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시민과 함께 만드는 과학문화

대덕연구원 모임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장' 공동체재능 기부로 지역 주민·기업·꿈나무들에 지식 전달벽돌 한 장은 그 자체로 큰 힘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한 장의 벽돌이 모이고 쌓여 따뜻한 집도 만들고 거대한 성도 지을 수 있다. 벽돌이 힘을 갖게 하는 것은 그것의 용도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대전의 대덕연구단지는 조성된 지 43년이 넘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하고 생활하는 과학도시이다. 여기서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과정에서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누구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국민의 성원을 얻어왔기에 대덕의 과학자들이 좋아하는 연구를 안정적으로 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동안 대덕의 구성원들이 국가의 수혜자였다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대덕연구단지는 자발적인 과학도시라기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도시이고, 여기서 일하는 많은 과학자들도 지역출신보다는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사람들로 구성되다 보니 항상 지역사회와 어울리거나 융합하는데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 발전하여 지리적으로 경계가 없어지고 대덕의 구성원들도 대전의 전 지역에 걸쳐서 생활하다 보니 이런 고립성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사회와 융합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이러한 차원에서 대덕에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모임인 사단법인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이라는 공동체가 탄생한 바 있다.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은 대덕특구 구성원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함께하는 과학문화 조성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는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더 나아가서 세계 과학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자는 취지를 갖고 시작됐다.벽돌 한 장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지만 벽돌이 하나씩 모아져서 수만 장, 수십만 장 쌓인다면 우리는 이것으로 큰 건축물도 완성할 수 있고, 무엇인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벽돌 한 장 공동체는 가진 자의 힘으로 한 번에 무엇인가를 이루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참여로 큰일을 하자는 차원에서 이름부터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벽돌 한 장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과학 대중화 활동의 일환으로 '따뜻한 과학마을 이야기' 강연 프로그램을 매달 한 번씩 개최하고 있는데, 주제는 과학, 기술, 문화, 예술 분야로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고, 강사는 모두 재능기부를 통해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달 대전 대덕구에 있는 기업들을 방문해 기업인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과학과 지역사회가 융합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과학 꿈나무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 대전시에서 주최하는 '사이언스페스티벌'과 연계한 X-STEM 강연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과학문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 따뜻한 과학마을 조성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과학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지원 및 건의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처음에는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는데 이제는 뜻을 같이 하자는 사람들이 점차 가정주부, 기업인, 교사, 교수,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들이 따뜻한 과학마을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고 대전을 넘어 전국적인 자발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과학자들은 국가로부터 부여 받은 미션을 수행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제고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변해 자기 시간의 일정부분, 자기 재능의 일정부분은 지역사회에 돌려주기 위한 활동,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활동, 그리고 따뜻한 과학마을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선진 복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국가에 무엇을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체 활동과 우리 스스로 가진 것을 내놓아서 따뜻한 마을을 만들려는 자발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이 보유한 작은 벽돌 한장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작은 재능을 한 장씩 내놓음으로써 벽돌은 한 장씩, 한 장씩 쌓아지고, 우리는 이것으로 무엇인가 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스스로 참여하는 작은 벽돌 한 장으로 우리 마을은 점차 따뜻한 과학마을로 변해 갈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마을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7-02-16 정용환

[춘추칼럼]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중·고등 교육에서부터 헌법·정당정치 배워야세상 바꾸는 정치방법 학교에서 왜 안 가르치나진정한 '자유과' 따로 있다는것을 숨기려하기만대학 제도를 다루는 문헌에 자주 나오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개념은 라틴어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에서 온 것인데 '자유로운 예술'이 아니라 '자유인을 위한 과목'을 뜻한다. 간단히 자유과(自由科)라고 옮길 수 있겠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상류층 엘리트)만 배울 수 있는 학문을, 계몽주의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비판적 지성인)이 되려면 배워야 할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흔히 '전공 교육'과 반대되는 '교양 교육'을 뜻하여, 특수한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교양인을 기르겠다는 취지의 대학을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 한다. 대학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필수 교양 과목이 있다는 발상 자체를 새삼 음미해 보려고 꺼낸 말이다. 고대 이래의 '자유과'(더 정확히는 '자유7과')는 문법, 수사(修辭), 논리, 산술, 지리, 천문, 음악으로 구성됐다. 이 과목 구성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그러지 않는다. 각 시대 모두 나름의 사상과 필요에 따라 교육의 실제 내용을 달리해 왔다. 우리 시대의 조건이 반영된 자유과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야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헌법이다. 고등학교 때 헌법의 기능과 개정 역사 등을 배웠을 테지만 조문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곱씹은 기억은 없다. '헌(憲)'은 '법'이나 '관청'을 뜻하는 글자인데, 글자를 분해해 보면 '해로운'害' 일이 없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감시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전하는 자전의 풀이가 과연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법의 세부 내용은커녕 헌법이라는 글자 자체의 뜻도 모르고 살아왔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1조 1항과 2항 정도는 외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과 그 뒤를 잇는 '국민주권론'의 선언이 얼마나 엄중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나의 공부는 여전히 부족해서 '헌법 사용 설명서'(조유진, 이학사)를 읽었고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로마가 마지막 왕을 축출한 이후 스스로를 '공화국(republic)'이라 했는데 이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공화국이란 일차적으로 '왕이 없는 나라'를 뜻한다. '평등한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적 가치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는'이라는 뜻의 '공화(共和)'가 그로부터 파생·심화됐다. '국민주권론'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할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에서 '권력'이라는 말은 '권리' '권한' 등과는 달리 법률용어가 아니라는 것, 이 "의지와 감정이 담긴 대단히 정치적인 말"이 우리나라 최고 법규범인 헌법에 쓰였다는 것은 "헌법이 고도로 정치적인 문서"임을 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처럼 헌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법만이 아니라 정치도 함께 공부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고 실제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최소 중고등교육에서부터) 필수적으로 헌법을 공부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출발해 여타의 법과 동시대의 정당 정치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등학생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을 방치하면서 왜 그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지는 않는가.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그것을 숨기려 한다. 진정한 '자유과'는 따로 있다는 것을./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2-09 신형철

[춘추칼럼]특검과 검사의 차이점

정치적 고려없이 법의 잣대로만 죄 판단하는 '특검'정치권 눈치 보지않도록 검찰 인사권 독립 필요대선후보 '인사권 독립 안지키면 사퇴' 공약 넣어야박영수 특검의 인기가 뜨겁다. 주말과 설연휴를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성실성도 국민들을 감동시켰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저돌성은 역대 어떤 검찰에서도 보기 힘든 덕목이었다. 게다가 모든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던 김기춘과 장황한 동문서답으로 보는 이들의 혈압을 올린 조윤선을 구속시키는 치밀함도 갖췄으니, 이런 특검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뭘 하다 갑자기 나타났을까? 특검을 맡은 박영수를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경력이 뜬다.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대통령 민정수석 사정비서관, 대검 중수부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1999년부터 10년간, 즉 이분이 검찰의 핵심요직에 있던 그 시기 검찰의 신뢰는 어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특검이 받는 환호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기 검사들은, 지금 검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의 실세에게 한없이 약했고, 삼성을 필두로 한 재벌들에게 순한 양처럼 굴었다. 그랬던 그들이 특검으로 발탁되자 갑자기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추측컨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높은 곳에 오르고픈 검사라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 그리고 우병우처럼 능력있는 검사가 청와대에 들어가 검찰수사에 간섭한다. 설령 검사에게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의지가 있다 해도 제대로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 특검은 다르다. 박영수 특검은 2월 말까지로 예정된 임기가 끝나면 다시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한다. 대통령에게 잘 보여봤자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특검이 일을 잘 하는지 국민들의 관심이 높으니,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죄의 유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검은 박수를 받는다. 그 값어치를 하고 있긴 하지만, 특검은 매우 비싼 조직이다. 검사 옷을 벗고 다른 일을 하던 분들이니, 특검팀에 차출할 때 그에 걸맞은 월급을 줘야 한다. 사무실 임차료까지 계산하면 120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특검을 위해 쓰는 돈은 25억원 가량이다. 이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된다.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검사를 뽑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이유는 법질서를 바로 세워 달라는 취지에서다. 검사가 제 역할을 한다면 최순실 게이트는 시작도 하기 전에 뿌리가 뽑혔을 테고, 특검이란 조직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들이 일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인사권을 독립시켜 주면 된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인사권을 검찰 인사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리고 청와대에 검사를 파견하는 악습을 없애면 된다. 일부 그렇지 않은 검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검사는 수사를 잘 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니, 이 정도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신이 나서 일을 할 것이다. 이 쉬운 일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은 대통령의 욕심 때문이다. 검찰을 시켜서 자기를 괴롭히는 상대방을 잡아넣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검찰의 인사권 독립에 찬성하다가, 막상 대통령이 되면 반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헌재에 의해 탄핵이 인용된다면 조만간 대통령선거가 열릴 것이다. 각 후보마다 화려한 공약을 내세우겠지만,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검찰의 인사권을 법으로 보장하는지 여부다. 물론 대통령이 된 뒤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공약에 다음과 같은 사항도 집어넣어야 한다. 취임 후 1년 내에 인사권 독립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말이다. 좀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만 기억하자.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2-02 서민

[춘추칼럼]외교는 국가이익이 우선이다

사드·소녀상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실책국익·안보·국가미래 고려해 문제에 접근을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군자의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영국의 정치가 팔머스톤(Viscount Palmerston)은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고, 오직 국익만 영원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이익이 외교의 최우선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정치권은 탄핵정국에 의한 조기대선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사드배치와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가 정치적 논쟁을 뛰어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느낌이다. 두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실책으로써 한국의 차기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될 듯하다. 사드배치에 관한 논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조속한 배치론, 조속한 철회론, 당분간 절차 논의 중단론 등이다. 조속한 배치론은 북한 핵탄도 미사일 위협의 절박함을 강조한다. 남한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충분히 대비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압박은 현실화되고 있지만 대비책은 보이지 않는다. 조속한 철회론은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한다. 한반도가 최첨단무기 각축장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군비확대는 쉽지만 군비축소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유발한다. 남북간의 경쟁이 미중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나아간다면 모든 부담은 남과 북이 져야 한다. 당분간 절차 논의 중단론은 국익을 중시한다. 정당한 절차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국민과 미국,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설치론과 철거론이다. 설치론은 역사성과 민간성을 강조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반인권적 범죄를 저질렀고 오늘날 반성도 없다는 것이다. 소녀상 설치는 국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설치의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 국가적 재원이 직접 투입되면 외교적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 독도에 설치되면 영토문제와 연계되면서 일본의 '독도 분쟁화' 의도에 휘말릴 수 있다. 철거론은 합의성, 외교성, 미래성을 강조한다. 소녀상 철거를 포함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간의 12.28 합의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대사관 앞에 소녀상의 설치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한일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위안부 문제를 털고 가자는 것이다. 정부의 반성과 일본의 사죄 없는 철거는 국민정서에 반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드배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만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지닌다. 사드의 조속한 배치를 촉구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이며 사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적 방어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한미간 합의서를 이행을 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민간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양국간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정부도 여러 루터와 채널로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간에 포괄적 합의는 했지만 합의 이행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성을 보여준다. 외교정책 추진에는 기본원칙이 중요하다. 사드 문제는 국가이익, 국가안보, 국가미래의 3대원칙 하에서 접근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피해자의 고통, 가해자의 반성, 양국관계의 미래 등 3대원칙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외교합의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고정불변이 아니다. 국가이익에 따라 변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보다 국가이익을 중시한다. 중국의 핵심가치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서명했다. 양자간, 다자간의 외교합의가 하루아침에 백지화 되는 느낌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합의 파기가 우리에게 닥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반성과 사죄'가 담긴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잊은 지 오래다.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이끌고 있다. 국익 대 국익으로 미국과 맞서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국민정서만으로 일본을 극복할 수 없다. 이슈 선점, 선택과 집중, 전략적 접근, 설득의 지혜가 요구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1-30 양무진

[춘추칼럼]영화 속 과학이야기 '판도라'

국내 원전은 '규모 7.2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 사고 발생땐 수소가스 배기해 격납건물 폭발 안해지난 연말에 개봉한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흥행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영화 자체는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됐다고 하지만, 영화를 본 많은 사람에게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영화는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원전인 한별 1호기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생기고,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원자로 격납건물이 폭발하고 국민들이 방사능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영화 전개를 보면 감독은 아마 후쿠시마 사고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원인인 규모 9.0의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는 등장하지 않는다. 위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설정됐다면 과학자들도 영화 전개에 대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 나타난 규모 6.1의 지진과 쓰나미가 없는 전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입장에서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원전의 경우 지진 발생이 감지되면 제어봉이 자동으로 작동해 핵분열 반응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핵연료는 여전히 고온 상태이므로 냉각수를 공급해 온도를 낮춰야 한다. 냉각수를 공급하려면 모터를 돌려야 하고 모터를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한다. 모터를 돌리지 못하면 핵연료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피복관이 녹아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중대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대지진으로 송전탑이 쓰러져서 전기공급이 끊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원전 내 비상 디젤발전기를 설치해 대형사고를 막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원전과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의 비상 디젤발전기는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고 쓰나미가 덮치면서 비상발전기를 침수시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지진 발생이 곧 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과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0.2g), 7.0(0.3g)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으며, 특히 중요 구조물은 규모 7.2(0.4g)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 지진은 규모가 1.0 증가할 때마다 강도가 32배 커지므로 규모 9.0의 지진은 규모 6.1의 지진보다 약 2만9천배 큰 강도이다.영화에서 보면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격납건물이 달걀 깨지듯이 깨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에 최악의 중대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격납건물은 영화에서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원전의 격납건물은 65~120㎝의 매우 두꺼운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대량의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격납건물이 폭발하기 전에 수소가스를 배기해 압력이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의 폭발을 막기 위해서 작업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저장조 바닥을 임의로 폭파해 대형사고를 막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우리나라 원전의 경우, 암반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그 위에 저장조를 건설하기 때문에 저장조 하부에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장조 하부를 인위적으로 폭파할 경우에 오히려 사용후핵연료를 파괴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과학자의 입장에서 기술적 오류를 바로잡아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자 설명을 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인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을 더욱 향상 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원자력이 되길 바란다. 최근 필자는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현안으로 지역주민이나 언론 관계자를 자주 접촉하면서 과학자가 생각하는 안전과 일반시민이 생각하는 안전의 온도차가 매우 큰 것을 느끼게 됐다. 이는 결국 소통의 부족에서 기인됐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을 만들기 위해 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7-01-19 정용환

[춘추칼럼]메릴 스트립의 용기

'할리우드·배우·권력·언론이란 무엇인가' 언급우린 지금 '물러나는 권력' 열정적으로 비판하지만그녀가 맞선건 '들어서는 권력' 트럼프였다는 사실최근 특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창작과비평'이나 '문학동네' 같은 좌파 문예지들만 지원하고 건전 문예지들은 지원을 안 해서 건전세력이 불만이 많으니" 해당 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직접 했다고 한다. '좌파 문예지' 제작자들을 감옥에 처넣지 않고 그저 돈줄만 죄었으니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반대자들을 배제(exclusion)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멸(extermination)시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배제(exclude)에는 포함(include)이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절멸(exterminate)에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끝장내버리는(terminate) 일이다. 저들을 '괴물'이라고 간주해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를 그들로부터 완벽하게 구별/구원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윤리적 판타지다. 다른,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끔찍한 이들에게 나도 그런 욕망을 품는다. 비근한 예로 나는 광화문에서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이들을 보며 저들을 절멸시켜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나는(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인정과 공존의 윤리를 교육받은 민주 시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감히 그런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그러므로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배제 혹은 절멸에의 욕망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될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에 패배하지 않도록 그의 욕망을 대신 감시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8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의 놀랍도록 용기 있고 지적이며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통해 내게 새삼 가르쳐준 사실이기도 하다. 5분 30초 동안 진행된 그 연설은 구조적으로 완벽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므로 여기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 메릴 스트립은 먼저 '할리우드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현장에 있는 여러 배우들의 출신 지역과 성장 배경을 다정한 어조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단지 예닐곱 명만을 언급했을 뿐인데도 그 면면은 다양했다. 차이를 차이 자체로 존중하는 그 호명만으로도 이미 뭉클했다. 그 호명의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다양한 아웃사이더와 외국인들로 들끓는 곳입니다. 이들을 다 내쫓으면 미식축구와 격투기 외에는 볼 것이 없겠죠." 트럼프의 배타주의를 비꼬는 그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그는 '배우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배우가 하는 유일한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릴은 작년 최악의 연기로 트럼프가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던 순간을 꼽았다. 타자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연기의 본질인데 트럼프의 그것은 정반대의 목적에 기여하는 연기였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메릴은 조금 울먹였다. "그 연기는 제 가슴을 무너지게 했고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였으니까요." 그러므로 그의 연설이 '권력이란 무엇인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선동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타인을 괴롭히기 위해 제 지위를 이용할 때,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입니다." 단 1초도 버릴 것이 없는 5분 30초의 연설이었지만 나는 특히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 우리의 대통령에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메릴은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 말을 요약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점을 곱씹고 싶다. 우리의 언론이 지금 열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물러나는' 권력이지만, 그날 메릴 스트립이 무대에서 맞서고 있었던 것은 '들어서는' 권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7-01-12 신형철

[춘추칼럼]박사모의 헛다리

'최순실 국정농단' 태블릿피씨 통해 최초 입증모든 사실 검찰수사 통해 밝혀진 것들이기 때문"최순실 것 아니다"라는 한결같은 주장 아쉽기만"한번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태반주사 좀 맞은 게 그렇게 큰 죄가 되느냐?"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시간이 지나서 깨닫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아픈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게 마련이다. 또한 시간은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곧 하야라도 할 것 같던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유의 뻔뻔함을 회복했다.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촛불을 들었던 12월 2일, 박사모를 봤다. 그들은 서울역 한구석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박대통령은 죄가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수십명 될까말까한, 초라한 행색의 그들을 보면서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들었다. 주군의 활약에 힘을 얻어서일까, 한동안 웅크리고 있던 박사모도 힘을 낸다. 이젠 박사모도 광화문 한편을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숫자 또한 늘어서, 이제는 수만명의 인파를 헤아린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도 상당부분 박사모의 것이다. 하지만 그 댓글들을 보면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그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는 듯해서다. 지금 그들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JTBC가 특종으로 보도한 태블릿피씨다. (1) 그 취득 자체가 불법으로 이루어진 데다, (2) 그게 최순실의 것도 아니며, (3) 안에 담긴 내용도 다 JTBC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태블릿피씨에 매달리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박대통령이 이 지경으로 전락한 시초가 다 태블릿피씨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환상에 빠진다. 태블릿피씨만 없애버린다면 박대통령이 탄핵당할 일도 없고, 박대통령이 최순실의 지시를 받고 나라를 다스리던 그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그들의 단순무식함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이 시점에서 태블릿피씨는 없어도 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태블릿피씨가 박정권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태블릿피씨를 통해 최초로 입증됐기 때문일 뿐, 국정농단의 증거는 그 후 이루어진 검찰의 수사에서 밝혀진 것들이다. 기업을 협박해 뜯어낸 돈으로 최순실이 지배하는 재단을 만든 것, 삼성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을 돕게 한 것, 최순실 지인의 회사가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한 일, 최순실이 다니는 단골 성형외과 의사의 부인이 경영하는 업체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 등등 박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물론 박대통령은 시종일관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그건 사람이 뻔뻔해서 그런 것일 뿐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석고대죄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났으리라. 사정이 이런데도 박사모는 한결같다. 이 순간에도 포털사이트 기사를 찾아가 "태블릿피씨 최순실 거 아니예요"라며 징징거리고 있는 중이니까. 그래서 아쉽다. 박사모에 제대로 된 리더가 없다는 것이 말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어느 분이 "BBC에서도 촛불집회를 비판했다"는 글과 함께 비틀즈의 명곡 '에스터데이'의 영문판 가사를 박사모 게시판에 올렸다. 다들 난리가 났다. "역시 BBC!"라는 댓글부터 "우리나라 언론이 빨갱이라서 그렇지, 공정한 해외언론은 다 박대통령 편이다"라는 댓글까지, 수십개의 댓글이 박사모 게시판을 수놓았다. 그 중 영어를 읽을 줄 아는 한 분이 '이거 좀 이상하다'고 지적함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됐다. 얼마 전에는 박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김정일에게 보낸 감동적인 편지가 "문재인이 보냈다"며 박사모 게시판에 올라온 적이 있다. 그때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물론 무식하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장난을 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박사모에 제대로 된 리더의 필요성에는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부탁한다. 괜찮은 분들을 모신 뒤 그들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시라. 이때다 싶어 기어 나오신 윤창중이나 정미홍처럼, 상식 있는 사람들은 다 무시하는 분들과 더불어 짠 작전은 박사모를 점점 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 뿐이니까./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2017-01-05 서민

[춘추칼럼]두차례 분수령이 예상되는 2017년도 한반도정세 전망

2~3월 실시 한·미합동 군사훈련과 차기정부 출범국민·남북·국제사회의 대북정책, 위기 기회될 수도2017년은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지속될 것인지,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인지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정세는 탄핵정국의 촛불집회, 개헌담론과 대선정국, 그리고 지도자와 정책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 다소 혼란이 예상된다. 탄핵의 결과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특검과 탄핵의 결과가 다르면 대립과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개헌담론이 부각되면 정당정치는 사라지고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다. 대선은 정책경쟁이 아니라 이념경쟁의 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념경쟁에서 진보는 평화안보를 강조하고 보수는 대결안보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안보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탈냉전적 사고이다. 대결안보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냉전적 사고이다. 보수가 안보를 잘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력집중을 비판하지만 직접선출을 선호한다. 개헌은 찻잔속의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차기정부는 6월 중 출범이 예상된다.북한 국내정세는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강화가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1월 8일), 김정일 출생 75주년(2월 16일 광명성절), 김일성 출생 105주년(4월 15일 태양절), 인민군 창건 85주년(4월 25일), 백두산위인 칭송대회(8월 중), 김정숙 출생 100주년(12월 24일) 등 정유년의 정치행사가 잡혀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김정일과 김일성의 동격 반열에 올려놓는 우상화작업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국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사강국을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보유국의 동등한 입장에서 미북 군축협상 또는 평화협정 논의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분야는 자강력제일주의와 북중간의 교류협력을 유지하면서 6·28 조치와 5·30 방침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장마당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면서 생필품의 수요와 공급 균형을 유지시킬 것이다. 고위관료들에게는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주민들에게는 친화정책으로 다가가는 이중적인 접근이 예상된다.2017년 남북관계는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실패했다. 남북한간 신뢰도 쌓지 못했고 대결만 조장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커녕 핵능력 고도화를 방조했다. 북한 주민들은 대남 동경심보다 적개심이 커지고 있다. 남북한 모두 지난 10년 동안 대립과 대결로 피로감에 쌓여있다. 남한의 차기 정부 출범은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기회요인으로 작용 될 것이다. 북한은 미북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할 것이다. 남한은 경제위기 극복이 시급하다. 북한은 경제발전5개년전략의 성과적 달성이 필요하다. 남북한 모두 경제발전의 활로로써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경제협력이 중요하다. 2∼3월 실시 예정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한반도정세의 도전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다.2017년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전망은 유동적이다. 미중관계의 악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 우선주의와 시진핑 주석의 민족주의는 충돌을 예고한다.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책임론을 주장하고 중국은 북미간의 직접해결을 강조한다. 미러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관계는 트럼프와 푸틴의 신뢰에서 출발한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은 크지만 러시아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러시아를 활용할 것이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핵문제보다 납치문제가 우선순위이다. 미일동맹의 강화 속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과는 등거리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문제와 사드문제가 부각되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예상된다.2017년도 한반도정세는 두 차례의 분수령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차적 분수령은 2∼3월 실시예정인 한미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훈련이다. 2차적 분수령은 우리의 차기정부 출범이다. 역사는 진보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이끈 사례가 많다. 국민과 남북이,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대북정책을 펼친다면 그것이 바로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2-29 양무진

[춘추칼럼]가벼움의 미학

자신의 생각 유머스럽게 표현 하는건 소중한 가치엄중한 시절 관용과 너그러움의 회복을 기다린다처음 유학을 갔더니 영어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비속어를 도통 모르는 탓이라 지레짐작하고 공부를 하려고 이 분야의 강자라는 에디 머피의 스탠딩 코미디 비디오를 빌려다 여러 번 들었다. 인종비하에서 여성비하까지, 난무하는 온갖 금기어는 심약한 청년에겐 가히 문화적 충격이었다.이런 발칙한 비디오를 파는 나라에서, 소수인종의 대학입학 비율을 정한 '입학 쿼터제'가 비하적 표현이라며 난리더니 긍정행동(affirmative action) 정책이라는 난해한 표현으로 정리되는 건 또 뭔지. 풍자와 해학의 표현 자유는 존중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수준의 엄정한 잣대를 고수하는 건가.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항상 지금 같진 않았다. 매카시즘의 출현이 한고비였는데, 1950년부터 6년간 지속한 2차 적색공포 시기에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 McCarthy)에 의해 주도됐다. 정치인뿐 아니라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연예인 다수도 핍박받았고, 과학자도 광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량살상무기의 파괴성을 절감하고 반전 평화운동에 나섰던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가 그랬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로 원자폭탄을 탄생시킨 오펜하이머는 1954년에 한 달 동안 상원 청문회에 불려가 고초를 겪었다. 중국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은 매카시즘의 감시와 통제를 못 견디고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탓에, 매카시즘이 중국에 보낸 최대의 선물이라고 한다.저명한 수학자 스테판 스메일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반전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활동을 한 덕분에 한때는 미국을 피해서 브라질의 순수응용수학연구소(IMPA)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1966년 모스크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 강연을 하면서는 소련 정부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바람에 구금되어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까지 했다. 표현의 자유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솔제니친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아내는 수학자였다. 스탈린을 비난하는 개인 서신이 문제가 돼서 11년간 투옥과 유배 생활을 했다. 이 경험을 쓴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니 스탈린이 문학에 보낸 최대의 선물이려나.캐나다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한국인 수학자 이림학 교수는 반독재 활동 탓으로 수십 년간 고국 방문이 불가능했다. 이제 대한민국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일한 수학자가 됐으니 상전벽해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지금 수준의 표현의 자유에 다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엔 문화적으로 후퇴의 조짐도 있다. 많은 이들이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비판을 못 견뎌 하고 풍자와 해학에 관대하지 않다. 지역 비하, 직업 비하, 여성 비하, 남성 비하라는 다양한 이유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무차별적이다. 풍자를 근본으로 하는 개그 프로그램에도 분노한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말하면 웃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사생결단을 내려고 한다. 얼마 전 대학 강의에서 사대강 찬성 주장으로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청중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논쟁과 공론화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론 부족할까? 미국에서도 반전 활동으로 고초를 겪은 오펜하이머의 대척점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다른 멤버인 폰 노이만이 있었다. 수백만의 유태인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그는 평화유지와 전쟁억지를 위해 수소폭탄 개발에서도 주요 역할을 맡았다. 수학과 컴퓨터 개발의 천재적 재능으로 핵분열과 핵융합 모두를 무기로 구현했으니, 반전주의자들에겐 불가사의한 존재였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정의의 개념조차도 상대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공포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권리는 좀 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가. 유머러스함은 소중한 가치 아니던가. 엄중한 시절이지만, 그럴수록 조금 가벼워지면 어떨까. 관용과 너그러움의 회복을 기다린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12-22 박형주

[춘추칼럼]혐오와 농단

올해의 단어는 단연 '미소지니(여성혐오)'·'국정농단'대통령과 비선실세들 이익 저울질하느라 국정 망가뜨려40대이상 남성 구조적 폭력 주체 되지않도록 성찰 필요'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가장 강력한 두 후보가 바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와 '국정농단(國政壟斷)'일 것이다. 물론 신조어는 아니어서 그간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학계 내부에서 사용되거나 신문 기사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에는 한국어 사용자 모두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으니 올해의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의 언어공동체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일이 갖는 의미는 크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간과되거나 무시되다가 정확한 개념이 언중에게 주어질 때 뒤늦게 가시화되고 공론화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일단 '미소지니'라고 먼저 쓰고 '여성혐오'를 괄호 안에 넣은 것은 이 번역어 자체가 최선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서다. "근대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도 정교한 방식으로 여성이 배치된 원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미소지니의 구조적 측면이 이 용어[여성혐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김신현경) 핵심은 '구조적 혐오'에 있는데 그보다 '개인적 혐오'의 층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남성들로 하여금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라는 개인적 층위의 반론을 제기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말을 어떻게 바꿔도 이해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지만 말이다. 딴에는, 이참에 '혐오'라는 말 자체의 근본적 의미를, 이를테면 애초 '혐오'라는 감정 자체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라 '구조'에 의해 습득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새롭게 성찰해 보기 위해서라도, 번역어를 교체하지 말고 그냥 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번역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나쁠 것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속해 있는 세대의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낯선 담론이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관심과 긴장의 끈을 놓고 살아왔다는 반성을 시작한 남성들이 많아 보이며, 부끄럽지만 나도 거기에 속한다. 한편 '국정농단'에서 '농단'이라는 말이 짐작과는 달리 '희롱'이 아니라 다른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나로서는 올해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전에는 그 뜻이 이렇게 요약돼 있다.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은 언덕. 홀로 우뚝한 곳을 차지한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한다, 라는 말." 유래는 '맹자'에 있다. 한 상인이 있어 가장 높은 곳('농단')에 올라가 시장의 구조를 파악한 뒤 어떻게 해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저울질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 얄미운 상인에게 세금을 물리기 시작한 데서 '농단'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대통령과 그 비선 측근이 대한민국의 최정상에서 그들의 이익을 저울질하느라 국정을 망가뜨렸다는 점에 있으니, '게이트'보다는 '농단'이 더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 뿐이겠는가. 최정상 농단을 차지한 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부근 어디쯤에서 특혜를 누려온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다수의 당사자들에게 부끄러움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선택받은 소수'인 자신들에게 따르는 당연한 보상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타고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혜택 앞에서 서서히 자기 성찰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혐오'에 대해서나 '농단'에 대해서나 내가 이야기의 끝에 자꾸 '나'를 주어로 삼은 문장을 써보고는 하는 것은 의례적인 반성적 제스처를 집어넣어서 스스로 면죄부를 발송·수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서다. 위 두 사안 사이에는 차이점이 훨씬 많지만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 그 안에서 성찰적 긴장을 잃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공통점도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40대 이상의 남성이 여하한 구조적 폭력(혐오와 농단)의 주체가 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필사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12-15 신형철

[춘추칼럼]느려도 법치주의를 따라야 한다

엄중한 '대통령 탄핵' 헌정사적 불행 우리 눈앞에가결땐 헌재심판 과정서 많은 의혹 사실여부 가려져대통령·여야, 정략적 판단 계산기 두드릴때 아냐박근혜 대통령의 검찰수사 거부에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약속을 어긴 게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누가 강요했던 것도 아니다. 국민 앞에 공표한 담화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법치주의의 요구 때문이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는 일반 국민과 다를 바 없다는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것이다. 법치에 대한 요구는 이처럼 국민의 생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최고 권력자도 법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 사상은 기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더구나 그렇다. 나와 같은 대다수 장년층은 헌법마저 장식에 불과했던 엄혹한 시기를 몸소 겪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이다. 매일 같이 경쟁하듯 박 대통령과 관련된 이상한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더 듣고 싶지도 않은 내용 들이다. 급기야 청문회 석상에서 '최순실-박근혜 공동정권' 얘기까지 나왔다. 차은택씨가 최씨에게 장관과 수석을 추천하니 그대로 되는 걸 보며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분노, 자괴감, 배신감, 허탈함에 휩싸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이라면' 당장이라도 대통령직을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되는' 기준을 이렇게 설정했다.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만 보면 이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문제는 아무것도 '확정된 사실'은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국정농단 사례들을 보면서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언론보도는 여전히 의혹 수준이다. 아직 법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검찰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법의 문턱을 겨우 넘었지만 갈 길이 멀다. 대통령 본인 수사는 시작도 못했고, 검찰 발 기사 역시 부인되기 일쑤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야만 확정된 사실로 다룰 수 있다. '당장 하야'를 외치는 감정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게 법치주의의 요구사항이다. 대통령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의혹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탄핵 역시 이런 법치주의의 산물이다. 왕의 목을 치거나 유폐시키는 등의 역사를 겪은 유럽에서 먼저 만들어진 제도이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탄핵재판에서 사형까지도 과할 수 있다. 미국은 공직에서의 파면과 공직취임 자격 박탈로 제한한다. 우리 헌법은 탄핵심판에서는 공직 파면으로 그친다. 일종의 역사적 진화인 셈이다. 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도 재직 중에는 형사기소를 못하는 대신 탄핵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president)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직(presidency)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탄핵이 대통령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징벌장치인 셈이다. 중요한 역사적 선례를 위해서도 탄핵은 필요하다. 최종 기각된 노 대통령 탄핵과 달리 이번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되는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후세의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에게 경계의 척도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 의원들을 위해서도 탄핵은 바람직하다. 박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본인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했을 뿐이라고 한다.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많은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따라서 굳이 탄핵 자체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 야당 역시 탄핵이 가결된다면 당장 물러나라는 주장을 멈춰야 한다. 2004년 이전,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엄중한 의미를 갖는 대통령 탄핵이다. 불과 10여년 만에 탄핵이 되풀이되는 헌정사적 불행을 우리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정략적 판단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닌 것이다. 답답해 보이지만 법치주의는 역사적 지혜의 산물이다. 느려도 법치주의를 충실히 따를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12-08 노동일

[춘추칼럼]트럼프 행정부 '先이익後동맹' 전망

한미동맹 유지하되 현안 조정 '실리주의'로 갈 듯'북핵불용 원칙' 고수하며 수단은 냉·온탕법 예상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기간 클럽이나 거리에서 수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담론을 지배했다. 지지자들은 1970∼80년대 세계화정책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굴뚝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간 자리에 정보통신(IT)산업이 들어 왔지만 일자리는 화이트칼라가 차지했다고 지적했다.한반도 안보문제와 관련된 트럼프 당선자의 지배담론은 한미동맹, 방위비, 북핵문제로 요약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과정은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대선공약에서 상호모순점이 많다. 트럼프 당선자의 대선공약과 공화당의 정강정책간의 충돌 부분도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실리주의와 정책참여 예상자들의 이념주의간의 갈등도 예상된다.트럼프 당선자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한다. 동맹도 필요하지만 미국의 국가이익을 중시한다. 공화당은 '미국의 부활'을 주장한다. 동맹강화를 통해 미국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이 곧 미국이익이라는 인식을 가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정 참여 예상자들은 '강경 보수적 성향'을 지닌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 부보좌관 내정자 개슬린 맥파랜드(Kathleen McFarland), 유력한 국방장관 후보자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등은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신보수주의자들이다. 네오콘은 군사력이 국력의 원천이고 미국의 패권질서 유지를 위해 선제공격을 포함한 적극적 군사개입을 강조한다.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정책 노선은 '실리주의'로 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의 관심도는 국가이익, 동맹협력, 국제개입 순이다. 한미동맹의 역할은 유지하되 현안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역할은 대북억제·대중견제·한미일 공조체제 구축이다. 주한미군의 방위비는 동맹의 현안문제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을 주장한다. 안보의 경제적 접근이 예상된다. '선 이익, 후 동맹'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방위비 증액을 강력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핵불용의 원칙은 확고하지만 수단은 온탕 냉탕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화를 통해 핵동결부터 시작해야 함을 내비친다. 정책과정 참여 예상자들은 압박을 통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강조한다. 트럼프 당선자와 정책 참여 예상자들은 중국의 대북압박론에 대해 이견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문제 접근 시나리오는, 첫째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실패 평가 공유, 둘째로 대화와 압박의 병행전략, 셋째로 대화로 동결부터 시작, 넷째로 북한의 합의 위반시 군사적 옵션 등으로 예상된다.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신중하다. '다음기 대통령 트럼프'의 표현만 있고 구체적인 당선 사실 보도는 없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부각시킨다. 11월 11일자 북한의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파산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자 측에게 정책전환을 우회적으로 촉구하면서 기대를 표하기도 한다. 조선중앙통신 11월 10일자 논평에서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의 북핵정책 실패 발언을 부각시키면서 대북적대시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조선신보 11월 18일자 메아리 코너에서는 '트럼프 공약, 상식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북한과 미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1월 18∼19일 트랙2 회의를 개최했다. 탐색적 대화이지만 북한은 트럼프측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후 6개월이 중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내년 자신의 생일과 김정일 출생 75주년,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국내외의 안정이 필요하다. 수면위에서는 수사력을 동원한 기싸움을 하면서도 수면하에서는 국면전환을 위한 탐색적 대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체제 및 존엄문제에 자극을 한다면 6차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를 통해 맞대응 무력시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문제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상호존중하는 가치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 방위비는 과하면 줄이고 부족하면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최종적이고 대화의 시작은 핵동결부터 해야 한다. 판문점연락사무소의 정상화가 시급하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2-01 양무진

[춘추칼럼]국제정치의 탁류에 빠진 기후변화

트럼프, 석탄사용 감축정책 유도 '공장 中이전' 노려中, 공해재앙 인식 '2030년 온실가스 총량감축' 추진세계 탄소배출량 통제불능 우려에 美, 더 늘리겠다니미국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쟁자보다 적은 득표수를 얻고도 당선된 경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5번째다. 여러모로 이단아의 풍모를 가진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대한 견해도 독특한데, 중국이 허구의 기후변화 위험을 과장한 배후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 재앙의 과장을 통해 미국 정부의 석탄사용 감축 정책을 유도해서 미국 내의 제조 공장이 문을 닫고 중국으로 이전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모론은 항상 사람들을 피 끓게 하는 걸까. 기후변화 중국 음모론을 주장한 그의 2012년 트위터 글은 10만 번 이상 공유됐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얘기라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고 믿었던 모양이다.예전에 본 장면과 뭔가 흡사하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고어는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서 패배했다. 8년 동안 부통령을 한 검증된 정치인이었고, 인터넷 초기에 미국 전역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데 앞장선 덕에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칭호까지 따라다닌다.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임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채택에 주요 역할을 했다. 환경활동가로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2007년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부시는 어땠나. 기후변화는 인간이 유발한 것이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가깝다는 시각을 가졌고 미국 내의 석유 시추 확대를 지지했다. 국제공조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앨 고어의 방식이 미국 내 제조업의 위축을 부를 것을 염려한 미국인들 상당수는 부시를 지지했고, 선거인단 간접선거라는 미국의 독특한 대선 방식은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다.국가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가 역부족이어서, 세계의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서 국제협약을 체결한 게 1년 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현된 지금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염려하는 지경이 됐다. 그가 전통적인 제조업의 미국 복귀를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이고, 각종 환경규제는 약화될 것 같다. 태양광 발전이나 전기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며 테슬라의 충격 같은 신세경(新世景: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거침없이 보여주던 미국이 아닌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한 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해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세계의 공장이자 공해유발자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불렸던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중이다. 중국 각지의 사막화가 확산되고 서부 산악지대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등 기후변화는 신기루가 아니라 실재하는 거대 재앙임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 수도 베이징의 하늘은 뿌옇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를 빠르게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등 강력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2030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총량의 감축을 추진 중이다. 미국인 한 명이 연평균 17.6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중국인 평균은 아직 6.2t에 불과하다. 이 차이가 줄수록 세계의 탄소배출량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달을 거라는 우려가 컸는데, 이젠 미국이 오히려 더 늘리겠다니.유네스코는 2013년을 'MPE의 해'(Year of Mathematics of Planet Earth)로 선포했다. '지구를 위한 수학'의 해라는 뜻이다. 실험이 힘든 기후변화 연구의 특성 때문에, 축적된 방대한 기후변화 데이터를 활용한 수학적 접근을 통해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책으로 구현 가능한 대응책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후변화 문제와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수학자들이 있다. 알파고 스타일의 데이터 관점 접근도 있고 미분방정식을 사용하는 기후변화 모델링 접근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내년도에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수학'을 주요 연구주제로 설정하고 해양과기연과 극지연구소 및 지질자원연구원과 협력연구를 계획 중이다. 위기가 기회다. 미국이 멈칫하는 시기를 우리는 연구력을 보완해서 주도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11-24 박형주

[춘추칼럼]대통령을 위한 다섯개의 메모

끝까지 생각하고 언제나 성찰할 준비로 살았는지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년간 되돌아본적 없었는지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걸까#1 내가 교수로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일이다. 정확히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이 직업의 본령은 차라리 배움에 가깝다. 게다가 학생이 하는 질문 중 어떤 것은 내게 와서 오히려 답이 되는 일도 많다. 맹렬하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한 제자가 내게 말했다. 지식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본질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욕망처럼 느껴진다고. 아니, 도대체가 무언가를 알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폭력인 것은 아니냐고. 과한 반성이라고 답을 건넸지만, 그 질문의 여운이 내게는 길었고, 그래서 지금은 다시 말해주고 싶다. 너의 그와 같은 근본적인(radical) 고민은 그 고민 자체가 바로 답이라고.#2 재직 중인 학과에서는 매학기 문인 특강을 여는데 이번에는 이성복 시인을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시인을 소개하면서 내가 아는 이런 내용을 전했다. 시인은 평생 접한 문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아 몇 권의 노트를 만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다는 것. 그래서 운동을 할 때면 그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고는 한다는 것. 무엇하러 외우기까지 하는가. 어디 가서 폼 나게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 문장들 속에 담겨 있는 질문을 수시로 다시 묻기 위해서, 하여 바닥까지 남김없이 다 물어버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누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3 얼마 후 손택수 시인도 특강을 했다. 시인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자신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교정의 석류나무를 보았고 어쩌면 그때 시인이 된 것 같다고. 강연 말미에 한 학생이 시인에게 물었다. '요즘에는 무엇을 즐겨 보시나요?'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뜻밖에도 시인의 대답은 심각했다. '학생의 질문은, 당신은 지금 이 사회와 주변 사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가, 라는 꾸짖음으로 들립니다. 맞아요. 반성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동문서답이었는데 이 순간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원래 시인이란 작은 것에서 큰 반성을 이끌어내는 이들인 것이다. #4 학생들과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토론한 것은 며칠 후다. 살아서는 궁전 안에서만 지냈으므로 세상만사가 행복했던 왕자가 죽어 동상이 되어 도시 높은 곳에 세워져서는 세상에 숱한 불행이 있음을 뒤늦게 보고 알게 되어 비통해한다. 왕자의 부탁을 받아 왕자의 동상 곳곳에 박혀 있는 보석을 떼어 불행한 이들에게 전달하던 제비는 그만 때를 놓쳐 겨울을 맞아야만 했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며 행복하게 죽어간다. 이 동화의 외곽 주제 중 하나는 '변화'다. 존재의 변화는 아름답다는 것.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토록 어렵다는 것. 왕자와 제비는 둘 다 죽음을 통과하면서 진정으로 변할 수 있었으므로. #5 '듣기의 철학'(와시다 키요카즈)이라는 책을 보니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어느 직원의 말이 인용돼 있었다. 그에 따르면 '터미널 케어'(말기 간호)의 경우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료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누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어주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케어라는 것. 그러므로 케어란 누군가에게 '시간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재앙의 현장에서도 단지 '옆에 누가 함께 있다'는 그 느낌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말도 거기에 있었다. 이상 다섯 개의 삽화들은 모두 최근의 것이다. 경험과 독서가 자꾸 하나의 주제로 모여드는 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근본적으로 고민한다는 것(#1), 끝까지 생각한다는 것(#2), 언제나 반성(성찰)할 준비를 갖추고 산다는 것(#3), 그를 통해 존재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4), 그리고 가장 필요한 곳에 가서 선다는 것(#5). 이 모든 것을 대통령과 더불어 생각한다. 최씨 일가를 만나고 40여 년 동안 그는 근본적으로 돌아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한 번도 결정적으로 변해본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2014년 4월 16일과 그 이후에도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일까. 그를 생각하며, 그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날들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11-17 신형철

[춘추칼럼]'대통령 탈당'과 '김병준 총리'로 풀어라

박대통령, 총리권한 국민앞에 분명하게 선언해야진정 거국중립내각 만들겠다면 당적 이탈 필수野, '김병준 카드' 받고 마비된 국정 풀어 나가야'미국판 문화대혁명'. '트럼프 당선'에 대해 중국 일각에서 나오는 평가다.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민주당 정권 8년을 지났으니 이번에는 공화당 차례였다. 미국 정치의 법칙이 그렇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장 걱정은 우리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이다.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인은 기행과 막말을 일삼던 인물이다. 우리가 보아서 알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트럼프의 공약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멕시코 국경 장벽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불법이민자 추방' 등은 실현되기 어렵다. 비용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법률적 문제 등이 얽혀 있다. 그에 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은 비교적 쉬운 문제다. 자유무역협정은 일방이 통보하면 180일 후 자동 종료된다.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하지 않으면 자동종료 조항을 발동할 수도 있다. 미군 주둔 비용에 충분히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미군 철수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모두가 트럼프 지지층으로부터 환영받을 일이다. 북한 핵 문제는 완전히 외면하거나 선제공격론이 현실화되거나 극단을 오갈 수 있다. 어찌 되었건 한미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는 엄청난 격변이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대한민국 정치권은 아직 한가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지만 크게 힘이 들어가 보이지는 않는다. 통치의 도덕적 정당성과 정책집행의 동력을 이미 상실한 탓이다. 야당은 총리 후보 추천 거부에 이어 이번 토요일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한다. 물론 트럼프 당선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의 행보이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 상황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급변 사태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나 여야 모두 지금과 같은 정치적 교착상태를 더 끌고 간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이 초래될 수도 있다.변화의 물꼬는 박대통령이 터야 한다. 총리 권한 보장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야당 추천으로 임명할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건의권, 국정통할권 등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현행 헌법대로 하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헌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분명하게 선언할 필요가 있다. 왜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청와대 관계자가 설명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다. 진정으로 거국중립내각을 만들겠다면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하야나 탄핵은 헌정사에 불행한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탈당이야 대부분의 대통령이 선택한 길로 새삼스러울 것 없다.야당은 이에 답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받아야 한다. 야당이 총리 추천을 거부한 속내는 절대로 합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솔직히 밝힌 바대로 네가 추천하면 내가 싫고, 내가 추천하면 네가 싫다고 할 게 뻔하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야당의 대안으로서 훌륭한 선택이다. 총리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는 게 김 내정자의 포부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야당 사람이기도 하다. 국정운영의 심장부에서 일해 본 경험은 어려운 시기에 귀중한 자산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한 경험 모두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실질적인 내각통할권을 행사하며 내년 선거까지 관리한다면 야당의 걱정도 크게 덜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추천한 총리라서 싫다면 좁쌀 정치나 다름없다. 끝까지 밀어붙여 하야까지 생각한다면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국정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자칫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야당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과유불급이고, 나설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대통령과 야당이 한발씩 물러서서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할 때다. 대통령 탈당과 김병준 총리 카드는 좋은 정치적 교환품목이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11-10 노동일

[춘추칼럼]안보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된다

'최순실 사태'로 국민들 분노·허탈… 마비된 국정남북대치 특수한 상황 외교·안보 소홀히 해선 안돼안정된 한반도 위해 위안부·사드문제 일단 중단돼야이른바 '최순실 사태'로 대한민국이 혼란스럽다. 믿기 어려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알게 된 국민들 대부분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 하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와 청와대 비서진을 전격 개편했지만 사태를 정상적으로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얼마 전까지 30% 이상으로 견고함을 자랑하던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도 10% 이하로 추락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공감하지만 그 방식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절차와 내용 모두 정치권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정 마비 상태에 놓여있다.국민적 분노는 더 큰 행동을 예고한다. '최순실 사태'로 야기된 사회적인 국론 분열과 문화·관광·체육분야에 관한 걱정은 차치하더라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외교·안보 분야는 우리의 존망과 직결되는 최우선 부문이라는 점에서 국정 마비에 따른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사태'가 커지기 전까지 우리가 직면하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이었다. 최근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실무회의가 도쿄에서 열리기도 했다. 우려에 우려를 더한 느낌이다.외교·안보분야는 상대가 있는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국정의 비정상 사태를 맞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어렵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우리의 사정을 봐주면서 현안에 대처하는 아량을 베풀지는 않는다.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상대방 공무원들과 실무적인 협의는 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실무협의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결정'을 요구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난감한 상황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외교·안보의 중요성은 다른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립과 대결의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중관계도 그렇게 녹록지 않다. 상상하기는 싫지만 북한이 우리의 사태를 악용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더욱 획책하는 도발을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경험에서 긴장격화의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지만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다. 상시 안보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 24시간 위기 대응 매뉴얼이 준비·가동되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의 공백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발생해서는 안된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남북관계가 기본이고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균형적 발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안보가 흔들리면 국민들이 불안해지고 대외교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명감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내치와 외치는 표리일체이다. 가정이든 국가든 내치가 안되면 외치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어렵다. 내부적으로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내치가 외치까지 집어삼켜서는 안된다. 국정 상황이 여의치 않을수록 처리해야할 현안을 미뤄놓거나 섣불리 대충 처리해서도 안된다. 유관기관은 다각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심사숙고하여 결정해 나가야 한다. 기존에 갖춰 놓은 위기대응 매뉴얼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곧장 보완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 종사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현안에 대비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우선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 속에서 질서를 찾고 국정 운영이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청와대는 호국훈련 시작에 맞춰 "북핵 문제 등 주요 외교 안보 사안을 흔들림 없이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의 국민들은 청와대의 의지와 정책결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위안부합의·개성공단 전면중단·사드배치 등의 정책결정은 절차·국가안보·국가이익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 수준이다. 지금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와 사드배치 문제의 이행절차는 일단 중단되어야 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도 보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는 마지막까지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를 위해 노력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1-03 양무진

[춘추칼럼]데이터를 쌓아야 한다는데…

애플·구글 등 자체 인공지능 알고리즘 연구팀 운영데이터 모으고 의미 읽어낼 수 있는 기초연구 중요전문 연구자 확보 새로운 지적자극 경험하게 해야몇 해 전에 구글의 수학자를 워크숍에 초청했다. 발표 동영상을 찍지 말아 달라 하더니 발표 파일도 남기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럴 수밖에 없으려니 했다. 나름 폐쇄적인 회사의 숙명을 가지고 있는 회사니까. 시대를 앞서가는 연구를 하고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서 치고 나가는 구글에게, 그 과실의 사업화를 위한 기업 비밀 유지가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그런 구글이 작년 11월에 기계학습 소프트웨어인 텐서플로를 누구나 수정까지 할 수 있게 공개하자 인공지능에 한발 걸친 사람들은 환호했다. 보통 사람들은 기계학습이니 딥러닝이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올봄에 알파고 충격이 우리나라를 강타한 뒤에는 초등학생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말이 됐으니 상전벽해다.알파고로 화들짝 놀란 우리 사회에 열띤 후속 논의가 이루어졌다. 인공지능의 주요 알고리즘은 공개되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발전할 것이니, 부족한 데이터를 쌓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구글이 알고리즘은 공개해도 데이터는 공개 안 한다고도 한다. 어디서 이런 착시와 오해가 생겼을까. 구글이나 테슬라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세 작동 알고리즘을 공개할 거라는 건 환상이다. 집단지성으로 기술을 다 같이 발전시키는 게 합리적이지만, 지금은 보편적(generic) 수준의 개방을 크게 넘지 못한다. 알파고 기술이 공개됐다는 것도 오해다. 알파고의 요소 알고리즘과 전체적인 작동방식은 네이처 논문의 형식으로 공개됐지만, 타사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알파고의 정확도를 재현하고 있나? 상세 알고리즘이 있으면, 공개된 기보 데이터를 수집해서 학습한 뒤에, 끊임없이 다른 프로그램과 두어보면서 방대한 추가 데이터를 만들고 축적해서 학습할 수 있다. '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것이다. 결국 타 기업이 못 따라가는 이유는, 데이터의 부족이 아니라, 몬테카를로 서치를 어느 정도의 규모로 하는지, 딥 러닝의 히든레이어 수는 어떻게 정하는지 등의 기술적 내용이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는 탓이다. 알파고를 만들어낸 영국 회사 딥마인드는 그 상세 알고리즘을 모기업인 구글에게도 비밀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 인공지능의 대세였던 규칙기반 방식에 비해서 지금의 기계학습은 데이터를 학습하며 의미를 읽어낸다. 의료에서 질병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환자의 신체 측정치가 예전 환자들의 측정치와 흡사한지를 계산하는 데서 보듯이, 그 핵심은 수학의 최적화 이론 활용이다.축적된 데이터는 물론 중요하다. 의료 데이터를 축적해야 정확한 진단을 하는 닥터 알파고가 나올 수 있고,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해야 스스로 운전하는 차들이 길거리에 나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 데이터로부터 의미를 찾아내고 인간에게 유익한 최종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핵심은 수학적 알고리즘이다. 먼저 기술을 개발하는 선진국이 다 공개할 것이니 우리는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된다니. 아예 지금부터 영원토록 따라잡기만 하자는 말과 뭐가 다른가. 안드로이드라는 공개 운영체제를 믿고 하드웨어에 일로매진한 우리 기업들이, 이제 구글의 고급형 스마트폰인 픽셀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게 됐다. 구글의 스마트폰 사업이 폐쇄형 기업 애플을 닮아간다는 말도 나온다.애플도, 페이스북도, 구글도, 테슬라도, 우버도, 중국 기업 바이두도 모두 강력한 자체 인공지능 알고리즘 연구팀을 운영한다. 이 분야 우수 연구자들을 휩쓸어가는 바람에, 대학과 연구소들은 인재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 인재들이 열심히 데이터만 모으고 있나.결국, 기초 연구가 중요하다. 데이터를 모을 뿐 아니라, 그 데이터로부터 의미를 읽어내는 알고리즘 연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남이 만든 것 가져다 쓰면 된다는 시각은 분명 무모하다. 이 분야 국내 연구자가 충분치 않지만, 인접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적절한 훈련과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새로운 지적 자극을 경험하게 한다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10-27 박형주

[춘추칼럼]절망을 즐기지 않기 위하여

영화 '아수라' 폭력·고통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일까?바뀔 가능성 없는 이 사회 적응 위한 체념 연습인지 정직한 절망 소중하지만 반복땐 기묘한 향락 돼버려세상에는 영화보다 중요한 것이 많지만 영화보다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영화들도 세상에는 있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는 천국의 장인이 건설한 지옥이다. 최상의 연출력임을 알겠으나 결코 두 번은 볼 자신이 없다. 이 영화가 재현하는 폭력을 나는 견뎌내기 어려웠다. 특히 포식자가 피식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의 시청각적 자극을 이 영화는 마치 제의를 치르듯 준엄하게 쏟아 붓는다. (초반부에 경찰 한도경이 자신의 끄나풀에게 퍼붓는 폭력과 중반부에 검찰수사관이 한도경에게 가하는 폭력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이 영화에서 '때리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 같다. '폭력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있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폭력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 떠올려야 할 말이다. 이 영화의 폭력이 내게는 아름답지 않았고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운 폭력을 계속 감내하고 있다 보면,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영화를 보면서 경험한 일 중 하나가 그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행사되는 폭력을 보면서 정작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는 것인가. 어떠한 쾌락도 없이, 스스로 고통을 당하면서. 영화가 관객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르진 않으리라. 문학도 마찬가지다. 피해서는 안 되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안다. 최근 나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본질을 집요하게 재현하는 한 소설가에게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런 문장을 적기도 했다.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유서 깊은 논의에서 '재현'이란 현상의 복사가 아니라 본질의 장악이다. 남길 것과 지울 것을 선택하는 지성이 필요한 일이다. 또 독자에게 고통을 전이시켜야 한다.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고통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인지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의 장악'의 부산물이자 '인지의 충격'의 유발자로서의 고통, 그것은 옳다. 그러나 '아수라'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주저됐다. 인터뷰를 보니 감독의 취지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폭력성이 한국사회의 본질이기 때문에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본질의 장악'), 실상을 충격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가장 강한 자극을 가했다는 것('인지의 충격'). 그러나 이렇게 반문해야 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미처 서 있어본 적이 없는 어떤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서 그곳에서만 보이는 한국사회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 화면에서 재현/생산되는 저 폭력과 고통은 도대체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아수라'가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수라'는 한국영화가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사용해 온 인식의 프레임(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내부자들'의 '부당거래'로 굴러가는 대한민국)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바뀐다 한들 인식의 거점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인식이 생산되지 않는다. 그 대신 폭력은 더 과감해졌고 고통은 더 끔찍해졌다. 심화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영역이 정체되자 다른 영역이 과잉 심화된 경우가 아닌가. 요컨대 '본질의 (새로운) 장악'이 없는 곳에서 도모되는 '인지의 (강화된) 충격'이란 공허할 뿐 아니라 부당한 것이다. 어두운 극장에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어느 인간의 고통을 관람하면서, 우리는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은 지옥이었고 지옥이며 지옥일 것이라는 점만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도무지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지옥의 엔터테인먼트를 발명하고 체념을 쾌락으로 바꾸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정직한 절망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오래 반복되면 기묘한 향락이 된다. 우리는 허황된 희망과도 싸워야 하지만 즐거운 절망과도 싸워야 하지 않을까./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10-20 신형철

[춘추칼럼] 진정 군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김제동씨 발언 국감서 다뤄야 할 정도 비중성 의문잊을만 하면 터지는 '방산비리' 軍신뢰 땅에 떨어져눈앞 得보다 부하·국가 안위 앞세우는게 진정한 군인방송인 김제동씨의 '영창' 발언이 사실인지 솔직히 알기 어렵다. 기왕에도 잘 알려진 김씨는 졸지에 국감스타가 되었다. 새누리당 백승주의원의 국방위 국정감사장 질의 때문이다. 김씨가 과거 방송에서 방위병 복무시절 군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13일간 영창생활을 했다는 말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다. 김씨 본인의 말처럼 기록이 없어서 확인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우스개를 위해 과장한 내용일 수도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김제동씨가 사실은 군기교육대에 간 것 같다"고 한다. 본인이 빨리 해명했으면 좋았을 일이라는 것이다. 현안이 산적한 국방위에서 불필요한 진실 게임처럼 됐다고 한탄한다. 김제동씨의 말마따나 웃자고 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시 '군사령관'의 명예가 걸린 사안일 수도 있다. 김씨의 발언이 허위나 과장이라면 더 그렇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식으로 눙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감장에서 공식 의제로 제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백의원은 군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기 때문에 문제 삼았다고 한다. 김제동씨의 발언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다루어야 할 정도의 비중과 시급성이 있는지 역시 의문이다.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그것보다 더 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산비리' 문제이다.잊을만하면 터지는 방산비리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당장 지난달 26일 동해에서 추락한 링스헬기도 볼트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군인 3명이 산화한 원인이 방산비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해군이 도입한 해상작전 헬기 '와일드 캣'은 실제 작전 시간이 30분에 불과할 정도로 작전성능에 미달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불량 방탄복 납품 혐의로 기소된 업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도 있다.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기소된 전직 해군참모총장들, 전투기 정비대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공군 중장도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한다. 당사자들의 명예야 회복되었다 치자. 하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북한군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을 입고 있다. 통영함에는 어군탐지에나 쓰이는 음파탐지기가 달려있다. 누가 무죄를 받았건 통영함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함정임에는 변함이 없다. 불량부품으로 정비한 항공기가 제 성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어야 하나. 잇따라 추락하는 헬리콥터들이 혹시 그래서인 것은 아닌지.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항공기를 타야 한다니. 모골이 송연하다. 방산비리로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고 애꿎은 장병들의 생명이 담보로 잡혀 있다. 그나마 법적인 책임조차 제대로 지우지 못하는 게 방산비리의 실태인 셈이다.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의 답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표적 방산비리요? 글쎄요, 하도 많아서…."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하도 많다"고 책임자가 스스로 고백한 방산비리는 척결되었는가. 앞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제대로 만들어졌는가. 국회 국방위원회는 당시 소리 높여 질타했던 문제점들이 개선되었는지 확인했는가. 여전히 '질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연년세세(年年歲歲) 똑같은 국방비리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아무 효과 없는 연례행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지만 김제동씨의 발언은 우스개 소리다. 국감목록에 오를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오죽 군의 명예를 걱정했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백의원은 국방부 차관 시절부터 진실을 밝히고 싶어 했다고 한다. 대단한 집념이다. 그 정도의 집념으로 군의 명예를 위해 할 일은 따로 있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게 군인이다. 눈앞의 작은 이득보다 부하와 군과 나라의 안위를 앞세우는 게 진정한 군인의 명예이다. 방산비리로 인해 그런 명예가 땅에 떨어져 있다. 다시는 방산비리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첩경이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10-13 노동일

[춘추칼럼]남북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

미·중 갈등에 눈치만 보다간 끌려다닐 수 밖에…北도발 강력대응 했다면 이제는 협상카드 쓸 필요새 분위기로 북핵문제 해결국면 진입시킬 수 있어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러한 국면이 더욱 길어진다면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안보구도의 틀이 바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추후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특히, 최근 상황을 보면 한반도가 전장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였다. 지난달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국은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B-1B 랜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격시켰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수위를 두고도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악화일로의 환경에서 북한은 주변 상황과 정세 변화를 적극 활용하며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강력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우리는 군사적·안보적 대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역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하여 적절히 자신들의 패권과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미·중 간의 전략적 이해에 따른 경쟁·대립이 정리되기 전까지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크다.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정상화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는 것에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 함경북도 북부 지역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해 많은 인명·재산 피해를 입혔음에도 북한의 5차 핵실험 등을 거론하며 대북 수해 복구 지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그러나 북핵문제는 제재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감안하고 제반상황을 따져 볼 때, 북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가 얼마나 가능한지 의문이다. 지속적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온 북한을 더욱 강력한 제재로 변화를 갖게 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투영해 온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민생까지 대상에 추가하는 제재에는 반대하고 있다.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국면과 상황에 대한 평가, 향후 주변국 등과의 관계 및 북한이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전략과 대안을 갖고 난국을 돌파해나갈 것인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을 지속하는 것은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면서 전략적 대처 없이 상황을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우리가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외길의 태도를 지속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결국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것, 즉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우리에게 유리한 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남북간의 적대적 대립이 이어지는 한 미·중 간 갈등이 한반도에 투영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단절 및 불안정 심화는 북핵문제 해결 및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미·중이 갈등한다고 해서 이들의 눈치만 보다가는 종속적이고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제재와 협상은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어느 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대한 강력대응 차원에서 제재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협상이라는 카드에도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북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진입하지 않는 상황은 남북관계 정상화 추진을 어렵게 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관계 정상화가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전제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 변화를 이끌며 한반도에 대한 미·중의 부정적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등 새로운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북핵문제를 해결 국면에 진입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긴 안목에서 대처할 문제와 단기간 내에 즉흥적으로 대처할 문제를 잘 분간해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대체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 핵문제 해결 등을 위해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협력은 어려울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핵·미사일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10-06 양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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