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복지논쟁과 합의 민주주의

[경인일보=]요즘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야권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무상복지를, 그리고 여권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현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복지 논쟁에 불을 붙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의원은 민주당의 무상복지를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박근혜 의원의 한국형 복지를 포장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것으로, 그리고 한나라당은 복지정책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누구의 정책이 옳건 간에 복지가 한국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환영할 만한 일이다. 1997년 이른바 IMF사태라는 외환위기때부터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급속하게 이뤄졌다. 양극화 문제가 가속화되는 주된 요인들 중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전체 노동자의 약 50%인 830만명 정도이며 이들은 정규직의 47%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OECD 국가 중 저임금계층이 가장 많고 임금불평등도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저임금계층은 452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6.5%이고,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무려 5.25배나 된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며 여기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은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복지논쟁은 복지가 담고 있는 목적을 벗어나고 있다. 원래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혜택을 사회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사회성원들의 의식을 강화하고 진정한 공동체로서 거듭나기 위해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이 사회성원이면 기본적으로 부여받는 개인적 권리 차원에서의 복지와, 사회성원 그 누구도 사회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평등하게 고려해 공동운명체로서 갈 수 있는 토대를 유지하겠다는 사회적 차원의 복지이다. 개인에 대한 고려와 사회에 대한 고려라는 복지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은 마치 사회라는 거대한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두 개의 기둥과 같고 음과 양 같은 유기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 특히,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처럼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은 복지의 이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하나에 치중하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복지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이룬 후가 아니라 경제개발과 동시에 이들 국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이념적으로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각 정당들이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합의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통합을 견고히 하는 방향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모든 후생을 보장하는 과잉복지는 국민들로 하여금 복지병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승리자와 패배자가 엄격하게 나누어지는 시장경제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패배자의 대열에 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당당한 사회성원으로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건전한 복지정책은 시장경제를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회통합을 통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데도 필요불가결하다. 복지논쟁이 마치 선거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달성하겠다는 목적과 다른 정당 또는 다른 대권후보와 차별성을 갖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면 사회통합이라는 복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망각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복지를 당리당략의 도구가 아닌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정신아래 합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지는 그야말로 백년대계이며 국가발전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이며 척도이기 때문이다.

2011-03-03 박후건

야식 배달부 '김승일'

[경인일보=]요즘 TV 오락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감동과 휴먼은 기본이고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기적과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지난해 케이블 사상 엄청난 시청률을 올린 '슈퍼스타 K'의 경우, 전국에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가수지망생 수만 명을 제치고 '허각'이라는 환풍기 수리공이 최종 1인이 됐다. 이 소식에 시청자들과 네티즌은 열광했고 평범한 서민도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현실로 보여줬다.그런데 최근 늦게 귀가해보니 아내가 TV를 보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영문인가 들여다 봤더니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등장한 야식배달부 김승일씨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유명대학 성악과에 들어갈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병간호 등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10년간 대학 동기들과 연락이 두절된 채 야식배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석에 있던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현재 그의 대학 동기들은 국·공립단체 합창단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승일씨가 대학 동기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에 아내는 물론 나역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며칠 동안 내 머리에는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사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신 허각 이란 친구처럼 감동적인 희망의 스토리로만 내 맘에 남은 게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그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상처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함께 든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있었고, 온 네티즌들의 환호와 지지의 글이 도배를 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김승일이라는 친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풀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 방송과 시청자들의 순간적인 관심이 사라질 때,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게 됐다. 그래서 나는 전혀 안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타킹 담당 PD에게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담당PD는 구수한 사투리에 아주 친근한 느낌이었고, 서로 안면도 없는 첫 통화치고는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었다. 담당PD 본인도 스타킹의 진행자 강호동씨와 소주를 마시며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배웠고, 삶의 희망을 갖게 되었노라 이야기했었다고 했다.며칠 후 나는 김승일씨와 담당PD를 만나러 방송국으로 갔다. 내가 그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방송과 대중의 속성을 좀 아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본 김씨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도 있지만 건강함이 있었다. 그의 꽉 다문 입에선 굳은 의지가 보였고, 그의 눈에선 슬픔을 이겨낸 희망의 빛이 보였다. 그는 100일의 연습을 통해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TV 화면에 나타나 우리에게 또 한번의 감동을 선물할 것이다. 스타킹의 역할은 사실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런데 우연일까? 나는 현재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씨는 경기도 수원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고 야식배달도 수원에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100일 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내 생애 첫번째 공연'이란 제목으로 김씨를 위한 생애 첫 번째 무대를 준비하기로 했다. 난 그가 파바로티처럼 늦은 나이에 성악을 시작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엄마를 일찍 여읜 한 청년의 맘에 따뜻한 희망과 용기만이라도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김씨는 지금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번 레슨을 받고, 나머지 날에는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연습을 한다. 그를 계속해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느릿하게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던 그의 얼굴과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제가 대학 다니면서 휴학 전까지 연습무대도 한번 못 서봤습니다…."그의 생애 첫무대가 열리는 날 난 객석에 앉아 있을 것이고, 이사장이 아닌 관객으로서 그의 앞날에 희망과 용기가 함께 하길 기도하며 또 많이 울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눈시울은 붉어진다.

2011-02-24 조재현

공공디자인 시비

[경인일보=]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인 지도 꽤 되어 이제는 아무도 이 단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단어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이 단어를 영어로까지 번역하여 'Public Design'이라고 쓰는 것도 봤지만, 그 뜻을 알기 위해 위키피디어를 찾았을 때 '당신이 그 뜻을 만드시오'라고 나왔으니, 이는 영어에도 없는 단어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도 공공디자인학과라는 것을 설립하고 이를 연합한 학회도 만들어 학문적 정당성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도대체 이 단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공공이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혹은 공공을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급기야, 중앙정부를 비롯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공공디자인' 사업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으니, 단어 사용의 오류로 인한 잘못된 사업의 피해를 고스란히 시민이 떠안는다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서울을 비롯한 지방도시들이 공공디자인을 한답시고 위원회도 만들면서 하는 일은 대개 도로 환경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다. 도로 포장을 바꾸고, 가로등과 버스정류장, 거리간판 등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꾸거나 혹은 예쁜 공공건축물을 세워 시민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증대시키는 게 그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도시환경을 바꾸는 것이 괄목할 업적이 된다고 여긴 것일 게다. 만약 이런 일이 목적이라면, '공공디자인'이란 단어는 '공공시설물디자인'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단어의 뜻과 사업내용이 일치되고 분명하다.그러나 문제는 정작 여기에 있다. 그런 시각적 세련됨으로는, 도시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인 공공성을 조금도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흔해 빠진 나머지 그저 분칠하거나 립스틱 칠하는 정도, 혹은 잘 봐주어 세련된 시설물을 갖다 놓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행복해질까? 나는 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아마도 애초에 공공디자인을 도입한 까닭이 도시를 보다 풍요로운 환경으로 만들어보기 위함일 게다. 그렇다면, 지엽말단적인 공공시설물디자인이 아니라 '공공영역'에 대한 디자인이 되어야 한다. 도시는, 농촌과 달리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이익을 찾기 위해 모여 만든 사회이다.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농촌사회는 천륜이나 인륜으로 그 공동체를 지속시키겠지만, 익명성을 특징한 도시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사회적 규율이나 모두가 인정하는 법이 필요하다. 이 규율과 법을 도시 속에서 공간적으로 구체화한 게 바로 도시의 공공영역이다. 도로나 광장이나 공원 혹은 비어있는 공간 등, 사유의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글로 된 법조문을 들고 있지 않아도 그 공간의 구성원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소위 선진도시란, 이 공공영역이 고도의 세련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공공영역과 함께 조직되고 연결되어 있는 도시이며, 후진도시로 갈수록 그 연결이 파편적이어서 시민의 공적인 삶이 보장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산책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가 원할 때까지 끊임없이 산책할 수 있는 안전한 보도나 풍부한 녹지의 연결로 그 소박한 일상의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고, 문화활동을 즐기고자 하면 아주 쉽게 원하는 문화시설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며, 이웃과 모임을 가지고자 하면 언제든지 그들이 안정되게 모일 수 있는 공공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선진도시라는 것이다. 이들의 공간적 흐름이 끊겨지지 않도록 구축하고 조정하는 일이 도시디자인이고 소위 공공디자인이어야 한다. 벤치나 가로등 택시정류장 등의 색채나 모양 글자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며, 언제든지 옮기거나 제거할 수 있는 이런 유의 시설로는, 우리 삶의 지속을 목표로 하는 공공의 안녕과 복지를 결단코 담보할 수 없다. 눈에 어른거리는 부질없는 게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케 하는 내면적 고양이 디자인의 바른 목표인 것이다.

2011-02-17 승효상

야노 히데키,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

[경인일보=]지난 연말, 조촐하지만 뜻 깊은 시상식이 있었다. 번쩍이는 조명이나 화환이 넘치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시상식장은 내내 진지했고 화기애애했다. '제4회 임종국상' 시상식이었다.수상자들의 모습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술부문 수상자는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준영 씨였다. 일본이 이미 청산한 '식민지 법'을 한국은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통렬한 자성을 담아 묵묵히 일제 식민지 사법제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온 문 교수의 결실을 참석자들은 박수로 축하했다. 다만 사회부문 수상자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씨의 모습이 조금은 이채로웠다.'임종국상'이란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섰던 임종국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친일청산에 공로가 깊은 분들에게 주는 상을 일본인이 받고 있다니. 그는 공식 직함이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이었다.그러나 그가 몸 바쳐 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자면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아니었다. 15년이 넘게 그는 한일 과거사의 올곧은 정립을 위해 온 몸을 던져온 일본인이었다. 여러 과거사 문제를 위한 모금운동이나 변론 지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피해와 참상을 알리고 그 반성의 길을 열기 위한 자리에는 언제나 그가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반일 인물'로 지목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짧은 머리에 단정한 몸매를 한 수상식장의 그는 투사로서의 이미지와는 먼 한 사람의 예의바른 일본인이었다.지난 여름이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한일병합 100년과 관련한 담화'를 들은 것은 일본 후쿠오카에서였다.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피폭자 추모모임과 청소년 교류회를 마치고 다음 강연지로 향하는 나에게 한 젊은 일본 언론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오늘 발표된 총리의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강제병합 100년을 이야기해야 할 일본총리가 문화재 한 두 점의 반환을 언급한 담화는 과거사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한일과거사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랬다. 국치 100년, 강제병합 100년을 맞으며 일본이 '선언적 의미의 반성'이라도 하기를 바랐던 원망(願望)을 뒤로 한 채 일본은 그렇게 2010이라는 중요한 매듭을 아무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보냈다.일본의 전후 처리는, 처음 대두되었던 천황의 전쟁책임을 군부의 책임으로 넘겨 버리고 이것을 다시 전국민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억총참회'로 호도하면서 여기까지 와 버렸다. 그 일본이 근자에 와서는 원폭투하에 대하여 미국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성은커녕, 전쟁 중에 '그때 왜 자신들에게 그런 폭탄을 썼는냐'고 사과를 받아내자는 발상, 이것이 일본이다. 그러나 한일과거사에도 작은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이 그 하나다. 이 책은 지난 연말로 3천850질이 팔려나가면서 3쇄를 찍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가지는 역사와 정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뜨겁다는 하나의 반증이다. 4천389명의 친일, 반민족 행위가 기록된 이 사전의 편찬에는 국민들이 모아 준 성금도 7억원이나 들어 있었다. 인명사전에 조상의 이름이 올라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는 후손들도 많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진다.임종국상 시상식장에서 내가 느꼈던 감회의 바닥도 거기에 있었다. 강제병합 100년을 보내면서 이제 우리는 당당히 일본의 시민운동가 야노 씨에게 친일청산에 앞장 서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임종국 선생을 기리는 상을 수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노 씨는 수상과 함께 받은 상금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의 다른 시민단체에 그 상금을 희사하면서 아름다운 씨를 뿌렸다. 성숙된 한일관계가 첫걸음을 내딛는 향기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작은 향기와 씨앗들이 모여서 역사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2011-02-10 한수산

중미 정상회담과 한미동맹 외줄타기

[경인일보=]지난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미 정상회담은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진정한 G2 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1990년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였으나,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먼저 소련은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대국이었으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며 연간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조만간 미국을 뛰어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둘째 소련과 미국은 서로간의 교류와 대화를 극소화하고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냉전을 치렀지만, 현재 중국과 미국은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에서 나타났듯이 경제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서로 최대교역국 중 하나이며 중국은 미국 부채의 약 10.5%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국채 최대 보유국이기도 하다. 셋째 소련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부유럽에서 다수의 위성국가를 갖고 있어 불안정한 블록을 이루고 있었지만, 중국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1을 갖고 있으면서 문화적으로는 수천 년 동안의 통일을 이루고 있어 매우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양분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이 나눈 대화와 협상 그리고 공동성명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제대로 해석하는데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양 정상들이 나눈 북한 관련 안건과 중미 간에 채택된 공동성명 제18항이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타임즈는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주석이 주요 안건이 논의되는 소규모 비공식 만찬에서 북한문제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고 보도하였다.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비공식 만찬에서 나온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표시를 중국도 북한 압박에 동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한국의 입장이 보다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포함된 동북아 정세를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북한은 이미 작년 11월 스탠퍼드 대학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밥 칼린씨를 초청해 영변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2천개를 공개하였다. 공개 이유는 핵 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동일하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와 같은 북한 '무시정책(Ignoring Policy)'으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이다. 중국이 UEP에 대한 우려표시를 이끌어낸 것을 외교적 승리로 해석하고 있으나 중국이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있듯이 중국은 북미 간에 대화를 늘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소규모 비공식 만찬에서 한 북한 위협에 대한 미군 재배치 발언은 그동안 미국의 대북전략인 '전략적 인내'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적극적 대응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북한이 바라던 것이다. 이것은 주류 언론에서 보도하듯이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북한 압박에 동참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며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또한 이것은 G2 국가로 성장한 중국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이룬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목표로 하고 있는 소강(小康)사회건설을 위해서는 헤이룽장, 지린, 랴오닝, 내이멍구 등 동북4성 개발을 완성해야 하고, 동북4성 개발의 완성을 위해서는 북한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필수 조건들이다. 이러한 중국에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북한 압박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한국은 관리대상이다. 중국이 한국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미국을 통해서이다. 영원한 우방도, 또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한미동맹이라는 외줄타기만을 하는 한국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2011-01-27 박후건

배우 초년생, 키높이의 기적을 이루다

[경인일보=]2년 전 소극장에서만 10만 관객을 동원했던 '민들레 바람되어'를 21일부터 다시 공연한다. 최근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미친 존재감'이란 칭호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정보석씨가 주인공 남편 역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정보석씨를 처음 만난 건 1989년께 대학로에서 내가 막 연극 배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하이네밀러의 '청부'란 연극에 출연했고 운좋게 포스터에 기주봉, 김학철 등 대선배들과 함께 나오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런데 그때 선배들과 함께 찍은 포스터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포스터상에 나는 긴 의자에 앉고 그 뒤로 키가 조금 큰 김학철씨와 키가 작은 기주봉씨가 서있는 그런 구도였다. 기주봉씨의 키와 나의 앉은키가 별 차이 없이 포스터에 비쳤다.이 포스터를 보고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문열 원작, 곽지균 감독, 정보석 주연의 '젊은날의 초상'이란 작품에 운동권 친구 역으로 나를 보자는 것이었다. 조연급이었으나 신인인 나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꽃단장을 하고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를 찾았다. 나를 기다리던 감독님과 촬영감독님, 영화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을 보며 작은 소리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셨다. "키가 좀 작지않나." "좀이 아니라 역할하고는 안 맞는데, 많이 작아" "운동권 학생이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수도 없고…" "그런데 얼굴은 좋네"(캬~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촬영감독이신 정일성 촬영감독님의 말씀이셨다). 결국 주인공 정보석씨가 180㎝가 좀 넘는 상황이라 다른 조연으로 좀 작은 듯하니 조금 큰 사람을 구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나원참, 사람 키를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키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얼굴(?)은 된다면서요, 키는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뭐 이런 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맴맴거리고 그 순간 참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보자는 약속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마음과 마지막 작은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며칠을 고민해봐도 키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머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발목 운동화를 신고 그 안에 뭔가를 넣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것저것 넣고 실험하다 합판을 잘라 차곡차곡 5㎝를 쌓았다. 발은 몹시 불편하고 아팠지만 틀림없이 키는 커보였다. 약속한 날 영화사로 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감독님과 관계자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캐스팅당했다. 나의 연기 초년시절은 이렇게 키높이운동화의 기적과 함께 시작됐다.'젊은날의 초상' 주연 정보석씨와 이번에 연극으로 해후하자 그 시절이 떠올랐다. 20년이란 세월동안 고난도, 남부럽지 않던 시간도 있었고 이제는 중견 연기자가 돼 다시 만났다. 나는 배우 생활을 하며 나태하거나 초심을 잃을 것 같을 땐 항상 키높이 신발을 생각했다. 올해를 시작하며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그 시절 치열함과 절실함 그리고 설렘을….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그 당시보단 생활도 나아졌고 배우로, 제작자로 어느 정도 인정받으며 문화예술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그 시절보단 정말 스스로 나를 보는 시각도 나아진 건 확실하다.그러나 그 시절 내 가슴과 머리에 꽉 찼던 절실함과 치열함은 지금 얼마만한 크기로 나에게 있는가 반성해본다. 굳이 어려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자는 구태의연한 말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나 오히려 우리를 설렘으로 이끌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한 번 되짚어 보고 싶다.이 겨울, 유난히 춥다. 추위로 움츠린 겨울을 녹일 뿐만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키 높이의 기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혹은 마음 깊은 곳에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그 기적의 기억을 되살려 낼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2011-01-21 조재현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경인일보=]BC 6세기에 중국에 살았던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동양사상의 형성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유가(儒家)의 사상이 인륜의 규범과 정치의 근본을 다룬 것이라면, 도가(道家)는 일반 대중의 삶에 대한 이치를 밝힌 것이라 우리 서민에게는 더욱 밀착된 고전이다. 도를 깨달아 덕을 얻는 내용으로 된 도덕경은 서른 세 장의 도경(道經)과 마흔 네 장의 덕경(德經)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경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 도덕경 전체의 내용을 암시한다. 이런 글귀이다."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이 아니며, 이름이라고 하는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이 문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나 법칙 그리고 지식의 체계나 현상들이 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명구가, 내가 관련하는 건축과 디자인의 세계를 생각하면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요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마치 시대의 화두가 된 듯하다. 성장한계에 부닥친 기업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디자인에서 찾고, 모든 도시들이 디자인위원회를 앞다투어 신설하고 도시 디자인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아 골몰하는데…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대거 그 일들에 참여하게 되니 건축가인 나로서는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디자인에 대한 본질을 알고 그 많은 전략과 정책을 생산해 내는 것일까? 나는 여러 곳에서 실제 진행된 디자인의 실상을 보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겉가죽의 분칠에 몰두하고 몇 가지 세련된 집기의 설치로 디자인이 다 되었다고 우기는 게 그렇다. 세계의 디자인과 문화의 중심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속히 변모해 나가는데, 우리만 '세계디자인수도'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니 하는 허무한 레토릭으로 자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삼성이나 엘지가 그토록 휴대전화 사업에 몰입했어도, 애플은 아이폰을 내세우며 압도적 격차를 만든 게, 바로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정의로 거둔 승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디자인은 19세기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형성된 대량의 공업 생산에 근거해서 세계 시장 속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제품이나 오브제를 제조하여 배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종래의 미술이나 건축 공예처럼, 그 전까지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소수의 특권층만 즐기던 디자인 오브제가 대량 유통되어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권력과 상상력의 문명사적 변혁을 가져왔으며, 결국 이는 근대성의 자각을 이룬 20세기의 미학적, 기술적 그리고 경제적 구심점이 되었다.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서 근대를 상징했으며, 그 공급자와 디자이너의 파워는 대단한 권력이 되었다.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이만저만하게 바뀐 게 아니다. IT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환경으로 디자인은 전문적 영역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공급자 편의대로만 생산하는 방식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어느 장소에서나 유효했던 디자인이 특별한 장소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디자인의 유효기간도 지극히 단축되어 매일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디자인 오브제가 가졌던 전통적 권위가 사라진 것이다. 서구에서 형성된 20세기의 디자인 관념으로는 변화무쌍한 이 미디어테크놀로지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바야흐로 디자인은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나는 올해 9월에 개최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 직을 작년에 위촉 받아 그 주제를 정하면서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들추었다. 현상에 대한 의문이 들 때면 본질로 회귀하는 습성 때문이며, 환경이 변할 때 그 근본을 다시 묻는 것은 그 변화의 정체를 모른 채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움켜쥘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다. 노자의 도(道)를 그림이나 디자인을 뜻하는 다른 한자인 圖로 바꾸어 '圖可圖非常圖'로 주제를 정하였다. '디자인이라고 일컫는 디자인이 다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뜻이 될 게다. 이천 오백 년이나 지났지만, 오히려 지금 이 현자의 명구가 나에게 절박하게 꽂혔다.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지금 이 혼돈의 디자인시대에 우리 모두를 성찰하게 하는 절실한 주제어라고 믿는다.

2011-01-13 승효상

냉수 먹고 갈비 트림

[경인일보=]새해 첫 날의 일이었다. 얼어붙은 길에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뒷바퀴가 헛돌며 비실비실 미끄러져 내려가던 차는 드디어 길 옆 개골창에 처박힐듯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미사 시간은 십여 분 앞으로 다가오는데 성당을 눈 앞에 두고 차가 움직이지를 못하니 이를 어쩔 것인가. 새해 첫 미사를 천주교 성지에서 드리기 위해 충북 진천의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왔는데 자동차가 새해 첫날부터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닌가.성지로 전화를 했다. 어떻게든 미사라도 드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수녀는 성지 관리인의 트럭을 보낼테니 타고오라고 했다. 공사장비가 가득한 트럭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겨우 성지에 도착했다. 서둘러 성당으로 올라가자니 가득하게 눈이 쌓인 주차장 한 옆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바라보였다. '배티(梨峙)성지가 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을 축하한다'는 신자들의 현수막이었다.지자체가 지역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개발하는데 힘을 기울여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효과를 찾자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이곳 배티성지의 김웅렬 신부가 한 표본이 될 수 있다. 김 신부가 감곡성당을 맡아 성모님을 위한 성지로 가꾸어 가면서 전국에서 감곡 매괴성당(매괴는 장미꽃이라는 뜻)을 찾는 천주교 순례자가 하루 4천명을 넘는 날도 있었다. 한 성당을 찾아 조그만 지방 도시에 하루 4천명이 몰렸다면 이건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수치로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수익만도 얼마였겠는가. 그래서 김 신부가 감곡을 떠나 이곳 배티성지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감곡의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가 '신부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쩌느냐'고 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문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예의 하나다.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다듬어서 기리는 정책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도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고유문화와 제3세계의 지역문화에 눈을 돌리는데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 문화재의, 그 가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사려 깊은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문화재를 개발한다면서 어디나 똑같은 형태의 쉼터, 벤치와 계단, 연못과 오솔길이 조경업자에 의해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뜻이다.문화재로 지정된 후 천주교 성지조차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 변신이 훼손에 가깝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야 했던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며 담백했던 옛 사적지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공원처럼 쉼터가 되어가고 있다.배티가 이제 또 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이다. 이곳은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1년이면 7천리를 걸어서 전국을 돌며 12년간 사목활동을 했던 거점 마을 교우촌이었다. 이곳 산골짜기에는 지금도 무명 순교자의 줄무덤이 이름 모를 들꽃처럼 피어 있다.이런 종교적 의미만이 아니다. 이곳은 최초로 천주교 조선교구의 신학교가 설립되었던 곳이다. 두 칸짜리 초가집이 신학교 교사로 자리 잡고, 신학은 물론 라틴어와 프랑스어라는 최초의 서양학문과 언어를 익히는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해서 1854년 3월에는 세 명의 신학생이 말레이시아의 페낭신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토록 역사적 가치가 깊은 곳이다. 한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적 눈뜸이라는 배티성지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내일의 지표로 삼는 것은 더할 수 없이 가치있는 일이다. 일차적으로는 사적지 담당자의 양식의 문제이겠으나, 이 가치있는 일이 그 가치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쪽으로 이루어지도록 충청북도 담당자들이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사를 끝내고 나오며 바라본 배티성지의 산기슭은 눈이 덮인채 얼어붙어서 가슴이 시리도록 희고 아름다웠다. 불쑥 버려두고 온 승용차가 떠올랐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개골창에 처박힐듯 기울어져 있는 내 차는 어찌할 것인가. 지자체의 문화 정책이 문제가 아니다. 우선 내 코가 석자로구나. 내가 지금 새해 첫날부터 냉수 먹고 갈비 트림하는 꼴이 아닌가.

2011-01-07 한수산

'박근혜식 대권 행보'에 대한 단상

[경인일보=]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예상외로 빨라지고 있다. 박 전대표는 지난 20일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통해 한국형 복지모델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정책을 구상하게 될 싱크탱크 성격의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시켰다. 박 전 대표는 연구원 발기인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새로운 국가발전의 기로에 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국가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대권용 정책연구원을 발족시킨 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보다 큰 틀 속에서 보면 박 전 대표의 정책연구원 발족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직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이명박 정부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책 경쟁을 통해 대선 과정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2007년 대선은 정책이 실종된 채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으로 시작해서 검찰의 BBK 수사로 끝난 선거였다. 물론 대선 후보의 도덕성 검증은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도덕성에만 맞추면 정책 없는 선거로 빠지기 쉽고 선거가 끝나도 여운이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 발기인의 79%가 대학교수 등 학자들이고, 현역 의원은 단 한사람만 참여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박 전 대표가 연구조직 출범을 정치와 곧바로 연결시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현역 의원들은 후보 대선 캠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중책을 맡아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관행은 경선이 끝나고 나서도 후유증이 심각했다. 친이-친박간의 내전은 계속되었고, 도저히 당을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향해 저주하고 주저 없이 칼을 겨눴다. 이런 고질적인 한국적 병폐를 타파한다는 차원에서 캠프를 현역 의원 중심이 아니라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박근혜식 정치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연구원은 발기인들이 매달 내는 5만원씩의 회비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에 대권 후보들이 사조직을 만들면서 재정의 모든 것을 떠맡았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여하튼 능동적 참여와 투명한 정치를 향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는 연구원을 최대한 활용해 정책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구원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현실에 바탕한 미래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면 각오가 남달라야 한다. 첫째, 정치 공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 전 대표 지지율이 다른 후보들보다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 세몰이로 대세를 굳혀야 한다'는 사고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우리는 대세론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채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대권 후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둘째,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최근에 제시한 '한국형 복지'와 이 공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성장을 근간으로 하는 '줄푸세' 공약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무게 중심을 성장에서 복지로 옮긴 것인지 정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셋째, 열린 마음을 토대로 '정책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서로 상충되는 반대 의견을 많이 청취하면서 통섭의 시각에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는 창조성이 요구된다. 넷째, 연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당장, 민주당 추천 방송통신위원인 이병기 종편심사위원장이 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함으로써 논란이 되고 있지 않은가?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의 발 빠른 '정책행보'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한국 대선에서 최초로 후보의 철학이 살아 숨 쉬고 치열한 정책경쟁이 이뤄지는 격조 높은 선거가 도래하는 발판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10-12-31 김형준

지구온난화 방지위한 국제적합의 가능한가?

[경인일보=]인류는 산업혁명 이래 지난 200여년간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가 증가하여 지구온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온실가스의 배출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증가할 경우 21세기 말까지 지구온도는 최대 6.5도, 해수면은 59㎜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이상기후의 원인으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감소, 홍수 및 가뭄 그리고 해수면 상승 등을 야기하여 자연재해를 유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환경부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기온 상승률은 세계 평균의 약 2배, 제주도 주변의 해수면 상승은 세계평균의 약 3배에 달하고 있다. 급속한 기온의 상승은 집중호우와 태풍을 유발하여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2천여 명에 달하며 열대병인 말라리아 환자는 1994년의 5명에서 2007년에는 2천227명으로 증가하였다. 금년에도 이상한파와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바 있다.전 세계는 1992년 지구온난화방지 국제협약을 체결하면서 인류가 온난화 방지를 위하여 공동 노력할 것을 합의하고, 특히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래 석탄과 석유의 과다소비로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일차적인 책임이 자신들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우선적으로 온실가스의 배출 감소에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1997년 일본 교토 총회는 국가별 법적 구속력 있는 감축목표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하고 선진국들이 2012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규정하였다. 교토의정서는 경제여건, 기후변화의 파급효과, 자연적인 여건 등이 상이한 전 세계 180여개 국가들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합의 도출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의 감축을 약속함으로써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과제인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준 인류 역사상 큰 의미가 있는 회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금년 12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총회는 교토 의정서협약을 대체하는 2012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포스트 교토체계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 도출과 선진국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개발도상국들의 동참을 유도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한 회의로 인식되고 있다.전 세계의 유명 언론들이 칸쿤회의를 실패한 회의로 규정하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협력체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2012년의 기후변화 총회를 유치하려는 우리나라는 최근의 실패 원인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국가별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즉, 선진국들은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선진국들만의 노력으로는 지구온난화의 방지가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개도국의 참여가 없이는 선진국들도 온실가스의 감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당분간 온실가스의 감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1990년대 말과 최근의 경제위기로 인하여 각국들은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하여 추가적인 부담을 감수할 것을 요청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지구온난화 관련 협의는 정부 간 협의로서 협상에 참여하는 각국의 대표들은 정부의 공무원들이다. 이들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각국의 정치인들은 단기적인 이해에 집착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장기적인 노력에 미온적일 가능성이 높다.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전 세계의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단기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입장보다는 인류의 공존을 위하는 입장에서 협의를 진행해야 하며 협상 과정에서 각국 공무원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전문가그룹들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새해에는 인류가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남아프리카회의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0-12-24 정진승

문화의 건강한 진화를 위하여

[경인일보=]휴대전화는 사람들을 매우 바쁘게 하지만 그 정도의 번거로움 때문에 휴대전화가 가져다주는 '정보 황홀경'을 포기할 사람은 없다. 냉장고의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온실효과를 가져오지만 우리는 냉장고가 선사하는 서늘하고 시원한 맛의 환상을 포기하지 못한다. 자동차의 공해는 더욱 결정적이다. 그렇다고 누가 예전처럼 말을 타거나 걸어 다니겠는가? 인간은 기계문명을 선택하면서 유기적 삶과 멀어져 갔다. 평화보다는 매력적 고통을 선택한 것이다. 즉 문명은 인간에게 삶의 평화보다는 매력을 선사하였으며, 기계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편이성들은 삶을 매력 덩어리로 보이게 하였다. 게다가 문명의 속성인 집단주의는 숙명적으로 도시를 탄생시켰고, 과거 전원적이고 친환경적인 것들로부터 인간을 격리시키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그것이 문명의 짓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재앙임을 잘 알고 있다.텔레비전은 반세기 이상 활자문화, 독서문화를 타격하다가 정보를 무한대로 확장시킨 인터넷에 의하여 거꾸로 타격 당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황제는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전이 아니라 실시간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확장시키는 온갖 정보매체이다. 텔레비전을 24시간 켜 놓아야 심리적 위안감을 갖던 인간들은 이제 텔레비전 대신 인터넷을 하루 종일 켜 놓고 정보 황홀경에 탐닉한다. 문명은 흡사 대중문화의 속성과 같아서 과거 시대의 우상을 가차 없이 청소해 버린 뒤 새로운 우상을 탄생시키고, 신앙처럼 숭배한다. 문명은 그런 것이다. 희랍시대에 문자가 처음 등장하자 문자가 인간의 기억력을 망칠 것이라며 문자사용을 적극 반대한 학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실은 플라톤이다. 그러나 플라톤도 결국 나중에 문자로 제자를 교육하였고, 문자가 역사를 보관하는 기발한 장치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테네의 아카데미에서 제자를 가르칠 때 문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치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플라톤의 명성과 체면을 겨우 유지하였다.명예나 긍지, 민족애는 참 소중한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이를테면 명예나 긍지, 민족의 뿌리 같은 것이라서 그것이 말살당하는 일에는 누구나 분노한다. 그런데 그 문화가 붙박이처럼 화석화되거나 천 년 만 년 변함없이 돌덩이가 되는 것은 누구도 좋아 하지 않는다. 문화가 민족의 긍지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독립기념관은 민족의 자주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단 한 명이 찾아오든 말든 그 존재가치는 지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독립기념관에 관객이 없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흥분하는가. 전쟁기념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역사적, 민족적으로 중요한 장소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히 사람을 위한 장소이다. 그리고 그 곳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장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우리는 문화의 미래지형도와 그 생생한 가치를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을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꾸밀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장소를 과거의 독트린에 가두어 지키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그 곳을 화석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광주나 기타 국가 차원의 대형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는 부산, 대구, 인천 등에도 바로 적용된다. 만약 우리가 이념적 건물을 짓고, 쟁취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념적 민주주의의 성지를 만들어낸다면 살아 있는 생생한 문화의 생기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자칫 사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전대의 역사를 숙명적으로 계승하여 살고 있는 후대들의 생각과 입장을 간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문화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다. 이 착각이 불러오는 의식의 참사가 문화를 화석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적 명분을 위한 민족주의는 문화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 세계적 사고를 반민족주의, 반지역주의 쯤으로 인식한다면 문화는 가망성이 없다.

2010-12-17 이용우

전쟁 불사가 진정한 용기인가?

[경인일보=]지난달 23일 북측은 연평도를 포격했다. 이로 인해 해병대 병사 2명이 전사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부상자도 나왔다. 남측은 22일부터 서해상에서 군사훈련을 진행중이었고, 북측은 이 훈련은 '북침 전쟁연습'이라며 항의하는 전화통지문을 수차례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군 당국은 북측의 의례적인 항의라고 생각해 무시하고 사격훈련을 했다고 한다. 휴전 이후 남북이 해상이 아닌 육상에서 포격전을 벌이고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민간인 지역에 포탄이 떨어져 주민이 다치고 집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국민들치고 우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24일 오전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대한 우리측 대응과 관련, '상황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뭐였느냐'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을 겸해서 말했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방지' 발언을 문제삼으며 "국군통수권자가 확전을 두려워하니까 2~3배 대응 교전규칙이 있고 전투기까지 떴는데도 저쪽을 못 때린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그러나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사태 발생 이후 확전과 관련한 말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황급하게 진화작업에 나섰고, 국방장관은 오후가 되자 "대통령이 확전을 막아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고 바로 말을 바꿨다. 필자는 대통령이 확전 방지를 강조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확전을 해도 무방하니 마음껏 폭격하라고 말했다면 이 나라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신임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이 다시 도발한다면 전투기까지 동원해 폭격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전면전 확대에 대한 질의에 대해 김 장관은 "북한의 국가적 경제 사정이나 정치적 승계 등 내부 불안 요소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북측은 자신들의 영해 내에서 사격훈련이 진행될 경우, 무력 대응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군사적 도발' 에 대한 '파국적 후과'를 경고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평도와 대청도 등 해상 경계선 일대에서 포격훈련이 진행되었을 때 확전하여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또 그들의 예상과 달리 전쟁이 확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가진 미사일을 북에 다 쏘고, 북이 가진 미사일을 남에 다 쏘면 누가 더 피해를 볼 것 같은가? 북은 산업시설도 낡고, 인구도 희박하여 피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보지만 남은 산업시설도 많고, 인구도 밀집하여 훨씬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이런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연평 사격훈련을 반드시 하겠다고 외치며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전쟁이 나면 국민들의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인가? 한국전쟁 때도 아무런 준비없이 큰소리만 치다가 낙동강까지 밀렸지만 그때도 이승만 대통령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그렇게 많은 고귀한 생명이 사망하고, 그렇게 많은 피란민과 고아가 발생했지만 한국정부가 그들에게 보상해 주었다는 말은 못 들었다.죽음을 불사하는 군인정신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필요한 것이지 전쟁을 도발하고 확전할 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 생명을 보호할 군인이 필요한 것이지 군대의 자존심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미래와 평화를 송두리째 걸고 싸우는 군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 시간에도 자식을 군에 보낸 힘없고 평범한 부모들은 행여나 전쟁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과 정치인들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분향소에 조화를 보내기 전에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0-12-09 서홍관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라

[경인일보=]북한은 왜 연평도에 기습 포격을 감행했을까? 정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도발 전에 행한 일련의 행동들을 면밀히 고찰하면 윤곽이 드러난다. 올해 북한은 3월 천안함 폭침, 5월과 8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11월 고농축 우라늄 시설 공개와 연평도 기습 포격 등 이례적인 행동들을 취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올해 김정일의 두 차례 중국 방문은 3대 세습체제를 인정받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이런 추정이 맞는다면 북한은 철저하게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북한은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 핵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했고, 뒤이어 연평도를 기습 포격했다. 더구나, 북한은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개혁·개방 충고나 6자회담으로의 복귀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독자적인 무모한 행보를 계속 취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북한의 최대 현안은 3대 세습 체제 구축이 아니라 핵 무장을 통해 주체 국가로 거듭나 2012년에 강성 대국을 완성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의도와 목표를 달성하는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일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필연적으로 일본이 핵을 갖게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표면상으로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강조하고 북한의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중국의 이중적 태도에 북한은 저항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밀한 전술을 구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북한은 2006년 10월에 중국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1차 핵 실험을 단행했고, 이어 2009년 5월에는 2차 핵실험까지 했다. 따라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미국이 할 수 없이 파키스탄의 핵 보유를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연평도 포격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로 인해 불어 닥칠 국제사회와 중국의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이런 추론과 진단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품고 있었던 착각과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첫째, 중국이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북한은 중국이 현재와 같은 집단 지도체제와 2012년에 시진핑을 중심으로 제5세대 체제로의 출범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홀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리를 해서라도 2012년까지 핵 무장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햇볕정책의 허구성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햇볕정책 추종자들은 햇볕을 쪼이면 북한이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반면, 북한은 교묘한 위장 평화 전략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했다. 북한의 이런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채 민·군이 죽고 연평도가 쑥대밭이 됐는데도 햇볕정책의 지속이냐 폐기냐를 놓고 대립하고 갈등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셋째, 김정일의 건강 악화와 경제난과 대량 탈북 등으로 민심이 요동치면서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분야에서 북한의 불안정성은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정일의 체제 장악 능력, 당·군 공안기구의 통제력, 국가의 위기 대응 능력 등을 포함한 북한의 통제 역량은 오히려 증가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무모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이제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정부와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정부는 치밀하게 준비해서 말보다는 제대로 된 응징을 해야 하고, 국민들은 북한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 단합된 모습으로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야 할 것이다. '하나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0-12-03 김형준

담배 가격 인상과 정책조정 기능의 상실

[경인일보=]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이 "흡연율 감소를 위하여 세계보건기구(WHO)와 담배가격의 적정수준에 대한 대안을 물색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시작으로 담배가격 인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무총리는 "복지부 입장에서는 검토하는지 모르겠지만 서민물가 등을 고려해 신중해야 할 문제이며, (담배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담배가격 인상에 관한 정부 고위공무원들의 상반된 의견을 들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담배가격 인상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과연 행정부 내에 정책수립 과정에서 발생되는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우려이다. 복지부가 담배가격을 인상하려는 주요 이유는 첫째, 흡연율의 감소를 통하여 흡연이 주요 원인인 암, 뇌졸중, 관상동맥질환 등의 발생률과 사망률 감소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여성층, 저소득층의 흡연율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 복지부는 담배가격의 인상을 통하여 얻어지는 추가적인 수입을 일반재정의 지원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는 보건의료서비스의 확충과 질 향상에 투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셋째, 흡연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비흡연자들에게도 건강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를 가지므로 국가가 금연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의 주장에 대하여 행정부의 관련부처, 국회,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갖는 이견은 담배는 습관성이 있는 기호식품으로 가격 상승이 장기적으로 흡연율 하락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추가 수입이 흡연 관련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만 국한되어 활용되는지 확실치 않으며 오히려 일반재정에서 지원되어야 하는 복지부의 사업들을 편의상 담배가격 인상으로 발생되는 수입으로 운용하려는 의도가 많으며 이는 재정의 일반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정 부처의 정책은 다른 부처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4대강 사업은 국토관리, 환경, 재정 등 관련 부처와, 그리고 국방 관련 정책은 외교, 교육, 재정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는 관련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부처간의 협의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규제개혁위원회, 차관회의,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를 통하여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최근 담배가격 인상에 관한 국무총리, 관련부처의 이견을 들으면서 과연 부처 간의 정책조율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실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과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관련부처들이 정책수립 과정에서 법에 명시된 협의과정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담배가격 인상에 관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수년간에 걸쳐 복지부는 유사한 논리를 동원하여 가격인상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바 있으며, 관련부처는 항상 유사한 논리로 지연, 또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던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파급효과, 담배가격의 인상이 흡연율의 감소에 미치는 영향, 담배가격의 인상으로 발생되는 추가적인 재원의 활용방안 등은 이미 국내외에 많은 사례가 있으며 부처 이기주의를 벗어난다면 단기간에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지금부터라도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부처 간의 협의를 진행하여 담배가격 인상 여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담배가격인상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정책에 관하여도 범정부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남북문제와 같이 복잡하고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책을 행정부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정부가 부처 간의 협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외부의 이해당사자들과 이미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국회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흡연율 감소정책이 지연되어 수없이 많은 국민들이 흡연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는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2010-11-25 정진승

상품 대신 예술품을 만들어라

[경인일보=]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최고의 경영인으로 꼽는 이유는 그가 상품을 잘 파는 재주를 가졌다기보다는, 상품을 예술품으로 둔갑시키는 천재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잡스는 애플의 CEO(최고경영자)이다. 그러나 그가 직접 나서서 권하는 제품은 상품 출시에 맞춰 소비자가 줄서서 사야하고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이를테면 거의 예술품이 된 것이다.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판매 당일은 물론 며칠 동안 긴 줄을 서서 상품을 사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상술에 속아 소비자가 농락당했다고 간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아이폰은 예술이라고 탄복할 정도로 기능이 탁월하였으며, 상품을 능가하여 소비자가 인정하는 기술의 혼이 들어 있었다. 소비자에게 고가의 값을 지불하고 상품을 습득하면서도 상품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획득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 것이다.그 후 유사한 스마트 폰들이 다수 출시되었지만 아이 폰의 신화를 크게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잡스는 소비자가 아이폰을 가짐으로써 흡사 첨단예술을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누리면서 시대를 리드하는 신세대들의 신화에 가담하게 해주는 메신저를 자처하였다.1960년대에 불길처럼 등장한 블루진은 단순히 청바지가 아니라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였다. 당시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이돌을 걸치고 다녔으며, 오늘날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문화적 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청바지를 입는 소비자는 하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입는 것이다. 오늘날 청바지는 싸구려 이미지가 아닌 문화의 값을 주장하기 위하여 고급화, 패션화 되고 있으며, 그것을 입는 자들에게 흡사 청바지 문화로의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인식된다.런던의 테이트갤러리나 파리의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에는 연 500만 명의 관객이 몰린다. 이것은 단순히 대도시 문화공간이 누리는 특수가 아니다. 이들 도시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서울의 문화공간들과 그 관객 수를 비교해보면 현실은 너무도 자명해진다. 그들은 나름대로 관객에게 예술성, 천재성을 인정받을 만한 기막힌 공간을 창조하였고,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사람을 부르는 지독한 매력을 개발한 것이다.시장경제와 소비중심사회는 시장과 소비자가 그 중심에 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뿌리는 대중과 대중문화이다. 대중의 속성, 대중문화의 흐름이 시장과 소비를 좌우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이 창조해 내는 영웅과 아이콘들은 때로는 아이돌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그 많은 상품들 중 일부를 독특한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상품 뿐 만이 아니라 심지어 문화예술이벤트까지 이에 적용된다.지난 9월 초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을 전후하여 광주 일원의 호텔이 초만원을 이룬 적이 있다. 아트페어와 시기가 겹친 탓도 있지만 1천500여 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지구촌에서 몰아닥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는 광주비엔날레 1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의미는 남달랐다. 그렇다고 광주비엔날레가 베니스처럼 비엔날레 특수를 누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광주의 전시상품이 아닌, 그 무엇을 애써 가꾸는 과정에서 찾아온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오늘날과 같은 소비사회는 소비자가 시장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 그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상품중심주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상품중심주의란 상품이 광고 이상의 독특한 질과 기능을 가져야 하며, 소비자들의 입소문이 광고를 압도하는 기능중심주의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광고시장에서 업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야가 소비자들이 결정하여 시장을 리드하는 바로 '입소문'이다.

2010-11-19 이용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가 정반대로 가는 것인가

[경인일보=]우리나라는 해마다 1만5천명 이상이 자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매일 42.2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이를 달리 계산하면 34분당 한 명이 자살한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7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위이다. 그것도 10만명당 109.6명으로 60.4명으로 2위인 헝가리와 47.8명으로 3위인 스위스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있다. 10만명당 자살률이 60대는 54.6명인데, 70대는 80.2명, 80세 이상은 127명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살률은 더 높아진다. 그럼 왜 이렇게 노인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가?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와 60년대의 가난 속에서 자녀교육에 매진하여 70년대와 8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을 이루는데 땀 흘렸건만 경제적 성공을 이룬 지금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무관심이다. 노인들은 배우자의 죽음, 직업 및 사회적 지위 상실, 건강의 악화 등으로 정신·신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사회가 주는 복지혜택은 미미하다. 소외된 도시 빈민과 농촌 노인들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셈이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무의탁 노인들은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고독감과 상실감에 시달려야 한다. 자녀가 있어도 부모를 방치하는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호적상으로는 부양자가 있기 때문에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중의 고통까지 겪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더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젊은이들의 자살에 비해 사망할 확률이 3~5배 높다. 흔히들 목을 매거나 시골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마시는데 제초제는 치사율이 높다. 남자 노인들은 여자에 비해 더 무능해지기 때문에 혼자 남을 경우 더 고달픈 삶을 영위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남자 노인의 자살률이 여자에 비해 높다. 음독 자살을 하는 경우 독거노인들은 발견이 늦어져서 치사율이 더 높아지는 경향도 발견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노인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노인들이 그나마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외로움을 달래는 경로당의 겨울 난방비가 전액 삭감된다는 듣기만 해도 추운 소식이 들린다. 이 난방비는 5만6천480개 경로당에 매월 30만원씩 3개월간 90만원을 지원하는 예산인데 이 천금같이 귀한 411억원이 내년 예산에서 전액 삭감되는 안으로 제출되었다는 것이다. 친서민정책을 편다고 표방하는 현정부가 이런 예산안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내년도 국가 총예산 규모는 약 309조6천억원이다. 그런데 내년 4대강 사업은 중앙정부 예산으로 3조3천억원, 수자원공사 예산으로 3조8천억원 등 총 7조1천억원이 예산에 잡혀 있다. 7조원은 전체 예산에 비하면 작은 액수인 것 같지만 정부 예산의 많은 부분은 기본적으로 줄이고 말 것이 없는 비용들이다.복지가 위협받는 계층은 노인들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부터 2년간 기초생활수급자를 163만2천명으로 동결하여 편성한 전례가 있고, 내년도에는 아예 수급대상자 2만7천명을 대폭 축소하여 160만5천명으로 편성하였다.장애인들도 지원 축소의 예외가 아니다. 장애인들의 외출이나 활동을 돕는 장애인 활동 보조지원 사업비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높은 사업으로 매년 예산부족으로 장애인들의 요구가 높았으나 이 예산을 14.6% 축소하여 196억원을 삭감하여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지원을 끊고 말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서민들의 신음소리가 높아지는데 이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조차 적어진다면 아무리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3~14위라고 해도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었다 한들 저들만의 잔치로 느껴질 뿐 자신에게 무슨 혜택으로 느껴지겠는가.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떠난 서울에서, 경복궁이 불타고 서울이 무법천지가 되었을 때 나라에 불을 지른 사람은 일본군이 아니라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 나라 백성들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0-11-12 서홍관

기본으로 돌아가라

[경인일보=]정치권이 뒤숭숭하다. 태광그룹, C&그룹, 한화그룹에 대한 조사에서 검찰 사정의 칼날이 비리 정치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과 관련해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주고 불법 로비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은 2013년부터 시행되는 소득·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철회를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측의 감세 기조 불변 입장에도 불구하고 '감세 철회 촉구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요구' 서명을 받고 있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측은 "부자·대기업 중심의 정책 노선을 친서민 정책 노선으로 수정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서민·중도층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에게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모임인 민본21 토론회에서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층의 30.4%,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층의 33.6%가 '정권 교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상으로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듯 하지만 동시에 민심의 밑바닥에는 '정권 교체'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한나라당이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와 박 전 대표의 압도적인 지지도에 바탕을 둔 대세론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멀리하면 막판 DJP 연대로 패배했던 1997년 대선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민주당도 민심의 경고를 받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정권 교체에 대한 욕구가 크고 보수에 대한 혐오감이 큰 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도와 야권 대선 후보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이런 사실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아직 민주당이 정권을 맡아도 좋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손학규 대표 체체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처음에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손 대표가 4대강 문제와 사정 정국, 개헌 등 국정 현안에 대해 야당 수장으로서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면서 여당과의 대립각을 만들어 당의 존재감을 살렸다는 점은 인정할만 하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핵심 어젠다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만 냈지 정작 국민들이 공감하는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도의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국회가 부패한 집단으로 불신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집권당 대표가 청목회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거액의 후원금을 수수한 의원들을 상대로 자체 진상 조사를 실시해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정도가 아닌가? 당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감세 철회가 대통령 경제특보 말 한마디에 어떻게 지도부가 서둘러 논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개혁적 중도 보수론을 제기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라면 감세 철회 주장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결론짓는 성숙하고 활력 넘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도 다를 바 없다.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대통령을 '평화의 훼방꾼'으로 몰고 간 의원과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채 면책특권 뒤에 숨어 비방 폭로에 앞장선 의원을 제 식구라고 무조건 감쌀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잘못된 것이 없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국정 운영과 관련해서는 사사건건 정면 충돌해 온 여야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을 보면서 어떻게 국민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은 "어려울 때 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을 깊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2010-11-05 김형준

거꾸로 가는 지역균형발전

[경인일보=]최근 지방의 한 대도시에 설립된 전문 연구기관의 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한 지인으로부터 힘들었던 경험 두 가지를 전해 들었다. 무엇보다 전문 연구기관에서 함께 일할 젊은 직원을 채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성을 갖춘 젊은이들은 새로운 정보의 획득이 가능하고 연구비가 많으며, 장래 발전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비교적 용이한 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수도권의 젊고 의욕있는 젊은층이 비수도권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의 젊고 유능한 인력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듦으로 인해 비수도권은 인력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수도권의 유능한 인재들을 지방으로 유입하면서 비수도권의 인재들을 지역에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수도권에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비금전적 혜택을 비수도권에서도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그는 갓 설립한 연구기관의 운영에 몰두하기 위하여 수도권에 있는 주택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지방 생활에 정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했다. 다양한 중앙부서와의 업무 협조와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전문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빈번한 출장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시간의 낭비와 비용의 지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소 운영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련 중앙 부처 방문 및 설명을 위한 출장은 현재의 국가재정 운영체제하에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들, 즉 수도권으로의 빈번한 출장으로 인한 불필요한 행정 비용의 발생과 지역의 인재난으로 인해 생산성 높은 산업의 지방 이전 거부, 그리고 이로 인한 지방경제의 산업구조 고도화의 지연은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지방정부 또는 기업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균형 발전은 과거로부터 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중요한 국가정책의 핵심 과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 이유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및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이 규모의 경제보다는 비효율성을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 하락을 유발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지역균형 발전이 국가의 핵심적인 어젠다로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단된다. 정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균형발전이란 지역 격차,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역 격차를 축소한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으나 특정지역의 1인당 총생산량의 차이를 지역간의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지표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지역 간 1인당 총생산의 차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완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1990년대 말을 전후하여 격차가 다시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지난 10여년 간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했으나 관련 정책이 실효성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또 이는 중앙과 지방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역균형 발전을 악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과 재정의 실질적인 분권화(decentralization)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미 정착되어 가고 있다. 또한 경제의 세계화와 지식기반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전되면서 국가가 아닌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전 세계의 지방정부와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시대(Glocalization)가 진전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이러한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통제적 간섭은 제거되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방정부가 지도록 해야 한다. 지역 격차를 이용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김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지방출신 정치인들에게 의존하려는 지방정부의 행태도 근절되어야 마땅하다.

2010-10-29 정진승

약사(藥師)와 약장수

[경인일보=]약사와 약장수는 어감으로 보면 매우 유사한 직종이다. 구체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둘 다 분명 약을 다루고 약을 판다. 그런데 약사와 약장수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감성의 차이는 판이하다. 두 직종을 가르는 가장 큰 이슈는 면허의 문제이다. 약사는 일정한 자격에 따라 주무관청의 면허를 받아 의약품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이를테면 전문 직종 종사자를 말하지만 약장수는 면허와 상관이 없다. 약장수가 면허가 필요한 직종이라면 그것은 이미 약장수가 아니다.약사나 약장수나 둘 다 나름대로 심각한 직업이지만 약장수는 오늘날 현대사회 들어 본래의 의미가 크게 퇴색하였다. 구성진 가락을 내세운 만담을 들을 기회도 적어졌고, 약장수의 서식처인 재래시장이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약장수의 단골 메뉴인 몸보신용 동물의 거시기 등을 파는 행위도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이다. 약장수는 오래 전부터 역할보다는 의미의 전환이 이루어져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과거 유사 인생 상담사이자 재간꾼으로서의 약장수 역할은 능숙한 화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매우 부정적인 화술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과거 우리 주변에 소비자가 그토록 관대한 직종은 아마도 약장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약사는 동네 어귀마다 있지만 인생 상담사이자 재간꾼인 약장수는 하나 둘씩 없어져 이제는 약에 쓰기도 어렵게 되었다. 대신 약장수의 화술만 사회 각층에 떠돌아다니면서 사회 곳곳에 유사 약장수가 창궐하게 되었다. 동네 어귀마다 각 직업별, 연령별, 세대별 약장수의 수가 부지기수이다.의료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약사와 의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 그리고 국민건강이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약장수는 대중의 건강은 물론 접대요소까지 곁들인 엔터테이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은 안 되었지만 인삼, 녹용, 뱀, 웅담을 팔고 성인 남녀들의 남녀열혈지사에 관하여 너스레를 떨던 시절의 약장수는 시장바닥의 명인들이었으며, 의약적 판단은 제쳐두고라도 사회적 추억거리였다. 오늘날 약사와 약장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 만약 약사(pharmacist)를 약장수로 불렀다가는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많다. 진짜 약장수는 거의 소멸한 대신 직종별 유희적 약장수가 늘었으나 누구도 후자의 약장수로 불리기를 꺼려한다. 진짜 약장수는 기껏해야 지방의 서커스 정도를 구경 가야 한 두 명을 만날 수 있을 정도이지만 가짜 약장수는 어디에나 있다. 기막힌 아이러니이다. 진짜 약장수를 생존시킬 만한 장터나 수요자, 소비자가 소멸한 대신 가짜 약장수가 생존하는 무대는 수 십 배 넓어졌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약사보다 약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건강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추억과 추억의 재생산을 위하여, 과장하자면 국민의 정신건강을 생각하여 약상(藥商)의 존재감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산업화는 대도시를 쉴 새 없이 탄생시키지만 약장수와 같은 인간 친화적이고 설명적인 직종은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그 대신 약장수는 특정한 직업이라기보다 도처에서 약장수와 같은 기능자들이 약장수를 대신하고 있다.과거 약장수의 말에 속아 인생을 망치거나 건강을 심하게 망친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기껏해야 약간의 금전적 손해를 보거나, 효험이 적은 약재를 달여 먹고 후회한 정도가 최대의 피해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약장수의 너스레에 대한 팁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럴듯한 화술이나 언어의 조작, 과장광고, 과대포장 등 현대사회의 약장수들이 뿜어내는 독소는 상상 이상이다. 전통적 약장수도 신용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현대사회의 약장수는 신용이 최악이다.진짜 약장수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유사 약장수의 터전을 제공할 가공의 무대들이 생겨난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분별없이 너도 나도 약장수가 되어 간다. 정치인 약장수, 기업인 약장수, 예술인 약장수, 공무원 약장수, 노조원 약장수, 언론인 약장수, 법조인 약장수, 교육자 약장수, 지식인 약장수 등…. 제발 진짜 약장수만큼만 되어라!

2010-10-21 이용우

종교와 과학의 거리

[경인일보=]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1978년 시험관 아기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영국 에드워즈 박사가 선정됐다. 이 기술을 이용해 현재까지 약 400만 명의 생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시험관 아기는 아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불임부부들에게 과학이 가져다 준 커다란 희망임에 틀림없다.그런데 교황청은 이번 노벨상 수상에 대해 "에드워즈 교수가 없었다면 수백만개의 난자가 팔리는 시장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간배아로 가득찬 수많은 냉동실도 없었을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교황청은 시험관 아기 뿐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이 생명의 탄생에 개입하는 어떤 시도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자녀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콘돔이나 정관수술을 비롯한 어떤 방법도 금지하며 인공임신중절술을 반대하기 때문에 심지어 강간으로 인해 임신하더라도 그 아이를 낳도록 권하고 있다. 그 조차도 신의 뜻이라는 견해를 교황청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톨릭 신도들조차도 이런 교황청의 견해를 현실적인 이유로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자들도 자녀를 조절하기 위해 갈등을 느끼면서도 콘돔을 사용하거나 정관수술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종교와 과학은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에 종교가 우위일 때는 신학자들이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이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했다.지동설이 제기되었을 때 신학자들이 지동설이 틀렸다고 주장한 근거는 구약성서 여호수와 10장에 있었다. 성서에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다섯 왕과 전투를 할 때 태양과 달을 멈추도록 여호와께 부탁했고 여호와는 태양과 달을 멈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만약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면 여호와가 지구를 멈추도록 하셨겠지만 태양이 돌았기 때문에 태양을 멈추도록 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천동설이 맞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금 기독교의 신학자들이나 신도들이 성경을 근거로 지동설을 부정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다윈이 150년 전에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도 벌어졌다. 다윈은 생물계가 지구상에서 38억년 겪었던 진화의 과정과 종의 생성과 소멸의 기본적인 원리를 밝혔다. 다윈은 자신의 면밀한 관찰과 화석자료를 토대로 자연선택이 이 모든 생명체 변화의 기본원리임을 주장하고, 대담하게도 모든 생명체가 한 가지 공통조상으로부터 왔다고 추론하였다. 그 뒤 우주와 지구의 생성 과정에 대한 발견과 화석 자료의 발견은 물론이고, DNA 발견 이후 현생 생명체들의 유전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많은 생명과학자들은 다윈이 150년 전에 내린 결론이 이토록 옳다는 것을 경이롭게 체험하고 있다. 우연히 케이블방송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강론을 하시는 걸 보게 되었다. "진화론은 내가 아주 간단히 깰 수 있단 말여.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었으면 그 중간 것이 있을 것 아녀. 그런데 그런 것이 왜 없냔 말여. 그리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으면 원숭이는 싹 없어졌어야 하는데 원숭이가 왜 남아 있냔 말여." 그 설교를 듣는 신도들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목사님의 정곡을 찌르는 듯한 명쾌한 강론에 감탄하는 듯했다. 그런데 생물시간에 제대로 들었다면 중·고등학생도 진화론이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은 안다. 진화론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지금의 원숭이와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공통조상은 사라지고 만 것일 뿐이다. 자신이 신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그 목사는 강론할 때 진화론을 강론하려면 진화론에 대해 최소한의 공부는 했어야 한다. 종교가 과학을 지나치게 간섭하면 비극이 발생한다. 수 천년 전에 쓰여진 저술들을 근거로 종교가 과학을 구속할 경우에 발생하는 모순과 폐단을 막기 위해 종교가 종교 본연의 영역인 인생의 목표와 행복, 인간 영혼의 구원에 집중한다면, 과학과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10-10-15 서홍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