않는다. 대신에 상대의 행동과 유사하게 대응하는 것이 상호협력을 실현시킨다. 만일 상대가 나의 행동대로 행동한다면, 나의 협력은 곧 상호협력이고, 나의 적대는 곧 상호적대이다. 상호적대보다 상호협력이 더 나은 상황에서는 내가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대북정책 기조가 승공(勝共)이었던 20여년 전, 필자가 남북한 공영(共榮)을 위한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제안했을 때 비판이 있었다. 북한에게 호의적 행동을 먼저 행한 후 그 다음부터는 북한의 행동과 동일한 선택을 하는 상호주의는 대북 유화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 그러던 대북 상호주의는 대북정책 기조가 포용(包容)이었던 10여년 전에는 북한의 상황을 외면한 대북 강경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필자는 7년 전 한 외국 학술지에서 상호주의가 반드시 등가(等價)적, 즉 쌍방의 협력 크기가 같을 필요는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상대 행동 그대로 즉시 반응하지 않더라도 상대 행동에 따라 규칙적으로 반응한다면, 상호협력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의적·적대적 행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그대로 행동하는 것뿐 아니라, 일정 시차를 두고 일정 비율만큼 상대 행동에 따라 대응하기만 해도, 상호협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상대 행위에 따른 조건부 협력이 상호협력 실현에 중요한 것이다.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은 정권에 따라 정부 정책이 뒤바뀌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대북정책 기관들도 정권에 따라 정책이 심하게 바뀌는 부처이다. 대북정책 부처가 사법부처럼 독립되어 초(超)정권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대북정책은 국내정치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무릇 정책이란 일관성을 지녀야 정책 효과를 갖게 된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상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에 호의적이냐 적대적이냐는 것은 엄밀한 정책적 기준이 아니고 정책 일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단순한 강경·온건의 대북정책 스펙트럼으로는 남북한 관계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에 의해 왜곡될 수밖에 없다. 대북 강경이냐 대북 유화이냐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북한 협력을 남한 협력의 조건으로 보느냐로 논쟁되어야 한다. 북한의 행동에 따른 대북정책이 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2012-05-25 김재한

'양치기 정부'와 신뢰사회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나 조금 신경을 쓰지 평상시에는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TV나 라디오를 꺼버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정치인을 싸움이나 하고 모두 '썩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정치 자체를 외면해 버린 탓이다. 2008년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이 '미디어 오늘'에 의뢰해 발표한 직업별 신뢰도 여론조사를 보면 33개 직업군 가운데 소방관과 간호사가 1, 2위를 차지했고, 정치인은 꼴찌(33위)를 했다.왜 국민들은 정치인을 믿지 않을까? 무엇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한 것일까? 만일 한 국가에서 그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면 그 국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신뢰는 한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관습, 도덕,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서 매우 중요하며,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협력이 어렵거나 협력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사회 또는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게 된다는 것이다. 2012년 5월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가? 우리 국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부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가? 광우병 파동 당시인 2008년 5월 정부는 주요 일간지에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라고 광고를 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광고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1.즉각 수입 중단 2.이미 수입된 쇠고기 전수조사 3.검역단 파견 현지실사 4.학교 및 군대급식 중지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자 정부는 미국에 검역단을 파견했을 뿐이다. 청와대는 "현재 미국에서 광우병 걸린 쇠고기가 우리에게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라고 발표했으며,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미국에서 온 자료를 분석했을 때 검역중단을 할 단계가 아니다.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2천5백년 전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풍족한 식량(糧), 충분한 병력(兵), 백성의 신뢰(信)가 있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한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말하길 "병력을 버려야 한다" 고 답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라고 했다.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자공과의 문답에서 공자는 '정치의 3요소'로 '식량, 병력, 신뢰'를 꼽으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임을 역설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놀랄만한 경제발전 덕에 우리나라는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최고의 경제적 생활을 누리고 있다. 또 군사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백성의 신뢰'는 어떤가?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그리고 '천안함 사태'는 우리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또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광우병관련 뉴스가 최근 TV나 언론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국가 운영에 정말 중요한 일이다. '양치기 정부'를 누가 믿겠는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국민의 믿음이다. 국회의원 수가 많든 당원수가 많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2012-05-17 송기도

사바나 원칙

대체적으로 남자는 왜 여자의 유방이 더 큰 쪽을 선호하는가. 얼마 전에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다.애초에 인간 여성의 유방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보다 더 발달한 것은, 인류의 조상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수컷을 유혹하던 암컷 엉덩이의 역할을 유방이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그러나 남자가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가슴이 작은 여자도 자기 아이가 먹을 모유는 가슴이 큰 여자들만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1990년 말에 한 과학자가, 풍만한 무거운 가슴이 작은 가슴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훨씬 눈에 띄게 처진다는 사실을 관찰해냈다. 작은 가슴은 나이가 들어도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작은 가슴보다는 풍만한 가슴을 가졌을 때 그 여자가 젊은지 늙었는지를 판별하기가 훨씬 쉽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여자가 젊을수록 남자의 씨를 퍼뜨릴 수 있는 번식 능력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남자는 자연스레 가슴이 풍만한 여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최근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의 '사바나 원칙'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는데 1 만 년 전에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시기부터 진화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을 진화가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두뇌는 석기시대의 두뇌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여전히 석기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탓에, 우리는 사실상 과학적 발명품들은 물론이고 경찰이나 법정이라는 것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과 번식에 성공하여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심리적 기제를 여전히 지닌 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리하여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몰려드는 이유, 남자들이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 금발, 가는 허리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의 얼굴에서 좌우동형의 이목구비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들이 포르노그래피에 열중하는 데 반해 여자들은 포르노그래피를 피하는 이유, 심지어 남성 성기에서 귀두가 지금처럼 특별한 모양을 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명쾌하게 '진화론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흥미로운 것들 중에 하나는 중년 남자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중년의 위기는 남자들이 중년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아내가 중년이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다시 말해, 아내가 폐경기에 접어들 때 남편들은 더 젊고 번식 능력이 있는 여자를 찾으려는 새로운 욕구에 빠지게 되면서 안팎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자의 두뇌는 실리콘이 들어찬 가슴이나 염색한 금발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1만 년 전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 즉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인간 갈등의 새로운 측면들을 찾아내려는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짝짓기에 연결 지어 파악함으로써 인간을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나로서는 그동안 당연하거나 자명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과감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깊이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을 밝혀보는 일은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근래 들어 이 분야의 책들이 거의 며칠 간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우리는 진화심리학의 성실하고 부단한 '진화'에 대해 믿음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한다.

2012-05-11 최수철

세계화시대 핵심 덕목으로서의 글로벌 소양

우리 사회의 안팎에서 현재 진행되는 다양한 변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경남 창원에서 지난 4월 열린 교육도시 세계연합총회는 40여개 국에서 시장 등을 포함하여 3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참석하였는데 지방의 세계화를 체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사였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스파게티와 와플을 즐겨먹고, 잉글랜드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나 이청용 선수에게 열광하며,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외국의 젊은이들도 우리 음식인 비빔밥에 반하고, K-팝 등 한류에 열광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만이 지적하였듯이, 경제적 차원에서 지구는 이미 평평해졌으며, 자본의 흐름 앞에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는 곧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활동하게 될 게임의 무대 역시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경을 모르는 또 다른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빈곤,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 차원의 위기 요소들이다. 빈곤이나 불평등은 자국 내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으며, 환경 위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이렇게 인적 교류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 환경 등에서 바야흐로 우리 시대의 거대한 흐름인 세계화는 가장 중요한 변화인 동시에 기회와 위기를 함께 만들어내는 야누스적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복잡하게 진행되는 세계화를 이해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소양(global literacy)일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와 더불어 글로벌 위기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며 인류의 지속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첫째, 우리 젊은이들이 무엇보다도 외국어 의사소통능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개방과 교류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외국어에 의한 의사소통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어의 위상을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던 EU의 출범이 역설적이게도 세계적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영어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유창한 영어소통능력을 가진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국가는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하여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교육도시 세계연합총회에 참석한 국가들이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었는데, 이렇게 아직 영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는 지역(예컨대 남미 등)을 무대로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해당 국가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를 습득하는 일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자국 문화에 대한 주체성 형성과 더불어, 문화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다문화적 소양이 요구된다.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문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다. 글로벌 지구촌은 이미 하나의 역동적인 다문화 사회이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과 자라나는 세대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다문화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한국인에게는, 열린 마음을 가진 세계시민으로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도외시하지 않는 박애적 소양, 즉 나눔과 배려의 미덕이 요구된다. 그것은 성숙한 국민과 국가가 스스로의 관심 영역을 세계의 문제, 인류의 문제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세계화 시대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야누스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기회, 즉 국가 경쟁력은 글로벌 소양을 갖춘 인적 자원에 의해 가능하다면, 세계화 시대의 위기의 해결은 남보다 앞서가서 선점하겠다는 경쟁적인 마음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을 선뜻 나누는 태도에서 가능하리라. 우리 젊은이들을 글로벌 소양을 가진 젊은이로 기르는 교육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2012-05-04 김성열

선거분석 유감

지난 4월 23일부터 제18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들은 지난 4·11선거의 결과를 갖고 연말 대선에 대해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첫째, 4·11선거의 결과를 '황금분할'로 표현하고 있는데, 오는 대통령선거는 어떤 결과가 되어야 황금분할인가? 대다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선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와 같은 유권자의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4천만 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서로 조율해서 의도대로 황금분할을 만들어내기는 불가능하다. 선거결과는 유권자 모두의 뜻을 합산한 결과일 뿐이다.둘째, 특정 정당이 승리하고 다른 특정 정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들이 선거 후 많아졌는데, 오는 대통령선거 결과도 그렇게 잘 알 수 있는가? 미리 예측하는 것은 지나간 일을 끼워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패배할 줄 그렇게 잘 알았더라면 왜 선거 전 미리 분명히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패배한 정당의 지도부는 반문할 것이다.선거 전 명확히 언급되지 않던 요인들이 선거 후에는 승리 요인 아니면 패인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잘못된 원인 분석이 많다. 사후 합리화뿐 아니라 틀린 선거 전망도 있었다. 특정 지역을 야도(野道)로 단정한 주장이나 엄청난 비용으로 실시된 설문조사가 그러한 예이다. 모두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셋째, 선거 후 유권자 표심을 '홍동황서(紅東黃西)'의 컬러지도로 나타내고 있는데, 대통령선거에서도 동쪽은 붉은 색이고 서쪽은 노란 색일까?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그러한 지도가 유용하다. 왜냐하면 특정 지역에서 이긴 후보가 그 지역의 선거인단을 다 갖기 때문이다.이와 달리 우리 대통령선거에서는 두 후보가 각각 60%와 40%의 득표율을 얻는다면 그 비율대로 표도 나눠 가진다. 4·11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강원과 울산에서 100% 의석을 가져갔지만 정당득표율은 절반에 불과했다. 반면에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의석을 3분의1만 차지했지만 정당득표율은 절반에 가까웠다. 따라서 4·11선거로 대통령선거를 전망할 때의 지도는 강원, 울산, 서울 모두 붉은색이 반 정도만 들어가서 동쪽과 서쪽 간의 색깔 차이가 크지 않다.언론에서 계속 홍동황서의 지도로 보도하면, 자칫 지역유권자들에게 그 색깔대로 투표하게 유도할 수 있다. 그 지도를 보는 유권자들은 더 이상 지역색으로 투표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대신에 남들이 지역색으로 투표하니 자신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쉽다.4월 선거의 결과가 12월의 선거까지 그대로 가지는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8개월이면 지지도 등락이 수차례 반복될 수 있는 긴 기간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정당들은 '정주(定住)'형이며, 주요 정당 후보가 아닌 무당파 후보가 당선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이에 비해 한국 정당의 흥망성쇠 주기는 매우 짧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정당은 들뢰즈가 말한 탈근대적 '유목(遊牧)' 개념에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정주형과 반대되는 유목형이다. '떴다방'이나 '천막 정당'식으로 창당되고 운영되며 해체된다. 천막 당사가 지지도 증가에 도움 되는 정치문화이다. 안철수 바람에서 보듯이 기성 정당과 관계없는 후보가 당선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기성 정당은 바람 부는 초원의 천막에 불과해서 누구나 천막을 치고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메시아와 뜨내기사기꾼 모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들은 좌우 스펙트럼 대신에 선악 스펙트럼을 갖고 나타난다. 기성 정치인은 자기 물을 퍼내거나 자기 불을 피우기 위해, 그 바람을 마중물이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하기도 한다. 펌프가 새거나 펌프질이 약하면 마중물이 있다고 해도 큰 물을 퍼낼 수 없고, 태울 연료가 많지 않으면 쏘시개가 있다고 해서 큰 불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오는 대선에서 반칙이 난무하지 않는 높은 수준의 경쟁이 되려면 언론의 수준 높은 관전평도 필요하다.

2012-04-27 김재한

'불편한 진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그리고 무소속이 3석을 차지했다.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친박연대가 얻었던 의석이 모두 167석이었으니 15석이나 줄었지만 선거 몇 달 전 120석도 어렵다는 말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완승이나 다름없다. 반면 18대 때 81석이었던 민주통합당은 46석을 늘려 127석을 차지했지만 당초 제1당은 물론 과반수 의석까지 노렸던 것을 생각하면 참패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새누리당은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선거를 이긴 것이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결코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왜 그랬을까? '反한나라 非민주당'은 최근 선거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유권자들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말이다. 이명박 정권 4년의 실정과 부정부패의 대명사인 한나라당에 대해 반대하지만 내부 분열과 정치적 추진력이 고갈돼 대안세력이 되지 못하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안철수 교수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시민단체대표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유권자의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은 총선을 앞두고 변화를 모색했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고, 당의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과거 새누리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 신한국당이 선거 때면 어김없이 써먹었던 '색깔론'을 생각하면 이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내용이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제도나 기구도 그대로이고 당헌 당규도 큰 변화가 없다. 사람들도 개혁적인 새로운 인물들로 바뀌었다기보다 친이 중심에서 친박 중심으로 이동한 것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새누리당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 뿐이다. 사람과 제도가 거의 그대로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반면 민주당은 시민사회세력, 한국노총을 받아들여 민주통합당으로 변신했다. 또 선거직전에 진보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민간인 사찰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논란이 있었음에도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4·11 총선은 '反한나라 非민주당'의 구도에서 빠져나간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선택이었다.선거과정에서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발빠르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역사인식 논란, 여성 비하 논란, 금품살포 논란, 쌀 직불금 부당수령 논란 등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곧바로 이들의 공천을 철회시켰다. 임종석 후보의 사퇴, 막말논란의 김용민 후보와 관련되어 민주통합당이 우왕좌왕했던 모습과 비교되었다. 전체적으로 새누리당이 좋은 후보를 찾기위해 더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 내용과는 별개로 새누리당의 변화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이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누리당의 변신은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을 포함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의해 신속히 전달되었다. 선거는 이제 끝났다. 선거기간 유권자들에게 성추문과 돈봉투, 부정부패한 한나라당과는 다른 당이라고 했던 새누리당이 성추문과 논문베끼기로 논란이 된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와 관련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 떠오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 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새누리당의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

2012-04-19 송기도

작은 수레와 큰 수레

선거철이 되면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근래 들어 새로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다.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은 좋은 평판을 얻어 장차 다른 곳에서 부수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라고 한다.심지어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들이 생존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복제되게 하려는 바람의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에게 비상호적 이타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보다시피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겠다고 공언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투표를 하는 것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사이에는 흡사한 점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충실한 남편과 비열한 남자를 분명히 나눠놓고 있다.여자들은 장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와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여자는 미혼모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럴 경우 그녀와 자식들의 생존확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자들은 정조를 지키는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구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뻐꾸기처럼 자기 둥지 속에 다른 사람의 씨가 들어앉아 있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장기적으로 동행할 수 있는 충실한 남편과 절개를 믿을 수 있는 아내를 선택해야만 이용당하거나 기만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마당에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이기적 본성을 경계하고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서 묵묵히 실천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다.다시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최우선의 목표로 생각하는 파충류 뇌라는 게 있는데, 부처의 가르침은 사실 그 파충류 뇌의 준동을 제어하려는 노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불가에는 소승과 대승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은 자기 한 개인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고, '큰 수레'라는 뜻의 대승은 자타가 함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작은 수레에서 시작하여 큰 수레가 되는 것인데, 내 한 몸 기꺼이 버리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가들 중에 그렇듯 각고의 수행을 거쳐 이상적인 수레에 이른 자가 얼마나 있을까.또 불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염소 수레, 사슴 수레와 구별하여 하얀 황소 수레가 곧 중생을 피안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데, 염소 수레, 사슴 수레가 하얀 황소 수레인 양 가장하고 나서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이 지금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젠가 어느 솔직한 후보자가 나서서 이런 연설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저는 제가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자 애쓰지만 너무도 어렵습니다. 사실 제 지나온 삶도 간신히 구색을 갖추었을 뿐,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선 것도 사실 남들 앞에 나서서 위세를 부리고 싶은 게 제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염소 수레나 사슴 수레가 어울릴 뿐, 감히 하얀 황소의 수레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차 저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서 여러분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낙선하면 결과에 승복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분노와 적개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저라는 한 인물 살려주시는 셈치고 저를 뽑아주십시오. 어차피 누가 되든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2012-04-13 최수철

'놀토'의 진정한 의미 살리려면…

주 5일 수업제인 '놀토'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놀토는 정규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다. 학생들은 놀토에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교육의 장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방문할 수도 있다. 물론 학생들은 스스로 모자란 공부를 보충할 수도 있다. 놀토는 지난 해 7월1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된 주 5일 근무제의 시행이라는 우리 사회의 근로환경의 변화 추세에 부응하여 학교에도 도입된 것이지만, 교육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놀토는 주로 학교에 한정되었던 교육의 장을 지역사회로 확장함으로써 교실에서의 교과학습에 매몰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체험적 교육활동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놀토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제한된 교육공간을 벗어나서 다양한 장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도 있고, 문화나 예술, 체육활동에 참여하면서 지·덕·체의 균형잡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 회복이란 측면에서도 놀토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이전에 비하여 더 늘어난 대화와 소통, 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상호 이해를 통해 세대간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면서 가족의 교육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놀토의 이러한 교육적 의미를 살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지역사회기관들이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놀토는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지역사회가 여가 활용에 대한 주민들의 다양한 필요와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과도기적으로 학교가 여전히 안전한 공간으로서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는 있다. 그런데, 학교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기관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놀토에는 학생들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놀토는 학교에서 정규 수업만 없는 날이 아니라, 앞으로는 학교가 주도하여 제공하는 대체 프로그램도 없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학교 시설 이외에는 이용하기에 적당한 공간이나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는 학교가 유용한 시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학교보다는 지역사회가 학교 시설 등을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제공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한편으로 놀토에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취약계층의 학생들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지방자치단체가 경비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놀토의 확대가 계층간에 유의미한 교육적 경험의 차이를 낳고 이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는 교육에서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놀토의 전면적 시행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을 키워내는 일에 이렇게 지역사회가 책임질 것을 요청하고 있다.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노력과 책임의 증대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습 또는 공부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다.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전통적인 학문 교과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학교교육에서는 교과 지식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분석하고 응용하며 종합하는 능력을 중시하였다. 이제 우리 모두 공부는 전통적인 교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적 경험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다양한 예술과 체육활동을 통하여 정서적 능력을 함양하거나 단체 활동을 통해 인간관계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들이 모두 다 공부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가 길러내야 할 인간은 불균형적으로 지적인 측면에서만 발달한 인간이 아니라,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한 전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학생들이 놀토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책임을 다할 때, 그리고 교과지식의 학습만이 공부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날 때 놀토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2012-04-05 김성열

임기 마친 후 평가 좋을 후보를 뽑자

지난 금요일 제19대 국회의원 후보등록이 마감되었다. 재외투표소 투표는 이미 시작되어 오는 월요일까지 진행된다. 공식 선거운동도 어제 시작되어 선거일 전날인 4월 10일(화)까지 허용되어 있다. 선거일까지 두 주도 채 남지 않은 이번 국회의원선거에 유권자들은 어떻게 임해야 할까?한국 선거의 법칙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지방의 선거를 특징화한 문구로는 여촌야도(與村野都)와 도저촌고(都低村高)가 있다.시골이 도시보다 여당을 더 지지한다는 여촌야도 현상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고학력자가 야당을 더 지지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대신에, 나이 든 유권자가 젊은 유권자보다 투표에 더 참여하고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하는 연령 효과가 있을 뿐이다. 시골 거주자 가운데 나이 든 유권자가 많고 또 나이 든 유권자 가운데 저학력자가 많다 보니, 연령 효과를 도농(都農) 효과와 교육수준 효과로 잘못 받아들였었다.도시와 시골의 투표율을 단순 비교하면, 시골의 투표율이 도시보다 더 높은 도저촌고 현상은 종종 관찰된다. 지방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은 그만큼 지방의 입장이 선거에 더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도저촌고 현상은 연령대별로 다르다. 나이 든 유권자의 투표율은 지방이 더 높았는데, 젊은 유권자의 경우는 지방의 투표율이 대도시보다 더 낮았다. 젊은 지방 유권자의 낮은 투표율은 그들의 견해가 선거결과에 덜 반영된다는 의미이니, 자신의 견해를 선거결과에 조금이라도 더 반영시키려면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연령과 더불어 한국인 투표선택의 주요한 결정요인은 지역주의이다. 한국 유권자 다수는 지역적 정체감이 자신과 비슷한 정당에 투표해 왔다. 특정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어떤 정파가 특정 지역을 장악하면 다른 경쟁 지역에도 배타적 정파가 등장하게 되고 서로 상승작용해서 지역할거 정당체제로 고착화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 지역의 지역주의 약화는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 약화를 가져다준다.영남, 호남, 충청 등 대부분의 지방에는 지역패권 정당이 존재하여 왔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의석이 배정되는 지역에서는 정치인으로서 지역패권 정당을 도모할 정치적 이익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특정 지역의 전 선거구를 석권하고 또 타 지역에서도 그만큼의 의석을 얻더라도 국회 내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는 강원도와 제주도에는 지역패권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정치력을 확보한 후에 지역패권 정당이 없는 다른 지역의 지지를 받아 국회 과반 의석이나 대권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특정 지역에서 패권적 위치를 점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그만큼 손해다. 특정 지역에서 실리적으로 혹은 선동적으로 호소하는 내용이 다른 지역에도 그대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소리, 저기에서는 저 소리' 하기가 쉽지 않다.유권자들은 다른 지역에서의 정당 언행을 잘 관찰해야 한다. 지역 유권자는 지역 정체감에 호소하는 선동이나 구체적 대안 없는 반(反)○○ 캠페인에 동원되기보다는, 당선 후의 의정활동을 예상해보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선거구민의 뜻을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의정에 반영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후보 선택의 주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선거 때의 인기보다 국회의원 임기 완료 후의 평가가 가장 좋을 후보를 뽑아야 한다.정당이나 후보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삼모사(朝三暮四)적 선거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그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감성 위주의 화장발, 세치 혀에 의한 말발, 지속 불가능한 근시안적 선심성 공약 등이 더 잘 통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에게 손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잘못되었다면 그 국회의원을 욕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잘못된 선택의 책임은 유권자가 지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 지역사회, 유권자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2012-03-29 김재한

4·11 총선에서 주인이 되는 법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박원순 시민사회대표가 민주당의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를 모두 이기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지원이 있었지만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교수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기존 정당에 대한 커다란 불신이었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이번 제 19대 총선에 어떤 후보들을 내놓을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후보들의 도덕성, 정체성을 강조하고 시스템 공천, 모바일 투표 등 공천개혁을 약속한 정당들이 정말 말 그대로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들을 공천할 것인지 궁금했다. 3월20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각 당의 비례대표후보자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거의 두달에 가까운 힘겨운 공천심사를 마무리하고 총선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은 크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공은 유권자 손으로 넘어왔다.'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선'이라고 할만큼 국민과 국가의 연결고리인 정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당정치는 정당이라는 정치세력이 해놓은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정치다. 자신들의 업적과 과오를 모두 늘어놓고 겸허하게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게 도리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을 책임졌던 정당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고, 개별적으로는 지난 4년간 국회의원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하는 시간이다.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써있다. 그렇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다시 말해,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쉽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주인이 될 수 있다. 4월11일 누가 주인인지를 확실히 알려주면 된다. 그래야 4년이 편하다. 좋은 예인지 확실치 않지만 2년 전 한참 잘나가던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MBC 인사와 관련해 비사를 털어 놓았다. 김재철 MBC사장이 "큰집에 불려가서 조인트까진 후 확실히 좌파를 인사조치했다"라고 폭로한 것이다. 진실보도가 무엇이고 기자정신은 무엇인지 또 국민의 알권리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깡그리 무시돼 버렸다. 큰집은 김 사장의 조인트를 까며 누가 주인(임명권자)인지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김 사장은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는 '충견'이 된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정치인들이 유권자 무서운 줄 알도록 해야 한다. 선거때 가장 힘들어 하는 의원이 어느 지역 의원일까? 두말할 것 없이 수도권에 출마하는 의원들이다. 소위 여야의 당선자가 수시로 바뀌고 또 당락이 수백표에 의해 결정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들은 변덕스러운 유권자의 눈치를 수시로 살필 수밖에 없다. 아니 4년내내 주인인 유권자의 '예쁨'을 받기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직도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영남과 호남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이들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공천만 받으면 당선됐는데 누구 말을 듣겠는가? 이들이 충성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은 지역 유권자가 아니라 공천을 주는 사람이다. 다만 지역주민의 눈치를 보는 척 할 뿐이다. 그러니 유권자의 말을 제대로 듣겠는가?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누가 주인인지 확실히 가르쳐주어야 한다. 투표장에서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알게 해주어야 한다. 붓두껍으로 투표지에 꽉 힘을 주어서 투표를 해야 한다.30여년간 많이도 해먹었다. 그리고 정치는 엉망이 됐다. 이제 판을 바꾸자. 자신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신민(臣民)이 아닌 시민(市民)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4년 동안 노예처럼 끌려 다녀야 한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다. 한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 수준과 같다.

2012-03-23 송기도

키스의 미래

흔히 키스는 우리가 세상에 갓 태어나 엄마의 젖을 빠는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키스는 붉은색을 탐지하는 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도 한다. 인류의 조상들에게서는 숲속에서 빨갛게 잘 익은 과일을 찾아내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는데, 붉은색에 대한 이러한 선호가 이성의 입술에 자연스레 이끌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키스는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인간이 계속 진화하면서 키스의 의미도 발전한다. 아기 때에 젖을 먹기 위해서는 고개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야 하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이 자세를 통해 행복과 은혜,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어 이성에게 이끌리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되면, 유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상대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겹쳐진다. 인간관계에서 키스는 위협을 주지 않으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키스는 우리 몸에 강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정적인 키스를 하는 동안 혈관은 팽창하고 뇌로 공급되는 산소의 양도 평상시보다 더 많아진다. 호흡은 가빠지고, 볼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동공도 확장된다.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것은 동공의 확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더욱이 키스하는 동안 우리의 뇌, 혀, 얼굴 근육, 입술, 피부 세포에서는 끊임없이 신경 자극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호르몬과 신경 전달물질을 분비하도록 촉진한다. 이른바 황홀한 키스는 자연적인 환각 상태를 느낄 수 있게 하는데, 이는 기분을 들뜨게 하는 엔도르핀 분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울증이 심할 때는 키스에 몰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키스를 두려워 하는 키스 공포증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키스를 하려 시도하면 완전히 공포에 질리게 되는 증상인데, 주로 박테리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며 자신의 혀가 물려 뜯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키스할 때 278개 군락의 박테리아를 주고받지만, 이 중 95%는 몸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하면 혀를 물릴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키스는 특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절실하고 현실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키스는 두 사람이 서로 기호, 취향, 접촉 같은 감각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다. 따라서 키스는 상대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찰을 잠재적으로 제공한다. 특히 여성에게 키스는 상대 남성이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육체적으로 건강한지를 평가하기 위한 결정적인 수단이다. 말하자면 키스를 나누는 두 연인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키스를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헌신적인지, 자녀를 갖기에 적합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열심히 단서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연인은 키스를 통해 서로의 운명을 입으로 봉인한다. 드디어 결혼생활이 시작되는데, 세월이 흘러 서로에 대한 새로움이 사라진 후에도 부부로 하여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애정에 계속 불을 지피게 해 주는 것 역시 키스다. 키스는 포옹이나 애무와 더불어 우리 몸속에서 배우자에 대한 애착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그리고 떠나는 순간에도 입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키스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키스를 통해 감각적으로 깨어나고 사랑을 배우고 또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즘 이른바 키스방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우리가 키스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친숙함이나 자발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 우려의 마음도 크다. 이제 끝으로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평소에 입안에서 혀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바람직할까? 혀끝을 말아 입천장에 닿게 해 보자. 잠시 그러고 있으면 뇌파가 안정되고 기분이 달라지고 금방 입안에 단 침이 가득 고인다. 자, 이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 연인의 붉은 입술을 향해 다가가 보자. 천천히, 부드럽게!

2012-03-15 최수철

요즘 학부모 노릇 쉽지 않아요

새 학년도를 맞이하여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는 '학부모'로서 새롭게 탄생한다. 중등학교 학부모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역할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는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학부모가 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긴장하기도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은 자녀를 키울 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자녀교육에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학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학교에서 요청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부모들은 한편으로는 학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스스로 높은 기대를 가지고, 무언가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학부모가 스스로 기대하거나 밖으로부터 요구받는 역할들은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공부에 단순히 도움을 주는 '학습도우미'의 역할을 넘어서서 자녀들에게 적합한 교육을 계획하고, 다양한 학습자료 중에서 적절한 것을 가려내는 '학습설계사'로서 역할하고자 한다. 특히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교육현장의 변화와 더불어 금년 3월부터 주5일제 수업의 전면적 시행은 학습설계사로서 학부모의 역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단위학교 의사 결정에의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학부모들은 이제 소극적으로 학교의 요구에 응하는 수준을 넘어 학교운영과 학교교육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학교가 개방화되고 민주화되면서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후견인으로서 교육 전반에 관한 학부모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학부모 권리 주창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고도 하고, 또 그렇게 하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예컨대, 체벌금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학부모들이 있듯이, 그들은 자녀들이 보다 좋은 교육여건에서 학습자로서 존중받으면서 질 높은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요구한다. 오늘날 학부모의 역할은 이렇게 가정에만 한정되지 않고, 단위학교와 사회전체로 확장되고 있다.이렇게 학부모들은 안팎의 기대와 요구에 의하여, 과거에 비해 '짐이 더 무거워진 학부모'로 바뀌며, 학부모 노릇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왜 그런가? 아마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변화하는 학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면 경청에 앞서 큰 소리로 야단만 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자녀가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복잡한 대입요강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학부모 노릇하기 어렵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하지만 이러한 어려움과 부담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학부모들에게만 맡겨놓을 것은 아니다. 변화된 학부모로서의 역할 수행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지원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 인식에 더해 학부모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의 학부모 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찾아가는 학부모교실'과 같은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은 자녀를 돌보거나 학부모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부부 모두 일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교육 프로그램 제공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협력하여 학부모들이 자녀를 돌볼 수 있고, 학부모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환경적,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주5일 근무제나 근무시간의 탄력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필요시 적절한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은 학부모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고, 학부모의 도움은 학부모의 역할 수행 역량 강화에 의해서 가능하다"라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12-03-09 김성열

적반하장의 계절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전화를 얼마 전 받았다. 중국 말투가 조금 섞인 남자가 서울검찰청이라고 말하면서 보이스피싱 관련으로 내 명의가 도용되고 있으니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중국동포가 한국 경찰관으로 특채됐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고 해서 진짜일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 것이라는 걱정뿐 아니라 보이스피싱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호기심에서 전화를 끊지 않고 오랫동안 통화하게 되었다. 통화가 길수록 사기라는 생각이 더 들게 되었다. 한참 지난 후 전화 속의 남자는 중국동포 사투리의 욕설과 아마 중국어 욕설인 것 같은 알 수 없는 말로 고함을 질렀다.그 이후 보이스피싱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보이스피싱에 대해 조롱하고 장난친 실제 녹음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역관광'이라는 네티즌 은어로 부르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크게 당하는 경우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필자의 경우엔 상대를 조롱하는 역관광까지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세히 반문했던 것뿐인데, 심한 욕설을 듣고 나니 황당하였다. 살인 미수이든 사기 미수이든 성공하지 못한 범죄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필자를 속이려고 했던 그 남자는 필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될 뻔했던 필자에게 그 남자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심한 욕을 했다. 아마 그 남자는 필자가 자기를 우롱했고 아까운 시간도 낭비시켰다고 생각하여 욕한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도적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보상 심리나 기대 심리가 있었던 도적은 도적 행위가 실패했을 때 매를 든다.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그 나쁜 행위로 자신이 불명예를 안기 때문에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보상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에 나쁜 행위는 그 좌절감을 통해서라도 처벌을 받게 된다.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전승연합에 편들었던 이탈리아는 동맹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좌절감을 주었다. 그 좌절감은 배신한 이탈리아도 겪었다. 전리품 배분에 있어서 큰 몫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배신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보상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탈리아의 좌절감은 극우정권을 등장시켰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함께 패전국으로 전락하였다.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행위도 더 잦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입장에선 자신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난에는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봇짐 내라 한다'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이 배은망덕했거나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종 평가에서 어떤 공개되고 일관된 원칙에 의해 탈락된 사람 가운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객관적 지적에 대해 적개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다. 반대로 자신이 편파적으로 좋게 평가받았을 때에는 정당하게 평가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처럼, 좋은 마음과 능력 없이 권력자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누린 사람도 있다. 훌륭한 능력도 없고 착한 마음도 없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들을 중용한 권력자의 책임도 크다.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와 금액이 작년에 역대 최대였다고 금융위원회는 밝혔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돈을 사기범에게 잘못 보냈더라도 바로 인출되지 않도록, 또 피해자가 카드대출금을 신청 즉시 받을 수 없도록, 또 공공기관 전화번호를 발신자로 해서 피해자에게 전화 거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대책 등이 곧 실시된다고 한다. 사기범이 본색을 숨길 수 없도록 또 피해자가 일순간 속더라도 복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직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순간적인 화장발에 속지 않도록 허상이 아닌 실상을, 즉시가 아닌 시차를 두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유권자뿐 아니라 권력자의 후회 없는 판단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직을 남에게 베푸는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도록 공직에 대한 엄격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2012-03-01 김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