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소셜네트워크' 직접민주주의 불러 올까?

미국에선 지금 기존의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운동이 뉴욕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구호 아래 3주째 접어든 젊은이들의 데모는 잠깐 모였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은 아예 인근 공원에 노숙을 하며 데모를 하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불만을 기존 정당정치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전달된 정보에 따라 데모에 참석하여 그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의 남용과 탐욕, 월스트리트 파워에 반대하는 데모가 지난 9월 17일 뉴욕에서 시작되어 10월 2일 일요일에는 700명의 참가자가 도로 점거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런 취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보스톤 등 여타 대도시에서도 데모를 시작했다.지금 데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80년대 또는 9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내 왔고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소통에 익숙한 세대다. 부시 대통령 말기 때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에 직면한 젊은이들은 대학을 다닐 당시엔 비싼 등록금을 지불했고, 졸업 후엔 일자리가 없어 융자받은 부채에 허덕인다. 또한 직장을 찾기는커녕 인턴십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세대들은 지금 좌절을 경험하면서 낙담하지 않고 그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과거에는 이런 불만의 소리는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서나 술집에서 하는 토론 속의 불평으로 끝났겠지만, 이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불만이나 다양한 의견들이 인터넷에서 수렴되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데모 참가자는 온라인 조직을 통해서 돈, 음식, 담요 등을 기부받기도 하고, 새로운 참가자들도 모으고 있다.그 이전 세대들도 현실에 불만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로 실직한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집을 몰수 당한 경우도 많이 있다. 금융기관의 방만한 주택자금 대출로 시작된 경제 위기는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금으로 진정되었지만 정부지원이 주택상환금 감소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금융기관들이 CEO들의 경제적 희생 없이 직원 감소를 통해 이익금을 늘리려고 하는 전략은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아 왔고, 또한 전반적으로 미국 전체의 부가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쏠리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증대되어 왔다.상업분야에서는 이미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구매를 할 때, 가족, 친지, 친구 등 몇몇 지인의 사용경험이나 기업 또는 상인들이 보내는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소비자가,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 창구 덕분에 더 많은 판매처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 서적분야 판매에서 보더스라는 서점은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해버렸고 반스엔노블스라는 서점은 살아 남았지만 눅이라는 e북리더를 만들 만큼 인터넷 시장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대신 아마존 같은 온라인 기업이 생겨나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최근에는 월마트같은 거대기업과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시민운동은 지난 봄 아랍국가에서 억압적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절대적인 일조를 했다.미국의 경우도 특정 정당이 좋아서 지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두 당을 비교했을 때 덜 나쁘다고 느껴지는 당을 골라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어떤 이는 이 데모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한국의 경우도 안철수 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정당정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폭발적으로 단합하는 시대에, 만약 정당들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아 사라졌듯이 정당들도 기반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이러한 풀 뿌리로부터의 운동이 어디로 귀착할 것인가는 데모대와 정치인들에 달려있다. 운동권이 기존의 정치판에 불만을 토로하고, 기존 정치조직이 이를 반영하면 여론의 원활한 반영이라는 결과로 귀착할 것이다. 운동권이 기존의 정치조직에 기대를 걸지 않거나, 또는 기존 정치인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경우는 제3의 신 세력이 대두할 수 있다.

2011-10-06 이병수

조장(助長) 의 끝

가을이 익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들판은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논배미에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논이나 저 논이나 벼들의 키가 가지런하다. 이삭의 무게로 고개를 숙인 각도조차 한결같다. 문득 놀라움에, 내리비치는 햇살을 따라 하늘위로 눈길을 돌린다. 눈이 부시다. 태양과 하늘의 공평함에 눈이 부신다.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늘과 땅은 어떤 종류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더니 지금 들판에서 그 현장을 본다. 햇살이 고루고루 비치기에 벼의 키 크기가 저리 고르고, 하늘에서 뿌려주는 빗줄기도 이곳저곳이 두루같기에 이삭의 무게조차 저렇게 평등한 것이리라. 저 천지자연의 공평무사함에 기대어, 제 욕심만 채우는 자를 두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고 손가락질 했을 것이고 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라며 제 결백을 하소연하기도 했을 터였다.그러나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공평과 공정에 목마르다. 지난 해 난데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책이 초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 그러하고, 올 여름 느닷없이 안철수 현상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던 것도 그러하다. 안철수 현상을 두고, 좌파라느니 우파라느니 편을 가르는 분석들도 있었지만, 실은 유독 이 정권들어 심각해진 권력의 사유화와 공공성의 훼손에 대한 반발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문득 조장(助長)의 고사가 떠오른다. 옛날 중국 땅에 오랜 가뭄이 들었다. 봄에 심은 묘들이 크지를 못하고 말라 죽을 판이었다. 하루는 정신이 맑지 못한 노인이 들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서 "아이구, 힘들구나. 내가 묘를 키워주고 왔네"라는 것이다. 자식들이 놀라 들로 나가보니 묘를 키워준답시고 뿌리를 뽑아 올려, 온 들판의 싹들이 말라죽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다. 오늘날까지도 나쁜 짓을 도우는 것을 '조장한다'라고 쓰는 어투가 된 내력이다. 조장의 고사는 사사로움과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세상의 어려움을 '내'가 나서서 널리 바로 잡겠다는 설익은 영웅주의와 사물의 이치를 모르는채 덤벼드는 무지의 낭패가 이 고사속에 들어있다. 조장이 무서운 것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을 상대방에게 끼친다는 점에 있다. 지금 이 땅 도처에는 조장의 흔적들이 낭자하다. 흐르는 강을 막느라 억지공사를 한 탓에 끊임없이 관리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 눈에 띄는 조장의 흔적이요, 경제를 발전시킨다면서 재벌들만 배불려 이젠 국민의 복지를 그들 자선에 기대야 하는 꼴로 만든 것이 또다른 조장의 사례이다.듣기로 대통령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그 근로와 수고로움의 정체다. 그의 말투를 놓고 보면 짐작가는 데가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투가 그러하다. 이 말투를 두고 사람들은 그저 조롱조로 비웃고 마는데, 실은 대통령의 정체가 들어있는 말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속에는 오만과 무지, 곧 조장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다. 맹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비평한 바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오만한 말투와 낯빛이 권력자의 표정에 비치면 올바른 조언자들은 천리만리 떠나버리고 만다. 그 빈자리를 아첨하고 굽신거리며 아양 떠는 자들이 메우게 마련이다. 이 따위 아첨하고 아양 떠는 자들과 함께 한다면, 과연 나라를 잘 다스려보고자 한들 그게 가능키나 하겠는가?"'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말 한 마디 속에, 독선과 무지와 어설픈 영웅주의가 오롯하다.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껏 일한다고 자부하기에 안 되는 일과 잘못된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공공성을 훼손하는 이 정권의 행태도 실은 이 '나'속에 들어있다. 이 정권들어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이 내내 불법과 탈법을 기본으로 깔고있는 이유도 이 속에 들어있다. 나를 깨우쳐 공공성과 공정성을 함께 실현할 사람이 아니라, '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집행할 손이나 발과 같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장의 끝이다. 대통령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수고롭다는데, 국민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하다. 옛 이야기 속의 사태 역시 꼭 같았다. 노인은 피곤한데 그쳤지만, 들판의 묘들은 말라죽었다.

2011-09-29 배병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이상향으로 번역되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지은 소설책의 제목이었다. 그는 그리스어에서 두 단어를 차용해서 만들었는데, 그 뜻이 이중적이다. TOPIA는 장소, 땅이라는 분명한 뜻을 가지는데 비해, U의 의미가 이중성을 띤다. '유'라고 발음되는 그리스어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eu, ou가 다 같이 '유'로 발음되지만, eu는 좋다라고 하는 뜻이며 ou는 아니라고 하는 뜻이니, e와 o를 빼고 그냥 'u-topia'라고 하면, 좋기는 좋은데 이 세상에 없는 곳이라는 것이 된다. 그 책 속에는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의 유토피아는 위쪽에 그려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며,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정해진 입구에 도달해야 한다. 모든 출입을 감시하는 망루가 입구에 솟아 있고, 이를 통과하면 내부를 해자가 또 감싸고 도는데, 곳곳에 설치된 감시망루를 거쳐 섬의 가운데로 들어가면 이 땅을 다스리는 영주의 성채가 나타난다. 즉 한 통치자의 지배하에서 철저한 감시체계를 거쳐 안전을 담보 받는 세계가 유토피아의 모습이었다.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에 대단한 영향을 준 이 책은 급기야 신도시의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이윽고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한 신도시들이 아프리카 북부에서 스칸디나비아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세워졌다.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유토피아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시대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등장한 신도시 모두가 이상적 세계를 동경한 것이었으며 현대의 마스터플랜이라는 도시계획의 수법도 유토피아의 실현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현된 유토피아의 사회가 그야말로 이상향이었을까? 불행히도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범죄는 잘 계획된 도시에서 오히려 더욱 많아졌고 갈등과 대립은 전형적인 도시의 문제가 되었다.우리의 땅에도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은 많은 신도시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세워졌으나 많은 도시문제를 양산한 바 있다. 신도시는 그렇다 쳐도, 더 큰 문제는 오랫동안 고유한 삶터를 일구어온 우리의 옛 도시에 불기 시작한 재개발이라는 사업이었다. 우리의 마을은 서양의 도시와는 그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머리 속에서 유토피아를 그려서 평면 위에 실현한 도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산과 물이 만든 지리에 복속하며 일궈놓은 풍경이었으니 그 자체가 아름다운 산수화였다.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서양의 도시이론을 흉내낸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터가 유린당하고 만 것이다. 우리 옛 도시에 불현듯 등장한 아파트단지가 그 유토피아를 치졸하게 실현한 대표적 결과였다. 몇 채가 들어서든지 아파트 단지는 울타리를 치고 주변을 단절시켰으며 으레 몇 개의 출입구를 통해서 출입을 통제하고, 도시의 도로는 이 단지만 만나면 통과되지 못하고 둘러서 지나야 했다.결국 도시의 섬이 되고만 아파트단지는 다른 섬들과 부동산가치를 놓고 늘 대립하며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는 적대적 공동체였다. 더구나 이 땅에 지어온 아파트는 사실상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한 결과였다. 정치가가 몇 채를 짓겠다고 공약하고 건설자본은 이를 뒷받침하여 그 임기 내에 졸속으로 지어댔으니, 어디에도 우리들 공동체의 삶을 위한 담론이 없었고 건축의 시대적 정신도 없었다. 그 분별없는 유토피아는 오로지 스스로 폐쇄함으로 고립된 부동산공동체일 뿐이었다.유토피아에 반대되는 말이 있다. 지옥향 혹은 암흑향으로 번역되는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단어다. 1932년 알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이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타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는 철저히 통제된 사회가 바로 이 디스토피아다. 외부와 소통되지 않는 이 디스토피아의 세계 역시 애초에는 유토피아를 꿈꾼 사회였으니, 결국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와 같은 뜻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똑같이 폐쇄적 공동체인 까닭이다.얼마 전 서울에서 무상급식에 관한 투표가 있던 날, 서울의 최상류층이 산다는 어느 고층아파트 단지에서 투표참관인조차 출입을 거부당한 일이 발생했다.외부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사회의 통념과 법규마저 무시하는 폐쇄적 공동체가 벌인 희극이었다. 이 공동체의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무엇이든, 폐쇄공동체를 지향하는 한 그 결과는 비극일 게다.

2011-09-22 승효상

말랑말랑한 힘 소프트파워를 키우자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구글이 모토롤라와 합병하면서 IT코리아가 2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IT 강국으로까지 불렸던 우리 대부분의 SW회사들도 경영 악화로 워크아웃에 놓인 상태다. 업계는 이 모두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혼선이 빚은 결과라고 성토한다. SW 경쟁력의 핵심이 기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해 뒤늦게 뒷북을 치고 있지만 앞으로 이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키웠던 벤처기업이나 신지식인을 부추겨 세웠던 신화는 신지식인 1호였던 영화 용가리 심형래 감독의 좌절로 막을 내리고 말 것인가. 지금껏 소프트웨어를 지켜 온 기업들은 대기업들이 부족한 인력을 모두 빼가는 현실에서 할 말을 잃는다. 비단 IT 업계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현상일 것이다. 가깝게는 겉만 화려하게 지어진 미술관, 공연장, 무늬만의 오페라하우스 등 선진국과 비교하지 않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강정의 궁색함이 그대로 드러난다.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소프트웨어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왜곡, 변질되기가 일쑤다. 소설가, 화가, 작가, 발명가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진심어린 창작 지원이 없다. 때문에 창작자들이 겪는 척박한 현실은 양질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큰 호응을 끌고 있다거나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우리 공연물들이 국제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은 희망이다. 엊그제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수궁가를 보았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Achim Freyer) 프라이어가 1인 오페라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 스토리 배역을 나누고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어 판소리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결코 우리 힘으로 세울 수 없었던 정교한 무대와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져 판소리의 새 지평을 열어 보인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쉽게 알아듣기 힘든 사설이나 문화적 차이를 과연 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궁금하지만 신선하고 충격적인 말랑말랑한 작가의 힘이 느껴졌다.획일적이고 답습의 문화가 범람하는 우리 공연 풍토에서 예술이 창의(創意)에 넘치는 사회를 끌어가려면 창의력과 소프트웨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도처에서 펼쳐지는 예술행위들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게 할 것인가. 지난 7월 국립오페라단이 개최한 한 토론회에서 밝힌 자료에는 우리 창작오페라가 300편이 넘게 무대에 올랐지만 상설 레퍼토리로 정착된 작품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심각한 물음이 주어졌다.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일회성 공연에 그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이며 안이한 제작 방식과 지원 시스템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그 원인 규명이야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탁상공론에 그치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한계를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가 왔다. 창작의 원천인 작가의 창작 에너지가 변색되지 않도록 높은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저작권 횡포 등 고압적인 시각도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바야흐로 한류 덕분에 우리 국악을 비롯한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전통은 오래된 미래'라고 한다. 우리 것을 소재로 탁월한 문화상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인 함민복의 詩(시)에서처럼 '말랑말랑한 힘' 즉 소프트웨어의 파워가 절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라 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온 것처럼 문화계도 혁신적인 인물이 나올 수 있으려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총은 있는데 총알이 없다면 삭막한 소프트웨어 예산편성부터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스포츠의 힘이 유연성에 기초하듯 목에 힘을 주던 카리스마보다 한국인의 미소같은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이길 날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2011-09-15 탁계석

다양성은 왜 필요한가?

애플 최고 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서 서체를 공부했고 그것이 훗날 애플 컴퓨터의 아름다운 활자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 그는 서체 공부와 컴퓨터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잡스의 지식은 놀랍게도 훗날 애플 컴퓨터회사에 혁신을 가져왔다.이처럼 혁신은 기존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의 시도와 노력에서 생긴다. 따라서 혁신은 대부분 과거의 틀에 얽매이는 다수의 집단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히 추구하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산업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필요하다. 기존의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고집하면 정체된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역동적인 국제화 사회를 헤쳐가는 데는 힘들 것이다. 미국의 대학들도 이런 점을 생각하여 학생들을 교육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예전에는 미국 대학들이 역사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던 흑인들에게 보상해주는 차원에서 다양성(diversity)의 문제를 다뤘지만, 근래에는 다양한 배경 (인종, 성별, 소득, 종교 등 여러 측면)과 사고 방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살 것인가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이것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환경을 반영해서다.다양화는 항상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수들은 수업 중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도, 학생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백인이 대부분인 대학이나, 교수가 종신 계약 (테뉴어)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교수는 학생들의 수업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왜 자기와 다른 사고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나 불편함이다.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가슴이 설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미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아름답다고 평판이 난 곳에 여행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낯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또는 평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떻겠는가?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의 생각은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으면, 이치가 안 맞는 것 같고 억지를 쓰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서로간에 대화할 때 자기 생각만 외치고 상대방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뿐 절대 남의 생각을 진정으로 이해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미국과 한국에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인들은 한치의 양보없이 자신들의 선명성과 위대함 만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매스미디어가 다양한 후보와 그들의 생각을 비교 분석하는 교육의 광장을, 또한 여러 의견이 교류할 수 있는 대화의 광장을 제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독자 자신이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도록 복수의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구해야 한다. 또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직접 또는 인터넷을 통한 접촉을 통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사고 방식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치 후보자의 선거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를 현명하게 할 수 없고 감정적으로 호감이 가는 후보자에게 한표를 던지는 양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변화가 무엇이고 이것을 정치지도자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려면 기존의 관념틀을 벗어나서 다양한 견해에 접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우리는 자신과 상반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접했을 때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곰곰이 타인의 생각을 음미하기 보다는, 무시하거나 자신에게 편한 식으로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우리는 입에 꼭 맞는 것만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1-09-08 이병수

버선과 양말

천도교의 핵심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이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권력이 곧 하느님'으로 바뀌거나 '돈이 곧 하느님'으로 변질되는 순간, 어떤 종교든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한국 종교사의 교훈이다. 신라 제2대 임금의 왕호는 '남해차차웅'이다. 훗날 당나라 유학생 김대문은 차차웅이 곧 무당(巫)을 뜻한다는 기록을 남겼다(삼국사기). 신라 초기 임금님들은 무당이었다는 말이다. 하나 권력에 취하고 돈과 결탁한 무당들은 힘을 남용하다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으로 떠나자 신라땅의 해가 빛을 잃었다는 설화는 샤머니즘의 몰락을 상징한다(삼국유사).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한때는 개성의 대사찰에 속한 사병들이 시내에서 세력을 다퉈 전투를 벌일 정도였다. 조선의 건국 명분 가운데 하나가 권력화한 불교의 척결이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속에 불교 배척의 철학이 오롯하다. 이에 응대하여 승려 함허가 '현정론'이라는 저술을 통해 유불공존을 모색했지만, 때가 늦었다. 조선조 500년간 승려들은 천민 대접을 받았다. 조선은 유교국가였다. 조선 후기 고을마다 서원들로 넘쳐났다. 시골 선비들의 패악질에 지방 수령들이 곤욕을 치렀다. 흥선대원군이 600여곳의 서원들을 혁파하면서, "정녕 백성에게 해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일갈할 정도였다.지금 텅빈 채로 퇴락한 향교 건물이나, 먼지만 소복하게 덮어쓴 골짝구비의 열녀비·효자각·홍살문 등은 경직된 조선 유교의 폐해를 증거한다.새로운 종교나 사상은 '약한 고리'를 치게 마련이다. 조선말기 천주교는 천민들과 양반가 주부들 사이에 은밀히 퍼져 나갔다. 당시 양말도 함께 전래되었던듯, 푸른 눈의 신부들은 천주교를 양말에 비유했단다. 버선이 사람의 발에 꼭 끼어 발을 압박하는 반면, 양말은 누구든 신을 수 있는 신축성에 빗댄 것이었다. 버선이 계급과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는 유교를 상징한다면 양말은 양반상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천주교의 평등한 사랑을 상징한 것이다. 개신교는 일제하 3·1운동의 주축이었다.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옥살이를 치른 목사들도 드물지 않았다. 해방후엔 민주화 운동의 추동력이기도 하였다.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교회에서 은신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개신교는 눈부신 성장과 더불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초대형 교회들의 행태는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최근 초등학생들 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있었다. 결과에 다급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누군가 '밥 달라고 우는 경우는 봤어도, 밥 주지 말자고 우는 꼴은 처음 봤다'는 촌철살인을 날렸다. 진실은 복잡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의 목사들은 이 투표에 편파적으로 깊숙이 개입하였다. 운동이 금지된 투표일 아침에조차 투표 참여를 유도할 정도였다. 종교가 특정한 사안을 두고 현실정치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권력과 결탁하는 일이다. 불교쪽에서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옛날에는 종교가 사회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이 땅에서 명멸하는 종교들의 이력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주역의 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특정 종교가 왕이나 권력자를 배출할 때나, 사람이 아닌 돈과 권력을 숭배할 때가 실은 몰락의 징후다. 제 종교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기고만장과 안하무인의 '바벨탑'을 높게 쌓을 때, 추락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라는 것이 이 땅 종교사의 교훈이다. 무당이 사라진 굿터를 다져서 사찰이 들어섰고, 폐사지에 향교와 서원이 세워졌다. 그리고 퇴락한 향교의 터에 성당과 교회가 들어섰다. 그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초창기 양말의 정신, 그러니까 사람의 발을 감싸던 신축성과 평등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즉 사람이 버선에 발을 맞추는 전도된 사태로 뒤집어지는 순간, 어떤 종교든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기독교는 '성경'과 예수의 본래 정신이 무엇인지를 다시 헤아려야 할 때다. 눈앞의 힘과 권력이 한낱 신기루와 같은 것임은 '성경'에서도 누누이 경고하고 있지 않던가!

2011-09-01 배병삼

'스펙터클의 사회'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행사 중 하나인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해마다 내거는 주제 또한 세계에 던지는 파장이 크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열린 베니스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라는 문구였다. 나도 그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였지만, 이 주제를 접하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내가 아는 한, 서양건축사에서 윤리라는 단어는 그리스시대 이후에 사용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윤리는 우리 선조들의 덕목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늘 자연과 건축과 인간 간의 관계를 염려했으며, 집은 그 관계를 잇는 고리의 역할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집의 형태는 기와집 초가집 뿐이었지만 내외부의 공간은 주변의 조건에 따라 변화무쌍하였다. 그러나 지난 시대 우리는 근대화가 서양화인 줄 착각하게 되면서 이 아름다운 윤리의 방식을 추방하고 서양이 일러준 미학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데, 이제 서양은 윤리를 끄집어 내며 새 시대 새로운 화두로 삼는다고 하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양건축사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신전과 성당, 왕궁이나 별장, 경기장, 공연장 등 기념비적 건축물의 나열이며, 이들 건축에 대한 형태와 비례, 장식이나 재료 등에 관한 미학적 해설로 일관한다. 즉 한 건축물 자체만의 존재 방식과 그 역사가 서양건축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건축물이 스펙터클할수록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며 그 시대의 중요한 성취로 기술되는 게 당연시되었다.도시 또한 마찬가지여서, 스펙터클한 건축물을 곳곳에 배치하고 이들을 대각선의 각도로 이어서 가장 스펙터클한 광경을 확보한 곳에 그 도시를 지배하는 자의 궁전을 두면, 이게 바로 봉건시대의 도시가 된다. 르네상스시대 전 유럽에 걸쳐 이상도시란 이름으로 유행처럼 지어진 모든 도시들이 그러했으며, 베르사유를 필두로 한 바로크의 도시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현대의 신도시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중앙로가 있고 중앙공원 중앙광장 그리고 중심지구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현대도시라면 이들 또한 봉건적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증좌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모두가 스펙터클의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서양은 이제 그 스펙터클의 역사를 폐기하자며 윤리의 사회를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20세기 사회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한 프랑스 철학자 기드보르는 그가 쓴 '스펙타클의 사회'란 책에서, 스펙터클은 종교적 환상의 물질적 재구성이라고 하며 우리 진실한 삶을 시각적으로 부정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게 받아들여졌을까? 문제는 우리의 사회다. 서양문명의 파편에 종속되어 윤리의 건축과 도시를 팽개친 지 오래지만,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추종은 이미 도를 넘었다. 특히 민선지방자치시대가 도래한 다음,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세우기에 혈안이 된 민선단체장들의 스펙터클한 풍경 만들기를 위해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곳곳에 랜드마크, 테마공원, 혁신도시, 기업도시, 무슨 프로젝트 등으로 도시의 풍경은 괴기하게 되었고 우리의 아름답던 산하와 마을들은 죄다 삽질과 분탕칠로 미증유의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달 어느 중앙 일간지에서 80년대 이후 조성된 건축물 중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 각각 다섯 장소에 대해 식견있는 건축가와 건축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가장 나쁜 다섯 예로, 광화문광장, 청계천복원, 예술의 전당이 각각 상위에 선정되었다. 모두 역대 정권과 단체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스펙터클의 대표적 보기였다.기드보르는 다시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펙터클은 기만과 허위를 공통적 기반으로 서며, 역사와 기억을 마비시키는 현존하는 사회조직이다. 그래서 서양은 이제, 그들이 만드는 도시와 건축의 목표는 미학이 아니라 윤리라고 했으며, 이미지가 아니라 이야기여야 한다고 했고, 완성된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보이는 것 만들기에만 올인하는 자체단체장들이 곱씹으며 들어야 할 말 아닌가.

2011-08-25 춘추칼럼

노래방과 열린 합창의 차이

우리가 즐겨 찾는 노래방 열기가 머지않아 국민합창운동에 옮겨 붙을 태세다. 각지에서 많은 합창경연대회가 열리고 방송에서도 '남자의 자격 합창단'에 이어 '청춘합창단'이 오디션을 마쳤다. 청춘합창단 응시자들의 제 각각의 사연을 보는 시청자의 눈시울이 뜨겁다. 그 뿐인가. 가수가 되고 싶어 수만 명이 장사진을 치는 광경이 방송의 전파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독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가무(歌舞) 민족의 원형질(DNA)을 타고난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노래방 형태로 상륙한 이후 가공할 속도로 확산되었고 음주 후에 즐기는 국민 오락이 된지 오래다. 숨 가쁜 산업화, 근대화를 거치면서 노래방은 스트레스 해소의 탈출구요 가장 수월한 사교 공간이었다. 그런 '노래방'은 한국인 특성인 '폭탄주'와 함께 '빨리 빨리'의 속성을 가장 잘 빼닮았다.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을 잘 갖춘 소통 구조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해 G20정상회의를 치렀고, 국가브랜드를 생각하는 고급화, 선진화의 길목에 서서히 일상 소비문화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우리가 밖에 내놓은 한류문화의 반응에 우리 스스로 놀라면서 자긍심과 함께 그동안 획일적으로 답습해 온 것들을 새로 보고 보다 양질의 문화 트렌드를 찾아야 할 때다.우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room)문화' 강국이다. 유럽 사교문화의 상징인 '살롱'이 들어 왔지만 본질이 왜곡된 채 '룸살롱'이 되어 버렸다. 전화방, PC방, 찜질방, 키스방, 온통 밀폐된 방 천국이고 경찰과 담당 공무원들이 불법 단속을 하지만 업주들의 신출귀몰한 아이디어엔 늘 박자가 늦다. 사실 군사정권 시절 '댄스' 역시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져 오다 '스포츠댄스'란 이름으로 사면 복권된 후 지금은 세상의 모든 춤을 추는 자유시대를 맞지 않았는가. 수준 높은 문화는 낮은 문화를 끌어올리는 강한 힘이 있는데 일단 맛을 보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오랫동안 좋은 그림을 벽에 붙였다 떼면 그 때 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미의 경험을 통해 눈이 높아지면 저급한 것에 등을 돌리게 되는 이치다.이런 원인적 처방을 하면 사회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름다운 환경에서는 범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 역시 미(美)에 담겨진 자정능력 때문이다. 마음이 고상하고 고급한 정서를 많이 느끼면 내면의 것이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크게 발산(發散)과 승화(昇華)의 두 개념이 있는데 전자는 스포츠, 오락 개념이고 후자는 내면에 호소하는 예술의 몫이다.합창은 남의 소리를 들으며 자기 소리를 억제해서 좋은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인격적인 존중이 없으면 연습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합창이 발달한 사회는 그만큼 성숙할 수 있고 네트워크 능력을 올릴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은 솔로(Solo)엔 약하지만 모여야 하는 합창(Chorus)에 강해 수적으로도 엄청나다. 양질의 문화는 체험의 산물이고 배우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학창시절 합창반을 못잊어 직장인이 되어서 다시 동아리를 결성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의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사실 술에 취해서 부르는 노래 보다 하모니 합창을 해보면 왜 이토록 멋진 노래를 모르고 지내 왔을까 후회한다고 한다. 국민들 모두 1인(人)1기(技)의 기능을 배우면 삶도 윤택해지고 즐기는 방식도 달라진다.우리사회가 선진화되려면 자기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하모니를 융합해 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가들도 단상을 점유하거나 해머로 문을 따는 돌격대 이미지 대신 위트와 유머의 세련된 멋을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외환위기(IMF) 때 실의에 빠진 아버지들을 위해 '아버지합창단'을 창단했는데 지금 10개가 넘는 합창단이 아름다운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히틀러는 전후 독일의 통합을 합창으로 이뤄냈지만, 우리는 노래방 선수(?)들이 열린합창 공간으로 이동한다면 더 멋진 능력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밝아지면 튼튼한 문화강국이 되지 않겠는가. 잘 지어진 공공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 밤에는 쉬는 예식장도 합창의 꿈을 펼칠 멋진 공간이 아니겠는가.

2011-08-18 탁계석

우리와 미국인은 어떻게 다른가?

며칠 전 과천시 공무원 네 분이 필자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벌링턴시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하여 오셨다. 앞으로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한국의 고등학생, 지도교사 등이 내년 1월부터 벌링턴에 오게 될 예정이다. 앞으로 국제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타 도시들도 과천처럼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미국인과의 접촉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인과 미국인이 어떻게 다른가 필자가 평소에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 본다. 첫째는 친절이다. 대체로 미국인은 사람을 마주치면 동네에서든 일하는 곳에서든 모르는 경우에도 웃는 얼굴로 지나가거나 또는 "하이"라는 말을 던진다. 남녀 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건넨다. 특히 작은 도시로 갈수록, 또한 북부보다 남부에서 그렇다. 미국인이 친절하다고 해서 한국에서 생각하는 친한 친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가는 나중에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친절은 이 사람들의 몸에 밴 습관이고 문화이지, 상대방에 대하여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표시는 아니며, 또한 호감을 갖고 있다 해도 공과 사는 분명하게 선을 긋기 때문에 웬만한 청탁은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실망하기 쉽다. 둘째는 프라이버시다. 이곳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호기심이 있겠지만 물어보는 것을 꺼린다. 특히 결혼관계나 재산관계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는 것은 실례다. 한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는 집이 얼마나 큰지, 가격이 얼만지 스스럼없이 묻는 경우가 있다.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언제 할 것인지 묻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여행이나 취미, 영화나 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다.셋째, 초대의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는 손님을 초대했을 때 음식을 얼마나 잘 차렸는지, 접대한 술이 얼마나 고급인지, 또한 손님들은 얼마짜리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지 등에 신경을 많이 쓴다. 미국의 경우는 초대받았을 때 맨손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주인도 거기에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이다. 미국 사람들은 모여서 시간을 같이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 자체를 즐기며, 무엇을 얼마나 잘 차렸는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넷째, 초대에 대한 답례가 다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을 만날 때 과도할 정도로 대접을 하거나 선물을 하면서, 상대방도 그만큼의 대우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하더라도 보통 감사 카드로 마음을 전하는 정도이지, 한국 사람처럼 받은 것을 기억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돌려주는 것은 드물다. 다섯째, 미국에서는 모든 일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즉, 작게 시작해서 문제점을 고치며, 좋은 점은 더 강화하면서 점차 크게 만든다. 벤처기업이 좋은 예이고, 취미생활을 위한 문화 조직도 마찬가지다. 도시간의 문화 교류에서도 미국 측은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점차 확대할 것을 바라지만, 한국측은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여섯째, 미국은 자발적인 활동을 중시한다. 미국의 경우는 자매결연을 맺을 때, 문화 교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국제 교류에 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민간위원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계획 및 준비는 물론 파견단 구성까지 스스로 한다. 시청의 관료들은 필요에 따라 도와주지만, 교류와 관련해서 직접 나서거나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은 시의 사업으로 시작하면서 학부모나 지역유지들이 문화 교류에 앞장서기 힘들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 반영이 미미하다. 시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몇 년 동안 쌓아 온 관계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 국가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므로 나라마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물론 다르다. 어느 쪽의 사고방식이 옳고 그른가를 가릴 수는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공연한 오해를 하지 않으면서 더 쉽게 소통하고, 지향하는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11-08-11 이병수

"브레이빅의 가족"

어린 아이들 머리통에다 총을 겨눠 쏘아죽여 놓고도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는 놈. "사람은 죽였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라고 내뱉었다는 녀석. 신문을 보니 그에게 극우민족주의자, 정신병자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심드렁하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넘어갔다. 먼 나라의 사건들은 대개 그렇게 지나간다. 이 땅에서도 힘겹고 다급한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얼마 뒤 그 아비라는 사람이 "그를 내 아들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살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득 숨이 막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서구문화와,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짓을 했기로서니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고 차갑게 내뱉은 아비를 보면서, 잔인한 서양사회의 속살을 엿본 듯했다.동양의 전통사회는 달랐다. 춘추시대 중국 땅에 제 아비가 이웃집 양을 훔친 것을 관가에 고발한 자식이 있었다. 그 나라 임금이 자랑스레 '우리 백성들은 이렇게 정직하다'라며 공자에게 뻐겼다. 공자가 이를 두고, "우리 동네의 정직함은 아비가 자식의 허물을 감춰주고, 자식이 아비의 죄를 숨겨주는 데 있소이다"라고 답했다는 고사(논어)가 그 예다.엄혹한 반공법 시대에도 간첩인 아비를 숨겨준 자식을 처벌하지 못했던 까닭도 이런 전통 때문이었다. 정직이라는 '직선'이, 부모자식 간의 비호, 또는 불법이라는 '곡선' 속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본 공자의 생각을 주목해야 하리라. 서양에서는 고독한 개개인들이 모여 계약을 통해 사회를 이룬다고 본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人間)이란 말에서 보듯 '사람의 사이', 즉 관계를 사람다움의 핵심으로 여긴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차마 아비가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문득 범죄자가 준비해두었다는 성명서 속에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눈에 밟힌다. 또 "그의 글 속에는 깊은 고독감을 찾아볼 수 있다"라는 분석들에도 눈길이 간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을 그리워했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가부장이 온 가족을 지배하는 봉건적 가족주의를 흠모한 것이 아니라 (이젠 동아시아에도 해체되고 있긴 하지만) '가화만사성'이라, 부모의 자애와 자식의 효행이 빚어내는 가정의 화목을 그리워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지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를 두둔하려거나, 죄의 탓을 제 아비에게 돌리려함이 아니다. 다만 그의 성장과정에 있었을 지독한 고독과 단절된 환경에 주목할 따름이다. 스웨덴의 한국인 교수 최연혁에 따르면 "북유럽에는 범인인 브레이빅처럼 이혼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전체 아동의 15%에 이를 정도로 가족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가족해체의 증가가 아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결핍, 소외아동들의 정서불안을 낳아 '제2의 브레이빅'을 양산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라던 지적에 공감한다.지금 이 땅에서도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지난 겨울, 이혼 가정에서 성장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홀로 굶어죽었던 것은 그 한 상징이다. 이웃 일본에는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하는 직장(直葬)이 대도시에서는 30%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도 23%에 달하였고, 홀로 죽어가는 '고독사' 역시 꼬리를 물고 있다. 서로에게 이웃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예로부터 환과독고(鰥寡獨孤)라, 홀아비·홀어미·독거노인, 그리고 고아는 국가가 거둬야할 최우선 복지대상이었다. 이게 맹자의 말이니 2300년 전의 일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도 정치의 급선무는 언제나 가족의 보전이었다. 반면 지금 이 땅은 가족에 대해 무관심하다. 국가나 국민이나 모두 가족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듯하다. 하나 가족은 자연적인 제도가 아니다. 가꾸고 보살펴야 겨우 살아남는 인공적인 공동체다. 전쟁과 기근, 경제적 위기에 가장 쉽게 파괴되는 것이 가족이었다.지금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사태는 국가가 보장하는 물질적 복지만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고독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여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질곡으로 여기고서 탈출하려 했던 가족이, 실은 돈으로는 환산하지 못할 큰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되돌아 보아야할 시점이다.

2011-08-04 배병삼

"보이지 않는 도시들"

우후죽순 대형건물 시민과 괴리감만동네골목 신경쓰는 도시계획 세워야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칼비노(1923~1985)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a invisibili)'이라는 책이 있다. 1972년에 초간된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관념을 크게 전환하도록 만든 책이다.마르코폴로가 여행 중에 들렀던 도시들을 쿠빌라이칸에게 묘사하며 들려주는 내용으로 된 이 작은 책은 그 소제목의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체 아홉 개의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열 개의 도시, 나머지 일곱 장에는 각기 다섯 개의 도시를 넣어 전체 쉰 다섯의 도시를 설명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책의 곳곳에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상상과 성찰로 이끄는 내용이 즐비하다. 인상 깊은 몇 가지 문장들을 발췌하면, '자이라'라는 도시를 설명하면서 이 도시에 있는 높은 탑이나 형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하며,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한다.또한 그는 "도시의 형태는 그 목록이 무한하다. 모든 형태가 자신의 도시를 찾고 새로운 도시들이 계속 탄생하게 될 때까지 그 변화가 끝나고 나면 도시의 종말이 시작된다"라고 도시의 운명을 진단한다. 도시는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욕망이 덧대어져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체라는 것. 따라서 늘 새롭게 바뀌어 나가는 도시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만약 어떤 도시가 완성된다는 것은 그 도시의 몰락을 의미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랜드마크나 거대한 건축물, 기념탑 등은 도시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며, 우리 주변에 있는 자그마한 건축물이 더욱 중요하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도시의 본질적 요소라는 것을 이 책은 줄곧 강조하고 있다.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대개 그 도시에 있는 상징적 시설물들을 통해 얻는 인상인데,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민의 삶과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사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으며, 서울시가 자랑하는 서울 숲이나 한강 르네상스 시설을 이용한 적도 없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소개되어 있는 그러한 풍경은 이탈로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순전히 이미지며 환영일 뿐이다.도시는 건축물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도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구성된 사회다. 그래서 누구나 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도시계획의 사명이라면, 그 공간은 건축물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있다. 건물의 내부는 개인이나 일부 집단을 위한 시설일 뿐이며, 도시민이나 방문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도로나 광장 공원 등이 도시에서 더욱 요긴하다는 것이다.따라서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채워져 있는 부분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 비어있는 부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잘 인식되지 않지만,우리의 도시적 삶과 공동체는 그런 공간에서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이를 두고 이탈로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라고 했다.그렇다면 도시를 만들거나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비움의 공간을 설정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계획도에서는 비어져 있는 공간은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모든 부분은 현란한 색깔로 채워져야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는 일정한 폭의 붉은 선이어야 하며 이를 표현한 그림은 20년 혹은 50년 후 목표연도의 환상적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했다.그것을 도시의 청사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목표가 실제로 완성되어진 도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다 허황된 가정이었고 거짓이기 일쑤였다. 미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며 많은 부분을 비워 남겨 놓는 일이 더 솔직한 계획이었을 게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적 삶이며, 그 삶은 바로 우리 동네 골목 안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이어서, 이 풍경을 만드는 일이 도시의 목적이라는 것을 이탈로칼비노는 누누이 이야기하며 우리의 잘못된 도시관을 바로잡을 것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이 더운 여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도시를 발견하며 우리 삶을 사유하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을 것이다.

2011-07-28 승효상

도시 브랜드와 글로벌 경쟁력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국가브랜드 선언을 하고 이듬해 초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간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오는 8월말엔 국가브랜드 종합박람회가 열려 세계에 자랑할 브랜드 상품과 박세리, 김연아 등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 총망라될 것이다.두말 할 것도 없이 국가브랜드가 올라가면 국가 신인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올라가 이로인한 국부(國富) 창출이 엄청나다.얼마 전 밤잠을 설치게 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성공은 우리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고 국가브랜드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라 믿는다.앞으로 초대형 국제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니 우리의 저력에 자긍심마저 느껴진다. 9월에 열리는 대구 국제육상선수권대회 역시 일반의 옅은 관심과 달리 세계 3대 스포츠로 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여수 엑스포,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부산 영화문화의 전당 개관 등은 그저 바라만 보던 세계 축제가 앞마당에서 펼쳐지니 격세지감이다.이제는 도시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천여개가 넘는 축제들을 정비해 수준을 높여야 하는 단계다. 먹고 나면 여운이 없는 소모성 축제나 축제를 위한 축제는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통영 윤이상 국제음악제나 함평 나비축제 등 성공한 축제가 적지 않지만 반드시 유명 축제가 아니어도 소박한 생활축제도 살아났으면 한다. 삶과 밀착된 축제야 말로 축제의 정신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에 민간으로 옮겨 가는 물꼬를 터주었으면 한다.엊그제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문화유산에 등재한다하여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이들은 벌써 6~7년 전부터 면밀하게 작업을 해왔고 아리랑뿐 아니라 혼례 풍습 등 여러 세속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는 말한다. 바야흐로 눈에 보이는 영토전쟁만 전쟁이 아니다. 연성(軟性) 국토인 '문화영토' 확보를 위한 싸움이 더 치열할지 모른다.우리 경제와 외교력이 크게 신장한 만큼 국가브랜드위원회 혼자서만 한국을 알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도 도시 브랜드 위원회를 결성해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면 어떨까.사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곧바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은 못된다. 아리랑 가락을 피리로 부는 것도 좋지만 오보에나 클라리넷으로 알릴 수 있다면 전파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사물놀이 역시 한국의 악기이지만 세계의 어느 누구도 연주하지 않는다. 세계 공통 문법은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 발레다. 이들이 우리 것을 즐겨 연주할 때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제 고장의 토산품이나 자연경관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포츠처럼 누구나 참여하고 공인하고 함께 즐기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그러지 않고 옹고집으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라 외치기만 하고 전통의 재발견, 재해석으로 가공하지 않은 채 묻어만 둔다면 아리랑에 이어 많은 것을 뺏기게 된다.스포츠와 문화가 세상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키워드다. 그래서 21세기를 총성없는 전쟁의 시대라 말하지 않는가. 결국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체라면 우리보다 상품을 사주는 입장에 대한 배려의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일전에 읽은 천재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의 '여럿이 한 호흡'은 모두의 성공을 위한 협력 기술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유치야말로 대통령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호흡으로' 성공한 명작(名作)이 아닐까. 바야흐로 눈을 부릅 뜨고 도시 경쟁력을 위해 브랜드 싸움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011-07-21 탁계석

대학교육, 값뿐만 아니라 질도 보자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로 모든 국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미 무역, 경제분야에서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문화면에서의 한류열풍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국민이 힘을 합해 노력해야 할 다음 영역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학교육개선이 아닌가 싶다.최근에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에서 나온 대학평가를 보면 서울대가 50위를 기록하고, 대부분 상위대학들이 100위권 안팎을 차지한데 그치고 있다. 이것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단면을 보여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첫째,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건실한 대학이 많이 존재해야 한다. 한국 휴대전화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내수시장이 필요했듯이,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대학은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정보산업에 필요한 인력 창출에 도움이 된다. 지식정보산업이라 하면 언론, 광고, 통신, 컴퓨터 시스템, 소프트웨어, 데이터 베이스, 네트워크, 컨설팅, 금융 외에도 온갖 분야에서 정보와 지식을 생산 관리 분배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를 의미한다.대학 수의 증가로 필요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필요한 학력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까지 인력을 수입하는 경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짜 문제는 고학력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대학 4년동안 전공 공부를 무시하고 고시합격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만 매달렸다면 이것은 급변하는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자격증의 보호아래 경쟁이 없는 무풍지대에서 안일을 도모하는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둘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배움에 대한 욕망이 큰 한국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축복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문물을 빨리 배워서 물질적 경제 성장을 짧은 시일내에 이뤘다. 한국이 이제는 지식산업에서 한 수 가르칠 입장이 되려면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토론과 비평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하려면 먼저 교수 1인이 담당하는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교수 이외에 교수법이나 교과(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많은 전문적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셋째, 이런 조건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에서처럼 대학의 간부들이 자신이 이끄는 대학의 비전을 제시하고 뜻있는 이들을 감동시켜 기부금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변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능력있는 사람들을 대학간부로 고용하고, 이들이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갖고 기부자들을 설득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대학과 대학생의 사회공헌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등록금의 반을 지원 하는 것보다는 학생이 처해 있는 상황과 대학이 창의력있는 대학생을 키우려고 노력을 하느냐가 참작되어야 한다. 넷째, 학생의 상황과 대학의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조를 해야 한다. 보조 심사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소요가 있기 때문에 전원 50%라는 획일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사불란한 독재주의보다는 시끌벅적한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올바른 선택이라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런 과정을 자꾸 거침으로써 국민 모두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다양성을 수용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대한민국은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국민이 대다수이므로 지금까지 많은 국제적인 쾌거를 달성했던 것처럼 대학교육발전에서도 조만간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11-07-14 이병수

영웅과 달인

'장자'에는 포정이라는 도살의 달인이 나온다. 19년 동안 소를 잡았더니 칼날이 닳지 않는 경지에 올랐단다. 뼈와 살의 사이, 근육과 심줄의 결에는 미세하나마 빈 공간이 있다. 칼이 그 빈 틈새를 타고 지나갈 정도로 기술이 무르익다 보니, 수천마리 소를 해체하여도 날이 무뎌지지 않더라는 것. 임금이 그의 소 잡는 장면을 보고서 문득 '놀라운 기술이로다!'라며 찬탄하였더니, 의연히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올시다!'라고 응수했다는 사람. 2천300년 세월이 흐른 오늘 다시 읽어도 통쾌하다.하나 포정의 자부심을 염려하는 눈길도 있어왔다. 소를 잘 해체하는 기술에 '도'라는 영예를 부여할 수 있다면, 사람을 잘 죽이는 기술 역시 '도'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전국시대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뜻 모르는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가는 것을 앙민(殃民), 곧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 짓이라고 한다. 단 한번 전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도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맹자) 장자에게 '도'란 기술적 차원에서 이른 말이다. 이 사상을 일본이 이어받았다. 기술마다 도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이다. 검도, 유도, 다도, 궁도 등등. 바둑의 수승한 경지를 기성(碁聖)이라 칭하고, 에도시대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신(劍神)으로 추앙받는다.반면 맹자에게 '도'란 윤리와 도덕의 범주에 속한다. '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정의를 실천할 때 얻는 이름이지 고작 절륜한 기술에 붙이는 명칭일 수 없었다. 맹자의 사상은 조선이 이어받는다. 개인행동이든 나라의 정책이든 '의· 불의'가 판단 기준이었다. 이 속에서 의병과 의사(義士)가 나올 수 있었다. 안중근은 이런 전통의 마지막 불꽃이다.최근 KBS에서 방영된 백선엽 장군의 이력을 두고 시비가 분분하다. 그가 6·25전쟁에서 거둔 전공은 혁혁하다. 그의 무공을 덮을만한 군인은 현대사를 털어 없을 듯하다. 그런데 그의 출발은 일제하 직업군인을 기르는 봉천군관학교에서였다. 더욱이 그는 잔학한 살해를 일삼은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그는 여기서의 활동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도특설대의 비밀, 1993년)지금 민족주의를 잣대로 그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제나 지금이나 군인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하다는 점을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가 기술주의 교육, '일본식 도'의 가치를 훈련받았던 사람임에 주목해야 하리라. 거꾸로 백선엽은 전투의 승패 이외의 잣대로서 자기를 평가하는 데 대해서 (일본식으로)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지점에서 맹자는 질문한다. 그런가? 군인은 명령을 집행하기만 하는 기계인가? 그가 총을 겨눈 사람들 속에 자기 동생이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살해했을까? 혹은 그와 동년배로서 학병을 탈출해 독립군에 투신한 장준하와 김준엽은 고작 탈영병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맹자는 이렇게 말한 터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맹자의 눈에 간도특설대의 유능한 중위가 대한민국의 뛰어난 장군이 되었다고 해서, 영웅일 수는 없다. 나아가 노자는 이렇게 권한 바다. "많은 사람을 살상하였으면 이를 애도해야 하는 것. 전쟁에서 승리하였더라도 상례(喪禮)로서 처우해야 한다."(殺人之衆, 以哀悲泣之, 勝以喪禮處之. 도덕경, 제31장) 그렇다면 누구처럼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는 참괴함 정도는 토로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일본은 유교국가인 적이 없었다. 그곳은 사무라이의 나라였고, 사무라이는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자였다. 명령대로 처리하느냐 못하느냐, 기술의 수준에 따라 보상이 다를 뿐이었다.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는 군주의 명령이든, 국가의 정책이든 스스로 그 정당성을 질문하고, 정당하면 목숨조차 바치는 사람이었다. 백선엽은 일본식 '달인'일는지 몰라도 조선식 영웅은 아니다.

2011-07-07 배병삼

"나는 돈 대학생이다"

강의실에서 만나던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등록금 인하를 소리치고 있는 이 여름, 대학교수라는 자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자괴감이 밀려드는 때는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던 날, 이른 아침 교정에 들어선 나는 학교 박물관 벽을 온통 가리듯이 걸려 있는 북한의 인공기를 보았었다. 왜, 누가 여기에 오늘 이 깃발을 거는가. 그때의 자괴감이라니. 그러나 이 여름에 느끼는 자괴감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내 과목을 수강하는 꽤 많은 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나선 제자 가운데는 윤호도 있었다.지나간 겨울, 윤호가 모 재단으로부터 등록금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추천서를 써 준 나에게 휴대전화로 장학증서를 찍어 보여 주면서 '엄마가 막 울고 난리 났어요.' 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윤호, 바로 그 윤호가 광화문에서 열리는 등록금 인하 시위를 다녀온 것이다.'저요, 그날 일찍 가서 처음에는 종이컵에 초를 꽂는 가내 수공업을 맡았어요. 그러다가 남자가 무슨 초를 꽂느냐며 끌고 가는 바람에 스피커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라며 그는 웃었다.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그것이 그가 들었던 피켓이었다.대학생들이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사표출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사라진 지 몇 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른 봄 개나리꽃이 필 때나 반짝하다가 마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놓고 '개나리 시위'라는 이름까지 붙은 요즈음이다. 윤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교정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그 푸름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이 마른 나뭇잎처럼 아프게 가슴에 쌓였다.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까지 독서실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강의가 없을 때는 또 '스마트폰 애플 운영'이라는, 휴대전화에 TV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일을 시간제로 한다. 하루 다섯 시간밖에 잠을 못 자는 생활인 것이다.자신은 등록금 걱정만은 안 해도 되게 장학금을 받지만 그 장학금은 '나 혼자만을 생각하라고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건 사회를 생각하라고 내게 쥐어진 것이잖아요. 등록금 문제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힘겨워 하던 나였고, 현재 휴학하고 휴대전화를 팔고 있는 절친한 친구만 세 명이나 돼요." 자신을 그곳으로 이끈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었나 싶었다는 말을 이어가면서 그가 가만히 말하는 것이었다."그때 그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체 게바라."이번 학기 교양강의에서 다룬 테마의 하나가 체 게바라의 생애와 혁명관이었다. 반값등록금 시위 현장에서 강의시간에 나왔던 체 게바라의 얼굴을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이면서 남미가 겪고 있는 제국주의의 횡포와 자본주의의 착취에 대한 절망과 분노 속에 쿠바 게릴라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 쿠바에서의 혁명에 성공한 후 그는 쿠바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 모든 지위와 기득권을 버린 채 또다시 혁명의 길을 걷다가… 끝내는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어 죽음을 맞는다. 쿠바를 떠나며 어린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체 게바라는 혼자의 삶이 아닌 시대와 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특히, 세계의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행해지고 있을 모든 불의를 너희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그날 광화문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많았다고 했다. "대학생이라면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나가 있어야 하니까 대신 형, 누나 동생들이 모인 거예요. 발언을 하러 무대에 올라갔던 중3 여학생이 수줍어하면서, 언니는 알바 가서 못 오고 제가 대신 왔어요 해서 다들 함성을 질렀답니다."그날 광화문 시위장에 울려 퍼졌다는 노래는 서글프도록 자조적이다. '나는 돈 대학생이다. 나는 없고 돈만 있는, 돈 돈 돈 세상. 알바가 내 목을 조여 오는 세상아, 내가 바라는 건 살아있는 나 나 나'.도대체 이런 현실을 정책담당자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른들의 진정한 대답이 메아리쳐야 할 때다.

2011-06-30 한수산

반값등록금 논란과 백년대계

[경인일보=]반값등록금 논란으로 전국이 시끄럽다. 지난 6월10일 서울 광화문 거리는 수만 명의 대학생과 청년 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서 반값등록금 시위를 벌였으며 이들은 매주 금요일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는 날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그러나 여기에 대해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려면 정부보조를 통해 세원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국민의 세금을 올리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런데 대학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국민 모두가 반값등록금을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반값등록금이 논란이 된 것은 현 정부의 선거공약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반값등록금 공약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서 물리적으로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이야기였다고 말해 논란에 모호함을 더해주고 있다.그러면 한국의 등록금 실태는 어떠한가. 2010년 4년제 일반대학 기준 연평균 등록금은 국립 444만원, 사립 754만원이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등록금 부담률이 소득 대비 10분의1인 반면, 한국은 학생 대부분이 국민소득의 3분의1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어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보면 우리나라 대학등록금 부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소득 하위 10% 가구의 경우 연간소득 대비 등록금 비중은 97.9%에 달한다.이렇게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대부분의 대학들(사립대학)이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조금 또는 지원금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반값 등록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예산을 재구성(책정된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하거나 정부예산을 늘리는(세금을 더 거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모두 쉬운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반값등록금 문제가 부각된 이유를 다른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점점 높아져가는 청년실업률 그리고 빈부격차 등으로 사회적 불만들이 다른 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과거 대학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출세를 좌지우지하는 관문과 같았다. 대학 진학 여부가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에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이제 80%가 넘었다. 고교 졸업생 10명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가는 것이 이제 거의 보통 또는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대학졸업생이라는 것이 더 이상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데, 그리고 좋은 직업을 얻는데 프리미엄이 되지 못한다. 이것을 두고 한편에서는 고등(대학)교육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의 반영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높은 교육열은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높은 교육열이란 개인의 능력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업그레이드하자는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이고 의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높은 교육열이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대학도 못나온 주제에, 또는 대학이라도 나와야'와 같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반값등록금을 야기시킨 근본적인 문제는 반값등록금이 현실화된다 하여도 결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선거철에 대비해서인지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고 대동소이한 안을 내놓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세계 최고의 경쟁력 그리고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의 성공비결을 교육개혁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교육개혁은 40년간 이루어졌으며, 수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교육개혁을 이끈 수장(사민당의 에르키 아호 국가교육청장)은 바뀌지 않고 오랫동안(1972~1992년)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반값등록금으로 불거진 우리사회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사회,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처방을 시급하게 내리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보며 국민들이 납득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백년을 내다보며 만들어야 한다.

2011-06-23 박후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준비하며

[경인일보=]지난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배우 유지태를 소개한 김에 영화제 얘기를 한 번 더 해보려 한다.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끌고는 있지만 영화제의 방향과 주제, 그리고 상영되는 영화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되풀이해서 말을 나누어도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지난 2회 영화제 때의 일이다. '저 달이 차기 전에'라는 작품이 상영되고 감독과 관객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파업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현 정부 들어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다룬 소재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실무진들이 상영작들을 정해 보고했을 때 이 작품뿐만 아니라 용산사태를 다룬 작품까지, 정부와 경기도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영화들이 여러 편이어서 솔직히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영화제가 경기도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나로서는 당연한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관객과의 대화를 지켜보고 나서 나의 걱정은 순전히 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대부분 어른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던 중간에 한 남자 고교생이 손을 들고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하지만 지나치게 노동자의 입장만 대변한 것은 아닌가? 사측의 입장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 질문 하나에, 그리고 그 질문에 반응하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에 나는 내가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원칙이 여전히 올바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지원을 아끼지 않되 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문화 행위로서의 영화 창작과 그 행위의 결과물이 소개되는 장으로서의 영화제, 이 모두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영화제 시작 전 이미 경기도와 공유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한 사회의 문화가 융성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사회의 주류 질서는 잘 갖추어진 기존의 체계에 흠집을 내고 틈입해 들어오는 비판의 목소리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항원과 항체가 만나 다투는 과정에서 한 유기체가 더 건강한 체질로 발전하듯,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쌍용차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사회의 주류 의견에 대한 반론이고, 이 어린 관객의 질문은 그 반론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제기이다. 다양한 시선이 거리낌 없이 주장되고 이들이 한데 어울려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고 문화 진흥의 밑바탕이 된다. 내가 영화제라는 장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가진 목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백가쟁명을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소통'이라고 부른다. 춘추시대 중국 고대의 대표적 사상과 철학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는 나의 주장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먹고 자란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주장을 스스럼없이 펼치는 과정에서 사회는 성숙하고 문화는 풍성해지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시선을 부정하는 순간 사회는 뼈만 남고 문화는 시들어간다. 건전하고 정당한 시선은 누군가가 규정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견이 충돌하며 수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비판과 수용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을 믿는다.내친김에 올해 DMZ영화제의 홍보영상-보통 '트레일러'라고 불린다-을 맡은 일본의 세계적 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이야기를 덧붙여 볼까 한다. 영화 'KT'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카모토 감독은 처음 제안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지만, 제작비가 10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은 중요하고 DMZ영화제의 의미를 잘 알기에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100만원은 100만 엔을 잘못 전해 들어서 생긴 오해이지만, 사실 천만 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기는 하다. 사카모토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뒤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이다."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시 한 번 DMZ영화제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이제 정확히 100일이 남은 영화제를 생각하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다.

2011-06-16 조재현

부동산공동체

[경인일보=]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도시라고 한다. 인류의 문화에 어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도시가 담당했다고 하는 이 말의 전제에는, 도시는 자연적으로 태동된 게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며 또한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도시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잉여생산물의 교환설이 유력하다. 자기 집에서 경작하고 재배한 생산물의 양이 자급자족 수치를 넘게 되자, 다른 필요한 물자와 바꿀 목적으로 조성된 장소가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도시의 역사는 약 일만 년으로 추정하는데, 이스라엘의 제리코(BC 9000년경)나 터키의 차탈휘크(BC 7000년경)에서 발굴된 공동 주거지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이다. 이 일만 년의 도시역사 중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 인류의 10%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도시집중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오늘날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2050년이 되면 4분의 3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만큼 도시는 매력적이다. 도시에는 수많은 기회와 동기가 있으며 욕망과 기억이 교차하고 성공과 좌절이 순간마다 존재하여 전혀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도시를 의미하는 영어에는 시티(city)와 어반(urban)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같이 도시를 뜻하지만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 시티는 일종의 사회적 성격이 강한 반면, 어반은 그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물리적 환경을 의미한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적 목적을 공유하는 어떤 사회와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구성이 합쳐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들의 집합인 어반은 만들기가 쉬운 반면에, 시티는 대단히 어렵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각개의 특출한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규칙에 합의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이루기가 여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우리의 세종시가 그 좋은 예다. 아직도 여러 문제가 잔존해 있지만, 세종시가 왜 그렇게 뜨거운 이슈가 되어 국론을 사분오열시켰을까. 정파적 이해의 논리가 다분히 있긴 하여도, 아마도 우리의 도시 만들기 역사상 최초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종시의 인구 40만은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리 큰 숫자가 못 된다. 50만 명의 분당을 불과 4, 5년 만에 만들었으며, 일산이나 평촌, 산본 같은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뚝딱 만들어 온 게 우리의 실력이다.이런 천편일률적 신도시들이,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한 결과로 건설된다면, 이 속도는 완벽히 불가능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이 논리로 따지면, 이들 신도시는 죄다 물리적 환경만 구축한 '어반'일 뿐이며 우리가 살고자 하는 '시티'에 대한 합의가 전혀 없이 그냥 주어진 것이다.문제는 물리적 환경뿐인 이런 '어반'에서 사람이 살게 되면서 그 '어반'이 가정한 어떤 사회적 모습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 가정된 사회라는 게, 불행하게도 이미 서구에서 실패로 끝났던 마스터플랜-통계적 숫자를 근거로 평균적 인간을 목표한, 계급적이고 분파적이며 효율과 기능만이 중시되는 거주적 기계로서의 도시이니, 거주자들은 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공동체 속에서 삶을 살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딜 가도 똑같은 우리 시대의 신도시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말이어서, 지방의 정체성 찾기란 지극히 난망한 일이다.도대체 지난 수십 년간 전 국토에 걸쳐 유행처럼 건설된 그 한 가지 사회의 정체는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부동산 공동체이다. 자기 스스로의 사회적 인간상을 형성하는 기반인 거주를 늘 돈으로 환산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동산으로 파악하여 이를 획득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고 내몰리는 유목민적 삶을 살게 하는 그런 도시가 부동산 공동체의 사회이다. 그런 떠돌이들의 사회에 문화가 정착될 리 만무하다. 물물교환의 성격을 나타내는 도시의 어원에 집착하여 부동산만 교환하는 이 땅 우리의 도시가, 일만 년 전의 제리코나 차탈휘크보다 더 못난 도시라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2011-06-09 승효상

완전 개맛이다

[경인일보=]토요일 오후, 학교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였다. 옆자리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던 여고생 가운데 하나가 킬킬거리며 소리쳤다. '와, 완전 개맛이다'.음식을 놓고 개맛이라니. 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그런 소리쯤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개맛이라고 외친 여학생은 황홀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게 아닌가.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개라는 말이 일으키고 있는 이변의 하나다. 이들이 쓰는 은어(隱語) '개맛'을 '개 같은 맛' '못 먹을 맛' 정도로 알아들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다. 정말 너무 맛있을 때 내지르게 되는 탄성의 하나가 '개맛'이기 때문이다.은어가 만들어지는 원칙에는 기존어휘를 대치, 첨가, 삭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저 옛날 군대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골병들기 십상이라는 뜻에서 공병대를 '골병대'라고 불렀던 것은 대치된 것이고, 이마빡을 '마빡'이라고 하는 것은 삭제의 경우가 된다. 그 가운데는 순서를 바꾸는 치환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도 있다. 가짜를 '짜가'라고 하는 게 그것이다.이렇듯 은어는 그 형성부터가 구성원이나 또래집단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도록 그들만의 강한 유대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언어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은어는 자기들만의 깊은 소속감 속에 비밀을 유지하고 친밀감을 더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그러나 '개맛'의 경우는 특이하다. 통상 우리말에서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그 원형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열등하다는 뜻이 된다. 복숭아는 좋은 과일이지만 개복숭아는 먹어 볼 것도 없는 과일이다. '개 싸대듯' 한다고 하면 쓸데없이 함부로 쏘다니는 게 되고, 사람 알기를 '개 콧구멍으로 안다'고 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경우다. 어디 그뿐인가. '개고생'이라고 하면 고생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이고, 사람을 함부로 치고 때릴 때 '개 패듯' 하거나 '개 잡듯' 한다고 한다.이렇듯 개라는 접사가 붙으면 상황은 나쁜 쪽으로 돌변한다. 그런데 바로 이 개가 놀랍게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연 다른 의미로, 그것도 최악에서 지고지선의 최고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개라는 말의 화려한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 천덕꾸러기로 구박받으며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개'의 찬란한 부화라고나 할까.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다. 생성 소멸을 거듭하며 동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강압으로 통제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개'의 경우는 특이하다. 은어의 어떤 발생배경과도 다른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의식의 전도랄까, 언어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의 도치까지 와 닿은 이 언어파괴의 극단적인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대학가에서 학생들 사이에 쓰이는 은어도 만만치 않다. 다만 그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한결 빨라져 가고 있다. 소위 일류대학을 두고 '스카이(SKY)'라고 하던 것도 그렇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지칭하던 이 말은 어느새 사라졌다. 다만 여전히 신학기가 되면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면서 학생들은 '쌔큰한 신입생 환영'이라고 써 붙인다. 새큰하다면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을 의미한다. 교수에게도 '선생님은 레알 넘사벽 센스의 킹왕짱 오빠 같아요' 할 정도로 은어가 난무하니 말하면 무엇하랴(이걸 번역하면, 선생님은 정말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센스를 가진 최고의 오빠 같아요 정도가 될까).프랑스에 사는 회교도들이 음절의 앞뒤를 뒤집어 말하는 것을 베를랑(verlan)이라고 한다. 카페(cafe)를 페카(feca)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절을 뒤집는 베를랑을 넘어서 우리 젊은이들은 이제 의미를 뒤집는 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 우리 사회에서 '개놈'이라고 하면 정말 바람직하고 모범이 되는 남성을 의미하는 말이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가 결혼을 앞둔 딸과 함께 사윗감을 놓고 이런 말을 나누게 된다. 상상하자면,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저 남자애 정말 사위삼고 싶은 개자식이로구나'.

2011-06-02 한수산

김정은 방중오보와 지피지기

[경인일보=]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이러한 오보는 통신사가 이날 오전 9시14분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정부 당국 그리고 북한 전문가들도 오보가 오보를 낳는 집단 오보를 만드는데 한 몫 하였다. 통신사의 보도가 있은 후 방중 주체가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문의가 정부 당국에 몰리자,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동안의 정황으로 봐서 오늘 새벽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안다. 단독 방문인지, 김정일과 같이 갔는지는 좀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혼자 간 것으로 보이며 방문지는 베이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은 방중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러자 대부분의 언론은 김정은 방중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9시간 지난 그날 오후 5시 중국 헤이룽장성의 무단장 시내 호텔에 김정일이 머물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김정은 단독 방중 보도는 사실이 아닌 오보가 되었다. 사실과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임을 상기할 때 이러한 집단적 오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오보가 북한 관련해서는 유독 많고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오보가 난무하는 한 북한의 실체는 더욱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며 올바른 대북정책을 세울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왜 북한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오보와 황색저널리즘에 가까운 보도가 난무하는 것일까? 북한의 폐쇄성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보도가 대중에게 나가기 전 더욱 신중하게 정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 양태는 결코 올바른 보도의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면 북한에 대한 정황은 무엇인가?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벌써 오래 전부터 공언해왔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그리고 노동신문과 같은 공식 매체를 통해 강성대국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왔다. 이들은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상ㆍ정치, 군사 그리고 경제의 세 가지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데 사상ㆍ정치 그리고 군사의 고지는 이미 점령되었으며 경제의 고지만 남겨두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경제 고지라고 하는 것은 결국 경제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며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고 있는 북한의 실정에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필수사항이다. 또한 북한의 경제개발은 중국의 동북지역 개발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협력을 하여야 한다. 중국의 동북지역 개발 즉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투먼) 개발선도지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라선, 청진, 원산, 신의주 등이 물류 및 산업 허브 등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2012년이 7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정지어야 하며 유일지도체제라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고려할 때 김정일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직접 확정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중의 주역은 김정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의 김정은 단독 방중의 오보는 정부의 정보부재 또는 취약한 정보력 때문이기 보다는 북한을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언론과 정부 당국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북한 전문가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모공편(謀攻篇)에서 손자는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하였으며 적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라고 하였다. 그러나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과 동북아 정세의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여 대북 그리고 동북아 외교정책을 세움에 있어서 지피지기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2011-05-26 박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