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대북정책 일관성 상호주의서 찾아야

오는 5월 29일 제19대 국회가 출범한다. 임기 개시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300명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분위기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거취가 아직도 논란중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절차의 공정성에 대해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일부 언론들은 일부 비례대표 당선자의 북한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중 보도하고 있다.북한 이슈는 한국 사회를 나누는 주요한 이념적 기준이다. 북한은 직간접적으로 남한 정치의 큰 축이 되어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소위 남남갈등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 심화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강한 바람은 실패하고 따뜻한 햇볕이 성공했다는 이솝우화를 근거로 김대중 정부는 따뜻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따뜻한 대북정책은 다른 이솝우화로 비판되기도 한다. 숲은 도끼자루가 필요한 나무꾼에게 나무 한 그루를 선의로 주었지만, 나무꾼은 그 도끼로 숲의 많은 나무를 베었다는 이야기이다. 즉 대북지원은 남침 능력만 강화시켰다는 주장이다.적대적인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지속적인 관용이 있어야 한다. 3년의 전면전과 60년의 냉전을 겪고 있는 남북한이 상대의 마음을 단기간에 얻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마음보다 행동이 협력적이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상호협력을 실현시키는 방법은 상호주의가 거의 유일하다. 적대적인 상대에게 무조건 강경하거나 무조건 유화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호협력에 도움 되지 않는다. 대신에 상대의 행동과 유사하게 대응하는 것이 상호협력을 실현시킨다. 만일 상대가 나의 행동대로 행동한다면, 나의 협력은 곧 상호협력이고, 나의 적대는 곧 상호적대이다. 상호적대보다 상호협력이 더 나은 상황에서는 내가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대북정책 기조가 승공(勝共)이었던 20여년 전, 필자가 남북한 공영(共榮)을 위한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제안했을 때 비판이 있었다. 북한에게 호의적 행동을 먼저 행한 후 그 다음부터는 북한의 행동과 동일한 선택을 하는 상호주의는 대북 유화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 그러던 대북 상호주의는 대북정책 기조가 포용(包容)이었던 10여년 전에는 북한의 상황을 외면한 대북 강경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필자는 7년 전 한 외국 학술지에서 상호주의가 반드시 등가(等價)적, 즉 쌍방의 협력 크기가 같을 필요는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상대 행동 그대로 즉시 반응하지 않더라도 상대 행동에 따라 규칙적으로 반응한다면, 상호협력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의적·적대적 행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그대로 행동하는 것뿐 아니라, 일정 시차를 두고 일정 비율만큼 상대 행동에 따라 대응하기만 해도, 상호협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상대 행위에 따른 조건부 협력이 상호협력 실현에 중요한 것이다.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은 정권에 따라 정부 정책이 뒤바뀌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대북정책 기관들도 정권에 따라 정책이 심하게 바뀌는 부처이다. 대북정책 부처가 사법부처럼 독립되어 초(超)정권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대북정책은 국내정치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무릇 정책이란 일관성을 지녀야 정책 효과를 갖게 된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상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에 호의적이냐 적대적이냐는 것은 엄밀한 정책적 기준이 아니고 정책 일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단순한 강경·온건의 대북정책 스펙트럼으로는 남북한 관계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에 의해 왜곡될 수밖에 없다. 대북 강경이냐 대북 유화이냐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북한 협력을 남한 협력의 조건으로 보느냐로 논쟁되어야 한다. 북한의 행동에 따른 대북정책이 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2012-05-25 김재한

'양치기 정부'와 신뢰사회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나 조금 신경을 쓰지 평상시에는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TV나 라디오를 꺼버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정치인을 싸움이나 하고 모두 '썩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정치 자체를 외면해 버린 탓이다. 2008년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이 '미디어 오늘'에 의뢰해 발표한 직업별 신뢰도 여론조사를 보면 33개 직업군 가운데 소방관과 간호사가 1, 2위를 차지했고, 정치인은 꼴찌(33위)를 했다.왜 국민들은 정치인을 믿지 않을까? 무엇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한 것일까? 만일 한 국가에서 그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면 그 국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신뢰는 한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관습, 도덕,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서 매우 중요하며,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협력이 어렵거나 협력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사회 또는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게 된다는 것이다. 2012년 5월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가? 우리 국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부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가? 광우병 파동 당시인 2008년 5월 정부는 주요 일간지에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라고 광고를 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광고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1.즉각 수입 중단 2.이미 수입된 쇠고기 전수조사 3.검역단 파견 현지실사 4.학교 및 군대급식 중지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자 정부는 미국에 검역단을 파견했을 뿐이다. 청와대는 "현재 미국에서 광우병 걸린 쇠고기가 우리에게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라고 발표했으며,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미국에서 온 자료를 분석했을 때 검역중단을 할 단계가 아니다.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2천5백년 전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풍족한 식량(糧), 충분한 병력(兵), 백성의 신뢰(信)가 있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한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말하길 "병력을 버려야 한다" 고 답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라고 했다.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자공과의 문답에서 공자는 '정치의 3요소'로 '식량, 병력, 신뢰'를 꼽으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임을 역설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놀랄만한 경제발전 덕에 우리나라는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최고의 경제적 생활을 누리고 있다. 또 군사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백성의 신뢰'는 어떤가?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그리고 '천안함 사태'는 우리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또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광우병관련 뉴스가 최근 TV나 언론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국가 운영에 정말 중요한 일이다. '양치기 정부'를 누가 믿겠는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국민의 믿음이다. 국회의원 수가 많든 당원수가 많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2012-05-17 송기도

사바나 원칙

대체적으로 남자는 왜 여자의 유방이 더 큰 쪽을 선호하는가. 얼마 전에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다.애초에 인간 여성의 유방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보다 더 발달한 것은, 인류의 조상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수컷을 유혹하던 암컷 엉덩이의 역할을 유방이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그러나 남자가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가슴이 작은 여자도 자기 아이가 먹을 모유는 가슴이 큰 여자들만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1990년 말에 한 과학자가, 풍만한 무거운 가슴이 작은 가슴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훨씬 눈에 띄게 처진다는 사실을 관찰해냈다. 작은 가슴은 나이가 들어도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작은 가슴보다는 풍만한 가슴을 가졌을 때 그 여자가 젊은지 늙었는지를 판별하기가 훨씬 쉽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여자가 젊을수록 남자의 씨를 퍼뜨릴 수 있는 번식 능력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남자는 자연스레 가슴이 풍만한 여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최근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의 '사바나 원칙'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는데 1 만 년 전에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시기부터 진화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을 진화가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두뇌는 석기시대의 두뇌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여전히 석기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탓에, 우리는 사실상 과학적 발명품들은 물론이고 경찰이나 법정이라는 것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과 번식에 성공하여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심리적 기제를 여전히 지닌 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리하여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몰려드는 이유, 남자들이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 금발, 가는 허리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의 얼굴에서 좌우동형의 이목구비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들이 포르노그래피에 열중하는 데 반해 여자들은 포르노그래피를 피하는 이유, 심지어 남성 성기에서 귀두가 지금처럼 특별한 모양을 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명쾌하게 '진화론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흥미로운 것들 중에 하나는 중년 남자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중년의 위기는 남자들이 중년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아내가 중년이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다시 말해, 아내가 폐경기에 접어들 때 남편들은 더 젊고 번식 능력이 있는 여자를 찾으려는 새로운 욕구에 빠지게 되면서 안팎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자의 두뇌는 실리콘이 들어찬 가슴이나 염색한 금발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1만 년 전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 즉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인간 갈등의 새로운 측면들을 찾아내려는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짝짓기에 연결 지어 파악함으로써 인간을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나로서는 그동안 당연하거나 자명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과감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깊이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을 밝혀보는 일은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근래 들어 이 분야의 책들이 거의 며칠 간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우리는 진화심리학의 성실하고 부단한 '진화'에 대해 믿음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한다.

2012-05-11 최수철

세계화시대 핵심 덕목으로서의 글로벌 소양

우리 사회의 안팎에서 현재 진행되는 다양한 변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경남 창원에서 지난 4월 열린 교육도시 세계연합총회는 40여개 국에서 시장 등을 포함하여 3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참석하였는데 지방의 세계화를 체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사였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스파게티와 와플을 즐겨먹고, 잉글랜드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나 이청용 선수에게 열광하며,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외국의 젊은이들도 우리 음식인 비빔밥에 반하고, K-팝 등 한류에 열광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만이 지적하였듯이, 경제적 차원에서 지구는 이미 평평해졌으며, 자본의 흐름 앞에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는 곧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활동하게 될 게임의 무대 역시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경을 모르는 또 다른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빈곤,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 차원의 위기 요소들이다. 빈곤이나 불평등은 자국 내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으며, 환경 위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이렇게 인적 교류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 환경 등에서 바야흐로 우리 시대의 거대한 흐름인 세계화는 가장 중요한 변화인 동시에 기회와 위기를 함께 만들어내는 야누스적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복잡하게 진행되는 세계화를 이해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소양(global literacy)일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와 더불어 글로벌 위기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며 인류의 지속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첫째, 우리 젊은이들이 무엇보다도 외국어 의사소통능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개방과 교류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외국어에 의한 의사소통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어의 위상을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던 EU의 출범이 역설적이게도 세계적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영어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유창한 영어소통능력을 가진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국가는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하여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교육도시 세계연합총회에 참석한 국가들이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었는데, 이렇게 아직 영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는 지역(예컨대 남미 등)을 무대로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해당 국가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를 습득하는 일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자국 문화에 대한 주체성 형성과 더불어, 문화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다문화적 소양이 요구된다.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문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다. 글로벌 지구촌은 이미 하나의 역동적인 다문화 사회이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과 자라나는 세대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다문화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한국인에게는, 열린 마음을 가진 세계시민으로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도외시하지 않는 박애적 소양, 즉 나눔과 배려의 미덕이 요구된다. 그것은 성숙한 국민과 국가가 스스로의 관심 영역을 세계의 문제, 인류의 문제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세계화 시대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야누스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기회, 즉 국가 경쟁력은 글로벌 소양을 갖춘 인적 자원에 의해 가능하다면, 세계화 시대의 위기의 해결은 남보다 앞서가서 선점하겠다는 경쟁적인 마음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을 선뜻 나누는 태도에서 가능하리라. 우리 젊은이들을 글로벌 소양을 가진 젊은이로 기르는 교육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2012-05-04 김성열

선거분석 유감

지난 4월 23일부터 제18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들은 지난 4·11선거의 결과를 갖고 연말 대선에 대해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첫째, 4·11선거의 결과를 '황금분할'로 표현하고 있는데, 오는 대통령선거는 어떤 결과가 되어야 황금분할인가? 대다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선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와 같은 유권자의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4천만 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서로 조율해서 의도대로 황금분할을 만들어내기는 불가능하다. 선거결과는 유권자 모두의 뜻을 합산한 결과일 뿐이다.둘째, 특정 정당이 승리하고 다른 특정 정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들이 선거 후 많아졌는데, 오는 대통령선거 결과도 그렇게 잘 알 수 있는가? 미리 예측하는 것은 지나간 일을 끼워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패배할 줄 그렇게 잘 알았더라면 왜 선거 전 미리 분명히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패배한 정당의 지도부는 반문할 것이다.선거 전 명확히 언급되지 않던 요인들이 선거 후에는 승리 요인 아니면 패인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잘못된 원인 분석이 많다. 사후 합리화뿐 아니라 틀린 선거 전망도 있었다. 특정 지역을 야도(野道)로 단정한 주장이나 엄청난 비용으로 실시된 설문조사가 그러한 예이다. 모두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셋째, 선거 후 유권자 표심을 '홍동황서(紅東黃西)'의 컬러지도로 나타내고 있는데, 대통령선거에서도 동쪽은 붉은 색이고 서쪽은 노란 색일까?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그러한 지도가 유용하다. 왜냐하면 특정 지역에서 이긴 후보가 그 지역의 선거인단을 다 갖기 때문이다.이와 달리 우리 대통령선거에서는 두 후보가 각각 60%와 40%의 득표율을 얻는다면 그 비율대로 표도 나눠 가진다. 4·11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강원과 울산에서 100% 의석을 가져갔지만 정당득표율은 절반에 불과했다. 반면에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의석을 3분의1만 차지했지만 정당득표율은 절반에 가까웠다. 따라서 4·11선거로 대통령선거를 전망할 때의 지도는 강원, 울산, 서울 모두 붉은색이 반 정도만 들어가서 동쪽과 서쪽 간의 색깔 차이가 크지 않다.언론에서 계속 홍동황서의 지도로 보도하면, 자칫 지역유권자들에게 그 색깔대로 투표하게 유도할 수 있다. 그 지도를 보는 유권자들은 더 이상 지역색으로 투표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대신에 남들이 지역색으로 투표하니 자신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쉽다.4월 선거의 결과가 12월의 선거까지 그대로 가지는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8개월이면 지지도 등락이 수차례 반복될 수 있는 긴 기간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정당들은 '정주(定住)'형이며, 주요 정당 후보가 아닌 무당파 후보가 당선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이에 비해 한국 정당의 흥망성쇠 주기는 매우 짧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정당은 들뢰즈가 말한 탈근대적 '유목(遊牧)' 개념에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정주형과 반대되는 유목형이다. '떴다방'이나 '천막 정당'식으로 창당되고 운영되며 해체된다. 천막 당사가 지지도 증가에 도움 되는 정치문화이다. 안철수 바람에서 보듯이 기성 정당과 관계없는 후보가 당선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기성 정당은 바람 부는 초원의 천막에 불과해서 누구나 천막을 치고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메시아와 뜨내기사기꾼 모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들은 좌우 스펙트럼 대신에 선악 스펙트럼을 갖고 나타난다. 기성 정치인은 자기 물을 퍼내거나 자기 불을 피우기 위해, 그 바람을 마중물이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하기도 한다. 펌프가 새거나 펌프질이 약하면 마중물이 있다고 해도 큰 물을 퍼낼 수 없고, 태울 연료가 많지 않으면 쏘시개가 있다고 해서 큰 불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오는 대선에서 반칙이 난무하지 않는 높은 수준의 경쟁이 되려면 언론의 수준 높은 관전평도 필요하다.

2012-04-27 김재한

'불편한 진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그리고 무소속이 3석을 차지했다.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친박연대가 얻었던 의석이 모두 167석이었으니 15석이나 줄었지만 선거 몇 달 전 120석도 어렵다는 말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완승이나 다름없다. 반면 18대 때 81석이었던 민주통합당은 46석을 늘려 127석을 차지했지만 당초 제1당은 물론 과반수 의석까지 노렸던 것을 생각하면 참패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새누리당은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선거를 이긴 것이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결코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왜 그랬을까? '反한나라 非민주당'은 최근 선거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유권자들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말이다. 이명박 정권 4년의 실정과 부정부패의 대명사인 한나라당에 대해 반대하지만 내부 분열과 정치적 추진력이 고갈돼 대안세력이 되지 못하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안철수 교수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시민단체대표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유권자의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은 총선을 앞두고 변화를 모색했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고, 당의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과거 새누리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 신한국당이 선거 때면 어김없이 써먹었던 '색깔론'을 생각하면 이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내용이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제도나 기구도 그대로이고 당헌 당규도 큰 변화가 없다. 사람들도 개혁적인 새로운 인물들로 바뀌었다기보다 친이 중심에서 친박 중심으로 이동한 것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새누리당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 뿐이다. 사람과 제도가 거의 그대로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반면 민주당은 시민사회세력, 한국노총을 받아들여 민주통합당으로 변신했다. 또 선거직전에 진보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민간인 사찰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논란이 있었음에도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4·11 총선은 '反한나라 非민주당'의 구도에서 빠져나간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선택이었다.선거과정에서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발빠르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역사인식 논란, 여성 비하 논란, 금품살포 논란, 쌀 직불금 부당수령 논란 등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곧바로 이들의 공천을 철회시켰다. 임종석 후보의 사퇴, 막말논란의 김용민 후보와 관련되어 민주통합당이 우왕좌왕했던 모습과 비교되었다. 전체적으로 새누리당이 좋은 후보를 찾기위해 더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 내용과는 별개로 새누리당의 변화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이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누리당의 변신은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을 포함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의해 신속히 전달되었다. 선거는 이제 끝났다. 선거기간 유권자들에게 성추문과 돈봉투, 부정부패한 한나라당과는 다른 당이라고 했던 새누리당이 성추문과 논문베끼기로 논란이 된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와 관련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 떠오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 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새누리당의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

2012-04-19 송기도

작은 수레와 큰 수레

선거철이 되면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근래 들어 새로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다.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은 좋은 평판을 얻어 장차 다른 곳에서 부수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라고 한다.심지어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들이 생존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복제되게 하려는 바람의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에게 비상호적 이타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보다시피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겠다고 공언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투표를 하는 것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사이에는 흡사한 점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충실한 남편과 비열한 남자를 분명히 나눠놓고 있다.여자들은 장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와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여자는 미혼모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럴 경우 그녀와 자식들의 생존확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자들은 정조를 지키는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구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뻐꾸기처럼 자기 둥지 속에 다른 사람의 씨가 들어앉아 있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장기적으로 동행할 수 있는 충실한 남편과 절개를 믿을 수 있는 아내를 선택해야만 이용당하거나 기만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마당에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이기적 본성을 경계하고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서 묵묵히 실천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다.다시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최우선의 목표로 생각하는 파충류 뇌라는 게 있는데, 부처의 가르침은 사실 그 파충류 뇌의 준동을 제어하려는 노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불가에는 소승과 대승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은 자기 한 개인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고, '큰 수레'라는 뜻의 대승은 자타가 함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작은 수레에서 시작하여 큰 수레가 되는 것인데, 내 한 몸 기꺼이 버리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가들 중에 그렇듯 각고의 수행을 거쳐 이상적인 수레에 이른 자가 얼마나 있을까.또 불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염소 수레, 사슴 수레와 구별하여 하얀 황소 수레가 곧 중생을 피안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데, 염소 수레, 사슴 수레가 하얀 황소 수레인 양 가장하고 나서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이 지금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젠가 어느 솔직한 후보자가 나서서 이런 연설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저는 제가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자 애쓰지만 너무도 어렵습니다. 사실 제 지나온 삶도 간신히 구색을 갖추었을 뿐,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선 것도 사실 남들 앞에 나서서 위세를 부리고 싶은 게 제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염소 수레나 사슴 수레가 어울릴 뿐, 감히 하얀 황소의 수레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차 저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서 여러분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낙선하면 결과에 승복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분노와 적개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저라는 한 인물 살려주시는 셈치고 저를 뽑아주십시오. 어차피 누가 되든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2012-04-13 최수철

'놀토'의 진정한 의미 살리려면…

주 5일 수업제인 '놀토'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놀토는 정규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다. 학생들은 놀토에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교육의 장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방문할 수도 있다. 물론 학생들은 스스로 모자란 공부를 보충할 수도 있다. 놀토는 지난 해 7월1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된 주 5일 근무제의 시행이라는 우리 사회의 근로환경의 변화 추세에 부응하여 학교에도 도입된 것이지만, 교육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놀토는 주로 학교에 한정되었던 교육의 장을 지역사회로 확장함으로써 교실에서의 교과학습에 매몰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체험적 교육활동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놀토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제한된 교육공간을 벗어나서 다양한 장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도 있고, 문화나 예술, 체육활동에 참여하면서 지·덕·체의 균형잡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 회복이란 측면에서도 놀토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이전에 비하여 더 늘어난 대화와 소통, 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상호 이해를 통해 세대간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면서 가족의 교육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놀토의 이러한 교육적 의미를 살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지역사회기관들이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놀토는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지역사회가 여가 활용에 대한 주민들의 다양한 필요와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과도기적으로 학교가 여전히 안전한 공간으로서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는 있다. 그런데, 학교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기관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놀토에는 학생들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놀토는 학교에서 정규 수업만 없는 날이 아니라, 앞으로는 학교가 주도하여 제공하는 대체 프로그램도 없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학교 시설 이외에는 이용하기에 적당한 공간이나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는 학교가 유용한 시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학교보다는 지역사회가 학교 시설 등을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제공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한편으로 놀토에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취약계층의 학생들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지방자치단체가 경비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놀토의 확대가 계층간에 유의미한 교육적 경험의 차이를 낳고 이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는 교육에서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놀토의 전면적 시행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을 키워내는 일에 이렇게 지역사회가 책임질 것을 요청하고 있다.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노력과 책임의 증대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습 또는 공부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다.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전통적인 학문 교과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학교교육에서는 교과 지식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분석하고 응용하며 종합하는 능력을 중시하였다. 이제 우리 모두 공부는 전통적인 교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적 경험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다양한 예술과 체육활동을 통하여 정서적 능력을 함양하거나 단체 활동을 통해 인간관계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들이 모두 다 공부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가 길러내야 할 인간은 불균형적으로 지적인 측면에서만 발달한 인간이 아니라,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한 전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학생들이 놀토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책임을 다할 때, 그리고 교과지식의 학습만이 공부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날 때 놀토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2012-04-05 김성열

임기 마친 후 평가 좋을 후보를 뽑자

지난 금요일 제19대 국회의원 후보등록이 마감되었다. 재외투표소 투표는 이미 시작되어 오는 월요일까지 진행된다. 공식 선거운동도 어제 시작되어 선거일 전날인 4월 10일(화)까지 허용되어 있다. 선거일까지 두 주도 채 남지 않은 이번 국회의원선거에 유권자들은 어떻게 임해야 할까?한국 선거의 법칙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지방의 선거를 특징화한 문구로는 여촌야도(與村野都)와 도저촌고(都低村高)가 있다.시골이 도시보다 여당을 더 지지한다는 여촌야도 현상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고학력자가 야당을 더 지지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대신에, 나이 든 유권자가 젊은 유권자보다 투표에 더 참여하고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하는 연령 효과가 있을 뿐이다. 시골 거주자 가운데 나이 든 유권자가 많고 또 나이 든 유권자 가운데 저학력자가 많다 보니, 연령 효과를 도농(都農) 효과와 교육수준 효과로 잘못 받아들였었다.도시와 시골의 투표율을 단순 비교하면, 시골의 투표율이 도시보다 더 높은 도저촌고 현상은 종종 관찰된다. 지방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은 그만큼 지방의 입장이 선거에 더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도저촌고 현상은 연령대별로 다르다. 나이 든 유권자의 투표율은 지방이 더 높았는데, 젊은 유권자의 경우는 지방의 투표율이 대도시보다 더 낮았다. 젊은 지방 유권자의 낮은 투표율은 그들의 견해가 선거결과에 덜 반영된다는 의미이니, 자신의 견해를 선거결과에 조금이라도 더 반영시키려면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연령과 더불어 한국인 투표선택의 주요한 결정요인은 지역주의이다. 한국 유권자 다수는 지역적 정체감이 자신과 비슷한 정당에 투표해 왔다. 특정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어떤 정파가 특정 지역을 장악하면 다른 경쟁 지역에도 배타적 정파가 등장하게 되고 서로 상승작용해서 지역할거 정당체제로 고착화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 지역의 지역주의 약화는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 약화를 가져다준다.영남, 호남, 충청 등 대부분의 지방에는 지역패권 정당이 존재하여 왔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의석이 배정되는 지역에서는 정치인으로서 지역패권 정당을 도모할 정치적 이익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특정 지역의 전 선거구를 석권하고 또 타 지역에서도 그만큼의 의석을 얻더라도 국회 내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는 강원도와 제주도에는 지역패권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정치력을 확보한 후에 지역패권 정당이 없는 다른 지역의 지지를 받아 국회 과반 의석이나 대권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특정 지역에서 패권적 위치를 점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그만큼 손해다. 특정 지역에서 실리적으로 혹은 선동적으로 호소하는 내용이 다른 지역에도 그대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소리, 저기에서는 저 소리' 하기가 쉽지 않다.유권자들은 다른 지역에서의 정당 언행을 잘 관찰해야 한다. 지역 유권자는 지역 정체감에 호소하는 선동이나 구체적 대안 없는 반(反)○○ 캠페인에 동원되기보다는, 당선 후의 의정활동을 예상해보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선거구민의 뜻을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의정에 반영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후보 선택의 주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선거 때의 인기보다 국회의원 임기 완료 후의 평가가 가장 좋을 후보를 뽑아야 한다.정당이나 후보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삼모사(朝三暮四)적 선거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그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감성 위주의 화장발, 세치 혀에 의한 말발, 지속 불가능한 근시안적 선심성 공약 등이 더 잘 통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에게 손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잘못되었다면 그 국회의원을 욕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잘못된 선택의 책임은 유권자가 지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 지역사회, 유권자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2012-03-29 김재한

4·11 총선에서 주인이 되는 법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박원순 시민사회대표가 민주당의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를 모두 이기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지원이 있었지만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교수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기존 정당에 대한 커다란 불신이었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이번 제 19대 총선에 어떤 후보들을 내놓을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후보들의 도덕성, 정체성을 강조하고 시스템 공천, 모바일 투표 등 공천개혁을 약속한 정당들이 정말 말 그대로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들을 공천할 것인지 궁금했다. 3월20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각 당의 비례대표후보자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거의 두달에 가까운 힘겨운 공천심사를 마무리하고 총선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은 크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공은 유권자 손으로 넘어왔다.'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선'이라고 할만큼 국민과 국가의 연결고리인 정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당정치는 정당이라는 정치세력이 해놓은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정치다. 자신들의 업적과 과오를 모두 늘어놓고 겸허하게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게 도리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을 책임졌던 정당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고, 개별적으로는 지난 4년간 국회의원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하는 시간이다.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써있다. 그렇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다시 말해,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쉽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주인이 될 수 있다. 4월11일 누가 주인인지를 확실히 알려주면 된다. 그래야 4년이 편하다. 좋은 예인지 확실치 않지만 2년 전 한참 잘나가던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MBC 인사와 관련해 비사를 털어 놓았다. 김재철 MBC사장이 "큰집에 불려가서 조인트까진 후 확실히 좌파를 인사조치했다"라고 폭로한 것이다. 진실보도가 무엇이고 기자정신은 무엇인지 또 국민의 알권리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깡그리 무시돼 버렸다. 큰집은 김 사장의 조인트를 까며 누가 주인(임명권자)인지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김 사장은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는 '충견'이 된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정치인들이 유권자 무서운 줄 알도록 해야 한다. 선거때 가장 힘들어 하는 의원이 어느 지역 의원일까? 두말할 것 없이 수도권에 출마하는 의원들이다. 소위 여야의 당선자가 수시로 바뀌고 또 당락이 수백표에 의해 결정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들은 변덕스러운 유권자의 눈치를 수시로 살필 수밖에 없다. 아니 4년내내 주인인 유권자의 '예쁨'을 받기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직도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영남과 호남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이들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공천만 받으면 당선됐는데 누구 말을 듣겠는가? 이들이 충성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은 지역 유권자가 아니라 공천을 주는 사람이다. 다만 지역주민의 눈치를 보는 척 할 뿐이다. 그러니 유권자의 말을 제대로 듣겠는가?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누가 주인인지 확실히 가르쳐주어야 한다. 투표장에서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알게 해주어야 한다. 붓두껍으로 투표지에 꽉 힘을 주어서 투표를 해야 한다.30여년간 많이도 해먹었다. 그리고 정치는 엉망이 됐다. 이제 판을 바꾸자. 자신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신민(臣民)이 아닌 시민(市民)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4년 동안 노예처럼 끌려 다녀야 한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다. 한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 수준과 같다.

2012-03-23 송기도

키스의 미래

흔히 키스는 우리가 세상에 갓 태어나 엄마의 젖을 빠는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키스는 붉은색을 탐지하는 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도 한다. 인류의 조상들에게서는 숲속에서 빨갛게 잘 익은 과일을 찾아내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는데, 붉은색에 대한 이러한 선호가 이성의 입술에 자연스레 이끌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키스는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인간이 계속 진화하면서 키스의 의미도 발전한다. 아기 때에 젖을 먹기 위해서는 고개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야 하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이 자세를 통해 행복과 은혜,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어 이성에게 이끌리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되면, 유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상대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겹쳐진다. 인간관계에서 키스는 위협을 주지 않으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키스는 우리 몸에 강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정적인 키스를 하는 동안 혈관은 팽창하고 뇌로 공급되는 산소의 양도 평상시보다 더 많아진다. 호흡은 가빠지고, 볼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동공도 확장된다.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것은 동공의 확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더욱이 키스하는 동안 우리의 뇌, 혀, 얼굴 근육, 입술, 피부 세포에서는 끊임없이 신경 자극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호르몬과 신경 전달물질을 분비하도록 촉진한다. 이른바 황홀한 키스는 자연적인 환각 상태를 느낄 수 있게 하는데, 이는 기분을 들뜨게 하는 엔도르핀 분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울증이 심할 때는 키스에 몰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키스를 두려워 하는 키스 공포증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키스를 하려 시도하면 완전히 공포에 질리게 되는 증상인데, 주로 박테리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며 자신의 혀가 물려 뜯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키스할 때 278개 군락의 박테리아를 주고받지만, 이 중 95%는 몸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하면 혀를 물릴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키스는 특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절실하고 현실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키스는 두 사람이 서로 기호, 취향, 접촉 같은 감각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다. 따라서 키스는 상대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찰을 잠재적으로 제공한다. 특히 여성에게 키스는 상대 남성이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육체적으로 건강한지를 평가하기 위한 결정적인 수단이다. 말하자면 키스를 나누는 두 연인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키스를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헌신적인지, 자녀를 갖기에 적합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열심히 단서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연인은 키스를 통해 서로의 운명을 입으로 봉인한다. 드디어 결혼생활이 시작되는데, 세월이 흘러 서로에 대한 새로움이 사라진 후에도 부부로 하여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애정에 계속 불을 지피게 해 주는 것 역시 키스다. 키스는 포옹이나 애무와 더불어 우리 몸속에서 배우자에 대한 애착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그리고 떠나는 순간에도 입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키스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키스를 통해 감각적으로 깨어나고 사랑을 배우고 또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즘 이른바 키스방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우리가 키스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친숙함이나 자발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 우려의 마음도 크다. 이제 끝으로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평소에 입안에서 혀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바람직할까? 혀끝을 말아 입천장에 닿게 해 보자. 잠시 그러고 있으면 뇌파가 안정되고 기분이 달라지고 금방 입안에 단 침이 가득 고인다. 자, 이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 연인의 붉은 입술을 향해 다가가 보자. 천천히, 부드럽게!

2012-03-15 최수철

요즘 학부모 노릇 쉽지 않아요

새 학년도를 맞이하여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는 '학부모'로서 새롭게 탄생한다. 중등학교 학부모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역할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는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학부모가 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긴장하기도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은 자녀를 키울 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자녀교육에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학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학교에서 요청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부모들은 한편으로는 학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스스로 높은 기대를 가지고, 무언가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학부모가 스스로 기대하거나 밖으로부터 요구받는 역할들은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공부에 단순히 도움을 주는 '학습도우미'의 역할을 넘어서서 자녀들에게 적합한 교육을 계획하고, 다양한 학습자료 중에서 적절한 것을 가려내는 '학습설계사'로서 역할하고자 한다. 특히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교육현장의 변화와 더불어 금년 3월부터 주5일제 수업의 전면적 시행은 학습설계사로서 학부모의 역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단위학교 의사 결정에의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학부모들은 이제 소극적으로 학교의 요구에 응하는 수준을 넘어 학교운영과 학교교육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학교가 개방화되고 민주화되면서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후견인으로서 교육 전반에 관한 학부모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학부모 권리 주창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고도 하고, 또 그렇게 하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예컨대, 체벌금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학부모들이 있듯이, 그들은 자녀들이 보다 좋은 교육여건에서 학습자로서 존중받으면서 질 높은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요구한다. 오늘날 학부모의 역할은 이렇게 가정에만 한정되지 않고, 단위학교와 사회전체로 확장되고 있다.이렇게 학부모들은 안팎의 기대와 요구에 의하여, 과거에 비해 '짐이 더 무거워진 학부모'로 바뀌며, 학부모 노릇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왜 그런가? 아마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변화하는 학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면 경청에 앞서 큰 소리로 야단만 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자녀가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복잡한 대입요강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학부모 노릇하기 어렵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하지만 이러한 어려움과 부담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학부모들에게만 맡겨놓을 것은 아니다. 변화된 학부모로서의 역할 수행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지원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 인식에 더해 학부모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의 학부모 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찾아가는 학부모교실'과 같은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은 자녀를 돌보거나 학부모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부부 모두 일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교육 프로그램 제공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협력하여 학부모들이 자녀를 돌볼 수 있고, 학부모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환경적,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주5일 근무제나 근무시간의 탄력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필요시 적절한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은 학부모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고, 학부모의 도움은 학부모의 역할 수행 역량 강화에 의해서 가능하다"라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12-03-09 김성열

적반하장의 계절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전화를 얼마 전 받았다. 중국 말투가 조금 섞인 남자가 서울검찰청이라고 말하면서 보이스피싱 관련으로 내 명의가 도용되고 있으니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중국동포가 한국 경찰관으로 특채됐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고 해서 진짜일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 것이라는 걱정뿐 아니라 보이스피싱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호기심에서 전화를 끊지 않고 오랫동안 통화하게 되었다. 통화가 길수록 사기라는 생각이 더 들게 되었다. 한참 지난 후 전화 속의 남자는 중국동포 사투리의 욕설과 아마 중국어 욕설인 것 같은 알 수 없는 말로 고함을 질렀다.그 이후 보이스피싱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보이스피싱에 대해 조롱하고 장난친 실제 녹음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역관광'이라는 네티즌 은어로 부르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크게 당하는 경우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필자의 경우엔 상대를 조롱하는 역관광까지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세히 반문했던 것뿐인데, 심한 욕설을 듣고 나니 황당하였다. 살인 미수이든 사기 미수이든 성공하지 못한 범죄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필자를 속이려고 했던 그 남자는 필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될 뻔했던 필자에게 그 남자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심한 욕을 했다. 아마 그 남자는 필자가 자기를 우롱했고 아까운 시간도 낭비시켰다고 생각하여 욕한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도적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보상 심리나 기대 심리가 있었던 도적은 도적 행위가 실패했을 때 매를 든다.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그 나쁜 행위로 자신이 불명예를 안기 때문에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보상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에 나쁜 행위는 그 좌절감을 통해서라도 처벌을 받게 된다.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전승연합에 편들었던 이탈리아는 동맹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좌절감을 주었다. 그 좌절감은 배신한 이탈리아도 겪었다. 전리품 배분에 있어서 큰 몫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배신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보상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탈리아의 좌절감은 극우정권을 등장시켰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함께 패전국으로 전락하였다.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행위도 더 잦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입장에선 자신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난에는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봇짐 내라 한다'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이 배은망덕했거나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종 평가에서 어떤 공개되고 일관된 원칙에 의해 탈락된 사람 가운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객관적 지적에 대해 적개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다. 반대로 자신이 편파적으로 좋게 평가받았을 때에는 정당하게 평가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처럼, 좋은 마음과 능력 없이 권력자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누린 사람도 있다. 훌륭한 능력도 없고 착한 마음도 없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들을 중용한 권력자의 책임도 크다.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와 금액이 작년에 역대 최대였다고 금융위원회는 밝혔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돈을 사기범에게 잘못 보냈더라도 바로 인출되지 않도록, 또 피해자가 카드대출금을 신청 즉시 받을 수 없도록, 또 공공기관 전화번호를 발신자로 해서 피해자에게 전화 거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대책 등이 곧 실시된다고 한다. 사기범이 본색을 숨길 수 없도록 또 피해자가 일순간 속더라도 복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직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순간적인 화장발에 속지 않도록 허상이 아닌 실상을, 즉시가 아닌 시차를 두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유권자뿐 아니라 권력자의 후회 없는 판단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직을 남에게 베푸는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도록 공직에 대한 엄격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2012-03-01 김재한

'국격'(國格)과 외교

현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국격'이다. '인격'(人格)이 사람으로서의 됨됨이 즉, 사람으로서의 품격(品格)을 말한다면 '국격'이란 '국가로서의 품격'을 의미한다. 별로 쓰이지 않던 '국격'이라는 단어가 현 정부 들어서 빈번히 쓰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만큼 국가의 품위를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이 대통령은 G20 회의를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기회로 삼자고 수차례에 걸쳐 역설했으며, 청와대는 G20회의를 앞두고 '모든 정부 부처에 국격 향상' 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지시했었다. 또 이 대통령은 2월14일 국무회의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한미FTA 폐기와 관련해 미국대사관을 찾아간 것에 대해 "과거 독재시대도 아니고 외국 대사관 앞에 찾아가서 문서를 전달하는 것은 국격을 매우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으니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품위없이 후진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처럼 국제사회에서 비난받을 일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한덕수 주미대사가 2월16일 돌연 사의를 표명한 후 회의에도 참석지 않고 미국으로 급히 돌아갔다. 한 대사는 재외공관장 회의기간인 2월24일 기자간담회 일정도 잡아놓은 상태였다. 전례없는 일이다. 외교적 상식과 관례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속된 말로 대한민국은 질서나 규칙이 없는 나라가 돼버렸다. 외교는 '의전'(protocol)이다. 쉽게 말해, 품위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대사는 정부를 대표하며, 국가원수를 대신하는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얼굴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간 관계를 담당하는 창구인 외교관의 거친 행동이나 막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웃으면서 얘기를 해야한다. 외교가 잘못되면 그 다음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할 때 '외교적 발언'을 한다고 얘기한다. 상대방의 말을 거절할 때도 "깊이 생각해 보겠다"라고 얘기하는 거와 같다.한 대사가 귀국하고 이른 시일 내에 후임 대사를 지명해도 후임자는 곧바로 부임할 수 없다. 후임자는 미국 정부의 아그레망(agrement)이라는 사전 동의절차를 비공개로 받아야 한다. 대사임명은 한국정부에서 하지만 그를 대사로 받아들이느냐는 해당국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대통령에게 직접 신임장을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사로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로 인해 일정이 바쁘면 며칠 아니 몇 달이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절차는 서둘러도 최소 1개월 이상 걸린다. 일반적으로 대사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후임자에 대한 아그레망을 상대국에 요청한다. 그리고 해당국 외무성에 귀국을 통보하면 상대국 외무장관은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이임식 행사와 훈장을 수여한다. 그리고 재임기간 친분을 쌓아온 주요 인사들에게 이임인사를 하게 된다. 교민들을 포함 주재국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과 이임식 행사와 환송연을 통해 양국간의 결속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외교적 관행에 속하는 일이다. 소위 외교적 품위라고 할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체적으로 지켜지는 일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소위 선진국들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구겨버리는 행동은 말그대로 '국격'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대사의 경질은 사전에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인선 및 교체 결정, 발표가 이뤄진다. 더구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이른바 한반도를 둘러싼 '4강' 대사의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한덕수 주미대사의 경질은 국제관례를 고려치 않는 후진국 또는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무역협회장 후임이 얼마나 급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 이제 우리의 외교도 선진국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정말 '국격'이 필요할 때다.

2012-02-23 송기도

나는 꿈을 꾼다, 고로 존재한다

소설가 스티븐슨은 우리가 밤에 꾸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밤새도록 환하게 불이 켜진 자그마한 두뇌 극장에서 펼쳐지는 게 바로 꿈이다. 그 공연의 기획은 소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들의 작품이 너무도 생생하고 감동적이어서, 어느 문학 작품보다도 더 흥미진진하다."꿈은 재미있다. 그러나 또한 꿈은 엉뚱하고 무섭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삶에서 꿈처럼 날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신비와 불가해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도 달리 없다. 물론 고대로부터 인류는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꿈을 왜 꾸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그 중에는 우리가 잠든 상태에서도 뇌는 깨어 있는데, 꿈이란 수면 중에 뇌의 움직임을 우연히 자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그러나 꿈의 해석을 통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행동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이 일반적인 경향이다.물질적인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꿈과 관련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꿈의 결핍이 마음의 병을 유발한다고 한다. 오로지 꿈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심리적 배출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꿈의 결핍은 곧 꿈의 중요성을 무시할 때 생겨나는 자연스런 결과다. 꿈을 풍요롭게 하려면 밤에 잠자리를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밤의 세계는 중요하다. 논길에 가로등을 설치하자 이삭이 패고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동물원에서는 보안등 불빛으로 동물들이 수태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낮과 밤이 서로 잘 어울릴 때 비로소 우리의 하루가 완성되는 것이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바로 꿈이다.관심을 가지고 대하고 보면 꿈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간혹 무의미해 보이는 꿈도 있지만, 그것은 밤의 심리 세계가 내보내는 수수께끼를 해독할 만한 감각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고, 그 메시지가 곧 꿈이다. 어떤 때에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불쾌한 꿈이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꿈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 할 일은 아니다. 꿈은 나의 편이다. 어찌 보면 꿈은 통제할 수 없는 야생마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나는 꿈의 주인이다. 꿈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잠은 몸을 쉬게 하고, 꿈은 마음을 쉬게 한다. 나는 꿈이 이를테면 우리 마음의 리셋 버튼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마음속에 맺힌 부분을 풀어주거나 산만하게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정리해준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단단한 매듭이 끊어지기도 하고 느슨한 부분에 과도한 힘이 가해지기도 한다. 꿈이 우리에게 행복하고 우호적으로만 경험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그렇다면 우리가 꿈과 좀 더 친숙해지고 우리 내면에서 꿈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 지금도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다만 나는 예술이 꿈과 무척 흡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갖가지 예술 장르의 작품들은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꿈을 경험하게 한다. 달리와 마그리트의 그림, 사티와 드뷔시의 음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꿈과 예술은 삶의 불가사의함과 신비로움을 드러내면서 그로부터 아름다움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에 영혼의 정화 능력이 있듯이, 나는 꿈 또한 그러하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흔히 네 꿈은 뭐냐고 묻는다. 그런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묻는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희망어린 삶의 목표를 '꿈'이라고 하고, 밤에 겪는 환몽도 마찬가지로 '꿈'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은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에서 좋은 꿈을 꾸는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꿈의 그 두 가지 의미로 나 자신에게 낮게 되뇐다. '나는 꿈을 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012-02-16 최수철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이제 곧 새 학년도와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 무렵이면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닐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매우 궁금해 한다. 특히, 학교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학부모들은 마음에 드는 학교를 선택하고 자녀가 다닐 학교가 결정될 때까지 노심초사해 한다.어떤 학교를 학부모들은 선호하는가? 학부모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학교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학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없는 학교,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에 위치하면서도 대학 진학에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교 등등일 것이다. 이렇게 학부모가 마음에 들어 할 학교들은 한마디로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여건이 비슷한 주변의 학교들과 비교할 때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에는 학생의 특성, 지역사회 여건, 가정환경, 학교의 특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이들 요인이 잘 어우러진다면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는 분명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루어진 학교 효과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좋은 학교는 다른 요인(예:학생특성, 가정환경, 지역적 특성 등)이 비슷할 경우에, 학생들이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경우보다 높은 교육적 성취를 내도록 만드는 학교이다. 학부모나 학생,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은 교육적 성취가 높은 좋은 학교에 대하여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공부하는 습관과 기초적인 학력을 튼튼하게 길러주기를 기대하고, 그러한 기대에 학교가 부응하면 좋은 학교라고 여길 것이다. 학부모들이 볼 때, 이렇게 공부에 대한 제대로 된 태도를 길러주고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학교는 분명 좋은 학교이다. 학생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좋은 학교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를 중요시하면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 또는 개발해 주려고 노력하는 학교다. 학생들은 교과 공부를 통한 지적인 계발을 소홀히 하는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적인 계발을 경시하면서 다른 것을 잘하게 하는 학교는 사실상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적 공부를 소홀히 하는 학교들은 그들 학교의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낮은 이유를 학생들을 전인적으로 교육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적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전인교육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전인이란 지·덕·체가 균형있게 발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좋은 학교는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할 수 있는 학교이다. 선생님들은 전시성 행사를 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학생들의 교육을 함께 의논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학교, 학생들과 상호작용이 활발하고 가르침의 결과가 학업성취도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학교를 좋아한다. 선생님들은 이런 학교에서 자신들의 학생들과 인격적 교감을 하며, 최선으로 그들을 돌보려고 애쓰면서 머물고 싶고 근무하고 싶어한다. 좋은 학교는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 수준을 높일 뿐만 아니라, 가정 배경 등에 따른 학생들 간 학업성취의 차이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가정이 어려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여도 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통하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른바 학교를 통하여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잠재적 능력이 좋은 학교의 교육을 통하여 보다 더 계발되기 때문에 학교 이외의 교육에 덜 의존하게 되어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좋은 학교는 국가적 수준에서는 한정된 재원으로 국가가 기대하는 교육목표의 달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때문에 교육투자의 효율성을 높인다.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명감을 갖고 다함께 뜻을 모아 '좋은 학교 만들기'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2012-02-10 김성열

정당들의 '신장개업?'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요즘 부쩍 늘었다. 여러 정파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적이고 규범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실상은 2012년 4월 국회의원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을 위시해서 여러 정파들이 더 나은 장사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재정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당들이 당명, 강령, 공천후보 등을 바꾸려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더 받기 위한 행위이다.여기서 장사로 표현했다고 해서, 필자가 정치행위를 경멸하는 것도 아니고 또 판매행위를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마케팅으로 대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거야말로 국어에 대한 멸시이다. 유권자 표를 끌어들이는 정치적 행위가 조삼모사(朝三暮四)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권자를 만족시킨다면, 정치공학이라고 불리든 정략이라고 불리든 이러한 행위는 민주주의와 부합된 것이다. 즉 만족하는 유권자가 많아질수록 또 유권자의 만족이 단기간에 머물지 않고 지속될수록 좋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권자 표 획득 행위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각 정파가 추진하는 정치마케팅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의외로 정치권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치인들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떨어져서 정치권을 바라보면 그 정치마케팅의 결과가 더 잘 보인다.정당을 음식점에 비유하면, 유권자는 손님으로 비유될 수 있다. 각 음식점(정당)은 더 많은 손님(유권자)을 받으려 한다.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던 음식점에 갑자기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그 음식점은 식탁 배치를 바꿔본다. 손님의 동선을 감안하기도 하고, 더러운 주방이 노출되지 않게 또는 반대로 깨끗한 주방이 노출되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풍수지리 원칙에 의해 인테리어 배치를 바꿔보기도 한다. 메뉴를 단순화시키거나 아니면 거꾸로 다양하게 개발하기도 한다. 또 종업원 더 나아가서는 주방장을 교체하기도 한다. 정당도 공천과정, 정책 변경 및 개발, 당직 교체 등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정당 지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음식점 매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와 동일한 논리로 유추할 수 있다.음식점(정당) 인기가 올라가지 않을 때에는 기존 음식점(정당)을 완전 폐업시키고 같은 위치에 새로운 음식점(정당)을 개업하기도 한다. 이름이 바뀌면 과거와의 단절은 조금 더 쉬워진다. 새로운 당명의 사용 여부는 과거 당명의 브랜드 가치, 즉 그 당명에 충성적으로 투표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지지자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당명이 가져다 줄 지지자의 수도 계산해야 한다. 물론 단순 지지자 수보다 경쟁정당과의 상대적 지지자 수를 계산해야 한다.음식점의 기존 위치가 소비자들이 더 이상 몰리지 않는 동네라면 그 음식점을 다른 동네로 이전하기도 한다. 좌 클릭이든 우 클릭이든, 정당의 정책 추진 방향을 바꿀 때에도 새롭게 얻을 지지자의 수와 이탈할 지지자의 수를 비교해야 한다.일반적으로 말해서, 좌우나 보혁의 기준으로 전체 유권자들을 배열할 수 있을 때 우파정당은 좌로, 좌파정당은 우로 움직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중간투표자정리(median voter's theorem)가 말하는 대로 중도의 위치가 유리한 것이다. 미국의 양당제가 유럽의 다당제보다 더 중도로 수렴하고 있다.우파정당의 좌 클릭과 좌파정당의 우 클릭이 자신에게 유리하려면, 몇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유권자들을 배열할 때 좌우나 보혁의 기준 외에 감안해야 할 기준이 있는지, 정당의 입장과 어느 정도 일치해야 유권자들이 투표하는지, 각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제3의 정당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인지 등에 따라 각 당에 유리한 위치는 달라진다.시장조사를 하지 않거나 엉터리 분석만 믿고 개업했다가 망한 음식점은 부지기수다. 하물며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당명이나 정책이념을 변경하거나 고수하면 군소정당화, 심하게는 정치적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정당에 차~암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아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2012-02-02 김재한

석패율제와 꼼수정치

지난 1월17일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정치개혁특위를 열어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석패율제는 각 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할 때 지역구와 동시 출마한 중복 입후보자로 명단을 작성하여 이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다. 지역구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 주는 것이다.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도 민주당 등 야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석패율제가 지역주의 완화와 한국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까? 지금도 각 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를 작성할 때 취약지역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호남 출신을, 그리고 민주당도 영남 출신을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시키고 있다.원래 석패율제는 2000년 16대 총선때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제안했었으나 당시 한나라당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영남지역 기반을 잠식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석패율제를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런데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강원도지사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어도 당선되고, 민주노동당이 영호남에서 선전하는 상황이 됐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도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존재하지만 어느 정도 완화된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했고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진보정당과 아무런 논의없이 한나라당의 손을 덥석 잡았다.대부분의 정치선진국들은 석패율제가 갖고 있는 비민주성 때문에 이를 외면하고 있고 독일과 일본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정당명부비례제를 택하고 있는 독일은 정당에 대한 투표가 중심이고 지역구 선거는 보조적이다. 유권자는 당의 정강과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하기 때문에 석패율제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과거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이 당선됐던 대선거구제에서 현행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당의 중진들이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것이 석패율제이다. 일본에서조차 '계파정치의 산물'로 비판받으며 구시대적 족벌정치를 더욱 강화시켜준 것이 일본의 석패율제이다.지역주의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의 석패율제는 첫째, 유권자에 의해 심판받고 낙선한 정치인을 다시 당선시킴으로써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유권자의 정당한 선택을 왜곡시킨다. 둘째, 궁극적으로 신진정치인의 진출을 막고 유력 정치인들의 당선을 보장해주는 보험용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셋째, 영호남지역의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짐으로써 비례대표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을 제한하는 것이다.새로운 각오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혁신과 개혁을 강조하며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왜 구태의연한 방식의 정치에 동의했을까? 민주통합당 중진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한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지역구도를 넘기위한 선거제도로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최선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차선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차악은 석패율제, 최악은 현행대로 순 아닐까요?"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국회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중선거제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차악으로 석패율제라도 해야한다는 궁색한 변명이다.왜 4월 총선 이후에 구성될 제 19대 국회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선거법을 만들려하지 않는가. 왜 쫓기듯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법을 바꿔야 하는가. 이는 마치 시합을 앞두고 게임룰을 바꾸는거나 다름없다. 그런 이상한 게임이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리라 생각하는가. 지난 수십년간 한국정치 발전의 발목을 잡아왔던 지역주의 정치를 해소하기위한 올바른 개혁이 몇 개월 늦어지면 어떤가. 개혁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진정성이나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왠지 '꼼수'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2012-01-26 송기도

법정의 의자와 모래시계

지난해에 입적한 법정 스님은 땔감으로 쓰던 참나무 장작으로 의자를 만들고 그것에 '빠삐용의 의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속 주인공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게 인생을 낭비한 죄 때문이었듯이, 스님도 그 나무 의자 위에 앉아 혹시 자신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깊은 산속의 암자에서 명상과 참선을 하며 홀로 지내신 스님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경계를 해야 하는 마당에, 하물며 우리같은 속인들이야 시간의 속절없는 흐름 속에서 어찌 마음을 제대로 가다듬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는 대상이다. 우리는 시간에 의해 태어나고 시간에 의해 죽는다. 시간은 우리를 낳고 또 거두는 것이다. 어찌보면 살아 움직이는 건 시간 자체일 뿐이고, 인간 개개인은 그 시계의 숫자판 위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미세한 바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재는 작은 단위로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래시계 속에 들어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 해가 지날 때마다 365개의 모래 알갱이를 소모한다. 우리 발밑에서는 끊임없이 모래가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래가 남아있지 않게 되면 우리의 생체 시계는 완전히 멎고 만다.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가차없고 무자비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은 것만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란 무척 상대적이다. 뇌 의학과 관련된 임상보고서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례들이 발표되고 있다. 뇌 작동에 이상이 생긴 한 남자는 시간의 흐름을 남들보다 더 빠르게 인식한다고 한다. 때문에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갈 때, 그 찻잔이 입을 향해 달려드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뇌의 해마 조직에 손상을 입은 한 남자의 경우에는 기억이 15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시간의 역사를 감지하지 못하고 15분이라는 영원한 현재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렇듯 특별한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간이 항상 물리적으로 균질하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뭔가에 몰두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고통스런 상태에 빠져 있으면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느리게 흐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때 시간의 흐름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달리 말해 우리는 매순간 행복해야 하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생은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닐 터이다. 따라서 시간을 항상 너무 빨리 흐르게 하거나 혹은 너무 느리게 흐르게 하는데 의식적으로 집착해서도 안될 것이다. 마라톤이나 자전거 경기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를 페이스 메이커라고 부른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도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다. 우리는 움직이는 시계라고 부르는 페이스 메이커의 감각을 익혀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또 때로는 적절한 리듬으로 흐르게 할 필요가 있다. 며칠 전에 겨울 산행을 하다가 꽝꽝 얼어붙은 폭포를 보았다. 그러나 그 두툼한 얼음층 안에서는 작은 물줄기가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울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제 곧 날이 풀리고 봄이 오면 얼음이 녹아 거침없이 물이 쏟아져 내리리라. 내 모래시계 속의 모래도 폭포수처럼 빠르게 빠져 나가리라. 그러나 올해에 나는 그 빠른 물살속에서 멱도 감고 서핑도 하고 래프팅도 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내게 주어진 이 한 해의 시간이라는 재산을 가지고 적절히 소비하고 관리하고 또 투자도 하려 한다. 신년을 맞이하여 어느 날 책상위에 놓여있는 모래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에 문득 든 생각이다.

2012-01-19 최수철

학교폭력 예방, 타인존중 학습으로부터!

지난 해 12월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자살로써 자신의 생을 마감한 안타깝고 슬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의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도교육감들과 함께 학교폭력 대책을 의논하고, 언론 매체들은 연일 학교폭력의 원인과 실태, 대책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주장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문민정부에서부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현 MB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나서서 학교폭력 대책을 주문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심이 되어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세우는 등 매번 반복적 노력을 해 온 게 사실이다. 2004년에 제정된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도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 법률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ㆍ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률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 단위학교 수준에서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학교폭력대책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정책 목표·방향을 설정하고,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 특별시·광역시·도에서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단위학교에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대한 방안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단위학교에는 전문상담실을 설치하고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학교장은 학생의 육체적ㆍ정신적 보호와 학교폭력의 예방을 위하여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교육을 학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하여야 한다.이렇게 법률을 제정하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 단위학교들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이 다른 동료 학생들에게 가하는 학교폭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일부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폭력 예방 환경을 제대로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신고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가해학생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는 체계가 우리 사회에 확실하게 구축된다면, 학생들이 폭력을 휘두를 엄두를 내지 않게 되고 학교폭력은 그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으로서 대구 중학생의 자살사건 이후에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대책으로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신고체계의 구축과 폭력에 상응하는 처벌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학교폭력 예방 환경의 조성은 가해학생들의 폭력적 행동의 표출을 억제할 뿐 그것의 내면적 원인인 공격적 심성을 없애거나 완화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공격행동에 대한 모방학습 연구들이 공격적인 폭력 행동이 벌을 받는 것을 본 아이들조차도 공격행동에 대한 모방학습을 하고, 특정의 상황에서는 폭력이나 공격행동으로 표출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방학습은 공격성의 형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모방학습은 공격성과는 다른 여러 마음의 형성에도 일어난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바로 이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학생들이 학교 내외에서 폭력적 행동과 공격성을 학습하는 기회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아끼는 마음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가정에서 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을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교장과 교사가 서로 존중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한다. TV 드라마 등의 등장인물이나 지도자 등 가시성이 높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약자를 무시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이 이렇게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와 행동을 통하여 공격성보다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학습하고 기르게 될 때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근본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012-01-12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