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 익숙함을 거부하기

'변화'와 '능숙함' 겪는 세대간 상호이해 쉽지않아새로운 기술·상품 선택해 경험하는 '얼리어답터'신기함·세상변화 실감하며 혁신을 소비하고 지원언제부터 '먹방'이 이렇게 유행한 걸까. 맛집 탐방이 대세고 멋진 셰프는 만인의 로망이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의 변화는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그리움으로 추억하는 나의 유년기는 색다른 장면으로 가득하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먹기도 힘든 쌀로 술을 만드는 건 큰일 날 일이어서 동네에서도 가끔 밀주를 만들다가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세기 전반부의 미국 대공황 때 금주령이 선포된 후에 알카포네 같은 갱단이 밀주 유통으로 부를 축적했던 걸 연상시킨다.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서 아이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갔는데, 학교에서 도시락에 보리가 충분히 섞였는지 '도시락 검사'를 받았다.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윤기 나는 쌀밥을 먹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여겼으니까. 창이 있으면 방패가 나오는 법이다. 도시락 상층부에 보리를 얇게 도포하여 검사를 통과하는 기술은 족보가 되어 전수됐다. 요즘 어디 가서 이런 보리 혼식 얘기를 끄집어내면 꼰대소리 듣기 딱 좋다.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공포심에 눌린 아재와 아주매는 그래서 이런 '부족했던' 시절 얘기를 피한다. 가르치려는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소리까지 들으면 큰일이다. 세상에는 시류니 유행이니 하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신세대에게 이런 예전 얘기는 진부하기만 하려니 생각하던 차라서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은 사뭇 놀라웠다. 영화평론가들도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궁상맞은 얘기는 진부하다'는 주류 프레임에 정면충돌했다. 지금 신세대에게 이런 시절을 살던 청춘의 궁핍함이 소통된다는 게 놀랍다. 그들에게도 예전 것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신세대에게만 기성세대를 이해하라는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질적 요소를 가진 두 그룹 간의 이해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변화의 한가운데서 몸으로 변화를 맞는 세대와 오랜 세월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지닌 채 생경한 변화를 관찰하는 세대의 상호이해가 쉬울 리가 없다. 이래저래 구세대도 꼰대 탈출의 비결을 고민하는 지경이 됐다. 꼰대라는 말은 꼬장꼬장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불통의 아이콘이 됐으니까. 이럴 때 떠오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효함이 증명된 비책이다. 옛것을 지킨다는 온고는 알겠는데 새것을 아는 지신은 쉽지 않다. 눈을 바짝 뜨고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지만, 이걸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君子善假於物 군자선가어물. '순자 荀子'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물건을 잘 다룬다는 의미다. 요샛말로 하면 군자는 기크(geek)에 가깝다는 말이려나. 무릇 군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게으르면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니, 얼리어답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얼리어답터는 흔히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전위적으로 채택하고 실험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은 새로 나오는 장치들에서 이전에 없었던 아이디어를 보고,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필요했을 혁신을 통찰한다. 예전에는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근검절약만으로는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혁신도 그로부터 탄생한 상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사그라지니까.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때 정말로 혁신을 만들어낸 건 손에 찰지게 잡히는 예쁜 기계가 아니었다. 변화의 요체는 아이툰즈와 앱마켓이 보여준 연결된 세계의 비전이었다. CD 한 장의 열 몇 곡을 다 사지 않아도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아무 때나 구매해서 들을 수 있게 된 변화는 개인의 선택과 개성의 존중이라는 가치의 구현이었다. 애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얼리어답터들을 등에 업고 낡은 주류 프레임을 순식간에 뒤집었다.새로운 것을 써보고 그 신기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세상 변화의 실마리를 보며 혁신을 소비하고 지원한다. 익숙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얼리어답터들을 응원하는 이유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9-29 박형주

[춘추칼럼] 카르발류가 없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때 리스본 재건시킨 영웅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상처 달라져불법 연루된 권력자들 틈에 국민들은 유기된 느낌지진이 일어난 그 밤에 난생 처음 집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겠지만, 이전의 나와는 달라졌다.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 예전에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 하나를 다시 꺼내든 것도 그 다음날이었다.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에코의서재, 2009)은 '리스본 대지진'(1755년 11월 1일)의 경과와 결과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인데, 애초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기분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 책의 후반부, 즉 당대 유럽 지식인들의 다양한 지적 반응과 상호 논쟁을 정리한 대목만 읽었다. 이 세계야말로 신이 설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책 '신정론(변신론)'(1710)이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의 '캉디드'(1759)에 의해 어떻게 논박 당했는지를 살피고 이로부터 세계관의 두 유형을 추출해내서 그 논리적 완결성과 인간적 호소력의 차이를 가늠해보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내 협소한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지진이 발생한 그 날의 상황, 1차에서 3차까지 계속된 지진의 경과, 그리고 그 막대한 피해와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포르투갈 왕가와 그 측근들의 대처가 눈에 밟혔다. 그날 주제 1세와 그의 가족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휴양지 벨렝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무능력한 왕은 망연자실 상태였고 신부들은 신의 심판을 받은 땅을 버려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은 당시 대다수 권력자들보다는 낮은 계급 출신이었던 신하 카르발류였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왕이 묻자 카르발류는 답했다.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 명쾌한 대답을 듣고 왕은 카르발류에게 비상사태의 전권을 주었으며 카르발류는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발휘해 리스본을 재건할 수 있었다.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지진은 예측할 수 없으니) 지진 발생 자체는 신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더라도, (대처와 복구 등으로 이루어질) 지진 이후의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뜻이라는 생각을 새삼 했을 따름이다. "재난은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만 '자연적'일 뿐 재난 이전과 이후는 순전히 '사회적' 사건이다" 라는 책 소개에 이끌려 펼쳐보게 된 '재난 불평등'(존 C 머터, 장상미 옮김, 동녘)은 거의 같은 재난이 발생해도 부국의 사망자 수는 빈국의 10분의 3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다. 요점은 간단하다. 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의 상처가 현격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불법에 연루돼 있는 것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해 보인다. 정치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그리고 재벌권력들 간의 강고한 이익 연대 바깥에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그냥 유기(遺棄)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복지'는커녕 '생명' 자체가 문제인 시대다. 어쩌면 이 나라 최상층 권력자들은 국민 몇 백 명 죽는 것쯤은 괘념치 않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300명이 죽었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수는 400명이 훨씬 넘는다. 국가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죽게 놔둔' 것은 맞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어떤 재난이 오든, 그 재난 이후도 재난일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작년은 '내부자들'과 '베테랑'의 해였고 올해는 '부산행'과 '터널'의 해인 것 같다. 앞의 두 영화는 통쾌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만 그 '시적 정의'(poetic justice)는 판타지일 뿐이고 진정한 메시지는 타락한 권력의 적나라한 실상이었다. 집단적, 개인적 재난을 다룬 뒤의 두 영화의 진정한 공통점도 주인공(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생존이 국가의 무능과 비겁에 맞선 개인 각자의 자력구제로 성취됐다는 사실에 있다. 지금 이곳에는 왕실(권력)의 서사와 백성(재난)의 서사만 있다. 카르발류가 없기 때문이다. 영웅으로서의 카르발류가 아니라 시스템으로서의 카르발류 말이다./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09-22 신형철

[춘추칼럼] 서독의 대화·교류·지원·인권 병행정책

남북간 대화 민간교류로 '대북인권' 접근 중요한반도문제 주변국 아닌 남북이 주도권 확보해야인도적 지원 병행 실질적 개선 되도록 노력 필요지난 4일 북한인권법이 시행됐다. 북한은 대외선전매체를 총동원하여 북한인권법을 비난했다. 향후 남북관계의 고난을 예고한다. 통일전 동독정권에 의해 가해진 인권침해는 주로 동독의 체제유지와 관련됐다. 생명권·재산권·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했다. 형사법은 체제에 반하는 세력을 탄압하고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생명침해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는 국경 탈출자에 대한 총기 사용이었다. 1949∼1989년 국경수비대의 총격에 의한 사망자 숫자는 200여명에 달한다. 지뢰와 자동발사장치에 의한 사망자도 300여명에 이른다. 일방적 사법절차에 의한 사형수도 4천500여명으로 추정된다. 동독정권은 체제이념의 차이를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응했다.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북한의 대응·반발과 큰 차이가 없다.동독은 1973년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했다. 1975년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 창설을 위한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서명했다. 헬싱키 최종의정서는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해 주는 대신 가족상봉 및 재결합, 여행 및 자유 왕래, 인권존중, 언론 및 집회의 자유,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 증대를 명시했다. 동독의 체제변화를 이끌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서독은 초기에 국제기구나 국제법의 원칙, 합의 등을 통해 동독에 대한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서독은 차츰 양독간의 합의에 의한 동독의 인권개선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인권문제의 직접 제기보다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인권개선 정책으로 전환했다. 동방정책 비판론자들은 동방정책이 동독정권 유지에 기여했으나 동독 주민들의 인권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동방정책이 양독간 교류의 다리를 놓고, 동독인들이 서독을 동경하고, 동독내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싹트게 된 것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서독의 대동독 인권정책 사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네 가지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당국간의 대화와 민간급의 교류가 선결조건이다. 대화 없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교류 없이 인권 개선을 도와 줄 수 있는 방안을 찾기가 어렵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 대북인권 접근은 북한의 반발과 거부감만 쌓일 뿐이다. 둘째,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적이면서 함께해야할 민족이다. 미국은 세계 강대국으로써 인권의 보편성만 강조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도구로서 활용한다. 미국은 북한이 적일뿐 함께해야할 민족은 아니다. 대북인권법을 미국의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 일본의 대북인권법은 납치자 문제에 대한 압박의 도구로 탄생했다. 납치자문제가 해결되면 효용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북인권법에 대한 우리의 잣대는 불분명하다. 셋째, 정치문제와 인도적 문제의 분리이다. 인권은 자유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도 있다. 탄압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치료 받으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병들어 가는 노약자에게 시급한 인권은 의약품과 식량이다. 인도적 지원이 없는 한국·미국·일본의 대북인권문제 제기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일부 보수론자들이 북한 주민들이 더 아프고 더 배가 고파야 김정은 정권에게 저항한다는 주장은 논리가 아니라 궤변이다. 넷째,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 확보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고 미국과 중국은 주변국이다. 역사적 경험은 남북한이 대결하면 주변국인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가 됐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미국과 중국을 협력자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남북관계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우리가 북미·북일간 인권대화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써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인권문제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북간에 협력과 평화를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인권의 점진적 실질적 개선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남북당국간의 대화와 민간급의 교류, 인도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남북관계의 단절 속에서 인권개선을 외치는 것은 북한인권개선법이 아니라 대북압박법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9-08 양무진

[춘추칼럼] 살바도르 달리의 12면 축구공

플라톤 "신은 별자리 배치 정십이면체 사용" 주장달리, 마지막 만찬 성스러움 '제5원소'로 표현수학, 음악·미술가에게 영감 주는 매개 되기도작년 말에 파리에서 세드릭 빌라니 교수를 만났다. 2010년 필즈상을 수상한 석학이고 앙리 푸앵카레 수학연구소장이다. 항상 나비넥타이 정장차림에 자신만의 거미 브로치를 단다. 깊이 있는 수학 논문과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동시에 써내며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을 거부하는 이단아다.그를 만난 곳은 실험 음악가 파트리스 물레의 작업실이었다. 영화 매드맥스 세트장 같은 느낌의 커다란 지하 공간에서 물레는 신개념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며 연주하는 작업을 한다. 음악에 대한 학습이나 훈련 없이도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 작업실에서의 연주는 좋은 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자폐증이나 신체적 부자유가 있는 아이들이 이런 악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하고 치료받는 현상이 관찰되는 바람에 새로운 활력을 띄게 됐다. 작업실에는 정신과 의사인 여성 인지과학자도 방문 중이었다. 음악가와 수학자 그리고 인지과학자가 무슨 공통의 관심이 있을까. 시각적 정보를 음악으로 전환하는 비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치유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동원된 것이다. 자폐증 아이들이 지하실을 방문하는 것이 민망한 빌라니는 작업실의 지상 이전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중이다. 이럴 때는 필즈상 수상자라는 허명도 도움이 된다나.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1955년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에 나타나는 여러 직선들의 길이는 황금비를 이루고, 배경에는 큼지막한 정십이면체가 보인다. 똑같은 모양의 펜타곤 12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각진 축구공이 예수님 뒤에 보이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인가.얘기는 고대 아테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모순과 오류투성이의 현세 너머에 무결한 피안의 세계가 있다고 여겼다. 피안을 들여다보는 열쇠를 기하학에서 찾고는, '기하학은 진리로 가는 영혼을 이끌며, 철학의 정신을 창조한다'고 가르쳤다. 아테네에서 제자들을 키우던 아카데미 입구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놓았다. 이 엄포에 주눅 들지 않은 용감한 사람들 덕에, 플라톤 아카데미는 나중에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서도 계속되어 장장 900년 동안 존속했다. 그래서 '플라톤적'이라는 표현은 '이상주의적'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적 사랑의 의미로 쓰이는 '플라토닉 러브'가 한 예다. '플라톤적 입체(Platonic Solids)'도 비슷한데, 혼탁한 이 세상에 숨어있는 고귀한 입체 다섯 개를 이르는 말이다. 각 면이 정삼각형인 피라미드를 연상해보라. 바닥까지 쳐서 총 4개의 면을 갖는 정사면체다. 주사위를 연상해보라. 각 면은 똑같은 정사각형이고 총 6개의 면을 갖는 정육면체다. 각 면이 똑같은 정다면체는, 놀랍게도 우주를 통틀어서 이 두 개 외에,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밖에 없다. 이 사실은 수학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고, 신비한 다섯 개의 입체는 플라톤 학파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플라톤의 4원소론에서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원소인 불, 흙, 공기, 물이 각각 4개의 정다면체에 해당한다. 여기 정십이면체가 빠졌는데, 후대 사람들은 이를 미지의 제 5원소로 불렀다. 플라톤은 신이 우주의 별자리를 배치하는 데 정십이면체를 사용했을 거라 했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에테르라고 불렀다. 살바도르 달리는 예수님과 열두제자가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의 성스러움을 신의 섭리를 상징하는 제5원소로 표현했고, 황금비를 도처에 배치해서 미적 완결성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이런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예술가는 도처에 출몰한다. 간딘스키와 초기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구조와 명징성의 연계와 실험이 확연하다. 드뷔시는 높낮이가 황금비를 이루는 음들을 배치하는 작곡 실험을 했다. 수학은 초중등 교육체계에서 합리적 생각의 능력을 연습시키는 도구이지만, 분야를 넘나드는 음악가의 치유실험과 미술가의 상징실험에 영감을 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9-01 박형주

[춘추칼럼] 터널 앞에서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기억 '주체' 아닌 '대상'에 불과그 고통 얼마나 참혹한지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몰라누군가의 터널속 어둠 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자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많은 장점을 가진 영화다.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를 더 많은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가장 적합한 화법이 무엇일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보다도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이 나오는 모든 장면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터널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터널 안팎의 고통이 모두 그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가장 안타까워 보였다. 터널 밖의 고통과 분노에 떠밀려 그녀가 결국 터널 안의 남편을 포기하기로 결단하는 '마지막 방송' 장면을 나는 지금도 떠올리고 있다.그런데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계속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35일 만에 구출된 정수가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퇴원해서 아내와 자동차로 귀가하는 장면. '이송'에서 '퇴원'까지 실제로는 긴 시간이 흘렀겠지만 관객들은 불과 몇 분 만에 멀끔해진 정수를 보게 된다. 그 사이 건강해진 정수의 너스레는, 조금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여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물론 정수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결국은 통과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정수가 퇴원하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고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감독의 의도는 트라우마의 집요함을 강조하자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장면이 내게는 오히려 반대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다시 터널로 들어갈 수 있는가. 나라면 다시는 터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터널의 시커먼 아가리가 저 멀리 보이는 지점에까지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 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말이다. 내가 아는 한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그 장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설명할 능력이 내게는 없고 또 그러기에 적당한 지면도 아닐 것이다. 그저 다음 대목을 한 번 옮겨 적고 싶다. "기억이란 내가 기억하는 당사자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우리가 기억의 주체로 남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압도해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나를 기억한다"(맹정현, '트라우마 이후의 삶', 책담, 2015, 78쪽) 트라우마에 관한 한 나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걸 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런 말은 지금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체가 될 것을, 심지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며칠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를 받아 강연을 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수락한 것은,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강연 중에 '문학은 나태한 정신을 고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내용의 말을 하다가 잠시 주춤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살아있는 현실인 '고문'을 비유로 사용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그 순간 처음으로 했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신형철 문학평론가신형철 문학평론가

2016-08-25 김영박

[춘추칼럼] 전기요금과 관료주의의 벽

가정용 전력수요 많이 써도 전체 사용량중 15.6%대통령 한마디에 "누진제 완화 검토" 180도 돌변관료주의 관점서 볼때 우리나라는 '후진국'에 불과관료주의란 조직의 공정성, 합리성, 효율성을 기할 수 있도록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적 관료들의 체계를 말한다. 관료주의는 업무 처리에 있어 공평무사의 원칙에 따라 합리성을 실현한다. 임용과 보수에 있어 능력주의에 따르고, 통제력의 집중과 위계적 질서에 의하여 능률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료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독선적 권위주의, 행정적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 전가, 규정 만능주의 등을 말한다. 관료주의에 젖은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급자에 대하여는 아첨하고 하급자에게는 거만하며, 까다로운 업무는 적당히 넘기고, 자기 업무 이외에는 무관심하며, 독선적이고, 책임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온라인에서 찾아본 '행정학 사전' 등은 관료주의를 이처럼 풀이한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이 같은 부정적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숨 막히는 더위에 시달리는 국민들이지만 에어컨조차 제대로 틀지 못한다. 말 그대로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서다. 최고 11.7배까지 가중되는 징벌적 누진제비판은 매년 여름 되풀이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국민을 더 열불 나게 만든 것은 누진제를 강변하는 산자부 관료의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에어컨을 하루 서너 시간만 틀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아침부터 시작된 찜통더위가 기록적 폭염으로 이어지는 날이 계속 중이다. 도저히 잠을 이루기 어려운 열대야도 수십 일째 지속 중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 속에서 긴팔 옷을 입고 근무하는 고위 관료들이니 국민들의 사정을 알 턱이 없다. 거짓 논리로 누진제를 옹호하는 점은 더 어이없다. 가정용 전력 수요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 지금보다 가정에서 20%를 더 써도 전체 사용량에서는 15.6%에 불과하다. 여름철 전력 대란이 우려되는 피크 타임은 오후 2~3시이다. 가정용 전력소비는 그 시간에 오히려 줄어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정용 전력소모가 많은 시간은 가족이 모이는 저녁 7시 시작하여 9시 전후로 피크를 이룬다. 가정용을 더 쓰면 전력 대란이 우려되고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협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는 대의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가정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그것도 징벌적인 누진제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상업용과 산업용에도 누진제를 하든지 모두가 사용량만큼 내게 하든지 같이 대우하란 얘기다. 전기료 8만여원 내던 집이 3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면 폭탄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국민의 삶이다. 어린아이들이나 노부모가 있는 집에서는 8월 전기요금이 100만원까지 나올 거란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공무원들은 하루 4시간만 더운 모양이죠?" "고위 관료들은 부자라 전기료가 부담스럽지 않나 보네요." 산자부 공무원의 인터뷰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의 일부이다. 전기요금 논란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은 국민을 대하는 관료들의 시각이다. 얼마 전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한 교육부 공무원은 파면처분을 받았다. 전기요금을 대하는 관료들의 생각 역시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국민은 계도의 대상이요 다스림의 객체라는 것이다. 똑똑한 고시합격자들이 만들어낸 정책을 우매한 국민들은 따라오기만 하라는 발상이다. 여론에 오불관언 하겠다는 태도는 자신들이 국민의 위에 있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바뀐 관료들의 태도는 우습기까지 하다. 누진제 고수를 위해 기자회견을 하더니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었다"고 180도 회전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앞서 인용한 온라인 행정학 사전은 '관료주의'를 이렇게 맺고 있다.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지 못한 후진국이나 발전도상국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관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나 발전도상국'에 불과하다. 특히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지 못한' 것은 물론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부족한 관료들을 대하기 때문이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2016-08-18 노동일

[춘추칼럼] 시대에 역행하는 한반도의 신냉전구도

정부 사드배치 결정에 中 반발 확산 '신냉전구도' 심화북한, 중·러와 관계 복원·진전 시동 '발빠른 대응'예방안보·균형외교 중요… 박대통령 8·15경축사 기대냉전구도는 이념에 토대한 대립구도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다. 남한은 미국진영이고 북한은 소련진영이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다. 나의 손실이 적의 이익이라는 제로섬 게임의 국제질서이다. 1980년대 말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와 90년대 초 소련의 해체로 냉전구도는 종말을 고했다. 한반도는 전환의 시대를 맞이했다. 한중·한러 수교가 이루어졌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됐다. 미북 간에는 북핵동결·경제지원·관계 정상화 논의 등을 담은 제네바 합의가 채택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남북한이 화해 협력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했다.신냉전구도는 안보에 토대한 대립구도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우호 국가 간의 대립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론과 중국의 신형대국론이 논리적 토대이다. 북한의 핵무장론과 남한의 동맹강화론이 대립구도의 전면에 서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중외교를 강화했다. 중국과의 협력강화와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는 중국의 신형대국전략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 대북압박 공조인 한미일중러 대 북한의 구도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을 잠시 지연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럽게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중국의 반발은 확산되고 있다. 대북압박 공조는 와해되는 모습이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고도화되고 한반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심화되는 느낌이다.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사드 배치의 결정적 요인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위협의 방어적인 제거이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를 적극 반대한다. 한중간의 입장 차이는 간단하다. 사드배치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인식차이이다. 한국은 사드가 대북용이고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의한 대중용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의심하는 모습이다. 의심의 핵심적 근거는 사드 운영을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반대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중국의 의심해소는 우리가 직접 사드를 구매해서 운영하든지 일본처럼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전작권도 미국에 내준 상황에서 미사일방어체계의 편입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수 있다.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의 반한 분위기는 확산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배치결정 재고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환구시보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은 구체적인 보복조치를 강조한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 실현을 위해 신형대국론을 강조한다. 대립과 갈등을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하는 전략이다. G2국가로서 세계무역기구에도 가입했다.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보복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소리 없는 보복도 있다.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대북압박 공조가 와해되고 있다. 한류 확산이 주춤하는 모습이다. 한국관광 취소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한반도가 불안정하다고 언급하면 관광객은 언제든지 급감될 수 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소리 없는 고문을 많이 경험했다. 정신적 신체적 아픔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한반도의 사드정국에 북한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복원에 시동을 걸었다. 아시아지역 안보포럼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이수용 외무상과의 밀애 관계가 이를 말해준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진전되는 모습이다. 양국간의 중장기 발전방안에 대한 국장급 논의가 조만간 성사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언론 규탄 성명에 한미연합훈련 규탄 내용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규탄성명은 무산되었다. 9월초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되는 동방경제포럼에 북한의 고위급이 파견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의 대립각은 지속 유지되고 있다. 뉴욕채널도 단절됐다. 일본과의 비선접촉도 전면 중단된 상태다.향후 북한은 강온 병행전략이 예상된다. 8·15를 맞아 민족공동행사 겸 고위급대화를 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하순 한미군사훈련이 실시된다. 남북대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노동미사일이나 수중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중강도 무력시위가 예상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문제와 한미군사훈련이 한반도의 불안정요인임을 주장한다. 한반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심화될 둣하다. 국가안보는 예방안보가 중요하고 국가이익은 균형외교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기대되는 대목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8-11 양무진

[춘추칼럼] 간섭 안하는 마법

공기청정기 살균제·사드문제 등 곳곳에 '신뢰 위기'대중들 전문가 '피어리뷰' 안 믿고 음모론과 괴담만서로 소통 가능한 '공공의 과학참여'로 고비 넘겨야미국이 아폴로 계획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려 할 때 모든 사람이 박수친 건 아니었다. 세기의 예산낭비로 보였으리라. 전문가들의 평가인 피어 리뷰 (peer review)로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결국 기폭제가 된 건 냉전시대 적국의 최초 인공위성 발사였다. 이렇듯 과학연구 지원에서 '무엇을' 지원할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어떻게'의 문제도 만만찮다. '지원하되 간섭 안한다'라는 문구는 바람직한 지원 방식을 마법처럼 표현한다. 당연한 말이라서 누가 반대하랴 싶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 당장 '눈먼 돈' 아니냐는 냉소에 맞닥뜨린다. 툭하면 연구비 유용 사건이 터지니 무조건 믿어 달라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감시를 위해 만든 각종 서류를 끝도 없이 채우는 일에 연구자들을 몰아넣자고? 재능의 낭비고 국가적 손해다.결국 '신뢰의 부재'가 문제의 본질이고, 공공재의 투입 여부 결정과정부터 설득력을 담보해야 함을 깨닫는다. 전문성에 바탕하지 않은 지원 결정이 얼마나 무모한가의 사례로 수없이 인용된 게 황우석 사건이다. 당연히 공적 자금의 투자 결정에서 피어 리뷰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피어 리뷰는 지원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동종의 전문가들끼리 벽을 치고 담을 세우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거라는 차가운 시각은 어쩔건가. 그러니까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한 검증에서 살아남은 것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다음 단계가 남아있다. 이건 전문가 집단을 훨씬 넘어서는, 실제 재원을 제공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요한다. 피어 리뷰 자체를 생략하고 공공자금을 지원한 황우석 사건의 경우에는, 필요조건부터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결정과정의 결함이 분명히 있었다.과학 분야에서 이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켜서 '공공의 과학참여(public engagement in science)'라고 한다. 원래 '과학대중화'라고 하다가 '공공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는데, '공공의 과학참여'라는 확장된 표현은 쌍방향 소통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다.현대과학의 성취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전달하려는 과학대중화의 성장은 괄목상대하다. 대중적인 책이나 방송 다큐와 강연 등 형식과 내용이 모두 풍성해졌다. 주체는 과학자다. 여기서 주체를 '대중'으로 교체한 것이 '공공(대중)의 과학이해'다. 엘리트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전달한다는 모양이 계몽주의적 시혜를 연상시킨다는 반성 탓이다.쌍방향 관점으로의 전환점은 2000년도 영국에서 일어났던 광우병 공포로 인한 소고기 기피 사태였다. 영국 국민들은 정부와 과학자들을 불신했고 음모론이 만연했다. 우려를 잠재우려고 영국 농림장관이 공개 시식회를 열고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려 했는데 정작 어린 딸은 먹기를 거부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과학 소통의 위기였다. 위기는 성찰을 이끈다. 과학의 성취를 대중에게 전달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이 생겼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였구나'라는 깨달음. 쌍방향 소통을 통해서만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결론은 '공공의 과학참여'라는 개념으로 정리됐다.우리나라에서도 GMO 농산물이나 공기청정기 살균제, 사드 배치 문제까지 곳곳에 신뢰의 위기가 배어있다. 문제 접근의 첫 단계에선 전문가들의 피어 리뷰가 중요한데, 그 결과를 대중이 안 믿는 문제, 즉 신뢰의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살균제 문제에선 피어 리뷰 자체의 결함으로 문제를 자초했다. 결국 두 번째 합의의 단계는 엉망이 되고 음모론과 괴담이 넘쳐나는 총체적 난국이 연출될 수밖에. SNS 등을 통한 지식의 접근과 공유가 쉬운 시대다.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학대중화를 넘어서는 대중의 과학참여 방안을 마련해서 신뢰의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이런 촘촘한 검증 구조는 피어 리뷰의 긴장도와 수준도 올린다. 그 다음엔 '지원하되 간섭안하는' 마법이 정말 구현되지 않을까./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8-04 박형주

[춘추칼럼] 가십의 나라에서

언론매체 난립 경쟁 과열로 생산 늘고 전파 빨라져타인 추락으로 쾌감 공유하는 것은 '인민의 아편' 사회구조의 불공정성이 성취·보람 제공에 무능하다는 증거 폭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종편 방송도 포털 사이트도 눈만 뜨면 각종 유명인(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 관련 정보들을 쏟아낸다. 국민이 낸 세금을 대신 집행하거나 이를 감시하는 사회적 공인들의 공적 활동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저 직업의 특성상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인 사람들의 사적 삶에 대한 정보다. 미담(美談)도 아니고 대부분 추문(醜聞)인데, 사실로 확인된 것과 단지 추정일 뿐인 것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보지 않으면 그만이겠으나 쉽지가 않다. 폭격 수준으로 쏟아지니 자꾸 눈에 띄고, 인간 본성의 결함 때문인지 자꾸 유혹에 지고 만다.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날리고, 관련 업체와 매체는 수익을 거두며, 성찰과 토론이 필요한 공적 사안들은 뒤로 밀린다. 이와 같은 정보와 그런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를 '가십(gossip)'이라고 한다. '잡담'이라 하면 뜻이 약해지고 '폄론(貶論)'이라 하면 어려우니 '쑥덕공론' 정도로 옮기면 무난하겠다. 가십은 정말 인간 본성에 속하는 것일까. 1993년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이유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정보(예컨대 사냥을 위한 팁)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정보(예컨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폈다. 집단생활을 하려면 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일일이 만나 판단할 수 없으므로 가십을 참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특정 성향을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로 간주하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가십은 진화적 이득이 있어 발달돼 온 것이 된다. 그런데 가십은 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가 아니라 부정적 정보를 우대하는 것일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어가 있다. '남의 불행(Schaden)을 통해 느끼는 나의 행복(Freude)'을 뜻하는 이 말을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번역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1999)에 소개된 한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사회적 추락에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데, 타인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의 성공이 부당하다 여겨질수록, 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 기쁨의 강도가 세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십이 타인의 긍정적 정보가 아니라 부정적 정보에 몰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 정보가 타인의 추락을 예감하게 하고, 그로 인해 나에게 제공될지 모를 반사이익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하며, 그 기대가 결국 나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영국 월간지 '사이칼러지즈(Psychologies)'(2011년 12월)의 한 기사는 가십에 따르는 부수적 이익 하나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비방이 떳떳하지 못한 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일삼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A가 B에게 제3자인 C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말하면 B가 A를 나쁜 사람이라 판단할 수 있으므로 비방을 먼저 시도하는 일은 꽤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B가 A에게 동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A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A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B는 판단하게 된다는 것. 이를 통해 A와 B 사이에는 강한 결속 관계가 성립된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가? 제3자를 함께 헐뜯어라'.가십의 사회심리학을 소략하나마 소개한 것은 그것에 탐닉하는 우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렇다고 가십을 멀리하고 공적 의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공허한 결론을 부르짖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왜 가십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언론매체가 난립해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십 생산 자체가 늘어났고 통신수단의 발달로 가십 유통도 더 원활해졌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 가십이 타인의 추락을 예감하는 쾌감을 제공하고 그 쾌감을 공유하는 이들을 결속시킨다는 설명이 옳다면, 가십의 폭증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여 구성원 각자가 크든 작든 저마다의 성취와 보람을 누리도록 하는 데 무능하다는 증거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마르크스식으로 말해 '가십은 인민의 아편'인 것일까./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문예창작과 교수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문예창작과 교수

2016-07-28 신형철

[춘추칼럼] 권력의 칼날 머리 위의 칼날

권력의 단맛에 취해 권좌위의 칼날은 알지 못해우리나라, 칼날 아래 놓인것처럼 일촉즉발 상황 함부로 나대면 안된다는 사실 깨친 사람들 나서야'다모클레스의 검'.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로 권력의 위태로움을 경고하기 위한 우화로 사용된다. 다모클레스는 기원전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왕인 디오니시우스의 신하였다고 한다. 그는 온갖 아첨을 늘어놓으며 왕의 심복이 되었다. 왕이 얼마나 행복한지 찬양해 마지않는 것도 아부 목록에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왕이 다모클레스에게 제안한다. 그토록 부러워하는 왕의 자리에 앉아 볼 기회를 주겠다고. 다모클레스는 감격과 함께 왕좌에 올랐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동안은 최고 권력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천장을 쳐다본 순간 감격은 공포로 변했다. 머리 위에 한 올의 말총에 매달아 놓은 예리한 칼이 왕좌를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1961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유엔연설 중에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이를 인용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으면서 '다모클레스의 검'은 일촉즉발의 위험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하지만 본래는 권력의 자리가 항상 칼날 아래 있는 왕좌처럼 위험한 것임을 강조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권력이 주는 행복만 누리다가는 칼날에 다칠 수 있다. 권력이 높을수록 매달린 칼날에 가까이 가는 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최고권력자나 그 주변인일수록 더욱 권력의 위험을 경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새누리당이 다시 한번 풍파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총선 백서가 나오자마자 윤상현, 최경환 의원 등의 공천 개입 녹취록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비박이 또 한번 일전불사 채비를 갖추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다는 말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쪼그라들었어도 새누리당은 명색이 집권당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모이면 나라의 엄중한 상황을 걱정한다. 경제는 한없이 추락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은 늘어만 간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은 안보라고 한다.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감수하더라도 사드 배치를 하는 논리도 그런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하는 안보는 평안한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우리끼리 벌이는 멱살잡이는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어렵다. 사드 배치의 찬반을 떠나 지금 벌어지는 소동은 집권세력의 미숙한 국정운영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조차 제대로 풀어갈 능력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미·중 갈등이 더 커질 때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은 더더구나 기대하기 어렵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 새누리당의 책임이 참으로 크고 무거움을 느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 줌의 권력 다툼에 취해 있을 뿐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권력을 누리려고만 했지 권력의 엄중함을 알지 못한 데 있다. 녹취록에 나오는 대화 내용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최 의원은 모두 '대통령의 뜻'을 빙자하고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그림자를 빌려 위세를 과시하는 호가호위의 전형적 모습이다. 총선 전 드러난 것처럼 김무성 전 대표를 향해 욕설을 할 수 있었던 배경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여우에 불과하지만 호랑이를 들먹이면 주위에서 겁을 먹는걸 알기 때문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국민들 앞에서 그토록 안하무인격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믿는 구석 때문이다. 모두가 권력의 단맛에 취해 권좌 위에 달린 칼날을 알지 못한 것이다. 시기가 문제일 뿐 한 올 머리카락에 매달린 칼날은 조만간 떨어질 때가 온다. 멀리 역사적 사례를 들것도 없다. 바로 지난 정권에서 이상득, 박영준, 최시중 등의 추락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다모클레스의 검' 이야기가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본 뜻으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후세의 사용법처럼 우리나라가 칼날 아래 놓인 것과 진배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 위험이 결코 현실화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력이란 그걸 믿고 함부로 나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친 사람들이 먼저 나서주어야 할텐데…. 머리 위에 칼날이 떨어져야 비로소 아는지 걱정만 더할 뿐이다./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부교수노동일 경희대 법과대학 부교수

2016-07-22 노동일

[춘추칼럼] 사드 배치 결정의 자충수

'한·미·일 對 북·중·러' 새로운 냉전구도 예고최첨단무기 '각축장' 되면 평화통일 멀어질 듯건강문제·님비현상 만만찮아 내부 갈등 우려지난 8일 한미 정부 당국은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그동안 발표 시기와 배치 후보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갑작스런 결정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측보다 미국측이 서둘렀던 느낌이다. 지난 1년 동안 사드 배치에 대해 미국은 적극적이었고 한국은 소극적이었다. 미국은 중국·북한·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2017년까지 한반도의 사드 배치 완료라는 전략적 목표가 세워져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 임기말에 동북아지역에서의 안보적 성과가 필요했다. 내년도에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말이기 때문에 사드 배치와 같은 중요한 결정이 어렵다는 판단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한미 당국은 사드 배치의 목적이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얼마만큼 실제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느냐의 논란이 많다. 사드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 요격에는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사드는 아직 완성된 무기체계가 아니고 개선해 나가는 진행형의 요격체계이다. 지난해 3월 미국 국방부 소속 길모어 미사일운용시험국장은 사드의 비행실험과 신뢰성 실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드가 요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천~3천㎞까지의 중거리미사일이다. 북한이 우리측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은 사거리가 500㎞ 내외의 탄도미사일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X-밴드 레이더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 요격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중국은 한국에 사드 배치 결정의 철회를 요구한다. 사드 배치시 필요한 조치를 고려하겠다는 압박 메시지도 보낸다. 경제적·외교적 대중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현실에서 사드 배치가 불러올 파장은 크다. 한중관계의 악화는 시간문제다. 중국은 한류와 관광객과 같은 사회문화 분야에서부터 경제·외교 분야로 압박 수위를 높여 갈 듯하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배치로 한반도 정국이 불안하다고 하면 중국 관광객 숫자는 상당히 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을 배신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한류에 대한 인식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다. 중국이 선호하는 한국화장품에 이물질이 발견돼서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하면 한국화장품의 대중수출은 하루아침에 중단될 수도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에 의한 대북압박공조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사드 배치는 이익보다 손실이 예상된다. 예기이론에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예상되면 느슨한 합의이행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해법을 제시한다.러시아도 한국의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한다. 사드는 한국형이 아니라 미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라고 비판한다. 한반도의 사드배치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예고한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2270호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동북아지역은 북한을 압박하는 5 대 1 구도가 형성됐다. 앞으로는 3 대 3의 구도하에서 한반도와 동북아는 최첨단무기의 각축장이 되면서 남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점점 멀어질 듯하다.우리 내부의 갈등도 우려된다. 전자파에 의한 국민건강문제와 '내 지역엔 안된다'는 님비 현상이 만만찮다. 정부는 X-밴드 레이더가 지상에서 5도로 시작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레이더로부터 100m까지를 제외하고는 큰 피해가 없다고 주장한다. X-밴드 레이더는 하루에 몇시간 운용되는가에 따라 전자파의 발생량은 다르다. X-밴더 레이더보다 몇백배가 적은 고압선의 전자파 피해를 우리는 잘 안다. 미국이나 아랍에미리트와 같이 영토가 넓고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지역에는 사드 배치가 어렵지 않지만 우리나라 지형에는 쉽지 않다. 님비현상은 이미 예고된 문제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문제 등에서 수많은 님비현상을 경험했다. 사드배치 문제는 남남갈등·지역갈등·남북갈등·동북아갈등 등이 서로 엉켜서 중첩적으로 일어난다. 서두르지 말고 절차를 밟아서 소통을 하는 것이 상황악화방지를 위한 해법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7-14 양무진

[춘추칼럼] 천재들의 무용담과 보편가의 시대

한분야 맞춤형교육 '위험' 그 직업 없어지면 낭패필요할 때 새분야 진입 가능한 '적당한 소양' 필수지식총량 커지는 시대엔 보편가 생존 가능성 높아전문가(specialist)는 한 우물을 파서 특정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 노벨과학상처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상도 전문가들의 성취에 주는 상이다.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항상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은 아니라서, 이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기고 그들의 지적 생산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통상 좋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여겨진다.만능가 또는 보편가(universalist)는 분야의 경계에 제한받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자와 수학자와 과학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으니 보편가들의 세상이었다.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은 이런 보편성의 재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아르키메데스는 그 박학다식함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인데, 고상한 지식도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정약용과 비교할 만하다. 중세 유럽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상당히 지속되어 다빈치나 파스칼처럼 미술가이자 수학자이고 과학자인 사람들이 출몰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이런 분야들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인체를 잘 그리려고 하다 보니 해부학의 전문가가 되었고, 파스칼은 풍경을 잘 그리려고 하다 보니 원근법의 원리를 사영기하학으로 발전시켰다. 이건 수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모든 선분이 유한한데 반해서, 무한의 개념을 기하학에 도입해야 여러 모순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각성한 것이다. 지식의 총량이 폭발 지경인 현대에는 이러한 보편가의 전통이 계속되기 힘들다. 보편가라고 하면, 당연히 특정 분야에 국한했을 때는 그 깊이가 얕을 것이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훈수꾼의 역할에 그칠 테니까.세상에 예외는 항상 있다. 20세기 마지막 보편가라고 불리는 폰 노이먼은 전설적인 수학자로서 대수학과 해석학의 대가였다. 그의 연산자 이론은 양자역학의 주요 도구가 되어 물리학자들의 언어가 되었다. 게임이론을 발전시켜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컴퓨터 개발의 선구자였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 멤버였으며, 수소폭탄 개발의 주역이었다. 각각의 성취만으로도 해당 분야 최고의 성취로 길이길이 남을 만한 수준이다.지구에서 IQ가 가장 높은 사람 명단에 거론되곤 하는 테렌스 타오는 조화해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인데 정수론에 무작위성을 도입하여 필즈상을 받았다. 클레이 재단이 백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해답을 찾던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론을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난해한 개념을 사용해서 풀어냈는데,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닌 타오는 이에 대해 통찰력 가득한 강의를 펼쳐낸다. 그의 천문학 대중 강연은 지금도 명강으로 회자된다. 수학자들 사이에서 '수학 연구를 하다가 난관에 봉착해서 진전이 없으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이라는 농담이 오고간다. 답은, '테렌스 타오가 그 문제에 관심 같도록 설득하면 된다'이다. 타오가 그 문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면 그건 풀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농담은 1978년 필즈상을 수상했던 프리스턴 대학의 찰스 페퍼만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의 타오를 'Mr. Fix-it(해결사)'이라고 평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특정인에 대한 이런 무한신뢰라니. 26살에 UCLA의 정교수가 된 이 사람은 이제 고작 41살이다. 보편가의 범주에 올릴 만하다.이런 천재들의 무용담은 강 건너 얘기 같아서 우리 같은 범인과 연결점이 없어 보인다고? 기존 직업들이 없어지고 새 직업이 출현하는 일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한 분야의 전문가로 맞춤형 교육을 받았다가 그 직업이 없어지면 낭패가 된다. 그래서 맞춤형 교육은 위험하고, 필요할 때 새로운 분야에 진입이 가능한 정도의 소양은 이제 필수가 됐다. 지식의 총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보편가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7-07 박형주

[춘추칼럼]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어린시절 살던 집의 순례는 곧 '기억의 순례'아이들도 땅집 생활의 추억이 생생하다고 말해오두막이라도 마당만 있으면 공간 확장성 커져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광주 도청 쪽 충장로 초입에 '오두막'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오두막처럼 작긴 했으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제법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모든 집의 원형은 바로 오두막이라고 말한다. 필요 없는 공간을 하나씩 들어내다 보면 더 이상 들어낼 공간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데 그때 남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집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기슭 비탈진 곳에 살림집으로 14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현대 도시 건축물에 큰 영향을 미친 르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 역시 자신만을 위한 별장은 4평짜리 오두막으로 지었다. 자연 속 삶을 추구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4.2평짜리 오두막에서 살았다 하지 않던가.이 오두막들은 마을과 떨어져 있어 이웃과 더불어 혹은 식구들과 더불어 사는 집의 형태는 아니다. 다만 나에게 오두막은 전 국민의 반 이상의 주거 형태가 되어버린 아파트와 대별되는 지점에서 떠올리게 되는, 그래서 늘 갈망하게 되는 주거 형태이다. 나 역시 숨 막히는 아파트의 숲에서 종종 탈출하고 싶어 오래 전 서울 근교의 산 중턱에 여섯 평짜리 농막을 지었다.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곳곳에서 한국형 아파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고층 아파트는 우리에게서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 갔다. 이웃과 소통하던 골목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주변을 아파트 단지로 차단함으로써 모두가 누려야 할 자연을 독점해가고 있다. 천장 높이는 2.25m로 모두 똑같아 답답하고 변화가 없다. 이불을 말릴 수 있던 발코니, 하늘이 보이던 발코니, 자연과 호흡하는 창구였던 발코니는 알루미늄 새시로 막혀 유리창 벽으로 변해버렸다.어디 그뿐이랴. 한밤중에 식구들끼리 맘 놓고 크게 웃을 수 없는 곳, 큰 소리로 노래할 수 없는 곳, 간짓대 세워 이불을 털어 말리고 그 이불 사이로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수 없는 곳, 일상에서 상처를 입고 잠 못 이루는 밤 발코니에 서면 위로해주는 마당 대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곳. 이런 곳에 추억이 깃들기 어렵고 그래서 아파트는 기억을 앗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광주 누문동 집에 정착하기 전까지 나는 무려 아홉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의 발령횟수에 더해, 해남이나 성전 같은 시골로 발령받으면 광주에 셋방을 얻느라 몇 번 더 이사했던 것 같다. 일본식 관사나 양옥이 있었는가 하면 한옥도 있었고 뭐라 특징을 말할 수 없는 집들도 있었다. 주거 형태는 갖가지였지만 비록 좁더라도 언제나 마당이 있었고 나무와 꽃이 있었으며, 개와 고양이와 노루와 토끼와 닭과 염소가 있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그야말로 오두막이었던 셋방에서부터 복도가 길고 큰 방이 여러 개 있었던 일본식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에 살았는데, 마당 넓은 신안동 기와집에 살 때의 기억이 제일 다채롭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홉 개의 집과 더불어 때론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때론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의 순례는 곧 기억의 순례이기도 하다. 결혼해서도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아파트가 아닌 '땅 집'에서 살았다. 그 후 10년간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10년은 나에게 혹독한 시간 들이었다. 신기하게도 두 아이들 역시 '땅 집'에서의 시절은 기억이 생생한데 아파트에서의 기억은 흐릿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기억도 시간이 아니라 공간 이었던 것이다.아무리 작은 오두막이라도 손바닥만 한 마당만 있으면 100평짜리 아파트보다 공간의 확장성이 커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으로 시작하는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처럼 찬란한 추억이 함께하는 공간은 '땅 집'인가 아파트인가./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6-30 강맑실

[춘추칼럼] 대북제재의 효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현지지도와 당·국가차원 대외활동 활발물가·환율 큰 변동없고 비핵화 커녕 '핵능력 강화'포괄적 제한·금지보다 '대화·제재' 병행전략 필요지난 3월 3일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주요 내용은 무기거래 금지, 제재 대상 지정, 확산 네트워크 구축, 해운·항공·운송 검색 의무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포기, 대량살상무기 수출통제, 대외교역 제한, 금융거래 중단, 금수대상 사치품 목록 확대 등이다. 대북제재 조치는 한국의 입장이 80% 반영되고 중국의 입장이 20%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270호가 채택된 지 4개월째 접어든다. 제재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대북제재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 또는 징후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도자나 정권의 공식적인 활동, 둘째, 급격한 시장물가 상승 및 환율변동, 셋째, 대외무역의 감소 폭, 넷째, 주민들의 불만 고조, 다섯째,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 등이다. 정부는 이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효과는 별로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한다.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비롯한 당·국가 차원의 대외활동은 활발하다. 김 위원장은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법적 제도적인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남은 것은 주민생활향상을 통한 실질적인 주민들의 지지 획득이다. 당 대회 후 민생경제 현지지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지지와 직접 연관된다. 대외활동도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은 아프리카의 우방국 적도기니 공화국을 방문했다. 당중앙위원회 김영철 부위원장은 쿠바를 방문했다. 윤병세 장관도 쿠바를 방문했다. 쿠바를 둘러싼 남북한의 외교전이 시작됐다. 쿠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는 혁명세대와 실리를 중시하는 혁명 2세대 간의 논쟁이 뜨겁다. 아직 쿠바가 북한과 단교하고 한국과 수교한다는 소식은 없다. 쿠바는 혁명세대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이수용 부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과 만났다. 제7차 당 대회 결과를 설명하면서 양국 간 당 대 당의 관계복원에 합의했다. 북한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동북아협력 대화에 최선희 부국장을 파견했다. 최 부국장의 방중은 대화든 대결이든 모두 준비되어 있음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지만 주최국 중국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오는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과 11일 북중우호협력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아 양국 최고지도자 간의 축전정치와 고위급상호교환방문이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물가와 환율도 큰 변동이 없다. 5월 기준 쌀 1kg에 북한 돈 4천500원에 거래됐다. 환율도 1달러에 북한 돈 8천400원에 교환됐다. 평양의 택시는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4월 기준 북중간 무역총액은 4억3천만달러로 알려졌다. 전년 동기대비 10%가 감소된 수치다. 무연탄의 대중수출 감소가 핵심적 품목이다. 대북제재의 효과인지 중국의 석탄수요 감소의 영향인지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철광석의 대중수출은 늘어났다. 항공유의 대중수입량은 10배 이상 증가됐다.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있어도 조직적인 저항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식량이 다소 부족하지만 비축미를 풀었다는 소식은 없다. 봉사무역을 하는 해외 종업원들의 탈북 숫자는 조금 늘었다. 대북제재의 효과라기보다 해외에서의 비사회주의 생활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불변이다. 핵탄두 폭발실험과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경제건설·핵 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당규약에 명시했다. 비핵화는 커녕 핵 능력 강화로 가고 있다.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제재 효과의 경로는 간단하다. 제재를 하면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고, 결국 정권 유지를 위해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재를 하면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고, 불안정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민중봉기로 인해 정권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포괄적 제재는 제재대상국의 정책결정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국민들은 자국의 권력자가 아닌 제재를 부과한 유엔안보리나 제재를 주도한 국가를 원망한다. 대북제재의 효과는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의 호응이 있을 때 배가된다. 대화와 제재의 병행전략이 요구되는 대목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6-23 양무진

[춘추칼럼] 국민 독서운동 제창

국민들 책 읽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 '퇴색'중앙·지방정부, 독서운동 적극 확산시켜야국가별 독서율, 글로벌시대 경쟁력과 '직결'신석정 시인은 서재에 '책은 외출을 싫어한다'라고 써서 붙여 놓았다고 한다.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이들이 많고, 또 빌려간 책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였기에 이런 궁여지책을 강구하였는지 모른다. 책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겼고, 그에 버금하여 독서량이 풍성하였던 선생의 인품이 눈에 선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나폴레옹도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 읽고 난 책은 마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한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읽은 책은 보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그냥 주곤 했다고 한다. 책은 만인의 것임을 나름대로 실천한 셈이다. 독재자 무솔리니도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굳이 유명인의 예화를 들지 않더라도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면 현인과 벗이 될 수 있다는 독서상우(讀書尙友)란 말이 이를 증거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목경(目耕)의 즐거움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이 삼매를 누릴 겨를이 없는 것 같다. 학생들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가까이 한다. 강의가 없는 빈 시간에 야외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낭만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이 아니라 수불석기(手不釋機)에 빠져 있다. OECD에 가입한 주요 국가의 연평균 독서율이 76.5%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작년에 가구당 책을 사는데 쓴 비용은 1만6천원 꼴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참고서나 학습교재를 사는데 쓴 돈이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일반 교양서적은 거의 구매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1인당 책 읽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로 한국이 소개되었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 퇴락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경쟁력은 물론 나라의 품격도 하박을 벗어날 수 없다. 한 국가의 독서 경쟁력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범국민적 책읽기 운동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책 읽기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으면 좋겠다. 다문화가정이나 임산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독서지도사를 파견하거나, 노인들이 읽기에 편하도록 활자가 큰 책을 제작 보급하는 일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 영국처럼 지역의 모든 아기에게 책을 선물해 주는 북스타트(Book Start) 운동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방의 작은 도시 충남 논산에서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논산독서협회(회장·김영란)의 정기 독서 모임은 눈여겨 볼 만하다. '책 읽는 도시! 품격 있는 논산'을 구호로 내걸고 2006년부터 매달 두 권씩 책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초청 인사를 모셔서 강연을 듣는다고 한다. 논산시도 공간이 필요하면 시장실이라도 내어주겠다며 이 독서모임의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범국민적 독서운동을 촉발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이 글로벌 시대의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독서율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각종 지수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서하지 않는 국가와 국민은 지식 기반 경쟁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바야흐로 '독서 혁명' 중이다. 독서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독서흥국(讀書興國)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6-16 정영길

[춘추칼럼] 코딩교육과 문맹탈출

자신의 목적 '최적 알고리즘' 설계하는 능력돼야대학입학·취업률로 교육 잘되고 있는지 척도 삼아취업 측면에서 이젠 평생교육이 필요한 시대 도래어린 시절에 대나무와 창호지를 가지고 연을 만들어 본 사람은 그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의 성취감을 기억한다. 고난이도의 조립식 장난감을 완성해본 사람은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경험은 그래서 늘 특별하다. 요즘에는 스스로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가 자신의 의도대로 신기한 일을 해낼 때 통쾌감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많다. 음악이나 미술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프로그래밍은 아이의 머릿속 상상을 세상에 구현하는 새로운 통로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 즉 코딩(coding)을 가르쳐야 한다는 흐름이 생겼다. 이미 영국이 교육과정에 코딩 교육을 도입했고, 미국이 여러 주에서 도입을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곧 시작된다. 단순 코딩은 번역과 비슷한 과정이라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고, 이런 기술만을 숙련해서는 미래에 쓸모가 높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통역을 대신하게 돼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여전히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지 않나. 접할 수 있는 세상이 훨씬 커지니까.코드카데미의 자크 심즈 창업자가 얼마 전에 방한했다. 코딩에다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의 아카데미를 조합한 코드카데미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기업이다. 전 세계에 수천만 명의 이용자를 두고서 세계적인 코딩 교육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그가 강연한다고 하길래 코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이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강조한 것은 수학 문맹(computational illiteracy) 해소였다. 계산적 읽고 쓰기(computational literacy)는 계산을 잘하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과정인 알고리즘 설계 능력이 대부분이고,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코딩 능력이 나머지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방식들 중에서 최적인 것을 찾아내고 판단하는 능력인데, 통상의 수학 교육이 지향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과 다르지 않다. 심즈에 이어서 강연한 프라딥 두베이 인텔 병렬컴퓨팅랩 소장도 이 견해에 동의를 표했다. 프로그래밍 기술의 개선으로 원래 프로그램의 속도를 수십 퍼센트 개선할 수 있겠지만,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개선은 알고리즘의 개선에서 온다는 것이다. 수학적 문맹을 벗어나야 이런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베이 소장은 인간의 개입 없이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아웃사이드인(outside-in) 시대의 도래까지 예고했다. 그러니 코딩 교육이 단순히 프로그램밍 기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면 곤란하다. 자신의 목적을 구현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능력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코딩 기법도 알아야겠지만, 알고리즘을 코딩해주는 기계학습 시스템의 출현은 불문가지다. 심즈는 국가별로 교육이 잘되고 있는지를 재는 정량적인 척도는 대학 입학률과 취업률이라고 주장했다. 전자는 초중고 교육의 척도이고, 후자는 대학 교육의 척도다. 대학입학률은 우리나라가 기형적으로 높지만 대졸자 취업률은 낮으니,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은 성공적이고 대학 교육은 실패하고 있는 게 된다. 정말 그런가. 오바마는 여러번 미국 초중고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시적 목표로 대학입학률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한국 초중고 교육의 우수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것도 이런 성공 척도와 일맥상통한다.교육의 성공에 대한 이러한 척도의 무모함에 대해 맹렬히 논쟁하려는 사람에게 심즈는 한마디 더한다. "현행 교육은 대학 입학률과 취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점차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취업의 측면에서 더 이상 대학은 교육 시스템의 주요 부분이 아니며 코딩 교육을 포함한 평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MOOC의 확산 등으로 이미 그 조짐이 보인다. 대학의 존립이 취업이 아닌 다른 가치 창출로 정당화 되어야 하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 같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6-09 박형주

[춘추칼럼] 한 나무의 주검

450년 주민들 사랑 받으며 동고동락했던 '당산나무'영주댐공사로 줄기 잘리고 새까만 피 토한채 죽어나무는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땅 살리려는건 아닐까어느 날 메일로 충격적인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비계파이프가 얼기설기 얽힌 사이사이로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은 거대한 시체 한 구가 보였다. 수많은 팔이 잘린 온몸 이곳저곳에 이불 홑청처럼 큰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붕대는 대부분 풀려 바람에 나부끼고 시체가 흘린 새까만 피로 뒤범벅된 지 오래인 듯했다. 거대한 몸 곳곳에는 링거 줄 몇 개가 무심히 엉켜 있었다. 곡절 많은 세월을, 고단한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을 그 몸은 비록 팔들이 모두 잘려나갔지만 꿈틀대듯 솟아오른 몸통의 근육들 속에 금방이라도 용트림 치며 끄응, 하고 살아날 것만 같은 힘찬 생기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맞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이 거대한 시체는 나무다. 메일로 덩그마니 사진만 날아온 터라 사연이 궁금해 차를 몰고, 그 거대한 주검이 인간들에게 항거하듯 서 있을 영주 댐으로 달려갔다. 나무의 주검 앞에는 '보호수'라는 이름 아래 묘비처럼 이렇게 씌어 있었다. "품격:마을 나무, 지정번호:11-28-3-4-19, 지정일자:1982.10.26., 수종 및 수령:느티나무 450년, 소재지: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304"450년 세월을 마을사람들 사랑 듬뿍 받으며, 그늘진 평상에서 나눈 숱한 사연들 들어가며 동고동락했을 오지랖 넓은 당산나무. 바람둥이 까치가 집을 서너 채나 지었을 가슴팍 넓은 느티나무. 우듬지 사이로 다람쥐들 오르내리고 까치가 집을 비운 사이 박새며 참새가 후드득 날아들어 잠시 쉬어갔을 다정한 나무. 영주 댐 공사로 느닷없이 수몰지역으로 지정된 마을에서 건져낸 450세의 연세 많으신 나무는 인간으로 치면 12대가 넘는 세월을 뿌리박고 살아온 땅에서 파헤쳐져 하늘 향해 뻗은 팔 같았을 수많은 줄기를 몽땅 잘린 채, 몸통만 남아 낯선 곳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뿌리가 잘려나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나무를 살리고자 인간들이 설치한 비계파이프와 거추장스런 붕대와 영양제 주사를 비웃듯, 나무는 새까만 피를 토해내며 죽었다.현장을 안내해준 지율스님은 삶의 터전이 옮겨지는 순간 나무 스스로 생을 거부한 거라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부처의 마음은 곧 생명을 살리는 마음이라며 생명 파괴의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천막을 짓고 산다. 지율스님을 중심으로 한 환경모임 '내성천과 친구들'은 영주댐 건설 무효화 소송까지 제기했다. 영주댐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 지역에 계속 산사태 현상이 일어나고 최근에는 시멘트 댐 벽체 아래서 물이 솟아나와 이대로 담수를 할 경우 댐의 붕괴 위험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그뿐이랴. 낙동강 상류의 지천인 내성천에 들어선 영주 댐 때문에 황금 모래밭이 끝없이 이어지던 내성천은 물길이 막혀 황폐해지고, 주변 논들은 물이 말라 타들어간다.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재가 사라졌고 예쁜 학교와 자그마한 소방서와 동네를 이어주던 다리들이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영주 댐은 정말 필요했던 것일까. 지율 스님과 '내성천의 친구들'은 내성천 회룡포 부근에 예닐곱 평짜리 4대강 기록관을 세우고 있다.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리라."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듯 나무는 인간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이 땅에 뿌리박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이 땅을 두 팔로 지탱하면서 안간힘 쓰며 살려내려는 건 아닐까. 이미 이 땅을 지탱해줄 힘을 포기한 450세 느티나무의 주검에서 우리의 주검을 본다. 이 땅을, 우리 인간을 지탱해줄 나무들을, 수많은 생명체를 앗아간, 지금도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을 어찌할 것인가./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2016-06-02 강맑실

[춘추칼럼] 제 7차 당대회로 본 북한의 대외정책

'김정은 시대' 선포했지만 외교적 미래비전 안보여연방제, 남북 함께하는 과정으로써의 통일은 없어정부에 '군사회담 제안' 북미회담 분위기 조성 의도북한은 지난 6∼9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했다. 36년만에 개최되는 대회인 만큼 국내외의 관심이 컸다. 북한은 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 국제사회는 실패를 기대했다. 해외의 고위급 축하사절단의 방북이 없었다는 점은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한다. 120명의 외신 기자들이 방북한 것은 북한 노력의 결실이다. 최고의 정치행사이며 축제의 장에 북한과 국제사회가 대립하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다.제7차 당대회의 주제어는 핵, 당, 김정은으로 요약된다. 당규약에 핵보유국을 명시하고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이 항구적인 노선임을 분명히 했다. 군의 인사가 퇴조되고 당의 인사가 확대됐다. 김정은은 당 전체의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보좌기구로써 당중앙위원회 정무국과 부위원장직을 신설했다. 세 개의 주제어를 합성해 보면 핵무기라는 튼튼한 안보에 토대해서 당이 중심이 되어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새로운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낡은 김일성·김정일 주의만 있고 김정은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지도자상이 없다. 경제발전5개년전략이라는 구호만 있고 구체적인 정책방향과 이행방안도 없다.대남 분야에 있어 대화와 대결이 혼재되어 있다. 군사회담을 제안하면서 주한미군철수 등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면서 서울해방작전·남반부해방작전 등 대남위협 수위를 높였다. 통일3대헌장을 통일의 이정표로 제시했다. 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3원칙,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93년 대화·상호존중의 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 김일성의 통일 유훈만 나열했다. 김정은식 통일방안이 없다는 것은 민족문제 해결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대외 분야에 있어 3원칙인 자주·평화·친선을 재확인했다. 블록불가담(비동맹) 운동을 강화·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비동맹운동은 냉전시대의 유물로써 21세기 탈냉전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변화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써 세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핵을 결코 폐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국과 핵을 가진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또는 평화협정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핵군축 협상은 전략 무기가 균형을 이룬 국가끼리 가능하다. 북한은 80년대 미국과 전략무기감축협상을 벌였던 소련과 동급으로 착각하고 있다. 작금의 핵비확산(NPT)체제하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은 망상이다. 미국은 이중 잣대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을 핵보유국으로 묵인했다. 묵인은 압박과 제재를 해제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국이 묵인할 정도의 전략적 가치가 없다. 핵보유와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강한 충돌을 예고한다.북한은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시대를 선포했지만 외교적인 미래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방제라는 결과로써의 통일만 있고 남북이 함께하는 과정으로써의 통일이 없다. 냉전시기 블록불가담운동만 있고 탈냉전 시기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공존공영운동이 없다. 자주도 우리 민족끼리라는 배타적인 것만 있고 세계인과 함께하는 공동체 인식이 없다. 북한은 제7차 당대회 후 지난 20일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을 우리측에 보냈다. 당국간 군사회담을 촉구하면서 충돌해소와 통일달성을 위한 실천적 조치가 곧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대남비방중상 중지·핵실험 잠정 중단·병력감축 선언 등이 선제적 조치로 예상된다. 북한의 군사회담 제안은 중국의 대화 촉구를 수용하면서 북미회담의 분위기 조성의 의도가 있다. 우리 정부의 수용 여부는 별로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우리 국방부는 진정성이 없는 평화공세라면서 거부했다. 지금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는 한가지에만 올인하는 도박게임이 아니다. 도박게임은 반드시 실패한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한반도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압박도 필요하지만 대화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6-05-26 양무진

[춘추칼럼] 국어기본법 헌법 소원 사건

우리말어휘 대부분 한자어로 한자 모르면 뜻 어려워한자어와 고유어 구분못하면 '사이시옷' 표기 못해한자, 동아시아 소통 도구로 소홀히 여겨선 안돼한자를 섞어 쓸 것인가, 한글로만 표기할 것이냐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국어기본법 위헌 확인 헌법소원 공개 변론이 있었다. 국어기본법의 한글로만 표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 되는지를 따지는 자리였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정규 교과서나 공문서는 한자를 섞어 쓸 수 없고 모두 한글로만 써야 한다. 이 조항이 어문 생활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며 관련 단체에서 헌법 소원을 낸 것이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는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가 출석하였는데, 그는 한자와 한글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공생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점을 무시하고 학교에서 한글만 가르쳐 왔기 때문에 국어교육이 파행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같은 대학의 권재일 교수는 한글이 가지고 있는 정보 효용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국한문 혼용은 일제 식민지가 낳은 기형적인 표기 형태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였다. 반대 측 대리인 변호사도 정보화 시대에 한글을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으므로 '한글이 언어 인권에 이바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국어기본법의 이런 조항들이 학습권을 훼손하고 또 문자 선택권과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하였는지는 헌법재판소에서 판가름할 일이다. 그러나 법리적 판단에 앞서 두 가지 점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먼저 한글전용이 국어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우리말 어휘의 대부분이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문 학술용어는 물론, (서류) 결재와 (카드) 결제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데도 한자를 익히는 것이 유리하다. 또 국어정서법에 맞게 표기하기 위해서라도 부득불 한자를 알아야 한다. 사이시옷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한자어와 고유어를 구분하지 못하면 사이시옷 표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수돗물'에는 사이시옷이 필요하지만, '수도세'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뇌졸중(腦卒中)을 뇌졸증(腦卒症)으로 잘못 알 거나,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와 같은 틀린 표현을 하게 된다. 심지어 국어와 한글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거나 한자와 한자어를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자(漢字)라는 호칭의 유래를 잘못 알고 한자를 무조건 외국어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곤란하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 반포하신 의도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다음으로는 한글전용이 국가 장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은 정보화시대의 유용한 도구지만 세계화를 염두에 둔다면 한자를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한자는 우리글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의 유용한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우리의 무역 및 관광 상대국 가운데는 한자 문화권 국가가 많다. 자칫하면 우리만 문맹국 신세가 될 수 있다. 한글과 한자를 국어의 양 날개로 인식하면 문화 잠재력이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언어구조를 가진 나라는 지구 상에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2016-05-19 정영길

[춘추칼럼]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中,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선두 다퉈인적·물적 규모로 치고 올라와 차별화 불가피특정분야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인재 육성해야전기가 발명되고 나온 초기 전구들은 실사용에 문제가 많았다. 인내심을 무기로 최적의 전구 필라멘트와 내부 기체를 찾아낸 토마스 에디슨은 그래서 백열전구의 발명자라고 불린다. 그의 에디슨 전기회사를 병합한 제너럴 일렉트릭(GE)은 가전으로 출발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됐다. GE는 20세기 온갖 혁신의 대명사였지만 한때 거센 기업 간 경쟁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좌초의 위기도 맞았다. 잭 웰치라는 걸출한 경영자가 이를 해결하고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얘기는 현대판 영웅담으로 회자된다. 그런 GE의 가전사업부를 중국 가전회사인 하이얼이 얼마 전에 인수했다. 백열전구 발명자의 흔적은 중국으로 넘어갔고,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던 후발주자 하이얼은 GE라는 브랜드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중국은 이제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선두를 다투는 나라다. 올해 초의 CES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유인 드론처럼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첨단 제품을 여럿 보여주었다. 중국의 부상 이면에 있는 내용과 전략도 놀랍다. ICT 만능주의의 묻지 마 투자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전 영역에서 인재를 기르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해외의 과학기술 인재 천명을 유치해서 엄청난 수준의 대우와 연구비를 제공한다는 천인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고, 당장의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는 순수수학 분야에서도 전설적인 기하학자와 젊은 천재 정수론 학자 등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최근엔 자국의 국내박사 지원책인 '박사후 혁신인재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국가의 중대전략, 첨단기술, 기초과학 분야의 신규 박사 수백 명을 매년 선발해서 최고의 인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대졸자 초봉의 2~3배에 달하는 지원과 함께 관련 기업에 취업 추천도 하며 외국인 인재의 영구거류증 발급도 쉽게 했다. 외국 유학생의 창업과 영구정착을 위해 취업 제한을 풀고 영주권 신청 자격도 확대했다. 마원의 알리바바가 무서운 것은, 인터넷에서 물건 파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IT 시대를 넘어서 DT(Data Technology) 시대의 도래를 이해하고 주도하는 혜안과 리더십 때문이다. 이러한 큰 그림을 실제로 구현할 인재들이 무섭게 커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성장전략에 대한 고민은 간단치 않다. 인적 물적 규모의 토대 위에 어느새 치고 올라온 중국과는 차별화가 불가피하다. 메이지 유신 이래로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일본과도 다르다. 노벨상 분석을 하면서, 일본 내 교육을 받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많은걸 들어서 로컬한 자체 연구가 노벨상의 비밀이라고 결론 내는 경우가 있다. 근대 일본의 역사성을 간과한 채로, 글로벌 과학과 일본의 과학을 별개로 보는 오류로 보인다. 작년 중국의 약초 연구 노벨상 수상처럼 국지성이 돋보이는 예외적 경우가 있다 해서, 섣부른 일반화로 과학기술의 글로벌화라는 숙제를 쉽게 건너뛸 순 없다. 물론 기초과학의 단단한 토대 없이 응용과학만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은 자살 시도에 가깝다. 전기나 무선통신의 출현 같은 근본적 변화의 시기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무지한 채로 선진국의 시혜에 의존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니까. 알파고 충격에 대응한다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자체 연구력 없이 슈퍼컴과 데이터만 확보하려 한다면 영원한 따라잡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초부터 탄탄히 해서 산업의 성장으로 점진적으로 이어가자는 주장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클리쉐다.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후발주자의 장점을 못살리니 좋은 전략도 아니다. 기초 분야에서 응용과학까지 전 영역에서 인재를 기르는 전략을 세우되, 분야 간 상호연계에 주목해야 한다. 넘쳐나는 맞춤형 교육과 맞춤형 프로그램은 이제 잊자. 무작정 여러 분야를 묶어서 융합으로 부르는 것도 곤란하다. 특정분야에 묶이지 않는 유연한 소양의 인재를 길러서, 필요에 따라 연계된 분야에도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2016-05-12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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